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방구네
오유권
흉악하게 게으른 여편네였다. 어린 자식들의 해진 옷구명은 커녕 제 속곳 가랑이 하나 깨끗이 빨아 입지 않는 돌방구네였다. 끼니 끓일 나무가 없어도 나무 걱정을 할까, 장마통에 담벽이 무너져도 그것을 쌓아 올릴 생각을 할까, 그저 어린 자식들이 지게품을 팔고 나무를 해다 주면, 또박또박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밤낮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말 갖다 저기다 옮기고, 저기 말 갖다 여기다 퍼뜨렸다. 마을 사람들의 살림 속이나 뉘집에 어떤 변이 생겼다는 것은 거의 이 돌방구네 입을 통해서 온 마을에 번지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집에 어떤 손이 와서 이러저러하고 갔다든가, 아무와 아무는 어느 때 무슨 시비를 하여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든가, 심지어 성 안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며, 성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까지 갖다 전하였다는 돌방구네의 말이 때로는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마을에 한 여론을 일으키는가 하면, 때로는 운수 사나운 시비 거리가 되어 봉변을 당하는 때도 있었다.
이 돌방구네에게 세 딸과 세 아들이 있었다. 딸 셋은 이태 전까지 십리, 이십리 밖으로 시집을 보냈는데 그 딸들의 어미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명절마다 성안에 장을 보러 나오는 길엔 꼭꼭 들러서 고깃근이나 쌀되를 들여 주고 가는가 하면, 여름철에는 시어른들 몰래 장만한 푼돈들을 모아서 마포 저고리와 모시치마를 사 보냈다. 더욱 작년 여름에 저의 아버지가 채독을 앓다가 돌아간 뒤부턴 어미에 대한 동정이 극진하였다. 철철이 와서 가세를 살피고, 어미가 조금만 앓아 누워도 겁을 먹었다. 어머니나마 오래까지 살아서 동생들과 한세상을 누려야 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런 딸들에 비겨, 남은 사내 자식들은 모질고 게을렀다. 도무지 어미에 대한 인정이 없는 데다 말들을 듣지 않았다. 밤낮 피둥피둥 자빠져 딩굴면서 마을에만 나가 놀기를 즐기는 것이다. 딴은 이제 갓 스무 살 안짝의 철부지들이므로 그런 걸 일일이 탓할 수 는 없는 일이지만. 그 세 아들 가운데서 열아홉 살 먹은 큰 놈은 성안 정거장서 지게품을 팔고, 열다섯 살 먹은 둘째 놈은 나무를 하러 다니고, 열두 살잡이 작은 놈은 국민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세 아들의 생김 생김이 어미와 한 모양, 한 빛깔인 데다 게으른 것까지도 그리 똑같았다.
그런 돌방구네에게 요즘 열중한 곳이 한군데 있었다. 석달 전에 성 안에 새로 생긴 천주교회였다. 돌방구네는 이른바 열렬한 예비 교우인 데다 무내리골에 있어서는 회장격이기도 하였다. 그렇듯 게을러빠진 여편네가 남달리 천주교회가 생긴 것을 먼저 알고, 또 마을의 회장격까지 된 것은 오로지 그네가 마을 돌아다니기를 즐기고 입심이 센 까닭이었다. 그네가 마을 아나네들에게 전교하는 말들은 대개 이러하였다.
첫째, 천주교를 믿으면 세상의 괴로움을 잊고, 죽어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는 것. 둘째, 천주교는 예수의 어머니 - 곧 예수보다 높은 마리아 성모를 더 받들기 때문에 예수교보다 높고, 유독 여자들이 다니면 복을 많이 받는다는 것. 세째, 천주교는 예수교보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그래서 이렇다는 신사들이 많이 다닌다는 것, 그래서 이런 일을 도맡아 거느리는 신부는 평생을 깨끗이 살려고 장가도 안 들고 지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끝에는
"한 달에 강냉이가리 타 묵는 것만 해도 돈 천 환씩은 돼. 거기다 밀가리 나오겠다, 옷가지것 타겠다." 속삭이듯이 말하고는,
"그렇지만 고런 것을 바라고 댕기면 못 써라우. 이녁 맘 속으로 진실하게 믿어야제."
이와 같이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마을 아낙네들은 으례,
"게으른 에펜네야, 자네가 진심으로 믿긴 뭘 진심으로 믿어. 남의 일하려 댕기기 싫고, 배고픈게 그러제."
"남 가르칠라 말고, 죽은 남편 상방(喪房)이나 깨끗이 좀 손봐 놓소."
이렇게 비꼬는 옆에서 그래도 가난하고 일없는 사람들은 돌방구네의 말에 솔깃이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돌방구네는 오늘 저녁에도 희멀건 강냉이가루 죽 한사발을 마시고 나자, 자식들을 닥달하였다.
