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행화의 변(辯)
치료를 받고 난 태수는 그 길로 개복동 행화(杏花)의 집을 들렀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오늘도 형보가 먼저 와서, 아랫목 보료 위에 가 사방침을 베고 드러누웠고,
행화는 가야금을 심심삼아 누르고 있다.
"자네, 집 장만했다면서 방이 몇인가? 남을 게 있나"
태수가 마루로 올라서노라니까, 방에서 형보가 이런 소리를 먼저 묻는다. 형보는 태수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리면 비벼 뚫고 들어갈 요량을 대고 있는 참이다.
"염려 말게. 그러잖아두, 다아……."
태수는 방으로 들어서면서 우선 양복저고리를 훌러덩 벗어 들고 휘휘 둘러보다가 행화가 차고 앉은 가야금 위에다 휙 내던지고 모자는 벗어서 행화의 머리에다 푹 눌러 씌운다.
"와 이리 수선을 피우노…… 남 안 가는 여학생 장가나 가길래 이라제"
행화는 익살맞게 그대로 까딱 않고 앉아서 태수한테 눈을 흘긴다.
"하하하하, 그래그래, 내가 요새 대단히 유쾌해!"
"참 볼 수 없다!…… 그 잘난 제미할 여학생 장가로 못 갈까 봐서 코가 쉰댓 자나 빠져 갖고 댕길 때는 언제고, 저리 좋아서 야단스레 굴 때는 언제꼬!"
"하 이 사람, 그러잖겠나? 평생소원을 이뤘으니…… 그렇지만 염려 말게…… 신정이 좋기루 구정이야 잊을 리가 있겠나"
"아이갸! 내 차 타고 서울로 가서 한강 철교에 자살로 할라 캤더니, 그럼 그 말만 꼬옥 믿고 그만두오, 예"
"아무렴, 그렇구말구…… 다아 염려 말래두 그래!"
시방 행화는 농담으로 농담을 하고 있지만, 태수는 진정을 농담으로 하고 있다. 그는 초봉이와 약혼을 한 그날부터는 근심과 불안을 요새 하늘처럼 말갛게 싹싹 씻어 버렸다.
그새까지는 근심이 되고 답답하고 할 적마다, 염불이나 기도를 하는 것과 일반으로, 뭘! 약차하거든 죽어 버리면 고만이지, 하고 그 임시 그 임시의 번뇌를 회피하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일을 좀 모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늘 불안과 더불어 그것이 가슴에 서리고 있었다.
하던 것이, 영영 그를 모피하지는 못할 형편인데 일변 한 걸음 두 걸음 몸 바투 다가는 오고 그러자 마침 초봉이와 뜻대로 약혼까지 되고 나니, 그제는 아주 예라! 이놈의 것…… 하고, 정말로 죽어 버릴 결심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해서, 그 무겁던 불안과 노심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을 받은 것이다.
--제일 큰 소원이던 초봉이한테 여학생 장가를 들어 마지막 원을 푼 다음에야 단 하루라도
좋고 이 생에 아무 미련도 없다. 그리고 (그래서 장차 어느 날일지는 몰라도 그날에 임하여 종용 자약하게 죽음을 자취할 테나) 그러나 그날의 최후의 일순간까지라도 이 세상을 깊이 있고 폭넓게, 단연코 즐거운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리하자면 첫째 초봉이로 더불어 맺은 꿈을 최대한으로 호화롭게 꾸며야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많이 뚱땅거리고 술을 마시면서 놀아야 한다. 계집도 할 수 있는 껏 여럿을 두고 지내야 한다. 하니까 행화도 그대로 데리고 지낼 테다.
돈도 도적질도 좋고 빚도 좋고 사기 횡령 다 좋다. 재주껏 끌어 대면 그만이다.
즐겁고 유쾌하자면 그러므로 몸에 고통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병원에를 다니면서 ××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렇듯 태수는, 마치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데 순서를 작정해 논 것처럼, 앞일을 가뜬하고 분명하게 짜놓았다.
해서 그는 진정으로 유쾌하고 명랑했던 것이지 조금도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던 것이었다.
태수와 행화가 주거니 받거니 한참 지껄이는 동안, 형보는 제 생각에 골몰해 있다가 이윽고 끙하면서 일어나 앉더니 태수 앞에 놓인 해태 곽을 집어다가 한 대 피워 물고는, 저도 말에 한몫 끼자고,
"행화가 말루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해두 다아, 속은 단단히 꽁한 모양이지"
"와"
"아, 저렇게 이쁜 서방님을 뺏기니깐……."
"하! 고주사가 이쁘문 거저 이뻤나? 돈을 주니 이뻤제……."
"조건 농담을 해두 꼭 저따우루 한단 말야!"
"와 농담고? 진정인데……."
"그래그래, 말이야 말루 바른말이다…… 그런데, 아무튼 고주사가 장가를 든다니깐 섭섭하긴 섭섭하지"
"체! 고주사가 장가 안 가구 있으문 언제 나한테루 장가온다 카던기요…… 내는 조강지처 바래지도 않소."
"거저 저건 팔자에 타고난 화루곗물건이야!"
"아니, 장주사두 철부지 소리로 하지 않소"
더럭 성구는 행화는 그렇다고 흥분한 것은 아니나, 농담하는 낯꽃도 아니다.
"……기생이문 기생답게 돈이나 벌고 다아 그랄끼지, 아이고 무얼 팔자 탄식을 하고, 첩이 싫다고 남의 조강지처나 바라고 하는 거 내 그만에 구역이 나더라, 제에!"
"흥!"
"그라제…… 또오, 기생년이 뭣이냐 연애한다고 껍덕대는 거, 내 참 눈이 시여 못 보겠더라."
"아니, 기생이라구 연애하지 말라는 법두 있나? 이 사람 자네 너무 겸손허이!…… 괜히 동무들한테 몽둥이 맞일……."
"기생이 연애가 어데 당한 거꼬…… 주제에 연애로 한다는 년도 천하 잡년, 기생년하고 연애하자구 덤비는 놈팽이두 천하 잡놈……."
"아니 어째서……"
여태 싱글싱글 웃고 앉아서 저 하는 양만 보고 있던 태수가, 저도 어디 말을 시켜 본다는 듯이 얼른 거들고 나서던 것이다.
"……이건 내가 되려 행화 말마따나, 차를 타구 서울로 가서 자살을 하던지 해야 할까 보아 응…… 아, 그래두 난 여태 행화허구 연애를 하거니 하구서, 멋없이 좋아하잖앴나!"
"하아! 당신네들이 암만 그란다고, 내 무척 입살을 탈 내오!…… 아예 말두 마소…… 돈 받고 ×××× 연애라 카오…… 뭇놈이 디리 주무르던 몸뚱이제, ××이야 매독이 시글시글해서 그만에 한쪽이 썩어 들어가제, 그런 주제에 연애가 무어 말라죽은 거꼬"
"허!…… 그래두 난 행화한테 연앨 한걸"
"말두 마소…… 글쎄 고주사만 해두, 나하구 살로 섞고 지내문서 달리 초봉이라 카는 색시하고 연애로 해서 장가가지 않소…… 그걸 쥐×도 내가 시기로 하는 기 아니라, 그것만 봐도 기생하고는 연애가 안 되길래 그러는 기 아니오? 이 답답한 되련님, 요!"
"흥! 그래두 난 보니깐……."
태수가 미처 무어라고 대거리를 못 하는 사이에 형보가 도로 말참견을 하고 나서던 것이다.
"……기생들두 버젓하게 연애만 하구, 다아 그러더라."
"그기 연애라요…… 활량이 오입한 거 아니고? 기생이 오입 받은 거 아니고…… 오입 길게 하는 걸로 갖고 연애라 캐싸니 답답한 철부지 소리 아니오? 예? 장주사 나리님!"
"저게 끄은히 날더러 철부지래요! 허어 그거 참…… 그러나저러나 이 사람아, 글쎄 기생두 다아 같은 사람이래서 연앨 해먹게 마련이구, 그래서 더러 연앨 하기두 하구 하는데 자넨 어찌 그리 연애하는 기생이라면 비상 속인가"
"연애로 하문 다아 사람질하나? 체! 요번엔 저 앞에서 보니 개두 연앨 하던데"
태수는 형보와 어울려 한참이나 웃다가, 빈 담뱃갑을 집어 보고는 돈을 꺼내면서 바깥을 기웃기웃 내다본다.
"와"
"담배……."
"아무두 없는데!…… 피죵 피우소."
행화는 제 경대 서랍에서 담뱃갑을 꺼내다 놓는다.
"요전날 뭣이냐, 계집애 하나 데려오기루 한 건 어떻게 했나? 참."
태수가 마침 심부름이 아쉽던 끝이라 무심코 생각이 난 대로 지날말같이 물어 보던 것이다.
"응? 계집애"
형보는 행화가 미처 대답도 할 겨를이 없게시리 딱지를 떼고 덤빈다. 임의롭고 한 행화의 집이니 혹시 제 소일거리라도 생기나 해서…….
"웬 거야? 어떻게 생긴 거야"
"와 이리 안주 없이 좋아하노…… 우리 딸로 데리올라 캤더니 아직 어려서 조꼼 더 크게로 두었소, 자아……."
"허 거 참…… 그러나저러나 인제 어린것이 딸이라니"
"하아! 내 나이 한갑 아니오"
"기생의 한갑"
"뉘 한갑이거나 인제는 딸이나 길러야 늙밭에 밥이라두 물어다 멕여 살릴 기 아니오"
"아서라!…… 남의 계집애 자식을 몇 푼이나 주구서 사다갈랑은 디리 등골을 뽑아 먹을 텐구…… 쯧쯧!"
"등골은 와…… 다아 제 좋고 내 좋고 하제!"
"대체 몇 푼이나 주구서 사오기루 했던가"
"하아따, 장주사는 푼돈 크기 쓰나 보제…… 백 원짜리로 두 푼에 정했소, 정했다가 제도 마단다 하고, 내도 급하잖길래 후제 보자 했소, 속이 시원하오"
양서방네 딸 명님이의 이야기다. 그러나 태수고 형보고, 그들은 명님인 줄도 모르고, 또 코가 어디 붙은 계집아인지 알 턱도 없던 것이다.
"집을 도배를 하나? 원……."
태수가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방바닥에 놓인 양복 저고리를 집어 들고 일어선다.
"좀…… 가보아야겠군."
"어딘데"
"그전 큰샘거리…… 자네두 같이 가세. 오늘 가서 집을 알아 뒀다가, 도배 끝나거든 짐짝 떠짊어지구 가서 있게."
"아니 내가 먼점 집을 들어"
형보는 두루마기를 내려 입으면서 속으로는 어찌하면 일이 이렇게도 군장맞게 잘 맞아떨어지느냐고 좋아한다.
"식모는 벌써 집하구 한꺼번에 구해서 집을 맡겨 뒀는데, 인제 살림을 딜여놓자면 식모만 믿을 수가 없으니까, 자네가 기왕 와서 있을 테고 하니 미리 오란 말이지."
"원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행화두 미리서 집 알이 겸 가세그려…… 아무래도 또 만나서 저녁이나 먹어야 할 테니 아주 나갈 길에……."
태수는 시방 태평으로 집을 둘러보러 가는 것이나, 그와 거의 같은 시각에서 조금 돌이켜, 초봉이도 계봉이와 같이 그 집에를 가게 된 것은 생각도 못 한 일이다.
집은 다른 서두리와 마찬가지로, 탑삭부리 한참봉네 아낙 김씨가 나서서 얻어 놓았다.
태수는 실상 돈만, 같은 솜씨로 소절주 농간을 해서 오백 원을 마련해다가 김씨한테 내맡겨 버리고 기껏해야 청첩 박는 것, 식장으로 쓸 공회당이며, 예식집에 전화로 교섭하는 것, 요릿집에다가 음식 맞추는 것, 이런 것이나 누워 떡 먹기로 슬슬 하고 있지, 정작 힘 드는 일은 김씨가 통 가로맡아서 하고 있다.
그러하되 그는 마치 며느리를 볼 아들의 혼인이나 당한 것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일을 했다.
돈도 태수가 가져다 준 오백 원은 거진 다 없어졌다. 정주사네 집으로 현금 이백 원에, 혼수가 옷감이야 무어야 해서 오륙십 원 어치가 가고, 다시 반지를 산다, 신랑의 옷을 한다, 집을 세로 얻는다, 살림 제구를 장만한다…… 이래서 그 오백 원은 거진 다 없어진 것이다.
인제는 돈이 앞으로 얼마가 들든지 제 돈을 찔러 넣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도 아깝지가 않고 도리어 그리할 수 있는 것이 좋아 신이 났다.
집을 얻어 놓고서 그는 정주사네 집에다가는, 새 집을 사려고 했었으나 마침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서 종차 새로 짓든지 사든지 할 테거니와, 급한 대로 우선 셋집을 이러이러한 곳에다 얻어 놓았다고 혹시 규수가 나올 길이 있거든 마음에 드는지 둘러나 보라고 태수의 전갈로 기별을 했다.
그러자 오늘 마침 초봉이가 계봉이를 데리고 목간을 하러 나가겠다니까 유씨가, 기왕 나갔던 길이니 구경이나 하고 오라고 두번 세번 신신당부를 했다.
초봉이는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기별까지 왔고, 모친도 보고 오라고 해싸니까, 그런 것을 굳이 안 보려고 할 것도 없겠다 싶어 목간을 하고 오는 길에 들러 본 것이다.
새길 소화통(昭和通)이 뻗어 나간 뒤꼍으로 예전 ‘큰샘거리’의 복판께 가서 바로 길 옆에 나앉은 집이다.
밖에서 보기에도 추녀며 기둥이 낡지 않은 것이, 그리 묵은 집은 아니고,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장독대가 박힌 좁지 않은 뜰 앞이 우선 시원스러웠다.
좌는 동향한 기역자요, 대문을 들어서면 부엌이 마주 보이고 부엌에 연달아 안방이 달리고 마루와 건넌방이 왼편으로 꺾여 있다. 그리고 뜰아랫방은 부엌 바른편에 달려 있다.
도배꾼이 셋이나 들끓고, 방이며 마루며 마당이 안팎없이 종이부스러기야 흙이야 너절하니 널려있어 어설프기는 어설퍼도 집은 선뜻 초봉이의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이 집이 그다지 훌륭한 집인 줄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사는 둔뱀이 집에 빗대어보면 훤하니 드높고 뚜렷한 게, 속이 답답하지 않은 때문이다.
식모는 먼저 구해 두기로 했다더니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고, 건넌방에서 도배하던 사내들만 끼웃끼웃 내다본다.
초봉이는 그만 하고 돌아서서 나올까 하는데 계봉이가 별안간 반색을 하여,
"어쩌믄! 꽃밭이 있어!"
하면서 마당 귀퉁이로 뛰어간다.
아닌 게 아니라, 전에 살던 사람의 알뜰한 맘씨인 듯싶게 조그마한 화단이 무어져 있고, 백일홍과 봉선화와 한련화가 모두 망울망울 망울이 맺었다. 코스모스도 서너 포기나 한창 자라고 있고, 화단 가장자리로는 채송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반일(半日)이 지난 뒤라 벌써 시들었다.
화단은 그러나 주인 없이 집이 빈 동안에 하릴없이 거칠었다. 꽃 목이 꺾이기도 하고, 흉한 발자국에 밟히기도 했다. 저편 담 밑으로는 ‘아사가오’ 서너 포기가 타고 올라갈 의지가 없어 땅바닥에서 덩굴이 헤매고 있다.
초봉이는 마음 깐으로는 지금이라도 꽃들을 추어 올리고, 아사가오도 줄을 매주고 이렇게 모두 손질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차마 못 하고 돌아서면서, 집을 들면 그 이튿날 바로 이 화단에 먼저 손을 대주리라고, 꼬옥 염량을 해두었다.
초봉이가 마악 돌아서려니까, 대문간에서 뚜벅뚜벅 요란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이 한 떼나 되는 듯싶게 몰려들었다.
태수가 행화와 나란히 서고 형보가 그 뒤를 따라 처억척 들어서던 것이다.
양편이 다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초봉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봉이는 덤덤하니 서 있고, 형보는 히죽이 웃고, 행화는 의아하고, 태수는 어쩔 줄을 몰라 허둥지둥이다.
그는 뒤를 돌려다보다가 초봉이를 건너다보다가, 뒤통수를 긁으려고 하다가 밭은 기침을 하다가, 벙끗 웃다가 하는 양이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다.
다섯 남녀의 마음은 다 제각기 다르게 동요가 되었다. 얼굴마다 또렷또렷하게 마음을 드러내 놓는다.
초봉이는 행화가 웬일인가 싶어 이상하게도 했으나, 그런 것을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수줍은 게 앞서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가지고 빗밋이 돌아서 있다.
계봉이는 태수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으나 형보를 보고, 저건 어디서 저런 숭한 게 있는고, 또 태수가 웬 기생을 데리고 다니니 필경 부랑자이기 쉽겠다 하여, 눈살이 꼬옷꼬옷하고 이미를 찡그린다.
형보는 속으로 고소해서 죽는다.
‘너 요 녀석, 거저 잘꾸사니야!’
‘바짓가랭이가 조옴 캥기리!’
‘조롷게 생긴 계집애한테루 장가를 들랴면서 기생년을 뀌어차구 다니니 하눌이 알아보실 일이지.’
‘아무려나 초봉이 너는 내 것이니 그리 알아라, 흐흐.’
행화는 초봉이가 초봉이인 줄도 모르거니와, 그가 태수하고 결혼을 하게 된 ‘초봉이’라는 것도 몰랐고, 단지 제중당에서 친한 새악시가 와서 있으니까, 반갑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뽀르르 초봉이한테로 달려든다.
태수는 이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하고, 그러나 이렇게고 저렇게고 간에 무얼 어떻게 분별할 도리도 없어 필경 울상을 한다.
행화는 초봉이의 손목이라도 잡을 듯이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오래간만이오!"
하면서 초봉이의 숙인 얼굴을 들여다본다.
초봉이는 입이 안 떨어져서 인사 대답은 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반가워한다.
"……근데, 웬일이오? 예"
웬일이라니, 행화 네야말로 웬일이냐고 물어 보아야 할 판인데, 그러고 보니 초봉이는 말은 못하고 이쁘게 웃는 턱 아래만 손으로 만진다.
형보는 제가 나서야 할 때라고, 아기작아기작 세 여자가 서 있는 옆으로 가까이 가더니, 아주 점잔을 빼어,
"아, 이 두 분이 진작 아십니까"
"아이갸, 알구말구요! 어떻게 친했다고! 하하."
"원 그런 줄은 몰랐군그랴! 허허허허…… 저어 참, 이 행화루 말하면 나하구 그저 참 그저 다아 그렇습니다. 허허…… 그리구 행화, 이 초봉 씨루 말하면 바루 저 고주사하구 이번에 결혼하실, 응? 알겠지"
"아이갸아! 원 어쩌문!"
행화는 신기하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태수를 돌려다보면서 눈 하나를 째긋한다.
"거 참, 두 분이 아신다니 나두 반갑습니다. 허허…… 나는 이 사람하구 거기까지 좀 갔다 오느라구 이 앞으로 지나던 길인데 바루 문 앞에서 고군을 만났어요."
이만하면 초봉이나 계봉이의 행화에게 대한 의혹은 넉넉히 풀 수가 있다.
그러나 실상 초봉이는 그들이 행화를 데리고 온 것을 계봉이처럼 태수한테다 치의를 하거나 그래서 불쾌하게 여기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좀 이상하게 보고 말았을 따름이다.
초봉이가 겨우 허리만 나풋이 숙여 뉘게라 없이 인사를 하는 체하고 계봉이를 데리고 대문간으로 나가는 것을, 행화가 해뜩해뜩 태수를 돌려다보고 웃으면서 따라나간다.
태수는 형보의 재치로 일이 무사하게 피어 가슴이 겨우 가라앉는데, 행화가 그들을 따라나가니까 혹시 무슨 이야기나 할까 봐서 대고 눈을 흘긴다.
"잘 가시오, 예…… 내 혼인날 국수 묵으로 가께요"
행화는 바깥대문 문지방을 짚고 서서 작별을 한다.
초봉이는 꼭 와달라는 말을,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행화는 그대로 오도카니 서서, 초봉이가 계봉이와 나란히 가고 있는 뒤태를 바라보고 있다. (조금 가다가 계봉이가 해뜩 돌려다보더니, 초봉이한테로 고개를 처박고 무어라고 쌔왈거리는 모양인데, 그건 행화 제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행화는 제중당 전방에서 처음 초봉이를 만나던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그가 좋았고, 그래서 말하자면 서로 터놓고 친해지기 전에 정이 먼저 갔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어저껜지 그저껜지는 마침 제중당에를 들르니까, 웬 낯선 사람이 있고 그는 보이지 않아서 물어 보았더니 며칠 전에 주인이 갈리면서 같이 그만두었다고 해, 그래 심심찮은 동무 하나를 불시에 잃어버린 것 같아서 적잖이 섭섭했어, 하다가 또, 오늘은 생각도 않은 곳에서 뜻밖에 그를 만나, 만났는데 알고 본즉, 그가 바로 초봉이--태수의 아낙이 될 그 색시가 아니냔 말이다.
행화는 그것이 마치, 모르고 구경했던 구경거리를 속내를 알고 나니까 깜빡 신기하듯이 인제야 비로소 일이 자꾸만 희한스럽고 재미가 나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렇게 희한스럽고 재미가 나고 하기나 할 뿐이지, 가령 탑삭부리 한참봉네 안가 김씨처럼 태수를 놓고 초봉이를 질투하는 그런 마음은 역시 조금치도 우러나지 않았다.
질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역, 김씨가 강짜에 가슴을 쥐어뜯기는 하면서도, 일변 그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도맡아 가지고 일을 성취시켜 주듯이 그러한) 호의나 관심도 또한 생기지를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그것도 아주 담담한 정도의 애석한 생각으로 초봉이가 좀 가엾기는 했다.
행화는 보기에 태수라는 사람이 돈냥 있는 집 자식 같기는 해도, 그저 돈이나 있고 생긴 거나 매초롬하고 했지 그 밖에는 별수없는 사내였었다.
그렇다고 그가 태수를 나삐 여기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도대체 행화는 오입판에서 언뜻 만나 잠시 같이 지내는 사내가 하상 좋고 나쁘고가 없었다.
그처럼 두드러지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편벽되게 나빠하는 것도 아니요, 그런즉 태수가 별수가 있거나 말거나 또한 행화 저한테는 아랑곳이 없는 일이었었다.
그러해서, 그러므로 결코 태수에게 대한 관심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초봉이--제 마음에 좋아서 정이 끌리던 초봉이요, 더구나 저렇듯 손도 댈까 무섭게 애련한 처녀가 이건 마구 주색에 푹 빠져 세월 모르고서 덤벙거리는, 게다가 ××이 부글부글 괴는 천하 난봉이지 별반 취할 것이 없는 그러한 고태수의 아낙이 된다는 것이 그래서 좀 애석하고 가엾다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남의 일 내가 와 알아서…… 쯧!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묵지…….’
초봉이 아우 형제가 휘어진 길 저쪽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을 때 비로소 행화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돌아선다. 마침 태수와 형보가 뭐라고 지껄이던 끝에 킬킬거리고 웃으면서 대문간으로 나온다.
10 태풍
마침내 태수와 초봉이의 결혼식은 별일이 없이 끝났다. 대단히 경사스럽고 겸하여 원만했다.
다만 청하지 않은 아낙네들 구경꾼이 많이 와서 결혼식장의 번화와 폐를 한가지로 끼쳐 준 대신 온다던 태수의 모친이 오지를 않은 ‘사건’이 있었을 따름이다.
