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늪 가는 길
김하기
1
호흡이 곤란하다. 가위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활처럼 휘어진 갈비뼈가 가슴속의 응어리를 밖으로 쏘는 순간 해준은 두 개로 분리되었다. 꿈속에서 유체 이탈을 한 해준의 의식은 방금까지 하나였던 몸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 매미 허물처럼 벗어 놓은 해준의 몸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라이카 소형 카메라를 들고 목표물을 찾고 있었다. 자욱하게 밀려오는 안개에는 화약 내가 스며 있었다. 안개 속으로 희미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음화 속의 피사체처럼 희고 투명했다.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소형 라이카는 어느새 망원 렌즈가 장착된 대형 캐넌 카메라로 바뀌었고 몸은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그를 겨냥하고 검지를 셔터 위에 얹었다.
“안 돼. 찍으면 안 된다구.”
해준은 몸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해준의 소리는 젤라틴 막에 걸려 전달되지 않았다. 어느새 망원 렌즈는 점점 가늘고 길어져 싸늘한 M16 총신으로 바뀌어 있었고 몸의 집게손가락은 안전장치가 풀린 방아쇠에 단단히 걸려 있었다. 동그란 가늠자 구멍으로 낯익은 눈동자가 가득 차오는 순간 몸은 방아쇠를 당겼다.
“쏘면 안 돼. 이건 꿈이야. 깨어나면 그만이라구.”
해준은 몸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치지만 몸은 그예 방아쇠를 격발하고 말았다.
“빠방 빠바방”
총소리와 함께 SY44 최루탄 지랄탄 불타는 화염병이 작열하고 해준은 걸레 조각이 되어 쓰러졌다. 페퍼포그가 분열된 몸과 자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분사되었다.
“쿨럭 쿨럭 쿨럭”
코점막을 자극하는 매캐한 냄새에 쿨럭이며 해준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꿈 밖의 세계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속눈썹에 들러붙는 섬유질 같은 진득한 어둠 속을 더듬다 머리 위로 붉은 암등 한 점이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제사 해준은 밤새워 암실에서 인화작업을 하다 새벽녘에야 깜빡 잠이 든 것을 알았다. 그러나 현상액 밭에 반쯤 잠겨져 있었던 한 장의 인물 사진은 절반이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낡은 필름에서 현상된 반이 잘려 나간 희미한 얼굴. 꿈 속에서 본 낯익은 그 얼굴이었다. 해준은 서둘러 핀셋으로 여느 때처럼 그 인화지를 건져 올려 백열등에 비쳤다. 희미하게 남은 절반의 잠상마저도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2
연식이 오래된 고물 지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약속 장소인 양수리로 달렸다. 해준의 지프는 퇴행성 관절염에 걸린 늙고 비루한 말과 같았다. 십여 년간 전국의 산하를 누비며 고락을 같이했던 이 애마는 이제 낮은 언덕길을 만나도 힘에 부쳐 낑낑거렸다. 달포 전 폐기 처분하려고 폐차장을 향해 달리다가 왠지 눈물이 나 핸들을 꺾어 되돌리고 만 차였다.
해준은 벌써 일주일째 밤을 새며 우리 나라 들풀 사진과 슬라이드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각종 야생화의 사진첩에 보기보다 크고 곱게 피어 난 들꽃 사진은 들풀의 참모습이 아니다. 들꽃은 며칠만 화려하게 피고 떨어진다. 비록 잡초 같긴 하지만 매일 보는 잎새와 줄기 그대로가 들풀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하며 해준은 지난 일 년간 부지런히 들풀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리고 들풀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용늪의 생태계 취재 여행을 떠나야 했다.
양수리 풍차 가든 앞에는 카키색 배낭을 멘 김 교수가 미간을 찌푸린 채 담배를 뻑뻑 빨고 있었다. 두꺼운 안경알에 떠오른 작은 눈 목에 깁스를 한 듯한 뻣뻣한 태도. 동행하기엔 까다로워 보이는 첫인상이었다.
'풍차는 하염없이 돌아가는데 자네는 오지 않더군.'
김 교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올린 해준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퉁을 놓았다. 그리곤 냉큼 뒷좌석으로 올랐는데 당연히 조수석에 앉아 나란히 가리라 생각한 해준으로선 당혹스런 일이었다. 그리곤 대뜸 개인적 취향을 빌미 삼기도 했다.
'뒤로 묶은 말꽁지 머리는 뭔가 지금 양구가 아니라 제주도로 가는 건가.'
그의 말투에 익살기나마 묻어 있지 않았다면 듣기 거북한 빈정거림이 되었을 것이다.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김 교수가 휴전선의 야생화와 생태계에 관한 한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점은 인정해야 했다. 분단과 냉전의 엄혹한 산물로만 파악되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를 생태계의 보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구자적 탐사와 연구에 따른 결과였다. 용늪의 생태계에 관한 논문도 여러 번 썼다는 걸 월간 환경 잡지 '그린'의 편집부장으로부터 들었다. '그린'의 사진기자인 해준 또한 한국의 자연과 환경 사진만을 고집해 온 독특한 사진가로서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잘만 하면 환상적인 커플이 될 수 있는 이들이 첫 만남부터 수레바퀴가 삐걱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옮겨 가는 산록의 녹음은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정오의 따가운 봄볕으로 약이 오른 솔잎들은 투명한 감청색으로 일렁였다. 산마다 흘러내리는 푸른 물결은 대지 위에 철철 넘쳐서 강으로 흘러 들어가 물빛을 한결 푸르게 했다. 해준은 복잡한 인간 관계보다 이런 자연이 좋아 자연만을 찍어 왔는지 모른다.
