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할머니의 이야기
백승남
할머니 집에 가면 더 늙으신 할머니가 또 한 분 계신다. 나이가 80이 넘으신 상할머니(증조할머니)다.
상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에도 오신다. 아버지가 가서 모셔오면 일주일씩, 열흘씩 있다가 가신다. 상할머니가 오시면,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어떨 땐 저녁밥도 안 주고 두 분이 앉아 얘기만 할 때도 있다. 그 중에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럴 땐 나도 한쪽 옆에 조용히 앉아 이야기를 듣는다. 상할머니는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 다시 살고 계시는 것 같다.
상할머니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이야기 하나
내가 자식 다섯을 두어서 셋을 잃었지.
그때는 하도 일이 많아서 자식이 귀찮기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셋이나 잃었어도 안타까운 마음이 별로 없었어. 그중에 쌍둥이 자식 잃은 얘기는 더 그래.
느이 시아버지 세 살 되는 해에, 또 애를 낳았는데 아들 쌍둥이를 낳았어. 이걸 어쩌나. 할 일은 태산같고, 한 놈도 아닌 두 놈씩이나 어찌 키우나 하고 애 낳은 날부터 걱정이 늘어졌지.
해뜨기 전부터 일어나서, 아침밥 해 안치면 그새 텃밭에 나가 푸성귀 뜯어와야 하고. 밥도 좀 많이 해? 식구들 밥에, 밭에 나갈 일꾼들 밥에, 가마솥에 가득가득해야 했지. 먹는 게 끝나면 바로 뒷설거지하고 이불 홑청 뜯어서 개울 나가 빨아와야지, 마당에 널어 논 곡식이며 나물 손 봐야지, 쇠죽 끓여야지, 또 점심 해야지……. 아이고, 이젠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면서 틈틈이 베도 짜야 하는 거야.
아기들이 울어서 젖이라도 먹이고 있을라치면, 나도 모르게 깜빡 졸기가 일쑤였어. 어느새 밖에서는 시어머니 고함소리가 들려 오는 거야.
"저녁밥 짓기 전에 베틀에 올라 앉아야지. 무슨 젖을 해 떨어질 때까지 먹일래?"
그러면 깜짝 놀라서 아기들이 젖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모르고 떼어 놓는 거지. 두 놈을 양쪽 옆구리에 한 놈씩 끼고 같이 먹였는데, 이놈들이 안 떨어질려고 잇몸으로 젖을 콱 깨물고 놓질 않네. 가슴이 아픈 건 고사하고 시어머니 큰소리 또 들려오기 전에 나가려고, 얼른 떼 놓으면 두 놈이 악을 쓰며 울어대지. 그러면 울거나 말거나 베틀에 앉아야 했어.
그때는 기저귀도 없던 때였으니까, 오줌을 싸면서 우는 놈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 제 오줌을 도로 먹거나 말거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아기들 오줌 때문에 온몸이 안 젖어 있는 날이 없었지. 냄새고 뭐고 옷만 갈아입고 또 일하러 나가는 거야.
돌 전에 쌍둥이 아기 중에 한 명이 아팠어. 열이 펄펄 끓고 밭은 기침을 밤마다 계속해댔어.
시아버지께 여쭈었지.
"아버님, 애기가 몸이 뜨거워요."
"그래? 얼마나 뜨겁니?"
"아주 불덩어리 같아요."
"그러면, 이 약을 세 번에 나눠 먹여라. 한 번에 다 먹이면 안 된다."
하고 작은 봉지를 주셨어. 그걸 세 번으로 나눠 먹이자니, 밭에 나가 일하다가 뛰어 들어와야겠거든. 잘못하면 또 게으름 피운다고 불호령을 듣겠고. 아이는 불덩어리가 돼서 계속 보채고. 그래 할 수 없이 다 먹여 버렸어. 아이가 잠드는 것 같길래 밭으로 나갔지.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조용해. 방문을 열어 보니 아기가 뻣뻣하게 굳어 있는 거야. 시어머니를 불렀어.
"어머님, 아기가 이상해요."
시어머니가 아기를 들여다보더니 물었어.
"아까 아버님 주시던 약 어쨌니?"
"다 먹였어요."
"느이 아버지, 그 말씀 들으시면 불호령 난다. 절대로 다 먹였다고 하지 말아라."
사랑 앞에 가서 조용히 말했어.
