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피장편 1장 교유
동소문은 원이름이 홍화문인데 동관대궐 동편에 홍화문이 있어서 이름이 섞이는 까닭으로 중종대왕 당년에 동소문 이름을 혜화문 이라고 고치었다.
홍화문이 혜화문으로 변한 뒤 육칠년이 지난 때다.
혜화문 문턱 밑에 초가집 몇 집이 있고 갖바치의 집 한 집이 있었다.
그 갖바치가 성명이 무엇인지 이웃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에 그 사람이 듣지 아니 할 때 갖바치라고 말할 뿐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말할 때까지도 갖바치라고 부르고 양민들이 갖바치라고 부를 뿐이 아니라 관 사람들까지도 갖바치라고 말하였다.
갖바치가 곧 그 사람의 성명인 것과 같았다.
그 갖바치가 사람은 투미하지 아니하나 신 솜씨는 투미하여 맞춤은 고사하고 막치도 변변히 짓지 못하므로 그 지은 신을 신는 사람 중에 진중치 못한 사람은
“이 신은 옥견이가 발로 맨든 것이야.”
하고 실없이 말하는 일까지 있었다.
전에 이옥견 이라고 신 잘 짓기로 유명하던 사람이 있어서 당시 서울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잘하는 것을 보면 옥견이의 솜씨 같다고 말하였다.
그 갖바치가 갖바치의 벌이로는 내외와 아들 세 식구 살림이나마 부지할 수가 없지만 홍인문 밖에 사는 이판서 집에서 시량 범절을 돌보아 주는 까닭에 이웃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의식 걱정이 없이 살아왔다.
이판서 댁 하인이란 사람들이 한 달에도 몇 번씩 올 뿐이 아니라 한골 나가는 양반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는 까닭으로 이웃에는 갖바치를 우러러보는 사람까지 없지 아니하였다.
갖바치에게 오는 손님 중에 나이 사십 가량 될락말락한 점잖아 보이는 손님이 하나 있었다.
그 손님이 흔히 초저녁에 왔다가 밤든 뒤에 가는데 혹간 밤에 왔다가 이튿날 식전에 가는 일도 있었다.
갖바치의 집 이웃 사람이 그 손님의 데리고 다니는 아이를 붙들고
“오신 양반이 누구시냐?”
하고 물으면 그 아이는
“영감이시오.”
하고 대답하고
“뉘댁 영감이시냐?”
하고 재치어 물으면
“우리 댁 영감이시지요.”
하고 모호하게 대답할 뿐이고 그 외에는 더 자세히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웃 사람은 고사하고 갖바치 이외의 갖바치 집 식구 까지도 그 손님이 누구인 것을 잘 알지 못하였다.
알지 못하였기에 망정이지 알고 보면 놀라지 아니하지 못할 만한 희한한 손님이었으니, 그 손님의 성은 조씨요 이름은 광조요 자는 효직이요 호는 정암이니 그때 벼슬이 사헌부 대사헌 이었다.
선비들은 우리의 선생이라고 존중하고 시정 사람들은 우리의 상전이라고 공경하던 사람이니 무주 구천동에 사는 나무꾼까지라도 서울 조재상이 갸륵하다고 말할 만큼 그의 명망이 팔도에 가득하였다.
조재상이 갖바치를 찾아오기 시작하기는 부제학으로 있을 때 일이니, 조제학이 어느 날 성균관에 왔다가 돌아갈 때에 대사성과 같이 관 어귀까지 걸어 나오다가 키 큰 제상 하나가 미복을 입고 앞길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조제학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게 가는 것이 희강이 아니라고?”
하고 대사성을 돌아보니 대사성이
“글쎄요, 키 큰 것은 이판 같소.”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조제학이 데리고 왔던 상노아이를 보내서 따라가서 보라고 하였더니, 그 아이가 돌아와서 과연 홍인문 밖 이판서가 혜화문 안 어느 초가집으로 돌아가더라고 말하였다.
시임 이조판서 이장곤이 초가집에 있는 사람 찾아가는 것을 조제학은 괴상히 생각하며 관 어귀에 세워두었던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 왔었다.
