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손나경
체중계에 오르면서 여자는 자신이 저울에 올려진 고깃덩이 같다고 생각한다. 체중계의 디지털 숫자가 41.7에서 42.3으로 빠르게 바뀌다, 42.0에서 고정된다. 평소보다 600그램이 더 나가는 무게다.
고기로 치면 딱 한 근이 는 셈이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여자의 몸 어디에도 살이 불은 흔적은 없다. 얼굴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 사이로 여자의 턱이 보인다. 날카롭게 각이 두드러지던 턱선이 많이 무뎌져 있다.
이하선과 침샘이 부은 탓이다. 침을 삼켜도 금세 다시 침이 고인다. 침을 넘길 때마다 통증이 왔지만 그쯤의 통증은 여자에게 익숙하다.
유리문을 열자 탕 안의 소음이 일시에 달려든다. 과장되게 울리는 소음 사이로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냉탕 폭포수를 맞고 있는 여자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진다. 브라키오사우루스다.
그네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그네는 조각처럼 선이 분명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피부 또한 타일처럼 매끈한 빛이었다. 물 밖으로 목을 길게 내민 그네를 여자는 여러 번 훔쳐보았다. 마침내 얼굴이 발그레해진 그네가 몸을 굼뜨게 일으켜 세웠다. 힐끔거리던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그만 얼굴, 긴 목과 달리 물 밖으로 드러난 그네의 몸은 거대했다. 마치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천천히 호수에서 걸어나오는 것 같았다.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 몸이었다. 그네의 비대한 엉덩이 위로 뱃살과 허리살이 겹겹이 흘러내렸다.
허벅지도 늘어지거나 튼 살로 결이 고르지 않았다. 동굴의 석회수가 흘러내리면서 쌓인 종유석의 커텐처럼 여자의 아랫배는 무겁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피부만큼은 살찐 누에처럼 하얗다. 여자는 치밀어 오르는 구토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조심스레 내쉬었다.
여자는 목욕탕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직사각형의 탕과 때 미는 코너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샤워기로 몸에 물을 뿌린 다음, 김이 서리지 않도록 비누 묻힌 타월로 거울을 닦아낸다. 말개진 거울에 상반신이 비친다.
쇄골이 활대궁처럼 부드럽게 선을 그리도록 여자는 가슴을 활짝 펴보인다. 여자의 몸피가 종이처럼 얇다. 거품을 내어 몸에 칠한 뒤, 클렌징 폼으로 얼굴을 공들여 닦아낸다. 여자는 요즘 들어 얼굴이 자주 당긴다.
각질이 일어나고, 심하면 가렵기까지 하다. 금붕어보다 물을 많이 마시고, 마사지나 팩으로 달아나는 수분과의 균형을 위태하게 맞추고 있다.
여자의 몸에서 수분을 빼앗아가는 건 사우나만이 아니다. 이뇨제 때문이기도 하다. 여자는 라식스라는 이뇨제를 사흘에 한 번 사용한다. 여자의 배뇨는 이뇨제를 사용하는 만큼 무력해지고, 또 무력해진 만큼 이뇨제에 의지하게 된다.
온탕에 발을 넣다가 여자는 급히 빼낸다. 델 듯이 물이 뜨겁다. 그렇다고 유리문을 열고 나가 주인 여자에게 물 온도를 낮춰달라기는 번거롭고 내키지 않는다.
여자는 낭패스러워진다. 끓듯이 부풀어오르는 물살을 쳐다보다, 용기를 내어 탕으로 들어간다.
여자의 입에서 가늘게 신음이 흐른다. 뜨거움이 덜하도록 일시에 몸을 물 속에 주저앉힌다. 턱까지 올라온 물이 여자의 몸을 압박붕대처럼 단단하게 조인다. 따뜻한 물에서 노곤하게 몸이 풀리길 기대했던 여자의 이마가 구겨진다.
탕 속의 여자들이 그런 여자를 보고 있다. 그들도 조금 전에는 여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누군가 물이 뜨겁다고 말해주길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다 뜨거운 물에 적응되고 견딜만해지자,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여자를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목욕탕의 터줏대감인 검은 아이라인도 있다. 문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지 눈 주위가 유독 검어 보이는 50대의 여자였다.
여자는 검은 아이라인의 가족관계나 자잘한 일상사까지 꿰고 있다. 검은 아이라인뿐 아니라, 사우나에 드나드는 여자들의 신상을 대개 알고 있다.
사우나에서 떠드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놓는 게 여자는 즐겁다. 사실 목욕탕에 다닌 걸로 치면 여자만큼 오래 다닌 이도 없지만 여자는 아무하고도 말을 트지 못했다.
여러 무리의 여자들이 사우나를 거쳐갈 동안 한 번도 거기에 끼인 적이 없다. 왁자지껄 떠들다가도 여자와 시선이 마주치면 그네들은 애써 무시하거나 피했다.
