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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퀼트 4

39. 알려지지 않은 파동

자연력 가운데 제일 약한 것은 중력이다. 땅위에 한 개의 잎이 떨어지기 위해서 지구의 전체가 사용된다. 그러나 지구를 구슬만한 크기로 수축시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법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블랙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멀린 콘스탄틴,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워싱턴 D.C 화요일, 오전 8(서부 표준시)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더 피곤함을 느꼈다. 그는 두려웠고 절망했다. 대통령은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대통령은 닉의 새로운 의견에 귀 기울이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칠 것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클립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가락은 대통령의 심리적 상태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닉은 고개를 들고 엘리자베스 호오손을 보았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달리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 사태에 대해 우려하는 것까, 아니면 대통령을 걱정하는 걸까? 닉은 궁금했다.

주제별 보고 순서는 전과 같았고, 닉은 다시 군 보고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직까지 뚜렷한 전략상의 위협은 없었기 때문에 보고 내용은 주로 현재까지의 손실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ELF 시스템의 손상 외에 미국내 7개 군 기지 간의 통신이 두절되었는데 그중에는 공군 전략 사령부 기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외에 외국주둔 기지 몇 개와 항공 수송기 제작사, 그리고 개인 소유 선박 일부가 피해를 입었다. 또한 랜드샛(미국의 지구 자원 탐사 위성 : 옮긴이)과 기상 위성 일부도 문제가 생겼고 군용 KL-13 위성 일부와도 통신이 끊긴 상태였다. 군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피해 지역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CIA 국장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모든 블랙 백 작전이 중단됐다고 보고했다. CIA 보고서에는 더욱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레곤에 공룡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캐나다 퀘벡에 나타난 공룡 사진은 입수했다는 것이었다. 캐넌국장의 보좌관이 사진 사본을 나누어 주었다. 닉은 눈앞에 놓인 사진을 도저히 맏을 수 없었다. 농가를 지나가는 그 공룡의 몸은 마치 갑읏을 입은 것 같았고 몸 전체 길이가 5미터는 되어 보였다. 몸은 아주 컸지만 머리는 이 정도 크기의 동물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았고, 발가락 끝에는 두 개의 날카로운 꼬챙이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몸이 비정상으로 커진 아르마딜로 같았다. 캐넌 국장은 요원들이 그 동물이 살아 있는 안킬로사우르스임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그것은 백악기 말에 멸종한 동물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닉을 바라보았다. 오직 고어 박사만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민간인의 피해는 가공할 만했다. 앨라배마주 모빌시의 일부분은 용암으로 뒤덮여 버렸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진흙 사태로 콜로라도주 아스펜시가 묻혀 버렸다. 오마하시는 엄청난 홍수에 완전히 잠겨 버렸고 성난 물결은 밀밭을 쓸어 갔다. 타호 호수가 범람하면서 남쪽과 스테이트라인 인근의 도시들이 물에 잠겼다.

미 군사 기지들은 해외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서도 사례를 수집하고 있었다. 파리의 일부는 숲으로 변했고 바티칸시티를 포함한 로마 대부분은 사라져 버렸다. 런던은 멀쩡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자취를 감췄다.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통신이 연결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이었는데 그들도 재앙에서 안전하지 못했고, 남미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도시와 마을이 사라져 버렸고 시골에서는 이상한 동물들이 돌아다닌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파나마 운하는 메워졌다.

보고 내용은 하나같이 이와 같은 엄청난 사건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의견에 따라 대통령은 퉁명스럽게 보고를 중단시키고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닉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콘래드 대령과 로버츠 박사, 그리고 야마모토 하사를 회의장 안으로 불러들였다. 콘래드 대령과 로버츠 박사는 벽쪽에 자리를 잡았고 야마모트 하사는 바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콘래드 대령은 침착했고 어느 면으로 보나 완전한 전문가였다. 반면 로버츠 박사는 안절부절하지 못했고 야마모트 하사는 들떠 있었다. 국가 안보 회의에 참석해 기밀 중의 기밀을 듣기를 고대하던 그의 꿈이 현실로 드러나 것이다.

야마모토의 컴퓨터는 특수 오버 헤드 프로젝터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들을 확대시켜 벽에 걸린 스크린에 투사할 수 있었다. 그는 사건과 날짜가 적힌 표를 읽고 있었다. 닉이 말을 시작했다.

"각하, 저희는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을 설명하는데 참고할 만한 이론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번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이론으로 지난번 시간의 전이를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아직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며 안킬로사우루스의 사진과 다른 사진들은 결국 그 이론을 보강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일들이 자연 현상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만, 그 부분은 제가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렷다. 엘리자베스가 몸을 숙여 대통령에게 뭔가 속삭였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만약 자연 현상이 아니라면 누가 공격했다는 말이요?"

"아닙니다. 각하. 외계인이 관련된 것도 아닙니다. 스크린을 보십시오. 보고계시는 저 표들은 지난 세기 동안 벌어진 원인 불명의 사건들을 도표화한 것입니다. 이 표의 대부분은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들로 돌, 얼음, 엄청난 양의 물, 곡식, 심지어는 확인할 수 없는 식물들까지 있었습니다. 때로는 개구리, 올챙이, 그리고 토끼들 같은 동물들도 하늘에서 떨어지곤 했습니다. 또한 원인 불명의 대규모 화재들과 홍수, 그리고 산사태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 잇었던 것이며, 그 사건들은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촉발시킨 동일한 힘에 의해 생긴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고어 박사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닉에게서 대통령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에서 얼음 조각이 떨어지는 것과 도시가 사라지는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깁니다. 하늘에서 개구리가 떨어지는 전도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시골 등지에서 안킬로사우루스가 나타나 배회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전은 달라도 원인은 같습니다."

닉이 무뚝뚝하게 고어 박사의 말을 잘랐다.

"다음 프로그램을 보여주게. 하사."

두 개의 원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이 두 대의 원은 핵폭발을 의미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핵무기가 폭발하면 폭발 지점 바로위에서 여러 개의 파동이 생기면서 확산되는 것을 아실 겁니다. 압력파가 있기 때문에 폭발로 인한 피해가 생기는 거죠. 또한 열을 방출하는 파장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가스 공이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되는 겁니다. 그게 에너지 방출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폭발에는 또한 전자기 파동이 수반됩니다. 이 파동이 동력선과 전자 장비들의 전류의 세기를 약화시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경험한 시간 전이를 동반한 전자 파동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다음, 전리되는 방사능 물질과 중성미자, 감마선이 생기는 것입니다."

닉은 주위를 둘러보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희는 그 와중에 다른 종류의 파장이 즉, 3차원 공간뿐 아니라 4차원 공간을 통과하는 시간의 파동이 만들어진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방안이 술렁였다.

"그런 파동에 대한 증거는 없습니다. 폴슨 박사, 저는 오랫동안 그에 대해 조사해 왔습니다."

고어가 반박했다.

"뭘로 조사를 했다는 말입ㄴ? 어ㄸ너 도구들을 이용한 겁니까? 유일한 증거는 제가 스크린에 띄운 저 표뿐입니다."

고어 박사는 뭔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충분한 크기의 핵 장치들이 폭발하면 그로 인해 열과 압력이 생기는 것처럼 시간의 파동도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게 하늘에서 개구리를 떨어지게 하는 거요?"

닉이 대통령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몸을 돌렸다.

"아닙니다. 각하. 단순히 그것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사. 시작하시오."

원들이 나타났고 점점 그 크기가 커지면서 서로 겹치는 순간 A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두 개의 파동이 결합하고 있습니다. 두 파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간 전이가 일어납니다. 두 개의 폭탄이 폭발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처음 폭탄은 워싱턴에서 동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폭발하는 겁니다. 만약 양쪽에서 파동들이 시속 50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한다면 2시간 후에는 워싱턴에서 두 개의 파동이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개구리나 다른 것들은 떨어뜨리는 건가요?"

고어가 비꼬듯이 물었다.

"뭔가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뭔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접점을 지나던 사람들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다른 곳으로 와 있다는 것을요."

낙은 야마모토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프로그램이 계속되었고, 화면에 BC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다른 장소로 옮겨진 사람들은 AB, 그리고 C 사이를 잇는 선을 따라 있게 되는 겁니다."

"잠깐,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대통령이 말했다.

"가능합니다."

닉이 인정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언제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파동은 4차원적인 것입니다. 이 파동이 만약 시간당 50킬로미터로, 킬로미터당 1년을 여행한다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전으로 사라져 버렸다가 이 선을 따라 미래의 어딘가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늘에서 개구리가 떨어진다는 겁니까?"

"만약 접점이 여름날의 습지대라면 연못에 개구리가 많을 것이고, 그것들이 50년 후 피셔맨스 와프를 찾은 관광객들 위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박사께서 모델이 예측한 날짜와 그 표의 사건들이 발생한 날짜를 대조해 보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고어가 말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련과 미국의 핵실험 기지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의 폭발을 적용해 보았지만 그 모델과는 별로 일치하지 않았고 또 많은 사건들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하게 입력해 보았고 서로 다른 지리적, 시간적 자료들을 이용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폭발 사건들이 도표화된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19521031일을 시초일로 가정할 때입니다."

"할로윈데이라구?"

대통령이 말했다.

"박사는 초자연적인 원인을 배제하지 않았소?"

국방부 장관인 나탈리 마쯔다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다음 물었다.

"마이크가 맞죠, 그렇죠?"

"마이크가 사건의 시발점입니다."

마쯔다가 대통령을 보고 설명했다.

"마이크는 첫 번째 수소 폭탄 실험에 붙여진 암호명입니다. 그건 지상에서 행해진 실험이었는데... 그때는 모든 것이...저희는 애니웨톡 환초에서 실험을 했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마쯔다는 닉에게 다시 질문 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 핵융합입니까, 아니면 그 규모입니까?"

"규모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는 10메가톤에 해당하는 무기였습니다. 마이크 이전의 핵분열 실험은 천 킬로톤이나 그것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죠. 어쨌든 이 상황은 우리와 소련이 행한 15메가톤에서 60메가톤급의 일련의 실험들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소련과 미국의 핵실험들이 가장 정확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어가 다른 전술을 댁했다.

"나는 아직도 개구리와 대규모의 지형학적인 변화들이 같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나도 어니와 같은 생각이오."

대통령이 고어 박사를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 각하. 하지만 아직도 의문점은 남아 있습니다."

닉이 설명했다.

야마모토 하사가 알아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원들이 다시 움직이며 화면 구석을 향해 퍼져 나갔다. 화면이 바뀌면서 원들은 두 개의 커다란 원 안에서 합쳐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두 개의 큰 원이 서로 겹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보여주게, 하사."

닉이 말했다. 원이 점차 커졌고 그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시는 대로 시간의 파도는 아주 빠른 속도로 먼저 생긴 파장들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파동이 어떤 식으로든 간에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각각의 파동은 자신을 뒤쫓아올 다른 파동을 위해 길을 깨끗이 치워놓은 것입니다. 마치 첫 번째 제설기가 먼저 눈을 치우고 가면 맨 마지막으로 가는 제설기가 눈이 깨끗이 치원진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는 왜 이런 일들이 없었는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의 핵폭발들을 뒤이어 일어날 사건들을 위한 길을 마련해 놓은 것이죠."

"두 번째 설명은 실제로 처음에 드린 설명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초기의 폭발은 현 상황을 일으키기에는 불충분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려면 최소 어느 정도의 폭발력이 있어야 하는지 모릅니다만, 우리는 핵실험을 시작한 이래로 히로시마에 사용된 15킬로톤의 폭탄에서 60메가톤급의 폭탄으로까지 파괴력을 키원 온 것입니다. 파장의 속도는 폭탄의 파괴력과 같은 역할을 할 겁니다. 더 큰 규모의 폭발이 더 빠른 파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빨라짐에 따라 제가 말씀드린 시간과 공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60메가톤급 무기에서 생긴 가장 빠른 파장이라면 나중에 생겼더라도 먼저 생긴 파동들을 결국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앞서 지나가겠지."

대통령이 말했다.

"파장들이 더 큰 파장을 형성하기 위해 서로 융합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작은 파장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여러분은 여기에서는 개구리들을, 저기에서는 사과들을, 남극에서는 얼음 조각들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개구리나 얼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사람들과 건물들이 화재에 전소되어버리는 것이죠. 이제 몇 개의 파장들이 두 개의 커다란 파장으로, 다시 두 개의 엄청나게 큰 파장으로 합쳐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이 두 개의 큰 파장들이 만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닉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으나 고어만은 노란색 메모지에 신경질적으로 뭔가 갈겨쓰고 있었다. 다시 엘리자베스가 뭔가 이야기한 다음에야 대통령이 질문했다.

"박사는 두 개의 파장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다른 파장은 소련의 실험으로부터 생겨났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 모델은 소련의 파동과 우리 실험으로 인한 파동이 만나는 것을 가정하고 잇습니다. 프랑스, 중국, 그리고 영국에서의 파동을 가지고 그 접점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첼시 제독이 질문을 던졌다.

"박사가 가지고 있는 자료상의 날짜들 중의 몇몇은 첫 번째 핵실험이 있기 전의 날짜들이오. 그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소?"

"두 가지 가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의 파장이 양방향으로, 즉 앞뒤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먼저 일어난 사건들을 모델에 맞추어 보려고 했으며, 몇몇의 사건들은 그것들이 일어나야 할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 세기들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자료는 2천 년도 더 된 것이었습니다. 한지마 그것 역시 충분한 자료는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자연적인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인트 헬렌 산은 10킬로톤의 파괴력과 맞먹는 힘으로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그와 유사한 강력한 폭발들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 크라카토아, 시베리아 폭발, 폼페이 등이 그런 경우였죠. 그 폭발들은 엄청난 파동을 일으킬 정도의 규칙성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서로 결합해 몇몇 사건들을 발생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유일한 소리라고는 형광등에서 나는 소음뿐이었다. 고어가 다시 자신의 메모지에 뭔가 갈겨썼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낙은 각각의 질문들을 자신의 이론에 따라 설명했다. 마침내 그가 걱정하고 있던 문제를 대통령이 질문했다.

"폴슨 박사, 어떻게 이 이론들과 프로그램을 그토록 짧은 시간 내에 알아낸 거요?"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각하. 콘래드 대령과 로버츠 박사가 컴퓨터 모델을 가지고 있었고 야마모토 하사가 그 모델을 알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 이 프로그램은 누가 만든 것이오?"

낙은 인질극과 5번 고속도로 위에서 생긴 일을 이야기했고 오레곤에 사는 한 대학생과 어떤 비밀스러운 그룹의 일원들이 어떻게 세상의 종말을 예측했는가를 설명했다. 닉은 설명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는 조라스트러스의 이름이나 그의 예언들을 아직 밝히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사람들은 고대 과학자의 분석보다는 기술을 더욱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어가 메모하던 것을 멈추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닉이 케니의 현재 정신 상태를 이야기했을 때 대통령의 표정이 바뀌었다. 닉은 재빨리 심리학자가 동굴 안에서 그와 함께 있었으며 워싱턴까지 동행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로버츠 박사."

대통령이 심리학자에게로 몸을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케니 랜덜은 정신병자인가요?"

로버츠 박사는 몸을 덜덜 떨며 일어섰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그는 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케니는 긴장 상태였습니다. 정신 이상은 즉시 반응을 보이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곧 회복될 겁니다. 각하께서 진짜 궁금해하시는 것은 이 이론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환각에 의해 생겨난 것인지 그 여부라고 생각하는데 저의 전문가적 소견으로는 게니의 상태는 두 가지 요인에서 발생한 겁니다. -뭔가 벌어질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아무도 자신을 믿도록 만들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정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그의 친구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만, 그들이 전부 정신 이상자였을 리는 없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닉은 대통령의 표정을 살폈다. 대통령은 믿지 못하는 것 같았고, 닉은 지금이야말로 그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내 보여야 할 순간이라고 느꼈다.

"각하. 현 상황들은 모두 예언된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호오손 실장이 데리고 온 그런 영매들이 예언한 것들과는 다릅니다. 조라스트러스라는...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잇던 사람에 의해 예언된 것들입니다."

"바빌론의 예언자말이지."

대통령의 그 말에 닉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각하, 그가 살던 시대에도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거나 이상한 동물들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는 뭔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예언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모든 걸 예언하기 전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다른 경고들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닉은 다시 말을 멈추고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렸다. 대통령의 말은 그를 놀라게 했다.

"나도 조라스트러스를 알고 있고,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사건들과 그의 예언이 관련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면도 없었소. 예언은 박사의 이론에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하고 있구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어가 끼어들었다.

"시간의 전이 이론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론입니다. 시간 여행이 예측되기는 했지만 시간 여행을 위한 조건들도 이 경우에는 맞지 않습니다."

평상시의 습관대로 그는 대통령에게만 말하고 있었고, 간혹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는 듯 머리를 잠깐씩 돌려 다른 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고어의 의견에 관심을 갖는 듯했고 고개를 끄덕여 계속 말하도록 했다.

"시간 여행은 오직 두 가지 방법에 의해 가능할 수 있지만 그 둘 모두가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한가지는 웜홀을 통해서 여행하는 것인데 그 구멍은 블랙홀의 중심에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를 휘려면 무한한 밀도와 중력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우주 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빅뱅 뒤에 남겨진 순수 에너지가 극히 미세한 가는 끈들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우주 끈은 1입방인치당 1조톤의 질량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줄 두 개가 서로를 지나면서 시간과 공간을 휘게 하고 물체들이 예를 들면 우주선 같은 것들이 주변에 있는 줄을 당겨 파동을 일으켜서 과거의 멀리 떨어져 있는 줄에 닿게하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제가 말씀드리는 이론의 기초 이론에 대해서 이해하실 수도,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하께서는 시간 여행의 어떤 조건도 폴슨 박사의 이론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고어 박사."

닉이 말을 잘랐다.

"박사의 시간 여행 이론에는 일반적인 이야기들뿐이군요. 그 두 이론은 모두 밀도를, 블랙홀 또는 우주 끈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폭발들은 물질을 응축시킵니다. 몇 사람은 그런 폭발들이 블랙홀을 형성시킨다는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블랙홀을 만들기에는 충분치 않은 질량이오."

"우주의 불랙홀을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질량이지요. 하지만 무엇이 블랙홀이나 우주 끈의 질량과 흡사할 정도로 줄어들 수 있겠습니까?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웜홀을 만들기 위해서는 블랙홀이 필요한데 현재 사건은 물리학 법칙이 일시적으로 완전히 붕괴했기 때문에 벌어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향력들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폴슨 박사, 만약 이러한 결과들이 가능하다면 우주의 폭발이 이러한 시간의 파동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결과에 대한 어떤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소. 그리고 빅뱅 자체는 어떻소? 그것이 그런 파장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아니오?"