"아버님, 아기가 죽었어요."
아버님이 내다보셨어. 나를 한참 바라보시더니 방문을 도로 닫으시는 거야. 조금 뒤에 목소리만 들려왔어.
"애비한테, 제 새끼니까 지가 갖다 묻으라 해라."
그래서 머슴 한 사람이랑 애들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 할애비가 묻으러 갔어. 그날 애 아버지는 술을 먹고 돌아왔어. 얼굴이 불그레했지. 전에 없던 일이야. 그 사람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사랑으로 갔어. 나는 마음이 떨려서 조용히 뒤따라갔지. 사랑 밖으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어.
"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기가 죽었을 때, '에미가 쌍둥이 데리고 쩔쩔매더니 이젠 좀 시원하겠구나.' 하셨지요? 어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나요? 손주는 자식이 아닙니까? 제가 어려서 죽었어도,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네 자식이니까, 네가 갖다 묻으라셨지요? 재 너머 삼촌도 계시고, 언덕 아래 아재도 사시는데, 꼭 저를 시키셔야 했나요? 내 새끼 돌도 안 돼 죽었는데, 그 핏덩일 꼭 제 아비 손으로 갖다 묻게 하셨어야 했나요?"
그 사람은 평소에 말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어. 모처럼 많은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참 어둡대. 시아버님 목소리는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았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셨나 봐.
그런데 이상한 건 내 마음이었어. 가슴이 아프다거나, 설움이 올라온다거나 하질 않는 거야. 아버님 말씀처럼 이젠 좀 편해지겠구나 싶은 생각도 없었어. 그냥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거야. 다만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일, 그 지겨운 일에 매달려 있으리라는 것밖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어.
그날 밤 그 사람은 나한테 딱 한 마디 하고는 코를 골았어.
"다시는 자식 낳지 맙시다."
나는 그때 당장은 아무런 아픔도 몰랐는데, 오히려 날이 지나갈수록 마음에 조금씩 상채기(상처)가 생기는 것 같애. 까마귀만 심하게 울어도, 우리 아기 묻은 곳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싶고, 여우 울음소리만 나도 그곳이 걱정되고 그랬어.
이제는 내가 죽을 날이 다 돼서인지 꿈에도 가끔 보여. 부모는 산에다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더니 뒤늦게야 그 말 뜻을 알 거 같구나.
이야기 둘
우리 외할아버지가 소문난 난봉꾼이었대.
난봉꾼이란 바람둥이를 말해. 그래서 우리 외할머니가 엄청 마음 고생을 하셨나 봐.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 얘기를 하셨던 걸 보면.
아침에 옷을 차려입고 나가면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저녁에 들어온 적이 없었대. 그 잘생긴 얼굴에 옷도 구김살 하나 없이 차려입고, 망건(상투 있는 사람이 머리에 쓰는 그물처럼 생긴 물건)에도 꼭 풍잠(망건의 앞 이마에 대는 장식품)을 달아야만 바깥나들이를 했대. 읍내에 젊은 과부댁은 안 건드려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는 구나.
그래도 농사일 바쁠 때는 몇 번씩 얼굴도 디밀고 하던 사람이, 가을걷이 끝나고 나면 계집네 집에 다 싸 갖고 가서 돌아올 생각을 안 했나 봐.
한 해에 그나마 넉넉히 먹는다는 가을철인데 농사라고 지었지만 남은 게 있나. 나락 섬이나마 거둬들인 것도 할아버지가 이 집 저 집 갖다주기에도 바쁘니, 집안에 양식이라고 변변할 게 있겠어. 가을걷이 끝난 논바닥에 떨어진 볏짚을 주워다가, 그걸 떨어서 자식들하고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사는 거야.
하루는 할머니가 이웃집에서 콩을 빌어다가 맷돌에 갈고 있었대. 두부라도 만들어 팔아야 먹고 살겠으니깐.
아이들은 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있었지. 그땐 콩비지도 귀해서 함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열두 살짜리 큰아들이 자꾸만 조르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큰삼촌 되는 분이지.
"어머니. 비지(두부가 될 물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 한 그릇만 먹을게요. 네?"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어머니. 배고파 죽겠어요. 딱 한 그릇만요, 네? 제발요."
동생들 보는 앞에서 제일 큰 놈이 그러니 할머니는 더욱 부아가 났지.
