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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선한 사마리아인

안은순

 

그날 새벽에 난 불면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D시에 다녀온 것이 원인이었다. ‘ 고시 공부를 그만하고 신학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니? 어머니도 이제는 네가 목사가 되길 원하신다. 십 년이 넘도록 공부해도 아직까지 합격이 안 되는 걸 보면 그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요즘은 내 생각도 그렇구나.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까워 말을 못 했는데 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내가 욕심을 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말하는데 웬만하면 정리하고 내려오거라. 그동안 많이 지쳤을 텐데 좀 쉬면서 새로운 진로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네 어머니도 네가 돌아온다면 좋아할 거다. 아버지는 정거장까지 따라 나오며 말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자상하게 나를 대 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밤 나는 많은 생각에 잠들지 못했다. 여러 해 동안 매달린 공부를 여기서 접는다는 것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모처럼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대로 이참에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갈까 하는 갈등에 잠을 설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많은 시간과 그 많은 돈, 그 많은 책을 놓아버리기가 아깝다. 나는 사법고시 1차 시험만 세 번이나 합격했다. 그러나 2차 시험에선 번번이 미역국을 먹었다. 주변 친구들은 이유를 모르겠단다. 형법 민법은 물론 형사소송법까지 똑소리 나는 실력에 논리 정연한 사고방식, 정서체로 쓰는 반듯한 글씨체 등 무엇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데 2차를 여섯 번이나 낙방한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여섯 번이나 떨어진 것은 억울했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남들 다 해낸 사법고시를 지금까지 해내지 못하다니,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진즉에 그만두지 않고 공부로 허비한 인생을 되돌아보며 절망했다. 다시는 시간 낭비로 끝나버리는 공부를 그만두리라 다짐하며 책을 내다 버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주며 칠전팔기의 힘을 넣어주신 분은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고시 공부를 접으라니. 갑자기 모든 게 허탈해진다. 낭비한 세월과 시간과 물질이 아깝고 내 인생이 초라해서 견딜 수 없었다. 답을 찾지 못하고 머리를 싸맨 채 고민하던 나는 두 주먹을 힘껏 쥐며 일어섰다. 한 번만 더 하는 거야! 그날 밤, 나는 할 수 있다! 난 꼭 해내고야 만다! 를 목청껏 외친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빨강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잠을 잤다.

샤르르릉 딩딩딩 샤르르릉 딩딩딩 .......

꼭두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알람이 아니었다. 나의 휴대폰 알람소리는 상쾌한 하루라는 멜로디가 흘러야 한다. 샤르르릉 딩딩딩은 수신벨 소리다. 이 새벽에 누가 전화 한 걸까? 어머니? 나는 고개를 흔든다. 지금 어머니는 거의 말을 못 하신다. 코에 영양 주사 줄을 꽂고 누워계신다. 아버지? 그렇다. 아버지가 분명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입원하신 후 은퇴하여 어머니 병상을 지키신다. 요즘 아버지는 자주 내게 전화를 하는 편이다. 딱히 할 말이 있다가 보다 내 안부를 묻는 게 고작이다. 잘 있냐? 몸은 건강하냐? 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사 먹어라. 고시 합격하고 건강 망치면 아무 소용없는 거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럽고 자상해졌다. 아버지의 전화는 정오 시간에 주로 온다. 공부하는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서다. 그런 아버지가 새벽에 전화를 한다면 분명 어머니 병세가 위독한 거다. 어머니는 암세포가 폐에 전이 되어 희망이 더 없으시다고 했다.

여보세요!”

나는 휴대폰을 다급히 귀에 댄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니었다.

저 알지요? 개나리 아파트 103동 송 아주머니여요. 우리 집에 와서 도배했지요?”

예 알지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큰일 났어요. 우리 아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렸어요. 우리 아들 보았지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엉뚱하게도 얼마 전에 도배 나간 집 아주머니한테서 온 전화였다. 도배하는 내내 먹을 것을 아낌없이 주던, 또 내 생전 처음으로 자정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한 집! 거기다가 그 집 망나니 아들과 격투까지 한 집을 내가 잊을 리가 없다.

그래서 죽었나요?”

나는 놀랐다. 눈만 퀭하니 비쩍 말랐던 청년이 생각났다.

술 쳐묵고 와서 죽는다며 뛰어내렸어요. 아저씨 죄송하지만 빨리 좀 와 주세요.”

금방 갈게요.”

나는 즉시 일어나 옷을 입었다. 휴대폰을 들고나오면서 119로 신고를 했다. 아파트 4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답니다. 봉천동 개나리 아파트 103403호입니다. 새벽길은 한가하다. 나는 달려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손을 들었다. 예상대로 택시였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생각하니 허겁지겁 달려 나온 자신이 우습다. 고시도 얼마 안 남았는데 새벽잠을 설치며 남 돕겠다고 거리를 헤매고 있는가. 그러나 문득 지난번에 만난 아버지의 음성이 되살아났다. ‘아무리 법치 시대라도 어려운 사람은 돕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인 거다. 양심의 소리는 법보다 위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리니까. 법관이 되더라도 그런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삼겹살을 내 앞에 구워 놓으며 말했다.

그놈이 저리로 뛰어내렸어요. 빨리 좀 가 봐요? 난 다리가 후둘거려서 한 걸음도 못 걸어요.”