"고어 박사, 증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어 왔습니다. 그것을 설명할 적절한 이론을 발견하지 못했을 분입니다. 덩어리 우주와 사라진 질량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닉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자신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대통령과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그는 대통령에게로 몸을 돌리고 쉬운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빅뱅 이론은 태초에 모든 물질들은 혼합되어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빽빽하게 차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 법칙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 후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들로 인해 이 물질이 폭발을 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창조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빅뱅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우주에서 관찰된 것들의 많은 부분들을, 강력한 방사열과 우주의 팽창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빅뱅 이론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라진 질량의 문젭니다. 빅뱅 이론에 대한 산 설은 우주의 팽창이 느려지면서 중력이 결국에는 모든 물질들을 잡아당길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빅뱅이 일어나거나 우주가 다시 서로를 잡아당기기에는 질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사라진 부분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암흑 물질이 있습니다..."

고어가 말을 시작했으나 닉이 말을 도중에 잘랐다.

", 고어 박사,"

닉이 고어 쪽ㅇ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치는 않습니다."

닉이 다시 대통령에게로 몸을 돌렸다.

"빅뱅 이론의 두 번째 난점은 우주의 한 덩어리로서의 성격입니다. 만약 우주가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면 왜 우주에 균일하게 퍼지지 않았을까요? 대신 우주에는 덩어리와 은하계와 태양계를 발견했죠. 왜 골고루 퍼지지 않았을 까요? 우리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빅뱅이 시간 파장을 만들어 냈다면 질량이 전이되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이된 질량이 갑자기 물질이 안정되어있는 정상적인 시공에 나타난다면 덩어리로서의 우주는 생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덩어리들이 은하계와 태양계에서 합쳐질 수도 있습니다. 사라진 물질들은 실제로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시간대로 이동되었을 뿐이고 앞으로 계속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은 자연적인 우주 현상의 작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고어가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곧이어 반론을 폈다.

"질량만으로는 박사가 주장하는 효과를 창출할 수 없어요."

그는 자신의 노란색 메모지를 닉에게로 밀어 보냈다. 메모지는 계산 결과로 가득 차 있었다. 닉은 것을 무시했지만, 고어는 말을 계속했다.

"덩어리 우주와 사라져 버린 질량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시간 전이라던가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을 포함한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이론은 없습니다. 박사는 블랙홀과 물리학 법칙을 완전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질량을 찾고 있습니다. 제 이론은 웜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단지 4차원 세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파장들이 있을 뿐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파동 말입니다."

닉이 주장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국방부 장관이 몸을 앞으로 내밀고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나탈리 마쯔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느 사람이었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면 몇 마디로도 큰 영향력을 줄 정도의 힘과 진지함을 가지고 있었다.

"각하, 저는 현 상황과 관련해 많은 보고서를 받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단 두 가지 이론만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는 아직 받어들일 마음의 준비는 안 되어 있지만 초자연적인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폴슨 박사의 이론을 우리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동감이오, 나탈리."

대통령이 구원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니, 당신이 제시한 의견은 훌륭했소. 이 문제와 관련해 모든 의견들을 듣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의견은 접어두고 새로운 이론을 검토해 봅시다.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들이 담당한 각각의 부서들이 이 사건들이 벌어진 경위를 역으로 추정해 보기를 바라오. , 이제 회의를 끝냅시다."

대통령은 회의를 끝내면서 엘리자베스에게 뭔가를 속삭였고 그녀는 닉에게 다가가 남아 있으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번에는 엘리자베스가 뭔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 시간 전이가 일어날 때, 전이된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들은 어디로 간 거지?"

"각하,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과거 또는 미래로 이동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로? 나는 모든 것이 앞으로 밀려난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미래에서 나타났다는 사람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렇소?"

"맞습니다. 각하, 하지만 국토의 일부가 전이되면서 과거 또는 현재의 국토와 서로 바뀌어 버렸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리고 전이가 예측 가능하게 진행되면, 우리는 미래의 그 지점들에서 떨어지는 건물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식물군과 동물군을 조사해 보면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구체화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의 도시들 중의 하나가 선사 시대에서 끝장이 났을 수 있다는 말이오?"

", 각하."

닉은 도시들이 바닷속에서 종말을 맞았을 가능성이 70퍼센트는 될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통령은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었다. 대통령은 닉에게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계속 연구하라고 격려했다. 닉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함께 떠나면서 엘리자베스는 닉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40. 첫 번째 살인

백악기 시대의 척추동물이 멸종한 것은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중요한 멸종 사건의 하나이다. 그같은 대규모 멸종 사건의 원인과 본질은 오랫동안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K. 카르멘 손탁. 사라진 자연의 종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화요일, 오전 73(태평양 표준시)

태양이 나무들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낼 즈음 뭔가 양치 식물들 사이로 움직였고, 존은 이 소리에 잠을 깼다. 감전이라도 된 듯 벌떡 일어난 존은 자신의 얼굴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공룡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룡의 머리는 존의 머리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입에는 풀을 가득 물고 있었다. 존이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자 공룡이 입을 벌렸고, 그 바람에 반쯤 씹힌 풀이 존의 무릎위로 떨어졌다. 공룡이 몸을 돌렸고 존은 날아오는 꼬리를 피하다가 풀밭 위로 넘어졌다. 그는 얼른 일어나 주위에 다른 공룡은 없는지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덤불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작은 공룡의 꼬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런. , 티라노사우루스를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이더니 이제는 그 새끼를 겁내고 도망치는구나. ! 나의 영웅이시여!"

"잠깐 놀랐을 뿐이야."

존은 변명했다.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애쓰면서 계속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난 어젯밤 그 공룡이 티라노사우루스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몸집이 아주 작았고 앞발은 무척 길었잖아. 그리고 나는 공룡을 죽인 게 아니야. 그냥 약을 좀 올렸지."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눈을 꼬챙이로 찌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아마 그놈은 균에 감염되어서 죽게 될걸? 아마 지금쯤 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가고 있을지도 몰라."

커비는 농담을 하며 낄낄댔고 끼어들었다.

"기다리고 있던 어미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겠지. 어미 공룡이 뭐라고 할지 짐작이 간다. '내가 막대기를 가지고 놀지 말라고 말했었지. 한 번만 더 말하면 백번째로 말하는 거야. 알았으며 얼른 눈을 뽑아 버려."

커비와 존은 함께 웃었다. 리프먼이 사라진 이후 존의 기분이 이렇게 까지 좋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이상한 ㅅ속에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에 박장대소하면서 존은 왜 커비, 리프먼과 친구가 되었는지를 알았다. 이것은 그들이 커비의 차를 탔을 때, 빅 걸프를 마시면서 그리고 서로 장난치면서 나누던 바로 그런 느낌들이었다. 그들은 평생 동안 친구로 지내기에는 너무도 다른 점이 많았고, 존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커비는 언젠가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될 것이고 존은 대학을 가게 될 것이다. 리프먼은..., 리프먼은 리프먼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동안은 서로 연락을 취하겠지만 결국에는 점점...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갈 것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존은 가능할 때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존과 커비는 남은 비상식량과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했다. 존은 어젯밤부터 무척 겁에 질려 있었으므로 수풀 속에서 찾아낸 활을 꼭 쥐고 있었다. 하지만 커비의 활과 화살통은 도망쳐 온 숲속에 있었다.

", 이렇게 하자."

커비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며 말했다.

"동전을 던져 화살을 찾으러 갔다 올 사람을 정하자. 겉이 나오면 제가 찾아오고, 안쪽이 나오면 네가 갔다 오고 나는 여기에서 기다리는 거야."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여기서 화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존이 사냥칼을 꺼내면서 곧게 뻗은 나뭇가지를 찾기 시작했다.

"리프먼이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너와 나는 공룡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면 행운일 거야."

커비가 말했다. 그들 모두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화살을 몇 개 만든다고 해. 하지만 내 화살이 어젯밤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했는지 봤지. 그 화살에는 강철 촉이 달려 있었어. 나뭇가지 끝을 날카롭게 하면 뭐가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리고 화살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여기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포틀랜드에 거의 다 왔단 말이야. 그래서 계속 가야 하는 거라구. 조금 후에 집에 도착하면 우리 엄마가 해쉬 브라운과 달걀 요리,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베이컨 요리도 해주실 거야. 리프먼은 벌써 도착해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냐고 놀릴지도 몰라."

커비가 접시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눈을 굴렀다. 존은 전에 커비의 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항상 파티상차림 같았었다. 그의 어머니는 남부 태생으로 포틀랜드에서 제일가는 요리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존의 어머니도 요리를 잘했지만, 엄마가 한 콩 요리는 통 못 만들었다. 커비 엄마가 한 콩 요리에는 베이컨과 그 외 몇 가지 재료들이 더 들어가 완벽한 음식이 되곤 했다. 그 생각을 하자 식욕이 솟았다.

그들은 쓸모없게 된 활을 놔두고 숲을 걸었다. 존에게는 어떤 즐거운 느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지 공포만 자리잡고 있었다. 화살은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상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없었다. 그들은 벌써 두 번이나 공룡에게 쫓겼다. 그들은 말없이 걸었고 내리막길을 지나 웅덩이가 있는 작은 둑까지 오게 되었다. 둑에서 바라보니 웅덩이의 깊이가 5, 60센티미터 정도밖에 될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존이 물었다.

"공룡이 목이 말라 다 마셔 버렸나 보지."

커비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러면서도 주위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깨끗한 웅덩이를 발견한 그들은 수통을 물에 담그고 물 위로 보글보글 떠오르는 물방울들을 바라보았다. 커비는 손가락으로 물을 휘젓고 있었는데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더지 웅덩이 속에서 수통을 급히 잡아 뺐다. 그 바람에 뚜껑이 떨어졌다.

"왜 그래. 커비?"

"물속을 봐, 보이지?"

존의 눙에는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순가 뭔가 그를 쳤다. 존은 커비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도망갔다.

엘렌과 앤지는 다음 날 아침 쿱이 말한 '시골길을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오토바이족들'을 만났다. 이들은 시골 건달들처럼 보였다. 쿱을 제외한 다섯 사람 모두가 막노동꾼처럼 보였다. 오직 쿱만 공들여 면도를 했고, 그들은 한 번도 빨래를 해 입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모두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고 청바지에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두 연인이 다가오자 그들 중 몇몇은 박수를 쳤고 앤지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청바지에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앤지에게서는 관능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큽이 그들을 소개했다.

"이분들이 내가 말씀드렸던 그 숙녀분들이오. 이분은 앤지."

두 남자가 휘파람을 불어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이쪽은 엘렌이라고 합니다. 엘렌은 포틀랜드에 남아 있던 어린 아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둘러보는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 일을 쉽게 알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말했소."

엘렌은 그녀의 어린 아들의 나이가 17살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쿱이 말하는 동안 엘렌은 두 가지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다. 첫 번째는 그 남자들이 자나치게 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에는 총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는데 주머니마다 총이 꽂여 있었ㄷ. 그들 중 두 명은 권총까지 차고 있었다. 왜 놀러 다니는 오토바이족들에게 저런 무기들이 필요한 거지?

두 번째 남자들 중의 하나가 앤지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다른 남자들이 앤지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앤지는 그런 시선에 익숙해 있을 터였지만 엘렌은 참을 수 없었다. 큽은 그 남자를 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키는 쿱과 비슷했으나 완력이 세 보였다. 잘 빗겨진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 수염을 기른 그는 엘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엘렌은 칼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저 총들은 도대체 뭐 때문에 필요한 거죠? 총싸움이라도 생각하고 있나요?"

칼이 마소를 지었다.

"대도시는 정말 위험한 곳이죠, 맞지, 친구들? 우리같은 시골뜨기들은 안전 장치 없이 도시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게다가 돌보아야 할 숙녀분들이 이렇게 계시니까요. 자네들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다른 남자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총은 사냥을 하려고 가지고 가는 겁니다."

쿱이 말했다. 그리고는 좀 더 설명을 하려는 듯 말을 잠시 멈추더니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여기에 있는 남자들은 뭔가 그녀들에게 숨기고 있었다. 이것이 엘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 같이 가지 않는다면 포틀랜드까지 걸어가야만 했고, 그렇게 되면 며칠이 걸릴지 몰랐다. 그녀는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앤지와 엘렌은 오토바이 뒤를 따라 자신들의 지프를 타고 마을을 돌아나왔다. 피터스 경관의 말이 옳았다. 거리는 차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고, 구석구석에 차들이 체워져 있었다. 그들은 어떤 집의 대문 앞 도로를 통해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그 길은 억덕길로 이어지다가 숲속으로 나 있었다. 언덕을 내려왔을 때 그들은 샛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작은 외나무다리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칼과 사내들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들끼리 모여 뭔가 이야기를 했다. 마침내 칼과 쿱이 지프 쪽으로 왔다. 엘렌은 앤지 쪽으로는 쿱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는 칼이 걸어오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쿱이 말했다.

"여기부터는 차를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강을 따라갈 겁니다. 두 분은 칼과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칼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엘렌은 소름이 끼쳤다.

"길이 어떤데요? 그냥 차로 따라가면 안 되나요?"

칼이 말을 하기 위해 엘렌 쪽의 창문에 몸을 기댔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퀴퀴한 맥주 냄새가 풍겨 나왔다. 구역질 나는 냄새에 엘렌은 몸을 떨었다. 그녀의 반응을 본 칼이 빙그레 웃었다. 송곳니는 빠져 있었고 이에는 누런 때가 끼어 있었다.

"여어, 뭐가 문제죠? 우리를 못 믿나 보죠? 우리는 당신을 아들한테 데려다주려는 거에요. 더 이상은 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쿱하고 내가 저 아래까지 내려 갔다 왔어요."

그가 다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1킬로미터 정도 더 갈 수는 있지만 거기부터는 숲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이 숲을 뚫고 아들한테 갈 방법은 없어요."

그는 무릎으로 지프의 문을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칼은 부드럽게 웃는 것 같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와 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 우리는 강둑을 도로 삼아 갈 겁니다. 그렇게 해서 산으로 가는 것이 훨씬 빨라요."

"좋아요."

앤지가 말했다.

"우리 물건을 내릴게요."

칼과 쿱이 사내들에게로 돌아가 뭔가 이야기했다. 사내들은 고개를 돌려 지프를 바라보다가 칼이 이상한 몸짓을 해대자 웃음을 터뜨렸다. 앤지가 그걸 보고 엘렌에게 말했다.

"엘렌, 이번에는 느낌이 안 좋아요. 쿱은 믿을 수 있고 쉽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칼과 저 사내들은 다른 것 같아요. 저 총들을 가지고 뭘 한다는 거죠? 저들 가운데 두 남자는 자동 소총을 들고 있던데, 봤어요? 당신하고 같이 가기 싫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요."

앤지가 말했다.

"난 그저 당신이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건지 알았으면 하는 거예요. 칼과 그의 동료들은 지금 좋은 기회를 잡은 거예요. 공장이나 작업장으로부터 벗어나 여자나 낚으러 다닐 아주 좋은 기회 말이에요. 아마 쿱이 그들을 통제할 수있을 거예요 -그는 할 수 있을 거예요."

"앤지.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당신은 모텔에서 편안하게 빌을 기다리며 지낼 수 있었는데도 당신의 시간과 돈을 쓰면서 나를 이곳까지 어렵게 데려다주었어요. 돌아가세요. 지금부터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나도 저들을 믿지는 앉지만 내 아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악마하고라도 거래를 할 거예요. 난 아이가 포틀랜들에 있는지, 아니라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만 해요."

"내가 칼의 오토바이에 타기를 바라는군요."

"앤지, 당신은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도 들었어요. 누구 오토바이에 타고 싶어요?"

엘렌은 앤지를 바라보고 미소를 짓다가 그녀를 껴안았다.

"내가 칼하고 갈게요. 당신은 쿱이나 사로잡아요."

"이번 오토바이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그는 나무하고라도 잘 수 있을 정도로 흥분되어 있을 거예요."

엘렌도 그 점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칼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와 앤지가 오토바이에 올라타자 다른 사내들은 약간 불만스러워했다. 그들은 모두 앤지와 쿱을 바라보고 있었고, 오직 칼만이 정나미 떨어지는 입맞 다시는 소리를 내며 엘렌을 보고 윙크를 했다. 엘렌은 칼 뒤에 앉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녀가 오토바이에 올라타기 위해 그녀의 다리를 뻗어 들어 올리자, 칼은 그녀의 다리를 누르며 듣기 거북한 소리를 냈다.

다른 사내들이 앞장서서 다리를 자나간 다음 오토바이를 돌리자 비탈이 심한 강둑을 따라 흙들을 흘러내렸다. 땅은 무척 울퉁불퉁했고, 엘렌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손을 칼의 몸에 대기 싫어 그의 옷자락만 잡고 있다가 가끔씩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그에게 살짝 기대기만 했다. 앤지는 엘렌처럼 까다롭게 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쿱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었고, 가슴을 그의 등에 찰싹대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엘렌은 긴장을 조금 풀었다. 그녀는 칼을 믿기 시작했다. -최소한 그의 운전 솜씨는 훌륭했다.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았고, 앞장을 서서 길을 안내하던 바비라는 이름의 덩치 큰 사내가 멈추어 서더니 오토바이를 몰고 뒤로 와 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비는 이 근처 어딘가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것을 묻는 것 같았고, 그러자 쿱이 강둑 너머를 가리켰다. 바비가 오토바이를 둑 사이로 조금 몰고 나갔고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오토바이가 둔덕 언저리에 닿는 것 같더니 그가 모습을 감췄다. 한참 후 그가 다시 나타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뒤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사람씩 사내들은 등성이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쿱과 칼은 다른 사람들이 다 건너갈 때까지 기다렸다. 쿱은 고개를 돌리고 앤지에게 뭔가 이야기했다. 그러자 앤지는 팔에 힘을 주며, 그에게 몸을 더 바짝 기댔다. 쿱도 마찬가지로 엔진을 부르릉거리며 둔덕을 올랐는데, 착륙할 때 오토바이가 약간 비틀거렸다. 잠시 후 중심을 잡은 그는 둑 가장자리를 따라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칼은 엘렌에게 몸을 돌리고 말했다.

"앤지가 한 것처럼 잘 붙잡아요, 올라갈 때 나를 꼭 잡고 몸을 내게 붙어요."

엘렌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혼자서 언덕을 넘어가고 싶었다. 이것은 단순히 언덕을 오르는 것이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이었다. 다른 사내들은 칼이 과연 강둑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보고 있었다. 만약 엘렌이 칼을 다루어야 한다면 그녀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테리와의 결혼 생활을 통해 심리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주워들은 게 있었다. 엘렌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돌변하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칼은 엔진에 시동을 걸고 둔덕 아래쪽에 두 줄로 서 있는 오토바이들 사이를 가리켰다. 혐오감을 감추며 그녀는 칼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그에게 몸을 기댔고, 그가 들에 닿은 그녀 가슴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그때 칼이 클러치를 놓았다. 오토바이는 공중으로 날았고, 오토바이 앞바퀴가 휙 꺽이고 있었다. 오토바이의 속도가 뚝 떨어지며 엔진이 요동쳤다. 그들이 속도를 줄여 착지하자 앞바퀴는 제대로 돌아왔고, 그들은 꼭대기를 넘었다.

