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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3-2

7장 부녀

주막에 영산댁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숙이 혼자 술항아리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할매 안 기시나?"

관수가 찬바람을 몰고서 술청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팔에 보따리를 낀 영선이 두 손에 입김을 불면서 들어왔다. 숙이 소스라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선은 자줏빛 모슬린 치마에 검정 주란사 저고리를 입고 목에는 명주 수건을 감고 있었다. 양말 신은 위에 하얀 버선을 신었고, 추위와 피로 때문에 잔뜩 찌푸린, 거의 울상이 돼 있었다.

"할매 안 기시나."

관수는 또 한 번 물었다.

"편찮아서 누워 기십니다. "

"그래 ?"

자리에 앉은 관수는

"국밥 두 그릇 말아주고, 먼저 술 한 잔 줄라나."

"."

마치 동행도 아닌 것처럼 관수는 영선보고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저물기까지 장사하네."

따라주는 술잔을 들고 혼잣말 하듯

"치운다는 기이 그만 잠이 깜박 들었십니다. "

"할매는 많이 편찮나?"

"감기몸살인가배요."

숙이는 얼른 밖으로 나가 국솥에 불을 지펴놓고 들어오면서 시골 처녀와·다르게 땟물이 바졌고 울상이기는 해도 어딘지 모르게 상큼하면서 총명해 뵈는 영선을 신기스러운 듯 쳐다본다. 영선이 역시 들국화처럼 깨끗하고 유순한 느낌을 주는 숙이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하기는 주막에 영선이 같은 처녀가 온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주막에 숙이 같은 아이가 있는 것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국솥은 술청 안에 있었다. 숙이는 솥뚜껑을 열고 크고 긴 놋국자로 밥을 담은 사발에 국을 퍼 담는다. 김이 무럭무럭 서려 오른다. 술판에 국밥 두 그릇과 양념장이 놓였을 때 처음으로

"배고플 긴데 어서 묵어라."

딸에게 관수는 말했다. 영선은 배가 고팠으나 그보다 추웠다. 추웠기때문에 얼른 숟가락을 들고 뜨거운 국물을 떠먹는다. 하동에 도착했을 때 해는 벌써 지고 있었다. 영선은 하동서 묵을 줄 알았다. 그러나 관수는 강물이 얼어서 나룻배가 없는 것을 투덜거렸다.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

걸어서라도 가야 할 곳이 그렇게 먼 곳인 줄 영선은 몰랐다. 강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그렇게 매운 줄 몰랐다. 돌아보지도 않고 바람을 끊듯 앞서가는 아비의 뒷모습이 원망스러됐던 어두운 둑길. 셋집이며, 그도 사글세 셋집인만큼 이사하기 쉽다고는 하나 하루 사이에 단칸 셋방으로 식구를 옮긴 관수는 무슨 까닭인지 영선을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영광네는 보따리를 싸주며 울었다. 영문을 모른 채 따라 나오는 영선도 울었다.

"울기는 와 우노. 죽으러 가나 !"

관수는 악을 쓰듯 말하였다. 이사한 것까지는 납득이 간다. 아직은 돌아올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딸자식인 만큼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쉬쉬하며 강혜숙의 어머니가 다녀갔으나 혜숙이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태는 심상할 수 없다. 경찰에 고발하는 지경까지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관수는 진주경찰서에서 찾고 있는 처지, 그 사정을 식구들은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이사 다니는 것은 이미 다반사가 되어 있었으므로 그러려니. 그러나 영선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무슨 일로 데려가는지 아무래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아비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고 꼭 한 번 '가면 안다' 했을 뿐이다.

국밥을 다 먹고 난 뒤 관수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숙이는 문을 닫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데 부녀로 짐작되는 이들의 분위기가 하도 암울하여 자고 갈 거냐는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처자,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갈 긴데겨우 관수는 무겁게 입을 떼었다.

"야는 내 딸인데 처녀하고 함께 자믄 되겄네."

", 알겄십니다. "

"나는 가겟방에나 아무데나 자믄 된께 요때기 하나 주믄,"

"할무이, 할무이,"

숙이는 방 앞에서 쳔산댁을 불렀다.

"이잉, 무슨 일이여."

"저기 손님이."

"워찌여? 저물었을 것인디 가게 문 아직 닫질 안혔어?"

"주무실 손님이 기십니다. "

"주무실 손님이 있단 말씨? 이부자리도 실찮은디, 어이구 싹신이 워찌 이리 쑤시남."

영산댁의 말소리가 들렸으나 잔수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담배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방으로, 그리고 뜨거운 국밥을 먹은 탓인지 영선의 얼굴은 사과같이 빨갰다.

"어이구, 삭신이 자근자근 부서지는 것 같여. 병났다 허면은 그냥 곧장 저승으로 가야 허는 것인디, 어린것 혼자서 줄지갈지 얼매나 고달팠을까잉."

겨울바람에 잘 마른 시래기같이 그런 꼴을 하고서 술청으로 나온 영산댁은

"자고 갈 사램이 이 처자여?"

영선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 저기 저 손님하고."

"그라면 너랑 함께 자더라고."

"그라은 가게는."

"금매 이자 정신이 난께로 걱정허딜 말어."

숙이는 영선을 손짓해서 함께 방으로 들어간다. 머리를 쓰다듬고 술청에 나앉은 영산댁은 사발에 술을 조금 부어 흘짝홀짝 마시며 손님을 본체만체했다.

"나도 술 한잔 주소."

관수가 말했다.

"그려."

술을 떠주고 나서

"이제 바늘구멍만큼 숨이 트이는디 왜놈의 코풀인지 워찌 그리 지독스럽디야

"이제 일어날 만합니까"

"아파도 누워 있는 성미가 아닌지, 도사리겉이 살아나들 않았겄소. 헌디 이게 누구여?"

"알 만한 사람입니까?"

관수는 웃는다.

"가만히 있더라고."

영산댁은 관수를 반히 쳐다본다.

"옳지, 맞어. 맞단 말씨 ? 자네 관수 아닌감?"

"눈도 밝소 나는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죽지 않으면 어느 때고 만나는 개비여. 그려, 얼매나 고생을 했을꼬잉."

"고생이야 저저이 다 하는 기구 할매도 많이 늙었십니다."

"박달나무도 좀 쓴다 했인께로 늙는 것을 누가 막을 거여. 나보담도 자네 얼굴을 본께로 어이구우, 만고풍상을 다 겪은 모앵인디."

"허 참."

관수는 술을 마신다.

"듣자니께 진주서 산다 허든가."

"누가 그러든가요?"

"김서방이든가 이서방이든가."

김서방은 영팔이며 이서방은 죽은 용이다. 그러나 영산댁은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기는 관수에 관해서 평사리 사람들은 거의 깊은 사정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러면 저기 방으로 들어간 처자가 자네 딸이라?"

"딸자식이요."

"절색인디, 할매를 닮았는가, 자네 모친도 소싯적에는 인물이 좋았지라."

"그런가배요. 어매를 닮은 모앵이요."

절색이란 과장된 표현이었고 영산댁은 흥분해 있었다.

"어매 소식은‥‥‥ 어매를 찾았남?"

"찾기는 어디서 찾겄소."

"그 목이 뿌러질 조가 놈, 죽었다는 소식은 아직 못 들었는디."

"파란만장이제요."

"그려. 한만 쌓아놓고 가는 기여."

"술 한 잔 더 주소."

"아암 주지이 ‥‥‥ 자아 들더 라고."

관수는 술을 벌떡벌떡 들이켜고 영산댁은 흘짝홀짝 마신다.

"좌우당간 반갑구만. 죽을 때가 가까워온 께로 옛사람이 그리 반가울 수 없어야. 또 작별을 허고 떠나면은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런 생각 땀시 서러워. 그래 자네는 워딜 가는 길이여."

"아 예, 목포 가는 길이요."

관수는 서슴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거긴 무슨 일로 가는감?"

"친척이 있어서."

"좌우당간 자넬 만나보니 내 맴이 좋고도 언짢네잉. 저승 가면은 자네 모친보고 헐 이야그도 생깄고이."

"더 살아야제요. 감기들었다고,"

"아니여, 아니여, 나 또래 사람들은 다 갔어야."

"그거야 바리 가는 사람도 있고 더디 가는 사람도 안 있겄소."

"지난날을 생각허은 모두가 다 후회스러운 일뿐인디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그럽단 말씨."

"이제는 나이도 들고 했는데 편키 살다 가야 안하겄소."

"주막 뜯어 개여라 그 말인디, 넘들도 그런 말 많이 허지라. 그러나 사람 못 보고 워찌 산디야? 오는 사람보고 가는 사람보고 날아가는 까마귀보고도 내 술 한잔 먹고 가라 하고 저븐디, 아무 욕심 없어야. 돈 벌라고 이짓 허는 것 아니여. 하기야 숙이 저 아아헌티 좋은 짝 골라주고 나면 헐헐 털고 나는 절에나 가서 죽을까 그런 생각을 혀보는디."

"대체 그 처자가 누군데요?"

"일점혈육도 없는 나를 불쌍허게 여겼든지 하눌이 내린 은혜여라. 양딸이기보담 손녀라 혀얄 기구만. 그나저나 요새 골치 색일 일이 생겨서 워찌 헐까‥‥‥ 그놈이 또 나타난다면은 동네 사람들 불러모아 몽등이 뜸질을 하든지 정갱이를 뿌질러 앉히든지 그래야 헐 것 인디."

"그놈이라니."

"기가 맥혀서."

순간 영산댁의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아마 그놈 땀시로 내가 병이 났을 거여. 아 금매 워디서 무슨 짓을 허다가 굴러왔는지 꿈에도 보들 못헌 놈이, 그놈 생각을 허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디, 그 염치 좋은 놈이 떡 나타나서 허는 거동 좀 보소. 큰 엄니 젼 받으시요, 허고는 자칭 그 팔난봉 늙은이의 아들이라 허들 않겄어? 자석도 없이 몇 십 년 동안 장사를 혔으니 돈푼이나 있을 것이다, 그놈이 그리 생각헌 거여. 아니면 반반허게 생긴 우리 숙이를 보고 탐이 나서 허는 수작인지."

"정말로 그런지 누가 압니까?"

영산댁은 팔을 내저었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이랑께.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 아니더라고? 내가 평생을 워떠크름 살았는디, 남정네 번 돈으로 밥 한 끼 먹었남. 다 소용없어야. 가슴에 한이 서리서리 서려 있단 말씨. 소싯적에도 한분 나타났다 헐 것 겉으면 눈에 쌍불을 켜고 애나는 돈 뺏아가서는 제집질허고 노름허고, 집세기 한 켤레 얻어신은 기억이 없단 말씨. 워디서 어떤 제집이 내질렀는지 내 알 바 아니지라. 씨어빠진 밥덩이 하나 주고 접잖어. 아 금매 생각 좀 해보더라고. 사대육신 멀정헌 놈이 늙어 꼬부러져서 언제 저승 갈지 모르는 늙은것 덕보겄다? 참 그 늙은이 씨라 헐 것 겉으면 씨는 못 속이는 거여. 그놈이 있겄다고 온 것인디 내가 장대를 들고 내 쫓았지라. 네 이노움, 여기가 워터라 등 붙이려 허는 기여!"

영산댁은 흥분했다. 눈앞의 관수가 마치 죽은 남정네의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이 나이 되야도 제 가숙 섬기는 남정네를 보면 부럽지라. 세상에 제 가숙 박대허는 인사치고 옳은 죽음 허는 것을 못 봤인께로. 백정이든 갖바치든 지 자석 지 아낙 섬기는 그기이 사램이여. 내 소싯적에 조강지처를 버리고 소실에 빠져서 있던 사내가 서방질혔다고 소실을 직였는디 그 자석 놈이 또 그러더란 말씨. 샐인을 허더라 그 말이여. 부모 안 닮은 자석 없단께로. 가사 넘보다 나을 것이다 허고 그놈을 집에 붙였다 헐 것 겉으면 우리 숙이 평생 술쪽 들고 살 것이랑께. 사내는 바짓말에 손 넣고 제집질헐 것이고 놀음판에 나갈 것이고 그 짓을 내가 시킨다 말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야. 대역 죄인보다 샐인 죄인보다 나쁜 놈은 연약헌 제집 벌이시켜서 놀고 먹는 놈이여. 사람 아니여."

"그 말은 맞십니다. "

하고서 관수는 속으로 소 잡아서 모은 처가의 유산으로 오늘까지 지탱해온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나쁜 놈이고 불출이다.'

"하하하핫 하하하핫‥‥‥‥"

별안간 관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사람 보게? 남은 속에서 불똥이 튀는디 워찌 웃는당가?"

"그 말은 맞십니다. 해놓고 보이 내 꼬라지 생각이 나서 웃는 기라요."

"오매, 자네 꼬라지가 워쩌혀서 그러남?"

"돈 벌 재주라곤 없는 순 날건달, 인간 말짜제요."

"허며는 자네 안사람이 벌어서 살았다 그 말이라?"

"남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는 벵신이 멋을 우떻게 벌겄소."

"딸아이도 참허게 길렀던디, 그라면 무신 수로 살았는가?"

"처가 덕 이지요"

"처가가 부재였던개비여."

"부재는 무신, 처가의 피 값이제요."

하는데 관수 눈에 눈물 같은 것이 돌았다.

"피 값이라? 무신 소리여?"

영산댁은 깜짝 놀란다. 그러나 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말한 것을 이내 후회했던 것이다.

"소름끼치는 그런 말을, 워째 그러남?"

관수는 일어섰다.

"좀 나갔다 오겄소."

"이 밤에 어딜 가는 기여?"

"무덤이 있으니 찾아가겄소? 좀체 오기 어려븐데 어매 살든 집이나 한분 돌아보고 올라요. 잠토 안 오고 내일은 일찍 떠나야 한께요."

영선과 숙이는 곤하여 깊이 잠든 것 같았다.

", 죽은 어매도 팔아묵고, 잘 하는 일이다."

주막을 나선 관수는 자신을 비웃으며 최참판댁을 향했다. 그리고 그는 새벽녘에 돌아왔다. 영선은 따뜻한 조반을 먹었고 관수는 해장국에 술 한 잔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라믄 이자 떠나야겄다. "

영산댁은 감기몸살에 되잡혔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할매, 잘 기시소!"

관수는 방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구 어이구, 골이야."

하면서도 영산댁은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인지 가면은 언제 또 볼까나."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오래만 사이소."

영선도 따라서

"안녕히 기시이소."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숙이에게는 잠시 망설이다가 영선은 웃었다. 숙이는 웃는 영선을 쳐다보며 잇속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문간에서 숙이는 작은 목소리로

"잘 가이소."

했다.

", 니도 잘 있거라."

관수가 말했다. 희뿌옇게 새벽이 걷혀가는 둑길을 향하여 떠나는 부녀를 숙이는 문간에서 한참 동안 바라본다. 지난날이 생각났다. 아비와 동생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남자 손님은 아비와는 다르게 건강하고 팔팔했다. 그의 딸은 도시풍의 깔끔한 차림으로 옛날의 자신과 같이 남루하지는 않았다. 야속한 울 아배, 우찌 나를 냄기 놓고 가신는고. 몽치야! 니가 살아 있나 이른 아침의 바람은 어제 불던 밤바람보다 더 매웠다. 산천은 다 얼어붙어버린 듯, 그리고 죽어버린 듯 꼼짝하지 않는다. 다만 잎을 다 털어낸 나뭇가지만 미친년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나부끼고 있었다. 인가 가까운 곳을 지나가건만 강아지 한 마리 엌씬거리질 않는다. 따뜻한 방에 푹 잠들 수 있었고 따뜻한 조반은 먹었기에 처음 길 떠날 적에는 영선도 추위에 견딜 만하였다. 그러나 행보를 거듭할수록 강바람과 추위는 사정없이 영선을 후려쳤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감각을 잃었다. 얼굴에는 바늘비가 꽃히듯 살갗이 따가왔다.

"아부지이!"

관수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도 없이 앞서간다.

"아이고 으흐흐흣‥‥‥‥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영선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울음은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만큼 앞서 가던 관수는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으흐흐흣 ‥‥‥ 으흐흐홋‥‥‥ 대체 어디로 가는 깁니꺼!"

관수가 다가왔다. 댕강하게 짧은 솜두루마기를 벗어 딸에게 입혀 준다.

"세상은 이 게을 바람보다 더 맵다. 니가 우찌 살라꼬 이만 추위에 우노 말이다. "

"아부지, 우리는 어디 가는 깁니거. 어무이만 두고 어디로 가는 깁니꺼."

"가믄 안다고 안 했나! 니를 팔아묵으로 가나! 와 이리 방정고오?"

입이라도 찢어졌을 만큼 관수는 고함을 질렀다.

"일어서지 못하겄나! 강물에 차넣기 전에 일어서거랏!"

강물은 물이 아니었는데. 하얗게 얼어서 비웃듯 그곳에 멈추고 있었는데, 화개까지 갔을 때 날씨는 다소 풀리었다. 해는 솟아올라 중천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까막까치가 날고 있었으며 솜저고리에 팔짱을 낀 나무꾼들도 지나갔다. 화개에서 다시 걸음을 옮겨 해도사 처소에 당도했을 때 해는 중천에서 기울고 점심때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이놈이 날씨가 추분께 꼼짝 않고 방에 있고나."

관수가 웃으며 말했다. 새까만 아이의 눈은 영선에 쏠려 있었다. 필경 누이 생각을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누이 숙이와 함께 하룻밤을 같이 있다 온 것을 알 턱이 없을 것이지만 산속에서 숙이와 비슷한 나이의 영선을 보고 누이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다.

"몽치야!"

해도사가 불렀다. 몽치는 화다닥 일어났다.

"왜 그리 놀라는 거냐."

해도사는 무심히 말했다. 누이 생각에 도끼질을 당한 것처럼 몽치는 일어선 뒤에도 안절부절못했다.

"솥에 물 붓고 불 지펴라."

몽치는 아무 말 않고 방에서 나갔다.

"내 딸자식이요. 영선아, 이 어른한테 인사 올리라."

굳어진 얼굴로 영선은 해도사에게 절을 했다.

"그런데 웬 일이오."

영선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해도사는 관수에게 물었다.

"차차 알게 될 기요."

"‥‥‥‥"

해도사는 다시 영선을 쳐다본다.

"점심은 어떻게 했소.."

"여기서 얻어묵을라꼬. 아닌 게 아니라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구마."

"찬밥 가지고 안 되겠네."

"쌀이든 보리든 내주소. 밥은 내 딸아이가 할 긴께."

"손님을, 그럴 수 있겠소?"

"아 안식구가 기시다믄, 다 큰 처자가 앉아서 아부지뻘 되는 사람이 지어오는 밥이 목에 넘어가겄소? 영선아, 남의 집이라 설겄지마는, 몽치한테 물어감서 밥해라."

"."

영선이 방에서 나갔다.

"나로서도 점치기 어렵소 딸아이를 이 첩첩산중으로 데려오다니 차차 알게 될 기라 하지 않았소."

"김장사 집으로 가시는 거요?"

". 딸애보고는 말 안 했인께 그리 아시오. 그런데 내 딸 관상은 어떻소."

"좋소이다. "

"좋다믄, 머가 우떻게 좋은지 말해주소."

"좋으면 좋은 거지 뭘 더 알고 싶은 거요."

"여자란 팔자 아니겄소-"

"호오 송형도 그런 면이 있었던가? 이거 참 놀랍소이다. "

"자식 없는 사람이니 알 턱이 있나. 자식이란 애물이지,"

"수많은 인연 중에 가장 끊기 어려운 것이 부모자식간의 인연이라, 그 정도야 모르겠소이까."

"와 묻는 말을 피하는 거요. 나빠서 말하기 어렵소?"

관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송 형 ,"

"말하소."

"왜 그리 서두시오. 송형답지도 않게. 팔자가 어디 있소, 팔자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송형이 그러는 걸 보니 어째 이상하고 서글픈 생각이 드는구먼."

"물이란, 물뿐만 아니라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틀이 달라지면은 모양새도 따라서 달라지는 법이요. 팔자를 어찌 불변으로 보시오. 내가 점을 치고 관상을 보는 것은 말하자면 잡기지요. 하하 하핫 ‥‥‥‥"

그러나 관수의 얼굴은 어두웠다.

"위로받고 싶은 게요, 송형은. 자위하고도 싶고, 부질없는 생각은 짤라버리고오, 불교에서 밀교를 말할 것 같으면 그 심오함으로 하며 바닥을 볼 수 없는데 바로 그 바닥을 볼 수 없는 데서 기복과 재앙을 물리치는 주술로 떨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거역이며 순리는 아닌 게요 이런 말 한다고 중놈들이 밥줄 떨어진다 하며 아우성칠지 모르지마는 하하하핫핫 부처의 대자대비가 그리 값싼 것은 아닐 터인데 말씀이오."

