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씨 행장기(行狀記)
김씨가 이럴 제는 탑삭부리 한참봉은 첩의 집에 가고 없는 게 분명했다. 줄 맞은 병정이라 태수는 마음 놓고,
"아이구 아얏!"
허겁스럽게 소리를 지르면서 방구석께로 피해 들어간다.
김씨는 물었던 것을 놓치고서 새액색 기어들고, 태수는 방구석에 가 박혀 서서 두 손을 내밀어 김씨를 바워 낸다.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태수는 어리광을 떨면서 빌고, 김씨는 약올랐던 것이 사그라지기 전에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을 겸 입을 따악 벌리고 연신 덤벼 든다.
"아, 안 돼. 아, 안 돼."
"다시는 안 그러께요. 거저 다시는 안 그러께요!"
태수는 지친 몸을 지탱하다 못해 펄씬 주저앉아서 두 손바닥을 싹싹 비빈다.
김씨는 태수가 그러면 그럴수록 꼬옥 한 번만 더 물고 싶어 죽는다. 인제는 밉살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뻐서 물고 싶다.
김씨는 물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태수가 이뻐도 물고, 미워도 문다. 물어도 그냥 질근질근 무는 것이 아니라, 사정없이 아드득 물어뗀다. 이렇게 물어 떼는 맛이란, 잇념 속이 근질근질, 몸이 금시로 노그라지는 것 같아 세상에도 꼭 둘째 가게 좋지, 셋째도 가지 않는다.
그 덕에 태수는 양편 팔로 어깨로 젖가슴으로 사뭇 이빨자국투성이다.
처음 시초는, 소리를 내서 티격태격하기가 조심이 되니까, 소리 안 나는 싸움을 하느라고 물고 물리고 했던 것인데, 시방 와서는 그것이 둘 사이에 없지 못할 애무(愛撫)가 되고 말았다.
무는 김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리는 태수도 아프기야 아프지만, 그놈 살이 떨어질 듯이 아픈 맛이란, 약간 안마(按摩) 못지않게 시원하다.
김씨는 태수가 젊고, 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좋은 데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물어 뗄 수 있는 것이 더욱 좋았다.
그는, 언젠가 남편이 첩의 집에 가지 않고 큰집에서 같이 자던 날 밤인데, 아쉰 깐에 태수한테 하던 버릇만 여겨, 그다지 기름지지도 못한 남편의 젖가슴을 텁석 물어 떼었다.
했더니, 탑삭부리 한참봉은 경풍하게 놀라,
"아니, 이 여편네가 이건 미쳤나!"
고함을 지르면서 김씨의 볼때기를 쥐어박질렀다. 그런 뒤로부터는 김씨는 남편과 잘 때면 조심을 하느라고 애를 쓰곤 했었다.
김씨는 종시 입을 따악 벌리고,
"아…… 한 번만 더 물자. 아."
하면서 자꾸만 태수 앞으로 고개를 파고든다.
"아퍼 죽겠구만!"
태수는 먼저 물린 자리를 만지면서 바로 응석을 부린다.
"그래두. 그새 죄진 벌루다가…… 아, 한 번만 더. 아."
"싫여이!"
"요것아!"
물기도 이골이 나서 어느결에 들이덤볐는지, 태수의 어깨를 덥석 물고 몸을 바르르 떤다. 으응!
소리가 사뭇 징그럽다.
"아이구우! 이놈의 늙은이가 인전 날 영영 죽이네에!"
태수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져 우는 시늉을 하면서 물린 어깨를 손바닥으로 비빈다.
"아프냐"
김씨는 좋아서 태수의 얼굴을 갸웃이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안아올려 무릎을 베게 해준다.
"응, 아퍼 죽겠어!"
"아이 가엾어라! 내 새끼…… 자아 그럼 쎄쎄 해주께, 응"
김씨는 태수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싹싹 비비면서,
"쎄쎄 쎄쎄, 까치야 까치야, 우리 애기 생일날…… 아이 술냄새야! 술을 또 퍼먹었구나"
"응, 아주 많이……."
"왜 그렇게 술을 몹시 먹구 다녀! 그대지 일러두"
"속이 상해서!"
"속이 왜 상허구, 또 속상헌다구 술만 먹구 다녀선 쓰나? 몸에 해룹기나 허지. 무엇 밀수(蜜水)나 좀 타다 주까"
태수는 고개만 살래살래 흔들고 눈을 스르르 감는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태수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김씨도 역시, 태수만 못지않게 얼굴에 수심이 드러난다.
"아무래두! 아무래두……."
김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탄식하듯 혼자말로 뇌사린다.
"……너를 장가나 딜여서 맘을 잡게 해야 할까 부다! 아무래두."
"장가? 흥! 장가아!"
태수는 시쁘듬하게 제 자신더러 하는 듯 이런 조소를 하다가 다시,
"……혹시 우리 초봉이라면!"
"건 안 될 말이다!"
김씨는 시방까지 추렷하고 상냥스럽던 얼굴과는 딴판으로, 더럭 표독스럽게 잡아뗀다.
"대체 어째서 초봉이라면 그렇게 치를 떨우"
태수는 열이 나서 벌떡 일어나 앉아 눈을 찢어지게 흘긴다.
"……초봉이가 당신네 신주단지요"
"네게는 과분해."
김씨는 아까 낯꽃 변했던 것을, 태수한테 띄지 않고 얼핏 고쳐, 천연스럽게 갖는다.
"내, 오기루라두 기어코 초봉이허구 결혼하구래야 말걸"
태수는 씹어 뱉듯이 두런거리면서 아무 데나 도로 쓰러진다.
"내가 방해를 놀아두"
"그게 원 무슨 놈의 갈쿠리 같은 심청이람!…… 그래, 우리가 언제까지구 이렇게 지내다가는 못쓰겠으니 갈려야 하겠다구, 뉘 입으루 내논 말야…… 뭐 또, 날더러 맘을 잡으라구, 다아 그렇게 하자면 역시 장가를 들어야겠다구 한 건 누구야? 내가 장가를 가겠다면 중매 이상으루 가진 뒷수발 다아 들어 주겠다구는 뉘 입으로 한 말야"
"그래 글쎄! 내가 중매까지 서구, 말끔 대서 장간 딜여 줄 테야!"
"그런데 왜 내가 좋다는 초봉인 훼방을 놀려구 들어"
"초봉인 안 된다! 네게루 가면 그 애가 불쌍해. 천하 건달 부랑자한테루 그 애가 시집을 가서 신세를 망친대서야 될 말이냐"
"별 오라질 소리두 다아 허구 있네!"
태수는 골딱지가 나서 벽을 안고 누워 버린다.
태수는 그래서 골을 내는 것이지마는 김씨는 김씨대로 노여움이 없지 못하다. 노여움 끝에는 자연 일의 시초가 여자답게 뉘우쳐지기도 한다.
태수가 여관에서 묵다가 아는 사람의 반연으로 이 집으로 하숙을 잡아 들기는 작년 여름이다.
제 밥술이나 먹는 탑삭부리 한참봉네가 무슨 우난 이문을 바라서 그런 건 아니고, 기왕 뜰아랫방이 비어 있으니 비어 내던져 두느니보다 점잖은 손님이라도 치고 싶다고 김씨가 이웃에 말을 냈던 것이 계제에 염집을 구하던 태수한테까지 발이 닿았던 것이다.
본시야 서로 코가 어디 가 붙었는지도 모를 생판 남이지만, 한번 주객이 되고 보매 둘 사이는 매삭 이십오 원이라는 밥값을 주고받는다는 거래를 떠나서 서로 마음이 소통되게끔 사정이 마침 맞았다.
태수는 생김새도 흉치 않거니와 성품도 사근사근하니 정이 붙게 하는 데가 있어 탑삭부리 한참봉더러도 아저씨 아저씨 하고 정말 일가뻘이나 되는 조카처럼 따르고 더러는 맛좋은 정종병도 들고 들어와서 적적한 밥상머리에 앉아 반주도 권해 주고 하는 짓이 수월찮이 밉지 않게 굴었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그것도 자식 없는 사람의 약한 인정이라, 태수가 그래 주는 것이 적잖이 위로가 되고, 그러는 동안에 정이 들어, 지금 와서는 어느 때는 태수가 꼭 자기의 자식이나 친조카같이 생각되는 적도 있었고, 그래서 그는 늘 태수의 밥상 같은 것에도 마음을 쓰고, 아내더러 도미를 사다가 찜을 해주라고까지 하게끔 되었던 것이다.
‘모르는 건 놈팽이뿐.’
이런 물 건너 속담도 있거니와, 물론 그는 아내와 태수 둘이서 그런 짓을 하고 지내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여자라는 것은 무슨 정이고 간에 정이 들기가 남자보다 연한 편이다.
김씨는 태수가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상냥하게 굴고 하는 서슬에 그가 주인 정해 온 지 석달이 채 못해서, 남편이 일 년 가까이 된 요새 겨우 태수한테 든 정 그만큼, 도타운 정이 그때에 벌써 들었었다. 김씨는 그래서 그때부터, 조카같이 오랍동생같이 나이를 상관 않고 자식같이 귀애했고, 귀애하기를 남편 한참봉만 못지않게 귀애했다.
그러하던 중…… 작년 시월 초생, 음력으로 보름께였던지, 달이 휘영청 밝고 제법 산들거리는 게 젊은 사람은 객회가 남직한 밤이었었다.
그날 밤 태수는 주인집의 저녁밥도 비워 때리고 요릿집에서 놀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길이었다.
술이야 얼근했지만, 밤이 그렇게 마음 촐촐하게 하는 밤이니, 다니는 기생집도 있고 한 터에 그냥 돌아오지는 않았겠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서로 엇갈리고 헛갈리고 해서 할 수 없이 혼자 동떨어진 셈이었었다.
그는 술을 먹고 늦게 돌아왔다가 탑삭부리 한참봉한테 띄면 으레 붙잡혀 앉아서 술을 먹지 말라는 둥, 사내가 어찌 몇 잔 술이야 안 먹을꼬마는 노상 두고 과음을 하면 해로운 법이라는 둥, 이런 제법 집안 어른 노릇을 하자고 드는 잔소리를 듣곤 하기 때문에 그것이 성가시어, 살며시 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태수는 그래서 사푼사푼 마당을 가로질러 뜰아랫방으로 가노라니까 공교히 안방에서,
"고서방이우"
하고 기척을 내는 김씨의 음성에 연달아 앞 미닫이가 열렸다.
"네에, 납니다…… 여태 안 주무세요"
태수는 할 수 없이 안방 댓돌로 올라섰다. 김씨는 흐트러진 풀머리에 엷은 자릿적삼으로 앞을 여미면서 해죽이 웃고 내다보던 것이다.
남편의 마음이 변한 것이야 아니지만, 그래도 시앗을 본 젊은 여인이라, 더위 끝에 산산히 스미는 야기(夜氣)에 잠을 설치고 마음이 싱숭거려, 이리저리 몸을 뒤치고 있던 참이다.
"늦었구려? 저녁은 어떻게 했수? 자서예지"
"먹었어요…… 아저씬 주무세요"
"저 집에 가셨지."
"하하하, 나는 글쎄 술을 한잔 먹었길래, 아저씨한테 들킬까 봐서 그대루 슬쩍 들어가 버릴 양으루 그랬지요. 하하하…… 그럼 좀 놀다가 잘까"
태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마루로 해서 안방으로 성큼 들어선다.
이거야 탑삭부리 한참봉이 있건 없건, 밤이고 낮이고 안방에 들어가서 놀고 누워 뒹굴고 하던 터라, 이날 밤이라고 그것을 허물할 바는 아니었었다.
그러나 이날 밤사 말고, 태수는 김씨의 잠자리에서 나온 그 흐트러진 자태에 전에 없던 운치스러움을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어떤 무엇을 분명하게 계획한 것은 물론 아니요, 그저 그 당장에 문득 인 흥(興), 단지 그 흥에 지나지 않던 것이다. 적어도 시초만은 그러했다.
이 흥은 김씨도 일반이다. 그는 태수가 그대로 돌아서서 제 방으로 가려고 했더라면 놀다가 가라고 자청 불러들이기라도 했을 것이다.
태수는 윗미닫이로 해서 안방으로 들어서고 김씨는 엽엽스럽게도,
"아이머니!"
질겁을 하면서, 그러나 엄살을 하는 깐으로는 서서히, 자줏빛 누비처네를 끌어다가 홑껍데기 하나만 입은 아랫도리를 가리고 앉는다.
"미안합니다! 난 또 아직 눕잖으신 줄 알았지."
"아냐 괜찮아! 일루 앉어요. 어떤가? 머, 늙은 사람이…… 자아 앉어요."
태수가 도로 나올 듯이 주춤주춤하는 것을 김씨는 붙잡아 앉히기라도 할 것같이 반색을 한다.
둘이는 태수가 술 먹은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고 하다가 말거리가 없어 심심했다. 전에는 이런 일은 통히 없었다.
"고서방두 인제는……."
어색하리만치 말이 없다가 김씨가 겨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던 것이다.
"……장갈 들어서 살림을 해예지! 늘 이렇게 지내느라구 고생허구…… 적적하긴들 오죽해여!"
"아즈머니두! 색시가 있어야지 장갈 가지요"
"온 참! 고서방 같은 이가 색시가 없어서 장갈 못 들어? 과년찬 색시들이 사뭇 시렁 가래다가 목을 맬려구 들 텐데, 호호."
"아녜요, 정말 하나두 걸리는 게 없어요. 이러다간 총각귀신 못 면할까 봐요!"
"숭헌 소리두 퍽두 허구 있네!…… 아 고서방이 장가만 가구 싶다면야 내 중매 안 서주리"
"정말이요"
"그래에!"
"거 참 한자리 마땅한 데 좀 알아봐 주시우. 내 술은 석 잔말구 삼백 잔이라두 내께."
"그래요!…… 그렇지만 인제 고서방이 장갈 들면 따루 살림을 날 테니 우리 내왼 섭섭해서 어떡허나? 호호, 우리 욕심만 채리구서 그런 말을 다아 허구 있어요! 하하하아."
"허허, 정 그러시다면, 그대루 저 뜰아랫방에서 살림을 하지요, 허허."
"호호……."
김씨는 간드러지게 웃다가 낯빛을 고치고 곰곰이,
"……아이 나두 고서방 같은 아들이나 하나 두었으면 오죽이나!"
말을 못 맺고 한숨을 내쉰다.
"인제 애기 나실 걸 머…… 저렇게 젊으신데!"
"내가 젊어"
김씨는 짐짓 눈을 흘기다가 다시 고개를 흔든다.
"……내야 늙구 젊구간이, 안 돼!"
"왜요"
"우리집 영감님이 아주 제바리야! 그새 첩을 네엔장 몇씩 갈아딜이두 아이를 못 낳는 걸 좀 보지"
"허긴 그래요! 남자가, 저어 그래설랑…… 아일 못 낳기두 하니깐……."
"그러니 우리 집안은 자손 보기는 영 글렀지!…… 젠장맞을, 여편네 혼자서 아이 낳는 재주 없나!"
김씨는 해쭉 웃고, 태수도 같이서 빙긋이 웃는다.
김씨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슬하가 적막하기도 하거니와, 장래가 또한 걱정이었었다.
만일 김씨 자기가 영영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 대신 첩의 몸에서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하나 낳는 날이면, 남편의 정이며 또 재산은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미한테로 달칵 기울고 말 것이었었다.
그러는 날이면, 김씨는 내 신세가 간데없을 테라 해서 연전부터 그는 남편한테 돈을 한 오백 원이나 얻어 가지고 그것을 따로 제 몫을 삼아 사사 전당도 잡고, 오푼변 돈놀이도 한 것이 시방은 돈 천 원이나 쥐고 주무르는데, 이것은 장차 그렇게 될 날을 혹시 염려하고, 즉 말하자면, 늙은 날의 지팡이를 장만하는 셈이었었다.
이러한 불안이 있으므로 김씨는 내 몸에서 아이를 낳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그가 한 말대로 여자 혼자서 아이를 날 수가 있다면, 그 수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가리지 않을 만큼 간절히 아이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남자에게 정조를 개방하리라는 결단이 동시에 서서 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고, 그것은 옳고 그른 시비보다도 우선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를 않았었다.
태수와 사이의 사단이, 좌우간 마음 성가시게 된 요새 와서는 김씨는 ‘자식이나 하나 보쟀던 것이!’ 하는 후회를 혼자 앉아 가끔 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로서 저를 속이자는 괜한 억지이던 것이다.
미상불 태수와 그렇게 된 그 이튿날부터도 아기를 바랐고, 시방도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아기를 바라느라고 태수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었다. 기왕 그리 되었으니 아기나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는 욕심, 이게 정말이던 것이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록 자손을 보겠다고 첩을 얻고 지내지만, 마음으로는 아내 김씨한테 노상 민망해한다. 십오 년 동안이나 쓴맛 단맛 같이 맛보아 가면서, 게다가 이만한 전장까지 장만하느라고 동고동락으로 늙어 온 아내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하나가 흠이지, 정이야 깊을 대로 깊고 해서 알뜰한 생애의 길동무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참봉은 김씨보다 나이 열세 살이나 더해서 이미 늙발에 들어앉은 사람이다.
그러한데다 한 달이면 삼사 일만 빼놓고 육장 첩의 집에 가서 잠자리를 하곤 하니, 가령 마음은 변하지를 않았다 하더라도 옛날같이 다 구격이 맞는 남편이 될 수는 없었다.
한편 김씨도 남편이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미더워하며 소중히 여겨 주는 줄은 잘 알고 있었다.
또 김씨 자신도 의가 좋게 반생을 같이 살아온 남편이니, 그에게 정도 깊거니와 의리도 큼을 모르는 바 아니었었다.
그런지라 그는 남편이 갑자기 싫어졌다거나, 그래서 배반할 생각이 들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었다.
단지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따로 이것이라, 시장하기도 한데 냉면도 구미가 당겼던 그런 셈쯤 되었었다.
그럼직도 한 것이, 김씨는 젊었다. 나이보다도 또 더 젊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알찐거리는 태수는 늘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곧잘 보비위를 해주고 싹싹히 굴어 오랍동생같이 조카같이 자식같이 따르는 귀동이요, 그런만큼 다뤄 보기에 호락호락하기도 했었다.
그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귀동이는, 그런데 또 보매도 씩씩한 젊은 사내이어서 셰퍼드답게 세찬 매력을 가졌었다.
진실로, 삼십을 가제 넘은, 시앗을 본 여인의 바로 무릎 앞에서, 그리하여 그놈 셰퍼드가, 초가을의 산산한 야기에 포옹이 그리운 밤과 더불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그 밤의 핍절한 정경이었었다.
피가 뜨겁게 머리로 치밀고 숨이 차왔다. 그러자 마침 땡땡 마루에서 두시를 쳤다.
시계 소리에 태수는 그만하고 일어설까 했으나 엉덩이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어느결에 흠씬 무르익어 버린 이 흥을 이대로 깨뜨리기가 섭섭했던 것이다.
"고서방, 우리 화투나 칠까"
김씨가 약간 떨리는 음성을 캐액캑 가다듬어 겨우 말을 내던 것이다.
"칩시다."
태수는 선선히 대답을 하고 일어서더니, 잘 아는 장롱서랍을 뒤져 화투목을 꺼내다가 착착 치면서 김씨 앞으로 바투 다가앉는다.
"고서방 고단할걸"
"뭘! 괜찮어요."
"그러면 ‘놉빼꾸’ 한판만…… 그런데 내기야"
"좋지요. 무슨 내기를 할까요"
"글쎄…… 무슨 내기가 졸꼬…… 고서방이 정허구려."
"나는 아무래도 좋아요. 아주머니 하자는 대루 할 테니깐 맘대루 정하시우."
"무슨 내기가 좋을지 나두 모르겠어!…… 고서방이 정해요."
"그럼 팔 맞기"
"승거워!"
"그럼 무얼 하나!"
"아이! 정허구서 해예지!"
김씨는 태수가 내미는 화투를 상보기로 떼어 보고, 태수도 떼어 보면서,
"내가 선이로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기는 사람이 시키는 대루 내기 시행을 하기루"
"그래그래, 그럼 그렇게 해요? 무얼 시키든지 시키는 대루 하기야…… 고서방 또 도화 불르면 안 돼"
"염려 마시구, 아즈머니나 떼쓰지 말구서 꼭 시행하시우!"
토닥토닥 화투를 치기 시작은 했으나, 둘이는 다 화투에는 하나도 정신이 없다. 싫증이 나서 홍싸리로 흑싸리를 먹어 오기도 하고, ‘시마’를 빼놓고 세기도 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져도 상관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승부는 나서 태수가 졌다.
"자아, 인전 졌으니 내기 시행해요!"
"하지요. 무어든지 시키시오."
"가만있자…… 무얼 시키나아"
"무어든지……."
"무엇이 조꼬"
김씨는 까막까막 생각하는 체하다가 별안간,
"아이! 난 모르겠다!"
하면서 자리에 가 쓰러져 버린다.
"승겁네!"
"그럼 말야아, 응"
김씨는 도로 발딱 일어나더니 얼른 태수의 귀때기를 잡아다가 입에 대고,
"……저어, 나아 응? 애기 하나만……."
하면서 한편 팔이 태수의 어깨를 감는다.
그날 밤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된 뒤로부터 둘이는 그대로 눌러 오늘날까지 지내 왔다. 여덟 달이니 장근 일년이다.
탑삭부리 한참봉이야 육장 첩의 집에 가서 자곤 하니까, 태수가 달리 오입을 하느라고 바깥잠을 자는 날만 빼면, 그래서 한 달 두고 보름은 둘이의 세상이다.
식모나 심부름하는 아이년도 돈이며, 옷감이며, 다 후히 얻어먹는 게 있어, 밤이면 태수를 바깥 주인 대접을 할 줄로 알게쯤 되었기 때문에 둘이는 아주 탁 터놓고 지낼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참봉이 첩을 얻어 두고 어엿이 다니는 것과 일반으로, 김씨도 태수를 남첩(男妾)으로 집안에다 두어 두고 재미를 보던 것이다.
태수가 작년 여름에 이 집으로 주인을 잡고 올 때에는 인조견 이부자리 한 벌과, 낡은 트렁크 한 개와, 행담 한 개와 도통 그것뿐이었었다.
그러던 것이, 김씨와 그렇게 되던 사흘 만에는 단박 푹신푹신한 진짜 비단 이부자리에 방석까지 껴서 들여놓고, 연달아 양복장이야, 책상이야, 요강, 재떨이, 체경 이런 것으로 그의 방은 혼란스럽게 차려졌다.
그 밖에 철철이 갈아 입을 조선옷이며, 보약이며, 심지어 담배까지도 해태표로만 통으로 두고 피웠다.
이러한 비발은 김씨가 말끔 제 돈을 들여서 해주되, 남편한테는 눈치로든지 말로든지 태수가 돈을 내놓아 그 부탁으로 심부름을 해주는 체하기를 잊지 않았다.
밥값은, 처음에 이십오 원에 정한 것을 오 원씩 더 내서 삼십 원씩이라는 핑계로 언제나 밥상은 떡벌어졌다. 그러나 태수는 처음 석 달 동안만 이십오 원씩 밥값을 치렀지, 그 뒤로는 피차에 낼 생각도, 받을 생각도 하지를 않았다.
그 동안 김씨는 남편이 어느 첩한테서 긴치 않게 전염을 받은 ××을 나누어 가졌다가, 그놈을 다시 태수한테 모종을 해주었다.
그 덕에 태수는 단단히 고생을 했고, 치료는 했어도 뿌리는 빠지지 않고 만성이 되어, 요새도 술을 과히 먹거나 실섭을 하면 도로 도져서 병원 출입을 해야 했었다.
태수는 화투의 승부로 그날 밤에 짊어진 내기 시행 가운데 여벌치 한 대목은 아직도 시행을 하지 못했다. 웬일인지, 김씨는 포태(胞胎)하는 기색이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아마 팔자가 그런가 봐!"
김씨는 생각이 나면 태수를 붙잡고 불평삼아, 탄식삼아 가끔 이렇게 뇌살거린다.
그러나 일변 둘이 사이에 정은 수월찮이 물크러졌다.
태수는 한편으로, 호화스러운 맛에 전과 다름없이 기생 오입도 하고 지내고, 또 요새 와서는 초봉이한테 정신이 쏠려 그와 결혼을 하려고 애를 쓰고 하기는 해도, 그런 것과는 달리 김씨와 사이에는 소위 색정이라는 것이 자못 깊었다. 김씨는 더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이 들고 서로 좋고 해도, 애초부터 아무 때고 떨어져야 한다는 말없는 조건이 붙은 둘 사이의 관계이었었다.
