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노트(Les Thanatonautes)
Bernard Werber
사전
타나토노트 : 그리스어 타나토스(thanatos, 죽음)와 나우테스(nautes, 항행자)를 합친 말. 저승을 항행하는 자. 영계 탐사자.
역사 교과서
기억해야 할 연도
1492: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1969: 달에 첫발을 내디딤
2062: 사자들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2068: 영계에 첫 상품 광고 등장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제1기 암중모색의 시기
1. 역사 교과서
옛날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였다.
단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 효과음처럼 죽음은 언제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구나 온갖 몸짓이 끝나고 나면 자기의 소멸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고뇌 앞에서는 모든 즐거움이 물거품이 되었다.
20세기 말에 우디 앨런이라는 미국의 철학자1)는 그 시대를 풍미하던 정신적인 분위기를 이런 문장으로 표현했다.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을 알기에, 인간은 진정으로 느긋할 수 없으리라."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2. 미카엘의 일기
내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게 가당한 일인가?
지금에 와서 얼마간 여유를 갖고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아도, 그때 일을 실제로 벌어진 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내가 그런 엄청난 모험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더구나 그 모험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증언까지 하고 있다는 게 그저 꿈만 같다.
그 모든 일이 그토록 빨리 진척되고 그렇게 멀리까지 나아가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누구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무슨 귀신이 씌었길래, 우리가 그런 광기 어린 모험에 뛰어들었던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흔히들 호기심이라고 부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발짝만 더 가면 협곡으로 추락할 줄 알면서도, 추락할 때의 그 기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고 싶어서 낭떠러지로 몸을 내밀게 만드는 그런 호기심 말이다.
거기에다 갈수록 신명이 줄어들고 정열이 식어 가는 세상을 살면서, 모험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일었던 사정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다 팔자소관이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로 예정되어 있던 일이 그대로 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선택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사람이 진다. 그 선택이 운명을 설계하는 것이고, 어쩌면 우주의 윤곽까지도 그려나가는 것이리라.
나는 그간에 겪은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 대모험과 관련된 일화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표현 하나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내가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가당한 일인가?
잘 모르겠다. 동전을 던져서 하늘의 뜻을 묻기로 하자. 숫자가 새겨진 뒷면이 나오면 이야기를 하고, 앞면이 나오면 비밀을 지키기로 한다.
뒷면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 모든 사건들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나의 과거로 멀리,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성명: 미카엘 팽송
모발: 갈색
안구: 갈색
신장: 1m 75cm
외모의 특징: 없음
특기 사항: 영계 탐사 운동의 개척자
약점: 자신감 결여
4. 뒤퐁 씨네 가게 고기는 뭐든지 맛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나 다 그렇듯이 나에게도 "죽음의 날", 즉 죽음을 처음으로 발견한 날이 있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나에게 처음으로 일깨워 준 사람은 바로 시체와 더불어 사는 일에 이골이 나 있던 어떤 남자였다. 그는 우리 동네 고깃집 주인인 뒤퐁 씨였다. 그 가게 진열창에는 "뒤퐁 씨네 가게 고기는 뭐든지 맛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커다란 글씨로 씌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일요일에 먹을 등심을 사야겠는데 이젠 뒤퐁 씨네 가게에 갈 수 없게 되었다면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가게에 걸려 있던 커다란 샤롤레2)의 시체가 갑자기 떨어지는 바람에 거기에 깔려 죽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네 살 나던 해의 일이지 싶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죽는다"는 게 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무척 곤혹스러워 하시는 듯했다. 언젠가 내가 어머니의 피임약을 들어 보이며 그걸 먹으면 내 기침이 나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하시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문을 여셨다.
"음, 그러니까, 죽는다는 건 (더 이상 여기에 없게 된다)는 뜻이란다.
"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말인가요?"
"단지 방에서 나가는 건 아니고 집이랑 도시랑 나라마저도 떠나가는 거란다."
"그럼, 멀리 여행을 가는 거군요? 바캉스를 떠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음, 아니. 그렇게는 말할 수 없어.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거든."
"움직이지 않으면서 멀리 간단 말이에요? 야 그거 대단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고깃집 주인 뒤퐁 씨의 죽음을 설명하려던 어머니의 그 어설픈 시도 때문에 죽음에 관한 호기심의 토양이 내게 마련되었을 것이고, 훗날 라울 라조르박이라는 친구가 나타나 그 토양에 광기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울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 생각은 그러하다.
뒤퐁 씨가 죽은 뒤 석 달쯤 지나서, 이번에는 나의 증조모인 아글라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는 대뜸 이렇게 말했던 듯하다.
"아글라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힘도 없는 할머니가 어떻게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지?"
화가 난 증조부는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 녀석아, 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다. 그것도 모르니?"
사실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다.
"아, 그래요. 몰랐어요..."
나는 우물거렸다.
"그런 끔찍한 일을 가지고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야. 세상엔 장난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죽음이 바로 그런 거야."
할아버지는 그런 말을 덧붙여 내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셨다.
증조부 다음엔 아버지가 나서서 나를 나무라셨다. 어른들은 모두 죽음이 절대적인 금기라는 사실을 나에게 일깨우고 싶어했다. 죽음은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설사 그 말을 꺼내더라도 경외심을 갖고 말해야 하며, 쓸데없이 그것을 입에 올리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이런 말로 나를 꾸짖기도 했다.
"아글라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아주 슬픈 일이야. 그런데 넌 울지 않는구나. 조금도 슬프지 않은 게로구나."
아닌 게 아니라 새벽부터 나의 형 콩라드는 욕실에 걸어 놓은 목욕 수건처럼 눈물을 떨구어 대고 있었다.
"아하, 사람이 죽으면 울어야 되나 보죠?"
아무도 그런 얘기를 나에게 해준 적이 없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뻔한 얘기라도 삼척동자에게는 해주는 게 더 좋을 터인데 말이다.
철없이 야기죽거리는 내 태도를 참을 수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그랬는지, 아버지는 기어이 나에게 따귀 두 대를 안기셨다. 그 따귀 두 대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마음속에 꼭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첫째는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이고, 그 둘째는 (죽음을 들먹이며 농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는 것이었다.
"너는 왜 아까 울지 않았니?"
아글라에 할머니의 장례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그 일을 다시 초들며 물으셨다.
"내버려 두세요. 미카엘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에요. 죽음이 뭔지나 알겠어요?"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두둔하셨다.
"그걸 모를 리가 있나. 이 녀석은 아주 잘 알고 있는데도 오로지 제 생각만 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는 거야. 두고 보라고. 이 녀석은 우리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테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는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 뒤로 누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억지로 아주 슬픈 것을 생각해 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예를 들어, 끓는 물에 데친 시금치 따위를 생각해 냈다. 그러면 금방 눈물이 나왔고 모두들 내가 우는 것을 보고 흡족해했다.
증조모가 돌아가시고 두 해쯤 지나서 나는 직접 죽음과 맞닥뜨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직접)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번에는 죽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2월의 어느 맑고 볕 좋은 날에 일어났다. 2월의 날씨가 그렇게 화창했던 것은 그 전 1월 한 달이 아주 푸근했기 때문일 것이다. 푸근한 1월 다음에 화창한 2월이 뒤따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5. 죽음을 경험하다
"조심해!"
"어머, 저 일을 어째..."
"저런, 저런!"
"어머머, 쟤 좀 봐요... 운전 조심해요!"
"안돼애애애!!!"
급제동을 거는 긴 마찰음. 둔탁하고 탄력이 약간 느껴지는 충격.
나는 차도로 굴러간 공을 쫓아서 달리던 중이었다. 초록색 경주용 자동차 범퍼가 내 오금을 들이받았다. 살갗이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공중으로 튕겨 올라갔다.
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땅 위를 날고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벌어진 내 입속으로 몰려들었다. 저 아래에서는 길 가던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여자가 내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내 바지에서 피가 새어 나와 아스팔트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느린 동작 화면에서처럼 모든 동작이 낱낱으로 이어졌다. 나는 지붕과 비슷한 높이로 날았다. 지붕 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난생처음으로 내 머릿속에,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그 후로도 평생을 두고 그토록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었다.
공중에 떠 있던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전혀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영원한 질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진다. 나는 죽어가던 그 순간에 처음으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는 아주 높이 올라갔다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다시 떨어졌다. 내 어깨가 초록색 경주용 자동차의 엔진 덮개에 부딪혔다. 나는 다시 튀어 올랐다가 보도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고, 겁에 질린 얼굴들이 나를 들여다보았다.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나오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햇살이 조금씩 설핏해 지기 시작했다. 2월이지만 태양은 아직 수줍음이 많았다. 3월의 변덕 많은 날씨처럼 찬비라도 한줄기 퍼부을 기세였다. 하늘이 차츰 어두워졌다. 나는 곧 어둠과 정적 속에 잠겨버렸다. 냄새도, 감각도, 아무것도 없었다. 막이 내렸다.
겨우 일곱 살이었던 나는 바야흐로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6. 공익 광고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인생을 헐뜯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인생을 상품에 비유하자면, 3백만 년 전부터 700억 이상의 사람들이 시험하고 인정한 상품과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상은 (생명 진흥청)에서 전하는 말씀입니다.
7. 역사 교과서
영계 탐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죽음은 인류의 주요한 금기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고 여러 가지 심리적 방법을 동원했다. 그 심리적 방법은 지금 우리가 보기엔 한낱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의 계기판 쪽에 성(성스러울 성) 크리스토프3)의 초상이 새겨진 금속 메달을 걸어두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동차 사고로 숨지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1세기 전까지 사람들은 흔히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은 가장 커다란 크리스토프 성인의 초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8. 기사회생
나는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증조부의 생각은 옳지 않았다. 죽는다는 것은 그다지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그대로였다.
어둠과 정적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나는 눈을 떴다. 희부연 후광을 등진 가냘픈 실루엣이 나타났다. 천사가 틀림없었다.
천사는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천사가 여자를 닮았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 여자는 이승에서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여자는 금발이었고 갈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여자에게서 살구 냄새가 났다.
우리 주위는 온통 하얗고 고즈넉했다.
천사가 내게 미소를 짓고 있으니 나는 천국에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어...제...여리...꾸나."
천사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천사가 아닌 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들만의 언어였다.
"너...제...여리...려꾸나."
여자는 끈기 있게 그 단조로운 말을 되풀이하고 보드랍고 싱그러운 손으로, 사고를 당한 아이의 해반드르르한 이마를 쓰다듬었다.
"너...이제...열이... 다 내렸구나."
나는 무척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괜찮니? 내 말 알아듣겠어? 너 이젠 열이 없구나."
"여기가 어디에요? 천국인가요?"
"아니, 생루이 병원 소생과란다."
천사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말을 이었다.
"너는 죽은 게 아니야. 타박상을 좀 입었을 뿐이야. 공중에서 떨어질 때 자동차 엔진 덮개를 거쳐서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야. 그 덕분에 충격이 많이 줄어들었던 거란다. 무릎에 수술 자국은 남겠지만 그까짓 거야 사내애들에게는 흔히 있는 거 아니니?"
"내가 기절했었나요?"
"그래, 세 시간 동안 그랬어."
세 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다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감각도 없었다. 그 세 시간 동안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간호사는 내가 더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허리에 방석을 받쳐 주었다. 세 시간 동안 죽어 있었던 거나 마찬가진데, 그 동안 나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었다.
그런데 식구들이 병실에 들어오면서부터 나는 심한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상냥했고 내가 정말 숨을 거두기라도 했었던 것처럼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나 때문에 무척 걱정을 했노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식구들은 내가 죽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난 게 오히려 그들의 기대를 저버린 건 아닌가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죽었다면, 식구들은 나를 무척이나 그리워했을 것이고, 나는 일거에 모든 미덕을 다 갖춘 아이로 승격했을 텐데 말이다.
9. 경찰 기록
미카엘 팽송에 관한 심리 정보 조회
미카엘 팽송을 조사해 본 결과 전체적으로 정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억압적인 가정 분위기 때문에 생긴 약간의 심리적인 취약점이 드러난다. 피조사자는 늘 회의에 빠져 있다. 그는 가장 나중에 말하는 자가 언제나 옳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자기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편집증적인 성향을 약간 보이고 있다.
참고 사항: 미카엘 팽송의 부모는 그가 양자라는 사실을 당사자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밝혀서 도움이 될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0. 독수리
내가 삶 밖으로 여행을 다녀온 그 최초의 사건은 죽음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식구들이 두고두고 그 사건을 들먹이는 바람에, 그저 짜증의 원천이 되었을 뿐이다.
그 일을 겪고 한두 해가 지난 여덟, 아홉 살 무렵에, 나는 죽음에 대해 부쩍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번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배웠다.
특히 텔레비전이 죽음에 관해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매일 저녁 8시 뉴스 때마다 사망자에 관한 소식이 넘쳐났다. 흔히 전쟁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소식이 먼저 나왔다. 그들은 초록색과 붉은색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음에는 바캉스 길에서 죽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갖가지 요란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명인사들이 별세했다는 소식도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대개 번쩍거리는 장식을 단 옷을 입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은 뭐든지 실제의 삶에서 겪는 것보다 이해하기가 쉬웠다. 텔레비전은 죽음이 슬프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영상과 함께 장송곡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고 듣노라면 어린이나 바보 천치라도 슬픔을 느낄 만했다. 전사자들에게는 베토벤 교향곡 가운데 하나가 필수였고, 바캉스 길에서 죽을 사람들에겐 비발디의 짤막한 협주곡이, 마약을 지나치게 사용하다가 죽은 유명 연예인들에게는 모차르트의 느린 첼로곡이 제격이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스타가 죽고 나면 그의 음반이 불티나게 팔리고, 그의 영화가 텔레비전에서 되풀이해서 방영되었다. 그리고 모두들 그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마치 죽음이 그의 모든 죄를 씻어 주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일은 그들은 죽고 나서도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존 레논이나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의 가장 훌륭한 음반들은 그들이 죽은 뒤에 출시되었다.
그 무렵 나는 또 한 번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노르베르 삼촌의 장례식이었다. 장례 행렬 속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삼촌이 아주 멋진 사내였다고 말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느님은 언제나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신다)는 유명한 말을 들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여기 남아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못된 사람들인가?)
그 장례식에서 나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영구가 묘지를 향해 출발하자마자, 끓는 물에 데친 시금치 생각에 몰두했다. 시금치에다 멸치를 보탰더니 흐느낌이 더욱 격렬해졌다. 나의 형 콩라드마저도 나만큼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 도착하자마자, 내 눈물 메뉴에 내가 싫어하는 음식인 끓는 물에 데친 꽃양배추와 날것으로 먹는 새끼 양의 골을 추가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혐오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 혐오감 때문에 거의 실신할 정도였다. 모여 있던 사람들 속에서, (미카엘이 저렇게까지 노르베르 삼촌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는 줄은 몰랐어) 하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어머니는 내가 한 번도 노르베르 삼촌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슬퍼한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기만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미 장례식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비결, 즉 시금치, 멸치, 꽃양배추, 새끼 양의 골을 발견해 놓았던 것이다.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멋진 날이었다. 장례식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라울 라조르박을 처음으로 만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와 친지들이 노르베르 삼촌 무덤 앞에 모여 있을 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내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덤 위에 앉아 있는 독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독수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잠시 내게서 벗어난 틈을 타서- 사실 내 몫의 눈물을 다 흘려서 더 이상 할 일이 없기도 했다- ,나는 그 어두운 형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장대처럼 껑충한 사람이 하늘에 눈길을 박은 채 묘석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정중하게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거기에서 뭐하세요?"