"이놈의 자식! 그래, 그거나 먹고 콱 뒈져 버려라!"
하고 말을 쏟아부었대.
그도 그럴 만도 하지. 남편이라는 사람은 허구헌날 계집질에 집안 망해가는 것도 모르지. 봄, 여름, 가을 허리가 휘게 농사지어 놓으면, 남편이 한 철 동안 빚내서 놀고먹은 걸 갚기에도 버겁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을 거야. 게다가 자식새끼들은 날마다 먹을 걸 졸라대지. 순간순간 마음이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겠지.
아, 그랬는데 그날 비지 한 그릇을 달게 먹은 큰아들이 덜컥 체해 버린 거야. 나물죽도 변변히 못 먹다가 갑자기 날비지(띄우지 않은 생비지)가 들어가니 속이 뒤집혔던 걸까. 아니면 너무 급하게 먹었던 걸까.
"아이구, 어머니 나 죽어요. 아이구 아파라……."
그렇게 하룻밤을 괴로워하며 뒹굴더니 그만 숨이 넘어가더래.
먹고 뒈지란 말만 안 했어도 덜 괴로왔을 텐데, 할머니는 생떼 같은 자식 잃은 건 고사하고 자기가 한 말 때문에 거의 정신을 놓아 버릴 뻔했대.
그래도 아비가 있어야지 싶어서, 열 살짜리 작은아들을 강 건너 계집네 집에 보냈어. 형이 죽었으니 빨리 오라고 말야. 숨을 헐떡이면서 강 건너까지 갔던 작은아들은 어깨가 축 처져서는 그냥 돌아왔어.
"아부지. 형이 죽었어요! 빨리 오시래요!"
아무리 얘기를 해도,
"흥, 거짓말 마라. 나를 집으로 불러들이려는 수작인지 내 모를 줄 알구."
하고는 돌아앉아서 들은 척도 않더라는 거야.
할머니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하는 수 없이 아주버님을 모셔왔지. 그러니까 우리 외할아버지의 형님이지. 아주버님이 아이를 거적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가고, 할머니는 울며불며 뒤따라갔어. 때는 섣달 엄동설한이라 꽝꽝 얼어붙은 야산 한 자락을 파서 아이를 묻었어. 굶기를 밥 먹 듯하던 시절인데 관이 다 뭐야. 갈아 입힐 옷도 변변찮아서 그냥 입고 죽은 그대로 거적에만 말아 땅에 묻은 거지.
세상에서 제일 넘기 힘들다는 보릿고개를 그렁저렁 넘기다 보니 그래도 봄이 찾아왔어. 하루는 나물 뜯으러 갔던 할머니가 죽은 아들 무덤께까지 가게 됐대. 무덤이랄 거나 뭐 있나. 어린아이 묻은 곳은 일부러 무덤도 안 만들던 시절이었는데 뭐. 흙덩이를 조그맣게 뭉쳐서 어딘지 알 수 있게만 해놓는 거지. 아무튼 그 조그만 아들 무덤이 초록색으로 뒤덮혔더래. 언제 어디서 솟았는지 박넝쿨이 올라와서는 아들 무덤을 덮고 있더라는 게야. 그래서 아들 무덤이 햇볕을 못 받을까 봐 그 박넝쿨을 죄다 뽑아주고는 돌아왔지.
밤에 할머니가 잠이 들었는데 죽은 아들이 나타났대. 아마 꿈이었지 싶어. 아들이 자꾸 울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 어머니는 제가 살았을 때도 어서 뒈지라고 미워하시더니, 제가 죽었어도 절 괴롭히나요? 아직도 제가 그렇게 밉나요? 이제는 제 이불까지 빼앗아 가 버리시니 전 추워서 어떻게 잠이 드나요. 어머니 너무해요……."
하고는 가버렸는데, 가냘픈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대.
할머니는 하도 기가 막혀서 그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 '내가 자식을 두 번 죽였구나.' 싶어서 꿈쩍도 할 수가 없더래. 그렇게 한동안 앓고 나더니 그만 눈이 멀어 버린 거야. 그래도 모진 것이 사람인지, 그런 일을 겪고도 목숨을 이어왔다고 늘 말씀하셨어.
할머니는 또 그런 말도 하셨어.
"내가 죽으면 내 배를 갈라 봐라. 아마 내 속은 꺼멓게 다 타버렸을 거다."