자신들의 몸에 비해 뼈다귀 같은 여자가 사우나에 드나드는 게 마땅치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여자에게는 이상스레 사람이 붙지 않았다. 요리강습이나 문화센터 강좌에서도 여자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자리가 없어 마지못해 옆자리에 엉덩이를 걸친 여자들도 시선만은 완고하게 여자에게 주지 않았다. 자신의 무엇이 사람들을 한사코 밀어내는지 여자는 알 수가 없었다. 문화센터 순례는 그런 연유로 해서 쉽게 끝이 났다.
하긴 그런 일이 여자에게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학창시절 여자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지나치게 뚱뚱해서 놀림감이 되었다는 이유만을 여자는 알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짝이 된 아이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다. 여자는 그런 관심이 흥감하다 못해 눈물이 났다.
그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여자는 갖은 애를 썼다. 핀이나 연필을 선물하기도 하고,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했다.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따라 처음으로 아이들의 놀이에도 끼일 수가 있었다.
짝은 또래에서도 당차고 고집이 세서, 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짝이 여자는 가슴 벅찰 만큼 든든했다.
이제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소풍을 가서 짝과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여자는 소풍이 싫었다. 소풍 전날, 나쁜 꿈을 꾸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소풍을 가서까지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는 건 그 나이의 여자에겐 형벌과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김밥을 먹을 때면 여자는 어쩔 줄을 몰랐다.
삼삼오오 김밥을 먹는 아이들 중 어디에도 끼이지 못했다. 쭈볏거리며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엉덩이를 내려놓을 만큼 낯이 두껍지도 못했다.
얼굴에 비굴함과 연민을 띄워 친구들을 바라봤다. 채집망을 피해 달아나는 잠자리처럼 아이들의 시선은 여자에게서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그럴 때마다 소변이 급하다는 듯 여자는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낯을 찌푸리며 숲으로 뛰어들었다.
나무그늘 아래 엉덩이를 드러내고 쪼그려 앉았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오줌줄기를 쳐다보며 김밥 몇 개를 입 안으로 구겨 넣었다.
종아리 위로 개미가 기어오르는 게 보였다. 여자의 손가락 마디만큼 큰 개미였다. 블라우스 소매 밑으로 소름이 돋았다.
뭔지 모를 공포가 김밥보다 먼저 식도를 넘었다. 채 넘어가지 않은 김밥에 가슴을 두드리며 숲에서 걸어나왔을 때 여자는 아이들의 수상쩍은 눈빛과 마주쳤다. 여자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다.
채 넘어가지 않은 김밥의 덩이들이 목울대를 타고 꿀럭대며 넘어왔다. 꺄아,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괜히 신열이 올라 소풍을 빼먹는 날이 오히려 여자는 편했다. 신문지를 옥상에 펼치고 앉아 김밥을 먹고 물통 뚜껑에다 사이다를 따랐다. 초코파이를 먹고, 영양갱과 웨하스의 껍질을 벗겼다.
요구르트를 빨고, 사과를 껍질째 깨물고, 쥐포를 질겅이며 시간을 보냈다. 봄볕이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부딪쳐 어지럽게 튀어올랐다. 옥상의 빈 자리를 표백시키던 볕이 손바닥만해지고 깔고 앉은 신문지 위로 냉기가 올라왔다.
그 즈음에야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풍가방에 들어있던 모든 것을 깡그리 먹어치우고, 입 안에 껌이나 사탕 한 줌이 들어앉은 뒤였다.
여자는 펴지지 않는 몸의 마디를 일으켜 옥상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한발한발 내디딜 때마다 계단 밑이 까맣게 잘려나갔다.
이제 여자에게도 김밥을 먹을 친구가 생긴 것이다. 제발 5학년이 되지 않았음, 학년이 바뀌어도 언제나 짝과 같은 반이 되었음 하는 게 여자의 소원이었다. 집으로 갈 때도 언제나 짝과 가려고 애썼다.
짝이 청소당번이면 같이 칠판을 지우고, 책상줄을 맞추고, 주전자를 비우고, 대걸레를 빨았다. 어스름이 찾아온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설 때면 긴 그림자가 여자의 뒤에 달렸지만,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짝과의 밀월은 너무나 짧았다. 짝의 집에 갔다 온 뒤, 얼음날이 박힌 듯 쏘아보는 짝의 눈길을 받을 때마다 여자의 뱃속이 다시 요동을 쳤다.
시장통에 있는 짝의 닭집으로 들어서자, 자글대며 기름 끓는 소리가 났다. 천장과 벽에 앉은 그을음이 떨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 맹렬한 소리였다. 좁고 캄캄한 가게를 지나 협소한 계단을 딛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훔쳐온 통닭을 짝이 신문지 위에 던졌다. 먹어, 난 질려서 껍질밖에 안 먹어. 닭 껍질이 짝의 입에서 와싹대며 씹혔다.
껍질이 벗겨진 닭 한 마리가 여자의 몫이었다. 팍팍한 가슴살과 다리와 날개를 먹어치우고, 모가지까지 소리나게 쪽쪽 빠는 여자를 보는 짝의 얼굴이 놀랄만큼 환해졌다.
