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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노트(Les Thanatonautes) 3

제2기 개척자들의 시기

 

 85. 신문의 논평

 파리: 국회 의사당을 달군 뜨거운 감동: 사자들의 대륙에 발을 내디딘 자랑스러운 프랑스인

 우리나라의 펠릭스 케르보스가 저승을 다녀온 최초의 인간으로 공인받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설을 통해 뤼생데르 대통령의 야심 만만한 사업을 지지하고 있음을 표명해 왔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연구팀이 전 세계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사자(죽을 사, 놈 자)들의 대륙에 선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신문은 이미 펠릭스 케르보스를 올해의 인물로 공표한 바 있고 그에게 당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라고 청원을 내놓고 있다.

 

 런던: 한 유럽인 저승을 다녀오다

 죽음도 탐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유럽의 한 연구팀이 사람을 저승에 보냈다가 무사히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 종류의 일이 흔히 그렇듯이, 그 성공이 있기까지는 유감스럽게도 많은 실패가 있었다. 상궤를 벗어난 그 사업이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100여 명의 인간 기니피그가 희생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살인 실험실) 운운하며 프랑스 여론이 이구동성으로 그 사업을 비난했음에도, 펠릭스 케르보스는 그 대살육에서 용케 살아남았다. 영국에서도 한 연구팀이 곧 그 모험에 뛰어들 예정이다. 그 귀추가 자못 궁금하다.

 

 도쿄: 조상들을 찾아서

 한 남자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조상들을 찾아 영계로 떠나고 싶어 했다.

 펠릭스 케르보스라는 그 서양인은 자기 조상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아주 독성이 강한 약품인 염화칼륨을 써서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20분 후에 무사히 깨어났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현재, (지구상의 어떤 관광지를 드나들 듯이 조상들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는가?)라는 대담무쌍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뉴욕: 못 말리는 프랑스 사람들

 프랑스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수공업적 수준의 작은 연구팀이 기상천외한 실험에 착수한 바 있었다. 저승을 찾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독물을 투여하는 실험이었다. 몇 주 전 그 사업이 언론에 폭로되자, 프랑스인들은 장 뤼생데르 대통령을 연쇄 살인의 장본인으로 몰아붙이면서 신랄한 야유를 퍼부어댔다.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진행된 그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무려 100여 명의 희생자를 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옹졸한 관료주의가 과학자들의 사기를 꺾어 버리는 일이 흔히 있으므로 그럴 법도 하였다.(프랑스의 유수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꿈꾸며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미국으로 오기 위해 자기들 나라를 떠나는 경우가 잦은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뤼생데르 대통령과 용감한 프랑스 인 네 사람이 자기들 연구의 가치를 프랑스 국민과 악의에 찬 전문가들 앞에서 입증해 보였다. 전 세계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증인이 되어주고 있는 가운데 펠릭스 케르보스가 사자들의 대륙으로 떠났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펠릭스 케르보스는 범죄자로서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사람인데, 그 쾌거를 이룬 덕에 사면을 받고, 이제 (맨손으로 성공한 사람)의 빛나는 삶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몇몇 영화사에서는 이미 막대한 제작비를 들일 영화를 기획했으며, 그에게 거액을 제한하면서 자신의 역으로 출연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가 아직 답변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간호사 아망딘 역에는 케롤 터크슨, 뤼생데르 대통령 역에는 프레드 오배넌이 거론되고 있다. 그들을 곧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로마: 격노한 교황

 프랑스인들이 사자들의 대륙을 정복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로마 교황은 과학이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며 분노를 표명했다. 성하는, (죽음은 오로지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바티칸의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점을 일깨우면서, (우리는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에 찬성할 수 없다. 우리는 프랑스 정부가 새로이 사람을 파견하기에 앞서, 파리 대주교를 만나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문제에 관한 교황의 교서가 곧 내리리 것으로 예상된다.

 

 마드리드: 뤼생데르 사건

 몇 주 전만 해도 프랑스의 장 뤼생데르 대통령은 자기 나라에서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아주 탁월한 선각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물론 뤼생데르는 자주 경직된 모습을 보였고 어려움에 처한 나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정치 지도자였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본지를 통해, 그의 근시안적인 보호 무역 정책을 비판한 바 있었다. 그런 그가 철저한 비밀 속에서 사자들의 대륙을 정복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실행해 왔다 하니, 우리는 더욱 경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프랑스의 인간 기니피그 펠릭스 케르보스가 최후의 대륙에 다녀오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알아내기 위해 하나의 연구 프로그램을 곧 발족시킬 예정이다.

 

 베를린: 위기를 호도하는 교란 작전

 프랑스 사람들은 확실히 술수에 능하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격렬한 시위와 파업이 끊일 새 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약의 확산과 불법 이민자의 폭주를 막으로는 노력이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장 뤼생데르 씨는 죽음에 관한 실험에 매달림으로써 국민들의 위기 의식을 호도하려 하고 있다. 결국 그가 저승에 사람을 보내는 일에 성공한 것 같기는 하나, 이론의 여지는 많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팀이 곧 그 실험에 대한 검토에 착수할 것이라고 한다.

 

 북경: 죽음, 최후의 식민지

 사자들의 대륙을 정복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포함(돌쇠뇌 포, 싸움 배)의 정치가 횡행하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열강들은 식민지에 대한 욕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의 책략을 비밀에 부치면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전문가들은 며칠 전 타나토드롬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펠릭스 케르보스라는 프랑스 인이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는 곳에 도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곳은 현재로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선으로, 코마에 진입한 후 20분 동안 나아간 곳, 즉 (코마 플러스 20분) 지점에 있다고 한다.

 

 86. 승리 이후

 더 이상 우리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학계와 국민 여론과 언론이 (천국 사업)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를 괴롭히러 왔던 전문가들의 진상 조사 위원회는 오히려 우리의 공로와 진지한 노력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살인 실험실)이 나 (시체 저장소) 따위를 운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내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려면 그 문장을 적어도 20 페이지는 써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질문할 것도 별로 없는 법이지만, 일단 알 듯 말 듯한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걸 알고 이해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죽음이라는 신비가 내 신경 세포가 지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고, 나의 뇌는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있었다.

 우리의 의지대로 죽음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죽음이란 우리가 왕래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지옥에 내려가서 케르베로스라는 괴물과 싸웠던 것은 그저 신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그 비슷한 일을 할 수도 있을 듯했다. 라울이 바라던 대로, 사람이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내 모든 육신의 몸짓이 끝날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결국 인생이 하나의 연속극 같은 것이라면 그 마지막 장면이 어떻게 될지를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단 훨씬 나을 듯싶었다.

 펠릭스의 성공이 가져다준 충격은 내게서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간은 상상력과 확신의 힘으로 어떤 차원의 세계라도 정복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한계는 무엇일까?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뤼생데르 대통령은 우리를 불러 엘리제궁에서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은 서재에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곳은 컴퓨터와 모니터들이 꽉 들어차고 거의 장식이 없어서, 평소에 공식적인 방문객을 맞이하는, 루이 15세 시대풍의 호사스런 집무실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대통령은 우리 일을 서둘러 진척시켜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회의주의자들과의 싸움은 끝났지만 이제 새로운 적수들과 겨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새로운 적수들이란 모방자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 낸 일을 모방하려고 세계 도처에 타나토드롬이 건설되고 있었다. 대통령은 격한 어조로 말했다.

 "미국인들이나 일본인들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일세. 우리들은 이미 항공 기술 분야에서 그런 씁쓸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네.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이 클레망 아데르34)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인데, 라이트 형제가 나타나 자기들이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었노라고 주장했었지. 자네들이 시작은 먼저 했지만 안심해서는 안 되네. 영계 탐사에서 자네들을 앞질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틀림없이 나올 테니까 말일세."

 국회 의사당에서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가 개가를 올렸는데, 전혀 듣도 못 하던 연구팀이 나타나서 우리의 주도권을 부정한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는 (부스터)의 정확한 화학식도 알고 있고, 세계 만방에 내놓을 만한 (챔피언)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영계 탐사와 관련된 어휘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선구적 역할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참 앞서 있기 때문에 다른 연구팀이 우리를 따라 잡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뤼생데르는 팔을 들어올리며 내 말을 막았다.

 "생각해 보게! 우리 국회 의원들이 예산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동안에 미국의 대학들에서는 연구자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액의 연구비를 내놓을 걸세. 게다가 그들이 우리처럼 감옥의 지하실 같은 곳에서 일하겠나? 실험실보다는 박물관이 더 잘 어울릴 치과용 의자 같은 것을 그들이 사용하겠는가 말일세! 천만의 말씀이지. 그들은 돈을 물 쓰듯 쓸 것이고, 세계의 첨단 장비를 다 갖춰 놓을 걸세! 그러니 끄물거릴 시간이 없지. 우리 일을 더 빨리 진척시켜야 하네. 자네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조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네. 라조르박 교수, 팽송 박사, 발뤼스 양 그리고 펠릭스 케르보스 씨, 여러분을 대통령 직속의 고급 국가 공무원으로 임명하겠소."

 그 사실을 콩라드 형이 들었더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샘을 내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는지!

 "잘됐군요. 이제 우리 실험실을 개수할 수 있겠군요."

 라울이 기뻐하며 말하는데, 뤼생데르가 말을 막았다.

 "아닐세, 라조르박 교수. 이제 수공업적인 단계는 지난 걸세. 국제적인 경쟁을 벌이는 판국일세. 다른 나라에 뒤떨어져서는 안 되지. 게다가 이젠 숨어서 일할 이유가 없네.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해야 하네. 그래서 하는 얘긴데, 나는 더욱 현대적이고 널찍한 새 타나토드롬을 만들 생각이네. (역사적인) 공간을 만들어야하네. 새로운 개선문, 즉 죽음을 정복한 사람들의 개선문을 만드는 걸세."

 정치가들이 흔히 그러듯이. 뤼생데르는 자기 이야기에 도취해 있었다. 자기 분신이나 다름없는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이 마냔 즐겁기만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가 부리는 엘리트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그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의 전용탐사대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똑같은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부와 명예를 추구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모험을 찾고 있었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신비를 벗기고 싶어 했다.

 금도금한 목걸이를 두른 비서가 큰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회의가 끝났다. 다른 일들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떠날 시간이었다.

 "우리 정부의 전문 부서에서 다른 나라 연구자들의 동향을 계속 파악할 걸세. 이제 나를 믿고 일을 계속하게."

 대통령은 작별 인사를 대신해서 그렇게 덧붙였다.

 

 87.유대교 철학

 삶은 잠을 통해서 우리를 죽음에 길들이고, 꿈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 엘리파스 레비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88. 집안일

 세찬 감격의 소용돌이를 겪은 국회 의사당 사건 이후, 나는 일주일 동안 집에서 혼자 지냈다.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보다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가 고독을 견디기는 한결 쉬웠지만, 괴로움은 여전하였다. 결국 나에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사는 건물 아래에서 팬들이 나의 동정을 살피며 기웃거리건 말건, 신문에 사진이 실리건 말건, 나는 여전히 고독한 남자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미카엘 팽송, 여기 잠들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초라하고 고독하게 살았다)라는 묘비명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포루투갈 산 백포도주로 스스로를 달래고 신화에 관한 고서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루한 내용이 많은 그 책들을 읽다 지쳐서, 나는 무심코 잡지들을 이것저것 뒤적였다. 잡지들마다 한결같이 유명 연예인들의 행복한 삶을 다룬 기사들이 실려 있었다. 결혼하고 헤어지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아주 아름답고 명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결혼이나 출산의 기쁨으로 벙실거리는 쌍쌍의 무람없는 사진이 쪽쪽이 들어 있었다. 기사를 쓴 삼류 글쟁이들은 그들이 천재적이고 독창적이고 탁월하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겸손하고 느긋하고 상냥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 스타들은 소아마비 퇴치 활동을 지원했고, 제3세계의 아이들을 양자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들은 사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하게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과 나란히, 역시 천재적이고 명랑한 새로운 스타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타나토노트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행복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펠릭스는 인기 절정의 스타가 되어 있었고, 라울은 아버지가 가신 길을 탐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뤼생데르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하늘 높은 줄 몰랐고, 아망딘은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어떠했던가?

 나에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고,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었다.

 사막에서 달을 보고 울부짖는 코요테처럼 마구 소리를 치고 싶었다. 와우! 그러나 이웃 사람들의 항의 때문에 두 마디 이상을 지르기가 어려웠다. 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연예인과 정치인의 행복한 삶을 다룬 기사들을 읽었다.

 (내가 왜 이러나. 정신을 차려야지, 내가 왜 이리 자발없이 구는고.)

 꽤 으슥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누군가가 와 주기를 바랐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떠들어대고 싶었다.

 "안녕!"

 사람들이 오긴 왔다. 그러나 운수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머니와 형이었다. 그이들이 나를 껴안아 주었다.

 "얘야, 장하다. 네가 자랑스럽다. 나는 네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미의 육감이라는 게 있잖니..."

 "장하다, 아우야. 아주 잘했어!"

 그이들은 한참 동안 개개고 갈 기세로 소파에 눌러앉았다. 콩라드 형은 남아 있던 백포도주를 다 마셔 버렸다.

 그러고 나서 콩라드 형은 내 수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는 내 수입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므로 빈틈없는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관리해야 할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유명 인사가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아름다운 여배우나 막대한 재산을 가진 상속녀하고도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이미 잡지에서 몇몇 기사들을 오려 가지고 오셨다. 나에게 어울릴 만한 매력적인 여자들에 관한 기사였다.

 "두고 봐라. 네 앞에 여자들이 줄을 설 테니."

 어머니는 그렇게 장담하셨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어머니의 눈빛이 탐심이 그득했다.

 "하지만 전 이미 여자가 있는 걸요."

 어머니가 마음을 써 주시는 게 오히려 성가셔서, 그걸 막아 볼 생각으로 나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둘러댔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화를 내셨다.

 "아니, 뭐라고! 여자가 있는데 여지껏 이 에미한테 선도 안 보였단 말이냐!"

 "그럴 만한 사정이..."

 콩라드 형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끼어들었다.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미카엘의 여자 친구는 그 간호사일 거예요! 맞지, 미카엘? 국회 의사당 단상에서 네 옆에 서 있던 그 여자 말이야. 쪽빛 눈에 금발하며 기가 막히게 예쁜 여자더군. 장하다, 미카엘. 그 여자 그레이스 켈리와 닮았더군. 물론 그 여자 쪽이 더 예쁘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걸. 그 여자가 펠릭슨가 뭔가 하는 그 친구 품에 달려드는 걸 봐서는, 그에게 빠져 있는 거 같았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형은 얄망궂게도 내 약점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왔다. 그는 다친 자리를 칼로 찌르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간호사라고? 그러면 어때, 직업에 뭐 귀천이 있나? 그래, 식은 언제 올릴 생각이니? 네가 결혼하는 걸 보면 정말 기쁘겠다. 너한텐 여자가 꼭 필요해. 그래야 네 삶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거야. 너 지금 옷 입은 꼬락서니 좀 봐라! 그렇게 옷을 부실하게 입으면 감기 걸리기가 십상이야. 어디 그뿐이냐? 밥도 늘 식당에서 먹지? 뻔해. 식당 밥은 먹을 게 못 돼. 그 사람들 돈 한 푼이라도 더 벌 생각에, 찌꺼기 음식을 내놓고 재료도 꼭 아랫질로만 쓰거든. 특히 다진 고기 같은 건 절대 먹지 마라. 알겠니?"

 "알겠어요, 엄마."

 또 무슨 사설이 쏟아져 나올지 몰라, 나는 얼른 어머니 말씀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잘됐다. 그 아가씨가 너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챙겨 줄 게다. 내 말대로 빨리 결혼해라.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기다만, 너 텔레비전에 얼굴 좀 비쳤다고 거만하게 굴면 안 된다."

 "말도 안 돼요."

 "뭐가 말이 안 돼?"

 "전 거만하게 굴지 않아요."

 "암 그래야지, 미리 일러둔다만,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우리한테 거드름을 피우면 안 돼! 우리한테는 그러면 못 써, 알았지?"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리기보다는 차라리 선뜻 수긍하는 편이 나았다.

 콩라드 형은 고분고분한 내 태도를 비웃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앉은뱅이 탁자 위에 놓인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그가 소리쳤다.

 "아니, 너 이넨 환상 문학에 빠져 있는 게냐?"

 "남이야 뭘 읽든 형이 무슨 상관이야? 누가 뭐래도 난 내가 읽고 싶은 걸 읽어."

 나는 그렇게 볼멘 소리를 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얼마든지 고분고분할 수 있었지만, 콩라드 형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정말 못 할 일이었다. 콩라드 형이 기어이 참견하고 나섰다.

 ""포폴 부흐"35), 이거 마술사들이나 보는 마법서 아니야?"

 그것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그 책을 낚아채며 쏘아붙였다.

 "이건 마법서가 아니라, 마야의 한 부족인 키체 사람들의 성전이야."

 "아, 그래? 이건 "역경(바꿀 역, 날 경)"이고, 이건 "바르도 토돌: 저승 길잡이 책"36). 아니 이건 또 뭐야! "라마야나"37)로군. 그러고 보니 이상한 책이란 책은 다 모아 놨군. 이제 "카마 수트라"38)만 있으면 되겠다."

 "형, 내 복장 지르려고 온 거면 당장 가요. 한 방 먹이기 전에! 가서 돈이랑 차가지고 으스대면서 형 여자들하고나 놀아요. 남이야 뭘 하든 제발 참견하지 말고요."

 "계속 묘지 같은 분위기에서 살겠다고 뻗대는데 어떻게 참견을 안하겠니?"

 그가 이기죽거렸다. 내가 주먹을 내밀며 덤벼드는데, 어머니가 말리셨다.

 "형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네가 형만큼만 하면 내가 여한이 없겠다. 네 형은 결혼도 했고 나한테 손자도 안겨 주었다. 네 형은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야!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해서 거만하게 구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생각해 보니, 내 행동은 모기보고 칼 빼는 격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숨을 천천히 쉬었다.

 "제 화를 돋우러 오신 거라면, 두 분을 더 이상 붙잡아 두고 싶지 않아요, 제가 불행할까 봐 걱정하시는 건지, 행복할까 봐 걱정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저에게 고통을 주러 오신 거예요?"

 나는 늘 하던 대로 셔츠 첫 단추를 끌러 놓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늘 하시던 대로 단추를 잠가 내 목을 조이셨다. 내가 목이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는 틈을 타서 어머니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퍼부으셨다.

 "어떻게 네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니? 우린 언제나 네 사기를 북돋아 주어 왔다. 네가 라조르박하고 묘지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조차도 나는 너를 비난하지 않았어. 자기 아들이 미친 아이와 어울리는 것을 허락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거다."

 "라울은 미치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사람은 어딘가 좀 이상해. 너도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될 거다."

 "천만에요."

 나는 조만간 내 현관문에 단단한 자물쇠를 달아야 할까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나 쉽게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빗장도 지르고 어안 렌즈 구멍도 만들고 초인종도 달아야 할 판이었다. 그래야 알량한 사생활이나마 보장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하필이면 그때 라울이 나타났다. 어머니의 언짢은 말을 라울이 들었다면, 참으로 유감 천만이었다. 라울이 그렇게 불쑥불쑥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물쇠는 필요할 것 같았다.

 "어서 오게, 라울."

 나는 심드렁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나의 형은 존경심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라울을 맞았다.

 "아니, 이거 라조르박 교수 아니신가! 그렇지 않아도 교수 얘기를 하던 참이오. 교수도 이제 부유해지고 유명해졌으니 수입을 관리하기 위해 재정 고문이 필요할 거요. 말하자면 두 분과 간호사 아가씨는 록그룹 같은 것을 구성한 셈이오. 여러분에겐 매니저가 필요해요. 여러분의 이미지를 관리해 주고 계약을 대행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나는 라울이 그 익살 광대에게 매몰차게 쏘아붙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라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형의 말에 솔깃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자네, 형님이신가?"

 라울이 물었다.

 "그래."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나를 낳으신 분임을 당당하게 밝히셨다.

 "나는 얘 에미일세!"

 라울은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형의 제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했다.

 "형님 말씀에 일리가 있네. 우리의 새 타나토드롬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네."

 콩라드는 의기양양하게 자기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렇다마다요. 이건 내가 생각한 건데, 여러분의 새 타나토드롬 옆에 기념품 가게를 하나 내면 장사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그 가게에서 이런 티셔츠를 팔 수 있을 거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주머니에서 티셔츠를 하나 꺼냈다. 티셔츠에는 (죽는 일이 우리의 직업이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나는 대경실색했다. 그러나 라울은 태연했다. 그는 티셔츠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멋진 생각이에요. 이 옷 세탁하면 줄어드는 거 아니죠?"

 "그럼. 염색이 바래지도 않는 거라네. 내가 다 확인했지."

 어머니가 거드셨다.

 라울은 우리의 거룩한 사업을 성전에 빌붙으려는 장사치들에게 헐값에 팔아 넘겨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라울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미카엘, 자네 형님 말이 맞아. 그런 가게를 하나 내면 우리 일을 더 잘 홍보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와 대중이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그럼 난 자네들 대변인 노릇을 할게. 그러면 미카엘을 자주 볼 수 있고, 더 잘 돌볼 수 있게 될거야."

 아, 자애로우신 나의 어머니.

 나는 별 해괴한 일이 다 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신비를 벗기자며 시작한 게 우리 일이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삶을, 세계를, 인류를 변화시키려 했다... 그런 우리가 (타나토노트 기념품) 가게를 열겠다고 궁리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정말이지 우리는 경이로운 시대를 살고 있었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 해도 그분 역시 당신의 가르침을 대중화하기 위해서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분이라도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새긴 연보라빛 티셔츠를 팔아야 하고, 미지근한 물로 빠는 면 70%, 아크릴 30%의 흰색 스웨터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오)라는 문구를 박아 넣어야 할 판이었다. 콩라드 형은 그런 세상에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노자가 자기 가르침을 대중화하기 위해 아이디어 상품 가게를 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노출이 매우 심한 스트링 비키니에,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39)"라는 글귀가 씌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내 형과 라조르박 교수가 그렇게 죽이 맞았는데, 난들 무슨 할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결국 형은 가게를 열기로 했다. 그는 대만에서 싸구려 옷과 잡화들을 들여올 생각이었고, 가게는 어머니가 운영하시기로 했다.

 나는 반대는 못 하고 그저, (익살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요)라는 말만 되뇌면서 못 말리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언제 소개시킬 생각이냐?"

 어머니는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를 다시 들먹여, 결국 내 마음을 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셨다.

 

 89. 오스트레일리아 신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신화에는 눔바쿨라라는 신이 나온다. 어디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언제나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눔바쿨라는 어딘가에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은 땅에 홀연 나타난 신이다. 그가 북쪽을 향해 나아가자 지나는 곳마다 산과 강이 나타나고 그것들에 딸린 식물과 동물이 생겨났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 그의 몸에서 나온 불멸의 영혼들이 그 수만큼의 아이 정령이 되어 퍼져 나갔다. 눔바쿨라는 어떤 동굴에다 거룩한 부호들을 새겼다. (트주룬가)라 불리는 그 부호들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트주룬가 하나와 아이 정령 하나가 결합하여 시조(처음 시, 조상 조)가 태어났고, 똑같은 방식으로 잇달아 다른 조상들이 태어났다. 그 조상들에게 후손을 가르칠 책임이 지워졌다.

 어느 날 눔바쿨라는 땅 한가운데에 기둥을 박았다. 그는 그 기둥에 피를 바르고 기어오르더니 시조에게 자기를 따라 올라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피를 발라 놓은 기둥이 너무 미끄러워 시조는 그만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눔바쿨라는 혼자 하늘에 다다른 뒤 땅에 남겨 놓은 기둥을 거두어 갔다.

 눔바쿨라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후로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멸성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눔바쿨라가 거룩한 기둥을 박았던 자리는 세계의 축으로 남아 있고, 그가 원했던 대로 그 축을 중심으로 이승의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90. 뷔트 쇼몽의 타나토드롬

 대통령이 마련해 준 특별 예산 덕분에 우리는 멋진 타나토드롬을 세웠다. 대통령이 말한 대로 개선문 같은 웅장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은 현대적인 모습의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우리는 장소 선정에 신중을 기했었다. 숙고 끝에 우리가 정한 장소는 보차리스 가, 뷔트 쇼몽의 언덕배기였다. 뷔트 쇼몽은 옛날에 몽포콩 사형장40)이 자리 잡고 있던, 음산한 기억이 서린 곳이다. 중세에 그곳에서 왕의 명령에 따라 무고한 백성과 악한 무리가 교수형을 당했다. 라울은 그런 곳에서 죽음을 연구하게 된 것을 무척 재미있어했다.