"하지마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바로 복을 누리고저, 재앙에서 벗어나고저 그거 아니겄소."

"사람이 하는 일이지 비는 일은 아니지 않소. 기도란 우주 만물의 슬픔 때문이오. 하하핫핫핫‥‥‥‥"

해도사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태도로, 말할 때마다 웃었다.

"마 좋소 한참을 조롱당했는데 안들 우떻고 모른들 우떻겄소 복 누리는 사람들은 복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며 재앙을 피해가는 사람은 재앙을 맞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깁니까."

"왜 이러시오? 날보고 화낸다고 안 될 일이 되겠소. 징징 울기는 왜 울어. 다급하다고 송형이 그래 쓰겠소? 오십 안팎에 사람이 지팽이 짚을 생각 마시오."

이번에는 농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준열했다. 관수의 낯빛이 변했으나 더 이상 말은 하지 않는다.

"몽치야! 이놈 몽치야아!"

대답 없이 몽치가 왔다.

"술부터 가져오너랴아."

그새 술시중은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짠 김치 한 보시기에 술잔, 젓가락이 놓인 상을 몽치는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술병도 갖다놓고 나간다. 과히 기분이 나라 보이지는 않았다. 영선이가 부엌에 들어서서 밥 짓는 것에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 누이에 대한 그리움, 잠시나마 몽치는 영선에게서 목마름을 달래었는가.

술을 마시면서 해도사는

"근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했는데."

어디로 얘기를 끌고 가려는지 운을 떼었다.

"근원 벨 칼이 없다. 뱃가죽 늘어질 소리 하는구마. 해도사 당신한테 그런 자격이 있어서 하는 말이요?"

"어허어, 저러니 무식하다 아니 할 수 없지. 손바닥에 금 그어가면서 일하려 드는 것은 목수나 하는 짓이고 견문이 그리 좁아서야."

"제어기랄! 요 며칠 새 계속해서 얻어터지기만 하니 우찌 된 일인지 모리겄네. 아아 그래, 그라은 근원이 부배의 정 아니란 말이요? 평생을 혼자 살은서 근원이 뭣인지 알기나 할 기든가."

"부부의 정은 무엇인고?"

"정이은 정이지, 자식 낳고 사는 정이지 머겄소."

"정이란 천지만물, 생명이 움직이는 근본이오."

"또 저놈의 천지만물, 일물도 뜻대로 안 되는데 만물은 무슨 만물인고."

"천지만물을 터나서 내가 있겠는가. 정을 떠나서 내가 있었겠는가. 정이란 생명을 이루게 하는 것이오. 부부의 근원은 생명을 탄생하게 하고 그 생명을 이루게 함이니 미세한 벌레도 생명을 낳게 할 뿐만 아니라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곳에 알을 까고 초목도 열매를 맺기 위하여 꽃을 피우며 나비를 부를 뿐만 아니라 땅 속의 진기를 숨가쁘게 빨아올려 열매를 이루게 함이니 만물의 생사는 더불어 있는 것, 더불어 있다 함은 정으로 엮어졌다, 정이 물을 다스리고 정이 물로 향할 때 물에도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나 물이 정을 침범하고 다스리려 들 적에는 생명이 깨어져. 만물의 특성이 깨어지고 인성도 깨어지고 더불어 있을 수도 없거니와 천지만물은 서로 떠나서 나도 없게 되고 천지만물도 없게 되는 것, 좁게 보고 좁게 생각지 마시오. 다스림은 물을 빼앗는 것, 물로써 인성을 누르는 것, 그게 아니외다. 다스림은 고루 펴는 일이며 고루 편다 함은 마음이 하는 짓이오. 물은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마음이 그것을 적소에 혹은 부적한 곳으로 옳기는 법. 부적한 곳에 물이 옮기어졌을 때 물에 사가 생기어 생명을 먹어치우고 천지만물을 파괴하여 천지만물의 운행이 정지되는 것이오. 어찌 사람은 극락을 만들고 지옥을 만드는 것인가. 극락도 지옥도 물로 인한 흥정이니 극락도 지옥도 없는 것이 극락이라."

"옴대가리 찜쪄묵고 게대가리 죽 쑤묵는 소리는 그만 치우소. 아무리 그래싸아도 신선 돼갈 날은 하자세월이요."

"으흠, 송형,"

"또 머요?"

"백정만 서러운 게 아니지 않소?"

"왜 백정만 서럽다 생각하시오?"

"내가 언제 그랬소오!

"보시오. 눈이 획탁 뒤집혀지는 걸. 그 병 안 고치면 당신도 칼 쓰는 사람에 불과할 게요.“

"칼이야 옛날 옛적부터 들었고오, 총이 아니어서 유갬이었제.“

우물쭈물 말한다. 해도사의 말뜻을 몰라하는 얘기는 물론 아니었다. 좀체 무안을 타지 않는 관수였지만 해도사의 말은 아팠고 무안하다 보니 그는 말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도솔암에 그 서울 여인네 또 오지는 않았겄지요?

어느 때보다 관수는 나약해 보였다. 뭔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안 오기는 안 왔는데 앞으로도 와서는 안 되지요."

"실은 내 책임이요. 범준이라고, 소선생 사촌이라, 속사정도 모리고 무심히 말한 것이, 또 오게 된다믄 일 시끄럽기 되겄소."

"소선생이 알아 하시겠지요."

"워낙이 영악하믄 소선생인들 어쩌겄소. 저분에도 땀깨나 흘리던데.“

"그렇게 되면 일진스님이 떠야지."

"그 지경이 되믄, 남녀 간에 어느 편이든 상사뱀 만낸 듯 징그럽겄소. 싫다는데 와 따라댕기는고."

"싫고 좋고가 어디 있소. 출가한 사람인데."

"그러이 하는 말 아니겄소. 맺은 인연도 고달픈 세상에.“

하다가 반격의 기회라도 잡은 듯

"그럴 경우는 근원이나 정하고 우떻게 되는 거요."

화제를 바꾸며 관수는 실실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곁가죽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게 어찌 정일까. 주판이지."

해도사도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내가 손해를 보았다. 그것을 깨어던지는 것이 자존심이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옹졸하고 못난 거지." 

하는데

"아부지, 밥상 디리갈까예?"

영선이 문밖에서 말했다.

"그래라."

밥상이 들어왔다. 몽치가 조르르 따라와서 영선의 겨드랑 사이로 얼굴을 디밀었다.

"니는 우짤라노."

"지사 머 정지에서 이 아이하고 함께 묵을랍니다."

해도사가 영선을 빤히 쳐다본다.

"그라믄 그러든지."

"주인이 객이 된 기분이오."

해도사가 말했다. 영선과 몽치는 방문을 닫아주고 부엌으로 가는 기색이다.

"딸 하나는 잘 키워놨구먼. 사람이 분명하게 뵈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닌데 팔자가 좋으냐 나쁘냐 그게 중한 것은 아니며 사람됨에 따른 것인데, 세상에는 고생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고 대복을 타고 났어도 그것이 겨운 사람도 있고 팔자란 허울이며,“

해도사는 중얼중얼 중얼거렸다. 관수는 아무 말도 없이 권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밥만 먹는다. 저녁 겸 점심이라 할 수 있는 밥상을 물린 뒤, 한동안 묵묵히 관수와 해도사는 서로 바라보다가

"해지기 전에 가야지.“

하며 관수는 일어섰다. 방을 나가려다 말고

"해도사."

돌아보지 않고 관수는 불렀다.

"우리가 강쇠 집으로 가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소?"

"허허, 왜 그리 말귀가 어둡소. 말리기는 무엇 때문에 말린단 말이요."

"그럼 됐소."

하직을 하고 부녀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단념을 해버렸는지 영선은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았다. 춥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산속에 구덩이를 파놓고 그곳에 들어가라 한다 하여도 거역하지 않으리라 작심을 한 듯 영선은 묵묵히 걷고 있었다. 다리는 뻗장나무같이 오랜 도보와 추위에 굳어버렸으나, 산속은 신음하듯 한 바람 소리뿐 동서남북을 헤아릴 길 없는 첩첩이었건만.

강쇠가 사는 수숫대 움막집에 들어섰을 때다.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설피를 손질하던 영선보다는 한두 살 위인가? 소년 휘가

"아제!"

하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부지이!"

강쇠가 방문을 열고 내다본다.

"아제씨!"

이번에는 영선이 소리 질렀다.

"아니 자아가,"

강쇠는 후다닥 방에서 뛰어나왔다.

"니가 니가 참말이제 이기이 우찌 된 일고."

"지도 모르겄십니더."

관수는 잠자코 서 있었다. 강쇠의 댁네 휘야네도 놀라서 쫓아나왔다. 영선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으나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는 채장수 강쇠가 지리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가끔 나타났지만 어디서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영선은 그것을 물어본 일도 없었다. 어떤 서슬에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으나 강쇠는 남해쪽에서 온다고 영선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지 임자는 저녁부터 하고 영선이 니는 방에 들어가거라. 발이 꽁꽁 얼었겄다. 그라고 휘야, 나는 짝쇠 집에 가 있거라.“

강쇠는 급히 서둘 듯 말했다. 그리고 관수의 등을 밀 듯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질화로에는 불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돗자리를 깐 방바닥은 뜨근뜨근 했다.

"우찌 된 일이고?"

강쇠의 사팔뜨기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살림을 동개부릴라꼬."

"살림을 동개부리다니 그기이 무신 소리고?"

"말을 하자 카믄 길어질 긴께 차차 하고 오늘 내가 여길 왜 왔는고 하니....앞 뒤 짤라부리고 영선이를 맽기러 왔다. 맡을라나, 안 맡을라나."

강쇠는 순간 숨을 죽인 듯 관수를 쳐다본다.

"와 말을 못하노!"

"맡는 것도 나름 아니가, 더 확실하게 얘기해봐라."

"짐작이 갈 긴데 피하기가?"

"피하는 놈이 확실하게 얘기하라 하더나?"

"자부 삼으라 그 말이다."

"조오치."

관수의 굳어졌던 얼굴이 확 풀렸다.

"너무 흥감해서 걱정이제."

"이자 됐다. 자식 걱정은 덜었다."

관수는 쓸쓸하게 웃었다.

 

 

8장 진주행

시트에 머리를 얹은 오가다는 잠이 든 것 같았다. 레일을 구르는 기차바퀴 소리가 정확한 간격으로 울려온다. 규칙이 무엇인가를 곬에 새겨 넣듯, 새겨진 곳에 또 새기고 또 새기며 영원히 그리 할 것처럼, 사람은 사라지고 그 소리만 남을 것처럼 기차는 커다란 밤의 아가리 속을 뚫고 남쪽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떠도는 불빛 아래 오가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승ㄲ들은 잠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희미한 불빛과 바퀴 구르는 소리와 칠흑 같은 창밖의 어둠, 그리고 잠들어버린 각양각색의 얼굴들, 찬하는 생명의, 삶의 부재 같은 것을 느낀다. 들국화 코스모스도 없는 한 마리의 나비도 없는 철로연변에 야적된 석탄을 비추며 반사하던 그 둔장한 빛마저 없는 석면과도 가틍ㄴ 어둠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가 찬하는 어떤 전율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도착한 그곳도 저 깊이 모를 창밖의 어둠과 같은 어둠이 있을 뿐일까.'

어둠은 삶이 끝난 곳을 생각하게 했지만 찬하는 그 항구에 있다는 한 여인 곁에 당도했을 적에도 한 줄기의 빛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가고 있는 건가. 뚫을 수 없는 막막함이 있을 뿐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기차를 탄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실오라기만한 희망이라도 가졌더란 말인가. 마음의 한 오라기라도 가져보고 싶었더란 말인가. 아니야, 결코 그렇지는 않았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울 방법이라도 있다면, 내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로 인한 파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까? 내가 그때 이혼을 반대한 것은 형수에게 오명을 씌웠기 때문이었다. 내어쫓긴 게 아니었고 스스로 떠났다는 것은 잘된 일이지. 그들의 생활은 깨어져야 했어. 만일 깨어지지 않았더라면 임명희라는 여성은 종잇장이 되어 바스러지고 말 것이다. 어떠한 오명, 어떠한 환난을 겪더라도 그분은 조씨 일문에서 해방되는 것이 중요했다. 형을 위해서도, 그는 비로소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사고방식, 그의 가치관이 모래성에 불과했던 것을, 권위나 재물이나 힘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병적인 그의 유희심리, 인생은 유희가 아닌 준열한 것임을 그는 깨달아야 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인생은 늘 준열하였다. 가진 자들에게는 인생은 유희였었다. 찰나주의 향락주의... 행복을 희구하는 소박한 마음은 재물로 하여, 권위와 힘에 의하여 썩는다. 그것은 생성하여 노화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치 때문일까. 고통 받는 자, 가난한 자, 가난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들은 젊은 것인지 모른다. 소망으로 팽배해 있기 때문에, 소망은 먼 곳에 있고 탐욕은 가까운 곳에 있다. 탐욕은 손에 넣기 쉬워도 진실은 잡기 어렵다. 해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맑은 물줄기에서 탈락한다. 숫자만 기억하고 숫자만 믿으려 한다. 숫자는 질이 아니다. 양이다. 양은 원래적인 것, 그러나 사람들은 원래적인 것을 조작한다.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숫자를 믿는 것일까, 신봉하는 것일까.'

찬하는 담배를 붙여 문다. 이곳저곳에 모래 무덤을 만들어보듯 찬하는 이곳저곳 나누어서 생각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또 만주로, 꽤 잦은 여행인데 그 여정보다 항상 길었고 목적지도 없었던 생각의 여행, 화살 같은 기찻길 뱃길과는 달리 항상 미로였을 뿐이던 생각의 여행, 육신은 두고 저 혼자 미로를 헤매며 부유하는 영혼을 위하여 이따금 벗이 되어주는 것은 담배였고 담배에 불을 당길 때 그는 제 육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작년 정월이던가, 서울역에 내린 것은, 밤이었다.'

임신한 아내를 동경에 남겨둔 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만주 방면을 방황했던 찬하는 양력 설이 지난 며칠 뒤, 부산으로 직행하여 관부 연락선을 탈까 하고 망설이다가 서울역에 내렸던 것이다. 구내식당은 환하게 밝았다. 차 한 잔 마시고 가려고 들렀던 그곳에서 그는 뜻밖에 명의를 만났다. 결국 그것으로부터 사건은 발생한 것이며 사태는 방향을 꺾었던 것이다.

'형수님은 그분답지 않게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약간 고개를 숙인 자세로 우두커니 빈 찻잔을 내려다보며 혼자 앉아 있던 명희의 모습이 뚜렷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자동차 안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활자같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가만있자, 가만있자!'

찬하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쳤다.

'친구 말씀을 하시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만.'

찬하는 담배를 꺼내다 말았다.

'괜찮아요. 피우세요.'

'괜찮겠습니까?'

', 담배 냄새, 괜찮아요. 그보다 생각나는 일이란?'

'아마 전에 형수님이 계시던 학교 출신이지요? 무슨 사건 때문에 신문 지상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나는데, 일본인 한 사람이 낀 사건이었지요.'

'계명회사건 말이군요.'

'맞습니다. 계명회사건.'

'유인실에 관한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토막을 내어 잘라버린 듯 어째서 그때 그 자동차 안에서 한 이야기를 잊고 있었을까? 산장에서 인실씨를 만났을 때 전혀 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형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그쪽에서 말을 했을 때도 백지처럼 기억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을까.'

찬하는 기가 막힌다. 그러나 그날 밤 우연한 만남으로 하여 그 충격적인 사건이 야기되지 않았던가. 분노 때문에 전신이 불타듯했던 찬하 생애에 있어서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하물며 신성불가침과도 같은 형에 대하여. 동생과 아내가 간통을 하였으니 누이를 데려가라 하며 임명빈에게 비수를 꽂듯 말하던 그 악귀 같았던 형의 얼굴, 각본대로 연기하면서 즐기던 형의 얼굴.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그 부분이 새까맣게 지워졌을까. 의외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일도 그같이 지워가면서,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성은 어느 곳에다 발판을 놔야 하는가. 그래 이성을 믿는 것은 감정을 믿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인지 모르겠다.'

찬하는 명희와 나눈 그 대화의 한 토막을 잊은 것을 단순히 건망증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찬하가 오가다와 함께 최참판댁을 방문하기로 한 것은 명희의 소재를 안 후의 일이다. 명희를 찬하 혼자 찾아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더 이상 명희가 부서진다는 것을 찬하는 두려움 없이 생각할 수 없었고 또 명희가 만나주지 않을 것도 뻔한 일이었다. 해서 최참판댁을 방문하여 길상을 만난 뒤 통영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유인실이 동행해줄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유인실의 경우도 찬하와 비슷했다. 오가다와 자신, 두 사람만의 여행은 인실의 양식이 용서치 않았다. 그보다 오가다와의 여행은 생각한 일조차 없었다. 옛날 친구 같았을 때 일본서 함께 조선으로 나온 일은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의도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배경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인실의 처지는 각박했고 달콤한 꿈을 꾸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찬하하고 함께 간다면 여행 못할 것도 없었다. 출발은 인실이 하루 먼저 했다. 그는 진주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시초에는 방관자였던 조찬하는 당사자가 된 셈이었고 여행의 목적에서도 찬하 편이 더욱더 절실하다는 결과가 되었다. 삼랑진에서 기차를 갈아탄 조찬하와 오가다는 새벽이 뿌옇게 걷힐 무렵 진주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이 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오종종하질 않고 훤히 트인 것 같군요. 바다도 없는데 말입니다."

오가다가 낯선 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강을 끼고 들어오는 이 도시 어귀는 아름답더군요."

"여러 가지로, 유서 깊은 고장이지요."

"이곳이 형평사운동의 진원지라면서요?"

"그렇다더군요. 옛날에는 민란의 진원지이기도 했고."

"기생 논개 얘기도 있고."

"나보다 더 잘 아는데?"

"인실씨한테 들었지요."

"흔히 색향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옛날 감영의 관기들 전통이 이어져서 그럴 테고 농산물의 집산지인 만큼, 돈푼깨나 있는 지주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그러나 임진왜란 때도 그랬었지만 저항이 드센 곳이라 하더구먼."

두 사람은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인실씨가 나올 줄 알았는데."

"집 못 찾을까 걱정이오? 최부자댁이라 하면 삼척동자도 안답니다."

"손님들 그곳으로 가십니까?"

운전수가 물었다.

"아니오. 시내로 들어가거든 해장국집 앞에서 내려주시오. 을씨년스럽게 아침 일찍 남의 집에 갈 수도 없고."

"그 댁은 촉석루를 지나야 합니다."

운전수는 또 친절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해장국집으로 들어가 요기도 하고 추위를 풀기 위해 마주앉는다. 선지국은 뜨겁고 맛이 있었다.

"요기도 하고 추위도 달랬으니 설설 가볼까요?"

찬하는 먼저 일어섰다.

"그럽시다."

"나 같은 사람이 가서 환영을 할지 모르겠소. 어쩐지 만나기도 전에 주눅부터 드는군."

"나도 마찬가지요."

"당신이야 구면이지만 나는 면식도 없으니."

해장국집을 나오면서 두 사람은 미적거린다. 서울보다 추위가 눅다 하지만 삼한 인지 얼굴을 치는 바람은 따가웠다. 언덕에서는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최참판댁 문전에서 두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깥어른을 뵈려고 서울서 왔다는 내의를 전했을 때 환국이 맨 먼저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지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까지 마중 나가지 못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환국을 뒤따라서 한복을 입은 길상이 나왔다. 어중간하게 자란 머리, 그는 미소를 머금고

"오가다 씨, 잘 오셨습니다."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으셨지요?"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한다.

"아버님, 이 어른이, 조찬하 선생님이십니다."

어색한 듯 서 있는 찬하에게 마음을 쓰며 환국이 말했다.

"유선생한테서 말씀 들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악수를 나누었다.

"자아, 어서 드시지요."

인실은 마루에서 내려선 채 웃고 있었다. 그의 옆에 윤국은 열기 띤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사랑으로 들어간다.

"불시에 찾아와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가다 말에

"별말씀을, 실은 환국이 역으로 나가겠다 하는 것을 내가 말렸습니다. 이곳 경찰에서 신경을 쓰는 것 같기에."

"만나뵈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말문이 콱 막히는 것 같습니다."

오가다는 무안쩍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긁적 긁는다.

"나 역시 그렇군요. 더군다나 이곳 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 그러시겠지요."

"조선생 얘기는 환국이로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끄럽습니다."

"서울 임선생댁에는 우리 식구들이 신세도 많이 졌던 모양인데..."