거실 전화기 앞에 주저앉아 있던 송 아주머니는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뒤 베란다 쪽을 가리켰다.

빨리요! 어서요.”

아주머니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4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던 나는 가쁜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내려와야 했다. 어떻게 계단을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4층이 무척이나 높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머니의 아들은 박살났을 것이란 생각에 겁이 난다. 난간에 매달리며 회전 유턴을 해가며 달려 내려 온 나는 어둡고 조용한 뒤뜰을 보며 망연히 서 있어야 했다. 나는 여기저기 부러져 있을 팔다리를 찾는 기분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린다. 직감적으로 4층에서 떨어진 아주머니 아들이라고 생각한 나는 아주머니가 서 있는 위층을 향해 소리쳤다.

아주머니! 아드님이 살아있어요. 빨리 내려와 보세요.”

인기척을 느낀 듯 신음소리가 더 커졌다.

괜찮아요?”

나는 더듬거리며 신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으으으 나 죽어요으으으

녀석이 말을 했다. 말소리는 생각보다 또랑또랑했다. 목이 부러지거나 뇌를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119 구조대가 오니까.”

가까이 가보니 녀석은 회향나무 덤불에 고통스럽게 엎드려져 있다. 다행히도 송아 주머니의 아들이 추락한 지점은 회향나무로 빼곡했다. 주변엔 커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다. 녀석이 4층에서 떨어질 때 녀석의 체중에 부딪혀 꺾인 듯 아래쪽에 상당히 큰 나무가 떨어져 있다. 녀석이 죽지 않고 살아서 신음하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7층에서 떨어진 아기가 사는 것도 나무 위로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크게 안도가 되었다.

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너 엄마 생각도 안 하냐! 너만 죽으면 다냐? 이 나쁜 자식아!”

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녀석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소리쳤다. 나는 녀석의 처박힌 상체를 조심스럽게 부축해서 숨쉬기가 편하게 해 준다. 몸은 만지지 않는다. 해병대 출신인 나는 낙상하거나 실족한 사람을 함부로 들쳐 엎는 일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4층에서 떨어졌으니 녀석의 몸은 절단이 나도 많이 났을 것이다. 어느 부위가 골절되었는지 모르니 일단은 119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놈의 자식이 안 죽고 살았다고요? 얼매나 내 속을 더 썩이려고 살아났대요. 죽겠다고 뛰어내린 놈인데 데려가지 않고 아이고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던 송 아주머니는 허겁지겁 달려 내려오며 넋두리부터 했다. 아주머니가 들이대는 후레쉬 불빛에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입 주위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끔 퉁퉁 부어있다.

아이쿠, 불쌍한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아파서 어쩐대요. ”

아주머니는 피투성이 얼굴로 고통스럽게 눈만 껌벅이는 아들을 보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삐웅- 삐웅- 구급차 오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진정하세요. 지금 정문에 119 응급차가 온 것 같아요. 그때까지 절대 만지면 안 됩니다.”

나는 송 아주머니를 아들에게서 떼어 놓았다.

아이고! 어떻게 신고할 생각을 했어요? 역시 젊은 사람 생각이 낫다니까. 난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누군가가 와 주어야만 할 것 같아 여기저기 전화만 했는데.”

아주머니는 새삼 고마워서 내 손을 붙잡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전화를 받고 나오면서 생각하니 나보다 119가 더 빠를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나보다 늦네요. 그나저나 얼마나 놀랐어요?”

나는 송 아주머니에게 붙잡힌 손을 마주 잡으며 뒤늦게 진심으로 위로한다. 119 구조대의 삐웅거리는 소리에 아파트 주민들이 일제히 깨어났다. 어둡던 뜰은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졌다. 집집의 창문마다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다.

나 놀란 것 말하면 뭐해요. 저기- 아저씨, 우리 아들 죽지는 않겠지요? 아파트에서 떨어지고도 산 사람이 있지요?”

송 아주머니는 구조대원들이 앰뷸런스에서 내리자 그중 한 사람을 붙잡으며 묻는다.

그럼요.”

구조대원은 시원스럽게 말한 후 민첩하게 움직이며 아주머니의 아들을 밝은 불빛으로 보며 터진 입술과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귀에 지혈대를 감고 어깨와 다리를 고정하여 들것에 묶은 후 앰뷸런스 안에 녀석을 밀어 넣는다.

같이 타시지요.”

구조대원은 나한테도 아주머니와 같이 환자 옆에 타라고 한다. 나는 보호자가 아니지만 신고한 사람이니 병원까지만 같이 가기로 한다. 아침 강의 시간까지는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음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본다.

앰뷸런스가 달리는 내내 아주머니는 구급용 담요를 아들에게 덮어주며 아들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때문에 지옥 같은 생활을 한다며 그런 아들은 죽는 게 차라리 나아요. 아들 때문에 집안 살림이며 그릇까지 성한 게 없다며 이 빠진 공기와 접시를 보여주던 때와는 달리 송 아주머니는 아들이 죽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송 아주머니를 안 것은 숫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도배일 때문이다. 한 달 전 나는 아주머니가 사는 개나리아파트 103403호를 도배했다. 인테리어 사장인 친구 영철이는 20평 정도 되는 소형 아파트라며 종이로 붙이는 것이니 어렵지 않으니까 나 혼자 가서 붙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아파트 하나를 내 손으로 붙인 집의 주인 여자다. ‘우리 딸이 미국에서 결혼한 남자랑 나온다는데 집이 너무 더러워서 도배를 할려구요. 내 집도 아니어서 그냥저냥 살아도 되는데 그래도 내 딸 체면이 있지. 남의 집이니 좋은 것도 필요 없고 제일 싼 것으로 붙여주세요.’