아, 아들 무덤에 박넝쿨이 왜 났냐고?
입은 옷 그대로 묻었다고 했지. 그 옷 주머니 속에 박씨가 들어있었나 봐. 배곯던 아이들에겐 해바라기씨, 호박씨, 박씨까지 얼마나 훌륭한 주전부리였다고. 처마 밑에 달아맨 박고지에서 박씨를 조금 빼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게지. 그 박씨가 땅이 녹고 봄이 오니까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린 거야.
이야기 셋
육촌 동서 내외가 딸만 있어.
내가 첫아들 밑으로 또 아들 쌍둥이를 낳으니까 볼 때마다 하나만 달라고 했어. 하나 낳은 셈치고 하나만 키우면 안 되겠느냐고. 그 쌍둥이가 돌 전에 하나는 죽고 하나만 남았지. 그 애 서너 살쯤 됐을 때 그 사람들이 또 왔어.
"아주머니네는 손주가 둘이나 있으니 작은 애는 우리 주면 안 되겠어요? 호적에만 올려놓고 아이는 왔다갔다하게 할게요."
방문 밖에 서 있자니 시어머님 목소리가 들려왔어.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어떻게 줘라 말아라 합니까? 에미한테 직접 물어보시지요."
조용히 밭으로 나갔어. 밭일을 하면서도 계속 생각해 봤지.
'그 앨 주면 큰아들 하나뿐인데…….'
방긋 웃는 작은 놈 얼굴이 눈앞에서 자꾸 어른거렸어.
저녁을 지으려고 돌아오니까, 동서네 내외가 가려는지 마당에 서 있어. 남편 되는 이가 나를 보더니 간절하게 말하는 거야.
"계수씨. 어떻게 안 되겠어요? 아들 하나만 주시지요. 지금 주면 우리 피난 가는 길에 아주 데리고 갈까 합니다."
"…… 어찌…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을 주고 말고 합니까. … 또 지 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계시는데……."
"좋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와서 사정하는데도 안 된단 말이지요. 나는 이제 계수씨네 마지막입니다."
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어.
멀리서 이따금씩 대포소리가 들려왔어. 그때가 6.25 전쟁 터지고 며칠 안 됐을 때였거든.
들리는 말로는 그 부부가 바로 피난을 나갔다는데, 그 뒤로 어찌 되었는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지. 지금도 그 사람들 소식은 몰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얼마나 지난 뒤였나. 아마 적어도 십 년은 지났지 싶어. 그 집 큰딸이 날 찾아왔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 소식을 몰라 이젠 돌아가셨겠거니 하고, 집 나간 날로 잡아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저희는 딸들만 있어 제사 지낼 형편이 못 되니 어쩌나요. 부모님께서 이 집 작은아들을 그렇게 아들 삼고 싶어 하셨으니, 이젠 좀 허락하시지요. 제사만이라도 좀 모시게 해주시지요."
하고 사정을 하는 거야.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나중에는 울고불고하네.
"아주머니. 저희 부모님을 아주 가게 하시렵니까? 제발 마음을 조금만 넉넉하게 잡숴 주세요. 아주 데려가는 게 아니라 호적만 떼 갈게요."
그쯤 되니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시어머님도 돌아가셨고, 남편도 이미 죽고 없을 때였으니까.
"나도 모르겠네. 자네 부모가 없으니까 줘도 내 자식일 터. 그럼 데려가게."
그래서 살기는 같이 살되 호적은 그 집으로 옮겨갔지.
그래, 해마다 제삿날이면 그 딸이 제수거리(제사에 쓰는 물건이나 음식) 다 장만해서 우리 집으로 왔어. 우리 아들이 입을 거성(제사 지낼 때 입는 상복)까지도 모두 마련해 왔지. 그렇게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낸 거야.
몇 해를 지내다 보니까, 그 딸이 우리 집까지 와서 제사 지내기가 번거롭고 미안하고 그랬나 봐. 이젠 자기네 집으로 제사를 옮겨가겠대. 그래 이제는 우리 아들이 그 집까지 가서 제사를 모셨지.
그 집 큰딸이 늦으막히 동생 생겼다고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친 누이래도 그렇게까진 못했을 게야. 몇 년 뒤에 우리 작은아들이 장가 가 아들을 낳았거든. 그 애도 친조카 이상으로 참말로 예뻐했지.
이 손주 녀석이 열 살인가 먹었을 때였어.