또 한 마리의 닭이 여자 앞에 던져졌다. 이번에도 닭 껍질은 짝의 입에서 마른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닭을 먹어치울수록 짝의 얼굴에 역력히 빛나는 기쁨을 여자는 보았다.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는 짝의 웃음소리는 신문지 위의 닭이 줄어들수록 더 높고 가팔라졌다. 짝이 다시 닭을 훔치러 내려갔을 때 여자는 참지 못하고 채 삭지 못한 닭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눈물 그렁한 여자의 눈에 닭을 들고 서 있는 짝이 보였다. 짝의 눈빛은 섬뜩하도록 차가웠다.
겨우 가라앉던 여자의 속이 다시 뒤집혔다. 그 뒤, 돼지가 가득 그려진 칠판이나 변소 벽엔 여자의 이름이 씌어 있었다.
닭 아홉 마리를 잡아먹은 돼지. 학교에서 여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커트머리를 한 여자가 탕에 몸을 담그다 급히 뛰쳐나간다. 여자는 조금 전에 탕 안의 여자들이 자신에게 한 것과 똑같은 눈빛으로 커트머리를 바라본다.
얼굴에 땀이 흐르고, 숨이 막힐 즈음에야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물살을 지나면서 여자의 몸이 휘청 꺾인다.
길이가 족히 15m가 넘는 냉탕은 지나치게 차다. 냉탕 바닥엔 수면에 반사된 잔광(殘光)이 그물모양의 띠를 만들어 일렁이고 있다.
흔들리며 반짝이는 그것을 잠시 쳐다보는 동안 여자의 머리 속에 뭔가 떠오를 듯하다가 만다. 여자는 냉탕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평영으로 물을 가른다. 여자가 문화센터에서 유일하게 강좌를 끝낸 건 수영밖에 없다.
여자보다 나이가 서너 살 아래인 수영강사란 사내는 여자에게 은근히 친절했다. 은근함이 때론 드러냄보다 노골적일 수 있는 것은 금기의 이미지 때문이다.
여자가 풍기는 어떤 것도 이것과 비슷하다. 같이 수영을 배우던 여자들의 질투를 알면서도 강사의 은근함은 변하지 않았다. 물에 뜨는 법이나 자세를 교정할 때도, 여자의 허리 깊이 손이 들어왔다.
그런 강사에 대해 여자는 싫거나 좋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둥글고 특징 없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여자는 북어처럼 말랐지만 육감적인 몸을 하고 있었다.
여기 오는 여자의 대부분은 살을 빼기 위해 온다. 그러나 사우나를 아무리 들락거려봐야 체중은 줄지 않는다.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은 체지방이 분해되어 나는 땀이 아니다. 단지 몸 안의 수분이 빠지는 것뿐이다. 물 한 컵만 마셔도 몸무게는 이내 제자리로 돌아온다. 여자가 사우나에 오는 것은 체중조절 때문이 아니다. 그냥 여기에 오면 얼마간 마음이 편해진다.
여자는 냉탕에서 나와 잠시 숨을 고른다. 수영하느라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수습해 다시 틀어 올린다. 틀어 올린 머리 아래로 하얗고 긴 목이 드러난다. 목에서부터 어깨로 흘러내리는 선은 여자가 봐도 고혹적이리만큼 우아하다.
그래서 목과 쇄골이 드러나는 넥라인의 옷을 여자는 즐겨 입는다. 쇄골까지 둥글게 살이 차올라 있는 여자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여자는 목욕백에서 마스크를 찾아 얼굴을 가린다. 두 눈과 코, 입 부분이 뚫린 마스크는 사우나의 뜨거운 열과 탈수를 막는다.
사우나의 나무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끼친다. 아는 얼굴 몇이 검은 아이라인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여자는 검은 아이라인과 눈이 마주치자, 인사인지 아닌지 모호할 정도로만 고개를 숙인다.
상대방이 인사를 받을 때면 여자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다 만다. 누구도 올라간 여자의 입 꼬리를 보고 미소라 생각지 못한다.
설사 상대방이 인사를 받지 않아도 시선을 슬쩍 바닥으로 떨군 형색을 하면 그만이다. 여자의 인사는 언제나 방어적이다.
숯 바구니가 놓여진 구석자리에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시선을 떨군 채 앉아 있다. 여기에 오는 여자 중, 무리를 짓지 못한 이는 여자와 브라키오사우루스뿐이다. 무리란 언제나 배타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게 무리의 생리이자 존재이유다. 나이가 어릴수록 바깥 대상에 대한 차별은 노골적이 된다. 단순하고 순진한 만큼 잔인해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여자는 그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놀이삼아 던져진 플래스틱 인형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다루든 여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언젠가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사우나에서 나가자, 검은 아이라인이 쯧쯧 혀를 찼다.
저이 보면 지레 숨이 맥혀.
암만 아줌마래도 그렇지, 으응?
아줌마는 무슨 아줌마, 아직 식도 안 올린 처녈 보구.
