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이희영
덜컹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문밖으로 검은 실루엣이 열리지 않는 문고리와 씨름을 한다. 취객이다. 몇 번 저러다 돌아가겠거니 싶었는데 제법 집요하다. 문이 부서질 것 같다. 여기 화장실 아닙니다. 나는 밖을 향해 소리친다. 문고리를 잡고 흔들던 손이 멈춘다. 검은 실루엣이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여자 화장실이네. 그나마 예의 바른 취객이다. 적어도 문 앞에서 실례를 범하진 않았으니까.
일주일에 두어 번은 있는 일이다. 골목으로 쪽문을 낸 단칸방을 사람들은 종종 공중화장실로 오해한다. 바로 옆 주인집이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맥주라도 한잔 걸친 사람들이라면 가게 옆에 있는 이 알루미늄 재질의 쪽문은 영락없이 화장실로 보일 것이다. 오해하고도 남을 외관이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사람들은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기본적인 노크조차 없는 사람들까지 이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부분이 휴지를 둘둘 만 손으로 벌컥 문부터 열어젖히고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돌아선다. 죄송합니다. 화장실인 줄 알았어요. 문밖에서 이런 말이 들려올 때면 나는 문에 붙여놓은 ‘화장실 아님’이란 종이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고민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아님’의 ‘아님’까지는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성향이 있으니까. 차라리 사람들을 피하기에는 ‘화장실 아님’보다 ‘고장’이나 ‘사용 금지’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사람들에게 화장실로 오해받는 이 방은 사실 내게는 넓은 관과 같다. 빛 한 줄기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어둡고 습한 방에 누워 있으면, 마치 관 속에 들어가 땅속 깊숙이 묻혀 있는 것처럼 적막하다. 가끔은 이 방이 진짜 관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냥 이대로 눈을 감기를,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문을 열어젖히는 사람들과 나를 부르는 집주인의 목소리와 세금 고지서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이 몸뚱이 모두가 사라져버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어김없이 들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뜬다. 마치 관 뚜껑을 열듯 나는 쪽문을 열어젖힌다. 비스듬히 열린 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온다. 햇살에 실려 날아드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허리춤에 커다란 납덩이를 매달고 있는 것마냥 몸이 무겁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빈 약봉지를 만지작거린다.
이번 달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자격이 안 되십니다. 아드님이 취업을 하셨어요. 부양 의무자가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더 이상은. 압니다. 그럼요. 사정은 저희가 더 잘 알죠. 하지만 또 저희 같은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나라가 정한 기준대로 하지 않으면.
아들이 취업을 했단다. 나는 방구석에 쌓여 있는 종이들을 끌어당긴다. 얼굴을 못 보고 산 지 십 년이나 지났는데. 종이 한 장에 양면테이프를 붙이고는 또 한 장을 이어 붙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녀석의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표시된 선을 따라 몇 번을 접는다. 날카로운 통증이 손가락을 스친다. 손을 베였다. 아무런 위험도 인식하지 못하고 만진 종이에 베여서일까. 통증보다 당혹감이 앞선다. 입으로 손가락에 맺힌 피를 빨고는 다시 종이를 접는다. 몇 번 손을 재게 놀리니 쇼핑백 하나가 완성되었다. 삼십 원이다. 하루 종일 접어도 이백 장을 접지 못한다. 집주인이 방세를 올렸다. 화장실같이 쾨쾨한 쪽방도 방이라고. 나는 구석에 쌓여 있는 종이들을 본다. 과연 하루에 쇼핑백 몇 개를 접어야 방세를 내고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을 수 있을까? 오백 개. 천 개 아니면 만 개. 올겨울은 유난히 더 추울 것 같다.
보급소는 이미 사람들로 넘쳐난다. 완성된 쇼핑백을 이고 지고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게 왜 불량이야. 어디에 상처가 났다는 거야. 애걔. 겨우 요거 가지고 불량이라고 하는 거야 지금. 그냥 깔끔하게 만이천원 줘.
