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스탄턴 박사는 오전중을 보내며 두 인간의 자살과 거기에 관계가 있을 것만 같은 현상에 대해서 대체적인 수기를 썼다. 관계는 분명히 더듬어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시간과 장소라는 점에서 무리는 있다. 그러나 그는 써놓은 것보다 좀 더 사실을 알고 싶었다. 검시 심문의 동태나 그 밖의 이야기도 있었으나 특히 그로스가에서 들은 이야기 따위는 그대로의 말을 기입해두고 싶을 만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할 큰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박사는 타이프라이터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설사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타이프에 능한 편도 아니었다. 손으로 써서 30분에 걸쳐 불과 3페이지, 개의 죽음에 대한 세부적인 것과 검찰청에서의 셔롯 가너의 증언으로 접어들었을 뿐인데 손가락이 아파온다. 사실을 자세하게 기재하자면 30페이지 내지는 50페이지가 걸릴 것이며 더우기 그의 추리는 별도로 해서도 말이다. 분명히 자살적인 죽음을 한 동물이라든가 그로스가의 부엌에서 수프스톡이나 그래이비가 사라져 버린 일 등 기묘한 현상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의 죽음과는 관계가 없는 전혀 별개의 우연한 사건이라고 단순히 해명할 수 없는 추리 과정은 그 속에 쓸 수도 없다. 책 한 권을 손으로 쓰는 고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기억이 싱싱하게 남아있는 동안에 기록해두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린 베이에 가서 테이프 레코더를 빌려올까도 생각했다. 빌릴 수가 없다면 한 대 사도 무방하다. 그러나 박사는 테이프 레코더라는 것을 싫어했다. 구술을 하면서 걸어 다닐 수 있는 편이 좋다는 것이 그 중요 원인이다. 거기에다가 어차피 테이프를 문자로 고치기 위해서는 사람을 고용해야 하니까, 속기로 구술하고 후에 다시 옮겨 쓰는 속기사가 낫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린 베이에서 찾아야겠지만 기왕이면 지나는 길이니까 먼저 버틀스빌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버틀스빌 주간 신문 크라리온의 편집장이 그런 것을 묻기에는 적격인 듯하다. 더우기 박사는 이 인물과 두 번쯤 포커를 했기 때문에 구면이었다. 그렇다. 에드 호리스에게 묻는 것이 가장 좋을 것만 같다. 그라면 윌콕스에 있는 누군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윌콕스는 버틀스빌보다 훨씬 큰 시이며 그린 베이로 가는 거리의 반밖에는 되지 않는다.
점심전에 박사가 들여보았더니 호리스는 구식 언더우드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기고 있었다.
"선생님, 잠깐만-."
하며 치고 있던 문장을 다 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 밤에도 하시는 거지요? 방금 한스로부터 오늘 밤에도 하겠다는 전화가 있어서-당신에게도 전화로 연락을 취하려고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의 돈을 좀 더 따고 싶으면 여기에 들려주셔서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만."
"가능하면 어울리도록 하지. 그러나 잠깐 알아볼 일이 있어서 들렸다구. 이 시가지에 속기와 타이프가 가능한 사람이 있나."
"있고말고요. 미스 타리가 있지요. 미스 아멘더 타리입니다."
"지금 바쁘지 않을까? 오늘 밤에 일을 시킬 수가 있을까."
"지금은 간혹 떠나기 일을 하고 있을 뿐, 큰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이지요. 여름에는 잠시 휴가 여행을 떠날 뿐, 나머지는 시내에서 버티면서 자신에게 가능한 작은 일들을 얻어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금년 여행도 이미 끝났습니다. 부기 같은 것도 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상인으로 부기가 엉망이 되어 버리면 그녀에게 부탁하여 수정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그런 일들이지요."
"속기 솜씨는 좋은 편인가."
"예, 무엇 때문에 일이 밀렸을 때 나도 한두 번씩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전에 상업대학에서 속기와 부기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지금도 솜씨는 여전합니다. 이쪽 고등학교에서도 상업과를 만들어 가르치고 싶다고 교육위원회에 신청을 했습니다만 아직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나도 협조하는 뜻에서 사설을 써주었습니다만. 여기에 그것이 생기면 공짜로 될 텐데 고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돈을 들여 그린 베이나 밀워키까지 상업 강습을 받으러 갈 것은 없지 않겠어요? 공부해야 할 다른 것도 좀 더 가르치면 도움이 될 텐데."
박사도 말했다.
"그렇게 되면 이상적이지. 영어 교사를 하고 있을 정도라면 문자의 철자같은 것도 훤하겠지. 그런데 지금 바쁘지 않을까."
"물어보면 당장에 알 수 있지요."
에드 호리스는 수화기에 손을 뻗으려다가 일단 손을 멎었다.
"어느 정도의 일입니까? 한 시간? 일주일? 아니면......"
"구술을 하는데 네 시간, 앞뒤에 서론과 결론을 합치면 한 시간은 더 걸릴까. 그것을 타이프로 치는데 하루 이틀은 걸릴 거야."
호리스는 끄덕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말하고 전화가 통한다.
"타리씨? 여기에 있는 나의 친구가 타이프와 후기의 하루 이틀의 일을 부탁하고 싶다는데 할 수 있겠지? 좋아. 잠시 기다려."
수화기를 손으로 누르고 박사를 쳐다본다.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벌써 점심때군요. 한 시경에 가겠다고 전할까요? 길은 가리켜 드리지요. 바로 두세 거리를 지나면 되니까."
"좋아."
호리스는 다시 전화를 향해 말했다.
"됐습니다. 타리씨. 한 시경에 가시겠답니다. 이름은 스탄턴 박사......그래요, 그럼."
그는 다시 박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웃었다.
"요금에 관해서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만. 값을 말하면 놀랄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루에 10달러입니다. 일이 적을 경우는 한 시간에 1달러 50센트-."
"알겠어, 비싼 것은 아니야. 에드, 한 시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점심을 같이하지 않겠나."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싶습니다만. 일은 아직도 한 시간쯤 걸리겠고, 그것이 끝나면 오늘은 끝납니다. 먼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방금 아내에게 한 시에서 한 시 반 사이에 돌아갈 테니 점심 준비를 해두라고 전화까지 했습니다만."
그는 바사에게 미스 타리의 번지를 알려주고 출입구까지 전송하고는 거기로 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한 시에 박사가 그 번지에 가보니 아담하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집의 크기에 균형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작은 폭스바겐이 옆의 차도에 세워져 있었다.
노크에 호응하여 문을 연 미스 타리는 생각보다 작은 여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키는 작지 않다. 키는 박사보다 목 하나가 더 있을 만큼 크지만 그 대신 체중이 같을 만큼 여윈 상태였다. 나이는 55세와 65세의 중간쯤으로 박사는 추측했다. 은테 안경을 끼고 머리 뒤에 단정히 말아 올린 은빛 머리가 조화를 이룬다. 회색 양복을 단정히 입고 있었다. 여기에다 이상한 모자를 씌우고 양산을 갖게 한다면 스튜어트 파머가 묘사한 여교사 탐정과 힐데가드 비저스 그대로 일거라고 박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을 잘 해낼 것 같고 어차피 박사는 미인을 고용할 생각도 없었다.
"손더스 박사입니까."
박사가 끄덕이자 뒤로 물러선다.
"들어오세요."
"고맙소, 미스 타리."
박사는 이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앉으시지요, 박사님. 지금 노트와......"
"아니, 미스 타리, 지금 여기서 구술해도 좋습니다만 어쩐지 정신이 사난해지고......나의 거처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가지에서 8마일 정도의 거리이며 그 바스콘비 도로라고 불리우는 도로의 마지막 골목의 집입니다. 만약 거기에 가서 일을 해주신다면-구술 필기만이라도 말입니다. 타이프로 치는 것은 여기서 해도 무방합니다. 단지, 거기에는 나 혼자서 살고 있으니까-."
하며 말끝을 흐려버린다. 미스 타리는 약간 웃었다.
"박사님, 그런 말을 하시지만 여기도 단 두 사람뿐이잖아요. 걱정마십시오. 저에게 신변보호자는 필요없습니다. 그것보다 제가 보호자입니다. 언제나 고등학교에서의 댄스나 무슨 파티에서는 그런 역할을 맡아왔으니까요. 물론 왕복시간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해 주신다면-."
"당연하지요. 지금은 오후 한 시니까 이 시각에 일을 시작하는 펀치카드를 누른 것으로 하겠습니다. 노트와 연필을 가져오시면-."
밖으로 나오자 미스 타리는 박사의 차를 타기보다는 자신의 폭스바겐을 타고 박사의 뒤를 따르겠다고 주장했다. 박사는 어차피 저녁 때는 시내에 나와야 하므로 모셔다드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며 예절 바른 거짓말을 하여 드디어는 그녀를 납득시켜 그의 스테이션 왜건에 타게 했다.
조용하게 소리 없이 걸어 다니는 작은 고양이. 부드러운 발바닥, 소리도 내지 않고 빨리 움직일 수도 있고 더우기 귀가 예리하다. 옮아 타기에는 훌륭한 동물이다. 어디에라도 들어갈 수가 있고 그 누구도 당연지사로 알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 고양이를 몇 마리나 이용하여-물론 한 번에 한 마리씩이지만, 지성체는 그로스의 농장에서 시내에 이르는 농가를 한 채 남기지 않고 방문해 보았다. 다만 창고 옆에 사나운 개가 있는 두 채만은 제외했다. 그 한 집에서는 아직도 쓸모가 있는 고양이가 물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 채를 제외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른 농가에서도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시내의 정찰도 시작했다. 먼저 이론적으로 생각하여 전자과학의 전문가이며 절호의 옮아탈 대상이라고 생각되던 시내의 텔레비전 수리기사에게 가보았으나 다른 이유야 어쨌든 그는 돈 문제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윌리 챈들러의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그의 옆을 떠난 크고 검은 고양이는 그 날 오후의 남은 시간을 시내에서 보내며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들을 들어왔으나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은 듣지 못했다.
밤에도 그렇게 우물쭈물 지내다가 지성체는 그로스의 집에 보안관과 함께 나타났던 스탄턴이라는 재미있는 꼬마 아저씨를 생각해냈다. 지그프리드의 자살에 대단히 흥미를 보내고 있던 사나이다. 그는 스탄턴이라는 사나이를 내사할 때까지 시가지의 나머지 부분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사나이는 틀림없이 그로스의 집보다 시내에서 먼 도로 저편의 집에 살고 있으리라고 지성체는 생각했다.
스탄턴을 추적해보려고 참새에 옮아 타고 지성체가 도로 위로 나갔을 때 두 대의 차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각기 반대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보안관은 버톨스빌의 시가지를 빠져나가 월콕스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성이 있으니 스탄턴은 반대편, 시내에서 먼쪽으로 갔음에 틀림이 없다. 그쪽에는 도로의 막다른 곳까지 농가가 15~6채 있을 뿐이다. 지성체는 밤이 새고 나면 곧 시가지를 살펴보기 전에 조사하리라고 생각했다.
검은 고양이에 옮아 탄 그대로 시가지를 나섰으나 도로를 반 마일도 가기 전의 고양이는 쓰러져 버렸다. 고양이를 지나치게 혹사하여 너무 빨리 달리게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양이는 완전히 지쳐있을 뿐만이 아니라 네 발에서 피가 흘러 발자국을 그대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하룻밤을 쉬게 해도 다음 날 하루 옮아 탄 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지성체는 깨달았다. 무리하게 고양이를 일으켜 그대로 도로를 떠나 지쳐 버려 죽을 때까지 반 마일 정도 가까운 밭을 달리게 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는 다른 고양이에게 옮겨탔다. 그로스의 집에서 도로의 가장자리를 향한 동쪽으로 세 번째의 집에서 다른 몇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작은 회색 고양이었다. 먼저 그 고양이의 기억을 살펴본다.
다행하게도 그 고양이는 이웃을 살펴보고 돌아다닌 일이 있으며 고양이의 기억에 의하며 이웃 주민들의 동태에서 스탄턴이 있을지도 모르는 집들 중에서 다섯 채를 제외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다가 회색 그 고양이의 집도 제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다섯 채 중에는 그로스의 집과 고양이의 집 사이의 농가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고양이의 집에서 바로 동쪽으로 향할 수가 있으며 다음 세 채도 건너뛸 수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앞으로는 스탄턴이 차로 시가지를 향해 달리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도로 가까이에서 한 채 한 채를 조심스럽게 조사해 간다. 이리하여 마침 열 한 시가 조금 지났을 때 두 채의 농가 사이에서 도로에 가까운 밭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동쪽에서 시끄러운 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 서둘러 도로가 보이는 곳으로 나서자 낡은 스테이션왜건이 시가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운전하고 있는 것은 스탄턴이라는 사나이였다. 다음 농가에서 이 회색 고양이는 개에게 쫓겨 잦은 창고의 지붕으로 도망가서 그 집의 여자가 짖어대는 개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한 시간쯤 피신을 해있어야 했다. 그 무렵에는 지성체도 토미 호프먼의 기억까지도 포함한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생각하여 스탄턴이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집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스탄턴은 외모를 보아도 그로스의 집에서 지꺼리고 있을 때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도 농부가 아니라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다. 거기에다 이 도로가의 집들 중에서 농가가 아닌 것을 가장자리의 한 채뿐이다. 토미도 막연히 알고 있었으나 누군가가 이 집을 매입하여 1년에 불과 한두 달 낚시의 기지, 가족으로부터의 도피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스탄턴이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다.
나머지 두 채는 대충 살펴보고 나서 마지막에 그 집으로 간다. 그렇다. 마당에 새로운 타이어 자국이 있었다. 차고가 없으니까 스탄턴이 차를 세워두었던 곳이다. 거기에다가 바로 얼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흔적도 있다. 그러나 스탄턴은 이대로 여기를 철수했던 것은 아닐까? 다행히 여기에는 개가 없었으므로 고양이는 천천히 그리고 세밀히 집을 조사할 수가 있었다. 지면 높이로 지하실의 창이 여러 개 있으며 그 창에서 가솔린 발동기의 탕탕하는 소리와 전기 모터의 윙윙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스탄턴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 상징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혼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집안에 누가 남아있을까. 고양이는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찾아 완전히 한 바퀴 돌았다. 아래층의 창은 몇 개가 열려 있었으나 1인치나 2인치의 사이밖에 없다. 이 층의 창 하나만이 크게 열려 있다. 그 이상의 조사는 스탄턴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지성체는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오후 늦게가 될지 밤이 될지 모른다.
여기에서 다시 일주해본다. 집 안에 누가 있으면 곤란하므로 모습을 감추듯이 하며 마당을 몇 바퀴 돌아보았다. 이 집 이외의 또 하나의 건물이 있었으나 아마도 도구를 넣기 위해 만든 것인 듯 작은 판자의 움막이었다. 그러나 문짝이 떨어져 있다. 안은 비어 있었다. 창고의 주춧돌 자국인 듯한 것이 있었으나 창고는 오래전에 없어진 듯 타 버렸는지 토막 내어 장작으로 태워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고양이는 다시 집 옆으로 다가가서 이번에는 창 하나하나를 그 밑으로 다가가서 걸음을 멈추고 대화나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을 엿들으려고 했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고양이는 아무것도 없는 마당 가장자리의 잡초에 가서 누워 기다렸다. 자신이 옮아 탄 고양이를 잠들게 한다. 검은 고양이에게 그런 참혹한 짓을 해버려 앞으로는 옮아 탄 동물에게 능력 이상을 강조하여 결국은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새로운 동물을 찾는 것은 상책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다가 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면 곧 눈을 뜨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고양이는 30분쯤밖에 자지 못했는데 그 예민한 귀가 지성체에게 차가 마당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린다. 고양이의 눈을 뜨게 하고 지성체는 잡초 사이에서 탐색이라도 하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차는 스탄턴의 스테이션 바겐이며 스탄턴이 운전하고 있었으나 함께 여자 하나가 타고 있다. 키가 크고 여윈데다가 나이가 많은 여자다. 지성체는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버린 토미 호프먼의 기억에서 이 여자를 알고 있었다. 미스 타리이며 토미 호프먼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 학생들이 붙인 별명은 타리 호였다. 그녀는 스탄턴의 친구였을까? 스탄턴 역시도 교사일까? 여기에서 그녀가 속기용 노트를 가진 것을 보고 그녀가 학교 이외의 시간이나 휴가를 이용하여 속기나 부기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렇다면 스탄턴이 그녀를 데리고 온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사태가 편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만약에 스탄턴이 그녀에게 편지라도 구술한다면 지성체는 그 편지의 문구를 듣고 스탄턴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간 순간 고양이는 집 쪽으로 달려가 안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바싹 붙어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수시로 창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지 알아내려고 귀를 곤두세운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뒤쪽 창밑, 부엌의 창인 듯한 창 밑에서 들린다. 다른 집에서 했듯이 창틀에 뛰어오르려고 창 밑에서 도사려 본다. 창틀에 올라타기만 하면 완전히 들릴 것이다. 거기에다 만약 발각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걱정할 것은 없다.
만약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인간들이라면 윌리 챈들러처럼 창을 열고 들어오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 좋으련만-. 뛰어오르려고 시도해보았다. 곤란한 것은 앞발이 창틀 아래쪽 8인치 부근까지밖에는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의 이 고양이는 너무 작은 것이다. 앞서 옮아 탔던 완전히 성장한 고양이었다면 그 정도는 가볍게 뛰어오르고 말 텐데. 한 순간, 가능하면 지금의 이 고양이를 죽게 하고 다음 고양이에게 옮아 탈까 하고 생각한다-그러나 다음 고양이는 여기에서 수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을지도 모르며 스탄턴의 구술이 끝날 때까지 여기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만사가 끝나 버린 후에 달려와도 곤란할 테니 그 방법은 중지해야 한다.
서둘러 고양이는 뒷문으로 달려갔다. 그 문도 부엌으로 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문에다 귀를 들이댔다. 문이 두꺼워서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말소리는 들리지만 그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집 주위를 돈다. 1인치나 2인치가 열려 있는 창은 아직도 이 층의 창 하나뿐이다.
그러나 조금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나무가 있다. 느릅나무이며 집 옆에 섰으며 가지 하나가 열려 있는 창 위로 뻗어있다. 가지 끝이 창틀에서 4피트 정도 위쪽에 있다. 가지 끝이 상냥히 가느다랗게 뻗어있어 아마도 고양이가 가지끝에서 창틀에 뛰어내릴 수 있을 만큼 굽어줄 것이다.
회색 고양이는 재빨리 나무에 올라 조심스럽게 가지 끝으로 갔다. 그렇다. 가지 끝으로 다가갈수록 가지가 굽는다. 끝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전에 일단 방을 들어다본다. 침실이었다. 침실의 문이 열려있는 것도 확인한다. 침실의 문이 닫혀있어 거기에 갇혀 버리면 들어간다고 가정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양이는 뛰어내렸다. 다음에 창틀에 매달려보고 생각했던 대로 이 창은 출구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굽었던 가지는 제자리로 돌아가고 창에서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 어쨌든 다른 출구가 있을 것이다. 스탄턴도 종일 창을 닫은채 틀어박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복도로 나가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그리하여 발소리를 죽여가며 현관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복도를 걷는다. 복도의 모퉁이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엿듣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다. 냉장고의 문 여는 소리가 나고 이번에는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말도 들린다.
13
"미스 타리, 정말 맥주를 하지 않겠습니까? 구술이라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이지만 그것을 속기하는 것은 더 무미건조한 일일 테지요."
박사가 말했다.
미스 타리는 약간 웃는 얼굴로 변했다. 박사도 이런 그녀는 처음이었다.
"꼭 마셔야 한다면 마시겠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비밀에 붙이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이런 좁은 고장에서는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담배도 피우지 못한답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캔맥주를 집어내면서 박사는 말했다.
"비밀로 하겠습니다. 거기에다가 당신에게 담배도 권해보고 싶군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파이프 담배밖에 없어서......참 그렇지, 구술을 하면서 담배는 피워도 되지요."
"물론입니다. 파이프 담배 냄새는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너무 좁은 곳에서는 곤란하지만. 거기에다가 이 부엌은 무척 넓군요."
"걸어다니기에도 좋지요. 실제로 나는 이 부엌에서 살아가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낚시질이나 시내에 나가는 일 이외의 시간은 대개 여기서 보내고 있습니다."
맥주잔을 두 개 들고와서 하나는 미스 타리 앞에 놓고 또 하나는 맞은 편 자리에 놓는다. 박사도 자리에 앉는다.
"미스 타리, 그 연필은 아직 놓아두셔도 됩니다. 어차피 게으름뱅이니까 지금 당장에는 구술을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자아, 이제부터 필기를 시작하겠다는 자세보다도 이야기나 듣는 자세로 대해주십시오. 특히 나는 가끔 나의 학생들이 이야기의 종결을 짓는 것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을 정도니까."
"학생? 그렇다면 당신도 교직이신가요."
"예, 미스 타리.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사츄세스 공대에서, 전문은 전자물리학입니다. 거기에다가 원자물리 쪽에서 말단의 일을 조금 하고 있습니다."
미스 타리는 연필을 놓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박사를 보았다.
"스탄턴! 그 랄프 S 스탄턴 박사이신가요? 물론 알고 있지요. 우주선 계획에는 언제나 참여하고 계시는."
박사는 웃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미스 타리. 당신이 이름만이라도 알아주신다고 생각하니 나쁘지가 않군요. 과학에 흥미가 있습니까?"
"물론이지요.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테지요? 하물며 달이나 다른 별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시대니깐요. 나는 오래 동안 공상과학 소설을 애독해 왔습니다."
"당신이."
"물론이지요. 이상하십니까."
분명히 이상할 것은 없지만 박사는 말이 막혀 버렸다. 아무리 보아도 공상과학 소설의 독자답지 않다는 말은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지금의 "이상하십니까." 의 반문은 단순한 말장난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박사는 말했다.
"또한 나도 기분전환으로 추리소설을 읽도록 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 중에도 공상과학 소설을 읽고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나는 기분전환을 위해서 읽는 것은 가능하면 과학과 인연이 먼 것입니다."
미스 타리가 말했다.
