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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을 찾아라 1

탐정을 찾아라

Patricia McGerr

 

1

9월 말의 그 밤, 산장 2층 정면 침실에 있는 창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찡할 정도의 가정적인 분위기가 눈에 비칠 것이다. 난로에서 훨훨 타는 장작의 희미한 빛에 네 기둥이 달린 구식의 큰 침대에 누워 있는 필립 웨더비와, 그 옆의 작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그 아내의 모습이 보였을 게 틀림없다. 차근차근히 살펴보면 볼이 붉게 물들어 있고 숨이 가쁜 것으로 미루어보아 필립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남자였다면 조금은 선망의 마음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여자의 근심스러운 듯한 눈, 가끔씩 남편의 이마에 땀에 젖어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는 다정한 손길, 그리고, "주무세요, , 주무세요."라고 중얼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노래 부르는 듯한 태도가 부러워지는 것이다.

만일 창에서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저런 여성에게 간호를 받을 수만 있다면, 병이 들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거트 웨더비는 굉장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황갈색 금발이 어깨에 탐스럽게 흘러내렸으며, 눈동자는 그 어두운 곳에서는 짙은 갈색이지만 햇볕이 드는 곳에서는 호박색으로 빛났다. 입고 있는 잠옷은 그 나긋나긋한 몸매와 풍만한 곳을 돋보이게 해준다. 행동에는 울적함과 동시에 활기찬 모습이 모두 나타났다. ‘브뤼네 힐데 그대로다 ! ’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마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정도로 고전적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면, 휴하고 휘파람을 불어 그 감명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창 밖에서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날 밤에는 이 산장의 주위 몇 마일에 걸쳐 마거트에게 딸린 하녀 톰린슨 아주머니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 톰린슨 아주머니는 지금 3층의 살풍경한 방에서, 집안은 따뜻한데도 불구하고 앉아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콜로라도의 로키산맥 위에 세운 이 작은 호텔에는, 지배인 부부가 45일 전에 고향에서 연락이 와서 돌아간 이후로 이 세 사람밖에 없었다.

"이런 때에 휴가를 달라고 해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사장님." 말이 많고 몸집이 작은 이탈리아 남자가 쩔쩔매며 변명을 했었다. "누이의 병이 심상치 않다고 하니 집사람을 데리고 다녀와야만 하겠습니다."

"물론이지. 염려하지 말게, ." 무릎 덮개로 몸을 감싸고서 오후 햇살을 쬐고 있던 필립은 포치의 그네 의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우리들 일은 염려할 것 없네. 내 시중은 아내가 들어줄 거고, 톰린슨도 내 대소변을 봐주니 말이야. 나처럼 시중을 잘 받는 사람도 또 없을 거라네."

"호텔엔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조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9월에 들어서고 나서 요 2주간은 손님도 별로 없으니 말입니다. , 문을 좀 더 빨리 닫아 버려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있을 정도거든요. 이번 주말에 45명 예약한 분들이 있습니다만, 거절하는 전보를 쳤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 마거트가 고양이 같은 우아한 발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와서 남편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었다." 식량은 2주일분은 넉넉히 있고, 톰린슨 아주머니는 요리 솜씨가 훌륭해요. 게다가 주인어른은 내가 정성을 다해 간호할 거예요. 누이분의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이쪽 일은 잊어버리고 천천히 와요."

",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하여간 일주일 이내에 돌아오겠습니다." 조는 호텔로 들어가려다가 출입구에서 멈추어서서는, 남편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마거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장님은 행복한 분이야. 정말로 행복하셔."

마거트는 그 이후에 약속대로 부지런하게 필립에게 정성을 쏟았다. 지금도 잠에 떨어진 듯한 남편에게서 눈도 떼지 않고, 남편의 미미한 움직임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잠이 잘 안 오는 듯이 뒤척이면 그녀는 몸을 굽혀 그 이마에 차가운 손을 대주는 것이었다.

아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서 필립은 눈을 뜨고 아내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눈을 내리감았다. 그는 몇 번이나 입을 열어보았지만, 말로 나오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입술을 핥고 그가 말했다.

"마거트." 간신히 생각난 듯한 목소리였다.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소."

"내일 하세요." 그녀는 다정하게 대답했다. "오늘 밤엔 쉬어야 해요. 이야기는 내일 하세요."

"아니오, 오늘밤이 좋아.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몰라. 지금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마거트, 아까 갖고 왔었던 우유 말인데,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었지?"

"그야 수면제가 들어 있었지요." 뜻밖의 질문에 깜짝 놀랐는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사에게 찾아갔을 때, 잠을 잘 수가 없다면 먹는 게 좋다고 했었던 것을 당신도 아실 거예요. 게다가 당신은 어젯밤에도 못 주무신 것 같아서요."

"단지 수면제뿐이오?"

"무슨 바보 같은 말을 !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 침착했다."

그 밖에 내가 뭘 더 넣었다는 거예요?"

"마거트, 당신이 꾸민 연극은 훌륭해." 필립은 얼버무렸다." 전보다 무대가 좋아진 탓일 게요. 여름에 이 산장에 왔었던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라고 홀딱 반해 버린 것은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나를 더 이상 속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지는 않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서로 털어놓고 얘기합시다. 당신이 지금까지 본심으로는 나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와 결혼한 것도 돈이 목적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어디라도 갈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가 병이 들고 나서부터는 당신이 점점 나를 가볍게 다루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소. 뉴욕에서 살고 싶어 하는 당신을 이런 깊은 콜로라도 산속에 꼼짝 못 하게 처박아두었으니, 당신이 마치 함정에라도 빠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알고 있소. 게다가 당신이 나를 보는 눈매엔 나 같은 건 죽어버려서 한 번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이 여실히 나타나 있었지. 지난주 내 점심상에 나온 그 알약 그것은 내가 복용하던 비타민제가 아니었소. 다른 알약이었어."

"그건 랜더스 선생이 준 약이에요." 그녀는 얼른 대답했다. "그때까지 먹던 약이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그분에게 이야기했거든요."

"그래?" 의심스러운 듯이 그가 말했다. "그럼, 그 약은 괜찮았었겠구먼. 하지만 나는 그 약은 먹지 않았소. 만일 내가 죽는다면 당신이 자유와 내 재산 모두를 손에 넣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지. 당신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게야. 그래서 확실히 확인될 때까지는 새로운 약은 먹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그 알약은 숨겨놓고 로키 로드스라는 사립탐정을 하는 친구에게 장거리전화를 걸었소. 로키는 오늘밤이나 내일 아침에 이곳에 올 것이오. 그렇게 되면 그 알약에 독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게 되겠지."

"독이라고요 ! "마거트도 시비조로 말대꾸를 했다. "내게 어떤 누명을 씌울 생각인지 알 순 없지만, 나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우선, 어디서 내가 독약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거죠? 마을 약국에서 스트리크닌을 샀을 거란 말예요?"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나는 모르지." 그는 힘없이 대답했다. "당신은 덴버에 여러 번 쇼핑 한다고 외출했었기 때문에 그런 때 사올 수 있었을 테지.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로키의 일이오."

"탐정?" 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전혀 기억도 없는 일로 나를 조사하러 여기에 온다는 거예요? 신문에서 무척 떠들어대겠군요!"

"아니오." 남편은 딱 잘라서 말했다. "아무것도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을게요. 로키는 내 친구거든. 이 호텔에서 여름을 몇 번이나 함께 보낸 적도 있고, 낚시나 잡담도 곧잘 함께 즐겼지. 그러니 내가 얘기한 것을 다른 곳에 가서 떠들어댈 염려는 없다오. 게다가 당신을 경찰에 넘기거나 뭐 그런 야단스러운 일을 할 계획도 없소. 내가 원하는 것은 조용히 이혼하는 것이오. 당신이 얌전히 내 재산을 포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알약을 숨겨놓고 당신이 비타민제 대신에 그것을 넘겨줬다고 카드에 기록해 놓았소. 그것이 증거물 제1호가 될 것이오. 반드시 로키가 당신에게 이혼 얘기를 꺼낼 때 도움이 되겠지. 재산을 나누어주는 일 없이."

"협박해서 쫓아낼 계획이군요."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되받았다.

"얼마든지 마음내키는 대로 얘기하시지." 그도 감정을 섞지 않고 반박했다. "그 알약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아무런 염려도 할 것 없소. 그렇지만 독이 들어 있다면 그래, 당신이 필요한 서류에 서명한 다음 그 알약은 없애버리겠소. 아니, 당신이 순순히 내 요구대로 따라준다면 그런 일에 로키의 손을 빌리고 싶지도 않소. , 당신이 말썽을 일으킨다면 경찰에 부탁해서 결말을 내달라고 하겠소."

"알았어요. 완전히 계산된 일이로군요, 그렇죠? 나를 원하는 대로 옭아맸다고 생각하고 있군요." 앙칼진 목소리가 되는 것을 겨우 억누르면서 말했다.

"그런 셈이지." 그도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지만, 나는 충분히 생각할 여유가 있었소. 당신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연극을 할 때 외에는 완전히 내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어. 당신과 결혼한 내가 바보였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오. 당신 같은 미인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을 손에 넣으려고 했었소. 가족이나 자라온 환경에 대해서 당신이 말한 대사는 내가 아내로 맞고 싶은 여자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도 어디까지가 정말인지 의심스럽지만 말이오. 게다가 당신의 정체를 알고 나니 당신을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게 됐소. 지금 나의 유일한 소원은 당신에게서 자유로워지고, 당신과 손을 끊는 것뿐이오. 이런 것까지 얘기할 생각은 아니었소. 로키가 알약 확인을 끝내고 그다음 단계의 준비를 끝낼 때까지는 탐정을 부른 것은 비밀로 해놓는 게 좋겠다고 했소. 그렇지만 오늘 밤 당신이 매우 유심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데다가, 어쩐지 갑자기 졸음이 오고 머리가 무거워지는 걸 보니 당신이 또 나를 해칠 새로운 방법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게요. 만일 내가 말한 대로 그 우유 속에 독이라도 넣었다면 일찌감치 손을 쓰는 게 좋을게요. 해독제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주든지, 의사를 부르든지 하구려. 탐정이 급히 달려오는 도중이라고 했는데도 지금 여기서 나를 죽이는 것은 별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니까. 당신에게 살해당하면 내가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로키가 경찰에게 말할게요. 그럼, 해부를 하게 되고 독이 발견되겠지. 당신은 이제 달아날 수 없소. 그러니까 때를 놓치기 전에 내 목숨을 구해 주는 게 좋을게요."

"어머, , 무슨 바보 같은 소릴 ! "마거트는 너그럽게 웃으며 남편의 이마를 리드미컬한 손으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런 꿈 같은 일을 생각하는 것도 병 탓이에요. 그렇게 마음을 흥분시켜서는 안 돼요. 우유에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는 것은 얘기했죠? 잠이 오는 것은 당연해요. 하지만 그 독약 얘기는 정말 우습네요. 그러나 헤어지고 싶다면 헤어져도 좋아요. 헤어지는 데에 조금도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좋소." 그는 대답했다. "당신이 얘기를 알아들어서 다행이오. 내일 아침 변호사들에게 전화해서 모든 준비를 해놓으라고 하겠소. 그리고 나서 로키에게 이젠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겠소. 그러나 그 알약만은 넘겨주지 않겠소. 당신과 얘기가 완전하게 매듭이 지어졌다고 생각될 때까지 그것은 안전한 곳에 숨겨놓겠소."

"그럼, 이제 얘기는 만사 매듭이 지어졌군요."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 마음을 즐겁게 하고서 조금 전에 드린 수면제가 효과가 있도록 하세요.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푹 쉬는 거예요. 그러니까 쉬세요, . 주무시는 거예요."

그는 아내를 살피듯이 한 순간 바라보다가 잠시 뒤 베개 위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남편의 숨결이 깊고 평온한 숨소리가 될 때까지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잠시 뒤 그녀는 침대에서 창가로 걸어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단조로운 숨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지금 자고 있어. 이 사람이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베개를 이 사람 얼굴에 대고서 23분간 가만히 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야. 이제부터 나는 자유의 몸이 되는 거야. 이 황량한 산속의 움막에서 나가 동부로 갈 수 있어. 뉴욕이든 어디든 내가 좋아하는 곳은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거야. , 하나님, 밝은 불빛 아래서 나와 똑같은 도시의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게다가 돈 고생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야. 나는 부자가 돼. 더구나 그것은 이 반년 동안 막장에 들어간 듯한 생활을 한 대가야. 그렇지만 돈이 아무리 있어도 이익은 고사하고 본전까지 날리는 낭비는 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또 침대 위의 남자를 뒤돌아보았다. 남자는 천정을 보고 누워서 입을 조금 벌리고 자고 있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 그녀는 남편 옆으로 다가갔다. 손바닥에 땀이 배거나 이빨이 딱딱 부딪치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만 하는 것을 그녀는 마치 남의 일처럼 느끼고 있었다. ‘담력이 또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뱃속에 나비라도 있는 것 같았다. 옛날, 새로운 연극을 시작하는 첫날은 항상 그랬었다. 어쩐지 떨리는 것 같았다. 이 일을 어떻게든 해내지 않으면 일이 틀어져 버린다. 만사 계획을 잘 세워놓았는데, 지금 와서 틀어져 버릴 수는 없다.

그녀는 침대 곁에 서서 자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도 당신은 나와 헤어지고 싶어요?’ 그녀는 마음속으로 남편을 힐책했다. ‘결혼 이후 이렇게 참고 견뎌온 나를 당신은 그 탐정과 둘이서 단돈 한 푼도 주지 않고 쫓아낼 계획이었단 말이죠? 경찰이라든가 증거라든가 하는 말을 꺼내서 내 계획을 변경시킬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 나 역시 그렇게 간단하게 협박에 넘어가지는 않아요. 당신이 방금 말한 것은 오늘 밤 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알려 주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지금 곧! 이 일만 끝낼 수 있다면 그 탐정은 언제 와도 좋아요. 와봤자 당신은 이미 죽어 있겠죠. 의사는 심장발작이라고 할 거예요. 다른 증거를 잡을 수 있다면 한번 해보세요. 게다가 당신은 요전에 드린 약을 먹지 않았던 것을, 당신이 현명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것을 먹지 않은 것은 나도 기뻐요. 독약을 사용하다니, 내가 모험을 했지. 하긴, 그렇다 해도 나는 빠져나갈 수 있었을 거예요. 어차피 시체 해부 같은 건 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에요. 랜더스 선생이 당신의 심장이 약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문제는 다르지만요. 게다가 덴버의 그 약국에서도 역시 내가 아주 급하게 아코나이터(진정제)가 필요하다고 하고서, 의사에게서 처방전을 받긴 했지만 단골 의사가 간 곳을 모른다고 한 내 얘기를 완전하게 믿어주었죠. 하긴 내가 원하는 양을 충분하게 손에 넣기 위해서는 약국을 네 군데나 돌아다녀야만 했지요. 만일, 내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 그 약국들 중 내 얼굴을 기억할지도 몰라요. 확실히 모험을 했지요. 하지만 이번 방법은 틀림없답니다. 자연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예요.’

"이젠 됐어, 이젠 됐다고." 그녀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짜증을 섞어 한마디 했다. ‘이렇게 쩔쩔매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차피 할 마음이라면 빨리 끝내 버리자. 왜 이렇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 아마 담력이 없어서 그렇겠지. 독 같은 걸 사용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 남자가 혼자 마셔 버렸다면 그 방법이 내겐 훨씬 쉬웠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방법이 더 나아. 게다가 아무런 번거로움도 없고. 곧 모든 게 끝나 버릴 거야. 단지 베개를 집어들기만 하면 돼.’

그녀의 숨결은 조급하고 짧게 헐떡였다. 입안이 바싹 말라 깔깔해지자 억지로 침을 삼켰다. 가슴에서 메슥거림이 심해지고, 온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까스로 의지를 불러일으켜서 남편 맞은편으로 손을 뻗어 그쪽에 있는 베개를 집어 들었다. 다음에 그녀는 베개 양쪽 끝을 꽉 붙잡고서 조심스럽게 남편 얼굴 위에 갖다 댔다. 남편의 머리 전체를 덮듯이 양쪽 끝을 꽉 눌렀지만, 얼굴에 닿아서 상처가 될 만한 곳에는 조금도 힘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을 했다. 자신이 하는 일도 일이지만 기술적인 미묘한 점에 온 신경을 쏟는 바람에, 그녀는 한순간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도 잊고 말았다. 그녀의 행동은 감정에 방해받지 않는 기계적인 것이었다. 베개가 생각한 대로 고정되자 그대로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상당히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한 번인가 베개 밑에 깔린 머리가 픽하고 움직여서 잡고 있던 손에 약간 움직임이 전해져 왔다. 분명치 않은 시선은 답답해 하는 짤막한 소리. 그래도 그녀는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꼼짝 않고 난로 위에 걸린 커다란 송어에 쏠려 있었는데, 송어의 흐리멍덩한 눈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뒤, 5, 아니 10분쯤 지났을까? 그녀는 베개를 집어 들고서 정성껏 구김살을 펴고는 침대 위 원래의 위치에 놓았다. 남편이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 꼼짝 않고 드러누워 있는 것을 확인했다. ‘뭐야,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잖아?’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이 양반을 두려워해서 망설였을까?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데.’ 더구나 지금 그 일도 끝났다. 이전부터 바라던 것이 모두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앞으로는 이제 내 머리를 괴롭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양손이 조금 떨리고 있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약간 놀랐다. ‘이상한데, 마음은 이렇게 침착한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피로가 파도처럼 온몸을 덮쳐 방 반대쪽 구석에 놓인 의자에 몸을 묻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서 몸속의 힘이 빠져나가는 대로 맡겨두었다. 자신의 숨결이 아직 빠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일부러 느린 템포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 시작했다. ‘문제 없어.’ 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는 이 신경을 안정시켜야 해. 지금은 단지 천천히 쉬기만 하는 거야.

갑자기 벨이 울렸다. 마거트는 깜짝 놀랐다. 손을 꽉 쥐고 이를 악물며 몸속의 근육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침착해야 해.’ 그녀는 단단히 자신에게 타일렀다. 정신차려야 해. 어떠한 소리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 현관에 누군가가 왔으니 내가 인사를 해야 한다. 게다가 침착한 태도로 말이다. ‘곤히 잠자고 있는 남편을 남겨두고 일어나서 나온 여자처럼 보여야 해. 흥분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방에서 나가 조용하게 문을 닫았다. 허리에 감긴 시퐁 벨트를 고쳐매면서 커다란 나비 모양을 만들고는, 손가락 끝이 떨리는 것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한 번 더 벨이 울렸지만, 이번에는 근육의 경직도 극히 미미하여 느낄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느끼고는 그녀는 안심했다. 이제 만사 생각한 대로라고 그녀는 가슴을 펴고서 자신을 갖게 되었다. ‘이젠 세상 사람과 얼굴을 마주쳐도 상관없어.’ 갑자기 여기서 그녀는 생각이 났다. 필이 부른 탐정이라도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무슨 이름이었더라? 로드스였어. 로키 로드스. 지금 현관에 온 사람은 틀림없이 그 사람이야. 그렇지만 이젠 때가 늦었어. 필은 이미 죽었으니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지. 탐정이 솜씨를 발휘할 기회도 없겠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조소하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는 가슴을 펴고 머리를 들었다. 잠시 뒤 의혹에 대해서는 자신이 완벽하다는 안심감에 싸여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2

무거운 현관 빗장을 벗기고 문을 열자,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로비로 들어왔다. 느슨하게 벨트를 맨 레인코트를 입고 모자는 쓰지 않았다. 흐트러진 머리엔 비가 물방울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갈색 여행 가방을 로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녕하십니까?" 남자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그 어조나, 스커트에서 얼굴까지 흘끗 쳐다보는 눈매, 게다가 입 왼쪽 끝을 약간 올리는 것 등이 그녀의 몸매에 감탄했다는 마음을 다분히 전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이렇게 밤늦게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양동이 물을 쏟아붓듯이 비가 쏟아져서 차의 엔진이 역화를 일으키고 말았지 뭡니까? 그래서 이곳 간판을 봤을 때는 기뻐서 춤을 출 정도였습니다. 오늘 밤 묵게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만."

남자가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 마거트는 잠자코 상대의 평가를 끝마쳤다. ‘그렇게 싫은 남자는 아닌데. 평범하지만 귀여운 점도 있어. 그 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면 좀 재미있는 생각도 할 수도 있을 텐데. 하여간 내게는 진 것 같아. 이 사람은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미안합니다만." 그녀는 여느 때와 똑같은 정중함으로 대답했다. "호텔은 휴업 중입니다. 묵으시려면 다른 곳을 찾아보시지요."

상대가 잘못 알고 이곳에 들어온 첫 번째 남자로 위장한다면, 이쪽도 그런 식으로 상대하려고 생각했다. ‘기꺼이 당신이 꾸며놓은 연극대로 해드리지.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지도 못하고, 또한 의심할 염려도 없으리라고 이 남자가 생각하고 있다면, 이쪽도 이쪽의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지.’

",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남자는 장기전에 돌입한 태세를 갖추고서, 애원하는 제스처로 양손을 폈다.

"이 폭풍 속으로 사람을 내쫓지는 않으시겠죠. 저 천둥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저 빗발을 한번 보십시오. 게다가 저는 비 맞는 것에는 알레르기같이 약하답니다. 방이 꽉 찼다면 부엌 구석에서 모포 한 장이라도 괜찮습니다."

"만원은 아니에요." 그녀는 대답했다. "하지만 지배인이 여행을 가서요.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제 남편과 저뿐이라서"

"남편?" 남자는 부자연스러운 낭패의 모습을 보이고는 앵무새처럼 흉내 내며 말했다. "이 호텔의 따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요. 전 셸던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런 일을 흔히 당할 수 있지요. 제가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마른 장소는 제공해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좋아요." 그녀도 양보했다. "묵기만 하신다면야."

이 남자도 어지간히 연극을 잘한다고 그녀는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찬사를 나타냈다. 무사태평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만일 이쪽에서 탐정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길을 잃고 헤매는 여행자라는 이 연극에 꼼짝없이 속아버렸을 것이다. 게다가 이쪽 역시 그렇게 서투르지도 않았다. 밤늦게 깨우러 온 낯선 손님에 대해서 알맞을 정도의 저항을 보이고, 게다가 비밀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도 아니었다. 이 남자가 이곳에 묵을 계획인 것은 확실하니까, 어차피 이 남자를 쫓아낼 수 없다면 고상하게 다루는 것이 최상이다.

"그럼, 제 소개를 하는 것이 좋겠군요. 제 이름은 셸던, 마이크 셸던입니다. 시카고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이렇게 이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가 화요일까지 돌아가지 못하면 저는 목이 잘리고 맙니다."

"전 웨더비 부인이에요." 그녀가 손을 내밀자 셸던이 그럴싸하게 점잔을 빼 그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들어도 아는 기색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은 이 남자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진짜 탐정은 이런 거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명을 사용하며, 가짜 직업을 대고 말이다. 이 남자는 필에게 자기가 가도 모른 척하라고 말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 필도 안됐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어. 이 남자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나는 금방 알아차렸거든. 하지만 이 남자 정도야 문제없지.’

"그럼, 콜로라도엔 처음이신가요?" 얌전한 태도로 그녀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캘리포니아에 갔다가, 돌아갈 때는 경치가 좋은 길을 택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도마다 거꾸로 인쇄되어 있더군요. 적어도 이 근방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서 얘기를 한다면 부인이 감기에 걸려 버리겠어요. 나를 친절하게 도와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감기에 걸리게 되면 제 입장이 말이 아니죠. 어디에 묵게 해주실 건지 가르쳐만 주시면 내일 아침까지는 이 이상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가 가방을 집어 들자 마거트가 그를 계단으로 안내했다.

