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연옥(煉獄)

연옥(煉獄)

황원갑

 

한명길(韓明吉)이 독방 같은 기도원 별관에 갇힌 지 보름쯤 지난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날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은 사이비 목사 안호연(安浩然)동방 예수의 집이라고 부르는 기도원 본관 1층 예배실에서 기도회를 여는 날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기도회에는 예수를 믿거나 안 믿거나, 찬송가를 부를 줄 알거나 모르거나 별관에 갇힌 중환자들을 제외하고는 기도원 식구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석해서 자칭 목사 안호연의 엉터리 설교를 듣고 손뼉을 쳐주어야만 했다. 경비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문 근무자 두 명을 빼놓고는 모두가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감시만큼은 비교적 소홀해지는 편이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집 생각이 나고 아이들이 견딜 수 없도록 보고 싶어서 명길은 창가에 기대어 선 채 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간밤 꿈자리에서 아들 남국(南國)이와 딸 남숙(南淑)이를 만났던 것이다.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보고 싶던 아이들이건만 새우잠을 자며 꾸는 꿈속에서 만나기라도 한 다음 날이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더욱더 그리웠다.

아아, 몇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비에 대해서 여편네는 무어라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을까. 혹시, 돈벌이도 못 하면서 집이나 지키다가 사라져버린 못난 아비여서 아이들도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철모르는 어린 것들이니까.

난 절대로 여기서 개죽음을 할 수는 없어! 명길은 속으로 절규했다. 이런 식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횡사하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이 별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행성에 불과하더라도 체류는 단 한 번뿐이다.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삶이 아니다! 명길은 쇠사슬을 끌며 손바닥만 한 들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때, 기도원 종탑 아래 매달린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했다. 사이비 목사인 기도원장 안호연의 목소리였다.

할렐루야! 하늘에는 하나님, 지상에는 교주님! 다가오는 최후 심판의 그날을 대비하라! 영혼은 하나님께, 재물은 교주님께! 심판의 그날을 예비하러 오신 동방 예수님, 우리 거룩하신 교주님께 영광, 영광, 영광 있도다! 할렐루야! 이천십이년 십이월 이십삼일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 하시는도다! 성령(聖靈)의 인() 맞고 휴거(携擧)되려면 동방 예수님을 경배하라, 경배하라! 십사만사천 명만 구원받는도다! 교주님 품에서 복 받고 천국에 가려면 회개하라! 모든 재물을 교회에 바치고 회개하라! 거룩하신 교주님께 권능 있도다!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명길이 하염없이 쳐다보는 사이에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점점 거세어져갔다.

그러고 있을 때였다. 여자 원생들을 수용한 명상관에서 젊은 여자 하나가 나오더니 사방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여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잽싸게 걸어오고 있었다. 자그만 몸집에도 제법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는 것은 족쇄를 차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명길은 짐작했다. 여자는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채소밭을 가로질러 명길이 갇혀 있는 별관 쪽으로 재빨리 다가왔다. 그리고 쇠창살을 움켜잡은 채 얼빠진 듯 내다보고 있는 명길에게 이렇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 뭐가요?”

견딜 수 있으시냐구요?”

뭘 말입니까? 아가씬 누굽니까?”

밑도 끝도 없고 대답도 없는 토막 난 물음들이 두 사람 사이를 오고갔다.

저기, 들키면 큰일 나요! 시간이 없으니까 이걸 받으세요.”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명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피더니 명길이 무엇을 물어볼 사이도 없이 몸을 돌이켜 오던 길로 되돌아 가버렸다. 여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야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온 명길은 그녀가 주고 간 물건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헌 종이에 똘똘 뭉쳐 싼 길쭉한 쇠붙이였는데 풀어보자 놀랍게도 길이가 한 뼘 정도나 되는 줄톱이었다. 흥분을 억누르며 톱날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명길은 종이쪽지를 펼쳐보았다. 볼펜으로 꼼꼼히 박아 쓴 편지였다.

