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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대

고산지대

이승우

 

몽크 김은 오늘밤도 들어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강의실보다 기도실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 그를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름대신 몽크 김이라고 불렀다. 그에게선 실제로 미리 죽음을 선취(先取)하려고 애쓰는 수도승의 완고함과 침울함의 인상이 짙게 풍겨 나왔다. 늘 세속의 껍질을 벗어버린 듯한 초연한 표정이 그랬고, 지면으로 답답하게 깔리는 음성이 그랬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는 듯한 눈길이 그랬다. 그 때문에 그는 종종 우리에게까지 세상의 분방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무슨 수도원에라도 칩거하는 듯한 착각을 불어넣곤 했다. ()과 속()에 대한 거의 결벽에 가까운 구별, 그리고 그에 대한 그 나름의 선험적인 편견이, 어쩔 수 없이 세속에 노출되어야 하는 숙명을 지닌 그에게 잦은 죄의식을 부추기는 것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도실의 깜깜한 어둠 속이나 뒷산의 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앉아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그러다가 걸핏하면 밤을 새워내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는 안다. 그는 오늘밤도 기숙사의 자기 방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불트만의 독일어 원서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문단속을 하는 아르바이트 사서의 눈치를 받으며 맨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나왔을 때, 밖은 깜깜한 어둠이었다. 이곳저곳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그 불빛만으로 인적이 사라진 교정을 밝히기에는 어림이 없어 보였다. 사람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곳에 우두커니들 서 있는 가로등의 모습이 오히려 처량했다. 그것들은 흡사 호되게 야단맞고 쫓겨난 개구쟁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가로등마저도, 전기의 힘을 얻어 번쩍이게 되어 있는 저 가로등마저도 사람들 사이에서만 빛을 내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은 수족관 속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가끔씩 가로등만큼이나 외로운 불빛들이 깜깜한 도화지 위에 선을 그으며 빠르게 사라져갈 뿐, 도시는 깊이 잠들어 조용했다. 발아래 펼쳐진 수렁 같은 어둠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가 나는 정말로 내가 고산 지대라도 오른 경우처럼 두세 차례 심호흡을 했다. 우리들의 대학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산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덕분에 학교까지 올라오려면 등산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그만치 길고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학교에 이를 수 있었다. 가령 채플이나 도서관의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기라도 하면, 썩어 없어질 이 세상에서 아옹다옹하는 이런저런 우리들의 삶이 갑자기 저열해져서 낯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래서 종종 우리들은 우리의 학교를 '고산 지대'라고 명명하곤 했다. 더러는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또 더러는 얼마간의 자조감을 섞어가면서--. 한두 차례 심호흡을 더 토해내고 나서 나는 깊이 가라앉아 있는 세상을 방치한 채 돌아섰다. 내가 어둠 속을 걸어서 도서관의 동편에 자리잡은 기숙사 입구에 이르렀을 때, 그와 내가 함께 기거하는 309 호실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기숙사의 창문을 올려다보고 예정된 그의 부재를 확인했다. 벌써 나흘째였다. 이번 주간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아예 담요를 기도실로 옮겨버렸다. 강의실에도 그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제 저녁 무렵에 수돗가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던 그의 탈진한 모습은 음식물마저 멀리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그때 무슨 말이든 건네고 싶었는데도,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건 물론 아니다.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불시에 만난 모든 엉뚱한 대면의 순간이 늘상 그러한 것처럼 사전 준비 없이 그와 부딪친 나는 턱없이 당황해가지고 ', ' 하며 입만 달싹이다가, 억지로 웃어 보이는 그의 초췌한 얼굴을 그냥 지나쳐보내야 했다. 한방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는 늘 내게는 그렇게 어려운 상대였다. 그건 비단 그가 나보다 나이가 네 살이나 많은 탓만은 아니었다. 나로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예년의 관례대로 이번 해 역시 '골고다에의 길'을 거르지 않고 집행하려고 준비 중인 몽크 김에게 가령 내가 '뭘 좀 먹어야지요' 한다든가, 또는 '오늘 방으로 와서 편히 좀 자는 게 어때요 ?'라고 말한다는 건, 정말이지 생각처럼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매년 4월초면 결행하는 그의 수난절 의식을 우리들은 '골고다에의 길'이라고 불렀다. 그날이 다가오면 그는 어김없이 그 의식을 반복했다. 서기 33년의 예루살렘, 그 뜨거운 4월의 한낮에 자기 몸무게를 훨씬 넘는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까지 걸었던 깡마른 예수의 발걸음을 모방하는 그의 의식은, 그 시절의 예수만큼이나 깡마르고 야윈 편인 그에게는 보기에 딱할 정도로 힘에 벅찬 일이었다. 더구나 그는 사전에 음식물을 멀리하여 몸의 무게를 훨씬 더 빠지기까지 했다. 시골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30이 다 된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온 지가 올해로 4년째였고, 따라서 그의 별난 의식도 이번으로 네번째가 되는 셈이다. 