"‘송어 방으로 들어가세요. 작은 호텔이기 때문에 객실은 12개밖에 없어요."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어느 방이든 각각 다른 물고기가 벽에 걸려 있는데, 그것이 방 이름이 되었답니다. 이 계단을 올라가서 오른쪽 두 번째 방입니다. 하녀에게 커피라도 가져가게 하지요."

"아니, 괜찮습니다." 남자는 사양했다. "이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에 뛰어들어온 것만으로도 폐를 끼쳤는걸요. 그러나"

"괜찮아요." 그녀는 남자의 사양을 부드럽게 무시해 버렸다. "아직 그렇게 늦지도 않았어요. 여기서는 일찍 자는 것이 달리 아무것도 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틀림없이 톰린슨 아주머니는 아직도 잠자리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차가운 빗속을 오래 드라이브하셨다면, 뜨거운 것을 마시고 싶으실 거예요. 곧 하녀를 시켜 보내드리겠어요."

"그거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시고 싶던 참이었습니다."

그녀는 계단 아래에 서서 올라가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남자가 계단 위로 올라가서는 성큼성큼 필이 있는 방문 쪽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손잡이에 손을 걸치고 돌리려고 할 때 마거트의 외마디 소리에 뒤돌아보며,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남자의 팔을 눌렀다. 숨이 끊어지고, 잠시 동안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하고서 그녀는 침착성을 되찾았다. ‘이런 비명을 지르다니, 내가 어떻게 된 거지?’ 마음속으로 그녀는 크게 자신을 나무랐다. ‘이 신경을 단단히 누르지 못하면 만사 엉망으로 깨져버려. 이 남자는 필의 방은 알지도 못하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 남자는 단지 착각을 해서 방을 잘못 알았을 뿐이야. 하지만 이 남자가 이 문을 열고 필이 죽어 있는 모습을 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남자에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죄송합니다." 아직도 조금 숨을 헐떡이며 억지로 목소리를 명랑하게 꾸미고서 그녀는 말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주인 방인데, 주인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제 막 겨우 잠이 들었어요. 당신이 문을 열고 주인을 깨워버리면 그 양반은 오늘 밤엔 이제 더는 잠을 자지 못하게 된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을 자야만 해요. 당신이 묵을 방은 이 맞은편입니다. 오른쪽이에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도 잠자고 있다는 남자를 염려하듯이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이 주변의 산을 걸어서 돌아다닌 탓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럼, 제 방은 이쪽이군요?"

마거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는 필의 방과 맞은편에 있는 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는 방에 들어가면서 뒤돌아보고, "안녕히 주무십시오. 묵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 그녀는 남편의 방문에 12분쯤 기대어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뒤 마음을 가라앉힌 것이 확실해지자, 복도 막다른 곳으로 가서 3층으로 오르는 뒷계단을 올랐다.

난 대단한 멍청이가 될 뻔했어.’ 하고 그녀는 몹시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어느 누구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할 재치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지혜를 짜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때에 그렇게 당황해서 여학생처럼 소리를 지르다니! 하긴 뭐 상대편에게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도록 잘 얼버무린 것 같아. 만일, 저 남자가 다소 눈치챘다고 해도 내가 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는 것이 법정에 증거로 나올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아무리 저 남자가 의심스럽게 생각하더라도 하나도 염려할 것이 없어. 필이 나에 대해 의심스러운 것은 이미 죄다 저 남자에게 알려주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 더 손해 볼 것도 없어. 하지만 조심해야 해. 앞으로는 절대로 실수해선 안 돼. 입을 잘못 놀렸다간 지고 말아. 저 남자에게 송어 방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실은 연어 방이었다. 그렇게 말한 것도 그 기분 나쁜 송어가 내 머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가 흔히 하는 말이 있지. 무엇인가로 머릿속이 가득 차게 되면 그럴 생각이 없어도 그것을 입에 담기 쉽다고 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머릿속은 필을 살해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대화를 할 때 가장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올 가능성 있는 것으로는 죽인다든가 베개라고 하는 단어다. "부디 질식해 죽으세요."라든가, "커피에 아코나이트를 넣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말투나 하는 행동에 무엇이든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긴 걸려 있는 재산도 크기 때문에, 고생도 있고 보람도 있겠지.

그녀는 계단 위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톰린슨 아주머니는 60대 중반 정도 된 땅딸막한 여자였다. 그녀는 창가에서 등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거트가 들어가자 좀 의자에서 뛰어올랐다.

"나예요, 토미. 그렇게 흠칫흠칫 놀라지 말아요. 아래에 남자 손님이 한 사람 왔어요.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군요. 당신이 좀 갖다 주고 와요."

"주인님은?" 질문이기는 하나 그렇게는 들리지 않는 이 말에 이어 겨우 안심한 듯이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주인님은 별고 없으신가요?"

"아니, 주인님이 아녜요. 그분은 자고 있어요. 푹 자고 있다고요."

"어머!"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마거트의 얼굴을 설명을 구하는 듯이 들여다보는 그 눈에는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토미,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마세요." 마거트는 엄하게 말했다. "해야 할 일은 정확하게 해요. 이런 말은 벌써 10번 이상이나 했을 거예요. 당신도 역시 내가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 테죠. 필의 몸에 좋은 기후가 있는 곳에는 어디를 가든 나는 싫어요. 난 간호사로 전락한 기억은 없다고요. 나는 이제 겨우 스물넷이에요. 내 인생은 아직도 길어요. 나는 그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내 청춘을 이런 곳에서 썩히고 싶진 않아요."

"알아요, 알고 있어요." 상대의 대답은 가냘펐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 아니겠어요? 나하고 둘이서 여기를 빠져나갈 수도 있어요. 웨더비 씨는 우리들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서 먹고 살지요?" 마거트는 격심한 어조로 물었다. "내 쪽에서 나간다면 저 사람이 단돈 한 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게다가 오늘 밤 저 사람은 별거수당도, 재산분배도 없이 나를 쫓아내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해보면 될 텐데." 톰린슨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그다지 힘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한 것처럼 말인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소하는 듯한 여운이 있었다. "잠시이긴 했지만 난 그런 생활에는 이젠 진절머리가 나요. 나는 돈을 갖고 싶어요. 그것도 젊어서 돈의 고마움을 충분하게 맛볼 수 있는 동안에 갖고 싶단 말이에요. 그런데 돈을 손에 넣으려면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요. 가수가 되든가, 부자와 결혼하든가, 그 돈을 상속받든가......첫 번째 방법도 해봤어요. 브로드웨이에서 대스타가 될 생각이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영화계에 들어가서라도 말예요. 하지만 내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7년이 지나도록 2류 지방 순회 극단에서 시골 처녀역만 하는 형편이었으니까요. 지선(支線)에 들어가서 즉석 가설흥행장이나 하고, 싸구려 호텔에서 묵고, 드럭스토어에서 먹고, 게다가 틈만 있으면 무대감독이 나를 어두운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추근거렸지요. 내가 또 그런 생활로 되돌아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렇게는 생각지 않아요. 그런 생활은 당신에게는 맞지 않아요."

"그럼, 나의 미래에는 어떤 장미빛 꿈이 있는 건가요?" 마거트는 쌀쌀맞게 이야기를 본론으로 되돌렸다. "굶어 죽든가, 기차에 뛰어들든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같은 처지가 되는 거죠. 옷 시중이나 들고, 그렇지 않으면 배우들 일 뒤치닥거리나 하는 하녀. 당신도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이 조명 아래에서 빛나리라고 생각했었겠죠."

"하지만 나는 당신처럼 예쁘지 않았어요."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당신 같은 재능도 없었고."

"그래요, 하여튼 내게는 때를 놓치기 전에 손을 떼는 재치만큼은 있지요. 웨더비를 만났을 때 그런 기회는 다시 없다고 생각했죠. 돈도 있고, 또 내게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이죠. 내게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믿었어요. 둘이서 여행을 할 생각이었어요. 겨울에는 마이애미, 여름에는 케이프 코드로요. 캘리포니아에서 버뮤다를 돌아 남미까지 여행을 하는 거예요. 내가 옛날부터 꿈꿔 왔던 것이 드디어 손에 들어오게 되었죠. 그렇지만 어떻게 됐죠? 결혼한 지 2개월밖에 안 됐는데 그 사람은 병이 들었어요. 병원에서는 기흉요법(氣胸療法)을 하고, 나는 그 사람에게 죽 붙어만 있는 바람에 외출복을 입고 어디 나갈 수도 없었어요. 밍크 코트나 다이아몬드가 가득찬 보석상자는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상대자들은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주위에 있는 것은 시골뜨기 촌놈들뿐이었죠. 뉴욕의 일류 호텔에다 더블룸을 잡아놓고 지낼 수 있는 몸이, 1백 마일(160km)을 가도 아무것도 없는 이 산속 외딴집에서 살아가다니요. 이번 여름에 내가 이야기한 상대는 학교 선생과 보험외판원뿐이었어요. 게다가 그치들도 모두 비린내가 났죠. 이런 생활은 한이 없어요. 그 사람은 마치 영원히 살아남으려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소중히 돌보았어요. 하여튼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그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은행 구좌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대는 지나가 버리고 말겠죠. 그렇기 때문에 돈과 결혼하려 한 것이 크게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남은 단 하나의 방법은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뜻이에요."

"당신이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톰린슨 아주머니는 가슴에 팔장을 끼고서 가슴이 아픈 듯이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당신이 한 얘기는 이해해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했다가는 일이 잘못되지 않겠어요? 만일에 그런 일을 정말로 했다면 그것은 살인이니까."

"그런 것은 알고 있어요." 마거트는 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격렬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도 역시 공범죄예요. 그 사람을 잠들게 하는 우유를 만든 것은 당신이니까 그것을 잊지 말아요."

"알고 있어요. 내가 한 일은 알고 있어요." 그녀는 신음했다. "하지만 나는 내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이제 늙은이이니까요. 이제 와서 나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젊은 당신은 큰 상처를 입기 쉽답니다. 만일 들키면 어떤 일을 당할지 아세요?"

"콜로라도주에는 틀림없이 가스 사형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거트는 넉살 좋게 거리낌 없이 말했다. 상대방 여자는 움츠러들었다. "토미, 그런 낙천적인 얘기는 말아요. 아무에게도 어느 것 하나 들키지 않아요. 누구건 잘만 하면 잡히지 않아요. 게다가 나도 미리 여러 각도에서 잘 생각해서 한 일이라고요. 내 생각으로는, 무엇이든지 무대장치를 미리 정확하게 세워놓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자연사답게 보이고 싶다면 미리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도록 불어넣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죽었을 때 모두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겠죠. 난 이 2주 사이에 세 번이나 랜더스 의사에게 전화해서 남편의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얘기해 두었어요. 남편이 현기증이 일어난다고도 하고, 두 번 정도 정신을 잃기도 했다고 얘기했죠. 그러니까 그 의사는 남편 심장 부근이 나쁜 모양이라고 믿어버렸던 거예요."

"랜더스 의사가 그 사람을 진찰하러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심장을 진찰하고서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요. 만일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점은 손을 써놨어요." 마거트는 가슴을 펴고 말했다." 필에게 초대면인 의사를 만나게 해서 깜짝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만간에 의사가 자기를 진찰하러 왔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을 만나도록 점심때 부르려는 묘안을 준비했어요. 물론 아직 그런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사전공작만은 완전히 해놓았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랜더스 의사는 곧 심장발작이라고 믿어버리게 되는 거죠. 질식사는 심장마비와 똑같은 징후를 나타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망진단서를 받는 것은 문제없죠. 그리고 이 근방 사람들은 내가 상당히 연극을 잘 해냈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할 거예요. 필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이 염려스럽다고 말해 놓아서 급사할 경우를 대비해 놓았거든요. 게다가 완벽한 아내의 역할을 철저하게 연기해 놓았어요. 조와 마리아도 내가 절개 있는 아내의 귀감이었다고 증언할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심문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니, 그런 증언을 할 필요도 없겠지요. 다만 문제는 저 아래에 있는 탐정 놈뿐이에요."

"탐정!" 톰린슨 아주머니는 퍼뜩 몸을 일으키더니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깨어났다. "벌써 경찰이 왔단 말예요?"

"토미, 경찰이 아니에요. 침착해요. 탐정이라니까요. 한 사람뿐이에요. 지금은 죽고 없는 남편의 친구죠. 실은 그 웨더비가 불러들인 놈이에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남편은 나를 믿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이는 혼자서 사립탐정을 하고 있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무서운 일을 꾸미고 있다고 얘기한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라는 사람이 그 양반을 지켜주려고 급히 달려온 거죠. 다만 위험한 고비에 맞지 않았을 뿐이죠."

"설마 사실이 아니겠죠?" 톰린슨 아주머니는 공포로 말을 떨며 얘기했다. "이 집에 탐정이 와 있다고 하는 것이나, 주인님이 죽었다는 것이 설마 사실은 아니겠죠? 그 남자는 무얼 하고 있나요?"

"탐정?무슨 단서라도 찾고 있겠죠." 할머니가 떨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마거트는 태평스럽게, 오히려 들뜬 기색마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사람이에요. 필이 벌써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비를 맞고 달려온 손님 모습을 하고 있거든요. 그자는 틀림없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무서워 움츠러들었을 거예요. 나에게 있어서는, 그자가 자칭한 대로 신출내기 기자와 똑같을 뿐이에요."

"하지만 자기 방에서 가만있지 않았다면요? 그 남자가 웨더비 씨의 방에 들어갔다면? 그 남자가 주인님을 발견하고는" 그녀는 그 뒤는 말하지 않았다.

"만일 발견했다면?" 마거트는 태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필이 죽었다고 소란을 피워야만 하겠죠. 그 남자라 해도 우리들과 똑같아요. 더구나 왜 남의 방에 몰래 들어갔는지 변명을 하는 데만도 그 남자는 고생을 할 거예요. 아무튼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나요? 혹시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잖아요. 지금도 계속 이 방 앞에서 귀를 기울여 엿듣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하죠?"

", 토미, 그만해요." 마거트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서 이 계단을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설마 당신이 이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당신만은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상상이나 하며 떨고 있으니......그 탐정은 우리들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주인님이 당신에게 살해당할 것 같다고 그 남자에게 얘기했다면?" 톰린슨 아주머니는 머뭇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경찰에게 여러 가지 심문받을 증거가 되지 않겠어요? 그 남자가 시체를 해부하도록 탄원할지도 몰라요. 만일 그렇게 되면 자연사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만둬요!" 마거트는 이를 악물고 쥐어짜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필은 그렇게 겁쟁이는 아니었어요. 내 계획의 훌륭한 점은 아무도 나를 심문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외관상으로는 전부 내게 유리해요.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에게 한 연극을 믿을 것이고, 모두 불행한 미망인에게 동정을 보내겠죠. 그런데 그 남자가 와서 나의 모든 계획에 구멍을 뚫은 거예요. 틀림없이 당신이 말하는 대로예요. 그 정도는 나도 생각해 왔어야 했어요. 만일 그자가 사람들에게 떠벌이고 다니며 쓸데없는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면 내 계획은 온통 엉망이 되고 말아요. 그 남자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이런 곳에 와서 나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는 행동은 용서할 수 없어요. 상대편이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선수를 쳐서 막아야겠어요."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상대방의 화난 기색을 보고, 톰린슨 아주머니는 움츠러들었다. "그런 끔찍한 짓을 해서는 안 돼요. 설마 당신은 아아, 안 돼요, 정말 옳지 못해요!"

"왜 안 된다는 거죠!" 마거트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 버렸는데,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요. 내 일을 방해하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거예요."

"아아, 안 돼요! 안 돼!" 톰린슨 아주머니는 호소하듯이 말했다. "당신은 말은 그렇게 무섭게 하지만, 당신 스스로는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어요. 이미 저지른 일은 저지른 일이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해볼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그런 끔찍한 짓은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지금 도망갈 수도 있어요. 지금 얼른 도망가기만 한다면"

"토미, 잠자코 있어요. 나도 생각한 게 있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제 그것밖에는 길이 없어요. 오늘밤이 좋아요. 저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떠들어댈 수 없을 동안이 좋단 말예요. 필과 똑같은 방법은 사용할 수 없어요. 하룻밤에 두 사람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 남자는 수면제를 마실 만큼 어리석지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믿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는 있어요. 지금이라면 사전준비는 완벽해요. 산속에 있는 외로운 젊은 여인. 지켜주는 사람은 노파와 병든 남편뿐인데, 밤늦게 안면이 없는 남자가 와서 방을 달라고 버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 여자의 침실에서 살해당한다고 하면? 내게는 아무 설명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요. 누구든 줄거리를 제멋대로 생각해 낼 테니까. 단순히 그런 사실만으로 스토리가 확실히 정해지는 거예요. 밤중에 내 침실에 침입해 들어온 남자를 죽였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게다가 병든 남편이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깨서는 총소리를 듣고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이 이상 자연스러운 얘기는 없겠죠?두 개의 죽음을 한꺼번에 설명해 버리는 거예요. 게다가 나는 거듭되는 불행의 충격과 슬픔으로 넋이 빠져 있기 때문에, 아무도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지도 않겠죠. 토미, 자연스러운 얘기예요. 아무런 염려도 할 것 없어요."

토미는 앉아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빰에선 눈물이 흐르고, 턱은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미,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아요." 마거트는 자신이 세운 완벽한 계획에 기운을 내고서 눈을 반짝이며 열을 올리며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그렇게 괴로운 것만은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처음에는 신이 나지 않았어요. 아래층에서 필과 함께 있었을 때에 잠깐 동안이었지만 내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적도 있었어요. 게다가 그 일을 하고 난 뒤엔 바로 지금 당신처럼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은 괜찮아요. 이번에는 아주 신이 나는걸요. 하지만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대답은 낮게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뿐이었다.

"토미,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돼요." 마거트는 날카롭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이거예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끓이고 샌드위치를 만들어요. 당신에게 가져가게 하는 것은, 그 남자에게 그렇게 말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어째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침대에 들어가 있었을 테니까 옷을 갈아입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여튼 준비가 되었으면 찻상을 내 방으로 갖고 와요. 그리고 나서 그 남자의 방을 노크하고는 연어 방으로 들어 갔어요 내가 함께 먹자고 했다면서 불러주면 되는 거예요."

"난 할 수 없어요. 내게 그런 일을 시키다니, 안 돼요."

"아주 간단한 일이란 말예요. 그렇게 대수로운 일도 아니에요.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어요. 문을 두드리고는, ‘셸던 씨’, 그 남자는 셸던이라고 했어요. ‘부인이 방에서 밤참을 준비했으니 괜찮으시다면 함께 드시자고 하시는군요.’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예요. 부엌에서 한번 연습해도 좋아요. 그리고 나서 그 남자를 내 방으로 안내한 뒤에 침실로 돌아오면 돼요."

"안 갈지도 모르잖아요?" 마거트의 차분한 표정을 보고 그녀의 공포는 조금 가라앉았다. "만일 그 남자가 탐정이라면 뻔히 알고 있으면서 함정에 빠지는 짓은 하지 않을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 남자가 함정을 알아차릴 리가 없잖아요?" 마거트는 신중하게 설명했다.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선 내가 그저 여행자라고밖에 생각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상대방에게 밤참을 권하는 것은 손님을 접대하는 당연한 행동이에요. 게다가 나를 탐색하러 온 사람이니 기회만 있으면 뭐라도 찾아내려 할 테죠. 한밤중에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기회라면 달려들어올 것 아녜요? 알겠죠? , 부엌으로 가서 얼른 일이나 시작해요."

토미는 마지못해 방을 나가 뒷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거트는 2층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부엌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 토미의 어깨를 격려하듯이 두드려 주었다.

"너무 시간 잡아먹지 말아요." 그녀는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나는 내 방에서 기다리고 있겠어요."

그녀는 셸던이라고 하는 남자의 방 앞에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보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억누르고 간신히 보통 발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녀는 곧장 장롱으로 가서, 한가운데 있는 서랍을 열고 가지런하게 개어 있는 속옷 속에서 작은 권총을 꺼냈다. 탄창을 열고 총알을 조사한 뒤, 탄창을 닫고는 잠시 동안 실내 여러 곳을 겨냥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잠시 뒤 침대로 다가가 그 권총을 베개 밑에 넣고는, 권총 손잡이는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도록 바깥쪽을 향해 놓았다. 자세히 방안을 둘러본 뒤 의자 하나를 침대 바로 옆으로 가져왔다. 그 의자에 앉아 있으면 바로 권총에 손이 닿을 수 있다. 다음 일은 작은 테이블 위의 책이나 종이쪽지들을 치우고 테이블을 그 의자 앞에다 놓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이젠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권총 사용법을 알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축복하고 있었다. ‘칼로 찔러도 되긴 하겠지만 깨끗하게는 처리되진 않을 거야. 게다가 적막한 산속이기 때문에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두고 자는 정도의 경계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지. 그 남자가 들어왔을 때 나는 여기에 앉아 있는 거야. 그렇게 하면 편리한 때에 언제라도 간단히 총을 꺼낼 수 있으니까. 로키 로드스의 완전한 방심을 찌르는 거지. 나중에 내 나이트가운에 피를 조금 묻혀도 괜찮겠지. 그렇게 하면 효과적인 마무리가 될 거야. 토미에게 커피 같은 것들을 치우지 말라고 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렇게 하면 내가 잠자리에 들어가고 나서 그 남자가 침입해 들어왔다는 것이 그럴듯하게 보일 테니까.’

양팔을 올려 그녀는 고양이 같은 기지개를 켰다. 상반신에 쾌감이 잔물결처럼 밀려왔다. 이제는 아주 느긋하게 운명을 지배하는 힘에 도취되어, 토미가 오는 때만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게 다음 막의 신호가 되는 것이다.

문을 불안하게 할퀴듯이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조용히 문에 기대어 자물쇠를 열고 토미를 들여보냈다.

"토미, 쟁반은 그 테이블 위에 놔둬요. 그리고 나서 셸던 씨를 부르러 가는 거예요."

"부탁이에요, ." 토미가 또 시작했다.

"!" 마거트는 몹시 밉살스러운 듯이 말하고는, 밝고 커다란 목소리로 덧붙였다. "수고했어요, 토미. 그럼, 연어 방으로 가서 셸던 씨에게 함께 드시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고 와요."

토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으나 몸속의 근육을 바싹 죄려고 하는 듯이 얼굴에 힘을 주어 무표정한 표정을 짓더니,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출입구로 향했다. 마거트는 문 손잡이에 손을 대고 열어놓았다. 그때 또 현관 벨소리가 호텔 안에 울려 퍼졌다. 토미는 깜짝 놀라 바싹 긴장하며 비단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으나, 마거트가 거칠게 그 입을 막았다.

"바보 같으니, 조용히 해요." 그녀는 엄하게 이렇게 속삭였다. "숨어 있어요. 무슨 일인지 보러 가야 하니까."

그녀가 복도로 나오자 연어 방문이 열리고는, 손님이 녹색 파자마를 입은 채 얼굴을 내밀었다.

"누가 현관에 왔습니까?" 남자가 쾌활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제가 나갈까요?아마 누가 나처럼 길을 잃은 모양이니, 두려운 생각은 갖지 마십시오."