 두 달 만에 모든 채비가 끝났다.

 새 타나토드롬은 뷔트 쇼몽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8 층 건물이었다. 2층부터 5 층까지는 한 층에 세 채씩 아파트 열두 채가 들어섰다. 6층부터 8층까지는 칸막이 벽을 헐어서 공간을 탁 틔운 다음, 6층에는 220제곱미터의 실험실을, 7층에는 역시 같은 면적의 이륙실을 만들었다. 8층은 펜트하우스와 같은 고급스런 공간으로 개조하였다. 겨울에는 그곳을 투명한 유리로 완전히 덮고, 여름에는 유리를 치워 테라스로 쓰기로 했다.

 아망딘은 그 8층에 녹색식물을 많이 들여놓고 자기 취향에 맞게 리셉션 실을 꾸몄다. 이국적인 풍치를 자아내는 그 실내 장식에 하얀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검은 바를 곁들였다. 그러고 나니 그곳이 우리 타나토드롬에서 가장 멋진 장소가 되었다.

 건물 아랫자락에는 표지판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파리 타나토드롬)이라는 간단한 말과, 더 작은 글씨로 (직원 외 출입 금지)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라울은, 공항 근처에 (주의! 이륙 활주로)라는 표지판이 있는 것을 본따서, 우리도 표지판에 (주의! 타나토노트 이륙)이라는 말을 덧붙이자고 제안했었다. 그냥 제안으로 그치기는 했지만, 무척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는 생각은 들었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낙성식을 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정문에 포도주병을 깨뜨렸다. 이번에는 거품 이는 포도주가 아니라 진짜 샴페인이었다. 우리는 이제 인색하게 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새 타나토드롬이 문을 연 것을 홍보하기 위해, 펜트하우스에서 파티가 열렸다. 대통령은 짤막한 연설을 통해 우리의 노고를 치하하고 (최후의 대륙)을 정복하기 위한 국제적인 경쟁에서 언제나 선두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잎이 두툼한 열대 식물로 둘러싸인 연단에 서서, 대통령은 슬픈 어조로 옛날 프랑스가 잃어버린 식민지, 즉 캐나다, 인도, 서부 아프리카 등을 열거하면서,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전에 우위를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그것들을 잃게 되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는 일등 자리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힘있게 결론을 맺었다.

 그런 다음,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리는 가운데 대통령은 우리를 위해 특별히 고안해 낸 훈장을 네 사람에게 하나씩 수여하였다. 이른바 레지옹 도뇌르 타나토노트 장(글 장)이었다. 그 메달에는 천사의 날개를 단 사람이 불의 동그라미를 향해 돌진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성공과 영광의 열기에 취해 있던 그 순간에도, 어쩌면 죽음은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호숫가 마을 아이들이 판자대기를 얼기설기 엮어서 임시 변통으로 다이빙대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 남미의 사나운 물고기 파라냐들이 흙탕물 속에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사위스런 생각을 쫓아 버리고 리셉션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다시 파묻혔다. RTV 1의 기자가 와 있었다. 그가 아망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아망딘은 별로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망딘은 말이 없었다.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기자는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질문은 하는데 대답은 없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카메라만 돌아가고 있었다. 본래의 감각 기관 대신 카메라와 마이크라는 인공적인 감각 기관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 진 그였지만, 아망딘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 생래의 오감이 되살아난 모양이었다. 그날 아망딘은 금실을 두른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몸에 꼭 끼어 몸매를 그대로 보여주는 드레스였다. 나는 바닥 모를 심연처럼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그녀의 쪽빛 눈동자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RTV 1의 기자가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서 어머니는 그를 붙잡고 많은 정보를 알려 주셨다. 그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했고, 어머니는 질문하는 대로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주셨다. (네, 타나토노트 기념품점을 개업했어요.) (네, 그 가게에서는 영계 탐사 실험을 기념하는 티셔츠와 갖가지 신상품들을 팔 거예요.) (아니오, 여름이 오기 전에는 염가 판매를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대통령은 연단에 올라 연설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고안한 훈장이 대견스럽다는 듯 그것을 흔들며 말했다.

 "이 훈장은 영계 탐사의 발전에 공헌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내의 타나토노트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와서 우리와 함께 일할 외국의 동료들에게도 이 훈장은 주어질 것입니다. 뜻 있는 모든 분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뤼생데르는 정말 못 말릴 사람이었다. 역사 교과서에 자기 이름을 넣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자기의 자취를 확실히 남기기 위해서 (뤼생데르 메달)도 고안했고, 자기의 타나토드롬도 건설했다. 그는 존 F. 케네디 공항이나 샤를 드골 공항처럼 장차 뤼생데르 타나토드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될 장소를 만들어 놓고 싶었을 것이다.

 영계 탐사에 기여한 세계의 모든 타나토노트들을 우리 타나토드롬으로 불러 모으겠다는 생각에는 다른 나라에 결코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었다. 뤼생데르다운 착상이었다.

 나는 대통령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91. 티벳 신화

 

 또 이 점을 명심하라.

 네 환각을 벗어나면

 사자들의 심판관도 악마도

 죽음을 이겨낸 마주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고 자유를 얻으라.

 - "바르도 토돌(저승 길잡이 책)"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92. 새로운 시작

 낙성식 다음 날 우리는 장비와 짐들을 죽음의 전당 안에 들여놓았다.

 대통령은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도록 아파트 한 채씩을 건물 내에 마련해 주었고, 우리가 밤에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출입구가 여러 군데 난 실험실도 갖추어 놓았다. 국회 의사당 사건이 있기 전,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던 때에 이웃 사람들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던 우리로서는 그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나는 주거로 정한 4층에 짐을 옮겨다 놓고 실험실에 가서 라울을 만났다. 라울은 일을 빨리 진척시키라고 몰아붙이는 대통령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양반 입만 열었다 하면 미국인들, 일본인들, 영국인들을 들먹이는 통에 골치가 아파. 대통령은 우리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 일엔 긴 호흡이 필요해.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뿐이야. 게다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고 말이야."

 내 친구 라울이 그렇게 신중하고 절제된 면모를 보이는 게 놀라웠다. 앞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과감하게 밀고 나가자고 몰아치던 그가 아니던가.

 "빨리 하는 것과 서두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되지."

 무엇보다도, 한껏 달아올라 있는 펠릭스의 마음을 진정시켜서 영계 탐사 비행을 다시 하도록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다.

 국회 의사당 사건 이후 우리 타나토노트는 많이 변했다. 그는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에 꼬박꼬박 응했고, 끊임없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오락 프로그램이든 토론 프로그램이든 가리지 않고 얼씨구나 하고 초대에 응했다.

 30년 동안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으니,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떤 성형외과 의사는 칼자국투성이인 그의 얼굴을 고쳐 주었고, 어떤 유명한 안과 의사는 그의 각막에 들러붙어 눈을 깜박거리게 만들던 콘텍트렌즈를 떼어 내는 데 성공했다. 펠릭스는 또 벗겨진 머리에 머리털이 나게 하려고 호르몬 정제를 사용하기도 했다. 유수의 의류업자들이 광고 전략의 일환으로 그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멋있고 세련된 남자로 탈바꿈한 펠릭스 케르보스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완벽한 영웅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는 어디에나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개봉일, 전시회 개회일마다 불려 나갔고,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대공연이 있을 때는 으레 초청을 받았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타나토노트를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알고, 상류층 가정의 안주인들이 경쟁을 벌였다. 펠릭스는 또한 사후 세계에 가장 멀리 들어간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버찌 씨를 가장 멀리 뱉어낸 사람과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 사이에, 펠릭스는 슈퍼맨의 복장을 한 채, 화려한 톱모델과 나란히 그 책에 실렸다. 그 톱모델은 시간과 죽음을 상징하는 커다란 낫을 들고 있었다.

 펠릭스는 세상 사람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우리는 한편으로 그러한 변모를 아주 반갑게 여겼다. 그가 세상에 애착을 갖게 되면, 영계 탐사를 떠났을 때 저 세상의 유혹에 이끌리지 않고 이 세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자주 밤을 새우는 바람에 우리 일이 자꾸 늦어져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따금 그는 자기의 직장이기도 한 타나토드롬에 올 생각은 않고 모자라는 잠을 채우려고 며칠씩 침대에서 뒹굴기도 했다. 게다가 사람들의 찬사에 너무 익숙해 진 나머지 우리의 충고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고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는 해도 그에게 전문가다운 양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뷔트 쇼몽에 입주하던 첫 주에 그는 두 차례의 왕복에 성공했다.

 펠릭스는 코마 진입 후 20분 동안 나아간 곳, 즉 (코마 플러스 20분)에 장벽이 하나 있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보일락말락 한 막(幕) 같은 것으로 펠릭스는 그것을 얇고 투명한 입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벽을 넘으면 이승과 연결되어 있던 생명 줄이 끊어지면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신문들이 우리를 따라서 (코마 장벽)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떤 기자들은 (죽음의 장벽)이라고도 불렀고, (몰록1)41) 또는 음속의 장벽인 마흐와 비슷하게 (모흐1)42)이라고 부른 기자들도 있었다.

 몰록이라는 말은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의 신 바알을 연상시켰다. 언젠가 튀니지의 시니 부 사이드를 여행하면서 나는 바알 신의 형상을 본 적이 있었다. 쇠붙이로 되고 속이 텅 빈 거대한 조상(彫像)이었다. 사람들은 바알 신의 뱃속에 불을 지핀 다음, 아이와 처녀를 벌어진 입속에 던져 제물로 바쳤다.

 한편, 나의 어머니는 결정된 대로 타나토드롬 건물 1층에 가게를 열고 티셔츠와 열쇠고리, 운동모 따위를 팔고 계셨다. 어머니 가게에는 (죽음을 정복하려는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가게에는 갖가지 기발한 신상품들이 있었고 각 상품에는 굵은 글씨로 여러 가지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예를 들어, 맥주 조끼에는 (죽는 것이 우리의 직업입니다)라는 말이, 재떨이에는 (그대 한 줌의 재로 돌아가리라), 회중시계에는 (세월을 당할 자 그 누구랴), 화장지에는 (아무것도 사라지거나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그저 변화할 뿐이다), 초에는 (나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리), 연(鳶)에는 (하늘이 부르기 전에 하늘로 올라가리라)라고 씌어 있었다. 가게에는 또 펠릭스를 본따서 만든 인형 세트와 국회 의사당 실험 실황을 담은 비디오카세트, 마취과 의사이자 타나토노트인 내 사진과 인형이 들어있는 상자들도 있었다.

 그런 것을 꼭 팔아야 하는 건지, 참 취미도 별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친구를 선택할 수는 있어도 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93. 경찰 기록

 관계 부서에 보내는 보고

 영계 탐사 운동의 규모가 정상적인 개입 방식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계속 커질 기세입니다. 영계 탐사 운동은 이제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운동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해도, 주요 활동가(신원 카드 참조), 특히 라울 라조르박, 미카엘 팽송, 아망딘 발뤼스들의 활동을 중단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들이 일을 계속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계 부서의 회신

 참고 기다리면서 지켜보기 바람. 개입하기에는 너무 이름.

 

 94. 신학적인 문제

 "자네들이 말하는 (코마 장벽)이 그럴듯하기는 한데, 대중에게는 좀 더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네들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사기꾼이라고 생각할 걸세."

 컴퓨터와 모니터가 꽉 들어찬 서재에서, 라울과 나는 대통령을 마주하고 있었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무척 흥분해 있었다. 그의 말대로 실험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종종 실험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기는 하다. 파스퇴르도 당대에 자기의 실험 결과를 실제로 입증해 보이기에 앞서 그것을 설명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엄청난 발견을 했지만, 아직 그것을 정확한 개념으로 대중에게 설명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라울은 기다란 손으로 가느다란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생각을 가다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대중에게 내놓을 만한 설명이 있긴 합니다."

 대통령은 바퀴 달린 안락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앉은 다음, 등받이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자동 마사지 장치를 작동시켰다.

 "어서 말해 보게."

 대통령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상냥하게 말했다.

 라울은 담배 한 모금을 맛있게 빨아들였다가 유카리 향이 나는 연기를 뱉어냈다.

 "우선 이런 설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죽음은 일종의 생물학적 퇴행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죽음)의 경우에, 대뇌 신(새 신) 피질의 기능이 정지되면, 의식은 후뇌(맡을 후, 뇌 뇌) 속으로 들어가고 바로 그 순간에 임사 체험은 할 수 있습니다. 신피질과 후뇌 사이에는 아직 화학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빛의 터널 같은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의식은 파충류의 뇌로 들어갑니다. 신피질과 후뇌 사이에는 관계가 유지되지만, 신피질과 파충류의 뇌 사이에는 더 이상 관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 단계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합니다. 그 단계의 체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피질이 기능하고 있을 때, 이 파충류의 뇌에 자극을 주었더니, 꿈과 환각이 일어나고 난쟁이들이 사는 외부 세계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의식은 파충류의 뇌에서 세포로 갑니다. 세포 안에서 다시 디옥시리보 핵산(DNA)이 들어 있는 세포핵으로 갑니다. 디옥시리보 핵산은 태초부터 구성되어 있던 것이므로, 의식이 디옥시리보 핵산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일종의 의식 분리 상태에서 태초의 세계를 자각하게 됩니다."

 뤼생데르는 손을 들어 라울의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네. 어떤가, 미카엘, 자넨 달리 설명할 수 있겠나?"

 "최근의 이론에서 (타키온)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타키온은 샤클레이 원자력 연구 센터의 입자 가속기에서 최근에 발견한 완전히 새로운 미립자입니다. 그 미립자는 빛보다 빠르다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장(意識場)에도 그런 미립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약간 멍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의식의 타키온이 아직 우리 몸 속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타키온 이론가들은 그것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미립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물질)이라면, 그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그 타키온일지도 모릅니다."

 뤼생데르는 자기 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의식의 미립자에 관한 얘기가 매력적이긴 한데, (타키온)이라는 말이 대중 매체에 어울릴 것 같지는 않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인 설명에는 다들 도리질을 치면서 따분하게 여길거야. 여보게 라울, 자네는 신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아는데, 아주 그럴 듯한 설명을 제공할 만한 신화가 뭐 없을까?"

 "그런 거라면, "바르도 토돌"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티벳 판 "사자의 서"라고 할 만한 책입니다. 그 책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세 가지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자네 지금 농담하는 겐가? 그런 이야기를 유권자들에게 하란 말인가?"

 대통령은 펄쩍 뛰었다.

 ""바르도 토돌"에서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몸이 있습니다. 첫 번째 몸은 (육체적인 몸)이라 합니다. 그것은 고체, 액체, 기체 따위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전체가 우리의 유기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적인 몸을 통해서 우리는 시각, 청각 등 모든 지각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 물질은 썩어서 먼지가 됩니다. 두 번째 몸은 (기(기운 기)의 몸)이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몸을 덮고 있는 자기(자석 자, 기운 기) 같은 것으로서 그것이 어떠하냐에 따라 육체적인 몸이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합니다. 동양 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이나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말하는 샤크라가 바로 그 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산하고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자연의 에너지가 그 몸을 통해 순환합니다. 그 에너지를 인도 사람들은 프라나라고 부르고 중국 사람들은 기라고 부릅니다."

 베르생제토릭스가 침 한 줄기를 흘리면서 하품을 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대통령이 왜 자기 개 이름을 베르생제토릭스라고 지었는지를 깨달았다. 스스로를 카이사르라고 생각하고 있는 대통령이 자기 개에게 베르생제토릭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의 족장 베르생제토릭스를 제압했지만, 뤼생데르는 래브라도 사냥개 베르생제토릭스를 지배함으로써 자그마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던 건 아닌지!

 신화와 과학이 뒤섞인 라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실용주의자 뤼생데르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명하였다.

 "우리 몸에서 방사되는 에너지나 파동, 초능력 따위가 바로 이 (기의 몸)과 관련이 있습니다. 까닭 없이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게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병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육체적인 몸과 기의 몸 사이에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것입니다. 동양 의학에서 사용하는 침술의 근거가 거기에 있습니다. 침술이란 막힌 기의 흐름을 뚫어서 잘 흐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몸, 기의 몸... 그 얘기를 들으면서 뤼생데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이제 궂은 일은 다 끝났으니까 당장 저 미치광이 과학자를 제거해 버리고 더 번듯한 최고 권위자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의 눈길이 잠시 나에게로 쏠렸다. 대통령은 어쩌면 나를 라울의 후임자가 될 만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른 건 접어 두고라도, 나는 처음부터 이 일에 참여하여 온 사람이었고 라울과 달리 정신이 아직 온전해 보였을 것이다.

 설명에 열중해 있느라고 라울은 상대방의 회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데카르트의 생각도 그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육체와 영혼의 다른 점은 영혼은 나뉠 수 없음에 반해서, 육체는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만 놓고 보면, 데카르트 생각이나 티벳 사람들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의 몸과 육체적인 몸은 분리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그럴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마약에 취해 있을 때, 기절했을 때, 오르가슴을 느낄 때, 아주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등입니다."

 "코마에 빠져 있을 때는 어떤가? 그때도 분리가 일어날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선친은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고, 영매(靈媒)들과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자발적으로 자기들의 육체적인 몸에서 기의 몸을 분리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철학 선생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아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했습니다... 선친의 생각에 따르면, 육체적인 몸에서 기의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마치 우리 살갗에 붙어 있던 투명한 외피가 벗겨져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이 자기 개를 쓰다듬었다. 라울은 잠시 멈췄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20세기 말에 루퍼트 셀드레이크라는 교수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물리학자는 모든 사물들이 자기의 질료와 독립된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씨앗 속에는 이미 장차 나무가 될 바탕이 들어 있고, 태아 속에는 노인의 모습이 감춰져 있으며, 형식은 움직이는 데이터 뱅크처럼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셀드레이크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그 비물질적인 형식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전자기적인 현상입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전자기적인 도장이 찍혀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전자기적인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두 손바닥을 접근시키면서 그것을 감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에너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가끔 아주 자그마한 태양 같은 것을 느끼듯 작은 에너지 덩이를 감지합니다. 두 손을 얼굴 정면에 들고 있는다든가, 낯선 사람들의 살갗에 살짝 몸이 닿았을 때, 또는 불시에 감전을 당했을 때에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느꼈다면 보이지 않는 외피를 만져 본 것입니다. 결국 영혼을 만져 본 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뤼생데르 대통령이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그럼, 그 세 번째 몸이라는 건 뭔가?"

 

 95. 인터뷰

 (여성지 "마가진 패미냉"에 실린 기사)

 기자: 영혼이라고 하셨습니까?

 케르보스: 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외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덮고 있다가 벗겨져 나가는 것이지요.

 기자: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케르보스: 그곳에 올라가면 내 몸은 갖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투명한 구름과 비슷해집니다. 그것은 본래의 내 몸과 윤곽이 일치하지만 질량도 없고 무게도 없으며 자기 마음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 몸은 물체를 통과할 수 있고, 물체들이 그 몸을 통과할 수도 있습니다.

 기자: 이른바 심령체라는 것입니까?

 케르보스: 나는 심령체가 뭔지 모릅니다. 내 몸이 투명해지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투명해진 몸을 볼 수 없고, 그 몸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몸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자: 이동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케르보스: 생각의 속도로 이동합니다. (수영 동작을 흉내 내며) 몸이 투명해지면 나는 이렇게 당신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은빛 탯줄 같은 것으로 여전히 육체적인 몸에 연결되어 있지요. 그 은빛 탯줄은 일종의 안전 밧줄 같은 것입니다. 탄력이 있고 빛을 발합니다.

 기자: 그 (투명한 몸)으로 날아오를 때 기분이 좋습니까?

 케르보스: 네. 더 이상 나를 얽어매는 것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다치거나 지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투명한 내 몸은 하나의 생각 같은 것으로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 몸은 생각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기자: 고통에 찬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군요.

 케르보스: 그렇습니다. 살을 파고들어온 발톱 같은 것 때문에 고생하던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96. 일본 철학

 죽음은 무사가 갈 길이다. 삶과 죽음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죽음을 선택하라.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용기를 내어 행동하라. 임무를 완수하지 않고 죽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무사도를 왜곡하는 것이고 오사카의 뻔뻔한 상인들에게나 어울릴 타산적인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 정신을 가지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누구나 사는 쪽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 남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살아 남는 쪽을 선택하는 자는 비겁자와 천한 자로서 응분의 경멸을 받아야 하리라.

 - "하가쿠레"43)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97. 정신적인 몸

 뤼생데르 대통령은 라조르박 교수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새삼스레 내 친구 라울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라울은 두루두루 아는 것도 참 많았다.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책이 들어 있는 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라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많은 학자들과 동양의 현자들을 두루 꿰려면 도서관 하나를 채울 만큼의 책을 읽어야 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네 말로는 세 가지 몸이 있다고 했는데, 육체적인 몸, 기의 몸, 그리고 그다음엔 뭐지?"

 "정신적인 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식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정신적인 몸에 탈이 나면 기의 몸이 균형을 잃고 병들게 됩니다. 제가 지금 각하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정신적인 몸 덕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각이 제공한 모든 정보들을 분석하고 종합해서 그것들에 지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랑에 빠지고 웃고 우는 것도 바로 정신적인 몸입니다."

 대통령은 라울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육체적인 몸, 기의 몸, 정신적인 몸이라. 간단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잠자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동안에 저승을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는 제격인 것 같네."

 

 98. 저녁 식사

 타나토드롬 맞은편에 타이 사람이 경영하는 작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그 식당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어느덧 그곳을 우리의 단골로 삼게 되었다.

 순수한 타이 말로 치앙 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 주인 랑베르 씨는 꿀풀 향을 넣은 튀긴 국수가 전문이었다.

 라울과 나는 대통령과 가졌던 특별 면담이며, 영계 탐사의 새로운 목표에 대해서 아망딘, 펠릭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내아이가 우리 식탁에 찰싹 달라붙더니 펠릭스에게 물었다.

 "펠릭스 케르보스 아저씨죠?"

 우리의 영웅은 꼬마가 자기를 알아보는 게 기뻐서 입을 헤 벌리며 그렇다고 했다. 아이가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기가 무섭게 한 무리의 팬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에워쌌다. 그들은 모두 펠릭스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미남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얼른 음식값을 치르고 동료들과 함께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펠릭스는 일부러 늑장을 부리는 듯했다. 사람들의 찬사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그는 사람들이 내미는 메뉴판과 종이 냅킨과 식당 이용권에 서명을 해주었다. 그의 눈이 행복감에 젖어 반짝였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99. 케냐 신화

 반투44) 사람들의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죽지 않는 존재였다고 한다. 신은 그 사실을 인간에게 확인시키려고 먼저 카멜레온을 보냈다. 카멜레온을 보내 놓고 나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신은 애초의 생각을 바꾸었다. 인간은 결코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때가 되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신은 두 번째 사자(하여금 사, 놈 자)를 보냈다. 이번에 보낸 것은 새였다.

 카멜레온은 새보다 먼저 인간 세상에 다다르기는 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랴. 카멜레온은 말을 더듬느라고 자기가 전해야 할 말을 사람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새는 재빨리 자기의 전언을 인간에게 들려주었다. 새가 전한 신의 계시는 인간이 죽게 되리라는 것과 이승에 다시 돌아오더라도 전생의 모습과 같은 형상으로는 절대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00. 펠릭스의 탈선

 뷔트 쇼몽 타나토드롬이 문을 열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아망딘이 엄숙하게 펠릭스와 약혼한 사실을 알렸다. 가련한 바보 멍청이였던 나는 그간의 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눈치를 채고도 그걸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기 전에 라울과 나는 아망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여자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나토노트가 되어 저승으로 떠나는 길뿐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그녀의 관심을 끌려면 타나토노트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망딘은 짐승같이 아둔한 그 사내의 어떤 점을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그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말고는 무어 볼 것이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 일로 해서 우리의 신비스런 아망딘은 나에게서 완전히 멀어져 갔다.