마지막 해라고 해서 거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예년처럼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고, 그리고 뒷산에 들어가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를 찍어 날랐다. 어제 그제 흡사 성스런 예식이라도 집행하는 듯한 심각한 태도와 엄숙한 표정으로 그가 상수리나무에 톱질을 하고 대패질을 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언뜻 날카로운 광기 같은 것이 번뜩였고, 그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가까이 접근을 못하게 만드는 어떤 위압감이 그의 주변을 휩싸고 있었다. 나도, 나 아닌 다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제 날이 밝으면 그는 그때의 예수처럼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비틀거리며, 쓰러지며 골고다 --- 그 저주의 땅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오를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불 꺼진 기숙사의 창문을 올려다보는 순간 속에서부터 불쑥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오르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를 그 자리에서 이끌어내지 않은 자책감 같기도 했고, 그 자리에 함께 섞이지 않은 데서 말미암은 씁쓸함 같기도 했다. 어느 곳으로부터인지 절규하는 듯한 울부짖음이 고요한 한밤의 하늘을 울렸다. 습기가 잔뜩 배어들어 축축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먹고 자는 따위 기본적 욕구를 내팽개친 채 자기 육체를 학대함으로써 영혼을 투명하게 닦으려 씨름하고 있는 몽크 김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냥 모른 척하고 안락한 이부자리 밑으로 숨어들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끌리듯 다가갔다. 기도실은 언덕배기에 세워진 예배실의 한 귀퉁이에 딸려 있었다. 그리고 짐작대로 소리는 그곳으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살며시 다가가 기도실 문을 열었는 데도 예의 그 뜨겁고 축축한 목소리는 틈 입자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하등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기도실 안은 동굴 속처럼 어두웠다. 전면 벽에 부착된 대형 십자가의 희미한 형체만을 짐작으로 어림할 수 있을 뿐이었다. 조명이 전혀 없어 칠흑처럼 깜깜하기만 한 기도실 바닥에 흡사 화살맞은 맹수처럼 잔뜩 웅크린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듯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새어나오는 소리는, 가까이에서 들어도 내 귀에는 태풍의 포효만큼이나 낯설었다. 내 둔한 귀는 너무 빠르고 급하게 움직여 차라리 허공을 굴러다니는 것만 같은 그 포효의 마디 중 어느 하나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저게 이른바 방언 기도라고 하는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내게,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불시에 듣게 된 그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의미 파악이 불가능한 울부짖음은 일순 모골이 송연해지는 전율을 선사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어두웠지만, 그래서 그 방언 기도의 주인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가 몽크 김일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다. 가지가지 신비한 체험을 두루 섭렵한 그이고 보면, 그리고 그러한 신비체험에 의존하여서만 신앙을 이해하려 드는 그이고 보면, 이까짓 방언 기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소문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반죽음 상태에서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기행하고 왔으며, 그 일 이후 국민학교 선생 자리를 버리고 신학교에 허겁지겁 뛰어들게 되었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그런 세계가, 두 학기째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내게는 좀처럼 친해지지가 않았음을 숨기고 싶지 않다. 숫제 신을 압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그의 등뒤에 엉거주춤 서서 나는 기도의 어는커녕 자세조차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어둠을 더듬거리며 겨우 기도실을 빠져나왔다. 4월초의 날씨치고는 어지간히 차가운 밤공기가 뺨이며 옷 속이며를 슬금슬금 기어들었다. 그것들은 기도실로부터 들려오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한 생경한 방언들과 함께 미끌미끌한 파충류가 되어 한사코 나의 살갗에 달라붙으려 하였다. 나는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어 이물감을 떨쳐버리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너무 늦었다고 기숙사 문을 열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가세하여 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그런 어느 한 순간,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무심결에 그만 몇 번 눈알을 깜박이고 말았다. 그것들은 캠퍼스 곳곳에 지뢰처럼 숨겨져 있었다. 아니다. 그것들은 솜씨좋은 수영으로 흡사 플랑크톤처럼 교묘하게 공기 속을 둥둥 떠돌다가 어둠이 내리면 은밀히 형체를 풀어 액화되곤 했다. 그리하여 기회가 닿으면 우리들의 눈에서 잘 여문 봉숭아씨를 터뜨리듯 톡톡 눈물을 뽑아내었다. 늘 조심해야 했다. 캠퍼스를 거닐 때는 늘 지뢰밭을 지나가는 병사들의 긴장과 신중함을 몸에 익히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몸에 더 자주 익어있는 건 긴장과 신중함 대신 망각이었다. , 이런, 빌어먹을! 나는 손수건을 꺼내 눈을 틀어막으며 차가운 밤공기 속을 냅다 뛰었다. 내 등뒤에서 여전히 형체를 붙잡을 길 없는 흥건한 울부짖음이 마구 쫓아왔다. 방에는 뜻밖에도 찬익이 와 있었다. 허겁지겁 뛰어든 세면실에서 정신없이 물을 퍼부어 굴을 씻고 벌컥 방문을 열었을 때, 찬익이 놈은 방안의 깜깜한 어둠을 이불 삼고 내 몫의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운 그의 기세가 하도 당당하고 자연스러워서, 무슨 갑충(甲蟲) 모양으로 천정에 달라붙은 형광등이 몇 차례 푸드득거리며 속날개를 꺼낼 때까지 나는 외인이 침입한 흔적을 전혀 눈치 챌 수가 없었다.

