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3부 제 1 편 만세(萬歲) 이후
1장. 끈 떨어진 연
종로거리를 허둥지둥 걷고 있던 억쇠는 점포마다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참말로 가게문을 다 닫았구마.”
어젯밤 여관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1030호, 서울의 1030호 상점이 일제히 문을 닫는다는 얘기였다. 갑자기 맥이 빠진다. 억쇠는 어디를 향해 자신이 가고 있는지,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달아진다. 괴나리봇짐을 엉덩이에 붙이듯 한 손에 들고 우두커니 길 건너편을 바라본다. 건너편 길을 상현이 걷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반백이 된 맨상투에 집 나온 지 오래여서 무명 바지저고리엔 땟국이 흐르고 울상이 된 얼굴도 걸레같이 지저분하다. 전차가 땡땡 종을 울리며 지나간다. 지난 삼월에는 경전 종업원이 파업을 하여 전차는 운행이 중지되었었고 그 무렵 서울의 상가는 한 달 넘게 동맹 철시를 했었다. 지금은 또다시 서울의 상가는 동맹 철시를 한 것이다.
'맘들을 합친께 돈에 무서븐 장사꾼도 돈 마다하고 장시를 안 하는데... 돈보다도 나라가 있어야겄다 그거겄는데, 그렇지마는 저런다고 독립이 될까 몰라? 그러크름 생목심이 날아가고 조선 천지가 들고일어났어도 왜놈우 새끼들 어디 끄떡이나 해야 말이제?'
억쇠는 휘적휘적 걷기 시작한다. 아직 날씨는 쌀쌀하다 할 수 없으나 억쇠는 왠지 한기가 든다. 배도 고팠다. 국밥 한 그릇 사먹을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고 먹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믿을 수가 없다. 이자는 누가 머라 캐도 믿을 수 없단 말이다. 처음에사 만세만 부르믄 독립이 될 줄 알았제. 그러크름 말들 하니께. 흥,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객이라. 되는 기이 머가 있노. 하났도 되는 기이 없단 말이다. 우리댁 나으리 만 해도 안 그렇건데? 이십 년을 넘기 기다리도 아무 소앵이 없었인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기는커냥 사람 얼굴조차 가물치 콧구멍 아니가. 함흥차사라, 함흥차사. 되지도 않을 일이라믄 진작 말일이제. 식솔들만 생고생을 시키고, 좌우당산에 충신이 되든 역적이 되든 군사를 몰고 와서 쌈을 해야 무신 결판이 나지. 만판 만세 불러봐야 소앵이 있나. 목만 터지건데? 모가지는 날아 안가고? 그거를 두고 개죽음이라 하는 기라. 나겉이 무식한 놈이사 군대쟁이 영문 모르고 나섰지마는.'
울컥울컥 치미는 것을 억쇠는 참는다. 되리라는 독립이 안 되는 것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상현을 찾아야 했으며, 찾는다는 일이 막연했고 닷새 동안 서울 장안을 헤매었지만 아직도 빈 거리를 정처 없이 걷고 있다는 일이 울적했던 것이다.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 그러나 걷기는 걸어야 한다. 이제는 상현의 생사를 근심하기보다 상현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치민다.
'가문에 없는 인사가 어디서 하나 생기가지고 망나니는 접방 나앉으라 칸다. 이름이 좋아 불로초다. 빛좋은 개살구다. 나라일을 하기는 무신놈의 나라일을 해. 주색잡기도 나라일이라 말가. 대대로 청백리로서 평판이 난 가문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카더마는 이부사 댁도 이자는 콩가리 집안이다. 그놈의 신식 공분가 먼가 그기이 사람 망쳤제. 아주 못쓰게 망쳐놨다 카이. 좌우당간에 어디 거서 사램을 찾노. 새상없이도 찾아보고 가얄긴데, 그냥 내리가 보제? 초상 날 기다, 초상 날 기라카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걷는데
"여보시오, 늙은이."
"야? 나 말입니까."
억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금테 안경을 쓰고 콧수염에 양복을 잘 차려입은 신사다. 나이는 삼십 안팎인 듯 안경 속의 눈매가 갸름하다.
"당신 상전 찾아다니시오?"
"예 저어,"
"나 이상현의 친구요. 언젠가 상현이 하숙에서 만나지 않았소?”
사내는 껄껄걸 웃는다.
"맞십니다. 그 그런데 우리댁 서방님은 지금 어디 기십니까?"
주린 개가 고기에 덤벼들듯 억쇠는 시근덕거린다.
"동대문 밖에 가면은 쌍과부주점이 있소. 그곳에 가보시오. 그러면 상현이 거처를 알으켜줄게요."
"예, 예.이거 참 알것십니다."
연신 굽실거린다.
"웬만하면 함께 집으로 내려가도록 하시오."
"그, 그거사 가신다고만 하시믄,"
"신문사도 그만두고."
"그, 그랬다 하더마요."
"피신인지 뭔지 온, 하여간에 날이면 날마다 술타령이니 그러다가 몸 버릴까 걱정이구먼."
거만스런 모습과는 달리 퍽이나 싹싹하다. 억쇠는 상현의 거처를 알려주어 고맙기도 했으나 공대말 때문에 황송해한다.
"그럼 가보시오."
"이, 이, 참 고마바서, 고맙십니다 나으리."
싹싹할 때와는 달리 사내는 인사 같은 것은 받지 않고 휑하니 가 버린다. 억쇠는 전차가 지나가면서 울리는 종소리에 쫓기듯 허둥지둥 걷는다. 동대문 밖에는 과연 쌍과부주점이라는 게 있었다. 그곳 주모사 일러준 대로 주점에서 과히 멀잖은 골목을 들어선 억쇠는 주먹으로 코끝을 한 번 문지르고 그 주먹으로 세 번째 집 대문을 꽝꽝 친다. 상현의 거처를 알아내어 반갑기도 하고 반갑다 보니 괘씸한 마음도 못지않아 대문에다 오기를 부리는 것이다. 아낙이 놀라서 쫓아 나온다. 억쇠의 행색을 훑어본 아낙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뉘를 찻소!"
"여기 하동 손님 기시지요."
아낙은 억쇠에게 대꾸를 하지 않고
"아랫방 손님! 누가 찾아왔어요."
하고는 들어가 버린다. 뜰아랫방에서 상현이 내다본다. 창백하게 여윈 얼굴에 눈동자도 흐릿하다.
"서방님!"
"음, 올라오지."
하고는 장독대 쪽을 힐끗 쳐다본다.
"해도 너무합니다! 이기이 무신 짓입니까!"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억쇠는 울부짖듯 악을 쓴다.
"빚 받으러 왔느나? 소란을 떨게."
씁쓰레 웃는다.
"온 장안을 얼매나 싸돌아당겼는지 아시고나 하는 말심입니까? 미친 놈 맨치로 참말로 못할 일입니다."
"못할 일 안 하면 되는 거지.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찾아오면 안 될 곳입니까?"
잡아 비틀듯 말하며 억쇠는 상현을 똑바로 쳐다본다.
"흐흐흣...내가 무슨 독립지사라고... 아니며 계집 데리구서 살림 차렸다더냐? 하하핫핫..."
"안 그러시다믄 와 일자 소식이 없었십니까?"
"세월 좋다, 세월이 좋긴 좋군. 하기는 상놈들이 만세는 더 잘 부르고 다니더라만."
자조의 웃음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눈빛이 험악해진다. 그 말대꾸까지 했다가는 고함이 터지거나 훌쩍 일어나서 모자 들고 나가기 십상일 것인즉 억쇠는 어거지로 참는다. 어세를 누그러뜨리고,
"황부자댁 서방님만 기셨더라도 그 고생은 안 했을 긴데 피양 가시고 안 기시서."
말머리를 돌린다.
"신문사도 여러 분 찾아갔십니다마는 모두 다 서방님 기신 곳은 모린다 카고 사램이 환장하겄더마요. 그래서 황부자댁 서방님 돌아오실 때까지 메칠 몇 날이고 간에 기두릴라 안 했십니까. 노자가 떨어지믄 다리 밑에 꺼적을 깔거 자더라 캐도, 그냥 우죽우죽 내리가 보이소. 생죽임 날 긴데 세상에 그런 환장할 일이 어딨겄십니까."
상현의 성질을 잘 아는 억쇠는 할 수 없이 호소조로 나온다. 성질이 격한데다 편협하고, 그러나 상전과 하인의 관계를 떠나 상현을 사랑했던 억쇠였으므로 상현 역시 그를 하인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한데 이 몇 해 동안 사람이 변한 것이다. 남의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니기도 했었지만 기실 자기 자신의 약점 때문에 상현은 더욱더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판국에 그 양반을 만냈이니,"
"그 양반아라니?"
"작년 가슬에 그러니께 서방님하고 함께 기시든, 왜 그, 금테 안경 쓰시고,"
"아아."
"그 양반 눈살미가 예사 아니더마요. 지는 코밑에 시염이 있어서 몰랐는데 그 양반이 먼지 알아보시고서 당신 상전 찾아다녀요? 하지를 않겄십니까? 꼬박꼬박 공대를 하는 바람에 도리어 황송하고,"
"황송해할 것 없다. 그자는 상놈 출신이고 이른바 평등 사상, 박애주의니까."
"예? 바, 박애가 멉니까?"
"넌 알 것 없다."
무안을 준다.
'제에기, 알 것 없이믄 와 말을 끄냈는고?'
꿀컥 침을 삼키고,
"황송하기도 했지마는 고마바서, 마치 저승서 할아부지 만낸 것 맨치로 반갑고 그 양반 안 만냈이믄,"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지?"
"언제는 소인이 무신 일이 있어야만 서울 왔십니까?"
소인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상현을 노려본다.
"빤히 아는 일을 가지고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역부러 그러시는 지는 모르지마는 조금은 남우 사정도 생각해주시야지요. 아무리 나라일이 바쁘시기로 그래도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이며 열매 안 달린 나무가 어디 있으며,"
"내가 나라일 하느냐?"
아까처럼 씁쓰레 웃는다.
"그거사 머, 칼 들고 싸우는 것만 나라일입니까. 예적에도 임금님한테 상소를 올리가지고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었다 안 캅니까, 그렇다믄 목심 거는 일이사 다 마찬가지 아니겄십니까. 아씨께서 서방님은 글을 써가지고 싸운다 캤심다."
들은 풍월로 얼렁뚱땅 넘긴다. 망나니니 이름이 좋은 불로초니 빛좋은 개살구니 하고 혼자서 욕을 했지만. 사실 억쇠는 이제 상현을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나라 일을 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생각도 아니 했다. 상현과 억쇠의 눈이 마주친다. 억쇠는 당황하고 상현은 비웃는다. 늙은 게 입에 발린 소리도 제법 하는군, 비웃음은 소리가 되어 끼룩끼룩 새나온다. 억쇠의 얼굴이 벌개진다.
'잘못은 그쪽에 있있음서 와 나만 몰아 세우노.'
"나 잠깐 다녀올 테니 억쇠는 여기 있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상현은 훌쩍 나간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심한 갈증을 느낀다. 갈증이 나나마나 이미 그는 주점에 가기 위해 나온 것이다. 모든 인연이 지겹고 귀찮다. 연일 죽으라고 마신 술에 내장이 녹아 문드러진 것만 같은데 항상 갈증이다. 쌍과부주점 술판 앞에 돌부처처럼 앉아서 상현은 골똘히 술을 마신다. 술 마시는 이외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더구나 하동의 집 생각은. 일제히 철시를 했기 때문인지 주점은 한산 하다. 지난 삼월 연달아 일어났던 만세 시위, 그 군중 행렬이 상현의 눈앞을 지나간다. 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이 자식 상현아!"
시위 군중 속에서 서의돈이 상현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내질렀다.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내며 상현이 소리 질렀다.
"네! 형님!"
"이제 술 고만 처먹는 기다!"
"네! 형님!"
"우리 조선놈들 제법이다."
"그럼요, 형님!"
그때의 만세 행렬이 눈앞에 지나간다.
"이 자식아! 고만 울어라!"
"오늘만요!"
상현은 소년같이 울었다.
"상현아!"
"으흐흐흐..."
"이 많은 사람들 속을 뒹굴고 싶구나! 밟혀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다!"
"우리 독립되는 날에 밟혀 죽읍시다!"
이판서댁 사랑방이 눈앞을 지나간다. 털어버리려 하는데 자꾸 지나간다. 불에 굽힌 것처럼 홍당무가 된 얼굴을 흔들어대며 홍종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불이 붙었다! 신나게 불이 붙었어! 사방팔방 사하 구별 없이 다 나섰다! 경찰서 면사무소가 시위 군중에게 마구 밟히고 곳곳에서 습격이야! 그리고 오늘은 경전이 파업에 들어갔다! 용산인쇄소! 철도국! 연초회사! 모조리 파업이야! 상현아!"
"응"
"오늘은 왜 맥이 없어! 좀 떠들어!"
"어쩐지 떠떠미지근한 것 같아서 말이야."
"뭐가!"
"해와 반응 말이야."
"아직 일러! 좀 두고 봐야지. 그보다 국내에서 운동이 장기화되고 확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반응이야 운동이 지속되고 확대되는 따라서 나타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렇게 생각 안 하다니?"
"윌슨의 민족자결 선언을 일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신문기자의 생각과 내 생각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군."
그 말은 들은 척 만 척,
"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윌슨이 재강한 구세주는 아니거든. 그도 정치가야. 또 사실 이번 전쟁에 미국이 주역도 아니고."
"그러니 어떻단 말이야? 의존해서 독립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애? 얼마든지 선례가 있지 않느냐 말이다. 우리 힘으로 하는 거야, 우리 힘으로. 삼천리 방방곡곡에 불이 붙어 타오르면 되는 거야. 민족 자결주의고 개나발이고 떡 조각 나누어줄 듯할 상 싶은가? 나는 숱하게 나오는 그놈의 선언문 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어. 아니꼽단 말이야. 평화적으로, 평화는 무슨 놈의 평화야. 왜놈이 조선을 들어 먹을 때 평화적으로, 제에기, 도적놈들이 평화적으로 남의 물건 빼앗았다는 말도 들도 보도 못했다. 내 물건 내가 찾으려는데 신사적으로 내놓으시오, 내 물건 간수할 능력이 있으니까 제발 내주시오, 이건 사뭇 애원이거든."
"그럼 와와 소리 지른다고 힘센 도적놈이 빼앗은 거 내어주나?"
"이거 왜 이래?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소리 작작하라구."
홍종은 화를 냈다.
"내 애긴 그러니까 그놈보다 더 힘센 놈이 옆에서 중재를 들든 견제를 하든, 그러지 않는 한 불가능이야."
"온 사람이, 백팔십도 돌았군. 울고불고 지랄 발광하던 게 누구야."
"너무 달콤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애. 미국의 대통령 윌슨만큼이나."
결국 홍종과 상현은 싸우고 말았다. 그 홍종도 밟혀죽어도 좋겠다는 서의돈도 지금 상해로 사버리고 없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잦아드는 불씨처럼 되어가고 대신 해외로 번져서 한때 저조했던 항일 투쟁에 기름을 부었다는 자위는 있었지만 상현은 해외에서 움직이는 못 단체, 기라성같이 많은 독립투사에게 기대를 걸지 않은 것은 3.1 운동이 성과 없이 끝난 데 비롯된 것은 아니다. 다소 심리적인 영향이야 끼쳤을 테지만 상현은 자기 자신, 이상현이란 한 인간에 실망하고 자신을 잃은 것이다. 소주 반 되를 사들고 하숙방에 돌아왔을 때 억쇠는 풀이 죽어서 앉아 있었다.
"박서방,"
술 취한 음성은 부드러웠다. 다소 억쇠라 않고 박서방이었다.
"약주하시고,"
억쇠는 어이없는 듯 상현을 쳐다본다.
"약주했지. 했다 뿐인가? 박서방하고 함께 마시려고 소주를 사왔네."
"..."
"그렇게 원망스리 날 쳐다보지 말게. 나도 양심은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 있네. 처가 덕으로 일본까지 유학하고 온 놈이 처자식 다버리고 팔난봉이 됐으니 말이야."
"잘 아시누마요."
뚝배기 깨지는 소리다.
"알지, 알고말구."
아낙이 술상을 보아온다.
"술 따라. 박서방 잔에도 붓고."
하여 늙은 하인과 젊은 상전은 슬을 마시기 시작한다. 두서너 잔을 마신 뒤 억쇠는 손바닥으로 수염을 닦는다.
"좌우당간 서방님께서는 집안 소식을 묻지 않으시니께 소인이 말심디리겄소. 마님꼐서는 서울 사람들 다 죽었다 카는데, 하시문서 속을 하도 끓이신께 밤마다 가심앓이 따문에 욕을 보십니다. 저분 때는 돌아가시는 줄 알고 집안이 뒤집혔지 않았겄십니까? 마님께서는 본시부텀 대범한 어른이신데 웨낙이 진 세월이라... 북쪽에 기시는 나으리 마님 말심은 입 밖에 내시지도 않십니다마는 내신 서방님 말씸은 날이믄 날마다 염불 외시듯이, 우떤 때는 정신도 확실찮으신지 우시고 막 원망을 하시고 그러시면 젤 괴로바하시는 분은 아씨지요. 큰도련님은 또 어떠시고요? 할머님 어머님한테는 입 꼭 다물고 시심서 소인보고는 할아범, 서울 가서 아버님 모시오라 하고 쫄라대지 뭡니까?"
"박서방."
"예."
"나이하고 군소릴 늘게 마련인가 부지?"
"그거사 머."
"박서방도 늙었어."
"지만 늙었십니까? 감나무를 오르내리믄서 장난이 심하든 도련님도 내일모레 삼십입니다."
"삼십 고개, 하하핫... 넘어가기 어렵군. 자, 자, 술이나 마시자. 죽은 사람도 많고, 감옥에 갇힌 사람도 많고, 한데 못난 아들, 못난 남편, 덕분에 이리 피둥피둥하니 좀 좋으냐?"
"하기사 죽은 정승이 산 개돼지보다 못하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상현에게 곁눈질을 한다.
"개돼지가 되어도 오래오래 살아달라. 아암 오래오래 살아야지. 지금 이 나라엔 애국 애족심이 팽배하여 바야흐로 씨가 마를 지경인데 나 같은 놈도 있어야 씨종자... 음."
듬뿍 취해서 돌아와 다시 술, 혀 꼬부라진 소리가 중도에서 끊긴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
"무신 말심을 그러크롬 하시오. 마치 서방님이 친일이나 한 것 겉소."
술이 들어가니 억쇠의 배짱도 두둑해진다. 물론 늙은이라는 특권의식도 있었지만.
"걱정마라! 나는 아무 짓도 아니 했느니라!"
"하지마는 하동 땅 소문으로는 아부사댁 서방님은 서울 만세 소동에서 웃대가리 노릇을 했느니 잽히갔느니 총을 맞아 죽었느니 별의별 말이."
"으흐흣흣... 하하핫... 어이구 재미있다. 그래 부전자전이라 했겠구나."
상현은 수전증에 걸려 떨리는 손으로 궐련을 붙여 문다. 순간 억쇠의 얼굴에 연민의 빛이 지나간다. 시운을 잘못 만나, 한탄같이 마음속으로 뇐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고, 그도 그럴 것이, 무작한 왜놈들이 무신 짓이든 못하겄십니까. 생사람을 집 속에 가두어놓고 불을 질러서 태우 직이는, 만세 부른 기이 멋이 크게 죄가 된다고 천하에 무도한 놈들, 천벌을 안 받을 성싶습니까. 남쪽에서도 사람 많이 상했지요. 만세 소동이사 안 난 곳이 없었인께요. 처음 나기로는 함안인데 젤 심하게 여러 차례 소동이 벌어진 것은 합천 그쪽이었지요. 곳곳에서 주재소 면소를 때리부시고 붙들리간 사람들 뺏을라고 밀리가고, 지 생각으로는 마 동학군만한 군대가 있었어도 뒤엎지 않았나 싶었십니다. 그만큼 구석구석까지 만세를 불렀는데 빈주먹이니께."
억쇠는 게 나름대로 비분강개, 한바탕 늘어놓을 작정이다. 상현이 무사한 것을 보았겠다, 위급한 불을 껐다는 일종의 안도감도 있었다. 그러나 빈속에 독한 소주가 들어갔기 때문인지 취기는 급히 왔고 비상 먹은 파리처럼 맥을 출 수가 없다. 어지럼증과 대결하듯 억쇠는 차츰 될 소리 안 될 소리를 마구 지껄였고 왕왕 소리를 질렀으나 그것은 가위눌린 헛소리처럼 뚜렸다지 않았고 차츰 잦아 들었다. 억쇠가 눈을 떴을 때 맨 먼저 상현의 얼굴이 있었다.
"우찌된 일입니까?"
억쇠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새우 눈은 더욱 작아 보이고 이마와 턱은 한층 앞으로 나온 듯 그의 양 볼은 형편없이 꺼져 들어갔다.
"날이 새었네."
"예? 지가 그라믄,"
"..."