김씨는 수월찮이 영리하기도 한 여자이었었다. 그는 한때의 손짭손으로 일생을 그르칠 생각은 없었다.
만일 태수와 이렇게 오래오래 두고 지내다가는 필경 파탈이 나서, 큰 풍파가 일고라야 말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나간 삼월부터는, 인제는 웬만큼 해두고 일을 수습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태수와 떨어질 일을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섭섭하기란 다시 없었다. 또 기왕 내친걸음이니, 바라던 자식이나 하나 뺄 때까지 그렁저렁 밀어 가고도 싶었다.
그러나 올 삼월, 그때만 해도 벌써 배가 맞아 지낸 지가 반년인데, 반년이나 두고 그렇게 지냈어도 가져지지 않던 아이가 앞으로 더 지낸다고 별안간 생겨질 것 같지도 않고, 그뿐 아니라, 남편을 더 오래 속일수록 위험은 더 많이, 그리고 더 가까이 닥뜨려 오게 하는 것이어서 차차로 겁이 더 나기도 했었다.
한번 이렇게 위험을 느끼고 나매, 그는 그새까지는 어쩌면 그렇듯 마음을 턱 놓고 지냈던가 싶을 만큼 자꾸만 초조와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뿐 아니라 앞으로 가령 위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태수를 한평생 옆에 두고 지내진 못할 바이면, 역시 차라리 선뜻 떨어지는 게 수거니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 그렇지, 생각 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고, 해서 그러면 생으로 잡아떼느니보다 태수를 장가를 들여서 할 수 없이 떨어지도록 하는 도리가 옳겠다고, 드디어 태수를 장가를 들일 결심을 했던 것이다. 하고서, 태수더러 그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하자고 하니까, 태수는 갈리는 거야 형편대로 할 것이지만 장가는 갈 생각이 없다고 내내 코방귀만 뀌었다.
그래서 하루 이틀, 그 짓을 그대로 미룩미룩 밀어 내려오던 참인데, 그러자 이러한 일이 있었다.
사월 바로 초생이니까 달포 전이다.
태수가 오후에 은행에서 돌아와 바깥 싸전가게에 나가서 탑삭부리 한참봉과 한담을 하고 있노라니까 웬 여학생인지, 차림새는 초라해도 얼굴이며 몸맵시가 단박 눈에 차악 안기는, 그런 여학생 하나가 가게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태수는 그 여학생의 차림새가 너무 조촐하고 더욱 트레머리에 통치마는 입었어도 고무신에 버선을 신은 것이, 혹시 공장이나 정미소에 다니는 여직공이 아닌가 했다.
그렇다면 더욱 인물이 아깝다고, 그래서 태수는 황홀하게 그를 바라보는 참인데 마침 탑삭부리 한참봉을 보더니 사풋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었다.
초봉이었었다.
"어이, 아버지 안녕하시구"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렇게 아주 친숙히 인사 대답을 했다.
"네에."
초봉이의 대답은 들리는 둥 마는 둥했지만, 방긋이 웃는 입을 보고서 태수는 그만 엎으러지게 흠탄을 했다.
초봉이가 지나가기가 무섭게 태수는 탑삭부리 한참봉더러,
"거 누구예요"
하면서 사뭇 숨이 차게 다급히 묻던 것이다.
"왜"
한참봉은 히쭉이 웃다가,
"……저 너머 둔뱀이 사는 우리 아는 사람의 딸인데…… 학교 졸업하구서 시방 저기 제중당이라는 양약국에 다닌다지…… 그래 맘에 들어"
그는 연신 수염 속에서 내숭스럽게 웃는다.
"아녜요, 거저……."
태수는 너무 덤빈 것이 점직해서 뒤통수를 긁는다.
"흐응! 맘에 드는 모양이군그래…… 워너니 똑똑하겐 생겼지. 저엉 맘에 들거들랑 집엣사람더러 중맬 서달라지? 저 너머 둔뱀이 정주사네 맏딸 초봉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 테니."
"아녜요, 아저씬 괜히."
그날 밤부터 태수는 그새까지 시뻐하던 장가를 급작스레 들겠노라고, 그러니 초봉이한테 중매를 서달라고 김씨를 졸랐다.
초봉이란 말에 김씨는 도무지 전에 없던 일로 별안간 강짜가 나고, 나되 사뭇 앞이 캄캄하고 몸이 떨려 어쩔 줄을 몰랐다.
김씨는 자청해서 태수더러 결혼을 하라고 했고, 종차 나서서 규수를 골라 내 손으로다가 뒤받이를 들어 혼사를 치러 줄 염량까지 했고, 그러면서도 조금도 질투 같은 것은 몰랐고 한 것은 무릇 그 여자 즉 태수의 배필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 인물이 실지의 인물로서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초봉이라고 하는 잘 아는 계집애, 그때의 최근으로는 작년에 본 것이 마지막이지만 썩 아담스럽게 생긴 그 계집애 초봉이가, 이건 시방 당장 내 애물인 태수를 차지를 해가다니! 아 그 계집애가! 이러해서 계제와 대상을 만나 질투는 피어올랐던 것이다. 그러한 딴 속을 두어 두고, 그는 태수더러는 초봉이가 너한테는 과분하다는 핑계를 해가면서, 그의 소청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드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6 조그마한 사업
언덕 비탈을 의지하여 오막살이들이 생선 비늘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중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님(明姙)이네가 도통 오 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 가지고, 건넌방은 따로 ‘먹곰보’네한테 이 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
대지가 일곱 평 네 홉이니, 안방 세 식구, 건넌방 세 식구, 도합 여섯 사람에 일곱 평 네 홉인 것이다.
건넌방에는 시방 먹곰보도 없고, 그의 아낙도 없고, 아랫목에는 제돌쟁이 어린것이 앓아누웠고, 윗목에서는 경쟁이가 경을 읽고 앉았다.
방 안은 불을 처질러 놓아서, 퀴퀴한 빈취(貧臭)가 더운 기운에 섞여 물큰 치닫는다.
어린것은 오랜 백일해로 가시같이 살이 밭고, 얼굴은 양촛빛이다. 그런 것이 입술만 유표하게 새까맣게 탔다. 폐렴을 덧들였던 것이다.
눈 따악 감은 얼굴이며, 꼼짝도 않는 사족에는 벌써 사색(死色)이 내려덮었다. 목숨은, 발딱발딱 가쁜 숨을 쉬는마다 달싹거리는 숨통에만 겨우 걸려 있다. 몇 분도 아니요, 초(秒)를 가지고 기다릴 생명이다.
경쟁이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윗목으로 벽을 향하여 경상 앞에 초연히 발을 개키고 앉아 경만 읽는다.
경상으로 모서리 빠진 소반 위에는, 밥이 한 그릇에 콩나물 한 접시, 밤 대추 곶감을 얼러서 한접시, 북어가 세 마리 이렇게가 음식이요, 돈이 일 원짜리 지전으로 두 장, 쌀이 두 되는 실히 되겠고, 소지(燒紙)감으로 접은 백지가 석 장, 일 전짜리 양초에 불을 켜서 꽂아 놓은 사기접시, 그리고 소반 옆으로는 얼멍얼멍한 짚신이 세 켤레, 대범 이와 같이 차려 놓았다.
병자한테 붙어 있는 귀신더러 이 음식을 먹고, 이 짚신을 신고, 이 돈으로 노수를 해서 딴 데로 떠나라는 것이다.
이렇게 차려놓은 경상 앞에 가서 경쟁이는 자못 엄숙하게 북을 차고앉아 경을 읽는데…… 북을 얕게 동당동당 동당동당 울리면서 청도 북대로 고저와 박자를 맞추어 나직하고 느릿느릿,
"해-동조-선 전라-북도 군산부-산상- 정 권씨-댁……."
무엇이 어쩌구저쩌구 한바탕 주욱 외우다가는, 목소리를 일단 위엄 있이,
"오방신자앙-"
처억 불러 놓고서 이어, 북도 빨리, 청도 빨리 몰아 들입다 귀신을 불러 대는데, 아마 세상 귀신이란 귀신은 있는 대로 죄다 나오는 모양이다. 게다가 계급도 가지각색이요, 개명을 톡톡히 한 경쟁이든지, 심지어 ‘한강철교 연애하다가 빠져 죽은 귀신’까지 불러 댄다.
대체 이렇게 숱해 많은 귀신들이, 한 부대(一個部隊)는 넉넉한가 본데, 겨우 그 앞에 차려 놓은 것만 가지고 나누어 먹자면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이 날 텐데, 본시 귀신이란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런지 저희끼리 오쟁이를 뜯는 꼴은 볼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귀신 대중(大衆)을 불러 놓더니 그 담에는 갑자기 북소리와 목청을 맹렬하게 높여, 그러느라고 발 개킨 엉덩이를 들썩들썩, 팔을 번쩍번쩍 쳐들면서 크게 꾸짖어 가로되,
"너 이 귀신들!…… 빨리 운감을 하고, 당장에 물러가야 망정이지, 그러지 안할 양이면, 신장을 시켜 모조리 잡아다가, 천리 바다 만리 바다 쫓어 보내되, 평생을 국내 장내도 못 맡게 하리라아."
고 냅다 풍우를 몰아치듯 추상 같은 호령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대문을 걸찍하게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하고, 그러자 마침 먹곰보네 아낙이 숨이 턱밑까지 차서 허얼헐 판자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등뒤에서는 승재가 낡은 왕진가방을 안고 따라 들어오고, 또 그 뒤에는 명님이가 따라섰다.
주인과 승재가 방으로 들어서도, 경쟁이는 모른 체 그냥 앉아 경만 읽는다.
"아가아, 업동아!"
먹곰보네 아낙은 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린것의 얼굴 위에 엎드려 끌어안을 듯이 들여다본다.
어린것한테서는 싸늘하니 아무런 반응도 없다. 눈을 떠본다든지, 입술을 달싹거린다든지, 하다못해 손끝을 바르르 떤다든지.
승재는 대번 보고서 짐작은 했지만 아무려나 이왕 온 길이니 청진기를 꺼내서 귀에 걸고 다가앉는데, 먹곰보네는 그제야 놀란 눈을 흡뜨고,
"아이구머니 이것이 죽었나 베!"
하면서 당황히 서둔다.
승재는 어린것의 앙상한 가슴을 헤치고 청진기로 들어 보는 것이나 가느다랗게 담 끓는 소리만 들리는 둥 마는 둥, 맥은 아주 그치고 말았다.
승재는 청진기를 떼고 물러앉으면서 이마를 찡그린다.
"아직 살었나 봐요!"
먹곰보네 아낙은 어린것의 가슴에 손을 대보다가 아직 따뜻한 온기가 있으니까, 그것이 되레 안타까워 미칠 듯이 납뛴다.
"……네? 아직 살었나 봐요? 어서 얼른 좀…… 아가 업동아? 업동아? 엄마 왔다. 엄마…… 젖 먹어라. 아이구 이걸 어떡해요! 어서 손 좀 대주세유!"
"소용 없어요, 벌써 숨이 졌는걸!"
승재는 죽은 자식을 놓고 상성할 듯 애달파하는 정상이 불쌍한 깐으로는, 소용이야 물론 없을 것이지만, 당장이나마 원이라도 없으라고 강심제 한 대쯤 주사를 놓아 주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그러나 우선 인정에 못 이겨 그 짓을 했다가는 뒤에 말썽이 시끄럴 것이니 차라리 눈을 지그시 감고 모른 체하느니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한동안 승재는 부르는 대로 불려가서,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린 병자라도 가족들이 붙잡고 매달리면 효과야 있건 없건 구급주사를 꾸욱꾹 놓아 주곤 했었다. 그러나 대개가 시기를 놓친 병자들이라 살아나지를 못하고 주사 기운이 없어지면 그만이곤 하는데, 그럴라 치면 개개 주사가 생사람을 잡았다고 승재를 칭원하고 심한 사람들은 승재게로 쫓아와서 부르대기까지 한다.
그러던 끝에 달포 전에는 필경 멱살을 떠들려 경찰서까지 간 일이 있었다.
그때 승재는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병원 주인인 달식이의 주선으로 놓여 나오기는 했으나, 석방이 아니라 불구속(不拘束) 취조라는 것이었었다.
그 뒤에 일은 아주 무사했으나, 그 일을 겪고 나서부터 승재는 인제 의사면허를 얻기까지는 되도록 절망상태인 듯싶은 병자한테는 가기를 피하고, 혹시 마지못해 불려가기는 한다더라도, 아예 함부로 손은 대지 않기로 작정을 했었다.
그러던 터인데, 오늘도 병원에서 일곱시나 되어 돌아오니까, 명님이가 먹곰보네 아낙과 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님이는 집을 가리켜 주느라고 같이 왔던 것이다.
승재는 먹곰보네 아낙한테 아이가 백일해 끝에 한 사날 전부터 딴 증세가 생겨 가지고 몹시 보채더니, 인제는 마디숨을 쉬고 담이 끓는다는 말을 듣고 벌써 일이 그른 줄 짐작했었다. 그래서 따라오지 않을 것이지만, 울상으로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무어라고 꾀를 쓰지 못하고 와보기는 와 보았던 것이다.
와서 보니 경을 읽고 있는 꼴이 우선 비위가 상하는데, 아이는 벌써 죽었고, 해서 만일 경을 읽힐 정성으로 이틀만 미리 닦아 서둘렀어도 이 가엾은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자식을 죽이고 애처로워하는 어머니가 불쌍하기보다도 밉살머리스러워서 못 했다.
"그래두 저 거시키……."
먹곰보네 아낙은 또다시 어린것의 시체에다가 손을 대보고 부르고 하다가 승재한테 애걸을 한다.
"……주사라더냐 하는, 침을 노면 살아난다는데유"
"인전 소용 없어요!"
"그래두 남들은 그렇게 해서 죽은 것을 살렸다구 그러든데유? 제발 좀 살려 주세요!…… 이걸 죽이다니, 아이구머니 이것을 죽이다니!…… 네? 제발 좀……."
"소용 없대두 그래요!"
승재는 듣는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볼먹은 소리로 지천을 한다.
"……왜 진작 나한테루 오든지 하질랑 않구서, 이게 무어람? 자식을 생으로 죽여 놓구는…… 인전 편작이라두 못 살려 놓아요!"
승재는 골이 나는 대로 해 부딪고, 왕진가방을 집어 들고 마루로 나선다.
먹곰보네 아낙은 어린것의 시체를 얼싸안고, 울음 섞어 넋두리를 시작한다.
경쟁이는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 안 할 듯 여전히 초연하게 앉아 경만 읽는다.
"그년의 경인지 기급인지 고만둬요!"
먹곰보네 아낙이 눈이 뒤집혀 가지고 악을 악을 쓴다.
"네"
경쟁이는 선뜻 경 읽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선뜻 알아듣는 것을 보면, 옆에서 벼락을 쳐도 모른 체 열심으로 경을 읽던 것은 실상은 건성이요, 속은 말짱했던 모양이다.
"……그만두라면 그만두지요!"
끙 하고 북채를 놓더니 혼자서 무어라고 두런두런, 돈을 비롯하여 소반에 차려 놓았던 것을 견대에다 주워담는다.
"……죽는 것두 다아 제 명이지요! 인력으루 하나요. 끙!"
"오라지는 건 어떻구…… 왜 제 명대루 죽을 것을, 경을 읽으면 꼭 낫는다구는 했어"
먹곰보네 아낙의 악쓰는 소리를 등뒤로 들으면서 승재는 침울하게 그 집 문간을 나섰다.
승재는 효험이야 있거나 말거나 간에, 또 뒷일이야 아무렇든 간에, 자식을 잃고 애통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뜻으로, 소원하는 주사라도 한 대나마 놓아 주는 시늉을 하지는 않고서 되레 타박을 한 것이 후회가 났다.
이 사람들도 자식을 위해 애쓰는 정성은 매일반이다. 결과야 물론 자식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을 좌우하게 되지마는, 그야 무지한 탓이지 범연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가난과 한가지로 무지도 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큰 원인이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는 양식과 동시에 지식도 적절히 필요하다.
승재는 생각을 하면서 절절히 그것을 여겨 고개를 끄덕거린다.
네 살에 고아가 되어, 생판 남과도 진배없는 친척에게 거둠을 받아 자라났으니, 역경이라면 크게 역경일 것이다. 그러나 역경은 역경이면서도, 승재의 지나오던 자취에는 일변 단순함이 없지 않았었다.
그는 세상이라는 것을 별반 볼 기회가 없었다. 인간 감정의 복잡한 갈등이나 생활과의 심각한 단판씨름 같은 것을 스스로 경난은 물론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는 다만 병원에 앉아 검온기(檢溫器)를 통해서, 맥박(脈搏)의 수효나 청진기(聽診器)를 통해서, 뢴트겐(X光線)이나 타진(打診)을 통해서, 주사기를 들고, 처방전을 들고, 카르테를 들고…… 이렇게 다만 병든 인생만을 대해 왔었다.
그래서 병이라는 것이 인생의 큰 불행임을 알았다. 단지 그것뿐이었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이라는 것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이 하나하나 떨어진, 그리고 생리적인 인생을 의미한 것이었었다.
그러다가 그가 군산으로 와서 있으면서 비로소 조금 분간 있이 인생을 보게 되었다.
서울의 옛주인에게 있을 때에는 치료비 없이 왔다가 도로 쫓겨가는 병자들을 그리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군산의 금호의원으로 와서는 그러한 정상을 가끔 보았다.
승재는 울기까지 한 적이 있었다. 병이 큰 고통인데, 그것을 치료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 인간 세상의 한구석에는 이러한 불행이 있다는 것에 그는 통분했던 것이다.
그러던 끝에 하루는, 설하선염(舌下腺炎)으로 턱과 얼굴이 팅팅 부은 소녀 하나가, 부친인 성싶은 중년의 노동자와 같이 병원의 수부에 와서 치료비가 얼마나 들겠냐고 물어 보더니, 십 원이 넘겨 먹겠단 소리에 다시 두말도 없이 실심하고 돌아서는 것을 승재는 보았다. 그들이 지금의 명님이와 그의 부친 양서방이었었다.
승재는 그들이 다른 돈 없이 온 병자들처럼, 돈이 없으니 그냥 치료를 해달라거니 이 다음에 벌어서 갚겠거니 이렇게 조르고 사정을 하고 하지도 못하고, 겨우 얼마나 들겠느냐고 물어만 보고서 큰돈 십 원이 넘겠다고 하니까, 낙심이 되어 추렷이 돌아가는 양이 어떻게나 가엾던지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병원 문 밖으로 그들을 따라 나와서 집이 어디냐고, 번지와 골목을 잘 알아 두었다.
저녁때, 승재는 우선 병원에 있는 기구 중에서 간단한 수술기구와 약품 같은 것을 빌려 가지고 명님이네를 찾아가서 수술을 해주었다.
그는 마침 병원에서의 거처를 그만두고, 방을 얻어 따로 있기 시작한 때였기 때문에 밤저녁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는 계제에 결심을 하고, 왕진기구 일습과 약품을 장만해 가지고 본격적으로 야간개업(夜間開業)을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치료비나 약값은 받지를 않고, 가난한 제 낭탁을 기울여 가면서…….
이 노릇을 승재는 스스로 조그마한 사업으로 여겨 거기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되, 무심했지 달리 그것을 평가를 하거나 자성(自省)함이 없었다.
하다가 오늘 마침 먹곰보네 집에를 불려와, 그렇듯 경이나 읽히면서 자식을 갖다가 생으로 죽이고 마는 미련스런 인간들을 보자니 그만 보도록새 짜증이 나서, 전에 없이 골딱지를 냈던 것인데…….
그러나 그것도 무슨 정성이 미흡한 탓이 아니요 무지한 소치라면야 그만이겠지만, 그러니 그들이 그렇듯 무지한 이상 시료병원(施療病院)이 거리마다 늘비하다고 하더라도 별수가 없겠거니 싶고, 그 무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결에 승재 제 자신이 길을 걸어가다가 어떤 거대한 장벽에 가서 딱 닥뜨린 것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어찌할 줄을 모를 것 같았다.
그 끝에 가면, 시방 제가 여태까지 재미를 붙여 해오던 이 노릇이, 그만 신명이 뚝 떨어지고 흥이 하나도 나지를 않는 것이었었다.
승재가 다뿍 풀이 죽어서 문간으로 나가는데 명님이는 벌써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 있었니"
승재는 마음이 산란한 중에도 명님이가 귀엽고 반갑던 것이다.
"……둘러봐두 없길래 어디루 갔나? 했지…… 어머니랑 아버지랑 다아 안 계시드구나"
"네에……."
명님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내민다.
"……인 주세요, 제가 들어다 디리께."
명님이는 지금 저한테 끔찍이 고맙고, 또 노상 살뜰하게 귀애해 주는 이 ‘남서방어른’이 저희 집에를 온 것이 언제나 마찬가지로 좋았고, 게다가 가방을 들어다 주기는 더욱 좋았던 것이다. 승재는 괜찮다고 물리치다가, 명님이의 그러한 마음성을 아는 터라 이내 가방을 제 손에다가 들려준다.
"그럼 요기, 요 아래까지만……"
"네에."
명님이는 좋아라고 가방을 들고 앞을 서서, 깔끄막진 언덕길을 내려간다.
"아버진 일 나가셨니"
"네에."
"어머닌"
"빨래해 주려 가시구요."
"그럼 요샌 밥 잘 해먹겠구나"
"네에…… 아침에는 밥 해먹구, 저녁에는 죽 쑤어 먹구 그래요."
"으응, 그나마라두…… 그렇지만 즘심은"
"안 먹어요. 그래두 먹구 싶잖어요."
눈치가 빨라서 승재가 그 다음에 물을 말까지 지레 대답을 하던 것이다.
"먹구 싶잖을 리가 있나! 배고프지…… 요새 해가 퍽 긴데……."
"그래두 배는 안 고파요."
"명님이 좋아하는 청국만두 사주까? 시켜 보내 주까"
"아이, 싫여요! 괜찮아요!"
명님이는 깜짝 반색을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선다.
승재는 전엣일이 문득 생각나서 중국만두라고 했던 것이다. 승재가 처음 명님이네 집을 찾아가서 수술을 해주고, 그 뒤에도 매일 다니면서 심을 갈아 주곤 했는데, 거진 다 나아갈 때쯤 된 어느 날인가는 중국만두가 먹고 싶다고 저의 부모를 조르다가 지천을 듣는 것을 마침 보았었다. 어린애요 살앓이를 하던 끝이라, 입이 궁금해서 무엇이고 두루 먹고 싶을 무렵이었었다.
승재는 잠자코 있다가 나와 중국 우동집에 부탁해서 만두를 세 그릇 시켜 보내 주었다. 했더니, 그 이튿날 또 갔을 때, 명님이네 부모의 치하도 치하려니와 명님이가 좋아하는 양은 절로 미소가 나오게 했었다.
명님이는 제 병이 아주 나은 뒤에는 가끔가끔 승재를 찾아와서 무엇 내의고, 양말자박이고, 벗어놓은 것이 없으면 조르다시피 뺏어다가는 저의 모녀가 잘 빨아서 꿰맬 데 꿰매고, 기울 데 기워서 차곡차곡 챙겨다 주곤 했다. 이것이 명님이네 식구가 승재를 위하여 애써 줄 수 있는 다만 한가지 정성이던 것이다.
그러한 근경인 줄 아는 승재는 차차 그것을 기쁘게 받고, 그 대신 간혹 명님이네 집에를 들렀다가 끼니를 끓이지 못하고 있는 눈치가 보이면 다만 양식 한 되 두 되 값이라도 내놓고 오기를 재미삼아서 했다. 승재가 끊어다 주는 노란 저고리나 새파란 치마도 명님이는 더러 입었다.
승재는 명님이가 명님이답게 귀여우니까 귀애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명님이는 일변 승재의 기쁨이기도 했다.
그것은 승재의 그 ‘조그마한 사업’의 맨 처음의 환자가 명님이었던 때문이다. 승재는 병원에서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고, 그 중에는 생사가 아득한 중병환자를 잘 서둘러 살려내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다지 중병도 아니요 수술하기도 수나로운 명님이의 하선염을 수술해 주던 때, 그리고 그것이 잘 나았을 때, 그때의 기쁨이란 도저히 다른 환자의 치료에서는 맛볼 수 없이 큰 것이었었다.
