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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短章)

단장(短章)

정인택

 

자는지 안 자는지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진 덕윤(德允)이는 꼼짝도 안 하고 숨소리만 가쁘다. 핏기라곤 없는 얼굴은 종잇장같이 희었다.

침대 앞에서 발을 멈춘 채 기가 막힌 듯이 한참 들여다보기만 하던 천 박사는 이윽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찬다. 애처롭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한 모양이다.

"수술헐 수 있겠습니까?"

창준(昌俊)은 천 박사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생사라도 결단할 듯한 거센 어조로 이렇게 묻고 나서,

"- 수술 말예요."

채 무엇이라 대답도 떨어지기 전에 거듭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부지중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 박사가 어린애 몸엔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렇게 물끄러미 보고만 섰는 것이 약간 비위에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그보다도 어젯밤 한잠 못 잔 피곤한 몸엔 그 천 박사의 표정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반응되어 저도 모르게 초조함에 몸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린 것이다.

그러한 창준의 노리는 듯한 시선을 의식하는지 못하는지 외과 수술의 제1인자라는 천 박사는 한참 그대로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더니,

"틀림없군."

다시 한번 혀를 끌끌 차고 나서 과학자다운 냉정한 태도로 뒤에 따른 조수들에게 이렇게 외마디 말을 던지고 이윽고 창준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잠깐……."

이리 오라고 고개를 끄떡한 후 뚜벅뚜벅 앞서서 병실을 나가는 것이다.

천 박사에게 최후의 선고를 받는다면 그것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덕윤이에 대신할 것을 다시는 바랄 가망이 없는 창준이 부부에게는 그 조그마한 생명 하나가 둘도 없는 금이요 옥이었던 것이다.

밤늦은 병원 복도에는 어두운 구석과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때문인 듯이 군데군데에 촉수 얕은 전등이 맥없이 껌벅이고 있을 뿐, 깊은 산 속같이도 고요하여 두 사람의 발자취 소리만이 유난스럽게 크게 울린다.

그 발자취 소리가 딱 그치자 밀물이 모래 위의 발자국을 지워 없애듯 다시 대령했던 고요함이 빠른 속도로 창준의 전신을 에워싸는 것이다.

"늦었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울려 나오는 마귀의 소리같이 천박사의 말이 창준의 귀를 때렸다.

"늦었다니요?"

별안간 탁 가라앉은 목청에서 겨우 웅얼웅얼 이런 반문이 쏟아져 나왔다.

"늦었습니다. 입때까지두 수암(水癌)으루 치료허셨겠지요?"

"."

"지가 보기에도 틀림없는 수암입니다."

"그럼…………, 수술해두……."

"글쎄요. 수술 못 헐 건 없지만 했대야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그예 마지막 선고가 내리고 말았다. 창준은 또 바시시 몸을 떨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왕 죽을 바엔 원 없이……수술이라두 해보려구……수술해서 혹 사는 수두 있대서……."

"글쎄요. 수술을 해서 사는 수두 있겠지만 -"

천 박사는 말을 끊고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더니 금방 꺼질 듯한 창준의 꼴이 가여웠던지,

"이리로 앉으십시다."

자기가 먼저 차디찬 가죽 의자에 걸터앉으면서

"……혹 사는 수두 있기는 허지만……그래서 살면 뭘 허시겠소."

천 박사는 창준의 얼굴을 빠안히 쳐다보며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창준은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수술을 헌대면 - 얼굴을 반은 도려내야 합니다."

이윽고 천 박사의 목소리는 다시 보통 때의 침착함으로 돌아갔다.

"………"

"얼굴을 반씩 도려내구두 꼭 만 살어난대면야 생각헐 여지두 있겠지만 그런 오모이 권타(대담한) 수술을 헌대두 - 반드시 산다구는 단언헐 수 없구먼요."

"………"

"또 설혹 살 수 있대드래두 얼굴을 반씩이나……."

"………"

별안간 천 박사는 다시 벌떡 일어나 창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으며,

"힘껏, 정성껏 해보십시다. 약으루두 절대루 안 낫는 법은 없으니까……."

"알았습니다."

"혈청은 맞었지요?"

", 놨습니다."

"또 해보십시다. 백에 하나 - 돌리는 수두 있으니까……."

