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물고기
정이식
작은 바람에도 민들레 홀씨는 흩날렸다. 물풀 위의 고추잠자리만 귀찮은 듯 나풀거리는 홀씨를 쫓느라 꼬리를 흔들거리는. 먼바다의 파도소리만 가냘프게 들리는 오후의 호수는 낮잠이 한창이었다.
"할아버지, 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지붕 없는 보릿대 모자를 눌러 쓴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받았다.
“입질이 별로인걸? 요놈들도 낮잠을 즐기나 봐. 하하하.”
호수로 나올 때마다 할아버지는 저 자리에 앉아 낚시하였다. 두 달 전 이삿짐을 풀어놓고 처음으로 찾았을 때도 할아버지는 저 자리, 미루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두 마리 들었네요.”
나는 대나무 낚싯대를 호수 위로 던져놓고 할아버지의 어망을 들추어 보았다.
“그래, 낚싯바늘은 제대로 만들어왔니?”
“미늘을 쳤어요. 오늘은 제가 더 많이 잡을 걸요?”
“흠흠, 나야 세월을 낚으려 미늘 없는 걸 쓴다만, 그래도 멍청한 뚝지들은 요렇게 잘 잡히지. 봐라. 여차.”
휙,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뚝지 한 마리가 붕, 떠올랐다가 풀밭에 떨어진다. 얼른 주워 어망에 담으려 하자 할아버지가 손을 내 저었다.
“네 어망에 담아라, 그리고 여기 있는 것도, 뚝지의 임자는 언제나 따로 있어. 할아버지는 일이 있어 먼저 가려네.”
할아버지는 빈 낚싯대만 둘러메고 호수를 떠나갔다. 여기 호수는 그 크기는 작아도 고기는 많이 산다. 바다로 들기 전의 작은 냇물이 쉬어가는 동네 뒤편의 이 호수에는, 뚝지라 불리는 토종물고기들만 살고 있다. 뚝지의 크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만 하여서 마을 사람들은 고기 취급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뚝지는 원래 바닷고기야. 그런데 약해서 너른 바다에선 무서워 살 수 없어서 이리로 왔지.”
내가 여기 오자 할아버지는 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척이나 반가워하였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말도 안 되는 호수의 전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주었다.
“뚝지의 왕국에 천적이 없다보니 호수의 질서는 엉망이었어, 그래서 뚝지들은 회의를 하고 왕을 뽑았어. 이 작은 호수에서 식구들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잘 사는 건 말이야, 지도자가 아주 훌륭하기 때문이지.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물고기나 사람이나 고생만 하는 거야, 하하하.”
할아버지의 헛헛한 웃음소리가 스민 조금 전까지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그루터기에 나는 앉았다. 그 자리는 물컹한 풀숲보단 딱딱했지만, 그런대로 편안은 하였다. 바라보이는 미루나무 가지엔 읍내로 향하는 구부러진 신작로가 달려있다. 이따금 그 신작로를 넘보려 머리를 짓찧으며 커다란 파도가 몰려다닌다. 파도의 갈기는 어느 사이에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더 늦기 전에 꼴부터 한 짐 베어야겠다.”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빈 지게를 그제야 찾아 지었다.
“음매.”
어디선가 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둔덕 너머에서 소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뿔에 밧줄이 감겨 있는 걸보니 아랫마을 애들이 소들은 들내 놓고 어디서 씨름 질을 하나보았다. 호수로 내려온 소들은 물을 마구 들이켰다. 호수 가장자리의 물들이 쭉쭉 줄어드는 것 같았다. 소 한 마리가 호수 건너편의 자욱한 풀밭을 보고 물에 뛰어들었다.
“첨벙 첨벙.”
커다란 덩치가 물살을 헤쳐가자 물 마시기가 끝난 소들이 차례로 물에 들었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소들은 저리도 겁도 없이 호수를 가로 건널까, 의구심이 생긴 내 콧잔등 위로 차가운 빗방울 하나가 뚝, 하고 떨어졌다.
“비가 오려나?”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호수를 바라보며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에 붉게 물들었던 저녁놀을 하늘이 어느새 삼켜 버렸다.
“섭이 오빠야.”
풀숲 청개구리들의 요란스런 합창이 뚝, 끊어지더니 동생 덕이의 음성이 그 사이를 뚫고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엄마가.”
턱에 숨이 차 있던 덕이는 나를 보자 달려오던 그 자세에서 앞으로 꼬꾸라졌다. 지게를 벗어 던지고 얼른 달려갔다.
“엄마가 매우 아파.”