- 이 끔찍한 지옥에 저는 벌써 2년이 넘도록 갇혀 있습니다. 선생님은 용기 있는 분이세요. 그리고 정신이 온전한 분이고요. 처음 잡혀 오실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도망치다가 붙들려서 별관에 갇힌 것도 다 알고 있어요.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무리한 줄도 알지만 염치없는 부탁을 드립니다. 절 좀 구해주세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구해만 주신다면 평생 동안 선생님 댁 식모 노릇을 해서라도 은혜를 갚겠습니다. (다음 두 줄은 무슨 말을 썼었던지 새까맣게 지워버리고) 더 이상 여기에 붙잡혀서 치욕을 당하다가는 전 진짜로 미친년이 돼서 죽을 거예요. 모질고 더러운 목숨이지만 차마 제 손으로 끊지도 못하고 애원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앞으로 열흘 뒤인데 그날은 술들을 처먹고 모두 취해서 정신없을 거예요. 밤에 바깥에서 빗장을 벗겨드릴 테니까 그동안 몰래 쇠사슬을 끊어놓으세요. , 그리고 못난 제 이름은 박혜경(朴惠京)이라고 합니다. -

편지를 두 번이나 연거푸 읽은 다음 명길은 그것을 잘디잘게 찢어발겨 변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곰곰이 편지 내용을 되씹어보니 여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싶었다. 예수와 종말론을 장사 밑천으로 팔아먹는 사이비 종교 집단이기는 하지만 명색이 교회에서 세운 기도원이고, 언필칭 목사라는 자가 원장이니만큼 성탄절이랍시고 흥청망청 마시고 취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 뒤에는 경비원들의 감시도 보통 때보다는 훨씬 허술해질 것이 뻔했다.

이 지상의 지옥에서 겨울을 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또 봄이 온다고 해서 이 생지옥에서 풀려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도대체 이곳은 들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다시 되돌아나가는 사람은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 않은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톱날을 만지작거리며 명길은 어느 구석이 미더워보여서 그 여자 - 박혜경이 나를 선택해 도움을 청했을까 생각해보았다. , 한 차례 도주를 시도했다고 해서 내가 용감하다고?

어쨌든 외부의 힘을 빌려 이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망(無望)한 노릇이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힘만으로 도망을 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기는 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녀가 준 이 톱날을 사용하여 쇠사슬을 끊는 일은 가능할 터이고, 그 다음은 뒤돌아볼 것도 없이 철조망을 빠져나가서 뛰고 또 뛸 뿐이다.

그녀의 모습은 다음날부터 거의 하루에 한두 차례씩 멀리서나마 눈에 띄었는데 워낙 감시가 심한 탓에 가까이 다가오는 경우는 없었다. 식당을 오고 갈 때, 또는 다른 사람의 발길과 눈길이 뜸할 때면 그녀는 명길이 갇혀 있는 별관 쪽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는 했다. 약속한 바도 없으면서,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녀가 그렇게 지켜볼 때면 명길 역시 창가에 다가가 멍하니 그녀를 마주 바라다보고는 했다. 비록 거리가 멀어서 표정까지 읽을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말없이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무언가를 재촉하는 듯싶기도 했다.

기도원은 성탄절이 가까워지자 활기를 띠는 모습이었다. 상여금이라도 받았음인지 감시원들의 눈길도 평소와 달리 살기가 덜한 듯했고, 본관 쪽에선 무슨 공사를 벌이는지 계속해서 톱질과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자선단체에서 기부금을 받았을 리도 없는데 무슨 미친바람이 불었는지 담요까지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그 여자를 만난 뒤부터 명길은 밤마다 벽 틈에 감추어둔 톱날을 꺼내어 작업을 했다. 소리를 죽이기 위해 담요를 둘둘 말아 발목을 감싼 다음 잔뜩 웅크리고 앉아 쇠사슬을 조금씩 끊어 나갔다. 양 발목을 채운 쇠고랑은 너무 굵었으므로 차꼬를 이은 사슬을 끊기로 작정했다. 어둡고 자세가 불편한데다가 톱날이 너무나 짧았기 때문에 작업은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성탄절 전날 밤이 되었다. 타원형의 쇠고리 하나를 썰어서 끊는 데에 일주일이 걸렸다. 마지막에 가서는 너무나 손마디가 아프고 손가락이 쓰라려서 마치 떨어져 나가는 듯싶었다. 명길은 양 발목을 이은 쇠사슬의 한끝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지친 나머지 그대로 벌렁 누워 버렸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 명길은 다급하게 톱날을 변기통에 던져버리고 끊어진 쇠사슬 끝은 한쪽 쇠고랑 사이로 끼워 넣었다. 이내 밖에서 빗장이 벗겨지고 문이 열렸다. 잇따라 플래시 불빛이 뻗쳐 들어와 방안을 훑었다.

