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익조와 대숲
김동민
“젊은이는 보기 드물게 짝짝이 눈을 가졌군. 사람 많이 대하기로 말하면 상대할 사람 없는 내가, 여지껏 보아온 세상 누구보다도 말이지. 어렸을 때 친구들한테서 놀림도 꽤 받았을걸? 그러나 젊은이에게 그건 정말 다행한 일이야. 몸과 입과 마음의 3업(業)으로 저지른 죄업을 비켜가게 하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팔자도 고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만약 젊은이가 지금같이 짝눈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젊은이도……”
* * *
내 눈은 아까부터 형 부부의 침상을 과녁 삼아 크게 열려간다. 그들은 지금 병실 문을 들어서면 왼켠, 작은 세면대가 붙은 벽 쪽에 놓인 좁은 침상에 같이 누워 있다. 그것은 의사나 간호사가 보면 땅불이 떨어질 일이다. 어쨌거나 형은 송장 자세로 반듯이 누웠고, 형수는 등을 돌린 채 흰 벽면을 향해 모로 누웠다. 그런 그림으로 부부는 모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칠 뿐이다.
나는 아침나절에 퇴원한 도자기상(商) 사내가 쓰던 침상에 딸린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처음부터 두 사람이 하는 짓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미이라가 막 움직이듯 형이 몸을 사부작사부작 하더니 끄응, 하는 억눌린 듯한 신음을 내며 옆으로 돌아눕는다. 형수처럼 오른쪽 옆구리가 아래로 오도록 해서 벽을, 벽보다 가까운 형수의 등을 보도록 몸자세를 바꾼 거다. 형의 코털 삐죽이 자라나온 들창코에, 형수의 머릿결에 바른 싸구려 향수가 고스란히 흡입될 정도로. 그리고 나서 3, 4초나 지났을까. 형의 왼팔이 슬그머니 형수의 몸 위로 올려진다. 형수는 곯아떨어졌는가 꿈쩍도 않는다. 형의 들린 팔이 잽싸게 형수의 가슴 쪽으로 떨구어진다. 내 목젖이 꼴깍 침을 넘긴다. 그 파리하니 핏기 없는 왼손이 형수의 가슴 위에서 사마귀 앞발 놀리듯 한다.
저편 창가 선반에 얹힌 14인치 텔레비전에만 시선을 붙박고 있는 여자들(거기는 남자 병실이어서 그런지 보호자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형의 팔은 눈에 띄게 큰 진동폭을 그려간다. 그러자 마침내 그때까지 기척 없던 형수가 몸을 움찔하더니 자기 왼손으로 형의 왼팔을 떼어놓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야윈 손길. 두 번째 거부하는 형수의 뭉텅한 손끝에 천박한 매니큐어가 묻혀 있다. 형은 미조술(美爪術)에 능란한 여자와 동거할 수는 없었을까. 소리 없는 실랑이가 거기 벽 쪽에서 계속 벌어진다. 푸른 줄무늬의 환자복 하의에 감싸인 형의 왼다리는, 어느 틈엔지 형수의 아랫도리를 청머루 줄기처럼 휘감고 있다. 공기가 약간 달라지는 성싶다. 어쩌다 한 번씩 전신을 떠는 형수의 움직임이 형의 그것보다 더 크다. 문득 형이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같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킨다. 학질모기는 그의 몸속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모기과 아노펠레스속(屬)의 모기의 총칭. 날개에 흑백 반문이 있고, 유충은 호흡관이 없음. 수면에 평행하게 떠다니며 정지할 때는 머리를 숙이고 몸의 뒤를 올림. 이상. 거미에게 체액을 다 빨리고 난 모기의 허연 몸피 속에 들어가 있는 형. 약간 치켜 올려져 무섭게 들썩이는 엉덩짝. 순간, 형수의 손이 날쌘 독수리 발톱같이 등 뒤쪽으로 뻗더니 형의 허리께를 콱 붙든다. 그렇지만 더욱 출렁이는 형의 살. 나는 깊은 노염처럼 섧은 황혼처럼 깨닫는다. 그들 부부를 잇는 동물적인 끈에 대해서.
그러나 다음에 일어난 일만 아니어도 내 마음은 한결 밝았을 게다. 부부의 끈은 튼실함을 확인했기에. 그런데 그들의 신은 참 얄궂은 구석이 있다. 그렇게 누운 채로도 그곳 뇌수술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6인 병신 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수작을 부리던 형수 쪽이 그만 침상 밑으로 굴러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보나 마나 형의 몸이 지나치게 형수 자리로 기울어진 게 틀림없다. 콰당! 하는 소리는 상식 이상으로 크게 울리고 만다. 한순간 모든 눈들이, 짝재기가 아닌 눈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린다. 허겁지겁 침상 아래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형수의 낯빛이 하냥 새빨갛다. 킥킥. 바로 옆, 그러니까 가운데 침상에 올라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오십 대 여자가 기묘한 웃음소리를 배앝는다. 그녀도 뒤통수에 눈이 달린 듯 보고 있었던 걸까. 형수의 안색이 활활 타오른다 싶어지는 찰나, 그 입에서 벼락처럼 튀어나오는 소리. ‘이 화상이 벼엉신 주제에!’ 나는 잠시 멍해진다. 그럼 자긴 병신이 아니라서 지금껏 일심동체 완만하게 맞서고 있었던가. 대꾸 한마디 못 하고 온몸을 옹송그리는 형의 짧은 머리는 바로 수음 도중 들킨 중학생이다. 형수의 입에서 또 무슨 악담이 터져 나올까 마음을 졸이는데, 불의의 참견자가 끼어든 건 그 순간이다. ‘이 또라이들잇! 잠 좀 자자,제발. 응?’ 그 외침의 진원지는 형의 침상 맞은편 침상이다. 나는 소리의 임자와 한바탕하기 위해 일어나 앉으려는 형의 몸으로 돌진해서 가까스로 드러눕힌다. 쇠다리가 부서져 내릴 듯 함부로 흔들리는 침상. 물컹, 문득 손끝에 잡히는 형의 다리살. 그러나…… 한쪽뿐이다. 그래, 형은 한쪽 날갯죽지를 찢기운 새, 그렇지만 몇천 리를 날아가야 할 후조였다.
비익조(比翼鳥) 짝짓기.