"미안합니다, 셸던 씨." 마거트가 말을 조심해 가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그럼,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그는 마거트를 그대로 두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실내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었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잠시 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아직도 떨고 있는 톰린슨 아주머니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을 흔들고는 문에 기대어 계단 아래의 상황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3

현관문이 열리고 또 닫혔으나, 유감스럽게도 소곤소곤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야기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셸던은 목소리를 죽여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가 없었으나, 새로 온 손님 목소리는 컸으므로 가끔 그녀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고물 버스라든가 지독한 밤이라고 하는 말만 들려올 뿐, 이야기의 내용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대화하는 목소리가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되다가 드디어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물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서 그녀는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누구예요?" 토미가 흥분한 듯이 물었다.

"나도 알 수가 없잖아요?" 마거트는 잔뜩 화가 나서 윽박질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올라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얼굴 표정이나 행동에 주의해요. 이런 때에 얼간이 짓을 해서는 안되니까요."

마거트는 문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셸던이 노크할 때 자연스럽게 방안에서 걸어나와 문을 여는 척했다. 그녀는 문을 열기 전에 톰린슨 아주머니에게 눈을 한번 흘겨주었다. 말로 나오지 않는 그 명령에 따라 톰린슨 아주머니는 몸을 반듯하게 하고서 손이 떨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문을 열면서 마거트는 밤중에 깨서 다소 귀찮다는 듯한 기색을 띠며,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너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게, 말끝을 올린 의문조로 그녀는 말을 걸었다.

복도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셸던과, 조금 전에 목소리가 들려온 남자 외에도 여자가 하나 있었다. 다른 여자를 보면 경쟁상대로 평가하는 것이 마거트에게 있어서는 본능처럼 되어 있었으므로, 그녀는 재빨리 이 새로 온 여자의 얼굴에 나타난 개성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마거트보다 23인치 키가 작고, 남자아이처럼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짧게 치켜올려 깎은 머리가 빨간 베레모 주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하트 모양의 얼굴은 비누와 물로만 닦은 느낌이었다. 박스 형의 스포츠 코트 앞을 풀어헤쳐서 체크 무늬 스커트와 헐렁한 엷은 갈색 스웨터가 보였다. 멋보다 입었을 때의 감촉과 활동성을 목표로 선택한 의상 같았다. 순진한 그 처녀에게 조소 섞인 동정을 느끼며 마거트는 셸던의 설명을 듣더니 또 한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이분들은 나와는 달리 길을 잃은 게 아니더군요." 셸던은 말을 계속했다. "이곳을 목표로 해서 오셨답니다. 거절하는 전보와 엇갈린 모양입니다. 지배인도 없는데, 이분들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셨네요."

"나는 찰리 밀러입니다." 그 남자가 말을 꺼냈다. "분명히 예약해 놨습니다. 다섯 시간 전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그 고물 버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버스를 고칠 때까지 팔짱만 낀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 회사도 그렇지, 우리 캔자스 시티 마을에서라면 그런 버스 회사는 당장에 쫓겨나고 만답니다. 게다가 이곳에 와서는 또 어떻습니까? 지배인도 떠나고 없는 데다가 이쪽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질 않으니, 이런 손님 맞이가 어디 있습니까?"

묘한 조화를 이루는 아베크라고 마거트는 생각했다. 큰 목소리에 비해 남자는 몸집이 작았다. 땅딸보 신사. 작고 정성껏 손질한 콧수염에, 착 달라붙게 빗은 머리에는 포마드가 발라져 있었다. 화려한 체크 무늬 셔츠는 이 멋쟁이가 산에서 입기 위해 백화점에서 샀을 것이다. 그가 자기를 화나게 만든 원인을 모조리 털어놓으면서 마거트의 육체미에 징그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동안, 여자 쪽은 그림자 속에서 흐릿하게 서 있었다. 그 남자의 뻔뻔스러운 눈길은 마치 마거트의 가운 속이 들여다보이기라도 하는 듯, 마음속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 같았다. 마거트는 본능적으로 이 남자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은 도전적인 겉치레 인사에 답하여 살며시 미소지었다.

"조지가 이 호텔 지배인 말예요. 이번 주말에 예약이 몇 건 있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전보로 거절했을 텐데요. 전보를 받지 못하셨나요?"

"아무것도 못 받았는데요." 남자가 대답했다. "하긴, 우리는 금주 내내 여행을 했으니까요. 일요일에 집을 나왔거든요. 아마 그래서 전보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어떻든간에 당신 쪽에서는 귀찮게 되었군요."

"부인께선 귀찮으시겠지만 친절을 베푸셔서 묵게 해주시지요." 셸던이 마거트 쪽으로 돌아섰다. "밀러 씨 말을 들어보니 여기는 버스가 하루에 한 차례밖에 지나가지 않아서 두 분 모두 내일 밤까지는 꼼짝못할 것 같다는군요."

"내일 밤이라고? 당치도 않소!" 밀러가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2주간 휴가를 얻어 여기서 보내기로 한 거요. 요 몇 년 동안은 애리조나 관광 목장에 갔었는데, 작년에 이곳에 와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며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건 완전히 정말 끔찍하게 됐군요.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으니 지배인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지내겠습니다. , 그 양반에게 욕이나 잔뜩 해줘야겠군!"

"예상하신 대로 묵으실 수 없게 되어 죄송합니다." 마거트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남자가 나타나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설레어서 마거트는 한 순간 자신이 처한 입장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녀는 지금 말투나 눈길로 밀러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셸던의 반응을 보려고 했다. "그럼, 될 수 있는 대로 즐겁게 지내시기를 바래요. 마침 하녀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갖고 와서 셸던 씨 방에 갖다드리려던 참에 벨이 울렸답니다. , 함께 드시지요."

그녀는 문을 활짝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토미, 배고픈 분들이 또 두 분 늘었어요. 그러니까 커피를 끓이고 샌드위치도 더 만들어 갖고 와요. 모두 추운 곳을 몇 시간이나 헤매고 다니셨으니까 인색하게 굴지 말고 많이 만들어 와요."

", 마거트 양."

그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웠고, 바닥에 눈을 깔고서 복도에 있는 사람들 앞을 느릿느릿하게 빠져나가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태도에는 완전히 겁에 질린 기색이 보였으므로 마거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불쌍하게도 저 톰린슨 아주머니는 천둥소리에 떨고 있답니다." 그녀는 관대한 미소를 보이며 털어놓듯이 얘기했다. "저런 천둥소리가 들리면 몇 시간이고 계속 떤답니다. 이 산속에 온 뒤에 벌써 몇십 번이나 천둥소리를 듣고서도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이에요."

이렇게 해서 잘 얼버무렸다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젠 토미가 어떤 얼간이 짓을 해도 이 사람들은 폭풍 탓이라고 생각하겠지.

"어머나, 깜박했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녀는 손님들 일을 잊고 있었다는 데에 갑자기 정신이 들어 당황했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 밀러 부인, 들어와서 앉으세요. 가방은 선생님이 방으로 옮겨주시지요. 전부 들 수 없으면 셸던 씨가 도와주시고요."

"전 밀러 부인이 아닙니다." 여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밀러라는 이름을 꺼낼 때 어딘지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어머, 그래요?" 여기서 그녀는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에는 정말로 놀란 것이었다. 이 여자를 밀러 부인이라고 처음부터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남자가 그렇게 그녀를 무시해 버렸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거트는 재빨리 셸던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그녀의 입가는 이런 값싼 계획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대범하지만 유치하게 생각하는 듯한 보일까 말까 한 미소로 비뚤어져 있었다. 새로 온 남자는 징그럽고 꽤나 바람기가 있는 남자였다. 미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공격의 화살은 주로 여자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언극도 셸던이 그녀 쪽에는 눈도 주지 않고 나중에 온 그 아가씨 쪽을 보고 있었으므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또 예의를 잊어버리고 말았군요." 셸던은 그다지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언제라도 해야 할 테니 지금 하십시다. 이분을 소개해야겠소. 웨더비 부인, 이쪽은 미스 퀸, 미스 수잔 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아가씨는 조용하게 말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만,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마거트도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퀸 양. 코트를 벗으시죠. 밀러 씨가 가방을 방에다 옮겨주시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여기서 의미 있는 한숨을 쉬었다. ", 방 예약은, 방 두 개를 잡으셨나요?"

"우리들은 함께 온 게 아니에요." 아가씨의 얼굴은 애처로울 정도로 새빨개졌다. 밀러가 껄껄 웃자, 셸던이 괴로운 얼굴을 하며 이들을 보았다.

"그냥 친해지기만 했을 뿐이오." 밀러는 득의만만하게 웃었다. "어제 오후 버스를 탈 때까지는 수지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하지만 호텔 방을 좀처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내 말에 따라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는 마거트를 향해서 화려하게 윙크를 하고는 또 껄껄 웃어댔다.

"이 호텔엔 방은 많이 있습니다." 셸던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퀸 양은 부인 맞은편 방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밀러 씨는 내 방 맞은편 방을 쓰시고요. 어떻습니까, 부인?"

"좋아요." 이 아무런 특징도 없는 아가씨가 자는 곳이 계속 문제가 되자 마거트는 약간 신경질이 났다. "그럼, 들어오세요, 퀸 양. 남자분들이 짐은 정리해 주실 거예요. 그게 끝나면 모두 커피를 드시지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 아가씨가 코트를 가지런하게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고는 베레모를 그 위에 걸고서, 거울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재빨리 머리카락을 빗질하는 모습을 마거트는 살피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도 예약은 되었겠죠?" 마거트는 그다지 묻고 싶지는 않았지만 달리 할말도 없었기에 태평스럽게 물어보았다.

",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사무실 친구 한 사람이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금년에 휴가계획을 잡는 것이 늦어져서 그 사람이 이곳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지난주 친구들에게 이끌려서 함께 다른 곳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나 혼자서 오기로 한 거예요. 하지만 연락을 모두 그 사람이 해주었으므로 아마 거절하는 전보도 그 친구 아파트로 갔을 거예요. 그 사람이 돌아오면 전보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그녀는 학교에서 발표해 보라고 시킨 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아마 계단에서도 같은 말을 대충 하면서 올라왔겠지.’ 하고 마거트는 생각했다. ‘이 얼마나 재미없는 처녀인가? 이런 아가씨가 밀러와 친구라고 생각했다니 나도 어떻게 됐군. 그 남자라면 좀 더 화려한 여자를 골랐을 거야.’

남자들이 돌아오자 힘을 내고서 마거트는 수잔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으로 가리키고는, 자신은 침대와 테이블 사이에 놓아둔 의자로 흐느적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여러분, 앉으시지요." 그녀는 쾌활하게 말했다. "여기에 있는 것만이라도 우선 드시지요. 곧 톰린슨 아주머니가 음식을 더 가져올 테니까요."

"그런데..." 밀러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커피가 좋은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추운 밤에는 좀 더 강한 게 좋지 않겠소?"

그는 오른손을 등뒤로 돌리고 있다가, 그 손을 화려하게 앞으로 내밀면서 술병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 녀석을 한 모금 마시면 추위는 쫓아버릴 수 있죠." 그는 말을 계속했다. "버본 위스키, 6년 된 거요. 이 이상 좋은 게 있습니까, 부인? 게다가 맞은편에는 잠잘 곳이 마련되어 있고. 이 찰리가 2주일 간이나 여행하면서 이런 것 한 박스 정도는 준비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여러분, 사양할 것 없소."

"밀러 씨, 지금은 커피만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셸던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것도 가능한 한 조용하게 빨리 말입니다. 주인이 지금 옆방에서 쉬고 계시는데 상태도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방해해서는 안 되겠죠."

"그래요? 그거 유감이군." 밀러는 멋적은 듯이 병을 내려놓았다.

마거트는 자신이 쾌활하게 들떠서 떠들어댄 것을 후회하며, 남편이 죽은 미망인이 아닌, 환자 남편을 돌보는 여자답게 거기에 어울리는 얌전하고 정숙한 태도를 취하려고 애썼다. 토미가 들어와서 커피를 따르기도 하고 샌드위치 접시를 돌리기도 하느라 이야기가 잠시 중단된 것을 그녀는 다행으로 생각했다.

"나 혼자서 조금 마시는 정도라면 상관없겠죠?" 밀러는 충고를 받아서 조금 멋적은 듯이 중얼거렸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아서 말이죠. 그 버스에 탔었던 것이 좋지 않았나 봅니다. 조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잖소? 수지 큐, 당신은 어떻소?짜릿하게 기운나는 술 필요없겠소?"

"괜찮아요." 수지는 새초롬하게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거절했다.

"이 아가씨를 수지 큐라고 부르지요." 밀러는 자신의 서툰 익살에 만족스러운 듯이 신명을 내서 설명했다. "춤곡에 그런 제목이 있지요. 이 아가씨에게 어울리는 이름 아닙니까? 성은 퀸이고 이름은 수지이니까요. 아시겠소?"

"언제나 그렇게들 말하더군요." 수지는 가시 돋친 친절로 대답했다. "그래서 난 친구를 고르는 데에도 그것으로 구별하죠. 나를 수지 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거든요."

밀러는 자신의 서툰 익살이 제대로 맞아들어가자 기뻐하며 싱글벙글하고 있었으나, 마거트는 이 아가씨는 겉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잔의 이 대답이 다소 셸던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화를 내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퀸 양이라고 불렀는데요." 셸던은 부자연스럽게 점잔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되어 좀 더 친해지면 수잔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렇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그에게 흘끗 눈길을 주었는데, 눈과 입가에는 미소와 같은 주름이 졌다. 그러나 대답을 하기 전에 얼굴을 조금 붉히고는 눈을 내리깔고서, "." 하고 말했다. 그 대답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멍청이같이......’ 하고 마거트는 바보 취급하듯이 생각했다. ‘이 아가씨는 남자 다루는 법을 전혀 모르는군. 아무것도 아닌 말을 남자가 물었는데도 여학생처럼 쩔쩔매다니. 이 남자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당신은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셸던이 수잔에게 너그럽게 말했다. "나한테는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제발 마이크라고 불러 주십시오."

"나는 모두 찰리라고 부르고 있죠." 밀러도 친근감 있게 말을 꺼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부인? 당신도 역시 정확한 이름을 갖고 있겠죠? 우리 모두 서먹서먹한 행동은 버리고 친하게 지내도록 하죠."

"여러분, 주무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마거트가 불쑥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하찮은 잡담 시간이 되겠다고 생각하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손님들에게서 성()의 구별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제 밤도 깊었고, 또 얘기 소리에 주인이 잠을 깰지도 몰라서요."

모두는 곧 이렇게 묵을 수 있게 받아들여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그녀를 깨워놓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수잔이 코트와 베레모를 집어 들고, 밀러가 술병을 거머쥐고서 모두는 물러갔다. 마이크 셸던이 마지막에 나가면서 출입구에 잠깐 멈춰 서서 잘 자라고 말할 때에야 마거트는 갑자기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권총 생각이 났다. 그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직 졸립지 않다면 얘기 좀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유혹하는 것은 문제없을 테니, 그 뒤에 처음의 계획대로 해치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떨쳐버렸다. ‘저 사람들이 집에 있는 한 그 계획은 제대로 되질 않아. 미리 무대를 준비해 놓을 수도 없고, 나중에 효과를 살리기 위한 세부공장을 할 틈도 없어. 게다가 처음 보는 새로 온 두 사람에게는 그녀의 얘기가 결점투성이라는 것이 금방 눈치채이게 된다. 이 남자를 처치하는 방법은 내일 생각나겠지.’ 그녀는 자신을 달랬다. ‘아무런 위험도 없는 방법 말이야.’

"안녕히 주무세요, 셸던씨."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푹 쉬세요."

혼자 남게 되자 그녀는 베개 밑에서 권총을 꺼내어 얼른 원래 숨겨놓았던 장소에 갖다두었다. 이 몇 시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생으로 그녀는 완전히 녹초가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작 침대로 들어가도 잠은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달리는 차바퀴처럼 몇 번이나 남편 방의 그 마지막 광경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쳇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남편 말이 귓가에서 되풀이되어 울려 퍼지고, 남편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바보짓을 한 건 아닐까?’ 그녀는 생각을 계속했다. ‘아직 불충분한 게 남은 것은 아닐까? 내 계획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완전한 것일까?의사가 역할을 잘 연기해 주지 않는다면? 만일 셸던이라고 하는 로드스 탐정이 경찰에게 얘기를 했다면?아냐, 나는 괜찮아.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거지?’

침대 속에서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고만 있었다. 처음에는 오른쪽을 밑으로 하고 누웠다가 잠시 뒤에는 왼쪽을 밑으로 하고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서 잠에 떨어지려고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이런 일은 빨리 일단락지어야 해.’ .

그녀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좀 자두어야 해. 이렇게 하다가는 내일 아침엔 맥도 못 추고 말아. 게다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어. 나의 모든 힘이 필요하게 된단 말이야. 그녀는 위쪽을 향해 누워서 눈을 꼭 감고는 몸을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완강히 꾹 누르며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이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입으로 나오는 숫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300까지 세었지만 점점 머리가 맑아질 뿐이어서 그녀는 이 방법을 그만두었다. 자포자기가 되어 그녀는 침대에서 나와 남편 방으로도 연결되어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불을 켜는 것도 두려워서 손으로 더듬어 약찬장을 뒤지니 남편의 수면제가 들어 있는 작은 상자에 손끝이 닿았다. 그 약을 한 알 집고서 잔을 들고는 수도꼭지에 손을 대고 조금 망설였다.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의 연관(鉛管)은 오래되어서 물을 틀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누군가가 잠을 깨면 재미없다. 내가 한밤중에 살금살금 걸어다닌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알약을 그대로 혀 위에 올려놓고서 목이 막힐 것만 같은 느낌으로 억지로 삼켰다. 잠시 뒤 추위와 불안에 떨면서 그녀는 급히 침대로 돌아왔다.

잠시 동안 그녀는 그 알약이 조금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뒤, 차츰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손발이 무거워지고 눈꺼풀이 눈을 덮어왔다. 잠이 몰려와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시 동안은 그대로, 잔다고도 깨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헤매고 있었다. 눈을 뜨고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손발이 납처럼 무겁고, 머리를 들 수도 없었다. 필사적으로 졸음과 싸워, 잠을 쫓아내려 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고, 베개가 얼굴을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베개를 얼굴에다 꽉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 삼킨 알약의 맛도 멋도 없는 맛이 입안에 퍼지고, 머리에 떠오른 의미도 없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 독약이라는 말이 두서도 없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독약을 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어렴풋한 머리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 단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단어의 의미만 알 수 있으면, 그 단어가 왜 중요한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잠을 깨라고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 잘 수는 없다.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거지?’ 그녀로서는 생각해 낼 수도 없었고, 또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4

잠을 깨자 톰린슨 아주머니의 손이 어깨에 닿아 있고, 얼굴은 귓가에 닿아 있었다. "일어나세요, 마거트 양." 그녀는 집요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제발 눈을 떠요."

마거트는 머리가 맑아지도록 머리를 흔들었다. 아침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톰린슨 아주머니가 기를 쓰고 있는 데에 정신이 들었다. 잠시 뒤 전날 밤 일들이 어수선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어떻게 됐어요, 토미?" 목소리를 죽이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날카롭게 물었다. "무슨 재미없는 일이라도?"

"아니에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녀는 어조는 낮았지만 불안했다. "8시에 여느 때처럼 주인님에게 아침을 갖다 드리라고 했잖아요. 벌써 8시가 되어 쟁반에 준비는 해놓았지만, 나는 가져갈 수 없어요. 아무래도 가져갈 수가 없어요."

"토미, 바보같이!" 마거트는 발끈해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와 똑같이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을 것 아녜요? 쟁반을 그 방으로 나르는 거야 간단한 일이잖아요. 조금도 괴롭게 생각할 것 없어요. 그리고 나서는 내가 있는 곳으로 주인님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하러 오기만 하면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할 거예요."

"할 수 없어요." 토미는 반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 방으로 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취할 수는 없어요. 그분이 그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모르지만."

"좋아요.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대지 말아요. 내가 하겠어요. 저런 쓸데없는 손님이 오는 바람에 당신이 바빴다고 하면 변명이 되겠지. 그게 여느 때와 순서가 틀린 이유가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침대에서 나와 슬리퍼를 신고, 잠옷 위에 사치스러운 남자에게 주문해서 만든 울 실내복을 걸쳤다. 토미와 함께 부엌으로 내려가서 곧 가벼운 아침 식사가 든 쟁반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녀가 남편 방에 도착하자 밀러가 완전히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 그가 입고 있는 셔츠는 어젯밤의

것보다 더 화려한 체크 무늬였다.

", 부인, 이 집에 나 외에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있다니 기쁜 일이군요." 그는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그게 뭡니까? 미끼 벌레의 쟁반입니까? 도와 드릴까요?"

그는 쟁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손을 대고서 테스트하듯이 조금 힘을 가하면서, 그녀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를 취하려고 했다. ‘자만심이 많은 한량이군.’ 그녀는 시큰둥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기회를 잘 포착하는 육감이 없으면 안 돼. 게다가 이 남자는 나중에 이용할 필요가 생길지도 몰라. 그래서 그녀는 붙잡힌 손을 빼면서도 달콤하게 타이르는 듯한 눈길을 던졌다.

"죄송합니다, 밀러 씨."

"찰리라고 불러 주십시오."

"찰리!" 그녀도 은밀한 듯이 꾸민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남편 아침 식사예요. 무겁지 않아요. 하지만 문을 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그는, 그녀의 미소에 보답하듯이 이를 완전히 드러내면서 미소를 짓고는 뒤돌아 문을 열고서 과장되게 머리를 숙여 그녀를 들여보냈다.

"감사합니다." 마거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밀러가 있는 것도 잊고서, 정말 닥쳐올 연극을 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이 좋다. 그녀는 엄하게 자신에게 타일렀다. 보통 때처럼 이것을 안으로 갖고 가야만 한다. 방안을 걸어가면서 그녀의 뇌는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어색하지 않도록 느긋하게 걷는 거야.’ 침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돌렸다. ‘이 사람이 조용하게 자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쟁반을 살짝 나이트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서 남편을 일으키려 하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는 거야. 안색이 조금 이상하다. 자는 모습도 이상하다. 깜짝 놀란 듯이 바싹 긴장한다. 남편 위에 구부리고서 뺨에 손을 대본다. 퍼뜩 숨을 들이마시고, 모든 감정을 억누르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못박힌다. 여기가 고비야. 잘해야지.’

그녀는 문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문이 아직 열려진 채였고, 밀러가 복도에 있었으므로 잘됐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아요." 그 목소리는 그녀 자신도 과연 얼빠진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목소리였다. 무서운 충격에 의지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지금 출입구에 있는 사람이 셸던 탐정이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언뜻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이 연극을 보면 그 남자 역시 자신의 의혹이 믿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되겠지. 모처럼의 볼 만한 장면을 밀러 같은 하찮은 남자에게 쓸데없이 연기하다니 유감스러운 일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뭐라도 도울 일은?" 밀러는 진지하게 옆으로 다가와서는 갑자기 멈추어서서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를 눈여겨 보았다. "부인, 당신은 앉는 게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거 주인이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당신에게는 무서운 충격이겠지만 용기를 내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데 편안히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손을 걸치고서 몸을 지탱하며, 용기 있는 귀여운 여자라도 되는 양 힘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밀러는 그 어깨를 아버지라도 되는 체하며 가볍게 두드리고 격려했다.

", 이 찰리의 어깨에 기대어 울어도 돼요. 울면 기분도 맑아질 거예요."

그녀의 미소에는 용기 외에 감사하다는 빛도 깃들어 있었다. ‘나는 눈물형의 여자는 아니지.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게 좋아.’

"친절한 분이시군요." 그녀는 조용하게 말했다. "이젠 괜찮아요. 의사를 부르는 게 좋겠어요. 전화를 걸 동안 여기 이 사람 곁에 있어 주시겠어요?"

