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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숙이네 집 앞마당에는 작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겨우내 누렇기만 하던 잔디밭이 4월의 따스한 햇볕 아래 점차 연한 초록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숙이 아버지가 지난여름 잔디 사이에 난 야생초들을 그렇게 뽑아내었지만 올봄에도 어김없이 민들레며 질경이며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초들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숙이는 촘촘히 난 잔디 사이를 뚫고 자라나 저마다 예쁜 꽃을 피워내는 야생초들이 좋았습니다. 오늘도 숙이는 나른한 봄햇살 아래 잔디밭에 엎드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아기별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숙이 아버지가 삽과 장미 묘목을 하나 들고 나타났습니다. 아마 시장에서 사 온 모양입니다. 숙이 아버지는 삽으로 잔디밭 한가운데를 둥그렇게 파내고 장미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잔디풀이 깎여나가면서 숙이가 좋아하는 야생초 몇 가지도 함께 뽑혀 나가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라 숙이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장미꽃을 심어놓고 숙이 아버지는 매일 아침 정성스레 물을 주었습니다. 장미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자 장미는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화사하기 그지없는 꽃이었습니다. 장미는 잔디밭에 자기밖에 없는 양 으스대었습니다. 마치 누구 나보다 예쁜 놈 있으면 나와 봐!’ 하는 듯하였습니다.

장미꽃 아래에는 그새 많은 야생초들이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민들레, 냉이, 지칭개,꽃마리, 애기똥풀, 고들빼기…… 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작고 예쁜 꽃을 피워냈지만 누구도 상대방을 깔보거나 으스대지 않았습니다. 장미는 발아래 있는 민들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너는 어째 그렇게 키가 작고 못생겼니?’ 민들레는 힐끗 위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야생초들과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민들레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민들레뿐 아니라 다른 어떤 야생초들도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한여름이 되어 숙이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멀리 휴가를 떠났습니다. 여름 햇볕은 타는 듯이 뜨거웠습니다. 매일 아침 숙이 아버지로부터 물을 받아먹던 장미는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꽃이 진 장미는 서서히 여위어갔습니다. 그러나 발아래 야생초들은 여전히 싱싱하게 꽃들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칭송하며 다른 꽃들은 쳐다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장미가 아름답다는 것은 그 꽃을 만들어낸 서양 사람들의 취향일 뿐인데도 서양 문물에 혼을 빼앗긴 우리들은 오늘도 장미를 닮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꽃밭에 장미만 가득하다면 어떠할지를. 무척 재미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유는 서로 다른 모습의 꽃들이 조화롭게 피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깨나 쓰는 인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몇 가지 꽃들을 최고라고 우겨대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 꽃에 대해 모르는 것이라며 윽박지릅니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런가? 하면서 반신반의하다가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고 나중엔 모두들 나서서 그 기준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점점 단조롭고 삭막해져가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TV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이 예쁘다며 그를 닮으려고 얼굴을 뜯어고치고 옷을 사 입고 하다 보니 길거리에 나가보면 다 그 얼굴이 그 얼굴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자신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본래의 모습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사랑의 빛입니다. 아무리 예뻐 보여도 사랑의 빛이 없는 얼굴은 10분만 쳐다보고 있으면 금방 싫증이 납니다. 반대로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사랑의 빛이 충만한 얼굴은 보면 볼수록 정이 듭니다. 사랑의 빛은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랄 때가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오는 빛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왜 남을 닮으려고 안달을 하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초가 만발한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온갖 꽃들이 서로 어울려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도 야생초 화단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타고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민들레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