 그래도 막상 그 두 사람이 살림은 차리던 날에는 내 가슴 한쪽이 아릿해져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질투심이 우정을 압도하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사랑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있던 펠릭스였지만, 일에서는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펠릭스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머지않아 모흐 1을 넘게 되리라고 장담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영계로 떠나는 것을 망설이기까지 했다. 아망딘을 자기 여자로 만들고 파리 사교계의 황제가 된 마당이니, 위험천만한 코마에 다시 빠져들고 싶은 생각이 시들해질 법도 했다.

 사정이 그러한지라, 하나밖에 없는 그 변덕스러운 타나토노트에게만 우리의 희망을 걸고 있기가 어렵게 되었다. 되도록 빨리 새로운 지원자들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펠릭스 자신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리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일간 신문에 (파리 타나토드롬에서 지원자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짤막한 광고를 냈다. 우리는 지원자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만 모이면 다행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려 천 명이 넘는 모험가들이 응모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선발 과정이 엄격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는 많은 지원자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부득불 아주 가혹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우리 넷 가운데서도 펠릭스가 특히 혹독한 시험관 노릇을 했다. 누구보다도 그 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자, 영계로 떠나 보시오.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게 될 겁니다)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고무하기보다는 그 일에 홀딱 빠져 있는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의 선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여러 가지 요건을 가장 잘 갖춘 사람들은 뛰어난 운동 선수와 스턴트맨들이었다. 그 사나이들은 자기들의 몸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데다, 목숨을 건 아슬아슬한 모험을 감행하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다. 모험을 즐기되 결코 무모하게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의 공인 타나토노트로 우리는 장 브레송이라는 노련한 스턴트맨을 선발했다. 그는 우리의 예상대로 무난히 영계를 다녀왔다. 모흐 1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그 장벽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까지밖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의 보고를 들은 펠릭스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었다.

 브레송은 (코마 플러스 18분)에 도달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른 타나토노트 세 사람을 보냈는데, 그들은 (코마 플러스 17분)에서 멈추었다.

 우리는 테라 인코그니타의 경계선을 한 치도 뒤로 밀어내지 못했다. 경계선은 여전히 (코마 플러스 21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즉 가스 같은 것이 소용돌이치고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진 커다란 터널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것이 네 차례 있었음에 비해, 우리는 스물세 번이나 실패를 겪었다. 우리가 더욱 신중하게 작업을 했음에도, 젊고 너무 팔팔한 타나토노트들은 우리의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우리는 타나토노트를 선발하기 위한 일련의 테스트를 한층 더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사리를 잘 분별할 만큼 나이가 들고, 정신력이 강해서 빛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을 만한 사람들을 골라내는 일이 중요했다.

 허영주머니들, 즉 타나토노트가 되는 것을 무슨 고상한 조합에 가입하는 것쯤으로 여기고 친구들이나 애인에게 으스댈 생각이나 하는 사람들은 사절!

 너무 절망한 나머지 영계 탐사를 새로운 자살 방식으로 여기고 찾아온 자들도 제외!

 고통에 찬 육신이 싫어서 하늘 나라가 이승보다 더 좋은지 알아보려는 자들도 뒤로 돌아갓!

 훌륭한 타나토노트는 행복하고, 심신이 건전해야 하며, 죽어서는 안 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우리는 마침내 많은 식구를 거느린 가장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때까지의 실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은 분명히 확인되었다.

 1. 육신은 제자리에 남아 있고, 영혼만 빠져나간다.

 2. 육신을 빠져나간 영혼은 희끄무레한 심령체의 형태를 취하며, 모든 물질을 통과하고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

 3.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 심령체는 하늘로 올라가 파란 깔대기 모양의 거대한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 끝에는 빛이 있다.

 4. 심령체는 은빛 생명 줄로 지상에 남아 있는 육신과 연결되어 있다.

 5. 그 줄이 끊어지면 이승의 삶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6. (코마 플러스 21분)에 장벽이 하나 있다.

 과학부 기자들이 우리의 일과 관련된 몇 가지 정보들을 누설하는 바람에 우리를 흉내 내어 영계 탐사를 떠나는 아마추어 탐사자들이 수천을 헤아리게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대개 집에서 만든 어설픈 이륙 장치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티오펜탈을 써서 스스로의 영혼을 쏘아 보내는 축도 있었고, 염화물을 사용하는 축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확한 용량을 알 리가 없었다. 영계 탐사의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진정제나 수면제로 쓰이는 바르비투르산(酸)제를 사용하다가 황천객이 된 사람도 있었고, 제초제를 사용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색광들은 오르가슴을 이용하기도 했다.

 영혼을 영계로 발사하는 연료가 되겠다 싶으면 뭐든지 다 이용되었다. 적포도주,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독버섯, 보드카, 코카인, 고무 밧줄을 이용한 번지 점프, 불순물이 들어간 조개류, 전기 충격 등 인간을 현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마구 동원되었다. 망둥이가 뛰니까 빗자루도 덩달아 뛴다는 격으로 너도나도 영계를 가보겠다고 덤벼들었다. (육신을 벗어나지도 못할 놈!) 하면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욕이었다. 그 욕에는, 그 사람이 육체적인 몸뚱이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기의 몸이나 정신적 몸을 발현시킬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까닭이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잇따르는 희생을 막기 위하여, 파리 타나토드롬내의 공인된 장소를 제외한 곳에서 영계 탐사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무거운 징역형으로 다스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령을 공표하였다.

 한동안의 휴식 기간을 거치고 나서 펠릭스는 자기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몇 차례나 기자와 카메라맨들을 불러 모으고 새로이 시도를 했지만 모흐 1을 넘는 데 실패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언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펠릭스가 산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올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무리가 줄어들었다. 그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저어하여 아망딘과 라울과 나는 기자석을 채우기 위해 돈을 주고 들러리들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는 이미 기자들의 면면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펠릭스가 갈수록 의기소침해지고 침울해져서 우리는 그에게 은퇴를 하라고 충고했다. 영계 탐사의 발전을 위해 그가 할 만큼은 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충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모흐 1을 넘기 전에는 은퇴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는 자기가 세운 목표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101. 베다 신화

 그대의 선조들이 떠났던 옛날의 그 길로 나아가라! 요마와 바루나 두 왕이 그대의 죽음을 반기고, 그대는 그 두 신을 만나게 되리라.

 - "리그 베다", 본집 제10강 제14목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02. 그녀의 그늘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지만

 갑자기 모든 일이 틀어져 버렸다. 펠릭스는 점점 더 성마른 사람으로 변해 갔다. 그는 아망딘과의 결혼을 무기한 연기했다. 아망딘의 몸에 수상쩍은 피멍이 있음을 보고 우리는 그가 주먹다짐까지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저녁이면 둘이 싸우는 소리가 이웃한 아파트까지 들리곤 했다.

 돈벌이에 눈이 벌게져 있던 펠릭스는 아망딘이 자기 돈을 노린다고 생트집을 부렸다. 사실 그는 아주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뤼생데르 대통령이 죽음 연구 기금을 지급한 뒤로 그의 수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인터뷰에 응할 때마다 여전히 거금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저작권 대리인을 고용한 뒤 가장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출판사에 자기 회고록의 저작권을 팔았다. 나의 형은 펠릭스의 초상이 들어 있는 셔츠를 파는 대가로 판매 대금의 1%를 그에게 주기로 했다. 그러저러한 것을 합쳐 보면 그의 은행 구좌에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아망딘은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서도 이를 앙다물고 참았다. 타나토노트에 대한 경외심이 그녀의 인내를 도왔다. 그러나 펠릭스가 논다니들과 거리낌 없이 놀아나기 시작하자 참고 참았던 아망딘의 울분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랑베르 씨의 타이 식당에서 아망딘은 내 어깨에 기댄 채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그녀에게 반하고 미칠 듯한 연정을 품어 왔던 나였지만, 그녀의 약혼자에 대해서 이러구저러구 험담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아망딘이 펠릭스에 대해 험구덕을 늘어놓는다고 내가 거기에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내가 맞장구를 쳤더라면 아망딘은 도리어 나를 나무랐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쌀로 빚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연과도 같은 그녀의 짙푸른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진정해요."

 "그 사람 정말 너무해요. 자기가 첫 번째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게 다 나 때문이라고 떠들고 다니나 봐요. 난 정말 그 사람을 돕고 싶어요. 하지만 내 말을 그저 귓등으로만 듣고 있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친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망딘은 더 이상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가슴에 응어리진 것도 많고 감추어 놓은 것도 많아서, 그녀가 마음의 벽장을 열어 보인다면, 틀림없이 갖가지 감정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이제껏 아망딘은 모든 걸 털어놓기보다는 감추어 두기만 해왔다. 갑자기 터져 나온 그 눈물만이 잠시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기분을 바꿀 양으로 그녀에게 좀 걷자고 제의했다. 한 시간 지나서 우리가 다다른 곳은 페르 라셰즈 묘지였다.

 "내가 라울을 처음 만난 곳이 여깁니다."

 "두 사람은 정말 좋은 친구예요. 보기가 좋아요."

 아망딘이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어렸을 적에 우리 반에 주먹깨나 쓴다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한테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는 했지요."

 아망딘은 어느새 내 곁으로 바싹 다가와서 말했다.

 "이젠 펠릭스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무슨 소리요, 그 친구가 들으면 놀라서 까무라치겠어요."

 "걱정할 것 없어요. 그 사람 주변에 쌔고 쌘 게 여자들이라, 금방 새 여자를 찾을 거예요. 펠릭스는 숫총각이었어요. 내가 그 사람에게 여자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어요. 그 사람은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했어요. 이제 그는 자기의 날개로 날 수 있어요. 나는 날개 젓는 법을 가르쳐 줬을 뿐이에요."

 "그걸 후회해요?"

 "아니요.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 팔자는 아닌 것 같아요."

 "잘못 생각하는 거요. 펠릭스가 변덕이 심한 건 사실이지만, 그 친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이오. 누가 감히 당신을 따라갈 수 있겠소. 당신처럼 빼어난..."

 아망딘은 보일락 말락 하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봐요, 설마 미카엘 당신이 날 꼬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이번엔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마음 놓고 내게로 더 바싹 다가들었다. 썰렁한 묘지공원, 네르발45)의 무덤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별을 바라보며 그대로 있었다. 아담하고 따뜻한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으로 고동을 전해 왔다. 한 줄기 바람이 살살 불어와 내 귓전을 간질렀다. 그녀의 보드라운 금빛 머리채에 그렇게 얼굴을 묻고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지 훼손자들을 잡으러 돌아다니던 묘지기가 손전등 빛을 불쑥 비춰대는 바람에 나는 주술에 걸린 듯 빠져 있던 황홀경에서 깨어났다. 아망딘도 비로소 퍼뜩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타이르듯 말했다.

 "미카엘, 당신 말이 옳아요. 어쩌다가 말다툼 좀 했다고, 또는 일시적으로 바람을 피웠다고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돼요. 내가 펠릭스에게 잘못하고 있어요. 그 사람이 원할 때 그와 결혼할 거예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둘 다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103. 소동

 다음날, 뷔트 쇼몽 타나토드롬의 분위기는 곧 폭풍이 닥칠 것처럼 자못 험악했다. 간밤에 펠릭스는 여느 때처럼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돌아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논다니까지 하나 달고 왔다. 그러고는 영계 탐사를 떠날 때 앉는 이륙용 의자에 토악질을 해놓고 그 여자와 함께 융단 바닥에서 잠을 잤다.

 날이 밝자마자 라울은 아망딘이 눈치채기 전에 여자를 쫓아 버리고, 장 브레송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데까지 토사물을 닦아 냈다.

 뜨거운 커피 몇 잔을 거푸 마시고도 펠릭스는 여전히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나한테 훈계하지마! 난 세계 최초의 타나토노트다 이거야. 그걸 명심해 두라고. 당신들은 내 조수일 뿐이야. 별볼일 없는 부조종사들이라고."

 아망딘과 내가 동시에 나타난 게 바로 그때였다. 우리가 동시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펠릭스는 대뜸 우리에게 손가락을 하며 힐난을 퍼부었다.

 "우리의 원앙 같은 남녀 한 쌍이 저기들 오시는군. 내가 너희들 잔꾀 부리는 걸 모를 줄 아나 보지? 이거 왜 이래, 나를 바보 천치로 여기는 거야, 뭐야!"

 라울이 격분에 찬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펠릭스, 정신차려!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있네. 새벽에 팩스를 하나 받았는데, 영국 사람들이 모흐 1에 도달했다는 소식일세. 그들은 (코마 플러스 19분)까지 갔다 왔네. 그러니, 펠릭스, 객쩍은 소리 집어치우고 처음 하던 때처럼 엄격하게 다시 일을 시작하세. 기상은 일곱 시, 점심은 과일과 곡물, 이륙 전에는 언제나 완벽한 점검을 할 것. 규율을 한층 더 강화할 생각이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영국 친구들에게 추월당할지도 몰라."

 "영국 애들이 그랬다니, 그거 참 뜻밖이구먼. 내일 당장 (코마 플러스 23)을 멋지게 성공시켜 보이겠소."

 펠릭스가 빠르게 지껄였다.

 "좋아! 그러기 전에 먼저 자네 아파트로 돌아가서 술기운이나 다스리게."

 라울이 무뚝뚝하게 명령했다.

 라울이 우리 팀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가 그렇게 명령조로 나오면, 펠릭스도 스타 행세를 그만두고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펠릭스는 다시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술 냄새 풍기는 트림을 한 번 더 하고 자기 거처로 물러갔다.

 그날 밤 라울이 아망딘과 나를 펜트하우스로 불러냈다. 잎이 두툼한 열대 식물로 장식된 그곳에 들어서면 대개는 기분이 편해지면서 우리의 고민거리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곤 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라울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말문을 열었다.

 "펠릭스가 심상치 않네. 자네들 둘 다 조심하게.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잘 알지만 펠릭스 그 친구는 자기 멋대로 상상하면서 속을 끓이고 있는거야."

 나는 괜한 토론으로 아망딘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오늘 아침에 자네가 말한 게 사실인가? 영국 사람들이 정말 모흐 1에 도달했나?"

 "완전히 공인된 사실이야. 빌 그레이엄이라는 친구가 (코마 플러스 19분)에 도달함으로써 펠릭스를 바짝 뒤쫓고 있어. 결코 마음을 놓을 상황이 아닐세."

 라울은 늘 피우는 가느다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을 이었다.

 "여간 중요한 시합이 아닐세.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경주를 하고 있는 거야. 더 이상의 실패는 허용될 수가 없어. 그러니, 아망딘이 펠릭스에게 솔직한 해명을 해주는 게 좋겠소. 아망딘이 그 친구를 지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줘요. 그가 취해 있을 때조차도 아망딘이 싫증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줘요."

 아망딘은 자기의 입장을 옹호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하지만..."

 "열렬한 사랑으로 안 되면, 영계 탐사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돼요."

 젊은 간호사는 체념하며 라울의 얘기를 받아들였다. 다음날 새벽에 두 남녀는 서로 화해했다. 무엇보다도 펠릭스가 전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원만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결혼 약속을 지키기로 다짐했고, 우리는 새로운 비행을 준비했다.

 펠릭스가 이륙용 의자에 앉자, 라울은 그에게 신중함을 잃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걱정 마시오, 노형. 형씨 말마따나 (알려지지 않은 곳을 향해 곧장, 아주 곧장" 나아갈 거요.)

 펠릭스는 제 정맥에 부스터를 손수 장착한 다음,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발진!"

 눈을 감기 전에 그는 아망딘을 향해 짤막한 한마디 말을 던졌다.

 "날 용서해 줘."

 

 104. 도교 신화

 먼 곳의 고야산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다. 살갗은 얼음이나 눈과 같고 나긋나긋하기가 처녀와 같은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나는 용을 몰면서 이 세상 밖을 노닌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면 만물이 상하거나 병드는 일이 없고 곡식들도 잘 여문다. (중략) 어떤 것도 그 신인을 다치게 할 수 없다. 큰물이 하늘에 닿게 된다 해도 물에 빠지지 않으며, 큰 가뭄에 쇠와 돌이 녹아 흐르고 흙과 산이 탄다 해도 뜨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티끌이나 때, 쭉정이나 겨 같은 것으로도 요임금이나 순임금을 만들어 낼 만하다.

 - "장자(풀 성할 장, 아들 자)"46)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05. 마침표

 펠릭스는 아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모흐 1 너머에서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죽음의 여신은 그가 지옥의 괴물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새로운 무기들을 내주지 않았다.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가 그를 삼켜 버렸다. 바알 신이 그를 덥석 물어 버렸다. 죽음이... 그를 황천객으로 만들었다.

 그는 저승에서 고르고노스47)의 가면을 벗겼으리라. 어쩌면 하얀 사탱 옷을 입은 여인의 해골 가면 뒤에 감추어진 얼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보았으면서도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할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거나 돌아오기를 그다지 열망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우리의 우정보다 파란 터널 안쪽에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빛이 더 강했을 것이다. 그 빛이 명예보다, 아망딘의 사랑보다, 술과 논다니들과 영계 탐사라는 모험보다 더 강력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죽음은 여전히 그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다.

 몇몇 신문들은 터무니없게도 내가 거추장스러운 연적을 제거하기 위해 부스터를 조작했을 수도 있다는 투로 기사를 실었다. 내가 아망딘에게 아무리 홀딱 반해 있다 해도 그 때문에 사람을 죽일 위인은 아니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의 소중한 동료인 펠릭스를 어떻게 죽일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펠릭스는 내 잘못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떠나 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는 자기가 명성의 함정에 빠져 차츰차츰 자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망딘을 잃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이 여자 저 여자와 난잡한 관계를 맺기는 했어도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아망딘이었다. 그녀야말로 그의 첫 여자이자 하나뿐인 사랑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 과분한 여자임을 깨달았다. 차라리 몸을 파는 여자들하고 지내는 게 편했다.

 자기의 비천한 출신 환경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는 오히려 아늑함을 느꼈다. 그토록 아름답고 교양 있는 아망딘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펠릭스는 자신이 그렇게 우아하고 착한 아내를 맞아들일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날 용서해 줘)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아망딘에게 남기고 그는 떠나갔다.

 그해의 인물이자 그 십 년대의 인물이었던 펠릭스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 육신의 껍데기는 페르 라셰즈 묘지의 호사스런 대리석 무덤 속에 묻혔다. 묘비에는 (여기, 세계 최초의 타나토노트 잠들다)라는 말이 새겨졌다.

 

 106.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

 미국인들이 (트릭커 Tricker)라고 부르는 코요테 신(귀신 신)은 북미 인디언 신화에 나오는 가장 재미있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넉살좋은 익살꾼이자 음탕하고 흉악한 신이기도 한 그는 흔히 거대한 남근을 드러내고 몸에 창자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인디언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코요테 신은 대개 속기 잘하는 바보로 나온다. (위대한 정령)은 그가 원하는 모든 바보짓이나 나쁜 짓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다음 그가 벌여 놓은 일을 수습하러 나선다. 트릭커는 늘 자기가 남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의 행동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알고 보면 (위대한 정령)의 경쟁자인 작은 악마 트릭커는 그다지 사악한 신이 아닌 셈이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07. 빌 그레이엄

 장 브레송은 펠릭스 케르보스의 뒤를 잇는, 프랑스의 위대한 타나토노트였다. 펠릭스가 사라진 뒤, 그는 새로운 비행을 떠나기 앞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장치를 개발했다. 자기가 영화의 스턴트맨으로 일하면서 고안해 낸 안전 장치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자기가 원하는 때에 즉시 귀환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이륙용 의자에 전자 타임 스위치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타임 스위치가 안전띠와 같은 기능을 하는 셈이었다. 타나토노트는 발진하기 전에 (코마 플러스 20분) 하는 식으로 타임 스위치를 맞추어 놓고 떠난다. 그러면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영혼을 붙들어 매고 있는 생명 줄이 즉시 오므라들면서 타나토노트가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 그가 만든 장치의 원리는 그런 것이었다.

 장 브레송은 직업 의식이 투철한 진짜 프로였다. 그는 영계 지도에 자기가 목표로 삼고 있는 구역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시한 다음, 그곳을 다녀와서 자기가 관찰한 것을 낱낱이 보고했다.

 나는 그 믿음직한 탐사자의 도움을 얻어 코마 유도제의 사용 방법을 개선하기로 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험했다.

 우선 마취제를 한 번에 투여하지 않고 소량을 연속적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마취제로는 프로포폴(체중 1kg당 매분 100 마이크로그램)에 모르핀과 마취 가스(처음에는 5--10% 농도의 데스플루란을 사용했지만 5--15% 농도의 이소플루란을 사용했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다)를 배합해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기관의 작용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신경 안정제 발륨의 유도체인 히포노벨(체중 1kg당 0.01mg)을 사용했다. 그 새로운 방식은 영계 탐사 비행을 좀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누구라도 자기 몸에서 빠져나가 탈육을 감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단지 마취제의 용량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배합 방식을 여러 가지로 달리해 보았는데, 장 브레송은 어느 방식이든 아주 잘 견디어 냈다.

 브레송은 자기 나름의 리듬으로 일을 진척시켰다. 그는 (코마 플러스 18분 20초), (코마 플러스 18분 38초), (코마 플러스 19분 10초)를 차례로 탐사했다. 신체 단련과 영양 섭취에 정성을 기울였고 자기의 생체 리듬도 연구했다. 또한 탈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검토하였다(예컨대 기온이 높고 습도가 평균치보다 낮은 상태에서 가장 좋은 발진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장 브레송의 비행은 전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는 매번 코마 유도제를 꼼꼼하게 조사했고,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를 지도에서 확인하였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발진!"

 우리는 심전도와 뇌파도 모니터에 눈길을 붙박고 그의 귀환을 기다렸다. 이윽고 타임스위치가 작동했고, 통제 장치들이 그의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려 주었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착륙!"

 장 브레송은 매우 찬찬하고 빈틈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영계로 나아갔다. 신문이나 방송의 인터뷰 요청에는 일체 응하지 않았고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기 위하여 애정 생활도 포기했다. 일의 진전 상황을 매일 노트에 기록하고 계산기를 두드려 가면서 다음날을 위한 합리적인 목표를 결정하곤 했다.

 영불 해협 건너편의 빌 그레이엄도 그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인 듯했다. 그는 이미 (코마 플러스 19분 23 초)에 도달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야흐로 무시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경주에 돌입하고 있었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곧바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경주였다. 그들은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한 잡지에서는 그레이엄과 브레송을 악어의 이빨을 청소하고 있는 작은 새 두 마리로 표현했다. (이봐, 빌, 자넨 악어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입을 벌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하고 프랑스 사람이 묻자, 영국인이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내가 자네라면 당장 그만두겠네)라고 대답하는 만화였다.

 작은 새 두 마리는 나날이 무시무시한 파충류의 목구멍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레이엄이 (코마 플러스 19분 23초)에 이르자, 그에 질세라 브레송이 (코마 플러스 19분 35 초)에 다다르고, 다시 그레이엄이 (코마 플러스 20분 1초)에 도달했다.

 영국인 그레이엄이 펠릭스의 기록에 근접해 가고 있었다. 그는 곧 코마 제1 장벽, 즉 모흐 1에 맞닥뜨렸고, 악착스러운 근성으로 보아 다음번 비행에서는 틀림없이 그 첫 관문을 통과할 것으로 보였다.

 라울은 그 소식을 접하자 몹시 화를 냈다.

 "선구자인 우리가 결승점에서 영국인들한테 뒤지게 생겼네.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돼!"

 그가 영국인에게 뒤질 것을 우려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빌 그레이엄은 결코 얕잡아 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영계 탐사를 위한 기초 훈련을 단단히 쌓은 사람이었다. 그가 수업을 받은 학교는 바로 곡마단이었다. 전직이 공중그네 곡예사인 그는 그물도 받치지 않고 공중으로 나아가는 데는 미립이 난 사람이었다. "선"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자기의 재능은 마약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데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때 마약 중독자이기도 했던 그는 자기에게는 마약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으며 단지 통제를 잘하면 그것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레이엄은 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학의 교과 과정에서 왜 마리화나나, 하시시, 헤로인 따위의 올바른 사용법에 관한 강의를 끼워 넣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미개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구성원들이 저마다 식물을 통해 마약을 섭취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약 복용은 그 나름의 성스러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마약을 아무렇게나 사용해서 심신을 망치는 서양의 마약 중독자들과는 다르지요. 그들은 엄격한 규율을 지켜 가며 마약을 사용합니다. 예컨대,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또는 현실에서 도피할 목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의식 도중에만 사용하며, 각각의 식물이 자기 몸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여 필요한 만큼만 사용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궁극적으로는 마약 사용법에 정통한 사람들에 한해서 복용 허가를 내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그 영국인이 틀림없이 영계 탐사를 떠나기 전에 언제나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약물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추측을 듣고, 장 브레송은 영계 탐사가 올림픽 종목에 들어갔으면 그레이엄 같은 자는 약물 복용으로 실격을 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유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망딘이 장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말했다.

