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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돼지

가백현

 

병수는 마당 중간에 장작개비 다섯 개를 엇갈리게 걸쳐 세웠다. 제일 마른 걸로 빼온다고는 했지만 장작 끝 부분이 약간 눅눅해져 있었다. 불쏘시개로 삭정이와 검불을 한 움큼 집어 장작 밑에 쑤셔 넣고 라이터 불을 들이댔다. 검불에 붙은 불이 파르르 타오르다 가라앉았다. 병수는 입술을 내밀어 후후 불었다. 입 속에서 빠져나간 구린내가 연기와 함께 섞여 밀려들어왔다. 숨이 찰 정도가 되자, 불꽃이 삭정이에 옮겨 붙으면서 장작을 껴안듯 파랗게 일어났다. 그러나 삭정이는 제 몸을 태우고도 장작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병수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고 있는 장작개비 두 개를 들고 나와 밑 부분에 찔러 넣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쪼그리고서 검불을 뿌렸다. 장작은 기지개를 펴듯 천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병수는 담배를 꺼내 장작에서 불을 붙인 다음 몸을 일으켰다.

등뼈 끝에서 통증이 느껴져 얼른 무릎을 짚었다. 여름 내내 허리를 숙이고 일했던 후유증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굳어버린 뼈를 억지로 펴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병수는 두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눈 덮인 건넛산이 병풍을 쳐놓은 것같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중간을 칼로 그어놓은 듯 읍내로 가는 길만 가늘게 뚫려 있을 뿐, 아름드리 나무조차 눈에 파묻혀 산 자체가 거대한 눈덩이처럼 보였다. 눈길 사이로 시내버스 한 대가 넘어왔다. 차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눈 위를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아 병수는 버스가 마을로 내려올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버스는 언덕 중간 지점에서부터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기사가 동네 사람들에게 버스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다니는데 마을 안쪽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갔다. 폭설이 쏟아지던 날부터는 아예 들어오지 못해 마을은 일 주일 동안이나 고립된 적이 있었다.

󰡒여태 뭐허는겨? 물은 끓였남?󰡓

어느새 왔는지 종만이 마당 끝에 있는 돼지우리 앞에서 서성거렸다.

󰡒끓이구 있슈.󰡓

종만이 집안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열려진 대문 사이로 보이는 수돗가에 숫돌과 금방 갈아놓은 칼 세 자루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종만은 다시 돼지우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병수는 보지 않아도 종만의 눈동자가 돼지 등뼈를 훑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만은 지난여름부터 돼지를 잡으면 등뼈를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한때는 삼천여 평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던 종만이 무리한 농기계 구입과 특용작물 시설투자로 망해,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병수는 그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머니가 허리가 안 좋다고 허네. 누가 그러는디 짐승 등뼈는 다 좋댜.󰡓

종만이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수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웃음이 끝나기 전 잊으려 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와 더불어 울분이 치밀었다. 병수는 장작개비 하나를 더 얹어놓고 발로 밟았다. 살짝 누른다는 것이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장작더미가 주저앉으며 불씨가 종아리까지 튀어 올라왔다. 병수는 장화발로 성의 없이 군데군데 흩어진 불씨만 중간으로 긁어모았다.

아저씨 오셨슈. 왜 이렇게 일찍 왔대유?󰡓

뒷길 쪽에서 팔 홉 페트병 소주를 들고 오던 아내가 종만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하느라고 이제 오는겨?󰡓

병수는 아내를 쏘아보며 소리질렀다. 아내는 병수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주저앉은 장작을 가지런히 세우고 발을 올렸다. 산길로 내려와서 발목까지 붙어 있던 눈이 이내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시집 올 때만 해도 기가 드세던 아내가 아이를 못 갖는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세월이 흐르면서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결혼하고 삼 년 만에 두 번이나 유산을 하고 얻은 아이의 모습은 말 그대로 괴물과 다를 게 없었다. 머리와 눈썹이 붙어 이마가 없었고, 가슴은 방패를 단 것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병수는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이를 받지 못하고 떨리는 양손을 꼭 잡고만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스며들었는데도 의사와 마주앉았을 때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아이는 엑스 염색체 하나가 없는 터너 증후군입니다. 문제는 이 아이가 대동맥 축착이라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대동맥이 좁아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하여 동맥을 늘여야 합니다󰡓

의사의 입이 닫히는 순간 병수는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이 아이와 자신이 겪어야 할 미래를 선명히 보았다.