저 전설 속의 새 이야기, 그보다 더 전설적인 그날의 이야기들. 운동장 남쪽 끄트머리, 서쪽으로부터 완만하게 흘러내린 산자락에 구 생활관 건물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스무 개쯤 되는 나선형 계단을 다 올라선 곳이다. 평소 흉가처럼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곳. 하지만 봄이면 연지 곤지 복숭아꽃과 샛노란 개나리더미가 그토록 샘나게 어우러져 핀 광경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꽃덤불이 방호벽처럼 폐관(閉館)을 둘러쌌다. 그래서 밖에선 건물을 잘 볼 수가 없었다. 해도 꽃무리 새로 얼핏얼핏 내비치는 그것은, 세상 어떤 대부호의 별장도 무색하리만치 근사했다. 별천지의 표본, 신세계의 분양 모델인 듯싶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벌어지는 참으로 별난 일들―우애 결혼(?)의 실습.
“그건 말이지. 이성끼리 서로의 우애를 기초로 하여, 결혼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피임과 이혼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시험적으로 같이 살아보는 결혼을 뜻하는 거야.”
형은 그 우애결혼이란 것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았었다. 결코 먼 지난 세월도 아니었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그 생활관은 교내 모든 건물 가운데 꽃이었다. 생활 예절이며 청소년기의 성(性)교육, 사회인의 소양을 담은 슬라이드 상영, 전통 관혼상제의 예법지도, 그리고 입소생들이 제일로 기다리는 서양 음식 먹는 법 등, 그곳은 참교육의 산실이었다 했다.
그러나 학교 재단이 숙부의 손에 넘어가던 그해를 원년으로, 서서히 불어닥친 농어촌 학생의 감소 바람과 함께, 고조부가 창립했던 학교는 학급수가 줄어들면서 학생과 선생님이 같이 감원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판국인지라 사치스런(?) 생활관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예기된 결과였다. 화려했던 생활관의 옷은 점차 누더기로 변해갔다. 생활관 주변의 남새밭은 묵정밭이 됐고 곳곳에 잡초가 무섭게 번식했다. 유리창이 함부로 깨어졌고 창틀은 엿가락처럼 늘어졌으며, 샤시 문짝은 크게 망가져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저 혼자 열렸다 닫혔다 비명을 울려댔다. 이제 밝은 시간에도 그곳은 으시시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잖아도 선생님들이 계시는 교무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나가앉은 생활관은 문제아들의 아지트로 전락되어 갔다.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담배 꼬바리가 산이 되었다. 원래 생활관은 교실 삼분지 이 크기의 강의실(지난날 모든 교육은 주로 거기서 이뤄졌다고 들었다.),그리고 부엌이 딸린 작은 온돌방 하나, 이렇게 설계되었다. 한 가구는 아쉬운 대로 살림을 꾸릴 만했던 것이다. 실제로 생활관이 한창 잘 나가던 당시엔, 육손이 용원 박씨와 그의 절름발이 아내가 기거하기도 했었다. 남새밭에선 그들 부부가 자식처럼 기르는 삽살이가 오줌을 갈기기도 했다던가.
우리의 『피카레스크 소설』은 그곳에서 씌어졌다. 그랬다. 우리는 악한들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악한의 생활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창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형은 우리에게, 황금의 칼을 뽑아 산과 강을 깡그리 베어버릴 힘을 과시해 보일 수도 있는 존재로 떠올라 있었다. 그 형은 우리를 향해 기성 도덕의 근본 전제가 돼 있는 가치 윤리 자체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발언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내뱉었다. 우리는 예전에 니체라는 인간이 있었음을 비로서 알았으며, 하루가 다르게 무도덕주의 신봉자로 변해갔다. 그런가 하면, 형의 가공할 지식은 종횡무진, 자기가 필요하다 싶으면,서양 철학사에서 또 금세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익조 짝짓기』였다.
“새 가운데 비익조라는 새가 있다.”
형은 졸참나무 가지 같은 두 팔을 양옆으로 쫙 벌려, 흡사 새가 날갯짓하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 보이며 계속했다.
“그 새는 참으로 희귀조에 속하지. 암컷이나 수컷이 다같이 눈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다는 거야.”
그러자 자해로 해서 손가락이 하나 없는 구광서란 아이가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나는데요?”
형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피어났다. 입언저리에 울룩줄룩 매미 몸피 같은 주름이 꼭 노인네 같았다. 형은 돌연 탐욕스런 늙은이의 음침한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말했다.
“다아 나는 수가 있지. 어떻게 하냐 하면 말야.”
형은 일부러 긴 뜸을 들인 후에 말끝을 이었다.
“암수가 서로 짝을 짓는 거야, 짝을. 그래, 서로 짝을 지어서 비상하는 거라구. 하늘 끝까지도……”
실기를 위한 이론 교육은 끝났다. 우리는 몹시 흥분한 빛을 띠는 형에게서 그것을 읽었다. 우리는 서부 영화에 나오는 못된 갱들같이 킬킬대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의 운명신은 구광서와 맹우천, 그리고 정세숙과 김소은, 이렇게 넷을 지명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남자애들의 얼굴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여자애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결코 비켜날 수 없는 거였다. 나는 나를 지적하지 않은 형이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이 나를 짝눈이라고 놀려먹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형의 치적(治績)이었다. 내가 형의 친동생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형은 모를 것이다.
“방문을 열엇!”
형은 내 머리에 대고 짧게 명했다. 나는 강의실 벽멸 한쪽에 붙은 문짝을 열어젖혔다. 작은 온돌방 하나가 냉냉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은 소액자 한 개도 걸려 있지 않은 텅 빈 공간뿐이었다. 오직 계절에 걸맞잖은 을씨년스런 공기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때 낀 분홍빛 장판과 떨어진 쥐색 도배지 때문이었을까. 이윽고 그날의 두 쌍은 빨려들 듯 온돌방으로 들어갔다. 때를 같이 하여 나머지 아이들은 방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새가 날아 도망칠 구멍을 막아서듯. 그리고는 단체 사진을 찍듯 두 줄을 만들어, 앞줄은 그대로 쭈그려 앉고 뒷줄을 섰다. 형은 뒷줄 중앙에 위치했다. 거긴 방안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였다. 드디어 형이 안쪽을 향해 최면술사처럼 말했다.
“자, 내 이야기 명심해 들어. 너희들 넷은 지금부터 학생이 아니야. 아니, 사람이 아냐. 비익조야. 비익조란 말야. 새는 옷을 입지 않아. 내 말 알아들었어?”
온돌방은 옛날 감옥 안 망나니가 있던 집,새끼장 같았다. 문에 새끼를 쳐놓고 마음대로 못 나가게 하던 새끼장.