그렇듯 명님이는 승재의 기쁨이기는 하지만, 한편 또 명님이로 해서 슬픔도 없지 않았다.
명님이네 부모가 명님이를 기생집의 수양녀로 주려고 하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다.
승재는 명님이가 장차에 매녀(賣女)의 몸이 될 일을 생각하면, 마치 친누이동생이나가 그러한 구렁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같이 슬프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승재는 명님이를 만나면 그 일을 안 뒤로는, 겉으로 반가움이 솟아나서 웃는 한편, 속에서는 그 반가움 못지않게 슬픔이 서리곤 했다.
이러한 갈피로 해서 명님이는 일변 승재로 하여금 은연중에, 그가 인생을 살피는 한 개의 실증(實證)이요 세상을 들여다보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새까지도 그러했거니와, 이 앞으로도 그러할 형편이었었다.
승재는 앞서서 비탈길을 내려가는 명님이의 뒤태를 눈여겨보면서 무심코 한숨을 내쉰다.
"벌써 열세 살!……"
그의 등 뒤에서는 유난히 긴 머리채가 치렁거려 제법 계집애 꼴이 박혀 보인다.
승재는 이 애가 이렇게 매초롬하니 장성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불안스러 견딜 수가 없었다.
"명님아"
부르는 소리에 명님이는 대답 대신 해뜩 돌려다본다.
"요새두 어머니 아버지가 저어, 거시기 음! 그 집으루 가라구 그리시든"
승재는 좀 거북해하면서 떠듬떠듬 물어 본다. ‘그 집’이란 팔려 갈 기생집 말이다.
"네에…… 그래두……."
명님이는 고개를 숙이고 조그맣게 대답을 한다.
"흐응…… 그래서"
"지가 싫다구 그랬지요, 머."
"흐응…… 그러니깐 무어래시지"
"그럼 죄꼼 더 크거던 가라구 그래요."
"그럼 명님인 어머니 젖 먹구퍼서 싫다구 그랬나"
"아녜요! 아이 참……."
명님이는 승재가 혹시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고서,
"……놀리실려구 그리시느만, 머."
"아냐, 놀리는 게 아니구……."
"그렇지만 머, 어머니 보구퍼서 남의 집에 어떻게 가서 있나요"
"그럼 더 자라면 어머니 보구 싶잖은가"
"그렇다구 그러든데요? 어머니두 그리시구, 아버지두 그리시구…… 그러니깐 인제 죄꼼 더 자라거던 가라구."
"흐응, 더 자라거던!"
승재는 먼눈을 팔면서 혼자 말하듯이 중얼거린다.
승재는 속으로 촌사람들이 돼지새끼나 송아지를 팔래도 너무 어리고 젖이 떨어지지 않아서 어미를 찾고 소리를 지르니까, 아직 좀더 자라게 두어 두고 기다리는 것 같은 그러한 정상을 명님이네 집에다 빗대 보던 것이다.
돼지새끼나, 혹은 송아지나 그놈이 조금만 더 자라 제풀로 뛰어다니면서 밥도 먹고, 꼴도 먹고, 그래 젖이 떨어지면 장에 내다가 팔려니 하고 기다리는 촌사람이나, 일변 딸자식이 철이 좀 더 들어서 부모도 그려 않고, 그 동안에 가슴도 좀더 볼록해지고, 키도 좀더 자라고 하면 기생집에다가 수양딸로 팔아먹으려니 하고, 매일같이 고대고대 기다리고 있는 명님이네 부모나 별반 다를게 없을 것 같았다.
승재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무심결에 캐액 하고 침을 뱉는다.
그러나 이어, 그들 양순하디양순한 명님이네 부모의 얼굴을 생각하면, 고약스럽다는 반감보다도 불쌍한 마음이 앞을 섰다.
승재는 명님을 돌려보내고, 콩나물고개로 해서 초봉이네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에서 들은 마침 저녁을 먹는지 대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들리고, 승재 방에는 자리끼 숭늉이 문턱 안에 들여놓여 있었다.
이 한 그릇 자리끼 숭늉은, 계봉이가 하던 말마따나 소중한 생명수이었었다.
승재는 갈증도 나지 않았지만, 물그릇을 집어 들고 후루루 들이마신다. 물은, 물을 마셨다느니 보다 초봉이로 연하여 가득 넘치는 행복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진작부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성층권(成層圈)의 연구(硏究)’라고 하는 신간을 읽고 있던 승재는 사발시계가 저그럭저그럭 가다가 일곱시 반이 되자, 읽던 책을 그대로 펴놓은 채 푸시시 일어선다. 일곱시 반은 병원에 출근하는 시간이다. 인제 가서 소쇄를 하고 조반을 먹고 나면 여덟시 반, 여덟시 반부터는 진찰실에 나가 앉아야 한다.
승재는 버릇대로 낡은 소프트를 내려 쓰고 툇마루로 나앉아서 구두를 신노라니까, 문 밖에선지 왁자하니 사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재는 무심히 구두를 신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가는데, 그러자 별안간 지쳐 둔 일각문을 와락 열어 젖히면서 ‘먹곰보’가 문간 안으로 쑥 들어서는 것이다.
승재는 대번, 이건 또 말썽이 생겼구나 생각하면서 주춤하니 멈춰선다. 그는 명님이네 집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먹곰보의 얼굴을 익히 알던 것이다.
술속 사납고, 싸움 잘하기로 호가 난 줄도 잘 알고…….
먹곰보의 뒤에는 그의 아낙이 따랐고, 먹곰보가 떠드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도 두엇이나 일각문으로 끼웃이 들여다본다.
"이놈, 너 잘 만났다!"
먹곰보는 승재를 보자마자, 황소 영각하듯 외치면서, 눈을 부라리면서, 쏜살같이 달려들면서 승재의 멱살을 당시랗게 훑으려 잡는다.
세모지게 부릅뜬 눈하며, 본시 검은데다가 술기와 흥분으로 검붉어, 썩은 생선빛으로 질린 곰보 얼굴을 휘젓고 들이미는 양은 우선 흉하기 다시 없었다.
놀란 것은 승재요, 그는 설마 이렇게야 함부로 다그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어마지두 쩔매는데,
그러자 먹곰보는 멱살을 움켜쥐기가 무섭게,
"이놈!"
소리와 얼러, 철썩 뺨을 한 대 올려 붙인다.
승재는 아프기보다도 정신이 얼떨떨해서 더욱 당황해한다.
"아이구머니! 저를 어째애!"
계봉이가 마침 학교에 가느라고 책보를 안고 대뜰로 내려서다가 그만 질겁하게 놀라, 동당거리고 외친다. 안방에서 식구들이 우 하고 몰려나온다.
"그래 이놈!"
상관 않고 땅땅 어르면서 먹곰보는 수죄(數罪)를 하는 것이다.
"……네가 이놈, 침대롱깨나 가지면 김생원 박생원 한다더라구, 그래 네가, 의술깨나 한다는 놈이, 남의 어린 자식이 방금 죽는다는 것을 보구서두 약 한 봉지를 써주지를 않구 침 한 대 놓아 달라구 애걸복걸을 해두 그냥 말었다니…… 그래서 필경 내 자식을 죽여 놓아…… 이놈!"
이를 부드득 갈면서 승재의 맷집 좋은 따귀를 재차 본새 있게 올려 붙인다.
승재는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못 하고 뻐언하니 마주 보기만 한다.
먹곰보네 아낙이 슬금슬금 들어와서, 사내의 팔을 잡고, 좋은 말로 하지 왜 이러느냐고 말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기는 해도, 승재가 얻어맞는 것이 고소한 눈치다.
뒤늦게 정주사가 신발을 끌고 허둥지둥,
"원 이게, 웬 행패란 말인고!…… 너 이 손! 이걸 놓지 못할 텐가!"
내려오면서 호령호령한다.
먹곰보는 힐끔 돌려다보더니 꾀죄한 정주사의 풍신이 눈에도 차지 않는다는 듯이 아래로 한번 마슬러 보다가,
"이건 왜 나서서 이 모양이야! 꼴같잖게!"
유씨와 초봉이는 벌벌 떨고만 섰고, 계봉이는 휘휘 둘러보다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놈, 경찰서루 가자. 너 같은 놈은 단단히 법을 좀 가르쳐야 한다."
먹곰보는 을러 대면서 멱살을 잡은 채로 잡아 낚아챈다. 바로 그때다, 퍽 소리와 같이 장작개비가 먹곰보의 옆구리를 옹글게 후려갈긴다. 계봉이의 짓이었었다.
계봉이는 이를 악물고 억척으로, 이번에는 팔뚝을 후려갈기려는 참인데, 아 저런 년 보았느냐고 정주사가 나무라면서 떠밀어 버린다.
지나가던 사람이 여럿 문간으로 끼웃거리다가 몇은 슬금슬금 마당으로 들어서서 구경을 한다.
정주사는 달려들지는 못하고 돌아가면서 연신 호통만 하고 있고, 계봉이는 분에 못 이겨 새액색 어쩔 줄을 몰라한다.
"헤에, 참 내!"
승재는 뒤를 돌려다보면서 누구한테라 없이 바보처럼 한번 웃더니, 그러다가 어찌 무슨 생각으로, 먹곰보가 멱살을 잡고 버팅긴 팔목을 슬며시 훑으려 쥐고 불끈 잡아 비튼다.
먹곰보는 하잘것없이 주먹을 편다. 다 같은 장정이라도 승재가 완력이 솟고, 한데다가 먹곰보는 술이 취해 놔서 그다지 용을 쓰지 못하던 것이다.
승재는 부챗살같이 손가락을 쫙 편 먹곰보의 비틀린 팔목과 얼굴을 한참이나 번갈아 들여다보다가, 그의 아낙한테로 밀어 젖힌다.
"……데리구 가요!…… 내가 죽였수? 당신네가 죽였지."
먹곰보는 나가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버팅기고 선다.
"오냐, 이놈 보자, 적반하장(賊反荷杖)두 유분수가 있지, 이놈 네가 되레 사람을 치구……."
먹곰보가 끄은히 왜장을 치면서 비틀거리고 도로 덤벼드는 것을 그의 아낙이 뒤에서 허리를 그러안고 늘어진다. 그러자 마침 양서방이 명님이를 뒤세우고 헐러덕벌러덕 달려든다.
"이 사람이 환장을 했나? 이건 어디라구……."
양서방은 들어단짝 지천을 하면서, 먹곰보를 사정없이 떠밀어 박지른다.
"아, 성님!"
"성님이구 지랄이구 저리 물러나! 당장, 괜시리……."
양서방은 먹곰보를 한번 떠밀어 내던지고, 승재 앞으로 가까이 와서, 술 먹은 개라니, 저 녀석이 시방 자식을 죽이고 환장을 해서 그러는 거니, 참고 탄하지 말라고, 제 일같이 사정을 한다. 승재가 멱살잡이에 따귀까지 두 대 얻어맞은 줄은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승재는 별말 안 하고, 어서 데리고 가라고 흔연히 대답을 한다.
먹곰보는 더 덤비려고는 안 하고, 몸을 휘청거리면서 승재더러 욕만 거판지게,
"이놈아, 네가 명색 의술을 한다는 놈이 그래 이놈, 내 자식이 죽은 것을 보고두 모른 체해야 옳아? 그리구서 왜, 진작 뵈잖었느냐구 내 여편네게 호령을 해? 이놈 당장 목을 쓸어 죽일 놈, 이놈. 이노옴! 내 자식 내놔라. 이놈."
"업동 아버진 괜히 생떼를 써요……."
명님이가 진작부터 나설 듯 나설 듯하다가 그제야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여러 사람더러 들으라는 듯이 먹곰보를 몰아세운다.
"……다아 죽어서 아주 숨도 안 쉬구 그랬어요. 그런 걸 주사를 놓는다구 죽은 애기가 살아나나요…… 괜히, 죽은 송장한테 주사를 놨다가 정말 죽였다구 애맨 소리 듣게요…… 생으로 어거지를 쓰믄, 본 사람두 없나, 머……."
정주사는 대개 그러한 곡절이려니 짐작도 했지만, 명님이가 앙알앙알 앙알거리는 말을 듣고 나서는 쾌히 속은 알았다. 속을 알고 보니 먹곰보가 더욱이 괘씸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괘씸하기는, 아까 자기를 보고 근육질을 하던 것이다. 과연 생각한즉 분하기도 하고, 계제에 먹곰보가 인제는 한풀 죽었는지라 기운이 불끈 솟았다.
"거 고현 손이로군!"
정주사는 노랑수염을 거슬려 가면서 눈을 깜작깜작, 음성은 위엄을 갖추어 준절히 꾸짖기 시작했다.
"……그게, 그 사람이 돈을 받고 하는 노릇도 아니요, 다아 동정심으로 그리는 것인데, 그러니 가서 보아 준 것만이라두 감사할 것이지, 그래 오죽 잘 알아보구서 손두 대지 않았으리라구!……
네끼 고현 손 같으니라구!…… 아무리 무지막지한 모산지배기루서니 어디 그럴 법이 있나!"
호령이 엄엄한 푼수로는 당장 무슨 거조가 날 것 같으나, 오직 발을 구를 따름이다.
승재와 양서방은 한편으로 비껴 서서, 승재는 어제 겪은 일을, 양서방은 먹곰보가 아이를 나서는 잃고, 나서는 잃고 하다가 사십이 넘어 마지막같이 또 하나를 낳아 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하던 참인데 그렇게 죽이고 보니 눈이 뒤집히는데, 간밤에 그의 아낙이 말을 잘못 쏘삭여서 그래 더구나 환장지경이 된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먹곰보는 인제는 기운을 차리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퍼근히 주저앉아서 무어라고 게걸거리기만 한다.
정주사는, 승재가 그 동안 역시 이러한 일로 여러 번 봉변을 했고, 급기야 한 번은 경찰서에 붙잡혀가기까지 했었으나, 다 옳은 일을 한 노릇이기 때문에 무사히 놓여 나왔다고 구경꾼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일장 설명을 한다.
그러고는 다시 한바탕 먹곰보를 꾸짖어 가로되,
"너 이 손, 그 사람이 맘이 끔찍히 양순했기 망정이지, 만일 조금만 무엇한 사람이면, 자네가 당장 죽을 거조를 당했을 테야!…… 내라두 한 나이나 더얼 먹었으면, 자네를 잡어 엎어 놓고 물볼기를 삼십 도는 치구래야 말았지, 다시는 그런 버릇을 못 하게…… 어디 그럴 법이 있나! 고현 손이지…… 이 손! 그래두 냉큼 물러가지를 못해"
마지막 정주사는 푸달진 노랑수염을 잔뜩 거슬리면서 소리를 꽥 지른다.
그러나 호령은 역시 큰 효험이 없고, 먹곰보네 아낙과 양서방이 양편에서 부축하다시피, 겨우 일각대문 밖으로 ‘고현 손’을 끌고 나간다.
초봉이는 비로소 안심을 하고 절로 가슴을 만진다.
계봉이는 부친의 말마따나 그 ‘고현 손’을 잡아 놓고 물볼기를 때리든지 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좋게 돌려보낸다고 그만 암상이 나서,
"저 녀석을! 저 녀석을 거저……."
사뭇 안달을 하더니 휘휘 둘러보다가 장작개비를 도로 둘러메고 나선다.
"이년!"
정주사는 장작개비를 뺏어 부엌으로 들이뜨리면서,
"……계집애년이 배운 데 없이, 거 무슨 상스러운 짓인고!"
"그래두 그 녀석을!…… 그 녀석이 우리 남서방을, 마구……."
계봉이는 분을 못 참아 쫑알거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금시로 굵다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러자 마침 승재가 땅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집어 털고 섰는 것을, 별안간 우루루 그 앞으로 쫓아가더니, 두 주먹을 발끈 쥐고 승재의 가슴패기를 마치 다듬이질을 하듯이 동당동당 두들기면서, 지천에 새살에,
"바보! 남서방 바보야. 그깐 녀석한테 따구를 두 번씩이나 얻어맞구서두 왜 잠자쿠 있어…… 왜 그래? 왜 그래…… 이잉, 난 몰라! 남서방 미워."
그래도 시원찮은지 물러서서 쌀쌀 몸부림을 친다.
정주사와 유씨는 서로 치어다보고 피쓱 웃어 버린다. 초봉이는 가슴속이 뿌듯하고, 하다못해 눈물이 솟아 고개를 숙인다.
승재도 감격했다. 그는 계봉이의 하는 양이 꼬옥 친누이동생의 응석같이 재롱스러워서 등이라도 다독다독 해주고 싶었다.
"괜찮아요! 좀 맞으믄 어떤가? 나 아프잖어. 어여 학교 가요, 응"
"누가 아파서 말인가! 머……."
계봉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타박을 준다.
7 천 냥 만 냥
"내가 네깐놈의 데를 다시는 발걸음인들 하나 보아라."
정주사가 제 무렴에 삐쳐, 미두장께로 대고 눈을 흘기면서 이런 배찬 소리를 한 것도 실상은 그 당장뿐이요, 바로 그 이튿날도 갔었고, 그 뒤에도 매일 가서 하바도 하고, 어칠비칠하기도 했고, 그리고 오늘도 역시 미두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방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에 들른 참이다.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야 쌀 외상을 달라고 혀 짧은 소리나 하려면 몰라도, 묵은 셈을 졸릴까 무서워 길을 돌아서까지 다니지만 오늘은 우정 마음먹고 들렀던 것이다.
초봉이는 내일모레면 서울로 간다고 모녀가 들어서 옷을 새로 하네, 어쩌네 둘이 서둘고 있다.
그거야 가장이요 부친 된 사람의 위엄으로 가지 못하게 막자면야 못 할 것은 없다(……고 정주사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고저러고 하느니보다 혼처나 어디 좋은 자리가 선뜻 나서서 말이 오락가락하면, 그것을 핑계삼아 서울도 가지 못하게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어서어서 혼인을 했으면 일이 두루 십상일 판이라, 요전에 탑삭부리 한참봉네 아낙이 그다지도 발을 벗고 중매를 서겠다고 서둘렀으니, 무슨 기미가 있어도 있겠지 싶어, 어디 오늘은 눈치나 좀 보아야지 이렇게 염량을 하고 쓱 들러 보았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김씨는 마침 가게에 나와서 있다가 반겨하면서, 낮에 전위해 정주사네 집에까지 가서 유씨만 만나 우선 대강 이야기는 했다고, 그래도 미흡한 것 같아 이렇게 정주사가 지나가기를 지키고 있었노라고 선뜻 혼담을 내놓던 것이다.
정주사는 처음 ××은행 군산지점의 고태수라는 말을 듣고, 며칠 전 미두장 앞에서 봉변을 할 때에 그 사람이 내달아 말려 주던 일이 생각나서 혼자 얼굴이 붉으려고 했다. 그러나 한편,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로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글쎄 그이가요!"
김씨가 연달아 참새같이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근 일년짝이나 우리집에서 기식을 허구 있지만, 두구 본다 치면 볼수록 얌전하겠지요! 요새 젊은이허군 그런 이가 있기두 쉽지 않을 거예요!"
"네에, 내가 보기에두 과히 사람이 상스럽지는 않을 것 같드군요."
정주사는 태수의 차악 눈에 안기는 모습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미상불 그럴듯하다고 했다.
"그이 말두 그래요…… 정아무개 씨라구 그리니깐, 아 그러냐구, 그 어른 같으면 인사는 못 여쭸어두 가끔 뵈어서 안면은 익혀 안다구……."
"그러나저러나 거, 근지(根地)가 어떤지"
"원이 서울이래요. 과부댁 외아들인데, 양반이구. 그래서 지끔두 자기네 본댁에서는 솟을대문을 달구, 안팎으루 종을 부리믄서 이 애 여봐라 허구 그런대나요, 재산두 벼 천이나 허구…… 그래서 그이가 월급 받는 건 담뱃값이나 허지, 다달이 자기네 본댁에서 돈을 타다 쓰군 해요. 그건 나도 가끔 각지편지〔爲替書留〕가 오는 걸 보니깐요, 그리구 은행에 다니는 것두, 인제 크게 무얼 시작할 양으루 일 배울 겸 소일삼아서 그러는 거래요…… 이런 이야기야 그이가 어디 자기 입으루 하나요? 그이 친구헌테 들엄들엄 들은 소문이지."
"나이는 몇이라지요? 스물육칠 세 되었지"
"스물여섯…… 그러니깐 갑진 을사, 을사생(乙巳生)이지요. 재작년 봄에 경성서 전문대학교를 졸업허구, 그 은행에 들어갔다가 작년에 일러루 전근이 돼서 내려왔대요."
"네에!"
정주사는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고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대체 그만큼 기구가 좋은 집안의 자제로 외양도 반반하겠다, 한데 어째 스물여섯이나 먹도록 장가를 가지 아니했나? 혹시 요새 젊은 아이들이 항용 그러듯이 제 집에 구식 본처를 두어 두고, 또는 이혼을 하고 다시 신식결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미심스러운 생각이 들고, 그래서 어떻게 그것을 좀 파고 물어 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얼핏 그만두었다. 그는 혹시라도 그것이 사실이기를 저어하여 물어 보기가 겁이 나던 것이다.
‘아무런들 그럴 리야 없겠지…… 그렇기야 할라구.’
그는 짐짓 이렇게 씻어 덮어 버렸다. 그래도 마음 한 귀퉁이에서 찜찜해하니까, 그는 다시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이다.
‘아무리 허물없는 중매에미한테기로니, 그런 말을 까집어 놓고 묻는 법이야 있나…… 차차 달리 알아볼지언정.’
"원……."
그는 마침내 김씨더러 자기 의견을 대답하되, 고태수라는 사람이 외양이 그만큼 똑똑하고, 또 지금 듣자하니 학식이며 문벌이며 다 상당하니까 그 말을 믿기는 믿겠다, 따라서 나도 가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나 아시다시피 내 집 형편이 너무 구차해서 그런 좋은 혼처가 있어두 섬뻑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그려! 허허……."
어쩐지 일이 묘하게 척 들어맞는 성싶어, 슬쩍 한번 넘겨짚느라고 해본 소린데, 아니나다를까! 김씨는 기다리고 있던 듯이, 사뭇 속이 후련하게시리…….
"네에 내, 그리잖어두 그 말씀을 지금 하려던 참이에요…… 그건 아무 염려 마세요. 벌써 내가 정주사 댁 형편 이야길 대강 했더니 그러냐구, 그러면 어려운 댁에 괴롬 끼칠 게 없이 자기가 말끔 다아 대서 하겠다구, 그리는군요!…… 그런 걸 보아두 사람이 영리하구 속이 티이구 헌 게 아녜요? 호호."
"허허, 그렇지만 어디 그럴 법이야 있나요! 아녈 말루 내가 몇 끼 밥을 굶구서 혼수를 마련할 값에……."
정주사는 시방 속으로는 희한하고도 굴져서 입 저절로 흐물흐물 못 견딜 지경이다.
"온! 정주사도 별 체면을 다 채리시려 드셔!"
김씨는 반색을 하면서, 그런 걱정은 조금치도 하지 말라고 다시금 설명을 주욱 늘어놓는다.
결혼식은 예배당이나 공회당에 가서 신식으로 할 테니까, 또 혼인잔치도 요릿집에 가서 할 테니까, 집에서는 국수장국 한 그릇 말지 않아도 된다. 그런 뿐 아니라 태수의 말이, 저의 모친은 규수고 결혼식이고 전부 다 네 맘대로 정한 뒤에 성례날이나 기별하면 그날 보러 내려오겠다고 한다고 한다. 부잣집 과부의 외아들인만큼 어려서부터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했고, 그래서 혼인까지도 상관을 않고 제가 하는 대로 내맡겨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 말이, 인제 혼인을 하게 되면 아저씨(탑삭부리 한참봉)와 아주머니(김씨)한테 범백을 미룰 테니 잘 알아서 해달라고 부탁을 해오던 참이다. 그러니 혼인을 하게 되면, 범절은 우리 두 집안이 상의껏 치르게 될 것이다, 한즉 퍽 순편할 모양이다.
"그리구……."