일어나라, 임마!”

경비원 하나가 발끝으로 자는 척하는 명길의 머리를 걷어찼다.

총무님이 보잔다. 빨리빨리 따라와!”

명길은 잠깐 망설였다. 이대로 순순히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저 녀석을 때려눕히고 이대로 도망을 쳐버릴지. 하지만 지금처럼 쇠약해진 체력으로 십 년이나 더 젊은 그를 때려눕힌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의 뒤를 따라가며 명길은 내심 걱정이 태산 같았다. 무슨 일로 찾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지만 까딱 잘못해서 끊어진 쇠사슬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끝장이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이럴 때 불러낼 게 뭐란 말인가. 귀신이 잡아갈 신가 놈아!

명길이 끌려 들어간 곳은 본관 맞은편 기도원 사무실이었다.

어서 오시오, 빠삐용 선생! , 다들 박수! 박수로 빠삐용 선생의 입장을 환영합시다. 박수우!”

총무 신현우(申賢宇)가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로 소리치자 그게 무슨 멋들어진 재담이라도 되는 양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던 경비반장 서가를 비롯한 십여 명의 경비원이 와아 웃음보를 터뜨리며 손뼉을 쳐댔다. 명길을 가리켜 빠삐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난여름 한 차례 기도원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하루도 못 가서 되잡혀온 것 때문이었다. 명길은 영양실조증에 걸린 데다 오랜만에 술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 이리 오셔! 우거지상 쓰지 말구. 오늘같이 즐거운 메리 크리스마스에 술 한 잔 없어서 쓰겠는가?”

명길이 출입구에 선 채 대꾸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자 신가가 소리를 빽 질렀다.

빨랑 들어와, 이 가짜 빠삐용 새끼야!”

와아! 하고 또다시 함성과 박수가 터지고, 그 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경비반장 서두영(徐斗英)이 벌떡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명길의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안으로 질질 끌어들였다. 참으로 통탄스럽고 치욕적인 장면이었다.

이 가짜 빠삐용 놈아!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네놈들을 보살펴주기 위해 고생 막심하신 우릴 위해 한 곡조 뽑아봐라. 알겠냐?”

난데없이 노래는 무슨 얼어 죽을 노랜가. 이놈들이 나를 여흥거리로 삼자는 수작이 아냐! 명길은 분노에 차 흰 눈을 치뜨고 총무 신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앞뒤 생각 없이 몸을 돌이켜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 저 새끼 잡아! 저거, 저 발 좀 봐!”

신가가 악을 썼다. 명길이 홱 몸을 돌리는 바람에 한쪽 발목에서 끊어진 쇠사슬이 떨어져 나온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경비반장 서가가 순식간에 마룻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두발차기로 내지르자 명길은 꽈당하고 그 자리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이 개새끼! 어떻게 끊었어?”

신가의 호령을 신호 삼아 우르르 달려든 경비원들이 저마다 뒤질세라 치고 밟으며 뭇매를 퍼부었다. 명길은 금세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차가운 기운에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발가벗긴 채 의자에 꽁꽁 묶인 다음이었다.

빠께쓰에 물 가득 떠 와!”

그 물을 통째로 쏟아 퍼부어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속옷과 양말까지 죄다 뒤집고 털어보며 신가가 물었다.

탁 까놓구 불면 한 번만 더 용서해 주겠다. 어떻게 끊었지?”

명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용서해 준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실을 털어놓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서두영이 난로 위에서 주전자를 내려놓고 불꽃이 새파란 혓바닥을 날름날름 거리는 연탄구멍에 연탄집게를 꽂았다.