"그것은 알겠습니다만 지금부터 구술하시는 것은 과학에 관해서입니까, 아니면 단순한 편지입니까."
"그 어느편도 아닙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일대에서 어쩐지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말입니다. 그래서 잠시 조사해보았는데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잊어 버리면 곤란하니까 그전에 중간 조사 보고의 형식으로 기록해두고 싶은 거지요.
미스 타리는 눈을 크게 뜨고 박사를 보았다.
"그렇다면-그 자살로 인한."
"그렇습니다. 당신도 호기심이 생겼다는 말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일대의 사람들은 보안관을 위시하여 모두가 매우 당연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사는 파이프에 담배를 담아 그 담배를 밀어넣기 시작했다.
"나도 입회했습니다. 만났다는 기억은 없습니다만 가너씨가 돌아가기 전에 만나려고 그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으니 만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가너씨는 만나지 못했지만 대신 보안관과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서 무엇인가 이것과 관계되는 일이라도 알아내셨습니까?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토미의 자살에 관계되는 일은 어차피 구술하시는 것을 들으면 알게 될 테니깐요. 같은 것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박사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나서 대답했다.
"그야, 그렇습니다, 미스 타리. 그러나 당신도 역시 이 사건에 흥미를 가졌다면 먼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듣기로 합시다. 내가 아직 모르는 것으로 무엇인가 여기에 관계되는 것을 아신다면 구술하기 전에 들어두면 이편에서 알고 있는 것에 추가할 수가 있으니깐요. 그런데 토미 호프먼의 일로서 검시심문에서 나타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이렇다 할 것은 없습니다만 토미의 일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샤로테도 마찬가지이고요. 그 두 사람에게는 1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작년부터는 나의 영국 문학 학급에도 나오고 있었으니까. 거기에다가 내가 알고 있는 한 토미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리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며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도 아니였습니다만 정상이며 보통의 단순한 아이였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건강했습니다. 토미의 출산 때부터 계속 돌보고 있던 그룹 의사와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토미의 몸도 완전히 건강했다고 말했습니다. 홍역이나 백일해는 수년전에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질병이라면 그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가 얼마 동안은 진찰을 하지 않았던 말이 되는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봄에 토미는 학교에서 야구 때문에 부상을 당했지요. 아니지요. 머리 부상이 아닙니다. 늑골에 금이 간 것입니다. 그룹의사가 치료를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만 운동경기에서 부상한 학생은 철저한 건강진단을 받지 않으면 팀에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에 만났던 의사의 말로는 바로 두 달 전에 토미를 진찰했을 때는 그 어디에도 이상이 없고 완전히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육체에서 온다고 하잖습니까. 머리에도 이상이 없었다는 것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는 정신이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박사는 거침없이 말한다.
"거기에다가 성적인 억압에 고민했다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샤로테 가너에 대해서는 어떤 것을 알고 있습니까."
"좋은 아이입니다-정말로. 박사님, 나는 이 나이로 교사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딱딱하고 변태적인 위인은 아닙니다. 그 아이는 영리했습니다. 토미보다 훨씬 영리했습니다. 자신이 훨씬 영리하다는 것을 토미에게 깨닫지 못하게 할 만큼 영리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인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들쥐의 이야기도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한 이상 말 그대로이며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심문 전에 검시관도 보안관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말했는데도 심문에서 자진해서 이야기하다니 그 용기에는 탄복했습니다. 들쥐의 이야기가 필요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토미가 자살한 것이 괴기한 사건에 관계가 있다면 어떤 괴기한 일이라도 생략할 수는 없잖아요."
"그 점은 동감입니다. 그밖에도 뭔가 말씀해주실 일은 없습니까? 물론 검시심문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공교롭게도 그렇게 된 거지요. 거기에다가 그로스씨의 자살은 거의 아무 것도 모릅니다. 두 개의 자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이 두 가지는 시기와 장소가 우연히도 매우 가까왔다는 것뿐입니다. 글쎄 여기에서 몇 해 동안이나 월콕스에서 이쪽으로는 자살사건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자살에는 관계라는 것이 전혀 감안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가 토미는 그로스를 알고 있었을 테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서로 터놓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박사는 웃으며 다시 파이프에다 담배를 밀어 넣고 다시 불을 붙였다.
"미스 타리, 그 자살이 여섯 건이나 있었다면 어떻게 생각하지요? 인간이 둘, 동물이 네 마리. 처음이 토미에게 달려들었다가 일부러 토미에게 피살된 듯한 들쥐입니다. 분명히 자살한 듯이 보이는 이 쥐와 개-호프먼의 개와 토미 호프먼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거기에다 이것도 분명히 자살이라고 생각되는 올빼미와 고양이-그로스의 고양이와 지그프리드 그로스의 자살과의 관계는? 그로스의 냉장고에서 그날 밤, 수프 스톡 1쿼터와 그래이비가 없어졌다는 사소한 것-정말 사소한 일일까요?-어쨌든 그런 수수께끼는 별도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미스 타리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창백해진다. 왜 창백해졌을까? 박사는 그것을 보고 설마 불안에서가 아닐 테지, 흥분했을 뿐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미스 타리는 조용히 말했다.
"박사님. 만약에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의 호기심이 폭발하기 전에 구술을 시작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녀는 연필을 들고 속기 노트를 펼쳤다. 박사는 다시 파이프에 붙을 붙이고 걸어 다니면서 구술을 시작한다. 물론 물흐르듯 줄줄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냉엄한 사실에 과장이나 수식을 붙치지 않게 쓰고 싶었기 때문에 문장 사이에 몇 분 동안의 구멍이 생기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최초의 3건의 죽음과 그린 베이의 연구소로부터의 광견병 검사가 조짐이 없었다는 보고까지 구술을 마치자 거의 한 시간 반이 걸려 세 시가 지난 시각이 되어 버렸다. 박사는 미스 타리와 마주 앉아 피이프의 재를 때리며 떨었다. 걸어다니면서 구술하는 동안 두 번이나 담배를 넣고 적어도 스무 번은 불을 다시 켜댔다.
"그로스 사건에 접어들기 전에 한참 동안 쉬는 것이 좋겠어. 나도 충분히 2마일 거리를 걸은 셈이며 당신도 손이 아플 테니."
미스 타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습니다만 박사님은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 나에게는 금시 초문으로 들어가는 대목으로 들어갑니다. 토미에 관해서는 박사님이 개를 차로 치어버리는 곳까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로스씨에 관해서는 대부분이 나에게는 초문입니다."
"10분만 기다리세요. 그동안에 맥주를 다시 한잔하시지 않겠습니까."
미스 타리는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박사의 권유에 따랐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가 말했다.
"복사는 몇 부가 필요하신가요."
"3부는 필요합니다. 1부는 내가 보관하고싶고 2부는 친구에게 의견을 듣기 위하여 발송할 예정입니다. 한 사람은 의학의 권위자이며 광견병처럼 동물에서 인간에게로 아니면 그 반대로 전염하여 더우기 정신이 돌아버려 자살행위를 시키는 드문 증세가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 물어볼 생각입니다. 또 한 사람은 우수한 수학자입니다. 전공은 기호논리학입니다만 실제의 수학에도 조예가 깊고 상당히 어려운 문제도 지금까지 몇 가지 해결한 바가 있습니다. 그에게 이 일련의 사건의 관련성과 우연성에 대해서 확률을 내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후에-그렇다고 오늘이 아닙니다만, 이 기록에 첨부하게 될 각자에게 보낼 편지를 구술해드릴 생각입니다."
"박사님, 내 몫으로 한 부를 더 복사해두어도 될까요."
"그야 물론, 좋습니다."
그녀는 웃었다.
"잘 되었습니다. 어차피 복사를 하는 바에는 몰래 해도 되지만 허가를 받는 편이 떳떳하니깐요."
박사는 소리내어 웃었다.
사실의 표면만을 긁어 버린, 수사라고는 할 수 없는 그의 수사가 보안관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던 후라서 미스 타리의 개방적인 마음과 호기심이 박사에게는 그대로 감동을 준 셈이다. 거기에다가 어차피 허가가 없어도 복사해 버리면 될 텐데 자진해서 그것을 밝히는 정직성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히 박사는 미스 타리를 좋아했다. 박사는 그녀의 발탁을 생각했을 정도였다. 매사츄세츠 공과대학의 그의 과는 다음 해부터 처음으로 상근 비서나 기록원을 고용할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을 편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박사의 추천으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적어도 그녀의 이곳에서의 수입 정도는 지불할 수 있을 것이며 그녀에게 작은 시골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썩게 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좀 더 기다렸다가 좀 더 확실해지고나서 그녀에게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서둘 것은 없다.
맥주를 마시고 나자 박사는 다시 서성거리며 구술을 시작했다. 일이 끝난 것은 네 시 반이었다. 의사에 털썩 주저앉으며 박사는 말한다.
"여기까지입니다. 미스 타리. 잠간 쉬었다가 차로 댁에까지 전송하겠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아니면 오늘은 여기까지입니까? 이런 사실에서 당신의 추리는 시작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생각을 다시 했어요. 첫째로 자신에게도 자신의 추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도저히 기록에 남겨둘 자신이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이 기록을 발송하는 목적으로 보아도 나의 결론을 첨가하는 것은 좋지 않지요. 아까 말한 두 사람의 친구, 의학자와 수학자에게 나의 결론에 좌우되지 말고 사실에만 의존한 그를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미스 타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황당무계한 것들 뿐이라-한 가지라도 자신이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첨부할 편지의 구술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지요? 왜 오늘 함께 구술하지 않지요? 기록을 타이프로 쳐서 넘겨드릴 때 편지도 함께 드리면 그대로 발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이상 구술을 계속할 힘이 없습니다. 그렇지-이 타이프가 되었을 때 가지러 가서 세 통의 편지는 거기서 구술하기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간 것도 아니고 방금 구술한 것을 다시 읽고 손을 대는 동안 편지도 타이프할 수 있을 테지만 봉투의 주소도 타이프 해주시면 시내에 간 길에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좋겠지요."
"좋습니다."
미스 타리는 재빨리 속기의 노트를 보고 기재된 페이지 수를 세어본다.
"타이프로 하는데 만 이틀은 걸릴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밤에도 일을 하면 목요일 점심시간까지는 완성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밤에도 일을 하나요."
"평소에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이 속기의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박사님, 이런 일은 나도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그리고 무척 즐거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다가 나는 별로 돈에 고생하고 있는 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이 지불하겠다고 한다면 오후의 모든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되어 버립니다. 나는 어차피 내 몫으로 사본을 1부 챙기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당신은 새로 자신의 몫을 작성하기 위해 다시 한번 구술을 해야 하니깐요."
박사는 한숨을 길게 토해 버린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반대해서 허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단은 보스턴으로 돌아가고나서 그녀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무엇인가 선물을 발송하는 결과로 끝나게 될 것만 같다. 물론 그녀가 희망하고 박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비서직을 그녀에게 맡길 수가 있다면 그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 보답을 하는 방법은 달라진다.
"좋습니다, 미스 타리.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 사건에서는 나와 동반자입니다. 보다 여러 가지를 부탁할지도 모릅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인가요."
"당분간은 시내의 소문을 귀담아 들어주십시오. 나도 시내에는 적어도 호프먼의 아들의 검시 심문 이후, 하루에 한 번씩은 다니고 있으며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나면 별로 늦지 않게 그 소문은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2~3일 전의 그로스의 자살 때도 그랬으니깐요.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죽음을 어쨌든 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흥미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르시오. 별로 화려한 사건은 아니지만 이 나의-우리들의 조사에 합치되는 것이 말입니다. 당신도 나도 비슷할 정도로 내용은 알고 있는 셈이니까 무엇인가를 보고해야 한다는 당신의 판단도 나의 판단도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설사 무엇을 알았다고 가정해도 어떻게 연락하지요? 여기에는 전화도 없지요."
"예, 없습니다. 전화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시내에 나갔을 때 내가 반드시 들리는 곳은 우편물을 가지러 가는 우체국이 있습니다. 전화해달라고 우체국장에게 전해놓으면 틀림없이 전화를 하겠습니다. 그런 이제 일단 결말은 난 셈이지요. 목요일 이른 오후에 댁으로 가겠습니다. 이제 휴식을 취했으니까 슬슬 떠나보실까요."
그녀는 노트와 연필을 핸드백에 챙기고 함께 현관으로 나와 스테이션 왜건을 탄다. 박사가 엔진을 걸고 기어를 넣는다. 클러치를 밟으려고 했을 때 미스 타리가 말했다.
"참, 댁의 고양이에게 소개시켜 달라고 말하려다가 잊어버렸어요..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박사는 클러치 페달에 발을 얹은채 돌아보았다.
"고양이? 미스 타리, 나는 고양이같은 것은 기르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고양이를 보았나요."
"나는 보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때는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되는데."
박사는 시프트 레버를 돌려놓고 발동을 껐다.
"길잃은 고양이가 어딘가에서 뛰어든 것인지도 모르지만. 잠시 기다려 주시면 보고 오겠습니다. 돌아갈 수 있게 내놓고 가는것이 좋을지 모르겠군. 어느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라면 말이지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자 현관문을 닫는다. 재빨리 아래층을 살펴보고 다녔으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출일할 수 있을 만큼 열려 있는 창도 없다. 1~2인치씩 열려있는 창은 몇 개나 있었으나 새끼 고양이라면 몰라도 보통 고양이라면 통과할 수도 없고 거기에다가 작은 고양이라면 창틀까지 뛰어오를 수도 없을 것이다. 지하실의 문은 닫혀있었으며 종일 닫혀진 그대로다.
이 층에 올라가 보았다. 침대맡이나 욕조의 그늘 같은 곳은 고양이가 숨어있을 만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으나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층에서 단 하나 열려 있는 창은 그가 잠을 자는 침실의 창뿐이다. 열려있는 창으로 다가가서 창 옆에 뻗어있는 가지와의 거리를 측정한다. 창틀보다 상당한 높은 위치에 있다. 몸을 내밀어 그 가지를 당겨본다. 가지는 잘 굽는다. 새끼고양이의 무게라도 그 고양이는 가지에서 창으로 뛰어내릴 만큼 굽어서 가까와지기는 하겠지. 그러나 반대로 여기에서 뛰어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창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도 무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신한 초지라면 몰라도 창 아래는 단단하고 잔돌도 많이 깔려있는 지면이다. 그런 곳으로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고양이라도 죽거나 도망하지 못할 만큼의 큰 부상은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양이가 집 안에 있다고 한다면 그 고양이가 죽고 싶어 하는 고양이인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로스의 고양이도 죽고 싶어 했으며 다른 동물도-
그는 창을 닫고 아래로 내려가 집을 나섰다. 지금 집 안에 고양이가 있다면 돌아왔을 때는 아직 있을 테니까 고양이의 걱정은 그 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박사는 차로 돌아와서 후진시키고 방향을 바꾸었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스 타리, 분명히 보셨나요? 대체 어디쯤에서."
"그 때는 분명히 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고. 당신이 구술을 하고 있을 때이며 어쩌면 문장이 끝난 대목에서 숨을 돌리고 있을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눈을 들었을 때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의 탓인지도 모르지만 고양이가 복도 모퉁이 계단 옆에서 얼굴만 내밀고 부엌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입을 다문 채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구술이 시작되고 다시 그 쪽을 보았을 때는 고양이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숨을 돌렸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틀림없이 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순간 눈에 비쳤을 뿐이며 당신의 구술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노트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으니깐요. 그런 경우일수록 환상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박사는 자신의 기분보다는 말투를 부드럽게 했다.
"어쨌든 집에서 고양이가 발견되거든 알려 드리지요."
얼마 동안 말없이 차를 달리고 있었으나 이윽고 미스 타리가 말했다.
"박사님, 정말 이것이 무슨 질병-인간에서 동물로, 또한 그 반대방향으로 옮겨가는 환자를 자살광으로 몰아넣는 전염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한 말로 그런 질병은 들을 일이 없으니까 질병으로서도 각별히 진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별히 진귀한-그러나 드문 병이기 때문에 그만큼 잘 알려지는 셈이지요.만약에 그토록 유명해지고 있다면 우리들 중의 어느 편이 언젠가 어딘가에서 들었거나 읽고 있을 텐데요."
"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미스 타리. 그럴 가능성-아니 믿을 수 없는 우연은 별개로 하고 달리 어떤 설명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박사님. 가다라의 돼지 이야기는 기억하십니까."
14
"가다라의 돼지......들은 적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분명한 기억은 나질 않습니다."
박사는 생각하며 말했다. 미스 타리가 입을 열었다.
"성서입니다. 누가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악귀에게 사로잡힌 사나이에게 다가와서 악귀여, 사라지라고 명령합니다. 가까이에 돼지의 무리가 있어-중요 부분은 인용이 가능합니다. <악귀> 사람으로부터 뛰쳐나와 돼지에게 옮아 타니 그 무리 벼랑에서 호수로 뛰어내려 익사하였느니라."
"미스 타리, 악마가 옮아 타는 것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탁입니다."
"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요컨대 악마같은 것이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옮아 타는 것은-."
"그럼 옮아 타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유물론자입니다. 라인(line)의 실험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것에 나도 다소 관심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신감응이라든가 격동현상 등의 엉터리같은 힘의 존재를 독단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정도로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물론 최면술이라든가 후회면이라는 것도 완전히 과학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무리한 의사심리학 역시도 정신이 타인에게 옮아 타고 타인을 안에서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미스 타리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인간의 경우는 그럴 테지요. 그러나 우주에는 지구 이외에 무수한 천체가 있으며 생물이 살고 있는 것도 수백 만개나 됩니다. 인간 이외의 지성체가 어떤 능력을 가졌으며 어디까지의 일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알지요? 전혀 질이 다른 지구 이외의 존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지요."
"음."
박사는 신음했다. 이 순간 미스 타리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백미러에 그녀의 얼굴이 보이도록 목을 움직인다. 그녀의 눈은 빛나고 있었으나 표정은 담담했다.
"우리들 인류도 역시 지금 다른 천체에 대해 기웃거리고 있잖아요. 우주에서 인류가 가장 진화된 생물이라지만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구에 다른 천체에서의 생물이 한 마리 와있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지요."
박사는 다시 신음했다.
"음! 그렇다고 단언할 수도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겠군. 그런데 왜 집단이 아니고 한 마리인가요."
"글쎄 지금까지-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서 옮겨 탔다고 말했습니다만-옮겨 탄 인간도 동물도 언제나 하나씩이었잖아요. 들쥐에서, 들쥐가 죽고 토미, 토미가 죽고나서 개, 개가 죽고 나서 올빼미, 고양이라는 말뜻은 아시겠지요. 한꺼번에 두 마리의 경우는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옮아 탄 호스트(Host)를 자살시키는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의 동물에서 되돌아와서 자유롭게 다음 동물로 옮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박사는 말했다.
"미스 타리, 당신은 분명히 상상력이 있군요. 나도 추리소설 대신 공상과학 소설을 읽을 걸 그랬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어쨌든 당신은 상상력을 자극시키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집에 만약 고양이가 있다면 그 고양이는 우리를 탐색하기 위하여 다른 별의 생물이 옮아 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고양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어요."
박사는 웃었다.
"그래서 나에게 옮아탈 수 있도록 고양이를 죽여줄까? 그렇게 되거든 알려드리겠지만, 미스 타리."
그러나 그녀를 작은 집으로 전송한 후 차를 집으로 몰고 있는 박사의 표정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물론 바보같은 이야기지만 어쩌면."
무엇인가가 들어서는 틈을 이용하여 뛰쳐나오는 위험성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달라진 것은 눈에 띠지 않았고 이상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출입문 안쪽에 등을 대고 파이프에 담배에 눌러 놓고 불을 붙인다. 거실로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푹신한 모리스형 의자에 몸을 맡긴다. 가장 큰 창에 등을 돌려 밤낮으로 독서에는 가장 쾌적한 빛이 오도록 전기스탠드도 서 있다. 의자의 팔걸이에는 문고판 추리소설이 펼쳐진 채 놓여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집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집 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까? 고양이가 숨을 만한 곳을 기웃거리고 다니는 것은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이 아래층에서는 머리가 좋은 고양이라면 숨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는 칸을 막는 문도 없고 부엌에서 현관으로 통하는 복도에 나가는 문도, 복도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문도 없는 것이다. 방에서 방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여 눈에 뜨이지만 않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고양이는 부엌에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그쪽으로 가는 기색을 눈치채면 복도로 해서 이편으로 와 버리면 그만이다. 그가 복도를 돌아가면 직접 부엌과 거실의 문을 지나오면 된다. 고양이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귀도 잘 들릴 것이다.
만약에 고양이가 있다면 그럴 것이다. 거기에다가 만약에 고양이가 있다고 한다면, 있다고 해서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이유도 없지만 고양이로서 완전히 고양이다운 생각이란.
그렇다......분명히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나뭇가지에서 이 층의 창틀까지 상당히 위험한 점프까지 감행하면서까지 고양이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보통 일이라고 할 수가 없다. 거기에다 또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구술을 하고 있을 때 줄곧 완전히 더우기 교묘하게 숨어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파이프 담배가 재로 변해 버렸다. 재를 떨고 나서 무엇인가 먹을 것을 만들까 아니면 시내에 먹으러 갈까를 생각한다. 어쩐지 혼자 먹으려고 식사 준비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갑자기 박사의 머리 속에 돌아왔을 때 적어도 집 안에 고양이가 있는가 하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고양이가 한 곳에 숨어있지 않고 움직여 다니기만 한다면......선반 냄비들 사이에 가루뿌리개가 있었다. 생선튀김을 할 때 박사도 두세 번 그것으로 생선에 가루를 뿌린 일이 있다. 지금 그것을 들어내어 밀가루를 조금 넣는다. 그리하여 계단 아래로 가서 가장 아래쪽 두세 단에다 보일락말락 할 정도로 엷게 가루를 뿜어놓는다. 체의 손잡이를 움직여 가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손가락 하나로 체의 옆구리를 치면서 움직여 간 것이다.
복도 한가운데도 거실과 부엌의 경계에도 같은 짓을 해놓았다. 그것이 끝나자 방금 장치한 고양이의 발자국을 발견하기 위한 함정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뒷문으로 나와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간다.