 "빌 그레이엄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면, 진짜 승자는 장이에요. 장은 금지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빌에게 겨우 26초 뒤졌을 뿐이에요."

 "겨우 26초라고요?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잘 알면서 그래요."

 장이 불만의 뜻을 담아 맞받았다.

 라울은 커다란 깔대기 옆에 (테라 인코그니타)의 경계선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하늘에서 26초 동안 날아갈 거리면, 프랑스만 한 영토를 지나는 것과 같을 거요. 영계에 관한 영국인들의 지리학이 틀림없이 우리보다 앞서 있을 거요."

 아망딘은 브레송에게 바싹 다가들었다. 새삼스런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아망딘은 타나토노트를 사랑하고 있었다. 타나토노트라면 누구나, 그리고 오로지 타나토노트만 사랑했다. 펠릭스 케르보스와 장 브레송이 어떤 사람이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사후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망딘은 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타나토노트가 되지 않은 한 나는 그녀의 눈길을 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죽음을 정복하는 일에 남다른 집착을 가지고 있는 그녀인지라 죽음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투사들에게만 자기의 사랑을 바치고 있었다.

 다정하게 다가드는 아망딘의 태도에 자극을 받은 스턴트맨이 자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내일, (코마 플러스 20분)까지 가겠습니다."

 "해낼 수 있다는 충분한 자신이 생기거든 하게."

 라울이 타이르듯 말했다.

 두 타나토노트를 풍자하는 만화를 실었던 영국의 그 잡지가 새로운 만화를 선보였다. 작은 새 두 마리는 여전히 악어의 이빨 사이에서 일에 몰두해 있었다. (내가 악어의 목구멍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하고 장이라는 새가 묻자, (그럼 자네는 환생하게 될 거야) 하고 빌이라는 새가 대답했다. (천만에, 악어가 날 삼켜버리면 나는 한 무더기 똥으로 변할 거야) 하고 장이 반박하자, (맞아. 그게 바로 환생이야!) 하고 빌이 맞받았다.

 그 그림을 보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두 사람의 대결이 반드시 파멸로 이어지리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기를 쓰고 살인적인 경쟁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그레이엄이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타나토드롬으로 초청하는 게 어떨까? 그러면 살인적인 경쟁을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뤼생데르 대통령도 우리가 외국의 타나토노트들을 맞아들여 함께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걸세."

 라울의 얼굴이 환해 졌다.

 "멋진 생각일세, 미카엘."

 그날 밤, 장은 나 대신에 아망딘을 바래다주러 갔다. 나는 내 아파트에 혼자 틀어박혀 컴퓨터로 코마 유도제의 새로운 화학식을 만들어 내는 일에 몰두했다.

 우리 모두는 영국인들이 결승점 직전에서 우리를 앞지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다음날 우리는 빌 그레이엄이 모흐 1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침 신문에 난 기사에 따르면, 그는 전날 밤 우리가 우리 타나토드롬에서 그를 초청할 궁리를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그 위업을 이루어냈다고 했다. 문제는 빌 그레이엄이 제때에 제동을 걸지 못 했다는 데에 있었다. 결국 모흐 1이 그를 삼켜 버렸다.

 

 108. 남아프리카 신화

 모든 동물들이 아직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던 시절에 어린 토끼가 하나 있었다. 그 토끼는 어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었다.

 달님이 내려와 토끼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어머니는 돌아오실거야. 날 보면 알거야. 나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늘 되풀이하잖니? 내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나타나곤 하지. 네 어머니도 나와 마찬가지야."

 어린 토끼는 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를 귀찮게 하지 말고 마음대로 울게 내버려 달라며 달과 싸우기까지 했다.

 그때 토끼가 달을 어찌나 세게 할퀴었던지 달에는 아직도 그 자국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러자 달은 화를 내며 토끼의 입술을 찢어 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오냐, 그래. 토끼란 자가 내 말을 믿지 않으니, 그들은 이제 나처럼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한 번 죽으면 영원히 죽게 되리라."

 그 후로 토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래가 사람의 하나였던 토끼는 겁 많은 짐승으로 변하였고, 사냥감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토끼를 잡아먹더라도 입술의 갈라진 부분은 먹지 않는다. 그 부위를 보노라면 그 토끼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09. 모흐 1

 빌 그레이엄이 사라짐으로써 우리는 세계 영계 탐사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하지만 뒤에는 우리를 따라잡고, 나아가 우리를 추월하려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장 브레송은 첫 번째 장벽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테라 인코그니타)의 경계선 너머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지만, 거대한 깔대기의 내벽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은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전세계 타나토노트들이 고무 막 안에 갇힌 정충들처럼 샅샅이 돌아다니며 내벽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 왔기 때문이었다.

 런던의 그 잡지는 영계의 개척자들을 여전히 악어의 이빨 사이에서 모이를 찾고 있는 작은 새로 그리고 있었다. 세 번째 만화에서는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악어가 (얘들아, 더 가까이 오너라, 난 아직 배가 고프단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비늘 몇 군데에는 가련한 빌 그레이엄의 죽음을 나타내려 한 듯 피와 깃털이 묻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 브레송은 의연했다. 라울이 그러하듯 그도 조금씩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코마 장벽을 넘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홍보 효과를 노리면서 과학 진흥의 기치 아래 트로피와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다. 첫 번째 코마 장벽을 가정 먼저 통과하고 무사히 돌아와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타나토노트 챔피언에게 모흐 1컵과 50만 프랑의 상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로써 영계 탐사는 하나의 스포츠 종목처럼 되고 운동가들이 발호하는 시기가 열렸다. 그렇잖아도 너무 소심한 사람들 때문에 공식적인 타나토드롬은 무능하고 무용하다고 믿고 있던 젊은이들이 제세상을 만난 듯 좋아라 했다. 그들은 자기들 멋대로 목표를 정하고 영계로 떠났다가 돌아오곤 했다. 우승컵이 걸린 시합이 되고 보니 영계 탐사는 영락없이 장대높이뛰기나 장애물 경주와 비슷해 졌고, 우리 일은 바야흐로 (스포츠적인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계 탐사 동호인 모임에서는 우리의 부스터를 모방해서 스스로 이륙 활주로를 고안했다. 어떤 약삭빠른 사람은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영계 탐사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영계의 최신 지도를 실었다. 동호인들끼리 짤막한 광고를 통해 코마에 진입하는 효과적인 처방들을 서로 주고받았고, 병원에서 훔쳐 낸 프로포폴이나 염화칼륨, 심지어 치과용 의자까지도 팔고 샀다. 가장 유명한 타나토노트들인 펠릭스 케르보스, 빌 그레이엄, 장 브레송의 사진이 들어 있는 포스터도 그들이 주고받는 품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저승의 괴물이 매일 자기 양껏 경솔한 (운동가들)을 물어 갔다.

 우리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영계 탐사는 스포츠일 수 없으며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엄청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바로 그 점이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영계 탐사는 전율의 극치였다. 그것은 일본 검술인 이아이(居合)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 검술은 두 무사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가 단숨에 칼을 뽑아 먼저 상대방을 베어 넘어뜨리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는 시합이었다.

 사고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풋내기 탐사자들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상금이 걸려 있으니 그것을 노리고 사기를 치는 자들도 속출했다. 모흐 1을 넘었다고 주장하는 전화가 우리에게 수없이 걸려 왔다.

 모흐 1을 지나 파란 터널이 하얀빛 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진위를 가리기 위해 그를 불러다가 질문을 했더니, 상금을 탈 욕심에 그 이야기를 지어냈노라고 실토했다. 그밖에도 허다한 사기꾼들이 성공을 위장하려고 잔꾀를 부렸다. 우리에게 가장 얼빠진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중에는 모흐 1 너머에서 자기 장모를 만났다는 자, 수염 없는 예수를 만났다는 자, 지구를 무사히 귀환한 바 있는 아폴로 13호를 발견했노라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자, 버뮤다 삼각 지대와 만나는 지점을 발견했다는 자, 외계인을 보았다는 자, 심지어는 무(無)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우리는 그 마지막 사람 때문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죽음 너머에는 무가 있다)고 그는 당당히 말했다. 무가 뭐냐고 했더니, 그는 (무는 그냥 무)라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런 싱거운 자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이륙을 감행한 정직한 사람들 중에는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

 한편 장 브레송은 왁자지껄하게 떠벌리지 않고 일 초씩 일 초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막 (코마 플러스 20분 1초)에 도달한 참이었다.

 그가 코마에 진입하는 방식은 갈수록 훌륭해 졌다. 코마에 진입하면서 그의 심장 고동은 서서히 느려졌다. 나는 그가 자기 의지대로 진입 속도를 더 잘 조절할 수 있는 한층 더 순한 코마 유도제의 화학식을 찾아냈다(그것은 베쿠로니움이라는 새로운 약품 덕분에 가능했다. 그 약품의 화학식을 들먹여 독자들을 따분하게 만들 생각은 없지만, 베쿠로니움을 체중 1kg당 0.01mg씩 사용했다는 점은 밝혀도 괜찮을 듯하다).

 "오늘 모흐 1을 넘어 보겠습니다."

 장 브레송은 그때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앉아 왔던 이륙용 의자에 자리를 잡으면서 심각하게 말했다.

 "안 돼요. 그러지 말아요."

 아망딘은 젊은 스턴트 맨에게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렇게 대답하고, 장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껴안고 오랫동안 입을 맞추었다. 장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준비도 할 만큼 했고, 내 일에 대해 알만큼은 알아요. 이젠 해낼 수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단호했다. 그의 몸가짐에는 조금도 머뭇거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장은 아망딘과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밤을 보내고도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원기 왕성해 보였다.

 그는 주사기 바늘을 직접 자기 정맥에 꽂고, 이륙하기 전에 조종실을 점검하기에 여념이 없는 조종사처럼 모니터 화면을 일일이 확인했다.

 "기다리게. 물론 자네가 성공하리라 믿고 하는 얘기지만, 자네가 성공할 자신이 있다면 기자들을 입회시키는 게 좋을 것 같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장 브레송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이름을 빛내는 것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영광이라는 환영을 쫓던 가련한 펠릭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이미 본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성과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으면 우리의 예산이 깎이리라는 것과 영계 탐사의 미래를 위해서는 싫든 좋든 증인들을 되도록 많이 확보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장 브레송은 주삿바늘을 빼고 기자들이 모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밤 여덟 시에 전 세계의 기자들이 타나토드롬 7층에 있는 이륙장에 모여들었다. 우리는 이륙용 의자와 참관인석 사이에 가로대를 설치했다. 참관인석에는 우리가 초청한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해서 극장용 의자를 마련해 두었다. 참관인들 중에는 오로지 한 타나토노트의 죽음을 지켜보리라는 심사로 참여한 축도 있었다.

 잠시 후면 한 사람이 육신을 벗어나 영계로 떠날 것이었다. 그는 영영 자기의 육신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장내에 흥분이 고조되고 있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죽음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오지 않았던가.

 참석자들 중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국회 의사당 행사 때 생중계를 맡았던 RTV 1 아나운서가 무척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에서 나온 빌랭이라는 기자의 비교적 차분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때가 때인지라 라울과 나는 턱시도를 차려 입었다. 그리고 방치된 창고 같은 모습을 띄어 가던 우리 타나토드롬을 아망딘과 함께 미리 구석구석 쓸고 닦아 놓았다.

 의자에 앉은 장 브레송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모든 몸짓과 표정에 힘과 자신감과 결의가 배어 있었다. 그는 자기의 목표인 모흐 1을 기억 속에 확실히 심으려는 듯, 위쪽에 걸린 영계 지도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모흐 1을 넘자고 다짐하며 그는 이를 앙물었다. (모흐 1, 나는 너를 뚫고 말리라)라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듯했다.

 그는 몇 차례 더 심호흡을 하고 타임 스위치를 (코마 플러스 25분)에 맞추었다. 그런 다음 여전히 침착한 태도로 팔오금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카메라들이 일제히 작동하고 기자들은 장 브레송의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속삭이는 듯한 작은 소리로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장 브레송은 불가능에 도정해서 첫 번째 코마 장벽을 넘으러 갈 것입니다. 그것에 성공한다면 그는 트로피와 함께 50 만 프랑의 상금을 받게 됩니다. 장 브레송은 며칠 전에 마음을 굳히고 이 순간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는 지금 정신을 한데 모으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준비됐습니다."

 장이 담담하게 알려 왔다.

 "나도 준비됐습니다."

 "준비 완료."

 아망딘과 라울도 뒤를 이었다.

 라울은 이륙 준비를 마친 조종사처럼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지의 곳이 남아 있는 한, 우린 계속 나아가야 해."

 장 브레송이 천천히 수를 세었다.

 "여섯... 다섯(눈을 감음)... 넷... 셋(머리를 뒤로 젖힘)... 둘(주먹을 쥠)... 하나... 발진!"

 우리는 두손을 모아 장의 행운을 빌었다. 카메라들이 그 장면의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주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 동안, 나는 장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친군 행운아야! 마침내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비밀 중의 가장 위대한 비밀을 밝혀 낼거야. 우리 모두가 마주치게 될 그 위대한 신비를 벗기고 우리에게 돌아와, "죽음이란 그런 거야" 또는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 줄 거야. 아망딘의 저 눈빛 좀 봐. 저 운 좋은 친구를 눈으로 핥듯이 바라보는군. 내가 저 친구 대신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 그랬어야 했어.)

 

 110.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성명: 장 브레송

 안구: 갈색

 신장: 1m 78cm

 외모의 특징: 없음

 특기 사항: 영계 탐사 운동의 개척자

 약점: 없음

 

 111. 역사 교과서

 펠릭스 케르보스가 일단 길을 열고 나자, 영계 탐사 비행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저승길이 곧고 안전해 진 덕분에, 비행의 실패율은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112. 모흐 1 저쪽

 기다림.

 나는 시계를 보았다. 장이 이륙한 지 20분 45 초가 지나 있었다. 그 시간이면 장은 (모흐 1)를 넘어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았을 게 틀림없었다. 그는 장애물을 넘는 데 성공해서 완전히 새로운 정보를 모으고 있을 터였다. 그는 한창 보고, 깨닫고, 발견하고 있을 것이고 곧 우리에게 돌아와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것이었다. 코마 장벽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죽음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코마 플러스 21분. 그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고, 그를 이곳에 붙들어 두고 있는 은빛 줄이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코마 플러스 21분 15초. 그는 틀림없이 어마어마한 정보들을 모으고 있을 터였다. 그는 역시 행복한 사내였다.

 코마 플러스 21분 16초. 지상에 남아 있는 그의 몸에 경련이 일었다. 아마도 신경의 반사 작용이었으리라.

 코마 플러스 24분 36초. 경련이 심해졌다. 마치 그의 온몸이 전기 충격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가 깨어날까요?" 하고 어떤 기자가 물었다.

 심전도는 그가 여전히 첫 번째 죽음의 장벽 너머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심장 고동이 거의 최소치로 내려가 있는 데 반해서, 뇌의 활동은 더 활발해 졌다.

 죽음의 신비가 드러나자, 그 앞에서 경악을 느끼고 있었을까? 틀림없이 그럴 것 같았다. 그는 분명히 비밀의 문을 열고 모든 것을 알아냈을 거였다. 어쩌면 죽음의 참모습을 알고 그 기쁨 때문에 죽어 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코마 플러스 24분 42 초. 그는 한창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몸을 비틀고 얼굴을 찡그렸다. 의자의 팔걸이에 놓인 손이 잔뜩 오그라들었다. 턱시도를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살갗에 돋은 소름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가 잽싼 몸짓으로 싸우는 시늉을 했다. 마치 사나운 괴물과 싸우는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입에선 게거품이 흘러내렸다. 주먹을 내지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안전띠로 이륙용 의자에 붙들어 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 버둥거림 때문에 벌써 의자에서 떨어져 그를 이승에 묶어 두고 있는 대롱이며 전선들이 다 벗겨졌을 것이다.

 기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계의 신비를 벗기는 일이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 타나토노트는 너무나 무시무시한 현상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표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공포의 기색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코마 플러스 24분 52 초. 그의 버둥거림이 잦아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주먹을 피해서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장이 보여 준 격렬한 흥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라울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아망딘의 입가와 눈가도 일그러졌다.

 나는 급히 모니터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코마 플러스 24분 56초. 심전계는 화산이 한창 분출하고 있을 때의 지진계처럼 격렬한 진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장 브레송이 죽으리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경고등들이 깜박거리고, 기계들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장의 타임 스위치가 작동했고, 강력한 전기 충격이 순식간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가 다시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러고 나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심전도는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경고등은 꺼졌으며, 기계들도 잠잠해졌다.

 브레송은 구조를 받고 산 사람들 속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사람을 단단한 절벽 위로 끌어올리듯 그를 구해 냈다. 다행히도 그를 끌어당긴 밧줄, 즉 생명 줄이 잘 버텨 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장 브레송은 운명의 장벽을 넘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에게로 가만히 다가갔다. 우리 뒤에서는 장의 귀환을 기다리는 동안 방송 원고를 작성하던 RTV 1의 아나운서가 흥분한 어조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가 해냈습니다. 모흐 1을 넘은 최초의 타나토노트가 되었습니다. 항상 더 많은 것을 보여 드리려고 애쓰는 저희 방송을 통해서 여러분께서는 그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장면을 보셨습니다. 저희의 생중계 방송을 통해 여러분께서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신 것입니다. 장 브레송이 깨어나는 대로 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맥박 정상. 신경 작용 거의 정상. 체온 정상. 전기적 작용 정상.

 장 브레송은 한쪽 눈만 뜬 채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른 쪽 눈도 마저 떴다.

 모니터 화면들은 그가 정상임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 어디에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전직 스턴트맨 장 브레송의 신화적인 침착성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이마가 흥건하도록 땀을 흘리면서, 오로지 두려움에 질린 기색만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안전띠를 풀어 버리고 마치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우리를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라울이 가장 먼저 냉정을 되찾고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브레송은 사시나무 떨 듯 사지를 떨고 있었다. 괜찮기는커녕 그는 전혀 정상이 아니었다.

 "난 (모흐 1)을 넘었어요..."

 장내에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박수를 받은 그 사람이 미친 듯이 제자리에서 맴을 도는 바람에 그 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난... (모흐 1)을 넘었어요... 하지만 그 너머에서 내가 본 건... 너무 무시무시했어요."

 더 이상 갈채가 일지 않았다. 오로지 침묵만이 장내를 뒤덮고 있었다. 장은 우리를 떠밀고 마이크로 달려들었다. 그가 마이크를 움켜쥐고, 신음을 토하듯 말했다.

 "주... 주... 죽으면 안 돼요. 저 위, 첫 번째 장벽 너머는 끔찍해요. 그게 어느 정도인지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앞으로는 제발 죽지 마십시오!"

 

 113. 이탈리아의 시

 흉악하고 기괴한 짐승 케르베로스48)가 있어,

 지옥에 빠진 가련한 사람들을 보고

 세 주둥이로 소리를 내며 짖어댄다.

 

 눈은 불꽃처럼 번득번득 더러운 갈기에 피칠갑,

 헐떡거리는 가슴 힘겹게 가누며

 발톱 달린 앞다리로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는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사람들은 울부짖고,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 보려는 듯

 몸을 이쪽저쪽 돌려 가며 시련을 받아 낸다.

 가련한 죄인들이 자꾸자꾸 나뒹군다.

 

 우리가 어두운 통로에 들어서는 걸 보더니

 괴물 케르베로스, 살기 등등하게 엄니를 드러내고

 격렬한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사지를 떨어냈다.

 - 단테, "신곡", 지옥: 여섯 번째 노래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14.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다

 성공은 성공이로되 참으로 기이한 성공이었다. 그 일은 우리의 영계 탐사 활동 전반에 냉기류를 몰고 왔다.

 장은 여전히 공포의 환각에 사로잡힌 채 기자들에게 첫 번째 장벽 너머에는 순전한 공포의 나라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곳이 지옥인가요?"

 어떤 기자가 물었다.

 "아닙니다. 지옥도 거기보단 나을 겁니다."

 그의 대답엔 절망에 찬 냉소가 배어 있었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약속한 대로 장에게 트로피와 상금 50만 프랑을 전달하기 위해 간소한 연회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장은 그것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장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는 우리를 (불행을 불러오는 새들)이라고 부르면서 영계 탐사를 당장 중단해야 하며 우리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다시는 죽지 말자는 도움말도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다시는 죽지 말자고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언젠가는 저 높은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실토했다.

 "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압니다.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아,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작은 집 하나를 벙커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틀어박혔다. 그는 더 이상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방탄조끼를 입고 다녔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을 찾아갔다. 성적인 접촉 때문에 병이 옮을 것을 염려하여 여자들을 멀리하였고, 인명을 앗아가는 교통 사고가 빈발하는 것을 보고는 자동차를 공터에 버렸다. 또 항공 사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외국에서 열리는 회의에 일체 참석하지 않았다.

 쇠를 둘러씌운 그의 집 현관문을 아망딘이 두드려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라울이 전화를 걸어 영계 지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약간의 정보라도 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그는 (그곳은 캄캄해요. 아주 캄캄해요. 거기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해요)라는 말만 전해 주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브레송의 증언으로 상황이 돌변하고 난처한 결과가 빚어졌다. 그제껏 사람들은 우리가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발견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우리의 영계 탐사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왔었다. 우리의 일을 시작하면서 뤼생데르 대통령과 라조르박이 (천국)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도 그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환희에 찬 파란 터널을 지나 우리가 지혜의 빛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경이로운 터널이 고작 고통의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니...

 브레송의 절망에 찬 말들이 금세 효과를 나타냈다. 죽음에 대한 고뇌가 널리 퍼졌고, 의사들은 예방 접종을 하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었으며, 세계의 타나토드롬들이 문을 닫았다.

 전에는, 죽음을 삶의 단순한 종말, 즉 불꽃의 소진쯤으로 여기는 축도 있었고, 희망에 찬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축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죽음이 최후의 형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삶이란, 언젠가는 행복의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덧없는 천국이 되는 셈이었다.

 삶은 축제였고 피안은 암흑일 뿐이었다. 브레송의 비행은 실로 대성공이었다. 우리의 실험은 선친께서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신 두 가지 위대한 진리, 즉 (죽음은 가장 무서운 것이다)와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해 준 셈이었다.

 

 115. 메소포타미아 신화

 나는 온갖 나라를 다 돌아다녔고

 가파른 산들을 넘었으며

 이 바다 저 바다를 모두 건넜네.

 그러나 행복하다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내 육신을 고통으로 가득 채웠을 뿐이네.

 - "길가메슈 서사시"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16. 죽음 공포증

 브레송 사건 이후에 우리는 긴 침체 국면을 맞이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였고 장이 말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장벽을 넘은 다른 타나토노트들이 있었다. 그들의 증언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타나토노트들은 커다란 낫을 든 저승사자를 만났다고 했다. 해골 형상을 한 저승사자가 바람소리가 나도록 날렵하게 낫을 휘두르면서 경솔하게 너무 멀리 나아간 사람들의 은빛 생명 줄을 자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회교 도사이자 타나토노트인 어떤 아프리카 사람은 불을 뿜어대는 거대한 뱀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고 보고했다. 아이슬랜드의 어떤 무속인은 이빨에 피칠갑을 한 기이한 용과 맞닥뜨렸다고 주장했다.

 "참 이상해. 사후 세계에서 보았다는 것이 문화에 따라 다르거든."

 라울은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지도 위에서 컴퍼스를 들고 계산에 몰두하는 시늉을 했다. 태연한 척은 하고 있었지만 라울 역시, 타나토노트들의 증언이 그들이 속한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점만 가지고는 안심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새로운 타나토노트들의 증언은 점점 더 무시무시해져 갔다. 독을 뱉아 내며 썩은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거미 수백 마리가 우글거리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에,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박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흡사 러브크래프트49)의 소설 한 대목을 읽는 느낌이었다. 괴물들에 대한 묘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고, 그것들은 갈수록 황당무계함을 더해 갔다.

