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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쓸쓸함에 대하여

어떤 쓸쓸함에 대하여

허수경

 

……, 낯선 한 이방의 도시에서 또 낯선 한 이방에 속한 도시로 내가 떠났을 때 나는 낯선 풍경들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렸다. 무정한 당신……, 유정한 나를……, 나를 용서하세요……, ……, 유정해서……, 서러웠더랬지요……, 불편은 저의……, 이대도록 기나긴 꽃이었구요, 늦은 저의 창으로……, 설분분합니다, 설분분……, 합니다,

지상에서 집 한 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나는, 언제나 여관에서 잠을 잤으므로 얼굴은 부수수했고, 서둘러 나오느라 머리칼이 언제나 젖어 익숙한 감기는, 편두통으로, 장난처럼 내 머리를 쿡쿡, 그럴 때마다 나는 무심코 압핀을 밟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쩔쩔매며 압핀을 뽑으려고……, 그러다 편두통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마음, 어느 결을 잘 드는 면도칼로 사각사각 긁어내리는지, 나는 어딘가가 몹시 쓰라렸고, 그 어딘가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겠다는 느낌뿐, 나는 느낌뿐인 것들이 무서워 이렇게 스스르, 머리를 창에 기대고 다리를 모아 가슴에다 옹그리고, 다시……, 무정한 당신, 유정한 나를, 유정한 나를, 나의 유정을, 그러다 다시, 그러니까 말이에요, 불편은……, 저의 꽃이어서요, 저는요 이렇게 낯선 바깥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낯설구요, 이것 보셔요, 낯선 이방의 창 바깥에, 어스름한 눈이, 눈이, 눈이, 기차는 파충의 몸을 꾸부려가며 또 어디론가를, 대체 이 지상의 길을 달리고 있는가, "공식적인 사찰을 즐겁게 하는 가장 적당한 방법은 무엇인가, 옻칠한 내부로부터 풍경 또는 흥미있는 사물을 조망하기 위하여 그 내부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우비, 약상자, 충분히 갈아입을 의류와 빗, 저장양식과 차를 넣는 상자, 그리고 종이, , 가위, 압운사전과 거문고를 넣을 또 하나의 상자, 조그마한 칼, 장기알과 접는 장기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벌레에 물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살충제와 함께 도중에 살 책을 넣을 상자도 준비해야 한다. 끝으로 그것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곳도 있을 것이므로 진흙 속을 걸을 수 있는 장화도……(중국 송대의 학자 심괄(沈括)망회록(忘懷錄)중에서.), 장화가 필요했구나, 진흙 속을 걸을 장화, 그러니까 나는 어느 진흙 속에서 언제나 맨발이었는지, 발이 몹시 차가워서 옹크리고 잠을 아주 잠깐만, 나는 거문고와 압운사전에 대해서, 저장양식과 갈아입을 의류에 대해서, 차를 넣을 상자와 장기알과 접는 장기판에 대해서, 그리고 살충제에 대해서, ……, 그것은 혹, 이렇게 오랫동안, 잠깐씩만, 잠을 잘 수 있었던 나라는 병에 대한, 나를 위한, 항생의 약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스스로가 병인 인간의 여자인 나에 대한, 인간인 나를 위한 항생의 약들……, 저장양식과 갈아입을 의류에게 나는 오랫동안 안부 묻는 것을 잊어버려서 어느 거리에서나 배가 고프고, 거리의 담배냄새와 술냄새를 끌고 다니며 추운가, 그렇지만 제일 큰일은, 아무래도 장화를 챙기를 일이었는지, 이렇게 모르는 기차를 혼자서 타고 가는 일이란, 또 진흙 속으로 내가, 장화도 없이 내가, 그러니까 나는 또 장화도 없이, , 그렇게,……, 그렇지, 당신……, 이었어요, 나는 당신을 또 불렀고 당신, 그러나 오래된 버릇처럼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또 당신……, 당신이라고……, 정말 그렇게?, 라고, 나는 물었고,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영혼은 삭은 재처럼 흘러가서……, 기차가 만일 지상의 길을 다니지 않는다면, 아하, 나는 공식적인 시찰이나 옻칠한 내부로부터 장화가 필요 없을지도……, 옻칠한 내부라고?……, ? 나의 옻칠한 내부?……, 나의 옻칠한 내부는 이 지상에 있는 실체인가요?, 라고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물었을 때,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해가 지는 저녁무렵이면요, 온 뼈가 다 가시처럼 일어나서 가시 사이에다가 누가, 면도칼을 걸어 두었는지,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이요, 이렇게, 누군가 그리웠으면, 누군가를 찾아갔으면, 이렇게 짠 고등어 한 마리와 새끼줄에 연탄 한 장을 매달고, 노을이 할머니처럼 반짝이는 언덕길 비탈길 경사면을 올라가서 그 초라한 슬레이트집, 그 작고 초라한 방 안에, 그 방 안에……, 이렇게 해가 지는 저녁무렵에요, 내가, 혹은 그대가 밥을 벌던 그 황량한 페허도시에요. 신전은 세속의 등불을요, 세속은요, 신전의 등불을요, 신전의 가장 높은 곳에요, 어느 오래된 문명 속을 살았던 부자처럼요, 잘 생긴 여자나 남자를 본떠 만드 조각상을 바치며, 이런 초라한, 그러나 온 울음을 생애처럼 기울여 적은 문장……, 이 도시,에서의, 삶이 영원하기를……,나는요, 어느날, 결국은 충적일 홍수가 나서 물이 도시를 덮거나, 인근 도시에서 다른 종족이 창과 칼로 성벽을 무너뜨릴 때요, 어느 물결이 나의 몸을 물살 거센 아귀로 날름 집어먹거나, 어느 불화살이 쇠액쇠액거리며, 거칠게 내 목덜미를 휘어감아 나를 조일 대, 그때 말이에요, 결국은요, 이 지상에서 우리가 세울 수 있는 것은요, 한 떼의 식사뿐이라는 것을요……, 그래, 나의 옻칠한 내부의 결핍……, 그것은 따뜻한 식사였나, 나는 따뜻한 식사가 그리운가, 저 짠 고등어를 구워 연탄불 위에 끓고 있는 쌀로 차려놓은 낮은 촉수, 전등 아래에서의 식사……, 도시는요, 그러니까요, 처음 세워질 때부터 폐허라서요, 신전거리에서 우리는, 쉽게 세속을 발견하지요, 그러나 세속은, 또 쉽게 신전이라서, 저는요, 저녁무렵이면요, 어느 작은 신전에, 내가 건설하지 않은 신전에, 가고 싶어서요, 그래서요, 유곽의 등불은 시든 꽃밭처럼 내 마음을 아프게 하구요, 그래서요, 나는 집에서 흘러나온 등불이요, 너무 씩씩하게 그렇게 흘러나와서 상한 유곽을 더, 상하게 하지 말기를요, 그래서……, 나는, 낯선, 기차를 타고 장화, 없이 진흙, 속으로,