"아, 이 썩은 놈들아, 오늘 같이 따뜻한 날, 무슨 지랄을 하고 놀러만 댕기냐, 응? 가 부엌에 좀 가 보아라, 나무 하나가 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네 애비 상방 좀 손봐 노라 해도…… 그 상복이나 만사가 비에 젖어서 쓰것디야, 응? 내년이 대상인디 네놈들이 상방 한번이나 깨끗이 닦어 봤나. 내가 천주교회라도 안 댕기면 벌써 굶어죽었을 것이다. 굶어죽어! 에이, 오살놈들."
매일 같은 잔소리가 시작되자 큰 놈과 둘째 놈은 냉큼 나가 버리고 작은 놈만 웃목에서 못 들은 척 공을 굴리고 있었다.
"시상에 복도, 복도 나같이 없는 년은 없을 것이다."
과연 돌방구네는 교회에 열성을 다한 나머지 그 사이 강냉익루 배급을 한 말씩 두 번 탔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이 업던 헌 옷도 아래 위 세 벌을 얻었다. 그때마다 돌방구네는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들면서, 까마득히 십년 전, 성 안에 예수교가 들어오던 때, 그때 역시 어린 자식들과 헐벗다 못해서 한 해 남짓을 예배당에 다니면서 빵과 과자를 얻어 먹던 생각이 되 살아났다.
그러나 돌방구네는, 가난이 두루 죄이거니 하는 생각에서, 이제도 공을 굴리고 있는 세째 놈에,
"이놈 냉큼 일어서서 <교리 문답> 가져오너라."
하였다. 교리 문답이란 글자 그대로 교리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을 가르치는 책이다. 천주교인이 되려면 모름지기 이 책을 숙습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 한사코 이 교리 문답을 빠리 외어서 영세(領洗)를 받아야 참다운 교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보다도 배급을 많이 탈 욕심이 많았다. 영세 교우는 영세를 안 받은 예비 교우보다 배급을 배를 더 주는 것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배급을 배를 더 타면 그 벌이가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냉큼 가져와야, 이놈아."
세째 놈이 농 틈바구니에서 교리 문답을 찾아왔다.
"대사 다음이 뭣이야? 그 다음 읽어 봐라."
"성체여."
"그래 어서 읽어 봐."
아들이 책을 보고 읽어 주면 어미는 그 뒤를 따라 읽었다. 집에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곤 국민 학교 삼 학년에 다니는 이놈뿐인 때문이었다.
"성체는 무엇이뇨?"
"면주 현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니라."
"성체 성사는 무엇이뇨?"
"칠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요, 천주 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니라."
이와 같은 성체절을 열 번도 더 왼 동바구네는 세째놈이 잠든 뒤에도 십이단을 외었다. 천주경으로부터 성모경, 종도신경, 고죄경을 거쳐서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을 외었다.
"전능하신 천주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상생에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이튿날 돌방구네는 네 아낙을 데리고 주일 미사에 나갔다.
이윽고 종이 울리자 밖에 섰던 사람들도 성당으로 들어오고, 남자석 왼편에 있는 여자석에는 머리마다 하얀 미사포가 눈부셨다. 돌방구네도 같이 온 아낙들과 함께 왼편 뒤로 가서 미사포를 쓰고 무릎을 꿇었다.
"나, 천주의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날 이 미사를 천주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무리와 만민의 영혼을 위하여, 듣기를 원하오니……"
미사 전송이 교우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신부가 복사를 양 옆에 끼고 제단 앞으로 나왔다.
성가대가 나직이, 그러나 힘차게 엘레이션을 노래부르고 헌병이 헌작되었다. 그리고 이윽하여 거양성체가 시작되는 것이다.
쩌르릉.
요령이 울리자 신부가 경건히 허리를 구부리고 면주병을 머리 위로 치올린다. 교우들도 일제히 허리를 구부리고 경건한 기구에 묵묵이 잠겼다.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삼엄한 순간이다. 예수를 불러 일으켜 면주 안에 모신다는 것이다.
쩌릉 쩌릉 쩌릉.
요령이 울릴 때마다 교우들은 약간 고개를 들었는가 하자 다시금 허리를 구부리고 경건한 기구에 예수의 심령을 자기 안에 모시는 것이다. 자못 신성하고 삼엄한 순간이었다. 교우들의 얼굴엔 사욕과 악독은 까맣게 저버린 듯 고요한 정애가 흘렀다. 돌방구네의 표정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하루 바삐 영세를 받아야 한다는 열정이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그네는 주일마다 이러한 미사를 통하여 천주의 성체가 과연 자기 안에 스며들고 있는 듯한 영광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사가 끝난 뒤, 성당 밖으로 나온 여회장이,
"이 달 배급이 나왔는데 틈나는 대로 타 가세요들."
이리하여 교우들과 함께 배급 창고로 온 돌방구네는 자못 서운하였다. 오늘 역시 영세 교우들은 강냉이 가루를 두 말씩 주는데 영세를 안 받은 자기들은 한 말씩 밖에 안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돌방구네는 뜻밖의 소식에 힘이 솟았다.