"좋습니다." 그는 감탄한 듯한 눈길로 마거트를 보더니 또 어깨를 두드렸다.

생각대로 비탄과 놀라움의 표정을 만들고서 마거트는 복도로 나와 뒷계단에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토미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뒤의 마거트의 발소리에 흠칫 어깨를 움츠리고 당황해하며 뒤돌아보았다.

"왜 아침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 거죠?"마거트가 목소리를 죽이며 몹시 거칠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여느 때와 똑같이 행동해야 하잖아요?말조심해요. 누군가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또 비탄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토미." 조금 띄엄띄엄 커다란 목소리로 마거트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 토미, 필이 어떻게 됐나 봐요."

"어머나, 부인." 토미가 양팔로 그녀를 안고서 두터운 가슴으로 마거트의 머리를 받았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얘기해 봐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정작 이렇게 되니까 토미도 잘하는 데.’ 하고 마거트는 매우 기뻐했다. ‘이 사람도 애초에는 배우였어.’

"아침을 갖고 갔더니 꼼짝 않고 자는 모습 그대로였어요." 마거트는 이야기했다. "꼼짝도 않고 말이에요. 손을 대봤더니. 굉장히 차가운 거예요. , 토미. 그 사람은 정말로 죽었어요! 난 어떻게 하면 좋아요?"

"가엾게도!" 토미는 그녀의 머리를 조용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가엾은 부인. 아직 젊은 몸인데."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과부와, 충실한 늙은 하녀가 만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이제 이 정도로 됐다고 생각하고 마거트는 몸을 일으켰다.

"토미, 이렇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그녀는 전보다 확고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맥을 못 추면 필은 기뻐하지 않을 거예요. 의사를 불러야만 해요. 할 일이 많이 생겼어요."

그녀가 스윙도어에서 식당으로 나가니 마이크 셸던이 커다란 난로에다 장작을 집어넣고 있었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에 있어 주었으니 고마웠다. 토미와 내가 한 연극은 반드시 갸륵한 것으로 들려왔을 것이다. 그녀가 들어가자 셸던은 무릎의 먼지를 털면서 일어섰다.

"톰린슨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을 언뜻 들었습니다." 그의 어조에는 동정이 깃들어 있었다. "주인의 일은 정말 안 됐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감사합니다." 그녀는 잠시 남자의 손을 잡고서 슬픔에 가득 찬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도움이 되는군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요."

그녀는 입술이 떨리는 것을 억제하듯이 손수건으로 누르고는, 또 슬픈 미소를 떠올렸다. ‘이 사람도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잖아.’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내 말을 곧이듣고 있는지도 몰라. 토미와의 대화로 이 남자를 속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편도 뛰어난 배우일지도 모르니까 그런 태평한 생각은 금물이야.’라고 생각했다. 한 번 심어진 의혹은 그렇게 간단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의사를 부르는 것은 이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필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렇게 뜻밖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이점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랜더스 의사가 유리한 대답을 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주시겠습니까?" 그녀는 부탁해 보았다. "아무래도 전 아직 얘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당연하시겠죠." 그는 재빠르게 맞장구를 쳤다.

마거트는 의사의 전화번호를 말해 주고는 함께 로비로 가서 수화기를 가리켰다. 수잔 퀸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참이었다.

"부인이, 지금 대단한 충격을 받았답니다." 셸던이 그녀에게 말했다. "들었어요."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밀러 씨가 얘기해 주었어요. 정말 얼마나 슬프시겠어요. 잘 알아요."

"수잔, 나는 지금 의사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당신이 부인을 방까지 모셔다 드리지 않겠소? 조금 누워 계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마거트는 이 아가씨에게 기대듯이 계단을 올라갔다. 적어도 이 아가씨에겐 말하지 않고도 끝났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거기서 두 사람은 셸던이 올 때까지 잠자코 앉아 있었다.

"랜더스 의사가 곧 온답니다." 셸던이 보고했다. "심장마비일 거라고 하더군요."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마거트는 중얼거렸다. "필은 오래전부터 심장이 나빴거든요. 좀 더 끈질기게 그이에게 의사에게 진찰받으라고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기 그지없군요. 하지만 그 사람을 놀라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의사가 장의사에 연락해서 필요한 준비는 갖춰 놓겠다고 하는군요. 될 수 있는 대로 부인의 짐이 가벼워지도록 해주시겠답니다." 셸던이 자상하게 말했다. "당신에게도 아침 식사를 들게 해서 힘을 잃지 않게 하시라는군요. 요전에 당신을 만났을 때도 당신은 그다지 건강한 것 같지 않았고, 당신이 주인에 대해 얼마나 염려했는지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랜더스 의사로군.’ 하고 마거트는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 내게 유리한 만반의 준비를 해주는 것은 계산된 사실이었다. 이 탐정에게 손을 떼게 할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어요." 마거트는 기운없이 대답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그럼, 톰린슨 아주머니에게 커피라도 갖고 오도록 하지요." 그는 달래듯이 말했다. "당신이 힘을 잃어버리면 곤란하거든요."

"알았어요." 그녀도 받아들였다. "그럼, 토미를 이리로 보내주시겠어요? 의사가 왔을 때 만나볼 수 있도록 그 아주머니에게 옷 갈아입는 걸 도와달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진행된 일은 만사 계획한 대로였다. 랜더스 의사가 와서 잠시 진찰하더니 전화로 듣고 예상한 대로 심장마비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의사는 마거트에게 꼭 붙어서, 장의사 남자들이 시체를 정리하러 오는 것을 기다렸다.

"선생님, 지난주에 오셨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겠어요?" 마거트는 슬픈 듯이 말했다.

", 아무것도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겁니다." 의사는 그녀를 위로했다. "당신이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나도 잘 알고 있고, 또 진찰을 받았다 해도 고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병이 악화되면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지요."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만요, 선생님. 그이가 이렇게 된 것이 어쩐지 내 실수였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군요." 손수건 가장자리로 눈을 누른다. 셸던이나 밀러, 퀸 등이 동정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이는 오래 앓아서 어떤 의사 선생님도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답니다."

"당신은 모든 방법을 다 썼어요. 그리고 지금 매우 꿋꿋하게 인내하고 계시는 겁니다." 임종 뒤의 소동에 익숙해져 있는 의사도 이 젊은 미망인이 고뇌를 억누르는 듯한 모습에는 조금 감동이 되었다. 그렇게 정숙하고, 아름다우며, 게다가 고독한 여인이니 말이다.

"기운이 있으시다면 이제부터 함께 마을까지 갑시다. 장례 문제로 당신이 결정해야 할 일이 두세 가지 있거든요. 얼른 처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게다가 나도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친절하시군요, 감사합니다." 마거트는 대답했다. "그래요. 전부 정리해 놓는 게 좋겠군요."

토미가 코트를 가져오자 셸던이 그것을 걸쳐 주었다. 흘끗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녀는 만족했다. 화장도 잘 해두었다. 붉은 기가 없는 백분에 루즈도 바르지 않았다. 아이 섀도를 한 가지만 칠하고, 입술도 극히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난 가끔 검은 옷을 입어 봤으면 하고 생각했었지. 이 드레스는 디자인이 훌륭해.’ 그녀는 밍크 코트의 옷깃을 여미고 외출준비를 했다.

차 안에서 의사는 그녀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날씨에 관한 얘기나 마을에서 생긴 일 등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계속 해대며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의를 잃지 않을 정도로 응답은 했지만, 마음이 거기에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의사는 그녀가 무관심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에게 잠자코 깊은 상처를 생각하게 놔두는 것보다는 계속 얘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화장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하면 해부될 염려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짓을 했다간 소문의 씨가 될지도 모른다.

이 주변에서는 화장(火葬)은 드물거든.’ 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면 시체를 덴버로 보내야 하고, 매장도 늦어진다. 게다가 셸던이라는 로드스 탐정이 옆에서 간섭할 것이다. ‘아니, 나도 토미처럼 겁을 집어먹고 있잖아.’ 그녀는 이 생각을 떨쳐버렸다. ‘어째서 난 화장을 하려고 생각한 걸까?’ 로드스가 의심하고 있는 것은 독살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해부해 보면 그 의혹이 틀렸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만일 화장을 하면 그 증거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독약의 흔적을 없얘기 위해 내가 화장했다고 성급하게 판단해 버릴 것이다. ‘안 돼, 그 사람은 보통 방식으로 매장해야만 해.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소문의 씨가 남지 않도록.’

마을에서 랜더스 의사는 대단히 큰 도움이 되었다. 마거트는 그저 두세 가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 끝나버렸다. 아니오, 웨더비에게는 가족은 없습니다. 다만 저뿐이에요. , 주인을 여기에 매장하고 싶습니다. 주인은 옛날부터 이 산을 매우 좋아했거든요. , 월요일에 장례절차로 교회에서 간단한 고별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되겠어요. , 비용으로 쓸 돈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편 변호사에게도 랜더스 선생님이 연락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 여러분이 모두 친절하게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차로 돌아갔다. 의사가 직접 운전을 해서 그녀를 돌려보내 주었다.

", 호텔로 돌아가도 괜찮겠습니까?" 의사는 염려스러운 듯이 물었다. "우리 가족이 기쁘게 부인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친절하시군요, 선생님. 하지만 괜찮아요. 톰린슨 아주머니도 있으니까요. 그 사람과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서 가정부라고 하기보다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에요. 게다가 호텔 일을 하던 부부도 다음 주 초에는 돌아올 테니까요."

"그럼, 아까 그 젊은 남자 뭐라고 했더라? 그래, 셸던 말입니다. 그와 또 다른 남자와 얘기해 봤습니다. 당신들 여자 두 사람만을 거기에 남겨놓는다는 것이 좀 뭣해서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도 당신 시중은 들겠다고 합니다만. 게다가 퀸 양도 좋은 아가씨 같더군요. 필요하다면 얼마라도 머물면서 도와드리겠다고 하던걸요."

주제넘게 나서는 늙은이!’ 마거트는 화가 났다. 밀러나 퀸 같은 인간을 언제까지나 있게 하고 싶진 않았다. 셸던만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도 셸던만은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눌러앉을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방해를 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셸던을 처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데.’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그녀가 고마워하는 미소를 보이자, 의사는 좋은 말을 했다고 스스로 만족한 듯 얼굴을 빛내고 있었다.

산장에 도착해 보니 셸던이 전날 밤 타고 온 블루 로드스터가 현관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으므로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남자는 돌아가 버렸나?’ 그녀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왜 돌아간 걸까? 어디로 간 걸까? 그 남자는 무엇을 발견한 걸까? 경찰에 고발할 충분한 증거를 벌써 잡은 것일까?’

"그 젊은 남자가 내가 말한 대로 차를 차고에 넣은 것 같군요." 랜더스 의사가 말했다. "또 날씨가 사나워진다고 하고서, 이렇게 추우면 눈이 올지도 모르니까 차를 넣어두는 게 좋을 거라고 얘기해 줬거든요. 차고에는 두 대 들어가는데, 지금은 웨더비 씨의 대형차만 한 대 들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그래요, 선생님." 마거트는 이유도 없는 공포에 빠졌었던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여러 가지로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힘을 빌릴 수 없었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거예요."

"도움이 되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의사는 차에서 내리는 그녀에게 손을 빌려주면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당신 건강에 주의를 하는 겁니다. 이 이상 건강을 해치면 큰일이 나거든요."

의사는 또 핸들 앞에 올라타고서 사라져 갔다. 마거트는 계단을 올라가서 호텔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로비에서 가만히 멈추어섰다. 식당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처음에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셸던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이 집 주인의 방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웨더비 부인이 보면 깜짝 놀라고 말 거요. 시체를 운반해 내고 아직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잖소? 사람에게는 도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의 목소리는 밀러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낮고 태평스러운 목소리에다 조금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옥스퍼드와 하버드의 중간치에, 약간 남부 사투리를 섞어 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 이보시오." 그 목소리는 냉정했다. "정말로 그 부인의 슬픔에는 동정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계속되는 겁니다. 매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지 아시오? 1분에 한 사람씩이오. 아니, 이것은 태어나는 것이었지. , 어느 것으로 해도 똑같소. 그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상복을 입을 수는 없잖소. 그 웨더비라고 하는 사람이 당신들의 친구요? 아니죠? 나 역시 알고 있느냐 하면 생판 남이오. 그럼, 그 남자가 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여 숨을 거두었다고 해서, 왜 당신들이 예정을 변경하거나 내 휴가를 잡쳐야만 합니까? 과부야 당연히 울 테지만 말입니다. 그거야 어느 정도의 기간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러나 그 밖의 우리들은 분별 있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있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오."

마거트는 부지런히 로비를 가로질러가서 식당 입구에 멈추어섰다. 테이블 상좌, 그녀의 정면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반다이크풍의 뾰족한 턱수염이 없었다면 케블 천사와 같이 상냥한 얼굴로 여겨질, 둥근 얼굴에 살집이 두터운 남자였다. 그녀의 발소리를 듣고도 빵에 버터를 다 바르고는 느긋하게 접시에 올려놓은 뒤 그녀에게 인사하기 위해 일어섰다.

"부인." 그는 지나치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당신이 웨더비 부인이시죠? 지금 이 젊은 분이 웅변으로 말씀하셨던 바로 그 부인이시군요."

상대의 어조는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젊고 아름다우시군요."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잠시 모피 코트를 평가하듯이 살펴보았다. "게다가 많은 재산을 떠맡은 미망인이시고요. 나의 충심에서 나온 이 문상을 받아주십시오. 하지만 내가 누군지 모르시겠죠? 실례했습니다. 내 소개를 해드리지요. R 데이븐퍼트 케이츠입니다. 작가이지요."

그는 자신의 이름에 당연히 반응이 있으리라는 듯이 말했다. 이 오동통한, 몸집이 작은 남자는 나이도 들었고 건방졌지만, 마거트는 누구에게도 적의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 그렇습니까?" 그녀는 평범하게 말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군요. 당신 책을 틀림없이 읽었을 겁니다."

"그건 좀 의심스럽군요." 그는 이 위선에 재미있다는 듯이 대들었다. "내가 쓰는 글은 마법에 걸린 숲이나 백조에 올라탄 기사, 말을 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죠. 유치원 주변에서는 인기가 있지만, 당신의 취향에 맞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군요. 꼬마 독자들을 위한 내 걸작은 대체로 번팅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펴냈거든요."

"어머 ! "마거트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른 사람과 착각한 모양이군요."

"있을 법한 일이죠." 손을 흔들면서 그는 마거트의 실수에 대한 변명을 막았다. "그거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부인? 지금은 비통할 때니 혼동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런데 당신이 방금 전 돌아오셨을 그때의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성격이 제멋대로라서 짐을 이미 송어 방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래서 당신 의류나 그 밖의 물건들을 지금 곧 다른 방으로 옮겨갔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짐을 풀 수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송어방에선 묵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주인이.."

"말 안 하셔도 알고 있습니다." 그 포동포동하고 손질이 잘된 손을 들어 올렸다. "당신에게는 괴로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세심하게 마음을 쓰시는 것도 압니다. 그 방을 그대로 놔두고 싶으시겠죠.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추억의 제단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호텔입니다. 직업적인 장소지, 달콤한 감상의 장소는 아닙니다. 먼젓번 손님이 떠나면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것이 인생의 법칙이죠."

"비어 있는 다른 방도 많이 있습니다." 마거트는 항의했다. 이 몸집이 작은 남자는 대단히 지겨운 심술쟁이일 것이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조금의 배려도 하지 않는다. 이 남자가 하자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당신에게 송어 방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이것 보시오." 남자는 귀찮은 듯이 입을 열었다. "이미 방은 빌렸습니다. 가능하다면 남편의 유품이 없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그냥 놔두고 싶으시다면 할 수 없죠. 나는 다른 방은 빌리기 싫습니다. 3년간 나는 매년 9월 말 2주 동안을 이 산장에서 지내왔소. 게다가 항상 송어 방을 사용했단 말이오. 다른 방에서는 마음이 안정되질 않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좀 더 나와 친해지게 되면 내가 갖고 싶은 것은 결국엔 손에 넣는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게요. 지금 나는 송어 방에 묵고 싶은 겁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대로야.’ 하고 마거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워도 소용없어.’ 셸던이나 밀러를 불러 폭력으로 이 남자를 쫓아내는 것 외에 이 남자를 남편의 방에서 쫓아낼 방법은 없다. 흘끗 셸던에게 눈을 돌리자 그는 난로 앞에 서서 지겨운 녀석이라는 듯이 R 데이븐퍼트 케이츠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부탁한다면 반드시 이 기분 나쁜 사람을 내쫓아버리고, 이자의 가방을 그 뒤에다 내팽개쳐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을 잃은 몸으로서 여기서 싸움을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 되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 남자가 어디서 자든 내가 알 바 아니잖아? 게다가 이제 송어 방에는 아무런 볼일도 없고 말이야. 지금은 단지 품위 있게 행동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좋습니다, 케이츠 씨." 그녀는 떨리는 듯한 미소를 셸던에게 향하고서, 감정을 억누르며 이 벽창호 같은 대단히 무례한 사람에게 관대하게 양보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보여주었다. "하녀에게 말해서 주인의 물건 치우는 일을 거들어달라고 하지요."

한 번 더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 그녀는 부엌 쪽으로 나갔다. 부엌에는 토미는 없고 수잔 퀸만 있었다.

"방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했어요." 수잔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여 말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열이 나는 것 같았거든요."

마거트는 토미의 방까지 계단 두 개를 올라갔다. 그녀는 양손을 무릎에 끼고서 가만히 앉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에 지겨운 데브 공()이 와서 필의 방에 들어가겠다고 버티고 있어요." 마거트가 화가 나서 말했다. "우리들에게 방을 치워달라고 하는군요."

"알고 있어요." 톰린슨 아주머니는 열의 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 케이츠라고 하는 사람 말이죠? 마을에서 택시로 곧바로 왔어요. 방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매년 이맘때는 이곳에 와서 송어 방에서 묵었다더군요. 부인이 싫어할 거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짐을 옮겨버리더군요."

"그럼, 하는 수 없어요." 마거트는 좁은 침대에 앉았다. "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멍청하게 당하고 있으면 우리가 지는 거예요."

"그 사람을 거기에 묵게 하지는 않겠죠? 그 방에? 만일 그 남자가 뭐라도 찾아낸다면?"

"아무것도 찾아낼 만한 게 없어요." 그녀는 짜증내며 반박했다. "그렇게 울상짓지 말아요. 만사 내가 잘

해놨으니까요."

"혹시 잊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톰린슨 아주머니는 열심히 말했다. "하찮은 일이라도 말이에요. 조금도 실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어요?"

어떤 하찮은 일이라도 이 말이 마거트의 머리에 날카롭게 와닿았다. 갑자기 어젯밤에 생각해 내려고 했으나 결국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딘가에 작은 알약 두 알이 비타민제로서 그녀에게서 받았다고 필이 쓴 편지와 함께 숨겨져 있을 것이다. 분석하면 곧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알약이다. ‘필에게서 들은 그 이야기를 잊고 있다니 나도 얼마나 멍청이인가!’ 하지만 어젯밤엔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 잘 생각해 봐야만 한다. ‘케이츠가 송어 방에 묵겠다고 버틴 것은 그것 때문일까? 그 남자가 알약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어머나, 내가 또 어떻게 됐나 봐? 데이븐퍼트 케이츠가 그런 걸 찾으려고 할 리가 없지. 그 남자는 알약에 관한 일은 듣지도 못했을 테고, 만일 발견되었다고 해도 관심도 갖지 않을 거야. 알고 있는 사람은 로키 로드스뿐이야. 로키 로드스밖엔 없어.’ 이 말을 반복하고 있는 동안에 새로운 의미가 떠올라 그녀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토미." 그녀는 하녀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마이크 셸던이 로키 로드스라는 걸 어떻게 장담하지?"

토미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필은 탐정이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온다고 했어요." 그녀는 기를 쓰고 말했다. "그런데 셸던이 출입구에 나타나자 나는 곧 그 남자라고 생각해 버린 거예요. 상대방도 나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연극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 사람은 자기가 이름을 댄 대로 진짜인지도 몰라요. 밀러 역시 어젯밤 늦게 왔고, 케이츠 역시 이곳에 온 것이 오늘 아침이에요. 그 중에서 누가 탐정이 변장했는지도 모른단 말예요. 셸던과 마찬가지로 밀러라고 하는 그 남자도 탐정은 아닌 것 같지만, 케이츠라면 또 몰라요. 그 가짜 사투리나 부자연스러운 태도 같은 걸 보면 말이에요. 토미, 누가 로키 로드스인지 가려야 해요."

 

5

마거트는 침대에 앉아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누르고, 다른 손가락으로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이렇게 복잡하게 될 리가 없었는데.’ 그녀는 아이처럼 화를 내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중하게 세운 계획이었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좋을 땐데.’ 그런데 반대로 사태는 시시각각으로 복잡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필이 탐정을 부를 필요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어째서 두 사람이나 불필요한 남자가 나타나서 나를 혼란시키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변장한 탐정이 누구인지, 상대편이 나를 경찰에 고발하기 전에 찾아낼 수 있을까? 그렇게 내가 고생해 왔는데도 하나에서 열까지 내게 나쁘게 되어가고 있으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나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필에게는 그런 일을 할 이유는 없을 텐데. 그 사람만은 잘못 봤어.’

적당하게 하면 좀 어때 ! ’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푸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이 있는데.’ 이 안개 같은 상황 속에서 벗어나 분명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틀림없이 만사가 생각대로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좋아. 장해물을 넘는 일이라면 익숙해져 있으니까. 필은 죽었고, 그 사람의 재산은 이미 내 것이야. 이게 중요한 거야. 의사는 자연사라고 믿고 있어. 이것도 중요한 일이지. 여기까지는 로드스라고 하는 남자도 나한테 어떻게 할 수 없겠지. 그자는 내게 살인 혐의를 걸고 있을 테지만, 아직 증거가 없어. 그렇지 않다면야 그자는 벌써 경찰에 갔을 테지. 그래서 그 문제의 알약을 찾아낼 기회는 상대편과 똑같이 내게도 있다는 뜻이야. 게다가 상대편은 내가 이 집에 탐정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편을 쫓아버릴 수 있는 유리한 점이 내겐 있어.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상대편은 결국엔 꼬리를 드러내겠지. 그 사이에 그 알약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거야.’

알약은 아마 필의 방 어딘가에 있을 테지.’ 그녀는 지금 자기 마음이 빈틈이 없이 논리적으로 움직이자 남의 일처럼 속이 시원했다. 게다가 케이츠에게는 필의 물건을 옮겨주겠다고 했다. ‘지금 곧 내 손으로 그것을 옮기자. 방에 들어갈 때 잠시 말을 걸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약을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려울 것 없어. 필 역시 명탐정은 아니었으니까. 그 사람에게 생각이 날 만한 비밀장소라면 나 역시 생각이 날 거야. 그런 식으로 하자면 케이츠 역시 생각이 떠오르겠지 ! ’ 좋은 기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싫은 생각이 끼어 들어왔다. ‘내가 물러 나오고 나서 그 남자가 식당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은 반드시 방에 돌아가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만일 그가 탐정이라면 알약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미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인상이 나쁘고 몸집이 작은 남자가 옆방 한가운데 서서 손바닥에 알약을 올려놓고, 필이 쓴 그 저주받을 편지를 읽으면서 두터운 입술을 징그럽게 쩝쩝거리고 있는 모습을 그녀는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는 안 돼!’ 그녀는 마음속으로 세차게 외쳤다. 그 남자가 증거를 갖고 이 호텔을 나가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해.’ 그녀는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펄펄 뛰고 있는 중이었다. ‘침착해야만 해.’ 필사적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충동에 지게 되면 얼간이 짓을 하게 되는 거야.’ 무엇보다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케이츠가 알약을 손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탐정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다음 손을 쓰기 전에 확실히 다져놔야 한다. 지금 그 사람 방에 가서 알약을 찾아보자. 그것과 동시에 그 남자의 짐을 조사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수가 있을 것이다. 편지가 있을지도 모르고, 수놓은 손수건이라도 좋다. ‘그 사람의 이름이 케이츠인지 로드스인지 알아볼 만한 물건이 있을 테지.’

