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73광년의 요괴 1

73광년의 요괴

Frederic Brown

 

지구로부터 73광년 저편에 있는 행성에서 날아온 지성체라는 기괴한 생물. 이것은 자유자재로 다른 동물에 옮겨 다닐 수 있는 이상한 힘을 가진 요괴였다. 지성체의 도래와 함께 그 지방에서는 인간이나 가축, 야생동물들이 자살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괴현상에 주목한 것은 마침 그 고장에 와있던 천재적이 물리학자였다. 이 형체 없는 괴물의 정체를 간파하여 인류를 파멸에서 구하려는 교수의 두뇌와 지력의 덩어리라고 할 만한 지성체가 사투를 벌리는 갖가지 혈투극!

 

1

지성체는 자신이 놓여 있는 기묘한 이질적인 환경에 지각을 시험해보았다. 시각이라든가 청각이 기관은 갖지 못했으나 그의 지각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상급에 속하는 것이다. 20야드 이내의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분명히 보였으며 그보다 더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희미하기는 해도 <보이는> 것이다. 더우기 그의 시각은 장해물에는 차단되지 않는다. 진동에 대한 감각은 훨씬 멀리까지 느껴지고 특히 그 범위 내에서는 민감했다.

자신이 있는 땅속의 벌레도 그에게는 보이며 <들을> 수도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다른 세계에는 그런 생물이 없었으므로 그에게는 그것이 사상했다. 그러나 벌레는 별로 위험할 것 같지가 않았다. 거기에도 또한 머리 위의 나무에 앉아있는 몇 마리의 새들도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새들은 그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날 수 있을 만큼 대기의 밀도가 높고 따뜻한 별에서는 어디에서나 같은 코스를 더듬어 새가 진화해가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에서는 새가 앉아있는 이 나무가 이 얼마나 거대한가! 그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나무의 수배나 된다). 거기에다 구멍에 틀어박혀 있는 이상한 네발 동물이 잠을 자고 있다. 자신이 지면을 파고 만든 터널인 듯 10야드 저편에 터널이 있다.

그 네 발 동물이 자고 있으므로 지성체는 그놈의 몸을 숙소로 하여 그다음에 잠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만 같다. 작은 동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더 억세고 더 머리가 좋은, 큰 동물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다!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나타난다.(2야드쯤 떨어진 초지에 버린 것인지 떨어진 것인지 모르지만 녹슬고 부러진 잭나이프가 뒹굴고 있다. 그는 그것이 잭나이프라는 것을 몰랐으나 어쨌든 그것이 어떤 것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다. 제작된 것이 있다는 것은 지성이 있는 생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위험까지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성이 있는 생물은 배타적일지도 모르며 자신은 작고 약한 존재이다. 그 지성이 있는 생물의 생활양식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당장에는 그 하나의 샘플이 자고 있는 것을 잡아야 한다. 자고 있는 것을 잡으면 그 마음속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들어가는 편이 밖에서 관찰하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는 오솔길 바로 옆의 노출된 위치에 뒹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모습을 숨길 수 있도록 1야드쯤 떨어진 키가 큰 풀숲까지 이동해야 한다. 물론 그런 은닉처는 그의 동족이나 시각 대신 다른 감관을 작용시키는 다른 종족에 대해서는 소용없는 짓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지성적인 생물은 설사 어떤 것이건 시각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수천이라는 별의 생물 속에서 시각과 그가 가지고 있는듯한 지각이 동시에 진화하고 있는 종족은 하나도 없다. 그 중의 하나뿐이다. 더우기 여기에서는 새도 작은 네발 동물도 모두 눈을 가졌다. 1야드를 이동하려고 그는 공중을 날으려고 했으나 몸이 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별로 놀라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몇 가지 경험에서 이 천체가 그가 살던 천체에 비해 인력이 강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그의 종족은 자신들의 천체에서도 거의 부양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부양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으며 이동이 필요하면 부양하기보다 훨씬 간단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성체가 옮아와서 숙소를 빌릴 수 있는 동물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위축되듯이 사용하지 않는 능력도 약화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움직여줄 수 있는 힘을 가진 기생할 수 있는 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더우기 그가 지금 잠입해갈 수 있는 유일한 동물, 가까이에서 자고 있는 동물은 분명히 너무 작다. 아마도 그 자신의 몸무게의 반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도 부양하는 노력을 계속하여 그 네 발 동물에 부담이 될 체중을 얼마간은 경감시켜 줄 수는 있을 테지만-

갑자기 지각권의 가장자리 쪽에 무엇인가가 느껴지자 그는 모든 신경을 그쪽으로 집중시켰다. 만약 위험이 다가왔다면 이미 그 작은 동물을 이용하여 은닉장소로 이동할 여유는 없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진동이었다. 발걸음 소리와도 같은 진동, 그것이 비교적 큰 것의 발소리였다. 다른 형태의 진동도 지면에서가 아니라 공기를 따라 전해진다. 어떤 종류의 생물이-대개는 지성이 있는 생물이지만-말에 의해 의지를 전하려고 하는 소리였다. 목소리는 두 가지. 하나는 진동권 속에서도 높은 것이었다. 두 가지가 교대로 말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지성체에게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으며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이 지성체는 감응에 의해 의사를 소통할 수 있지만 그것도 동족끼리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이윽고 그 작자들이 그의 시각권 내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다. 한쪽이 또 한 사람보다 약간 컸으나 두 사람 모두가 컸다. 분명히 그들은 지성이 있는 종족, 또는 이 천체에 몇 종류가 있는 지성 있는 종족의 하나에 속한 것인 듯하다. 두 사람 모두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지성을 가진 종족만이 옷이라는 것을 입는다. 두 사람은 바로 서고 각기 두 개의 발과 두 개의 손을 가졌다. 손을 가졌다는 것은 지성체가 기생하는 데는 절효였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의 당면문제는 그런 생물이 잠들어있는 것을 만날 때까지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것이었다.

이 작자들은 양성생물이었다. 지성체로서는 옷을 통하여 지각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알몸일 때는 물론 내장까지 자세히 지각할 수가 있다. 지금의 두 사람은 각기 성이 다른 생물이다. 이 작자들은 포유동물이다. 그러나 당장의 문제는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오솔길을 걸어오기 때문에 그로부터 1피트나 2피트의 거리를 지날 테니 눈치를 채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진퇴양난에 빠진 그는 가까이에 있는 기생할 수 있는 작은 네발 동물의 마음을 사로잡아 잠입했다. 그것을 뒤져서 조사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당장에 그것을 미친 듯이 구멍에서 기어 나오게 한다. 그 동물의 몸을 이용하여 두 사람의 적을 물어줄 생각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작고 약한 생물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그 무엇도 기생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약한 입장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작은 동물이 크고 강한 생물에게 위험한 입장에 설 경우도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은하계의 도처에는 작은 생물이 어떤 의미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어 보다 큰 생물을 위협하고 있는 별도 얼마든지 있다. 두 발의 생물이 작은 네 발의 생물을 식료품으로 사로잡아 먹으려고 하는지의 예상은 반반이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을 잠시 오솔길에서 벗어난 곳으로 인도하여 무사히 그의 몸이 있는 곳을 통과시킨다. 그리고나서는 그들에게 그 작은 동물을 사로잡게 하여 죽여 버리게 해도 안전한 것이다.

어떻게 되었건 그 작은 동물은 피살되거나 자살하든지 해야 한다. 잠들고 있는 동안밖에는 생물이 마음에 침입할 수 없으며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성체가 그 생물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의 죽음의 순간뿐이다. 거기에다가 지금 이 지성체가 옮아간 작은 동물은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이상으로 옮겨가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 약하고 작다.

 

샤롯테 가너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오늘 팔은 토미 호프멈의 왼팔과 엉켜있었으므로 호프먼도 걸음을 멈추었으므로 이편은 갑작스러운 동작에 몸의 균형을 잃을뻔했다. 샤롯테는 두 사람의 눈앞의 오솔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보라구, 토미! 들쥐야. 저런 짓을 하고 있다구."

토미도 그것을 보았다.

"이거, 놀랐는데."

들쥐가 두 사람의 발치 1피트의 위치에서 오솔길 한가운데에 모르모트와 같은 모습으로 오뚝 앉아있는 것이다. 모르모트와 같지 않는 것은 그것이 흡사 두 사람에게 무슨 신호라도 하듯이 작은 앞발을 무작정 흔들고 있다. 더우기 예리한 작은 눈은 두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샤롯테는 말했다.

"이런 짓을 하는 들쥐는 처음이야. 흡사 사이좋게 지내자고 주의하고 있는 듯해요. 두려워하지 않아요. 누가 사육하고 있다가 도망친 것일까-도망쳐놓고도 역시 인간이 좋은가 봐."

"그런지도 모르지. 나도 이런 짓을 하는 들쥐는 본 일이 없는데. 좋아, 이 서생원 아저씨 좀 비켜주시지. 밟히기 전에."

샤롯테가 말했다. 그녀는 토미와 끼고 있던 팔을 풀었다.

"잠깐만. 틀림없이 사람들과 친숙해진 상태라 나에게도 겁을 내지 않는다구."

말을 하면서 샤롯테는 몸을 꾸부려 한쪽 손으로 들쥐를 집어 올렸다. 이 샤롯테는 반사신경이 발달된 매우 기민한 처녀였다.

토미가 뭐라고 하기 전에 들쥐를 집어 올렸다. 들쥐도 도망치려 하였으나 뒤로 돌아 도망칠 여가가 없었다.

"이봐, 토미 귀엾잖아."

"귀엽기는 하지만. 설마 그것을 데리고 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것을 들고서......버리는 것이 좋겠어."

"물론 버려야지. 잡히나 아니나를 실험해보았을 뿐이야.

거기에다가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려고. 아얏."

샤롯테는 들쥐를 떨어뜨렸다.

"저 꼬마가 울었다구."

들쥐는 도망쳐 오솔길을 벗어나더니 6피트쯤 앞에 멎더니 돌아본다. 두 사람이 쫓아오는가 아닌가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들쥐를 쫓지 않았다. 그쪽으로는 시선도 보내지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프니."

토미가 묻는다.

"아니, 약간 가볍게 물었을 뿐이야. 놀랐을 뿐이야."

다시 아래를 본다.

"토미, 보라구."

들쥐는 다시 뛰어왔으나 이번에는 토미를 향해 달려왔다. 토미의 바지를 향해 뛰어오르려고 한다. 한손으로 떨어 버리자 이번에는 4~5피트 저편으로 뒹둘어 버렸다. 돌아오더니 다시 덮쳐 온다.- 정말로 뛰어오더니 다시 덮쳐 온다.-정말로 뛰어오를 생각인지 아닌지를 짐작할 수가 없다. 토미가 이번만은 들쥐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 다리를 쳐들었다가 밟아 버린다. 작은 동물이 짓밟히는 소리가 난다. 그리하여 구둣발로 들쥐의 잔해를 오솔길에서 차내린다.

"토미! 가엾잖아-."

돌아보는 토미의 얼굴은 분노에 차있었다.

"글세 그 쥐새끼는 미쳤다구. 두 번이나 덤벼왔단 말이야! 물렸을 때 피가 나왔다면 빨리 시가지로 돌아가는 것이 좋아. 생쥐의 시체도 들고 가서 광견병인지 아닌지를 조사 해달래야지. 어디를 물렸나."

"젖이야. 왼편 젖무덤이라구. 가슴에 안았을 때 물기는 했는데 피가 날 것은 아닌 것 같아. 이 스웨터나 브레지어는 이빨이 통과하지 못해. 물었다기보다는 꼬집었을 정도야. 별로 아프지도 않았으며 떼어 버리려고 놀라게 해주었을 뿐이야."

"살펴봐야겠어. 벗어보라구-바로 저기니까. 조금 늦었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니-여기에서는 누가 올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그녀의 팔을 잡더니 앞에 서서 그녀가 달려야만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빨리 걸음을 떼놓는다.

"보라구, 자라야."

열두세 발을 떼어 놓았을 때 샤롯테가 말했다.

토미는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오늘은 생물과의 놀이는 지긋지긋할 테지? 빨리 가자구."

이제 열두세 걸음이면 두 사람은 오솔길을 벗어나 숲과 덤불을 지나 앞서 둘이서 발견하여 두 사람의 보금자리라고 결정한 곳에 갔다. 사방이 덤불로 감싸인 초지로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으면 오솔길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절호의 은신처였다. 무인도처럼 속세에서 차단되어 있는 더우기 무인도처럼 불편함이 없다는 장소. 속세를 떠나 있는 동시에 숲속의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다. 더우기 2마일의 왕복도 즐거운 일이었으며 결코 괴로운 중노동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젊고 건강한 두 사람에게는 여기는 매우 가까운 장소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젊고 건강하며 더우기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토미 호프먼은 17, 샤롯테 가너는 16세였다. 두 사람은 소꿉친구였으며 아직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토미는 별로 학교생활에 열의가 없어 1년 낙제를 하여 샤롯테와 같은 학년에 다니게 되어 지금은 동급생인 것이다. 두 사람 모두가 고등학교 2년 수료의 정도이다.

1년 전에 이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반년 전에 결혼을 하자는 약속을 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집에서 그 이야기를 했으나 결혼의 시기 이외에는 어느 편에서나 이의는 없었다. 17세의 생일이 지난 지가 얼마 안 되는 토미는 당장에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살림을 차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무런 장해가 없을 거라고 그 자신은 말하는 것이다. 토미의 아버지는 홀아비로서

토미는 외동이었다. 두 사람은 상당히 큰 농가에 살고 있었으므로 샤롯테뿐이 아니라 아이가 생겨나도 함께 살 수 있는 여유는 있다. 호프먼씨는 이 집을 세울 때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크게 만들어 두었다. 거기에다 이미 농부의 일에는 상당한 조예가 있는 토미는 아차피 농부 지망이었으며 이제는 한업의 여가를 이용해서가 아니라 완전하게 농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샤롯테가 가사일을 처리해두면 두 사람만이라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만약 두 사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가정해도 2년 후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될 테니까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농부가 고등학교 졸업의 면허증을 따서 뭘하겠다는 거지? 아버지 호프먼씨도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토미의 주장이었다. 토미도 샤롯테도 고등학교를 졸업해야겠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가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가서 무슨 도움이 있으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농부나 농부의 아내가 역사나 수학을 무엇에 쓰겠다는 건가?

이런 입씨름의 상례로서 모두가 납득 할 수 있는 타협안이라는 것이 마련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일 년간을 참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1년만 학교에 머물다가 토미가 18, 샤롯테가 17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토미의 아버지도 샤롯테의 양친도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한 것을 인정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것이 반년 전의 일이며 이제 두 사람은 앞으로 반년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별개의 의미로서는 두 사람은 이미 한 달 전에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한 달 전에 어느 날 숲속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이 이 아담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낙천지를 발견할 때까지는 두 사람은 참아왔던 것이다. 아니 샤롯테에 덤벼오는 토미를 제지시켜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은 햇살도 더할 나위가 없었으며 그 초지도 아름다웠고 키스도 만족스러웠으며 애무에도 열이 지나치게 들어가 버린 것이다. 생물학의 문제로 발전되어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후회나 눈물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가 첫 경험이며 당연히 훌륭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달리 비교할 기준은 모르는 터이라 그 행위가 특히 훌륭한 것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정녕 훌륭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또한 그때도 그 후에도 도덕적 의미로서의 후회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 모두 결혼 이외의 성행위는 나쁘다고 믿도록 양육되어왔으나, 두 사람의 이 경우는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결혼할 사이이다. 허락만 내리면 곧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신의 눈에는 이미 결혼한 부부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만약에 신이 이런 것까지 배려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도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해줄 것이다. 두 사람은 매우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 이 두 사람이 여기에 온 것은 세 번째였다. 다만 이번 경우는 들쥐 덕에 평소 때보다 출발이 달랐을 뿐이다. 토미가 재촉하듯이 말했다.

"빨리 하라구. 샤롯테! 그 스웨터를 벗으라구. 그동안에 브래지어의 단추를 끌러주지. 조금이라도 피부가 찢어져 있으면-그 짐승 새끼에게 물렸다면 돌아가야 한다구. 서둘러 돌아가야지."

스웨터가 벗겨지고 브래지어의 단추가 벗겨진다. 둘이서 그녀의 유방을 유심히 살펴본다. 아주 깨끗하고 매우 예쁘게 생긴 유방이었다. 바른편 유방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편도 똑같이 예쁘고 상처 하나 없다.

"다행이야. 아프지 않지."

토미가 말하며 마음이 놓인다는듯이 안도의 숨을 내리쉰다. 샤롯테는 젖꼭지의 바로 위쪽을 탐색이라도 하듯이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겨우 여기라고 알 수 있을 정도야. 다시 키스를 해도 좋아. 어쩐지 그런 구실인 것 같다구."

그 손을 내리며 웃음을 보인다. 토미에게는 그런 구실이 필요 없었다. 거기에다가 두 사람 모두가 지금부터 하는 짓은 요전의 그것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훌륭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두 사람이 잠시 놀란 반동으로 종전보다 더 훌륭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훌륭했다. 그러나 오늘의 경우는 두 사람 모두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나 평소와는 약간 다른 것이었다. 오늘은 무엇인가가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나 덤불로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각을 가진 어떤 것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악몽에서 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것, 누구의 눈에도 무서운 어떤 것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2

지성체는 뚫어지게 이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은 추악한 의미로서가 아니였다. 그에게는 두 사람의 말뜻을 모르고 있었다. 그 자신에게는 성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라고 불러왔으나 되풀이해서 사용해야 하는 인칭대명사를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의 종족은 분열에 의해 아이를 낳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박테리아와 같은 하등생물만이 하는 하나의 생물이 나뉘어져 둘이 되는 방법으로 증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고 깨닫게 되자 흡사 추악한 <엿보기꾼>처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켜보았다. 지금 그는 절호의 기생할 상대를 그것을 곧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생 동물에서 적어도 이것과 비슷한 데가 있는 성행위를 하는 동물이 사는 수천이라는 세계에 관한 그의 지식(직접 알고 있는 것도 있으며 간접적인 것도 있지만)에서 그들이 성교 후에 잠을 자고 싶어 하는 강한 경향이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지쳐 버려서가 아니라 성을 가진 지성 있는 생물은 정서적으로 지쳐 만족한 기분에 취해 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편이 잠들어 주면 그로서는 옮겨갈 상대가 생기는 셈이다. 양쪽이 잠들어 버리면 남자를 택할 생각이다. 남자가 크고 씩씩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사나이 쪽이 지능도 발달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가 지나자 두 사람은 휴식을 취하면서 요동도 하지 않는다. 그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시 두 사람이 움직인다. 몇 번인가 키스를 하고 무엇인가를 잠시 중얼거린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시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약간 다른 자세로 쉬기 시작하더니 조용해졌다.

여자가 먼저 잠들었다. 지성체는 여자에게 옮겨갈 수도 있었지만 사나이도 눈을 감고 천천히 규칙적인 숨을 쉬고 있다. 분명히 그도 수면의 경계를 맴돌고 있으므로 지성체는 기다렸다. 이윽고 사나이도 잠이 들었다. 지성체는 사나이의 마음으로 옮겨간다. 자아라든가 본질 등의 토미 호프먼의 정신의 일부가 저항하여 짧은 시간이지만 격렬한 싸움이 있었다. 지성이 있는 생물을 점령할 때는 언제나 그런 싸움이 있는 것이다. 상대가 다른 동물일 경우 저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시간쯤 전에 그가 침입한 작은 네 발 동물일 때는 1초의 수만분의 1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지성이 있으면 있을수록 싸움은 치열해진다. 더우기 같은 종족이라도 개인의 지성의 차이에 따라 그 정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 경우는 상대가 지성동물로서의 표준적인 1초 정도의 시간으로 처리되었다. 그는 토미 호프먼의 마음을 점령하여 그것으로 토미의 육체를 지배한다. 여기에 있는 토미 호프먼을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토미 호프먼은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주제에 그는 전신이 묶인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고 자신의 육체도 감각도 자신이 구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성체가 그것을 점령하고 있으며 지금부터 그것이 해방되는 것은 죽음에 의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토미가 죽거나 저성체가 죽거나 그 어느 쪽이다.

지성체는 지금 토미의 모든 기억을 입수하고 따라서 토미의 모든 지식을 손에 넣은 셈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것을 완전히 소화시키 정리하고 거기에 바탕을 두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먼저 첫 번째로 해치워야 할 것을 마쳐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자신의 육체를 완전한 곳에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다른 인간을 발견하여 상처를 입히거나 파괴하기 전에 숨겨두어야 한다. 지성체는 지금 토미의 말로 생각을 하게끔 되어 있었다.

다른 일은 뒤로 돌리고 토미의 생각과 기억 속을 뒤져 교묘하게 숨겨둘 수 있는 장소를 하나 발견했다. 숲속을 여기서 반 마일쯤 가면 산 중턱에 동굴이 있다. 깊숙한 곳이다. 작은 동굴이지만 누구에도 알려져 있지 않다. 토미가 수년 전인 9세 때 발견한 동굴로 자신의 동굴이라는 심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곳이다. 토미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그것을 알고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거기에다가 그 동굴은 아래가 모래땅이다.

여인이 눈을 뜨지 않도록 조용히 그는 일어섰다. 물론 여인을 목 졸라 죽여도 그만이었으나 필요 없이 사태를 번거롭게 만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약소동물에 동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도 없이 살생할 생각도 없었다. 오솔길을 향하여 걸어간다. 언제 다른 인간이 오솔길을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간이 소중하다. 토미에게 옷을 입히지 않았다. 토미는 감색 양말을 신었을 뿐 다른 의류-구두. 팬티. 셔츠는 지금까지 누워있던 그 자리에 따 쌓은 그대로다.

덩굴을 헤치고 이 은신처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여자가 아직 자고 있는지 만일을 위해 돌아보았다. 그녀는 젊은 몸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잠들어있었다. 처음부터 맨발에 샌들을 걸치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스타킹도 신고 있지 않았다. 토미의 마음으로 왜 두 사람이 성교가 있은 후 옷을 입지 않았은지 지성체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나체는 태양이 좋았고 거기에다가 토미는 30분이 지나면 어느 한쪽이 눈을 뜨게 될 테니까 거기에서 토미 자신의 마음에 있었던 말에 의하면 <다시 한 라운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분명히 이 종족은 성교라는 것에서 상당한 쾌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언제나 옷을 입고 있는 주제에 서로가 상대방의 나체를 보거나 만져보는 것에도 상당한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오솔길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육체를 집어 들자 토미의 마음 속에서 발견한 동굴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적어도 당장에는 은신처가 될 동굴이다.

토미의 마음속을 뒤져본 결과 왜 토미와 여자가 지성체의 몸을 보고서도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던가-지금까지 의아하게 생갹해 왔던 이 문제의 답을 얻어냈다. 위에서 내려다본 육체는 지구상의 거북이라는 동물과 비슷했던 것이다(그는 이미 이 천체가 지구라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핏 본 느낌으로는 길이 5인치 정도의 목과 수족을 오무려들인 거북이와 비슷했던 것이다. 거북이란 움직임이 둔하고 지성이 없는 동물이며 인간에게 해도 끼치지 않으며 인간도 좀처럼 그런 것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하기야 거북은 식량이 되기는 한다. 거북이 살의 수프에 개념과 맛이 어떻다는 것은 지성체도 알고 있다. 그러나 거북이잡이를 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이런 크기의 거북이 한 마리쯤은 잡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크기의 거북이라면 무게는 2파운드 정도 꼭 지성체의 육체의 무게와 같을 정도이며 더우기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불과 수 온스밖에 되지 않는다. 기아선상에 있는 인간이라면 몰라도 이런 거북을 죽여 요리할 가치는 없는 것이다.

우연히 거북을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지성체는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가 들쥐의 마음에 잠입하여 자행했던 행동의 덕도 있다. 그가 들쥐가 되어 했던 행동은 이유야 어떻게 되었건 결과적으로는 옳았으며 이 또한 행운의 우연이었다.