"이거 참, 그나저나 내리갈랍니다. 하동서는 하루가 열흘 맞재빌긴데 그새 무신 일이라도 있었이믄."
상현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지나간다.
"서방님도 그만 지하고 함께 내려가싯이믄 놓것는 데요."
"아니야."
퉁기는 어세가 강하다.
"마님께서는, 또 아씨도 소식 전하면 어머님 가슴앓이도 나으실 게야."
일단 말이 떨어진 이상 다시 말한다는 것은 헛수고다. 억쇠는 입을 봉하고 아무것도 없는 벽을 훑어본 뒤 장지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해장이나 하러 갈까?"
상현이 양복 윗도리를 걸쳐입는다.
"지는 이 길로 내리가겄십니다."
쌍과부주점에서 뜨거운 해장국을 마시다가,
"아뿔싸!"
상현이 억쇠를 힐끗 쳐다본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전할 기이 있었는데 까매기겉이 잊어부리고,"
상현은 무심상하게 술을 마신다.
"올라올 직에 진주를 들렀더마는 최참판댁 마님께서,"
한참을 부시럭거리더니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상현 앞으로 밀어놓는다.
"서방님을 드리믄 전해주실 거라 말심하시더마요."
"알았다."
아무렇게나 호주머니 속에 꾸겨 넣는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담담한 표정이다. 억쇠를 보내놓고 하숙으로 돌아온 상현은 봉투를 찢는다. 백 원짜리 지폐가 몇 장 무릎 위에 떨어진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다. 짤막한 인사말과 동봉한 오백 원을 임역관댁에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편지는 꾸겨서 방구석에 던지고 돈만 봉투에 다시 넣어 호주머니 속에 간수한다.
'가야지.'
서희의 부탁이 아니었어도 임역관댁에 갔어야 했다. 진작부터 갔어야 했던 것이다. 효자동에 있는 전직 역관 임덕구의 집엔 여자들만 남아 있다. 명빈의 어머니 유씨와 만삭이 됐을 병빈의 아내 그리고 임역관이 몹시 사랑했던 명희가 어린 조카 둘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만 남은 집안, 진작부터 갔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현은 조반을 먹고 한나절이 지났는데 벽을 행해 앉아 있는 체다. 마치 저 벽을 뚫어야지, 뚫어야지 하는 것처럼 벽만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벽이 가진 저항, 상현의 의식 속에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임역관댁의 그 침췌된 분위기와 자기 자신과의 함수 관계에 대하여 공포감까지 느끼기 시작한다. 억쇠가 서희의 편지만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도 임역관댁에 가는 것이 당장 코앞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방문을 지연시킬 수 있고 아예 외면을 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지난 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날 상현은 그 집에 갔었다. 구금되었던 명희가 풀려난 지 십여 일쯤 된다는 말을 했다. 여자들만 남은 집안, 반은 깨어 있고 반은 잠이 든 그런 상태로 숨을 쉬고 있는 그 집에 상현은 가야 한다.
'빌어먹을, 뭣하러 올라와서.'
궐련 하나를 뽑아 붙여 물며 상현은 중얼거린다. 방안 공기가 설렁한다. 이대로의 상태에서 시간이 급류처럼 흘러가버렸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밀어먹을, 뭣하러 올라와가지곤."
억쇠에 대하여 화가 난 것은 아니다. 쉬고 싶은 것이다. 아니 죽고 싶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상현은 쉬는 것과 죽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 차이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도피에의 강렬한 욕구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거의 모두가 감옥 아니면 해외로 나갔고 그 공과는 여하튼 삼월에 터진 운동을 둘러싼 움직임이다. 왜 상현은 서의돈과 함께 상해로 가지 않았는가. 실상 감옥이나 해외엔 가지 않았지만 상현이 자신도 명색으론 피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헌의 손길을 피해 숨어 있다기보다,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서 몸을 피하고 있다는 자의식이다. 끈질기게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 청백리 이사부댁의 후예 지조 높은 독립투사 이동진의 아들이라는 것, 간도 연해주를 방황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문물에 접했으며 세계의 흐름을 숨쉬고 온 지식분자라는 것, 또 상현은 어디서 숨을 쉬었는가. 그것이 바록 탁상공론일지라도 독립, 독립 독립을 외치는 짧은 열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그 비중은 자신의 열정보다 항상 무겁고 크다. 의문이나 냉정이나 비판이 허용될 수 없는 절대적 명제인 것이다. 곳곳 장터에서 만세를 부른 장꾼의 의문이나 냉정, 비판보다 죄가 무거운 것이 지식분자다. 상현은 자신의 인간됨이 선이 가는 것을 안다. 동시에 맹목적 무조건일 수 없는 자신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꽃같이 떨어져라! 꽃같이 떨어질 충격이 있어야 한다. 서의돈과 함께 군중 속에서 울었다. 밟혀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체처럼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조선도 고아임을 확인할 수밖에 없고 상현은 자신도 끈 떨어진연일 수밖에 없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비애가 단순할 수 없는 것이다. 비겁한 놈! 유약한 놈! 비애는 겁을 먹는다. 해질 무렵이 다 되어서 상현은 하숙을 떠났고 임역관댁을 향해 걷는다. 단벌 신사라 하기에도 민망스러운 낡고 꾸겨진 양복이 헐거운 구두가 털버덕털버덕 소리를 낸다. 연해주 연추에서 서희와 길상의 혼인 문제로 의견이 충돌했을 때 마지막 아버지 이동진을 원수같이 쳐다보던 증오와 비애, 아픔을 불붙던 신선한 젊은 날의 눈빛은 사라지고 무기력한 냉소를 띠며 상현은 걷는다.
버린 파랑새였을 테지만 상현은 임역관댁 여자들이 아직 그 한 가닥 희망에 매달려 있을 것을 생각한다. 3월 2일 대구서 벌어졌던 대시위에 임역관이 합류하게 된 것은 하인을 데리고 대구에 볼일을 보러 내려갔기 때문인데 사상자 이백 명이 넘는 대시위에서 불행하게 임역관 두 주종이 사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임명빈은 소위 독립운동 주모자의 한 사람이라 햐여 지금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채였으며 최서희가 돈 오백 원을 억쇠 편에 보낸 것도 임역관댁이 결단이 났기 때문이다. 임역관댁 여자들이 한 가닥 희망에 매달려 있을 것은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운명이라 해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 역사가 혹은 운명이 언제, 아니 가까운 시일 내에 광명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희망, 하기야 자비롭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이상, 그것이 속 다르고 겉 다르다 하더라도 하여간 세계대전의 전승국 지도자들이 헤프게 뿌려놓은 복음, 피압박민을 향한 민족자결이라는 황홀한 선언은 전폭적인 희망과 기대가 아니었던가. 지금 황홀한 무지개는 사라져가고 있고 자기 이권이 냉혹한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도사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눈물 마른자리에서 나약한 여자들이 한 가닥 희망마저 버린다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 아니겠는가. 아들 때문에 유식해진 어머니, 남편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된 아내, 세상 떠난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명희가 듣고 오는 국외 사정에 일희일비하고 어디어디의 무슨 선교사가 일본에 항의를 했다 하면은 당잔 독립이 되어 아들이, 남편이 풀려나올 것처럼 기뻐하고. 상현의 걸음이 무디어진다. 갑자기 역겹고 짜증이 치민다. 그들 얼굴을 보는 일이 싫어진다. 거리를 지나가는 뭇 조선인들의 얼굴이 보기가 싫다. 그것은 또한 자기 자신의 얼굴인 것이다. 항일 투사든 변절자든 관망자든 남녀노소, 신분의 상하를 막론하고 망국의 쇠사슬은 누구에게나 걸려 있는 것이다.
'제발, 제발 맙소사!'
임역관댁 대문이 보인다.
"뭐야? 애기를 낳았군."
대문에 삼줄이 걸려 있었다. 빨간 고추와 숯이 매달려 있다.
'야단났다. 아들 낳은 것은 고마운데 그냥 돌아갈 순 없고 어떡헌다지?'
상현은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고 삼줄을 바라본다.
'아들이라...'
문득 용정촌의 송장환 얼굴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은 사람이다. 서희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아니, 상현은 임명빈과 송장환을 혼동한 것이다.
"이선생님 아니세요."
돌아보지 않아도 명희였다. 상현은 쉽게 돌아보아지지 않는다.
"이선생님."
"아, 네."
"언니가 애기를 낳았어요."
명희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는다.
"아들이군요. 축하합니다."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은 명희는 생각보다 어둡지가 않다. 여위었으나 푸르게 보일 만큼 살및은 훨씬 희어지고.
"어디 갔다오는 길입니까."
"학교에 잠시 다녀오는 길이에요. 사표를 냈는데 학교선 휴직으로 그냥 내버려둘 모양이에요.”
"어차피 나가시기는 하셔야지요."
"글쎄요..."
아랫입술을 물면서 신발 끝을 내려다본다. 동경 가서 전문학교를 마친 뒤 명희는 모교에서 가사과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구구한 얘기가 있긴 하나 현재까지 그는 독신주의자였다.
"어려운 걸음인데 이래서 어떡허지요?"
"어머님께 인사나 드릴까 싶었슴니다만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럼,"
상현은 호주머니 속에서 봉투를 꺼내어 명희에게 준다.
"...?"
"진주 최서희 씨가 인편에 보냈더군요. 생활에 보태 쓰시라는 뜻인 듯싶습니다. 아버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그러나 봅니다."
"그분이... 장례 때도 적잖은 부의금을 보내주셨는데."
좀 당혹해한다.
"명희씨가 미안해할 건 없습니다. 그쪽에선 그럴 만한 의무가 있으니까요."
명희는 상현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럼 미안해 안 하겠어요. 그보다 이선생님은 괜찮으세요?"
"괜찮으나마 내가 뭐 한일이 있습니까? 일개 룸펜인데,"
"어젯밤 서참봉댁을 형사들이 습격했어요."
상현이 서의돈의 집 지붕을 힐끔 쳐다본다.
"서선생님이 상해서 잠입해왔다는 정보를 받고 왔다나요? 온 집을 뒤졌어요."
상현은 아무말도 않는다. 한참 후,
"그럼 안녕히 가세요."
상현은 굳은 자세로 멀어져가고 명희는 상현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아니요 그냥 우두커니 서 있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상현이나 명희는 다같이 감옥에 있는 명빈의 얘기는 입 밖에 내지 않고서 헤어진다.
2장. 전주행
상현은 전윤경을 따라 전주에 내려왔다. 바람도 쏘일 겸 함께 가자고 권하기도 했었지만 더 이상 서울서 견딜 수 없었던 상현은 하동이나 전주에는 가기가 싫었고, 한편 전주에 봉순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일이 혹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있어 전윤경과 동행을 한 것이다. 전주는 첫길이 아니었으나 생소하기론 처음 왔을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평지에 가지런한 기와집들은 깔끔한 느낌이며 왠지 모르게 나그네를,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상현이."
"응."
"어때, 기분 전환이 되냐?"
금테 안경 속의 갸름한 눈이 얕잡는 것 같은 미소를 띤다.
"사치스런 소리 하지 말어."
"음, 그런 소리 한 줄 알았지."
"알면서 왜 물었누."
"그게 내 취미이거든."
갈색과 흰색이 얽섞인 홈스펀 코트의 깃을 세우며 윤경은 오래 간만에 찾아오는 고향을 아무런 감회 없이 바라본다.
"열등감이 빚은 취미지."
상현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건, 이상현 특유의 오해야."
"말재간을 농하는 것도 전윤경의 취미 중 하나라."
두 사람은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매도 자꾸 맞아 버릇하면 덜 아프고 실연도 여러 번 하면 덜 괴롭고 좋은 일도 마찬가지지. 재미가 덜하는 법이야. 자네 그 사치스럽다는 자의식이라는 것도 여러 번 조롱을 당하면은, 그러니까 자네가 말하는 내 취미는 열등감에서 빚어진 게 아니라 박애주의에서 비롯된 거다 그 얘기야."
"동문서답 같은 내용이군."
시시한 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상현은 걸으면서 시선을 멀리 던졌다. 전윤경도 상현의 시선 쪽을 바라보며,
"해가 지는군."
"..."
"일찍 들어가도 멋쩍고, 어때? 술 하러 가겠나?"
"그거 좋지."
상현의 음성에 생기가 솟는다.
"흥, 술이 아니라 바로 생면수구먼. 술 좀 안 먹이려고 끌고왔더니 우거지상을 차마 볼 수가 있어야지."
윤경은 자신이 제안해놓고, 화가 난 듯 혀를 찬다. 전라도의 갑부 아들 전윤경은 상현이 일본 유학 당시 사귄 친구다. 상현보다 두 살 위니까 서른하나, 진작부터 동경으로 건너가서 별로 신통치 못한 전문학교를 전전하다가 마지막 중퇴하기론 일본 대학이다.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특히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에게 경도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글을 쓸 생각은 없는 듯 그러나 상현에겐 문학을 해보라고 자주 권유를 했었다. 서울서 임명빈과 상현이 동인지 비슷한 얄팍한 잡지를 서너 호 냈을 적에 물심양면 도와준 사람은 전윤경이었다. 그는 다분히 자유분방하였고 소위 댄디스트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여자도 많이 사귀는 편이지만 무절제하진 않았으며 향리에 있는 가족에겐 관례대로의 아들, 남편,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했다. 이번 3.1운동 때도 참가는 했으되 다른 또래처럼 열광적이진 않았고 또 그는 책상을 치며 일본제국주의를 규탄하고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질 때 늘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친일파라 지목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으슥한 골목에 들어섰다. 박모의 어스름이 아직 감도는데 기생집 처마 밑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구매! 나으리, 워쩐 일이시오? 자아, 싸게 오르시시오."
버선발로 뛰어내리며 중년 기생이 호들갑을 떤다. 전윤경은 마루로 올라서며,
"그간 잘 있었나, 초월이?"
"그럭저럭, 안 죽으니께 나으리를 다시 보는디 참말로 반갑구만이라우. 얘들아, 뭣들 하는 거여! 싸게 나으리 뫼시랑께."
젊은 기생들이 달려 나오며 가는 허리를 흔들어대며 인사를 한다. 안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초월이 새삼스럽게 머리를 매만지며 들어온다.
"가뭄에 단비 만난 것 같지 않는가?"
"예?"
"그간 장사 안 했을 텐데?"
"말심 마시쇼. 손님도 적었지만 우리도 장사 안 혔인께로. 온 나라가 야단인디 기생만 먹고 살겄다고 장사헐 것이요?"
"하기야 기생들도 만세를 많이 불렀지."
"이 나라 백성인께."
"참, 인사하게나. 장차 이모씨보다 유명한 소설을 쓸 사람이야. 게다가 미남이고."
"이모씨가 누구다요?"
"무식하군. 시골 기생은 할 수 없어."
"들은 풍월이 없인께로, 손님, 초월이라 허는디 앞으로 고벡 보아 주시쇼."
젊은 기생 둘이 차례로,
"죽희라 하옵니다."
"매원입니다."
"인사가 끝났으면 술부터 가져오게. 나는 술 마시러 왔지 낯짝 보러 온 게 아니야."
따분하게 앉아 있던 상현이 뇌까린다.
"오매, 섭섭혀서 이를 워쩔거나?"
초월이 상현을 쳐다본다. 목소리는 촌스러웠지만 무르익은 자태, 오뚝한 코와 풍정 있는 입모습, 아름다운 얼굴이다.
"하라는 대로 하는 게야. 나같이 정이 뚝뚝 떨어지는 사내로 알았다간 큰코 다쳐. 넘어져서 뒤통수 깬다니까."
"예, 예, 알아뫼셨어라. 호호호..."
초월이는 나가고 술상은 이내 들어왔다. 몇 순배 술이 돌았다. 짜증스럽고 성깔이 날 듯 위태해 보이던 상현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술을 제한하려면은 방법이 하나 있지. 여자를 좋아하는 거다. 상대가 누구든 연애가 되면 좋지. 그냥 외입질은 안 돼. 절주보다 폭음하기 십상이지."
"흥! 술보다 여자가 덜 독하다 그 말이야?"
"덜 독한 여잘 택하면은, 허허헛..."
"나도 그러길 바래. 허허헛..."
맥 빠진 웃음소리를 낸다.
"어때? 초월이 괜찮은 여자야."
"다 늙어빠진걸."
"늙기는요."
매원이 뾰로통해서 입을 내민다.
"나일 말할 것 같으면 자네보담이야 두서넛 윌 거야. 그러니까 누님같이 포근할 거다. 그거 괜찮은 거라구."
"자네 퇴물을 왜 내가 하누."
"결벽한 이상현, 기생과는 연애 안 된단 얘긴데 그러면 안성맞춤이 있긴 있지. 명희아가씬?"
"취중에도 할 얘기가 따로 있어."
"이거 거룩하게 나오는데? 아무래도 술이 아직 모자라는 모양이야. 어, 그는 그렇고 야, 너희들 좀 나가다오. 눈치도 없이 왜 그 모양이야. 너희들은 나가서 책방 도련님이나 울궈먹구 초월이 들여보내."
"어머나, 저희들은 기생 축에 들지도 않나 부지요. 이애 죽희야, 나가자꾸나."
"응."
그들이 나가자 이내 초월이 들어왔다.
"나으리, 워째 우리 애들을 그리 울린다요? 박정헌 양반이 아니신디,"
하며 웃는다.
"이 친구 비위 맞추노라 그랬네. 이래저래 나야 마음씨 고운 사내 아니냐?"
초월이 깔깔 웃는다.
"웃지만 말구 술 한 잔 붓게."
상현이 술잔을 내민다.
"예."
뽀얀 두 손으로 술을 붓는다.
"아까 하다 만 얘긴데, 취중에도 할 얘기가 따로 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책방 도련님같이 왜 이리 보채지?"
"그거 좋은 거야. 책방 도련님 심정이 되어보는 것 말이야. 명빈형이 들으면 날 타살하려 덤빌 테지만 임명희하고 연애해라."
"하하하핫... 이건 또 전윤경 특유의 오해시군. 자아, 술 부어. 고개는 왜 갸웃갸웃이야."
초월에게 술잔을 내민다.
"워째 이야글 들은께로 지는 물 위의 기름겉이 되야뿌맀나비여."
술을 따르며 슬쩍 상현을 쳐다본다.
"허허, 저것 보게? 마음이 급하기로, 옛정이 있는데 그렇게 염치가 없어 쓰겠나?"
"말심 마시시오. 전주 안의 기생치고 전참봉댁 나으리 소실 될 아이는 없을 것이요."
"그건 또 왜?"
상현이 묻는다.
"그건 전참봉댁 나으리께 물어보시시오."
"허허어, 전참봉은 무슨 놈의 전참봉이야? 이 친구 앞에서 사람 기죽이지 말라구. 돈냥 주고 벼슬 하나 샀기로 나하곤 관계없어."
두 사람은 거나하게 술이 취했는데 윤경은 또 명희 얘기를 꺼내어 물고 늘어진다.
"아아니, 윤경이 자네, 생각이 달라 이러는 거 아니야? 공연한 생각 말어. 그 여자는 독신주의자야. 지금 나이 몇인지 아나? 스물다섯, 공연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그따위 말은 그만두는 게 좋지."
"매한가지지. 오십 보 백 보, 임역관이 돌아가셔서 좀 안됐네만 명빈형이야 항일 투사의 띠 하나 두르고 나올 건데 뭐. 그게, 돈냥 주고 산 참봉 벼슬보담은 좋은 거라구. 하하핫... 그나저나 한심스럽게 됐다. 시국을 관망하는 공론자로 이미 지탄을 받은 바이지만 이번 일의 의의,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아무런 성과는 없었고 다만 의의가 있었을 뿐, 안 그런가 상현이."
"그런 말은 왜 끄내는 게야. 술맛 떨어지게."
눈살을 찌푸린다.
"자네 마음속에는 시국을 관망하는 공론자에 대한 경고, 그것에 대한 공포가 가득 차 있으니까, 안 그런가?"
"듣기 싫어!"
"듣기 싫게 안 되어야만 자네 주량도 줄 것일세."
"흠, 그럼 나도 애국자에 속하는군."
"각별한 애국자론 볼 수 없지. 어쩌면 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러댄 장날의 장꾼보다 순수하진 못할 게야. 나 역시 그렇지만, 자네하고 나하고 다른 점이라면 자네의 그 공포심은 선비 의식에서 왔다, 흔히들 문사와 선비를 혼동들 하고 있는데, 아주 이질이라 할 순 없으나 같다고도 할 수 없는 건데, 자넨 그 선비 의식에서 탈피해야 해. 독립투사가 되든 서푼짜리 문사가 되든 말이야. 나 자네한테 설교하는 거 아니야. 설교할 자격이 있어야 말이지. 또 선비 의식 자체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자네에게 있어 선비 의식이란 체면 같은 그거야. 세상이 불편하지. 어느 것을 하든 체면의 노예가 되면 불편한 거야. 자칫 잘못하면 어릿광대 혹은 속물이 되는 게야. 자네 약점을 찔러 미안하이. 자네같은 성품에는 반갑잖은 유산이다, 또 열등감에서 빚은 얘기라 하겠나?'