 포루투갈의 한 타나토노트는 역시 얼이 빠진 모습으로 돌아와서, 어떤 박쥐와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박쥐는 사람의 머리통을 꿰서 만든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다고 했다. 이야기가 나날이 더 으스스해져 가고 있었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죽음 공포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풍미하면서 나도 그 분위기에 감염된 모양이었다.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는 사진을 찍어 놓은 듯한 극사실주의적 그림을 곁들여 가며, 사후 세계를 유혈이 낭자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세계로 과장해서 표현하였다.

 (죽음은, 당신이 이승을 떠나자마자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말 그대로 당신을 또 한 번 죽일 것이다. 저승의 문턱을 넘자마자 모흐 1 뒤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들과 마주쳐야 한다면, 힘겨운 삶 끝에 찾아올 영원한 안식이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세계 여러 나라 타나토노트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괴물들이 모흐 1 뒤에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갈퀴진 발을 가진 악마,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크툴루, 끈적거리는 비늘을 가진 용, 불타는 듯한 그리피스50), 비웃음을 빼물고 있는 키마이라51), 잠자는 여자를 범하는 음몽마(淫夢魔), 잠자는 남자와 정을 통하는 음몽 마녀, 게걸스러운 미노타우로스52), 영혼을 삼켜 버리는 악귀 따위가 거기에 다 모여 있다.

 결국 죽음은 하나의 함정이다. 빛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문득 어둠의 장막이 내리고 악마들이 튀어나온다.)

 자살자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스포츠, 예를 들어 자동차 경주, 권투, 스카이다이빙, 오토바이 경주, 승마 점프, 스키 점프, 번지 점프 따위의 인기가 점점 시들해졌다. 마약 밀매자들은 더 이상 물건을 팔 수가 없게 되었고, 담배 가게가 문을 닫았으며, 약국이 번창하였다.

 사람들은 안전을 더욱 도모하기 위해서 전기 접속 장치의 전압을 낮추었다. 집집마다 발코니에 철망이 달리는가 하면, 지붕에는 피뢰침이 이중, 삼중으로 솟아올랐다. 의류업자들은 속을 많이 넣어서 불룩하게 만든 옷들을 유행시켰다. 그 옷을 입으면 몸이 비둔해 보이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 몸을 보호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또 브르타뉴 해변의 절벽에 난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런 폭풍 속에서 라울은 차분함을 견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리가 실험실에 모여 있을 때, 라울은 영계 지도의 첫 번째 장벽 뒤에 검은 터널을 그리고 거기에 물음표를 찍은 다음 말문을 열었다.

 "이 뒤에 뭐가 있길래 브레송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겁을 먹었지?"

 더 이상 타나토노트가 되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없는 탓에, 우리의 실험은 당분간 중단 상태에 있었다. 우리는 바람도 쐴 겸 서로의 생각을 나눌 겸해서 정기적으로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모임을 가졌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망딘의 물음에 라울이 대답했다.

 "그 양반 (브레송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네)라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더구먼. 브레송만큼 저승 안쪽에 가까이 가본 건 아니지만, 대통령은 멀리서 저승에 매력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이오. 그런데 이제 가까이 가본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가 시들해 진 모양이오."

 "하지만 대통령 주위에서 함께 날고 있던 사람들은 그곳으로 빨리 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대통령이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언젠가 대통령에게 들은 얘기에 미련을 느끼며 말했다.

 "대통령은 새를 유인해서 잡는 거울 함정 같은 것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걸세.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는, 와서는 안 될 곳을 왔다고 후회하는 격이지. 뤼생데르 대통령은 이제 죽음이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결코 안 할 걸세."

 우리는 심한 낭패감에 젖어 있었다. 죽음의 신비를 벗겨 보겠다고 그토록 고생을 해왔는데, 막상 너울을 벗기고 보니 공포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그것을 영원한 신비로 남겨 두었어야 했다.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우리의 모든 행위가 그런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될 뿐이란 말인가? 세계의 그 많은 종교들이 신비의 너울에 감추어 두었던 것이 바로 그 피할 수 없는 지옥, 사악한 뱀과 음흉한 흡혈귀들이 우글거리는 동물원이었더란 말인가?

 판도라가 호기심 때문에 죄악과 재앙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었듯이, 우리도 건전치 못한 호기심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을 열어 버린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 상자에서 어떤 재앙이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우리는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고... 죽음은 우리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주었다.

 "뤼생데르 대통령은 우리 일을 다 그만두고 싶어 하네. 책임을 회피할 생각까지 하고 있어. 그 음산한 영계 탐사에 대해서는 역사책에서 아예 언급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걸세."

 라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생각이 자못 궁금해졌다.

 "자넨 어때?"

 라울은 의자에 앉듯 편안한 자세로 묘석에 자리를 잡으면서 대답했다.

 "장애가 나타났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태도일세. 초기의 탐험가들이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네시아에 상륙했을 때, 그들은 식인 부족과 맞서 싸워야 했고, 사람을 물어 죽이는 전갈과 맹수와 이름 모를 짐승들이 우글대는 살벌한 정글을 통과해야 했네. 탐험에는 으레 그 나름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지. 장미꽃 만발한 어린이 놀이터로 산보하러 나가는 것쯤으로 여기면 안 되지. 탐험은 곧 위험을 의미하는 걸세!"

 깊은 샘처럼 마르지 않는 라울의 정신이 우리 일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할 근거들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는 영계 탐사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수족처럼 자기를 도와주고 있는 두 마리 새를 부추겼다.

 "모흐 1 너머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어긋나고 있네. 그리고 모든 증언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네. 장 브레송의 이야기는 너무 막연해. 그 친구, 전에는 그렇게 침착하고 꼼꼼한 모습을 보여 주더니, 지금은 그저 무시무시하다, 지독하다, 끔찍하다 따위의 형용사만 들먹이고 있네. 그가 우리에게 해준 설명은 그곳이 온통 컴컴하다는 것뿐일세."

 "그래서 결론이 뭔가?"

 라울은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긴 다리를 곧게 세우며 우뚝 서서 그는 유칼리 향이 나는 연기를 뱉어냈다.

 "결국은 몇몇 겁쟁이들 때문에 우리 일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걸세."

 "장은 겁쟁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는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여전히 장에 충실한 아망딘이 토를 달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감각에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소. 또 매혹적인 단계에 이어 혐오스러운 단계가 나오고, 또 그다음에 또 다른 단계가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오. 나 역시 그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하지만 타나토노트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첫 번째 장벽을 넘으면 저승의 모습이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모양이오. 미카엘, 자네 기억나나? 이집트의 "사자의 서" 말일세. 그 책에 보면 사자가 괴물들에게 맞닥뜨린다는 얘기가 나오지. 그 괴물들을 물리치면 순탄하게 자기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되어 있지. 결국 장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초기의 시련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지. 그래서 모흐 1 너머에는 오로지 공포밖에 없다고 간단히 결론을 내린 것일 테고 말이야."

 나는 아망딘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나에겐 천국이었고 그녀의 짙푸른 눈이 나에겐 대모험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가까운 곳에 천국을 놔두고 왜 먼 곳에서 천국을 찾으려 하는 걸까? 내 마음을 송두리째 휘어잡고 있던 그녀의 눈길이 라울의 두꺼운 안경 밑으로 옮겨갔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되죠?"

 "당분간은 우리 일을 방치하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지요. 세상일이라는 게 돌고 도는 거니까, 사람들이 죽음 공포증을 잊게 될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요."

 그 사이에, 뤼생데르 대통령은 무리한 소생술을 금지하는 법률을 폐지하였다. 기계 덕분에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 환자일지라도, 누구도 감히 그에게서 기계를 떼어 내어 그를 어딘가로 보내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는 환자들은, 설사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자기의 목숨을 가능한 한 오래 붙들어 두게 하려고 거액의 수표를 맡기곤 했다.

 아망딘은 다시는 브레송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 중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그는 뤼생데르가 내놓은 상금을 결국 받기는 했는데, 그 돈을 핵 전쟁에 대비한 대피소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그는 대피소의 선반에 통조림과 생수를 잔뜩 비축해 놓았다. 그 뒤로 그의 소식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17. 요가의 가르침

 인간의 무지와 고통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심리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개별성을 의식하는 태도: 일이 잘 될 때는 (나는 똑똑하다)하고, 일이 안 될 때는 (난 도저히 안 돼)고 말하는 태도.

 쾌락에 집착하는 태도: 끊임없는 만족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추구하는 것.

 불평과 불만: 좋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을 떨쳐 내지 못한 채 앙갚음을 하려 하고 주위 사람들과 충돌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존재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승의 삶을 활용하면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의 삶에 집착하는 병적인 욕구. 자기 개별성에 대한 집착의 증거이기도 함.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18. 스테파니아

 죽음 공포증은 6개월 가까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에서 손을 뗀 채, 랑베르 씨의 타이 식당에서 토론을 벌이고 페르 라셰즈를 거닐었다. 우리 타나토드롬에는 먼지만 쌓여 갔다. 펜트하우스의 열대 식물은 무성하게 자라 피아노를 덮고 있었다. 뤼생데르 대통령을 만나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그의 애완견인 베르생제토릭스조차도 침울해 보였다. 아망딘은 손수 맛깔진 음식을 장만하여 우리에게 위안을 주려고 했다. 우리는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리지 게임은 하지 않았다. 낼 카드가 없으면 (죽어야) 되는데, (죽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울이 애타게 기다리던 희망의 빛은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항공 우주국(NASA)이 극비리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던 미국도 아니었고, 빌 그레이엄이 자기 뒤를 이으려는 경쟁자들을 남겨 놓고 떠난 영국도 아니었다. 우리를 구원한 빛은 이탈리아에서 왔다.

 이탈리아의 파도바에 경쟁력이 아주 강한 타나토드롬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곳 역시 우리처럼 사실상 활동을 중단하고 있으려니 하고 우리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사업의 규모를 줄이기는 했을 망정, 이륙을 완전히 단념하지는 않았던가 보다. 4월 27일, 그들은 자기들 역시 코마 제 1장벽 너머로 누군가를 보내는 데 성공했으며, 그 타나토노트는 무사히 돌아와 장 브레송의 증언보다 한결 더 희망적인 보고를 했다고 발표했다.

 장 브레송의 무섭고 끔찍한 보고는 대뜸 믿어 주었던 기자들이, 이탈리아 사람들의 밝고 희망찬 보고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말 앞뒤가 안 맞는 태도였다.

 이탈리아의 타나토노트는 여자였다. 스테파니아 키켈리라는 여성 타나토노트였다.

 라울은 이탈리아의 "코리에레 델라 세라"53) 지 1면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 아가씨는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모흐 1 너머에서 어둡고 거무스름한 대륙을 발견했는데, 거기에서 비눗방울 같은 형태로 몰려드는 옛일에 대한 기억과 싸움을 벌였다고 했다. 유독 나쁜 기억들만이 자기를 괴롭히더라는 것이다. 그녀의 동료들마저 처음엔 그 보고의 진실성을 의심하면서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그 바람에 스테파니아는 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했다.

 "이 여자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 말문을 열자, 라울은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있나!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브레송은 단지 자기 과거와 맞닥뜨렸던 것이고, 과거가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에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게로군."

 아망딘은 우리의 스턴트 맨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했다.

 "그 사람, 자기 과거에 대해서 한사코 입을 다물었어요. 그래서 이따금 그가 정신 분석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느껴지곤 했어요. 하지만 그는 정신 분석을 받은 적이 없어요."

 우리는 장 브레송의 생애를 조사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우리는 그가 어린 시절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음을 알아냈다. 그는 그것을 침묵의 보자기에 꼭꼭 싸서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지만, 모흐 1을 건너면서 그 보자기 속에 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리라.

 아망딘은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위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을 등지기로 굳게 마음먹은 뒤였다. 요새처럼 개조한 그의 집 현관문을 수없이 두드렸지만, 그는 끝내 대답이 없었고 마침내 전화마저 끊어 버렸다.

 이탈리아의 타나토노트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우리는, 뤼생데르가 제정한 레지옹 도뇌르 타나토노트 장을 받으러 오라고 그녀를 파리로 초청했다. 훈장 수여식은 아주 간소하게 치러졌다. 우리는 당분간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스테파니아 키켈리는 인형 같은 얼굴에 작고 포동포동한 여자였다. 물결처럼 구불거리는 기다란 검은머리를 등판 아래까지 치렁하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청바지와 블라우스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통통했지만, 뺨에 생기가 넘치고 미소가 천진하여 매력이 없지는 않았다.

 공항에서 처음 대면하자마자, 스테파니는 한 식구를 만난 것처럼 우리를 껴안았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나토노트들)로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껴안고 나서, 스테파니아는 느닷없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듣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요란한 웃음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타이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뤼생데르는 신중히 생각하다가 동석하기를 사절했다.

 스텔파니아는 남프랑스 몽펠리에에서 몇 년을 살았던 적이 있어, 알프스산맥 저쪽의 감미로운 억양이 살짝 배인 완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검은 버섯을 넣은 베르미첼레54)가 나오자 스테파니아는 몇 접시를 게걸들린 듯 먹어 치웠다. 요란한 웃음소리를 간간이 섞어가면서 그녀는 연신 지껄여댔다. 라울은 그녀의 이야기에 전에 없이 열띤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음식 먹는 것도 잊은 채, 눈으로 그녀를 삼키기라도 할 기세였다.

 스테파니아는 자기 경험을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첫 번째 장벽 너머에는 어두컴컴하고 혐오스러운 구역이 있어요.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곳이에요. 기억의 방울들이 마귀처럼 덤벼들어서 아름다운 빛을 따라가지 못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나는 다시 내려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올라갔기 때문에, 경이로운 빛에도 과거의 악마에도 붙잡히지 않았어요."

 나는 자나 새나 이륙 방법의 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자기 전문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 그녀가 이륙을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물어보았다.

 "티벳의 명상법을 이용하면서 부스터로는 염화칼륨을 진하지 않게 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간을 상하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요."

 "티벳의 명상법이라고요!"

 라울은 그렇게 소리치다가 하마터면 숨이 막힐 뻔했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목구멍으로 넘기려던 콩나물 세 가닥을 살며시 뱉어내고 물었다.

 "아가씬 신비주의자인가 보죠?"

 그 물음에 여류 타나토노트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따지고 보면, 영계를 향해 떠나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예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적인 행위인 것은 분명하죠. 독성 물질이 영계로 떠나는 것을 도와 주는 건 사실이지만, 영혼을 단련하지 않고는 멀리 나아갈 수 없어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영계 탐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껏 우리는 과학적인 실험에 종교를 끌어들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라울과 나는 고대의 모든 신화와 세계의 다양한 신앙 형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이든 간에 미신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우리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라울은 근본적으로 무신론자였다. 그는 모든 일에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를 바라는 현대인이라면, 무신론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내세웠다. 그가 보기에, 회의주의는 유신론보다 한발 더 나아간 태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존재가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가 보기에는 무신론조차도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그 문제에 관한 하나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오만한 태도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어떤 신이 가엾은 피조물인 우리 지구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면, 나는 아마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신중한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내 생각은 그런 것이다.

 나의 불가지론은 세계를 보는 나의 관점과도 일치했다. 내가 보기에 세계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일 뿐이었다. 신에 대한 견해가 전혀 없었으므로 나는 세계나 인간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었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우연히 생긴 것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내 인식을 초월하는 본래적인 섭리 같은 것이 자연에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이따금 들기는 했다.

 라울은 스테파니아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아가씨가 믿는 종교는 뭐지요?"

 "저는 티벳 불교 신자예요."

 "불교 신자라고요?"

 "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무슨 말씀을. 그럴 리가 있나요. 오히려 나는 티벳 신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아가씨 같은 분이 라마교 신자라니까 좀 놀랐던 것뿐이지요."

 라울은 풍만한 우리 자매가 화를 내지나 않을까 저어하며 변명했다.

 아망딘이 조용히 끼여들었다.

 "난 라마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라마교 신자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스테파니아는 코코넛 밀크와 고수풀 향을 넣어 구운 닭고기를 포크가 휘어지도록 세 자밤을 잇달아 우겨 넣었다.

 "당신들이 영계 탐사를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우리 라마교 신자들은 죽음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사실 인간이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한 지는 오천 연도 더 지났어요. 우리 라마교에도 이집트의 "사자의 서"와 같은 책이 있어요. "바르도 토돌"이 그거예요. 그 책은 임사 체험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훌륭한 교본이에요. 여러분의 타나토노트 펠릭스 케르보스가 영계 탐사를 떠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육체를 벗어나곤 했어요."

 아망딘의 고운 얼굴에 문득 성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작은 동아리에서 모두의 관심을 언제나 한몸에 받고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망딘은 더 이상 우리의 홍일점이 아니었다. 라울은 주술에 걸린 듯, 이탈리아에서 온 그 라마교 신자의 신기로운 이야기에 홀딱 빠져 있었고, 아망딘은 샐쭉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계속했다. 라울 라조르박은 아주 쾌활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드디어 자기처럼 오로지 죽음에만 관심을 가진 여자를 만난 것 같았다.

 

 119.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성명: 스테파니아 키켈리

 모발: 검은색

 안구: 검은색

 신장: 1m 63cm

 신체적인 특징: 없음

 특기 사항: 최초의 여성 타나토노트

 약점: 과도한 체중

 

 120. 일본 철학

 나오시게가 말했다.

 "무사도는 죽음을 향한 열정으로 이루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의 마음에 그런 열정이 자리 잡는다면 열 사람이 달려들어도 그를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무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죽음을 향한 열광과 정열에 사로잡혀야 한다. 자기 마음에 분별심이 생기도록 내버려 두었다간 그런 힘을 사용하기에 너무 늦어 버린다. 무사도에 따르면 충성심과 효심은 대단한 것이 못 되고 오로지 죽음에 대한 열정만이 중요하다. 그것이 있고 나면 충성심과 효심은 저절로 자리 잡게 된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21. 스테파니아의 삶

 스테파니아는 말수가 무척 많았다. 우리에게 자기 살아온 얘기를 스스럼없이 다 털어놓았다.

 "내가 어렸을 땐, 키에 비해서 지금보다 더 뚱뚱했어요. 부모님이 식당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먹을 것을 아낌없이 주셨어요. 밤에 식당 문을 닫고 나면, 남은 음식 중에서 다음날까지 보관할 수 없는 것을 다 먹어 치워야 했어요. 그저 버리는 게 아까워서 그랬던 거예요. 하지만 그 덕분에, 열네 형제자매 중 일곱째였던 내가 가장 뚱뚱했어요. 그래서 늘 놀림감이 됐지요."

 사람들은 그녀에게 (캐러멜 덩어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열등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숙명론자였던 어머니는, 너무 커서 그녀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미리 사주시면서, (앞일을 생각해서 산 거란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옷들이 그렇게 크고 헐렁하다가도 얼마 안 가서 그럭저럭 입을 만하게 되었다. 그녀의 몸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낙낙한 틈새를 채워 나갔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모두 그녀를 (캐러멜 덩어리)라고 놀렸다. 놀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녀의 뱃속은 더욱 헛헛해졌다. 스테파니아가 그 헛헛증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가 정상적으로 먹고 있다고 생각하던 초기에는, 그래도 스파게티에 빵, 빵에다 버터, 버터에 볼로냐 소스 정도면 그런대로 허기를 메울 수 있었다. 그러나 불현듯 자기가 영원히 추하고 뚱뚱한 여자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헛헛증이 너무 심해 진 스테파니아는 음식을 익힐 새도 없이, 스파게티를 날로 삼키고 양배추절임이나 스튜 통조림을 부리나케 따서 게걸 들린 듯 먹었다.

 스테파니아는 자기 몸을 밑이 빠진 거대한 독처럼 느꼈다. 아무리 쏟아부어도 그녀의 헛헛증은 가실 줄 몰랐다. 근심이 커질수록 먹는 것도 많아져서 몸무게가 130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물론 스테파니아는 다이어트를 적어도 백 번은 시도했다. 그러나 살을 빼서 기쁨을 얻으려는 욕구보다는 먹고자 하는 욕구가 언제나 더 강했다.

 날 음식까지 걸터먹던 시기 다음에는 소화 장애의 시기가 뒤따랐다. 스테파니아는 연방 먹어대면서, 위를 비우기 위해 토악질을 했고, 동시에 변비 치료제를 먹어야 했다. 그녀가 자기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한 부모는 그녀를 타이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타이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스테파니아는 결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는 딸아이의 비정상적인 몸무게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는 했지만, 그녀의 명민한 두뇌에 대해서는 늘 감탄하고 있던 터였다. 스테파니아는 유치원 때부터 지력이 출중함을 보여주었다. 두 해에 한 번꼴로 월반을 했고, 수학, 지리, 역사, 철학 등 전 과목에 걸쳐 최고 점수를 받았다.

 키켈리 부부는 딸아이가 자기들보다 더 똑똑하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설득하는 것을 단념했다. 어느 날, 키켈리 씨는 스테파니아가 석류 시럽을 넣은 경단을 날로 먹다가 도로 뱉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쟤가 저러는 데는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곡절이 있을 게야) 하고 한숨을 섞어 가며 말했다.

 비만이 너무 심해지니 몸을 움직이는 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춘기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스테파니아는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기 몸무게를 아랑곳하지 않고 관능적인 걸음걸이를 버릇들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과도한 체중 때문에 몸이 쓰러지는 것을 막고 바닥을 확실하게 디디기 위해 다리를 벌리고 오리처럼 걸었었다. 스테파니아는 다리를 벌리지 않고 종아리를 평행하게 유지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런 노력 덕분에 마침내 굽 높은 구두를 신고도 균형을 잃거나 발목을 삐지 않을 만큼 안정된 걸음걸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에 탐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스테파니아는 모든 몸놀림을 새롭게 고쳤다. 걸음걸이를 바꾼 다음에는 우아하게 앉는 법, 소파 위에 어중간한 자세로 요염하게 눕는 법, 목을 자라목처럼 파묻지 않고 아주 곧게 세우는 법도 터득했다. 그 밖의 다른 몸놀림은 그리 문제될 게 없었다.

 자기의 몸짓 하나하나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스테파니아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 그것의 모든 동작을 흉내내기도 했다. 훌륭한 기술을 연마하면 자기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고양이는 경탄을 자아낼 만큼 동작이 민첩했을 뿐만 아니라, 동작을 멈추고 있을 때의 자세 또한 일품이었다.

 그런 다음, 스테파니아는 등산처럼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스포츠와 요가에 몰두했다. 몸무게는 여전히 100 킬로그램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곗살 대신에 근육이 붙고 뼈대도 한결 유연해 졌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스테파니아는 다른 곳에서 보상을 찾으려 했다. 요가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 질 무렵, 때맞추어 라마교 신자 한 사람이 나타났고, 스테파니아는 그를 친구로 삼을 수 있었다. 그는 별로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그는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제3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이 부러움을 사고 귀인 대접을 받는다. 부유해서 잘 먹은 덕분에 그렇게 육덕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티벳 사람은 그녀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그녀가 외모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알고, 육체는 밀폐된 감옥이 아니며 거기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일깨워 주었다. 육체는 영혼이 잠시 머무는 (껍데기)일 뿐이며, 명상법을 익히면 마음대로 육체를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육체를 벗어날 수 있도록 몇 가지 기술을 가르쳤다. 스테파니아는 신체적인 강훈련을 할 만큼 했던 터라, 그가 가르쳐 주는 것을 쉽게 익혔다.

 마침내 스테파니아는 자기 비곗살에서 해방되었다. 명상을 이용해 육체를 벗어남으로써 구원을 받은 것이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스테파니아는 우리 쪽에 의혹의 기미가 있음을 눈치챘는지, 우리가 자기를 믿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고 당차게 말했다.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육체를 벗어났는지 무척 궁금하다고 말함으로써 얼른 그녀를 안심시켰다.

 스테파니아는 큰소리로 웃고 나서, 궁금증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나서 대개 낮잠을 즐기는데, 바로 그 시간에 스테파니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육체를 벗어나는 일에 몰두하곤 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방안으로 일진 광풍이 불어와 그녀의 심령체를 벗겨 내어 밖으로 데려갔다. 그녀가 나갈 때는 주로 창문을 이용했다. 어쩌다가 지붕을 통해 나가기도 했지만, 문을 이용한 적은 없었다.

 "문은 육체가 드나들도록 만들어진 것이니까, 심령체가 그곳으로 드나들 필요는 없는 거예요"하고 그녀가 설명했다.