침착한 행동도 가능하다는 듯이 그녀는 일부러 천천히 화장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화장을 고쳤다. 긴 금발을 빗고, 볼연지를 더 바르기로 했다. 잠시 뒤 거울 속의 얼굴에 만족하자, 그녀는 복도로 나가 송어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케이츠의 목소리에서는 아무것도 알아챌 수 없었다. 문을 열어보니 그는 침대에 길게 엎드리고서 베개를 등에 대고, 왼손에는 펼쳐진 책을 들고 있었다.

"이거 누추한 방에 미녀가 오셨군요. 아무튼 잘 오셨소." 그는 거창한 말로 맞이했다. "누운 채로 실례합니다. 마침 낮잠 잘 시간이라서요. 낮잠 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찬장이나 책상 안에 든 물건을 치우러 오셨군요. 빠른 배려 황송합니다."

", 죄송하지만 잠시 방을 비워주셨으면 합니다. 별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거예요. 로비에도 편안한 긴의자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침대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죠." 그는 기쁘게 대답했다. "게다가 내가 그런 곳으로 나갈 이유도 전혀 없고요. 상관말고 일이나 하시지요. 나를 쫓아내실 생각은 하지 말고요. 나는 여기에서 편안한 기분으로 책이나 계속 읽고 있을 테니까요. 와일드는 알고 계실 겁니다. 꼬마들을 상대로 하는 졸작을 쓰는 데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는 이 빅토리아 왕조풍의 풍자로 크게 위로받죠."

"그럼, 낮잠을 다 주무시고 나면 다시 오지요." 이렇게 한심한 버릇을 갖고 있는 한량을 어떻게 탐정이라고 생각했는지 어처구니없어 하며 그녀는 이 마지막 말에 비웃음을 담고서 말했다. "방에 있을 테니까 나가실 때 제 방을 노크해 주세요."

"당치도 않습니다. 당신의 예정을 망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반대했다. "주인의 옷가지를 정리하러 오셨는데 나 때문에 그것을 미루게 할 수는 없죠. 게다가 나로서도 빨리 찬장을 비워주시는 게 좋습니다. 낮잠을 다 잘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저녁식사 때까지 낮잠을 잘지도 모르거든요. 여기까지 택시로 왔기 때문에 아주 지쳐 버려서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금방 또 자고 싶은 정도랍니다. 그러니까, 부인, 어차피 온 거라면 지금 치워주십시오. 치울 동안 내가 여기에 있어도 지장이 있지는 않겠지요?"

"괜찮습니다." 그가 있으면 불편할 이유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자신이 방에 혼자만 있고 싶은 마음을 눈치채이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그녀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무정한 사람의 심술은 고집. 하지만 움직이는 것이 싫다고 하는 이 고집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잠시 실례하겠어요. 톰린슨 아주머니가 침대 시트를 바꿔깔아야 하거든요. 시트를 갈아야겠죠?"

"그건 벌써 끝났습니다." 그는 쾌활하게 책을 흔들었다. "사랑스러운 그 퀸 양이 친절하게도 점심 식사 동안에 해주었답니다. 이 댁에서 일하는 톰린슨 아주머니는 아프신 것 같고, 퀸 양은 톰린슨 아주머니에게 불필요한 일을 떠맡기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독선적인 참견을 하다니, 꼴도 보기 싫은 퀸 양! 토미도 그렇지, 야무지게 처신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다니.’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울화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남편이 죽은 이 방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싶은 이 당면한 필요성에 심술게 방해를 하고 있는 이 지겨운 데브 공이었다. 기대가 어긋나 풀이 죽은 그녀는 잠자코 찬장에서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끄집어내고는 닥치는 대로 구두랑 양복이랑 셔츠를 처넣기 시작했다.

"당신이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엔 소리를 내서 읽겠습니다." 그녀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그는 우쭐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일하기에도 좋을 테고, 또 이 책이 낭독하기에 좋다고 흔히들 얘기하기 때문이죠. 이 선집은 시와 희곡과 동화입니다. 취향에 따라 아무거나 고르시지요."

그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동화가 좋겠군." 그는 그럴듯하게 말했다. "그 석고상 같은 아름다움, 균형 잡힌 몸매 속에는 갓난아기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물결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동화를 믿을 수 있는 마음 말입니다. 내 부끄러운 작품을 하나라도 갖고 와서 드릴 수 없는 것이 유감이로군요. 그러나 와일드라도 괜찮겠지요? 일을 계속하세요. 정신적인 격려라는 것을 해드릴 테니까."

그는 잠자리가 좋도록 베개를 두드려 모양을 고치고는, 부자연스러운 헛기침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친절한 아저씨와 같은 점잔빼는 모습으로 읽기 시작했다. 울컥 화가 치밀어오른 그녀는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우자 자기 방으로 통하는 욕실로 끌고 갔다. 침대 위의 남자는 일어나서 도와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와서 다음 가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마 필은 알약을 어떤 주머니에 넣었을 거라고 그녀는 갑자기 태평스런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비밀 장소야. 그런 정도지 뭐. 케이츠가 만일 탐정이라고 해도 혼자서 생각해 낼 만큼 똑똑하지는 않아. 중요한 증거를 지금 자기 눈앞에서 가지고 나갈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좀 전보다 쾌활해져 그녀는 옷가지를 가방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옷 하나하나를 조사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하나하나 집어올리면서 여기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자유를 이 손에 잡고 있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조사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 이 남자는 이 옷에 흥미 있을 만한 물건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의심도 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 내 방에 들어가서 자물쇠를 채우기만 하면 정성껏 조사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동화에는 흥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군요." 찬장을 다 정리하고 빈 여행 가방을 장롱이 있는 곳으로 가져가서 서랍을 여는데 그가 푸념하듯이 말했다. "나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조금도 감탄해 하는 것 같지 않군요. 이 목소리로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말입니다. 그럼, 시가 좋겠군요."

그녀는 조용한 미소를 보냈다. 이 해도 득도 되지 않는 어리석은 자에게 화를 낼 이유는 없다. 이 방에는 찬장과 장롱 이외엔 물건을 감출 만한 곳이 없다. 찬장은 완전히 비어 버렸고, 지금 장롱 서랍에 있는 내용물도 여행 가방에 모조리 집어넣었기 때문에 장롱 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중에 필의 고발장이 붙어 있는 알약을 난로에 처넣으면 몇 분 안에 영원히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시가 좋습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녀의 미소에 답하며 그는 우쭐한 듯이 싱글벙글했다.

그녀는 또 장롱으로 주위를 돌리고 어리석고 긴 낭독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갑자기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의미도 없이 장황하게 흐르던 리듬 도중에서, 엉겁결에 뒤돌아보며 그의 얼굴을 보게 하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지금 이 문구 말입니까?" 그는 자못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가엾게도 여인은 그의 사랑을 받고서 그에게 죽음을 당해 침대에 길게 누웠구나.’ 그래요, 나도 이 문구는 좋아한답니다. 힘찬 시의 힘찬 근원이죠. 나는 이것이 와일드의 작품 중에서도 일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당신과 같은 공감자를 발견해서 기쁘군요."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또 짐을 꾸리자 그는 낭독을 계속했다. ‘서랍 구석에는 아무것도 없을까?아무것도 빠뜨린 것은 없다고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을까?아무것도 없어. 방금 침대에서 죽음을 당한 여자라고 하는 것은 단지 시의 한 구절일 뿐이야. 이 남자가 특히 힘을 주어 읽었다고 생각한 것도 내 마음 탓이야.’ 하지만 정말 특히 힘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함정이었는지도 몰라. 게다가 이 남자는 밑도 끝도 없이 그 시를 계속 낭독하고 있어. 피라든가, 감옥, 목을 매 죽은 사람에 관한 내용만. 시시한 그 옛날 이야기에서부터 모든 게 다 계획적이었던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계획이란 말이지? , 이 남자에게라면야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간단하게는 질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교회의 목사님처럼 매우 침착했다. 장롱 맨 아래칸을 집어넣으려고 했으나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제대로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도와드릴까요?" 그는 책을 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서랍을 받으러 왔다. ",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군요. 꼭 쥐기만 하면 됩니다. 하긴 당신도 신경이 꽤 예민해져 있는 게 당연하죠. 오늘은 피곤하셨죠? 책을 읽어 드려도 생각한 것만큼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에 대한 증오로 불타오르면서 그녀는 여행 가방을 자기 방으로 옮겨왔다. 적어도 이제 필의 물건은 전부 손에 넣었다. ‘내가 흐트러진 것을 보고 좋아한다면 저 남자는 저대로 만족하게 내버려 두면 되는 거야. 알약만 저 남자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면 법정에 나가도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을 테니까.’

알약만 손에 넣는다면.’ 하지만 알약을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한 시간이나 찾아본 결과 그것을 알았다. 주머니는 전부 뒤져봤다. 천을 1인치씩 전체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으나 윗도리 안감에도 꿰매어놓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양말 속에 집어넣지 않은 것도 확실했다. 마침내 그녀는 숨길만 한 장소를 빠뜨리고 지나친 곳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송어 방에서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그 알약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송어 방의 숨길 만한 장소라면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알약이 그 방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면 케이츠가 발견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는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나를 노리개로 삼고 있는 걸까? 언제라도 자기가 원하는 때에 나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 내가 날뛰는 것을 재미있어 하며 보고 있는 걸까? 이 모욕을 갚아주겠어. 그 남자가 후회에 후회를 할 정도로.’

그러나 반드시 케이츠의 소행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잘 생각해 보니 노여움이 물을 끼얹은 듯 식어버렸다. ‘오전 중에 나는 죽 마을에 가 있었어. 외출했을 동안에 필의 방을 조사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알약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그것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필은 호텔 안 어디에라도 숨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 정원의 땅속이나 차고에도 역시. 왜 좀 더 일찍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그 알약을 건네준 다음 날 필과 나는 차로 마을에 갔었다. ‘그 사람이 차의 주머니에 몰래 알약을 넣는 것쯤은 문제 없었을 거야.’ 그 사람은 나나 토미가 찾아낼지도 모르는 자기 방에 감추려고는 하지 않았을 테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띌 만한 호텔 안의 어딘가에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약찾기도 드디어 막판에 왔다는 확신을 안고서 그녀는 허둥지둥 코트를 걸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 호텔 뒷문으로 나갔다. 차고로 향하는 샛길의 작은 길모퉁이를 도니 차고 옆문이 열려 있고, 안에서 남자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먼저 차고에 대해서 생각이 미친 것이다. 케이츠, 셸던, 밀러일까?

문으로 다가가자 마이크 셸던이라는 것을 알았다. 필 웨더비의 커다란 회색 세단 맞은편에 그의 블루 로드스터가 세워져 있었다. 차의 엔진 덮개가 올려져 있고, 붉은 머리카락을 한 머리가 엔진을 배경으로 해서 그림자처럼 떠올라 있었다. 그녀가 자기 차 주위를 돌아 옆에 설 때까지 셸던은 그녀가 온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 "그는 일손을 놓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상태가 나쁜 곳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운만 좋으면 이 차로 다음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손은 기름투성이였다. 발판에 있는 누더기 천으로 얼굴에 묻은 기름은 닦았지만 손에는 아직도 얼룩이 남아 있었다. 왼쪽 볼에도 기름얼룩이 묻어 있었고, 코끝에도 묻어 있었다. ‘정말로 바싹 따라오고 있군.’ 하고 그녀는 빈정거리는 찬사를 보냈다. ‘곧 나까지도 감쪽같이 속이려 들겠지. 하지만 뭐 굳이 손이나 얼굴을 더럽힐 것까진 없었어. 내가 기다리고 있던 실수를 저질렀으니 말이야. 이 남자가 로키 로드스라고 어느 정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실수를 말이야. 필은 틀림없이 머리가 좋은 탐정에게 부탁한 거야. 이 사람은 일리노이주에서 왔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차 번호판은 캘리포니아 주잖아. 이 남자가 고장나지도 않은 엔진을 고쳤다고 하는 걸 보니까 이제 떠날 생각인 모양이지? 그럼, 알약을 찾았다는 게 되는데.’

"고장이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마거트는 정중하게 말했다. 발판에는 누더기와 나란히 공구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저 커다란 스패너가 가장 좋겠는데.’ 하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목덜미의 움푹 들어간 곳을 한방 먹이자. 흔히 말하는 곳이니까 가장 효과가 좋겠지. 아마 저 목덜미 중에서도 정확히 머리칼이 난 곳을 내리치면 될 거야. 하지만 내게 그만한 힘이 있을까?, 하나님, 세게 내리치는 거야 문제없지만 죽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이 남자가 그 알약을 갖고서 이 차를 타고 떠나 버리면 나는 단번에 끝장나는 거야. 위험하지만 해야만 한다. 남자는 엔진 덮개를 닫으려 하고 있었다. 덮개를 꼭 닫기 위해 구부리면 그곳을 세게 내리치는 거야.’

별 의미도 없는 듯한 동작으로,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의식도 하지 않는 듯이 그녀는 발판에 앉았다. 스패너는 손에서 몇 인치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마이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더러운 손가락이 담배에는 닿지 않도록 담뱃갑을 흔들어 한 개비를 그녀에게 권했다. 그녀가 거절하자 자기가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맛있다는 듯이 깊이 한 모금 마시고는 빙긋 미소를 보냈다.

"교훈 1. 중고차를 사지 마라." 그는 책을 읽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중고차라는 것은 전 주인에게는 1천 마일씩은 달려 주지만, 그 뒤에는 부품이 뿔뿔이 빠져나가도록 조립되어 있답니다. 지난주 이 고물차를 내게 억지로 판 녀석은 아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일 겝니다. 이 고물차로 시카고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니 점점 더 불안해지는군요."

정말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계략의 하나일까?’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번호판을 본 것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실수를 얼버무리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이 남자는 캘리포니아를 떠나기 전에 이 차를 산 것일까?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 내가 범인이라는 게 완전하게 들통나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그는 공구를 커다란 천 주머니에 쓸어넣고 비어 있는 앞좌석 칸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나서 휙 등을 돌리고 엔진 덮개를 정확히 닫았다. ‘이것으로 이곳에서의 찬스는 끝났군.’ 하고 그녀는 괴로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맨손으로는 이 남자를 죽일 수는 없다. ‘자동차에 관해 좀 더 배워뒀으면 좋았을걸. 브레이크를 어떻게 조작해 둘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핸들에다 조작을 할까? 그렇게 하면 비탈길 커브에서 차가 그대로 달려나가 버린다. 산길 드라이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잘하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는데 그런 것을 생각해서 뭘 하지? 이 남자가 틀림없다고 하면 이 밖에도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어."

셸던이 옆에 앉았다. 긴 다리를 뻗고서 만족스러운 듯이 잠자코 담배를 피운다.

", 담배를 주시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요, 물론이죠." 그는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여 주었다.

이렇게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나누게 되면 이 남자도 경계를 풀고서 허점을 드러낼 만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 마거트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만일 이 남자가 겉모습대로 정직한 남자라면 나의 리스트에서 제외시킬 수 있겠지.

"하시는 일에 대해 얘기해 주시지 않겠어요?" 고상한 주부가 별로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얘기의 실마리를 꺼내는 듯이 말했다. "상당히 재미있는 일인가 보죠?"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그는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스포츠 기사를 썼을 때죠. 하지만 작년에 정치부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는 일이 고통스럽고 지루해지기만 하는 겁니다. 정치부에서 재미있는 인물을 만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그 동안 화이트 하우스에 들어갈 가능성 있는 어떤 인물을 잡았죠. 그래서 그 사람이 그 목표를 위한 사전포석 작업을 하거나 세금 관계 등으로 정부를 공격할 때 내가 착한 사람이 되어 쫓아다닌 겁니다. 그 양반이 우리의 세력권 안에 있을 동안에, 아직도 그렇습니다만, 사장이 그 양반에게 전국을 돌아다니게 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지요. 덕분에 나는 요 6주간을 그 양반이 여류시인협회에서 경찰관자선단체에 이르기까지 대략 생각나는 범위 내의 모든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명연설을 하는 걸 들어야 됐답니다. 그 양반이 항상 똑같은 연설만 하는 것 정도는 나는 괘념치 않습니다. 그 정도야 이쪽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클럽에서나 내놓는 요리의 메뉴가 모두 똑같은 것은 좀 이해할 수 없더군요. 닭은 콩과 함께 요리해야만 한다는 법칙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법칙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남자는 무척 재미있는걸.’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도 미소를 보냈다. 그도 만족한 듯이 미소를 보냈다. ‘상대편에서 나를 방심케 하려는 것일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천진난만하고 우스꽝스런 얘기를 하는 것도 그런 목적에서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남편을 잃고 슬퍼하고 있으니까 내 기운을 북돋워 주려 하는 것일까? 그런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없애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자상한 양반이지. 이 남자가 탐정이 아니라면.’

"이제 겨우 영광의 캘리포니아 불길에서 벗어나온 겁니다." 그는 얘기에 일단락을 지었다. "요전의 파티를 마지막으로 해서 우리 후보자는 낚시하러 떠나고, 남은 셸던은 2주간의 자유행동을 허락받은 거지요. 그래서 나는 이 고물차를 시가의 두 배나 되는 가격으로 사서 유람 여행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나타나게 된 겁니다."

이번에는 그녀도 그의 미소에 답하여 억지로 미소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거 나만 수다를 떨었군요." 그는 자신의 얘기를 중단했다. "인터뷰 상대가 되어주신다면 내 쪽에서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친절한 친구? 깊이 파고들기 좋아하는 신문기자? 그렇지 않으면 냉혹한 탐정?’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수첩을 꺼내는 듯한 제스처를 하더니 가공의 연필을 수첩 위에 준비하는 포즈를 취했다.

"성명과 주소를 부탁합니다."

"마거트 헤임스 웨더비. 콜로라도의 어느 산장입니다."

그녀는 상대의 기자 흉내에 장단을 맞췄다.

"마거트." 그는 까닭이 있는 것처럼 반복했다. "현대적이고 유선형이며 또한 여성답군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우리 친구인 찰리에게는 조심하십시오. 1020으로 내기해도 좋은데, 그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메기로 부를 겁니다. 그 사람은 별명 붙이는 덴 명수거든요. 그 사람이 그 위대한 R 데이븐퍼트 케이츠 선생을 데이비라고 불렀을 때 그 양반의 귀가 축 늘어졌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군요. 게다가 어젯밤에 당신이 그 남자를 꼼짝 못 하게 했을 때도 통쾌했습니다."

밀러가 코너에 몰리는 것을 얘기할 때 그의 어조에는 만족스러운 기색이 들어 있었다. ‘이 사람, 질투하고 있는 건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느 모로 보나 나중에 온 두 사람보다 훨씬 나은데. 이런 바보 같은 말을 하다니.’ 하지만 만일 이것이 정말이라면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두 사람을 서로 물어뜯게 해도 이쪽에는 전혀 손해는 없는 거니까.’

"제가 그랬었나요?"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밤이 깊어서요. 일부러 밀러 씨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답니다."

"찰리의 기분이라 ! "그는 코웃음 쳤다. "그 남자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죠. 커다란 쇠몽둥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여기서 또 그녀는 천진한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이번에는 온화하면서도 나무라는 듯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알았습니다." 그는 당황해서 사과했다. "내가 밀러에게 벽돌을 집어 던질 만한 권리는 없죠.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아마, 할머니나 아이들에게는 친절할 겁니다."

그녀는 용서해 준다는 미소를 지었다. ‘흥하든 망하든 한번 해봐?’ 그녀는 자문자답해 보았다. 이쪽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운을 떼어볼 수도 있다. 필이 문제의 그 친구를 부를 생각을 하기 전에 그 친구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로키 로드스라는 이름을 꺼내고 이 남자가 나타내는 반응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밀러 씨의 시시한 농담 때문에 불편해진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어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도 별명을 붙이는 버릇 때문에 실수한 적이 있지요. 톰린슨 아주머니만 해도 항상 토미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괜찮을 때도 있더군요. 남편도 한번 친구를 로키 로드스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지요."

이 남자의 눈이 조금 가늘어진 것은 아닐까? 볼의 근육이 약간 굳어지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자신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장하고서 이름을 입에 담을 때 똑바로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알 수 없었다. 반응이 있었다 해도 미미한 것이었을 테고 말이다. 그의 대답은 재빠르고도 편안한 어조였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 같군요. 로드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대개 더스티’(Dusty(더러운))라고 불리는 법이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이렘 로드스라는 친구가 있는데, 부인의 이름이 롤레타였죠. 그래서 사람들이 하이()와 로()’라고 불렀답니다. 모두 곧잘 장단 맞춰 이렇게 노래 불렀죠. ‘주인은 하이(높은 곳)의 로드스를 타고, 나는.."

"설마."

"아니오, 이런 것까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는 쾌활하게 자백했다. "실은 지금 막 머리에 떠올랐거든요. 그러나 재미있는 아이디어죠. 만일 로키 로드스라는 사람을 만나면 롤레타라는 아가씨를 소개하고서 어떻게 되어가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좋아요." 마거트도 동의했다. "기억해 두죠. 그런데 밀러 씨보다 당신이 훨씬 재미있군요."

"그 사람은 끔찍합니다." 그는 목을 움츠리고서 때리는 것을 피하듯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사람만은 끔찍합니다. 뭐 이런 말을 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요. 나는 밀러보다 좀 진부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나 다른 친구들의 기묘한 이름 이야기는 잊어버립시다. 당신 신상 얘기를 들려주신다고 하셨죠? 그럼, 처음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별로 재미없어요." 그녀는 반대했다. "태어난 곳은 보스턴이에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지루해져요."

"하지만 듣고 싶습니다." 그는 부추겼다.

진지하게 그녀의 말에 응해 주며 충분히 얘기하도록 해주었으므로 그녀도 자세한 곳까지 흥밋거리를 섞어가며 그럴듯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비컨 힐의 오래 된 갈색 사암(砂岩)으로 만든 저택, 하버드 대학과 클럽밖에 모르는 엄격하면서도 너그러운 아버지, 남부 농장주의 딸로 성장, 뉴잉글랜드 사교계에서 인기 있는 아름다운 어머니, 점잖은 체하는 보모와 안경을 쓴 가정부, 댄스를 가르친 예비신부학교, 화려한 첫 무용회와 소녀단, 비바람에도 변동이 없는 일상생활, 제한된 친구들의 서클 그녀가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반복해서 하다 보니 저 멀리 기억 속에서 정말로 그녀가 자란 더러운 빈민굴의 무허가 건물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그녀가 철들고 나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곤드레만드레 취해 자는 아버지와 입정 사납게 그 아버지에게 욕을 퍼부어대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남부 농장 출신이라는 얘기는 마거트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만들어 낸 이야기였다. 기분이 좋을 때 어머니는 자기 친정의 커다란 저택이나 부유한 형제들에 관해 화려한 말로 그림처럼 딸에게 그려준 것이었다.