김씨는 이야기하던 음성을 일단 낮추어, 더욱 의논성 있게 소곤거리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 말씀을 않더래두 차차 아시겠지만, 기왕이니 들어나 두세요. 그이가요…… 그 말두 혼수 비용을 자기가 말끔 대서 하겠다는 그 말끝에 한 말인데…… 아 그 댁이 지내시기가 그렇게 어렵다니 참 안됐다구, 더구나 정주사 어른이 별반 생화두 없으시다니 거 그래서 쓰겠냐구 걱정을 해요. 하던 끝에, 그러면 자기가 인제 혼인이나 치르구 나서 형편을 보아서 장사나 허시라구 얼마간 밑천을 둘러 디려야 허겠다구 그리겠지요!…… 글쎄 젊은이가 으쩌믄 그렇게 맘 쓰는 게 요밀조밀합니까! 온……."
이 말까지 듣고 난 정주사는 혼자 속으로 참고 천연덕스럽게 있기가 어려울 만큼 흐흐흐흐 한바탕 웃어 젖히든지, 춤을 덩실덩실 추든지 하고 싶게 몸이 근지러워났다.
저편 짝에서 한동안 쌀을 파느라고 분주히 서둘던 탑삭부리 한참봉이 가게가 너끔하니까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이편으로 가까이 온다.
"정주사, 그 혼인 꼬옥 허시우. 내가 보기에두 사람은 쓸 만합디다…… 술잔 먹기는 허나 봅디다마는……."
탑삭부리 한참봉은 태수가 장가를 가는 것이, 마치 며느리를 보게 되는 것같이 좋아서 하는 말은 말이나 고정한 치가 돼서 사실대로 털어놓고 권을 하던 것이다
"그이가 무슨 술을 먹는다구 그래요!"
김씨는 기를 쓰고 나서서 남편을 지천을 한다.
"허어! 왜 저러꼬"
"귀성없는 소릴 하니깐 그리지요!"
"먹는 건 먹는다구 해야 하는 법이야! 또오, 젊은 사람이 술을 좀 먹기루서니 그게 대순가? 정주산 그런 건 가리잖는 분네야, 그렇잖수? 정주사……."
"허허, 뭐……."
"아녜요, 정주사…… 그인 술 별루 먹잖어요. 난 먹는 걸 못 봤어요."
"뭐, 그거야 먹으나 안 먹으나……."
"그래두 안 먹는걸요!"
"난 보니깐 먹던데"
"언제 먹어요"
"요전날 밤에두 장재동 골목에서 취한 걸 본걸"
정주사는 실로(진실로 그렇다) 태수가 술은 백 동아리를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를 나섰다.
그는 김씨더러 집에 돌아가서 잘 상의도 하고, 또 아무려나 당자인 초봉이 제 의견도 물어 보고, 그런 뒤에 다 가합하다고 하면 곧 기별을 해주마고 대답은 해두었다.
그러나 그런 건 인사삼아 한 말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당장에서 정혼을 해도 좋았을 것이었었다.
미상불 그는 선 자리에서, 여보 일 잘되었소, 자 그 혼인 합시다. 사주단자에 택일(擇日)까지 아주 합시다. 책력 이리 가져오시오, 이렇게 쾌히 요정을 지어 버리고 싶기까지 했었다.
아무것도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었다. 김씨의 말이, 자기 부인 유씨도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가합한 양으로 말을 하더라니까, 그러면 되었고, 당자 되는 초봉이가 혹시 어떨는지 모르지만, 가령 제가 약간 싫은 일이라도 그 애가 부모가 시키는 노릇이라면 다 그대로 좇는 아인즉슨, 또한 성가실 일이 없을 터였었다.
그러나마 사람 변변치 못한 것을 제 배필로 골랐을새 말이지, 고태수 그 사람이 오죽 도저한가! 도리어 과한 편이지.
처음 김씨가 혼담을 내놓았을 때에 정주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태수의 정체는, 시방처럼 선명한 자격은 보이지 않았고, 매우 막연한 것이었었다.
그렇던 것이 김씨가 이야기를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해가는 대로 차차 선명하게 미화(美化)되어 가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마치 캔버스 위에서 화필(畵筆)이 노는 대로 그림의 선과 색채가 한 군데씩 두 군데씩 차차로 뚜렷해지다가, 마침내 훤하게 인물이 나타나는 것과 같았다.
정주사의 머릿속에서 조화를 부리기 시작한 태수의 영상은, 그가 ‘전문대학’을 졸업했다는 데 이르러서 비로소 선명해졌고, 다시 정주사한테 장사 밑천을 대준다는 데서 완전히 미화되어 버렸었다.
골고루 골고루, 대체 요렇게 마침감으로 똑 떨어진 신랑감이 어디 가서 다른 집 몰래 파묻혔다가 대령하듯이 펄쩍 뛰어나왔는가고 생각하면, 자꾸만 꿈인가 싶어진다.
그는 이 혼인을 하기로 마음에 작정을 하고 나서는 한번 돌이켜, 마치 시관(試官)이 주필을 들고 글을 꼲듯이 사윗감인 태수를 꼲는다.
자자에 관주다.
태수의 눈찌가 좀 불량해 보이는 것이랄지, 사람이 반지빠르고 건방져 보이는 것이랄지, 더욱 무엇보다도 마음 찜찜한 구석은 그가 조건 붙은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미심다운 것,
이런 것들은 다 모른 체하고 슬슬 넘겨 버린다.
죄다 관주를 주어 놓고서, 정주사는 어떻게 해서 누가 준 관주라는 것은 상관 않고, 사윗감이 관주인 것만을 기뻐한다.
아들놈이 여느때에 공부를 잘 못 하는 줄을 알면서도, 통신부의 성적이 좋으면 기뻐하는 게 부모다. 이거야 선량한 어리석음이구나 하겠지만, 정주사는 그러한 인정이라 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그래서 정주사는 시방 크게 만족하여 가지고 콩나물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그는 바로 며칠 전에 이 콩나물고개를 이렇게 넘어가면서 초봉이의 혼인과 및 그 결과에 대해서 공상을 했었고, 하던 그대로 모든 일이 맞아떨어진 기쁨을 안고서 오늘은 이 고개를 넘느니라 생각하면, 이놈 콩나물고개란 놈이 신통한 놈이로구나 싶어 새삼스럽게 좌우가 둘러보여지는 것이다.
"자아, 그래서 돈이 생기면……."
느긋하게 궁리를 하면서 정주사는 천천히 집을 향하고 걸어간다.
대체 얼마나 둘러 주려는고? 한 오륙백 원…… 오륙백 원 가지고야 넘고 처져서 할 게 마땅찮고…… 아마 돈 천 원은 둘러 주겠지. 혹시 몇천 원 척 내놓을지도 모르고.
한데, 무슨 장사를 시작한다…… 싸전? 포목전? 잡화전…… 그런 것은 이문이 박해서 할 것이 못 되고…….
가만히 미두를 몇 번 해보아? 그래서 쉽게 한밑천 잡아
에잉! 그건 못쓰지. 그랬다가 만약 실수나 하고 보면, 체면도 아니려니와 모처럼 잡은 들거린데 방정을 떨어서야…….
그러면 무얼 해야만 하기도 수나롭고 이문도 박하잖고 두루 괜찮을꼬
초봉이는 가게 일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계봉이와 형주는 건넌방으로 쫓고, 병주는 저녁 숟갈을 놓던 길로 떨어져 자고, 시방 정주사 내외가 단둘이 앉아 초봉이의 혼담 상의에 고부라졌다.
"나두 한참봉네 집에서 두어 번이나 보기는 했수마는……."
유씨는 삯바느질로 하는 생수 깨끼적삼을 동정을 달아 가지고 마침 인두를 뽑아 들면서, 문득 이런 말을 비집어 낸다.
"……외양두 다 똑똑허구 허긴 헌데, 어찌 눈찌가 좀 독해 뵙디다아"
"아냐, 거 그 사람의 눈이 독한 눈이 아니야…… 그러구저러구 간에, 여보! 그렇게까지 흠을 잡아 낼래서야 사웃감을 깎아 맞춰야 하지, 어디……."
정주사는 발을 따악 개키고 몸뚱이를 좌우로 흔들흔들, 양말 벗어던진 발샅을 오비작오비작 후비고 앉아서, 누구와 구누나 하는 듯이 연신 눈을 깜작깜작, 자못 유유한 태도다.
"글쎄, 나두 그것이 무슨 대단한 흠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단 말이지요, 머…… 아무튼지 사람은 그만하면 괜찮겠습디다."
"괜찮구말구! 그만하면…… 그런데 거, 그 사람이 술을 좀 먹는 모양이지"
이번에는 정주사가 탈을 잡는 체한다. 한즉은 유씨가 이번에는 차례 돌림이나 하듯이 부리나케 그것을 발명하기를,
"당신두 원 별소리를 다아 하시우!…… 시체 젊은 애들치구 술잔 안 먹는 사람이 백에 하나나 있답디까? 젊은 기운이구 허니 술 좀 먹는 것두 괜찮아요! 많이 먹어야 낭패지."
"것두 미상불 그렇기는 그래!…… 사내자식이 너무 괴타분한 것보담은 술잔 먹구 다아 그러는데서 세상 조화두 부리구 하는 법이니깐."
"거 보시우……."
유씨는 돋보기 너머로 남편을 흘끗 넘겨다보면서 한바탕 구박이 나온다.
"……당신두 인제야 그런 줄 아시우…… 세상에 당신같이 괴탑지근한 이가 어디 있습디까
…… 담보 있게 술 한잔 먹어 볼 생각 못 해보구, 그래 고렇게 늘 잔망스럽게 살아왔으니 어떻수? 말래가 요지경이 아니우"
정주사는 할말이 없으니까 한바탕 꺼얼껄 웃더니, 여태 발샅 후비던 손가락을 올려다가 못생긴 코밑 수염을 양편으로 싸악싹 꼬아 올린다. 암만 그래도 그놈이 ‘카이젤’ 수염은 되지 못하고 죽지가 처지는 것이고.
"아, 그런데 말야!…… 그 애가……."
정주사는 무렴 끝에 서시렁주웅하고 이야기를 내놓는 모양인데, 그는 벌써 태수를 ‘그 애’라고 애칭(愛稱)을 한다.
"……글쎄 우리 초봉이를 벌써 지난 초봄부터 알았다는구려…… 그래 가지굴랑은 저 혼자만 애가 달아서, 머 여간 아니었다더군그래! 허허."
"시체 사람들은 다아 그렇게 연앨 해야만 장가를 온다우. 우리 애가, 너무 내차기만 허구, 그래서 남의 집 젊은 사람이라면 눈두 거듭떠보질 않지만…… 그러나저러나 간에 나는 그 사람 자기네 집에서 어쩌면 그렇게 통히 당자한테 내맽기구 맘대루 하게 한다니 그 속 모르겠습디다! 신식이요 개명한 집안이면 다아 그렇기는 하답디다마는……."
"아 여보, 그럴 게 아니오…… 과부의 외아들이겠다, 제 집안이 넉넉하겠다, 허니 자연 조동으루 자랐을 것이요, 그래서 입때까지 장가두 들지 않구 있었던 게 아니오? 그러니깐 장가를 가더라두 제 맘대루 골라서 제 맘대루 갈려구 할 것이고, 저의 집에서두 기왕 그래 오던 것이니, 쯧! 모르겠다, 다아 네 마음대로 해라, 맘대루 해서 하루바삐 장가나 가거라, 이럴 게 아니오? 사리가 그러잖소"
두 내외의 태수의 위인이랄지, 또 혼인하기에 꺼림칙한 점이랄지는 짐짓 말 내기를 꺼려했고, 혹시 말이 나오더라도 서로 그것을 싸고 돌고 안고 돌아가고 하느라고 애를 썼다. 마치 자리잡은 부스럼이나 동티나는 터줏대감 건드리기를 무서워하듯.
그들은 진실로 이러하다. 그들은 딸자식 하나를 희생을 시켜서 나머지 권솔이 목구멍을 도모하겠다는 계책을 적극적으로 세우고 행하고 할 담보는 없다. 가령 돈 있는 사람을 물색해 내서 첩으로 준다든지, 심하면 기생으로 내앉히거나 청루(靑樓)에다가 팔거나 한다든지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비록 낡은 것이나마 교양이라는 것이 있어서 타성적으로 그놈한테 압제를 받기 때문이다.
교양이 압제를 주니 동물적으로 솔직하지 못하고 인간답게 교활하다.
해서, 정주사네는 시방 태수와 이 혼인을 함으로써 집안이 셈평을 펴게 된 이 끔찍한 행운을 당하여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 혼인이 장차에 딸자식을 불행하게 하지나 않을 것인가 하는 의구를 일으켜 가지고 그 의구가 완전히 풀리기까지 두루 천착을 해보기를 짐짓 그들은 피하려 든다.
‘사실’이 무섭고 무서운 소치는 너무도 ‘사실’이 뚜렷하고 보면 차마 혼인을 못 할 것이므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악취가 나는 것도 그것을 번연히 코로 맡고 있으면서 실끔 외면을 하고는,
하나가 혹시,
"어찌 좀 퀴퀴하우"
할라치면, 하나가 얼른 내달아,
"아냐, 구수한 냄새를 가지고 그리는구려."
하고 달래고, 그리다가 또 하나가,
"그런데, 어쩐지 좀 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군!"
할라치면, 하나가 서슬이 시퍼래서,
"향깃허구면 그리시우!"
하고 세수빠진 소리를 하는 것을 지천을 하던 것이다.
이렇듯 사리고 조심하여 눈을 가리고 아웅한 덕에, 내외의 의견은 더 볼 것도 없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정주사는 아랫동네의 약국으로 마을을 내려가려고 벗었던 양말을 도로 집어 신으면서 유씨더러, 초봉이가 오거든 우선 서울은 절대로 보내지 않을 테니 그리 알고, 겸하여 이러저러한 곳에 혼처가 났으니 네 의향이 어떠냐고 물어 보라는 말을 이른다.
"성현두 다아 세속을 쫓는다는데, 그렇게 제 의향을 물어 보는 게 신식이라면서"
정주사는 마지막 이런 소리를 하면서 대님을 다 매고 일어선다.
"그럼 절더러 물어 보아서 제가 싫다면 이 혼인을 작파하실려우"
유씨는 그저 지날 말같이 웃음엣말같이 한 말이지만, 은연중에 남편을 꼬집는 속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변 유씨가 자기 자신한테도 일반으로 마음 결리는 데가 없지 못해서 말이다.
"제가 무얼 알아서 싫구 말구 할 게 있나…… 에미 애비가 조옴 알아서 다아 제 배필을 골랐으리라구."
"그린 걸, 제 뜻을 물어 보랄 건 무엇 있소"
"대체 여편네하구는, 잔소리라니!…… 글쎄 물어 보아서 저두 좋아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만약에 언짢아하거들랑 알아듣두룩 깨우쳐 일르지"
"그걸 글쎄 낸들 어련히 할까 봐사 그리시우…… 잔소린 먼점 해놓구설랑…… 어여 갈 데나 가시우."
정주사는 핀잔을 먹구서야 그만 해두고 마루로 나간다.
마침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유씨는 초봉이가 들어오나 하고 귀를 기울였으나 마당에서 정주사와 인사를 하는 승재의 음성이다.
‘오오, 승재가!’
유씨는 새삼스럽게 승재한테 주의가 가던 것이다. 그럴 내력이 있었다.
유씨는 실상인즉 진작부터 초봉이가 승재한테 범연치 않은 기색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꼭이 그래서뿐만 아니지만 그첨저첨해서 그는 승재를 맏사윗감으로 꼽고서 두루 유념을 해왔던 것이다.
말이 많지 않고, 보매는 무뚝뚝한 것 같아도 맘이 끔찍이 유순하고 인정이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유씨의 마음에 들었다.
한번 그렇게 마음에 들고 나니 그 담엣것은 다 제풀로 좋게만 보여졌다.
그의 듬직한 성미는 사람이 무게가 있는 것같이 미더운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가 지금은 다 그렇게 궁하게 지내지만, 듣잔즉 늘잡아서 내년 가을이면 옹근 의사가 된다고 하니, 의사가 되기만 되는 날이면 돈도 벌고 해서 거드럭거리고 지낼 거야 묻지 않아도 빤히 알 일이요, 그러니 그때 가서는 마음 턱 놓고 딸을 줄 수가 있을 것이었었다.
하기야 한 가지 마음 걸리는 데가 없지도 않았다.
승재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이 무 대가리같이 굴러다니는 사람인 걸, 도대체 근지가 어떠한지 알 수가 없었다.
옥에 티라고나 할까, 이것 한 가지가 유씨의 승재에게 대한 불안이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묘리대로, 그것 또한 변법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지금 세상에 근지가 무슨 아랑곳 있나’
‘양반은 어디 있으며, 상놈이 어디 있어’
‘저 하나 잘나고 돈만 있으면, 그게 양반이지.’
이렇게 유씨는 이녁의 편리를 위하여 승재의 근지 분명치 못한 것을 관대하게 처분을 내렸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명년 가을에 승재가 의사가 되기를 기다려 그를 사위를 삼겠다고 정녕코 작정을 한 것은 아니었었다. 역시 사윗감으로 좋게 보고서 눈여겨두었을 따름이지.
유씨는 그러했지만 정주사는 결단코 그렇지 않았었다. 그는 승재 따위는 애당초 마음도 먹어 본 일이 없었다.
물론, 승재가 생김새와는 달라 인정이 있고, 행동거지가 조신한 것은 정주사 자신도 두고 겪어 보는 터라 모르는 바는 아니었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초라한 승재, 그가 의사가 되어 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의표도 훤치르르하고, 이렇게 환골탈태해서 척 정주사의 눈앞에 현신을 한다면 그때 가서야 정주사의 생각도 달라지겠지만 시방의 승재로는 간에도 차지를 않았다. 그는 유씨처럼 승재가 일후 잘되게 되는 날을 미리 생각해 보려고를 않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초봉이가 승재한테 무슨 다른 기색이 있는 눈치를 안다거나, 또 유씨라도 승재를 가지고, 자, 약시 이만저만하고 이만저만해서 나는 이 사람을 초봉이의 배필로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렇게 상의를 한다면 정주사는 마구 훌훌 뛸 것이었었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뉘 집 뼈다귄지도 모르는 천민(賤民)을 가지고 어엿한 내 집 자식과 혼인을 하다니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가 있더란 말이냐고, 그 노랑수염을 연신 꼬아 추키면서 냅다 냉갈령을 놓았을 것이었었다. 그 끝에 유씨한테 듭신 지천을 먹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유씨는, 남편의 그러한 솔성을 잘 아는 터라 아예 말눈치도 보이지 않고 그저 그쯤 혼자 속치부만 해두고 오늘날까지 지내 왔었다.
그러자 오늘 별안간, 고태수라는 신랑감이 우선 외양도 눈에 차악 고일 뿐만 아니라 천하에도 끔찍한 이바지를 가지고서 선뜻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유씨는 태수가 나타나자 그의 외양과 들이미는 소담스런 이바지에 그만 흠탁해서 여태까지 유념해 두고 지내던 승재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태수 하나만 가지고 여부없이 작정을 해버렸던 것이다. 태수는 혼자 가서 첫째를 한 셈이다.
유씨는 그렇게 작정을 하고 나서 그러고도 종시 승재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는데, 마침 승재의 음성이 들리니까 비로소 주의가 갔던 것이다.
유씨는 그제야 승재를 태수와 대놓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쌍으로 선 무지개처럼, 빛이 곱고 선명하니 가깝게 있는 며느리 무지개는 태수요, 뒤로 넌지시 있어 희미한 시어머니 무지개는 승재인 양, 도시 이러니저러니 할 것도 없을 성싶었다.
태수가 그처럼 솟아 보이는 것이 흡족해서 유씨는 무심코 빙그레 웃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끝에 문득, 그만큼이나 무던하다고 본 승재를 그대로 놓치게 되는가 하면 일변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이 아깝다는 생각에는, 그보다 앞서서 욕심 하나가 돋쳐 나왔었다. 그는 승재를 그냥 놓아 버릴게 아니라 작은딸 계봉이의 배필로 붙잡아 두고 싶던 것이다.
지금 스물다섯 살이라니까 계봉이와는 나이 좀 층이 지기는 해도, 여덟 해쯤 대사가 아니었었다.
그러니 아무려나 승재는 그 요량으로 유념해 두고서 후기를 보기로 작정했다. 하고 본즉 유씨는 하룻밤에 한 자리에 앉아서 큰사위 작은사위를 다 골라 세운 셈이 되고 말았다.
아홉 시나 되었음직해서 초봉이가 돌아왔다.
유씨는 들어오는 초봉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란다.
"너 어디 아프냐"
눈이 폭 갈리고 해쓱한 얼굴이며 더구나 핏기 없는 입술이, 결코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초봉이는 대답은 해도 말소리에 신명이 하나도 없고, 방으로 들어서자 접질리듯 주저앉는 몸짓에도 완구히 맥이 없어 보인다.
유씨는 바느질하던 것도 내려놓고 성화스럽게 딸을 바라본다.
"아니라께? 응…… 저녁은 아까 형주가 날라 갔지? 먹었니"
"네에."
"그럼 늦게 일을 해서, 시장해서 그리나 보구나"
"아니."
"그럼 왜 신색이 저러냐…… 어디가 아픈 게루구먼? 분명히 아픈게야!"
"아이, 어머니두!"
초봉이는 강잉해서 웃으려고 하는 모양이나, 웃는다는 게 웃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어쨌다구 그리시우? 난 아무렇지두 않은데."
"아무렇지도 않은 게 다아 무어냐? 사람이 꼬옥 중병 치르구 난 것처럼 신색이 틀렸는걸…… 어디가 아파서 그러거던 아프다고 말을 해라! 약이라두……."
"아프긴 어디가 아프우? 아무렇지두 않다니깐."
초봉이는 성가신 듯이 이마를 가늘게 찌푸린다.
초봉이는 아까 아침에 나갈 때만 해도 넘치게 명랑했었다.
오늘은 저녁때부터 새 주인한테 가게를 아주 넘겨 주고 내일 하루는 집에서 쉬고 모레는 밤차로 서울로 가고 한다고, 사람이 본시 진중하니까 사뭇 쌔왈거리거나 하지는 않았어도, 혼자 속으로 좋아서 못 견디어하는 눈치는 완연했었다.
그는 그새도 늘 어머니만 믿으며 어쨌든지 아버지가 못 가게 막지 못하도록 가로맡아 주어야 한다고 모녀가 마주앉기만 하면 뒤를 누를 겸 신신당부를 했고, 오늘 아침에 나갈 적에도 모친을 가만히 부엌으로 불러내어 그 말을 하면서 모친이 염려 말라고 해주니까 그저 입이 벙싯벙싯하는 것을 손등으로 가리고 나가기까지 했었다.
그랬었는데 지금 저녁에는 갑자기 신색이 말이 아니게 틀려 가지고 맥이 없이 들어오니까, 유씨는 처음에는 필경 몸이 아파서 그러는 줄로만 애가 쓰여서 그다지 성화를 한 것이다.
그러나 차차 보니, 제 말대로 역시 몸이 아픈 것은 아니고 무엇을 걱정하는 것 같은, 낙담한 것 같은 그런 기색이 엿보였다.
그러면 혹시 가려던 서울을 못 가게 되어서 그런 것이나 아닌가. 물론 집안엣일을 제가 그새 벌써 알았을 이치는 없고, 그렇다면 달리 무슨 곡절이 생긴 모양인데…… 대체 어찌 된 까닭인고
…… 유씨는 이렇게 두루 생각을 해보느라고 잠잠히 손끝의 바늘만 놀리고 있다.
초봉이는 잠자코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문득,
"어머니, 난 서울 못 가게 됐다우!"
하는 게 마치 성가신 남의 말을 겨우 전갈하듯 한다.
"으응? 왜"
유씨는 속으로는 그런 것 같더라니 하고서도 짐짓 놀란다. 그는 짐짓 놀라는 체했지, 속으로는 그거 일은 실없이 잘되었다고 마음에 썩 다행스러웠다.
유씨는 방금 오늘 아침까지도 딸더러 부친이 막는 것은 가로맡을 테니 염려 말라고 장담을 하면서 서울로 가라고 해왔었다.
그러던 것을 그날 하루가 다 못 가서 같은 그 입을 가지고, 이 애 너 서울 못 간다, 이 말을 하기는 아무리 모녀지간이요, 또 갑자기 좋은 혼처가 나선 때문이지만, 그래도 낯간지러운 노릇이었다.
그런데 계제에 제가 먼저 서울을 가지 못하게 되었단 말을 하고 보니 유씨는 이런 순편할 도리가 없던 것이다.