조찬하의 사돈댁이어서 길상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으나 찬하는 당혹해한다. 두 사람에 비하여 길상은 월등 노숙해 있었다. 나이도 아마 칠팔 세쯤은 연장이지만 긴 세월 칼날 같은 이역의 생활에서, 그리고 옥중 생활에서 닦인 빛이라 할까. 그의 본래적인 잘난 바탕보다 그 빛은 월등하여, 미남이니 호남이니 하는 형용은 적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사람들 눈에 그의 용모는 전혀 두드러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앞으로 어쩔 작정입니까?"

불쑥 말해놓고 막연한 자기 질문에 오가다는 당황한다.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으나 말을 건네기는 처음이며 무척 가까운 사람 같은, 무척 먼 사람 같은 그런 착각이 동시에 있어서 오가다는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절에 가서 관음상을 조성할까 싶기도 합니다."

"?"

어리둥절해한다.

"어릴 적에 나는 장차 금어가 될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또 금어 스님 밑에서 배우기도 했구요."

두 사람은 다같이 놀란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 절에서 자랐소. 나를 거두어주신 우관선사께서도 나에게 천수관음상을 조성하여 어지러운 세상, 불쌍한 중생에게 보살의 자비를 펴게 하라는 희망을 품으셨지요."

"초문이군요."

놀란 것이 부끄러워 오가다는 중얼거렸다.

"아득한 옛날 얘깁니다. 하하핫하..."

"해서 환국이도 화재가 있었군요."

"화재가 있습니까?"

길상은 미소하며 되물었다.

"조카아이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고민했었다는 얘기도."

"미술을 택하였더라면 좋았을걸..."

남의 일같이 말하고 역시 미소를 띤다. 그 미소 뒤에는 거칠고 메마르고 또한 치열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것이 왜소하거나 편협하지는 않아 두 사람은 압도당한다는 느낌 없이 어느덧 연장자에 대한, 훌륭한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었다. 누대로 높은 권위 속에서 살아온 조찬하조차, 아무리 그가 겸허한 천품을 타고났다 하여도 가풍에 젖지 않을 수 없었던 그도 한마디 말은 없었지만 심정적으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길상이 어떤 사람인지 오가다도 백지 상태지만 찬하는 더욱 그렇다. 선입감에 맹종하는 찬하가 아니었지만 계명회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했다는 것 이외 아무런 선입감도 없다. 고통과 고뇌를 누비고 온, 그 자취가 뚜렷한 것에서 풍기는 인간적인 매력이랄까, 그런 것을 찬하는 감지한다.

"서로 국적이 다른데 매우 친밀한 사이 같습니다."

"묘한 인연으로 두 바보가 만난 거지요."

조찬하 말에 모두 소리 내어 웃는다.

"조반상 들여갈까요?"

안자가 문밖에 와서 물었다.

"그렇게 해요."

길상이 말했다.

"저희들은 해장국을..."

"해장국은 해장국이고 조반은 조반이지요."

길상은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조반상은 따로따로 차리지 않고 교자상이 들어왔다. 식탁은 진수성찬도 아니요, 빛깔이 화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쓸쓸해 뵐 정도다.

"드십시오."

"그럼 먹겠습니다."

그들은 상 앞으로 다가앉았다. 반찬의 가짓수도 몇 안 되는 쓸쓸한 식탁이, 그러나 정갈하고 음식 맛은 일품이다. 조선 음식에 익숙지 않은 오가다도 맛있게 먹는다.

"김선생님."

찬하가 불렀다.

"."

"만일에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뜻밖의 말을 한다.

"전쟁이 날 것 같습니까?"

길상이 반문했다.

"예상 밖의 일이 있긴 있지요. 흔히 있지요."

"예상 밖의 일을 가정하고서 하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지금은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예상 밖일 겁니다."

"..."

침묵이 흐른다. 밥 먹는 소리만 들린다. 한참 만에 찬하가 다시 말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본의 사정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방법은 다르다 하나 군부와 정부가 마주, 몽고를 먹어야겠다 그 의지는 굳은 것입니다. 어디 그들뿐이겠습니까. 일본 국민 전체의 의지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 선생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이제는 기회를 노린다기보다 일본은 쫓기듯 초조해 있으니까요. 중국 사정이 분열로부터 통일로 굳어져가는 것은 일본으로선 좌불안석, 게다가 하마구치수상의 저격으로 내각이 약화되는 대신 군부가 강해졌으니까 밀고 갈 것은 뻔하지요."

작년 십일월 역두에서 하마구치 수상이 우익 청년에 의해 저격당한 것은 런던 군축회의에서 타협안에 내각이 조인한 데서 발단된다. 군비에 관해서는 천황에게 통수권이 있으므로 내각이 조인한 것은 천황의 통수권을 침범한 것이다, 하고 주장하는 군부와 야당인 정우회가 동조하여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인데 정우회로서는 군부가 강력해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리당략에 치우쳐 민정당 내각을 타도하기 위해 편승한 것이다. 군축회의에서 타협안에 조인한 것도 문제였지만 유래 없이 급박한 국내 경제를 선결하기 위하여 하마구치 내각이 종전까지의 대 중국 강경 외교에서 후퇴한 것도, 만주와 몽고 문제에서 방관주의 노선이라는 공격을 면치 못하였으니 결국 수상의 저격 사건은 만주 진군의 나팔 소리가 머지않아 울릴 징후였던 것이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길상이 물었다.

"절대 반댑니다.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보다 더 큰 범죄는 없지요. 찬하씨는 일본 국민 전체의 의지라 했지만 거기 대하여 나는 항의합니다."

오가다는 다소 흥분해서 말했다. 그러나 말을 꺼내놓은 찬하는 묵묵부답 밥만 먹고 있었는데 깔끔하게 밥 먹는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풍파에 시달린 일이 없는 도련님같이.

"일본의 반전론자는 이리떼 속의 양과 같고 힘든 투쟁을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제 땅을 잃고 남의 땅으로 망명한 조선인의 경우는 다를 겁니다. 특히 만주, 중국에 있는 사람들은."

길상의 말에 오가다는

"전쟁을 원한다 그 말씀입니까?"

"영원히 망명객으로 끝날 것을 원할까요?"

"..."

"어느 나라든 일본과 싸워줄 것을 바라는 마음은 절실한 것일 겁니다."

"일본이 만주를 먹고 중국을 먹어치우려는 싸움인데도 그럴까요?"

"국토가 없는 민족이 삼지사방으로 흩어져 아무리 정신이 투철하다 한들 저항이지, 전쟁일 수는 없겠지요. 산화 또 산화, 정신은 이어질지라도 국토 회복은 지난한 일이지요. 그러나 어느 나라든 일본과 전쟁을 한다면 이기고 지는 것은 결과겠으나 일본이 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고, 그 가능성 때문에 절실한 거지요."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일본의 권력 구조가 파괴된다면 조선 독립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글쎄요. 그러나 어떤 정치 형태이든 조선을 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가령 오가다 씨가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오가다 씨의 이상이 국리를 저버릴 수 있을까요? 일본이 약해지든지 조선이 강해지든지 그 두 가지 이외 무엇이 있겠소."

조반을 끝내었다. 상을 물리고 세 사람은 다시 마주앉았다.

"두 분께서는 진주가 처음인가요?"

"그렇습니다. 큰 강은 아니었지만 강이 아름답고 강변의 대숲이 인상적이더군요."

찬하가 말했다.

"나도 서울서 내려왔을 때 진주는 처음 보는 고장이었소. 하기는 스물셋에 떠나서, 이십여 년 세월이 지나갔으니까. 자아, 담배 태우십시오."

길상은 두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신도 붙여 문다.

"전쟁이 나면,"

찬하가 또 시작했다.

"일본이 이기고 지고, 결과는 어떻게 나든 전쟁하는 동안 조선인은 얼마나 살아남을까요. 더군다나 선생같이 옥고를 치르고 요시찰 인물이 된 분들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그 말이었던 것 같다.

"저의 생각으론 선생께서 이곳을 빠져나가시는 것이..."

하다 만다. 찬하도 알 수 없었다. 무슨 까닭에선지 길상을 대면하는 순간 그 생각부터 했던 것이다. 혁혁한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그 이름이 사방에 날린 사람도 아니요, 앞서도 말했지만 신문지상을 통해 계명회사건이란 활자와 함께 이름 석 자 기억할 뿐 구체ㅐ적으로 길상에 대하여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찬하 자신 국외자로서 독립이다 운동이다 하는 것에 대하여 거의 무감각인 척했고. 자기 가문, 조씨 가문의 오류에 무감각인 척하듯. 길상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내가 무슨 거물이라고, 한 일이 있어야지요. 일경의 신경과민 때문에 지사 하나 만들어놓은 것 아닙니까. 허허허헛..."

찬하는 자신이 소학생 같은 말을 했구나 생각했지만,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불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진주 구경 좀 해보시겠습니까?"

"글쎄요."

"환국이가 두 분을 어떻게나 기다리든지, 내가 두 분을 독점해서는 안 되겠기에 시내 구경도 할 겸 환국이한테 두 분을 안내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떨까요."

길상의 어투는 매우 정중했다. 두 사람을 회피하거나 경계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냉엄한 것을 느끼게 했다. 이번에는 찬하뿐만 아니라 오가다도 자신이 소학생같이 유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실을, 명희를 두 사람은 잊고 있었다. 환국의 모친, 길상의 부인을 보지 못했던 것도 깨닫는다.

한나절을 두 사람은 환국의 안내를 받으며 시내와 고적 등을 구경했다.

"강물이 꽁꽁 언 것을 보니 금년은 예년보다 추운 모양입니다. 이곳 강이 어는 일은 좀체 없었으니까요."

촉석루 건너편 강가를 걸어가며 환국이 말했다.

"대숲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마치 망령들 휘파람 부는 것 같소. 뭔가 으스스하군요."

오가다 말에

"당신 일본인이니까 그래요. 임진왜란 때 이 강가에서도 사람 많이 죽었을 거요. 저기 보이는 저 바위가 논개바위 아닐까?"

찬하는 환국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는 이해미 바위라 합니다. 임진왜란 때 논개는 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서 왜장을 껴안았다, 그리고 물속에 빠졌다 그런 말들을 하더군요."

"끔찍스럽군."

오가는 외면을 하며 중얼거렸다.

'일본 여자하고 어떻게 다른 걸까. 히토미도 그 분류에 속하는 여자일까...'

오가다는 남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9장 선비와 농민, 무사와 상인

조찬하 일행이 차편으로 통영에 도착한 것은 서편 산허리에서 이미 노을이 사라지고, 노을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항구에 불빛이 돋아난 그럴 무렵이었다. 찻머리에서 찬하가 여관을 물었더니 사무실을 들락거리던 청년은 일행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저기, 저쪽으로 가면 일본 여관이 있다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조선 여관은 어디 있습니까?"

찬하는 다시 물었다.

"선창가에 가보시이소. 거기 여관이 많이 있십니더. 그중에서 금강여관이 괜찮을 깁니더."

청년은 아까보다 친절하게 말했다. 세 사람은 부둣가로 돌아 나왔다. 항구를 등지고 연이어진 노점의 가스등, 그 사이의 길은 번화가답지 않게 호젓했고 입항하는 배, 출항하는 배가 없는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노점들은 해풍을 막기 위해선지 포장마차처럼 하얀 천이 둘러져 있었다. 가스등이 소리를 내며 타고 그 창백한 불빛 아래 울긋불긋 그림 같은 잡화가 펼쳐져 있었다. 이따금 노점 좌판이 비어 있는 곳에선 비스듬히 내리깔린 방천, 희번덕이는 바다가 보였는데 돛을 접은 작은 배들이 신발같이 가지런히, 방천을 치는 물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작은 배들은 서로의 몸을 부비며 흔들리곤 했다. 인실이 고갤 들고 뒤돌아보았을 때 항구 모퉁이 쪽에 '적옥' 이라는 붉은 네온이 어둠에 떠 있었다. 적옥... 카페인 것 같았다. 찬하는 간판을 보며 걷고 있었다. 오가다는 땅을 내려다보며 찬하 옆에서 걷고 있었다.

"여관을 찾십니꺼."

목쉰 소리였다. 그들을 가로막고 선 사람은 빈 지게를 짊어진 노인이었다. 반백의 상투머리가 흩어져서 어수선했고 눈은 꿩하니 뚫린 듯, 지게막대기를 쥔 주먹이 시꺼멓게 보였다.

"좋은 여관을 가리치 드리겄십니더."

노인은 다시 말했다.

"아니오. 우리는 금강여관을 찾고 있소이다."

"맞십니더, 맞십니더! 바로 그 여관인 기라요. 내가 말한 것도 그 여관입니더. 자아, 가입시다. 짐 이리 주시이소."

", 아니오. 별로 무겁지 않소."

찬하는 뒷걸음질했다.

"그라믄 지를 따라오시이소."

사령 육모방망이 흔들 듯 지게 작대기를 상하로 흔들며 지게꾼 노인은 신이 나서 앞장섰다.

"깨끔박고 음식 맛 좋고오. 금강여관 할무이가 끓이는 대구국은 둘이 묵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린다, 그런 말들을 한께요. 지금이야 자부가 맡아서 하지마는, 그 집 자부는 신학문을 한 신여성입니더."

노인은 자기 자부이거나 한 듯 우쭐해서 말했다. 금강여관이란 간판이 나붙은 곳까지 갔을 때 노인은,

"아짐씨요! 마산댁 아짐씨요! 손님 오십니더. 그것도 하이카라 손님 아니겄소."

여자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방에서 나오는데 여자는 인실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양머리에 감색 통치마, 저고리는 연보랏빛 호박단이었다. 여관과 신여성, 그것은 아무래도 걸맞지 않는 구성이었다.

"조용한 방 두 개가 필요합니다만,"

찬하가 말했다.

"조용한...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아무튼 그럼,"

짜증스럽고 초조하게 찬하는 덧붙이기를

"모두 피곤해 있으니까 쉴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여자는 사용인을 부르지 않고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앞서간다. 유리문이 계속되는 복도를 지나 막다른 곳까지 간 여자는 방문을 열며 돌아보았다.

"그 방엔 인실씨가 드십시오."

서둘 듯 말한 찬하는 여주인의 처사를 기다릴 것도 없이 잇따른 방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코트를 입은 채 주저앉는다. 오가다가 엉거추춤 서 있었고 그 등뒤의 인실은 멍해 있다가 정해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부터 해야지요."

시종 대변자처럼 찬하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여자는 인실이 든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벽을 바라보고 서 있던 인실은 방문 여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방은 곧 따뜻해질 거예요. 혹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글세 아직은..."

"세수하시려면 유리문 밖에 물통이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인실은 미소 지었다. 순간 무표정했던 여자 얼굴에 수줍음 같은 비애라 할까 묘한 감정의 그늘이 지나갔다. 그 표정은 여자가 가버린 뒤에도 이상하게 인실의 눈앞에 남아 있었다.

'언제 내가 여기 왔지?'

무릎을 세우고 두 팔의 힘을 빼며 인실은 무릎 위에 얼굴을 얹는다. 이 순간 이전의 시간과 장소가 까마득하다. 이 순간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바람에 날려간 손수건처럼, 마치 머나먼 곳에서 까무러칠 듯이 사라질 듯이 깜박거리는 별빛처럼 아득하다. 오빠의 얼굴, 조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는데 윤곽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한다. 기차를 타고 연락선, 또 기차를 타고 남의 땅 동경에 도착하여 하숙집 다다미 석 장짜리 방에 앉는 순간에도 번번이 그랬었다. 형무소 감방에서도 지금과 같은 의식 상태를 체험하였다. 그것은 단절감이었다. 시간이며 공간, 사건들이 말끔히 지워져버리는 , 그 아무것도 존재했을 것 같지 않는 당혹함과 상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까지 상실감은 스며들어온다. 전등갓에서 우산같이 내려오는 불빛 아래 웅크리고 앉은 한 여자의 존재가 믿기지 않았다. 방바닥이며 벽면, 천장, 자신을 둘러싼 광경이 과연 현실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머나먼 지평선 같은 시간 그 자체는 대체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공포, 지금 몽롱한 의식의 흐름은 그런 공포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심장 한복판을 뚫고 바람이 설렁설렁 지나가는 것 같구나.'

외로움은 아니었다. 우수도 아니었다. 생과 사의 혼동, 이승과 저승의 구분이 없어진 상태, 목적도 의미도 없어진 상실 그 자체, 인실은 강한 몸짓으로 그런 상념을 떠밀어내듯 일어섰다. 세면도구를 들고 방을 나섰다. 밖은 어둑어둑했으나 유리창을 통해 불빛이 새나왔기 때문에 물통과 그 옆에 놓인 놋쇠대야를 볼 수 있었다. 뒤뜰은 마름질하다 남은 자투리처럼 기다란 사다리꼴의 좁은 공간이었다. 판자 울타리 너머 왜식 목조 건물에서도 불빛은 새나오고 있었다. 인실은 놋대야를 두 번 헹구고 나서 세숫물을 부었다.

"따신 물 갖다드릴까요?"

군불을 지펴놓고 마루 밑에서 기어나온 여관의 심부름아이가 말을 걸었다.

"괜찮다. 겨울인데 물이 얼지 않았구나."

"방금 질어다 부었인께요. 웬간히 치분 날 아니믄 물통의 물이사안 업니더. 그라고 오늘은 봄날같이 따시거마는."

"겨울이 따뜻해서 좋겠다."

"손님요, 목간하실라 카모요, 우리집 다음다음에 이발소가 있고 이발소 옆 골목을 들어가믄은 왜놈 목간통이 있십니더."

"알았다."

"군불 많이 땠인께 방은 마 따실 깁니더."

아이는 씩 웃었다.

세수를 끝내고 얼굴을 닦고 있는데 여관을 안내해주던 지게꾼 노인이 물지게를 지고 나타났다. 노인은 머뭇거리다가 물지게를 풀고 물통에 물을 붓는다.

"할아버지 여기 계세요?"

의아해하며 인실이 물었다.

", 아입니더. 나는 지게꾼이라요."

"그런데,"

"여기 선창가에서 칠팔 년을 지내다보니 손님들을 데리다주게 되고, 손이 비믄은 군불도 때주고 물도 질어다주고 그래저래 술잔이나 얻어묵십니더. 벌이 없는 날에는 밥술도 얻어묵고. 우리네 신세가 다 그런 거 아니겄십니꺼."

"... 그렇군요."

"본시는 촌에서 논마지기나 부치묵고 살았는데 왜놈 땀시 째끼났지요. 주로 갈라꼬 고향을 나오기는 나왔는데 그것도 뜻대로 안되고."

"가족이 많습니까?"

"권속 말입니꺼? ... 헐헐단신입니더. 굶기서 직이고 병들어도 돈이 없인께 저승 차사를 우찌 말리겄십니꺼?"

"..."

"난생 처음 도방에 나오고 보이 해묵고 살 기이 있어야제요. 다리 밑에서 거적 깔고 문전걸식, 지난 일 말하믄 머하겄십니꺼. 다 소앵이 없는 일이고 더러분 세상 한탄한들 그것 다 소앵이 없지요. 왜놈이 철천지원수요. 인피를 써서 사람이지 삼강오륜도 모리는 짐승만도 못한 놈들, 품속에 땡전 한 푼 없어도 나는 왜놈의 짐만은 안 집니더."

노인의 수염이 흔들렸다.

저녁을 끝낸 뒤 인실은 망연한 모습으로 벽에 기댄 채 땡전 한 푼 없어도 왜놈의 짐은 안 진다는 노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오가다를 의식한 때문이겠지만 그 말은 심장을 헤집고 들어오듯 아팠다. 대일본제국의 판사 검사 괴어보겠다고 최고 학부를 나와서 또 머리 싸매고 고문패스를 목표하는 수재들은 차별이 자심한 식민지 정책을 원망하며 영광의 길이 멀고 먼 것을 한탄하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노인이 삼강오륜을 앞세우며 땡전 한 푼 없어도 왜놈의 짐은 지지 않는다...

'명분도 좋고 정신은 깨끗하다. 결벽증이라 할까? 뼈에 사무치는 원한 때문이겠지. 공장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공장주 일본인이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 노인의 경우는? 그 자신이 굶어야 할 뿐 곤란해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리가 없는 것이다. 운동의 과정에서도 명분은 명쾌하고 고귀한 것이지만, 또 구심적 요소이지만 그것 때문에 찢겨져나가는 것이 많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구두선에 그칠 경우, 결과 없는 행위일 때도 허다하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순결을 요구하고 또 지켜야 하는가. 너무도 허약하여 그것이 보루로 될밖에 없단 말일까? 일본이 너 죽이고 내 잘살겠다, 그것이라면 우리는? 너 죽고 나 죽자, 아 아니지, 내 죽으면 그만이다. 그래 내 죽으면 그만이다! 그게 이 민족의 주조란 말일까? 선량한 백성들, 인간적 존엄 때문에 존엄을 짓밟혀야 하는 이런 논리가 어디 있을꼬. 그러나 내일이 있다. 일 년 십 년, 백 년의 훗날이 있다, 있다...'