대답이 없었다. 가까이 가보니, 독수리로 생각했던 그 거뭇한 형체는 어떤 사내아이였다. 그는 몸이 호리호리했고, 얼굴이 야윈 탓에 대모갑 테 안경 밑으로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의 길고 얄쌍한 손은 조용히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 거미처럼 바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사내아이는 고개를 낮추어 차분하고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차분함과 그윽함은 내 나이 또래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재우쳐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손 하나가 거미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그의 외투 북(북녘 북) 사면을 타고 올라가더니 길고 곧은 콧속으로 들어갔다.
"말 높이지 않아도 돼."
그는 위엄 있게 그렇게 말한 다음, 자기가 거기에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는 우리 아버지 무덤이야.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애쓰는 중이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를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런 장면에서는 누구라도 실소(잃을 실, 웃을 소)를 했을 것이다. 아버지 무덤에 앉아 아버지가 뭔가를 말해 주기를 기다리며 몇 시간씩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그 말라깽이 사내애의 모습이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네 이름이 뭐니?"
"라울 라조르박이야. 그냥 라울이라고 불러도 돼. 그럼 너는?"
"미카엘 팽송이야. 그냥 미카엘이라고 불러도 돼."
"팽송이라고? 이름은 방울새4)인데 너같이 생긴 새는 처음 본다. 넌 참 이상하게 생긴 새로구나."
그는 나의 첫인상을 그렇게 평했다. 나는 태연하게 굴려고 애썼다. 그런 미묘한 상황에서 써먹으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가르쳐 준 아주 적절한 말이 생각났다.
"사돈 남 말 하시네5)"
라울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11.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성명: 라울 라조르박
모발: 갈색
안구: 갈색
신장: 1m 90cm
외모의 특징: 안경을 쓰고 있음
특기 사항: 영계 탐사 운동의 개척자
약점: 자신감이 지나침
12. 우정
그 뒤로 라울과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만났다. 후리후리한 그의 옆모습을 보며 나란히 걷는 것이 무척 좋았다. 게다가 그는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미카엘, 우리는 너무 늦게 태어났어."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렇다는거야?"
"사람들이 이미 뭐든지 다 발명을 해놓았고, 어디든지 다 탐험을 해버렸기 때문이야. 발명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시대에 살았으면 좋겠어. 활과 화살을 발명하던 시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좋아. 그저 화약이나 전기 같은 것을 가장 먼저 발명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도 만족하며 살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이미 발견할 건 뭐든지 다 발견했어. 현실이 공상 과학 소설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있어. 이젠 발명가는 없고, 추종자들만 있어.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이 발견한 것을 개선하고 있을 뿐이야. 새로운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그런 환상적인 기분을 맛본 마지막 사람은 아마도 아인슈타인일 거야. 광속도가 항상 일정한 값을 갖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인슈타인이 느꼈을 그 짜릿한 기분을 상상해 봐."
"글쎄, 상상이 잘 안 되는데."
라울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미셸, 책 좀 더 읽는 게 좋겠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하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야.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게 아마 훨씬 좋을걸."
"지금 그 말도 어떤 책을 읽고 하는 얘기지?"
나는 그렇게 반박했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구실이 있는 법이다. 라울은 무게를 잡고 아주 당연한 진리를 말하고 했고, 나는 그것에 대해 곧잘 농담을 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나 우스갯소리를 하며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어쨌거나 라울은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독서 취미를 불어넣어 준 것도 라울이었다. 그는 읽을 만한 작가들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라블레, 에드가 앨런 포우, 루이스 캐롤, 허버트 조지 웰즈, 쥘 베른, 아이작 아시모프, 프랭크 허버트, 필립 딕 등이 그들이었다. 라울의 말을 빌면 그들은 (따분하지 않은) 작가들이었다.
라울의 설명은 이러하였다.
"(따분하지 않은) 작가들은 그리 많지 않아.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 작품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자기들이 더 똑똑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그들은 문장 하나가 20 행이나 되게 죽죽 늘이는거야. 그러고 나면 그들은 문학상을 타고 사람들이 그들의 책을 사지. 사람들이 그 책들을 사는 이유는 거실을 장식해서 자기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그렇게 난해한 책들을 읽을 수 있다고 과시하려는 것이지. 나도 줄거리가 전혀 없는 그런 책들을 대충 훑어본 적이 있어.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 예를 들면 대충 이런 식이야. 우선 한 남자가 등장해. 그 남자가 어떤 괜찮은 여자를 만나지. 그는 그 여자와 자고 싶어서 안달을 해. 그러면 그 여자가, (저는 당신이랑 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해. 그렇게 한 8백 쪽쯤 지나고 나면 마침내 그 여자가 안 자겠다는 뜻을 알리기로 결심을 하는 거야."
"그런데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책들을 뭐하러 쓰는 거지?"
"사상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허구한 날 전기, 자서전, 자전적 소설, 소설적 자전 따위나 쓰는 거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없는 작가들은 결국 자기들의 세계를 묘사할 수밖에 없지. 자기들 세계가 아무리 빈약하다 해도 달리 방법이 없잖아? 문학에서조차 발명가들은 더 이상 없어. 내용이 없으니까 작가들은 문장이나 핥고 형식에 공을 들이는 거지. 너도 부스럼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가지고 10페이지쯤 길게 써 봐라. 혹시 아니? 공쿠르 상이라도 타게 될지?"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나누었다.
"내가 보기엔 말이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오늘날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거야. 그 책은 아마도 환상 문학이나 공포 문학 속에 들어갔겠지. 외눈 거인 키콜로페스,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 그밖에 많은 괴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니까 아마 우리 같은 애들이나 읽어 주겠지."
라울은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난 아이였다. 그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서 주입된 남의 생각을 유식한 체하며 흉내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그토록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그 정신의 자유로움, 어떠한 영향도 거부하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자기 아버지의 공으로 돌렸다. 라울은 자기 아버지가 철학 선생이었고, 책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고 강조하곤 했다. 라울은 거의 하루에 한 권꼴로 책을 읽었다. 특히 신비스런 내용이 담긴 책이나 공상 과학 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정신의 자유로움을 얻는 비결은 책을 많이 읽는 거야."
그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13. 망자는 누구나 남이 자기 내장을 훔쳐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느 수요일 오후, 우리는 긴 의자에 앉아서 묘지 위로 솜처럼 부풀부풀 피어나는 구름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라울이 책가방에서 두꺼운 공책 한 권을 꺼냈다. 그가 공책의 어떤 곳을 펼치자, 고대 신화에 관한 책에서 오려 낸 듯한 책장이 하나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고대 이집트의 배와 여러 인물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라울이 그림을 설명했다.
"배 한가운데 태양신 라6)가 있고, 사자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 양쪽에는 이시스7)와 네프티스8)라는 두 신이 자리 잡고 있지. 이시스 여신은 왼손으로는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T자 꼴 막대기를 흔들고 있어. 이 막대기는 죽은 이들이 누리게 될 영생을 상징하는 거야."
"이집트 사람들은 저승이 있다고 믿었나 보지?"
"물론이지. 여기 그림 왼쪽 끝에, 이리의 머리를 가진 아누비스9)가 있어. 그는 사자와 동행하는 저승의 안내자인데 죽은 사람의 위와 창자를 담은 단지를 손에 들고 있지."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라울은 짐짓 드레진 목소리를 내어 (망자는 누구나 남이 자기 내장을 훔쳐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고 고대 이집트 속담 하나를 말했다.
그는 페이지를 넘겨 다른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배에 올라타는 그림이야. 죽은 사람은 태양신 라가 손수 맞아 주기도 하고 돼지 한 마리가 맞아 주기도 해. 돼지는 벌 받을 영혼을 삼켜서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데려가는 거야. 지옥은 잔인한 귀신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들은 뾰족하고 긴 손톱이 달린 갈퀴 같은 손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천 번의 벌을 준다는 거야."
"정말 무시무시한데!"
라울은 다 듣고 나서 판단하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태양신 라가 직접 죽은 사람을 맞아들이면 걱정할 게 없어. 사자는 신들 옆에 서게 되고 그러면 배가 미끄러져 나아가기 시작하지. 배는 강둑을 따라서 긴 밧줄에 이끌려 가는데 그 밧줄이 사실은 살아 있는 보아뱀이야."
"그거 멋진데!"
라울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경탄과 실망을 번갈아 내보이는 나의 반응에 성가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우나 고우나 나는 그의 유일한 청중이었던 셈이다.
"그 보아는 빛의 적들을 물리치는 착한 뱀이야. 그 뱀은 배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하지만 다른 뱀이 또 나타나. 악의 신 세트의 화신인 아포피스라는 사악한 뱀이야. 아포피스는 배를 엎어 버리려고 주위를 빙빙 돌지. 그러면서 이따금 물 밖으로 나와 불을 내뿜어. 사자의 영혼을 놀라게 해서 그것을 삼켜 버리려고 배를 맴돌게 하고 물 밖으로 튀어나오지. 사자가 잘 견디면 저승의 배는 지하의 강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서 지하의 열두 세계를 통과하는 거야. 넘어야 할 장애가 아주 많아. 지옥의 문들을 지나야 하고 물귀신과 날아다니는 악귀를 물리쳐야 해. 죽은 사람이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 그는..."
그가 이야기를 중단하는 바람에 내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음 주에 계속하자. 벌써 일곱 시야. 어머니가 걱정하실 거야."
나는 감질이 나는데 그는 그걸 즐겼다.
"뭐든지 때가 있는 거야. 조바심 낼 것 없어."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구름을 뚫고 비행하는 꿈을 꿨다. 나는 새처럼 날았다. 아니, 한 마리의 새 그 자체였다. 나는 어딘가로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뭉게구름 모퉁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는 구름 위에 앉아 있었고 아주 아름다웠다. 젊고 날씬한 여자였다. 다가가 보니 여자는 손에 가면을 하나 들고 있었다. 더 다가갔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면인 줄 알았던 그것은, 눈구멍이 휑하니 비어 있고 입술 없는 입이 쩍 벌어져 있는 해골이었다. 나는 땀에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간 다음 악몽에서 깨어나려고 찬물 수도꼭지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으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사람이 새처럼 날 수 있을까요?"
저 애가 사고를 당하고 나더니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어머니는 미심쩍어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바보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밥이나 먹어."
14. 메소포타미아 신화
길가메슈여, 그대 어디로 가는가?
그대는 삶을 찾고 있으나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리.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에게는 죽음을 예정해 놓았고
영생은 자기들을 위해 간직해 두었음이니.
- "길가메슈 서사시10)"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5. 라울은 미치광이다
라울과 나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만날 때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울이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나는 주로 들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우리의 토론에는 건전치 못하거나, 추하거나, 으스스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마치 어떤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서 토론하듯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외계인이나 오토바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와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나, 이상한 꿈을 꿨어."
나는 해골 가면을 들고 구름 위에 앉아 있었던 하얀 옷을 입은 여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라울이 대뜸 내 이야기에 쐐기를 박았다.
"나도 꿈을 꾸었어. 꿈에서 나는 불 수레를 만들었어. 거기에 올라탔더니 불 말들이 나를 태양을 향해 끌고 갔어. 나는 태양에 다가가기 위해서 불로 된 동그라미들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것들을 통과하면 할수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 뒤에 나는 라울이 죽음에 관심을 갖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라울이 학교에서 돌아와 화장실로 가보았더니, 거기 수도꼭지에 그의 아버지가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라울의 아버지 프랑시스 라조르박은 파리에 있는 쟝 조레스 고등학교 철학 선생이었다.
라울의 아버지는 저승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고 그 때문에 이승을 떠나고 싶어 했던 것일까?
라울은 그렇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는 슬픔 때문이나 홧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분이 아니고, 어떤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라울의 생각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자살하기 몇 달 전부터 "죽음에 관한 한 연구"라는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 전념했다는 사실이 라울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고 있었다.
라울의 아버지는 정말로 아주 중요한 어떤 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자살하기 직전에 그가 자기 원고에 불을 질렀다는 점이 그걸 말해 준다. 라울이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벽난로 안에서는 검게 탄 종잇장들이 아직 나풀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원고 가운데 100장 정도는 여전히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논문은 고대 신화와 사자(죽을 사, 놈 자) 숭배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라울은 줄곧 (아버지가 찾아내는 그토록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버지는 무엇을 찾으려고 죽음의 세계로 가셨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해 왔다.
라울은 장례식 날 울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일언반구로라도 그를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라울이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은 단지 (아버지가 목을 매고 죽었으니 저 애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꼬. 울음이 안 나올 만도 하지) 하는 소리뿐이었다. 내가 그 전에 라울을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그 애에게 시금치와 새끼 양의 골을 이용하는 내 비방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라울은 그따위 언짢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라울의 어머니는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어머니는 라울의 변덕을 다 받아 주었고, 라울이 원하는 거라면 장난감이건 책이건 잡지건 다 사 주었다. 라울은 시간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라울이 외아들에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애라고 뭐든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줘서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됐을 뿐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라울이 부러웠다. 뭐든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받을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식구 가운데 누군가를 포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내 응석을 받아 주는 일이 없었다.
"너 아직도 그 라조르박 씨네 아들하고 싸다닌다며? 너 왜 그러니?"
아버지는 주위 30미터까지 오염시키는 시가를 피우며 그렇게 윽박지르셨다.
나는 격한 어조로 되받았다.
"라울은 저하고 가장 친한 친구예요."
"그래? 넌 친구 고를 줄 모르는구나. 그 애는 정상이 아니야. 그건 분명해."
아버지의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순진한 체하지 마라. 그 애 아버지는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자살까지 하지 않았니?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그런 피를 물려받은 애라면 머리가 좀 이상해질 소지가 다분해. 게다가 그 애 어머니는 일할 생각은 않고 연금으로만 살고 있어. 그것도 건전치 못해. 앞으로는 좀 제대로 된 아이들하고 사귀어라."
"라울은 제대로 된 아이예요."
나는 지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때, 언제나 의리 없이 구는 콩라드 형이 자기가 양념을 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끼어들었다.
"자살은 일종의 유전병이야. 부모가 자살한 집 애들은 자살의 유혹에 잘 빠지지. 부모가 이혼한 집 자녀들이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야."
식구들은 모두 바보 같은 형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나서서 한마디하셨다.
"보아하니 라울은 묘지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하는 것 같던데, 너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니?"
"엄마, 라울은 자기 시간을 자기가 원하는 일에 자유롭게 쓰고 있는 거예요. 그 시간에 라울이 누구를 방해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 짓 좀 못 하게 해라.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는 법이야. 내가 괜한 소리를 하는게 아냐. 나는 네가 무덤 사이에서 그 애랑 토론하고 있는 걸 봤어."
"그게 뭐 잘못됐나요?"
그때, 이미 궁지에 몰린 나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 태세를 갖추고 있던 콩라드가 바로 이때다 하며 야기죽거렸다.
"잘못됐지. 죽은 이들을 성가시게 하면 재앙이 오는 법이야."
"형, 바보야. 형, 바보!"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콩라드에게 주먹을 한 방 날렸다.
우리는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버지는 콩라드가 나에게 한 방 먹이기를 기다렸다가 우리를 떼어놓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으셨다.
"이 녀석들. 그만두지 못해? 계속 이러면 따귀 한 대씩 맞을 줄 알아! 콩라드 말이 맞아. 묘지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은 재앙을 불러오는 짓이야."
아버지는 시가를 피우고 있다가 갑자기 기침을 하며 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다시 뱉어내고 말을 덧붙이셨다.
"토론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있잖아. 카페나 공원이나 스포츠클럽 같은데 말이야. 묘지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산 사람들을 위한 장소는 아니야."
"하지만, 아빠..."