정주사네는 중난한 미지의 사부인한테 크게 경의를 준비해 가지고 그를 기다렸던 것인데, 웬일인지 온다던 날짜인 결혼식 그 전날에 까맣게 오지를 않았고, 겨우 당일에야 결혼식장으로 전보만, 다른 축전 몇 장 틈에 끼여서 들이 닿았다. 갑자기 병이 나서 못 내려온다는 것이었었다.
태수는 사실 제가 결혼을 한다는 것을, 애오개의 남의 집 단칸 셋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저의 모친한테 알리지도 않았었다. 전보는 서울서 그의 친구가 미리 서신으로 부탁을 받고서 그대로 쳐준 것이다.
정주사네는 사부인의 그러한 불의의 급병이며 사랑하는 자제의 경사스런 혼인에 참례를 하지 못하는 섭섭할 심경이며를 사부인을 위하여 대단히 심통(心痛)해하는 정성을 표하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결혼식이 무슨 구애를 받을 것은 아니요, 그러므로 대망(大望)의 가장 요긴한 대목의 한쪽이 이지러지거나 할 며리가 없는 것이라 마음은 지극히 편안했었다.
식장에는 승재도 참예를 했다.
승재는 제 가슴의 아픔을 상관 않고 일종 비장한 마음으로, 그 소위 거룩하다 한 초봉이를 위하여 그의 결혼을 축하하려고 참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어그러져, 다시 새로운 슬픔을 한 가지 안고 돌아오지 않지 못했다. 초봉이가 지극히 슬퍼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흰 의복에, 흰 면사포에, 흰 백합꽃에, 이러한 흰빛만의 맨드리가 흰 빛이 지나쳐 창백한 것이며, 단을 향하여 고개를 깊이 떨어트리고 천천히 천천히 다만 항거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듯, 한 걸음 반 걸음 걸어나가는 그 고요함이라니, 그것은 마치 소리 없는 엘레지인 듯, 승재는 그만 어떻게나 슬프던지, 시방 초봉이는 정녕코 눈물을 흘리지 싶어 승재 저도 눈이 싸아 하면서 아프고, 차마 그 다음은 고개를 들어 정시(正視)하지를 못했다.
이게 실상은 옥구구요, 사실 초봉이는 누구나 처녀로 결혼식장에 임하여 경험하듯이, 아무것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제법 슬퍼하고 기뻐하고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데, 승재는 부질없이 제 슬픔에 잡쳐 가지고는 그게 초봉이에게서 우러나는 초봉이의 슬퍼함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하고 보니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환멸이다. 물론 그렇다고 승잰들 초봉이가 오늘 결혼식장에서 벙싯벙싯 웃고 명랑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야 아니지만, 그러나 초봉이가 슬퍼하리라는 것도 또한 거기까지는 예측을 못 했던 일이다.
했다가, 초봉이가 신부라고 하기보다도 상청의 젊은 미망인인 듯 초초하고 슬퍼 보여, 그런데 거기에 또 한 가지 생각 못 했던 정경으로는, 초봉이만 빼놓고 그의 가족 전부가 누구 할 것 없이 만족과 기쁨이 싱글벙글 넘쳐흐르는 얼굴들이다.
이때에, 승재는 전날에 머릿속에서 우러러보던 성화는 전연 반대의 것으로 바뀌어, 그림의 전면에는 가족들이 살지고 만족한 여러 얼굴들이 웅기중기 훤하게 드러나고, 초봉이는 저편 뒤로 보일락말락하게 불쌍하게 서서 있던 것이다.
승재는 뜨고 있는 눈에도 선연히 보이는 이 불쾌한 그림을 차마 보지 않으려고 부지중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잔즉 그제는 검은 옷을 입은 ‘희생(犧牲)의 주신(主神)’이 지팡막대로 앞을 가로막으면서,
‘나를 알으켜 내야만 이 길을 비켜 주리라.’
고 짓궂이 수염을 쓰다듬던 것이다.
승재는 식이 끝나기가 바쁘게 자리를 빠져 나왔다. 피로연에는 애초부터 가지 않을 요량이었지만, 만약 누가 잡아 끌기라도 한다면 버럭 성을 냈을 것이다.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승재는, 마음 아름다운 초봉이를 거룩하다고만 막연히 탄복하고 있지 못하고, 슬픈 양자로 시집가던 초봉이를 슬퍼하는 마음이 더했다.
그리하면서야 비로소 그는, 이 앞으로 초봉이의 운명이 자못 평탄하지가 못하고 어떠한 불행이 약속되어 있거니 하는 막연한 불안이며, 정주사 내외의 그 불순(不純)한 정책 혼인에 대한 반감이며가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아무려나 그렇듯 무사히 혼인을 했고, 다시 무사한 열흘이 지나갔다.
절기는, 유월로 접어들어 여름은 적이 완구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침 새벽은 아직도 좋다.
"뚜우."
다섯시 반 첫 사이렌 소리에 (맞추듯) 초봉이는 친가에 있을 때의 버릇대로 퍼뜩 잠이 깨어, 깨던 맡으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일어나 앉으면서 그는 가벼운 경이의 눈으로 방 안을 둘러다본다. 덧문을 닫지 않은 위아래 앞문과 뒤창이 다 같이 희유끄름히 밝으려고 하는데 파아란 덮개를 드리운 전등은 아직 그대로 켜져 있다.
양지로 바른 위에다가 분을 먹여 백지로 덧발라 놓아서, 희기는 희되 가볍지 않고 침착한 바람벽, 윗목으로 나란히 놓인 양복장과 삼층장의 으리으리한 윤택, 머릿장, 머릿장 위에 들뭇하게 놓인 금침 꾸러미, 축음기 등속 모두가 눈에 생소한 것이면서 그러나 어젯저녁에 잠이 들기 전에 보았던 그것들 그대로다.
흐트러진 자리옷에 남색 제병 누비이불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앉았는 초봉이 제가, 보아야 역시 저다. 바로 제 옆에서 자줏빛 제병 처네를 걸치고 누워 자고 있는 고태수가, 장히 낯선 사람은 사람이라도 어젯저녁 잠이 들기 전에 보았던 초봉이 제 남편인 채 그대로다.
이, 다 그대로인 것, 잠을 깨서 보니 오늘도 다 그냥 그대로인 것이 번연한 일이데, 그래도 초봉이는 그것이 이상하고 그리고 신통하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잠이 깨고 난 첫순간에 인식되는 이 현실을, 거진 음성을 내어 중얼거릴 만큼 오늘도 이런가? 하고 가볍게 놀란다.
그러나 그래 놓고는 이어 다음 순간, 오늘도 이런가라니? 그럼 그게 어디로 갔을까 봐? 하고 번연한 노릇을 가지고 그런다고 혼자서 우스워한다.
생각하면 제가 하는 짓이 꼬옥 아기 같고, 그래서 하하하 소리를 내어 웃고 싶다.
잠시 혼자서 웃고 앉았던 초봉이는 이윽고 있다가 이번에는 고개를 꺄웃꺄웃,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이상하다고 태수와 저를 번갈아 보고 또 보고한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을 하고서, 어머니 아버지며 동생들은 다 집에 그대로 있는데 나만 혼자 이 집으로 오고, 와설랑은 이 사람--여기서 자구 있는 이 사람--색시 노릇을 하고, 대체 이 사람이 나하고 무엇이길래 나를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그렇게도 이쁜지 밤이나 낮이나 마구 좋아서 죽고, 그리고 나는 또 그걸 죄다 받아 주고…… 이게 다 무엇 하는 짓인지, 가만히 우습기만 하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저 너머 둔뱀이 사는 초봉인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네 딸이고 계봉이네 언니고 형주 병주네 큰누나고 한초봉인데, 어째서 초봉이가 이 집에 와서 이 사람하고 이럴꼬 암만해도 초봉이 저는 따로 있고, 시방 저는 남인 것만 같다.
--남…… 그래 남! 나말고서 남…….
초봉이는, 이 제 자신이 남으로 여겨지는 자의식(自意識)의 분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그래, 나는, 정말 초봉이는 시방도 저 너머 둔뱀이 우리 집에 있다. 맨 먼저 일어나서 시방 몽당빗자루로 토방을 쓴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짓는다. 안방에서 병주가 사탕을 사달라고 아버지를 졸라 댄다. 어머니는 여태 자고 있는 계봉이더러 부엌에를 같이 나가지 않는다고 나무람을 한다. 짜악 소리 없던 뜰아랫방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만에 뚜벅뚜벅, 승재의 커다란 몸뚱이가 대문간으로 걸어나간다. 때르릉 전화가 온다. 몇 번 만에야 이번은 옳게 승재의 음성이다. 나 승잽니다. 나 초봉이에요. 저어, 무슨 무슨 주사 한 곽만…… 네, 시방 곧……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저편에서도 역시 그러고 싶은지, 잠깐 말이 없다가야 전화를 끊는다. 삐그덕 대문이 열리면서 승재가 뚜벅뚜벅 들어온다. 얼굴이 마주치고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환상 가운데의 웃음이 현실로 육체에로 옮아, 방긋이 웃던 초봉이는 문득 옆에서 태수가 잠덧을 하느라고 돌아눕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든다.
웃던 웃음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별안간 괴로운 고뇌가 좌악 얼굴을 덮는다.
얼마 만인지 겨우, 초봉이는 마디지게 한숨을 몰아쉬고는 강잉해 안색을 단정히 고쳐 가지고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부질없다! 잡념이다! 지나간 일이며 지나간 사람은 씻은 듯이 죄다 잊고, 여기로부터서 인제로부터, 새로운 생애를 북돋아 새로운 생활을 장만하자 했으면서……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한 결혼이든지 간에 일단 결혼을 하기는 한 것인즉, 앞으로의 생활은, 이미 결혼을 했다는 그 사실--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그 사실--을 근거로 하고서 행동을 가져야 할 것이요, 동시에 그 행동은 추궁된 동기나 미련 남은 과거에게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내 스스로가 고태수한테로 약간의 뜻이 기울었던 계제인데, 마침 그의 힘을 입어 집안이 형편을 펴게 되리라고 했기 때문에 와락 그리로 마음이 쏠려 버렸던 것이 아니냐? 그리했으면서 인제는 완전히 외간 남자인 과거의 사람에게 미련을 가짐은 크게 어리석은 짓일 뿐더러, 전부를 내맡기고 평생을 같이할, 이 남편 되는 사람에게 죄스러운 이심(二心)이 아니냐.
초봉이는 적이 개운한 마음으로, 제가 덮었던 이부자리를 걷어 치운다.
초봉이가 이렇듯 생각이 많기는 오늘이 처음인 것이 아니다. 그는 어제 새벽에도 잠이 깨자 오늘처럼 그러했고, 그저께 새벽에도 또 결혼을 하던 이튿날인 그 다음날부터 줄곧 그래 왔었다. 새로운 객관(客觀)에 무심한 낯가림이던 것이다.
사실 초봉이는 승재를 못 잊어하는 번뇌가 있기는 있으면서 그러나 이 새로운 생활환경이 불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가지 두 가지 차차로 기쁨이 발견됨을 따라 명랑한 시간이 늘어 가고 있다. 제웅이 제가 제웅임을 모르고서, 제단 앞에서 제단의 아름다움에 취해 기뻐하는 양임에 틀림이야 없지만…….
하얀 행주치마를 노랑 저고리에 받쳐 입은 남 치마 위로 가뜬하게 두르면서, 초봉이는 옷미닫이를 조용히 열고 마루로 나선다.
바깥은 첫여름의 맑고도 새뜻한 새벽 공기가, 기다렸던 듯 얼굴에 좌악 끼치어 그 상쾌함이 이를데가 없다.
초봉이는 반사적으로 가슴에 하나 가득 숨을 들이쉬었다가 호- 길게 내뿜는다. 이어서 또 한번 두번 신선한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동안, 밤 사이 후텁지근한 방 안에서 텁텁해진 머리와 부자연하게 시달린 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다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문 앞 행길에서는 장사아치들이며 행인들의 잡음도 아직 들리지 않고 집은 안팎이 두루 조용하다. 태수도 그대로 자고 있고, 식모도 여섯시가 되어야 부엌으로 나온다. 건넌방에서 형보가 잠이 깨어, 쿠욱 캐액 담을 배앝으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초봉이가 마루 앞 기둥에 등을 대고 잠깐 생각하는 것 없이 생각에 잠긴 동안 날은 차차로 차차로 밝아 오다가 삽시간에 아주 훤하니 밝는다.
초봉이는 이끌리듯 신발을 걸치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밤이 아니고 밝는 새벽, 그러나 인적이 없는 정적의 틈을 타서 홀로 마당도 걷고, 화단에 손질도 해주고, 하늘도 우러러보고 하는 것이 결혼 이후로 초봉이에게는 매우 사랑스러운 세계였다.
"아이머니, 어쩌믄!"
초봉이는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무심코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황홀해 소곤거린다.
그것은 마치, 이따가 한낮만 되면 전부 활짝 필 모란 꽃밭의 숱해 많은 꽃망울들과 같다고 할는지.
하늘에는, 갓은 맑게 개었고, 한복판으로 조그만씩 조그만씩 한 엷은 수묵색 구름 방울들이 망울 망울 수없이 많이 널려 있는 그놈 봉오리 끝이 제각기 모두 볼그레하니 연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한 말로 그저 좋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휘황하고 번화스런 광경이다.
초봉이는, 고개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하늘의 모란 꽃망울들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제 꽃밭이 생각이 나서, 조르르 화단 앞으로 달려간다.
화단은 그가 혼인하기 전 집을 둘러보러 왔다가 보고서 유념한 대로, 혼인한 그 이튿날부터 손에 흙을 묻혀 가면서 추어 주고 가꾸어 주고 했었다. 그러고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손질을 해주곤 하는 참이다.
촉촉한 아침 이슬에 젖은 꽃떨기들은 모두 잎과 가지가 세차고 싱싱하다. 백일홍은 두어 놈이나 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채송화는 땅바닥을 깔고 누워 분홍 노랭이 빨갱이 흰 놈, 벌써 알쏭 달쏭 꽃이 피었다. 아사가오(나팔꽃)는 매준 줄을 타고 저희끼리 겨룸이나 하는 듯이 고불고불 기어 올라간다.
초봉이는 꽃포기마다 들여다보고 다니면서 밤 사이의 인사나 하는 것같이 웃어 보인다. 그는 사람한테 생소한 정을 먼저 꽃한테다가 들이던 것이다.
초봉이는 화단 옆으로 놓여 있는 댓 개나 되는 빈 화분들을 보고, 오늘은 국화 모종을 잊지 말고 꼭 사다 달래야 하겠다고 요량을 하면서 마악 돌아서는데, 방에서 태수의 음성이 들린다.
"여보오"
태수는 제법 몇십 년 같이서 늙어 온 영감이 마누라를 부르는 것처럼 아주 구성지다. 혼인하던 그날 저녁부터 그랬다.
태수가 초봉이를 이뻐하는 양은 형보더러 말하라면, 눈꼴이 시어서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는 결혼을 했으니 어디 온천 같은 데로 신혼여행을 갔을 것이지만, 만일 여러 날 동안 제 자리를 비워 놓으면, 그 동안 다른 동료가 대신 일을 맡아 볼 것이요, 그러노라면 일이 지레 탄로가 나기 쉬울 테라, 혼인날 하루만 할 수 없이 겨우 빠지고는 바로 그 이튿날부터 출근을 했다.
지점장도 며칠 쉬라고 권고했으나 그는 은행 일에 짐짓 충실한 체하고 물리쳤다.
그러나 신혼여행은 가지 못했어도 그 대신 신혼의 열흘 동안을 힘 미치는 껏 마음을 들여서 재미있게 즐겁게 지내기를 잊지 않았다.
그는 초봉이와 결혼을 하기는 하더라도 역시 전처럼 술도 먹고 행화한테도 다니고, 또 되도록이면 다른 기생도 오입을 하고 다 이럴 요량을 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런 짓을 하나도 시행한 것이 없다.
술 한잔 먹으러 간 법 없고 행화 집도 발을 뚝 끊었다. 은행의 동료들이 붙잡고서 장가턱을 한잔 뺏어먹으려고 애를 썼어도 뺀들 피해 버렸다. 그래서 동료들이며 술친구들은 결혼이 태수를 버려 주었다고 탄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수는 그저 은행에서 시간만 마치고 나면, 곁눈질도 않고 씽하니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래저래 곯는 것은 형보다. 그는 태수가 술을 먹으러 다니지 않으니, 달리 술을 먹을 길은 없고 아주 초올촐하다.
그는 전자에 태수가 돈 만 원을 빼둘러 가지고 도망을 가자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시방도 미운데, 또 술을 사주지 않아서 한 가지 더 미움거리가 생겼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것만이라면 형보는 잊고 말 수도 있고 그런 대로 참을 수도 있고 하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태수를 해칠 악심도 생길 기회가 없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것을, 형보에게 무서운 자극을 주는 게 무엇이냐 하면 초봉이다.
그 마침으로 오도독 깨물어 먹기 좋게 생긴 것을 갖다가 태수가 따악 차지를 하고는 밤과 아침 저녁으로 갖은 재미를 다 보고 하는 것을 형보 저는 건탕으로 건넌방 구석에서 처박혀 끙끙 앓아가면서 듣고 보고 하기라니,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악형을 당함과 같았다.
‘조, 묘하게 생긴 조게, 갈데없이 내 것이 될 텐데!’
그는 조석으로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는다.
‘저, 원수가 얼른 후딱 떼가서 콩밥을 먹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그 동안 몇 번째 했는지 모른다.
사실 그는 가만히 앉았으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아니 이따가 저녁때쯤 태수가 경찰서로 붙잡혀 갈 테고, 붙잡혀 가는 날이면 ‘조것’은 내 것이 될 테라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하루 한시가 참기는 어려워 가는데 대체 결혼식인들 무사히 치를까 싶던 ‘원수녀석’ 태수는 이내 멀쩡하고 붙잡혀 가는 기맥이 없다.
만일 이대로 밀려 나가다가는 두세 달이 걸릴지 반년이나 일년이 더 걸릴지 누가 알며, 하니 그러다가는 형보 저는 애가 밭아 죽든지 급상한이 나서 죽든지 하고 말 것이다.
‘안 될 말이다!’
형보는 마침내 어제 그저께부터 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전짜리 엽서 한 장이면 족하다. 은행으로든지 백석이나 다른 여러 곳 중 어디든지, 사분이 이만저만하고 이만저만하니 조사를 해보아라, 이렇게 엽서에다가 써서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태수 제야 아무 때 당해도 한 번 당하고 말지만 켯속이 되어먹은 것, 그러니 내일 당해도 그만이요, 모레 당해도 그만이요, 일년이나 이태 더 끌다가 당해도 매일반인 것이다.
하기야 태수가 노상 입버릇같이 죽어 버리면 고만이지야고 했으니까, 정말 자살이라도 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자살을 하기만 하면야, 붙잡혀 가서 콩밥이나 좀 먹고는 몇 해 후에 도로 나와 가지고는 제 계집을 빼앗아 갔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썽도 씹히지 않을 것이매, 두 다리 쭈욱 뻗고 초봉이를 데리고 살 수가 있어서 좋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섣불리 밀고질을 했다가는 일이 별안간에 뒤집혀 가지고, 이놈이 어마지두 책상머리에 앉았던 채 바로 수갑을 차게 할 혐의가 없지 않으니, 일을 그저 어떻게 묘하게 제가 먼저 눈치를 채고서 얼른 자살을 해버릴 여유가 있도록, 서서히 저절로 탄로가 나야만 천 냥짜리다.
그런데 그놈 천 냥짜리를 꼭지가 물러 저절로 떨어지기를 입만 떠억 벌리고 기다리잔즉, 이건 마구 애가 말라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그렇다면은, 밀고를 하기는 해도 일이 한꺼번에 와락 튕겨지지를 않고 수군수군하는 동안에 제가 눈치를 채도록, 그렇게 어떻게 농간을 부리는 재주가 없을까
어제로 그저께로 형보의 골똘히 궁리하고 있는 게 이것이다.
태수는 형보의 그러한 험한 보짱이야 물론 알고 있을 턱이 없다. 그는 가끔 무서운 꿈은 꾸어도 깨고 나면 종시 명랑하고 유쾌하다.
오늘 아침에는 그는 자리 속에서 잠이 애벌만 깨어 눈이 실실 감기는 것을, 초봉이가 보이지 않으니까 보고 싶어서, 여보오 하고 영감처럼 그렇게 구수하게 부르던 것이다.
초봉이는 대답을 하고 신발을 끌면서 올라와서 방으로 들어선다. 바깥은 훤해도 방 안은 아직 어슴푸레하다.
태수는 눈을 쥐어뜯고 초봉이를 올려다보면서 헤벌심 웃는다. 초봉이는 아직도 수줍음이 가시지 않아서, 태수와 얼굴이 마주치면 부끄럼을 타느라고 웃기 먼저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태수도 웃고, 초봉이도 웃고, 이렇게 하고 나면 태수는 볼일은 만족히 끝난다. 눈앞에 초봉이가 보였고, 웃어 주었고, 그래서 태수 저도 웃었고…….
"몇 시지"
"다섯시, 반."
"밥 지우"
"아직……."
"헤에."
초봉이는 벌써 열흘째나 두고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속으니까, 인제는 길이 들어서 아주 그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참, 여보"
초봉이가 마악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태수가 전에 없이 긴하게 불러 놓더니,
"……그런데…… 저어 거시키, 한 천 원은 있어야겠지"
태수는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하고, 초봉이는 무슨 소린지 몰라서 뚜렛뚜렛한다.
"……아따, 저어 아버지, 저어 장사하실 것 말야……."
초봉이는 비로소 알아듣기는 했으나 그냥 웃기만 한다. 그는 애초에 일을,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태수가 그것을 해줄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면서 이따가 저녁을 먹는다는 것을 측량하지 않듯이 별반 괘념을 않고 있었던 참이다.
"……일러루 와서 좀 앉아요. 생각났던 길에 그거 상의나 하게……."
태수는 머리맡에 있는 담뱃갑을 집어다가 피워 물면서 베갯머리께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초봉이는 시키는 대로 가서 앉고, 태수는 그의 무릎에다가 팔을 들어 얹는다.
"……한 천 원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떨꼬? 모자랄까"
"글쎄……."
"글쎄라니! 우리 둘이서 상읠 해야지."
"그래두……."
초봉이는 사실은 이래라저래라 하고 같이서 말을 하기가 막상 거북했다.
당초에 그러한 조건으로 결혼을 했고, 그랬대서 저편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얼른 내달아 콩이야 팥이야 하는 건, 새삼스럽게 제 몸뚱어리를 놓고서 흥정을 하는 것 같이나 불쾌한 생각이 들던 것이다.
또, 천 원이라고는 하지만, 천 원이라는 액수가 초봉이한테는 막연한 숫자라, 그놈이 어느 정도의 돈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전에 듣잔즉 몇천 원을 대주겠다고 했다면서 태수는 지금 천 원이라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보 처음에는 몇천 원이라고 했다더니…… 이렇게 따지자니, 그야말로 몸값 흥정의 상지가 될 판이다.
그러니, 내가 그 일에 말참견을 않는다고 대주자던 돈을 안 대줄 이치도 없는 것, 나는 모른 체하고 말려니 굳이 상의를 하고 싶으면 아버지와 둘이서 천 원이고 혹은 몇천 원이고 좋도록 귀정을 내겠지. 이렇대서 초봉이는 빠져 버리자는 것이다.