칼은 줄지어 서 있는 오토바이들 옆을 의기양양하게 지나 맨 앞줄에 멈춰 섰다. 바비와 다른 사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바비가 엘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그녀의 기분이 풀린 것 같은데."

엘렌은 아직도 자신이 칼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며 바비를 노려보았다. 그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들은 미송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는 길을 빠져나와 들판으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 숲이 보였다. 엘렌은 숲에 대해서는 이미 라디오에서 들었었지만 눈앞에서 이렇게 보니 정만 믿을 수가 없어ㅆ. 나무들은 그 기후에서 자라는 주목이 아니었고, 이상할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그녀는 그것들이 삼나무일 거라고 추측했다. 나무들은 캘리포니아의 자이언츠 애비뉴를 따라서 있던 나무들만큼이나 컸다. 사내들도 오토바이를 한쪽에 세우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나무 밑에 나 있는 덤불들은 그리 빽빽하지는 않았지만 키가 상당히 컸다. 일부 양치 식물은 엘렌의 키만큼 자라 있었지만, 매부분의 풀들은 키가 2미터가 넘을 것 같았다.

엘렌은 동굴에 같이 있던 그 청년을 생각했다. 백 년 전에 겪은 사건 같았다. '세강의 종말' 그가 그렇게 말했다. 엘렌은 숲을 바라보며 그라 이런 걸 말하려고 했던 건지 궁금하게 여겼다. 5번 고속도로 위에 산이, 포틀랜드에는 삼나무 숲이 떨어진다는 거였을까? 이런 게 어떻게 세상의 종말일 수 있는 거지?

사내들조차 숲을 보고는 놀란 것 같았다. 다시 그들이 출발했을 때는 쿱이 선두에 섰고 칼이 그 뒤에 섰다. 그들은 풀들을 짓밟아 뭉개 버리며 숲을 따라 오토바이를 몰았다. 엘렌은 주변에 농가라도 있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아들 가까이에 와 있었고 불법적인 약탈을 위해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내 쿱이 숲속으로 들어갔고, 엘렌은 그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숲을 지나 그 반대편으로 나오니 초원이 나왔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쿱이 서 있는 초원 가운데로 몰았다. 칼은 쿱 옆에 오토바이를 세웠고 다른 사내들이 그들의 양옆에 나란히 섰다.

"저기에서 그걸 봤소."

쿱이 손을 가리켰다.

엘렌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그것이 뭔지 궁금했다.

"염병할."

키쉬톤이라 불리는 남자가 옥을 내뱉었다. 그는 사내들 가운에 가장 키가 작았지만 힘은 제일 센 것 같았다. 그의 팔뚝과 가슴은 근육으로 뭉쳐져 있었고, 보디빌더처럼 몸이 단련되었었다.

"엉터리 같은데."

"쿱은 우리에게 거짓말하지 않아, 안 그래요, ?"

칼이 말했다.

키쉬톤이 입을 다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엘렌은 이런 것들이 사춘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우정의 표현 방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테리가 뭐라고 말했었더라?

'느슨한 동료 의식으로 연결되어있는, 같은 의견을 지닌 남성들의 모임으로 정해진 리더가 없음.'

엘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각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그룹에 리더가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정하지만 외부인이 볼 때는 리더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는 칼이 리더였다. 엘렌은 리더쉽이란 다른 남성들이 높이 평가하는 뭔가를 - 이를테면 가장 힘이 세다거나, 가장 놓은 차를 가지고 있다던가 또는 여자를 잘 다룬다던가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엘렌은 칼을 유심히 살폈고 그가 그들 가운데 제일 난폭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키쉬톤이나, 바비가 제일 거칠 것 같았다. 칼은 그들처럼 거칠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리더였다. 왜일? 키쉬톤이 다시 말했다.

"좋아, 만약 그게 여기에 있다면 어떻게 어미를 찾지?"

"쿱이 찾을 거야, 그렇지 않아야\,?"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칼은 쿱에게 그들이 찾고 있는 그 뭔가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아들을 찾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엘렌은 말을 꺼냈다.

"나는 당신들이 내 아들을 찾는 걸 도와주러 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어떻게 된 거죠?"

칼이 엘렌을 보고 이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었다.

", 걱정 말아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요. 출발하시죠. , 내가 후미에 서겠습니다."

앤지가 엘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떻게 그렇게 칼을 잘 참아냈어요? 나하고 자리 바꿀래요?"

"아니에요. 당신도 쿱하고 아주 잘하고 있어요. 쿱을 계속 당신 매력으로 꽉 잡아두라구요"

"그러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그는 내 손아귀에 있어요."

앤지가 킥킥대며 웃었다. 쿱은 초원 주위를 한번 둘러본 다음 나무들 사이로 오토바이를 물았다. 키 큰 양치 식물들과 풀들이 초원에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땅에는 덤불들이 듬성듬성 나 있을 뿐이었다. 이동은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칼은 덤불을 헤치고 지나가는 동안 계속 욕설을 퍼부었고 풀더미들을 걷어찼다.

그들은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와 또 다른 초원으로 들어섰는데 쿱과 앤지는 초원 끄트머리를 지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다른 오토바이들도 하나씩 그 뒤를 따랐다. 칼이 마지막으로 작은 시내물을 뛰어 넘어 초원을 벗어났다. 길은 미끄러웠지만 그들은 무사히 통과 했다. 여기에는 언덕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엘렌은 주면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포틀랜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다. 엘렌은 만약 포틀랜드가 없어졌다면 아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쿱이 그들을 이끌고 언덕을 지나 초원으로 들어서더니 오토바이의 시동을 꼈다.

"저길 봐요."

쿱이 초원을 가리켰다. 엘렌에게는 풀과 양치식물들의 군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반구형의 머리가 풀 위로 불쑥 올라왔다. 길고 가느다란 목 끝에 머리가 달려 있었고 살갗은 ㄱ은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머리는 풀을 입에 잔뜩 물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렌은 지금까지 이렇게 생긴 것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최소한 살아있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은 공룡이 분명했다.

"젠장!"

칼이 소리를 질렀다.

"어미는 내 거야."

"제기랄, 경찰 나으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내가 말했었지. 난 이런 걸 가지고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구."

엘렌은 사내들이 총을 꺼내 탄혼을 장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냥 내버려둬요!"

엘렌이 소리쳤다.

"만약 저게 공룡이라면 아마 살아 있는 마지막 공룡일 거예요. 죽여서는 안 돼요. 그냥 그대로 놔둬요."

"누가 당신한데 물어봤어?"

키쉬톤이 거칠게 대꾸했다.

"누구든지 저놈을 명중시키는 사람이 머리를 갖는 거야."

나머지 사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를 쳤다.

"좋아."

"난 이번 일은 몰라."

쿱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칼과 다른 사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고 그는 그들이 자신을 한번 노려보기라도 하면 움츠러들 것이다.

"엘렌 말이 옳아요."

앤지가 말을 잘랐다.

"저 공룡을 죽이는 것보다 살려 두는 편이 훨씬 쓸모가 있다구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은 주춤거렸고 마침내 칼이 입을 열었다.

"젠장, 저놈이 있던 곳에는 더 많이들 있을 거라구."

흥분한 사내들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더니 울퉁불퉁한 땅 위에서 미친 듯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오직 쿱과 칼만이 잠자코 있었는데 칼은 매서운 눈초리로 쿱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우리와 한편인가요, 아닌가요, ?"

"이렇게 자네들하고 오지 않았나, ."

쿱이 힘없이 말했다. 하니만 엘렌은 쿱이 돈을 받고 공룡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걸 알았다. 겁에 질린 불쌍한 쿱도 엘렌과 똑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숲속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그리고 문명으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사내들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공룡 사냥이 시작되었다. 공룡은 잠깐동안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서는 무리들을 바라보더니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엘렌은 공룡이 달리는 모습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키가 3미터 정도 되는 공룡은 두 다리로 달리고 있었는데 사람들보다 훨씬 빨랐다. 오토바이를 탄 사내들은 두 패로 나뉘어 공룡의 양옆으로 다가섰고 공룡이 숲속으로 들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룡을 쓰러뜨리려고 했다. 거의 말수가 없던, 단단해 보이는 체격에 대머리가 진 버틀러라는 이름의 남자가 오토바이를 옆으로 기울여 세운 뒤 총을 쏘았다. 맞지는 않았지만, 총소리에 놀란 공룡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키쉬톤의 오토바이가 궤도에서 벗어났다. 풀밭으로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서 그가 풀밭에 처박혔다. 버틀러가 다시 총을 쏘았고, 공룡은 무릎을 꿇으며 옆으로 쓰러지더니 그 긴 목을 들썩였다. 다른 사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룡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버틀러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총을 들기도 전에 공룡은 몸을 일으키고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쿱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앤지를 대운 뒤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칼은 꼼짝하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탄 사내들이 다시 공룡을 공격했고, 공룡은 초원 가운데로 달려갔다. 억지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엘렌의 눈에 공룡의 뒷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보였다. 그녀는 공룡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포기했고, 차라리 그들이 얼른 공룡을 죽여 고통을 없애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사내들은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공룡은 엘렌과 칼이 서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공룡과 점점 가까원지면서 모습이 잘 보였다. 총성이 울렸고 공룡이 오른쪽으로 고꾸라졌다. 공룡은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뒷다리는 괜찮았지만 앞다리가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앞다리가 푹 꺾이면서 공룡이 나뒹굴었다. 공룡이 쓰러지면서 풀밭이 뭉개졌고, 공룡이 흘린 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그 광경을 보고 웃어대고 있었다. 쿱이 그때 도착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큽은 화가 나서 바비에게 항의했다. 바비는 쿱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앤지가 팔로 쿱의 허리를 감싸고 그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바비가 무슨 말인가를 했고 다른 사내들이 모두 웃었다. 사냥꾼들은 다시 죽어 가는 공룡의 몸부림을 즐기기 시작했다. 앤지와 쿱이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쿱이 돌아섰고, 그는 자신의 권총을 꺼내어 공룡을 향해 총을 쏘았다. 사냥꾼들은 권총 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났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모두 쿱을 향해 돌아섰다.

엘렌은 멀리서도 그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앤지의 안전이 걱정된 엘렌이 그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칼이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 세웠다.

"파티를 즐기게 놔둬요."

칼이 능글맞게 웃으며 엘렌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엘렌은 손으로 칼의 가슴을 밀었다. 칼은 심술궂게 쳐다보더니 엘렌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강했고, 그녀를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잔인해 보이는 그의 눈빛은 그가 그녀의 저항을 즐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칼은 팔에 힘을 주고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비벼 대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아요, ! 보내줘요."

"어딜 갈 건데? 사냥은 끝났다구. 볼 건 아무것도 없어."

"난 아들을 찾아야 해요."

"부인, 아직도 모르겠소? 여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모두 사라져 버렸다구요.도시도, 사람들도... 물론 당신 아들도, 당신에겐 곧 다른 사람이 있어야 알 것 같은데. 내가 그 일을 도와주지."

칼이 엘렌의 위로 쓰러졌다. 엘렌은 칼의 품 안에 안긴 채 땅 위로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계속 술 냄새가 풍겼다. 엘렌은 몸부림치며 칼의 머리를 힘껏 때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리느라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엘렌은 더욱 세게 그를 때렸다.

"어서 비켜!"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칼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주먹을 재빨리 피했다. 그때 엘렌은 누군가 웃는 소리를 들었다.

", 너무 살살 다루는 거 아냐."

키쉬톤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끝이 날카로운 풀 위로 넘어지면서 수십 군데를 베이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과 셔츠, 그리고 바지는 찢어진 채 피에 물들어 있었다.

"꺼져, 키쉬톤, 난 바뻐."

칼이 으르렁거렸다. 엘렌은 칼의 자존심이 상처받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키쉬톤은 그가 여자한테 얻어맞는 것을 본 것이다. 이제 칼은 그에 대해 보복을 할 것이다. 그때 쿱이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다가왔다. 앤지가 바로 오토바이에서 내려 엘렌을 부축해 일으켰다. 쿱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 우리는 부인이 아들을 찾는 걸 도와주러 여기에 온 거야, 기억하나? 이런 일을 다시 한번 저지르면 내가...내가..."

"당신이 뭘? 날 체포라도 할건가? 어디에서 그 망할 놈의 감옥을 찾아낼 거야? 빌어먹을 당신은 경찰도 아니잖아."

"그래도 나는 퇴역 경찰이야-"

", 당신은 피토스 서장의 골칫덩어리였어. 서장이 당신을 어쩌지 못한 것은 당신한테는 돈이 안 들었기 때문이지. 우리라면 그 적은 돈을 받고 노예나 다름없이 일하지는 않았을 거야. , 그렇게 바보였나? 그는 우리에게 제안을 했지. 여기 키쉬톤이나 다른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 한 번씩은 제안했었어, 그렇지 않나, 키쉬톤? 알려줄 게 하나 더 있는데, , 우린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어. 우리는 공룡을 잡았으니까. 이제 당신이 어디에 더 쓸모가 있겠어?"

그의 목소리는 최후통첩처럼 들렸고 쿱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 만약 그들이 쿱을 돌려보내거나 더 나쁜 일이 생긴다면 아무도 칼로부터 엘렌을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쿱은 키쉬톤이 끼어들까 봐 불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다툼은 오토바이 뒤에 공룡의 목을 매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 버틀러의 구역질 나는 모습에 잠시 중단되었다. 그의 뒤를 따라 나타난 사람들 역시 오토바이 뒤에 공룡의 다리를 하나씩 매달고 있었다.

"저 새끼를 공룡이라고 부른 거였어요?"

엘렌이 물었다. 모두들 엘렌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새끼라구?"

버틀러가 얼른 고래를 오토바이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지금 어미 공룡한데 새끼라고 말하는 거요?"

"그래요."

엘렌이 말을 계속했다.

"공룡은 성장하면 이것보다 훨씬 더 커져요. 어떤 것들은 3층 건물 높이만큼이나 크다구요. 아주 크기 때문에 당신들이 이렇게 잡아 올 수 있는지 의심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 나는 당신이 더 큰 공룡을 찾아낼 거라고 장담해요, 안 그래요, ?"

앤지가 장단을 맞추었다.

"나도 영화에서 이런 공룡들을 본적이 있기 때문에 공룡들이 이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걸 알아요. 킹콩 영화 본 적 있어요? 이게 큰 놈 같아요. ?"

아무도 쿱의 대답에 신경 쓰지 않았다. 사내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 술병을 꺼냈고 그들은 술을 마시며 다음 사냥 계획을 짰다. 칼은 그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는 눈빛으로 엘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들은 알코올의 힘을 빌어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엘렌에게는 이제 두 가지 선택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숨긴 채칼이 탄 오토바이의 뒤에 탔다. 앤지는 자리를 바꾸어 타겠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엘렌이 보기에 앤지는 쿱을 잘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쿱이 떠한 이후 사내들을 잘 다룰 수 있는 통제력이었다. 존이 마치 몇 시간은 걸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커비가 걸음을 멈추고 섰다.

"뭔가 이상해, . 지금쯤이면 포틀랜드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여기 경치는 이미 봤던 것들이야."

존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들이 계속을 따라 내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양쪽으로 언덕들이 모두 보였고, 여기저기에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다. 숲은 울창했지만 길은 평탄해 보였다. 이게 윌라밋 계곡인가? 커비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고, 존은 항상 그랬듯이 자신보다는 커비의 직감을 더 믿고 있었다.

"아마 조금 더 지나온 거겠지."

존이 말했다. 커비는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모르겠더, . 최소한 고층 건물들이 보여야 하는데."

커비는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남쪽을 가리켰다.

"저 쓰러져 있는 나무들 위로 올라가 보자. 그러면 주위를 살펴볼 수 있을 거야."

존은 망설이다가 커비의 뒤를 따랐다. 언덕을 다시 넘은 후 존이 걷기를 포기하려는 순간 그들이 쓰러져 있는 나무들 안에 생긴 개간지로 들어섰다. 나무들은 사방에 쓰러져 있었고, 뿌리는 뽑혀 허공에 들려 있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탈이 심한 언덕까지 가서 쓰러진 나무줄기를 밟고 올라섰다. 계곡이 잘 보였다. 계곡 아래 여기저기에 개간지가 있는 숲이 생겨나 있었다. 계곡 중간에 포틀랜드가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틀림없이 포틀랜드였다. 커비와 존은 환호성을 지르며 껑충껑충 뛰었다. 그때 커비가 다시 크게 소리지르며 도시의 남쪽을 가리켰다. 존이 커비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런 건물들과 나무들만 보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숲에 의해 나뉘기는 했지만 언덕이 보였고, 그 언덕 위에 희미하게 커비네 교회가 보이고 있었다. 존은 교외를 바라보다가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이 위치에서는 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찾았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비가 큰소리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존은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느낌 속에 그들은 교회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그들의 생각이 중단되었다. 그 소리는 공룡의 울음소리가 아니었고 꽤 떨어진 곳에서 울리는 엔진 소리 같은 것이었다. 소리를 듣고 그는 포틀랜드 하늘 위로 생긴 반구형의 빛을 바라보았다. -빛은 금방 사라졌다.

그들은 숲속으로 뛰어들었고 목적지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들은 지치고 허기져 있었지만 결승점을 눈앞에 둔 선수처럼 힘을 냈다. 계곡 밑에 생겨난 숲에는 나무가 그리 많지 않았고 덤불만 약간 있었다. 그들은 창처럼 날카로운 풀들을 피해 엄청나게 많이 생겨난 양치식물들 사이로 걸어가야 했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한참을 갔을 때 그들은 엄청나게 큰 물체가 나무 사이로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덤불 속에 몸을 감췄다. 그들은 땅위에 엎드려 그 공룡들의 후각이 나쁘기만을 기도했다. 곧 그 소리들은 다른 방향으로 옮겨갔고 그들은 재빨리 일어나 계속 나아갔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졌기 때문에 존은 불안했다. 여기에는 풀이나 나무가 얼마 없었다. 밤에 몸을 숨길 속이 마땅치 않았다. 존은 다시 엔진 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것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숲속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이야. 커비. 들어보라구. 사람 소리가 나."

"네 말이 맞아. 어쩌면 도시 외곽에 도착한 걸지도 몰라."

그들이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알아내려고 애쓰는 순간 갑자기 소리가 잠잠해졌다. 커비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고, 그들은 재빨리 나무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들은 바비가 언덕을 다시 오르는 동안 시냇가에서 기다렸다. 바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더니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럴 수가. 자네들도 이걸 봐야만 해. 어서들 올라오라구."

