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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퀼트 6

61. 헬리콥터

철도 노동자들이 다이너마이트와 증기 삽으로 철로를 자르다가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에는 이상한 동물 화석들이 쌓여 있었다. 추운 기후에서 볼 수 있는 울버린, 나그네쥐, 밍크, 붉은 다람쥐, 사향쥐, 호저, 산토끼와 엘크 등이 온나한 기후에서 사는 펫커리, 악어, 그리고 맥 등과 섞여 있었다. 어떻게 그처럼 다양한 기후에서 사는 동물들이 폐쇄된 한 동굴 안에서 화석으로 발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은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J.W. 그리들리. 1912년 메릴랜드 컴버랜드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수요일 오전 10(태평양 표준시)

포틀랜드와 시간이 전이된 지역 사이의 경계는 뉴욕만큼 명확하지 않았다. 포틀랜드는 조그만 도시였지만 항공 촬영 사진에서 보니 마치 문어가 언덕과 계곡으로 다리를 펼친 것처럼 보였다. 도심이 변두리와 삼림지와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도시와 시간이 전이된 지역을 알아보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테리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천이된 숲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무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 상태에서는 가장 컸던 미송 나무들이었다. 테리와 빌은 지금까지 공룡을 보지 못했지만 테리는 공룡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는 5번 고속도로에 생긴 산을 보았다. 한 도시가 사라질 수 있다면 공룡이라고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빌이 가진 연줄은 그의 지위만큼이나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네바다까지 군용기를 타고 갔다. 그 후에는 한 '동료'가 그들을 힐스보로까지 태워다 주었고, 거기에서는 다른 사람이 그들을 위해 헬리콥터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동안 빌은 민간인들에게 벌어진 재난 가운데 기밀이 아닌 것들을 테리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전력 공급 중단으로 나라의 4분의 3이 말 그대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나머지 지역들에서도 뉴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식품 사재기가 시작되었고 LA, 시카고 그리고 시애틀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주지사들 중 4분의 3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연방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엄청난 규모의 홍수와 해일 그리고 산사태들이 전국을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재난이 일어난 곳의 병원들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구조 대원들과 구조 봉사 기구들은 구원 요청과 소실된 교량 및 도로 복구 임무 사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 지역의 인근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를 보며 직장에 나가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재앙은 엄청났지만 더 없이 특이했다. 예를 들어 LA는 거의 피해가 없었고 도시 남쪽에서만 엄청난 홍수가 일어났다. 홍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간 후 구조 대원들은 재산 피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산후안 카피스트라노와 산 클레멘테는 사라져 버렸다. 파괴된 것이 아니라 집들, 자동차들, 시체 할 것 없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테리와 빌은 엘렌과 앤지에게 전화로 그들이 이제 존을 찾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알리려고 했지만 장거리 전화는 불통이었다. 헬리콥터를 갈아타기 위해 네바다에 잠시 들렀을 때 테리는 민간 회선을 이용해 전화를 하려고 애썼고, 빌은 군 시설을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빌이 나쁜 소식을 가지고 왔다.

"앤지하고 엘렌이 숙소를 떠났다는군요. 당신 아들을 찾으러 간다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뭐라구요? 하지만 아이는 거기에 없을 수도 있는데."

테리는 지금까지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그가 덧붙였지만 빙른 물론, 자신 스스로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엘렌과 앤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어요. 이미 공룡 지역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뭔가 진행되고 있어요. 내 친구 하나가 말하기를 포틀랜드 지역의 목표물 지도를 - 지형 유도시스템을 위한 아주 자세한 지도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군요."

"폭격하려는 거군요. 그렇죠?"

", 그래요. 폭격기와 크루즈 미사일들이죠. 유도 시스템은 폭격기들이 나무꼭대기 위에서도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겁니다. 그런 종류의 유도시스템은 매우 신뢰도가 높고 정확하죠."

"공룡들한테 미사일을 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공룡들은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폭탄이 필요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이런 일들을 처음으로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요?"

테리는 폴슨 박사가 설명한 컴퓨터 모형과 그의 폭발 유형과의 연관성에 대해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큰 규모의 폭발이 이 사건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설마 그들이..."

테리가 우물거렸다.

"해독제죠..."

테리는 전율을 느꼈다. 그는 공룡이 우글대는 지역으로 갈 예정이었고, 아내가 포틀랜드에 도착했는지,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텔스 폭격기가 갑자기 포틀랜드 위로 폭탄을 쏟아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지금보다는 더 나빠질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그의 바램은 어긋났다.

헬리콥터는 예상했던 대로 그곳에 있었다. 빌은 입버릇처럼 '그가 곧 조종법을 배울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그는 이미 매우 뛰어난 조종사였다. 그들은 전이된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원을 그리다가 남동쪽 구역으로 들어갔다. 도심부의 마천루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외곽으로 뻗어나가 계속과 언덕을 뒤덮고 있던 지역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땅의 형태는 변하지 않고 있었다. 테리는 멀리서 반짝이고 있는 콜럼비아강과 원래의 자리에 남아 있는 튜알리던강을 보았다. 윌라밋강은 사라져 버렸지만 계곡 동쪽의 나무들 사이에서 뭔가 희끄무레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만약 그것이 윌라밋강이라면 수로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새로 생긴 숲은 일정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 부분은 완전히 잘라져 버린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나무들은 서로 엉키어 쓰러진 채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때 빌이 뭔가 발견했다.

"저기로! 저 초원 안으로!"

그가 소리쳤다. 그는 헬리콥터를 오른쪽으로 몰았고, 헬리콥터는 크게 원을 그리며 고도를 낮추었다. 테리에게 초원은 강바닥처럼 보였는데 흙으로 된 길다란 홈이 이어지다가 멀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좁고 길다란 땅이 태양과 구름에 반사된 물로 반짝이고 있었다. 빌이 다시 손을 가리켰고, 테리는 무리를 지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테리는 처음에 그것이 버팔로라고 생각했지만 짐승들은 훨씬 컸고 긴 목과 꼬리를 지닌 네 발 동물이었다. 그것은 공룡이었다. 그들은 강이었던 그것의 둑을 따라 걷고 있었다. 빌과 테리는 묵묵히 그 무리들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생각했다. 빌은 헬리콥터로 크게 원을 그리며 아래를 다시 살폈다. 초원이 있었고 사람을 태운 세 마리의 말이 지나가고 있는데 한 마리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빌이 원을 그리며 헬리콥터를 착륙시키자 말을 타고 있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 가족처럼 보였다. 남자는 12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 말에 타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은 그의 아내와 딸로 보였다. 그들은 평온해 보였지만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소년 외에는 모두 총을 가지고 있었다. 테리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사람을 찾고 있는 테요. 여자 두 명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그냥 공중에 머물러 있겠소, 여기에는 식인 공룡들이 있어요. 그것도 아주 큰 놈들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한 사람은 제 아내에요."

"부인이 여기에 없기를 바라는 게 나을 겁니다. 바로 조금 전에 한 놈한테 말을 한 마리 잃었습니다. 거의 아들을 잃을 뻔했죠."

남자가 자신의 뒤에 앉아 있는 소년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갑자기 튕겨 나왔어요."

그가 말을 계속했다.

"크기는 아이가 타고 있던 말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턱을 가지고 있었어요. 말의 목덜미를 물더니 그 늙은 말을 땅 위로 내팽개쳤어요. 만약 뛰어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아들은 죽었을 겁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을 보시지는 못했나요?"

"오늘 아침에 몇 사람들을 봤어요. 하지만 그들은 여기를 벗어나고 있었어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었어요. 당신들도 얼른 피하세요. 이제 저희는 가보아야겠습니다."

남자는 발로 말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떠나갔다.

"잠깐만요. 이런 상태가 어디까지 계속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여자가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르기 전에 몸을 돌렸다.

"알 수 없어요. 밴쿠버가 아직 남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다리들이 모두 무너졌다는군요. 어떤 이는 윌슨빌까지 가는 길이 내내 이런 상태라고 했어요."

테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기 위해 말을 재촉했다. 윌슨빌, 그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얼마 전에 남쪽의 피해 상황을 눈으로 확인했는데 조금 전에 만난 그 여인은 벌써 밴쿠버를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의 집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의 90퍼센트가 이제는 공룡이 들끓는 지역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빌은 다시 헬리콥터를 몰고 전이된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얼마 후에 테리는 오렌지 같아 보이는 것이 있는 두 개의 초원을 발견했다. 빌은 착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무 꼭대기 위에서 선회하며 테리가 잘 볼 수 있도록 헬리콥터를 움직였다. 나무들 사이로 세발자전거 네 대가 보였다. 그중 두 대는 쓰러져 있었다. 자전거에 오렌지색 깃발이 달려 있었다. 바로 공중에서 보았었던 그 오렌지색이었다. 그들은 공중을 천천히 돌았지만 사람이 있다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수색 범위를 넓혀 갔지만 자전거의 주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테리는 몇 개 남지 않은 표식들을 가지고 빌에게 그의 집 쪽으로 최소한 집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거기야말로 엘렌이 존을 찾으러 갈 만한 곳이었다. 테리는 빌로 하여금 집 위를 지나 공중에서 회전을 하도록 부탁했다. 그곳에도 숲밖에 없었다. 빌은 원을 점점 넓게 그렸지만 그들은 나무 외에는 집도, 길도, 건물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틀림없이 엘렌과 앤지가 이 정도로 멀리 왔다면 아들을 찾는 노력이 헛된 수고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군으로서의 빌의 능력은 상공에서 물체를 식별하는 데서도 발휘되었다. 그는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초원의 검은 점 주위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작은 짐승들이 숨을 곳을 찾아 질주하는 움직임만 보였다. 빌은 오토바이 근처에 헬리콥터를 착륙시켰고, 시동을 켜놓은 채 밖으로 나왔다. 그는 테리에게 M-16소총을 건네주었다. 테리는 총을 받지 않았다. 그는 총을 쏠 줄도 몰랐고, 만약 총을 쏠 일이 생긴다면 빌을 다치게 할 것 같았다.

오토바이들은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모닥불 주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주위에는 빈 술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풀밭 한쪽에는 인간의 머리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공룡 머리가 놓여 있었다. 이미 눈은 남아 있지 않았고 그 주위에는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테리는 토하고 싶었다. 공룡도 테리와 마찬가지로 진화의 한 산물이었으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같지 않았다. 빌이 오토바이 중 한 대 위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부르릉 거리는 굉음에 테리는 흠칫했는데 놀란 것은 테리뿐만이 아니었다. 풀 속에 뭔가 있었다. 그는 풀들이 뭉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른쪽으로 풀은 계속 뭉개져 있었고, 그는 걸음을 멈췄다. 언덕 아래로 두어 걸음을 더 내디뎠을 때 그는 보았다. 그건 시체였다. 공룡 머리보다 훨씬 흉한 꼴로 변해 있는 사람의 몸이었다. 크고 작은 짐승들이 그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고, 시체는 더럽혀진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테리는 얼굴을 돌렸고, 구역질을 겨우 참았다. 그가 되돌아갔을 때 빌은 계속 오토바이의 엔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저 아래 시체가 있어요."

테리가 천천히 말했다.

빌은 일어서서 테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슬쩍 쳐다보기만 했다.

"그럴 거예요. 이 오토바이들은 누군가 일부러 고장 낸 거예요. 어떤 미치광이가 배선을 끊어 놓고 사람도 죽였겠죠."

테리가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커다란 물체가 그의 뒤쪽에서 달려왔다. 빌이 총을 들어 올리고 수풀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머리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사람 머리보다 컸고 주둥이 속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나 있었다. 공룡은 슛슛하는 소리를 새며 머리를 숙인 채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빌이 공룡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저건 멸종된 동물이에요, 아니 멸종되었던 종이에요."

테리의 왼쪽에서 뭔가 움직였고 빌이 다시 그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또 다른 공룡 머리가 올라왔다가 사라졌는데 처음 공룡과 생김새가 비슷했다. 풀 속에서 다른 소리가 계속 들렸고 테리는 자신들이 포위되어있다는 걸 알았다.

"공룡 무리가 우리를 사냥하려는 겁니다."

빌이 말했다.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다가, 뛰라고 할 때 뛰세요."

테리는 빌의 뒤를 따랐고, 그들은 헬리콥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리는 빌이 가지고 있는 나머지 총을 넘겨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했다.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들이 뒤를 돌아보니 셰틀랜드 산 종마 크기의 공룡이 풀숲을 헤치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짧고 가는 목에 몸통은 뿌연 녹색빛이었고, 꼬리를 거의 머리 높이까지 쳐들고 있었다. 공룡은 두 뒷다리로 달리고 있었고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은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가리 사이로 이빨이 보이기는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빌은 세 발을 연달아 공룡의 가슴에 쏘았고 공룡은 풀 위로 쓰러지면서 빌과 테리 쪽으로 굴렀다. 공룡은 꽥꽥거리며 비명을 질러 대면서 헬리콥터에 몸을 부딪쳤다. 빌은 다시 다른 놈들에게 세 발을 쏘았고, 또 다른 비명소리가 울렸다.

"뛰어요!"

테리는 이를악문 채 몇 년 동안 제대로 써보지 않은 다리를 힘껏 움직여 헬리콥터로 달려갔다. 테리는 쉴새 없이 뒤를 보며 뛰었고, 자신을 공격해 오는 것은 없는지 살폈다. 그는 달려가다가 헬리콥터 엔진 소리에 공룡이 뒤쫓아와도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언제라도 기습당할 수 있었다. 빌은 조종석에 앉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라도 기습당할 수 있었다. 빌은 조종석에 앉고 있었다. 테리가 조수석에 앉아 문을 닫으려는 순간 빌이 조심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테리는 본능적으로 조종석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아직 문밖에 있던 다리를 높이 쳐들었다. 공룡의 이빨이 테리가 앉은 좌석을 물어뜯었고 공룡은 좌석을 잡아당기느라 용을 쓰고 있었다. 그때 빌의 M-16소총이 테리 무릎 위로 떨어졌다. 테리는 꼼짝하지 않았고 빌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공룡이 다시 테리에게 달려들었다. 테리는 재빨리 몸을 뒤로 제끼며 피했다. 공룡의 주둥이가 테리의 다리 사이에서 벌어졌다가 다물어졌다.

"죽여요, ! 어서요!"

그가 소리를 질렀고 빌은 공룡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피가 테리의 얼굴과 바짓가랑이 사이로 마구 튀었다. 공룡은 땅위로 푹 고꾸라졌으나 주둥이에는 아직도 좌석이 물려 있었다.

"여기에서 빠져나갑시다. 다른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올라가야 합니다.!"

테리는빌에게 몸을 기대고 발로 공룡의 머리를 걷어찼다. 걷어찰 때마다 좌석이 푹하고 찢어졌다. 그러나 공룡의 머리에서 흐른 피로 미끌미끌해서 테리의 발길질은 번번이 비껴 나가고 있었다. 10여 차례를 걷어찬 후에야 머리는 문에서 떨어졌다. 공룡의 아가리에는 찢긴 좌석 쪼가리가 물려 있었다.

빌은 회전 속도를 죽이더니 조종간을 당겼다. 그들이 이륙하는 순간 테리는 두 마리의 다른 공룡이 수풀 속에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안전하게 공중으로 떠올랐을 때 빌은 테리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목청을 돋구어 말했다.

"이제 저것들이 멸정된 정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테리는 몸서리를 치며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좌석에 앉으려고 했다. 헤드폰을 끼자 빌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빨리 마음을 바꿨네요. 순식간에 '위험에 빠진 종을 구하자'에서 '빨리 죽여 버려'로 바뀌다니, 이봐요. 테리 그게 어떤 종인지 아세요? 발로사우루스에요. 그것은 오직 한 종류만 먹는데 하마터면 당신이 먹이가 될 뻔했어요."

빌은 계속 웃고 있었지만 테리는 전혀 우습지 않았고 화가 나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있던 공룡의 날카로운 이빨뿐이었다.

"이게 뭐죠. 믿을 수가 없군요."

테리가 쳐다보았지만 나뭇잎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뇨. 이 위요. 저기를 보세요."

테리는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마천루를 바라보았다. 마천루가 반투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포틀랜드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몇 분 전만 해도 없었던 도시였다. 정말 저기에 있는 걸까? 테리와 빌이 포틀랜드를 너무나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그런 모습을 그려내는 것일까? 테리는 알아볼 수 있는 건물들을 찾다가 캘리포니아 은행과 코인 타워를 발견했다. 테리는 마천루의 밑부분부터 훑어보았는데, 알 수 없는 빛이 비치면서 차들과 사람들을 알아볼 수 없게 했다.

"엘렌과 앤지가 도심 안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세요? 아들은 아마 지금쯤 저기에 있을 거예요. 도심 안으로 들어가 보죠. . 그들을 찾을 수 있을지 한번 봅시다."

빌은 헬리콥터를 공중에서 빙빙 돌림 망설이고 있었다. 테리는 그가 이렇게 망설이는 모습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문제가 있나요? 가서 식구들을 찾아야죠."

"뭔가 이상해요... ... 진짜 같지가 않아요... 불안정해 보여요."

"만약 허상이라면 우리가 다가갔을 때 사라지겠죠."

빌은 실제로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자신 있게 말했다. 왜 도시가 신기루처럼 아물거리는 걸까?

헬리콥터는 머리를 낮추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빌은 눈에 띌 정도로 표정이 굳어져 있었고 테리는 점점 흔들렸다. 도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도시 뒤쪽에서 빛나고 있는 언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건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테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건물들은 계속 흐려지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빌은 헬리콥터 속도를 늦추었고 다시 공중을 선회하며 도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영인가요?"

빌이 물었다.

"두 사람이 같이 환영을 보는 것은 대단히 희귀한 경우죠. 신기루 같아요."

"연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3킬로미터 정도만 더 갔다가 되돌아가야 합니다."

빌은 다시 공중을 돌며 주변을 수색했고, 테리는 계속 밖을 살피며 그가 얼마나 쉽게 마음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지우고 있는지 놀라고 있었다. 도시의 모습은 그의 아들과 어쩌면 아내까지도 잃게 한 수수께끼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62. 생존

그 일은 사람들이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아침에 일어났다. 갑자기 하늘엣 불붙은 널빤지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널빤지의 폭은 거의 비슷했지만 길이는 제각각이었고 모두 불이 붙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불은 금방 꺼졌다. 마을 사람들이 마법을 두려워하며 신부에게로 달려가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 했지만 신부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랑소아 드랭, 뚜르넨느 지방, 프랑스 1670815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수요일 오전 105(태평양 표준시)

"엘렌, 모습이 말이 아닌데, 좀 더 가꿔야겠어."

키쉬톤이 엘렌의 손을 등뒤로 돌려 잡았고 칼은 그녀를 고깃덩어리 보듯이 훑어보았다. 그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수많은 상처가 나 있는 데다 흙먼지를 뒤집어썼고, 블라우스와 바지는 누더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칼의 눈빛을 보자 엘렌은 더러움도 칼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리프먼이 몸을 움직이며 칼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죽은 척하며 땅 위에 누워 있었는데 활은 계속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칼이 화가 나서 활을 내팽개쳤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우리 오토바이도 못 쓰게 만들었다 이거지?"