두 사람은 들쥐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집어 들었던 여자가 물리고 더우기 여자가 던져 버리자 사나이가 덤벼든 것은 어쩌면 광견병이라는 질병을 가지고 있어서 물린 여자에게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불안에서 토미가 정말 여인의 물린 것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밀회 장소로 서둘러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아직도 산책을 계속하고 여자가 "어머나, 거북이야." 하고 자세히 보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자세히 보았다면 두 사람은 정체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만으로는 본 적이 없는 거북이 정도로 끝날 테지만 그래도 어느 한 편이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집어 올리지 않았으리라고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었다면 곤란하다. 만약에 집어 들었다면 그것이 거북은 아니었다는 것이 탄로 났을 것이다. 등딱지 아래 뱃가죽이 따로 있는 거북과는 달리 지성체의 육체에는 목이나 손발의 구멍이 없고 한 장으로 이어진 등딱지로 감싸여 있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안에 뭐가 있는지 보려고 당연히 등딱지를 깨어보려고 할 것이다. 지성체란 만약 다른 생물에 기생하고 있다고 가정해도 그 딱지에 감싸인 육체의 죽음과 동시에 기생하고 있던 생물 속에서 지성도 죽어 버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지성체의 분리 활동도 원래의 이 육체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토미의 몸을 오솔길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게 했으나 동굴까지의 반 마일 길을 그대로 달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반적인 구보로 속도를 늦추게 했다. 동굴의 입구는 좁았다. 엎드려서 기어들어 가야 했으며 입구가 덩굴로 잘 덮혀있는 것을 보고 지성체는 만족했다. 안은 희미하게나마 빛이 들어와서 토미의 눈을 통해서도 지성체는 안의 양상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톰의 눈과 동시에 토미의 기억도 손에 놓고 있는 지성체로서는 안의 동태를 잘 알고 있었다(지성체의 빛과 어둠에 관계 없이 무엇이든지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은 다른 생물에는 잠입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 속에 머물고 있을 때밖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생물로 옮아갔을 때는 그 생물의 감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굴은 크지가 않았다. 안쪽으로 20피트 정도의 길이었으며 한가운데의 가장 폭이 넓은 곳에서도 폭은 6피트 정도, 그 일대만이 사람이 반듯하게 설 수 있을 정도의 높이가 있었다. 바로 그 부근에서 지성체는 토미에게 자신의 육체를 아래에다 놓게 하여 두 손으로 모래땅을 파게 했다. 9인치 정도에서 그의 손-곧 토미의 손이 지반의 바위에 부딪혔다. 토미에게 자신의 육체를 구멍에 넣게 하고 모래로 정성껏 묻고 잘 고르게 했다. 이윽고 토미가 기어 나오면서 들어갔을 때 난 자국을 지우면서 밖으로 나오게 했다. 모래 땅은 들어가기 전처럼 평탄해졌다. 거기에서 토미를 동굴 입구에 앉혔다. 동굴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는 덩굴에 숨어서 기다리게 했다.

자아, 이제부터는 서둘 것도 없다. 자신의 육체는 안전히 숨겼으며 지금부터 천천히 토미의 마음속의 지식을 소화하고 분류. 정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자신이 점령하고 있는 이 토미를 위해 당면문제의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미 그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필요한 지배를 해야 하는 것은 토미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토미도 당장은 쓸모가 있을 것이다. 토미도 보통 인간이며 보통 이상은 아니지만 이 종족의 평균적인 지능지수는 가졌다. 적어도 토미 자신은 그런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교육도 만족할 정도로 받지 않았으며 과학에 관한 지식은 극히 제한된 초보적인 원리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토미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분간은.

 

 

3

샤롯테 가너는 흡사 고양이 새끼가 눈을 뜰 때처럼 갑자기 눈을 떴다. 눈을 뜨기 전부터 완전히 정신은 깨어난 상태였다. 발가벗은 몸이 신선함을 느껴 잠시 몸을 떨고 눈을 뜨고는 왜 선선해져 눈을 뜨게 되었는가를 알았다. 햇빛이 따뜻한 곳에 누워있었는데 지금은 그늘로 변해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초지의 서쪽 덩굴이 그림자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놀라며 팔목시계를 눈앞에 들여내고-이번에는 더욱 놀란다. 벌써 세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에 여기를 떠나 서둘러 돌아가도 각자 집에서의 저녁 먹을 시간에 30분 정도는 늦게 될 것이다. 아마 집안 식구들 특히 그녀의 집에서는 이미 걱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황하여 토미를 깨우려고 돌아본다. 토미가 없다. 그러나 옷은 그가 벗어놓은 그대로 있다. 잠시 놀랐으나 그녀도 사정을 짐작했다. 그 이외의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틀림없이 토미는 그녀보다 먼저 눈을 뜨고 옷을 입거나 그녀를 깨우기 전에 자연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하여 초지에서 벗어나 이 부근 어딘가에 갔을 것이다. 그 이상으로 멀리 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또한 갈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무엇인가 그런 이유가 있어서 갔다면 옷을 입지 않고 갔을 리가 없다. 곧 돌아올 것이다.

거기에다 토미는 시계를 가지지 않았으니 아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어서서 몸에 붙은 풀을 떼어내고 재빨리 옷을 입는다. 옷이라고 해도 네 가지 뿐이다-팬티. 브래지어. 스커트에 스웨터. 입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앉아서 맨발에 샌들의 끈을 고정시키고 다시 일어선다. 그런데도 아직 토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직은 걱정이 되지 않았으나 빨리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대답도 없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이미 가까이로 돌아오고 있어서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머리에도 풀잎이 붙어 있는지도 몰라서 토미의 옷이 있는 곳으로 가서 평소 셔츠의 포켓에 찌르고 다니는 작은 휴대용 빗을 찾아내어 짧게 손질된 머리털에 두세 번 빗질을 하여 빗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아직도 토미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녀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토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다시 토미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번에는 앞서보다 큰 소리로 부르며 말했다.

"대답하라구. 어디에 있지."

귀를 기울였으나 들려오는 것은 마침 불어 오기 시작한 미풍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뿐이다. 토미가 나를 놀려주려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닐 텐데, 그럴 리가 없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벗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 화려한 감색의 짧은 양말뿐인데 알몸으로 어디에 갔을 리가 없을 것이다. 정신을 잃었을까. 아니면 어떤 잘못이라도? 정신을 잃을 만큼의 사고가 아니라면......그녀는 죽음이라는 말을 생각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다만 다리를 다쳤거나 골절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보다 앞서 그녀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녀는 잠귀가 밝은 편이며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그가 부르면 들렸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정말 걱정이 되어 그녀는 초지로부터 덩굴을 헤쳐 나오자 덩굴이나 나무 그늘을 샅샅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토미가 거기까지 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나 오솔길 옆에까지 찾아보았다. 최초로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듯이 토미가 자연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해서 혼자서 나섰다고 한다면 오솔길 쪽으로 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더우기 그녀로서는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동안에도 쉴 사이 없이 토미의 이름을 불렀으나 부르는 소리가 이제는 절규로 변하고 있었다. 쳇바퀴를 돌듯이 걷기만 하다가 30분이 지나자 최초의 위치에서 100야드쯤 떨어진 곳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경 100야드의 그 일대는 철저히 살펴본 셈이다.

그녀는 정말 무서워졌다. 토미가 이런 데까지 왔을 리가 없지. 사람을 불러야겠다고 그녀도 깨달았다. 서둘러 오솔길까지 돌아오자 뛰다시피 하여 집으로 향했다. 3마일의 길을 자신이 달리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른 속도로 걸었다.

집안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듣건, 어떤 견책을 받건, 토미와 둘이서 선을 넘어 버려 결혼도 하기 전에 관계해 버린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녀도 각오하고 있었다. 수색을 시작하게 될 출발점에 토미의 옷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오직 토미를 찾는 일만 남았다. 부모가 있는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의 그녀는 숨이 차고 정신도 없었다. 부모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급히 라디오를 끄더니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야, 이제사! 나는 걱정이 되어-."

여기서 딸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샤롯테, 어떻게 된 거지."

샤롯테는 설명을 시작했다. 도중에서 어머니가 단 한 번 놀라며 참견을 했다.

"그렇다면 너는 토미와 이전부터-."

그러나 아버지가 쏘아붙였다.

"그런 걱정은 후에 해도 돼. 마지막까지 이야기나 듣자구."

제드 가너는 일어섰다.

"거스에게 전화하겠어. 당장 가봐야지. 거스는 버크를 데리고 올 수 있겠지."

전화가 놓인 곳으로 가자 이웃 밭을 경작하고 있는 거스 호프먼에게 전화하여 곧 용건을 말했다. 전화 저편에서는 거스 호프먼이 무뚝뚝하게 듣고 있다. 가너의 이야기가 끝나자 "곧 가지." 하고 한마디만 했다. 전화를 끊더니 거스는 잠시 서성거리며 생각하고 있더니 드디어 세탁물이 든 광주리로 가더니 토미의 양말을 찾아내어 포켓에 밀어 넣는다. 그 냄새로 버크에게 토미의 뒤를 쫓게 할 생각이다. 버크가 토미의 냄새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토미의 무엇인가를 코앞에다 대주고 "찾아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개로서는 무슨 냄새를 찾아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버크의 사슬을 부엌 못에서 벗겨내어 또 하나의 포켓에 넣는다. 버크는 무엇인가의 뒤를 쫓는 것은 잘했으나 한 가지 결점이 있다. 추적을 시작하면 사슬을 달고 끌고 가야 한다. 사슬을 달지 않으면 도중에서 주인을 부르는 것을 잊고 먼저 달려가 버려 놓치고 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뒤를 쫓을 때도 새로 생긴 불확실한 발자국 같은 경우 개라는 것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리는 경우도 있다.

성냥을 확인하고 랜턴을 들어 기름이 가득 들어있는가를 살핀 다음 부엌문을 나선다. 버크는 토미가 만들어 준 개집에서가 아니라 그 앞에서 자고 있었다. 버크는 적갈색 무늬가 있는 큰 개였다. 순혈종은 아니었지만 수렵견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미 7세라 한창때는 지났지만 아직 수년 동안은 든든하다.

"버크, 이리와."

호프먼이 말하자 개는 집을 돌아 밭을 횡단하여 가너의 집으로 가는 주인을 따라나선다. 노을이 짙어가는 시각이다. 가너의 집의 세 사람은 호프먼이 오는 것을 보더니 집에서 나왔다. 제프 가너도 랜턴을 들고 또 한쪽 겨드랑이에는 산탄총을 끼고 있다. 인사는 생략이다. 호프먼이 샤롯테에게 묻는다.

"그 오솔길이란 도로를 다리 앞에서 북으로 꺾어 드는 것 말이지."

"그래요, 아저씨. 저도 가겠어요. 우리가 어디서-어디에 있었는가를 안내해야지요. 토미의 옷이 있는 곳 말이에요."

아버지가 분명히 거절했다.

"샤롯테. 너는 가지 않아도 돼. 그것뿐이라면. 너는 3마일이나 뛰어왔으니까 더 이상 걷지도 못하잖아. 오히려 짐이 될 거라구."

호프먼이 거든다.

"버크가 옷 있는데까지 안내해 줄거라구. 거기서 한 바퀴 돌리면 그 후의 발자국은 간단히 찾아낸다구. 3마일이라고 했지-오솔길을 꺾어드는 데까지 1마일 정도일걸. 그렇다면 숲속 길이 2마일이군. 그렇지."

샤롯테는 끄덕였다.

"그럼 가자구."

호프먼이 가너에게 말했다.

"잠깐, 거스. 산길로 접어들기 전의 처음 1마일은 내 차로 가는 것이 어때."

호프먼이 말했다.

"버크의 존재를 잊었나? 이 개는 총은 무서워하지 않지만 차는 무서워한다구. 무리하게 태우면 튀어나오려고 하고 어쨌든 신경이 곤두서서 쓸모없이 되어 버린다구. 걸려야 해. 자아, 가자구."

두 사람은 도로에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밝은 달이 비추기 시작했다. 랜턴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완전한 밤은 아니다. 호프먼이 물었다.

"제드, 무엇 때문에 총을 들고 왔지? 산탄총을 들여대고 흠집을 낸 딸아이를 신부로 삼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공갈할 셈인가."

"바보 같은 소리. 밤중의 숲길에서는 이것을 갖는 것이 든든하거든. 어차피 무엇인가가 덤벼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잠시 후에 말을 잇는다.

"그러고 보니 방금 생각난 것인데 만약 토미가 발견되면-."

"틀림없이 발견될 거라구."

"알겠어. 토미를 찾거든 말이야. 만약에 토미가 무사하거든 그 둘이를 앞으로 반년을 더 기다리게 할 것도 없을 것 같아. 어차피 신부놀이를 하고 있잖아. 분명히 입적시켜도 하자는 없잖아. 거기도 자네도 첫 손자가 결혼식을 한 달 앞서서 태어나는 것은 싫지? 나도 마찬가지야."

"좋아."

호프먼이 말했다.

두 사람은 얼마 동안 말없이 걸었다. 거기에 도로를 이편으로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시야에 들어오자 호프먼은 서둘러 몸을 돌려 버크의 목걸이를 잡고 길 가장자리로 끌어낸다.

"저놈이 지나갈 때까지 잠깐 기다려 주게."

가너가 말했다.

"버크가 무작정 달리면 곤란하니까. 이게 언제 달리고 말지 모르겠다구."

차가 통과하자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솔길을 접어드는 부근에 도착했을 무렵은 해도 완전히 저물고 달빛을 의지하게 되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각자 랜턴에 불을 붙였다. 여기서부터는 도처의 숲 그늘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조명이 필요한 것이다.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했다. 가너가 물었다.

"대체 토미는 어디를 가려고 했을까? 그런 발가숭이로 말이야."

호프먼이 신음을 하듯이 대답한다.

"생각해도 소용이 없어. 찾는 게 급선무야."

다시 얼마 동안 말없이 걷는다. 호프먼이 입을 열었다.

"이제 도로에서 이럭저럭 1마일은 들어온 것만 같은데. 그렇잖아."

"글쎄다. 좀 더 왔는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버크를 줄로 매는 것이 좋겠어. 자네 딸이 길을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자리를 지나쳐도 곤란하니까."

랜턴을 내려놓고 버크의 목걸이에 사슬을 걸고 토미의 헌 양말을 버크의 코에 들여댄다.

"자아, 찾아보라구."

개는 오솔길을 맡고 다니더니 곧 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뒤를 따른다. 호프먼은 한 손에 개의 사슬을, 한 손에는 랜턴을 들고 가너는 그 뒤를 따랐다. 버크는 착실히 그러나 두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정도로 지나치게 서둘지 않고 앞선다. 사슬을 팽팽히 당기며 앞서는 일도 없었다.

다시 1마일쯤 가서(샤롯테의 측정 거리는 정확했다>. 버크는 잠시 오솔길에서 벗어나더니 무엇인가를 맡고 있다. 호프먼이 허리를 꾸부리며 내려다본다.

"들쥐의 송장이야. 망가진 상태인데. 자아, 버크. 일에 착수한다구."

버크는 오솔길을 다시 돌아왔다. 가너가 말했다.

"샤롯테가 그 애의 이야기를 하더군.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말이야. 대단한 일은 아니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어쨌든 바로 이 근처인 듯하다구. , 그 둘이가 잤다는 데가 말이야."

"들쥐의 이야기라니 무슨 뜻이지."

가너가 대충 이야기를 하고나서 설명을 했다.

"이상한 이야기야. 들쥐가 그런 짓을 하다니 말이야. 그렇지. 만약 그것이 광견병이라면? 쥐새끼는 샤롯테를 물지는 않았데요. 피부가 찢어질 정도로는 물지 않았데요. 그러나 토미는 바지 위에서 그놈을 떨쳐 버렸데요. 그럴 때 손가락이라도 물려서 자신도 몰래 피부라도 찢겼다면......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런 바보같은 소리는 작작하라구. 제드! 광견병은 그런 것이 아니야. 만약에 토미가 당했다고 가정해도 그렇게 갑자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발병하지도 않는다구. 나타날 때까지는 며칠이나 걸린다구."

호프먼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쨌든 토미를 발견하거든 손을 조사해 보자구. 찰과상이라도 있다면 그 쥐를 가져다가 조사해달라고 해야지. 자아, 오라구, 버크. 어서 찾아."

그로부터 30여 걸음도 못가서 버크는 다시 오솔길을 벗어났으나 이번에는 냄새를 맡으며 망서리는 일이 없었다. 그대로 전진하고 있다. 두 사람을 끌고 절벽처럼 무성하게 자란 덩굴을 헤쳐간다. 호프먼이 덩굴을 헤치며 랜턴을 아래로 내민다. 호프먼이 말했다.

"여기야! 옷이 아직도 여기에 있는데."

덩굴을 넘어가는 호프먼의 뒤를 따라 가너도 걸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빌어먹을. 설마 이대로 있으리라고는-."

호프먼은 마지막까지 말하지 않았다. 옷이 없어졌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샤롯테가 돌아오고나서 토미도 여기에 돌아왔었으면 하고 속으로 빌고 있었던 것이다. 토미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상태니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도 몰랐으나 옷이 없어진 편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토미가 아직도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어딘가를 쏘다니고 있기보다는 위험도가 적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되었건 그는 최초로 샤롯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무서웠다. 옷이 그만큼 허무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싫은 꿈을 꾸고 있는 심정이었으나 이번에는 정말 악몽에 시달리는 심정이었다. 버크는 옷을 자꾸만 맡고 있었으나 이윽고 토미가 누워있던 초지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하여 한 바퀴 돌더니 덩굴을 향해 걸어왔다. 이번에는 들어온 곳과는 다른 방향이다. 호프만이 개가 덩굴을 빠져나가는 것을 도와주고 자신도 뒤를 따랐다.

"와보라구. 제드. 다시 발자국을 발견한 모양이야. 토미가 지나간 자리를 말이야."

가너가 말을 걸어왔다.

"옷을 가져갈까."

호프먼은 주저했다.

"좋아. 발견되면 입혀주어야 할 테고 다시 여기까지 돌아올 이유도 없잖아."

가너가 옷을 챙겨 따라올 때까지 호프먼은 버크를 끌어당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개의 사슬에 이끌려 전진한다. 먼저 오솔길로 돌아와서 비스듬히 가로질러 북서쪽으로 향한다. 버크는 이제 사슬을 자꾸만 당기며 전진했다. 발자국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양말만의 발자국은 양말을 신고 있을 때보다 냄새가 강하다. 거기에다가 오솔길 위에는 희미하게나마 다른 인간의 냄새가 났으나 여기에서는 그것이 없다.

"덤비지 말라구."

급히 움직이는 개의 뒤를 가너와 쫓으면서 호프먼이 달랜다.

 

 

4

지성체는 지금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 기생하고 있는 주인의 마음속의 모든 것을 깔끔이 분류. 정리하여 당장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색인까지 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지구라는 천체에 관해서도 토미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 덕분에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게 되어 있다. 숫자적으로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크기는 알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소금물의 바다이지만 몇 개의 대륙으로 나뉘어 상당한 육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세계가 몇 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 그 중의 중요 국가의 이름이나 대체적인 위치, 크기 등도 알고 있었다. 부근의 지형이나 지리에 대한 지식은 더 있었다. 그곳이 아직 개발되지 않는 시골이며 수렵지대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가까이에 있는 시가지에서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가지의 이름은 버톨스빌, 인구는 2천 정도이다. 위스콘신이라는 주이며 미합중국이라는 나라의 일부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큰 시가지, 또는 작은 도시는 동남쪽으로 45마일쯤의 거리에 있는 그린 베이다. 다시 그린 베이에서 남쪽으로 100마일쯤의 거리에 이 부근에서 가장 가까운 밀워키가 있다. 밀워키에서 90마일쯤 남쪽으로 훨씬 더 큰 도시 시카고가 있는 것이다. 그는 그런 도시를 상기할 수가 있다. 토미는 그런 곳에 가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모른다. 토미에게는 시카고는 집에서 먼 도시인 동시에 인연도 먼 존재이다. 그러나 버톨스빌이나 그 부근에 대해서는 토미는 잘 알고 있었다. 지성체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분간은 그 일대가 그의 행동 무대가 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대의 지리만이 아니라 동식물에 대해서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시골의 동물이라면 야생이건 사육되는 것이건 이제는 마음속에 그려볼 수가 있다. 거기에다가 그런 동물의 능력과 한계도 알게 되었다. 이번에 다시 동물의 마음에 옮아갈 때는 당면 과제에 따라 무엇을 택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에서는 인간만이 지성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며 인간은 과학을, 그것도 상당히 발전된 과학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토미의 과학지식은 무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전기의 기초지식으로 초인종의 배선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과학과 과학자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자과학까지 포함하여 과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자과학이라는 말의 의미는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았으나 토미는 라디오를 본 일이 있으며 한 대 가진 적도 있다. 텔레비전도 본 일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토미는 레이더라는 것의 위력도 기구는 모르지만 알고는 있었다. 이런 것이 있는 곳에는 전자과학의 지식이 있을 것이다.

더우기 지성체의 궁극의 목적은 전자과학자를 한 사람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자과학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시설이나 자재를 가졌거나 가까이할 수 있는 인물이 목적물이다. 거기까지는 몇 가지 과정-도중에서 몇 가지 생물에 차례대로 옮겨타는 과정이 필요할 테지만 제대로 계획만 세우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그도 알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어떤 일이 있어도 성취시켜야 한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성운의 방향으로 73광년의 거리에 있는 어느 태양의 행성에서 왔던 것이다. 그 태양은 지구에서 너무나 멀기 때문에 지구의별의 도표에는 번호만은 붙어있지만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자진해서 지구에 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오게 된 것이다. 정찰이라든가 지구 함락의 전위로 온 것도 아니다. 만약에 그가 자신의 별로 돌아갈 수가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그는 추방당한 신세다. 그는 범죄자였다.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는 우리 지구와는 전혀 이질적인 이해할 수 없는 사회조직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가 죄를 짓고 벌로 추방당한 것이라고 해두면 그만일 것이다.

그는 우주선을 타고 추방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역파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쫓겨온 것이다. 역파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충분하지만 우리의 말로 한마디로 한다면 대체로 이 정도의 설명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동은 순간적이었다. 방금 고향의 별의 발사기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에는 도착의 충격도 없이 위스콘신주 버톨스빌의 북쪽 숲속의 오솔길 옆에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추방되어 온 별은 은하계 수천만의 별 중에서 아무렇게나 택한 생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들의 종족은 성좌표의 작성은 하고 있었으나 탐험을 하지 못한 별이 얼마든지 있다. 앞으로 그들이 탐험할 수 있는 별은 거기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이 인류와 마찬가지로 쉽게 성좌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시각이라는 훨씬 빈약한 감관 대신 훌륭한 지각기관을 가졌으며 그것에 의해 망원경을 만들어 인류가 별을 보는 것과 같을 정도로 별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는 이 지구에 와서 고향인 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도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는 상당한 지성을 가진 생물이 사는 별에 왔다는 것과 이 지구에는 그들보다는 뒤지지만 과학과 기술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는 것이다.

이런 별에 추방된다는 확률은 이를테면 10만분의 1 정도다. 생물이 살지 않는 별에라도 추방되었다면 그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설사 생물이 있는 별이라고 가정해도 백만 년 전의 지구처럼 지혜가 발전되지 않는 생물밖에 없다고 가장한다면 그도 자신의 별로 돌아갈 발사기는 만들었다고 가정해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지성체의 지시에 따른다고는 하지만 공룡이 게르마늄을 찾아내어 제련시켜 그것으로 트랜지스터를 만든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둘째로는 돌아가면 환영을 받고 사면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이다. 명예까지 부여될지도 모른다. 추방당한 자에게는 언제라도 그런 기회가 주어져 왔으며 수백에 하나라는 비율로 성공한 예도 있다.