급기야 안의 아이들은, 띠나 억새 등의 껍질을 벗긴 가는 새꽤기처럼 되었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몽유병자와도 같은 모습들이었다. 거기 들어서기 전과는 판이한 태도들이었다. 무대 뒤편에서 끈을 연결해 조종하도록 만들어진 탈인형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야릇한 분위기에 철저히 압도당한 듯 초점이 흐릿한 눈빛은 내 짝눈보다 몇 배 흉했다. 아, 말새끼가 일어서고 걷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도, 태어나서 어미가 핥아만 주면 이내 몸을 움직임과 같은 이치일까. 나는 사람이 어쩜 그렇게도 비익조처럼 짝을 잘 지을 수가 있는지 눈물이 날만치 감탄했다.
도둑 합례. 나는 불꾸러미처럼 활활 타들어 갔다. 폭탄주에 만취된 듯했다. 그리하여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 거꾸로 보이는,소위 도식병(倒植病)을 앓기 시작했다. 먼 산에 끼는 바람꽃이 바에도 온통 뽀얗게 피었다.
아아아, 그것은 만화경(萬華鏡)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하루는 선생님이 우리더러 원통과 유리 등을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준비해 와서 선생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따라 해보았다. 우선 원통 속에 여러 가지로 물들인 유리 조각을 장치하고, 또 사각형의 유리판을 세모지게 짠 것을 넣었다. 그런 다음 통 끝의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았는데, 오, 거기엔 온갖 형상의 신기한 그림들이 대칭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날의 우리는 얼마나 맑은 눈동자의 천사들이었던가. 졸졸졸 흐르는 샘물 같은 노래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좋은 묘목이 깡그리 시들은 공지(空地)에 억지로 심은, 형편없는 병든 몹쓸 묘목들로 변해 있었다. 눈과 날개가 하나씩뿐인 비익조가 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주제에 건강한 새들처럼 날아 보겠다고…… 어쨌거나 나는 믿게 되었다. 형은 자기 표현 같이〈반달리즘〉 신봉자임에 틀림이 없다고. 모든 기존의 예술이나 문화를 파괴하는 자. 그리고 그는 너무나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우리는 꿩이나 토끼처럼 그의 망녕 그물에 걸려 사지를 바둥거릴 뿐이었다.
비익조들의 짝짓기는 끝을 보이지 않았다. 역본설(力本說). 나는 끝내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아한 자태로 비상하는 비익조를. 비익조의 소원풀이를. 나는 어느새 비익조였다. 몸도 마음도 둥둥 떠다녔다. 아, 비익조의 향연! 철저한 짝짓기……
63병동 14호실 벽시계는 항상 팔 분 늦게 간다. 더 이상 더뎌지지도 않는다. 저 시계는 왜 팔 분만 고수하나. 꼭 팔푼이 누구처럼. 망가지려면 팍삭 망가지지. 그러면 새 시계로 교체해 줄지도 모르는데. 그때 창문가 오른편 침상 보호자가 수건을 챙겨들고 이쪽 세면대로 오는 바람에 내 상념은 절단 난다. 마흔너댓으로 추정되는, 굵은 선의 미인형 여인은, 수도꼭지를 틀고 더러워진 수건을 세 번 네 번 정성을 다해 빨아댄다. 나는 여인의 신상 명세서를 잠깐 떠올린다. 서울에서 건축업에 종사하던 아들이 고층에서 추락, 뇌와 척추를 다친 과부. 꼭 십 개월 전이라 했다. 내 짝눈으로 보기에도 현재 이 병실에서 최고 중증 환자가 여인의 아들이다. 발가락 하나도 꼼지락 못한다. 그러면서 늘상 목에 무엇이 차오르는지, 여인은 침상 머리맡에 달린 고무호스 같은 기구를 아들의 입 속에 집어넣고 가래침을 빼는 일을 자주 한다. 아들이 몸을 움직이는 것 그 순간뿐이다. 그 일이 퍽 고통스러운 듯 침상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요동치는 것이다. 가래덩이를 뽑고 화장지로 입언저리를 닦아주며, 여인은 아들의 뺨에 저가 낯을 부벼대며 얘기한다.
“악아. 아아가이. 내 이쁜 새끼야이.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이래야 니가 살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안 하나. 악아. 누가 뭐래도 이 에미는 믿는다. 니가 모두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내 말 알아들었지? 그래, 그래. 알아들었다는구먼. 애구, 내 귀여운 새끼,착한 새끼…….”
이윽고 여인은 올이 미어지고 떨어지도록 빨고 또 빤 수건을 갖고 아들 쪽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들의 몸을 덮은 하늘색 담요을 뚤뚤 말아 딴 쪽에서 아들을 볼 수 없도록 벽처럼 둘러친다. 누가 보면 빼앗아갈 보배같이 꼭꼭 숨기는 것이다. 그런 다음 여인은 아주 정성을 쏟아가며 아들의 몸에서 환자복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또한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지 않고 사주단자 모시 듯 곱게 접어 침상 한쪽에 둔다. 곧 세탁하라고 돌려줄 것인데도. 이제 예비 절차는 끝나고 아들의 몸을 닦는 일에 진입한다.
“작작 좀 씻겨라. 그 귀한 아들 일어나기도 전에 다 닳어 없어질라.”
거기 보호자들 중 제일 입바른 소리 잘 하는, 킥킥 형 부부를 놀려먹은 웃음을 흘리던 여자가, 핀잔인 듯 칭찬인 듯 말해와도, 여인은 얼굴 한 번 돌리지 않는다. 나는 점점 무슨 성스러운 의식(儀式)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들의 몸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여인의 모습은 여사제(女司祭)인 성싶다. 한참을 그러다 보면 여인의 목덜미에 땀 기운이 번들거리고 머리카락이 몇 올 달라붙는다. 한 손으로 이따금씩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몸에 냄새나면 어떤 처녀가 시집올까?”
어쩌다 여인이 혼잣말처럼 남들에게 하는 대답이 그렇다. 여인이 아들의 손가락 발가락 사이서부터 귀 안까지 씻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두 시간은 넘는다. 겨우 목욕이 끝나면 여인은 간호사들에게 가서 새 환자복을 얻어와 입히고는 또 혼자 얘기한다.
“어이구, 우리 도령님. 신수가 훤해지셨구려? 세상 어디에 이리 훌륭한 신랑감이 다시 있을꼬?”
그런 여인을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는 자신한다. 여인의 아들은 반드시 쾌유되리라고. 그러나 그런 뒤끝이면 나는 으레 형의 침상으로 고개를 돌린다. 형은 언제나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을까. 이런 내 애타는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형은 천하태평처럼 또 자고 있다. 병원 세 끼를 밥풀 하나 콩나무 대강이 하나 남김없이 비워내고 나면 크윽, 트림을 신호로 잠을 청한다. 그래도 용케 소화를 시켜내는 게 너무 신기하다. 나는 눕자마자 금방 코까지 골아대는 형을 마구 패주고 싶은 충동에 부대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형수가 이해되는 순간도 그런 때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형수는 내 앞에서 더욱 형을 멸시해 보인다는 것을. 명색 대학이라고 나와서 형의 병원비를 보태기는커녕, 삼시 세끼 형수 친정집 돈으로 사는 병원 밥을 얻어먹고 빈 침상이나 복도 의자에서 새우잠을 청하는 실업자가, 형수 눈에는 형보다 한층 저주스러웠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다 치고, 참말이지 형은 이러지 않았었다. 무위(無爲)를 가장 증오하며 학교림의 대나무같이 푸르렀던 그.