󰡒가족 중에 이런 증상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까? 할아버지대 또는 고모, 외가 쪽이나.󰡓

의사는 백지 위에 부()와 모()자를 중심으로 가계도를 그리며 말을 꺼냈다. 병수는 그때 가서야 어렸을 적에 언뜻 들은, 막내 외삼촌이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괴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 죽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병수는 의사에게 혹시라는 단서를 달고 외삼촌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에서부터 사다리 타듯 외삼촌까지 굵은 줄을 그었다. 그리고 정자와 난자, 유전자, 결합, 중복, 결실이라는 단어를 섞어 긴 설명을 했다. 병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핏속에 나쁜 병균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버스가 되돌아나갈 때쯤 기석을 비롯해 열 명 정도가 병수 집 마당에 모였다. 모닥불 위로 원을 그리며 나란히 펴진 손등들이 마치 거북이 등을 한 겹 씌워놓은 것처럼 두껍고 검었다. 일년 농사를 끝내고 설이 되면 서울에서 내려오는 자식이나 동생들을 위해 돼지를 잡아 나누는 것이 그들의 몇 안 되는 기쁨 중에 하나였다. 특히 오늘 잡을 병수집 돼지는 새끼를 낳은 적이 없고 사료가 아닌 음식찌꺼기를 먹여 키웠기 때문에 고기 욕심들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병수는 이번 설이 반갑지가 않았다. 어머니가 짐을 싸들고 경로당으로 갈 때에 병수는 어머니 뒤통수에 대고, 다시 집에 들어오면 불 싸지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병수는 어머니를 그렇게 내친 것보다 그 행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자신의 내부를 바라볼 때 경멸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때는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피가 끓어올랐다. 병수는 몇 년 동안 농사 짓고 품팔아 번 돈을 전부 투자해 비닐 하우스를 짓고, 설 대목을 노려 시금치를 심었다. 파란 시금치 싹이 올라오는 만큼 기울어지는 집 걱정이 덜어졌다. 이번 설만 그럭저럭 지내면 내년 추석에는 새 집에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금치를 뽑기 며칠 앞두고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병수는 그날 저녁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늦게 돌아와 곤히 잠이 들었다.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어 있기는 했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설령 눈이 내렸다 하더라도 철제 구조물로 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밤새 내린 눈이 소음까지도 삼켜버렸는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곤한 잠을 잤다. 그 달콤한 잠을 깨운 것은 어머니가 그를 부르는 비명 같은 소리였다.

󰡒얘가 뭐하는 거야? 빨리 나오지 않고.󰡓

병수는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어머니는 대문을 들어서면서 밖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병수가 고개를 들었을 때 담 너머로 늘 보이던 비닐하우스 지붕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건너편 산이며 아랫집 지붕에 쌓인 눈이 눈부시게 보일 뿐이었다.

󰡒비닐하우스가.󰡓

어머니가 병수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병수는 마루를 내려와 신발을 꿰어 신었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파도처럼 쓰러진 비닐하우스가 눈앞에 들어왔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마당 끝까지 걸어갔지만 밭 쪽으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비닐하우스와 병수 사이에 깊은 장애물이 생겨 영원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작혀. 해 넘어가.󰡓

기석이 넋 나간듯 서 있는 병수를 향해 말했다. 병수는 비닐 한 장을 들고 돼지우리 쪽으로 갔다. 마당가에 있는 돼지우리 앞에 토방 같은 공간이 있고 그 공간과 밭 경계에 눈 녹은 물이 고인 웅덩이가 있었다. 병수는 돼지우리 앞에 비닐을 깔고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때 좁은 길로 두 대의 승용차가 들어왔다. 뒤따라오는 검정색 그랜저는 멀리서 보아도 석진의 차라는 것을 알겠는데, 가까이 와 있는 흰색 소나타는 처음 보는 차였다. 소나타는 엉금엉금 기어 병수 집 밭머리에 멈춰 서더니 고운 양장을 차려입은 상현의 어머니와 상현이 내렸다.