현재 그들이 호스트(host:생명체에다 마음을 맡기고 있는 그 생명)로 사용하고 있는 생물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생물을 발견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면 그렇지 않아도 칭찬을 받은 생활 추방자가 그 자리에서 영웅으로 추대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지성체는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토미에게 자신의 육체를 운반시킬 때 토미의 엄지와 다른 손가락이 마주 보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은하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엄지의 덕으로 사물을 잡거나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척 쉬어지는 것이다. 견본으로서 이 인간을 자신의 별에다 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정찰대를 파견할 번거로운 절차도 생략되며 한꺼번에 대군을 파견하여 노예사냥을 목적으로 이 지구를 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착오가 없도록 추진하면 이것은 이미 쟁취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이미 한 가지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현재 옮아 타고 있는 이 토미의 값어치도 인간의 관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인간들의 주의를 끌게 함으로써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토미 호프먼은 호기심과 의혹의 대상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의 효용에 한계가 생겨 버린 것이다. 세간에서는 토미가 또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유심히 지켜보게 될 것이다. 만약에 다소나마 토미의 생각을 조사할 시간이 있고 조사를 했더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물론 토미를 그의 육체가 있는 곳으로 가게 하여 위험하고 노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동은 시켰을 테지만 일부러 이 동굴까지는 운반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은닉장소, 오솔길에서 4~5피트 떨어진 풀이 무성한 덩굴 속이라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잠들어있는 여인 옆으로 돌아와서 누워 잠들어 있는 척하고 있었으면 무방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토미와 그 여인에 관한 것은 물론 인간의 행동이나 정서라는 것에 대해 배울 시간도 생겼을 것이며 눈을 떴을 때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와도 다시 한 라운드의 성교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그는 토미의 마음속의 완곡한 우회법을 사용했다.

지성체는 물론 그런 행위에는 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토미가 할만한 자연스러운 행위로서, 그것만의 이유로도 여자와 성교를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옷을 입고 예정대로 집으로 돌아간다. 새울을 옮겨 가버리면 지성체는 상당히 멀리까지 떨어져 있어도 무방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토미가 혼자 다시 여기에 와서 지성체의 육체는 훨씬 안전한 동굴 속에 옮겨 놓아도 무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누구에게도 의심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을,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시점이었다. 그 대안이라도 좋았다. 토미의 마음속에서 발견한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바탕이 된 계획이다. 토미가 하룻밤 내내 이 동굴 입구에 버티고 있어도 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옷이 놓인 곳으로 돌아가서 옷을 입고 귀가한다. 여자는 걱정이 되어 돌아가 버리겠지만 옷은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여자와 둘이서 피곤해서 쉬었다. 거기서 잠이 들어 밤중에 잠에서 깨고 보니 1마일이나 떨어진 다른 곳이었으며 어째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잠이 든 채 그런 먼 데까지 걸어갈 수는 없으며 토미에게는 몽유병이 없었으므로 틀림없이 무슨 까닭이 있기는 했을 테지만 기억에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한두 번은 의사의 진찰은 받겠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 더우기 그 후부터는 토미가 적어도 남의 눈에는 완전히 정상인의 행동을 취하면 된다-효용이 없어질 때까지, 지성체가 호스트를 그만둘 때까지 말이다. 그때에 토미는 자살을 하든가 사고를 가장하여 스스로 죽는 것이다.

간단명료한 것은 물론, 토미의 이 이야기는 그밖에도 유리한 점이 있다. 여자가 뭐라고 하건 이 이야기에는 모순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두려운 나머지 그녀는 집안사람에게 토미와 같이 알몸으로 자다가 토미가 그대로 없어졌다고 사실을 완전히 털어놓을지도 모르며 그 대목만은 입을 다물어 버릴지도 모른다. 만약에 토미의 최초의 이야기에 옷에 관한 것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그녀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말은 합치될 것이다. 만약에 그녀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지적을 받으면 그때는 부끄러운듯이 잠을 잘 때는 알몸이었으며 아침에 정신을 차렸을 때도 알몸이었다고 자백하면 되는 것이다. 최초에 알몸이었다는 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누구나 납득해줄 것이다.

이와 같은 장기와 단기의 계획이 갑자기 장해에 부딪혔다. 토미의 눈을 통하여 동굴 출입구를 가리고 있는 덩굴 사이로 지켜보고 있던 지성체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두 개의 등불이 보였던 것이다. 토미의 귀를 통하여 기세등등하게 냄새를 더듬어 다가오는 사냥개의 짖는 소리도 들린다. 개소리는 토미의 아버지의 개, 버크의 짓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곧 사태를 짐작했다. 토미의 아버지는 토미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샤롯테가 모든 것을 말해 버렸을 것이다. 토미가 옷을 입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면 옷을 입고 사라진 것보다 훨씬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토미의 생각으로는-이를테면 토미의 마음이 토미 자신의 것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찾아 나선다고 해도 이미 어두워진 오늘 밤이 아니라 내일이 될 거라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토미의 마음도 설마 버크를 앞세워 발자국을 더듬어 오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오고 있다. 사나이들과 개였다. 하나는 토미의 아버지, 또 하나는 샤롯테의 아버지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개는 바로 두 사람을 동굴로 안내하고 있다! 이 작자들을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해야 한다. 설사 지금 기생하고 있는 토미의 몸이 어떻게 되었건 그들의 주의를 동굴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거리는 100야드, 바로 이리로 오고 있다. 개가 토미의 발자국을 더듬어 오고 있는 것이다.

토미는-어쩌면 토미의 단순한 육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뛰어올라 덩굴을 돌리니 다가오는 랜턴에게 걸어간다. 앞서오는 랜턴의 불빛까지 다가가더니 거기서 걸음을 멈추었다. 버크가 기뻐하며 사슬을 당기면서 뛰어와서 반긴다. 거스 호프먼이 소리쳤다.

"토미! 너 어쩌다가-."

아직도 동굴에 너무 가깝다. 몸을 돌리더니 비스듬히 동굴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일행이 다시 소리치면서 뒤를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토미! 토미, 거기 서라구."

가너의 목소리도 들린다.

"사슬을 놓아주라구." 버크가 따라붙을지 모르잖아."

토미의 아버지가 대답한다.

"분명히 따라가지는 하겠지. 그러나 우리가 이놈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구. 양쪽 다 놓쳐 버리게 된다구."

토미는 눈에 띄이도록 달빛이 받는 곳을 골라서 가야 하기 때문에 직선으로 달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모습을 보고 쫓고 있는 동안 간혹 뒤쫓는 쪽이 랜턴의 도움으로 그늘을 빠져 지름길로 갈 수도 있었으나 토미 쪽의 걸음이 훨씬 빨라 곧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윽고 토미는 추적자들로부터 모습을 감추고 다음부터는 다시 버크의 코에 의존하여 길을 돌면서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추적자들은 더욱 느리게 따라오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토미는 한참 숨을 돌릴 수도 있었으며 다음으로 달릴 때는 나는 듯한 속력이 아니라 보통의 구보 정도로 달렸다. 지금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크게 원을 그리며 출발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 도중 조금 간 시점에 조금 전에 두 사람의 인간이 오솔길을 걸어오기 전에 발견했던 인공으로 된 물건(이제는 그도 그것이 잭나이프라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이 있다. 나이프는 깊은 풀잎들 그늘에 가리워져 있었다. 토미의 눈은 지금은 전혀 쓸모가 없지만 그 소재를 지성체는 알고 있다. 수 인치의 범위를 찾던 토미의 손가락이 드디어 그것을 발견하여 집어 올린다.

반으로 부러진 녹슨 칼날을 당겨내기 위하여 토미의 엄지손가락 손톱이 파손되었으나 다른 손톱을 이용하여 드디어 칼날을 당겨냈다. 전혀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토미는 한쪽 손의 손목을 벤다. 나이프를 다른 손에 옮겨쥐고 반대쪽 손목도 벤다. 양손 모두 상처가 깊어 뼈에 닿을 정도이며 피가 줄기차게 분출한다. 토미는 눕지는 않았으나 1분도 못 되어 피가 없어져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두 사람의 사나이와 개가 쫓아왔을 때는 토미는 죽은 시체였다.

지성체의 마음은 동굴의 모래 땅 9인치의 지하에 묻혀있는 지성체의 육체에 무사히 돌아와 있었다.

 

 

5

거스 호프먼에게는 괴로운 밤이었다.

제드 가너가 사람들을 모으러 간 동안 그는 시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토미의 시체에 가너가 들고 온 옷을 입혀주었다. 토미가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었는가를 보안관에게 거짓 진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체가 알몸으로 있어서는 꼴불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너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도로로 나서면 집으로 가는 도중에 다른 세 채의 농가를 지나게 되는데 샤롯테에게 전화로 알리는 따위의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샤롯테는 그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조용히 이 소식을 듣고 있었으나 이것은 주로 그때까지 각오가 되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집을 향해 걸음을 떼어놓는 순간 그녀는 직관적으로 다시는 살아있는 토미와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가너는 20마일 떨어진 지방사무실에 있는 윌콕스의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안관은 시체를 시가지로 옮길 구급차를 타고 왔다. 시체를 빨리 조사할 수 있도록 검시의와 같이 왔다. 가너는 그들을 현장에 안내하고 네 사람이 교대로 들것으로 토미의 시체를 숲에서 들고나왔다. 버크는 구급차의 엔진이 걸리 때까지 일행과 함께 있었으나 엔진소리를 듣더니 밭을 지나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버틀스빌의 시체 안치장에서 보안관이 호프먼이나 가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검시 의사가 시체를 살폈다. 검시 의사가 세 사람에게 돌아와서 사인에 의문은 없다고 한다. 끊은 손목으로부터의 출혈 과다이며 그밖의 상처라면 가시에 긁힌 정강이의 상처와 발바닥이 찍힌 상처나 멍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보안관의 요구가 있으면 해부는 하겠지만 해부를 한데도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보안관도 거기에 동의했으나 검시 심문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기에 의한 자살이라는 결론에 의문은 없지만 지금까지 정신 불안정이라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던 청년이 무엇때문에 갑자기 격렬한 광기의 발작을 보였는가 하는 수수께끼가 다소나마 분명해질 무엇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자살에 사용한 흉기, 녹슬고 부러진 포켓 나이프에 대해서도 약간 미심쩍은 데가 있다는 것이다. 호프먼은 그것이 토미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호프먼도 가너도 토미가 두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잠시 보았을 뿐이지만 토미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두 팔을 옆으로 늘어뜨리고 손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그 나이프는 자살한 현장에서 주었을 테지만 그런 것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어둠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발견했을까? 보안관이 말했다.

"좋아. 내일 오후 두 시에 검시 심문을 열자구. 모두 괜찮겠지."

호프먼과 가너는 끄덕였으나 검시 의사가 물었다.

"행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두나."

"잊지 말기 바라네, 의사 선생. 검시 심문에서 무엇인가가 밝혀지면 해부에 대해서도 달라질지 모르잖아. 물론 해부하게 되면 빠를수록 좋겠지. 검시심문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으니까 이 시체안치소에서 하자구. 굳이 윌콕스의 변두리까지 운반할 것도 없잖아. 그리고 거스, 신문만 끝나면 장례 수배는 해도 무방하다구. 해부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역시 빠른 것이 좋잖아. 어쨌든 해부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토미의 단골 의사는 누구였지? 그륜 선생인가."

호프먼이 말을 받았다.

"그렇다구. 하기야 토미가 간혹 신세는 졌지만 워낙 건강한 아이였으니까."

"어쨌든 증언대에는 서주어야 할 거야. 그리고 토미의 학교 선생들에게도-그러나 그 전에 일단 이편에서 만나보는 게 좋겠어. 무엇인가 이상한 데가 있어서 기록된 것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아무것도 없는데 오라고 해도 의미가 없으니까."

보안관은 가너에게 몸을 돌렸다.

"그런데 제드, 샤롯테에게도 증언해 달라고 전해주어야겠어. 가능하면 부드럽게 진행시키겠지만, 토미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알몸이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 토미가 이를테면 처음부터 이상해졌는지 아니면 그녀에게 화를 낼만 한 어떤 까닭이라도 있어서 그녀 옆을 떠난 후에 이상해졌는지 그런 것을 분명히 해야거든. 그러나 그런 장면은-증언하는 동안 배심원들만 남기고 모두 퇴정시킬 수가 있겠지. 그게 좋겠지."

가너는 머피를 긁적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만 같았구. 보안관. 그 애는 모든 사람 앞에서 증언을 해도 무방하다고 말할 거야. 내가 지금 대신 그렇게 말해도 좋을 거라구. 어차피 이야기는 번져 갈 것이고 잘못 생각해서 서툰 짓을 하면 더 심한 소문으로 번질지도 모르지. 듣는 이편이 민망할 정도로 말이야. 빌어먹을......그 애들이 한 짓은 그렇게 나쁜 짓도 아니라구. 서로 반했고 결혼할 약속도 되어 있었다구. 얼마 동안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야. 내가 말했다고 내 마누라에게 일러바치면 곤란하지만 우리 역시도 같은 짓을 했다구. 이제 새삼 샤롯테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없잖아? 거기에다가 시내의 작자들이나 이웃들이 딸아이의 뒤에서 손가락질이라도 한다면-빌어먹을! 해보라지. 논밭을 팔아서 이사를 해버리는 거지. 어차피 오래전부터 캘리포니아로 가고 싶어 했거든."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호프먼은 한 시에 집에 들어왔다. 내 집이 이렇게 텅 빈 것만 같고 쓸쓸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어차피 잠을 자기에는 틀렸다고 생각했으나 여기에서 선반 구석에 위급할 때 쓰려던 약용 위스키가 한 파트 그대로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교제상 특별한 경우에만 조금 입에 델 정도였으나 만 1년 걸려서 마신 것보다 더 많은 위스키를 들이켰다. 다만 오늘 밤은 모든 것을 잊을 정도의 위스키라도 마셔야만 견딜 것 같았다. 오늘 밤은 그에게는 인생 최악의 밤이었다. 마누라가 죽었던 밤보다 더 쓸쓸하다. 마누라가 죽었을 때는 몇 주일 전부터 어차피 죽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각오도 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마누라가 죽어도 아직은 토미가 있었다. 그 무렵 토미는 세 살이었으나 거스는 이럭저럭 밭일을 하면서 토미를 지금까지 길러온 것이다. 토미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될 때까지는 거스가 밭일을 하고 있는 동안 토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여자분이 도우러 와주었다.

이제 거스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영원한 외톨이다. 자신이 지금부터 아내를 맞을 일은 없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새로운 세대를 갖기 위해서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도 아니다. 그가 50세가 되자면 1년이나 남았다. 다만 그는 먼젓번의 아내가 죽은 후 다른 여자를 맞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으며 바라지도 않았다. 어째서 자신에게는 그런 짓이 어울리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자신도 몰랐으며 그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내가 죽었을 때 그의 몸속의 무엇인가도 죽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심리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심리적인 의미보다도 중대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사나이에게 아직은 여자를 바랄 수도 있다. 적어도 추상적인 의미로서는 가능하다. 다만 혈육이 통하는 여자를 구하려고 하면 그 순간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거스 호프먼의 경우는 처음부터 여자를 희구할 수도 없었으며 차나 마시는 친구나 가사를 돕는 여자로서 집안에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섹스와 관계가 없는 여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설사 그런 조건이라도 그는 집안에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토미의 아내로서의 샤롯테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고 그거라면 그는 오히려 바라고 있었다.

그의 희망은 모두가 토미에게 걸려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건 표면에 나타내는 인품이 아니였으며 토미가 세대를 가진 후에도 그와 함께 농사 일을 해줄 수 있는지 아닌지. 토미의 결심이 그에게는 얼마나 소중한가를 토미에게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손자를 바랐다. 이제는 그 손자도 절대로 손에 들어오지 못하는 꿈이 되었다. 드디어 그는 인생의 종점, 막다른 골목에 와버렸다.

그러나 어쩌면 세 잔째 위스키에서 갑자기 희망이 불꽃이 인다. 만약, 손자가 태어나게 되면? 샤롯테가 임신하고 있고, 당사자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행여 토미는 아이가 생기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싶어졌다. 부엌의 테이블 앞에서 일어서더니 전화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한밤중 이런 시간에 가너에게 전화해서 그런 것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분명히 이런 것을 물어서는 실례다. 기다리며 동태를 살피는 거야. 그렇게 하면 그의 희망도 그만큼 연장되는 셈이다.

그동안에는 그에게도 슬픔과 쓸쓸함 이외에 생각할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아니다. 장래의 계획까지 꿈꾸어 볼 여유가 생긴다. 만약에 가너가 샤롯테의 임신한 사실을 알면 틀림없이 논밭을 팔아 이사해 버릴 것이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샤롯테가 시내의 작자들이나 이웃의 비웃음거리가 되면 이사를 해버리겠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정사는 용서받을 수가 있어도 사생아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어쨌든 거스 호프먼이 그렇게 되면 함께 밭을 팔아 버리고 캘리포니아이건 달세계이건 어디라도 동행할 셈이다. 가능하면 가너와 협의하여 함께 살 수 있도록 농지를 같이 구입하도록 하자. 그래도 저편에서 한집에 살기를 싫어한다면 창고 구석자리에라도 방을 만들어 손자를 키우는 일을 도우리라.

사내아이일까? 아니지, 여자아이일지도 모르지. 거스는 그 앞의 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제드가 함께 농지를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가까운 데의 농지를 사자. 될 수 있으면 옆이 좋겠지. 옆에 농가를 사들이기 위해서는 그 주인에게 할증금을 지불해도 좋다. 가격 면에서 걱정할 것은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은행이나 그밖의 동산으로 12천 달러가 있다. 지금의 이 경작지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 농지도 팔자면 상당히 조건이 좋다.

위스키를 마시고 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적어도 20대 이후에는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취해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어서니까 자신이 비틀거려 넘어지지 않도록 무엇인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층에 올라가서 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겨우 거실의 소파까지 갔다. 이럭저럭 신은 벗었으나 그것밖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그것이 어젯밤의 일이다. 이제 날이 밝았다. 거스는 해가 뜰 무렵에 눈을 떴다. 커피를 끓이고 무리를 하면서 오트밀을 입에 밀어 넣는다. 우유 짜기를 마치고 언제나 우유를 모으러 오는 놈을 위해 우유통을 나란히 놓아주고 그리고는 아침마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거기에 소요된 시간은 두 시간이며 아직 빨랐다. 일은 또 있다. 밭이라는 것은 하려고 마음먹으면 일은 얼마든지 있지만 오후의 검시 심문이 끝나고 나서는 이미 때가 늦다는 다급한 일은 없다. 거기에다 일보다 소중한 것이 있음을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버크의 사슬가 토미의 양말이 아직도 어제 밤 그대로 포켓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버크를 불러 밭을 가로질러 제드 가너의 밭으로 간다. 가너는 뒤쪽에 있는 작은 채소밭을 갈고 있었다. 호프먼이 다가가자 일손을 쉬며 괭이에 몸을 기댄다.

"잘 잤나? 샤롯테는 어때."

호프먼이 말을 걸었다.

"아직 자고 있나 봐. 어제는 밤을 새다시피 하더니. 거스, 무슨 일이지."

"잠시 가보려고. 그 이야기를 하러 들렀지. 어젯밤의-어제 우리가 갔던 곳을 다시 가보려고."

"."

"낮에 보고 싶어서 말이야. 토미의 옷이 발견된 곳과 토미를 발견한 곳을. 무엇을 보지 못하고 빠뜨린지도 모르잖아. 랜턴의 빛만으로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신문이 있기 전인 지금이야."

"그렇겠군."

가너가 말했다.

"거기에다 이 버크를 데리고 가는 데도 까닭이 있다구. 처음 토미를 발견하고 토미가 이쪽으로 달려온 곳도 가볼 생각이야. 버크가 거기에서 토미의 발자취를 거꾸로 더듬어거서 토미가 그런 방향의 어디에 있었는가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지. 무엇이 발견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다시 가보고 싶어."

가너가 말했다.

"같이 가자구. 어차피 마찬가지야. 오늘은 일할 의욕도 없고 자네도 마찬가지일 테지. 할망구에게 그렇게 전하고 올 테니 기다리게."

거스 호프먼은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둘이서 출발했다.

 

지성체는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으나 두려운 나머지 최초이자 지금까지 오직 한 사람, 자신이 옮겨 간 인간을 죽여 버렸다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후에 정신을 가다듬어 생각해보니 그런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히 추적자를 동굴에서 떼어놓을 수는 있었으나 그 후에 토미를 자살시킬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충분히 안전한 곳까지 추적자들을 유인했으면 거기에서 쓰러져 추적자들이 따라왔으면 잠들어있거나 기절한 척을 했더라면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흔들고 깨우면 자신이 이런 곳에 왔다는 것을 놀라는 척 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나체로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척 하며 밀회 장소에서 여자 옆에서 잠이 든 것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되는 것이다. 분명히 이 경우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쳤으니까 단순한 기억상실이라는 간단한 진단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일시적인 정신착란쯤으로 끝날 것이다.

설마 그 정도로 정신병원에 처넣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야 지성체가 토미를 자살시킬 것은 그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금되어 버리면 그런 인간에게 옮아 타도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거기에다 토미의 지식에서 정신병원에서는 환자의 자살에 대해서 철저한 예방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미가 죽지 않으면 그는 언제까지라도 토미의 마음에 옮겨 타고 있어야 한다. 자살하려다가 실패하면 보호벽으로 되어 있는 병실에 처넣게 될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자살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짧은 기간의 일시적 착란으로 토미가 감금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 동안은 신경을 쓰며 감시할 테지만 다시 정상으로 보이면 언제까지나 세심한 감시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의사의 진단은 받게 될 것이고 의사는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버톨스킬은 물론 윌콕스에도 정신과 의사는 없다.(토미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린 베이나 아마도 밀워키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런 큰 시내에는 어느 곳이나 지성체에게는 도움이 되는 도서관이 있다. 다소나마 한가한 시간이 나면-어쩌면 보호자가 있으면 잠시 도망칠 수도 있다-도서관에 가서 적어도 알고 싶은 것의 단서쯤은 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토미의 마음이 되어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바보 같은 짓을 자행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자신을 책망할 수도 없다. 전혀 이질적인 세계, 전혀 이질적인 문화의 사소한 것까지 순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지금까지의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제한된 직접적 견문 이외는 별로 영리하지도 못하며 제대로 고등교육도 받지 않는, 밭에 관한 것 이외는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는 청년의 마음을 통하여 본 것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토미는 농부로서라면 훌륭한 농부가 될 수 있을 청년이었던 것이다.

지성체의 현재의 입장에서 불리한 점의 그 첫째는 분명히 자신으로서는 여기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다른 인간에게 옮아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숲을 찾아오는 인간은 분명히 있기는 한데 대부분은 수렵이 목적으로 오기 때문에 그의 지각기관의 한계인 40피트 이내에서 누군가가 잠들어 줄 가능성은 일단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인간에게 옮아가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먼저 동물에게로 옮겨가서 인간이 잠을 잘 만한 장소 가까이로 자신의 육체를 옮겨가야 한다. 물론 옮겨가는 도중에서 위험은 있을 테지만 그 위험은 각오해야 한다. 거기에다가 아직은 지각권 내에서 거기에 부합되는 동물을 인지하지는 못했으나 토미의 지식에서 그런 동물이 몇 종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노루라면 지성체의 육체를 물고 운반할 수도 있고 곰도 괜찮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하늘을 날며 운반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독수리라면 훨씬 무거운 닭도 낡아 채어 나를 수 있으니까 이상적일 것이다. 올빼미도 좋을 것이다. 토미는 올빼미가 쥐를 발톱으로 찍어 날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올빼미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옮겨갈 수 있는지 분명히 모르고 있었다.

