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편지
김철수
'난 어쩌면 좋지?.......'
영석이는 아카시아꽃 내음이 물씬 코끝까지 달려오는 동네 뒷동산에 올라앉아 한숨을 쉬었습니다. 영석이가 사는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끝부분인 서해안의 땅끝마을이었습니다. 동네 앞바다는 서해와 남해가 서로 만나는 곳이었기 떄문에 유난히 파도가 높은 날이 많았습니다. 언젠가 영석이는 교회 학교 선생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우리 마을 앞바다의 파도는 유난히 높지요?"
"그것은 말이다. 서해 바닷물과 남해 바닷물이 서로 그리워서 수천 리 길을 달려와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너무 반가워 부등켜 안기 때문이지."
"영석이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에 그 후부터 파도가 더욱 거세어지면 일부러 구경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영석아, 이제 초등학교 졸업반이지?"
"네." "중학교에 갈 준비를 미리미리 해둬야겠구나."
"아마도 중학교는 못 갈 것 같아요."
"그건 왜? 너처럼 공부 잘하는 사람이 없잖아?"
영석이는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만 집에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석이는 교회 학교 선생님께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머니,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다죠?"
"그래, 온 우주를 만드신 분인데 뭘 못하시겠니?"
"그런데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하죠? 남들이 가는 중학교도 가지 못할 만큼......., 왜 매일 같이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지요?"
영석이 어머니는 갑작스런 영석이의 퉁명스런 질문에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두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기신 듯했습니다.
영석이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영석이는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공책 한 장을 곱게 뜯어내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올립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남쪽 부근 조그만 마을에 살고 있는 영석이라고 합니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저희 집은 가난하고 아버지께서는 막일을 다니시지만 술값과 약값에 쓰기도 모자랍 니다. 어머니께서는 미역이나 멸치를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시며 장사를 하시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데 앞길이 막막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소원을 좀 들어주십시오. 기필코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교회 학교 선생님이나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꼭 연락주십시오. 그럼 하나님의 연락이 있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영석이는 우표를 붙여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 편지야. 글쎄 주소도 없이 그저 하나님 귀하라고만 써 있네."
우체국에서 편지를 분류하는 아저씨는 이상한 편지를 들고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가 확실한 것을 보면 장난 편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
"보내는 사람께 되돌려보내면 되잖아."
우체국에서는 영석이가 보낸 편지를 놓고 어떻게 처리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우체국장께 보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국장님, 이상한 편지가 있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체국장은 영석이가 다니는 교회 학교의 부장 선생님이셨고 장로님이셨습니다.
"아니, 이것은 저 산밑 외딴집에 살고 있는 아이잖아."
"국장님께서는 이 아이를 아십니까?"
"그래 알고 말고, 공부도 잘하고 아주 씩씩한 소년이지."
우체국장은 분명 이 편지는 보통 편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 편지를 교회 목사님께 갖다 드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 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렇게들 아시오."
우체국장 박장로는 영석이가 하나님께 보낸 편지를 들고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목사님 계십니까?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를 갖다 드리려고 왔습니다."
박장로님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목사님은 반가이 맞았습니다.
"요즈음 선거철이라 더욱 바쁘실 텐데 웬일이십니까?"
우체국장 박장로는 영석이의 편지를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해 이 편지를 읽어 보시고 처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은 영석이의 간절한 소원이 담긴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이 서신 듯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박장로님께 넘겨주셨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서 답장을 보내야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당장에 급히 겉옷을 찾아 입고 우체국장은 박장로님과 함께 영석이의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비탈길을 올라 허술한 스레트 지붕인 영석이의 집 굴뚝엔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올랐습니다.
"이 집에 영석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습니까?"
마침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고 영석이가 저녁을 짓고 있었습니다.
"제가 영석인데요."
영석이가 밖으로 뛰어나와 보니 목사님과 장로님이셨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응 그래 너였구나. 그런데 며칠 전에 하나님께 편지 보낸 일 있지?"
"……."
"걱정할 것 없다. 하나님께서 편지를 받으시고 나보고 직접 가서 답장을 전해 주라는 연락이 온 거야."
"그냥 저녁에 잠이 오지 않아 써 본 거예요."
"그래. 그것도 다 알고 있어.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의 편지를 받으시고 너를 중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까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시라는 명령을 나에 게 하셨으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도록 해라."
"목사님, 그게 정말이지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은혜를 하나님께 갚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이건 어린이날 선물이다."
영석이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성경책을 품에 안겨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