덕이의 가쁜 숨에, 코끝에 묻은 모래알 들이 들쑥날쑥 하는걸 보며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덕이야, 오빠 먼저 갈게 천천히 와.”
미리부터 걱정하던 일들이 터졌음을 순간으로 느꼈다. 엎어진 덕이를 일으키며 얼굴을 대충 닦아주고 바람처럼 집으로 달려갔다.
"에이그. 섭이야 얼른 읍내 나가서 약 좀 지어와."
머리에 쓴 수건을 풀어 얼굴을 닦으며 안방에서 나오는 앞집 준영이 엄마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배어 있었다.
"울 엄마 어디가 아픈 데요?"
“몸도 허약한 사람이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을까. 네 그림 도구들 사준다며 남정네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더니 쯧.”
준영이 엄마를 밀치며 안방으로 들어가서 누워있는 엄마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겨울 아랫목처럼 엄마의 이마는 내 손이 뜨겁도록 활활 달아 있었다.
“섭이야. 엄마 괜찮아 조금만 누워 있으면 다 나아.”
엄마의 말을 무시하며 이불장 밑에 손을 넣었다. 엄마는 나에게도 급할 땐 꺼내 쓰라며 비상금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다. 손에 잡히는 얼마인가를 거머쥐고 읍내로 해 달렸다.
비는 구지레하게도 내려왔다. 신작로는 촉촉이 젖었어도 차가 지나자 먼지가 푹석 일며 달려들었다. 언제 어떻게 달려왔는지 기억도 안 났다. 읍내의 약국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흡사 귀신과도 같았다.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오자 마을은 이미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약을 먹고도 엄마의 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정을 넘기며 가르랑거리는 엄마의 숨소리는 오히려 더 거칠어만 갔다. 애만 태우며 엄마를 바라보는 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왔다. 베개를 끌어안고 졸지 않으려 애를 쓰다가 기어이 벽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고 말았다.
“왕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호수는 조선조 초기에 저절로 생겼으니 왕뚝의 나이도 족히 5백 년은 되겠네. 이놈은 달빛이 호수 전체를 밝히는 보름날에야 모습을 나타내지, 이놈을 잡아 고아 그 물을 먹으면 어떤 중병에 걸린 사람도 다 살아날 수 있단다. 하지만 영험이 있는 만치 아무에게나 보이진 않아. 이 뚝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지.”
할아버지의 이 말을 다시금 떠올리며 나는 결심을 하였다. 지금의 엄마를 살리려면 그 왕 뚝을 내가 꼭 잡아야 했다. 마침 하늘은 개여 있고 둥근 보름달은 호수 바로 위에 떠있었다.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할아버지의 그루터기에 앉아 낚싯대를 던졌다. 달이 구름 뒤로 숨어든 사이 밋밋한 바람들이 솔잎들을 잠시 들쑤시다가 이내 조용해 졌다. 머리를 짓찧으며 절벽을 기어오르던 파도들도 오늘은 잠잠하였다. 호수는 깊은 잠에 다시금 빠져들고 오징어잡이 배들만 먼바다 위에서 불빛을 번득이며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아른거리는 밤배의 불을 보다가 검은 강가에 서 있는 나무를 검게 그리다 곤욕을 치른 아버지가 생각났다. 두 눈을 감자 어둠 속에서 홀로 아버지는 하얗게 나타났다.
그날 밤의 어둠은 아버지의 그림처럼 검은색 속에 잠겨 있었다. 비는 왜 그리도 드세었던지 작은 울타리보다 훌쩍 더 커버린 탐스러운 달리아 꽃대들이 후드득, 마구 부러져 내리고 있었다.
“프르륵 프르륵,”
알 수 없는 새소리까지 들려와 무서움이 도진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아도 새소리는 여전히 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섭이야. 일어나 정신 차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의 목소리를 이때 처음으로 들었다. 머리를 들자 마당을 한 바퀴 휙 돌던 자동차 불빛이 얇은 창호지를 덧 대인 안방 문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그러다 불빛이 꺼지며 유리창을 갉는 손톱 소리처럼 앙칼진 새의 울음도 같이 멈추어왔다. 곧이어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다급히 들려왔다.
“덜컹.”
발자국이 멈춤과 동시에 잠긴 문고리가 뽑히며 문이 열렸다. 서슬에 놀란 호롱불이 확, 하고 꺼져버렸다.