리프먼은 오토바이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저놈이 바비를 죽였어."

밀러가 리프먼의 옆구리를 걷어찼고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활을 쏘다니. 그건 예의가 아니지."

리프먼은 몸을 일으키고 앉아 밀러를 올려다보았다. 얼굴 오른쪽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그럼 강간범을 죽이는 옳은 방법이 뭐죠?"

"개자식 같으니라구!"

밀러가 소리를 지르며 리프먼을 걷어찼다. 킬이 밀러를 뒤로 밀어내고 가운데로 걸어왔다.

"강간범이라구? 이런, 그건 여자들이 원한 거였어!"

칼이 리프먼의 얼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은 처녀가 아니야. 앤지의 가슴을 봤냐?"

칼이 말했다.

"그 여자가 꼬리치는 거는 봤어? 우리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어. 거래가 이루어진 거지. 그런데."

칼이 총부리를 낮추어 리프먼의 머리에 겨누며 물었다.

"그 가슴 큰 여자는 어디에 있어?"

리프먼이 엘렌에게 알 수 없는 눈짓을 보내더니 갑자기 일어서서 그들이 왔던 방향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세요. 앤지. 어서 숨어요! 도망치세요!"

칼이 주먹을 날려 리프먼을 땅에 쓰러뜨렸다.

"내가 잡아 올게. ,"

밀러가 나무를 타고 성급하게 뛰쳐나갔다. 엘렌은 리프먼이 소리친 방향에 공룡이 있는지 보려고 했지만 나무가 바로 정면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에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지 못했다. 공룡은 가 버렸을까? 아까처럼 따라오고 있을까? 칼이 엘렌의 블라우스 자락을 움켜쥐고 그녀를 잡아당겼다. 칼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좀 더 편안한 장소로 가지."

그가 엘렌을 난폭하게 끌어당겼다.

"키쉬톤, 로빈훗을 데려가 잘 감시해. 죽여도 상관없어."

키쉬톤은 리프먼을 잔인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살의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직 칼만이 냉정하게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키쉬톤은 리프먼을 일으켜 세운 다음 칼과 엘렌 쪽으로 밀었다. 그들이 쓰러져 있는 나무들 사이를 거의 벗어났을 때 세 발의 총성이 울렸고 뒤이어 짐승의 포효가 들렸다. 그들은 모두 뒤를 바라보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딱딱한 것을 씹는 소리에 놀란 그들은 서 있던 통나무에서 물러섰다. 그때 밀러가 나무 둥치 끝부분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한 손에는 총을 들고 한 손으로 통나무를 짚고 올라와 쓰러진 나무 위를 달리고 있었다.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고, 공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앤지를 죽인 바로 그 공룡이었다. 나무 사이를 빠져나오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밀러가 나무줄기 위로 올라와서는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다시 그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는 공룡을 향해 세 발을 연달아 쏘았다. 공룡이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숙이는 사이 칼과 키쉬톤이 자신의 총을 꺼내 쏘았지만 모두 빗나갔다. 밀러는 있는 힘을 다해 쓰러져 있는 다른 나무 위로 올라갔다. 공룡은 그를 힘껏 내리쳤지만 밀러는 이미 나무 사이로 뛰어내린 후였다. 공룡은 나무를 밟고 올라서더니 다른 통나무들을 밟고 건너오기 시작했다. 공룡은 두 개의 통나무 위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고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꼬리를 흔들며 공룡은 고개를 숙이고 앞발로 나무를 치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나왔다.

"다시 장전해. 밀러, 어서!"

키쉬톤이 소리쳤다.

밀러의 첫 번째 비명은 앤지의 그것보다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구 긁어대는 공룡의 앞발에 희생되기 전 두 발을 더 쏘았다.

"서둘러!"

칼이 다시 엘렌을 떠밀며 소리쳤다.

"그리고, 너 이 새끼!"

칼이 리프먼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리프먼을 쓰러뜨리며 고함을 질렀다.

", 일부러 그런 거지. 저 놈이 있다는 걸 알고 그랬지!"

리프먼은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앤지하고 같이 있고 싶어한게 아니었나 보죠?"

엘렌은 칼의주의를 끌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을 꺼냈다.

"이제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게 됐군요."

칼의 얼굴이 분노로 벌개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 살의가 번득이고 있었다. 엘렌은 속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공룡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요."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칼이 공룡을 돌아보았을 때 공룡은 아직도 통나무 밑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너희 둘 다!"

칼이 이를 갈았다.

칼은 다시 엘렌을 떠밀었고, 그들은 숲을 향해 걸어갔다. 리프먼 외에는 모두 뒤를 끊임없이 힐끔힐끔 넘겨다 보았다. 가끔씩 그들은 바라보기는 했지만 공룡은 새로운 먹이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엘렌은 갈등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다시 도망치려고 한다면 그녀는 칼이나 키쉬톤에게 살해될 것이고 탈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저 공룡이나 다른 공룡에게 잡아 먹힐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녀는 이 강도 무리한테 강간당한 후 살해될 것이었다. 그리고 리프먼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앤지를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자신들은 공룡에게 잡아 먹혔을 텐데 그는 그녀와 앤지를 도와주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칼과 키쉬톤이 그를 죽일 것만 같았다. 만약 그녀가 도망친다면 리프먼과 함께일 것이다.

그때 갑자기 엘렌 옆에 쓰러져 있는 통나무에 총알 박히더니 총성이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칼과 키쉬톤은 놀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두 발이 그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네 사람은 가까이에 있는 통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때 숲에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아주 낮게 깔리는 위협적인 목소리였지만 엘렌의 귀에는 낯설지가 않았다.

"그 여자와 남자를 보내 줘!"

"넌 누구야?"

칼이 소리쳐 물었다. 그 목소리는 같은 요구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칼이 키쉬톤에게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키쉬톤은 어깨만 으쓱했다. 그때 칼이 몸을 돌리고 리프먼에게 총을 겨누었다.

"저놈은 누구지?"

리프먼의 얼굴은 보랏빛 멍이 든 채 부어 있었다. 그는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총을 가지 사람이지."

칼이 리프먼의 성한 쪽 얼굴을 내리쳤다. 리프먼은 얼굴을 찡그리며 아픔을 참았다. 순간 만족했는지 칼은 더 이상 리프먼을 때리지 않았고, 엘렌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니?"

칼이 그녀를 후려치는 바람에 그녀가 쓰러졌고 그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저들한테 너를 넘겨주지 않아. 넌 내 거니까."

숲에서 두 발의 탄환이 다시 날아왔고 바로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통나무에 몸을 숨기고 칼이 응시했다.

"원한다면 이리 와서 데려가라구!"

그가 소리 질렀다.

"우리는 총알이 많아. 우리는 움직이지 않을 테니 그리 알라구."

"뒤를 보시지!"

나지막하고 인간의 것 같지 않은 목소리가 말했다. 그 말에 모두 뒤를 돌아보니 공룡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키쉬톤이 리프먼을 걷어차며 재촉하는 순간 공룡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칼은 탈출구를 찾느라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엘렌은 자신들이 갇혔다는 것을 알았고, 칼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들은 총의 사정거리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을 따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속의 남자가 그들을 따라올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빨리 움직일 수 없을 것이고 공룡은 쓰러진 나무들을 헤치고 걸어오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되지. ? 저들을 보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키쉬톤이 멈칫거리며 말했다.

"알았어. 생각해 볼 테니 입 좀 닥치고 있어!"

엘렌은 공룡을 바라보며 칼이 공룡이 움직이는 것보다 빨리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랬다.

칼이 시비조로 숲속을 향해 소리쳤다.

"만약 이들을 보내 준다면 우리를 살아나가게 해 준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건가?"

"그 여자와 남자를 보내, 우리는 당신들한테는 관심 없어."

우리라는 말에 엘렌은 희망을 가졌다.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그들은 칼과 다른 사내들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프먼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칼과 키쉬톤은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과 리프먼을 놓아주고 공룡이 오지 건에 숲으로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욀 것이다.

"좋아, 좋다구!"

칼이 숲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 다음 엘렌과 리프먼에게 말했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야. 지금은 보내 줄 테니 가라구. 아주 빨리 도망쳐. 그렇지 않으면 네가 바비한테 한것처럼 나도 네 등에 총구멍을 낼 거야."

그들이 통나무 위를 오르자마자 공룡이 그들을 발견하고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공룡은 사람한테 맛을 들인 게 분명했다.

"서둘러!"

칼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서두르라구, 그렇지 않으면 총을 쏘겠어!"

리프먼은 얼굴이 부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지 못했다. 엘렌은 그가 나무를 넘는 것을 도우며 도망쳤다. 그러나 그녀가 그의 팔을 세게 잡거나 조금이라도 오래 잡기라도 하면 리프먼은 그녀의 팔을 뿌리치곤 했다. 그들은 드디어 마지막 통나무까지 다 왔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조금 전의 그 목소리가 그들에게 속삭였고, 나무 뒤에서 손이 나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엘렌이 그곳으로 리프먼을 데리고 갔다. 거기에서 아들을 보는 순간 엘렌의 다리에 힘이 빠졌고, 엘렌은 아들의 품 안에 안겼다. 그녀가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눈을 떠보니 커비가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로버츠 부인"

숲에서 울려 나왔을 때처럼 낮게 깔리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커비였다는 걸 알았다. 커비는 엘렌을 보고 빙긋 웃더니 리프먼을 바라보았다.

"리프먼, 얼굴이 엉망인데."

리프먼이 얼굴을 돌려 멀쩡한 눈으로 커비를 쳐다보았다.

"만약 저 공룡이 오늘 우리를 잡아먹으면 내일은 우리 모두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릴걸."

그녀는 아들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공룡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무에 기대어 칼과 키쉬톤이 통나무 위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오고 있어... 그들이 오고 있어."

커비가 나무에 기대어 칼과 키쉬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칼과 키쉬톤은 몸을 숨길 만한 장소를 찾다가 총성이 들리자 두 개의 통나무 사이로 몸을 날렸다. 커비가 다시 장전했으나 찰칵하는 소리만 들렸다.

"갈 시간이 됐어요."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무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커비 뒤를 따르는 순간 반자동 소총 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곧 포효하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칼과 키쉬톤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리프먼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자주 넘어졌다. 엘렌과 존이 리프먼을 부축하며 그를 도우려 했으나 리프먼은 그들의 손을 밀어내곤 했다. 뒤에서 계속 총성이 울렸고, 엄청난 굉음과 공룡의 울음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잠시 후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고, 주위가 잠잠해지자 총소리와 비명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커비는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숨을 고르는 철 하며 리프먼을 살폈다. 리프먼은 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 있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천천히 앉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피했다. 엘렌은 그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육체적인 고통일 수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 또한 아주 큰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받는 것을 혐오하고 있었다. 이제는 커비가 앞장을 섰다.

". 이제 가시죠. 우리 집까지는 갈 수 있을 거예요."

"너희 집이라구?"

엘렌이 물었다.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이런 원시림 속에 저 아이의 집이 남아 있을까?

"너희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니?"

"이쪽으로 몇 킬로미터 더 가야 돼요. 어제 아버지의 교회를 봤어요. 안 그래. ?"

존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엘렌은 아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엘렌은 숲을 둘러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껏 전혀 보지 못하던 숲이었다. 식물들을 아주 낯설었고, 곤충이나 작은 생물들은 공룡이 지배했던 시대. 그러니까 6.500만 년 전에 사라진 고대 세계에서 살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커비는 집으로,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만약 집이 남아 있고, 여기에서 멀지 않다는 게 틀림없다면 그곳으로 가보자."

그녀는 자신 없이 말했다. 그녀도 조금이나마 확실한 문명 세계가 남아 있기를 바랬다. 드디어 리프먼이 눈을 뜨고 성한 눈으로 커비를 바라보았다.

"집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해."

그가 부어오른 입술을 힘들게 움직여 말했다.

커비는 신경질을 부렸다.

"난 네 꿈을 깨려는 게 아니야. 커비."

리프먼이 계속했다.

"난 그저 내 눈으로 본 것을 말해 주는 거야. 나도 포틀랜드를 봤어. 난 포틀랜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광경을 봤어."

"그게 무슨 소리야?"

커비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말 그대로야. 가끔씩 나타났다가 없어진다니까. 나타났을 때도 뭔가 이상했어."

"난 봤어. 존도 봤다구."

"그래. ?"

리프먼이 성한 눈으로 존을 쳐다보았고, 그 눈빛은 존이 커비 편을 들 수 없게끔 만들었다.

"네가 보기에는 이상하지 않았단 말이야?"

"있기는 있었는데... 그게 말이야 ... 무척 흐릿했어."

". 존도 봤대잖아. 넌 쉬기나해. 리프먼, 우린 집으로 갈 테니까."

리프먼이 고개를 젓더니 성한 눈으로 표정을 살폈다.

"왜 포틀랜드가 남아 있다면 거기에서 오는 사람들을 한명도 보지 못한 거지?"

"그건 너무 멀기 때문이야."

커비가 자신 있게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멀지 않아. 너는 지금 타보산 위에 앉아 있어."

커비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타보산'하고 중얼거렸다. 엘렌도 커비네 교회를 여러 번 갔었기 때문에 교회가 바로 타보산 남쪽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프먼은 가만히 서서 작은 돌멩이를 숲으로 던지고만 있었다.

"그 말은 너희 집이 여기에 있었다는 이야기야. 집을 볼 수 있어? 교회는? 모두 없어졌어. 사실을 받아들여. 아직 상황이 괜찮을 때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너는 이 세계에 속해 있지 않아. 우리 모두 다 마찬가지야. 어서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구."

리프먼은 땅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었다. 엘렌은 순간 그를 안아 주려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행동은 리프먼을 괴롭히기만 할 것이다. 엘렌은 동시에 어떤 식으로 커비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그들이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할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헬리콥터 소리가 분명했다. 헬리콥터가 낮게 날고 있었다. 그녀와 존, 그리고 커비가 팔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리프먼은 계속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헬리콥터 소리가 머리 바로 위에서 크게 울렸다.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흩날리면서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엘렌은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 끝에 바늘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날카로운 가시가 그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잎사귀의 방향이 바뀌면서 가시가 엘렌의 어깨 위에 내리꽂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20센티미터쯤 되는 도마뱀이 그녀의 눈앞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목 주위에는 골질로 이루어진 갈색 깃이 달려 있었고, 몸통에는 녹색 반점이 나 있었다. 날개 양쪽에 나 있는 돌기는 몸통을 따라 납작하게 접혀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어깨에서 도마뱀을 떼내려고 했지만 도마뱀은 발톱으로 그녀의 블라우스를 꽉 잡아채고 뒷다리로 거꾸로 매달렸다. 그러더니 돌기를 펼치는데 마치 날개처럼 보였다. 도마뱀은 발톱을 풀고 뒷다리로 땅 위에 착지한 뒤 덤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도마뱀이 그 근처에 내려앉은 뒤 나무를 마구 긁다가 나뭇잎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때 다른 도마뱀 gs 마리가 엘렌의 머리 위로 바로 날아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공포에 질린 엘렌은 도마뱀을 땅 위에 내팽개쳤고, 그놈은 다른 도마뱀들이 숨어있는 덤불 속으로 도망쳤다. 도마뱀의 공격이 그쳤을 때는 헬리콥터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엘렌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커비는 거의 판단력을 잃고 있었고, 리프먼은 아직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엘렌은 아이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이들은 아직도 여러 가지로 미숙했고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찾느라 애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아이들에게 의존해 왔고, 그들은 그녀를 구해 주었다. 리프먼은 앤지도 구하려고 애썼다. 그는 아주 놀랄 만한 용기를 보여주었고, 그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그녀가 필요했다. 이제는 그녀가 앞장서야 했다. 그녀가 움직이려는 순간 새로운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존과 커비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네가 한 거야."

커비가 말했다.

"아냐. 네가 한 거야."

존이 어색하게 대꾸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커비는 리프먼을 일으켜 세워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존은 엘렌 팔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이제는 그녀도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토바이 소리였다.

 

63. 진동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이 저지른 실수는... 인과 관계 개념에 너무 집착했다는 것이다... 그 개념에서는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있을 수 없다. 인과 관계가 무너진 세계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모래가 땅 위로 떠올라 공중에 떠다닐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더 나쁜 경우에는 돌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사람들을 맞혀 쓰러뜨리거나,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할머니들을 먼저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피터 코브니와 로저 하이필드. 시간의 화살

워싱턴 D.C. 수요일 오후 115(서부 표준시)

이제 프레스넷에는 충분한 양의 자료들이 올라와 있었다. 조사를 위해 실험실을 비웠었던 과학자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보고서를 프레스넷에 띄우고 있었다. 보고서를 프레스넷에 뛰우고 있었다. 보고서 대부분이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건을 분석하고 이론화하는 것들도 간혹 있었다. 미확인 식물군들. 이상한 형태의 초소형 해양 식물들, 공룡을 보았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모두 그런 사실에 현혹되고 매료되어 있었으나 닉은 결과가 아닌 원인에 집중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를 켜고 화면에 고메즈 이론에 대한 의견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이론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동시에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었다. 버지니아 대학의 한 물리학자는 확실한 대답을 요구하면서 무효화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닉은 명단을 쭉 살폈지만 에밋 퍼글리시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후 그에게 봉투 하나가 전달되었다. 그것은 에밋이 보낸 것이었다. 닉은 봉투를 찍어 두툼한 사진 뭉치들과 타자로 작성된 두 장의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퍼글리시는 훌륭한 과학 작가처럼 글을 효과적으로 쓰는 사람이었다. 닉은 보고서의 첫 부분을 읽었고 단어 하나하나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다 읽은 다음 그는 사진 뭉치들을 뒤적여 요약 부분에서 언급된 사진을 찾아냈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았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확대경을 가지고 와 플램스티드라고 이름 지어진 분화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닉은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퍼글리시에게 조사를 의뢰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퍼글리시는 결국 해냈다. 퍼글리시의 보고서는 그와 그의 동료인 첸-슬레이터가 달과 같이 산소가 없는 곳에서는 오직 세 가지 유형의 변화만이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달의 지진과 같은 내부적인 사건에 의해 생긴 운석 천체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변화 또는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변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퍼글리시와 첸-슬레이터는 세 번째 유형의 것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닉은 다시 사진 위로 얼굴을 묻고 그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실들을 확인했다. 그것이 분화구 속에 있었다. 대치의 직사각형 구조로 모서리가 날카로웠기 때문에 자연 현상과 혼동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미래에서 온 어떤 것이 지금 달 위에 있었다. 뭘까? 이런저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것은 달 영구 기지의 일부분일 것이다. 미래의 우리는 시간 전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이된 지역에 기지를 건설한 것일까? 물론 문명 세계가 이번 일에 대한 집합적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아마 문명은 파괴되었다가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다. 또는 그것들이 거기에 있는 것은 과거로 -그러니까 닉이 살고 있는 현재로 오기 위한 것일까? 미래의 과학자들은 시간 전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공상에서 깨어났다.

"들어오세요!"