신사적으루 말할 때 순순히 부는 게 신상에 좋을 거여. 오늘 같은 명절날 공연히 똥배짱 부리다 개피 보지 말구 말여. 다시 묻겠다. 뭘루 끊었나?”

어디서 났지?”

어디다 감췄나?”

명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짐승이라도 이렇게는 못할 거다, 이놈들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집이 있고 자식이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단 말이다! 나하고 무슨 원수진 일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모질게 괴롭히냔 말이다!”

그러자 신현우가 양 손바닥으로 연발총을 쏘아대듯 명길의 뺨을 철썩철썩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이 미친놈! 얼간이 또라이! 등신 천치 새끼야! 널 왜 안 놔주는지 알어? 니눔 마누라두 우리 동방예수교에 들어왔기 때문이란 말이다. 남편두 자식 새끼두 몽땅 버리구 우리 당주님만 모시기루 작정하구 들어왔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니눔은 마누라 뺏기구 집 잃은 병신 천치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인생이 불쌍해서 우리 기도원에서 멕여주구 재워주는 거여, 알겠냐, 이눔아? 그러니까 넌 살아두 이곳 귀신, 죽어두 이곳 귀신, 영영 여기서 못 빠져나갈 줄 알란 말이다, 알겠냐?”

그다음 순간이었다. 서두영이 난로에서 새빨갛게 달구어진 연탄집게를 쑥 뽑아 들더니 명길에게 성큼 다가왔다. 명길의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는 입에서 소름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슴에 불화살이 박힌 듯, 온몸이 순식간에 화르르 타오르는 듯한 고통도 잠깐, 그의 몸은 의자에 묶인 채 허공으로 펄쩍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인가. 죽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육신의 고통도 되살아났다.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얼굴과 연탄집게로 지져댄 젖가슴의 상처가 화끈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여전히 별관의 그 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목에 새 차꼬를 채웠을 뿐만 아니라 손목까지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기 때문에 반듯이 눕지도 못하고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있었다. 화상을 입은 가슴의 상처는 누군가가 약이랍시고 된장을 처덕처덕 발라놓았는데 상처가 짓물러서 쓰라리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눈두덩까지 퉁퉁 부어올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 뿐 아니었다! 메마른 입술을 축이려고 혓바닥을 움직이려니 잇몸에 바로 닿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 잡혀올 때 경비반장 서가의 주먹질에 어금니 두 대가 부러졌는데 또다시 앞니 석 대가 한꺼번에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이미 죽음의 문지방에 한 발을 걸쳐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절망감이 치밀어 올랐다. 유치하고 보잘것없는 교리(敎理)를 내세워 사이비 종교의 작은 왕국을 이루고 은밀하며 사악한 조직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신질환자들의 손아귀에 비명횡사 당하려고 태어난 목숨은 결코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난 절대로 여기서 개죽음을 할 수는 없어! 명길은 소리 없이 절규했다. 난 이렇게 죽어서는 안 돼! 어떻게든 살아야만 해! 살아남아서 이 사기꾼들의 추악한 탈바가지를 벗기고야 말 거야! 그리고 인간답게 살아보겠다. 인간답게, 아아, 단 한 해만이라도.

해가 바뀌고 정월이 다 지나가도록 상처는 좀처럼 낫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몸까지 자꾸만 쇠약해져 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추운데다가 워낙 형편없는 음식물, 거기에 운동 부족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다.

