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내 차례야
정이식
“민지야, 엄마하고 멋진 가을 구경하자.”
엄마는 차를 가지고 학교 앞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젠 혼자서도 엄마는 잘해, 네 아빠는 순 겁쟁이야.”
어제까지도 엄마는 아빠에게 운전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시내를 한 바퀴 돌고만 오면 엄마와 아빠는 늘 다퉜습니다.
“차라리 민지더러 운전하라는 게 낫겠다. 어째 머리에 돌만 들어 있냐?”
아빠의 큰 목소리는 엄마가 눈을 부릅떠야 내려갔습니다.
“잔 소리쟁이가 없으니 이렇게 운전이 잘 되잖니. 호호.”
빨간 엄마의 차는 노란 은행잎이 수북한 학교 앞 큰길을 미끄러지듯 나아갑니다. 하늘은 더 푸르고 오후의 햇살은 더 따갑게 비칩니다.
“봐라, 엄마 운전 잘하지?”
푸른 신호등을 보며 엄마는 멋지게 핸들을 돌립니다.
“가만두면 엄마는 이렇게 운전을 잘해요. 아빠는 필요 없는 걱정을 하는 거야. 뭐라나? 혼자서는 절대로 차 끌지 말라고? 호호”
웃음소리도 용감히 엄마는 손가방을 더듬거리며 색안경을 찾습니다.
“빵빵.”
엄마가 한눈을 판 사이 차가 잠시 흔들립니다. 엄마가 움찔움찔 핸들을 다시 쥐자, 옆 차선으로 들려던 엄마의 차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때, 뒤쪽의 작은 트럭이 갑자기 옆 차선으로 돌진해 왔습니다. 엄마 차와 나란히 달리는 트럭의 창문이 스르르 열립니다. 차 안에는 험상궂은 아저씨가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있습니다.
“야이, 여자야, 집에서 밥이나 하지 운전은 무슨 말라빠진 운전이야.”
아저씨는 칵, 하고 물고 있던 담배를 엄마 쪽으로 뱉어냅니다. 또 다른 차량이 뒤를 따르며 엄마에게 욕지기를 퍼 댑니다.
“그럼 그렇지, 여자가 틀림없네, 도로를 저런 여자들이 다 점령해요. 완전 여자 판이야. 큰일이야 큰일.”
엄마의 얼굴이 처음엔 노란 단풍으로, 그러다 차츰차츰 빨간 단풍으로 바뀌어 갑니다. 엄마는 얼른 길가로 차를 세웁니다.
“이것 때문이야. 진작 뜯어 버려야 하는데. 에잇.”
뒤 창문에 붙은, 초보운전 글자가 새겨진 노란 병아리를 떼어냅니다.
“누구는 초보 시절이 없었나? 나쁜 놈들, 사고 난 것도 아닌데 욕은 왜 해.”
엄마의 부아가 차에 씌어져 덜컹덜컹 후다닥, 차는 매끄럽지 못하게 출발합니다. 넓은 공단로를 지나며 엄마의 화는 차츰 풀려갑니다. 실력도 금방 늘어 앞차 꽁무니를 보며 팔을 창턱에 걸치고 운전하는 여유도 보입니다.
“봐라, 민지야, 가만두면 엄마는 이렇게 운전 잘하는데. 왜들 그러실까. 글치?”
오른쪽 거울을 보려 돌리던 얼굴이 마주치자, 엄마는 눈을 씽긋 거리며 신나게 웃습니다. 뒤벼리 모퉁이를 돌면서는 콧노래도 부릅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흥흥”
“민지야, 이럴게 아니라 진주성으로 가자, 거기 가면 익은 가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호호.”
강변도로가 끝나자 버스터미널 네거리가 나옵니다.
“저것 봐. 엄마 잘 오라고 푸른 등이야.”