엘리자베스가 새뮤얼 캐넌과 함께 들어왔다. 국장과 엘리자베스가 의자를 닉의 책상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닉은 캐넌 국장의 표정을 읽고 뭔가 벌어졌다는 걸 짐작했다. 엘리자베스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 대통령은 고어의 계획을 허락했어요. 크루즈 미사일이 장착되었고, 지형도도 준비됐어요. 시기가 결정되는 대로 미사일을 발사할 거예요."

"장소는 어떻게 됐습니까? 장소를 의존하기 위해 회의를 열기로 하지 않았나요?"

엘리자베스와 캐넌 국장이 시선을 교환했고, 캐넌 국장이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더 이상 고려할 것도 없어요. 장소는 이미 결정됐어요. 포틀랜드에요. 알래스카에 공룡이 있다는 보고를 확인할 수 없었고, 빙하 지역은 캐나다 국경과 너무 근접해 있어요. 게다가 빙하는 빙하 시대에서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우리는 알 길이 없어요."

닉은 캐넌 국장의 말을 이해했다. 모든 상황들이 전이된 지역은 백악기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만약 빙하가 빙하 시대에서 전이된 것이라면 그곳 어딘가에도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현재가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닉은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먼 과거의 생명선을 파괴한다면 이어지는 세태들의 생명체들도 파괴될 수 있었다. 누가 그 결과로 인해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인가? 히틀러나 스탈린은 그렇게 없어질지 모르지만 예수나 간디. 그리고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도 죽일 수 있는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을 죽이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과연 핵무기가 있었을까? 어쩌면 히틀러가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핵폭탄을 보유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그 폭탄을 투하해 아인슈타인을 제일 먼저 죽일 수 있는 것일까? 짧은 시간 동안 닉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들이 왜 알래스카를 피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증명되지 않은 이론을 가지고 생명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모험을 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사람이 사는 도시잖습니까? 빙하 지역에 대한 조사가 확실해질 때까지 대통령의 결정을 보류시킬 수는 없습니까?"

닉이 말했다

", 대통령은 고어의 말만 듣고 있어요. 그리고 고어는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고 있어요. 대통렁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영부인을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말뿐이에요. . 당신은 이것이- 이 폭탄 이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 전에 고메즈의 모형- 고어의 이론이기도 하지요-을 놓고 벌어진 토론들을 살펴보고 있었어요. 열 명의 물리학자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지지하고 있어요. 나머지 학자들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모형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동시에 핵을 터뜨리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고어의 생각에 어느 누구도 찬성하지 않고 있어요. 폭발이 과거 시점에서 있게 된다는 것도 불확실합니다. 폭탄은 우리의 현재에 떨어질 수도 있어요."

엘리자베스는 캐넌 국정을 보며 뭔가 재촉했고, 캐넌 국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캐넌이 말을 이었다.

"이건 일급 비밀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영부인을 찾기 위해 애틀랜타에 수색팀을 보냈어요. 그들도 돌아오지 못했어요."

"? 어떻게요."

"공중 낙하를 시도했어요. 도시의 모습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때까지 비행기를 계속 선회시켰죠. 그런 다음 요원들을 내려보냈죠. 우리는 지상과 비행기 안에서 동시에 낙하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요원들의 낙하산이 펴진 다음 그들은 도시 안으로 착륙했어요. 그리고 나서 도시는 다시 사라졌고,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아직도 그들과 교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닉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부하들 일은 정말 안됐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고어의 이론을 부분적으로는 뒷받침하고 있군요. 만약 우리가 미사일 탄두를 과거가... 현재에 와 있을 때 투하한다면... 그럼 미사일은 과거에서 폭발할 겁니다... 하지만 물론 그것이 지금 현재일 수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는 당황해서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건들에 대해 질문했다.

"지상 관측팀은 좋은 위치에서 요원들이 낙하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그들이 낙하하자마자 도시의 모습이 희미하면서도 투명하게 변했다고 보고했어요. 믿을 수 없는 것은 지상팀은 그들의 관측 위치에서 보았을 때 도시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상팀과 계속 무전 교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그 영향권의 중심-애틀랜타-로 보냈고, 그들에게 계속 보고를 하도록 지시했어요. 갑자기 그들이 사라진 겁니다."

"지금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덧붙여 말하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낙은 당황했다. 몬트리올에 나타난 안킬로사우루스처럼 공룡들이 전이된 지역에서 나와 닉의 현재로 오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서 간 사람들은 분명히 한 쪽 방향으로만 이동해 갔을 것이다. 닉은 공룡들이 되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동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가능할까? 그것은 시간의 화살과 일치하는 개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애틀랜타는 미래로 보내진 것이고 그래서 캐넌의 부하들이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무생물은 어떨까? 그것들도 똑같은 제약을 받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만약 어떤 사람이 그의 과거로 여행을 한다면 생길 수도 있는 이간의 파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닉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자신과 대면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인간은 유기적 화학 물질에 불과했다. 미래의 화학물질이 과거의 자신을 만나게 되면 분열을 일으킬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분열이 미래로 진행된다면 고어의 폭탄은 미래로 가게 될 것이다. 만약 폭탄에 의해 전이 지역이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와 캐넌 국장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온 것이다. 전문가가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이 정보를 프레스넷에 올리겠습니다. 누군가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엘리자베스와 캐넌 국장은 그것 말고도 다른 것을 더 원하는 것 같았지만 닉은 그들에게 무엇을 안겨 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시기가 아주 중요해요."

그가 말했다.

"만약 폭탄이 현재가 -현재인 시점에 폭발된다면 포틀랜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과거가 현재인 지점에 떨어진다면 현재의 모든 것들은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겁니다. 물론 과거는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게 되겠죠."

닉은 진심으로 믿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캐넌 국장이 영향력을 잃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닉은 달콤한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결과는 쓰디쓸 뿐이었다.

"나머지도 말씀하세요. ."

"시기가 문제에요. 고어는 폭발 효과가 곧 사라질 거라고 하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각 부분들이 자기 시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폭발로 인해 전이된 지역이 그들이 속한 시간대가 어디이건 간에 그 자리에 고착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어요. 문제는 진폭이 지역마다 다를 것이라는 점이죠."

닉은 캐넌 국장이 말하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캐넌국장은 닉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닉의 표정을 보자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구두 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캐넌 국장님. 그들이 포틀랜드에서의 진폭을 조절해 놓았나요?"

"지금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서부의 자료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애틀랜타의 진동을 쓸 겁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대통령은 할 수 있어요. 대통령이 그렇게 지시했어요."

"그러면 포틀랜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와 내가 그 점을 주장했었죠. 대통령은 두 가지의 필요악 가운데 그것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통령에게는 전 지역의 모든 사람들을 잃느냐, 아니면 포틀랜드의 주민들로 모험을 하느냐의 문제인 겁니다."

"진동 분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어요."

캐넌 국장은 더 이상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논쟁할 마음이 없는 듯 의자에 몸을 푹 묻었고, 엘리자베스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 일은 영부인을 구하기 위한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녀는 서두르고 있었다.

"대통령은 애틀랜타를 현재로 되돌리기 위해 폭파 시간을 결정할 겁니다.

대통령은 실수하고 있어요."

"맞아요. 아주 엄청난 실수죠."

"당신이 우리와 함께 가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말할 겁니다. 당신은 고어를 처리하세요."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책상을 등진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은 습관적으로 클립을 돌리고 있었다. 고어와 나탈리 마쯔다가 그곳에 같이 있었다. 평소처럼 엘리자베스는 그들을 무시한 채 회의를 진행시켜 나갔다.

"각하, 포틀랜드에 폭탄을 투하시키는 계획을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클립을 책상 위로 던졌다. 클립은 엘리자베스의 발치에 떨어졌다.

"엘리자베스, 전에도 말했지 않나. 우리는 포틀랜드를 폭발시키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모든 것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먼 과거에 핵을 떨어뜨릴 거야. 만약 성공한다면 포틀랜드와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들은... 그리고 세계 어디든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 나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어."

대통령은 화가 나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해."

그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난 그 결정을 내린 거야. 오래 기다릴수록 기회는 점점 적어질 뿐이야. 그렇지 않나, 어니?"

"사건의 결과들이 점점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고어가 말했다.

"곧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유일한 기회는 사라져 버릴 겁니다."

"시기는요?"

닉이 말을 끊었다.

"어떻게 폭파 시기를 결정한 겁니까?"

그 질문에 대통령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고, 대통령은 고어에게 대답하도록 했다.

"이용 가능한 자료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것들을 가지고 시기를 결정했습니다."

고어가 힘을 주어 말했다.

"포틀랜드 자료 말이죠."

닉이 말했다.

"그건 쓸모없어요. 가장 유용한 자료는 남동부에서 온 겁니다."

"남동부라구요...?"

닉이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애틀랜타에서!"

대통령이 소리를 질렀다.

"그게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건가? 내가 명령했어, 바로 내가!"

"사람들이 함께 죽을 수도 있습니다, 각하. 프레스넷을 통해 고어 박사의 계획에 대한 토론들을 계속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계획을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의자에 앉더니 다른 클립을 집어 들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밖에..."

"저희는 단지 각하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료들이 지금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필요로 하는 시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입을 다물었고, 닉을 외면했다. 닉은 고어를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도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마지못해 그는 퍼글리시가 보내온 사진들을 대통령에게 건네주었다.

"새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각하. 지구에서는 시간 전이가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되었지만 달에서는 미래가 과거로 왔습니다."

대통령은 아직도 손가락 사이의 클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지금 달에는 우리의 미래에서 온 무엇이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대통령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각하. 이 분화구입니다."

"다른 조치를 취하기 전에 먼저 이것을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뭘 가지고 조사를 한단 말이오? 플로리다 발사 기지는 사라져 버렸고, 오직 두 대의 우주선만 남아 있고, 그것도 지구 궤도 가까이에서밖에 쓸 수 없단 말이오."

"이건 단지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어가 끼어들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신 겁니다."

"직사각형 그림자라구요?"

닉이 이의를 제기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아시다시피 화성의 표면 그림자도 있지 않습니까."

"그걸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너무 늦었소."

대통령은 말을 끝내고 의자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그는 새 클립을 구부리고 신경질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이미 결정은 끝났소."

닉은 눈앞에서 프레스넷에 뜬 메시지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고어의 폭탄은 투하될 것이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놀고 사람들이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포틀랜드의 모습이 닉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달 사진이 닉의 사무실 게시판에 붙어져 있었다. 그의 손에 닿지 않는 절대적인 미스테리였다. 아마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고어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분화구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만약 계획이 실패한다면 아마 10년 안에 그들은 플램스티드 분화구를 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닉은 마음 한구석으로 고어 계획이 실패하기를 원하면서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컴퓨터에서 울리는 소리가 그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자신이 요청했던 자료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고메즈 모형의 변형식이었다. 닉은 차이점을 찾으려 했지만 마음은 온통 컴퓨터가 내는 삑삑 소리에 가 있었다. 그는 삑삑거리는 소리 대신 댕그렁 소리가 나도록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64. 항해의 끝

우리는 빙하를 타고 테라노바를 벗어나려고 하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식인 고래 무리가 공격해 왔다. 고래들은 우리들을 물속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등으로 얼음을 쳤다. 그들의 힘은 엄청났고, 얼음이 깨지면서 일부 조각들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졌다. 우리는 운 좋게도 더 단단한 빙하 위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로버트 필콘 스코트 선자. 191115

플로리다주 네이플즈 서쪽 수요일 오후 120(서부 표준시)

패티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패티는 아주 많은 양의 피를 흘렸지만 쉬지 않고 헤엄쳤다. 공룡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론은 그들이 짐이 된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팻이 죽은 이후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았다. 갈증과 배고픔으로 몸은 약해져 갔고, 그들은 말할 기운도 없이 패티의 등 위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론은 팻의 끔찍스러운 죽음을 보고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고, 따라서 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론은 똑바로 앉아 고래들이 따라오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살폈다. 팻 하나만으로도 고래들은 배가 부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고래 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앞을 바라본 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육지가 보이고 있었다.

"저기 좀 봐! 해냈어! 우리는 해냈다구!"

다른 식구들이 몸을 일으켜 해변을 따라 나 있는 갈색의 가느다란 줄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생기가 나서 환호성을 울렸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착한 패티야. 팻 일은 정말 안 됐어."

로자가 몸을 숙여 패티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해변은 점점 가까워져지고 있었다. 론은 패티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그들이 해안까지 헤엄쳐 가는 것이 가능한 지점을 어림잡아 보았다. 카르멘이 론에게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론이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즉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고래 떼가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아빠, 고래들이 와요."

"맞아. 크리스, 하지만 해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론은 아직 충분히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우리는 헤엄쳐 갈 수 있어."

크리스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곧 한 마리 한 마리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새 떼가 가까이 왔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해안은 아직도 멀기만 했다. 갑자기 오르카 고래의 미끌미끌한 몸통이 물속에서 솟구치면서 그들은 물세례를 받았다. 다른 고래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놈들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다시 고래가 패티 머리 옆에서 뛰어올랐고, 패티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고래 한 마리가 패티 바로 앞에서 물 위로 뛰어오르자 패티의 몸이 기우뚱했고, 그 바람에 등에 있던 사람들은 하마터면 바닷속으로 빠질 뻔했다.

론은 패티가 방향을 잃을까 봐 걱정했지만 공룡은 가던 길로 계속 갔다. 고래들이 다시 뛰어올랐지만, 패티는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두 번을 더 시도하던 고래들은 두 번 모두 실패하자 패티를 사냥하는 것을 포기한 듯 그저 패티의 옆에서 헤엄을 치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이제 새 떼는 머리 바로 위까지 와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을 쫓고 있는 고래들의 지느러미도 볼 수 있었다. 고래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패티의 양옆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모두 붙잡아."

그들은 몸을 낮추고 고래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바로 그 순간 고래들이 패티의 다리를 공격했다. 고래들은 몸을 돌려 물속 깊이 들어갔다가 엄청난 속도로 수면 위로 돌진하면서 패티를 공격했다. 공격은 계속되었고 패티의 다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패티는 계속해서 해변 쪽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세 번 연속 공격이 있었고, 마침내 패티도 쓰러졌다. 공룡의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론과 그의 가족들은 거의 물속에 빠질 뻔했으나 패티는 다시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패티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 잠시 아무렇게나 헤엄을 치더니 다시 해변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는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 론이 해변 뒤쪽 건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힘내, 패티!"

론이 속삭였다.

"너는 할 수 있어."

고래들은 해변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공격의 고삐를 죄었다. 이어지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패티는 고군분투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물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지만 패티는멈추지 않았다. 그때 고래 한 마리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던 패티의 목을 물어뜯었다. 패티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잠시 후 머리가 축 늘어졌고, 몸이 조금씩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려야 할 것 같지?"

론은 지시라기보다는 묻는 어조로 말했다. 카르멘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선홍색으로 물든 바다와 공격해 오는 고래를 바라보았다.

", 얘들아."

카르멘이 말했다.

"옆으로 뛰어내려."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로자는 구명대 고리를 확인한 다음 자신의 왼팔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패티의 옆구리 쪽으로 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패티의 몸에서 약간 물러난 뒤 크리스가 물속으로 뛰어들기를 기다렸다. 패티는 계속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에 로자는 뒤로 쳐지고 있었다. 카르멘은 크리스의 구명조끼를 확인한 다음 아이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로자는 즉시 크리스에게 다가가 그를 패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에서 끌어냈다. 카르멘은 론에게 손을 내밀었다. 론은 그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좋아지던가 나빠지던가. 그게 우리가 말해 왔던 것 아니오?"

론이 물었다.

"당신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어요."

카르멘은 물속으로 들어가면 론을 잡아당겼다. 그들이 해안을 향해 헤엄치는데 다시 패티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패티의 비명소리는 그들이 고래 떼의 공격권을 벗어났다고 판단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들은 너무 지쳐 헤엄을 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아이들의 구명조끼를 붙잡았다. 패티는 고통스러워하며 고래 무리 속에서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은 살점들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패티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더니 패티의 몸이 쓰러졌고, 목이 물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피가 천천히 물속에 퍼져나갔고, 그들은 고래 떼뿐 아니라 상어와 다른 동물들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며 서둘러 헤엄쳤다.

바닷새들이 머리 위에서 시끄럽게 우는 가운데 그들은 해변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의 몸은 패티의 피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물에 퍼지고 있었다. 론은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약한 파도가 조금씩 그들의 몸을 씻어내렸고, 론은 해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해변은 바로 앞에,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구명조끼가 없었기 때문에 론과 카르멘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파도는 론을 향해 밀려들었고, 론에게는 파도를 탈 정도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속으로 잠질 때마다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크리스는 론 앞쪽에 로자는 론 오른쪽 뒤에 무사히 있었다. 카르멘은 자신의 오른쪽에 있었다. 론이 가족이 무사한지 살피는데 파도가 해안가로 아이들을 밀어놓고 있었다. 이들은 땅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카르멘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론은 힘을 빼고 기다리다가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발장구를 쳤다. 충분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물결은 그와 카르멘을 계속해서 육지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론이 거의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을 때 누군가 자신을 잡아끌고 있었다. 로자와 크리스가 얕은 여울까지 그를 끌고 왔다. 론은 기어서 해안가지 올라왔고, 몸을 돌렸을 때는 아이들이 카르멘을 돕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따뜻한 모래 위에 나란히 누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살아났다는 기쁨에 론은 기운이 되살아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파괴된 부두의 잔해물들이 해변과 주차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 뒤에는 작은 마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을은 해일에 휩쓸린 것 같았다.

"자 모두들, 힘을 내자."

론이 식구들을 격려했다.

"뭔가 마실 것을 찾아보자꾸나."

"그리고 먹을 것두요."

로자가 얼른 말을 보탰다.

"여기에 맥도날드가 있을까요?"

크리스가 물었다. 그때 피로 물든 파도가 그들 위로 덮쳤고, 그들은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렸다. 론이 바다 쪽을 바라보니 패티가 파도 속에서 아직도 버둥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패티는 아직 남아 있는 다리로 헤엄을 치려고 애쓰고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패티는 그 길다란 목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겨우 물 위에 내밀고 있었다.

"패티, 넌 할 수 있어!"

로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넌 할 수 있어!"

크리스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나왔다. 하지만 패티는 할 수 없었다. 고래들은 계속 패티를 공격했고, 패티는 파도 속에서 기우뚱거리다가 다시 쓰러졌다. 그 바람에 피로 물든 파도가 다시 사람들을 덮쳤다. 패티의 머리가 수면 위로 잠시 올라오는 것 같더니 물속으로 잠겼고,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동안 패티가 다시 일어서기를 빌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카르멘이 앞장서서 그들을 마을 쪽으로 이끌었다. 론은 바다 위에 둥그렇게 떠 있는 몸뚱이를 돌아보며 가족을 잃은 듯한 슬픔에 빠졌다. 패티는 그와 그의 가족을 구했지만, 그는 패티나 가엾은 팻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사실에 더욱 비통해했지만 그만큼 가족에 대한 애정은 깊어졌다. 그는 로자에게 다가서면서 말했다.

"어때. 로자, 향해는 즐거웠니?"

로자가 몸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았다.

 

65. 마법의 산

어느 이른 아침. 한 젊은 여인이 안개 속에서 한 떼의 버팔로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산이 갈라지면서 그 안에는 오래전에 그랬었던 것처럼 맑고 푸르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버팔로들이 입구로 걸어 들어가자 산은 다시 닫혔다.