“정영호씨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잠시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소총을 어깨에 거꾸로 멘 군인 두 명이 방문 앞에 장승처럼 나타났다. 어둠 속이지만 군인들의 눈에서는 새파란 불빛이 번득거림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언제 일어났던지 엄마도 그들처럼 들어오는 빗물을 피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지만 내겐 너무도 긴 말 없음의 시간이 흘러갔다. 무서워 다시 이불을 덮어썼지만, 한겨울처럼 내 몸은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섭이야. 덕이 잘 보고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 알았지? 엄마 금방 올 거야.”
엄마의 목소리도 내 몸처럼 떨고 있었지만 어딘지 날이 선 칼처럼 서늘함이 느껴져 왔다. 엄마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미리 짐작했음인지 농 안의 작은 보따리를 꺼내어 들고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지프에 올라탔다.
엄마가 떠난 뒤로 비는 바람까지 불러와 작은 오두막집을 모질게도 몰아쳤다. 무서워서 밖을 보진 못했지만, 울타리가 무너지고 달리아 꽃들이 모두 뽑히어 물살에 떠밀려 감을 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한 것은 밤이 한참이나 머물다가 막 가려던 뒤끝에서였다. 여름 하늘의 변덕은 매우 심하였다. 조금씩 흩뿌리던 비가 그치더니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빨리도 흘러갔다. 그리곤 별이 조금씩 보이더니 종내는 둥근 보름달이 검은 먹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었다.
엄마는 처음 내리는 달빛을 등에 지고 군용 지프를 다시 타고 돌아왔다. 나갈 때와는 달리 하얀 무명치마와 저고리를 엄마는 입고 있었다. 머리도 단정히 빗어 넘겼지만 말라붙은 눈가의 눈물자국으로 인해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읍내에서 벌어졌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하얀 천으로 싼 작은 낯선 상자를 들고 있었다.
“섭이야. 덕이는 준영이 엄마한테 부탁해 놓았어. 얼른 옷 갈아입고 엄마 좀 따라가자.”
달리아의 허리가 꺾여 난장판으로 변한 꽃밭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엄마는, 지프가 돌아가자 허둥대며 나를 재촉 하였다. 바람은 그 사이에 구름을 멀리까지 쫓아 버렸고 작은 상자를 들고 앞서 걷는 엄마의 등 뒤로 노랗게 익은 달빛만 너울거리며 강아지처럼 따라왔다.
마을 뒷산을 돌아가자 멀리 보이는 읍내로 흐르는 작은 샛강이 나타났다. 샛강엔 여전히 검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샛강 뚝 젖은 풀잎 위에 엄마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구부러져 보이지 않는 샛강 위의 광산 쪽을 바라보았다.
“섭이야, 놀라지 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그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엄마의 가슴에 안겨있던 낯선 상자의 뚜껑을 열며 엄마는 말하였다. 이불 속에서 무서운 새소리를 들을 때처럼 또 다시 무서움이 몰려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이빨만 무수히 딱딱거리며 맞부딪혀 왔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 시커먼 강물을 마시고 사는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 오셨지. 아마 하늘에 가셔서도 이 일을 하고 계실 거야.”
낯선 상자의 뚜껑을 벗기며 엄마는 말하였다. 나는 무서움에 흐르기를 잊고 가만히 멈추어 있는 검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노란 달빛이 강물 안으로 뽀얗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상자 속에든 아버지의 혼을 손에 담았다. 그리곤 천천히 검은 강물 위에 뿌렸다.
"섭이야 아버지 한번 만져보렴? 작별 인사를 해야지."
엄마가 내 손을 잡아당기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야무지고 든든해 보이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감촉도 없이 내 손에 소리 없이 담겨왔다. 검은 강물 위엔 둥근 달이 들어앉아 있었다. 하얀 아버지의 혼은 노란 달빛에 버무리며 물 위를 맴돌았다.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어도 생각과는 달리 내 작은 어깨는 자꾸만 들썩거려 왔다. 엄마는 이런 나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섭이야, 남자는 눈물을 이겨야 한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또 눈물은 남을 위해 흘려야지 나를 위해선 흘리지 말라 하셨잖니, 섭이야, 오늘을 기억하고 우리 눈물은 다음에 흘리자, 응? 아버지도 지금 우리 섭이가 우는 걸 원치 않으실 거야."
아버지의 하얀 혼은 검은 강물 속으로 서서히 빨려들고 있었다. 눈을 떴다, 그때의 달도 저처럼 하늘 한가운데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달빛들이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하며 호수의 물로 사정없이 뛰어들었다. 그때의 고향 샛강처럼 호수는 점점 칠흑처럼 어두워져 갔다.
“푸드득.”