"마거트, 너는 똑똑하단다." 어머니는 그녀의 황갈색 머리카락을 곱슬곱슬하게 말면서 말해 주었다. "거기다 옛날 나처럼 아름답구나. 나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게으름뱅이를 만나서 한심하게도 좋은 세월 다 놓치는 실수는 하지 말거라. 언젠가는 너도 부자가 될 거야. 정말 부자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이런 생활은 하지 않고도 사는 거란다."

마거트는 그 농장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자신의 신상 이야기에 그것을 사용했다. 지금 마이크 셸던에게도 그 이야기를 복습해서 들려주면서 이 남자에게는 어떤 결말을 내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연극을 할 때 사귄 상대에게는, 연극이 좋아서 독립하려고 딸이 집을 나와 제멋대로 생활을 하자 보수적인 부모님이 속상해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필립 웨더비에게 한 것도 이 이야기였다. 단지 그때는 몇 단계를 생략했었다. 예를 들면 16살 때에 그녀가 요술쟁이와 눈이 맞아 달아났었던 일, 그 요술쟁이가 그녀에게 분홍색 타이츠를 입혀 요술의 소도구 대신에 무대에 세웠던 일 등을 말이다. 사실 그녀가 결혼하고 나서 말한 이야기보다 이것이 진상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녀가 무대 생활에 뛰어든 동기가 되었던 이 싸구려 실패담은 잊기로 했다. ‘이 남자에게는 내가 원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필은 어쩌면 로드스라고 하는 남자에게 자신은 여배우와 결혼했다고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이 남자가 로키 로드스라면 내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다는 거지? 나는 두 번 다시 그 서푼짜리 연극을 할 때의 일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아.’

"난 결혼할 때까지는 정말로 뉴욕에서 서쪽으로는 간 적이 없어요." 그녀는 자신이 좁은 지역밖에 몰랐다는 것이 재미있는 듯이 온화하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그때까지 사귄 외지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자 매우 실망하셨죠. 하지만 저를 자유롭게 해주셨어요."

"그럼, 당신은 보스턴으로 돌아가게 되겠군요."

그녀는 자신의 손이 남자의 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가 이야기 도중에 동정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렇게 되겠지요." 조용한 슬픔을 담은 미소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저 자신도 모르겠어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아직 어떤 계획도 세우지 못했어요."

정말 어디로 갈 건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기쁨을 억누르며 생각했다. ‘하지만 보스턴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본 적이 없는 곳이 좋아. 뉴올리언즈에 가서 게다가 다음번 결혼할 때에는 상대방의 재산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거야.’ 정말로 사랑만 갖고 결혼할 수 있는 거야. 그녀는 평가하듯이 옆 남자의 남자다운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괜찮은데. 하지만 아직은 안 돼. 여기서 떠날 때 잠깐 이 남자와 만날 약속을 해놓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번에 결혼할 상대는 가문과 명성이 있는 사람이 좋아. 돈은 이미 손에 넣었어. 이번에는 메이 플라워 호의 후예다운 그런 가문의 마님이 되고 싶어.’

"저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녀가 말했다.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어요."

그가 마지못해 그러자고 하자 두 사람은 샛길을 걷기 시작했다. 차고를 감추고 있는 길모퉁이를 돌자 그녀는 갑자기 멈추어섰다.

"어머!"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콤팩트를 잊었네. 난 그걸 가지러 간 건데. 먼저 가세요. 당신은 찾을 수 없어요." 자기가 가져오겠다는 그의 말을 간단하게 눌렀다. "요전에 차 안주머니에 넣고 내렸어요. 하지만 사물함에 넣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럼, 저녁식사 때 또..."

그 이상 그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는 부지런히 혼자서 그곳으로 돌아갔다.

차를 찾는 데에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문 안주머니를 전부 뒤져봤고, 사물함도 보았다. 시트 밑도 들여다보았고, 깔개까지 들어보았다. 하지만 알약이 어디에 있는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곳에 없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6

마거트는 저녁 식사에는 거의 식욕이 없었다. 얼른 식사를 끝내고 먼저 실례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수잔이 토미를 도와 접시를 치우고 나서 디저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배인이 놓고 간 열쇠 꾸러미를 몸에 지닌 마거트는 우선 시트 두는 곳으로 가서 타월을 한 뭉치 들었다. 세 남자의 옷이랑 짐을 대강 훑어보려고 생각하고서,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을 때 깨끗한 타월을 돌리고 있다는 구실을 대기로 한 것이다.

케이츠가 가장 수상한 것 같았으므로 그녀는 우선 송어 방에서부터 시작했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면 알 수 있도록 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 그녀는 매우 조심해 가며 짐을 조사했다. 성격이 까다로운 멋쟁이에다가 굉장히 넥타이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밖엔 알아낼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이 R 데이븐퍼트 케이츠라는 것을 증명하거나 혹은 부정할 만한 편지나 서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오후 그가 읽고 있었던 책이 두 권의 다른 책과 함께 장롱 위에 놓여 있었다. 별 관심없이 속표지를 열어보니 커다랗고 화려한 필적으로 헌사(獻辭)가 쓰여 있는 것이었다. ‘옛날이야기의 대가로서 감탄하는 데이븐퍼트에게 오스카로부터.’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우리들은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을 2년 전에 했었는데, 그것은 공연료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이 말소된 것이 몇 년도일까? 케이츠는 아직 마흔은 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는 갑자기 햇수의 계산을 그만두었다. 좀 작은 책을 집어 들곤 그것이 오셀로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곳에도 W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위에 RD 케이츠의 재능에 대한 화려한 찬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책에도 케이츠에 대한 시적 찬사가 같은 서체로 씌어 있었는데, 서명은 앨프리드 로드 테니슨이었다.

못된 장난에도 한도가 있는 거야.’ 하고 마거트는 속으로 화를 냈다. ‘이런 책을 갖고 다니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잘난 체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또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고서 오늘 오후에 이런 것을 써놓은 걸까? 이것을 쓰면서 나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며 껄껄 웃은 것은 아닐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노여움에 휩싸인 채 마직 시트와 타월을 침대 위에 놓고서 그녀는 복도를 가로질러 셸던의 방으로 갔다. 이 손님은 케이츠만큼 꼼꼼하지는 않았다. 가방 내용물도 거의 풀지 않았는데 옷장에서 양복 두 벌만 걸어놓고 당장 필요한 것만 꺼내놓은 것이다. 가방 속을 대충 훑어보면서 너저분한 내용물들을 가능한 한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데 그녀는 전력을 다했다. 수고한 보람도 없는 조사였다. 셔츠나 바지 속에 신분증명서와 파티 초대장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데, 어디에도 모두 마이클 셸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옆주머니에 고무 밴드로 묶은 편지봉투가 몇 통 있었다. 발신인은 시카고에 있는 신문사이며, 그 신문사가 내세운 대통령 후보의 행선지로 생각되는 루트를 따라, 여러 도시의 주소로 마이클 셸던 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었다. 그 봉투의 내용은 극히 평범한 것이었는데, 경비로 필요한 액수의 돈을 동봉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신분의 증명을 위해 교묘하게 조작된 위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다음에 그녀는 여행 가방 바닥에서, 똑같은 시카고 신문의 톱면을 오려낸 듯한 스크랩 북을 발견했다. 그 어디에서든 자기네 신문사의 후보자가 각지에서 한 명연설로 큰 갈채를 받았다고 하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 기사에는 어느 것에든 마이크 셸던의 서명이 있었다. 그럼, 이 사람은 괜찮은 게 틀림없다고 그녀는 자신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조급히 굴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은 마이크 셸던이라는 신문기자가 있다고 하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이 남자가 정말로 그 기자인지 확신은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서 이름과 이런 서류를 빌려온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신문의 오려낸 부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대개는 그 후보자가 여러 사회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진이 나와 있었지만, 끝부분 한 면은 샌프란시스코의 기자회견 사진이었다. 마거트는 창틀에 앉아 있는 그 남자의 모습에 정신이 들자 이상하게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사진 설명에는 당당하게 본사 특파원 마이크 셸던이라고 쓰여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믿음직스러운 턱의 선, 유머러스한 입가. 이제는 틀림없었다.

마이클 셸던은 역시 마이클 셸던이었구나.’ 하고 마거트는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이런 사실을 안 마거트는 기쁨으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럼, 탐정은 케이츠나 밀러가 틀림없다. 그녀는 서둘러서 하다 만 일로 마음을 되돌렸다. 케이츠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밀러의 방도 조사하는 게 좋아. 확실히 해야만 하니까.’

복도로 나오고 나서 타월을 놓고 오는 것을 잊고 온 게 생각나 다시 타월을 들고 들어가 두 장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나오자 케이츠가 조금 숨을 헐떡이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깨끗한 타월을 놓고 왔습니다."

그녀는 팔에 안은 타월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공손하게 대답한다. "사랑스러운 퀸 양과 성실하고 정직한 톰린슨 아주머니, 그리고 친근한 당신. 지배인이 있을 때보다 훨씬 서비스가 좋군요."

그는 자기 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어조나 안색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밀러의 방에 들어가면서 케이츠가 탐정인 것이 확실하다면 어떤 방법을 쓸까.’ 하고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아름다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듯했기 때문에, 보통 방법으로는 안 된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겠지.’ 하고 그녀는 스스로 기운을 북돋았다. 필요하다면 마이크를 끌어들여 그를 말려들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밀러가 좋을지도 모르지. 밀러 쪽이 오히려 다루기 좋아. 조금 치켜주기만 해도 나를 위해서 어떤 곡예라도 할 테니까. 저녁식사 때 내게 다리를 바짝 붙여온 것을 냅다 차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어. 그 남자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거든.’

밀러 방을 조사하는 것은 빨랐다. 케이츠가 2층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욕실 청소라도 하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마음내키는 대로 생각하라지 뭐.’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그녀는 역시 서둘러서 조사했다. 찰리 밀러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하는 증거는 많이 있었다. 여러 가지 부엌 도구가 들어 있는 견본 케이스가 있었고, 주문 장부가 일부분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그 밖에도 출장판매 세일즈맨의 여러 가지 준비물로 생각되는 신청서와 같은 인쇄물도 있었다. 찰스 D 밀러가 7월의 최고 성적 세일즈맨이라는 장식문자를 단 상장도 있었다. 그가 어젯밤에 가져온, 술이 많이 들어 있었던 가죽 보스턴 백도 있었다. 마거트는 타월을 두 장 놓고는, ‘케이츠를 해치우는데 어떻게 하면 밀러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방을 나왔다.

케이츠의 방문이 꽉 닫혀 있는 것을 보고서 그녀는 이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녀는 감사로 생각했다. ‘만일 그 여행 가방을 조사한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위험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면 마음대로 하시라고. 나는 케이츠와 셸던, 밀러에게 깨끗한 타월을 나눠주고 왔으니까. , 나머지는 저 퀸이라는 여자 방에다가 갖다놓고, 내 몫으로도 두 장 들고 가는 거야. 호텔의 임시 지배인으로서 전혀 꺼림칙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아주 훌륭한 일이지 뭐.

자신의 행동을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봐도 상관없다는 혼자의 속단에서 그녀는 수잔의 방문을 크게 활짝 열어놓았다. 타월을 놓고 나니 문득 침대 밑에 반쯤 감추어진 작은 여행 가방이 눈에 뛰었다. 재빨리 가방 위쪽을 훑어보았다. 여기서 그녀는 문득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서 뒤로 물러섰다. 이상한 것은 머리글자였다. SQR로 되어 있었다. ‘SQR일까?’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이 스티븐 틴 로드스라고 움직였다. 틴 로드스라면 뒤집어서 줄여 로키라고 하는 별명을 붙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누구의 여행 가방일까?’ 이 의문이 집요하게 그녀의 머리를 요란하게 두드렸다. 수잔과 밀러는 함께 도착했다. 밀러가 가방 하나를 그녀와 함께 이 방으로 옮겨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수상하다고 여기고서 그의 방을 조사해도 발견되지 않도록 이 방 침대 밑에 숨겨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케이츠의 짓인지도 모른다. 그는 수잔에 대해 순진하고 좋은 아가씨라고 줄곧 얘기했었다. 그가 이 가방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는지도 모른다. 그 아가씨는 그 이유도 묻지 않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가방이 누구의 것이고, 내용물이 무엇인지 조사해야만 한다. 그것만 알면 다음에 취해야 할 방법도 알 수 있다.

가방을 끌어내려고 하는데 계단에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못박힌 채 섰다. 곧 수잔이 문에 나타났다.

"어머나, 부인?"수잔은 조금 놀란 듯이 말했다. "뭘 찾으시나요?"

"타월을 갖고 왔어요." 마거트는 자신의 목소리가 공손한 것이 화가 났다. ‘이런 바보 같은 여자에게 겁먹을 것 없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아가씨에게는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둬도 괜찮아.’ 이번에는 좀 전보다 자신을 갖고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여행 가방은 매우 모양이 좋네요. 내 친구가 이런 것과 꼭 닮은 것을 갖고 있지요. 상당히 가볍죠?"

", 가벼워요." 수잔은 쾌활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실은 제 것이 아니에요. 언니인 샤일라의 것이에요.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아서 무엇이든 빌려쓴답니다. 어머니가 곧잘 하시는 말처럼 가장 일찍 일어난 딸이 가장 좋은 옷을 입는답니다. 저는 좋은 가방이 없지만, 형부가 요전 크리스마스에 샤일라 언니에게 좋은 세트를 사주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라일리 언니의 집에 들러서 가져온 거예요."

거짓말?이 가방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내게 숨기려는 걸까?이 아가씨는 이런 얘기를 스스로 만들어낼 만한 재치는 없어. 내가 이 머리글자에 관해서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은 게 틀림없어. 설령 목을 조르는 일이 있더라도 이 가방에 대해서는 사실을 알아내야만 해. 내용물이 무언지 봐야만 한다고.’

마거트의 목소리나 미소에는 마음속에 있는 이런 무서운 생각의 그림자나 형태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걸 빌려주는 언니가 있으니 참 좋겠군요." 그녀는 상냥하게 말했다. "안은 촘촘하게 칸막이가 붙어 있나요?"

"아녜요. 칸막이는 전혀 없어요." 수잔이 대답했다.

좋아, 새끼 고양이 같으니 ! ’ 마거트는 화가 났다. ‘보여주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보겠어. 그리고 만일 내용물을 보고서도 어느쪽 남자가 진짜 소유자인지 알 수 없으면 반드시 자백시키고 말겠어.’

"안을 좀 봐도 괜찮겠죠?"

가방 위에 웅크리고서 걸쇠를 벗기는 마거트의 목소리는 사탕처럼 달콤하다. ", 좋은 가방을 보면 맥을 못 춘답니다. 얼른 안감을 보고 싶군요."

그녀가 뚜껑을 열어도 수잔은 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거트의 눈은 흥분으로 반짝였고, 가슴은 고동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수수께끼의 해답에 접근했다고 하는 확신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물을 보고 나서 그녀는 실망 때문에 숨을 고르게 쉴 수가 없었다. 푸른색 비단 나이트 가운, 하의가 몇 벌. 게다가 수잔이 위장을 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다소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역시 SQR이라고 쓰인 머리글자가 붙은 여자의 가죽제 화장품 케이스가 들어 있었다. 그 남자들 물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마거트는 괴로운 얼굴을 하고서 생각했다. 그 머리글자가 수잔이 말한 대로 샤일라 퀸 라일리의 것이라고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뚜껑을 덮고 일어서면서도 마거트는 낙담하여 울고 싶었다. ‘잘못된 경보에 지나지 않았어.’ 하고 그녀는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케이츠가 맞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걸 드러내도 좋아.’

"대단히 예쁘네요." 가방 쪽으로 손을 흔들면서 그게 참 좋다고 하는 듯이 그녀는 수잔에게 말했다.

"아래층으로 함께 내려가시지 않겠어요?" 수잔이 물었다. "혼자 계셔서는 안 돼요. 지금 조용히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대단히 재미있답니다. 마이크와 찰리가 로키 산맥의 대분수령에 관한 것으로 토론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전 이야기에 결말을 짓기 위해 콜로라도 지도를 가지러 온 거예요. 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라서 항상 어디에 갈 때는 지도를 잘 들여다본답니다."

그래, 나도 아래로 내려가야지.’ 하고 마거트는 생각했다. ‘케이츠를 해치우는 데에 밀러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다면 지금부터 공작을 펴놓는 게 좋아.’ 그렇게 하면 계획을 세웠을 때 맘 먹은 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거실로 들어갔을 때, 밀러는 잔을 든 손을 화려하게 흔들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전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그 이후 죽 끝없이 계속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마거트를 보자 그는 얼굴을 반짝였다.

", W 부인." 그는 뛰어나와 마거트의 팔을 잡았다. "지금 맞이하러 가려고 생각했었죠. 굉장히 맛있는 하이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찰리." 마거트는 눈을 내리깔면서 의미 있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지금은 술은 마실 수 있을 것 같지 않군요. 하지만 퀸 양에게서 여러분이 즐겁게 얘기하고 있다는 말을 들고서 왔습니다. 웬지 저만 제외된 것 같아서요."

"곧 고쳐 드리겠습니다." 그는 공손하게 마거트를 구석의 긴의자로 안내하고는 나란히 앉았다. "둘이서 사이좋게 신경 쓰지 말고 얘기라도 합시다."

밀러의 태도는 의식적으로 마이크를 따돌리고 있었다. 마이크는 넓은 그 방 반대쪽의 난로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가 들어왔을 때 마이크도 뛰어나왔지만, 밀러가 가까웠던 것이다. 마거트는 뒷짐을 지고 있는 셸던의 얼굴에 유감스러운 빛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셸던은 그곳에서 수잔 쪽을 돌아보고 그녀가 갖고 온 지도에 흥미가 있는 얼굴을 했다. 마거트는 일부러 밀러 쪽으로 몸을 기댔다.

"하시는 일을 이야기해 주세요."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무척 재미있을 것 같네요."

밀러가 아주 신나는 기색으로 얘기를 시작하자 셸던이 발끈하여 가시가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수잔에게 지도를 갖고 오라고 한 건 당신이었소. 그런데 왜 보지 않는 거요?"

가엾은 마이크.’ 마거트는 득의양양했다. ‘지금 저 사람은 잠시 수잔과 사이좋게 있는 게 좋아. 그렇게 하면, 나중에 나를 위해 이용하고 싶을 때 이쪽에서 공작하기 좋거든.’

"이제 지도 같은 건 볼 필요없소." 밀러가 아주 기분좋게 고함쳤다. "그런 말은 했지만 더 멋진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오. 그렇죠, W 부인?"

"찰리, 상당히 서먹서먹하군요." 그녀는 공손하게 말했다. "왜 마거트라고 부르지 않는 거죠?"

"물론 당신의 말씀대로 부르겠습니다." 그는 마거트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다만, 마거트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서요.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겁니다. 틀림없이 어머니가 붙인 이름은 메기가 아닐까요? 무대에 나오는 예명처럼 만든 이름이 틀림없소."

"무대에?" 메기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나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썼다.

"그래요, 여배우들의 습관을 알고 있죠. 모두 예명을 사용하거든요. 그러니 당신은 필시 대단한 여배우였을 겁니다. 당신의 연극을 보고 싶군요."

탐정의 변장을 알아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처음부터 초조해 있던 마거트의 신경이 여기서 갑자기 휴하고 풀어지게 되었다. 마치 되살아난 듯한 심정이었다. ‘그 문제는 풀었으니, 나머지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다리고 있던 단서야.’ 그녀는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어. 내가 무대에 섰던 것을 밀러가 알고 있다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필이 얘기한 게 틀림없지. 필은 친구인 로키 로드스에게 여배우와 결혼했다고 얘기한 거야. 빈틈없는 필의 이 친구도 깡통따개 세일즈맨으로 변장한 것까진 좋았지만, 좀 과음해서 꼬리를 드러내고 말았군. 실망은 했지만, 이젠 확실히 안심했어. 앞으로는 이제 짐작과 추측만으로 움직이지 않고도 끝나게 되는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이 허점을 드러낸 것을 이 사람에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만 해.’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 마거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보지 못한 게 섭섭할 만한 연극은 아니었지요."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던데요." 밀러는 쾌활하게 반대했다. "지방 순회극단에서는 뛰어나셨고, 영화회사 같은 데서 쫓아다닌 것은 아닙니까?“

역시 필이 그런 것까지 얘기했었군.’ 마거트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결혼하는 것 때문에 내가 스크린 테스트를 받는 걸 단념했다는 얘기를 정말로 받아들였던 거야. 이 사람이라면 아무런 조작도 필요 없어. 밀러라서 다행이야. 케이츠였다면 무척 고생했을 텐데.’

밀러의 팔이 허리를 감싸왔고, 얼굴에 닿는 입김이 뜨거웠다. 그녀는 방 맞은편에 있는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눈길을 보내고는 약간 몸을 빼냈다. 밀러도 그녀의 눈을 보고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여기서 나갑시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층에 있는 방으로 가면 둘이서만 있을 수 있죠."

"어머나, 그건 안 돼요. 그런 건 좀 이상하잖아요." 그녀는 완전히 믿는 듯한 표정으로 밀러를 올려다보았다. "소문의 씨가 되어서는 곤란하지요."

"그렇군요." 그도 신사인 체하며 맞장구를 쳤다. "당신에게 나쁜 소문을 돌게 하고 싶지는 않소. 그러나 마이크와 수지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딘가에 있을 만도 한데."

"찰리,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서 내 차에 타면 되지 않겠어요?그건 어때요?"

"훌륭하오." 그도 열을 내며 말했다. "그럼, 갑시다."

밀러는 곧바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마거트가 말했다.

"저 사람들에게서 도망갔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요. 라디오를 들어야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훌륭한 방법이잖아요? 호텔에는 전혀 없거든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차에 붙어 있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우리 두 사람 다 아주 으스대고 나갈 수 있죠."

"명안이오." 밀러는 감탄했다. "당신은 멋진 여성이오. 지혜가 있어요."

"좋아요, 찰리. 시작해요."

"알았소." 그는 방안에 들리도록 커다란 목소리를 냈다. "음악은 어떻소? , 수지 큐. 음악은 싫소? 라디오를 켜서 생기 없는 바람을 쫓아버리지 않겠소?"

"어머, 그거야 좋지만" 수잔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부인, 라디오를 켜도 괜찮을까요?"

"공교롭게도 불가능해요." 마거트는 얼른 대답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이 호텔은 구식이라서요. 찰리, 라디오는 없어요. 단념해 주셔야겠네요."

"이런, 어처구니없군." 그는 불만을 나타냈다. "음악이 듣고 싶은데. 라디오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내가 노래 부르겠소."

"차에는 라디오가 있어요." 그녀는 지금 생각이 난 것처럼 말을 꺼냈다. "꼭 음악이 듣고 싶다면 차에 있는 라디오를 들으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거 좋겠군." 밀러는 그녀를 잡아당기며 일으켜 세웠다. ", 메기, 건너편으로 가서 음악을 들읍시다. 당신은 코트를 걸치고 오시오. 나는 추위를 피할 술을 한 병 갖고 올 테니까."

그녀는 거의 항의하듯이 웃으면서도 방에서 끌려나갔다.

잘했어.’ 그녀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완벽해. 마이크나 그 아가씨나 차에 가자고 한 사람이 밀러라고 생각하겠지. 밀러가 취해 있는 것도 봐서 알고 있고. 아무리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해도 이 이상 완벽하게 준비는 할 수 없을 거야. 곧 로키 로드스는 죽고, 그것이 불행한 사고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겠지.’

 

7

그녀는 계단 위에서 밀러와 헤어졌다.