태수는 처음 혼인말을 건넬 때야, 공중 그저 그놈에 혹하기나 하라고 장사 밑천을 얼마간 대주마고 했던 것이나, 인제 문득 생각하니 그놈 거짓말을 정말로 둘러 놓아도 해롭잖은 노릇일 것 같았다.
첫째 기왕 남의 돈에 손을 대어 일을 저지른 바에야 돈이나 한 천원 더 집어낸다더라도 결국 일반일 바이면 다른 일에나 뒤를 깨끗이 해두는 게 사내자식다운 활협이니, 함직한 노릇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놓고 죽으면 제가 죽는 날 불행히 초봉이를 데리구 같이 죽지 못하더라도 초봉이는 그 끈으로 저의 부친을 의지삼아 그다지 몹쓸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니, 그도 함직한 노릇이다.
그런데 또 보아라! 그 말을 꺼내 놓으니, 초봉이가 사양은 하면서도 저렇게 은근히 좋아하질 않느냔 말이다. 초봉이를 즐겁게 해줌은 바로 내 즐거움이거든, 이날에 천 원은 말고 만 원도 헗다! 만 원이라도 내게는 종잇조각 하나…… 흥! 만 원은 말고 백만 원을 먹었은들, 어느 누구 시체를 감히 벌할 자 있느냐? 쾌하다! 시원타!…… 오냐, 수일 간 기회를 보아서 몇천 원이고…….
이것은 물론 일이 뒤집히는 마당이면 정주사의 장사 밑천도 태수가 대어 준 것이 탄로가 날 것이고, 따라서 도로 다 뺏기게 될 것이지만, 태수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래두가 무어야? 우리 둘이서 얘길 해가지구……."
태수는 초봉이의 무릎을 잡아 흔들면서 조른다.
"……응? 그래야 할 거 아냐"
"전 모르겠어요!"
초봉이는 그만해두고 일어서서 뒷걸음질을 친다.
"이잉! 그럼 어떻게 해"
"저어, 아버지허구…… 아버지허구 상의해 보세요."
"아아, 아버지하구…… 그건 나두 알지만 말야……."
"그럼 됐지요, 머……."
"그래두 우리 아씨한테 한번 상의는 해야지, 헤헤."
"몰라요!"
아씨란 말에 질겁해서 초봉이는 얼굴이 빨개진다.
"아하하하, 그럼 아씨 아닌가"
"몰라요! 난 나갈 테에요……."
초봉이는 뒤로 미닫이를 열고 나가려다가,
"……오늘은 국화 모종 꼭 사가지구 오세요"
"국화 모종? 그래그래, 오늘은 꼭 사가지구 오께."
"다섯 포기만……."
"겨우…… 한 여남은 포기 사다가 심지."
"화분이 다섯 개뿐인걸"
"화분두 사지"
처억척 대답은 하면서도 태수는, 너는 누구더러 보라고 국화를 심자 하느냐고, 아무 내평도 모르고서 어린아이처럼 좋아만 하는 초봉이가 측은하여 다시금 얼굴이 치어다보였다.
초봉이가 부엌으로 내려간 뒤에 건넌방에서 형보가 잠이 깨었다는 통기를 하듯 쿠욱 캐액 담을 배앝더니,
"고주사 기침하셨나"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일상 하는 짓이라 태수는,
"어-"
하고 궁상맞게 대답을 한다.
형보는 속으로, 어디 이 녀석을 오늘은 좀 위협이라도 슬그머니 해주리라고 벼르면서 유카다 자락을 펄럭이면서 안방으로 건너온다.
부엌에서 형보의 음성을 듣던 초봉이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오싹한다. 초봉이는 형보가 처음부터 섬뜩하더니 끝끝내 그가 싫고, 마치 커다란 구렁이라도 한 마리 건넌방에 가 사리고 있는 것만 같아 시시로 무서운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저를 타이르고, 물론 겉으로는 흔연 대접을 해왔었고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갈수록 무서움이 더하면 더했지 가시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초봉이가 형보의 음흉한 속내를 눈치채거나 했던 것은 결코 아니고 다만 그의 외양이 그 중에도 퀭한 눈방울이 너무도 무서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태수는 회회 감기는 자줏빛 명주 처네를 걸친 채 팔을 내뻗어 불끈 기지개를 쓴다. 형보는 물향내와 살냄새가 한데 섞여 취할 듯 이상스럽게 물큰한 규방의 냄새에 코를 사냥개처럼 벌씸거리면서 너푼 들어앉는다. 그는 이 냄새를 매일 아침같이 맡곤 하는데, 그러노라면 초봉이의 몸뚱이가 연상이 되고 하여 그 흥분이 괴로우면서도 맛이 있었다. 그는 그래서, 별로 할 이야기가 없더라도 아침이면 많이 문을 여닫아 그 냄새가 빠져 버리기 전에 안방으로 건너오곤 한다.
"나는 어제 저녁에 신흥동(유곽) 갔다 왔다, 제기."
"그러느라구 새벽에 들어왔네그려…… 망할 것!"
"왜 망할 것야? 느이끼리 하두 지랄을 하구 그러니, 어디 견딜 수가 있더냐…… 늙두 젊두 않은 놈이 건넌방에 가 처박혀서."
"……면 돈 안 들구 좋았지? 하하하하."
"네라끼!…… 허허허허, 그거 원 참!"
"하하하하."
"허! 그거 참…… 그러나저러나 간에 여보게, 태수"
형보는 부자연하다 할 만큼 농담하던 것을 쉽게 거두고서 점잖스럽게 기색을 고쳐 갖는다. 태수는 무언고 하고 형보를 바라다보면서 그 다음을 기다린다.
형보는 천천히 담배를 피워 물고는 제법 소곤소곤, 그리고 다정하게,
"다아 이건 조용한 틈이길래 하는 말이네마는, 대체 자네는 어쩔 셈으루다가 이렇게 태평세월인가? 응"
"무엇이"
태수는 첫마디에 알아듣고도, 그래서 이 사람이 왜 방정맞게 식전 마수에 재수없이 그따위 소리를 꺼낼까 보냐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래 짐짓 못 알아들은 체하던 것이다.
"못 알아들어? 저 거시키, 소소……."
"으응…… 쯧! 할 수 있나!"
태수는 성가신 듯 씹어 뱉는다.
"할 수 있나라께? 그래, 날 잡아잡수우 하구 그냥 앉아서 일을 당할 테란 말인가? 그 일을? 그 흉한……."
"당하긴 왜 당해? 괜찮어, 일없어."
"일없다? 안 당한다"
형보는 가볍게 놀란 제 기색을 얼른 가누면서,
"……아니, 그러면 혹시 어떻게 모면할 도리라두 채려 놨나…… 그렇다면야 여북 좋겠나!……그래 어떻게 무슨 묘책이 있어"
"쯧! 있다면 있구, 없다면 없구."
태수는 심정이 상하구 귀찮아서 말대꾸가 아무렇게나 나가고 흥이 없던 것인데, 그것이 속을 모르는 형보가 보기에는 태수가 어느 구석인지 타악 믿는 데가 있어 안심을 하고서 아무 걱정을 않는 걸로만 보이던 것이다.
분명 무슨 도리가 있는 눈치다. 대체 그렇다면 요 녀석이 어디를 가서 무슨 꿍꿍이속을 부렸기에? 응 하하! 오옳지, 옳아, 그랬기가 십상이겠군…….
형보는 속으로 가만히 무릎을 쳤다.
그는 퍼뜩 탑삭부리 한참봉네 아낙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태수와 관계가 이만저만찮이 깊었던 것이며, 그런데 그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형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지라, 제 품안에서 놀던 태수를 제가 서둘러서 그처럼 장가까지 들여 줄 호기가 있는 계집이 거드면, 제 돈 몇천 원을 착 내놓아 애물의 위급을 감장시켜 주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형보는 예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제 일이 그만 낭패라, 그런 것을 모르고서 해망만 하고 있었다니 그럴 데라고는 없다.
그러나 그는 짐짓 무얼 알아맞히겠다는 듯이 고개를 깨웃깨웃, 한참이나 앉았다가,
"야 이 사람아! 그렇게 어물어물하지 말구서, 이얘길 까놓구 하게그려? 응…… 궁금해 죽겠구먼서두……"
"무얼 그래…… 다급하면 죽어 버리는 것두 다아 수가 아닌가!…… 쥐 잡는 약이 없나? 잠자는 약이 없나…… 강물두 깊숙해서 좋구, 철둑도 선선해서 좋구."
"지랄 마라!…… 자살두 다아 할 사람이 있지, 자넨 못 하네."
"흥, 당하면 못 하리"
"그럴 테면 세상에 누렁옷 입구 쇠사슬 차구 똥통 둘러메구서 징역살이할 놈 없게…… 다아 자살두 제마다 못 하길래, 그 고생 그 창피 당해 가면서 징역을 살구 있지!"
"듣기 싫어!"
태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돌아눕는다. 그는 형보가 말하는 대로 제가 방금 누렁옷을 입고 쇠사슬을 차고 똥통을 둘러메고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꼴이, 감옥의 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눈앞에 선연히 보이던 것이다.
형보는 의심이 풀리지 않은 채, 더 물어 보지는 못하구 속으로 저 혼자만 궁리가 깊어 간다.
태수는 조반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은행에 출근을 했다. 그러나 아침에 형보가 지껄이던 소리가 자꾸만 생각이 나고, 그것이 마치 식전 마수에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꺼림칙했다.
그래서 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아 근래에 없이 이마를 찌푸리고 겨우 시간을 채웠는데, 네시가 다 되어 이 분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에 농산흥업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농산흥업회사라면 태수가 위조한 소절수로 예금을 축내 주고 있는 그 세 군데 중의 한 군데이다.
농산흥업회사에서 당좌계에 있는 사람을 대달라는 전화가 왔다고 급사가 말하는 소리에 태수는 반사적으로 흠칫 놀랐다. 피는 한꺼번에 심장으로 쏟혀 들고 얼굴은 양촛빛같이 해쓱, 등과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태수의 의사와는 독립하여 다만 근육의 반사일 따름이다.
‘기어코 오늘이 왔나!’
당연한 것을 기다리고 있던 양으로, 이렇게 생각이라고 할는지 각오라고 할는지, 마음은 다뿍 시쁘듬했다. 그런만큼 (실상은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은 유리같이 맑고 뛰던 가슴이 이내 가라앉았다.
"나를 찾어"
우정 장부를 걷어 치우던 손을 멈추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말로 씹어 본다. 음성은 약간 목이 갈리는 것 같았으나 그다지 유표하진 않다.
"……나를 찾더냐? 당좌곌 찾더냐"
"당좌곌 대달래요."
"우루사이나(에잇 성가셔)! 시간두 다아 됐는데…… 왜 그린다던"
"모르겠어요, 거저 대달라구만……."
"가만있자아!"
태수는 추움춤하면서 시계가 네시를 지나 버리기를 기다려, 급사더러 수통의 냉수를 길어 오라고 쫓아 버리고는 전화통을 집어 든다.
"네에."
하는 대답을 따라 저편에서,
"여기는 흥업회산데요…… 우리 당좌에 조금 미상한 데가 있어서요……."
하는 게 절박한 힐난이 아니고 정중한 상의다.
태수는 속으로 역시 그렇겠지야 하고 생각하면서 음성을 낮추어,
"네에! 아, 그러세요…… 에 또, 에- 당좌계는 시간이 다 돼서 나가구 없는데요. 무슨 일이신지요? 웬만하면 내일 아침에 일찍……."
"네에, 그래두 괜찮지만…… 그럼 지점장두 나가셨나요"
"네에."
"하하하!…… 그럼 내일 다시 걸겠습니다…… 머 별일이야 없겠지만, 조금 미심한 데가 있어서요."
전화 끊는 소리를 듣고 태수도 신호를 울리고서 돌아서려니까, 마침 맞게 급사가 냉수를 가져와 준다.
태수는 냉수 한 곱뿌를 맛있게 다 들이켰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다. 생각이란 다른 게 아니고, 지금부터 나가서 일을 차릴 계획이다.
시방 나가면서 ‘쥐 잡는 약’을 하나만 사고, 그리고 전처럼 과실과 과자를 사서 들고, 흔연히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는 초봉이가 웃으면서 맞아 준다. 오후를 초봉이를 데리고 재미있게 놀고, 저녁 후에는 잠깐 나온다. 행화네 집을 다녀서 김씨를 찾아간다. 요행 탑삭부리가 없거들랑 두어 시간 구회를 풀어도 좋다. 그렇다. 신정이 구정만 못하다더니 역시 구정이 그립기는 한 것인가 보다.
옳아! 우리가 서로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그리하는 게 좋겠지. 만약 탑삭부리가 있으면 그야 할수 없지. 그저 혼인한 뒤에 처음이니까 수인사 겸 들른 체하고 돌아오지.
빌어먹을 것 그 여편네까지 행화까지 다 데리고 초봉이와 넷이서 죽었으면 십상 좋겠다. 그렇게 했으면 통쾌할 테지만, 괜한 욕심이고.
김씨한테 들렀다가 돌아오면서는 정종을 맛좋은 놈을 한 병 사서 들고 집으로 온다. 초봉이더러는 안주를 장만하라고 시키고 그 동안에 소절수를 농간하던 도장과 소절수첩을 없애 버린다. 없애나마나한 것이지만 기왕이니.
그러고 나서 안주가 되거들랑 초봉이를 술상머리에 앉혀 놓고서 한잔 마신다. 초봉이도 먹인다.
열두시까지만 그렇게 놀다가 자리에 눕는다. 세시만 되거든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서 비로소 초봉이를 일으켜 앉히고 실토정 이야기를 죄다 한다. 그리고 나서 같이 죽자고 한다.
초봉이가 싫다고 하면 그러거들랑, 네 속을 보느라고 그랬다고 웃으면서 안심을 시켜 잠이 들게 하지. 잠이 들거든 무어 허리띠 같은 것으로.
가만있자! 영감님 장사 밑천을 마련해 주지 못했지? 좀 안됐다. 돈 천 원이나 빼내서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조금만 돌이켜서 생각이 났어도 좋았지.
그러나 뭐, 인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러면 다 됐나
아뿔싸! 이런!…… 어머니를! 어머니를 어떻게 한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나는 도적놈이요, 못된 놈이요. 그러고도 불효한 자식!’
태수는 마침내 생각지 못했던 회심에 다들려 후- 길게 한숨을 내쉰다.
‘쥐 잡는 약’을 사서 포켓 속에 건사를 하고도 태수는 그런 것은 남의 일같이 천연스럽게 과실 바구니와 과자 꾸러미를 양편 손에다 갈라 들고 허둥허둥 집으로 달려든다.
"여보오"
그는 대문 문턱을 넘어서기가 바쁘게 초봉이를 부르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하나 가득 흩트린다.
결코 오늘의 최후를 짐짓 무관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요, 절로 그래지는 것이다.
초봉이는 마침 마당에서 화분들을 벌여 놓고 흙을 장만하느라고 손에 어린아이같이 흙칠을 하고 있다. 형보도 옆에서 초봉이와 같이 흙을 주무르느라고 끙끙하고 있다.
초봉이는 발딱 일어나서 웃으면서 태수가 들고 온 과일 바구니와 과자 꾸러미를 받는다.
"고주사 오늘은 좀 늦으셨네그려"
"장주사 수고하네그려"
태수는, 무릎이 어깨까지 올라오게 쪼글트리고 앉아 있는 형보를 들여다본다.
"수고랄 게 있나!…… 거, 아주머니가 고운 손에다가 흙을 묻히구 그리시길래 내가 보기에 민망해서 지금……."
"그럼 나두 해야지."
태수는 팔을 걷으면서 초봉이를 돌려다보고 벙긋 웃는다. 초봉이는 손에 받았던 것을 마루에 가져다 놓고 도로 내려오다가 겨우 국화 모종을 안 사가지고 온 것을 깨우치고서 흙이 대래대래 묻은 조그마한 손을 태수한테로 내민다.
"국화 모종……."
"아뿔싸!"
태수는 무릎을 탁 치면서 혀를 날름날름한다. 그는 그런 중에도 시방 제 앞에다가 내미는 초봉이의 손이 흙이 묻은 것까지도 어떻게나 이쁜지, 형보만 없는 데라면 꼬옥 잡아다가 조몰조몰 주물러 주고 싶었다.
"……깜박 잊었어! 어떡허나"
"차라리 내한테 시키시지"
형보가 저도 빠질세라고 한몫 거들고 나선다.
"……그 사람은 그런 심부름 시켜야 개울 건네다가 잊어버린답니다."
"그럼 아재가 내일 오시는 길에 사다 주세요"
아재란 건 물론 형보더러 하는 말인데, 태수가 그렇게 부르라고 시켰던 것이다.
"아냐, 내일은 꼭 잊잖구서 사가지구 오께, 허허허허."
태수는 말을 하다가 그만 꺼얼껄 웃어 버린다. 그러나 아무도 웃는 속을 몰랐고, 형보가 농담을 하는 체,
"정치게 효도할려구 드네!"
"네라끼 망할 것!"
"너무 그러지들 말게! 자네들이 너무 정분이 좋은 걸 보면 나는 괜히 심정이 나군 하데."
"아재두 살림하시지요"
"돈두 없거니와 여편네가 있나요? 어디."
"행화"
"행? 화…… 허허허허, 어허허허허."
초봉이는 형보가 과히 웃어 쌓는 것이, 혹시 무슨 실수된 말을 했나 해서 귀밑이 발개진다. 태수는 형보와 마주보지 않으려고 슬쩍 돌아선다.
그때 마침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에 있는 계집아이가 대문 안으로 꺄웃이 들여다보면서 마당으로 들어선다.
"오오, 너 왔니"
태수가 김씨가 저를 부르러 보냈겠지야고 짐작을 하고, 그렇다면 막상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계집아이는 태수와 초봉이더러 인사를 하고 나서, 고주사나리 저녁 잡숫고 잠깐 다녀가시란다고,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고 전갈을 한다.
"오냐, 참봉나리가 그러시던"
"네에."
계집아이는 김씨가 시킨 가늠이 있는지라 그대로 대답을 한다.
그래서 초봉이는 그저 그런가 보다고 심상히 여기고 말았을 뿐이지 깊이 유념도 하지 않았다.
실상 또 태수와 계집아이가 그렇게 꾸며 대지를 않았더라도 초봉이는, 그저 김씨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잠깐 오라는 것이겠지 했을 것이지 그 이상 달리 새김질을 하거나 의심을 하거나 그럴 내력이 없었다.
그러나 형보는 그렇질 않았다.
그는 오늘 저녁에 김씨가 분명코, 태수가 돈 범포낸 그 조건에 대해서 앞일 수습을 상의할 것이고, 혹은 벌써 그 동안에 돈 준비가 다 되어서 몇천 원 착 태수의 손에 쥐어 주기까지 할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까 아침에 태수가 수상한 눈치를 보이던 일을 미루어 보더라도, 역시 그게 틀림없으리라고, 달리는 더 의심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은’
‘밑질 건 없으니 칵 질러 버려라!’
형보는 마침내 혼자 물어 보고 혼자 대답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떡거렸다.
일곱시가 조금 지나서 형보는 저녁을 먹던 길로 볼일이 있다고 힝 나가더니, 여덟시가 못 되어서 도로 들어왔다. 여느때 같으면 그는 태수가 초봉이와 같이 축음기를 틀어 놓고 일변 먹어 가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 오라고 청을 하거나 말거나 안방으로 덤벙 들어앉아 저도 한몫 끼였을 판이었었다.
그러나 전에 없이 얼굴빛이 해쓱하여, 기분이 좋지 않다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불을 끄고 누워 버렸다.
태수는 저녁을 먹으면서 초봉이더러 싸전집에 잠깐 들러 보고, 마침 또 서울서 친한 친구가 왔으니까 나갔던 길에 찾아보고 올 텐데, 그러자면 자정이 지날지도 모르겠은즉 기다리지 말고 일찌감치 먼저 자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저녁 후에는 전대로 한참 재미나게 놀다가 아홉시가 되는 것을 보고 유카다를 입은 채 게다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서 그는 저녁 먹을 때 초봉이더러 이르던 말을 더 이르기를 잊지 않았다.
행화는 마침 놀음에 불려 나가고 집에 있지 않았다. 태수는 그것이 도리어 잘되었다 싶었지 섭섭한 줄은 몰랐다. 그는 기다리고 있을 김씨의 무르익은 애무가 차라리 마음 급했다.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까지 와서 우선 가게를 살펴보았다. 빈지를 죄다 잠갔고, 빈지 틈바구니로 들여다보아도 캄캄하니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이만하면 가겟방에도 탑삭부리 한참봉이 있지 않은 것은 알조다.
그래서 안심을 하고 나니까, 그제야 저 하던 짓이 우스웠다.
‘왜, 내가 이렇게 뒤를 낼꼬? 다 오죽 잘 알고서 데리러 보냈을까봐서.’
그렇기는 하면서도 웬일인지 모르게 전처럼 마음이 턱 놓이지를 않고, 어느 한구석이 서먹서먹해지는 듯싶은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안대문께로 돌아가서 지쳐 둔 대문을 밀고 들어서서도,
"헴, 아저씨 주무세요"
하고 짐짓 기척을 내보았다.
김씨는 태수의 기척이 들리기가 무섭게 앞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연둣빛 처네를 걸친 윗도리를 내놓으면서 말은 없고 웃기만 한다.
태수는 그의 하고 있는 맵시가 작년 초가을 맨처음 그날 밤과 꼭 같다고 자못 회포 있어 하면서 성큼 방으로 들어선다.
김씨는 이내 웃으면서 옆에 와서 앉으라고 요 바닥을 도닥도닥 가리킨다.
태수는 그리로 가서 털 숭얼숭얼한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펄씬 주저앉는다. 그는 새삼스러운 긴장과 아울러 임의롭기 큰마누라한테 온 것같이나 마음이 놓임을 스스로 느꼈다.
눈치 빠른 계집아이가 건넌방에서 나오더니, 대문을 잠그고 태수의 게다를 치워 버린다.
"그래, 새루 장가간 재민 좋더냐"
김씨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태수의 빙그레니 웃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기 어르듯 한다.
"인전 장가를 갔으니깐 어른인데, 그래두 이랬냐 저랬냐 해"
"아이고 요것아!"
김씨는 손가락으로 태수의 볼때기를 잡아 쌀쌀 흔들다가 그대로 끌어다가는 ×× ×××. 기왕이니 한바탕 깍 물어 떼고 싶은 것을 차마 아직 참던 것이다.
"……장갈 들더니 재롱 늘었구나!"
"헤헤."
"얼굴이 많이 상했다가? 젊은 것들 장갈 딜여 주면 이래서 걱정이야!…… 그렇지만 너무 그리지 마라, 몸에 해루니라."
"보약이나 좀 지어 보내 주덜랑 않구서!"
"오냐, 날새 내가 지어 보내 주마. 그렇지만 좀 조심해야 한다!…… 그 애가 온 그렇게두 이쁘더냐"
"응."
"하하하! 고것이야!…… 그렇지만 너 오늘 저녁은 내 것이다? 약속 알겠지? 한 달에 두 번은 내한테 오기루 한 거."
"응, 그렇지만 열두시까지유"
"이건 누가 쫓겨가더냐"
"그런데 참, 오늘 저녁에 탑삭부리가 없을 줄은 어떻게 미리 알구서"
태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이 착 놓이지를 않던 것이다.
"그거…… 그런 게 아니라 오늘이 그년 생일이라나? 그리니깐 여니때두 아니구 갈 건 빠안하잖아? 그래 나두 늦기 전에 미리서 다아 요량을……."