명길이 그해 겨울을 살아 넘긴 것은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집념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절망하진 말자. 끝까지 희망을 버릴 수는 없어. 여기서 절망하고 자포자기한다면 죽음만 앞당길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느 날인가 명길이 갇혀 있는 별관 담당이 바뀌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 기도원에서 새로 채용한 경비원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명길에게는 다행인 것이 이 젊은이는 이런 직업이 처음이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지 행동거지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경비원들과는 전혀 틀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곳 기도원 경비원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녀석들처럼 성격이 모질기는커녕 오히려 착하고 순하기까지 했다. 오봉산(吳鳳山)이란 이름의 그 젊은이는 명길이 묻지도 않았는데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며 제대를 한 뒤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명길의 화상 입은 가슴에 매일 두세 차례씩 바셀린도 발라주었다. 뿐만 아니라 식사 때에는 수갑을 풀어주고 몰래 가져온 것이 틀림없을 숟가락까지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명길은 남은 이빨로 조악한 음식이나마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꼭꼭 씹어 먹었다. 그러면서 춥고 어둡고 지겹게 긴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모든 것이 움츠러들기만 하는 한겨울에 모질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네까짓 놈이 도망쳐봐야 얼어 죽기밖에 더하랴 싶어서였는지 총무나 경비반장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발목의 차꼬는 그대로 두었지만 수갑은 풀어서 두 손의 자유는 돌려주었다. 그리고 봉산이를 통해 부탁하자 성경도 한 권 넣어주었다. 탈출 같은 것은 이미 포기하고 수양에만 열심인 진짜 또라이로 보이기 위해서도 그렇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도 예전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명길은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밤의 고통은 조금도 그 사나운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매섭게 추운 밤마다 한 장의 담요로 몸을 감싸고 이리저리 뒹굴며 수도 없이 보고 싶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남국아! 남숙아! 아비는 이게 무슨 꼴이냐. 너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명길은 담요에서 빠져나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온 방안을 미친 듯이 기어 다녔다. 엉엉 소리쳐 울면서 엉금엉금 어둠 속을 기어 다니다가 이 벽 저 벽에 마구 머리를 짓찧기도 했다. 이러다가는 얼마 못 가서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이번에는 악몽이 끊임없이 괴롭혔다. 벌거벗은 채 팔다리를 활짝 벌린 음탕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아내에게 이 기도원의 주인이기도 한 이른바 동방예수교의 교주라는 자가 널찍한 등판과 살찐 엉덩판을 흔들며 다가가서 덮치자 마누라는 반항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허연 몸뚱이를 마구 흔들어대고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미쳐 날뛰는 것이었다. 명길이 꿈에서도 분통이 터져 소리치며 달려드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신 총무와 서 반장이 나타나 어깻죽지와 뒷덜미를 움켜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놀라 깨어나기도 했다. 명길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마누라는 어쩌다가 남편과 자식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리고 이처럼 흉악무도한 사이비 종교 집단에 말려들었을까.

만신창이가 되어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찢겨질 대로 찢겨진 한명길의 나날과 다달은 흘러갔다. 그렇게 그는 지상의 막장(幕場)에서 그해 겨울을 살아 넘겼다.

2월이 가고 3월로 접어들자 그들은 명길을 강제수용소 같은 이 기도원의 뇌옥이나 마찬가지인 별관에서 석방시켜 처음 강제로 끌려와 갇혔던 수양관으로 다시 옮기도록 했다. 이를테면 저쪽 감방에서 이쪽 감방으로의 이감(移監)인 셈이었다. 명길은 놈들이 말하자면 만기(滿期)’가 되었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행형(行刑)’ 성적이 마음에 들어서 선심을 베푼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도원에 강제로 갇혀 있는 한 무죄의 죄수 신세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수양관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명길은 그 여자 - 박혜경이라는 여자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먼발치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전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왜 그녀가 두 달이 넘도록 보이지 않았는지 까닭을 알 듯했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임산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배가 불러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녀와 공동변소 안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마침 변소 안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길을 보자 그녀는 모른 척하고 반대편 출입구로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혜경 씨! 잠깐만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 그냥 가지 말구요!”

그녀가 멈칫거리는 사이에 명길은 가까이 다가서며 말허리를 이었다.

, 지난번엔 들켜서 실패를 했어요. 하지만 다음번엔 꼭 성공할 겁니다.”

그러세요. 성공하셔야죠. 무사히 도망치세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외면한 채 남의 말처럼 무관심한 말투로 대꾸했다.

?”

그녀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쏘아붙였다.

선생님과 제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 같은 년이야 아무렴 어때서요?”

, 그건혜경 씨를 두고선 혼자 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게 부탁을 했잖아요? 함께 가자구요.”

