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모범 경작생

모범 경작생

박영준

 

 “얘얘, 나 한마디 하마.”

 “얘얘 얘, 기억(基億)이보구 한 마디 하래라. 아까부터 하겠다구 그러던데…….”

 “기억이 성내겠다. 자아 한마디 해보게.”

 한참 소리를 하는데 이런 말이 나와 일하던 손들이 쥐었던 벼포기를 놓았고, 모든 눈이 기억의 얼굴로 모였다.

 목청이 남보다 곱지 못하다고 해서 한 차례도 소리를 시키지 않는 것이 화가 났던지 기억이는 권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 목소리를 다 빼어 소리를 시작했다.

 온갖 물은 흘러나려두

 오장 썩은 물 솟아만 오른다.

 같은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기억이의 미나리곡에 합세하여 다시 노래를 주고받고 하였다.

 깔기죽 깔기죽 깔보디 말구

 속을 두르러 말해주렴

 소리를 하면 흥겨워져서 모르는 사이에 일이 빨리 되어감에 일터에서는 웃는 소리가 아니면 노래가 그치지 않는다.

 모시나 전대에 베전대에

 전에나 전대루 놀아나 보자.

 성두(成斗)의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빼놓은 사람 없이 단 한 번씩이라도 목청을 뽑고 소리를 불렀다.

 물소리를 출렁출렁 내며 한 움큼씩 쥔 볏모를 몇 뿌리씩 떼어 꽂는 그들은 서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입으로 소리를 하면서도 손을 재빠르게 놀렸다.

 그러나 열네 살밖에 안 되는 성두의 동생은 가뜩이나 뒤떨어지는 솜씨에 소리를 한마디 하고 나면 한 발씩 뒤떨어졌다.

 “얘얘, 너는 소린 그만두구 모나 잘 꽂아라. 잘못하면 너 때문에 일을 못 맞출라.”

 성두가 그의 동생 몫을 꽂아주며 하는 말이다.

 “얘들아, 이번에는 수심가나 한마디 하자꾸나아. 아마 수심가는 성두가 가장 나을걸?……”

 다 같이 젊은 사람들만 모여 일하는 곳이라 그런지 어떤 이가 이렇게 따라 말했다.

 “아암 수심가는 성두지…….”

 “나야 받기나 하지…… 누가 먼저 꺼내봐.”

 “공연히 그러지 말구 빨리 해.”

 성두는 처음엔 사양하려 했으나 두 번 권할 때는 댓자 소리를 꺼냈다.

 그럴 때 마침 옆엣논에서 자동차 온다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논에서 일하는 이들이 굽혔던 허리를 펴고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고 있었다.

 “저 차에 길서(吉徐)가 온대지.”

 “그러더군…….”

 이런 말이 나자, 성두의 동생은 논에서 밭을 건너 신작로로 뛰어갔다. 옆엣논에서도 몇 사람이 자동차가 머무르는 큰 돌이 놓여 있는 길가에 모여 서서 수군거렸다.

 “팔자 좋다. 어떤 놈은 땀 흘리며 종일 일만 하는데 어떤 놈은 자동차만 슬슬 굴리누나.”

 기억이가 자동차 온다는 말에 길서를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길서가 부러운 듯 자동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자동차는 여름 먼지를 뽀얗게 휘날리면서 동네 앞까지 왔으나 기다리던 사람들 앞에서 머물지를 않고 그냥 달아나버렸다. 동네 서쪽 조그만 산을 돌아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모여 섰던 사람들은 다시 수군거리며 제각기 일터로 돌아갔다. 성두 동생이 돌아왔을 때 일꾼들은 남의 일이 아니면 자기들도 신작로까지 나가 보고야 말았으리라고 수군거리며 다시 모를 꽂기 시작했다.

 “오늘 온댔으니 꼭 올 텐데…….”

 성두가 왼손에 쥔 못단에서 몇 포기를 떼며 말했다.

 “글쎄…… 꼭 올 텐데…… 요새 모를 못 내면 금년에는 상을 못 탈 거 아냐?”

 기울어지는 햇살을 쳐다보며 진도 애비가 말했다.

 “너 원통할 게 뭐 있니? 길서가 상을 탄대두 너는 ‘마꼬’1) 한 개 못 얻어먹어, 이 자식아!”

 기억이가 툭 쏘았다.

