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3반 교실에서
정이식
1)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른 5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자, 2학년 3반 동물 여러분, 모두 창문을 활짝 열도록 해요.”
굵은 테 안경 너머의 부엉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씀 셨어요.
“푸르고 푸른 오월을 가슴이 부풀도록 듬뿍 마시도록 해요. 그리고 귀를 기울여 보아요. 들리나요? 5월 푸르른 자연의 소리들이. 나무 사이로 비껴든 감미로운 햇살을 따라, 들길에 바지런히 핀 꽃들의 향기를 따라.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가, 부엉이 선생님 말씀을 따라, 와르르, 또 와르르, 교실 안으로 몰려들 왔어요.”
“너구리, 너구리 학생은 어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나요?”
그래도 졸고 있는 너구리를 보는 부엉이 선생님 눈이 더 동그래지네요.
“네, 선생님, 음, 음, 빵빵 소리요.”
그러고 보니 교실 안에 흘러든 소리 속에는 산 아래 큰길에서 올라온 자동차의 빵빵 소리도 섞여 있었어요.
“선생님.”
너구리는 벌떡 일어났어요.
그리곤 머리를 휘휘 내 두르며 입맛을 쩝쩝 다셨어요.
“차들이 빵빵 하는 건요. 빵이 먹고 싶어서 그래요.”
옆자리 오소리가 냉큼 너구리의 수상한 이 말을 받았어요.
“너 또 늦잠 자다 아침을 못 먹었지? 그러게 온 자연의 소리가 다 먹는 소리로만 들리지?”
“우 하하하하.”
오소리의 핀잔에 2학년 3반 교실에는 커다란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어요.
“그렇지만 너구리 말도 맞아요. 빵이 먹고 싶음은 자연이지요. 배가 고프면 자연히 빵이 먹고프고 그래서 빵빵거릴 수 있는 거에요. 그러나 쇠고기, 특히 미국산 쇠고기가 먹고 싶어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면 그런 걸 자연의 소리라고 우리는 할 수 없지요?”
교실 천장이 들썩거리던 2학년3반의 웃음이 부엉이 선생님의 미국산 쇠고기 말씀에 갑자기 뚝. 하고 끊어졌어요.
“그래도 빵이 먹고 싶어요. 선생님. 배가 고파요.”
얼굴을 붉힌 너구리는, 혼잣소리를 하며 살며시 고개 숙여 창밖의 꽃밭을 바라보았어요.
꽃밭엔 희고 화려한 작약 꽃 한 송이가 빵처럼 빵빵하게 또 자연스럽게 피어나고 있었어요.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른 5월이 다 가는 어느 날, 2학년 3반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2)
하늘도 아름답고 산도 아름다운 유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자, 2학년 3반 동물 여러분. 오늘은 우리 사랑 이야길 하도록 해요.”
굵은 테 안경 너머의 부엉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셨어요.
“아름답고도 싱그러운 게 우리들의 마음에 퍼져 있는 사랑이지요. 길가는 할머니의 보따리를 대신 들어줌도 사랑이고요. 슬픈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도 다 사랑이랍니다. 우리는 이래서 많은 사람과 사랑을 해야 되요.”
영산홍 꽃무리 속에서 예쁜 날갯짓으로 사랑을 속삭이던 노랑나비들도 아카시 흰 꽃그늘에서 윙윙거리며 꿀물을 훔치던 꿀벌들도. 부엉이 선생님의 사랑 말씀에 모두 일손을 놓고 귀를 기울였어요.
“너구리. 너구리 학생은 누구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그래도 졸고 있는 너구리를 보는 부엉이 선생님 눈이 더 동그래지네요.
“네, 선생님, 음, 음, 사랑은 달콤해요.”
그러고 보니 나비의 날갯짓에서, 또 벌들의 앞다리에서, 묻혀 나온 꿀 향이 교실 안을 달콤함으로 물들이고 있었어요.
“선생님.”
너구리는 벌떡 일어났어요.
그리곤 머리를 휘휘 내 두르며 입맛을 쩝쩝 다셨어요.
“달콤한 사랑을 저는 먹고 싶어요.”
옆자리 오소리가 냉큼 너구리의 수상한 이 말을 받았어요.
“너 또 늦잠 자다 아침을 못 먹었지?
그래서 사랑도 달콤한 먹을거리로 밖엔 안 보이는 거지?”
“우 하하하하.”
오소리의 핀잔에 2학년 3반 교실에는 커다란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어요.
“그렇지만 너구리 말에도 일리는 있어요. 사랑에는 언제나 달콤함이 따라와 우리의 마음들을 들뜨게 하지요.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앞서서 퍼지고 있는 달콤한 유혹들까지 우리가 사랑이라 말할 수는 없는 거랍니다.”
교실 천장이 들썩거리던 2학년 3반의 웃음이 부엉이 선생님의 미국산 쇠고기 말씀에 갑자기 뚝. 하고 끊어졌어요.
“그래도 부끄러워요 선생님. 사랑은요...”
얼굴을 붉힌 너구리는, 혼잣소리를 하며 살며시 고개 숙여 창밖의 꽃밭을 바라보았어요.
꽃밭엔 잎 넓은 모란꽃 한 송이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사랑에 의해 붉게 더 붉게 달아오르며 피어나고 있었어요.
하늘도 아름답고 산도 아름다운 유월이 시작되는 어느 날. 2학년 3반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