아버지 가시던 그날처럼 무엇 하나 움직임 없는 검은 호수 위에서 꿩의 깃털로 만든 낚싯대의 찌만 심하게 요동을 쳤다.
“걸렸어.”
곁에 놓아두었던 낚싯대를 힘껏 낚아채었다. 낚싯대의 끝이 곤두박질치며 잠잠하던 호수에 커다란 파문이 번져 나갔다. 팽팽하게 긴장된 줄을 들어 올리자 검은 호수의 한가운데가 쩍, 하고 갈라졌다. 그 틈을 타고 파도처럼 물결은 호숫가로 해 달려왔다.
“첨벙.”
아버지는 언제나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왼쪽 귀가 오른쪽보다 더 커다란, 태어나며 짝귀를 가진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래선지 아버지는 왼쪽으로 늘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다녔다.
“역적이 될 상이야.”
사람들은 숨어만 다니는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흉을 보았다. 왕뚝을 잡아 올리는 긴박한 순간에도 아버지의 기억은 좀처럼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푸드득.”
커다란 왕뚝은 수면을 뚫고 올라와 허공에서 춤을 추듯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검은 비늘 사이로 새하얗게 돋아난 돌기가 몸을 빙그르르 돌릴 때마다 신비스런 빛을 뿜어댔다. 한 번 더 낚아채자 왕뚝은 지느러미를 접으며 풀숲에 널따랗게 내려앉았다.
“엄마. 내가 왕뚝을 잡았어. 이제 엄만 바로 일어날 수 있어.”
나는 매우 기뻐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며 풀잎들을 짓이기며 몸을 마구 틀어대는 왕뚝을 바라보았다.
“이상해, 누군가를 닮은 것 같아.”
요란한 몸부림을 치던 왕뚝은 이내 평정을 되찾은 호수처럼 행동도 조용해 졌다. 살며시 다가가 낚싯대 끝을 이용하여 넓적한 배를 건드려 보았다. 왕뚝은 화들짝 놀라며 바로 돌아누웠다.
“앗, 아버지.”
왕뚝의 왼쪽 지느러미가 오른쪽 지느러미보다 한 뼘은 더 크지 싶음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비늘 안쪽으로 무수히 돋아난 돌기들이 뽀얗게 빛까지 내 뿜었다. 풀들도 나무도 호수까지도 왕뚝에게서 번져나간 빛깔로 인하여 하얗게 변하여 가고 있었다.
"섭이야, 그만 일어나야지, 얘가 안자던 늦잠을 다 자고, 무슨 잠꼬대는 또."
파닥이는 지느러미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엄마,”
엄마를 부르며 눈을 번쩍 떴다. 벽 쪽을 보고 누운 내 어깨를 엄마는 심하게 흔들고 있었다.
“어, 엄마, 안 아파?”
어깻죽지에는 낚싯대를 들어 올릴 때의 뻐근한 충격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오른손을 높이 들고 사방으로 흔들어 대어 건강의 이상 없음을 일깨우며 나는 일어났다.
"응, 우리 섭이가 지어온 약이 효험이 있었나 봐, 아니면 네 아버지가 어젯밤에 다녀가셨나? 새벽녘이 되니 씻은 듯이 낫데. 넌 무슨 잠꼬대를 그리 심하게 하니?"
"잠꼬대? 내가 잠꼬대를 했다고?"
"아버지가 꿈에 보이던? 하기야 그 양반 혼이 있으면 오늘은 찾아오시겠지. 오늘이 당신의 기일인데."
대답 대신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어제의 신열에 시달리던 모습이 아니었다. 입술의 파리함만이 어젯밤의 수상함을 일깨워줄 뿐,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엄마, 집에 아무것도 없는데."
빈 쌀독을 눈여겨보며 생각 없이 엄마의 아픈 마음을 건드렸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리 집의 쌀독은 언제나 비어있었다.
"섭이야, 시렁 위에 조금의 쌀은 있어. 뚝지도 두어 마리 있으니 조촐하지만 상 차리는 데엔 문제가 없어. 없는 살림이니 네 아버지도 이해하시겠지. 얼른 아침 먹고 읍내에 가야지, 엄마가 우리 섭이 사생대회에 갈 화구들을 다 장만해 놓았잖아. 입선하면……."
엄마는 화구를 챙기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하지 못한 다음 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림은 마음으로 그리는 거야. 꿈이 살아있는 네 푸른 마음을 그대로 그려봐.”
햇살은 어느새 작은 마루를 지나 안방의 벽에 걸린 아버지의 중절모에까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