반듯하게 생긴 외양에 비해 다소 불안스럽게 보이는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는 가장 싼 아이보리색 종이 벽지를 골라 놓고 횡설수설 말이 많았다. 나는 마침 도우미도 없고 해서 망설이는데, 나도 도배라면 잘해요. 도우미가 뭐가 필요해요. 예전엔 다 손수 하였는데. 내가 다 도와줄 겁니다. 송 아주머니는 자기가 도우미를 하여 준다며 풀 봉지를 들고 앞서 나갔다 나는 좀 불안했지만 모험하는 셈 치고 일을 맡았다. 그리고 그날 얼마나 힘들게 붙였는지. 집 주인 송 아주머니는 숫제 방해자나 다름 아니었다. 도우미를 하겠다고 했으면 풀을 개주고, 풀판을 깔아주는 등 도배사를 따라다니며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기술자의 손발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잘한다고 큰소리만 쳤지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봉지의 풀을 잔뜩 뜯어놓고 물을 한꺼번에 부어 놓아 풀 개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데서부터 뜯으라는 발포 벽지는 안 뜯고 재단해 놓은 벽지에 풀칠부터 하는 등 순서도 없이 일을 하여 시작부터 애를 먹였다. 그 뿐인가. 나를 돕는다는 마음만 앞서 가지고 자기 맘대로 종이를 들고 다니며 사방에 풀을 흘리고 다니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지기도 했다. ‘차라리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세요! 방해만 돼요.’ 내가 참다못해 한마디 하자 송 아주머니는 아유 생각보다 어렵네요. 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털고 나갔다. 그날 송 아주머니는 미안했는지 주방을 들락날락 하며 먹을 것을 날아와 내 배를 채워주는 일로 대신했다. 일할 땐 자꾸 먹어야 지치지 않아요. 송 아주머니는 사양하는 내 입에 찰떡을 넣어주고 따뜻한 우유를 먹여 주고 안 먹는다는 부침개를 기어이 먹였다. 그래서인지 오랜 객지 생활로 골병이 다 든 내 체력에는 보탬이 되었던지 그날 나는 정말이지 힘든 줄을 모르고 일을 거뜬히 마쳤다. 영철 이를 따라다니며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도배 일을 하고 온 날이면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져 잠부터 자야 했는데 그날은 거의 자정까지 일을 하고 왔는데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밀린 공부를 한 시간이나 했으니까. 다음 날에도 거뜬하게 일어나서야 나는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정말이지 지겹도록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날아와 입에 넣어 준 송 아주머니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 주스, 파이버 같은 음료수로 부터, 찐계란, 불고기, 찰떡, 초밥까지 어디서 가져오는지 그날 내가 먹은 음식은 뷔페식당의 가지 수만큼이나 많았다. 일을 늦게까지 한 것도 음식 먹는 시간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서다. 본의 아니게 아주머니의 만취한 아들을 한 대 때려 주고 온 것도 일이 늦은 탓이었다. 일을 일찍 끝냈으면 그 집 아들과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아주머니 아들이 아무리 행패를 부리며 후레자식 같은 행동을 했을지라도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뭐야! 너 누구야! 우리 집에 왜 온 거야! 안경쟁이 너 말이야!”

다짜고짜 소리치며 비틀비틀 공격해 오는 청년은 만취 상태여서 몇 발자국마다 제풀에 넘어지곤 했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발판에서 내려와 도구들을 박스에 챙기고 있는데 몫에 허연 쇠붙이가 닿았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쇠붙이는 칼이 분명했다. 말썽만 피운다는 아들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은 터라 맞서지 않고 피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방어 자세가 되었다. 내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송 아주머니가 거실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아들의 행패에 달려와 말리려던 아주머니한테 아들이 들고 있던 흉기를 던진 것이다. 아주머니는 얼굴을 감싸 쥐고 뒹굴었다. 다행히도 손톱깎이 같은 잡다한 용구가 붙은 휴대용 칼은 바닥에 떨어졌고 송 아주머니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놀란 나는 녀석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날렸다. 술 취한 청년은 내 주먹에 쉽게 나뒹굴었다. 나는 한 번 더 가슴을 내려친 후 멱살을 잡고 끌어다 아들 방으로 알고 있는 방에 쳐 넣고 그 집을 나왔었다. ‘ 술 안 먹으면 여자처럼 얌전한데 술만 먹으면 저래요. 그나저나 저놈이 오늘 밤 잘 잘지 모르겠어요.’ 송 아주머니는 현관까지 따라오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아들은 더 이상 난동하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며 고맙다고 전화가 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인사치레로나마 힘들 땐 전화하라고 했다. 술주정에 칼부림까지 하는 송 아주머니의 아들을 직접 목격한 나는 자식으로부터 매일 시달리는 무방비한 송 아주머니를 지켜 주고 싶은 연민이 순간 생겼던 것 같다. 송 아주머니가 자기 집 도배를 해 준 일꾼에게 염치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송 아주머니는 망나니 아들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를 은연중에 의지했는지도 모르겠다.