상현은 병수와 중학교까지 함께 다닌 동창생이었다. 병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몇 년 동안 공장에 다녔지만 상현은 공부를 계속했다. 같이 공동묘지에서 축구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들은 서로가 너무 다른 길 위에 서 있었다. 병수는 며칠 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상현을 본 적이 있었다. 아홉시 뉴스였는데 상현은 농가부채 실무 과장이라고 소개되고 있었다. 소파에 몸을 묻고 앉아 있는 상현의 모습은 낯설어 보였다. 상현은 농가부채 문제는 농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부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수는 뉴스가 끝나자마자 동창의 출세에 대한 기쁨이나 질투 같은 감정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수립하는 실무과장이라는 관료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병수는 지금까지 빚지지 않고 사는 것을 신념으로 삼아왔다. 몇 년 전 농협에서 주택자금을 얻어 집을 수리하라는 것을 거절한 이유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탕감이라니.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뭐하는 거야. 불만 쬐고 있네.󰡓

상현의 어머니가 돼지 우리를 바라보며 언짢은 소리를 했다.

󰡒아주머님, 서울루 지사 지내러 가는 모양이유.󰡓

제일 앞쪽에 있던 종만이 먼저 인사를 했다.

󰡒우리 애가 데릴러 왔어. 고기 좀 사갈라고.󰡓

축축히 젖은 땅을 피해 뒤따라온 상현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허리를 세 번이나 숙였다. 마치 선거 직전에 방문한 국회의원을 보는 듯했다. 병수는 앞으로 걸어가 상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현은 병수의 손을 잡으며 다시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나여. 나도 모르것남.󰡓

상현은 그쯤에서야 병수를 알아보고 멋쩍게 웃으며 󰡐병수구나󰡑라고 말했다. 민망해진 병수는 시선을 거둬들여 밭 끝 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뒤따라온 승용차가 멈춰서면서 석진이 내렸다. 병수는 석진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철거된 비닐하우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날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비닐하우스의 철제 빔은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휘어져 있었다. 병수는 손 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대고 싶지도 않았다. 무관심한 척 버려 두고 구판장으로 달려갔다. 마침 기석과 몇몇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대화는 폭설과 농사에 대한 푸념에서 부채 탕감, 상현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병수는 관심 없는 척 술만 마셨다.

그런데 하필 그때 농자금 융자를 받아 읍내에 티켓다방을 차려 돈을 번 석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석진은 병수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으면 참았을 텐데 그날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멱살을 잡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리지만 않았어도 선배고 뭐고 둘 중에 하나는 크게 다쳐야 끝났을 것이다. 간신히 분을 삭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지금 술 처먹고 다닐 때라니?󰡓

어머니는 들고 있던 냄비를 마루에 탁탁 두드리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집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자식 눈치 본다는데 어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단련되는 차돌처럼 성질이 고약해져갔다. 스물 여섯에 혼자되어 품팔아 병수 하나를 키워낸 어머니였고,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병수는 어지간한 일은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몹쓸 피가 자신의 몸속에 꿈틀거린다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미련한 게 분수를 알아야지 욕심은 있어서. 내가 비닐하우스 친다고 할 때 알아봤다, 이 미련한 놈아.󰡓

󰡒그럼 나보고 어떡하란 말유. 어머니가 그러니께 집안이 안 되는기유.󰡓

병수는 수돗물에 손을 씻다 말고 일어나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저 급쌀을 맞을 새끼. 니가 새끼 읎다구 시상 무서운지 모르는디.󰡓

순간 무언가에 눌려 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튀어 올랐다. 병수는 물이 담긴 양동이를 집어 바닥에 팽개쳤다. 어머니가 뛰어나왔고, 아내가 병수의 허리를 잡고 매달렸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가 어머니의 더러운 피 때문이라고, 죽은 외삼촌과 아이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없냐고,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느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내가 눈치챌까 두려워 입술을 깨물며 삼켜버렸다.