오는 부활절 날 영세를 준다는 것이다. 그 사이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오는 주일 안으로 찰고를 바치라는 것이었다. 곧 신부께 교리 문답을 외어 바치고 영세를 받겠는가 못 받겠는가 그 자질을 심사 받는다는 것이었다.
부활절까지는 앞으로 이 주일 이상이 남았다. 한 주일만 애쓰면 될 것이었다. 돌방구네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째 놈을 욱대기며 교리 문답을 외었다.
"종부는 무엇이뇨?"
"명오 열린 교우를 벙으로 인하여 죽을 위험 있을 때에 돕는 성사니라."
"부부 지킬 의무는 무엇이뇨?"
"서로 사랑하여 동거하고 화목함이요 서로 신의를 지킴이니라."
"성사 몇 가지 있느뇨?"
"일곱 가지 있느니 성세와 견진과 고해와 성체와 종부와 신품과 혼배니라."
"그럼 엄니가 인자, 십이단 한번 외어 봐."
"십이단 뭣을 욀꺼나?"
"망덕송."
"망덕송."
하고 돌방구네는,
"우리 천주여, 네 인자하심과 오 주 예수의 무한하신 공로를 이하여 네 허락하심과 같이 이 세상에서 내게 은총을 베푸시고, 후세에는 상생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더듬더듬 이렇게 외고 나서,
"어째, 맞지야."
납죽한 입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맞어, 그럼 또 소회죄경."
돌방구네는 소회죄경도 다 외었다. 더욱 천주경, 성모경 같은 것은 문제없이 외었다.
그때마다 돌방구네는 자신만만하여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아낙네들을 찾아다니면서,
"워이마시 워이. 나는 인자 교리 문답을 모두 외네 워이."
하고, 호도깝을 떨곤 하였다.
신부께 찰고를 바친 돌방구네는 어렵잖이 심사에 합격하였다. 어욱 하늘같이 우러르는 신부로부터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왼다는 칭찬까지를 들었을 때, 돌방구네는 자못 흡족해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돌방구네는 적잖아 당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곧, 집에 조당(阻 - 말하 면 어떤 다른 신을 섬기거나 믿고, 지키는 것)이 있으면 영세를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하루, 보름에 상식(上食)하는 남편의 상방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남편의 상방은 일테면 교회에서 말하는 마귀나 잡귀 그것이라 하였다.
한참 동안 골몰이 생각던 돌방구네가,
"그럼 제사는 누구든지 못 지낼 것이요?"
신부 옆에 있던 여회장이, 제사는 일 년에 한번씩, 다같이 교회에 모여서 한꺼번에 모시는데, 그렇게 모시면 즉은 임자도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다.
"정말 그러께라우?"
여회장은 거듭, 천주교회에서 거짓말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교리 공부는 첫째로 하였으니까, 주인의 상방만 없애면 오는 부활절에 영세를 준다고 하였다.
돌방구네는 하룻밤 하룻낮을 골똘히 궁리하였다. 영세를 안 받기도 딱하거니와 남편의 상방을 없애기는 더구나 딱하였다. 대상이 명년이니까 한 해만 상식을 하면 상방은 절로 걷어치워질 것이었다. 천주교도 예수교 모양 제사를 못 지낸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막상 맞닥치고 보니 이러기도 난처하고 저러기도 난처하였다. 하기야 초하루 보름에 물을 떠 놓고 제사를 지낸들 정말 즉은 귀신이 와서 운감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더라도 대대로 내려온 제례와 풍습을 하루 아침에 뜯어 없앨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손을 원하고 자손의 번영을 비는 것은 아비된 사람으로서 살아 생전에 영화를 누리자는 생각도 있지만 보다 뒷날에 물 얻어 먹을 것을 염원하고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허다한다. 더욱 어렸을 때부터 들어 온 이야기인즉, 죽은 뒤에 물 얻어먹을 후손을 못 남기고 즉은 혼령은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거지 노릇을 하거나, 그도 못하면 길바닥에 고꾸라져 죽는다지 않던가. 그리고 그와 같은 고혼들은 먼 살붙이 하나라도 있으면 기어코 찾아가서 병을 주고 약을 주어서 자기 물을 떠 놓도록 돌볶는다지 않던가.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이녁이 보고, 겪지 않은 일이니가 임자 없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러나 어디까지 자식 있는 표시만은 남기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 같았다. 돌방구네는 그 자식 있는 표시라면 꼭이 내려온 풍습에만 따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천주교회에서도 일 년에 한번씩 다 같이 모여서 제사를 지낸다지 않는가. 도리어 그 편이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여회장은 분명히 말하지 않던가. 천주교회에서는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상방을 없애면 죽은 남편이 얼마만큼 섭섭다 하겠지만 그러나 즉은 자기도 생각해 볼 일이라 하였다. 자기가 살아 생전에 논마지기, 밭뙈기만 붙여 두었던들 무슨 신이 들어서 천주를 섬길 것인가 하였다. 말 못하는 혼령일망정 눌러 참을 일이라 하엿다. 자식들을 위하여 남은 지어미가 이같이 애쓰는 것을 조금은 돌보아 줄 일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