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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3

황혼이 짙을 때

보이지 않는 무서운 떼서리가 일조에 우길의 집을 에워싸고 온 집안 식구의 간담을 무시로 위압하는 것 같았다.

우길의 아버지는 종내 고향을 뜨기로 마련이었다.

칠십 노모를 두고 선형의 땅을 기약 없이 떠나는 것이 섭섭하기는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이곳을 뜨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집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본즉 더욱 마음이 조여서 하루라도 이 지붕 밑에서는 발편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왼데로 낚시질을 가서 며칠씩 묵어서는 아침결에 집에 돌아왔다가 석양편에 다시 낚시질을 떠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박진사는 반가운 소식 하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 귀순이 혼처가 있는데 어머님 생각에 어떠실는지요.”

하는 것이 이른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귀순이는 우길의 손위 누이다. 나이는 이제 겨우 열세 살…… 그러나 아버지에게도 할머니에게도 그것은 이미 여읠 수 있는 방년인 것이다.

아아니, 어디 마땅한 자리가 있는가. 그러믄사 여북 좋겠나. 줄 것은 주고 데릴 것은 날래 데려와야지. 우길이 나이도 벌써 열 살이 아닌가. 열 살이래도 유만부동이지 그놈은 쪼무래기 열다섯 폭은 되느니. 그러니 제 형보다 이르면 일렀지 늦을 수는 없지. 인륜대사란 때가 있는 법이니.”

손자며느리를 하나 더 보고 눈을 감을 생각이 그윽한 할머니는 그 전으로 어서 귀순일 여의어 줄 마음이 불 같고 그러니만치 이제 겨우 열세 살인 귀순이가 나이 넘은 덩그렁 숫처녀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 신랑의 집은 어떤가?”

할머니 말이 더 다급하여졌다.

저어 장자리 이진사라고 있습니다. 근본이 양반입지요. 그 사람 맏아들인데 놈이 외양도 준수하려니와 열여섯 살룬 범절이 뜨르르하고 글을 읽는데 재주가 또 비상하더군요.”

할 뿐 박진사는 이진사네가 소문난 부자라는 것은 위정 말하지 않았다.

열여섯 살이면 나이가 좀 덜 맞네만 그래도 궁합만 좋으면 사너니.”

그리고 할머니는 귀순이가 섣달에 나서 사주가 센데 사주 센 처녀는 후취로 가야 액운을 면한다고들 하지만 세 살 위인 신랑을 맞으면 후취나 다를 바 없으니 그게 아마 천생연분인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귀순이는 섣달에 낳았다.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자면 올해에 열네 살이지만 마침 입춘 지난 뒤에 나서 할머니는 이듬해 정월에 난 것으로 치라고 집안 식구에게 일러 두어서 그제부터 내려 한 살을 줄여 왔다.

그러믄요. 모두 제 팔자입지요.”

그래 말은 일러 봤냐?”

아니올시다. 어머님 말씀도 안 듣고 홀홀이 말을 낼 수 있습니까.”

아아니 내 말 들을 거 뭐 있나. 자네 생각에 가합하면 그만이지.”

아니올시다. 그래도 어머님 분부가 계셔얍지요. 일의 절차가 그렇잖습니까.”

글쎄 어서 정혼하도록 하게. 늙은것이 아마 손자사위 절을 받으려고 여태 안 죽고 살아 있나 보네. 또 혼사라는 건 첨에 맘먹었던 자리가 비끼면 종래 시원한 일이 없느니.”

글쎄 그도 인연인가 봅니다. 그저께 우연히 광포 낚시질터에서 이진사를 만나 가지고 어찌어찌 말이 되어서 어제 그 집에 들렀습지요. 했더니 이진사가 아들을 제게 절을 시키는데 담박 맘에 들더군요. 겉 볼 안으로 외양부터 잘 쓰고라야 속도 되는 법이니까요.”

그래 생월 생시나 알아봤나.”

아직 그것까지는 못 물었습니다. 그런 내색은 통 내지 않었습니다. 그리고 딸 가진 편에서 먼저 구혼하기도 뭣하고 해서요.”

그렇지. 그러니 사주나 먼저 알어보게. 그래 궁합이 썩 좋으면 그 담에 저편에서 구혼하도록 하는 수가 또 있겠지.”

그래서 박진사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담번에 박과 이가 만났을 때 술이 오고 가는 사이에 그 말이 나자 매파고 중신이고 할 것 없이 술취한 헙헙결에 그만 정혼하기로 결정하고 그리고 사돈이 되었다는 경사바람에 술병깨나 좋이 더 비웠다.

맏아들 상무의 혼사를 술집에서 결정한 박진사는 이렇게 해서 딸의 혼사도 또 손쉽게 실로 담배쌈지 하나 사기보다 더 가벼이 결정해버렸다.

때는 봄이라건만 우길의 집은 이 봄에 도리어 쓸쓸해졌다. 아버지는 돌아올 기약 없이 하루 아침 한양 천리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주인을 잃은 굳게 닫힌 사랑으로 들어설 때마다 우길은 겨울같이 썰렁한 느낌을 받았다.

애틋이 아버지 그리운 그 봄이었다.

그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누엿이 넘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앞내 버들가지를 꺾어서 호들기를 만들어 청승맞게 불면서 들어오건만 그래도 이 집의 잠긴 공기는 개운히 가시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면 우길의 심정에 호젓하게 얽히는 것은 다만 아버지를 그리는 것뿐만 아니다. 딱히는 몰라도 어린 누나 귀순이가 불원간 남의 집으로 간다는 그 사실이 우길의 마음 한구석에 뽀오얀 안개처럼 서리어 있는 듯싶다. 귀순에게 대한 할머니의 말투부터도 우길의 귀에는 전과는 판양 다른 것 같았다.

요년아, 낼모레면 시집을 가. 여태두 어린앤 줄 아느냐.”

하고 쩍하면 부수닥기가 일쑤다.

하기는 그도 그렇다. 귀순이는 여태도 어린애처럼 약을 먹으라면 누워 앓다가도 슬쩍 빠져서 이웃으로 피신해 버리고 꼭 붙잡고 먹일라면 입에 자갈을 물릴 지경이니 저게 온 큰 집 맏며느리가 될까…… 할머니 걱정도 아주 무리는 아니다.

요년아, 몸은 잔뜩 약한 년이 약두 안 먹구 밥두 괴밥 먹듯 하니…… 저 꼴을 해가지고 뉘 집 망신을 시키려느냐. 얻어다 기른 아인 줄 알겠구나.”

하고 할머니가 극성을 부리면 우길이는 듣다가 못해서,

할머니, 귀순인 어째 남의 집으로 보내자우. 미워서 그러우?”

하고 알다가도 모를 이 사단을 할머니에게 물으면 할머니는,

요놈의 새끼, 그게 다 너 때문이다. 나이 차례로 시집가고 장가드는 게지. 그래 굴뚝에다 불을 때는 걸 봤니. 소를 뒤집어 타는 건 어디 있더냐.”

하고 망령을 떤다.

귀순이랑 이순이랑 아무데두 보내지 말구 집에다 둬요.”

집에다 둬? 저런 사람의 집 망칠 놈의 새끼라고는…….”

가고 싶으면 할머니나 가요. 할머니 허리 꼬부라져서 가마 타면 썩 좋을 거요…… 그렇지 않으면 계섬이를 보내 줘요. 계섬이가 그러는데 쪽두리 쓰고 가마 타구 싶다구…….”

이렇게 우길이가 할머니를 가지고 놀리고 있는데 입이 무거운 상무가 공연히 가로 나서며,

얘 우길아, 너 그거 무슨 소리냐.”

하고 구박하려 들어서 우길은 단박 밸머리가 꼴렸다. 본시 상무는 동기고 남이고 간에 계집아이는 홀쩨 사람으로 안 치려고 드는데, 그러면 그런 대로 가만히나 있을 일이지 묵중할 데 도리어 자발없이 참견이어서 우길은 상무를 질끔 깔보아 주었다.

그 뒤부터 우길은 어쩐지 귀순이가 불쌍해서 늘 그 편역을 들어를 주었고 또 그러한 심정은 어린 누이동생 이순에게로도 쏠려서 전보다 더 귀엽게 그를 생각해 주었다.

한번 우길은 힘에 좀 부치는 대로 놀고 있는 이순이를 계섬이더러 업혀 달라고 하였다.

이순이는 올해 겨우 다섯 살이나 우길이를 닮아서 몸이 포실하고 흐벅지다. 그게 우길에게는 좀 무거웠지만 그런대로 꾸둥쳐 업고 추석거려 주었다.

그럴 판에 상무가 들어왔다. 한즉 우길은 무슨 까닭인지 얼굴이 약간 붉어질싸하였다.

상무가 속으로 계집애처럼 어린애를 처업고 노는 놈 하고 나무라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상무 안 보는 데서도 이순이를 업어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길이는 이순이를 업어 주는 것이 못난이 짓이라고는 아무러나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상무는 어째 그것을 숭볼까?’

하고 우길은 늘 생각하였다. 그러나 종내 그 까닭은 알 길이 없었다. 이런 것이 모두 우길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고 또 이 집에 그의 어린 영혼이 차붓이 안존해 있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서늘한 이 집보다 동무들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래 집에 들기를 그닥 즐기지 않았다.

그때 상무의 새 아내가 몸이 무거운 지 이미 오륙 삭이 되어서 할머니는 벌써 증손자나 안은 듯이 이런 경사가 없다고 벅작궁 고아 대고 고아 대던 끝에는 제김에 조심해야 한다고 가만히 있는 집안 식구들을 가지고 성가시게 구나, 그런 것은 우길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귀순이는 그해 가을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시집을 갔다.

서울 간 아버지도 아니 오고 홀쩨 허술한 보잘것없는 잔치였다.

할머니 환갑 말은 다시 외일 것도 없지만 상무의 혼인잔치만 해도 큰 소 잡고 인근 사방에 쩡쩡 울리도록 대판으로 차렸는데 이번은 겨우 남의 눈가림으로 큰 개만한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요, 이 동리에서도 가까운 일갓집밖에 알리지 않았다.

본시 딸잔치는 광청하지 않는 것이 이 지방의 풍속이라지만 그래도 생기복덕 좋은 날을 택해서 장가들고 시집간답시고 이렇듯 조촐할 수가 있을까? 십년나마 구구하고 싸우고 하던 동기 하나를 영영 남의 집으로 보내는 날 아버지는 어째 오지 않는가. 딸자식은 자식 아닌가.

우길이는 이날 도리어 쓸쓸할 지경이었다.

귀순이는 이날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원삼에 칠보 족두리를 고이 썼지만 그래도 우길이 머리에는 조그만 처녀일 때의 귀순의 모습만이 너무도 분명한 것이어서 화려한 그 옷 밑에서 아직도 소꿉장난을 치고 싶어할 어린 누나의 마음이 새삼스레 그리워졌다. 귀순이하고 노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요, 그의 소꿉그릇을 발길로 차서 맞들이로 싸우던 것도 벌써 옛 일이다.

아침에 어머니가 귀순에게 새옷을 입혀 주고 나서 눈을 숨벅거리고 그러고도 설움을 이로 깨물어 넘기던 것과 귀순이가 돌아서서 눈물을 씻던 것이 새삼스레 눈에 선해진다.

그날 우길이는 신혼 나들이를 따라서 신랑 집으로 갔다.

신랑 집은 청개와집 두세 채가 줄느런이 늘어서고 앞뜰 뒤뜰이 장마당같이 너른 큰 집인데 차일을 친 앞뒤뜰로 잔치 손님이 감자알을 굴리듯이 비비닥거리며 벅작 싸대치고 있다.

우길은 대뜸 정신이 어정쩡해졌다.

누나를 실은 가마가 그 집 안마당 차일 밑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보았는데 그 담엔 아무리 보려 해도 다시 귀순이를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또 적이 섭섭하였다.

우길이도 우행의 한 사람으로 전물상같이 큰 상을 받았다. 그 상마다 떡목기 고기목기가 으자자한데 더욱 통으로 삶은 닭은 고기목기에 놓은 것이 숫제 보암직하고 또 구미를 당기었다.

우길은 푸짐하게 먹어 댔다.

아침을 설때려서 흠씬 배가 고팠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안뜰에 들어가서 기웃이 목을 늘여 보나 역시 누나는 볼 수 없다.

그럴 판에 우길이보다 조금 작은 아이들이 앞뒤로 굴러다니며 벅작궁 고아 대고 히히닥거리어서 우길은 거게 잠시 눈이 팔렸다.

가만히 보려니까 이 동리 아이놈들도 무던히 드센 품이다.

우길은 슬그머니 이 동리가 마음에 들었다. 저 어린 놈들을 휘동해가지고 남의 집 참외밭 실과나무를 결딴내는 것도 십상 재미나는 장난일 상싶었다.

우길은 그날 밤 그 집에서 잤다. 낮 동안은 어린애들과 섭쓸려서 그런 줄을 몰랐는데 밤이 드니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고 또 귀순이도 어찌 된지를 몰라서 적이도 심란했으나 집으로 가기는 이미 때가 늦어서 그런대로 잤는데 눕자 대번에 아침까지 내부쳤다.

그 이튿날 아침 우길이는 시오리 길을 혼자 떠나왔다. 반반한 너른 들판일 뿐 아니라 큰길이 있어서 쉬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오면서도 우길은 저를 보내일 때 울듯 울듯 하던 누나의 양자를 잊을 수 없었다.

음력 팔월도 다 가고 이미 구월이언만 철보담 유난히 따뜻한 날이다.

쨍쨍한 가을의 햇발이 거침없는 맑은 하늘로 솔곳이 내려붓기어 타는 듯 째지는 중낮이었다.

우길은 큰 냇가 소나무 아래에 와서 냇물에 발을 씻고 백사장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잔잔히 흐르는 옅은 냇물을 하염없이 바라는 동안 우길은 불현듯 서글퍼졌다.

이윽고 부칠 곳 없는 맘이 그로 하여금 백사장에 손장난을 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무심코 그려진 것은 한 마리 말이었다.

우길은 본시 말을 좋아하는데 근자에는 야포 연습을 나오는 군인들의 말을 보고 또 그들의 책자에서 그린 말을 자로 보았고 바로 어제는 신랑마를 보았다.

그는 말을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이어 가마를 그렸다. 가마를 그리고 본즉 응당 그 속에 있어야 할 누나가 생각나서 이어 또 누나를 그렸다.

그리고 한참 그것을 보려니까 불시에 눈물이 칵 쏟아져서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그린 그림을 발로 문질러 버렸다.

그러나 집에 와서는 그런 말은 꼬물도 비치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 그런 심정을 알 사람이 있는 상싶지 않았던 것이다.

 

귀순이가 시집간 지 얼마 뒤에 상무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그 조금 뒤에 수상(水上)에서 용릉이가 내려와서 괴괴하던 집안이 얼마큼은 개운해지는 듯하였다.

용릉이는 성은 비록 민가지만 의부(義父) 박진사 집 행렬을 따라서 상제(祥濟)라고 관명을 지었다. 상제는 그 동안에도 몇 번 우길의 집에 다녀갔다. 그러나 올 제는 반가워도 갈 제는 늘 섭섭하였다. 올 제는 광명이 비치는 훤한 데로 온다는 생각이 하마 서울에 있을 듯싶은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는 듯한 기쁨을 주었지만 두메산골 어두운 곳으로 돌아갈 젠 그와 반대로 아버지 있는 고장을 멀리 등지고 가는 서글픔이 있었던 것이다.

상제 나이 이제 열일곱 살 잔뼈가 굵도록 길러 준 양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나이 들수록 골육의 정이 가로세로 골수에 사무쳐 들어서 무시로 생부모를 찾을 마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열다섯 살 되던 해에는 서울까지 가서 민가 집이란 민가 집은 거지반 들러 보았으나 시골뜨기 보따리 총각이라서 아무도 탐탐이 그의 하소를 들어 주려 하지 않고 또 모두들 상제의 아버지임직한 사람을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개 걸신으로 도로 수상으로 돌아왔으나 부모 찾을 마음은 염염이 사라질 줄을 모르던 중 우길의 아버지가 서울 가서 있다는 소문을 듣자 그를 의지하고 다시 서울 가볼 마음이 불 같아졌다.

그래 우길의 집으로 오던 맡에 그 뜻을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할머니, 저는 서울 아버지 계신 데로 가려고 왔습니다.”

상제는 우길의 아버지를 늘 생부나 질배없이 그리운 마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한테루? 아버지가 널더러 오라더냐. 편지 왔디?”

아니에요.”

그럼 아버지 말씀도 안 들어 보고 갔다가 야단 만나고 몰려오면 어쩔 테냐. 먼저 편지나 해보아라.”

, 그럼 편지해 보겠습니다. 계신 데두 딱히 모르고 해서 여태 편지 못 했습니다.”

아버지도 지금 별일이 없는 모양이신데 온 수이 오랄 것 같지 않다.”

아니에요. 잠깐 다녀오겠어요. 그리고 노수는 수상 집 아버지가 주어요.”

수이 다녀온?”

, 생부 계신 데를 찾어보구 오겠습니다. 돌아가셨으면 하다못해 무덤이라도 찾어보구 오겠습니다.”

상제의 목소리는 부지중 조금 떨렸다.

생부를? 글쎄 찾을 수 있으면야 여북 좋겠니. 그러나 너의 아버지란 이도 무던히 독한 양반인가 보다. 범 같은 짐승도 새끼 둔 데로 머리를 돌린다는데. 어쩌면 일거후 무소식이냐.”

상제는 그저 눈만 숨벅거리고 있었다. 무심하고 매정한 아버지지만 단 한 번 만나서 얼굴이 어떻게 생기고 음성이 어떻게 생긴 것이나마 알았으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박진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달포가 넘어서야 회답이 왔다. 그러나 그 편지는 금년은 그만두고 내년 개춘한 뒤에 오라는 것이었다. 상제는 할 수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박진사에게 편지를 하던 끝에 그 동안 서울 민가들의 내정을 수소문해서 생부의 생사여부를 알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상제는 그 며칠 뒤부터 상무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 이름이 학교지 여전히 서당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아직도 주장 한문을 배웠다.

상제는 수상에서 대수 한문공부를 했기 때문에 글도 많이 늘었으나 재주는 상무에게 멀리 미치지 못했다.

상무와 상제는 의형제간이니만치 물론 정분이 자별했고 우길이도 또 상제를 몹시 따랐다. 그런 우길은 당연히 형이라고 불러야 할 그 말이 여직도 수월히 나오지 않았다.

우길은 친형인 상무도 여태껏 형이라고 불러 본 일이 없다. 실상 마음이 키이는 푼수로 하면 싹싹하고 상냥한 상제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으나 막상 그 경우를 당하면 말이 나가지 않아서 그저 우물우물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부모형제가 없는 상제에게는 터놓고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형이니 아우니 하고 부를 수 있는 이 집이 한없이 정답다. 물론 이 집 식구들 모두 쳐야 생부 하나가 될 택은 없지만…….

어느 의미로 보면 상제가 이 집으로 온 것을 제일 기뻐한 것은 상무라는 것보다도 또는 우길이라는 것보다도 계섬이였을 게다.

진정코 반가운 푼수론 단박 그를 붙들고 넉살을 부리고 하다못해 씨무륵 웃어라도 보고 싶으나 이 집 가도가 본시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뿌듯한 가슴을 속절없이 엎누르며 제결에 새는 살가운 웃음을 깨물어 가자니 공연히 속만 찌륵해서 죄없는 제 몸만 홀로 옥죄일 뿐이었다.

계섬에게는 강팍한 이 집이 연심 더 싫어졌다. 말하자면 허울좋은 감옥생활이다.

봄이 오고 봄이 좋대도 계섬이는 한 번 나물 캐러 나가 본 일조차 없다.

그렇게 야살궂게 오만가지 일을 다 시켜도 바구니 들고 풋나물 캐러 가라는 말은 꿈에도 외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한번 참다가 못해서,

할머니, 일년초 잡숫고 싶지 않어요. 저 새벌에 오만가지 나물이 다 있대요. 나 오늘 나물 캐러 갈라우.”

하고 능청스레 슬쩍 떠넘기려 한즉 심술망나니 할머니는 대뜸,

이 간나위년아, 나물이구 뭐구 그만둬라. 들에만 나가면 얼씨구나 좋구나 낮잠이나 처자다가 어디서 제비구슬半夏이나 캐가지고 와서 누구를 죽일라구 그러느냐.”

하고 헤살을 놓았다.

그리고 이놈의 집은 온 우물이라도 없었으면 아침저녁 남의 집 우물로 물 길러 가서 답답한 네속 내속을 털어 부칠 말동무라도 얻으련만 이 집 앞뜰에 한다는 샘 같은 우물이 있으니 울타리 밖으로 나갈 핑계가 바이 없다.

또 남의 집에서는 덩그렁 처녀까지 여름이면 오리 밖 십리 밖까지도 소먹이러 들로 나가는데 이 집은 머슴 둘에 늙은 박서방까지 있으니 소등에서 아리랑을 엮는 그런 노래도 한번 겪어 보지 못하고 말았다.

하기는 상무가 장가든 그 여름과 귀순이가 시집가기 바로 전인 지난 여름에는 예단 받은 무명을 바래노라고 연일 큰내로 나갔는데 일은 역시 일이지만 곁에는 잔소리하는 할머니 어머니가 없고 들판은 탁 트이고 해서 정말 어깨가 거뿐하고 일손이 개가웠다.