인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 년, 십 년, 백 년, 천 년, 이리떼 같은 세월, 신음 소리, 고통 고통 또 고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오가다의 낮은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의외로 인실은 주저하지 않았다. 방문을 연 오가다는 들어오지는 않았다. 문밖에 선 채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찬하씨 골이 잔뜩 났어요."

"..."

"말도 하지 않고 본체만체, 혼자 자버렸습니다."

"이해하세요, 괴로울 거예요."

"잠이 안 와요. 답답하고... 한데 저건 무슨 소리죠? 아까부터 들리는데."

"이 여관의 할머니께서 손님을 불러들여 책을 읽히는 소리예요."

"? 무슨 책입니까?"

"이야기책이지요."

인실은 희미하게 웃었다. 소년이 자리끼를 들고 왔을 때 높고 낮은 억양을 붙여가며 책 읽는 소리가 이상해서 인실이 물어보았다.

"할무이는요, 식자 든 손님만 오시믄 여관비 안 받고 이바구책 읽으라 하십시더. 충렬전 조웅전 옥루몽 ,나도 많이 들었십니더. 자부러버서 죽겄는데 할무이는 다 들어와서 들으라 안 카십니꺼."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조용한, 그것은 어렵겠다고 한 여관 여주인의 말을 인실은 상기했다.

"바닷가에 나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아직 초저녁인데."

하며 오가다는 시계를 본다.

"그럴까요?"

인실은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도 둘렀다. 부둣가 거리는 아까보다 활기가 있어 보였다. 사방에서 소리가 일렁이는 것 같았고 빠른 걸음으로 짐을 들고 혹은 보따리를 인 채 뛰어가는 사람들, 부두 쪽에서도 사람들이 밀려나오고 있었다. 잡화상, 어구점, 기름집, 싸전, 이발소, 음식점, 여관, 그런 건물 공간의 불빛도 아까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입항한 배가 출하의 채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부도 거리에서 꺾어져 동쪽으로 뻗은 해안 길을 밤하늘에 선명한 '적옥', 그 네온을 바라보며 걷는다. 역시 '적옥'카페였다. 기항한 배의 소위 마도로스들이 하룻밤 심기를 풀고 유행가 가락 같은 로맨스를 남기고 떠나는 곳, 술 취한 사내들의 목소리가 거리에까지 새나온다. 카페 뒤편의 환하게 불빛이 밝은 이층 창가에서도 샤미센 퉁기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 울음 같은 왜기생의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환락의 구역을 벗어났을 때 불빛은 차츰 사라지고 달빛이 해안 길을 하얗게 비춰준다. 왼쪽방죽 아래서 찰싹거리는 바닷물소리가 있을 뿐 조용했으며 오른편의 크고 작은 건물은 그늘을 드리운 채 항구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항구는 암팡진 항아리 같았다. 대안과 이쪽 해변이 차츰 가까워져서, 아주 가까워졌을 때 해안 길은 남쪽으로 획 꺾여진다. 동시에 대안의 거리와 산등성이에 돋아난 불빛과 항구목에 잠긴 산의 모양새가 시계에서 벗어나고 바다가 트인다. 한산도를 위시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멀리 가까이 떠 있기는 했으나 뿌연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드러난 것이다. 등댓불이 깜박이는 아득한 수평선, 갠 날 남망산에 오르면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든가. 서쪽으로 곧장 가는 곳이 한려수도, 동편으론 부산, 마산으로 뻗은 물길이다. 우람한 뱃고동 소리가 갑자기 두 사람의 등짝을 쳤다. 이들이 돌아보았을 때 휘황한 등불을 매단 기선이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항구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밤하늘에 불빛은 휘황했지만 쓸쓸한 밤배, 뱃전에 사람들이 멍청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밤배는 동쪽을 향해 굽어져서 산마루를 돌아 모습을 감추었다. 두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겨진 사람, 떠나간 사람도 없는데, 어쨌거나 일행은 낯선 항구지만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폐부를 찌르는 듯, 외로움을 이들은 동시에 느낀다. 무리에서 떨어진 한 마리 짐승같이, 파문을 당하고 황야에 내쫓긴 한 사람의 남자같이, 한 사람의 여자같이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바다는 희번덕이고 있었다. 달빛과 수면에 떠 있는 해파리의 발광, 일렁이는 바다 자체의 운동 때문에 유리 파편같이 부서지며 밤바다는 희번덕이는 것이었다. 해안 길은 한층 더 휘어져서 또 하나의 만을 형성하고 있었다. 암팡진 백자 항아리 같은 본항과는 달리 목이 넓고 이를테면 사발 같다고나 할까, 하더라도 더부살이처럼 작은 어선들이 군데군데 매어져 있었다.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다.

"추운 겨울에만 둘이서 걷는군요."

담배를 붙여 물며 오가다는 말했다. 동경 있을 때 오빠 유인성을 따르는 후배요. 인실에겐 동지였던 오가다, 관동대진재 함께 걷고 뛰었었다. 구월이었으니까 그때는 겨울이 아니었다. 오가다가 야학교로 불쑥 찾아왔던 그때도 겨울운 아니었다. 그러나 인실은

"그때같이 춥지는 않네요."

하고 말했다.

"창경원에서 말입니까?"

"눈이 하얗게 쌓여 있지 않았어요?"

"눈이 하얗게... 그랬었지요."

담배 한 모금을 피우고 나서

"이곳은 참 따뜻해. 외투 입은 사람이 거의 없더군."

"극기랍시고, 이곳 보통학교의 일인 교사는 한겨울 생도들에게 양말 안 신기를 강행했다던가요? 음 그래요. 지금 생각이 나네요. 여학교 후배 한 사람이 이곳 출신이었어요."

"그 후배한테 들은 얘깁니까?"

"."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만나보시지요."

"지금도 여기 있을까요? 글쎄요."

"졸업 후엔 못 만나보셨습니까?"

"졸업하고 나면 지방 애들은 만나기 어려워요. 거의 모두가 졸업장은 혼수의 하나니까요."

쓰게 웃는다.

"따뜻하군. 쇠붙이처럼 쇙! 하고 날 것 같은 경성의 공기를 생각하니 여긴 참 따뜻해."

"그 후배는 고향에서 눈을 본 일이 없었대요. 진눈깨비 정도, 그것도 아주 드물게요."

좀 있다가 인실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해주시는데 눈이 적설같이 내린다... 많이 내린다는 뜻으로 알았지만 그게 얼마만큼인지 실감할 수 없더라는 거예요. 아마 할머니도 그랬을 거라며 친구는 웃었어요. 또 적설이 형용사가 된 것도 우습다 하면서... 의외로 한문의 단어가 지방에선 방언으로 착각된 채 통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모방에서 시작된 거지요."

"언어뿐만 아니라 지방 지식층의 행동거지, 의식 구조도,"

"언어는 의식 구조의 표현이니까."

"그러고 보면 지방 특성이 형성되는 데는 그 지방의 식자, 조선에선 선비지만 그들의 개성이나 가치관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할 수 있겠어요.“

두 사람은 빈 배 두 척을 매둔 선창으로 내려간다. 한동안 침묵 하다가

"권력에 대한 불신, 관속들에 대해서는 마음 깊이 증오하고 저항하면서도 선비에 대한 존경은 조선 백성들에게 거의 보편화된 감정이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따로 할 말이 있었겠는데 무미건조한, 다분히 의식적인 화제를 인실은 부자연스럽게 잇는다.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학문을 숭상하는 국풍 탓도 있었겠지만 선비를 부패하고 수탈을 일삼는 권력층의 대항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이아닐까요."

"그런 면에서는 어느 국가에서나 사정은 비슷했을 겁니다."

"비슷했을까요? 저는 비슷했다고 생각지 않아요."

인실은 강하게 부정했다.

"어째서,"

"이조 오백 년, 그 시대의 선비들과 백성을 대표하는 농민들은 세계 어느 국가의 식자나 농민들과 매우 다르고 독특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 다르고 독특했다는 것은 나라의 사정이 달랐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나라의 사정이 달랐다..."

"그건 정치 이념이 달랐다는 얘기예요. 구라파에선 십오 세기부터 마키아벨리즘이 주류를 이룬 정치사상 아니었어요? 유교가 기간이 된 도덕을 정치 이념으로 삼았던 경우와는 아주 상반된 것이에요. 식자의 경우도, 과거 지배 계급이 지식을 독점했던 것은 동서 모두가 공통된 일이지만 학문의 내용이 달랐지요. 서양에선, 그렇지요, 순수학문이라 해야겠지만 인간이 도외시되거나 아니면 간접적으로 취급되는 과학 분야,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인간도 합리적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물론 그곳 학자들이 진리를 위해 교회와 기존 가치관에 도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탐구하는 진리의 대상엔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학설이나 실험이 오늘 보시다시피 인류에게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지만 당시에는 직접적인 대중과의 유대감은 없었다, 그렇게 전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식자들의 층이랄까 군이랄까 계급이라 해도 좋겠는데, 그런 것을 형성했던 것도 아니었구요. 아까 마키아벨리즘을 말했는데 그걸 전 제도적인 산물이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제도적인 봉건사회, 그러니까 음... 그렇지요. 인습적, 전제적, 계급적인 측면에선 조선도 확실히 봉건적이었다 할 수는 있겠어요. 하지만 제도적으로 그렇지 않았어요. 봉건적이지만 봉건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성주의 개념이 달라지는 거지요. 당신에게는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얘기겠지만 우리 실정을 설명하려니까, 아무튼 봉건제도에서는 영지와 영지의 인민이 성주에 속하고 일종의 군신 관계를 형성하지만, 조선에서는 성주, 정확하게는 관리인데 아시다시피 그들은 구획된 땅과 백성의 관리자에 불과한 거예요.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전제 하에 하는 얘기를 물론 아닙니다. 하여간 재력과 권력의 상징인 봉건제도 하의 성주는 그런 기존의 것을 기키기 위해서는 더욱더 비대해지기 위해서든 병력을 필요로 하고, 자연 기사나 혹은 무사의 군을 이루게 되면서 끊인 없는 각축은 권모술수를 낳고, 봉건제도를 생각할 때 우린 맨 먼저 창칼과 갑옷의 기사나 무사를 연상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조 오백 년의 풍경은 각처에서 산간 오지에서 괴나리봇짐과 짚세기를 꿰차고 대부분 종자도 없이 가난한 선비들이 과장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상상해보세요. 그중에서 몇 사람이 등용문을 통과하면 나머지는 다시 산야에 흩어져서 아무것에도 소속되지 않은 야인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처지들이 그러니까 대체로 그들의 신분이나 재력은 엇비슷했다 할 수 있고 도덕을 높이 표방하면서 넉넉지 못하거나 가난했다면 우선 생활면에서도 민중과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할 수 있을 거예요. 권력의 번견으로서 소속되어 있는 창칼의 기사 혹은 무사를 대하는 백성, 야인인 선비를 대하는 백성, 그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물론 과시를 목표로 한 학문의 고루함을 부정할 수 없고 치자에게 비중을 많이 둔 윤리 도덕은 백성들을 억누르는 도구가 되었다 할 수도 있고 관료제도가 빚은 폐단도 결코 적었다 할 순 없겠지요. 식자의 경우말고 백성의 대부분인 농민에 관해서도 남의 나라 사정과 다른 것을, 특수한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흔히 농민들은 땅에 묶이어 뜨내기 노동자들보다 보수적이란 말들을 하는데 저는 조선 농민의 보수성은 상당히 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수백 년 동안 유교적 도덕관이 농민들 발목을 잡아맨 사슬 노릇을 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고 굳게 자리 잡은 것은 농민들의 사회적 신분이 다른 나라와 달랐다는 이유의 하나일 것 같아요. 미국은 아는 바와 같이 흑인 노예가 농사에 종사했고 러시아도 농노 머릿수에 따라 재산을 가늠했으며 유럽 장원제도에서도 결국 농민은 노예와 다름없지 않았을까요? 일본은 어떤가요? 돈벽쇼오(돼지 백성), 미즈노미햑쇼오(물만 마시는 백성)니 하면서 사회적 지위는 밑바닥 아니에요? 가혹한 수탈을 당해왔고 물만 마시는 백성인 것도 다를 바가 없지만 조선 농민의 자긍심은 사회적 신분이 그리 낮지 않다는 데서도 오는 것일 거예요. 농은 상,공을 앞지르고 말하자면 상민에선 상층에 속하지요. 농자천하지대본 이라든가, 노래에도 농부님네 하며 경칭을 붙인다든가, 가난한 선비들도 그 자신이 농사를 지으며 그것을 수치로 생각지 않았으니까, 해서 아까 모방이란 말이 나왔지만 선비들 언행에 준해서 선영 봉사라든가 외관정제, 예의범절, 불문율은 엄했구요. 시골 장터에서 농민이 장사꾼에게 하대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요. 언젠가 한번 시골로 내려갔을 때 손님을 맞이한 농부가 우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갓을 쓰고 손님과 맞절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하나의 동작도 오랜 세월을 거침으로서 아름다워 지는 것이구나, 하구요."

인실은 한동안 말을 끊은 채 침묵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지껄이고 있는 거지? 얼음 위로 굴러가는 수레같이 얘기는 제 마음대로 굴러갔다. 아까 난 여관방에서 왜 그렇게 극단적인 순결을 요구하고 지켜야 하는가 자문하지 않았던가?'

"선배께서 조선은 선비와 농민으로 대표되고 일본은 무사와 상인의 나라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오빠가..."

"그런 말 듣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토미 당신은 중국의 경우는 말 안 하는군요."

오가다는 다분히 비꼬듯 말했다.

"무슨 답변을 원하시지요?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나, 그건가요? 다른 일본인처럼."

", 아닙니다. 절대로."

"그럼 제가 말한 이조 오백 년의 그것은 모두 중국의 영향이다, 그러고 싶은 거예요?"

", 그 점은 부인할 수 없지요."

". 저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유교가 중국에서 왔고 불교도 그곳을 거쳐서 왔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글이 없어서 한자를 사용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하지만 오가다상, 당신도 감상가 야나기 소에츠하고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 유감이군요. 야나기는 조선 미술에 열정적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것의 모체인 조선 역사엔 무식했고 혹은 왜곡된 오류를 범했는데 당신은 역사를 포괄적으로 보면서 지금은 어찌 지엽을 지적하는 거지요? 생각해보세요. 식민지 정책의 하나로 사대주의란 올가미를 조선 역사에 씌워두고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음모에 동조하면서 우리 예술을 찬양하고 탄압에 시달리는 우리 민족을 동정한다는 것은 모순이예요. 저도 지엽적으로 말한다면 오늘날 영국이나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 해서 유대의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없고 중국이 불교를 인도에서 들여왔다 해서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제 얘기는 전반적으로 그렇다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 말이예요. 어차피 문화란 다소간에 서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데 처지에 따라 강조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힘이 없다 해서 걸핏하면 중국을 들먹이는데 그건 의도적인 악의지요. 또 일본은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구요. 한자의 경우도 그래요. 글자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는가. 한자를 우대하기론 일본도마찬가지였고 당신네들한테도 우리를 거쳐 중국 것이 들어갔고 또 우리 것도 가져갔다면 모화사상에다 모조사상도 성립이 되겠네요. 야나기의 그릇된 관점 중에 옳은 것이 하나 있어요. 조선의 예술은 고유한 것이며 독특하다고 한 그 말은 옳아요. 저는 중국의 문화를 상상할 때 광활하고 강력하고 정교하다, 이런 얘기 하면 우물 안 개구리라 하며 비웃을지 모르지만 광활하다는 것은 평면적일 수도 있겠고 강력하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저항의 의지로 볼 수 있겠고 정교하다는 것은 복잡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데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당대, 그 나라에서 쟁쟁했던 학승들 중에 신라인이 많았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유교가 이조 오백 년을 떠받쳐왔다는 것도. 그것은 신비주의와 현실주의의 융화로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비와 현실적인 두 관념을 수용한 것에 한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본 말로는 한을 원한으로 쓰고 그것을 복수라는 묘하게 엽기적인 분위기를 갖는데 우리가 말하는 한에는 거의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어요. 한이 된다, 한이 맺혔다, 할 때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빼앗겼든 당초 주어지지 않았든지 간에 결핍을 뜻하고, 한을 풀었다, 할 때는 채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해서 결핍은 존재할 수 없는 방향으로, 채워졌음은 존재하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그것은 생명 자체에 관한 것이에요. 한은 생명과 더불어 왔다 할 수 있겠어요. 한의 근원은 생명에 있다 할 수도 있겠어요. 흔히 지옥이다 극락이다 하는 말을 쓰는데 하나는 공포의 상태, 하나는 안락의 상태, 그것은 정지된 상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극락이나 지옥보다 실감 있게 쓰이는 말이 내세와 차생이예요. 이어짐으로써 시간 위에서 있음으로 해서 생명은 존재하는 거니까요. 한은 내세에까지 하나의 희구 소망으로서 조선 사람들 가슴에 있고, 때문에 현실주의와 신비주의는 조선 사람에게 융화된 사상이라 한 거예요. 황당하기도 합리적 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데도 일본의 경우 종교란 지극히 합리적으로 불편하지 않게 돼 있는 것 같았어요. 중국은 공자의 나라답게 불교도 현실적 시각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신비에 기울 때는 황당해지는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물론 역사의 지식에서 얻는 저의 느낌이지만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조선의 예술과 문화는 광활하고 강력하고 정교하진 않을 거예요. 생략하고 절제한 것을 느끼는데, 그걸 국토가 작아 조촐하다고들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서 석굴암의 불상을 본다면 국토가 크고 작음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사실 생략하고 절제했다는 것도 무의식의 결과 아닐까요? 자연에의 접근 혹은 동화, 그건 생명에의 지향일 것입니다. 강력이 아닌 균형의 생명의 힘 그 자체로 생각합니다. 중국의 백발삼천장이란 표현과 오이씨 같은 버선발이란 조선의 표현에서도 우리는 느끼지요. 삼천장이란 거대한 것에서 강력함의 허실을 볼 수 있고 오이씨 같다는 작은 것에서 생동하는 것을 감지할 있습니다. 다릅니다. 전혀 다르지요. 다른 문화예요. 사실 조선 민족만큼 남의 문화에 대하여 배타적인 경우는 드물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들겠어요. 조선 가옥은 그것으로 인해 균형을 잃으니까요. 중국 것도 마찬가질 거예요. 무겁고 압도하고, 그런데 전 일본에서 일본 가옥에 백자 항아리가 놓인 것을 보았어요. 참 편안하게 놓여 있더군요. 그윽하다 할까, 따스하고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조백자가 서양의 가옥, 중국의 가옥에 놓였어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흔히들 백색은 모든 빛깔을 포옹한다 하지만 그건 피상적 견해에 불과해요. 다만 색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출발점에서 수많은 산과 강을 넘고 건너서 돌아온 출발점, 백자를 그런 빛깔이라 표현하면 되겠는지, 가령 일본서 백자항아리를 구워서 우리 가옥에 놓았다 합시다. 역시 우리 가옥은 그것을 거부할 거예요. 아무리 용을 써도 출발점에서 벗어나질 못해 그런 것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만들었다기보다 살았던 것인지 모르지요. 이조백자의 비밀을 알고자 하던 어떤 일본인은 결국 그 아름다움을 우연의 산물로 낙착해버리더군요. 조선에서 얻어가고 빼앗아 가고 끝없이 가져가도 빈곤한 바탕에서 생략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치졸한 단순성, 풍요한 바탕에서의 생략과는 무서운 거리지요. 제 말이 틀렸나요? 임진왜란 때 수많은 도공들을 끌고 간 것도 그렇고 오랜 옛날부터 조선 자기에 미치고 탐했던 것은 그것을 만들지 못하는 문화적 빈곤, 다시 말하여 정신적 빈곤에서 온 거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야기는 들쭉날쭉했다. 노골적인 악의와 모별이었다. 논리의 온당성, 부당함 그것은 일단 차지하고 인실의 어조는 감정의 파도였다. 썰물을 기다리듯 잠시 침묵해 있다가

"중국은 정통적으로 군벌이 성한 나라 아닙니까. 일본과는 달라서 나라가 크니까 모든 것이 다 있고 군벌도 있는 것 중의 하나 하나겠습니다만. 어쨌든 혁명은 중국의 정치 이념인 만큼 군벌은 그칠 새 없이 준동하는데 심지어 교단인 백련교조차 군벌적 색채를 띠고 신해혁명으로 이어지는데 왕도에서 벗어난 군왕은 누구든 하늘을 대신하여 들어낸다는 본질적인 그 혁명 사상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조선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완만한 쇠퇴 끝에 마치 자연사처럼, 그리고 대개 비슷한 계층으로 전쟁의 피폐를 거의 겪지 않고 정권이 넘어갔거든요. 낮은 곳에서 몸을 일으켜 대권을 잡은 예가 없었어요. 유일하게 혁명적 요소가 강했던 동학전쟁을 들 수 있으나 사회 체제를 바꾸고 외세를 몰아내자는 기치를 들었지만 왕권을 부정하는 단계까지는 못 가고 무너졌지요. 연표를 보면 간단히 설명이 될 거예요. 고조선, 위만조선에서 칠백 년이 넘는 삼국시대, 이백 년 남짓의 통일신라, 반세기도 못되는 후삼국, 고려는 사백 년을 넘겼고 다음이 반세기도 못되는 후삼국, 고려는 사백 년을 넘겼고 다음이 이조 오백년이에요. 그만하면 연표의 마디가 적고 깨끗하지 않습니까? 삼국시대라는 것은 정연한 왕국을 각기 형성하여 더러 전쟁도 있었고 통일에의 집념으로 불타 있었지만 일본이나 중국과 같이 군웅이 할거하는 전국시대를 볼 수 없을 거예요. 신라와 고려는 불교가 바탕이고 조선은 유교, 그러니까 칼로써 인민을 다스리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서양의 기사나 일본의 무사에서 연상되는 것은 신라의 화랑인데 어찌해서 무예를 닦는 소년들에게 꽃 화자의 이름을 불렀는가, 그리고 남모와 준정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화랑의 우두머리로 했는가... 죽이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글쎄요. 모르겠어요. 다만 막연하게 그 세계를 알 것도 같고... 칼로써 힘을 빼고 황폐해진 정신으로, 파괴가 있을 뿐 창조는 없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즐겨 말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그게 진실이라면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는 있을 수가 없지요. 평화는 무력이 아니에요. 평화는 한의 대상이며 생명에의 지향이에요. 오늘날 결과가 어떠했든, 이건 악의 승리, 하지만 결정은 아닌 거예요."