그러면서 명길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 주었다. 흑 하고 그녀가 흐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너져 내리듯 명길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변소의 벽을 짚은 채 엉거주춤 서서 명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가 생각했던 대로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세요. 고맙구요. 하지만 전, 전 이미 늦었어요. 전 그저 짐만 될 뿐이에요. 저같이 못나고 볼품없는 년은 애당초 못 만났던 걸루 치세요, ?”

그럴 순 없습니다! 또다시 붙잡혀 죽더라도 당신을 데려가겠어요!”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간 말이어서 명길은 스스로도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바보군요. 저에 대해서 뭘 아신다구. 놓으세요! 이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 더러운 놈들의 애를 뱄단 말예요! 원장 놈 건지 총무 놈 건지 아니면 경비반장 놈의 건지 알 수도 없는 더러운 씨를 뱄단 말예요! 그래서, 제가 도망치면 끝까지 쫓아올 거란 말예요. 그럼 둘 다 잡혀 죽을 거란 말예요. 이젠 아시겠어요?”

말을 쏟아부은 다음 그녀는 명길의 팔을 뿌리치고 홱 몸을 비틀어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명길은 놀란 채 멍한 얼굴로 점점 멀어져가고 작아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 명길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원장 안호연의 기도회가 열리지 않았으니 일요일은 아니라는 사실만 분명했다. 또 그런 건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단지 눈 뜨고 꾸던 악몽에서 벗어난 날이라는 점만이 중요했다.

그날 아침, 식당에서 나오던 명길은 원장의 자가용 승용차가 일찌감치 기도원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차는 지난해 명길이 집에서 기도원으로 강제로 끌려올 때와 탈출에 실패해 되잡혀올 때 타고 온 바로 그 흰색 자가용이었다. 그런데 원장 안호연 혼자서만 나갔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의 부인과 아들도 함께 타고 나갔던 것이다. 그것도 대여섯 개의 트렁크를 챙겨 싣고 서둘러 떠나는 품이 아무래도 그것은 도망치는 행색에 다름 아니었다. 게다가 총무 신가와 경비반장 서가를 차 옆으로 불러 무언가 한참 동안이나 수군수군거리고 나서 떠나는 것도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원장 일가가 떠난 다음 기도원의 분위기도 눈에 띄게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날과는 달리 경비원들이 순찰인지 순시인지 한답시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돌아다니는 대신 끼리끼리 모여 서서 수군대는 모습 하며, 사무실에서 신가와 서가가 수양관과 명상관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속닥속닥거리는 꼴이 여간 심상치 않았다. 명길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있자니까 얼마 안 되어 오봉산이 찾아와서 숨 가쁜 목소리로 일렀다.

아저씨, 큰일났어요!”

뭐가?”

서울 본당(本堂)이 쑥대밭이 됐대요! 교주님이랑 장로님들이랑 모조리 경찰에 붙잡혀 들어갔대요. 그래서 아까 원장님두 보따리를 싸들구 내뺀 거래요!‘”

봉산이 알려준 사실은 그 정도였지만 명길은 이 일이 어떻게 된 노릇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여 횡령 착복한 사실이 들통났든지, 여신도들을 농락한 행위가 드러났든지 좌우지간에 결국은 사이비 종교의 정체가 밝혀진 모양이었다.

명길은 벌떡 일어섰다. 아무래도 이렇게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명길은 봉산에게 물었다.

총무하고 경비반장도 도망쳤냐?”

아직은요. 그렇지만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여기두 경찰이 올지 모른다구 보따릴 쌀 모양이던데요.”

그래? 봉산이가 그동안 내겐 참 친절하게 잘 해줬는데 한 가지만 더 부탁을 해야겠다.”

그게 뭔데요?”

우선 이걸 먼저 풀어야겠어.”

하고 그는 양 발목을 이은 쇠고랑을 가리키며 계속했다.

어떻게 해서든 열쇠를 좀 찾아다 줘. 틀림없이 경비반장이 가지고 있을 거야. 경비실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가서 찾아봐 줘.”

알았어요. 가서 찾아볼게요.”