초봉이는 제가 한 말이고 모친이 묻는 말이고를 다 잊어버린 듯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겨우 내키지 않게,
"아저씨가 오지 말래요."
"아저씨? 제호 말이지"
"네에."
"왜? 어째서"
물어도 초봉이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다.
"아니, 글쎄……."
유씨는 서슬을 내어 성구려 든다.
"……제가 자청을 해서 가자구 해놓구는 인제는 또 오지 말란다니, 그건 무슨 놈의 변덕인구…… 그런 실없은 일이 어딨다더냐"
물론 이편은 버젓한 혼인을 하게 된 고로 그렇지 않아도 일을 파의시켜야 할 판이었고, 그러니 절로 파의가 된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지, 생각하면 괘씸하고 도무지 경우가 그른 짓이다.
일껏 제 입으로 가자고 가자고 해서 다 말짜듯이 짜놓고는, 인제 슬며시 오지 말라고 한다니, 그래서 남의 집 어린 자식을 저렇게 신명이 떨어져서 죽을 상 되게 하다니.
요행 보내지 않기로 조금 전에 작정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유씨는 단박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쫓아가서 속이라도 시원하게 시비를 가리자고 들 그의 승벽이다.
사실 그는 당장에 초봉이가 가엾은 깐으로는 그대로 부르르 달려가서 제호의 턱밑에다 주먹을 들이대고, 자, 무슨 일로 그랬습나? 그런 경우가 어딨습나? 그만두소, 그까짓놈의 서울 안 보내도 좋습네, 보아란 듯이 버젓한 신랑감을 골라서 혼인을 하겠습네, 이렇게 콧구멍이 뻐언하도록 몰아세워 주고 싶기도 했다.
"글쎄 우릴 만만히 보구서 그러는 게 아니냐? 대체 어째서 가자구 했다가 이제는 오지 말란다더냐…… 답답하다. 속이나 좀 알자꾸나"
"나도 몰르겠어요…… 그냥 오지 말라구 그리니깐……."
초봉이는 곧은 대답을 않고 있다가 종시 모른다고 하고 만다.
그는 아까 저녁때 당하던 그 일을 모친한테고, 남한테고, 제 낯이 오히려 따가워서 말하기조차 창피했다.
저녁때 다섯시가 얼마 지나서다.
바쁜 일이 없어도 바쁘게 돌아다니는 제호지만, 요새 며칠은 정말 바빠서, 오늘도 아침부터 몇번째 그 긴 얼굴을 쳐들고 분주히 드나들던 끝에 잠깐 앉아 쉬려니까 그나마 안에서 윤희가 채어 들여 갔다.
제호가 안으로 들어가고 조금 있더니 큰소리가 들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쯤은 내외간에 싸움을 하는 터라, 초봉이는 그저 또 싸움을 하나 보다 했지, 별반 귀여겨 듣지도 않고 있었다.
"그래, 기어코 그 계집애를 데리구 갈 테란 말이야"
윤희의 쟁그럽게 악을 쓰는 목소리가, 마치 초봉이더러도 들으라는 듯이 역력히 들려 왔다. 초봉이는 귀가 번쩍 띄었다.
"글쎄, 데리구 가면 어째서 그리는 거야"
이것은 약간 거칠게 나오는 제호의 음성이다.
"어째서라니? 내가 그 속 모를까 봐서"
"속은 무슨 속이란 말이야"
"말은 못 하나…… 계집애가 밴조고름하게 생겼으니깐 음충맞게 딴 배짱이 있어 가지구설랑……."
이렇게 들려 나오는 윤희의 발악 소리에, 초봉이는 얼굴이 화틋 달아올랐다. 그는 마침 배달하는 아이도 없이 혼자 가게에 앉아 있으면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깨끗한 처녀의 마음자리에 진흙을 끼얹은 것 같아 일변 분하기도 했다.
"나잇값이나 좀 해요!"
제호가 나무라듯 비웃듯 씹어 뱉는다.
"……인전 그만하면 철두 들 때두 됐는데, 왜 점점 갈수록 고 모양이야…… 원 내가 아무리 계집에 걸신이 들렸기루서니, 그래, 나이 자식 연갑이구, 더구나 믿거라 허구서 갖다 맽기는 친구의 자식한테 손을 댈까 봐서…… 원 히스테리두 분수가 있구, 강짜두 택이 있어야지!"
"아이구! 저 꽝우리구멍 같은 아가리루다가 말은 이기죽이기죽 잘두 하네!…… 아무튼지 말루만 이러네 저러네 해야 소용 없구, 자아, 데리구 갈 테야? 안 데리구 갈 테야? 응"
"데리구 갈 테야!"
"정말"
"그래."
"그럼 나두 나 하구 싶은 대루 할 테야……."
윤희의 한결 더 독살스러운 소리가 잠깐 그치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자아 이거 알지? 이건 빙초산이구, 이건 ××가리(加里)…… 빙초산은 위선 그 계집애 낯바닥에다가 끼얹어 주구, 그리구 나서 ××가릴랑은 내가 먹구…… 어때? 그랬으면 시언상쾌하겠지"
빙초산을 그 계집애 얼굴에다가 끼얹는다는 소리가 들릴 때, 초봉이는 오싹 소름이 끼치고 수족이 떨렸다.
안에서는 연달아 쾅당거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가게께로 가까워질 때에는 초봉이는 벌써 길로 뛰어나왔었다.
그러자, 길로 뛰어나오기는 했어도, 어마지두 어떻게 할지 분간이 선뜻 나지 않아서 주춤주춤하는데, 제호가 양편 손에 약병 하나씩을 갈라 들고 씨근버근 가게로 나오는 것이다.
안에서는 윤희가 아이고 대고 목을 놓고 울음을 울고, 제호는 두리번거리다가 길 가운데 가 서서 있는 초봉이더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기다란 얼굴을 끄덕거린다.
초봉이는 서먹서먹하기는 해도 가게로 들어갔다.
"이런 제기할 것!"
제호는 들고 나왔다가 테이블 위에 놓았던 빙초산과 ××가리 병을 도로 집어 들고 들여다보면서 두덜거린다.
"……글쎄, 그놈의 원수가 이건 어느결에 도독질을 해다 두었드람? 거 참…… 하마트면 큰일날뻔했지! 제기할 것…… 이거 아무래두 내가 ××가리래두 들이 마시구 죽어 버려야 할까 봐!……건데 초봉이"
불러 놓고도 그는 난처해 차마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을 잇는다.
"……이거 참 미안하게 됐는데 말이야, 응…… 저어 이번에 말이야, 서울 같이 못 가게 될까 봐……그러니 집에 있으라구, 집에 있으면, 내 인제 올라오라구 기별하께시니, 응? 초봉인 다아 내 사정 알아 줄 테니깐 하는 말이니…… 제기할 것, 이놈의 세상!"
제호는 초봉이의 대답을 차마 듣기가 미안한 듯이, 제 할 말만 다 해놓고는 이내 약병을 집어 들고서 ‘극약독약’이라고 쓴 약장 앞으로 가고 만다.
사맥이 이렇게 된 사맥이고, 했고 보매 초봉이는 그렇듯 창피스런 곡절을 비록 모친한텔 값에 이야기를 하기가 낯이 뜨꺼웠던 것이다.
"그리구저리구 간에……."
유씨는 굳이 더 캐어물으려고 하지 않고 그쯤서 짐짓 모르쇠를 해버리면서 비로소 혼인말의 허두를 꺼내 놓되,
"……잘되었다, 그까짓 서울은 간들 실상 말이지 무슨 그리 우난수가 있다더냐? 밤낮 그 턱이 제 턱이지…… 아주 잊어버려라, 그리구 시집이나 가거라."
초봉이는 그러나 이 끝엣말은 심상하게 귀넘겨 들었다.
전에도 양친이 늘 마주앉기만 하면, 초봉이가 듣는 데고 안 듣는 데고 어서 시집을 보내야겠다거니 너무 늦어 가서 걱정이라거니,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도 그저 지날 말인 줄만 알았던 것이다.
한편 유씨는 오늘 저녁에 그 말을 죄다 할까, 또 운만 따고서 그만둘까 망설이던 참이다.
가자던 서울은 못 가고, 저렇게 풀이 죽어 만사에 경황이 없어하는데 혼인 이야기란 어찌 생각하면 새수빠진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변 생각하면, 그 애가 그럴수록 혼인이 어울린 이야기를 해주어서 거기에다가나 마음을 돌리고 다른 것은 잊어버리도록 하는 것도 계제에 좋을 성싶었다.
그래 우선 그렇게 허두만 내놓고는, 어떻게 할까 하고 다시 한번 궁리를 하는데 건넌방에 있던 계봉이가 마침 건너와서 살며시 들어앉는다.
그는 오늘 초저녁부터 눈치들이 이상하고 하니까, 필경 형의 혼인 이야기려니 기수를 채고서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두 바느질 좀 배워예지, 헤."
계봉이는 도로 쫓겨갈까 봐 아주 이런 소리를 하면서 말긋말긋 눈치를 살핀다.
"여우 같은 년 같으니라구!"
유씨가, 누가 네 속 모를 줄 아느냐는 듯이 돋보기 너머로 눈을 흘기면서,
"……네년이 무척 바느질이 배우구 싶겠다…… 그리다가 짜장 사람 되게"
"어이구 어머니두…… 바느질 못 한다구 시집갔다가 쫓겨오믄 어머닌 속이 시원하겠수"
"말이나 못 하나…… 저년이 주둥아리만 알루 까놨어!"
"해해해…… 그래두 어머니 딸은 어머니 딸이지이"
"내 속에서 네년 같은 왜장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나두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머니, 나는 나 같은 훌륭한 딸이 어떻게 우리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는고? 그게 이상한걸"
"저년이 얄래져서 한참 까불구 있구만!…… 그렇게 까불구 분주하게 굴려거든 저 방으루 건너가아!"
"네에, 그저 다소굿하구 앉아서 어머니 바느질하시는 것만 보겠습니다!"
유씨는 계봉이를 지천은 해도, 그 애가 건너와서 분배를 놓고 나니까 초봉이와 단둘이서 앉아 있을 때보다는 어쩐지 빡빡하던 것이 적이 풀리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기도 훨씬 수나로워지는 듯 싶다.
"이 애야 초봉아"
유씨는 음성에 정이 간곡하게 부르면서 잠깐 고개를 쳐들고 본다.
초봉이는 모친이 무슨 긴한 이야기가 있길래 음성까지 가다듬어 가지고 그러는고 해서 마주 고개를 쳐든다.
"……너두 벌써 나이가 스물한 살이니……."
유씨는 이윽고 이렇게 허두를 내놓고는, 그러고는 또 한참이나 잠잠하다가 비로소,
"……흰말이 아니라, 우리가 고향에서 그래두 조석 걱정은 않구서 살던 그때 같은 처지라면야 너를 나이 스물한 살이나 먹두룩 두어 두었을 것이며, 또오 너를 내놔서 그 푸달진 돈벌이를 시키느라고 오늘처럼 박제호 따위가 우리를 호락호락허게 보구서 그런 경우 빠진 짓을 하게 하긴들 했겠느냐…… 그것이 다아 집안이 치패해서 궁하게 살자니까 범사가 모두 그 지경이로구나!"
유씨는 이렇게 시초를 잡아 가지고, 넉넉 아마 삼십 분 동안은 별별 잔사설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그러하니 네 나이 한 나이라도 더 들기 전에 마땅한 혼처가 있으면 하루바삐 혼인을 해야겠다, 너의 부친과 앉으면 그 걱정을 하는 참이다고, 겨우 장황스런 서론을 끝마친다.
마치고 나서는 또 한번 음성을, 이번에는 썩 의논성 있게 가다듬어,
"너 혹시 저 너머, 한참봉네 싸전집 말이다. 그 집에 기식하구 있는 고태수라는 사람, 저 아따, 저 ××은행소 다닌다는 사람 말이다. 그 사람 더러 본 일 있느냐"
유씨는 고개를 쳐들면서 말을 멈춘다.
초봉이는 고태수라는 이름을 듣자, 앗! 기어코 여기까지 바싹 들이대고 육박을 했구나! 하고 몸을 떨었다.
그 동안 초봉이는 고태수라는 사람의 독하고 세찬 정기가 미묘하게도 심장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밀리며 실로 악전고투를 해왔었다.
고태수라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내고, 동시에 그가 이러저러한 속이 있다는 것을 알던 그날부터 초봉이의 가슴에는 저도 모르게 동요가 시작되었었다.
초봉이가 맨처음 그날, 태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다가 승재와 비교해서 승재가 그만 못하니까, 그것을 시기하여 태수한테 반감이 생긴 것 그것이 벌써 일 심상치 않을 시초였던 것이다.
그 뒤로 늘 태수는 초봉이의 머릿속에 가서 승재의 옆에 가 차악 붙어서는 초봉이가 아무리 눈치를 해도 찰거머리같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초봉이는 승재를 자꾸만 추켜 앉히고 싸고 돌고 해도 그럴수록 태수는 자꾸만 더 드세게 파고들었다.
태수는 마치 색채 강렬한 꽃이나 진한 향수처럼 초봉이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초봉이는 눈이 아프고 콧속이 아려서 그 꽃을 안 보려고, 그 향내를 안 맡으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두르고 했어도 끝끝내, 큰 운명인 것처럼 그것이 피해지질 않았다.
피하려도 피해지지도 않고, 그게 안타깝다 못해 필경 제 마음이 울고 싶게 짜증만 났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인제 오래잖아 서울로 가는 날이면, 그것도 활활 털어지고 마음 가뜬하겠지, 이렇게 믿고 일변 안심을 했었다.
이렇듯 초봉이로서는 이 판이 말하자면 아슬아슬한 땅재주를 넘는 살판인데, 별안간 서울 가자던 것이 와해가 돼 단지 서울을 가지 못하는 것 그것만 해도 큰 실망인데, 우황 고태수라니!
마침내 승재를 갖다가 한편 구석으로 밀어 젖히고서, 제가 어엿하게 모친 유씨의 옹위까지 받아가면서 이마 앞으로 바로 다가선 그 고태수!
초봉이는 모친이 말을 묻는 것도 잊어버리고, 저 혼자서, 시방 태수라는 사람이 던지는 그물에 옭혀 매어 옴나위하지도 못하면서, 그러면서도 어느덧 방그레니 웃으면서 그한테 손을 내미는 제 자신을 바라보다가, 깜박 정신이 들어 다시금 몸을 바르르 떤다.
유씨는 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잠깐 만에 다시,
"그 사람 말이, 너를 안다구 그리구, 너두 자기를 알 것이라구 그리더란다."
하면서 이야기를 또 내놓는데, 계봉이가 말허리를 꺾고 나서서 한마디 참견을 하느라고,
"으응, 그 사람…… 나두 더러 보았지……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너무 말쑥한 것 같더라!"
"네깐년이 무얼 안다구, 잠자쿠 있던 않구서, 오루루 나서? 주제넘게!"
유씨는 계봉이를 무섭게 잡도리를 해놓고서 다시 초봉이더러,
"……그래, 느이 아버지두 그리시구, 또 내가 보기두 사람이 퍽 깨끗허구 똑똑해 뵈더라…… 나이는 올해 스물여섯이구, 서울서 아따 뭣이냐, 전문대학교를 졸업했다구……"
"어이구 어머니두!"
욕을 먹을 값에, 계봉이는 제 낯이 따가워서 그대로 듣고 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전문대학교가 어디 있다우? 전문학교믄 전문학교구 대학이믄 대학이지."
"이년아 그럼, 더 높은 학굔 게로구나!"
"어이구 참, 볼 수 없네! 혼인허기두 전에 지레들 반해 가지굴랑…… 난 고런 사내 얄밉더라! 뻔질뻔질한 거……."
"아, 저년이!"
유씨는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당장 무슨 거조를 낼 듯이, 돋보기 너머로 계봉이를 흘겨본다. 행여 건드릴세라 사리고 조심하는 아픈 자리를, 마치 들여다보는 듯 공짱나게 칼끝으로 쑤셔 낸다고야, 이 당장 같아서는 자식이 아니라 원수요, 쳐죽이고 싶게 밉던 것이다.
초봉이는 종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고, 유씨는 계봉이한테 흘기던 눈을 고쳐서 초봉이게로 돌려 한번 힐끗 기색을 살핀 뒤에, 죽 설명을 늘어놓는다.
"태수는 고향이 서울이요, 양반의 집 과부의 외아들이요, 재산은 천 석 추수나 하고, 지금 은행에 다니는 것은 장차 무슨 큰 경륜이 있어 일을 배울 겸 그리하는 것이요, 결혼식은 인제 예배당에나 공회당에 가서 신식으로 할 테고 잔치는 돈을 많이 들여 요릿집에 가서 할 테고 우리집이 가난해서 마음은 있어두 혼인할 엄두를 못 낸다니까, 그러잖아도 혼인 비용을 전부 제네가 대줄 요량을 하고 있단다고 하고, 그러니 털어놓고 말이지, 시방 이 지경이 된 우리한테 당자가 그만큼 잘나고 집안이 좋고, 그 밖에 여러 가지로 구격이 맞은 그런 혼처가 좀처럼 생기기가 어려운 노릇인데 그게 다아 연분이라는 것이니라. 그래서 느이 아버지와 내가 잘 상의를 해보고 나서 이 혼인을 하기로 아주 작정을 했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알고 있거라. 느이 아버지는 너의 의향을 물어 보라고 하시지만 너도 노상이 그 사람을 모르는 배 아니니 물어 보나마나 네 맘에도 들 것이다……."
이렇게 유씨는 이야기를 마치고 잠긴 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들어 딸의 기색을 엿본다.
모친의 여러 가지 설명으로 해서 초봉이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태수의 영상은, 인제는 더할 나위도 없이 찬란해 가지고, 승재의 그러잖아도 뒤로 밀려간 희미한 영상을 더욱 압박했다. 초봉이는 그것이 안타까워 몸부림을 치면서,
‘나두 몰라요!’
고함쳐 포악이라도 하고 싶었다.
세 모녀가 잠시 말이 없이 잠잠하고 있다가 유씨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계봉이가 얼른 내달아, 초봉이한테 의미 있는 눈을 찌긋째긋,
"언니 참 잘됐구려? 그만하믄 오케이지, 무얼 생각하구 있어? 하하하…… 우리 언니가 인전 다네노코시를 타게 됐단 말이지! 하하하."
웃어 대면서 언중유언의 말로 짓궂게 놀려 주고 있다.
초봉이는 눈을 흘기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언니, 내일 아침버텀은 밥 내가 하께, 응? 해해…… 척 이렇게 서비슬 해야 한단 말이야…… 그 대신 인제 언니 결혼하구 나서 혹시 서울루 가게 되거들랑 나 공부 좀 시켜 주어야 해? 응"
"……"
"아이, 왜 대답을 안 해…… 난 많이두 바라지 않구, 자그만치 의학전문이나 약학전문 하나만 마쳐 주믄 그만이야."
계봉이는 이 자리에서는 형을 놀리느라고 장난삼아 하는 말이지만, 그가 의학전문이나 약학전문을 다녀, 한 개 버젓한 기술을 캐치하고 싶어하는 것은 노상 두고 하던 말이요 진정이었다.
"온…… 같잖은 년이!"
유씨가 계봉이를 타박을 하는 것이다.
"……이년아, 네 따위가 공분 더 해서 무얼 하니…… 사람 으젓잖은 것 공부시키기 공력만 아깝지!"
"어이구 어머니두…… 그래두 나두 언니 덕 좀 볼걸…… 어머니 아버지두 인제 부자 사위한테 단단히 덕 볼려믄서……."
"저년을, 주둥아리를……."
유씨는 그만 펄쩍 뛰면서 계봉이를 때릴 듯이 벼른다.
"안 그러께요 어머니! 다신 안 그러께요…… 그렇지만 어머니…… 저 거시키 조사나 잘 좀 해보았수"
"아 이년아, 조사가 무슨 조사야"
"그 사람이 부자요, 다아 양반이요, 그리구 어머니 말대루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구 또 ……."
"그년이 곤달걀 지구 성 밑엔 못 가겠네."
"하하하하…… 그럼 언니가 곤달걀 푼수밖에 안 되나"
"저년을 거저!…… 아 이 계집애년아, 느이 아버지하면 내면 다아 오죽 알아서 할라구, 네년이 나서서 건방지게 쏘옥쏙 참견을 하려 들어"
"네에, 다아 그러시다면야…… 나두 다아 언닐 생각해서 그런 거랍니다."
"이년아, 고양이 쥐 생각이라구나 해라!"
"네에, 언니가 아까는 곤달걀이라더니, 인전 또 쥐라!…… 오늘 저녁에 울 언니가 둔갑을 많이 하는군!"
"저년을! 네 요년……."
유씨는 을러메면서 옆에 놓았던 침척을 집어 들고, 계봉이는 얼른 날쌔게 마루로 해서 건넌방으로 달아난다.
"……이년 인제 보아라. 등줄기에서 노린내가 나게시리 늑신 두들겨 줄 테니…… 사람 못된 년 같으니라구!"
유씨는 부아는 났어도 일변, 계봉이가 건넌방으로 가고 없는 것이 다행했다. 그는 인제 마지막으로 초봉이한테 하려는 그 말은 ‘여우 같은 그년’ 계봉이가 있는 데서는 내놓기가 겁이 났었다. 보나 안 보나, 그 주둥아리에 또 무어라고 말참견을 해서 속을 상해 줄 테니까(……가 아니라 실상은 계봉이가 무서워서).
유씨는 부아를 삭이느라고 한동안 잠자코 바느질만 하다가 이윽고 목소리를 훨씬 보드랍게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리구 이런 말이야 아직 네한테까지 할 건 없지만, 기왕 말이 난 길이니…… 그 사람이 이렇게 하기로 한다더라…… 혼수 비용을 자기가 말끔 대서 하기두 하려니와, 또 우리가 이렇게 간구하게 지낸다니까, 원 그래서야 어디 쓰겠냐구, 그럼 인제 혼사나 치르구 나서 자기가 돈을 몇천 원이구(유씨는 몇천 원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대디리께시니, 느이 아버지더러 무어 점잖은 장사나 해보시란다구 그런다드구나!…… 그렇다구 너라두 혹시 에미 애비가 사우 덕에 호강을 할려구 딸자식을 부둥부둥 우겨서 부잣집으로 떠실어 보낼려구 하지나 않는고 싶어, 어찌 생각이 들는지는 모르겠다마는, 어디 설마한들 백만금을 준다기루서니, 당자 되는 사람이 흠이 있다든지, 또 깨렴직한 구석이 있다면야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내릴 일이지, 어쩌면 너를 그런 데루다가 이 에미 애비가 보낼 생각인들 하겠느냐? 그저 첫째루는 너를 위해서 하는 혼인이요, 그래 네가 가서 고생이나 않구 호강으루 살기두 하려니와, 또 그 사람이 밑천이라두 대주어서 장사라두 하면, 그게 그대지 나쁠 일이야 없지 않느냐"
유씨는 바늘귀를 꿰는 체하고 잠깐 말을 멈추고 딸의 기색을 살핀다.
"글쎄 이 애야!"
유씨는 다시 바늘을 놀리면서 음성은 별안간 처량하다.
"……너두 노상 그런 걱정을 하지만, 느이 아버지 말이다…… 그게 허구 다니는 꼬락서니가 그게 사람 꼴이더냐? 요전날 저녁에두 글쎄 두루매기 고름이 뜯어진 걸 다시 달아 달라구 내놓더구나! 아마 누구한테 멱살잽일 당한 눈치더라, 말은 안 해두…… 아이구 그 빈차리같이 배싹 야웨 가지군 소 갈 데 말 갈 데 안 가는 데 없이 다니면서 할 짓 못 할 짓 다아 하구, 그런 봉역이나 당하구, 그리면서두 한푼이라두 물어다가 어린 자식들 먹여 살리겠다구…… 휘유! 생각하면 애차럽구 눈물이 절루 난다!"
눈물이 난다는 유씨는 그냥 맹숭맹숭하고, 초봉이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이 좌르르 쏟아진다. 그것은 부친을 가엾어하는 눈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노상 그것만도 아니다.
그는 모친에게서 결혼을 하고 나면 태수가 장사 밑천으로 돈을 몇천 원 대주어서 부친이 장사 같은 것을 하게 한다는 그 말을 듣고는 다시는 더 여부없이 태수한테로 뜻이 기울어져 버렸다.