"..."
"명빈형을 생각할 것도 없고 그놈의 돈키호테 같은 서의돈, 그 위인 생각할 것도 없네. 나하고 서의돈 그 위인과는 앙숙이다마는 하여간 그 사람들 우둔한 대로 혹은 조야한 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크게 의심 않고서 행동하는 것은 부러워. 감옥에 갇히든 상해로 뛰든 말이야."
"무슨 이야그가, 참말이제 지헌티는 어렵네요잉. 바로 가나 모로 가나 독립이나 되얐이믄 쓰겄는디 이래서야 다 틀린 것 아니겠으라우?"
초월이는 시무룩해서 말했다.
"아득하지."
"왜놈 군대만 자꾸 온다는디 조선 사람 잡아 죽이려는 거 아니랑가?"
"죽기 싫거든 친일해."
"친일을 워떠크럼 한다요? 진주 논개는 못 될지라도... 사람들이 숱해 죽었는디. 이분에도 동학당이 주동이 됐다는디."
"너도 동학이냐?"
"아니어라우. 허지만 우리 엄니헌티 이약은 많이 들었지라우."
"무슨 얘기."
"우리 엄니도 요상한 사람이요잉. 금매 엄니 소싯적에 전주감영에서 효수된 동학당 장수헌티 반혔인께 요상타 말씨."
"그 장수가 누군데?"
"김개주여라."
"호오?"
"사내 중의 사내, 그런 사내 씨 하나 받았으면 여한이 없겠노라, 우리 엄니 인물 좋았지라."
"짝사랑이었구먼."
"죽고 난 뒤 이야그, 그런께로 감영에서 효수당헌 것을 보았는개비여."
"그렇담, 어째 으시으시한 얘기로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상현이,
"초월이."
새삼스럽게 부른다.
"예. 말씀하시시오."
"김개주의 아들을 내가 아는데 어미가 못 푼 소원 초월이가 풀으려느냐?"
"예? 오매! 그거 무슨 말씀이라요?"
"김개주의 아들!"
"오오매 김개주의 아들이 있었어라?"
"그럼."
"워찌 아신다요?"
"그건 물을 것 없고 대신 내 청 하나 들어주겠나?"
"말씀하시시오."
"기화라는 기생이 전주에 와 있지?"
"기화, 예, 알지라우."
의아의 빛이 돈다.
"어디 있는지 아나?"
"금매, 우리 집 애들 중에 아는 애가 있을 것이요. 헌디 워떤 사이랑가요?"
"어떤 사이? 남남이지. 신세 좀 질까 싶어 찾는 게야."
"거 여기선 명창이라 허는디, 그러고 본께로 나으리 눈이 높소잉."
"생활이 엉망 아닌가?"
"글씨 그건... 지금은 별수없지만 혼자라니 더욱 좋고, 그럼 기화 있는 곳을 아는 애를 불러주게."
"산호주야!"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밖으로 나간다.
"기화라니 누군데?"
"기생이지 누구긴."
"기생이란 것은 이미 아는 일이고."
"좁쌀 양식 싸다니나? 왜 그리 잘아? 얘길 하자면 기니까 관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산호주 이름과는 딴판의 얼굴이 나타난다. 안색이 검고 깡마르고 성깔깨나 있어 뵌다는 것 이외 별다른 데가 없는 스물 서넛쯤의 기생이다.
"산호주라 합니다."
태도도 고분고분하지 않다.
"음, 네가 기화 있는 곳을 아느냐?"
"예. 하온데 기화언닐 무슨 일로 만나시렵니까?"
"네가 알 일은 아니야. 그러면,"
상현을 일어선다.
"아니, 어딜 가는 게야?"
"자넨 놀다 가게."
"가게?"
"응, 나는 기화 집에 가면 재워줄 거다."
"이 미친 사람 보게나?"
"미치나 걸치나 내겐 그곳이 편할 것 같다. 자아, 산호주? 거 이름 한번 좋군. 가자."
산호주의 손목을 잡는다.
"지금 당장에 말씀입니까?"
"그럼."
"야! 상현이, 자네 날 무시하기야!"
전윤경이 좀체 내는 일이 없는 화를 낸다.
"기화는 다르다구. 애인도 정인도 아니지만 말이야. 기화를 말할 것 같으면 자네하고의 인연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비틀거리며, 그러나 산호주의 손목을 강인하게 끌며 나가버린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산호주는,
"나으리, 이 손 놓으셔요."
"응."
하며 손목을 놔준다. 그러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는 바람에 이번엔 산호주 쪽에서 팔을 잡아준다. 밤바람은 차다. 초겨울이건만 폐부를 찌르듯 차갑다. 조각달이 멋쩍게 하늘 한가운데 걸려 있다. 바람 소리 또 바람 소리, 실제보다 상현은 그 바람 소리를 크게 듣는다.
"최서희! 이 계집! 네가 잘났음 얼마나 잘났기, 으음..."
"나으리, 최서희가 누구셔요?"
"뭐? 최서희? 네가 어찌 아느냐? 봉순이가 그러더냐?"
"봉순인 또 누구셔요?"
"으음,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어서 가자!"
"나으리, 기화언닐 좋아하셔요?"
"아암, 좋아하구말구."
"그런데 어째,"
"딴 사내하고 살았느냐 그 말이렷다."
"예."
"우린 친구야. 어, 한테 어디까지 가는 게야?"
"다 와가요."
"산호주야."
"예."
"너도 만세 불렀느냐."
"부르고말굽쇼. 기화언니랑 울면서 따라다녔어요. 집에 와서도 언닌 많이 울었지요."
"어째서? 독립이 될 거라구 울었나?"
"저희들이야 뭐 아나요? 언니가 하도 섧게 울어서,"
"수원서는 향화라는 기생이 잡혀가서 곤욕을 겪은 모양인데 여기선 잡혀간 기생은 없었느냐?"
"여기선 세 차례나 시위가 있었지만 모두 학생들이 주동이 돼서 한 일이니까요. 여학생들이 많이 잡혀가서 단식을 하곤 했지요."
상현은 싹싹하고 착한 듯 선생님처럼 얘기를 하다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아, 오래간만에 기분 좋다"
"다 왔습니다, 나으리."
"다 온 건 좋은데 그 나으리라는 말 그만둘 수 없겠느냐?"
"그럼 뭐라 하지요?"
"손님, 손님이라 하면 되겠군."
손님, 손님 하고 입속으로 뇌어보다가,
"어멈! 어멈!"
"예 나간당께."
아낙이 대문을 열어준다. 아주 작은 기와집이다.
"언니 계시지?"
"기신다요. 손님이랑가?"
미처 뭐라기도 전에,
"기화! 나야!"
하며 밤중 이웃 생각도 않고 상현은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여자들을 좌우로 젖히며 대문을 들어선다.
"봉순아,"
이번에는 나직한 음성으로 아주 정답게 부른다. 봉순이 방문을 열고 마루 끝까지 걸어 나온다.
"산호주야, 고마워. 너 어서 가아."
하며 손짓을 하고 나서 상현을 바라본다. 생소한 표정이다.
"나라니까, 봉순이, 아니 기화."
"알아요, 이부사댁 서방님, 오르셔요."
희미하게 웃는다. 상현은 기화의 표정 따위는 살피려 하지 않고 마치 바다에서 뭍으로 기어오르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방안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들었던가 방에는 이부자리가 펴져 있었다. 상현은 이부자리 속에 발을 디밀고 앉는다.
"아아 좋구나. 살 것 같다."
"서방님."
"응."
"애기씨 생각이 나서 오셨수?"
"뭐이라구?"
"서희아씨 말입니다."
"미친 소리, 나 기화한테 신세 좀 지려고 왔다."
기화는 마주보고 앉는다.
"형사한테 쫓겨 오셨나요?"
"야, 그 위대한 소리 말어. 이상현이 뭐 그리 큰 고기라고 형사나리께서 쫓아오겄냐. 직장도 잃고 밥 먹을 곳이 없어 왔으니까 한 달만 먹여주어."
"참, 서방님도, 한 달 계시는 건 상관없지만 신상에 해로우면 어떡하지요?"
"나이 삼십이 다 돼가는데, 네가 내 생활을 몰라 그러는구나. 둘째가라면 서러운 주정뱅이의 신상을 생각하게 생겼냐?"
"참말 아닌 게 아니라 변하셨수. 그럼 술상 차려 올릴까요?"
"아니다. 실컷 마시고 왔어. 오늘밤은 너하고 밤이 새도록 얘기하구 싶어."
"그렇게 하세요."
"전주까지 내려올 때는 막연했는데 언제 내가 여길 왔지? 참 이상하지 않느냐?"
"서울서 예까지 오는 게 뭐가 그리 이상하지요? 연해주에서도 오셨는데."
"하긴 어디서 어딘가를 떠나왔을 적엔 언제든지 그렇더군. 올 때 바람 소리가 몹시 심하더구나."
"별로 그렇지도 않았는데요? 맘 탓이 아닐까요?"
"그럴까..."
"저는 가끔 파란 보리밭에 앉은 까마귀들 생각이 나군 한답니다. 열여덟 땐지... 처음 하동읍의 소리꾼 집을 찾아갔을 때예요. 그때 평사리서 읍내로 가는데 파란 보리밭에 까마귀들이 무리 지어서 앉아 있었어요. 평소엔 무심히 보았는데... 서방님의 바람 소리도 연해주 바람 소릴 거예요."
상현은 기화를 우두커니 쳐다본다. 살빛이 곱던 얼굴에 기미가 조금씩 돋아나 있다.
"왜 우리들이 이런 생각을 해서 안 되는지 모르겠다."
"네?"
"밤낮 독립, 항일, 남아의 갈 길, 결사대..."
상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기화."
"네."
"의돈형님 상해로 갔다.'
"그랬어요?"
기화의 음성은 무심상하다. 서의돈에 대해선 늘 수동적이던 기화였으나 단념은 서의돈 쪽에서 먼저 했다. 깨끗하게, 그렇게 말끔할 수가 없이. 헤어진 뒤 기화는 비로소 서의돈을 무서운 사내로 알았고 사내의 이기심을 절감했던 것이다. 역시 서의돈도 관례대로 기생 사회에서 외도를 했을 뿐이었다.
"독립 운동하러 가셨군요."
"아아 내가, 그만두자, 그런 얘기는. 그보다 내 얘기 들어주는 거다. 누가 날더러 연애를 해야 절주할 거란 말을 하더군. 그런데 나는 연애말고 소설을 서볼까 싶어. 기화, 소설이 뭔지 아나?"
"날마다 신문에서 나오는 얘기 말이지요."
"응, 그래."
"연추에 계시는 나으리께서 꾸중하실 텐데요."
"허허어, 너도 내게 냉수를 끼얹는군. 글쓰는 걸 잡기같이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아. 해볼 만한 일인데, 하하핫... 실은 나도, 아니 그 얘기도 관두자. 역시 술이구나."
기화는 밖에 나가 아낙에게 술상을 차리라고 이르는 모양이다. 그러고도 마루 끝에 한참을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상현은 이불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내리깐 눈 아래 그늘은 이 세상 끝에 홀로 선 한 사나이의 짙은 외로움 같다. 시선을 느낀 상현이 얼굴을 든다. 역시 외로운 여자가 외롭지 않은 얼굴을 하고 서 있다. 다시 눈을 내리깐 상현은,
"기화는 생활이 되나?"
"네, 그럭저럭 돼요."
"서울 갈 생각은 없고,"
"아무 생각도 안 해봤어요."
두 사람은 새벽녘까지 술을 함께 마시었다. 그리고 상현은 기화 집에 눌러앉았는데 전윤경은 정말 화가 났는지 찾아오지 않았다. 찾아오지 않아 다행이라 상현은 생각했다. 세상일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상현은 열흘을 보냈다. 술도 반주정도, 대신 그는 기화가 술자리에 불려나가 없을 땐 원고지를 말아대는 게 일과였다. 열흘이 지난밤에 상현은 안방에서 새나온 신음소리를 들었다. 아니, 소리를 죽이며 우는 소리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상현은 울 게 내버려둘 작정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상현은 이상한 흥분을 느낀다. 울음소리, 여자의 울음소리. 봉순이도 기화도 아닌 그냥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오관의 피를 급하게 회전시킨다. 상현은 어금니를 깨문다. 그간 여자관계도 절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과음한 탓인지 잠자고 있었던 욕구, 욕구가 별안간 아우성치듯 전신에 몰려든다. 상현은 기척을 죽이며 일어선다. 방문을 열고 나간다. 울음소리가 뚝 끊어진다. 마루 복판에서 상현은 그 뚝 끊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성욕이 멎는 것을 느낀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나온다.
"기화."
"예."
코 먹은 소리다.
"왜 그래?"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무슨 일인데."
"가다가 그런 일이 더러 있어요."
상현은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기화는 엎드린 채다. 옥색 저고리에 자줏빛 감댕기가 눈에 아픈 것 같다. 부드러운 어깨, 가녀린 허리, 저고리 도련이 올라가서 하얀 치마허리가 보인다.
"욕을 들었구나."
"욕만이면요, 뺨을 맞았어요. 취하지도 않고서,"
엎드린 채 대답한다. 상현은 기화를 안아 일으킨다.
"기생 처지 그러려니 생각할 것을, 오늘밤은 유난히 서럽네요."
서럽네요, 그 말에서 멎었던 울음이 다시 이어진다. 서럽게 흐느낀다. 따스한 몸의 흔들림이 상현에게 전해온다. 울음소리, 봉순이도 기화도 아닌 그냥 여자의 울음소리, 상현의 몸속에선 다시 피가 급하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왜 우는 거야! 밤중에 계집 울음은 재수가 없어!"
상현은 더럭 소리를 지른다. 그 말에 기화는 더 운다.
"기화!"
상현은 기화를 쓰러뜨리고 전등을 끈다. 전등 꺼지는 소리에 기화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바보같이, 바보같이, 이 바보야!"
상현은 기화의 가슴을 짓누른다. 여태껏 어느 여자에게서도 체험한 일이 없는 환희에 상현은 전신을 떤다.
"바보같이 바보,"
헛소리를 지르듯
3장. 겨울 혼사
"두만아배!"
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두만네는 저만큼 가는 남편을 부른다. 두만아비가 돌아서며 마누라 오기를 기다린다. 다듬잇살이 잘 오른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입고 명주 수건을 쓰고 고동색 비단으로 겉을 싼 털토시에 두 손을 낀 두만네는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몸이 비대하고 모처럼 나들이 차림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털토시말고는 여전히 농가 안늙은네 차림이나 어딘지 모르게 부골스런 태가 난다. 두만아비는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마른 몸집인데 얼마 안 있어 환갑이긴 하지만 폭삭 늙어 가랑잎 같다. 그도 무명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있었다.
"동짓달이믄 춥기야 하지마는 유난스리 더 치분 것 안 겉소?"
"여기 뚝길은 언제나 치벘인께. 여름에는 덥고,"
두만아비는 활개를 휘휘 젓고 걷는다. 저도 모르게 다시 걸음이 빨라진다.
"그거사 말짱 빈 말입네다. 땀이 흐르다가도 이 뚝길에 오믄 다 식어부리는데 그러요?"
"그러씨, 무거븐 짐을 지고 댕긴께 그랬는가?"
"두만아배."
"와."
"이자부터는 짐 지지 마소. 채소는 밭에서만 내믄 될 거 아니요."
"멋 땜에?"
"머리털이 허어여가지고 자식들 모양 깎이겄소."
"내 곰뱅이 성할 때 꼼잭이는데 누가 머라 캐?"
"가만히 앉아서도 묵고 살 긴데 우리가 살믄 얼매나 더 살겄소."
"시끄럽다. 일에 이골이 난 사람이 일 안 해도 병나는 기라."
"이녁 고집도, 아 그래 이날까지 고생고생 했는데 좀 편하믄 벌 받을 깁니까."
"임자나 편하라모, 내 걱정 말고."
"이녁이 편해야 내가 편하지."
늙은 내외는 서로가 서로를 아낀 나머지 입씨름이다.
"그나저나 보소."
"또 와."
"혼삿날 치부믄 시집오는 처니 맴이 독하다 하든데, 시아배 시어매 그 용한 사람들 며누리를 잘 봐얄 긴데,"
"아따 벨 사스런 소리를 다 하네. 동짓달치고 안 치분 날이 어디 있어서,"
"그러씨, 그런께 좀 일찍 안 서둘고 그랬다 그 말 아입니까."
"일찍 하고 저버도 그럴 사정이 아닌께 늦잡아진 기지. 신랑 될 사램이 잽히갔는데 신랑 없이 초례를 하게 생깄든가?"
"이녁도 나이 든께 옛적 친구들 섬길 맴이 되는개비요."
"나이 들어서라기보다... 나는 빚진 사람 아니가."
그 말에는 두만네도 입을 다물어버린다. 십삼 년 전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을 두만네는 알기 때문이다. 곰보목수 윤보가 주동이 되어 최참판댁 조준구를 치려고 습격해 갔었던 그날 밤의 일을 이 내외는 가끔 생각하곤 한다. 약은 꾀를 써서 그 일에 말려들지 않았던 그때 일은 이 내외에게 결코 좋은 기억일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최참판댁 최서희는 진주로 돌아왔고 용이와 영팔이도 돌아와 가끔 얼굴을 맞대는 일이 있고부터 그 기억은 쓰거운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들은 영팔의 둘째아들 제술의 혼인 잔치에 가려고 나선 길이다. 둑길을 지나고 장터에서도 빠져나온 내외는 말없이 걷는다. 걷다가,
"아아들 집에 가보고 안 갈랍니까."
"들이다보고 가까?"
"그렇기 합시다."
쪼깐이, 비빔밥으로 소문난 쪼깐이 집에 못 미쳐서 술통과 술병을 가득 쌓아놓은 상점 앞에 걸음을 멈춘 내외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화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손을 쪼이고 있던 두만이와 그의 작은 마누라 쪼깐이가 놀라며 일어선다. 쪼깐이는,
"아이구, 아버님 어머님, 어서 오세요. 날씨가 추운데,"
설설 기는 시늉이다. 그러나 늙은 내외는 냉담하다.
"니가 여기 있이믄 가게는 누가 보노?"
두만네는 힐책하듯 말한다.
"아침나절에는 손님이 뜸해서 잠시 나왔습니다. 어머님, 여기 앉으십시오."
핏기 없는 노르께한 얼굴에는 그저 고분고분한 표정이 있을 뿐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두만이 불쾌해한다.
"앉을 것도 없다. 곧 가야 하니께."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가는데 늙은 내외는 덤덤히 서 있다. 가녀린 몸이 다람쥐처럼 문밖으로 사라지자,
"오매도 참, 그새 가게 비웠다고 큰 손해라도 납니까?"
"잔소리 마라. 며누리 벌어주는 돈 내사 안 반갑다. 사람이 그러믄 못쓴다. 주야장천 붙어 임서 그 새를 못 참아 여기 와 있나? 눈에 불이 난다. 본 계집은 설 명절에 가장 얼굴 한 분 볼까말까, 그 죄를 우짤 긴고, 고앵이맨크로 어머님 아버님 해싸도 내사 큰며누리 땜에 가심이 아프다."
"아, 오매도 좀 생각해보소! 그기이 누굴 믿고 이곳까지 왔소? 밤낮없이 벌어도 지 주머니에 돈 한푼 넣는 줄 압니까. 모두 그리 미버라 해싸니 지가 안 섬기믄 누가 섬길 기요!"
두만이 역정을 낸다. 사실 쪼깐이는 헌신적이다. 남편에게 시부모에게, 그리고 큰마누라가 낳은 자식에게, 심지어 시동생 내외까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그런 여자다. 다만 한 가지 남편을 본댁에 보내지 않는 것. 두만네는 작은며느리가 잘하면 잘할수록,
"여시 같은 년, 어디 세상에 서울네 그년 같을라구. 소나아 독차지 할라고 수단 쓰는 거 아니가."
하며 미워했다.
"만판 그래봐야 소용없다. 자식 낳고 젯상 들 큰며누리가 젤이제."
"쳇."
"에미 말에 쳇이 멋꼬? 말말이 그 제집 따문에 술가게도 차맀다하지마는 이런 가게 안 해도 굶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자석 버는 것 얻어묵고 있는 것도 아니겄고 농사지어서 내 감시로 사는데 와 서울네한테 지어서 살아야 하노 말이다. 애비 에미 계집 자석 있는 놈이 그래 천리 밖에 있어서 집에 못 오나? 니 얼굴 볼라 카믄 우리가 여기 와야만 하나? 부모는 니를 보러 온다고 치자. 그런데 니 가숙은 무신 죄를 져서 오지도 못하고 손이 뭉개지도록 일만 해야 한다 말고."
두만네는 목이 메어 말을 끊고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는다.
"내사 마 애연하고 불쌍해서... 너거들 붙어 앉아 있는 꼴을 본께 눈에 불이 난다. 사나아가 잘나믄 열 기집도 거나린다 카는데 그 아아는 젊음나 젊은 것이, 찾아갈 친정이 있단 말가."