며칠 뒤에 조제학이 이판서를 만나서
“일전 편복으로 혜화문 안에 행차하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찾아 갔었읍니까?”
하고 물은 즉 이판서는 적이 얼굴을 붉히며
“아니야, 그 무어 누구할 것도 없어. 나의 선생이야.”
하고 우물우물 대답하다가 조제학이
“문식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 말을 듣고는 이판서가
“문식이야 놀랍지. 그 사람이 미천할 뿐이지.”
하고 우물거리지 아니하였다.
조제학은 혹 숨은 인재가 아닌가 생각하여 친히 찾아볼 생각이 났었다.
얼마 뒤에 조제학이 일부러 틈을 만들어 가지고 미복으로 찾아와서 보니 사람은 비록 갖바치일망정 우선 언어 거동이 사대부와 다름이 없고 경사자집을 외어 가며 말하는 것이 드물게 보는 큰 선비라, 조제학은 첫 번부터 수작에 재미를 붙이어 해가 지는 것을 잊었었다.
그리하여 일어설 때 처음에 말하지 아니하였던 자기의 본색을 말하고 나서 그 사람의 성명을 물으니 그 사람은
“갖바치가 무슨 성명이 있소이까.”
하고 성명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조제학이 갖바치와 상종하는 동안에 갖바치가 학문이 섬부할 뿐 아니라 식견이 투철하여서 앞일을 요량하는 법이 범상치 아니한 것을 알고 학문을 토론하는 때보다 일을 문의하는 때가 많았었다.
조제학이 부제학 되던 해에 벼슬길이 또다시 올라서 대사헌이 되었는데, 대사헌은 풍기를 바로잡는 직책이 있는 벼슬이라 예사 관원과 달라서 함부로 나다니지 못할 처지이나 조대헌은 밤저녁에 미복으로 나서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니 이때는 갖바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한 삼 년 상종하는 동안에 서로 정분이 깊어져서 갖바치가 조대헌을 대하여 맘에 있는 말을 가리지 않고 말하게 되었다.
전무후무한 현량과가 있은 뒤, 어느 날 밤에 조대헌이 갖바치를 찾아 왔는데 현량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이야기가 한동안 길었었다.
“이번 현량과를 자네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과거의 방목이 있으니까 소인들이 모함할 때 죄줄 사람의 당적을 꾸미기가 힘들지 아니할 줄로 생각합니다.”
“그게 다 무슨 소린가? 국가의 성사를 그렇게 말하는 법이 어디 있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씀하다가 말씀을 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희한한 성사가 패사의 장본이 될까 영감을 위하여 두려워하는 맘이 없지 못합니다.”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것이 자네 말을 두고 이름일세.”
“지금까지 영감께서 대사헌 되신 지가 햇수로 불과 삼 년인데 그동안 세상 풍기가 일변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고만두고라도 청촉이 없어지고 뇌물이 끊어졌으니 그것이 여간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뇌물이나 받아먹고 청촉질이나 하던 사람들이 그 심장이야 갑자기 변하였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활을 들고 영감을 과녁삼아 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감도 아시겠지요?”
“그렇기도 하지요.”
“말씀하는 길에 한마디 말씀을 여쭐 것이 있습니다. 영감의 재주가 일세를 경륜하실 만하나 임금을 만난 뒤에라야 그 재주를 다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한데 지금 상감께서는 영감의 명망은 아시겠지만 영감의 재주는 아시지 못할 것입니다. 통히 말하자면 영감의 사람됨을 알아주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소인들이 사이를 타서 농간하게 된다면 영감이 화를 면하실 수 있습니까? 한번 급류에서 물러나는 것이 어떻습니까? 결단하실 용맹이 있습니까?”
“용맹은 있고 없고 간에 남의 신자된 도리가 오직 충성을 다할 뿐이지 다른 말이 왜 있겠나?”
“영감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고 갖바치는 입을 다물고 다른 말이 없었다.
달포가 지난 뒤다.