"랍비님께선 여전하시구먼. 이런 하수상한 세월을 아랑곳 않고 죽은 헬라어 문법을 부활시키느라 시간의 흐름을 잃을 지경이라니--."

방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양쪽 벽에 바짝 붙여 세워진 두 개의 침대와 창쪽을 보고 얌전히 앉아 있는 철제 책상, 그리고 그 책상위에 어지럽게 널린 책들이며 볼펜, 리포트 용지, 마신 흔적이 그대로 엉겨 붙은 커피잔들과 빵쪼가리들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보 이자, 부스스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대며 인사삼아 꺼낸 그의 첫마디가 그랬다. 약간의 비아냥기가 느껴지지 않은 바는 아니었지만, 저런 식의 말투가 저 친구에겐 오히려 자연스러웠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쾌념치 않기로 했다.

"어딨었어? 그동안. 얼굴이 안돼 보여. 밥은? 밥은 먹었어? 커피라도 끓일까?"

나는 커피포트에 플러그를 꽂으며 의자 위에 엉덩이를 붙혔다.

"신경 안 써도 돼. 신경 쓰이지 않게 할께. 조용히 잠만 자고 나갈 거야."

그는 벽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더니 다시 몸을 눕혀버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끓는 물에 커피를 타서 그에게 권했을 때에야,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비어 있는 옆 침대를 턱으로 가리켰다.

"몽크 김은?"

"고행 중."

"여전한 건 그 친구도 마찬가지로구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 친구, 뭐야, 루터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리겠다는 똥배짱인가? 프로테스탄트의 첨병들이 키워져나가는 훈련소에 들어와서 웬 엉뚱한 수도승 흉내를--. 꼴사납게시리."

"세속의 삶을 깡그리 부정하는 완고한 신비주의, 또는 탈역사적인 경건 제일주의라고 할까? 암튼 그게 그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쯤 너도 모르지 않을 테지. 모르긴 해도 요즘 들어선 세상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다분히 메노나이트적인 시선이 한층 견고해진 느낌도 들고--."

"흠흠, 그 잘난 경건. 그 시대착오적인 신비주의--. 세상은 불의와 부정과 어둠이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 악취를 풍기는데, 그 훌륭한 수도원의 담에 갇혀 눈감고 하늘을 우러르겠다는 발상의 철면피를 난 아무리해도 이해 못 하겠어. 감은 눈에 뭐가 보이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이나 몇 잎 잡힐지 몰라도. 더구나 하늘에서야 뭘 보겠다는 거야? 눈을 떠야지. 눈을 떠서 청청한 하늘이 아니라 혼탁한 세상을 봐야 하는 거 아냐? 세상을 온통 시꺼멓게 도색해버린 저 참혹한 어둠과 불의와 치욕의 세력을 똑바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거 아냐?"

그는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위험했다. 상대방을 무조건 매도해대는 이런 식의 대화는 정말이지 나를 피곤하게 한다. 땅을 제거한 채 하늘의 풍경에만 한눈을 팔고 있는 넋나간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 반대편의 사람들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대답되어 해질 대로 해진 식상한 관용어구들을 마치 자신의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늘어놓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공연히 그 양극의 틈바구니에 잘못 끼어들어 비참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그들의 신념, 그 신념의 견고함이 한심스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기억에 수치스런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 지난 학기의 기도실 난입 때도 찬익은 지금과 똑같은 말로 몽크 김을 윽박질렀다. 그때는 미쳐 날뛰는 각목들이 그의 주장을 현시하고 있었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몽크 김이 이끌고 있는 '겟세마네'라는 기도 모임이 안정과 질서를 바라는 학교측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모임의 활성화를 통해 천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소위 '불평불만자들'의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것이 학교 측의 속셈이라는 찬익과 그 동료들의 판단은 비교적 정확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고개를 처박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좁은 기도실에 난입하여 각목을 마구 휘둘러댄 사태는, 나중에 대자보를 통해 그 '겟세마네'의 어용성을 호되게 질타했다고는 해도, 같은 학생끼리 아무래도 지나친 행동이었다는 비판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날, 몽크 김의 항변을 각목과 고함으로 막아낼 때의 찬익의 눈에서, 기도에 몰입하고 있을 때의 몽크 김에게서와 다를 바 없는 광기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열정의 외형적인 차이와는 상관없이 의외로 그들의 열정 사이에 유사성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였다. 찬익은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불 속에서 혼잣말처럼 덧붙이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불만이 가득 배어 있었다.