구텐 탁, 카르테 비테……,당케, 노흐 쉐네 라이제(안녕하세요, 기차표, 부탁합시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여행이 되기를…….) , 나는 기차표를 다시 받아 내 친구인 가방 곁, 한 주머니에 세워 두려다가 한번 천천히, 이방에 속한 낯선 도시 이름을, 뮌스터라는 내가 떠나온 역에서 만하임이라는 내가 다다를 역이름을, 천천히, 천천히 입으로 굴려 보다가,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잠일지도, 기차는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역들을 지나, 내가 모르는 나의 목적지로, 그 기차는, 나라는 인간의 한 여자가 정말 지상에서 타는 기차인가, 왜 나의 이런 물음들은, 나에게 이리도 지리멸렬한 얼굴을 하고 있나, 나는 가방 안에서 맥주를 꺼낸다, , 맥주뚜껑은 잠시 총소리처럼, , 이렇게 천천히 한 모금, 또 천천히 한 모금, 창틀 속에 있었던 기차 밖의 낯선 그림들은 몸을 비틀며 어서어서 창틀을 빠져나가고 나는 버릇대로 몸을 꼬부려 또, 무릎을 가슴에 모으고 창에 이마를 기대며, , 나에게 있어서 낯선 그림들, 너네들은 나에게 있어서만 낯선 거니, 너네들, 그대로 낯선 거니, 라고 시비를, , , 번도, 나나, 저네들이나 서로에게, 정직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이러이러한 풍경들 앞에서 정직하지 않았으므로, 시비를, 걸어도, 이런 장난은 그러니까, 정직으로 하는 짓거리가 아니라서, 나에게는 얼마간의 여유를, 풍경 앞에서 정직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내 마을의 거리들을 입으로 동그마니 오무려, 진주, 싸전거리, 진주, 성밖거리, 진주, 배 건너 동네, 진주, 봉래국민학교 앞, 진주소방서 앞……, 이라고, 그곳에 겹쳐서 뮌스터 위버바써슈트라세라거나, 마부르크 루돌프플랏츠라거나, 만하임 슈트라세 아인스라거나……, 어머니, 혹은 아버지, 혹은 내 동생……, 그러니까 아버지, 내 추억을 삼투하는 저 향기로운 불빛, 내 추억은 옅어서 금방 저 불빛에 삼투해서, 나를 빠져나간 추억은 저 불빛 아래로 둥글게, 혹은 타원으로 혹은 춤추는 타원으로, 내가 그 불빛 아래까지 갔을 때, 아니 내가 아니라 나와 더불어 있는 다른 한 시간성의 내가, 그러니까 열 둘의 내가, 저 가랑머리가, 아직 초경을 치르지 않은 내가, 그러나 아직 여자가 덜 된 것도 아닌 게, 어디 한 일생에 사로잡혀, 그 일생은 자기것이 아니라 외계의 것이었으므로, 몸만 어린 계집인 나는, 그 불빛을, 어느 날 한번 보았던 그 불빛, 대문이 반쯤 열린 골목 끝길의 시멘트집, 집 담장으로 수천의 손을 수런거리는 덩쿨이 낮게 그러나 낮게 부풀려 시멘트 입자 사이에 정막 같은 실뿌리를 내리고, 이것 봐, 이런 데에도 틈이 있어서 나를 부풀릴 수가 있네, 있네, 수런거리며 그 수런거림 사이로 어둠이 달게 자신을 잘 씻어, 저건 검은 게 아니라 붉은 걸까, 저렇게 잘 씻어 놓은 저 어둠은 붉어라, 나는 담장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그러니까, 붉은 어둠에 기대어, 대문 반쯤 열린 그 집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 그렇게 한참을, 정강이의 모든 실핏줄들이 터져 어디론가 흘러가더니 모여 질척거리는 늪을, 끈적거리는 고무진 같은 늪을, 나는 저 늪을 잘 빠져나올 수가 있을까, 나는 차라리 저늪을, 몸은 초경을 치르지 않고 마음만, 마음만, 인간의 여자가 되어버린……, 차라리 인간의 모든 여자들이 몸만 여자가 될 수 있어서, 아버지와 남자를 구별할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저 늪을 잘 건너 볼 수도 있으련만, , , 아버지, 나는, 그 대문 안에서 나오는 아버지, 내 어머니의 남자, 내 여성의 근원이었던 한 남성을 향해 아버지……, 라고, 정말 아버지는 내 어머니인 한 여자를 버리고……, 그러나 어쩌면 그러한 일은,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말했듯, 그러니까요, 모든 치정은요, 이런 것일 수도 있지요, 내 남성 속의 여성이 다른 동무를 찾아서요……, 이런 아득함요, 왜냐면요, 치정은, 처음부터 이미 늙은 거라서요, 시작부터 늙어버린 인간의 관계라는 건요, 아마도 어느 더운 어린 날, 마른 풀더미, 늙은 젖어미 같은 마른 풀더미 아래, 그 헛간, 햇살이 한숨처럼 일렁, 일렁, 일렁……, 나는 그때요, 나보다 세 살 많았던 그 계집아이에게 꼭 염소새끼처럼 사로잡혀서요, 나는 눈을 꽉 감고, 저 천길만길의 소란한 어둠 안에서,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지 둽는 것도 아닌 시간의 한 간()에 묶여, 위대한 여성이었던, 그 주근깨투성이의 계집아이는 염소새끼를 냇물로 끌어다, 그 가슴을, 어깨를, 배를, 다리를, 그 어느 사이를 샅샅이 씻어 내리듯, 뉘엿뉘엿, 천천히, 만져서, 이것봐, 너 커졌어……, 라고 내 어린 햇남성을 향해까르륵, 나는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자꾸 잡아당기면 아퍼……, 그 헛간에서 나와서 계집아이는 나에게 아직 익지 않은 참외를 먹였지요, 참외는 그저 덜 과육인 채로 젖어 있을 뿐……,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우리가 앉아 있던 어느 풍경 속에서 한 은행나무를 보았다, 당신……, 은행나무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좀 해봐요, 지금 기차에 기대고 지상이 아닌 다른 곳을 달리고 있는 나는, 중얼거린다……, 은행의 수그루는 은행의 암그루에게 물리적인 공간을 좁힐 남성과 더불어 수그루인가, 은행의 암그루는 은행의 수그루에게 그럴 연한 시간성을 허락하는 것 외에, 무엇으로 암그루인가, 은행나무는 꽃을 피우는가, 꽃을 피우지 않으면서도 왜 자손세세 이 지구 위에 번성한가, 은행의 수그루와 암그루는 식물계 안에서는 실재하는 자웅이 돼 동물계에서는 관념의 자웅이어서, 당신……, 당신의 남성 속에 있던 여성이 다른 동무를 찾아갈 때, 당신의 치정은 은행자웅의 상징인가, 당신은 인간의 수그루인가, 그 때 나는 울면서 인간의 암그루인가……, 아버지는 대문 바깥에서 한참을 그렇게 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서 있었고, 나는 담장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그런 그런 풍경을 한 늪 속에서 바라볼 때, 그 골목길, 아마도 진주 칠암성당 옆, 개천 둑길을 지나 봉래, 수정 언덕받이 골목길이었을 그 길은, 뮌스터의 위버바써슈트라세라는 이 지상에서 나와 상관없는 이방의 길과 달라서, 나는 다시 맥주를 한모금,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또 그 은행나무를 추억하지요, 우리가 그 곳에 앉아 있었을 때, 그때의 그 은행나무요, 어느 수성의 시간이 곱다라니 당신 추억 속으로 들어와서, 그것이 그대로 그렇게, 그러니까 유년이었던 한 오래된 날의 치정 안에 있던 한 여성이 한 거대한 신성으로, 그 신성이 당신에게 아직 채, 과육되지 않은 참외를 먹였던 그 때의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쳐다보았던 그 은행이요, 그 식물의 남성은, 연두녹빛의 자식들 같은 이파리를 달고, 어디선가 풋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흔들면서, 이렇게 지금, 맥주를 먹고, 지상이 아닌 길을 달리는 나처럼 끄덕끄덕, ……, 저 그늘, 참 향긋하지요, 당신이 있어서, 동물성의 남성인 당신……, 이렇게 안아 주셔요……, 라고, 그 때, 그 풋바람 속에 온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던 땅은, 젖은 몸을 더 젖게 하려고 저렇게 봉긋하게 자기를 오무리고, 나는 이렇게, 혼잣말로, 은행의 암그루는 불쌍해, 그이는 이렇게 안기지도 않고 자식을 낳잖아, 나는 또, 생각, 먼 갈피 속에서 혼잣말로, 암그루가 자식을 온 가지에 주렁주렁 달 때, 그 아기 가짐의 시간과 아기 낳음의 시간 속에 이런 풋바람이 불어올 때, 저의 들뜬 몸을 식히기 위해 얼마나 큰 품을 가져야 하는지, 그 품을 여는 일이란, 암그루에게는 얼마나 외로운 일이었던지, 가을날, 은행열매를 따는 일을 느릿느릿 하고 있을 때, 그 비릿한 여자냄새는 얼마나 고약했던가, 나는 그 때, , 이런 혼잣말을, 잘 견디고도, 모든 견디는 것들에게는 이런 고약한 냄새가 나는구나……, 라고, 나에게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 나는 맥주깡통을 감싸 안으며, 한 거리에서 추억 있음과 한 거리에서 추억 없음을, 한 거리에서 상처 있음과 한 거리에서 상처 없음을, 그러니까, 매시간, 시간 속에 걸린 다 해어진 무명포 같은 어떤 흔적을 끝없이 중얼거리는 나에게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한 달 뒤, 나는, 아버지의 책 속에서 아주 짧은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그 편지는 어디론가 부치기 위해 쓰여진 것이었으되, 그 편지를 부칠 주인은 이 지상에서 이미 사라졌으므로, 그것은 편지가 아니라, 다만 한 시()의 간()이었고, 한 가엾은 그러저러한 시간은 속절없이, 전후일본작가전집2권 속에서 납작하게 접혀 있었다……, 그 편지, 나는 그 편지를 어떻게 했던가, 그 납작하게 접힌 화학 공법의 종이 위에 쓰여진 한 시간을, 나는 읽어 내렸다. 시간을 읽어 내렸다, 이렇게, 이렇게……, 항상 내 마음속의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대는, 이렇게 내 곁을 떠나더라도……, 나는 한, 시간 속에 무명포처럼 걸린 흔적을 읽는다……, 떠나더라도 그대는……, 아버지는 이미 이 지상을 떠나고 없었고, 아마도 그 어느 한 때, 아버지를 떠났을 그 사람은 지상에 이미 없는 아버지 마음 속의 사람으로 이 지상에 살고 있을 그 사람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이미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고 느릿느릿 걸어서, 헤이, 보 콤스트 두 헤어? 히나? 야판? 헤이, 바룸, 하스트 두 니히츠 게작트? 비스트 두 베트룽케? 페어뤽트?(헤이,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중국? 일본? 헤이, , , 아무 말도 안하니? , 술 취했니? 미쳤니?(Hey, wo kommst du her? China? Japan? Hey, warum hast du nichts gesagt? Bist du betrunken? verrckt?)) 나는 천천히 기차 중간문을 연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화장실 문을 연다, 나는 힘껏 문을 연다, 나는 머리 끝에 식은 땀이 나는 것처럼, 눈을 감고, 다시 문을……, 그래, 나에게는, 이런 힘이, 힘이 필요했어, 왜냐하면, 나는 살아야 했거든, 나는 그렇게 죽을 수는 없었거든……,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언제나 너무 젖어 있어서, 젖은 마음은 언제나 그렇게 길바닥에 누워……, 나는 거울을 본다, 이 얼굴을 들고 그렇게 먼 길을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세상에서 쉽게 묻어온, 저런 저런, 저건, 세상을 한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탓일까……, 그에 비하면, 내 어머니인 어느 여성성에 비하면……, 그 때 어머니인 어느 여성성은 나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고운 앙고라털스웨터가 필요해, 상복만 입고 네 아버지 떠나는 날, 나갈 수는 없어, 마지막 날인데, 예쁘게 입어야지, 너네 아버지 친구들도 많이 올 텐데, 상복만 입고 초라하게 나가면, 다 너네 아버지를 우습게 알 거다, 저런 초라한 여자를 데리고 살았나 하고, 얘야, 나에게 하얗고 고운 앙고라스웨터를……,……, 엄마, 그 때 우리에겐요, 아버지 그 몸 묻을 땅이 없어서, 엄마, 기억 안 나요, 제가요, 아버지를 병풍 뒤에 두고 진주 거리 거리를 뛰어다닌 일이요, 그 땅값을 마련하려구요, 한 평에 기십만……, ……, 이요, 그런데 앙고라털스웨터라구……, 그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나와 내 마을 저자를, 저자에서 천상의 날개 같은 상복을, 그 때 내 마을 저자에는 주단집, 포목집, 바느질집이 있어, 사내를 여윈 아낙들이 바늘끝, 그 땀, 땀이, 그러니까 새발뜨기 공굴리기며 인두질이며 겹치마, 스란치마, 홑적삼 겹적삼에, 매화며 목단이며, 온갖, 요초, 기화들을, 저런 꽃밭이 어떻게 살아 생전에……, 나는 몇 푼의 지전을 바꾸어 하얀 앙고라스웨터를 사서 내 마을 저자를 천천히 빠져나오며, 그 때 나는 알았네, 왜 세속이 신전인지를, 왜 세속이 자식을 거느리고 신전인지를, 왜 세속이 자식을 거느리고, 무참한 신전이 되는지를, 아낙들은 주단집 앞에 평상을 펴놓고 저고리 어깨에 금빛 잠자리를 수놓으며, 이웃에서 사 온 돼지고기 편육을 집어 먹고 있었는데, 나는 신전이야말로, 잘 구운, 혹은 잘 삶은, 혹은 잘 지진 살점이 필요한 곳이라고……, 어쩌면 저 도살장은 신전의 제물을 준비하느라 다 늦은 밤에도 큰 무쇠솥에선 김이 났고, 큰 물통마다 짐승의 창자들이 벌건 핏물과 자른 기름덩어리를 다 풀어놓고 편안하게 흐느적거렸을지도, 저 짐승의 머리는 푸줏간의 도마 위에서 저리도 편안하고저 짐승의 다리들은 물통 안에서 편안하도다, 아저씨, 고기 한 칼만 주셔요, 그건, 제물이 아니라 식욕 때문에 내가 사는 거지요, 그런데, 식욕은 결국, 어느 제사의 어머니라서……, 내 식욕이 어머니라는 걸, 내 식욕이 어느 여성성이라는 걸, 아저씨, 아시겠어요,……, 눈이 왔었다, 지금 저 창밖처럼, 저런 환한 햇빛 속에 철강공업나라라는 이방의 철골들 위에, 세상사 시름 잃은 오래된 도시, 메소포타미아의 구데아쯤에 살았을 어느 여인 같은 눈이, 고대 문자인 쐐기문자로, 이렇게 세속의 삶을 적었을, 이 도시에서의 삶이 영원하기를, 고대 도시 구데아, 그 여인은 쐐기문을 해독할 줄 알았을까, 저런 신생의 철골 위에 스스르 눈을 감듯 내리는 늙은 눈 같은 여인……, 그때 그 눈발은 사뭇 거칠어서, 아버지, 저 눈발은요, 아버지 살아생전 거두어 본 적이 없는 지폐 다발처럼 차갑네요, 어쩌자고 내 마을의 저자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환하게 지폐 다발을 건네주지 않았을까……, 그 거친 지폐다발 같은 눈은, 어머니의 앙고라털스웨터 위에서 칭얼거리며 머리를 파묻고, 그러나 어머니는 그 눈을 돌보지 않고, 아버지, 보셔요, 저 당당한 여성성을요, 저 자랑스러운 얼굴, 자신의 남성성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저 연애하는 여성성, 어느 신전의 처마처럼 부드러운 여성성……, 나도 한때 사랑이 있었지, 나도 한때 사랑이 있었지, 그 한 시()의 간()에 몸과 마음을 다해 피우는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전의 향불 같은 저문 향내가, 당신을 만나면서 나에겐 생식과 수유가 시작되었지, 나 기억해요, 우리가 도시의 작은 골목 처마 밑에 누추한 이불을 펴던 날이요,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아 시청 게시판엔 전사자명단이 나붙던 그 항구도시였지요, 다리 밑에는 고아들이, 산언덕 성냥갑 같은 집들에선 과부들이, 거리에선 팔다리는 없고 심장만 남은 사내들이 딱성냥을 팔았고, 그 도시 어디엔가 있는 거대한 감옥에선 산에서 잡혀온 사람들이 사형을 기다렸고, 그때도 그 도시의 유곽에서는 먼나라에서 들려오는 저렇게도 흘러 끓어 넘치는 금속 나팔소리……, 나는 코티딱분 하나 갖고 싶어서, 미제골목 앞을 서성거리고, 나는 새신부였거든요, 고아들이 팔고 있는 코티딱분을 나는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그때 밥상, 아마도 예식을 위한 음식상이었을 밥상 위에는 군용깡통 돼지고기통조림이 몸국물을 흘리며 발갛게,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건, 몸을 끌고 다니던 마음이 그 때는 몸 뒤로 숨어……, 아버지, 저렇게 신부의 나날을 기억해내는 저 여성성을요, 말 좀 해보셔요, 제발, 저 여성성에게요 제발, 제발이요,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한 번 찬물에 세수를 한 탓에 얼굴은 몹시 당기고, 나는 내 친구인 가방 안에서 작은 로션병을 꺼내어 손바닥 위에 한 번 탁, 잘 나오지 않는 이 꽃물의 액을 위해 두 번 세 번, 네 번, , , , ……, 아무래도 장화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는지 나는 발이 몹시 시렵다는 느낌이, 이 무서운 느낌은 지상에서 사는 나의 느낌이었을까, 나는 다시 다리 모아 가슴으로 가까이 갖다대며 창에 머리를 스르르, 아버지는 저 기차 바깥에서 어서어서 기차 창틀을 빠져나가는 저 극장에서, 어느날, 영사기를 빌려 왔을까, 어느 해 봄날, 그 어느 푸르른 저 봄밤에 아버지는 골방에서 차르륵거리는 영사기의 둥근 어깨에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름을 걸며……, 담배연기가 푸르게, 그 어둠 너머에서 먼 한숨처럼 그렇게, 어느 상한 영혼처럼 그렇게……, 나는, 지금처럼 두 다리를 가슴에다 모우고 숨을 죽이며 푸르른 저 화면, 흑백의 화면을, 어느, 신비한 성에 살고 있는 마리안느를, 내 청춘 마리안느, 한 남성성의 청춘인 마리안느를, 흰 분칠을 한 배우 품에 안긴 마리안느……, 어느날이요, 어느날, 청춘에는 누구에게든 마리안느가, 남성성의 어느 언덕 작은 수풀, 그 아래, 이끼같이 무성한 마리안느가, 한 마음의 푸른 성 같은 신전에 도사리고 앉아, ……, 그래서 어느 마음은 음악과 몸을 맞붙이며 영원히 청년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래서 어느 마음은 영원히 슬픈 음악에 제 몸을 묶어, 세속에 있는 유곽에서 술을 마시며……, 아버지는 그 때 나에게, 얘야, 봄밤이 슬픈 줄 알게 되면 청춘이 가고 있는 거란다 얘야, 나는 이 봄밤이, 이 봄밤이 슬퍼서, 나의 마리안느는, 내가 모를 어느 성에 갇혀 있고, 나만 이렇게 먼 길을……,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의 먼 길은 집이 아니었나요,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름이 돌아갈 때마다, 마리안느를 찾아가는 청년의 이마 위에……,, 이방의 기차 바깥에 내리는 눈은 기차 차창 안에 있는 나에게 고요하다, 내가 만일 바깥으로 나가도, 저 눈은 나에게 고요할까, 술을 내가 조금 마시기는 마셨는지, 무슨 마취같은 평안이 내 어깨 위로 무겁게, 그래서 나는 또 한 깡통을 꺼내 탕……, 내가 기억하는 이,……, 소리는 자주 아버지가 자주 자신의 세속신전인 집을 나가며 내던 소리……, , , , 거리의 모든 문은 아버지를 향해 언제나 그런 소리를 내었고, 아버지가 닫을 수 있었던 문은, 그러니까, 그런그런 누추한 세속신전뿐……, 그럴 때마다 나는 맨발로 아버지를 뒤쫓아가며, 맨발로, 시린 맨발, 아린 맨발, 나는 맨발이 싫어요, 맨발이요, 당신, 내 발을 내 맨발을 내 머리칼처럼 쓰다듬어 줄 수 있었는지, 나는, 항상 그것이 묻고 싶어서, 그렇게 어린 가수의 노래처럼 칭얼대며 세상 다 산 노래를, 그런그런, 그러나 그런그런, 그리고 그런그런……, 또 그런그런, 그런그런, 나의 천함과 더불어 그런그런 것들과 짝하며……,