그런 데서는 얼마를 일한다 하더라도 항상 고달플 것 같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디푸르고 뭉게구름은 송이송이 피어오르고 농부들은 맨상투 바람으로 들을 오고 가고 어린애들은 물오리처럼 물속으로 들락날락하고 오곡은 늘 패어 보이느니 청포장이요 수리개는 건공에 높이 떠돌고…….

계섬이는 뻑뻑하던 사지가 마디마디 노긋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 뜻하지 않고 실로 뜻하지 않고 오랫동안 막혔던 애졸한 심정이 걷잡을 수 없이 실실이 풀려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렇거들랑 차라리 그 심정이 바람같이 넓디넓은 창공으로 날아갈 일이지 어째서 만만한 제 몸으로만 굽이굽이 도루도루 감돌아들어서 끝내는 하늘에도 땅에도 맘을 붙일 곳 없는 저의 알몸만 외톨로 나뒹굴게 하는 것일까.

천지신명의 조화랄까 타고난 숙명(宿命)이랄까. 계섬이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그렇게 고기가 질기고 아픈 줄 설은 줄을 모르던 그도 갈수록 눈물이 예려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갑갑한 이 집에 들면 헌칠한 그 들판이 그립고 그 하늘을 날아 보고 싶어서 이 가을에도 날마다 거뜬한 걸음으로 머슴들의 점심밥을 밭으로 날랐지만 그렇게 그립던 뜰과 하늘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이 어느덧 눈에 눈물이 핑그르 고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도무지 어찌했으면 좋을지 모를 안타까운 심경이었다.

아무데서도 자기는 구원을 받을 것 같지 못하고 내다보이느니 검은 그림자만 옷깃에 매달릴 뿐이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았다.

그래서 머슴들이,

얘 계섬아, 너 어디 아프냐?”

하고 점잖게 묻는 말이겠든지 또는,

, 너 그저 까닭 없이 몸이 매시시하고 노긋하지.”

하고 느물거리는 말이겠든지 모두 못 들은 척하고 말없는 하늘만 맥맥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럴 판에 상제가 수상에서 온 것이다. 그 순간 계섬이는 무언지 알 수 없게 숨이 터지고 가슴이 화끈하며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 뒤부터 계섬이는 날마다 어른들의 눈을 도적해 가며 몸치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녁 설거지를 하고 나면 으레 남이 눈치차리지 않게 돌아앉아서 삼단 같은 머리태 기름에 까맣게 전 저고리를 벗어 가지고 새 동정으로 바꿔 달았다.

아침저녁으로 남 안 보는 틈에 세수하고 발을 씻었다. 얼굴은 본시 검붉은 편이지만 나이가 나이라 기름이 질질 흐르는 듯하고 이마에는 여드름이 울긋불긋 돋기 시작하였다.

그 얼굴을 계섬이는 매일같이 짜고 닦고 하였다. 그리고 허리고춤에서 뒷등에 붙은 수은이 거지반 떨어진 깨어진 거울을 살며시 꺼내어 가지고 제 몰골을 들여다보곤 하였다.

어째 낯색이나 좀 희멀끔하지 못할꼬.”

하는 것이 그 언제나 선참 나오는 자탄이었고 그러나 버쩍 닦기만 하면 두터운 면피나마 야시야시해지고 때가 벗어 환해지리라는 것이 뒤에 오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더욱 아직까지도 솜털이 벗지 못해서 얼굴이 한결 푸수수하다.

그래서 그는 상무 아내의 반짇고리에서 베실을 뽑아 가지고 남 안 보게 슬며시 뒷마루로 나갔다. 뒷마루에 나가서 그는 정강이에다 그 베실을 비벼서 반들반들 훑어 가지고 그 한 끝을 입에다 문 담에 남은 한 끝을 얼굴에 대고 손바닥으로 비볐다. 그런즉 그 실이 돌아가는 바람에 솜털이 말려들어가서 빠지곤 하였다. 솜털이 빠질 때 처음은 눈물이 날 만큼 아팠지만 그 아픔과 바꾸어질 미()를 생각하니 숫제 그 아픔이란 아무것도 아닌 상싶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러고 보니 낯색은 좀 붉어진 듯하나 한결 버언하고 이뻐 보인다.

계섬이는 신이 났다. 그래서 연성 솜털을 뽑다가 그만 한번은 할머니에게 들켜 버렸다.

아아니 이년아, 너 거게서 뭘 하니.”

하는 소리에 계섬이는 베실을 내던지고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며,

아니에요.”

하고 시치미를 뗐으나 붉은 얼굴은 더욱 홍당무가 되었다.

아니 얼굴은 잔나비 볼기짝처럼 어째 그러냐. 이년이 필시 무슨 곡절이 있어.”

할머니는 첨은 이년이 무슨 음식을 도적해다가 남몰래 조기는가 하고 계섬의 입부터 쳐다보았으나 그런 듯싶지 않아서 다음으로 치마 앞섶을 내려다보며,

이년아, 거게 무엇 있니. 내놔라.”

하고 치마를 쳐들려고 해서 계섬이는 다급히 몸을 돌리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앞마당으로 나와 버렸다.

계섬이는 숨이 호나왔다. 그는 그 뒤에도 늘 그 짓인데 게다가 동리 아낙네게서 들은 말이 있어서 사랑 마당에 있는 복숭아나무 밑에서 서리 맞아 떨어진 복숭아를 주워다가 그 껍질을 벗겨 가지고 그것으로 연일 얼굴을 문질렀다.

문지르고 한참 지나면 살이 약간 켕기는데 그럴 때 물로 닦아 버리곤 하였다. 그러고 나면 그 자리에서 단박 얼굴이 달라진 듯한데 또 날부일 그렇게 닦음새를 하니까 제 눈에도 현연히 인끔이 돋아 보였다. 인제 그는 어느 만큼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이따금 거울을 꺼내 보며,

이제사…….”

하고 혼자 씨물 웃곤 하였다. 이렇게 한두 달만 계속한다면 무무한 촌색시보다 훨씬 끼끗하리라 싶었다.

그러나 이십 년 동안 기를 펴보지 못한 그요, 또 한두 번 섣부르게 헛물을 켠 기억조차 있는 그는 짜장 이번은 조신해 가며 상제를 대하리라 하였다.

아침 저녁 상제의 밥상을 나르는 그의 손이 그럴 적마다 약간 떨린싸하였다.

그러며 살갑은 웃음을 억지로 죽였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스스로 의식하였고 또 그 붉어지는 변화를 상제인들 이름이 남자인데 노상 모르랴 하였다. 미상불 풋내기는 아닌 상싶었다.

첨은 계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함부로 놓아 말하고 턱으로 부리쟀는데 요즈막은 수시 그 말투는 크게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끝이 흐리마리한 게 미상불 조신하는 퀘가 분명하다.

첫째 여태껏 계섬아하던 것이 어느새 계섬이로 변하고 어엿이 앉아 물리던 밥상을 이제는 흠칫하고 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계섬이는 연신 고시랑거리는 맘을 누르고 또 눌렀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계섬이는 일찍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일사는 바로 상무가 장가들던 그 담날 밤 즉 상무의 동무들이 신방을 치러 온 그날 밤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날 밤 계섬이는 신방 치러 온 상무의 동무 중 앞장을 서서 농탕을 치던 그 상투쟁이 영식이를 한 번 보자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러던 것이 종래 옹쳐서 풀리지 못하고 더더군다나 공상 속에 그려지는 영식은 홀쩨 돋나고 동뜬 인물이어서 저 혼자의 그윽한 정이 얼기설기 영식에게로 연신 쏠렸다.

그해 겨울 계섬이는 눈을 날리는 바람 소리를 알심 있는 영식의 숨은 발소리로 들으려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배도 다리도 없는 동떨어진 푸른 섬으로 도망가는 꿈을 그리기도 거듭 몇 번이었다.

그러나 기나긴 겨울 밤 이처럼 맘속에 난감한 달걀가리를 거듭 쌓기 몇 번씩이요 거듭 무너지르기 또 몇 번씩이었건만 그러나 종내 영식이를 만날 묘리는 없었다. 또 영식이란 위인도 그렇게 알심 있는 사나이는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계섬이는 결심하였다.

그는 그해 세밑 어느 날 밤 큰맘을 먹고 영식의 집 울타리 밖 으슥한 구석에 가서 숨었었다. 영식이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기는 그때 소패들은 누구나 없이 거의 다 세밑이면 밤늦도록 투전을 노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대개 첫닭 울이에라야 집으로 돌아오고 늦으면 새벽에 오는 수도 있었다.

그 얌전한 상무까지가 노름하러 다닌다면 여남은 소패들은 더 말할 것 없는 것이다.

더욱 때가 세목이라, 이른 밤부터 집에서 잠만 처자는 위인 따위는 팔불용으로밖에 치지 않는 때다. 그러니 신방 치는 데 주장판을 치던 더퍼리 영식이가 꼬박이 집에 박혀서 아내의 치마꼬리에 늘어져 잠을 잘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 사실이기도 하였다. 계섬이가 간 것이 벌써 자정이 넘은 때였지만 그로부터도 언간히 더 지나서야 영식은 털털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계섬이가 숨어 있는 어두운 구석을 쓰윽 지나칠 때까지 계섬이는 잠자코 있었다. 두세 걸음 앞세워 놓고,

이거 보셔요.”

하고 죽을 용기를 내어 불렀으나 그 소리는 갈려서 몹시 떨렸다.

그런즉 영식이는 픽 돌아는 보았는데 겁이 났는지 또는 절더러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되돌아서 걸음을 재게 떼었다. 영식의 집 대문까지 거리가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

계섬이는 마지막 슬기를 다 내어 와락 달려가며,

내 말 좀 들으라구요.”

하고 그의 소매에 매달렸다. 그런즉 영식은 픽 돌아서며 낑 하고 깁자르는 소리를 내더니 엉겁결에,

어굼마…….”

하고 질겁을 해서 와락 탁 소매를 채기며 집으로 달아들어가 버렸다.

아이구, 도깨비야.”

하는 소리를 계섬이는 등으로 받으며 다시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몸을 비켰다.

그러자 이내 영식의 집에서 킹킹 기침하는 소리와 방문 여닫는 소리가 들려 왔으나 그 뒤는 도로 잠잠해지고 그 이웃집 강아지만 도간이 뜨게 콩콩 하고 짖을 뿐이었다.

저게 온 사내자식인가.”

하고 계섬이는 혀를 갈기기까지 하였으나 그도 실상은 정신이 혼란하였다.

무엇이 와서 금시 덜미를 칵 집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뒤 며칠 만에 전해 오는 소문을 듣고야 그는 조금 맘을 놓았다.

영식은 어느 날 밤 노름을 놀다가 밤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키가 구 척이나 되는 계집이 나서며 함께 가기를 청하기에 꼭 붙들어서 허리에 동처매어 가지고 집까지 와본즉 그것은 계집이 아니라 방아꾀더라는 엉뚱한 소문이 아래웃동리에 짜악 퍼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방아꾀 도깨빈데 영식이가 만일 그 도깨비 말대로 그것을 제 앞에만 세웠더면 그날 밤으로 홀려 가서 죽었을 것이라고들 하였다. 또 그 도깨비는 얼굴이 매우 이쁘다고도 하였다. 계섬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제 얼굴이 이렇게 이쁘게 뵈었던가 하고 게서 마음이 조금 흐뭇해졌다.

영식이와의 그 일사가 있은 다음부터 계섬에게는 남자란 남자는 모두 지질하고 초라한 시라소니같이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그닥 슬기 있게시리 여기던 남자들이 아니다.

영식이만 해도 겉보기는 헌칠하고 데불데불한 것 같은데 정작 닥다려 보니까 생판 허울좋은 개살구다.

소갈머리 드티고 새수빠진 못난이게 말이지 어쩌면 공중 생긴 보배를 놓치고 시퍼렇게 산 사람을 가지고 도깨비로 볼 것일까. 계섬이는 제 사는 일경이 마치 무인지경인 듯싶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더 한번 야속한 것은 인간 세상에 대한 미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그것이다. 마치 제 속에서 제 것 아닌 무엇이 연성 제 몸을 그 무서운 강팍한 인간들의 각다귀 판으로 휘몰아넣는 것만 같았다.

그는 어느덧 눈물을 외로 돌렸다.

풍신 못생기고 키가 작고 볼품이 없는 그따위 위인은 어떨까고 궁리해 본 것이다.

하기는 큰집 할머니도 얼굴에 마마자죽이 있고 까마잡잡하고 키가 작으나 별명이 강감찬이요, 또 담이 크기로 소문나지 않았는가.

그러게 그 할머니는 정작으로 박도깨비를 단칼에 베이고 방아꾀 도깨비의 목을 찍어 넘겼다지 않은가.

영식이처럼 못난 겁쟁이는 사람을 보고도 질겁을 해서 자빠지는데 정말 도깨비를 보았더면 어쩔 뻔했는가.

그래서 그가 두루 살피던 끝에 찾은 것은 늘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 같은 바로 골목 건너 오막살이집 맏아들 꼬맹이 형보다.

꼬맹이라도 나인 벌써 이십이 가깝다. 그리고 얼굴은 까맣고 키는 난쟁이를 바득 면했지만 외양보다는 어방없이 점잖고 묵중하다.

담도 큼직하다. 그러기 기왕 서당으로 말썽 좋아하는 동무들도 그를 꼬맹이라든지 촐랭이라고 별명 지을 것을 생각지 못하고 지장보살이라고 불렀다.

사실 형보는 몸은 작고 집은 구차하지만 인심이 후하고 넓어서 제 옷을 훌렁 벗어 남 주고 저는 맨몸을 땅속에 감추었다는 지장보살과 같다고들 외었다.

그리고 또 보살이라는 말이 어쩐지 작다는 말과 어딘지 비슷한 점이 있는 상싶어서 별명 중에서 형보 별명이 제일등 압축이라고 옛날 서당 동무들은 말하였다.

형보는 집이 찌어먹게 구차해서 서당을 그만두고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으나 점잖고 똑똑하고 묵중한 것은 옛날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적어도 후추알이란 말이 옳구나.”

하고 계섬이는 속으로 못내 형보에게 호감을 가졌다.

계섬이 집 우물 밖이 바로 골목인데 형보는 늘 그 골목으로 드나고 그럴 적마다 계섬이네 우물귀틀 위로 형보의 얼굴이 내다보인다.

형보는 아침이면 일찌감치 들로 나가고 석양은 해가 져서 땅검이 될 때 돌아온다.

그런데 요사이 수수밭 가실만 끝나면 형보도 아침 일찍이 들로 나갈 일이 없을 것이니 아침에 그를 보기가 십상 어려울 것 같아서 계섬이는 이때를 놓치지 말려고 매일같이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서 물을 길었다.

저년이 이제사 셈이 드는구나.”

할머니는 잠귀 질리고 일손이 무디던 계섬이의 요즈막을 속내도 모르고 치사하는 것이나 실상 계섬이는 남몰래 속이 시방 달아나서 그따위 소리는 소귀에 경읽기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눈치를 차려야 할 형보란 얌전이가 이게 원청간 점잖다니까 더 쪼를 빼는 심인지 그렇게 기침을 하고 드리박을 우물에 출렁 떨어뜨려 소리를 요란히 내도 지나가면서 눈 한번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다.

여태 장가도 못 간 터수에 헷눈 한번 안 팔려고 드니 짜장 얌전도 병이지 그게 대체 무언고.

계섬이는 참다가 못해서 한번은 꼬박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형보의 뒤통수에 물방울을 끼뜨려 주었다.

그런즉 형보는 천천히 돌따는 보았으나 실수로 그랬나 하듯이 언짢은 눈치도 없이 그저 덤덤히 그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언짢은 눈치를 안 보이는 것은 좋지만 그래 사내자식이 이십 한창 좋은 나이에 씨무룩할 줄도 모른단 말인가.

아무리 해도 들띠울 묘리는 없었다.

산두 크고라야 그림자가 있다구 너 따위는 종년 계집이 생겨 보긴 틀렸다.”

계섬이는 여기서도 실망하고 말았다.

전후 두 차례나 일을 잡친 계섬이는 이번 상제에게만은 산전수전다 겪은 사람처럼 단단히 짜고 들리라 하였다. 저는 남처럼 나이를 믿고 지체를 믿을 만한 여자가 아닌 것은 이미 전세(前世)로부터 타고난 야속한 숙명(宿命)이다. 저는 이름 없는 비복의 딸이요 나이도 이미 멀리 넘었는데 게다가 얼굴까지 남보다 못한 것이다.

하기는 외양만 쑥 빠졌으면야 지체가 그렇다기로 처녀가 스무 살 환갑을 그렇게 맥맥히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니 지금에 앉아서 이렇듯 한탄도 아니 할 것이요, 또 이렇듯 중이 제 머리를 제 손으로 깎는 것 같은 구구스런 짓도 아니 할 것이다.

계섬이는 일만 정성을 죄다 드려서 상제에게 알심을 부렸다. 만일 아침 저녁 상제에게 숭늉 한 그릇을 떠오는 그 정성을 그림에 그릴 수 있다 하면 그것은 세상의 어느 아내의 그것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었을 것이다.

뿐 아니라 계섬이는 이때부터 이 집안 일에도 전처럼 범연하지 않았다.

전에는 그저 할 수 없어서 일을 했지만 이마적에는 마음으로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내가 이 집에 있으면 몇 해를 더 있으랴. 기껏 일을 해준대도 불과 얼마 아니다.’

하는 생각이 나는 반면에서 알 수 없는 설움까지 빚어졌다.

설사 남같이 버젓하게 살림배포를 해가지고 상전의 집을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다못해 어디든지 저는 조만간 나갈 몸이라 싶었다.

그러나 갈 곳이 인간 마지막 길――무덤이라 하더라도 저만 가려면 갈 수 있을 상싶었다.

그는 마음이 유순해지고 그 대신 설움이 많아졌다.

상제까지 모른 척해도 좋다. 그가 내 속을 알고도 됩다 더 덧정없이 굴어도 좋다.’

그는 이렇게 막다른 생각까지 하였다.

그것은 물론 설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는 설은 일이 좋았다. 제 맘을 아프게 하고 제 몸을 고달프게 하는 것이 소원인 듯도 했다.

그는 하마 눈치 무딘 상제를 매원하기보다 제 맘이 혼자 설어지도록 매를 내리고 이 집안 식구들의 각박함을 미워하기보다 제 몸을 고달피 하여 묵묵한 가운데서 앉은 일 선 일을 부지런히 하였다.

그러다가 무심한 사람들이 코를 골며 자는 아닌밤중에 뒤울안 굴뚝 뒤에 가서 귀신도 모르게 질끔 짜는 눈물 한 방울의 쓰고 단 맛이란…… 그것은 땅과 하늘에 비는 유일한 기원(祈願)이었다.

그는 이윽고 사랑 마당으로 돌아가서 상제가 홀로 자는 사랑방 들창 앞에 가서 인기척이 나는가를 기다리다가 끝내는 마루 앞에 허투루 노인 짚세기만 가지런히 맞추어 놓고 도로 제가 자는 뒷골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상제는 서울 양반 민가의 자식이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양반의 착개비 열둘이라더니 그래서 상놈의 자식은 모른 척하는 것인가.’

계섬이는 이렇게도 궁리하였다. 하기는 상제의 아버지가 조련치 않은 인물이게 나라에 죄를 짓고 피신해 다녔을 게다. 그러고 본즉 상제도 수시 두메산골에서 자랐을망정 어딘지 서울 사람처럼 깨끗한 데가 있는 듯하다.

이마가 몹시 나부죽한 것이 이 청년의 기구한 초년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턱이 둥그스름한 품이 말년 신수는 하 고이찮을 상싶다.

계섬이도 이 집에서 들은 말이 있어 이만 관상은 보는 것이다.

하나 상제는 걸음걸이가 고약하다. 팔자걸음은 양반의 튀라니 그건 말할 거 없지만 못생긴 삭마처럼 가탈걸음을 치는 것은 정녕 보기 싫은 천격이다. 그리고 엉덩이가 뒤로 내민 것이라든지 또는 손발이 큰 것이라든지가 모두 쏙 빠진 서울내기의 태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계섬에게는 도리어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 점이 자기와 상제를 말없는 가운데 연결해 주는 인연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계섬이는 얼마큼 안심되었고 또 하나는,

상제야 여하튼 나만―― 내 맘만 변치가 않으면 그만이지. 내 속 치부를 누가 헤살놀까.’

하는 외짝 맘이 되알지게 맺혀져서 혼자라도 그 사람을 고적과 함께 탐탐이 그리며 살리라 하였다.

그러나 끝내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상제와 계섬의 쓸쓸한 심정은 한곳으로 흘러가고야 말았다.

어느 날 저녁 먹을 때 뜻하지 않고 마주 보고 웃은 것이 실없이 천언만어보다 더 곡진한 서로서로의 하소연이었을 줄이야…….

그 뒤로부터 젊은 맘과 맘의 흐름은 더욱 빨랐다. 그러나 또 두 사람 다 아직도 제 몸을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처지였고 또 세상격란이 옅은 젊은이들이다. 그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서 안타까운 날만 무심히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계섬이는 사랑마당 외양간으로 소 말이 먹을 여물 함지를 들고 나가서 구시를 비웠다.