"곧 오겠소." 밀러는 들떠서 자신의 방으로 갔다.

"좋아요, 뒷계단에서 만나요." 그녀도 말했다.

화려한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모피코트를 두르는 데에 시간은 단지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잠시 생각한 뒤에 작은 손전등을 서랍에서 꺼내어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시 뒤, 소리도 없이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계단을 올라가 3층으로 갔다. 아주 캄캄한 방에서 톰린슨 아주머니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꼼짝도 않고 양손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마거트는 전등 스위치를 넣었다.

"토미." 그녀가 물었다. "나에 대해서 물은 사람이 있어요? 내가 무대에 나선 적이 있다고 누군가에게 얘기했냐고요?"

"아니, 그런 건 얘기하지 않았어요." 토미는 화난 듯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여배우 출신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 역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토미, 중요한 일이에요. 무심코 얘기했거나, 또는 얘기하고도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찰리 밀러가 내가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 남자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 이유는 두 가지밖에 없어요. 당신이 얘기했든지, 필이 얘기했든지요.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필에게서 들었다고 하면, 내가 찾고 있는 탐정은 그 남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밀러에게 얘기한 것을 정신차려서 죄다 생각해 봐요. 내가 연극을 했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일을 얘기하지 않았어요?"

"아녜요." 토미는 확실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밀러 씨와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나는 퀸이라는 아가씨하고밖에 제대로 만나지 않았는데, 그 아가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다만 거들어 주러 왔었을 뿐이었어요. 당신이 웨더비 씨의 부인이 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토미,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거트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확실하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되면 찰리 밀러가 로키 로드스라는 게 되니, 우리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어진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손을 빌려야만 해요."

"무슨 짓을 하려고?" 토미는 걱정스러운 듯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내 쪽은 빈틈없이 할 테니까." 그녀는 불을 끄고 창가로 걸어갔다. 밖을 내다보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차고 옆문이 여기서 보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어. 그렇다면 집안에서는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야. 하지만 모퉁이를 돌기 전의 샛길은 여기서는 보이지. 토미, 이리 와요. 내 생각을 얘기할게요."

토미는 고분고분하게 창가에 나란히 섰다.

"당신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빨라도 두 시간 뒤예요. 하지만 당신은 이 창에서 내가 저 샛길로 올 때까지 꼼짝 않고 망을 봐야 해요." 그녀는 자신이 나타날 근처를 손을 흔들어 가리켰다. "아마 나는 납작 엎드려서 올 거예요. 게다가 당신에게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손전등을 켤 거예요. 그리고 나서 도움도 요청할 거예요. 당신에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요. 내 모습을 발견하면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돼요. 하여튼 내 모습을 발견하면 아래로 뛰어 내려가서 집안사람 모두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케이츠와 셸던, 그리고 퀸이라는 아가씨에게도요. 내가 밖에 있는데 상처를 입은 것 같다고 얘기하세요. 내 비명소리가 들렸다면 그것도 얘기하는 거예요. 하지만 목소리가 이 창까지 들려오지 않는다면 얘기해서는 안 돼요. 다 진짜로 해야 되니까. 물론 당신은 당황하겠지만 연극이 지나쳐서는 안 돼요."

"어머, 마거트 양, 어떤 계획인데요?" 그녀는 공손하게 말했다. "이 집에서는 사건이 이미 많았잖아요? 이 이상 말썽을 일으키지 말아요. 제발 조심하세요."

"염려할 필요 없어요, 토미." 마거트는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당신은 이제부터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쪽이 좋아요. 그쪽이 연극을 잘할 수 있으니까요. 밤늦게 정원에 쓰러져 있는 내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되는 거예요. 옷도 벗고 있는 게 좋아요. 그쪽이 진짜에 가까우니까. 그 밖의 일은 전부 내게 맡겨요."

마거트가 방을 나가자 토미는 언어가 되지 않는 항의의 소리를 지른다. 찰리는 2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기, 뭔데 이렇게 시간이 걸렸소?" 그가 물었다. "바람맞았나 생각했지."

"찰리, 내가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요."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녀는 코트를 걸쳤다. 지금 그녀는 남자의 팔에 손을 걸치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모두 준비했죠?"

"안심하고 맡겨주시오." 한쪽 손으로는 술병을 휘두르고, 또 한쪽 손으로는 주머니를 두드렸다. "예비용까지 한 병 갖고 왔으니까. 추운 밤에는 조심만 해서 넘긴 적이 없지요."

계단을 내려가면서 마거트가 조금 커다란 목소리를 내자 찰리도 그 뒤를 따라 뱃고동 같은 큰소리를 냈다. 호텔 바깥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목소리는 들렸을 거라고 마거트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이 남자가 나를 억지로 차로 끌고 갔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입증되었을 것이다. "찰리,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아녜요?"

"농담 마시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함께 차로 가자고 하잖았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소. 가서 라디오를 들읍시다. 뭣하면 당신을 껴안고 있어도 좋겠소."

마거트는 덤벼들 것처럼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요." 그는 그 눈길에 대답했다. "그게 좋겠군. 그럼, 이걸 들어요."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병을 받아들었다. 두 사람은 계단 아래 부엌으로 갔다. 그는 이것 보란 듯이 팔 근육을 굽혀 보이더니 그녀를 번쩍 안고서 출입구를 나왔다.

서툴고 어리석은 사람, 좀 더 나를 안고 있어야지 내려놓으면 안 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불평을 해댔다.

"찰리, 내려줘요." 주먹으로 가볍게 그의 가슴을 두드린다. "제발 내려줘요. 집 안에 있기로 해요." 그러나 이번에는 목소리를 죽여서 중얼거린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신은 힘이 세군요."

짐 때문에 약간 발이 걸리긴 했지만 그는 마거트를 뒷문에서 차고까지 안고 갔다. ‘잘했어.’ 그녀는 스스로도 감탄했다. ‘이곳에 온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싫어했다는 것까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제대로 새겨넣을 수 있었어.’ 가벼운 눈송이가 얼굴에 닿자 그녀는 의사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추워진 것도 내게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날씨라면 차의 난방을 켜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차고 입구에서 밀러는 안심했다는 듯이 그녀를 내려놓았다.

"메기, 당신은 정말 좋은 몸매를 가졌소." 그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다.

그가 문을 열자 메기는 어두운 차고로 그를 먼저 들여보내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잠시 뒤, 그녀도 안으로 들어가 문을 꽉 닫았다. 그녀가 손전등을 켜고 차를 비췄다.

"이건가요, 메기? 그렇게 나쁜 차는 아니었군." 그는 감탄한 듯이 말하면서 뒷문 손잡이에 손을 댔다.

"안 돼요." 마거트는 날카롭게 말했다. "뒷좌석은 안 돼요. 앞에 앉아요."

"이봐요, 넓은 쪽이 좋잖소? 앞자리는 핸들 때문에 비좁아요. 장애물이 없는 뒷자리에 탑시다."

이 남자가 뒷좌석에 타자고 할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지.’ 마거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그럼, 엔진을 켤 수가 없단 말이야.’

", 찰리!" 목소리에 달콤함을 깨뜨리지 않고서도 날카로움을 담기 위해 그녀는 애를 썼다. "이곳에는 라디오를 들으러 온 거예요. 앞좌석이 아니면 라디오를 켤 수가 없지 않겠어요?"

"라디오를 듣는다고? 그거 놀랍군!" 그는 껄껄 웃었다. "이봐요, 상대를 어떻게 본 거요? 우리들은 귀찮게 곁에 있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쳐 온 거요. 당신 상대는 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좋은 찰리 아저씨이니까, 무엇이든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좋아요. 이곳에는 평범한 파티를 하러 왔으니까 뒷자리에 앉는 게 기분이 좋을 거요."

"안 돼요." 그녀는 약간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나는 앞좌석이 좋아요."

"어째서?" 그가 이번에는 커다란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어느 쪽으로 해야 되는지 한 번 더 얘기해 줘야겠군. 당신은 이곳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결국엔 오게 되었소, 안 그렇소 ?그리고 이번에는 뒷자리에 타는 게 싫다고 했소. 하지만 결국엔 뒷자리에 타게 될 거요. 이 찰리 아저씨는 고집 센 아이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오."

그는 뒷문을 홱 열고는 그녀를 안으려고 뒤돌아섰다.

"내게 손대지 말아요."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두 번 다시 나를 안지 말아요."

"이봐요." 엷은 웃음을 짓고, 침울하게 멋적은 얼굴이 되었다. "뭘 그렇게 화를 내고 있소? 그저 장난인데."

"그렇다면, 좋아요." 그녀의 어조는 어느 정도 따뜻한 맛을 되찾았지만, 그래도 그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럼, 앞좌석에 타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난 곧바로 호텔로 돌아갈 테니까, 당신은 어느 쪽이든 좋을 대로 하세요."

"알았소, 알았소." 그도 달래듯이 맞장구를 쳤다. "무엇이든지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소."

차 앞좌석에 타는 데에 이런 시비까진 하고 싶진 않았는데.’ 하고 핸들 앞에 앉은 남자 옆에 앉으면서 마거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취했기 때문에 내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해. 하여튼 이 남자는 멍청한 세일즈맨 역할을 해나갈 생각일 테니 나에 대해 경계하지는 않을 거야.’ 그는 아직도 그녀가 화내는 연극에 당혹해하며 멋적은 듯이 잠자코 앉아 있었다. 접근하기가 조금 두려웠던 것이다. ‘이 남자를 한 번 더 맥을 못 추게 해줘야지.’ 하고 마거트는 생각했다. 여기에서 취기가 깨서는 곤란하다.

"찰리, 화났어요?" 그녀는 기운 없이 물었다. "저 역시 때로는 제 고집대로 하고 싶어지거든요. 게다가 우리들의 파티에 라디오를 켜서는 안 될 이유도 없는 거 아녜요?"

그녀는 라디오 손잡이를 돌려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까지 조정을 했다. 찰리는 지체없이 망설임을 버리고 그녀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아니오, 괜찮소." 그는 즐겁게 말했다. "나와 함께 있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도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한잔 어떻소?"

한잔 마시는 게 좋아.’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주 조금만. 머리는 완전하게 명확해야 하지만, 숨결에 술 냄새를 풍겨놓는 것도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하면 내가 약간 취해 있었다고 나중에 설명이 덧붙였겠지.’

"물론이지요." 그녀는 친근하게 응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파티 같은 건 의미가 없어요."

그녀는 병을 입에 대고 조금 입에 쏟아 넣었다. 양치질이라도 하듯이 삼키기 전에 잠시 입에 머금었다가 삼켰다. 그리고는 병을 그에게 돌려주자 그는 단숨에 크게 들이켰다. 후 하고 만족스러운 숨을 쉬고는 그는 병을 두 사람 사이의 바닥에 놓았다.

"이거야말로 우리들 세상의 봉이라는 거지." 익살맞은 미소를 띄우고서 그는 마거트 턱밑에 있는 스카프의 매듭을 풀고는 머리카락을 꺼냈다. "충분하게 준비되어있는 버번위스키와 아름다운 금발."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아내는 듯한 미소를 보냈다.

"아름다운 금발." 그는 힘을 들여 반복한다. "이런 금발 미인과는 만난 적이 없소."

그는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왼손으로는 그녀의 뺨을 두드렸다. 다음엔 그녀의 머리를 가까이로 당기더니 몸을 기울이고서 입을 벌린 채 키스를 하려 한다. 그러는 사이에 왼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 찰리." 여러 번 경험해서 익숙해진 재치로 그녀가 얼굴을 돌리자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치근대는 건 싫어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입술은 이것 보란 듯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참을 수 없소." 그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얼굴을 보면 앞뒤 분별도 없어져 버린다오."

그의 왼손은 아직도 마거트의 코트 속에서 탐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달콤한, 꿀보다 달콤한 입술." 그의 입이 마거트의 입술을 찾으며 중얼거린다.

이 남자는 탐정으로서도 서툴지만 이런 일에도 서툴군.’ 하고 마거트는 조소를 담은 채 생각했다. ‘아무튼 내 쪽이 훨씬 더 뛰어나.’ 남자의 공격을 요령껏 피하고, 조금 허점을 보였다가는 후퇴하고, 몸짓으로 거부했다가 눈길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자신이 조종하여 목각 인형 춤을 추게 할 수 있는 그 팔에 안겨서, 자신이 하는 일이지만 감탄한 채 힘이 넘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행복하게 죽게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우선 상대방 남자에게 항복하고서, 그런 뒤에 그 남자를 죽이는 것이다. ‘스릴이 있어. 애인을 먹어버리는 게 검은 여왕 거미였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신화 속에 나오는 그 뭐라나 하는 여신 얘기였던가?’ 밀러는 그녀가 몸의 긴장을 풀자 이때가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서 덤벼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꽉 잡고 있는 손에 정신이 들었다. ‘아차, 나는 항상 잊어버리는군.’ 그녀는 자기 자신을 나무랐다. 남자는 처음에야 거위의 깃털처럼 다루기 쉬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그 가면 속에는 억센 근육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었나? 힘에 대해서는 이 남자에게 전혀 당할 수가 없어. 만일 이 남자가 너무 몰두하게 되면 나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이것은 얼간이 짓을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다. ‘나는 이곳에 놀러 온 게 아니야.’ 남자의 입에서 자신의 입을 떼어놓는 것도 이미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손으로 그의 팔을 풀고서 그녀는 겨우 약간 그를 밀어낼 수가 있었다.

"떨어져요, 찰리!" 그녀는 거칠게 말했다. "이 손을 풀어줘요."

그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녀의 말이 뇌에 전달되는 데에 몇 초인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약간 팔을 풀었고, 마거트는 그 속에서 벗어났다. 그가 또 손을 뻗자 그녀는 병을 집어 들었다. ‘이것은 무기로도 도움이 되지.’ 하고 반쯤은 그런 생각도 떠올리고 있었다.

"찰리, 한잔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좋은 버번을 병 속에 묻어둘 수는 없어요."

"마시고 싶지 않소." 그는 완고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필요 없소. 나는 단지..."

"추워요, 찰리." 그녀는 덤벼드는 남자의 손을 피하면서 말했다. "너무 추워요."

"추위 같은 건 곧 괜찮아질 거요. 그렇게 내게서 떨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아뇨." 그녀는 고자세로 말했다. "좀 더 따뜻해질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히터를 켜야겠네."

그녀는 주머니에서 차 열쇠가 들어 있는 작은 가죽 열쇠 케이스를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엔진을 넣어요, 전 히터를 켤 테니까요."

고분고분하게 케이스를 받아들고 그는 단추를 열었다. 열쇠를 두 개 달고 있는 쇠사슬이 흘러 떨어졌다. 그는 그 열쇠를 찾으려고 바닥을 더듬었는데, 그 시간이 마치 영원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일어나요." 그녀는 화내면서 몹시 나무랐다. "내가 줍겠어요."

계기반의 불을 켜고서 그녀는 얼른 열쇠를 찾아 케이스에 다시 끼우고는, 남자 위로 몸을 구부려 점화전의 열쇠를 꽂고 스위치를 넣었다. 그리고 나서 엔진을 가동시키는 버튼을 누르고, 초크를 끌어당겨 배기를 열어놓았다. 생각해 둔 대로 그녀는 히터를 켰다. 결승점이 눈앞에 있다. 그녀는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허물없는 미소를 보였다.

"엔진이 제대로 걸렸으니 곧 따뜻해질 거예요. 그러면 좋은 기분으로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남자 옆에 바짝 다가붙고서 술병을 든 손을 살짝 바닥에 놓았다. ‘만일 이 남자를 내리쳐야만 한다면 이마를 똑바로 내리쳐야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마라면 그가 고꾸라졌을 경우 자연스럽게 핸들에 부딪힐 위치다. 그렇게 하면 상처가 설명이 된다. 그리고 그 내리치는 것도 가볍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만 해두자. 머리뼈가 다치면 상황이 좋지 않게 된다.

"꽤 따뜻해졌어요."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찰리, 좀 더 옆으로 다가와요."

이 남자를 때릴 필요는 없었다. 그의 정열은 다시 불타오르고, 애무가 다시 계속되었는데 이번에는 이 남자에 대해서나 이 상황에 대해서 완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는 사이에 남자의 열기는 식어갔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몇 번인가 눈을 깜박였다. 그가 힘없이 흔들흔들 기대오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흐느적거리며 그녀의 어깨에 떨어진다. 그녀는 약간 밀쳐서 그가 핸들 위로 쓰러지도록 했다.

"찰리." 그녀는 탐색하듯이 말을 걸어보았다. "찰리, 어때요?"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 밑으로 손을 넣어 얼굴을 자기 쪽으로 향하게 했다. 손을 떼자 흐물흐물 쓰러졌다. 눈은 감고, 입은 벌리고 있었다. 여기서 비로소 그녀는 자신도 머리가 욱신욱신 아파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 현기증도 느껴졌다.

밖으로 나가야 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 있으면 나도 당해 버리는 거야. 서두르지 않으면 나도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여러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겠지. 하지만 누가 웃을까?’ 차 문을 열고서 차고 바닥에 내려섰다. 발이 고무로 만들어진 것 같았고, 차고 옆으로 난 출입구까지 불과 몇 걸음이 안 되는 거리가 1마일처럼 느껴졌다. ‘, 난 너무 오래 버텼어!’ 그녀는 생각했다. ‘일산화탄소란 게 지독한 놈이로구나. 밀러는 마치 꺼져가는 불처럼, 왜 살해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죽어가고 있었다. ‘나도 좀 더 있었으면 죽을 판이었어. 그것은 아무런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이 살며시 다가오는 거야.’

문을 잡아 여는 데도 온 힘을 다 쥐어짜야만 했다. 감사한 생각으로 그녀는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는 밖으로 발을 내딛고서 꼼꼼하게 문을 또 닫았다. 그녀는 몇 분 동안 자신의 호흡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는데, 겨우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은 아까보다 많이 내렸으며 대지를 엷고 하얀 깔개로 덮어씌우고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의 온몸을 찔러, 그녀는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씻겨 자유롭게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속 운이 좋았어.’ 그녀는 매우 기뻤다. ‘내가 로키 로드스인지를 조사해야만 했는데, 상대편에서 일부러 내 손에 답을 보내 주었어. 그자는 또 자신이 의도한 것인 양하여 나와 함께 차고로 와주었어. 게다가 알코올로 고주망태가 되어 일산화탄소의 함정 속에 의심 없이 들어오고 만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게 되었을지도 몰랐지. 한때는 그래도 가까워지기까지 했으나, 그래도 이쪽 생각대로 잘 해치웠어. 앞으로는 이제 무슨 일이든 내 생각대로 되는 거야.’

등 뒤에서는 아직도 켜 있는 라디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게다가 숨은 듯이 엔진의 조용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흘끗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젯밤 필이 죽은 것은 지금부터 한 시간가량 전의 일이었어. 이것으로 나도 이중 살인을 한 거야. 이 말이 그녀에게 묘한 즐거움을 주었다. 옐로 페이퍼(선정적인 폭로기사를 전문으로 하는 싸구려 신문)에서는 그런 단어를 쓸 거야. 하지만 내 일은 어느 신문에도 나오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하찮아. 좋은 기삿거리가 될 텐데. 게다가 그러한 신문에서는 늘 그렇듯이 화려하게 써대면 나도 굉장한 인물로 여겨지게 될 텐데.’

이런 기분으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야. ‘카인의 표시가 생긴다든가, 살인은 속죄를 할 때까지는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든가 하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많이 있잖아. 성 요셉에게 이런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알고 있어. 그런 사람들의 양심이야 지금 나의 절반 정도도 믿음직스럽지 못했어. 지금 내 기분은 어제와 똑같아. 아니, 작년 기분과도 달라지지 않았어. 오히려 전보다 기분이 좋을 정도야. 나는 전부터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으려고 했어. 어떤 일도 당하지 않고. 지금 나는 그 확신을 갖고 있어. 나의 앞길을 방해하는 두 남자가 있었지만, 나는 그 둘을 해치웠어. 그런 정도야. 게다가 나는 벌레를 두 마리를 짓밟아 죽인 정도로밖에는 마음에 걸리지 않아. 아니, 그 사람들이 방해를 하러 나타난 것을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야.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끝나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이제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그녀는 지금 발과 정갱이에 심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려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볼과 귀를 밤바람이 날카롭게 찌른다. ‘지겨운 밀러!’ 그녀는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어댔다. ‘그 얼간이가 어째서 내 스카프를 풀어놨지? 그것이 있으면 조금은 바람막이가 되었을 텐데.’ 그녀는 노출된 양손을 서로 비비며 팔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당황해서는 안 돼.’ 하고 그녀는 자신을 억눌렀다. ‘시간을 오래 끌어야만 해. 추위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해서 저 문을 빨리 열 수는 없어. 차고에 맑은 공기를 집어넣기 전에 저 남자가 완전하게 죽어야만 하는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추위! 면양말을 신고 털 스웨터라도 입고 오는 정도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스파르타식 투철함으로 그녀는 추위를 견뎠다. 잠시 뒤 일산화탄소가 효과를 내는 데에 충분하다고 그녀가 계산한 시간에 시곗바늘이 도착했다. 그녀는 뒤돌아서 문손잡이에 손을 걸쳤다. , 돌리는 거다. 하지만 여기에서 의혹의 물결이 갑자기 그녀에게 덮쳐왔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거 너무 간단한 것 아냐? 로드스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얼간이가 아니고, 아주 무섭도록 빈틈없는 탐정인지도 모른다. 탐정이란 직업에서는 여러 가지 트릭을 사용할 게 틀림없어. 그 취한 모습이나 색정, 그리고 정신을 잃은 것 등이 모두 연극의 일부분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는 동안에도 죽 나를 감시하고 있으면서 내게 어서 오라고 함정을 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필을 죽였다고 하는 결정적인 단서로서, 내게 자기를 죽이도록 유도한 것인지도 몰라. 내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차에서 내려 차고 바깥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셨는지도 모르는 일이야. 지금 이 안에서 내가 문을 열면 덤벼들려고 긴장한 채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기를 띤 그녀의 신경은 문 저쪽에서 눈을 반짝이며 덤벼들 준비를 갖추고 웅크리고 있는 밀러의 모습을 마법처럼 그려냈다. 이곳에서 도망쳐 호텔로 돌아가서, 자기 방으로 뛰어 올라가 자물쇠를 채우고 숨어 버리고 싶은 행동을 억누르기 위해 그녀는 악전고투했다. 문손잡이에 걸친 그녀의 손이 떨어지더니 꼼짝 않고 그 손잡이를 바라본다. 그자가 혼자서 돌아다니며 안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 점점 커져 가는 공포를 간신히 억누르고, 가까스로 한 번 더 손을 들어 손잡이에 걸친다. ‘물론 그 남자는 죽었을 거야.’ 자신은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타이르고 있었다. ‘내가 나왔을 때,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처음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해. 여기서 당황하게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야. 물론 그 남자는 죽었다고. 로키 로드스는 죽었어.’ 단조롭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손잡이를 돌리는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문을 밀어 열면서 비명을 억누르기 위해 그녀는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8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짐작도 못한 채 그녀는 몇 초간 멍하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용기를 되찾아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어 차를 비춰보았다. 밀러는 그녀가 남기고 간 모습 그대로 늘어져 있었다. ‘나는 바보였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조소했다. ‘있지도 않은 허깨비를 허공에다 그리고는 그런 것 때문에 죽도록 떨었으니.’ 물론 이 남자는 죽었어. 머리를 써서 정확하게 계획을 세웠으니 실패할 리가 없지 않겠어?’ 가스로 가득 찬 차고에 그 이상 발을 디디기 전에 그녀는 가슴에 신선한 공기를 가득 들이마셨다. 잠시 뒤 그녀는 차 속에 있는 밀러 곁에 탔다. 밀러의 팔은 축 늘어진 채 겨드랑이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그 손목에 가볍게 손가락을 대보았다. 맥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대단원의 장이야.’ 그녀는 의기양양했다. 앞으로 몇 분만 있으면 일련의 연극에 막을 내릴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면 이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적어질 텐데. 우아한 동작으로 차에서 내려 그녀는 넙죽 엎드려서 출입구로 향했다. 기름이 흘러 있는 바닥에 코트를 끌고 가야만 하는 것이 조금 유감이었다. 하지만 밍크 코트 같은 거야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그녀는 고쳐서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부터 닥쳐올 일을 조금이라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찰리를 죽일 정도의 일산화탄소가 있다고 하면 나 역시 서서 걸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당장이라도 맥없이 쓰러질 것만 같은 상태라 간신히 출입구까지 기어나간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며야만 했다. 연극을 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은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문에 도착해서 그녀는 눈 속에 난 깊은 발자국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문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의 발이 만든 흔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세세한 점에까지 생각이 미친 걸 만족해했다. ‘역시 나는 빈틈이 없어.’ 하고 그녀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았어. 아무도 이런 발자국은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이것은 역시 내가 지워버리지.’ 축축한 눈을 한 줌 집어서 그녀는 그 발자국에 뿌렸다. 이어서 그녀는 그 근처의 땅을 마구 휘저어 누군가가 거기에 서 있었다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했다. ‘이제 됐어.’ 하고 그녀는 자신을 북돋웠다. 이 위를 몸을 질질 끌고 가면, 호흡을 되찾을 동안 내가 여기에서 뒹굴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되겠지.