흐느껴 운다. 두만이도 조금은 안된 생각이 들었던지 어세를 누그러뜨리며,
"누가 놀믄서 안 갑니까. 가게를 비울 수가 있어야지요. 지가 하로나가믄 장사가 엉망인데."
빈말은 아니다. 심부름꾼이 둘 있었지만 술 도매상이기 때문에 그들은 온종일 술을 날라야 했고, 외상 거래가 많았으므로 장부 정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수지상의 금액도 많아서 남에게 맡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두만아비는 모자간의 다툼에 끼어들지 않고 종시 침묵만 지키고 서 있다.
"그만둡시다. 피차간에 다 살아볼라꼬 하는 짓 아입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디 가니라고 옷 차리입고 나왔소?"
"머, 제술이 장갯날이 내일이라 부지 갖고 간다."
처음으로 두만아비가 입을 뗀다.
"영팔이 아제 둘째 말입니까?"
"음."
두만이 눈살을 찌푸린다. 아주 마땅찮아하는 표정이다.
"아부지도 머 그리 챙기사을 것 있십니까. 서로 살기 바쁜 세상에, 부짓돈이 아까바서 하는 말은 아입니다. 다 지목들을 받고 있는 사람들인데 귀찮은 일이라도 생기믄 우짤랍니까. 듣자니까 그 집 아들 둘이 잡혀갔다가 나왔다믄서요?"
"그래서?"
"지 사업에 지장이 있이믄 해서 하는 말 아입니까. 술 도매란 아무나 하는 거 아닌 줄 뻔히 아시믄서 그러네요. 그 사람들 눈밖에 났다가는 허가 취소하믄 그만인 기라요."
"니가 누 덕분에 이리 된 건지 알기는 아나?"
이번에는 부자간의 시비다.
"죽은 윤보 생각 안 나나! 니를 서울까지 데리가서 목수일 손잡아준 기이 누고!"
"아부지도, 아 지금 와서 그런 말 하믄 머합니까. 다 필요 없는 일이라요."
"하기사 애비가 사람 노릇을 못했인께 자식 놈 나무랄 자격도 없다마는,"
"아아니, 잔칫집 가는 기이 머가 우때서 그라노."
두만네가 말리듯 들어선다.
"관의 사람들 눈 밖에 나도 안 되겄지마는 사실은 옛날하고 우린 다르단 말입니다. 그 사람들하고 상종하는 거는 아무래도 맘에 꺼림칙하니께요. 최참판댁인가 먼가 하필이믄 이곳에 와서 자리 잡을 건 머 있어서,"
"니 그 말 무슨 뜻고?"
두만네가 아들 앞에 다가선다.
"몰라서 그러요?"
"모르니께 묻제."
"지 입으로 말해야겄소?"
"해라."
"우리 밑천이 다 그러날 긴께 하는 말 아니요. 이래봬도 이자는 진주바닥에서 남한테 인사 받음서 사는 사람이요."
"머가 부끄럽노?"
"자식들이 커도 그렇지요. 혼삿길 맥힙니다."
"그라믄 니는 니 아들딸 시집 장가보낼 때 사돈은 판서대감으로 할라 캤더나. 상놈이믄 상놈의 자석하고 짝지어주믄 도리 거 아니가."
"그냥 상놈이믄 말 안 하겄소. 최참판댁,"
"그래, 최참판댁 종에서 면천을 했다. 했이니 우떻단 말고. 조상이 샐인 죄인가?"
"어이구 참, 기가 차서."
"니가 그렇기 나오믄은 애비 에미도 꺼리야겄구나."
두만네 얼굴을 벌겋다. 두만아비는 우두커니 창밖을 보고 서 있었다. 거리엔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나뭇짐이 지나간다. 자전거가 지나간다.
"보소, 가입시다."
두만아비는 잠자코 마누라를 따라나선다.
"그만 바로 갈 거로. 공연히 와가지고 심장만 상했소."
손수건을 꺼내어 콧물을 닦는다.
"그놈이 애비를 닮아 그런갑다."
"그래도 이녁이사 난 평생 사람 괄시를 안 했소."
늙은 내외는 휘적휘적 걷는다. 값비싼 털토시가 몸에 맞지 않듯이 이들 내외는 도방의 큰길이 어설프기만 하다. 추위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채소 지게를 지고 장에 팔러 왔었던 두만아비 역시 갓쓰고 걷는 거리가 그저 낯설기만 하다. 사람들은 이들을 졸부라 한다. 근검절약의 생활, 별을 밟고 돌아오는 노동의 하루하루, 그새 땅도 많이 장만하였다. 뿐인가. 작은며느리 서울네가 벌어들이는 돈은 얼마이며 아들의 술 도매도 사업이라 일컬을 만치 규모가 큰 것이다. 그러나 두만아비는 여전한 농부요 두만어미는 그 농부의 아낙인 것이다. 재작년엔,
"한집에서 동서랑 시동생 잘 지내는 꼴을 보니 우리 기호네 맴이 얼매나 상하겄소. 모두 화목해서 한집에 살았이믄 싶기는 하지마는."
해서 둘째 영만이를 이웃에 살림을 내어주고 형보다 우직한 영만이는 독골에서 나오지 않고 농사만 짓고 있다. 봉곡 영팔이 집에 내외가 당도했을 때 잔칫집답게 집안이 벅적지근했다.
"아이구 이팽이성님, 어서 오소."
얼굴이 불그리하게 상기된 영팔이 새 무명 바지저고리에 수박색 비단 조끼를 입고 반갑게 맞이한다.
"아지마씨도, 보래! 판술아! 독골아지마씨 오싰다!"
판술네가 부엌에서 쫓아 나온다.
"아이고 성님요, 이 치분데 어서 방에 들어가입시다. 아제도 오셨십니까."
"야. 차비는 다 됐십니까?"
"이럭저럭 마아,"
판술네는 행주치마를 걷어 콧물을 닦는다.
"어서 올라오소."
용이 내다본다. 얼굴이 병색이다.
"음."
두만아비는 작은방으로 들어가고 두만네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젊은 축들은 까대기 옆에 있는 아랫방에 모여들 있는 눈치다. 안방에는 네댓 명의 아낙들이 앉아서 국수랑 떡을 먹고 있었다. 석이네도 거기 앉아 있다.
"성님, 이리 앉으이소."
"운냐. 그래 석이는 우찌 됐노."
자리에 비집고 들어앉으며 두만네가 묻는다.
"그냥 갇히 안 있십니까."
"큰일이다. 인자 걱정 없이 사는가 싶었더마는."
"나오기사 나오겄지마는 고상 좀 할 것 겉소."
"판술이, 제술이는 나왔는데 우찌 함께 안 나오고?"
"우리 석이는 주모자라 캄시로, 최참판댁 마님이 백방으로 손을 썼지마는,"
"좀 시일일 걸리 그렇지, 애기씨, 아니 마님이 심써주신다믄 잘될 기다. 걱정 마라."
하는데 판술이댁네가 국수 떡을 가지고 들어온다.
"독골어무이 오싰십니까?"
"운냐, 시동생 장개보내노라 욕본다."
"지사 머, 어무이가 다 하시는데요. 국물 식기 전에 어서 드이시소."
"묵는 거사 머 천천히 묵지. 니 씨어무니나 좀 들어오라 캐라. 얼굴 한분 보게."
"예."
얼마 안 있어 판술네가 들어온다.
"석아, 많이 묵었나?"
석이네보고 말을 건다.
"많이 묵었십니다."
판술네는 두만네 옆에 앉으며,
"성님, 참 오래간만이요."
"그러게 말이다. 일에 파묻혀서, 가깝기나 있다믄 모리까."
"받아놓은 날이라 혼사를 하기는 하는데 석이네 생각을 하믄, 그 무상한 놈들이 그만 함께 안 내주고,"
"식자가 들었다고 그러나 부제. 그 아이가 시온핵교 선생질을 했으니."
"와 아니라요. 식자 든 사람한테는, 추달을 더 한답니다."
두만네는 다시 석이네한테,
"아들을 잘 두어서 그러려니 생각해라."
"시국이 그런 거를 우짭니까. 이자는 나도 단련이 돼서... 날씨가 다락같이 추버지니께 밤에 잠이 안 옵니다."
"와 안 그렇겠노."
"괜찮소. 나쁜 짓 하다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나라일 하다 들어갔는데 젊으니께 견딜 만할 기요."
음식을 다 먹고 상머리에서 물러나 앉으며 곱슬머리의 아낙이 말했다.
"하모, 나라일 보다가 들어갔는데, 머. 내가 들은께로 서양 사람들이 말들 많이 하기 때문에 전같이 마구잡이로 사람들 직이고 하지는 않는다 카드마."
다른 아낙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않는다 하기는 했으나 직인다는 말이 섬?해서 석이네 낯빛이 달라지고 두만네 판술네도 눈살을 찌푸린다.
"그나저나 아까 들어옴시로 봤는데 이서방 어디 아픈가 부제."
두만네가 말머리를 돌린다.
"늘 그리 골골하네요."
"허위대 좋은 사람이 우째 그리 폭삭 늙었는고,"
"안 늙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다 우떻기 살았는가 싶소."
"홍이 끈이나 맺어주고,"
끈 맺어준다는 것은 혼인을 시킨다는 얘기다.
"머 십기 이서방이 죽기야 하겠십니까. 월선이가 죽고부터는 넋 나간 사람맨치로, 참말이제 보기가 딱하요."
"임이네는 안 왔나?"
"오기는요. 판술아배하고 앙숙인데 오겄십니까."
"나이 들었이믄 달라지얄 긴데,"
"다라지기는요, 날이 갈수록 더하는데. 에미가 그 꼴이니 홍이가 자꾸 비뚤어지지 않소. 그 좋은 머스마가..."
하며 말끝이 흐려진다. 두만네는 한숨을 쉬며,
"부모나 자식이나 다 인력대로는 안 되네라."
안방에서 아낙들은 소곤소곤 얘기를 하는데 작은방의 남정네, 남정네라기보다 늙은네들이지만 이들의 음성들은 좀 높다. 그중에서도 하동서 일부러 온 봉기가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다. 주로 평사리의 사정을 보고하는 셈이다. 살기가 어려운지 노비 쓰고 부조는 조금밖에 못 가져왔다며 돌아올 때 몹시 풀이 죽어 있었다.
"최참판댁 애기씨, 아니 마님이 돌아오신 후 곱추 그 사램이 행방을 감춘 거는 자네들도 아는 일이지만 저분때 야무네가 그러데, 머 야무네도 뉘한테 들었다든가, 아무튼 그 곱추양반이 유리걸식을 하더라는 얘기구만."
"애비 에미 잘못 만난 죄로, 거 심성은 고왔지. 병신 마음 고른 데 없다고들 하지마는,"
"어질었지. 이 몇몇 해를 얼굴 한분 못 들고 살았일 기구마."
"그라믄 댁네랑 아이들만 살겠네?"
"살다니 죽지 못해 사는거지."
"조준구 그놈이 아직은 먹고 입고 잘산다믄서."
"아무리 거들이 나도 만석살림 뒤끝인데,"
"그런데도 도통 며느리 손자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 말인가?"
"돌보기는 커냥,"
봉기는 침을 꼴칵 삼킨다.
"돌보기는 커냥 천하에 그런 무도한 놈은 둘도 없일 기다. 아 그러씨 고슴도치도 지 새끼 귀한 줄은 안다는데, 이 사람들아, 생각을 해봐라. 나도 욕심쟁이, 심술쟁이, 순 도척이, 하고 욕도 많이 먹었다마는 그거 자식새끼들 배 안 골릴라고 한 짓 아니가."
봉기는 조준구 말에 곁들어 자기 변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실상 그는 옛 친구에 대한 정의도 정의지만 서희에게 줄을 놔서 다시 살 궁리를 해보자는 저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한데 그 천하무도한 놈이 염치도 좋지. 평사리 그 집을 팔아묵을라 했던 기라. 저분때 그래서 내리왔제. 올챙이처럼 배애지가 똥똥해가지고 처음에사 거드름을 피워쌌더마는 그기이 다 허세라.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있어야제. 아아 그러씨 악양 넓은 들판이 모두 최참판댁 것인데 누가 그를 알은체할 기든고?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께 읍네 높은 사람들을 찾아갔다 하더마. 친일파 행셀 함시로, 읍내 높은 사람들을 찾아갔다 하더마. 친일파 행셀 함시로, 읍내 높은 사람은 머 눈 뜬 장님이든가? 최참판댁 사연이야 모릴 사람이 있나? 해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영팔이 벌름벌름 입을 헤벌리며 연신 웃는다. 조준구의 처량해진 얘기를 듣는 것이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잡혀갔던 아들둘이 풀려나와 내일이면 제술이를 데리고 신부 집에 가서 상객 노릇을 할 터인즉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는가. 콧물도 얼어붙는 만주벌판에서 청인 땅을 소작하던 서러운 그날을 생각한다면 영팔은 지금이야말로 자기 인생에서 황금기 같은 거라 생각한다. 만세 소동이 있을 때는 남 먼저 흥분하고 날뛰었지만 주변이 가라앉고 보니 그도 또한 가라앉았고 생활의 안착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모래땅에 혀를 박고 죽었음 죽었지 이제는 고향을 안 떠난다는 것이다. 진주가 고향은 아니지만 조선 땅이요, 부모의 산소도 가려면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팔월에는 막내 또술이만 데리고 평사리 산소에 벌초하러 갔었지만, 산소에 갈 적마다 그는 퉁포술의 황량한 벌판에서 울었던 생각을 한다.
"집을 팔아묵을라꼬 내리왔다 카지마는 그 거궁한 집을 누가 살꼬?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기다."
무관심하게 있던 용이 말했다.
"거궁한 것보다 집이 사람 살게 돼 있어야 말이제. 귀신 살기 꼭 알맞은 기라. 어느 눈먼 놈이 있으믄 몰라도 집 고치는 돈 가지고 집 한 채 살 긴데 눈이 삐어 그 집을 사까?"
"그 근동에서는 주름을 잡든 그 집이 우리처럼 늙고, 우리가 저승가게 되는 날엔 그 집도 무너질 거라."
역시 무관심한 어투로 용이 말했다.
"그래도 재목이 좋은께 우리보다야 더 살 기구마. 우리보다 백 년은 넘기 먼저 지었은께."
두만아비가 객쩍은 말을 한다.
"한데, 천상 그 집은 최씨네 집터라."
봉기는 또 침을 꼴깍 삼킨다. 그이 표정은 비장한 술병을 들고 병마개를 따는 것을 늦추는 것같아 보인다.
"그건 또 무신 소린고?"
영팔이 묻는다.
"하하아,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등잔 밑이 어둡더라고 예사 그런 법이다."
"아따,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네 버릇은 그대로구나."
두만아비가 핀잔이다.
"대단치 않은 얘기를 무슨 보물 단지맨치로 우다아도 쌌는다."
영팔이 핀잔이다.
"대단치 않은 얘긴지 아닌지 듣고 나믄 알 것이고, 하야간에 그 집은 최씨네 집터로 본디부터 점지된 곳이니, 내 얘기는 뭔고 하니, 이건 중간에 선 사람의 애기니께 틀림이 없다 이 말인데, 뭔고하니,"
"성급한 사람 뒤통수에 뿔 나겄네."
그 말을 들은 척 만 척,
"조준구가 서울서 역부러 내리온 것은 집 사겄다는 사램이 있었기 때문이라."
"그, 그러면 최참판댁 마님이,"
"가만이 있어. 얘기란 차근차근 들어야 전후 사정을 알제. 해서 조준구가 내리왔는데 며늘아기가 매달린 거지. 집도 없이 어린 것 데리고 어디를 가느냐고. 헌데 조준구놈 거동 보소, 뭐래는 줄 아나? 지체 낮은 집에서 지체 낮은 집에 시집왔으니 이제 나도 사돈댁 것 좀 얻어먹자, 그랬다는 거지."
"천벌 맞일 놈."
영팔이 건성으로 욕을 한다.
"그래 옥신각신했는데 집 파는 것은 난간일몽이 되고 말았다. 그 얘기구마."
"체, 나는 무슨 대단한 사연이라도 있는가 싶었지."
수박색 조끼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며 영팔이는 역시 웃는 낯이다.
"사연이 있지. 집을 못 판 그 사연이 기막히게 재미있는 거라. 왠고 하니 최참판댁 마님이 사람을 넣어서 집을 사겄다 하신 기라."
"역시."
"조준구놈 모리고 얼시구나 내리왔지. 그 염치 좋은 놈이 최참판댁 마님이 집을 사겄다 한다고 해서 안 팔 놈인가? 손이 작아 돈을 못 받을까? 한데 그 사고 파는 일이, 하하하... 최참판댁 마님이,"
"뭐라 하셨지?"
"집은 사기는 사되 팔 사람과 직접 만내서 흥정하겠노라,"
"머?"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방안에 웃음이 터져나간다.
"어이구 속 씨원해라. 삼 년 묵은 체증이 내리가누나."
영팔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기운 없이 앉아 있던 용이 빙그레 웃는다. 두만 아비도 실소하듯 웃는다. 장지문에서 초겨울의 엷은 햇빛이 스며든다. 아침에 얼었던 마당은 햇빛에 녹아 질척질척했고 행주치마를 두른 판술이 댁네는 바쁘게 부엌을 들락거린다.
"말이 여인네지, 남자 열 모아도 못 당할 기구마, 허 참,"
"그는 그렇고 또 한 가지 소식은 혜관스님,"
"음, 혜관스님이 우째 됐기?"
영팔이 다급히 묻는데 두만아비가,
"혜관스님이라니, 누구 말고?"
하며 묻는다.
"허 참 정신도, 와 그 우관스님 바로 제자 말이다. 머릿골이 울퉁불퉁한 중 안 있나."
"잘 생각이 안 나누마."
"허허어, 이 사람 보게? 하여간에 생각이 안 나거든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고, 참 그런께 길상이를 기른 중이라 카드마."
"길상이, 길상이 하지 마소. 최참판댁 당주인 셈인데 그리 함부로 불러대믄 되는가?"
영팔이 나무란다.
"하 참 그렇든가? 하도 변하는 일들이 많은께 껌적껌적 놀라겄다니까. 그런데 그 혜관스님이 구천이, 구천이 알지?"
모두 얼굴이 무거워진다.
"구천이하고 혜관스님이 그러씨 영산댁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더라니까?"
"구천이가 그러믄 평사리에 나타났다 그 말이가?"
용이 묻는다.
"얘기 들은께 구천이가 실상은 김개주 장수의 외아들이라나 봐."
"뭐라꼬?"
"소문이 쫘해."
"그럴 리가!"
"혜관스님하고 댕기는 걸 보니께 그기이 사실인 것 같단 말이다. 혜관이 우관스님의 젤가는 제자라 할 것 겉으면 김개주 장수가 우관스님의 동생이요, 그 아들을 거두는 건 있을 수 있는 일, 그런데 내가 좀 거북하게 됐제."
"와?"
"아 몇 해 전 평사리에 구천이 나타난 걸 보고,"
봉기는 난처한 듯 웃는다.
"동네 사람들 모아가지고 몽둥이 뜸질을 한 일이 있었제. 허허헛... 그때 영산댁이 안 말으믄 맞아죽었을 기라."
"그런 일이라믄 늘 앞장서는 게 네놈 천성 아이가."
두만아비가 내뱉듯 말했다. 가만히 기운 없이 앉아 있던 용이,
"어지러버라. 내가 와 이런고?"
"용아!"
영팔이 소리친다.
4장. 상해에서 온 사람
'근태네 집은 대문을 열지 않아도 된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가기가 싫다. 항상 그랬었지만. 홍이는 집에 가지 않을 작정이다.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 없다. 지그시 깨물어보는 어금니가 톱날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방에선 귀신불 같은 푸른 불빛이 가만히 타고 있을 것이다. 큰방에선 시뻘건 불이 훨훨 타고 있을 것이다. 숨소리, 몸놀림, 그것은 모두 뻘건 불꽃이다. 윤기 흐르는 중년 여자의 얼굴, 돈을 헤며 웃고 있을 여자의 얼굴도 불꽃처럼 타고 있을 것이다.
'아부지, 아부지이! 아부지...'
밤길을 가면서 홍이는 고개를 흔들어댄다. 어느새 한길을 지나왔고 좁다란 골목을 걷고 있다.
'근태네 집은 대문을 열지 않아도 된다.'
대문을 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뭐 대단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출입하기에 약간 편리하다는 것뿐이다. 지금 같은 한밤중에는--- 오른편 대숲에서 으스스한 바람 소리가 지나가고 길 왼편, 게딱지만한 초가들이 웅크리고 있다. 지붕 위에 달이 지나간다. 방금 거쳐 온 한길가 색주가에서는 매혹적인 계집들의 웃음소리, 노랫가락이 시끄러웠는데 야릇한 지분 내음새며, 코 끝에 풍겨오는 것만 같은데 대숲을 끼고 도는 골목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야트막한 울타리 너머 언뜻언뜻 지나가는 초가의 장지문이 달빛에 함빡 젖어있다. 장독대 질그릇에 달빛이 눈물처럼 흐르고 있다. 매혹적인 여자들의 웃음소리, 야릇한 지분 내음새--- 술집 계집들에게 끌리는 마음과 야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장이를 기다리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냐. 홍이는 허공만 같은 대숲, 사각거리는 댓잎에 주먹질을 한다.