기장과 핏집에 콩을 넣은 여물을 지금 막 끌어내어서 김이 뭉게 뭉게 나는데 소와 말은 진수성찬을 만난 듯이 코를 벌름거리며 맛나게 먹어 댄다. 그 여물을 헤적거려 주며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안에 들어가서 두 번째 함지박을 들고 나와 외양간 문을 열던 계섬이는 흠칫 놀라 뒤뚝거리며 섰다.

난 또 누구라구…….”

계섬이는 공연히 제사 얼굴이 발개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참 이거 맛이 좋은데.”

하고 싱긋이 얼굴을 붉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상제였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사랑 뜨락에 나왔다가 구수한 냄새가 나기에 외양간에 들어가서 여물 속에 보이는 콩다래를 시방 까먹고 있는 참이다. 하기는 소 여물 속의 삶은 콩이란 십상 맛이 좋은 것인데 또 더욱 상제는 한창 나이라 언제든지 배가 몹시 허전한 터이다.

거 밥에 둔 콩보담 더 맛나는데.”

하고 상제는 웃으며 계섬이가 든 함지박을 받았다. 그럴 때 어떻게 손끝이 서로 닿았는지 말았는지 한데 그 짜른 찰나에 백지 한 장만큼 두 사이에 가려 있던 무엇이 말끔 날아가 버린 듯하였다. 그리하여 두 맘이 하나인 듯 다정함을 서로 느꼈다.

어느 날 밤 상제가 사랑에서 불을 끄고 혼자 자고 있으려니까 누가 밖에서 나직이 쌍바라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상제는 어스무레 잠이 깨었다. 밖에서는 암말 없이 문만 연성 똑똑 두드리는데 상제는 불현듯 알아채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런즉 누가 아니 분명 계섬이가 보재기에다 싼 것을 얼른 들이뜨리고 도로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상제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보재기를 헤치고 만져 보니까 분명 흰밥 누룽지다. 그것은 실상 과자보다도 더 맛나는 것이요, 언제든지 먹고 싶던 것이나 우길이놈이 도통으로 집어먹기 때문에 상제 차례까지는 좀처럼 오지 못하던 것이다. 그런 것을 계섬이가 가무려 두었다가 몰래 내온 것이다.

들키기만 하면 너는 우길이한테도 경이고 할머니한테도 경이다. 나 주는 줄은 모르고 저년이 걸구처럼 도적해 먹는다고 야단일 테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상제는 배가 출출하던 판이라 구미가 나서 바사삭바사삭 소리를 내어 가며 씹어먹었다.

그런데 별안간 밖에서 사람의 소리가 났다.

, 그게 누구냐.”

그것은 분명 상무의 소리다. 겨울이라 상무가 어디 투전 놀러 갔다가 이제 오는 것인가 보다고 상제는 생각하면서도 맘에 켕기는 데가 있어서 입을 다물고 하회를 기다렸다.

나예요, 계섬이에요. 큰도련님 이제 오십니까.”

그것은 틀림없는 계섬이 목소리다. 그는 상제 방에 누룽지를 들이 뜨리고 일단 안으로 들어갔으나 상제가 그것을 먹는 소리라도 들어 보려고 다시 나왔다가 그제사 투전방에서 돌아오는 상무와 마주친 것이다.

너 어째 자지 않고 나왔니.”

바람 소린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뜰아랫사랑에 나왔던 길에 오양간 문이 열리지 않었나 보려고 나왔어요.”

하는 계섬이 소리에 상제도 놀란 가슴이 적이 안존해졌다. 그런데 또 계섬이란 년은 능청맞게,

요사이 소도적이 많다는데.”

하고 상무를 슬쩍 떠넘기는 바람에 상제는 부지중 킥 하고 웃음이 났다. 그러자 제 소리에 놀라 이마에 진땀이 불끈 솟으며 입을 꼭 다물었다. 상무도 계섬이 말을 그럴듯이 들었던지,

단단히 간수해라. 머슴들이 또 노름 놀러 가지 않었는지 모르겠다.”

하고 제 일은 선반에 얹어 두고 공연한 머슴들을 쳐서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제는 맘이 좀 누그러지며 계섬이가 다시 왔으면 하고 기다렸으나 그날 밤은 종시 오지 않고 말았다.

계섬이와 상제가 서로서로 남을 그리고 있다는 그 사실만 해도 그들에게는 일찍 가져 보지 못한 세계인데 그 위에 또 남이 저를 그려하고 못 잊어한다는 태양 같은 사실을 그 육신에 느끼는 일이란 한층 더 즐거운 일이요, 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제금 다시 그늘에 선 자기들의 처지를 생각하였지만 그러면서도 실로 어둠 속에서 밝음을 보는 것 같았다.

또 그 밝음은 막연하나마 다음의 세계를 상상케 하고 그리고 어떤 때는 가슴을 졸이며 그 다음의 세계를 기웃이 넘겨다까지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무서운 세계요, 가져서 안 될 미래와 같았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해가 거의 다 가고 세목이 왔다.

낼 모레면 설…….’

이라는 생각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지만 또 한편 섭섭한 일이기도 하였다.

즐거운 설이언만 그 즐거운 맘에 맞추어 볼 아무런 마련도 잡도리도 없는 것이다.

차라리 설은 계섬에게도 상제에게도 저와 남을 구별해 보는 야속한 명절이었다.

해마다 그날은 즐거웠고 즐거웠기 때문에 또한 서럽기도 하였다. 계섬이와 상제는 설을 눈앞에 두고 서로서로를 가엾이 생각하면서 해마다 겪어 본 그 설날을 하는 수 없이 또 맞이하게 되었다.

상제는 설 가까운 섣달 스무이레 장날 상무와 우길이와 셋이서 H읍으로 갔다.

이날 우길이 어머니도 계섬이를 데리고 설날에 소용될 물건을 사러 역시 H읍으로 갔다.

일년 중 이날처럼 큰 장이 서는 날은 없다. H읍 장판은 사람이 하얗게 질진하여 있었다.

이날은 별로 큰 볼일도 없이 모두들 장으로 오는 풍습이 있다. 하기는 이런 엄청난 전설이 있는 것이다. 이날은 신령한 백두산맥의 벋은 줄기에서 백 년인지 천 년인지 모르게 박밀이 자라난 산삼(山蔘)이 사람이 되어서 H읍 장으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산삼번지기 사람은 외양과 행색이 사람과 조금도 틀리지 않으나 다만 한 가지 틀리는 것은 그림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림자 없는 사람이면 곧 산삼일 것이다. 그래 누구든지 재수가 좋아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다짜고짜로 때려뉘어도 좋은 것이요, 때려뉘면 곧 제 정체인 산삼으로 돌아간다고들 일러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날 실없는 사람과 욕심 많은 사람은 단지 이 사람을 붙들려고 장으로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름어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일 보고 그나마에 혹시 산삼을 띄우면 꿩 먹고 알 먹기라고 그림자 없는 사람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상무 상제 우길이 들도 미상불 이 산삼을 찾으려고 눈을 살폈다.

한데 산삼이란 놈도 약아서 제 정체가 안 드러나도록 집 그림자든지 또는 무슨 그림자 아래에서 쉬고 그런 데로 조신해서 다닌다고 하여 상무네 패는 H읍 서쪽에 놓인 서교 아래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다리 그림자가 비친 그 속에 혹시 산삼이 어엿이 쉬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기는 언젠가 성급한 사내 하나가 이 다리 밑에서 오줌 누는 사나이를 고작 산삼인 줄 알고 때려뉘어서 살인을 멘 사실이 있대서 시방은 함부로 덤비지는 못하지만 돌쳐 생각하면 그러기 때문에 그 소문을 들은 산삼이 위정 다리 아래에 시치미를 떼고도 있을 법한 것이다.

이놈의 산삼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마 뵈지 말고 내 눈에만 꼭 보여라.”

하는 것은 시방 돈이 대단히 필요한 상제의 남모르는 소원이다. 그는 산삼만 잡으면 그것으로 초가 삼간이라도 꾸며 놓고 계섬이와 알뜰히 살아 보리라 하였다. 또 그보다 당장 오늘 계섬의 설빔으로 은가락지 한 벌을 사고 영초 댕기 한 감을 사가지고 가야 하리라고 상제는 곰곰 궁리하였다. 그러나 산삼은 졸연히 생길 상싶지 않고 그렇다고 오는 봄에 아버지를 찾아 서울로 갈 때 쓰려는 노수를 말짱 써버릴 수도 없고 또 설사 모두 쓴다 하더라도 푼푼할 것은 없어서 두루 걱정이었다.

어쨌든 이놈의 산삼을 잡아야 할 텐데.”

하고 상제는 연신 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이해도 산삼을 잡은 사람은 없었다. 상제는 진종일 헛눈만 팔아서 약간 부아가 날싸하였다. 그러나 아무것을 못 산다 하더래도 계섬이 것을 아니 살 수는 없다. 그래 무엇이든지 사려고 가가마다 두리번거리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나 무엇이 마땅할지 얼른 눈에 띄는 것이 없다. 겨우 발견한 것이 반지와 비누 같은 것이나 정작 그것을 사려고 한즉 곁에 상무와 우길이가 서 있어서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상무를 곁에 두고 물건값을 묻는다든가 헙헙한 제 주머니를 뒤진다든가 하는 일이 어떻게 창피한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두루 궁리하던 끝에 한 꾀를 내어 우길이와 상무를 서문 안에 기다리라 하고 상제는 가까운 산에 올라가 뒤를 보고 오마고 거짓말을 꾸며 가지고 겨우 거리바닥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정작 사려고 생각하니 반지는 보기부터 번쩍번쩍한 품이 값이 많을 것 같아서 우선 값싼 새파란 비누부터 한 개 샀다.

서 돈 오 푼(칠 전)을 주었는데 값보다는 냄새가 여간 들고 나는 것이 아니었다.

참 좋구나…….”

하고 상제는 쿡 찌르는 냄새에 계섬이가 못내 기뻐하고 흡족해할 것을 벌써부터 연상하며 혼자 감탄하였다. 그러고 보니 좀더 계섬이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계섬이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끝내는 까무러치기라도 하는 것을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반지 하나를 더 사라?”

하고 상제는 또 궁리하며 주머니를 슬며시 만져 보았다. 묻지 않아도 저 반지가 저렇게 맵시 고을 때에는 정녕코 값이 엄청날 것이라 싶었다.

한 냥(이십 전)만 한대도 살 텐데.”

하며 상제는 그 가게 앞에 서서 하이얀 바탕에 팔은인 듯싶은 모양을 넣은 반지 하나를 가리키며 죽을 심 대고,

거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거요. 아따 파장머리니 닷 돈(십 전)만 내요.”

닷 돈이오…….”

상제의 목소리가 약간 떨릴싸하였다. 그것은 곡경에서 구원을 받는 심정인 동시에 반지장사가 생먹고 안 팔면 어쩔까 하는 겁기이기도 하였다. 그래 그는 얼른 엽전 닷 돈을 꺼내 주고 반지를 손에 쥔 다음에사,

이거 무슨 쇠요?”

하고 물었다.

그거 은이지요. 아따 보면 모른단 말이요.”

은이요. 은인데 그렇게 싸요.”

싸게 파니까 싸지요. 오늘이 섣달 스무이레 장 아니오. 안 사는 놈도 병신이오. 안 파는 놈도 병신이니께루 막 싸구려로 판 거라오.”

, 그래요.”

가다가 잃으리다. 단단히 간수나 하시오. 보매 총각인데 뉘 집 색시 동떠나게 됐소. 어서 가슈.”

하고 농치는 법이 함경도 장사치는 아니다.

그러나 같은 값이면 좋은 물건 눅게 샀거니 하는 것이 대수니까 상제는 단단히 간수해 가지고 좋아라고 상무가 있는 데로 돌아왔다.

상무와 우길은 거기서 남문거리로 나가며 설에 쓸 물건들을 샀다.

상제도 더 사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그만두었다. 우길이는 여러 가지 물건 중에서 특히 주머니칼을 산 것이 제일 기쁜 듯이 그것을 자주 꺼내 보곤 하다가 잊었던 듯이,

참말 이순이 뿔사탕 사달랬는데.”

하고 말하니까 상무가,

돈이 어디 있니. 계집애들 거 다 사다 주게.”

하고 고개를 외쳤다. 그런즉 우길이도 굳이 사려 하지 않았다.

해가 서산에 나물거릴 때 그들은 H읍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장꾼들은 길에 그득하였다. 산삼을 못 잡고 산으로 되돌려보내서 분하다고 떠드는 주정꾼도 있었다.

한참 걸어오다가 우길이가 무심코 상제 곁으로 다가오더니만,

이게 무슨 냄새야, 참 좋은 냄샌데. 서양 냄새야.”

하고 코를 벌름거린다.

상제는 부지중 흠칫했으나,

이놈, 너 냄새는 곧잘 맡는구나.’

하고 속으로 우길이 코 밝은 데 감탄하고 또 그 냄새 좋은 푸른 비누가 억세게 계섬이를 즐겁게 하고 두고두고 그의 얼굴을 이쁘게 해줄 것을 생각하니 연성 웃음집이 흔들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한테라도 들키기만 하면 탈이라 상제는 아닌 보살 하고 속으로 혼자 은근히 웃었다.

 

굵은집 네 귀마다 초롱을 달고 온 집 방방에다 화등잔을 켜놓고 새우는 농촌의 제야(除夜)는 즐거운 것이었다.

더욱이 계섬이와 상제에게는 나서 첨 맞는 즐겁고 설은 이 설이었다. 하나 그 설움은 실상 너무 기쁜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계섬이는 요사이 무엇보다 한가해서 짬짬이 남의 눈을 피해 가며 베실로 얼굴의 솜털을 뽑고 상제가 사다 준 푸른 비누로 그 얼굴을 씻었다. 본시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이라 닦음새를 버쩍 해놓으니까 미상불 딴사람같이 얼굴이 환해졌다. 계섬이는 깨어진 조각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때마다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원체 계섬이란 년은 못생기고 푸르등등한 년이라고 집안 식구들이 애당초 눈여겨보지도 않는 것이 계섬이에게는 도리어 다행하였다. 만약 모양 내는 눈치만 차리게 된다면 누구 입에서든지 무슨 말이 나오고야 말 것이다.

하나 집안 식구의 눈들은 그렇게 무디다지만 종시 말썽인 것은 할머니의 코였다.

그 코가 기어코 제일 먼저 그 푸른 비누 냄새를 알아내었고 알아내었을 뿐 아니라 아주 내처 고약한 냄새라고 딱지를 붙이기까지 하였다.

아아니, 이년한테서 이게 무슨 냄새야. 이년이 글쎄 누굴 잡으려구 생국(西洋國) 비상을 가지구 다닌단 말이냐. 이게 온 무슨 고약한 냄새냐.”

하고 할머니가 메슥메슥해서 구역을 하려고 하는 얼굴이다.

아니에요. 머릴 감지 않어서 그래요.”

하고 계섬이가 황급히 발명하려고 하면 할머니는,

글쎄 이년아, 뜨물이 없어서 머릴 못 감는단 말이냐.”

하고 쥐어박고 그러고도 또,

아니다. 이게 필유곡절이지. 피 이런 약내라고는…… 아아니 그래 젊은것들 코가 늙은것 코만 못하단 말이냐. 이년에게서 나는 이 무서운 냄새를 그래 모른단 말이냐.”

하고 이번은 집안 식구까지 걸어 가지고 못 견디게 굴었다. 그러나 우길이 어머니나 상무의 아내는 나이 젊어서 그다지 그렇게 냄새가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기는 계섬이가 워낙 몹시 비누를 씻어 내려서 가까이 가서 위정 맡지 않으면 냄새를 알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무슨 일에든지 심사가 나든지 간에 맨 먼저 계섬이를 가지고 족장을 대고 또 워낙 옛날 늙은이라 생소한 냄새의 자극이 심한 탓인지 용하게 그 냄새를 알았다. 그래서 계섬이는 한동안 그것을 쓰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대신 밤이면 상제가 사다 준 반지를 이 손가락 저 손가락에 끼어 보곤 하였다.

정월 보름날 밤 계섬이는 금년에도 동쪽 행길에 나가지 않고 뒤울안 굴뚝허리를 넘어서 외양간 지붕으로 기어올라갔다.

작년에 거기서 누구보다도 먼저 달맞이하였고 또 꼬박이 잘 빌었기 때문에 그 갚음이 와서 상제를 만난 것이라고 계섬이는 요량하였다.

달이 뜨기 시작하자 계섬이는 또 빌었다.

달님, 지난해는 감축합니다. 올에도 변치 마시고 도와 주셔서 상제와 함께 어디 가서 집 짓고 농사 짓고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고도 계섬이는 거기서 내려올 생각을 아니 하고 주저앉아서 제 손 장짓가락에 끼어진 반지를 이모저모로 내려다보았다.

그 반지는 낮 동안은 물론 끼어 볼 수 없다. 그래서 밤에나 가끔 끼우고 혼자 웃는데 오늘은 달밤이라 유난히 번쩍거리고 이뻐 보인다.

상제 말이 은이랬지…….”

그러며 계섬이는 그 반지 낀 장짓가락을 달빛에 내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것은 상제의 얼굴같이 맘같이 빛나고 믿음직하다. 그 반지를 보는 것은 마치 상제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 상제도 동쪽 행길에 나가서 달님에게 두 사람의 복을 빌고 있을 것이다.

달님, 두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요. 상제도 지금 동쪽 행길에 나가 있습니다.”

하고 계섬이는 부지중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작년같이 자비한 달님이었으면 하고 그는 바랐다.

달님, 이것은 이 반지는 상제와 저의 굳은 맹세를 말하는 표적입니다.”

하고 계섬이는 반지를 달빛에 내들었다. 계섬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달님뿐이었다. 달님이 영원히 자기들을 지켜 주리라 싶었던 것이다.

 

 

 

귀화(鬼火)

얼음이 풀릴 무렵부터 거센 북풍이 연일 불어 댔다. 백두산인가 그 만침에서부터 머얼리 뻗어 온 굵직한 산줄기의 안짐진 골짜기의 갑았던 눈들이 다 녹아 빠질 때까지 이 바람은 줄창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숱한 골짜기를 스쳐 오는 눈바람이 넓고 넓은 이 평야로 모여 와서 탄탄한 평전을 휩쓸어 남쪽 바다로 빠지기 때문에 이 평야는 이 봄도 그 언제나와 같이 바람 난리였다. 그런데 그 눈바람이 자기 시작하자 이내 뒤를 이어 남쪽 일본해로부터 여우의 눈물을 짠다는 쌀쌀한 샛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와서 사람의 뼈짬을 쑤시었다.

그러다가 삼월 한식이 쓱 지나서부터야 겨우 봄다운 땅과 하늘의 따스한 마음이 애오라지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겨우 잔풍한 봄날이 화창해지기 시작한 때 우길이는 H읍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상제는 서울로 떠나갔다.

상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러나 눈 속에 아슴푸레 그려져 있는 것 같은 눈물의 아버지를 찾으려는 것이다. 숨은 희망과 감격에 떨면서 서울을 향해 떠나는 상제를 남모르는 눈물로 보낸 것은 물론 계섬이었다.

실상 바른대로 말하자면 상제가 아버지를 찾아도 또 못 찾아도 계섬이에게는 걱정인 것이다.

상제가 만일 아버지를 찾는 날이면 저 같은 계집은 다시 돌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만약 아버지를 못 찾는다면 그때의 그 가엾은 상제의 몰골을 무슨 눈으로 대할 것인가. 이래도 저래도 시름이었다.

그러나 또 한번 더 바른대로 계섬의 맘을 두드려 본다면 그것은 차라리 상제가 아버지를 찾지 않았으면 하는 잔인한 인정이었을 게다.

상제도 저도 꼭같이 혈혈한 단신으로 오직 서로서로를 믿으며 단둘이서 한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계섬의 유일한 소원이다.

옛이야기에 있는 저어 산마루턱 외딴집에서 지아비는 나무를 베고 아낙은 길쌈하는 그런 살림이 그리운 것이다.

각박한 세속에 이제 더 버물릴 용기는 바이 없다.

덮어놓고 남의 흉허물만 파헤치려는 이웃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저이들의 근본과 내력을 쇠통 알지 못하는 그런 고장이 이를테면 그들의 낙토(樂土)일밖에 없다.

계섬이는 천리 머언 길을 헛다리 짚고 갔다가 표연히 돌아오는 상제를 맞이하는 그날, 둘이서 그 어느 낙토를 도망이라도 치리라 하며 상제 돌아오기를 꼬박이 고대하였다.

그저 무엇이 사무치게 그립기만 한 따사로운 봄날 하루가 정말 삼추와 같았다.

어떤 날은 그저 공연히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울어도 낫지않는 제 가슴이었다.

그것은 안타까웁다니보다 차라리 무서운 일이었다. 제 가슴에서 무엇이 불끈 하고 치솟는 것이 무서웁고 무서워서 또 울음이 날 지경인 것이다. 계섬이는 아침 물 길러 나갈 때마다 쌀토고리倉庫기둥에 손톱으로 금 하나씩을 긋곤 하였다. 그리고는 심심할 적마다,

하나 둘 셋…….”

하고 그것을 세어 보았다. 상제가 떠난 지 몇 날이나 되는지 알려는 것이요, 또 그 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돌아올 기약이 가까우리라 스스로 안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날래 오지 않는 법인가 싶어서 어떤 때는 허심히 잊어버리고 지나리라고도 애써 보았다.

요전에도 쓰던 바늘을 금시 잃고 부리나케 찾으려니까 종시 안 보이더니만 도리어 깜박하고 있는 중에 어디서 무중 나지지 않았는가.