"요번에도 그 미친 짓을 또 할려나? 십자가 메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그 유치한 쇼 말야. 하겠지. 하지만, 그런 식의 유별난 고행 의식을 통해서만 그분을 따를 수 있다는 작자의 그 답답한 발상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난 그게 궁금해. 궁금해 죽겠어."

그의 넓은 등짝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는 오늘 교정의 곳곳에 나붙어 있던 붉고 굵은 글씨체의 공고문이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 되어갔다. 그 포스터는 도서관 현관의 유리문에도 붙어있었다.

'비상 총학생회 개최. 신학도여 일어나라. 신학도여 깨어나라. 금요일 정오에 웨슬레 광장으로 모입시다--.'

학기가 시작되어도 찬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 라기보다는 나의 관심이 다른 데 있었기 때문에 --- 나는 4학년을 마치면 더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내 인생을 걸 만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학문에의 몰두'를 꼽고 있던 나는 될 수 있는 한 졸업과 동시에 유학길에 오르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었고, 그 일을 위해서 거의 모든 낮과 밤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다시피 했던 것이다 --- 나는 그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는 지난해 '기도실 난입' 사건이 있은 며칠 후 연합 시위에 가담하여 학교로부터 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시골역의 퇴색한 대합실 벽이나 여관방 같은 데에 나붙기 마련인 지명 수배자 명단에 그의 사진이 섞여 있음을 안 것은, 지난 겨울 방학 때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들렀던 밑읍의 조그만 대합실에서였다. 그가 언제부터 체제 저항 쪽으로 경사되었는지를 추측해보려 한다면, 그건 아무래도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시도이기 쉬울 것이다. 그것은 저 아래쪽에서부터 치솟아 오른 수상한 바람이 어떻게 이 높은데 웅크린 '고산 지대'에까지 불어 닥치게 된 것인가를 따져보려는 노력의 부질없음과 한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가령 찬익이가 "여긴 고산 지대야. 숨이 막혀" 하고 말할 때, 그 말의 뜻이 고산 지대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찬익이 개인의 특이체질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 그렇게 이해되던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도리어 생명체의 생존에 부적합한 고산 지대 쪽의 척박한 조건 --- 이를테면 기압의 급격한 저하, 그에 따른 산소의 부분압 강하, 그리고 주야간의 현저한 기온의 차이 등 --- 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로 읽히기에 이른 상황이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아래쪽으로부터 불어온 수상한 바람에 몸을 실어버린 그의 눈에는 도서관에 앉아 '죽은 헬라어 문법이나 부활시키고 있는' 내가 허구헌날 기도실에 웅크리고 앉아 가시 찔린 맹수 흉내를 내며 울부 짖어대는 몽크 김의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몹시 한심스럽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강의실이나 교정의 잔디밭 같은 데 앉아 자주 흥분했고, 그의 용감한 흥분은 종종 동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는 자주 신학자들은, 또는 신앙인들은 그들의 신학을 또는 신앙을, 관념이나 종교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죽은 것에 다름 아닌 교과서 속의 도그마나 장식에 불과한 교회의 물량 과시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곤 했다. 그는 말했다. 예수님은 신학자들의 구태의연한 사고의 틀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어 하신다. 그분은 신학자들의 죽어 딱딱해진 언어의 벽을 헐고 나와 저 슬픈 어부들과 세리들과 창기들의 삶의 현장에 함께 있고 싶어 하신다. 저 열악한 노동 환경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노동자들과 함께 모래 짐을 지고 대패질을 하고, 트럭을 운전하고 싶어 하신다. 그분은, 심지어 우리와 함께 최루탄을 맞아 눈물 흘리면서 돌이라도 던지고 싶어 하신다. 그날, 저 추악한 폭력 앞에 몸을 던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듯이, 오늘 또 그러하신다. 오늘 이 땅에서 쓰러지고 피 흘리는 투사들의 희생으로부터 우리는 그날의 그분의 그림자를 본다--. 몽크 김은, 아마도 그런 찬익이와 가장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야 하리라. 편리하게 비유해서 찬익이의 신앙관이 '예언자 의식'이라는 한 극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라면, 몽크 김의 그것은 다른 한 극인 '제사장 의식' 쪽에 기울어 있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쪽은 현실의 거침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려 하였고, 다른 한쪽은 성소의 신비 속에 더 '신비적으로' 빠져들기를 원했다. 한쪽은 신앙의 정치화에, 또 다른 한쪽은 정치적 무관심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쪽은 다른 한쪽을 향해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로 상대방을 향해 '세상 없는 하나님'만을 숭배한다고 내몰았다. 비단 찬익이나 몽크 김,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학교전체가 묘하게도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단지 그들이 속해 있는 그룹을 대표하는 두 개의 포스트에 다름아니었다. 강의실에서는 모두들, 두 개의 현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현실화된 하나의 현실만이 존재할 따름이며, 그 하나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있음을 본회퍼를 따라 인정하면서도, 실천의 자리에선 늘 기도실의 안과 밖으로 그 '현실'을 옮겨가버리곤 했다. 참으로 불행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옆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뒤적이고 있는 내 곁에서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불행한 현실'의 지명 수배자인 최찬익의, 알지 못할 간절함과 초조감이 언뜻언뜻 내 가슴을 두드렸다. 내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찬익에 대한 나의 감정은 종종 몽크 김에 대한 그것과 교묘하게 뒤섞여 있음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 감정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히긴 어렵지만, 구실이야 무엇이든 그들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자의 무안함과 자책감, 또는 주변인의 쓸쓸한 열등감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 내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 했던 까닭도, 말하자면 나의 그러한 내밀한 감정의 작용과 무관하지 않았을 터였다. 새벽녘에야 잠에 빠져든 내가 질긴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의식의 눈꺼풀을 겨우 치켜 올렸을 때. 복도에 설치된 스피커로부터 행진곡풍의 찬송가가 무법자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새벽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어나야 했다. 이제 곧 사명감에 투철한 생활관장이 들이닥칠 것이었다. 그리하여, 게으른 영혼들을 깨워 일으키기 위해 모든 방문을 확인하고 다니는 수선을 거르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성경과 찬송가를 찾아들고 서서 잠시 망설이다가 찬익이를 불렀다. 그의 기도회 참여를 권유하기 위해서보다 실상 나는 생활관장의 습격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도 이미 깨어 있었던 듯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나 앉았다.