휠체어 하나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휠체어 주인은 역도 선수나 씨름꾼처럼 우람한 상체의 삼십 초반 사내다. 휠체어 옆에는 대여섯 살쯤 나 보이는 여자애가 붙어 있다. 나는 딸인 성싶은 그 애를 보다가 사내의 하체에 눈이 간다. 그의 상반신을 청청 푸른 나무에 비긴다면, 영낙없이 삭정이 같기만 한 다리. 정말 자기가 낳은 자식일까. 내가 무슨 생각을 굴리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사내는, 내가 앉아 있는 복도 의자 맞은편 벽면에 붙은 전화통으로 휠체어를 운전한다. 굵고 검은 안경테 속 눈은 짙은 눈썹 아래 부리부리하다. 그가 품에서 공중전화카드를 꺼내 투입구에 넣은 것과 동시에,여자애가 방금 그들이 나온 산부인과 신생아실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다칠라! 어디 딴 데 가지 말고 할머니한테 가 있어.”
휠체어 사내의 목청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렁우렁 실내를 흔든다. 나는 귀가 멍멍해지면서 천장에 부착된 형광등이 떨어져 내릴 듯 불안감마저 느끼고 눈을 감아버린다.
“아버지, 접니다. 방금 집사람이 출산했어요. 고추예요, 고추요!”
다시 뜨는 내 눈에는 여전히 짤막한 나무토막 같은 사내의 하체가 머물고 있다. 나는 문득 세상이 참 신비로운 곳이란 생각을 한다. 생명을 뿌려주는 조물주의 놀라운 힘. 사내는 몇 마디 더 보고를 하고서는 통화를 끝내는가 했으나,뒤에 기다리는 배꼽티 아가씨를 돌아보며 얘기한다.
“아가씨, 한 군데만 더 하고 끊을게요.”
그때 나는 목격한다. 사내의 눈높이와 아가씨의 노출된 배꼽 높이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그렇다면 사내는 여자의 배꼽에다 대고 말을 한 셈이다. 배꼽 아가씨의 얼굴에 짜증과 멸시의 빛이 잠깐 스쳤지만 억지로 미소를 띤다. 두 번째 전화 내용을 듣고 나는 사내가 하는 일을 금방 알아챈다. 무슨 물자 조달업체 사장. 나는 사내의 당당하게 행동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자각한다. 사내는 자기가 앉은 휠체어가 마구 흔들릴 만큼 상대방을 기세 좋게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이보세요, 이봐요. 대체 일을 왜 그따위로 하는 겁니까? 예? 뭐요? 내 당장 그리로 달려가고 싶지만, 방금 막 마누라가 득남을 했어요. 아들을 낳았다구요. 그래서 안 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어쨌든 오늘 중으로 해결하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음 댁들과는 거래를 끊겠어요. 아, 딴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니까 자꾸 그러시네들? 하여튼 계속 거래를 하고 싶으면 아까 내 얘기대로 해놔요. 만에 하나라도…… 허, 참 성가시게 하네?”
철커덕. 사내는 일방적으로 송수화기를 놓아버린다. 그리고 배꼽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인 다음 산부인과 병동 쪽으로 휠체어를 몰아간다. 곰 같은 양팔에 근육을 출렁거리면서. 사내의 사업 수완도 휠체어 굴리는 솜씨만큼이나 뛰어났으리라.
다음으로 배꼽티 아가씨 순서가 오고, 그녀는 둘째 손가락을 곧추세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듯 경쾌하게 숫자판을 누른다. 그녀의 드러난 배꼽도 무슨 아라비아 숫자 같아 보인다. 0이나 9자, 아님 6자? 그녀의 음성은 빠르면서도 허스키다.
“큰아버지, 전 은희예요. 아, 물론 병원이죠. 방금 의사 선생님을 교수 연구실에 가서 만나봤는데요. 아니예요. 작은아버지랑 고모랑 같이요. 주치의 선생님은 수술을 하라는데, 교수 선생님은 우리가 알아 하래요. 아, 지금 뒤에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상세한 얘긴 안 되겠구요. 예, 그런데 무엇보다 수술 비용이 엄청나겠대요. 네? 일, 이백요? 아니에요. 그 정도면 지금 당장이라도 수술에 들어가죠. 팔, 구백이래요. 그래, 이것저것 모두 합치면 천은 넘게 잡아야 한대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죠. 워낙 노령이라 놔서 성공 확률도 반반이래요. 어쩜 영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요. 그래서 말씀인데요. 여기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그냥 집으로 모셔 가기로요. 다른 의사들도 그러대요, 젊은 사람이면 자기들도 수술을 권해 보겠는데, 할아버진 팔순이 넘었기 땜에…….”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에게서 송수화기를 낚아채 그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에 허덕인다. 결국 돈. 그들은 마취 운운하며 노인네를 포기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배꼽의 다음 말에서 분명해진다.
“네, 수술받지 않음 열흘 정도래요.”
상대방이 계속 무어라 하는 모양인지 그녀는 이런 말로 끊어버린다.
“큰아버진 여기 오셔서 안 보시니깐 자꾸 그런 말씀하시죠. 큰아버지도 직접 봐요. 그러면 우리 심정 이해하실 테니. 어쨌든 그렇게 알고 계세요. 빨리 끊어야겠어요. 뒷사람들 눈치가 보여요. 그럼…….”
찰칵. 배꼽은 부츠 소리도 요란하게 비상문 쪽으로 사라져간다.