조대헌이 성균관 대사성 김식이를 보러 왔다가 가는 길에 갖바치에게 들러서
“내가 월전에 자네 말을 들은 뒤에 노천하고 의논하고 양근 미원이란 데다가 밭뙈기를 장만하고 나무 주를 심게 했네. 차차 한번 용맹을 내볼 작정일세.”
“노천이 누구신가요?”
“김사성의 자야.”
“네, 현량과의 장원으로 뽑히신 양반이로구먼요.”
하고 갖바치가 머리를 흔드는 것을 보고 조대헌이
“왜 머리를 흔드나?”
하고 물으니 갖바치가 이윽히 말이 없이 앉았다가
“영감이 혼자 하신다고 하여도 될 것 같지 아니할 일인데 더구나 김사성 영감과 공론해 가지고 하신다니 양근 밭은 헛사셨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보이었다.
조대헌이 이 말을 듣고 한두 번 한숨을 쉬더니
“십여 일 전에 내가 여러 친구들과 노천에게 모이어 앉았자니까 최수성이란 사람이 밖에서 들어오며 인사도 변변히 아니하고 노천더러 술 한 그릇을 달라고 하여 한숨이 들이마시고 나서 하는 말이 ‘썩은 배를 타고 물에 빠질 뻔하여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니 술을 먹으니까 진정이 되는군’ 한마디 하고 인사도 아니하고 나가버리는데, 그때 좌중에 앉았던 사람들이 괴상히만 생각하는 것을 내가 그 사람의 말을 풀어서 썩은 배를 탔다는 것이 우리를 두고 비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제일 첫째 노천이 그렇다고 말하고 여러 친구들이 간 뒤에 나를 보고 양근이 육지니 속히 썩은 배에서 내리자고까지 말하든걸.”
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최수성이라니, 열아홉 살때부터 산천 구경 잘 돌아다니는 양반 말이지요? 나 보기에는 영감네뿐 아니라 그 양반은 그 양반대로 자기의 썩은 배를 타는 모양입니다.”
하고 적이 웃었다.
조대헌이 갖바치 찾아다니는 것을 김사성이 알고 하루는 조대헌을 향하여
“갖바치가 아무리 숨은 인재라고 하더라도 영감이 찾아다니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오. 조정 재상으로 미천한 사람과 교유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고 또 대사헌으로 미복을 입고 출입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즉 영감 한번 다시 생각하시오.”
하고 갖바치를 찾아다니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조대헌은 그의 권하는 말을 듣지 아니할 뿐이 아니라
“영감이 그 사람을 보지 못한 까닭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니 나하고 한번 같이 갑시다.”
하고 뒤집어 권하여 김사성도 한번 갖바치를 찾아와서 보게 되었다.
김사성은 갖바치의 위인이 심상치 아니한 것을 친히 보아 알았으나, 종시 남의 이목을 꺼리
어서 한번 외에는 더 오지 아니하였다.
김사성이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둘째아들 덕순이는 색시 같은 형님과 달라서 나이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아니한 젊은 사람이 기운이 장사였다.
성질도 형제가 딴판으로 달라서 그 형님이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읽을 때 덕순이는 밖에 나와서 돌을 들거나 뛰엄을 뛰었다.
덕순의 처유모의 아들 박연중이가 역시 기운이 절등하므로 덕순이는 연중이를 데리고 겨룸을 하는 때가 흔히 있었다.
어느 날 김사성이 출입한 동안에 덕순이와 연중이가 큰사랑 뒤꼍에 와서 뛰엄뛰기 내기를 시작하였는데 연중이가 덕순이보다 몸이 더 날쌘 까닭으로 둘이 나란히 서서 뛰면 연중이는 한두 발씩 더 멀었다.
덕순이가 연중이에게 지는 것이 분하여
“이애, 맨손으로 뛰는 것은 신통치 아니하다. 우리 다듬잇돌을 갖다가 들고서 뛰어보자.”
하고 안에 들어가서 묵직한 다듬잇돌을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둘이 번갈아가며 다듬잇돌을 들고 뛰엄질을 하는데 연중이가 기운이 좀 못 미치는 까닭으로 뛰는 금이 덕순이와 비등하였다.