천 박사는 말을 끊고 나서 무엇을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창준을 그 자리에 혼자 남겨놓은 채 빨리 간호부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안해는 덕윤이에게 못지않게 창백한 얼굴로 침대 언저리에 걸터앉아 죽어가는 어린애의 얼굴만 얼빠진 사람같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 여는 소리에 정신이 난 듯이 고개를 번쩍 들어 충혈된 눈으로 뚫어져라고 남편 창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색을 살핀다.

그러나 창준의 얼굴에서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자 반가운 하회를 혹시 - 하고 기다리던 안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창준은 맞은편 빈 침대에다 펄썩 몸을 내던지며,

"수술은 못 헌대우."

내뱉는 듯한 무뚝뚝한 어조였다.

"왜요?"

그러나 그것에는 대답 않고 창준은 두 손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웅크리고 앉았다가 이윽고 다시 몸을 일으키어 안해의 곁에 나란히 와 앉으며,

"덕윤이 얼굴 잘 봐 둡시다."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억지로 터지려는 울음을 참았다.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니 생살 썩는 내가 코를 비어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창준이도 안해도 달갑게 그 냄새 속에 얼굴을 나란히 하여 오랫동안 돌이킬 생각을 먹지 않았다.

이미 10여 일, 조석으로 그 살 썩는 내를 맡아왔건만 그래도 코에 익지 않으려는, 시취(屍臭)보다도 두려운 냄새였다.

시들시들 잇몸이 덧나기 시작한 것이 이 병의 시초이었다. 그것이 차차 도져 입 안이 모두 헐자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피고름이 한없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할 수 없이 앞니를 뽑았다.

며칠 동안 뜸하더니 덕윤이는 또 입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잇몸이 퉁퉁 붓고 고름이 나고 썩어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치조농루라는 진단이 내렸다. 할 수 없이 송곳니 어금니를 뽑았다.

그래도 악취는 좀체로 가시지를 않았다. 잇몸이 시커멓게 썩기 시작한 것이다. 수없이 초산으로 지져내고, 지져내고 하는 동안에 시커먼 썩은 살점이 문적문적 묻어 나왔다. 악취는 더욱 심하여 이 칸 방에 가득 차서 외인은 코를 가리고도 문을 열지 못했다. 그때 그 무서운 정체 모를 균이 이미 속속들이 생살을 파먹고 들어간 줄 모르고 그들은 - 의사도 잇몸만을 치료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룻날 문득 턱밑에 까만 뾰루지 같은 점이 내배인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은 창준의 안해였다.

그 까만 점이 이튿날 쌀알만 하여졌다. 또 그 이튿날은 콩알만 하여졌다. 또 그 이튿날은 - 이렇게 하여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 까만점은 왼편 턱 전부를 뒤덮더니 이윽고 언저리가 흐늑흐늑 무너져 나가기까지 하였다. 잇몸을 다 파먹은 균은 콧속에까지 기어들어가 호흡을 곤란케 하였고 붕대를 10분만큼씩 갈아대어도 고름을 쥐어 짜도록 젖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 의사도 창준이 부부도 그것이 아이들만을 침범하는 극히 드물고도 무서운 병, 불치의 병 수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곧 원가가 10원 가까이 하는 말의 혈청을 두 대나 주사하였다. 그러나 듣지를 않는다. 말의 혈청이 듣지 않는 한 현대의학은 이 병을 고칠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창준에게는 삼십이 넘어서의 외아들이었다. 유일의 후계자를 잃게 된 창준의 심중도 심중이려니와 그보다도 더 몸 둘 곳조차 없이 서러워하는 것은 창준의 안해였다. 창준의 안해는 몸이 약하여, 덕윤이를 낳고 나서 즉시 단산의 수술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덕윤이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둘도 없는 금보다도 옥보다도 더 소중한 외아들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발견한 광명은 이 썩어가는 살을 도려냈으면 하는 일루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즉시 천 박사를 생각해내었다. 그렇다, 어쩌면 천 박사는 이 애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술은……왜 못 헌대요?"