바비를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 보니 커다란 개간지가 나왔다. 그 뒤로 뭔가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포틀랜드였다. 희망이 엘렌의 온몸에 퍼져 나갔다. 그녀는 아들 찾는 일을 조금씩 체념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존의 기분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만약 도시 외곽까지 온 것이라면 그는 집까지 차를 얻어 타고 가서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언덕을 더 넘어야 했지만 그 언덕은 경사가 완만해 넘기가 쉬웠다. 반대편으로 내려오자 나무들은 점점 적어지고 있었고, 그들은 커다란 개간지를 발견하였다. 개간지 가장자리에 몇 대의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 근처에 8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존은 그 가운데 두 명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낯이 익었다.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존은 바로 엄마라는 걸 알았다.

"우리 엄마야."

그가 커비를 지나쳐 개척지로 걸어가며 말했다. 커비가 존의 팔을 잡아세웠다.

"기다려, , 뭔가 이상해."

존과 커비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엘렌과 앤지는 도시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실망한 것 같았고 심지어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당신이 우리한테 어미 공룡을 찾아 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

칼이 위협하듯 말했다.

"그렇지."

키쉬톤이 협박조로 말을 받았다. 키쉬톤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사냥감을 놓쳤어, 뭔가 일을 찾아 여기에 왔는데 말이야."

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쿱에게 다가갔다. 쿱은 앤지에게 오토바이에서 내리라고 말하고 키쉬톤과 맞섰다.

"나는 벌써 당신들한테 공룡을 한 마리 찾아 주었어. 두 마리를 찾아 준다고 말한 적 없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 만약 우리한테 공룡을 찾아 줄 수 없다면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필요하겠어?"

"쿱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아. 키쉬톤."

칼이 쿱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한테 공룡을 찾아 줄 거야. 그것뿐 아니라 다른 놀이를 위해서도 우리를 여기 데려온 거라구."

그가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쿱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굳어졌고,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훌륭한 경관이자 우리의 동료인 네 놈이 우리에게 엘렌과 앤지를 데려다 주었잖나. 세상에서 가장 죽여주는 여자 두 명을 말이야."

"최소한 앤지야 그렇지."

키쉬톤이 그녀의 뒤로 다가서면서 말했다.

"이봐, 키쉬톤, 너와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가져, 엘렌은 나를 흥분시켜."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우게, ."

쿱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여자들이 자네가 진담하는 걸로 알겠어."

칼이 자신이 바지가랑이 사이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진지해 보이지 않나, ?"

다른 사내들이 웃기 시작했다.

"손을 내려놔, "

쿱이 총을 빼 들기 위해 손을 아래로 내렸다.

"나를 말릴 수 있나, 경찰 나으리?"

"나는 법을-"

", 당신은 더 이상 칼튼의 경찰이 아니야. 그리고 여기서는 더 이상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지. 여기에서는 내가 법이야."

그러더니 아무런 경고도 없이, 칼은 총을 빼들고 쿱의 가슴에 쏘아 댔다. 땅 위로 쓰러진 쿱은 몸을 비틀더니 수풀 깊숙이 처박혔다. 엘렌은 그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 다른 사내들도 충격을 받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엘렌은 그들이 앞다투어 쿱을 구타하고 옷을 벗긴 후 고문을 하거나, 그를 발가벗기고 나무에 매단 채 그를 버려둘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제 알 수 있었다. 칼이 그 그룹의 리더가 된 것은 그의 무자비함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쿱을 살해했다. 어디까지 가게 될까? 그에 대한 해답은 키쉬톤의 앤지의 팔을 잡고 그녀의 등 뒤로 돌려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분명해졌다.

", 나 좀 도와줘, 버틀러."

버틀러는 망설였다. 잠시 후 그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와 앤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엄마."

그가 말했다.

"이제부터 재미있어지겠군."

버틀러가 앤지의 불라우스를 찢었다. 그녀는 소를 지르거나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발길질을 해댔다. 버틀러가 앤지에게 몸을 바짝 붙였기 때문에 앤지는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찢어진 블라우스가 허리까지 벗겨져 내렸다. 엘렌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광경에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그녀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 뒤로 육중한 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을 행해 달리며 숲에 몸을 숨길 수 있기를 바랬다.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 달렸을 때 칼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땅에 턱을 부딪쳤고 그 충격으로 이빨이 몹시 아파 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계속 발길질을 해대며 칼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칼을 밀어냈다. 그는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저항을 즐겼다. 잠시 후 바비가 도착했고, 두 남자는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칼은 그녀의 몸 위에 올라가 그녀가 꼼짝 못 하게 눌렀다. 그리고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그녀의 팔을 꽉 붙잡았다. 바비가 그녀의 양팔을 머리 위로 잡아당겼다. 칼은 몸을 뒤로 제쳐 그녀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는 그녀의 가슴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그녀는 저항하다 말고 칼에게 조금만 더 몸을 뒤로 젖혀 달라고 말하고, 칼이 몸을 움직이자 무릎으로 그의 등을 걷어찼다. 칼이 아픔을 찾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눈에 불꽃이 튀는 것 같더니 칼은 엘렌의 따귀를 갈겼다. 칼은 그녀의 가슴을 만지다가 갑자기 블라우스를 찢었다.

"야아!"

칼이 말했다. 그는 바비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제대로 고른 거야. 그리고 나중에 앤지를 가질 수도 있잖아."

칼은 손을 등 뒤로 돌려 엘렌의 브래지어를 벗기려고 했다. 그가 엘렌의 등 밑에 손을 넣어 브래지어 끈을 잡았다. 마침내 고리가 풀렸고, 칼은 거칠게 엘렌의 가슴을 주물렀다. 바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킬킬거리고 있었고 칼은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조금씩 엘렌의 허리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그때 바비가 비명을 질렀다. 땅 위에서 뒹굴던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엘렌과 칼 위로 쓰러졌다. 그는 입을 씰룩이고 있었다. 비명은 더 이상 지르지 않았고 그 대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무릎을 꿇고 땅 위로 풀썩 엎어졌다. 엘렌은 그의 등 뒤에 꽂힌 화살을 똑똑히 보았다. 칼은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총을 꺼내 들었다. 그가 엘렌 뒤쪽의 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화살이 날아와 그의 장딴지에 박혔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따위로 쓰러졌고, 총을 손에서 떨어뜨린 채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엘렌은 땅 위를 기다가 일어나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숲을 향해 무작정 달리며 뒤에서 쫓아오지는 않는지 귀 기울였지만, 몸 안에서 고동치는 맥박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달렸다. 덤불과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혔다. 발부리가 걸려 넘어진 순간에도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무 사이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거의 벌거벗고 있는 몸뚱아리였다. 엘렌은 앤지를 알아보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엘렌이 흐느꼈다.

"미안해요ㅡ앤지. 당신을 남겨 두고 혼자 도망치다니. 정말 미안해요."

엘렌은 처음부터 그녀를 이런 궁지에 빠뜨린 것에. 그리고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도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말도 안돼요."

앤지가 활기차게 말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이제 여기에서 벗어나야죠."

그들이 다시 떠나려고 할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쪽이에요, 로버츠 부인."

엘렌이 바라보니 한 남자가-아니, 소년이- 덤불 뒤에서 나타났다. 그는 나뭇가지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손에는 세 개의 줄이 달린 활이 쥐어져 있었고 등에는 화살 꾸러미가 매달려 있었다. 엘렌은 기억을 더듬었다. 얼굴이 낯익었다. 그 아이는 아들의 친구, 로버트였다. 그것 말고도 그녀는 다른 것을, 그는 것인 리프먼으로 불리기를 좋아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41. 추적

둥지 안의 알들을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는 것과 성체의 화석과 새끼의 화석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은 공룡에게도 포유동물과 비슷한 모성 본능이 있었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조지 헤일, 공룡의 꿈

오레곤주 벤드 북쪽 화요일, 오전 713(태평양 표준시)

그들은 너무 두려워 움직이거나 소리를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RV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가끔씩 공룡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공룡은 계속 RV 주위를 맴돌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 오면서 공룡은 멀리 간 것 같았다. 20분 정도 지났을 때 콜터가 몸을 일으켜 밖을 내다보았다.

"갔어요."

그가 속삭였다. 그는 밖으로 나가 자동차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 버린 것이 틀림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공룡이 사라졌는지 확인했다. 그들은 확인이 끝난 뒤에야 말을 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소리로만 말했다. 그 와중에서도 믿을 수 없게 큼 박사와 팔쳐 박사는 또 다른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게 트리케라톱스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쿰 박사가 물었다.

"틀림없이 그건 케라톱신이에요, 하지만 트리케라톱스의 뿔과는 달랐어요. 오히려 모노클로니우스 같아요."

필쳐 박사가 되받아쳤다.

"난 동의할 수 없어요."

쿰 박사가 우겼다.

"코에 있는 구부러진 뿔은 전형적인 모노클로니우스의 특징이지만 주름이 이 종에 나타나는 것치고는 너무 커요. 모너라는 말은 결국 하나라는 의미 아닙니까, 아마 이것은 둘 사이에 위치하는 종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나요?"

피트라가 소리쳤다.

"트리케라톱스! 모노클로니우스! 중요한 것은 공룡들이 다시 돌아오느냐 안 오느냐 하는 문제라구요!"

쿰박사와 필쳐 박사가 입을 다물었다.

콜터는 밖에서 자동차를 살펴보고 있었다. 차는 찌부러지고 군데군데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는 타이어를 누르고 있는 뭉개진 범퍼를 펴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나 좀 도와줘, 피트라."

그가 범퍼를 잡아당기며 그녀를 재촉했다.

피트라가 콜터 옆으로 다가와 그를 도와 자동차 휠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범퍼를 잡아당겼지만 잘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기 위해 왔을 때 깨진 창문으로 무스가 목을 쑥 내밀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기겁을 했다. 무스는 창가에 매달려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스는 도망가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들이 다같이 힘을 주고 잡아당기자 구부러진 금속판들이 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스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돌려 차 안으로 도망쳤다. 뒤에 서 엄청난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공룡이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앞다투어 문 쪽으로 달려갔고 파트라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녀는 차 안으로 몸을 던졌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공룡이 돌진하기 이전에 모두가 차 안에 들어갈 정도로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서로가 먼저, 또는 맨 마지막으로 들어가고 싶지 ㅇ아 머뭇거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그들을 향해 공룡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어서 피해요!"

피트라가 비명을 질렀다.

콜터가 먼저 움직였고, 그는 오른쪽으로 달렸다. 공룡이 그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쿰 박사가 그 다음에 왼쪽으로 달리며 공룡의 시선을 콜터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문 앞에 혼자 남게 된 필쳐 박사는 공룡이 그에게 달려들기 전에 차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필쳐 박사가 차 안으로 들어오자 공룡은 쿰 박사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룡은 자동차에 부딪히고 밀았다. 공룡은 콧등에 난 뿔로 벽을 뚫은 다음 거대한 머리로 RV의 옆면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차 안으로 쑥 들어온 공룡의 뿔이 캐비넷을 부쉈지만, 목 주위에 난 깃에 걸려 공룡의 머리는 와전히 차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피쳐 박사는 공룡의 공격에 뒤로 넘어지며 벽에 몸을 부딪치더니 다시 앞으로 밀려나오며 쓰러졌다. 그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팔을 내밀었지만 공룡의 뿔 바로 앞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공룡과 필쳐 박사는 서로 당황해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 순간 커다란 입이 벌어지며 엄청나게 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며 온몸의 신경을 갈기갈기 ㅉ어 놓고 있었다. 필쳐 박사는 손으로 공룡을 밀어내며, 공룡의 입에서 몸을 피했다. 공료이 다시 소리를 질렀고, 필쳐 막사와 피트라는 사라와 함께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화가 난 공룡이 다시 소리를 지르더니 머리를 거칠게 흔들어 대다가 그 엄청나게 큰 말로 차를 밀었다. 괴물의 모리가 움직일 때마다 너덜너덜해진 차체 금속이 공룡의 목 주위를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목에서 흐르는 피가 시냇물을 이루며 차 안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고통도 잊은 듯 공룡은 계속해서 모리를 흔들었다. 입구가 커졌고, 공룡이 있는 힘을 다해 용을 쓰자 머리가 빠져나갔다.

차를 들이받고 공룡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제 다시 몸이 자유로워지자 둥지를 약탈한 자들의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룡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멀리 개간지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피트라는 공룡이 큼 박사의 뒤를 쫓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필쳐 박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도왕 돼요, 박사님. 어떻게 해야 하죠?"

필쳐 박사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이론과 사색, 그리고 비상한 기억력이 그의 장기였으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그엑에 낯설었다. 필쳐 박사의 생각을 알아차린 피트라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 콜터를 불렀다.

그는 피트라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풀 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공룡의 주의를 끌려고 했었지만 공룡이 RV를 공격하는 걸 보고 풀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콜터는 피트라가 공룡을 가리키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콜터! 공룡이 쿰 박사를 쫓아가고 있어! 박사님을 도와드려야 해! 빨리!"

콜터는 쿱 박사 공룡을 떨어트리기 위해 지그재그로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콜터는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룡에게 다른 표적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는 풀 속에서 나와 공룡의 주의를 자기 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가 공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가기만 하면 공룡은 새로 나타난 적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속력을 늦출 것이다. 그러면 쿰 박사가 몸을 숨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생길 것이다.

콜터의 생각을 따라 피트라는 세 변째 목표물 노릇을 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 두 사람은 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공룡은 계속 쿱 박사 뒤를 쫓고 있었다. 쿰 박사는 커다란 덤불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희망을 잃은 쿰 박사는 갑자기 방향을 휙 틀더니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격해 들어오던 황소처럼 공룡은 몸을 돌리지 못하고 쿵쿵거리며 쿰 박사를 지나쳤다.

콜터가 목청 높여 쿰 박사를 격려했다.

"다시 한번 그렇게 하세요, 박사님! 그렇게 원을 작게 그리며 몸을 돌리세요. 공룡은 몸집이 커서 박사님을 잡지 못할 거예요."

쿰 박사는 콜터가 시키는 대로 했고, 공룡은 잠시 후에야 쿰 박사 쪽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쿰 박사는 공룡의 등 뒤로 돌아 오른쪽으로 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공룡이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면서 그 꼬리에 쿰 박사가 맞은 것이다. 쿰 박사는 공룡의 머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공룡은 박사를 따라와 개간지 안으로 그를 굴려 보냈다.

공룡이 잠깐 움직이지 않을 때 쿰 박사는 다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공룡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공룡은 쿰 박사의 가슴을 정통으로 내리쳤다.

놀랍게도 쿰 박사는 다시 일어섰다. 공룡은 머리를 숙이더니 두 개의 뿔로 쿰 박사를 들어 올려 공중에 던졌다. 피트라는 너무 놀라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쿰 박사의 몸이 공룡이 뿔 위에서 흐느적대고 있었다. 뿔 하나는 쿰 박사의 허벅지에 끼어 있었고, 하나는 등 쪽에 박혀 있었다. 그는 공룡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공룡은 놀았는지 쿰 박사의 흐물거리는 몸을 떼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어 댔다. 피트라는 공룡이 점점 더 격렬하게 머리를 흔드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버렸다. 쿰 박사는 아직도 뿔에 매달려 있었다. 피트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콜터가 풀 속에서 뭔가 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는 그의 손에 긴 막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콜터가 공룡의 몸 뒤쪽으로 살그머니 다가가고 있을 때까지도 공룡은 쿰 박사의 몸을 떨쳐내기 위해 버두대고 있었다. 그의 팔이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팔이 다시 밑으로 축 처졌다. 그는 살아있어, 피트라는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그녀는 공룡이 콜터에게 관심을 두지 않게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콜터는 이제 아주 공룡 가까이까지 가 있었기 때문에 피트라는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공룡이 드디어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분노로 눈이 번뜩이고 있었지만 공룡은 그저 피트라를 쏘아보기만 했다. 피트라가 공룡의 관심을 끈 순간 콜터가 달렸다.

콜터는 공룡에게 다가가 날카롭게 다듬은 막대기를 공룡 목 주위에 난 상처 중 하나에 찔러 넣었다. 피트라가 보기에 막대기는 거의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공룡은 아픔을 이기지 못해 울부짖고 있었다. 공룡은 그 큰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댔고, 뿔에 꿰여있는 쿰 박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공룡이 날뛰는 바람에 잠시 움찔하던 콜터는 다시 막대기를 들고 괴쿨을 찔렀다. 이번에는 공룡이 달리기 시작했다. 콜터는 그 뒤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수풀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졌다. 피트라가 커다란 덤불을 향해 달리는 공룡의 뒤를 쫓았다. 공룡의 모슴이 사라질 때 쿰 박사가 다시 머리를 들었고 눈도 떴다. 그 순간 공룡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피트라도 풀에 걸려 넘어졌다. 풀은 사람과 공룡이 흘린 피로 젖어 있었다. 콜터가 그녀 옆으로 다가왔고, 콜터 뒤로 필쳐 박사가 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쿰 박사님은 살아 있어요, 필쳐 박사님."

피트라가 말했다.

필쳐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피트라, 이해할 수 있네, 자제는 쿰 박사가..."

"살아있다니까요, 박사님. 움직이는 것을 봤어요."

"피트라..."

필쳐 박사가 말을 꺼내는 데 콜터가 말을 잘랐다.

"저도 쿰 박사님이 움직이는 것을 봤어요."

필쳐 박사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숲 쪽으로 몸을 돌리고 소리쳤다.

"조지, 우리가 가겠소, 이렇게 죽으며 안 돼요.조지!"

필쳐 박사가 핏자국을 따라가려는데 콜터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

"무기도 없이 가시려구요?"

"만약 그러고 싶다면 자네는 마을로 가서 무기를 가지고 오게, 콜터. 하지만 자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쿰 박사는 죽어 있을지도 몰라. 나는 지금 가겠네, 그는 내 친구란 말일세."

콜터는 필쳐 박사 옆에 있던 피트라를 바라보고 도와 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 또한 필쳐 박사만큼이나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콜터는 눈을 내리깔더니 머리를 저었다.

"좋아요, 좋아. 그럼 잠짠만 시간을 주세요, 그건 되겠죠?"

콜터는 공룡한데 휘두르던 나무 막대를 손질하다가 엉망이 된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필쳐 박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공룡이 사라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트라가 박사를 붙잡았고, 그녀의 눈빛은 콜터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라고 말하는 듯했다.

콜터는 피묻은 막대기 끝에 칼을 동여 매달아 왔다. 피트라가 모기에 그 막대기는 공룡을 공격하기에 너무 보잘것없었지만 콜터는 자신 있다는 듯 앞장을 섰다.