하나 그도 생각뿐이지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쌀토고리 기둥 새에 손톱자리가 빽빽히 그어지고 새로 네 번째 기둥에 반나마 금을 그은 넉 달 만에야 상제는 삼복 더위를 무릅쓰고 돌아왔다.

돌아온 상제는 갈 적보다 허무하게 얼굴이 까칠해졌다. 두 볼에 살이 쏙 빠지고 눈은 우묵하게 들어가서 일견 상심한 사람의 몰골이다. 그는 서울서 해주까지 가서 수소문했으나 종내 아버지를 찾지 못한 것이다.

민가는 서울에 가장 많이 살고 있으나 웬만한 집은 주인을 만나 볼 수 없고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는 상제 아버지임직한 사람을 안다는 작자는 하나도 없었다.

어떤 집에서는 거지처럼 내몰고 또 어떤 집에서는 미친 사람인가보다고 대꾸도 아니 하였다.

중추 팔월이 지나가고 구월 황국이 누르를 무렵부터 계섬이는 웬일인지 몸이 노긋해지며 차츰 구미가 없어지고 속이 메슥메슥하기 시작하였다.

첨은 먹은 것이 달려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였으나 며칠 두고 보려니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본시 몸이 튼튼하고 비위가 두터운 터이라 모든 사람이 다시 원기를 추는 이 늦은 가을에 유독 약해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심상히 얼마를 눌러 가는데 한동안 그렇게 지나려니까 그 증세는 조금씩 덜리고 됩다 무엇이 들이 먹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시금털털한 살구 생각이 각별히 나나 벌써 철이 지난 지 오래다. 그러나 구미가 연성 더 나서 울타리 아래 국화꽃도 휘무질러서 먹고 앞뜨락에 패다 남은 파뿌리도 뽑아 먹고 서리 맞은 담에야 떨어지는 뒷집의 시큼시큼한 늦복숭아까지 몰래 따먹었다.

그래도 더욱 무시로 무엇이 자꾸 키여지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이미 홀몸이 아닌 것을 딱히 안 것은 겨울도 이미 늙은 때였다.

그는 그날 새삼스레 눈앞이 캄캄해졌다. 생각하면 암담한 일이었다.

가부간 어떻게든지 될 대로 되겠지. 차라리 칵 잘됐다.’

하고 시원히 생각하려고도 하고 또,

여태까지는 그저 어물어물 이 집에서 매여 살았지만 이제는 안 가랴 안 갈 수 없지. 장진강겐들 어떠랴.’

하고 상제와 둘이서 도망이라도 칠 것을 궁리하기도 하나 그래도 맘을 가리는 검은 그림자를 개운히 흩어 버릴 수는 없었다.

계섬이는 마침내 그 사실을 상제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고 알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때는 벌써 막연하나마 내심으로 한 가지 결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디 먼 데루 갑시다.”

하는 것이 계섬의 결심이었다. 그것으로 일을 수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다니 어디로 가.”

상제는 그러나 지난번 아버지를 찾아 떠났을 때 너무도 세상이 무서운 것을 육신으로 뼈저리게 겪어 보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찾는다는 사람의 아들로서 지극히 아름다운 걸음이 그랬을 때엔 처녀 총각이 동떠난 걸음에는 무슨 박해가 어떻게 올는지 모르는 것이다.

어딜 가도 저희들의 몸이 수월히 용납되지 못할 것은 벌써 태양을 보는 것 같은 사실이다.

가고 싶은들 갈 수 있어야지.”

그렇지만 안 가면 몰려날걸. 그렇지 않아요.”

글쎄, 그도 그렇지만 그렇기로 지금 당장이야 어떻게 하겠소. 또 어딜 갈 데가 있어야 말이지.”

아니 저어, 영원 장진이라도 가고 하다못해 북간도라도 가야지 어쩌우.”

말이 쉽지. 가면 당장 굶어죽을걸.”

그럼 당신 살던 수상(水上)이라도 좋지요. 어쨌든 난 이대로 이 집에 있을 순 없소. 내 몸이 이런 줄만 알면 당장 능지를 할라고 들 건데 살길 어떻게 살우. 그러니 우선 수상으로라도 가봅시다. 가만히 앉았다가 죽기보담 낫지 않소.”

그렇지만 그 집으론들 다시 갈 면목이 있소. 길러 준 은공을 배반하고 떠난 놈이라구 욕을 하고 있다는데 가길 어떻게 가겠소.”

사실 상제는 수상에 있는 양부모가 그렇게 간곡히 말리는 것을 듣지 않고 제 부모를 찾는다고 뿔뿔이 떠나왔던 것이다.

하기는 그 집 늙은 내외의 정경을 보든지 또는 친아들같이 십여 년 동안 길러 준 은혜를 생각하든지 그렇게 훌훌히 떠나올 수 없는 상제였다.

하나 상제가 그 집을 떠나온 이유도 그닥 단순하지는 않다. 그 늙은 양부모에게는 이미 일가양자가 있으니까 자기는 결국 그 집을 이을 수는 없는 터이요, 일껀 해야 그 집 덕으로 딴데 세간 나서 살 판인데 그 집 형편이 지금 보는 바로는 그만한 주변도 해낼 수 없이 구차한 터이어서 차라리 일찌감치 그 집 걱정을 덜자고 떠나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시 간다 하더라도 저희들 살림을 도와 주기는 십상 어려운 일이요, 또 그 집으로 말하면 우길이 집과 연락이 있으니 인차 도망간 소문이 그 집으로도 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거기서도 순편히 살기 어려운 것이요, 또 남의 멸시와 기소를 면키 어려운 것이다.

그럼 어떡허면 좋소.”

하는 계섬의 안타까움이나 상제의,

글쎄.”

하는 막연함이 한가지로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했으나 그러나 계섬에게는 이제 올 운명이 너무도 악착하게 내다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발을 걷다가 꺼꾸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집만은 떠납시다. 아무러나 이 집에선 배겨날 수 없게 굴 것이니 미리 가는 게 낫지 않소.”

실상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인데 또 더욱 이제 생겨날 죄없는 어린 목숨마저 이 지붕 밑에서 갖은 지천구를 받을 생각을 하니 하루라도 더 있을 맘이 없었다.

계섬의 몸이 점점 이상해 가는 것을 먼저 눈치차린 것은 우길이 어머니다.

말썽 많은 품으로는 응당 할머니 눈에 먼저 걸렸을 것이나 그는 평생 아이를 낳아 보지 못했던 탓으로 여기만은 눈이 수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우길의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십상 그럴듯해서 그 뒤부터 할머니는 유심히 계섬이를 주목해 보았다.

본즉 그럴듯도 하나 항시 이 집에서 한 발도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는 계섬이니 하마 그런 일이 있을 상싶지 않고 또 이 집안에는 머슴까지도 수상한 사람이 없는 터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할머니는 어느 날 밤 만귀 잠잠한 밤중에 일어나서 뒷골방에 들어가 등잔에 불을 켜고 눈을 부비어 가며 잠자는 계섬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닌게아니라 무엇보다 배가 불룩하다.

그리고 기름이 흐르던 얼굴이 적잖이 노래지고 해쓱해진 것 같은 것도 수상하다.

할머니는 살며시 손을 계섬의 배에 대었다.

대구는 개갑게 이리저리 살금거려 보다가 조금 손에 마치는 것이 있는 듯한 데 와서 손을 딱 멈추고 진맥하는 사람처럼 제 귀를 감구고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잠시 있으려니까 그의 배에서 무엇이 꿈틀한다. 그리고 또 한번 손에 무엇이 마칠 때,

아뿔싸?”

하고 할머니는 놀랐고 놀라는 순간 계섬이는 용수철같이 벌떡 소스라쳐 일어나서 몸을 송그리고 뒤로 돌아앉아 버렸다.

이년아, 바른대로 말을 해라.”

할머니는 다짜고짜로 내박았다. 그래도 계섬이는 아무런 대답도 동작도 없다.

이년아, 어서 말을 못 해. 뉘 집을 망신시키자고 이러느냐.”

그러며 할머니는 계섬의 어깨를 당기어 돌려앉히려 하나 뼈대센 계섬이는 하마 꼼짝도 없다.

이년아, 남 알기 전에 내게만 말을 해라. 말을 해야 뒤끝 조처를 해주지 않니.”

하고 할머니는 가까스로 족장을 대고 나중은 울다시피 징징거리기까지 하나 계섬이는 그저 그대로다.

에이, 개고기 같은 년…….”

하고 할머니는 한번은 단념하고 돌아설 듯이 혀를 끌끌 차더니 그래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지 이번은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곰곰하게,

이년아, 그래 어떤 놈인지 말을 못 해. 쓸 만한 놈이면 여의어 줄 것이고 못마땅한 놈이면 남몰래 조처해 줄 것이니 바른대로 말을 해라.”

하고 구슬렸다.

그래도 계섬이는 막무가내다.

그래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니. 억울한 사정이 있을수록 말을 해야지. 소 같은 짐승도 코꿴 사람을 알어. 네게 억울한 짓을 한 놈이 있으면 원수를 갚아야지. 어서 말을 해봐라.”

하고 그를 동정하듯 달래어도 보고 또 한편,

서울 가신 나으리가 아시기만 하면 너는 당장 큰 변이 나? 장화홍련이 이야기 못 들었니. 어디 가서 구신이 될라구 이러느냐.”

하고 위협을 해보아도 계섬이는 입을 열 차비가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길의 어머니가 잠이 깨어 계섬이가 자는 뒷골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벌써부터 할머니의 묻는 말을 다 듣고 있었던 듯이 들어오자 맡에 선참,

그래 우리집지간 액내 사람은 아니냐.”

하고 그것부터 물었다.

하기는 우길이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물을 만한 의심이 있었던 것이다. 계섬이는 이따금 상무의 방도 넌지시 엿보고, 또 더욱 상제가 온 이후부터 그에게 대한 눈치가 암만해도 이상해 보이는 점도 없지 않아서 그렇게 물은 것이다. 그래도 대답이 없어 어머니가 민망히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또 나서며,

액내에야 누가 그럴 사람이 있나.”

하고 이 집 가풍이 도저한 것만 내세우려고 들어서 우길이 어머니는,

액내고 액외고 간에 우선 누군지 알어야 밖에 말이 나가기 전에 무폐하게 만들어 주지요.”

하고 갖은 지혜를 기울여 오래도록 파고 물었으나 계섬이는 종시 아무 대답도 없다.

계섬이는 아무런 악형이 온다 하더래도 상제의 이름은 부르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상제인 줄 알기만 하면 그는 그날로 쫓겨날 것이요, 계섬이는 계섬이대로 어디 처박혀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뒤 얼마 동안 계섬이는 힘써 상제와 단둘이서 만나기를 피하였다. 뿐 아니라 아침 저녁 끼니때마다 눈만 얼핏 부딪쳐도 남이 눈치차리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해났다.

무슨 상관이랴 아무래도 알구야 말걸.’

하고 떡심부릴 생각도 바이 없지는 않으나 첫째는 오래 짓눌려 있던 몸이요, 둘째는 이제 얼마 아니 하면 온다 간다 말 없이 슬쩍 도망해 버리고 말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고식 이 집에 있는 날까지는 말썽 없이 눌러 있을 작정이어서 통 내색을 내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섬이는 그전처럼 아닌밤중이나마 사랑으로 나와서 상제와 만나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여 왔다.

이제 이 집을 떠나기만 하면 비록 움속에서라도 날마다 밤마다 만나 볼걸. 지금 맘대로 못 만나는 설분으로라도 더 자별하게 살걸…….’

하고 계섬이는 제 맘을 눌러 왔다. 하나 그럴수록 그리운 것은 상제였다. 그래서 어느덧 그는 단 한 번만 더 만나리라고, 남 다 자는 밤중에 살며시 사랑으로 나왔는데 웬걸 그리한 뒤로는 단 한 번이라던 그 한 번이 내처 끝날 줄을 몰라 연일 또 만나곤 하였다. 그렇건만 조심조심 하고 만나는 시간을 극히 짧게 하기 때문에 눈여겨 동정을 살피는 우길이 어머니에게도 아직 들키지 않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 마침내는 들키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눈보라치는 섣달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 종일 저와 함께 방아를 찧었으니 우길이 어머니도 무던히 혼곤하리라고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래서 계섬이는 맘을 놓고 사랑방에서 상제와 나직나직 도망갈 공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가기는 간다 하더라도 이 추운 동삼에 어디로 간담.”

하는 것이 상제의 안타까운 속이요,

그렇지만 안 나가면 내쫓길 것인데 수모받기 전에 속차리는 게 낫지. 정말 하루가 삼추 같소.”

하는 것이 계섬의 답답한 하소라. 이렇게 두 맘이 서로 어긋나서 수이 한 길로 접어들지 못했다.

가더라도 해춘이나 한 담에 가야지. 지금 어디로 가누.”

참 팔자 늘어진 소리 하고 있소. 내 몸 좀 만져 보고 말하오.”

하고 계섬의 목소리가 부지중 좀 높아졌다. 세 살이나 나어린 상제, 그리고 일에 과단성이 없는 상제가 계섬의 비위에 적이 민망하였던 것이다. 그래 우람스런 계섬의 성미대로 하자면 당장,

에이 소갈머리없는 바지저고리 같으니라구.”

하고 퇴박을 줄 것이나 그래도 인정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줏대없는 그 소리를 밉지 않게 새기려고,

글쎄 좀더 생각해 보오.”

하고 맘을 눅이려니까 새삼스레 그에게 잔정을 펴보고 싶을 무렵에 밖에서,

상제 있니. 문 열어라.”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랑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두말할 것 없이 우길이 어머니 목소리다. 그 바람에 계섬이는 질겁을 해서 저편 안채로 통한 문으로 천방지축 빠져나가고 상제는 얼빠진 사람처럼 한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제 가슴 울리는 소리가 제 귀에 쿵쿵 하고 들릴 때에야 상제는 간신히 떨리는 손으로 사랑문을 벗겼다.

, 불이나 좀 켜라.”

우길이 어머니는 방에 들어서며 나직하나 가시 있는 소리로 명령하였다.

이윽고 불이 켜지자 우길이 어머니는 방 안을 휘둘러 보다가,

, 너 이거 무슨 짓이냐. 뉘 집을 망치게 할라고 이러는 거냐, 이러길.”

하고 흩트러진 이불을 깔떠보고,

그게 바루 종의 자식이다. 너로 말하면 서울 민가의 자식이요, 또 우리집 상무와 결의가 아니냐. 제 지체를 생각해야지. 그러나 삼정승 육판서도 제가 싫으면 안 하는 법이니 그걸 가지구 긴 말 할 건 없다만, 그렇더라도 기왕 네 손으로 이 꼴을 만들어 놨으니 별수 있니. 자고로 이 박가 촌에서는 그런 불칙한 일이 있으면 누구나 물론하고 짝을 쳐서 월경(越境)을 시키는 법이다.”

하고 말하는 속이 다름아닌 축출 명령인 것이다. 그러고도 우길이 어머니는 서울 간 우길이 아버지가 알면 당장 큰 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 하고 또 그러니 그리 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잡도리를 차리라는 듯이 일깨우고 끝으로 이것은 비단 남의 자식에게만 한한 일이 아니고 제 자식이라도 그런 일만 있으면 절대 용서 없다고 발을 달았다.

그러나 상제는 그저 가슴이 몹시 떨리고 이까지 덜덜 마쳐서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그 이튿날 새벽에 상제는 어디론지 가뭇없이 도망을 가고 말았다.

그는 본시 겁기가 많은 사나인데 더욱이 장근 이십 년 가까이 가시밭길을 밟아 오기에 지칠 대로 지쳐서 청년다운 슬기가 없었다. 그래서 제게 올 화단을 지나치게 무서워하던 나마에 끝내 도망을 가고 만 것이나 계섬이만은 꼭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상제는 첫대 민가네가 많이 사는 서울에 가서 부접할 잡도리를 차릴 것이라고 계섬이는 믿었다. 만일 정녕 운수가 트이지 못해서 그것이 안 된다면 요전에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가 의외로 후대받았다는 황해도 그 민가네 촌으로라도 갔을 것이라 하였다.

상제의 이야기를 들을 것 같으면 황해도 그 민가네 촌이란 것은 민가네만 한 백여 호 사는 아주 포실하고 인심 좋은 고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령 백 보를 더 물러와서 정녕 그것들이 다 안 된다고 하면 예 살던 수상에 가서라도 어떻게든지 안접할 곳을 마련해 논 연후에 위불없이 저를 맞이하러 오리라고 튼튼히 믿는 계섬이었다. 그는 눈바람이 문을 때릴 때마다 그 속에서 상제의 발소리를 찾으려 하였다.

반드시 상제는 밤중만 해서 이 뒤울안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서 이집의 코 밝은 강아지도 알지 못하게 조심스레 바로 이 방문을 가볍게 두드릴 것이라고 믿고 또 바랐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때는 분명,

계섬이…….”

하고 부르는 소리를 고대 들었는데 고쳐 정신을 차리고 귀를 감그면 그런 기척은 바이 간 곳이 없다.

그러나 꿈은 생시보다 조금 자비롭다 할까. 꿈에 상제를 보기 무릇 몇 번인데 꿈속의 그는 이전보다도 더 참참하고 상냥하였다.

그러다가 꿈이 깨면 섭섭한 것은 이를 데 없었지만 그 섭섭함이 오기 전에 그는 자던 베개를 뒤집어 놓기를 하마 잊지 않았다. 그러면 저편에서 이쪽 사람을 꿈꾼다고 일러 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도 상제는 응당 내 꿈을 꾸었으려니.’

하고 생각한 것도 버금 몇 번이었다.

그러나 그해가 다 가고 새해가 오도록 상제의 소식은 감감하였다.

할머니를 배워서 까마귀 우는 소리는 입으로 튀튀 불어 액을 쫓고 제 집 나무에 날아온 까치는 하마 날아갈까 봐 신발 소리까지 죽였어도 오는 소식은 종시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날과 달이 흘러서 어느덧 강남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시절이 되었어도 상제는 한번 떠난 집으로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그때부터 계섬이는 몸져 자리에 누워 버렸다.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가 깜박깜박 놀라 깨기도 하고 무엇이라고 잠꼬대를 안간힘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제김에 깨든가 또는 집안 사람들이 깨워 주든가 하면 계섬이는 놀라 일어나서는 멀거니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자나 방망이 같은 것을 보이는 대로 이불 속에다가 밀어넣고 다시 드러눕곤 하였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모두 자기를 해하려는 것같이 무서웠다. 그래 그 방비로 연장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계섬이는 요즈막 정신에 변조가 온 것이다.

그는 한번 뜨락으로 나가다가 강아지를 멀끔히 바라보는 사이 그 강아지가 이를 앙다물고 제게 덤비는 것 같아서 머리를 움켜쥐고 도로 뒷골방으로 굴러 들어왔다.

저놈의 개새끼, 나와 무슨 원수가 있노.”

하고 계섬이가 중얼거리며 집안 사람들을 보는 사이 이번은 모든 사람의 눈에 파란 불이 달린 것 같고 입가에 사람의 기름이 게게 묻은 것 같았다.

나를 먹고 싶은가……?’

계섬이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며 얼른 이불 속에 숨어 버렸다.

이윽히 지나려니까 그제는 이 집 벽과 천장이 기분 좋게 흔들리며 보이더니 전판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해 갔다.

달도 떠 있는데 그것은 한 십년 만에 보는 달이었다. 계섬이는 연성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하하하…….”

유쾌하고 명랑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차츰 변해졌다.

히히히…… 히히히…….”

그러더니 좀더 치명적인 표정이 되면서,

흐흐흐…….”

하고 웃는데 보는 사람의 솜털까지 오싹 하는 웃음이었다.

계섬이는 그 뒤에도 이따마큼씩 정신이 혼돈해지곤 하였다.

옳은 정신이 있는 때는 괴롭고 갑갑하다가도 한번 머리가 흐려지기만 하면 이내 그런 것을 잊어버리기는 하나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은 그 언제나와 같이 꺼려하였다.

그런 때면 그 사람들의 손에는 무서운 연장이 들려진 것 같고 그 눈에서는 푸른 도깨비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것을 방지하려고 계섬이는 잔뜩 용을 쓰고 있지만 사람만 없으면 기분이 거뜬히 들려진다. 온 하늘과 땅이 저를 위해서 있는 것 같다.

그래 그 하늘을 무작정 하고 날아 보고 그 땅을 맘대로 쏘다녀 보고 싶어진다. 뿐 아니라 맘으로는 또 그대로 도는 것이다. 그는 제가 이 세상에서 아니 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등 제일인 것같이 생각하였다.

저만한 사람이 없고 저를 누를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지질한 목숨들이 제 앞에 와서 꼼짝도 못 하고 항복하는 것 같고 저는 그 위에 어방없이 높게 앉아서 도고히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뭇사람의 손이 저어 아래서 아득히 나불거리고 있으나 그것은 하마 제게 미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몹시 가엾은 것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럴 적마다 계섬이는 싱글싱글 웃어 주곤 하였다.

그러면 어깨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는 붉고 누른 헝겊을 묶어 가지고 칠보 족두리처럼 만들어 썼다. 그리고 붉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남치마를 내려 썼다.

그러면 계섬이 자신은 다름없는 선관선녀였다. 그는 선관선녀라는 것을 일찍 본 일이 없으나 어쨌든 지금은 자신이 그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등 높고 거룩한 인물인 듯싶었다.