아가씨였어? 저치가.
그럼, 누가 저 덩치를 데려가.
얼굴이 아깝다느니, 관절에 무리가 가서 운동으로 살 빼는 것도 여의치 않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네들의 표정엔 연민을 가장한 안도의 기쁨이 은밀히 반짝였다.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여전히 자신의 발바닥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네는 언제부터 저런 몸을 지니게 되었을까.
몸 곳곳에 튼 살과 보라빛의 정맥류가 어지럽게 비친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땀으로 흠씬 젖어 있다.
땀에 젖어 커트한 머리가 더 작아 보인다. 그네의 골이 진 아랫배로 쉴새없이 땀방울이 고였다가는 다시 흘러내린다.
여자의 별명도 물먹는 하마였던 적이 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 못 미쳐 도시락을 까먹고, 교내 매점을 쥐구멍에 풀방구리 드나들듯 해도 여자는 물 이외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게 여자가 다니던 학교의 3대 미스터리이기도 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하마와 같은 몸을 하고 있는 여자를 아이들은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여자는 브라키오사우루스 맞은편에 수건을 깔고 앉는다. 앉기를 기다렸다는 듯, 검은 아이라인이 묻는다.
새댁, 얼굴에 쓴 게 뭐유? 탈수방지 마스크라고 여자는 우물거린다. 패거리의 시선이 여자에게 쏠린다. 으-서 사셨어? 나두 당최 얼굴이 댕겨서 말이야. 마스크 안,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마스크는 티브이 홈쇼핑에서 구입했다. 5장 한 세트에 만 오천원이다. 여자의 거실에는 홈쇼핑 채널로 고정된 티브이가 있다. 여자는 홈쇼핑을 통해 얼굴 찜질기와 땀복과 레깅스를 구입했다. 레깅스는 여자의 마르고 긴 몸에 잘 어울린다.
레깅스를 입고, 목이 파인 헐렁한 셔츠를 걸치면 무용과 학생처럼 보인다. 어제두 밤새 지지다 새벽에 들어갔잖어.
영감이 눈을 아래로 뜨구, 위로 뜨구 야단이더라구. 젊어선 남자들 맘대루 하구 다녔으니, 이제 우리도 이러구 해두 되지 뭐.
자식들 다 키웠겠다, 뭐가 무서워 집구녕에만 있을 거야. 난 여기가 집 같어. 저녁을 건너뛰었더니 출출하네, 아구찜이나 시킬까□ 션한 맥주도 한 잔 하구.
미리 입맛을 다시며 검은 아이라인이 패를 둘러봤다. 심야 영업을 하는 목욕탕이라 밤참까지 시켜먹고, 찜질방에서 몸을 풀다가 새벽에야 들어갈 모양이다. 숙취를 풀러 오는 남자들로 새벽에는 남탕이 더 붐빈다고 했다. 검은 아이라인을 따라 여자들이 우르르 사우나실을 나간다.
브라키오사우루스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여자를 쳐다본다. 애써 여자는 치골이 드러난 자신의 아랫배로 눈길을 옮긴다.
늘어진 살 하나 없다. 아이를 낳지 않은 배라 더한지 모른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에스트로겐을 맞으면 생리가 다시 시작될 거고, 아이도 가질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여자는 달거리를 잊은지가 벌써 여러 해째다. 여자의 나이를 생각하면 폐경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의사의 충고를 따를 생각은 없다. 생리가 시작되면 여자는 다시 살찐 누에처럼, 물먹는 하마처럼 변할 것이다. 의사는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정신적 공황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지만 여자는 끄덕도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두 달이 넘게 하루 한 개씩, 플레인 요구르트만을 먹으며 뺀 살이다.
체중은 이 주일이 지나자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입던 셔츠와 남방이 이불처럼 느껴졌다. 거울을 보면서도 여자는 믿을 수 없어 제 볼을 꼬집어 보았다.
거울 안에 들어앉은 여자가 정말 자신인지 믿기지 않았다. 살이 빠지면서 여자의 큰 키는 더 커지고, 이목구비의 선들이 깊고도 날카롭게 돌아왔다. 얼굴의 선이 얄상하도록 가늘고 고왔다.
여자는 자신의 모습이 생경했다. 자신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동화에 나오는 구두 수선장이 요정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밤새 자신의 얼굴을 뚝딱 고쳐놓고 간 게 틀림없었다. 예전의 누구도 여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살을 뺀 뒤, 여자는 스포츠센터의 엘리베이터 걸로 쉽게 일자리를 얻었다. 건물 전체가 스포츠센터로 회원권만 해도 기천만원이 넘는다는 데였다. 스포츠센터든, 회원권이 얼마든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여자에겐 자신을 봐줄 시선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자신의 목선과 몸매에 꽂히는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남편도 그렇게 여자의 목선에 시선을 꽂았던 남자 중 하나였다.
여자는 브라키오사우루스 옆에 놓인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는다. 모래는 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 모양으로 빠져나간다.