그는 시내에서는 가장 말이 많은 웨이트레스가 서비스를 한다는 가게에서 식사를 했다. 그녀는 간판 그대로의 다변으로 응수해주었으나 새로운 자살 사건도 없었으며 야생동물은 물론 가축도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소문도 없었다. 지난 24시간에 있었던 가장 화려한 사건은 스모리 식료품점의 화재에서 피해는 적었고 화재 원인은 누전이었다. 돼지에게 날개가 돋았다는 이야기도 없었으며 개가 전신주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박사는 특히 그런 이야기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이것이 특히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나 상대방은 많이 웃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기억해두었다가 만약 그녀가 무엇인가 동물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기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스탄턴 선생님."
하고 소리치는 이가 있다. 그륜 의사였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소리치지 않아도 되도록 옆으로 다가온다.
"마침 포커를 하려는데 멤버가 한 명 부족합니다. 어떻습니까."
"글쎄, 한 두 시간이라면 상대할 수 있는데. 바의 구석 방에서."
그륜은 끄덕였다.
"나는 렘을 불러올께요. 15분이 지나면 시작됩니다."
"좋습니다. 마침 바에서 한 잔 하고 용기를 내게 할 시간이 되겠군. 그럼 그때 만나요."
시간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치과의사의 치료대에서의 몇 분 동안은 즐거운 포커의 몇 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
박사는 초저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게임이 끝났을 때는 벌써 자정 가까운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다가 다시 배가 고프다. 그러나 버틀스빌의 레스토랑은 그 시각에는 두 집 다 닫혀있었다. 집에 돌아가서 샌드위치라도 만들 때까지 참아야 했다.
부엌문에서 엇갈리며 무엇인가가 뛰쳐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들어섰다. 달빛이 밝았기 때문에 문을 닫을 때까지 쥐보다 큰 것이 나타났으면 놓쳤을 리가 없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찰칵하고 부엌의 조명을 켜놓고 재빨리 살폈다. 바닥에 뿌려둔 가루 생각이 나서 입구 쪽으로 가본다. 가루에는 고양이의 발자국이 몇 개나 나 있었다. 박사는 불러보았다.
"좋다. 고양이야. 무엇인가를 먹고 싶거나 마시고 싶으면 모습을 나타내어라. 너를 괴롭힐 생각은 없지만 얼굴을 보일 때까지는 여기서 나가게 해주지 않을 거야."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연다. 필요한 재료를 들어내어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 맥주병과 함께 테이블로 운반해놓고 걸터앉는다. 천천히 샌드위치를 먹고 간간히 맥주를 마시는 동안 박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자신의 사고방식이 마음이 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이 두려운지는 모르지만 두려운 것이다. 부엌의 불을 끄고 어두운 이 층으로 자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집 안의 배치는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선반 서랍에서 손전등을 집어낸다. 전등을 손에 들고 부엌의 조명을 끄자 바로 그쪽을 켰다.
복도에서 계산을 오르는 동안 손전등의 빛으로 앞을 비추고 있었다. 그까짓 고양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짓을 하는 자신이 우습게도 생각되었으나 그런데도 그런 행동을 중지할 수가 없다. 복도에서도 계단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침실에서는 조명을 밝히기 전에 문을 닫고 손전등의 도움으로 방을 철저하게 조사한다. 이번에는 침대 밑에까지 살펴보았다.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고양이는 이 방에는 없었다. 거기에다가 별로 해도 없는 정상적인 고양이었으며 잠들어 있는 동안에 쳐들어올 리도 없다. 다행히 별로 따뜻한 밤은 아니다. 잠이 들어 버리면 문도 창도 닫아 버리면 그만이다. 아니다. 창을 그대로 둔다면 고양이는 나가려고 생각한다면 언제라도 나갈 수 있으니까 이대로 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처음에는 이 창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을 텐데 다른 것이 들어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무엇인가 기묘한 이유에서 박사는 총 한 자루를 이 층 방에 갖다둘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잠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하여 깊이 잠들어 버렸다.
15
지성체도 이제는 그 이름까지 알게 된 스탄턴 박사라는 사람에게서 말을 걸어왔을 때는 정말 놀랐다.
"자아, 고양아, 이리 온......."
절호의 호스트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 인물이 무엇인가 진실에 가까운 육감을 가졌다는 것에 위험을 느끼고 그 반동으로 기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만났던 인간의 지성에는 멸시밖에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스탄턴은 옮아 타기에는 절호의 상대였다. 전자물리학자이며 어디에도 갈 수 있는 돈과 자유를 가졌으며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
지성체는 스탄턴과 미스 타리의 대화를 열심히 듣고 있었으며 스탄턴이 구술하는 내용도 들었다. 거기에다가 이것은 앞으로의 이야기지만 스탄턴이 지성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가지고 있는 어쩌면 가질 수 있는 인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스탄턴에게 옮아 타면 불과 몇 주면 고향의 별에 돌아갈 수가 있다. 식민지가 될만한 절호의 천체를 발견하고 돌아온 지성체 종족의 영웅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미스 타리가 갑자기 얼굴을 들어 복도에 있는 것이 발각되었을 때 어째서 당황하여 숨어 버리는 실책을 연출해 버렸는가?
스탄턴에 관해서 알고 흥분한 나머지 끝내는 진지한 고양이다운 행동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발견되었으면 천천히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엌으로 갔으면 되지 않았는가. 이편에서 다정하게 따르기만 했어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귀여워해 주었을 것이다. 우유라도 주었을 것이며 울면서 문이라도 긁어댔으면 내보내기라도 했을 것이다. 설사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작자였다 하더라도 문을 열어놓고 비나 총채로 쫓아내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몇 시간 동안은 자유의 몸이 되었을 테니까 의심받지 않도록 고양이 죽게 하고 자신의 몸은 그로스의 집 밑에 있는 껍데기로 돌아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계획을 세워 껍데기를 그로스의 집에서 이 스탄턴 집으로 옮길 수 있는 동물을 설정하여 옮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탄턴이 잠들면 곧 스탄턴의 마음으로 옮아 탈 수도 있는 지각권내에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했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숨은 이상 여기에서 도망쳐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닫는 것을 잊은 문의 창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탄턴이라는 자는 이 얼마나 빈틈이 없는 자인가! 그 어디에다 닫는 것을 잊은 창은 없다. 더우기 지금은 바닥에 뿌렸던 가루 위의 발자국에서 스탄턴은 고양이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스탄턴은 그 이외에도 얼마만큼 추리를 하고 있을까? 집을 나서기 전부터 가루의 함정을 뿌려놓았을 정도니까 분명히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집안을 살펴보고 다닌 지성체는 고양이의 민감한 발바닥에 무엇인가가 밟힌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는 바닥에 엷게 뿌려놓은 밀가루에 관해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깨닫게 되어 발치를 내려다보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고양이의 발자국을 지운다든가, 가루를 치워버리고 새로 뿌리는 방법을 생각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지금 옮아 타고 있는 이 작은 고양이의 몸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가루를 처리한다는 것은 어떻게든지 가능하다. 핥아 버려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새로운 가루를 평등하게 뿌린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선반을 열고 체를 낼 수는 있지만 몸집이 작고 손이 없으므로 도저히 인간이 하는 것처럼 체를 사용할 수가 없다. 방법이 전혀 없다.
정말 놀란 것은 스탄턴이 돌아와서 그를 향해 같은 지성 동물을 대하듯이 말을 걸어왔을 때다. 스탄턴은 논리에서인지 육감에서인지 집에 갇혀있는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그 정도의 사소한 증거로 그런 결론이 나오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였다. 그는 스탄턴이 과학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지금까지 지성체가 접촉한 인간심리의 내면은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청년과 바보처럼 문맹에 가까운 노인의 마음뿐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는 토미가 그로스가 알지도 못하는 그러나 스탄턴에게는 아주 쉬운 것이 있는 것이리라. 그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다. 지구에도 그들의 지성체와 마찬가지로 다른 동물에 옮아 타고 그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종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어느 작자들은 특수한 능력과 특별한 훈련에 의해 열등동물에 옮아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언젠가 스탄턴에 옮아탈 수 있으면 그 해답은 나올 것이다.
당면문제는 도망치는 것, 이 집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자살은 만약 여기에서 어떤 방법이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안 된다. 무엇보다도 스탄턴의 과학적 관심을 끈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과 새의 수수께끼의 일련의 자살 사건이었다. 지금 이 집 안에서 다시 자살 사건이 일어나면 이런 상황에서는 스탄턴이 지금까지 추측만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확신으로 변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버린다. 지성체는 스탄턴이 아직 추측의 단계에서 머물러 줄 것을 빌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것은 단 한 가지라는 것을 이제는 지성체도 알고 있다. 아침이 되면 은신처에서 나타나서 스탄턴에게 모습을 보이고 가능한 한 고양이답게 보통 고양이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스탄턴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위험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지성체는 즉석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거기에다 만약 스탄턴이 지성체가 옮아 탄 동물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호스트를 죽인다는 것은 그것이 지배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해방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지성체로서 위험한 일을 스탄턴이 고양이를 사로잡아 우리에 넣고 관찰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 끝난다고 해도 시간이 낭비된다. 고양이가 자연사를 할 때까지 도망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며 고양이란 몇 년이나 수명을 가진 것이다. 스탄턴이 지성체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기 위한 심리 테스트에라도 착안한다면 위험성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만약 스탄턴이 그것을 분명히 증명해 버린다면? 토미 호프먼의 기억 속에 사실대로 말해 버리는 약이라는 것이 막연하나마 있었는 듯했다. 만약에 스탄턴이 그 약을 고양이에게 주사하여 그 약의 영향하에 무리하게 무엇인가를 조사하려 한다면 지성체는 끝장이다. 자신의 육체의 소재를 무리하게 알아내고 말 것이다. 그로스 집에 호위해주는 존재로 없이 묻혀있는 껍데기를 발견당하고 말 것이다.
거기에다가 호프먼이 연구를 위해 고양이를 우리에다 넣고 언제까지나 방치해 버리면, 고양이가 오래 살게 되는 경우, 지성체 자신은 죽어 버린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고양이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양분이 없어져 지성체 자신이 죽어 버릴 것이다. 그로스가 껍데기에다 양분인 액체를 제공했으니까 몇 달은 가겠지만 1년은 가지 못할 것이다.
지성체의 육체에 양분공급을 할 수 없는 동물에 언제까지나 옮아 타고 있다는 것은 지성체 자체에게는 생명을 잃는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하룻밤 내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를 생각했다. 유리가 깨지면 뛰쳐나갈 수가 있으니까 창에 육탄전을 시도해볼까도 생각했으나 그것은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반대의 생각도 있다. 결과가 좋다고 가정해도 역시 스탄턴의 의혹을 뒷받침해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의혹이 단지 의혹에 불과하며 확신은 아니라는 것에 그쳐주기를 빌 뿐이다. 아침이 되어 스탄턴이 밖에 나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었다. 고작해야 이런 희망을 안고 상대방에게 역시 보통 고양이었다고 생각케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스탄턴 박사가 잠자리에 든 것이 한 시였으며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아무리 휴가라지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열 시가 조금 지나 답답한 꿈 때문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인공위성의 계기인지 무엇인지를 설계하는 꿈 같았으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게 아니면 계기라고 생각한 것은 누군가의 사람이었으며 그 인간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리에 누운 채 다시 희미해진 꿈의 전반부를 상기해보려고 했으나 거기에서 갑자기 집안에 있는 고양이를 생각해낸다. 꿈에 관한 것을 완저히 잊고 여전히 누운채 고양이에 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낮의 햇빛 아래서 생각해보니 어제 밤만큼 으스스하고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집에 와있는 집 잃은 고양이와 지난 10일쯤 전에 일어났던 자살사건과의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그 가능성을 확대시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따지고 보면......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설명을 필요로 하는일이 있다.
고양이가 호기심과 시장기 때문에 열려 있는 문이나 창으로 옆집에 들어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로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많지 않으며 지금 이 고양이 경우는 지나치게 기묘하다.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그 들어온 코스다. 그 점은 고양이가 잘 곳도 업고 배가 고프면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나무에 오른 것도 가지에서 잠들어 있는 작은 새를 발견했기 때문이며 그 새를 잡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 가지에 가서 새는 도망치고 유혹을 하듯이 열려 있는 열린 창틈이 시야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설사 들고양이라도 고양이라면 집 안에는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부엌 옆 출입구에서 인간의 동정을 엿보듯이 숨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그 후 자취를 감추고...... 그런데 만약 들고양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이나 농부에게 돌팔매질이라도 당한 기억이 있다면 인간을 무서워하리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박사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옷을 입기 시작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먼저 고양이를 찾자. 고양이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그 후로 미루기로 하자.
옷장 서랍에 상당히 두꺼운 가죽장갑이 있었다는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것을 찾아내어 포켓에 찌른다. 고양이를 막다른 공간에서 잡아야 할 단게에 이르면 야생 고양이를 잡을 때 반항이라도 한다면-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남에게는 경우에 따라 대항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이 장갑은 지니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장갑을 끼면 그런 고양이도 다룰 수 있다. 가루 위에 남아있는 발자국의 크기로 미루어 그렇게 큰 고양이는 아닌 것 같다. 잠시 발자국은 조사한 것만으로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삵괭이의 발자국도 보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르다. 자신이 자고 있던 침실을 나오자 문을 닫는다. 고양이 사냥도 조직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니까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이층을 돌아보고 살펴본 방은 하나하나씩 문을 닫아간다. 먼저 욕실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어서 처음에 욕실을 살펴보고 그 후에 두 개의 침실을 살폈다.
고양이는 이층에 없었다. 계단을 반쯤 내려온 시점에서 고양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개나 고양이가 흔히 하듯이 현관문 앞에 태연히 앉아있다. 전혀 위험한 기색이 없었다. 작은 회색 고양이이며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었다. 전혀 배를 고파하는 기색도 없었으며 그를 두려워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실제로 다정한 듯이 쳐다보고 있을 정도였다. 야옹 하고 울며 가볍게 창을 긁는다.
평범한 고양이다. 보통 고양이이며 단지 나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어제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숨어있었던 고양이치고는 너무나 당당한 자세라고 박사는 생각했다. 계단의 맨 아랫단에 걸터앉아 여전히 현관문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고양이를 응시한다. 야옹하고 고양이는 다시 울었다.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고양아, 아직은 안 돼. 시간이 지나면 내보내 줄 테지만 그 전에 할 말이 있다. 거기에다 아침은 먹지 않겠나? 나도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박사는 일어서서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까지 가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고양이는 뒤를 따라왔으나 발치에 바싹 따라오지는 않았다. 지금 고양이는 앉아서 박사를 쳐다본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난듯이 박사를 앞질러 갔으나-박사의 손이 닿지 않게 멀리 돌아간다는 것을 박사는 눈치챘다. 고양이는 다시 뒷문쪽으로 간다. 다시 문을 긁으며 야옹하며 박사를 돌아본다.
"내보내 주세요."
고양이의 말로 애원을 하는듯 했다. 보통 고양이가 하는 행동이었다. 박사는 분명히 고개를 젓는다.
"안 돼지, 야옹아. 다음에 내주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안 돼. 그 전에 생각해둘 문제가 있으니까."
냉장고에서 우유를 들어내더니 접시에 따라 바닥에 놓아둔다. 고양이는 옆에도 가지 않고 박사가 계란 두 개를 굽어 커피의 물을 꿇이는 동안 문 옆에 있었다. 박사가 아침식사를 방 반대쪽으로 가져가서 큰 테이블에다 그것은 놓고 걸터앉자 고양이는 문 옆을 떠나 우유 접시쪽으로 갔다. 시장한듯이 핥아먹기 시작한다. 박사는 계란을 먹으면서 말한다.
"착하지. 어때, 여기에 와서 살며 자주 나를 만나러 오지 않겠니."
고양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고양이를 보고 있는 동안에 박사는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밀할 수 있는 상대로 고양이를 신변에 두고 사육하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만약, 이 고양이에게 정말로 수상한 데가 있으면 당분간은 신경을 써서 조사하는 데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이 고양이를 가두어 둘 수는 없을 것이다. 무더운 날 그런 짓을 했다가는 자신이 질식해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창을 반쯤 열고 그 공간에다 꼭 맞는 망창을 하면 어떨까. 이 부근에 파리는 많지 않는듯 이 집의 주인은 망창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목수를 불러다가 완전한 망창을 끼워달라고 하면 되겠군 하고 박사는 생각했다. 이 집을 빌어 쓴 답례로 약간 손을 봐주는 것도 좋겠군 하고 생각했던 참이다. 거기에다가 분명히 파리도 얼마간은 있고 밤에는 창을 닫지 않고 불을 켜놓으면 나방이 들어온다. 망창을 부착한다는 것은 이 집으로서도 다행한 일일 것이다. 고양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은 해주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는 고양이 주인이 돌려달라고 한다면 남의 고양이를 차지할 생각은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시내에서 물어보면 어떻게 될 것이다. 주인이 나타나면 특히 아이들이 귀여워하고 있던 고양이라면 2달러나 3달러에 기꺼이 팔아줄 것이다.
시골에서는 고양이 같은 것은 얼마든지 있으며 값도 싸다. 새끼를 낳는 것이 빨라서 언제나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고 있을 것이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교단에 서기 위해서 돌아가기 전에 고양이를 길러줄 집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약간 돈을 얹으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근의 농가에서 이미 고양이를 몇 마리 기르고 있는 집이라면 한 마리쯤 늘어나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며 대부분의 기르는 고양이도 이런 시골에서는 들쥐를 잡아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박사는 말했다.
"야옹아, 진지한 이야기인데 당분간 여기서 살면 어떻겠니? 그건 그렇고 너의 이름은."
고양이는 여전히 우유접시를 핥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좋아,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새로 이름을 짓기로 하자. 내가 부르게 될 이름이야. 야옹이가 좋겠어......멋있는 이름이지."
고양이는 우유를 반쯤 마셨을 뿐이지만 그것이면 됐다. 이 고양이의 크기로 미루어 본다면 과식을 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다시 문 앞에 가서 앉아있었다.
"야옹."
고양이가 운다.
"알았다, 야옹아. 자연의 요구라는 거겠지. 이 집에 갇히고 나서의 시간을 생각하면 놀랄 것도 없지. 그러나 그토록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너는 가출한 고양이야. 어떻게든지 해주어야겠군."
이미 식사를 마친 박사는 지하실의 계단 입구로 갔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간다. 여기에 살던 누군가가 무척 많은 톱질을 한 듯 지하실 구석에 톱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박사는 적당한 크기의 판지 상자를 발견하더니 톱밥을 담아 부엌으로 올라와서 구석에다 놓았다.
"고양아! 이것을 이용하라구. 2~3일 동안은 밖에 내어줄 수가 없다구."
고양이는 톱밥이 든 상자를 보았으나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야옹."
다시 호소라도 하듯이 운다.
"너는 밖에서만 기르던 고양이인듯 하군. 톱밥 상자에는 익숙하지 못하군. 어쨌든 해보라구. 참을 수 없게 될 때에-."
아침을 먹고 식기들을 개숫물통으로 가져가더니 박사는 씻기 시작했다.
"고양아, 말해두지. 2~3일 동안은 이렇게 해서 시험을 해보는 거야. 그 때까지는 톱밥의 사용처를 알게 될 테지. 그렇게 하면 처리는 내가 하지."
박사는 말하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되거든 그 다음부터는 네가 처리토록 하지. 그리하여 밖으로 내줄 테니 다시 돌아오겠다, 다시는 출입구에서 서성거리지 않겠지? 알아 듣겠나."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문 앞을 떠나지 않는다. 박사는 해두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듯 얼마 동안은 고양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양이의 몸에 옮아탄 그대로 이 이상 정체가 폭로될만한 짓도 하지 않고 고양이를 처치할 수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지성체는 출입구 옆을 떠나지 않았다. 방광(膀胱)과 복압(腹壓)이 이제는 상당히 가중되고 있다.
더우기 스탄턴은 앞으로 며칠 동안은 밖으로 내줄 것 같지도 않다. 지성체로서는 옮아 탄 고양이의 육체적 고통은 객관적인 사실로서 느껴질 뿐, 괴로움 그 자체는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스탄턴은 그를 며칠 동안 가두어 놓을 예정인 듯했다. 지성체로서는 이 고양이의 육체를 그때까지, 아니면 그 이상 의혹을 초래할만한 짓을 하기 전에 소멸시켜야 한다. 스탄턴은 이미 충분히 의혹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바닥에다 해치우느냐, 톱밥 상자에 해버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완전한 들고양이인척 톱밥 상자를 사용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척 지금 바닥에 해버려 바닥을 더럽혀 놓으면 스탄턴도 싫증이 나서 가출한 집 고양이인척 하며 상자를 이용하기보다는 빨리 놓아 줄 것이 아니겠는가?
지성체는 냉정하게 스탄턴을 바라보았다. 그가 미운 것은 아니다. 증오의 감정은 자비와 마찬가지로 지성체에게는 인연이 없는 것, 그들의 동족에게만이 구사되는 것이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이미 의혹을 품고 있는 스탄턴인지라 고양이가 그때까지 어디에 있었는가, 주인이 기르고 있었는가, 언제 어떻게 하여 자취를 감추었는가를 조사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밖에도 지금까지 어느 정도의 가출을 했는가까지도 조사하게 할지 모른다. 서툰 차질이라도 생기면 스탄턴의 의혹에 불을 지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성체는 지금 옮아 타고 있는 고양이의 심정을 자세히 살펴 특정의 이 고양이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가를 충분히 파악한 후에 거기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양이의 뇌에서 그 기억을 찾아내는 데 불과 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톱밥상자로 다가간다. 스탄턴은 개숫물 가까이에서 무심히 돌아본다.
"아하, 착하군!"
그렇지. 지금까지도 계속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하고 지성체는 생각했다. 관찰당하고 있을 때는 언제라도 현재 옮아 타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을 조사하여 같은 정황(情況)에서 그것이 하는 대로의 행동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어제 처음으로 그 여자를 복도에서 모습을 보았을 때 숨지말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으면......