 “그래두 온다구 한 날에 올 텐데…….”

 은근히 기다렸는지 성두가 다시 말했다.

 길서는 그 마을에서 가장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물론 사촌 형뻘이 되면서도 기억이 같은 몇 사람은 길서를 시기하고 속으로는 미워까지 했으나, 동네 전체로 보아 보통학교 졸업을 혼자 했고, 군청과 면사무소에 혼자서 출입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동네 사람들을 가르치며 지도했다. 나이 젊은 사람으로 일을 부지런히 해서 돈도 해마다 벌며, 저축을 하여 마을의 진흥회니 조기회니, 회마다 회장을 도맡고 있는 관계로 무식하고 착한 농부들은 길서를 잘난 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서울서 열리는 농사 강습회에 군에서 보내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한 주일 전에 떠난 뒤 길서를 칭찬하는 소리는 더 커갔다.

 평양 구경도 못한 마을 사람들이 서울까지 가서 별난 구경을 다 하고 돌아올 그에게서 서울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니 그의 돌아옴이 기다려지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성두의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논두렁을 올라가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다른 동네에서는 점심 뒤 한 번 쉬는 참에는 샛밥을 먹는 것이었으나 이들은 몇 해 전부터 그런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밥은 못 먹어도 그저 몸이나 쉬는 것이었다.

 길서네만 내놓고는 전부가 소작으로 사는 그들이 여름철에는 보리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는 터에 샛밥쯤은 물론 생각도 못 했다.

 “나두 돈이 있으면 죽기 전에 서울 구경이나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진도 애비가 드러누워 맥고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나는 평양이라두 구경해보구 죽었으면 좋갔다.”

 신문지 조각으로 희연을 말아 침으로 붙이던 성두가 웃었다.

 “하늘에서 돈이나 좀 떨어지지 않나?……”

 풀 위에 엎드려 풀을 손으로 뜯던 기억의 말이다.

 여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곡식의 싹이 돋은 들판은 물들인 것같이 파랗다.

 “그런데 금년엔 나두 길서네처럼 금비를 사다가 한번 논에 뿌려보았으면…… 길서는 밭에다 조합 비료래나…… 암모니아를 친대…… 그것을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성두가 말할 때, 진도애비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말 말게! 골메2) 서는 누가 빚내다가 그것을 했다는데 본전두 못 빼구 빚만 남었다데…….”

 “그럼! 웃동네 이록이네두 녹았대더라. 설사 잘된다 한들 우리가 많이 먹을듯하냐? 소작료가 올라가면 그뿐이야!”

 기억이가 성난 것처럼 말했다.

 “얼마 전에 지주한테 가니까 이록이 칭찬을 하며 우리가 금비 안 쓴다는 말을 하던데…….”

 “글쎄 말이야…… 금비라는 게 또 우릴 못 살게 하는 거거든…… 그것은 어떤 놈이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분명 돈 있는 놈들이 만들었을 게야. 빚 안 내고 농사를 지어두 굶을 지경인데 빚까지 내래니 살 수가 있나?”

 기억이가 큰소리를 할 때, 진도 애비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길서야 돈 있고 제 땅이 있으니 무슨 짓인들 못하리…… 또 변[利子] 없이 얼마든지 보통학교에서 돈을 갖다 쓸 수가 있으니까…….”

 “나두 보통학교나 다녔으면 모범경작생이나 되어 돈을 가져다 그런 것을 한번 해보았으문 좋을 텐데, 보통학교 물도 못 먹었으니…….”

 성두가 절반이 거의 꽂힌 모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은 이런 의미에서도 길서를 부러워했다. 물론 제 땅이 얼마만큼은 있어야 모범경작생이 될 것이나, 보통학교도 다니지 못한 형편에 그런 꿈은 꿀 수도 없고 따라서 길서처럼 서울 구경을 공짜로 할 생각을 못 해보는 것이 억울했다.

 “내일은 우리 조밭 세벌김 매러들 오게.”

 기억이가 일어서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나는 내일 장에 가서 돼지 금새를 보구 와야갔네. 그것을 팔아다 지세두 바치고 오월 단오에 의숙이 댕기두 한 감 끊어다 줘야지.”

 성두가 이 말을 하고 일어나자 앉았던 사람들도 논으로 다시 내려갔다.

