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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장수 할아버지

우산 장수 할아버지

김철수

 

"우산이 필요하신 분은 그냥 가져가세요. 그리고 비가 그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제자리에 갖다 놓으세요."

무덥고 지루한 장마철이 계속 될 때면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우산 장수 할아버지는 더욱 바빠집니다.

"요즈음 비는 산성비라서 맞으면 몸에 좋지 않아요. 앞에 놓여 있는 우산을 그냥 가져가세요."

손으로는 부지런히 부서진 우산을 손질하면서 빗방울이 쏟아지는 밖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아버지 저두요."

"넌 오늘 비옷을 입고 오지 않았구나. 집에서 잊어먹고 왔니?"

", 아침에 급히 나오다 보니 그냥 나왔어요."

학교 앞 우산장수 할아버지와 꼬마들은 서로의 얼굴이 잘 알려진 사이었습니다.

"그렇지, 아침에는 햇빛이 쨍쨍 내려 쬐었지. 그러나 이렇게 장마철에는 안심을 해서는 안 돼 ."

수백 개의 우산을 손질해서 가게 앞에 내놓고 누구든지 우산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냥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우산 장수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늘 함박꽃웃음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비가 내리 지 않아서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수업이 끝나자 장대 같은 비가 계속 쏟아지는 것을 본 영신이는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넌 집에 안 갈래?"

". 너 먼저 가. 난 비가 좀 멈추면...... ."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은데 우선 지하철역 앞까지 내 우산을 같이 쓰고 가서 우산 장수 할아버지께 빌려 쓰고 가면 되잖아."

"참 그렇구나 고마워, 민영아."

영신은 민영이의 우산을 같이 쓰고 학교를 나섰습니다.

영신이와 민영이가 같이 우산을 받고 학교 앞 육교를 막 올라서는데 쓰레기통 옆에 눈에 익은 우산 하나가 내팽개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저건 우산 장수 할아버지 건데...... . 민영아 고마워 먼저 가!"

영신이는 빗속을 뚫고 달려가 망가진 우산을 조심스럽게 챙겨 들고 우산 장수 할아버지 가게까지 걸어왔습니다. 영신이가 문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본 할아버지는 헌 우산을 고치고 계시다가 문을 열어주시며 정답게 말했습니다.

"비 맞지 말고 어서 들어오렴."

영신이는 할아버지 앞에 쓰레기통에서 주어온 우산을 내밀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우산...... ."

"바람에 날려 망가트렸단 말이구나. 괜찮아 다시 고쳐 줄게."

"할아버지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학교에서 나오는데 쓰레기통 속에 누군가 버렸어요."

영신이는 속이 상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말했습니다.

"이렇게 망가트려 가지고 아무 곳에나 내 버리는데 뭣 때문에 할아버지께서는 헛고생만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영신이가 단단히 화가 났구나."

할아버지는 망가진 우산을 다시 하나하나 고치고 계셨습니다. 영신이는 이 우산 장수 할아버지가 벌써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헌 우산을 고쳐서 비가 올 때는 아무나 가지고 가도록 하고 다시 비가 그치면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봉사해오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망가진 우산을 고치시다 말고 물끄러미 비가 내리는 밖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영신아,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니?"

"궁금해요, 할아버지. 이야기해 주세요."

영신이는 할아버지 곁으로 바싹 다가섰습니다.

"나는 저 남쪽 지방 조그만 시골에서 태어났단다.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살던 때라 너무너무 어려웠었지. 그래서 우산이나 비옷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온몸에 비를 흠뻑 맞고 흙탕길을 뛰어서 집에 오곤 했단다."

할아버지는 여기까지 말씀을 하시더니 휴~ 하고 한숨을 길게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요?"

"어느 날 말이다. 하나밖에 없는 내 누이동생이 학교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장대 같은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던 거야. 내 누이동생은 하는 수 없이 흠뻑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어. 그때 같은 마을에 사는 부잣집 딸이 내 누이 동생을 보고 물에 빠진 새앙쥐라고 놀리기까지 했던 거야."

"그 부잣집 딸은 우산을 쓰고 있으면서 말이죠?"

"그렇지. 자기 아버지가 일본 경찰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예쁜 꽃 우산을 사다 줬던 거야."

"비를 맞고 가는 친구를 보고 같이 쓰고 가자는 말은커녕 약을 올려 주고 놀린 거군요."

"그런 셈이지. 집에 돌아온 누이동생은 어찌나 속이 상하고 분했는지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물독에 있는 냉수를 한 바가지나 꿀꺽꿀꺽 마시고는 그만 온몸에 열이 나서 눕게 되었어...... ."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어느새 뿌연 이슬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앓아누운 동생은 자꾸만 헛소리를 하면서 고통을 참지 못해 밤새도록 우는 거야. 어머니께서는 건넛마을에 있는 한의사에 다녀오시겠다고 밤중에 집을 나서고 나는 동생의 머리맡에서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어."

밖에서는 아직도 비가 그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영신이는 집에 돌아갈 생각도 잊은 채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누이동생은 나를 부르더니 두 손을 꼬옥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거였어."

"오빠, 나 꽃 우산 하나 사줘. 꽃 우산...... ."

"그래 이 오빠가 커서 꽃 우산을 사다 줄 테니 어서 병이나 낫도록 해."

"나는 누이동생의 손을 꼭 잡으며 약속을 했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내 누이동생은 그날 밤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만 거야...... ."

할아버지는 굵은 눈물방울을 옷소매로 씻으면서 꿀꺽하고 설움을 삼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난 서울로 올라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이렇게 조그만 우산 가게를 만들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 생각 때문에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사람들을 위해 조그만 힘이나마 봉사하는 거란다."

"그랬었군요, 할아버지께서는 너무나 좋으신 분이세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가 필요해서 우산을 가지고 가서는 아무 곳에나 내던져 버리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영신이는 이제 할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그게 뭔데? 어서 말해 보렴. 오늘은 너에게 모든 비밀을 다 이야기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또 알려 주지."

"할아버지께서는 특히 저희같이 어린 여학생들에게는 더 친절하신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까지 내가 한 이야기 속에 그 답이 들어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니?"

영신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더니 무릎을 탁 쳤습니다.

"할아버지의 누이동생이 저희들처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셨지요?"

"그래, 바로 그거란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오는 너희들을 보면 바로 내 동생의 얼굴로 보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런 말도 있지 않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육십배 백 배의 많은 결실을 맺는다'고 하잖니?"

이렇게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사이에 비는 개이고 다시 햇빛이 쨍쨍 내려 비치고 있었습니다.

"어서 집에 가 보아야지. 이젠 비도 그쳤구나."

영신이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버린 우산이 있으면 보는 대로 제가 주워 올게요."

"그래, 고맙다.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이 고마움을 몰라줘도 너 같은 어린이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 할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계속할 테다."

영신이는 할아버지의 이 말 한마디가 어찌 가슴을 찡하게 하는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