응급실은 초만원이었다. 여기저기서 환자들이 신음했다.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듯 얼굴이 벌겋게 사과처럼 익어버린 여자가 바퀴침대에 실려 오고 있다. 여자는 고통을 못 이겨 괴성을 지른다. 어디선지 보채는 아기 울음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밤새 환자를 돌보느라 피곤함이 역력한 의사는 도착한 지 10분이 넘어서야 왔다. 그동안 간호사들이 달려와 녀석을 침대에 눕히고 체온을 재 갔다.

“4층에서 떨어졌어요.”

송 아주머니는 덜덜 떨며 말했다. 의사는 녀석의 눈을 까보더니 간호사한테 즉시 영상실로 옮기라고 지시한다.

우리 아들을 살려 주세요 의사 선생님! 불쌍한 우리 아들 살려 주어야 해요

송 아주머니는 의사 선생님한테 매달리고 있다. 나는 아주머니를 의자에 앉히고 자판기에서 빼 온 뜨거운 커피를 갖다준다.

이것 좀 마셔요.”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전화번호부에 아저씨 번호가 있기에 다급해서 한 거예요. 제일 먼저 목사님 집으로 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그래서 전도사님한테 하니까 새벽예배를 목사님 대신 인도해야 한다며 내 말도 안 듣고 내가 누군지 알려고도 않고 바쁘다며 예배 끝난 후 전화 다시 하래요. 세상에 1초가 급한데 예배 끝나고 전화하라는 전도사가 어디 있어요?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우리 아들이 피를 흘리다가 죽었을 거예요.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는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어요.”

사람이 죽는다는데 안 올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 땐 목사님보다 제일 먼저 119로 전화해야죠.”

이런 일이 처음이라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도 그렇지 우리 전도사님은 너무 했어요. 내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고 예배 끝난 후 다시 전화하라고 했어요.”

갑자기 아주머니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더니 괘씸한지 씩씩댔다.

우리 집에서 일한 아저씨도 나를 도와주는데 전도사님이 그럴 수가. 새벽예배 끝난 후 다시 하라고? 세상에 교회 인심이 그럴 수가 있어요?”

아주머니는 새삼 감정이 북받쳐서 어쩔 줄 모른다. 다 마셔버린 종이컵을 손안에 쥐고 바짝 쥐었다가 쓰레기통 위로 던진다. 영상실로 실려 갔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바퀴침대에 실려 나오고 있다. 흥분해 있던 아주머니가 벌떡 몸을 일으켜서 아들한테로 달려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상태가 심각합니다. 어깨뼈가 부서졌고 갈비뼈가 네 개나 골절되었네요. 다리 골절도 심하고 앞 이도 두 개나 나갔어요. 입원실이 생기는 대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겠어요. 환자가 나이에 비해 너무 허약한 것 같은데 우선 영양 주사를 놓도록 하겠어요.”

의사는 몇 가지 지시를 더 간호사한테 하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갔다. 응급실의 간호사가 아주머니 아들한테 링거를 꽂기 시작한다. 잠깐 사이에 아주머니 아들의 몸엔 링거병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저쪽으로 가서 수납하고 오세요.”

간호사는 아주머니한테 수납할 서류를 건네준다.

어쩌지요? 돈을 안 가져왔어요.”

송 아주머니는 돈이라고는 기천 원밖에 없는 지갑과 휴대용 휴지, 알사탕 봉지 따위가 든 헐렁한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우선 치료부터 하면 안 되나요? 날이 새면 금방 은행에 가서 찾아올게요.”

송 아주머니는 졸음기가 가득 찬 수납직원한테 사정한다. 수납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카드 있으면 하세요.”

남자 직원은 분명 나를 보고 말하고 있었다.

난 카드를 안 써요.”

송 아주머니가 대신 말했다.

돈이 얼만가요?”

이럴 때 나는 거절을 못한다. 나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계산대 앞으로 갔다.

시티 촬영에다 엑스레이 촬영을 다 하거든요. 피를 많이 흘려서 수혈도 해야겠고, 좀 나오는데요.”

지금은 가진 돈이 없는데요. 은행 문 열면 즉시 갚아 드릴게 우선 외상으로......”

여기 카드로 결제하시지요. 은행 문 열면 돈은 찾아서 제게 주세요.”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선뜻 수납직원 앞으로 내밀었다.

- 그러면 되겠다. 은행 문 열면 제가 꼭 찾아 줄게요. 아저씨는 정말 선한 사마리아인이어요.”