 처음에 스테파니아는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 창턱을 넘자마자 갖가지 넋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 넋들 역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넋 가운데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었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나쁜 넋들은 대개 땅에 닿을락말락하게 날아다녀요. 하지만 우리가 지붕보다 높게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 넋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낙하할 때는 재빨리 육체로 돌아와서 그들의 공격을 피해야 돼요."

 나쁜 넋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이냐는 우리의 질문에, 스테파니아는 그것을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면서, 말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했다. 어쨌든, 스테파니아는 명상 덕분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정신은 그렇게 가벼워졌지만 육체는 여전히 짐스러웠다. 결국 자기 문제를 회피한 것을 뿐, 정면으로 맞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끔찍한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시 스테파니아는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2월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중에 스테파니아는 욕조 바닥에 들러붙은 채 꼼짝을 못 하게 되었다. 물렁물렁한 비곗살과 바닥 사이에 공기가 갇혀 몸이 흡착기처럼 달라붙은 것이었다. 스테파니아는 뒤집힌 거북이처럼 버둥거렸다.

 체육을 가르치던 여선생이 그녀를 구박하자, 그것에 용기를 얻은 기숙생들은 그녀가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틈을 타서 그녀에게 온갖 오물을 마구 쏟아부었다.

 제풀에 지친 그녀들은 스테파니아를 차갑게 식어 버린 물속에 그대로 둔 채 가버렸다. 그녀의 명상이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었음에도 그 순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그녀의 몸뚱이는 하얀 욕조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의 영혼은 너무 당혹하여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몇 시간 후에 청소부(며느리 부)가 와서 그녀를 구해 주었다. 그 청소부는 같이 일하는 몇몇 아주머니들과 함께 걸레 자루를 지렛대로 사용하여 스테파니아를 욕조에서 떼어 냈다.

 그 수모는 평생토록 아물지 않을 깊은 상처를 그녀의 가슴에 남겼다. 스테파니아는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심령체라는 비밀 무기가 있었다.

 벽을 통과하는 심령체라면 사람의 살이라고 뚫고 들어가지 못하란 법이 없었다. 스테파니아는 자기를 모욕했던 여자들을 혼내 주리라 결심하고 밤마다 찾아 나섰다. 그녀는 그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을 이용해 그들의 몸 안에 침입했다. 그들의 엄지발가락에서 시작하여 머리까지 올라갔다. 그들은 끔찍한 악몽을 겪은 다음, 격심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스테파니아는 가장 증오하는 사람을 뒤로 미뤄 놓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공격한 사람은 체육 선생이었다. 그 여자는 스테파니아가 고난을 받고 있었을 때, 고문하던 학생들을 쫓아낼 생각은 않고 거기에 합세했던 유일한 어른이었다. 스테파니아는 체육 선생의 심장속으로 되도록 깊이 들어간 다음, 부정맥을 일으켰다. 심장 고동이 아주 빠르다가 거의 멎을 정도가 되기를 되풀이했다.

 그 여자는 땀에 흥건히 젖은 채 깨어나, 심장 고동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운동을 실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 몸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선생은 털썩 무릎을 꿇고는,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악령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열렬히 기도했다.

 스테파니아는 가련한 여선생이 심장 발작으로 쓰러지기 전에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후에도 정기적으로 여선생을 괴롭혔다.

 스테파니아는 자기 심령체를 제어해서 그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의기 양양해 있었다. 그녀는 그 힘을 복수를 하는 데 사용했다. 결국 악을 위해 사용한 셈이었다. 그런 것을 일컬어, 많은 종교에서는 검은 마술이라고 부른다.

 스테파니아는 티벳 친구에게 그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 친구는 그런 짓을 그만두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검은 마술은 결국 너를 해치고 너를 노예로 만들어 버릴거야. 스테파니아, 당장 그만 둬. 너는 네 적들에게 복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네 몸에 대해 복수를 하고 있는 거야)라고 그 친구는 말했다.

 스테파니아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의 급우들은 모두 두통약 신세를 졌고, 체육 선생은 몸져누웠다. 스테파니아의 시선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누구도 감히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상한 일들이 그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그녀가 마술을 피운다고 몰아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살면서 그런 주장을 했다가는 웃음가마리 되기가 십상이었다.

 몇몇 여자 애들이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다. 스테파니아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들을 밀쳐 냈다. 스테파니아는 복수를 계속했다. 미워하는 자들의 소화 기관을 공격해서 궤양을 일으켰다.

 그녀가 기어코 (신의 노여움)을 사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그 라마교 신자는 그녀를 설득할 마지막 수단으로 환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현생에서 지은 선행과 악행의 과보는 내생에서 치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각각의 삶에서 우리는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해. 사랑, 예술, 그런 것에 힘을 쏟아야 하고, 남을 해치기보다는 자기를 드높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돼. 남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라고 그는 말했다.

 스테파니아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결국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야 그녀가 마음을 돌렸다. 그녀를 구해 주었던 청소부를 그녀의 급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들은 그 청소부가 (캐러멜 덩어리)의 유일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여학생들은 청소부를 조금 혼내 주겠다는 생각으로 떠밀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 아주머니의 뒤통수가 벽 모서리에 부딪혔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 소식을 들은 라마교 신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가 죽은 건 네 잘못이야. 그이의 자녀들이 어머니를 잃었어. 다 네 잘못이야. 너는 네 업을 그르친거야. 네 복수를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천 배의 과보를 받게 될거야."

 그는 격분을 감추지 않고 그 경고를 남기며 그녀 곁을 떠났다. 비탄에 빠진 스테파니아는 더 늦기 전에 자기 영혼에 깃든 사악함을 씻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헛헛증 대신에 식욕 부진이 찾아왔다. 굶주림 속에서 몸이 여위어 갔지만, 스테파니아는 여전히 자기 몸뚱이가 싫었다.

 영혼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스테파니아는 라마교의 가르침을 더욱 충실히 따르리라고 결심했다. 그녀는 파도바에 있는 라마교 승원을 찾아갔다. 일단 마음이 다시 평온해지자,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 다시 살이 붙기 시작했다.

 스테파니아는 가족의 바람에 따라 보통의 여자로 살기 위해서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보통 여자로 남을 수 없었다. 이미 명상의 길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던 까닭이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스테파니아는 프랑스 사람들이 영계 탐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를 구해 준 그 청소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그녀 역시 사자들의 대륙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녀의 친구인 라마승들은 그녀가 살아온 내력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처음에 악에 빠졌다가 선으로 돌아온 사연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테파니아가 탐사를 떠나기에 앞서, 여행에 필요한 힘을 얻으라고 라샤나55)와 폴렌타56)를 배불리 먹였다.

 그렇게 라마승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스테파니아는 마침내 모스 1을 건넜다.

 우리는 경이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테파니아는 우리를 차례차례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업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요. 내겐 여러분의 삶이, 펼쳐 놓은 책이나 다름없어요. 라울, 당신은 전사(싸울 전, 선비 사)예요. 당신은 당신이 거쳐야 할 윤회의 한가운데에 와 있어요. 전생에 어떤 일을 시작해 놓고 그걸 미처 다 끝내지 못했어요. 그 때문에 화난 사람처럼 늘 쫓기듯이 살지요. 현생에서 다 이루려고 초초해 하며 말이에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내가 초초해 하는 것은 전생에 다 못한 일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스테파니아는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어리고 순수한 영혼이며 악행에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를 수 없다고 했다. 또, 나는 윤회의 초입 단계에 있을 뿐이어서 내 영혼이 백지 상태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스테파니아는 이렇게 강조했다.

 "당신은 아주 영리해서 그것을 깨달았을 거예요. 당신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앎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한 거예요. 그건 아주 잘한 일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나는 내 인격이 칼로 자른 듯한 몇 마디 말로 요약되는 것에 기분이 상해서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스테파니아가 사람에 대해 너무 쉽게 단정을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번에는 아망딘 쪽을 보며 말했다.

 "아망딘, 당신은 유난히 육체적인 사랑을 좋아하는군요. 그렇죠?"

 아망딘은 귀까지 벌개진 채, 되물었다.

 "그래서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예요?"

 스테파니아는 아망딘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은 남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있어요. 당신은 육체적인 사랑을 통해서만 자아를 완전히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생각은 잘못이에요. 성적인 에너지는 모든 에너지 중에서 가장 강력해요. 그것을 오르가슴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은, 헛되게 소모하는 거예요. 그 에너지를 관리하고 가려서 쓰는 법을 배워야 돼요."

 

 122. 역사 교과서

 타나토노트들은 강인하고 냉정하며 오로지 한길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목에 걸고 있는 메달에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곧장 나아갈 뿐이다)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었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123. 요가의 가르침

 명상 수련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좌법(座法): 신체를 단련하고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도록 훈련하는 것.

 조식(調息): 호흡을 조절하는 것.

 제감(制感): 정신을 제어하는 것.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에 따로 떨어져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미간에 있는 한 점에 생각을 집중시키면 된다.

 그러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주변 세계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기에게 속한 것과 세계에 속한 것의 차이를 느끼면서 자기의 자아가 몸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간다.

 - "라자 요가57)의 명상법"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24. 다시 스테파니아

 스테파니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라울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친구가 사랑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의 관능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눈길은 봄을 맞이한 한 쌍의 멧비둘기처럼 서로 쫓고 달아나기를 거듭했다.

 아망딘은 분명히 그 이탈리아 여자에 대해 우리처럼 열광하고 있지 않았다. 아망딘은 스테파니아가 자기의 성욕을 빗대어 나무란 것이 마뜩치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처지에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는 자리가 아니었냐 말이다. 조용히 내리뜬 그녀의 눈에는 짙푸른 빛만 감돌았다. 짙푸른 태양이 검은 심연 같은 동공을 삼켜 버린 모양이었다.

 그제껏 아망딘은 우리 동아리에서 언제나 여성을 대표하고 있었고, 그런 독점적인 권리를 향유하는데 익숙해 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테파니아가 등장했다. 첫 번째 죽음의 장벽을 넘은 스테파니아는 그녀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였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던 라울마저 그녀에게 반해 있지 않은가!

 우리는 포만감을 느끼며 랑베르 씨의 타이 식당을 떠나,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의 펜트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스테파니아에게 명상법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스테파니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등을 아주 곧게 펴고 눈을 감았다. 그런 다음, 10분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뜨더니, 한바탕 홍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잡념을 버리고 숨결이 척추를 따라 흐르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육체를 벗어나 창문을 통해 이륙할 수가 있어요."

 "무엇을 느꼈지요?"

 "그걸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어요. 그냥 느껴질 뿐이에요. 그런 질문은 소금의 맛이 어떠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단맛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소금의 맛을 설명하기란 참 난처한 일이에요. 어떤 말을 사용해서 그것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소금의 맛이 어떤 것인 줄 알려면 직접 소금 맛을 보는 수밖에 없어요. 명상이 뭔 줄 알려면 명상을 해 봐야죠."

 하나 마나 한 대답이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려면..."

 "내가 하는 걸 다들 보셨을 거예요. 가부좌를 틀고 어떤 한 이미지에 생각을 집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촛불 같은 것을 머릿속에 그리며 명상에 들어가면 돼요. 여러분의 감겨 있는 눈꺼풀 안에서 그 촛불이 한동안 춤을 출 거예요. 그러다가 그 촛불을 끄고 떠나는 거예요."

 "어디로요?"

 "하늘로요. 영계로 가는 거죠. 물론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죽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거예요. 아내, 자식, 친구를 생각하며 머뭇거리는 사람, 그리고 자기는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참으로 터무니없고 오만한 생각이지요- , 그런 사람은 명상에 적합하지 않아요. 명상이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죽음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있는 더 흥미로운 것이려니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라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아망딘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스테파니아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따라 웃었다.

 "하긴, 백 마디 말보다 우리 라마교 신자들이 죽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라마교 신자들은 수천 년 전부터 죽음은 하나의 과학이지 숙명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어요. 내일 여러분을 파리 라마교 승원에 데리고 가겠어요. 다행히 파리에도 우리 분원이 있거든요."

 

 125. 기독교 철학

 정신이 육체의 노예로 전락하면 육체적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듯이 육체가 완전히 정신에 순종할 때는 마땅히 영적이라고 말해야 한다.

 - 예로니모58), "이사야서(쓸 서)에 관한 주석"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26. 또다시 스테파니아

 파리 라마교 승원에서 임종을 앞둔 신자를 위한 밤샘 의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향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사이로 눈매에 장난기가 어린 거대한 불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불상은 비만증 환자처럼 뚱뚱했다. 문득 우리의 뚱보 스테파니아가 라마교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마교에서는 웃고 있는 뚱뚱보를 섬기고 있었다(그 후에 나는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본 그 불상은 티벳의 불상이 아니라 중국의 불상이었다. 티벳의 불상은 훨씬 더 날씬하고 근엄하다. 그것은 불상을 마련해 준 종교부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일 터였다. 하지만 티벳 사람들은 남의 나라에 얹혀 사는 처지에 감히 항의할 생각은 못 하고, 점차로 중국 불상과 더불어 하는 일에 익숙해 졌을 것이다. 그 불상들은 그들의 땅을 침략한 자들, 그들을 박해한 자들, 티벳 겨레를 없애 버린 자들의 것이었다).

 사포로 문질러 놓은 것처럼 두피가 꺼칠꺼칠한 까까머리 사내들이 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연한 자줏빛 가사를 법복으로 두른 채 새김을 넣은 나무 원통들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이 단조로운 소리로 경을 읽는데, 무슨 뜻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일이 끝나자, 그들은 누워 있는 어떤 사람 주위로 모여들었다. 스테파니아가 우리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라마승 하나가 시를 낭독하기 시작하자 몇 개 국어에 능통한 스테파니아가 동시 통역을 했다.

 (오 아들아, 우리 아들아,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 이제 너를 찾아왔구나!

 너는 이 세상을 떠나지만, 그것은 너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를 찾아올 것이니라.

 미약한 힘으로 현생에 매달려 있지 말고 떠나거라.

 설령 미약한 힘으로 매달려 있다 해도, 이승에 머물 힘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네가 얻을 것은 오로지 업해(業海)에서 헤매는 것뿐이니라. 그러니 집착하지 말라.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삼보(三寶)를 기억하라.

 오 소중한 아들아, 쇼니이드 바르도(기억의 방울들이 공격을 퍼붓는, 모흐 1 너머 구역?)에서 어떤 무서운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너는 현생의 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꿋꿋하게 나아가거라." 이 말을 잊지 말고 그 의미를 마음속에 간직하거라. 그 말속에 깨달음의 비결이 담겨 있느니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생의 경험이 나를 짓누르고, 허깨비들이 몰려와 공포와 불안과 고뇌가 엄습하는데, 온갖 환영이 다 내 의식의 반영이고 저승의 환영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오.

 위대한 결말을 짓는 그토록 중요한 순간에, 나 자신의 생각이 지어내는 갖가지 귀신의 무리 앞에서 어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리오.

 오 소중한 아들아, 네가 이승에서 지성으로 참선하고 공경을 바쳤음에도, 거기에서 만날 허깨비가 모두 네 생각이 지어낸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리고 네가 지금 이 가르침을 듣지 않는다면, 빛이 너를 압도할 것이고 소리가 너를 두려움에 떨게 하리라.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중 중요한 그것을 모른다면, 그리하여 빛과 소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너는 업해를 헤매게 될 것이다.)

 라마승의 말은 첫 번째 코마 장벽을 넘었을 때, 브레송과 스테파니아에게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브레송은 쇼니이드 바르도에서 두려움에 압도당했던 것이고, 스테파니아는 그것을 피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라마승 하나가 빈사자에게 다가가 목 언저리에 손을 대는데, 그 손놀림이 기이했다. 스테파니아가 우리에게 설명했다.

 "지금 목동맥을 압박하고 있어요. 맥박이 멎고 영원한 잠이 찾아올 때까지 저러고 있을 거예요. 숨이 순환의 중심 통로를 떠나고, 곁 통로도 더 이상 이용할 수도 없게 되면, 위로 올라가서 브라마의 구멍을 통해 나갈 수밖에 없어요."

 "저 사람은 분명히 우리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큰소리고 말했다. 아망딘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테파니아는 부드러운 눈길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나 역시 그 라마승과 똑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계 탐사라는 명분을 걸고, 사자들의 대륙으로 사람을 보낸다면서 그들을 죽였다. 우리의 실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인간 기니피그를 생각하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브라마 구멍이라는 게 뭐요?

 라울이 물었다.

 "브라마 구멍이란 영혼이 우리 몸에서 빠져나가는 문이에요. 정수리 부근에 있는 한 점이지요. 목덜미 머리털 뿌리 부분에서 손가락 여덟 마디만큼 떨어져 있어요."

 라울은 스테파니아가 설명하는 (브라마 구멍)의 위치를 수첩에 적었다. 결국 최후의 대륙을 향해 출발하는 항구에 관한 얘기인데, 그가 놓칠 리가 없었다.

 죽어 가는 사람을 마주하고 라마승은 그 사람이 곧 도착하게 될 첫 번째 바르도, 즉 첫번째 저승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라마승은 그곳을 (본연의 진리가 지배하는 세계)라고 말했다. 스테파니아는 우리에게 귓속말로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숨이 중앙 통로로 몰려들고 있어요. 외부 호흡은 멎었지만, 내부에서는 아직 숨이 흐르고 있어요. 이 몸 속에는 이제 의식이 없어요. 건강한 사람일수록 이 단계가 길지요. 죄악 때문에 심신이 건전치 못하고, 숨결이 흐르는 섬세한 통로가 순결치 못한 사람은 순식간에 이 단계가 끝나 버려요. 하지만, 어떤 건강한 사람은 사흘 반을 버티기도 해요. 그런 까닭에 우리는 죽은 지 나흘이 되기 전에는 시신을 매장하거나 해부하지 않지요."

 "무엇을 하기 위해 그 나흘이 필요하지요?"

 내가 그렇게 묻자 대답이 궁한 적이 없는 우리의 라마교 신자가 선뜻 말했다.

 "그 나흘 동안 저승의 빛이 차츰차츰 익숙해지는 거예요."

 나는 문득 예전에 들은 무서운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관에 넣어 땅속에 묻은 사람들이 어쩌다 깨어나는 수가 있었다. 장례를 너무 일찍 치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채 오랫동안 관의 안쪽 벽을 두드리다가 공기가 부족해서 결국 진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요행히 지나가던 사람이나 묘지기가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어떤 사람들은 임종을 맞으면서 자기를 묻을 때 종을 같이 묻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혹시 자기들이 깨어나게 되면 종을 흔들어 그것을 알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죽은 사람이 깨어나는 일은 화장터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으리라. 불길이 번져 가는 화덕 속에서 사람이 깨어나는 장면을 상상하니, 역시 나흘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죽음과 깊은 코마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목숨이 아직 붙어 있는 사람을 묻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오늘날 은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니 여전히 죽음 판정에 의심이 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자 고동의 정지, 뇌 기능의 정지, 감각의 정지 등 죽음을 판정하는 기준은 여럿이 있겠지만, 죽음의 문턱을 완전히 넘어갔음을 알리는 진정한 징후는 무엇일까?

 우리는 라마고 승원을 나와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바람을 쐬었다. 라울과 스테파니아는 재미있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앞서가고, 아망딘과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을 보면서 아망딘이 뒤틀린 소리를 했다.

 "라울을 너무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거 같지 않아요? 그것도 결혼한 여자가 말이에요. 남편이라는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쟁이지겠다고 작정을 했나 보죠?

 아망딘이 그렇게 불뚱거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저승을 정복하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강짜 부리는 여자로만 보였다. 펠릭스와 사랑을 나누고, 장과 사랑을 나눈 그녀가 이젠 라울을 원하고 있었다. 아망딘은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내게 털어놓았다.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도 올로지 그녀만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하지만 사랑이 너무 강하면 밸도 없어지는지, 나는 그녀를 달래려고 애썼다.

 "걱정 말아요. 라울은 분별력이 있는 친구예요."

 그녀가 내 팔 안쪽으로 자기 팔을 들이밀었다.

 "저 사람이 내게서 뭔가를 느끼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를 단순한 보조자로 여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미카엘 생각엔 어때요?

 어찌하여 여자들은 나를 연인으로 선택하지 않고,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로만 선택하는 것일까? 더구나 다른 여자들도 아니고, 내가 그토록 갈구하는 여자들이 말이다!

 그럼에도 니 입에서는 바보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라울이 속으로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얼빠진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아망딘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경박하다 싶을 만큼 밝은 음성으로 물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사로 덧붙였다.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사실을 당신에게 고백할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127. 공익 광고

 때로는 인생이 눈물 계곡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생을 사랑합니다. 어제 일을 얘기해 볼까요? 저희 집 우편함을 뒤져보니 영수증 쪼가리들밖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에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지요. 아내는 줄곧 바가지를 긁었고요. 주차 위반 단속원들한테 딱지를 여러 장 떼였고, 어떤 녀석이 열쇠로 제 차를 긁어 버렸지요. 하마터면 히스테리를 일으킬 뻔했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런 대로 참을 만했습니다. 인생에 그런 구질구질한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어쨌든 삶이란 품질이 우수한 상품입니다. 저는 아침마다 그것을 사고 밤마다 그것을 다시 주문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저처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인생을 사랑하십시오. 인생은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은 (생명 진흥청)에서 전하는 말씀입니다

 

 128. 사랑 이야기

 부트 쇼몽의 타나토드롬어ㅔ 있는 아파트에서도 내 삶은 여전히 쓸쓸했다. 단실 아파트에 살던 옛날과 달라진 게 없었다.

 스테파니아는 잠시 이탈리아에 다니러 갔고, 우리 세 사람은 그녀가 돌아오는 대로 되도록 훌륭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장비를 점검했다.

 셋이서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 견디기 힘든 시련처럼 되어 버렸다. 아망딘은 언제나 라울의 곁에 바싹 다가가 앉았고, 음식보다는 라울을 더 탐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라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쪽은 이탈리아의 타나토노트였지만, 아망딘의 교태가 나날이 성과를 얻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의 감정이 발전하는 상황을 일일이 나에게 보고하고 싶어 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두 사람 다 나를 흉금 없이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역할을 해내느라고 내 마음은 고뇌로 들끓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아망딘의 옷차림이 갈수록 멋있어지는 것 같지 않아?"

 "늘 검은 옷만 입잖아..."

 라울은 내 이야기를 듣자고 물은 게 아니었다.

 "아망딘이 점점 예뻐져, 안 그래?"

 "언젠 안 예뻤나?"

 나는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그날 밤, 그들은 둘이서만 저녁 식사를 했고, 타나토드룸으로 돌아오지 않고 밖에서 잤다. 거룩한 타나토드롬 건물 안에는 나 혼자만이 있었다.

 

 나는 이륙용 의자에 앉았다. 타나토드롬의 모든 에너지가 모이는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스테파니아가 가르쳐 준 대로 해보고 싶었다. 초월적인 명상을 통해 초라한 사내의 몰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려고 애썼다. 그러나 눈을 감기가 무섭게 아망딘의 고운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났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금발 끝자락이 살며시 치켜 올라가 도톰한 입술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여인을 얻을 수 없다면, 명예를 얻고 부귀를 누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화가 치밀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나 아닌 다른 사내들과 쉽게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도로 떴다. (불쌍한 미카엑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들이 타나토드롬에 돌아오지 않고 어떤 호텔에서 살을 섞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펠릭스의 말투를 흉내 내어 (빌어먹을, 영계 탐사 좋아하시네!)라고 내뱉으면서 냉소를 흘렸다. 스테파니아가 없는 게 유감이었다. 라울과 아망딘 두 사랑이 짝을 이루지 못 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일 것 같았다. 나라는 위인은 두 사람을 부추겨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면서, 가장 친한 내 친구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찍 결판이 나고, 나도 빨리 마음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플라스크들이 걸려 있는 가로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플라스크들에는 코마 유도제로 쓰이는 약품이 들어 있었다. 불현듯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도 코마 장벽을 넘어가 볼까? 내 과거에 대해 두려워할 만한 게 별로 없으니, 브레송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이 아주 잘못되는 경우에는 펠릭스를 다시 만나게 되겠지.) 나는 셔츠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한순간, 내가 철없는 여드름투성이 청소년처럼 사랑 때문에 자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손목의 굵은 정맥에 바늘을 꽂았다. 정맥은 그 시련을 피하려는 것처럼 팔딱거리고 있었다. (자, 이것을 받아라, 굵은 정맥아, 이제 너는 내 뇌에 충분한 피를 보내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나는 아망딘이 그토록 좋아하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기계 장치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은 배(배나무 이)처럼 생긴 전기 스위치를 손에 쥐었다.