영민 엄마의 목소리다. 하루 만에 쇼핑백 사백 개를 접을 수 있는 여자. 하기야 이 짓도 칠 년째라 하니 수다 덜며 티브이 보며 접어도 늘 사백 개다. 나는 가지고 온 쇼핑백을 넘기고 육천원을 받는다. 쇼핑백 이백 개를 들고 온 무게가 아직도 몸 이곳저곳에 남아서일까. 손에 들린 몇 장의 지폐가 허무할 정도로 가볍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며 갈증이 난다.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정수기로 간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중이다.
-몰랐어? 미숙이 다른 부업 하잖아. 아주 짭짤한 부업.
영민 엄마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미숙이가 보이질 않는다. 손이 느리고 불량도 많아 하루에 오천 원 이상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였지만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오지랖도 넓어 보급소에서는 제법 유명 인사로 통했다. 나는 미숙이의 소식보다 영민 엄마 입에서 흘러나온 짭짤한 부업이라는 말에 귀를 세우고 대화를 엿듣는다.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 시뻘겋게 칠해진 영민 엄마의 붉은 입술을 주목한다. 종이의 날카로운 단면처럼 가늘게 찢어진 영민 엄마의 눈이 반짝하고 빛난다.
-왜 요즘 병원 안 다니세요. 통 약 지으러 안 오셔서 이사가셨나 했네요.
젊은 약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는 대답 대신 주머니 속에 꼬깃하게 접힌 여섯 장의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박카스 한 병 줘요.
약사가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이런 것 드신다고 좋아지지 않으세요. 만성 갑상선염이라는 게 운동과 식이요법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약으로 다스려야 하거든요. 이런 피로회복제야 건강한 사람들이나 한두 번 먹는 거죠.
나는 박카스 한 병을 건네받고 서둘러 약국을 빠져나온다. 그 사이 머리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다. 걷잡을 수 없는 피로와 무기력감이 오래된 각질처럼 내 몸에 달라붙어 있다. 그것들이 얼마나 단단히 옥죄고 있는지 어느덧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한 가닥 용기마저 앗아갔다. 그나마 나오던 정부보조금과 의료 혜택이 사라진 지금 나는 서서히 죽어가기를 맥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박카스 뚜껑을 연다. 혹시 그럴 수 없다면, 이렇게 맥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만 없다면……나는 들고 있던 박카스 병을 본다.
왜 있잖아 공원에 가면 할 일 없는 노인들. 그런 사람들 상대로 하는 거지 뭐. 늙은이들이 돈이 어디 있어. 그래도 한 번에 만 원씩은 받는 모양이더라고. 미숙이 그년 여기 보급소 남자들한테 눈웃음 살살 칠 때부터 내 알아봤지. 뭐 잘나가는 년들은 하루에 십만 원도 번다더군.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없이 살아도 그렇지 다 쭈그러든 늙은이들한테 세상에 가랑……영민 엄마는 여기까지 말하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몇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진저리를 쳤고 또 몇몇은 혀를 찼고 또 몇몇의 입에서는 미친년 더러운 년 같은 욕이 튀어나왔다. 나는 조용히 보급소를 나오며 생각했다. 나는 왜 저들처럼 미숙을 비웃지 못했을까. 왜 진저리도 못 치고 혀도 못 차고 욕도 내뱉지 못했을까. 그럴 여유조차 내게는 없었다. 다만 나는 미숙의 하얀 얼굴을 떠올렸다. 내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답지 않게 날씬한 그녀의 몸매를 떠올렸다. 무엇보다 보는 사람들까지 웃게 만드는 그녀의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떠올렸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것들이 아직까지 돈벌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골목 안, 불 꺼진 상가 쇼윈도에는 작고 깡마른 오십대 여자가 서 있다. 나는 멍하니 서서 여자를 본다. 퀭한 두 눈과 곧 부러질 듯 얇고 가는 두 다리.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푸석거리는 머릿결. 처진 가슴과 살집 없는 엉덩이. 참 초라하다. 나는 쇼윈도의 여자를 향해 말한다. 참 초라하다. 쇼윈도의 여자도 나를 보며 말한다. 그것은 정말로 초라한 육체들이었다. 보잘것없이 거죽만 남은 육체. 나는 손에 들린 박카스 병을 움켜잡고는 골목을 빠져나온다.