함몰되는 모래 위에서 개미가 발버둥친다. 발버둥치면 칠수록 개미는 수렁에 더 깊이 빠질 뿐이다. 개미귀신이 재빠르게 달려와 개미의 체액을 빨고 빈 껍질만을 남긴다.
여자의 종아리로 개미가 기어오르고 있다. 여자는 자신의 종아리를 탁 소리나게 친다. 브라키오사우루스가 그런 여자를 멍하니 보고 있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지기까지는 5분이 걸린다. 5분을 때울 수 있는 생각거리를 찾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여자는 5분을 300초로 쪼개어 세기 시작한다.
300초가 영원처럼 길다. 모래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어놓으며 여자는 일어선다.
어질머리가 인다. 머리가 없어져버린 것처럼 휑하다.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듯 가벼워지는 이때가 여자는 좋다.
두 대의 때밀이용 침대가 차고도, 기다리는 여자가 두엇 있는 눈치다. 여자는 꽃무늬 팬티에게 늘 때를 민다.
새로 들어온 망사 팬티는 꽃무늬보다 몸이 부함에도 때를 미는 게 시원찮다. 안마와 마사지 기술도 한 수 아래다. 아마 차례를 기다리는 두엇도 꽃무늬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꽃무늬 팬티 앞에 누운 여자의 염색한 머리가 지나치게 빨갛다. 때밀이 침대에 눕는 여자들은 대개 젊고 팔팔하다.
그네들은 때를 미는 것보다 때민 뒤에 받는 전신 마사지나 자연팩이 목적이다. 여자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여자에겐 정말 때밀 만큼의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다. 옆으로 돌아눕는 빨강머리의 가슴과 배가 물풍선처럼 출렁인다. 그걸 본 여자의 입 끝이 묘하게 올라간다.
목욕탕에 오는 여자들 대부분은 르네상스 회화에 나오는 여신처럼 풍만하다. 밀로나 보티첼리가 아니라 더러 빈센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몸을 한 여자도 있다. 중학교 미술시간, 교과서에 빈센도르프의 비너스가 나왔다.
교실 여기저기서 여자를 할깃거리며 킥킥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원망스레 교과서에 나온 비너스를 쳐다보았다. 진흙으로 구워 만든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는 여자만큼 엉덩이가 비대했다.
꽃무늬 팬티는 침대에 누운 빨강머리의 등을 밟고 올라선다. 손바닥으로 목욕탕 천장을 짚어 균형을 유지하면서 빨강머리의 등을 꾹꾹 밟는다. 꽃무늬 팬티에게 등을 밟힐 때마다 빨강머리의 입에서 기분 좋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뼈가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여자에게만은 한사코 사양하던 안마다. 꽃무늬 팬티가 안마를 끝낸 뒤, 빨강머리의 전신에 오일을 바른다. 여자는 어질머리가 사라지지 않은 이마를 짚고 꽃무늬 팬티에게 다가간다. 어쩌죠□ 많이 기다리셔야 되는데.
꽃무늬 팬티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망사 팬티가 여자를 돌아본다. 여기 다 끝났어요. 내가 밀어드릴게. 여자는 할 수 없이 망사 팬티에게 몸을 맡긴다. 망사 팬티는 발부터 밀기 시작한다.
망사 팬티가 몸을 숙일 때마다 망사 팬티의 하복부가 여자의 발 끝에 서늘하게 닿는다.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물고기 알 같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옆으로 누우세요, 타월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리며 망사 팬티가 말한다.
여자는 옆으로 돌아눕는다. 직사각형의 목욕탕이 낯선 각도로 여자의 눈에 들어온다. 김이 오른 탕에서 때를 밀고 있는 여자들이 지워질 듯 흐려진다.
여자는 때밀이 침대에 누울 때나, 치과의 치료시트에 몸을 누일 때가 좋다. 특히, 치료시트의 등받이를 한껏 뒤로 젖히고 누워 있을 때면 온 몸의 피가 머리로 기분 좋을 만큼 몰리는 게 느껴진다.
치료받는 아픔도 상쇄시킬 만큼 나른하면서도 편안하다. 온몸이 샅샅이 분해되어 따뜻한 물에 흔적 없이 녹는 것 같다.
여자는 앞니를 세 번이나 갈았다. 토할 때마다 위에서 올라오는 산이 여자의 이를 삭히고 부서뜨렸다.
여자가 하루 한 번의 구토에 그치는 것도 식도의 통증 때문이 아니라 무섭게 삭아드는 이 때문이다.
무늬 팬티가 빨강머리와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자주 꽃무늬 팬티에게 때를 밀고, 마사지를 받아도 꽃무늬 팬티는 여자에게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때 미는 데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때를 다 밀고 난 망사 팬티가 여자의 목 뒤에 있는 경혈을 꾹꾹 누른다. 그러고는 무두질이 덜된 북소리를 내며 여자의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두드린다. 꽃무늬 팬티가 주먹을 가볍게 쥐고 등을 두드리면 캐스터네츠 소리가 났다.
