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냉이야
원유순
봄이 되자 민아네 텃밭 가에 냉이가 새잎을 피웠어요. 냉이들은 이파리를 땅바닥에 누이고 쭈욱쭉 뻗어나갔어요. 길쭉하고 비쭉비쭉한 이파리들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을 먹고 자꾸 새잎을 피워 냈지요. 냉이는 이른 봄에 뿌리째 캐다가 구수한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고,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기도 하는 나물이랍니다.
민아네 텃밭 가에 닥지닥지 붙어 자라는 냉이들은 오늘도 재잘거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냉이들아, 안녕?"
지나가던 봄바람이 인사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봄바람님. 어디를 다녀오세요?"
"응, 저 들판에 피어 있는 꽃다지들을 어루만져 주고 오는 길이란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루만져 줘도 재미가 없구나."
"아니, 왜요?"
봄바람의 말에 냉이가 놀라서 물었어요.
"내가 어루만져 주면 고맙다고 이파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줘야 내가 재미가 있지 않겠니? 그런데 너희들은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통 움직일 줄 모르니...... ."
"아, 네."
봄바람의 말에 냉이는 부끄러워졌어요.
"미안해요. 봄바람임. 하지만 6월이 되어 우리가 하얀 꽃을 피우면 방글방글 웃어 드릴게요."
"아, 그렇구나. 너희 냉이꽃은 참 예쁘기도 하더구나. 어서 하얀 꽃을 보고 싶은데...."
봄바람은 냉이들을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더니 고샅길을 돌아 산너머로 갔어요. 냉이 들은 땅속으로 깊게 뿌리를 내려 맛난 양분을 쭈욱쭉 빨아들였지요. 냉이는 이파리보다 곧게 뻗은 뿌리가 훨씬 구수한 맛을 낸답니다. 그런데 다닥다닥 붙은 냉이 무더 기 옆에 이상하게 생긴 풀이 자라고 있었어요. 얼핏 보면 냉이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닌 것도 같았어요. 냉이 잎이 붉은빛을 띈 녹색이라면 그 풀은 연한 녹색을 띄고 있었어요. 또 냉이 잎이 길고 들쑥날쑥하게 생겼다면 그 풀의 잎은 둥그스름하면서도 비쭉비쭉하게 생겼지요. 그래서 냉이가 물었어요.
"넌 누구니?"
그 풀은 대답했어요.
"나도 냉이야."
"뭐라구? 너도 냉이라구?"
냉이들이 이상한 풀에게 다시 물었어요.
"응, 나도 냉이라니까."
나도냉이는 자기도 냉이라는 듯 쭉 뻗은 이파리를 기웃기웃 흔들었어요.
"참 별일이야. 별게 다 냉이라고 우기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우리 모습을 제법 흉내는 냈지만 전혀 아닌 걸."
냉이들은 입을 비쭉거리며 나도 냉이에게 한마디씩 했어요. 속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잘 생겼으면 저런 풀조차 냉이 흉내를 내나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그때 민아 엄마가 바구니를 들고 냉이를 캐러 나왔어요. 민아도 작은 바구니를 들고 엄마 따라 나왔어요.
"냉이가 제법 자랐구나. 저녁에는 냉이국을 끓여 먹자."
민아 엄마의 말에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냉이 이파리를 젖히고 작은 호미로 살살 흙을 파낸 다음, 하얀 뿌리가 손에 잡힐 만큼 보이면 손가락으로 뿌리를 꽉 움켜쥐고 힘을 주어 뽑아낸답니다. 그러면 굵직하고 하얀 뿌리가 쑤욱 뽑히지요. 솜털 뿌리에 묻은 흙을 땅바닥에 대고 탁탁 떨어내고 바구니에 담지요. 민아가 엄마와 함께 한창 냉이를 캐고 있는데 정수가 놀러 왔어요.
"미...민...나 야. 뭐.... 해?"