'자네는 용늪에 가본 적이 있나.'
'처음입니다.'
'대암산 용늪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산마루 습원지로 생태계가 독특하다죠. 움직이는 식물인 북통발이나 끈끈이 주걱이 살고 희귀종인 금강초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면서요.'
그가 임의로운 사람이었다면 읽어 둔 상식으로라도 말을 붙였을 것이다.
'이런 고물차로 산마루까지 올라갈지 의문이군. 이번이 초행길이라면 용늪에 사는 용을 보지 못했겠군.'
'예 용늪에 용이 사나요.'
해준은 반사적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용늪에 가서 용을 보지 못한다면 용늪을 못 본 거야. 인적이 끊어진 휴전선 일대에는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아. 남북으로 자유로이 왕래하는 흙섬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콩나물 대가리처럼 갈라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섬이지.'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에 떠 다니는 섬이 있고 중국 고비사막에 방황하는 호수가 있다던가. 해준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전국을 더투고 다니면서 신비롭다는 곳은 웬만큼 답사했다. 시동 끈 차가 기어오르는 제주도의 도깨비 도로 완주 송광사의 땀 흘리는 부처님 삼척 소한굴 샘에 자생하는 민물 김을 보고는 이 땅의 신비로움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용늪에 사는 용과 남북으로 자유로이 왕래하는 흙섬에 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한강의 하구인 청수바다 위에는 정처 없이 부유하는 흙섬이 있지. 갈대와 물풀 사이에 숨어 있는 이 흙섬은 물길 따라 남북으로 자유로이 이동하고 다닌다네. 그러나 물이 크게 썰 때는 숫제 남북을 하나로 이어 버리기도 하는 거야. 갈라진 남북으로 자유로이 왕래하고 있는 이 흙섬은 분단시대의 혼령들이 쉬어야 할 이어도가 아닐까. 지친 영혼이 쉬어 간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는 실상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 있는 셈이지. 말 꽁지머리 그렇지 않는가.'
잡지사 편집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내 말을 명심하게. 사진이라도 몇 컷 건져 오려면 늙은 원숭이처럼 심심해하는 노교수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게. 언제 예측 불가능한 돌출 행동이 나올 줄 모르니까. ㅈ 신문 기자는 카메라가 박살났다네.'
외양으로 보자면 두꺼운 안경알에 떠오른 작고 까만 눈동자와 마른 턱 위로 인중이 뾰죽하게 튀어나온 김 교수의 얼굴이 영락없는 쥐상 아닌가. 게다가 목뼈마저 살짝 기울어진 주제에.
해준은 자제를 했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운전이 거칠어졌다.
3
차가 도계를 지나 춘천으로 접어들자 김 교수가 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게나 사진작가. 오줌보도 찼고 속도 출출한데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가지.'
해준은 시큰둥하게 운전대를 돌려 강촌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둘을 나란히 화장실로 들어가 오줌발을 비켜 눈 뒤 식당 대신에 노점에서 껍질째 볶아 파는 통감자구이로 요기했다.
강렬한 햇살을 받은 북한강은 프리즘 효과를 일으켜 물빛이 오색으로 번쩍거렸고 강물엔 해오라기 한 마리가 한가롭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잘하면 한 꼭지 건질 법도 한데. 해준은 목에 건 카메라를 벗겼다.
'교수님 말 꽁지나 사진작가란 말 대신에 그냥 권 기자로 불러 줄 순 없나요.'
더욱이 뭔가 부탁이 있다는 사람이 하인 부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허 그저 친하자고 터놓고 부른 이름을 가지고 과민하게 반응하기는. 초면에 내가 좀 과했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사진작가라고 부르면 그렇게 기분이 나쁜가.'
'소설가 화가 무용가는 소설작가 화작가 무용작가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사진 찍는 우리들만 사진작가라 하니 무슨 쟁이 같이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사진가 어감도 부드럽잖아요.'
'그럼 사진가 양반 들어 보게나 내 목은 좀 비틀어졌지만 성격마저 그런 건 아니라구. 육이오 전쟁 때 뒷목 경골에 비스듬히 박힌 수류탄 파편 하나가 지금도 간혹 내 신경을 건드리긴 하지만 이게 나의 감춰진 훈장이고 메달이지. 비록 콩알만한 크기지만 공항 체크 게이트를 통과하면 삐삐 소리를 확실히 내는 존재야. 메스로 파내지 않는 것은 신경을 건드리면 목 아래를 못 쓰는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이것이 조금은 내 인생을 신경질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걸 인정해. 그래도 이것을 우습게 보지 말라구. 쬐그만 이것이 날 국가유공자로 만들어 평생을 먹여 살렸으니까.'
장황한 사설 끝에 나온 김 교수의 부탁은 아름다운 강촌 풍경을 배경으로 인물사진 하나를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달에 그가 회갑 논문집을 내는데 사용할 마땅한 사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농지로 덮은 망자의 영정 같은 저자 근영은 죽어도 싫다며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자연스런 전신 사진을 원하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뒷짐 지고 근엄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는 김 교수에게 해준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교수님 안 됩니다.'