"근태놈 자빠져 자는지 몰라."
멋쩍어서 뇌어본 말이다. 왠지 쑥스럽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우두커니 길목을 지키고 서 있던 일, 장이를 만나지 못했던 일이 비위를 거슬린다. 책보를 들고 머리꼬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계집아이들 속에 장이는 없었다. 교회당에선 저녁기도의 종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홍이는 그 길로 줄곧 밤길을 헤매 다녔다.
"망할 놈의 가시나."
만날 약속이 돼 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서로가 말을 건네본 일조차 없다. 물을 길러 가는 장이를 길에서 만나면, 그럴 때면 장이는 얼굴을 붉히곤 했었다. 그것뿐인데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만나지 못했다는 일만으로. 열아홉, 늠름하게 잘생긴 홍이는 거리에 나갈 때마다 처녀들, 아낙네들의 시선을 끌었다. 누구든지 팔을 뻗치기만 하면 따라올 것같이 생각하는 홍이에게는 봄풀 같은 그리움이 없었다. 바람둥이 중년 사내처럼 여자를 우습게 알았고 노리갯감을 보듯 이미 그의 감성은 무엇엔가 의해 잠식돼 이었다. 술집 여자들에게 끌려들어 몇 번인가 성의 경험도 있었으니. 장이를 본 것은 지난여름이다. 개천가로 이사한 후의 일이다. 처음 길에서 장이와 마주쳤을 때 홍이는 충격을 받았다.
'옴마같이 생겼다!'
죽은 월선이를 연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초로 일별뿐이었다. 장이의 윤곽은 월선이보다 훨씬 뚜렷했으며 눈은 총명해 보였다. 하얀 피부 빛에 머리칼은 다소 노르스림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월선이를 연상했는지 모른다. 근태네 집 앞에 와서 홍이는 걸음을 멈춘다. 키 높이만한 사립문, 머슴 식구들이 사는 오락실이 담벽에 잇달린 사립문은 닫혀져 있었다. 엉성한 틈새를 비집고 손을 넣어 문고리만 빼면 들어갈 수 있다. 불빛이 새나온다. 달빛 때문에 희미하게 빛이 새나오는 근태의 거처방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사립문을 민다. 여남은 평의 기다란 마당은 머슴 집 흙 벽담에 가려 있고 흙 벽담 맞은 켠에 마루가 붙은 방, 산돌 위를 살핀다. 신발은 한 켤레뿐이다.
'혼자서 와 여태 안 자는고?'
열 때마다 소리가 요란한 대문은 근태가 거처하는 바깥사랑 왼편에, 제법 웅장하게 보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안사랑은 대문 왼편이다. 바깥사랑, 안사랑 하니까 대단한 집 규모같지만 기와집은 아니었다. 덩실하게 높은 아래위채 두 동과 고방이 초가인데 근태가 거처하는 소위 바깥사랑이란 본시는 머슴방이던 것을 머슴 식구가 불어나면서 오막살이로 나가고 근태 공부방이 된 것이다. 근태의 부친 허상안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자수성가의 부농이다.
"근태야."
"누고?"
장지문에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다."
"홍이가? 들어온나."
홍이 방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또오,"
목이 길고 얼굴이 길고 눈은 왕방울처럼 커서 불거져 나왔는데 얇은 입술에 입매가 느슨해 보이는 근태, 그는 조끼 주머니 속에 손을 찔렀다 뺐다 하며 홍이를 쳐다본다.
"누가 오기로 돼 있었나?"
"응, 삼석이하고 남수하고 올 기구마."
"무슨 자작을 또 꾸밌는가 부지."
"두고보라모. 한판 자알 벌어질 긴께."
"알 만하다. 내가 먹을 복은 있는갑다."
낄낄낄 웃으며 근태는
"그 자석들 대구 한 손 돔바올라 캤는데, 하마 올기구마는,"
"밤새 물 마시러 댕기노라 잠도 못 잘 거 아니가."
"허허헛... 그런 일이 한분 있기는 있었제. 그때는 통대구 가지 온다는 기이 그놈아아 엉겁결에 약대구를 걷어와서, 허허헛..."
웃으면서 근태는 침을 꿀꺽 삼킨다. 통대구란 내장을 빼고 그냥 말리는 것이며 약대구는 어란을 둔 채 소금을 많이 뿌려서 여름 술안주를 위해 말리는 것이다.
"까마귀 할매 내일 아침 또 길길이 뛰겠고마."
"뛰겠지. 뛰거나 말거나 담 넘어올 직에 들키지나 말았으믄 좋겄다. 답대비 아아가 덜렁덜렁한께."
"담배 있으면 한 개 주라."
조끼 주머니 속에서 값싼 궐련 하나를 꺼내어 건네준다. 담배를 붙여 물고 연기를 뿜어내며 홍이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이제는 그런 짓 길게 못할 기구만. 삼석이놈도,"
"철 들었고마."
"나는 옛날 옛적에 삼석이 말이지."
"넘찐 소리 해봐도 별수 있나. 대가리 쇠똥을 벗긴 다음에 할 소리제."
근태는 곁눈질하며 웃는다. 쇠똥 벗긴다는 얘기는 장가 든다는 뜻이다.
"흥!"
코웃음 치며 홍이는 시선을 등잔불에 옮긴다. 자기 또래는 모조리 장가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깨달아진다. 삼석이는 지난봄에 생남까지 했었다.
"미친놈들, 장가만 가믄 대순가. 그따위 호박꽃 같은 것들, 갈라고만 했으면 열 번은 더 갔겠다."
"하기사 낯짝 보고 목매는 가시나야 많겄지마는,"
하다 말고 말을 끊어 버린다. 그러는 근태를 홍이 날까롭게 쳐다본다.
"그 다음 말은 뭐야?"
"그, 그러기,"
"많겄지마는? 다음 말 해보아. 겁먹지 말고."
"너거 어무니가 별난께."
"딸 줄 사람 없을 게다 그 말가?"
"..."
"내 생각도 너 생각하고 같다. 하하핫..."
엉뚱하게 홍이는 신이 나서 웃어젖힌다.
"미쳤나? 머가 그리 우습노."
힐끗힐끗 쳐다보며 근태는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씨어미 될 사람만 별난 줄 아나? 서방 될 놈은 안 그렇고? 내 피의 반은 그 지독하고 몸써리쳐지는 ... 그래, 그렇다니까. 하하하핫... 나는 말이다, 근태야! 돈 대신 세상에 있는 여자란 여잔 다 잡아먹고 싶어."
"미친 지랄 같은 소리 하네."
"곰곰히 생각하면 나도 그렇고 그런 놈 아닌가 싶단 말이다. 내 아버지 같은 사람 되기는 썩 글렀거든. 그렇게 살 바에야 당장 이 자리서 콱 죽어버리는 기라."
"너거 아부지가 우떤 사램인지는 잘 모르겄다마는 니도 참 변하기는 많이 변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독립군이 우떻고 만주벌판에 가서 돈을 버느니 해쌌더마는 와 그리 됐노."
"지금 생각 같아서는 만주보다 일본으로 갈까 싶은데."
"일본으로?"
"가서 머를 할꺼고."
"가봐야 알지."
"공연히 신소리 말아. 조선 사람 일본 가봐야 곡갱이 질밖엔 할 기이 없다 카드라. 니 어무니가 돈 내서 공부시켜준다믄 몰라도."
"이놈자식아, 간 떨어질라. 니가 그런 소리 하니까 최부자댁에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참말이제 니 달라지는 거는 감당을 못하겄다. 술잔이나 먹인 우리 죈지 모르겄다마는 질정없는 소리 자꾸 하믄은 정선생 대하기 면목이 없어진단 말이다."
"그 물지게꾼 말가."
홍이는 픽 웃는다.
"얼레? 우리도 덮어두는 일을 니가 까뒤집어? 이 빌어묵을 놈아."
"물지게꾼 했으면 한 거지 머."
"그까짓 시시한 소리보다 이눔우 자석들이 와 이리 더딘고 모르겄네?"
"담벼락에서 발목을 잡힌 기지."
"그랬다믄 야단인데?"
"네이 이노움! 이 대적놈아! 내 집구석 맹해묵을 놈아! 빌어묵어도 타곳에 가서 빌어묵으라 캤다! 와 집안 것을 들어내노오!"
홍이 까마구할매 흉내를 내자 킥킥대며 웃던 근태도 덩달아서,
"내 원수야! 무신 전생에 척이 져서 날 잡아묵을라 카노? 네 이노움!"
하다가 제풀에 놀란다. 근태는 안채 쪽 기척에 귀를 기울인다. 사방이 괴괴한 것을 확인하고 혀를 낼름 내민다. 흉내를 낸 까마귀 할매란 삼석의 모친이다. 육십이 다 되었는데 머리칼이 까마귀처럼 새까맣다 하여 별명이 까마귀 할매다.
"헤헤헷... 땀뺏거마는. 아 그러세, 담을 막 넘을라 카는데 그만 들키부리지 않았나? 장대를 가지고 궁둥이를 쑤시대는 바람에 차마 매달린 채, 죽을 힘을 다해서 한 발을 들고 장대를 걷어찼지머. 꿍! 하고 소리가 나데. 노친네 궁둥방아를 찧은 모앵이라. 그틈에 오굼아 날 살리라 도망쳐왔지."
곧잘 삼석이 하는 말이었다. 객줏집에서 여관으로 탈바꿈한 삼석이네 뒤뜰에는 해마다 겨울철이 오면 백여 마리씩 대구를 들여다 따서 말린다. 다 말려서 헛간에 대구를 쌓아놓을 때까지 까마구 할매는 아침이면 뒤뜰에 나와 둘 하며 세어보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조기나 갈치 따위와는 달라서 대구 한 마리면 값이 수월찮았고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데다 아들의 버릇을 알기 때문에 까마구 할매로서도 챙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서 삼석이 담을 넘을 때 들키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이튿날 아침이면 발각이 되게 마련이다. 삼석이는 일을 저지른 뒤 며칠간은 잠자리를 밖에서 하고 어미 몰래 집안 출입을 하며 세끼 밥만 치르는데, 드나들다가 운수 나쁘게 들키는 날이면 그때부터 집 주변에서 술래잡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막대기를 들고 쫓는 까마구할매는 남자처럼 장대하고 힘이 세었고 삼석이는 잽싸고 몸이 가벼웠다. 그 광경을 이웃 간에서도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요즘 삼석이 자전거 배운다면서?"
홍이 묻는다.
"열났제."
"자전거는 어디서?"
"와? 니도 배울래?"
"자전거만 있다면야."
근태는 왕방울같이 굵고 불거진 눈을 한번 내리깔았다가 다시 치뜨며,
"삼석이 집에서 한참 나오믄 행길가에 왜놈 잡화상이 안 있더나?"
"미야기라는 놈?"
"응 그래. 삼석이 그놈도 꾼이다, 꾼. 배달하는 머심애쌔끼 범준이를 살살 꼬아갖고 자전거를 심심찮이 빌리 타더마는 그놈의 집 딸인가 뭔가 가시나하고 수사앙한 모앵이라."
"백여우같이 생긴 그것 말가."
"그렇지이, 백여시겉이 생긴 왜년 말이다. 고눔의 자석이 상판은 매꼬름한께 일이 된 눈치더구마."
"하필이면 왜년이고."
"왜년들이사 시집가기 전에 별지랄 다 해도 상관없다 칸케 뒤탈 없이 장난하기는 좋거든."
"야 임마,"
"와."
"담배하나 내놔."
"또오? 속이 타는 모앵이구마. 멋하믄 삼석한테 부탁해보라모. 니한테 돌리돌라꼬."
"왜년은 싫다!"
"아따야! 독립투사 꿈 안 버렸구나."
"담배나 내놔. 제에기, 방바닥에 좀 나놓고 피워라. 누가 허노랭이아들 아니랄까 봐서?"
근태는 담배를 꺼내놓는다.
"들킬까 봐서, 조끼 주머니에 넣는 기이 버릇인 기라. 니도 담배 좀 갖고 댕기라모."
"돈이 없다."
홍이는 담배를 붙여 물고 한 팔을 팔베개하여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너거 어무이 돈 많다고 소문났는데 잡비 좀 얻어 쓰지."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지."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쳐다본다.
"없다는 것보다 돈이 많다 하니 듣기는 좋다마는 그까짓 코 묻은 돈 몇 푼, 가소롭다 가소로워. 설사 요강덩이만한 금덩이가 있다 해도 어림없다. 모자간이 아니라 원수지간인데,"
"너거 아부지는 요새 좀 어떻노?"
"누운뱅이가 됐지 뭐. 아무 희망도 없다."
음성은 나직했다. 우울했다. 그러나 감았던 눈을 떳을 때 불꽃이 튀는 듯 무서운 눈이 된다.
"누운뱅이가 멋꼬. 버르장마리가, 글줄이라도 배운 놈이."
"흥! 너도 철들었고나. 못 일어나면 누운뱅이지."
"큰일이구마."
"기둥뿌리를 도끼로 넘기든지 지붕에다 불을 확 싸질러 버리든지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미칠 것 같다."
"..."
"아버지는 산송장인데 나는... 내 몸에도 못된 버러지가 엉겨붙어서 몸이 막 썩어버리는 것 같고 교회당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마귀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어린애처럼 입을 삐죽거리더니 갑자기 거만한 표정으로 바뀐다.
'이눔아아가... 집안 꼴이 말이 아닌께 심장이 상하긴 할 기다마는.'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나 근태는 홍이가 날로 거칠어지고 갈팡질팡, 바람 부는 날의 돛 부러진 배처럼 되어가는 것을 친구로서 근심은 한다. 만주서 돌아온 홍이가 중등학교 과정인 협성학교에 처음 나타났을 때, 그때 일을 근태는 생각한다. 근태나 삼석이, 남수 그리고 엇비슷한 또래의 소년들은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만주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심기한데 늘씬하게 잘생긴 인물에 땟물이 쏙 빠진 듯 깨끗한 인상은 여드름에 두루뭉실한 핫바지 소년들 속에서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게다가 행동거지는 분명한 것 같았고 외지에서 견문을 넓혀온 만큼 유식하고 총명해 보였다. 매사에 사려가 깊은 것 같았고 더구나 월선의 죽음으로 깊이 상처받은 홍이 얼굴에는 다감한 소년들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우수가 있었다. 소년들은 그 앞에서 촌닭처럼 풀이 죽었다. 선망과 존경, 서로 경쟁하다시피 그와 친해지려 했던 것이다. 그러한 홍이가 못된 벌레가 엉겨붙어 몸이 썩어버리는 것 가다는 말을 했지만 쉽게, 아주 쉽게 본시의 그 모습은 허물어지고 걷잡을 수 없이 언동의 균형을 잃어갔다. 또박또박 정확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던 말씨는 어느덧 야비하고 촌스러운 투로 변했으며, 일찍 장가를 들어 술담배를 배운 친구들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은 그들보다 더 술 담배에 탐닉하여 불량기를 필요 이상 남발하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별하게 친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천재라고들 하던 강두매와 명석한 두뇌, 행동거지가 남의 모범이던 박장호와 깊이 사귀어온 홍이에게는 그들 새로운 무리의 소년들이 셈에 차지 않았는지 모른다. 용정촌에서의 추억이 홍이의 현재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또 오만스럽게 했는지, 하여간 홍이는 친구들에게 냉담했으며 진실된 제 목소리로 얘기하는 일은 없었다.
"이거 와 안오지? 아무래도 무신 일이 벌어진 모앵이다."
"뻔하지. 까마구 할매한테 붙들린 거다. 그거 기다리며 날 샐 수는 없고 나는 자야겠다!"
방안에는 납작해진 요 하나 이불 한 자락이 있었으나 방바닥이 따스하여 이불 없이도 잘 만했다. 홍이는 근태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다.
"붙잡혔다 캐도 담 밖에 있는 남수는 돌아와야 할 거 아니가."
"붙잡혀봐야 제 집인데 그런 걱정 할 것 없다. 잠이나 자아."
마침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고 허둥대는 발소리에 이어 남수와 삼석이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무래도 생대구를 사다가 말리가지고 오니라고 이리 늦었는갑다. 사람 눈 빠지겄고나."
빈정거리는 근태 말에 깍은 밤처럼 야무지고 동굴동굴하게 생긴 삼석이,
"팔자 늘어진 소리 하네."
화가 난 듯 내뱉는다. 두 팔이 푼수 없이 긴 남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추위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삼석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으니까.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심상찮게 여긴 근태, 저도 모르게 일어서며,
"무신 일이 있었나?"
"무신 일이 있었나? 그게 근태 네놈 입버릇인데, 무신 일이 있었제."
홍이는 잠든 척 일어나지 않는다.
"무신 일?"
"또 그놈의 무신 일, 말 마라. 십 년은 감수했다. 까딱 잘못했으믄 유치장에서 밤샐 뻔 안 했나."
남수는 술병과 종이에 싼 것을 한구석에 밀어놓고 슬그머니 쭈그리고 앉는다.
"하하앙, 그러니께 담을 넘을라 카다가 그만 순찰 도는 순사한테 들켰다 그 얘기고마."
"그렇다믄 태평가나 불렀제. 제에기랄, 재수 옴붙었다 카이."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듯 앉은 삼석이,
"홧김에 옴시로 술 사왔다. 술집 여핀네, 가게 덧문을 꽝꽝 쳤더니 밤늦게 무신 짓이냐믄서 막 생지랄을 하는 거를 욱대기감서 사온 술이구마. 대구도 소구도 그건 다 파장이다."
"하 참, 대가리도 꽁지도 없이 무신 말 하노. 혼자 잤아대도 내사 하낫도 못 알아듣겄다."
"숨차다, 숨차. 하여간 팔자에 없이 애국자 될 뻔 했는데 술 마시믄서, 그는 그렇고 저기 눕어 있는 거는 누고."
"홍이다."
"홍이? 아이구아, 등골 써늘해진다. 만일에 저 자석하고 함께 걸맀더라믄 용락없었 기라."
"와?"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근태는 내버려두고 삼석은,
"남수야."
"머할라꼬 부르노."
시무럭해져서 쳐다본다.
"얼이 빠졌일 기다. 간이 콩만한 자석이,"
"얼씨구, 누구 말 하는지 모르겄다.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떠는 놈이 누구더라?"
"언제!"
"방금."
"아무리 내가 그랬을까. 니놈 말 믿을 시레비자석도 없을 기고,"
무슨 일인지 떨기는 떨었던 모양이다. 뒤의 말투가 시원치 않다.
"흥, 이불 밑에 활갯짓이제. 죄 없는 술집에 가서 자는 사람 뚜딜기 깨워서 분탕질이나 하고, 경찰서에서나 한분 그래보지. 체!"
"와 니는 못 그랬노!"
"내사 니 말마따나 간이 콩알만하니께."
"그 얘긴 두었다 하고 술이나 마시자."
남수는 김치 보시기 술잔에 종이 속에서 꺼내며,
"죄 없는 주모가 혼빠졌다. 하도 지랄을 한께 김치 술잔까지 내주더마."
"돈 주었는데 무신 잔소리고. 한밤중에 와봐야 못 들어갈 기고 그라믄 손바닥에 부어 마실 것가. 망할 놈의 새끼, 술만 처묵었다 봐라."
술을 마시며 삼석이 하는 얘기는 우스우면서도 좀 아슬아슬하기는 했다.
"우리 집 뒷담 그곳은 늘 후미진 곳 아니가. 달이 밝았인께, 막 남수 어깨를 딛고 담을 붙잡을라 카는데 발소리가 나는 기라. 아무리 우리 집이지마는 하여간 일단 내맀지. 한데 두 사람이, 처음에사 얼굴을 볼수 없었고 엉거추춤 서 있는데 우리 옆을 바람같이 휙 지나간다 말이다. 마침 달빛이 그쪽을 향해서 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설핏 보이더마. 누군 줄 아나? 백정네 그 와 쌈 잘하고 노름 잘하는 관수,"
"그 사람은 백정 아이다. 백정이 사위제."
"아무튼 그 얼굴을 나는 보았다. 다른 사람은 모르겄고. 한데 그 사람들이 지나가고 얼매나 됐이까? 호각 소리가 사방에서 안나겄나? 가심이 덜컥 하더마. 그렇지만 처음에사 지나간 사람들이 노름하다가 튄 줄 알았제. 그라고 나서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미처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이 빌어묵을 남수놈이 후다닥 뛴단 말이다. 덩달아 나도 모르게 막 뛰는데 뒤에서 순사들이 확 몰려오더란 말이다. 속절없이 잡힐밖에. 그라고는 다짜고짜 경찰서로 끌려갔지. 한데 말이다, 추달하는 기이 도모지 구신한테 홀린 것 맨치로 모르겄더란 말이다. 옷을 모조리 벗기고 신발까지 벗기믄서 수색을 하고, 그런 난리별락이 어딨겄노. 허 참, 기도 안 차데. 상해에서 밀파된 놈 어찌고 독립 자금이 어찌고 그런 말만 아슴푸레 들리기는 하더라만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제."