모든 점으로 미루어볼 때 새가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노루나 곰이면 울타리가 방해물이 될 것이며 농가의 마당에 개라도 있으면 짖어서 사람을 깨우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밤중에 독수리가 하늘을 선회하고 지붕 위에 무엇인가를 놓고 가도 개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독수리가 날기 시작하거든 곧 그놈을 자살시키든가 피살되도록 작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집안에 몇 사람이 자고 있건 마음 내키는 대로 옮아갈 상대를 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새로 옮아 탄 인간에게 맨 먼저 시켜야 할 것은 지붕에 노출된 상태로 놓여 있는 자신의 육체를 안전한 곳에 숨기게 하는 일이다. 서둘 것은 없다. 이번에는 세부적인 점까지 감안하여 이 이상의 실패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아직 그의 지각권 내에는 올빼미도 독수리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노루도 곰도 나타나지 않는다. 권내를 통과한 것은 들쥐나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세밀히 조사했다. 무엇인가 특별한 목적-예를 들면 벽 아래에 터널을 파는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동물도 목적을 위해서는 큰 것들보다 일시적으로는 좋은 상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동물을 토미의 지식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관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그런 동물이라면 10마일쯤 떨어져 있어도 옮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가 그 범위 내에서 자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끼를 자세히 살펴보면 토끼 자체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10마일 이내에 잠들어있는 토끼가 있으면 설사 몇 마리가 있건 가장 가까운 한 마리에게 옮겨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일단 독수리가 그의 지각권 내를 날아가면-무서운 속도로 날아갔으나-그는 이미 밤에 독수리가 잠들어있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독수리에게로 옮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독수리나 올빼미, 노루나 곰이 그의 지각권 내로 통과할 것이며 옮아 탈 수 있는 동물로서 여러 가지 종류가 갖추어질 것이다.

만약에 훨씬 높은 지성을 가진 동물-지구에서 말하면 인간이지만 인간에게도 그와 같은 짓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일은 매우 간단하며 지성체로서는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지성이 있는 동물은 지배당한다는 것에 자동적으로 저항하며 언제나 마음 속에 갈등이 생겨 때로는 그것이 수초 동안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생물을 타도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성체도 전력을 다해야 하며 그 것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그 존재가 그의 지각권내에 있어야만 한다. 이 때도 물론 상대방이 잠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지성체의 종족이 방문하거나 점령했던 생물이 있는 어느 별에서도 대부분이 그랬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많지 않는 예외는 있었으나 이 지구에서의 이날 밤의 실험으로 그에게도 지구가 그 예외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먼저 지성이 없는 동물의 전형으로서 자신이 지구에 와서 최초로 옮아탄 일이 있는 들쥐를 택하여 거기에 생각을 집중시킴으로써 옮아 타보았다. 그러나 곤란한 것은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기 위해 그 들쥐를 죽게 하는데 한 시간 가까이나 고생을 해버렸다. 처음에는 나무에 다음은 돌로 달려가서 부딪치며 자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가볍고 질량이 적기 때문에 돌에 부딪혀보아도 그 충격은 약간 걸음을 멈춘 것에 불과하다. 나무에서 뛰어내려 죽을 만큼 제대로 나무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앞뒤가 탁 트인 달빛 아래의 빈터에 나와서 올빼미나 그 어떤 야행동물들이 눈치를 채도록 뛰어다니게 해보았다. 그러나 가까이에는 야행동물이 없는 듯했다. 드디어 처음부터 해봤어야 할 방법을 사용한다. 머릿속의 기억을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가까이에 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얕은 냇물이다. 들쥐는 곧 냇물에 뛰어들어 익사해 버렸다. 여기에서 다시 동굴의 자신의 육체로 돌아오자 두 번째의 실험을 한 것이다. 거기에서 수 마일, 숲을 벗어난 남쪽에 인간이 잠들어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쪽 방향이라면 수백이라는 인간이 잠들어있을 것만 같은 버톨스빌의 시내도 10마일 이내에 있다. 토미에게 옮아 탄 일이 있으므로 토미를 원형의로 그는 인간에게 사고를 집중시켰다. 잠들어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그러나 이번에는 효력이 없었다.

그는 또 하나의 실험을 해보았다. 지성이 있는 종족의 생물이라도 그 종족이라는 사실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며 사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조사를 마치고 기억하고 있는 특정의 생물 개체에 옮아가려면 멀리에서도 가능할지 모른다. 토미를 조사하고 토미에게 옮아가기 전에 그는 샤롯테의 일도 자세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지금 샤롯테에게 옮겨갈까 하고 집중을 시도해본다. 역시 불가능하다.

지성체는 모르고 있었을 테지만 샤롯테는 그때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어있기는 했으나 아직도 베개를 안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었다고는 해도 샤롯테에게는 옮아 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도 다른 지성 생물 일반의 예외가 아니라서 멀리서는 옮아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후에 지성체는 한참 동안 쉬었다. 그의 종족은 수면을 모르기 때문에 자지는 않았으나 그 이상의 적극적인 사고나 계획을 뒤로 미룬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그의 지각권 내를 통하여 조사할 수가 있었다. 토끼나 들쥐, 그 밖의 작은 동물보다는 훨씬 값어치가 있는 동물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그날 밤은 그 이상의 큰 동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소리가 들린다. 아니 진동이 느껴진다. 무엇인가 큰 것이 오고 있다. 두 개인가 했더니 이윽고 소리가 세 개가 되었다. 두 발 동물 두 개와 네발 동물이지만 그 네 발 동물은 토끼보다 훨씬 크다.

전력을 다해서 지각을 그 동물에게 집중시키고 있으니 1~2분 만에 상대편이 지각권 내에 들어왔다. 어젯밤 토미를 뒤쫓고 있던 일당이다. 토미의 아버지와 샤롯테의 아버지, 거기에다가 개인 버크. 버크는 사슬을 앞으로 당기면 곧바로 동굴로 다가온다. 그들은 토미의 자취를 더듬어 토미가 그들을 향해 뛰쳐나가기 전에 있던 곳을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일까? 지성체에게도 그들이 그런 의도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곧 알기는 했으나 토미가 죽어 버렸는데도 그때까지 토미가 있었던 곳따위에 무엇 때문에 관심을 보이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설마하고 생각했다. 거기에다 토미로부터 떠난 이후 자신의 육체를 지켜주거라 다른 곳으로 옮겨줄 수 있는 동물은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 토끼보다 큰 것은 없었다. 갑자기 가까이에 자고 있는 토끼라도 있다면 그놈에 옮아 타고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개를 다른 곳으로 유인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곧 그런 짓을 해도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는 사슬에 묶여 있으며 토끼를 쫓으려고 하면 두 사람은 그것을 당겨 다시 토미의 발자취를 찾게 할 것이다.

지성체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만약 발각되면 아무런 손을 써볼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별로 겁을 내지 않았다. 발각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래땅을 팔 이유가 없다. 물론 동굴은 발견하여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왜 토미가 이런 곳에 왔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마 파보지는 않을 거라고 지성체는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버크가 덩쿨을 돌아 동굴 입구가 보이는 곳으로 두 사람을 안내해 왔다. 거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덩쿨 그늘에서 토미가 쭈그리고 앉았던 곳을 코로 맡고 있다. 그리하여 동굴로 들어가려 한다. 호프먼이 개를 끌어당겼다. 가너가 입을 열었다.

"야단났네. 동굴에 와 버렸으니. 이런 줄 알았으면 총 한두 자루와 손전등도 한두 개 가져올 걸 그랬지. 이 입구의 크기로 봐서 곰이라도 살고 있는 곳 같애."

"어젯밤에 토미가 있었다면 그때는 곰이 없었을 게 아닌가. 거기다 곰이라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낮보다 밤일 거야."

지성체에게도 지금 주고받는 말은 이미 이해하고 있으므로 사태는 알 수가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옮아 가보기 전에는 이런 말은 의미가 없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토미와 여자가 오솔길에서 주고받은 말이나 은닉처에서 두 사람이 자기 전에 주고받은 대화도 단순한 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쨌든 들어가 봐야지."

호프먼이 말했다.

"잠깐만, 거스. 나도 같이 들어가기는 하겠는데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어. 버크의 목줄에서 사슬을 풀어주고 먼저 들어가게 해야겠어. 무엇인가 위험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들어가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지. 이놈을 먼저 들어가게 하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뒤에서 기어들어 가는 것이 좋겠어."

"옳은 말이야."

호프먼은 버크의 목걸이에서 사슬을 벗겨낸다. 버크가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토미가 들어갔던 가운데쯤에서 발자국은 사라졌다. 버크는 거기에 누워 버렸다. 사나이들은 잠시 귀를 기우리고 있었으나 호프먼이 말을 한다.

"괜찮은 것 같은데. 짖기도 전에 놈을 해칠 수 있는 짐승은 없을 테니까. 들어가 보자구."

호프먼이 기면서 들어가고 가너도 뒤를 따랐다. 버크가 누워있는 동굴 한가운데 부근으로 오더니 두 사람 모두가 서 있을 수 있는 높이로 천정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어두컴컴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모양새가 보인다.

"아하, 이런 곳인가. 버크가 여기에서 누워 버린 것을 보니까 토미가 온 것도 여기인듯 한데. 아무것도 없지만 기분 좋게 선선한 곳이군. 나가기 전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세."

가너가 말했다. 두 사람은 앉았다. 지성체는 개를 관찰하고 있었다. 개를 자세히 보는 기회는 이것이 처음이었으며 적어도 지금까지 관찰할 수 있었던 이것이 가장 컸다. 이제 개가 필요하면 이 버크에게 옮아 탈 수가 있으며 잠들어 있는 것이 있으면 가까이에 있는 다른 개에도 옮아 탈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우기 지금 버크는 냄새를 더듬어가는 일을 중지하고 잠들어 있는 것이다. 지성체는 생각했으나 기다렸다. 버크에게 옮아 타면 지금의 자신의 지각은 사용할 수가 없고 버크의 오감밖에는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곳까지 왔는지 생각해보았는데 말이야."

호프먼이 말했다.

"거스, 누구에게나 짐작이 간다구. 토미는 머리가 돈 상태야. 그것이 이유야. 어린 시절에 이 동굴을 발견하고 그것을 생각해 내고 여기에 숨으려고 한 거야. 무엇을 피하여 숨으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머리가 돌아 버린 사람의 사고방식은 남이 알 수가 없는 거야."

"숨으려고 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무엇인가를 숨기려고 왔는지도 모르잖아? 그게 아니면 전에 숨겨놓은 무엇인가를 파내기 위하여 왔을지도 모르겠어. 뭐냐고 물어도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밑은 부드러운 모래땅이라 힘들이지 않고 파낼 것만 같다구."

"숨겼다고 한다면 무엇일까? 또한 파내려고 했다면 그게 무엇일까."

"모르겠어. 그러나 여기서 무엇인가가 발견되면-"

들쥐에게 옮겨타는 것보다 약간의 저항은 있었으나 지성체는 극히 짧은 순간에 버크의 마음으로 옮겨 탔다. 버크가 머리를 쳐든다. 버크는-아니 버크에게 옮겨 탄 지성체는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살해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덤벼들어 잡히거나 피살되기 전에 두 사람을 물어뜯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당분간은 여기를 파는 일은 저지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물어뜯기만 하면 두 사람은 당황하여 시가지의 의사에게 달려갈 것이다. 설사 심하게 물리지 않았다고 해도 토미나 여자가 지녔던 광견병의 공포는 떨쳐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가너가 말했다.

"거스, 지금은 그만두자구. 어쨌든 파보아도 무엇이 밝혀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내일로 미루겠다면 나도 함께 와주겠어. 첫째로 여기는 랜턴이나 손전등을 가져오지 않으면 너무 어둡고 어차피 파볼 바에는 틀림없는 방법이 좋지 않겠어. 거기에다 삽이나 괭이를 가져와야 일도 빠르고. 거기에다 이제 시간도 없다구. 이래서는 점심 전에 돌아가야 할 시간도 촉박하고 점심이 끝나면 손을 씻고 옷도 갈아입고 심문에 출석해야지."

거스가 대답했다.

"제드, 자네 말이 맞는것 같아. 좋아, 지금은 이대로 두었다가 다음에 하자구. 그런데 심문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한 가지 알았다구. 토미가 어디에 갔었느냐는 거 말이야. 우리의 랜턴이 가까와지는 것을 보았을 때까지 토미가 있었는 듯하다는 것도 알았어. 우리의 랜턴을 보고 이 동굴을 나왔다면 바로 저기에서 우리와 만나게 된 거지."

버크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인간들이 동굴에서 기어나가자 그 뒤를 따라 나와 차도로 돌아오자 2마일쯤은 진짜 버크가 했던 대로 호프먼과 나란히 달렸다. 큰길에 나서자 갑자기 두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뛰어간다. 도로를 따라 그러나 두 사람이 가고 있는 방향과는 반대인 동쪽을 향해서 달린다. 동굴을 향해 다시 숲으로는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인간에게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는 의심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호프먼이 뒤에서 불렀으나 못 들은 척하고 계속 달렸다. 모퉁이를 돌아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보통의 뜀박질 속도로 숲속을 헤쳐간다. 거기에는 오솔길도 없었으나 버크의 지형이나 지리에 대한 감각 또는 지식에서가 아니라 지성체로서는 정확한 방향 파악이 가능했던 것이다. 일직선으로 동굴로 돌아왔다. 동굴에 들어서자 버크는 모래땅을 9인치나 파서 지성체의 껍데기를 입에 물고 동굴 밖으로 옮겨 놓고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자신이 판 구멍을 메운다. 구멍을 메운 다음 그 위를 너댓 번 뒹글고 거기에 구멍이 있었다는 흔적을 완전히 지운다. 이윽고 밖으로 나오더니 지성체의 육체를 입에 문다. 메추라기보다 무겁지 않다. 상처를 입은 새를 입에 물고 운반하는 것처럼 버크는 가볍게 다룰 수가 있었다.

다시 숲속을 헤쳐갔으나 오솔길은 물론 노루나 곰의 발자국까지 피하도록 애쓰면서 가장 깊숙한 가장 모습을 찾기 힘 드는 곳을 찾는다. 키가 큰 풀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덩굴에 둘러싸인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죽은 나무를 발견했다. 적어도 당분간는 여기가 안전할 것이다. 죽은 나무의 구멍에다 물고 온 지성체를 넣고는 앞발로 구석 쪽으로 밀어 넣고는 보이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는 앞서와 같은 방향으로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하면 만약 다른 개가 버크의 발자취를 더듬어 온다고 해도 죽은 나무 옆을 지나쳐 버릴 것이다. 다시 100야드쯤을 가다가 앉더니 지성체는 생각났다. 이것으로 인간들이 그 동굴을 파헤치러 가도 발각될 걱정은 없다. 그러나 당면의 숙소로서 이 버크를 택하고 있는 편이 나을까? 자세히 생각한 끝에 그것은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크를 이용할 용건은 끝났으며 이대로 버크에 옮아 타고 있는 한 그는 버크의 감각밖에는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달리 옮아갈 상대를 살펴볼 수도 없고 당장에 옮아갈 수도 없다. 필요하다면 독수리나 올빼미, 사슴 등의 동물에도 옮겨갈 수 있도록 대비해두고 싶었다. 버크에게 옮아 타고 있는 동안은 설사 그런 동물이 옆을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당장 거기를 옮겨갈 만큼 관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버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큰길로 향한다. 길옆에서 그는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마지막 순간에 운전하고 있는 인간이 브레이크에 발을 대기도 전에 별안간 뛰쳐나가 타이어 아래로 뛰어들었다.

1분 후에 그는 구멍이 나 있는 죽은 나무에 돌아와 있었다. 버크가 죽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지성체는 방금 해낸 짓을 모든 점에서 검토하여 이번에는 실패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실패는 하지 않았으나 그로서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으로 한 가지만의 실패가 있었다. 버크가 뛰어드는 것을 다른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버크를 치어 죽인 차를 운전하고 있었던 것은 문학박사이자 이학박사, 매사츄세츠 공과대학 물리학 교수인 랄프 S 스탄턴이었기 때문이다. 스탄턴 박사는 외모는 그렇게 훌륭한 편은 못되었다. 작은 편이며 신장은 4피트 6인치 정도, 체중은 125파운드가 조금 넘을까 할 정도이다. 나이는 50세 짧게 깎은 머리에는 흰 것이 씌여 있었으나 용수철과 같은 강인함과 기민한 정신과 육체의 덕으로 나이보다는 훨씬 젊게 보인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수시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는 눈이지만-단지 눈이 빛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색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내는 것이다. 지금은 휴가중이기 때문에 매우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다. 거기에다 수염도 깎지 않는 그대로다. 누가 보더라도 이 인물이 이 나라 굴지의 두뇌를 가진 인물의 하나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6

나직히 혀를 차면서 스탄턴 박사는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웠다. 그의 책임은 아니었다. 뛰어드는 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귀찮게 되었다. 이 개는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미쳐서 어두운 구름 속을 옆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돌진해왔단 말인가? 대체 어디서 달려왔는지도 모를 만큼 갑자기 길가 덩굴 속에서 뛰어든 것이다. 차의 모습을 보고는 정지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차소리가 개의 귀에 들리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조용한 시골길에서 들리는 것은 이 차의 소리뿐이다. 차는 스테이션 왜건이며 오래되어 소리가 요란한 고물이다. 그가 2주일 전에 비행기로 그리 베이에 도착하여 거기서 구입한 차였다.

위스콘신에서의 이 휴가가 끝나면 고물상에다 불하를 해도 6주간의 대여차의 요금보다 싸게 먹히는 고물이다. 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자 개가 차라리 죽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박사는 걸어서 돌아왔다. 어차피 살기는 틀린 것 같았다. 왼편 앞바퀴와 뒷바퀴가 정통으로 개의 몽뚱아리를 치고 말았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고생하다가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차에서 20여 걸음 뒤에 개는 뒹굴어 있었다. 차가 멈추기까지 그만큼 달린 셈이다. 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박사에게 들리도록 신음소리를 내는 기색도 없었으나 도중까지 가서야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호흡을 할 때마다 옆구리가 벌렁벌렁 움직이고 있다.

박사는 다시 차를 타며 차로 돌아왔다. 차에는 총기라고는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으나 타이어 수리용의 도구라도 없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지렛대를 들고 급히 개에게 다가갔으나 그 때는 이미 개는 죽어있었다. 눈은 뜨고 있어도 그 눈은 이미 공허한 빛이였으며 입에서는 피를 흘리며 숨도 끊겨 있었다. 박사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딱하게 되었군. 누구 개인지 알아내어 말이라도 해주어야겠군."

박사는 몸을 구부려 다리를 들고 길 가장자리로 옮겨주었으나 거기에서 몸을 일으켜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 자신이 하든가 주인이 하든가 어차피 묻어주어야 할 테고 만약 이대로 방치해두면 매나 독수리 등의 장난으로 묻기가 훨씬 번거롭게 될 것이다. 이 스테이션왜건에는 삽은 실려있지 않지만 이제는 버려도 좋을 만한 낡은 방수포가 있다. 방수포를 끌고 와서 펼친 다음 그것은 노상에 펼처 다시 둘로 접는다. 그 위에다 죽은 개를 놓고 너댓 번 방수포로 말아준다. 그것을 스테이션왜건 뒤에다 실었다.

박사는 시내에서 여기저기 물품을 구매하는 용건을 마쳤으나 그런 가게에서 개에 관한 것을 말해보았다. 숫놈인 사냥개로 적색과 백색의 반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집에서 그 개라면 거스 호프먼의 소유에 틀림없다는 사람을 만나 호프먼이라면 아들의 검시 심문 때문에 시내에 나타날 거라는 말을 들었다. 아들이 어젯밤에 자살했다는 것도 검시 심문을 시내의 시체안치소에서 열릴 거라는 말도 들었다.

스탄턴 박사는 검시 심문이라는 것에 나가본 일이 없으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호기심도 있어 시체 안치 장소 가보았더니 심문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알았다. 의자는 이미 비어있는 것이 없고 뒤쪽에 서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어 박사도 거기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샤롯테 가너가 증언을 하고 있었으며 듣고 있는 동안 박사는 그 말에 더욱 열중해가는 자신을 깨달았다. 샤롯테 가너는 맨 먼저 침착하고 대담하게 토미 호프먼과의 관계에서의 진실을 가식 없이 이야기하고 그다음 눈을 떴을 때 토미의 옷은 있었으나 토미 자신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머지는 듣는 이의 상상에 맡겼다.

토미를 부르며 찾아다닌 이야기를 하고 나서 부모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집으로 달려갔다는 증언이 끝나자 검시관은 그녀를 퇴정시키려 하였으나 샤롯테로서는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검시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들쥐에 관한 것은 말하지 못했으나 들쥐가 토미의 바지에 기어올라 토미가 손으로 뿌리쳤을 때 들쥐에게 물렸을지도 모르니까 그 점을 증언에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어쩌면 토미가 무슨 광견병 같은 질병에 걸려......

검시관은 샤롯테에게 끝까지 이야기를 시켰으나 다음 증인을 부르기 전에 잠시 배심원들을 향해 광견병의 증상과 그 잠복기가 상당히 길다는 것을 설명했다. 들쥐에게 물려 토미가 그런 당돌한 발병을 할 리가 없으며 따지고 보면 증후도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설사 그 들쥐가 광견병에 걸려있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토미는 물리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토미의 손의 피부는 어디에도 파손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에는 긁힌 자국이 여러 곳 있었으나 이것은 숲속을 맨발을 뛰어다녔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물려서 생긴 상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스 호프먼이 다음 증언에 서고 그다음이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였다. 스탄턴 박사는 귀를 곤두세워 특히 개 버크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놓지지 않고 들으려고 했다. 버크는 어젯밤에는 토미의 뒤를 추적했고 오늘 아침에도 그 동굴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증언은 보안관이며 전화를 받은 숲으로 가서 호프먼과 가너와 함께 시체를 운반했다는 증언이었다.

검시 심문의 배심원이 별실로 퇴정했으나 곧 돌연적 정신착란에 의한 자살이라는 표결을 들고나왔다. 방청인도 슬슬 나가기 시작했다. 박사는 이제 개의 소유주로 알려진 거스 호프먼 쪽으로 다가가려고 했으나 호프먼은 시체안치소 안의 사무실 입구로 들어가 버렸다. 틀림없이 장례식의 상의를 위해서의 상의겠지. 가너의 아버지와 딸도 같이 들어갔다. 박사는 여기에서 보안관인 듯한 거한을 잡고 자기소개를 한 다음 개를 치어 죽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보안관, 호프먼씨에게 이야기하는 거나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고 어쨌든 호프먼씨는 어젯밤의 아드님을 잃었다는 충격도 있을 테고-개까지 죽었다는 것은 지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개는 그저 도망쳤다가 길을 잃은 것으로 해두었다가 이제는 돌아오지 않겠지 하고 단념시키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떨까 해서요."

박사는 말했다. 보안과는 머리를 끌적인다.

"글쎄요, 그것은."

하고 망설인다. 박사가 다시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당신이 잠시 생각하도록 시간을 드리고 이 사실에 대해서는 나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니 한두 가지 질문도 하고 싶으니 맞은편 바에서 한잔하지 않겠소."

"글쎄요-한잔할 정도의 시간은 있지만......그 전에 한두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가서 계시면 10분 이내에 가겠습니다."

버톨스빌에 도착한 첫날 들여보고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던 그 바에 들어서자 박사는 맥주를 주문하고 파이프를 채워 불을 붙였다. 충분히 냉각된 맥주는 맛이 있었다. 마침 잔을 비웠을 때 보안관이 앞자리에 와서 앉는다.

"맥주가 좋을 것 같군."

하고 말한 다음 바의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행크, 맥주 큰 놈으로 두 잔. 큰 놈으로 말이야."

그리고나서 박사를 향해 말한다.

"방금 길을 건너오면서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굳이 지금 당장 거스에게 개의 이야기를 하여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무척 타격이 큰 상태입니다. 다만 그-개의 죽은 사해는 그 양반이 돌아갈 때 알아보도록 도로에 그대로 놓아두었나요."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발견하여 전화로 그 양반에게 알리도록......"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둘둘 싸가지고 내 차 뒤에다 실어 놓았습니다. 돌아가거든 묻어주겠소."

불이 꺼진 파이프에 다시 불을 붙인다.

"개에 관해서는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만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뛰어들었으니까요. 브레이크를 밟을 시간도 없이 깔아 뭉겠으니."