당면한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앞으로는 어디까지나 이 방법으로 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누워서 잠시 자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지. 쉬기에 편한 푹신한 곳을 찾는 거야. 거실에 소파가 있었다. 문턱을 넘어 소파에 뛰어오르자 기분 좋은 듯이 누웠다. 스탄턴은 입구에 서있었다.
"좋았어. 좋을 대로 하라구. 그런데도 어제 밤까지는 왜 숨어지냈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박사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성체는 고양이의 육체를 쉬게 하고 잠들게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였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혀 두 번씩이나 숨어 버린 것이다. 한 번은 복도에서 여인에게 발각되었을 때, 또 한 번은 밀가루에 발자국을 낸 후 밤중에 스탄턴이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지금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하여 이 고양이의 마음을 철저히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서 4~5일 동안 갇혀있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예정이 약간 늦어진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스탄턴은 특별한 심리테스트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체적인 관찰을 계속할 모양이다. 지금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알고 있는 지성체로서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조금 따뜻해져서 스탄턴은 아래층의 창을 모두 열고 다녔으나 - 어느 거나 공교롭게도 2인치 정도의 조심스러운 개방이며 중간치의 고양이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정도였다. 얼마가 지나자 스탄턴이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고양아, 잠시 시내에 갔다 올 테니 집을 잘 지키고 있거라. 고양이용 식품과 리버든 무엇이든 사다 주지. 네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내가 더할 나위 없는 호스트가 되어 주지."
지성체는 지금 옮아 타고 있는 호스트인 고양이의 몸을 하마트면 뛰어오르게 할 뻔했다. 그렇다면 스탄턴은 <호스트>라는 말의 다른 의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는 졸리는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스탄턴이 현관으로 가자 고양이도 소파에서 뛰어내려 진짜 고양이처럼 뒤를 쫓았다. 그러나 스탄턴은 한쪽 손을 뻗어 살며시 고양이의 목을 잡는다. 몸이 닿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고양이를 안으로 밀고 문을 밖에서 채울 때까지 고양이의 목을 쥐고 있었다.
버톨스빌의 시내에서는 박사는 먼저 크라리온 신문사에 들렀다. 호리스가 두들기고 있던 타이프라이터에서 얼굴을 든다.
"어서 오세요. 이번에는 무슨 일로?"
"별로 놀랄 일은 아니야. 한 가지 물어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은 없는가?"
호리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양이? 고양이 따위는 여기에서는 한 무더기에 10센트도 하지 않습니다. 집을 잃으면 그만입니다. 그것으로 단념하는 거지요. 왜 그러세요? 고양이를 습득하셨나요?"
"그렇다니깐. 거기에다 그 놈이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얼마 동안 길러도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원래 주인이 소중히 기르고 있었던 거라면 그렇게는 할 수 없잖나? 아이들의 애완용이었을지도 모르고 - "
"그렇기는 하군요. 그렇다면 분실품란에 당신의 광고를 실어드려도 좋습니다. 마감은 금요일 낮, 곧 조판이 끝날 때입니다."
스탄턴은 잠시 생각했다. 지금 호리스에게 광고를 신청해 두어도 도중에서 중지시킬 수도 있겠지. 박사는 말했다.
"좋아. 지금 광고를 부탁해두지. <습득. 작은 회색 고양이>. 거기에다가 우체국의 나의 사서함 번호야. 회답이 올지 안 올지는 다음 주에 함께 조사하기로 하자구."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누구의 고양이인지 알기는 하겠군요. 지난주 크레머에게 들렸더니 거기에 있었던 몇 마리 고양이 중에서 회색이 있었던 것을 보았는데. 방향도 댁과 같고 - 그 집 고양이인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집 방향이 어느 쪽이지?"
"그로스 집 옆입니다. 그로스의 집은 알고 계시지요? 자살한 후 당신도 보안관과 함께 갔었다니까. 그 집은 동쪽입니다. 르루사가 서쪽이 되고."
호리스는 원고를 썼다.
"고맙네, 에드. 돌아가는 길에 들여다보지. 다만 광고는 내가 중지시켜달라고 말하지 않는 한 내도 되네. 그럼, 또 만나세."
시장을 보면서 박사는 고양이 식료품을 두 통을 샀다. 이 정도의 고양이라면 한 통으로 이틀은 견딜 테니까 두 통이 있으면 고양이가 그대로 살게 되거나 도망쳐 버리든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드러그스토어에서 박사는 미스 타리에게 전화하여 분명히 목요일 낮까지 일이 끝날 것 같은가를 확인하고 무엇인가 새로 들은 것은 없는가를 물었다. 일은 약속한 대로 완성되겠지만 재미있는 소문은 들은 것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타이핑이 끝날 때까지 소문에 귀를 기울일 기회도 별로 없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그녀는 집 안에서 고양이가 발견되었는가를 알고 싶어 했다. 박사는 고양이 이야기를 해주고 고양이를 길러 보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로스 집 동쪽 이웃의 농가에 들렀다. 현관 포치에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모두 회색으로 그 고양이가 같은 크기로 같은 배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문을 노크하자 뚱뚱하고 상냥한 여자가 나왔다.
"난 랄프 스탄턴이라고 하며 이 도로 앞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사실은."
"예, 알고 있습니다. 존함도 들었고 차로 지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들어오시지요."
여자는 물러서며 박사가 들어오는 길을 열었다.
"잠깐 실례합니다만 곧 끝납니다. 다름이 아니라 부인, 댁에서 회색 고양이를 기르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 내가 지금 현관에 있는 두 마리와 같은 크기의 회색 고양이를 습득했는데 어쩌면 - "
"어머나. 그렇습니다. 한 이틀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우리 집에 와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집을 착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파실 수 없을까요?"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팔라고요? 천만에. 마음에 드시면 그냥 드리지요. 집에는 그것 말고도 세 마리나 있고 - 어미 고양이가 먼젓번에는 여섯 마리나 낳았습니다. 받아줄 집이 세 집밖에 없어서요. 거기에다가 또 출산을 할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어미를 처치하든가 수의사에게 데리고 가서 난소 적출 수술을 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집은 고양이로 가득하게 될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양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거기에다가 여름철이 끝나고 여기에서 철수할 때는 틀림없이 양자로 줄 집을 찾겠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데리고 가겠습니다. 내 집에 계속 있어주면 말입니다만."
"그런데 방금 당신은 - "
"지금은 아직도 우리 집에 가두어 놓은 상태입니다. 우리 집이 익숙해지고 계속 있어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2~3일 후에는 놓아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 집에 있게 될지 아니면 여기로 돌아올지 알게 될 테지요. 싫어하는 것을 어지로 잡아둘 수야 없지 않습니까? 고양이란 워낙에 고집이 세니까."
"글쎄요. 생각대로 되시면 좋겠는데. 그것은 그렇고 이름은 제리입니다."
"우리 집에 오고나서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야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크레머의 부인이 크게 웃었다.
고양이는 스탄턴박사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문 안쪽에 도사리고 있다가 박사가 들어서자 뛰쳐 나가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사는 그것을 저지시켰다.
"그것은 안돼, 야옹아!"
이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두 다리를 잡고 문을 발로 차서 닫았다.
"까닭은 말했을 텐데. 너는 여기에서 4~5일은 여기서 갇혀 살아야 해. 너는 여기에서 나와 같이 살든가 아니면 크레머 집으로 돌아가서 제리로 돌아가는가를 결정하면 되는 거야. 나는 이미 너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단 말이야."
고양이를 소파에 내려놓고 내려다 본다.
"그렇지 않니? 야옹아."
박사는 살며시 덧붙였다.
시내에 가 있는 동안에 망창에 관한 교섭을 하는 것을 잊었다고 깨달은 것은 창을 좀 더 활짝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어차피 내일 또 시내에 나가야 한다. 하루쯤 늦었다고 별 일이야 있을라구?
16
결국 망창의 주문은 하루쯤 늦어도 별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음 날인 목요일에 다시 시내로 가서 진짜 솜씨가 좋은 목수 행크 버디를 만났다. 행크는 적어도 일주일간은 일이 밀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행크는 다음 주말에 치수와 견적을 가져가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박사는 좀 더 빨리 일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을까 하고 생각했으나 술집 구석방에서 포커로 친숙해진 행크가 마음에 드는 처지라 기다렸다가 행크에게 일을 시키기로 했다.
결국 고양이를 가두어 두는 것도 앞으로 2~3 일의 예정이며 평소처럼 지내면 그만이지 각별히 망창을 급히 설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날씨는 온화하며 종전대로 모든 창을 2인치 정도만 열어놓으면 충분히 바람은 통한다. 그는 미스 타리의 작은 집 앞에 스테이션 왜건을 세웠다. 그녀도 차가 멎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듯 박사가 문에 다가서기 전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박사님. 완성되었습니다. 앉으시지요. 원고를 가져오겠습니다. 거기에다 속기 노트도 - "
"고맙습니다, 미스 타리. 그러나 오늘은 그 두 통의 편지의 구술은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발송하기 전에 이삼일 천천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갖고싶습니다. 거기에다 이제 발송해도 좋다는 결심이 설 때까지 편지는 기다릴 수가 있으며 그밖에도 무엇인가가 일어나도 그것을 겪은 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생각이라면 좋습니다."
그녀는 큼직한 갈색 봉투를 박사에게 넘겨 주었다.
"지금 읽으시겠습니까?"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 읽어도 되겠지요. 방해가 되지 않으시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그녀는 시간이 있었으며 박사에게도 시간이 있는 셈이다. 박사는 고양이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 고양이가 무서워졌습니다.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인지. 당신의 옮아 탄다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 고양이가 언제까지나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서요. 거기에다가 그 고양이는 흔히 있는 보통 고양이니까."
하며 웃었다.
"그러나 버크도 당신의 차 앞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는 완전히 보통 개였습니다. 박사님, 당신이 뭐라고 하건 그 고양이가 거기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걱정입니다."
"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미스 타리. 거기에다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이 문제를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박사님. 이 기록과 편지를 당신이 말씀하신 두 분 친구에게 꼭 보낸다고 약속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박사는 탄식을 했다.
"좋습니다. 보내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이틀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좋습니다. 이번 주에 나는 계속 집에 있을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있겠습니다. 언제라도 오셔서 구술해주신다면......"
그날 밤 접시를 씻고나서 박사는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고양이는 그 전부터 거기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박사가 손을 뻗어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 주니까 고양이는 골골 목에서 소리를 냈다.
"어때? 야옹아. 여기가 마음에 들었나? 내가 마음에 들었나? 오늘이 목요일 밤이지. 너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날을 정해두자구. 날짜와 시간 말이야. 월요일이면 어떨까? 그렇지. 너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오후 세 시경이었지. 네가 나가고 싶으면 오전 열 시경에 나가게 해주지. 그렇게 하면 배가 고파질 때까지 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테지. 만약에 시내에 나간다고 해도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니 나가기 전에 너를 내주고 점심때까지는 돌아오지. 네가 돌아왔을 때 기다리고 있다가 먹이를 줄 수 있도록 말이야. 알겠나?"
고양이는 대답대신 목만 골골 거리고 있었다. 박사는 말한다.
"자네의 부담이 덜어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크레머의 집에서는 너를 나에게 주겠다고 말했어. 네가 돌아오는 것을 반가와하지 않았어. 물론 네가 돌아가면 받아주기는 하겠지. 먹이도 줄 것이고 용서해 주기도 하겠지. 그렇지. 네가 누구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너를 제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단 말이야. 만약에 고양이가 또 한 마리 있다면 그 이름을 그대로 불러도 되는데 말이야. 저편을 톰이라고 붙이지. 톰과 제리야. 그런 이름의 식료품을 먹은 일이 있나? 맛있다구. 그러나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야. 너는 크레머의 집과 나의 집, 어느 쪽을 택할 셈이지?"
박사는 일어서서 소파와 마주놓인 의자에 옮겨 갔다. 방 반대편에서 고양이를 지켜본다.
"야옹아, 왜 너는 숨었나? 어째서 이층의 창같은 위험한 곳에서 뛰어들었지? 고양이가 이유도 없이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나? 왜 처음부터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았지?"
고양이는 나른한 듯이 기지개를 켜고 다시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았다.
"야옹아!"
박사가 예리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고양이는 다시 눈을 떴다가 박사를 응시한다.
"야옹아. 내 앞에서 자는 척을 하지 말라구. 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거야. 말을 걸고 있는데 잔다는 것은 실례야. 야옹아, 너는 그로스 집의 옆집 농가에서 사육되고 있었단 말이야. 그로스 집의 고양이는 알고 있겠지? 그로스가 자살한 밤에 자살한 고양이 말이야. 자살이 아니었다고 잡아떼도 소용없어. 그 고양이는 분명히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나운 개의 입에 뛰어들었으니까. 그것이 자살이라고 한다면 무엇때문이지? 만약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된 거지?"
눈을 감고 고양이는 자는 척을 했으나 박사는 고양이가 자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같은 그날 밤에 올빼미가 자살했지. 올빼미에 관해서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나? 그리고 그 전에 토미 호프먼의 죽음과 함께 들쥐가 고의적인 자살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리고 그 개 말이야. 그 개를 치어죽인 것은 나라는 것도 알고 있나? 더우기 그 개는 차가
알맞은 거리에 올 때까지 길바닥에 숨어있었다고. 내 차의 한 가운데를 향해 뛰어들었단 말이야. 그 개가 자진해서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 개가 차를 싫어하는 개라는 것을 듣고 나서부터는 분명히 단언할 수가 있다구. 사람이 두 명, 동물이 네 마리 -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야. 물론 그 밖에도 자살한 인간은 알고 있지만 그 밖에 얼마나 많은 동물이 자살했을까? 특히 숲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말이야. 그것도 무엇인가를 한 후에...... 누군가의 아니면
무엇인가의 용건을 마친 후에 말이다."
밖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울천이라는 귀뚜라미다. 박사는 멍청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을 - . 귀뚜라미가 우는 간격에서 거의 정확하게 기온을 알 수 있다는 이상한 것이었다.
귀뚜라미란 놈은 온도계와 같은 것이어서 보통 가정용 온도계와 같을 만큼 정확한 것이다. 자연에는 여러 가지 이상한 것이 있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자살적인 대이동을 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북극의 나그네쥐도 마찬가지이다. 집단광기(集團狂氣)일까? 아니면 나그네쥐는 인간이 모르고 있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단 말인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창으로 다가오는 검은 어두움을 응시한다. 박사는 고양이 쪽을 돌아본다.
"야옹아, 왜 그런 동물들이 자살을 했지? 너도 그런 동물의 일당이라면 왜 자살하지 않는 거지? 네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여기에 갇혀서 자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 기다려. 내가 찾아주겠어."
박사는 거실을 나서자 복도를 지나 아래층의 또 하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구도 제대로 없는 창고 대신으로 쓰고 있던 방이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 이외는 박사는 거기에 낚시 도구와 장화, 총과 탄환 등을 두는 곳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위스콘신주에서는 여름에는 이렇다 할 해금(解禁)의 사냥감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박사는 사격 연습을 위해 권총과 라이플, 거기에다 새로 산 산탄총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그가 비행기로 그린 베이에 오기 전에 탁송해둔 것으로 여름이 끝나고 돌아갈 때 팔아버릴 중고의 스테이션왜건을 사고나서 그는 그것들을 인수해왔던 것이다. 박사는 권총을 잡았다. 38 구경 스미스 엔드 웨슨 스페셜이며 두꺼운 판지로 만든 라이플 용 표적도 포장된 것 속에서 한 장 집어낸다.
복도와 거실 경계에 표적을 바닥에 세우고 앉아있었던 의자로 돌아왔다. 격침을 세운다. 갑자기 찰칵하는 소리가 나자 고양이는 머리를 들면서 지켜본다. 박사는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야웅아. 이렇게 하자구. 만약 네가 자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으면 그 수고를 덜어주지. 만약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나에게 저격당하고 싶으면 그 곳 출입구에 가보라구. 표적 앞에 앉기만 하면 그만이야."
그 순간 고양이는 졸리기라도 한듯이 눈을 깜박거리고 다시 머리를 숙여 잠들어버렸다. 아니면 잠든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사의 말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박사는 탄식을 했다. 설마 고양이가 서 있는 표적 앞에 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에 - 아니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짓을 하며 정체를 드러낼 까닭이 없다. 거기에다가 이런 경우 고양이를 저격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능할 것같지가 않다. 특히 권총에는 박사도 탄환을 장진하지 않은 상태이다.
박사는 권총과 표적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부엌으로 갔다. 잠을 자기 전의 맥주 한 통과 냉장고에 있는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입을 다시고 나서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냉장고의 문 소리를 듣고 고양이는 소파에서 부엌으로 갔다. 박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모르는 척 하고 있었으나 그 소리라면 안다.
크레머 집의 부엌에서 듣던 귀에 익숙한 소리다. 박사도 고양이가 옆에서 보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냉장고에서 내고싶지 않은 모양이다. 고양이는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얻어먹었으면 하는 눈치다. 박사는 레버 소시지 몇 조각을 발견하더니 한 조각을 고양이의 접시에 놓아주고 나머지로 자신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맥주 캔을 따고 테이블을 돌아간다. 고양이는 자신에게 할당된 레버 소시지를 먹더니 거실로 돌아가서 다시 소파 위에 누워버린 듯하다. 박사는 먹을 것을 테이블에 옮기고 나서는 그 이상은 아무리 보채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고양이에게 교육시킨 것이다.
거기에다가 고양이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가 냉장고의 소리에 나타난 것은 통조림 먹이라든가 우유 등 단조로운 먹이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한입 먹고 싶었던 것에 불과했을 테지.
박사는 조명을 끄고 손전등을 손에 들었다. 고양이가 이 집에 들어온 최초의 밤과 마찬가지로 그는 침실로 올라가는 데 손전등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 이유는 최초의 밤과는 달랐다. 지금은 다만 어둠 속에서 고양이를 밟거나 무엇인가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고양이는 어둠 속에서는 눈이 보이고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고양이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인 금요일은 별로 이렇다 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시내에 갔으나 우편물은 아무것도 와있지 않았고 별로 살 것도 없었다. 고양이를 습득했다는 광고를 취소하기 위해 신문사에 들렀으나 에드 호리스와의 이야기도 주로 전날부터 별로 색다른 것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그쳤다. 가너의 농장에 원매자가 생겨 일가가 서부로, 아마도 오자크드가 아니면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는듯 하다는 것쯤의 소식이었다. 토미의 아버지나 거스 호프먼도 버톨스빌의 신문에 농장을 판다는 광고를 냈으며 그린 베이의 신문에도 낼 예정인 듯했다. 호리스가 말했다.
"나의 육감으로는 이것은 샤로테가 임신했다는 말이야. 가너 일가가 이사를 하려는 것은 - "
"에드, 그런 억측은 기사화하지 않는 것이 좋아."
호리스는 박사가 자신도 몰래 사과를 했을 정도로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거스 호프먼까지 이사를 해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토미가 죽어 버려서 주변에서야 무슨 말을 하건 예사일 텐데 말이야. 거기에다 주변에서 가타부타할 수치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였을 텐데 - "
호리스는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에드, 바보같은 소리는 작작하라구. 호프먼으로서는 앞으로 가너의 집안과붙어있고싶다구. 아내도 아들도 없고 - 그러나 손주가 태어나려는 참이야. 사생아건 뭐건 그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야."
"그래요? 알겠습니다. 어째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마 어디로 이사를 가건 가너 집과 타협하여 적당한 크기의 밭을 함께 경작하게 되겠지. 거기에다 샤로테도 미세즈 호프먼으로 이름을 바꾸게 될 무척 젊은 과부이고 거스는 그녀의 시아버지야. 그래서 아이는 거스의 대를 잇고 거스로서도 삶의 보람을 찾겠지."
박사는 그 날은 시내에서 볼 일도 없고 빨리 돌아왔기 때문에 오후에는 낚시라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고 생각했다. 그 개를 치어죽이고 그리고는 토미 호프먼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이야기의 기묘함에 이끌리게 된 이후 처음으로 해보는 낚시질이었다.
고양이가 이 집에서 안정을 되찾고 만족한 듯이 지내는 것을 보고 박사는 기뻐했다. 적어도 박사쪽에서도 걱정은 하고 있었으나 낚시 도구를 가지러 출입했을 때 고양이는 빠져나가려는 동작은 취하지 않았다. 고양이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어제저녁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어차피 월요일에는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단 말인가? 박사는 머릿속의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가까이의 송어가 있는 강까지의 산책의 즐거움과 거기에 도착하고서의 낚시의 즐거움에만 정신을 집중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낚시는 시간이 어긋났는데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한 시간도 채 못되어 바구니에는 중간 정도의 송어가 다섯 마리나 들어있었다.
낚시를 한다는 그 자체도 즐거운 일이지만 낚아올린 결과에도 만족했다. 하룻만에는 다 먹어치울 수가 없고 고양이와 둘이서 먹는다고 해도 다음 날까지는 먹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갓낚은 송어는 냉장고에서 하루를 묵힌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은 맛이다. 돌아오자 박사는 물고기를 씻어 그중의 세 마리를 요리했다. 두 마리는 자신이 먹었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박사도 놀랄만한 식욕으로 고양이가 거침없이 먹어 치웠다. 박사는 말했다.
"좋았어, 야옹아. 잘 먹었다면 이것은 네가 여기에서 살아달라는 뇌물의 일종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사흘에 한 번씩 송어를 먹여주겠다고 약속하지. 날마다는 무리지만."
일요일 날 아침, 아침 식사를 하면서 박사는 고양이를 오전 중에 놓아주었다가 대여섯 시간 자유롭게 방임한 후에 평소에 먹이를 주는 시간에 돌아오는지의 여부를 시험해보리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다. 그렇게 해보아야지. 고양이를 무작정 거두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놓아주고 보는 거야. 돌아올지 가버릴지, 고양이의 자유에 맡겨보는 거야. 다만 한 가지 공작은 가능하다. 해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박사는 성능이 매우 우수한 쌍안경을 여기에 갖다 놓았다. 고양이를 출구로 내주는 동시에 박사는 이 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것이다.
고양이가 어느 방향으로 가건 이층 방의 어느 창으로 상당히 먼 거리까지 고양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는 것이다. 크레머의 집쪽으로 간다면 다시는 이 고양이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갔다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집 주변이나 뜰을 서성거리고 있다면 먹이를 줄 때 부르면 거의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다.