카오아 신화

오레곤주 5번 고속도로에 생긴 산 수요일 오전 1132(태평양 표준시)

카일은 목욕을 한 다음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깎아 지른 듯한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일은 5번 고속도로 위에 생긴 산 이야기를 가볍게 들어 넘겼다. 카일은 미스터리를 그 누구 못지않게 좋아했다. 그 일이 자신과 관련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새인지 뭔지 하는 것에 어린 소녀가 산 위로 잡혀간 일에 또 관계되어 있었다.

주 경찰은 그 일대에 발이 묶인 여행객들을 5번 고속도로에 생긴 산 아래로 보내려고 애썼지만 많은 사람들은 가지 않고 거기에 남아서 어린 소녀가 관련되어있는 이 드라마틱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기를 고집했다. 교통 체증은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차들로 길은 꽉 막혀 있었다. 카일에게는 눈앞의 산이 디즈니랜드에서 본 산처럼 느껴졌다. 고속도로가있어야 할 속에 돌무덤과 작은 초원들로 둘러싸인 커다란 바위산이 들어서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은 초원 주위에서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카일은 핫도그 장사가 있기를 빌었다. 머피라는 이름의 경찰관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가 카일과 다른 구조 대원들을 반겼다. 그는 셜리와 다른 사람들은 무시한 채 카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을 보셨죠."

머피가 말했다.

"괴물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 망할 놈의 새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상태입니다. 가끔씩 들리는 소리로 미루어 아이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산 위로 올라가 보려고도 했지만 삼분의 일 정도쯤 올라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발을 제대로 디딜 수가 없더군요."

"아이를 물어갔다는 새는 뭡니까?"

카일이 물었다.

"그럴 만한 새는 그리 많지 않을 텐데요."

셜리가 말했다.

"병든 콘도르 같았다고 하는군요. 깃털은 전혀 없었는데 콘도르라고 하기에는 몸집이 무척 컸다고 했습니다."

셜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병에 걸리고 깃털도 없는 콘도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새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카일이 물었다.

"총에 맞았어요, 아마 죽었을 겁니다. 아이와 함께 저 바위 뒤로 떨어졌어요. 아이의 이름은 크리스티인데, 아니 크리시에요."

머피가 수백 미터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아니면 죽은 겁니까?"

카일이 물었다.

"한동안 새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다른 놈이 그 뒤를 쫓아가기 전까지는요."

"다른 놈이라구요?"

카일이 다시 물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어디 있죠?"

셜리가 대화의 중간에 끼어들었다. 머피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초원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있는 한 여인을 가리켰다. 근처에 총을 든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셜 리가 그 여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카일은 다시 물었다.

"다른 놈이라뇨?"

", 다른 놈이 있어요, 이따금씩 산꼭대기 위를 떠다니곤 합니다. 처음에는 낮은 데까지 내려왔는데 우리가 총으로 겁을 줬더니 그다음부터는 오지 않아요. 아마 한 쌍인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한 놈이 죽으면 포기하겠죠.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당신이 산을 오르는 동안 새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면 우리가 엄호 사격을 하겠습니다."

카일은 머피와 그의 부하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대고 총을 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머피 경관님, 저 위에 오를 때 엄호 사격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격은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 탄환이 튕겨 나온다거나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머피가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일은 등산 장비를 산 쪽으로 끌고 갔다. 사람들 속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그의 옆으로 걸어왔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검은 테 안경을 쓴 창백한 안색의 남자였다. 그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저건 콘도르가 아닙니다."

"뭐라구요?"

"그 새는 콘도르가 아니라구요. 저는 저 바보 같은 사람들이 첫 번째 새한테 총질을 해대기 바로 직전에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안색이 창백한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총을 들고 서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 멍청한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익룡의 날개를 날려 버렸다니까요."

카일은 가다 말고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한테 그 새가 공룡이었다고 말하는 건가요? 익수룡이라구요?"

"물론 그건 아닙니다. 익수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요. 틀림없이 익룡의 한 종류이기는 할 테지만 익수룡은 아닙니다. 오히려 프테라노돈 같아요. 그것들이 익수룡보다 조금 더 크죠. 백악기 시대에 살던 종이죠."

카일은 믿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그렇게 커다란 동물이 그처럼 우아하게 공중을 날다니, 자연의 가장 뛰어난 비행 물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에너지도 보존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요. 관련된 공기 역학은 상상을 무너뜨렸죠. 날개 길이가 늘어날수록 무게는 지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이 정도의 무게는 공중에 뜰 수 없습니다. 골격 안이 비어 있다고 해도 말이죠, 하지만 저 종은 날개 표면을 이용하여 열의..."

"소녀는 어떨 것 같습니까?"

카일이 그 남자의 말허리를 잘랐다.

"글쎄요. 저들은 시체 청소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썩은 고기를 먹죠.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소녀는 외면하기에는 너무 군침 도는 대상이었고, 마침 땅 위에서 들어 올리기에 적당하게 작았던 것이죠. 그래서 아이를 그렇게 습격한 뒤 낚아채 간 겁니다. 자연의 가장 완벽한 비행 기계가 그렇게 한 겁니다. 그리고 저 두 남자가 총을 쏘았습니다. 저 아름다운 익룡이 아니라 그들이 총에 맞아야 했어요."

카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려 총을 가진 두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당신들이 저 괴물을 쏘았습니까?"

두 사람이 불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위에 올라가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한 뒤에 다시 내려오게 되면 저 남자를 한 대 갈기고 싶은데요."

그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창백한 안색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두 분이 대신 해주시겠습니까?"

두 남자는 서로 마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창백한 안색을 한 남자는 얼굴이 더욱 더 하얘지더니 서둘러 사람들 속으로 걸음을 옮겼고, 두 남자가 그 뒤를 쫓았다.

저 얼간이가 뭐라고 했었지? 프테로돈? 카일은 경찰서로 공룡에 대한 이상한 보고들이 들어오고 있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공룡들이 날아다닌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이와 킴벌리가 산기슭에 임시로 만든 기지에 나머지 장비들을 가지고 왔고, 카일은 산의 지세를 살펴보았다. 아래쪽의 돌무덤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위를 오르는 일은 쉬울 것 같았지만 바위 위쪽은 수직으로 깎여 있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등반로를 그리는 동안 셜리가 아이어머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어요. 저 위에 얼른 올라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던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셜리는 아이가 사라졌다는 바위의 돌출 부분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이 등반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카일이 재빨리 대답했다.

셜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두 마리나 있어요, 기억해요? 만약 다른 하나가 우리를 쫓아오기라도 하면 우리는 바위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구요."

셜리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카일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 저 남자 때문에 그래요."

그가 창백한 안색의 남자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 말로는 저기 위에 있는 것이 공룡이라는군요. 세상에! 그는 그 공룡을 프테로돈이라고 불렀어요."

"당치도 않아요. 카일."

"그럼 당신은 콘도르가 어린 소녀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이의 무게가 어느 정도냐에 달렸겠죠."

셜 리가 신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일은 좀 이상하기는 해요. 크리시는 세 살박이에요. 몸무게가 15킬로그램 정도는 될 거예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이를 산 위로 들어 올렸다는 말입니까?"

셜리는 얼굴을 잠깐 찌푸리더니 카일에게 얼은 마음도 녹일 것 같은 미소를 보냈다.

"내가 졌어요. 가요."

"다른 이야긴데, 셜리. 당신이 총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사양하죠. 총을 쏠 줄 몰라요. 결국 당신을 쏠지도 몰라요. 제가 구급함을 들고 가죠."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카일은 총에 맞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얼른 셜리의 말에 동의했다. 첫 번째 임무는 흗어져 있는 바위와 돌무덤 사이를 무사히 오르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해 등산용 쐐기 못을 박을것이다. 일단 첫 번째 못을 박으면, 제이와 킴벌리가 그들의 줄을 고리에 감을 것이다. 제이가 카일을, 킴벌리가 셜리를 밭쳐 주기로 했다. 카일은 산기슭에 서서 마음속으로 훈련 과정을 떠올렸다. 그의 등반 기술은 취미가 아니라 일종의 수단으로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셜리가 다른 사람들은 취미로 주말마다 인공산을 탄 사람들이었다. 킴벌리와 제이가 준비를 마쳤고, 카일은 바위산에 올라가자마자 민첩한 동작을 보이고 있는 셜리의 뒤를 따랐다. 카일은 그녀의 뒤를 따라 산을 올랐으나 셜리를 따라잡았을 때쯤에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셜리는 머리 위의 바위를 살펴보며 등반로를 결정했다. 카일은 셜리에게서 10미터쯤 떨어진 부근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지형을 살펴보았다. 셜리에게는 쉬운 일이 될 것이다.

", 올라갑니다.!"

셜리는 벌써 무릎을 들어 올리고 바위틈에 발끝을 집어놓고 있었다.

"이봐요. 셜리!"

카일이 출발하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영화 좋아해요?"

셜 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마치 데이트 신청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래요. 전에 저 위에 있는 것과 같은 공룡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카일이 엄지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셜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땠는데요?"

"급강하를 한 다음 사람을 통째로 삼켜 버렸어요."

셜리는 머리를 젓더니 웃으며 자신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저 위까지 경주해요, 카일 경관님."

카일이 '올라간다!'라고 소리를 질렀고, 이에 제이가 응답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일은잘 해나가고 있었다. 그가 5미터 정도 올라왔을 때 셜리는이미 그를 앞지르고 있었다. 몇 발자국 더 올라갔을 때 셜리는 '밧줄이 느슨해진다'라고 소리치며 첫 번째 안전장치를 고정시켰다. 카일은 얼른 올라가 그녀보다 몇 미터 위에 자신의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그는 안전장치에 D자형 카라비너를 끼운 뒤 스프링 고리 사이로 밧줄을 넣었다. 안전장치가 몸을 받치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세 번째 안전장치를 박은 후에야 카일은 셜리를 앞서게 되었고, 이 사실에 대단히 만족했다. 그들은 바위의 돌출 부분에 가까워지면서 방향을 바꾸고 바위의 양옆으로 갈라져 올라갔다. 거의 다 올라갔을 때 카일이 셜리에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는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소리도 선사 시대의 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바위 양쪽으로 계속 나아갔지만 누구도 프테라노돈 가까이에 쐐기 못을 박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 카일과 셜리는 바위에 올라가야 했고,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카일은 갑자기 머리를 내밀고 바위 위로 뛰어오른 뒤 총을 꺼내 들 것인지 아니기 머리를 내밀고 바위 위로 뛰어오른 뒤 총을 꺼내 들 것인지 아니면 천천히, 그리고 몰래 바위 위를 훔쳐볼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주의 깊게 살피는 쪽을 선택했다. 카일에게는 조심스러움이 어울렸다. 그는 발판과 손잡이가 될 만한 부분을 찾아낸 뒤 머리를 천천히 바위 가장자리 위로 내밀었다. 그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프테라노돈의 거대한 머리였다. 머리만 해도 2미터는 돼 보였다. 창처럼 길다란 얼굴의 중간에 두 개의 커다란 눈이 붙어 있었다. 카일은 눈이 감겨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프테라노돈의 날개는 바위를 거의 다 덮을 정도였고, 아이는 밑에 있었다. 바위 위에 올라 반대편으로 가자 셜리가 보였다. 그녀는 아이를 찾다가 프테라노돈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녀는 카일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죽었어요?'라고 물었다. 카일 역시 소리는 내지 않고 '그런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셜리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프테라노돈의 날개를 잡았다. 그녀가 날개를 들어 올리자 날개가 쫙 펼쳐졌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새는 부리에 나 있는 콧구멍을 통해 숨을 쉬고 있었다. 카일은 고개를 들고 프테라노돈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새는 머리를 들고 셜리에게 부리를 돌리고 있었다. 뒤통수에 나 있는 벼슬은 카일의 얼굴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카일은 아이를 찾는 셜리를 바라보는 새의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그때 셜리는 날개의 다른 부분을 들어 올리다가 프테라노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을 멈췄다. 카일은 프테라노돈의 벼슬을 잡고 새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발밑이 안전한지 확인한 다음 밧줄을 끌러 바위 위에 잘 놓고, 다리를 천천히 끄며 다가섰다. 셜리가 천천히 날개를 내려놓기 시작하는데 프테라노돈이 입을 벌리더니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리를 창처럼 휘두르며 셜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셜리는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새는 무척 빨랐다. 그녀가 손으로 부리를 잡았을 때는 이미 새가 달려드는 힘에 밀려 그녀 가슴 앞에 부리가 닿아 있었고, 새는 그녀를 바위 끝으로 내몰고 갔다. 무서움을 참으며, 카일은 몸을 바위 위로 끌어 올렸다. 카일이 몸이 바위에 쿵 하고 떨어지자마자 프테라노돈은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새의 벼슬은 갑자기 카일의 손에 멀어졌고, 1미터나 되는 부리에 박혀 있는 검은 두 눈이 이글거리며 카일을 노려보았다. 새는 괴성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카일은 프테라노돈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뛰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바위 위로 다리를 끌어올렸다. 엄청난 날개 크기와 다친 날개는 새에게 방해가 될 뿐이었다. 새는 성한 날개로 카일을 내려치려고 했다. 새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칼에게 달려들었다. 카일은 자갈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지면서 낭떠러지 근처까지 밀려갔다. 새는 아직도 깡충거리며 카일을 부리로 쪼려고 했다. 그는 옆으로 몸을 굴려 양손으로 부리를 꽉 움켜쥐었다. 커다란 날개가 그의 몸과 얼굴을 내리쳤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로 공격을 막아냈다. 셔츠가 찢어지면서 오른쪽 어깨 살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카일은 심한 통증을 느꼈고, 날개 끝에 작은 발톱이 달려있는 걸 알았다. 그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 미쳐 날뛰는 프테라노돈 때문에 몸이 춤을 췄지만 카일은 부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그들은 상대방이 서로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씨름하고 있었다. 부리를 쥐고 있는 카일의 손에, 새의 콧구멍에서 나오는 숨결이 느껴졌다.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엄마, 보고 싶어."

카일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목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크리시? 어디 있니, 아가야?"

"여기, 나 아파."

카일은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날개에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때 셜리의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그녀는 배를 대고 바위 위로 올라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괴물하고 같이 춤추는 것을 봤어요, 카일 경관님, 그것도 근무 시간 중에요. 아주 어울리는 한 쌍이던데요."

그녀가 놀려댔다. 카일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지만 명령조로 말했다.

"아이가 여기 어딘가에 있어요. 목소리를 들었어요. 아이가 보이는지 둘러봐요."

셜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엉금엉금 기어 그 커다란 날개 밑을 살펴보더니 머리를 내밀고 짓궂게 카일을 쳐다보았다.

"이봐요, 카일. 손 좀 빌려줄래요?"

그녀가 날개를 들어 올리자 프테라노돈이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엄마야?"

그 소리를 듣고 셜 리가 갑자기 몸을 돌려 벼랑 쪽으로 가더니 다친 날개 쪽으로 손을 뻗쳤다. 카일은 손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셜리가 새의 다친 날개를 들어 올리자 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셜리는 배를 바닥에 대고 바위 아래의 틈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녕, 크리시."

그녀가 말했다.

"엄마가 보내서 너를 데리러 왔단다."

"아파."

"어디가 아프니, 크리시? 어딜 다쳤지?"

"여기, 그리고 여기도."

어슴프레한 가운데에서도 셜리는 아이의 몸짓을 볼 수 있었다.

"금방 올게, 크리시."

셜리가 달래듯이 말했다.

"아이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녀가 알렸다. 그녀가 몸을 돌려 카일을 쳐다보았다.

"조금 찢어진 데가 있고, 찰과상을 입은 정도에요. 어깨 상처가 제일 심한 것 같고 팔도 다친 것 같아요."

그녀는 카일과 프테라노돈을 번갈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은 손에 쥔 것이 있으니 내가 아이를 돌보아야겠군요."

"셜리, 내 총을 가지고 와서 이놈을 쏘아요. 그러면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잖소,"

셜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머리를 저었다.

"난 어떻게 총을 쏘는지 몰라요. 게다가 당신은 새를 잘 다루고 있는데 왜 죽여야 하죠?"

셜리가 살짝 웃었다. 카일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셜리는 바위 틈 사이로 내려가서 아이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 얼마 후 그녀는 바위틈에서 아이를 조심스럽게 빼내었고 아이를 어르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셜리는 아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아이를 달래며 오른팔에 부목을 댔다. 셜리는 부목을 붕대로 싼 다음 크리시의 가슴 위로 돌려 묶었다. 그런 다음 크리시의 머리에 난 상처에 붕대를 감고 아이의 셔츠를 찢어 내어 상처 부위를 드러나게 했다. 상처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셜리는 그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상처를 쳐다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카일이 올려다보니 또 다른 프테라노돈이 있었다. 새로 나타난 놈은 마치 그들 주위를 맴도는 보잉 727기 같았다.

"친구가 생겼어요, 셜리."

셜리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재빨리 아이의 어깨에 붕대를 감은 뒤 크리시를 바위 가장자리로 데려가 세워 놓았다.

"카일, 척추 교정판은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내가 아이를 직접 데리고 내려갈게요."

그런 다음 셜리는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프테라노돈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한 손에 하나씩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총성이 울리더니 유탄이 날아왔다. 카일의 손에 잡혀 있던 프테라노돈이 몸부림쳤지만 카일은 손을 놓지 않았다. 셜 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손을 흔들었고, 바위 돌출부에 기대어 소리쳤다.

"쏘지 말아요! 지금 내려가요! 아이를 찾았어요."

카일은 마지막 말이 초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의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지 느낄 수 있었다. 셜리는 크리시를 그녀의 가슴에 안고 X자로 줄을 매기 시작했다. 카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기 때문에 매 순간 좌절하고 있었다. 다시 그들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프테라노돈은 아까보다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졌고, 그럴 때마다 그림자의 크기는 커지고 있었다.

"오고 있어요."

카일이 주의를 주었다. 셜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아이를 자신의 가슴에 단단히 묶은 다음 아이의 다친 팔을 가슴 사이에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이제 가야겠어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 다시 올게요."