 아망딘은 타나토노트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잤고, 그들에게 접근해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녀의 관심을 더 많이 끌고자 했으면 나도 진작에 타나토노트가 되었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영계 탐사라는 모험에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은 셈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떠났다가 돌아오는 배를 바라보기만 하고 직접 떠나 본 적은 없었던 에스파냐의 뱃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남이 전해 주는 말만 듣고는 제대로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직접 현장으로 가는 게 최선이다.

 손바닥 안에 든 전기 스위치가 땀에 젖어 끈적거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라마교 승원에서 들은 라마승의 말이 유치원 아이들의 노래처럼 귓전에 맴돌았다.

 (오 아들아, 우리 아들아,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 이제 너를 찾아 왔구나!

 너는 이 세상을 떠나지만, 그것은 너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를 찾아올 것이니라.

 미약한 힘으로 현생에 매달려 있지 말고 떠나거라.)

 미약한 힘으로 현생에 매달려 있지 말고 떠나거라... 현생의 내 업은 그리 탐탁치 않았다. 다음 생에서는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바람둥이로 태어나도록 힘쓸 생각이었다. 사랑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느라고 한 삶을 보냈다면, 다른 삶에서는 사랑을 실컷 해볼 생각이었다. 그래, 소심한 사내로 죽었다가 풀레이보이로 다시 태어나야지.

 나는 전기 스위치는 다시 한번 바라보고 나서, 침을 꿀꺽 삼키고 자신감 없이 초읽기를 시작했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발..."

 실내가 갑자기 환해졌다. 콩라드 형의 음성이 들렸다.

 "미카엘 여기 있어요, 엄마! 너 그 의자에 앉아서 뭐 하는 거냐? 너 찾느라고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어머니의 음성도 들렸다.

 "미카엘이 일을 하는 모양인데, 방해하지 말아라. 기계 장치들을 점검하는 것 같구나. 미카엘,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어서 하던 일을 계속해라. 별일 아니고, 우리 가게에서 그 동안 장사를 어떻게 했는지 너하고 결산을 해볼까 하고 온 거야. 급할 건 없어. 지금 당장 안 해도 되는 일이니까."

 콩라드 형은 전위 차계(電位差計)의 버튼을 죄다 눌러 보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가 내 물건에 마구 손을 대는 게 싫어서 금세 화를 냈을 거였다. 그러나 그날 밤은, 어쩐 일인지, 그렇게 밉살스럽던 콩라드 형이 갑자기 착한 사람의 완벽한 본보기처럼 여겨졌다.

 나는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손가락을 살며시 스위치에서 떼어냈다.

 "두 번째 장벽 뒤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게 있으면, 우리에게도 주었으면 좋겠어. 다음 시즌에 팔 티셔츠를 준비해야 하거든."

 형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마에 축축하고 진한 입맞춤을 해주셨다.

 "너 여전히 밥 제대로 안 챙겨 먹지? 아직 밥 안 먹었으면, 집에 가서 밥 먹자. 좋아할지 모르겠다만 스튜도 있고 골 요리도 있단다. 레스토랑에서만 먹으면 몸 상해. 그 사람들은 찌꺼기 음식이나 내놓고 재료도 아랫질로만 쓰거든. 어디 엄마가 해주는 것만 하겠니?"

 일찍이 두 사람에게 그렇게 깊은 애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을 만난 게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팔목에서 바늘을 뽑았다. 배가 고팠다. 다른 고뇌는 다 사라지고, 오로지 먹을 것에 대한 생각만 머릿곡을 채우고 있었다. 아주 따끈따끈한 골 요리가 있으면 좋겠어. 그걸 갓 구운 빵에 발라서 굵은 소금을 쳐서 먹으면 맛있을 거야. 후추도 좀 쳐야지. 그러나 후추는 너무 많이 치면 안 돼. 자칫하면 맛을 버릴 염려가 있지.

 

 129. 기독교 신화

 그 천사는 또 수정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그 도성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

 - 요한 묵시록 22:1--3

   프랑시스 라노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30. 스테파니아 돌아오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개체성에 집착하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는 법이다. 나는 아망딘을 향한 내 욕망이 강박 관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에 그 강박 관념은 더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스테파니아가 플로렌스에서 돌아왔다. 라울이 아망딘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스테파니아와 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고독을 서로 나누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스테파니아는 나를 자기 취향에 맞는 남자로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내 등을 탁 치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고, 나를 (숫보기)하고 불렀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는 데 있었다. 나는 여자를 다루는 데는 언제나 손방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사귄 여자가 열 명은 될 터이지만, 그 여자들이 두름성이 있어서 나는 자기들 침대로 끌고간 것이지, 내 주변머리로는 꿈도 못꿀 일이었다. 게다가 스테파니아가 결혼한 여자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그런 걸 전혀 문제 삼고 있지 않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도 라울과 아망딘은 다정한 연인의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서로 손을 잡는 일도 없었고, 훔치듯 하는 잽싼 입맞춤을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담담하게 처신하고 있었다. 뜨거운 관능의 불길을 서로를 통해 일시적으로 가라앉힌 사람들 같았다.

 스테파니아는 전혀 눈치를 못 채고, 라울에게 유혹적인 자태를 계속 보였다. 짝이 있는 행복한 남자는 그가 풍기는 행복한 분위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에게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끊임없는 고뇌와 영원한 고독에 묻혀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여자들이 다가올 리 없었다.

 나에게 남은 건 일뿐이었다. 나는 애오라지 일에 매달렸다. 스테파니아를 내 여자로 만드는 일은 갖가지 상상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사랑을 얻는 일이 어그러지면 질수록 죽음을 규명하는 일에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어린 시절 꿈에 나타났던, 해골 가면을 든 하얀 사탱 옷의 여인이 그즈음에는 한층 더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망딘의 옷을 벗기는 데는 실패했을 망정, 커다란 낫을 든 죽음의 여신은 정복하고 싶었다.

 죽음이여, 나는 그대의 가면 뒤에 감추어진 것을 보고 말리라.

 죽음이여, 그대의 마지막 비밀이 곧 드러나고야 말리라.

 우리의 선봉에 설 사람은 스테파니아라는 여자였다. 스테파니아, 그녀가 앞장을 서서 검은 성의 문을 부수고 들어갈 것이었다.

 나는 부스터와 이륙용 의자를 개량하고, 감각 반응 측정기를 새로 들여놓았다. 한편으로는 요가의 샤크라 도면과 침술의 경락을 공부했으며, 사람의 형상을 그려 놓고 그 둘레에 라마교에서 말하는 기(기운 기)의 몸을 그려보려고 애썼다. 기에 관한 공부를 계속했더니, 어느덧 내 몸 주의에서 그것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명상을 할 때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신비주의적인 신앙에 과학적인 근거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파동을 낸다고 한다. 그런 파동들은 보통의 뇌파계로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통 때처럼 눈을 뜨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초당 30회에서 60회의 진동을 낸다. 그런 상태를 베타파 대에 있다고 말한다. 잠잘 때보다는 깨어 있을 때가 진동수가 많고, 생각을 집중할수록 진동수가 많아진다.

 눈을 감으면 곧 파동이 느려지지만, 이따금 진폭은 더 커진다. 진동수가 초당 12회 정도로 적어지면서, 알파파 대에 들어선다.

 꿈을 꾸지 않으면서 잠을 자고 있을 때는 델타파를 낸다. 진동수는 초당 2분의 1회에서 3회이다.

 나는 내 기니피그인 스테파니아를 상대로 그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관자놀이와 후두부와 두정골에 전기 신호 변환기를 장착한 다음, 그녀가 이륙하는 동안 어떤 파동을 내는지 알아보았다. 알파 파였다. 그것은 뇌의 모든 표면이 차분한 각성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발견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스테파니아가 파를 내는 것은 단지 그녀가 자기 명상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팀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스테파니아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과 이혼하고 우리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파리에 정착했던 것이다. 우리는 애 아파트와 이웃한 4 층에 그녀의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

 스테파니아는 아침마다 명상만을 이용해서 펜트하우스로부터 이륙하곤 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하늘 멀리서 그곳을 분간할 수 있게 해둠으로써 야간에 명상과 약품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도 헤매지 않고 귀환하려는 것이었다. 피아노 옆의 푸른 식물 사이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녀가 돌아오면 영계 지도를 앞에 놓고 오랫동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지도의 어떤 부분을 지우기도 하고, 색칠을 해서 구역을 표시하기도 했으며, (테라 인코그니타)라는 말을 지도 윗부분으로 밀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 글자들에 펜으로 덧칠을 하며 장난을 쳤다.

 스테파니아는 2주 만에 제1 장벽 너머를 세 차례 다녀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영계 지도를 꽤 상세하게 보완할 수 있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스테파니아를 공격한 기억의 방울들이 다른 타나토노트에게 지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우리는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당분간 홍보 활동을 일체 중단하기로 했다. 장 부레송이 무시무시한 증언을 한 뒤로 세계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타나토드롬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국제적인 경쟁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었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발진."

 야간 비행이었다. 스테파니아는 검은 금속테를 두른 붉은 의자에 몸을 쭉 펴고 앉아서, 구불거리는 긴 머리채를 블라우스 위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티치아노59)가 그린 르네상스풍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스테파니아의 비행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명상을 통해 코마 상태에 빠져든 지 34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라울이 셔츠 단추를 잠그면서 실험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웬 일이야?"

 라울은 내 물음을 들은 체 만 체하고 타임스위치를 들여다보았다. 스테파니아가 귀환 시간을 코마 플러스 38분에 맞추어 놓은 것을 깨닫고 그는 펄쩍 뛰었다.

 "이건 완전히 미친 짓이야! 스테파니아는 깨어나지 못할 거야."

 나는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라울은 얼른 타임 스위치를 돌려 눈금을 영으로 놓았다. 그러자 바로 전기 충격 장치가 가동되었다. 급정지 방지 시스템을 갖춘 제동 장치처럼, 전류는 단속적으로 그리고 점점 강하게 흘렀다.

 "스테파니아, 돌아와요! 너무 멀리 갔어요."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그녀가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스테파니아가 눈을 떴다.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끔벅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걸 봤어요."

 "뭘 봤지요?"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그걸 봤어요. 두 번째 장벽이 있어요! 모흐 2예요."

 스테파니아가 숨을 가다듬는 동안에 라울은 영계 지도를 가져왔다.

 "어서 말해 봐요."

 그가 말하자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때처럼 먼저 검은 터널 안으로 들어갔어요. 빛 덩이들이 나에게 덤벼들었어요. 각 빛 덩이 속에는 고통스런 기억이 하나씩 들어 있었지요. 옛날에 내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었어요.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그 애를 거기서 만났어요. 내가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아 왔다고 울고 계신 어머니를 봤어요. 또, 내가 딱지를 놓았다고 비관 자살한 청년도 만났어요. 내가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버둥거리던 방면을 다시 보고, 학교의 청소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던 때의 충격이 되살아났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나는 그 나쁜 기억들에 맞서서 당시에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어요. 책가방을 훔친 것은 부모님이 그것을 사주실 만큼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학교 성적이 나빴던 것은 어머니가 공부에 전념할 시간을 안 주시고 늘 설거지와 청소를 시키셨기 때문이며, 내게 사랑을 구하던 남자를 뿌리쳤던 것은 그때 이미 내 마음에 드는 다른 청년에게 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요. 그리고 학교 청소부가 죽은 것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주의를 둘러보니, 다른 망자들도 자기들의 기억과 싸우고 있더군요. 그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못하자, 마치 백혈구가 세균을 공격하듯이 기억들이 그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지요. 살인을 저질렀던 자들은 피살자들로부터 앙갚음을 당했고, 자기 일에 태만했던 자들은 뺨을 맞았어요. 또, 게을렀던 자들은 수렁에 던져졌고, 불뚝불뚝 성을 잘 내던 자들은 물결에 휩쓸려 갔어요. 그 광경을 보니 문득 단테의 "신곡"이 생각나더군요. 인색함으로 죄를 지은 자들은 눈꺼풀이 붙어 버렸고, 음탕함으로 죄를 지은 자들은 살이 불탔어요. 어쨌든 죽음은 끔찍한 거예요.

 "악마처럼 달려드는 기억을 물리치고 주위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검은 터널 속을 계속 갔어요. 어느덧 터널이 보라빛을 띠고 있더군요. 주위는 여전히 캄캄했고 공포로 가득 차 있었어요. 내벽은 가루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흙을 막 갈아 놓은 듯한 냄새가 났어요."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거대한 터널은 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직경은 여전히 수백(어쩌면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터널은 커다란 대야나 깔때기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내벽에 돌출한 가파른 벼랑길 위에서 자기들의 기억과 싸우고 있었다. 빛은 깔때기의 안쪽에서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위아래의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쪽을 위쪽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스테파니아는 라울이 들고 있던 영계 지도를 빼앗더니, 그것을 기울여 깔때기의 뾰족한 쪽이 바닥을 향하게 했다.

 "원뿔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되어 있어요. 흙투성이의 벼랑길을 따라감에 따라 폭이 점점 좁아져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스테파니아는 갈겨쓰는 글씨로 다음과 같이 썼다.

 1. 이륙.

 2. 정상적인 생명의 징후가 일체 소멸.

 3. 코마.

 4. 이승을 벗어남.

 5. 우주 속을 18분간 비행.

 6. 자전하는 거대한 빛의 동그라미 출현: 가장 먼저 나타나는 영계의 모습. 직경은 수천 킬로미터. 영계의 가장자리. 파란 피안.

 7. 빛의 기슭에 닿음. 제1 구역에 도달.

 

 제1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18분

 빛깔: 파랑. 청록색에서 점차 남색으로 바뀌어 감.

 느낌: 거슬러 버티기 어려울 만큼 매혹적임. 푸르름, 물. 상쾌한 느낌. 빛의 유혹.

 끝나는 곳: 모흐 1(직경이 약간 줄어들어 있음).

  

  제2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21분.

 빛깔: 암흑.

 느낌: 어둠, 공포, 흙. 춥고 무시무시한 지역 사자는 갈수록 가팔라지는 벼랑길 위에서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싸움. 빛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자는 겁에 질려 그것을 보지 못함.

 끝나는 곳: 모흐 2. 그곳을 넘어서면 제3 천계로 이어지는 듯함.

 

 스테파니아는 선하나를 지우고 다른 선을 그린 다음, (테라 인코그니타)라는 말을 뒤로 밀어냈다. 우리의 새로운 경계선에는 모흐 2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는 기자들을 불러 스테파니아가 올린 성과를 알리기로 했다. 그 발표는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테파니아는 장 브레송이 자기 과거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다시 그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칩거 생활 때문에 그는 하늘나라에서 자기가 겪었던 일의 진정한 의미를 끝내 모르게 될 것 같았다.

 그를 만날 수는 없더라도, 그가 불러일으킨 죽음 공포증은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했다. 그의 가족과 옛 친구들에 대한 탐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장이 어떤 기숙 학교에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 기숙 학교의 교장은 아동 학대의 혐의를 받던 사람이었다. 장은 겁에 질려 지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처음엔 스턴트맨이, 나중엔 타나토노트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첫 번째 코마 장벽을 넘는 순간 그것이 되살아나 그를 다시 지옥에 빠뜨린 것이었다.

 그 기숙 학교의 교장은 혐의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고, 그 학교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죽음 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죽음이 순수한 천국도 완전한 지옥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제3의 것)이었다. 신비의 너울은 여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전진! 알려지지 않은 곳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곧장 나아갈 뿐이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모흐 2였다.

 

 131. 유대교 신화

 아담이 세상에 나왔던 첫날 그는 빛이 변하고 있음을 깨닫고 크게 놀랐다. 해가 지고 어둠이 하늘을 뒤덮자 아담은 모든 게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삶과 세계가 종말을 맞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아담이 소리쳤다.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내가 죄를 지어서 세계가 이렇게 어두워지나 보다. 이제 우리는 태초의 혼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게 하늘이 내게 벌로 내리시는 죽음이로구나."

 아담은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울었다.

 이튿날 다시 여명이 밝아 오자 그가 소리쳤다.

 "꺼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그런 게 세상이로구나!"

 아담은 세계에 종말이 온 것이 아님을 알고 미칠듯이 기뻐하면서 벌떡 일어나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쳤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32. 백가쟁명(百家爭鳴)

 영계 속을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던 우리의 성과가 알려지자, 세계 곳곳의 타나토드롬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영계 탐사가 돌연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영계 탐사가 다시 유행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스테파니아가 종교와 과학을 결합하는 새로운 발상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원들 옆에 새로운 타나토드롬이 세워졌고 죄수와 스턴트맨에 이어 각 종교의 성직자와 수도자들로 이루어진 신세대 타나토노트들이 출현했다.

 그에 따라, 영계 탐사는 새로운 적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영계 탐사를 비웃던 회의주의자들도 영계 탐사에 미쳐 날뛰던 광신자들도 아니었고, 종교를 갖지 않은 세속인들이었다. 그들은 타나토노트들이 미신과 과학을 섞어 폭약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고, 특정 종교를 위해 저승을 정복하려 한다면서 (포교 탐험가들)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실제로, 첫 번째 장벽을 넘은 사제들은 저마다 자기 종교의 상징물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암흑 구역에 들어가면 자기 기억과 마주치게 되므로, 그렇게 조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베네딕트 파 수사들은 옛날의 화가들이 성인들의 초상에 후광을 그려 넣은 까닭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후광은 심령체가 머리 꼭대기로 빠져나오기 시작할 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당시의 화가들은 성인들이 육체를 벗어나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 했을 거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종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타나토노트들의 주장이 자기들 종교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홍보 전략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화를 냈다.

 영계 탐사에는 많은 이해 관계가 걸려 있었고, 그래서 조심하고 삼가야 할 것도 더 많아졌다. 우리는 스스로의 얼굴에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 브레송의 (사고)가 이미 영계 탐사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경고해 준 바 있었다.

 그러나 더 알고 싶어하는 욕구만큼 강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모흐 2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꼭 알고 싶었다.

 스테파니아는 비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모흐 2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 두 번째 장벽에 닿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도 규정을 못 짓고 있었다.

 모흐 2에 도달한 사람은 그녀뿐이 아니었다. 다른 라마교 신자들, 도교의 도시들, 이슬람교의 수도승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 여호와의 증인들, 몽 루이 수도원의 트라피스트 수사들, 생 베르트랑 수도원의 예수회 수사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차례로 첫 번째 코마 장벽을 넘어 모흐 2에 도달했다. 그러나 두 번째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타나토드롬을 여러 군데 찾아가서 그들의 영계 탐사 의식을 배웠다. 따지고 보면 종교들은 본디 자기들 나름의 비행 방법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방법을 (영원한 기도)라 부르건 (천계와의 만남)이라 부르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133. 점성술

 한 사람의 운명이 변화하려면 황도 12궁을 다 거쳐야 한다. 동양의 몇몇 전승에 따르면, 12궁의 각 별자리에서 적어도 열두 번 씩, 통틀어 144번의 환생을 거쳐야 운명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삶을 거침으로써 사람은 각 별자리에 속한 모든 선조들의 삶을 두루 겪어 보게 되고 인생 역정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인격을 다 경험하게 된다. 순수한 영혼이 되려면 모든 종류의 성격과 모든 형태의 삶을 겪어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144번의 환생만으로는 부족하다. 석가모니 같은 이도 해탈을 하기 전에 5백 번의 환생을 경험했다고 하니, 우리네 중생의 대부분은 천 번째 환생에서 2천 번째 환생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정성술에서는 황도 12궁을 시계 숫자판의 열두 시간에 비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침은 우리의 별자리를 가리키고 분침은 우리의 선조를 가리킨다. 시침과 분침이 함께 우리의 현생이 치러야 할 업보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겪어야 할 (총체적인) 삶 가운데에서 몇 시 몇 분에 도달해 있는 것일까?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34. 국제화

 뤼생데르 대통령이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의 성과를 너무 조급하게 홍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마 교황은 교조주의적 여러 교단과 마찬가지로 수도 생활에 영계 탐사가 끼여드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라울이 그것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자, 대통령은 어쨌든 우리 실험을 흉내내다가 이미 백여 명의 성직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반박했다. 라울은 그들이 신앙의 힘에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영계 탐사의 과학적인 조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뤼생데르는 그의 주장에 수긍하는 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가 종교계의 반응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음은 분명했다. 21세기 중엽을 살면서도 성직자들의 힘은 여전히 그에게 두려움을 주는 모양이었다.

 뷔트 쇼몽의 타나토드롬에서 우리의 영계 탐사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했다. 스테파니아는 척추를 아주 곧게 세우고 등을 받치며 턱을 가슴에 붙이고 어깨를 활짝 편 자세를 유지할 때, 비행이 더 잘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에 따라 우리는 그런 인체 공학적 자세를 강요하는 스웨덴 식 의자를 본따 새로운 의자를 만들었다.

 우리는 또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하여 의자 둘레에 유리돔을 설치했다. 실제로 한창 비행 중인 타나토노트를 어떤 사람이 무심코 방해하는 바람에 은빛 중이 오므라들기 전에 끊어져 저리는 것이었다. 전화벨 소리나 한 줄기 바람 때문에 문이 꽝 닫히는 소리가 그대로 타나토노트를 황천객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그런 짓은 절대로 장난삼아 할 일이 못 된다)

 우리는 비행을 한층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고급 음향 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 종교 음악을 들으며 영혼이 기분 좋게 비행하도록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훌륭한 의상 디자이너와 전자 공학자가 협력해서 타나토노트에게 아주 편안한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럼으로써 타나토노트의 복장은 운동선수들의 보온복이나 턱시도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옷은 스킨 다이버의 복장과 비슷했다. 우리는 그 복장의 빛깔을 흰색으로 결정했다.

 그 아이디어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의 여러 타나토드롬에서 그 복장을 흉내냈다. 일본인들은 검은색, 미국인들은 보라색, 영국인들은 빨간색을 선택했다. 신문의 사진 기자들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워 했다.

 옷 색깔을 결정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각자 자기들의 휘장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타나토드롬은 점점 작아지는 불꽃 동그라미들 사이를 통과하는 불사조를 휘장으로 정했다.

 각 타나토드롬마다 자기들의 종교적·문화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의식과 휘장을 가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탐탐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예복을 입고 비행에 나섰다. 그들의 휘장에는 코끼리, 표범, 앵무새 따위가 들어갔다. 자마이카 사람들은 레게음악과 마리화나를,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와 보드까를 애용했다. 또 페루 사람들은 매혹적인 팬플루트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코카 잎을 씹으며 날아올랐다. 그들의 문장은 고대 잉카의 데스 마스크였다.

 국제적인 명승을 얻은 선수들이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곤 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었다. 세계의 도박사들이 누가 가장 먼저 두 번째 코마 장벽을 넘을 것인가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스페인 선수(황소 머리 휘장)는 미국 선수(독수리 머리 휘장)에게 12대 1의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기억 방울에 관한 증인들이 쌓이고 있었다. 저마다 다르고 한결같이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의 판매 부수가 급증했다.