어머니는 곧바로 경로당으로 옮긴다고 짐을 쌌고 병수는 붙잡지 않고 되레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경로당은 홀로된 노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군에서 기름을, 마을 회비에서 쌀을 대주고 있었다. 아무리 고집이 센 어머니라도 이삼 일 정도 지나면 들어올 줄 알았는데 벌써 이 주일이 지났다.

󰡒어이, 병수 이 사람. 오늘도 비닐하우스 붙잡고 있을 줄 알았더니 돼지 잡는구먼.󰡓

상현과 병수가 엉거주춤 서 있는 사이 석진이 양손으로 바지를 잡아 올리고 다가왔다.

󰡒대목에 조개나 팔지 뭐하러 오남.󰡓

󰡒조개들두 명절 쇠야 통통해지죠.󰡓

기석이 비꼬는 투로 말했고, 석진이 능청스럽게 받아넘겨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석진은 구두에 묻은 진흙을 털다 상현이 서 있는 쪽에 시선을 멈췄다.

󰡒이게 누구여. 상현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두 누구 찬가 했는디 이렇게 귀한 분 차였구먼.󰡓

석진은 바지 같은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 손을 놓고 성큼성큼 걸어가 상현의 손을 잡았다. 상현은 선배인 석진의 행동이 멋쩍은지 설핏 웃었다.

󰡒잘 있었지?󰡓

󰡒. 형님도 잘 계시죠?󰡓

󰡒그럼. 나는 잘 있어. 그런디 큰일 허너라구 고생 많치?󰡓

󰡒그렇죠. .󰡓

󰡒읍내에서도 자네 칭찬이 자자 혀.󰡓

상현과 석진은 말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모닥불 주위로 갔고, 종만이 옆으로 비켜 자리를 내주며 입을 열었다.

󰡒테레비로 보니 자랑스럽더구먼.󰡓

󰡒, . 형님.󰡓

󰡒, 그런디 농가 부채탕감은 어떻게 되는 겨?󰡓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부채 탕감이란 없습니다.󰡓

순간 종만의 얼굴이 굳어지고 모닥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상현에게 쏠렸다.

󰡒정부에서는 탕감이라는 단어는 한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려 경감입니다. 이자를 대폭 낮추고 장기상환으로 돌리는 것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상현은 공식적인 정책을 발표하는 정부 관료의 모습으로 바꾸어 말했다. 병수는 사무적인 상현의 태도에 당황이 되었고, 동창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돼지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정부에서 돈을 다 값아 줄 수야 없지. 정부 입장두 생각해야지.󰡓

석진이 모닥불 위로 양손을 내밀며 맞지, 하는 표정으로 상현을 바라보았다.

󰡒넌 자식아, 농자금으루 여자장사해서 돈 벌었으니까 그딴소리 하지.󰡓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기석이 화를 벌컥 냈다.

󰡒아저씨 무슨 소리유. 분명히 나두 비닐하우스 쳤슈. 텃밭에. 모르는 겨?󰡓

석진이 펄쩍 뛰면서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이보게 상현이 우리두 그 정도루 알구는 있는디, 어느 정도 선이냐가 문제지?󰡓

종만은 그런 와중에도 간절한 눈빛으로 끝까지 대답을 들을 태세였다.

󰡒이 사람아, 얘가 개인적인 사람인감. 결정두 안된 정부 비밀을 함부로 얘기하게.󰡓

상현의 어머니가 종만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어색해진 종만은 모자챙을 만지며 병수 쪽을 바라보았다. 병수는 못들은 척 돼지우리 앞에 깔린 비닐을 평평하게 폈다.