"그런 걸 글쎄 난 미심쩍어서 가겔 다아 딜여다 봤지! 헤헤."
"그런 걱정을랑 말구서 맘놓구 다녀요, 내가 오죽 알아서 할까 봐"
탑삭부리 한참봉은 불도 켜지 못하고 가겟방에 웅숭그리고 누워서 지리한 시간을 기다린다.
작은집에서 열시에 나왔으니 하마 열한시는 되었음직한테 종시 시계 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청승맞은 짓을 하고 있느니라 싶어서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일변 겁이 나기도 했다. 가만히 팔을 뻗쳐 본다. 머리맡에 놓아 두었던 굵직한 다듬이 방망이가 손에 잡힌다. 조금 마음이 든든해진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아까 저녁때 일곱시가 마악 지났을 무렵에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다.
항용 거저 쌀을 보내 달라는 전화겠거니 하여, 네에 하고 무심히 대답을 하는데, 저편에서는 딱 바라진 음성으로 이상스럽게 다지듯,
"여보시오, 한참봉이신가요"
"네에."
"확실히 한참봉이시지요"
"글쎄 그렇단밖에요…… 뉘십니까"
"네에, 내가 누구라는 건 아실 것 없습니다. 또오 성명을 대디려두 모르실 게구…… 그렇지만, 나는 한참봉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네에……."
한참봉은 겉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눈을 끄먹끄먹한다.
그는 선뜻 돈을 어디로 가져오라는 협박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르면 몰라도 협박전화치고서 이렇게 음성이 공손할 리가 없다. 또 그뿐 아니라 한참 당년에 ×××을 모집한다면 ×××들이 사방에서 날뛰던 그런 때라면 몰라도 지금이야 그런 건 옛말이지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말씀하시지요"
저편에서 목을 가다듬더니,
"……에, 다름이 아니라, 당장 오늘 저녁에 큰 재앙(災怏)이 한 가지 한참봉 댁에 생기게 된 것을 알으켜 디릴려고 전화를 거는 겝니다……."
"재애앙"
"쉬위! 떠들지 말구…… 자, 자세히 들으십시오…… 아뿔싸! 지금 가게에 누구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없지요!"
"그럼 맘놓구서 이야길 하지요…… 한데 한참봉 오늘 저녁에 작은댁엘 가시겠다요"
"네에"
탑삭부리 한참봉은 깡총 뛴다.
"하하! 그렇게 놀라실 건 없습니다. 없구…… 에, 이따가 저녁을 자시구 나서 가게를 디린 뒤에 …… 자세 들으십시오!…… 아주 천연스럽게 작은댁으루 일단 가신단 말씀이지요. 댁의 하인이나 부인한텔라컨 말루든지 작은댁에 꼭 가시는 체하셔야 하십니다, 네"
"네에!"
대답이 아니라 바로 신음 소리다.
"그래 그렇게 작은댁으로 가셨다가 말씀이지요. 열한시쯤 되거들랑 어딜 좀 댕겨오시겠다구 하구서 도루 큰댁으로 오십시오. 오시되, 미리서 가게의 빈지문 하나를 안으루다가 걸지 말구서 고리를 뱃겨 놨다가는 글러루 들어오시든지, 혹은 아녈 말루 담을 넘어서 들어오시든지 아무튼 쥐두 새두 모르게 들어오십니다. 아시겠지요"
"네에!"
"그렇게 살끔 들어와서는 그댐엘라컨 가만가만 발자욱 소리두 내지 마시구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들어가서."
"그-래서요"
탑삭부리 한참봉은 어느결에 다뿍 긴장이 되어 가지고 성미 급하게 재촉을 한다.
"네에…… 그래 그렇게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가설랑은 거저 두말 없이 거저, 안방문을 열어 제치십시오. 그러면 다아 아실 겝니다."
"아니, 여보시오!"
"글쎄 더 묻지 마십시오, 그러면 다아 아실 겝니다."
"아니, 여보시오!"
"글쎄 더 묻지 마십시오. 더는 묻지 마시구, 그렇게 하실랴거든 해보시구, 또 내 말이 곧이들리지 않거들랑 고만두시는 게구…… 그러나 종차 후횔랑은 마십시오."
"글쎄 여보시오!"
"여러 말씀 하실 게 없습니다. 그리구 또 한 가지……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조금치두 무슨 이해상관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건 참 어찌 생각 마십시오."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저편은 전화를 끊어 버린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로소 정신이 들기는 했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전화통에다가 매달린 채 돌아설 줄을 모른다.
이것은 형보가 정거장 앞에 있는 자동전화를 이용한 것임은 물론이다.
형보는 흔히 신문에서 보는, 샛서방〔間夫〕과 계집이 본서방에게 들키는 현장에서 한꺼번에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와 같은 요행수를, 오늘 밤 일의 결과에다가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아울러 태수가 제 집을 비워 두는 시간을 넉넉히 이용하여 사전(事前)에 우선 초봉이를 조처해 둘 요량이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태수가 김씨를 찾아가서 그 몇천 원의 돈을 받으리라는 초저녁 시간을 지정하지 않고, 느직이 열한 시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 저녁의 일은 가령 허사가 되더라도 태수를 법망에 얽어 넣을 방법이 얼마든지 종차로 있으니까 밑질 게 없지만, 혹시 뜻대로 일이 되어서 태수가 죽기만 한다면 미상불 형보한테는 호박이 절로 떨어지는 판이었었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윽고 수화기를 걸고 신호를 울린 뒤에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도무지 맹랑해서 어떻다고 이를 데가 없고, 허황한 품으로는 누구의 장난 같았다. 그러나 장난치고는 너무나 심한 장난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그러한 장난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분명코 장난은 아니고.
그러면, 작은여편네가 어떤 놈하고 배가 맞아서 오늘 저녁에 나를 따돌리려고 꾸며 낸 흉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이러한 경우에 만만한 건 남의 첩인지 미상불 그럼직하기는 했다.
그러나 실상인즉 작은집에서는, 오늘이 제 생일이라서 제 동무들까지 몇을 청해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이어 밤새도록 놀아 젖힐 채비를 차리고 있고, 그래서 조금 전까지 벌써 세 번째나 어멈을 내려보내서 제발 오늘은 가게를 일찍 드리고 올라오시라고 기별을 했는데야!
그러니 혹시 여느때라면 몰라도, 오늘 저녁 일로는 작은집에다가 그러한 치의를 할 계제가 되지 못하고.
그 끝에 자연한 순서로 큰댁 김씨에게 의심이 갈 것이지만, 혹은 평소에 너무 믿음이 도타웠던 탓인지 아직은 미처 그의 생각은 나지도 않고.
‘그러면은’
무엇이란 말이냐고, 고개를 두루 깨웃거리나 통히 종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른체하고 말자니 꺼림칙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게 어떤 놈이길래, 원 어떻게 해서 내 집안 사정이랄지, 또 더구나 오늘 밤에 작은집에를 간다는 것은 아직은 나 혼자만 염량을 하고 있는 터인데 그것을 제가 알아냈느냔 말이다. 귀신이 아니고는 그렇게 역력히 알아맞히진 못할 것이다.
‘귀신!’
아닌 게 아니라 귀신의 장난 같기도 했다. 하다고 생각을 하니, 별안간 몸이 으시시하면서 뒤가 돌려다보였다.
그러나 실상 장성 센 사람이면 흔히 그러하듯이, 탑삭부리 한참봉도 젊어서 이래로 귀신이라는 것을 믿지를 않고, 그래서 남들이 귀신을 보았네 귀신이 뭐 어쨌네 하는 소리를 시뻐하고 곧이듣지 않던 사람이다. 오늘 일도 귀신의 작희로 돌리지 않았다.
‘에잉! 쯧! 어떤 미친놈이 미친 개소리를 씨월거린 걸 가지구서.’
그는 하다하다 못해, 화풀이 받을 사람도 없는 역정을 내떨면서, 인제는 그따위 허황한 소리는 생각도 않는다고, 고개를 내흔들고 발을 쿵쿵 굴렀다.
그러나 그는 제정신 말짱해 가지고서 그 괴상한 전화의 최면에 본새 있게 걸려들고 말았다. 우선 여덟 시쯤 되어서 가게를 드릴 적에, 마치 무엇한테 씌인 것처럼, 빈지문 고리 하나를 벗겨 놓았으니…….
가게를 드리고, 돈 궤짝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벽장에다가 넣고 자물쇠를 잠그고 대문을 잘 신칙하라고 김씨더러 이르고 한 뒤에, 내키지 않는 대로 작은집으로 갔다.
작은집에서는 은근한 젊은 계집들도 많이 모이고, 잔치도 걸어서, 이를테면 꽃밭에 들어앉은 맥이로되 도무지 흥도 나지 않고 술도 맛이 없고, 재앙이라고 전화로 들리던 쨍쨍하니 딱바라진 그 음성에만 정신이 쏠렸다.
열 시도 못 되어 그는 조바심이 나서 자리를 일어섰다. 열한시라고 했지만, 차라리 미리서 가서 숨어 앉아 기다리자던 것이다.
작은집은 물론이고, 취한 계집들이 모두 붙잡는 것을 스래까지 갔다가 열두시에 도로 오마고, 그리고 문득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요새 미친개가 퍼져서 조심이 된다고 둘러대고는, 다듬이 방치 하나를 손에 쥐고 나섰다. 첫째 몸이 허전했고 겸하여 만약 거동이고 눈치고 수상한 놈이 어릿거리든지 하거든 우선 어깻죽지고 엉치고 한대 갈겨 놓고 볼 작정이던 것이다.
그는 혹시 누구한테 띌까 하여, 조심조심 큰집으로 내려와서 집 바깥을 휘익 한바퀴 둘러보았다.
대문은 잠겼고, 안에서도 아무 기척이 없고, 집 바깥으로도 별반 수상한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우선 안심을 하고는, 가게 앞으로 돌아나와서 고리를 벗겨 둔 빈지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섰다.
어둔 속에서 방금 무엇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 간이 콩만했다.
겨우 어둔 속에서 더듬더듬 기다시피 가겟방으로 들어가서 앉고 나니 어쩐지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리고는 시방 눈을 끄먹끄먹,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음풍이 도는 듯 텅 빈 가게의 캄캄 어둔 방에서, 더듬는 손에 방치가 잡히는 것이 조금 든든하기는 했으나 시방 자꾸만 더해 가는 불안과 공포와 초조한 마음은 그만 것으로는 가실 수가 없었다.
곤란한 것은 마음뿐이 아니다. 방이 추운 것은 아니지만, 그만해도 벌써 오십객인데 까는 요도 없이 맨구들 바닥에 가서 누워 있자니 뼈가 배기고 찬기운이 올라와서 견딜 수가 없다.
시계는 밉살머리스럽게도 칠 줄은 모르고서 또옥 뚜욱 뚜욱 따악, 한껏 늑장을 부린다.
눈을 암만 크게 떠야 보이는 것은 없고, 땅 속 같은 어둠뿐이다. 이런 때는 담배라도 한대 피웠으면 좋겠는데, 성냥을 그으면 불빛이 샐 테니 그도 못 한다.
먹고 싶은 담배도 맘대로 못 먹는 일을 생각하면 슬며시 부아가 난다.
‘이놈! 어쨌든지 도적놈이기만 해봐라, 이놈을…….’
담배 못 피운 화풀이까지 할 작정으로 별러 댄다.
그러나 떼어 놓고 도적이려니 해본 것이나 암만해도 도적놈은 아닌 것 같다. 가령 도적이 들기로 한다면 가게로 들 것이지 안방이 무슨 상관이며, 하기야 안방에도 마누라의 패물이야 돈냥 없는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안방을 앉아서 지키랄 것이지, 생판 아무도 모르게 숨어 들어와설랑은 열한 점에 안방 문을 열어젖히라니, 이건 바로 샛서방을 잡는 수작이란 말인가
‘샛서방? 샛서방’
‘원, 그게 어디 당한 소리라고!’
그는 비로소 아낙 김씨에게로 그러한 치의가 가는 것을, 그만 펄쩍 뛰면서 당치도 않다고 얼른 생각을 돌린다. 그는 그만큼 아낙을 믿어왔고, 따라서 그러한 의심이 나는 것만도 몸이 떨리게 무서웠다.
그러나 생각을 말자면서도 생각은 자꾸만 그리로 쏠린다. 늙은 남편, 첩살림, 젊은 아낙, 샛서방, 과연 어째 지금이야 생각해 냈는고 싶게 근리하다.
‘그래도 설마하니 원…….’
제일 근리한 짐작인데 그러나 제일 싫고 제일 상서롭지 않은 일이라서 부득부득 아니라고 하고 싶어 애를 쓴다.
‘설마야 우리 여편네가…….’
천하의 계집이 다 그러더라도 우리 여편네만은 없을 테라는 것이다.
‘옳아! 그자 말이 재앙이라고 하지를 않았나’
재앙, 그렇다면 어떤 놈이 혹시 겁탈이라도 하려는 것을 알려 주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사리가 닿지 않는 것이, 그렇다면 조심을 하라든지 역시 안방을 지키라고 할지언정, 열한 시에 아무도 몰래 방문을 열어젖히라니.
별안간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나오려고 한다.
그놈을 꾸욱 삼키고 있노라니까, 이번에는 아주 밉상으로 콧속이 짜릿하면서 재채기가 터져 올라온다. 이놈만은 영 참을 수가 없어,
"처."
하고 겨우 조금만 내쏟는다. 아무래도 감기가 오는 모양이다.
가게 밖으로 마침 쿵쿵쿵 누군지 발자국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혹시 하고 귀를 바싹 기울인다. 그러나 발자국 소리는 그대로 콩나물고개로 사라진다. 그 끝에 문득, 이건 어느 몹쓸 놈이 정말로 장난을 한 것을 시방 내가 이렇게 병신 짓을 청승스럽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놈이 시방쯤은 허리를 잡고 웃고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고 혼자 있기도 점직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끝에는 다시, 남의 우스개가 되어도 좋으니 제발 어떤 놈의 실없는 장난에 넘어간 것이었으면 하고 마음에 간절히 바라진다.
겨우겨우, 가게에서 낡은 괘종이 씨르륵 목 쉰 기침을 하더니 떼엥 뗑 늘어지게 열한 번을 친다.
우선 죽다가 살아난 것만큼이나 반가워 한숨이 몰려나온다.
그는 살금살금 가게 바닥으로 내려서서 신발은 신지 않고 우뚝 일어섰다. 가게 앞으로 사람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 아무 기척도 없다.
방치를 바른손에다 단단히 훑으려 쥐고서 발 앞부리로 가만가만 걸어 안으로 난 판자문께로 다가선다.
이놈이 소리가 나고라야 말리라고 걱정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밀어 본다.
아니나다를까, 처음에는 곧잘 말을 듣더니 필경 삐꺽 하면서 대답을 한다. 움칫 놀라 손을 움츠리고 귀를 기울인다. 한참 기다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다시 문틈을 비집기 시작한다.
그놈을 몸뚱이 하나 빠져나갈 만하게 열기까지에는 이마와 등에서 땀이 배어 올랐다.
그는 우선 고개만 문틈으로 들이밀고 휘휘 둘러본다. 안방이고 건넌방이고, 다 불은 켰어도 짝소리도 없다. 마당도 어둡기는 하나 별다른 기척이 없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또 한번 휘휘 둘러본다. 역시 아무 이상도 없다.
사풋사풋 안방 대뜰로 올라섰다. 희미한 속에서도 마누라의 하얀 고무신이 달랑 한 켤레 놓인 것이 보인다.
그는 마누라가 혼자서 외로이 꼬부라트리고 잠이 들어 있을 것을 문득 생각하고,
‘어허뿔싸! 이건 내가 정녕 도깨비한테 홀려 가지고 괜한 짓을…….’
아무래도 부질없고 쑥스런 짓인 것 같아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 버릴까 한다. 제일에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자고 있는 마누라한테 미안해 못 할 노릇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기왕 이렇게까지 해놓고서 그냥 돌아서기는 싫었다. 그는 한 걸음 섬돌로 올라선다.
기왕 내친걸음이니 영영 속은 셈 대고 시키던 대로 다 해보아야 속이 후련하지, 그러잖고는 아예 꺼림칙할 것 같았다.
또 지금 나간댔자 잠그지 못하는 가게를 비워 놓고서 작은집으로 갈 수가 없으니 가겟방에 누워서 하룻밤 고생을 해야 하겠은즉, 그도 못 할 노릇이다.
그는 마침내 마루로 올라가서 윗미닫이의 문설주에 가만히 손끝을 댄다. 그 손이 바르르 떨렸으나 감각은 못 했다.
‘두말없이 그저 안방문을 열어 젖히십시오!’
이렇게 하던 말이 역력히 귀에 울리면서 머리끝이 쭈뼛한다. 그 서슬에 무심코 그는 방치를 든 바른손 손아귀에 불끈 힘을 준다. 이것은 제 자신이 의식지는 못했어도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적을 노리는 체세였었다.
가슴 두근거리는 것을 진정하느라고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고 나서, 마침내 드르륵 미닫이를 열어 젖혔다. 열어 젖히면서 불쑥 머리를 들이미는데, 아랫목으로는 당연한 의외의 광경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낭자하던 향락의 뒤끝을 수습지 않은 채, 고단한 대로 풋잠이 든 두 개의 반나체, 얼기설기 서로 얼크러진 두 포기씩의 다리와 다리, 팔과 팔…….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것을 보고, 알아내고, 분노가 치밀고 하기에 반초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움칫 멈춰 서던 것도 같은 순간이요,
"으응!"
떠는 듯, 황소 영각 같은 소리를 치면서, 손에 쥐었던 방치는 어느결에 머리 위로 번쩍 치들고 아랫목을 향하여 우레같이 달려든다. 그 덤벼드는 위세의 맹렬함이란 하릴없이 선불을 맞은 멧돼지다. 그게 그런데 숱한 수염이 하나 가득 곤두서고, 불길이 뻗쳐 나오는 두 눈은 휙 뒤집히고 한 얼굴이니, 이 앞에서야 우선 떨지 않고 배길 자 없을 것이다.
피곤한 끝에 가냘피 들었던 잠이 먼저 깬 것은 김씨다. 잠이 깨고 눈을 뜨는 그 순간 겁에 질리어 벌떡 일어나 앉았을 뿐이지, 그 이상은 더 아무 동작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한 초쯤 늦게 일어난 것으로 해서 태수는 겨우 머리칼 한 오라기만한 여유를 얻기는 했다고 할 것이다.
산이라도 떠받을 무서운 힘과 분노의 덩치가 바윗더미 쏠리듯 달려들면서,
"이히년!"
사나운 노호와 동시에 벼락치듯,
"따악."
골통을 내리갈긴다.
김씨의 골통이다.
"아이머닛!"
하는 소리도 미처 다 지르지 못하고,
"캑!"
하면서 그대로 폭 엎드러진다.
태수는 김씨보다 아랫목으로 누워 있었고, 또 일 초만 더디게 일어난 것으로 해서 탑삭부리 한참봉의 최초의 일격이 우선 김씨의 머리 위로 내리는 순간을 탈 수가 있었다.
"따악."
방치가 김씨의 머리를 내리치는 순간, 태수는 나는 듯이 몸을 뛰쳐, 열린 윗미닫이로 돌진을 한다. 그것이 만일 트랙에서라면 최단거리의 세계기록을 깨트리고도 남을 초인적(超人的) 스타트라고 하겠다.
돌진을 하여 탑삭부리 한참봉의 팔 밑을 빠져 마루로 솟쳐 나가는 태수는,
"사람 살리우-"
하면서 짜내듯 외친다. 몇 시간 뒤에는 자살을 할 그가 진실로 사람 살리라고 외치던 것이다. 그는 미처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설사 생각했다 하더라도 역시 그와 같이 몸을 피할 것이요, 사람 살리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이 창피한 죽음을 벗어나 명예로운 자유의 자살을 하려는 의사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요, 오직 동물적 본능인 것이다.
우선 몸을 빼쳐서 나왔으나 이어 등뒤로부터 무거운,
"이히놈!"
소리가 뒤통수를 바투 덮어 누를 때, 태수는 방에서 솟쳐 나오는 여세로 하여, 몸을 바른편으로 돌려 마당으로 피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서 그냥 다급한 대로 건넌방 샛문을 향해 돌진을 계속한다. 미닫이의 가느다랗게 성긴 문설주가 몸뚱이로 떠받으면 만만히 뚫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건넌방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의 절박한 여망이던 것이다. 그러나, 건넌방 샛문을 옳게 떠받자면, 그래도 삼십도 가량은 바른편 쪽으로 몸을 더 틀었어야 할 것인데, 세찬 타성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건넌방 그 샛문의 왼편에 놓여 있는 육중한 뒤주 모서리를 번연히 제 눈으로 보면서도, 어찌하지를 못하고 앙가슴으로다가 우지끈 들이받았다.
들이받으면서,
"어이쿠!"
소리를 지르면서 상반신이 앞으로 와락 솟쳤다가는 이어 뒤로 쿵 마룻바닥에 주저앉는다.
이만만 했어도, 태수는 집에다가 사다 둔 ‘쥐 잡는 약’을 먹을 필요가 전연 없었을 터인데 뒤미처,
"이놈!"
하더니 방망이는 연달아 그를 짓바수기 시작한다.
"이놈!"
하고,
"따악."
하면,
"어이쿠!"
하고,
"이놈!"
하고,
"퍼억."
하면,
"아이쿠!"
하고, 그래서,
"이놈!"
"따악, 퍼억."
"어이쿠!"
이 세 가지 소리가 수없이 되풀이를 한다.
건넌방에서는 식모와 계집아이가 문을 반만 열고 서서 겁에 질려 와들와들, 아이구머니 소리만 서로가람 외친다.
안방의 그 이부자리 위에서는, 앞으로 엎어진 김씨의 몸뚱이가 쭈욱 펴진 채 손끝 발끝만 가느다랗게 바르르 떤다. 치달아오르는 극도의 분노가 모질게 맺힌, 최초의 일격은 그놈 하나로 넉넉히, 배반한 아내의 골통을 바숴뜨리기에 족했던 것이다.
피는 흥건히 흘러, 즐거웠던 자리를 부질없이 싱싱하게 물들여 놓는다.
문경 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치로 다 나간다는 아리랑의 우상(偶像)은, 그러나 가끔가다 피의 사자(使者) 노릇도 하곤 한다.
아닌밤중에 여자들의 부르짖는 비명과 남자의 거친 노호 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처음이야 구경삼아 한두 사람이 모인 것이나, 이어서 셋 넷, 이렇게 여럿이 모이자 그들은 집안의 형세가 졸연치 못한 것을 알고는 단순한 구경꾼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지 못했다.
그들은 무언의 동맹을 맺었다. 잠긴 대문을 흔들었다. 마침내 소리를 쳤다.
대문이 요란히 흔들릴 때에야,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로소 정신이 들어 방치질을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금 정신이 나는 듯이, 발 아래에 나가동그라진 태수의 몸뚱이를 내려다본다.
태수는 모로 빗밋이 쓰러져서 꽁꽁 마디숨만 쉬고 있지, 몸뚱이며 사지는 꼼짝도 않는다. 얼굴로 유카다로 역시 피가 흥건히 흐르고 젖고 했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상하다는 듯이 한참이나 태수의 그 꼴을 들여다보다가 몸을 돌이켜 우르르 안방으로 들어간다.
안방에 엎으러진 김씨의 몸뚱이는 인제는 손끝 발끝을 가늘게 떨던 것도 그만이고, 아주 시체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김씨의 시체 옆으로 가까이 가서, 이윽고 들여다보더니 차차로 눈을 흡뜬다.