"뭐야, 새벽마다 강제로 깨워서 노예 내몰 듯 억지로 기도를 시키고, 이거 순 군대식이잖아" 하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전체 기숙사생이 참여하는 새벽 기도회를 거부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 곁에 앉아 얌전히 기도회에 참여하던 녀석은, 기어이 도중에 몸을 일으켜 세워버렸다. 기도회를 인도하던 생활관장이 "사회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고 통성 기도를 유도했을 때였을 것이다.

"걸핏하면, 생색이라도 내듯,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렇게 해서 뭐가 어찌 된다는 거야. 애국자들 많아서 좋구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 갑자기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이 땅으로 내려오기라도 한다는 건가? 아니면 여호수아가? 왜들이렇게 낭만적인지 모르겠어. 저 거대한 조직의 폭력을, 그 무시무시한 정체를 좀처럼 제대로 인식하려 들질 않아. 저 세력은 마치 캔키지의 뻐꾸기--’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콤바인과 같애. 인간을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개조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소불능의 조직체 말야."

"너는 그 콤바인의 무시무시한 힘을 얕보고, 빤히 예정된 패배를 향해 천방지축 날뛰는 불쌍한 맥머피를 바라는 거니?"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대화에 되도록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줄곧 지하고견 있는 무의식적인 처세술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소득이란 기껏해야 기력의 소모거나 상대방과의 관계의 불편함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지혜를 나는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나는 불필요한 기력의 소모도, 이유 없는 상대방과의 관계 단절도 원치 않았다. 불쑥 그의 말을 되받아놓고 내심으로 아차, 싶었던 것도 말하자면 바로 그 지혜의 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의 말은 쏟아진 뒤였다. 어쨌거나 기력의 소모거나 불편한 관계이거나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너희는 영악하게 패배주의를 택하겠다는 것이로구나. 그 소설 속의, 세뇌되어 무력해진 환자들처럼 정신병동에 갇혀 신성한 인간을 반납하고, 그 대가로 조직의 양순한 부품이 되겠다는 것이로구나. 싸워보지도 않고 미리 항복하겠다는 것이로구나. 행복한 패배주의, 노예의 안락에 안주하겠다는 것이로구나."

"기도는, 적어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무기일수 있어. 기도가 가장 무서운 무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 기도를 가지고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건지도 몰라. 네가 돌을 던지듯 그들 역시 기도를 던지고 있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드니? , 그들의 진지함도 인정해주고 싶어."

"그렇겠지. 하지만, 작자들이 겁을 내지 않는 무기를 너무 자랑하고 뽐내는 것도 민망한 일이야. 저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싸움은 이쪽에게만 치열할 따름이야. 잘 싸우려면 상대방이 무서워하는 무기를 써야지. 안 그래? 너의 사고방식은 저들, 콤바인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논리에 다름아니야. 내겐 그렇게 들려. 현실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아. 알아? 훨씬 복잡하고 훨씬 치밀해. 신학생들은, 대체로 너무 순진해. 저 정신병원에 갇힌 키지의 환자들만큼이나--. 이따가 봐, 정오에.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럼--."