풀은 뭉개져 있었고 나뭇가지들은 부러져 있었으며,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핏자국들이 그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덤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2족 보행 공룡이 그들 앞을 지나고 있었다. 콜터는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오다 말고 다시 되돌아가는 공룡의 얼룩덜룩한 꼬리를 보았다. 다시 길을 가려고 하는데 네발로 걷고 있는 공룡이 풀숲을 지나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콜터는 다시 멈췄고, 공룡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흔적을 따라 가면서 풀 위에 난 자국을 모았다. 처음에 본 공룡과 비슷하게 생긴 공룡이 그 흔적을 좇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러시아워 무렵의 고속도로 같군. 그들은 청소부 동물들이야."

그들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뭔가 앞쪽의 풀숲에서 움직였다.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만 그것 또한 피냄새를 쫓고 있었다.

갑자기 피트라가 귿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일어서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잡았을 때 그녀는 간단하게 말했다.

"난 저 공룡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요. 공룡들은 둥지에 돌아가는 거예요."

피트라는 그들을 개간지로 데리고 간 다음 공룡의 둥지 쪽에 나 있는 덤불 뒤에 숨었다. 잠시 후 콜터가 몸을 돌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피트라와 필쳐 박사는 잎새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콜터는 계속 망설이다가 필쳐 박사의 계속되는 재촉을 받고서야 앞장섰다. 콜터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기어갔다. 그는 종종 멈추고는 귀를 기울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필쳐 박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콜터를 앞지르려고 하는데 콜터가 그를 잡아당겼다.

"들어보세요!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필쳐 박사가 콜터의 손을 뿌리치는 순간 그는 쪼그리고 앉은 고개를 뒤로 기울이고 뭔가를 열심히 듣고 있는 피트라를 보았다. 그녀는 필쳐 박사에게로 몸을 돌렸고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잘 들어보세요, 뭔가 이상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필쳐 박사는 바람소리 외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뭔가 찢기고 으드득거리며 씹히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필쳐 박사는 그 소리가 공룡들이 먹이를 머는 소리라는 걸 알아채고는 땅 위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 조지, 내가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요?“

 

42. 대통령과 고어

문명은 신에 의해 창조된 우주라는 옷감의 올 하나하나에 스며든 리듬이다. 그러나 그 리듬은 언제 그 옷감이 갈기갈기 찢어지게 될지 말해 준다.

조라스트러스, 바빌론의 예언자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신경 쓰느라 제3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았다. 기초적인 교통망과 통신 수단 등 최소한의 것만이 남아 있었는데도 제3세계는 피해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상 피해가 없었지만, 재앙을 입은 인구 과밀 도시와 덜 문명화된 지역은 어둠과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다. 분리주의자들, 해방군들, 정치적으로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쟁을 일으켰다. 곧 인종 청소가 하나의 규범이 되었고, 평화유지군의 자국의 문제 해결을 위해 철수했다. 뒤를 받쳐 주던 선진국의 원조와 지원이 끊기면서 정부는 무너졌고, 시민전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곧 재앙의 피해가 없었던 도시와 지방들도 걷잡을 수 없는 부질서 속에 빠져들었다.

전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대부분을 파괴할 수 있지만, 수출, 의료활동과 수입 식품 등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들이 없어지자 질병과 기아가 전쟁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유엔 식량 공급기구에 의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곧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기근에 시달리던 지역들은 이제 공황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가 점점 혼돈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 정치적 판도가 새롭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질서는 전과는 판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새롭게 등장한 야생의 생활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D.C. 화요일, 오전 1035(서부 표준시)

대통령은 읽고 있던 자료를 내려놓은 다음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응시했다.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보고서들이 자신을 새로운 두려움 속에 침묵하게 했다. 무릎 위에는 남미의 상황이 요약되어있는 보고서가 올려져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재난에 대해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는 국내 상황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보고서를 읽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아내에 대한 걱정으로 내용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의 경호 담당자와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대통령이 알고 있는 것은 재무부 검찰국 요원들이 그들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통령은 절망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다시 보고서로 눈을 돌렸다. 보고서에는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 근처에서 한 떼의 소들이 알 수 없는 육식 동물에 의해 습격당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곳의 농장주와 그의 아들이 괴물을 몰아 내려가다 피살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었다. 그들은 결국 괴물에 의해 잡아 먹혔다. 그 지역주민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괴물을 사살하기 위해 경찰이 동원되었지만, 동물은 잡히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그와 유사한 이야기들이 수십 가지나 나와 있었는데 대부분 사라진 댐 이야기라던가, 산사태, 그리고 사라진 도시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전력이 끊기는 지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고, 남미 나머지 국가에서는 어떤 소식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보고서는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유사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사실이 그의 무력감을 자극하기만 했다.

어니 고어가 열려 있는 문을 노크했다.

"어니 아닌가. 어서 들어오게. 그러지 않아도 이 보고서로부터 날 구해줄 사람이 필요하던 참이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것들만큼이나 엄청난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동맹국들 가운데 이런 재앙을 피한 곳은 하나도 없어."

"알고 있네, 스카티. 난 이번 일로 생긴 자네의 근심을 덜어 줄 수 없어 걱정이 된다네."

"앉지. 같이 생각해 보세."

"먼저, 우리는 흔치 않은 요청을 받았네. 우리 남극 탐험기지 알지? 그 기지에는 2백여 명의 사람들이 있어.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있던 기지 옆에 열대림이 나타났다는 거야. 그건 이제 익숙한 이야기지. 하지만 남극처럼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불모지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걸세. 그들은 당연히 탐사를 나갔고, 곧 꽤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네. 그들은 탐사에서 대원 몇 명을 잃었어. 그들은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기지로 돌아왔지만 그렇 필요가 전혀 없었다네. 공룡들의 -공룡일 거라고 가정하는 거지만-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짐승들이 혼수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는 거야. 짐승들은 얼어 죽었고, 곧 대부분의 공룡들도 동면 같은 상태로 빠져들었다고 하네. 모험적이고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과학자들이 공룡을 생포해서 그들의 기지로 끌고 왔지. 그들은 좀더 따뜻한 지역으로 공룡을 옮기기를 원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아내와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래서 공룡을 구하려고 애쓰는 학자 나부랭이들 이야기를 듣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니, 우리에게는 더 이상 공룡이 필요치 않아. 이 보고서 가운데 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대통령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알아. 알고 있네. 하지만 이건 보기보다 좀 복잡할 것 같아. 이 일은 정치적인 측면이 강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호전되면? 우리가 이번 일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 사람들은 우리가 이 공룡들을 죽게 내버려 둔 것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어니, 우리에게 공룡이 필요한가?"

"아니. 현재의 생태계로 볼 때 그들에게 맞는 자리는 없어. 난 어떤 개발도상국들도 공룡을 거래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우리나라 안 어디에다가 공룡들을 갖다 놓을지도 모르겠구.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만약 공룡이 남극에서 죽게 내버려 둔다며. 그리고 과학자들이 다른 곳의 공룡들과 그 공룡들을 짝이라도 지우게 된다면 그때는 환경 보호주의자들이 우리를 비난할 걸세. 그것보다는 남극에 있는 과학자들이 공룡을 구하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훨씬 낫다는 말이내. 나중에라도 공룡들을 죽일 수 있어."

대통령은 정치와 정치적인 사고방식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어니 고어는그런 것에 익숙했고 그는 항상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그래. 자네 생각은 뭔가?"

"그 공룡들이 배 위에서 몸이 따뜻해졌을 때쯤이면 그들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될 거야. 인명 손실이 생길 수도 있어. 스카티. 전국적인 피해 규모에 비한다면 배 위에서의 피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니의 냉정한 분석은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지만 정확했다. 대통령은 과학자들의 공룡을 구하도록 놔두어도 잃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얻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 공룡들은 초식 공룡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과학자들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어. 꽤 쓸모가 있을 거야. 만약 뭔가 잘못된다면 그때 가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이동시키려고 한 것이 육식 공룡인지 몰랐다고 우기면 그뿐일세."

"좋아. 그들에게 허락하지. 하지만, 여기로는 데려오지 말게."

"벌써 공룡들을 내려놓을 파나마의 한 항구를 알아 놓았네. 공룡한테는 기후가 맞을 거야."

대통령은 고어가 서류철 겉에 뭔가 쓰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다 쓰고 난 뒤 그는 침묵을 지키며 않아 있었다. 대통령은 오랜 친구가 옆에 있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들은 대학에 입학하던 날부터 친구였고, 고어가 보좌관 자리를 사임하도록 압력을 받을 때도 대통령은 그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어니는 단지 같이 있어 주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니, 뭔가? 샌디에 대한 소식인가?"

어니는 눈길을 돌리면 말을 꺼냈다.

"애틀란트는 사라져 버렸어, 그리고 샌디도 함께 말일세.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그녀를 찾아볼 곳이 남아 있지를 않아- 더 이상 도시는 없어."

대통령은 몸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클립을 비틀어 구부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뒤로 돌아섰다.

"폴슨 박사의 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야. 아무런 근거도 없어."

"우리에게 뭐가 더 남아 있지, 어니? 나는 샌디가 돌아오기를 원해. 샌디는 돌아와야만 한단 말일세. 나를 위해서 그의 이론을 검토해 보겠나?"

"이미 검토해 보았네."

"내 말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말일세."

대통령은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책상에 클립을 내려놓았다.

"어니. 자네의 위치가 얼마나 끔찍하게 무너졌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어. 자네와 나는 -우리는 이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인생의 반을 함께 보냈네. 한 번의 실수로 자네가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것은 공평하지 않아."

고어가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자 대통령이 말을 잠시 멈췄다.

"어니, 그 이론을 검토해 주게. 샌디를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게.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자네를 다시 과학 담당 자문역으로 임명하겠네. 아니 자네가 원하는 어떤 자리라도 주겠어."

어니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은 커지고 있었다.

"약속할 수는 없네-"

그가 말했다.

"그저 최선만 다해 주게."

"알았네."

대통령은 보고서를 다시 집었다가 내려놓고 새 클립을 집어 들었다. 상념에 잠긴 그는 친구가 떠나는 것도 알지 못했다.

 

43. 끝나지 않은 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도다- 내가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들과 같이 너희를 황량한 도시로 만들 때, 그리고 너희 위를 광활한 바다가 덮쳐 너희를 휩쓸 때 나는 너희들을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아주 오래전의 사람들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다. 너희들을 찾는 이들이 있어도 아무도 다시는 너희를 발견하지 못하리라.

에제키엘 2619~21

워싱턴 D.C. 화요일 오전 1115(서부 표준시)

안보 회의에서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테리를 겁먹게 했다. 그는 일대일 면담에서는 자신이 좋은 상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부모들이나 교사들과의 소모임에서도 잘하고 있었지만, 그는 대중 앞에서는 한 번도 편한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어떤 경험도 행정부를 움직이는 거물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미 워싱턴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을 다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빌에게 약속을 상기시키고, 자신의 아들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백악관을 떠나는 밴 안에서 테리는 빌을 보고 짧게 말했다.

"시간이 됐어요."

빌은 창문에 얼굴을 돌리고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몸을 숙여 운전사에게 뭔가 이야기했다.

테리는 자리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자신의 결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케니 랜덜 일과 관련해 최소한의 도움밖에는 주지 못했다. 그가 여기에 오기로 결정을 했을 때는 물론 이렇게 되리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되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옳았다.

닉이 프레스넷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데. 엘리자베스 호오손이 방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약속도 없이 그렇게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엘리자베스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서류로 흘러넘치는 푸른색 파일을 가지고 와서는 격의 없이 보이려고 노력하며 문가에 기대섰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바디랭의 사전에는 격의 없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특유의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을 꺼냈다.

"그들은 이면 일을 러시아 탓으로 돌리려고 해요."

"뭐라고요?"

"당신이 이런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메가톤급의 폭탄이 필요할 거라고 말했었잖아요. 그들은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의 폭탄을 사용한 것은 구소련뿐이라는 주장을 담은 보도 자료를 만들었어요."

닉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숨기는데 특별한 재주를 보였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이번 일이라고 해서 다를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엘리자베스는 이런 소식들을 그에게 알려주는 걸까? 엘리자베스는 이번 일로 비난받게 될 걸 걱정하는 걸까? 그녀는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사실이 아니오. 엘리자베스. 핵실험에 관계된 사람들 모두가 비난의 대상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어요."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닉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모니터에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바라보았다.

". 그 심리학지는 아직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나요?"

"로버츠 박사요? 아뇨, 박사는 회의가 끝난 후 콘래드 대령과 떠났어요."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겨드랑이에서 푸른색 파일을 빼내어 닉에게 건네주었다.

"당신이 요청했던 위성 사진들이에요."

그녀가 방을 나가는 순간 닉은 무슨 일인지 파악했다. 위성 사진은 보통 다른 직원을 통해 보냈으나 엘리자베스가 직접 온 것은 로보츠 박사에 대해 묻기 위해서인 것이다. 왜 엘리자베스 호오손이 그 심리학자를 찾은 것일까? 그건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호오손의 인생은 권력을 쟁취하고 행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녀는 위기관리를 통해 성공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의 문제 때문에 심리학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면, 그럼 누구 때문일까? 대통령? 닉은 국가 안보회의를 되새겨 보았다. 그는 대통령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직분을 다하고 있었고 엘리자베스의 귓속말 보조를 통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뭔가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리고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알고 싶었다. 다른 대통령들이라도 그렇게 했을까?

닉은 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마음 한구석에 접어 두고 파일을 펼쳐 들었다. 맨 위에 놓인 것은 북미 대륙의 랜드샛에서 찍은 사진으로 미국을 확대시킨 것이었다. 따이 마치 헝겊을 누빈 것처럼 이리저리 조각이 나 있었다. 지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색깔들이 현란하게 온 대륙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캐나다와 멕시코까지도 이어져 있었다. 다른 사진들도 동, 서유럽에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반부에 대한 사진은 없었지만 닉은 재난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다는 걸 알았다.

사진 뭉치와 분석 자료들을 뒤적거리는데 플로리다 해안 사진이 보였다. 사진에 첨가된 보고서에는 해일이 플로리다만을 쓸어갔다고 나와 있었다. 사진을 보니 물속에는 엄청난 파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물은 오히려 진흙탕 같았고, 오물들과 나무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 땅이 어디로 옮겨졌든지 간에 이제 바다로 바뀌어 버린 것은 불운이 아닐 수 없었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그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없었다.

서류철의 맨 아래에 세 개의 밀봉된 봉투가 있었다. 봉투 위에는 기밀이라는 글씨와 함께 붉은색으로 1급 비밀 인장이 찍혀 있었다. 한 봉투는 뉴욕시라고 적혀 있었고, 두 번째는 애틀랜타, 세 번째는 몬트리올이라고 적혀 있었다. 각각의 봉투에는 내용물을 허락 없이 보았을 경우에 대한 의례적인 경고와 위반 시 처벌 내용이 나와 있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뉴욕시를 항공 촬영한 사진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사진은 정상인 것 같았지만, 도시 외곽이 칼로 자른 것처럼 잘려 나가 있었다. 한 쪽에는 복접한 도시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두 번째 사진에는 도시와 그 외과 지역의 모습이 조금 더 많이 보였다. 비어 있는 지역의 모습이 타원형으로 보였다. 다시 사진 뭉치에서 랜드샛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 들었다. 닉은 사진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각 천처럼 누덕누덕 연결되어 있는 지역의 대부분은 타원형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사진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은 똑같이 뉴욕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거기에는 완전한 도시가 나와 있었다. 그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사진의 한 부분을 유심히 보았다. 앞의 사진에서 조각나 있던 부분들이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사진 아랫부분에 사진 촬영 시각이 나와 있었는데, 세 번째 사진은 첫 번째 사진보다 나중에 찍힌 것이었다. 닉은 다시 사진을 살펴보았다. 세 번째 사진은 나뉘어진 땅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가 모서리 쪽으로 갈수록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도시가 돌아오고 있는 걸까? 닉은 사진에 딸려 있는 보고서에 눈을 돌리고 그걸 읽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다 읽고 난 후 그는 1급 비밀 사항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재빨리 프레스넷에 자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내용을 타이핑하는데 스크린의 맨 아랫부분에서 다른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닉은 그 내용이 방금 자신이 올리려고 했던 내용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고어 박사가 보낸 메시지였다.

 

44. 대양 여행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행복했던 시간들 대신 불행이 시작될 것이다. - 비통함이 즐거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될 것이며 국가의 재화는 바람 속에서 흩어지게 될 것이다.

조라스트러스, 바빌론의 예언자

플로리다 네이플즈 앞바다 화요일, 정오(서부 표준시)

론은 대낮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다른 식구들은 아직까지 자고 있었다. 목이 말랐지만 물은 나눠 마셔야 했다. 벌써 햇빛에 몸이 많이 그을려 있었지만 태양은 그의 등을 완전히 태우고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잠은 달아났고 그는 새끼 공룡을 살펴보았다.

아주 대단한 동물이었다. 코끼리의 코처럼 아주 긴 목을 가지고 있었다. 세모꼴의 머리는 두껍고 희뿌연 초록색 살갗으로 덮여 있었으며, 까맣게 반짝이는 눈은 아주 컸는데 짠 바닷물을 떨어내느라 눈꺼풀을 가끔씩 깜박 이고 있었다.

론은 물속을 계속 쳐다보며 공룡의 다리를 찾다가 새끼 공룡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아차렸다. 공룡은 어미 뒤로 오더니 론을 쳐다보았다. 공룡은 그 커다란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그건 어느 정도 지능이 있다는 증거였다. 론은 천천히 머리를 들고 공룡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막 새끼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어미 공룡이 머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고개를 돌리더니 양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새끼 공룡은 재빨리 어미 공룡이 보일 수 있도록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오후가 되어서야 물을 마셨지만 조금씩밖에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경도가 80도 이상일 리는 없었지만 마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마치 100도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산을 잘못했다면 이삼 일은 더 가야 했고, 그럴 경우 갈증을 견디지 못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론은 자신의 거리 계산이 정확하기를 바랬다.

론이 물을 마실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새끼 공룡이 다시 어미 꽁무니 쪽으로 와서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알았다. 그는 새끼 공룡과 어미가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바다를 헤엄쳐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공룡들도 자신들처럼 갈증을 느낄까? 틀림없이 공룡도 그럴 것이다. 론과 그의 가족들은 공룡이 헤엄치는 동안 등 위에 계속 타고 있었고, 그들은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론은 어떤 동물들은 물 없이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지만 공룡이 낙타처럼 버틸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론은 졸고 있다가 로자가 크리스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로자는 공룡이 뭔가 먹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론이 몸을 일으켜 보니 어미 공룡의 머리가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갔다가 올라왔다. 공룡이 움직일 때마다 공룡의 등이 조금씩 흔들렸다. 잠시 후 새끼 공룡의 머리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더니, 주둥이에 해초를 물고 나타났다. 새끼는 천천히 해초를 씹고 있었는데 주둥이 밖으로 해초 줄기가 늘어져 있었다. 론은 소금기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 그는 공룡들이 소금을 먹지 않으면, 보다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공룡 걱정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들은 모두 굶주려 있었고 갈증에 시달렸으며, 그리고 완전히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거대한 동물의 등 위에서 안전했다. 몇 시간 만에 공룡은 단지 이동 도구에서 그들의 친구와 구세주로 변해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그들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공룡에 대한 공포심은 잊어 버렸다. 그들은 어미 공룡에게 패티, 새끼에게는 팻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들은 모두 패티가 좋은 어미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패티는 가라앉기 시작한 섬에서 팻을 데리고 바다로 나온 것이 분명했다. 섬에서는 마치 폭발음과 같은 굉장한 소리가 들렸었고, 그러고 난 다음 가라앉기 시작했었다.-다행스럽게도 비교적 천천히 가라앉았는데, 속도가 빨랐다면 더 큰 해일이 몰려왔을 것이다.