'안 되긴 뭘 안 돼 이 사람아. 말 꽁지라고 불러서 삐친 게야.'
'아녜요. 전 인물사진은 찍지 않습니다.'
해준은 아직도 잠상이 남아 있는 꿈속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그는 인물사진을 찍는 것을 기피해 왔다. 불꽃 같은 팔십 연대를 살아 온 해준은 누구보다도 많은 인물사진을 찍었다. 화염병을 움켜쥐고 구호를 외치는 청년학생들. 최루탄 안개 속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복면의 전사들. 온몸에 시너를 뒤집어쓰고 달려가는 불덩어리들. 그러나 사진을 찍는 것이 사람을 쏘는 것과 같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 후부터 셔터를 누를 때의 짜릿한 손맛은 사라지고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사살한다는 죄의식만 남았다. 한때 아무것도 찍을 수 없어 완전히 카메라를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사람 사진을 버리고 자연과 환경 사진에만 몰두함으로써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해준은 단 한 컷도 사람을 찍은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김 교수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꽁하고 있는 게야.'
김 교수는 자존심을 접소 은근하게 눙치고 들어왔지만 해준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전 인물사진은 안 찍는다구요.'
'그만두라구. 젊은 사람이 밴댕이 속처럼 속이 좁아 가지고선.'
김 교순 무시당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해준은 침묵했다. 말을 걸면 '넌 바보야 바보'만 되풀이하는 구관조 같은 늙은 이와 피곤한 입씨름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강상의 푸른 기운에 마음이 좀 눅어지긴 했지만 이번 용늪 기행은 고갯길을 오르는 고물 지프처럼 심리적 부하가 무겁게 걸려 있었다.
4
해준의 지프는 양구로 들어가는 완만한 고갯길을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뒷자리의 김 교수는 눈을 흘겨 뜬 채 졸았다 깨었다를 반복하더니 그예 코를 골았다. 지프의 앞에 가는 돼지를 실은 개조한 트럭은 숫제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거북이 형국이었다. 아무리 애마가 비루먹고 추월 금지선이라 해도 추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준이 추월하려고 깜박이 신호를 넣는 순간 덜컹 트럭 뒷받이가 빠지면서 돼지 네 마리가 꽤액꽥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길바닥으로 쏟아졌다. 당황한 해준은 급제동을 걸었으나 찻간 거리가 너무 없어 떨어진 돼지 한 마리를 치고선 길섶에 비스듬히 멈췄다. 돼지 두 마리는 산비탈로 달렸고 한 마리는 길옆 저수지로 내닫기 시작했다. 트럭 문이 열리고 군복을 입은 텁수룩한 중년 사내가 뛰어내렸지만 동작은 민첩하고 침착했다. 군복 사내는 뒷바퀴에 고임목을 고인 후 짐칸으로 돼지가 오르내리는 나무 사다리를 장치하곤 해준에게 말했다.
'좀 도와주시오.'
그리곤 군복 사내는 산 쪽으로 달아나는 돼지를 붙잡으러 뛰어갔다.
한 마리는 봄 가뭄으로 밑바닥이 드러난 저수지로 뛰어 들어갔다. 급제동 때 앞 좌석의 등받이에 박치기를 하고 잠이 깬 김 교수는 어느새 차에서 내려와 현장을 본 뒤 뜻밖에 좋은 일거리를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본 이상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는가.'
김 교수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저수지로 뛰어들어가리라곤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해준은 돼지를 치어 죽인 미안함도 있는 데다 노교소가 앞장서니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돈이 넘어 보이는 돼지는 생각보다 몸이 날렵하고 성격이 거칠었다. 군복 사내는 산으로 도망가던 돼지의 방향을 돌려 트럭 쪽으로 몰아오며 고함을 질렀다.
'그놈이 저수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좀 붙잡아 줘요.'
그러나 돼지는 저수지 뻘탕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김 교수보다 한발 먼저 도착한 해준이 돼지 옆구리를 차며 뛰는 방향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포악한 돼지는 오히려 해준을 원통형의 코로 뜸베질해 뻘밭에 처넣었다. 뒤따라온 김 교수가 돼지 목을 잡았지만 돼지는 김 교수를 매단 채 뻘밭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둘은 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이 돼지는 일반 집돼지들과는 달리 털리 긴 다갈색인데다 송곳니가 조금씩 솟아올라 있어 생김새가 흡사 멧돼지 같았고 성질도 난폭하고 사나웠다. 뻘밭에 들어간 김 교수는 돼지와의 진흙탕 싸움에 완전 몰입해 버렸다. 그는 머리까지 뻘탕을 뒤집어쓴 채 돼지를 껴안고 뒹굴었다. 돼지를 잡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울려 노는듯했다. 돼지 한 마리를 트럭에 집어넣고 달려온 군복 사내도 뻘밭에 합류했다. 그는 돼지처럼 꿀꿀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돼지 등을 때리며 방향을 잡았다. 그제사 저돌적으로 덤비던 돼지가 뻘 밖으로 내달렸다. 군복 사내가 방향을 잡아 트럭까지 몰아갔으나 이놈은 나무사다리로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셋은 버둥거리는 이놈의 목과 배와 다리를 붙잡고 들어 올려 간신히 짐칸 안으로 도로 넣을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들이 속도를 줄여 이 해괴한 돼지몰이 광경을 보았고 몇 대는 아예 차를 연도에 세우고는 본격적으로 구경했다. 돼지와 격투를 벌인 시간은 그닥 길지는 않았지만 갯벌을 뛰어다니며 온종일 짱뚱어를 잡은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마지막 작업으로 지프에 받쳐 죽은 돼지를 트럭에 실은 뒤 셋은 저수지 둑에 앉았다. 군복 사내가 권하는 담배를 받아 문 해준은 순식간에 일어난 돼지몰이 사건과 이런 진흙투성이로 바뀐 자신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용늪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라는 김 교수의 말에 양구 해안 마을에 사는 신무홍이라는 군복의 사내는 반가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용늪은 내가 사는 해안 마을 대암산에 있지요. 돼지들도 그곳에서 자랐지요.'