"너 끝까지 내 속을 썩일 테냐? 이 녀석아, 못된 짓 그만두라면 그만둬. 안 그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결국 나는 뺨 두 대를 맞았다. 더 맞지 않으려고 나는 직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울고 싶을 때 우는 법은 어떻게 알아가지고..."
아버지는 비꼬며 말씀하셨다.
콩라드의 얼굴엔 의기양양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어머니는 나보고 어서 내 방으로 가라고 이르셨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세상살이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망자를 위해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부모님께는 순종해야 한다. 콩라드 형에게 대들지 말아야 한다.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묘지에서 어슬렁거리면 안 된다. 친구를 고를 때는 정상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 속에서 골라야 한다. 자살은 유전병이며 전염이 될 수도 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아직도 입속에 남아 있는 찝찔한 눈물을 맛보고 있자니, 문득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뺨에 찍혀 있는 얼얼한 손자국을 어루만지며, 이토록 구속이 많은 세계에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16. 깃털 하나의 무게
"사자는 지옥의 일곱 문을 통과해야 하고 물귀신과 날아다니는 악귀들을 물리쳐야 해. 그 시련을 치르고 나면, 최고의 심판관인 오시리스11)와 보좌신 42명으로 구성된 심판소에 다다르게 돼. 거기에서 사자는 부정 고백을 통해 자기 영혼이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 부정 고백이란 사자가 방금 떠나 온 삶을 사는 동안, 다음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당당히 밝히는 것을 말해.
나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창조신을 모독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난한 이들 것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나는 신들에게 발칙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인 편을 들어 노예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습니다.
나는 도시의 신성한 곳에서 육욕의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굶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남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자가 제멋대로 주장하고 거짓말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라울에게 물었다.
"그래. 거짓말을 하고 안 하곤 죽은 사람 마음이지. 신들이 그에게 질문을 하면 사자는 신들을 속일 수도 있어. 하지만 신들이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아. 신들도 알 건 다 알거든. 당연한 얘기 아니야? 신들이 뭐 달래 신인가."
"그다음엔 어떻게 되지?"
"그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이번에는 다른 신들 앞에서 두 번재 심판을 받게 돼."
라울은 궁금증을 더 갖게 하려고 입을 다문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이번에 사자가 마주하게 될 신은, 정의의 여신 마트와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지혜와 학문의 신 토트야. 토트 신은 사자의 증언을 서판에 기록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그다음에 나타나는 신이 아누비스야. 그는 이리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서, 커다란 저울을 들고 영혼의 무게를 달지."
"영혼의 무게를 어떻게 달지?"
나로서는 아주 당연한 질문이었는데, 라울은 그것을 못 들은 체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한 페이지를 넘기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누비스는 한쪽 저울판에는 사자의 심장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는 깃털 하나를 올려놓지. 만일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사자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거야. 그런데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운 것으로 나타나면, 죽은 사람은 몸은 사자이고 머리는 악어인 어떤 신에게 먹이로 던져지지. 그 신은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영혼들을 삼켜 버리는 임무를 맡고 있어."
"그럼, 심판에 합격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들은 삶의 짐을 벗어버리고, 떠오르는 태양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와, 멋있는데!"
"거기에는 황금 풍뎅이 머리를 가진 케프리12)가 기다리고 있어. 거기에서 저승길이 끝나는 거야. 무죄가 증명된 영혼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이승과 저승을 통과하는 데 성공한 승리자들의 찬가를 부르는 거야. 무죄가 증명된 영혼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이승과 저승을 통과하는 데 성공한 승리자들의 찬가를 부르는 거야. 그 찬가를 한번 들어 볼래?"
라울은 묘석 위에 올라서더니, 여드름 난 동그란 얼굴을 마주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고대의 시가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사슬이 풀리고
나는 내 안에 있던 모든 괴로움을 땅에 던져 버렸네.
오 위대한 오시리스여!
마침내 삶을 얻었나이다.
방금 이렇게 태어났나이다.
라울이 낭독을 끝냈다. 고대 신화를 다룬 대단한 책이었다. 힘겹고도 장한 일을 끝낸 사람처럼 라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라울은 마치 아누비스로부터 영생을 누리기로 판정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야. 그런데 저승에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그건 모르겠어. 이 신화는 하나의 비유야.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 문제에 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들은 그 지식이 마구잡이로 전해 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비유와 시적인 표현을 사용했을 거야. 한 작가가 어느 날 문득 영감을 받아 그 모든 것을 지어낼 수는 없는 일이지. 이 신화는 일종의 보편적인 상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야. 모든 종교에서 표현은 달라도 이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야. 모든 종교가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리고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을 거치면 환생이나 해탈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어. 인류의 3분의 2 이상이 환생을 믿고 있어."
"그럼 너는 신들이 타고 있는 배가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니?"
그때 라울이 나에게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
"쉿! 누가 오고 있어."
시각은 벌써 밤 아홉 시였다. 묘지의 철책 문은 당연히 잠겨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와서 묘지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닫힌 문을 넘어 들어오는 것일까? 우리에겐 우리만 아는 통로가 있었다. 북서쪽 모퉁이에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한 그루 있는데, 그 가지들이 묘지 담 위로 드리워져 있어서 그 나무를 기어오르면 묘지 안으로 들어오기가 쉬웠다. 그러나 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었다. 들릴락 말락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우리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검은 망토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은 그저 눈치레로 달려있는 거라는 듯, 그것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17. 역사 교과서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모든 것)의 상태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의 상태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생각이 주는 압박감을 덜어 볼 생각으로 조상들은 종교(신화에 바탕을 둔 의식의 총체)를 만들어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종교는 주로 특정한 종족 집단을 위한 단결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18. 어리석은 자들을 물리치다
검은 망토를 걸친 그 무리는 어떤 무덤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횃불을 켜고 갖가지 잡다한 물건들을 묘석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물건들 중에 사진과 책, 그리고 작은 조상(새길 조, 코끼리 상)들도 눈에 들어왔다.
라울과 나는 어떤 무덤 뒤에 숨어 있었다. 그 무덤은 영화배우이자 록 가수였던 어떤 바람둥이가 묻힌 곳이었다. 그는 생선 가시를 잘못 삼켜 목숨을 잃었는데, 그가 죽던 상황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러하다. 그 유명 연예인은 목에 걸린 이물질을 뱉어내려고 기를 쓰면서 한 시간 넘게 기침을 했다. 식당이 만원이었는데도, 그를 도우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다들 스타가 뭔가 새로운 춤과 새로운 가창법을 개발하고, 즉석에서 짤막한 공연을 한바탕 벌이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가 단말마의 고통 때문에 펄쩍펄쩍 뛰는 줄 모르고 장내가 떠나갈 듯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영화 배우의 무덤 뒤에 숨어서 검은 망토 입은 자들이 하는 짓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정수리 부분이 뾰족한 두건을 뒤집어쓰더니 이상한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기도문을 거꾸로 외우고 있는거야."
라울이 속삭였다. 가만히 들어 보니, (다이나하배경 여아리마 인니머어 의들사천)라는 주문은 (천사들의 어머니인 마리아여, 경배하나이다)를 거꾸로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라울이 덧붙였다.
"틀림없이 사탄을 섬기는 무리일 거야."
주문에 이어 지껄이는 기도문을 들어 보니 라울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 위대한 베엘제불13)이여, 저희에게 당신의 권능을 나누어주소서.
오 위대한 베엘제불이여, 당신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소서.
오 위대한 베엘제불이여, 보이지 않게 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오 위대한 베엘제불이여, 바람처럼 빠르게 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오 위대한 베엘제불이여, 죽은 이들을 살려내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나는 등골이 서늘해져 옴을 느꼈지만, 라울은 태연자약했다. 그의 침착성과 용기가 내게로 금방 전해졌다. 우리는 그 무리 쪽으로 더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밀교 신도들의 모습은 훨씬 더 가관이었다. 어떤 자들은 이마에 문신을 새겼는데, 그 문신들은 불길한 상징물인, 웃고 있는 숫염소, 맴돌이하는 악마,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 따위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 기도와 주문을 더 읊고 나더니, 초 다섯 자루에 불을 붙여 별 모양으로 늘어놓았다. 그들이 뼛가루에 불을 붙이자, 그것이 타면서 연보라빛 연기가 한 덩이 피어올랐다. 그 일이 끝나자, 그들은 자루에서 검은 수탉 한 마리를 꺼냈다. 수탉이 자루 밖으로 안 나오려고 버둥거리는 바람에 깃털이 적지 않게 빠졌다.
"위대한 베엘제불이여, 이 검은 수탉을 당신께 바치나이다. 아모크14)의 영혼에게 수탉의 영혼을!"
어떤 자가 그렇게 선창하자 모두 입을 모아 되받았다.
"아모크의 영혼에게 수탉의 영혼을!"
그들은 수탉을 목 졸라 죽이고 그 피를 별 모양으로 놓인 촛불 위에 뿌렸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하얀 암탉을 한 마리 꺼냈다.
"위대한 베엘제불이여, 이 하얀 암탉을 당신께 바치나이다. 굴15)의 영혼에게 암탉의 영혼을!"
"굴의 영혼에게 암탉의 영혼을! 살인귀의 영혼에게 새의 영혼을!"
그때 라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섭니?"
라울처럼 태연해 보이려고 애를 썼지만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가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되었다. 그 소리 때문에 자칫하면 비밀 의식을 벌이고 있는 그자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다.
내 친구가 가만가만히 말했다.
"살다 보면 이따금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지. 그 두려움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를 때 생기는 거야."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라울은 2프랑짜리 백동전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택을 하지. 행동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하고 말이야."
이 친구가 지금 철학을 논하자는 건가 하고 의아한 눈으로 라울을 보았더니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어떤 방책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으니까 결국 우리 주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못 잡고 겁을 먹는 거지. 세계가 그렇게 복잡할 때는 간단히 선택하는 방법이 있어. 어떻게 하느냐고? 동전으로 하는 거야. 동전은 아무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착각에 빠지지도 않고 그럴싸한 궤변에 넘어가지도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 따라서, 용기가 안 날 때는 동전을 던져 보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것이 너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하고, 라울은 백동전을 높이 공중에 던졌다. 다시 떨어진 백동전을 보니, 숫자가 있는 뒷면이 나왔다. 라울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뒷면이다! 뒷면은 긍정을 뜻하는 거야. 자, 전진! 뒷면은 (녹색 신호등)을 뜻하는 거야. 자, 가자! 너하고 내가 저 바보들을 혼내 주자."
우리는 그들에게 아주 바싹 다가갔다. 음산한 의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베엘제불 신도들은 아까보다 더 큰 자루에서 흰 염소 한 마리를 끌어냈다. 촛불 때문에 눈이 먼 염소가 처량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 흰 염소를 바치오니 저희에게 저승의 창을 열어 주소서. 염소의 영혼을..."
그때 굵고 우렁찬 목소리가 묘지에 울려 퍼졌다.
"염소의 영혼은 힘없고 착한 이들에게 바칠지어다."
염소를 죽이려고 번쩍 들어올린 단도가 공중에서 갑자기 멈추었다.
소리를 지른 것은 내 옆에 선 라울이었다. 2 프랑짜리 백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왔다는 단순한 사실에 자신감을 얻은 그였다.
"썩 꺼져라! 베엘제불을 섬기는 자들아! 베엘제불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내릴진저. 나는 제9 대 악마 아스타로트다. 내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리라. 다시는 더러운 동물의 피로 거룩한 무덤들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너희는 죽은 이들을 깨우고 신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
베엘제불 신도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은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가 하고 두리번거렸지만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라울은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아주 위엄 있고 천상의 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백동전이 준 자신감이 그를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자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승부의 판세는 분명해졌다. 라울은 힘 그 자체였고 그자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한낱 사내아이에 지나지 않은 라울이 그들의 지배자가 되었다. 라울의 돌연한 방해에 불안을 느낀 그자들은 도망가는 쪽을 선택했다. 어린 염소는 그들과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알고 보니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오면 승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만약 앞면이 나온다면, 그땐 겁쟁이가 되면 그만이었다. 작은 쇠돈이 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라울은 내 어깨를 잡더니, 2프랑짜리 백동전을 내밀었다.
"너한테 줄게. 이제부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가르쳐 준 방법을 써봐. 이 백동전이 늘 믿음직한 친구가 되어줄 거야."
내 오목한 손바닥 안에서, 2프랑짜리 주화가 반짝거렸다.
19. 경찰 기록
라울 라조르박에 관한 심리 정보 조회
라울 라조르박은 어렸을 때 정신병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하다.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주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당시에 어떤 전문의가 입원 치료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거라면서 (우리 애에겐 단지 보상이 필요할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라울 라조르박은 현재로서는 어떤 범법행위도 하지 않았고 범죄에 빠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 어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생각된다.
20. 역사 교과서
우리 조상들의 죽음
1965년 한 해 동안 프랑스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사망 원인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배열 순서는 사망자 수가 많은 것에서 적은 것 순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 통계에서 당시의 질병 가운데 어떤 것들은 오늘날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장병: 98,392
암: 93,834
뇌혈관 손상: 62,746
교통 사고: 32,723
간경변: 16,325
호흡기 질환: 16,274
폐렴: 11,166
유행성 독감: 9,008
당뇨병: 8,118
자살: 7,156
범죄 및 살인: 361
원인 불명: 87,201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21. 헛소리꾼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처음 만난 뒤로 몇 년 동안 우리의 우정은 갈수록 돈독해졌다. 라울은 나에게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미카엘, 너 참 순진하기도 하다. 네 생각을 말해 볼까? 너는 세상이 선하다고 여기고 있지. 그래서 그런 세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너 자신이 착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려.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해. 미래는 착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혁신자들, 대담한 자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것이야."
"너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니?"
"그래. 아무것도."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고통을 느끼지 않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돼."
그것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라울은 라이터를 꺼내더니 불을 켜서 집게손가락에 대었다. 그는 뿔이 탈 때와 같은 냄새가 공기 중에서 배어들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나는 메스꺼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먼저 마음을 비우는 거야. 그다음에 어떤 다른 사람이 이 고통을 받고 있고, 이 고통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는 불이 무섭지 않니?"
"물이건, 흙이건, 쇳덩어리건 무섭지 않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은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아. 이상이 두 번째 가르침이다. 첫 번째 가르침은, 2프랑짜리 백동전이 너의 가장 좋은 조언자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가르침은, 두려움이 생기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네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것도 네 아버님이 가르쳐 주신 거니?"
"아버지는 산에 올라갈 땐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가르치셨지. 뒤를 돌아보면 현기증을 느끼거나 겁을 먹고 떨어질 염려가 있어. 반대로 꼭대기만 쳐다보고 곧장 올라가면 언제나 안전하지."
"그런데 말이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뭐지?"
"그건 신비지. 아버지의 죽음과 일반적인 죽음의 신비를 밝히고 싶어 하는 욕구 말이야."
말을 하는 동안 그는 어떤 고통을 억누르려는 듯 오른손을 거미 모양으로 만들어 이마를 누르고 있었다. 머릿속을 무언가가 쏠고 있기라도 하듯 그의 눈알이 불거져 나왔다.
나는 불안을 느끼며 물었다.
"너 어디 아프니?"
라울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마치 기절했다가 깨어난 사람 같았다.
"괜찮을 거야. 편두통일 뿐이야."
그에게 어떤 발작이 일어나는 것을 본 건 그게 처음이었다. 나에게 라울은 초인과 같은 존재였고, 나의 스승이었다.
나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가 나보다 한 살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월반을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덕분에 나는 한반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모든 일이 수월해졌다. 그는 자기 숙제를 베낄 수 있게 해주었고, 수업이 끝나면 줄곧 신기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우리 반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모두 나처럼 라울을 열렬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국어 선생님은 라울에게 (헛소리꾼)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기도 했다.