여자는 유리문을 열고 탈의실로 나선다. 아구찜을 먹고 있는 검은 아이라인의 패가 보인다. 시뻘겋게 버무려진 아구를 빨고 있던 검은 아이라인과 여자의 눈이 마주친다. 시큼하게 침이 고이면서 구토가 치민다.
여자는 얼른 시선을 돌린다. 혼자 있으면 쥐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허기와 식탐을 느끼다가도, 밖으로 나서면 아무 것도 입에 댈 수가 없다. 입에 대기는커녕 먹는 걸 보기만 해도 바로 신물이 올라온다.
여자를 제일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바깥에서 무얼 먹는 일이다. 아니, 정확히는 남들 앞에서 뭔가를 먹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모둠으로 밥을 먹은 적이 없다. 여자의 짝이 도시락을 들고 제 모둠을 찾아가면 여자는 도시락 뚜껑을 열다 말다 하다가 교실 밖으로 나섰다. 교실 밖은 언제나 땡볕이다.
발 밑에 동그랗게 웅크린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여자는 수돗가로 향한다. 정오의 폭양이 여자의 정수리를 뚫을 것처럼 쏟아졌다.
교실에서 들려오는 도시락과 수저가 쟁겅대며 부딪치는 소리에 침과 신물이 동시에 넘어왔다. 햇빛으로 바랜 운동장은 옥양목을 펼쳐놓은 듯 부시다. 짧은 그림자를 거느리며 철봉대가 서 있다. 철봉대는 델 듯이 달구어져 있을 것이다.
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올 때까지 여자는 수도꼭지에서 입을 떼지 않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자의 몸에서 출렁이며 물소리가 났다. 그런 여자를 아이들은 물먹는 하마라고 불렀다. 이상하게 학교에서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허겁지겁 도시락을 까먹고, 라면을 끓이고, 입 안 가득 빵을 쑤셔넣어도 배가 고팠다.
새벽까지 여자는 먹을 것을 찾아 집안을 뒤졌다. 오징어 다리를 질겅대며, 아이스크림통에 숟가락을 꽂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만큼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맹렬하고도 집요한 식욕은 언제나 혼자 있을 때 찾아왔다. 음식을 요구하는 것은 여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내부에 아귀 같은 아이가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끊임없이 먹을 것과 당분을 요구하는 찰거머리처럼 질기고, 악착스러운 아이였다.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요구하고, 떼쓰고, 꿈에까지 따라와 여자를 괴롭혔다. 그런 아이도 학교에서만은 얌전했다. 여자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늘렸지만 그게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식탐은 무섭게 변해갔다. 아이는 여자의 몸 안에 있었다.
배고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여자의 안에서 공명이 되어 울렸다. 귀를 틀어막아도 여자의 내부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어쩌지 못했다.
아이에게 재갈을 물려 죽이고 싶다는 살의와 동시에 맹렬한 식욕이 솟았다. 아이와의 싸움에서 지는 건 언제나 여자였다. 나중에는 아이가 자신인지, 자신이 아이인지도 혼란스러웠다.
마지막 잠에서 깨어난 누에처럼 통통하다 못해 여자는 발효된 빵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전신거울에 자신의 잘린 몸이 비칠 때마다 여자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건 몸이 아니라 비계 덩어리였다. 선이 뭉개진 얼굴 안에 눈과 코와 입이 동그랗게 부풀어 있었다.
젖소보다 큰 가슴과 천근이 넘는 뱃살, 바다코끼리 같은 하체를 여자는 하고 있었다. 젖가슴의 무게로 어깨가 아팠다.
아구찜에서 애써 시선을 돌린 여자는 찜질방으로 들어선다. 찜질방에는 두 명의 여자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벽에 걸린 서너 개의 등에서 원적외선이 뿜어져 나온다. 깊이 잠든 여자들의 몸에도 원적외선 빛이 떨어져 있다. 누운 두 여자의 몸이 정육점 쇳대에 걸린 고기처럼 붉게 빛난다.
여자들은 죽은 듯이 보인다. 치모가 유난히 성기게 난 여자를 본다. 불두덩의 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여자는 못볼 걸 본 것처럼 급하게 눈을 돌린다. 안 쪽으로 들어가 수건을 깔고 몸을 누인다.
바닥은 알맞게 뜨겁지만, 공기는 선선하다. 한참을 누워 있으면 나는지도 모르게 땀이 날 것이다.
찜질방의 황토벽에는 박하와 인진쑥궁과 같은 한약재가 걸려 있다. 옥돌을 깔아놓은 바닥과 달리 벽과 천장은 황토로 된 가마형이다.
궁륭의 가운데는 군데군데 금이 가고 황토가 부스러져 내린 게 눈에 띈다. 천장을 보고 있으려니 흡사 무덤 속에 누운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여자들을 본다. 여자들은 여전히 죽은 것처럼 보인다.
무덤 속이라도 이렇게 여럿이 누우면 무섭지 않을 것 같다. 문득 손가락을 여자들의 코 끝으로 가져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 벽면에 시계가 보인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나 있다.