그거야 태수가 미리서 마음을 동요시킨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조건이고 보면 필연코 응낙을 않던 못 할 초봉이다.
그러나 시방 초봉이는 제 마음의 한편 눈을 감고서라도 태수한테 뜻이 있어서가 아니요, 그 유리한 조건 그것 한 가지 때문이라고 해서나마, 안타까운 제 심정의 분열을 짐짓 위로하고 싶으리만큼 일변으로는 승재한테 대하여 커다란 미련과 민망스러움이 간절했다.
그러나 가령 그렇듯 박절하게 옹색스런 회포를 짜내지 않더라도 아무려나 아직까지는 그게 첫사랑의 싹이었던 걸로 해서 태수한테보다는 승재한테로 정은 기울어 있었던 게 사실이매, 그만한 미련의 상심(傷心)은 아무튼지 없지 못했을 것인데, 마침 겹쳐서 모친 유씨의 그 눈물만 못 흘리지 비극배우 여대치게 능청스런 ‘세리프’가 있어 놓으니, 또한 비감(悲感)의 거리가 족했던 것이요, 게다가 또다시 한 가지는, 그러한 부친과 이러한 집안을 돕기 위하여 나는 나를 희생을 한다는 처녀다운 감격…… 이렇게나 모두 무엇인지 분간을 못 하여 뒤엉켜 가지고 눈물이라는 게 흘러내린 것이다.
닷새가 지나, 오늘은 양편이 탑삭부리 한참봉네 안방에 모여서 초봉이와 태수가 경사로운 약혼을 하는 날이다.
태수 편에서는 다 그럴 내력이 있어서 혼인을 급히 몰아친 것이요, 정주사 편에서도 역시 하루바삐 ‘장사’를 할 밑천이 시각이 급해, 그저 하자는 대로 응 응 하고 따라갔던 것이다.
신부 편에서는 규수 초봉이와 정주사와 형주가 오고, 신랑 편에서는 태수가 가장 친하다는 친구 형보를 청했고, 탑삭부리 한참봉네 내외는 주인 겸 신랑 편이다.
다섯시에 모이자고 했는데 여섯시에야 수효가 정한대로 겨우 들어섰다.
형보는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보는 초봉이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그는 절절히 탄복하면서
‘아, 요놈이!’
하고 샘을 더럭 내어 태수를 쳐다보았다.
형보의 눈에 보인 대로 말하면, 초봉이는 청초하기 초생의 반달 같고 연연하기 동풍에 세류 같았다. 시방 형보가 초봉이를 탐내는 품은 태수가 초봉이한테 반한 것보다 훨씬 더했다.
‘고걸, 고걸 거저, 손아구에다가 꼭 훑으려 쥐고서 아드득 비어 물었으면, 사뭇 비린내두 안 나겠다!’
형보는 정말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고것 오래잖아 콩밥 먹을 놈 주긴 아깝다! 아까워, 참으로 아까워!’
형보는 꽹하니 뚫려 가지고는 요기(妖氣)조차 뻗치는 눈망울을 굴려 초봉이와 태수를 번갈아 본다.
그는 지금부터라도 제가 슬그머니 뒤로 나서서 태수의 뒤밑을 들추어 내어 이 혼인이 파의가 되게시리 훼방을 놀아 볼까 하는 생각을 두루두루 해보기까지 했다.
마침 음식 분별이 다 되었던지, 그새 안방과 부엌으로 팔락거리고 드나들던 김씨가 행주치마에 가뜬한 맵시로 앞 쌍창을 크게 열더니, 방 안을 한번 휘휘 둘러본다. 음식상을 어떻게 들여놓을까 하는 참이다.
태수는 약혼반지 곽을 꺼내서 주먹에 숨겨 쥐고 김씨한테 흔들어 보인다.
약혼을 한다고 모여 앉기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약혼인지 알 사람도 없거니와, 분별을 할 사람도 없어, 음식상이 들어오도록 약혼반지는 태수의 포켓 속에 가서 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령 결혼식이라면 명망가라는 사람을 청해 오든지 목사님을 모셔 오든지 했겠지만, 그럼 약혼식이니 명망가의 다음가는 사람이나 부목사를 불러올 것이냐 하면, 그건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일은 좀 싱거웠고, 일이 싱거운지라 자리가 또한 싱거워 놔서, 전원이 모여 앉은 지는 한시간이로되, 초봉이는 너무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앉았기 때문에 충혈이 되어서 얼굴이 아프고, 형주는 장난을 못 해서 좀이 쑤시고, 태수는 장인영감이 될 정주사의 앞이라서 담배를 못 피워 입 안이 텁텁하고, 정주사는 인제 혀가 갈라진 줄도 모르고 귀한 해태표를 연신 갈아 피우면서 탑삭부리 한참봉더러, 옛날 우리 조선 사신이 상국(上國 : 송·명)에 갔다가 글재주와 꾀로써 거기 사람을 혼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되, 자리가 자리인만큼 탑삭부리 한참봉이 거 묵은 셈조간을…… 이런 소리를 하지 못하는 그 속이 고소했고,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렇게 심심하게 앉아 있으니 아이놈한테 맡겨 놓고 들어온 가게나 나가 보든지, 정주사와 장기를 한판 두든지 하고 싶었고, 김씨는 아랫목에 태수와 나란히 앉아 있는 초봉이를 보니 일찍이 내가 태수와 누렸던 자리에 인제는 네가 앉아 있구나 하는 시새움과 감개가 없지 못했으나, 일변 안팍으로 드나들기에 정신이 없었고, 그리고 형보는…….
형보는 처음에는 와락 이 혼인을 훼방을 놀아 볼까 하는 궁리도 해보았지만, 훼방을 놀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게 자는 호랑이를 불침 놓는 일이겠어서 생각을 돌려먹었다.
만일 태수와 파혼이 되고 보면, ‘이 계집애’는 도로 처녀로 제 부모한테 매여 있을 테요, 장차 어느 딴 놈의 것이 될지언정 형보 제가 손을 대기는 제 처지로든지 연줄로든지 어느 모로든지 지난한 일이나, 그러나 태수와 그대로 결혼을 하고 보면 얼마든지 기회도 있고 조화도 부릴 수가 있으리라 했던 것이다.
‘"오냐, 우선 너이끼리 시집가고, 장가들고 해라. 해놓고 나서 서서히 보자꾸나.’
형보는 아주 이렇게 늘어진 배포를 부리기로 했다. 그는 꼭 이 처녀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었었다.
하고 나서, 그는 시치미를 뚜욱 떼고 앉아, 들은 풍월로 강 건너 장항(長項)이 축항까지 되면 크게 발전이 될 테고, 그러는 날이면 이쪽 군산이 망하게 된다고 태수한테 그런 이야기를 씨부렁거리고 있고…….
모두 이렇게 갑갑하기 아니면 심심한 참이었었다.
그런 중 김씨 하나가, 아무려나 처음부터 나서서 좌석도 분별하고, 이야기도 붙이고, 말하자면 서두리꾼 노릇을 하느라고 했는데, 반지 조건은 총망중에 깜박 잊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놈 반지가,
‘여보, 나도 한몫 봅시다!’
하는 듯이 출반주를 하던 것이다.
김씨는 섬뻑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릿어릿한다. 그러나 그건 잠깐이요, 그는 혼자말을 여럿이 알아듣게,
"아따, 아무려믄 어떨라구!"
하면서 척척 걸어들어와 태수의 손에서 반짓곽을 툭 채어 가지고 (참말 아무래도 괜찮은 듯이) 처억 반지를 꺼내더니, 마치 요술 부리는 사람처럼 좌중에게 한번 높이 쳐들어 보이면서,
"자아, 이게 약혼반지예요……."
이렇게 통고를 한 후에 다시,
"……자아, 내가 끼워 주어요!"
선언을 하고는 초봉이의 왼손을 잡아당겨 무명지 손가락에다가 쏘옥 반지를 끼워 준다. 빨간 루비를 박은, 몸 가느다란 십팔금 반지가 초봉이의 희고 조그마한 손에 예쁘게 어울린다.
초봉이의 손은, 일제히 그리로 쏠려 가지고 제각기 감회가 다르게 바라보는 열두 개의 눈앞에서 바르르 가늘게 떨린다.
김씨는 반지를 끼워 주고 나니, 그래도 원 약혼이라는 게 이렇게 싱거울 법이 있으랴 싶었던지 잡았던 초봉이의 손목을 그대로 한번 더 번쩍 치들고,
"자아 인전 약혼이 다 됐어요!"
하면서 좌중을 둘러본다. 권투장에서 심판이 이긴 선수한테 하는 맵시꼴이다.
이렇게 해서 약혼이 되고, 이튿날인 오늘 아침에 정주사네 집에서는 태수의 기별이라면서, 탑삭부리 한참봉네가 보내는 돈 이백 원에다가 간단한 옷감이 들어 있는 혼시함(婚時函)을 받았다.
오늘부터 이 집은 그래서 단박 더운 김이 치닫게 우꾼우꾼한다. 식구들은 초봉이만 빼놓고, 누구 하나 싱글벙글 웃기 아니면 빙긋이라도 안 웃는 사람은 없다.
바느질이 바쁘게 되었다. 혼인날은 단 엿새가 남았는데, 옷은 신부 것을 말고라도 집안식구가 말끔 한 벌씩 새로 해입어야겠으니 여간이 아니다.
그래서 저녁부터는, 그새까지는 남의 삯바느질을 하던 이 집에서, 되레 삯바느질꾼을 불러온다, 재봉틀을 새를 얻어 온다, 광목을 찢어라, 솜을 두어라, 모시를 다뤄라, 마구게 야단법석으로 바느질을 몰아친다.
그리고 계봉이는 아랫방 문 앞에 서서 승재더러 닭 쫓던 개는 지붕이나 치어다보라고 지천을 하고 있고…….
8 외나무다리에서
계봉이는 형 초봉이가 승재를 떼쳐 놓고 달리 결혼을 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더구나 형과 결혼을 하게 된 그 사람 고태수한테는 웬일인지 좋게 생각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승재가 저 혼자 외따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기는 하면서도 일변 그것과는 따로 승재가 불쌍하기도 했다. 제 애인이 시집을 가게 되어 약혼까지 다 해놓고, 그래서 안에서는 시방 혼인 바느질을 하느라고 생 법석인데, 이건 그런 줄도 모르고 여전히 아랫방 구석에 그대로 끄먹끄먹 앉아 있다니……!
계봉이는 승재가 불쌍하기도 하거니와, 제일 딱해 볼 수 없었다. 그런 깐으로는 어디론지 없어지고 혼인 준비의 꼴을 보이지 않았으면 싶었다.
저녁 후에 계봉이는 책을 빌리러 나온 체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면서 우선 정말 모르고 있나, 혹시 알고도 위인이 의뭉꾸러기라 짐짓 모른 체하고 있나, 그 눈치를 떠보았다. 했으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깜깜속이었었다.
그래 계봉이는 슬끔 이렇게 말을 비쳐 보았다.
아 참, 우리 언니가 이번 스무사흗날 ××은행에 다니는 고태수라는 사람과 공회당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은 병원을 하루 빠지고라도 꼬옥 참례를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승재는 대번 알아보게 흠칫 놀라더니,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이요, 이어 곧 시침해 가지고 대답이, 아 그러냐고, 그날 형편 보아서 그렇게 해도 좋지야고 하는 것이 아주 조금도 무엇한 내색이 없이 심상했다.
계봉이는 승재가 좀더 놀라기도 하고, 당황해하기도 하고, 실망 낙담도 하고 이랬으면 동정하는 마음도 더할 뿐더러, 저도 같이서 긴장도 되고 해서 좋았을 텐데, 저편이 뎁다 그렇게 밍밍하고 보니 이건 도무지 싱겁기란 다시 없었다.
계봉이는 그래서, 마치 솜뭉치로 사람을 때려 주는 것처럼 해먹고, 인제는 불쌍하다는 생각은 열두째요 밉살스러운 생각이 더럭 나서, 그래 마구 닭 쫒던 개는 지붕이나 치어다보라고, 지천에 잡도리를 하고 있는 참이다.
"아이유! 어쩌믄 조렇게두!"
계봉이는 손가락질을 해가면서 혀를 끌끌 차면,
"……그래, 애인이 딴 데루 시집을 가는 줄두 모르구서 저렇게 소처럼 끄먹끄먹 앉었기만 허구 …… 그리구 일껀 아르켜 줘두…… 아이유! 흘개 빠진…… 정말이지 번죽이 아깝지!"
들이 몰아세워도 승재는 종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히죽이 웃기만 한다.
"누가 웃쟀어…… 꼴에 연애? 옜수, 연애…… 애인이 시집가는 줄두 모르는 연애…… 조 모양이니 애인이 딴 데루 시집을 안 가"
"쯧!…… 할 수 없지!"
승재는 시치미를 떼던 것을 잊고서 계봉이 설레에 무심코 변명을 하는 것이다.
"……몰라두 할 수 없구, 알아두 할 수 없구, 다아…… 거저."
사실 승재는 모르고 알고 간에, 그 일을 가지고 무얼 어떻게 할 내력도 없으며 주변도 없었다.
초봉이와 둘이서 터놓고 연애를 했던 것도 아니요, 결혼을 하자는 약속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가사 그랬다손 치더라도 저편이 변심이 되었다거나, 혹은 달리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리하는 것일 터인즉, 승재로 앉아서야 별수가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조금 얼쩍지근했다면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역시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는 둘이의 사이리요.
하기야 승재도 우렁잇속 같은 속은 있어서 비록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할망정 지금 여러 가지로 감정이 착잡하게 엉클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방을 세 얻어서 오니까, 나이 찬 안집 딸이, 즉 초봉이가 첩경 눈에 띄었고, 그 뒤로 차차 두고 보노라니, 눈 한번 거듭 뜨는 것이며, 얼굴 한번 돌이키는 거랄지, 또 어찌어찌하다 지나가는 것처럼 한두 마디씩 하는 말이라든지 그 밖에 무엇이고 유상무상간에 범연한 게 없이 특별한 관심과 호의를 보이는 것 같았고, 그것이 초봉이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승재 자신도 초봉이한테 그래지는 것을 그는 이윽고 알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금년 이월부터는 초봉이가 제중당에 가서 있게 되고, 마침 제중당은 금호의원에 약품을 대는 집이라, 약을 주문하는 간단한 전활망정 하루에 한두 번쯤은 초봉이와 이야기를 하곤 하는 것이 승재 저도 모르게 즐거운 일과였었다.
그랬는데 며칠 전에는 웬 사람이 찾아와서 제중당을 제가 맡아 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전대로 많이 거래를 시켜 달라고 인사를 하고, 그래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초봉이는 통히 나오지를 않고해서 그러면 주인이 갈리는 바람에 가게를 그만두었나 보다고 짐작은 했으나, 섭섭하기란 이를데가 없었다.
그래 일변, 그렇다면 다시 어떻게 취직을 해야 하지 않나…… 혹 우리 병원에 간호부 자리라도 한 자리 나면…… 제 딴에는 이런 걱정까지 하던 참인데, 천만뜻밖에 계봉이가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던 것이다.
선뜻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승재는 제 스스로도 의외로워할 만큼 가슴의 격동이 대단했고, 그것이 자연 얼굴에까지 나타나지 않질 못했다.
그렇듯 격동을 받아 놀라다가, 그는 이다지도 놀랄까 싶어, 그것이 또한 놀랍기도 했거니와 퍼뜩 다른 생각이 들면서 그만 계봉이를 보기에도 점직해, 얼른 기색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치미를 뗐던 것이다.
이것은 그러나, 그가 별안간에 의지력이 굳센 초인(超人)이나 어진 성자(聖者)가 된 때문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계봉이가 흘개가 빠졌다고 지천을 하는 꼭 그대로, 주변성도 없고 저를 떳떳이 주장하지도 못하고 일에 겁(怯 : 내성)부터 내는 솜씨라, 가령 오늘 밤만 하더라도 선뜻, 아뿔싸! 내가 남의(초봉이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서…… 괜히 속없는 요량을…… 이런 망신이라니! ……이 생각이었던 것이다.
--초봉이는 나한테 아무 뜻도 있었던 게 아니요, 단지 그저 사람됨이 착하고 상냥해서 보이기를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실상 말이지, 무엇을 가지고 초봉이가 나한테 향의가 있었다는 것을 주장을 할 테냐? 요전날 밤에 계봉이가 자리끼 숭늉을 가지고 나와서 쐐알거리던 말도, 짐짓 나를 놀려먹느라고 한 소리가 아니면, 저도 잘못 짐작을 하고서 그런 것일 게다. 글쎄 그런 것을 나혼자서만 건성 김칫국을 마시듯이 물색없이 좋아하다니! 그러고서 그가 결혼을 한다니까 후닥닥 놀라다니!
참말로, 큼직한 보자기가 있었으면 좋겠는 이 무렴을 끄느라고, 그는 계봉이가 보는 데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 그다지 능란하지도 못한 연극을 하느라고 한 것이다.
계봉이는 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더 구박을 하다가 들어갔고 책상에 팔을 얹어 턱을 괴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승재는 마음이 세 갈래 네 갈래로 흐트러져, 시간이 가고 밤이 깊고, 다시 날이 밝는 것도 몰랐다.
제 몸뚱어리를 송두리째 어디다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헛헛함, 비로소 느껴지는 고독, 드세게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는 초봉이에의 애착, 그러한 초봉이를 장차 차지할 고태수라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맹렬한 질투…… 승재로는 일찍이 겪어 보지도 못한 번뇌였었다.
꼬박 뜬눈으로 앉아서 밤을 새웠고, 훤하니 밝은 마당으로 내려섰을 때는 이 집이 감개도 깊거니와 일변 등뒤에서 누가 손가락질이나 하는 것만 같아서, 도망하듯 문간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는 얼굴을 쳐들고 이 집에는 들어서지 못할 듯싶었다.
뚜벅뚜벅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승재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어디 딴 데로 방을 구해서 옮아 가는 게 좋겠다. 물론 갑자기 이사를 한다면 계봉이는 물론 온 집안 식구가 속을 몰랐던 사람까지 되레 눈치를 채기 십상이요, 그래서 용렬한 사내자식이라고 삐쭉거릴 것, 그러니 그도 난처는 하다. 그렇지만 그게 난처하다고 그냥 눌러 있자니 그건 더 못 할 노릇이다. 누가 아무려거나 역시 옮아 버리는 게 상책이겠다…….
승재는 이렇게 작정을 하고서 병원에 당도하던 길로 아범(인력거꾼)을 시켜, 병원 근처로 몇 집을 우선 돌아다녀 보게 했다.
마침 병원에서 정거장 쪽으로 얼마 안 가노라면 ‘스래(京浦里)’로부터 들어오는 큰길과 네거리가 된 바른편 모퉁이에, 영감네 내외가 벌여놓고 앉은 고무신가게가 있고, 그 안으로 삼조짜리 다다미방 하나가 빈 게 있어서 그놈을 두말 않고 빌리기로 했다.
방은 뒤로 구석지게 붙었고 따로 쪽대문이 있어서, 주인네와는 상관없이 출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밤에 조용히 앉아 공부를 한다든지, 불려다닌다든지 하기에 십상인 품이, 되레 초봉이네 아랫방보다도 방만은 마음에 들었다.
오후 네시가 좀 지나서 승재는 새로 얻은 방을 닦달을 하려고 나서다가 마침 환자가 왔기 때문에 그대로 붙잡혔다.
환자는 처음 온 환자인데 처음 오는 환자는 주인 달식이가 초진을 하는 시늉을 하지만, 왕진을 나갔든지 해서 없으면 승재가 그냥 진찰을 한다.
환자는 간호부의 지휘로 벌써 진찰실 한옆에 차려 놓은 진찰탁(診察卓) 옆의 둥근 걸상에 가 단정히 걸터앉았고, 승재는 벗었던 가운을 도로 꿰면서, 직업적으로 환자를 한번 훑어본다.
역시 어떠한 환자나 일반으로, 사람처럼 생긴 사람이요, 그러나 양복과 신수가 멀쩡하니 이건 갈데없이 화류병(花柳病) 환자요, 하는 외에는 더 특별한 인상도 주의도 안 했고 또 그게 의사로서 보통인 것이다.
"성함이 누구시죠"
승재는 환자와 무릎이 서로 닿을 만큼 바싹 놓여진 진찰탁 앞의 회전의자에 걸터앉아 카르테를 펴놓고 잉크 찍은 철필 끝을 들여다보면서, 종시 직업적으로 무심히 묻는 말이다.
그러나 천만의외지, 환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대답이,
"네, 고태수라고 합니다."
승재는 하릴없이, 별안간 누가 면상에다가 물이라도 쫙 끼얹은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반사적으로 쳐든 얼굴로 뚫어져라고 태수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으응!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
승재는 이윽고 두근거리던 가슴을 진정하고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실상은 저도 모를 소리를 속으로 뇌느라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는 것이다.
사실 그는 생각도 안 했다가, 별안간 고태수라는 그 사람과 섬뻑 만나 놓고 보니, 미처 무엇이 어떻다고 할 수가 없고, 어안이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는 제 직업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태수의 얼굴을 건너다보고 있다.
해맑은 얼굴이 갸름하되 홀쭉하지 않고, 볼때기가 도독한 것이며, 이목구비가 모두 골라서 미남자로 생긴 태수의 모습사리가 승재는 단박 판에 새긴 부각(浮刻)처럼 똑똑하게 머릿속으로 들어박히고, 그것이 백 년을 가도 잊혀질 것 같지 않았다.
‘흐응, 네가 고태수라아!’
일단 더 정리가 된 적의(敵意)로부터 우러나오는 마음속의 세리프다.
승재는 시방 이 사나이를 이렇게 만난 것이 어쩐 일인지 반가운 것 같은, 재미있는 것 같은, 그러면서 한옆으로는 해사하니 이쁘게 생긴 그의 얼굴을 무얼로다가 들이 으깨 주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무례하다 하리만큼 얼굴을 똑바로 건너다보면서 기색이 심상치 않은 의사란 자의 태도에 태수는 마침내 이마를 찡그리고 낯꽃이 좋잖아진다.
"왜? 나를 아시나요"
누가 태수라도 따지자고 할밖에…….
"네, 아 아니오!"
승재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얼른 고개를 수그리고 펜을 놀린다.
태수는 이 괴한(怪漢)이 여간만 불쾌한 게 아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이 도졌고, 그래서 그새 줄곧 병원에 다녔는데, 그게 한번 도지면 좀처럼 낫지를 않는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첫째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고, 또 혼인날도 며칠 남지 않았고 해서 혹시나 무슨 별 도리가 없을까 싶어, 마침 병원이 지금까지 다니던 그의 단골 병원보다 낫다는 소문이 있고 하니까 오늘은 시험삼아 이 금호의원으로 와본 것이다.
그러나 와서 본즉, 병을 보아 주겠다고 처억 나서는 위인이 우선 정나미가 떨어졌다. 태수가 보기에는 의사라고 하기보다는 기껏해야 제약사요, 그러잖으면 병원 ‘고쓰가이’ 푼수밖에는 못 될성싶었다. 더구나 체격이며 얼굴 생김새는 몸에다가 돈을 지니고 호젓한 데서 만날까 무서울 지경이다. 태수가 승재를 본 첫인상은 이러했다.
그래서 태수는 속이 찜찜한 판인데, 이건 성명을 대주니까 대체 무엇이 어쨌다구 남의 얼굴을 마구 뚫어지게 치어다보면서 뚱딴지같이 구는 데는, 의사고 무엇이고 한바탕 들이대고 싶게 심정이 상했다.
"어디가 편찮으신가요"
승재는 이내 고개를 숙인 채, 연령과 주소와 직업을 물어, 일일이 제자리에 쓰고 나서 비로소 철필을 놓고 회전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태수와 마주앉는다.
그는 이 말을 묻기가 무서웠다. 보나 안 보나 화류병이기 십상인데, 제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이 착실하여 결혼 전에 건강진단을 하자는 것이었으면 하는 원념으로 다뿍 긴장이 되기까지 했다.
"××인데요……"
태수는 불쾌하던 끝이나 울며 겨자먹기로 오히려 점직해하면서 대답을 한다. 처음도 아니요, 또 의사 앞에서라지만 젊은 간호부까지 대령하고 섰는데서 부끄럼을 타는 불결한 병을 말하기란 누구나 마찬가지로 거북하고 창피할밖에 없는 것이다.
"×? ×"
승재는 짐작은 한 바이지만, 의사답지 않게 소리를 지른다.