 성두는 말없이 모를 꽂고 있었으나 모 이파리에서 곧 벼알이 열리어 익어주었으면 하고 생각해보았다. 일 년에 벼를 두 번만이라도 거둘 수 있다면 돼지는 안 팔아도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까닭이다.

 기나긴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어느새 쑥 내려갔다. 서산에 넘어가려는 붉은 해를 돌아보고 기억이가 타령조로 소리를 높이었다.

 “어서 꽂구 저녁 먹자…….”

 다른 사람들도 이 소리를 따라 마지막 춤을 추는 무당처럼 소리를 치며 모를 꽂았다.

 어둠이 들을 휩싸고 돌 때 물오리들이 소리치며 떼를 지어 날아갔다.

 성두의 논에서 큰 개뚝을 넘어 김매러 갔던 그의 손아래 누이 의숙이가 국숫집 딸 얌전이와 같이 모 꽂는 논두렁을 지나갔다.

 “의숙아! 빨리 가서 저녁 지어라. 원, 이제야 가니?”

 성두가 의숙을 보며 말했다.

 “응…….”

하며, 의숙이가 고개를 돌리었을 때 기억이가 말을 붙이었다.

 “길서가 안 와서 맥이 풀리겠구나…….”

 그러고는 다시 얌전이에게 말을 했다.

 “오늘 저녁 너희 집에 갈까?”

 의숙이와 얌전이는 꼭같이 눈을 떨구고 길을 걸었으나 의숙이만은 얼굴을 붉히었다.

 개뚝에 가리어 자동차를 못 보았으나 그래도 동네에 들어가면 길에서라도 길서가 자기를 불러줄 것을 은근히 생각하던 의숙이었다.

 먼지 묻은 적삼이 등골에 흐른 땀에 뻘게졌고, 장흙을 뭉갠 듯한 치마가 걸을 때마다 너풀거렸다.

 “얘, 길서가 안 왔대지?……”

 얌전이가 말을 꺼냈다.

 “글쎄, 누가 아니…….”

 “공연히 그러지 마라…… 눈물이 나오면 울어. 이런 때 울지 않구 언제 울겠니? 나 같으면 그까짓 거 막 울겠다.”

 이름만이 얌전이며 사실은 동네에서 제일가는 말괄량이로 아직 시집도 가기 전에 서방질까지 했다는 처녀지만 의숙이는 그의 말이 그다지 밉지가 않았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가슴이 답답한 듯하여 안타까워하던 길서를 한 주일이나 보지를 못하다가 오늘에야 만나려니 했던 마음을 얌전이만이 알아주는 듯했다.

 “얘, 사랑이라는 게 무어니? 함께 살지두 않으면서 사랑을 할 수 있니? 너는 그래두 기억이를…….”

 무슨 소리나 가릴 줄 모르는 얌전이는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면서도 전에 없던 진정을 보였다.

 “누군 사랑이 뭔지 아니? 그래두 너는 길서 오래비하구 사랑한대드구나…….”

 “몰라, 얘…….”

 마을은 조용했다.

 어슬어슬해가는 들에서는 낮에 먹은 더위를 식히고 마시었던 먼지를 토하는 듯 벌레들이 목청을 가다듬어 울고 있었다.

 의숙이와 얌전이는 집에다 호미를 두고 꼭같이 우물로 나왔다. 의숙이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한 손으로 물을 쏟아 얼굴을 씻고, 머리털에 묻은 물방울을 손으로 퉁긴 뒤에 흙에 빨개진 고무신과 발을 씻고 있었다. 마침 그때 동이를 옆에 끼고 오던 마을 여편네가 길서가 이제야 온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얘, 길서 오래비가 온대! 개들이 짖는 데쯤 온 모양이다.”

 얌전이가 마치 길서를 만나보기나 한 것처럼 들먹거리었다.

 고무신도 마저 씻지 못하고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의숙은 혹시 길에서라도 만나지 않을까 하여 가슴을 졸이었다. 집에 가서 아무 정신없이 돼지죽을 바가지에 담아 가지고 돼지우리로 나갈 때는 설마 길서가 자기 옆에 와 있으려니 했으나, 꿀꿀거리는 돼지에게 죽을 쏟아주고 돌아설 때까지 길서가 자기를 만나러 오지 않음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대문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귀에 익은 기침 소리가 의숙의 발을 멈추게 했다. 역시 길서의 기침 소리가 틀림없었다.