밖을 보니까 가벼운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굵은 비로 변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굵은 빗줄기 속이라면 고양이는 아마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슬비는 10분인지 15분만에 그쳤다. 먼지를 억제하고 지면을 약간 젖게 했을 정도이다.
열 시 정각에 - 그 때쯤이라고 고양이에게 약속을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박사는 소파 위에 있는 고양이 옆을 지나 현관으로 갔다. 문을 활짝 열고 말한다.
"자아, 야옹아. 나가고 싶지 않니?"
고양이는 말은 모른다고 치더라도 동작으로 알았을 것이다. 소파에서 내려오더니 태연히 기지개를 켜고 박사 옆을 천천히 빠져나가 열려있는 문을 나선다. 박사는 재빨리 쌍안경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침실 정면의 창에서 들여다보았다. 거기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고양이는 바깥쪽 뜰을 도중까지 가서 도로가 막힌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결코 서둘지도 않았으며 불안해하는 기색도 전혀 없다. 행선지는 알고 있으니 서둘 것은 없다는 듯한 고양이의 태연한 걸음걸이였다.
아마도 크레머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고 박사는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다면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풀린 셈이다. 크레머의 부인이 고양이는 드리지요 하던 말투에서 후에 고양이를 맡길 집을 박사가 찾는데 어려우리라는 것은 알고 있는 처지다.
거기에다가 생물을 버린다는 것은 하고싶지 않으니 고양이를 보스턴까지 데려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이 또한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도로 가장자리까지 가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서서 방금 나왔던 집을 유심히 바라본다. 박사는 당황하여 창에서 물러서며 고양이를 쌍안경으로 계속 관찰한다. 역시 돌아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돌아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면 감시를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 엿보고 있는 것일까? 박사는 자신의 모습이 발각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방금 창에서 물러섰으니 저편에서 보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결심을 하기 위해서인가, 감시를 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30여 초를 그대로 있었다. 어느 편일까? 이윽고 고양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앞서 보다 더욱 빨리 더우기 크레머의 집쪽으로 향하는 도로가 아니다.
고양이는 곧바로 도로를 횡단하더니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수 야드의 거리밖에는 쌍안경으로 지켜볼 수가 없게 되었다. 박사는 쌍안경을 놓고는 머리를 긁었다. 분명히 고양이의 동작은 완전히 정상적인 것이었을까.
그러나 -
여기에서 30여 분 전에 가랑비가 내렸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덕택에 발자국이 남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추적할 수 있는 데까지 추적해보는 것도 그다지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현재로는 오늘내에 마쳐야 할 일도 없고 조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박사는 또 비가 오면 곤란할 것 같아서 모자를 쓰고 레인코트를 팔에 걸친 채 곧 집을 나섰다. 발자국은 마당에도 뚜렷이 나 있었다. 일단 쭈그리고 앉아 크기와 간격 등을 머리에 새겨두듯이 충분히 관찰한다. 추적해보니 다른 작은 동물이었다는 헛수고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발자국은 초지에는 남지 않으며 나무 아래에서는 분명히 남지 않으니 숲속으로 들어가면 추적이 어려워진다. 비는 나뭇잎을 통하여 아래로 도달할 만큼 많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 아래는 어디서나 둥글고 마른 지면이 남아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박사는 이 고양이는 어디를 갔건 거의 직선으로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추적은 한결 쉬워졌다. 거기서부터 박사는 쉽게 나아갈 수가 있었다. 초지이건 건조한 지면이건 다음 발자국이 발견될 때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을 하면 되었다.
발자국은 박사의 앞길에서 기다려주고 있었다. 숲속을 적어도 1마일 반이나 간 곳에서 발자국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시점은 폭 4피트 정도의 냇물이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발자국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고양이는 여기를 뛰어넘었을까? 박사는 냇물을 뛰어넘어 건너 편에서 발자국을 찾는다.
전혀 없다.
냇물 양쪽 기슭은 각기 수 피트씩 노출된 지면이 젖어있다. 시냇물 기슭에 가까운 곳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으나 고양이가 냇물을 뛰어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뛰어넘었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발자국이 그쪽에도 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거기서부터 앞 일에 관해서는 생각할 기력도 없었으나 박사는 저편 기슭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물론 하류를 향해서다. 냇물의 흐름은 급하지 않았다.
불과 20여 걸음만에 두려워하던 것이 눈에 띈다. 냇물을 만나고부터 두려워했던 일이다. 물속에 작은 회색 고양이가 빠져있다. 이것은 차 앞에 뛰어든 개나, 창에서 뛰어든 올빼미, 토미 호프먼에게 덤벼들던 들쥐, 아니면 자신의 10배나 되는 크고 사나운 개에게 덤벼든 고양이 등과 비교할 때 가장 분명한 자살이었다.
더우기 박사와 함께 며칠 동안이나 살던 고양이었다. 권총의 함정에도 걸려들지 않고 굶어 죽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자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자살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숲속이라면 죽은 시신은 아마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박사도 아직 몇 가지 의혹을 남기고 있으며 가랑비 덕택에 추적이 가능했던 조건이 없었다면 역시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고양이는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오늘 아침에 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나서는 빨리 자살하기보다는 그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허점을 노출시킬 위험성이 적다고 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자살로 이것이 완결된 것은 아니다.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 고양이도 분명히 보통 고양이었다. 태생을 조사했으니까 알고 있다.
사냥개 버크도 차에 치어 시체가 되기 직전 주인으로부터 도망칠 때까지는 보통의 개였던 것이다.
무엇인가가 동물을 구사하여 그때마다 무엇인가 수수께끼의 목적을 달성하고 그리하여 동물을 죽게 함으로써 그 동물에서 떠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무엇일까? 거기에다가 왜? 무엇 때문에? 박사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고양이가 자신의 손 아래서 골골 목을 굴리며 만족해하던 광경을 상기해본다. 그때 자신이 쓰다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등골이 오싹해진다.
고양이가 그로부터 숨으려고 하던 날 밤, 바로 지난주 화요일의 밤이었으나 그 때의 막연한 공포는 지금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때는 다만 예감 이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단순한 억측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분명히 밝혀졌다. 그러나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자신이 겁에 질려 있다는 것뿐이다.
박사는 막대기를 발견하여 작은 고양이의 시체를 손이 닿는 물가로 끌어당겼다. 겁에 질린채 시체를 끌어올려 집으로 돌아온다. 낡은 담요로 그것을 싸서 스테이션 왜건 뒤에 실었다. 그린 베이의 연구소로 가져가서 해부라도 해달라고 할까? 아직은 결심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시체는 이미 실려있다. 그러나 조사한다지만 무엇이 밝혀질까? 이번에는 광견병이라는 의심은 전혀 없었다. 불과 한 시간전에 문에 나가게 해주었을 때 고양이에게 이상은 없었다. 적어도 이상은 엿보이지 않았다. 파이프를 빨며 잠시 생각했으나 여기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미스 타리에게 구술하여 작성시킨 서류봉투를 들고 나와 그것을 가지고 시내로 간다. 빨리 발송하는 것이 낫겠다. 첨부할 편지를 구술하여 당장에라도 우편으로 발송해야 한다.
미스 타리는 집에 있지 않았다.
문에 '세 시에는 돌아오겠습니다.' 하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어차피 점심시간이어서 그는 시내 번화가로 찾아가서 식사를 마치고 바에서 맥주 두세 잔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서는 대화에 참가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종전에 대화도 가진 적이 없는 상대에게 갑자기 말을 건다는 것도 어색하다.
거기에다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방은 미스 타리뿐이다. 박사는 벽의 시계에만 신경을 쓰다가 미스 타리의 집에는 세 시가 못 되어 도착했으나 그녀는 돌아와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스 타리가 입을 열었다.
"박사님!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 또 있었군요?"
박사는 약간 우울하게 끄덕였다.
"고양이에 관해서인데. 그러나 이 이야기는 지난주 구술한 것의 속편으로 속기해주십시오. 노트를 가져오시지요 - "
미스 타리는 노트를 들고 왔다. 그녀의 눈은 구술에 따라가는 연필 끝처럼 점차 흥분하여 춤을 추고 있다.
박사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최초의 구술 도중에 나타난 것에서 시냇물에서 익사해 있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상세하게 구술했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끝나자 미스 타리가 얼굴을 쳐들고 말한다.
"박사님! 이것은 친구 두 분에게만 보낼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 보안관에게도 가야 합니다. 아니면 연방경찰을 부르든가 - 어쨌든 보안관이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으면 - "
박사는 천천히 끄덕이고 있었다.
"미스 타리, 그렇게 해보지요. 돌아가기 전에 나의 계획을 이야기하겠습니다만 그 전에 여기에 첨부할 편지를 구술하게 해주시오."
다시 구술이 시작된다. 편지는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길어졌다. 끝났을 때는 다섯 시가 가까왔다.
"미스 타리. 이것을 타이프하자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하세요?"
"5~6시간, 네 시간이면 완성될지도 모릅니다. 곧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 때까지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에 당신은 보안관을 찾아가서 - "
"아니, 그것은 리포트가 완전히 갖추어져 보안관을 만나 읽어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립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강한 인상을 주게 될 테니까요. 결국 그레이의 고양이의 이야기 이외에 그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고 이편에서 처음부터 복습을 시키고싶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리포트는 읽게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거기에다가 오늘 밤 식사를 건너뛰면서까지 당신을 혹사시키고싶지도 않고 당신에게 식사준비로 시간을 허비시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코트를 입고 오세요. 시내에서 함께 식사를 하십시다. 그런 후에 당신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당신도 그렇게 하면 오늘 밤 타이프도 칠 수가 있고 나는 내일 보안관에게 이야기도 하고 그 편지도 발송하겠습니다. 항공편으로 특별배달로 해서 말입니다. 이대로 타이프를 시작하셔도 어차피 오늘 밤 안으로 어떻게 해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습니다. 그린 베이까지 우편물 발송하러 가도 - 안 되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오늘 밤 그 집에서 자겠다니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가 처음부터 그 도로가를 따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묵고 있는 그 도로가에서 - 거기에다 마지막 고양이는 당신이 묵고 있는 바로 그 집에서의 일입니다."
박사는 웃음을 보였다.
"오늘 밤은 괜찮습니다, 미스 타리."
분명히 괜찮았다. 지성체에게는 달리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7
지성체는 그제사 이미 쓸모가 없어진 호스트에 갇혀있는 것에서 해방되어 자기 자신의 육체, 그로스의 집의 뒷문 아래에 묻혀있는 껍데기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그는 방금 해낸 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만족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옮아 타고 있던 고양이를 익사시키기 전에 시체가 발각되지 않도록 숲속 깊숙한 곳까지 걸어가게 했던 것이다. 스탄턴은 고양이가 전에 살던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이상해 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그 스탄턴도 오늘 밤 잠들어 있는 동안에 스탄턴이 아닌 존재로 변해 버릴 테니 그것을 듣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지성체는 그에게 옮아탈 예정이었다.
지성체의 계획은 간단했다. 고양이에게 옮아 타고 있던 동안 스탄턴의 집을 기웃거리며 어디까지나 고양이로 행세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완전히 고양이답게 행동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고양이답지 않았다는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스탄턴이 총을 쏘겠다고 말했을 때 한 순간 오싹했으나 그 함정도 용케 간파할 수가 있었다. 바닥의 표적 앞에 앉았더라면 스탄턴의 의혹을 뒷받침하는 일이 되어 버렸을 테고 스탄턴이 정말 저격하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스탄턴은 고양이를 우리에다 처넣고 언제까지나 자세하게 연구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정기적으로 무리하게 먹이를 입에다 투입시켜 굶어 죽지도 못 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위험도 이제는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 밤부터는 정말 안전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단 한 사람의 위협이라고 할 만한 인간, 동시에 이상적인 호스트라고 할만한 인간에게 옮아 타고 그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요긴한 문제는 그것 때문에 짐승이나 조류에 옮아 타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가능하면 빨리 스탄턴에게 옮아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스 부인이 다른 동물보다 안전하고 확실할 것이다.
그녀가 잠이 들면 곧 옮아 탈 예정이다. 그리하여 한 시경까지 기다린다. 그 시간이면 여기에서 스탄턴의 집까지 사이의 모든 인간들이 깊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그녀에게 자신의 육체를 스탄턴의 집까지 운반시킬 예정이다. 스탄턴의 집에 만약 불이 켜져 있으면 불이 꺼진 후 한 시간쯤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지성체의 껍데기를 스탄턴이 잠들어 있는 지각권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감추게 한다.
그것이 끝나면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죽으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사고사로 가장할 예정이다. 한밤중에 계단에서 추락사를 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분명히 그녀의 자연사 이외에 의한 죽음은 남편의 죽음 직후라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로서 의혹을 초래할 테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이제 예사이다. 그녀가 죽고 나서 1분도 못 되어 지성체는 스탄턴에게 옮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험한 오직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인간들이 제아무리 이상하게 생각하건 걱정할 것은 없다. 지성체는 지각기관을 가동시켜 최근의 동향을 새로 재확인해보려고 했다. 무엇인가 변할 것이 있었는가 - 지성체가 부재중인 몇일 동안에 무엇인가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로스 미망인은 바로 그 때, 집 안에서 혼자서 통조림인지 찬거리의 준비인지 유리병을 소독하고 있었다. 창고 주변에도 창고에도 세 마리의 암소가 보이지 않을 뿐, 그밖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소는 틀림없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상없다.
그로스 미망인이 집에서 나갔다. 부엌에서 나가자마자 계단 아래의 지성체를 타 넘고 간다. 약간의 호기심과 달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터이다. 지성체는 지각을 뻗어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녀는 창고의 뒤를 돌아 쫓아오는 지성체의 지각권 한계점에서 걸음을 멈춘다.
"짐! 얘야, 짐!"
하고 부른다. 말이 분명히 들리지 않는 먼 거리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에서 지성체는 생각해냈다. 크레머의 아들이다. 그로스의 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지시대로 남은 여름방학을 그로스 부인 집에 기꺼이 일해주려 오겠다던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농토를 팔고 새로 오는 주인에게 인도하게 될 때까지인지는 모르지만 - .
지성체는 짐을 알고 있었으며 그 모습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크레머 집의 고양이 페리의 기억에서다. 토미 호프먼과 같은 나이 또래이며 건장한 청년이다. 나이를 먹어 쇠약해진 그로스 부인보다 이편이 옮아 타기에는 훨씬 좋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는 자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로스 부인이 소리쳤다.
"짐, 옥수수 대여섯 개를 따오라구. 점심에 쓰게 말이야. 그리고 야채밭을 지나는 길에 오이도 조금 따오라구"
그녀는 창고를 돌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짐 크레머는 하고 있던 콩 따기를 중단하고 옥수수밭으로 걸어가며 수건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분명히 씩씩해 보였고 나이는 토미와 비슷했으며 친구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토미는 알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토미는 농사일에 취미가 있었으며 평생 농부로 보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으나 짐에게는 훨씬 원대한 꿈이 있었다. 내년 6월에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서 공과(工科)를 공부할 예정이었다. 다만 공과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는 아직 뚜렷이 정해놓지는 않았다. 아마도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이 될 테지만 어차피 어느 편이건 큰돈을 벌게 될 것이다. 다만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기계를 좋아했으며 화학보다는 기계 쪽에 흥미가 있어 기왕이면 이 장점을 연구에서 살리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져볼 기회만 있으면 차는 물론 트랙터까지도 분해와 조립이 가능했고 대학을 나오면 기계 설계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과는 반대로 그는 농사일에는 취미도 흥미도 없었다. 그로스 부인과의 거래도 그렇게 함으로써 이번 여름 방학에 조성할 대학 자금이 늘어나니까 기뻐했던 것이다. 지불은 별로 좋지 않았으나 그런 대로 괜찮았다. 일이 계속되는 한 하루 꼬박 매달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의견대로 날마다 반은 이쪽에서 반은 집에서 일을 도울 생각이었으나 하루 종일 이쪽 일에 매달리지 않으면 그로스의 밭의 농작물은 시기를 놓쳐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해해 주셨다. 그는 가장 잘 익은 옥수수를 여섯 개쯤 따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개를 더 추가했다. 그 자신은 건강한 식욕을 가졌으며 밭에서의 노동으로 더욱 왕성해진 상태다. 그로스 부인인도 두 개는 먹을 수 있을 테고 그 자신도 여섯 개는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큰 오이를 여섯 개쯤 땄다. 지시하는 이상의 양이지만 남은 것은 두고 먹으면 된다. 창고를 돌아 따온 것을 집 안으로 가져간다. 부엌 테이블 위에 그것을 놓았다. 나서려고 하자 그로스 부인이 말했다.
"짐, 기다려. 곧 점심이야. 옥수수를 찌는데 시간은 걸리지 않을 테고 오이는 칼질만 하면 되고 다른 준비는 되어 있다구. 다시 콩밭까지 갈 필요가 없으니까 앉거나 누워서 잠시 쉬라구. 아주 많은 일을 했으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옥수수의 껍질을 벗겨드리고 가지요. 그리고 부르실 때까지 창고에서 잠시 누워있겠습니다."
"창고? 옆방에 소파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창고로 간다지? 거기에다 창고보다 여기가 부르기도 편한데."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옥수수의 껍질을 벗겨주고 거실로 들어가 소파를 더럽히지 않도록 신을 벗고 소파에 누웠다. 아직 이 시간에는 별로 지쳐있는 것은 아니지만 15분이나 20분이라도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라도 간단히 잠들 수가 있고 10분쯤만 자고나면 완전히 기분을 되찾을 수 있는 행복한 유형이었다. 눈을 감고 잠들어 버린다. 그의 마음 속에 갑자기 고통 -
순간적인 격심한 짧은 싸움이었다. 그대로 누워있다 -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성체가 이 짧은 낮잠의 시간을 이용하여 그의 기억을 분류 정리하여 정말 그 자신으로 돌아가는 - 적어도 짐 크레머답게 보이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 밤이 깊은 시간까지만이다. 아무래도 지성체는 늙어버린 독일인 농부의 미망인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로스 부인이 부엌에서 말을 걸어왔다.
"됐다구, 짐. 눈을 뜨라구!"
"예, 곧 가겠습니다."
짐은 대답을 하고 소파에서 발을 내려 신을 신기 위해서 엎드린다. 일어서서 부엌 입구에서 기지개를 켰다.
"음, 맛있는 냄새군."
"앉으라구. 뜨거울 때 먹도록 - "
배가 부르게 먹고나자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오후에 끝내기로 되어 있던 콩의 수확이 끝났다. 내일은 시내에 운반하여 통조림업자에게 팔기로 되어있는 콩이다. 그러나 지성체는 알고 있었으나 지금 지성체가 옮아 타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 짐 크레머는 내일이면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를 목장에서 데리고 와서 젖을 짜고 이것으로 짐의 오늘의 일은 끝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밤 부모와 같이 저녁을 먹은 짐 크레머는 평소보다 더욱 얌전했으나 그 이외는 별로 다른 데가 없었다. 단 하나 조금 다른 것은 그날 밤의 그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저녁상의 테이블이 정리되자 책장에서 백과사전 열 권을 집어내어 이 책에서는 하나의 항목을 읽고 다음 책으로 옮아져간다는 식으로 사전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쩐지 앞에서 읽은 항목에서 다음 것을 찾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 번은 테이블 옆을 지나던 아버지가 그가 <전자>의 항목을 읽다가 다음에는 <레이더>의 항을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짐,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 대신 전자공학을 생각하고 있니?"
아버지가 물었다. 짐은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살펴보고 있을 뿐입니다. 전자공학이나 전자물리학을 말입니다. 전자 물리학이란 점점 중요해지깐요. 만약 이것을 알게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과를 선정할 때까지는 아직 1년이나 있으니까."
"그렇지요.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 동안 자신이 뭘 할 것인가가 정해져 있다면 상당히 달라지겠지요. 거기에다가 학교는 다음 달부터 시작되니까 좀 더 확실한 과 선택이 좋다고 생각해서요."
크레머씨는 저편으로 얼굴을 돌렸다.
"좋아, 짐. 네가 결정할 일이야. 너는 나보다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 내일 아침 두세 시간 트럭을 빌릴 수 없을까요?"
"좋아. 어차피 그렇게 빨리는 사용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로스씨의 일은 어떻게 하고?"
"그것은 걱정마세요. 트럭을 이용하면 이편 일을 처리하면서 저쪽의 일도 볼 수 있으니까. 콩을 5부셀 시내에 운반하여 내일 팔아주어야 하니깐요. 달구지로 버톨스빌로 팔러가는 동안에 그린 베이에서 팔고 돌아올 수가 있으니깐요. 그린 베이쪽이 비싸게 팔릴 테고 거기서의 볼일도 볼 수 있으니깐요."
"볼일이란 뭐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어올 생각입니다. 백과사전의 항목만으로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해도 너무 개요만 써놓았으니까요. 좋은 전자물리학 입문서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알겠다, 짐. 도서관에도 좋은 책이 없거든 책방에 가라구. 책방에도 없거든 주문이라고 하자구. 내가 돈을 지불하지. 가능하면 5~6권을 구입하라구."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없으면 부탁합니다."
그는 백과사전을 책꽂이에 돌려놓았다. 짐 크레머에 옮아 타고 있던 지성체는 짐이 펼쳐서 훑어보던 페이지를 곧 기억에 새겨두었으나 그저 읽는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에 시간이 나면 지금 기억한 것을 소화시키고 정리할 생각이다.
그날 밤에는 그 후부터 짐으로 행세하며 라디오를 켜놓은 채 그날 우편으로 도착한 <파퓰러 메카닉스>를 읽었다. 아니 읽은 척을 했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열 시에 부모가 잠자리에 들자 그는 라디오를 껐으나 다시 얼마동안은 읽는 척을 했다. 짐은 그때까지 부모만큼 잠을 잘 필요는 없다고 행세해 왔으나 아침에도 같은 시각에 일어났던 터이라 30분이나 한 시간을 늦게 잔다고 걱정은 없었다. 열 시 반에 냉장고에 가서 언제나 하던 버릇대로 간식을 하고 나서 이 층의 자기 침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자지 않았다. 신을 벗고 침대 위에 편하게 누웠을 뿐 팔목시계의 야광침이 두 시 반을 가리킬 때까지 그렇게 지냈다.