송 아주머니는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손을 잡고 흔든다. 나는 온갖 먹을 것을 아끼지 않고 내놓으며 일하는 내내 내 건강을 챙겨 준 송 아주머니한테 조금은 보답하는 마음이어서 뿌듯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진정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샤르르릉 딩딩 샤르르릉 딩딩 ....... 휴대폰을 꺼놓지 않았던가. 개나리 아파트의 송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아 시간적 물질적 타격을 받은 나는 그동안 줄곧 휴대폰을 꺼놓고 자곤 했는데 간밤엔 잊은 것이다. 나는 깊은 숙면을 방해하는 벨소리에 짜증이 난다. 벨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더니 방 안 가득 울린다. 나는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찾는다. 휴대폰이 얼른 손에 안 잡힌다. 더 위쪽으로 뻗어보지만 여전히 손에 안 잡힌다. 나는 이불을 걷어 올리며 눈을 떴다. 어둠을 찌르고 있는 휴대폰의 푸른 불빛은 나 여기 있는데 어디를 더듬고 있어요. 하듯 팔 밑에서 푸른빛을 내뿜고 있다. 나는 휴대폰을 켜자마자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잠시 귀에 대본다. 혹시 아버지한테서 온 전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제는 어머니가 아무래도 올해를 못 넘길 것 같다는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으니 내려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나는 초조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합격을 하고 싶은데. 어머니 제발 합격할 때까지 돌아가시지 마세요. 나는 기도하고 잤다. 휴대폰에선 필사적으로 여보세요! 여보세요! 한다. 여자 목소리다. 술 취한 소리에 가깝다. 여자는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다. 아저씨! 아저씨! 전화 끊지 마세요. 애절한 목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깝다. 개나리아파트 103403호 송 아주머니가 또 전화를 한 것이다. 순간 혈압이 오르며 현기증을 느끼고 만다. 나는 종료 버튼을 길게 누르고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버린다. 오늘도 일곱 시까지 럭셔리 인테리어에 나가야 하고 저녁엔 형법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한다. 시험까지는 5개월이 남았다. 적어도 육 개월 전부턴 모든 일을 중단하고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지금 나는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모두가 송 아주머니 때문이다. 송 아주머니는 내 카드로 긁은 돈을 주기는커녕 남은 이십 만원까지 빌려 갔다. 미국 딸이 보낸다던 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라며 빌려 간 지도 두 주가 넘었다. 나는 방세 낼 돈이며 학원비 낼 돈이 당장 없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중단할 수가 없게 됐다. 코피 나게 공부해도 부족하건만 공부는커녕 열흘째 알바를 하고 있다. 이번 달도 공부에 전념하기는 틀렸다. ‘나는 신용불량자에 올라 있어서 돈 구할 데가 없어요.’ 아들의 다리 골절 수술을 할 때서야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돈 빌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목사님한테 갔는데 목사님도 돈이 없데요. 그렇게 큰 교회에서 돈이 없다면 누가 믿나요? 난 교회에 실망해요. 난 호떡 팔고, 샌드위치 팔면서 없는 중에도 건축헌금으로 오백 만 원이나 냈는데 교회에선 딱 거절하였어요. ‘교회는 헌금한 돈을 다시 돌려주는 은행이 아녀요. 하면서 말예요. 누가 오백만 원 다 돌려 달라고 했나요? 당장 급한 돈 오십만 원만 꿔달라고 했는데.’ ‘몇 년 동안 교회도 안 다녔다면서요.’ ‘돈이 없으니까 모두들 깔보는 것 같아서 안 갔지요. 나는 병원 내의 현금인출기 앞으로 가서 이십 만원을 빼서 줬다. ‘목사님 욕하지 마세요. 교회 살림은 목사님이 하는 게 아니거든요.’나는 강한 어투로 말하고 그 자리를 급히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내가 왜 송 아주머니한테 신경질을 냈는지 생각했다.