기차는 강을 건넌다……, 눈이 내리는 강을, 서둘러 서둘러 기차는 떠나는데, 눈은, 차창, 저 멀리에서, 무슨 서두를 일이 있는지, 다급하게 기차 바깥, , , 곳에서, 빨리 빨리도 강물 속에 머리를 묻고, 기차는 서둘러 빠져나간 강 이편을 묶는 강 저편을, 건너, 어느 지상 아닌 길을 달려……, 그때도 지상이 아닌 지상 저편이거나 지상 저편에서 일어난 일들이 있어……, 당신……, 세속신전의 것들을 피해, 거리 유곽 같은 나에게 올 적마다, 나는, 그이를 떠올렸지요, 지상을 떠난 주인 잃은 마음의 그대,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그대……, 나는 가끔, 내가 다니던 유년의 작은 학교 앞, 어느 나무 뒤나, 운동장 가의 그네를 천천히 타고 있던, 지상을 떠났을 적, 납작하게 접혀 있게 될, 마음의 그대를 보았지요, 그 그대는 나에게 말했다. 너구나, ……, 나는, 어느 해질녘, 기나긴 벌을 서고 난 뒤 늦게사, 눈물로 퉁 퉁, 부어오른 눈을 하고선 학교에서 나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납작하게 굳은 시간성 속에서 지상을 떠난 한 남성성의 주인이 될 그대를 보았다, ……, 나는 겁도 없이 말했다……, 탕수육……, 탕수육……, 그이는 나의 일테면 달큰한 식욕 속으로 슬픈 어깨를 들이밀며, ? ……, ?……, 라고……, 나는 또 겁없이……, 불고기……, 라고, 그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우리 오늘, , 먹자, 라고, 내가 그이와 함께 학교 정문을 빠져나갔을 때, 나는, 저이의 다리가, 저이의 다리는, 저렇게 심하게, 한번 걸을 적마다 어깨 한쪽이 한 지상의 끝, 쯤으로 내려가듯, 내려가서, 올라, 오고, ……, , , 아니? ……, . ……, 어떻게?, , 그냥요, ……, , 그냥요, 언젠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지, 당신이 나에게 물었을 때, 어떻게 당신은, 나라는 걸, 알아보셨어요? 나는, ……, 그냥이요……, 그냥……, 알지요……, 나는 이 그냥……, 을 위해, 이 짧은 허사, 하나를 위해……, 나의 마음을 다 싣고……, 마음은 어느 아궁이처럼, 차갑게 식어, 그러나 따뜻하게 식어, 흰 소리 한 파람, 어느 강……, 물결 자라는 소리를, 물결 늙는 소리, 물결 늙는 소리 밑의 신생, 신생, 신생의 물결을……, 가만히 내가 당신의 저녁에 대해서, 당신이 밥을 벌던 그 거리에서 내가 지상에 팔고 있는 가장 값싼 밥집 탁자에 기대, 모든 저물어 가는 세상의 저녁을 평안하게 이해하듯 바라볼 때……, 그 때, 지상의 밥집 국솥에서는 오래 된 도시에서 나던 인간의 몸냄새가, 망하는 것은 다 받아들이고도 한참을 또 늙어, 어느 도시가 생식과 수유를 다 포기하듯, 편안하게, 그래서 늙은 신들은 저 국솥에서 끓어 내 밥상 위에서 노랗게 장국에 삭은 건대이파리처럼 건져져 나올 때, 내 가난한 숟갈이 편안하게 몸을 펴서 늙은 신들을 건져 올릴 때, 그 때, 어느 신전에서 갓 태어난 젊은 신 하나, 혹은 둘, 셋이 돈을 모아 들이고, 나는, 지상에서 가장 값싼 늙은 신들을 달게, 달게 들이키듯, 그냥, 그냥이요……, 나는 그렇게 당신의 저녁을, 세속신전으로 서둘러 가지 못하던 내, 아버지처럼, 그냥……, 이요. 나는 그이와 함께, 저자의 어느 밥집으로……, , 아니? 저자의 밥집에서 너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나에게는 치욕이라는 것을, 나에게는 저자의 밥집에서 풍겨 나오는 저 얄팍한 장냄새가 싫구나, 저 얇은 달큰한 냄새, 저게, 역하구나……, 나에게는 한 오래 된 장항아리가, 혹은 오래된 한 장항아리가 있었지, , 장항아리 뒤에 숨어 본 적이 있니, 나는, 내 어머니의 것이었던 장항아리 뒤에, 저 늙은 부드러움, 저 오래 된 꿈쩍도 안함 뒤에 숨어 있었던 어느 여름날, 그 낮에, 낮잠 속에서 초경을, 나는 지금도 내 정강이 위로 빨간 실처럼 아주 느릿느릿 내려오던 깊은 속, ……, 모르겠구나, 맨드라미, 흑모란, 흑지렁이, 내 어머니의 장롱 맨 밑바닥에 깔려 단 한 번도 나와보지 않은 자주주단이 장항아리 뒤에서 세상과 연결하는 한 자주색 길을, 그 길은 아팠고, 그러니까 아랫배를 누가 잣 까는 망치 같은 걸로 탁, , 치듯이……, 어머니, 저에겐 쓴 익모초, 끓이면 담배진 타는 내를 내던 그 검은 황토의 물이 필요한가봐요, 이 길을 내가, 어져 어져, 어린 아기 재우듯 건너려면, 어머니, 오늘, 산에 올라가서 저를 위해 햇빛에 잘 구운 익모초 한 다발만 캐어 주셔요……,나의 어머니는 장항아리를 열어 장속에 끓어 오르는 가시를 재우기 위해 그 위에 소금을 설, , 뿌리며……, 얘야, 어떡하겠니, 어떡하겠니, 이 세계, 이 세계의 언덕 위에서 자라는 익모초로는 어떻게, 그 길을, 건널 수가 없으니……, 그이의 왼쪽 다리는 가늘고 짧아서……, 그렇게, 가늘고 짧아서……, 나는 맥주를 들이키며 다시 다리를 모우고 창 바깥을……, 여기까지는 눈이 따라오지 못했나봐……, 라거나, 어디쯤에서 눈이 그쳤을까……, 라거나, 그리고, 이 이방의 강은 길기도 하구나……, 라거나, 그런데 말이에요, 한 이방의 길을 지상의 길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듯, ……, 그렇게 하기위해서 한 인간의 시간은 얼마나 걸리게 되나요……, 라고, 나는, 일테면, 한 시간을 정확히 통과해 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무섭다……, ,