출퇴근 시간이 지난 지하철은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처럼 한산하다. 소라게가 벗어던지고 간 빈 고동껍질 같은 노인들이 드문드문 앉아 차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쬐고 있다. 저들의 권태로운 표정 속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을 찾으려 나는 자주 그들을 흘낏거린다. 그러다 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몹쓸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주 잠깐 나는 눈이 마주친 초로의 노인과 미숙을 상상한다. 머리가 저절로 도리질 쳐진다. 그러다 이내 아랫입술을 깨문다.
영민 엄마가 말한 T공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생각보다 넓은 공원에 생각보다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다. 노인들의 머리색을 닮은 비둘기들이 공원 이곳저곳에서 날 생각도 없는 듯 종종거린다. 무력감과 권태가 녀석들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에서까지 묻어나온다. 초록과 회색으로 얼룩진 공원에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작은 욕망의 불씨를 보고 날아드는 부나비들처럼 몰려든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킨다.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온다.
여자들은 어림잡아 사십대 중반부터 오십대 중반까지 다양하다. 그중에 더러는 육십이 넘은 것 같은 이도 눈에 띈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그녀들 중 미숙을 찾는다. 영민 엄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숙은 이곳에서 노인들이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나오는 열한시에서 한시 사이에 나타난다고 한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미숙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조금 힘들더라도 공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천천히 T공원을 걸었다. 공원 여기저기서 박카스와 요구르트, 캔커피 등을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있는 노인과 부나비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중 몇몇이 은근슬쩍 공원 뒷문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들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저 부나비들도 나와 같이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관 같은 작은 쪽방을 벗어남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어쩌면 죽음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곳을 탈출함이 아니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처럼 마지막 몸부림을 버둥거리다 나온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내 오른편으로 신문을 보고 있는 노인에게 훤칠한 부나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 그녀의 손에 박카스 한 병이 들려 있다. 조금 뒤 읽던 신문을 거칠게 접으며 노인이 중얼거린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것만으로 화가 덜 풀렸는지 부나비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내가 이래봬도 초등학교 교감까지 한 사람이야. 소리치며 돌아선다. 몇몇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지만 잠시뿐이다. 늘 겪는 일처럼 무감각한 표정들이다. 나도 그들에게서 돌아선다.
-생각 없음 말 것이지 어디다가 감히 삿대질이야 삿대질은. 거참 재수 없는 영감탱이네.
익숙한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린다. 조금 전 노인을 향해 새실거리던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보고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부나비 한 마리가 앉은 자리에 침을 뱉으며 일어난다.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만큼이나 요란한 화장을 한 미숙이었다.
공원 뒷문으로 연결된 곳은 탁 트인 정문 앞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세상이다. 허름한 여관과 밥과 술을 파는 식당들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마냥 좁은 골목들을 마주 보며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정오가 되기 전인데도 식당에는 불콰하게 술이 오른 노인과 늘 그렇듯 그들과 공생하는 부나비들이 앉아 있다. 반쯤 열린 식당 안에서 쇠스랑을 닮은 거칠고 마른 손이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한 반지를 끼고 있는 두툼한 손을 주물거린다. 식당 주인은 하품을 하며 그들 앞에 순대 한 접시를 내려놓고는 돌아선다. 나는 미숙의 뒤를 바삐 쫓아가면서도 식당 속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몸이 지치고 피곤해서일까. 좁은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마치 티브이 화면 속의 만들어진 인물들처럼 현실감이 없다.
-들어와.
앞서 걷던 미숙이 돌아서며 말한다. 나는 흠칫거리며 그녀가 들어간 식당으로 종종걸음 친다. 뒤따라 들어간 내가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미숙은 순댓국 두 그릇을 주문한다. 잔치국수 삼천 원, 콩나물국밥 삼천 원, 비빔밥 삼천오백 원, 해장라면 천오백 원, 순댓국 사천 원, 불고기 정식 사천오백 원. 나는 괜스레 벽에 붙은 메뉴를 읽는다. 미숙이 누런 플라스틱 접시에 나온 깍두기를 입에 넣고 우적거린다. 나는 차마 그녀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내가 돌아서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것은 반가움도 당혹감도 아닌 당신이 지금 왜 여기에 있냐는 참으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닌 진짜 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 미숙의 눈은 싸늘하게 변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화장기 짙은 얼굴처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눈빛이었다.