카일이 대답하려는 순간 두 번째 프테라노돈이 가장자리 쪽으로 몸을 숙이면서 급강하하더니 셜리의 등을 쳐 돌무더기 위로 그녀를 쓰러뜨렸다. 셜리가 고통스러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넘어지는 바람에 상처가 눌린 크리시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카일은 필사적으로 일어나서 프테라노돈을 가장자리 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만약 총을 쏠 수 없다면, 쫓아 버릴 수 없다면 그는 바위 밑으로 이 괴물을 집어 던질 셈이었다. 위험을 깨달은 프테라노돈이 다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카일에게는 이것이 절대로 춤이 아니었고,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프테라노돈은 성한 날개를 이용해 카일을 내리쳤다. 하지만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카일은 바위 끝에 더욱 가까이와 있었다. 카일이 분투하는 가운데 셜리는 옆으로 비켜 모습을 감추었다. 카일은 걸음을 옮기다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으나 손은 여전히 새를 붙잡고 있었다. 일어서는 순간 그의 뒤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나머지 프테라노돈이 그를 덮쳤다. 두 번째 프테라노돈은 부리 끝으로 그를 찔러 대고 있었다. 카일은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고, 두 번째 놈의 공격을 피하느라 첫 번째 놈을 손에서 놓았다. 부리를 놓자 익룡은 뒤로 나동그라졌지만 결국 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카일은 몸을 돌려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부상당한 프테라노돈 위로 쓰러졌다. 새 두 마리가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고, 그 소리에 귀가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는 참고 두 번째 프테라노돈을 향해 돌을 집어 던졌다. 새는 그 거대한 날개를 펴고 다시 공중 위로 떠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카일은 총을 꺼내 날개에 대고 쏘았다. 총소리에 놀란 프테라노돈이 자취를 감추었다. 카일은 몸을 돌려 다친 프테라노돈을 바라보았다. 총은 아직도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가 몸을 돌리자 프테라노돈이 부리로 그를 공격해 왔다. 카일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날카로운 이빨이 나 있는 부리가 그의 팔목 바로 위에서 벌어졌다가 닫히고 있었다. 공룡은 머리를 뒤로 제쳤다. 그 순간 카일은 자신의 팔을 얼른 끌어당겼지만 살이 8센티미터나 찢어졌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카일은 총을 떨어뜨렸다. 프테라노돈이 그의 가슴을 찔러 넘어뜨렸다. 다시 부리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카일은 부리를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밀어냈다. 엉덩이와 가슴, 그리고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고, 다시 프테라노돈을 바위 가장자리로 끌고 갔다. 프테라노돈이 사납게 몸부림치는 가운데 카일은 부리를 자신의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가 밖으로 확 밀어냈다. 프테라노돈은 성한 날개로 바위 끝을 붙잡았으나 몸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카일은 가장자리로 걸어가 발로 성한 날개를 걷어차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었다. 새는 이제 정말로 무력해져서 그의 밧줄에 매달리지만 않는다면 카일에게는 어떤 위협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가 내려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크리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카일은 재빨리 발을 들어 올려 날개를 짓밟아 부러뜨렸다. 비명을 지름 공룡은 낭떠러지로 떨어졌고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에서 버둥대다가 마침내 바위에 부딪혔다. 그리고는 잠잠해졌다. 카일은 몸을 굽히고 셜리와 크리시를 찾았으나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돌출부에 시야가 가려 있었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른 프테라노돈은 아래쪽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프테라노돈이 모습을 감추자 또 다른 비명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익룡은 다시 그의 발밑에 와 있었다. 카일은 총을 찾았다. 그가 총을 찾기 위해 가장자리 쪽으로 가는데 비명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잡았다.

그는 밧줄을 집어 들고 자신의 성한 손목과 팔에 줄을 감은 뒤 프테라노돈이 자신의 밑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프테라노돈에게 덤벼들어 발로 걷어찼다. 카일은 '낙석이다.'라고 소리쳤고, 제이가 잘 피했기를 빌었다. 카일은 프테라노돈에게 달려들었고, 그의 몸에 달린 밧줄은 마치 번지점프 연결줄처럼 죽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밧줄은 탄력성이 거의 없었다. 그가 몸을 아래로 날리자 순간 낭떠러지가 보이는 것 같더니 다시 몸이 위로 출렁거렸다. 프테라노돈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옆으로 빗나갔다. 그는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빌었다. 카일이 바위 돌출부 아래에서 보니 셜리와 크리시는 반대편에 매달려 있다가 킴벌리의 도움을 받아 내려가고 있었다. 프테라노돈은 계속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카일은 팔을 쭉 편 채 활공을 하며 방향을 바꾸고 거리를 좁혀보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때 프테라노돈이 오른쪽 날개를 축으로 공중을 선회하더니 천천히 움직였다. 카일이 날개를 치려고 팔을 뻗자 밧줄이 손에 닿았다. 밧줄이 그의 손목을 꽉 조이면서 피부가 벗겨졌고, 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는 자유로운 손으로 얼른 밧줄을 잡아 더 이상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다리를 밑으로 내려 발로 프테라노돈의 날개를 밟았다. 카일은 팽팽하게 펼쳐진 날개 위로 생긴 신발 자국을 보았고, 있는 힘껏 날개를 박차고 위로 올랐다. 프테라노돈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발길질을 피해 낭떠러지 쪽으로 날아갔다. 밧줄이 흔들리다가 멈추면서 도망치는 익룡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는 팔로 중심을 지탱한 채 산허리를 향해 몸을 움직여갔다. 그는 오른쪽 무릎과 다리가 터져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의식을 조금씩 잃고 있었다. 서서히 눈 앞의 바위가 움직였다. 공포에 질린 그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밧줄은 피범벅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아직 안전했다. 그 순간 카일은 제이가 자신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잠깐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사람들이 그를 반듯하게 눕히고 다친 다리를 펴고 있었다. 온몸이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등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그를 돌려 눕힌 뒤 바지의 엉덩이 부분을 찢어냈다. 카일은 사람들이 한참동안 자신의 엉덩이를 치료한 다음 압박 붕대를 대는데도 부끄러워할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엎드리게 한 그 상태로 실어 갔다. 그의 벌거벗은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카일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누군가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가 눈을 떠 보니 셜리의 갈색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리시는 괜찮을 거예요."

카일은 알아들었다는 신호로 웃음을 지었다. 셜리는 그의 드러난 엉덩이를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에요."

그러더니 셜리는 그의 볼에 입 맞추었다.

 

66. 노아의 방주

문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태동되어 왔다. 바빌론, 우르, 또는 고대 과테말라든지 간에 그 문명들의 비전들은 이 사실을 이해했고, 수학을 이용해 왜 그들의 문명이나 다른 문명들이 만들어졌다가는 사라지는 것인지 풀려고 애썼다. 우리의 무영은 그런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유일한 문명일지도 모른다.

캐리 심킨스 박사, 수학과 예언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수요일 오후 1230(태평양 표준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커비가 앞장을 섰고, 엘렌과 존이 번갈아 가며 리프먼과 함께 걸었다. 오토바이 소리는 계속 들려왔지만 더 이상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멀리서 세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다른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두 발의 총성이 들렸다.

"공룡이 저자들을 덮친 걸까. 커비?"

존이 물었다.

"모르겠어."

커비가 조용히 대답한 뒤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어떻게 알겠니?"

엘렌이 보기에 커비는 리더로서의 역할이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성급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는 자신의 집에 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오토바이 소리를 피해가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 결정해야 했다. 엘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커비는 걸음을 늦추고 다른 세 사람과 나란히 걸었다.

"너희들이 오토바이를 망가뜨렸니?"

리프먼이 고개는 들지도 않고 물었다.

"그래, 우리가 했어."

커비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들이 로버츠 부인과 다른 부인을 뒤쫓는 것과 네가 로버츠 부인을 숲속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고 나하고 존이 날이 어두워진 뒤에 그들의 야영지로 숨어 들어갔어, 그리고 선을 끊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너를 쫓아갈 수 없었던 거야,"

"하나는 빼놓고 말이지"

"그건 존이 만졌던 걸 거야."

커비가 대꾸했다.

"커비, 이런 못된 자식, 고장나지 않은 것이 어떤 건지도 모르잖아."

"그건 그래, 그런데, 다른 부인은 어디에 있어?"

리프먼이 마침내 얼굴을 들고 엘렌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엘렌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세한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커비와 존은 엘렌의 아픔을 알아차렸고, 커비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는 죽은 남자한테서 이총도 뺏었어."

커비가 총을 쳐들며 말했다. 엘렌의 뇌리에 또 다른 광경이 아주 끔찍한 광경이 그쳐 지나갔다. 엘렌은 아이들이 누구의 총을 가져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는 아이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이런 기억들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부정하고 억눌러야 했다.

"니네들, 정말 기본이 됐어."

리프먼이 말했다.

엘렌은 리프먼의 칭찬을 듣고 커비와 존의 얼굴이 환해졌다는 걸 눈치챘다.

"하나만 빼고 말이야."

리프먼이 계속했다.

"너희들은 저기 있는 바보들한테 모두 총알을 써 버렸잖아."

"또 틀렸어, 셜록 선생."

존이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서 두 개의 탄창을 꺼내며 말했다.

"이제는 탄창 갈아 끼우는 방법만 알아내면 돼."

커비는 걷는 도중 총을 떨어뜨렸고, 총구를 돌려 발사 장치로 보이는 것을 밀었다 당겼다. 엘렌과 존은 총구가 자신들을 향할 때마다 움츠러들곤했다. 마침내 리프먼이 코방귀를 뀌고 말했다.

"네가 다른 사람을 쏘기 전에 내가 탄창을 바꿔 끼울게."

커비는 마지못해 총을 넘겨 주었다. 리프먼은 몸을 약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존과 커비는 리프먼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리프먼이 몸을 돌리자 빈 탄창이 총신에서 빠져나왔다. 존은 다른 탄창을 건네주었고, 리프먼은 그것을 총자루에 밀어 넣고 손바닥으로 탁하고 쳐 올렸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탄창을 갈아 끼우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고, 그때서야 엘렌은 리프먼이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리프먼이 존과 커비의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어야 한다는 걸 엘렌은 눈치챘다. 존과 커비는 기꺼이 리프먼에게 우정을 나누어 주었지만 리프먼은 우정을 자신의 힘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으로 아니면 사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리프먼은 어느 것도 공짜로 쉽게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커비와 존의 우정은 리프먼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보상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은 뭔든지 그저 받아들이지 못하는 리프먼이 자신의 지식의 지식, 몇 가지 기술등을 내보이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오초바이를 망가뜨리고 총을 얻는 과정에서 존과 커비가 보여준 뛰어난 재치는 리프먼이 친구들간에 우지하고 있던 이런 균형을 깨뜨린 셈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자립심은 리프먼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고 느끼던 유용함들, 기술들의 가치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래서 리프먼은 그들이 오토바이 한 대를 망가뜨리지 못한 것을 비웃고 총에 탄창을 갈아끼움으로써 자신의가치를 회복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랬고, 엘렌은 기꺼이 리프먼이 당분간 우월함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커비가 손을 내밀었다. 리프먼은 망설이더니 커비의 손바닥위에 총을 털썩 내려 놓았다.

"나한테 활이 있으면 좋을 텐데, 총은 그저 보조물일 뿐이지만, 활은..."

"리프먼, 알아."

커비가 말을 끊었다.

"활은 기본이야."

존이 커비와 함께 그 말을 합창하자 아이들은 셋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러면서 그간의 간장감이 풀어지고 우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들은 좋은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기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엘렌은 점점 참을성을 잃고 있었다. 그들은 계획이, 목표가 필요했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가능한 한 빨리 이 공룡의 땅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녀가 말하려는 순간 리프먼이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커비... 진짜 사라져 버렸어. 포틀랜드는 이제 없어. 넌 집에 갈 수 없어."

리프먼은 달래는 듯이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서 연민이 우러나왔다.

"있어! 봤단 말이야!"

"나도 봤어, 커비. 하지만 뭔가 이상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하고, 그 자리에 나타났을 때에도 정말 포틀랜드가 거기에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

커비는 묵묵히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고, 엘렌은 주저했다. 그녀는 이미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녀와 존은 가능한 빨리 여기를 벗어날 것이다. 만약 포틀랜드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집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이 사라지고 없을 터였다. 그녀는 아들을 찾았고, 남편도 딸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잃은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자신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추억이 담긴 물건들일 뿐이었다. 그런 건들은 가족들에 비하면 하찮았다. 그녀는 커비와 리프먼의 가족의 안전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 때문에 모험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와 존은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나도 도시가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은 알아. 리프먼, 하지만 이건 중요한 일이야."

커비가 말했다.

"우리 가족이, 엄마와 아버지가 거기에 계신단 말야. 이게 휴거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인정할게. 하지만 이건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대 역사야. 이 일이 생긴 데에는 목적이, 큰 계획이 있는 거야. 우리 아버지는 그걸 아실 테고, 당장 설명해 주실 수도 있을 거야. 너희들이 나와 꼭 같이 갈 필요는 없어."

커비가 말을 끝냈다.

"난 포틀랜드로 갈 거야."

커비의 결정은 엘렌의 결심만큼이나 확고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커비에게 선택을 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커비, 우리와 함께 가서, 네가 원할 때까지 우리랑 같이 살자꾸나, 너희 어머니의 친척이 조지아주인지 어딘지 살고 있다고 들었어. 아마 친척들하고 연락이 닿을 거야. 리프먼 너도 같이 가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밝혀낼 때까지 해변에 있는 집으로 가 있자."

엘렌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이 완곡하게 거절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헬리콥터가 되돌아오는 소리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엘렌은 멀리서 소리가 들려 오자 나무가 덜 우거진 곳을 찾아 하늘에 대고 손을 저었다. 헬리콥터는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는 멀리서 잦아들었다. 잠시 후 숲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 때 기계가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다가 사라졌고, 다시 들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럴 때마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뒤를 쫓고 있어요."

리프먼이 말했다.

"숨어야 돼요."

하프먼이 앞장섰지만 그는 많이 다쳐 있었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지 못했다. 리프먼 만큼이나 지치고 굶주려 있는 엘렌조차 그를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앞에 있는 나무 위에서 뭔가 움직였다. 리프먼은 성한 눈으로 그것을 발견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엘렌은 나무 뒤에 초록색 길다란 꼬리가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머리는 보지 못했다. 그게 뭐든 간에 그놈은 만족해하는 것 같았고, 그들은 짐승을 무시하고 달려갔다. 리프먼은 그들을 조그만 초원으로 데려갔다. 초원 한편에는 새나무들이 벌써 자라 있었다. 리프먼이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여기는 좋은..."

그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뒤에서 나는 소리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들이 리프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공룡이 그들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공룡은 크기가 앤지를 잡아먹은 놈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아가리는 사람을 한입에 삼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커비는 총을 겨누고 공룡이 올 때를 기다렸다.

"쏘지마, 커비, 공룡을 미쳐 날뛰게 만들기만 할 거야. 모두 다 넓게 퍼져서 천천히 뒷걸음쳐요."

리프먼이 명령했다. 엘렌은 뛰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리프먼의 말에 따랐고, 눈으로 존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리프먼 바로 곁에 있었고, 그 옆에 커비 그리고 존이 제일 끝에 있었다. 그녀는 생각 없이 존을 떨어진 곳에 놔둔 자신을 원망했다. 초원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공룡은 잘 발달된 근육질의 꼬리를 질질 끌며 엄청난 크기의 두 뒷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앞발은 크기는 작았지만 강해 보였다. 세모꼴의 머리를 한 공룡의 커다란 아가리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나 있었다. 공룡이 내뿜는 숨결은 술 냄새처럼 매우 역겨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그 눈이었다. 왼쪽 눈은 갈색으로 올리브색 살가죽과 구별할 수 있었지만 오른쪽 눈은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른쪽 눈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피가 검게 얼룩져 있었다. 존은 숨을 몰아쉬었고, 커비가 '외눈박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엘렌은 들었다.

공룡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지만 성한 눈으로는 그들 모두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뒷걸음치고 있었기 때문에 공룡은 그들을 잘 볼 수 없는 것 같았고, 그럴수록 머리를 더 심하게 흔들었다. 공룡은 혼란스러운 듯 초원 가장자리에 서서 머리를 계속 흔들더니 뒷걸음치는 그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그동안 천천히 도망쳤다. 그들은 이제 숲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공룡이 다시 앞으로 오고 있었다. 엘렌은 공룡의 머리가 크게 혼들리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공룡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그들이 차례로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머리가 다시 움직이기까지 그들은 아주 귀중한 몇 초를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이 방법을 말해주려고 하는 순간 커비가 돌부리에 발이 걸리면서 뒤로 넘어졌고, 그가 들고 있던 총이 허공을 향해 발사되고 말았다. 그 순간 공룡은 포효하며 커비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리프먼이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엘렌은 그를 따라 했지만 공룡의 먼눈에는 엘렌과 리프먼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도 공룡의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커비가 공룡의 가슴에 대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박힌 총알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총성에 놀랐는지 공룡은 커비 바로 앞에서 멈추더니 머리를 뒤로 젖히고 땅이 떠나갈 것처럼 울부짖었다.

존이 커비에게 뭐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커비는 마지막 총알을 공룡에게 쏜다음 총을 떨어뜨렸다. 그는 존이 여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탄창을 빼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엘렌이 할 수 있는 것은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총알이 박힌 곳에서 흐르는 피가 공룡의 가슴을 적셨다. 공룡은 입을 벌린 채 커비의 머리를 노려보았고, 커비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커비는 쓸모없게 된 총을 공룡의 입속에 던지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 공룡은 머리를 흔들다가 총을 엘렌과 리프먼 쪽으로 뱉어냈다. 엘렌은 총이 장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존이 반대편에서 나무 막대로 공룡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엘렌을 보지 못한 공룡은 존을 대신 공격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면서 움직인 꼬리가 엘렌을 향해 날아왔고 총을 찾느라 구부리고 있던 엘렌은 오른쪽 어깨를 맞고 나무 쪽으로 굴렀다. 그녀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팔을 내밀다 나무에 부딪히면서 오른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에 그녀는 땅에서 뒹굴었고, 공룡은 꼬리를 휘둘러 나뭇가지들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잠시 후 공룡은 꼬리를 엘렌 쪽으로 내리쳤다. 엘렌은 부러진 팔을 추스리고 몸을 굴렸다. 꼬리는 그녀의 뒤를 쳤고, 잠시 후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나무 사이에서 빠져나오는데 웬 팔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리프먼이었다. 눈가에 어린 눈물 속으로 나무 막대로 공룡을 찔러대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는 커비와 존의 모습이 보였다. 두 아이는 서로 떨어져 있었는데 커비는 공룡의 보이지 않는 눈 쪽에 있었기 때문에 공룡은 커비를 잡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을 태운 오토바이가 초원으로 들어섰다. 이제 엘렌의 공포는 희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공룡은 재빨리 몸을 돌려 새로 나타난 위협자들을 바라보았고 몸을 돌리는 공룡 꼬리가 초원을 휩쓸고 지나갔다. 꼬리를 피하기 위해 존과 커비는 풀 속으로 몸을 던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리프먼의 도움을 받아 일어난 엘렌은 숲으로 도망쳤다. 세 방의 총성이 빠르게 터져 나왔고, 엘렌은 공룡이 오토바이를 공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버틀러가 시동을 다시 거느라고 애쓰는 동안 칼은 오토바이 뒤에서 공룡이 땅 위에서 쓰러질 때까지 소총을 쏘고 있었다. 칼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버틀러가 칼에게 뭐라고 말했지만, 엘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칼이 다시 총을 꺼재 들었다. 엔진은 꺼졌고, 주위는 조용해진 가운데 죽어가는 공룡의 헉헉대는 숨소리와 칼과 버틀러가 승리를 자축하며 공룡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총성이 하늘을 울렸다. 리프먼이 걸음을 재촉하며 팔을 잡아당겼지만, 그녀는 망설였다. 그녀는 눈으로 아들을 찾고 있었다. 존과 커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리프먼이 더 세게 그녀를 잡아당겼고, 그녀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공룡의 뒷다리가 약간 들리면서 꼬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온몸을 마비시킬 것처럼 무시무시한 괴성을 질러대며 공룡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고, 성한 눈으로 칼과 버틀러를 노려보았다. 공룡은 그 근육질의 뒷다리로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인간들을 쳤다. 버틀러가 두 발을 연달아 쏘았다. 동시에 칼은 공룡을 피해 몸을 던졌다. 버틀러는 총을 버리고 두 팔을 들어 공룡을 피하려는 헛된 노력을 해보았지만 결국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공룡의 몸뚱이를 피하지 못했다. 엘렌은 뛰려고 애썼지만 움직일 때마다 팔이 흔들렸고,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마침내 리프먼이 그녀를 부축하기 위해 팔을 그녀의 허리에 둘렀다. 갈비뼈도 팔만큼이나 아팠다. 그래서 리프먼의 부축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들이 엘렌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속도를 힘들여 맞추었을 때 그들의 앞나무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리프먼이 엘렌과 함께 몸을 돌려보니 칼이 서 있었다. 그의 다리에 매인 붕대는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와 새로 흘리는 피로 범벅이 되어 검게 변해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셨고, 허세는 이제 간 곳이 없었다. 칼은 총을 들어 그들에게 겨누었다. 엘렌은 그의 눈에서 불타오르는 적개심을 보았다. 그녀는 리프먼의 팔을 떼어내고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있지 않으면 그 반자동 소총은 그들 모두를 한순간에 죽일 것이다.