󰡒비밀은 무슨 비밀이여? 자네도 알것지만 농민 죽인 건 정부여. 그것두 순진헌 놈만 죽였어.󰡓

기석이 석진을 노려보며 말했고, 석진은 못들은 척 담배 불을 붙이면서 옆으로 피했다.

󰡒, 아저씨두 틀렸네유. 얘가 농촌 잘못되라구 책상에 앉어서 일허것슈.󰡓

상현의 어머니가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기석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아저씨, 이해합니다.󰡓

상현이 상현의 어머니 손을 다정스럽게 잡고 기석에게 허리를 굽혔다.

󰡒말인즉 그렇다는 겨. 자네두 똑바루 알어야 혀.󰡓

기석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돼지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돼지는 동요 없이 주둥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원래는 잡아먹으려고 키운 돼지가 아니었다. 새끼만 낳아줬더라면 큰살림은 보태지 못하더라도 비료 값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미를 세 번이나 시켰는데 새끼가 들어서지 않았다.

󰡒아저씨가 까유.󰡓

병수는 갑자기 돼지 잡는 법을 잃어버린 듯 아득해져, 기석에게 도끼를 내밀며 눈을 돌렸다. 하필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는 상현의 눈과 마주쳐 불에 데인 것처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니가 혀.󰡓

기석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뒷걸음질까지 쳤다.

󰡒까기만 허유. 째는 건 지가 허께유.󰡓

병수는 할 수 없이 협상안을 내밀었다.

󰡒, 참 이 사람. 이제 나는 이선으루 물러날 때가 됐는디.󰡓

기석은 싫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도끼를 받아들고 돼지우리 속으로 들어갔다. 돼지는 땅을 파던 주둥이를 들고 우리를 한바퀴 돌며 기석을 피했다.

󰡒구정물 좀 가져와.󰡓

󰡒어이, 구정물.󰡓

병수가 집 안에 대고 소리쳤다. 아내가 구정물 한 바가지를 들고 와 내려놓았다. 돼지는 곧바로 바가지에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죽을 줄도 모르고 주둥이를 들이대는 돼지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고함치고 싶을 정도로 뜨거운 기운이 심장 쪽으로 모아졌다. 생식능력이 없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병수 자신도 돼지와 똑같은 신세였다.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숨을 끊어줄 걸 후회하는 사이에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돼지는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무릎을 꺾더니 사지를 파르르 떨었다. 병수는 돼지의 눈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기석이 들고 있는 도끼를 받아 한쪽 구석에 치워놓았다.

눈만은 맑고 투명했던 아이는 한 달 만에 죽었다. 병수는 아이를 화장해 뒷산에 뿌리고 곧바로 보건소로 달려갔다. 수술대에 올라서기 전 의사에게 묶는 게 아니라 잘라 달라고, 잘라서 불로 지지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사무적으로 자녀가 몇이냐고 물었고, 병수는 셋이나 된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 수술자국이 아물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마치 수술 전에 만들어진 정액 속에 더러운 병균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병수는 화장실에 웅크리고 앉아 마지막 한 방울이 나올 때까지 자위행위를 한 다음에야 아내 곁으로 갈 수 있었다.

비닐 위로 끌려나온 돼지의 심장은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기석의 기술 덕분이었다. 심장이 완전히 멈춰버리면 몸 속에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기 때문에 고기의 질이 떨어진다.

󰡒왜 그래, 갑자기 안색이 안 좋네?󰡓

기석이 병수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병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점점 가늘어지는 돼지의 숨결을 바라보았다. 보다 못한 기석이 󰡐내가 할까?󰡑라며 병수의 손에 들린 칼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아뉴. 지 손으로 할꺼유.󰡓

병수는 칼 끝을 돼지 목에 대고 깊게 밀었다. 손바닥으로 생명의 마지막 떨림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 들면서 진저리가 쳐졌다. 마치 칼을 빼고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생과 사의 경계선이 보일 것만 같았다. 피냄새와 함께 낯선 향수냄새가 풍겼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상현이 옆에 서서 얼굴을 찡그린 채 보고 있었다. 칼을 잡은 병수의 손이 약간 미끄러져 내렸다.

