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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나무

엄마의 나무

심희정

 

콧속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다. 손끝 발끝이 꽁꽁 얼어가고 있는 듯해서 몸을 오스스 떨었다. 차가워진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현관을 바라보았다. 이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와장창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아까부터 얼어가던 손발이 깨져버리는 것 같아 무서웠다. 두 눈을 꼭 감고 손으로 귀를 감쌌다.

아아악소리에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엄마의 비명 소리에 얼었던 손발에 힘이 꾹 들어갔다. 굳게 닫혀있는 현관문같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고는 눈이 아파 눈물이 나올 때까지 노려보았다. 엄마의 비명과 아빠의 고함은 계속 들려왔다. 마치 고장 난 시계가 끊임없이 알람을 울려대듯 말이다.

아빠가 현관으로 들어올 때부터 술 냄새가 났다. 어렸을 때부터 술 냄새를 맡아왔는데도 나는 늘 멀미가 났다.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서 술 냄새가 조금이라도 날 때면 벽에 머리를 세게 찧고 있는 듯 아팠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빠가 시계추처럼 흔들거리자 나를 재빨리 밖으로 내보내셨다. 이번만큼은 나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엄마는 있는 힘껏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오늘도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물건을 던지고 있을 것을 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그리고 잠옷만 입은 몸 위로 늦가을의 찬 바람이 파고들어서 난 그만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말았다.

엄마는 아빠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나 몸에 퍼런 멍을 지니고 있으면서 말이다. 엄마는 아빠가 불쌍하다고 했다. 아빠가 어딜 가서 저렇게 큰소리 낼 수 있겠느냐며 엄마와 내가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가 더 불쌍하다고 아빠가 밉기만 하다고 소리쳐 울고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렇게 말했다가 엄마가 우는 것을 본 이후로는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 아닌데, 엄마는 어떻게 아빠를 안쓰러워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불쌍하다는 기준이 무엇일까? 아빠의 발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의족이라서 아빠가 불쌍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는 것이 불쌍하다는 것일까?

엄마의 몸은 온통 멍투성이일 것이다. 내게 멍을 보이지 않으려고 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엄마는 여름에도 항상 긴 팔을 입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게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셨던 것 같다.

언젠가 밤에 자다가 깼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혼자 약을 바르는 것을 보게 됐다. 불빛 아래로 비쩍 마른 엄마의 몸이 보였다. 엄마의 몸에는 식물의 이파리마냥 퍼런 멍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보라색인지 자주색인지 모를 멍과 검은 멍도 아프게 새겨져 있었다.

미처 다 가려지지 않은 얼굴의 퍼런 멍이 보였다. 얼굴에 저 정도의 멍이 있으면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얼마나 심하게 상처 입었을까. 엄마의 아픔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인지 심장이 따끔거렸다.

엄마의 멍을 보고 있자니 나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꾸었던 꿈이 마치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아 무서워졌다.

꿈속에서 엄마는 멍이 점점 온몸으로 번져 나무로 변해버렸다. 파란 멍은 잎사귀로, 노란 멍은 시들어 버린 떡잎으로, 검은 멍은 나뭇가지로 말이다.

꿈속에서 나무로 변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엄마를 잡으려 했을 때 내 팔은 바위인 양 굳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벙어리가 되어 버린 양 입만 벙긋거려질 뿐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땀에 흠뻑 젖어 꿈에서 깬 후에 엄마를 찾아보면 엄마는 언제나처럼 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결국 나는 그 꿈을 꾸게 될 때마다 그냥 꿈일 뿐이라고 몇 번씩 되뇌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가 정말로 나무가 돼버릴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무서워.”

내게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서던 엄마는 뭐가 그리 무섭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몸이 온통 퍼렇고 거멓고 그러니까 무서워. 엄마가 꼭 엄마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릴 것만 같아. 그래, 꼭 나무로 변할 것만 같아.”

내 말에 엄마는 힘없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엄마는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렸다. 뭔가 불안했다. 엄마의 물기 어린 까만 눈동자 빛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감에 나는 엄마의 옷을 꼭 쥐었다.