"자, 다들 잘 들어 봐라. 오늘 우리 (헛소리꾼)이 숙제를 냈다. 아주 만족할 만한 작문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었던 주제는 다 알다시피 (가장 좋은 인상을 받았던 바캉스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헛소리꾼)이 갔던 곳은 투케나 생 트로페나 라볼 쪽의 프랑스 해변이 아니다. 바르셀로나나 런던 같은 외국의 도시도 아니다. 그는 바로 죽은이들의 나라엘 갔었다... 이것은 그가 거기에서 우리에게 보낸 우편 엽서다."
비웃음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자, 읽어보겠다. (이물 쪽에서 갑자기 불 뱀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내 배가 빛 쪽으로 돌진해 가는 동안 나는 줄곧 그 뱀에 신경을 썼다. 네프티스 여신은 겁먹지 말고 뱃머리를 꼭 붙잡으라고 도움말을 주었다. 이시스 여신은 괴물을 물리치는 데 쓰라고 자기의 T자꼴 막대기를 내밀었다.)"
잘난 우리 선생님이 거드름을 피워 가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짓는 동안 학생들은 팔꿈치로 옆 사람을 찔러 가며 낄낄거렸다.
"(헛소리꾼), 내가 자네에게 충고해 줄 수 있는 건, 좋은 정신 분석 전문의나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보라는 것뿐이다. 나중에 성적표를 보면 알겠지만, 0점은 면해 있을 거다. 네 작문을 읽으면서 내가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게 해준 점을 가상히 여겨 20점 만점에 1점을 주기로 했다. 한 가지 얘기를 더 하자면, 나는 언제나 네 숙제를 제일 먼저 찾아서 읽는다는 거다. 네 작문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라조르박 군, 그러니 계속 이런 식으로 하길 바란다. 틀림없이 자네는 유급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더 오랫동안 웃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라울은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종류의 꾸지람에는 무감각해져 있었다. 특히 자기가 전혀 존경하지 않는 그 국어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바로 우리 반 학생들이 시비를 걸어온 것이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이, 우리 학교도 잔인한 십대들이 주름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별쭝맞은 (베돌이)가 나타났다 싶으면 우르르 달려들어 본때를 보여 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우리 반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마르티네스라는 거만한 애였다.
하굣길에 마르티네스와 그 똘마니들이 뒤따라와서 우리를 에워쌌다.
겁이 덜컥 났다. 나는 빠져나가려고 뚱보 마르티네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그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렸다. 내 얼굴에 피가 낭자했다. 우리는 둘이서 여섯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수가 적다는 게 아니라,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센 라울이 방어할 생각을 않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라울은 저항도 하지 않고 국으로 맞고만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질렀다.
"뭐해, 라울! 베엘제불 신도들에게 했던 것처럼 이 자식들을 혼내주자고. 너하고 내가 이 바보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잔 말이야."
라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못 가서 우리는 정신없이 몰아쳐 오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맞서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자, 뚱보 마르티네스 패거리들은 결국 제풀에 지쳐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달아났다. 나는 여기저기 불거져 나온 혹을 문지르면서 몸을 추스른 다음, 라울에게 물었다.
"너 겁먹었던 게로구나?"
"아니."
"그런데 왜 맞서 싸우지 않았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니? 하찮은 일에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 그것도 그거지만 난 동물적인 원시성을 지닌 자들하고는 싸울 줄 몰라."
라울은 안경을 주어 들며 그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전에 베엘제불 신도들을 물리친 적이 있잖아!"
"그건 일종의 게임이었어. 게다가 그자들은 사악하기는 해도 이 멍청이들보다는 훨씬 섬세한 구석이 있었지. 난 원시인들을 상대하는 데는 완전히 손방이야."
우리는 서로 겨드랑이를 껴붙들고 곁부축을 했다.
"너하고 내가 바보들을 혼내주자, 하고 네가 말했었잖아."
"너를 실망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바보들하고 싸움을 벌이는 일이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야. 그자들에게 최소한의 분별력이라도 있어야 싸움이 가능해."
나는 심한 낭패감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마르티네스 같은 아이들한테 늘 맞고 살아야 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보다 그 녀석들이 먼저 지치고 말 거야."
라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그 애들이 너를 죽이기라도 하면?"
라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까짓거!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길일 뿐인데, 뭐."
나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바보들이 라울을 이길 수도 있었다. 라울이 언제나 제일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날 믿어. 네가 어려움에 빠지면 내가 도와줄 테니 말이야."
그날 밤,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 구름 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다. 여인은 윤이 나는 하얀 사탱 옷을 입었고 해골 가면을 들고 있었다.
22. 파스칼 철학
넋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아주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 없이 살지 않는 다음에야 우리는 그 사실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희망할 만한 영원한 행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아주 딴판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행위를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으로 통제하고 영혼 불멸을 우리의 주된 관심사로 삼지 않고서는 양식 있고 분별력 있게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
우리의 으뜸가는 관심사이자 첫째 되는 임무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좌우하는 문제에 대해 분명히 아는 일이다. 진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그것을 알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과 노력도 안 하고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중략)
자기 자신과 관계된 일이고, 자기의 정체성, 자기의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일에 그렇게 소홀한 사람들을 보면 나는 연민을 느끼기에 앞서 화가 난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는지 놀랍고 소름이 끼친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독실한 신자의 경건한 열정으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관심으로서 영혼 불멸의 문제를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3. 옛일의 재조명
내가 열네 살 나던 해의 일이다. 어느 날 라울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는 나보고 서둘러 나가자고 재촉했다. 우리 부모님이 마땅치 않게 여기신 건 당연했다. 라울이 찾아온 시각이 저녁 식사 때이기도 했거니와, 그분들은 줄곧 라울 라조르박이 나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 오시던 터였다. 다만 그즈음에 내가 수학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내 친구 라울의 것을 베낀 덕분이긴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외출하는 것을 선뜻 말리지는 못하셨다.
나의 외출을 마지못해 허락하시면서도 그분들은 라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빼놓지 않으셨다.
얇은 비단 목도리를 매 주시면서, 아버지는 가장 나쁜 적은 언제나 가장 좋은 친구 중에서 나오는 법이라고 귀엣말을 하셨다.
"나보고 (친구)를 정의하라면, 이렇게 하겠다. 친구란 우리를 배신함으로써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어머니는 한술 더 떠서, 의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라울은 생 루이 병원에 빈사(瀕死) 환자들과 코마 환자들을 모아서 과(科)를 하나 새로 만들었다면서, 나를 그 병원 쪽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그 과에 (빈사 환자 위호(衛護)과)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였다. 그 과는 어떤 부속 건물의 왼쪽 날개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곳엘 가느냐고 물었다. 라울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거기를 구경하는 것은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거야."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뭐에 대해서?"
"물론, 죽음에 대해서지."
병원 안에 몰래 들어간다는 생각이 나에겐 그닥 탐탁치 않았다. 병원은 심각한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우리가 거기서 놀도록 내버려 둘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라울 라조르박은 나를 설득할 만한 논리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는 코마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는 기사를 잡지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 소생자들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본 것은 라울이 말하던 배나 불을 뿜는 뱀이 아니라 자기들을 끌어당기는 빛이었다는 것이었다.
"너 임사(임할 임, 죽을 사)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미국 사람들이 NDE, 즉 (Near Death Experiences)라고 부르는 것 말이야."
"그래 맞았어. 임사 체험에 관한 얘기를 하는 거야."
임사 체험이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한때 그 말이 대단히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도 몇 권 있었고, 주간지들이 그것을 특집 기사로 다룬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행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그것 역시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들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그럴듯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을 뿐, 믿을 만한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 탓이었다.
(라울은 그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라울은 잡지에서 오려 낸 종잇조각 몇 개를 내 앞에 펼쳐 놓았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 기사들은, 진지하다거나 취재를 엄격히 하기로 명성이 높은 잡지들에서 오려낸 것이 아니었다. 깔끔하지 않은 굵은 글자들로 다음과 같은 제목들을 박아낸 것을 보면 그 잡지들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 (죽음 너머로의 여행), (코마 이후에 대한 증언), (삶 뒤에 오는 삶), (나는 거기에서 돌아왔고 거기가 마음에 든다), (죽음 그리고 그 이후) ...
라울에게는 그 말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기 아버지가 거기 계시니... 그 기사들의 삽화로는, 포개져 있는 영기(靈氣)를 찍었다는 흐릿한 사진과 히에로니 무스 보스16) 그림들을 복사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본문에는 라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었다.
(미국 갤럽연구소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8백만의 미국인이 임사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행한 어떤 설문 조사를 보면, 임사 체험을 한 코마 환자 37%가 육체를 빠져나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23%가 터널을 보았으며, 16%가 상서로운 빛에 휘감겼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네 환상을 깨뜨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지만..."
"하지만 뭐?"
"나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 공중으로 튕겨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부상을 입었지. 세 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어. 코마 상태에 빠진 거나 다름이 없었지. 그런데 나는 어두컴컴한 터널이나 상서로운 빛 따위는 전혀 본 적이 없어."
라울은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면, 뭘 봤니?"
"아무것도 못 봤어. 정말 아무것도."
내 친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희귀한 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코마 상태에 빠졌는데 그것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라울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이유를 알겠다!"
그는 말의 효과를 노려 뜸을 들이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은 그 후로도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네가 아무것도 못 본 것은, ...(충분히) 죽지 않았기 때문이야."
24. 백의 사제들의 나라에서
한 시간 후에 우리는 생 루이 병원에 다다랐다. 입구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라울은 큰 키를 이용해서 어른 행세를 해볼 양으로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라울이 내 손을 잡았다. 그는 우리가 회복기에 들어선 할머니를 간호하러 오는 부자(아비 부, 아들 자)쯤으로 보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경비원은 업무에 지쳐 있었을 텐데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어이, 얘들아, 저 모퉁이에 더 좋은 놀이터가 있으니 놀고 싶으면 거기 가 놀아라."
"저희는 할머니를 뵈러 온 건데요."
라울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
라울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살랴피노 여사요. 지금 코마 상태에 계셔요. 새로 생긴 빈사 환자 위호과 병동으로 옮기셨어요."
즉석에서 꾸며대는 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뒤퐁이라든가 뒤랑 같은 쉬운 이름을 댈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런 이름은 금방 의심을 사기가 십상이다. 그에 반해 (살랴피토)는 이상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진짜처럼 보일 수가 있었다.
경비원은 우리의 처지가 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빈사 환자 위호과)라는 말을 듣자마자 심란해진 모양이었다. 그 과가 새로 생겼다는 사실이 병원 복도에서 화젯거리가 되었을 터이므로 그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경비원은 생각을 바꾸어 우리에게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의 발길을 붙들어 두었던 것에 대해 거의 사과에 가까운 말까지 덧붙였다.
우리는 번쩍거리는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복도가 자꾸자꾸 나왔다. 몇 개의 문을 밀고 들어갈 때마다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다.
내가 병원 안에 들어가 본 건 그것이 두 번째였지만 얼떨떨한 느낌은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흰옷을 입은 마법사들과 알몸에 정결한 가운을 걸친 젊은 여사제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순백의 사원에 무단으로 침입한 느낌이었다.
고대의 제의(제사 제, 거동 의) 절차를 따르듯이,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구급차 운전기사들이 더러운 시트에 싸인 제물을 내려놓으면, 젊은 여사제들이 그것을 풀어서 네모진 받침대가 있는 방으로 옮긴다. 거기로 들어가면 네모난 마스크를 쓰고 투명한 장갑을 낀 대사제들이 점괘를 읽어 내려는 듯 제물을 만지작거린다.
병원에서 받은 그런 인상이,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동기의 출발점이 되었다. 에테르 냄새, 간호사, 윤이 나는 하얀 가운, 동시대 사람들의 내장을 내 뜻대로 헤쳐 볼 수 있는 자격.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세계였다. 참다운 권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도 백의의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라울은, 금고가 있는 방을 찾아낸 강도처럼 기뻐하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이... 이쪽으로!"
우리는 유리가 달린 문을 밀고 들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서 우리는 하마터면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빈사 환자 위호과)에서 받아들이는 환자들은 대부분 상태가 아주 나빴다. 오른쪽에, 이가 다 빠진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노인은 사방 2미터까지 악취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 노인 바로 옆에는 남잔지 여잔지 알 수 없는 노인이 있는데, 눈도 깜짝 않고 천장에 있는 갈색 반점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코에서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노인은 그것을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왼쪽에는, 주름진 이마에만 금발 한 뭉치가 남아 있을 뿐 다른 곳에는 머리털이 다 빠진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끊임없이 떨어대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누르면서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것이 뜻대로 안 되니까 할머니는 이가 빠져서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로 제멋대로 구는 손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라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죽음은 신, 여신, 괴물, 뱀이 득실거리는 강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죽음의 참모습은 바로 그렇게 서서히 썩어가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부모님 말씀이 옳았다. 죽음은 끔찍한 것이었다. 라울이 금발 한 뭉치만 남은 할머니 쪽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쳤을 것이다.
"할머니, 성가시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아... 안녕. 너흰... 누... 누구냐?"
할머니는 몸만큼이나 정신도 떨리는지 말을 더듬었다.
"저흰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인데요.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싶어요."
"왜... 나... 날?"
할머니는 근근히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 증상에 관심이 있어서요."
"나... 난... 흐... 흥밋거리가... 아냐. 저... 저리 가!"
콧물을 흘리는 노인에게서는 아무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성가신 모기 두 마리를 바라보듯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냄새 풍기는 노인 쪽으로 갔다. 노인은 마치 긴급한 일을 보고 있다가 방해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화를 냈다.
"뭐야, 뭐. 너희들 원하는 게 뭐야?"
라울이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인데요. 코마 상태에서 살아난 분들에 관한 탐방 기사를 쓰고 있어요."
노인은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바로 내가 코마 상태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야. 닷새 동안 코마 상태에 있었는데, 보다시피 이렇게 살아 있잖아."
라울이 눈을 반짝이며 마치 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묻듯이 물었다.
"어땠어요?"
노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라울을 뜯어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그러니까, 코마 상태에 계실 때 무엇을 느끼셨느냐는 거예요."
분명히 노인은 라울이 묻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했잖아. 닷새 동안 코마 상태에 있었다고. 코마란 말이다, 사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거야."
라울은 물러서지 않았다.
"뭐 환각 같은 거 없었어요? 빛이라든가, 터널이라든가, 그밖에 뭐든지 기억나는 거 없으세요?"
다 죽어가는 노인이 벌컥 화를 냈다.
"없었다니까. 코마가 뭐 영화 같은 건 줄 아니? 처음엔 아주 지독하게 아팠고, 깨어나 보니 역시 안 아픈 데가 없이 다 아파. 그건 장난이 아니야. 도대체 무슨 잡지에 실으려고 기사를 쓰는 게냐?"
그때 어디선가 간호사 한 사람이 나타나 다짜고짜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너희 누구야? 계속 환자들을 귀찮게 할 거야? 누가 너희보고 여기 들어오라고 했니? 너희는 읽을 줄도 모르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이 표지판 못 봤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바보들이 여기도 있구나!"
라울이 소리쳤다. 우리는 재빨리 달아나 바둑판무늬가 깔린 복도의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중화상을 입은 환자들의 방과 운동 신경 장애자들의 방을 차례로 지나, 결국 가서는 안 될 곳에 다다르고 말았다. 그곳은 시체실이었다.
크롬 도금을 한 커다란 통이 스무 개쯤 있고 그 안에 벌거벗은 시체들이 들어 있었다. 단말마의 고통 때문에 생긴 경련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어떤 시체는 아직도 눈을 멀거니 뜨고 있었다.