곧바로 시뻘건 피가 콸콸 솟아올랐다. 아내가 화급하게 다가와 양동이를 들이댔다. 피는 반은 양동이로 들어가고 반은 밑으로 흘러내려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병수의 손에 들린 칼끝에서도 핏방울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만 받어.󰡓

병수는 양동이를 발로 걷어찼다. 양동이에 든 피가 출렁하더니 거품을 냈다. 아내는 양손으로 양동이를 꽉 잡고 마지막 피까지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이 부어지고 병수와 기석이 털을 깎기 시작했다. 병수는 돼지 어깨 부분에서부터 엉덩이를 향해 칼을 밀었다. 녹슨 면도칼로 수염을 깎는 듯 손끝이 매끄럽지가 않았다. 병수는 칼날을 약간 눕히고 손놀림을 빨리 했지만 돼지의 몸 군데군데 살점이 패였다. 점점 돼지의 하얀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뒤집어 반대편 털도 깎아내고 마지막으로 물 두 양동이를 퍼부어 남은 털을 닦아냈다.

기석은 자기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손을 털고 물러났다. 병수는 장화에 묻은 피와 흙을 씻어내기 위해 핏물 섞인 웅덩이를 지근지근 밟은 다음 지붕 위에 올려놓았던 짧은 칼로 바꾸어 들었다. 날이 하얗게 서 있는 칼끝 위로 건너편 산 쪽으로 기우는 햇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병수는 칼끝을 돼지 목에 대고 쭉 그어 아래 부분까지 가르고 깊숙이 집어넣었다. 목뼈에 칼이 걸렸다.

󰡒도끼로 쳐.󰡓

기석이 눈치채고 도끼를 내밀었다. 병수는 괜한 고집이 생겨 칼을 흔들어 연결 부분을 찾아 힘을 주었다. 돼지머리는 어렵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다음은 네 개의 발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야 했다. 뱃살이 많이 올라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경우 칼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잘못하면 창자를 다쳐 내용물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비계 떼 버려.󰡓

기석이 훈수를 했다. 이번에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양쪽 젖꼭지를 선으로 해서 뱃살에 붙은 비계부터 떼어내었다.

󰡒뭐 혀. 바가지 가져와.󰡓

기석이 소리쳤다. 아내가 바가지를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바가지에 비계를 내려놓자 반은 밖으로 나와 축 늘어졌다.

󰡒병수 마누라가 비계를 잘 먹어. 저거 다 먹어도 모자랄 껴.󰡓

상현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병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아내의 등 뒤에 있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아따, 이놈 잡아놓고 보니 조선 반만 허네.󰡓

기석이 돼지 앞다리를 양쪽으로 벌리며 말했다. 목과 네 발목이 잘린 데다 뱃가죽까지 떼어버린 돼지는 방금 전까지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병수는 돼지 뱃가죽에 칼끝과 손가락을 집어넣고 아래로 그었다. 비계를 떼어내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뜨거운 심장과 허파, , 팔뚝만한 창자가 핏물과 함께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목을 잘못 쨌구먼. 피가 남었어.󰡓

