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의 눈
허은순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홍이는 동생 영미랑 다트를 하고 있었다. 뾰족한 창이 다트판에 꽂히는 걸 보고서 다른 것도 저렇게 잘 꽂힐까 호기심이 생겼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홍이는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때 홍이 눈에 띈 것이 심이 뾰족하게 깎여 있는 연필이었다. 홍이는 그것도 아주 잘 꽂힐 것 같았다. 홍이는 연필을 다트판을 향해 던졌다. 그 때 영미가 바닥에 떨어진 다트를 주워들고 일어났다.
“악!”
쓰러진 영미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영미 비명소리를 듣고 엄마가 뛰어 들어왔다. 영미 얼굴을 본 엄마는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영미가 급히 병원에 실려 간 후, 홍이는 피로 물든 연필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러 날 후 영미는 눈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미의 오른쪽 눈에는 덮개가 씌어져 있었다. 홍이는 영미에게 뭐라 말을 걸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는 홍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홍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영미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된다는 듯이 겨우겨우 새어나왔다.
홍이는 그것이 엄마가 우는 소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홍이는 그 소리를 그대로 듣고 있을 수 없었다. 홍이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영미 눈은 어떻게 된 걸까? 영미의 눈을 덮고 있는 덮개를 떼어 버리면 휑하니 구멍이 나 있는 것은 아닐까?
영미는 사고 후에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오빠 옆에서 부시럭대며 오빠가 같이 놀아 주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홍이는 영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서 딴청을 부렸다. 기다리다 못한 영미가 오빠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홍이는 무에 그리 놀랐는지 영미 손을 뿌리쳤다. 영미는 투덜대며 나가 버렸다.
시간이 몹시 더디게 흘렀다. 엄마가 영미를 데리고 여러 차례 병원에 가는 동안에도 홍이는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영미의 눈이 어떻게 되었을지, 덮개를 뗀 모습이 어떨지 무척 궁금했지만 따라가겠다고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영미가 붕대를 푸는 날이다. 영미는 아침 일찍 엄마 손을 잡고 나갔다. 홍이는 엄마가 다시 영미를 데리고 들어오시기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영미가 웃으며 들어왔다. 덮개를 뗀 얼굴이다. 왼쪽, 오른쪽, 양쪽 눈이 다 있었다.
연필에 찔렸던 눈이 오른쪽 맞지? 저 눈이 오른쪽인가? 아니, 저쪽이 오른쪽 눈인가?
영미의 오른쪽 눈은 홍이가 상상했던 것처럼 휑하니 구멍이 나 있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영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홍이를 바라보는 영미의 두 눈동자가 초점이 맞지 않았다. 홍이는 자기가 잘못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영미의 오른쪽 눈은 전혀 움직일 줄 모르는 채 엉뚱한 곳을 향해 있고, 왼쪽 눈만이 홍이를 향해 움직일 뿐이었다. 끝내 영미는 오른쪽 눈을 잃은 것이다. 순간 홍이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다.
영미는 웃으면서 오빠에게 다가왔다. 엄마 얼굴도 전처럼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홍이는 엉뚱한 곳을 향해 있는 영미의 눈을 보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영미의 한쪽 눈은 홍이를 보고 웃고 있는데,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영미의 오른쪽 눈이 홍이에게 무어라 꾸짖는 것 같았다.
‘오빠, 안 보여, 안 보여. 오빠, 어디 있어? 어디야? 어디…… 오빠 때문에 내 눈이 이렇게 된 거야.’
영미의 오른쪽 눈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홍이는 할 수만 있으면 저 눈동자를 이쪽으로 쳐다보게 하고 싶었다.
그날 이후, 홍이는 말이 없어지고, 움직임이 매우 둔해졌다. 그러다 보니 엄마, 아빠 하시는 말씀도 들은 척 만 척하기가 일쑤였고, 때로 야단을 맞아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홍이의 그런 태도는 오히려 야단치는 사람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아빠가 화내시는 얼굴을 볼 때마다 아빠가 영미를 몹시 예뻐하시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가 전에도 저렇게 화를 내신 적이 있었나 생각을 더듬어 보았으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아빠가 저렇게 화를 내시는 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아빠는 홍이가 일부러 영미 눈을 다치게 했다고 생각하고 계실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홍이는 무심코 연필을 필통 속에 넣다 말고 가만 들어 연필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연필심 끝을 자기 얼굴로 향하게 하고 조금씩 가까이 가까이 들이댔다. 연필심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영미 눈이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왜 하필이면 그 때 연필을 집어 들었을까…….
바로 그 때 아빠가 들어오셨다. 아빠는 연필 끝을 얼굴 가까이 대고 있는 홍이를 보시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셨다.
“그것 치워!”
홍이는 아빠의 굳은 얼굴 때문에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것 치우라고 했잖아!”
여전히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빠의 얼굴만 더욱 무섭게, 크게 다가온다. 홍이는 연필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아빠는 홍이 손에서 연필을 빼앗아 내팽겨쳤다. 연필심이 부러져 홍이에게 튀었다. 연필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동생 눈 저렇게 만들어 놓고 미안한 줄도 모르고……. 연필 가지고 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 말이 홍이 마음을 내리쳤다.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듯 갑자기 숨이 막힌다. 홍이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아빠가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뚫어지게 방문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오래도록 방문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홍이는 영미의 눈이 언제나 엉뚱한 곳을 향해 있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자꾸만 ‘오빠, 어딨어? 안 보여. 오빠, 어딨어?’ 영미 눈이 소리치는 것 같다.