앳된 실습생 하나가 집게를 들고 시체에서 반지나 가락지 따위를 떼어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떤 반지는 주위에 있는 살갗이 부풀어 올라서 여간해서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그 실습생은 주저 없이 집게의 양날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반지를 꽉 잡고 잡아당겼다. 달그락하는 쇳소리와 살점 떨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반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라울이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우리는 둘 다 기진맥진해 있었다.
내 친구의 말이 틀렸다. 우리 부모님 말씀이 옳았다. 죽음은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죽음은 바라보거나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입에 올리거나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25. 라플란드17) 신화
라플란드 사람들에게 생명이란 뼈대를 덮고 있는 부드러운 살과 같은 것이다. 영혼은 그 뼈대를 이루는 뼈들 속에만 들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물고기를 잡으면, 가시 하나도 다치지 않게 살을 아주 조심스럽게 발라낸 다음 물고기를 잡았던 같은 장소에 뼈를 내다 버린다. 그들은 (자연)이 그 뼈대에 다시 살을 붙여 주기 때문에, 며칠, 몇 주 또는 몇 달 후에 그 자리로 돌아가 보면 새 물고기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살은 뼈대를 감싸는 단순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영혼은 뼛속에만 들어 있기 때문이다. 뼈대를 소중히 여기는 그와 같은 관습은 몽골족과 야쿠트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곰을 죽이면 그 곰의 원래 모습을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재구성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섬세한 머리뼈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들은 머릿골이 고급 음식에 속하는 것임에도 그것을 먹지 않는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6. 이별
생 루이 병원에 들어갔다 도망쳐 나온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라울네는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 뒤로 그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라울이 이사 가던 그해,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10프랑짜리 시가가 결국 아버지를 데려갔던 것이다. 나는 시금치와 멸치와 꽃양배추를 생각하며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나처럼 눈물을 쏟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전제적이고 성마른 여인으로 변해버렸다. 어머니는 모든 일에 끼여들어 감독을 하고 싶어 하셨고, 내 삶을 좌지우지하려 하셨다. 어머니는 거리낌 없이 소지품을 뒤져서 내 일기장을 찾아내셨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잘 숨겨 놓았다고 믿고 있던 일기장이었다. 그것을 손에 넣자 어머니는 콩라드 형 앞에서 가장 내밀한 대목을 골라 큰소리로 읽기 시작하셨다. 아우가 그런 극단적인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형은 그저 희희낙락이었다.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리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일기장은 언제나 친구나 다름이 없었다. 심판을 받는다는 두려움 없이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결국 그가 나를 완전히 배신한 꼴이 되었다.
언제나 얄망궂은 짓만 하는 콩라드 형은 어머니가 읽으시는 것을 듣고 나서 토를 달았다.
"야, 너 새침떼기 베아트리스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미처 몰랐네. 그 애 정말 못생겼지. 새 꽁지처럼 묶은 머리에다 낯짝에 난 여드름하며... 너 참 취향도 별나다, 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대범한 척해도 어머니는 내가 친구를 빼앗긴 거나 다름없는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어머니는 내게 친구가 있는 것조차 바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외부와 의사 소통을 하고자 하는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당신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다.
"뭐든지 다 내게 이야기해라.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네 비밀을 다 지켜줄 테니까 말이야. 네 일기장은 누구라도 찾아낼 수 있었을 거야. 낯선 사람들 손에 들어가지 않은 걸 그나마 다행으로 알아야지."
나는 논쟁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빼고 내 침대 밑을 뒤질 낯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콩라드 형에게 앙갚음을 하기도 불가능했다. 복수를 하려면 그의 일기장을 폭로해야 하는데, 그에게 일기장 따위는 없었다. 형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심지어는 자신에게조차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삶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그냥 살기만 하면 될 만큼 그는 행복했다.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를 잃게 되자, 라울이 없는 것이 한층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에는 고대 신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반 친구들에게 (죽음)이라는 말은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시체에 대해서 얘기를 할라치면, 그들은 대개 손으로 자기들 이마를 툭 치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시시한 소리 작작하고 당장 가서 정신 분석이나 받아 봐."
한 번은 베아트리스가 내게 이렇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죽음 때문에 마음에 그늘을 만들기엔 넌 아직 어려. 예순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 지금은 너무 일러."
나는 그녀에게 사납게 쏘아붙였다.
"좋아, 그럼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할까? 그게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화제잖아, 안 그래?"
그녀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나는 좀 심했다 싶어 베아트리스를 달래고 싶었다.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너랑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야."
베아트리스는 달음박질치며 달아났다. 그 일이 있은 뒤, 베아트리스는 내가 성에 대한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를 겁탈하려고까지 했다며 동네방네 불고 다녔다.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그토록 죽음과 시체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아, 별을 몇 개씩 다는 흉악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악담을 늘어놓았다.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일기장도, 친구도, 여자 친구도 없고, 식구들에게 마음을 붙이고 살수도 없으니, 삶에 도무지 생기가 없었다. 라울은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정말로 이 세상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일은 나에게 책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책들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가 되어 주리라던 라울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한데, (죽음)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라울이 생각나곤 했다. 라울은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때문에 그것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라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에게 뭔가를 귀띔할 수도 있으셨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다고 안타까워하며, 그것이 무언지 알아내고 싶어 했다. 나의 아버지는 살아 계시는 동안에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자세 좀 바로 해, 어머니한테 꾸중 듣지 말고), (콩라드를 본받아라), (좀 깨끗이 먹을 수 없니? 냅킨은 뒀다가 개한테 주려고 그러냐?), (내 시가 통 건네다오), (콧구멍 좀 후비지 마라), (지하철표로 이 쑤시지 마라), (돈 간수 잘해), (그저 책만 들여다보고 있을 테냐? 가서 어머니 설거지하시는 거나 도와 드려). 그 모두가 완벽한 정신적 유산이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라울이 죽음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문제에 너무 골몰한 것은 잘못이었다. 죽음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많은 지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즈음에 나는 아주 간단하게 죽음은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선(線)을 품은 점(點) 같은 것, 텔레비전을 끄면 멈춰버리는 화면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밤마다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허공에서 나는 늘 해골 가면을 든, 하얀 사탱 옷의 여인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그 악몽을 내 공책에 적어 두지는 않았다.
27. 힌두교 신화
그렇게 깨달은 자들과 숲에 살면서 자기를 믿는 것이 진실임을 깨달은 자들은 불꽃 속으로 들어간다. 그 불꽃 속에서 나와 하루가 지나고 빛나는 보름이 지나고 태양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동안 여섯 달을 보내면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런 다음, 신의 세계에서 나와 태양 속으로 들어가고 태양에서 나와 번개의 세계로 간다. 번개의 세계에 다다르면 영적인 존재가 나타나 그들을 브라만의 세계로 데려간다. 그 세계에서 그들은 영겁의 세월을 살게 된다. 그들에게 이승으로 돌아오는 일이란 없다.
- "브리하드 아라냐카 우파니샤드"18)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8. 라울이 돌아오다
열여덟 살이 되면서 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전공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 전문 분야로 마취와 소생법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생존이 불안한 목숨들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 백의의 사원 한가운데로 다시 들어갔다. 그곳의 여사제들이 알몸에 하얀 가운만 걸치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그 여사제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던 것도 내가 그 사원에 들어가는 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얘기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간호사들은 대개 셔츠를 받쳐입고 있었다.
서른두 살 나던 해에, 라울이 불쑥 나의 삶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어느 날 그는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약속 장소는 말할 것도 없이 페르라셰즈 묘지였다.
라울은 내 기억 속에 있는 모습보다 더 크고 더 야위어 있었다. 그는 파리로 다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를 대하자마자 끈끈한 정이 금방 되살아나는 듯하여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는 이제 화제를 조심스럽게 고르는 세심함도 갖추고 있었다. 다짜고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던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듯이 그도 성숙해져 있었다. 아무거나 함부로 비웃는 일은 이제 생각할 수 없었다. 터무니없는 말장난이나 욕설이나 교묘한 말재간도 이제는 우리와 거리가 멀었다.
라울은 이제, 국립 과학 연구소의 생물학 분과 연구원이었고, 교수 자격도 지니고 있었다.
라울은 죽음이 아니라 자기 애인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가 사귄 여자들은 한결같이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갔다고 했다. 그 여자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투덜댔다.
"여자들은 좀 예쁘다 싶으면 왜 그렇게 다들 멍청한지 모르겠어."
"그러면 못생긴 여자들을 사귀어 보지 그래?"
내가 그렇게 대꾸했지만 우리는 옛날처럼 가가대소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은 이미 가고 없었다. 그는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그런데 자넨, 데이트 많이 해?"
"별로 하지 않아."
라울은 내 등을 탁 치면서 말했다.
"너무 내성적인 거 아니야?"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 탓일 거야, 아마. 가끔 이 세상 어딘가에 오로지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하지."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여자를 만나기 전에 다른 여자랑 데이트를 하면, 그 여자에 대한 신의를 미리 저버리는 셈이 되는 건가?"
"그래, 바로 그거야. 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라울의 거미 같은 손이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보호받고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내가 어떻게 라울과 멀리 떨어져서 그리 오랫동안 살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휴..."
라울이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짓고 말을 이었다.
"자넨 너무 감상적인 게 탈이야. 자네 같은 몽상가들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을 너무 험해.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가려면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해야 돼."
우리는 그리움을 느끼며 옛날에 베엘제불 신도들과 싸우던 일을 되새겼다. 그런 뒤에 라울은 자기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당시 마르모트의 동면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마르모트는 다른 많은 동물들처럼, 3개월 동안 심장 박동을 90%까지 늦춘 뒤 숨도 안 쉬고 먹거나 움직이거나 자지도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라울은 그 현상을 더욱 멀리 밀고 갔다. 자고 새면 죽음의 가장자리를 더듬고 싶어 하던 그였다. 그는 마르모트를 인공적으로 더 깊은 동면에 빠지게 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마르모트를 훨씬 더 깊은 상태의 인공 동면에 빠지게 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마르모트를 냉각시킨 용액에 담가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체내 온도가 급속히 떨어지고 심장 박동이 완전히 멈출 정도까지 느려졌다. 그래도 마르모트는 죽지 않았다. 문질러 주기만 해도 30분이 지나면 다시 소생하였다.
내가 보기엔 우리 의사들이 (코마)라고 부르는 것을 라울은 (동면)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그의 실험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국제 학술 회의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냉동 마르모트를 살려내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나는 화제를 바꾸어 저승에 관한 다른 문헌을 찾아냈느냐고 느닷없이 물었다. 라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에 신명을 냈다. 자기가 특히 좋아하는 주제를 내가 그렇게 빨리 초들고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말이야!"
라울은 맛나고 흐벅진 음식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말머리를 꺼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우주가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지. 활의 과녁이 몇 개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각각의 세계는 저보다 더 작은 세계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거야. 그 과녁처럼 생긴 우주의 중심에 그리스인의 세계, 즉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있다고 믿었어."
라울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 있었다.
"그러니까, 한가운데 있는 첫 번째 세계에 그리스인들이 살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두 번째 세계에 미개인들이 있는 거지. 미개인들의 세계를 포위하는 세 번째 세계는 괴물들이 사는 곳이야. 그 괴물들 중에는 북극 땅의 흉측한 것들도 들어 있지."
"인간, 미개인, 괴물 그렇게 세 켜로 되어 있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 요약을 하며 묻자, 라울은 더욱 활기를 띠면서 보충 설명을 했다.
"아니. 괴물들의 세계 다음에는 바다가 나와. 거기에 복 받은 사람들의 섬이 있어.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머무는 낙원이지. 그 바다에는 꿈의 섬도 있어. 밤에만 흐르는 강이 그 섬을 가로지르고 있지. 섬은 망우수(亡虞樹) 꽃으로 덮여 있고 그 한가운데에 대문 네 채가 붙은 도시가 자리 잡고 있어. 두 대문은 악몽이 들어오는 문이고 다른 두 대문은 길몽을 위해 있는 거야. 잠의 신 히프노스가 그 네 문을 통제하지."
"그럴듯하군."
"바다 다음에는 다시 땅이 나와. 그게 지옥의 기슭이지. 그곳의 나무에는 말라비틀어진 열매만 열려. 그 기슭에서 뱃길이 끊어지고 모든 것이 끝나 버리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낙원과 지옥의 모습을 차례로 떠올렸다. 무엇에 홀린 듯 생각에 잠겨 있다가, 라울에게서 내 직업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라울은 소생법과 마취에 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내가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마취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사람에게 쓰는 마취제가 마르모트를 상대로 한 자기의 실험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29. 팽송 박사의 견해
가. 코마의 유형
내 친구 미카엘 팽송의 견해에 따르면, 코마에는 보통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유형 1: 유반응(有反應) 코마: 환자의 의식은 사라졌지만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인다. 이 코마는 30초에서 3일까지 지속될 수 있다.
유형 2: 환자는 찌르거나 꼬집어도 외부 자극에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 코마는 일주일까지 지속될 수 있다.
유형 3: 깊은 코마. 뇌와 무관한 기관을 제외하고, 일체의 기관이 작용을 중단한다. 상지(上旨)는 강직성 경련 상태가 된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 진다(심장근의 불규칙적인 수축을 막기 위한 충격 조치가 필요).
미카엘에 따르면, 이 유형의 코마에서 소생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나. 코마의 외형적 결과
1) 동공 산대
2) 마비
3) 입의 이상 변형
다. 코마 환자 소생법(미카엘이 사용하는 방법)
1) 심장 마사지
2) 상부 기도 삽관법
3) 200--300줄 joule의 전기 충격
4) 심장 안에 아드레날린 주사
라. 코마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미카엘이 사용하는 방법)
1) 나트륨
2) 티오펜탈(깨어나서도 숙취가 계속되므로, 환자가 깨어난 뒤 흥분할 경우에 대비할 수 있다), 프로포폴(마취의 도입이 빠르고 쉽게 깨어난다)
3) 드로페리돌(마취력이 비교적 약하며, 일시적인 무통 상태를 유도한다. 깨어난 뒤에 몸이 분리된 듯한 느낌이 한 시간 정도 지속된다. 심폐기능을 정지시킬 염려가 있다. 환자의 체중에 따라 용량을 달리 하여야 한다)
4) 염화칼륨(심장 장애와 심실의 불규칙적 수축을 일으킨다)
마. 사람의 심장 박동수
1) 정상: 1분에 65~80회
2) 최소: 1분에 40회. 어떤 요가 수행자는 38 회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40 회 아래로 떨어지면, 뇌로 유입되는 혈액이 갑자기 적어져, 잠시 의식을 잃는 가사(假死) 상태에 빠질 염려가 있다. 그런 일을 당한 경우에, 환자는 대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3) 최대: 1분에 200회. 태아의 경우.
라울 라조르박, "영계 탐사 연구 노트"
30. 역사 교과서
영계 탐사는 우발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영계 탐사가 뤼생데로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31. 뤼생데르 대통령
뤼생데르 대통령은 검은 리무진 안에서 일어선 채로 군중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웃음에는 어쩐지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사실 그는 살을 파고들어 온 엄지발가락의 발톱 때문에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사열식을 할 때 그와 같은 변고 때문에 괴로움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알렉산드르 대왕을 생각하자. 그는 매독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당시에는 매독의 치료법도 몰랐다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는 어떤 노예가 늘 뒤 따라다녔는데, 그의 임무는 카이사르의 월계관을 흔들면서 규칙적으로 그의 귀에 대고, (폐하께서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소서)라고 되뇌는 것이었다. 뤼생데르에게는 그런 것을 되풀이해서 일깨워 줄 노예가 필요 없었다. 그의 발톱이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뤼생데르는 자기를 열렬히 환영하는 군중에게 답례를 보내면서, 엄지발가락의 통증에서 벗어날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주치의는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국가의 수반인 그는 아직까지 한 번도 수술대에 누워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날카로운 칼을 든 낯모르는 사람들이 자기의 꿈틀대는 살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전속 발 치료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그 발 치료사는 수술을 받지 않고도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엔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엄지발가락의 생살에 칼을 대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 역시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인간의 보잘것없는 육신에서 무슨 골칫거리가 그리도 많이 생겨나는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이 늘 어딘가에 탈이 난다. 류머티즘, 카리에스, 결막염... 지난주에는 궤양이 도져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도움말을 했다.