막상, 한 접시의 탕수육을 앞에 놓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 나는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 오후의 벌은, 밀린 월사금 때문은 아니었는지……, 세속신전의 뒤주가 텅 텅 비어 있을 때에도, 아버지는 쌀 한 말 대신에, 말간 붉은 살점의 고기를 기름종이에 싸서, 신전의 우연한 식구인 우리들에게 던지고는, 다시 신전 바깥으로, 그러니까 남성성들이란 규칙적인 신전을 견디지 못하는 듯……, 아니면 신전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지도……, 그이는 나무젓가락을 건네 주며 부드럽게 웃으며, 아니, 저 부드러움은, 저렇게도 많은 상한 장항아리 속의 가시나 꽃가지일지도, 내 어머니는 세속신전의 장항아리가 싫어서, 어느 날, 저자로 나가 자주 꽃물든 향수병을 가지고 왔는데, 저이는 왜 나를 앞에 두고 장항아리를 추억했는지……, 나는, 당신이 자주 내 곁에 몇 두름의 피곤을 누일 때, 세속신전의 장항아리를 그리워했는지, 어쨌는지……기억은 없으나, 거짓말인 기억이여, 너는 왜, 내가 당신의 세속신전에서 흘러나오는 등불을 멀리서 바라보며, 이렇게, 이렇게……, 잊혀져 가는 나의 어린 날, 세속신전이여, 한 여성성인 내 어머니를 향해, 나는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이 무서워요,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이 정말, 정말, 무서워요……, 어느날, 저 멀리에서요, 이방의 싸움 좋아하는 민족들이 불화살과 화염전차를 가지고 쳐들어왔을 때요, 나는요, 내가 부인했던 세속신전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지요……, 아무 일 없을 때, 나는, 나의 저자에서 어눌하게 밥을 벌지요, 저자에 있는 생산을 위한 등불들 좀, 보셔요, 저 등불의 나이를 당신은, 알아요? , 등불의 나이는……, 그러니까, 지금 기차 바깥에 있는 강……, 그 강 위에 떠 있는 저 건강한 금속의 등골을 한 알지 못하는 포구로 향해가는 저 배를 내가, 낯설게 바라보듯, 나는 낯설다……, 당신이 나에게 등불의 나이를 물었을 때, 말했다, 나는 등불의 나이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아서……, 세속신전을 먹여 주는 저 등불의 나이를 말하면서 나는 진부해지고 싶지 않아서……, 왜냐면, 오래 된 것을 향해 오래 되었다고 말할 때, 그런 말에는 어떤 돌이킬 수 없음이……, 나는 당신의 등을 토닥이며, , 드세요, , 드세요, 그냥, 잠을요, 당신이 이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일 가운데, 그 하나를 해낸다 한들, 당신의 신생이 어디, 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출 수가 있는가요……, 라고 나는 자장가를, 낮에 놀다, 두고온 나뭇잎배는,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아아요, 그리고 당신의 잠 속에 푸른 달과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녀, 당신, 이 이승에서의 잠이 저승까지도 평안해지기를……,