셋은 여는 통성명과 같이 서로 어떤 인연의 끈을 확인하려고 지연과 학연을 찾았으나 별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 돼지들은 일반 집돼지완 다르게 매우 성질이 거칠고 난폭하더라구.'
진흙투성이의 김 교수가 트럭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산으로 도망간 한 마리는 산돼지가 되어 살 겁니다.'
신무홍은 돼지들이 사나운 것은 산기슭에서 방목하고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돼지들에게 먹이를 하루 한 끼만 주면 배가 고픈 이놈들은 우리를 빠져나가 산과 들로 다니며 칡뱀 따위를 찾아 먹고는 배를 채운다. 그러다 보면 산에서 부닥치는 멧돼지들과 교접을 해서 새끼를 낳는데 이 새끼들은 반 가축 반 야생의 잡종돼지가 된다.
그리고 해안 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유래도 곁들여 말했다.
'옛날에 이 마을에 뱀이 얼마나 많았던지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 된 거죠. 그때 어느 대사가 마을에 와서는 뱀의 천적인 돼지를 기르라고 했고 대사의 말씀대로 돼지를 기르니 과연 마을이 편안했다 해서 돼지 해자 편안할 안자를 써서 해안마을이 되었다고 하지요. 지금도 우리 마을엔 뱀들이 많아 뱀을 잡아먹고 자라난 이 야생돼지들은 약재로 쓰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비계가 적고 육질이 부드러워 돼지고기론 최고로 치지요.'
'아무튼 오늘 돼지몰이는 굉장했어. 돼지 목살을 잡고 육박전을 벌일 때는 마치 육이오 때 중공군을 붙잡고 백병전을 치르는 기분이었다구.'
'근력이 대단하시더군요. 저도 월남전 이후 이런 난리는 처음입니다.'
'이런 월남 참전용사시군.'
지연과 학연에서 인연의 끈을 찾지 못한 김 교수는 참전용사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마치 옛 전우를 만남 듯 반가워했다. 김 교수의 호들갑스런 반응에는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들이 말 꽁지머리나 하고 다니며 나라와 조상 귀한 줄 모른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해준은 팔십 년 광주항쟁으로 발발된 불꽃 같았던 십 년간의 투쟁을 굳이 전쟁에 견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전쟁만이 빚을 수 있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에게 전쟁을 모르는 세대하고 규정하지 말았으면 했다. 전쟁이 인간을 죽이고 타락시키는 폭력이라면 육이오와 월남전과 팔십 년대의 투쟁이 서로 다른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청룡부대에 있었어요. 유명한 짜빈 동작전에 참가래 무궁훈장까지 받았지요.'
'난 육이오 때 최초로 삼팔선을 돌파하고 철모로 압록강물을 떠먹은 수고사단 소속이었지.'
'군대 얘기는 술이 있어야 제 맛 아닙니까. 양구로 나가서 목욕부터 하고 난 뒤 소주나 한잔합시다.'
'조오치 군대 얘긴 평생 돈 안 드는 술 안주감 아닌가.'
담배를 다 태운 셋은 저수지 둑에서 일어났다. 트럭에서 꿀꿀거리는 돼지들의 소리가 들렸다. 해준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아무런 인과도 없이 암실의 꿈에서 이어져 잔몽으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5
군복으로 갈아입은 해준의 일행은 휴가병과 귀대병들이 몰려다니는 군사 도시 양구의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이차를 할 술집으로 걸어갔다. 목욕을 마치고 세탁소에서 가져온 군복으로 갈아입을 때만 해도 김 교수는 어깨를 추스르며 어색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 참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 기분이군.'
세탁소에서 옷을 맡기고 가져온 허드레 여벌 군복이라 김 교수의 군복바지는 길어서 길바닥에 쓸리었고 마르고 키가 큰 행주의 군복은 바지와 소매 기장이 짧아 우스꽝스러웠다.
일행은 부대찌개와 손두부 맛이 일품이라는 후곡집으로 들어갔다. 겉모습은 허름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인 유비무환의 복사본 액자가 걸려 있는 실내는 비교적 깔끔하고 아담했다. 창가엔 술 취한 하사관 세 명이 앉아 군에 대한 현 정부의 시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었고 구석진 자리에는 외박 나온 병장이 마주 앉은 애인을 눈에라도 넣고 싶은 듯 손과 봉을 어루만지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이미 일차에서 반주를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군대 이야기로 거나하게 된 김 교수와 신무홍은 이차에도 과장과 모험과 배반의 전쟁 이야기를 술안주로 삼았다.