"다시 움직여 봐, 엘렌. 난 너희들 둘을 모두 죽여 버릴 거야."

엘렌과 리프먼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칼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칼이 시선을 리프먼에게도 돌렸다. 그는 총으로 리프먼의 배를 찔렀다.

"이봐, 꼬마야. 네게 큰 신세를 졌어. 지금 엘렌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그러니까 너는 내 친구 바비를 뒤에서 쏘았고, 밀러를 저 공룡 밥으로 만든 다음 우리에게 여기를 빠져나갈 방법을 알려준다고 속였어. 너와 네 친구들은 공룡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괴물을 해치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 셈이야. 그걸로 거래는 끝났어. 우리는 약속을 지켰어. 너와 엘렌을 보내 주었지만, 너는 우리를, 나를 죽이려고 했어!"

엘렌은 다시 칼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키쉬톤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요, 그도 죽었어요?"

"어떤 빌어먹을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공룡이 그의 머리를 물어뜯었어. 그게 키쉬톤에게 일어난 일이야. 하지만 그놈이 일을 끝냈을 때 그놈의 머리통에 내가 일어난 일이야. 하지만 그놈이 일을 끝냈을 때 그놈의 머리통에 내가 다섯 방의 총알을 박아 넣었어. 내가 저놈의 어미를 죽였어. 저것보다... 저기 죽어 있는 것보다 두 배는 더 컸지."

마지막 친구까지 죽어 버렸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칼의 눈이 흐려졌다. 이제 그는 혼자였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눈은 잔인하게 변해 있었다.

",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어요. 저 아이만 다치게 하지 말아요."

엘렌이 애원했다.

"준다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뿐이야. 만약 지옥을 갖고 싶다면 그걸 가진다구."

칼이 다시 리프먼에게 총을 들이대는 순간 커비의 위협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엘렌의 오른쪽에 있는 나무에서 울려 나왔다.

"움직이지 마, 이 버러지 같은 인간아. 안 그러면 널 날려 버리겠어."

칼은 몸을 돌리더니 목소리 쪽을 향해 두 발을 쏘았다. 다시 경고가 들렸고, 세 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칼이 쓰러졌다. 엘렌은 너무도 놀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칼은 커비를 향해 총을 쏘았는데 등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쓰러진 것이다. 커비가 엘렌의 오른쪽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존은 권총을 든 채 왼쪽에서 나타났다. 안도감과 함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들이 사람을 죽인 것이다.

리프먼은 커비와 존을 초원으로 보내 버틀러의 총과 총알을 가져오도록 했다. 그들이 초원에 간 동안 리프먼은 엘렌의 팔 길이에 맞추어 세 개의 나뭇가지를 사냥용 칼로 잘라냈다. 그러더니 칼의 옷을 찢어 내어 긴 끈을 만들었다. 엘렌의 부러진 뼈는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리프먼은 뼈를 맞추려고는 하지 않았다. 부목이 아픔을 가셔주지는 못했지만 붕대를 어깨에 묶었기 때문에 팔이 덜 움직였다. 리프먼이 응급 처치를 마쳤을 때 그들의 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리프먼이 칼의 총이 있는 데로 달려가 소리가 나는 방향에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소리는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리프먼이 소리치며 숲을 가리켰다. 엘렌은 그걸 보기 위해 일어서야 했다. 커비가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고, 존은 그 뒤에 앉아 커비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커비는 오토바이를 처음 타 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기어는 맞지 않았고, 커비는 계속해서 시동을 꺼먹고 있었다. 커비는 발판을 구르다가 앞으로 넘어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존도 같이 쓰러지곤 했다. 리프먼은 고개를 흔들더니 마구 웃어댔다.

"촌스럽게 오토바이도 못 타는군."

마침내 그들이 비틀거리며 리프먼에게까지 왔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노고를 인정했다.

"마침내 너희들이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해냈구나, 연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니?"

탱크에는 4분의 1 정도의 가스가 남아 있었다. 리프먼조차도 그걸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멀리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 모두 오토바이에 올라탈 수 없었기 때문에 엘렌은 리프먼에게 존과 커비를 먼저 데리고 가라고 고집했다. 존은 엘렌이 먼저 가라고 고집부렸고, 커비는 모두 다 같이 가자고 주장했다. 그는 포틀랜드를 발견할 경우 그 안으로 들어가 보기를 원했다.

커비는 엘렌이 의사에게 가 봐야 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가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들은 그런 다음 누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을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엘렌은 단지 권총만 가지고 가기를 바랬다. 존은 그녀가 라이플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우겼다. 커비는 존과 자신은 무기 없이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가리키며 엘렌이 라이플을 가져가는 데 찬성했다. 리프먼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행운을 기원한 다음 엘렌 옆에 섰다. 오토바이가 있으면 공룡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권총만 가져가기로 했다. 코비와 존은 칼의 시체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시체 청소부들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세 아이들은 다시 만날 계획을 세웠다. 리프먼은 자신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고, 커비와 존은 엘렌이 오토바이 뒤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 존이 엄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엘렌은 뒤돌아보기가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아들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외면했다.

 

67. 탈출

... 산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계곡은 갈라지고 밀랍은 불 앞에서 비탈길을 흐르는 물처럼 녹아 내릴 것이다.

미가서 1:4

오레곤주 웜스프링즈 인디안 보호 구역 수요일 오후 452(태평양 표준시)

피트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무 줄기에 바싹 붙어 서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속옷은 오레곤의 가을 날씨를 막을 수 없었다. 물을 첨벙대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물고기들이 호수에 더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쿰 박사와 필쳐 박사도 그 물고기들을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물고기는 다리로 걸었고, 폐로 숨을 쉬었으며 물속에서는 헤엄을 쳤다. 반은 어류였고 반은 포유류로 수많은 다른 변종들과 마찬가지로 둘 사이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살던 종으로 육지에 살던 공룡보다 더 오래된 것일지도 몰랐다. 필쳐 박사였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너무 일찍 목숨을 잃었다. 피트라는 단 하룻밤도 공룡과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추위에 몸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팔다리를 움직였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뛸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녹자 그녀는 공룡시체 쪽으로 기어갔다.

피트라는 다시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쪽은 가장 끔찍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시체를 보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시체에 붙어 있던 살은 거의 다 뜯겨져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뼈만 앙상했다. 엄청난 피가 뼛조각들 주위에 시냇물을 이루고 있었고, 제각기 다른 크기의 공룡 십여 마리가 시체 주변에 남아 뼈를 갉아 먹거나 남은 살을 파먹고 있었다. 작은 공룡 하나는 머리에서 가죽을 벗겨 내고 있었다.

피트라는 자신이 너무 오래 기다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공룡들은 시체를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가고 있었고 그 광경으로 보아 청소부들은 부드러운 조직은 모두 파낼 것이다. 공룡들이 콜터까지 모조리 먹어 치우는 건 아닐까? 아직 그가 저 피바다 속에 살아 있을까? 피트라는 총을 들고 천천히 나무 사이를 지나가다가 공룡들과 마주쳤다. 모든 공룡들이 3미터 이상은 돼 보이지 않았다. 큰 공룡들이 자신들의 배를 채운 다음 자리를 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3미터 크기라고 해도 끔찍한 것은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지르며 공룡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리는 큰 공룡에 비하면 처절할 정도였지만 작은 공룡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공룡에게 달려들다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공룡 근처에서 공중에 총을 한 방 쏘았고, 그 소리에 시체를 먹던 공룡들이 흩어졌다. 다시 한번 피트라가 총을 쏘자 공룡들은 더 멀리 물러났다. 이제 콜터를 찾아야 했다.

"콜터? 콜터?"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콜터, 아직 거기 어디에 있어?"

피트라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피로 시내를 이룬 풀숲을 철벅거리며 걸어서 시체 쪽으로 갔다. 그런 다음 용기를 내 손을 뻗어 아직 남아 있는 공룡의 갈비뼈를 밀어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피트라는 맨살이 드러난 어깨를 뼈에 대고 있는 힘을 다해 공룡의 시체를 밀었다. 아직도 꼼짝하지 않았다. 뼈들은 몇 톤은 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시체를 움직여 콜터를 찾아낼 가능성은 없었다. 이제 오직 두 가지 선택이 남아 있었다. 다시 땅을 파던가 아니면 시체 안으로 기어들어가 뼈를 통과해야 했다. 피트라는 시체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며 총을 들었다. 시체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직 조금 붙어 있는 피부 껍질들이 그에 따라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피와 붉은빛의 허접쓰레기들을 뒤집어쓴 것이 시체 밖으로 쑥 나왔다. 그 물체는 일어나다가 뒤로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려고 덜렁거리는 살갗을 붙잡고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와 같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서 콜터는 공룡 몸속에서 그렇게 나타났다. 피트라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을 정도였고, 그에게 달려가 그를 자신의 무릎에 눕혔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서야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무릎에 누워 있는 그를 토악거리며 함께 울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의 얼굴과 머리를 닦아 내고 있었지만, 땅도 피가 흥건했기 때문에 피를 씻어 버릴 곳이 없었다. 피트라는 콜터의 찢어진 셔츠를 조심스럽게 벗겨 냈고, 그의 몸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가슴에 일자로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뼛조각 같은 것들이 상처 속에 박혀 있었다. 피트라가 손을 뻗어 파편들을 빼냈다. 상처를 건드리자 콜터는 울다 말고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야, 아프단 말야. 피트라!"

피트라는 구슬프레 웃었다.

"콜터, 네 가슴 위로 깊은 상처가 나 있어. 공룡 밑에 깔렸다가 살아났으면서 작은 파편을 가지고 불평을 해?"

"아주 많았었어."

그가 대답했다.

"손이 닿는 대로 내가 다 빼낸 거야."

"그 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어?"

"거의 죽을 뻔했지."

콜터는 입을 다물고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공룡이 쓰러지기 시작할 때 바닥에 바짝 붙어 누웠어. 공룡이 내가 몸을 숨기기에 충분한 공간을 이미 파 놓았거든, 내 생각에는 공룡이 쓰러질 때 부러진 갈비뼈의 파편이 내 몸에 박힌 것 같아."

피트라는 그의 가슴에 난 상처에 대해 물으려고 했지만 콜터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네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어. 하지만 소용없었어.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거든. 그러는데 다시 시체 뜯는 소리가 들렸어. 밑에서 들으면 그 소리가 얼마나 끔찍한지 넌 상상할 수 없을 거야. 내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어."

콜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피트라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이제, 괜찮아. 콜터, 넌 밖으로 나왔어."

"그러더니 피가 나오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그냥 축축하기만 했어. 나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짠 냄새가 나고 있었어. 계속 피는 흘렀고, 내가 들어가 있던 구멍을 채우기 시작한 거야. 다른 체액들도 함께 흘러나왔어."

"생각하지 말아. 콜터."

"하마터면 피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다구!"

"이제 가자, 콜터."

"정말, 너무 끔찍해."

"콜터. 공룡이 돌아올지도 몰라."

"나도 가고 싶어. 나도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어."

"그래 콜터 나도 그래."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피트라가 총을 집어 들었고, 그들은 비틀거리며 나무들을 지나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모노클로니우스는 아직 초원에 서 있었지만 그들이 초원을 가로질러 가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반대편에 있는 커다란 관목들 사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피트라는 덤불이 싫었다.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덤불을 소리 내어 밟고 지나갔다. 피트라는 차를 보고 걸음을 늦추었다. 차 주변에 두 개의 뼛조각 뭉치들이 쌓여 있었다. 피트라가 콜터에게 좀 더 빨리 걷도록 재촉했다. 걸으면서 피트라는 육식 공룡은 없는 불안한 듯 주위를 살폈다. 이제 차는 가까이에 있었다.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차가 있으면 그들은 멀리 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바였다. 그녀의 열망이 커질수록 다시 습격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졌다. 드디어 차 앞에 도착했고, 피트라는 문을 열고 콜터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주위를 살펴본 다음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차를 떠나지 않으리라 맹세를 하며 그녀도 안으로 들어갔다. 콜터는 그녀에게 1리터짜리 오렌지 주스 병을 건네주고는 자신도 주스 병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다음 콜터는 자동차 뒤 칸으로 가서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피트라도 그의 옆에 누웠지만 담요 밑에서 뭐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다시 벌떡 일어났다. 사라였다. 피트라는 새끼 공룡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라는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는데 처음과는 달리 피트라를 보고 겁먹지 않았다. 놀랍게도 사라는 뒤뚱거리며 걸어와 침대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콜터의 다리로 뛰어들었다.

"피트라."

콜터가 중얼거렸다.

"쟤네들 먹이 좀 줄래?"

냉장고를 열고 피트라가 사과를 꺼내 사라에게 굴려 보냈다. 그런 무스가 캐비닛 위에서 내려와 콜터 옆으로 다가오더니 바닥 위에 앉은 것이었다. 피트라가 다른 사과를 던져주자 무스는 재빨리 자기 몫을 들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피트라는 작은 공룡들이 보여주는 믿음에 놀라고 있었다. 공룡들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콜터 옆에 누웠고, 그들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피트라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무스가 콜터 옆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가 무스를 건드리자 무스는 벽을 긁으며 캐비닛 위로 도망갔다. 피트라는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콜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피와 붉은 덩어리들이 뒤범벅이 되어 말라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몸을 일으켜 수건에 물을 묻힌 다음 그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뜨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콜터, 얼굴에... , 옷을 잠깐 벗을래? 몸이 온통 엉망이야."

콜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앉더니,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이제 피트라는 그의 가슴에 난 상처를 보다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피가 말라붙어 있었지만 상처는아주 깊었고, 꿰매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더 이상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피트라는 상처를 소독하기로 했다. 콜터가 피에 절은 바지와 속옷을 벗었고, 벽장에서 꺼낸 깨끗한 바지와 셔츠로 갈아입었다. 피트라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자신은 콜터만큼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온통 피와 때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피트라는 젖은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 냈다. 그런 다음 나머지 부분들을 닦아 내기 위해 브래지어와 피 묻은 팬티를 벗었다. 그녀는 엉덩이에 딱지가 앉은 것을 발견했다.

"잠깐, 내가 해줄게."

콜터가 손을 뻗어 수건을 집으며 말했다. 피트라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는 완전히 옷을 차려입고 있었고. 그녀는 알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몸을 돌려 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심하지는 않아."

콜터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다행이야. 내 옷 좀 꺼내줘."

피트라가 팔로 자신의 작은 가슴을 가리며 돌아섰을 때 그녀는 콜터의 얼굴에 떠오른 이상한 표정을 보았다.

"... 나 말이야..."

콜터는 말을 맺지 못했다. 그의 뒤쪽에서 뭔가 덜컥거리고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살폈다. 피트라는 콜터 뒤에 숨어서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아보았다. 콜터가 마루 부근의 캐비닛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 손을 내밀더니 망설이다가 그 물체를 확 잡아당겼다. 새끼 공룡이 굴러 나오는데 아직도 몸 아래쪽은 껍질에 싸여 있었다. 30센티미터 정도 길이에 살갗은 봄에 돋은 잎사귀처럼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 공룡의 목에는 작고 연한 깃이 달려 있었고, 꼬리는 짧고 뭉툭했고, 주둥이에는 작고 굽은 뿔이 달려 있었다. 틀림없는 새끼 모노클로니우스였다. 콜터가 손으로 나머지 껍질을 벗겨 낸 뒤 피트라의 몸을 닦아주던 수건으로 공룡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너무 귀엽다. 그치, 콜터?"

"물론 지금은 귀엽지, 무게가 몇 톤 나가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귀엽지 않을 거야."

콜터가 새끼를 집어 들어 피트라에게 넘겨주었다. 새끼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녀가 안자 꿈틀대기 시작했다.

"뭘 먹여야 하지?"

"몰라, 아마 으깬 과일은 먹을지 몰라. 그리고 우유도, 무스와 사라는 모두 먹는 것 같았거든."

"빨리 알아봐야겠다."

피트라가 새끼를 사라의 담요 위에 내려놓자 사라는 킁킁 냄새를 맡았지만 적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피트라는 콜터에게 몸을 돌리고 물었다.

"먼저 내 옷은 어디에 있어?"

"저 말이지... 난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몰라. 내 말은 네가 살아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거지. 어쨌든 그 물고기로부터 어떻게 도망쳐 나왔니?"

"화제를 바꾸지 마. 내 옷은 어디에 있어?"

"다 던져 버렸어."

"콜터! 왜 그랬어?"

마침내 그는 용기를 내어 피트라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네 물건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났어.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말이야. 그건 나에게도 힘든 일이었어. 너무 가슴 아픈 상처였단 말이야."

피트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불과 몇 마디밖에는 안 했지만 피트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포옹한 뒤 화가 난 시늉을 했다.

"대단해. 사람이 죽자마자 바로 물건을 팔아넘기다니. 그럼 뭘 입어야 하지?"

"지금 그대로가 좋아."

"나 혼자만 벗고 있는 건 싫어."

"그럼 내가 너한테 맞출게."

콜터가 제안했다.

"그럴 필요 없어. 우리 둘 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피트라가 몸을 돌려 여러 개의 캐비닛을 열어 보더니 콜터의 스웨터를 찾아내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옷은 그녀의 엉덩이 밑까지 내려왔지만 그녀는 아직도 옷을 입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콜터의 바지는 너무 컸기 때문에 그녀는 사각팬티를 입기로 했다. 앉을 때마다 팬티 앞부분이 자꾸 벌어졌기 때문에 그녀는 핀을 찾아 벌어진 틈을 막았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지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피트라는 복숭아 통조림을 따서 복숭아를 으깬 다음 수저로 떠서 새끼 공룡의 입에 넣어 주었다. 새끼는 반사적으로 우물거렸다. 피트라는 새끼가 복숭아 통조림을 삼켰다고 생각되었을 때 복숭아 시럽을 약간 먹여 보았다. 대부분이 목으로 흘러 깃을 적셨다. 콜터가 재미있다는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고아는 뭐라고 부를 거야?"