안해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묻고 창준이 채 그것에 대답하기 전에 여러 사람의 발자취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더니 젊은 의사가 서넛의 간호부를 데리고 방안으로 몰려든다. 선두에 선 한 사람은 손에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창준이 부부는 암말 못 하고 부시시 자리를 둘러섰다. 아무 짓을 하든 모두가 시들하게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고, 또 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고 바라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강심제인 모양이었다. 주사 바늘이 살에 꽂혀도 덕윤이는 옳게 울지도 못하였다. 축 늘어진 그대로 입은 반쯤 벌린 채, 끼룩 한 번 우는지 마는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고, 그뿐, 여전히 눈을 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주사가 끝나자 의사들은 제각기 한 번씩 고개를 내뽑아,

"노마야."

"노마로군."

그러고는 무엇인지 독일어로 주고받고 하며 상을 찡그리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턱을 끄덕거리기도 하고 - 그러나 아무도 그 썩어가는 덕윤이의 턱에 감히 손을 대려고는 하지 않는다.

창준은 무럭무럭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금할 길 없었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 몰랐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여보들, 이거 구경거린 줄 알우?’

그런 말이 턱밑에까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무척 애를 써서 식은 침과 함께 꿀꺽 들이삼켰다.

그럴 즈음에 천 박사가 혈청주사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기적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창준이 부부는 지금 그 기적을 기다려야만 했다.

번갈아 가며 눈을 붙인 듯 만 듯하다가 잠을 깨보면 주위는 여전히 음산한 시료실이요, 자는지 안 자는지 덕윤이는 눈을 감은 채 숨소리만 가빴고 생살 썩는 내도 조금 전과 다름없다.

이 병원으로 옮겨온 지 벌써 사흘, 창준이 부부는 거의 한잠도 이루지 못하다시피 하고 꺼지려는 작은 생명의 애처러움만을 응시하여왔다.

겉으로 보기엔 병세는 더도 덜도 안 한 것 같았으나 하루하루 덕윤이의 팔다리가 늘어져가고 숨소리에 힘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실상은 시시각각으로 악화하여 이제는 깜빡할 날도 머지않은 듯싶었다. 그러면서도 때만 오면 가느다란 목소리로 울고 보채며 먹을 것을 달라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런 정경이 더 한층 창준이 부부의 창자를 쥐어뜯었다.

볼 한복판에서 시작한 거무데데한 반점은 귀밑으로 턱 아래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번져, 어제부터는 아랫입술까지 침범했다.

마치 나무의 연륜같이 썩어가는 그 반점의 언저리는 희멀쑥하게 짓물러 가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지나간 자리는 딱딱하게 굳어 곱게 다스린 나무결 모양으로 반지르르 빛나면서 감각이 없었다. 그 빛이 또 유난하게 고와서 광선에 따라 자줏빛으로도 연분홍으로도 혹은 새까맣게도 또는 그런 가지각색 빛이 한데 얼버무려진 것 같이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이다. 때로 창준은 그 썩은 살결의 빛깔의 움직임을 예쁘다고 생각하며 넋을 잃고 바라볼 적이 있었다. 불쌍하고 측은한 감정이 지나쳤기 때문이요 또 그것에 지치기도 한 때문이다.

아랫입술까지 그렇게 썩어 경직되고 보니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는 지하수 모양으로 마냥 누르스름한 침이 흘러내렸다. 무슨 부스럼에서 나오는 고름같이 끈기 있고 진한 침은 썩은 살빛 그대로 줄줄줄, 한 번에 분량이 많지는 않았으나 끊임없이 샘솟듯 했다.

턱밑에다는 수없이 거즈니, 탈지면이니를 갈아 댔으나 그래도 그 침을 당해낼 수 없어, 나중엔 수건이건 셔츠건 닥치는 대로 갖다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침 받은 것을 한 옆에 수북이 쌓아놓으면 거기서도 덕윤이 냄새가 얼굴을 못 들도록 코를 찌르는 것이다.