 의숙이는 작년 여름, 설레이는 가슴으로 길서를 대하게 된 뒤부터 동네에서도 거의 알게끔 사이가 친했건만 아직까지 어른들에게는 눈을 숨기고 있는 사이라 마당 옆 낟가리 밑에 숨어 길서를 만났다.

 “잘 있었니?”

 “네…….”

 “자동차를 타구 올래다가 몇 시간 걸으면 칠십오 전이나 굳는 걸 공연히 타구 오겠든…… 빨리 너를 만나구 싶기는 했지만…….”

 의숙이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울렁거리는 가슴은 그저 널뛰듯 뛰었고, 고개는 들고 있을 수 없게 숙여지기만 했다.

 매일같이 만날 때는 어느 틈에라도 웃어보이었고 말을 한 마디만 해도 기쁜 생각이 솟았건만 며칠 떠났다가 만났음인지 공연히 가슴만 떨리었다.

 그날 밤. 동네 사람들은 서울 이야기를 들으려고 길서네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소 먹이러 갔던 어린애들은 밥술을 놓기 전에 뛰어와서 멍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마당에는 빨랫줄에 남포동이 걸리어 금시 꺼질 것처럼 바람에 훌떡훌떡 했다.

 윳꾼3)에게 남포등을 내다 건 것이 길서네로서는 처음인 만큼 마을 사람들도 보통 때의 윷놀이와는 달리 말들을 적게 했다.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편 옆에 앉은 부인네들도 각기 길서에게 잘 다녀왔느냐는 인사를 했다.

 “오래비, 잘 다녀왔소?”

 특별히 큰 목소리로 말하는 얌전이의 인사는 웅크리고 앉았던 의숙의 고개를 더 숙이게 했다.

 “그래, 서울이 얼마나 크던가?”

 길서 앞에 앉았던 수염 기른 늙은이가 웃으며 물었다.

 “서울에는 우리 동네 터보다 더 넓은 자리를 잡고 있는 집이 수없습니다. 총독부 같은 집은 수만 명이 살겠던데요.”

 길서는 서울서 구경한 놀랄 만한 일을 하나도 빼지 않고 이야기했다.

 전차를 수백 대나 되며 자동차가 수천 대나 다녀 귀가 아파서 다닐 수가 없었다는 말까지 했다.

 혀를 빼고 멍하니 듣던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려 할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강연조로 말을 꺼냈다.

 “이제는 강습회에서 배운 것을 조금 말하겠습니다. 농사짓는 법이란 제가 보통학교 다니면서 다 배운 것이며, 지금 제가 채소밭 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이었으니까 말할 것이 없지요. 하나 새로 배운 것이 있다면, 닭을 칠 때 서울서 ‘레그호온’이라는 흰 닭을 사다 기르면 그놈이 알을 굉장히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는 배운 것이라곤 별로 없습니다.”

 이 말을 끝맺고 다시 말을 이을 때는 기침을 한 번 하고 목청을 올리었다.

 “제가 강습회에서도 가장 많이 물은 이야기입니다마는,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이 가장 어렵고 무서운 시국이라는 것입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죽을죄를 짓기 쉽고, 일을 아니 하고 놀려고만 생각하면 농사도 못 짓게 됩니다. 불경기(不景氣) 불경기 하지만 얼마 오래갈 것이 아니며 한 고비만 넘기면 호경기(好景氣)가 온다는 것입니다. 들으니까 요사이에 감옥에 가장 많이 갇힌 죄수들은 일하기가 싫어서 남들까지 일을 못하게 한 놈들이래요.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라나요. 공연히 알지도 못하고 그런 놈들의 말을 들었다가는 부치던 땅까지 못 부치게 될 것이니 결국은 농군들의 손해가 아니겠소?……”

 듣고 있던 사람들은 길서의 얼굴만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또 무슨 전쟁이 일어날 것도 같습니다. 하라는 일을 하니 하면 우리가 어떻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같은 값이면 마음 놓고 하라는 일을 잘하며 살아야 하겠어요. 에에, 우리는 일을 부지런히 합시다. 그러면 굶어 죽는 법이 없으니깐요. 유명하게 된 사람들은 전부 부지런했던 덕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않습니까!”