"걱정 말아요, 여보. 남미 쪽 일 때문에 속이 상하셔서 그래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 가문의 격언에, (건강하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언제나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참으로 기이한 역설이었다. 어쨌든 아내가 가져다준 따끈한 우유를 마셨더니, 고통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살을 파고들어 온 발톱은 궤양처럼 그리 녹록하지가 않았다.
"뤼생데르 만세!"
주위에서 사람들이 소리쳤다.
"뤼생데르 대통령!"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또박또박 외쳤다.
아! 새로운 임기를 약속해 주는 외침! 재선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머지않았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의 엄지발가락만 아니었더라면, 뤼생데르는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멋진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는 환영 군중과 직접 어울리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어떤 여인이 그의 면전에 뺨이 발그레한 여자아이를 들이밀자 그는 그 아이를 껴안았다. 아이가 꽃다발을 바쳤는데, 그 꽃은 늘 그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종류의 것이었다.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뤼생데르가 뻣뻣한 새 구두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 정장 차림을 한 사내 하나가 권총을 쥔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몇 발의 총성에 귀가 먹먹했다.
"아니, 누가 나를 죽이려 하잖아!"
대통령은 담담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틀림없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미지근한 피가 배꼽 위로 흘러 내렸다. 뤼생데르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죽는 것은 역사의 자랑스런 한 페이지 속에 들어가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전임자인 콩고마 대통령은 전립선 암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거였다.
전임자에 비하면 그는 운이 좋았다. 검은 권총을 가진 고위 전문 관료를 거느리고 있던 덕분이었다. 암살당한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역사 교과서에 수록되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그들의 웅대한 전망과 패기 만만한 계획을 찬양했다.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은 그에게 바치는 찬가를 낭송하게 되리라. 불멸이란 바로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렸다!
뤼생데르는 군중 속으로 사라져가는 저격자를 발견했다. 그런데 경호원이라는 작자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그 머저리 같은 경호원들을 전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암살을 기도할 만큼 나를 그렇게 미워한 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걸 알면 무슨 소용이랴 하는 생각이 곧 뒤따랐다. 이제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빌어먹을 발톱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은 삶의 갖가지 자질구레한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처방이었다.
"누구 의사인 사람 없습니까? 자, 빨리! 의사 있으면 나와요!"
뤼생데르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쳤으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의사 한 사람 없었다. 이제 너무 늦었다. 총알 하나가 그의 심장을 뚫었다. 의사를 찾을 게 아니라, 암살당한 위대한 정치가들이 모인 하늘나라로 뤼생데르가 카이사르와 에이브러햄 링컨과 케네디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 그를 대신할 새 대통령을 찾아야 할 판국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들것에 올려놓더니, 구급차에 태웠다. 귀를 찢는 듯한 소리로 사이렌이 울부짖고 있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의사들이 그의 입에 반사경을 갖다 대고, 허파를 눌러댔다. 인공호흡을 한답시고 그의 입에다 제 입을 갖다대는 뻔뻔스러운 축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뤼생데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옛일에 대한 기억들이 아주 빠르게 차례차례 스치고 지나갔다.
네 살 때, 처음으로 부당하게 뺨을 맞고 처음으로 화를 냈다. 일곱 살 때, 자기 답안지를 베끼게 해준 짝궁 덕분에 우등생이 되는 첫 경험을 했다. 열일곱 살에, 첫사랑을 만났다(그 뒤로 그 여자를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실수였다. 그 여자는 너무나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으니까). 스물한 살에, 이번엔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학사 학위를 얻었다. 스물세 살에, 고대 철학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얻었다. 스물다섯 살에, 고대사에 관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물일곱에, 아버지 연고 덕에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그때 이미 자기의 장래 모습을 내다보며 다음과 같은 구호를 만들었다: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이 미래를 건설하는 일도 가장 잘 할 수 있습니다).
스물여덟에, 첫 번째 (자기)와 결혼(그 여자는 여배우였는데, 그는 이제 그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물아홉에, 당의 집행 기구 내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처음으로 비열한 짓과 배신행위를 했다. 툴루즈 시장에 당선되었고, 시유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재산을 한몫 잡았으며, 처음으로 거장의 그림과 고대의 조각품을 사들였고, 여러 정부(뜻 정, 며느리 부)와 놀아났다. 서른다섯에, 국회에 진출했고 로제르 지방에 처음으로 성(性)을 사 놓았다. 서른여섯에, 첫 번째 (자기)와 이혼하고 두 번째 (자기)와 재혼했다(이번 여자는 독일의 톱 모델인데, 머릿속에 든 건 없어도 다리는 성자라도 뇌쇄시킬 만했다). 서른일곱 살 때, 여기저기서 그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서른여덟 살 때, 파키스탄 비행기의 판매를 둘러싼 뇌물 수수 사건에 휘말려 공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
서른아홉 살에, 혼인을 새로 한 덕에 정치 무대에 전격적으로 복귀했고(이번 여자는 콩고마 대통령의 친딸이었다.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외무 장관에 임명되었다. 외무 장관에 재직하면서 처음으로 정말 혐오스러운 짓을 했다. 그것은 페루 대통령을 암살하고 대신 어떤 꼭두각시를 내세우는 일이었다.
마흔다섯 살 때, 콩고마 대통령이 죽었다.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페루의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선거 운동을 벌였다. 그때, (뤼생데르는 역사를 연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새로운 표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선거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쉰두 살 때, 다시 선거가 있었다. 이번에는 승리하여 권력을 손에 넣고 꿈에 그리던 엘리제 궁에 들어갔다. 정보기관을 장악했고, 외국에서 몰래 (회수한) 고미술품들을 모아 전용 미술관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캐비아를 국자로 퍼먹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쉰다섯 살 때, 핵전쟁으로 적을 위협했다. 적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치고 말았다.
쉰여섯 살이 되자, 정부들은 더욱 어려졌고, 쉰일곱에 최초의 진실한 친구인 베르생제토릭스를 만났다. 베르생제토릭스19)는 출세욕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검은 래브라도 사냥개였다.
마침내 쉰여덟 살이 된 지금, 그의 빛나는 생애는 이런 구절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위대한 정치가는 베르사이유에서 환호하는 군중과 어울리던 중 암살당했다.
거울에 붙은 비눗방울처럼 덧없는 게 인생이다.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대통령의 삶이라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인생의 종착역은 먼지, 재, 아니면 구더기 뱃속일 뿐이다. 그대 먼지로 돌아가리라. 그대 한 줌의 재로 돌아가리라. 그대 육신, 구더기 뱃속으로 사라지리라.
그에겐 이제 평화로이 죽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바람 밖에 없었다. 구더기에게도 조용히 죽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그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더니, 몸을 주무르고 옷을 벗긴 다음, 주위에 있는 복잡한 장치에 그의 몸을 접속시켰다. 그자들이 쑥덕거리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각하를 살려내야 해) 하고 되뇌이는 소리도 들렸다. 어리석은 것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뤼생데르는 심한 피로가 엄습해 옴을 느꼈다. 목숨이 서서히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그것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장 뤼생데르는 자기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는 정말 자기 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나인가? 나 아닌 다른 무엇인가 다른 어떤 것이 있기는 있는데...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영혼? 비물질적인 몸? 심령체? 물질화한 정신? 그것은 투명하고 가벼운 상태에 있는 그였다.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도 하고, 벗겨지는 듯도 하고, 나누어지는 듯도 했다. 참으로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는 다 해진 낡은 옷을 벗어버리듯 자기 육신을 버리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자꾸자꾸 올라갔다. 엄지발가락의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아주 가벼웠다.
그의 새로운 (나)는 천장에서 잠시 늑장을 부렸다. 거기에서 그는 길게 누운 시체와 치료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았다. 그들은 그의 유해를 전혀 소중히 다루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흉곽을 가르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더니, 심장 근육에 직접 전극을 장착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탯줄처럼 생긴 투명한 줄 하나가 그의 시체와 그를 아직 이어 주고 있었다. 그가 시체에서 멀어짐에 따라,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는 은빛 줄이 늘어났다.
그는 천장을 통과해서 환자들로 가득 찬 병원 건물의 여러 층을 지났다. 이윽고 지붕이 나오고 하늘이 보였다. 자애로운 빛 한 줄기가 멀리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꿈 같은 일이었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날고 있었다. 그처럼 그들도 은빛 줄을 늘이고 있었다. 멋진 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은빛 생명 줄이 늘어나기를 멈춘 채 단단해지고 팽팽해 졌다. 사람들이 아래에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죽어가던 뤼생데르가 되살아나는 중이었다. 그는 그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른 심령체들이, (저자는 왜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거지?) 하고 의아해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끌어당기던 고무줄 같은 은빛 줄이 갑자기 오므라들었다. 그는 다시 지붕과 천장을 거쳐 수술실로 돌아왔다. 간호사들이 그의 심장에 몇백 볼트의 전기를 직접 흘려 넣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법이야!)라고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두 해 전에, 너무 악착스러운 치료 행위를 제한하기 위한 법안이 상정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그 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법의 676조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심장의 제반 작용이 중단되었을 때는, 기력이 다한 심장을 무리하게 재박동시키려는 어떠한 조작이나 공격적 행위나 수술을 행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단지 그가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은 그의 목숨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 치사한 자식들! 에이, 지저분한 것들! 그는 자기가 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불쾌감을 느꼈다. 그 순간에 그가 지녔던 바람은 오직 하나,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부랑자가 되는 것이었다. 부랑자, 거지, 노동자, 가정부 어느 쪽이든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죽음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죽는 것, 그것은 시민의 첫째가는 기본권이 아니던가!
"날 죽게 내버려 둬! 날 죽게 내버려 두란 말이야!"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심령체에는 목소리가 없었다. 은빛 줄이 그를 계속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다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쏙 하고 그는 자기의 옛 몸뚱이로 다시 들어갔다. 아주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아야! 살을 파고든 발톱 때문에 벌써 통증이 몰려들고 있었다. 심장에 전기 충격을 주느라고 사람들이 부러뜨린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다시 전기 충격을 주었다. 이번엔 정말 너무 아팠다.
그는 눈을 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서로 축하의 말을 건네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 어리석은 것들...
"성공했어요, 성공한 거예요!"
"각하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어요. 숨이 돌아왔어요. 각하를 구해냈어요!"
구해냈다고?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구해냈단 말이냐? 차라리 너희들로부터 구원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게다. 육신의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 (충격을 멈춰. 내 흉곽을 다시 닫아 줘!)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도 외치고 싶었다: (문 좀 닫아 줘. 바람이 불어.) 그의 모든 신경이 아픔을 전해 오고 있었다.
오, 그대 고통에 찬 육신이여, 그대 다시 여기에 있구나.
그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침대 주위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그의 모든 신경이 격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저 위 하늘에 있던 경이로운 빛의 나라를 돌이켜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다시 편안함을 느껴보려고 도로 눈을 감았다.
32.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성명: 장 뤼생데르
모발: 회색
안구: 회색
신장: 1m 78cm
외모의 특징: 없음
특기 사항: 영계 탐사 운동의 개척자
약점: 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신분
33. 메르카시에 장관
온통 루이 15세 시대풍의 가구로 꾸민 대통령 집무실은 아주 널찍했다. 조명은 그리 환하지 않았지만, 유명한 그림과 그리스의 요염한 조각품들을 식별하기엔 충분했다. 미술은 교양이 없는 자들에게도 쉽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예술 장르였다. 과학부 장관 브누아 메르카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통령에게로 다가갔다. 대통령의 얼굴을 분명히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메르카시에는 대통령이 자기 정면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책상의 전등이 대통령의 손만을 비추고 있었지만 중후한 실루엣이 눈에 익은 모습이었다. 검은 래브라도 사냥개도 그의 발께에 엎드려 있었다.
국가 원수를 시해할 뻔한 그 암살 기도 사건 이후에 두 사람이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과학부 장관은 대통령이 자기를 부른 것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과학부 일이라야 언제나 보조금 타령만 하는 연구자들을 다독거리는 일 정도이고, 국내 정치나 국제 정치와 관련해서 더욱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들이 허다할 텐데, 굳이 자기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던 것이다.
메르카시에는 침묵이 길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자기가 먼저 말문을 열기로 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의적절하지만 평범한 인사말을 골랐다.
"각하, 안녕하십니까, 수술 뒤끝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의사들이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뤼생데르는 그런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불빛 속으로 몸을 내밀어, 유난히 반짝이는 회색 눈으로 빨간 수단(數緞) 의자에 옹송그리고 있는 상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메르카시에 장관, 내가 장관을 부른 것은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했기 때문이오. 장관만이 나를 도와줄 수 있소."
"영광입니다,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뤼생데르는 뒤로 몸을 젖혀 다시 어슴푸레한 빛 속에 잠겼다. 이상한 일이었다. 뤼생데르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평소와는 다른 묘한 위엄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도 갑자기... 더욱 사람다운(메르카시에는 자기 뇌리에 그 형용사가 떠오른 것을 놀라워했다)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뤼생데르가 물었다.
"장관은 생물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오. 안 그렇소? 그래서 묻는 건데, 코마 이후의 체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메르카시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대통령은 그러고 있는 그에게 역정을 내면서 덧붙였다.
"임사 체험자들, 즉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들 몸으로부터 빠져나갔다가 의술의 진보 때문에, 아니 진보된 의술 덕분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냔 말이오?"
브누아 메르카시에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현실주의자 뤼생데르가 신비 현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다 온 탓일까? 메르카시에는 머뭇거리다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저는, 임사 체험을 하나의 유행,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허다한 다른 유행이 그랬듯이 그것도 한때 유행하다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경이로운 것, 초자연적인 것, 이 물질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몇몇 작가들이나 도사(導師)나 사기꾼들은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장삿속으로 이용합니다. 그런 욕구는 인간의 마음속에 늘 있어 왔습니다. 종교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가상의 미래에 천국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 주기만 하면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쓰디쓴 알약을 더욱 쉽게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임사 체험을 믿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어리숙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장관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오?"
"물론입니다. 천국에 대한 꿈보다 더 아름다운 꿈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그보다 더 (헛된) 꿈이 뭐가 있겠습니까?"
뤼생데르는 잔기침을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장관이 말하는 그 객쩍은 소리에 진실한 뭔가가 있다면 어쩌겠소?"
장관은 과학자답게 비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예로부터 저승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 왔지만, 그 증거는 없습니다. 저승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곰을 본 사람을 보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람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오늘날엔 모든 게 그 반대로 되어갑니다. 오늘날의 회의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의심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가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올 거라고 예언하면 금방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종말이 오지 않을 것임을 증명해 낼 것입니다."
뤼생데르는 공평한 입장을 보이려고 애썼다.
"증거가 없다고 했지요? 어쩌면 아무도 그걸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가 없는지도 모르잖소? 그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가 단 한 건이라도 있소?"
메르카시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신빙성이 부족한 증언들을 기록해 두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그래요, 브누아."
뤼생데르가 목청을 높였다.