미숙은 아무 말 없이 깍두기만 우적거리고 있다. 손님이 없어 텅 빈 가게에는 그녀의 깍두기 씹는 소리만 요란하다. 접시에 나온 커다란 깍두기가 모두 없어질 때쯤 노릿한 냄새의 순댓국 두 그릇이 나온다.
-이모, 여기 청양고추 다진 것 좀 줘봐요.
주인이 다진 청양고추를 내오자 미숙이 제 그릇에 쏟아 붓고는 한입 크게 떠 넣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오직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미숙이 열심히 씹어 삼키는 것이 나에 대한 분노인지 당혹감인지 알 수 없어 초조하다.
-언니는 이런 일 못해. 뭐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리고 이 일처럼……
-어렵게 여기 왔어.
내가 미숙의 말허리를 자른다. 미숙이 나를 본다. 이번만큼은 그녀의 싸늘한 얼굴을 피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
-꼭 해야 돼.
내 말에 미숙이 다시 고개를 숙여 순댓국을 먹는다. 그녀는 입이 미어지게 밥을 밀어넣는다. 씨발 더럽게 맵네. 미숙이 순댓국을 입에 물고 중얼거린다.
-촌구석에서 땅 파먹고 사는 게 지겨워 중학교도 졸업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어. 기술도 가르쳐주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들어간 곳이 미아리지 뭐야. 그 인간들이 가르쳐준다는 기술이 그 기술인지 누가 알았겠어. 그곳에 빚이다 뭐다 이십 년 넘게 굴러먹었는데 십 년 전쯤인가 나라에서 성매매 특별법인가 뭔가를 내놓았잖아. 결국 그 바닥에서도 빌붙지 못하고 여기저기 시골로 떠돌아다녔지. 그러다 속초까지 굴러들어갔는데 거기서 영감 하나를 만났거든. 나이 차이야 많이 났지만 그래도 그 영감 제법 살갑게 나한테 참 잘했어. 나도 떠돌이 인생 신물도 나고, 에라 모르겠다, 그 집에 들어가 살았지. 그 바람에 명절에도 한번 내려오지 않던 자식들이 득달같이 달려오더라고. 자식이래 봤자 뭐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데. 큰아들이 아버지랑 살림을 차리든 뭐하든 상관없는데 딱 두 가지만 명심하라는 거야. 혼인신고 생각하지 말고. 애도 가지지 말라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애는 가지고 싶어도 못 가져. 한두 번 긁어냈어야 말이지. 그 말에 영감이 더 펄펄 뛰는 거라. 더 이상 시끄러운 것도 싫고 혼인신고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어서 내가 오히려 영감을 말렸어. 그냥 다른 여자들처럼 아침에 영감 밥해주고 산책도 하고 시내 나가서 영화도 보고 그렇게 지내니까 좋더라고. 그런데 내 팔자가 또 오죽 더러워야 말이지. 그렇게 정정하던 영감이 혈압으로 삼 년 만에 죽었어. 할 수 없지 뭐. 영감 없으면 내 신세야 끈 떨어진 연이잖아. 자식들이 영감이 가지고 있던 집과 전답 몽땅 팔아 십 원 한 장까지 탈탈 털어 가더라. 뭐 그런 건 상관없었어. 단지 영감 모셔놓은 절을 끝까지 말 안 해준 게 괘씸했지. 그 뒤로 세상 더럽고 치사해서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식당 일이며 청소부며 안한 게 없었는데, 세상이 더럽고 치사한 줄만 알았더니 참 무섭기도 하데. 내가 그곳 출신이라는 게 이마에 쓰여 있는지, 내 몸에서는 그곳 냄새가 나는지, 사장이란 놈들한테 몹쓸 짓도 여러 번 당했어. 그 바람에 툭하면 여주인들한테 머리채 잡혀서 개처럼 질질 끌려 나오기 일쑤였고. 그런 상황에서 월급인들 제대로 챙겨주겠어. 한 달 내내 일하고 몹쓸 짓까지 당해도 매 맞고 나오기 다반사지. 법은 무슨 법이야. 주민등록도 말소된 지 옛날이라 나 같은 년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데. 여기저기 쪽방촌 전전하며 연고지 하나 없으니 지금 당장 누가 죽여 땅에 묻어도 몰라. 결국 이런저런 잡스러운 것 다 해보다 어쩔 수 없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이 바닥으로 굴러왔네. 언니, 그거 알아?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더라고.