형의 목발이 내 짝눈을 아프게 찍어누르면서 나타난 것은 다음 순간이다. S자 모양으로 굽은 형의 몸은 위태롭다 못해 금세 폭삭 무너져내릴 모래 사람을 생각게 한다. 형은 그 몸을 해갖고 커피 자판기 앞에 가 선다. 한없이 초라한 그의 행색. 나는 지난날 형의 별명들을 떠올린다. 일등성, 철학자, 신, 만물박사, 대형(大兄), 외계인, 해결사,……
나는 형의 손이 허공을 휘젓듯 환자복 속을 더듬고 있는 것을 무연히 바라본다. 내 눈은 더 비참한 꼴을 맞이하기 전에 돌려녀야 한다고 마음이 소리치지만. 실망한 형의 모습은 환자이기 전에 천 년 동굴에 갇힌 야수 그것이다. 동전을 포기한 형은 목발을 짚지 않은 손으로, 무슨 무슨 커피라고 씌여 있는 누름대를 안타깝게 눌러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형은 자판기에 얼굴을 갖다 붙인 채 울기 시작한다. 목발과 함께 당장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내가 휠체어 사내의 딸과 배꼽티 여자를 납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형에게 돈과 여자를 한꺼번에 안겨줄 수 있는……
그 밤에 나는 운이 좋다. 도자기상 침상에 아직 다른 환자가 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딱딱한 복도 의자보다 한결 폭신한 그 잠자리에서도, 또 꿈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에 쫓겨 다녔다. 관사(官舍)가 화염에 휩싸인 그 불길 속에 갇힌 아버지와 어머니가 형과 나를 안타깝게 부르는. 공교롭게도 일요일인 그날, 나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형과 함께 외가에 다니러 갔던 바람에 화를 면했다. 그러나 밤늦게 돌아온 우리를 맞은 것은, 관사와 더불어 재가 돼버린 부모의 시신과 숙부 가족들의 얼음같이 차디찬 눈, 그리고 영원히 뗄 수 없는‘고아’란 딱지였다. 화재 원인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 경찰에선 서둘러 누전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형과 나는 영원한 비익조가 되어 슬픈 몸짓으로 퍼덕거려야 했던 것이다.
형이 귀대하지 않고 탈영병으로 숨어 지낸 것은 오직 나 때문이었다. Y대 특별장학생은 그렇게 전락해 갔다. 숙부는 훨씬 크고 훌륭한 관사를 짓고 그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재단 이사장과 학교장, 그 두 개의 문패가 걸린 집에. 숙모는 숙부보다 더 우리를 눈엣가시로 보았다. 우리와 친사촌이 되는 그 집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숙부 내외는 우리 형제가 자기 자식들을 내쫓고 다시 재단을 탈취하지 않을까 늘 전전긍긍해 하고 있음을, 당시 고교 2학년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형이 학교 뒷산 큰 바위 밑 동굴에 은신해 있다 관사로 내려온 날,형은 숙부 방에서 숙부와 소리를 죽여가며 한참을 싸웠다. 그런 후,관사에 딸린 하꼬방 같은 내 방문을 열더니 무작정 입은 옷 그대로 자기를 따라나서라고 했다. 하지만 천애의 고아, 그것도 탈영병과 중퇴한 열일곱 살을 맞아줄 곳은 바이 없었다. 그러나 형은 대단했다. 우리 학교, 아니 숙부 학교가 파멸케 이끌어가던, 그 초상 끝난 다음의 나머지 휴가 기간 동안 보였던 놀라웁던 활동상과 내재력을, 그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십분 발휘할 줄 알았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형의 손에는 꼭 무언가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결코 오래지 못했다. 달도 구름장에 몸을 감추고 있던 어느 날 밤, 달동네 다 넘어가는 판잣집 쾨쾨한 냄새 나는 방에서, 배고픔과 피곤함에 찌든 채 잠들어 있던 형과 나는, 거침없는 군화발과 그 밤보다 더 껌껌한 안경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형과 나는 이별했다. 형이 어디로 연행돼 가는지 도통 모른 채. 나는 짝재기 눈물을 뿌리고, 형은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는 모습으로. 외등 켜진 골목 안보다 더 어두운 골목 밖으로 막 끌려 나갈 때, 처음으로 뒤돌아본 형은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기다려. 곧 돌아올게. 이 수감 채인 손에 세상 모든 것을 쥐고 온다. 형이 잡혀간 후, 나는 오히려 자유스러워졌다. 아무리 힘들고 죽고 싶어도 형이 남기도 간 그 말만 떠올리면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형은 그 약속을 지켰다. 내가 야학으로 대학을 마칠 즈음에. 그러나 6,7년 만에 이뤄진 형제 상봉이, 뇌수술 환자 병실 침상에서일 줄이야. 그 형의 손,이제 수갑이 채워져 있지 않은 자유스러운 그 손에, 형은 목발 하나 달랑 쥐고 나타난 것이다.
형수가 없는 틈을 타 병원 밖으로 바람 쐬러 나가자는 내 말에, 형은 무작정 좋아라 하고 목발부터 집어 든다. 거의 모든 환자들은 가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병원 밖만 나오면 기쁜 법이다. 육중한 쇠정문을 나오면 바로 강줄기가 보이고, 도로는 거기서 차로 오 분 거리면 닿는 도심지를 향해 포물선을 그으며 뻗어나간다. 형과 나는 강둑을 따라 계속 걷는다. 나는 형의 비참하기 그지없는 몰골을 의식적으로 내 짝재기 눈에 담으며 꺾이려는 결심을 악다진다. 멋도 모르는 형은 바깥세상을 처음 구경하는 아이처럼 한껏 들뜬 표정이다. 나는 제법 많이 걸어와 병원 수위실이 보이지 않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일정 간격으로 도열한 한적한 곳으로 오자 걸음을 멈춘다. 형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시 외곽을 빙 에워싸고 흘러가는 강 위로 눈을 준다. 나는 형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 머리와 다리는 어찌된 영문이냐고.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형제를 보다 참담하게 이끄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형! 많이 힘들지? 잠깐 쉬었다가.”
나는 그 말과 함께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후 5시 57분. 내 사전 답사 지식이 틀리지 않는다면, 배꼽티 아가씨가 모는 진홍빛 승용차는 6시쯤 이곳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시내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환자실 앞 의자에 앉아 그녀와 고모가 나눈 대화 속에서 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충분히 연구했다는 말이다. 나는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줄곧 뒤를 돌아다 보았고, 나는 강 쪽, 형을 차도 쪽에서 걷게 했다. 운전자가 형의 목발을 좀 더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유지한 것이다. 설혹 그가 사물을 뒤바꿔보는 그런 짝눈이라도.
나는 시계를 수십 번은 봤을 게다. 이윽고 정확히 6시 2분 17초가 되는 때에, 나는 멀리 빨간 방개 같은 물체가 달려오고 있음을 발견해낸다. 그 순간, 나는 영문을 몰라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형의 시선을 외면한 채, 그의 몸을 얼른 인도에서 차도로 밀어내린다. 약간 비틀거리지만 형은 그 정도에 균형을 잃지 않을 만큼은 목발에 익숙해 있다. 나는 2, 30야아드 전에부터 팔을 있는 대로 쳐들고 흔든다. 남은 손으로 형의 몸을 아주 과장된 동작으로 부축하고서. 차에서 보면 심한 신체 장애자를 데리고 급히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보이게. 내 판단은 맞아떨어진다. 진홍 인질은 스르르 우리 앞에 얌전히 정차한다. 이제부터 나를 지배하는 힘은 벌써 내가 아니다. ‘무슨 일이시죠?’ 배꼽티 아가씨는 조수석 쪽 창문을 내리고 그렇게 묻는 얼굴을 돌린다. 지금이 아주 중요하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로 다급하게 소리친다.