하사관들이 나가자 후곡집 아주머니가 어느새 술병을 따르며 합석해 있었다.
'군인 아저씨들이 아니시구나. 계급장도 없고 군화도 신지 않았길래 무슨 에이치아이딘가 생각도 해봤지만 나이가 영 맞지 않았고. 어디 서울에서 오셨수.'
사글사글한 눈매를 가진 아주머니는 '교수님이 멋있게 늙으셨다.' '신 사장님은 마누라밖에 모르는 불출인가 봐.' '해준 씨는 아무리 봐도 숫총각 같애.'라는 둥 시시껄렁한 얘기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취기가 올라 눈이 게슴츠레한 김 교수는 했던 말을 또 하면서 군대 얘기만을 고집했다.
'난 이래 뵈도 역정의 노장이라구. 당신들 육이오를 알아. 전쟁은 잔인한 게임이야.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거라구.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에 빠지면 합리적 이성이란 암 짝에도 쓸모 없는 거야. 세상에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오래 들고 있다 던지는 시합을 하기도 했지. 사내다움을 증명하는 시합이자 도박이기도 했지. 달러를 걸고 했으니까. 난 누구보다 수류탄을 오래 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땄지.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지.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그러면 뒷목의 수류탄 파편은 그때 박힌 건가요.'
해준의 기습적인 질문에 김 교수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엔씨엔디 정책 몰라. 공식적으로는 확인해 줄 수 없는 사실이라구.'
장교 둘이 술집으로 들어오자 아주머니는 하품을 뽑음 일어났다. 새로운 외지 이야기를 기대했던 그녀는 늘상 듣는 군대 이야기에 식상했을 것이다.
'월남은 어땠어 공까이하고 재미 많이 봤다문서.'
김 교수는 흐흐거리며 신무홍을 자극했다.
'교수님께서 수류탄 얘기를 하니 생각나네요. 제가 나트랑에 갔을 때는 베트콩의 대공세가 시작되어 외박이고 휴가고 일체 중지되었지요. 삼 개월을 꼬박 참호에서 지내니 미치겠더라구 외박을 보내 주지 않으면 너 주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벼들었죠. 그때 부대장이 화끈해서 좋다면서 하룻밤 외박을 보내주더라구요.'
'그게 다야. 별 싱거운 사람이군.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솔직하게 얘기해 봐.'
이제 김 교수의 말은 언어의 구조가 허물어져 횡설수설이었다.
'글쎄요. 이건 극적인 얘기라서 어떨까 모르겠네요. 아직도 제 마음에는 죄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 순진한 친구야 죄의식이라니 전쟁 자체가 큰 죄악이고 거짓말이지. 큰 죄악일수록 모든 걸 용서해 주고 큰 거짓말에 진실이 들어 있다네. 그렇지 않아 날 보라구. 수류탄 파편 하나가 날 평생을 먹여 살렸다구. 전쟁이 괴로워서 아니 모든게 지겨워서 그렇게 터트린 수류탄이 말이야...'
후곡집에서 벌써 소주병을 세 병이나 깐 김 교수는 괴로운 나머지 꺽꺽거리며 마른 구역질을 올렸다.
신무홍도 말하기가 괴로운 듯 병째 나발을 불고 난 뒤에야 떠듬떠듬 말문을 열였다.
'우리 청룡부대 옆에는 베트남의 원주민들의 전략촌이 있었지요. 이 마을엔 남편이 월맹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진 미모의 과부가 외팔이 딸과 함께 주막을 하면서 살고 있었고요.'
헌데 이 과부는 부대 주위의 여느 술집과는 달리 술만 팔지 몸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장사했다. 그런 도도한 자세는 팔팔한 군인들의 호기심만 눈덩이처럼 키워 버렸다. 사병은 물론이고 헌병대장 보안대장이 나서서 내가 한번 꺾어 보겠노라고 덤벼 보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이 과부의 미모와 수절은 마침내 부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어느 날 부대장이 직접 과부를 불러 동침을 요구했으나 과부는 부대장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덤벼드는 그의 귀를 물어뜯고 뛰쳐나와 버렸다.
부대장과 과부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을 때 부대원 다섯 명에게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그 과부집 모녀는 부대 주위에서 술집을 위장 경영하면서 군사기밀을 수집해 북쪽으로 빼돌린 스파이이며 그날 밤 자정을 기해 모녀를 체포하고 반항할 경우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팀장인 주임상사는 과부의 술집에 도착해서 그런 명령이 없었다며 여기까지 온 김에 도도한 년의 가랑이 맛이나 보고 가자고 했다. 군에서 억압된 병사들의 성은 마치 농축 우라늄과 같이 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임상사의 제의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신무홍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짐승 같은 오인조는 과부집 모녀를 덮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광란의 축제였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과부는 목을 매었고 외팔이 딸은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사건은 묻히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과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며 진정서를 내었던 게지요. 그 결과 주임상사는 구속되었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 넷은 한 달간 영창생활을 한 뒤 한국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요.'
추악한 전쟁. 전쟁이 추악한 것이라면 해준도 전쟁을 치렀다. 군대 대신 감옥에 갔을망정 휴전선의 병사들보다 더 많은 전투를 치렀고 더 많은 전우와 사귀었고 더 많은 배신을 경험했다.