순댓국 속 밥이 퉁퉁 불을 때쯤 미숙은 이렇게 말하고는 허허거렸다. 그녀의 웃음이 초겨울 바람처럼 서늘하다.
-방이야 방, 이제 아무도 살 수 없는 방. 그 방에 혹시 뭐가 있나 그냥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잠깐씩 기웃거릴 뿐이야. 이제 먼지 쌓일 대로 쌓인 빈방에 잠깐 누가 흘낏거린다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잖아. 안 그래?
미숙이 불어터진 순댓국을 먹는다. 붉게 칠한 루주가 번져 있다. 루주가 벗겨진 입술이 유난히 조글조글하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 알았지?
미숙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옷장 서랍 속에서 낡은 종이 상자 하나를 꺼낸다. 상자에는 몇 년 전 화장품 모델로 인기를 얻었던 중년 여배우가 누렇게 퇴색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자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색조 화장품들이 굴러다닌다. 나는 하나하나 그것들을 열어본다. 조각조작 깨져버린 콤팩트, 반쯤 쓰다 만 루주, 보라색과 파란색만 남은 아이쉐도우, 이미 굳어버려 뚜껑조차 열리지 않는 마스카라.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콤팩트를 뒤집어 뒷면에 새겨진 화장품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역시나 유통기한은 산 년이나 지나 있다. 순간 기한이 지난 것이 어디 화장품뿐이겠는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안 그래도 비구름 잔뜩 낀 하늘처럼 매일이 우중충한 삶들인데 우리라도 화사하게 밝혀줘야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미숙은 붉은색 루주를 덧바르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들이 관연 다홍치마가 될지 의문스러우면서도 나는 오래된 색조 화장품을 방 한구석 스킨과 로션이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꺼내놓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빈 상자 속을 들여다본다. 상자에는 빛바랜 봉투 한 장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사실 상자를 열 때부터 화장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봉투였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알기에 애써 외면했다. 그냥 뚜껑을 덮으려다 잠시 봉투를 바라본다. 그 안에 납작하게 짓눌려 있는 사진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들을 봉투 속에서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사진 속에는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두 다리를 잃기 전의 남편이 있다. 술을 마시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땀내에 전 군고구마를 건네던 남편이다. 그가 기분 좋을 정도로만 술을 마실 줄 알았던 그때에는 나의 아이도 골목길에 어슬렁거리는 누렁이가 무서워 곧잘 내 뒤에 숨곤 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부턴가 동네 떠돌이 개들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또래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할 때쯤 남편은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다. 회사로부터 받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적었던 보상금은 그렇게 방바닥 여기저기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부서져갔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그 울분을 표현할 방법도 하소연할 방법도 들어줄 이도 없었다. 그렇게 하나였던 우리의 삶은 각자 남편과 나와 아이의 삶으로 조각나 흩어지기 시작했다. 삶을 다시 이어 붙이기에는 너무 잘게 부서져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남편은 빛바랜 봉투보다 더 누런색의 얼굴이 되어 죽어갔다. 그리고 아이는 흑백사진처럼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며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진을 정리해 다시 봉투에 집어넣고는 상자를 닫는다. 상자를 한쪽으로 치워놓고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비스듬히 세워놓은 거울 앞에 앉는다. 거울을 보며 손에 들린, 쓰다 만 루주를 입술에 발라본다. 모든 것이 무채색인 세상에 내 주홍빛 입술만 어색하게 허공에 떠 있다. 방이야 방, 이제 아무도 살 수 없는 방. 그 방에 혹시 뭐가 있나 그냥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잠깐씩 기웃거릴 뿐이야. 이제 먼지 쌓일 대로 쌓인 빈방에 잠깐 누가 흘낏거린다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더라고.