“아, 아가씨! 죄, 죄송하지만 우리 좀 병원에까지 태워다줄 수 있겠어요? 형이, 형이 갑자기 너무 이상해요. 금방 죽을 것 같아요. 제발……”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형이 미워 죽을 지경이다. 저따위 얼굴이라니. 형은 곧 숨넘어갈 얼굴과는 너무 동떨어지게 멍청한 낯으로 나와 배꼽티 아가씨를 번갈아 볼 뿐인 것이다. 하긴 그런 상황에선 나라도 그런 식밖에 달리 해보일 동작이 없을 게다.
“저…… 그런데 전 지금…… 아, 어떡하나?”
얼른 취해야 할 행동 판단이 서지 못한 듯, 배꼽티 아가씨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더듬이같이 더듬거리기만 한다. 그 틈에 나는 바로 코앞에 있는 조수석 차문을 재빨리 연다. 그것을 본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그럼 타세요.”
“고맙습니다, 정말. 이 은혜는…….”
나는 형을 뒷좌석에 짐짝 팽개치듯 밀어 넣고 잽싸게 조수석에 올라앉는다. 형은 아마 우리가 그 차를 타고 시내 쪽으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판단도 힘들 그 정도로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이뤄진 것이다. 재크 나이프의 싸늘한 칼끝이 맨살인 오른쪽 옆구리에 와닿자마자, 배꼽티 아가씨의 약간 장난기 흘러보이는 낯빛이 한순간에 하얗게 질린다. 수배자들의 얼굴을 공개, 시청자들이 제보를 받아 검거한다는 명목하에 방영되던, 모 방송사 프로에서 본 바로 그 여자 인질 얼굴이다. 범죄자로 하여금 요기를 갖고 더 잔혹하게 해주는 처절한 얼굴.
“운전 똑바로 햇! 서툰 개수작 부리면 알지?”
나는 역시 화면 속 인질범을 그대로 흉내 낸다. 한층 떨어대는 여자. 배꼽티를 입은 탓에 그대로 노출된 살갗을 찌르는 칼날의 감촉은, 여자의 공포심을 몇 갑절 더하게 할 것이다. 승용차는 곧 양갈랫길에 이르렀고, 나는 시내로 가는 길을 버리고 시외 쪽으로 운전할 것을 명한다. 무참하리만치 경련을 일으키는 손으로 하는 운전은 불안하기 짝이 없어도, 기실 내 마음은 그보다 천 배 만 배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대체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비로소 형이 내 어깨를 낚아채듯 하며 말문을 터뜨린다. 나는 여자가 우리를 얕잡아볼까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짐을 어쩔 수 없다.
“씨팔. 잔소리 말고 그냥 앉아 있어. 여차하면 형이고 뭐고 콱 쑤셔박을 거야. 뱃때기 전기줄 나오게…….”
나는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거친 상말들을 뱉는다. 인질을 겁주기 위한 전시효과. 내 서슬이 어찌나 퍼랬던지 형도 그만 끽소리 더 못한다. 형은 체념하고 좌절하는 법을 빨리 익힌 사람이다. 휙휙. 우리가 탄 승용차 옆으로 막 미등을 켠 차들이 계속 지나치고 있어도, 당연히 누구 하나 클랙슨조차 울리지 않는다.
“아니, 이 길은……?”
형이 놀란 듯 묻는다. 나는 재크나이프를 쥔 손에 더 힘을 주며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소리를 꽥 지른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한다구! 알았어?”
그런 내 옆얼굴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공포에 찬 곁눈으로 보는 여자의 낯빛은 하얗다 못해 이제 푸른 빛이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몰아대는 차는, 얼핏 내려다본 속도계 눈이 160이란 숫자에서 흔들리고 있다. 정지는 못해도 최대한 저속으로 달리며 탈출을 기도해야 할 인질이 한 패거리처럼 동조하는 격인 것이다. 오히려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온다.
“야, 속도 줄이지 못해? 뒈지고 싶어?”
처음 차체만큼이나 함부로 떨리던 내 몸은,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들녘이 굴러들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안정을 되찾고 있다. 그랬다. 두려움이 물러간 마음 자리에 대신 메워지는 건, 분노, 저주, 절망, 슬픔, 그리고 끝까지 가보자는 맹목적인 만용, 그런 것들이다. 지난날, 아버지, 어머니,형과 함께 바라보던 그 정겹고도 아름답기만 하던 풍광들. 그러나 또 탈영병 형과 나란히 야반도주하듯 휘청휘청 걸어가던 저 야트막한 산등성이,피처럼 시뻘건 황토 언덕,어둠 속에 금방이라도 등을 잡아챌 귀신의 팔다리 같던 앙상한 나뭇가지들……
마침내 차를 세우게 하고서 본 시계는 6시 20분을 알리고 있다. 주위의 산 능선은 어둠의 병사들에게 함락당한 성곽처럼 괴괴한 자태로 떠올라 있다. 내가 목적 삼고 온 그곳은 밤기운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11월 하순의 달은 나를 위해서인 듯 빛살을 감추고 있다. ‘자, 이제는……?’ 그런데 막막하다. 나는 문득 「이제 시스템 전원을 끄셔도 됩니다.」라는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글씨 외에는 온통 깜깜한 그 화면처럼, 전신의 신경줄과 마음줄이 깡그리 절단난 듯한 착각에 휘말린다. ‘가만, 다음 순서는 어떻더라?’ 나는 한심하게도 또 별수 없이 그 텔레비전 프로에 매달린다. 가까스로 동굴 속에서 찾아낸 빛줄기 같은 생각 한 가닥. 비로소 허둥거리며 주머니를 뒤적이던 내 손. 커피 자판기 앞에서 환자복 속을 더듬던 형과 조금도 다름없다. 내 손끝에 딸려 나온 것은 비닐 노끈과 큰 유리 테이프다. 나는 운전대 왼쪽에 붙은 전조등 조작기를 앞쪽으로 당겨 헤드라이트를 꺼버린다. 그 순간, 무슨 시커면 큰 짐승처럼 와락 달려드는 어둠. 그것은 내 몸속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서성이는 두려움과 주저의 기운은 한꺼번에 거둬주는 마력을 발휘한다.