엄마 나만 놔두고 다른 데 가지 마. 알았지? ?”

엄마의 희미한 웃음에 나는 안 가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려고 몇 번씩 물어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뿌연 안개 같은 흐릿한 미소만 보이고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애처로운 눈빛으로 내 손이며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엄마의 힘없는 미소가 마음에 걸려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어서 가라고, 학교에 늦겠다며 등을 떠다밀었다. 마치 엄마가 맞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를 떼밀어냈던 것처럼 다급하면서도 완강하게 말이다.

수업을 받고 있는 내내 나는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아침에 엄마의 기운 없던 모습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파리를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보였다.

엄마가 교정의 나무들처럼 맥없이 시들어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아까의 힘없던 웃음도,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몇 남지 않은 이파리가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며칠간 계속 꿨던 꿈이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연필을 잡은 손에 힘이 꼭 들어갔다.

엄마가 동화 속의 주인공도 아니고, 나무로 변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 무서워졌다. 그래서 수업 내내 불안에 떨며 창밖에 시들어가는 나뭇가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환경미화 당번이었기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있어야 했다. 마음은 이미 저만치 집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몸은 학교에 있으니 애가 탔다.

교문을 나설 때는 시간은 그리 늦지 않았지만 가로등 불빛이 비치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찬바람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분명 익숙한 것인데도 오늘따라 낯설게만 느껴졌다. 땅바닥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듯한 나뭇가지가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나무를 바람이 스치며 내는 소리는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몸에 온통 소름이 돋았다.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서운 마음에 나는 가방끈을 꼭 쥐고는 집을 향해 뛰어갔다. 다리에 쥐가 나고 겉옷까지 땀이 밸 정도로 뛰어 집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숨을 골랐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던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가슴을 죄어왔다.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불러보았지만 집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서운 마음에 나는 급히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은 쉽게 열렸고 나는 더 놀라 신발을 벗을 생각도 못 한 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이 꺼진 집안은 어제 아빠가 망가뜨린 물건들이 그대로 널려있었다.

안방 문을 열고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엄마?”

엄마가 없다. 손끝이 차다. 집안에 찬 공기가 맴돌고 있다.

내 방문을 열어보고, 화장실을 보았다.

엄마!”

역시 엄마는 없다. 오래달리기를 하고 난 뒤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엄마. 엄마엄마!”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엄마를 불러보았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는다.

무서워서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것만 같다. 엄마가 날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불을 켤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가 떠나버린 것이다. 아침에 안개처럼 희미하게 웃을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나무가 되는 꿈을 꿀 때부터 알았어야 했던 거다. 끊임없이 눈물이 솟아올랐다.

한참을 울다 보니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눈물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기운이 잔뜩 빠져 멍하니 앉아있는데 베란다 쪽에서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났다. 우리 집 앞에는 나무가 없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론 엄마가 집에서 식물을 키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나는 재빨리 베란다 쪽으로 나가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앙상한 가지에 파랬었을 잎이 노랗게 시들어가는 나무 화분이 있었다.

며칠간 계속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된 것일까.

갑작스럽게 추워져서 나는 몸을 덜덜 떨었다. 바람에 쓸려 앙상한 가지와 잎을 흔들어대는 나무처럼 말이다.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화분을 만져 보았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듯 누런 잎이 위태롭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그나마 있는 파란 잎도 시들시들하기만 했다. 나는 나무 화분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멍하니 화분을 바라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안았다. 불쌍한 우리 엄마. 이제 엄마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여보, 어디 있어?”

술에 취하지 않은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나는 화분을 품에 꼭 안았다.

얼마 있지 않아 아빠가 베란다로 와서 내게 엄마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빠는 따뜻하고 두툼한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 쥐었다.

정아야. 네 엄마 어디 갔니?”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려 품 안에 있는 나무 화분을 아빠로부터 숨겼다.

내가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아빠는 뭔가가 이상했던지 베란다를 나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엄마 어디 갔어? 언제 나갔어!”