보안관은 의아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상한데요. 버크는 언제나 차를 무서워하는 개였는데 차가 달려오는 소리만 들었다 하면 밭으로 도망가기가 바쁜 개였는데요. 총을 싫어하는 개도 있지만 그 개는 자동차 공포증이었지요."

박사는 유심히 보안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놀라운 일인데요. 그렇다면 보안관, 개도 틀림없이 미친 것입니다. 눈도 귀고 막은채 무작정 뛰어들었습니다. 이 부근에서 요즘 광견병이 발생한 예가 있습니까."

"지난 2년 동안은 없었습니다. 아니 더 오랜 기간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보안관은 흥미가 없는듯 하다.

박사는 이 보안관이 바보는 아닐까 하고 그 크고 둥근 얼굴을 보았다. 아마도 바보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표준 정도의 지능은 있을 테지만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들쥐의 행동의 기묘성이나 개의 행동의 이상한 면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토미의 행동만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분명히 토미의 행동도 기묘했지만 어차피 토미는 돌발적인 착각에 빠져들었고, 돌아 버린 인간은 돌아 버린 행동을 하는 법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이 보안관의 생각이며 관계가 있는 인간도 없는 인간도 검사심문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렇고 보안관에게 검사심문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지? 그렇지-

"그런데 보안관. 나는 심문에는 약간 늦어서 검사보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해부는 했나요."

"해부? 아니 무엇 때문에? 토미가 스스로 자기 손목을 끊어 자살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도 없었으니깐요. 그 밖에는 상흔도 없었어요. 물론 가시덤불에 긁힌 종아리의 상처나 발바닥이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기는 했지만."

박사는 열다가 그대로 다물고 말았다. 보안관이 말했다.

"참 그렇지. 당신은 그 길을 들어가서 어디에 묵고 있는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싶어 했지요. 도로의 막바지, 여기서 10마일쯤 들어간 곳의 그 집인가요."

박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옛날부터 버튼 저택이라고 부르던 곳입니다. 전에는 농가였으나 지금은 들판의 독립가옥입니다. 보스턴에 있는 나의 친구가 그곳을 사서 여름 휴가의 피서지를 만들었지요. 금년 여름에는 그 사나이가 오지 못하고 나에게 사용하라고 대여해 주었지요."

"아하하, 그 사람의 이름은-아아, 그렇지-헤스팅 부부였지. 두세 번 만난 일이 있지만 역시 여름이었지요. 당신은 부인과 동반인가요? 아니면 거기에 혼자서."

"혼자입니다. 아내가 없어서. 때로는 나도 혼자서만의 생활을 해보고 싶다구요. 학생 상대의 생활을 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학생이라구요. 당신은 무슨 선생인가요. 스탄턴씨."

"이래뵈도 박사입니다. 보안관. 매사튜세츠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문은 전자과학입니다. 인공위성의 계획에도 손을 대고 있습니다. 여름휴가의 절반은 그 일 때문에 빼앗겼지만 남은 기간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켓 말인가요."

보안관의 말투에 존경의 뜻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켓 그 자체는 아닙니다. 주로 인공위성의 방사능이나 우주선 같은 것을 탐지하는 장치와 그 정보를 전하는 장치 쪽이지요. 예를 들면 패들보일 형 인공위성의 구성 따위에도 설계 면에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나의 흥미는 낚시질 쪽이 강하지요.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에서 동쪽으로 (마일의 지점에 강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도 거기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인도-그 당신의 친구인 그 집의 소유주인 헤스팅도 수렵 해금 때 한 번 오시면 좋을 텐데. 거기에는 노루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댁의 북쪽 숲에는."

"공교롭게도 나는 수렵을 별로 잘하지 못합니다. 라이플과 권총은 가져왔습니다만 이것도 단순한 사격 연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헤스팅의 말로는 독사가 그 일대에는 있을지 모른다고 해서 산탄총도 가져왔습니다만 아직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맥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좋지요."

보안관은 바텐더에게 손가락 둘을 들어 보인다.

"보안관. 이 부근에서 그밖의 변사사건은 없었습니까."

박사가 물었다.

보안관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변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지난 3~4년 동안에 미궁에 빠진 살인이라면 두 건쯤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거나 도둑의 소행으로 별로 이상한 데는 없었습니다만."

"그밖에 갑자기 자살한다든가 사람을 죽인다든가 하는 미치광이 사건은."

"글쎄요-나는 보안관이 되어 이럭저럭 6년이 됩니다만 그런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어디가 진기하다고 하시는지? 인간이란 머리가 돌아 버리는 존재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나 광기란 언제나 일정한 형태를 밟으며 나타나는 것입니다. 토미 호프먼의 경우는-저어-."

"그게 자살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요. 다만 어떤 형태의 정신착란이었는지 그것이 이상하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왜 그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이상합니다. 좋은 분위기에서 쉬고 있을 때-어째서 그런 일이? 매우 즐거운 일을 마치고 만족한 기분으로 낮잠을 자고 있을 때니까 말입니다.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지요. 그런데 보안관, 당신은 내가 묵고 있는 그 강에서 낚시질을 한 일이 있다고 하셨지요. 첫째는 어떤 바늘을 사용하나요."

두 잔째 맥주를 마시고 보안관은 이제 윌콕스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면서 돌아갔다.

박사는 또 한 잔을 주문하여 그것을 마시면서 파이프를 빨고 있었으나 생각에 열중하여 빠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파이프의 불이 꺼진다. 세 가지 죽음. 들쥐와 젊은이와 개의 죽음에 믿을 수 있는 유대를 생각한다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보안관은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하찮은 일에 얽매어있는 것에 불과할까?

들쥐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먼저 앉아서 젊은 남녀를 향해 저편으로 가라는 듯이 앞발을 흔들어보았다. 그리고 처녀에게 얌전하게 잡히기는 했으나 잠시 물어뜯는 시늉을 했다. 그녀가 던져 버리자 도망치려다가 이번에는 다시 돌아서서 남자를 공격했다. 결과적으로는 자살행위였다. 그리고 그 청년 토미 호프먼의 경우다. 이 또한 여자 옆에서 잠들어있다가 어쩌면 눈을 뜨자 곧 광기가 발동하여 역시 마지막에는 자살이었다. 박사도 그런 상태에서 머리가 돌아 버려 자살할 수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박사도 이상심리학은 전혀 조예가 없는 것도 아니며 조짐도 아무것도 없이 광기의 시초에 아무런 직접적인 원인도 어떤 외적 경험도 없이 갑자기 완전한 광기에 빠져 버린 예는 들은 적이 없다. 거기에다 개다. 박사는 이 개 때문에 관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개는 광견병에 걸릴 수도 있고 눈도 귀도 먹통이 되어 무작정 뛰어보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만약 광견병이 아니라 정상이었다면 그의 차에 뛰어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보아서 자살행위이다. 특히 그 개는 자동차 공포증에 걸려있던 개라고 한다. 물론 이 점은 박사가 보안관으로부터 얻어 낸 유일한 새로운 정보이며 버크의 죽음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쥐라는 것은 북극의 쥐는 예외일 테지만 결코 자살 같은 것은 하는 것이 아닌 존재이다. 박사는 갑자기 남은 맥주를 후다닥 마시고 파이프의 재를 떨어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린 베이에는 버크가 광견병이었던가 아닌가를 조사해줄 수 있는 연구소가 있다. 그린 베이까지는 불과 45마일의 거리이며 아직 시간은 오후 세 시다. 개의 사체는 스테이션 왜건에 실려있으니까 충분히 그 연구소에 갈 시간은 있다. 거기에다가 지난 일주일 동안 현재의 집에서 이 버틀스빌까지의 10마일 이상의 나들이를 한 적이 없으며 그린 베이에 하룻밤 다녀오는 것도 기분전환에는 좋을 것이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할 수가 있으며 재미있는 것을 상영하고 있으면 영화를 보아도 좋다.

박사는 마음먹은 대로 다 해버렸다. 그동안에 개의 사체는 연구소에 넘겨주고 다음 날 오후 버틀스빌에서 전화로 결과를 들을 수 있도록 조사 수수료는 선불로 해두었다. 그런 다음 저녁을 먹고 여남은 권의 가벼운 책을 읽을거리를 사 모았다. 그것이 모두 추리소설뿐이다. 작업 중에는 수시로 딱딱한 책을 읽지만 휴가 때는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 문학 서적밖에는 읽지 않는다.

저녁은 맛이 있었다. 자취 요리와는 취향이 달라서 좋았고 버틀스빌 부근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이만큼 맛이 없다. 박사가 본 영화는 브리지트 바르도의 프랑스 코미디이며 줄거리의 해독에는 힘이 들었으나 얼마 동안 보고 있는 사이에 줄거리는 단념하고 바르도의 인물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열 시가 조금 지나 친구인 헤스팅으로 빌려든 도로 막바지의 그 집으로 돌아왔다. 전에는 농가였다. 상당히 큰 농가였다. 이 층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침실이 세 개, 욕실이 하나. 아래층은 세 개의 방으로 큼직한 부엌과 넓은 거실, 거기에다가 창고로밖에는 사용하지 않는 예비 방이었다. 이 예비 방에다 박사는 총기류와 낚시도구를 넣어두었다.

전기는 지하의 발전기에 의한 자가 발전이며 작은 가솔린 엔진으로 가동되는 것이었다. 그 엔진이 또한 수시로 옥상의 탱크에다 물을 퍼올려 주기로 한다. 전화는 없었으나 박사는 태연했다. 실제로 전화는 없는 편이 나을 정도이다. 집 주변은 그 옛날 남쪽은 밭이었으나 어떻게 된 것인지 적어도 20여 년은 버려져 있다. 집 주변의 뜰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래의 숲이나 덩굴로 돌아가 버렸다. 도로 북쪽의 숲과는 나무가 적고 키가 낮아 구별이 갈 뿐이다.

친숙한 면이 있는 쾌적한 집이었는데 오늘 밤만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박사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사 온 책을 읽으려고 자리에 앉았으나 책에 열중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안온해지지가 않는다.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지만 외톨이가 되었다는 쓸쓸함을 느낀다. 밖에서 엿보고 있는듯한 누군가에 의해, 아니면 무엇인가에 의해 탐지당하지 않도록 세이드를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거리가 먼 도로 막바지인 이 집까지 와서 창으로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있을까? 따지고 보면 누구라든가 무엇인가 하는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동물일 테지만 동물이 들여다보는 것을 내가 왜 신경을 쓰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자신을 달래며 어쩐지 어색해져 맥주를 다시 한 캔 마시고 추리소설에 열중하려고 노력했다.

소실을 다시 읽기 시작하여 20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읽은 앞 페이지가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었다-아니면 재미가 있어야 했다. 첫 페이지부터 살인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흥미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책과 마음의 중간에 토미 호프먼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말았다. ......감색 양말만을 알몸에다 신고 연인 옆에서 누워있다가 일어서서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는 동굴로 도망친다.

아버지와 연인의 아버지가 랜턴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오고 사냥개와 버크의 짖는 소리가 들린 때까지 그 동굴에 쭈그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들로부터 도망쳐 처음 도망친 부근까지 원을 그리며 돌아오자 녹슬고 부러진 나이프를 집어 들고 손목을 양손 다 찢어 놓는다. 책은 지금 15페이지를 펼쳐놓고 있으나 이번에도 박사는 최초의 페이지 이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념하고 책을 던져 버리려고 생각만 하기로 했다.

호프먼 사건에 관해서는 내일 오후 버틀스빌에서 연구실에 전화하여 버크의 조사보고를 들을 때까지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그것으로 개가 광견병이라는 것이 밝혔지만 세 가지 죽음에서 한 가지는 설명이 가능해지므로 모든 것을 영원히 잊을 수도 있다. 휴가인 나머지 다섯 주간을 수수께끼와 같은 우연의 일치와도 같은 것에 불과한 무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버크가 광견병이 아니었다면......

잠을 잘 수 있도록 맥주를 다시 한 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후에 잠이 들었다.

 

 

7

지성체는 아직도 쓰러진 나무의 구멍에 있었다. 전날 개를 옮겨 타고 와서 차에 뛰어들어 개를 자살하게 한 후부터 계속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단 한 차례 다른 동물에 옮겨탔으나 이것은 정찰을 위해서였다. 주변 일대를 토미의 기억을 통해서 보기보다는 좀 더 자세히 보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조감이라는 관찰법이다. 그리하여 그 제이의 은닉처에 옮긴 후 첫날 아침 새벽 직전까지 바로 나무 위에서 자고 있는 새에게 옮아 탄 것이다. 그 새가 까마귀라는 것은 토미의 기억을 더듬어서도 그도 알았다. 까마귀의 야간 시력을 시험해보았으나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멀리 날아올라 까마귀의 눈으로 지형을 보았던 것이다. 먼저 큰길로 나가 진로를 따라 높이 솟아오르면서 통과하는 농가를 닥치는 대로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여 토미의 기억과 아울러 그 집들의 대다수의 가족 수나 대체로 어떤 인간이 살고 있는가를 익혔다.

도로 끝까지 날아갔다. 토미는 그 막다른 골목의 집은 빈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집 앞뜰에는 스테이션왜건이 한 대 서있었다. 여기에서 까마귀는 크게 원을 그리며 도로를 거꾸로 돌아와서 가너와 호프먼의 집을 넘어 버톨스빌까지 간다. 시가지 변두리의 나무에서 까마귀를 쉬게 하고 거기에서 다시 버틀스빌의 상공을 원을 그리면서 날며 토미의 기억과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을 연결시켜 보았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수리기사에게 가장 흥미가 쏠린다. 틀림없이 그 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사나이는 적어도 전자과학의 기초는 터득하고 있을 것이며 적어도 당분간은 옮아 탈 수 있는 인간으로서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토미는 그 사나이의 이름도 거주지도 모르고 있었으며 그 사나이가 가게에서 기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사나이를 조사해낸다는 것은 더 많은 조사를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 이외의 생물에 옮겨 타게 하여 그의 지적 범위 내에서 그 수리공이 잠들 수 있는 곳으로 은닉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 것이다.

임무가 끝나자 까마귀는 시가지의 보도에 거꾸로 내려박히게 하여 자살시켰다. 굳이 숲까지 돌아가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성체는 곧 나무의 구멍에 있는 지성체의 육체로 돌아갔다. 그 후로는 그대로 지나고 있었으나 결코 한가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서는 그는 두 번째의 은신처를 여기로 택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동굴보다 숲 속 깊은 곳에 있었으며 훨씬 더 거친 곳이다. 그의 지각 내에서 정밀검사가 가능할 정도로 바로 옆을 지나는 동물도 훨씬 종류가 많았다. 사슴도 지나갔으며 곰도 지나갔다. 살쾡이도 스컹크도 지나갔다. 하도 여러 가지가 모습을 보였으며 그중에는 그의 육체를 옮겨갈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가진 것으로 그도 알고 있는 두 종류 올빼미와 다람쥐도 있었다. 필요하다면 이것으로 낮이건 밤이건 지성체의 육체는 하늘을 날며 운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런 생물에게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옮아 탈 수가 있다. 그런 종류의 어느 것이든 10마일쯤 떨어진 범위 내에 잠들어있는 것이 있으면 가능한 것이다.

훨씬 더 작은 동물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며 그는 큰 동물의 관찰을 하는 여가에 그런 동물도 관찰했다. 뱀도 있었으나 그는 여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동작이 너무 느리고 죽을 때는 좀처럼 죽지 않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죽어주지 않는 동물은 옮아갈 때 매우 불편하다. 확실하게 죽기 위해서는 도로까지 기어 나가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헛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더우기 차에 갈려 뼈까지 상해도 뱀은 곧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오후가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나 거기에서 당장에 다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벌어졌기보다는 그런 사태로 발전할 조짐을 보인 것이다. 배가 고파온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식사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양분공급의 필요성이 생겼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고향의 별에서 이런 추방사태가 벌어지기 전과 그 동안의 시간은 그로서는 눈코 뜰 사이 없이 지나가 버렸으니 추방당하기 전에 양분 보급을 하고나서 지금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수개월에 단 한 번의 보급으로 충분하며 굶주림의 걱정 따위를 할 필요가 있기 전에 이 지구에서 분명한 입장을 구축할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구에는 지성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성체의 종족은 원래 물에서 발생한 것이다. 물속의 미생물을 직접 흡수해온 탓으로 소화기관은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 소화기의 진화 대신 방어를 위한 등딱지가 생겼다. 그 등딱지는 강도를 증가시켰는데도 불과하고 종전대로 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침투성을 가지고 있다. 등딱지가 진화할 때까지는 그드 1. 2. 속력뿐이었다. 인력이 적은 별에서 더우기 물의 부력에 의해 그들의 부양력과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천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놀라운 효과를 보여왔던 것이다. 그러한 능력과 지각기관이 그들의 종족에게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더듬어 올라갈 수 있는 자신들의 진화과정의 최초부터 있었은 듯하다.

다른 생물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른 생물에 옮아갈 수 있는 능력은 그들의 지성이 발달한 후에 늦게 진화된 것이다. 이 능력에 의해 그들의 종족에게도 훨씬 지적인 것들은 깊은 바다에서 기슭 가까이에 살게 되었다. 육지에서는 다른 형태의 진화가 발전했고 육상동물도 있었으며 그들에게 사로잡혀 옮아 탈 수 있을 만한 해변에서 잠자는 동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육상동물은 바닷속의 무엇보다도 옮아 탈 상대로는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지구의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이었다. 그들은 지적인 지령을 내려 그런 동물에게 일을 시킬 수도 물건을 만들게 할 수도 있었다. 흡사 인간이 원숭이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면 원숭이에게 명령하여 인간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을 시키고 물건을 만들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옮아가기에 절대적인 동물을 이용하여 지성체는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켰다. 처음 얼마 동안은 육체는 대체로 바닷속에 있어야 했으므로 간혹 육지의 동물을 다루는 정도였으나 끝내 그들은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물속에서 항시 양분을 흡수하고 있기보다는 양분의 용액을 간혹 흡수함으로써 필요한 양분을 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1,000배나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으로 이미 그들은 자신들에게 편리한 동물에 옮아가서 언제까지나 바다에서 떠나 살 수 있게 되었으며 몇 달 만에 한 번씩 그 동물에게 원래의 육체를 양분의 액체에다 한 시간 남짓 담궈둠으로써 충분한 식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지성체 중에는 아직도 바다에서 살아가는 집단도 있었으나 그런 집단은 비교적 원시적인 집단이며 육상의 진화된 종족에 비하면 흡사 지구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을 원자과학자와 비교하는 것과 같은 차이였다. 그러나 지성체의 고도로 진화한 종족 수천 년에 걸쳐 간혹 양분의 용액에서 자양을 섭취해 왔으므로 이제는 바닷물을 흡수하여 양분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능력을 잃고 말았다. 그들의 상태는 흡사 오랫동안 주사에 의해 영양 보급을 하며 연명해 온 인간이 소화기관의 퇴화로 다시는 보통 식사로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지성체는 숲속에서 동물을 옮아 타고 자신의 육체에 양분을 공급할 수도 있었다. 만약에 달리 적당한 지성 동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도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번거롭고 지속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번갈아가며 여러 동물에 옮겨 다니며 일의 여러 가지 단계를 각기 적당한, 아니면 가능하면 적당한 동물을 택해서 시키는 절차다.

보통의 식품이 갖추어진 부엌을 가진 인간에 옮겨타면 적당한 양분의 용액은 당장에라도 가능하다. 단백질만 풍부하다면 사소한 성분은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다. 그의 육체는 필요한 것만을 흡수하며 미각이 없으니까 맛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수프스톡이건 고기의 수프이건 고깃국이건 훌륭한 도움을 준다. 하는 수 없을 때는 우유라도 괜찮으나 우유라면 고기류가 녹은 액체보다 훨씬 오랫동안 그 속에 잠겨있어야 한다.

어쨌든 영양을 섭취해야겠다고 깨닫자 당장에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인간에게 옮겨타는 것을 예정보다 일찍 해보는 것이 다소의

위험은 수반되지만 해볼 만 한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옮겨타야 할 인간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가장 좋은 것은 혼자 사는 사람이다. 밤중에 부엌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발각되어 변명이나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좋다. 그러나 이 가까이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그가 알고 있는 혼자 사는 사나이는 거스 호프먼뿐이다. 토미의 아버지로 그 집은 가장 가까운 집과 비교해서 배의 거리가 된다. 1마일이라도 멀면 그만큼 그의 육체를 운반하는 동안의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가장 가까운 집에는 사람이 둘밖에는 살지 않았다. 지그프리드와 엘자 그로스 노부부다. 독일인의 남편은 대다수가 그렇지만 지그프리드는 독재자형 남편이었다. 아내가 눈을 뜨고 남편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내려와도 남편이 올라가라고 소리치면 순순히 침실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녀가 눈을 뜨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다. 만약 그로스를 이용하고 있는 동안에 남의 눈에 발각되면 그로스의 이용 가치는 거기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가정해도 어차피 나머지는 간단하다.