영미의 눈을 피해야 했다. 영미가 홍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면 더 좋겠다. 책상 밑이 딱 좋았다. 그 곳에 들어가 있으면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특히 영미의 눈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초점이 맞지 않아 사팔뜨기 같은 영미의 눈을 보기만 하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쳐다보고 싶지 않다. 책상 밑에 들어가 있으면 영미의 눈을 안 봐도 되니 그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다.
처음에 홍이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영미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홍이는 책상 밑에 숨는 일이 많아졌다. 손님들이 오기라도 하면 홍이는 재빨리 책상 밑으로 가서 숨었다. 엄마는 이런 일이 몇 번 있자, 더 이상 홍이를 억지로 잡아 꺼내지 않으셨다. 대신 손님들에게는 애써 태연하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면 홍이는 그림을 그렸다. 연필은 무섭게 느껴져서 언제나 끝이 뭉뚝한 크레파스를 썼다. 홍이는 왠지 연필이 사각거리는 느낌이 싫었다. 크레파스는 선이 굵게 나왔다. 그래도 크레파스는 연필처럼 사각거리는 느낌도 없고, 아무도 다칠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홍이는 주로 작은 여자아이를 그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홍이는 여자아이의 오른쪽 눈을 보라색으로 칠했다. 언제나 그랬다. 눈은 언제나 짝짝이로. 그것도 왼쪽 눈은 검은색, 오른쪽 눈은 보라색으로. 게다가 오른쪽 눈은 이상해 보일 정도로 컸다. 가끔 도화지 구석에는 연필을 들고 선 사내아이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홍이가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 그림들을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는 홍이 방을 청소하다가 무언가 책상 뒤에 삐죽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버릴 생각에 그것들을 꺼냈다. 엄마는 그 종이를 꺼내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그림이 온통 여자아이 얼굴, 그것도 한쪽 눈은 커다란 데다가 보라색으로 그려진 그림.
한 장 한 장 넘겨보다가 엄마의 눈길이 한곳에 멈추었다. 엄마가 보고 있는 그림 한쪽 귀퉁이에 연필을 든 사내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청소하는 것을 잊고서 그것만을 보았다. 엄마는 홍이가 그린 그림을 들고 안방으로 가서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엄마는 홍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자니 홍이가 들어왔다. 홍이는 잠시 두리번거렸다. 영미가 어디 있는지 보는 것이다. 영미는 제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홍아. 엄마랑 이야기 좀 할까?”
홍이는 전혀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말야, 홍아. 홍이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처럼 노래도 크게 부르고, 가끔은 떼도 쓰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여전히 홍이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괜히 두려웠다. 홍이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 앉았다.
“홍아, 엄마는 오늘 네가 그린 그림들을 보았단다.”
홍이 귀가 움찔 움직였다.
“일부러 본 건 아니었어. 기분 나쁘다면 미안하구나. 네 방 청소하다가 삐져나온 종이가 있기에 버리려고 꺼냈어.”
한동안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사고였단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영미 눈을 못쓰게 만든 것이 아니란 말이야.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란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고, 엄마가 어쩌다 칼에 손을 베이는 것처럼…….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 날 너는 영미를 향해 연필을 던진 게 아니었어. 그렇지? 아무도 네가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하마터면 홍이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소리칠 뻔했다. 엄마는 홍이가 엄마의 말을 듣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영미가 한쪽 눈을 잃은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
“하지만 그것보다 엄마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이 뭔지 아니? 엄마는 그것보다도 네가 웃음을 잃고 말을 잃은 것이 더 가슴이 아프단다. 영미 눈이 그렇게 된 것은 절대 너 때문이 아니야.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니.”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영미는 눈을 잃었지만 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여전히 오빠를 좋아하지. 나도 그렇단다, 홍아.”
“영미 일로 엄마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네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구나.”
영미가 눈 수술을 하고 돌아오던 날 안방에서 겨우겨우 새어 나오던 소리가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린다. 멍하니 먼 곳을 보던 홍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애써 눈물을 감추고 있었다. 홍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홍아, 이리 나와 봐.”
“그건 결코 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야. 아무도 널 미워하지 않는단다. 다시 전처럼 큰 소리로…….”
엄마는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날 일이 홍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영미 비명소리도 다시 들리고, 구급차의 요란한 소리도 다시 들리고, 엄마가 울면서 뛰어가던 소리도 들리고. 그 소리들이 잠잠해지자 홍이 귀에는 엄마 목소리가 울린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홍이가 책상 밑에서 나왔다. 천천히 엄마에게 걸어갔다. 엄마는 울음을 삼키고 홍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홍이는 엄마 손을 붙잡지 못하고 가만 서 있기만 했다. 엄마는 홍이에게 이리오라고 손짓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엄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손을 내민 채 젖은 눈으로 홍이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너무나 따뜻했다. 홍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
“그래, 그래. 이제 됐어. 내 아들. 이제 모두 괜찮아질 거야.”
엄마는 홍이를 꼭 끌어안았다.
제 방에서 낮잠 자고 있던 영미가 자다 말고 부스스 일어나 나왔다. 영미는 엄마랑 오빠가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보고서 샘이 났는지 엄마 품으로 기어들어 왔다. 엄마는 영미와 홍이를 보듬어 주었다. 영미는 잠이 덜 깼는지 하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