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를 부탁해
유혜진
아파트 현관문이 바람에 덜컹거렸다. 나는 점퍼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아파트 게시판으로 갔다. 전단지들이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아파트 입구에서 혁기가 나에게 소리쳤다.
“한지윤! 너 게시판에 낙서하는 거 내가 다 봤어.”
“낙서 아냐. 고슴도치 찾으려는 거야!”
“고슴도치!”
혁기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내가 쓴 글을 읽었다.
“고슴도치는 한 마리뿐이야, 나머지 고슴도치가 있는 곳을 알려 줘? 이게 다 뭐야?”
“나 무지 바빠. 너랑 얘기할 시간 없어.”
아파트 뒤에 있는 게시판 쪽으로 뛰자 혁기가 뒤따라왔다. 말해 줄 때까지 계속 따라올 모양이다. 차라리 빨리 말하는 것이 낫겠다.
“금요일 밤에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나가 봤더니 고슴도치가 고구마 상자 안에 있는 거 있지. 고구마를 이렇게 오도독, 오도독 먹고 있었어. 진짜 신기하지!”
내가 고슴도치 흉내를 내자 혁기도 살짝 이를 드러내며 따라 했다.
“고슴도치가 어떻게 집에 들어온 거야?”
“내 생각에는 분리수거 할 때, 재활용 가방 안으로 들어 온 거 같아. 가방에 구멍이 났었거든, 거기로 들어온 거 같아.”
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고슴도치 찾아가라고 게시판에 전단지를 붙였어. 그런데 오늘, 집 앞에 이만한 고슴도치 집이 있는 거야! 고일, 고이를 부탁한다는 편지랑 같이 말이야. 고슴도치가 두 마리라고 적혀 있는데 우리 집에는 한 마리밖에 없어.”
“고일, 고이? 우리 형은 고3인데.”
혁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을 했다.
“갑자기 고3이 왜 나와. 아무튼 고슴도치를 찾으려고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거야. 주인이 글을 보면 고슴도치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거야.”
“고슴도치를 버린 주인이 그런 걸 알려 줄까? 모른 척할 것 같은데. 그리고 고슴도치가 인형도 아니고, 벌써 다른 곳으로 도망쳤지. 그러지 말고, 우리가 찾아보자. 놀이터부터 찾자.”
혁기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혁기가 먼저 놀이터를 향해 달렸다. 나는 지기 싫어 혁기를 앞질렀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들고 놀이터 모래바닥을 헤집으며 고슴도치를 찾았다.
“고이야, 어디 있니?”
“권혁기! 고슴도치가 고이인지, 고일인지 모르잖아. 이름을 틀리게 부르면 고슴도치가 짜증 나서 도망갈 거야.”
혁기는 코를 훌쩍 마시더니, 다시 고슴도치를 찾았다.
“고일인지, 고이인지 얼른 나와. 우리가 구해줄게!”
“너희 고슴도치 잃어버렸어?”
놀이터 앞을 지나가던 지오가 달려왔다. 혁기, 지오, 나는 같은 반이다. 혁기랑은 친한 편이지만 지오는 좀 불편하다. 지오 아빠가 기중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후부터 지오는 웃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웃지 않는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나오다가 부딪쳤을 때도 지오는 인사도 없이 갔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지오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그런 지오가 오늘은 먼저 말을 걸었다.
“근데 우리가 고슴도치 찾는 거 어떻게 알았어?”
혁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 그게, 고일, 고이가 고슴도치 이름 같아서. 지금 그게 중요해. 고슴도치를 잃어버리면 어떡해. 바보같이!”
지오가 소리를 질렀다. 마치 내가 고슴도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째려봤다.
“누가 바보야! 내가 잃어버린 거 아니거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지오를 흘겨봤다. 혁기가 고슴도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일처럼 말했다.
“가방에 구멍이 났었다고! 그럼 이런 곳에서 찾으면 안 돼. 고슴도치는 밝은 곳을 싫어해. 숨을 데가 많은 화단을 찾아봐야지. 으, 답답해.”
지오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난 척에 슬슬 짜증이 난다.
“네가 고슴도치 박사냐! 고슴도치 키워 봤어? 내가 찾을 테니까, 상관 말고 가.”
“한지윤, 네가 뭔데 가라마라야! 고슴도치 주인도 아니면서.”