그는 단지,
‘이렇게 되었나!’
하고 이상해하는 양이다.
당장 눈앞에 송장이 두 개나 나가동그라져 있고, 그리고 제 손으로다가 죽이기는 죽였으면서, 그러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아무리 해도 제 자신이 저지른 일인 성싶지가 않던 것이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피 묻은 방치를 힘없이 떨어뜨리면서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서 있다.
그리고 미구에 순사가 달려와서 고랑을 채울 때까지도 그렇게 서서 있었다.
한편 형보는…….
그처럼 전화로 탑삭부리 한참봉한테 고자질을 하고는, 시치미를 뚜욱 떼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노라니까 가슴은 좀 두근거려도, 오래 끌던 일이 아무려나 인제는 끝장이 나나 보다고 속이 후련했다.
그는 안방에서 태수와 초봉이가 재미나게 놀고 있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오냐, 마지막이니, 맘껏 놀아라.’
하고 싱그레니 웃었다.
아홉 시가 되어 태수가 게다를 딸그락거리고 나가는 것을 그는,
‘이 녀석아, 그게 바로 지옥으로 난 길이다.’
하고 또 웃었다.
태수를 따라나갔던 초봉이가 대문을 잠그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형보는 어둔 속에서 혼자 싱글벙글 웃으면서, 저 혼자 속으로 주거니 받거니 야단이다.
‘인제는 네가 처억 내 것이란 말이지’
‘아무렴, 그렇구말구.’
‘그러면…… 오늘로 아주 내 것이 될 테라’
‘물론 오늘 저녁으로 조처를 대야지…… 그래서 인감증명을 내놓아야, 딴 놈이 손도 못 댄단 말이었다.’
미리서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제 말대로 이미 제 것이 되어 있는 초봉이를 바로 안방에다가 혼자 두어 두고서 그냥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초봉이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 시간을 기다리자니 무던히 지리하기는 했어도, 그는 끄윽 참고 기다렸다.
아홉시가 지나고 다시 열시를 치는 소리가 들리자, 이만하면 초봉이가 잠도 들었으려니와 가령 태수가 오늘 밤에 무사해서 돌아온다더라도 한 시간은 여유가 있겠은즉, 꼬옥 좋을 때라고 생각했다.
‘불시로 돌아오면…… 또 나중에 알고 지랄을 하면’
‘이놈! 꿈쩍 마라, 이렇게 엄포를 해주지…… 오늘 저녁에 무사히 돌아온대도, 내일 아니면 모레는 때갈 텐데.’
형보는, 태수가 설혹 잡혀가서 문초를 받더라도 소절수 심부름을 해준 형보 제 이름은 결단코 불지 않으려니 하고, 그의 처음 다짐한 말도 말이거니와 의리를 믿고서 의심을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그는 악독할지언정 둔한 편이지, 결코 영리하거나 치밀하진 못한 인물이다.
그래 아무튼 만사태평으로 유카다 앞을 여미면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선다. 조용하다.
"아즈머니 주무시우"
막상 몰라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 본다.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는 살금살금 걸어서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간다. 귀를 기울여 본다. 고요한 방 안에서 확실히 잠든 숨소리가 사근사근 들려온다.
형보는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살그머니 미닫이를 열고서 우선 고개만 들이민다.
오십 와트의 전등을 연초록 덮개로 가린 은근한 불빛 아래, 흐트러진 타월 자리옷과 남색 제병 누비이불 위에다가 아낌없이 내던진 하얀 넓적다리며, 머리칼이 몇 낱 흐트러져 내린 평화로운 잠든 얼굴, 이것을 구경하는 것만도 형보한테는 우선 중값이 나가는 향락이다.
초봉이는 초저녁에 태수가 나간 뒤로 바로 잠이 들었었다. 그는 오래간만에 혼자 자리에 누워 보니, 사지가 마음대로 뻗어지고, 후텁지근하지 않고 한 것이 어떻게나 편한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마음놓고 편안히 잠이 들었던 것이다.
억척이요 얌전하다는 그의 모친 유씨는 딸을 학교에 보내는 승벽은 있어도, 딸더러 시집을 가서 남편 없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은 가르칠 줄을 몰랐었다.
형보는 이윽고 싱긋 웃고는 방으로 들어서서 미닫이를 뒤로 소리없이 닫는다. 초봉이가 깨서 앙탈을 하더라도 그것을 막이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는 조심조심 걸어 내려가서 전등 스위치를 잡는다.
그는 아까운 듯이 한번 더 초봉이의 잠든 맵시를 내려다보다가는 딸꼭 전등을 꺼버린다.
초봉이가 경풍이 나게 놀라 몸을 뒤틀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할 제는 억센 손바닥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바로 귓바퀴에서 재빠른 소리로 숨가쁘게,
"쉿! 떠들면 태수가 죽어…… 태수는 시방 싸전집에서, 그 집 여편네하구 자구 있으니깐…… 그리니깐 내가 나가서 한마디만 쑤시면 태수는 남편 한가한테 맞아죽는단 말이야. 태수를 죽이잖으려거든 괜히 꼼짝 말구 가만히 있어야 해!"
초봉이는 경황중이라 이 말을 조곤조곤 새겨서 그 진가를 분간할 겨를은 없으면서도, 그러나 거듭쳐 놀라운 것만은 사실이어서 다만 정신이 아찔했다. 하는 동안에 형세는 여전하고 조금도 유축이 없다.
대체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연 할 바를 알 수가 없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어머니는 이런 것도 아시련만!’
하는 생각이 언뜻 났으나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다.
아무리 용을 썼자 일은 그른 줄 알면서도 그는 몸을 뒤틀어 댄다. 그러나 종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소리는 어쩐지 지르기가 무섭기도 하려니와, 지르자 해도 입이 막혔다.
원 세상에 이럴 도리가 있을까 보냐고 안타깝다 못해 죽을 힘을 다 들여 가까스로 몸을 한번 비틀면서,
"으으응."
소리를 쳤으나 미처 힘도 쓰다가 말고 고만 그대로 까무러쳐 버렸다.
초봉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침 열두시를 쳤다. 그는 아까 일이 꿈결같이 아득하여 도무지 정말인가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하다 못해 혹시 정말로 꿈이나 아니었던가 하여 새삼스럽게 정신이 드는 것이지만, 그러나 아득할 따름이지 분명히 꿈은 아니요 어엿한 생시다. 생시여서 몸은 그렇듯 (허망한 게 곧잘 미덥지도 않은 순간의 소경사이었음에 불구하고 결과되어 나타난 사실은 너무도 똑똑하여) 절대로 무시해 버리거나 씻어 버리거나 하지를 못할 영원한 더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초봉이는, 어둠 속에서도 제 몸뚱이가 내려다보이는 것 같아 오싹 진저리를 친다. 더럽고 께림한게 사뭇 구역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가마솥의 쩌얼쩔 끓는 물에다가 몸뚱이를 양잿물이라도 두어 가면서 푹푹 삶아 냈으면 한다. 아니 그것도 시원칠 않으니, 드는 칼로 어디를 싹싹 도려 냈으면 한다.
그러나 생각하면 가사 그 짓을 한다고 한들 엎지른 물이 도로 담아질 것이 아니요, 하니 속 후련할 것은 없을 노릇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는고’
조지듯 스스로 묻는 말에, 기다리고 있던 듯이 대번 서슴지 않고 나오는 것이,
‘죽어야지!’
하는 대답이다.
죽어야 하겠고, 죽어서 잊어버리기나 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음을 견뎌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한 개의 순수한 결벽이다. 이 결벽으로 하여 죽음을 뜻한 초봉이는, 죽어야 할 또 하나의 다른 이유를 깨닫고,
‘옳다! 죽어야 한다!’
하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다. 그제야 정조라는 것--남의 아낙으로서 정조를 더럽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봉이는 손으로 어둔 발치를 더듬더듬, 벗어 놓았던 옷을 걷어 입고 도사리고 앉아 한 팔로 턱을 괸다.
죽기로 (결심이 아니라, 죽어야 한다고) 하고 나니 비로소 뭇 생각과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생김새부터 흉악한 저놈 장가놈한테 이 욕을 보다니, 그러고서 속절없이 죽다니, 당장 식칼이라도 들고 쫓아가서 구렁이같이 징그럽고 미운 저놈을 쑹덩쑹덩 썰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물끈물끈 치닫는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랬다가는 내 부끄러운 것이 내가 죽은 뒤에라도 드러나고 말 테니, 또한 못할 노릇이다. 속시원하게 원수풀이도 못 하다니 가슴을 캉캉 찧고 싶다.
대체 이이는 어떻게 된 셈인고? 장가놈이 말한 대로 한참봉네 집엘 가서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
설마 그럴라구? 장가놈이 괜히 꾸며 댄 허튼 소리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그따위 소리에 가뜩이나 기가 질려 가지고는 맘껏 항거라도 해대질 못했던고!
분한지고! 이 원한을 못 풀고 그대로 죽다니. 내가 소리 없이 이렇게 죽어 버리면 어머니 아버지며 동생들은 오죽 놀라고 설워하리.
어느결에 눈물이 맺혀 내리고 절로 울음이 솟아쳐 나오는데, 그럴 때에 마침 요란히 대문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초봉이는 울음을 꿀꺽 삼키면서 반사적으로 일어서기는 했으나, 대답을 하고 나올 염을 못 하고 그대로 선 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남편을 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가슴이 맞방망이치듯 두근거리고, 어째서 진작 목을 매든지 찻길이나 선창으로 나가든지 하질 않고서 여태 충그리고 있었더란 말이냐고, 당장 목을 맬 밧줄이라도 찾는 듯이 방 안을 둘러본다.
그러자 연거푸 대문을 흔드는 사이사이에,
"여보오 여보, 문 좀 열어요!"
하면서 부르는 음성이며 말투가, 분명 태수가 아닌 것을 퍼뜩 깨달았다.
초봉이는 남편이 돌아온 게 아닌 것이 섬뻑 마음이 놓이더니, 그러나 이어 그와는 다르게 새로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다.
그러면 장가놈이 하던 소리가 빈말이 아니고 무슨 탈이 난 것인가, 이런 의심이 들면서 그는 더 지체할 경황이 없이 가만가만 대문간으로 밟아 나온다.
"누구세요"
초봉이의 음성은 저도 알아보게 떨렸다.
"이게 고태수 집이래지요"
대문 밖에서 되묻는 건 갈데없는 순사의 말씨다. 마침 철그럭 하는 칼소리까지 들린다.
인제는 장형보의 하던 소리와, 그리고 무슨 탈이 났다는 것은 더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돼서 혹시 장가놈이 내가 까무러쳤던 사이에 나가서 뒤로 무슨 흉계를 꾸몄다면 모르지만, 그러나 나를 그래 놓고서 억하심정으로 그렇게까지 할 며리도 없는 게 아닌가
또 몰라, 그놈의 짓이니…… 그렇지만 그 동안이 얼마나 된다고 어느 겨를에 나갔다가 들어오며…….
초봉이는 머릿속이 혼란한 채 밖에서 재촉하는 대로 대문을 열었다.
역시 시꺼먼 순사가 외등불 밑에 우뚝 섰다.
"고태수, 집에 왔소"
"네, 저어……."
"응…… 그러면 저어, 오늘 저녁에 개복동 한서방네 집에, 그 집 안집에, 에 또, 간 일 있소"
"네에."
"응, 응……."
순사는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덱끄덱하더니,
"……그러면 저기 도립병원에 가보시우."
"네에"
초봉이가 소리를 짜내면서 대문 밖으로 쏟쳐 나가는데 순사는 벌써 돌아서서 가고 있고, 여태 순사 뒤에 가 가려 섰다가 조그맣게 나서는 게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의 계집아이다.
"오! 너!…… 그래서"
초봉이는 숨차게 외치고, 계집아이도 초봉이 앞으로 와락 달려든다.
"저, 이 댁 서방님이……."
계집아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내다가 힐끗 순사를 돌려본다. 순사는 돌려다보지도 않고 멀찍이 가고 있다.
"그래서"
"이 댁 서방님이, 저어……."
"으응, 그래서"
"저어, 아주 돌아가시게……."
"머어"
초봉이는 정신이 아찔하여 몸이 휘둘리면서 쓰러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대문 문지방에 등을 지이고 선다. 그는 머릿속에 더운 물을 들어부은 것 같아 욱신거리기만 했지 잠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아니, 웬일인가요"
등뒤에서 게다 끄는 소리가 달그락거리더니 형보가 뛰어나온다. 그는 허둥지둥하기는 해도, 아까 안방에서 건너간 뒤에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대문간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를 대강 다 알아듣고도 물론 짐짓 의뭉을 피우던 것이다.
"……너 웬일이냐"
형보는 초봉이가 넋을 잃고 섰는 것을 힐끔 돌려다보다가 계집아이 앞으로 다가선다.
"저어, 이 댁 서방님이 다아 돌아가시게 돼서, 저어 병원으로……."
"머어? 어째"
형보는 허겁스럽게 놀라는 체하는 것이나 속으로는, 일은 썩 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좋아 죽는다.
"……거 웬 소리냐…… 대체 어떻게 된 일인데"
"저어, 우리 댁 나리가……."
"응, 느이 댁 나리가"
"이 댁, 서방님을……."
"그렇게…… 저어 뭣이냐, 돌아가시게 해놨단 말이지"
"네에."
"네에라께…… 아니 글쎄……."
"그리구 우리 아씨는 아주 그 자리서 돌아, 돌아가시구……."
계집아이는 비죽비죽 울기 시작한다.
형보는 여편네 김씨까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뜻밖이었으나 역시 그럴듯하기는 했다.
초봉이는 어느 틈에 큰길로 두달음질을 치고 있다.
"그럼 너는 느이 집으루 가보아라. 이 댁 아씬 내가 모시구 병원으루 갈 테니……."
형보는 계집아이더러 말을 이르고서, 초봉이를 따라가느라고 유카다 자락을 펄럭거린다.
초봉이는 제가 병원엘 간다기보다도 등뒤에서 딸그락거리고 따라오는 형보한테 쫓기어 반달음질을 치고 있다.
‘이놈아, 이 천하에 무도한 놈아! 네가 이놈 나를…… 그리고 내 남편을…….’
초봉이는 돌아서서 이렇게 저주를 하고, 그의 죄상을 낱낱이 헤어 가면서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그럴라치면 길가던 사람, 잠자던 사람 할 것 없이 숱한 사람이 모이고, 그 여러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형보를 죽도록 때려 주고 걷어차고 할 것이고…….
게다를 신었어도 사내의 걸음이라, 몇십 간 가지 못해서 형보는 초봉이와 나란히 섰다.
"자동차라도 얻어 탑시다"
형보는 혹시 지나가는 자동차라도 없나 하고 앞뒤를 휘휘 둘러본다.
초봉이는 물론 들은 체도 않고 씽씽 가기만 한다.
"허, 그거 원!"
형보는 따라오면서 혼자말로 자탄하듯 두런거린다.
"……원 그럴 도리가 있더람!…… 그거 원 참!…… 그래, 어쩐지 전에두 보기에 위태하더라니!…… 글쎄, 결혼두 하구 했으면서 그런 위태한 짓을 할 게 무어람? 사람이 좀 당돌해서…… 당돌해서 필경 일을 저질렀어!"
실상 초봉이는 태수의 생명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애가 타기는 했어도, 일변 어찌 된 사맥인지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것은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간에……."
형보는 인제는 바로 대고 초봉이더러 이야기를 건넨다.
"……실상, 고군이 오래잖아서 아무래도 죽기는 죽을 사람이었으니깐요……."
‘무어야’
초봉이는 종시 못 들은 체하기는 해도 속으로는 대꾸를 않지 못한다.
"……은행 돈을 수우수천 원을 범포를 냈지요. 남의 소절수를 위조해 가지구설랑……."
‘이 녀석이, 한단 소리가!’
"……그래 그것이 오래잖아 탄로가 날 테니깐, 그럴 날이면 창피하게 징역살이를 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린다구 그랬더라우. 오늘 아침에두 당신이 부엌에 내려간 새 나하구 그런 이얘길 한걸…… 행화두 태수가 죽는닷 소리는 육장 들었습넨다. 행화두 실상은 태수가 상관하던 계집인데 것두 여태 모르구 있습디다그려……"
‘무엇이 어째’
"……저의 집이 재산가요, 과부의 외아들이요, 전문학교 출신이요, 그게 다아 당신허구 결혼할 려구 꾸며 낸 야바우 속이라우, 야바우 속…… 보통학교만 겨우 마치구서 서울 ××은행 본점 급사루 들어갔다가 십 년 만에 행원이 된걸, 흥!"
‘아니, 무엇이 어째’
"……그리구 즈이 집은, 집두 터두 없어서 즈이 어머닌 머 어디라던가, 남의 셋방을 얻어 가지구 산답니다. 그날 혼인날 말이오, 내려오지두 않은 걸 보지? 내려오기는커녕, 혼인한다는 기별두 않은걸!"
‘거짓말 마라, 이 녀석아!’
"……이 군산바닥엔 그 사람네 본집이 어덴지 아는 사람이라구는 하나두 없어요. 당신한테두 아마 가르쳐 주지 않었으리다……."
‘이 녀석아, 누가 네한테 그따위 개소릴 듣쟀어’
초봉이는 형보가 미운데다가 일이 안타까워서 그러는 것이지, 역시 형보의 말이 다 곧이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말이오, 다아 속내평이 그래서, 당신두 억울하게 속아 가지구, 말하자면 신세를 망친 셈이지요!"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깐, 그저 지나간 일일랑 다아 잊어버리구서, 맘을 가라앉히시우. 내가 있는 이상, 장차에 살아갈 걱정은 할라 말구……."
‘아니, 이 녀석이 가만 두어 두니까, 점점…….’
초봉이는, 형보가 인제는 바로 제 계집이 다 된 양으로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 수작이 하도 어이가 없어, 대체 어떻게 생긴 낯바대기를 하고서 이러느냐고, 침이라도 태액 뱉어 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집두 기왕 얻어 논 거요, 살림두 그만큼 채린 것이니, 일부러 그걸 떠헤치구 다시 채릴려구 할 거야 무엇 있소…… 되려 십상이지, 머……."
"듣기 싫여!"
초봉이는 참다못해 발을 구르면서 한마디 외친다. 그 끝에 그는,
‘내가 네 간을 내먹자면 네 계집 노릇이라도 해야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차라리 안타깝다.’고까지 부르짖고 싶었던 것이다.
형보는 좀더 사람이 영리했다면 지금 이 경황중에, 더구나 태수의 흠을 들추어내 가면서 초봉이를 달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윽고 도립병원엘 당도하여 형보는 뒤에 처져서 순사가 묻는 대로 저 여자는 피해자 고태수의 아낙이요, 또 나는 한 집에서 지내는 그의 친구라고 온 뜻을 설명하고, 초봉이는 그대로 치료실 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았다.
방금 맞은편에 있는 진찰대 옆에서는 간호부가 흰 홑이불로 태수의 몸뚱이를 머리까지 덮어씌우고 있을 때다.
그 흰 홑이불이 바로 죽음 그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아, 초봉이는 머리끝이 쭈뼛하고 다리가 허든거렸다.
그는 무엇에 질리듯 더 들어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칫 멈춰 선다.
마침 의사가 귀에서 청진기를 떼어 들고 돌아서면서, 이편 쪽으로 걸상을 타고 앉은 경부보더러 나른하게,
"모, 다메데스(운명했습니다)!"
란 말을 한다.
그러다가 마침 들어서는 초봉이를 힐끔 건너다보더니, 이어 본 둥 만 둥 커다랗게 하품을 씹는다.
경부보는 직업에 익은 대로 초봉이의 위아래를 마슬러보다가,
"고테수노, 오카미상(아내)요"
"네에."
초봉이의 대답은 절로 떨리면서 목 안으로 까라진다.
"우응……."
경부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턱으로 저편 침대께를 가리킨다.
초봉이는 머릿속이 무엇 두꺼운 헝겊으로 한 겹을 가린 것같이 멍하여 차근차근 사려를 갖는다든가 할 수가 없고, 경부보가 턱을 들어 가리키는 대로,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휘청휘청 진찰대 옆으로 다가간다.
간호부가 조용히 홑이불 자락을 걷고 얼굴만 보여 주면서, 삼가로이 목례를 한다. 직업도 직업이려니와 애틋한 어린 미망인에 대한 같은 여자로서의 동정과 조상이리라.
태수의 얼굴은, 왼편 이마가 으깨어지듯 터져 피가 번져 나왔고, 같은 왼편 광대뼈가 시퍼렇게 피멍이 져서 부풀어올랐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 자국만 얼굴에 남았지, 머리털이 있어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 묻은 얼굴은 숭업게 뒤틀리고, 눈과 입을 반만 감고 벌린 채, 숨이 져서 있는 꼴은 첫눈에 소름이 쪽 끼쳤다.
초봉이는 반사적으로 외면을 하려다가 뒤에서 보는 사람들을 여겨 못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싼다. 그리고는 순간만에 접질리듯 무릎을 꿇고 진찰대 변두리에다가 고개를 파묻는다.
서러운 줄은 모르겠어도,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에 따라 어깨도 떨린다.
그렇게 눈물이 먼저 나오고 어깨가 떨리고 해서 절로 울어지고, 울어지니까 비로소 서러워 온다.
무슨 설움인지 모르고서 울고 있는 동안에, 그제야 이 설움 저 설움 설움이 솟아나고, 분한 일 안타까운 일, 막막한 일이 모두 생각나고, 그래 끝이 없는 설움에 차차 더 섧게 운다.
그것은 제 설움이 하 망극하여 그렇겠지만, 그는 남편 태수를 슬퍼하는 정은 마음 어느 구석에고 돌지를 않았다. 보다도, 그는 그런 설움이야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형보가 이것저것 주변을 부렸다. 자동차부에 전화를 걸어, 집 근처까지는 가지 못하는 자동차로 우선 둔뱀이의 정주사네를 데리러 보낸 것도 그것이다.
그리한 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복도를 우당퉁탕, 정주사네 내외가 달려들었다.
초봉이는 그때까지도 진찰대 변두리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정주사네 내외는 첨에는 사위 태수가 죽었다는 단지 그것만을 알았고, 그래서 웬 영문인지를 몰라 어릿어릿했다.
형보가 시원시원하게 내달아서, 제가 들은 대로 사실 경위 이야기를 해주고는, 연달아 아까 초봉이를 좇아 병원으로 오면서 하던 태수의 근지와 소절수 사건을 까집어 내기를 잊지 않았다.
정주사네 내외는 당장 눈앞에 태수가 송장이 되어 자빠졌다는 것 외에는 모두가 신반의스러웠
다. 아니 도리어 미더운 편으로 기울기는 하나, 이 혼인을 정할 때 장사 밑천에 홀리어 사위의 인물의 흐린 점이 있는 것도 모른 체하고 ‘관주’를 주어 버린 자기네의 마음의 죄책을 다만 얼마 동안만이라도 회피하기 위하여, 우정 형보의 씨월거리는 소리를 곧이듣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래도 좋고 ‘날아가 버린 장사 밑천’ 그것이 속절없어 태수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진 듯 아뜩했다.
"허! 흉악한 일이로군!"
정주사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이렇게 탄식을 한다. 그것은 사위가 죽은 데 대한, 따라서 딸의 신세를 생각하는 장인이요, 아버지의 상심(傷心)이 노상 아닌 것도 아니나 ‘날아가 버린 장사 밑천’이 더 안타까워,
"허! 허망한 일이로군!"
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었다.
11 대피선(待避線)
이튿날 석양.
태수의 시체 해부한 것을 받아 내왔다.