여기서 밤을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잠들어 있는 여자들도 어쩌면 밤을 지낼 생각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시각 저렇게 태평스레 잠이 들 리가 없다. 검은 아이라인도 아구찜을 먹고 난 뒤 찜질방으로 올 것이다.
여기에 오면 찜질방에서 두어 시간 몸을 지지다, 자다하는 걸 여자는 알고 있다. 원적외선 불빛이 여자의 몸에도 붉게 떨어진다. 붉은 빛에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진짜 원적외선인지도 모르겠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등으로 올라온 열기가 기분 좋게 몸에 퍼진다.
여자의 몸과 신경이 공기 중으로 증화되듯 가벼워진다. 이런 게 죽음의 느낌이라면 죽는 일도 그리 두렵지 않단 생각이 든다.
여기 오길 잘 했다고 여자는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있어봐야 음식 생각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시각엔 더 심하다. 하루 한 번의 구토를 위해 여자는 저녁 한 끼만을 먹는다.
그 외의 시간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음식을 지우고, 지운 음식을 다시 떠올리며 보낸다. 오래 참은 만큼 여자의 식욕은 끔찍하다.
사우나에 오기 전에도 자장면과 치킨을 시키고 피자를 두 판이나 삼켰다. 먹는다는 표현은 여자에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맛도 느끼지 못할 만큼 빠르게 음식을 여자는 식도로 넘긴다.
남편의 잦은 부재가 여자에게는 다행인지 모른다. 음식을 삼킬 수 없기는 남편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켜보려 해도 도저히 삼켜지지 않는다. 예외란 없다. 일년의 삼분의 이를 3만 피트 상공의 비행기 안에 있거나, 여기와 낮밤이 바뀐 곳에 남편은 있다. 아침에도 비가 부슬거리는 북구의 도시에서 남편은 전화를 걸어 왔다.
여자가 새모이 만큼도 먹지 못한다고 여자의 남편은 걱정을 한다. 그러나 여자는 레귤러 피자를 일곱 판까지 먹은 적도 있다. 가속도가 붙은 기관차처럼 여자의 식욕을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자장면과 치킨을 먹고, 두 판째의 피자를 삼키던 여자는 불현듯 먹는 걸 멈췄다. 그리고는 입으로 들어가던 피자를 발로 으깬 뒤 침을 뱉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재떨이의 담배꽁초와 같이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콜라를 양껏 마신 다음 복근을 이용해 먹은 것을 변기에 게워냈다. 콜라를 마신 뒤라야 게워내기가 편하다. 그렇다고 식도의 통증이 덜해지는 건 아니다.
변기에 쌓인 토사물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변기의 레버를 내렸지만 냄새는 악착같이 여자를 따라다닌다. 얼굴을 헹군 다음 여자는 이를 닦는다. 칫솔질이 유난히 조심스럽다. 구토 뒤에 이를 닦으면 치아손상이 훨씬 빠르다.
그걸 알면서도 냄새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입 안을 헹구고 난 여자는 탈진해 소파에 구겨진다. 홈쇼핑 채널로 고정된 티브이에서는 지방분해 특허를 받았다는 다이어트 약품이 나온다. 쇼핑 호스트가 물이 담긴 유리컵에 식용유를 쏟아 붇는다.
거기다 광고 약품을 부어 막대기로 젓는다. 곡물가루 같아 보이던 약품이 식용유를 흡착해 무겁게 컵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쇼핑 호스트는 여느 다이어트 식품과는 다른 유명제약사의 약품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여자의 머리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피자 생각뿐이다. 티브이에 집중하려고 해도 어느새 시선은 쓰레기통에 박혀 있다.
담뱃재에 범벅이 된 피자는 형편없이 짓이겨져 있었다. 담뱃재를 털어내고 여자는 피자를 한 입 베어 문다.
마른 눈물 한 방울이 여자의 눈 밑에 달린다. 돌연 여자는 베어물던 피자를 내동댕이치고 정신없이 목욕가방을 챙겼다.
여자는 깜박 졸았다고 생각하며 잠을 깬다. 벽시계에 눈이 간 여자는 깜짝 놀란다. 새벽 세 시다. 그렇게 길게 잤을 리가 없다. 잠이 덜 깬 탓이라 여기며 다시 시계를 쳐다본다. 시침은 여전히 세 시에 가 있다.
잠깐 눈을 붙인 것에 불과한 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시계의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자고 있던 여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여자들의 자리엔 여자들이 베고 있던 침목(枕木)이 뎅그마니 놓여 있다.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자 여자의 아랫배로 땀방울이 굴러 내린다. 수건이 흥건히 젖어 있다. 여자는 고개를 갸웃한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 내리며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찜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여자는 쭈볏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이상하다. 뭔지 몰라도, 별스러운 느낌이다. 한참을 생각없이 서 있다, 마침내 목욕탕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탈의실의 시계 역시 새벽 세 시가 넘어 있다. 새벽 세 시가 아니라 오후 세 시가 아닐까, 여자는 잠시 헷갈린다.