봉산이 휭하니 그 길로 달려 나가더니 얼마 안 지나서 열쇠 꾸러미 한 뭉치를 찾아가지고 돌아왔다.

아휴! 들킬까 봐서 혼났어요! 빨리빨리 푸세요.”

열쇠 꾸러미에서 맞는 것을 골라 족쇄를 풀자마자 명길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가자!”

어디루요?”

다른 사람들도 풀어줘야지.”

그러자 봉산이 머뭇거리며 이렇게 대꾸했다.

무작정 죄다 풀어주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올 데두 갈 데두 없는 사람들인데요. 진짜루 머리가 돈 사람두 많아요. 무조건 풀어줬다간 큰 난리가 날 거라구요.”

봉산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명길의 생각은 달랐다. 강제로 수용된 사람들 가운데는 정신이상자도 있기는 하겠지만 참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참으로 미친 인간들은 이 동방예수교라는 사이비 종교단체를 만든 교주라는 자를 비롯하여 그의 추종 세력인 신가와 서가 같은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명길은 앞장섰다. 봉산이 할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 방 저 방 방마다 돌아다니며 원생들의 발목을 채운 차꼬를 풀어주었다. 열쇠를 이것저것 맞춰가며 풀어줘야 했으므로 그 작업은 생각보다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발목이 해방된 수용자들의 반응도 가지가지였다. 고맙다는 사람, 그저 히죽히죽 웃어대기만 하는 사람, 발목을 풀어주기가 무섭게 괴성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 정말로 실성해서 마구 덤벼드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가 명길의 머리에는 불현듯 그 여자, 혜경이라는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의 발목에는 차꼬가 채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과, 원장을 비롯해 여러 놈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 중이라는 사실도 기억났다. 명길은 봉산에게 열쇠 뭉치를 넘기고 불화살에 맞은 짐승처럼 화다닥 뛰어나갔다. 그리고 여자들이 갇혀 있는 명상관으로 달려갔다. 방문마다 열어보며 그는 소리쳐 불렀다.

혜경씨! 혜경씨!”

그때였다. 아악! 하고 자지러지는 여자의 비명이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명길은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몇 칸 떨어지지 않은 방 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였다. 수양관이든 명상관이든 원생들을 강제로 수용한 방은 밖에서만 잠글 수 있을 뿐 안으로는 걸 수 없게 되어 있었으므로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방문은 이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몽둥이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든 사내는 총무 신가였고 방안 한쪽 구석에 한껏 웅크린 채 모로 쓰러져 뒹구는 사람은 혜경이라는 여자가 틀림없었다.

명길은 문소리에 놀라 녀석이 뒤돌아보는 순간 재빨리 뛰어 들어가 있는 힘을 다해 덤벼들었다. 뜻밖의 기습에 놀란 신가는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곡괭이자루 같은 몽둥이를 떨어뜨리며 뒷벽에 쿵 부딪쳤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명길의 쇠약해진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나왔는지 몰랐다. 그리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신가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나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고 몽둥이를 집어 들자마자 녀석의 머리통을 힘껏 후려갈겼다. !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지며 신가는 축 늘어져버리고 말았다. 명길의 귀에는 그제야 여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피 묻은 몽둥이를 던져버리고 그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를 죽여서 입을 봉하면 자신들의 죄상이 지워진다고 그들은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신 차리세요, 혜경 씨!”

구둣발에 걷어 채였는지 몽둥이에 맞았는지 여자는 아랫배를 감싸 안은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하혈까지 하고 있었다. 명길이 물을 떠다 먹이려고 밖으로 나갔을 때 이미 기도원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풀려난 남자와 여자들의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막대기건 돌멩이건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 들고 건물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고, 한 무리는 식당으로 몰려가 음식물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입에 넣기에 바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무리는 철조망 울타리를 빠져나가 무턱대고 산 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열대여섯이나 되던 경비원들은 봉산이 하나만 빼고는 어느 사이에 모두 도망쳤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원 안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본관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불은 이내 다른 건물들에도 옮겨붙었다.