거울 속의 여자가 어색하게 양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는다. 허공에 뜬 주홍색 입술이 옆으로 길게 찢어져 거울 속 여자의 모습이 사뭇 괴기하기까지 하다. 눈을 들어 천장을 본다. 입술만 떠다니던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대신 천장 구석에 거뭇거뭇하게 피어나는 곰팡이들이 보인다. 순간 덜커덩하며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놀란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린다. 몇 번 문고리를 흔들던 사람이 화장실 아닌가, 라며 돌아선다. 나는 다시 거울을 본다.
-이 방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방인데 누가 기웃거리든 이제 와 무슨 상관이야.
거울 속 여자가 말한다. 씽긋 양 입꼬리가 다시 말려 올라간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노인들의 옷차림이다. 점퍼 소매와 목 부분이 많이 해지거나 닳지는 않았는지 얼룩이나 보풀이 심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자세히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입고 있는 옷차림이 깔끔하고 단정하다는 것은 아직 아내와 자식들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적게나마 외출할 때 만 원짜리 한두 장 정도는 얄팍한 지갑 속에 넣어가지고 나온다는 뜻이다. 이렇게 깔끔하게 외출을 한 노인들 중에 유독 신문과 책을 보며 혼자 공원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할비꽃들을 부나비들은 선호한다. 물론 이런 할비꽃들 중에도 진심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온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이 신문과 책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여자들을 기다린다. 덕분에 T공원에서 활동하는 부나비들 중에는 아예 단골 고객을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거래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일단 이런 노인을 발견하면 부나비들은 비록 낡고 상처투성이인 날개일망정 한껏 펼치며 그들에게 접근한다. 이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을 향한 노인들의 멸시와 냉대, 노골적인 가격 흥정 따위가 아닌, 그들의 예상치 못한 이야기 본능이다. 이제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하는 본능은, 이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 자신들의 성욕을 낯선 여자를 통해 확인하는 것만큼 간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낯선 여자에게 이야기를 한다. 가끔은 부나비들과 하는 연애(?)보다 더 간절하게 그녀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노인들도 있다.
나는 싫어. 차라리 내 위에서 조금 용쓰다 내려오는 사람이 낫지 괜히 그런 노인들 보면 쓸데없는 생각이 나서 싫어. 미숙은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여관을 가기 전 필히 가격을 흥정하고 돈부터 받는 것이다. 가끔 이런 성매매가 불법인 것을 미끼로 돈 대신 욕과 협박, 심하게는 폭력을 화대로 돌려주는 노인도 있다. 미숙은 그런 사람들을 벼룩의 간을 빼서 회를 쳐먹는 인간들이라며 치를 떨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허공에 동동 떠 있는 두 발을 내려다본다. 옆에 앉은 미숙이 슬쩍 내 어깨를 건드린다. 나는 고개를 들어 미숙을 본다. 미숙은 못 믿겠지, 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가끔은 남의 집 문을 벌컥 열고서는 왜 화장실이 아니냐며, 뭐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냐며 되레 화를 내는 인간도 있으니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발끝을 본다. 해진 운동화 끈이 조금만 힘주어 묶어도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꼭 돈은 먼저 받을 것. 나는 운동화 끈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내가 아끼던 물건 중에 제주도 돌하르방이 있어. 처음 미아리에서 일 당했을 때 포주가 나한테 던져준 건데, 그때 이런 말을 했어. 넌 이제부터 이 돌하르방처럼 살아야 해. 감정 눈물 원망 모두 이 돌인형처럼 딱딱하게 만들어라. 살아보니 그 말뜻을 참 잘 알겠더라. 평범한 년들처럼 살지 못할 바에는 평범한 년들이 하는 생각은 다 없애버려야 그나마 내가 살겠더라고.