그리하여 발소리를 죽여가며 무사히 집 밖으로 나갈 때까지 신은 안고 있었다. 밝은 달빛이 도움을 주는 반면 위험하기도 했다. 잘 보이기는 하되 누구에게 목격당할 위험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죽는 것은 내일 아침, 그린 베이로 가는 도중에서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도록 했다.
지성체는 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오늘 밤에는 필요 이상의 탐색이나 조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수긍이 가는 방법으로 짐을 죽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성체는 누군가가 오늘 밤 짐이 외출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을 신고하는 따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속하고 조용하게 그로스의 농장으로 간다. 부엌 출입구의 계단 아래에 손을 밀어넣고 흙을 파낸 다음 지성체의 육체와 껍데기를 집어낸다. 이제와서는 지성체는 그 껍데기를 떠나 짐 크레머를 옮아 타고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거기에 묻혀 있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도록 흔적이 앉지 않게 흙을 고른다. 껍데기를 누구에겐가에 발각되었을 때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듣지 않게 셔츠자락에 숨기고 그는 자신의 집을 지나 스탄턴의 집으로 향했다. 두 번씩이나 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다.
도중의 두 채의 농가에 개가 있으므로 도로를 지나면 짖어댈 것이며 누군가가 눈을 뜨고 창으로 내다보다가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로 가장자리의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스탄턴은 아마 잠자리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워있어도 눈을 뜨고 있으면 곤란하므로 짐은 마당을 지나 뒤로 돌아가기 위하여 신을 벗었다. 여기에도 뒷문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은닉처로서는 안성맞춤이다. 다시 껍데기를 묻었으나 이번에는 그로스의 집에서 했던 것보다 더욱 세심한 주의로 흙을 고르고 파고 묻은 흔적이 남지 않도록 했다.
그리하여 같은 코스를 반대로 돌아와 몰래 집에 들어서자 소리를 죽여가며 이층 침실로 올라간다. 사명을 다한 것이다. 이번에는 팬티 하나만 남기고 옷을 벗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깨우러 올 때 보게 될 것이며 언제나 그렇게 자기 때문이다. 일부러 여러 차례 몸부림을 쳐서 시트를 엉망으로 만든 다음 이번에는 어머니가 문을 열고 말을 걸어올 때까지 누워있었다. 졸리듯이 대답을 하고 하품을 하면서 침대 가장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아침 식사 때도 아직 졸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몇 번이나 하품을 해 보였다. 어머니가 어젯밤에는 평소보다 늦게까지 자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았는데 왜 그런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푹 잠이 든 것은 깨우기 한 시간 전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했다.
"장래 문제를 결정하려고 골똘히 생각했기 때문일 테지. 그런데 짐, 한 시간이나 두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면 그린 베이로 차로 가는 것은 삼가해야겠어. 핸들을 쥔 채 졸게 될는지도 모르지. 다시 한번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때? 그로스부인에게는 오늘은 오후밖에는 일할 수 없다고 내가 말해주지. 저편에도 한 번쯤은 말을 들어줄 테고 너도 점심후에 시내로 나가면 되잖겠니?"
짐은 다시 하품을 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일을 손에 잡으면 걱정없어요. 눈이 뜨이지요. 대신 오늘 밤에는 빨리 자도록 하겠어요."
30분 후에는 그는 버톨스빌을 빠져나가 그린 베이로 향하고 있었다. 그로스 부인에게도 콩을 트럭에 실으면서 하품을 하는 연극을 잊지 않았다.
부모와 그로스 부인을 그가 졸린 듯한 표정이었다는 증인으로 세울 수 있으니 도로에서 벗어나 가로수에 들이박거나 다른 차와 정면충돌을 해도 자살이라는 의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졸면서 운전했다고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그는 10마일쯤 앞에 있는 콘크리트 교각에 부딪힐 것으로 결정했다. 차를 중앙선 쪽으로 몰아 다른 차와 정면 충돌시키는 것이 충격은 강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도 동반자살로 끌어들이게 된다.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 지성체로서는 인간의 생명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었다 - 다만 사고가 확대되면 그만큼 소문도 퍼지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로 한 것이다.
교각이 다가온다. 시속 60마일이 넘는 속도로 정면에서 그것과 부딪친다. 충격은 충분했다. 당장에 지성체는 지금 스탄턴이 살고 있는 뒷문 계단 밑에 있는 자신의 육체로 돌아갔다.
9시 5분이 지나고 있었다.
18
스탄턴 박사는 수시로 눈이 띄여 합산(合算)을 해도 두세 시간밖에 자지 않은 셈이다. 일곱 시에 눈을 떴기 때문에 이미 날도 밝았고 더 이상의 수면을 단념했다.
아침식사를 만들고 커피를 앞에 놓고 시내에 나가도 좋을 시간이 되는 것을 기다린다. 어제 밤에는 저녁식사후에도 상당히 오래 동안 미스 타리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타이프의 일은 한밤중까지 아니면 좀 더 늦게까지 했다고 가정해도 완성되었는지 아닌지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서둔다고 하지만 아홉 시전에는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열 시경이 좋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차분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여덟 시 반에는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시가지로 향했다.
시가지에 도착해도 할 일은 없었다. 미스 타리로부터 리포트를 인수할 때까지는 우체국에도 보안관에게도 가고 싶지가 않았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맥주 한잔을 하고 싶어도 바는 열 시 전에는 열지 않는다.
박사는 커피라도 마시려고 레스토랑에 들렸다. 아홉 시 15분에 박사는 앞으로 15분을 더 기다렸다가 미스 타리에게 전화하여 일어나서 그와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보려고 생각했다. 이미 보안관도 윌콕스의 사무실에 나와 있을 시각이므로 지금 전화하여 오전 중에 만나자는 약속을 해둘 수도 있다. 보안관이 전화를 받기에 만날 시간을 말하려고 하자 보안관이 먼저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사님. 그대로 - "
한 1분이 지나자 보안관이 말했다.
"박사님. 오늘 아침은 안 되겠습니다. 오후에 다시 전화를 주셔야겠습니다. 지금 주 경찰의 라디오 카에서 소식을 전해와서요. 버톨스빌과 그린 베이의 사이에서 사고가 있답니다. 빨리 가야하므로 이만 실례."
전화는 끊어졌다.
박사는 수화기를 놓고 얼마 동안 전화를 노려보며 어쩌면 알고 있는 사람의 사고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안관은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안관으로서는 박사가 누구를 알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박사가 극소수의 인간밖에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고 거기에다가 보안관도 당황하고 있었다.
박사는 다시 잔돈을 넣고 보안관 사무실에 걸어보았다. 조수 한 사람이 나오자 박사는 이름을 대고 방금 보안관으로부터 사고 연락이 있어서 만나지 못하겠다는 연락이 있었음을 설명하고 사고로 부상자가 생겼다면 부상자의 이름은 모르는가 하고 물었다.
보안관 조수는 사람이 좋았다. 버톨스빌의 변두리에 사는 제임즈 크레머라는 고등학교 학생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린 베이로 트럭을 운전하여 혼자 가던 도중 졸면서 운전을 했는 듯 콘크리트의 교각에 정면으로 충돌하여 즉사했다는 것이다.
크레머의 이름이 분명히 머리에 새겨지기도 전에 박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스의 옆집 농가가 크레머였으며 지금 박사는 토미 호프먼과 같은 나이 또래의 고등학생 아들이 그로스의 농토가 팔릴 때까지 농사일을 돕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을 상기한다. 거기에다가 박사 집에 일주일 가까이나 - 어제까지 살고 있었던 회색 고양이의 주인도 크레머였다. 더우기 지금 크레머의 아들이 죽었다고 한다! 역시 자살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에 의한 죽음이다. 인간의 자살이 세건이며 더우기 각기 다른 동물의 자살과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스탄턴박사는 이제는 무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무서움이 사라진 것이다. 아주 냉정하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알게 된듯이 느껴진다. 그것도 빨리 손을 써야한다. 지금까지도 이미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은 이미 시골의 보안관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연방경찰과 일류 과학자들이 조사해야 할 일이다. 물론 보안관에게는 이야기해 주어야겠지. 연방경찰도 기초적 수사의 일부에는 그들을 이용하겠지만 이 사건은 시골 경찰이나 주 경찰의 작자들의 머리에는 과중한 짐이 될 것이다. 박사는 군(軍)의 주의를 끌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박사는 인공위성이나 달 탐험계획의 일을 통하여 군의 보안관계 간부 몇 사람과 연방경찰 관계자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박사를 잘 알고 있는 터이라 박사를 미치광이 취급을 하지 않고 박사의 이야기가 아무리 황당무계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진지하게 생각해준다는 점이었다. 미스 타리로부터 서류를 넘겨받는 대로 박사는 여기저기에 전화하여 여론을 환기시켜 갈 생각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그 전에 해두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것이다. 위험지대로부터의 퇴거이다!
그렇게 결심했을 때는 박사는 이미 차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 집에 가서 짐을 챙겨 스테이션 왜건에 실어야 한다. 그리고 미스 타리가 타이프 한 원고를 받는 대로 줄곧 그린 베이로 가서 그 곳 호텔을 본거지로 삼는다. 거기에서 장거리 전화를 걸 생각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반이라도 힘이 있다면 그 날 중으로 연방경찰이나 군 공안부의 작자들이 그 시내에 와줄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 작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짐 크레머의 죽음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조사하여 리포트에 추가한다.
미스 타리가 함께 그린 베이에 와주어서 시작한 일을 마지막까지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린 베이의 속기사에게 뒷일을 부탁할 수가 있다. 가능하면 그녀가 함께 가주는 편이 좋겠지만.
지성체는 여기서 그제사 지각을 한 바퀴 가동시켜 보고 스탄턴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아침 아홉 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스탄턴은 좀처럼 이렇게 이른 시간에 시내에 나가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차도 없는 것을 보니 낚시질이나 산책은 아닐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
지성체는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스탄턴의 소지품은 입고 있는 옷 이외는 그대로 남아있다. 개숫물통의 접시나 그밖의 증거에서 아침을 먹고 갔다는 것을 알았다. 틀림없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유는 모르지만 평소의 시간보다 빠른 시간에 시가지로 나갔을 것이다. 평소에는 점심 때나 오후 이른 시간에 시내에 나갔던 것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돌아올 것이다. 어쨌든 바라는 대로 낮잠이라도 자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오늘 밤 -
고양이에게 옮아 타고 이 집에서는 며칠을 살았으나 고양이에 옮아 타고 있는 기간은 본래의 지각은 구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닫혀져 있는 방이나 선반 속은 보이지 않았으며 덮어놓은 책이나 접어 둔 편지는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 시간이 생겨 그런 보지 못했던 곳을 보아두기 위하여 지각을 가동시킨다. 앞으로 참고가 되도록 - 일단 스탄턴에게 옮아 타 버리면 이미 자신의 지각은 사용할 수 없고 비교적 제한된 인간의 감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에 - 그는 이 건물과 그 속의 모든 것을 기억에 새겨두었다.
스탄턴에 옮아 타도 최소한 앞으로 1~2주간은 거기에서 살아볼 생각이다. 스탄턴의 지혜나 기억의 요점을 완전히 발굴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름 한 철을 여기서 지낼 예정인듯한 스탄턴이 갑자기 철수해 버린다면 의심을 살 것만 같다.
차가 다가오는 진동에 차가 지각권내에 들어오기 전에 메아리쳐 오고 있었다. 스탄턴의 스테이션 왜건이며 스탄턴 혼자 타고 있다. 부엌의 시계에 의하면 열 시였다.
스탄턴이 현관에서 들어서자 건물 안의 조사를 마친 지성체는 지각을 방금 스탄턴이 내린 차에게로 돌렸다. 갑자기 여기서 처음으로 무엇인가 실수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낡은 방수포에 감싸인 작은 회색 고양이의 익사체가 실려 있다. 이보다 두 번째 앞서 옮아 타고 있는 고양이다. 어째서 스탄턴이 그것을 발견하고 왜 차에 싣고 있는가? 숲속의 시냇물까지 좇아갔단 말인가? 그런 짓은 가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건물을 돌아보고 쫓아오는 것이 보이지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촉촉하게 내리던 이슬비 -
그렇다, 스탄턴에게 미행당할 발자국을 남기고 말았구나. 또 다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쨌든 스탄턴은 방금 돌아왔고 조만간 잠을 자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그가 어떤 의혹을 품었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스탄턴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벽장에서 여행 가방 둘을 끌어내어 이층으로 올라가서 옷을 거기에 넣더니 욕실에서 면도칼이나 일상용품을 모으고 있다. 철수하기 위하여 짐을 꾸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꾸리는 것을 보니 돌아오지 않을 작정인듯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버려둘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만은 저지시켜야 한다.
스탄턴박사는 여행가방을 스테이션 왜건에다 싣고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재빨리 돌아보더니 창을 모두 채우고 뒷문에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을 확인한다. 부엌과 지하실의 가솔린엔진과 발전기의 스위치를 끊어놓을까 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냉장고에는 아직 식료품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4~5일은 더 갈 것만 같았다. 거기에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닐 것이며 여기에서 자지는 않을 테지만 다시 오기는 할 것이다. 누구로 정해질지는 모르지만 조사 책임자를 여기에 안내하게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전기는 그대로 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으로 창고로 쓰고 있는 방의 낚시도구와 총, 탄환 이외는 모두 처리된 셈이다. 탄환과 뇌관의 상자는 고기 바구니에 넣어 운반하고 장화까지 포함한 다른 낚시도구를 스테이션 왜건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총을 가지러 갔다. 권총과 라이플과 2연발식 산탄총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권총을 포켓에 넣고 두 정의 총을 겨드랑이에 끼고 비어 있는 손으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포켓에 넣는다. 그리하여 스테이션 왜건으로 다가갔다. 거의 다 온 지점에서 도어의 손잡이에 손을 뻗는데 노루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큰 수놈이다.
50피트쯤 앞에, 숲이 끝나는 지점과 이 집 옆에서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숨으려고 하지 않고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스탄턴을 노려보며 머리를 숙여 지면을 긁어대며 덤벼들 자세를 취한다.
그는 재빨리 차에 올라 엔진을 걸었다.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예감이 앞섰으나 길은 하나밖에 없다. 차에 기어를 넣고 출발시킨다. 수노루의 옆 수 야드의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 노루 쪽에서 얌전히 지켜보기만 한다면 도망칠 수도 있는데. 수노루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가 움직이는 순간 뛰어들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그런 여유는 없었으나 충격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차를 후진시키려고 시도했다.
수노루는 머리를 숙여 200파운드의 로켓탄처럼 라디에타 한가운데, 헤드라이트의 중간점에 부딪쳐 다음 순간에는 뿔이 부러지고 머리는 박살, 목이 꺾이어 200파운드의 수노루의 시체로 변했다.
차는 2피트나 뒤로 밀려나고 박사는 마지막 순간에 앞 좌석에 몸을 옆으로 밀어붙여 위험한 순간 무사했다. 바로 세우고 있었다면 목이 부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천히 일어났다. 엔진은 꺼졌다. 그런데 기어가 전진으로 들어있을 때 후퇴했기 때문에 망가졌는지도 모른다. 시동을 껐다. 차를 다시금 전진시켜보려다 하지 않았다. 수리공장으로 운반하여 적어도 라디에타와 판을 새로 갈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만약에 차축(車軸)이 부러지는 손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동물에 옮아 타고 번갈아가며 습격을 당한다면 라이플은 22구경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으며 권총과 산탄총은 있어도 도저히 시내까지 걸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가까운 농가에 전화를
빌리러 갈 수도 없을 것이다. 암소가 몇 마리나 있고 나무 그늘에는 수소까지 낮잠을 자고 있는 초원의 옆길도 도저히 갈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도로의 반대쪽은 길게 이어지는 원시림이며 노루도 있을 테고 곰도 한두 마리, 거기에다 삵괭이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훨씬 가공할만한 가능성도 있다. 적이 낮잠을 자고있는 인간을 옮아탄다면? 크레머의 부인이나 그로스 부인이 만약 산탄총이나 라이플을 들고 도로에 나와서 저격을 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격을 할 것인가? 물론 저격해온다고 하더라도 그녀들은 제정신이 아닌 처지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여자를 쏠 수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거기에다 도움을 청하려가는 도중에 얼마나 많은 동물을 살해하고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인다고 해도 아마도 조만간 자신도 누구에겐가 피살되고 말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적인 지성체는 단 하나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적어도 분명히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이편에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잇따라 여러 가지에 옮아 타고 공격을 가해오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냉전(冷戰)은 끝났다고 그는 생각했다. 적은 - 어떤 적이건 - 이미 가면은 벗어던졌다. 적어도 그, 스탄턴 박사는 이제 그 이상 힘을 숨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여기에 가두고 싶었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박사는 뒤로 손을 뻗어 산탄총과 권총에 탄환을 장진하고 각기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
기묘한 이야기지만 전혀 두렵지도 않다. 오히려 더욱 냉정하게 차분하게 분석적으로 변해갔다. 거기에다가 이 싸움에 승리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싸움에 이기기 위한 최대의 무기는 두뇌이다. 화기는 순간적인 전투에는 승리해도 그것만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는 없다.
먼저 당면 문제는 이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차 안에 있는 편이 집에 들어가기보다는 안전할까? 안전이라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집안이 훨씬 지내기에 편하고 특히 진지로서는 넓은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원조를 구하러 간다면 죽이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저지시키겠다는 것을 알린 셈이다. 그러나 이 포위를 인정하고 체념하여 나가려고 하지 않아도 역시 죽이려고 할까? 그로서는 분명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가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적은 죽이려고 오지 않는다는 강한 증거가 있었다. 적이 만약에 그를 곧 살해할 생각이었다면 그는 이미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는 차 옆으로 다가갈 때까지 노루가 그런 곳에 서 있던 것은 몰랐으나 저편에서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 빨리 덤벼들 수도 있었으며 차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부딪쳐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그때는 어느 총에도 탄환이 장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집 안이 좋겠어. 그는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산탄총을 겨누며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어디에도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 위를 쳐다본다. 100피트 정도의 상공에 들오리가 한 마리 천천히 원을 그리고 있다. 독수리처럼 날고 있다. 오리는 저렇게 날지 않는다. 하늘로부터의 공격인가? 시가지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다가올 위험에 대해서 그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지금 하늘로부터 상당한 무게를 가진 새의 돌진공격을 받으면 화가 나서 미쳐날뛰는 소나 말의 공격을 받았을 때와 같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오리에게 조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면서 그는 집을 향해 걸었다. 반쯤 갔을 때 갑자기 오리가 급강하해온다. 아차하고 총을 들어 저격자세를 취하다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오리는 그에게 급강하 폭격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10야드쯤 떨어진 마당에 떨어져 왔던 것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으시시한 진동을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뜰의 오래 동안 밟아서 굳어진 지면에 구멍이 난 것이다.
생각에 잠기면서 박사는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채웠다. 분명히 적은 그를 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가두어 두고자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오리의 급강하는 만약 그를 노리고 있었다면 그토록 먼 거리를 빗나갈 리가 없다. 적은 다만 몸부림치며 도망치려고 해도 헛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위 운동을 했을 뿐이다.
그도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나 만약 그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면 곤란하므로 도망을 방지하는 또 하나의 무서운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들오리는 그를 노렸건 노리지 않았건 거침없이 급강하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자살시키기 위하여 하는 짓이니까 적에게는 손해가 없는 짓이다. 그러므로 적은 여기에 가두어 놓는 한 그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산탄총의 위의 총신에도 탄환을 다시 장진하고 박사는 그것을 현관 옆의 창에 세워두었다. 포켓의 남은 탄환을 모두 내어 소파의 가장자리의 손이 닿는 곳에 놓는다.
그리하여 창을 향해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지금의 그것은 자신의 지나친 사고에서 오는 착각이었을까? 여기에서 나가 걸어서 시내까지 가도 괜찮을까? 노루만으로는 증거로서 불충분했다고 하더라도 급강하해 온 오리는 재강조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아무런 공격도 없다. 여기에서 나가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공격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일까? 맥주를 내오려고 냉장고에 가려다가 생각을 달리하여 돌아온다. 맥주의 작용은 근소하지만 사고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설사 사소한 일이라도 어떤 엄청난 결과로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적의 정체는 어떤 것일까? 인간일까? 아마도 다른 생물의 마음을 지배하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돌연변이체(突然變異體)일 것이다. 악마일까? 우주인일까? 아마도 이 우주인이라는 것이 가장 가까울 것만 같다.
미스 타리가 말한 바와 같이 우주에는 수억이라는 생물이 살 수 있는 천체가 있는 것이다. 그 중의 어느 것에 생명과 지식이 발달되어 있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구만이 예외라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단 말인가? 거기에다가 왜 다른 지성을 가진 생물이 우주여행의 수단을 개발하지 못한다고 할 수 없지는 않는가? 인간만이 최초로 우주여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분명히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이쪽이 가능성이 있는 것만 같다. 거기에다가 이쪽이 위험성도 크다. 그러나 왜 그는 지금 혼자만 고립된 것처럼 공격을 당하고 있을까? 적의 위험성을 알고 있거나 깨닫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적이 인간이건 무엇이건 그는 그것을 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적은 눈치채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는 적의 위험성은 알고 있다. 물론 적이 회색 고양이에게 옮아 타고 닷새 동안이나 그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저편은 그가 미스 타리에게 구술한 것을 듣고 있으며 그 숱한 리포트를 요로((要路)의 친구에게 보낼 예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더우기 그가 고양이를 잡아놓고 관찰하고 있는 동안, 저편에서도 계속 그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는 적에게 위험한 존재이며 적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적은 그를 죽이지 않았을까? 차에 타고서가 아니라 타기 전에 노루에게 부딪쳤다면 편안하게 죽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오리의 급강하 폭격도 살해할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지면에 갑자기 부딪혀가는 것을 보면 진정으로 그를 노렸다고 할 수가 없다. 적은 그를 살려놓고 싶지만 다른 데에서는 안 되고 여기에서만 살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에게 옮아 타고 싶어서일까? 생각이 가능한 일이지만 왜 지금까지 옮아 타지 않았을까? 왜 옮아 타려고 하지 않았을까?