공격은 밤이 될 테니까 운반에는 올빼미가 가장 좋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육체를 무사히 잡고 날 수 있는지를 먼저 실험해보아야지. 만약에 올빼미가 불합격이면 다음은 다람쥐가 되겠지만 이놈의 경우는 날 수 있는 힘과 야간의 눈의 시력도 조사해 봐야 한다. 지성체의 육체를 들고 가다가 나무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 그러나 지금 계획의 이 단계에서 모든 불의의 사고까지 나열해 본댔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양쪽이 모두 이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처음부터 다른 안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어두워지기 직전 야행동물의 태반이 아직 잠들어 있을 무렵 그는 올빼미에 정신을 집중시켜 그 한 마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하게 올빼미에 옮겨 타놓고 보자는 생각도 있었으나 서둘러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지구의 생물에 대해서 야행동물이건 주간 동물이건 수면의 습관이 완전히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간 활동을 하는 동물인 인간은 대개가 밤에 자지만 토미나 그 여자가 했던 것처럼 때로는 낮잠을 잔다. 훨씬 더 약한 동물은 수면에 들어가는 것도 인간보다 훨씬 가볍고 빨리 잠들게 되므로 정식 수면시간 이외도 수시로 조는 일이 많다. 버크란 개도 둥굴 속에서 1분도 못 되어 잠들지 않았던가. 거기에다가 지성체 옆을 지나치던 사슴도 풀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선 채로 2~3분을 자더니 가까이에서 나는 딱다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에 눈을 뜨고 겨우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야행동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가 육식동물인 듯한데 사냥감을 먹어 치우면 틀림없이 날아오르기 전에 한잠씩을 자고 가는 모양이다. 주간에 주행성 동물로 옮겨 타거나 밤에 야행성 동물로 옮겨타는 것은 정상적인 수면시간 중만큼 간단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렵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올빼미에 옮아가서는 다시 수면을 계속시킨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 충분히 휴양시간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두워질 때까지는 어차피 마찬가지일 테니까 눈을 뜨게 해놓아도 하는 수가 없다. 어두워져서 깨우고 날게 하여 부리와 날개의 강도를 테스트하고 올빼미가 몸을 틀면서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찰을 위해서 까마귀를 이용했을 때는 이런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공을 직선으로 날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올빼미에게는 자신의 육체를 운반해주도록 맡기고 있는 처지이므로 지면에 가깝도록 나무가지 위가 아니라 가지 밑을 빠져나가며 날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 지구에서의 중력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고향의 별의 네 배는 된다고 추측했으니까 6피트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도 부상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초지나 부드러운 땅이라면 2배가 되는 높이라도 걱정은 없을 것이다. 나무의 정상에서 떨어진다면 풀숲의 쿠션에도 떨어진다는 행운이 있기 전에는 아마도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올빼미의 훌륭한 비상 방법에 만족하며 이번에는 올빼미의 눈을 통하여 적당한 크기의 돌을 찾게 했다. 돌은 발견되었다. 적어도 그 자신과 같은 정도의, 아니 아마도 한 배 반은 무게가 더 나갈 것만 같은 납작하고 대체로 그의 육체와 비슷한 돌이었다. 올빼미에게 그 돌 위에 앉게 하여 발톱으로 그 돌을 잡게 한다. 이륙은 어려웠으나 일단 이륙을 해 버리면 무거운 짐을 가져도 올빼미는 가볍게 날았으며 돌을 움켜쥔 발톱도 완강히 작용하였다. 확인을 하기 위해 얼마 동안 날게 하다가 돌을 버리게 하고 구멍이 있는 쓰러진 나무 옆으로 유도했다. 열 시경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올빼미를 쉬게 했다. 지성체의 시간 감각은 방위 감각과 함께 뛰어난 것이었다. 높이 올라가지 않고 지그재그 코스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도중에서 한 시간은 걸리리라고 예측했다. 열 한 시에는 늙은 농부 부부는 틀림없이 잠들어있을 것이다.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올빼미를 구멍이 있는 나무에서 내리게 하여 자신의 육체를 밖으로 내게 한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였다. 얼마 동안 그는 지금의 올빼미를 자살시키고 이 작업을 위하여 다른 동물에 옮아 탈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토끼라면 쓰러진 나무의 저편으로 들어가서 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다른 올빼미에 옮아 타고 운반을 시킨다. 그러나 이럭저럭 올빼미를 구멍에 밀어 넣고 발톱으로 등딱지 가장자리를 끌어 끄집어낼 수가 있었다. 날아가는 시간도 예정보다 오래 걸렸다. 올빼미는 그의 몸을 발톱에 잡고 가볍게 날 수는 있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계속하여 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무거운 짐을 가졌으며 날개의 근육이 피로하리라는 생각에서 짐을 내려놓게 하여 쉬도록 해주어야 했다. 올빼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다. 지성체가 일부러 냉혹하게 대한 것이 아니라 지성체 자신은 자신의 동족 이외에는 동정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거기에다 도중에서 이 올빼미를 죽이고 다른 올빼미를 옮아 탄 다른 것도 시간을 낭비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로스의 집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 직전이었다. 올빼미에게 자신의 육체는 도로와 밭 사이의 울타리 밑 초지에 놓아두게 하고 그 농가를 여러 차례 정찰시키며 자신의 은신처를 택한다. 집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부근에 개가 없어 이것으로 한 가지 문제는 처리되었다. 거기에다가 가장 좋은 은신처는 뒤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가 좋을 것만 같다. 창고가 가깝다는 이점도 있다. 또한 인간에게 옮아 타기 전에 창고에는 대체 어떤 동물이 있는지 관찰해둘 기회도 갖고 싶었다. 지금 현재까지는 개를 제외하고는 후에 자유롭게 옮아 탈 수 있게 된 새나 짐승은 모두가 야생동물뿐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처지이므로 장래에 대비하여 특별한 목적으로 가축을 이용할 수 있게 해두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개를 이용했을 때처럼 말이다. 어차피 시간이 있으니까 관찰을 해두는 것도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올빼미를 자신의 껍데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울타리를 넘어 뒤쪽 출입구 계단 옆으로 운반시킨다. 그리하여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가능한 깊이 계단 구석으로 밀어 넣게 했다. 이것으로 이제 올빼미의 이용 가치는 없어졌으므로 원을 그리며 높게 날게 하여 집의 벽에다 힘껏 부딪혀 자살을 하도록 유도했다. 지면보다야 벽이 더 단단할 것만 같아서다. 타당! 하는 소리에 집 안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무방했다. 어차피 다시 잠을 청할 것이며 그때까지 본래의 지각을 이용하여 창고나 그 밖의 동물의 관찰할 수 있다.

올빼미의 추락사는 마지막 순간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단단한 벽에 돌진한다는 것을 깨닫고 올빼미가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근육이 그런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지성체가 그 눈을 뜨게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눈을 뜬 채 돌진시킬 수도 있었다. 버톨스빌의 시내에서 까마귀를 추락시켰을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으므로 그 정도를 예상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지성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올빼미의 경우는 어느 정도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을 장님비행을 해 버렸기 때문에 올빼미는 집의 외벽에 부딪히지 않고 이층 창의 유리문을 박살 내며 뛰어들고 말았다. 올빼미는 집 안에 굴러떨어져 쳐박혀 있었다. 아직 살아있기는 했으나 눈이 빙빙 돌며 날개도 부러져 있었다. 옆방에서 전등 스위치를 넣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고 빛이 새어들어 올빼미의 눈이 부셔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그러나 완전히 안 보이는 것은 아니며 가물가물 보이기는 했다. 지그프리드와 엘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구에 서있다. 두 사람 모두가 면의 플란넬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로스가 말했다.

"바보 같은 올빼미군. 창으로 뛰어들다니 총을 가져오라구-."

"당신, 왜 죽이려고 하지요? 이놈은 쥐도 잡아주고-."

올빼미는 사력을 다하여 일어섰다. 자신의 생명을 단절시키기 위하여 공격을 해야 한다면 공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여자가 한 걸음 거기로 다가서자 그로스가 말했다.

"엘자, 잠자리에 가 있어."

매서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잡으려고 하면 물어뜯거나 할킨다구. 이런 짐승들은 사나운 면이 있다구. 거기에다가 보라구. 날개가 부러져 있잖아."

두 사람은 뒤쪽으로 사라졌다. 사나이가 곧 입구에 나타났으나 이번에는 22구경 라이플총을 겨누고 있다. 올빼미의 눈과 눈 사이를 조준한다. 올빼미는 서서 저격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으로 지성체는 껍데기로 돌아왔으나 아직은 그 후의 추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감관을 구사하면서 말이다. 지각권 내라면 시각 따위보다는 천 배나 도움이 되는 감관이었다.

그로스는 올빼미의 시체를 라이플로 찔러보고 나서 집어 들더니 깨진 창으로 밖에다 버린다. 침실로 돌아오자 총을 구석에 세웠다. 아내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그는 불을 끄고 아내 옆에 눕는다.

"엉뚱한 올빼미야. 틀림없이 머리가 돌았겠지. 어쩌면 눈이 멀었거나......"

"인간이건 동물이건 보일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놈이 있다구. 그 왜 5년 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사살해 버린 우리의 말이 있었잖아. 그 말의 눈도 보기는 멀쩡했다구. 올빼미도 그렇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그럴까요. 던져 버렸지. 아침이 되거든 묻어주자구. 빌어먹을."

"시내에 가서 유리도 사 와야겠어."

"이렇게 따뜻하니 서둘 것은 없어요. 이번 토요일에 장 보러 갈 때까지 기다리지요 뭐. 파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망사라도 쳐놓으면 되니까. 그래서 망창을 달아두었더라면 이럴 때는-."

"사용하지도 않는 방을 문만 닫아놓으면 되지 망창까지 하라구? 거기에다가 그 올빼미는 망창이 있었다고 해도 함께 뚫었을 거라구. 그렇게 되었다면 두 가지를 고쳐야 했게? 그런데 방금 일어났을 때 시간을 보았나."

", 한밤을 조금 지났어요."

"그럼 자자구."

침실에는 정적밖에 남지 않았다. 지성체는 주위에 초점을 곤두세웠다. 남자가 곧 잠든다고 하더라도 여자도 깊이 잠들어 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여자의 잠을 깨우지 않고 사나이가 아래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성체는 주의를 창고 쪽으로 집중시켰다.

창고의 가장자리에는 돼지우리가 있고 반대쪽으로 닭집과 닭장이 있었으나 그는 그런 것을 무시했다. 돼지에게 옮겨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으며 거기에다 만약 돼지를 옮아 타면 돼지우리에 틀어박혀 아무 일도 못 하게 될 것이다. 닭도 마찬가지이며 닭장에 갇혀 자살하거나 피살되도록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질 것이다. 용무가 끝나고 나서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은 동물에 옮아 탄다는 것은 번거롭기만 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창고 속에는 대여섯 마리의 쥐 이외에 암소가 세 마리, 말이 한 마리 거기에다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쥐를 관찰하는 수고는 덜었다. 집쥐가 할 수있는 일로서 들쥐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들쥐라면 밭에도 숲에도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이다. 소는 쥐보다 조금은 나을 것 같아서 천천히 시간을 주고 관찰했다. 적어도 소에는 상당한 체력이 있다. 지성체의 명령으로 설사 뿔로 출입구의 쇠고리는 벗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창고에서든지 출입구를 파괴하고 뛰쳐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출입구가 단단해서 그 돌진으로 죽어 버려도 지성체에는 아무런 손해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손은 매우 효과적인 살생의 도구도 된다. 지성체의 지력에 따라 암소가 수소보다는 위험하게 되어 있다. 거기에다 주의 옮아 타기에도 별문제가 없다. 소는 곧잘 나무 그늘에서 풀을 반추하면서 졸기도 하고 본격적인 잠을 자기도 한다. 밭 가장자리의 울타리 따위는 마음만 내키면 파괴하지 못할 것은 거의 없다.

그는 다시 말도 관찰했다. 말도 어떤 의미로는 쓸모가 있다. 아마도 암소보다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달리게 하면 소보다 빠르다. 비교가 안 될 만큼 빠르다. 거기에다가 낮은 울타리라면 뛰어넘을 수가 있으며 높으면 앞발을 때려 부술 수도 있다. 발굽도 소의 뿔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위력을 가졌다.

마지막으로는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관찰하여 다른 동물 때와 마찬가지로 토미의 마음에서 얻은 그 특성이나 능력에 대한 지식과 결부시켜 보니 점차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해 옮아 타기에는 이 고양이가 거의 완전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는 스파이의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어디라도 갈 수가 있으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걸음도 빠르며 발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일 수도 있다. 밤에도 올빼미만큼 시력이 좋고 올빼미와는 달리 낮에는 눈이 훨씬 더 밝다. 귀도 훌륭했다. 거기에다가 여기에서 시내까지의 사이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있으며 시내에도 얼마든지 있으며 고양이는 주간에도 야간처럼 잘 자니까 언제라도 손쉽게 옮아 탈 수가 있다.

아직도 시간이 충분하므로 그는 지금 고양이의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려고 했다. 창고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의 마음에 옮아 탄다. 눈을 떴다. 보인다. 올빼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창에서 희미한 달빛밖에는 새어들지 않지만 상당히 뚜렷하게 보인다. 고양이를 창으로 가게 해서 뛰어내린다. 초생달의 희미한 빛 아래서도 상당히 잘 보인다. 몇 바퀴나 집 주위를 달려보고 소리를 내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로의 자갈 위에서도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단거리라면 매우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장거리라면 은신처를 찾거나 나무에 오르지 않으면 개에게 시달리겠지만 단거리라면 개따위는 가볍게 따돌릴 수도 있다. 창고 뒤에 나무가 있어서 나무타기를 시켜보았더니 훌륭한 솜씨였다. 나무의 맨 윗부분의 가지 사이로 시내 쪽으로 나 있는 이웃 농가 이 층의 창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인다. 언제까지나 고양이에게 옮아 타고 그런 먼 곳까지 가볼 생각은 없었으나 스파이 도구로서의 고양이의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하여 밭을 가로질러 이웃 농가까지 달리게 했다. 고양이는 밤의 어둠 속을 그림자처럼 달렸다. 그 농가에 도착하자 불이 보이는 창이 두 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두 창 모두가 같은 방의 창인 듯 이 층 바깥쪽의 모퉁이 방이었다. 그로스의 집 나무 위에서 보인 창은 옆으로 나 있는 창과 또 하나 현관 포치의 지붕 바로 위에 있는 것이었다. 포치 옆에 나무가 있어서 고양이는 그 나무에 올라 가지에서 지붕으로 가볍게 뛰어 올랐다. 지붕의 느슨한 경사를 창까지 올라 창을 바깥쪽에 오른다.

고양이의 눈은 곧 밝은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조절해진다. 아이 하나가 심한 기침을 하면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욕의에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어린이 위에 구부리고 있으며 꾸겨진 잠옷차림의 여윈 사나이가 입구에 서 있다. 닫혀있는 창 너머로도 들리는 고양이의 귀에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아이가 급성 폐렴에 걸려있다는 것을 지성체는 알았다. 사나이는 여자에게 자신이 간호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의사에게 전화를 걸까 하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 자체는 지성체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었으나 그는 지금 고양이가 스파이라든가 어떤 사실을 탐색하기 위한 동물로서 분명히 확인한 셈이다. 자신에게 양분을 보충할 필요성이 없었다면 지성체는 오늘 밤과 다음 날 하루를 이대로 고양이에게 옮겨타고 다른 농가에 대한 지식을 넓혀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가지까지 달려가서 텔레비전 수리기사가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자택까지 미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분을 보급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후에 시간이 나면 이용하게 될 고양이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의 당면문제는 이 고양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미 고양이에게 옮아 탄 지가 한 시간이나 된다. 예정보다 훨씬 길어진 것이다. 피살당하는데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고양이의 생각 속에서 찾으니 곧 답이 나왔다.

이 농가에는 창고 구석자리에 사슬이 매여 있는 사나운 개가 있었다. 왜 개를 사육하면서 감시견이 역할을 못 하게 사슬로 묶어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지성체는 그것이 이상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양이에게 포치의 지붕에서 나무를 타고 내리게 하여 뒤쪽 창고를 찾아가게 한다. 여기에서도 창고의 열려있는 창이 있었다. 고양이가 창틀에 뛰어오른 순간 개가 심하게 짖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창고 속의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개의 모습이 분명히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으로 뛰어내려 개를 향해 달려간다. 가볍게 뛰어올라 개의 입에 뛰어든 것이다.

 

 

8

지성체의 넋은 지금 그로스의 농부 뒤쪽 계단 밑에 있는 자신의 껍데기로 돌아갔다. 집안을 자세히 조사한다. 이번에는 그로스 부부 이외에 생물이 없는가를 샅샅이 조사한다. 개라도 있다면 그로스가 내려올 때 짖어대어 여자를 깨워놓을지도 모른다. 개는 없었다. 새장 속에 카나리아가 한 마리 거실인지 객실인지 모를 아래층 방에 있었다. 그가 옮아 탄 그로스가 이런 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층의 침실에서는 지그프리드와 엘자 그로스 부부가 깊이 잠들어있었다. 고양이가 그로스의 마음에 옮아간다. 지성이 있는 존재를 점령하려고 할 때 따르게 마련인 격렬하지만 짧은 투쟁. 그러나 싸움은 토미의 마음에 옮아갈 때에 비하면 어이가 없을 만큼 짧았다. 이 새로 옮아 탄 인간은 고등학교에서 1년을 낙제하고 밭일이 과학이라고는 할 수 없고 과학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흥미도 없었던 그 젊은이보다 훨씬 지성이 낮단 말인가?

지성체는 이 노인에게는 보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것만 같았다. 당장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로스는 그런 점에서는 토미 호프먼보다 더욱 지식도 관심도 없는 것이었다. 교육은 초등학교 6년에서 정지했으며 자신의 밭일 이외는 아무것도 모른다. 라디오도 갖지 않았으며 읽고 있는 것이라고는 주간지 하나와 농업잡지 하나뿐. 그것도 읽는 데 힘이 들 처지였다.

지성체는 방금 옮아 탄 이 사나이를 곧 움직이게 하지는 않았다. 그로스의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고 싶었던 몇 가지 안 되는 일을 탐색해낼 때까지는 그로스를 그대로 눕혀두었다.

당장에 두 가지 질문의 대답은 나왔다. 더우기 두 가지 모두가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첫째는 엘자 그로스가 깊은 잠을 잔다는 것. 올빼미가 유리창이라도 깨고 뛰어드는 소리라도 내지 않는 한 그녀는 눈을 뜨지 않는 것이다. 부엌은 이 방의 바로 밑이 아니기 때문에 각별히 화려한 소리라도 내거나 무엇인가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답은 냉장고에 수프스톡이 1쿼터의 병에 들어있으며 자양이 풍부한 쇠고기의 그래이비(Gravy:고기즙)도 항아리에 반은 들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양쪽을 합하여 잠시 가열하면 완전한 양분의 용액이 되는 것이다. 약간 열을 가하면 반은 굳어졌다. 그래이비도 양분으로서 흡수하기 쉬워진 것이다. 만약에 그런 것이 없고 적당한 통조림도 없다고 한다면 어떤 고기라도 이용하여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 묽은 수프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도 도저히 수프스톡과 그래이비를 혼합한 것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에 알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그로스의 지식으로 만약 무슨 흥미를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후에 한가할 때 천천히 검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육체가 양분의 용액에서 한 시간쯤 걸려 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동안도 그는 노인의 마음에 옮아 탄 그대로 있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지성체의 지령으로 지그프리드 그로스는 살며시 침대에서 빠져나와 맨발로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침실 입구를 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더니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어둠 속의 계단까지 손으로 더듬어 아래로 내려갔다. 부엌에 내려설 때까지 도중의 조명은 켜지 않았다.

가능한 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냉장고에서 병과 항아리를 집어낸다. 병에서 수프스톡을 지성체의 껍데기를 담글 수 있을 만큼의 큰 냄비에 따르더니 항아리의 그래이베를 합쳐 둘을 저어댔다. 성냥으로 프로판 개스에 불을 붙이고 약한 불로 조절한 위에다 냄비를 놓는다. 따뜻해질 때까지 계속 저어대며 수시로 스푼으로 떠서 온도를 확인한다. 그래이비가 완전히 녹고 온도도 적당해지자-지성체는 껍데기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영하 50도 정도에서 물의 비등점까지의 온도에는 견딜 수 있으므로 뜨거워도 무방하다.

-그리하여 냄비 밑의 불을 끈다. 불빛이 새어 나가도록 부엌문을 열어놓은 채 밖으로 나가더니 계단 아래로 손을 밀어넣어 지성체의 껍데기를 찾는다. 그것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냄비의 액체 속에 넣는다. 그리하여 양분 섭취의 시간을 측정하기 위하여 부엌의 시계를 보아두고는 지그프리드 그로스는 걸터앉아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지성체는 그로스의 마음속의 지식이나 기억을 정리했다.

여기에서 알게 된 것은 지금 옮아 타고 있는 이 사나이는 도저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끝난 후까지 옮아 타고 있을 만한 인간이 못 된다는 사실이었다. 지그프리드 그로스는 65세의 무뚝뚝하고 고독한 인간이었다. 이웃 사람들과 시내의 상인들과도 관계는 가졌으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상대는 하나도 없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아내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동안 이 부부 사이에는 애정이라는 것은 한 조각도 없었다.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상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살아온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엘자에게는 의지할 친척도 없고 스스로 살아갈 힘도 없었다. 지그프리드 그로스 쪽에서도 가사를 돕고 지금 그녀가 하고 있듯이 창고 주변의 잡다한 일을 처리해주는 조수로서 그녀가 필요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이 상대에게 참고 견디며 살고 있고 그렇다고 증오하는 일도 없었다.

자녀는 둘이 있지만 아이들이 10대의 말기가 되자 사내아이도 여자아이도 지그프리드와 충돌하여 두 사람 모두 이 농가를 뛰쳐나가 도시로 가 버렸다. 어느 편이나 엘자에게는 편지를 보내왔으나 지그프리드가 그녀에게 회답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이제는 아이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그프리드의 장래는 지난 수년 동안 관절염이 조금씩 악화되어 지금도 그것이 악화일로에 있어서 어둡기만 했다. 그는 의사라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설사 의사에게 보였다 하더라도 좋아질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일이 괴로울 정도로 악화되어 있으며 앞으로 3~4년만 지나면 이 통증은 더욱 심해져 일도 하지 못하게 되고 이 작은 농장도 팔아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농장은 그 어디에서도 빚을 내지 않고 꾸려왔으므로 여기를 팔면 엘자와 둘이서 여생을 보낼 수가 있겠지만 그의 장래는 대체로 그런 위치에서 더우기 통증이 점차 가중되어 갈 테니 더 장수를 할 경우 끝내는 폐인이 되어 버릴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의 평생 동안 몸에 붙어 버린 이 무뚝뚝함은 그가 자신의 나라나 정부를 미워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에는 명목상의 국민으로 되어있을 뿐 자신은 미국인이라기보다는 독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그를 이 나라에 데리고 온 것은 그가 네 살 때였다. 부모는 미국으로 귀화했으나 이것은 다만 그렇게 했을 뿐, 그도 그때부터 미국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부모들의 모국에 대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도 그것을 이어받고 있었다. 그는 7세가 되어 학교에 갈 때까지 영어는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가 20대가 되었을 때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 개입했다. 국가는 그를 소집하려고 했고 그는 양심적 반전파의 수용소에서 비참한 1년 반을 보내게 되었다. 실제로는 그에게는 양심이고 뭐고 전쟁에 반대할 의사는 없었던 것이다. 일단 그와 같은 이유가 붙여지기는 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이 싫은 측에 붙어서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히틀러에 의한 독일 부흥을 그는 크게 환영했다. 그는 열렬한 나치파가 되었다. 나치 비밀군이나 유사한 단체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가하자 그는 그런 생각에 더욱 기울어져 공개적으로 떠벌리게 되었다. 이 무렵 그는 40대 중반이 되어 이미 소집될 염려는 없었으나 그는 젊었을 때보다, 더욱 강력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해댄 것이다.

그를 수용소에 처넣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제아무리 입으로는 난폭한 말을 떠벌리고 다녀도 어치피 해가 없는 사나이인데다가 전쟁에의 노력을 파괴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 인간이라고 당국은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만약 위스콘신주의 나치 동조자를 모두 수용소에 처넣기로 한다면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위스콘신주와 같은 크기의 수용소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도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가출해버린 아들의 일을 생각했다. 아들도 딸도 자신들은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던 것도 그 점에서 아버지와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소집되어 또는 자원이라도 해서 모국에 총부리를 들이대는 일이 있다면?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자식이고 뭐고 죽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쟁 중에는 뉴스가 늦지 않도록 일간신문도 받았으며 라디오도 샀다. 히틀러가 패배하자 그는 신문도 끊었고 화를 참지 못하여 라디오를 도끼로 파괴해 버렸다. 그는 설사 은퇴하고서라도 좋으니 모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언제라도 경제적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생각될 때까 오면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고장이 생겼었다. 이제 와서는 이미 그 희망을 버려야겠다고 그는 깨달았다. 이미 60년 이상이나 이방인 속에서 살아온 이 이역 땅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 운명인 모양이다.

결혼하고 최초의 1년이 지나서 부모가 죽고 난 후부터는 이 나라는 그에게는 정말 이역 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는 이 이역 땅과도 타협을 하고 있었다. 그의 단 하나의 타협이었다. 그것은 단 한 가지, 오직 한 가지, 독일어를 잊을 만큼 영어만을 사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엘자와는 독일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으나 그토록 유순했던 엘자도 아이들이 태어나자 영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그가 독일어로 말을 걸어도 그녀는 영어로 대답을 했다. 그 자신이 교사가 아니었으므로 아이들은 독일어를 두세 마디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도 드디어는 두 손을 스스로 모국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독일어와 비슷하게 익혀버린 영어를 점차 집안에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성체가 옮아 탄 인간의 이와 같은 사실을 일일이 정리해본 것은 껍데기가 양분을 흡수할 때까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다가 설사 하찮은 일이라도 인간의 버릇이나 사고방식에 관한 것이라면 알아두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인간의 정말이라든가 고민에 동정하지는 않았다. 그로서는 문제란 이 인간의 사용처뿐이었다. 더우기 그는 이 지그프리드 그로스는 이용한 것은 오늘 밤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스는 세상을 버린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다른 사람들과 교제다운 교제도 하지 않고 있으며 전혀 그 사람답지 않은 정보를 모으고 일이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사람의 소문에 오르내리고 호기심을 유발시키게 될 것이다. 전화도 없으며 편지를 낸 일도 없으며 사신다운 편지를 낸 일도 없으며 사신다운 편지가 온 일도 없다. 버틀스빌까지 매주 토요일에 필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구매하기 위하여 말에 수레를 끌게 하여 가는 일은 있었으나 자동차를 산 일도 없었으며 갖고 싶다고 생각한 일도 없었다. 밭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팔러 갈 계절이라서 다음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할 것도 없었지만 그것을 고집했다.