저는 한개 허줄한 신부라든가 그따위는 아니었고 정녕 뛰어난 존재였으며 모든 사람을 호령할 수 있는 대단히 거룩한 무엇이었다.

이년들, 이놈들!”

하고 스스로 본때있게 외치면 천백 인간들이 꼬박이 머리를 숙이고 제 앞에 고두백배하는 으리으리한 근경이 저절로 그 눈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계섬이는,

하하하…… 하하하…….”

하는 쾌심스러운 웃음이 저절로 터지고 딴에는 장이 도도해지지만 그러나 그 웃음이 높아지면 걱정 많은 할머니의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다.

저년이 별 구신을 다 묻혀 들였구나. 사람의 집을 망치게 하려고 저러느냐.”

하고 중얼거리며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가지고 계섬의 방 앞에 와서 바끔히 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들여다는 보지만 한창 신이 나 있는 계섬의 꼴이 적이 무서워서 선뜩 들어서지는 못하고 그저 복숭아채를 내두르며,

이눔의 도깨비 수이 안 나갈 테냐.”

하고 계섬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 계섬이는 말은 없으나 잔뜩 몸을 옥죄면서 눈을 지릅뜨고 마주 깔보기 시작하여 마치 개와 원숭이가 맞들이하려는 때같이 한거리 무던한 장관을 이룬다.

이놈의 도깨비…….”

할머니는 계섬의 머리에 놓인 족두리를 복숭아채로 쳐서 떨구려 한다.

그런즉 계섬이는 이거 어디서 말라죽던 따위가 방정맞게 남을 해치려고 이러나 정녕 네가 그럴 말이면 이로 물어라도 주리라 하듯이 처참하게 안간힘을 쓴다.

저 간나위년이 저건 무얼 쓰고 있느냐. 저게 도깨비가 붙어 있는 게로구나. 저건 어디서 주워 왔을구.”

할머니는 분명 그 족두리에 까닭이 붙어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러니만치 그것을 빼앗아 불을 달아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계섬이는 좀처럼 그것을 떨구려 하지 않는다.

으응…….”

하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계섬이는 할머니에게 덤빌 시늉을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아이구 이 귀신아.”

하고 문을 칵 둘러닫고 울상을 하다가도 또 비죽이 들여다보며,

하고 복숭아채를 내흔든다.

그러나 그러면 귀신은 꼭 쫓겨간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계섬이는 그저 그대로다. 복숭아 가지가 너무 가늘어서 그런가 하고 새로 굵은 놈을 꺾어다가,

이번에도 안 나가겠니, 이놈의 귀신!”

하고 방 안을 휘두르고 계섬의 머리와 어깨를 후두들기나 계섬이는,

!”

하고 외마디소리를 내며 됩다 물어 줄 듯이 으르닥거리기만 한다.

계섬이는 또 가끔 제정신이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런즉 그는 제 머리에 썼던 족두리를 내려다가 이거 누가 이런 짓을 했나 하듯이 박박 찢어 버리고 자리에 누워 혼곤히 잠이 들곤 하였다.

그러면 할머니는 제 복숭아채에 그 지긋지긋한 도깨비가 쫓겨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놈의 악귀가 또 올라느냐.”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복숭아채를 휘두르고 또 그것을 문께 꽂아 놓고는,

이놈의 도깨비! 들어오다가 이것만 보면 놀라 내빼겠지.”

하며 적이 안심하고 돌아나왔다.

그래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 뒤 계섬이는 그런 증세가 개가워지고 그러는 동시에 그 동안 미쳐 날뛴 피곤이 일시에 온몸에 실리듯이 밤낮 자리에 누워 잠만 처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얼마를 지난 뒤부터는 잠도 잘 대로 다 잤다는 듯이 누워서 눈만 그물그물하다가는 갑갑한 듯이 일어나서 뒤울안 뜨락을 역시 실신한 사람처럼 휘줄거리고 다니는데 그러면 할머니는,

아아니 이년아, 저러다가 또 그 몹쓸 귀신을 묻혀 들이겠다. 어서 썩 들어오지 못하겠느냐.”

하고 지지리 걱정이나 계섬이는 들은 둥 만 둥이다.

아이구 저년이…….”

그러며 할머니는 또 복숭아채를 들고 나와서,

글쎄 오만 악귀가 눈이 빨개서 만만한 자리를 찾고 있는데…… 저년이 또 들릴라구 저러느냐.”

하고 복숭아채를 건공에 내두르고 또 계섬이 눈앞에 내흔들었다.

그러나 계섬이는 그전과는 달라 덤비려는 눈치도 또 무서운 표정도 없이 머리를 다소곳하고 모른 척할 뿐이다.

계섬에게는 모든 일이 꿈속에서 본 것처럼 아득하고 희미하였다. 상제를 만난 것도 또 갈린 것도 몇백 년 전 일인 것 같았다. 자기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인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그것은 바로 지금 당하는 일같이 가슴이 짜릿하고 바로 눈앞에 상제를 보는 듯 그 그림자가 방불히 눈에 밟혀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는 순간 그는 한개 아름다운 환영(幻影)을 그렸다. 마치 자기의 몸과 맘이 아름다운 불꽃이 되어서 붉게 붉게 찬란히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머리에 그린 것이다.

하늘은 전판이 가맣게 흐리고 그 속으로 오직 불길만 밝게 빛나게 치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아,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랴.’

계섬이는 머릿속에 찬란한 근경이 화려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사라지고 그 대신 온 세상 온 하늘이 그믐밤같이 가마득하게 생각되었다.

또 그 새까만 속으로 제 몸이 금시 떨어질 것같이 암담하기도 하였다.

어째 이렇게 어두울까.’

이런 생각이 문득 일어나며 어두운 무엇이 가슴에 칵 안기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한동안씩 애를 써 기분을 돌리려면 이윽히 지나서야 그 어두운 하늘에 깨알만한 별 하나가 보이고 담으로 둘이 보이고 셋이 보이고…… 이렇게 조금씩 밝음이 오는 듯하였다.

하나 그 밝아오는 품이 너무 뜨고 지루하다.

해나 달이 뜨는 것처럼 대번에 온 하늘이 환해질 수는 없을까 하고 계섬이는 바랐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어두워야 할 밤이 오면 계섬에게는 도리어 그 밤이 밝게 보이는 것이다. 밤은 그에게 있어서 밝은 세상이요 희망 있는 한때였다. 그 가운데서 온갖 희망과 맘싼 광경이 고스란히 빚어지는 것이다.

상제도 만날 수 있고 만나서 옛날과 같이 다정히 이야기를 바꾸고 잔정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상제를 부르면 현연히 대답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공상이 아니었다. 계섬이는 완전히 그 공상 가운데 살고 공상과 하나가 되어 버릴 수가 있었다.

어두운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늘은 맑고 별과 날이 번갈아 가면서 그 하늘 그 땅을 광명과 변화에 차게 하는 것이다. 그는 밤이면 기뻤다. 몸과 맘이 제 뜻대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여전히 어둡다. 적막하다.

누가 이렇게 어둡게 할꼬.”

그래서 그는 어떻게 이것을 밝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두루 궁리하였다. 온 하늘에 불이라도 달아 놓아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백두산맥(白頭山脈) 떨어진 줄기에 숨은 눈과 추위를 가시는 북조선의 어수선한 봄바람이 질감스럽게 오래 내려 부치더니 그도 이제는 머리가 숙어 어제 오늘은 제법 사월다운 잔풍한 날씨였다.

그러한 어느 날 점심때쯤 우길이 뒷집 아낙네가 따뜻한 한낮 동안에 빨래를 하려고 우길이 집 서쪽 골목에 있는 우물로 나오다가 별안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무춤 발을 멈추고 섰다.

우길이 집 뒤울안에서 때아닌 검은 연기가 떠오르는 것이다. 분명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아니다. 얼른 보아도 심상치 아니하였다.

도대체 굴뚝 이외에서 연기 날 까닭이 없는 것인데 더욱 그 냄새가 이상하였다. 그래서 뒷집 아낙은 빨래 함지박을 머리에 인 채 바자 울타리 틈으로 우길이 집 뒤울안 연기 나는 데를 들여다보았다. 한즉 분명 그것은 김치움 지붕에서 나는 연기였다.

뒷집 아낙의 가슴은 또 한번 더 내려앉았다.

그는 억결에 손에 쥐었던 빨랫방망이를 내려치고 그 손으로 제 가슴을 누르며,

불이야 불이야.”

하고 비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가 떨리고 약했던 탓인지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는듯 감감 아무 반응이 없다. 뒷집 아낙은 더욱 다급해나며 가슴에서 무엇이 연성 다듬이질을 하였다.

그 당황한 생각에는 제 집 앞 긴 골목을 나가서 우길의 집 정문으로 가는 길이 한 십리 되듯 머얼게 생각되었다. 그래 그리로 뛰어갈 차비도 못 하고 그저 급한 말론 당장 그 집 뒤울안 바자를 탁 꾸지르고 나가서 그 집 사람들에게 알리고만 싶었다.

하나 단좁은 아낙네 궁리가 한갓되이 눈앞에 보이는 무서운 근경에 지지눌려 그도 저도 못 하고 또 한번 손쉬운 제 목을 더 짜서,

앞집에 사람 없소. 불이 났소. 불이오.”

하고 악을 써 불렀다.

그러자 앞집에서 인기척이 나는 듯해서 뒷집 아낙은 그제사 빨래 함지박을 제 집 마루에 가져다 내려놓고 집 안에 들어가서 물동이를 들고 나왔다. 앞집 불이 제 집으로 번지기 첩경 쉬운 난감한 판이었다.

한 것은 앞집 김치움에 바로 연달려서 바자가 서고 그 바자와 뒷집 방앗간 지붕이 이마를 맞물게시리 가까운 터이니까 바자만 타기 시작하면 뒷집은 정녕 연소를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데 또 앞집 원채는 개와집이요 뒷집은 초가라 불똥이 만만한 초가집으로 번지기가 십상인 것이다.

어서 남풍이라도 칵 불었으면…….’

하는 생각이 뒷집 아낙의 숨은 맘 속에 바이 없지 않았으나 공교히 바람도 없고 하니 가까운 뒷집으로 불길이 먼저 달려들 것은 뻔한 일이다. 뒷집 아낙은 동이에 남은 물을 바자에 얹고 그리고 삽짝문을 나와 우물로 달려갔다. 마침 남정들은 모조리 들로 나간 사이라 저 혼자 서두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 그러자니 맘은 자꾸 다급해만 지고 그래서 뒷집 아낙은 마치 정신없는 사람처럼 황급히 물을 길어 날라다가 연성 우길이 집 바자와 제 집 방앗간 추녀 끝에 끼얹었다.

하나 요행 앞집 불은 바자에 넘겨 붙지 않고 큰 변 없이 인차 꺼졌다.

앞집에는 마침 불 끄는 묘리를 잘 아는 늙은 박머슴이 있었고 상무의 아내가 열세 동이나 드는 무쇠두무에서 연성 물을 퍼나르고 또 그보다도 우길이 어머니가 평소에는 그렇게 말이 없으면서도 일에 다다라서는 손이 재고 또 물리가 밝은 사람이라 이내 턱석에 물을 질퍽 먹여서 박머슴더러 내다가 불붙는 데 덮으라고 해서 수이 진화된 것이다.

하나 그러는 복닥판에도 우길이 할머니는 또 그 지질한 버릇을 내어 불 끄는 사람더러 어째 불이 났느냐. 왜 하필 화기 없는 김치움에서 불이 났느냐 하는 따위 소리를 지껄여서 동네방네를 소란케 했는데 불을 다 끄고 나서도 그 수선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불을 끄고 난 뒤에 할머니는 더 떠들어댔다.

아아니 이게 필시 곡절 있는 일이지. 김치움에서 불이 날 까닭이 있니.”

하기는 사실 할머니 말대로 이상하기도 하였다. 불은 김치움 속에서 난 것이 아니고 지붕 위에서 난 것이다. 그래서 안에서 난 불보다 수월히 끄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이윽히 생각하더니 어심에 무슨 마치는 점이 있듯이 고개를 쩔레쩔레 저으며,

이게 정녕 귀신의 장난이로구나. 귀신 아니고 대낮에 이 변을 저지를 수 있느냐. 이거 큰일났구나.”

하고 벌써 얼굴이 가맣게 질려 갔다. 할머니는 꼭 그렇게 생각하였고 또 생각할수록 가슴이 옥죄어졌다. 견딜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몹쓸 귀신을 그대로 두고 심평 좋게 지나다니 이게 온 될 노릇인가…….

이걸 어쩌면 좋은가. 온 사람이 살다가 이런 변도 있나.”

그러며 할머니는 그 귀신을 어서 든 손에 천리 만리 내쫓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붙들려 제 손으로 제 손바닥을 치며 선 자리에서 한번 맴을 돌고,

아이규, 저놈의 악귀가 어디 가서 백였는지 알 수 있니. 눈이 새파래서 시방 이 집안을 노리고 있을 게니…… 저런 못된 놈의 귀신이라고는. 이놈의 귀신. 이놈의 귀신. 어서 못 갈 테냐.”

하고 혼자 악장을 썼다. 하나 혼자 그러는 것은 아직 상관없는데 이번은 남이 함께 저와 맞장구를 대어 주지 않는다고 또 노발대발하며,

아아니 그래, 귀신이 들어와서 눈깔을 빼먹어도 저러고들 있을 참인가. 그래 그 못된 귀신이 그만하고 무서워 도망갈 줄 아니. 산 사람 열백이라도 죽은 귀신 하나를 못 당하는 법이여. 귀신 못 하는 일이 어디 있는 줄 알어.”

하고 두루거리로 나무라지만 실상은 우길이 어머니더러 들으란 말이다.

우길이 어머니도 그것을 짐작 못 하는 바 아니나 그저 못 들은 척 잠자코 있었다. 그러는 것이 제일 속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귀인이란 하루에도 천만 가지 조화를 부리고 번쩍 하는 번갯불에도 담뱃불을 붙여 오는 놈인데. 그러니 어느결에 어디다가 또 귀신불을 터쳐 놀지 아느냐.”

하는 할머니는 정녕 지금 귀신이 어디 박혀서 만족한 듯이 히히닥거리며 또 무슨 작경을 부리려고 궁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뿐 아니라 그 파아란 눈깔까지 언듯 보이는 듯하였다. 그래 할머니는 시방 그놈이 어디 있을까 두루 궁리해 보고 그리고 복숭아채를 꺾어 가지고 귀신이 숨어 있음직한 곳으로 쫓으러 갈까 하고 생각하던 나마에 문득 계섬이를 생각하였다.

옳지. 이게 바로 그놈의 귀신이로구나. 저 계섬이년이 묻혀 들인 그 귀신임에 틀림없다. 저년이 글쎄 이 집에 무슨 원수가 있어서 저런 악귀를 묻혀 들인단 말인가.”

하고 할머니는 울 듯이 징징거리다가 아무러나 그러고 있을 수 없어서 부엌에 간직해 두었던 복숭아채를 가져다 놓기는 했으나 그걸로도 될성부르지 않아서,

내 글쎄 그렇게 복숭아채로 몹시 때려서 내쫓았는데 저놈의 귀신이 멀리 갈 줄은 모르고 겨우 문밖에 숨어 있다가 또 저 재변이란 말이냐. 저놈의 귀신이 이제 복숭아채 같은 건 아주 네뚜리로 여길 게니 이걸 어쩌면 좋으냐.”

하고 수월히 내쫓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방불히 느물거리며 사람을 놀려먹고 곯려 주는 그 몹쓸 악귀가 시방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제김에 몸을 흠칫하며 자지러지게 소름을 끼치고 나서,

저 뒷말 최봉사 어서 좀 불러오게. 아마 우길 에미가 가야 수이 올 걸세.”

하고 당부하듯이 우길 어머니한테 이르고 또 거기다가 길다랗게 발을 달았다.

먹자는 귀신은 먹여야 하느니. 하기사 귀신 먹이는 게 사춘 먹이는 것보다 낫지. 잘 사귀기만 하면 먹은 소 똥 눈다고 아무 갚음이라도 해놓고 가는 법이야. 또 못된 악귈수록 싹싹해지려고 들면 한량이 없어서 더 보람을 내고 가는 법이느니. 그러게 옛날에는 목 떨어진 못된 도깨비를 사귀어 가지고 장자 된 사람이 있다네. 어서 최봉사한테 가보게.”

그래도 우길이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본시 귀신이든지 미신이든지를 할머니처럼 알끈히 믿는 맘이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분부라 아니 들을 수 없고 해서 그런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최봉사를 불러다가 예물을 갖추고 귀신 안택경을 읽히면 되겠지. 아무리 귀신이라도 저를 위해서 성내는 법은 없느니…….”

그러며 할머니는 조금 맘을 놓았다.

이 동리 최봉사는 인근에 드소문한 명판수니까 오기만 하면 당장 귀신을 구슬려서 멀리 쫓으리라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정녕 그놈의 귀신이 한밥 잘 먹고 싶어서 불장난을 쳤던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우길의 어머니가 최봉사 데리러 간 사이에 할머니는 복숭아채를 들고 계섬의 방으로 들어갔다. 계섬이가 하고 있는 꼴을 보면 또 무슨 알조가 있을 상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섬이는 그전처럼 칠보 족두리를 만들어 쓴다든가 일어나서 서둔다든가 하는 따위 짓은 아니 하고 그저 무거운 몸을 주체하기가 베차맞은 듯이 퍼더버리고 자빠져서 끙끙거리고 있을 뿐이다. 몸은 역시 괴로운 모양이나 그래도 정신만은 그전보다 안존해진 듯하다.

저 몹쓸놈의 귀신이 계섬이년의 얼만 빼놓고 뒤울안에 나가서 그 장난을 친 게로구나.’

할머니는 속으로 이렇게 궁리하며 계섬이를 찬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얘 계섬아, 몸이 아프냐.”

하고 할머니가 나직이 물었다. 그러나 계섬이는 아무 대꾸도 안 하고 자는 듯 눈을 그물거리고 있을 뿐…….

, 무어 안 먹을라니.”

그래도 계섬이는 잠자코 있다.

몸은 어떠냐.”

그러며 할머니가 허리를 구부리고 손으로 계섬의 배를 만져 보려니까 그제사 계섬이는 몸을 한번 흠칫하여 물러나라는 뜻을 보이나 여전히 말은 없다.

그러나 계섬이 눈은 아무러나 아직도 수상하다. 스르르 감았다가 무엇에 놀란 듯이 벌떡 치뜨는 때마다 눈에서 푸른 불이 번쩍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할머니가 기왕에 본 일이 있는 도깨비 불빛과 방사하다.

저놈의 귀신이 아까 그 일을 저지르다가 집안 사람에게 몰려서 계섬이게로 다시 피신해 돌아왔는가. 돌아와서 시방 한숨을 들이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숨을 돌려 가지고 또 무슨 짓을 펼는지 모르지. 저놈의 도깨비가…….”

이런 속궁리를 하며 계섬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려니까 지금 그가 조용히 누운 것은 바로 귀신이 잠시 쉬느라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나 그러나 귀신이란 본시 심보가 비틀어진 놈이라 언제까지든지 그러고만 있을 턱은 없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계섬이가 시방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것은 정녕 그의 속에 있는 귀신이 무슨 못된 짓을 꾸미려고 꼬무락거리는 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또 공교히 계섬이가 몸을 괴로운 맡에 기지개를 켜듯 별안간 안간힘을 써서 그 바람에 할머니는 아찔해지며,

아갸갸 이 귀신아.”

하고 엉겁결에 뛰어나와 버렸다. 그리고는 정주에 앉은 상무의 아내를 보며,

, 우길 에미 왜 여태 안 온대느냐. 온 사람이 굼떠도 유만부동이지. 굼벵이 전장을 하는지…… 약지러 간 사람이 성복날 아침에사 오겠구나.”

하고 게궂은 소리로 우길 어머니를 나무라고,

, 게 좀 내다봐라.”

하고 상무 아내에게 일렀다.

아직 안 오십니다. 아마 최봉사 어디 나간 게지요.”

아이구, 말두 마라. 온 대체 요량없는 사람이지. 없으면 그 집에 당부해 두고 어서 올 일이지, 택이 물러나게 멍청하니 빈집에 앉았을 맛이 뭐란 말이냐.”

하고 할머니는 내처 제김에 또 혼자말로 며느리 때문에 일평생 속을 태우는 푸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내 참 그 느릉태 탓에 지루 늙었달밖에. 에이 사람이 말 아니 하는 것도 분수가 있지. 이건 할 말도 주리 참듯 참고만 있지. 금시 벼락이 떨어지는 일도 모른 척이지. 이러니 내가 안 늙을 수 있니. 이 머리가 뉘 탓에 다 흰 줄 아느냐. 그러게 나는 아예 제 한 명대루 살지 못할 줄 안다.”

그러나 할머니는 올해에 벌써 일흔둘이니 그만만 해도 무던히 산심이요, 또 지루 죽을 일도 있는 상싶지 않다.

늙은것이야 설사 제 명에 못 죽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지만 네 일이 걱정이로구나. 너도 시어미 덕 보기는 벌써 한옛날에 틀렸다. 그 시어미를 모시자면 네 아홉 폭 치마가 다 썩어 빠져도 안 되겠다.”

하고 할머니는 우길이 어머니를 치고 손자며느리를 측은히 생각하는 투로 말하였다.