거기서 그는 몸을 일으켜버렸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정오 무렵쯤하여 도서관 앞의 웨슬레 광장으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제각기 깃발을 하나씩 앞세우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대한으로 볼륨을 높인 마이크에서는 날카로운 여학생의 목소리가 동료들의 참여를 권면하고 있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후미진 골목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던 전경들이 부산하게 무장을 갖추고 교문 앞으로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조용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유독 격렬한 한판이 예비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학생들 스스로 오후 수업 완전 휴강을 선포하고 나선 참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수업이 이루어지긴 틀린 판국이었다. 나는 성 금요일의 관례대로,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추정시간인 오후 세시까지의 금식을 단행할 결심이었으므로 점심 식사를 포기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 시간에 쫓겨 읽다가 접어둔 불트만도 나를 필요로 했고, 며칠째 손을 못 대고 있는 신약 원전은 더욱 급했다. 내게 신약학 전공을 강권하다시피 권한 박성효 교수가 새 책처럼 깨끗한 나의 헬라어 성경을 보게 되면,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의 게으름을 호되게 나무랄 터였다. 영어가 짧은 것은 외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이라 할지라도, 헬라어마 저 부실한 채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가 고생한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면서 박교수는, "그럴려면 신약학을 포기하라"고 윽박지를게 뻔했다. 그의 그런 꾸중은, 결국 그와의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나의 유학 보장을 재고하겠다는 위협처럼 들려서, 거기에다 온 소망을 다 걸고 있는 나로서는 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서관 안은, 여느 때와는 달리 거의 비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4월이라고는 하지만, 실내는 되려 썰렁했다. 빈 자리가 너무 많아서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펴들었다. 도서관 앞 광장에서는 서서히 시위의 열을 붙여가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빠른 템포 의 노랫소리가 도서관의 유리창을 흔들었다. 약간의 시장기가 느껴졌다. 뱃속이 좀 비어 있을 때 정신이 가장 맑아진다는 어떤 화가의 잠언을 떠올리며 헬라어의 알파벳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물거리는 헬라어 단어들과 시장기 사이로 바깥의 소음이 필사적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귀를 막고 고개를 처박았지만, 도서관의 얇은 유리면을 투과해 들어온 짧은 구호들을 외면해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소리를 합친 바람에 그들이 내지른 그 구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이 들었다. 정작 비어 있는 것은 뱃속인데도 머릿속조차 텅 비어버린 느낌이 이상했다. 글자들은 나의 눈을 피해 달아나고, 나는 뼛속으로 치미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나는 책을 불트만으로 바꿔들었다.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함성들이 썰렁한 도서관의 유리창에 부서졌다. 뜻을 알 수 없는 그 함성들은 흡사 여러 개의 다리를 거느린 벌레 모양을 하고 종이 위를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이방의 문자들과 뒤죽박죽 몸을 섞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중심을 못 잡고 잠깐 비틀거렸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나의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창가로 다가갔다. 내가 도서관을 들어설 때보다 배나 많은 학생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앉아 있었다. 더러는 잔디밭 쪽에 멀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띄엄띄엄 서 있는 축들도 있었다. 4월의 따뜻한 영광이 광장 끝에서부터 가물가물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집회 가운데 가장 많은 수로 보이는 학생들 앞에 마이크를 쥐고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내게는 등을 돌리고 서있는 셈이었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앉거나 서 있는 학생들의 환호와 박수를 간간이 받아가면서 그가 감정이 격앙된 쉰 목소리를 내는 그 특유의 웅변술로 열을 뿜고 있었다.

"저 친구, 지난 학기에 짤린 최찬익이 아냐?"

"그러게. 수배중이라고 하던데, 무사할지 몰라."

"암튼 겁도 없는 놈이야. 저 친구가 나섰으니 좀 시끄럽겠군."

얼굴 정도는 익히고 있는 대학원생 두 명이 내 옆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조한 목소리로 주고받는 대화를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들었다.

"어쩌자는 판국인지 모르겠어."

"또 금방 이곳저곳에 최루탄이 펑펑 터질 테지. 그나저나 그놈의 최루탄 냄새 좀 안 맡고 한 학기라도 넘겨봤으면 소원이 없겠어."

"누가 아니래. 요즘은 아예 저놈들이 최루탄으로 선공을 해오는 판국이니, 꿈 같은 소망이지."

"캠퍼스란 게 꼭 간장 종지만 해가지고, 한번 터지는 날엔 성역이란 게 없으니--."

"오늘도 일찌감치 빠져나가는 게 상책일 것 같애. 책을 보긴 이미 틀렸어."

"신학교에서까지 꼭 이래야 하나? 도대체--.