인실은 날카롭게 몸을 돌렸다. 광기와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며 그는 선창에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은 인실 아닌 전연 딴 여자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가다는 뒤따랐다. 길 위에서 인실은 다가오는 오가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여자의 입술이 새까맣게 오다가에겐 느껴졌다. 두 사람은 여관이 있는 쪽으로 가지 않고 본시 가던 방향대로 해안을 따라 걷는다. 물속에 잠긴 닻과 같이 뱀처럼 뻗어 있다. 오가다는 가슴이 답답했다. 뭔지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괴물로서 떠오르는 역사에 대한 분노였는지 모른다.

"히토미상."

"..."

"그러면 당신의 얘기도 풍요한 바탕에서의 생략입니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까?"

사학을 전공한 오가다였다. 듣기에 따라 그의 말은 모욕적일 수도 야유일 수도 있었다. 사실 인실의 논리엔 적잖은 독선이 깔려 있었고 미화와 옹호의 감정은 노골적이었다. 오가다의 의도는 역사를 덩어리로 보느냐 토막을 내고 있느냐, 아까 인실이 당신은 역사를 포괄적으로 보면서 지금은 어찌 지엽을 지적하느냐 했듯이,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그러나 오가다에게 그것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방관자의 고독이 훨씬 심각했다.

"언어란 생각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사물과 생각은 끝이 없는 거니까 언어란 늘 빈곤하게 마련이지요.“

글이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느냐, 했듯이 인실은 약점에 대한 궁여지책의 응수를 했다. 오가다는 담배를 불여 문다.

'지금 히토미는 악을 쓰고 있다. 히토미는 이런 웅변가는 아니었는데...'

"역사에 대한 얘기는, 오빠의 영향도 있었겠지요. 제 나름대로 책도 많이 읽은 셈이고요. 하지만 오빠나 오가다상처럼, 저에게 역사는 학문이 아니었으니까요. 현실이에요. 오늘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기막힌 고난에서 절실해지는 욕구라 해도 좋겠지요. 우린 결코 미래를 잃고 싶지 않은 겁니다. 잃지 않는다는 확신을 역사에서 찾아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요. 역사는 과연 문서에 불과한 걸까요?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보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이 소생할 수 있는 생명으로, 아까 한 얘기는... 풍요한 바탕에서의 생략된 얘기, 그럴 수는 없는 거지요. 너무나 큰데요. 너무나 엄청나게 복잡한데요. 안다는 것이 도시 우습지 않아요? 과거 그 숱한 상황과 형태를 통하여 앞으로의 시간을 믿어보고 희망을 걸고 싶었던 거예요. 시간에 희망을 건다는 것은 소극적인지 모르지만 우리 조선인은 깨어 있어야 해요. 그런 희망까지 잃는다면 우린 잠들어버리거나 죽어야 하니까요."

오가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과연 희망대로 될까요? 중얼거렸다. 민족이 다시 살아나는 것, 조선 독립에의 희망, 오가다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인류의 앞날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인실의 심적 갈등과 깊은 오뇌를 절감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인실 자신이 말했듯이 그의 언어는 빈곤했다. 장황하게 한 얘기는 그러나 여자의 심중에 접근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남이 아닌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을 오가다는 깨달은 것이다. 평소 인실은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는 여자는 아니었다. 오가다는 담배를 빨아 당긴다. 바람에 담뱃불이 튄다.

"일본 사람인 오가다상."

"..."

"당신은 누구인가요? 만일 당신이 야나기와 같이 값싼 자비심으로 우릴 대한다면 전 분노를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분노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진재 때 조선인 학생들을 많이 숨겨둔 당신의 인도주의 때문일까요? 코스모폴리탄이기 때문일까요. 아니지요. 당신은 결코 일본을, 일본인을 초월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할 거예요. 제가 조선인인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당신은 깨끗해요. 드물게... 더러운 게 너무 많은 세상에, 심지어 우국지사라는 허울을 쓰고 소름끼치게 더러운 인간도 많은 세상에... 지난 진재 때 조선인 학살의 지옥 속에서 전 죽창과 곤봉을 든 일본 아이들을 목격했습니다. 조선 아이들에게 돌 던지는 일본 아이들은 흔히 보는 일이구요. 그것은 저주받은 일본의 미래입니다. 당신네 역사의 산물이구요."

인실은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무사들이 칼을 갈고 어느 길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죽일 때 조선의 선배들은 글을 읽고 먹을 갈았습니다. 상무 정신이 당신들 나라의 오늘을 있게 했다면 성인군자의 길을 닦던 조선의 선비들은 당신네들 침략을 막지 못하고 오늘의 비운을 당하게 했어요. 그러나 당신네 손들은 피에 젖어 있어요. 악의 승리지요. 승리는 악을 지고선으로 끌어올려놨고 야만이 문명으로 둔갑합니다. 짓밟힌 자에겐 도의가 악덕으로 뒤집히고 오랜 문화 민족은 미개인으로 전락하는 역리를 낳게 했지요. 이기면 관군이요, 지면 적군이라, 당신네 나라 전통을 여실히 말해주는 속담과 같이 말예요. 지난날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전비 부담은 영미가 하고 일본이 전쟁 청부를 맡았던 노일전쟁, 그때 여순 개성에 즈음하여 스테셀과 노기가 만났을 때 만든 노래 말예요.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라는 낯 간지러운 노래 있잖아요. 만일 모스크바까지 진군을 했다면 귀 자르고 코 자르고 러시아인은 모두 개돼지가 됐을 거예요. 일본 망나니들은 목이 터져라 성전을 외치며 발광을 했을 거구요. 진재 때 천견론을 떠들어대면서 한편으론 눈 뜨고 볼 수 없는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습니까? 진재를 천벌로 받아들이면서 아이 밴 여자의 배를 찔러 죽이는 당신네 민족성, 거대한 러시아 땅엔 손톱 한번 찍어보지 못하고서 군사기지 하나 점령했을 뿐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적에게 추파를 보내는 그따위 노래, 그게 일본이지요. 체모 없는 그 비굴을 십분의 일이라도 본받았던들 쓰러져가는 명과의 우의 때문에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던 일도 없었을 것이며 대륙 침략의 길을 빌려주고 두둑한 통행료를 요구했던들 임진왜란은 겪지 않았을 테니까요. 온통 모두가 바보였어요. 중국, 일본이 서양 함대에 굴복하여 문호를 개방했을 때 조선만은 불란서 함대가 오고 미국 함대가 오고 또 일본이 왔지만 무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문호를 개방하지도 않았어요. 자주성이 희박하다구요? 사대주의라구요?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공로로 영미는 아무 상관없는 조선을 일본의 전리품으로 동의했어요. 배부른 사자들과 배고픈 이리가 무고한 사람을 찢어발기는 흉계였지요. 치욕이라면 동물의 법칙에 따른 그들의 치욕이요 범죄 아닙니까? 어떤 경박 재사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만하면 대장부 살림살이, 했다고 해서 선비정신을 무척이나 비웃기도 했지만 극기란 진정 어릿광대였더란 말입니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정말 어리석고 못나긴 못났던가 봐요. 어쨌거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렵고 동물같이 산다는 것은 참 쉽네요. 하기는 내 나라의 닭 돼지가 되어 살지언정 왜놈의 종은 아니 되겠노라 한 독립의사도 있었지만요."

달빛 아래 하얀 뱀같이 뻗은 신작로를 무작정 걸어가면서 인실은 이제 병적일 만큼 무방비 상태로 지껄이는 것이다.

"언젠가 요시노 사쿠조오 선생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지휘에 반항하는 조선인을 불령도배로 비난하는 논리에 대해서 선생은 적어도 도덕적으로 그들의 입장은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했는데, 그분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정당함을 지적한 것은 훌륭했어요. 우리에겐 자비나 동경을 받을 이유가 없거든요. 요시노 선생은 귀한 양심이었습니다. 일본같은 나라에선 말예요. 왜냐하면 그분이 길러낸 수많은 제자, 영향을 받은 지식인도 적지 않았겠는데, 공산주의를 논하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일본 군국주의 자본주의의 밑깔개가 되어 신음하는 조선에 대하여 거의 어떤 소리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염치도 없이 적반하장의 진보적 지식인들, 약탈의 범죄엔 뚜껑을 덮고 법을 지켜라! 법을 지켜라! 좀더 자비심 있는 지식분자는 대우를 개선해라, 개선해라. 껍데기나 핥고 있는 그 따위 지식인들! 걸핏하면 내놓은 사대주의 사색당파, 하지만 당론으로 당쟁하는 데 비하면 동족상쟁은 훨씬 더 험하지요, 섬나라이기에 외적의 침입을 면하는 대신 일본의 역사야말로 동족상쟁으로 점철돼 있지 않아요? 점잖지 못하게 원색적으로 조선인을 멸시하는 것도 그만큼 일본은 문화적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야나기는 참아라, 바위에 깔리어 빈사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참아라! 폭력과 살생은 어느 쪽이든 나쁘다, 아아 비운의 민족이요! 하며 슬퍼했지요. 조선에서는 또, 소위 지식의 반풍수들이, 지적 댄디스트, 그리고 민족개조론 따위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 조선 예술의 예찬자 야나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 감격하며 그런 자신을 애국자로 착각하여 또 감격하는데, 한마디로 치사해요. 골자를 얘기하자면 조선의 예술은 참담한 민족 수난이 빚은 쓸쓸하고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야니기의 그런 관점의 저변에는 사대주의의 조선이란 의식이 깔려 있어요. 그는 예술만은 사대가 아니라 했거든요. 민족 수난이 빚은 예술은 사대가 아니란 논리는 성립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도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 그것도 전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조선의 예술은 생명이 내포된 힘의 예술이에요. 전 조선인을 예술적인 천재로서 선택받았다, 따위의 비현실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에요. 칼로써 힘을 빼는데 무한한 힘이 소요되는 창조에 바칠 힘이 있겠느냐, 일본의 문화적 빈곤은 바로 거기에 이유가 있고 칼을 삼가며 치지 않고 내 나라를 지키는 데 그친 조선은 당연히 창조에 그 힘을 살렸다, 전 그렇게 보고 싶은 거예요. 비애가 아닌 생명의 힘, 그 예를 들어보겠어요. 일본의 춤은 손목, 발목의 춤이더군요. 조선의 춤은 전신의 율동이에요. 탈춤의 도약을 보면 그건 터져 나오는 힘이에요. 또 서양의 춤은 발끝으로 땅을 밟고 손등이 하늘을 보는데 조선의 것은 발뒤꿈치로 땅을 치며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요. 다음엔 노래인데요, 일본 노래의 콧소리, 목구멍소리에 비하여 역시 조선의 창은 몸 전체에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폭포와 맞서서 목을 트는 수련 과정이 그것을 증명하지요. 악기 얘길 할까요? 조선의 가야금은 비애 아닌 통곡과 환희, 한마디로 그것은 한이에요. 일본의 고토를 들었을 때 전 소리로 들렸을 뿐 움직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많겠지만 양쪽의 모든 것은 그와 같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정신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당신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일본인은 용기가 있고 조선인은 나태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인데 사실 조선은 헬 수 없이 많은 외침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나라를 잃은 적은 없었어요.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던 거예요. 만일 일본이 섬나라 아닌 조선과 같은 조건의 국토였다면 어땠을까요. 당신네들이 외국 함대에 눌려 문호 개방을 했지만 조선은 물리쳤습니다. 무력으로 문호 개방이 안 됐던 거예요. 조선이 넘어간 것은 무력에 의했다기보다 계략에 넘어갔지요. 그리고 오늘 조선의 처지를 일본의 처지라 가상한다면 그렇게 치열하게 끈질기게 저항했을까요? 당신네들은 내심 무서운 거예요 중국에서, 만주에서 연해주, 미국, 또 일본 내에서 조선 국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독립 투쟁, 당신네들 공포의 표현입니다. 당신네들의 용기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용기가 아닌 잔인성이에요. 어처구니없이 미화된 세푸크에서 난 그것을 느낍니다. 잔인성, 길들여진 잔인성 말입니다. 일본인의 본성이 잔인하다는 게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길들여온 잔인성이란 것이지요. 그러면 왜 길들여졌는가, 반문하게 되면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용기, 그것이 애매해지지요. 자살에는 물에 빠져 죽는 것, 약을 먹고 죽는 것, 목을 매달기도 하고 이마나 가슴팍에 총을 쏘아 죽고 목이나 가슴을 칼로 찔러서 끝내는 일, 자살도 가지가지인데 배를 갈라서 내장이 쏟아지는 죽음, 생선, 산짐승, 동물의 경우를 두고 생각할 때 내장이 나오는 것은 죽음 후의 일이지요. 사람을 포함하여 동물에게 가장 더럽고 추악해 보이는 것이 내장이에요. 배를 갈라서 내장을 드러내 죽는 방법은 가장 추악한 거 아니겠어요? 그것을 의식화하고 미화하는 이유가 뭐죠? 그야말로 야만적이며 그로테스크한 것을 아름답고 숭고하게, 따라서 사람에 틀림이 없는 찬황이 현인신도 될 수가 있었던 거예요. 가치전도, 전도된 진실에 순치되어온 일본인은 비극이라는 감각도 없는 채 비극 속에 있는 겁니다. 그것은 다 약탈의 도구며 장치예요. 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이상이나 고매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와 같은 도구 장치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거지요. 당신네 나라에 사상이 없는 거지요. 당신네 나라에 사상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문화가 빈곤한 것도 말예요. 민족주의도 없구요. 애국이라는 말을 빌린 공범 의식, 당신들의 애국심은 공범 의식이지요. 유일하게 아름다운 죽음이 있었다면 도회령에 의해 순교한 나가사키의 천주교도, 그들의 죽음뿐일 거예요.“

순간 오가다는 몸을 퉁기듯 놀라며 인실의 옆모습을 본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오가다는 언젠가 자신도 도회령에 의해 순교한 천주교도들의 죽음을 일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조선에도 끔찍스럽게 소름끼치게 잔인한 풍문, 당신 나라에 관한 풍문이 있었고 오늘날까지 항간에 떠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풍문이라기 보다 신앙일 거예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이 사명대사를 죽이려고 큰 가마솥에 넣어서 불을 땠는데 가마의 뚜껑을 열었을 때 눈썹에 고드름이 붙은 사명대사는 일본 나라는 왜 이리 추우냐, 해서 사명대사는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해마다 인피를 조선에 바칠 것을 다짐하고 돌아왔다. 수많은 인피를 해마다 가져오게 한 것은 일본인의 씨를 말리고자 한 계책이다, 대상 그런 얘기인데요, 물론 황당무계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조선 백성들의 가슴에 사무쳐 있는 증오의 표현입니다또 진정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는 아까 신앙이라 했는데, 사명대사에 대한 신앙은 다시 말하여 일본의 멸망을 희구하는 신앙이지요. 되풀이 되풀이하여 배은망덕했었던 일본, 조선 사람에게는 악령이지요. 그런데 과거에도 수없이 우리 땅에서 해적질을 했었고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한때 쑥밭이 되었었고 오늘 이 지경으로 잔인무도한 발 아래 신음하지만 조선인들은 도무지 당신네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일본은 콤플렉스 때문에 우릴 업신여기고 또 거드름을 피우기 위해 우릴 업신여기는데, 생각해보십시오. 잔인상에 길들여진 당신들과 도덕으로 길들여진 우리 백성과, 그러면 모멸의 깊은 진심이라 해도 좋겠는데 그건 어느 쪽일까요? 도덕적인 기준에서 문화적인 척도에서 조선 백성들은 당신네 정체를 바로 파악하고 있거든요. 조선의 농민들은 선비 정신의 토양이에요. 또 선비 정신의 씨앗이 뿌려진 대지이구요. 양반 계급이 학문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하여 무학이지만 무식은 아닌 거예요. 그들은 가난하지만 예절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탱한다는 것을 알구요. 조선 백성들이 일본인을 향해 즐겨 쓰는 말 중에 상놈이란 말이 있어요. 그것은 신분을 말함이 아닙니다. 예절을 모른다, 사람의 도리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지금 삼천리 강산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친일을 한 소수의 무리, 이미 썩어서 쓸모없게 된 무리를 제외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일본인 멸시의 뿌리를 뽑을 수 없을 거예요. 당신들은 정복자로서 조선 백성을 내려다보지만 조선 백성은 결코 당신들을 우러러보진 않아요. 소수 교양 있는 사람 말고는 모두 당신들을 왜놈, 쪽바리라 불러요. 의식 속 깊은 곳에서도 당신들은 여전히 왜놈 쪽바리예요. 결코 일본은, 끝내 조선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까부터 인실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윙윙 울렸으나 팔매질 같은 말의 속도, 가혹한 내용에 의해 말하는 당자 인실은 물론 오가다도 격양된 상태였으므로 주변 풍경에 대해선 거의 망실 상태였었다. 그들은 신작로를 따라 해저 터널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터널 안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벌레 한 마리 없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온통 콘크리트로 굳혀진 곳, 인실은 무너지듯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오가다는 선 채 인실을 내려다본다. 열병에 걸린 것처럼 인실의 얼굴은 새빨갰다. 주저앉은 인실은 두 다리를 뻗었다. 비로소 그는 터널 속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쯤 터널 위로 배가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곳으로 생각은 넘어간다.

"오가다상은 절 고발하여 감옥으로 보내지도 않을 거니까... 결국 이불 밑에서 활갯짓한... 흐흐흐..."

인실은 낄낄 웃었다.

"비겁했네요."

"자아, 일어나요."

오가다는 인실을 잡아끌었다.. 여자의 손은 차디찼다.

"자아."

일으켜 세우다가 오가다는 인실을 꼭 껴안는다. 힘이 빠져버린 인실은 저항 없이 새같이 가볍게 몸을 기울였다.

"계속 소리 지르고 악을 쓰고."

"제가요?"

"..."

"안 그랬는데..."

"몸으로 소리치고 악을 썼지."

인실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오가다상, 난 갈 거예요. 싸우러 갈 거예요. 시베리아 벌판? 만주 벌판? 눈 속에 묻혀서 죽고 싶어요,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오가다는 더욱 강하게 인실을 껴안으며 귀뿌리에 입술을 대고

"말없을 때 히토미는 강했어. 왜 이렇게 무너지는 거요, 히토미."

뭔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아니 저기이 멋꼬? 더러분 것들이, 여기가 저거 안방이가? 세상이 망쪼라 에이, 애잉곱다!"

그물을 어깨에 짊어진 어부는 큰소리로 욕설을 하며 침을 탁 뱉는다. 포옹을 풀고 손을 잡으며 돌아본다. 우쭐우쭐 걸어가는 어부의 뒷모습, 이윽고 그 모습은 굽어진 터널 모퉁이에서 사라졌다.

"이제 돌아갑시다."

여관으로 돌아왔다. 인실은 자기 거처방으로 들어갔고 오가다도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일찍부터 자리에 들었던 찬하는 왠일인지 단정하게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일어나 있었어요?"

찬하는 대답 대신 험악한 눈으로 오가다를 노려본다.

"...?"

"어디 갔다 오는 거요?"