엄마의 차는 쉼 없이 질주하며 네거리를 건너갑니다. 반도병원을 지나자 남강 신호등에 걸린 빨간 등이 보입니다. 엄마는 미리부터 제동을 걸며 사르륵, 예쁘게도 차를 세웁니다. 따가운 햇볕아래 촉석루 넓은 채양이 엄마의 코앞에 걸려있습니다. 그 아래 논개의 혼이 실린 늘 푸른 강물도 보입니다. 이 에미 바위 위에도 마지막 가을을 보려 함인지 많은 사람들이, 넘실대는 푸른 남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럴 땐 학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돼. 기어를 중립에 넣고 핸드 브레이크를 당겨놓고. 자 됐지? 이러면 두 발이 자유로운 거야.”
앞엔 기다란 나무를 실은 화물차 한 대, 그리고 승용차 두 대가 서 있습니다. 뒤쪽엔 차들이 자꾸자꾸 줄을 대며 들어옵니다. 엄마는 자유로운 두 발로 한껏 발 기지개를 폅니다. 그 사이, 남강 다리목 쪽의 차들은 한바탕 지나가고, 눈앞의 빨간 등이 푸른 등으로 바뀝니다.
“자, 우리 차례야, 이젠 가자.”
엄마는 기어를 넣고 핸드 브레이크를 풀며 가속페달을 밟습니다.
“덜컥.”
길이 비탈져서인지, 아니면 엄마의 운전 미숙 때문인지, 차는 나아가지 못하고 덜컹거리며 뒤로 밀립니다. 엄마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엄마의 차는 시동이 꺼졌고, 그 덕에 뒤편의 차들도 모두서야 했습니다.
“이게 왜 이래. 바쁜데 왜 시동이 꺼지는 거야?”
엄마는 다시 브레이크를 걸고 기어를 빼고 시동을 켭니다. 그러나 마음만 바빴지 차는 얼른 나아가지 않습니다. 뒤에선 빵빵거리고 불을 번쩍거리고 난리가 춤을 춥니다. 홍당무가 된 엄마가 다시 차를 출발시킵니다.
“끼익.”
몇 발짝 가지도 못하고 엄마는 노란 신호등을 보았습니다. 모범운전자가 틀림없는 엄마는 차의 앞머리가 땅에 박히도록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끽 끽.”
뒤따르던 차들도 엄마를 따라 모두 급하게 섰습니다. 이제 줄의 제일 앞쪽은 빨간 엄마의 차가 차지했습니다.
“휴. 이래서 오토를 사자 했는데, 네 아빠는 엄마 말을 도통 안 들어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엄마는 닦습니다. 다시금 핸드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엄마는 출발 연습을 합니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으며 클러치를 뗀다. 그래 이번엔 틀림없어.”
네거리 신호등은 다시 푸른 등으로 바뀝니다.
“이번엔 내 차례야.”
엄마는 용감히 차를 출발시킵니다.
“덜컹 덜컹.”
그러나 엄마의 생각대로 차는 따라주지 않습니다. 두어 번 덜컹거리더니 또다시 푹, 시동이 꺼집니다.
“아차 핸드브레이크를 안 풀었어.”
엄마의 얼굴은 이젠 흙빛으로 변합니다.
“야. 안 갈 거야?”
성질 급한 택시 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냅다 해댑니다. 그러더니 옆으로 삐져나오며 붕,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뒤이은 차량들이 엄마의 곁을 지나갑니다. 모두가 험한 소릴 하는지 입을 씰룩거립니다. 엄마의 손에 자신도 모르는 땀이 흥건히 배어옵니다.
휴,
한숨을 쉬며 엄마는 머리를 운전대에 묻습니다. 신호등은 다시 노란 등으로 바뀝니다.
“이번엔 틀림없어.”
엄마는 머리를 들고 앞을 바라보며 운전대를 잡습니다. 새로운 차들이 엄마의 빨간 차 뒤에 속속 줄을 대며 섭니다. 엄마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란 하늘 아래의 파란 강물은 여유롭게 또 평화롭게 흘러만 갑니다.
여러분, 진주 남강 다리목 네거리를 가보세요.
“이번엔 내 차례야” 하고 외치며, 힘 있게 운전대를 부여잡고는 빨간 신호등을 쳐다보고 있는, 우리 엄마가 거기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