"그것도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소. 아까 (곰을 보았다는 사람) 얘기를 했지요. 그 곰을 직접 본 사람이 있소. 그게 바로 나요."
과학부 장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대통령을 찬찬히 살폈다. 저격 사건이 대통령에게 치료 불능의 후유증을 남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심장을 다쳤기 때문에, 몇 분 동안 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았었다. 그때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브누아, 왜 나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요? 그만 보시오."
뤼생데르는 엄하게 소리치고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했다고 그리 놀라시오?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말하기라도 했소? 나는 임사 체험을 했다고 얘기했을 뿐이오."
"각하의 말씀이 믿기지 않습니다."
과학자의 직감으로 장관이 반박했다.
대통령은 믿거나 말거나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믿지 않았을 거요.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소. 나는 (경이로운 대륙)을 언뜻 보았고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소."
"언뜻 보셨다고요? 각하의 눈으로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언제나 합리적인 사람인 메르카시에가 그 일에 대해 자기 나름의 설명을 늘어놓았다.
"죽음이 임박하면 인체는 종종 다량의 생 모르핀을 만들어 냅니다. 그 모르핀 때문에, 빈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에 도취 상태에 빠지지요. 화학적인 성찬을 먹고 마지막 불꽃놀이를 하는 셈이지요. 환각이 일어나고 (경이로운 대륙) 같은 것을 보게 되는 이유가 틀림없이 거기에 있습니다. 수술대 위에서 각하께 일어났던 일도 그런 것인 듯합니다."
탁상 전등의 불빛을 받고 있는 뤼생데르는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뇌에 이상이 있다면 그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장관들과 언론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닐까? 대통령이 나라를 정신 착란 상태에 빠뜨리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메르카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 밑에서 손을 비비꼬고 있었다. 그러나 정면에 앉은 상대방은 아주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브누아, 나도 환각제의 효과가 어떤 거라는 것쯤은 알아요. 예전에 그런 것을 접해 본 적이 있소. 마약이 일으키는 환각과 실제의 일을 내가 왜 구별을 못 하겠소? 장관이 내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지요. 어떤 과학 분야든 성과를 빨리 올리려면 투자를 많이 하면 된다고 말이오. 그랬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재향 군인회 예산 1%를 슬쩍 떼어 줄 생각인데, 그 정도면 되겠소?"
메르카시에는 당장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못 하겠습니다. 저는 참된 과학자로 남고 싶습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가장행렬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하라니까요."
"계속 그러시면 사임하겠습니다."
"정말이오?"
34. 역사 교과서
우리 조상들의 죽음
두 번째 천년기 막바지인 1970 년에 사망한 사람들을 당시의 사회 직업적 범주로 분류하여, 각 범주별로 천 명 중에서 50세를 넘긴 사람들의 수를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다.
초등학교 교사: 732
고급 관리직과 자유직 종사자: 719
기술자: 700
가톨릭 사제: 692
농업 경영자: 653
중소 상공인: 631
사무직 노동자: 623
중간 관리직: 616
노동자: 590
농업 임노동자: 565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35. 신대륙
브누아 메르카시에는 허탈한 마음으로 샹젤리제 거리를 오랫동안 거닐었다. 그는 임사 체험이 환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엄연히 실제한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임무가 그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그 일은 무신론자에게 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라거나 채식주의를 신봉하는 광고업자에게 육식의 장점을 홍보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메르카시에는 뤼생데르가 그 임무를 위해 자기를 선택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대통령은 자기 사람들에게 역설을 실행하도록 강요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파 장관들에게 좌파 정책을 적용하도록 억지로 요구했고, 환경론자들에게 원자력 이용의 장점을, 보호 무역주의자들에게 자유 무역을 강제로 칭찬하게 만들었다.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은 그 말도 안 되는 (천국) 사업에 이미 20만 프랑의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몸밖으로 빠져나가 어떤 (경이로운 대륙)으로 간다는 것을 증명해 내야 할 판국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경솔한 계획을 추진한 국가 원수는 뤼생데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메르카시에의 기억으로는 이미 1970년대에 지미 카터라는 이름의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지미 카터는 미확인 비행 물체와의 교신을 시도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적이 있었다. 그는 미확인 비행 물체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UFO)에 대한 증언들을 종합하고 진위를 확인하는 사업을 발족시켰다. 근엄한 학자들이 텔레비젼에 끌려 나와 환각증 환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지미 카터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 지능 생물의 메시지를 포착하고 그들과 교신할 목적으로 거대한 송수신 장치를 만드느라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퇴각하는 러시아군을 뒤쫓아 베레지나 강을 건넜던 나폴레옹의 원정군처럼 뤼생데르는 자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에 메르카시에의 괴로움이 있었다. 대통령의 변덕에 맞장구를 치며 비위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장관 자리를 포기할 것인가.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는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권력의 한 귀퉁이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 재향군인회 쪽에서 보면 참 안 된 일이지만, 메르카시에는 20만 프랑의 용도를 찾아내야 할 처지에 있었다.
좋다, 하자. 그런데, 어떻게 하지? 메르카시에는 아내 질에게 도움을 청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그가 회의에 빠져 있을 때마다 적절한 도움말로 힘을 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가까운 조언자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가 임사 체험 문제를 털어놓았더니, 아내는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그를 무척 놀라게 했다. 꽃양배추 퓌레를 접시에 퍼 담으면서 생각을 가다듬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먼저 해야 할 것은 실험 계획안을 만드는 일이에요. 다시 말하면, (사후에 뭔가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는 거예요. 일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지금 당신에게 있는 실마리가 무엇인지를 따져 보아야 돼요. 그런 게 뭐가 있죠?"
"딱 하나 있어. 그렇지만 중대한 실마리지. 대통령이 임사 체험을 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거지."
메르카시에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그의 아내는 여느 때처럼 그의 용기를 북돋웠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성공하려면 먼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남이 강요한다고 해서 임사 체험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대학에서 배우고 연구한 걸 깡그리 무시해야 할 판이오!"
그가 그렇게 한탄하자, 아내가 그의 푸념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신은 이제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가예요. 그러니 정치가답게 사고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
"(경이로운 대륙)을 언뜻 보았다고 주장하더군."
"(경이로운 대륙)이라고요?"
질이 미간을 찌푸렸다.
"재미있군요. 옛날 유럽의 항해자들이 내가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했을 때 사용한 이름이 바로 그거였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오?"
메르카시에가 자기 잔에 포도주를 따르며 물었다.
"당신에게 신대륙을 탐험하라는 임무가 맡겨진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16세기 개척자들의 마음가짐을 지녀야지요. 그들은 인도네시아 동쪽에 대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당시에 누군가 그런 사실을 주장했다면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기가 십상이에요. 지금 당신이 대통령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거나 하나도 다를 게 없었어요."
"경우가 다르지. 거기에는 초원과 나무와 짐승과 원주민들이 있는 아주 명백한 대륙이 있었소."
"21세기니까 그런 얘기를 쉽게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시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죽음 너머의 대륙을 들먹이는 것만큼이나 해괴한 일로 치부되었을 걸요."
메르카시에는 술병을 다 비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명철한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았다. 게다가 한 해라도 더 살려면 몸 생각도 해야 했다. 질은 조리 있게 자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당신이 그 시대의 재상이라고 생각해 봐요. 당신의 왕이 항해 중에 난파를 당했는데 (경이로운 대륙)을 언뜻 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왕이 그 대륙으로 나아가려던 찰나에 다른 배가 와서 그를 구했어요. 왕은 수도로 돌아온 뒤에도 그 대륙을 잊지 못한 나머지, 해운 재상을 불러 그 (경이로운 대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그런 각도에서 당신의 문제를 바라보면, 틀림없이..."
질은 뒷말을 줄이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은 죽은 이들의 나라를 (새로운 오스트레일리아)로 명명하고, 탐험가들의 정신을 당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요. 거기에 도전하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할 만한 일이에요. 31세기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사자(死者)들의 대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비웃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서기 3000년에는 지금 우리 대통령보다 한술 더 떠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대통령이 나타날지도 몰라요. 그때 그 임무를 맡을 장관은, 옛날에 살았던 메르카시에라는 사람을 부러워할 거예요. 사자들의 대륙을 찾아가는 임무 정도는 그의 임무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아내의 말이 하도 그럴 듯하여 브누아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 사자들의 대륙이 있다고 믿소?"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내가 아는 건, 만일 내가 16세기 해운 재상의 아내였다면, 남편에게 함대를 이끌고 가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라고 충고했으리라는 거예요.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에게 나쁠 건 없어요. 당신은 그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되거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되겠지요. 어느 경우나 당신은 이미 이기고 들어가는 거예요."
이번에는 질이 술병을 움켜쥐었다. 푸릇한 퓌레에 시선을 박은 채 남편이 투덜거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무슨 대륙에 어떤 배를 보내지?"
질은 술잔을 한 번에 비우고 말했다.
"이제 다시 실험 계획안 문제로 돌아가서 얘기를 해야겠군요. 샐러드 더 드실래요?"
"아니."
그는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근심 때문에 식욕이 싹 가시고 말았다. 게다가 아내가 부엌으로 상추와 토마토 그릇을 가지러 갈 계제도 아니었다. 남편의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하고 열을 내던 상황인지라 아내는 다시 자리에 앉아 또박또박 말했다.
"자, 우리는 당신이 탐험할 대륙을 (새로운 오스트레일리아)라 부리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면 옛날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을 보냈는지 생각해 보세요. 누구죠? 도형수, 일반 죄수, 악질적인 부랑배들이었지요. 하필이면 왜 그들을 보냈을까요?"
그제서야 메르카시에는 얽힌 실타래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
"그건 오스트레일리아가 위험한 대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없어져도 그 사회에 그다지 손실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거요."
말을 하면서 그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내는 어김없이 그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여보, 당신은 신대륙을 탐험하러 갈 항해자들이 누구인지 아셨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젠 그 항해자들에게 선장을 마련해 줘야 해요."
과학부 장관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문제에 대해선, 내게 좋은 생각이 있소."
36. 아즈텍 신화
아즈텍 사람들은 저승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이승의 삶에서 쌓은 공덕이 아니라 죽음을 맞을 때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훌륭하게 죽는 방식은 전투를 하다가 죽는 것이다. 전투 중에 죽은 쿠안테카(독수리의 친구)들은 동방의 낙원인 토나티우히샨에 인도되어 거기에서 전쟁의 신 옆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물에 빠져 죽었거나, 고름, 콧물, 침 따위로 옮겨지는 나병처럼 물과 관련된 병으로 죽은 사람은 비의 신 틀랄로크의 궁전인 틀랄로칸으로 간다.
아무 신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미크틀란이라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4년에 걸쳐 시련을 받고 마지막 분해에 이른다.
그곳은 미크틀란테쿠틀리가 다스리는 지하 세계이다. 그곳에 들어가자면 동굴들을 거쳐 가야 한다. 영혼은 아홉 번째 명계(어두울 명, 지경 계)에 다다르기 전에, 여덟 군데의 장애를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장애: 시크나후아판 강. 죽은이는 적갈색 개의 꼬리를 잡고 그 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 개는 앞서 죽은이의 무덤에 바쳐진 제물이다. 장례식 때 바쳐진 동물들은 천도(옮길 천, 법도 도), 즉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장애: 두 산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서로 부딪친다.
세 번째 장애: 모난 자갈로 뒤덮인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산을 기어 올라가야 한다.
네 번째 장애: 오석(까마귀 오, 돌 석) 바람, 즉 뾰족한 돌멩이들을 휘몰아 오는 맵찬 돌풍을 만난다.
다섯 번째 장애: 거대한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까마득히 펼쳐져 있는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여섯 번재 장애: 사자를 꿰뚫으려는 화살들이 빗발친다.
일곱 번째 장애: 사자의 심장을 삼키려는 사나운 짐승들이 떼지어 덤벼든다.
여덟 번째 장애: 좁고 험한 길을 지나가게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는다.
그 시련을 겪고 나면 마지막 분해에 다다를 자격을 얻는 것이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37. 라울의 꿍꿍이속
라울 라조르박은 몇 주 후에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나를 급히 만나고 싶어 했다. 전화를 거는 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라울은 어떤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약속 장소를 페르 라셰즈 묘지가 아닌 자기 아파트로 정했다.
그가 문을 열어 주었을 때 나는 간신히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훨씬 더 야위어 있었다.
"아. 미카엘, 드디어 왔군!"
그런 말투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서 나타난다고 병원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그는 안락의자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편히 앉으라고 권했다. 마치 이제부터 나를 깜짝 놀래킬 이야기를 하겠다는 투였다.
마르모트 동면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뭔가 획기적인 성과라도 얻은 것일까?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의사이지 생물학자가 아니지 않은가?
"자네, 뤼생데르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는 얘기 들었지."
물론 그 얘기는 숱하게 들은 바가 있었다. 그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이 나라에 아무도 없을 터였다. 신문, 텔레비젼, 라디오가 모두 그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우리 국가 원수가 베르사이유에서 군중의 환호에 답례를 보내던 중 저격을 받고 쓰러졌는데, 가장 뛰어난 의사들이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울이 흥분해 있는 것과 그 사건이 어떻게 관련을 맺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이 있은 다음, 뤼생데르 대통령이 과학부 장관을 불러 어떤 임무를..."
라울은 갑자기 이야기를 중단하고 내 손목을 꽉 잡았다.
"날 따라오게."
38. 역사 교과서
최초의 외부 이식은 20세기 중엽, 정확히 말하면 1960년에서 70년 사이에 실행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환자를, 결함이 있는 부품을 갈아 끼우기만 하면 되는 자동차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죽음은 단순한 기계 고장과 같은 양상을 띠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갈아 끼울 적당한 부속이 없기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돼지 염통이 인체에 이식되었을 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돼지 유전자를 바꾸는 방법을 구상했다. 외부 기관의 거부 반응을 줄이는 의료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뇌를 제외한 모든 기관을 교체하는 일이 가능해 졌다(뇌는 오늘날에도 교체가 불가능하다).
질병을 일종의 기계 고장으로 여기다 보니,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가장 심한 고장을 포함한 모든 고장을 없애 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 졌다. 그것은 단지 기술의 문제일 뿐이었다.
한편, 의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화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이 부주의하고 나태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의 생체 기계를 간수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 되었다.
사람들은 쭈글쭈글하거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모습을 지닌 노인들을 홀대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테니스를 치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 시대 사람들은, 죽음에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을 일깨우는 전조를 감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39. 아망딘
라울은 접는 식 지붕을 갖춘 구식 (르노 20) 승용차에 나를 밀어 넣더니 황급히 출발했다.
"어디로 데려가는거야?"
"가보면 알아."
나는 그에게서 그 이상의 것을 알아낼 수 없었다. 내가 묻는 말과 그가 대답하는 말을 모두 바람이 날려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는 파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라울은 마침내 음산한 느낌을 주는 어떤 표지판 앞에서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표지판에는 (플뢰리 매로지 교도소)20)라고 씌어 있었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밖에서 보기에 그곳은 감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도시나 병원과 비슷했다. 라울은 인접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나를 입구로 데려갔다. 그는 출입 허가증을 제시하고 나는 내 신분증을 내밀었다. 우리는 갑문을 통과하듯 작은 방을 지난 다음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떤 문 앞에 다다르자 라울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어떤 남자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이미 뭔가에 화가 나 있던 그는 라조르박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이는 데도 여전히 우거지상을 펴지 않았다.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이 사람이 미카엘 팽송 박사입니다. 소장님께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출입증을 하나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금방 되겠죠? 부탁드립니다."