--바로 며칠 아니면 초봉이와 결혼을 할, 소중한 그 초봉이와 결혼을 할 네가 천하에 고약하고 더러운 ××을 앓다니!
승재는 사뭇 치가 떨리는 것 같았다.
태수는 그러잖아도 점직한 판에 승재가 또 소리를 꽥 지르고 놀라고 해놓으니 더욱 무렴하기도 하거니와, 대관절 이게 의사가 아니고 미친놈이나 아닌가 싶었다.
"언제부터 편찮으셨나요"
승재는 이윽고 다시 의사가 되어 가지고 손을 내밀면서 묻는다.
"병이 생기기는 벌써 작년 가을인데, 치료해서 낫긴 나았어요, 그랬는데 자꾸만 도지구 해서……."
"근치가 되지를 않았던 게지요, 그런 것을 조심을 안 하시니까…… 그러시면 안 됩니다! 조심을 하셔야지."
승재는 제 요량만 여겨, 시방 초봉이의 남편 될 사람더러 충고하는 것이다. 태수는 그따위 참견은 다 아니꼬웠지만 절에 간 색시라,
"글쎄요, 그런 줄이야 다아 알지만, 자연……."
하면서 어물어물거리다가,
"……그런데 좀 급한 사정이 있는데요…… 인제 한 사오 일 동안에 치료가 안 될까요"
승재는 속으로,
‘네가 이 녀석 단단히 급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원수를 잡아다가 발밑에 꿇려 앉힌 것처럼 기광이 나는 것 같았다.
"거 안 될 겝니다!"
승재는 커다랗게 고개를 흔들다가,
"……아무튼 진찰을 해봐야 알겠지만, 아주 초기라두 어려울 텐테 만성이면 더구나……."
"그래두 사정이 절박해서 그리는데요? 그래 상의를 해볼 겸, 또……."
"무슨 일이십니까? 여행을 하십니까…… 여행 같으면 그 병엔 더구나 해롭습니다!"
승재는 짐짓 이렇게, 제 딴에는 태수를 구슬린다는 요량이다.
"아닙니다. 여행이 아니라……."
"그럼"
승재는 심술궂게 추궁을 하고, 태수는 주저주저하다가,
"결혼을 하게 됐답니다, 헤."
하면서 빙깃 웃는다.
"겨얼혼"
승재는 허겁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다.
"……결혼을 하시다니! 건 안 됩니다. 차라리 혼인날을 넌즈시 물리십시오."
이 말은 의사로서 당연한 권고다. 그러나 승재는 결코 태수를 위해서 권고하자는 뜻이 아니다.
차라리 태수를 끕끕수를 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요, 그보다 더, 그래저래하다가 이 혼인이 파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심술로다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태수는 또 태수라, 저도 고개를 쌀쌀 흔든다. 그는 혼인을 물리라다니 천만에 당찮은 수작이었던 것이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절대루……."
"그래두 그래선 안 됩니다. 첫째 환자 당자한테두 해롭구, 또 부인한테두……."
승재는 여기까지 말을 하느라니까, 어느덧 그만 가슴이 뭉클하면서 사뭇,
‘아이구우!’
하고 소리쳐 부르짖기라도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그는 초봉이가 이자에게 짓밟혀 더러운 ××까지 전염받을 일을 생각하면, 방금 신성(神性)이나 모독되는 것 같아서 사뭇 열이 치달아 올랐다. 그는 열이 나는 깐으로 하면, 그저 주먹을 들어 이자를 대가리에서부터 짓바수어 놓고 싶었다.
눈치를 먹는 줄도 모르고 태수는 앉아서 조른다.
"그러니깐 그걸 상의하는 게 아닙니까? 근치되는 거야 어렵다구 하더라두 위선 임시루 아프지나 않구, 또 전염이나 안 되게시리…… 가령 농이 멎게 한다던지……."
"물론 그렇게만이라두 해드렸으면야 생색두 날 것이구 해서 두루 좋겠지만……."
승재는 입맛을 다신다. 그는 태수가 미운 것으로만 하면 이 녀석아 잔말 말라고 따귀라도 한 대 때려서 쫓기라도 하겠지만, 뒤미쳐 생각 할진대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제 힘과 재주를 다하여 태수가 청한 말대로 응급방편이라도 써보는 게 초봉이를 위한 도리일 성싶었다.
일변 태수는 도로 심정이 상해서 눈살이 장히 아니꼽다. 대체 의사라는 위인이 처음부터 보기 싫게 굴어 비위를 거슬리더니 내내 비쌔는 꼴이 뇌꼴스럽고 해서, 그만두어 버리고 벌떡 일어설 생각이 났다.
그는 지금 이 칼날 위에 올라선 판에 ××쯤 앓는다고, 또 초봉이한테 전염이 되는 게 안되었다고 그걸 치료하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는 제 자신이 생각하면 우스웠다.
‘세상살이 마주막 날을 날 받아 놓다시피 했으면서!…… 초봉이두 그렇구…….’
이렇게 속으로 두런거리면서 이 작자가 인제 한 번만 더 같잖게 굴면, 두말 않고 일어서서 나가버리려니 했다.
"좌우간……."
이윽고 승재는 과단 있게 말을 하면서 일어선다.
"……해볼 대루는 힘껏 다아 해봐 디리지요. 그리구 나서 원……."
승재가 일어서니까 간호부는 벌써 알아차리고서 오십 시시(cc)짜리 주사기를 핀셋으로 집어 들고 주사준비를 시작한다.
"주사를 먼점? 균을 검사할 텐데…… 머, 주사를 먼점 놓아두 좋겠지……."
승재는 혼자서 괜히 갈팡질팡하다가 현미경의 초자판(硝子板)을 꺼내 가지고 태수한테로 도로 온다.
간호부는 노랗게 마노빛으로 맑은 트리파플라빈 주사액을 솜씨 있게 주사기로 켜올리고 있다.
승재는 마치 최면술의 암시에나 걸린 듯이 끄윽 서서 그것을 노려본다.
보는 동안에 양미간이 이상스럽게 찌푸려진다. 발부리 앞에 가서 사지를 뒤틀고 나가동그라져 민사(悶死)하는 태수의 환영이 역력히 보이던 것이다.
하다가, 다시 주사에서 암시를 받아, 저기다가 ××××를 몇 그램만 섞었으면? 이 생각을 하던 참이다.
세상에도 유순한 그의 눈이 난데없는 살기를 띠고 힐끔 태수를 돌려다보는 것이나, 태수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눈만 팔고 앉았다.
간호부가 준비된 주사기를 손에 들려 줄 때에야 승재는 제정신이 들어 부질없이 흠칫 놀란다.
주사기를 받아 들고 서서 승재는 태수의 걷어 올린 팔을 내려다본다. 파아란 정맥이 여물게 톡톡 비어진 통통한 팔이다. 살결이 유난스럽게 희다.
이 팔이 가서 초봉이의 그 어여쁜 어깨를 쌍스럽게 휘감으려니 생각하매, 태수의 팔은 팔이 아니고 별안간 굵다란 구렁이로 보인다. 그만 징그러워서 온 전신의 소름이 쪽 끼치고, 차마 더 볼 수 없어 눈을 스르르 감는다.
눈을 감으니까, 감은 길이니 주사침을 아무렇게나 (아파서 깡총 뛰게시리) 푹 찔렀으면 고소할 것 같아 손이 옴질옴질한다.
알콜 솜으로 자리를 닦아 놓고서 기다리다 못해 간호부가 찔벅거리는 바람에 승재는 눈을 도로 뜨고 가까스로 주사 한 대를 마쳤다.
농(膿)을 초자판에다가 받았다. 실상 현미경 검사야 해보나마나 빠안한 것이지만, 그러니까 그것은 환자를 위해서 그런다느니보다, 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만큼 면밀하고 친절하오, 하고 내세우는 병원 간판인 것이다.
승재는 농을 받은 유리 조각을 알콜불에 구워서 메틸렌 브라운으로 착색을 해가지고 현미경을 구백 배(倍)로 맞추어 들여다본다.
초점을 맞추어 가는 대로 파스르름하게 나타나는 신장형(腎臟型)의 반점은 갈데없이 ×균(菌)이다.
승재는 오도카니 앉았는 태수를 손짓해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게 하고 옆으로 비켜 선다.
"보입니까? 콩팥같이 생기구, 파르스름한 거……."
"안 보이는데요…… 아니 무엇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이러면"
승재는 초점을 다시 조절해 준다.
"응응, 네네, 보입니다. 똑똑하게 보입니다. 하하! 그러니깐 이게 빠꾸데리얀가요"
태수는 신기해하면서 박테리아냐고 묻는 것이나, 승재는 실소하려다 말고,
"그렇지요, 박테리안 박테리아죠. 그게 ××균입니다."
"하하! 이게가 그렇군요!"
태수는 한참이나 더 현미경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든다. 그는 이렇게 현미경을 들여다보기는 고사하고, 현미경을 구경도 못 한 사람이라 두루 희한했던 것이다.
"하하! 그렇구만요!"
태수는 현미경 옆에 가 붙어 서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밑천이 드러나는 줄을 모르고 한다는 소리가,
"……그럼 이게 한 십 배나 되나요? 빠꾸데리얀 퍽 작은 건데……."
"그게 구백 배랍니다!"
"구백 배…… 아이구! 구백 배…… 하하, 네네…… 아 원, 고게……."
태수는 연신 신기해하다가 도로 현미경을 들여다본다.
승재는 태수가 밉기는 하면서도 그의 하는 양이 어쩌면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명랑한 것이 일변 귀염성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 귀엽다는 생각은 시방 불시로 우러난 것이 아니요, 태수가 초봉이를 뺏어 가는 사람이어서 미운 생각이 와락 치달을 때 그때에 벌써 그 미운 생각과 같은 순간에 배태가 되었던 것이다. 초봉이를 빼앗아 가는 사람이니까 밉지만, 그러나 초봉이의 배필이 될 사람이니까 일변 귀엽던 것이다.
이 귀여운 생각은, 그런데 미운 생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그만 꺼눌려 버렸던 것이, 그랬다가 대수롭지 않은 일에 기회를 얻어 의식 위에 떠오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귀엽다는 생각은 순간만에 사라지지를 않고, 도리어 무럭무럭 자라났다. 승재는 이 모순된 두 개의 감정에 휘달려 속으로 몸부림을 쳐도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망연히 서서 있던 승재는 태수가 다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동안, 진찰실 한옆에 들여세운 책상에서 금자박이 술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다가 활활 넘겨 이편 진찰탁 위에 펴놓는다. ×균이 현미경의 원색대로 삽화(揷畵)가 있는 대목이다.
이윽고 태수가 이편으로 오기를 기다려 승재는 펴놓았던 책의 삽화를 짚어 가면서, ×균의 형상부터 시작하여 그 성장이며 전염 경로, 잠복, 활동, 번식, 그리고 병리와 ××이 전신과 부부생활과 제이세랄지 일반 사회에 미치는 해독이며, 마지막 치료와 섭생에 대한 설명을 아주 자상하게 들려준다.
태수는 승재를 다시 한번 치어다보았다.
태수는 승재의 설명을 듣고 나서 본즉 모두가 그럴듯했다. 그새까지 다니던 먼저 병원에서는 처음 가던 길로 펌프질(沃度銀注入)이나 해주고 주사나 꾹꾹 찔러 주고 했을 뿐 현미경 같은 것은 보여 주지도 않았는데, 자 이 병원에 오니까는 의사가 생기기는 고쓰가이나 도둑놈 같고 불쾌하게는 굴었어도 척 현미경을 보여 준다, 여러 가지로 자상 분명하게 설명을 해준다, 하는 게 썩 그럴듯했고, 불쾌하던 의사란 작자도 그러는 동안에 차차 인간이 차차 양순해 뵈고 해서 태수가 또한 뒤가 없는 사람이라, ‘박사’나 되는 것같이, 그리고 오랜 친구와 같이 신뢰하는 마음이 들었다.
승재는 처방을 쓰고 있다.
가루약을 쓰고 그 다음에 물약을 쓰노라니까, 그놈에다가 ××가리를 한 그램만(아니 반 그램만
도 족하다) 넣고 싶었다. 그랬으면 오늘 저녁에 식후 두 시간이 지나 물약을 먹을 테요, 먹으면 대번 경련이 일어나고 숨쉬기가 힘이 들어 허얼헐 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고 두 눈이 퀭해지고 맥이 추욱 처졌다가 삼 분이 다 못해서 숨이 딸꾹…….
승재는 그러한 장면을 연상하느라고 잠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어깨를 흠칫하면서 도로 철필을 놀린다.
마지막에,
‘물 백 그램.’
이라고 쓰고 나니까, 그 위에 조금 빈 데다가 자꾸만,
‘××가리 한 그람.’
이라고 쓰고만 싶어 철필 끝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제약사가 보구서 무어랄까’
‘미쳤다구, 야단이 나겠지!’
‘제약사가 마침 없었으면 좋겠는데…….’
‘가만있자, 내일 어디…….’
승재는 속으로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면서 내일 보자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늘 제약사가 없었으면 좋았을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제약사가 있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처방을 다 쓰고 나서 승재는 태수한테 여러 가지로 주의를 시킨다. 혼인 전날까지 매일 다니면서 주사를 맞고, 약을 정성 들여서 먹고, 찜질을 하고, 주색이나 그런 것은 일체로 끊고, 자극되는 음식이며 과한 운동도 하지 말고, 그렇게 치료와 조섭을 잘하면 혹시 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은 멎더라도 ×사(絲)는 그대로 나오는 법인즉 전염이 된다. 그러니 그것은 맨 마지막 날 보아서 무슨 변법이라두 구처 해 줄 텐즉 우선 그리 알고 있거라, 결혼하는 여자한테 전염을 시켜서는 단연 안 된다. 그것은 죄 없는 여자한테 적악일 뿐 아니라, 생겨나는 자손에게까지도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이렇게 순순히 타이르고 있노라니까 승재는 어쩌면 친동생을 훈계나 하는 듯이 다정스런 것 같았다. 사실 태수가 나이는 한 살 맏이라도 앳되고, 승재가 훨씬 노숙해서 그냥 보기에도 승재는 침착한 게 손윗사람 같고, 태수는 어린 수하사람 같았다.
승재는 태수를 돌려보내고 나서, 오늘 새로 얻은 방을 닦달하려고, 비와 털이개와 걸레 등속을 찾아 가지고 그 집으로 갔다.
그는 인제는 태수까지 알았는데, 태수를 저만 알고 시치미를 뚝 떼었으니, 만일 내일이라도 태수가 약혼까지 했다니까 혹시 초봉이네 집에를 온다든지 해서 섬뻑 만나고 보면 그런 무색할 도리가 없을 것이요, 그런즉 기왕 방까지 구해 둔 바에 오늘 저녁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옳겠다고 했다.
승재는 숱한 먼지를 뒤집어써 가면서 다다미야, 오시레야, 방 안을 말끔하게 털어 내고 한 뒤에, 다시 병원에 들러 아범더러 끌구루마꾼을 하나 얻어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해놓고서 둔뱀일 넘어갔다.
새삼스럽게 반가운 것 같은, 또 슬픈 것 같은 초봉이네 집 문간 안으로 문득 들어서려니까는 어쩐지 등갈이 나가지고 오랫동안 발을 끊었던 집에를 찾아오는 것처럼 서먹서먹했다.
그러려니 하고 보아서 그런지, 집 안은 안팎이 모두 어디라 없이 두선거리고 들뜬 것 같았다.
부엌에서 계봉이가 웬 낯모를 아낙네와 밥을 하느라고 수선을 피우다가 승재를 보더니 해뜩 웃는다.
조금만 웃는 웃음이라도 시원하니 사심이 없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웃음이,
‘어제 저녁에 그렇게 몰아 세우기는 했어도 다아 공중 그런 것이고, 자아 나는 이렇게 반가워하잖우’
하면서 맞일 해주는 것이거니 싶었다.
승재는 계봉이가 웃고 반가워하는 것이 살에 배도록 기쁘고 고마웠다. 그러나 (그것이 기쁘고 고맙기 때문에 자연)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요, 꼬옥 동기간의 누이동생인 양 귀애도 하고 응석도 받아 주고 하던 것이 또한 그만이구나 하면, 차마 이 집을 떠나는 회포가 한량없이 애달파 방금 내려 덮이는 황혼과 함께 마음 둘 곳을 모르게 슬펐다.
마당 가운데로 지나면서도 초봉이와 얼굴이라도 마주치기를 꺼려하는 제 마음과는 정반대로, 마지막 얼굴이라도 한번 마주쳤으면 싶어 무심결에 안방께로 고개가 돌아간다. 그러나 이 구석 저 구석 안팎으로 보기 싫게 생긴 아낙네들만 움덕움덕 들끓지, 초봉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승재가 짐을 꾸리느라고 책을 죄다 책장에서 꺼내서 한 덩이씩 한 덩이씩 따로 동여매고 있는데, 계봉이가 가만가만 나왔다.
"아이유머니나!…… 이게 대천 웬 야단이우"
계봉이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진다.
"……왜 책을 죄다 끄내 놓구 그리우"
"응, 저어……."
승재가 책 동여매던 손을 멈추고 히죽 웃으면서 더듬는 것을, 계봉이는 그제야 알아채고서 얼른,
"이사허우"
"응."
"이? 사……"
계봉이는 얼굴을 찡그릴 듯하다가 별안간 웃음을 가득 흩트리면서,
"하하!…… 오오라잇! 우리 남서방, 부라보……."
승재는 어째서 하는 말인지 몰라 뻐언하고 있고, 계봉이는 상관 않고 고개를 깝신깝신하며서 들이 좋아서,
"……응? 남서방…… 나두 남서방이 어디루 가기나 허구 없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보기에 하두 딱해서 말이우, 괜히 잘못 알아듣구서 삐칠까 무섭다!…… 그랬는데 아무튼지 잘 생각했수!…… 소〔牛〕는 면했어, 하하하……."
계봉이는 기어코 한마디 조롱을 하고서는 웃어 대다가 다시, 구누나 하는 것처럼 소곤소곤,
"……그리구우, 어디루 가는지 집만 아르켜 주믄 내가 인제 찾아갈게, 응…… 꼬옥 레포할 재료두 있구……."
승재는 종이쪽에다가 이사해 가는 집 번지를 쓰고, 길목이며 드나드는 문간까지 알기 쉽게 대주면서, 앞으로 밤에 급한 병자가 있는 집에서 부르러 오든지 하거든 그대로 잘 가리켜 주라는 부탁을 얼러서 당부한다.
"내일이라두 봐서 가께? 여섯시쯤……."
계봉이는 승재가 주소 적어 주는 종이쪽을 받아 들고 훑어보다가 허리춤에 건사를 한다.
"……우리 남서방 우-라- 하하하하…… 내일 기대리우"
계봉이는 승재가 저희 집에 그대로 끄먹끄먹 앉아 있지 않게 된 것이 좋기도 했거니와, 그보다도 승재가 딴 데 가서 있으면 놀러 다니기가 임의로울 테니까, 그래서 더 좋아했다.
이튿날 아침 승재는 병원에 가던 길로 독약 ××××를 조그마한 병에 다가 갈라 넣어 포켓 속에 건사해 두고 태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더라도 저녁때나 올 줄 알면서도 그는 아침부터 그 저녁 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열한점쯤 해서는 독약병을 치워 버렸다. 그러나 또, 한시에는 다시 준비를 했고, 세시에는 또 치워 버리고서 짜증이 나서 안절부절 못 하다가 네시 치는 소리가 들리자 또 장만을 해두었다. 이번에는 포켓 속에다가 건사하지를 않고, 진찰실 안의 약병들 틈에다가 끼워 두었다.
네시 반쯤 되어서 태수가, 윗입술을 한편만 벌려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진찰실로 들어왔다.
승재는 반가워서 웃고 맞이했다. 그는 어째서 반가운지는 몰라도 또 그걸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으나, 아무튼 태수가 반가웠다.
"그래, 밤새 좀 어떠십니까"
승재는 태수가 앞에 와서 앉기를 기다려, 의사 된 도리와 습관이 아니라 진정한 관심으로 인사를 한다.
"네, 뭐…… 별로 모르겠어요!"
"그럴 겝니다, 아직…… 그렇지만 더하지만 않으면 차차 나어 갈 테니까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간호부가 주사를 준비하려고 한다. 승재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주사액을 주문하라고, 만일 제중당에 없다거든 다른 데라도 물어 보아서 가져오게 하라고 간호부를 저편 전화 있는 낭하로 쫓아 보낸다.
그것은 ××에 놓는 주사라도 피하주사(皮下注射)요, 효력도 신통찮아 근자에는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구하기가 어려운 약이요, 승재는 그것을 알고 시킨 것이다.
간호부를 쫓아냈으니 이 방에는 승재 저와, 그래서 꼭 필요한 인간 태수와 단 두 사람뿐이다. 이분이나 삼 분이면 넉넉히 조처를 댈 판이다. 승재는 마침내 일어섰다.
그는 이 제웅이 아무 속도 모르고, 속을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탁 믿고서 무심히 앉아 있는 것이 다시금 귀여웠다.
승재는 간호부가 꺼내 놓고 나간 주사기를 집어 바른손에 들고 트리파플라빈의 이쁘장스럽게 생긴 유리단지를 줄로 꼭대기를 쓸어 따낸 뒤에 주사액을 주사기에다가 쪽 켜올린다. 노오란 주사액이 이십 시시까지 올라왔다.
그 다음에는 아까 약병들 틈에다가 숨겨 두었던 독약 ××××를 집어 왼손에 쥔 채 병마개를 뽑는다.
뽕! 나는 둥 마는 둥 작은 소리건만 승재는 움칫 놀란다. 사실 방 안은 그다지도 교교했었다.
승재는 독약병을 기울여 바른손에 든 주사기의 침끝을 담그고 속대를 천천히 잡아당긴다.
독약은 병 속에서 조금씩 준다. 주사기에는 한 시시, 두 시시, 셋, 넷 차차로 독약이 불어 오른다.
마침내 이십오 시시를 가리킬 때 주사침을 독약병에서 꺼내 든다.
침 끝에서는 가느다란 물방울이 신경적으로 바르르 떨면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승재는 준비가 다 된 주사기를 멀찍이 쳐들고 서서 한참이나 바라본다.
태수는 승재가 돌아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의 커다란 웃도리가 가리어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도시에 거기에는 주의도 하지를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
승재는 고개를 돌려, 인해 오도카니 앉아 있는 태수를 바라보다가 주사기를 치어다보고 또 태수를 돌려다보곤 한다.
‘이놈을 고 새파란 정맥에다가 쪼옥 들이밀면…….’
‘일 분, 이 분, 삼 분이면 안색이 질리면서 가슴을 우디고 몸을 비틀다가 고만 나가동그라져, 그리고 눈을 뒤쓰고 단말마의 고민을 하다가 이어 딸꼭!’
‘응!’
사람을 굳히겠다는 순간이면서, 승재는 긴장보다도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오른다.
승재가 선뜻 돌아서서 제 옆으로 오는 것을 보고 태수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팔을 내놓는다.
승재는 왼손에 쥐고 온 알콜 솜으로 주사 자리를 싹싹 씻는다.
"주먹을 꼬옥 쥐십시오."
주의를 시키면서 주사기를 뉘어, 침끝을 볼록 솟은 정맥 위에다 누르는 듯 갖다 댄다. 침끝에서 약물이 배어 나와 살에 번진다.
인제는 침끝을 푹 찔렀다가 속대를 뒤로 뽑는 듯하면 검붉은 핏기가 주사기 안으로 배어 든다.
그럴 때에 속대를 진득이 밀기 시작하면 그만이다.
승재는 바늘끝으로 핏대를 누른 채 그대로 잠시 멈추고 있다.
태수는 주사침이 살을 뚫을 바로 직전임을 알고 눈을 스르르 감는다. 언제고 그러하듯이 따끔 아픈 것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간지러워서 못 하던 것이다.
눈을 감은 태수는 인제 시방 바늘끝이 따끔 살을 뚫고 들어오려니 기다린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넉넉 삼십 초는 되었을 것이다. 태수는 기다리다 못해 감았던 눈을 뜨고, 승재는 갖다 댄 바늘끝으로 핏대를 푹 찌르는 것이 아니라, 주사기를 도로 쳐들고 싱겁게 피쓱 웃으면서 허리를 펴고 돌아선다.
태수는 웬일인고 싶어 뻐언히 앉아 승재의 등뒤를 바라다본다.