기석이 병수를 힐책하며 혀를 찼다. 병수는 돼지 목을 찌를 때 칼이 손에서 미끄러졌던 것이 떠올랐다. 기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병수가 돼지갈비뼈 사이로 양손을 집어넣어 힘껏 잡아당기자 핏줄이 몸에서 분리되면서 피가 새어 나왔다. 병수는 찢어진 핏줄을 보자 소름이 돋으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이를 낳고 이틀이 지나서야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의사가 아이의 사지를 찢어놓고 핏줄을 찾고 있었다. 헌데 핏줄이 얼마나 길던지 밤새 뽑아도 핏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병수는 의사를 잡고 왜 불쌍한 아이를 돼지 잡듯이 찢어발겨 놓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래 사람의 동맥은 사지에 퍼져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수술을 포기했고 병수는 한 달 동안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기석이 빠른 동작으로 간을 떼어 숭숭 썰었고 아내는 소금에 고춧가루를 쳐서 들고 나왔다. 모닥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때묻은 플라스틱 소주잔과 피 묻은 간이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의 입술은 이내 피를 빨아먹은 듯 붉게 물들어갔다. 바짝 다가와 구경하던 상현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병수는 침을 삼키며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수돗가에서 팔뚝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입 속이 말라 담배 맛이 썼다. 아침부터 돼지 잡을 생각보다는 뜨끈뜨끈한 날간과 찬 소주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러나 상현을 보자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듯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도저히 날간에 손이 가질 않았다.

󰡒병수 어딨어. 한 점 먹구 혀.󰡓

기석이 소리쳤다. 병수는 못들은 척 한참을 더 앉아있다 몸을 일으켰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중에까지 피가 묻은 아내가 내장이 든 함지박을 힘겹게 들고 들어왔다.

󰡒병신 같은 게 처먹는 건.󰡓

병수는 스쳐 지나가는 아내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내는 함지박을 수돗가에 내려놓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때미 심사가 또 뒤틀렸댜.󰡓

병수는 아내의 목소리가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잡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소리나지 않게 욕을 하고 대문을 나왔다.

󰡒저 사람들은 여름 내내 죽어라고 고생한 거 저러면서 잊는 거여.󰡓

대문 앞에 서 있던 상현의 어머니가 상현에게 귓속말처럼 속삭였다. 병수는 일부러 엿듣기라도 한 듯 병수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상현이도 한 점 먹게나.󰡓

기석이 상현에게 말했다. 상현은 징그럽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해는 점점 건너편 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병수는 몸뚱이만 남은 돼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여유를 부렸다. 도로가 막힌다는 상현의 어머니의 불평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병수는 손놀림을 더 늦추며 기분을 삭혔다. 하지만 잠깐 뿐이었다. 기석의 핀잔으로 잠시 잠잠했던 석진이 상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두 말했지먼 읍내에서도 자네칭찬이 자자 혀. 언젠가는 내려와서 큰일 한번 해야지? 내가 읍내 생활을 허면서 여론 조성에 힘쓰구 있다구.󰡓

석진의 말이 어이가 없게 들리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슬그머니 모닥불 위로 모아졌다.

󰡒형님두. 저는 아직 과장에 불과해요.󰡓

상현도 석진의 과장된 표현이 불편한 듯 병수와 기석 쪽으로 다가왔다.

󰡒쓸디 읎는 소리허네. 여론이 중요헌겨. 아무튼 기회가 되면 우리가 적극 밀어야 혀.󰡓

석진은 상현의 뒤를 따라오며 사람들을 휘둘러보았다.

󰡒너야말로 쓸디 읎는 소리 허지말고 읍내가서 여론조성이나 신경 써.󰡓

기석이 석진에게 핀잔을 주었으나 이번에는 석진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병수는 상현과 석진이 동시에 다가오자 소름이 돋는 것처럼 불편했다. 병수는 고개를 처박은 채 도끼로 돼지 등뼈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도끼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뼛조각이 몇 개가 튀어 올랐다. 새끼를 낳았더라면 몇 년은 더 살았을 놈이었다. 아니, 차라리 잘됐는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팔리고, 무참히 살해되어 고기밖에 되지 못할 바에야, 대를 끊고 저 혼자 희생하는 걸로 비극을 마감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병수는 잘라내고 불로 지져버린 고환 밑 심줄을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도끼질을 했다.