감히 네가 이 나라의 여자를 넘볼 수 있느냐, 찬하의 눈빛은 그런 분노를 나타내고 있었다. 일본 여자를 아내로 한 그가, 오가다의 사랑을 알고 있는 그가, 오가다는 당황하며 혼란에 빠진다.

"나 나쁜 짓 안했소."

저도 모르게 오가다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당신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동정하지만 조선 여자의 육체는 안 된다! 오가다는 찬하의 심중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또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오가다는 캄캄한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헐어버릴 수 없는 기나긴 역사의 벽을 인실의 수백 마디 말보다 찬하의 눈빛에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10장 명희의 사막

해저 터널의 아치형 출구를 나왔을 때 학교는 왼편 언덕에 있었다. 지상 부분인 터널 옆을 따라 되돌아가는, 그러니까 바다의 방죽을 못 미쳐서 학교로 향한 길이 있었는데 왼편에는 채마밭이었고 오른쪽에는 초가 한 채, 야트막한 싸리 울타리를 친 채마밭, 다시 초가 한 채가 있었다. 방 하나에 외양간을 거느린 대문채와 안채의 규모로 보아 조금은 넉넉한 듯한 농가였다. 학교길은 그곳으로부터 가파른 돌계단이었으며 여남은 개의 계단이 끝나니까 양켠에 벗나무를 즐비히 심은 오르막길이었고 다시 여남은 개의 돌 계단을 올라섰을 때 콜타르를 칠한 단층 목조 건물이 눈앞에 드러났다. 넓지 않는 운동장은 비어서 휑해 보였다. 메마른 잔디를 입고 비스듬히 드러누운 꽤 높은 축대 위에 교사는 마치 제단 위의 관과도 같았다. 교실이 네댓 개나 될까? 축대에도 양켠과 중심, 세 곳에 계단이 있었다.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풍경이었다. 그러나 교장의 주거인 듯 번듯한 왜식 주택이 교사와 좀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읍내 신사가 멀었기 때문인지 혹은 진충보국, 국수에 투철한 어느 교장의 창안인지 알 수 없으나 교무실 앞의 장난감 같이 축소하여 만들어놓은 신사, 국기 게양대, 그런 것들은 식민지 교육 정책의 준엄한 권위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운동장을 질러 중심부의 계단 앞에까지 가서 멈추어 섰다. 찬하는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었고 인실과 오가다는 사방을 둘러본다. 저 밑에 겨울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짙푸른 빛을 띤 바다는 호수같이 잔잔하였다. 돛단배가 떠 있었고 갈매기도 날고 있었다. 인실의 시선이 찬하를 잠시 스쳤다. 암울한 얼굴에 담배 연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제가 가서 물어보지요."

인실은 말을 남기고 돌계단을 올라갔다. 여닫이의 유리창 문을 열었다. 시골 학교의 대개가 그러하듯 서류장에다 책상들, 별다를 게 없는 교무실이었다. 소사가 난로 속의 재를 후벼내다가 얼굴을 들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

"여기, 이 학교에 임명회라는 여자 선생님 계시지요."

", 그렇심더."

소사는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분을 찾아왔는데 어디 가면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방학이라서요, 핵교에는 안 나오시고 하숙집에 가보시이소."

"하숙이 어딘지, 모릅니다."

"와 거기, 층계다리 옆에 붙은 집입니더."

"고맙습니다."

두 사내는 망연한 모습으로 서로를 외면한 채 서 있었다. 인실이 내려왔지만 그들은 그런 자세를 허물지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아까 왔던 길을 되잡아서 인실은 천천히 걷는다. 계단도 천천히 밟고 내려간다. 이런 한촌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도시풍의 남녀 세 사람이 새끼줄 잡고 칙칙폭폭, 기차놀이하는 아이들처럼 명희 하숙에 줄줄이 들어가는 광경은 아무래도 우스꽝스럽고 멋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명희가 충격을 받을 것 같기도 해서 일단 혼자 그를 먼저 만나야겠다고 인실은 생각했던 것이다.

"임선생님을 만나 뵈려고 왔는데 계시는지요."

장독가에서 삶은 빨래에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 중년의 아낙이 방망이를 든 채 화드득 일어섰다. 삶은 빨래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디서 오싰습니까?"

"서울서 왔습니다."

"... 저기 선상님은요, 핵교에 가싰는데예."

인실은 난감해한다.

"학교에 갔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하숙에 계실 거라 해서 왔는데, 그럼 임선생님이 안 계시단 말씀이군요."

아랫방 문이 열리면서 소년이 쫓아나왔다. 서둘러 신발을 신은 소년은

"선생님은요, 분교에 가 계실 겁니더. 지가 가리치드릴 긴께 지를 따라오시이소."

기세 좋게 말했다.

", 그래라. 그래야겄다. 그라믄 자아를 따라가보시이소. 촐랑 대지말고 어 가거라!"

아이를 향해 소리 지르는 아낙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인실이 집을 나서는데 아이는 돌층계와 반대 반향을 향해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다.

"이애! 이애야!"

"?"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잠시만 기다려주겠니? 일행이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내 가서 뫼시고 오마."

"아니라예, 개안십니더. 핵교로 해서 가는 길도 있인께요."

솜저고리 앞섶 밑에 두 손을 찔러놓고 염소새끼 뛰듯 아이는 껑충껑충 되돌아왔다. 검정색 솜바지, 잿빛 솜버선, 신발은 검정 고무신이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빨래처럼, 쇠죽을 먹던 살찐 암소의 콧김처럼 아이는 따뜻해 뵌다. 벚나무가 즐비히 선 오르막길에서

"이리로 가믄요, 핵교 뒷산을 넘어가야 하고, 바닷가 신작로로 해서 가는 길도 있십니더."

아이가 말했다.

"너도 이 학교엘 다니느냐?"

인실이 물었다.

"."

"몇 학년이지?"

"삼 학년입니더."

아이는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인실을 한번 살펴본다.

"임선생님은 몇 학년 담임이니?"

"선생님은 담임 안 하십니더."

"어째서?"

"삼학년에서부터 육학년까지 여자아아들만 모아놓고 수예하고 재봉만 가리치니께요. 그런데 촉탁선생님이라 안 캅니꺼."

"그래서 분교에 가 계시니?"

"아니라예. 그거는 아니고요, 방학 동안 아무도 없인께...... 선생님은 혼자 기시는 거를 좋아하는가배요. 저기, 그런데 물어봐도 되겄십니꺼."

"?"

", 우리 핵교에 오시는 성생님 아닙니꺼?"

"나 말이냐?"

"."

"아니다."

아이는 실망을 나타낸다.

"우리 핵교는 여 선생님이 한 사람뿐입니더. 그라고 또오, 선생님이 모자라니께요."

그래서 새로 오는 선생님으로 생각했다는 뜻인 모양이다.

"일학년은 옥선생님이고 이학년은 키다리 배선생님이고 삼학년,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도다라고 눈이 쪼맨코 입이 튀튀하게 나와서 별명이 돼지라예. 또 도라리라고도 하지마는 맘씨는 개안십니더. 아아들 안 때립니더. 사학년은 교장선생님이 가르치고요. 분교의 오학년, 육학년은 황선생님이라꼬, 서울내깁니더."

해놓고 아이는 당황한다. 명희선생도 그렇지만 안내해가는 손님도 서울내기라는 것을 깨달은 때문이다.

"오륙학년을 한분이 가르치느냐?"

". 와 그런고 하니요, 사학년에서 졸업하는 생도들이 많십니더. 그란께로 오륙학년을 모두 합쳐도 한 반밖에 안 되거든요."

"."

운동장으로 올라간 인실은 아이를 따라가면서 두 사나이에게 손짓하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왠지 가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따라오려면 따라오라, 그런 심정은 명희가 받을 충격을 생각한 때문이지만 막상 와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명희가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왜 내가 이런 행동에 동행했을까.’

처음부터 찜찜했었다. 찜찜했던 것이 이제는 노골적인 후회로 인실은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교사와 교장 사택 사이를 지나 학교 뒤켠으로 돌아갔다. 후문을 나와 무덤 두 개가 나란히 있는 언덕을 올라가서 다시 내리막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솟아 있는 산은 향이 서북쪽이어서 음산했고 척박해 보였다. 얼마나 긁어내었는지 솔갈비 한줌 찾아볼 수 없는 땅바닥엔 세월에 부서지고 모가 난 돌멩이만 굴러있었다. 눈 아래는 여수로 향한 좁은 수로, 해저 터널이 바닥에 가로놓여 있는 그 수로의 목이 넓어지면서 섬들이 포개어지고 비켜서고, 바다는 서쪽으로 아득히 수평선을 긋고 있었다. 그러니까 교정에서 내려다본 것이 앞바다라면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뒷바다라 할까. 해저 터널 하나로 통영읍과 연결이 되는 미륵도, 산양면인데 이곳은 봉화대와 사찰 용화사가 있는 용화산의 자락인 셈이다. 본래는 섬이 아니었는데 지두한 병졸들이 이 목을 파서 수로를 내었다한다. 세칭 다이코보리, 풍신수길의 군사가 팠다는 뜻일 거다. 그러나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이 좁은 수로의 방죽 옆은 꽤 넓은 신작로였다. 산자락에 바싹 붙어 있는 신작로, 그 사이의 좁은 공간에 바라크 같은 목조 건물이 바다를 보고 한 채 서 있었다. 그것이 분교였다.

아이는 바람개비같이 날라 갔다.

"선생님! 선생님! 서울서 손님 오십니더!"

복도 같은 것도 없고 건물 처마 밑에 들어서니 유리창을 통해 책상이며 걸상, 칠판 따위가 있는 교실 내부를 환히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서울서 손님 오셨습니다!"

교실에 잇달리어 ㄱ자로 되었으며 장지문이 닫혀져 있는 방 앞에서 아이는 소리쳤지만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신돌 위에 검정 여자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세 사람은 가까이 가지 못하고 아이의 뒷통수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고함은 종기를 째려는 순간의 칼끝처럼 이들의 마음을 긴장시키는 것이었다.

명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떤 태도로 나타날 것인가.

"선생님은요!"

침묵이 안타까웠는지 아이는 주먹으로 문을 한 번 탕! 하고 쳤다. 방문이 열렸다.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은 임명희의 창백한 얼굴이 세 사람을 향해 떠올랐다. 그것은 유령이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전율을 느낀다. 살아있는 징표, 생명의 빛을 잃어버린 모습, 그러나 다음 순간 명희 얼굴에 분노가 나타났다기보다 분출이라 해야 할까, 동시에 그것은 살아 있었다는 신호가 되었다. 인실은 달려갔다.

"선생님."

"..."

"용서하세요."

"어떻게 된 일이니?"

격렬한 분노의 얼굴과는 딴판으로 목소리는 평탄했다.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은 원치 않으셨겠지만, , 어떻게 수수방관만 할수 있겠습니까."

인실은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찬하가 다가와 모자를 벗었다.

"형수님, 오래간만입니다."

창백했던 명희 얼굴이 진홍빛으로 변해갔다. 눈이 증오에 타듯 희번덕인다. 찬하는 새파래진다.

"너무들 하시는군요."

기계로 압축한 목소리 같았다.

"이러지들 마세요."

명희는 다시 말했다. 상처투성이, 이 사람이 걷어차고 저 사람이 걷어차고 굴러서 굴러서 어느 구석에 처박힌 돌멩이같이 되어버린 명희,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변화였다.

", 모든 일은 저의 잘못으로."

찬하는 얼어붙어서 말했다.

"이상하군요. 찬하씨의 잘못이라구요?"

"대안의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여기 오시는 일이 옳은 방법이었을까요?"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 그냥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책임과 의무가 찬하씨에게 있습니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아요?"

옛날 명희의 어투가 아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집으로 돌아가시라는 말씀은 않겠습니다. 나오시기는 잘하신 일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이렇게 계서서 되겠습니까."

"상관 마세요. 제발 상관 말아주세요!"

의아해하며 서 있는 아이에게 병아리 몰듯 인실은 팔을 벌리며

"얘야, 고마워. 이제 가도 되겠구나."

인실은 신작로로 나가는 아이를 뒤따른다. 아이는 신직로로 곧장 걸어갔고 인실은 방죽가에서 멈추었다. 목도리 대신 타월을 목에 감고 통을 인 생선장수 아낙이 지나간다. 아이는 굽어진 해안을 따라가다가 한 팔을 치켜들고 빙빙 돌리며 뛰었다. 그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생선장수 아낙도 사라지고 방죽을 치는 물결 소리, 그리고 사위는 적막하게 가라 앉았다.

이상한 여행, 쓸쓸한 이 바닷가, 이곳에서 만나야 했던 임선생님, 내가 왜 여길 왔지?’

잘못했다는 후회는 명희를 위한 것이면서 또 자신을 위한 휘호이기도 했었다. 마치 주술 같이 끌려 이 땅끝과도 같은 바닷가에 서 있는 느낌이다.

오가다가 옆에 와서 머물렀다. 겨울하늘과 겨울바다, 척박한 언덕이 등뒤에 있었고 수로 건너 마주보이는 곳은 햇볕에 등살을 펴듯 산의 능선은 부드럽다. 산자락에 띄엄띄엄 놓인 인가, 이따금 사람이 지나간다. 도대체 삶은 무엇이며 존재는 무엇인가, 인실을 한숨을 깨문다.

마치, 철새가 떠나버리고 텅 빈 갈대숲 같다. 여기가지 오게 한 마음도 목적도 왜 이리 어렴풋한가. 기묘하기만 하고, 정녕 이 순간, 이곳, 이 풍경은 정상이 아니다.’

기묘하다는 것은 뭐 새삼스런 느낌은 아니었다. 여행하는 동안 시시로 벙어리 노릇을 해야 했고 꾸어다놓은 보릿자루같이 있어야 했던 오가다의 처지가 우선 기묘했다. 떠나올 때부터 형용하기 어려운 절실한 것, 그 절실한 것이 이곳까지 오게 했지만 인실뿐만 아니라 두 남자의 경우도 그 절실함이 무엇인지, 사실은 정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정시하라! 정시하라! 외치며 뒤쫓아오는 이성에서 도망치듯 애써 애매모호한 베일에 몸을 숨기며 왔는지 모른다. 생각하게에 따라 단순한 여행길에 진주 최씨네 댁을 방문하고 겸해서 명희도 찾아보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 미묘하고 감성은 보통 이상으로 섬세하며 예민하여 결코 단순치는 않다. 명희를 찾아온 명분에서도 그러했다. 실상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명희를 찾을 명분이 없는 것이다. 찾아와야 할 이유, 의무가 없고 다시 말해서 주제넘다는 것이 이들 대면의 비극에다 희극적 요소를 가미한 결과가 된 것이다. 오가다는 아예 명희와는 면식이 없는 인물이었다. 은사이거나 친구라면 혹 모를까 제자인 인실이 개입했다는 것도 당돌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 스승을 수치스럽게 했을 뿐이다. 찬하는 더더구나 명희를 찾아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조용하의 인간됨에 원인이 있었고 명희의 잘못된 선택에서 빚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용하와의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의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명희를 재기 불능의 경지까지 몰고 갔으니까. 진실을 엄폐된 채 찬하와의 불미스런 관께 운운 그 자체가 명희에게는 악몽이었다.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악몽, 세 사람의 심정이 백 프로 선의라 하더라도, 물론 백 프로 선의지만 이들의 방문은 명희에게는 심장을 도려내는 비수 같은 것이었다. 불안은 이들이 떠나올 때부터 있었다. 과연 명희를 찾아가는 것은 옳은 일인가. 냉혹하게 얘기하자면 백 프로 선의의 뒤켠에는 에고이즘이 숨어있었다. 불안을 외면하고 욕망에 쫓기어 이들은 왔다. 인실은 주술에 걸린 것처럼 왔다고 표현했지만. 찬하는 명희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떠밀었다는 자책감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 사람의 불길이 있는 한 명희를 만나보고 싶었을 것이며 한 오라기의 반응이라도 건져내고 싶은 욕망은 있었을 것이다. 인실과 오가다는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유혹에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고, 외형으론 두 남녀는 찬하의 들러리로 온 것 같지만 편승이라 해야 옳았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찬하 편이 들러리였는지 모른다. 두 남녀는 서로 사랑했으니까. 막연한 불안, 애매모호한 상태, 그러나 끝내 그들 자신의 에고이즘을 호도할 수는 없었다. 올 데까지 와서 코너에 몰린 명희와 마찬가지로 그들 자신도 코너에 몰린 것을 때달았다.

"저 사람들... 비극이군요."

오가다가 중얼거렸다.

"희극인지도 모르지요."

"어째서."

"글쎄요... 현실 같지가 않아서요."

"왜 저렇게 돼야만 했을까?"

오가다는 등을 구부리며 바다를 내려다본다.

"시간적으로 안 맞은 거 아니었을까요?"

"한발 먼저 청혼을 했다, 그 얘기군요. 한발 처졌다면 그건 찬하씨 성격 탓이지요. 찬하씬 내성적인 사람이니까."

"성격을 말하면 임선생님한테도 원인은 있었을 거예요. 전 선생님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사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군요."

"뭐라 할까요, 소극적이라 해야 할지, 그러니까 무엇이든 보호를 받을 때 쉽게, 그 보호가 없을 때는 힘들게 사는."

"그거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선택이 까다롭다는 점이 있지요. 조용하씨를 선택한 것은 친정에 대한 희생 같은 것이 있었을 테지만 선택의 잘못을 알면서 들어갔을 성싶어요. 그러니까 대단히 어렵게 힘들게 살았을 거예요."

인실의 말은 횡설수설인 듯도 했다. 명희의 사람됨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안타까움도 있는 듯했다.

"너무 착하고 더러운 것을 모르고 소극적으로 해서 힘이 들었을 거예요."

덧붙여 말했다. 옛날 처녀 시절에 대담하게 상현의 하숙을 찾아 갔던 일, 바로 이곳 바다에 투신했다가 오부가 건져주었던 일을 인실이 알았더라면 명희에 대한 인식은 좀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니 그래서 어쩌면 달라지지 않았을 성싶다.

"너무나 황폐해졌어요."

"그분 모습에 나도 놀랐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젯밤엔."

인실이 중얼거렸다.

"사과 안 해도 좋습니다."

"사과 같은 것 안 해요,"

"그럼 공격할 일이 또 남아 있습니까."

오가다는 애써 인실의 가라앉는 기분을 일으켜 세우려는 듯 우스개 비슷하게 말했다. 인실은

"졸렬했어요."

"..."

"혼란스러웠고요."

"다 압니다. 모순과 갈등, 히토미 당신만이 아니지요. 세 사람 다 그랬습니다."

"우린 잘못한 거예요. 이곳에 오는 거,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부끄럽군요."

한편 찬하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괴로워하며 명희를 설득하고 있었다. 서울이 싫으면 진주 최씨네댁에라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찬하씨가 왜 이러지요?"

명희의 눈매는 칼날 같았다.

"당신 형님 말대로 내가 찬하씨의 애인이라도 되나요?"

", 그런 말씀을."

"나는 내 육친한테도 이런 꼴 보이기 싫었어요. 한 마리 지렁이 같이 꿈틀거리는 이 꼴 말예요!"

"..."

"제발 가주세요. 도대체 저기 서 있는 사람들, 찬하씬 나에게 뭔가요? 당신네들 동정이나 받아서 눈물 흘릴 그런 처지는 아니예요."

"동정이 아닙니다."

찬하의 목소리는 낮았고 절망적이었다.

"왜 더 이상 못 가는가 싶어요. 새가 되어서라도 이 땅에서 빠져 나가고 싶어요. 조씨 가문, 그 집 자부, 조아무개의 아내."

명희는 몸을 떨었다.

"십 년 동안 그게 때라면 밀어버리지요. 십 년을 벗길 수 있다면 난 살갗이라도 벗겨내고 싶은 심정이에요. 누굴 원망하는 건 아니예요. 내 자신을 원망하는 거예요."

"형수씨에겐 아무런 때도 묻지 않았습니다. 벗겨낼 그 무슨 때가 있겠습니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귀족의 귀부인의 전락된 모습으로, 어떤 사람은 친일파의 자부로 불미스러운... ."

하다가 말을 끊었다. 명희는 이성을 잃었고 감정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다.

"그런 것 관계없습니다. 헌신짝처럼 다 버리세요. 피해망상입니다."

"내가 형제를 농락했나요? 비밀이지요? 왜 내가 이런 비밀을 가져야 합니까! 왜 사람의 눈을 무서워해야 합니까! 난 찬하씰 사랑한 적이 없는데, 난 조씨 집안의 조씨 성 가진 사람 누구도 사랑한 일이 없는데, 왜 내가 십 년을 그 집에서 살아야 했는지 아세요?"

찬하는 새파랗게 질려서 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명희를 쳐다본다.