여기까지 말한 미숙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바삐 걸어 나갔다. 나의 시선도 분주하게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녀가 잰걸음으로 걸어간 맞은편 벤치에는 이미 팔십도 훌쩍 넘어 검버섯이 뒤덮인 얼굴에 거동조차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 앉아 있다. 설마 하는 마음이 앞서면서도 나는 미숙을 주목한다. 노인은 귀까지 먹었는지 그의 귀에 대고 소리지르는 미숙의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전해온다.
-할아버지, 날씨가 쌀쌀해. 며느리한테 옷 좀더 두꺼운 거 입혀달라고 해. 두꺼운 거 따듯한 거 말이야. 밥은 먹었어? 며느리가 아침밥 줬냐고. 안 줬어? 할아버지, 며느리 내가 혼내줄까? 그건 또 싫어.
미숙이 노인을 향해 깔깔거리며 제 가방에서 박카스 한 병과 빵을 꺼낸다.
-할아버지, 이거 먹어. 내가 내일 헌옷 수거함에서 할아버지기 것 좀 뒤져 올게. 아니 뒈지긴 누가 뒈져. 그게 아니고 내가 주워 온다고. 할아버지 옷. 여기 계셔. 볕이 따뜻해. 어디 가긴, 나도 먹고살아야지. 일하러 가야지, 일.
미숙은 이렇게 말하며 다시 내게로 왔다. 노인을 향해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아침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나오는 노인네야. 불쌍하게시리. 영감이 죽지 않았다면 저 나이 정도 됐을 텐데.
미숙이 풀썩 내 옆에 앉으며 말한다. 그녀의 눈은 맞은편 노인이 아닌 더 먼 곳을 향해 있다.
-지금도 가지고 있어? 그 돌하르방.
내 질문에 미숙이 피식 웃는다.
-옛날에 버렸어, 영감이.
미숙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린다. 그렇게 혼자 웃던 그녀의 눈빛이 잘 벼린 칼처럼 반짝거리며 공원 정문을 향한다. 나는 미숙이 턱으로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저만치서 밤색의 중절모를 쓴 노인이 걸어온다.
-난 십 분 뒤에 영감 하나랑 약속 잡혀 있어.
이렇게 말하며 나를 보는 미숙의 얼굴이 나보다 더 긴장되어 있다. 그녀가 양미간을 구긴다. 시작하려면 빨리 서두르라는 이야기다. 나는 미숙이 건네준 박카스 한 병을 두 손으로 움켜쥔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뿌옇게 흐린 시야 속으로 밤색의 중절모가 둥둥 허공에 떠다닌다. 할 발자국 두 발자국 허공에 떠다니는 밤색 중절모를 향해 걸어간다. 순간 웅성거렸던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 나뭇잎을 뒤흔들던 바람 소리, 푸드덕거리던 비둘기 소리, 차 소리, 발자국 소리, 지금껏 내 주위를 맴돌고 있던 이 모든 소리들이 사라진다. 다만 덜커덩 덜커덩, 내 방문을 열기 위해 누군가 문을 잡고 흔드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따라 나는 밤색의 중절모 앞에 서 있다.
쪽문 앞에 누군가 서성이다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든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니 주인집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웬일로 집을 하루 종일 비워뒀어요.
주인집 여자가 웃으며 말한다. 웃을 때마다 코 옆에 붙은 점도 함께 씰룩거린다.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보낸다. 누구나 그럴 날이 있을 것이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날들 중에 유독 어느 하루가 유난히 길게만 느껴지는 날. 오늘 하루는 내 인생에 손꼽을 만큼 길었던 바로 그 하루였다.
지친 내 표정을 힐끗거리면서도 주인집 여자는 쪽문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웃음기 사라진 표정이 사뭇 진지해 여자는 마치 쪽문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 같다. 비스듬히 경사진 골목길에 서 있는 여자를 나는 올려다본다. 여자가 혀로 아랫입술을 적시며 뜸을 들인다.
-무슨 일 때문에.
여자가 나를 찾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먼저 운을 뗀다. 여자가 반가워하는 눈빛으로 입을 연다.