사실 할머니는 며느리와 일평생 뜻이 서로 맞지 않아 온 대신 손자며느리인 상무의 아내에게는 늘 동정을 주어 오는 터이다.

그래도 옛날 시어미 범 안 잡은 사람이 없다고. 제법 시어미랍시고 며느리 구박은 남보다 못지않으려 드니…… 며느리 흉보라면 그 무겁던 입이 현하변구처럼 술술 터져 나오구.”

이렇게 할머니는 우길이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며느리 흉을 보았다.

그러나 우길이 어머니가 최봉사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본 때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귀신 물리칠 생각에만 골독하였다.

최판수가 다녀간 뒤 집안에서 적이 맘을 놓은 것도 잠시 동안, 이번은 앞마당 말방앗간에서 또 불이 났다.

그러나 나자맡에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불이야……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와서 다행히 이내 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역시 저번과 마찬가지로 방앗간에 난 것이 아니고 지붕 위에서 난 것과 또는 대낮에 난 것으로 보아 이 또한 귀신의 불이 분명하다고 집안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저 몹쓸놈의 귀신이 진탕 처먹고 멀리 물러간다던 것이 겨우 방앗간까지야.”

하고 할머니는 전보다 더 울상을 하였다. 한때는 복숭아채로 후두들겨 쫓아내고 또 한때는 최판수로 하여금 한배반 푸짐히 대접하게 했건만 내리 심술만 부리고 다니는 저 귀신을 어찌했으면 좋을지 할머니는 이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오참을 해주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로되 귀신이란 원청간 목이 떨어져 가지고도 꾸역꾸역 사는 놈이니까 설사 그랬단들 하상 소용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이름없는 잡귀를 소 잡고 치성드리는 법은 예로부터 없는 일이라 이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하고 할머니는 두루 속만 탈 뿐이었다.

대체 무슨 놈의 귀신인지 어디서 온 귀신인지나 알아야지. 최판수 깐에도 그저 잡귀라구만 하지 이름을 똑 따내지 못하니. 못된 놈의 귀신도 다 있지.’

하고 할머니는 몹시 안타까워했지만 그러나 고쳐 생각하면 그도 그럴 것이 계섬이를 따라온 귀신이면 으레 그의 조상과 반연이 있을 것이요 또 대대로 종이던 계섬이 조상과 반연이 있는 권신이면 물론 이름 성명이나 명색이 있을 택이 없는 것이다.

할머니는 귀신도 양반 귀신과 상놈 귀신이 있다고 생각는 것이요, 상놈이 높은 벼슬아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무무한 귀신도 명색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는 것이다.

그러니 촌무당이 장구를 깬다고 실상은 이 이름없는 놈이 매양 폐단을 내는 법이니…….’

하고 할머니는 생각하였다. 하기는 그도 그런 것이 사람으로 치더라도 제일 성가시고 무서운 것은 이름 성명 없는 백성인 것이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믿져야 본전으로 제게 손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평지풍파로 엄청난 일을 대수롭지 않게시리 해젖히는 것이다.

다른 말은 다 그만두고라도 지난 김관찰 등내에 민요를 이룬 것만 해도 이들 무무한 산골 백성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들 때문에 그렇게 성세 놀랍던 김관찰은 결국 파직을 당하고 박진사는 집과 보물을 모조리 치었건만 저들 백성은 아무 앙갚음도 받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또 최문환이 난리 때에도 서리관찰사의 목을 자른 것이 역시 그들 이름없는 백성이 아니었는가. 그들은 관찰사의 목을 성문에 높게 효수하고도 제 목들은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제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귀신도 이름 성명이 없고 무지하고 막돼먹은 놈이 제일 말썽이요 귀치않은 것이다. 이놈은 판수도 좀처럼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요, 또 한다는 무당도 수월히 구슬려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머니는 꼬박이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게 최판수가 그렇게 살풀이를 했어도 효험이 나지 않지.’

사실 최판수는 음식과 경으로 빌고 물리치고 또 주사(朱砂)를 갈아서 부적을 써가지고 이 집의 모든 건물에 골고루 붙였어도 그놈의 귀신은 무서워할 줄 모르고 여태 방앗간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상놈의 귀신이란 할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는 더욱 간이 콩알만해졌다.

뿐 아니라 그 일사가 있은 후 온 동리에서도 모두 인심이 흉흉하였다.

한 것은 불귀신이 이 동리로 들어온 것은 다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요, 또 하는 차비가 그대로 수월히 물러갈 상부르지 않으니 동네 방네가 무시무시할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판수는 날마다 부적 쓰기에 바쁘고 또 집집에서는 그것을 사다가 붙이기에 바빴지만 그래도 이 귀신만은 무당 판수도 넷두리로 여기는 날탕패 귀신이요, 또 번개같이 날쌘 귀신인지라 언제 뉘집으로 겅정 뛰어와서 무슨 재변을 어떻게 터트릴지 바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맘을 놀 수 없었는데 게다가 그 귀신이 불을 물고 다니는 것을 본 사람까지 있다는 소문이 나서 나중은 밤에 담배 피고 다니는 사람을 귀신으로 빗본 일까지 생겼다.

그러나 끝내는 그 출몰 자재한 귀신의 정체도 밝아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침 뒤에 할머니가 앞마당 뒷간으로 가려고 막대를 끌고 마루에 내려선 것이 그 귀신을 발견하는 동기가 될 줄은 그도 바이 뜻하지 못한 일이다.

할머니는 마당에 내려서서도 허리가 시끈거리고 다리 오금이 켕겨서 간신히 한 걸음 두 걸음을 떼놓으며 이따마큼 막대에 의지해서 숨을 돌리곤 하였다. 그러는 중에 한번 무엇이 펀뜩 하고 눈에 비치는데 그러자 대뜸 머리칼이 섬쯕하였다. 그것은 바로 땔나무를 가려 두는 허청 지붕이었다.

한데 그 허청은 방앗간에 연달려서 사랑 마당 쪽으로 절반쯤 나간 건물로 안마당에서는 초간히 떨어져 있는데다가 더구나 늙은 할머니 눈은 언제든지 자욱이 안개가 끼여 있기 때문에 마치 으스름 달밤같이 희미하게 내다보였다.

그 아득히 내다뵈는 지붕 위에서 희멀끔한 무엇이 또 어른하여서 할머니는 다시금 눈을 슴벅거리며 그리고 또 손등으로 눈을 부비며 기웃이 쳐다보려니까 그 흰 그림자는 아까보다 더 길게 지붕 위에 착 가로붙어 보이는데 그것은 온 지붕보다도 더 긴 듯하였다.

그리고 길게 보이려 드니까 점점 더 그 길이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아이규, 저게 뭐냐!”

하고 할머니가 질겁을 해서 들어가려다가 말고 다시 한번 딱히 보려고 한 때 그 그림자는 아지랑이같이 보일락말락 아물거리기만 하였다.

그래 더 똑똑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딱히 보이지 않고 또 아주 없어졌나 하고 보려면 분명 어릿한 모습이 여직도 분명 보이는 것이다.

아이규, 사람 살려라. 저게 바루 그 귀신이로구나. 저게…….”

그러며 할머니는 뒤돌아서 진둥걸음을 쳐서 안으로 들어오다가 그만 마루 앞에 엎드러졌다.

아이규 아이규, 이놈의 귀신이 사람의 덜미를 치는구나. , 집 안에 사람 없느냐.”

하며 할머니가 앉은 자리에서 뭉개고 돌아갈 때 상무의 아내와 우길의 어머니가 달려나왔다.

할머니…… 어째 이러시우. 일어나셔요.”

하고 상무의 아내가 먼저 할머니의 한 팔을 부여잡고 그 담에 말문이 뜬 우길 어머니가,

어디 다치시지 않었어요.”

하고 다른 팔을 부축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저 당황해서 헐떡거리며,

아이규 아이규.”

하고 한동안 외마디소리를 내다가,

이거 큰일났다. 큰일났어. 이런 변이라고 어디 있단 말이냐.”

하고 그만 또 숨이 막히듯 가슴을 연신 두드린다.

어머니, 왜 이러셔요.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들어가다니, 아이규 큰일났다. 저기 저게 그놈의 귀신이…….”

, 귀신이라니요?”

, 분명 내가 봤다. 봤어.”

보시다니, 어디 있어요.”

아니 저게 뵈질 않니. 저어기 저기…….”

그러며 할머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허청 있는 데를 가리키는데 우길이 어머니와 상무의 아내가 밝은 눈으로 그 가리키는 데를 한동안 내다보아도 비슷한 것이라고는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잘못 보셨어요. 그런 건 아무데도 없는데요. 어서 들어가셔요.”

하고 상무의 아내는 그만 집 안으로 모시려 하였다. 할머니의 망령으로 여긴 것이다.

없다니 내가 금세 보았는데. 저어기 저 나무허청 지붕을 쳐다보란 말이다.”

저 허청 말씀이지요.”

그래 분명 보이지? 아이구 저놈의 귀신이, 저 몹쓸놈의 귀신이…….”

아아니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할머니.”

안 뵈다니 정녕 허청 지붕 위에 키가 서 발이나 한 귀신이 배를 붙이고 착 드러누운 걸 내가 이 눈으로 보았는데. 젊은것들 눈이 어째 그렇단 말이냐. 아이규, 목이야. 목에서 겻불내가 나는구나.”

하고 할머니는 연신 기침을 뱉고 잠시 쉬어서,

아이규, 저 몹쓸놈의 귀신이 이제는 제 집처럼 대낮에 지붕 위로 휘줄거리고 다니니. 아이규.”

할머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잘못 보셨어요. 어서 일어나셔요.”

없다니? 그런 지각없는 소리 말고 어서 저기 가봐라. 귀신이 나뵐 때는 또 필연코 무슨 곡절이 있다. 어디다가 불을 놓지 않었나 어서 가봐라.”

하고 할머니는 역정을 내어 가며 덤덤히 서 있는 우길이 어머니와 상무 아내를 두루거리로 나무랐다.

상무의 아내가 할머니 말대로 나무허청 앞에 가서 이쪽 저쪽 지붕을 쳐다보아도 귀신 같은 것은 물론 있을 택이 없었다. 다만 바람 불 때 이엉짚이 뜨이지 않도록 길다란 말짱을 앞뒤 지붕 위 가로 얹어 둔 것이 있는데 할머니가 혹시 그것이나 빗본 것이 아닌가 하고 우길이 어머니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길 어머니는 할머니가 또 노망이 난 것이나 아닌가고 속으로 생각하였으나 문득 다음 순간에는,

아니 참 귀신이란 놈은 고작 있다가도 금시 없어진다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현듯 이마가 섬뜩하였다. 한 것은 마당에 널려 있는 나무때기나 독그릇 깨진 것에 귀신이 시방 은신했을지도 모르는 것이요, 또 어느 으슥한 구석에 박혀서 사람을 내다보며 코웃음을 치는지도 십상 모르는 것이다.

그는 다시금 몸소름을 쳤다.

그럴 판에 또 나무허청 안을 멀찌감치서 기웃이 들여다보던 상무의 아내가 별안간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가지고 달려오면서 버럭 소리를 지를 상이더니 그래도 색시다운 조심이 들었는지,

어머니…….”

하고 나지막하게 부르는데 나지막하게 부르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어머니의 가슴이 도리어 더 쩔렁하였다. 머리칼까지 대뜸 쭈빗이 섰다.

왜 그러느냐. 뭐가 있더냐.”

어머니도 나직이 물었다.

저기 허이연 무엇이 있어요.”

허이연 것이?”

, 할머니 말씀대로 아주 긴 것이야요.”

하며 상무의 아내가 저편 나무허청 쪽을 가리키나 어머니는 선뜻 들어가 볼 용기가 없어서,

무엇이 있어?”

하고 다시 물으며 머뭇머뭇하고 있었다.

소나뭇단 저편에 길다랗고 희끔한 것이 얼른 뵈어요.”

길고 흰 것이?”

, 분명 보았어요.”

하는 상무 아내의 말에 어머니는 또 한번 섬쯕하였다.

그러나 자리가 며느리 앞이라 졸한 꼴은 할 수 없고, 또 그는 본시 할머니처럼 귀신이라는 것이 꼭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반신반의로 저편 나무허청문께로 가서 끼웃이 들여다보았다.

그런즉 과연 희멀끔한 무엇이 언뜻 보이는데 그는 얼떨결에 한발 뒤로 물러서다가 말고 다시 맘을 사려먹고 좀더 찬찬히 넘겨다보니까 역시 아까나 다름없이 흰 것이 그대로 보인다. 하나 귀신 같으면 그 동안에 천백 번도 더 숨어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는 순간 어머니는 언뜻 무엇이 맘에 마치는 것이 있어서 그 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상무의 아내에게 나직한 소리로,

, 너 뒷방에 들어가서 계섬이 있나 보구 오너라.”

하고 일렀다.

.”

하고 종종걸음으로 집 안에 들어갔던 상무의 아내가 이내 정주문을 나오며,

없습니다.”

하고 나직이 말하자 어머니는,

없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좀더 자신이 생긴 듯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 가지고 그것으로 소나뭇단 사이에 약간 희멀끔하게 보이는 것을 쿡쿡 찔러 보았다.

한즉 그 소나무 가지를 통해서 알려지는 물큰한 감각이 정녕 사람인 듯싶었다. 또 송장 같은 것은 물론 아닐 것이고 위불없이 산 사람일 것도 어머니는 의심치 않았다.

얘 얘…….”

하고 어머니는 좀더 힘을 주어 찌르며,

이년아, 게서 뭘 하고 있느냐. 썩 나오지 못할 테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그것은 수이 나오지 않았으나 소나무 가지에 힘을 주어 찌를 때마다 약간 꿈틀 하고 아프다는 반응을 보내는 품이 분명 산 사람인 것이다.

이년아! 계섬아.”

하는 어머니 소리는 좀더 자신이 생긴 쨋쨋한 소리였다. 인제 더 의심할 나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희멀끔한 것의 딍딍한 배가 한 번 두꺼비처럼 벌름 하고 움직일 때 어머니는 또 한번 이마가 섬쯕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희멀끔한 것이 화닥닥 일어나서 아웅 하고 덤비든가 물어 제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길 어머니는 어쩔 바를 모르고 잠시 동안 뒤뚝거리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지난 뒤에 우길이 어머니가 다시 불러도 그 희멀끔한 것은 좀처럼 수이 일어날 차비가 아니다.

그래서 우길이 어머니는 속으로 슬그머니,

개고기 같은 년.’

하고 욕이 저절로 나가고 소나무 가지를 잡은 손에 악심이 내렸지만 한편 겁기가 가시지 않아서,

얘 이년아, 어서 일어나거라.”

하고 힘써 부드럽게 불렀다.

그래도 그것은 날 잡아잡수 하듯이 늘어져 있어서 어머니는 소나무 가지로 직신직신 건드려 보면서 소나뭇단을 한 단 이편으로 슬며시 당기었다.

한즉 그젠 환연히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서 어머니는 그것의 덜미에 손을 찔러 끌어당기며,

아니 이년이 살아 있어도 이 모양이냐.”

하고 절반은 역증으로 또 절반은 측은해하듯이 혀를 끌끌 찼다.

이 낯바대기 좀 들어라.”

그래서 이윽고 어머니 손에 끌려서 삐죽이 나타나는 지지벌건 낯짝은 어김없는 계섬이었다.

몹시 충혈된 눈은 분명 실신한 사람의 그것이었으나 아무 반항도 없는 눈이었다.

어머니는 불현듯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 자식 귀순이가 장차 만삭이 되어서 안간힘을 쓰던 나마에 그렇게 될 것을 그 순간에 상상하지 못했다면 그 측은한 맘은 절반 이상 덜렸을 것이지만…….

이년아, 너 시방 어디 와서 누웠는 게냐. 썩 일어나거라.”

하고 이어 덜미를 잡아당기는데 그 바람에 계섬의 가슴 밑에서 누르끄름한 무엇이 얼른하여서 어머니는 부지중 또 소름이 끼쳤다. 얼른 보기에도 그것은 요 얼마 동안의 무서운 수수께끼를 감춘 무엇 같아서 어머니는 무섬증이 났으나 무서움이 날수록 더 보고 싶어서 어칠어칠 소나무 가지로 그것을 끌어다가 헤치고 보니 그 속에 타다가 남은 숯덩이와 재가 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불꾸러미인데 계섬이 가슴에 눌려서 피지 못하고 꺼져 버린 것이었다.

계섬이가 나무허청 지붕에 불꾸러미를 박으러 올라갔다가 할머니의 왁살 바람에 놀라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내려와서 나무허청에 들어가서 숨었던 것은 다시 물을 것도 없는 일이다.

한동안 그렇게 사람의 맘을 흉흉하게 하던 귀신의 불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도 여기서 깡그리 밝아지고 말았다.

이년아, 그게 무슨 지각없는 짓이란 말이냐.”

하고 어머니는 아직도 무섬증이 가시지 않은 약간 떨리는 소리를 부드럽게 낮추어 가지고,

어서 썩 들어가자.”

하고 계섬이를 나무허청 밖으로 부축해 내왔다. 그런즉 여태 멀찍이 비켜서 있던 할머니가 무섬결에 두세 걸음 더 뒤로 물러서며 약간 떨리는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년 참말 살기는 살었느냐.”

하고 우길 어머니에게 물었다.

싱싱한 년이 그러는군요, .”

싱싱하다니…… 그년 이마 좀땍이 만져 보게. 귀신이란 넷두리로 사람을 속이느니.”

아니에요. 인제 아무렇지도 않어요.”

하고 우길이 어머니는 계섬이더러 들으란 듯이 구슬리는 조로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상무의 아내가 바로 그 뒤를 따르고 초간히 떨어져서 할머니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면서,

모르는 소리 말게. 도깨비가 아일 낳은 일이 다 있다네. 그래도 그때까지 아무도 그게 도깨비인 줄 몰랐단밖에…….”

하고 여직도 계섬이가 참말 계섬인지 또는 참말 계섬이라 하더라도 살아 있는 계섬인지를 딱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며 허리를 숙여 멀리 계섬이를 쳐다보았다.

참말 도깨비일진대 그렇게 보면 키가 구척도 넘게 커보인다고 일러 오는 말을 할머니는 고스란히 그대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계섬의 키는 별로 커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안심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잔소리가 가실 할머니는 아니다.

이년아, 네 이 집에 무슨 원수가 있길래 칼루 사람을 못 찔러서 집에다 불을 놓는단 말이냐. 귀신이 들려도 분수가 있지 이십 년 동안 길러 준 갚음을 그래 그렇게 해야 옳단 말이냐.”

하고 그날 진종일 또 그 지질한 버릇을 내놓고 오만가지 소리로 징징거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마음의 싹

계섬이는 그 이튿날 꼭두새벽에 계집아이를 낳았다.

하나 계집아이고 사나이고 간에 누구 하나 무얼 낳았느냐고 알려는 사람은 없었다.

벌써 첫여름이 되었건만 연일 날씨가 흐려서 아침 저녁은 몹시 으스스하였다.

단지 그래서 그런 것만도 아니겠지만 한 생명이 새로 난 이날 아침 이 지붕 아래서는 도리어 무겁고 음침한 분위기에 지그시 눌려 있는 것 같았다. 또 사람으로 말하더라도 아무도 새로 난 생명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묵묵한 가운데 을씨년스러운 표정만 깊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중 다만 계섬이만은 오래 괴롭고 무겁고 덧부르하던 몸이 하루아침 갑자기 거뜬해져서 미역국에 찹쌀밥을 조금 먹고 인제 겨우 살아난 듯싶은 개운한 기분이 돌아왔으나 그도 잠깐 동안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또다시 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저께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할머니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라서 급작히 아래로 내려오느라고 그만 땅바닥에 철썩 떨어져 버렸다.

나무허청은 낮고 또 오르내리기 편하게 그 곁에 볏짚 낟가리가 있었지만 놀라 서두는 통에 무중 발이 빗디디어졌던 것이다.

하나 땅바닥에 떨어지면서도 사세가 급해서 엉겁결에 나무허청에 들어가서 겨우 반몸이나 숨기고는 그만 제정신을 잃었던 것이요 또 그때의 놀람과 낙상으로 아이를 지루 낳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찌 견디어 내는 장수가 있으랴. 그날 오후부터 계섬이는 얼굴이 차차 붓기 시작하였다. 산후 풍이 난 것이다. 땀기는 말짱 거두고 아슬아슬 오한이 들고 일단 후련하여졌던 내장에 악혈과 번열이 옹쳐 들어서 아이를 낳기 전과는 달리 뱃속까지 들이 쑤시었다.

우선 산저담(山猪膽)이나 웅담을 먹이면 복장에 결린 악혈과 번열은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 것이나 아무도 미처 생각을 못 해서 그런지 그 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계섬이의 앓는 품은 얼른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그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가 할머니에게는 몹시 애처롭게 들렸다.

뿐 아니라 아이를 낳았다는 것부터도 적이 못마땅하였다. 하나 할머니는 본시부터 사내아이를 소원하고 계집아이를 싫어해서 계섬이가 계집아이 난 것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사내자식을 낳았다 하더라도 역시 귀찮기는 일반일 것이다.

차라리 종의 자식은 남자보다 계집아이라야 부려먹기가 좋은 법이니까 그렇게 칠 말론 계섬이가 계집아이를 난 것이 도리어 할머니에게는 요행한 일이겠으나 이 경우에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모두 성가실 뿐이었다.

계섬이가 산후 단 며칠 동안이라도 드러누웠을 것이 싫었고, 또 이러쿵저러쿵 주둥이를 까고 싶어할 동리 이목이 싫었다.