패티와 팻은 파도가 엄청난 속도로 밀려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공룡들은 겁에 질려 좀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려고 다투었을 것이고 육지는 겁에 질린 동물들로 만원이 되고, 그런 다음 차례로 물에 잠겼을 것이다. 패티 같은 커다란 동물은 머리를 물 위로 내밀고 있었겠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몇 킬로미터 떨어진 육지를 찾아 헤엄쳐야 했을 것이다. 패티는 팻이 없었다면 쉽게 살아남았겠지만 좋은 엄마라면 그랬을 것처럼 팻과 함께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빠, 그 섬에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크리스가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야."

론은 크리스를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 섬은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섬은 그냥 나타난 것이었다.

론이 물통을 가족들에게 건네줄 때, 그는 카르멘이 그저 입술만 축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도 그렇게 했다. 론이 물병을 그물주머니에 넣다 말고 로자가 팻을 살펴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 팻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론은 한참동안 새끼 공룡을 살폈지만, 팻은 하루 이상을 헤엄쳐 왔는데도 불구하고 지친 것 같지 않았다. 론은 로자에게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들어보세요."

로자가 말했다.

론은 귀를 기울여 보고 나서야 팻이 힘들게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팻은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대신 팻을 지켜보며 점점 지쳐 가는 팻을 바라보기만 했다. 패티는 정기적으로 고개를 돌려 팻을 살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그들은 신경이 쓰였지만 패티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었고 오직 팻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패티는 속력을 늦추었지만 소용없어 보였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 조금만."

론이 속삭였다.

"정말 네가 조금만 버텨 주었으면 좋겠어.“

 

45. 공헌

성서와 다른 권위있는 문서들은 하나님이 태양을 세웠고, 그래서 여호수아가 적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한 사실이다. 여호수아가 그의 부하들이 어떤 식으로든 하루를 과거로 되돌려 보냈다는 걸 믿지 못할 이유도 없다.

윌리암 렌프로, 공간 시간 그리고 역사

하와이 호놀룰루 화요일 오후 117(알류산-하와이 시간대)

에밋 퍼글리시 교수는 왕 교수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캐롤리와 함께 플레시오사우루스를 본 이후 그는 캐롤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모래 속에 묻혀 있는 공룡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지 않았고, 그리고 그 외 다른 일들로 분주했고 에밋에게는 전혀 연락이 없었다. 에밋도 마찬가지로 바빴다. 처음에는 프레스넷을 통해 플레시오사우루스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느라 매우 바빴다. 그는 15분간 명성을 누렸으나 곧 컴퓨터망에는 다른 공룡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들기 시작했다. 에밋은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는 별달리 알릴 내용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에밋은 통신망으로 빠져드는 자신에, 그리고 통신망 자체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특히 이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 올라온 모형들을 보고 나서는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이 지나갈수록, 그는 그 자리에 앉아 복잡한 자료들과 모형들을 다운받아 그 자료들을 왕 박사의 책상에 펼쳐 놓고 그걸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곧 등식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고 에밋은 그 모형들이 어떤 식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직도 그는 방관자로 남아 있었다. 그는 큰 무대로 나가기를 원했지만 아직 원래 모형에 덧붙일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과학자들이 새로운 모형들을 다양하게, 자세하게, 또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것들을 그가 방금 이해하게 된 모델들을 제시할 때마다 그의 좌절감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창조성은 그가 창조적이기 위해 몸부림치기를 포기했을 때 찾아왔다.

에밋은 프레스넷에 올라온 공식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고메즈 모형의 최신 버전을 재구성해 보았다. 그는 다른 모형에는 나오지 않은 변량들을 찾다가 자신이 너무 모형을 확대시켜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시간의 전이는 질량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변하고 있었다. 지구의 질량 근처에서 시간은 그 거리에 영향을 받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수학적으로는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이 상태는 약해지고 있었다.

에밋은 깨달았다. 그는 진원지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런 효과들이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그는 지구 외에 어떤 중요한 질량 물질이 현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했다. 특히 무엇이 달에서의 시공의 분열을 일으켰을까?

비록 지구의 6분의 1밖에는 안되었지만 달은 시간의 곡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로 충분한 질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알 수 없는 것은 효과가 어떻게 반전되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모형이 추리에 의한 것이고, 그리고 유명한 학자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가설을 세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프레스넷에 자신의 모형을 올리기를 주저했다.

그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이론을 조금 확대, 응용해 본 것이다. 그는 그 이론이 자신의 이름으로 프레스넷에 올라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 지구에서 생긴 것인데 달에서 벌어진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수도 있는것이다.

결국 자신의 가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그의 판단이 표절을 했다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다. 그는 네트워크에 가입되어있는 사람들이 그의 모형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모형을 프레스넷에 올렸다. 에밋은 얼마 안 가 다른 사람들이 그 모형을 눈여겨보았을 뿐 아니라 최고위층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46. 실행 계획

그 일은 우리가 마차를 타고 있을 때 벌어졌다. 벤자민은 말을 점검하러 나갔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마부는 남편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맹세했다. 그 이후로는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마치 하나님이 땅 위에서 그를 들어 올린 것만 같았다.

루시 배터스트, 18091129

워싱턴 D.C. 화요일 오후 5(서부 표준시)

닉은 자신이 물리학이 요구되는 문제에 수학적인 개념을 적용시킨 데 반해 고어 박사는 핵심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고어는 프레스넷을 이용해 페르미 분자 연구소의 물리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리학자 고메즈 막사는 닉의 모형을 반박하고 나서며 자신의 모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오직 수학적으로만 요점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닉에게는 고메즈 모형이 한편으로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다른 요소들을 생각해 보았다. 마리아 고메즈는 물리학계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는지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프레스넷에 올린 자료들의 취약점을 지적하는 능력에 비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닉은 오레곤 모형 - 이제는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이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모형은 예언적인 측면에서는 타당성이 있었지만 이론적인 토대가 약했다. 조라스트러스처럼 케니 랜덜과 그의 동료들은 특별한 현상을 관찰해서 그 패턴을 연구한 다음 그 패턴을 이용해 미래의 사건들을 예측했다. 케니는 그가 해낸 일로 많은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조라스트러스처럼 케니는-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원인은 밝혀 내지 못했다. 케니는 정확하게 재앙을 핵폭발과 연결시키기는 했지만 사건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닉은 케니의 '연못 속의 잔물결' 논리에 관심을 가졌고 그 예측 정확성과 이론적인 단순성에 매력을 느꼈었다. 그렇지만 고메즈는 그 이론을 수학적으로 산산조각내어 버리고 자신의 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오레곤 모형은 시간 전이가 연속적이며, 또 진원지로부터의 시간과 거리와 함수 관계에 있다고 가정했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에 대한 인간의 경험 바탕을 둔 것이었다. 고메즈 모형은 모든 시간 전이는 동시에 일어나며, 모든 시간대와 장소에서 생긴다고 가정했다.

닉에게는 4차원적인 사고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에 그는 고메즈의 가설을 이해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그러나 고메즈 또한 초고밀도의 물질이 일시적으로 생기면서 이로한 재앙을 일으킨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닉은 자신이 오레곤 모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해 했다. 시공의 균열과 알려지지 않은 파동들이 생긴 것은 고밀도의 물질들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고어는 자기장 주위에서처럼 이런 효과들이 근원지에서 방출되면서 생긴 것으로, 다만 이번 경우에는 4차원의 공간으로 방출되어 나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장은 폭발의 한순간에 생성되지만 정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는 닉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그 효과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얼마 전에 경험한 시간의 전이는 1960년대에 있던 폭발 이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이 그 사건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그 순간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고어와 고메즈 박사가 계속 의견을 교환함에 따라 닉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고메즈는 처음의 폭박 사건들과 시간 전이가 동시에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메즈는 자신의 이론을 보충하는 여러 가지 공식들을 제시하면서도 현 시점에서는 그것들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어는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고 계속 그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가도록 고메즈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닉은 고어가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여기에서 끼어들면 고어가 더 고집을 꺾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물리학자들이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고어는 그 모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만 응답을 했다. 닉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지만 토론에 끼일 정도의 전문가들은 별로 없었다.

그가 네트워크에서 빠져나가려는 순간 화면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퍼글리시라는 사람으로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올린 모형이 관심을 끌었다.

'현재의 균열 상태를 가까운 우주 공간으로 방출 시킨 수 일시적인 역전 상태를 가정하라.'

닉은 고난도의 수학이 모형에 사용된것에 흐뭇함을 느꼈다. 닉은 오른쪽 화면에 나와있는 그래픽을 보고 감탄했다. 모형에는 어지럽게 엉켜 있는 선들로 이루어진 타원에 둘ㄹ싸인 지구가 나와 있었는데 그 타원을 만들고 있는 선들은 시간의 파동을 의미했다. 또 다른 그래픽들이 나타났다. 이번 그래픽은 앞 화면의 한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있었는데 지구가 원구 안에 들어 있었다. 원추 꼭대기에는 작은 구형체가 들어 있는 또 다른 원추가 올려져 있었다. 두 개의 원추는 꼭지검끼리 연결되어 있었다. 두 번째 구형체는 달이었다. 닉은 한동안 그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가 처음 공식이 있는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럴리 없어, 안 그래? 그 모형은 시간의 균열을 지구 주위의 우주 공간으로 투사시키고 있었다. - 그것이 첫 번째 원추였다. 퍼글리시의 모형은 시간이 반대로 흘러드는 것을 나타내는 원추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원추 안에 있는 것은 분명 달이었다. 만약 퍼글리시의 모형이 옳다면 달에서 일어난 시간의 균열은 지구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가정이 가는해 지는 것이었다.그렇다면 달에서는 시간이 미래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과거로 오는 것이다.

닉은 프레스넷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살펴보았지만 퍼글리시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는 퍼글리시가 쓰는 컴퓨터의 접근 암호를 확인해 보았다. 메시지는 하와이 대학의 코니 왕 박사의 컴퓨터에서 온 것이었다. 퍼글리시가 누구든 간에 그는 프레스넷을 사용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닉은 잘 알지도 못하는 퍼글리시의 모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니 랜덜이 만든 모형에 대한 경험이 처음부터 퍼글리시를 믿지 않도록 제동을 걸었다. 닉은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퍼글리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닉은 안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을 나서는데 엘리자베스가 다시 닉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바로 본론을 이야기 했다.

"대통령이 예전 같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요?"

"보통은 모든 견해를 심지어는 반대 의견까지도 주의 깊게 듣고 결정을 내리셨어요. 지금까지 대통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대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셨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요."

"당신 의견을요?"

닉은 엘리자베스의 근심거리 가운데 일부는 그녀의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곡을 찌르는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나만이 아니에요. 보좌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 온 새뮤얼 캐넌 국장의 말도 소용없어요. 대통령은 오직 한 사람, 고어 박사의 이야기만 듣고 있어요."

고어의 이름을 듣는 순간 프레스넷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시키던 일이 떠오르면서 닉의 속이 끓었다. 그는 고어의 추론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는 대통령에게까지 그런 방식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대통령은 당신을 존중해요, . 대통령과 다른 사람들은 사건의 발생원인을 밝혀내는당신의 접근 방식에 감명받고 있어요."

닉은 이의를 제기하려다 주춤했다. 오레곤에서 온 그 대학생과 그룹 동료들은 몇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오랫동안 보조금을 받으며 연구를 해 온 과하자들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냈다. 닉은 그들이 받아야 할 칭찬을 대신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요. 나도 거기에 대해 곧 의견을 밝힐 겁니다."

"당신은 대통령 부인이 애틀란타에 있다는 것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재무부 소속 비밀 경찰들은 영부인과 연락은커녕 소재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틀림없이 영부인은 사라진 도시의 일부 지역에 있었을 거예요. 대통령은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 그는 단지 아내를 되찾을 생각만 하고 있어요. 그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구요."

닉은 이해했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관계는 하나의 전설이었고,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있었던 데는 부인의 내조가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었다. 생디 맥킨타이어는 재치 있고 매력적이면서도 어머니 같은 온화함을 지니고 있었는데, 닉이 만나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따뜻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녀의 평판은 전국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그녀를 대통령 후보에 추대해야 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나돌고 있었다.

닉은 국가 전체가 입은 손실보다도 대통령 부인 한 사람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특별한 한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닉은 뛰어난 영부인을 잃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만약 닉이 조의를 표한다면 대통령은 폭발해 버릴 것이다.

회의 의제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맨 위에 아놀드 고어 박사의 살해 계획이 올라와 있었다. 고어가 발표를 시작했고 엘리자베스는 여는 때처럼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는데 평소와 달리 대통령은 단호하게 손을 저으며 그녈르 제지했다.

"대통령께서 지시한 바에 따라 우리는 시간의 전이 이론을 가정하고 그의 해결책을 연구했습니다."

고어가 말했다. 고어의 지시에 따라 방의 조명의 꺼졌고, 스크린에 사진이 나타났다. 그것은 닉도 이미 본, 조각나다시피 한 뉴욕의 모습이었다.

"이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뉴욕의 3분의 1 정도에서 시간 전이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지역들은 현재 초원으로 변했으며 아마 백악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백악기라구요? 불가능해요!"

나탈리 마쯔다가 눈앞에 ㄴ인 증거들을 무시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고어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마쯔다를 무시하고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다음 슬라이드는 희미했지만 동물의 머리 바로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닉에게 전달된 서류 파일에는 없었던 것으로 그는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소외되고 있음을 알았다.

"이건 항공 촬영한 사진으로, 보시는 대로 동물이 나와 있습니다."

"다른 공룡인가요?"

캐넌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장이 제시한 퀘벡의 사진에 나타난 안킬로사우루스보다는 훨씬 큰 겁니다."

고어는 마치 더 큰 공룡 찾기 경쟁이라도 했던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스트루더 교수는 프레스넷을 통해 이 공룡이 이구아노돈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공룡 근처에 다른 유사한 동물들이 없었기 때문에 크기를 측정할 수는 없었지만, 스트루더 교수는 이구아노돈이 몸 길이가 6미터에서 9미터에 이르며 일어섰을 때에는 키가 5에서 6미터 정도라고 했습니다."

웅성임과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가 방을 메웠고, 즉석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어떤 이들은 짐승이 공격적인지 걱정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만약 공룡이 뉴욕의 중심가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추측해 보고 있었다. 닉은 그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다가 첫 번째 슬라이드를 다시 틀어 달라고 요청했다. 고어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처음 슬라이드를 다시 틀었다.

"선사시대 지역과 도시의 경계 부분에 생긴 줄은 뭡니까?"

"건물들입니다."

고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안에 사람들이 들어 있는 건물들이겠군요!"

닉이 지적했다.

"이 동물들이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나 가까이 있죠? 우리는 퀘벡에 나타난 공룡이 그들이 있어야 할 장소에서 벗어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어떤가요? 사람들의 안전이 우선 고려돼야 합니다."

닉은 그 자신도 인간의 안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애써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대통령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전이된 지역 일대의 주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낙이 촉구했다.

아직도 대통령은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닉은 엘리자베스의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어가 말을 꺼냈다.

"그 문제는 그 지역 경찰들이 신경 쓰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그 지역에서 중앙 정부의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다음 슬라이드를 보시죠. 이 사진은 먼저 사진보다 1시간 후의 뉴욕 모습입니다. 사라졌던 부분이 다시 돌아왔다는 걸 주목해 주십시오."

즉시 안도의 한숨과 믿을 수 없다는 반응, 기대가 섞여 나왔다. 고어는 한동안 그가 일으킨 반응을 즐기다가 발표를 계속했다.

"전이된 지역 근처의 희미한 부분을 보아주십시오. 다음 사진에는 이 부분이 폭발한 것이 나와 있습니다."

닉이 보지 못한 다른 사진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건물을 항공 촬영한 것이었는데 텅 비어 있었고 초원이 금빛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회의실은 이런 저런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찼지만, 대통령은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네려고 했으나 대통령은 다시 손짓으로 막았다.

"여기 희미한 부분을 주목해 주십시오."

고어가 스크린 앞으로 다가가서 텅 비어 있는 부분을 짚었다.

"또한 이 원에도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가 금빛의 가느다란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전이가 일어난 지역의 바깥쪽에 생긴 초원입니다. 다음 사진은 이것보다 2시간 후에 찍은 것이고 그 다음 것은 그 한 시간 후에 찍은 것입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없어진 지역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재빨리 그 뒤를 이어 일부분이 다시 생겨나 있는 뉴욕의 모습이 비춰졌다. 닉은 잠시 후에야 그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보고 계시지만,"

고어 박사가 펜으로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전이된 부분에 있는 도시의 면적은 얼마 되지 않으며, 이 불분명한 지역이 중심 쪽으로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또한 초원을 둘러 싼 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는 타원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금색 원을 짚었다.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막연하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효과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평형 상태에 이른다른 것입니다. 도시와 프레리 사이의 진폭이 불규칙하긴 하지만 전이가 일어난 지역이 빠른 속도로 안정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치를 취할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다 나은 계획안을 마련했습니다."

눈을 내리깔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시간의 전이를 핵물질의 폭발에 의해 생긴 시간의 균열이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동이 지구의 표면을 휩쓸고 지나간다는 생각은 부정하는 바입니다. 대신 페르미 연구소의 고메즈 박사의 협조를 받아 저는 현재의 결과들과 최초에 발생한 폭발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형을 만들어 냈습니다."

"어떻게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까?"

캐넌 국장이 물었다.

"박사가 이야기하는 폭탄실험은 60년대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쩌면 50년대일 수도 있지요."

"폭발은 시공을 뛰어 넘어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경험하고 있는 이 결과들은 60년대의 바로 지금 이 순간 발생했기 때문에 현재에 나타난 것입니다."

캐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사건들은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상황을 유발시킨 힘을 상쇄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의 파동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힘들이 평형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그 힘을 없애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닉은 멍하니 있었다. 그는 고도의 농축된 물질이 아니면 시간의 파동을 생성할 수 없으며, 인간은 오직 핵폭발로만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고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차렸고, 표현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잠시 후 고어가 닉의 추측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핵사용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놀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고 고어와 대통령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대부분의 질문은 '왜 제게 의논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라는 것들이었다. 닉은 발언권을 얻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 일들이 핵폭발에 의해 생긴 것인지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폭발력과 다른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에게 생긴 이 일들은 하나의 폭탄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 번의 폭발 결과가 축적되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폭탄을 하나 이상 사용하려고 합니다."

