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이름은 반칠득
방미진
설 전날, 아빠와 나는 창원에 있는 큰집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올랐다.
“멀미 나나?”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물었다. 나는 대꾸도 없이 창밖만 봤다. 넓은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지면서 커다란 나무들과 공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어느새 창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창원은 한적하고 깔끔한 도시다. 나는 창원의 탁 트인 느낌이 좋다. 하지만 큰집이 가까워 올수록 멀미는 심해졌다.
“멀미 나면 오징어 먹어라.”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며 오징어를 내밀었다. 나는 아빠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또 술 먹을 거가?”
기어이 말하고 말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내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안 묵는다. 정초부터 무슨 술이고.”
“약속했데이.”
“알았다. 오징어나 묵어라.”
나는 그제야 무시하고 있던 아빠의 손에서 오징어를 받았다.
아빠는 날마다 술을 먹는다. 옛날부터 그랬다. 하지만 친척들 앞에서 술 먹는 것만큼은 정말 싫다.
큰집에 도착했다. 큰엄마, 큰아빠, 식이 형, 고모, 고모부, 영이, 공이. 모두 와 있었다. 다들 들어서는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큰엄마가 아빠 손에 들린 청주 한 병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오느라 힘들었제. 차 안 밀리드나?”
우리가 거실 가운데로 들어올 때까지, 청주는 아빠 손에 그대로 들려 있었다. 아빠는 슬그머니 거실 한쪽에 청주를 내려놓았다.
“야! 시내 구경하러 가자!”
식이 형이 말했다.
나는 나가면서 아빠에게 눈짓을 보내, 다시 한 번 술 마시지 말라는 다짐을 해 두었다. 하지만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눈을 피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따라 나왔다.
우리는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시내를 구경했다.
“경수, 니 키 마이 컸네. 내 보다 더 크나?”
같은 나이인 영이가 바짝 다가와 키를 쟀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뭘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니야. 경수 오빠야가 더 크다.”
일곱 살인 공이가 내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살갑게 구는 공이 덕에,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공이가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동생이라도 되는 듯, 괜히 더 살뜰하게 챙기며 공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큰집이 가까워오자 또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벌써 술판을 벌였는지 떠들썩한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려왔다.
다행히 아빠는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한잔 더 하소.”
고모가 술을 권했다.
“마, 고만 묵을란다.”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제 시작인데 무슨 소리고. 한잔 받아라. 요새 가게는 장사 되나?”
큰아빠가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장사? 잘 되지! 안 될 리가 있나.”
아빠는 몇 년째 회사도 안 나가고 엄마가 하는 분식집 일을 거들고 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손님도, 배달도 줄어 아빠는 하루 종일 가게 구석에 앉아 홀짝거리며 술을 마신다.
아빠는 눈을 반짝이며 술잔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빠는 자제력을 잃고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을 쳐댔다.
“야는 일등밖에 안 한다.”
아빠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나는 반에서 30등 하면 잘하는 거다.
“야가 이번에 중학교 들어 가제?”
고모가 물었다.
“하모. 일등 중학교 안 들어가나. 무슨 시험이든 일등이라.”
입학시험 치는 중학교는 없을 뿐더러 일등 중학교도 없다. 아빠는 계속해서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친척들 얼굴에 슬슬 지겨운 표정이 드러났다.
“니는 고만, 입 좀 다물어라.”
큰아빠가 일어나며 말했다. 허우적거리며 걸어가는 큰아빠의 발에 청주병이 걸려 넘어졌다.
“뭐가 이래 걸리적거리노? 이게 뭐고?”
“식이야 저거 좀 치워라. 술병을 와 저 놔뒀노?”
큰엄마가 삐죽거렸다.
“엄마, 냉장고에 넣으까?”
“아무데나 갖다 놔라.”
괜히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경수야. 게임하자. 이리 온나.”
식이형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동정 받는 것이 싫었다. 식이형이 나를 억지로 끌었다. 나는 못 이긴 척 식이형을 따라 방으로 가면서 아무도 몰래 눈물을 찍어냈다.
설날 아침이었다.
우리는 제사를 지내고 성묘도 하고 왔다. 집에 돌아와 어른들은 다시 술판을 벌였다. 아빠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그만 마시라고 계속 눈치를 줬다. 하지만 아빠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피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또 허풍을 쳐댔다.
“동네에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따르는 사람이 천지다. 내가 운만 따랐으면 벌써 국회의원 돼 있을 놈이라. 큭큭큭.”
“쓸데없는 소리 고마해라. 시끄럽다마.”
큰아빠가 말하자 고모도 맞받아쳤다.
“코딱지만 한 가게하면서 무슨 사장이고? 제발 정신 좀 차리소. 분수를 알아야지.”
“뭐? 분수? 지금 어떤 놈이 내한테 분수 어쩌고 지껄여 샀노? 내가 누군 줄 아나? 어? 반칠득이라고! 반. 칠. 득! 알겠나?”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써댔다.
“여기 오빠야 칠득인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조용하소.”
고모가 화를 냈다. 아빠는 더욱 악을 쓰며 몸부림을 쳐댔다. 급기야는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기 진짜 미칬나! 니 칠뜩이 아니랄까 봐 이라나! 와 이라노! 칠뜩이 짓 고만해라. 어이!”
큰아빠였다. 엄마가 아빠랑 싸울 때도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큰아빠가 그러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술 마시면 개다. 개!”
큰엄마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식이 형이 따라 들어왔다.
“새끼 우나? 뭘 그라노? 다들 술 채 가지고 헬렐레해서 그러는 거 아이가. 어디 한두 번이가? 니가 이해해라.”
매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래서 더 싫은 거다. 식이 형도 싫다. 큰아빠 자식이라서 싫다. 친척들도 다 싫다. 영이, 공이도 다 싫다. 창원도 싫고 설날도 싫다. 추석도 싫다. 아빠도 싫다.
어른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 밤이 되자 어느 정도 술이 깨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과장되게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이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집에 가자.”
아빠에게 말했다.
“하루만 더 있다 가자.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가. 와 그라노?”
왜 그러는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가? 나는 아빠를 계속 따라다니며 졸랐다.
“오빠야, 더 있다 가라.”
공이가 나를 잡아끌며 말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 하루만 더 있다 가그라. 이 밤에 어딜 간단 말이고. 차표도 없을 거구만.”
큰엄마였다.
“야가 와 자꾸 갈라고 이라노? 아빠 회사도 안 간다 아이가. 오래 있다 가그라 마.”
고모였다. 나는 뚱하니 아빠 팔만 잡고 흔들어댔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왔다.
“경수 여자 친구 만날라고 안 그라나. 니 내일 약속 있제. 그자?”
식이 형이 말했다. 고마웠다.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하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을 감추려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아빠와 나는 한밤중에 큰집을 나왔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와?”
“아빠가 술 마시고 그라니깐 그렇지! 다시는 여기 안 올 거다!”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나는 아빠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터미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표도 모두 매진이었다. 우리는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이대로 다시 큰집에 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차라리 여기서 밤을 새야지 싶었다.
“뭐 좀 먹을래?”
“됐다.”
나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잘라 말했다. 아빠가 내 눈치를 슬슬 봤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가서 표를 구해왔다.
“니도 내 싫나?”
대뜸,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나는 눈에 뭐가 들어간 척, 눈을 비벼댔다. 손등에 물기가 축축하게 묻어났다.
“가자!”
아빠가 나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빠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아빠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빠 손은 꺼끌꺼끌하고 차가웠다. 문득, 아빠 손한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