정수는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였어요. 2학년이 되었지만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셈도 잘못했어요. 그래서 정수는 2학년이 되자 사랑 반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말이 사랑 반이지 사랑 반은 공부 못하고 모자라는 아이들만 모아 놓고 있다는 것을 민아네 반 아이들은 죄다 알고 있었지요.
"뭐 하다니? 보면 모르니? 냉이 캐고 있잖아."
민아가 정수에게 톡 쏘아붙였어요.
"어, 그... 그젖쿠나."
정수는 민아가 캐 놓은 냉이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렸어요.
"가만 놔둬. 냉이 헝크러져."
민아가 정수 손에서 바구니를 홱 낚아챘어요.
"민아야. 한 반 친구에게 그러면 쓰겠니?"
보다 못한 민아 엄마가 무르춤해진 정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민아를 꾸중했어요.
"한 반 친구는 무슨 한 반 친구예요? 정수는 사랑 반이야."
"아니야, 나...도 2항녕 1방이야."
정수가 민아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아니야, 넌 사랑 반이야."
민아가 정수를 향해 혀를 쏙 내밀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가 민아에게 물었어요.
정수는 있잖아. 공부를 못해서 국어, 수학 시간에는 사랑 반에서 공부를 하고 즐거운 생활 시간만 우리 반에 온단 말이야. 정수는 우리 반 아니야. 사랑 반이야."
"나...또 2항녕 1방이야."
정수는 잘 돌아가지 않는 혀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어요.
"옳아. 정수 말이 맞다. 정수는 2학년 1반이야. 민아야. 같은 반 친구에게 잘해줘야지."
민아 엄마는 정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부지런히 냉이를 캤어요.
"흥, 사랑반이면서 꼭 2학년 1반이라고 우겨요."
민아는 못마땅하다는 듯 정수를 한 번 흘겨보고 나서 다시 냉이를 캤어요. 정수도 민아를 도와 부지런히 냉이를 캐서 민아의 바구니에 담았어요.
어느새 바구니가 수북해졌어요.
"민아야, 그만 캐자. 이만하면 저녁거리가 충분하겠네."
민아 엄마는 민아의 바구니를 들여다보았어요.
"어머나, 이건 냉이가 아니란다."
엄마가 골라낸 풀을 민아는 보았어요. 냉이 같았어요.
"엄마, 그거 냉이야."
민아는 자기가 정성껏 캔 풀이 냉이가 아니라는 바람에 좀 속상했어요. 그래서 그 풀을 엄마 손에서 받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민아야. 이건 나도냉이라는 풀이란다."
"나도냉이? 참 별난 이름이네."
민아는 나도냉이라는 말을 듣자 후훗 웃음이 나왔어요. 그리고 나도냉이를 자세히 살폈어요. 정말 냉이하고는 모양이 조금 달랐어요. 냉이보다 잔뿌리가 많고 가는 데다 이파리의 모양도 조금은 달랐어요.
"엄마, 나도냉이는 못 먹는 풀이에요?"
"아니야. 먹기는 먹지. 하지만 냉이보다 구수한 맛은 떨어진단다."
엄마의 말을 듣고 민아는 나도냉이를 슬며시 바구니에 도로 담았어요. 애써 캔 나물 을 버리기가 싫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때 민아는 안간힘을 써대며 냉이 뿌리를 뽑고 있는 정수를 보았어요.
'나도 2항녕 1방이야.'
하던 정수의 말이 생각났어요. 민아는 생각했어요. 정수에게 '너도 2학년 1반이야'라 고 말해 주어야겠다고 말이에요. 나도냉이를 보면서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답니다.
나도냉이 : 전국의 집 근처나 습한 도랑가나 길가에 자라는 두해살이풀. 잎의 모양은 냉이와 엇비슷하지만 털이 없고 가지가 갈라지면서 꽃대를 올린다. 5, 6월이 되면 냉이가 흰 꽃을 피우는 대신 나도냉이는 노랑꽃이 핀다. 봄에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