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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바람꽃

임신행

 

"이 손 놔! 아이들이 보잖아!"

교실 문 앞에서부터 가람이한데 손목을 잡힌 여주는 학교 뒷문 트인 자갈길을 걷다 말고 앵토라져 짜증을 부렸습니다.

"도망가려고."

민망한지 가람이는 무르춤해지며 대꾸했습니다.

"어디를 가자는 거야?"

여주는 손을 놓아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못마땅하여 가람이의 손을 홱 뿌리치며 패악을 부렸습니다.

"머루 싫어?"

학교 사택 뒤로 우거진 대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며 가람이는 아기 반달곰처럼 어슬렁이며 말했습니다. 머루라는 말에 여주의 입 안에는 금방 침이 가득 괴었습니다.

"어서 들어와 선생님 눈에 띄면 혼나."

먼저 들어간 가람이의 손에는 까만 구슬 같은 머루 한 송아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여기 앉아 먹어..."

새까맣게 잘 익은 머루 송아리를 가람이는 여주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네 것은?"

"내 것은 따면 돼..."

여주는 미처 보지 못한 머루 넝쿨을 가람이가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까만 보석으로 잘 익은 머루를 맛보게 해주는 마음씨가 여간 고맙지가 않았습니다.

둘이는 대나무 숲 사이로 엉클어져 나간 머루 넝쿨 아래 나란히 앉아 머루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새콤달콤한 머루 맛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맛이 있었습니다.

숨어 있었던 바람이 우우 불었습니다.

대나무들이 가벼운 진저리를 쳤습니다.

"이 소리 많이 들어 본 새 소리 아니야?"

여리게 울리는 방울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방울새 울음소리 같은 고운 소리가 들려 와 여주는 귀를 모았습니다.

"이 소리? 바로 저 초록 모자 대나무가 내는 소리야. 여주네가 오니까 좋아서."

입안에 머루를 가득 물고 가람이는 눙을 떨었습니다.

"대나무가 어떻게 새소리를 내니?"

너무 신기하여 여주는 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새소리가 아니고 내 방울 소리야."

"! 네가 두고 간 모자랑 방울을 머리에 이고 선 대나무!!"

여주는 가람이가 지난봄에 대나무 숲에 놀다가 흘리고 간 모자와 방울을 죽순일 때 꿰고 올라가 어느새 하늘 높이 치솟은 대나무를 알고 있습니다.

"!"

유별나게 큰 머리를 가람이는 끄덕이었습니다.

십 미터도 더 키를 올린 대나무는 가람이의 초록 모자를 벗어 줄 생각은 않고, 가을 하늘을 떠받들고 몸을 흔들흔들 흔들고만 있는 것을 여주는 올려다보았습니다.

"너희들 맛있는 것 먹고 있구나? 나도 좀 줘!"

언제 뒤따라왔는지 담임 이은하 선생이 대나무 숲으로 들어오시며 하얀 손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

가람이는 얼른 손에 들려 있는 머루 송아리를 이선생 손에 놓아 드렸습니다.

"어쩌면!!"

머루알을 입에 넣은 이선생이 너무 좋아 실눈을 감고 아기마냥 도리질을 했습니다.

"내가 누구니? 초록 모자와 방울을 달고 선 이 대나무도 알고, 너희 둘 이가 여름내 만들어 놓은 대나무 숲길도 알고 있지."

"?!!"

둘 이가 똑같이 놀라 맑은 눈을 크게 치뜨며 사뭇 놀랐습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열린 좁은 길을 이선생이 앞서 걸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이선생이 혼자 말을 했습니다.

우우 바람이 불었습니다.

대나무들이 또 진저리를 쳤습니다. 방울 소리가 아슴히 들려 왔습니다.

초록 모자를 쓴 대나무가 청푸른 가을 하늘을 이고서 머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 꽃!"

뒤따라 대나무 숲속 길을 걷던 가람이는 하얗게 웃고 있는 바람꽃 한 송이를 꺾어 이선생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어쩌면! 바람꽃 아니야?!"

꽃송이를 받아 든 이선생이 너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나는?"

뾰로통해진 여주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알았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가람이는 바람꽃을 한 송이 꺾어 또 하나의 바람꽃으로 서 있는 여주 앞으로 다가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