해부를 한 결과 사인(死因)은 뇌진탕이요, 그 외에 두개골 한 군데가 바스러지고, 갈비뼈 네 대가 부러지고 한 것 말고, 대소 타박상이 스무 군데나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대소변을 지린 것 외에는 위장 계통에는 아무 이상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날 장례를 준비하는 중에 경찰서에서 몰려나와 가택 수사를 했다. 은행의 소절수 사건이 뒤집혔던 것이다.
증거물로 태수가 미처 없애지 못한 도장이며, 소절수첩이며, 편지 같은 것을 압수해 갔다.
모든 것이 횅하니 드러났다.
다시 그 이튿날 소란한 중에서 태수의 시체는 공동묘지의 일광지지에다가 무덤을 장만했다.
관을 내리고, 파올린 붉은 황토를 덮어 봉분을 쌓고, 제철이라서 푸르러 있는 떼를 입히고 하니 제물로 무덤이 되던 것이다.
초봉이는 이 흙내 씽씽하고 뗏장 꺼칠한 무덤을 남기고 내려오다가, 그래도 끌리듯 뒤를 돌려다보고는 새로운 눈물을 잠잠히 흘리고 섰다.
낡고 새로운 무덤들 틈에 끼여 기우는 석양만 비낀 태수의 무덤, 이것이 저 가운데 여러 무덤과 한가지로 오늘 이 시각부터는 영영 무주총(無主塚)이 되어 버리느니 생각하면 비로소 태수라는 인생이 불쌍했고, 그래서 그는 이 자리에서야 처음으로 태수의 불쌍함을 여겨 눈물이 흐르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득, 내가 어쩌면 이 무덤을 벌초 한 번이나마 해주지 않을 요량을 하고서 무주총일 것을 지레 슬퍼해 주는고 생각하니, 내 마음의 너무도 박절함이 부끄러웠다.
회심 끝에, 날이 인제 깊기 전에 꽃이라도 한 다발 갖다 놓아 주고, 일년 한 차례 삯꾼을 사서 벌초라도 해주려니 하는 마음을 먹어,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겨우 발길을 돌려놓았다.
집이라고 돌아는 왔으나, 휑뎅그렁하니 붙일성이 없다.
마침 또 경찰서에 불려가느라고 장례에도 나오지 못했던 형보가 아기작거리고 들어서는 꼴이, 선뜩한 게 배암이 살에 닿고 지나가는 것처럼 몸서리가 치인다.
형보는 그새도 건넌방에 그대로 눌러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배포다. 요행 유씨와 형주가 밤에는 초봉이와 같이 자고, 낮에는 온 식구가 다 모이고, 그뿐 아니라 장례야, 경찰서 일이야 해서 일과 인목이 분잡하기 때문에 다시는 초봉이를 건드리거나 하진 못했다.
그 대신 안팎 일에 제 일 못잖게 살뜰히 납뛰어, 정주사네 내외의 환심을 사기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참이다.
태수의 모친한테는 누구 하나 발설을 해서 기별이라도 해주자는 사람은 없었다. 장례날 초봉이가 겨우 생각이 나서 부친을 졸라 전보를 쳐달라고 했으나, 정주사는 ‘그런 죽일 놈’은 입에 붙이기도 싫었고, 주소를 모른다는 핑계로 방패막이를 하고 말았다.
초봉이, 정주사, 형보, 그리고 행화 외에 기생이며, 몇몇 사람이 여러 번 경찰서에 불려 다녔다.
그러나 필경 다 무사하고 말았고, 그 중에 형보는 며칠씩 갇혀 있기까지 하면서 단단히 치의를 받았으나 내내 모른다고 내뻗쳤다.
그리하여 소절수의 심부름을 해주던 사람, 즉 태수의 공범이 누구라는 것만 수수께끼로 남은 채 사건은 완구히 매듭을 짓고 말았다.
풍파가 인 지 보름이 지나고 차차 여름이 짙어 오는 유월 중순, 이슥하게 깊은 밤…….
옆에서 유씨와 형주는 곤한 잠이 들었고 초봉이만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 구름 같은 생각에 잦아져 뜬눈으로 누워 있다.
형보에게 무도한 욕을 보던 일이 그날 밤 그 당장에는 목숨을 끊자고까지 했던 크나큰 사단이었으나, 별안간 뒤를 이어 태수의 참변을 싸고도는 폭풍이 불어 치자, 그는 무서운 그 타격에 풀이 꺾여, 결벽이나 정조쯤 가지고 자결을 하려 들 만큼 팔팔하던 기운은 그만 다 사그라지고 말았다. 하루 아침에 사람이 늙어 버렸다고 할는지, 아무튼지 그러고서 인제 와서는 이것이고 저것이고 간에 지나간 일이 남의 일처럼 아프지 않고 시쁘듬한 게 곧잘 애를 삭일 수가 있었다.
물론 결혼 전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여 태수와 결혼을 하던 것이며, 아무 멋은 모르겠어도 그다지 불행하든 않든 열흘 동안의 신혼생활이며, 그러다가 흉악한 형보에게 겁탈을 당하던 일, 태수의 불의지변과 뒤미처 현로가 된 온갖 협잡, 이리하여 마침내 곱던 무지개와도 같이 스러진 환멸, 이렇게 추어들어 오노라면 헛짚은 생애의 첫걸음이 두루 애달프고 분하고 원망스럽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결국 그 순간이 지난 뒤에는 막연한 게, 마치 언 살을 만지기 같아 먹먹하지 그대도록 신경을 쑤시지는 않던 것이다. 연거푸 힘에 겨운 충격을 맞기 때문에, 신경이 아프다 말고서 지레 지쳐 버린 소치일 것이다.
지나간 일이 그렇듯 얼얼하기나 한 뿐이지 모질게 결리거나 아프지 않는 것이 요행이어서, 그는 모든 것을 옛말대로 일장의 꿈으로 돌리고 깨끗이 잊어버리자 했다--미상불 꿈 그대로 허망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지나간 일은 그러므로 그럭저럭해서 씻어 넘길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되어 가는 대로 내던져 두거나 걱정을 않고서 지내거나 할 수가 없게시리 절박한 것은 닥쳐오는 앞일이다. 지나간 일이야 마음 하나 둘러먹는 걸로 이렇게든 저렇게든 단념이 되는 것이지만, 앞일에는 신중한 계획과 한가지로 행동을 가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벌써 열흘을 더 넘겨 두고 밤이면 잠을 잊고 누워, 장차 어떻게 내 한 몸을 가눌 것인가, 어떻게 하면 억울하게도 짓밟혀버린 내 일생을, 아까운 내 청춘을 잘 다시 추어올려 나도 남처럼 한세상을 보도록 할 것인가, 두루두루 궁리에 자지러져 있는 참이다.
환히 밝기만 한 오십 와트 전등불을, 눈도 아파 않고 간소롬히 바라보면서 모로 누워 있는 초봉이는, 때와 공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만 머릿속에서만 뜬 생각이 두서없이 오고 가고 한다.
옆에서는 모친 유씨가 형주로 더불어 가끔 몸 뒤치기는 해도, 딴세상같이 깊은 잠이 들었다.
때앵 때앵 마루에서 시계 치는 소리가 네 번째 나고는 그친다.
초봉이는 시계 치는 소리에 비로소 제정신이 들어,
"그럼, 군산을 떠나야지!"
하면서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리 서두는 품이 방금 혼자말을 하던 대로 당장 옷을 차려 입고 뛰쳐나설 것 같다.
불쾌한 기억이, 나 자신도 자신이려니와 남의 이목의 부끄러움이 오래오래 가시잖을 이 군산바닥이 싫다. 더구나 장가놈이 있어서 위험하다. 하는 눈치가 앞으로 수월찮이 성가실 것 같다. 진작 피하니만 같지 못하다.
서울…… 서울이면 좋을 것이다. 무엇이 어쩌니 좋으리라는 것은 모르겠어도, 그저 막연히 좋을성부르다.
제호가 미덥다. 윤희를 생각하면 역시 제호의 상점이든 회사든 붙어 있기가 어려울 듯싶고 해서 불안한 게 아닌 것도 아니나, 일변 제호가 사람이 발이 넓고 변통성이 많은 사람인만큼 어떻게해서든지 일자리도 구해 주고 두루 애써 줄 것이다.
‘그러면 내일이라도…….’
마침내 군산을 떠날 작정을 하고 만다. 작정을 하고 나니 뒷일이야 그때 당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마음이 가뜬하여 맺혔던 한숨이 한꺼번에 시원하게 쉬어진다.
하다가 생각하니, 서발막대 내둘러야 검불 하나 걸릴 것 없고, 혹혹 불어 논 듯이 말짱한 친정을 그대로 두고 훌쩍 떠나기가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이 바닥에서는 직업을 얻기도 졸연찮거니와 그러기도 싫은 걸, 항차 어려운 친정집에 내 한 입을 더 얹어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는 더욱이나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내가 서울로 가서 차차 무슨 도리를 차리기로 하고…….’
친정 일도, 그걸로 걱정이나 하고 있었자 별수가 없을 터라 이만큼 요량만 하고, 하고 나니 다시는 더 돌려다보이는 것도 없이 마침내 책상 앞으로 다가앉아서 모친한테 편지를 몇 자 적는다.
편지 사연은, 마음이 울적하여 서울로 올라가니 달리 걱정은 말라고, 서울로 가서 다시 편지도 하겠지만 집을 세 얻느라고 낸 보증금 오십 원을 도로 찾고, 또 살림도 값나가는 것은 쓸어 팔고해서 가용에 보태 쓰라고, 그리고 내가 서울로 간 종적은 아무한테도 말을 내지 말라고, 끝에다가 긴히 당부를 했다.
편지를 다 쓴 뒤에 반지 두 개를 뽑고, 팔걸이시계를 풀고 해서 편지와 같이 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그럭저럭 날이 휘엿이 밝아서야 잠깐 눈을 붙였다.
이튿날 아침, 열한시가 되기를 기다려 초봉이는 모친더러 잠깐 저자에 다녀오마 하고 식모를 데리고 정거장으로 나왔다.
유씨는 그 동안 혹시 딸이 모진 마음이나 먹지 않을까 해서 늘 조심이 되었지만, 오늘은 식모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제 말대로 저자에 다니러 가나 보다 하고 안심을 했다.
초봉이는 결혼한 뒤로는 이내 쪽을 찌고 있던 머리를 학생 머리로 고쳐 틀고, 옷은 수수하게 흰모시 진솔 적삼에 검정 치마를 받쳐 입었다. 혼인 때 산 구두도 처음으로 꺼내 신고, 역시 혼인때 태수가 사준 파라솔과 핸드백을 가졌다. 돈은 태수가 일백오십 원 가량 남겨놓고 죽은 것을 백 원 가량은 그 동안 장례를 치르느라고 없어졌고, 오십 원 남짓한 데서 삼십 원을 모친한테 쓴 편지봉투 속에 넣었다.
정거장으로 나오는 길에는 승재가 있는 금호병원께로 자꾸만 주의가 끌리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여 가뜩이나 마음이 어두웠다.
열한시 사십분 차가 거진 떠나게 되어서야 데리고 나온 식모에게다 집에 전하라고 편지를 주어 돌려보내면서, 그리고 딴 집을 구해 가서 부디 잘살라고 일렀다.
차가 슬며시 움직이자 이걸로 가위를 눌리던 악몽은 하직이요, 새로운 생애의 출발인가 하면 무엇인지 모를 안심과 희망이 조용히 솟는 것이나, 일변 너무도 호젓한 내 행색이 둘러보이면서 장차로 외로울 앞날이 막막하여, 그래도 군산을 떠나는 회포는 슬펐다.
12 만만한 자의 성명은……
초봉이가 이리(裡里)에서 호남선 본선을 대전(大田)으로 갈아타느라고 일단 차를 내려 분잡한 플랫폼의 여러 승객들 틈에 호젓이 섞여 섰을 때다.
"아니, 이건 초봉이가!"
별안간 등뒤에서 허겁스럽게 떠들면서 불쑥 고개를 들이대는 건 말대가리같이 기다란 박제호의 얼굴이다.
"아저씨!"
초봉이는 반가워서 절로 소리가 높았다. 남의 이목이 아니더면 덤쑥 부여잡고 싶게 이 뜻하지 못한 곳에서 제호를 미리 만난 것이 기뻤다. 제호도 무척 반가워한다. 그러나 반가워서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기다란 얼굴은 표정이 단순치 않다. 그는 초봉이의 그 동안 사단을 갖추 알고 있던 것이다. 초봉이도 제호의 낯꽃이 심상찮은 것이 아마도 군산까지 왔다가 소문을 들었나 보다 싶어, 이내 고개가 절로 수그러지고 만다.
"그래 어딜 가느라구"
제호는 초봉이의 행색을 다시금 짯짯이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묻는다.
"거저 이렇게 나왔어요."
초봉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서 발끝으로 땅을 비빈다.
"거저…… 아따 것도 할 만하지. 휘얼훨 바람두 쐬구 하는 게 좋구말구, 제기할 것…… 그래 잘했어…… 기왕 나선 길에 나하구 서울이나 구경두 할 겸 같이 가까"
제호는 옆에서 사람들이야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요란하게 떠들어 댄다.
"그러잖어두 지금 저두……."
"서울루 간다"
"네에."
"거 잘했어! 아무렴, 그래야 하구말구……."
초봉이는 기왕 말이 났던 끝이니, 또 아무 때 말을 해도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니, 시방 그러지 않아도 아저씨를 바라고 서울로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미리 할까말까 망설이는 참인데 제호가 먼저 제 이야기를 부옇게 늘어놓는다.
저번에 서울로 올라간 뒤에 제약회사는 뜻대로 준비가 되어 가지고 며칠 아니면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래서 잠깐 일이 너끔한 기회에 볼일로 고향인 서천(舒川)까지 왔었다는 것이며, 다시 어제 아침에 군산으로 건너와서 볼일을 보고 지금 서울로 가는 길인데 군산항 정거장에서 차를 탔기 때문에 같은 차를 타고 오면서도 서로 몰랐다고, 이렇게 이야기가 싱겁거나 말거나 구수하니 지껄이고 있는데 마침 차가 들이닿았다. 둘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에 올랐다.
차는 비좁았다. 찻간마다 죄다 지나면서 보아도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혀 줄 자리는 없다.
제호는 한 손에 보스톤을, 또 한 손에 과실 바구니를 갈라 들고 끼웃끼웃 앞서 가면서 연신 두덜거린다.
"이런, 제기할 것. 철도국 친구들은 냉겨먹을 줄만 알지 서비슨 할 줄 모른담…… 아, 이 이런놈의, 자리가 있어야지!…… 차장은 어디 갔누? 찻삯을 깎아 달라던지 해야지, 응…… 제기할 것."
아무리 제기를 해도 빈자리는 종시 없다. 할 수 없이 되는 대로 이등칸으로 들어섰다.
"자, 여기 아무 데나 앉게나. 이런 때나 이등차 좀 타보지. 초봉이나 내나 돈 아까워서 언제 이등차 타겠나? 제기할 것."
제호는 보스톤과 과일 바구니를 시렁에 얹고, 양복 저고리와 모자를 훌러덩훌러덩 벗어 젖힌다.
"제기할 것. 자아 차푤라컨 이리 달라구. 이따가 돈 더 주구서 이등차표하구 바꿔야지…… 어때? 이등은 자리가 성글구 또 깨끗해서 좋지? 다아 돈만 있으면 이런 법야!"
초봉이는 삼등칸이 좁으니까 이등칸에 앉는 줄만 알았더니 그래도 차장이 와서 말썽을 하든지 하면 창피할까 싶어 편안한 이등차가 편안치도 않았는데, 돈을 더 주고 이등차표와 바꾼다고 하니, 지닌 시재가 염려되고 속이 뜨악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핸드백에서 십 원짜리를 꺼내서 차표를 얹어 내놓는 것을, 제호는 손을 내저으면서,
"허어! 내가 초봉이한테 차 이등 한턱 못 쓸 사람인가…… 자아 돈일라컨 도루 집어넣구, 차표만."
허겁을 떨고 차표만 뺏어 간다.
정거장의 성가신 혼잡과 훤화를 털어 버리고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창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아낌없이 몰려든다. 창 밖은 한창 살이 지려는 여름이 한빛으로 초록이다. 논에는 벌써 완구해진 모포기가 어디고 가조롱하다. 잔디풀 우거지는 산모퉁이의 언덕 소로에서, 머리에 보따리를 인 촌노파가 우두커니 차가 달리는 것을 보고 섰는 것도 초봉이에게는 기특한 풍경이다.
초봉이는 이렇게 묻디리고 뛰쳐나와서, 찻간에 몸을 싣고 첫여름의 싱싱한 풍경을 구경하면서 훨훨 달리는 것 이것 하나만 해도 그 불쾌한 군산바닥에 처박혀 속을 썩이느니보다 훨씬 나은 성 싶어, 마음은 이윽고 거뜬해 갔다.
"나는 참……."
제호는 차표를 바꾸느라고 차장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더니, 선반의 과실 바구니를 내려 가지고 앉으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고, 배라먹을 여편넬 즈이 집으로 쫓아 버렸지, 헤헤헤, 제기할 것."
"네에? 아니 왜"
초봉이는 놀라 묻기는 하면서도, 제호의 좋아하는 속이 그러려니 짐작이 가지고, 겸하여 초봉이 저한테도 아무튼지 일이 천만다행스러웠다.
"그깐놈의 여편넬 그것 쫓아 버리기나 하지 무엇에 쓰누…… 에잇 그놈의……."
윤희를 쫓아 보냈다는 것은, 그러나 말투요, 실상인즉 일년 작정을 하고 별거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랜 계획이었었다.
윤희는 제 자신의 히스테리라든지, 또 부인병에서 생기는 전신의 쇠약이라든지 그것을 잘 알고 겸하여 그러한 신경과 건강을 가지고 그대로 부부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우선 저를 위하여서도 좋지 못한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전번에 서울로 이사를 해가는 기회에 별거를 하기로 진작부터 제호와 의논이 있어 왔었다. 그런 때문에 제호가 초봉이를 서울로 데리고 가려는 것을 한사코 막았던 것이다. 초봉이뿐 아니라 도대체 제호라는 위인의 행실머리가 미덥지 못했지만, 초봉이 일만이라도 제 뜻대로 한 것을 적이 마음놓고, 청진동에다가 살림만 차린 뒤에 이내 친정인 신천으로 내려갈 수가 있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제호를 잡아 앉히고 가로되 오입을 하지 말 일, 물론 첩을 얻어 들이지 말 일, 가로되 술을 먹고 다니지 말 일, 가로되 한 달에 세 번씩 편지를 할 일, 그리고 그 밖에 별별 옴두꺼비 같은 것을 다 다짐을 받았다.
제호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면서, 네에 네 대답을 했다. 한 일년 그렇게 별거를 하는 동안에 히스테리가 가라앉아 사람이 되면 요행이요, 그렇지 않으면 눈치를 보아 어름어름하다가 이혼이라도 할 배짱이기 때문에 그저 마마손님 배송하듯 우선 배송만 시키려 들었던 것이다.
속내평이 그렇게 되었던 것인데, 그러나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그가 초봉이한테다가 짐짓 어떠한 색다른 암시를 주기 위하여 복선(伏線)을 늘이느라고 그러한 말을 내는 것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초봉이도 윤희를 잘 알고, 알 뿐 아니라 적지 않게 성화를 먹이던 기억을 가진 그 초봉이인지라, 초봉이를 만나자 문득 생각이 나서 (종차에는 그놈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값에 적어도 시초만은) 한 개의 뉴스를 전하는 그런 탄탄한 마음으로 우연히 나온 것이다.
초봉이도 그러니까 역시 별다른 새김질을 하지 않고 한낱 뉴스를 듣는 정도로 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그렇다고, 그러면 시방 제호가 이렇게 만난 초봉이한테 그전과 같이 담담한 마음만 가질수가 있느냐 하면, 결단코 그렇지는 않다. 커녕 그의 배짱은 시방 자꾸만 시커매 간다.
군산서 초봉이를 데리고 있을 때는, 초봉이가 한고향 친구의 자녀요, 그래서 저한테도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애라는 것이며, 아내 윤희의 지레 내떠는 강짜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혼 처녀에게 대한 중년 남자다운 조심성으로 해서 그의 욕망은 행동으로 번져나지를 못했던 것이나, 지금 당해서는 아무것도 그런 것은 거리껴하지 않아도 좋을 형편이다.
그는 이번에 군산까지 내려왔다가 자자히 떠도는 소문을 듣고, 초봉이의 겪어 온 그 동안의 사단을 잘 알았었다.
안되었다고 생각도 하고, 그래서 초봉이를 우정 찾아보고 일변 위로도 해주려니와, 또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요량으로 같이 데리고 서울로 가고도 싶었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자 한즉 아직도 경황들도 없을 텐데, 또 정주사를 만나고 보면 자연 우는 소리에 짓짜는 꼴을 보아야 하겠어서 그런 성가신 발걸음이 아예 내키지를 않았다. 그래서 찾아보기를 단념하고, 차라리 모른 체했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편지로든지 불러 올리려니 했었다.
그랬던 참이라, 초봉이를 뜻밖에 중로에서 만나고 보니 마치 무엇이 씌워 대는 노릇이기나 한 것처럼 희한하고 반가웠었다.
희한하고 반가움이 밖에서 들어오는데, 속에서는 초봉이가 인제는 ‘헌 계집’이니라 하니 안팎이 마침맞게 얼려붙은 셈인 것이다.
‘이미 헌 계집.’
‘그리고 임자 없는 계집.’
이러고 보니, 미혼 처녀에 대한 중년 남자다운 조심성과 압박으로부터 단박 해방이 될 것은 물론이다.
시집 잘못 갔다가 홧김에 서울로 바람잡일 나선 계집, 그러니 장차 어느 놈의 밥이 될지 모르는 계집, 그러니까 아무라도 먼저 재치 있게 주워 갖는 놈이 임자다. 옛날로 말하면 공문서(空文書)짜리 땅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눈도 코도 못 보던 초면엣계집이라도 모를 테거늘, 일찍이 가슴을 설레게 해주었고 두고두고 잊히지 않고 연연턴 초봉이고 보니 인절미에 조청까지 찍은 맛이다. 좋다. 또 윤희가 없어졌으니 더 좋다. 윤희를 이혼을 하든지, 못하면 작은마누라도 좋다. 저도 인제는 헌 계집, 나도 헌 사내.
제호의 검은 배짱이 각각으로 이렇게 터가 잡혀가는 걸 모르는 이편 초봉이는, 그러나 안심하고 다행스러워하기는 일반이다.
윤희가 없으니 제호의 덕을 마음 놓고 볼 수가 있을 테요, 그래 제호네 회사에서 제호 밑에서 있노라면 공부를 쌓아 가지고 한때에 희망했던 대로 약제사 시험을 치를 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완전히 독립한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차는 줄기차게 달려만 간다. 바깥은 여전히 살쪄 가는 들이 아니면 짙게 푸르러 오는 언덕이다.
맑은 햇볕이 차창으로 쬐어 들어, 좌석의 고운 남빛 우단을 더욱 해맑게 드러낸다.
몇 되지 않는 손님들은 제각기 남을 상관 않고 한가로이 앉아 신문을 읽거나 담배를 피운다.
"자아, 이것 좀 먹으라구……."
제호는 사과 하나를 꺼내고서 과실 바구니를 통째로 내맡긴다.
"……어서 아무거던지 꺼내 먹어요. 자, 칼두 여기 있구."