그들은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책상 위에 펼쳐두었던 책들과 노트들을 쓸어 담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내 곁에 서서 감정 없는 목소리로 책가방을 챙기던 두 명의 대학원생 말고도 여기저기서 그나마 썰렁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몇 안 되는 학생들이 책짐을 꾸리고 있었다. 워낙 학교가 좁은데다가 지정학상 일이 터지면 최루탄 세례의 집중적인 표적이기 마련인 도서관은 대개 가장 피해가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는, 시위가 있는 날은 항상 일찍부터 문을 걸어 잠글 생각부터 하였다. '학생은 안 나가?' 하는 표정으로 사서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무언의 추궁을 무시한 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부터 찬익이가 줄곧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포착할 수는 없지만, 몹시 흥분한 듯 한쪽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는 모습은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현란한 뒷모습은 격정적인 교향곡을 지휘하는 지휘자를 연상시켰다. 그의 뒷모습에 순간적으로 어젯밤 기도실에서 보았던 절박한 어둠의 덩어리가 겹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불현듯 가슴속이 서늘해왔다. 서늘한 감동, 그것은 몽크 김의 뒷모습에서 어제 내가 채집한 뜨거움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교문 밖에서는 투구에 방패를 들고 방독면까지 착용한 패거리들이 공격개시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불쑥 창문을 열어젖혔다.

"안돼요. 닫아요."

사서가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 냅다 소리 질렀다.

"아직 바깥의 공기는 무사해요."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코를 벌름거려 바깥 공기의 무사함을 알렸다. 이제껏 유리창의 매끄러운 표면에 부딪쳐 주르륵 흘러내리기만 하는 바람에 무슨 뜻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던 찬익의 뾰족하게 날선 언어들이 열린 창문 안으로 서둘러 고개를 디밀었다.--주지하는 대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헤르몬산에 올랐을 때, 그들은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변신 ---- 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고, 심지어 입고 있는 옷까지도 눈부시게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영광과 권세 가운데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있는 장면을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눈앞의 눈부신 환상에 취하여 그가 무슨 망발을 합니까?