"나를 요녀같이 대하는 당신네 부모, 나는 결벽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내 결벽을 알면서 조용하는 독사를 내게 들이대듯 즐겼어요. 찬하씨는 잘 아실 텐데요. 왜 내가 그 집에서 못 나온 줄 아세요? 내가 나오면 그것을 무기 삼을 것이란 공포 때문이었어요. 난 사람이 무서워요. 아무도 믿지 않아요! 가세요! 왜 내게 공포를 환기시키는 겁니까. 나는 구경거리가 된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니에요! 하지만 난 구경거리가 되었답니다."

비로소 명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찬하는 새파랗게 질린 채 인실과 오가다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인실씨! 가보세요! 가봐주세요. , 흥분해서."

인실이 명희에게로 뛰어간다.

"갑시다. 우린 가는 게 좋겠어요."

찬하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며 급히 도망치듯 걸음을 옮긴다. 한동안 당황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인실 쪽을 바라보던 오가다도 허둥지둥 걸음을 내디뎠다. 해안 길을 따라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가는 찬하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귓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몽유병자처럼 걷고 있었다. 담배 피는 것도 그는 잊은 듯했다. 터널의 입구, 국화빵을 구워 파는 중늙은 여자와 삶은 고구마를 파는 노파가 이쪽저쪽 마주보고 앉은 터널 입구에서 내리막길을 한참 지난 뒤 오가다는 겨우 찬하를 따라잡았다. 지상 부분을 지나 커브를 돌았을 때 터널 입구에서 비쳐 들어오던 광선은 차단되고 띄엄띄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은 어둠 속에서 마치 숲속의 등불같이 깜박이는 듯했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발소리는 메아리가 메아리 되어 끝없이 울린다. 오가다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벽 저 벽에 부딪히며 울리는 메아리에 힘입어 물었다.

"가엾어서 그래요?"

찬하는 걸음을 멈추고 오가다를 쳐다본다.

"아니."

"그럼 왜 이러는 겁니까. 당신은 넋이 나간 것만 같아요."

찬하는 겨우 생각이 난 듯 담배를 꺼내어 붙여문다. 성냥개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걸으면서

"백 년 천 년 얼어붙어서 녹아버릴 것 같지가 않소. 끔찍스러워."

"뭐가?"

"산다는 게."

한참을 걷다가 오가다는

"이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말이지요? 암중모색이지 뭐. 인생이란 끝없이 쓸쓸해. 저승길을 가는 것처럼. 이승길 저승길 따지고 보면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요."

"..."

"산카상(찬하씨)!"

"..."

"역시 나나 당신은 봇짱이야. 모두들 배짱 두둑하고 낯가죽도 질기던데, 사이교의 방랑을 꿈꾸고."

오가다는 찬하에게 말한다기보다 윙윙 울리는 자기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말하는 기분이었고 왠지 모르겠으나 소리를 질러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건 오가다 당신의 경우겠지요. 나는 사이교 방랑 따위는 꿈꾸지 않소이다. 그보다 도덕과 휴머니즘은 다리지요, 분명히."

어세가 강했다.

". 다르고말구요. 때론 다를 정도가 아니라 상반되는 거 아닙니까."

한참 있다 찬하는

"그분은 도덕적이었지만 휴머니스트는 아니었소. 사막이었소."

하며 짧아진 담배를 버린다.

"나는 꿈 같은 것 꾸지 않소. 대체로 조선인은 일본인만큼 꿈꾸지 않아요."

"감상을 모멸하는 군요. 그건 알 만해요."

그러고는 말이 끊어졌다. 그런데 응얼응얼 이상한 소리가 멀리서 울려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차츰 가까워져서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런가 하면

"나무아미타아불! 나무아미타아불!"

! ! 울리는데 바구니를 인 중늙은 여자가 그것도 조만한 여자가 한 팔을 바구니를 잡고 한 팔을 열심히 휘저으며 모습을 나타내었다.

"관세음보오살관세음보오살나무아미타아불나무아미타아불!"

오가다는 마음속으로 아아 하고 납득했다. 아까 목청껏 노래 부르고 싶었던 자신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늙은 여자는 극락왕생을 빌며 소망을 염원하며 염불을 했다기보다 세상과 동떨어진 바다 밑의 공간, 그 공간 자체에 자유로움을 느꼈을 듯싶었고, 별로 걸리적거리는 사람, 부딪히는 행인도 없는 터에 갈 길을 밝혀줄 만큼의 어둠이 허물을 묻어주듯, 그리고 제 목소리가 그토록 오래 울리며 연이어져 사라지는 것이 마치도 육체를 망각하고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만을 들으며 영혼의 부유를 확실하게 느끼며 - 그렇다, 육신을 빠져나온 자유로움, 자의식을 풀어버린 홀가분함, 그것은 목소리로써 표현되고 인식된다. 중늙은 여자는 명부길을 환상하며 염불을 외웠는지 모르지만 명부길엔 육신은 없다. 육신이 없음은 욕망과 소망도 없는 것이다. 욕망과 소망이 없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가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터널에 빛이 들어왔고 소리도 제자리에, 그리고 눈부신 외부로 그들은 나왔디. 국화빵장수, 고구마장수가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저켠과 달리 이켠은 훨씬 풍요했다. 잡화상, 음식점, 한약국도 있었고 철물점, 사람이 사는 품을 갖추고 있었다. 신작로를 따라서 걷는다. 오른편 바닷가에는 그물 손질하는 어부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참 가서 노천 조선소라고나 할까 목수들이 배를 만들고 있었다. 잇달아 건어장, 그물공장, 뭔지 모를 작은 공장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왼편에는 산을 등지고 민가가 즐비했으며 간간이 영세한 상점들이 끼어들곤 했다. 잔물결에 일렁이는 오후의 바다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읍내 중심가로 들어왔고 여관에 당도했다.

"부산 가는 배가 어떻게 되지?"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찬하는 심부름 아이를 불러서 물었다.

"낮배는 떠났어요."

"그러면?"

"네시에 있는 거는 마산으로 돌아서 가는 밴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조맨한 것이 통통배라요. 장사꾼들이 타고 가는 짐배나 다름없십니더."

설명이 장황하다.

"그 배말고는 없느냐?"

"아닙니더. 밤배가 안 있십니꺼. 그 배는 크고 부산으로 직행이니께 시간도 덜 걸리지요. 뱃멀미도 덜 납니더."

역시 설명이 장황하다. 찬하는 오원권 지폐 한 장을 주며 밤배의 표를 사라고 이른다. 한 장만 사라고 덧붙인다.

"이등표지요?"

", 그리고 술상 좀 차려줄 수 있겠느냐?"

", 그라믄 술은 머로 할까요? 정종으로 할까요?"

"그래라."

여관방으로 들어온 두 사내는 외투를 벗어놓고 마주하고 앉아서 새삼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찬하의 낯빛은 파랗게 질린 그대로였다. 이따금 그의 입가에서 경련이 일곤 했다.

이윽고 술상을 소년이 들여왔다. 두 사내는 작은 유리잔에 서로 술을 부어주며 말없이 마신다. 찬하는 이따금 오한 같은 것을 느낀다. 언어자체의 의미보다 명희의 분위기는 거의 살인적일 만큼 강하고 살벌하였다. 명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 그것도 능히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하는 섬뜩섬뜩 공포까지 느낀다. 마음속에 품었던 것이 죄가 될지 모르지만 찬하는 단 한 번도 시동생으로서 예의에 벗어난 일은 한 적이 없다. 꽃같이 귀하고 소중했던 모습이, 한 오라기의 애정이 흐르는 눈빛을 기대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지도 않았는데 찬하가 본 것은 자기 방어의 영악한 명희는 본능이었다.

"오가다상!"

"."

"지금 당신은 낭인이오?"

"낭인이냐구요?"

"아니면 비밀 결사에서 일하고 있는 거요?"

뒤틀린 어투였다. 터널 속에서 사이교의 방랑, 그 따위는 꿈꾸지 않소이다, 했을 때처럼 신경의 날을 세우고 떠밀어내듯, 찬하는 결코 그런 투로 얘기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시골 중학교 선생질이나 할까 생각 중이오."

"왜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요?"

"현실 도피죠 뭐."

"현실이 어때서?"

찬하의 음성은 한 옥타브 떨어지는 것 같았다. 혼잣말같이 다음을 잇는다.

"세상이란 늘 이랬었지... 지겨워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지식인의 혓바닥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혓바닥이 짤려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오가다는 술잔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환약을 털어넣듯 입속에 술을 붓는다. 여관의 젊은 여주인이 손이 간 듯 술상은 조촐했다. 마른 대구를 먹기 좋게 찢어서 초장을 곁들여놨고 단칼에 싹둑 베어낸 대구 알은 잘 익어서 석류같이 뺄갰는데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고춧가루 깨소금을 살살 뿌려놨고 파아란 파래무침은 그 향기가 드높았다.

"옷을 갈아입고 또 갈아입고 나타나지만 기는놈, 서는 놈, 나는 놈, 변함이 없이 따로, 따로."

오가다 말에

"뭐가 말이오."

"그렇지요. 사람 사는 게... 지겨워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그렇지요, , 천지만물이 모두 다, 진화가 어디 있어요? 되풀이지뭐."

술에 안주가 필요하다. 말은? 말을 위해 술이 따라갈 수도 있고 술을 위해 말은 안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인지. 이 경우 두 사람은 술을 마시기 위해 말을 한다. 그것도 흠뻑 마셔야 했고 흠뻑 취해야만했다. 싫든 좋든 알맹이야 있든 없든, 무슨 내용이든 빈정거려야만 했다. 아니, 그보다 술만으로는 의식이 말뚱말뚱했고 살벌하고 황량한 광경이 통증처럼 가슴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 그것만이겠는가. 찬하는 물론이었고 오가다나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인실의 경우만 하더라도 자기모멸,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절실한 욕망에 못지않게 준열했을 테니까. 자기혐오 자기모멸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 심정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엊그제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백 년 전에 홍수가 있었던 것처럼 바야흐로 지금도 홍수, 홍수요."

"뭐가요."

오가다 말에 찬하는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이데올로기 말입니다."

"그거 좋지요. 대포 없이 혁명하고 독립도 하고, 하기는 그들이 승리하는 날 나 같은 싸구려 포장지 같은 귀족 문벌에 친일파, 타살되기 십상이지.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 그보다 나을 것 한푼 없어요. 내 부친께서는 생각을 매우 잘못한 겁니다. 친일파란 합방되기 이전에 필요한 것, 합방이 되고 나면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몰랐다, 세계만방에 체면 세우기 위하여 조선 왕실을 일본 황족으로 하고 친일파에겐 작위를 주고 그것도 일종의 체면용일 뿐,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토와 자원과 노동력뿐이지요. 다 써먹고 이제는 필요 없게 된 밥버러지가 뭐 그리 반갑겠소. 죽어 없어지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게요. 처량한 신세지요. 나의 부친은 매우 셈을 잘못한 겁니다. 작위를 받을 게 아니라 상놈으로 격하됐어야 옳았어요. 노역형보다 금고형이 가혹한 걸 몰랐지요. 대학을 나오면 뭣합니까?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는데, 과거 조선 문화에 대한 일본의 콤플렉스는 그것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유산을 많이 싸안고 있는 과거 지배층이 반가울 까닭이 있겠어요? 일본에게 협력하고 일본이 회유하여 목적을 달성한 오늘 그 계층이야말로 일본이 가장 기피하는 존재가 된 것은 공리에 철저한 일본이고 보면 당연한 귀결 아니겠소?"

찬하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자학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타살을 당하거나 종신 금고형을 받거나 피장파장, 내 뿌리를 내린 조국이 독립된다면 어느 편이든 나는 상관없지요. 어차피 내가 속한 계층은 사라져야 하니까요. 그러나 당신 말대로 실개천이 아닌 홍수가 난다 하더라도 일본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급진파도 조선 독립을 언급하는 자들은 별로 없고."

"그런 소리 마십시오. 여기 있지 않습니까."

서둘러 오가다는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웃는다. 동양인 특유의 감정을 빼버린 소리뿐인 웃음을.

"나카노 시게하루도 있지요 "비 내리는 시나가와 역"말입니다. 신이여 잘 가거라, 김이여 잘가거라, 그대들은 비내리는 시나가와 역에서 승차한다, 그 시를 쓴 나카노 시게하루."

나카노 시게하루는 시인이면서 소설가, 평론가이며 나프에 속해있는 사람이다. "비 내리는 시나가와 역"은 조선 독립과 독립운동에 대한 뜨거운 지지를 나타낸 시다.

"나도 "개조"에서 그걸 읽었어요. 그래 오가다상, 당신 진짜 코스모폴리탄이오? 하기는 계명회사건에 연루되어 옥고까지 치르었으니까 그주으이 어느 하나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찬하는 술잔을 놓고 담배를 붙여 문다.

"명칭이야 어떻든, 코스모폴리탄, 아나키스트... 어느 것이든, 한마디로 허황하지요."

"그게 그거지뭐."

"그게 그거지요. 허공에 둥 떠 있으니까, 허공에 뜬 달같이 에너지가 없으니까 그게 그거 아니겠소."

오가다는 묘하게 둘러대었다. 그게 그거라는, 불투명한 언어 자체가 이들의 막연한 심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에너지가 없기론 다 마찬가지요. 하나만 빼고, 홍수가 나도 태풍이 불어도가 아니라, 결코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부는 일은 없을 게 요만 실개천, 그게 사방에서 찔끔찔끔 흐르는 거 아니오?"

"일본에서 말입니까?"

의아해하며 오가다는 되물었다.

"그렇소. 일본에서 말이오. 야나기는 조선의 예술만은 사대가 아니라고 웃기는 강변을 했는데 문화에서 사대로 일관해온 일본의 역사가 증명하듯 지금 불고 있는 새 바람. 흐르고 있는 실개천도 분주하게 들여오는 서구 문화에 묻어서 온 것 아니오. 박래품 선호 사상의 일단에 불과한 거요."

"허허허, 참 어젯밤 히토미상도 마구 쥐어박았지요. 야나기에 관해서."

"그랬어요? 생각 이상으로 훨씬 똑똑하군요. 아무튼 설사 홍수와 태풍이 불어도 다 소용 없어요. 천황과 일본도에 잠시 나타나는 피부병 같은 거고 녹이 쓴 것에 불과하지, 천황의 피부병은 군부에서 약 발라줄 것이고 일본도의 녹은 천황이 닦아내고 기름 발라줄 것인데, 천황이야말로 불 먹는 공룡 같은 존재 아니오? 일본에서는 황도사상 이외 어떤 사상도 에너지를 가질 수가 없어요."

일본인들에게는 기절초풍할 만큼 불경스런 찬하의 말이었고 어투였다. 증오와 모멸이 가득 차 있었다.

"어젯밤부터 계속 얻어터지는군요."

오가다는 쓰게 웃었다. 인실이 여자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을까. 감싸 안아 주었는데, 히토미는 말을 안 할 때 더 강했다는 얘기도 했었다. 그러나 찬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평소 온건하고 지극히 객관적이던 찬하 어디에 이같은 증오와 분노가 숨어 있었던가. 그의 분위기는 마구 밀어붙이는 탱크와 같이 오가다에게 압도해왔다. 오가다는 저항을 느낀다.

"오가다상이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그 우정을 나는 믿습니다. 한데 어떻소?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당신, 천황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오가다는 당황한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듯 순간 어쩔 줄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 그거는, , 아직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어려운 일이겠지요."

"..."

"그게 대부분 일본인들의 한계가 아닐까요?"

오가다 얼굴에 막연한 표정이 지나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술을 마신다. 말없이 술을 마시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의 약점을 연민하는 이상한 애정 같은 것이 싹트는 것이었다. 오가다가 입을 열었다.

"1928년 보통선거가 실시됐을 때 군주제 철폐를 필두로 하여 열두 조항의 정책을 들고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타난 공산당은 선거중의 난압은 물론 15의 비극을 불렀는데 산카상도 아시다시피 삼천 명 이상을 잡아들이는 검거 선풍이 불었고 야마센이 이 의회에서 폭로했듯이, 또 고바야시의 소설 "1928315"에도 상세히 묘사되었듯이 그 무시무시한 고문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산당은 침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공산당을 발본색원하기 위하여 이듬해 정부는 치안유지법을 보다 가혹히 개정하고 의회에서 긴급 칙령으로 개정된 법안 승인, 이때 홀로 반대한 야마센은 그날 밤 우익 청년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그간의 사정이야 산까상도 물론 잘 아시겠습니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공산주의 운동은 일본에서 과연 그 전술 전략이 옳았는가. 열두 조항의 정책 중의 군주제 폐지, 그것은 우익의 합리화, 타당성을 위해서는 가장 쓰기에 생광스런 조목이었습니다. 치명적인 그것을 들고 나온 공산당의 모험주의는 옳았다고 할 수 있겠는지?"

보통선거 때 내걸었던 공산장의 정강 정책이란 1.군주제 철폐 2.노동의 민주적 의회의 획득 3. 남녀 18세 이상의 선거권 피선거권 획득 4.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5. 일체의 반노동자법의 철폐 6.단결권, 파업권, 시위 운동의 자유 7. 실업자 수당의 획득 8.대토지 소유의 몰수 9. 소득세, 상속세, 자본 이사세에 대한 극도의 누진 부과 10. 제국주의 전쟁반대 11. 소비에트 러시아의 방위 12.식민지의 완전한 독립, 이 열두 조항이었다.

"자폭 행위나 다름없었지요. 일본에서... 군주제 철폐를 찬성하는 프로테지는 과연 얼마나 될지..."

천황을 부정할 수 있느냐고 찬하가 물었을 때 오가다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에 대하여 개진하고 싶은 심정인 것 같았다. 술을 마시고 오가다는 얘기를 계속했다.