맛있니……, 라고 그이는 나에게 물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많이 먹으렴, 나는 오늘, 아주 많이 이런 달큰한 것들을 사줄 수가 있단다……, 라고 그이는 나에게 말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슬며시 젓가락 사이에 튀긴 돼지고기를 끼워 넣으며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떨구었다가, 부끄러워 다시 젓가락을 음식 위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이는 내가 떨어뜨린 튀긴 돼지고기를 손으로 집어 그이의 입속으로 갖다 넣으며, 많이 먹으렴, 많이……, 안심한 나는 그날, 그 음식을 정말 많이 먹었다……, , 이상하지, 나는 내 식욕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 나는 지금, 맥주를 마시는데, , 이렇게, 이게 뭔지, 나는 지금, 술을 마시고 싶은가……, 나는 저자의 밥집 앞에서는 언제나 식욕이 없거나, 지전이 없거나……, 였는데, 어느날 당신 주머니에 지전이 있어, 나를, 어느, 잘 차린 밥집에 데리고 가서……, 그러니까, 어느날 나는 당신에게 끌려, 저자에서 가장 잘 차린 밥집엘……, 그때, 그 밥집엔 먼 나라에서 온 음식이, 지금, 내가 내 가방 속에서 꺼내는, 이런, 말랑말랑한 치즈를 얹어 바른 빵과 같은, 시커먼 빵속에 나는 언제나 내 식욕을 엎어버리고 싶어……, 질긴 가죽나무를 씹듯 질겅질겅, 천천히, 이 침과 함께 넘어가는, 곡식을 가루로 빻아 물과 함께 버무려 익힌 이 음식은, 내 식욕 앞에서 어떤 익숙한 기호인가, 먹는 것, 일용한 양식……, 일테면 시골 이발소에 걸린, 거친 풍경 밑에 이렇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그러나 나는 자주 내 식욕 앞에, 혹은 내 지전없음 앞에 노여워, ……, 당신, 나에게 잘 차린 밥상을……, 그러나 그런 식욕은 내 어린 날 세속신전, 한 여성성인 내 어머니가 성글게 무쳐 주던 시래기무침에서 끝이 났는지, 저자 밥집의 모든 먹을 것 앞에서 나는 질긴 가죽나무를 질겅질겅 그렇게, 그러나, 어느 날에는요, 나는, 오래된 장항아리에서 퍼 온 오래 묵어 꽃가지가 서린 장을 떠내서 한 구럭 바닷게를, 꼼지락거리는 바닷게로 삭힌 게장을요, 당신……, 해묵은 저자의 바람을 어깨에 달고 와서 내 옆에 앉을 때, 잘 삭은 게를 발라주며, 많이, 먹어요, 오늘 나에겐 이런 달큰한 비릿한 것들이 많이 있어요, 당신이 고개를 숙이고 그것을, 삼킬 때, 나는 오래 된 도시 구데아에 있던 인간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세속신전의 여주인이 되어 고방 열쇠를 가슴 언저리에 달고……, 그러니까, 이 지상 아닌, 실감 나지 않은 이방의 길을 달리는 이유가, 세속신전 하나 가지지 못해서 였는지, 나의 어깨는 다시 내리는 차창을 급하게 왔다갔다 하는 저 눈처럼, 괜히, 나는 아무렇게나 차창에 얼굴을 묻고……, 그때 당신의 주머니에 지전이 있어 내가 갔던 저자의 잘 차린 밥집은 나에게 지금 어떤 기호인가, 나는 기호를 먹을 수는 없었으되, 나는 또 그 기회를 안 먹을 수는 없었유되, 그 기호는 나에게, 내 스스로 세속신전 아님을 잘, 너무나 고약하게 말해 주는 거라서, 나는, 달게 그 기호를, 나의 어느 피는 나의 어느 살은 그 기호로 인해서 어느 날, 정막한 피와 살이 되었는지도 나, 지금, 모르겠으되……,

나는 다 비워진 맥주깡통을 손으로 구긴다, 다시 창밖을, 아직도 기차는 강을 건너고 있느라, 강은 기차를 어디론가 보내느라, 서로 지루하다, 지루한 어느 건너감과 어느 보냄은, 그러나 고요해서 저 눈은, 지금, 고요함 속의 지옥을, 저렇게 흰 얼굴로, 흰 손으로 혹은 흰 팔, 다리로, 나는, 아버지의 영사기 속에 있던 한 영화의 대사를 기억하는데 그건, 이런 거였다. 젊은 아가씨가 병원에 누워 자신을 간호하는 늙은 할머니 간호원에게 묻는다,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요?, 그때, 어느 삶의 지옥 속에서 한철 잘 보냈을 성싶은 늙은 간호원은, 그 아가씨가 아니라 어린 나를 향하여 천천히 링거병을 공중에서 내리며……, 한 번도 행복에 대해서 물은 적은 없지요, 그러나, 나는 너에게 너, 편안하냐고……, 나는 어린 나는, 그 때 편안이라는 이 어려운 명사 앞에서 쩔쩔매며, 아버지에게, 아버지, 행복이 아니라 편안인가요……, 라고 그때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그래, 편안이란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나는 당신에게 행복이 아니라 편안인가요?, 당신은 나를 향하여 다가오던 발걸음을 문득 멈추며, 당신의 편안을 방해하는 유정을, 이 세계에 대한 유정을, 당신이 거둘 수 있다면……, 유정의 편안하지 않음, 그런가, , 편안하지 않음은 유정 때문이라서……, 나는 지루하게 창틀을 흐르고 있는 저 강을 향하여, 무정한 당신……, 유정한 나를 용서하세요……, 그 편안을 위해 당신은 이 저자를 어느날 문득, 떠났는가, 내가 불 같은 노여움으로 저자 아닌 다른 지상에다 숙과 식과 유()를 마련한 당신의 풍경을 향하여, 이렇게 이렇게 포악을 떨었을 때, 무정해서, 편안해서, 당신은 신전 거리를 떠난 한, 떠돌이 사제인가요……,