'주님,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에다 초막을 짓겠습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누가는, 베드로가 그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환상이 제공하는 엑스타시, 그 마취의 황홀경에 빠져서,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에다--' 하고 넋 나간 소리나 질러대는 게 우리들 아니었습니까? 저 아래, 귀신들린 자들과 굶어 죽어가는 자들과 병들어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 소리에는 두 귀 두 눈 꼭 막은 채 이 높고 광채 나는 헤르몬산에 텐트 치고 안주하기를 꿈꾼 게 우리들 아니었습니까--? 그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최대한으로 높여진 마이크의 볼륨 때문에 그렇게 들린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때까지도 비교적 질서를 잘 지키고 앉아 있던 청중들 속에서 술렁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결에 꼭 쥔 나의 손바닥이 땀에 젖어 축축해진 사실을 알지못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합니까? 언제까지 몽매한 황홀경의 상태에 빠져 환상이나 파먹고 살랍니까? 저 아래에는 더러운 귀신들이 우글우글합니다. 그들에 붙잡혀 울부짖는 우리의 형제, 우리의 이웃의 신음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감히 말하지만, 예수가 그들을 데리고 헤르몬산에 오른 것은 다시 내려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 제자처럼 오늘 우리가 환상에 넋이 나가 '여기가 좋사오니'하고 세상으로 내려가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역하는 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 예수님처럼 합시다. 예수님처럼 내려갑시다. 예수님처럼 내려가 저 신음하는 우리의 민중에 섞입시다. 내려가서, 그들 가운데서 우리보다 먼저 내려와 있는 예수님을 만납시다--. 내려가자 민중에게로. 내려가자 예수에게로. 광장의 바닥에 질서를 지키고 앉아 있던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한꺼번에 일어서서 한목소리로 외쳐대었다. 내려가자 민중에게로, 내려가자 예수에게로--. 그들은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작은 교문 밖의 보다 질서 있게 늘어선 패거리들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마른하늘에 벼락치듯 뻥뻥 소리를 내며 일시에 최루탄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학생들은 약속처럼 투석으로 맞섰다. 이제 수라장이 될 것이었다. 던지고 받고, 쫓고 쫓기고--. 사서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유리 창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고 잠가버렸다. 나는 사서의 눈치에 쫓기며 가방을 챙겼다. 밖에선 계속 뻥뻥 최루탄이 터지고 있었다. 곧 도서관으로도 날아들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유리창을 깨뜨릴 것이다. 나는 불트만과 헬라어 성경과 헬라어 사전을 챙겨들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유리창을 통해 흘깃 밖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지나쳤는데, 창밖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그 아수라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뜻밖의 장면을 언뜻 목격한 느낌이 들어 나는 그만 발을 멈추었다. 쫓고 쫓기며, 던지고 피하는 전경들과 학생들의 싸움판 한 귀퉁이에서-- , 나는 보았다, 거대한 십자가 하나의 상처 입은 맹수처럼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그 걸음걸이는 매우 서툴렀다. 몇 발짝 걷지 못해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지고, 그러다가 한참 만에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워 서너 발자국 걷는가 싶으면, 다시 쓰러지곤 하는 무거운 걸음으로 그 십자가는 교정의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고 있었다. 그 장면은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낙조를 누가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이가 있어 아름답다고 찬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모습은 내게 그런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내 눈앞에서 다만 적멸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십자가를 메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어깻죽지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중단시켜야 한다. 어느 쪽이든, 저 떨어져 내리는 낙조이든, 뜨겁게 달궈진 전쟁판이든--. 그러나 나는 실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대신 시위대에 가담했던 학생들 중에 몇 사람이 그쪽으로 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상황을 알리며 뭐라고 설득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결코 십자가의 행진을 중단시킬 수 없을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몽크 김의 고집 센 자세가 그들을 내쫓고 있었다. 마침 그때 그쪽으로 최루탄이 한 방 터졌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득을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 사이에 전쟁터의 상황은 급변해 있었다. 줄곧 교문 밖에 대형을 유지하고 있던 저들은 짜증이 났음에 틀림없었다. 얌전히 서서 최루탄을 날려 보내기만 하던 그들이 사태를 일시에 뒤집겠다는 속셈인지 교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방석모에다 방독면까지 뒤집어써 흡사무슨 외계인 같은 흉물로 그들은 조금씩조금씩 몰아붙였다. 그 바람에 시위대는 점점 영토를 내주며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몽크 김의 십자가가 비틀거리며 통과하는 언덕 근처에 서서 돌을 던지며 용감하게 구호를 외쳐대던, 흰 마스크를 한 학생이 그만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지는 걸 나는 보았다. 그 학생은 땅바닥에 뒹굴며 괴로운 듯 몸부림쳤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입고 있는 청색 재킷을 통해 그가 찬익이 녀석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홀로 쓰러져 있었다.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 십자가를 멘 고행의 사나이가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 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동료들은 군화들의 공격에 밀려 멀찌감치 도망쳐버린 뒤였다. 더구나 때맞춰 연달아 쏘아대는 '지랄탄'을 피하느라 혼비백산이 되어 있던 터라 그의 위급한 상황을 눈치 챈 사람조차 거의 없는 상태였다. 쓰러져 괴로워하는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저벅저벅거리는 군화 소리였다. 그런데--그 순간 나는 또 보았다. 십자가가,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난장판에는 추호의 거리낌도 없이 자신의 외로운 고행만을 계속하던 몽크 김이 정해진 정교의 경사로 ---- 우리들이 명명한 '골고다에의 길'을 버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는 내가 본 것처럼 바로 곁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몸부림치는 동료를 본 것이다. 망설임이 없었다고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아래쪽을 내려다본 채 아주 잠깐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러나 곧 뒤이어, 한 걸음씩 힘들게 옮겨 디디며 올랐던 이제까지의 방향을 뒤집어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는 그의 무거운 걸음걸이를 나는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십자가를 진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누운 또 다른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가 자기의 등에서 십자가를 내려놓고 그 십자가만큼 무거운 또 다른 그를 등에 업는 순간, 모든 것이 일시에 중단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나의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웅성거리며 돌을 던지던 학생들도, 뻥뻥 최루탄을 쏘아대며 거리를 좁혀오던 군화들조차도 제자리에 우뚝 선 채로 그 모습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차라리 그 순간에는 시간조차도 흐름을 멈춘 채 진공의 수렁 속으로 곤두박질쳐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도서관의 창을 열었다. 내게 짜증을 부릴 사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시간 위로 ''''를 등에 업고 아래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등뒤에 누운 ''의 지체 어디선가 흘러나온 검붉은 피가 ''를 적시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한몸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내 마른 눈알에 흥건히 고여 들던 눈물이 단지 최루탄 탓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말 못 할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도서관 유리창을 통해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었을 서늘함, 또는 뜨거움 말이다. 그런 채로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시위 학생들 속에서 한두 사람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러자 곧 모든 학생들이 그 합창에 가세했다. 삽시간에 교정은 수난 찬송가의 애절하고 느린 선율에 휩싸여갔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십자가 위에 달릴 때--. 나 역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도서관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어젯밤에 기도실의 주인이 내었음직한 흥건한 목소리를 보탰다. 그 때문에 손에 들고 이던 불트만의 신약 성서 신학과 헬라어 성경과 사전이 낙엽처럼 아래층으로 떨어져 내리는 사태를 그 당장은 눈치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는 이미 한 몸처럼 보였다. 한 몸처럼 뒤엉켜서, 동작을 멈춘 채 망연히 올려다보고만 있는 저들을 향해 비척거리며 내려가고 있는 ''''의 등 뒤쪽으로 우리들의 무겁고 깊은 수난 찬송이 4월의 청명한 햇살과 함께 이슬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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