하루는 학교 갔다 와서는
"할머니. 골이 아파."
약방에 가서 약을 사다 먹였는데 낫질 않아. 밤새 아프다고 자꾸만 뒤채는 거야. 다음날 지 애비가 데리고 도립병원으로 갔지.
그날이 마침 한가위 전날이라 눈 코 뜰 새 없을 즈음이었어. 송편 반죽을 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그래.
아주머니. 손주가 도립병원에 있는데 아주 위험하대요."
쌀가루 묻은 손을 닦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뛰어갔지. 아이는 침대 위에 누웠는데 자꾸만 몸부림을 치는 거야. 가만히 보니 온몸이 퉁퉁 부어 있어. 지 애비는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고 의사 선생을 붙잡고 사정하고 있고. 의사 선생도 더 이상 방법이 없나 봐.
게서 밤새 지켜 보고는 집으로 돌아왔지. 한가위 제사를 지내야 하니깐.
아침에 어찌어찌 제수거리 마련해서 차례를 지내고 났더니 연락이 왔어.
"어머니. 아무래도 사람 구실 못하겠어요. 이왕 죽을 거 집에 가서 죽게 해야겠어요."
"…데리고 오너라."
남의 집에 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손잡이를 놓쳐 버렸지. 손이 바들바들 떨려. 팔자 기구한 몸이 자식새끼 먼저 죽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젠 손주 녀석 죽는 것까지 보겠구나 싶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래도 입힐 옷은 만들어야지 싶어, 장에 나가 소창(광목) 한 필을 받아왔지.
저물녘에 애를 데리고 왔는데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해. 여전히 몸부림만 치고. 그러더니 배내똥(간난아기가 맨 처음 싸는 똥)을 확 싸버리는 거야. 사람이 죽을 때는 배내똥을 싼다는 말이 있거든. 그리곤 그냥 숨이 넘어가 버렸지. 눈물을 섞어서 급하게 만든 바지저고리(수의 : 죽은 사람한테 입히는 옷)를 입히는데 제 양고모가 왔어. 아이를 보자마자 반 정신이 나갔네.
"이럴 줄 알았으면 네 애비를 왜 달라고 했겠니. 자식 없는 늙은이들한테 너희를 보내서 그렇게 됐구나. 우리 부모님이 원래 아들 복이 없는 걸 억지로 만들려 해서 네가 그 죄를 받았구나. 너한테 지은 이 죄를 어떡한다니?"
하면서 통곡을 해. 그리고는 바로 까무러쳤어.
애는 수의를 입힌 채로 거적에 말아서 산에 갔다 묻었어. 옛날에는 애기 묻은 곳은 따로 무덤을 안 한다고 했지. 그냥 땅보다 조금만 봉긋하게 만들 뿐이야. 흔적만 남겨 놓는 거지. 그 앞에서 지 애비가 그렇게 큰소리로 울더니, 며칠을 두고 날마다 거기 가서 통곡을 했어. 아이 죽던 날 까무러쳤던 양고모는 한참 뒤에 깨어났는데, 귀 뒤로 멍울이 세 개나 툭 불거진 거야. 무슨 혹처럼 보였어. 그리고는 목을 잘 가누질 못해. 병원엘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래. 그래 수술하려고 마취를 했는데, 그 마취에서 깨나지 못하고 그대로 갔어.
그 사람 장례식날 우리 작은아들이
"누이가 우리 애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다 갔는데, 내가 관이라도 앞에서 모시고 가야겠어요."
하고는 맨 앞에서 관을 들었지. 앞에 두 사람 뒤에 두 사람 가운데 두 사람, 그렇게 여섯이 관을 메고 장지(죽은 사람을 묻을 곳. 묫자리)로 올라가는데 관을 든 사람들 발이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 거야. 아무리 떼려고 해봐도 소용이 없어. 길가의 나뭇가지를 붙잡고 용을 써봐도 안 되고, 사람들이 뒤에서 밀어도 안 돼.
맨 앞에 방울 흔들며 가던 이가 우리 아들 보고
"일루 나오세요. 동생이 무거운 관을 들어서 안쓰러운 마음에 못 가는 게요. 다른 사람을 세우시오."
그래, 아들이 빠져 나오니깐 관이 바로 움직이는 거야.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끝일 거 같지만 그게 아니야. 죽은 다음에도 이승 일은 다 보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