시내에 나가도 행선지는 정해져 있다. 그런 가게에서도 그는 걸음을 멈추고 소문이나 뉴스를 말하거나 듣고 일도 없었다. 여기에서 15분 이상 자신의 밭과 버틀스빌까지의 5마일 이상을 간 일은 없었다. 그의 생에서 두 번째의 독일 패배 이후 그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그프리드 그로스를 그대로의 성격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버려둔다면 정보수집의 도구로서 그 이상 쓸모없는 것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끝나면 지성체는 이 사나이로부터 빠져나가야 한다.

거기에다가 오늘 밤을 이미 지성체는 정보수집을 위한 완벽한 도구를 발견해 놓고 있었다-고양이다. 그로스에 옮아 타고 있는 한 그는 고양이를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고양이에게는 옮아 타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 일대의 버틀스빌 주위의 인간들 중에서 어떤 경우 어떤 인간이 도움이 되는가를 조사해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둘 것은 없다. 이제 양분은 흡수했으니까. 그러나 지성체는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그로스의 마음에서 몇몇 안 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이 이웃들의 인간성을 알아두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별로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몇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로스는 이웃 전반에 대해서는 토미 호프먼보다 아는 것이 없었다.

토미의 자살에 대해서도 검시 심문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토요일에 시가지에 갈 때까지 그 이야기는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체는 그때까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의문의 답을 얻을 수는 있었다. 어째서 그로스의 옆집에서 사나운 개를 창고에 매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옆집은 르루사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 프랑스식 이름이지만 벨기에 출신이었다. 그 개는 라브러도르 리트리버의 암캐로서 사냥개로서는 상당히 귀중한 개이며 존 르루사가 오리사냥에 사용하는 개였다. 갑자기 그렇게 광폭해지기 전-광폭해졌다고는 하지만 르루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아니지만-이 개는 다른 좋은 질의 라브도르와 교배하여 앞으로 몇 주일이며 새끼를 낳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개가 르루사의 아내에게 덤벼들어 다행히 물어 뜯기지는 않았으나 개는 죽여 버리자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르루사는 새끼가 태어나면 새끼는 광폭하지 않을 테니 새끼를 뗀 후에 어미 개를 저격해도 좋다는 합의하에 새끼를 길러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개는 창고의 비어있는 구석 자리에 사슬을 매 두고 아내나 딸아이에게는 결코 다가가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둔 것이었다. 그로스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지금도 그로스와 그런대로 교제를 계속하고 있는 몇 사람 안 되는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르루사가 강아지 한 마리를 길러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해와서 그로스가 거절한 데서 알려진 이야기다. 이 개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새끼를 맡을 사람을 빨리 정해야 한다는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로스는 인간도 싫어하고 개도 싫어하며 고양이만을 창고에 살게 하는 데는 관대하게 보지만 그것도 창고의 쥐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로스의 눈을 통하여 지성체는 시계를 보고 액체에 담겨있는 시간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을 측정하는데 시계를 의지해야 하는 것은 지성체가 무엇엔가에 옮아 탔을 때는 그 껍데기 쪽의 감각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스가 일어서서 껍데기를 지금은 식어버린 액체에서 집어내어 뒷문 쪽으로 가져간다. 거리서 생각을 달리한 듯 개숫물 쪽으로 옮겨갔다. 껍데기를 깨끗이 씻고 닦는다. 지성체가 후에 깨닫게 된 것은 액체의 냄새가 어떤 동물을 끌어들여 계단 아래로 기어들게 하며 지성체의 껍데기를 발견하여 끄집어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도 없는 것이다. 그 점은 개인 버크로 옮아 타고 동굴에서 파내어 구멍이 있는 죽은 나무로 옮겨갔을 때 깨닫고 있었다.

그로스가 지성체를 들고 나가 다시 빛이 흘러나오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지성체는 자신의 은닉처를 더욱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그로스에게 계단 아래의 흙을 파내게 하여 1인치 정도의 깊이로 묻게 하게 그 위를 단정하게 골라 놓게 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계단 위에서 손을 뻗어 계단 옆의 그로스의 맨발 자국을 지우게 했다.

그것이 끝나자 죽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전에 무엇을 했는가 하는 증거를 치운다. 액체의 나머지를 흘려보내고 사용했던 세 가지 도구를 씻는다. 냄비와 그레이비의 항아리는 제자리에 돌려놓고 비어있는 유리병은 다른 빈 병과 함께 놓아두었다. 물론 엘자가 스프 스톡과 그래이비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에게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그녀는 요즘 정신이 희미해져 그것을 자신도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수프스톡과 그래이비를 사용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무렵에는 남편이 죽음이라는 충격으로 자세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여가도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생활이 돌변하는 급격한 변화는 충격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후에 생각하면 남편이 죽어주어서 후련해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논밭을 판 돈도 늙은이 둘이서 살아가기보다 혼자 사는 편이 훨씬 알뜰해질 것이다. 유서를 남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번에는 유서를 남기기로 했다. 이것은 토미의 죽음에서 지성체가 얻은 교훈이었다. 그때는 지나치게 호기심을 유발시켜 버려 호프먼과 가너가 동굴까지 뒤져 거기를 파보자는 소동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그로스의 유서는 의혹을 낳게 할 여지가 없을 만큼 당당하고 논리성이 있는 것으로 작성하고 싶었다. 그로스에게 편지지와 연필을 가져오게 하여 부엌 테이블 앞에 앉힌다. 거기에서 그로스가 정말 자살을 각오했다면 어떤 유서를 남길까 하고 사용하는 말을 생각해본다. 엘자의 노후를 위해 돈을 좀 더 남겨야겠다는 착한 생각은 가지지 않았으며 그런 유서를 남길 것 같지도 않았다. 만약에 유서를 쓴다면 짧고 요령만, 사과나 인사말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로스는 천천히 고생스럽게 썼다. 영어라기보다는 독일어에 어울리는 필적으로 말은 영어지만 철자는 그로스의 방법대로 썼다.

"이 이상 관절염의 고통을 견딜 수 없다. 자살한다."

완전한 서명을 하고 그 아래에 독일어로 미워하는 이 미국에 대한 마지막 욕지거리. 마지막 말은

"세계의 정상인 독일 만세."

그리고 부엌의 선반에서 산탄총을 들고나와 탄환을 장진하고 다시 테이블 앞에 앉는다. 총구를 입에 대고 위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피와 뇌조직이 편지지 위로 튀었으나 글씨는 아직 읽을 수가 있다.

계단 아래에 분명히 숨겨진 자신의 육체로 돌아온 지성체는 다시 자신의 지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엘자가 이 층에서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침실의 조명을 켜고 복도의 조명을 켜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감시한다.

 

 

9

스탄턴 박사는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뒤척거린 다음 팔을 들어 팔목시계를 보았다. 열 시가 지난 시각이었으나 어젯밤 잠자리에 든 것이 상당히 늦었으므로 별로 놀라지 않았다. 전날 오후는 개의 일로 그린 베이의 연구소에 전화할 적당한 시각을 감안해서 늦게 버틀스빌의 시가지에 나갔었다. 연구소에 전화하여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알만한 사실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버크는 광견병이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사인이 된 상처 이외는 해부에서 알 수 있는듯한 장기의 고장은 없었던 것이다. 차 앞에 뛰어든 개는 분명한 신체의 고장이 있었다는 설명은 불가능하다. 박사는 탄식을 하고 윌콕스에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보안관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며 적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안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어디에 가 있는지 사무실에서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박사는 시가지에 있는 두 레스토랑 중에서 나은 편의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하여 다시 보안관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이번에는 먼저 사무실에, 다음에는 자택으로 걸어보았다. 사무실은 전화에 호응하지 않았으며 자택에서도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박사는 바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안방에서 시작된 포커에 끼어들었다. 그가 언제나 일용품을 구입하고 있는 이 고장의 식료품상 한스 와이스가 박사를 불러 동료들에게 소개한 것이다. 한스까지 합하여 네 사람밖에 모여있지 않아서 게임을 시작하기에는 또 하나의 동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포커에 거는 돈은 흥을 돋우는 정도이며 10센트 단위로 20센트 한도라는 게임이었다. 박사는 최초의 30분은 한 번도 따지 못하고 12달러를 잃고 말았으나 거기에서 사태가 호전되어 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8시경과 9시경에 두 번에 걸쳐 그는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문득 시계를 보니 밤중 가까이나 된 시간이라 오늘 밤 전화하기에는 너무 늦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에는 게임의 동료는 7명으로 늘어났고 박사가 제일 많이 땄다. 70달러 정도였으나 누군가가 게임을 그만하자고 말해줄 때까지는 그로서는 그만둘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한 시 반까지는 그 누구도 그만하자는 말을 하지 않아, 집에 돌아온 것이 두 시경이며 딴 돈도 40여 달러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 게임으로 모두가 친숙해지자 박사는 또 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박사로서도 이 사람들로부터 딴 돈을 그들에게 돌려줄 기회를 부여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 사람들 중에서는 새로 온 사람이니까 그 정도의 일은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지금-그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박사는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점심 전에 버톨스빌에 가서 보안관에게 전화를 해도 좋다. 만약 보안관에게 시간이 있다면 차로 윌콕스로 만나러 가겠다는 약속을 해둘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보안관이 버틀스빌에 오지 못하는 경우이며 보안관이 오겠다면 점심을 같이해도 좋을 것이다.

아침은 커피만으로 마치고 박사는 열 한 시 반까지 시가지로 나가 드럭스토어에서 보안관에게 전화했다. 이번에는 연락이 되었다.

"보안관, 스탄턴 박사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이쪽으로 오실 일은 없습니까? 아니면 윌콕스에 차로 가서 당신의 사무실을 찾아갈까요."

"박사, 지금 출발하려는 참입니다. 버톨스빌로 갑니다."

"잘 되었군요. 그럼 함께 점심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글쎄요, 좋습니다. 얻어 마시기로 하지요. 어느 가게에서."

"전에 만났던 술집에서 만나지요. 한잔하는 것도 좋잖아요. 어차피 그 후에 식사를 할 바에는-."

보안관은 승낙하고 30분 이내에 오겠노라고 했다. 박사는 벽에 걸린 전화에서 두세 가지 장을 보기 위해 가게의 카운터 쪽으로 갔다. 주인은 어젯밤의 포커 동료이며 서로 친구처럼 인사를 나눈다.

"보안관과 전화하는 것이 들렸습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드럭스토어의 주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잠시 알려줄 것이 있어서."

"설마 우리의 포커에 관해서는 아니겠지요. 참 그렇지. 선생은 버스콤비 도로 쪽에 살고 계신다고 했지요."

박사는 끄덕였다.

"어째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러나 분명히 거기에 삽니다. 막다른 집에서요. 그런데 왜요."

"어젯밤 댁으로 가는 도중의 집에서 또 자살이 있었습니다. 벌써 들으셨나요."

박사는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아니 듣지 못했습니다. 방금 시가지에 나왔고 최초로 여기에 들렸습니다. 자살한 것은 누구지요."

"지그프리드 그로스라는 노인입니다. 그 누구와도 성격이 맞지 않았으며 그 이상으로 모두가 그 영감과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 영감은 시내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집에서 살고 있었지요. 댁에서는 3마일의 거리지요."

박사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았으나 밝혀진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그로스가 전날 밤 자정쯤 산탄총으로 자살했다는 것과 관절염의 통증 때문에 자살한다는 유서가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박사는 드러그스토어의 장거리를 차로 옮기고 생각에 잠기면서 천천히 바로 들어갔다. 바텐더인 마이크는 나를 두 사람의 손님과 그로스의 자살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박사가 드러그스토어의 주인으로부터 들은 것 이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보안관이 올 때까지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있다가 보안관이 오자 남은 것을 단숨에 마시고 검시 검문 때 같이 왔던 박스의 자리로 옮겨갔다. 보안관은 힘없이 말했다.

"오늘은 맥주는 그만두겠어. 마이크, 나는 생짜로 해야겠어. 더블의 버본이야. 물은 따로 주게."

박사가 자신의 맥주 추가를 말하자 마이크는 바로 돌아간다. 보안관은 하품을 했다.

"지그프리드 그로스에 관해서는 들으셨지요. 밤중에 거기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어요. 빌어먹을, 지쳐 버렸다구요. 거기에다가 점심이 끝나면 다시 곧 가야 해요."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박사가 물었다.

"내키면 같이 가시지요. 그런데 박사,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은 그로스에 관한 것인가요."

"아니, 그 이야기는 당신에게 전화했을 때는 아직 몰랐습니다. 호프먼의 개 말입니다. 광견병이 아니었답니다."

보안관은 짙은 눈썹을 쳐들었다.

"그렇다면 조사를 해보셨군요? 어째서 그런 번거로운 짓을? 아무도 물린 사람은 없는데. 아니면 누군가가 물렸나요."

"아닙니다. 물린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개가 차를 무서워했다는 말을 들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왜 내 차 앞을 무작정 달려왔는지-광견병이라면 설명이 가능하거든요."

"선생님, 농담은 작작하시지요. 개라는 놈은 날마다 어딘가에서 차에 치어 죽고 있단 말입니다. 아마도 대로를 횡단하는 토끼라도 쫓다가 코를 지면에 박고 다른 주의사항을 잊었을 겁니다. 개가 깔려 죽었다고 해서 최고법원까지 상소하는 대소동은 없습니다."

"그야 그럴 테지만- 그런데 보안관, 그로스의 자살 사건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점은 없습니까."

"현장이 엉망이었지요. 산탄총의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으니 뇌 조직이 사방으로 튀겨나가서 말입니다. 이쪽 장의사가 그 부엌을 청소하는데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렸으니까요. 정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지요."

"검시 심문은."

"자필의 유서가 있는 이상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납세자들의 세금을 헛되게 쓰는 꼴이 될 테니까. 한 잔 더하고 식사를 하는 게 어떨까요."

이 자살에 관련하여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상한 데가 없는가를 박사가 물은 것은 디저트와 커피가 나온 후의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라면 같은 날 밤에 한두 가지 기이한 일이 있었으나 자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밤중에 올빼미가 창문을 부수고 유리를 깨면서 뛰어들었는데-날개가 부러진 상태라 그로스는 하는 수 없이 사살해버렸고 하더군요."

보안관이 말했다.

"같은 산탄총으로."

"천만에. 거기에는 22구경 라이플을 사용했다는군요. 자살하기 세 시간쯤 전의 일이었으나 그 후 잠을 잘 수가 없어 통증을 참으면서 잠자리에 들었지만 끝내는 방금 올빼미에게 했듯이 자신의 비참한 생명에 결말을 내려고 부엌으로 내려가서 끔찍한 짓을 감행했을 테지요."

박사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로스는 그 올빼미에게 손이나 다른 부위를 댔을까요."

"살이 닿았다고 해도 죽고 나서입니다. 사살하고 나서 그로스는 그것을 깨진 유리문으로 집어 던지고 날이 밝으면 묻어주자고 부인에게 말했다는군요."

보안관은 커피를 마시려던 손을 멈추었다.

"옆집에 사는 르루사가 그놈을 묻었습니다만. 그리고 고양이도 그렇지요. 어젯밤 그로스 집의 고양이가 르루사의 창고에 들어와서 사나운 개에게 피살되었지요."

스탄턴 박사는 깊이 숨을 빨아들였다. 살며시 입을 벌린다. 보안관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한다.

"올빼미와 새끼 고양이는 바다로 갔다. 예쁜 연초록의 보트를 타고."

"."

"에드워드 리어라는 시인의 하찮은 시의 한 귀절이지요. 보안관, 지금까지 올빼미가 유리창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 들은 적이 있습니까."

"올빼미의 이야기는 모르지만 참새라면 언제나 유리창에 부딪칩니다. 우리 집의 창에도 참새가 부딪쳐-그렇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잠시 눈을 돌려 버리지만 한 번은 목을 꺾고 만 놈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 출발할까요. 이편의 차에 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차로 별도로 갈까요."

 

 

10

지성체는 놀라울 정도로 여러 가지 알았다. 지그프리드 그로스가 자살하고나서 그는 계속 아무것도 옮아 타지도 않고 그로스의 집의 내외 동태를 자신의 지각으로 알 수 있도록 뒷문 계단 아래의 자신의 육체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알게 된 것은 자신이 멍청하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경우는 물론 다른 동물의 경우도 지금까지 그가 옮아 탔던 것들에게 시킨 것은 특히 그 죽는 방법에 의혹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이 자살한 경우도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겼는데도 그런 소동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그프리드가 부엌에서 자살하고 나서 그로스 집안에서 일어난 소동은 지성체에게 새삼 인간의 성질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하는 정도의 그것이었다. 그것은 산탄총의 소리가 나자 곧 시작되었다. 엘자 그로스가 계단을 뛰어 내려와서 그로스의 마음을 통하여 이 부부에게는 참된 애정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지성체에게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탄장이 막을 올린 것이다.

그녀 최초의 충격은 무서운 것이었다. 지쳐버려 충격의 정점을 지나자 그녀는 신을 신고 잠옷 위에 코트를 걸치고 옆집 쪽으로 달려간다. 르루사의 집이었다. 지성체가 아까 창으로 들여다본 병에 걸린 어린이의 침실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왔던 집이다. 그 집의 사나운 개에게 고양이를 물어 죽이게 함으로써 지성체가 옮아 타고 있던 고양이로부터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엘자 그로스가 30여 분만에 돌아왔고 르루사도 함께 따라왔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지성체는 르루사가 보안관에게 전화하고 보안관이 한 시간 이내에 오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르루사의 아내도 올 예정이었으나 아이가 아파서 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병은 무척 좋아졌으나 아직은 혼자 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르루사가 엘자 그로스에게 이 층에 가서 옷을 입고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녀가 이 층에 가 있는 동안에 그는 부엌의 피가 튀긴 곳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여 부엌을 샅샅이 살핀다. 유서도 몇 번 들여다보고 고개를 젓고 있었으나 그는 유서에도 그 밖의 부엌에 있는 물건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이윽고 르루사가 거실로 간다. 거기도 지성체의 지각권 내였다. 르루사는 거실에서 엘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엌의 동태가 보이지 않는 그 거실에서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엘자 그로스가 분명히 유서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남편의 자살에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그로스도 알았다. 관절염에는 분명히 걸려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자살을 할 만큼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보니 밤중에 올빼미가 창으로 뛰어들었을 때는 전혀 이상했던 곳은 없었으며 아프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르루사가 그 올빼미의 이야기를 듣고 엘자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르루사가 말했다.

"이상한 올빼미인데.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어요. 어쩐지 이 일대에 무엇인가 미친 것이라도 날뛰고 있지 않을까? 그 토미 호프먼의 이야기는 들었나요? 듣지 못했나요."

엘자는 듣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하자 르루사가 이야기한다. 보안관이 구급차를 타고 검시관과 장의사를 데리고 온 것은 밤중 세 시를 지나서였다. 여러 가지 질문이나 대화를 통하여 인간이라는 것이 같은 인간의 자살을, 설사 이유를 설명하는 유서가 있었다고 해도 그토록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하고 지성체는 놀랐다.

다음 날 그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일이 생겼다. 이웃 작자들이 엘자 그로스를 문안와서 무엇이든지 돕겠다는 것이었다. 르루사도 다시 왔으나 이번에는 그로스의 집 고양이가 자기 집 창고에서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나쁜 소식을 들고 왔다. 개는 사슬로 구석에 묶어두었는데 고양이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더 가까운 이웃들이 나타나서 그것이 화제가 된다. 낮에 엘자 그로스는 그래이비와 수프 스톡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지성체는 그녀가 그것을 눈치채게 되리라는 것, 적어도 어느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그녀가 냉장고 안의 것을 그 항아리나 병이 가려질 것 같은 앞에 놓인 물건들을 모두 집어내어 뒤지듯이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때가 약간 지나서 다시 보안관이 왔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다. 보안관은 그로스 부인에게 유서가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시간은 걸리지 않지만 검시 심문은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다음 날 오후 시체안치소에서 하자고 전하고 차로 그녀를 데리러 올 것이며 끝나는 대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한다. 시체안치소에 간 김에 장의사와 장의 절차를 상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한다. 그리고 보안관은 함께 온 사나이를 스탄턴씨라고 소개했다. 스탄턴씨는 여름방학에 버틀스빌 가까이에 놀러 와있는 과학자이며 토미 호프먼의 정말 수수께끼 같은 자살에 흥미를 느끼고 납득이 가는 해명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더우기 지금 앞서의 자살을 뒤따르기라도 하듯이 이런 가까운 곳에서 다시 자살에 겹쳐졌으니 지장이 없다면 부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까지 전한다. 그로스 부인은 자진해서 이야기했다. 어차피 점심에 커피를 끓여야 한다면 두 사람을 위해서 커피를 먼저 끓이기라도 하듯이.

스탄턴씨는 50세 정도의 작고 여윈 사나이로 짧게 깎은 쇠 같은 회색 머리에 예리하게 빛나며 움직이는 푸른 눈을 가진 인물. 그의 흥미는 싫증을 모를 정도였다. 적어도 백 가지 정도의 질문은 했을 것이며 엘자 그로스도 그 질문에 모두 대답하고 있다. 그밖에 변한 것은 없었느냐는 질문에서 고양이의 죽음과 냉장고 속의 없어진 물품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나서도 박사는 그 각기에 대해서 산더미 같은 질문을 한다. 쌍방 모두가 그에게는 매우 신경이 쓰이는 이상한 일인 듯했다. 지성체는 이 대부분을 듣고 있었으며 자신이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것을 얼마나 멸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가 인간의 경향을 직접 알 수 있게 된 것은 미숙하고 호기심이 약한 토미의 마음에 의해서다. 토미는 그런 문제에는 관심도 없었으며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의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다음에 옮아 탄 것이 또한 완고하기만 하며 싸늘한 고집통의 할아버지였으며 자신의 좁은 세계와 견해 이외에는 시선도 보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 스탄턴이라는 몸집이 작은 사나이의 마음을 질문하는 태도나 대답을 듣고 있는 자세에서 판단해도 역시 지성체로서는 처음으로 대하는 존재와 같은 것이었다. 더우기 보안관이 말하고 있듯이 그는 과학자라고 한다. 어떤 과학자일까? 아마도 그의 질문 방법으로 미루어 물리학자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나이는 버톨스빌의 텔레비전 수리기사보다 옮아 타기에는 좋은 상대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상대방은 과학자라기보다는 기술자이니까......

그러나 시기적으로 늦었다. 적당한 동물을 발견하여 옮아 타고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그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를 뒤쫓아가서 조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스탄턴과 보안관은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지성체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은 그의 지각권 밖으로 밖으로 나가 도로에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차가 한 대인지 두 대인지도 몰랐다. 지성체는 스탄턴이 타는 차를 미행할 수 있는 동물로 가까이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최초에 생각한 것이 창고의 말이지만 곧 그 생각은 버렸다. 설사 지금 말이 졸고 있다고 가정해도 불가능하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도 이제는 상당히 소심해졌다. 말이라면 창고를 뛰쳐나와 차를 쫓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말의 정상적인 행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주의를 끌게 되면 자기 자신의 원대한 계획도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창고를 돌파하여 자동차 뒤를 그 행선지까지 쫓아가고는 것은 아니다.