왜 당신이 어느 날, 신전 거리를 떠났는지……, 나는 잘 모른다, 왜 당신이 한 남성성과 한 여성성의 중간에 서기를 원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당신이 남성성 혹은 여성성 아닌 그 중간에 섰을 때, 나는 여전히 동물의 한 암그루였고, 그것은 나를 얼마간 상하게 했는지, 내가 어느날 당신의 숙과 식과 유의 지상을 찾아갔을 때, 나는……, 숙과 식과 유의 뜰 앞에 핀 동백 한 그루를 보았고, 그 붉은 빛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지금 내가 기차 안에서 기차 바깥을 아무런 실감없이 바라보듯……, 당신은 한 여성성처럼 아궁이 앞에 옹그려 불을 피웠고, 노래했다, 이렇게, 수수롭게 끄덕끄덕 졸면서……, 그러나, 나는, 내 아버지가 영사기를 돌리며 담배를 피워 물 적마다, 편안은 아무래도 인간의 몫은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어 했고, 말에 대한 욕망이 커지고 커져, 이 차르륵거리며 돌아가는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림을 방해하고 싶을 만큼 커졌을 때, 나의 욕망은 울음으로, 아버지, 무서워요, 아무래도 인간의 몫은 아닌 것 같은 편안을 이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림 속에서 누군가 얘기해요, 저 늙은 간호원은 아무래도, 한 인간의 여자는 아닌 것 같아요, 울음으로, , 아무래도, 한평생 다 지나고도 편안을 누리기는 애시당초 틀린 것 같아, 이 가시 많은 영혼은, 이 물이 많은 영혼을 어쩌면 좋을지……, 당신은 나에게 상을 차려 주며, 부드럽게 웃으며, 오늘 내 옆에서 편안히 주무시다 가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냥, 갈께요, 라고, 당신은 부드럽게 만류하며, 제 옆에서 주무시다가, 가세요, 라고, 유정한 인간이 유정한 이유는 그냥 지나쳐야할 곳도 기어코 들리고 마는 것, ……, 마치, 언젠가 내 어린 날, 교정을 서성였던 한 남성성의 그대처럼, 들리지 말아야 할 곳만 정확하게 들리는 것이 유정한 인간들인지……, 어쩌면 인간의 시간 속엔 한 유정의 시절이 있어, 그 시절에는 누구나 들리지 말아야 할 곳만 찾는지도……, 마치 언젠가 동백꽃이 피는 뜰을 가졌던 당신의 숙과 식과 유를 찾은 나처럼……, 동백, 곱지요, 제 앞에, 이 집에, 살던, 주인의, 것이지요, ……, 이 집에 당신의 것은, 있나요? ……, 당신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고, 나는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는데, 또한 내가 괴롭힐 당신의 마음은 이미 어디 먼 데, 소풍을 갔는지……, 당신은 한 암그루 옆에 서 있던 은행의 수그루처럼 가만히, 그렇게 가만히, 식물성의 당신은 가만히, 그렇게 가만히……, 그러니까 당신, 내가 어느 마을에 서 있던 은행의 암그루처럼 바람 거느리고 비 토닥이고, 어느 한철 연두, 어느 한철 짙은 초록, 어느 한철 황금빛, 어느 한철, 그냥 그냥 그런, 빛깔들 다 떠나 보내고 맨몸으로 그냥 그냥 끄덕이기를……, 아니 아니, 은행 암그루의 세월은 은행 수그루의 몫은 아니라서……, 그이와 나, 그러니까, 아버지의 육()을 통과하고 있었던 시간성을 가장 보드랍게 감싸주는 습기이었을 그이와 나는, 이런 풍경으로 헤어졌는데, , 나한테 한가지만 약속해 줄래? ……, ……, 고개를 끄덕이렴 얘야, 나에게 한가지만 약속해 준다고……, 제발 얘야, 너의 일생에서 오늘의 식욕은 영원히 잊어버리겠다고 얘야, 이 식욕은 너의 것이 아니라서, 우연한 나의 것이라서, 제발, 제발, 얘야……, , 잊어버리는 것이 그 이에게는 중요했을까, 왜 내가 그, 이상한 식욕을 잊어버리기를 그는 원했을까……, 만일 은행의 암그루가 짐승의 살점을 집어 삼키는 식욕을 가졌더라면, 그의 생식을 위한 시간은 좀 더 괴로웠거나, 아니면 훨씬 괴로운 생식과 관련된 시간을 위해 은행의 암그루는 이 지상을 어정거리고 다녔을지도……, 나는 그 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는데 내가 당신 곁에 그냥 은행의 암그루처럼 누워 있을 때에도, 지금, 이제 막 강건너기를 끝낸 기차가 아직 한창 오후인 저 감자들판을 들어서기 위해 식식거리는 지금에도……, 먼 먼 자장가를 들려주는, 이방에서 나를 감싸는, 그리고, 감싸는 저 밑바닥에 진흙은, , 장화를 준비하지 못해 난감해 하며 이렇게 이렇게, 앉아 있게 만드는 취기여……, 왜 당신은 그 때 그런 모습으로 저자에서 나와 동백꽃 뜰 앞에, 당신, 삽을 들고, 물뿌리개와 몇 웅큼의 깻묵을 준비해서 당신의 발을 은행의 발처럼 묻어버리려고, 당신, 그리고 그 건너편에 도타운 북을 만들어 나의 발을 은행의 발처럼 묻어버리려고……, 아니에요, 그런게, 그렇게 빨리 칭얼대지 말아요, 광활한 인간의 시간성은 식물성과 동물성의 복합공간 속을 저리도 재빨리 흘러가서, , 어쩌지 못함과 더불어 이렇게 숙과 식과 유를 이런 자리에 의탁할 뿐, ……, 그랬던가요, 당신, 동물성의 상처들이 당신을 식물성으로 가게 했던가요, , 이렇게 들리지 말았어여, , 그 때, 한 동백의 뜰에 가지 말았어야, 당신이 나를 멀리, 어디 먼나라로 떠나는 것처럼 배웅할 때, 동백이 지는 것을. 무참하게 꽃잎을 떨구는 동백의 늙은 꽃술 밑에, 작은 꼼지락거리는 꽃벌레 한 마리를 나, 보았거늘, 식물성의 상처에 저렇듯 오래 달라붙어 있는, 지상에 세워졌던 구데아라는, 고대도시보다 더 오래 전에 생긴, 벌레, 저 식물성의 상처 위에 일용할 양식을 세우는 벌레…….

한 생각의 운명은……, 그것은 몸의 운명은 아니었을까, 어느 저자에서, 어느 저자의 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아버지는……, 가만 있어 봐, 내가 내 마을을 찾아갈 때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돌리던 영사기를 멈추었다, 그러므로 나의 추억은, 어느 저자의 극장에서 내가 내 마을을 찾아갈 때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돌리던 영사기를 멈추었다. 그러므로 나의 추억은, 어느 저자의 극장에서 내가 찾아갈 때마다, 영사기를 멈추던 아버지는……, 얘야, 첫 무도회의 수첩에 적힌 이름들을 찾아나서던 한 여인의 영사는, 두 번째 실망에서 멈추는 게 좋겠구나, 왜 저 여인은 청춘을 자꾸 끄집어내고 싶어하는가, 무도회의 수첩 위에 저 여인의 청춘은 술잔처럼 생애를 기울이는구나……, 라거나, 저 영국 태생의 배우는 그렇게 일찍 제 마을을 버리고……, 라거나, 얘야, 들어봐라, 독일 태생의 이 여인이 노래를 부르면, 겨울의 유럽전선, 이차대전의 젊은 아이들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이라거나, , 사람들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편지를 쓰는가, 삶보다 사랑은 어려운가, 왜 저 배우는 유럽의 어느 지하도, 더러운 하수장에서 죽어가면서도 하수도를 따라 떠내려 가는 편지를 잡으려고 하는가, 왜 저 여배우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가, 왜 어떤 흑인여가수는 창녀 출신이고, 어떤 흑인여가수는 민권운동가인가……, 왜 저 흑인여가수들은 비통한 노래를 부를 줄 알게 되어, 인생을 탕진하는가, 얘야, , 노래를 부를 줄 아니, 노래를 부를 줄 아니, 얘야, 나는 영사기를 멈추고 쉬고 싶다, 나는 흑백이 아닌 영화를 사람들이 보기 시작하면서 늘, 떠나버리고 싶어서……, 얘야, 너 머리 속에 박힌 이 바둑판 같은 흑백 영사들을 날이 잘 세워진 면도칼로 파 줄 수 있겠니, 이런 흑백 영사들은, 어느 날은, 회충같이 내 머리를 갉아 먹을 것 같아서……, 아버지가 병원에서 나왔을 때, 그해 가을에 다시 저자로 돌아온 당신에게, 나는, 이런 말을, 아버지가 감을 깍아 처마 밑에 실로 꿰어 매달아 두고 있어요, 당신이 당신의 세속신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 나는, 당신의 뜻대루요, 식물성의 시간조차 하얀 분을 내며 말라 가고 있지요, 나는 붕괴 직전의 내가 속한 세속신전을 향하는 버스를 타며, 당신……, 삶보다 사랑은 어려워서……, 그리고 가을하늘 밑에 납짝 엎드린 내가 속했던 세속신전 처마 밑에는, 하얀 분이 일어난 딱딱해져 가는 식물성의 시간들이……, 아버지는 여편네처럼 오그리고 앉아 잘 드는 과도로 몇 접이 넘는 감을 깎으며, 그러니까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름이 영사기의 어깨 위에 걸려 스스르 스스르 넘어가듯, 아버지의 발밑에는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름, 필름처럼 오그라져 잇닿은 갈기 같은 감겁질들이 산같이, 떼같이, 우리가 어느 저자에 버리고 온 무참한 시간성의 장님 안경같이, 거멋꺼멋 말라가며 그 위에 저리도 부셔, , 장님, 될 것 같은, 가을햇살이……, 우리 세속신전의 여성성들이 외출을 위해 아껴 닦아 두던 코티딱분 위엔 천길의 먼지가, 내 어머니인 여성성이 밤낮 끓여대는 고약 같은 죽이 세속신전의 아궁이 위에서, 자주 내 어머니는 그 앞에서 제를 올리며, 얘야, 나는 좀 더 일찍, 어느 유곽에 갔으면 했다, 세속신전에서 제를 올리는 여성들에겐 유곽에의 꿈이, 나 늙은 여제사장이 되는 게 싫구나……, 라고, 그러셨어요, 내 어머니인 여인에게 나는 가만 가만히, 그러셨어요, 나는 그 여성성을 가만 가만히 껴안으며, 그러나 어머니, 나에게는 세속신전의 꿈이 있어서, 그러니까 어머니는 저자 유곽의 꿈이 있어서, 우리가 속한 세속신전의 저 남성성은, 오래 오래 영화를 보았고, 영화 속에서는 어떤 세속과 어떤 신전이 언제나 서로를 따돌려서, 저 남성성에게는, 그러니까 세속과 신전에게로부터 언제나 자유로운, 청춘의 꿈이……, 당신……, 봄밤이 슬픈 줄 알게 되면 청춘이 가고 있는 거라, 중얼거리던 영원히 청춘에 마음을 의탁하고 있던 내 아버지를 기억하세요……, 그럼요, 그 불우한 남성성을 나 기억하지요, 단 한 번도 이민족의 침입 때 세속신전을 지킨 적도, 단 한 번도 성실히 밥을 실어 나르지 않았던 것도, 이 세계에 있는 어떤 남성성은, 딱딱하게 굳은 화석의 시간을……, 그렇다면 한 화석의 시간성은 식물이었는가, 동물이었는가, 혹은 고개를 떨구고 붕괴 직전의 내가 속한 세속신전을 나왔을 때, 나는 내 등뒤에서 내가 속한 세속신전이 조용히 조용히 수명을 다하고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그러니까, 생식과 수유와 식사의 시간을 청춘에 다 탕진했던, 지금, 이 기차 속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내가 속했던 세속신전이었던, 내 마을이라는 이름의 상처 위에 서 있었던 그 세속신전……, 외적의 침입 없이, 조용히 조용히 무너졌던 내가 속했던 세속신전……, 그 때도 저자에서는 남성성을 일찍 여읜 아낙들이 내일, 새로 생길 세속신전을 위해 첫밤이불 솜을 탔고, 그 위에 벌나비, 원앙을 수놓아, 그러나 남성성을 일찍 여읜 그 아낙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던 남성성을 일구어 내느라 바늘에서는 실이 자주 빠졌고, 재봉틀은 언제나 뻑뻑했도다, 그러니까, 이 세계, 새 세속신전을 덮는 첫밤이불에는, 남성성을 일찍 여읜 아낙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남성성으로 땀, 땀이, 이불을 이워낸 노역이……, 그 노역은, 여성성도 아니고 남성성도 아니고 다만, 그 어느 중간이라서, 그래서 이 지상에 서 있던 은행의 수그루는 식물성의 시간을, 은행의 암그루는, 울면서 이 지상을 어정거리고 있는가, 그래서 가을이면 자식을 거두는 은행의 암그루에게선 그리도 역한 냄새가 나서……, 내가 밥을 벌던 거리에 서 있었던 초라한 은행의 암그루는, 내가 이 지상, 가장 값싼 밥집을 찾아 어정거릴 때, 내 식욕을 향해, 손을 흔드는가, 식욕을 잊어버려라, 그 어느날, 우연했던 너에게 속하지 않았던 식욕을 잊어버리라고……,