제호는 조끼 주머니를 뒤져서 칼을 꺼내 초봉이를 주고는, 저는 손바닥으로 쓱쓱 문대는 둥 마는둥,
"난 머……."
하더니 그대로 덤쑥 베어 문다.
"지가 벳겨 드리께 인 주세요!"
초봉이는, 제호의 털털한 짓이 저 보기에야 유쾌했지만 다른 자리의 점잖은 손님들이 볼까 봐서 민망했다.
"괜찮어, 괜찮어……."
제호는 볼퉁이를 불룩불룩하면서 연신 손을 내젓는다.
"……이놈 사과는 껍질째 먹어야 좋다면서…… 초봉이두 어서 먹어요…… 이 사과가, 이놈을 날마다 식후에 한 개씩만 먹으면 머 의사가 소용이 없다구? 허허, 정말 그리다간 우리 약장사놈들두 밥 굶어 죽게? 허허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이 유쾌한 사람에게 끌리어 절로 웃음이 나와진다. 보름 만에 웃는 웃음이다.
제호는 초봉이의 웃는 입 가장자리와 턱을 보고, 새침하던 얼굴이 딴판이요, 미상불 이쁘기는 이쁘다고 속으로 새삼스럽게 탄복을 하여 마지않는다.
"그런데, 서울은 무엇 하러 가나"
제호는 소곳한 초봉이의 이마를 의미 있이 건너다보면서 묻는다. 초봉이는 사과 벗기던 손을 멈추고 잠깐 고개를 들었으나 어쩐지,
‘실상은 아저씨를 찾아가는 길이랍니다.’
하는 말은 주저해지고,
"거저 구경삼아서……."
"구경? 허어!"
제호는 다시 한참이나 초봉이를 건너다보더니,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런 게 아니라, 아따 저어 무엇이냐, 나두 초봉이 사정을 다아 알았어, 알았는데……."
초봉이는 제호가 다 안다는 눈치는 알기는 했었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얼굴이 화틋 달고, 다시금 고개가 깊이 수그러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아! 이 사람, 내한테까지야 무어 그렇게 무렴해할 게 있나!…… 허긴 몰랐을 텐데 우연히 어느 친구가 그런 이야길 하더군그래…… 신문에두 나긴 했더라는데 나는 못 보았지만…… 그리나 저리나 간에 원, 그런 횡액이 있더람!…… 그거 원 참!…… 횡액이야 횡액. 큰 횡액이야!…… 글쎄 듣기에 어떻게 맘이 안됐는지! 제기할 것, 그런 놈의 일이 원!"
제호는 말을 잠깐 멈추고 초봉이의 하얀 가르마를 한참이나 건너다보다가,
"……그렇지만, 응? 이거 봐요 초봉이, 초봉이"
하면서 찔벅거릴 듯이 재우쳐 부른다.
"네"
초봉이는 고개를 숙인 채 벌써 다 벗긴 사과를 먹지도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응, 다른 게 아니라 말이지…… 그렇다구 애여 낙심을랑 하지 말아요. 낙심하면 정말루 그건 못쓰지…… 무어 어때? 한번 실수루, 아니 실수가 아니라 횡액으루 그런 일을 좀 당했기루서니 어떤가…… 아무렇지두 않어. 아직 청춘인데…… 그런 건 하룻밤 꿈이거니 해버리면 그만이야. 다아 아무렇지두 않어. 일없어. 그럴 게 아냐? 응? 초봉이."
"네에."
초봉이는 가만히, 그러나 마지못해서가 아니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대답을 한다.
그는 제호가 곡진한 태도로 곰살갑게 구는 품이 마치 아픈 자리를 만져 주되 아프지가 않고 시원하여, 어떻게도 고마운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따라서 그는 (하기야 전에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낙명이 된 몸으로 맨손을 쥐고서 넓은 사바(娑婆)로 뛰어나온 막막한 이 경우를 당하여, 인생과 생활에는 든든한 권위가 섰고, 일변으로 활달하여 인정이 있는 이 중년 남자 제호라는 사람이 타악 미덥고 안심되는 품이란, 길을 잃은 아기가 일갓집 아저씨를 섬뻑 만난 것과 같아 인제는 창피나 부끄러운 생각은 다 가시고 만다.
제호 역시 이미 심중에 초봉이를 가지고 만만히 다룰 수가 있다는 뱃심이 들어차서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므로 어떤 기회를 당하게 되면 주저 않고 행동을 일으킬 위인이기는 하나, 그러나 시방 이 자리에서 초봉이를 여러 가지로, 더욱이 장래의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를 하고 격려를 하고 하는 것은 결코 잔망스럽게 달콤한 먹이를 먹이자는 것이 아니요, 단순히 어른다운 애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머……."
제호는 담배를 피워 물면서 다시,
"……그리구 서울루 가는 거 잘 생각했어. 그리지 않아두 내가 올라가서 편지를 하려던 참인데!…… 아무튼 잘했어…… 내가 아무리 힘이 없기루서니 초봉이 하나 잘 돌봐 주지 못하리. 아무 염려두 말아요. 맘 터억 놓아요, 응"
초봉이는 그렇다면, 이편에서 이야기를 낼 것도 없이 아예 잘되었다 싶어 더욱 안심이 되었다.
이야기에 팔려서, 차창 밖으로 변하는 첫여름의 살쪄 가는 들과 산을 한동안 눈여겨보지 않는 사이에 차는 황등(黃登), 함열(咸悅), 강경(江景)을 어느결에 다 지나쳤다.
논산은 학교에 다닐 때 부여로 수학여행을 가느라고 와본 곳이다. 정거장 모습이며, 역엣사람들이 어쩌면 낯이 익은 것 같다.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팥거리〔豆溪〕를 지나서 굴 하나를 빠져나왔을 때에 제호는 초봉이의 무릎에 놓인 조그마한 손을 무심코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에 반지 자국만 남았지, 뽑고 없는 것을 보았다.
"허어! 반지두 다아 뽑아 버렸군…… 아무렴 그래야 하구말구. 그래, 그 께렴직한 과거는 칼루다가 비어 버리듯이 잊어야 해요. 그리구서 심기일전(心機一轉), 응? 허허, 제기할 것."
제호는 초봉이가 집안의 전당거리라도 되라고 그저 무심코 반지를 뽑아 놓고 온 속사정이야 알 턱이 없다.
그러나 초봉이는 막상 그 말을 듣고 보니 도리어 너무 급작스럽게 결혼반지 같은 것을 뽑아 버린 것이 남의 눈에라도 박절하게 보인 것 같아서 화틋 얼굴이 달았다.
차가 대전역에 당도하자, 초봉이를 앞세우고 플랫폼으로 내려서던 제호는 명승고적을 안내하는 간판에서 유성온천(儒城溫泉)이라는 제목이 선뜻 눈에 띄었다.
‘유성온천…… 온천’
제호는 내숭스럽게 싱긋 웃으면서, 간판을 보던 눈으로 초봉이의 뒷맵시를 훑는다. 비로소 그는 제 야심을 의식적으로 행동에 옮겨 볼 생각이 나던 것이다.
오지 않으면, 아무렇게라도 오래잖아 만들기라도 할 박제호지만, 우연히 그에의 찬스는 빨리 왔고 겸하여 좋았을 따름이다.
"초봉이, 온정 더러 해봤나"
쇠뿔은 단김에 뽑으라 했으니 인제는 시간문제라 하겠지만, 시방부터는 옳게 남의 계집을 꾀는 수작이거니 생각하면 일찍이 여염집 계집한테는 못 해보던 짓이라 노상 뒤가 돌려다뵈지 않지도 않았다.
초봉이는 마침 가드 밑을 지나면서 전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갈 제 이것을 보고 진기하게 여기던 그때 일이 생각이 나서 한눈을 파느라고 제호가 재우쳐 물을 때서야 겨우 알아들었다.
"온정이요? 온천"
초봉이는 되묻고서 고개를 가로 흔든다.
"……못 가봤어요."
"그럼 마침 좋군. 바루 이 근처에 유성온천이라구 있는데, 한번 가볼 만한 데야…… 그래 그래, 구경두 못 했다니 첨으로 온정두 해볼 겸, 또 가서 조용히 앉아서 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초봉이 일두 상의하구, 좋잖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무어"
제호는 이건 좀 창피한 고패로다고 어름어름하는데, 이어 초봉이가,
"아저씨 바쁘실 텐데……."
하는 게, 저도 벌써 알아차리고는 슬며시 드러누우면서도 그저 숫보기답게 부끄럼을 타느라고 괜한 겸사나 한마디 해보는 눈치인 것 같았다. 뭐, 그만하면 다 팔아도 내 땅이다.
"온! 나는 또 무슨 소리라구! 허허 허허, 그런 걱정을라컨 하지두 말아요…… 그럼 그렇게 하기루 하구서, 점심두 아주 거기 가서 먹을까"
"네에."
"시장하잖어"
"괜찮어요."
"그럼 됐어. 자아 빨리 나가자구. 자동차를 잡아타야지."
초봉이는 남자와 단둘이서 호젓하게 온천에를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다. 온천도 역시 거리의 목간탕처럼 남탕이 있고 여탕이 있고 해서, 단지 목간을 하기 위한 목간이라고 밖에는 온천이라는 것을 그 이상 달리 생각할 내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온천 목간도 하려니와, 또 제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도 상의하자고 하니 겸사겸사 반갑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제호는 초봉이의 그러한 단순한 마음이야 몰랐고, 너무 쉽사리 제 뜻에 응하는 것이 도리어 헤먹고 싱거운 맛도 없지 않았다.
바로 유성온천으로 떠나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는 다른 두어 사람 승객과 같이 버스를 잡아타고 흔들린 지 삼십 분 만에 신온천의 B라고 하는 여관에 당도했다.
초봉이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바로 근처라더니 이렇게 먼 덴가’
‘언제 목간을 하고, 언제 점심을 먹고, 도로 와서 차를 타려구 이러는고’
이쯤 궁금히 생각도 했으나, 그대로 잠자코 있었다.
버스가 포치에 닿기가 무섭게 앞뒤로 하녀들이 달려들어 문을 열고 손에 든 것을 채어 가고 하면서,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십시오)!"
소리를 지르고, 현관으로 들어서니까는 여남은이나 같은 하녀들이 나풋나풋 엎드리면서 한꺼번에, 이랏샤이마세를 외친다.
서슬에 초봉이는 정신이 얼떨떨했다.
목간집이라면서 대체 이게 웬 영문인지를 모르겠다. 군산 있을 때에 목간이라고 가면 수염난 놈팡이가 포장 뒤에 앉아 벙어리 삼신인지 눈만 힐끔하고 돈이나 받을 줄 알지, 오느냐 가느냐 수인사 한마디 하는 법 없는 그런 데만이 목간탕인 줄 알았었는데, 자 이건 도무지 휘황하고도 혼란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깨가 절로 오므라들려고 한다.
집은 어쩌면 이리도 으리으리하며, 색시들은 어쩌면 이렇게 많이 나오며, 어쩌면 이다지도 소중히 모셔 들이는지, 아마 이런 집에서는 목간삯을, 칠 전은 어림도 없고 일 원이나 그렇게 내야 할 것 같다.
초봉이는 사실로 이런 호강이라고는 꿈에도 받아 본 적이 없는지라, 차마 겁이 나고 황송스러 못한다.
그러나저러나 남탕이니 여탕이니 써붙인 데는 어디며, 수건도 없고 비누도 없으니 비누는 이 전 짜리를 한 개 산다지만, 빌려 주는 수건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종시 두리번거리고 섰는데, 제호는 성큼 마루로 올라가더니,
"어서 올라오잖구"
하면서 히쭉 웃는다.
초봉이는 그제야 구두를 벗고 마루로 올라서니까, 한 여자가 냉큼 가죽 슬리퍼를 집어다가 꿇어 앉으면서 바로 발부리 앞에 놓아 준다.
초봉이는 제발 이러지 말아 주었으면 하여 딱해 못 견딘다.
제호는 보니, 짐을 들고 앞선 여자의 뒤를 따라 이층 층계로 올라가고 있다. 초봉이는 이런 집에서는 목간도 이층에다가 만들어 놓았나 보다고 더욱 신기했으나, 자꾸만 이렇게 둔전거리다가는 촌뜨기 처접을 타지 싶어 얼핏 제호를 따라 올라갔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양탄자를 깐 복도를 한참 가노라니깐 앞서 가던 하녀가 한 방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문을 열어 주는데, 널따란 다다미방이다. 초봉이는 팔조를 모르니, 그냥 넓은 줄만 알 뿐이다.
하녀가 뒤로 따라 들어와서는 비단 방석을 두 개 마주 놓아 주고, 시원하라고 앞 유리창들을 열어 놓고 한다.
"예가 어디래요"
초봉이는 목간통이 보이지 않고, 이렇게 방으로 모셔 들이는 게 궁금할 밖에…….
"어딘? 온정이지."
"목간은"
"목간? 아무렴, 인제 해야지…… 가만있자, 옷이나 좀 갈아입어야 목간을 하지."
"옷을"
"하하하, 첨으로 와서 모르는군…… 온정에선 빌려 주는 유카다가 있으니깐, 그걸 갈아입어야 편한 법이어든."
그것도 미상불 그럴듯하기는 그럴듯했다. 마침 하녀 둘이 하나는 찻쟁반을, 하나는 유카다를 받쳐 들고 들어온다. 들고 날 때면 으레 쪼그리고 앉는 것이 민망해서 볼 수가 없다.
하녀가 차를 따르는 동안 제호는 양복을 훌러덩훌러덩 벗어 던지면서 유카다를 갈아입는다.
초봉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얼른 외면을 하고 말았으나 내심에는, 제호라는 사람이 그렇진 않던 사람인데 어쩌면 이다지도 무례할까 보냐고 대단히 불쾌했다.
하녀가 유카다를 펴들고서 초봉이더러도 어서 갈아입으라고 속없이 연방 눈웃음을 친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제호가 유카다를 다 갈아입고 돌아서다가, 초봉이의 곤경을 보고는 꺼얼껄 웃으면서 하녀더러 설명을 한다.
우리 아낙은 온천이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또 조선 가정에서는 아낙이 남편 앞에서 남이 보는데 함부로 옷을 벗거나 하지 않는 법이라고, 그러니 그대로 놓아 두라고…….
‘우리 아낙이라니’
초봉이는 단박 면박이라도 주고 싶게 제호가 괘씸했다. 그의 눈살은 졸연찮게 꼿꼿해서 제호를 거듭 떠본다. 그러나 제호는 초봉이의 그러한 눈치는 거니를 챘어도, 어째 그러는지 속내는 알 수가 없었다.
아까 대전역에선 그만큼 선선히 내 뜻에 응하던 사람이 인제 와서는 이다지 비쌜 게 무엇이란 말인고
옳아, 그런 게 아니고 저게 부끄럼을 타는 모양인 게로군. 그러면 그렇지 원…….
"허허 제기할 것. 그렇게 부끄러울 게 무에 있더람…… 그래두 너무 그렇게 서먹서먹하질랑 말아요!…… 여기 여자들이 보는데, 마치 남의 집 여자를 꼬여 가지구 온 것처럼 수상하게 여길라구…… 그러잖어"
말이 그럴듯하여, 초봉이는 마음이 약간 풀렸다. 역시 꾀고, 꾐을 받아서 온 것으로 보인다면야 차라리 아닐지언정 겉으로라도 내외간인 체하는 것이 그보다는 덜 창피할 테라서…….
"자아, 그런데 어떡헐꼬? 응…… 목간을 먼점 할까? 시장한데 무어 요기를 먼점 할까"
"글쎄요……."
초봉이는 시장하기는 하나, 이러자거니 저러자거니 제 의견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 아주 기분 좋게 목간을 하구 나와서 먹드라구? 좀 시장하더래두, 기왕 참던 길이니."
제호는 기다리고 섰는 하녀더러 탕에 들어갔다가 나올 동안에 화식(和食)을 준비하든지 그게 안 되겠으면 돔부리나 그런 것이라도 먹게 해달라고, 그리고 우리 아낙은 집에서도 나하고 같이 목간을 하는 법이 없으니 따로 독탕에 안내해 주라고 주절주절 이른 뒤에, 하녀가 받쳐 주는 타월을 어깨에다 걸치고 나가 버린다.
초봉이는 기다리고 섰는 하녀가 제일에 민망해서 할 수 없이 유카다를 갈아입는다. 새수빠진 하녀가 연신 아씨 아씨 해가면서 생 근사를 피우는데 딱 질색을 하겠다.
탕에는 독탕이라 혼자다. 유황내가 나고 호젓한 게 마음에 헤적헤적했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정갈한 것이 좋기는 좋았다.
물탕 바닥의 푸른 타일에 비쳐, 깊은 연못의 물인 듯 새파란 물이 가장자리로 남실남실 넘쳐흐르는 것이 아까울 만큼 흐뭇해 보인다.
물은 너무 뜨거운 것 같았으나 참고 그대로 들어가서 다리를 뻗고 비스듬히 잠겨 있노라니까, 여러 날 동안의 피로가 새 채비로 몸에서 풍기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어 다 씻겨 나가는 성싶어 여간만 개운한 게 아니다.
맑은 물 속으로 하얀 제 몸뚱이가 들여다보인다.
대체 이다지도 곱고 깨끗한 몸뚱이가 그만 더럽혀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냐.
그러나마 그게 한 가지도 아니요, 두 가지씩…… 남이 부끄러운 체면의 수치가 하나, 제 마음에 부끄러운 비밀한 수치가 하나.
이 두 가지의 형적 없는 때가 이렇듯이 곱고 정갈해 보이는 내 몸뚱이에 적이 돋은 듯 눌어붙어 한평생을 가도 벗어지지 않다니.
이리 생각하면 마구 껍질이 한벌 벗도록 부욱북 문질러 씻어라도 내보고 싶어진다. 그래 부리나케 물탕 밖으로 나와서 몸을 문지른다. 그러나 미끈미끈하기만 하고 시원치가 않아서, 여기저기 둘러보아야 비누 같은 것은 놓아 둔 게 없다. 이만큼 차려 놓고 수건까지 주면서 비누는 주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 뒤에 어느 말끝엔가 제호더러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유황 온천에서도 비누를 쓰느냐고 조롱을 받은 것은 후일담이고.
탕에서 나와서, 방을 잊어버리고 어릿어릿하는데 지나가던 하녀가 쪼르르 데려다 준다. 제호는 기다란 얼굴이, 심지어 대머리 벗어진 데까지 불크레하니 익어 가지고 조그마한 밥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초봉이의 밥상도 따로 갖다 놓았다. 조선식으로 맞상을 안 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어때? 기분이 아주 좋지"
제호는 부채질을 하면서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신 싱글벙글 좋아한다.
"……자아 밥 먹더라구. 퍽 시장했을 거야! 그새 여러 날 걱정으루 지내느라구 무얼 변변히 먹지두 못했을 텐데."
밥상 앞에 가 무릎을 뉘고 앉으니까, 하녀가 간드러지게 공기에다 밥을 퍼올린다. 초봉이는 두 손으로 덤쑥 받는다.
"어여 먹어요. 많이 배불르게 먹어요. 인전 아무 걱정두 할라 말구서 잘 먹구 맘두 편안히 가지구 그래요. 마침 목간을 했으니깐 그걸루 과거는 말끔 씻어 바린 요량을 하구 말이지, 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그렇기는커녕 비누가 없어서 때도 못 씻은걸 하고 속으로 웃었다.
"……자아 어서 먹어요…… 원 저렇게 이쁜 사람이, 원 그런 악착스런 일을 당하구 그리다니, 에이 가엾어!…… 가엾어 볼 수가 없단 말야, 허허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이건 바로 어린애를 어르듯 한다고 서글퍼서 우습지도 않았다.
"……자, 난 반주를 한잔……."
제호는 하녀한테 유리 곱뿌를 들이댄다.
"……연애라껀 유쾌한 물건이니깐, 술을 한잔 먹으면 더 유쾌하다구? 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겨우 가라앉던 심정이 또다시 더럭 상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면서, 대체 저 사람이 어찌 이리 실없는고 하고 제호의 얼굴을 똑바로 거듭떠본다.
그러나 제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헤벌씸 웃으면서 하녀가 부어 주는 맥주를 버큼째 쭈욱 들이켠다.
"어허 시언하다!…… 어때? 한잔 해보까"
제호는 지저분하게 거품이 묻은 입술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초봉이에게 곱뿌를 건네 준다.
초봉이는 패앵팽한 눈살로 제호를 거듭떠보다가 외면을 한다.
"싫여…… 어허허허."
초봉이가 보기에는 하릴없이 미친놈같이 제호는 꺼얼껄 웃어 대면서 하녀한테 곱뿌를 들이민다.
초봉이는 밥 먹던 젓갈을 내던지고 일어설 만큼 부아가 더럭 치달았다.
대관절 연애를 한다니 어따 대고 하는 말이며, 또 술을 먹으라고 하니 이건 약간 무례 따위가 아니라 사람을 망신을 주려 드는 게 아니냐
아니, 인제 보니 저 위인이 딴 속이 있어 가지고 나를 이리로 꼬여온 것이 아닌가? 섬뻑 만나던 길로 여편네를 쫓았느니 이혼을 하느니 풍을 치던 것이며, 횡액이라고 동정해 주는 체 앞일은 제가 감당하마던 것이며, 다 배짱이 달라서 한 수작이 아닌가? 하녀더러 아낙이니 남편이니 한 것도, 그러니까 거짓말삼아 정말을 한 것이고.
이렇게 제호의 속을 차근차근 캐고 보니, 이건 큰일도 분수가 있지 기가 딱 막힌다.
‘음충맞은 도둑놈!’
밉살머리스럽고, 또 도둑놈은 말고라서 역적놈이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일은 단단히 커두었다. 어느결에 이렇게 옭혀 들었는지,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노라니, 깔고 앉은 방석에 바늘이 박힌 것 같아 어서어서 이 자리를 피해 달아나야겠다고 마음이 담뿍 단다. 그러나 그러는 하면서도 웬셈인지, 과단 있이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대신 기운이 차악 까라지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온갖 여망을 거기다가 붙이고 찾아가던 그 사람인 것을 여기서 떼치고 혼자 나설 일을 뒤미처 생각하니 겁이 더럭 나고, 그것은 마치 어머니를 길에서 잃어버린 아기 적인 듯 천지가 아득하여 어쩔 바를 모를 것 같기만 하던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약비한 짓이냐고 애써 저더러 지천도 해보기는 했으나, 종시 제가 제 말을 들어 주지를 않는다.
그러나 실상인즉, 그는 제호를 떼쳐 버리기가 겁이 나기 전에, 저와 마주 떠억 퍼버리고 앉아 있는 제호라는 인물의 커다란 몸집에서 무겁게 퍼져 나오는 이상한 압기, 이 압기에 눌려 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꼼짝 못 하고 저편이 잡아 끄는 대로 끌려 가고라야 말지 별수가 없느니라고 미리 단념부터 하고 있는 제 자신을 의식지 못할 뿐더러, 그 압기라는 건 제호라는 위인이 버엉떼엥하면서 남을 덮어 누르고 제 고집대로 하는 뱃심도 뱃심이겠지만, 그보다도 결국 그가 이편을 구해 줄 수 있는 능력의 우상인 데 지나지 않는 것을, 그만 것에 눌려 지레 자겁을 하도록 초봉이 제 자신이 본시 앙칼지지도 못했고, 겸하여 인생의 첫걸음을 실패한 것으로 부지중 자긍을 잃고 자포자기가 된 구석이 없지 못했던 때문인 줄을 그는 제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서 무단히 앉아, 속절없이 이 운명 앞에 꿇어 엎디는 제 자신의 만만한 신세를 힘없이 한탄이나 하는 것으로 겨우 저를 위로하자고 든다.