 말을 끝내고 한참이나 서 있다가 앉을 때, 옆에 앉았던 늙은이가 이마를 긁으며 물었다.

 “너, 서울 가서 그런 말도 배웠니?”

 길서는 그저 웃었다. 의숙이는 재미있게 듣는 동네 사람들을 볼 때 길서가 더 훌륭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호경긴가 하는 것은 언제 온대든?”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 기억이가 한참 동안 잔잔하던 공기를 깨뜨리고 말했다. 대답이 궁했던 길서는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얼마 안 있으면 온대드라…….”

하고 대답했으나 어째서 불경기니 호경기니 하는 것이 생기느냐고 캐어물을 때에는 모르겠다는 솔직한 대답밖에 더 할 수가 없었다. 농민들이 나날이 못살게 되어가는 것이 불경기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을는지 모른다.

 “암만 호경기가 온다 해두 팔아먹을 것이 있어야 호경기지, 팔 거 없는 놈에게 호경기는 무슨 소용이냐. 호경기가 되면 쌀이 많이 생기기나 하나?……”

 이러한 기억의 말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온 듯했으나 호경기가 쌀을 많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그들은 길서의 말보다 더 그럴듯하게 생각되었다.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십 리 밖 읍내에 있는 지주(地主) 서(徐)재당은 금년에 맏아들을 분가시키고 고래 같은 기와집을 지어주었다.

 쌀값이 조금 오르면 고무신 값이 오르고, 쌀값이 떨어지면 물건 값이 떨어지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은 불경기니 호경기니 해도 그것이 그들에게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같이 생각되었으며, 돈 있는 사람들이 불경기에 땅 팔았다는 말을 못 들었으므로 경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길서가 어려운 말을 자기들보다 많이 아는 사람같이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서울 갈 때 입었던 누런 양복을 벗고, 무명 잠방 적삼을 갈아입은 뒤, 논에 나가 모를 꽂고 들어온 길서는 컴컴한 저녁때쯤 해서 의숙의 집 모퉁이로 의숙을 만나러 갔다.

 기쁨을 기쁘다고 말하지 못하던 의숙도 이날만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솟아오르며 무슨 말이든 가슴이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길서가 서울서 사 왔다고 파란 비누를 손에 쥐어 줄 때 의숙은 진정으로 뜨거운 눈초리로 길서의 손을 듬뿍 잡았다.

 비누 세수라고는 평생 못해본 의숙이 비누 세수를 하면 금시 자기의 터진 얼굴이 희어지며 예뻐질 것 같아 춤을 추고 싶게 기뻤다.

 “내 다음 일본 가게 되면 더 좋은 거 사다 줄게…….”

 “언제 또 가세요?”

 “가을에는 도에서 세 사람을 뽑아 일본 시찰을 보낸다는데 뽑히기나 할는지 모르지만…….”

 “뽑히겠지요. 뭐…….”

 자신 있는 듯이 의숙이가 말할 때 컴컴한 데서 사람 소리를 들은 강아지가 깡깡 짖으며 뛰어나왔다.

 무서운 호랑이라도 본 것처럼 그들은 뒤돌아볼 새도 없이 굴뚝 뒤로 몸을 움츠렸다.

 가슴속에서 뛰는 심장의 고동을 제각기 남의 가슴속에서 들었다.

 “그놈의 개새끼가 사람을 놀라게 하눈…….”

 숨을 내쉬고 일어설 때 그들의 손은 꼭 쥐어져 있었다.

 의숙은 길서를 떠나서, 몰래 집 안으로 들어가 비누를 궤 속 깊이 넣었다가 한 번 다시 꺼내 보고는 마당으로 나와 어머니와 오빠, 동생이 앉아 있는 멍석으로 갔다. 그러나 길서의 품에 안겼던 생각만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 사 원 팔십 전을 받고 팔았단 말인가?”

 그의 어머니가 성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럼 어떡헙니까? 그거라두 팔아서 용돈을 써야지요. 우선 지세두 밀리구 보리 벨 때까지 먹을 보리두 사야 하지 않어요? 또 단오 명절두 가까워 오는데 돈 쓸 데가 없어서 그러십니까?”

 “아아니. 그런 줄은 알지만 큰 돈을 만들려구 했던 돼지를 너무 일찍 팔았단 말이야.”