나에게는 그 뒤, 세속신전이 없었으므로, 나는 언제나 거리의 여관에서 잠을 잤고 얼굴은 언제나 부수수했고, 급히 나오느라 머리칼은 언제나 젖어……, 언제나, 라고 말하면서도 그 언제나는 버릇처럼 몸에 붙지 않아서, 나의 불편은 나의 기나긴 꽃이구요, 나는 이 꽃이 어서 져버렸으면 하는 생각을요, 무정을 내가 가져 덤덤하게 이 여관을 빠져나오는 매일 아침을 맞기를……, 이방의 거리에도 세속신전들이, 그저 세속신전이라는 기호뿐인 세속신전이, 어느날은 그 문 앞에서 나는 잠시 쉬어가기도, 거리의 빵가게에서 내 여관까지 빵을 실어나르기도, 어느날은 내 여관에 사진틀을 가져다가 두기도, 또 어느 날은 내 여관에 있던 우편함을 열어 보기도 했지만, 내 유정을 의탁하기로 한다면 이방은, 마치 내 아버지의 영사기처럼 말이 없어서, 그리고 그의 어깨에 걸어 둘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름을 나,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해가 빨리 지고, 비 많이 내리는 이방에서의 공식적인 시찰을 위한 어떠한 압운사전도 나, 가지고 있지 않아서, 다만 나는 내 유정을 의탁할 내 마음의 거문고 하나 가지기를 원하기만, 그리고, 나의 유정에 대한, 나를 위한 항생의 약도……, 내 여관 앞에, 어느 날, 집시 하나, 그이의 아기를 안고 찾아와 낡은 융단을 펴고 앉아 있는 것을, 내가 본 것은, 어쩌면 이 나라에 있던 도서관에서 구데아라는 고대 폐허도시를 내가 발굴하고 있었을 때일지도 몰라……, 당신, 거리에 세속신전을 가진 집시라는 떠도는 여성성에 대해서 뭐라고 말 좀 해보셔요, 거리와 여관 세속신전은 하나이거나, 혹은 나눌 수 없는 셋이거나, 혹은 식물성과 동물성의 시간, 그 어느 것에도, 그러니까 모든 시간성 속에는 연애가 있어 저 집시는 새까맣게 때가 낀 손톱으로 아기의 귓밥을 후벼 주네요, 화려한 저희의 아버지는 낡은 마차를 몰며 달빛 아래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낡은 마차 안에서 저희가, 그러니까, 거리에다가 세속신전을, 이 세계 모든 거리에 세속신전을, 또한 모든 세속신전을 거리로 만들어버릴 저희가……, 어느날 모든 거리를 세속신전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방의 군인에 의해 저희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저희는 모든 세속신전이 저희 앞에서 문을 닫을 때, 자신의 몸으로 세속신전을 기신기신 세워왔던 것을, 화려한 집시는 이 지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저 지독한 궁기의 세속신전, 바로 그것인 집시, 여성성도 혹은 남성성도 다 말아먹고 오직 기둥과 난간과 들보인 세속신전, 집시는 세속신전이 저녁 식사를 위한 동전을 향해, 세속신전의 한 창문 같은 손을 내밀고, 다 저녁때, 지금 막 구데아를 발굴하고 온 나에게, 한 떼의 식사를 저에게 주셔요……, 라고, 나는, 내가 발굴한 도시, 구데아, 그 폐허 도시에서, 영원히 음악과 결합되었던 한 세속신전을 생각했는데……, 저녁이여, 오랜 인간의 버릇은 다 저녁때, 거리에서 생애를 다 털어먹던, 지병인 피곤과 함께, 세속신전, 혹은 유곽을 찾게 하는 것, 그래서 나에게는 내가 당신이라고 부르던 당신들이……, 밥과 술을 벌던 거리에서 내가 만났던 당신들이여, 오늘도 당신들은, 다 저녁때, 기신기신 세속신전 혹은 유곽을 찾아가는가, 구데아, 이 도시에서의 삶이 영원하기를……, 이라는 쐐기문자를 발바닥으로 지우며,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폐허를 위해, 이런 초라한 쐐기문자로, 구데아의 삶, 신전을 세우는 그와 함께, 이 도시에서의 삶이 영원하기를……, 이라고 중얼거리며 폐허 도시마다엔 고대의 해독되지 못하는 문자들이 있어, , 집시 앞에서 동전을 꺼낼 때, 이젠, 나에게도, 내 몸, 혹은, 내 영혼이 그것 자체로 세워야 하는 세속신전이 있을까, 라고, 혹은, , 장화를 준비하지 못해서, 진흙길을 맨발로 걸어야 하나……, 라고, 그래서 구데아에서 발견된 주형물은 두 손을 앞가슴에 모아 맞잡으며 식물성도 동물성도 아닌 그 중간의 것으로 이 폐허가 영원하기를, 빌고, 있었는가, 내가 은행의 암그루로 이 지상을 어정거릴 때, 당신이 이제 인간의 남자로 저자에서 밥을 벌 때, 그래서 그 거리의 바람은, 우리의 시간들을 다, , 날려 보냈는가, 그래서 저 조형물의 바람은 오랜 시간 뒤에 한 고대 도시의 폐허 속에서 발견되었는가…….

지상을 실감할 수 없는 기차 속에서 나는, 그래서 내 수그루를 향해, 내가 이곳은 지상이었어……, 라고 생각했던 지상에서, 그리움으로, 혹은 노여움으로 당신을 향했거나 혹은 나에게 향했거나 혹은, 세계에다 가엾은 나의 어깨를 밀어 넣으며 했던, 내 몸과 마음에 어떤 눈물이었거나 기쁨이었거나 어떤 산등성이거나 어떤 언덕이거나 어떤 곡선이거나 어떤 직선이거나 삼각형이거나 사각형이거나 어떤 정직함이었거나 어떤 가엾음이었거나 어떤 옷감이었거나 어떤 실이었거나, 했던 그런 말들을……, 나는 지금 중얼거리네, 이렇게……, 이렇게……, , 인간의 여자라서 기뻐요, 내가 당신을 이렇게 둥글게 안아서 내 몸이 사랑스러워졌어요, 어느날, 나는 당신이 밥을 벌던 그 거리에서, 당신, 당신이요, 웅크리고 공장의 등불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지요, 당신이 앉아 있던 등불 밑의 그 가엾은 시간은, 살아가는 일이었나요, 죽어가는 일이었나요, 나는, 우리들의 그러한 것들이 가여워서…….