 어머니와 형은 (메이드 인 뷔트 쇼몽)이라는 딱지를 붙여 이륙용 의자를 팔았고, 간과 신장에 전혀 해가 없도록 내가 개발한 플라시보적 처방을 바탕으로 부스터를 상품화했으며, 비행복과 전기 변환기도 팔았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영계 탐사의 유행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갈수록 안락해지고 간편해졌다. 방음 돔을 갖춘 의자와 비행복 덕분에 누구나 저승을 다녀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135. 켈트 신화

 켈트 신화에 따르면, 아일랜드에는 켈트 사람들이 와서 터를 잡기 전에, 쑤아하 데이 다난60)이라는 신족(귀신 신, 겨레 족)이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쑤아하 데이 다난은 다나 여신의 자손들로서 세계의 북단에 있는 섬들에 살다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검은 구름을 타고 공중을 날아서 아일랜드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섬의 지배권을 놓고 악신(惡神) 부족인 포모레와 전투를 벌였다. 애꾸눈에 외다리인 포모레는 전투에 패하여 호수, 수렁, 우물, 따위의 깊숙한 곳으로 도망쳤다. 쑤아하 데이 다난은 오랫동안 아일랜드를 지배하다가 지상 세계를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지하 세계에 살면서 요정들을 지배하였다. 그들은 그 지하 세계를 시(평화) 또는 티르 나 노그(청춘의 나라)라고 불렀다. 그들은 거기에서 마력을 지상으로 보내 사람들이 개화하도록 도와 주었다. 켈트 족의 제사장 하나가 그들의 도움을 청하러 가자 그들은 마력을 지닌 네 가지 신보(神寶)를 내주었다. 그 네 가지 신보란, 어떠한 대군(大軍)이라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다그다 신의 가마솥, 살짝 스치기만 해도 적을 죽일 수 있는 루그 신의 창, 일단 칼집에서 나왔다 하면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는 누아다 신의 검, 그리고 아일랜드의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발을 올려놓으면 외침소리를 내어 그가 왕임을 알려 주는 팔신의 성석(聖石)이 그것이었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36. 두 번째 코마 장벽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모흐 2는 넘지 못할 장벽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 선종의 승려 수쿠미 유카가 모흐 2에 닿는 데 성공했으며 붉은빛 뒤에서 뭔가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뭔가를 (게이샤(藝者)와 비슷하다)고 묘사했다. 참선을 하는 사람 입에서 나온 소리치고는 썩 기이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기를 거부하고 곧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러 다시 떠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의 두 번째 비행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동료들이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몸에서 전극을 떼어내고 살펴보니, 그는 성행위를 하려는 사람처럼 몸을 긴장시킨 채 정액을 질펀하게 싸 놓고 죽어 있었다.

 그 사실은 극비에 붙여졌다. 사람들이 저승에서 영원한 성적 쾌락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날이면 영계 탐사 때문에 다시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길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그곳에 다녀와서 더욱 자세한 보고를 해줄 타나토노트를 에타게 기다렸다. 드디어 그 사람이 나타났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인 라지브 뱅투였다. 그는 자기가 겪은 일을 책으로 썼다. (신대륙) 출판사에서 나온 "끝에서 더 가까운 곳"이라는 그의 책은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옛날에 펠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라지브 뱅투도 성공의 함정에 빠졌다. 그는 더 이상 자기의 영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륙을 하기 위해 그는 하시시를 사용해야 했고 돌아와서는 아무 것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파리 타나토드롬은 그를 맞아들일 기회를 영영 갖지 못했다. 마지막 실험에서, 그의 팀은 45분 넘게 헛되이 기다란 끝에 그의 영혼이 영원히 떠나 버렸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그의 시신을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시신은 지금도 포르말린 속에 잘 보관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그의 증언을 직접 듣는 대신, 그의 책에 실린 시를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붉은 색으로 가득 찬, 모흐 2 너머의 색정적인 천계를 묘사한 시였다.

 "끝에서 더 가까운 곳"의 한 대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아,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라.

 두 번째 코마 장벽 너머에 세계가 있을 줄 뉘 알았으리.

 쾌락의 정화(쌇은 쓸 정, 꽃 화)들이 연못을 덮은 수련과 같았다.

 그 수련들이 영계 탐사의 신기원을 예고하는도다!

 각각의 비행은 사랑의 오르가슴과 같을 것이고,

 그 세계를 정복함으로써 "카마 수트라"의 속편을 쓸 수 있으리라.

 "카마 수트라"는 쾌락 세계의 첫 장일 뿐,

 죽음은 우리에게 백 권의 책을 약속한다.

 아,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라.

 저승이 그런 곳인 줄 뉘 알았으리.

 그렇듯, 우리 영혼은 황홀경에서 최후를 맞는다.

 우리, 고통 속에서 태어났으니

 그 어찌 지당한 일이 아닐소냐.)

 세 달이 지나자, 사망자 명부는 더 길어졌다. 종교들마다 영계 탐사 수도자들을 모집해서 저승학의 제단 위에 그들을 제물로 바쳤다. 모든 종교들이 영계 탐사에 자존심을 걸고 있었다. 세계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자기들 것만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했던 것이다. 영계 탐사를 종교 행사의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갖가지 수단이 동원되었다. 따지고 보면, 영계 탐사를 떠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늘 나라로 다가가는 것보다 더 종교적인 행위는 없는 셈이었다.

 파리의 사크레 쾨르 성당이나 이집트의 케호프 피라미드로부터 영계 탐사를 떠나는 일이 생김으로써, 상황은 바야흐로 (종교적인) 국면에 들어서고 있었다.

 모흐 2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곳이 (쾌락이 충만한 붉은 천계)라는 것뿐이었다. 스테파니아는 거기에 가고 싶다는 조바심을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많은 명상을 하고 호흡과 심장 고동 조절 훈련을 숱하게 쌓은 끝에, 8월 27일 오후 5시, 스테파니아는 마침내 모흐 2를 넘는 데 성공했다. 많은 노력과 강한 의지가 올린 개가였다.

 스테파니아는 교성을 지르면서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났다. 얼굴은 아주 발갛고 맥이 심하게 뛰고 있었다.

 "우와!"

 그녀가 여전히 덜 떠 있는 상태에서 내뱉은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라울이 그녀의 이야기를 더 잘 들으려고 몸을 기울이자, 스테파니아는 느닷없이 그의 목을 잡고 입술을 진하게 포개었다. 라울은 별로 거스르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망딘의 짙푸른 눈에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면서 어두운 빛이 감돌았다.

 "자, 얘기해 봐요"

 라울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와, 정말 굉장해요. 두 번째 장벽 너머에 섹스, 쾌락, 환희가 있어요. 엄청난 오르가슴, 대향연, 정말 기가 막혀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스테파니아는 오로지 인상만을 말하고 있었다. (절대적 쾌락)이라는 말이 몇 차례나 되풀이되었다. (쾌락, 환희, 황홀경), 그런 말에서 강렬한 성적 쾌감을 맛보기 위하여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진하게 묻어났다.

 우리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스테파니아는 여전히 같은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곳의 느낌은 오르가슴의 천 제곱쯤 되고 모든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는 듯했다고 했다. 마약으로도, 또 자기가 살을 섞은 그 어떤 사내하고도 그렇게 강렬하고 다채로운 느낌은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꿈에서 해골 가면을 든 하얀 사탱 옷의 연인을 만났다. 죽음이 스타킹 고정 벨트를 맨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에게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저승에 온갖 쾌락이 있다니.

 

 137. 운우지락(雲雨之樂)

 우리는 타이 식당에 모여 있었다. 스테파니아가 여전히 농염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녀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낮추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어떤 선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지 뭇사내들의 눈길이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비단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그녀를 흘깃거리고 있었다. 아망딘마저도 더 이상 스테파니아의 쉰 듯한 음성과 황홀감에 젖은 말에 태연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스테파니아는 오로지 쾌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쾌락! 이승에서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주요한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이 쾌락일까?

 스테파니아는 바스마티 쌀로 지은 밥을 몇 접시 비우고 나서야 차분해졌고, 우리 펜트하우스로 돌아왔을 때는 과학적인 태도를 되찾고 영계 지도를 보완하는 작업에 기꺼이 착수했다.

 (코마 플러스 24분)쯤 되는 곳에서 모흐 2를 넘으니, 갑자기 쾌적한 느낌이 밀려왔다고 했다. 청색계, 암흑계 다음에 적색계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곳은 한마디로 쾌락의 구역이었다.

 "흥분한 타나토노트는 빛을 향해 더욱 빨리 날아가고, 붉은 터널의 내벽은 벨벳처럼 부드러워요, 영혼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와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지요. 경이롭기 그지없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마음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가장 내밀한 환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테파니아가 꿈꾸었던 남자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녀가 유혹할 수 없었던 그들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음란한 제안을 되풀이했다. 스테파니아는 그들과 함께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색정적인 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섹스가 전부는 아니었다. 늘 먹어 보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림 속의 떡이었던 음식들을 그녀는 마음껏 맛보았다.

 스테파니아는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욕망들이 자기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여자들도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애무로 그녀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런 환락을 포기하고 타나토드롬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스테파니아는 라마교의 경을 아주 열심히 외어야 했고, 자기의 의지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다. 스테파니아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알기 위하여 아래 세상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알아낸 것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코마 장벽, 즉 모흐 3이 있다는 것이었다.

 스테파니아는 영계 지도를 잡더니, (제 3 천계에 이르는 듯함)이라는 말을 지우고, 글씨 쓰기에 몰두한 학동처럼 혀를 살짝 내민 채 다음과 같이 썼다.

 제3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24분.

 빛깔: 빨강.

 느낌: 기쁨, 불. 따뜻하고 습기가 있는 구역으로 영혼은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환영들과 마주친다. 우리 욕망 가운데 가장 은밀한 것들이 드러나는 패륜적인 구역이기도 하다. 그 욕망들을 외면하지 말고 직수굿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끈적거리는 내벽에 달라붙어 있게 된다. 빛은 우리 앞에 여전히 있다. 마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를 일깨우려는 듯하다.

 끝나는 곳: 모흐 3.

 그 일이 있을 다음에 타나토드롬의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주홍빛 나라에서 관능이 격앙되어 돌아온 스테파니아는 라울에게 노골적으로 달라붙었다. 그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라울은 이미 처음 만나던 때부터 그 이탈리아 여자의 풍만함에 매료되었음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망딘과 무슨 일인가를 벌이고 있을 때와는 달리, 라울은 둘의 관계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이륙실의 화장실을 마음놓고 드나들기도 어려워졌다. 운우지락에 빠져 있는 두 남녀를 방해하지나 않을까 싶어서였다. 낭패감에 빠진 아망딘은 언제나 그랬듯이 위안과 격려를 받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다. 서로 얼싸안고 있는 두 연인과 마주치기가 십상인 랑베르 씨 식당을 피해서 어느 날 저녁 그녀가 불쑥 내 아파트에 나타난 것이다. 냉장고 안에 계란이 몇 개 있기에 나는 부랴부랴 염교 줄기를 넣은 오믈렛을 만들었다. 요리에는 손방인지라 오믈렛을 약간 태웠지만, 아망딘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카엘,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별로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부주의하게 오믈렛 속에 떨어뜨린 달걀 껍질 몇 조각을 슬쩍 주워냈다.

 나는 내 접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두 개를 골라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아망딘은 반사적으로 식탁에 앉았다.

 나는 오믈렛을 정성스럽게 두 쪽으로 갈랐다. 아망딘은 자기 접시를 오도카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 먹어요? 맛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망친 건 아니에요."

 "아주 맛있어 보여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밥 생각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말끝에 한숨이 묻어 나왔다. 아망딘은 내 손을 잡고, 주인에게 버림받고 비를 맞은 개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내 사랑 얘기로 당신을 괴롭혀서..."

 슬픔에 젖어 있는 아망딘은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날 밤, 나는 그녀와 라울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아주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들어 주어야 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라울은 무척 따뜻하고 진취성이 넘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아망딘은 라울이 평생 고락을 같이 할 만한 남자이며 그렇게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스테파니아는 한때의 사랑이고 결국 그는 아망딘에게로 돌아갈 거라고 말해 주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라울은 도대체 어떤 사내이길래, 미칠 듯이 사랑해도 부족할 저 여인을, 짙푸른 눈을 가진 저토록 고운 여인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육덕 좋고 사날 좋은 그 이탈리아 여자가 그토록 마음에 들더란 말인가.

 "미카엘,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면 뭐 하랴. 그녀의 영기(靈氣) 속에는 내 것과 공명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을. 아망딘은 나를 친구로, 아니 중성의 동료로 바라볼 뿐이었다. 격앙된 내 욕망이 오히려 그녀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었던 건 아닌지. 활화산처럼 터질 것 같은 내 열정의 결과를 예감하고

그녀가 겁을 먹고 있었던 건 아닌지.

 "미카엘, 당신 참 좋은 사람이에요. 오늘 밤 당신과 자고 싶어요. 그렇게 해줄 거죠? 차가운 시트 속에 혼자 있다는 게 싫어요."

 처음엔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다음엔 얼굴이 화끈거리고 기침이 나왔다.

 "좋아요."

 나는 면으로 된 잠옷으로 갈아입고 목까지 단추를 채웠다. 아망딘은 비단 슬립 차림이었다. 반드르르한 살결, 이끼와 용연향 냄새를 풍기는 야릿한 몸이 느껴졌다. 애가 달았다. 일찍이 어떤 여인도 내 마음을 그토록 심하게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몸을 떨면서, 나는 그녀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야드르르한 살갗에 손이 닿았다.

 내 시트 속에 다소곳하게 웅크리고 있는 아망딘은 쾌락이 약속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머릿속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두 번째로 손을 움직이고 나니, 스테파니아가 모흐 2 너머에서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뭔가가 격렬하게 터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골밑샘에서 나오는 어떤 분비물이 그런 고통의 느낌을 갖게 하는 모양이었다. 내 손가락들이 그 아슬아슬한 길 위를 몇 걸음 더 걸었다.

 아망딘은 내 손을 잡더니, 미안하다는 듯 생긋 웃으며 밀어냈다.

 "아름다운 우리 우정을 깨뜨리지 말기로 해요. 당신은 둘도 없는 내 친구예요. 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속삭이는 듯한 아망딘의 목소리가 귓전을 어지러이 맴돌았다.

 

 138. 요가의 가르침

 사람의 몸에는 다음과 같이 일곱 군데에 샤크라, 즉 활력점(活力占)이 있다.

 제1 샤크라: 음부, 꽁무니뼈 및 항문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몸이 건강하면 거기에서 생기가 나온다.

 제2 샤크라: 배꼽 바로 아래 있다. 몸이 건강하면 거기에서 활력이 나온다.

 제3 샤크라: 태양신경절 아래에 있다. 몸이 건강할 때 그것은 지구와 우주의 기(기운 기)를 몸 안에 들어오게 한다.

 제4 샤크라: 태양신경절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몸이 건강할 때 그것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제5 샤크라: 목 아래쪽에 있다. 몸이 건강하면 그것은 의사소통을 아주 원활하게 해준다.

 제6 샤크라: 양미간에 있다. 몸이 건강할 때 그것은 자기 내부의 기를 느끼게 해주고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제7 샤크라: 정수리에 있다. 몸이 건강할 때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즉각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준다.

 - "하타 요가"61)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39. 비난받는 스테파니아

 기자들이 스테파니아와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도 성화를 대는 통에, 어머니가 기자 회견을 주선했다. 회견 장소는 그런 때를 대비해서 뷔트 쇼몽 타나토드롬에 마련해 놓은 방이었다. 어머니는 선정적인 잡지나 포르노 잡지를 대표해서 나온 기자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악역을 자청해서 맡았다. (우리 스테파니아가 지저분한 잡지의 표지에 실리면 곤란해) 하고 어머니는 성난 음성으로 중얼거리셨다.

 대스타인 우리의 타나토노트가 연단 위에 자리를 잡았다. 15분이 넘도록 그녀를 기다린 참석자들이 그녀의 첫마디에 경악하고 말았다. 스테파니아는 두 번째 장벽 너머에서 겪은 쾌락에 대해 이야기를 할 터인데, 그 이야기는 오로지 귀가 열려 있는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서두를 꺼냈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기자들은 자기들의 금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 일색이었다.

 "먼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감추어진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스테파니아는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었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위선에 찬 성적 소심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웃음이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항의의 뜻을 담아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스테파니아가 쓸데없이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며 아주 못 마땅해하셨다. "다음번엔 오라고 사정을 해도 기자들이 안 올 거야. 그래서는 장사에 도움이 안 돼"라고 말씀하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열락으로 가득 찬 천계를 발견한 것은 너무 중대한 사건이라서 언제까지고 비밀이 유지될 수는 없었다. 소문은 벌써 나 있었고 자세한 정보가 없던 탓에 공론만 더욱 무성해 져 있었다.

 보수적인 정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교조주의적인 교단들이 우리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우리 타나토드롬의 정문에 (마녀 소굴)이라는 표지판이 나붙고, 그 앞에 격분한 시위자들이 끊을 새 없이 몰려들어 (음란 행위 중단하라!), (논다니집 문 닫아라!), (죽음은 매음굴이 아니다!) 따위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흔들어댔다.

 스테파니아는 그 반대자들과 말싸움을 벌이려고 했다. 주먹을 휘두르는 성난 군중을 향해 그녀가 소리쳤다.

 "저는 죽음이 매음굴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영계에 있는 여러 구역 중 한 곳이 쾌락에 차 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 장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우리에겐 아직 알아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입 닥쳐! 넌 저주받은 계집이야!"

 옷에 장식 단추를 단 아주 근엄하게 생긴 노신사가 부르짖었다. 노인이 그녀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라울과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 언쟁이 시가전으로 번질 기세였다. (우리 둘이 바보들을 물리치는거야)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경찰이 개입을 결정하기까지 군중의 뭇매를 맞은 끝에 내 몸은 온통 시퍼런 멍으로 뒤덮였다.

 뤼생데르 대통령이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자네들, 내 얘기를 뭘로 들은 거야! 신중하라고, 언제나 신중을 기하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은. 행복하게 살려면 다들 숨어 지내야 할거야. 우리 때문에 화난 사람들이 많은 게 분명하네. 교황이 우리를 질책하는 교서를 내리고, 모든 종교의 고위 성직자들이 나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네."

 그 말에 스테파니아가 큰소리로 맞섰다.

 "그들이 다 소심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진실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장벽들을 다 넘으면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어요. 도대체 교황 성하가 뭘 걱정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낙태와 사제들의 혼인을 지지하는 신이라도 만나게 될까봐 그러시나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분간은 우리가 아직 하느님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라네. 그리고 교황청은 1377 년에 만들어진 기구임에 반해, 영계 탐사는 겨우 몇 개월의 경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명심하게."

 스테파니아는 적이건 친구건 자기가 가는 길을 막을 사람은 없다는 듯, 당당한 기세로 일어섰다.

 "각하, 설마 한 줌밖에 안 되는 편협한 사람들 앞에서 굽신거리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정치에서는 양보하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하네. 게다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양보도 타협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지와 싸우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탐사를 계속해야 합니다.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점이 바로 인간의 첫 번째 특성입니다."

 스테파니아의 칼로 벤 듯한 말에 대통령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가 스테파니아와 마주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통령은 우리의 성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죽음의 세계를 넘나들려면 불굴의 의지가 필요한데, 이 작고 통통한 여자가 그런 의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어떤 공권력도, 어떤 도덕적, 종교적 권위도 그녀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대통령은 경외심을 가지고 그녀에게 인사를 보냈다.

 대통령의 간섭은 도리어 스테파니아를 기자들 앞에서 더 수다스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모든 욕망과 모든 환락이 구현되는 제3 천계에서 자기가 어떤 기쁨을 누렸는지 생생하게 증언했다.

 시위가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재개되었다. 교황청은 가톨릭 신자들이 영계 탐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신자에겐 파문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교황은 (에트 모르티스 미스테리움 사크룸)62)이라는 제목의 교서를 통해 영계 탐사가 금기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살아 있는 자가 죽기 전에 저승으로 가는 것은 이제 하느님의 법을 크게 거스르는 죄로 다루어질 것이었다.

 바티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단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칠 때,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혜를 일깨우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자)고 맞받았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태연하게 굴었지만, 뤼생데르 대통령은 그런 소란을 가볍게 여길 처지가 아니었다. 교회는 여전히 국민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뤼생데르는 다음 선거를 위해서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스테파니아는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의 문턱 너머에 환락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나쁠 게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샌님들이 그곳을 색주가로 여기는 것은 유감 천만한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스테파니아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처신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자신 있는 태도를 견지하기가 어려웠다.

 


34) 프랑스의 기술자. 발명가(1841~1925). 1890 년에 공기보다 더 무거운 기구를 발명하여, 그것을 타고 공중을 나는 데 성공했다. 그 기구에 붙인 (아비옹)이라는 이름이 비행기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보통 명사가 되었다.

35) 에스파냐 인들이 마야를 정복한 직후(1550년 무렵)에, 마야어의 하나인 키체어로 쓰인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시(시 시), 세계의 기원과 마야 인들의 종교적 전승을 다루고 있다.

36) 티벳의 유명한 비학서(祕學書). 8세기 무렵에 처음 쓰인 후, 여러 차례 개작되었다. 죽음에서 환생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의 넋이 거쳐야 할 행로와 무의식의 악마들과 싸우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37) 산스크리트어로 된 7부 48,000행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란 라마 행전(行傳)이라는 뜻으로, 마왕 라바나가 납치해 간 시타 왕비를 구하기 위해 코살라 국의 왕 라마가 벌이는 영웅적인 모험을 주제로 삼고 있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 틀을 갖춘 라마 왕의 전설을 토대로 기원후 5세기 무렵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8) 방중술(방 방, 가운데 중, 꾀 술)에 관한, 인도의 철학적 문헌. 4세기 말에 완성됨.

39) 지자불언, 언자불지(知者不言, 言者弗知) "노자" 하편 덕경 56장.

40) 옛날 파리 변두리에 있던 장소의 이름. 12세기에 사형장이 만들어져 17세기까지 이용되었다.

41) 몰록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셈 족의 신(레위기 18:21, 20:2--5, 열왕기 23:10, 예레미야 32:35). 그 신을 떠받드는 자들은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

42) (모흐 Moch)라는 말은 초음속의 단위인 (마흐 Mach)와 죽음을 뜻하는 프랑스어 (모흐 mort)를 동시에 연상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듯하다.

43) 정확하게는 "하가쿠레 기키가키(葉隴聞書)". 일본에도 막부 시대 좌가번(佐袈藩)의 무사인

야마모토(山本床朝)가 구술하고 쓰라모토(陣基)가 기록. 번내 또는 번외 무사의 언행을 비판함으로써 무사의 도덕을 가르친 책. 11권. 1716 년(정보: 정자 정, 지킬 보, 1년) 완성.

44) (반투)는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카메룬의 두알라에서 케냐의 타나 강어귀를 잇는 선의 남쪽에 살면서 반투 어라는 동일 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45) 네르발(1808~1855):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19 세기에 "파우스트"를 번역하여 원작자 괴테의 칭찬을 받은 것을 필두로, 시·소설·희곡·기행 등 여러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천재적이고 정열적인 작가.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만년에는 고대의 종교와 신화에 관한 지식과 자신이 체험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광상(미칠 광, 생각할 상) 시집", 소설 "오렐리아, 꿈의 삶" 등의 걸작을 남기고 목을 매어 자살했다.

46) "장자" 내편 제일 소요유(逍遙遊)

47)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머리카락이 뱀으로 되어 있고 보는 사람을 돌로 바꾸어 버린다는 세 자매.

48) 그리스 신화에서 지옥의 문지기 구실을 하는 개로 머리가 셋이고 뱀처럼 목을 곧추세우고 있다고 했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영혼에 대한 일곱 가지 큰 죄 가운데 하나인 폭음·폭식의 결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49) 미국의 괴기·공포 소설 작가(1890~1937). 괴력을 지닌 외계인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공포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인간의 지각에 낯선 현실을 제시하고, 그런 현실과 마주했을 때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크툴루의 부름",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광기 어린 산" 등이 있다.

50)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 몸뚱이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괴물. 그리폰 또는 그리핀이라고도 함.

5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통은 양, 꼬리는 용 또는 뱀 모양을 한 괴물.

52)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

53) Corriere Della Sera. (저녁 신문)이라는 뜻.

54) 스파게티보다 가는 국수.

55) 커다란 리본 모양으로 만드는 이탈리아식 파이.

56) 옥수수 가루 따위로 쑨 죽.

57) 요가는 어떤 수련 방법과 철학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여섯 가지로 나뉘는데, 라자 요가는 심리적 통제의 수련 방법을 중심으로 삼는다.

58) 라틴어 이름은 Hieronymus(347?~420). 기독교의 성인, 성경학자.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 라틴어 역 성경인 "불가타 Vulhata"의 번역자.

59)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원래 이름은 티치아노 베첼리오인데, 대개 티치아노라고만 부름.

60) 태고적 황금시대에 아일랜드의 선주(먼저 선, 주인 주) 종족인 악신의 무리 포모레들을 물리치고 그 섬을 오랜 세월 지배하다가 아일랜드의 선조에게 지배권을 넘겨주었다는 신족(神族). 다나 또는 다누 여신이 그 신족의 어머니이다.

61) 요가의 한 유파. 음양을 조화시켜 육체의 고통과 생리적 이상을 해소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되찾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62) Et mortis mysterium sacrum. 죽음의 신비로움과 거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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