고어가 잠시 뜸을 들였고, 닉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나 이상이라며 얼마를 말하는 겁니까?"

"백 개입니다."

자제력이 미덕인 군인들조차 백 개의 폭탄을 터뜨린다는 이야기에 숨을 죽였다. 닉은 그 발상에 당황했지만, 점차 자신이라도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면 이 정도 규모의 폭탄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의 파동은 식과 몇백만의 사람들을 분리시켰고, 한두 개의 폭탄만으로는 사람들을 되돌아오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뉴멕시코의 실험 기지에서 터뜨린 영국과 미국의 폭탄만 해도 천 개는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백 개라는 숫자는 얼마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연계나 어떤 인간 환경들도 대기에 폭발될 백 개의 폭탄을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크라카토아와 세인트 헬렌 산은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닉은 몇 년 전에 있었던 핵겨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떠올렸다. 만약 사라진 사람들을 되찾아 온다 해도 그들은 기근으로 사람들을 잃게 될 것이다. 닉은 손익을 재빨리 계산 한 다음 의견을 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아주 기초적인 이론들뿐이고 핵사용이 모든 것들을 정상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최상의 경우 시간의 전이를 조금 더 일으킬 수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핵 사용이 엄청난 파괴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핵겨울은 아시지요?"

"신뢰할 수 없는 이론이요."

"만약 우리가 그처럼 많은 폭탄을 터뜨린다면 더 이상 이론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손을 쓸 수 없을 겁니다."

그 질문에 대해 고어 대신 대통령이 대답을 했기 때문에 닉은 당황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알고 있소. 우리는 수백만 명의 시민과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잃게 될 거요. 물론 재건에 필요한 비용은 말할 것도 없겠지. 우리는 세계의 부채를 다 합한 것보다 많은 외채를 가지고 있소.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재건할 수 있겠소? 폴슨 박사, 당신도 알고 있다시피, 나도 인간을 먼저 생각하오.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의 인류를 생각하고 있단 말이오."

"각하!"

닉이 말하려 했지만 대통령이 가로막았다. 대통령은 고어에게 계속하라는 손짓을 하고 클립을 만지작거렸다. 고어가 다시 자신만만한 태도로 발표를 계속했다.

"대통령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는 이 조치의 결과들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으며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들을 취할 것입니다. 먼저 적당한 전이 지역을 선정해야 합니다. 여러 요인을 고려해 유력 후보지가 선정될 것입니다. 폭발은 미국내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 폭발 지점은 가능한 한 서쪽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사건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서쪽이 보다 안정되어있을 겁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산되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는 그런 사실을 프레스넷에서 보지 못했었고, 고메즈 박사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고어의 생각일까?

"세 번째, 폭발은 우리의 과거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를 붕괴시키지 않을 시기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전이된 지역은 백악기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부분들은 보다 최근의 시기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미래에서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어 박사."

닉이 말을 중단시켰다.

"폭발이 우리의 과거 시점에서 있을 거라니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폭발 지점을 가까운 미래가 과거에서 온 것이 아닌 지역을 고를 거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부분들이 지금은 현재에 있지 않소."

"폭탄이 터지는 순간 그 모든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게 될 거요."

"무슨 근거로 이런 결과를 예측하신 겁니까?"

"나는 새로운 파동이 시간의 조각들을 그것들이 있었던 지점으로 되돌릴 것이라는 점을 여러 사람들과 충분히 의논해 왔소. 그렇기 때문에 폭발은 과거 시점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과거에 머물러 우리의현재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박사의 동료들은 시간 전이는 다시 발생하겠지만 전이된 지역들이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갈지 아니면 또 다른 전이가 발생하게 될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요?"

"물론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위험이 있더라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사에게는 위험부담이 없겠죠... 우리에게도요... 하지만 폭발이 과거에 생긴다는 것이 확실할 때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폭발 지점에 누군가 있다면요?"

"폭발 지점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마 동물들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박사가 급진적인 생체 해부 반대론자가 아니라면, 당신이 몇 마리의 동물과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반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어의 마지막 말은 마치 설교 같았다. 대통령은 멍하니 앉아 있었고 반대를 예상한 듯, 그리고 그렇게 일을 진행 시키려는 듯 토론에 무관심해 보였다. 닉은 방법을 바꾸어 보았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박사는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시간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대를 발견한다고 해도 결국 시간 전이는 우리의 미래와 과거 어딘가에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양한 지점에서 폭발하게 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폭탄을 같은 전이 지역에서 동시에 폭발시키려는 겁니다. 동시에 터뜨리면 효과가 생길 겁니다."

"과거 시점에서의 즉시이겠죠."

닉이 정정했다.

"맞아요, 하지만 우리 현재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어떤 근거로 그런 결론을 이끌어낸 겁니까?"

"박사가 얼마 전까지 열광해 있던 그 이론을 수정, 보완했죠."

대통령이 큰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내려치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되었다.

"폴슨 박사, 우리 행정부 내엣는 자리를 둘러싼 시기심은 용납할 수 없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사가 기여한 점과 관련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있을 것이오. 하지만 박사가 할 수 있었던 것보다 고어 박사가 당신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것에 대해 공격하지 마시오. 나는 해결책을 요청했었지만 어니 외에는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소. 박사에게도 기회는 있었던 것이오. 이제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설적인 내용이 없으면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갑시다."

"각하,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제시할 수 없는 겁니다."

"패배주의적인 발상이오,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이렇게 해서 영부인을 되찾아 올 수는 없습니다. 각하."

"다음 주제로 넘어가라고 말했소!"

대통령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닉은 샌디의 이름을 거론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계속 고집을 부리다가는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은 시간 동안은 가능한 폭발 지점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선정된 곳에 인간이 없거나, 어떤 문명도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과거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죽이는 모험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로 인해 현재까지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국적으로 통신 체계가 붕괴된 이후 그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적었고, 그 결과 선택 가능한 폭발 지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초지가 듬성듬성 생긴 알래스카의 놈 곶 남쪽이 명단에 올랐다. 그곳이 명단에 오른 것은 한 무리의 공룡들이 그 지역의 사슴 떼를 습격했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지점으로 워싱턴주 북동부가 선정되었는데 그것은 지금은 워싱턴주의 일부와 아이다호, 그리고 캐나다를 빙하가 덮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캐나다 국경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세 번째 지점은 오레곤주의 포틀랜드가 있었던 그 자리였다. 고어는 목격자의 진술들을 확인하기 위해 항공 촬영 사진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볼 때 전이된 지역에는 공룡들이 살고 있었다.

이제는 준비 사항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군은 가능 지점을 정찰하고 크루즈 미사일을 목표 지점으로 유도하기 위한 세부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미사일은 함정과 B-1 폭격기에서 동시에 발사될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지역을 거쳐 각각 다른 거리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타이밍 조절이 까다로웠고 세밀한 지도가 필요했다.

닉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직도 이 계획의 현실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동시에 백 개의 폭탄이 폭발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닉은 폭발 지점에 미칠 영향력에 생각이 미치자 안색이 변했다. 특히 포틀랜드 때문에 그랬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알래스카나 워싱턴 동부를 폭파시키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대도시에 있을 일을 생각하니 불안이 더해 갔다.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말을 꺼냈다.

"각 지점들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가끔은 과거에, 가끔은 현재에 있는 겁니다. 어떻게 폭탄을 과거로 옮긴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고아가 그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질문에 대비해 답을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사일을 지형에 의해 유도될 겁니다. 미사일은 과거의 지형에 따라 작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프로그램에 따라 지형을 인식하지 못할 경우 탄두는 발사되지 않습니다. 미사일은 그냥 그 지점을 지나가는 거죠."

고어가 사람들을 쭈욱 둘러보았다.

"폭발은 분명 과거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닉은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크루즈 미사일에 대해 알고 있는 한 고어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다.

"고어 박사. 전투 상황에서 크루즈 미사일은 종종 이전의 공격으로 심하게 변형된 지형을 목표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 않았나요?"

고어는 닉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미사일 프로그램이 그런 우발성을 어느 정도로 통제할 수 있는지 지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닉은 계속했다. 그는 닉을 똑바로 쳐다 보았고, 회의실 안에는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침내 고어 박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사일이 목표 지점 근처에 도달했을 때 지형이 계수화된 지도와 맞지 않아도 미사일은 목표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계산하고 최후의 위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닉은 고어가 발사하려는 미사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든 사람들이 확실하게 깨닫기를 바랬다.

"고어 박사. 다시 말하면 미사일이 복표 지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추측발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47. 죽음의 만찬

미끼를 보고 가까이 다가오는 사냥감을 보고 우리가 총을 쏘려고 하는 순간 섬광이 번뜩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불에 오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개를 비롯해 몸통 전체가 불타 있었다.

루벤 블랙, 1972년 메인 주 윈스턴

오레곤주 웜스프링즈 인디언 보호 구역 화요일, 오후 225(태평양 표준시)

공룡이 뼈를 씹는 소리는 무척 끔찍했다. 그러나 쿰 박사가 먹히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움은 더했다. 필쳐 박사는 친구의 운명을 생각하며 넋을 놓고 있었다. 그녀의 어떤 말도 박사를 위로할 수 없었지만 피트라는 자신의 충격을 달래기라도 하듯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콜터가 근처에 서 있다가 두 사람에게 왔다.

"쿰 박사님이 아니에요. 지금 이 소리 말이에요."

필쳐 박사는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피트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글쎄, 너무 오랫동안 먹은 것 같아. 오해하지는 마. 하지만 만약 쿰 박사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끝나지 않았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이 옳았다.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한 공룡은 아주 컸기 때문에 쿰 박사는 한 입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리는 저 소름 끼치는 소리는 여러 마리의 공룡이 내는 소리였다. 필쳐 박사는 콜터의 의견에 수긍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드는 그의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피트라가 입을 여는 순간 콜터가 끼어들었다.

"박사님, 쿰 박사는 벌써 한입에 먹혔을 거예요. 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지 간에 지금은 만찬이 한창이라구요."

그 말을 듣고 필쳐 박사가 벌떡 일어섰다. 얼굴이 붉어진 그는 피트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모노클로니우스는 초식 동물이야. 내 친구를 잡아먹을 리 없어. 그저 죽이기만 했을 거야."

필쳐 박사는 북받치는 슬픔을 누르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이야기를 계속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내 의견을 듣고 싶다면, 저기 어딘가에."

그가 소음이 들리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를 먹어 치우고 있는 작은 청소부들이 몰려 있을 거야."

콜터가 나섰다.

"저기에 있는 놈들이 뭔지 몰라도 큰 놈들이에요. 그리고 공룡들은 군것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를 벌이는 중이에요. 박사님을 위해 간단히 말씀드리죠. 만약 지금 쿰 박사님을 먹고 있는 거라면 모노인지 뭔지 하는 저 괴물들은 지금쯤 다 끝내고 박사님 뼈로 이를 쑤시고 있을 겁니다."

피트라는 필쳐 박사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는 걸 보았다. 박사는 콜터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콜토, 자네가 뭘 안다고 그러나? 내가 자네를 알게 된 이래. 자네는 오직 한 가지밖에 관심이 없었어."

그는 몸을 돌려 피트라를 가리키며 말을 하려다가 말고, 다시 콜터에게로 몸을 돌렸다.

"콜터, 자네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젊은 숙녀나 유혹하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는 그런 무지한 사람이야. 왜 피트라가.. 자네를 데리고 오자고 했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단언컨대. 조지는... 쿰 박사는 죽었네."

이번에는 콜터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겁니다. 박사님. 나는 쿰 박사님을 죽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없어요. 그저 공룡들이 저기에서 먹고 있는 것이 쿰 박사가 아니라고 했을 뿐이에요."

콜터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상처받고 있었다.

"무식함에 관해서는, 제가 도시에서는 그랬던 것 같군요. 당신들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둘러앉아 토론하고 있을 때, 내가 아마 바보처럼 보였었겠죠. 피트라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필쳐 박사님, 말씀해 보세요, 여기에서는 누가 바보죠? 누가 총을 가지러 가려는 나를 막았죠? 그리고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공룡 무리들이 나타났을 때 누가 소리를 질렀었고 누가 소근대고 있었죠?"

필쳐 박사는 콜터를 노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그의 폭넓은 지식이 인정을 받았었지만, 이 이상한 세계에서는 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무 쓸모 없었다. 그의 친구를 죽이고 끌고간 놈들이 모노클로니우스인지 트리케라톱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만약 콜터가 하자는 대로 했다면 그들은 지금쯤 총을 가지고 덤불을 헤쳐나가고 있을 것이고, 조지는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 대신 조지는 죽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그가 무식하다고 부른 사람만이 가지고 있었다.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키듯 피트라가 콜터에게 몸을 돌리고 말했다.

"쿰 박사님이 살아 계실 가능성이 있을까?"

"아주 조금, 만약 알고 싶다면 저쪽으로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고 와야 돼. 내가 살펴보고 오는 동안 여기서 기다려."

피트라가 필쳐 박사를 쳐다보더니 다시 콜터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생각에는 우리 모두 함께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하지만, 뭐가 됐든 알아내는 대로 여기를 벗어나는 게 좋겠어."

콜터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앞장을 섰다.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고 처참함은 더해 갔다. 입맛을 다시며 으르렁대는 소리는 그들을 얼어붙게 했다. 그들은 도망치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계속 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그쳤다. 콜터는 한동안 앞을 살피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콜터는 다시 앞장섰고, 나뭇가지들을 조용히 옆으로 밀어냈다. 그들이 알을 발견했던 장소가 앞에 있었다. 언덕 저 너머에 차를 공격하고 쿰 박사를 끌고 간 공룡이 있었다. 어미 공룡은 둥지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미 공룡은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고, 옆으로 쓰러져 있는 몸뚱이는 갈기갈기 찢겨져 피를 흘리고 있는 한낱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6마리의 2족 보행 공룡들이 엄청난 양의 살을 물어뜯거나 잘라 낸 뼈를 씹고 있었다. 가장 큰 놈은 5~6미터 정도로 아주 거대해 보였다. 작은 놈은 1미터가 조금 넘을 정도였고 바깥쪽에서 원을 이루어 떨어진 살점이나 뼛조각들을 차지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덩치 큰 육식공룡들은 작은놈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작은놈들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공룡들을 쫓기에는 움직임이 너무 느렸다. 어쨌든 먹이는 충분했다.

그때 그들 근처의 덤불 속에서 뭔가 부스럭거렸고 그들은 꼼짝할 수 없었다. 작은 공룡 한 마리가 저녁 만찬을 즐기고 있는 무리에 끼어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들은 공룡이 지나가자 안심했고,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피트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쿰 박사님을 보지 못했어요. 아마 어쩌면 거기서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만약 그랬다면."

콜터가 말을 이었다.

"박사님은 핏자국을 따라 돌아왔을 수도 있어. 박사님을 찾는 일이 위험할 수도 있어. 공룡 부리 가운데 몇 마리가 박사님을 쫓아갔을지도 몰라."

필쳐 박사와 피트라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핏자국을 따라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쿰 박사를 포기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콜터가 이제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냥꾼등레 의해 짓밟힌. 핏자국으로 범벅이 된 초원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피는 말라 있었지만, 아직도 녹색 풀숲 위에 붉은색이 선명했다. 다른 약탈자들을 만나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 했다. 갑자기 뭔가 길 허리를 질러갔고, 그들은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는 길을 벗어나 몇 발짝을 걷다 말고 쭈그리고 앉았다. 필쳐 박사가 그의 어깨를 내려다보는 사이 피트라가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들은 풀 위에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했다.

"다른 핏자국이야. 뭘까, 콜터?"

피트라가 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핏자국이 있지? 흔적은 반대로 나 있는데."

콜터가 일어나서 조금 더 걸어갔다.

"여기에도 있어."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콜터는 덤불을 헤치고 나갔다. 피트라와 필쳐 박사는 서로 바라보고만 있다가 갑자기 그것이 다른 핏자국이라는 걸 깨달았다. 백여 비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은 작은 공룡무리를 바라보고 있는 콜터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쿰 박사의 시체라는 걸 피트라와 필쳐 박사는 알아차렸다. 작은 공룡들은 그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뼈를 물고 있었다. 머리 가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눈은 아직 뼈에 박혀 있었다. 공룡 가운데 몇 마리가 그들을 발견하고 머리를 똑바로 치켜들더니 꼬리를 수평으로 세웠다. 콜터가 소리를 지르며 공룡들을 쫓아내고 창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위협하자 공룡들을 잠시 흩어졌지만 몇 마리는 계속 살점이 붙은 뼈다귀를 입에 물고 있었다. 콜터는 쿰 박사의 유골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피트라는 공포에 질려 꼼짝하지 못했고, 필쳐 박사는 다시 슬픔에 잠기고 있었다. 드디어 친구의 죽음이 확실해진 것이다. 돌아서는 콜터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제가 묻어주기라도 바라시나요? 아직 유골이 일부 남아 있어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공룡들이 다시 파낼 거예요, 덮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바위로는요."

필쳐 박사가 대답하려는데 뒤에 있던 가지가 부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5미터는 될 것 같은 육식 공룡이 덤불을 헤치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와 턱이 엄청나게 컸다. 공룡은 잘 발달된 두 뒷다리로 걷고 있었고, 굵고 긴 꼬리가 뒤엣 질질 끌리고 있었다.

"도망쳐요."

콜터가 소리쳤다. 콜터는 흔적을 없애기 위해 덤불 속으로 달렸다. 그는 가시덤불이나 빽빽한 덤불을 요리조리 피해 가고 있었다. 필쳐 박사는 곧 지쳤고, 뒤로 처졌다. 피트라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콜터에게 말했고 콜토는 뒤를 슬쩍 쳐다보더니 뒤로 쳐지며 피트라에게 앞장서라고 손짓했다. 필쳐 박사는 뛰려고 애썼고 콜터가 박사의 뒤에 섰다. 피트라는 코터보다 천천히 달렸기 때문에 필쳐 박사는 곧 그녀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피트라는 예전에 필쳐 박사가 몇 킬로미터씩 조깅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덤불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었고 그들은 호수가 있는 개간지로 들어섰다. 길이 얼마 안 되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피트라는 필쳐 박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뒤로 처지며 속력을 줄였지만 박사는 힘들어 보였고 호흡이 불규칙했다.