"그, 그러니까 니들 독립 운동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 말가."
"그렇지. 어이가 없어서, 그래 호란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은 똑바로 차리라, 곰곰히 생각해본께 그 백정네 사위,"
"그, 그래서,"
"순사들이 잡을라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데."
"그, 그래서 대주고 왔나."
"이눔아아야! 니 무신 소리 하노! 아 그래 이 삼식이, 배삼식이가 그런 인간인 줄 알았더나! 노름꾼을 잡을라 캤다믄 혹 모르지. 내가 이래봬도,"
"크게 나오는데?"
"남수놈이 보았다믄 저놈 간이 콩만한께 나불거맀일지도 모르지."
"아따! 세상에 지 혼자 똑똑고나. 이 새끼야 나도 봤다! 니만큼은 나도 생각할 줄 아는 기라!"
남수가 악을 쓴다.
"이 병신 같은 놈 보게? 소리는 와 지르노?"
"소리야 니가 먼저 질렀제."
"그래 그래, 네놈도 조선놈이니께. 한데 말이다, 관수 그 사람 그리 볼 사람이 아닌갑더라. 경찰서 앞뒤가 들끊는 거를 본께 제법 거물인 모양이더라. 평소에도 배짱 좋고 입심 세고, 그 와 똥장군을 걷어찬 순사한테 똥 묻은 손바닥으로 뺨을 후리친 애기는 유명 안하나. 진주바닥에서 그 애기 모리는 사람은 없인께."
"인제 남의 애기는 고만 하고 우찌 풀리나왔노."
"생각을 좀 해보라모. 상해서 밀파된 공작원이니 어느 부잣집에가서 독립 자금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으니, 그러나 꼬라지를 보믄 모르겄나?"
술을 꼴깍꼴깍 마시고 나서,
"새파란 것을, 두 놈 앉혀놓고 이모저모 뜯어보아야, 다 알쪼지, 한참을 봉이나 물고 온 듯이 왁왁거리 쌌더마는 우리 사정이야 뻔한거 아니가. 우리집 노친네가 불리오고, 남수아부지가 불리오고, 우리도 우리지마는 그 늙은네들 얼굴이 흙빛이더마. 하하, 이자는 저 늙은네들 등살에 못살겄구나 하는 여유가 생기니께 차츰 배짱도 생기고, 설마 제 집 것 훔칠라꼬 담정넘었기로 징역살이 시키겄나. 하하핫... 우리 노친네 그 일은 상상에 맡긴다고, 하하핫..."
"네이 이노움! 이 조선 망해묵고 대국 망해묵을 놈아! 함시로 경찰서 앞에서 몇 바퀴 뛰었지."
남수가 덧붙여준다.
"그래, 끝내 그 백정네 사위 얘기는 안 했다 그 말가."
"멋 땜에 하노. 안 했지."
"말이 났이니께 그런데 요새 와 그 임시정부가 섰다는 얘긴 아는 일이고 상해에서 사람들을 많이 들이보낸다 카더마. 군자금 마련이다, 뭐다, 그러니 왜놈들 곤두설밖에. 삼일운동 같은 것이 또 언제 터질지도 모르고."
근태가 제법 신중한 투로 말하자 삼석이는 또,
"군자금 마련하는 거는 아무것도 아닌 기라. 그보다 작년에 총독을 죽일라고 폭탄을 던진 일이 안 있었나. 총독은 운이 좋아서 면했지마는 그때 고관들이 많이 상했거든. 그러니께 그런 암살 사건이 젤 큰일이다 그거지. 한 번으로 끄치겄느냐는 와 안 하겄노. 앞으로 그런 일은 자꾸자꾸 생길기거든. 또 우리가 모리고 있는 일도 많을 기라."
"그거는 그럴 기다마는 만세운동이 있고부터 해외로 나가는 군자금이 막대하다 카더마. 자진해서 내는 사람도 많지마는 친일파놈들 한테는 육혈포를 들이대고 돈을 뺏앗아가데 보복이 무서버서 끽소리 못하는 놈도 많을 기라는 애기지."
"그러는 사기 치는 놈들도 생기는 기라."
"나도 그런 얘기 들었다."
듣고만 있던 남수가 입을 내민다.
"굉장히 돈 많은 과부집에 독립군이라 함서 야밤중에 칼을 들고 들어왔더란다. 그런데 그 과부가 영악하기로 소문난 여잔데 불이 꺼진 방에서 얼굴을 볼수 없고 아무래도 목소리가 듣던 목소리 같더라니? 그래 과부는 돈을 끄래가지고 하는 말이, 아무리 내 돈이 소중하다 카지마는 독립을 위해 쓰는데 무신 딴말을 하겄는가. 그러나 돈이란 세어서 주고받는 것이니께 내가 얼매를 주었다는 것은 알아야 안 하겄는가, 옳은 말이니께 그러라, 한데 과부는 손가락을 깨물어서 돈을 셌다는 기라. 다음날 과부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데 피 묻은 돈을 찾아서 종가본께 독랍군은 무슨 놈의 독립군, 바로 과부집의 일꾼이었다 그 얘기라."
"만일에 독립군이었다믄?"
근태 말에 삼석이,
"독립군이었다믄 그 과부는 역적이제."
"그렇지마는 독립군이 그런 식으로 군자금 뜯어내는 거는,"
"안 좋지. 그러나 친일파놈들이사 돈도 돈이지마는 겁주는 거 그것 괜찮을 거라구."
"에이, 시끄러버서 잠 못 자겄다."
홍이 꾸물꾸물 일어나 앉는다.
"뭣이 어쨌다고 야단이다."
"다 듣고서 맥지 그러네."
홍이는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나도 술 좀 마시자."
"청승이다. 자아, 술잔도 하나 돌리감서 마신께."
홍이 술잔을 받아 마신다. 술잔을 놓고,
"머 백정네가 어쨌다고?"
"어멍잠 잤구나."
하면서 삼석이 신기하다는 듯 홍이를 쳐다본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보믄 볼수록 관옥 같구나. 우리집 노친네 문자다마는."
"지랄한다."
순간 수줍음 같은 묘한 표정이 스쳐간다. 어린 나이, 열아홉 살, 어른스러우려고 발돋움하는 아픔과 치졸함이 얽섞인 모습이다. 하얀 무명 동정이 에워싸고 있는 목둘레와 조금은 엉성한 두 어깨의 선이 청결하고 창백한 것만 같은데,
"와 치다보노. 꼭 화냥기 많은 가시나 같다."
홍이는 삼석이 얼굴에 침이라도 뱉듯이 뇌까린다. 갑자기 뭣에 그리 화가 났는지, 말보다 분위기에서 심한 모멸을 느낀 삼석이, 얼굴빛이 달라진다.
"야, 니 잘난 체 마! 도도하게 굴 것 하나도 없다!"
두 소매를 걷어 올린다.
"꼭 돼지들 같다. 더러운 돼지들!"
이번에는 근태와 남수도 함께 발끈한다.
"그래 맞다, 이놈 새끼야! 우린 촌구석의 더러운 돼지들이다! 니는 멎고?"
삼석이 홍이 곁에 바싹 다가앉는다. 홍이 눈이 번쩍번쩍 빛난다. 입가에 잔인한 웃음을 띠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자세다. 그러나 주먹질을 할 듯이 다가앉았던 삼석이 물러나 앉으며,
"흥, 누가 네놈 근본을 모릴 기라고,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근본은 못 속이는 법이라, 흥."
"뭐 망설일 것 없다. 다음 말 해보아."
눈빛이 무너져갔으나 입가에는 여전히 잔인한 웃음이 머물고 있다.
"말해보라니까."
증오의 눈길을 보낼 뿐 삼석이 입을 다물고 나머지 두 사람도 침묵을 지킨다.
"대신 말해주까? 살인 죄인의 여핀네고, 하하핫핫... 하핫핫... 너희들 입에서 그 말 나올 줄 알았다. 못난 놈들! 울 아버지 마누라, 울 아버지 아들의 어매, 그렇고 그런 여자 아이가. 하하핫... 하핫핫..."
"빌어묵을, 술맛 떨어진다. 떨어지나마나 술도 다 됐고 잠이나 자자."
근태가 집주인답게 얼렁뚱땅 수습을 하려 든다. 시비도 화해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불이 꺼진 방에 네 사람이 드러누운 것은 거의 새벽에 가까워서다.
5장. 별빛이 쏟아지는데
"홍아."
약을 짜다 말고 돌아본다. 눈이 조그맣고 까무잡잡한 얼굴의 관수가 들어온다.
"니 어매는 어디 가고 니가 약을 짜노."
"돈 받으러 갔일 기요."
"세월 좋구나. 그래 아부지는?"
"그만 그렇지요."
"이거 니 아부지 벵에 좋다 캐서 가지왔는데 오골계라고, 닭이다. 미리 잡아왔인께 지어온 약재하고 함께 넣어서 고아드리라."
"고맙습니다."
홍이 약사발을 들고 관수를 따라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제술이 혼사 때문에 영팔이 집에 갔다가 쓰러진 용이 심하지는 않았으나 수족을 못 쓴 채 누워 있었다.
"아제."
"머라할꼬 또 왔노."
발치에 앉는 관수를 보며 용이 웃는다.
"지나는 길에 왔습니다."
"바쁠 긴데..."
하다가 머리맡에 약사발을 들고 있는 홍이를 올려다본다.
"어디 안 나가고 집에 있었더나."
"야."
홍이 약사발을 놓고 용이를 안아 일으킨다. 그리고 약사발을 입에 갖다된다. 약을 마시고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약 묵는다고 나을 병가. 안 죽은께 심심해서 마시보는 기지."
용이 관수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런 말을 와 합니까. 약이 닿으믄 병이란 낫는 깁니다."
"그러세..."
용이를 볼 때마다 관수는 십여 년 전 평사리 마을에서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사십을 넘긴 그때의 용이와 쉰 고개 중턱에 들어선 오늘의 용이, 길상과 한또래였던 관수는 그때가 이십대였고 지금은 나이 서른다섯이다. 최참판댁을 습격하고 산으로 함께 들어갔을 때만 해도 용이는 허우대 좋고 인물 좋고 힘 좋은 사내였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으되 십 년 넘긴 세월에 사람 몰골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햇빛을 못 보아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다가 관수는 외면을 한다. 독하고 다부지고 입정 사납고 저돌적인 관수, 한데 그는 용이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른바 옛 동지인 것이다. 용이의 불운이 시국 탓이기보다 그 자신의 운명, 그 자신의 가치관, 그 자신의 성질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관수는 용이 모습에서 핍박받는 제 조상을 보는 것이고 훗날의 자신을 보는 것이다.
"아제만 보믄 윤보아제 생각이 납니다."
"나도 이리 누워 있인께 별별 일이 다 생각이 난다."
용이 힘없이 웃는다.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 건조하고 쓸쓸한 웃음이다.
"그는 그렇고 요새는 세상이 좀 잠잠하나?"
"잠잠하고 안 하고가 있겄소. 처음부터 빈주먹 쥐고 될 일이 아니었지요. 생각해보믄 십여 년 전 우리가 산으로 들어갔일 때, 그때 사람들이 오늘겉이 깨어 있었음... 머가 돼도 됐일 긴데, 그때는 고립무원이 아니었소?"
"그래. 우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던 시절인께."
"십여 년 동안 왜놈들은 틀을 꽉 잡은 기라요. 좀체, 어러불 기구마요."
"그런데 니한테는 별일 없겄나?"
"무신 일이 있겄십니까."
순간 홍이와 관수의 눈이 마주친다.
"석이가 나왔다 카이 다행이다."
"나오기는 나왔는데..."
"무슨 일이 또 있나?"
"자꾸 불리 댕기는 모앵이래요."
"멋 땜에?"
"그러씨... 그 새끼들 머가 터짓다 카믄 한분 점찍은 사람 불러서 닦달이니께, 석이야 머 선생질이나 한죄받에 더 있겄소."
관수는 홍의 눈빛을 다시 살핀다. 육감이라는 것이 있어서다. 최근 상해에서 밀파된 공작원에 관한 정보에 따라 경찰은 총동원되어 법석을 떨었으나 정작 사람은 오리무중 속으로 들어가버렸고 초조해진 경찰은 식자층의 사람들, 3.1사건에 관련이 되었던 청년들을 불러들려 심문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석이는 3.1만세 사건에 연루되어 오랫동안 구금되기는 했으나 시위가 참가한 일 이외 선동이나 폭동에 관계한 혐의는 찾을 수 없어 오래 고생은 했으나 검찰에 송청되지 않고 풀려나오긴 했었다. 홍이가 일어서려 하자,
"홍아"
관수가 불렀다.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관수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그 가지온 것 말이다."
"야."
"닭부터 먼저 안치라. 푹 고아서 닭은 건지내고 국물에다 약재를 넣어 달이는 기다. 알았나?"
"야."
"머를 가지고 왔노. 실데없는 짓안 하믄 좋겄다."
용이 눈살이 찌푸린다.
"아제는 그런 걱정 마소. 나아서 일어날 생각이나 하믄 좋겄지마는,"
"이 사람아, 나을 벵이 따로 있지. 벵났다고 머 내가 낙심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로 들을지는 모르겄다만 이런 대로 괜찮다. 앞뒷일 생각 안한께 젤 편하구마."
관수는 그 말이 이해될 듯햇다. 육신은 병들었으나 마음은 쉬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그 목마름, 늘 목에서 단내가 났을 용이. 그렇다, 용이는 만사에서 물러서서 구경을 하는 심정인 것이다. 몸서리치게 추하던 임이네도 돌부처가 거기 있는 듯 분노하지 않았고 미워하지 않았고 물론 사랑하지도 않았다. 처음 간도에서 돌아왔을 때 영팔이는 봉곡으로 나가 농사를 짓게 되었고 용이는 최참판댁 마름 비슷한 직분을 갖고 작년까지 일을 보아온 터인데 지금은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맡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럭저럭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임이네로 말미암아 최서희에 대하여 느껴왔던 복잡하고 미묘한 심적 갈등, 그 주술 같은 것에서 풀려나기는 월선이 죽은 후부터였지만 용이는 임이네에 대한 애증을 이제 모두 넘어서버린 것이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대상에서 그 미움마저 거두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용이의 삶, 삶의 종말,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른다. 홍이는 부엌에서 어줍은 손놀림으로 오지솥에 오골계라는 좀 괴상하게 생긴 닭을 넣고 물을 붓는다. 화덕에 숯을 몇 덩이 더 넣고 오지솥에 올려놓은 뒤 우두커니 부엌에 서 있는데 목이 잘린 닭이 눈앞에 자꾸 떠오른다. 웅크린 다리 두 개도 떠오른다.
'관수형님이 상해 임시정부하고 무신 관계가 있이까? 상해 임시정부... 두매형은 벌써 군관학교를 졸업했을 기고 길상이아제는... 모리겄다! 내 겉은 놈이야 이리저리 사는 기다! 이리저리... 이리저리...'
홍이는 뒤안에서 뛰어간다. 뒷간에서 소피를 보고 난 뒤 판자울타리, 옹이가 빠진 구멍으로 눈을 가져간다. 울타리 뒤는 개천이다. 개천 건너 좁다란 길이 있다. 좁다란 길켠에 그저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있고 판자울타리가 초가 아랫부분을 가리고 있는 것 이다. 그중에서 낡은 판자울타리가 장이 집이다. 장이의 늙은 아비는 구들 잘 놓는다고 소문이 난 염서방, 그리고 오라비가 둘 있다. 하나는 교회당의 일을 보아주고 작은 오라비는 두만네 술 도매상에서 술 배달하는 일꾼이다. 이럭저럭 살기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재작년에 어미가 죽은 뒤 오라비가 모두 미장가여서 장이가 살림을 맡아 하고 밤에는 교회서 경영하는 야학에 다닌다.
'나온다!'
판자문을 밀고 물동이를 든 장이 나온다. 이맘때쯤이면 그는 항상 물을 길러 나오는 것이다. 부리나케 홍이는 집을 나선다. 우물은 다리를 건너 이켠에 있었으니까 빨리 가서 다릿목에 서 있곤 했었다. 우연인 것처럼. 말은 아직 걸어보지 않았고 빤히 쳐다보면 장이는 홍당무가 되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장이가 급히 걸어온다. 한 손엔 물동이를 들고 한 손엔 똬리를 들고서 급히 걸어온다. 오다가 홍이를 보고 주춤한다.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다시 걷는다. 역시 홍당무다. 홍이 옆을 스쳐 달아나려 한다.
"이봐."
멈춰선 장이 검정 저고리 앞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너 오늘 야학 끝나거든 맨 나중에 나오네라. 알았나?"
아무 말이 없이 계집아이는 달아난다.
'네가 안 그라고 배기는지 어디 두고 보자.'
바짓맡에 손을 찌르고 한 다리를 들어 빙그르르 돌면서 홍이는 웃고 그리고 달아나는 장이 뒷모습을 바라본다. 짧은 치마 하얀 버선목 사이로 종아리가 보일 듯 말 듯. 홍이 집 앞에까지 왔을 때 나오는 관수와 마주친다.
"어디 갔더노."
"예, 저기 좀,"
"홍아."
"야?"
"니 내하고 얘기 좀 할라나?"
"그러지요."
그날 밤 삼석이를 만난 일 땜에 그런다고 홍이는 생각한다.
"걸음서 얘기하자."
"예."
"일전에 석이를 만났는데 걱정을 하더라."
"왜요."
음성이 튄다.
"그 정도 얘기하믄 니도 알 만할 긴데 그러나."
"모르겠소."
반항적이다.
"니가 와 그리 돼가는지 모르겄다 하더마."
"지가 어떻게 됐기 그러지요?"
"술 마시고 담배 피고 못된 놈들캉 어울려 댕기믄서, 그래 쓰겄나? 니 아부지 생각을 좀 해얄 기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요. 지 된 대로 살아야지요."
관수는 걷다 말고 홍이를 쳐다본다.
"마 내 생각에는 니 아부지가 니를 여기 데리고 온 것부터 잘못된 것 같다. 거기 놔두고 오는 긴데..."
"거기 가고 싶은데 무슨 까닭이 있어야 합니까?"
"내 생각으론 니가 갔으면 좋겄다. 거기 가믄 월선아지매 작은아부지도 기시고,"
"옴마, 옴마 얘기는 와 하요! 내 앞에서 옴마 얘긴..."
갑자기 목이 메이는 듯 울음이 터질 듯하다가 이내 반항적 자세로 돌아간다.
"내 걱정은 마시고 관수형님 거기 걱정이나 하는 게 좋을 겁니다."
"..."
"삼석이 그 자식이 보았다면서요?"
"멀 보아."
관수는 태연하게 되묻는다.
"상해 임시정부서,"
"그게 무신 소린고?"
"삼석이네 집 뒷담을 지나가다 거를 보고... 경찰이 막 몰리오는 바람에 그놈 아아들이 붙들리갔다는데,"
"니 그 집 뒤를 지나간 일이 없는데? 그 아아들이 헛것을 보았는가 보제."
"못된 놈들이라 하지마는 삼석이나 남수놈이 형님 이름을 입밖에 내지도 않았습니다."
"입밖에 내나마나 밤에 그 집 뒤를 간 일이 있어야제."
단호하게 잡아뗀다. 잡아뗀다기보다 강하게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심는 것 같다. 홍이는 무슨 술수에 걸린 것처럼 관수의 말이 참말인 듯싶기도 하고 혼란이 인다.
"그럼 나는 또 갈 데가 있인께. 니도 정신 좀 차려라! 내 맘 같아서는 주먹방망이를 안겨주고 싶다만, 질기 그라믄 재미없을 기다."
엄한 눈으로 노려보더니 가버린다.
"제어기럴! 지가 먼데?"
했으나 어쩐지 홍이는 마음이 따갑다. 해나절이 지나서 임이네가 돌아왔다. 그새 살이 쪄서 목이 파묻힌 것 같고 허리통이 어지간히 굵어졌다. 그도 늙기는 늙었으나 건강하고 얼굴에 윤이 흐르는 것은 옛날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홍이 힐끗 쳐다본다. 임이네도 아들을 힐끗 쳐다본다. 눈과 눈이 원수처럼 부딪쳤다가 갈라진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간 임이네,
"솥에 이기이 뭣꼬!"
큰소리로 묻는다. 방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속에 두 다리를 디민채 홍이는 대답을 안 한다.
"솥에 이기이 뭣꼬!"
"..."
"빌어묵을 놈, 에미 말이라 카믄 소태 묵은 강아지 상판, 이놈아! 귓구멍에다 소캐를 틀어막았나!"
쿵쿵 발소리를 내며 되돌아온 임이네,
"어이서 닭이 났노?"
"관수형이 가지왔습니다!"
"홍, 그래? 주니 잘 묵겄다."