“자, 내려! 천천히…… 도망하거나 고함칠 생각은 말어. 여긴 외치며 때려죽여도 모를 테니까.”
내가 그런 말로 을러대지 않아도 인질은 지독한 공포심이 입을 틀어막아 소릴 지르라고 해도 불가능한 것이다. 차 밖으로 여자를 끌어낸 나는, 양팔을 뒤로 돌려 노끈으로 단단히 결박한 다음, 유리 테이프를 잘라 입을 여러 번 가린다. 인질은 마네킹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 전혀 반항이 없다.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와(그건 내 심장 소리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학질 환자 같이 이따금 떨어대는 몸만 아니어도, 나는 나무토막을 만지고 있다고 착각될 지경인 것이다. 아직은 여자의 깊은 살을 접해보지 못한 나지만, 나는 여자에게서 눈꼽만큼도 야릇한 감정을 건져 올리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가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 형은 내내 차 안에만 앉아 있다. 같은 병실 사람들은 한쪽 뇌 부위를 엄청 깎아 내버려 함몰된 형을 보고, 수박을 사등분하여 그 한 쪼가리를 들어낸 형상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눈엔 다르게 보였다. 지구의 구심을 지나는 경도와 위도를 긋고 그 한 부분만을 없앤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형과 형수 몰래 만나본 형의 집도의는 이렇게 설명했었다.
“사람의 오른쪽 뇌는 신체, 왼쪽 뇌는 정신을 조절하지요. 한데, 불행하게도 형님이 수술받은 쪽은 왼뇌예요. 특히 환자의 현재 지독한 단기성 기억 상실 증세를 보이고 있어요. 단기성이란, 오래전 일은 기억하는데 어제, 혹은 방금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얘기죠.”
나는 형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짓들을 기억 속에 오래 담아두지 못하리란 계산하에서 같이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진 내 눈에 드시어 교사(校舍)가 비춰들기 시작한다. 폐교 직전의 학교만큼 을씨년스럽고 추해 보이는 게 또 있을가. 형의 저주가 하늘에까지 닿았음일까. 숙부는 도 교육청에 폐교 신청을 내어야 했다. 우울한 흑인같이 웅크려 보이는 건물 뒷편에 있을 사택은 거기서 보이지 않느다. 그러나 내가 찾는 곳은 거기가 아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걸까. 인질을 이제 얌전히 있다. 내가 칼끝으로 등을 찌르며 앞장서라고 하자 말없이 걷기 시작한다. 형은 그런 나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형의 시선은 사택이 있을 방향에 고정돼 있을 뿐이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인질의 발끝이 자꾸 헛디디고 있다. 워낙 컴컴한 그곳이고 보니 누구든 그럴 것이다. 나 또한 한쪽 날개뿐인 비익조처럼 한없이 버둥거린다. 짝짓기를 하던 그날의 비익조 두 쌍은 지금쯤 어디를 날고 있을까. 그런 상각을 하며 다 올라간 생활관은, 바람에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러대던 샤시 문짝마저도 달아나고 없다. 지난날의 기억 가닥을 잡아가며 나는 가까스로 온돌이 있던 방으로 인질을 끌어넣는다. 그러자 잠시 잊었던 듯 여자가 파르르 전신을 떠는 게 칼끝으로 전해진다. 여자만의 본능적인 동작이다. 위기가 코앞에 닥친 짐승의 그것 같은. 나는 그때까지 용케 온전한 방문을 라이터 불로 확인한 후 인질을 한쪽 구석 바닥에 주저앉힌다. 형이 그제서야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한쪽 벽에 난 작은 창을 통해 흐릿하긴 해도 달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비로소 자세히 둘러본 방안은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듯 음산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나는 온몸으로 느낀다. 길고도 긴 여행에서 막 고향으로 돌아온 순례자의 안식을. 아버지, 어머니의 체취가 묻어나는 곳. 무엇보다 옛날의 형이 거기 숨쉬고 있다. 나는 지금 갈망하는 것이다. 형이 찢겨진 날개 같은 저 목발을 버리고, 그 날의 아이들처럼 아름답고 힘차게 비상하기를.
“앞으로 어떡할 생각이야?”
형이 어둠 속에서 그 어둠보다 깜깜한 소리고 묻고 있다.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대신 나는 아프게 생각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형은 우리가 왜 여기에 와 있으며, 또 저 여자는 누구냐고 질문할 게 틀림없다고. 형는 하루에도 열백 번 물어 오곤 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며 며칠인가를. 어제저녁 병원 반찬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까 형수에게서 들은 ‘벼엉신’을 잊어버리고…… 그러면서 십 년 이십 년 전 일은 나보다 더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보다 형, 나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 그때까지 저 여자하고 잘 지내야 해?”
나는 벌써 문 쪽으로 몸을 돌리며 급히 얘기한다. ‘잘 지켜야 해?’라는 말 대신 ‘잘 지내야 해?’하고. 그리고 형이 어둠 속에서 그 졸참나무 같은 팔을 들어 붙들려고 하는 것을 피하며 밖으로 나왔다. 나는 노끈으로 여자의 발목 하나를, 방문 고리에다 묶어 두었으므로 안심해도 되었다. 손목처럼 두 발목을 다 고리 채울까 하다가, 아무래도 형이 비익조가 되기 위한 행위를 하는 데는 불편할 것 같아서다.
나는 한때 주유소에서 1호차를 끌며 기름 배달을 하던 솜씨를 발휘해 잽싸게 차를 몬다. 이윽고 수위실과 약간 거리를 두고 나무 그늘 밑에 차를 세운 나는, 지금쯤 이 벼엉신들이, 하고 우리 형제를 찾고 있을 형수의 눈을 피할 생각을 하며 산부인과 병동을 향한다. 우선 휠체어 사내의 아내가 입원한 병실을 알아낸 다음, 딸애가 혼자 나올 때를 노려야 할 것이다. 나는 산부인과 복도를 서성이다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 나오는 간호사를 만나 물어본다.
“저, 얼마 전에 아들을 낳은 산모 방이 어디죠? 왜 남편이 휠체어, 휠체어를 타는…….”
그러자 빼빼 말라깽이 간호사는, 휠체어란 말에 유난히 힘을 싣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한다.
“그 산모분, 오늘 낮에 퇴원했는데요?”
“아, 그, 그래요?”