 “누구는 모르나요? 여름에는 풀을 깎아다 주기만 하면 거름을 잘 만들고, 먹을 것도 겨울보다 흔해서 기르기도 쉽구…… 그러다가 가을철에 들어 팔면 큰돈 될 것두 알기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성두의 얼굴은 푸르락푸르락했다.

 “오빠! 오빠의 잔치는 어떻게 합니까? 돼지를 팔구…….”

 의숙이가 옆에 앉았다가 눈을 흘기는 것 같으면서도 웃는 얼굴로 말을 했다.

 “글쎄 말이다. 내 말이 그 말이 아닌가?”

 어머니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이 나와서 시원한 듯했다.

 길서는 새벽에 일어나 감자밭에 나가 벌레를 잡고 뽕나무 묘목 밭을 한번 돌아보고는 서울 갈 때 입었던 누런 양복을 입고 읍내로 들어갔다.

 먼저 보통학교 교장에게 가서 제 손으로 만든 빗자루 다섯 개를 쓰라고 주고 모를 다 냈으니 비료를 사야겠다고 이십오 원을 빌려 가지고는 뽕나무 묘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면사무소로 들어갔다.

 “리상, 잘 왔소. 한턱내야지. 오늘은 리상의 점심을 얻어먹어야겠군…….”

 세금 못 낸 사람을 잘 치기로 유명한 뚱뚱한 서기가 들어서자마자 말을 했다.

 “한턱은 점심 때 내기루 하구, 묘목은 언제 가져갑니까? 퍽 자랐는데…… 이번에는 돈을 좀 실하게 받아야겠는데요.”

 “한턱만 내면야 잘 팔아주지……. 내게만 곱게 보이란 말이야. 값을 정해서 갖다 맡기면 그만이니까. 누가 감히 무슨 소리를 하겠나?”

 면서기가 농담 비슷하게 웃었으나 허리를 구부리고 복종하는 농부들은 절대로 마음대로 할 자신이 있다는 듯한 호걸웃음을 웃었다.

 “일본으루 보내는 사람을 뽑을 때두 면장을 시켜서 잘 말하도록 할 테니 그저 한턱만 내요.”

 “그것은 염려 마십시오. 술 한 병이면 녹초가 될걸…… 그러면서두 얼마나 먹는 듯이…… 하하하…….”

 길서는 진정으로 한턱내고 싶기도 했다. 묘목만 잘 팔아주면 예상외의 돈이 들어온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때 뚱뚱한 몸에 맵시 없는 의복을 입은 면장이 들어와서 길서 앞에 섰다. 길서는 인사를 하고 서울 갔던 일을 보고했다.

 “그런데 이번 호세(戶稅)는 자네 동네에서 조금 많이 부담해야겠네. 보통학교를 육 학급으로 증축해야겠으니까…….”

하고, 길지도 않은 수염을 쓸며 호세 이야기를 했다.

 “거야 제가 압니까?”

 “아니야. 자네 동네서야 자네만 승낙하면 되는 게니까. 그렇다구 자네에게 해로운 것은 없을 게고…….”

 “글쎄요…….”

 길서는 면장의 말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에게 조금이라도 재미없는 말을 해서 비위를 거슬리게 하면 자기도 끼니를 굶고 지내는 동네 소작인들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둘째로 하고라도 묘목도 못 팔아먹을 것이며, 그런 말이 보통학교 교장 귀에 들어가면 돈도 빌려다 쓸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묘목을 심었던 밭에 조를 심게 되고, 면사무소 사무원들과 학교 선생들에게 팔던 감자와 파도 썩히게 되는 것이다.

 삼백 평밖에 안 되는 논에 비료를 많이 내지 않으면 미곡품평회(米穀品評會)에 출품도 못 해볼 것이며, 그러면 상금을 못 탈 뿐 아니라 벼가 겨우 넉 섬밖에 소출이 안 될 것이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과 꼭 같이 일 년 양식도 부족할 것이 아닌가?

 “자네 동네 사람들은 얌전하게 근심 없이 사는 모양이던데…….”

 면장이 다시 말을 꺼낼 때 길서는 곧 대답했다.

 “그러믄요. 근심이 조금도 없다고야 할 수 없지마는 무던한 편은 됩니다.”