철든 이후로 무엇에고 나를 고집 못 하던 나!
고태수와 결혼한 것도 알고 보면 내 마음이 무른 탓이요, 장형보에게 욕을 본 것도 사람이 만만한 탓이 아니더냐. 그러한 보과로는 내 몸과 청춘을 잡친 것밖에는 무엇이 더 있느냐.
그리고서 시방 또다시 새로운 운명이 좌우되는 이 마당에 임해서도 다부진 소리 한마디를 못 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
이걸로써 저를 용서하는 대신,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탄식거리에는 족했었다. 미상불 그는 한숨을 몰아 내쉬면서 눈에는 눈물까지 어렸다.
그러나 근본을 따지고 보면, 시방 초봉의 한탄이란 그다지 근거가 있는 것이 되질 못한다. 그는 애당초에 제가 박제호의 뜻을 받아 그의 계집이 된다는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전연 비판을 가지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그 사실--초봉이 제가 박제호의 계집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 가한지 불가한지를 통히 모르고 있다. 하물며, 불가하면 무엇이 어쩌니 불가하다는 것이랄지, 따라서 제가 마음에 정녕 싫은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인지 그것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니, 좀 과하게 말을 하자면, 종일 통곡에 부지하마누라상사라는 우스꽝스런 초상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그래서 아무려나 입맛이 날 리가 없고, 야리게 퍼준 밥 한 공기를 억지로 먹는 시늉을 하다가 상을 물렸다.
아직까지도 맥주만 들이켜고 있던 제호가 생 성화를 하면서 더 먹으라고 야단야단한다.
초봉이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을 마지못해 많이 먹었노라고 대답을 해주고서, 방 머리께 유리창 밖에다가 베란다 본으로 꾸며 논 자리로 옮아 앉았다.
바깥 풍경은 들 가운데 양옥과 화식집들이 드문드문 놓이고 들에는 모를 심은 논과 보리를 베어낸 밭이 있을 뿐, 퍽 단조했다.
그래도 시원한 등의자에 편안히 걸터앉아 보는 데 없이 벌판을 바라보면서, 막막한 생각에 잠겨들기 시작했다.
제호는 한 시간이나 걸리다시피 밥상머리에 주저앉아 시중 드는 하녀와 구수하니 지껄이면서 맥주를 다섯 병이나 집어 먹고, 밥도 여러 공기 먹는다. 그리고는 데리고 온 초봉이는 잊은 듯이 방석을 겹쳐 베고 버얼떡 드러누워, 이내 코를 골아 젖힌다. 시꺼먼 털이 숭얼숭얼한 정강이를 통째로 드러내 놓고 자빠져 자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서, 초봉이는 커튼으로 몸을 가렸다.
그러나 미구에, 조속조속 달콤하니 오는 졸음에 저도 모르게 앞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잠이 들 때까지도 그는,
‘보아서 마구 내뻗으면 고만이지…….’
이런, 저도 못 미더운 방안장담이나 해두는 걸로 임시의 위로를 삼았다.
느직이 여덟시가 지나서 저녁을 먹고 다시 탕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보니, 하녀가 널따란 이부자리를 방 한가운데로 그들먹하게 펴놓고 베개 두 개를 나란히 물려 놓는다.
‘필경 이렇게 되고 마는가!’
초봉이는 그대로 문치에 우두커니 지여 서서 눈을 내리감는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 되어지는 것인고’
오늘 아침 군산서 아무 일도 없이--그렇다, 아무 일도 없었다--그런 아무 일도 없이 떠나온 내가, 이건 꿈에도 생각지 않고 졸가리도 닿지 않고 하릴없이 허방에 푹 빠진 푼수지, 이 밤에 저 박제호와 어엿이 한 이불 속에 들어가다니, 이 기막힌 사실을 무엇이 어떻다고 할 기신도 나지 않았다.
이부자리를 다 펴고 난 하녀는 알심을 부린답시고, 고단하실 텐데 어서 주무시라고 납죽거리면서 물러나간다.
베란다에 나앉아서 초봉이의 난감해하는 양을 보고 헤벌씸 혼자 웃던 제호가 이윽고,
"무얼 저러구 섰으까"
하면서 고개를 까분다.
"……일러루 와서 이야기나 해보더라구…… 응? 초봉이."
이야기란 소리에, 마지못해 초봉이는 제호의 맞은편으로 가서 고즈넉이 걸터앉는다.
"그런데에…… 집은 어떡헐꼬"
제호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더니 밑도 끝도 없이 불쑥 한다는 소리다.
"집? 요"
초봉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쳐든다.
"응, 집…… 우리 살림할 집, 허허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대체 누구하고 언제 그렇게 다 작정을 했길래 시방 이러느냐고, 짐짓이라도 면박을 줄수 있는 제 자신이었으면 싶었다.
제호는 기다랗게 설명을 한다.
앞으로 윤희와 이혼을 하기는 하겠으나, 그게 용이한 일은 아니다. 저편이 그런 억척인만큼, 너와 내가 동거를 하는 줄을 알고 보면 심술이 나서라도 이혼에 응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윤희와 이혼이 되는 날까지는 일을 속새로 덮어두는 게 좋겠다. 너를 바로 청진동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그런 곡절이기 때문이니 부디 어찌 생각 마라. 하면 네가 살림할 집은 우선 마땅한 놈으로 골라 세를 얻어 주마.
그렇게 따로 살림을 하고 있노라면, 첫째 뜬마음이 안정이 될 뿐만 아니라 홀몸으로 어디 가서 월급이나 한 이삼십 원 받고 지내는 것 같을 것이냐? 그런 생활보다는 우선 살림 범절만 해도 몇곱절 낫게시리 뒤를 대주마.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참고 지내면 윤희와의 문제가 깨끗하게 요정이 난 뒤에 너를 큰집으로 맞아들일 것은 물론이요, 만약 네가 소원이라면 결혼식이라도 하자꾸나.
그러니 다 그렇게 알고 나를 믿어라. 혹시 나를 의심할는지도 모르겠으나 설만들 내가 이 나이를 해가지고 집안간의 세교를 생각하든지, 또 과거에 너를 귀애했던 것으로든지 너를 한때의 노리갯감으로 주무르다가 내버릴 악심으로야 이럴 이치가 있겠느냐. 그러한 불량한 놈이 아니라는 것은 변명을 않더라도 네가 잘 알리라.
제호의 설명은 대개 이러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안존히 앉아 수선도 떨지 않고 점잖게, 그리고 간곡히 이야기를 하던 것이다.
미상불 초봉이를 제 것 만들겠다는 일념에, 그의 하던 말은 적어도 이 당장에서는 다 진정임에 틀림이 없었다.
초봉이는 제호의 태도와 말이 진실하다고 믿기보다, 진실하겠지야고 믿어 두고 싶었다.
‘기왕 이리 된 걸…….’
무슨 차마 못 할 노릇을 죽지 못해 억지로 당하는 것처럼이나 강잉하여 마음을 돌리던 것이다.
그는 제호의 이야기한 ‘생활의 설계’가 적잖이 만족했다. 욕심 같아서는 기왕이니 제 의향으로, 가령 친정집의 생활 같은 것도 어떻게 요량을 해달라고 말을 해서 다짐 같은 것이라도 받고 싶었으나, 마음뿐이지 처음부터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에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제호는 입이 귀밑까지 째지면서, 신혼 축하를 한다고 하녀를 불러 올려 맥주를 청한다.
초봉이는 비로소 제가 제호의 ‘아낙’이 되는 것에 대한 제 기호(嗜好)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 보아야 스스로 이상할 만큼 좋고 언짢고 간에 분간을 할 수도 없고, 또 가타부타 간의 시비도 가려지지 않고,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제호와 저를 번갈아 보면서 자꾸만,
‘내가 저 아저씨의 아낙’
‘저 아저씨가 내 남편’
해야, 아무래도 실없는 장난이나 거짓말 같아 우습기나 하지 조금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고태수 적에도 이랬던가 곰곰 생각해 보나, 그러한 것을 마음에 헤아린 기억이 없다.
이튿날 낮 두시, 인제는 정말로 제호의 ‘우리 아낙’이 된 초봉이는 신혼여행을 미리서 온 셈이 된 유성온천을 떠나 대전으로 버스를 달린다. 달리면서 생각은 두루 깊어 어쩌면 한달지간에 이다지도 갖은 변화를 겪는고 하면, 그것이 모두 제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을 잠시 맡아서 해주는 것만 같았다.
초봉이가 제호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여관에 묵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이다. 집을 드느라고 제호는 자작소롬한 살림 나부랑이를 자동차에 들이 쟁여 가지고 초봉이와 더불어 종로 복판을 동쪽으로 달리기는 오후쯤 해서고.
"저게 우리 회사야…… 위선 임시루 이층을 빌려 쓰는데, 널찍해서 쓸모가 있어요……."
동관 파주개에서 북편으로 꺾여 올라갈 무렵에, 제호는 길모퉁이의 이층 벽돌집을 손가락질한다.
"……또오, 저긴 활동사진집…… 우리 괭이 구경다니기 좋으라구, 헤헤."
제호는 유성온천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부터 초봉이를 ‘우리 괭이’라고 불렀다.
동관 중간께서 자동차를 내려, 바른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뒷골목을 건너 마주 보이는 집이 있었다.
송진 냄새가 나는 듯 말쑥한 새 집이, 문등까지 달리고 드높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산뜻한 게 마음에 앵겼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바른편 방이 행랑이요, 다시 유리창을 한 안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이 부엌과 안방, 그리고 고패져서 삼간마루와 건넌방이다. 겉으로 보매 그럴듯한 것이 들어와서 보니 좁고 옹색하다. 마당이 앞집과 옆집의 뒷벽에 코를 부딪칠까 조심되게 좁았다. 그러한 마당에다가 장독대도 시늉은 해놓고, 수통도 있기는 있고, 또 좌가 동남으로 앉은 집이라, 겨울볕은 잘 들어도, 방금 닥쳐 오는 여름철은 서쪽이 막혀서 시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보증금이 이백 원이요 월세가 삼십 원이라는 소리에, 초봉이는 깜짝 놀랐다.
행랑은 지저분할 테니 두지 말자고, 제호가 미리 말하던 대로 비어 있었다.
주인 내외가 들어오니까, 건넌방에서 배젊어도 빛이 검고 우툴우툴하게 생긴 여자가 공손히 마중을 한다.
식모도 이렇게 미리 구해 놓았고, 또 의복 장롱이야 찬장에 뒤주야 부엌의 살림 제구야 모두 차려 놓은 것을 보니, 초봉이는 태수와 결혼을 하던 날, 역시 이렇게 차려 놓은 집을 들던 일이 생각나서 일변 속이 언짢았다.
살림은 쌀나무와 심지어 빗자루 하나까지도 죄다 구비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재봉틀이다. 청진동 제호의 큰집에 있던 것을 내려온 듯한데, 초봉이는 윤희가 쓰던 것이거니 하고보자니 치사스럽기도 하나 군산서 모친과 더불어 재봉틀도 없이 삯바느질에 허리가 아프던 일을 생각하면, 윤희한테 치사스러운 것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국 초봉이는 다 만족한 셈이다. 다만 화단을 만들 자리가 아무리 해도 없는 것이 섭섭했지만, 그것은 화분을 사다 놓기로 하면 때울 수가 있으리라 했다.
이튿날 아침 제호가 조반을 먹고 회사로 나간 뒤에 초봉이는 모친한테 편지를 썼다.
사연은, 무사히 왔고 또 요행히 오던 길로 몸 편하게 잘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치도 염려 말라고, 그리고 떠나올 때 편지에 말한 대로 집 보증금 주었던 것이며, 시계, 반지, 양복장 등속을 말끔 팔아서 그렁저렁 지내노라면 종차 형편을 보아 좌우간 무슨 변통을 하겠노라고, 아주 간단히 썼다.
짐작건대 혼인 때 쓰고 남은 돈이 몇십 원 있을 테고, 또 제가 시킨 대로 주워 보태면 이백 원 돈은 될 테니, 서너 달 동안은 그렁저렁 지탱할 듯싶어 우선 그걸로 친정은 안심할 수 있었다. 종차는 제호한테 다 까놓고 이야기를 해서 살림을 조략히 해서라도 할 테니 매삭 이삼십 원 가량씩 따로 내려 보내 달라고 하든지, 그러잖으면 달리 무슨 도리를 구처해 달라고 청을 댈 요량이던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라, 기왕 계봉이와 형주도 군산서 지금 다니는 학교를 마치는 대로 서울로 데려올 테니, 그 애들의 교육도 제호더러 감당을 해달라고 할 작정까지도 해두기를 잊지 않았다.
편지를 쓰고 나서도 한동안 붓을 놓지 못하고 망설였다.
기왕 편지를 쓰는 길이니, 시방 제호와 만나 다 이렁저렁 되었다는 사연을 눈치만이라도 비칠까하던 것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도리는 당연할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러고 보면 비록 부모 자식 간일 망정 깊은 곡절은 모르고, 계집아이가 몸가짐을 그리 헤피 했을까 보냐고 아닌 속을 아실 것 같고 해서 그래 주저를 한 것인데, 역시 아직 이르다고, 마침내 먼저 쓴 대로 그냥 편지를 봉해 버렸다.
석양쯤 제호가 싱글벙글 털털거리고 들어오더니 빳빳한 십 원짜리로 오십 원을 착 내놓는다.
"자, 이게 우리 괭이 한 달 월급이다. 허허허허, 괭이 월급 주는 놈은 이 세상에 이 박제호 한 놈뿐일걸? 허허허, 제기할 것, 허허허허."
"이렇게 많이"
초봉이는 반색을 하면서 웃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삼십 원 월급이나 받는 것보다 월등 낫다는 타산이야 종차 생각나겠지만, 우선 눈앞에 내논 한 달 용돈 오십 원이 푸짐하던 것이다.
"허허! 그게 그리 대단해서!"
제호는 초봉이의 볼때기를 가만히 꼬집어 주면서,
"……돈 오십 원이 그리 푸달지다구? 쓰기 나름이지…… 그걸랑 둬두구서 반찬거리며, 전등세, 수도세, 식모 월급, 그런 거나 주라구…… 집세는 내가 따루 줄 테구, 또 나무 양식두 따루 딜여보낼 테니깐, 알겠지!…… 응, 그리구 참, 달리 무엇 살림 장만할 게 있다던지, 옷감 같은 걸 끊느라구 모갯돈이 들겠거들랑, 날더러 달라구 말을 하구."
초봉이는 따로 시방 약삭빠른 셈을 따져 보고 있다.
수돗세, 전등세, 식모 월급 다 치더라도 십 원이 채 못 될 것이고, 반찬거리라야 제호의 밥상을 어설프지 않게 하기로 하더라도 한 달에 이십 원이면 족할 것이고.
그런즉 오십 원에서 이십 원이나, 잘하면 이십오 원씩은 남을 것이니 그놈을 친정으로 내려보내 주리라. 종차야 제호더러라도 다 설파하게 될 값에, 우선 얼마 동안은 친정 권솔들을 먹여 살려라 어째라 하기도 실상 무엇하고 하니 아예 그렇게 하는 편이 옳겠다.
(그래서 미상불 그 다음달, 그러니까 칠월 보름에 가서 보니, 조략히 쓴 보람도 있겠지만 돈이 이십 원하고도 몇 원이 남았었다. 곧 친정으로 내려보냈을 것이로되, 그 동안 편지가 온 것을 보면 아직은 제가 시킨 대로 했기 때문에 그다지 옹색지 않은 눈치여서 그대로 꽁꽁 아껴 두었었다.)
두웅둥 떴던 초봉이의 마음은 차차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것도 처음은, 이 생활이 현실로 믿어지지가 않고, 아무래도 인제 내일 아니면 모레는 다시 무슨 풍파가 일어, 또다시 새로운 그 운명이 시키는 대로 낯선 생활을 맞이하게 되려니 싶기만 했었다.
그러는 동안에 열흘 보름 한 달 두 달, 이렇게 지내노라니까 비로소 마음이 훨씬 가라앉고 생활도 자리가 잡히던 것이다.
그는 서울로 와서 제호와 살게 되면서도, 역시 집과 일에다가 정을 붙였다.
조석으로 집안을 정하게 닦달하고, 세간을 보기 좋게 벌여 놓고, 화분을 사다가 화초를 가꾸고, 재봉틀을 놓고 앉아 바느질을 하고, 그래서 마당에 모래알 하나나 방 안의 전등 덮개 하나에까지도 초봉이의 손이 치이고 마음이 쓰이고 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알뜰살뜰했다.
제호는 초봉이가 그러는 것을 너무 청승맞아서 복이 붙지 않겠다고 농담삼아 말리곤 했지만, 초봉이한테는 그것이 낙이요, 그 밖에는 마음 붙일 것이 없었다.
아침에 제호가 회사로 나가고 나면 초봉이는 그렇게 심심치 않은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때부터는 제호의 착실한 아낙 노릇을 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제호가 웃으면 같이 웃어 주고, 이야기를 하면 말동무가 되어 주고, 타고난 솜씨에다가 마음까지 써서 조석을 어설프지 않게 살뜰히 공궤하고, 제호가 미리서 말을 이르지 않아도 노상 즐기는 맥주 몇 병은 얼음에 채놓았다가 저녁 밥상머리에 내놀 줄도 알고…….
이렇게 어찌 보면 눈치빠른 애첩 같기도 하고, 정다운 아내나 착한 주부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무슨 제호한테 탐탁스레 정이 있어 그러는 게 아니고, 그런 것 역시 집 안을 깨끗이 치우고, 화초를 가꾸고, 장롱을 훤하게 닦달을 하고, 조각보를 새기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 없이 다만 제 재미를 위해서 하는 노릇일 따름이었었다.
이러구러 그는 한갓 승재가 가끔 생각나는 때말고는 이것이고 저것이고 간에 흥분도 없으려니와 불평도 없이, 일에다가 마음을 붙여서 그날그날 지내는, ‘로보트’ 되다가 만 ‘사람’ 노릇을 하기에 골몰하던 것이다.
제호더러는 군산서부터 아저씨라고 불렀고, 친아저씨같이 따랐고, 미더워했고, 그랬기 때문에 시방도 그를 아저씨로 여기고 미더워하고 흔연히 대답을 하고 하기는 해도, 그 이상 남녀간의 짙은 흥이라든가, 부부다운 정이며 의(誼) 같은 것은 우러나지도 않았고 우러날 건지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승재를 그리워하는 회포가 깊었다. 오랜 오랜 옛날에 무엇 소중한 것을 통째로 어디다가 잃어버리고, 그 대신 그득한 슬픔 하나를 얻어 가지고 온 것같이 마음이 허전하니 외롭고,
그럴 때면 그것이 바로 승재가 그리워지는 그 전 순간이곤 했다. 보면 그 다음 순간 영락없이 승재 생각이 나던 것이다.
이것이 초봉이한테는 단 한 가지의 윤기 있는 낙(樂)--괴로운 낙이나, 즐겁게 괴로운 낙이었었다.
그리고 겨우 이것 한 가지로 해서, 그는 오십 넘은 독신의 가정부(家政婦)가 아니고, 아직 청춘이라는 구실(口實)이 되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제호는 오후와 저녁이면 초봉이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적이나 하면 삼방(三防), 석왕사(釋王寺) 같은 데로 초봉이를 데리고 피서라도 가고 싶었지만, 새로 시작한 회사일이 하루도 몸을 빼칠 수가 없다.
그 대신 거의 매일 밤, 초봉이를 데리고 본정으로든지 종로든지 산보도 나가고, 나갔다가 눈에 띄는 것이면 옷감이든지 집안 세간이든지 곧잘 사주곤 했다. 그는 초봉이의 마음을 사자고 여간만 정성을 들이는 게 아니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살림을 시작한 지 바로 사흘째 되던 날인데, 초봉이가 부엌에 있다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서니까 제호는 밑도 끝도 없이,
"아니, 초봉이가 그런데, 그게 어떻게 된 셈이야"
떼어 놓고 하는 소리라, 초봉이는 영문을 몰라 뚜렷뚜렷하다가, 혹시 형보의 사단이나 아닐까 하고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다.
"글쎄 내가 말야……."
제호는 그러나 숟갈을 들면서 심상히 설명을 하던 것이다.
"……윤희를 보내구 나서는, 이내 다른 여자와는 도무지 상관을 한 일이 없었는데, 허허 그거 참…… 아 글쎄 ×× 기운이 있단 말야!…… 허허 제기할 것, 늙은 놈이 이거 망신이지…… 아무튼 그 사람 고 무엇이라는 친구가 초봉한테 골고루 못 할 일을 하구 죽었어!"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초봉이는 충분히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제호가 그래서 ××이라는 것에 대해 한바탕 기다랗게 강의를 하니까, 그제야 초봉이는 고개를 숙이고 들지 못했다.
태수와 처음 결혼을 하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확실히 시방 제호가 말한 대로 그런 증세가 나타났던 것을 기억할 수가 있었다.
"거 기왕 그리 된 걸 할 수 있나. 인전 치료나 잘 하두룩 해야지, 허허허허 제기할 것…… 뭐 괜찮아 일없어!"
제호는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이렇게 웃어 버리고는 오히려 말 낸 것을 후회하여 초봉이의 무렴을 꺼주느라고 애를 썼다.
이튿날부터 주사며 약이며 일습을 장만해다 놓고는 제법 익숙하게 주사도 놓아 주고, 저도 놓고, 내외가 앉아서 그다지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치료를 그러나 재미 삼아 농도 삼아 계속을 했었다.
이렇게 범사에 제호는 초봉이를 다독거리고 어루만지고 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아내 되는 윤희의 히스테리와 건강치 못한 것으로 해서 가정의 낙은 고사하고 어금니에서 신물이 났던 참인데, 일찍이 마음이 간절했던 초봉이를 얻어 이렇게 아늑한 가정을 이루고 보니 이래저래 초봉이가 귀엽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초봉이가 새침하니 저는 저대로 나돌고 속정을 주지 않아서 흥이 미흡하고 헤먹는 줄을 모르는 바도 아니요, 사실이지 언제까지고 이대로 알찐 맛이 없이 지내라면 그것은 마치 석고로 빚은 인형을 데리고 사는 것 같아 죽여도 그 짓을 오래 두고는 못 해낼 듯싶었다.
그러나 저도 사람이거든 인제 정이 쏠리는 날이 있겠지, 제 정을 앗자면 내가 더욱 정답게 굴어야지, 이렇게 뒤를 보자고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혹시 초봉이가 새침하든지 하면 제 딴에는 버엉뗑하고 흥을 내준다는 게,
"우리 괭이가 기분이 좋잖은 게로군…… 응…… 아나 괭아, 조굿대가리 주께 이리 온."
하면서 손을 까불까불, 장난을 청한다.
그럴라치면 초봉이는,
"말대가리 말대가리."
하면서 눈을 흘기고, 영 심하면 정말 고양이같이 달려들어서는 제호의 까부는 손등이고 빈대머리진 이마빡이고 사정없이 박박 할퀴어 준다. 여느때는 들어 보지도 못한 쌍스런 욕을 내갈기기도 한다.
마음 심란하던 차에 탐탁하지도 않은 사람이 괜히 앉아서 지분덕거리는 게 더욱 싫어서 자연 소갈찌를 내떨곤 하던 것인데, 속을 모르는 제호는 제호대로 그럴 적마다 윤희의 히스테리의 초기적을 생각하고, 초봉이도 그 시초를 잡는 거나 아닌가 싶어 혼자 속으로 입맛이 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