-방세 올린다는 얘기 후에 별 말씀이 없으셔서 계속 이곳에 계실지 아니면, 그러니까 저희도 혹시 방을 옮기신다면 미리미리 방도 내놔야 하고, 형편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쪽방이라고 해도 요즘 같은 때에 그 정도 가격에 방을 준다는 것은……
-올려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삼만 원을 움켜쥔다. 주인집 여자가 반색을 한다.
가끔 며늘애랑 아들이 잠자리를 할 때면 며늘아기의 교성이 얼마나 큰지 내 방까지 다 들리는 거야. 처음에는 애들이 실수를 하는구나 싶었어. 그런데 며늘아기의 교성이 날이면 날마다 더 커지는 거야. 아예 아들 녀석도 합세를 해서 아주 요란하더라고. 다음 날이면 내가 민망해서 며늘아기의 얼굴을 못 보겠어. 그러다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것들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구나. 저것들에게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겠구나.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노인은 축 처진 내 가슴을 주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거친 나무뿌리가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물소리가 들렸다. 죽은 줄만 알았던 늙은 고목 깊은 곳에 흐르는 물소리였다.
나는 웃으며 돌아서는 주인집 여자를 불러 세운다.
-문 좀 바꿔 달아주시면 안 될까요? 사람들이 자꾸……
내가 알루미늄으로 된 쪽문을 보며 말하자 여자의 미간이 금세 구겨진다.
-우리가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안 돼요. 가게 장사도 예전만 못하고 오죽하면 방세를 다 올리겠어요. 이해 좀 해 줘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급한 걸음으로 사라진다. 문 앞에 붙여두었던 ‘화장실 아님’의 ‘아님’이 검은색 매직으로 지워져 있다. 동네 꼬마들의 장난일 것이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박 노인이 벨트를 풀었다. 흘러내린 바지 위로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하체가 드러난다.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노인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부끄러운 듯 긴장한 듯 처음인 듯, 그 모습이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불안해 보인다. 그의 낡은 팬티 위로 언제 감금되었는지 모를 욕망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긴장하던 노인의 얼굴에 불현듯 안도의 빛이 지나간다. 어쩌면 이 순간 노인의 모든 쾌락은 이미 끝난 것과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아직 완전히 꺼져버리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는 이 순간, 입으로 호흡을 하고 코로 향기를 맡고 눈으로 세상을 보듯 제 안에 남은 뜨거움 역시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조용히 꿈틀대며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는 이 순간, 노인의 푹 파인 두 볼이 경미하게 씰룩거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관방을 훑어본다. 칠이 벗겨지고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서랍장 위에는 오래된 티브이 한 대가 놓여 있다. 그 옆으로 누구의 것인지 몇 명의 것인지 모를 머리카락들이 잔뜩 엉켜 잇는 빗과 싸구려 스킨로션, 원래의 색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색이 바랜 벽지, 그곳에 걸려 있는 거울은 한쪽이 깨져 있어 투명 테이프로 조잡하게 붙여놨다. 박 노인이 방 한구석에 개어놓은 이불을 편다. 색이 변색된 이불에서는 박 노인처럼 쾨쾨한 냄새가 난다. 이 방에는 박 노인만큼이나 오래된 물건들과 나처럼 병들고 깨지고 바랜 물건들이 넘쳐난다. 나는 이 방에 올 때마다 꼭 내 안에 들어오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든다.
박 노인이 내 손을 끌어다 이불 위에 눕힌다. 비둘기의 다리처럼 날카롭고 가는 손이 치마 속을 파고든다. 아무도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시 힐끗거리다 사라질 것이다. 차갑고 오래되고 먼지 쌓인 방, 쓸쓸하고 눅눅하고 지치고 소외되고 그러다 흔적도 없이 곧 사라질 방. 그 안으로 박 노인이 들어온다.
-자네는 보기보다 참 따뜻하구먼. 밖은 참 추운데 말이야. 이제야 살 것 같아.
박 노인이 내 방에 들어와 따뜻하게 몸을 녹인다. 나는 박 노인을 품에 안으며 문득 쪽문에 붙일 글귀를 생각한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나는 박 노인을 힘껏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