김 교수와 신무홍의 총구 앞으로 뭇으로 죽어 나가던 중공군과 베트공의 이야기도 끝나가고 있었다.
김 교수가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여봐 말 공지 자네도 학창시절 부마사태다 광주사태다 전쟁의 맛을 조금은 보았을 것 아냐. 거기도 탱크와 장갑차가 술안주 같은 얘기가 분명히 있을 텐데.'
'죄송스럽게도 전 없습니다.'
'전쟁의 웅대한 스케일과 그 비참함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의 정말 염려스러워. 온실에서 자란 화초가 뭘 알겠나. 설사 광주에서 총을 들었다 해도 일주일 만에 끝난 게 어디 전쟁 축에나 들겠나. 우리 삼 년간을 포화 속에서 싸웠단 말이야.'
'시간의 길이나 포탄의 무게보다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었나가 중요한 거 아녜요.'
해준은 김 교수에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김 교수는 '말 꽁지 사진작가 아니 사진가 양반 그래 가지고 내일 용늪에 가서 용을 보겠는가'라는 등 횡설수설하다 바닥에 쓰러졌다. 해준과 신무홍은 그의 어깨를 부축하며 숙소인 신라장으로 걸어갔다. 겉 보기완 달리 김 교수도 해준 못지않은 내면의 깊은 상처를 조금은 그의 인생을 신경질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을 인정했지 않았는가. 약간 비스듬하게 떨구어진 그의 늙은 목에는 쓸쓸한 연민이 드리워져 있었다.
6
해준의 우려와는 달리 만취한 김 교수가 가장 빨리 기상하여 몸에 좋다는 검붉은 후곡 탄산약수를 마시고 돌아왔다. 해준과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 신무홍은 용늪 취재가 끝나면 해안 마을의 자기 집으로 꼭 들러 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양구를 떠났다.
해준과 김 교수는 예정대로 민심처 장교의 안내로 대암산 용늪으로 향했다. 해준의 애마는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늙고 비루한 신음소리를 내며 가파른 돌산령을 오르고 있었다.
용늪에 사는 용을 볼 것인가.
김 교수의 말을 믿진 않았지만 어쩌면 용늪에서 자신도 모르는 신비한 어떤 것을 목격할 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이 일었다.
고물 지프는 돌산령 팔부 능선쯤에서 우측으로 난 비포장도로 진입해 도솔산 허리를 돌아 대암산으로 올라가 용늪에 도착했다.
식물생태계의 보고라는 용늪은 겉으로 보기엔 용이 살만한 거대한 늪도 신비한 구석도 없는 초라한 웅덩이였다. 다만 누런 산사초와 푸른 이끼로 뒤덮인 광활한 주변 슾지는 대규모로 조성한 농장의 목초지를 바라보는 듯 눈맛이 시원했다.
최상수 중위는 용늪을 내려다보며 마치 통일 전망대나 안보 전적지에서 관광객들에게 브리핑하는 어조로 말했다.
'여기 동쪽으로 세 시 방향으로 보시면 해발 1305미터인 대암산이 보입니다. 그리고 표고 1280미터의 산마루에 시원하게 펼쳐진 이곳이 바로 전국 유일의 고층 습지이자 식물생태계의 보고인 용늪이 되겠습니다. 충북대 강상준 교수가 용늪의 퇴적층을 파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4천5백 년 전에 이 용늪이 만들어졌음을 밝혀냈습니다.'
김 교수는 최중위의 설명이 틀림이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4천5백 년 전이면 우리 국조 단군 왕검이 태백산에서 신시를 열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펼쳤던 바로 그때야. 아마도 단군이 거느리고 온 풍백 우사 운사가 이곳에도 머물렀을 게야. 잘 살펴보게나. 그들이 나린 바람 비 구름을 흠뻑 맞고서 형성되기 시작한 이 대암산 용늪에서 용이 한 마리쯤 산다는 건 결코 신비한 일이 아닐 터이니.'
해준은 김 교수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용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풍수와 지리에서 산을 용이라 했다.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봉 운봉 매봉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산의 흐름은 분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대한 용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이 용의 머리라고 한다면 대암산 용늪은 용의 배꼽에 해당되지는 않을까.
밟으면 용의 등처럼 출렁이는 산사초 늪은 어떤가.
용늪은 수천 년 동안 쌓인 식물부식층 위를 물이끼와 산사초가 그물처럼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용늪 위를 뛰면 마치 트램폴린처럼 용늪 전체가 출렁거리며 탄력을 얻는다. 이 용은 폭우와 거센 바람에도 배를 뒤채며 출렁거린다.
어쨌든 그가 온 첫 번째 목적은 환경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용늪의 습원지에선 희귀종으로 알려진 금강초롱 비로용담 제비동자꽃은 아직 개화철이 아닌 탓인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해준은 들꽃과 들풀을 찾아 근접 촬영을 하고 산마루에 시원스레 펼쳐진 용늪의 아름다운 풍경을 부지런히 필름에 담았다. 용늪 한가운데는 노루나 토끼가 목을 축일 수 있는 옹달샘이 있어 한층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해준이 두 롤의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어도 용이라고 할만한 것은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 손바닥만한 물웅덩이 안에 용이 살 리는 없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물웅덩이에서 도롱뇽 한 마리가 기어 나와 돌출된 작은 눈으로 해준을 겁 없이 바라보았다. 도롱뇽은 나와 돌출된 작은 눈으로 해준을 겁 없이 바라보았다. 도롱뇽는 녹색의 둥근 주둥이 끝으로 혀를 내밀며 뭔가를 중얼거리는 듯하다가 그가 누른 셔터 소리에 놀라 황급히 홀아비 바람꽃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설마 저 작은 도롱뇽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도롱뇽은 작지만 서양에선 쌀라맨더라고 하여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매던 전설의 동물이었다. 용늪에는 도롱뇽이 제법 서식하는지 웅덩이에는 정력에 좋는 투명한 한천질의 도롱뇽 알주머니가 서너 줄 눈에 띄었다.