󰡒어이 살살 쳐, 이 사람아.󰡓

기석이 병수의 손놀림을 보고 고함치듯 말했다. 그럴수록 병수의 손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이내 갈비는 등뼈에서 분리되어 옆으로 축 처졌다. 이제 부위별로 자르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머니 어디를 짤러 주유.󰡓

기석이 좀 누그러진 표정으로 상현의 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권한을 부여했다.

󰡒나는 갈비 조금 하고 등뼈로 주슈.󰡓

󰡒등뼈는 안 돼유. 내가 맡아놨슈.󰡓

기석의 옆에서 등뼈만 보고 있던 종만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맡아논 게 어딨어. 내가 언제 이런 거 욕심 내는 것 봤어.󰡓

상현의 어머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종만을 바라보았다.

󰡒그러야 것네. 종만이 자네가 양보해야겠어.󰡓

기석과 석진이 동시에 말했다. 종만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병수는 그들의 이야기는 못들은 척하며 등뼈를 분리해 돼지우리 지붕 위에 올렸다.

󰡒등뼈는 안 되겠네유. 지가 써야겠네유. 갈비도 한쪽은 지가 써야겠네유. 나머지 가지고 알아서들 나눠유.󰡓

󰡒그게 뭔 말이여?󰡓

병수는 애초부터 등뼈도 갈비도 필요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일제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여. 상현이 어머니가 가져가신다잖여.󰡓

석진이 돼지우리 지붕 위에 올려져 있는 등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냥 둬유. 형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그런 거여.󰡓

생각했던 것보다 병수의 목소리가 크게 튀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손에 들린 칼끝이 위쪽을 향한 채 서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하게 변해가며 침묵이 흘렀다.

󰡒제사 지내게 갈비나 몇 대 짤라줘.󰡓

상현이 팔짱을 낀 채 말했고 그 한마디로 교통 정리가 된 듯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얄밉게도 그의 표정에는 아무 동요도 없이 웃음까지 번져 있었다. 병수는 입을 꾹 다물고 갈비 네 대를 잘라 기석에게 건네주었다. 기석은 갈비를 받아 저울에 올렸다.

󰡒사 키로. 엿 근 반이네. 엿 근 반이면, 엿 근 반이면은이만 원󰡓

기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현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이 나왔다. 멀찌감치 서 있던 병수의 아내가 달려와 허리를 굽실하고 돈을 받았다.

󰡒, 가겠습니다. 병수, 다음에 보지.󰡓

󰡒그려.󰡓

병수는 짧게 대답해 주었다. 상현어머니와 상현이 자가용 쪽으로 걸었고 석진이 뒤를 따라갔다. 병수는 나란히 걷는 상현어머니와 상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경로당이 있는 아랫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종만과 아내가 저울을 바라보며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종만은 일곱 근 반이라고 했고 아내는 여덟 근이라고 했다.

󰡒.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거나 갖다 놔.󰡓

병수가 아내를 향해 소리쳤지만 아내는 저울을 끝까지 지킬 태세였다. 병수는 입을 다물고 비닐을 걷어 한쪽으로 치웠다. 사람들은 고기를 한 덩이씩 들고 사라졌고 텅 빈 돼지우리와 핏자국들만 남아 있었다. 병수는 돼지 등뼈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에서 새어 나온 장작불 열기가 얼굴을 쳤다. 병수는 등뼈를 아궁이에 집어넣으려고 했으나 길이가 길어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병수는 부엌칼로 등뼈를 반으로 잘랐다. 먼저 꼬리 부분 쪽을 아궁이에 넣고 부지깽이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궁이 속의 불꽃이 반으로 줄어들면서 자신의 등뼈가 타는 듯한 통증이 흘렀다. 병수는 몸을 일으켜 돼지 등뼈를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등뼈를 툭툭 쳤다. 그사이 아궁이 속의 불꽃이 되살아나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몸을 휘감았다. 병수는 멍하니 서있다, 등뼈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수돗가에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

󰡒선반 위에 있는 등뼈 좀 삶아놔.󰡓

󰡒워디 간댜?󰡓

병수는 대답하지 않고 아랫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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