 벼는 누릇누릇해서 이삭들이 뭉친 것이 황금덩이 같았다. 그러나 얼굴의 주름살을 편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강충이4)가 먹어 예년에 비해서 절반도 곡식을 거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서만이 평양 가서 북어기름을 통으로 사다가 쳤기 때문에 그의 논만은 작년보다도 더 잘 되었으나 다른 논들은 털 빠진 황소 가죽같이 민숭민숭해졌다.

 이(虱)새끼만 한 작은 벌레까지도 못살게 하는 것이 원통했으나 여름내 땀을 빼고도 제 입으로 들어올 것이 없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솟아오를 지경이었다.

 그들은 할 수 없어서 성두의 말대로 길서를 시켜 읍내 지주 서재당에게 가서 금년만 도지[小作料]를 조금 감해달래 보자고 했다.

 그러나 길서는 자기와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정해놓은 도지를 곡식이 안 되었다고 감해달라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소작 쟁의와 같은 당치 않은 것이라고 해서 거절했다. 그리고는 며칠 있다가 일본 시찰단으로 뽑혀 떠나가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더구나 금번 겨울에는 기어이 잔치를 하려고 했던 성두는 가끔 우는 얼굴을 하곤 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큰마음을 먹고 떼를 지어 읍내로 들어가 재당에게 사정을 말해보았으나 물론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을 분가시킨 관계로 돈이 몰린다는 근심까지 들었다.

 “너희들 마음대로 그렇게 하려거든 명년부터는 논을 내놓아라.”

하는 말에는 더 할 말이 없어, 갈 때보다도 더 기운이 없이 돌아왔다.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길서의 논 앞에 서서 ‘모범경작’이라고 쓴 말뚝을 부럽게 내려다보았다.

 볏대가 훨씬 큰 데다 이삭이 한 길만큼 늘어진 것이 여간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말도 잘하고 신망도 있다 해서 교섭을 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못 들은 체 들어주지 않은 길서가 미웠다.

 “나도 내 땅이 있어 비료만 많이 하면 이삼 곱을 내겠다 이까짓 거…….”

 기억이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며칠 뒤 그들이 다시 놀란 것은 값도 모르는 뽕나무 값이 엄청나게 비싸진 것과, 십상 등 하던 호세가 십일 등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것보다도 십 등 하던 길서네만은 그대로 십 등에 있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길서네는 그래도 작년에 돈을 모아 빚을 주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흉년까지 만나 먹고 살 수도 없는데 호세만 올랐다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기막힌 일이었다.

 무엇을 보고 호세를 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흉년. 그러면서도 도지를 그대로 바쳐야 하는 데다가 호세까지 오른 그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아마 북간도나 만주로 바가지를 차고 떠나야 하는가 보다.’

 성두는 혼자 생각했다. 그들은 마을에 대한 애착심도 잊었고 제 고장이라는 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다만 못 살 놈의 땅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길서의 장난으로 호세까지 올랐다는 것을 다음에야 알고 누구 하나 그를 곱게 이야기하는 이는 없게 되었다. 길서 때문에 동네를 떠나야 하겠다는 오빠의 말을 들은 의숙이도 눈물을 흘리며 길서가 그렇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길서는 일본서 돌아오는 길에 자기의 논두렁에서 가슴이 서늘함을 느꼈다.

 논에 박은 ‘김길서’라고 쓴 말뚝은 쪼개져서 흩어져 있었다.

 심술궂은 애들이 장난을 했는가 하고 생각하려 했으나 그 한 짓으로 보아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동네에 들어섰을 때 동네에는 어른이라고는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읍내 서재당 집에 가서 저녁때가 되도록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서울 갔다 돌아올 때보다 더 의기양양해 온 길서의 마음은 조각조각 깨어지고 말았다.

 보지도 못했고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바나나를 가지고 밤이 이슥했을 무렵 의숙이를 찾아갔지만 그를 본 의숙이도 얼굴을 돌리고 울기만 했다.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따라오는 사람의 숨소리를 듣는 듯 가슴이 떨리었다. 불길한 징조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성두가 충혈된 눈으로 아랫문에 뛰어들었을 때 길서는 들고 왔던 바나나를 들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1) 마꼬 담배 이름.

2) 골메 동네 이름.

3) 윳꾼 이웃에 모인 사람들.

4) 강충이 벼 줄기를 깎아 먹어 벼를 마르게 하는 벌레.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