때로는 창준이 부부조차 얼굴을 돌이키지 않을 수 없는 워낙이 그렇게 지독한 악취라, 환자를 10여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시료실이었어도 방 구석구석에까지 그 흉한 냄새는 퍼져, 그들 창준이 부부는 다른 환자들에게 여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었으나 빈궁한 사람들은 마음까지가 가난한 때문인지 그것에 대하여 불평을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불치의 병이라는 그 점만을 몹시들 동정하고 다른 아무런 악의나 혐오감을 느끼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창준이 부부는 그것이 무척 고맙고 반가워 무엇으로써 가난한 그들에게 갚아야 할 것인가고 가끔 멍하니 일어나 앉은 채 넋을 잃고 병실 안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덕윤이 침대는 그 냄새를 염려했음인지 드나드는 문 어귀, 바로 창 밑에 놓여 있었으므로 돌아앉지 않는 한 언제든지 방안 전부를 화안히 내다볼 수 있었다.

무슨 속병이라나 해서 벌써 반년 동안이나 입원하고 있다고 하며 우스운 소리 잘하는 뚱뚱한 중늙은이는 바로 덕윤이 옆 침대에 밤낮없이 꿇어앉아 이 얘기책을 읽지 않으면 쓰키소이(옆에 붙어 다니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웃고 떠드는 것이 일이었고, 또 그 건너편으로는 천애의 고아라는 일곱 살짜리 어린애가 꼬치꼬치 마른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먹을 것만을 찾고 황달 든 듯이 누런 얼굴에는 커다란 눈동자가 별스럽게 번쩍이었으며, 그다음 차례로, 겉으로 보기엔 핀둥핀둥한 듯하나 무슨 고질을 앓는다는 아낙네 두 사람, 그리고 열다섯 살인가 되었다는 말 못 하는 계집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끼륵끼륵 이상한 목소리로 울며 침대 언저리를 탕탕 두드리고는 몸부림을 떨어쳐서 떨어질 뻔했고 - 그러한 그들 모두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있을 때엔 몰라도 밤이 깊어 일제히 조용히 잠들고 보면 음산하고 측은한 생각이 불끈불끈 치밀어 올라 창준이 부부는 더욱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공포에 타 눌리어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머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적이 마음이 뿌듯해져서 시료실에 든 것을 후회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시료실에 든 것은 다른 병실이 가득 찬 탓도 있기는 하였지만 오로지 윤 선생의 권고 때문이었다.

윤 선생은 대학 나온 지 불과 5, 6년밖에 안 된다는 젊은 학도였으나 침착하고 충실하고 또 그 사람 된 품이 갸륵해서 충분한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의사였다.

윤 선생은 덕윤이가 자기 손으로 다루는 다섯 번째 사람의노마(Noma : 水癌)’ 환자라고 무척 그 병에 대해 흥미를 가진 듯싶어, 처음 창준이 부부가 이 병원을 찾던 날 밤에도 천박사와 조수들이 다 돌아간 후까지 혼자 덕윤이 침대 곁에 남아 앉아, 병세의 경과라든가 혹은 그 증세라든가를 샅샅이 묻고 나서,

"입때꺼지 지가 봐온 노마 환자 중에서 살어 난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디 제게 매껴 보십시오. 천 선생과 잘 의논해서 힘자라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절대로 안 낫는 법이야 없으니까요."

그렇게 믿음직한 말을 하고 나서, 관비(官費)로 해볼 의향은 없으냐고, 그러면 비용 아끼지 않고 얼마든지 쓰고 싶은 대로 고귀한 약을 써서 치료해보겠다고, 그런 말을 꺼냈던 것이다.

창준은 얼른 그 말속에서 덕윤이를 연구 재료로 삼으려는 윤 선생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으나, 그때의 윤 선생의 과학자다운 그리고 의사다운 그 성실함에 단순히 압도되어 아무런 노여움도 모멸도 느낄 수 없었으므로,

- 그래서라도 혹시 살아갈 수만 있다면 -

그런 한 가닥의 희망만이 반가워 언하에 선뜻 승낙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관비루 해서 만일 낫지 않는 경우에는 해부용으루 시체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두 승낙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윤 선생이 그렇게 되물을 때 창준은 잠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른 안해의 눈치를 살폈다.

안해의 얼굴에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번개같이 번쩍 스치는 듯하더니 그뿐 다시 조금의 전의 얼굴로 돌아가,

- 그래서라두 살 수만 있다면 -

역시 그것 한 가지만을 의지하고 매어달려 있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허십시오."