피트라는 복숭아 통조림통을 옆으로 밀어내더니 새끼 공룡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새끼는 땅을 딛고 일어나도니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걸었다. 그런 다음 멈추고 턱에 묻은 복숭아 주스를 핥고 있었다.

"피치라고 부르면 어떨까?"

"암놈이야?"

"자세히 알기 전까지는 암놈이야. 이 불쌍한 피치를 위해 어디서 병을 구해 와야겠어."

콜터가 눈을 굴리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운전석 쪽으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피트라는 조심스럽게 보조 쪽에 앉아 잠든 새끼 공룡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안심이 되자 피트라는 온몸이 멍들고 아프고, 욱신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콜터도 많이 아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출발하려는 순간 터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피트라가 움츠리는데 무스가 재빨리 계기반으로 올라가 창문에 큰 대자로 달라붙었다. 사라는 앞으로 뒤뚱거리며 나오더니 피트라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대신 좌석 사이의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피트라와 콜터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자기, 완벽한 휴가였어."

콜터가 말했다.

"그래요. 여보."

피트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지쳐 버렸어요. 어서 집에 가요."

그들은 차를 몰아 초원에서 빠져나와 도로에 접어들었다.

 

68. 선택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때, 이전에 왔던 것들이 다시 찾아오리라. 그리고 지금까지 오지 않았던 것들이 앞서 오리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일들이 커다란 불에 의해 알려지게 될 것이다.

조라스트러스. 바빌론의 예언자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수요일, 오후 55(태평양 표준시)

그들은 자신있게 걸어갔다. 누군가 그들을 보았다면 그들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총 때문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었다. 그들이 그간 쌓은 유, 무형의경험들로 인해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이 충만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은 커비는 리프먼이 엘렌과 떠난 후 승리를 자축했다. 악의 없이 서로 놀리며 그들은 누가 자신들을 외눈박이 공룡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했는지, 그리고 존의 엄마를 구하게 된 문제의 오토바이를 어설프게 고장 냈는지에 대해 입씨름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까워질수록 커비는 말수가 적어졌다.

커비와 존은 헬리콥터가 되돌아와서 공중에서 선회하는 소리와 회전 날개에서 타타탁하고 나는 소리가 계곡을 따라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리프먼과 만나기로 한 지점과 반대 방향이었다. 그들은 가던 길로 계속 나아갔고, 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가끔씩 도마뱀이 통나무를 가로질러 뛰어가거나 그들 머리 위에서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멀리서 뭔가 우지끈하며 부러지는 소리와 킁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들은 숨을 곳을 찾았지만 그 소리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마침내 그들은 리프먼이 설명하던 마른 강가에 도착했다. 이전의 강은 남서쪽으로 굽이치고 있었지만 지금은 숲으로 흔적이 나 있었다. 그들은 강둑부터 조용히 살펴보았고, 양옆의 숲에서 동물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그때 커비가 존의 팔을 잡아당기며 한 곳을 가리켰다. 존의 눈에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강둑 저 멀리에 여러 마리의 동물들이 있었는데 긴 꼬리와 긴 목을 지니고 있었으며 네다리로 걷고 있었다. 보기에는 브론토사우루스를 닮았지만 크기만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가끔씩 머리를 둑 위로 쳐들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곤 했다. 동물들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커비와 존은 드디어 수풀에서 둑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공룡들이 머리를 들고는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세 마리가 머리를 쳐들었다. 공룡과 사람들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 공룡들은 한 마리씩 풀 뜯는 일로 돌아갔다.

리프먼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커비와 전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들에게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지만, 강바닥에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기 때문에 목을 축일 수는 있었다. 최소한 리프먼이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에 공룡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가 하상 쪽으로 이동했다. 마침내 리프먼이 오토바이를 타고 하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커비와 존은 환호성을 울렸고, 커비는 손가락에 입을 넣고 휘파람을 요란하게 불었다. 리프먼이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그들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부어있었고, 벤 상처와 타박상, 그리고 먼지들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동새에 오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했고, 그 모습이 존과 커비가 보기에도 좋았다. 리프먼은 드디어 엔진을 끈 다음 오토바이 뒤쪽에 있던 가방을 끌렀다.

"엄마는 어떠셔, 리프먼?"

"괜찮으셔. 저쪽으로 가니까 여러 채의 집이 있었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숲은 바로 그 집들 정면 현관까지 나 있어. 어떤 집은 꼭 공룡들이 쳐들어갔었던 것처럼 많이 부서져 있었어. 사람들이 자동차로 길에 바리케이트를 쳤어. 경찰들도 있어서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고 공룡을 안에 가두어 버렸어. 경찰이 너의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갔어."

리프먼이 가방을 열고 커비와 존에게 콜라 캔을 던져주었다. 존은 3분의 1 정도를 비웠다. 탄산음료가 목구멍과 코를 찌르더니 트림이 나왔다. 하지만 커비가 곧 트림을 해대는 바람에 존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리프먼은 계속 가방을 뒤져 콜라 한 캔씩을 더 던져 준 다음 트윈키 초콜릿 꾸러미와 스키티어즈 초콜릿 바 세 개를 건네주었다. 그들은 음식들을 한참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다음에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다 어디에서 났니, 리프먼?"

커비가 물었다.

"저 밖에는 문명 세계가 있었어. 존 엄니를 경찰에 모시고 갔는데 그 사람들이 내가 돌아가지 못하게 막는 거야. 그들은 자원봉사자들을, 구조 업무에 종사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거든, 너희들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길을 돌아서 왔어. 그리고 길 아래에 있던 세븐 일레븐에 달려갔더니 반쯤 문이 열려 있길래 물건들을 집어왔어."

"돈은 냈니?"

커비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들이 나한테 가방을 줬어, 아닌가?"

"너 가방도 훔친 거지, 그렇지?"

존이 말을 꺼냈다.

", 너 그거 필요 없지. 그럼 돌려줘."

리프먼이 부드럽게 말했다. 존과 커비는 리프먼이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여겨지기를 바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장단을 맞추어 주기로 했다. 당분을 섭취하자 그들은 곧 기운을 차렸고, 한참을 서로 장난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커비가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친 그는 친구들에게 몸을 돌렸다.

"난 가지 않을래. 포틀랜드로 들어가 볼 거야. 거기 어딘가에 가족이.. 우리 교회가 있을 거야."

존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앉아서 작은 도마뱀들이 둑을 기어 내려와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리프먼은 마침내 성한 눈을 들어 커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커비, 포틀랜드는 상황이 좋지 않아. 내가 봤어.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어떤 때는 있다가 어떤 때는 없어지고, 결국 그러다가 없어져 버렸어. 우리가 포틀랜드로 가더라도 그 속을 통과해야 할 거야. 신기루 같아 보였어."

"그럴지도 몰라. 리프먼, 하지만 난 가서 알아볼래.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한다구!"

"예수의 재림이 아니야. 커비."

"그럴지도 몰라."

리프먼은 지금까지 한번도 인정하지 않던 시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열렬한 무신론자로 며칠 전가지만 해도 이 정도로 양보를 하지 않았었다.

"그럼 존을 오토바이로 태워다 준 다음 포틀랜드를 찾으러 같이 가자."

"리프먼 같이 안 가도 돼. 존을 데려다 준 다음 돌아오면 내가 너를 저쪽에 내려주고 이 오토바이로 포틀랜드로 갈게."

커비와 리프먼이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데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왔다. 존은 둘의 실랑이는 무시한 채 눈으로 헬리콥터를 찾기 시작했다. 아찌 되었든 간에 그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둘은 자신이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고 여겼고, 자신이 안전해진 이후에야 자신들의 일을 준비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누구도 자신이 공룡을 따돌렸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공룡에게 외눈박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었다. 그는 같이 오토바이를 망가뜨렸고, 칼에게 총을 쏘고, 죽이기까지 했다. 칼을 죽였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이 침울해졌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들은 자신을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3일간의 일이 친구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얘들아!"

그가 끼어들었다.

"아무도 나를 데려다주려고 애쓸 필요 없어. 너희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포틀랜드를 찾으러 가. 나는 걸어서 여길 빠져나가면 돼."

존은 나머지 콜라를 들이켜 마신 후 총을 집어 들고 오토바이 자국을 따라 하상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 어디 가는 거야?"

리프먼이 불렀다.

"기다려."

"돌아와. .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존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다보았다.

"화가 난 게 아니야. 그저 내 문제 때문에 곤란에 처한 너희들을 구해 주려는 것뿐이야. 너희 둘은 포틀랜드로 가서 잘 지내. 만약 너희들을 바로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나중에 보자. 해변 별장에서 말이야."

존은 돌아서서 걷다가 멈추고 다시 돌아섰다.

"가족을 찾기 바래. 커비. 그리고 리프먼, 음식을 구해다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럼 잘 가라."

존은 그들의 말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웅덩이를 첨벙거리며 걸었다. 존은 굽이를 돌자마자 총을 움켜쥐었고, 외로움을 느꼈다. 위에서 오토바이 시동 켜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잠시 후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엔진을 통통 울리며 가까이 왔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기 쉽도록 몸을 숨길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은 겁쟁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놀랍게도 커비가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고, 그 뒤에 리프먼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존 옆으로 다가왔고, 리프먼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린 결정했어. 우리 모두 집에 가는 거야."

"멋지지 않니. 귀여운 자니? 나중에 또 단어 바꾸기 놀이하자."

커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토바이로 천천히 원을 그리더니 둑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쟤는 미쳤어, 리프먼, 말 좀 하지 그랬어?"

"쟤는 광신도야. 알아듣게 할 수가 없었어."

테리는 눈을 문지르며 헬리콥터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머리는 기름 냄새와 아내를 찾느라 나무 위에서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느라 지쳐서 지끈지끈 아파오고 있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는 아내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내를 포기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빌이 돌아왔다. 빌의 수완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원칙만 따지는 비행장의 담당자에게서 무료로 연료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비자 카드는 받았다. 분명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빌이 헬리콥터에 올랐고 테리는 자리라고 그나마 남아 있는 부분에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앉으려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늦은 오후였지만 아직도 수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조금 남아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수색이 될 것이다.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집은 콜로니얼 풍의 2층짜리 건물로 앞마당에는 공룡의 숲이 펼쳐지고 있었다. 창문들은 부서져 있었지만 다른 부분들은 멀쩡했다.

"저기를 지나면 집이 하나 더 나오고 그 반대편에 막다른 길이 있어. 그 길로 죽 올라가다가 끝에서 파란색 집 담장을 넘어가. 그러면 그 반대편에 고속도로가 있어. 그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바리케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거기 있는 경찰이 너를 엄마한테 데려다줄 거야."

리프먼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너는 안 갈 거야?"

"내가 말했잖아. 우리 모두 집에 가는 거라구. 너는 부모님과 같이 있는 거야. 나는 아무도 없어. 우리 아버지는 커비네 가족들처럼 사라져 버렸을 거야. 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

리프먼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고통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난 여기가 좋아. 이렇게 좋은 집은 여태 없었어."

"넌 여기에 있을 수 없어! 곧 공룡들이 너를 한입에 잡아먹을 거야. 나랑 같이 가자. 우리 엄마도 말했었잖아. 우리는 잘 지내게 될 거야."

"아냐. 난 너희 식구처럼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이 잘 맞지 않아. 하지만 네 라이플과 내가 가진 권총을 서로 바꾸면 좋겠어. 여기에서는 활이 소용없을 거야."

존은 총을 바꾸면서 권총도 함께 주었다.

"리프먼, 둘다 필요할 거야. 만약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와. 해변 별장에 있을게."

"알았어."

존은 나무 속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리프먼은 아직 거기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존은 리프먼에게 자신이 그를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할 거라고, 그리고 그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어느 하나 기본적이지 않았다. 최소한 리프먼의 사고방식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대신 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리프먼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봐. 리프먼."

"그래 안녕 존"

커비는 하상을 따라 내려갔고, 오토바이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에 공룡들이 몸을 숨겼다. 강이 포틀랜드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이어지자 커비는 나무들 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작고 큰 초원들이 때때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도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몰았고, 왼쪽에서 태양이 지고 있었다. 잠시 후면 언덕 저편에 도착하겠지만 아직 도시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바위가 많은 비탈길로 내쳐 달리다가 돌을 피해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언덕 위에 올라 오토바이를 세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실망스럽게도 세인트 헬렌 산이 저 멀리 있었다. 도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커비는 눈 밑을 훔쳤다. 그때 세인트 헬렌 산이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흔들리더니 눈앞에 도시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는 동안 나무 위로 고층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도시 속에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포틀랜드는 텅 비어 있지 않았다. 도시는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커비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상태가 계속될지 알지 못했다. 만약 하나님이 그를 위해 문을 열어 주신 거라면 문이 닫히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확인은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었다. 커비는 의심을 접어둔 채 엔진을 다시 걸고 페달에서 발을 떼었다.

"그래 집에 가는 거야."

그는 중얼거리며 도시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 소용없는 일이에요. 우리는 앤지와 엘렌이 거기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요."

"그래요. 알고 있어요. 뭘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여기에서 찾지 못한다면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할까요?"

"이번 사태가 해변까지 13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갔을까요? 해안에 있는 우리 별장으로 가보죠."

테리는 다시 눈을 비볐고, 빌은 테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테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도시의 환영이 다시 나타나 있었다.

", 나타났어요."

빌은 헬리콥터로 곧장 가서 도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공중에 떠 있었다.

"다시 저 안으로 날아가 봅시다. 어때?"

테리가 제의했다.

"글쎄요, 그건 별로..."

뭔가 헬리콥터 왼편에서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오더니 오른쪽 날개를 치고 도시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기 때문에 테리는 매우 놀랐다. 빌은 헬리콥터를 빙 돌리더니 회전 날개에서 끼기긱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속력을 줄였다.

"무슨 일이에요. ?"

"크루즈 미사일이에요. 문제가 생겼어요."

테리는 크루즈 미사일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러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갑자기 하늘이 미사일로 가득 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테리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는데 거대한 섬광이라도 비친 것처럼 갑자기 하늘이 하얘지고 있었다. 동시에 이어폰에 정전기가 발생했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헬리콥터 엔진에서 타타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동이 꺼졌다. 테리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밑으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회전 날개는 계속 돌고 있었지만 동력원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휘파람 정도의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뱃속을 마구 휘젓는 듯한 느낌은 점점 심해졌고, 헬리콥터 앞쪽이 기울어지면서 테리의 눈에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숲이 똑똑히 보였다.

존이 마지막 나무를 벗어나 콜로니얼 풍 집의 앞마당에 들어섰을 때 그는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안도감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두려움과 긴장이 그를 지탱해 주던 힘이었다는 것을 존은 느끼지 못했다. 이제 그는 온몸이 아팠고, 완전히 탈진되어 있었다. 그는 병원에 있을 엄마와 워싱턴 D.C. 나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어쩌면 누나와 함께 있을지도 모르는 아빠를 생각했다. 존은 엄마와 함께 있어야 했다.

그는 리프먼이 설명한 대로 막다른 길과 파란색 집을 발견했다.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다른 두 채의 집은 2미터 높이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길은 마치 아파치 인디언의 요새처럼 보였다. 파란색 집의 주인은 1미터짜리 울타리를 쳐 놓고 있었다. 존은 울타리 위로 뛰어올라 그 위에 걸터앉았다. 울타리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그는 골목 뒤로 나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리프먼과 커비가 저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일부분도 숲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우정은 너무 소중했기에 평생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의 우정이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천천히 하루하루, 한 달씩 끝을 향해 갔어야 했다. 그들은 각각 다른 길로 가서 결국 점점 더 멀어지는 그런 길을 택했을 것이다. 숲은 어른의 세계로, 외로움의 세계로 가면 갈수록 제각기 다른 삶으로 살아가게 될 그 모든 과정을 바꾸어 버렸다. 존은 한동안 숲을 바라보다가 그 속에서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몸을 돌리고 뛰어내려도 될 만큼 부드러운 땅을 찾았다. 그때 눈부신 불빛이 그를 비추었고, 그는 울타리 안쪽의 진달래 위로 떨어졌다.

 

69. 해변의 별장

신세계 오레곤 북부 해안

포틀랜드에서 들어오는 선이 파괴된 후 케이블 TV도 끊어졌다. 증폭기 없이 신호를 받느라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해변 별장에서 엘렌과 존은 '유진과 살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태는 문제 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오직 재앙에 대한 보도만 내보내고 있었고, 좆은 그런 내용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는 현실 도피를 위해 그저 애정 영화나 폭력물에 정신을 쏟고 싶었다.

뉴스 진행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이야기했던 것들을 카메라 앞에서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었다. 존은 오직 두 개의 채널만 볼 수 있었는데 그 어느 것도 고정된 진행자가 없었다. 뉴욕에 생긴 일로 인해 방송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뉴스는 처음에는 새로웠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똑같은 내용만 재탕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인 엘리자베스 호오손의 인터뷰가 자주 끼어 있었다.

"대통령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적당한 시기에 기자 회견을 할 것입니다."

호오손 실장은 끊임없이 그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존은 대통령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호오손 실장이 부인하는 것과 대통령 과학 자문역이 현재 진행되는 일에 대해 브리핑을 미루는 이유 등에 대해 질문을 받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폴슨 박사는 계속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벌어진 재앙을 타임 퀼트라고 이름 붙였고, 그것을 핵폭발에 의해 생겨난 고밀도 물질들이 서로 반응하면서 생겨난 자연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태를 발생시키기 위해 구소련이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사용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이 사태의 원인이 구소련 측에 있다고 계속 주장해 온 국방장관 나탈리 마쯔다에게 답변을 미루었다. 국방장관 또한 포틀랜드에 취해진 조치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존은 그들이 절대로 그 조치가 핵 사용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조치'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목했다.

포틀랜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놓고 약간의 토론이 있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폭발이 포틀랜드를 파괴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폭발은 두 개의 시간과 공간 사이의 어딘가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은 이러한 토론이 계속되는 동안 커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핵폭발로 일어난 대학살 때 불에 타 죽었을까. 아니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에서 그의 가족과 교회와 함께 있을까?

페르미 연구소의 고메즈 박사가 방송에 나와 발생 원인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지만, 존은 그녀의 설명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60년대에 있었던 폭발과 섞여버린 시간대에 대해 말했고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애매하게 미래에 있을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틀림없이 첫 번째 컴퓨터 모형은 정확하게 타임 퀼트를 예측하고 있었지만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좀 더 정교한 모형들이 실험되고 어떤 것들을 추가로 사건들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또한 이 효과들이 달에 미치는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우주 탐사가 재개되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존은 그 부분을 듣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존은 달갑지는 않았지만 친구나 친척들이 다른 시간대에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데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뉴스의 나머지는 공포의 공룡 이야기로 메워지고 있었다. 물론 방송 매체는 미국에 벌어진 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공격이 가장 많아 나왔다. 때때로 공룡에 동정적인 이야기들도 나오곤 했다. 애완 공룡과 최후를 같이 한 뉴욕의 한 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식인 고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난파당한 한 가족을 구한 어미 아파토사우루스와 그 새끼에 대한 이야기에 특히 감명받았다. 동물 권리 보호주의자들이 공룡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인 대항을 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식료품 부족과 연료 부족, 그리고 빈약한 의료 시설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부족 사태는 한층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수없이 이어졌고, 가난한 사람들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러한 보도들 가운데 유일하게 희망적인 것은 인류의 손실이 곡물 손실을 능가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곡물보다는 그것을 먹어 치울 사람들이 더 많이 피해를 입었다는 의미였다.