"최초의 공산당 결성에 참가했었던 아카마츠의 경우는 군주제 폐지를 지령한 코민테른에 반발하여 민주주의 획득에 이의는 없으나 국체 변혁을 주장한 필연성은 없다, 하고 오히려 반공으로 선회했는데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의 한 면을 살필 수 있는 예가 되겠지요. 그러한 아까마쯔를 비난할 만큼 내게는, 사실 이념이 투철하지 않습니다. 아까마쯔의 경우 군주제 폐지 때문에 선회했다면 그는 애초부터 공산당에 참가할 필요가 없었고 그는 우익인 것입니다. 사회개혁을 하더라도 일본주의 깃발 아래서 한다, 일본주의가 뭡니까? 그건 황도주의, 절대로 천황을 부인할 순 없지요. 어떤 뜻에선 일본의 골격 그 자체니까요. 정면으로 군주제 폐지를 들고나온 공산당은 침몰했지만 그들의 정강 제 일조에 군주제 폐지가 있고 마지막 열두 조항에 식민지의 독립이 있습니다. 첫째 조항이 전부를 건 필사적인 것이었다면 열두 조항은 다분히 관계적인 것으로 나는 보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뜻인가, 천황을 부정하고 소위 공산주의 독재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결코 국가주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저의 예상이지요. 어중이떠중이 그 많은 급진파들이 조선 독립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관심이 없다기보다 기득권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카노 시게하루 같은 사람은 드물지요. 나카노는 코뮤니스트지만 나는 그를 사이교의 흐름에다 묶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은 청정하고 진실되고 착한 것이며 슬픔은, 대상에 대한 슬픔은 휴머니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정신도 일본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산카상이나 히토미상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을 겁니다. 당신네들이 처하고 있는 위치에선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어느 사람 어느 민족이든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정적 긍정적 양면은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 나 이런 얘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어란 불완전해서 늘 보편에 빠지기 쉽거든요. 얘기를 하다 보니 야나기를 연상하게 되어 내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사실 나 자신 내 동족에서 환멸을 느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저질의 감상주의, 구태여 저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의리와 인정을 제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산카상도 감상주의를 얘기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질이든 아니든 감상 그 자체는 허위이면 자기기만이지요. 사실 나는 보다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정직하게 얘기하고 싶어요. 그러나 지금 내 자신 나를 기만하며 얘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자신도 역사 속에 길들여진 일본인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문도 있지만. 그렇습니다, 일본인은 자기기만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세푸크를 미덕으로 아는 그 자기 기만 말입니다. 히토미상도 그랬어요. 가장 추악한 자살이라고. 네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는 히토미 상이 말한 추악한 자살이란 것을 절실하게 실감할 수가 없거든요. , 히토미상만큼 실감할 순 없지요. 칼과 천황이 일본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 말도 하지요. 그러나 그 점에 있어선 일본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민족 어떤 집단이든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런 과정 속에 집단이든 민족이든 역사가 형성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다가 오가다는 한동안 말없이 자기 무릎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지요... 권력에는 힘, 어떤 형태로든 힘이 수반, , 아니 권력 그 자체가 힘이지요. 이런 물리적인 힘과 대립되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하는 또 하나의 힘, 정신적인 것으로 종교나 때에 따라 철학, 도덕일 수도 있겠고 그러한 것이 서로 대립되거나 융합하거나 또는 어느 한쪽이 독재를 하거나, 그런 양상에서 본다면 일본의 경우는 매우 이질적입니다. 거의 대부분 천황은 권력밖에 있었고 힘을 상징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힘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면 천황은 무엇이냐, 정신적인 힘, 여기 와서 애매해지거든요. 당신들 공격의 대상이 되며 조선의 식자들은 대개 이 문제를 거론하는데 현인신, 그 현인신으로 얽어두지만 사실 종교도 철학도 도덕도 아니거든요. 그 세 가지를 때에 따라서 조금씩 필요한 만큼 치장을 해주지만요. 현재도 그렇지요. 국민들을 모조리,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천황에게 붙들어 매놨다가 물리적인 힘이 그것을 필요한 만큼 갖다 쓰고 있는 형편이 아닙니까. 대단히 불경스런 얘기지만 국민정신의 저장고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종교도 철학도 도덕도 그 어느 것이라 할 수 없는 애매한, 해서 맹목적일 수밖에 없고 맹목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자기기만을 할 수밖에 없고 긴 역사 속에 국민들은 자기기만도 깨닫지 못하게 길들여졌습니다. 그러한 천황의 존재는 결코 변혁을 필요로 못하게 길들여졌습니다. 그러한 천황의 존재는 결코 변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천황은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도 독재한 일이 없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역사가 증명해주듯 정권은 여러 번 바뀌어도 황실은 존재했으며 혁명이 없었지요. 도대체 이러한 합리적 방법이 어디서 왔으며 장구한 세월 동안 존속해왔는가, 나는 여러 번 그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산카상, 나도 역사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길들여졌다 하더라도 합리주의가 진실에의 접근을 저해하는 것은 뻔한 일이며 바로 그 합리주의가 일본을 존속시켰으나 참다운 문화를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남의 것 빌려올 수밖에 없고 그것을 보전하거나 변형했을 뿐이지요, 그것도 열악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함과 영원을 소망하는 그것 없이 과연 창조가 가능할까요? 일본인은 현세적입니다. 본시부터 유물론이지요. 그런 비정한 것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바로 감상이며 쾌락주의입니다. 참 아까 저질의 감상 얘길 하다 말았지요? 음 그렇지요, 저질의 감상이 일본만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도의 차인데 그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어떤 결과를 낳는가 그것은 매우 중대한 일인 것 같아요. 진부한 얘깁니다만, 적절한 예가 될는지... 어떤 사람이 나카무라야의 소마 부부를 찬양하는 사람도 그랬었지만 소마 부부에 대해 일종의 혐오감을 느꼈어요. 신파조의 냄새가 물씬 나더란 말입니다. 인도의 망명객 포스의 후원자들, 그들의 낯짝들을 보면 뻔한 것이지요. 도야마를 필두로 하여 오가와, 이누가이, 그밖의 누구누구 모사가에다 정상배, 거물 정객들 아닙니까? 기왕의 식민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대륙 진출의 야심으로 눈에 핏발이 선 면면들이 인도의 독립 운동가를 비호한다? 하긴 그들이야 내놓은 사람들이지요. 이득을 위해선 어떤 것이든 정당화하니까요. 국익은 어떠한 악덕을 행해도 정의라 믿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을 따라 장구 치면서 엔야 완야(요란스럽게 군다) 하는 소마 부부, 그래 그들의 행위가 세계주의며 인류애라 그 말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혐오를 느끼지만 그들을 통해서 본 저질의 감상과 그릇된 시각과 뭔가 접근해보려는 심각함이 결여된 위선에 좌절을 느낍니다. 게다가 소마는 기노시다 나오에의 친구로서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으니 넌센스지요. 지순했던 것을 광대 춤으로 펼쳐놓고 우롱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기노시다의 말이 나오자 비로소 처음으로 찬하는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 것이 괴로웠던지 오가다는 얼굴을 찡그렸다. 화제의 소마 아이조는 크림빵으로 유명해진 나카무라야의 주인이다. 노일전쟁 때 고도쿠 슈수이, 사카이와 함께 비전론을 폈던 기노시다 나오에는 기독교적 공산주의를 표방한 사상가이자 소설가인데, 소마는 그의 친구로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며 유명한 빵가게인 만큼 저명한 예술가들이 들락거려, 자연스럽게 싸롱 비슷한 것을 형성하게 되고 소마 부부는 그들 예술가를 지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일본으로 망명한 인도의 독립투사 라스비봐리 포스는 추방령에 의해 관헌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는데 그를 숨겨주고 보호한 사람이 소마 부부였다. 오가다가 말했듯이 이 망명객을 후원한 정가의 거물들을 비추어 관헌으로부터 지켜준다는 행위에 연극적 요소가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소마 부부는 사랑하는 딸까지 포스에게 주면서 요란을 떨었고 소마의 처 요시는 남편보다 더 적극적이어서 눈먼 러시아의 망명 시인 앨센코를 자택에서 보호했던 것이다.

"그네들은 과연 그 후 진재 때, 무수한 조선인 학살,"

다시 오가다는 얼굴을 찡그렸다.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가 진상을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 오가다는 당황했던 것이다. 그의 얘기는 마무리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방금 학살이 행해지고 있는 대만의 무사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지 의문입니다."

무사사건이란 일본 학정에 시달린 대만의 원주민이 반일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을 습격한 사건이다. 물론 그것은 곧 진압되었지만 동족을 앞장세워 동족을 사살했을 뿐만 아니라 후일 사악한 사주에 의해 무사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동족에 의해 학살되었다.

"새삼스럽게 치부를 드러낸들 뭣하겠습니까. 이미 다 아는 일을, 배신과 음모, 부도덕과 위선에 이골이 난 정상배들, 비정한 공산주의의 이론가들, 그들 얘길 하자는 건 아닙니다. 평범한 시민의 그 값싼 감상이 얼마나 냉혹한 것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행위와 충동적인 행위에는 적어도 그 동기에 있어선 정직합니다. 그러나 정돈이 잘 되고 아늑한 방에 앉아서 이제 펴볼까? 하는 따위의 행동에는, 잉여 상태에서 감상을 즐기는 냉혹함이 있거든요."

찬하는 계속 웃고 있다가

"아까 저질의 감상을 말하면서 의리와 인정을 제외한다 했는데 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한때 신문지상을 시끄럽게 했던 오니구마사건 있지 않았소? 내용을 보면 정부를 장작으로 패 죽이고 여자와 관계있는 남자들을 또 죽이고 무려 예닐곱 명의 사람을 죽였는데 부락민들이 그에게 밥을 주면서 도망 다니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사실, 또 하나는 범인이 말하기를 도망 다니면서 옥수수 한 톨 남의 것을 훔쳐 먹지 않았으니 처자에게 알려 안심시켜라, 그리고 오니구마의 기사를 읽은 독자 중에는 오니구마를 응원하는 기미도 있었다 하고 노래로까지 불리운, 이런 일련의 사회적 심리라 할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폭력에 대한 쾌감은 사람들 누구의 마음속에나 숨어 있는 것이지만 오니구마는 압제자나 강자에게 폭력을 가한 것도, 의적도 아니지 않소? 그것은 짐승의 가장 포악한 본능이었소. 한데도 말입니다. 일본인의 소위 그 시각이란 것을 조선인인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어요. 연가사가 사랑에는 처도 자식도 버린다는 뭐 그런 따위의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는데, 천인공노할 살인마의 행적이 어찌해서 사랑 노래의 소재가 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행위를 사랑이 빚은 비극으로 볼 수 있느냐, 그게 과연 사랑인가? 사랑으로 보는 일본인의 의식은 참으로 기이할 뿐이요. 그것도 두 사람이나 되는 정부, 그 여자들도 소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한 오니구마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갖는 사회심리, 그게 의리요 인정입니까? 오니구마도 그래요. 엄청나게 전도된 가치관, 왜 그럴까? 짐승같이 살인한 인간이 옥수수 한 알갱이 훔쳐 먹지 않았다 그런 도덕적인 얘기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자신이 배신한 처자에게 전하라, 그 당당함은 왭니까? 세푸크를 미화하는 그것과 일련의 공통점이라도 있는 겁니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하겠어."

나중에는 혼잣말같이 했다.

"그거는,"

하다가 오가다는 술을 마시고 나서

"쾌락에 관대한 때문이지요."

", 그렇겠군. 일본에선 치정과 사랑이 전혀 구분돼 있지 않더군요. 구분돼 있는 듯하면서도."

"치정을 감상으로 포장하니까 그렇지요. 해서 탐미주의로 가는 겁니다."

오가다는 자조하듯 말했다. 어지간히 취해오는지 그의 눈동자는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입니다,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곳이든 부정적인 특성과 긍정적인 특성은 다 있기 마련 아닙니까. 그러고 그 특성은 수적 개념으로 파악되면서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건 제 개인의 감정인지 모르지만 일본은, 할 때보다 일본인은, 할 때 저항을 느낍니다. 맑은 물줄기 탁한 물줄기는 다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것도 아주 빈번히. 아름다운 것들이, 맑고 깨끗한 것들이, 사이교의 세계가 합리주의에 밀려 퇴영으로 몰릴 때 슬프지요."

"사이교가 일본의 최고 시인이지만 그 역시 낭만주의 이상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것입니다."

오가다는 고개를 흔들며 뇌었다.

"산카상이 무슨 말 하려는지 나 압니다. 이 오가다도 자기기만은 아닐지 모르지만. 착각에서 오는 감상주의자, 그런 말 하고 싶은 거지요?"

"그렇지는 않소. 때론 그렇지만, 누구나 때론 착각하지요."

"이건 얘기가 달라집니다만 산카상은 터널 속에서 말했지요. 나는 꿈같은 것 꾸지 않소. 대체로 조선은 일본인만큼 꿈꾸지 않아요, 하면서 화를 냈지요. 그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꿈은 실체가 아니지요. 황당하기도 하구요. 조선인은 일본인만큼 꿈꾸지 않고,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훨씬 강한 소망을 가졌다, 꿈은 달콤하고 소망을 치열하다, 꿈은 구름이고 소망은 바위다, 꿈은 잊어버리는 것, 소망은 가슴속에 맺혀 있는 것,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가다는 빈정거리듯 말했다. 눈은 더욱 풀어지고 가끔 입술을 떨곤 했다. 그러나 찬하의 눈빛은 강했고 가라앉았으며 암울했다.

"따지고보면 우습지. 인도의 독립투사, 눈먼 러시아의 망명 시인, 그 따위를 돌보아주는 것이나 조선인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속죄양같이 음매음매 우는 내 꼴, 뭐가 그리 다르겠소. 피장파장 아닙니까? 악인을 죽이거나 도적놈을 죽이거나 살인 죄인이기 매, 매일반 안 그렇습니까. 산카상! 다수의 공약에다 소수의 절대 권력, 뭐 그런 진실과 관계 없는 것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세월은 쌓이고 다 부질없습니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자아 오가다상, 우리 건배합시다. 세끼 밥 먹고 할 일 없는 두 마리의 돼지를 위하여."

"하기는 인간이라고 외쳐보아야 별 수 없지."

술잔을 부딪친 뒤 그들은 술을 마신다. 술잔을 놓으면서 찬하는

"당신 얘기는 용두사미로 끝났어. 용대가리에 용꼬리에 내가 붙여주지."

"용꼬리라... 아아 이대로 서서히 침몰하고 싶군. 산카상, 당신 참 말 잘했어요. 세끼 밥 먹고 할 일 없는 두 마리의 돼지, 하하핫핫핫 걸작이요 걸작, 하하핫핫하..."

밖은 어느덧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새 심부름 아이는 두 번이나 들락거렸다. 새 술을 가져오느라고.

"그래 용꼬리 얘기는 어찌 되었소?"

"겁나서 딴전 펴놓고서, 그래도 궁금하기는 한 모양이지요."

"술 힘이 있질 않소."

"당신 나라 천황을 내가 미워하는 줄 아시오? 그렇지 않소이다."

"뭐라 했지요? 그건 무슨 뜻입니까?"

"당신 나라 천황의 손엔 피가 묻어 있지 않으니까."

오가다의 취한 눈이 크게 벌어졌다.

"실은 내 얘기라기보다 당신이 하려다 만 얘기라 해야 옳지. 용꼬리라기보다 사족인지도 모르고... 당신들의 천황은 물리적으로도 그러하나 정신적으로도 독재를 한 일이 거의 없다? 일종의 완충지대, 압제자가 아닌 존재로서 국민의 증오의 대상일 수 없어요. 그러나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서 종교 혹은 신의 문제는 죽음이 개재되면서 강렬한 의문을 늘 제기하지요. 광신자가 되는 것도 바로 그 의문 때문인데 그것은 죽음의 의문과 통할 겁니다. 신은 있는가? 신은 없는가? 그 문제는 인간을 끝까지 몰고 가지요. 그러나 일본에는 기독교적 광신자나 기타 잡다한 종교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광신자는 없어요. 사실 황도주의의 광신자들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표현일 뿐 내용은 달라요. 일본에서 종교가 형식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밀착하지 못하는 이유, 철학과 사상이 없는 이유, 그런 것들의 영향이 약하기 때문에 아까 오가다상이 말한 대로 쾌락에 대한 관대함도 사람들 의식 속에 심어졌지만, 여하튼 그 이유는 바로 천황의 존재에 있는 겁니다. 천황에게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천황은 실상이지 가상은 아니지 않아요? 천황은 분명히 눈앞에 있고 분명히 인간이면서, 서로 다 납득 하에 신격화하고 있거든. 거기서 일본인은 딱 걸음을 멈추어버린 겁니다. 당신 나라 문인들의 잦은 자살을 나는 이렇게 봅니다. 대개의 경우 개인적인 것보다 사상적인 막다른 골목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목숨을 끊은 거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면역이 안 되었다고나 할까, 저항력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의문에 대하여 그의 투신하듯 한 광신자, 시니시즘이 무신론자들, 두 가닥의 올로 꼬아온 다른 곳에 비하여, 무풍지대에서 납득하고 공모하고 안주해온 일본인들, 안주한 곳의 문을 열고 나가기도 어렵지만 일단 나가보면 엄청난 황야란 말입니다. 나가떨어지지요."

"..."

그 황야야말로 창조의 활력이 숨어 있는 곳 아닙니까? 정교하고 갈고 닦고, 일본의 직인은 성실하고 리쯔기(고지식하고 정확하다) 하지요. 그러나 생명을 부여하진 못하는 것 같더군. 황야에 나가지 못하니까 그렇지요. 훌륭한 기능인... 합리주의의 긍정적 측면이지요. 당신네들의 단결도 그 합리주의의 측면이구요. 자아 오가다 선생!"

"?"

"우리 다시 건배합시다."

", 세끼 밥 먹고 할 일 없는 두 마리의 돼지를 위하여!"

두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동시에 낄낄 웃었다.

밖은 아주 어두워 졌다. 그러나 인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가다는 초를 친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계속 지껄이다가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찬하는 일어나 오가다에게 베개를 받쳐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동생을 돌보는 형처럼 자상하게. 제자리로 돌아온 찬하는 혼자 술을 든다. 취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찬하의 아픔을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얘기가 끊어지고 얘기의 상대가 잠들고 보니 천지강산 외톨이가 된 듯 쓸쓸함이 엄습해온다 쓸쓸함에는 늘 이골이 나 있었던 찬하였지만 오늘밤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낡은 바라크 건물 앞에서 만났던 검정 옷 입은 여자, 그것은 찬하 자신의 인생을 위한 상복 같았다. 숨쉬는 시체, 새삼스런 생각은 아니었다.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에 내려온 것은 충동적인 것이었지만 자제 못할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오가다와 인실과 함께 온 것으로 그의 자제력은 설명이 된다. 희망은 백분의 일도 못 되었다. 그는 명희에게 형의 몫까지 합하여 보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비록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올 때는 충동적이었지마는 와서 이렇게 충격을 받을 줄은 상상 못하였던 것이다. 거부감을 나타내기는 하겠지만 거의 발광적으로 증오할 줄을 몰랐다. 소외된 사나이. 그것은 찬하의 일상이다. 찬하는 말하기를 도덕적일지는 몰라도 휴머니스트는 아니다. 명희를 두고 한 말인데 그는 자신을 밥 세끼 먹고 할 일 없는 돼지라고 자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정적 고뇌와 갈증에 한 그릇의 물이라도 되어주기를, 이성이 아닌 인간끼리의 따뜻함이나마 바랐을 것이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찬하는 세 사람의 묘한 세 사람의 관계를 생각한다. 여행의 동반자 세 사람의 관계를.

'어쩌면 세 사람의 관계는 오늘의 현실의 축소판인지 모른다. 아니역사의 축소판이라 할까? 거창하지만.'

찬하가 축소판이라 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흘린 생각일까. 인간은 갈등으로 엮어진 시간 속에 풀지도 매듭짓지도 못한 역사의 숙제를 짊어진 채 이곳까지 왔고 미래를 향해 가지만 첨예하게 인식하는 사람, 안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찬하는 인식하는 편이며 오가다와 인실도 첨예하게 인식하며 고뇌하는 사람들이다. 찬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세 사람의 관계를 현실의 축소판 역사의 축소판으로 왜 생각했을까? 인실과 조찬하의 경우 한핏줄이라는 민족적 동질감은 있다. 그러나 이들의 거리는 명문과 중인 출신이라는 신분에 있지만 지식 계급으로 뛰어오른 인실의 현재에서 보면 신분의 차이는 상쇄된다. 아니 오히려 망국의 책임을 보다 무겁게 져야 할 조찬하의 계층이 켕긴다면 켕긴다 할 수 있다. 아무리 조찬하가 비켜서 왔다고 하나, 그는 지금도 그 신분의 자락을 끌고 있으며 과거의 지배층, 친일파, 오늘의 부르주아, 그런 것에 무관할 수 없다. 그가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이론적으로 긍정한다 하더라도 관동대지진을 목격한 인실이 조국 독립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맹세했고 한 번도 승리해본 적이 없는 눈물과 땀으로 살아야 했던 계급 편에 서서 투쟁할 것을 다짐한 인실과 조찬하 사이의 간격은 넓다. 아니 적대적 관계라 해야 정확할지 모른다. 뿐인가, 이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서로를 이해할 시간도 없었다. 오가다와 인실의 경우 한때 동지였고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넘을 수 없는 이민족, 그것도 지배자와 피지배자, 참으로 격렬한 적대관계가 이들 등뒤에 있다. 오가다와 조찬하와의 관계는 또 좀 다르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일본 여자를 아내로 한 남자, 조선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동병상련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이민족이라는 것도 비교적 극복한 우정으로 맺어져 있다. 상반되고 상합되는 이들의 관계는 바로 갈등 그 자체이지만 세 사람의 공통점은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첨예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 기둥 하나를 잡고 이들은 상반된 것, 상합된 것 때문에 갈등하고 역사가 안고 내려온 숙제를 물려받아 이들은 고뇌한다. 참 묘한 짜임새라 아니 할 수 없고 찬하가 말한 대로 축소판임엔 틀림없다. 찬하는 천천히 술을 마시면서 인실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실보다 시간이 먼저 와주기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했다.

심부름 아이를 불렀다.

"손님, 불렀십니꺼?"

방문을 열고 얼굴을 디밀며 소년은 물었다.

"뱃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한 시간쯤 기시믄 됩니다. 시간이 되믄 알리드릴라꼬 생각하고 있었십니더."

"알았다. 가보아라."

". 걱정 말고 기시이소. 한 손님은 주무시네요? 일본 사람이지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알았십니더."

소년이 나간 뒤 찬하는 가방 속에서 노트를 꺼낸다. 노트 한 장을 뿍 찢어서 노트 위에 올려놓고

"동경에서 만납시다. 나 먼저 갑니다. 놔두고 가는 봉투는 인실씨에게 전해주십시오. 임명희 씨에게 꼭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조찬하 종이를 접고 다른 봉투 하나를 꺼내어 함께 놔둔다. 그리고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이들을 놔두고 간다...... 이들을, 이들을 놔두고 가는 것은...... , 아니지.'

찬하가 도덕과 휴머니즘이 다르다 했을 때

". 다르고말구요. 때론 다를 정도가 아니라 상반되는 거 아닙니까."

한 오가다의 말을 떠올렸다.

'이들을 놔두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어젯밤에는 인실과 오가다의 밤늦은 외출에 대하여 몹시 불쾌했었다. 지금도 한 가닥의 불안이나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찬하로서는 이곳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는 그 감정만은 절실했다.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는 일어서서 외투를 걸치고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쪽지와 봉투를 자고 있는 오가다 양복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오가다는 늪에라도 빠진 듯 잠들어서 깨어나질 않았다.

계산을 끝내고 여관의 여주인에게

"저녁은 안 해도 될 테니까 손님 깨우지 마십시오."

이르고 아이에게 선표를 받아 든 찬하는 밤거리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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