가령 누가 계섬이는 어디 갔소하고 묻는다든지 또는 좀더 노골로 아니 계섬이가 해산했다지요?” 하고 묻는다든지 간에 모두 귀찮은 물음인 것이다.

그리고 또 계섬이가 오래도록 누워 앓아도 걱정이요, 눕지 않고 수이 일어나서 남 볼 소견 사납게 어린애를 꾸동쳐 업고 정구지역(井臼之役)을 한다 해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아이를 뉘게 내주는 수밖에 없어.’

할머니는 속으로 이렇게 궁리하였다.

자기 집 체면을 생각해서도 아이를 어느 작인에게라도 내맡겨 두고 계섬이를 어서 시집을 보내되 그 사내 될 자를 미리 불러다가 계섬이가 아이 난 이야기와 장가든 연후에 그 아이를 찾아다가 딴소리 없이 제 자식으로 기를 것을 다짐받고 그리고 벼락시집을 보내 주리라 하였다. 옛날에도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어느 만치 장성하면 도로 제 집에 데려다가 이름은 수양딸이겠든지 무어겠든지 좋도록 붙여 두고 심부름을 시켜도 좋으리라고 할머니는 생각하였다.

또 실상 늦도록 장가들지 못한 사람 중에는 그런 조건이라도 달게 받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할머니는 우선 남의 눈가림으로 어느 소작인에게 아이를 내맡기려고 우길이 어머니를 시켜서 요즈막에 해산한 소작인을 알아보라고 일렀다.

 

그날 석양에 우길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본즉 집안이 수수한 게 어째 이상하였다. 무슨 일이 있는 듯싶은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짜장 팥죽 마른 것처럼 밤사이에 주름이 부쩍 더 늘고 무섭게 찌그러져서 말을 묻기가 싫었다.

그리고 본시 말이 없는 어머니는 이날따라 더 침울해져서 묻는 말에 수월히 대답할 상이 아니다. 그런 중 제일 만만해 뵈는 것이 아주머니다.

아주머니는 저녁밥을 짓고 있었는데 역시 흐린 듯한 얼굴이요, 또 본시 볼편과 눈가에 심술이 많은 얼굴이긴 하다.

그래도 이 부엌에서는 아주머니가 제일 나이 젊고 이쁘다.

아주머니, 집에 오늘 무슨 일이 있소.”

하고 우길이가 물은즉 상무의 아내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아아니.”

하고 탐탁지 않게 대답할 뿐이다.

우길이는 무언지 모르게 슬며시 부아가 날싸하였다. 남은 일껀 알고 싶어 물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 저녁이 늦었소. 배가 고파 죽겠는데.”

아니 벤또 안 가지구 갔어.”

벤또 먹으면 저녁 안 먹어도 존가.”

하고 우길이가 한바탕 또 걸고 들 상이라 상무의 아내는 그만 말을 끊고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러기 우길은 내처 밸이 꼴려서 또 형수를 가지고 욕지거리할 차비였는데 그때 마침 뒷골방에서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얼레, 어린애가 우네.”

우길은 눈이 둥그래서 뒷방 쪽을 멀리 바라보았다. 한즉 응아응아하고 보채는 소리가 분명 갓난아이 소리다. 그러고 보니 새벽 꿈결에도 그 소리를 들은 법하다.

하나 그때는 꿈속이라 조카놈의 우는 소리로만 들었고 그러기 때문에 늦잠이 깨어 불이야 불이야 아침 먹고 학교로 떠나가던 아침결에는 다시 그 소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여가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 우길이는 지금 다시 아주머니에게,

저거 무슨 소리요?”

하고 물은즉 형수는,

어린애 소리 아니야.”

하고 쨋쨋이 대답하는데 우길이 듣기에는 분명 트집기 있는 소리다.

어린앤 줄 누가 모르나.”

그리고 또 우길이는 좀더 심사가 비뚤어진 소리로,

그래 아주머니가 낳았소.”

하고 물었다.

한즉 상무의 아내는 별안간 귀밑까지 발개지며 우길이를 흘낏 깔보고 머리를 숙여 버렸다.

상무의 아내는 이미 첫아이를 낳았고 지금 또 육칠 삭이 되어서 배가 불룩하여 그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던 것이다.

얼굴은 어째 발개지노.”

그래도 상무의 아내는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우길의 성미와 입버릇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슨 아인가 말이오? 저 우는 아기가…….”

그래도 형수는 아무 대척도 하지 않았다.

입이 붙었나.”

하고 우길이가 기어이 말썽을 부리려고 드니까 할머니가 곁에서 듣다가,

아이지, 무슨 아이야. 사내새끼가 죄죄하게 그건 옴니암니 캐서 뭘 하니.”

하고 가로맡아 갔다.

할머니는 며느리인 우길이 어머니와는 뜻이 서로 맞지 않으나 그 대신으로 손주며느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싸주려는 버릇이 있다.

누가 할머니더러 말하래나.”

이놈의 새끼, 넌 그런 거 알아 소용없다. 공부하는 놈이 공부나 할 일이지, 부엌간 참견이 무슨 소용이냐. 너의 형 좀 봐라. 집에 들어서 무슨 말 함부로 하디.”

말 안 해도 좋아, 누가 절더러 말하라나.”

하고 우길이는 돌아서 나오려 했으나 그러고 보니 별안간 약이 더 올라서,

안 가르쳐 줘도 다 알어. 누가 모를 줄 아나.”

하고 뇌까렸다. 그대로 뿌옇게 밀려 나가기는 싫었던 것이다.

또 그뿐 아니라 우길이는 맘에 짐작되는 일도 바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벌써 얼마 전부터 계섬의 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계섬이가 미쳐 날뛰는 것도 또 집안에서 야단났다고 떠들어대던 것도 일찍 보아 온 바다.

그러나 우길이는 그것을 그닥 큰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계섬이가 정말 미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만 계섬이는 지금 무슨 병에 걸려서 그렇거니 또는 병이라는 것은 앓다가도 낫는 것이어니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우길은 여기서 할머니의 가슴을 뜨끔하게 해주려고 위정 그렇게 딴전을 울려 본 것인데 뜻밖에 그 소리는 지질한 할머니의 명문에 들어가 맞았다.

이놈의 새끼, 알긴 무얼 안단 말이냐.”

하고 소리부터 살맞은 비명이었다.

글쎄 알아요, 알어.”

이놈의 새끼, 그래 남과 그런 소리 할 테냐. 그럼 매맞어.”

하고 할머니가 남더러 말하지 말라고 딴에는 지각을 부려 일깨워 주니까 우길이는 도리어 얼씨구나 됐구나 하듯이,

내 말 안 할 줄 아나.”

하고 도로 으르는 시늉을 한다.

이놈의 새끼, 그래 뭐라고 말할 테냐.”

누가 그걸 가르쳐 줄 줄 아나. 알구 싶어 죽겠지…….”

이놈의 새끼…….”

내가 가서 다 이얘기할 테야.”

어디 가서 이얘기하겠니.”

하다가 할머니는 우길의 성미가 동으로 가라면 서쪽으로 삐여지는 버릇이 있는 것을 깨닫고 슬쩍 말을 돌려서,

이놈의 새끼, 말을 할라거든 해봐라. 무서워할 줄 아니.”

하고 딴전을 썼다.

그럼 누가 안 할 줄 아나.”

그러게 어서 말을 해보란 말이다.”

무어라고 하나 들을라구…… 할머니한텐 말 안 해.”

그럼 누구한테 할 테냐.”

어디 가서 죄다 말할 테야.”

이놈의 새끼, 어서 가서 제 집 건풍을 떨어 봐. 어서 썩 왜 못 가느냐.”

걱정 말어.”

글쎄 썩 가서 말해라. 어서.”

하고 할머니가 다두쳐 들씌우는 바람에 우길이는 잠시 즘즛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지고 말 우길이는 아니다.

그는 지금 단박 할머니를 되게 곯려 줄 묘책을 골똘히 빚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할머니가 무엇을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지 잘 안다.

내 순검과 말할 테야.”

순검!”

그 순간 할머니는 벌써 가슴이 뜨끔하였다.

일로전쟁 당시와 수상(水上)으로 피난 갔을 때 본 그 무서운 양복쟁이로부터 최근에 가택수색을 나왔던 양복쟁이까지 무릇 한 번 본 양복쟁이란 양복쟁이는 어느 날 어디서 본 기억까지 분명히 머리에 떠왔다.

순검과 말하면 붙들려가.”

이놈의 새끼, 날 붙들어갈 택이 뭐냐. 너같이 버릇없는 놈이나 붙들어가지.”

난 일러준 사람인데 왜 붙들어가.”

어른의 말을 안 들으니까 붙들어가지.”

하는 할머니는 실상 우길의 실없는 소리를 벌써 어느 만치는 고지식하게 듣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적이 무섬증이 나고 또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는 어린 우길에게까지 노염이 생겼다. 그래서 가슴이 떨리며 얼른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동안 우길이는 여러 가지로 할머니를 곯릴 생각을 하던 나마에 엉뚱한 궁리까지 조작해 냈다.

계섬이를 지붕에서 떨어져 죽게 하고…….”

하는 소리가 비록 어린 놈의 철부지한 소리지만 할머니는 여기서 또 한번 가슴이 뜨끔하였다.

이놈의 새끼! 뭐 어째. 저기 계섬이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거짓말 말어. 누가 속을 줄 아나.”

저런 숭한 놈의 새끼라구는…….”

글쎄 다 알어.”

기실 우길이놈도 계섬이가 죽지 않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혼줄을 내려고 위정 그렇게 말한 것이요, 또 그렇게 말하고 본즉 할머니가 다급해하는 것이 은근히 맘에 고소해서 또 한번 채쳐 본 것이다.

이놈의 새끼, 그런 거짓말 하면 못써. 네사 붙들려갈라구 그러니.”

일없어. 내가 왜 붙들려가. 난 존 사람야.”

이놈의 새끼, 내가 계섬이를 부를게 들어 봐라. 계섬이가 대답하면 어쩔 테냐.”

하고 할머니는 갈린 목소리로 연성 계섬이를 불렀다. 그러나 계섬이는 그때 마침 신열이 나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감감 대답이 없다.

아이규 계섬아, 이년 대답 좀 해라. 저년이 귀가 먹었나.”

암만 불러도 대답 안 해.”

우길이는 재미나듯이 놀림조로 뇌었다.

아이규, 저년이 저년이 생사람 잡을라구 저러느냐.”

그러며 할머니는 울상하고 뒷방으로 들어갔으나 그 뒤에도 할머니의 징징거리는 소리만 들리지 종시 계섬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 이튿날 우길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때는 계섬의 방에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늘 식전에 전인해서 어린아이를 여기서 이십 리나 되는 벌말 어느 소작인의 집으로 가져간 것을 알 택이 없는 우길이는 적이 궁금해서 어린애 소리가 안 나나 하고 기다렸다.

그래도 언제까지든지 들리지 않는 것이 못내 우길의 맘을 어둡게 하고 뒤숭숭하게 하였다. 어제는 분명 있었는데 한 밤 자고 없어졌다는 것이 십분 알 수 없는 일이요, 또 답답한 일이었다.

아주머니, 어린애 어디 갔소.”

하고 우길이는 꼭 알고 싶어서 물었으나 상무 아내의 대답조는 그닥 탐탁하지 않았다.

어린애라니? 오 그거 어저께 그 애 말이지. 그앤 우리 애가 아니야.”

그럼 뒷집 애요?”

저어 다른 집 아인데 제 집으로 갔어.”

아냐. 누가 모를 줄 아나.”

우길이는 아주머니의 말을 동이 닿지 않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였고 또 사람이란 나잇살이나 처먹으면 모두 불여우처럼 사특하고 바르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넷두리로 하게 되는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한 것은 남의 아이면 뒷골방에서 울었을 택이 없는 것이요, 또 집안에서 그렇게 은휘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한데 어제도 흐지부지 우물거려 넘기고 오늘 또 가당치 않은 소리로 얼버무리려는 것을 보면 분명 까닭이 있는 일 같다.

그래 속으로 무슨 놈의 아이길래 그러나 하고 기어이 캐려고 드니까 아주머니는 볼식은한 소리로,

참말이라니까 제 집으로 갔어. 그런데 오늘은 어째 일찍 왔어.”

하고 딴소리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아니야. 거짓말쟁이…….”

거짓말 아니래두.”

그럼 내가 가볼걸.”

가보아도 그렇지. 없는 게 생겨날까.”

그럼 안 가볼 줄 아나…….”

하고 우길이가 뒷방으로 들어가려 한즉 할머니가 앞을 막으며,

못써. 사내새끼가 어째 그러냐.”

하고 공연히 나무라는 것이다.

왜 못써.”

눈이 어지러워져. 가지 마라.”

하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우길이는 부지중 가슴이 섬쯕하여졌다.

대체 그 방엔 무엇이 있길래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며 또 보면 보았지 보는 그것만으로 눈이 어지러워질까 하고 우길이는 적이 수상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쩍 더 그 방으로 가보고 싶었으나 곁사람들의 눈이 있어서 가지 못하였다.

조금 뒤에 상무가 서당에서 돌아왔으나 그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아주 대범하였다. 꼬물도 아랑곳 아니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상무와 우길이는 무슨 이야기고 간에 잘 하지 않는 터이요, 또 상무는 어린애 이야기 같은 건 계집애들이나 자발없이 종알거리는 것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터이어서 우길이가 만일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만 하면 상무는 대뜸,

이놈의 새끼, 건 알아 뭘 하니. 계집애들처럼.”

하고 나무랄 것이어서 우길이도 숫제 모른 척 시치미를 따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은근히 상무에게 반감이 생겼다.

너는 나를 계집애 같다구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훌륭히 될걸.”

하는 막연한 승벽까지 일어났다.

그러지 않아도 누나 귀순이나 누이동생 이순이를 동기로 생각지 않고 심하면 사람 같지 않게 여기는 상무를 우길이는 속으로 밉게 생각하고 있던 터이다.

그날 밤 우길이는 공부를 하다가 남몰래 슬쩍 뒤울안으로 나가서 계섬이 방문을 삐죽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방 안에는 등불을 켜지 않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참 가만히 섰으려니까 겨우 바깥 달빛에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이 들여다보였다.

우길이는 부지중 몸서리를 쳤다. 계섬이는 죽은 듯 고요히 자리에 누워 있다. 정말 죽은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다시금 이마가 섬쯕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섬을 참고 오래도록 그대로 서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있으려니까 계섬이가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내며 약간 몸을 흠칫하는 것이 역시 극히 희미하게 알려진다. 그 동작과 소리는 어쩐지 어린 우길에게 안심을 주는 동시에 또한 불안을 주었다.

우길이는 몇 번 계섬이를 부르려고 했으나 어안이 막혀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 이튿날 우길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부엌에서 탕약 달이는 냄새가 코를 쿡 찌른다.

상무의 아내는 가뜩이나 무거운 몸으로 부엌에서 저녁을 지으랴 약 끓는 걸 보살피랴 하기에 짐짓 부아가 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계섬이가 앓아서 그의 일까지 두 몫을 겹쳐 보는데 게다가 또 그의 약까지 달여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모르겠는데 체면 사납게 계섬의 약인 것이다.

그런데 또 그놈의 약탕관이 비뚤어져서 약이 화롯불에 쏟아지며 부옇게 재가 떠올라서 그것을 바로잡아 놓으려는데 두 살 난 성수놈이 치마꼬리에 매달려 젖을 먹으려고 앙탈을 써서 금시 쥐어박으려는 판에 우길이 뛰어오며 조카놈을 성큼 안아 주었다.

얘 성수야, 넌 나구 놀자, .”

그래도 아이는 어미한테 가려고 야기를 쓴다.

어어 성수 잘났다, 둥둥둥…….”

하고 우길은 어린애를 추스르다가,

옳지, 내 업어 줄게. 아주머니, 얘 업혀 주어요. 업어야 안 울어요.”

하고 성수를 등에 업었다.

우길이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으면 참배맛같이 싹싹한 그다.

빗가려고 들면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대신 좋다고 들면 뼈가 휘는줄 모르게 고분고분한 성미인 것이다.

그래 형수와도 자주 어기대는 반면에 또 곰곰스럽게 거들어 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어떤 때는 아주머니를 간나위라고 욕하는 일도 있지만 또 어떤 때는 아주머니같이 무던하고 이쁜 사람은 없다고 극진히 고맙게 구는 그였다.

한번은 아주머니가 그릇을 깨고 어머니한테 꾸중듣는 것을 보고 제가 그랬노라고 의젓이 대맡으려고 든 일도 있었다.

오늘 형수는 그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고 우길에게 못내 고마웠으며 우길이도 더욱 맘이 내켜서,

아주머니, 어디 아프오?”

하고 물었다.

아아니 아프긴…….”

그럼 약은 어째 달이오.”

저 약 그거 계섬이 게야.”

계섬이요. 계섬이 어떻게 앓어요.”

어떻게 앓느냐고…….”

하는 형수는 무어라 대답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감기들었어.”

하고 덤덤히 대답하였다.

되우 아픈가요.”

아니 감기라니까.”

감기?”

그러면서도 우길이는 그 말이 곧이 믿어지지 않았으나 오늘은 맘이 내킨 김이라 그럴 만하게 들으며 등에 업은 아이를 둥둥 추스르는 판에 상무가 서당에서 돌아왔다.

그러자 우길이는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며 형수에게 아이를 맡기려다가 말고 정주에 내려놓고,

내 오줌 누고 오께.”

하고 뒤울안으로 나가 버렸다.

나가서 그는 이마의 땀을 씻었다. 어째 그런지 얼굴이 화끈하며 선땀이 솟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기도 공연히 면구해서 한참 서성거리고 섰다가 문득 생각한 것이 계섬이다.

계섬이가 시방 하고 있는 꼴을 한번 더 똑똑히 보려는 것이었다.

해는 이미 넘어갔으나 초여름의 붉은 저녁놀이 안침진 뒤울안까지 붉게 물들여 놓았다.

그는 계섬이 방 앞에 가서 조심조심 문을 열었다. 그러자 맨 첨으로 보인 것이 계섬의 희멀끔한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우길은 부지중 몸소름이 끼쳤다. 그 퉁퉁 부은 얼굴이 보기에 몹시 징그럽고 또 그 부어 오른 살 속에 두 눈까지 잠겨 버려서 더욱 몸이 아슬때려졌다.

계섬이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갈노전 위에 포대기를 덮고 누워 있다. 그 손과 발도 전부 부었고 그전보다 유난히 멀끔하나 보기에 모두 끔찍하였다.

우길이가 찬찬히 그의 부은 뺨과 귀와 눈지방을 바라보는 때 그 부은 살 속에 묻혔던 계섬의 가는 눈이 애오라지 띄어지며 빠끔히 우길이를 쳐다보는 것이다.

우길이는 또 한번 이마가 섬쯕했으나 그 사람 그리운 듯한 가는 눈에서 분명 옛날의 계섬이를 발견하였다.

때리고 욕하고 말타고 차던 그렇게도 튼튼하던 계섬이가 시방 죽은 듯 고요히 누워 있는 것이 모두 허무한 거짓말 같다.

다만 참으로 보이는 것은 계섬이가 지금 저를 보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그것뿐인 것 같다.

우길이는 소리를 내어 그를 부르려 하나 목이 잠겨 소리가 안 나오고 그저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부어오른 계섬의 얼굴에는 종내 아무런 표정도 뜨지 않았다.

계섬이는 기어이 소생할 가망이 없었다. 그는 해산 직후에 조금 음식을 먹고 난 담에는 장창 오륙 일을 내리 곡기를 놓은 채 물 한 모금 마시자는 말이 없다.

아무리 병자라도 곡기를 놔서는 안 되는데.”

사람은 수시 중병이 들었더라도 음식을 먹어야 하고 음식만 먹으면 죽는 병이 없다고 생각는 할머니가 이따금 계섬이 입에 미음을 떠넣어도 대부분 거품처럼 우구구 입 밖으로 돌려 버려서 목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는 별로 있는 상싶지 않다.

그래 겁이 많은 할머니는 더욱 황겁해났다. 계섬의 튼튼하던 몸은 해산하는 때에 안통이 산산이 찢어져 녹장이 난 것 같고 들락날락하던 정신마저 안접할 육신을 찾지 못한 채 일그러져 버린 것 같았다.

계섬이는 팅팅 부은 몸을 꼼짝도 못 하고 반듯이 드러누워서 이따금,

으윽…….”

하고 안간힘을 쓰다가는 이내 맥이 풀리듯,

…….”

하는 애처로운 비명을 내는데 그런 때는 목줄띠와 가슴을 무엇에게 몹시 짓눌리는 것을 느끼는 심인지 손을 약간 허우적거리고 또 입까지 스물거리며 그 괴롬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현연히 보인다.

무슨 악귀가 그의 전신만신을 옥죄어 주는지도 모르겠다. 한 것은 그렇게 비명을 내던 끝에는,

이놈들…….”

하고 목소리를 짜고 뒤미처서,

이 연놈들, 이걸 이 목을 안 놀 테냐. 아이구, 이 다리 좀…….”

하고 악을 써 소리를 치는 것으로 보아서도 족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뒷방에서 계섬이가 그렇게 애처로운 소리를 내고 있는데 놀란 할머니는 덜덜 떨면서 그리로 다좇아 들어갔다.