아빠는 방을 다 뒤진 후에 내게 와서 엄마를 때릴 때처럼 크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래도 답을 않자 아빠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어댔다. 그러자 품 안에 있는 나뭇가지가 떨고 있는 듯 내 몸과 함께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렸다.

엄마가 어디 간다고 말 했어 안 했어? 어디 갔냐고 아빠가 묻잖아 빨리 말 안 해!”

아빠는 잔뜩 윽박을 지르다가 내가 끝내 말이 없자 손을 치켜올렸다.

! 엄마가 없으니까 이젠 날 때리려고?”

내 말에 아빠는 당황한 듯 손을 멈춰 세우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 때문이야! 전부 다 아빠 때문이야! 아빠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된 거잖아. 근데 왜 아빠가 화를 내는 건데. 나한테서 엄마를 뺏어간 게 누군데! 왜 아빠가 날 때리려고 하는 건데!”

엄마 때문에 말하지 못한 채 참고 쌓아왔던 감정들을 터트려내었다. 아빠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자, 아빠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급히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바쁘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엄마를 찾을 수는 없을 거다.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품에 안아 넣었던 나무 화분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아까 아빠가 흔들어댄 바람에 나무에 잎사귀가 많이 떨어져 나갔다.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엄마를 찾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친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니는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하셨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러워하셨다.

에그 불쌍한 것. 어미란 것이 무심하기도 하지 이 어린 것을 놔두고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사라질 수가 있어. 에그 불쌍한 것.”

할머니의 나무껍질같이 까칠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잠결인 척하며 그런 할머니의 손을 피해 옆으로 돌아누웠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는 날 버리고 간 게 아니다.

할머니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는 몰래 베란다로 나갔다. 며칠 전보다 떡잎이 더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아빠를 보면서 안쓰러워 흘린 눈물일까 싶어 나는 가만가만 고개를 저었다.

엄마, 아빠는 불쌍하지 않아. 엄마는 아빠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그랬지만 난 엄마가 더 불쌍해 보여.”

베란다의 얇은 유리창 틈새로 바람이 세어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나뭇잎이 살랑살랑 고개를 저어댔다. 엄마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도 엄마는 아빠를 안쓰럽게 생각하라는 듯했다.

엄마는 바보야.”

나는 심통 맞게 툭 말을 뱉어내고는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러자 창문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센 바람이 불었다. 틈새 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제법 을씨년스러웠다. 엄마의 나무도 그 소리에 무서웠던 모양인지 몸을 떨어댔다. 나는 나무 화분을 조심히 안아 들었다.

들키지 않게 거실의 구석쯤에 놓으려고 화분을 안은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아빠가 들어온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 몸이 굳어 버렸는지 움직일 수가 없다. 거실에 붙박인 듯 서 있던 나는 나무를 안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아빠는 비틀거리며 들어오다 나를 한번 보더니 곧 내 품에 안겨 있는 엄마의 나무를 보았다. 그리고는 내 곁으로, 아니 엄마의 나무에게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 오지 마!”

나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아빠가 무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네 엄마가 날 무시하니까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냐? 내가 그렇게 우스워 보여!”

아빠는 멈춰 선 채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겁이 잔뜩 났지만 화분을 안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그리고는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심정으로 아빠를 힘껏 쏘아보았다. 그러자 아빠는 내 눈을 피해 내 품에 안긴 나무를 대신 노려보았다.

그건 또 뭐야! 네 엄마가 도망갔는데, 너는 그까짓 화분이 뭐가 중요하다고 품에 안고 염병을 떨고 있어!”

갑작스럽게 아빠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고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아빠는 기분이 상한다는 듯이 급작스럽게 다가와 내 팔을 꼭 움켜쥐었다. 아빠에게 잡힌 손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너무 아파서 놓으라고 소리를 질러도 아빠는 막무가내로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나무를 안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품 안에 있던 화분이 점점 미끄러졌다. 덜컥 겁이 난 나는 화분이 떨어져 내릴 것 같다고 빨리 놔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무시한 채로 소리를 질러대며 내 몸을 흔들었다. 몸이 크게 앞뒤로 흔들렸고 내 팔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화분을 잡은 손에 힘을 줘야 하는데, 엄마를 지켜줘야 하는 데 힘이 빠졌다.