소장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우리는 오던 때와 다른 복도로 나섰다. 우리와 마주치는 교도관들이 우리를 별로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울을 따라 얼마쯤 걷다 보니 운동장 같은 것이 나왔다. 작은 도시와도 같은 거대한 감옥의 한가운데쯤 될 듯했다. 다섯 구획으로 나뉜 건물들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각 구획마다 한가운데에 축구장만 한 마당이 있었다. 라울은, 수감자들이 운동을 많이 하는데 그 시간에는 아직 감방 안에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나타난 것에 대해 몹시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 3층 쇠창살에 매달린 죄수들이 악을 쓰며 외쳐댔다.
"에이, 쓰레기들아, 더러운 자식들아, 네 놈들 살가죽으로 포를 뜨고 말 거야."
교도관들은 그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애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죄수가 또 소리를 질렀다.
"우린 너희들이 D2 동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너희 같은 인간들은 살 자격이 없어."
나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 친구 라울이 무슨 일을 했길래 저들이 저토록 화를 내는 것일까? 그러나 라울은 태연하게 계속 가고 있었다. 그의 열정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열정 때문에 그는 상궤를 벗어나 아주 멀리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D2 동. 죄수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라울을 따라 내가 거기까지 간 것은 더 알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성난 죄수들과 적의를 내비치는 교도관들 사이에 혼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뒤 우리는 다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철판으로 단단하게 만든 문들을 빗장을 풀어 가며 차례차례 지나자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자꾸 내려가고 있자니 꼭 지옥으로 내려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래에서 누군가가 불평을 한참 늘어놓고 있었다. 불평 사이사이에 상스런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미친 사람들을 그쪽에다 가두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어둠이 점점 짙어졌다. 문득 아에스쿨라피우스21)가 광증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했다는 방법이 생각났다. 정신 의학의 선구자라 할 만한 그는 3천 년 전에 어두컴컴한 터널의 미로를 만들어 그것을 광인을 치료하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그 터널의 미로를 설치했던 곳은 아에스쿨라피온이라는 의료 시설이었는데, 그 폐허가 아직까지도 터키에 남아 있다고 한다. 아에스쿨라피우스가 고안한 방법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광인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면서 그동안에 그들에게 최상의 쾌락을 맛보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불어 넣는다. 그런 다음, 그들을 터널 속으로 데려간다. 터널에 들어가자마자 노래가 울려 퍼지고 어두운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선율은 더욱 감미로워진다. 아름다운 음악에 매료된 광인이 가장 어두운 곳에 다다랐을 때, 그를 향해서 어떤 통의 뚜껑을 열고 그 내용물을 쏟아 붓는다. 그 통에는 끈적거리는 뱀이 가득 들어 있다. 그러면 쾌락의 절정을 기대하던 그 불쌍한 광인은 겁에 질린 채 뱀들 속에서 발버둥을 친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거나 멀쩡한 사람이 되어 다시 나온다. 그러고 보면, 아에스클라피우스는 오늘날의 전기 충격 요법과 같은 것을 고안해 냈던 셈이다.
나는 라울이 이끄는 대로 플뢰리 매로지 교도소 지하층으로 내려가면서, 내 앞에 곧 차가운 뱀들이 담긴 통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라울이 녹슨 열쇠 하나를 꺼내더니, 장식 못이 박힌 두툼한 문을 열었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넓은 창고였는데, 물건들이 너무 엉망으로 널려 있어서 꼭 잡동사니 헛간처럼 보였다. 운동선수의 보온복을 입은 남자 세 명과 까만 작업복을 입은 금발의 젊은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남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친구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여러분에게 미카엘 팽송 박사를 소개하지요. 내가 전에 말했던 그 사람이오."
"박사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자들이 합창하듯 소리쳤다.
"이쪽은 발뤼스 양이야. 우리 간호사지."
나는 여자에게 인사를 하면서 그녀가 눈길로 나를 저울질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곳은 전에 격리 감방으로 쓰던 곳을 실험실로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오른쪽에 있는 실험대 위에 플라스크들이 널려 있었다. 플라스크에서 연기가 모락거리는 걸 보니 액체 질소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치과용 의자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데, 의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낡은 것이었다. 그 주위엔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계들과 깜박거리는 모니터들이 놓여 있었다.
그 방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마추어 목수의 창고와 비슷했다. 기구들의 상태며 녹슨 손잡이와 지렛대 따위를 보고 있자니, 라울이 대학의 쓰레기통을 뒤져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실로스코프의 화면에는 금이 가 있고, 심전계의 전극은 세월 탓에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녀 본 실험실도 대개 그런 모습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실험실이 언제나 때 하나 안 묻은 완벽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니켈 실험대도 없고 세탁소에서 갓 나온 듯한 가운도 없다. 오히려 임시로 마련된 장소에 낡은 스웨터를 입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은, 뇌의 주름 속에서 사고의 궤적을 추적하는 상당히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실험실이라고 가지고 있는 게 고작 비샤 병원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그런데, 지하철 열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마다 진동 때문에 방 안의 물건들이 서로 부딪쳐 엉망이 되곤 했다. 뇌파 수신기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금속으로 된 버팀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는 신용 대부를 받을 형편도 못 되어 그것을 살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나무에 접착테이프를 붙이고 압정으로 보강한 버팀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에서도 뭘 연구한다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다.
"여보게 미카엘, 이곳에서 우리 세대의 가장 대담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네."
라울은 그런 거창한 말로 생각에 잠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자네 생각날 거야, 옛날에 우리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만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 그때 내가 죽음을 미탐험의 대륙이라는 식으로 말하곤 했네. 이제 여기서 우리는 그 대륙에 깃발을 꽂으려 하네."
올 것이 왔다. 뱀들이 들어 있는 통이 내 앞에 떨어진 것이다. 가장 친한 벗이자 가장 오래된 친구인 라울 라조르박은 광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죽음에 대한 실험에 몰두해 있지 않은가!
내가 할 말을 잊고 어리둥절해 있음을 보고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베르사이유 암살 기도 사건 때 뤼생데르 대통령은 임사 체험을 했네. 그래서 그는 과학부 장관 브누아 메르카시에에게 코마 너머의 세계에 대한 연구 사업에 착수하라고 임무를 맡겼지. 장관은 국제 학술지에서 (마르모트의 인공 동면)에 관한 내 논문을 읽었던 모양이야. 그가 나를 보자고 하더니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은 실험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네. 마르모트도 죽음의 세계로 갈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동물들은 거기에서 본 것을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가 없어. 사람들이라면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하기로 했네. 정부가 뒤에서 받쳐주니까 임사 체험에 관한 연구를 마음 놓고 할 수가 있어. 그리고 지원자들의 도움도 받을 수가 있다네. 그들은 일반법을 어긴 수형자들이지. 바로 여기 이 사람들이 우리의 영계 탐사자들일세. 달리 말하면, 음..."
라울은 마땅한 말을 떠올리려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랄까... 이 사람들은..."
이윽고 라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맞아. 타-나-토-노-트일세. 그리스 어의 (타나토스 thanatos)는 죽음을 뜻하고, (나우테스 nautes)는 항해자라는 뜻이지. 그 말을 합쳐서 (타나토노트 thanatonaute)라는 말을 만든 걸세. 타나토노트, 정말 멋진 말이지? 만들어 놓고 보니 코스모노트나 아스트로노트와 같은 계열의 말이 되는군 그래. 그 단어는 머지않아 사전의 올림말이 될거야. 우리가 전문 용어 하나를 지어낸 거지. 우리는 타나토노트들의 힘을 빌어 영계 탐사에 나서는 걸세."
라울은 자아도취에 빠져 혼자서 열을 내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이 창고는 타나토노트들이 이륙하는 곳이니까 (타나토드롬 thanatodrome)이 되는구먼."
플뢰리 메로지의 지하 실험실에서 새로운 어휘가 만들어졌다. 라울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금발 머리 아가씨가 거품 이는 포도주 한 병과 비스켓을 내놓았다. 모두가 그 명명식을 기념하며 축배를 들었다. 침울하게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라울이 내미는 막대 비스켓을 뿌리치며 말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좌흥을 깨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제가 이해한 게 맞는다면 이곳은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는 곳입니다. 여기 이분들의 임무는 사자들의 나라를 탐사하러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다네, 미카엘, 굉장하지 않은가?"
라울은 손을 들어 때묻은 천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영계 탐사는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어마어마한 도전일세."
나는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라울, 그리고 여러분, 저는 그만 가야겠습니다. 나는 자살하고 싶어 안달하는 미치광이들에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든 안 받든 마찬가지예요. 그럼, 이만."
나는 잰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간호사가 내 팔을 꽉 잡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다리세요.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해요."
그 여자는 애원조로 말하지 않았다. 거의 무관심하다 싶을 만큼 냉랭한 말투를 썼다. 병원 일을 하면서 탈지면이나 메스를 달라고 할 때 사용함 직한 말투였다.
둘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자위는 보기 드문 빛깔을 띠고 있었다. 짙푸른 색 자위 한가운데에 낙타색 동공이 들어 있는 눈이었다. 동공이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외로이 떠 있는 섬 같았다. 컴컴한 구렁에 빨려 들어가듯 금방이라도 그 눈동자에 빠져들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미소를 짓지 않고 별로 상냥한 기색도 없이 계속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에게 말을 걸어 준 것만도 벌써 크게 선심을 쓴 거라는 투였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서둘러 그 불길한 곳을 빠져나왔다.
40.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성명: 아망딘 발뤼스
모발: 금발
안구: 감색
신장: 1m 69cm
외모의 특징: 없음
특기 사항: 영계 탐사 운동의 개척자
약점: 성적인 쾌락을 아주 좋아함
41. 아마조니아 인디언 신화
옛날에 조물주는 인간에게 영생을 허락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강둑으로 가거라. 그러면 통나무배 세 척이 차례차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처음 내려오는 두 척의 배를 붙들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배를 기다렸다가 그 배 안에 있는 정령을 끌어안으라.)
과연 첫 번째 배가 내려오는데, 벌레가 득실거리고 메스꺼운 냄새를 풍기는 썩은 고기가 실려 있었다. 인디언들은 구역질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두 번째 배가 나타났을 때 그들은 죽은 사람이 태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 사람을 소생시키려고 배로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에 조물주의 정령을 실은 세 번째 배가 나타났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조물주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끌어안는 것을 보고 질겁을 했다. 결국 사람들은 영생 대신에 죽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1) 미국의 영화 감독인 우디 앨런을 부른 것이다.
2) 프랑스 중부 고지가 원산인 흰색의 대형 고깃소
3) 기독교 전승에 나오는 전설적인 인물. 아기 예수를 어깨 위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 자체가 (그리스도를 건네준다 christo-phoros)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여행자들을 지켜주는 성인인데, 오늘날엔 운전자들을 돌보아 주는 서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4) 팽송은 (방울새)라는 뜻이다.
5) 라조르박은 (긴수염고래) 또는 (큰 고래)라는 뜻이다.
6) 이집트의 신. 사람과 같은 형사으로 머리 위에는 둥근 태양을 이고 있는데, 이따금 호루스와 같은 신으로 간주되어 사람 대신 매의 머리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태양신 라의 도시는 헬리오폴리스이며, 거기에는 그는 원초신(근원 원, 처음 초, 귀신 신) 아홉을 낳았다. 헬리오폴리스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 라는 매일 아침 낮배에 올라 아포피스라는 뱀과 싸우면서 낮 동안 천공을 여행하고, 밤에는 밤배를 타고 암흑의 바다를 건넌다고 한다. 제2왕조로부터 이집트 왕들이 스스로를 파라오(라의 아들)라 부르게 되면서 태양신 라는 이집트의 많은 신 가운데 가장 유력한 신으로 발전했다.
7) 이집트의 여신. 원래는 다른 신들과 상관없이 호로 숭배되던 신이었으나 오시리스 신화에 포함되면서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 호루스의 어머니가 되었다.
8) 이집트의 여신.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세트의 아내.
9) 이집트의 신. 이리 머리를 가진 사람의 형상. 고왕국 초기까지만 해도 영혼의 심판에 관여하는 사자의 신으로 숭배를 받았으나, 오시리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저승에서 (영혼을 인도하는 신)으로 격이 낮아졌다.
10) 기원전 2 천년 년 무렵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말(앗시리아 말과 바빌로니아 말)로 씌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 반신반인의 영웅 길가메슈를 주인공으로 하는 수메르의 신화군을 열두 개의 점토판에 나누어 3,600행으로 정리한 것. 현재 전하는 것은 앗시리아 어 판 약 2천 행과 바빌로니아어판 일부, 그밖에 히타이트어와 후르리어판 단편(끊을 단, 조각 편) 등이 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야수성과 신성, 투쟁, 우정, 사랑, 욕망, 모험 등 문학의 영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11) 이집트의 신. 미라 형상의 사람 모습으로 가슴 위에 팔을 포갠 채 한 손에는 규를, 다른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으며, 파라오들처럼 좁다랗게 땋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고, 타조 깃털 두 개가 달린 뾰족한 흰 모자를 쓰고 있다. 원래는 식물계의 신으로 숭배를 받다가 숭배가 널리 확대되면서 성격이 다양해졌다. 썩었다가 다시 싹트는 낟알, 가물었다가 물이 붇는 나일 강, 기울었다 다시 차는 달, 또는 밤이 새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에도 비유되던, 오시리스는 부활의 신이 되었고 마침내 저승에서 인간이 계속 살 수 있게 해주는 사자들의 신으로 발전했다. 제5왕조 말기에 왕이 죽으면 오시리스가 된다는 믿음이 나타났고, 중왕국이 시작될 무렵에는 죽은 이들 모두가 오시리스가 된다고 믿게 되었다.
12) 태양신 라는 아침에 (캐프리)가 된다.
13) 악마 이름 중의 하나. 신약성서 (마태복음) 12장 24절 등에서는 악마의 우두머리를 가리키고 있다. 구약성서 (열왕 기하) 1장 2절에 나오는 애크론의 신 바알즈붑("파리들의 신"이라는 뜻)을 경멸하는 뜻으로 변형시킨 이름이다.
14) 살인 충돌을 일으키는 정신 착란, 또는 그런 정신 착란자를 가리키는 말레이 말.
15) (악마)를 뜻하는 아랍 말. 근동 지방의 전설에 나오는 여자 흡혈귀.
16) Hieronymus (프랑스어로는 Jerome) Bosch (1450--1516). 네덜란드의 화가. "어리석은 자들의 배", "환락의 동산",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등 30여 점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17)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및 구 소련의 일부에 걸친 유럽 북부 지역으로 소수 토착 인구인 라프 족의 거주지.
18) 우파니샤드는 힌두교 신앙의 토대가 된 고대 인도의 성전 베다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베다에는 "리그 베다", "야주르 베다", "사마 베다", "아타르바 베다" 네 가지가 있는데, 각 베다는 성립 연대와 형식이 다른 및 부분을 한데 묶어 놓은 것이다. 즉, 신들에 대한 찬가와 축문 등을 모아 놓은 산히타(본집(本集)를 근간으로 삼고 거기에 제사에 관한 설명서인 브리흐마나(제의서(祭儀書)와 일종의 철학 논문이라 할 만한 아라냐카(삼임서(森林書)를 덧붙여 집성한 것이 바로 베다이다. 이 네 부분은 서로 독립되어 있기도 하고 통합되어 있기도 하다. 브리하드 아라냐카 우파니샤드는 야주르 베다의 바자사네이 산히타(야주르 베다는 산히타가 둘이다)에 붙어 있는 것으로 우파니샤드 중에는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19) 베르셍제토릭스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원정했을 때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갈리아의 족장 이름.
20) 현대적인 개념의 행형 정책에 따라 1968 년 파리 교외 에브리 군에 설립한 교도소.
21)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그리스 신화에 아에클레피오스에 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