기차는, 다시, 몇 개의 건물과 몇 개의 들판을, 기차는 다시 몇 개의 인간이 걸어가는 거리를, 몇 개의 기도하는 신전을, 다시, 몇 개의 인간이 인간을 추억하는 묘지를, 지난다, 나는 가늘게 실눈을 뜨고 졸 듯, 한가하게 바라보지만, 나의 한가함은 지상의 것은 아니라서……, 그러나 한때 지상을 걸은 적이 있었던 나의 다리는 버릇을 잊지 못하고 자꾸 내 팔을 빠져나가, 그때마다 나는 흠칫, ……, 그런 생애의 기억은 피하지 못하는 것일까……, 저 이방의 할머니 좀 보아, 요오드결핍증인 듯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검은색 스타킹으로 감싸고서, 이미 세월에 무너진 둑제방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네, 할머니, 당신 생애의 기억 속에 나 같은 이를 본 적이 없는지, 그러니까, 저 할머니의 생애 앞에서, 나는 한갓 낯선 기호일 터이지만, 할머니, 할머니는 나의 기억과 더불어 있는 우리들이 속한 세계에 실재했던 한 폐허를 아시나요, 일테면, 이런 것, 내가 속해 있었던 무너진 세속신전으로 내가 다시 찾아갔을 때에도 나는 지금처럼 기차를 탔었더랬지요, 기차는 내가 밥을 벌던 내 족속들이 세운 한 도시를 빠져나가, 요오드결핍증인 듯, 퉁 퉁 부어오른 철길에서, 썩은 조기대가리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잠시 쉬고, 다시, 헐떡거리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러나 그 남()이라는 방위는, 지리부도에만 그려져 있는 관념의 한 방위였는지, 그 기차는, 일테면, 구데아 같은, 폐허도시로 가고 있는, 내 멸절과, 내 멸절의 무덤덤함, 그 썩어가고 있는 조기대가리의 무덤덤함, 그런 것들을 싣고, 폐허 도시로 가고 있는, 그러한 기차로만 여겨졌지요, 그때에도 나는 초라한 식당칸을 찾아, 한두 병쯤의 술을, 거칠게 마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나는, 세속신전, 내가 속했던 세속신전을 찾아갈 때마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 버릇이었던지, 늙은 젖가슴 같은 내 족속들의 마을과, 조개무지 같은, 무더기채 엎드린 인가들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인가들이 켜놓은 불빛은 사뭇, 찌르는 바늘빛으로 내 눈을 아리게 했는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상해서……, 흐리도다, 흐리도다, 내 마음의 살들은 썩은 조기대가리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진물을 내고, 내 몸은, 약한 술에도, 거칠게 젖어 가네……,라고, 기차의 불이 꺼질 때마다 환해지는 바깥이, 저리도, 고요한 지옥 같아……, 나는 손을 이마에 대고, 어쩌면 손을 썩은 조기대가리 같은 마음의 살에다 대고, 당신……, 내가 당신에게 한 그루의 은행나무였을 때, 그때처럼, 나는, 소란스러운데, 당신은, 고요해요……, 라고, 고요한 당신…… , 그러니까, 당신은, 고요하느라, 바쁘시지요, 당신의 고요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지상에서 뭔가 건설할 수 있음을 최후로 믿는, 그 고요인 거지요……, 라고, 남성성 속에는, 시간은 인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거대한 세계의 늪이 있는 것 같아, 라고, 그러나, 여성성은, 시간을 인간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가슴엔 그리도 많은 무덤이, 어쩌면 여성성의 엉덩이 속엔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가두어 버리는 부드러운 통이, 그 속에서 시간은, 저 혼자 신생했다가 사멸하고 신()하고 생()하다, ()하면서, ()하느라, 저리도 많은 시간성이 영원히 쉬는 주름이……, 저것 보아요, 내가 어느 날, 내 마을, 내 폐허를 찾아가는 기차 속에서, 나를 향해 자신이 길러 낸 폐허를 보여주던, 여성성을요, 얘야……, , 나를 알아보는구나……,를 상징하던 뜨게 되는, 어느 짐승의 털로 꼬아 만든 실을요……, 그때 나는, 내 바깥의 폐허를 목적지로 하고 기차를 타고 있었다, 당신……, 당신은, 알아보실 수 있는지……, 청년이었던, 혹은 내 아버지인 남성성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지, 나는 묻고 싶어서……, 어느날, 겨울을 위해 준비되었던 털실로 짠, 그러니까 짐승의 털로 짠 웃옷이, 어느 여성성의 폐허였던 것을, 두 개의 대나무 바늘이 번갈아 가며 만들어낸, 그러니까, 한쪽은 거대한 세계의 늪인 둥근 코를, 다른 한 쪽은 부드러운 통인 실로 짜들어간, 폐허였다는 것을, 한쪽 바늘에 매달아둔 둥근 코는, 마치 어느 날의 당신처럼 부드러운 통을 잘 통과하게 만드느라, 조금, 아주 조금, 그러나 충분한 틈을 만들고, 부드러운 통은, 그러니까, 어느 날의 나처럼, 결을 잘 숨기며 저 속으로 들어가네……, 얘야, 너는, 교정을 빠져나오던 가랑머리 너는, 이미 마음 속에 무덤, , 두 개쯤, 만들어 두었는지 얼굴이 상해서……, 라고, 기차 안에서 우리의 늙은 신이었던 시간성이라는 대바늘을, 가슴에 장항아리처럼 품고, 엇갈리는 코와 둥근, 부드러운 통을 이어 가던, 폐허를, 만들던 저희는……, 아버지, 안녕하시냐, 그 청년은, 지금도 어디선가 장님의 안경 같은 필름을 영사기 어깨 위에 걸어 두고 캄캄한 곳에서, , 담배를……, 또는, 너가 우연히 속해 있었던 세속신전은……, 안녕한가……, 그런가, 나는, 뜨개질이라는, 폐허 위에 서 있는 여성성이라는 폐허를……, 우리가 겨울을 위해 준비하곤 했던 웃옷이란, 잘 짜놓은, 폐허 같다고, 그러니까, 한 코를 빠져나간 부드러운 통이 또 한 코를 통과해서 이어진 저 안도, 바깥도 없는 웃옷이란, 겨울을 위한 방패인가, 저런 인간의 생산은 건설을 위한 건가……, , 건설을 믿니……, 저 폐허는 나에게, 아니 아니, 너는, 한 삶의 시간이, 다음 시간을 위한 방패라는 걸, 그러니까, 건설이란, 다음 시간을 위한 한, 방패인 거지……, 그런가……, 그런데, , 지금도 방패를 만들기 위해?……, 라고 나는 물었고, 그이는, 시간성이라는 대바늘을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그 청년은, 지금도, 장님의 안경 같은 타인의 시간성과 더불어, 밥을 벌고 있느냐, 라고, 그 청년의 겨울을 위해, 이 뜨개옷이 필요할 거다, 라고, 나는 폐허를 일구어 웃옷을 뜨는 그이의 곁을 천천히 통과해 가며, 이렇게……, 납작한 시간성 속의 그이에게……, 이미, 다 납작해졌어요……, 그때 내가 그 기차에서 내렸을 때, 역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새벽부터, 문을 연 국밥집을 찾아, 뜨건 국물을, 나는……, 폐허인가, 여성성이라는 폐허인가, 영원히 반복되는 모든 것은 폐허인가, 그것은, 여성성인가, 모든 것이 다 끝나도 끊임없는 이 동물성의 식욕은 방패인가, 다음 시간성을 위한, 짐승의 털로 짠 털웃옷인가, 폐허가 준비해 둔, 폐허인가……, 그것은 방패인가……,

인 붸니겐 미누텐 에어라이헨 뷔어 인스 만하임 하우프트반호프(잠시 후, 만하임 중앙역에 도착합니다. (In wenigen Minuten erreichen wir ins Mannheimhauptbahnhof.)) , 나는, 내 친구인, 가방을 들고, 천천히 일어난다……, 그러나, 유정은, 나의 유정은, 내 폐허인 여성성의 불편이었는지, 나는 장화를 준비하지 않아 매날인 채로 진흙을 밟았네, 그러나, 무정한 당신……, 설분분했던 내 어느 여관방에 해묵은 상처처럼 나를 찾던 내 시간 속의 당신……, 공식적인 시찰을 위해, 혹은 옻칠한 컴컴한 내부로부터 바깥을 잘 조망하기 위해, 장화 아닌, 다른 무엇을 나는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그것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실재이되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관념인 당신, 삶보다 더 어려운 사랑……, 그때요, 당신은 한 누추한 거리에서 밥을 벌던 나에게 왔지요, 나는 당신이 나에게 처음 왔을 때부터 알았지요, 우리는 이 지상을 살아가던 인간의 남자와 인간의 여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던 그런, 똑같은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걸, 그건 쓰라려서요, 그러나 그 늙은 사랑은 피할 수 없어서요, 나는 그때요, 내 가슴에 나 있던 아주 오래전에 나 있던 조그마한 틈으루요,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햇살이, 스며드는 것을요, 그 뒤, 우리의 점심 식사는 누추한 거리의 밥집에서요, 그 뒤, 우리의 휴식은, 전원이었던 한 초라한 다방에서요, 그 뒤, 우리의 마음은, 건설을 포기하구요, 그 뒤 우리의 마음은, 어느, 공터에서요, 누구나 그런 것처럼 그것은 쓰라려서……,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내가 이 도시에서 얼마나 잠을 잘 수 있는지 확인한다, 얼마간, 또 얼마간……, 지상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일은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 그러나, 그 대가는 지상 아닌 곳에서 치르는 것이므로 또한 가벼워서 나는 다만, 이 도시에서는 두통에 시달리지 않기를,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다시 갈 때, 내 폐허는, 또한 오래된 희망처럼, 구데아의 조형물처럼 두 손 모으고, 이렇게, 이 도시에서의 삶이 영원하기를……, 그러나 그 희망은 쓰라리고, 나는, 유정해서,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역광장을 지나, 또 비가 오는 이방의 길에 서서 버스를 기다릴 때, 나의 장화여, 너는, 내가 폐허일 때, 나를 반복하는, 움직이는, 여성성이라고 믿겠는가……, 라고, 당신,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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