노려보다가 홍이는 할 수 없이,
"오골계라고 약이라요. 고아서 닭은 건지내고 그 물에다 약재 넣어 달이라 그럽디다."
"오골계? 그 귀한 기이 어디서 났는고? 재주도 좋다. 백정놈이,"
빈정거린다. 홍이는 이불을 쓰고 자빠지듯 눕는다.
"이놈아! 밤에는 잠 안 자고 머했디노. 사대육신 멀쩡한 놈이, 세끼 밥만 축내고 니가 무신 장자 새끼라고 밤낮없이 처자빠져, 일어나라!"
발로 걷어찬다. 그러나 홍이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세상에 이년겉이 기박한 팔자가 또 어디 있겄노. 옛말에 서방 덕없는 년은 자식 덕도 못 본다 카더마는 옛말치고 그른 말이 어디 있어서. 나는 살아보겄다고 동가자서가자 줄지갈지 하는데 송장 겉은 소나아는 죽을 묵으니 아나, 밥을 묵으니 아나. 참말이제 약탕기만 보믄 주먹 겉은 것이 치민다. 내가 무신 할 짓꼬! 젊은 날부텀 이날 이적지 이가놈 집구석하고 전생에 무신 원수가 져서, 참말이지 울라 카믄 며칠 몇 날을 울어도 씨원찮겄다. 자식새끼 하나 있는 것도 에미를 발싸개만큼도 안 여기는데 내가 머한다고 그 모진 세상을 살았는지 모리겄다. 남들은 자식한테 아무 공 안 딜이도, 절로 나서 절로 크고 돈을 벌어 어미 손에 쥐어준다 카더마는, 아이구 무서리야! 참말이제 살고 접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어느 구신이 그만 날 잡아갔으믄 좋겄는데 그놈의 구신 눈이 멀었는가,"
한없는 넋두리를 하면서 바가지 속에 담긴 볶은 콩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는다.
"하나라고 오냐오냐 길렀더니 하나 자석 소자 없다. 그 말이 맞는 기라. 옆집 죽장수 할매는 무신 대복을 타고 났는고. 어저께도 아들이 새경을 받아서 어매한테 갖다주고, 내사 참말이제 부럽더라. 이놈아! 듣나 안듣나! 그 머슴애 나이 몇인지 알기나 아나? 열여섯 살이다, 열여섯! 일본 사람 오복점에 심부름함시로 거 일본 사람버선도 가지오고, 니 나이 몇꼬? 열아홉이다, 열아홉이라! 그 좋은 일자리 누구나가 구하나? 나가믄은 월급이 이십 원인데 와 안 갈라 카노! 안 갈라 카믄 내일부텀은 밥을 묵지 말든지 무신 염체로 아가리에 밥 처넣을 기고!"
나가라는 일자리는 요릿집에서 회계 보는 곳이었다.
"세끼 밥 먹으면 어매 번 것 가지고 먹나?"
이불 속에서 대꾸한다.
"그라믄 누 번 것 가지고 묵노!"
"얼씨구, 그럴 기다. 그 알량한 돈 몇 푼 최분잔가 거기서 나오는 돈, 약값도 안 된다! 이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가. 흥, 간도서 올 직에 알거지가 아니고 머든고? 몇몇 해를 내가 종질해서 당연히 받아내야 할 그년의 돈도 어느 개뼉따구한테 시줄,"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나 앉는 홍이,
"시끄럽소! 더 말하면 지붕땅 몰랭이다가 불을 질러버릴 낀께."
"그년 말만 하믄 미치는고나."
"미치는 꼴 보겠소?"
"운냐! 볼란다!"
꼬리를 감고 달아나면서 짖는 개처럼 악을 쓰고 임이네는 방을 나간다. 홍이는 무거운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꿈속에서 장이를 만났다. 끝없는 수수밭이었다. 홍이는 수수밭에서 장이를 능욕한다. 지평선에 해가 지고 있었다. 울고 몸부림치는 장이를 잔인하게 능욕했다. 눈을 떴을 때 장지문에 비치던 햇빛은 없고 개천 저쪽에서 장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이는 기지개를 켜면서 꿈속의 잔인한 그 쾌감을 완미하는 것이다.
'목이 마르다.'
방에서 나간다. 물을 먹으려고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 임이네가 당황하며 홍이를 쳐다본다. 손에 물바가지를 들고 있다. 홍이는 순간 선반 위에 놓인 사발을 들어본다. 기름기 도는 국물이 사발바닥에 남아 있다. 손바닥에 닿은 사발을 따뜻했다. 홍이는 사발을 놓고 오지솥의 뚜껑을 열어본다. 방금 부었는가 미지근한 맹물이, 그 맹물 속에 불어터진 닭, 모가지를 짤리고 두 다리를 웅크린 닭이 있다. 홍이는 화덕을 번쩍 들어 임이네를 향해 냅다 던진다.
"어이구!"
오지솥의 물과 닭이 부엌바닥에 쏟아지고 오지항아리는 산산조각, 숯불 꺼지는 소리, 숯에서 김이 오른다. 뿌연 김이 오른다.
"이놈이 사람 잡네."
임이네는 손등을 감싸며 쉰 목소리로, 그러나 나직이 울부짖는다. 시뻘건 숯덩이 하나가 손등에 떨어져서 손을 덴 모양이다.
"이놈아!"
임이네는 홍이에게 돌진해온다.
"이 원수놈아!"
손등을 물어뜬는다. 홍이는 입을 다문 채 확 떠민다. 임이네는 궁둥방아를 찧으며 부엌바닥에 뒹군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홍이를
거머잡는다. 난투극이 벌어진다. 피차 말없이 응, 응 하는 소리, 투덕거리는 소리. 얼마 후 홍이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는데 홍이는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천하에 몹슬 놈이 돼 있을 것이다. 불효막심한 놈이 돼 있을 것이다. 덴 손등을 이웃사람에게 보이며 말할 것이다. 자식밖에 모르는 나에게 술값 안 준다고 행팰 부렸노라. 남편에게 줄 오골계 진국을 마셔버리고 객물을 부은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이웃 간에선 임이네도 인심을 얻으려 노력한다. 실속 없는 말로써. 하기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이웃 간에선 여자가 부지런하고 맵짜고 야물다는 평판이 나있긴 했다. 병든 남편 시중 드느라 욕본다고들 칭송하기도 했다. 천하에 몹쓸 놈 불효막심한 놈, 오냐 천하에 몹쓸 놈이 되어주지! 되어주면 될 거 아닌가.
'뭣이 될꼬? 백정이 될까? 남사당이 될까?'
홍이는 밤늦게까지 거리를 헤맨다. 술집을 볼 때마다 차고 들어가서 동이째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뭣이 될꼬? 도적놈이 될까? 살인을 할까? 도적질을 해서 금덩이를 안기줄까? 그라면 어떤 얼굴을 할꼬?'
홍이는 밤이 아주 저물었을 때 소주 한 병을 샀다.
'오늘밤 가시나 하나 신세 조진다! 하느님 아버지시오 불쌍히 여기소서!'
강둑에 앉아 매운바람을 마시며 홍이는 소주병을 비웠다.
'세상이 돈짝만하다! 독립투사고 개나발이고 없다! 없어! 독립이 되면 뭐하나! 악마로 태어났으면 악마로 사는 기라. 독립된다고 천사가 될까? 아버지는 산송장이고 그, 그, 어미, 그 야차 겉은 아아, 밤마다 돈을 세겠지. 다들 것이 없다 그 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기라 그 말이다! 벌써 나면서부터 정해진 거야! 얌전하게? 품행은 방정하게? 밖에서는 그러고 집에 오면 아까 같은 난투가 벌어지고 하하하핫... 천하고 더럽고 천하고 더럽고, 그 구더기 속에서 품행은 방정하게, 애국애족하고, 에에라, 그런 거는 박정호나 하는 거다! 그런 거는 강두메 그런 천재가 하는 거다! 나같은 별 수 없는 놈이 할 짓은 아니다아-- 내일이면 또 공밥 타령이 나올 게고 돈 벌어오라 할 게고 아버지는 세상 끝난 사람, 옆에서 음... 아이구 어지러워라. 아버지 아버지! 불쌍한 사람... 아아니, 뭐가 불쌍하노! 아버지는 날 안사랑했다! 왜냐! 임이네 피가 반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놓고 싶어서 놓은 자식도 아니었다. 그렇지, 바로 그 임이네 피가 반 섞여 있었다는 게 문제, 아니구, 어지러워라.'
그러나 홍이는 빈 소주병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쏜살같이 둑에서 뛰어내린다. 바람은 살갗에 맵고 심장은 불이 붙은 듯 뜨겁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홍이 교회당 근처, 야학에서 돌아가는 길목까지 왔을 때 이미 야학은 파한 모양이었다.
"제이기--럴!"
땅바닥에 침을 뱉고 바짓말에 손을 찌르며 몸을 흔드는데 인적이 없던 괴괴한 골목, 골묵 아래켠에서 발소리가 난다. 겁에 잔뜩 질린 몸짓의 장이다. 홍이는 바짓말에 손을 찌른 채 다가오는 모습을 노려본다. 사실은 야학이 끝나자 장이는 맨 먼저 교실에서 나왔던 것이다. 홍이를 만나지 않으려는 굳은 결심을 하고서. 그러나 골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뒤따라오는 야학의 생도들 이외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은 했으나 어쩐지 서운했던 것이다. 홍이를 피하려 하는 것은 밤중에 남자를 만나는 짓은 쳐녀로서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 풍습 때문이지만 불량기가 있는 충각이라는 말도 장이는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늘 쏠려갔던 것은, 그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낮에 다릿목에서의 일이 장이 마음을 뛰놀게 했는데 무서웠기보다 미묘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마음속에서 자꾸만 출렁거렸고 그네를 탄 것처럼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 같기도 했었다. 그랬는데, 그러나 도망을 가버리려고 결심을 했는데 정작 홍이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때의 실망, 장이는 집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마음속으로 싸웠다.
'잘됐지 머. 그 불량꾼이 떡 버티고 서 있었음 어쩔 뻔했노.'
'아니다. 정말 안 왔이까? 온다 캐놓고 와 안 왔이꼬? 그기이 아니다. 온다고는 안 했다. 날보고 맨 나중에 나오라 카든데... 그기이 음... 그기이 만나자는 얘기 아니까. 우짜꼬? 한분 다시 가보까?'
마음속으로 망설이면서 장이 발길을 어느새 야학 쪽으로 돌려지고 있었다.
"왜 도로 왔어."
홍이 얼굴을 숙인 장이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마 괜찮다. 난 만나려고 왔을 건데 물어보나마나지 머."
장이 콧가에 술 냄새가 풍겨온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치까?'
그러나 홍이는 손목을 덥석 잡는다.
"이거 놓으소!"
"놓아? 못 놓겠다."
"우짤라꼬,"
"잡아먹을까 바서? 떨기는 왜 그리 떨어."
"할 말 있으믄 어서 하소."
"할 말보다, 날 따라와."
"싫소! 할 말 있으믄,"
"할 말이 뭐 있어, 만나고 싶어서 그렇지. 요즘 세상에... 자아가자."
몸을 흔들어대는 장이를 끌고 홍이 간다. 손바닥 속에 장이 작은 손은 따뜻하고 그리고 떨고 있다.
'나는 이 계집애한테 장가를 들라 하나? 손이 작다.'
술이 깨는 것 같다.
"나를 어디로 데리고,"
"아무 말하지 마라. 하면 울음이 터진다. 항상 나는 네가 보고 싶었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
장이 손에서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나는 아무도 없다! 외톨박이다. 살고 싶지가 않아, 살고 싶지가 않다."
"그래도 늦게 가믄은 아, 아부지가,"
"니가 가면 나는 죽어버린다."
하다가 홍이는 장이가 달아나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지 뛰기 시작한다. 장이 뭐라건 들은 척 않고 으슥한 풀밭에까지 온 홍이는 계집애를 물건 던지듯이 냅다 던지고 그 옆에 앉으며 숨이 차서 씨근덕거린다.
"너 이름이 뭐야? 장이라 했지?"
"..."
"너 아버지는 염서방이고,"
"..."
"춥나?"
장이 고개를 흔든다.
"보내주이소."
"이젠 별 수 없지."
"제발,"
"겁이 나나?"
"..."
"겁날 짓을 왜 하노?"
거칠어진 어투에 장이는 다시 긴장한다. 이제 별수가 없다. 인가는 멀고, 먼 곳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온다. 홍이 눈앞에 임이네 얼굴이 지나간다. 이놈아! 하며 돌진해오던 그때의 얼굴이다. 목이 파묻힐 만큼 살이 찐 얼굴이다. 난투극을 벌였을 때 그 두껍고 넓은 어깨에 동물적 감촉이 되살아난다. 이 원수 놈! 이 원수 놈! 쉰 듯 나직했던 음성이 울려온다. 비호처럼 일어선다. 홍이는 다짜고짜 장이를 끌어안는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손으로 입술을 틀어막는다.
"사, 살려주,"
마치 산적처럼, 피바다를 누비고 온 오랑캐의 병사처럼, 늙고 교활한 늑대처럼, 그렇게 장이는 유린당했다.
"너 오래비한테 가서 말해라."
"도둑놈!"
"나한테 시집 올라거든 오고."
"죽어부리지 시집은 와!"
하다가 장이는 목을 놓고 운다.
"나도 미치겠으니까... 우리 어디로 멀리 쥐도 새도 모르게 달아나버릴까?"
"몰라! 몰라! 으흐흐흣,"
장이는 마른풀 위에 이마방아를 찧어가며 운다.
"네가 나를 생각해주면 나도 사람이 될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못 산다!"
조용하다. 사방은 너무 조용하다.
"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천지가 넓은데 우리 둘이 가서 살 곳 없을까봐? 만주로 가든지 일본으로 가든지,"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가, 장이는 여전히 이마방아를 찧고 주먹으로 풀밭을 치면서 흐느껴 운다.
"너하고 나하고 이곳에 살면은 찢어먹을라 할 게다. 잡아먹을라 할 게다. 가자. 가면은 길상이아제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선생님도 친구도... 그라고 또 또 주갑이아제도 있지. 그래 맞다! 주갑이아제도 있다!"
갑자기 홍이는 외치듯 그리고 장이를 안고 일으킨다.
"내가 잘못했다. 이자는 이자는 다시 안 그러게."
껴안는다. 머리를 비벼대며,
"안 그러게. 우리는 죽어도 함께 죽자. 너도 내가 좋으니까 따라온 거 아니가. 자, 이제는 고만 울고,"
하다가,
"여기서 이러구 있음 너 정말로 너 아버지한테 야단 맞일 게야. 니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두고두고 의논하자."
장이는 아버지한테 야단맞는 말에 정신이 든 모양이다. 울음을 그치고 그리고 홍이 손을 뿌리치며 달려난다. 별빛이 쏟아지는데 총총한 별빛 때문에 사방은 희미한데 홍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6장. 출옥
사대육신은 멀쩡하지만 사람이 좀 모자란다는 말을 듣는 짝쇠는 사대육신이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짜임새 있는 골격은 정한하고 훌륭했다. 키는 중키였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눈망울이 굵었다. 다만 누르퉁퉁한 살빛, 특히 얼굴이 누르퉁퉁했는데 여덟 달 동안 징역살이를 해서 그렇다 할지 모르나 실상 누르퉁퉁한 피부, 허여스름한 입술은 생래의 것이다. 누구나 그를 처음 대하면 횟배 앓는 사람이군, 하고들 생각한다. 조선 사람치고 뱃속에 회 없는 사람은 드물겠는데 뭐 각별히 짝쇠가 횟배를 앓는 일은 없었으니, 그는 늘 선량한 웃음을 입가에 뜨고 있었다. 누르퉁퉁한 안색과 허여스름한 입술 빛깔과 선량하지만 해퍼 보이는 웃음, 그런 희미하기 짝이 없는 첫인상 때문에 모자라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하기는 말씨가 다소 시원찮기는 했다. 강쇠 표현을 빌리자면 씨가 안 먹는 말이라는 것이다. 가령 너 지금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을라 치면,
"그놈의 버르지를 씹었더마는,"
하는 식의 대답인데 배밭에 가서 배 한 개를 얻어먹었는데 배벌레 씹은 것이 기억에서 젤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어본 사람 편에서 보면 동문서답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꼭 말을 해야 할 경우 묵묵부답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곤 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병신의 똥고집이란 욕을 했다. 사실 그것은 짝쇠의 본의가 아니다. 서둘다보면 말의 순서를 찾지 못하면서 냉큼 한마디 자기 혼자 이해하는, 동문에 서답을 내던지고선 그것이 정녕 서답인 것을 깨달았을 때는 입이 붙어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할 경우 억울할 때도 입이 붙어버리는데 억울해서 견딜 수 없고, 꼭이 자신의 처자를 설명해야만 할 때 그는 입술을 실룩거리거나 제 가슴을 주먹으로 치곤 했다. 아마도 그런 버릇은 어릴 적에 양반댁 드나꾼으로 산 짝쇠의 홀어미가 그를 데리고 다닌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성미가 급했던 그 양반댁 도령이 자기 변명이나 억울한 호소 따위를 허용치 않았으며 무슨 대답이든 빠르게 간단하게 할 것을 깝쳐댔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나 아니었던지. 열아홉 되던 해 홀어미와 사별한 짝쇠는 이종사촌뻘 되는 강쇠를 찾아와서 그때부터 함께 살았는데 그것도 사오 년이 된다. 진주에서 여덟 달 동안 징역살이를 하고 마중 나와 준 강쇠를 따라 짝쇠는 지금 평사리를 향해 걷고 있다. 해동하여 강물은 풀렸으나 논바닥에는 아직 살얼음이 남아 있었다. 짝쇠는 사흘 전 까지만 해도 감옥에 있었는데 지금 활개 짓을 하며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이 믿기지 않아 부지런히 사방을 살핀다. 농촌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한결같이 겨울 풍경이다.
"그때 산돼지한테 떠받혀서."
짝쇠가 중얼거린다.
"무신 소리를 하노. 언제 일인데."
"그러시... 용시를 쓴께 세상에 노오랗더마는,"
강쇠는 짝쇠의 말뜻을 안다. 죄수가 쓰는 용수를 썼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고 세상이 노오랗게 보였을 것이다. 산돼지에게 떠받친 무서웠던 어린 시절처럼. 아주 밤중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아 마을을 헤매인다.
"어이구 우리 짝쇠야. 아무래도 호랭이가 물어 갔는갑다. 아이구 이일을 우짤고, 짝쇠야! 짝쇠야!"
어렴풋이 들려온 어미 목소리에 잠이 깬 짝쇠가 보릿짚을 헤치고 엄금엉금 기어 나오는데 땅에 묻은 씨고구마를 노리고 마을까지 내려왔던 산돼지가 기어 나오는 아이를 떠받은 것이다. 지금도 짝쇠등에는 그대 흠집이 남아 있다. 당시 강쇠는 이모, 그러니까 짝쇠 어미에게서 그 얘기를 들었다.
"그렇기 무서븐 용시를 머라할꼬 썻노."
"그거를 내가,"
"니 주둥이 때문 아니가. 니를 보고 말하느니 길가 벅수를 보고 말하는 기이 나을 기다. 내사마 아무리 생각해도 이모가 아아는 안놓고 안티만 낳지 않았는가 싶다."
짝쇠는 픽 웃는다. 웃는 얼굴을 강쇠가 노려본다. 사팔뜨기 눈동자는 그러나 강물 쪽에 가 있었다.
"웃음이 나오니 장하다, 장해! 이 자석아, 사람이 모자라도 푼수있이 모자라야 벵신 소리도 듣는 기라. 이건 중도 속도 아니라 카이."
"어매가 나 죽으믄 중이나 되라 캄시로,"
"그 빌어묵을 씨도 안 묵는 말 또 하네. 이녁이 죽으믄 바가지 들까 싶어서, 오죽하믄 그런 말을 했겄나."
"못 배워서, 말 못하는 거를 그라믄 우짤 깁니까."
"벵신 육갑하네. 누구는 공자 맹자 배워서 할 말하고 산다 커더나!"
"참 내,"
"이분에는 세상없이도 음, 째보든지 곰보든지 가시나 하나 처앵기가지고 딴살림을 시키든지 해야지. 니놈의 꼴을 볼라 카믄 속에서 천불이 난다."
"..."
"그 동안 맘 쪼인 거를 생각하믄, 진주꺼지 네놈 데리고 가지도 안 할라 캤드마는 어매가 하도 야단을 해사야지, 생각하믄 그냥, 그냥,"
"우짜것십니까."
"우짜기는 우째!"
소리가 쩡 울린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까치 두 마리가 후루룩 날아오른다.
"주막에 가서 점심 요기나 하고 볼 일이제."
"배사 아즉 안 고픈데,"
"까막소 콩밥을 묻더마는 니도 창자가 줄었는갑다."
걸음을 빨리한다.
"아침에 밥 두 그릇 안 묵었십니까."
"장골이 밥 두 그릇 가지고 되나."
부드러워진 음성이다. 실상 강쇠가 짝쇠를 들들 볶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애정의 표시 같은 것이다.