피트라는 콜터를 찾느라 뒤를 돌아보다가 뭔가 발에 걸리면서 마른 똥 무덤 위로 넘어졌다. 몸 아래 깔린 잔디가 마치 큰 주름이 잡힌 카펫에 누웠을 때의 감촉 같았다. 피트라는 무릎으로 기며 콜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공룡도 보이지 않았다. 필쳐 박사는 아직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숨쉬기가 힘든지 한 손으로 가슴을 세게 누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빨갛게 달아 있었다. 피트라를 올려다보던 필쳐 박사는 고개를 저었고, 코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피트라, 미안해. 하지만... 가슴이..."

"괜찮아요, 박사님. 말씀하지 마세요, 여기는 안전한 것 같아요."

피트라는 그렇게 말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피트라가 콜터와 공룡을 찾느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약 그녀가 그처럼 겁에 질려 있지 않았더라면 풍경이 약간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개간지 가운데 잔잔하고 푸른 호수의 주위를 따라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나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초원의 싱그러운 초록빛이 파헤쳐진 잔디를 감추고 있었다.

피트라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듬성듬성 나 있는 키 큰 관목들뿐이었다. 그녀는 숨을 수 있는 장소나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좌우를 살폈다. 호수는 남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고, 그 끝은 시냇물처럼 좁아져 있었다. 거기로 물이 들어오는지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냇가를 따라 커다란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차를 부수고 쿰 박사를 죽인 공룡처럼 생긴 네발짐승이 움직이고 있었다. 동물들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피트라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자신들을 뒤쫓던 공룡이 덤불 속에 있을 것 같아 그녀는 그쪽으로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공룡들 쪽으로 가는 것은 너무 두려웠지만 만 약 그들이 공룡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초원을 지난다면 공격을 당할 것이다. 게다가 필쳐 박사는 오늘은 더 이상 뛰지 못할 것이다.

피트라는 선택은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필쳐 박사는 일으킨 다음 그를 부축하고 호숫가에 나 있는 나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무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아니며 호수를 헤엄쳐 건너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공룡이 수영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다. 필쳐 박사는 겨우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가 휘청거릴 때마다 피트라가 부축했다. 도망치면서도 피트라는 공룡 무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공격하려는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인간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가 처음으로 나타나자 필쳐 박사는 줄기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는 손을 계속 가슴에 대고 있었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그는 아까보다는 덜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많이 헐떡이고 있었다.

피트라는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나무를 찾느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포플러 나무처럼 가지 위로 둥근 잎이 우거진 나무가 있었다. 그녀가 필쳐 박사를 이끌고 갔다. 그는 피트라의 안내에 따랐으나 그의 기력과 영혼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피트라가 발견한 나무는 호수 가까이에 있었다. 피트라가 손을 뻗어 보니 가장 낮은 가지에 닿았다. 그녀는 자신은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필쳐 박사는 지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어려울 것이다. 피트라가 필쳐 박사를 밑에서 밀어 올렸지만 그는 가지를 집을 힘조차 없었다. 세 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피트라는 필쳐 박사가 잠시 앉아 쉬는 동안 자신은 키 작은 나무 위로 올라가 콜터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콜터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공룡들이 대형을 갖추고 호수까지 와 있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 나뭇가지에 몸을 숨겼다. 피트라의 시선은 거대한 뿔에 고정되었다.- 쿰 박사가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필쳐 박사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나무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호수로 피해야 했다. 그녀는 다시 박사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아직도 손을 가슴에 대고 있었지만 상태는 꽤 많이 나아져 있었고 혈색도 좋아져 있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셔야 돼요, 박사님."

그녀가 말했다.

"공룡들이 오고 있어요. 차를 부쉈던 공룡 같은 거예요."

"모노클로니우스군."

그가 겨우 속삭였다.

", 모노클로니우스요. 거의 다 왔어요. 제 등을 밟고 올라가세요."

"조지가 그 공룡을 트리케라톱스라고 생각한 건 정말 잘못 안거야."

"박사님. 제등을 밟고 올라가셔야 돼요."

"자네를 다치게 할 수는 없네, 피트라."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필쳐 박사는 계속 고집을 피웠고, 피트라는 그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게 하고 땅에 무릎을 댔다. 필쳐 박사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에 올라섰지만 그의 온 체중이 곧 그녀의 등을 눌렀다. 그의 신발이 그녀의 척추에 닿았고, 그녀는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물었다. 그녀는 필쳐 박사가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쳐 있었다.

"난 할 수 없어. 피트라. 날 두고 가게. 자네가 올라가. 난 괜찮아."

"안 돼요, 움직이지 마세요. 그 가지에 매달려 계세요."

피트라가 거의 소리 지르다시피 말했다. 필쳐 박사는 굵은 가지를 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피트라가 다리를 조금씩 펴고 일어나면서 박사를 밀어 올렸다. 갑자기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같더니 그녀가 땅 위를 굴렀다. 그녀는 나무 위에 앉아 있는 필쳐 박사를 기대하며 몸을 굴렸다. 하지만 박사는 팔로 가지를 감고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떨어질 것 같아. 피트라."

"안 돼요!"

그녀가 얼른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녀는 필쳐 박사를 다시는 들어올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손으로 교수의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 필쳐 박사도 동시에 팔에 힘을 주었다. 마침내 가지에 가슴이 닿았고, 그는 가지 위에 배를 걸쳐 놓았다. 박사는 피트라를 쳐다보았다. 그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피트라, 바로 뒤에 있어."

그가 속삭였다. 피트라가 살며시 돌아보니 모노클로니우스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두 마리가 주둥이에 달린 뿔을 그녀에게 겨누고 있었다. 피트라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모노클로니우스는 가만히 서 있었고 적의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공룡은 헤라클레스라고 어쩌지도 못했을 만큼 컸다.

소강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다가 제일 가까이에 있던 모노클로니우스가 피트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왔다. 피트라는 뒤로 물러섰고, 나무에 등이 닿았다. 그녀는 만약의 경우 도망칠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모노클로니우스는 6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오더니 그 자리에 섰다. 공룡은 그 거대한 머리를 들어 올렸고 긴 뿔은 허공에서 흔들렸다. 몇 번 킁킁거리던 공룡은 머리를 숙이고 피트라의 냄새를 맡더니 코에서 뭔가 내뿜은 다음 피트라를 지나쳐 개간지로 향했다. 나머지 두 마리도 잠시 피트라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지나쳤다. 피트라는 공룡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더 이상 공룡이 보이지 않자 나무 위를 올라갔다. 필쳐 박사가 앉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가 말했었지, 피트라. 저 공룡은 초식 동물이라고."

그가 미소를 지었다. 피트라도 같이 웃었다. 그녀는 이런 그의 모습을 약해져 자신에게 의지하게 된 그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 마음 아팠다. 지난 2년간 그는 그녀의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공생관계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젊고 자신을 숭배하는 여성에게서 추켜세워지기를 바랬고, 그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할, 아버지의 권위를 느끼게 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점점 어른의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자기의 스승에게서, 이런 상황에서 생기게 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필쳐 박사는 계속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녀는 믿을 수 없어 고개를 젓고는 적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초식공룡이 RV를 그렇게 만든 거예요? 소화시키는 데 금속이 필요해서 차를 먹으려고 했나 봐요."

필쳐 박사가 웃었다. 이제 기운을 조금 차린 것 같았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죠."

피트라가 제안했다. 그들은 나무 위를 올라가느라 30분을 소비했다. 필쳐 박사는 애를 썼지만, 피트라가 그를 밀어 올려야 조금이라도 올라갈 수 있었다. 피트라는 지쳤고, 필쳐 박사는 가슴의 통증을 호소했다. 그는 피트라만이라도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피트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피트라는 공룡들이 떠날 때까지 나무 위에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육식 공룡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녀는 초원에서 모노클로니우스가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리 중에는 작은놈들도 섞여 있었고 피트라는 어미 공룡과 새끼들을 구분해 보았다. 하지만 공룡들은 특정한 어미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었다. 피트라는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커다란 모노클로니우스들이 수놈이고, 그리고 같이 모여 있는 것은 어미와 새끼들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왜 새끼들이 어미에 대해 친근감을 보이지 않는가였다.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미와 새끼들 간에 유대가 없는지를 가지고 필쳐 박사와 토론을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모든 공룡들이 고개를 쳐들고 덤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노클로니우가 불어오는 바람에 대고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다.

 

48. 큰 새

종말이 시작될 무렵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걸어 나올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

오레곤주 5번 고속도로에 생긴 산 화요일 오후 39(태평양 표준시)

크리시 왓킨스는 풀밭을 뛰어다니며 오빠의 뒤를 쫓고 있었다. 오빠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놀아 주지 않았다. 그는 계속 달렸고 그녀는 제대로 쫓아갈 수가 없었다. 오빠는 자기와 놀아 주기로 되어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었다. 엄마는 길이 왜 이렇게 밀리는지 보고 올 동안 오빠에게 자신을 잘 보라고 말했었다. 리타 왓킨스는 경찰관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 크리시는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주의를 주며 크리시의 손을 밀어냈다. 크리시도 들으려고 했지만, 어른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길을 치운다고요? 농담하는 건가요?"

경찰이 물었다.

"저건 산이에요. 폭파시켜 조금씩 낮춘다고 해도 1년은 걸릴 거예요. 폭파시키고 나면 그 잔해를 치우는 데도 한참 걸릴 거구요. 5번 고속도로는 계곡 쪽으로 다시 만들어야 할 겁니다. 이끔찍한 일들이 또 반복될 거예요."

배가 불룩 나온 대머리 남자가 거의 혼자 떠들고 있었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요? 나는 유진한테 가야 해요. 그것도 오늘 안에요. , 이제 나를 보내 주시겠어요, 아니며 못 가게 막으시겠어요? 내가 당신을 타고 넘어가게 만들지 말아요."

"다시 말하겠는데,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오시던 길로 다시 내려가셔야 합니다. 미드포드로 가셔서 기다리십시오. 주위에 길이 있는지 계속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해안 쪽으로 가실 수도 있습니다."

콧수염을 짙게 기른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이봐요, 저기 좀 보세요. 사람들이 모두 저 위를 보고 있어요."

크리시도 같이 올려다보았다. 어른들은 모두 멋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크리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하늘을 날고 있는 커다란 새를 보았다. 최소한 그녀는 그것이 새라고 생각했다. 정말 큰 그림자가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엄마, 저건 새지? 그렇지? ?"

"그래, 아가야, 아주 큰 새구나. 아마 독수리일 거야."

"저건 독수리가 아닙니다."

경찰관이 대답했다.

"너무 커요. 날개 모양도 이상하구요."

"정말 큰데."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콘도르일 거예요. 야생에 방류한 캘리포이아 콘도르가 틀림없어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저게 콘도르라는 게 확실합니까?"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물었다.

"난 저런 모습을 한 콘도르를 본 적이 없어요."

새를 올려다보느라 크리시의 목이 뻐근해 왔다. 새는 산꼭대기 위에서 원을 그리며 계속 날고 있었다. 그녀는 곧 흥미를 잃었고 오빠 매트가 자신하고 놀아 주기만을 바랬다.

"엄마, 엄마, 엄마!"

"?"

엄마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오빠가 나랑 안 놀아. 엄마가 시킨 대로 나를 봐주지도 않아."

"크리시, 엄마는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오빠한테 가서 엄마가 너랑 놀아 주라고 했다고 말해. 만약 같이 놀지 않으면 초콜릿을 안 준다고 해."

크리시는 만족스러웠다. 오빠는 초콜릿을 먹고 싶어 할 것이다. 어른들은 아직도 이야기 중이었고, 그녀는 뛰어갔다. 그녀가 들은 마지막 소리는 콧수염이 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저 콘도르가 내려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녀는 오빠를 찾을 수 없었지만 바위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죽 이어져 있는 돌무더기를 따라 달리다가 바위틈을 들여다 보았다.

"오빠."

그녀가 물렸다.

"매튜 브로데릭 왓킨스, 어디에 있어?"

그녀가 소리쳤다.

"엄마가 나랑 놀아 주라고 했어. 나랑 놀아 주지 않으면 초콜릿을 주지 않는댔어."

매트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어른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보니 어른들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건 좀 보세요. 엄청난데요!"

누군가 고함쳤다.

크리시에게는 큰 새만 보였다. 새는 점점 가까이 날아오고 있었다. 크리시는 모양을 잘 구분할 줄 알았다. 그 새는 머리에 가죽으로 된 삼각형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그런 것이 날개에도 달려 있었다. 새는 몸이 없었고 그저 날개만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새가 원을 그리며 가까이 다가오자 크리시는 날카로운 발톱이 나 있는 긴 다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리타 왓킨스는 콘도를가 원을 그리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새가 날개를 펼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거실보다 더 넓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새가 기류에 몸을 싣고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새는 날개를 접은 채 그저 바람과 상승 기류에 의지해 떠다니고 있었다.

"이런, 얼마나 큰지 봤어요?"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소라도 집어 올리겠네."

그 말을 듣자 리타는 두려워졌다.

"매트와 크리시는 어디에 있죠?"

그녀는 주위에 모여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경찰관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제 아이들은 어디에 있죠?"

"부인,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모두 개간지 밖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새들은 사람들을 해치지는 앉지만, 만약의 경우..."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아이들을 불러 모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소리치고 있었다. 리타는 아이들을 찾느라 바위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매트와 크리시를 소리쳐 부르는 순간 새의 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었다. 매트가 바위 뒤에서 갑자기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

리타가 아들의 팔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크리시는 어디 있니?"

"몰라. 걔가 벙어리 게임을 하자고 그러잖아."

"잘 보고 있으라고 했잖아."

그녀는 야단을 치면서도 8살짜리한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매트와 함께 뛰어다니며 바위 사이를 살폈다. 그리고 계속 크리시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였다. 그녀는 기간지 쪽으로 가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크리시를 발견했다. 그 순간 새가 다시 리타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번에는 새의 날갯짓에서 생기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랍게도 새가 크리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새는 급강하하더니 그 거대한 날개를 천천히 구부리며 크리시를 덮쳤고, 크리시는 땅 위로 쓰러졌다.

"크리시!"

리타가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아이와 그 새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는 천천히 날갯짓하며 몸을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크리시의 등과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그 새는 리타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새였다. 날개와 머리밖에 보이지 않았고, 몸은 크리시보다 크지 않아 보였다. 머리에는 거의 부리밖에 보이지 않았고 커다란 눈이 달려 있었다. 깃털은 없었고 주름 하나 없는 살갗이 온통 몸뚱이를 덮고 있었다. 길고 단단해 보이는 볏이 머리 뒤쪽까지 이어져 있었고 볏에서부터 등에 이르기까지 힘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날개 밑은 엷은 회색 빛을 띠고 있었고 등은 짙은 초록이다 못해 검게 보였는데 군데군데 반점이 나 있었다. 그때 새가 주둥이를 벌렸고 그 속으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새는 날카롭게 울어댔고 아이를 주고 하려던 사람들은 멈칫했다.

"바위 속으로 숨어. 내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오면 안 된다!"

리타가 아들에게 소리쳤다. 리타는 매트를 바위틈에 밀어 넣고는 땅위에 쓰러져 있는 딸에게 달려 갔다. 크리시는 새의 몸뚱이 밑에 있었고 새는 그녀 위에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어깨를 잡아챘다. 크리시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새는 하늘에서 빙빙 돌다가 다시 내려와서는 크리시의 팔을 낚아챘다. 6미터는 되어 보이는 날개가 팽팽하게 펼치더니-마치 작은 요트의 돛만 해 보였다.-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새는 날개를 구부리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새는 크리시가 계속 발버둥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그때 날개 끝이 구부러지면서 파닥였고 크리시는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 크리시의 무게가 있어 새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이의 어깨와 팔을 사정없이 쥐고 있었다. 크리시가 다시 비명을 질렀고 리타의 가슴은 터지는 것 같았다. 새는 다시 날개를 구부리며 날갯짓을 하더니 제물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리타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하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크리시는 거대한 새 아래에 매달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리타는 아이의 다리를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6미터나 되는 날개가 천천히, 그러나 아주 힘있게 움직이더니 크리시와 새는 위로 올라갔다. 리타는 새의 날갯짓을 무력하게 바라보았고,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바람 소리 위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 줘, 엄마. 살려줘!"

그 말을 듣자 리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그녀는 무릎을 꿇고 딸이 무사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새는 아직도 나선형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상승 기류를 타고 산 위로 가고 있었다. 새는 산허리 쪽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조금 아래로 내려오는 것 같더니 다시 상승 기류에 몸을 싣고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새는 계속 높이 오르고 있었다. 리타는 그때만큼 무기력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이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는 끔찍한 일을 겪고 있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녀가 돌을 집어 하늘로 집어 던졌지만, 돌은 새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뚝 떨어졌다. 다시 무릎을 꿇은 그녀는 울고 있었고 금방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리타가 돌아보니 두 남자가 총을 쏘고 있었다. 그녀는 새를 올려다보았으나 아직도 새는 높이 오르고 있었다. 리타는 갑지기 공포에 휩싸였다. 실수로 크리시를 맞추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녀는 곧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남자들은 계속 총을 쏘고 있었으나 새를 맞추지 못했다. 새는 아주 높이 올라가 있었다. 리타가 받는다고 해도 크리시가 떨어지면 살 가망이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 있었다. 리타는 총을 쏘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를 구하던가 죽이던가 하세요!"

남자들이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들은 총을 다시 들고 조준했다. 하지만 그들은 총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새는 나선형을 그리며 바깥쪽으로 날고 있다가 다시 산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은 쏘지 않고 있었다.

"쏴요!"

그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새는 산 쪽으로 날아가다가 몸을 돌려 상승 기류를 탔고 그때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날개 하나가 꺾이면서 새가 산 위의 바위 위로 떨어졌고, 바위 뒤로 모습을 감췄다. 산 아래는 아수라장이 됐다. 초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올렸고 안도감이 리타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리타는 새나 크리시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주변을 살폈지만 자갈만이 산등성이를 약간씩 흘러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리타는 크리시를 찾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른 구경꾼들도 그녀를 도와 아이를 같이 찾았고, 어떤 사람들은 망원경을 들고 나타났지만, 크리시나 새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줄어들었을 때 리타의 귀에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고, 사람들이 입을 다물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 소리는 리타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반가운 소리였고, 그녀는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로 다가와 아이는 무사할 거라고 말하며 그녀를 안심시켰고,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그녀에게는 믿음이 필요했다. 리타는 비명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믿고 있었다. 초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휙 돌렸다. 새와 크리시가 사라졌었던 곳에 바로 그 위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새의 머리가 잠깐 나타나더니 사람들을 향해 울부짖었고 사람들이 모두 새를 가리키며 숨을 죽였다. 두 남자가 다시 총을 집어 들었지만, 새는 계속 바위 뒤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었다. 새가 질러 대는 소리에 크리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리타는 크리시의 울음소리라고 듣고 싶었다. 새는 계속 비명을 질러댔는데 갑자기 소리가 작아졌다. 다시 큰소리가 났다가 바로 잦아들었다. 그런 와중에 산꼭대기 위로 또 다른 거대한 새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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