'어쩌면 용이란 게 저 작은 갈색의 도롱뇽을 가리키는지도 몰라.'
자신을 처음부터 대뜸 말 꽁지라 부르는 김 교수라면 도롱뇽을 용이라고 하는 작은 익살을 능히 부를 수 있으리라. 해준이 김 교수를 돌아봤을 때 그는 배낭에서 모종삽을 꺼내 습원지에서 자란 진달래를 캐내고 있었다.
'이것 보라구. 습지에는 자랄 수 없는 진달래 나무가 여기로 내려와 뿌리를 내리고 있잖아. 이건 습원지 용늪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라구.'
김 교수는 습지에 사는 벌레잡이 식물인 북통발과 끈끈이 주거도 이젠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라고 개탄하며 말했다.
'반만년 동안 가혹한 자연환경에도 용케 잘 버텨 낸 용늪이 최근 이십여 년 동안 인간의 간섭을 받아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인근의 한 부대가 용늪 한가운데다 트랙을 파고 스케이트장을 만들면서부터 용늪의 파괴는 시작되었지. 지금도 군부대에서 흘러드는 오수와 토사의 유입으로 늪의 원형이 점점 손상되어 가고 있고.'
군의 환경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김 교수의 말을 들은 최 중위는 억울하다는 듯 건조한 브리핑 어조를 바꾸어 물기 어린 부탁조로 말했다.
'제발 군의 이미지나 사기를 실추시키는 그런 글과 사진은 게재하지 말아 주세요. 아시다시피 요즘 우리 군도 워낙 어렵지 않습니까. 사단장님의 제일 방침은 모든 부대가 환경군대가 될 때 전투력도 배가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군은 과거와는 달리 생태계의 보고인 용늪을 지키는데 앞장을 설 뿐만 아니라 군부대에서 나오는 오폐수나 쓰레기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음을 꼭 알려주십시오.'
해준 일행은 용늪 취재를 마치고 대암산과 도솔산을 내려왔다.
해준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미끌리는 걸 조심하면서 김 교수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용이란 게 용늪에 서식하는 작은 도롱뇽을 말하는 게 아닙니까.'
'글쎄 자네가 나의 사진을 한 장 찍어 주면 모를까.'
김 교수는 강촌 휴게소에서 거절당한 것을 끄집어 내며 흥정을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해준은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말없이 운전하는 그에게 악몽이 되살아났고 그의 회백질의 뇌리엔 낯익은 얼굴의 잠상이 맺히고 있었다.
구범학. 일명 둘리. 전학련 지하 총책. 얼굴 없는 일급 수배자. 대학과 여관 등을 은신처로 삼아 지하에서 각종 반정부투쟁을 배후 조종함. 애인 이미은. 참고사항 검거에 수배자와 가까운 망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사료됨.
공안기관에 붙잡힌 해준은 죽음으로 앞서간 동지들을 생각하며 물과 전기로 거듭나는 세례의식을 통과했다. 한 달 동안 인내력의 한계를 넘는 고문과 구타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말대로 마조히스트여서가 아니라 동지간의 의리를 지켜 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단순한 국사보안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수사가 종결되고 구치소로 송치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호남형의 낯선 수사관이 파일 뭉치를 들고 왔다. 구범학 파일이었다.
애인 이미은.
해준은 서로 동지의 의식으로 몸과 마음을 허락했던 미은이 구범학의 애인일 수가 없고 지하 은신처에서 그와 함께 동거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해준은 이것이 자신의 질투심에 불을 당겨 구범학을 검거해 보겠다는 수사기관의 마지막 수사기법인 줄 알았고 그들의 석방 제의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 년간 면회 한 번 없었지만 해준은 그들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동지로서 애인으로서 출소 후 미은을 만나 모든 것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고 둘리는 미은과 함께 반지하 아파트에 몸부림치던 해준은 잠시 학원반의 사진 채증 요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시위판에서 찍은 그의 사진이 재판에서 유죄선고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채택될 때 이 년 전 고문을 받으면 기뻐했던 것과 똑같은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미은은 서둘러 유산을 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으며 수감 중 정신과적 외상으로 병 보석으로 나온 구범학은 전국의 요양소를 전전한 끝에 지금은 인천 어디에선가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7
해준 일행은 대암산 용늪에서 돌산령을 넘어 신무홍이 사는 해안 마을로 넘어갔다.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운데가 사발같이 보이는 해안 마을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김 교수는 지난번 용늪을 찾았을 때 안내 장교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자살한 어느 병사의 얘기를 들려 주었다. 가칠봉 어느 부대에 근무하던 미대 출신의 이 병사는 시간이 있으면 봉우리에 앉아 뭘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마음의 캔버스에 해안 마을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삼 년 동안 거의 매일 해안 마을을 내려다보며 보이지 않는 물감으로 내면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병사의 호주머니에서 자필 유서가 나오지 않았으면 의문사로 처리될 수도 있었다네. 왜냐하면 그 날은 그 병사가 제대 특명을 받은 날이었거든. 유서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더군. '삼 년 동안 해안 마을을 마음속에 그리고 지운 그림이 수백장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끝내 마음의 화폭에 담아 내지 못한 나의 부족한 재능에 절망해서 먼저 갑니다.'라고.'