싸늘한 봄바람을 타고 불길이 갈수록 시뻘겋게 솟구쳐오르자 그동안 갇혀 있던 여자와 남자들은 온몸을 마구 흔들어대며 사람의 입으로 낼 수 있는 온갖 괴성과 기성을 질러댔다. 그것은 종생토록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형사들을 태운 경찰차와 마이크로버스 두 대가 들이닥친 것은 본관 건물이 폭삭 주저앉고 난 다음이었다. 명길과 봉산은 명상관의 아까 그 방에 혼수상태로 축 늘어진 총무 신가를 끌어다가 형사들에게 넘겨주고 그동안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끝에 가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릴 여기서 좀 구해주십시오! 정신이 멀쩡한데도 일 년이 넘도록 여기에 감금돼 있었어요.”

이야기를 끝맺으며 명길은 그렇게 덧붙였다. 형사들은 놀란 눈으로 명길을 쳐다보고 다시 쳐다보곤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반백이 넘도록 허옇게 센 머리칼 하며 제멋대로 뻗친 수염에, 앞니까지 빠진 입을 공동(空洞)처럼 시커멓게 벌리고 서 있으니 아무리 바라보아도 괴물 같아 보였을 게 뻔했다. 형사들은 조사를 마치자 우선 정신이 온전하고 돌아갈 곳이 분명한 서너 사람을 차에 태워주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명길이 짐작했던 대로였다. 당주인지 교주인지 하는 자에게 가족과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들이 잇달아 경찰에 고발을 했고, 이에 따라 이것저것 캐 들어가다 보니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온갖 비리와 죄악상이 드러나 결국 교회의 중요한 간부들은 거의 모두 구속되고 수사가 이곳 기도원까지 뻗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기말예요.”

그녀가 명길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전 거기 그냥 있을 걸 그랬나 봐요.”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전 갈 데가 없어요. 남편에겐 쫓겨났구친정으로도 갈 수가 없단 말예요. 게다가, 이런 꼴이 되었으니.”

말끝을 채 잇지 못하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명길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또 무슨 말을 하든 위로도 도움도 안 될 것 같았다.

죽구만 싶어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억지로 모진 소리를 내뱉으며 동의를 구하기라도 하는 듯 젖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 표정은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애원하거나 동정을 구하는 듯싶기도 했다.

미쳤소?”

명길이 저도 모르게 꽥 고함을 쳤다.

그만큼 고통을 당했으면 이젠 사람답게 살길을 찾아야지! 생각하는 게 겨우 그 정도요?”

난데없는 고함에 깜짝 놀란 형사들이 뒤돌아보았다.

, 무서워요! 소리치지 마세요.”

여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너무나 앞일이 막막해서 그래요. 저기, 경찰 아저씨! 차 좀 세워주세요. 저 여기서 내려야 해요!”

끼익 하는 제동 소리에 이어 차가 멈추자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렸다. 명길도 앞뒤 생각 없이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기도원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비탈진 산길이었다. 부웅 하고 먼지를 일으키며 자동차가 멀어져갔다.

너무너무 막막하요. 심란하기두 하구요.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요. 선생님은 왜 내리셨어요? 그냥 가시지 않구요?”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실은 나 역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거든요."

그리고 명길은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로 꿈에서 깨어나려면 아직도 멀었는지 모르죠.”

그래, 하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길고 긴 악몽 속에서 짧은 한 토막 악몽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최소한의 자유는 되찾은 게 아닌가. 최소한 손과 발의 자유만큼은. 그게 중요한 것이다. 어디든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지만 그래도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법이라고.

저기, 선생님. 앞으로 화내실 땐 고개를 좀 돌리시면 안 될까요?”

느닷없는 그녀의 말에 명길은 어리둥절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말이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명길은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무서워서 그래요. 선생님 눈은 황소처럼 커다란데요앞니가 빠져서요, 입을 벌리구 소리치니까 너무 무섭단 말예요. 아시겠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명길은 눈물이 찔끔 나도록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즐겁고 행복한 웃음은 아니지만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빨 빠진 웃음을 날리며 명길은 키 작은 여자의 자그만 두 어깨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기도원의 타다 남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