내 입에선 탁 맥 풀린 신음이 나왔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옆을 지나쳐가는 간호사의 발소리가, 병신, 벼엉신, 하고 놀리는 형수의 말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쫓기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시동을 걸면서 스스로를 타이른다. 괜찮아. 표적물을 바꾸면 돼. 일단 형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나는 일부러 차를 천천히 몰았다. 형과 여자의 비익조 짝짓기 시간을 늘려주기 위해서. 늘상 ‘벼엉신’이라고 참렬한 구박을 주는 형수에게 멋진 복수를 하라고. 그런데 왜일까. 내 짝눈에선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큰 눈에선 많이, 작은 눈에선 적게…… 전조들에 하얗게 등을 드러내는 도로는, 형의 목발처럼 창백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이윽고 학교림이 있는 뒷산 대숲이, 잠시 잊었던 얼굴인 양 차창으로 검게 떠올라 보였다. 나는 문득 콧날이 시큰해졌다. 학교 용원들은 이사장 아들인 내게 잘 보이기 위해, 봄이면 대숲에서 죽순을 빼어주곤 했는데, 살짝 데쳐 먹는 죽순은 향긋하니 참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가 저 대숲을 남달리 많이 찾았던 건 그 죽순 때문은 아니었다. 든든한 배경 때문에 비록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나는 자신의 눈에 심한 콤플렉스를 갖게 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가 되어 갔고, 때론 스스로가 몸서리칠 정도의 극악한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 내가 가는 곳이 저 대숲이었다.
대나무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대상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과 사별하는 그 순간부터,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키, 나아가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손의 성장을 멈춰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내 가슴에 뿌리 내린 대나무는 결코 더 이상 자라날 수 없으리라고. 그리하여 부드러움을 거부하고 단단해지기만을 고집하는 대나무처럼, 마음속에서 온유함은 사라지고 오직 세상을 향한 저주와 분노만이 꽁꽁 언 겨울 돌멩이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선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운이 있었다. 그건 비익조가 비상하기 위해 아프게 아프게 버둥거리는 소리였다. 나를 지켜보는 누도 철저히 짝짝이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돌아보아도 놀라운 변화였다. 옳았다. 철학관 남자의 말처럼, 나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탄생했다. 철학관 남자는 얘기했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팔자도 고치는 법. 그러자 나는 바람에 스르릉 소리를 내던 댓잎보다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만 나. 그런 나의 팔자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강 안에 가 닿을 것인가. 그러나 내가 흘러갈 강 또한, 그 성장을 멎어버린 대나무나 나처럼, 키 자라기를 포기해 버렸을 줄이야.
내가 참으로 그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저 지질 시대 동식물의 유해같이 수성암 속에서 화석이 된 것 같은 현장을 처음 목격한 것은, 학교 후문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컴컴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생활관을 오르는 계단 아래 정차시킨 다음 막 하차한 직후였다. 짝눈이긴 해도 시력 1.5를 자랑하는 내 눈에 비춰든 그 광경. 어둡긴 한가지인 계단 밑에 나뒹굴어진 물체. 그리고 그 물체와 일 미터쯤 떨어진 곳에 팽겨쳐진 목발……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와서 굴러내린 듯, 다행히 형은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형은 마치 헛것을 본 사람처럼 지독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놀라 달려들어 끌어안은 내 품 안에서도, 추위에 못 견디는 어린 새같이 몸을 함부로 떨어댄다.
“형, 혀엉, 대체 어찌된 거야, 응?”
형의 어깨를 있는 대로 흔들며 묻는 내 소리에, 운동장 가에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들이 소스라쳐 고개를 치켜드는 것 같았다. 그러자 형은 아직도 두렵다는 듯 이빨까지 딱딱 부딪혀가며 겨우 뱉어낸다는 말이,
“흐, 마, 말 마라. 어, 어떤 노, 놈한테 나, 납치 다, 당했다가, 도, 도망쳐 나, 나왔다. 어흐, 무서. 까, 깜깜한 고, 골방에 나, 날 가, 가두었어. 그, 그 놈은…….”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단기성 기억 상실 증세란 놈이, 악마처럼 이빨을 드러내어 형을 콱 물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인질이었다.
“그건 그렇고, 형, 그 여잔, 그 여자는……?”
그러자 형은 무슨 소리? 하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차마 못 할 말로, 그 눈은 재크나이프로 찔러 버리고 싶을 만치 아름다웠다. 순진하기만 한 그 눈빛은, 절대 뇌수술 환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여자, 여자 말야. 그 인질…….”
그제서야 형은 그 여자를 기억에서 일으켜 세우는 모양 같았다. 그런데 그의 그 답변이라니!
“아, 그, 그렇지. 여자도 나랑 같이 있었어. 가만 내가 어, 어쨌더라? 그, 그래, 이제 기, 기억 나, 난다. 내가 푸, 풀어 줬어. 그 나쁜 놈이, 가엾게도 여자를 묶어 두었더라니까? 그, 그보다 빠, 빨리 도망치자, 응? 그 무서운 놈이 또 잡으로 올지도 모, 몰라.”
사실이 그랬다. 나는 형을 오래 탓하기는커녕, 벼엉신, 하는 세 음절조차 꺼낼 여유가 없음을 알았다. 나는 형을 뒷좌석에 태우고는 차를 급출발시켰다. 형이 인질을 놓아준 시간이 좀 지났다면 지금쯤……‘아, 목발을 그 자리에 그냥 두고 왔구나!’하고 깨달은 것은, 차가 후문 밖으로 벗어나고 서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렇지만 그것을 가지러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기보다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보고 말았다. 이곳으로 통하는 길 저편에서 내 짝짝이 눈보다 더 흉칙하게 생겨먹은, 괴물 같은 두 개의 빨간 눈이, 우리를 향해 굴러오고 있는 것을. 애앵, 하는 사나운 벌의 날개 소리와 함께…… 나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급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그 서슬에 형의 머리가, 아직 보호쇠를 넣지도 않은 형의 머리가, 앞좌석에 ‘콰당!’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다급하게 생각했다. 나 혼자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목발조차 없는 형은…… 지금 그 상황에서 우리 형제가 같이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뿐. 비익조가 되는 것. 나는 숙부 가족들이 있을 사택 쪽을 노려보았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 형이 군대에 귀대했더라면, 형은 사회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탈영병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 명석한 머리로 떡하니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그래. 나는 피가 배여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형을 두고 혼자만 살겠다고 달아날 순 없어. 형도 함께 데리고 가야 해. 저 자유로운 허공 위로 훨훠얼. 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바꿔탔다. 그리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 있는 형의 몸 위로 내 몸을 날렸다. 형의 몸에선 비릿한 냄새가 났다. 우리 형제는 곧 하나가 되었다. 나는 우리 차를 향해 달려드는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짝짝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러자 지난날 저 대숲 속에서 느끼던 불목의 뜨뜻한 기운이 우리 형제를 포옥 싸안는 듯했다. 그들을 모두 보게 되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로, 그러나 처절하게 비상하고 있는 비익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