해준은 돌산령을 내려가다 해안 마을의 전경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마을 사진을 몇 컷 찍었다. 화가 지망생의 그 병사가 끝내 그려 내지 못한 이 마을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담아 내며 명복을 빌고 싶었다.
최 중위는 에프엠 장교였다. 그는 안내 장교로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듯 또 다시 정확하고 기계적인 브리핑을 했다.
'철책선 바로 밑에 있는 저 해안 마을은 반 조직으로 이루어진 전략촌으로 일명 펀치볼이라고 합니다.'
'전략촌.'
해준은 어젯밤 신무홍으로부터 들은 베트남 원주민들의 전략촌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생각났다.
'왜 펀치볼이라 하는지 아십니까 저곳이 욱이오 때 육박전까지 벌인 치열한 전투지역이므로 당연히 권투의 펀치볼을 연상하시겠지만 실은 해안분지의 모양이 화채그릇을 닮았다 해서 펀치볼이라고 합니다. 저기 아홉시 방향으로 우뚝 솟은 아름다운 가칠봉이 보입니까. 저 가칠봉의 이름에도 유래가 있습니다. 금강신은 원래 일만 이천 봉우리에서 일곱 봉우리가 빠지는 일만 천구백구십세 봉우리였답니다. 그런데 가칠봉이 거느린 아름다운 일곱 봉우리를 더해서 가칠해서 비로소 온전한 금강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돌산령을 내려온 해준과 김 교수는 성황에서 오늘 하루 안내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는 최 중위와 헤어졌다. 최 중위는 거수경례를 붙이며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기사와 사진은 기재하지 말아 주시길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300여 호의 해안 마을에서 신무홍의 집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가 가르쳐 준 대로 성항에서 현리를 지나 가칠봉 산자락인 수뢰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끝 산기슭에 지어진 몇 채의 돈사와 독립가옥이 신무홍의 집이었다.
돼지우리를 고치고 있던 신무홍은 해준과 김 교수를 보자 연장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매일 밤 멧쇄지들이 내려와서 이렇게 부숴 놓으니 사흘이 멀다 하고 고쳐야 하지요.'
신무홍은 연장을 놓고는 김 교수와 해준을 마당의 평상으로 앉게 하고는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빨리 나와 봐요. 내가 말하던 서울 손님들이 찾아왔다구.'
신무홍의 아내는 막걸리 주전자를 든 채 부엌문에서 딸막거리고 있었다. 겁먹은 듯한 크고 불안한 눈동자가 찾아온 손님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동그랗게 오므린 채 인사를 한 뒤 주전자를 평상 위에 놓고 서둘러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해준은 그녀의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한참 뒤에 그녀는 돼지고기 편육 한 접시를 들고 왔다. 해준은 눈을 의심했다. 접시를 받쳐 든 그녀의 왼손이 의수가 아닌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 의수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외팔이 여자가'
해준과 김 교수는 동시에 한 방 먹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제사 해준은 어젯밤 신무홍이 외팔이 여자의 이야기를 월남과 한국 무대만 바꿔 얘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무홍은 이곳 전략촌에서 그 사건을 저지른 대가로 월남에 가게 되었단 말인가.
'드십시오.'
둘에게 막걸리잔을 권한 후 신무홍은 돼지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돼지우리는 너무 높으면 산에 있는 멧돼지가 울타리를 못넘어와 집돼지가 교접을 못합니다. 반면에 너무 낮으면 집돼지가 모두 산으로 도망쳐 버리지요. 무릎 높이가 적당하죠. 어디 돼지 울타리뿐이겠습니까. 남북관계나 우리 인생살이도 그렇지 않습니까. 뭐든 극단으로 가면 꼭 문제가 발생하죠.'
막걸리를 한잔 들이킨 김 교수는 해준을 보고 뚜벅 말했다.
'캬 가칠봉도 아름답고 이들 부부도 멋있지 않는가. 이만하면 멋진 사진이 한 장 나올 만도 한데.'
'말 꽁지머리 자네는 아직도 용이 아닌 도롱뇽만 찍을 텐가.'
김 교수가 신무홍의 어깨를 걸었고 신무홍은 자꾸만 달아나려는 아내의 허리를 꽉 잡았다. 문득 해준은 이들의 포연을 이겨 내고 자라난 무성한 들풀과 같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꽃은 없지만 잎새와 줄기가 그대로인 우리 나라 들풀이었다. 해준은 머뭇거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목덜미에 수류탄 파편이 박혀 살짝 기운 김 교수의 목선. 도망갈세라 두 팔로 아내의 허리를 꽉 잡고 있는 신무홍. 대인기피증이 분명한 의수를 한 그의 아내.
찰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이 인물사진은 연령초 얼레지 처녀치마 홀아비바람꽃 도롱뇽 해안 마을 다음으로 현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