지오가 양손으로 허리를 잡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찾아서 키울 거니까 내가 주인이다! 엄마가 주인 나타나지 않으면 키워도 된다고 했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찾는 사람이 주인이지.”
지오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나를 보았다. 속이 부글거린다.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하는데 혁기가 손을 들었다.
“저기 얘들아, 찾는 사람이 고슴도치 갖는 거야? 난 안 되는데, 우리 형이 고3이라 고슴도치 데려오면 싫어할 거야.”
혁기가 입을 내밀었다.
“이렇게 떠들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찾자!”
지오가 나를 흘겨보고 화단으로 갔다. 혁기는 눈치를 살피더니 지오를 따라갔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둘을 째려보았다. 찬바람이 옷 속으로 들어왔다.
‘고슴도치도 춥겠다.’
나는 지오 뒤통수를 째려보다가 화단으로 걸어갔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곳을 나뭇가지로 헤집어 보고, 화단 돌 사이도 살폈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던 할머니가 우리를 보며 소리쳤다.
“너희들 거기서 뭐하니? 화단 망가져! 얼른 나와.”
“고슴도치 찾아요. 누가 고슴도치를 버렸대요.”
혁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가 서둘러 강아지를 안았다.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벗어나려 했다.
“안 돼. 얌전히 있어. 고슴도치 가시에 찔리면 어쩌려고.”
할머니가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가족 같은 동물을 버리다니, 에이 못된 사람들. 쯧쯧.”
할머니는 강아지를 안고 지나갔다. 지오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왜 부러뜨려! 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냐. 말 못한다고 함부로 하고, 너도 고슴도치 버린 사람하고 똑같아.”
지오가 펄펄 뛰며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풀썩 주저앉았다. 혁기가 쪼르르 지오 옆에 앉았다.
“고슴도치, 죽었을 거야. 먹을 것도 없고, 추워서 얼어 죽었을 거야.”
지오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너 뭐야! 왜 그런 소릴 해. 짜증 나. 고슴도치는 살아 있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고슴도치가 죽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지오가 정말 싫다.
“아, 배고파. 고슴도치도 배고프겠다. 고슴도치는 뭘 먹고 살지?”
혁기가 배를 만졌다.
“과일, 채소, 벌레, 뭐든지 잘 먹어.”
지오는 어깨를 늘어트린 채 대답했다. 혁기가 눈을 반짝이며 지오와 나를 보았다.
“벌레? 지하 주차장에 많던데. 내가 어제 봤어. 모기도 있더라.”
“진짜 벌레가 있어?”
“응, 우리 형도 같이 봤어. 지하주차장이 따뜻해서 벌레가 살아 있는 거래.”
지오 눈이 커졌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지하 주차장은 컴컴해서 고슴도치가 좋아하는 곳이야. 벌레까지 있다면 분명히 거기 갔을 거야.”
지오가 벌떡 났다. 나는 지하 주차장 입구로 달렸다. 혁기와 지오도 달렸다.
“우리 고슴도치 꼭 찾자!”
혁기가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나는 지오와 혁기를 보았다. 혁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오는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셋은 지하 주차장 앞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혁기를 따라 벌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기야. 여기 벌레가, 잉? 다 없어졌네.”
“아냐, 고슴도치가 먹은 거야! 똥이 있어. 고슴도치 똥이 있어! 아직 따뜻해.”
지오가 똥을 만지며 눈에 힘을 주었다. 혁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다. 똥을 보니 마음이 놓여.”
나도 고슴도치 똥을 보니 막 힘이 났다.
“쉬! 조용히 해. 고슴도치는 귀가 밝단 말이야. 어서 찾아보자. 도망갈지 모르니까 조용히 다녀.”
잘난 척하는 지오가 얄밉지만 고슴도치를 위해서 나는 까치발을 들었다. 지오는 주차장 벽을 따라 걸으며 고슴도치를 찾았다. 혁기는 아예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는지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차 밑을 보았다.
“애들아, 여기 있어! 차 밑에…….”
혁기가 속삭였다. 나는 엎드려서 차 밑을 보았다. 지오가 내 옆에 엎드렸다. 고슴도치가 발을 꼬무락거리며 자고 있다.
“아!”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근데, 고일일까? 고이일까?”
내가 묻자, 혁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형은 고3인데.”
“너 왜 자꾸 고3, 고3 하는 거야. 오빠 있다고 자랑하는 거냐?”