나는 이불을 잡아당겨 귀를 막는다. 머리를 감싸며 깊은 잠을 자고자 시도해본다. 가장 편안한 자세, 530분 알람이 울릴 때까지는 절대로 깨지 않아도 좋을 자세로 반듯하게 눕는다. 그러나 잠은 점점 사라지고 개나리아파트의 403호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는 아직도 청각에 달라붙어 마음을 산란하게 한다. 무슨 일이 또 생긴 걸까? 나는 잡념에서 벗어나려고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 올리고 고개를 저어본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은 시끄럽고 어지럽다. 특강은 오후 일곱 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꼬박한다. 충분히 잠을 자야 강의 시간까지 버틸 수 있다. 이번엔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리라.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새벽기도를 가는지 계단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똑똑똑 새벽에도 구두를 신고 가는 주인아주머니 구둣발 소리는 예민해진 내 신경을 자극한다. 나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하고 만다.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은 아무래도 계획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것 같다. 머리칼 속에 손가락을 넣고 긁적인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눈알을 좌우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굴린다. 냉장고 속의 물을 꺼내 한 모금씩 한 모금씩 마신다. 나는 두꺼운 형법 책을 펼치고 앉는다. 그러나 책은 읽혀지지 않고 마음만 답답하다. 한 평도 안 되는 잠자리를 빼고 책에 뒤덮여 있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빨강색 성경책을 빼 든다. 얼마 전부터 나는 성경을 보기 시작한다, 마음을 안정하기 위해서다. 시편이나 잠언을 읽으면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환경조사서의 종교란 에다 기독교라고 쓰는 데 주저한 적이 없다. 어머니가 냉정하게 대하지만 않았더라도 난 지금까지 교회에 열심히 다녔을 것이다. 아니 아버지가 목사님이 아니고 친아버지가 아니었더라도 난 교회를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끝까지 부모님의 입양아로 남아 있었더라면 교회를 절대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친모는 아니지만 친모이상으로 따뜻하고, 부드럽던 어머니였는데 하루 만에 그토록 차가워질 수 있을까.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지긋이 바라만 볼 뿐 절대 말하지 않았고, 나의 어떠한 재롱의 말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어머니가 옆을 지나칠 땐 냉기가 느껴졌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과 태도는 내가 재수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 올 때까지 계속됐다. 난 두려웠다.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 교회에다 버린 아기를 키우자고 한 것은 어머니였단다. 딸 둘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던 차에 예배당에 버려두고 간 아기가 사내라고 하자 어머니는 고아원으로 보내라는 아버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키우자고 아버지를 설득했단다. 결국 아버지는 승낙을 했고, 나는 어머니의 손에서 친아들 이상으로 귀하게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는 얼음처럼 차가워 졌다. 배신자! 사기꾼! 도둑놈! 살인자! 세상에서 제일 온화하시던 어머니의 입에서 욕설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피해야 했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날이다. 거실에서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사기꾼 놈아, 네가 목사야! 이 도둑놈아! 날 그렇게 뻔뻔하게 속일 수 있어? 고아원에 보내라고? 지 자식인줄 뻔히 알면서 고아원에 보내라고? 넌 사람도 아녀! 닫혀있는 현관문을 조금 열고 들여다본 거실 안은 아버지의 러닝셔츠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넥타이도 가위질을 했는지 토막이 나 있다. 소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아버지의 머리칼도 부수수하다. 얼마 동안을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어머니는 그 날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갔다. 며칠 후에 퇴원한 어머니는 안정되어 보였지만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말을 안 했다. 어머니가 욕하는 사람이 아버지인 것을 그때 알았다. 어머니는 혼자 있을 때면 욕을 실컷 한 후엔 훌쩍훌쩍 울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은 집이 아니었다. 지옥이었다. 그런 속에서 내가 대학 시험을 잘 볼 리가 없다. 전교 석차 10등 이내였던 나였지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낙방했다. 그 해 D시의 우리 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에 20명이 합격했다. 나는 아버지와 선생님의 바람대로 서울대학교가 있는 신림동에서 하숙을 하며 노량진 재수학원에 다녔다. 마음 같아서는 대학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영철 이를 따라 기술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간곡히 말렸다. 이듬해 Y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한 나는 부모님께 독립을 선언했다. 나의 독립은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종교, 주거에 이르기까지 모두였다. 제일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과외였다. 과외를 네 명까지 했다. 내 공부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부모님의 기대를 실망시키며 사시에 거듭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대학에서 공부를 착실히 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잠깐 두 손을 세워 잡고 묵상한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동행해 달라는 염원이 담긴 기도다. 위암으로 입원한 병상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입술만 달삭달삭하며 물 한 모금도 못 넘기는 어머니는 지금 수개월째 병원에 계신다. 내가 가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아버지랑 갔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휴일이면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뜰을 돌아 준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속았다는 분함과 미움이 쌓여서 병이 된 거라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어머니가 암에 걸린 것이 안타깝다. 비록 나에게 냉정하게 대했지만 원래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불쌍하다. 거룩한 성전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죄와 벌에 대해서, 축복과 은혜를 설교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할까. 한 때 젊은 혈기와 열정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만 아버지의 십자가는 그 누구의 것보다 무거울 것이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친자임을 알게 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커질 뿐 미워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저 만큼서 나를 엄하게 지켜만 보셨다. 다정다감하니 따뜻하고 살갑게 대해주지는 않아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믿음직하게 생각하는 것을 나는 안다. 아들놈입니다. 장차 판검사가 되고 싶다는데 기도 좀 해주세요.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면 언제나 부흥 목사님한테 나를 데리고 가서 기도부탁을 하는 걸 보면 안다. 이렇게 준수한 아들이 있었어요. 부흥 목사님은 그때마다 아버지를 부러워하듯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의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같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 말이 듣고 싶어 번번이 기도를 받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도배를 하는 개나리 아파트 204호는 송 아주머니의 집에서 두 동 앞쪽에 있었다. 하루 종일 송 아주머니의 새벽 전화가 궁금하다. 꼭두새벽에 꿔 준 돈 가져가라는 전화는 아닐 텐데 그래도 궁금하다. 다리 수술을 한 뒤로 아주머니의 아들은 일반입원실에 올라와 있다. 어깨뼈의 탈골 부상만 괜찮아지면 더 이상 수술은 없다고 한다. 아저씨! 끊지 마세요. 하며 애절하게 애원하던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쟁쟁히 살아있다. 큰방을 다 붙이고 나오니 도우미 아주머니가 작은방 마무리를 끝내고 나온다. 이제 거실과 부엌만 붙이면 해지기 전에 마칠 것 같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서 시간을 본다. 아직 오후 3시 전이다. 살림살이가 복잡하게 늘어져 있는 거실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물건마다 옮겨가며 일을 해야 한다. 풀칠해 놓은 도배지 하나하나를 재단하고 칼질을 해서 붙여야 한다. 거실같이 유리문이 많은 곳은 재단을 잘해야 일이 쉽다. 영철이 말에 의하면 나는 재단을 잘한단다. 눈썰미도 좋고 칼질도 날렵하게 잘해서 마무리가 깔끔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철이는 아르바이트가 아니고 아예 정식으로 인테리어를 한다면 모든 기술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실크 벽지며 데코타일을 붙이는 법도 알려 준단다. 그때마다 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제일 기뻐할 사람도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네가 목사가 되길 바라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판검사도 귀한 직업이다. 사람이 사는 데는 법이 필요하다. 그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지휘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판사고 검사다. 아주 좋은 직업이다. 목사 못지않게 거룩한 직업이다. 그래서 판사나 검사도 목사처럼 가운을 입고 법을 집행하지. 난 네가 꼭 훌륭한 판사나 검사가 되어 정의의 편에서 세상의 빛이 되길 기도한다. 그러면 우리 가문의 영광도 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이지. 내가 법대에 지망한다고 하자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환영했다. 내가 아무런 갈등 없이 법대를 지망한 것은 어머니의 조언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부지런히 일을 잘 도와준다. 내가 거실의 헌 벽지를 떼고 천정을 붙이는 동안 풀칠을 다 했다. 그리고 부엌 쪽에서부터 벽지를 같이 붙여 나간다. 나는 풀칠이 된 도배지를 부지런히 재단한다. 창문 아래와 창문 위를 재단하고 거실 창 위아래를 재단한다. 도배지 원장이 들어가는 데는 냉장고 뒤와 텔레비전 뒤 그리고 벽시계가 걸린 쪽이다. 내가 재단을 하는 대로 도우미 아주머니는 열심히 벽지를 붙인다. 하루라도 빨리 기술을 익히고 싶은 듯 시키지 않는 일도 찾아가며 해준다. 덕분에 한결 속도가 붙는다. 발판을 오르내리며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해서인지 세 시간 이상 걸릴 줄 알았던 복잡한 거실을 두 시간도 안 걸려 끝냈다. 기분이 상쾌하다. 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신선하다. 일 년 전부터 고등학생 과외보다 아르바이트로 도배를 택한 것은 이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풀 묻은 작업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노동, 때로는 무거운 가구를 나르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늦은 밤중까지 일을 하지만 끝나고 나면 상쾌해지는 기분은 노동을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다 한 것 같아요.”