밖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스토브로 커피를 탈 물을 끓였다. 적이 그에게 옮겨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상황이 필요한 것일까? 갑자기 그는 해답인 듯 한 것을 생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것 같다. 토미 호프먼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옮아 탔던 것이다. 지그프리드 그로스도 그랬다. 짐 크레머도 확실치는 않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거기에다가 짐승의 경우도 그렇다. 대다수의 짐승은 특히 고양이와 개는 밤낮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적이 그에게 옮아 타기 위해서는 그가 잠들 때까지 여기에 가두어두자는 생각이라면 왜 어제 밤에 옮아 타지 않았을까? 어제 밤에는 푹 잠들지 못했으나 단속적으로 조금은 잤다.
여기에서 해답이 나온 것이다. 적어도 답의 하나는 나온 것이다. 이유야 무엇이건 적은 회색 고양이가 죽은 후 다음 호스트로서 크레머의 아들에게 옮아탄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자살이 아니라 사고를 가장한 사망방식을 택하게 할 기회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별도의 증거의 하나가 된다. 적어도 적이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며 한꺼번에 하나의 동물밖에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만약에 그것만이 밝혀진다면 -
갑자기 결심을 하자 박사는 산탄총을 들고 입구로 가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지붕이 없는 작은 포치에 나가 하늘을 쳐다본다. 새가 하늘에서 원을 그리고 있다. 큰 새가 대여섯 마리나 된다. 새의 수는 복수이다. 그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었을까?
여기에서 새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 좀 더 자세히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새는 적이 아닌 단순한 독수리였으며 죽은 노루 위를 썩은 고기의 향찬을 위해 날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의 새다. 그는 독수리를 아름답다고 생각한 일은 없으나 이때만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는데 숲쪽에서 다른 새가 오는 것이 보였다. 또 오리인 듯했다. 그것을 시간을 허비하면서 멀리 있는 새를 찾아왔다는 것은 아마도 그 새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적은 위험한 놈이지만 거기에는 한도가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서 희망도 생겼다. 미스 타리는 그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는 걱정하여 보안관에게 연락하겠지. 만약에 보안관이 이리로 오다가 보안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살아서 여기에 도착할 수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동태를 살펴보려고 올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공격을 받으면 주 경찰이 출동할 것이다.
무장한 인간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면 적이 무엇을 옮아 타고 덮쳐 오건 한 번에 한 마리씩이니까 여기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언젠가는 구원의 손이 뻗어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잠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19
흡사 영원으로 생각될 만큼의 오랜 시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고 잠을 잘 시간이 되었다. 박사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층도 아래층도 조명이란 조명은 모두 켰다. 그런데 전등이 한꺼번에 모두 꺼진다. 발전기일까? 물론 그렇다. 발전기를 움직이고 있는 가솔린엔진은 연료가 바닥난 것도 아니다. 탱크에는 며칠 분의 가솔린이 들어있다. 그러나 발전기도 엔진도 멎어버린 것이다. 적이 어딘가에 옮아 탄 것이다.
쥐일까? 아마도 쥐가 틀림없다. 지하실에 있었다면 집에 있던 쥐일 테고 그렇지 않다면 들쥐에 옮아 타고 어떻게든지 집안에 침입해서 가솔린 모터의 덮개를 뚫고 쥐는 지금 정류자의 주변에서 피투성이로 죽어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엔진이나 발동기를 다시 움직인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짓일 것이다. 최초의 쥐가 있었던 부근에는 그밖에도 쥐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쥐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성체의 명령을 받은 벌레가 엔진이나 발동기를 합선시키는 곳으로 뛰어든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두움. 무엇보다 먼저 잠이 오는 생리현상과 싸워야 한다. 잠이 들면 끝장이다. 달이 나왔다. 반달보다는 조금 큰 달이었다. 개어있는 밤하늘이라 밝았다. 지금 집 밖은 어느 방향이건 잘 보인다. 거기에다가 정면 창에서 달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거실 안은 잘 보인다. 그 무엇에도 부딪치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밝음이다. 손전등도 있고 예비 전지도 함께 있었으나 그래도 밤새 켜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에 대비하여 아껴두어야 한다.
언제까지 눈을 뜨고 버틸 수 있을까? 어젯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이미 피로를 느끼고 있었으나 앞으로 24시간은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배도 고파왔으나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했다. 식료품이란 먹기 전부터 피로를 느끼고 있는 인간에게는 먹으면 졸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배가 부른 인간보다 공복 상태가 눈을 뜨고 있는 데는 유리하다. 적어도 공복에서 영양실조로 몸이 쇠약해질 때까지는 그렇다. 여기에서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지 않고 견디는 시간보다 먹지 않고 견디는 시간 쪽이 훨씬 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좀 더 잘 생각해보려고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든지 역습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적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적은 형체가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육체를 가졌을까? 무엇인가에 옮아 타고 있는 동안은 육체는 잠을 자고 있을까? 그는 육체가 틀림없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첫째로 그는 형체가 없는 존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그프리드 그로스의 자살에서 연관된 기묘한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기의 수프스톡 한 병과 그래이비가 항아리에 하나가 그날 밤 엘자 그로스의 냉장고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로스가 그런 것을 그런 형태로 마셔버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그런 것을 하수구에 쏟아 버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구의 생물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생체구조의 생물에게는 양분이 될 수 있는 주요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로스는 적이 육체에 양분을 주기 위해서 옮아 탄 것으로 그것이 끝나자 피살된 것은 아닐까? 으스스한 이야기이지만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보니 이번에 일어난 모든 일을 통하여 으스스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나? 적어도 이것은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박사는 부엌으로 가서 가능한 한 손전등을 켜는 시간을 절약하면서 커피를 다시 포트에 잔뜩 끓였다. 그것을 커피 잔에 따라 거실로 돌아와서 다시 소파의 팔걸이에 앉아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적의 육체는 어디에 있을까? 적의 활동권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아마도 이 부근 어디에 있을 것이다. 이 집은 공격의 촛점이었다. 아마도 이 집에서 보이는 곳일 테지. 아니면 이 집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적이 그런 위험을 범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나 그것이 반격의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는 불가능하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당장 집 안을 철저히 조사하여 무엇인가 생물을 발견하면 무엇이든지 쏘아 버릴 작정이다.
기나 긴 밤이었으며 이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밤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밤도 밝았다. 밝아지자 집 안을 방마다 철저하게 살펴본 다음 지하실로 들어갔다. 물론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몰랐다. 얼마나 작은 것인지, 얼마나 큰 것인지, 상대의 짐작은 가지 않았으나 적이 사소한 잡동사니로 변하거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면 몰라도 그 어느 편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집 안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실에서는 발전기에 대한 그의 육감이 적중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쥐와 같은 것이 덮개 밑으로 숨어들어 지금은 붉은 반점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청소하여 발전기를 다시 움직이게 할 수는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에 적이 전기를 정지시킬 생각이면 그가 올라가 버린 순간, 다른 작은 동물을 구사하여 발전기이건 엔진이건 정지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기나 긴 밤이 물러가는 동안에 그는 나머지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적은 무엇인가에 옮아 타고 있는 동안은 그 동물을 살해해야 다음 동물로 옮겨 갈 수가 있으니까 어떤 의미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로잡힌 상태에 있는 것과 같으므로 거기에 파고들어 박사가 입장을 역전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번에 적이 옮아탄 동물이 무엇이건 거기에 가벼운 부상을 입혀 사로잡는다든가, 상처없이 사로잡든가 하여 더우기 그것이 자살할 수 없는 상태로 살려놓고 잡는다면 적은 당분간은 활동하지 못할 것이다. 살아서 무사히 시내로 나갈 수 있는 동안은 그렇게 해 둘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있을까? 그는 천장을 쳐다보고 나방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나방 따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은 없지만 적은 그것을 지배하여 - 다른 수단보다 그의 행동을 충분히 탐색할 수 있도록 스파이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일어서서 천천히 창고로 쓰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재빨리 움직여 매우 거친 포충망(捕蟲網)을 만들었다. 옷걸이를 굽혀 즉석 고리를 만들고 침낭을 펼쳐 머리 위의 벌레를 막기 위한 거친 섬유의 천을 뜯어 옷걸이로 만든 고리에 부착시킨 것이다. 그 끝을 빗자루의 자루에 부착시킬 수가 있었다. 진짜 포충망과 비교한다면 도저히 비교가 안 될 만큼 거친 것이었으나 그런 대로 목적을 위해서는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방은 여전히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몇 번이나 실패했으나 겨우 잡을 수가 있었다. 날개에 상처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나방을 잡아낸다. 그리고 부엌에서 쓰는 성냥통을 찾아내어 안을 비우고 나방을 안에 넣고 닫아버렸다. 나방은 얼마 동안 살아있을 것이다. 도망칠 수 있을 만큼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만약 저 나방이 적의 - .
당장에 시험을 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탄총을 들고 현관문을 밀치며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살폈으나 협박을 해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머리 위의 하늘에도 보이는 것은 없다.
숨을 깊이 내려 쉬고 그는 걷기 시작했다. 열 발자국도 떼어놓기 전에 문득 시선을 들었다. 매의 큰 놈이 처마 밑에서 후다닥 날아올라 원을 그리며 상승해가고 있었다. 그놈이 급강하해온다. 죽이려고 노리고 있는듯 겁을 주어 집안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위험한 순간 산탄총을 겨누어 매가 유도미사일처럼 머리 위 불과 8피트인가 10피트로 다가왔을 때 방아쇠를 당겼다. 피와 깃털이 흩어지며 박사의 얼굴에 정면으로 뿌려졌다. 매의 잔해는 직선 코스에서 빗나가 불과 그로부터 2피트의 지상에 부딪혔다.
박사는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얼굴의 피와 깃털을 씻고 옷에 솔질을 한다. 그리하여 성냥갑을 열어 나방을 놓아준다. 나방은 단순한 나방이며 적이 옮아 탄 것이 아니었다. 생각은 좋았으나 적도 그렇게 간단히 승리를 안겨줄 생각은 아닌 듯했다.
20
그리고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 분 일 분이 흡사 한 시간처럼 느리게 지나간다. 이제 그는 24시간이 넘도록 전혀 눈도 붙이지 않고 일어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 전의 24시간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3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이다.
거의 모든 시간을 그는 창에서 창으로 걸어 다니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아파왔고 지금 잠시라도 눕게 해준다면 1,000달러를 주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위험해서 그런 짓은 할 수가 없다. 편안하게 걸터앉아 몸을 뒤로 제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걸터앉을 수가 있는 것은 소파의 팔걸이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일과 부엌에 놓인 의자에 얕게 걸터앉을 정도였다.
수시로 커피를 마셨으나 이제 그는 식은 커피밖에는 마시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그는 따뜻한 액체를 다량으로 마신다는 것은 잠을 초래할 수가 있으며 카페인 효과의 적어도 일부를 역작용으로 돌리고 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심때까지의 시간은 지루하게 지나갔다. 틀림없이 보안관이나 주 경찰이 와줄 것이다. 미스 타리가 틀림없이 점심때까지는 어느 쪽엔가에 연락하여, 어제 약속 시간까지 그가 오지 않았으며 무엇인가 곤란한 일이나 위험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이 이상 눈을 뜨고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걸터앉는다는 것도 위험해졌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무리하게 뜨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평소에는 담배를 많이 피는 편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파이프를 빨고 있었던 탓으로 입안이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지금 그에게는 각성제가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의 가치처럼 생각되었으나 공교롭게도 그는 그런 것이 없었으며 휴가차 와서 밤샘을 하자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점심때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전면 창가에 서서 이마를 유리창에 대고 잠시라도 눈을 붙였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가오는 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산탄총을 들고 현관을 열었으나 곧 안쪽에 서서 보안관인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쪽으로 덤벼드는 것이 있을 테니까 그 원호를 위한 대비태세를 취했다.
이윽고 차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작은 차였으며 폭스바겐이었다. 타고 있는 것은 미스 타리 혼자였다. 그는 당황하여 돌아가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방향 전환을 하여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 .
그러나 그녀는 스테이션 왜건과 노루의 시체에 정신을 팔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그대로 차를 진행시킨다. 노루의 시체에서 독수리가 한가하게 고개를 쳐들고 차 가까이에서 날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다. 그녀는 출입구에 나와서 그를 보기 전에 엔진을 끊어 버렸다. 박사는 소리쳤다.
"미스 타리. 차를 돌려 시내로 돌아가야 해. 빨리! 주 경찰에 알려서 - ."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발굽이 땅을 차는 소리 - 수소가 도로의 바로 100피트 앞에서 뛰어오는 참이다. 폭스바겐은 박사로부터 12피트 정도의 위치이다. 여기에서 그는 위험하지만 승리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에 소를 죽이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놓으면 - 다리라도 꺾고 자살을 못하게 해놓으면 적은 다른 동물에 옮아 탈 자유를 잃게 되면 - .
미스 타리에게 차에 있으라고 소리치고 그 옆으로 달려가서 산탄창을 겨눈다. 거리의 측정이 잘 되어 아래 쪽을 노려 제대로 쏘면 - .
솜씨는 좋았으나 흥분한 나머지 조금 일찍 쏘아 버렸다. 산탄이 소에게 상처를 입혔으나 멈추어 서게 할 수는 없었다. 분노의 신음소리를 내고 폭스바겐으로부터 그에게로 머리를 돌려 곧바로 돌진해간다. 그때는 두 방째를 쏘고 있었다. 불과 10피트의 가까운 거리였으므로 치명상이 되어 버렸다.
소는 죽었다. 그 때까지의 타성으로 돌진해오기 때문에 그는 옆으로 비켜섰으나 소는 그의 옆을 지나서야 쓰러져 죽어 버렸다. 그는 폭스바겐의 문을 열었다.
"미스 타리,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구. 다음 공격까지의 한순간이지만 꾸물댈 수는 없다구."
박사는 그녀를 재촉했다. 산탄총에는 탄환이 장전되어 있지 않으며 나머지 탄환은 집 안에 있다. 문에서 돌아보며 위를 쳐다보았다. 독수리는 아닌데 무엇인가 큰 새가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덮쳐오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채웠다. 재빨리 산탄총에 탄환을 장전하면서 그는 어제저녁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머나, 박사님. 보안관에게 좀 더 강하게 말할 걸 그랬어요. 어제 오후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이 난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와보기는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오늘 아침까지 연락이 취해지지가 않아서요. 오늘 아침에 보안관은 어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으며 내일까지도 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말을 나의 지나친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서둘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박사는 우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일......까지는 견디지 못할 걸요. 그때까지는 일어나 있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거기에다가 내 생각이 적중하고 있다면 잠이 들면 끝장이란 말입니다. 미스 타리. 당신은 자신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당신도 같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내 차로 시가지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나요? 당신이 총을 쏘고 내가 운전을 하며."
"99%까지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 수소가 덤비면...... 암소도 있고요. 숲에는 노루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아도, 큰 새라면 당신 차의 지붕은 급강하로 꿰뚫고 말 것입니다. 당신이 없어지면 얼마만에 모두가 알아차릴까요? 오늘 밤에 돌아가지 않으면 이웃 사람들이 깨닫게 될까요?"
"그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곧 잘 그린 베이에 영화도 보러 가고 거기에 있는 이종 동생에게 들려 언제나 거기서 자고 오니깐요. 이웃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오늘 밤 돌아가지 않아도 예사로 생각할 것이며 걱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아, 자신이 올 것이 아니라 주 경찰에 전화라도 할 걸 - 주 경찰에 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스탄턴 박사는 힘없이 손을 저었다.
"미스 타리. 자신을 책망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도 최초에 실수를 - 그것도 두 가지나 해 버렸습니다. 회색 고양이가 자살한 후 그저께 밤부터 여기에 자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것때문에 이 일대가 적어도 이 집이 초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짐 크레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짐 같은 것을 가지러 오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그것이 큰 실수였지요. 덕택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박사는 탄식을 했다.
"커피라도 마십시다. 지금까지 찬 것만 마셨지만 이제는 대화할 상대가 있으니까 위험하지만 한 잔쯤 뜨거운 것을 마셔도 되겠지요. 거기에다 걸터앉아서 당신에게 - 말을 할 수도 있고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겠지요. 이야기하는 동안에 무엇인가 좋은 지혜가 나올지도 모르지요. 어떻게든지 지혜를 짜내야 하니까."
부엌에서 그녀가 새로 커피를 끓이는 동안에 벽에 기대어 멍청한 심정으로 참고 견디었다. 이야기 할 것이 또 있었으므로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였다. 미스 타리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우주의 다른 생물입니다. 박사님, 우리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 적어도 우리가 자신들을 지키려고 싸우고 있는 그 상대는 지구의 지성을 초월한 그 무엇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요? 달리 무엇을 생각할 수 있나요?"
"돌연변이로 생긴 인간일지도 모르지요. 태어나면서부터인가, 후에 손에 넣은 것인가, 찰즈 포드가 말하는 비정상의 재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정말로 그런 것을 믿습니까?"
박사는 말한다.
"아니. 거기에다 후에 생각할 수 있는 악마라든가 악귀(惡鬼)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거기까지는 분명히 한정을 지우고 싶지가 않습니다. 분명히 규명하든가 지고 마는 것일까, 그 때까지는 적이라고 불러둡시다. 적에게 어떤 학명(學名)을 붙일 것인가, 그런 걱정은 그만두기로 합시다. 걱정해야 할 것은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먼저 무엇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이편에 어떻게 해 볼 기회가 있다면 어떤 기회일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적이 나를 여기에다 잠들지 않고는 걸릴 수 없게 될 때까지 가두어 두고자 한다는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무엇인가 생각이 있습니까?"
그는 적이 옮아 타고 있는 동물을 해치고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얻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큰 짐승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살할 수 없도록 산탄총으로 상처를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움직일 수 있도록 다리를 꺾어놓아야 합니다."
"라이플은 없습니까?"
"있기는 해도 22구경이며 그것도 차 안에 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가지러 갈 수도 없습니다. 라이플 류의 긴 총탄을 가지고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여기에는 짧은 총탄밖에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사격연습밖에는 할 생각이 없었으니깐요. 권총도 있지만 덮쳐오는 짐승을 죽이지 않고 권총으로 상처를 줄만큼 솜씨가 좋지 않습니다. 그게 위험하기도 하고."
박사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적은 부상을 입히려는 위험을 깨닫고 새를 이용하기로 작심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상공에서 산탄의 4~5 방을 명중시켜 부상하도록 발사를 해도 저편에는 이미 급강하로 들어가 떨어져 죽기로 하고 있으니 ...... 아아, 이제 졸려 죽겠군."
"무엇인가 내가 할 일이 있습니까?"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됩니다. 그것은 그렇고 나는 눈을 뜨고 버티기 위하여 단식투쟁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먹고싶으면 먹도록 하시오. 냉장고는 어제 저녁부터 멎어 있지만 안에 위험한 것도 있으나 통조림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커피가 되자 그녀는 두 컵에 따라 테이블로 가져왔다.
"그건 곤란하게 되었군요. 그러나 아직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커피는 포트에 두세 잔 여분을 끓여놓아도 좋을까요?"
"생각이 있으면 더 끓이세요. 그러나 왜 더 끓였지요?"
"생각해 보세요. 상대방은 전기도 끊었으니 가스도 정지시킬지도 모릅니다. 거기에다가 설사 두 사람 모두가 찬 것을 먹지 않을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커피없이는 곤란할 테지요."
"옮아탈 수 있는 인간이 없는 한 가스는 정지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프로판 가스 통의 밸브를 틀어야 하니까, 두세 잔 더 끓이겠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그녀는 다시 물을 받아 스토브에 올려놓고 테이블에 와서 박사와 마주 앉는다.
"수도는 어떻습니까? 물이 안나올 위험성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만일을 위해 양동이에 두세 통 받아놓아도 좋습니다."
그는 이 집의 수도의 구조를 설명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우물에서 지붕 위의 탱크에 물을 퍼올리는 펌프는 파괴하기가 쉽습니다만 탱크는 무겁고 단단하며 적어도 반 이상은 들어있으니까요. 물은 필요 이상으로 있습니다. 200갈론은 있으니까."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물이라고 하니 생각이 났습니다. 이것을 마시고 나면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찬물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오늘 아침에 그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당신이 이층에 가있는 동안 나는 무엇인가를 먹어두겠습니다. 당신은 몹시 배고 고플 테니까, 그렇게 하면 먹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될 테고."
"좋습니다. 그러나 수시로 창밖을 보셨다가 무엇인가가 눈에 띄거든 소리를 질러 주세요. 곧 나올 수 있게 가운을 욕실에다 갖다 놓을 테니까요. 그래서 생각이 났는데 - ."
박사가 일어서려고 했으나 미스 타리는 직업에서 몸에 익은 동작으로 그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하고 일어서서 아래층의 창을 살펴보러 갔다.
노루의 시체에는 독수리들이 모여 있는 반면 아무것도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차 다시 올라왔다.
아직도 수소의 시체에는 한 마리도 독수리가 모여있지 않다. 노루는 살이 찌고 독수리의 기호에 맞는 모양이다. 박사는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편의 누군가가 나가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 . 일종의 끈기 시합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저편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미 오래전에 들어왔을 텐데요. 우리가 먼저 쏘아 눕히지 않는다면 대형 짐승이나 다른 무엇을 이용해서라도 어느 쪽 문을 파괴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면 인간에게 옮겨타고서. 어째서 저편은 인간을 보내오지 않는지 이상하지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면 그런 짓을 할 까닭이 없을 테고 우리가 나가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죽이려고 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생각하면 저편이 인간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덤벼오는 수소의 다리를 쏜다는 것은 위험하지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간단하지요."
"박사님, 내가 왔을 때 내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요? 내 다리라면 간단히 저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웃었다.
"꿈에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요. 거기에다가 생각해보면 그 때 바로 뒤를 쫓아온 수소라는 충분한 증거가 있었지요. 적이 한꺼번에 한 마리밖에는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두 팔을 펼치고 하품을 무리하게 참았다.