들어가서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살근살근 흔들어 부르깨인즉 계섬이는 팅팅 부은 얼굴 속에 잠긴 눈을 파내려고 가까스로 애를 써 눈시울을 지르뜨고 바늘만치 가는 눈으로 건공을 흘기며,

이 연놈들!”

하고 뇌까리는 것이다.

얘 계섬아, 어서 정신차려라. 나다, 나야.”

하고 할머니는 사시나무 떨듯 하는 손으로 안정시키려 하나 계섬의 잠꼬대는 여전하다.

이 도적년놈들 같으니…….”

분명 무슨 악몽에 붙들려 있는 속이다.

얘 계섬아…….”

그래도 계섬이는 제멋대로 중얼거릴 뿐.

아이를, 아이를…….”

, 아이? 여게 있다. 여게 있어.”

…… 어디…… 하하하하…….”

자아, 이거 아니냐.”

으흐흐흐…….”

하는 계섬의 그 무서운 웃음 소리가 할머니의 목덜미에 탁 잠기었다.

아이쿠, 계 계섬아…….”

할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도망을 해나오려면 금시 또 계섬의 무서운 소리가 등통을 칵 울릴 것 같고 울리기만 하면 저는 당장 탁 엎드러져 까무러칠 것 같았다.

저 저…… 아이, 아이를…….”

하고 계섬이는 여전히 무슨 환상에 붙들려서,

여게 안 내놀 테냐, 여게…….”

하고 헤번덕거리는 것이다.

얘 계섬아, 여게 있다. 여게 있어.”

, 가만 두어…… 아이를…….”

하고 계섬이는 얼마 동안 아무 말도, 아무 동작도 없다. 무서운 환상이 잠시 멀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그 대신 서릿발같이 무서운 침묵이 할머니의 가슴에 칵 안긴다.

, 네 어린애 여게 있다. 여게.”

할머니는 어서 이 자리를 모면하려고 달래는 투로 말하였다.

, 아이…… 어디 갔어, 어디…… 으흥…….”

계섬이의 소리는 점점 가늘어져 갔다.

얘 계섬아.”

어디…… 어디…….”

여기…… 여기 있다.”

그러며 할머니가 손끝으로 계섬의 뺨과 가슴을 번갈아 가며 살살 건드려 주나 계섬이는 아무 반응이 없이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손도 발도 꼼짝 놀릴 수 없고 이제 오직 목구멍 한군데만 조금 트여 있는 모양이었다.

아아…… 어째…… 이렇게 이렇게…… , 어둘까.”

하고 계섬이는 잠시 쉬더니 또,

어디로 갔어…… 아아, 너무너무 어둡다. 자꾸만 어두워…….”

하고 계섬이는 무엇을 찾는 듯이 손끝만 약간 허우적거리고 있다. 분명 이제 천길 무명(無明)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날 오후 계섬이는 한동안 안존히 잠이 들었다.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던 할머니는 불현듯 눈물이 날 뻔하였다.

일찍 불쌍하다는 생각을 계섬이의 신상에 가져 본 일이 없는 할머니로서는 까닭 모를 이상한 일이었다.

개고기라고 별명을 지으리만치 튼튼하던 계섬이가 이 지경 볼꼴없이 되어 버린 것을 내려볼 때 할머니는 다시금 인간의 무상함을 느꼈다.

인간은 작고 신()은 큰 것 같았다.

천지신명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이 죄없는 백성을 어서 씻은 듯이 낫게 해주소서.’

하고 할머니는 속으로 하늘에 빌었다.

그러며 그는 자기가 빌어서 계섬이가 이제 편안히 잘 수 있겠거니 하는 안심을 얻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내처 더 선심이 나서 하늘에 대고 비두발괄로 또 한번 더 포실히 빌고 부엌으로 나오며 떨리는 소리로,

여보게.”

하고 우길이 어머니를 불렀다.

시방 곧 최판수한테 가보게.”

최판수요?”

그래 가서 한 쾌 붙여 보게. 저게 필유곡절이지. 남 다 낳는 아이를 낳았기로서 단지 그걸로서야 저럴 수가 있나. 저게 필연코 까닭 있는 병이네. 귀신이 준 병을 약만 가지고 되겠나.”

실상 집안에서 다른 아이가 그 절반만큼 앓았어도 벌써 열 스무 번을 무당 판수에게 무꾸리하고 살풀이했을 것이로되 계섬이기 때문에 이제야 겨우 지각이 난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제 생각이 늦었다고 여기느니보다 오히려 제니까 그런 궁리를 냈다고 생각하며 눈치 무딘 우길이 어머니를 나무라듯 재촉해 보내었다.

우길 어머니는 은근히 성가신 맘이 있었지만 하는 수 없이 최판수 집으로 갔다.

그는 한 시간도 더 있다가 왔다.

아니 그래 최판수 만났나, 뭐라던가?”

할머니가 다급히 물었다.

병이 힘들겠다는군요.”

모든 일에 냉담한 우길이 어머니의 대답은 그 언제나와 같이 뜨음하다.

힘들겠다니…… 그래 분명 귀신의 작간이 옳다던가?”

귀신이라도 이만저만한 귀신이 아니랍니다. 아주 몹쓸 귀신이 붙었답니다.”

악귀가? 아하, 글쎄 그렇다니까.”

하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글쎄 그러게 내가 그러지 않던가. 귀신이 아니면 그럴 수가 있나. 그래 무슨 귀신이라던가.”

하고 우길이 어머니 대답을 재촉하였다.

무슨 왕대뷘지 남사당패 죽은 귀신 같다구요. 머리 깎고 색옷 입고 총칼인지 연장인지 들고 있는 귀신이랍니다.”

저런, 그게 바로 오랑캐 귀신일세. 오랑캐 귀신이야.”

글쎄 아주 슴뜬 귀신이랍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어떻게 왔다나?”

벌써 온 지 오라대요. 작년엔가 재작년에 남으로부터 온 까까중이에게 붙어 왔답니다.”

까까중이 그게 누굴꼬.”

할머니는 벌써 치가 떨리기 시작하였다.

글쎄 하많은 사람에 알 수 있습니까.”

저녁에 밥 짓고 닭 잡아 놓으면 최판수 제가 와서 빌어 준답니다.”

아무렴, 이런 때는 판수나 무당이 와야지.”

하고 할머니는 그만해도 숨이 좀 나오는 양이다.

최판수 말이 집에서만 빌어도 안 된다는군요. 집에서 빌고 이어 앞도랑에 나가서 빌고 또 그 자리에서 갈잎으로 배를 만들어 물에 띄워 악귀를 천리 만리 배송해야겠으니 최판수 제가 와야지 안 된답니다.”

아무렴, 그렇구말구. 최판수가 우리집에는 큰 은인이느니. 그 사람 말이 안 맞은 일이 있나.”

참말 그리구 그 사람 말이 치성드리구 오늘 밤만 지나면 살아난답니다.”

오늘 밤만? 여보게, 어서 차리게, 어서…….”

하고 할머니는 바쁜 김에 손을 덜덜 떨며,

여보게, 기왕 하는 게니 좀 나우 차리게. 그래서 푸짐히 먹여야지. 그놈의 악귀가 배가 고파서 되돌아오면 탈 아닌가. 그저 먹자는 귀신은 먹여야 하느니.”

하고 일렀다.

그래서 상무의 아내는 부엌에 내려가서 밥을 짓고 우길이 어머니는 들에 나가 닭을 붙들려고 모이를 가지고 구구구 닭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하는 동안 할머니는 뒷골방 쪽으로 끼웃이 귀를 기울이고 무슨 소리가 나지 않나 이윽히 엿듣고 있었다. 그러나 계섬이는 감감 아무 소리도 없다. 편안히 잠든 속이다.

이놈의 귀신이 벌써 알아먹었구나.’

할머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반갑고 신통한 김에 더욱 몸을 떨었다.

 

최판수가 다녀간 뒤에야 할머니는 조금 맘을 놓았다. 그런데 공교히 그날 밤은 계섬이도 그다지 괴로워하지 않는 모양이어서 할머니는 영락없이 최판수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사람 시굴에 났으니 말이지, 서울에만 났더면 큰일나지.”

하고 할머니는 최판수 자랑에 넋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새벽 앞집 당나귀 우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깬 할머니는,

인제 밤이 다 샜지.”

하고 난감한 한밤이 무사히 지나간 것을 알리는 당나귀 소리에 반가운 예명을 느꼈다. 이제는 아마 죽을 리 없으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날 오후에 계섬이가 또 발작을 시작했어도 할머니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병이 머리가 숙느라고 그러나 귀신이 나갈 무렵에 마지막 심술을 부리느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계섬이는 그날 밤부터 가물가물 기운이 시진해 갔다. 그것은 할머니 눈에도 현연히 알려졌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계섬이는 여직 청춘의 피가 그대로 꺼지기가 아수한 듯이,

――

하고 애오라지 용을 쓰곤 한다. 할머니는 다시 겁이 더럭 났다.

최판수가 살풀일 잘못 해서 그런가. 제물이 허수했는가.”

이제는 그것이 또 염려되었다.

이 다릴…… 이 다릴…… 조금만.”

그것은 애원하는 소리였다. 분명 계섬이는 지금 무엇이 제 다릴 천근같이 누르고 있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만치 다리까지 꼼짝 놀리지 못하는 것이다.

, 다리를 놓아요.”

두 번째 그럴 때에야 할머니는 그 말을 알아듣고 떨리는 손으로 계섬이의 다리를 약간 쳐들어 주었다. 그런즉 계섬이의 흠칫하는 몸의 동작이 애오라지 할머니의 손에 알려지나 계섬이는 그 이상 더 움직이지 못하고 다시 척 늘어져 버린다.

, 조금만 놓아 주어요, …….”

계섬이는 또 잠꼬대같이 똑똑지 않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무도 붙든 사람이 없는데 그는 무엇이 저를 꼭 붙잡고 있는 걸로 아는 동정이다. 할머니는 다리에 걸친 누더기를 들쳐 주고 또 가슴에 덮인 저고리 앞섶까지 약간 쳐들었다가 놓았다.

그 순간 할머니는 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는 웬일인지 요즈막은 자꾸만 자비한 맘이 들었다.

이제 앞길이 그닥 멀지 않아서 그런지 그전 같은 각박한 심사가 없어지고 저도 이제 편안히 누워서 잠자듯 죽을 적덕으로 선심을 베풀 맘이 든 것이다.

이 목, 목을 놓아요, 목을…….”

이번은 목에 특히 괴로움이 온 듯하다. 무엇이 목을 꽉 누르고 있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얼른 목덜미 뒤로 손을 넣어 고개를 약간 들어 주었다.

그런즉 계섬이는 긴 숨을 가늘게 돕고 한동안 잠자코 있더니 다시,

아 아, 목이, 목이.”

하고 간신히 입술을 수물거린다.

얘 계섬아, 목이 마르냐.”

하는 할머니는 일변 반갑고 일변 다급하였다. 입을 놀리는 품이 목이 말라서 물이 키이는 속이다. 병자가 무엇이든지 먹으려고 하는 것은 병이 들리려는 전조라고 할머니는 생각는 것이다.

…… 물 좀…….”

계섬이는 처음으로 똑똑히 부르짖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황급히 정주로 나오며 상무의 아내에게 물 한 복개 떠오라고 일렀다.

하나 그것이 저승 가는 마지막 양식일 줄은 그도 몰랐다.

얘 계섬아, 물 먹어라, …….”

할머니는 상무의 아내가 떠온 물을 들고 연성 계섬이를 부르나 아무 대꾸가 없어서 나중은 계섬의 입을 벌리고 부어 넣었다.

그러나 그 물은 조금만 목으로 넘어가고 남은 것은 불같이 단 입속에서 거품이 되어 조금 뒤에 계섬이는 입가에 궤밥을 지으며 물을 게게 흘리었다.

얘 계섬아, 조곰 더 먹을란.”

할머니 생각에는 물의 분량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계섬의 입에 물을 부어 넣었으나 이번은 조금도 목으로 넘어가는 것 같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 나와 입가로 목으로 흘려 내렸다.

…… 끄르르…….”

이윽고 계섬의 목에서 애처로운 소리가 나더니 입가에 거품을 문채 사지가 왁 뻗어져 버렸다.

이날 밤 깊은 어둠에 쌓인 이 집의 뒷골방 계섬이의 시체맡에서는 불그스름한 등잔불 하나만 가물가물 혼자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튿날 우길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무언지 알 수 없게 집안이 어수선하다.

우길은 어쩐지 눈이 살펴졌으나 무엇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계섬이가 죽은지를 몰랐고 또 이미 땅속에 묻혀 버린 것은 더욱 몰랐다.

그러나 이십 년 동안 이 집에 자라난 한 목숨이 영영 사라져 버린 빈 공기를 어린 영혼은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둘레둘레 집 안을 살펴보았다.

또 집안 사람의 얼굴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딘지 무엇이 달라진 데가 없나 하고…….

그래 두루 살핀 결과 할머니가 자리에 누워서 끙끙거리는 것이 조금 맘에 걸렸으나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하였다.

그 다음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평일이나 다를 바 없고 조카놈도 여전히 잘 놀고 있다. 뜰안을 내다보아도 유표한 데는 없다. 차라리 며칠 보지 않은 사이에 고추도 많이 자라고 옥수수도 키가 덤부룩 커진 듯하다.

우물가 바자 울타리로는 호박넝쿨이 길길이 기어올라가고 방앗간 지붕 위에는 고지박넝쿨이 좀더 널리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옆에 섰는 한 대의 뽕나무 이파리는 유들유들 검푸르게 보이고 다만 수상(水上)에 피난 간 동안에 말라죽은 늙은 복숭아나무만이 지금도 엉성하게 서 있을 뿐이다.

우길이는 문득 또 앓고 있는 가엾은 계섬이를 생각하였다. 그는 아까부터 의식의 위로 드나들던 계섬이를 이번은 좀더 분명히 연상한 것이나 그의 신상에 불행을 더 그려 보기는 싫었다.

그러지 않아도 계섬이는 지금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상 더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비록 생각뿐이라 하더라도 너무 잔인한 일 같았다.

그래서 이내 딴생각으로 번지었다.

아버지한테서 무슨 좋지 못한 편지가 왔나.’

우길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부엌에 있는 아주머니더러,

아버지한테서 편지 왔소.”

하고 물은즉 아주머니는 그걸 내가 어찌 아느냐 하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도리어,

아버님 언제 오신대여?”

하고 우길에게 되묻는 것이다.

아니 난 몰라. 형이 그래요? 아버지가 온다고…….”

우길이는 아주머니의 낯을 보아서 첨으로 상무를 형이라고 불렀다.

아아니.”

그럼 어떻게 아버지 오는 줄을 알우.”

누가?”

아주머니가 안 그랬어.”

언제?”

! 지금 안 그랬어. 형한테 밤에 가만히 듣고는 그러네.”

하고 볼부은 소리를 하자 상무의 아내는 담박 얼굴이 발개지며 고개를 다소곳하여 버렸다.

그리고 우길이는 말이 서로 어긋나는 바람에 공연히 아주머니에게 역증이 나고 또 실없이 아버지가 보고 싶은 생각만 고시랑거려서 적이 우울한 김에 훌쩍 일어나 사랑으로 나와 버렸다.

사랑방은 밤에 상무가 공부하러 나가는 외에는 별로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래 늘 덧문을 닫아 두어 몹시 음침하다.

그리고 거기 달린 대청을 사철 두루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서 먼지가 뿌옇게 앉았다.

그러나 우길은 이상히 기분이 삽시에 깨어졌다. 필시 그것은 무르익어 가는 여름이 주는 기분이었으리라. 바깥은 날로 더워지고 만물은 누엿누엿 자라나고 생생해지는 그 여름의 빛과 정열 때문이리라.

만일 지금 이 사랑방과 대청의 덧문과 미닫이와 장지문을 활짝 열어 붙인다면 이 사랑채는 단박 딴집같이 명랑해질 것이다.

우길은 또 문득 이 대청에서 놀던 옛 일을 생각하였다. 여름철이면 계섬이를 끌고 나와서 말을 타던 일도 이 앞뜰에서 뜀을 뛰고 씨름을 하고 장겟뽕을 하고 돈치기 돌치기 하던 일도 또 야포 연습을 나온 병정들에게서 그림책을 얻어 구경하던 일도 누엿이 연상되었다.

그런 중에도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계섬이와 놀던 일이다. 제일 많이 싸운 것도 계섬인데 그러면서도 그 누구보다 정이 키이는 것도 계섬이다.

하기는 그것도 그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만일 남이나 집안 사람들이 계섬이를 고분고분히 굴었다면 우길이는 계섬이를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은 툭하면 계섬이를 욕하고 그리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시리 일을 시킨다. 그래서 우길이는 집안 사람들을 밉성으로 여기고 그 대신 계섬이를 두둔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길이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서 계섬이가 있는 뒷골방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면 우선 할머니가 있는 사잇방 뒷문을 통해서 상무 내외의 침실인 뒷방을 지나 그 뒤에 따로 삐여진 뒷골방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는 먼저 사잇방에 들어와서 뒷방으로 들어가려 한즉 자리에 누웠던 할머니가 별안간 신음 소리 섞인 다급한 소리로,

, 어디로 가니.”

하고 앞을 칵 질러 주어서 우길은 깜짝 놀랐다. 그는 고개를 번쩍 들면서 뒤뚝 하고 섰다. 하나 그가 선 것은 단지 할머니의 소리 때문뿐은 아니다.

그는 그 순간 뒷방으로 들어가는 문귀틀 위에 주사로 꼬불꼬불 그려 붙인 부적을 펀뜩 본 것이다. 우길은 그것을 보자 무언지 알 수 없이 가슴이 쩔렁하며 머리칼이 하늘로 치쳤다.

그 부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딱히 몰라도 분명 이 집의 때아닌 썰렁한 공기와 무슨 관련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수수께끼와 같았다.

얘 우길아, 너 어디로 가느냐.”

하는 법이 할머니는 또 한참 좋이 징징거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길이는 대답하는 것이 도리어 병이라고 생각하고는 암말 없이 되돌아서 선발로 밖에 뛰어나와 가지고 부엌을 통해 뒤울안으로 나왔다. 나와서 그는 누가 내다보지 않나 살펴 가며 계섬의 방 앞에 와서 멈칫 섰다.

한즉 그 방턱에도 역시 새로 쓴 부적이 붙어 있고 뒤울안 쪽문 위마다 모두 그런 것이 골고루 붙어 있다.

그는 또 한번 이마가 선뜻하였다. 그는 이마에 손을 얹고 잠시 맘을 눅여 가지고 뒷골방 문을 슬그머니 당긴즉 안으로 걸려 있다.

우길은 또 잠시 쉬어 가지고 조마조마하는 가슴을 눌러 가며 문풍지 구멍으로 그 방을 빠끔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무엇이 눈을 냅다 쿡 찌르는 것 같았으나 그런대로 눌러 보려니까 방 안은 의외로 괴괴하다.

또 방 안이 어두워서 처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히 보아도 텅 빈 것 같다. 하나 텅 빈 것 같은 것이 더욱 그를 무섬증이 나게 하였다.

계섬이가 꼭 있을 텐데, 앓아누웠을 텐데―― 이불을 덮고.”

그러며 우선 덮고 있는 이불 같은 것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그런 것도 종시 보이지 않는다. 해서 문풍지 구멍에 눈을 댄 채 한동안 가만히 붙어 있었다.

한즉 이윽고 무엇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그는 부지중 소름이 쪽 끼치며 뒤로 한두 걸음 뒤뚝거리다가 다시 들여다보았다. 거무스레한 방 안에 깔린 검누런 갈노전’, 바로 계섬이가 누웠던 그 자리에 반달형으로 된 검고 두터운 널판이 한 개 놓이고 그 가운데는 둔하게 빛나는 것이 꽂혀 있다. 그리고 계섬이는 분명 없다.

우길은 또 한번 머리칼이 섬쯕하였으나 그 다음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가마뚜껑에 길다란 식도를 꽂아 논 것이었다.

식칼!”

우길은 부지중 두 손으로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은 꼭 집어 말할 수 없으나 심령의 부르짖음이라 할까 그 순간,

아아 주검!”

하는 소리가 정녕 그의 머리에 울려 왔다.

우길은 다시 두 번 그것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 또 볼 필요도 없었다. 더 보지 않아도 어두운 밤에 횃불같이 머리에 환하다.

그가 세상에 나서 이제껏 본 것 가운데에는 이 광경처럼 똑똑히 눈에 밟히는 것은 다시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하여도 그 그림자를 머리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그는 무심결에 몇 번이든지 머리를 내흔들어 보고 또 눈을 꼭 감아 보고 더수기를 몹시 두드려 보아도 머리에 박힌 그 그림자만은 영영 가시지 않았다.

우길은 두 주먹을 부르쥐고 장달음을 쳐서 안뜨락으로 나왔다. 나와서 사랑으로 들어갈까 하였으나 상무가 서당에서 돌아와서 들어올 것 같아서 그만두고 바로 뜰아랫사랑으로 들어갈까 하였으나 거기는 석양이면 너무 밝고 으슥하지 못해서 싫었다.

그는 결국 사랑 뜨락 저어 한 모퉁이에 있는 뒷간으로 달려들어 갔다. 들어가서 두 손으로 눈을 가리자 그는 불시에 눈물이 칵 쏟아졌다.

그러나 결코 슬픈 것 같지는 않았다. 슬프다니보다 차라리 무섭고 분하고 절통하다고 할까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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