도우미 아주머니는 벽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젖은 목장갑을 벗어 던진다. 마지막으로 나는 안방과 작은방의 이음새를 살핀 후 이상 없음을 발견하고 허리에 차고 있는 도구함을 풀러 놓는다. 시계는 440분이다. 영철이가 와도 이 정도의 시간은 걸리는데 나의 일하는 속도가 빨라진 것을 느낀다. 어린 손자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가끔 들여다보던 집주인 할머니가 돌아와 품삯이 담긴 봉투를 내놓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도우미한테 일당을 계산해 주고 폐지며 지저분하게 널린 종이들을 깨끗이 주워 담는다. 그동안 도우미는 풀판을 접고, 도배 솔을 씻어다 놓는다. 마무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프로정신이다. 나는 유리창과 벽시계 따위 문틀까지 세심히 살피며 풀이 묻었나. 본다.

103403호의 문은 굳게 잠겨있다. 초인종 소리가 밖에까지 선명히 들리건만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복도에서 서성이던 나는 돌아서서 걷는다. 전화 끊지 마세요! 애원하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가 쿡 찔러 오는 것 같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텐데. 신용불량자에다, 불량한 아들로 인해 이 아파트에선 상대해 주는 사람도 없다는데. 나는 아파트 앞에서 내가 사는 신림동 쪽으로 가는 버스를 두 대나 그냥 보낸다. 한 참 만에야 결심하듯 버스에 탄다. 나는 보람병원 앞에서 하차한다.

송 아주머니의 아들 박태일은 여섯 명이 같이 쓰는 일반 병실에 누워 있다. 머리 어깨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반듯한 자세로 자고 있다. 상처 딱지가 말라붙어 있는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잠깐씩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치켜드는 터진 입술 사이로 웃니 두 개가 빠져 버린 게 보인다. 훌쭉 패인 얼굴은 노인네처럼 궁상스럽지만 볼살만 조금 붙으면 요즘 말하는 꽃미남형이다. 송아 주머니의 말대로 어렸을 적엔 귀여움 꽤나 받았을 것 같다. 그러나 술과 담배 그리고 불량배 친구들과 어울려 오랜 가출 생활을 하여서 이십 대에 이미 40대 같이 보인다. 인생살이가 결코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송 아주머니 또한 불쌍해 보인다. 음식을 끊임없이 날라다 먹이는 송 아주머니는 분명 착한 사람 같았다. 아들한테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미국에 간 딸은 온다고 하고는 무슨 이유인지 돌아오지도 않고 결국 이 돈 저 돈 자식들을 위해 돈을 끌어다 댄 것이 신용불량자란 딱지가 붙어 버린 불쌍한 아주머니다. 군인이던 남편이 죽은 뒤로 강남에서 송 카페를 했다는 것을 보면 한때는 제법 세련되게 산적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송 아주머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답답하고 연민이 갔다. 옆 침대의 환자가 돌아와 링겔병을 병걸이에 걸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침대로 올라갈 수 있도록 간이의자에서 일어나 비켜준다. 그리고 복도로 나온다. 송 아주머니는 멀리 가지는 않은 듯 예의 헐렁한 가방이 침대 위에 있다. 나는 송 아주머니를 기다리기로 하고 복도에 서 있었다. 복도 저편 입퇴원 수속하는 곳에 송 아주머니가 간호사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송 아주머니한테 천천히 걸어갔다.