"그럼 찬물에 목욕이라도 해볼까. 물을 받는 동안 이층의 창밖도 살펴보고 오지요. 물 소리가 멎을 때까지 당신은 경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이층으로 올라가 30분 후에는 외모만은 조금 기운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내려왔다. 미스 타리는 식사를 마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거실에 앉아 교대로 이야기를 했다. 박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기적으로 창밖의 감시는 자신이 해야 한다며 막무가내였다. 간혹 걸어 다니는 괴로움보다 그녀가 자리를 뜨고나면 혼자 남아 잠에 취해 버릴 위험성이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느릿느릿 시간이 경과해 간다. 두 사람은 서로 어떤 모험을 생각했으나 실제적인 것이 못되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실행을 못한다. 한 번은 박사가 산탄총을 들고 적의 포위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보았다. 높은 하늘에서 원을 그리고 있던 새가 급강하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쏘아버렸다. 산탄을 두세 개 맞고 부상을 했을 테지만 새의 진로를 벗어나게 할 만큼의 상처는 아니였는듯 위험할 만큼 가까이로 다가온 것을 두 방째로 쏘아버렸다.
그래도 쏜 순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새와 부딪칠 뻔 했다. 새는 꽈당하고 입구의 문틈에 돌진해 왔다. 탄환을 다시 장진하고 총 끝으로 죽은 새를 - 매였다 - 포치에서 떨어뜨렸다. 피가 구두와 바지 자락에 튀겨왔다. 갈아입기 위하여 이층으로 올라와서 다시 한 번 냉수욕을 했다. 두 번째의 물은 그대로 두었다.
목욕탕의 물을 받았을 때 100갤런이라고 믿었던 탱크의 물도 그렇게 몇 번이나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냉수욕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실제로 하마트면 욕조 속에서 잠들 것만 같아서 잠을 자지 않고 버틴다는 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로서도 알게 되었다. 아래로 내려오자 미스 타리에게도 그런 말을 하고 찬물을 담은 냄비와 컵을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컵에다 냄비의 물을 한 가득이건 반이건 좋으니 나누어 달라고 한다. 그녀가 박사와 마주 앉아 그 컵을 들고 그의 눈이 깜박이는 이상으로 오래 감겨있을 때는 그 물을 얼굴에 부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물을 들고 왔으며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물을 사용했을 때는 그가 사용할 타월도 가져왔다.
다음 한 시간에 그녀는 두 번이나 박사의 얼굴에 물을 끼얹어야 했다. 두 번 모두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중단시키고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두 번째로 여섯 시였다. 앞으로 한 시간이면 어두워진다. 박사는 그 때까지 눈을 뜨고 있게 될지 의심스러웠으며 그로부터 이후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타월로 얼굴을 닦더니 약간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말한다.
"미스 타리, 이런 짓을 해도 안 될 것만 같아요. 의자에 핀을 박고 그 위에 앉아도 역시 의식을 잃고 말거야.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중의 한 가지야. 어느 거나 위험은 수반되겠지만 그것도 두 사람 모두에게, 당신에게도 위험이 미친다구. 그러므로 어느 편으로 하는가는 당신이 정해주어야겠어. 나는 지금 아직도 시내까지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동안에 여기를 나갈 것. 적어도 가까운 전화가 있는 집으로 찾아갈 시간은 있다구. 나는 산탄총을 가지고 당신에게는 권총을 남겨두고 가겠어. 다행히 성공할지 모르지. 우리는 적의 위험성이나 행동 범위를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거든. 어쨌든 내가 어떻게든지 도달하게 되면 당신을 구출하도록 수배하겠어. 주 경찰에서는 산탄총과 토미건을 가진 대원들이 트럭으로 몇 대씩이나 분승하여 달려올 테니...... 만약에 대원들의 도착이 불가능해지면 - "
"안 돼요!"
미스 타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가겠다면 함께 가겠어요. 내가 차를 운전하지요. 아니면 - 걷는 것이 좋겠다면 걸어서라도. 그런데 어째서 그런 모험까지?"
"첫째로 그렇게 하는 것이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오. 거기에다 걸으면 하늘이 보이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무거운 새가 높은 곳에서 급강하해오면 그렇게 얇은 차의 지붕은 단숨에 뚫릴 것이며 물론 떨어지는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죽어 버릴 것이오. 그리고 최초에 말한 또 하나의 생각이란 당신이 같이 와서는 안 된다는 거요. 어느 편이 위험한지 자신도 모르니까 말이오. 또한 내가 이대로 이 방의 소파에서 잠들어 버리는 것은 간단합니다만 그 전에 만일에 대비해서 당신이 내 몸을 묶어 주어야겠다는 것이오. 부엌에 가면 50야드 정도의 세탁물 건조용 끈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묶으면 될 거요. 첫째 내가 잠들어 버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이편의 추리에 불과하며 잘못된 짐작인지도 모르겠소. 거기에다가 만약 적이 나에게 옮아탄다고 가정해도 내가 묶여 있으면 적은 무엇을 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을 거요. 당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옮아탄 나로부터 빠져 나가기 위하여 나를 자살시킬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무사히 시가지에 가서 구조대를 불러올 수가 있을 거요."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된 이상 구조대를 불러 무얼하게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때가 되어 봐야 알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시내에 가면 당황할 것은 없습니다. 연락이 닿는 당국의 가장 높은 사람에게 나의 보고서를 보여주며 설명하면 되는 거요. 어차피 우리의 손으로 막을 수가 없는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지요. 가능하면 연방경찰이 좋겠어. 전화를 해서 먼저 로저 프라이스나 빌 케러먼의 어느 편을 바꾸어 달라고 하시오. 두 사람 모두가 나의 친구이며 당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보다 진지하게 들어줄 거요. 이름은 기억하겠소? 아니면 써놓는 것이 좋겠소?"
"로저 프라이스나 빌 케러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차로 시가지에 가도 안전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그리고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서 미친듯이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또 다른 짓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물론 내가 그런 짓을 하면 당신에게 사태가 분명해졌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야. 만약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내가 아까 했듯이 모험을 해주어야 해요. 산탄총을 들고 포치로 나가서 - 공격해오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동정을 살피면 됩니다. 아니지 - 당신이 그런 위험한 짓을 할 필요가 없군. 나를 묶어버리면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이건 그렇지 않건 오직 내일 보안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요.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지요. 좀 더 그것을 빨리 깨달아야 했는데. 너무 졸려서 분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구."
미스 타리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신 혼자를 시내에 보내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말을 듣고 보니 함께 가도 마찬가지겠군요."
"그럼 밧줄을 가져 오겠습니다."
그녀도 함께 부엌으로 가서 그가 밧줄을 준비하는 동안에 밧줄을 끊을 나이프를 준비한다.
거실로 돌아온 박사는 권총을 내놓고 탄환과 산탄총의 탄환을 난로 선반에 놓았다. 산탄총은 현관 옆의 벽에 세워두었다.
"이런 것은 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시오. 나이프도 밧줄을 끊고 나거든 다른 곳으로 치워주세요. 먼저 손을 뒤로 돌려서 묶고 그것이 끝나거든 소파에 누울 테니 발목도 묶어 주세요."
박사는 등을 돌려 묶기 좋도록 손을 뒤로 냈다.
"내가 정신이 이상해져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런 기회가 없도록 묶어 주세요. 권총의 손잡이로 머리를 때려 실신시켜 주세요. 그러나 죽이지는 마세요. 적이 나에게 옮겨타고나서 - 내가 도망치려고 했을 때도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만 - 나를 죽이면 적은 자유롭게 다시 다른 생물에 옮아 타게 될 테니까 당신의 위험한 입장은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내일 보안관이 올 때까지 당신이 눈을 뜨고 버티지 못하면 당신에게 옮아 타려고 할지도 모르지요."
미스 타리는 매듭을 짓고 있었다.
"시내로 가려고 하기 보다는 이편이 위험하지 않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확신은 없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분명히 안전할 것이며 이편도 그것 때문에 특히 위험해지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이 옳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너무 세게 묶은 것은 아닙니까?""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듭은 나의 손가락이 가지 않는 곳으로 부탁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눕겠습니다. 발목을 묶어주는 동안은 이럭저럭 눈을 뜨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위험한 순간이었다. 발목을 묶는 순간 그는 탄식을 하며 눈을 감았다. 바로 깊은 잠에 떨어졌다. 미스 타리는 잠시 동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가능하면 적이 스탄턴 박사에게, 그의 마음에 옮아 탔는가를 알고싶었으나 박사를 자도록 - 아니면 자는척 하도록 두고는 산탄총을 집어 들고 문을 열고 위를 보았다. 무엇인가 크고 검은 것이 그녀를 향해 급강하해왔다. 아직 여유가 있었다. 총을 겨누어 명중할지 아닐지 자신이 없었으나 쏘아본다. 설사 살해해도 급강하의 방향을 빗나가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뒤로 물러섰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문밖 포치에 무엇인가 무거운 것이 꽝하고 떨어졌다. 꽈당하고 떨어진 것은 독수리였다. 노루의 시체를 배불리 먹고 가까운 나무에 날아가서 졸고 있던 몇 마리의 동료 중의 한 마리였다.
지성체가 이용한 이것이 세 마리째의 독수리였다. 지성체는 아까부터 생각하지 않았던 교사 미스 타리가 온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폭스바겐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새에게 옮아 타고 상공에서 감시하고 있었으나 서둘러 그 새를 급강하해 자폭시키고 가까이에 있는 수소에 옮아탄 것이다. 폭스 바겐이 통과한 직후 울타리를 파괴하며 추적했던 것이다. 최초의 생각으로는 몸채 부딪쳐가서 차를 파괴하는 것이었으나 스탄턴이 산탄총의 첫 방을 쏘았을 때 상대를 죽이는 대신 다리를 꺾어놓겠다고 낮게 조준하는 것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어 스탄턴이 자기 몸을 수호하기 위하여 죽이지 않을 수 없도록 덤벼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뒤쪽 출입구 아래에 숨겨둔 거북의 등딱지와 같은 껍데기로 돌아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경계를 계속한 것이다. 작은 차로는 물론 걸어서라도 시내에 돌아가려는 것은 무리이며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가려는 것도 무리라고 두 사람이 깨닫고 있는 것을 알 정도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차를 파괴하는 것도 필요없게 되어 버렸다. 거기에서 시간을 내어 두 사람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나 두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여러 가지 점에서 추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에 어째서 거기까지 추리할 수가 있었는가를 알았다. 걱정할 것은 없었다. 알고 있었다고해도 그들로서는 손을 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동물에 옮아 타고 경계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물론 어느 한편이 나가려고 한다면 문이 열릴 때까지는 새에 옮아 타고 날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이야기의 내용에서 미스 타리가 보안관이 오도록 부탁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히 그녀는 보안관이 내일은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안관이 생각을 달리하여 더 빨리 오거나 더 빠른 시간에 조수를 보낼지도 모른다. 만약에 다른 차가 다가오는 경우 무엇인가 손을 쓸 수 있도록 빨리 알아야 한다.
차를 파괴해 버리거나 타고 있는 인간이 내리려고 할 때 살해해 버리는 편이 살아서 집에 들어가게 하여 적의 세력을 강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나서는 스탄턴이, 또는 미스 타리가 시간을 두고 집 안의 창을 돌며 바깥을 순시하고 다녔듯이 지성체도 수시로 새에 옮아 타고 하늘 높이 원을 그리며 날고 그 동안은 자신의 육체의 지각은 이용할 수 없으니까 모르는 채 집 주변을 경계하면서 오는 도로를 정찰하고 있었다.
하늘에 날아오를 때마다 옮아탔던 새는 급강하하여 죽고 그는 곧 다시 껍데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스탄턴이 이이상 자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을 때도 바로 이렇게 날아올랐을 때였다. 하늘로부터의 정찰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지성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가능한한 멀리까지 도로를 보아두려고 훨씬 높은데까지 날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탄턴과 미스 타리와의 마지막 대화도, 스탄턴이 묶여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었다. 거기서 독수리를 자살시키려고 할 때도 미스 타리가 산탄총을 들고 혼자 밖으로 나온 것을 보고 지성체는 놀란 것이다. 물론 이미 급강하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독수리는 충격으로 죽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껍데기로 돌아가니 미스 타리도 집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기에서 지성체가 더욱 놀란 것은 이제부터 옮아 타야 할 스탄턴이 자고 있었으며 밧줄로 묶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잠들어 있다는 것은 놀랄 것도 없지만 묶여 있는 것이다. 악마와도 같은 타산적인 계산으로 의표를 찔러온 것이다. 누가 생각한 것이건, 누가 주장한 것이건 지금까지 엿들었던 이야기 속에는 그런 생각은 나온 일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편에서인가 갑자기 착안하여 재빨리 해치웠을 것이다. 지금 만약에 스탄턴에게 옮아탄다고 해도 스탄턴의 밧줄이 풀릴 때까지 지성체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망설이며 생각했다. 끝내는 괜찮으리라고 단정을 해버렸다. 여자도 스탄턴을 언제까지나 묶인채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지금 스탄턴의 마음에 옮아 타면 스탄턴의 몸이 계속해서 자고 있는 동안에 도움이 되는 시간을 마련할 수가 있다. 스탄턴의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생각이나 기억을 연구하여 한밤중에 스탄턴의 몸이 깨어날 무렵까지는 미스 타리가 밧줄을 푸는데 의심을 갖지 않을만큼 완전히 스탄턴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나서는 - 그러나 그 후의 계획도 스탄턴의 육체를 잠들게 하여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는 스탄턴의 마음속에서의 오랜 시간을 생각에 이용할 수도 있다.
지성체는 옮아 탔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최초의 저항을 받는다 - 질적으로는 처음이 아니지만 격렬함이 다르다. 지금까지 옮아탔던 상대는 고작해야 1초의 몇 분의 1의 저항이었다.
인간이외의 동물은 사소한 저항밖에 없었으며 지금까지의 세 사람의 인간도 - 고등학생 둘과 독일인의 늙은 농부였으나 옮아 탔을 때의 저항은 격렬했으나 쫓았던 것이다. 이번의 싸움은 그것과는 정도가 달랐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싸움은 몇 초 동안이나 계속되고 그동안에 스탄턴은 자신의 육체의 일부는 여전히 자신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격렬한 저항을 보이며 흡사 일어나기라도 하듯이 몸을 일으켜 헐떡이며 말한다.
"계단 아래에 흡사 - . "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성체가 지배해 버린 것이다.
스탄턴 박사는 천장을 보고 눕더니 한두 번 깊이 숨을 내리쉬고 눈을 떴다. 그 눈이 소파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미스 타리의 시선과 마주친다. 박사는 보통의 말투로 무심히 말한다.
"미스 타리. 무엇인가 헛소리를 한 것만 같은데 - 아마도 지쳐서 한 소리겠지요. 뭐라고 하든가요?"
미스 타리는 얼마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매우 담담하게 말한다.
"말했습니다, 박사님. 만약에 당신이 종전 그대로의 스탄턴 박사라면 말입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계단 아래에 흡사 - > 하는 말뿐이었습니다. 어떤 꿈을 꾸셨나요?"
"이거, 이놀랐는데. 기억날 리가 있나요? 다만 희미하게 수소인가 무엇인가가 덮쳐오는 듯한 - 참, 그렇지. 그놈을 피하려고 현관 계단 밑에 숨어보려는 꿈이었지요. - 꿈속에서는 총도 없어서요. 이것으로 다시 잠들게 되겠지 - 이번에는 꿈에 시달리지 말아야 할 텐데."
그는 눈을 감았다.
"스탄턴 박사님. 당신이 말하는 적은 이 집 주변인가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집 안을 뒤져보고 계단 아래도 물론 찾아본 셈이지요. 거기에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ㄹ에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지만 현관의 포치에 올라가는 데에는 3단으로 된 계단이 있으며 뒷문에도 3단짜리가 있습니다. 보고 오겠습니다. 아직 밖이 밝은 지금 당장에."
"미스 타리, 그런 바보같은 - . 꿈속의 헛소리일 뿐인데 - ."
그러나 그의 말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미스 타리는 산탄총과 권총을 들고 벌써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거기에다 손전등도 가지고 있다. 밖은 아직 밝았지만 계단 아래는 어두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서 무엇이 덮쳐오는 것이 없나 하고 위와 사방을 살펴본다. 무엇이 습격해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확인해 두고 싶었다. 손전등을 켜고 현관의 계단 밑을 들여다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철저하게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뒤쪽문의 계단 아래를 잠시 들여다 보고 이번에는 조금 더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뒷문 계단 아래도 처음 들여다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손전등의 불빛이 흙을 파고나서 다시 묻고 골라놓은듯한 자국을 드러냈다. 손자국이 있었다. 사람의 손자국이다!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녀는 엎드려 머리와 한쪽 팔이 계단 아래에 들어갈 만큼 기어든다. 손자국이 있는 부근을 파헤쳐 흙을 퍼올린다. 그 흙은 부드러워서 곧 파올릴 수가 있었다.
손을 밀어 넣었다. 무엇인가가 잡힌다. 거북의 등딱지 같았으나 - 거북은 흙속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 하물며 이렇게 마른 땅에. 그것을 살펴본다. 작은 거북을 닮았으나 목이나 다리, 꼬리가 나오는 구멍이 없다 - 그것을 다시 한번 자세히 관찰한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살며시 그것을 땅바닥에 놓고 권총의 총구를 그 등딱지같은 것의 한가운데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집 안에서는 스탄턴 박사가 고통에 찬 듯한 비명을 질렀다. 뒷문에는 쇠가 채워져 있었으므로 그는 현관으로 달려가서 뛰어들었다. 산탄총은 잊고 왔으나 권총은 아직 손에 있었다. 박사는 소파 위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나 조용히 누워있다. 얼굴에는 한가한 미소, 행복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해냈군요, 미스 타리. 바로 그 놈이었어요.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놈을 해부하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손에 대보지도 못한 다른 천체의 생물이니깐요. 등딱지 속에는 뇌가 있고 그밖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습니다. 소화기관도 없습니다. 양분을 침투(浸透)에 의해 직접 흡수합니다. 아니오. 밧줄은 풀어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당신은 아직 모를 테지만 - . 다만 이야기나 들어주시오. 이야기할 것이 많습니다. 거기에다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잠이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박사는 탄식을 했다.
"불쌍한 놈이었지요. 그 놈은 단지 고향의 별로 돌아가고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놈이 돌아갔더라면 인류를 위해서는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스 타리, 그 놈은 나의 마음에 옮아 타기는 했으나 저항하고 있던 짧은 시간에 간신히 중요한 말을 두세 마디 할 수 있어서 - 당신이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해 주어서 다행이었소."
여기에서 생각을 되살리는 듯이 몸을 떤다.
"그러나 이 편에서도 그 놈의 마음에 옮아탄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놈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그놈이 인간이나 그밖의 동물을 어떻게 선별하여 옮아탔는가, 그것을 어떻게 구사했는가, 구사했거나 이용하려고 했던 그 목적도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가요? 태양계의 별입니까?"
"아닙니다. 훨씬 더 먼 별의 위성에서 왔습니다. 아직은 오랜 기간 우리의 손에는 미치지 못할 별이지요. 미스 타리, 내가 알게 된 것 중에서 더 알고싶은 것은?"
그녀는 끄덕이지도 않았다.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회답이 되었다. 박사는 조용하고 엄숙히 말한다.
"우리에게는 처음이자 지금까지 상상도 못했던 과학이 있소. 고생하지 않고도 우주여행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로켓을 애써서 만들고 있지만 로켓따위는 이미 낡은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용하면 1년 이내에 우주여행이 가능해집니다. 식민지에 적합한 별은 2년 이내에 모두 식민지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태양계 안의 별뿐이 아니라 그 어디에 있는 별까지도. 거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알파 센트라이 별의 행성이건 다른 어떤 별이건 달에 갈 수 있는 것처럼 간단히 갈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다 미스 타리, 아무나 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제부터 육성될 영리하고 힘찬 젊은 스페이스 맨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그 별이 설치만 해놓는다면 우리와 같은 늙은이도 갈 수가 있습니다. 미스 타리, 이 일을 완결시킬 때까지 함께 가서 비서겸 바른 팔이 되어주지 않겠소? 그리고 - 참, 그렇지. 지금부터 3년 후에 함께 우주여행을 하지 않겠습니까? 화성(火星)과 금성에 들렀다가 거기를 출발점으로 - 어쨌든 이런 별은 우주복을 입어야 하니까 대충 돌아보고 그런 후의 이 대우주의 어딘가에 - 그렇지, 어디라도 좋습니다만 처음은 우리 은하계에서 대체로 지구와 비슷한 형태의 별에 가서 인공적 환경에 틀어박히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거든 적어도 4 - 5일은 체류해도 좋고 ...... 미스 타리, 처음에는 어디에 가보고 싶은가요?"
그녀는 박사의 말을 믿었다. 의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박사의 밧줄은 풀었을 것이다. 먼저 발목의 밧줄을 풀고 거기에서 박사가 손목의 밧줄을 풀어달라는 뜻으로 엎드린다. 박사는 일어나더니 소파로 갔다. 그녀가 최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박사는 다시 묻는다. 그녀는 목이 메일 것만 같아서 대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스 타리, 응낙하는 거지요?"
간단하게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녀는 정열을 다하여 대답했다. 그러나 스탄턴 박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질문을 하자마자 그녀도 곧 대답을 했으나 그 동안의 짧은 순간에 조용한 숨결소리.
스탄턴 박사는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미스 타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잠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윽고 출입구에 가서 문을 열고 총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포치로 나간다. 이제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쳐다본다. 초저녁이라서 별이, 몇 개, 그것도 밝은 별만이 보인다. 이제 곧 수억이라는 별 중에서 수천 개의 별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독서 이외에는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될 곳으로, 인류가 그렇게 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할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지금도 그녀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녀는 이제 공상의 세계를 읽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공상이 이제는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과 대치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 많은 별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최초에 보였던 하나의 별, 시리우스가 다른 어느 별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별이 희미하게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응시하고 있다. 눈에 눈물이 고여오기 때문이다. 흡사 아파 오는 것만큼의 격렬한 환희에서 오는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