“자랑하는 거 아냐. 우리 형이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조금만 떠들어도 꼭 고슴도치처럼 머리카락을 이렇게 세우고는 막 혼낸단 말이야.”
혁기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뿔처럼 세웠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실룩거렸다. 꼭 뿔난 금붕어 같다.
“크하하하!”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지오도 웃었다. 우리 웃음소리에 고슴도치가 꿈틀거렸다. 우리는 동시에 입을 가렸다. 고슴도치가 뒤척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커다란 음악 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들어왔다. 고슴도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시를 빳빳하게 세웠다.
“쉭, 쉭쉭, 쉭.”
고슴도치가 뒷걸음질 쳤다.
“어떡해? 고슴도치 화난 것 같아.”
“아냐, 겁나서 그런 거야. 모두 가만히 있어.”
고슴도치는 가시를 빳빳이 세우고, 뒤쪽으로 도망쳤다. 혁기가 발소리를 내며 차 뒤로 달렸다. 혁기 발소리에 고슴도치가 앞으로 왔다. 고슴도치가 코를 벌렁거리더니 지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고슴도치는 빳빳하게 세웠던 가시를 내리고 지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지오가 손만 뻗으면 고슴도치를 잡을 수 있을 거리가 됐다. 지오가 손을 내밀자 고슴도치가 코를 실룩거렸다. 쉭쉭 소리를 내며 뒷걸음쳤다. 고슴도치가 도망칠 것 같아 내가 얼른 손을 뻗었다.
“아, 따가워.”
가시에 손을 웅크렸다. 고슴도치가 자동차 밖으로 도망쳤다.
“고이야!”
지오가 고슴도치를 쫓아 뛰었다. 그때, 자동차가 고슴도치 쪽으로 왔다. 자동차 빛에 고슴도치가 멈춰 섰다.
“고슴도치야 달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고슴도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때, 지오가 고슴도치 쪽으로 몸을 던졌다.
“지오야, 안 돼!”
혁기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운전사에게 멈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만 휘저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끼익!”
자동차가 멈췄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야, 그렇게 나오면 어떡해.”
지오가 일어나자 운전사가 화를 내며 지나갔다.
“너 왜 그랬어! 큰일 날 뻔했잖아. 죽을 뻔했다고.”
나는 지오에게 달려갔다.
“네가 갑자기 잡으려고 하니까 고이가 도망친 거야. 우리 고이 죽을 뻔했잖아.”
고슴도치를 잡은 지오 손이 떨렸다.
‘고이? 우리 고이.’
머릿속에서 지오 말과 행동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저기, 너 고슴…….”
빙그레 웃으며 고슴도치를 쓰다듬는 지오를 보며 나는 말을 꿀꺽 삼켰다.
“정말 다행이야. 지오 대단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혁기가 벽을 잡고 걸어오며 말했다.
“지오야, 고슴도치 가시 따갑던데 어떻게 잡은 거야?”
“이렇게 코를 살짝 잡으면 고슴도치가 가시를 내려.”
지오가 고슴도치 코를 잡으며 살며시 웃었다.
“저기, 고슴도치 지오가 구했으니까 지오가 키우는 거야?”
혁기가 지오와 나를 보며 말했다. 지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고슴도치가 지오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지오는 고슴도치를 꼭 안았다.
‘저렇게 안으면 가시 때문에 배가 따가울 텐데. 많이 아플 텐데.’
나는 가만히 지오를 보았다. 지오 이마에 옅은 주름이 잡히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지오가 나에게 고슴도치를 건넸다.
“한지윤, 고슴도치를 부탁해.”
“정말? 내가 키워도 돼?”
나는 조심스럽게 고슴도치를 받았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웠다. 따끔했지만 나는 참아냈다. 지오가 가르쳐준 대로 코를 잡았다. 고슴도치가 뻣뻣한 가시를 축 내려뜨렸다. 나는 가시 결을 따라 쓰다듬었다. 지오가 배를 쓰다듬으며 고슴도치를 보았다. 혁기가 몸을 숙여 고슴도치와 눈을 맞췄다.
“나도 고슴도치 키우고 싶다. 우리 형이 고3이라 힘들겠지.”
“고슴도치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놀러와. 우리가 같이 고슴도치를 구했잖아.”
혁기가 제자리에 펄쩍 뒤며 웃었다. 지오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오야, 고슴도치에 대해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 봐도 되지?”
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던 고슴도치가 편안하게 누웠다. 따가우면서도 따뜻한 고슴도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