새를 생각했다. 빠른 것은 생각하다가 보니 먼저 독수리가 떠올랐으나 그가 옮아 탈 수 있는 권내에 자고 있는 독수리는 없었다. 주간에 자고 있는 것이 올빼미라는 생각에서 올빼미를 생각했으나 올빼미는 자동차를 추적할 수 있을 만큼 빨리 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급히 그 생각도 버린다. 그래서 참새를 생각했다. 참새가 날으는 속도는 몰랐지만 참새라면 얼마든지 주간에도 가까이에서 졸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가 택한 참새는 이 집 뒤쪽 200야드 정도 위에서 자고 있는 놈이었다. 참새에 옮아 타고 원을 그리며 날아올랐으나 벌써 때는 늦었다. 이 농가 앞길에 정차하고 있던 두 대는 각각 반대 방향으로 4분의 1마일이나 떨어져 달리고 있다. 참새의 눈으로도 어느 편이 어느 차인가 설사 눈에 익숙한 처지라고 해도 분간할 수 없는 거리였다. 거기에다가 이제와서는 그도 참새가 자동차 뒤를 쫓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만은 옮아 탔던 참새를 처리하는데 조심했다. 서 있는 나무에 돌진을 시키는 경우에도 도로를 넘어 숲속 깊숙한 곳을 택했다. 거기에다가 올빼미가 부딪칠 때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새는 눈을 뜨고 부딪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어쨌든 새를 자살시킨다는 이 계획은 당장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속도를 내어 날고 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가지가 방해를 한다. 목을 꺾어놓는 대신 날개가 부러져 나무 밑에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는 기다렸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으면 참새는 굶주려 죽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지성체 자신은, 껍데기는 그로스가의 뒷문 계단 아래에 완전히 숨겨져 있다. 지각을 가동시켜 보았으나 참새의 고통은 전해오지 않았다. 그가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은 그 자신이 그의 육체에 부여하는 것에 한정되어있는 것이다. 그의 그러한 고통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한열에 의해 느껴지는 것이며 그 한도도 특히 이 천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열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 껍데기가 갈라진다든가 균열이 생기면 죽음의 순간에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양분도 흡수했으며 앞으로 수개월 동안은 그럴 필요도 없으므로 서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그때까지는 그를 고향이 별로 다시 송환시켜 줄만 한 전자 기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식도 돈도 능력도 있는 정말 안성맞춤인 인간을 사로잡아 옮아 탈 수 가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런 인간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그런 인간에게 순차적으로 옮아 타고 그렇게 되면 일을 하기도 힘들 것이며 위험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종족이 의식하며 해내는 방법에 의해 자신이 분열하여 나뉘어지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으나 당장에 실제적이지 못한 그 생각도 버렸다. 분열의 과정을 시작해 버리면 그것은 이미 도중에서 중지할 수 없게 되며 상당히 오랜 기간 그 분열 상태의 수습할 수 없는 모습으로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껍데기가 완성될 때까지 그 어느 쪽이나 완전한 지배를 할 수 없는, 어느 편에서는 그 무엇에도 옮아 타고 움직인다는 것이 불가능한 초라한 상태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번식을 위한 이 무능한 과정을 이를테면 그들의 고도로 특수화한 진화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벌금과도 같은 것이다. 어느 부분도 서로 상대방의 이 지구에서의 1년 정도의 기간 자신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동물에 옮아 타서 지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종족이 한 개로 번식할 수 있는 천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은하계 중에서는 극히 일부분이지만 약간의 지능이 있는 동물이 있어 기꺼이 이 지성체를 맞고 지성체가 동물을 지배할 수 없는 무능한 기간도 그들의 뒷바라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사전에 훈련시켜 놓을 수 있는 천체도 있다.

그는 며칠이 걸리건 참새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으나 해가 완전히 지고 나자 머리 위에서 올빼미의 날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참새의 건강한 쪽의 날개를 치게 하며 주의를 끈다. 올빼미는 참새를 발견하여 내린다. 1분도 못 되어 올빼미의 예리한 부리가 날개를 부러뜨린 참새를 처치하고 지성체는 그로스의 집의 껍데기로 돌아왔다.

원래의 지각이 보일 뿐만이 아니라 투시도 가능한 지각에 의해 그는 마침 밖에 서서 문을 노크하고 있는 보안관과 안에서 문을 열려고 하는 엘자 그로스를 볼 수가 있었다. 엘자는 검은 드레스 앞에 걸치고 있던 흰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그로스 부인은 상복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지성체도 이 층의 그녀의 옷장 속을 알고 있었으나 이미 그 속에 있는 옷은 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검은 옷뿐이었다. 문이 열리자 보안관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부인. 바쁘지 않으시면 장의사를 만나러 가시지요."

"죄송합니다, 보안관님. 그런데 이웃의 르루사씨가 와주시기로 했습니다. 30분 이내에 데리러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드리지 않았던가요? 당신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걸어봤지만 내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자택과 사무실은 돌아가지 못했으니깐요."

보안관은 모자를 벗고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긁었다.

"그럼 모셔다 드리지 않아도 되면 그래도 좋습니다만-."

"어쨌든 잠시 들어오세요. 커피라도 한 잔 드리지요. 아직 식지 않았다고 생각되니까."

"글쎄요-한잔해도 좋을 것 같군요, 한 잔 주세요."

엘자가 뒤로 물러서고 보안관이 뒤를 따라 들어가고 문을 닫았다. 엘자는 푹신해 보이는 의자를 가리킨다.

"보안관, 거기에 앉으세요. 지금 찻잔을 가져오겠습니다. 크림과 설탕은."

"설탕은 약간만-."

엘자는 곧 돌아와서 찻잔을 보안관에게 넘겨주고 의자에 걸터앉아 또 하나의 찻잔을 자신의 무릎 위에 놓는다.

"아직 식지 않았지요."

보안관이 입을 댔다.

"알맞군요. 너무 뜨거운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인, 앞일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이라도 섰습니까? 손수 이 밭을 경작해보실 생각이신가요? 그야 물론 사람을 고용하면 안 될 것도 없겠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팔리면 팔 생각입니다. 거기에다가 벌써 팔아 버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아니 그런 것을 물어도 실례가 되지 않을지."

"르루사씨에게는 아우님이 계셔서 미노마이니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기계관계의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만, 밭일도 한 일이 있으며 밭일을 좋아하신데요. 시내에서 일하기보다는 작은 농지라도 사서 이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르루사씨가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주시겠답니다. 매우 사이가 좋은 형제인 듯 동생도 옆의 농지라면 무척 좋아하실 거라구 말하데요. 거기에다 만약 동생이 그 정도의 저금이 안 되면 부족한 만큼 돈을 대여해 주시겠데요."

"흐뭇한 이야기군요."

"정말 흐뭇합니다. 거기에다가 그 이야기가 성사되면 적어도 학교의 방학 동안만이라도 도와줄 사람이 생겼답니다. 반대편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크레이머씨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드님이 있어 여름방학 때는 아버지를 돕는 정도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답니다. 틀림없이 우리 집에 와있게 해서 여름방학 동안의 반나절쯤은 일을 돕게 해주신답니다. 아드님도 부지런하고-."

"잘 되었군요. 이럭저럭 꾸려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시내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이를테면 이 버톨스빌의 시내에서."

"그것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아드님과 따님이 있다고 들었는데."

", 있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가 지그프리드와 싸움 끝에 뛰쳐나갔으며 그 사람은 나에게도 편지도 못 내게 해서......저편에서도 편지가 오지 않게 된 지가 벌써 이럭저럭 10년이 넘었습니다."

"마지막 주소는 알고 계십니까."

"동네 이름과 번지는 잊었습니다. 버사는 신시내티이고 맥스는 밀워키였습니다. 그러나 10년이나 전의 일이어서."

보안관은 웃음을 보였다.

"여러 가지를 들었습니다만 이것은 무슨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 양쪽의 경찰서장에게 편지를 내보겠습니다. 적어도 어느 쪽의 하나라도 단서가 잡힐 테지요. 전화번호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거기에다가 어느 한쪽이라도 발견되면 두 사람 모두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두 사람은 서로 연락을 할 수 있을 테니깐요."

"고맙습니다, 보안관."

그로스 부인은 웃음을 보였으나 여기에서 갑자기 볼에 눈물이 흘렀다. 다시 노크 소리. 르루사의 노크에 입구까지 달려가더니 도중에서 서둘러 눈과 볼을 닦는다. 10분도 못 되어 세 사람 모두가 나갔다. 먼저 보안관, 잠시 후에 그로스 부인, 마지막에 르루사였다. 르루사는 그녀에게 미시간주 미노마이니에 있는 동생에게 쓴 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보안관보다 늦어진 것이다. 함께 시가지를 나가서 그 편지를 발송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성체는 생각했다. 그녀가 떠난 진 두 시간.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으며 후에 그녀가 잠자리에 들어 잠들고 나서도 생각했다. 지성체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 그는 엘자 그로스의 계획을 알고 있다. 엘자 그로스가 그로스의 다음에 옮아 탈 상대였다. 지성체는 그 후의 계획도 세웠으나 만약에 저렇게 되면, 다시 우연히 이렇게 되면 하는 두 가지 가정 위에 입각한 것들이었다. 하나는 그녀의 희망대로 이 농장이 팔렸을 경우의 일이다. 또 하나는 아직도 몇 주일 후의 일이 되겠지만 그때까지 보안관이 그녀의 딸이나 아들을 신시나치나 밀워키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면 하는 가정에서였다. 이 경우 장소는 다른 어디건 비교적 큰 도시이기만 하면 좋은 것이다.

엘자 그로스는 지금 잠들어있으니까 옮아 탈 수는 있지만 그는 옮아 타지 않았다. 기다릴 수가 있다-어차피 그녀는 적어도 2주일 동안은 밤마다 이 집에서 자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아무래도 그녀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르루사의 동생이 농지는 필요없다고 말해올지도 모르며 보안관이 그녀의 딸도 아들도 찾아내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에다 설사 사고사를 가장한다고 해도 여기에서 그녀를 죽게 하는 것은 서툰 짓이다. 두 건이나 횡사가 계속되면 이 농가에 세상의 관심은 지나치게 쏠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수가 있는 것이다. 기다리며 계획을 연마할 수도 있는 것이다. 훨씬 좋은 계획이 있으면 언제라도 그쪽으로 변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보안관에게 옮아 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엘자 그로스의 계획이 제대로 자행된다고 가정해도 그녀보다는 보안관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보안관이라면 언제라도 밀워키에 나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들 수 있으며 지성체가 내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이건 자유롭게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보안관은 차를 가졌기 때문에 목적만 달성하면 죽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졸음운전을 가장하여 다른 차와 정면충돌을 시킬 수 있으며 갑자기 정신이 나갔다고 가장시킬 수도 있다. 만약 보안관이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음주운전도 이상하지 않으면 그 방법으로 밀고 가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건 보안관으로 옮아 탈 가능성은 없다. 그는 지방사무실이 있는 시내에 살고 있으며 거기에서 잔다. 버틀스빌이 아니라 윌콕스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 지성체의 몸을 멀리 거기까지 운반시킨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그렇고 그 전에 이 시골이나 가까운 시내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시내의 주민을 알아둘 수가 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수리기사는 가능성이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으나 보다 나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가정해도 지식이라는 것은 아무리 흡수해도 과다하다고 할 수가 없다. 거기에는-고양이다.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고 귀도 잘 들리는 고양이가 그런 스파이 행위에는 안성맞춤의 도구이다.

지성체는 고양이라는 개념에 정신을 집중하여 가까이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에게 옮아 타려고 했다.

 

 

11

금요일 아침은 버틀스빌은 흐린 상태였다. 점심때 전에 가벼운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윌리 챈들러는 라디오, 텔레비전 수리 집에서 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도시락을 가져왔기 때문에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뻐했다. 그에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정도밖에 없었다. 장사가 되지를 않아 요즘은 꼼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3년 전에 버틀스빌의 시내가 라이도아 텔레비전 수리로 먹고 살 수 있는 큰 도시라고 생각하여 그는 크게 실패를 하고 말았다. 라디오라면 많은 집이 가지고 있지만 좀처럼 고장이 나질 않는다. 거기에다가 텔레비전은 몇 대밖에 없었다. 그린 베이의 방송을 수신할 수는 없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서 잘 나오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좀처럼 켜보려고 하지 않았다.

윌리 챈들러는 32세였다. 키가 크고 여윈 편이며 대모갑의 테로 만든 안경을 끼고 있다.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아 모두 일은 그에게 맡기고 있었으나 그런데도 그와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의 두 사람의 생활을 지탱해 나갈 정도는 못되었다. 그는 버틀스빌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자란 것이다. 아버지는 별로 잘 되지도 않는 식료품상을 하고 있었으나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가게를 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래도 식료품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옛날부터 라디오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라디오가 할당되어 라디오가 어떤 것인가 하는 정도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그것만이 유일한 유산이었던 식료품 가게를 팔아 그 돈의 일부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가르치는 기술학교에 4개월 동안 강습을 받게 시카고에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어머니도 그 무렵에는 아직 몸이 정상이어서 4개월 정도의 아들 없는 생활을 꾸려갈 수가 있었다. 그 강습이 끝나고 수리집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아버지의 유산도 거의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가게가 돈을 먹어 버리는 일은 없었으나 수익이 너무나 적었다. 어머니가 졸도하여 1년이 지나고 의사와 병원에 지불할 돈 때문에 어머니의 몰래 갖고 있던 돈도 없어져 버렸다. 은행으로부터는 여러 차례 대부를 받아야 했고 진공관이나 그 밖의 부품을 갖추어 두기 위해서는 도매상의 신용을 잃지 않을 정도로 외상거래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의 가게 수입은 저당에 잡힌 가게의 공매처분을 방지하기 위한 이자의 지불과 어머니와의 두 사람의 최저한의 생활비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거지는 작은 셋집이며 그 집세도 언제나 한두 달분은 밀려있었다. 주간에는 이웃 사람들이 어머니의 식사를 돌봐주고 있었으나 나머지 모든 것은 윌리가 혼자서 해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이외에 이 시가지에는 친인척이라고는 없고 살아가는데 방해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은행이나 채권자들에게 저당잡힌 물품이나 도구를 공매 처분하는 것이 훨씬 득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밀워키라든가 미네아폴리스와 같은 도시로 나가면 사람을 고용하여 하는 큰 수리점에 고용되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수입이 많다. 그러나 거의 가능성은 없지만 어머니의 신변이 훨씬 좋아지지 않으면 현상 유지밖에는 바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또한 파산한 데도 시가지의 다른 가게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채소가게이건 철물점이건 어디에서나 일할 생각이지만 그런 일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가게를 매입한 사나이에게 상의해본 일이 있지만 옛날에 하던 그 조수 생활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농사일을 할 곳은 있었으나 그는 밭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농장의 고용인으로서는 어머니를 부양할 수가 없다. 머슴의 임금으로는 집세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현재의 일을 성심껏 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성의껏 하다가 보면 어머니의 몸이 조금은 좋아지겠지-아니면-효심이 지극한 그는 결과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게의 창으로 보이는 매정하기만 한 바깥 경치에 등을 돌리고 그는 작업대로 돌아왔다. 작업대를 정리하고 아침에 자신이 만들어 온 도시락을 펼친다. 뜨거운 커피가 든 작은 보온병과 함께 샌드위치 두 개가 들어있었다. 하나는 피넛 버터, 하나는 잼. 오랫동안 1센트도 허비할 수 없는 생활이 계속하고 있으므로 도시락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간혹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샌드위치용 고기를 사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사치였다. 집에서의 식사용으로도 햄버거용 가장 값싼 고기가 아니면 수프용의 뼈 이외는 좀처럼 사지 않는다. 주거지와 가게의 집세가 무엇보다 가장 먼저이며 어머니와 둘이서 배를 불리는 것만으로 끝나고 정말 맛있는 것은 좀처럼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기억에 남는 것으로 과거에 정말 맛있는 것을 먹은 것은 3개월쯤 전에 월터 슈레이더가 텔레비전 수리비가 없어 대신 햄을 주었을 때 만 한 달 동안이나 맛있게 먹은 일이었다. 20파운드나 되는 햄이었으며 그로서는 횡재였다. 텔레비전 수리는 작은 진공관을 두 개 갈았을 뿐인데 현금이라면 슈레이더에게 6달러 이상은 청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햄은 2배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두 모자가 한 달 이상이나 충분히 먹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피넛 버터의 샌드위치를 먹고 잼 쪽도 다 먹어갈 무렵 뜨거운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이을 때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나서 어디일까 하고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가 한 마리, 옆으로 난 창틀에 앉아 앞발로 유리창을 긁고 있다. 크고 검은 고양이로 수영이라도 한 듯이 흠뻑 젖어있고 흙투성이다. 그는 창으로 다가가서 가까운 위치에서 그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본 일이 있는 고양이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봐, 무슨 일이지."

이렇게 말을 걸어본다. 그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 고양이는 여위고 굶주려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비에 젖어 털이 찰싹 붙어 버린 탓임을 그는 알았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고양이는 입을 열었다. 야웅! 했을 테지만 유리창 너머라서 들리지 않는다. 거기에서 다시 고양이는 앞발로 유리를 긁는다.

"들어와서 비를 피하자는 것인가? 영리한 놈이군."

윌리가 창을 열고 고양이는 가볍게 바닥에 뛰어내렸다. 그는 창을 닫고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프니? 공교롭게도 잼이 붙은 빵의 가장자리밖에 없는데. 고양이가 먹을만한 것은 못되지만 정말 배가 고프다면-"

그는 다시 작업대에 앉더니 잼 샌드위치의 가장자리를 고양이가 먹기 좋게 잘게 뜯어 주었다. 고양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으나 이윽고 그 빵의 가장자리를 먹기 시작한다. 빵의 가장자리는 모두 작게 토막 내어 고양이에게 주어졌다. 고양이에 관해서 잘 알고 있는 윌리는 큰 것은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도 작게 잘라주면 고양이는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도 마르니."

윌리가 묻는다. 작업대 위를 뒤져서 물이 들어갈 만한 양철 뚜껑을 발견한다. 그것을 안에 있는 수돗가로 가져간다. 물을 떠서 바닥에 놓는다.

"우유가 없어서 미안하다만 못 견디게 목이 마르다면-."

고양이는 서너 번 물을 핥았다. 윌리는 수돗가 줄에 널려있는 두 개의 타올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집에 가져가서 빨아와야 할 정도로 더렵혀져 있었다. 그 더러운 쪽의 타올을 집어 든다.

"고양이야.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몸을 닦아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깨끗이 닦아줄 수는 없지만 일단 물기라도 닦아주지."

고양이는 얌전히 앉아 기분이 좋은 듯 몸을 대고 있다. 윌리가 거의 닦아가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윌리 챈들러. 라디오 텔레비전 수리점입니다."

"윌리, 케프 헤이든이야."

케프 헤이든은 만물상을 하면서 우체국을 경영하고 있는 사나이다.

"시카고에서 소포가 전화해달라고 했으나 그 소포가 왔다구."

"감사합니다. 곧 가겠습니다."

"윌리, 약간 기다려. 약간 돈을 가져와야겠어. 이 소포는 우송료 후불이며 6달러 80센트야. 이것은 우체국의 일이지만 말하자면 공금이야. 외상으로 달아놓을 수는 없어. 그 점은 나도 깔끔히 정리해야겠거든. 현금을 가져오라구."

윌리는 말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 소포를 빨리 오도록 기다린 까닭은 롤프 머시의 텔레비전 수리에 필요하며 거기에 학수고대하는 까닭은 진공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텔레비젼은 진공관 하나가 없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했던 거예요. 그 일로 20달러는 받을 수 있습니다. 수리가 복잡하거든요. 거기에다가 완성되면 현품과 교환으로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했으니 돈을 가지지 못합니다. 지금 3달러 정도밖에는 현금이 없으며-차액은 외상으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래 끌지 않겠습니다. 수리 대금을 받는 대로 곧 갚아드리지요."

"하는 수 없군. 이번만은 봐주지. 대신 들프가 지불하면 바로 갚아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케프. 그럼 곧 가겠습니다."

윌리는 코트와 모자를 벽의 못에서 벗겨 잡더니 출입구로 가더니 돌아보며 "고양이야. 가게를 지키고 있거라. 자물쇠도 채우지 않았고 어차피 도둑맞을 물건도 없으니까. 누가 오거든-어차피 오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곧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고 전해라."

문을 열고 나서 돌아보며 다시 말한다.

"고양이야,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두자. 비가 그치고 몸이 마를 때까지 여기에 있는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자네를 사육할 수는 없는 형편이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여기에서도 집에서도 고양이를 기를만한 여유가 없다구. 방금 그 전화를 들었으니까 얼마나 궁색한지는 알았을 테지. 네가 돌아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 분명히 고양이의 먹이와 우유를 줄 수 없는 처지에서는 고양이를 사육하지는 않을 거야. 별로 대단한 출자(出資)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이편의 경우는 그것이 벅차다구. 지금이 그런 처지이고 당분간을 이것이 지속될 거야."

고양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윌리는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았다. 만물상 겸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받고는 다시 뛰어서 돌아왔다. 건물에 바싹 붙어서 달렸기 때문에 코트에 물이 배일만큼 젖지는 않았다. 다시 코트와 모자를 걸고 나서 작업대로 돌아와서 소포를 푼다. 고양이는 작업대 위에 올라가 있었으나 문을 열었을 때 뛰어내렸다. 먼지가 앉은 작업대 위를 고양이가 걸어 다닌 발자국이 나 있다. 두 개 있는 텔레비전 케이스를 냄새를 맡으며 살피고 다닌 듯하다. 하나는 지금 일에 착수하고 있는 진공관이 하나 필요한 놈으로 또 하나는 역시 주문해 두었지만 새로운 브라운관이 필요한 놈이다. 고양이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흩어져 있는 이상한 부품이나 도구를 살펴보고 다닌 듯하다.

작업대 구석에는 루즈 리프 색의 배선(配線)에 관한 설명서가 있었다. 지금 그것이 펴놓았던 페이지와는 다른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그는 말했다.

"고양아! 너는 전자과학을 공부하고 있었니."

자신의 생각이 쑥스러워져 그는 웃으며 고양이를 내려다본다. 들프 머시의 텔레비전을 위해 필요한 배선도의 페이지를 펼쳐놓았을 텐데 라사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포를 펼치고 싸놓았던 종이를 던져 버리고 그 속의 여러 가지 작은 부품들을 각자의 위치에 정리했으나 들프의 텔레비젼을 위한 진공관은 내놓고 그 텔레비젼 세트를 작업대 위의 자신의 정면에 당겨 놓았다. 작업대 위를 두들기며 말한다.

"이리 오라구. 다시 여기에 올라와서 작업하는 것을 보라구. 전자과학을 설명해 주어도 좋지. 그렇다고 대단한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론이라는 것은 잘 모른다구. 4개월의 강습밖에는 받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배선을 분명히 더듬어갈 수는 있지만 왜 이렇게 되는가는 너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여기에 오라구."

다시 한번 작업대의 가장자리를 두들기니 이번에는 고양이가 거기에 뛰어오른다. 가만히 앉아 몸을 도사리고 고양이가 무엇인가를 지켜볼 때만 하는 조심성 있는 태도로 그를 지켜본다. 그는 쓸쓸했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터져버린 진공관을 교환하고 플러그를 꽂아보고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고양이가 동정을 해주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콘덴서 등을 살펴보고 접속에 이완이 없는가를 살펴보며 그는 고양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

그러는 동안에 이 고양이가 자기 말을 들어주는 절친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 어느덧 개인적인 일, 가게에 대한 불평, 이대로 가게를 계속할 수 있겠는가 등, 심지어는 어머니의 병에 대한 걱정이나 보장이 없는 장래 문제 등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고양이에게 이야기하면 지금까지의 걱정보다 더 슬퍼할 테니까 참아 말도 못 하는 것들이었다. 다른 인간에게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지금의 희망 없는 생활이 그에게는 어떤 것인가, 그 누구도 이해가 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태산같지만 현재의 상태로는 여자와 데이트도 못 할 것만 같다. 여자를 영화에 데리고 가는 것조차도 현재 그의 텅 빈 주머니 사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양이는 좋은 말동무였다. 그러나 끝내는 작업대에서 뛰어내려 입구 쪽으로 가더니 야옹하고 울면서 유리를 긁어댄다. 그는 내키지 않았으나 출입구로 가서 고양이를 내보낸다.

"고양아, 언제라도 또 오너라. 저 창으로 오늘처럼 신호를 보내라구. 별것은 아니지만 도시락 정도는 나누어 줄게."

비는 그쳐 있었다. 그는 대로를 가로질러 골목길로 자취를 감추는 고양이를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의 집에선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인 듯하다. 언젠가는 자신도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는 것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육하는데 별로 돈도 들지 않을 것이며 현재의 궁지가 다소나마 풀리면 최초의 사치로서 그 정도의 일은 무방할 것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평가를 받고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 하마터면 요절해버릴 결과로 끝날 것을 모멸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