그녀는 그곳에서 약간 비탈져 있는 샛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손에 돌이 잡히고 무릎이 까지며, 스타킹은 몇 줄이나 올이 찢어졌다. 손발이 시럽고, 차가운 밤바람에 숨을 쉴 때마다 코가 아팠다. 처음에 느꼈던 흥분이 가라앉자 고통이 고개를 들고 올라와서 통증이 더해 왔다. 걸어가면 그렇게 가까운 샛길이 마치 무한과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 눈이 차의 히터를 사용하는 데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구실로서 아까는 그렇게 고마웠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녀의 머리와 정갱이와 발에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위력으로 흥건하게 흐르는 것이었다. ‘독감이라도 걸려 죽어버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것 때문에 간염이라도 걸려 죽어버린다면 얘기가 되겠는데.’ 납처럼 무거워진 팔다리로 땅을 기어가고 있는 동안에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고통이 더해 오고, 간염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점점 남의 일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이제 일이 눈앞에 닥쳐왔기 때문이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했다고 해서 누구 하나 기뻐해 주지 않을 텐데.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속을 것이다. 지금 로드스가 죽은 이상 아무도 의심할 사람은 없어. 하지만 이 행동을 계속해야 해. 이것은 계획 속에 있는 중요한 부분인 거야. 만일 다른 사람에게서 조사받게 되면 상대편에서 무엇을 찾아낼지 모른다. 하지만 조사해 봐도, 모두 미리 예상한 대로 딱 들어맞는다면 아무런 의문이나 의혹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때문에 만사 조리가 닿게 보이고, 내 입장을 완전하게 믿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불필요한 고생을 하는 것도 헛된 일은 아니지. 내 모습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만큼 내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받을 염려도 적어지니까.’

지금 그녀는 샛길의 길모퉁이까지 가서 천천히 바닥을 기며 돌아갔다. 3층 창에 그림자가 되어 비친 토미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기운이 났다. ‘친절한 토미 아주머니.’ 그녀는 애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항상 의지할 수 있어. 창도 정확하게 열려 있네. 토미도 감기에 걸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쯤에서 도움을 청해 보는 게 좋겠어. 집안에 누군가가 들릴 만한 곳에 있는지도 몰라.’

"도와줘요." 그녀는 힘없이 외쳤다. "누구든 도와줘요."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 이번에는 조금 큰소리로 외쳐보았다.

"부탁해요. 도와줘요. 안 들려요? 도와줘요."

그녀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외쳤다. 토미는 아직 꼼짝 않고 창가에 서 있다. ‘저런 멍청이!’ 하고 그녀는 화를 냈다. ‘왜 사람을 부르러 가지 않는 거야?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 사람을 부르러 가지 않고 창가에 서 있으면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야? 토미는 저곳에서 졸고 있으면서 나를 이 눈 속에서 헛되이 죽게 내버려 둘 작정이군. 조금은 내 입장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이 여기에 와서 추위에 떨어봐야 해. 이대로 집에까지 가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연기하는 쪽이 연극으로서도 돋보이는 거야.’

곱은 손가락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서 그녀는 또 손전등을 꺼냈다. 스위치를 넣기 위해 엄지손가락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도 잠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어야만 했다. 잠시 뒤 그녀는 손전등을 곧바로 토미의 방을 향해 비췄다. 토미는 마치 바늘에라도 찔린 듯이 뛰어오르더니 양손을 모아쥐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마거트는 불을 떨어뜨렸지만 창가의 사람 그림자가 물러나고 모습을 감춰버릴 때까지 불을 켜놓았다.

저 사람이 잘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빌고 싶을 정도야.’ 하고 그녀는 간절히 생각했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은 얼마 되지 않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이야. , 그렇다고 해도 너무 추워.’ 그대로 꼼짝 않고 누워, 부엌에 불빛이 켜지는 것이 보이고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가냘픈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이크 셸던이 가장 먼저 왔다. 침대로 들어가려다가 불려서 나왔는지 바지는 입고 있었지만 셔츠는 입고 있지 않았다. 그녀 곁에 한쪽 무릎을 괴고 땅에서 그녀의 머리를 안듯이 들어올렸다. 토미는 바로 그 뒤에 왔다. 얼굴 가득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마거트 양." 토미가 끝없이 울부짖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상처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정신차려요, 토미.’ 마거트는 초조해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너무 지나쳐서는 안 돼. 너무 수다를 떨면 안 된다고.’ 그녀는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토미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눈을 흘겨 주고 싶었다.

"나는 괜찮아요." 마거트는 헐떡였다. 거친 숨결로 한마디 한마디 쥐어짜듯이 말했다. "찰리가, 나는 괜찮으니까 차고로 가보세요."

파자마 바람의 수잔 퀸이 울 로브(길고 품이 큰 겉옷)를 케이프처럼 어깨에 걸치고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 뒤에는 얼룩말 같은 화장복으로 땅딸막한 몸을 감싼 R 데이븐퍼트 케이츠가 육중하게 샛길을 내려왔다.

"차고요." 마거트가 재촉하듯이 되풀이했다. "찰리를 도와주세요! 빨리!"

마이크와 수잔이 샛길을 급하게 뛰어갔다. 토미는 땅바닥에 앉아서 마거트의 얼굴을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는 횡설수설 종잡을 수 없는, 동정에 찬 얘기와 비탄의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케이츠는 선 채로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츠." 마이크가 차고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이쪽으로 와요, 좀 도와줘요."

잠시 투덜거리더니 뚱뚱한 남자도 차고로 들어갔다.

"이 남자를 밖으로 끌어내야 해요." 마이크의 말소리가 마거트에게도 들려왔다.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소."

우선 엔진을 끄고, 다음에 라디오를 껐다. 케이츠가 마치 거인이 체조를 하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마거트의 귀에 들려왔다. 잠시 뒤 셸던과 케이츠가 축 늘어진 밀러를 가운데 매달고서 안절부절못하는 수잔의 뒤를 따라 차고에서 나왔다.

"그 사람은 어때요? 부탁해요, 괜찮다고 말해 줘요." 마거트가 기도하듯이 말했다.

"당신도 몸이 차가워졌어요." 토미는 얼음 같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싼 채 비비고 있었다. "이런 눈 속에 있으면 안 돼요."

"나는 괜찮아." 마거트가 말했다. "찰리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부탁해요, 괜찮겠죠?"

"아직은 모르오." 마이크가 불쑥 내뱉었다.

"케이츠, 어떻게 생각하시오?"

"때를 놓친 것 같은데." 케이츠가 대답했다. "심장의 고동이 없소. 할 수 있는 거라면 인공호흡 정도인데, 다행히도 나는 보이스카웃에 들어간 적이 있었으니까 치료법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소. 차 안에 모포가 있는지 봐주시오."

수잔이 재빨리 차고로 되돌아가 모포를 갖고 왔다. 마이크와 케이츠가 밀러를 그 위에 엎어 뉘어놓고 케이츠가 그 위에 말 타듯이 무릎을 댔다.

지겨운 데브 공 얼간이!’ 마거트는 거칠게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내 일을 망치려는 거지? 죽어 있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나? 그녀는 되살아날 징후에 대해 신경을 모아서 듣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밀러가 되살아났을 때를 대비해서 말을 생각해 놓았다. 그것이 사고가 아니라고는 그 남자 역시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다른 대책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이번에는 상대편도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토미, 가만히 있어요." 그녀는 토미를 타일렀다. "저쪽 상황을 들어보게."

그러나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케이츠가 리듬을 맞추는 소리뿐이었다.

"나쁜 공기는 나가고, 좋은 공기는 들어가라." 그러는 동안에 이 운동으로 인해 그의 호흡이 거칠어져 갔다.

"효과가 없어." 그가 겨우 말했다. "이 사람은 이미 죽었어."

", 세상에." 마거트는 울듯이 부탁했다. "좀 더 계속해 봐요. 그 사람이 죽다니..." 나중에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당신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좋겠소." 마이크가 동정을 담은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당신도 상당히 지쳐 있어요. , 옮겨 드리죠."

"아니에요, 나는 걱정하지 마세요." 마거트는 거절했다. "밀러 씨를 살펴드리세요. 의사를 불러요. 무슨 수가 있을 거예요. 안 된다니,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여기서 또 그녀의 말은 중단되어 버렸다.

"물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소." 마이크의 어조에는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밀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마거트는 녹초가 되어 토미에게 의지한 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수잔이 바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마거트는 곧바로 침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따뜻한 목욕과 마사지 덕분에 혈액순환을 정상으로 되찾고, 감기를 방지하기 위한 뜨거운 위스키로 기운이 되살아났다. 마이크와 케이츠가 상태를 보러 와서 의사가 오늘 밤엔 오지 않겠단다고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그 양반은 이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소." 마이크가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의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얘기했더니 인공호흡을 해도 안 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거요. 밀러는 이미 때가 늦었소. 게다가 이 눈 때문에 도로가 유리처럼 미끄러지기 쉬워요. 내일 아침 눈을 치우는 차가 길을 깨끗하게 만든 다음 온다고 합디다. 당신도 의사의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오."

"아뇨, 나는 괜찮아요."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단지 찰리를 도울 수만 있다면. 무서웠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난 전혀 몰랐어요. 차에 올라타서 라디오를 듣기도 하고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는 동안에 갑자기 그 사람이 이상해지더니 정신을 잃는 거예요. 난 너무 마신 탓이겠거니 생각했죠. 그런데 나도 어쩐지 묘한 느낌이 들어서 빨리 맑은 공기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간신히 문가에까지 갈 수 있었답니다."

"위험할 뻔했소." 마이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완전히 닫힌 차고에서 엔진을 가동시키다니, 그 정도는 밀러가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나도 깜빡 잊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히터를 켜야겠다고 했을 때, 먼저 엔진을 가동시켜야 한다는 것은 몰랐어요. 나도 조금 마신 뒤고, 게다가 차에 관한 것에는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난 그만 깜박 잊었던 거예요. 그렇지 않았으면 차 열쇠를 그 사람에게 건네줄 리가 없죠. 어쩐지 내 잘못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머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수잔이 위로하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사고는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차로 가자고 고집부린 사람은 밀러 씨였고, 당신 역시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생긴 일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당신이 자학할 필요는 없어요."

"그 말대로요." 마이크도 뒤를 이었다. "대단한 충격이었을 테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볼 생각은 하지 마시오. 랜더스 의사도 자기가 와서 진찰할 때까지 우리들에게 당신을 잘 간호하라고 하더군요."

"그 선생님은 대단히 친절하세요." 마거트는 중얼거렸다. "내일 아침에 와 주신대요?"

"그렇소, 보안관도 데리고 오겠답니다." 마이크가 대답했다.

"보안관!"토미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토미! 입 다물어!’ 마거트는 마음속으로 심하게 호통쳤다. ‘일을 엉망으로 망쳐버리면 안 돼!’ 하지만 셸던 쪽으로 치켜뜬 그녀의 눈은 침착한 질문을 담고 있는 눈길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판에 박은 조사뿐입니다." 마이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설명했다. "사고사일 경우에는 조사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여러 가지를 기입하는 서식 같은 것이 있어서요. , 그런 정도입니다. 그다지 당신을 괴롭히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면 좋겠어요." 마거트가 고상하게 말했다. "어떤 질문에도 기꺼이 대답하겠어요."

"이제 우리는 모두 저쪽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수잔이 말했다. "당신은 잠을 자야만 해요."

모두가 잘 자라고 말하고는 수잔과 마이크와 케이츠가 나갔다. 토미는 안절부절못하며 이불을 고쳐주기도 하면서 뒤에 남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지쳐서 일그러지고, 손가락 끝도 떨리고 있었다.

"토미, 당신도 가요." 마거트는 초조해져서 말했다. "오늘은 고통스러웠어요. 조금 쉬어야겠어요. 그리고 나서 좀 더 확실하게 해두어야겠어요. 셸던이 보안관 얘기를 했을 때 당신이 펄쩍 뛰면 누구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아녜요?"

"경찰이 온다잖아요.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가만둬요, 토미. 가서 자요. 당신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서 그 사고가 우연은 아니라고 남에게 의심의 씨를 심어놓기라도 하지 않는 한, 경찰 역시 아무리 와봤자 의심받을 일은 없어요.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안심할 수 있기를 빌 뿐이에요."

"당신이 얘기한 대로 하겠어요." 토미가 대답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당신 일이 염려돼서."

"괜찮아요. 방으로 돌아가요. 그렇게 끙끙 앓을 거라면 당신 방으로 가서 앓아요. 나도 좀 자야 해요."

그녀는 거칠게 베개를 두드리고는 머리를 내렸다. 토미는 고분고분하게 방에서 나갔다. ‘정말로 토미는 바보야.’ 하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염려할 게 없는데. 보안관이 와서 보고서에 기입한다고 해도 자기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되는 거야. 기꺼이 도와주겠어. 일산화탄소 중독은 잘 알려진 사건이고, 내 경우는 완전히 얘기가 만들어져 있지. 보안관이 증인들에게 심문하면 밀러가 막무가내로 차로 가자고 하며 나를 끌고 간 것을 모두가 증언해 줄 거야. 의사와 함께 온다고 하니 더욱 안성맞춤이지 뭐야. 반드시 내가 불쌍한 미망인이라고 미리 불어넣어 줄 테니, 틀림없이 부드럽게 다뤄주겠지. 그리고 붙임성있게 밀러가 히터를 켰을 때 차 안에서 있었던 상황 등은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은 편리하게 자기가 결론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밀러가 본명이 아니라는 것은 경찰에선 곧바로 발견할 거야. 그의 짐에서는 아무것도 단서가 없을 테지만. 경찰에서는 신원을 조사해 내는 방법이 있을 게 틀림없어. 하지만 그런 건 내게 있어선 어떻게 되든 똑같아. 경찰이 내게 와서 그가 실은 로키 로드스라는 탐정이었다고 하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깜짝 놀라면 되는 거야. 게다가 그 남자가 전에도 이 호텔에 묵은 적이 있고, 주인과도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런 것 정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야. 그 남자가 가명으로 여기에 온 것은 경찰에게는 아무렇게나 좋을 대로 생각하게 놔두면 되는 거야. , 상대편에서는 그 남자와 나를 연결지어 생각할 수는 없어. 게다가 그 남자가 집주인의 사인(死因)을 조사하러 왔었다는 것은 경찰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거야. 가장 중요한 점은, 주인이 죽어 있는 것을 안 것이 그 남자가 와서 하룻밤 묵은 다음 날 아침이었기 때문이지. 나는 깨끗한 몸, 보안관이 얼마든지 와도 상관없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보안관이 물어볼 만한 질문과 자신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를 대강 그려보았다. ‘틀림없이 보안관은 나와 호텔 안 사람들과 얘기해 보고, 시체도 조사해 볼 테지. 어쩌면 차고로 가서 차도 대강은 훑어볼 것이다. 좋아. 난 특별히 뭐 하나 숨기지 않겠어.’

갑자기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보안관이 차를 조사하는 모습을 그려보다가 깜짝 놀랐던 것이다. 마이크는 그저 형식적인 조사라고 했지만, 지문을 뜨는 것도 형식적인 조사에 속하는지 모른다. ‘경찰의 방식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놓았으면 좋았을걸. 점화전의 열쇠를 조사해 본다면, 밀러가 그 열쇠엔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낼지도 몰라. 정말 그 바보는 어째서 그렇게 서툴렀을까? 그자가 점화전에 열쇠를 꽂고서 돌리는 간단한 일을 해주었다면, 이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물론 열쇠를 꽂고 스위치를 넣은 것은 그가 시켜서 내가 했다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밀러가 했다고 얘기해 버린걸. 수잔과 마이크와 케이츠가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을 거야. 게다가 엔진을 작동시킨 것도 몰랐었던 것처럼 얼빠진 연극까지 해놨는데. 안 돼, 이제 와서 내 얘기를 번복할 수는 없어. 그 얘기로부터 도망갈 수는 없어. 게다가 열쇠에 내 지문이 있는 이상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아.’

그녀는 완전히 잠이 달아나 버렸다. 잠잘 때가 아니었다. ‘보안관은 몇 시경에 올까?’ 그녀는 생각했다. ‘아침 일찍 올 거야. 그 열쇠를 보안관 손으로 넘겨주는 위험한 행동은 할 수 없어. 내게 불리한 증거는 단지 그거 하나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처치해 버려야만 해.’ 이것도 역시 허깨비를 상대로 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엔진을 끄면서 자기 지문을 남겨놓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지문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어서 자신이 없다. 게다가 틀림이 없도록 해놓아야만 한다.

그녀는 침대에서 나왔다. 떨면서 로브를 입고, 그 위에 모피 코트를 입었다. 창밖을 내다보고 눈이 아직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구두 위에 오버슈즈를 신었다. ‘아직도 운이 붙어 있어.’ 하고 그녀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눈에 남긴 발자국 때문에 의심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게다가 그 열쇠 역시 그저 하찮은 실수에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든 나는 무심코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야.’

고무로 된 오버슈즈 덕분에 복도를 걸어 뒷계단을 내려가는데도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상황은 완전하게 자기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어쩌다가 누군가가 잠을 깼더라도 내가 몽유병으로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남편을 잃은 그날 함께 자리한 사람이 사고로 죽었으니 그 정도 머리가 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 게다가 악몽에 빠져 끌려간 곳이 바로 이 차고라면 몽유병 환자의 입장에선 완벽하게 설명될 수가 있어. 하지만 맥베스 부인 얘기는 싫어. 손에 묻은 피를 씻으면서 중얼거리는 건 딱 질색이야. 얘기에 의하면, 잠을 자면서 단정하게 외출복을 입은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코트를 입고 오버슈즈를 신은 것도 변명거리가 된다. 그러나 아무튼 아무도 잠을 깨게 해서는 안 돼. 꼴사나운 일이긴 하지만.’

뒷문을 열고 발을 내밀자 차가운 바람이 날카롭게 피부를 찌른다. 그녀는 차고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안으로 들어가 얼른 차에 올라탔다. 안을 살펴보니 점화전에 열쇠는 꽂혀 있지 않았다. ‘끝났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엔진을 끄고 누군가가 열쇠를 가져간 것이다. , 그자가 누군지 찾아내서 보안관이 오기 전에 되찾아야만 한다. 게다가 수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되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마이크라면 문제없을 텐데. 하지만 케이츠라고 하면 일이 성가시게 될지도 몰라. 내가 열쇠를 탐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어 하며 그것을 숨길 심술은 사람이니까. 왜 있던 곳에 놔두지를 못하는 것일까?’

바닥에 떨어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녀는 손전등을 켜보았다. 빛의 고리가 시트를 비추자, 거기에 찾고 있던 작은 가죽 열쇠 케이스가 있는 것이 보였다. 겨우 걱정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올려 손전등과 함께 코트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방으로 갖고 돌아가 점화전의 열쇠를 잘 닦아 숨겨놓으려고 생각했다. 낮에 그것을 차고 밖의 눈 속에 묻어 눈이 녹고 나서 발견되도록 해놓아야지. 그렇게 하면 밀러의 몸과 함께 옮겨질 때 우연히 아래에 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게다가 눈 속에 묻혀 있다는 점에서 지문이 없어진 것도 설명이 될 것이다. ‘이 계획에는 한 치의 잘못도 없어.’

그녀는 급히 자기 방으로 되돌아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앉아 열쇠 케이스를 꺼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복잡한 생각에 잠기며 그녀는 잠시 케이스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몹시 가벼운 느낌이 든다. 케이스를 열고서 그녀는 몇 초간 그것을 바라보았다. 열쇠가 하나밖에 없었다. 점점 심해져 오는 불안에 싸여 그녀는 하나만 남은 열쇠를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은 차 문 열쇠지 점화용 열쇠는 아니었다. ‘점화전의 열쇠가 없어졌어!’

이 말이 마음속에서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누군가가 지문이 묻어 있는 열쇠를, 점화전의 열쇠를 가져가 버린 것이다. 점화전에 꽂혀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가 생각한 것처럼, 이것은 틀림없이 고의로 가져간 것이다. 항상 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엔진을 끄고서 기계적으로 열쇠를 가지고 나오는, 습관에 의한 행위는 아니었다. 그것은 일부러 한 짓이었다. 일부러 케이스를 열고서 열쇠 하나를 쇠사슬에서 떼어낸 뒤 케이스를 차 안에 던져넣는 불필요한 순서를 밟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 열쇠를 손에 넣고 싶어 한 것이다.

?’ 그녀는 이 의문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 열쇠를 탐냈다고 하면 그건 무슨 이유일까?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열쇠의 지문을 조사하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이 사고를 위장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런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로키 로드스라면야 그럴지도 모르지. 이것이 그 탐정 최초의 활약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키 로드스는 죽었잖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지문에 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누군가가 그 열쇠를 가져간 거야.’

그녀의 생각은 다람쥐 쳇바퀴돌 듯할 뿐이었다. 마치 순환 논리처럼 그녀를 괴롭힌다. 열쇠를 가져간 인물은 지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 지시를 받아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탐정만이 이렇게도 사고라는 것이 확실한 이 일에 살인이 얽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로키 로드스만이.

하지만 로키 로드스는 죽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되풀이 반복되는 이 말을 억눌렀지만, 그때마다 자신감이 없어져 가는 것이다. ‘밀러가 로키 로드스라는 건 확실히 확인했어.’ 하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의혹을 억누르려고 했다. ‘내가 여배우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가 틀림없어. 그 남자는 그런 사실을 누군가에서 들어서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도 없다. 반드시 그자가 탐정이야. 게다가 그자가 죽은 것은 확실해. 그렇다 해도 로키 로드스가 아니면 이런...’

그것이 틀림없을까?’ 결국 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항복했다. ‘로키 로드스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 아직 이 호텔에 있으면서, 나를 사형장으로 보낼 만한 증거를 하나하나 모으며 내가 굴복할 때를 기다리면서 꼼짝 않고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일까? , 그럼, 나는 다른 사람을 죽여버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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