승재는 주사기의 뒷대를 눌러 약을 내뿜는다. 은침 같은 물줄기가 이쁘게 뻗쳐 나와 리놀륨 바닥에 의미 없는 곡선을 그려 놓는다.
승재는 미상불 태수를 죽이고도 싶었고, 그래서 죽여 보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그는 ‘죽여 보려’고 했을 뿐이지 죽일 ‘작정’을 한 것은 아니다.
신경(神經)의 게임(遊戱)이라고나 할는지, 의사쯤 앉아서 사람 한개 죽이고 살리고 하는 최후의 경계선 그것은 오블라토 한 겹보다도 더 얇게 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얇은 한 겹의 이편 쪽까지만을 애초부터 목표로 정하고서 승재는 독약을 준비하고, 그놈을 주사기에다가 켜올리고, 해가지고서 찬찬히 쳐들고 서서 제웅의 얼굴과 번갈아 빗대 보고 마침내는 혈관에다 갖다 대고 푹 찌를 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이렇게 살인행위의 계단을 천연덕스럽게 밟아 올라왔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절대의 목적지였었다.
그렇게 살인의 한 계단 두 계단을 밟아 올라오고, 오다가 마침내 그 오블라토 한 겹을 남겨 놓고 우뚝 멈춰 서는 신경의 스포츠, 그것은 적실히 유쾌한 긴장일 수가 있었다.
승재는 주사액이 상한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는 것을, 태수는 그대로 속았을 따름이고…….
승재가 새 주사기를 꺼내다가 새 주사액을 따서 주사를 놓아 주니까, 태수는 이런 것도 다 이 병원이 세밀하고 친절해서 그런 거니 생각하고 무척 좋아한다.
태수는 주사를 다 마치고 나가다가 돌아서더니, 문득 그날 바쁘지 않거든 와달라고 제 혼인날 손님으로 승재를 청을 한다.
승재는 속으로 뜨윽해서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어림어림하고 섰다.
"바쁘시기도 하시겠지만, 잠깐 거저…… 허기야 뭐, 결혼식이라구 숭내만 낼 테면서 오시래기두 부끄럽습니다. 아무튼지 인제 청첩두 보내 드리겠지만 부디 구경이나 와주세요. 퍽 영광이겠습니다."
"네, 되두룩 가서…… 그날 바쁘지만 않으면……."
승재는 조르는 양이 졸연찮을 눈치 같아서 대답만 그만큼 해두는 것이다.
승재는 여섯시가 되기를 까맣게 기다려 병원을 나와서 어젯밤 새로 든 집으로 가다가, 집 모퉁이 가게 앞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는 계봉이를 만났다.
"남서방!"
"계봉이!"
둘이는 서로 이렇게 부르면서 마주 웃는다. 그들은 오래오랜만에 만나는 것같이 반가웠다.
그러나 겨우 어젯밤에 갈리고 났으니 무슨 짙은 인사야 할 말이 없다.
"그래……."
"응……."
둘이는 웃으면서 이런 아무 뜻은 없어도 마음은 통하는 말을 서로 한마디씩 한다.
"잘 왔군!"
"해애."
"들어가자구."
"응."
둘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쳐 둔 쪽대문을 열고 좁은 처마 밑을 한참 지나 승재의 방 앞에 당도했다.
"일러루 오니까 이렇게 성가시어서……."
승재는 계봉이를 돌려다보고 웃으면서 방문에 채운 자물쇠를 연다.
계봉이는 방으로 들어와서 앉을 생각도 미처 못 하고 방 안을 휘휘 둘러본다. 책은 벌써 전대로 책장 속에다 챙겨 넣었고, 또 몇 가지 안 되는 홀아비 세간이지만, 책상 외에는 구접지근한 것들을 다 오시이레 속에다가 몰아 넣었기 때문에 계봉이 저의 집에 있을 때보다 방 안이 한결 조촐하게 보였다.
방 안이 그렇게 침착할 뿐 아니라, 그새까지 어른들이 있고 해서 부지중 조심이 되던 저의 집이 아니고, 이렇게 단출하게 승재와 만날 수 있는 것이 기쁘기야 하지만 그러나 어쩐지 조심이 되던 저의 집에서처럼은 도리어 임의롭지가 않고, 무엇인지 모를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장히 거북스러웠다.
왜 그럴까 하고 그는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 그럴 일이 없는 것 같고, 없는데 그래지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섰어…… 좀 앉질랑 않구서……."
승재가 재촉하는 말을 듣고서야 계봉이는 겨우 배시시 웃으면서 섰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승재는 계봉이가 이렇게 온 것이 반가웠고, 다 기쁘기는 해도 별반 할 이야기는 없다.
그야말로 시사를 말한다든지, 학문을 논한다든지야 말도 안 될 처지요, 그렇다면 집안 이야기를 묻는 것밖에 없는데, 집안 이야기도 할 거리라고는 초봉이의 혼인에 대한 것뿐인 걸, 이편이 불쑥 꺼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마 계봉이가 그새처럼 농담을 한다든지, 원 까불어 댄다든지 그랬으면 자연 무엇이고 간에 말거리도 생기고 이 서먹서먹한 기분도 스러질 텐데, 그 애 역시 가끔 무료하게 미소나 할 뿐, 얌전을 빼고 있어서 여간 거북스런 게 아니다.
"무어 과실이나 좀 사다가 둘 것을……."
한참 만에 승재는 혼자말을 중얼거리고 일어선다. 겸사겸사해서 무엇 입놀릴 것을 사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잠깐 다녀올게? 곧……."
"무어? 무얼 사올려구…… 아냐, 난 먹구 싶잖어요!"
계봉이는 부여잡을 듯이 일어선다.
"먹구 싶지 않어두 내가 사주는 거니, 먹어야 하는 법야!…… 그래야 착하지."
승재가 없는 구변으로 먼저 농을 건네니까, 계봉이도 그제야 어색스럽던 것이 얼마쯤 풀어져서,
"누굴 마구 위협하려 드나!"
"흐응, 그럼 잘못됐네…… 그런데 계봉이가 밤새루 갑자기 얌전해진 것 같으니, 거 웬일일꾸"
"하하하, 남서방 보게두 그런 것 같수"
"응."
"아이 어쩌나!…… 글쎄 내가 생각해두 웬일인지 그런 것 같아서 지금……."
"허어! 정말 그렇다면 야단났게"
"심청 허군!…… 남이 얌전해져서 야단이 나요"
"응."
"어째서"
"난 얌전한 계봉이보다두, 까불구…… 아니 까불구가 아니라 장난하구 응석 부리구 그리는 계봉이가 좋아서."
"그럼 난 머, 밤낮 어린애기구 말괄량이구 그러라구"
계봉이는 승재가 생각하기에는 속을 알 수 없게 뾰롱한다.
"애기가 좋잖어"
"좋긴 무에 좋아? 어른들 축에도 못 끼는걸."
"어른이 좋은 게 아냐…… 그리지 말구 이거 봐요, 계봉이"
"응"
"저어, 계봉이 말야…… 내 누이동생이나 내자쿠"
"누이동생? 오빠 누이 그거"
계봉이는 말끄러미 승재를 올려다보다가 별안간,
"……싫다누!"
하면서 아주 얀정없이 잡아뗀다.
생각잖은 무렴을 보고서 승재는 얼굴이 벌개진다.
"싫여"
"응, 해애."
계봉이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좋을 것을 너무 매몰스럽게 쏘아 준 것이 미안했던지, 제라서 배시시 웃는다.
"왜 싫으꼬"
"왜…… 응, 거저."
"거저두 있나? 이유가 있어야지."
"이유? 이윤…… 응!…… 없어 없어."
"없는 게 아니라, 아마 계봉인 남서방이 싫은 게지? 그리니깐 누이동생 내기두 싫대지"
"누가 남서방이 싫여서 그리나, 머."
"뭘!…… 싫으니깐 그리지."
"아냐!"
"아닌, 뭘!"
"아니래두, 자꾸만!…… 남 속두 모르구서, 괜히……."
계봉이는 필경 암상이 나서, 대고 지청구를 한다.
승재는 다시는 꿈쩍도 못 하고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거리로 걸어가면서 승재는, 계봉이가 소갈찌를 포르르 내면서,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런다고 쏘아붙이던 말을 두루 생각을 해본다.
결코 까부느라고 아무렇게나 한 말이 아니요, 영감같이 속이 엉뚱한 소리던 것이다.
철없이 함부로 굴고 응석을 부리고 하는 계봉이를 동기의 친누이동생인 양 승재는 단순하게 그리고 마음놓고 사랑했고, 그것을 그대로 길이길이 가꾸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방 보고 나온 계봉이로 해서 한낱 전설같이 아득한 것이 되고 말았다.
누이동생을 내자고 하니까, 말끄러미 올려다보던 그 눈, 남의 속도 모르고서 그런다고 암상을 떨던 그 눈, 본시 타고난 것이라 한껏 이지적이기는 하면서도 가릴 수 없는 정열을 흠뻑 머금어, 사뭇 위태위태해 보이던 그 눈을 생각하면 승재는 다시는 계봉이와 똑바로 마주 보지를 못할 듯싶게 그 눈이 무서웠다.
"그렇게도 조달을 하나!"
승재는 혼자서 탄식하듯 중얼거린다.
승재가 과실과 과자를 조금씩 사가지고 들어왔을 때에는 계봉이는 아까 일은 죄다 잊어버린 듯이 그런 눈치도 안 보였었다. 승재는 그것이 다행하고 안심이 되었다.
"안 먹으면 또 협박을 할 테니깐……."
계봉이는 과자봉지를 풀어 놓고 승재와 둘이서 마악 먹기 시작하려다가 밑도 끝도 없이 묻는 말이다.
"……남서방, 그새 퍽 궁금했지요"
"궁금"
"응…… 언니 결혼하는 거 말이우."
"으응, 난 무슨 소리라구!…… 머 거저……."
"뭘 그래요! 퍽 궁금했으믄서……."
"모르면 어떤가? 다아……."
"글쎄 몰라두 괜찮다믄 그만이지만…… 그런데 말이우, 내 꼬옥 한가지만 이야기해 주께, 응"
"……"
"언니가아, 응? 언니가 말이우, 남서방을 잊지 못하나 봐!"
"괜헌 소릴!"
승재는 말과는 딴판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울고 싶은 반가움을 미처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냐, 정말이라우!"
계봉이는 우선 그날 밤 초봉이와 같이 앉아 모친한테 듣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 되풀이해서 옮겨놓는다.
승재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태수가 그렇듯 집안이 양반 집안에 재산이 있고, 얌전하고, 전문학교까지 졸업을 했고 한 버젓한 신랑이란다니, 정주사네 내외며 당자인 초봉이며, 다 그러한 문벌이랄지 학식이랄지 그런 것에 끌려서 혼인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편 구석에서는,
‘그렇지만 어디 원!’
하는 반발이 생기고, 자격이 모자라 떠밀렸구나, 뺏겼구나 하매, 저를 잊지 못한단 소리가, 슬프게 반갑던 것은 어디로 가고 마음이 앙앙하여 좋지 않았다.
『장한몽(長恨夢)』의 수일(洙一)이만큼은 아니라도 승재는 아무려나 초봉이가 야속하고 노여웠다.
그것은 그러하고, 일변 미심이 더럭 나는 것이 고태수라는 인물의 정체다.
무엇보다도 그가 전문학교니 대학이니를 졸업했다는 것이, 오늘 본 걸로 하면 종작없는 소리 같았다.
오늘 아까 병원에서는 그의 소위 이력이라는 것을 몰랐고 겸하여 딴 데 정신이 팔려 그냥 귀넘겨 들었었지만, 어떤 놈의 전문학굔지 대학인지 졸업을 했다는 사람이 (사실 중등학교만 옳게 다녔어도 그럴 리가 없는데) 데데하게시리 현미경을 요술주머니처럼 신기해하고, 게다가 현미경 검사를 하는 세균을 십 배냐고 묻다니!
정녕 무슨 협잡이 붙었기 쉽고…….
또, 얌전한 사람이요 처신이 조신하거든 ×× 같은 추한 병이 걸렸을 이치도 없거니와, 우연한 불행이나 한때 실수로 그렇다손 치더라도 치료와 조섭을 게을리 않고 조심을 하여 이내 완치를 했을 것이지, 결코 도로 도지고 도지고 하도록 몸가짐을 난하게 할 리가 없는 게 아니냔 말이다.
필경 주색에 침혹하는 게 분명하고…….
그러고 보니, 다른 것, 가령 문벌이 좋으네 재산이 있네 하는 것도 역시 꼭 같은 야바위 속이요, 자칫하면 그 녀석이 계집을 두어 두고서 생판 시방 초봉이를……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난 승재는, 이거 큰일났다고, 당장 쫓아가서 정주사더러든지, 제가 보고 짐작한 대로 사실과 의견을 토파하여 혼인을 파의하도록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 마음은 잔뜩 초조한데,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를 선뜻 해댈 강단은 또한 나지를 않고 물씬물씬 뒤가 사려진다.
가령 그 짐작이 옳게 들어맞았다고 하더라도 혼인이 파혼이 될는지가 의문인 걸, 항차 정주사네가 뒷줄로 다시 알아본 결과 (혹은 이미 알아본 걸로) 고태수의 그러한 제반 자격이 적실한 것이고 볼 양이면, 승재 저는 남들한테 저놈이 초봉이를 뺏기고서 오기에 괜히 고태수를 중상하여 혼인을 훼방을 놀려던 불측한 놈이라고 얼굴에다 침 뱉음을 당하게 될 테니 그런 창피, 그런 망신이 있으며 고태수를 죽이려던 약으로 승재가 죽어야 할 판이다.
더욱이 제 양심을 향하여, 내가 진실로 초봉이의 불행만을 여겨서 그렇듯 서둘고 나서자는 것이지, 은연중일 값에 그 혼인을 방해하고 싶은 욕심은 조금도 없는 것이냐고 물어 볼 때에 그는 제 사심이 부끄러워 (결과의 여하는 그만두고) 차마 기운이 나지를 않았다.
그러니, 그렇다고 끄먹끄먹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이냐
안타까워 못 할 노릇이다.
그러면 들고 나서서 간섭을 해
그것은 안팎으로 사리는 게 많아 못 할 일이다.
대체 이 일을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해도, 대답은 나오지 않고 사뭇 조바심만 나서 승재는 마치 무엇 마려운 무엇에다 빗댈 형용이다.
"아, 그래서 난 그만 건넌방으로 쫓겨왔는데…… 그런데 글쎄……."
계봉이는 승재가 하도 저 혼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무엇을 생각을 하느라 입맛을 다시느라 심상치 않으니까, 저도 한동안 앉아 과실만 벗기면서 눈치를 보다가, 이윽고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던 것이다.
"……그 댐버텀 언니가 시추움하니 풀이 죽어 가지굴랑 혼자서 한숨을 딜이쉬고 내쉬고 그리겠지!…… 난 글쎄 그날 저녁에 언니가 그 자리에 앉아서 어머니한테 바루 승낙을 한 줄은 몰랐구려!…… 머, 어머니 아버지가 당신네끼리 다아 작정을 해놓구설랑 언니더러 이러구저러구 해서 다아 그렇게 된 거니 그리 알라구 일른 거니깐, 언니 성미에 싫더래두 싫다구 하지두 못했을 거야…… 언니가 글쎄 그렇게 맘이 약허다우……."
계봉이는 과실을 한쪽 집어 주는 길에 승재의 동의를 묻는 듯이 말을 잠깐 멈춘다. 승재는 주는 과실을 받아 가진 채 그대로 묵묵히 말이 없고, 계봉이는 그 다음을 계속하여,
"……그래 내가 하루는, 그리니깐 그게 바로 약혼을 하던 그 전날 저녁인가 봐…… 언니더러 가만히, 아 그렇게 맘에 없는 것을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시키는 노릇이라두 싫다구서 내뻗으면 고만이지 왜 억지루 당하믄서 그리느냐구 그잖었겠수? 그랬더니 언니 말이, 너는 속도 모르구서 무얼 그리느냐구, 내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믄, 인제 그 사람이 돈을 수천 원 장사 밑천으로 아버지한테 대준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혼인을 마다구 하겠느냐구 그리겠지! 글쎄 그 말을 들으니깐 어떻게 결이 나구 모두 밉살머리스럽던지 마구 그냥 몰아셌지…… 그래 이건 케케묵은 심청전을 읽구 있나 『장한몽』같은 잠꼬대를 하구 있나…… 그게 어디 당한 소리냐구…… 그리구 일부러 안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두 들으시라구, 그럴 테믄 애당초에 뭣 하려 자식을 길러야구, 저 거시키 돼지 새끼나 병아리 새끼를 인제 자라믄 팔아먹을려구 길르는 거나 일반이 아니구 무어냐구…… 마구 왜장을 쳤더니, 아 언니가 손으루다가 내 입을 틀어막구 꼬집구 그리겠지!…… 그래두 안방에서 다아들 듣긴 들었을 거야…… 속이 뜨끔했지 뭐…… 해해해."
계봉이는 그날 밤의 일이 다시금 통쾌하대서 마침내 까알깔 웃어젖힌다.
승재는 그러나 마디지게 한숨을 몰아 내쉬고 묵묵히 앞벽을 건너다본다. 그는 시방, 방금 아까 초봉이의 위태한 결혼을 막지 못해 안타깝게 초조하던 불안도, 또 바로 그전에 초봉이가 못내 야속하던 노염도 죄다 잊어버리고 얼굴은 아주 딴판으로 감격함과 엄숙한 빛이 가득하다.
초봉이는 불쌍한 부모와 동기간을 위하여 제 한몸이나 제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이라서, 그 혼이 거룩하고 그 심정이 감격했던 것이다.
승재는 개봉동 양서방네가 딸 명님이를 기생집에 수양딸로 팔아먹으려고 조금 더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을 (계봉이가 방금 저의 부모더러 들으라고 내쏘았다는 그 말대로) 승재 저도 일찍이 그것을, 돼지 새끼나 병아리를 치면서 그놈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명님이네의 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따지고 보면 더 야박하다고 할 수 있는) 이번의 초봉이의 혼인에 대해서는 그러한 반감 같은 것은 조금도 나지를 않았다. 않았다기보다도 실상은 계봉이가 짐승의 새끼를 팔아먹는다는 그 비유를 하는 대목에서는, 승재는 벌써 정신을 놓고 다른 생각을 아무것도 하게 될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종시 말이 없고 눈을 치떠 허공을 보는 승재의 얼굴은 차차로 황홀해 간다. 그는 시방 눈앞에 자비스런 초봉이가 한가운데 천사의 차림으로 우렷이 나타나 있고, 그 좌우와 등뒤로는 그의 가권들의 가엾은 얼굴들이 초봉이의 후광(後光)을 받아 겨우 희미하게 안식을 얻고 있는 그런 성화(聖畵)의 한 폭이 보이던 것이다.
"장한 노릇이군!"
더욱 감격하다 못해 필경 눈이 싸아 하고 눈물이 배는 것을, 그러거나 말거나 앉아서 중얼거리듯
탄식을 하던 것이다.
"으음……."
다시 훨씬 만에, 이번에는 입술을 지그시 다물면서 연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는 비로소 아까 초봉이를 야속해하던 생각이며, 그의 혼인을 훼방 놀지 못해 초조 불안하던 것이며, 더구나 태수한테 질투와 증오를 갖던 제 자신이, 초봉이의 그렇듯 깨끗하고 아름다운 맘씨에 비하여 얼마나 추하고 부끄러운 소인의 짓이던가 싶었다.
"거룩한 노릇이야!"
승재는 마침내 남의 그렇듯 거룩한 행위에 대한 감격이 적극적인 의욕으로 번져 나가면서, 그리하자면 우선 손쉽게 가령 태수한테라도 그에게 가지던 비열한 마음을 죄다 버리고 일변 그의 병을 정말 지성스런 마음으로 치료를 해주는 것도 바로 그것일 것이고, 하면은 더욱이 초봉이를 위하여 정성을 씀이 되는 것이니 두루 추앙할 일일 것 같았다.
결심을 가지고 나니 승재의 마음은 노곤했던 잠결같이 편안해졌다.
승재가 마치 몽유병자가 된 것처럼 별안간 감격 황홀해져서 있는 것을, 계봉이는 과실과 과자를 서로가람 집어다 먹어 가면서 우스워 못 보겠다는 듯이 해끗해끗, 재미있어만 하다가 승재의 거룩한 노릇이라는 두 번째 탄성에는 말끄러미 경멸하듯 올려다보고 있더니 필경,
"가관이네…… 아니, 쥐뿔은 어떻구"
하면서 우선 한마디 쏘아다 부딪는다.
"왜…… 아름답구 거룩한 거 좋잖아"
승재는 아직도 꿈을 꾸는 듯 얼띤 얼굴에 허한 음성이다.
"오오라!…… 그럼 남서방두 인제 딸 나서 자라믄 장사 밑천 얻자구 아무한테나 내주겠구려"
"허어! 난 그런 것보담두 위선 초봉이 언니의 아름다운 맘씨를 가지구 하는 말인데!"
"아름다운 맘인가? 아주 케케묵은 생각이지!"
"못써요!…… 아름다운 건 아름답게 보아 버릇해야 하는 법야…… 초봉이 언니 맘씨가 오죽 아름다워"
"못나서 그래요!"
"저거! 하는 소리마다!"
"괜히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 혼내 줄 테니……."
"계봉이 못쓰겠어!"
"흥! 그래두 두고 봐요!"
"두고 보아야 머 응석받이"
"암만 응석받이라두 나두 눈치는 다아 있어요…… 이봐요 남서방…… 글쎄 이번에 우리 언니가 그 결혼을 해서 잘산다구 칩시다…… 그렇더래두 말이지, 맨 첨에 맘을 먹기를 장사 밑천 얻을 양으루다가 딸을 내놓는 그 맘자리가 그게 고약스럽잖우…… 그러니깐 아무리 우리 부모라두난 나쁘다고 할 말은 해요…… 말이야 다아 그럴듯하잖어…… 사람이 잘나구, 머 똑똑하구, 전문대학교를…… 하하하하, 글쎄 우리 어머니가 전문대학교래요! 그래 내가 있다가, 대체 전문대학교가 어딨느냐구 핀잔을 주니깐, 하는 소리 좀 들어 봐요!…… 아 이년아, 더 높은 학굔 게로구나, 이러겠지? 하하하하, 내 온……."
계봉이가 웃는 바람에 승재도 섭쓸려서 웃는다.
"……그래 글쎄, 그렇게 사람이 잘나구 어쩌구저쩌구 해서 너를 위해서 첫째는 이 혼인을 하는 것이라구, 그러구 장사 밑천이야 다아 여벌이 아니냐구 그리더라나…… 아이구 거저, 내가 그대루 앉았다가 그런 소릴 들었더라믄 뾰죽하게 한바탕 몰아세는걸."
"그러면 말이지……."
승재는 계봉이가 어찌하나 본다고,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희생하는 게 나쁘기루 치면, 부모가 자식 때문에 자식을 모두 길러내느라구 고생하구 하면서 역시 희생하는 것도 마찬가지루 나쁜가"
"아니."
"왜? 그건 어째서"
"부모는 자식을 제가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두룩 길러 내구 교육시키구 그럴 의무가 있으니깐, 그러니깐 희생을 해서라두 의무 시행을 해야 옳지…… 세납 못 바치믄 집달리가 솥단지나 숟갈 집어 가듯이…… 우리집에서두 전에 한번 그 일 당한걸, 하하하."
승재는 인제 겨우 여학교 삼년급에 다니는 열일곱 살배기 계집아이가 대체 어느결에 어떻게 해서 그런 소리까지 할 줄 알게 되었나 싶어 아까 누이동생 정하기 싫다구 하던 때와는 의미가 다르나 역시 놀랍구 겁이 나는 것 같았다.
이튿날 승재는 태수의 ××을 혼인날까지 기어코 낫우어 줄 딴 도리가 없을까 하고 두루두루 궁리를 해보면서 혼자 애를 썼다. 그리고 앞으로는 태수를 결코 미워하지 않겠다고, 다시금 제 마음에 맹세를 했다.
그러나 막상 오후가 되어 태수가 척 들어설 때는 승재의 마음의 맹세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
마음은 그래서 동요가 되었어도, 그는 그것을 억제하면서 밤 사이의 증세도 물어 보고, 술을 삼가고 음식을 자극성 없는 것으로 조심해서 가려 먹으라고 두루 신칙하기를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