다음 순간 창준은 똑똑히 끊어서 대답하고, 내가 많은 사람의 시체를 해부해왔으나 나 죽은 후엔 내 몸도 해부용으로 제공하겠다는 어떤 의사의 말을 문득 생각해내며,

"그러면 모든 것을 선생님께 맡기겠습니다."

일종의 만족감을 섞어서 윤 선생 앞에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그들은 천 박사에게보다 오히려 윤 선생에게 전적의 신뢰를 두고 그가 지시하는 대로 마음 놓고 따르는 한편, 윤 선생의 요구에 의하여 하루 종일 덕윤이 입에서 흐르는 악취 섞인 침을 유리 접시에 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윤선생의 연구를 도우려는 그 한 가지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윤선생의 연구를 도와서, 비록 이번에 덕윤이는 이 병 때문에 죽더라도, 다음에 오늘 환자의 생명이나마 건질 수 있다면, 하는 기특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비록 덕윤이가 이 병 때문에 죽더라도 - 입원한 지 닷새, 윤 선생의 주야를 불구한 노력도 허사로 이미 이 비록이란 말이 필요치 않을 데까지 덕윤이의 병세는 드디어 최후의 관두에 다다랐다.

입술을 침범한 균은 다음엔 덕윤이의 혀끝까지 파먹고 들어가서, 혀끝은 꼬부라져, 역시 썩어빠진 입천장에 달라붙은 채 그대로 경직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목이 칵 막히어 이미 덕윤이는 유동물(流動物)조차 마음대로 삼키지를 못했다.

호흡은 각각으로 가빠가는 것이었으나 그때엔 벌써 그 가쁜 숨조차 마음대로 토하지를 못했고, 사지엔 싸늘하게 찬 기운이 돌아 도저히 산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링게르, 혈청, 강심제, 그리고 어제는 20그람 오늘은 30그람의 수혈, - 만 하룻동안에 20대 가까운 주사 바늘이 쇠약한 덕윤이의 사지에 빈틈없이 꽂히었다.

그 때문인지 혹은 사기(死期)가 임박했음인지, 어제까지 흐렸던 눈동자가 이상하게 광채를 발하여 전과 같이 다시 새까맣게 빛났고, 원래부터 신경질적인 아이이기는 하였으나 의식은 병상의 악화는 반대로 더욱 또렷또렷해져서 주사 자리에 붙인 반창고 하나 그대로 두지 않고 간호부만 나가면 여윈 손가락으로 기어코 뜯어내 던지고 뜯어내 던지고 하였다.

꺼지려는 등불이 마지막으로 깜박 빛나는 격으로 아무 이유 없이 그러한 모든 것이 창준에게는 불길하게만 생각되어 울 힘조차 없이 침대에 누워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는 덕윤이의 모양이 증오를 느낄 만큼 가엾고 안타까워 보였다.

오늘 낮에 30그람의 피를 덕윤이에게 빼앗긴 창준의 안해는, 먹는 게 무엇인지 그 입을 하고서도 자꾸 먹을 것만을 찾고, 우유나 과즙을 타서 갖다주면 맘대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지 두 손을 바르르 떠는 양,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다고 덕윤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며 그때마다 흑흑 느끼며 소리 내어 우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또 이틀 -

드디어 최후의 선고가 내렸다. 수혈도 강심제 주사도 중지하였다. 이미 인력으로는, 현대의학으로는, 구해낼 도리가, 치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덕윤이의 죽음을 공수 방관하는 수밖에는 어찌할 바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하루바삐 죽었으면 했다. 그것이 덕윤이를 위하여 창준이 부부가 바랄 수 있는 단 한 가지 애끓는 소원이었다.

그러나 덕윤이는 좀체로 죽지를 안 했다. 그렇게 곪은 채 언제까지든지 살려는 듯이 덕윤이는 죽지를 안 했다.

그래도 필경 수일 안에 죽고는 말 것이다. 그 죽음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혹은 오늘 밤이 될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나 창준이 부부는 그 각각으로 다가오는 시커먼 죽음의 그림자를 까마득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미 눈물 한 점 흘릴 줄조차 잊은 듯싶었다.

창준이 집에다 전보를 치고 병실로 돌아와 보니 죽어가는 덕윤이를 아무렇게나 침대에 내굴린 채 안해는 새파랗게 질려 앉아 있다가 창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요?"