탈의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 옆 소파에 늘 몸을 부리고 있던 주인여자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아이라인이 아구찜을 먹던 자리엔 그릇 그대로 신문지에 덮여 있다. 그것말고는 모든 게 제자리에 단정히 정돈되어 있다.
옷장의 열쇠도 결번 없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바닥도 걸레질을 했는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벌써 정리들 하고 가 버렸나. 분명 심야영업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닌가 문득 불안해진다. 아파트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하다. 걸으면 십분 안팎에 불과한 거리지만 그래도 새벽 세 시의 거리를 걷는다는 게 내키지 않는다.
어차피 새벽 손님들이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여자는 생각한다.
유리문을 통해 탕 안을 들여다 본다. 온탕 안에 누가 있다. 그럼 그렇지, 여자는 안도의 숨을 하르르 내쉬며 유리문을 민다. 탕 바닥이 물기없이 건조하다. 꽤 빨리 손님이 빠진 모양이다.
다시 한번 여자는 너무 오래 잤다고 생각한다. 샤워기를 틀어 찜질방에서 흘린 땀을 씻어낸다. 머리를 감고 흐려진 거울을 닦으며 여자는 온탕을 흘끔 본다. 온탕에 들어앉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여자의 머리는 겅충한 단발이다. 저 정도라면 귀밑 2센티 쯤에서 잘린 게 틀림없다. 요즘엔 아무도 저런 단발을 하지 않는다. 여자가 중학교 교복을 입던 시절, 생활지도 선생의 가위 밑에서 잘려진 머리 모양이 꼭 저랬다.
여자는 쿡 웃음이 났다. 어깨가 우람한 걸로 봐서 빈센도르프의 비너스쯤 되는 체형으로 보인다. 여자의 입술 끝에 다시 웃음이 달린다.
여자는 다시 시계를 본다. 겨우 십 분이 지나 있다. 온탕에 들어앉은 여자는 조금 전의 자세 그대로다. 온탕의 솟구치던 물살도, 냉탕의 폭포수도 잠잠하다. 샤워꼭지도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조용하다.
오롯이 여자가 내는 소음만 공명이 되어 울린다. 집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여자는 다시 망설인다. 온탕의 여자는 석물(石物)처럼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자는 탕에서 나오지 않는다.
물은 벌써 식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탕 안이 건조하고 추운 걸 보면 온탕 역시 뜨겁지 않은 게 분명하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발머리의 넓은 등을 보며 여자는 석록(石綠)의 온탕에 발을 집어 넣는다. 물은 식기 직전의 위태한 온기를 지니고 있다.
몸을 부르르 떨며 몸을 낮췄다.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던 윗물과 달리 바닥은 미지근하다 못해 차갑다. 그러나 단발머리는 지긋이 눈까지 감고 있다. 이렇게 한기가 느껴지는 탕에서 말이다.
단발머리의 눈이 감긴 걸 보자, 여자는 대담해져 옆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몸피에 비해 어딘가 앳되어 보이는 인상이다. 희한하게 낯이 익다. 목욕탕을 거쳐간 여자 중 하나인지 모른다.
또 시작이다. 여자는 이런 경우가 잦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인 데도 낯이 익고, 처음 간 장소에서도 이미 와본 듯한 기시감, 어떤 땐 예전의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땐 생이 내내 반복되는 건 아닌가, 여자는 무섭다. 전생에도 전전생에도 여자는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섭도록 생생할 턱이 없었다. 몸이 떨리며 온몸의 털이 깃처럼 곤두선다.
물은 여자가 견디기엔 너무 차다. 여자의 몸이 한기로 새파랗게 변한다. 파랗게 질린 여자에 비해 단발머리의 몸은 유금(乳金)빛으로 태연하다. 물에 담긴 여자의 몸이 기이하게 굴절되어 보인다.
브라키오사우루스에 못지 않은 몸이다. 묘한 여자다. 싸늘하게 식은 물에서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까.
두꺼운 체내 지방으로 한기를 느끼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남극의 얼음 물고기처럼 빙점 아래서도 얼지 않는 부동액 같은 혈액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단발머리의 얼굴이 궁금하다. 옆으로 봐서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탕 밖으로 나가며 슬쩍 얼굴을 볼 생각이다. 여자는 이미 싸늘해질 대로 싸늘해진 몸을 일으킨다.
단발머리 앞을 지나며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 순간, 단발머리가 반짝 눈을 뜬다. 움찔 놀란 여자가 황급히 눈길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시선은 다시 단발머리에게로 가 꽂힌다.
서서히 여자의 눈동자와 입이 벌어진다. 벌어진 입에선 아무 소리도 새나오지 않는다. 여자는 얼어붙은 듯 서 있다. 여자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진다.
눈물방울이 흐르고 난 여자의 빈 동공(瞳孔)에 단발머리가 담겨 있다. 여자는 양면 거울을 바라보듯 오래 자신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