하며 내 몸을 흔들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내며 화분이 떨어졌다.

엄마가, 엄마의 나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화분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내가 크게 비명을 지르자 놀란 할머니가 아직도 잠에서 덜 깨신 듯 비틀거리며 거실로 뛰어나오셨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애비야, 너 진짜 왜 이러냐. 이젠 애한테까지 몹쓸 짓을 하는 게야! 에미 쫓아냈음 됐지 애까지 잡으려고 그러냐! 대체 왜 그래!”

할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빠의 팔을 잡고 나뭇가지같이 가느다란 팔로 힘없이 아빠의 몸을 내리치셨다.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엄마의 나무가 부러져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빤 왜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는 거야. 이제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엄마가 죽어가잖아. 나무가 죽어가잖아!”

나는 나무를 붙잡고 정신없이 울어댔다. 꺽꺽 소리도 끝내 나오지 못하고 그저 헛바람만 쉭쉭 내뱉어질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 후로 며칠간 앓아누워야 했다.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할머니와 아빠가 하는 이야기가 방문 너머로 얼핏 들려왔다.

이제 그만 정신 차려라. 애는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냐. 네가 몸이 멀쩡하지 않아서 그 분풀이를 집에 와서 하는 거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러면 안 되지 않냐. 자고로 옛말에 병신이 병신 짓 한다고 했다. 몸이 병신이라서 병신 짓 한다는 게 아니여. 마음이 병신이라서 병신 짓 한다고 하는 거여. 이제 그만하고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그러면 정아 에미도 돌아올 거여. ?”

할머니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아빠의 울먹임 섞인 말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도, 아무도 몰라요. 병신이 병신 짓하는 게 마음 때문이라고요? 사람 병신 취급하는 게 누군데요? 나도 제대로 살고 싶었다고요.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일하고 싶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고요! 근데 그렇게 살지 못하게 만든 게 누군데......”

아빠는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뭔가 말을 더 하려는 듯 웅얼거렸지만 잔뜩 물기를 머금은 아빠의 목소리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 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할머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아빠가 조심스럽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는 척 두 눈을 꼭 감았다. 아빠는 한참을 내 옆에 앉아 나를 보고만 있었다.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아빠가 내 팔을 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붕대를 감은 내 팔 위로 아빠의 손이 닿을락 말락 하며 여리게 살짝살짝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던 아빠의 손은 한숨과 함께 내 이마 위로 내려앉았다. 이마를 짚는 아빠의 손끝은 바람을 맞고 있는 여린 나뭇잎처럼 떨리고 있었다.

아빠가 일어나 방문을 나가는 것을 살짝 실눈을 뜨고 보았다. 절름거리는 아빠의 작은 뒷모습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마 엄마도 아빠의 저런 뒷모습이 불쌍했던 거였나 보다.

얼마간 앓아누웠다가 몸을 일으켰을 때 거실에 화분이 하나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가지가 잔뜩 부러져버린 엄마의 나무였다.

그거, 부러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더라. 네 애비가 다시 심어 놨다. 아마 다시 살아날 기다.”

내가 나무를 보고 있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나무같이 가느다란 할머니의 팔이 나를 감싸 안았다.

네 애비 이제 정신 차릴 기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마라. 저런 거 생전 하지도 않던 사람이 제 손으로 나무 심고, 물주고 하느라 고생하더라.”

어둑해진 거실에 앉아 있는데 아빠가 들어오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나무 화분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무, 꼭 살려 놔. 아빠가 책임지고 꼭 살려 내야해!”

목소리가 잔뜩 잠겨 나왔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문 앞에 서서 들어오지도 못한 채 나만 보고 있던 아빠는 한참 뒤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나무가 다시 살아나서 건강하고 파란 잎을 피워 내는 날이 오면 엄마가 돌아올까?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꼭 그래야 하고 말이다. 다시 새싹이 나려면 수없이 많은 밤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다려 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