벌떡 일어서며 마치 창준이를 꾸짖는 듯이 몸을 떨며 달려드는 것이다.

"왜 그래?"

심상치 않은 안해의 동정에 창준이도 한데 휩쓸려 이상한 전율이 전신을 휘돌아 감았다.

"글쎄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요. 시료환자는 사람 아니란 말요? 누가 시료환자루 해달래기를 했소? 그래 죽어가는 놈 마지막으루 캄플한 대 못 놔줄 게 뭐란 말요?"

거기까지 단숨에 말하고 난 안해는

죽어가는 놈……마지막’- 그러한 자기 말에 문득 몸서리를 치는 듯하더니 별안간 풀이 죽어 목소리를 낮추어서,

"덕윤이가 별안간……숨이 끊기구……손발톱이…………파래지구……."

말끝을 못 맺고 홱 침대에 엎드러져 목을 놓고 울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창준의 전신에는, 이제야 죽는가보다, 하는 일종의 안도감이 놀람이나 슬픔보다도 앞서 치밀어 올라왔다. 그러자 다음 순간에는 강심제 한 대마저 거절했다는 의사에 대한 분노가 온몸이 확확 달도록 부풀어 올라왔다.

"어떤 놈야, 의사가……."

창준은 저도 모르게 악을 버럭 질렀다.

"……숙직실의……젊은……."

채 안해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창준은 단숨에 층계를 뛰어내려 슬리퍼도 벗어 던지고 복도를 달려서 숙직실 문을 열어젖혔다.

숙직실 안에서는 두 사람의 의사가 장기를 두고 있었고 한 옆에서는 간호부가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일제히 이 무례한 침입자의 행동을 꾸짖으며 창준에게로 쏠렸다.

창준은 문 어귀에 딱 버티고 서서 도리어 그들을 무섭게 노려보며, 어느 놈이 그 젊은 의사인가, 잠깐 그것을 생각하다가 격분을 참을 길 없어,

"관비는 당장 취소헐 테니 놓라는 대루 주사 놓시유."

무턱대고 방안을 향하여 악을 썼다.

그 의기에 질렸음인지 방 안 사람들은 잠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말이 없더니, 한 사람의 의사가 슬금슬금 창준의 시선을 피하며 간호부더러 무언인지 낮은 목소리로 묻고 나서,

"놔 디리지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대답하였다.

주사를 맞고 나자 덕윤이는 목이 말랐는지 힘없이 울고 부자연한 혀끝으로 몇 숟가락의 과즙을 빨고 나서 이윽고 오래간만에 곤하게 잠이든 듯하였다.

"요까짓 거 - 보통 사람의 반만 멕여두……."

잠자는 덕윤이의 얼굴을 뚫어져라고 들여다보며 무심코 중얼거리는 눈물 섞인 안해의 말에 창준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창준은 얼른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자기 역시 조금 전까지 그런 생각 먹었던 것을 놀라 돌아보며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움을 깨닫고 만다.

무섭다, 무서울 뿐이었다.

창준이뿐 아니라 안해도 그런 무서움을 느꼈음인지 몸서리를 치며

"덕윤이, 여기서 쥑이기 싫어요."

몸부림치는 듯한 소리였다.

"그럼?"

"집으루 데리구 가서 쥑여요. 이렇게 불쌍허게 죽은 걸 또 어떻게 해불시켜요. 난 못 해요. 집으루 데리구 가서 쥑여요."

창준은 한참 동안 대답을 못 했다.

어느 길을 택해얄 것인가? 인정으로 본다면 안해의 말을 좇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러면 윤 선생의 성실에 대해 무엇으로 보답하나?

그러나 그렇게 망설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반이나 창준의 마음마저 안해의 생각에 동의한 증거이었다.

윤 선생은 윤 선생, 어린애 부모로서 썩어빠진 살에 또 날카로운 메스가 닫는 것을 - 아아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창준은 천천히 일어서며,

"내 의논해보리다."

그리고 이번엔 힘없는 걸음걸이로 또 숙직실의 문을 열었다.