엘렌은 침대에서 일어나 차를 끓였다. 그녀는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에 텔레비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엘렌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보다는 훨씬 기운을 차리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남편을 보았을 때 화를 냈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그와 화해할 수 없었고, 나머지 생애 동안 그 사실을 잊지 못할 것이다.

테리의 장례식을 치른 후에도 캐롤린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민간인들의 비행기 여행이 제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렌은 콘래드 대령을 남편 옆에 안장하고 묘비에 앤지의 이름을 같이 새기기를 원했지만 군에서는 콘래드 대령의 시체를 인수해 갔다. 존은 엄마가 콘래드 대령 부인에게 벌어진 일들을 말하면서 울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한 다음 더욱 우울해했다.

차를 가지고 엄마는 소파의 한쪽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똑같은 뉴스는 더 이상 엄마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었고, 엄마의 눈은 창밖과 먼바다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엄마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떠오를 뿐이었다. 짐승의 시체들이 파편과 섞여 파도를 타고 밀려들었다. 시체들은 자연의 재순환 과정에서 발생한 제물들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일부는 공룡이었고, 가끔씩 살아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시체들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존의 부모는 예전에 이 별장에서 끝없이 해안을 걸으며, 물 위에 떠다니는 유리 조각이나 나무들을 줍곤 했다. 이제 오레곤 해안을 걷는다는 것은 수적으로 늘어난 선사 시대의 동물들과 마주쳐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희생을 치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더욱 끔찍한 것은 다른 시간대의 어딘가에 인간의 몸이 같은 상황 아래 바닷가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고, 그것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그동안 거의 주말에만 별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 근처에 친구가 없었고, 그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존은 현관문을 열다가 너무 놀라 뒷걸음쳤다. 커비의 밴이 앤지의 지프 뒤에 세워져 있었다. 존은 색유리 위에 비치는 빛 때문에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의 뒤에서 엄마가 차를 알아보고 놀라고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리프먼이 수줍게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리프먼을 향해 웃다가 다른 쪽 문을 바라보았다. 리프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커비는 없어, 폭발, 섬광 그 밖의 것들이 있었던 직후에 가서 찾아 봤어. 하지만 보지 못했어. 포틀랜드도 없었어. 정말 사라져 버린 거야."

리프먼은 확신을 하지 못하는 듯 그들 쪽으로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차 옆에 서 있었다. 존은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엄마의 손길을 느끼고 엄마가 지나갈 수 있도록 현관에서 비켜섰다. 그녀는 리프먼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다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는 계속 다가갔고 성한 팔을 들어 리프먼을 힘껏 끌어안았다. 리프먼의 손도 올라갔지만 그는 엘렌을 같이 포옹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왜 그래, 리프먼?"

존이 놀렸다.

"포옹하는 것도 기본적인 거 아냐."

"가만히 안 두겠어."

"나쁜 놈"

존이 조용히 대꾸했다.

리프먼이 존을 향해 입을 실룩거리며 '---'라고 말하더니 엘렌을 힘껏 끌어안았다.

 

70. 새로운 세계

오레곤 남부 해안 신세계

피트라는 콜터가 옆 좌석에서 조는 동안 운전을 했다. 피치는 그의 품속에서 자고 있었고, 무스는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사라는 콜터 발치에 놓인 담요 위에 누워있었다. 피트라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자동차를 몰고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도로는 상태가 무척 나빴고 바퀴 자국과 커다란 진흙 웅덩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피트라는 시속 40킬로미터 이상 속력을 낼 수 없었다. 콜터가 사슴사냥 때 왔었던 기억을 되살려 길을 찾아냈다. 주요 도로는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로 꽉 차 있거나 여행을 제한하기 위해 파견된 주 경찰이 차단하고 있었다.

피트라는 절벽처럼 가파르게 깎여 있는 고갯길을 가고 있었다. 수많은 잔해들이 언덕 아래쪽에 흗어져 있었고, 언덕은 갑자기 샛강과 이어지고 있었다. 무너진 바위들이 도로 위에 가득했다. 피트라는 바위 더미들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다른 바위들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녀가 커다란 바위를 돌자마자 심하게 비탈진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길은 샛강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강은 커다란 물결과 포말을 일으키며 범람하여 돌더니 주변을 쓸고 지나갔다. 피트라는 급류에 매혹되었고, 그것을 보느라 잠시 속력을 줄였다. 그때 반대편 나무 틈에서 뭔가 움직였고, 피트라는 차를 세우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피치가 잠깐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더니 자세를 바꾸고 누웠다. 콜터와 무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계속 회복되고 있었지만, 불쌍한 작은 공룡들은 찬 기온 속에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때 암사슴 한 마리가 숲에서 나오더니 물을 마시러 강가로 다가섰다. 사슴은 자동차를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고개를 떨구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피트라는 낯설음을 느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에는 정상적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이상하게 비쳤다. 피트라는 너무 오랫동안 공룡들과 생활했었다. 피트라는 포유동물들이 그리웠다.

갑자기 사슴이 머리를 쳐들고 귀를 쫑긋거리더니 옆으로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속에서 뭔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사슴이 전에 싸워 보지 않은 동물이었다. 그것은 150센티미터 정도의 초록색 공룡으로 두 뒷발로 달려오고 있었다. 머리에 비해 공룡의 몸집은 작은 편이었다. 사슴은 펄쩍 뛰어오르기만 했지 속력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공룡에게 목덜미를 물리고 말았다. 사슴은 공룡과 함께 나동그라졌고 한 번 몸을 뒤채더니 그들의 싸움은 그걸로 끝이 났다. 사슴이 움직이지 않자 공룡은 제물을 물가로 끌어냈다. 공룡은 시체를 건드려 보더니 입술을 핥기 시작했는데 포유동물의 피를 처음으로 맛보는 것 같았다. 공룡이 사슴을 먹기 시작했다. 피트라는 또다시 피범벅이 된 괴물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엔진소리에 공룡은 고개를 들었고, 자동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피트라는 계속 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고, 이제 오레곤의 삼림들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라디오에서는 여기저기에 선사 시대의 땅들이 생겼다고 떠들고 있었다. 공룡들은 포유동물의 흔적을 쫓고 있을 것이다. 공룡들의 움직임을 제지할 방어막도 없었고, 어떤 방어막도 저 공룡들을 막지 못할 것이었다. 이제 문제는 공룡들이 이런 기후에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오레곤의 겨울은 캐스케이드 산 동쪽과는 달리 해안 쪽을 따라서는 따뜻한 편이었다. 틀림없이 플로리다나 적도 부근에 있는 공룡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레곤의 공룡들은 악전고투하게 될 것이다. 피트라는 정부가 공룡들을 죽이려고 할지 보호하려고 할지 궁금했다. 모든 면에서 정부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노력을 식량과 연료 공급을 위해 교통망을 복구하고 통신망을 재건하는 등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곧 습격해 들어오는 공룡들을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도로가 자갈길과 만나고 있었다. 피트라는 안내 표지판에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곧 시속 65킬로미터 정도로 차를 몰 수가 있었다. 속력을 내자 차 하부에 자갈이 마구 부딪혔다. 아직도 그녀의 어린 식구들은 잠들어 있었고, 차가 돌에 부딪힐 때마다 덜컹거려도 깨지 않았다. 몇 킬로미터 정도 지나고 나서야 아스팔트 길이 나왔는데, 이 길은 농장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작은 계곡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젖소들이 철조망 뒤에서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트라는 계곡을 지나 다시 시작된 숲으로 들어섰고, 굽이진 언덕을 돌아 내려갔다. 언덕을 다 내려오자 눈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거의 다 온 것이다.

잠시 언덕에 가려 바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갑자기 해안 고속도로가 눈앞에 나타났고, 그 끝에는 태평양이 있었다. 가슴이 시원해지며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는지 거의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늘 바다에 오면 이런 감정들을 새로워지는, 아니면 최소한 재충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피트라는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 위에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석유는 배급되고 있었지만 필수불가결한 여행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동차는 엄청난 양의 기름을 먹었지만 그것은 수송 수단인 동시에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피트라는 콜터에게 어떤 게 연료 탱크 세 개를 가득 채울 수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는 그저 웃기만 하면서 행동 규범에 대한 몇 가지를 입속에서 우물거렸을 뿐이었다.

피트라는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은 후 시속 80킬로미터로 차를 몰았다. 콜터가 몸을 뒤척이자 무스는 콜터의 어깨 위에서 내려와 자기 자리로 달려갔다. 잠시 후 콜터가 눈을 깜박거리다가 일어났다. 그는 한동안 자리에 몸을 푹 파묻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피치는 아직 그의 품 안에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바다를 발견하였다.

", 우리가 해냈구나, 얼마나 가야 해?"

"거의 다 왔어."

콜터는 말없이 피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새끼 공룡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콜터가 머리를 만질 때마다 낑낑거렷다. 콜터가 공룡의 작은 깃 뒤를 긁어준 뒤 담요 위의 사라 옆에 피치를 올려놓고 자동차 뒤로 넘어갔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트라, 콜라 마실래?"

"하나 가지고 나눠 마시자."

피트라가 제안했다. 콜터는 펩시 콜라 캔 두 개를 가지고 자리에 돌아와 하나를 따더니 자동차 계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셔. 그럼 내가 나머지를 해치울게."

피트라가 고개를 저었다.

"콜터, 물건들을 아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온통 식료품 부족과 배급에 관련된 이야기들 뿐이야."

"저건 배급품이 아니야."

"그건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건 네 생각이지."

콜터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캔을열고 반을 마셨다. 피트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알았어. 지금부터는 네가 물품을 챙겨."

그가 말했다.

"내가 나서서 하겠다는 말이 아니야. 난 조금 일을 쉽게 처리하자는 거야."

"난 네가 알아서 했으면 좋겠어. 난 자제심이 없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아."

피트라는 그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콜터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절대로 전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콜터는 어떨지 궁금해하던 차였다. 그녀는 그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약간의 무모한 용기와 다른 특성들이 일부는 남아 있기를 바랬다. 그녀는 예전의 콜터와 사랑에 빠졌었다. 그때 그가 입을 벌리더니 큰소리로 트림을 해댔다. 그래, 예전의 콜터의 모습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들이 고속도로에서 분기점으로 빠져나와 언덕을 돌아 주차장으로 향할 때 해가 지고 있었다. 주차장은 바다를 내려보는 작은 언덕 위에 있었다. 회색빛의 좁다란 모래사장이 바로 앞에 있는 엄청난 양의 부목과 바다를 갈라놓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버려진 것 같았다. 콜터가 문을 열자 차가운 바다 공기가 밀려 들어오면서 차 안에 배어 있던 동물 냄새를 말끔히 씻어 내렸다. 문이 열리자 무스는 차가운 공기를 피해 자동차 뒤 칸으로 몸을 더 깊이 숨겼다 사라는 담요 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차 뒤편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피트라는 피치를 들어 올려 사라 옆에 내려놓았다. 라라는 옆에 누운 피치 때문에 불편한지 편안한 자세를 찾느라 계속 꿈틀댔다.

피트라는 콜터가 밖에서 삽질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푸른색과 하얀색 플라스틱 보온 물병을 캐비닛에서 꺼내 내용물을 점검했다.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피트라는 물병을 닫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피트라는 총을 가지고 바깥에 나와 있는 콜터에게 갔다. 공기는 차가왔고, 하늘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 있었다. 피트라는 맑은 하늘 아래에서의 오레곤 해변을 기억했다.

"총은 왜?"

콜터가 물었다.

"사슴사냥을 계속할 경우에 대비해서, 신경 쓰지 마. 나중에 설명할게."

콜터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어서 일을 끝내자."

두 개의 길이 나 있었다. 하나는 해변까지 이어지는 길로 사람이 많이 다닌 듯한 흔적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언덕을 감고 돌아 나무들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콜터는 언덕 위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고, 식물들의 이름을 쓴 표지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400미터 정도 올라갔을 때 그들은 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갔다. 곧 그들은 오른쪽으로는 바다를, 왼쪽으로는 험준한 낭떠러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콜터는 작은 전나무 옆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낭떠러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른 작은 전나무 쪽으로 걸어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바로 그 지점이야."

피트라는 전나무 뒤로 걸어와 바다를 내려다보더니 커다란 바위들과 함께 바다를 향해 줄지어 서 있는 전나무를 눈짐작으로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반대편으로 가서 낭떠러지의 바위들 사이의 틈과 전나무를 눈으로 맞추어 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확인했다.

"그래, 바로 여기야."

콜터가 나무에 등을 대고 서서 바다 쪽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2미터쯤이었나?"

"그거면 될 것 같아."

콜터가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은 축축하고 부드러웠지만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일은 쉽지 않았다. 콜터가 힘들어 하며 이제 충분히 팠다고 말하자 피트라가 대신 삽을 들고 파 내려갔다. 부끄러움을 느낀 콜터가 다시 땅을 팠다. 마침내 구덩이 옆의 땅 위에다 삽을 박아 넣은 뒤 피트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내가 1미터 깊이라고 말했잖아."

피트라는 동의하면서도 콜터가 손을 내밀자 망설였다. 그녀는 보온 물병 뚜껑을 열고 마지막으로 안의 내용물을 점검했다. 안에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의 기록이 들어 있었다. 재앙에 대한 기사와 공료의 갑작스런 출현 그리고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 것을 담은 신문 스크랩이 있었다. 거기에는 포틀랜드에 대한 폭탄투하와 포틀랜드가 파괴되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기사들도 있었다. 보온 물병 안에는 공룡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문제거리에 대한 기사들도 있었다. 모든 것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콜터와 피트라가 그들과 그들의 그룹에게 벌어진 일을 기록해 놓은 자료였다. 그들은 그룹과 케니 랜덜과의 만남, 그리고 케니 랜덜이 경험한 옥수수 사건 등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그들은 그룹 사람들이 그 사건을 조사하다가 조라스트러스를 발견해 낸 것도 적었다. 그들은 케니와 팻이 만들었던 모형과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벌인 조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그들은 프레리 가운데에서 소금물에 빠져 죽을 뻔한 소년의 이야기와 엘로우 스톤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졌다는 것도 적었다. 그런 다음 이번 재앙이 시작되기 전 자신들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측했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웨인 부인과 어니 파웰과 연락이 끊겼다는 것을 적었고, 친구들을 찾다가 공룡을 발견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들은 그들이 발견한 것들에 대해서, 특히 시드와 무스와 사라 그리고 피치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였다. 그런 다음 쿰 박사와 필쳐 박사의 죽음에 대해 가슴 아픈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콜터는 그의 모험과 피트라가 걸어 다니는 물고기의 소굴에서 겪은 일을 적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생생히 기록했고, 3부를 만들어 플래스틱 통 속에 집어넣었다. 첫 번째 사본은 필쳐 박사의 뒤뜰에 넣어 놓았다. 두 번째 것은 비드포드 동쪽에 있는 작은 동굴에 넣었으며 마지막 것은 여기, 바닷가 옆에 묻으려는 것이다. 다른 두 개의 사본처럼 이것도 플라스틱 보온 물병에 넣어 묻을 것이다. 필쳐 박사는 플라스틱은 몇백 년 동안 썩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피트라는 기록이 다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물병 뚜껑을 잠그고 구덩이 속에 넣었다. 콜터는 조금씩 흙을 덮더니 발로 꾹꾹 눌러 밟았다. 곧 구덩이는 흙으로 메워졌다. 콜터는 손을 툭툭 털고 삽을 들었다. 그리고 솔잎과 낙엽들을 구덩이 위에 훌훌 뿌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땅 위로 삐죽이 나온 바위를 파내어 구덩이 위에 얹어 놓았다. 일을 다 끝내자 그는 확인을 받는 것처럼 피트라는 쳐다보았다.

"잘했어."

피트라가 말했다. 콜터는 삽을, 피트라는 총을 들고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저물어 가는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살짝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공기는 차가웠고 피트라는 땀이 식으면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콜터가 그녀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고, 그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걸었다. 그들은 갈 곳도 없었고,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피트라."

콜터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느낌들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부드럽게 불렀다.

"정말 저걸 누가 파서 꺼내 볼까?"

"만약 필쳐 박사님이 옳다면 다른 사람들이 바로 꺼내 볼 거야."

"바로? 그들은 사라져 버렸어. 잊어버렸어?"

"내 말은 미래에 그럴 거라는 말이야."

"지금이 미래야. 그건 말이 안 돼."

"알아. 내 말은 만약 공룡이 여기에 왔다면 여기에 있던 사람들이나 그 밖의 것들이 어디론가 갔을 수도 있다는 거야. 아마 그들은 미래로 갔을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어니 파웰과 웨인 부인은 우리의 메시지를 어디에서 찾으면 될지 알고 있을 거야. 아마 케니와 팻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하니까."

콜터는 어리둥절했지만 말 없이 계속 걸었다. 피트라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그녀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콜터는 지금 이 상황 속에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은 지금 이 상황 속에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은 친한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그들을 지탱해 주던 친구들이었다. 콜터는 캘리포니아 북부에 가족이 있었다. 이제 그들은 그곳을 향해 떠날 것이다. 피트라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행운아였고, 그들에게는 서로가 남아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저기 좀 봐."

콜터가 소리쳤다. 피트라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뭔가 바닷가를 따라 걷는 것이 보였다. 콜터는 그쪽을 향해 달려갔고, 피트라도 절벽 끝에 세워져 있는 철조망을 따라 길을 내려갔다. 북쪽으로 땅이 삐져나와 있었기 때문에 해안을 잘 볼 수 없었다. 거기를 돌아서자 그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공룡들이 있었다. 뱀처럼 긴목을 가진 공룡은 네 발로 걸으면서 긴 꼬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그건 브론토사우루스, 아니 아파토사우루스였다. 두 사람 모두 아주 빠른 속도로 공룡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무슨 목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머리를 높이 쳐들고 해안을 따라 걷고 있는 아파토사우르스는 천천히 그러나 계속해서 나아갔다. 첫 번째 공룡이 지나갔고, 그 뒤로 다른 아파토사우루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째 것은 크기가 약간 작았지만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다. 피트라와 콜터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룡들이 해안을 따라 자신들 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는 태양이 바다 위에 걸려 오렌지빛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세 번째 아파토사우루스가 뒤를 이어 나타났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는데, 뒤에 나타날수록 몸집이 작아지고 있었다. 모두들 앞장 선 리더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서커스단의 행진을 보는 것 같아."

피트라가 말했다.

"공룡들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콜터가 물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 본능적으로 따뜻한 기후를 찾아가는 거겠지."

"우리도 따라가 볼까?"

"아니, 콜터, 그저 잠시동안만 살펴보자."

콜터는 그녀의 어깨 위에 팔을 두르고 피트라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들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 그렇게 서서 새로운 세계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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