"주린 창지에 한꺼분이 많이 묵으면 배탈난다고 서이 그래놓고서,"
낄낄 웃는다. 짝쇠 역시 강쇠 옆에서 웃는 것은 어리광 같은 것이긴 했다.
"신관 편하고나. 웃어? 또 웃어?"
"웃는 거사,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인께,"
"니 까막소 갔다 오더마는 언변 늘었고마 응, 허허헛 으하하핫..."
강쇠도 정한한 몸을 흔들며 소리 내어 웃는다. 화를 내고 윽박지르고 그러나 사실은 우스운 게 본심이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까막소 까막소 하지 마소. 누가 가고 저버서 갔건데?"
"야아, 만셀 불렀심다, 지가 만셀 불렀심다, 불렀다 칸께요. 야? 주재소 말입니까? 야아, 지가 때리뿌사았심다!"
쉰 듯한 짝쇠 음성을 흉내내며 강쇠는 웃음을 참는다.
"짝쇠야, 그것도 따지고 보면 언변이다. 그제?"
"누,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붙들리갔다가 풀리나온 똑똑한 놈들 말이다 와. 남들은, 구겡만 했심다, 무신 영문인지 모르고 장에 나왔다가 사람들한테 떠밀리 댕깄심다, 그렇기 해서 매만 맞고 나왔는데 멋이 우째? 까막소 좁아 못들어가끼 바서 그랬나?"
"지나간 일 가지고,"
"지나간 일이라고? 이자는 호적에 씨뻘건 줄이 그어져서 용낫이도 못할 기구마. 일만 터져보제? 가만있어도 잡아들일 긴데,"
"차 참말입니까."
눈이 커진다. 겁이 잔뜩 실린 눈이다. 강쇠는 입맛을 다신다. 지난해 삼월, 서울부터 시작해서 몇 달을 두고 연달아 일어난 3·1만세운동은 도시에서 산간벽촌에 이르기까지, 지역뿐만 아니라 거족적인 양상을 띤 광범위하고 끈덕진 것으로 전개되었는데 경상남도에서는 합천 방면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었다. 거창, 함양, 산청, 진주로 해서 하동, 도는 다르지만 전라도 쪽에서 남원, 임실등 대체로 지리산이 중심이 된 주변 소읍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했는데 한두 차례의 시위로 그치지 않고 수차례씩 그것도 거의가 폭동화되어 면소, 주재소, 우편소 등을 습격하는 상황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합천 방면에서는 무려 여섯 차례나 시위가 있었다. 마지막의 해인사 학교의 생도들과 승려의 시위를 빼놓고 다섯 차례의 시위에선 폭동으로 화하여 사상자도 적지 않게 내었다. 그러니까 3월 23일 합천군 삼가읍에서 체포된 주모자를 탈취하기 위해 만 명이 넘는 군중이 시위에 돌입했고 면소에는 방화, 주재소 우편소를 때려 부쉈는데 바로 이 시위 때문에 짝쇠가 붙잡혀간 것이다.
강쇠는 그때 짝쇠의 기괴한 꼴을 떠올린다. 힘은 세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바보로 여기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모자란다고 생각해왔던 짝쇠가, 항상 남의 뒷전에서 희미한 존재로, 의사 표시도 될 수 없는 헤프기 짝이 없는 웃음을 띄고 있던 짝쇠가 군중들 선두에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쳐댔다면 저놈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났는고 하여 기특해했을 테지만,
"아이구 좋아라! 얼씨구 좋아라! 좋다! 저기 왜놈우새끼 물러간다! 나막신 벗고 달아난다!"
덩실덩실 춤을 추고 상상도 할 수 없게 호방안 웃음을 웃어젖히는 데서 강쇠도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정녕 그 꼴은 미친 사람으로밖에 볼수 없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박수를 치고 성원을 보내고, 물밀 듯 밀려가는 극도로 흥분된 군중들에게 어떤 여유를 주는 결과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왜인들 흉내를 내고 물구나무서듯 뒹굴고 솟구쳐 오르고 하는 짝쇠의 지랄을 훌륭한 선도 역할이었던 것이다.
"저 눔이 간이 디비졌나?"
뒤늦게 깨달은 강쇠는, 그러나 군중에게 밀려 짝쇠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저, 저, 미친놈 보래? 저 눔이 누구 잡아묵을라고 저러노?"
전반적으로 그러했으나 특히 산간벽촌 작은 고을에선 사전에 면밀한 계획에 따라 조직적으로 만세 시위가 벌어지는 경우보다 사람이 모이는, 가령 장날의 장터 같은 데서 선도자 없이 터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경우일수록 조금만 불을 지르면 폭력으로 번지는 율이 높았다. 아무튼 어떤 경우이건 지리산을 중심하여 은거하고 있는 동학의 잔당, 그러니까 운봉 양재곤 노인은 세상을 떴고 윤도집과 김환이 영도하는 동학 골수파들은 왕시 의병의 그늘 밑에서 활약하던 그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표면에는 나타나질 않고 말하자면 열이 오를 데까지 올라갈 때 그 군중심리를 교묘히 조종하여 폭동으로 이끌어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계기만 만들어주고는 슬쩍 뒷전에 물러서버리는, 그것은 세력의 확장을 꾀하는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인데 그런 만큼 자기네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 철칙이었다. 사실 불 지르는 사람은 한 곳에 한 사람이면 족했고 선두에 서서 핏대 세우는 위험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한 사람의 희생도 내지 않을 수 잇는 일이었다. 한데 짝쇠가 걸려들었던 것이며 만일 경찰서에서 우둔한 짝쇠가 어떤 단서라도 주게 되면은, 짝쇠 처지로선 아는 범위가 아주 좁고 그것도 명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간악한 왜경에게 어떻게 포착이 될지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구 좋아라, 얼씨구 좋다! 왜놈우새끼 물러간다아! 이 자석아, 한분 더 그래 보제? 춤을 벌름벌름 춤시로. 그라믄 이분에는 까막소보다 더 좋은 델 갈 낀데."
강쇠는 말하다가 길섶에 코를 푼다.
"그거사 머,"
"그거사 머? 하든 지랄도 멍석 깔아놓으면 안 한다 카더마는 이길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인께."
"그거사 머, 그거사, 한 사람쯤은 들어가야 안 하겄십니가."
"와, 멋 땜에?"
"..."
"멋 땜에 그렇노."
짝쇠 입이 붙어버린다. 자신의 심정을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면소를 불 지르고 주재소를 때려 부수고 할 적에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통쾌하고 슬프고 하던 기분 때문에 춤을 추고 미친 것처럼 웃고 하던 그 심정을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붙들려간 후의 상황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쯤은 들어가야 안 하겠느냐는 말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니깐놈이 야로 모가지로 댄간댄간 자루야 해도, 고래도 마루 안하겠소까!"
칼을 휘두르며 미쳐 날뛰던 왜순사 앞에서,
"마, 만세를 부, 불렀심다. 내, 내가 불렀심다."
메주덩이같이 생긴 조선인 순사 앞에서도,
"내가 만세를 불렀심다."
"이놈아! 네가 만셀 부른 것은 안다! 누가 만셀 부르자 했나, 그걸 묻지 않아!"
"..."
"주재소는 누가 때려부시자 했나!"
"..."
"면사무소 불 지른 놈은!"
"만, 만셀 불렀심다."
"네놈 일당이 있다는 얘길 듣고 묻는데 잡아떼기야!"
"..."
"젊은 놈이 벌써 죽어서는 안 되지. 안 그래? 그새 몇 놈이 죽어나갔는지 아나? 공연히 한 일도 없이 억울하게 죽겠느냐 말이다."
"..."
"팔은 안으로 굽더라도 나도 너와 같은 조선 사람이야. 네 사정 봐주고 싶다. 심성이 괜찮은 놈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봐줄래도 뭔가 몇 마디쯤 말이 있어야, 안 그래? 사실 산 구석에서 숯이나 구워 먹고 사는 무지렁이가 자청해서 앞장섰을 리가 없지. 누군가 충동질한 것만은 뻔해. 그게 누구야. 한 사람만이라도 좋아. 이름을 대."
"나는 만세를 불렀심다."
메주덩이같이 생긴 조선인 순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놈우새끼!"
구둣발이 가슴팍을 내질렀다.
"아구구, 만, 만셀 불렀심다! 주재소도 부, 부시고,"
"알고 보니 이 새끼 병신 흉낼 내는군. 이 새끼야, 너는 죽었다!"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정신이 가물가물해졌으나 짝쇠는 계속해서헛소리처럼 만셀 불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총대로 맞고 목검으로 맞고, 그러나 짝쇠는 그 흔히들 하는, 아이구 어무니! 하고 울부짖지 않았다. 정신없이 누군가의 이름이 입에서 절로 나 올 것 같아서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로서는 만세를 불렀다는 말이 마지막 방패였던 셈이다. 한나절이 조금 지나서 영산댁 주막에 이르렀다. 주막은 귀신치고도 늙은 귀신같은 을씨년스럽고 낡아 있었다.
"할매요."
대답이 없고 주막 안에는 사람도 없었다. 술판 앞에 퍼질러서 앉은 강쇠가,
"어디 갔나?"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간 흔적이 있다. 탁배기 찌거기가 고인 술잔이며 국솥에선 김이 오르고 있다.
"갈 길이 바쁜 것도 아니고,"
다리를 쭉 뻗는다.
"성,"
"와."
"이모캉 형수 아이들은 잘 있십니까."
"자다가 봉창 뚜드린다. 이제사 그 말을 하나."
"못 배워서 안 그렇소."
"못 배웠으니께 니는 부모 기일도 잊어부맀겄네. 그라믄 이제부터 내가 걸음마부텀 가리키주까?"
그 말대꾸는 않고,
"성, 전에도 이 주막에 와서 시라국에 밥 말아묵고 간 일이 있소."
"맞다. 딸 있이믄 사위 삼을라 캤지."
"그럼 말 언제 했십니까?"
"그 말에는 귀가 쫑끗하는고나."
"중이사 안 되더라 캐도 장개가고 저븐 맴이사 별로 없거마는,"
"이놈의 할망구 장시 안 할라 카나? 이곳 인심이 옛날에는 좋았다카드마는 다 들고 가도 모리겄구나."
"술은 천천히 묵고,"
영산댁이 쫓아 들어오며 숨찬 소리를 지른다.
"술은 천천히, 손님들 싸게 나오더라고."
풀어진 얹은머리를 걷어 올리는 영산댁 주름진 얼굴이 잔뜩 긴장돼 있다.
"나가기는 어디로 나간다 말이요."
"사람이 죽게 되얐는디 어서 나오랑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멋들 허는 기여! 싸게 나오랑께."
"사람이 우찌 됐다고 저러노. 짝쇠야, 그라믄 나가보자."
강쇠가 벗어놓은 짚세기에 발을 끼고 내려서자 영산댁은 바람같이 달려간다.
"할망구 걸음이 멋이 저리 빠르노."
두 사내는 어정어정 따라간다. 영산댁이 걸음을 멈추며 기다린다.
"아 금매 묻어놓은 무 하나 뽑을라고 나갔는디, 아 금매 까마귀가 지랄발광을 하지 않더라고? 혀서 가보았는디 세상에,"
"송장이든가요."
방금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짝쇠는 딴전이다.
"송장이 다 돼가는 사람이어라."
"누군데요."
"누군지 우찌 알 것꼬! 길 가다 넘어진 사람을!"
강쇠는 화를 낸다.
"그러니 모자란다는 말을 듣제."
"싸게 가더라고, 목심이 오락가락 허는디, 어이구 불쌍혀서 어쩔까나."
아인게아니라 까마귀가 지랄발광들 하고 있었다.
"어이구, 저기이 멋꼬!"
강쇠는 비실거린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바위 곁에 웅크리고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것, 분명 사람의 얼굴이긴 했으나.
"멋들 하는 거여. 싸게 업더라고. 이 동리 최참판댁에 사는 사람인디,"
강쇠는 비로소 상대가 누군가를 깨닫는다.
"이기이 어디 사램이요?"
짝쇠는 어이없다는 듯 영산댁과 강쇠를 번걸아본다.
"잔쇠리 마라!"
강쇠는 괴물을 냉큼 들쳐업는다.
"곱새도 보통 곱새가 아니거마는. 벵신이라고 누가 내버린 거 아니요?"
"주둥이 닥치라!"
괴물은 조준구의 아들 병수였다. 수염은 기를 대로 내 버려두었든지 둥그렇게 뜬 눈만 사람임을 나타낼 뿐 흡사 들짐승 같았다.
"천벌을 받아도 안 될 것이요잉. 워찌 이 불쌍한 양반이 대신 받는다 말시?"
영산댁은 앞서가면서 콧물을 닦는다. 주막 안방에 병수를 내려놓고 강쇠는 넋이 빠진 듯 병수를 내려다본다. 그의 뇌리 속에는 환의 얼굴이 지나가고 있었다.
"거 벽수걸이 서 있던 말고 뜨신 국물이나 쫌 떠다 주시시오."
"야."
짝쇠가 국솥으로 달려가서 국 한 그릇을 떠가지고 서툰 몸짓을 하며 들어온다. 병수는 물에 빠졌다가 기어올라 왔을까, 한 켠은 젖고 한 켠은 얼기도 한 옷을 상쇠가 벗긴다.
"무신 헌옷 같은 거 없소?"
"혼자 사는디 남자 옷이 있을랍디여? 우선 이불에 둘둘 말아서 아랫묵 뜨뜬한 곳에 아니, 아니어라우, 이보시오 젊은이, 기별을 하는 편이 저 그, 동네를 쭉 들러가면 고래탕 겉은 기와집이 있는디,"
웅크리고 있던 병수는 별안간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떤다.
"아아 알았구만이라우. 알리지 말라는 이야긴 모양인데,"
영산댁 얼굴에 연민의 빛이 지나간다. 베개를 꺼내어 머리에 받치려 한다.
"눕힐 기이 아니라, 더운 국물부텀 떠 먹이소."
강쇠는 이불자락으로 몸을 감아주고 이불깃을 여며주며,
"아 참 그려. 그래야겄제잉. 어마도지혀서 정신이 다 나가버렸당게로."
강쇠가 등을 받쳐주고 영산댁이 국물을 먹인다.
"이 양반아, 뭣 땀시로 집을 나가기는 나간다요? 목심이라는 것은 관대로 그렇기는 못 끊는 법인디,"
국물을 받아먹는 병수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죄는 죄진 사램이 받는 법이여. 뭣 땀시로 이 고생을 사서 한단가?"
존댓말이 되었다가 하댓말이 되고,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영산댁이 병수를 업수이여겨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측은하고 불쌍하여 거두어주고 싶은 심정에서 친밀감을 나타냈을 뿐이다.
"그런께로 어디 벵이 나서 이 지경 된 기이 아니고 굶었거마는. 굶은 데다가 치버서 쓰려진 모앵이구마. 조금만 더 오믄 인가가 있는데,"
짝쇠는 꼽추인 병수의 몰골이 신기해서 보고 또 보며 말했다. 강쇠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여, 영산댁."
병수 입에서 가늘고 힘이 부치듯한 말이 나왔다.
"그, 그라믄 그런께로 서로 아는 사이구마는. 누굽니까. 친척 되는 사람인가배요?"
짝쇠는 태평스럼게 궁금증을 나타낸다.
"이 국믈이나 더 마시고 말심하시시오. 뜻뜻한 것이 들어가면 속도 풀리고 정신이 들 것인께로. 한참 푹 주무시시오."
"영산댁,"
"예. 워째 그러시오? 말심해보더라고."
"내, 내가 못난 놈이오!"
"워쩔 수 없제요. 잘났어도 별수없을 것이요. 몸이 성하다면 모리까 뭣을 워찌 할 것이요? 아무도 이 동네에선 서방님 나가라 헐 사람은 없일 거고 서방님 나쁘다고 욕허는 사람도 없당께로. 부모 잘못 만난 죄밖에 더 있어라우?"
흐느껴 운다. 병수는 어린것처럼 흐느껴 운다.
"무서워서 죽을 수 없었소. 백번 천번 죽으려 했었지만 그래도 죽어지질 않더라구요."
짝쇠가 강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성님, 양반인가 배요. 무신 곡절이 단단히 있는갑소."
여전히 강쇠는 침묵을 지킨다. 병수의 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눈동자는 엉뚱한 곳에 가 있었지만.
"그럼 말심이랑 안 허는 것이여. 못다 살고 가면 차생에서 또 고생헐 것인께로 살다보는 데꺼지 살아보고서,"
"주, 죽을 수가 없어서... 여까지 왜 왔는지 모르겠어! 와서 생각하니... 강물에 빠졌는데 이 못난 놈이 기어나오질 않았겠소?
으흐흐흣..."
흐느껴 울더니 종내는 통곡이다. 여느 사람의 반밖에 안 되는 몸뚱이, 그나마 가죽과 뼈만 붙은 듯 여윈 몸뚱이는 멍들고 껍데기가 벗겨지고, 죽으려고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을까. 명이란 질기고도 긴 것. 영산댁은 행주치마를 걷어 콧물을 닦는다.
"조준구 그 사람이 서방님 반 몫이만 어질어도 이 지경은 안됐을 것인디, 사람 하나 나쁜 탓으로 만 사램이 고생 아니겄소? 죽는 것도 독하고 모질어야 서방님겉이 유순허면 죽는 것도 관대로는 안 되는 것이요. 암말 마시시오. 푹 한잠 자고 난 뒤, 방은 따습은께."
국그릇을 치우고 어린애 달래듯, 병수를 자리에 눕힌 뒤 이불을 따독거려주고,
"이거 미안혀서 워쩐다야? 사람이 살면 백년 천년 살 것이여? 나 공술 낼 것인께로 양껏 마시시오."
두 사내를 떠밀 듯 하며 영산댁은 술청으로 나온다. 해가 깜박 넘어간 후 길가마귀들은 시끄럽게 날아가고 목동들이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쯤, 짝쇠를 데리고 강쇠는 구례 윤도집댁에 당도했다.
"짝쇠야, 그간 고생이 많았겠구나."
윤도집이 반색을 하며 맞이하였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임실의 지삼만이도,
"허, 이자가 바로 까막소에서 나온 그자란 말씨? 하하핫..."
노리끼리하고 성긴 수염을 흔들며 웃는다.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 짝쇠는 겁먹은 듯 비실거리며,
"성,"
"이 자석아."
강쇠는 기분이 좋잖은 것 같다. 기대어오는 짝쇠를 거질게 떠밀어낸다.
"도집어른, 그간 별고 없었십니까."
깍듯하게 인사하고 다음,
"지서방도 별고 없소?"
삐뚜름하게 말한다. 강쇠의 코언저리에서는 냉기가 감도는 것만같다.
"허허. 별고야 있다면은 있는 것이고 없다면은 없는 것일 거여. 사람 사는 것이란 노상 그런 거 아니랑게?"
땅땅하게 바라진 어깨를 뒤로 젖히며 하는 지삼만의 대답이다.
"그는 그렇겄소. 있고도 없는 것 없고도 있는 것, 한데 진주서는 지서방 일을 썩 잘했더마요."
"그건 또 어디 맥을 짚어야 헐지 모릴 말인디, 워쨌거나 잘혔다니 싫잖은 일이여."
"실은 열 꾸리라도 비단이 돼야제요."
"비단이 안 되면 실로 쓰고, 어렵잖여."
"하기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 이 노릇 한다 캅디다만."
"아아니, 이 사람들이 수수께끼놀음인가? 왜들 이러나."
윤도집이 이들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지만 오가는 말에는 뼈 이상의 무엇이 있는 듯하여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수수께끼놀음이야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우리네사 수수께끼놀음으로 살아갈 놈 아니어라우? 하하핫 하핫..."
싸늘하게 내뱉고 강쇠는 소매를 걷으며 이라도 기어다니는지 긁적긁적 긁는다.
"진주, 진주라. 아암 수고야 했세. 합천 거창만은 못혀도, 유식현 놈 많은 도방이 우리네헌텐 고질이지만,"
강쇠는 더 이상 응수하지 않고 입맛을 다신다.
"그는 그렇고 김장수의 자제께선 안녕들 한가 모르겄네."
환이를 두고 김장수의 자제라 비꼰 것이다.
"별일이야 있겄소? 지장수가 멀쩡한데. 하기는 나도 잘은 모르겄소만."
지장수라 높이면서 비꼰다. 짝쇠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꿇어앉은 무릎에 두 손을 얹고, 이 사람 얼굴 보고 저 사람 얼굴 보고 하는데 때론 꾸벅 졸곤 한다.
"이러지들 말고 우리 저녁이나 먹지. 스님 오시는 것 기다릴 것 없이,"
윤도집은 사람을 불러 빨리 저녁상을 들여오라 이른다.
"혜관스님이 오시기로 돼 있습니까?"
강쇠가 묻는다.
"오신다는 기별이 왔네."
"그렇다면 지가 여기 오지 않아도 좋았을걸..."
강쇠의 얼굴은 점점 더 우울해진다. 이따금 지삼만을 가만히 노려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