다행히 그 젊은 의사 혼자만이었다. 그는 또 창준이 들어옴을 보고 당황해서 손에 들었던 책을 걷어치우며 자리를 비키는 것이다.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창준은 젊은 의사와 마주 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천만에요, 저야말루 실례했습니다."

흥분이 사라진 듯한 창준을 보고 의사도 마음이 놓인 듯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저두 좀 흥분했었습니다마는 선생께서두 말씀을 잘못허셨지요."

"미안허게 됐습니다."

의사는 또 고개를 숙였다. 이 젊은 의사도 결코 악인은 될 수 없었다. 창준은 더 한층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은 것을 느끼며,

"지금 뭐 지난 일을 되풀이허려는 건 아닙니다마는 아무리 관비라기루 강심제 한 대쯤 죽어 가는데 못 놔주실 거 뭐 있겠습니까? 그야 물론 놔두 소용야 없겠지요. 그렇지만 소용야 있든 없든 부모된 사람의 맘이 어디 그렇습니까. 놔 달래는 게 인정이겠구,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놔주는 게 인정이 아니겠습니까?"

"………"

"더구나 그까진 시료환자란 말을 허셨대니……."

"그런 소리야 어디……."

"우리가 자원해서 관비루 해줍시다구 떼를 쓴 것두 아니구 사실은……."

자기로서도 의외라고 생각되리 만큼 창준은 찬찬하게 입때까지의 경과며 윤선생의 권고며, 또 지금 죽음을 앞에 놓고 공수 방관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며를 설명하고 나서,

"……그래서 윤 선생 말씀대루 관비루 헌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참 무척 섭섭헌 일입니다. 그대두 제 딴엔 윤 선생의 연구를 조금이라두 도와디릴 수 있을까 해서 헌 짓이니까요. 제 명야 짧어서 죽는다지만 좀 체로 없는 병이래니 연구재료나마 된대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현대 의학이 아직두 해결 못 짓는 것 중의 하나라면 제 몸 하나 바쳐서 그 길을 트게 하는 게 좀 소중한 일입니까? 죽는 놈두 만족해 죽을 것이 아닙니까?"

"훌륭헌 말씀입니다."

"그 자식이 세상에 태어나서 말두 채 못 배우구 죽게 됐으니, 그래두 세상에 한 번 태어났던 보람 있이 해주려면 죽은 후에라두 제 몸뚱아리나마 의학을 위해 바치게 허자구 - 그래서 에미는 반대했습니다마는 억지루 우겨서……."

"미안허게 됐습니다."

"아니, 뭐 인제 와서 선생에게 사과를 듣자는 것두 아니구, 또 선생을 꾸짖으려구 내려온 것두 아닙니다. 실은 아까꺼지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창준은 앞에 놓인 식은 차를 한 모금 빨고 나서, 실은 아까까지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나 막상 죽음을 당하게 되고 보니 애처롭고 측은한 마음만이 앞서 해부만은 못 하겠다고 안해도 그렇게 말하고 또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누누이 설명한 후,

"입때꺼지의 입원비용 물면 그렇게 헐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되겠지요. 하여간 그럼 내일 윤 선생허구 한 번 다시 상의 허시지요,"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고 보니 적이 몸이 가벼워진 듯한 창준과 젊은 의사는,

"그럼 그렇게……."

서로 웃으며 공손하게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창준은 별안간 그 젊은 의사와 자기와 사이의 거리가 급속하게 단축되는 것을 깨닫고 흉금을 털어놓아도 좋을 듯한 그러한 일종의 우정이라고 할 것을 느끼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병원 얘기, 의사 얘기, 환자 얘기, 혹은 애소(哀訴) 비슷한 자기네들의 처지- 그런 것을 오랫동안 얘기하다가 약간 피로를 느낀 듯하여 숙직실을 하직하였다.

어느덧 밤이 늦은 모양이다.

군데군데 희미한 전등불이 금방 꺼질 듯이 맥없이 껌벅일 뿐, 기다란 복도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고 오랜 폐허같이 잠잠하다.

창준은 그 고요함 속에서 일시에 커다란 피로를 느끼어 문득 발을 멈추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차디찬 밤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가 한숨 비슷이 길게 토했다. 그때 어디선지 얼음 깨는 소리가 구슬픈 리듬을 가지고 아물아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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