척추뼈는 그런대로 잘 붙고 있는데 어깨 골절은 수술을 안 하면 안 된다는데, 아직도 돈을 안 가져오면 어떡해요. 어떻게든 빨리 돈을 마련해 보세요. 시간이 급한 대 그대로 두면 체형 잡기도 힘들고 수술도 배나 힘들어져요. 박태일 씨는 보험도 들지 않았네요. 보험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간호사는 자기 할 말만 해야겠다는 듯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돈을 못 구해서 그래요. 돈이 있으면 자식이 병신 된다는데 이러고 있겠어요. 미국에서 우리 딸이 나오는데 그때 돈을 가져온다고 했어요. 진즉에 올 것인데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동안 못 나왔어요. 이젠 다 나아서 올 수 있다고 했어요. 정말예요. 난 거짓말 할 줄 몰라요. 믿어줘요! 그리고 제발 어깨 골절 수술을 해주세요. 벌써 며칠째 저렇게 잠만 자면 어떻게 해요.”

저하고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이러고 있는 시간에 돈을 구해 보세요. 의사 선생님도 예약된 환자가 많아 시간도 없어요. 돈이 안 되면 무료로 수술해 주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셔서 병원을 옮기든지 하세요.”

저는 신용불량자로 은행을 피해 살고 있어요. 무료로 해주는 병원이 어디 있어요. 제가 알아봤는데 그런 병원은 없더라고요. 제발 이런 큰 병원에서 좋은 일 하는 샘치고 나 좀 살려줘요. 자비를 베풀어 우리 아들을 살려 주세요. 그 은혜 잊지 않을게요. 간호사님! 이렇게 빌어요.”

송 아주머니는 경리직원의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는다. 나는 송 아주머니를 등지고 돌아섰다. 송 아주머니가 돌아볼까 봐 급히 복도를 빠져나왔다

이마 위로 하얀 띠를 묶고 필사적으로 책에 매달린다. 붉은색 언더라인이 무수히 쳐 있는 글자를 읽고 또 읽는다. 그러나 머릿속엔 한 글자도 입력되지 않는다. 손끝에 만져지던 송 아주머니 아들의 앙상한 어깨뼈의 감촉이 되살아난다. 그 어깨뼈가 부러져 있다. 어깨뼈가 부러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 나는 책을 덮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심호흡을 한다. 눈앞에 빨간 성경책이 펼쳐져 있다. 나는 성경책을 읽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누가 강도의 이웃이겠냐? 간호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송 아주머니와 붕대에 감겨서 침대에 누워 있는 송 아주머니의 아들이 떠오른다. 나는 성경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그들은 지금 어깨 골절 수술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있다. 끝내 수술을 못 하게 되면 송 아주머니의 아들은 불구가 된다. 신용불량자인 송 아주머니를 도와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나도 송 아주머니한테 돈을 다 빌려주어서 돈이 없다. 오히려 난 송아 주머니가 빌려 간 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자꾸 내가 죄인이라도 된 듯 마음을 졸이는가. 난 돈이 없는데요! 나는 기가 죽은 소리로 조그맣게 말한다. 보증금 오백만 원이 있지 않느냐! 뜻밖에도 우렁찬, 방안을 가득 채우는 어떤 소리가 비몽사몽간에 귓전을 때리듯 들린다. 나는 깜짝 놀란다. 나는 책더미로 가득 싸인 방안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그런데 지금 내가 들은 소리는 어디서 난 소린가. 분명 방안을 울리는 소리였는데.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시 묵상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먼저 살리는 거다. 양심의 소리는 법보다 더 위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리니까. 아버지의 훈계가 생각난다. 나는 급히 책상 서랍 가장 아래 칸에 깊숙이 넣어 둔 계약서를 꺼내어 펼쳐 본다. 보증금 오백만 원짜리 원룸 계약서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이다. 방만 빼면 현금이나 다름없다. 학교를 졸업한 후 아니 군 제대 후 지금까지 나는 돈이 필요하면 대학 입학 때 부모님께서 전세금으로 준 보증금을 조금씩 잘라 먹었다. 삼천만 원 보증금은 어느덧 오백만 원밖에 안 남았다. 나는 계약서를 점퍼 상의 속주머니에 넣고 원룸을 나선다. 늦은 저녁이지만 추리닝 차림의 어깨를 움츠린 청년들이 오고 가는 고시촌은 을씨년스럽다. 나 역시 추리닝 바지를 입고 빠른 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간다. 차도엔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횡단보도 앞에 택시가 죽 늘어 서 있다. 나는 그중 제 일 앞에 서 있는 택시를 탄다. 보람병원이요. 택시 기사는 빨강 추리닝 바지 차림의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빙그레 웃는다. 나는 왜 웃냐고 묻고 싶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묵묵히 뒷자리에 앉아있다. 만년 고시생이 빨강 추리닝 바지를 입고 공부한 뒤로 합격을 했다는 소문이 돈 뒤로 고시촌에는 빨강 추리닝 바지를 입은 사람이 심심찮게 보인다. 택시 기사도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상가마다 셔터를 내리고 있는 조용한 밤이다. 택시는 제법 쌀쌀해진 밤길을 달리고 있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서늘해진 저녁 바람을 들이마신다. 답답하던 가슴이 뚫리며 시원하다. 문득 나는 웃음을 머금는다. 내 웃는 얼굴이 나를 본다. 내 얼굴 위로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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