연중이가
“여보, 서방님. 우리 높이로 뛰기 해봅시다.”
하고 뒷마당 담을 가리키며
“우리 힘 자라는 대로 몇 번이든지 저 담을 뛰어넘어 봅시다.”
하고 도전하니 덕순이는
“그리하자. 우리 둘이 함께 뛰어갔다 뛰어 들어왔다 하느니 하나는 밖에서 안으로 뛰고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뛰어보자.”
하고 방법을 정하였다.
“너 밖으로 나가거라.”
“언제 돌아가고 있단 말씀이오. 내가 첫번 한번 뛰는 것은 접어드리리다.”
하고 연중이가 먼저 몸을 솟치어 담을 뛰어넘어갔다.
그 뒤에 덕순이가 뛰어넘어가며 연중이가 뛰어넘어오고, 또 연중이가 뛰어넘어가며 덕순이가 뛰어넘어왔다.
두서너 번 재미나게 뛰어넘어 다니다가 둘이 일시에 뛰게 되었는데 안팎에서 뛰는 자리가 공교하게 맞질러서 담 위에 두 사람이 마주 닥뜨리며 안에서 뛰던 연중이는 안으로 떨어지고 밖에서 뛰던 덕순이는 밖으로 떨어졌다.
담밖에는 다행히 풀밭이라 덕순이는 별로 다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몸을 털고 다시 담을 뛰어넘어오니 연중이가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뒤통수가 돌부리에 다치어서 피가 흘렀다.
덕순이가 손으로 상처를 비비는 연중이를 보고
“많이 다치지나 않았느냐? 맨 나중에 내가 한번 혼자 뛰었으니까 접힌 적이 없다. 이 담날 다시 뛰자”
하고 사랑으로 들어갔다.
김사성이 집에 돌아와서 덕순이와 연중이가 뛰엄질을 하다가 연중이가 다치었다는 말을 듣고 덕순이를 불러서
“사람의 자식이 나이 열칠팔 세나 된 것이 밤낮 상없는 장난으로 날을 보낸단 말이냐!”
하고 준절히 꾸짖은 뒤에
“혜화문 안에 갖바치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심상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니 더
러 찾아가 보아라.”
하고 일렀다.
그리하여 김덕순이가 갖바치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처음 만나던 때 갖바치가 고리삭은 글 이야기나 하였더면, 덕순이도 그 아버지 김사성과 같이 한번 외에 더 오지 아니하였을 것이지만 갖바치가 덕순이의 좋아하는 술수 이야기를 한 까닭에 덕순이가 첫 번 오던 길로 갖바치에게 반하게 되어 그 좋아하던 뛰어질도 별로 아니하고 자주 갖바치에게 놀러오고 박연중이도 덕순이를 따라다니는 때가 많았다.
김덕순의 안해 이씨는 나이 열아홉 살인데 인물이 얌전하고 범절이 무던하여 김사성 내외가 사랑할 뿐 아니라 덕순이와 내외간 금실이 여간 좋지 아니하였다.
덕순이의 안해 방을 밝히는 것이 김사성 집 하인들 사이에는 조명이 났었다.
그 아버지가 취침할 때쯤 되면 덕순이는 그 형님과 같이 큰사랑에 올라가서 한동안 뫼시고 섰다가 그 아버지의 입에서
“가서들 자거라.”
하고 말이 떨어지면 형제가 함께 절하고 나와서 그 어머니를 뵈러 같이 안으로 들어왔었다.
그 어머니의 방에서 혹 무슨 이야기가 나서 곧 일어서지 못하게 되면, 덕순이는 졸린 모양을 보이느라고 거짓 하품을 하는 때도 없지 아니하였다.
이런 때는 대개 그 어머니가
“졸린데 그만 나가서들 자거라.”
하고 말하여 형제 같이 나오다가 그 형을 보고
“형님, 먼저 나가시오.”
하고 안해의 방인 뜰아랫방으로 들어가서 밤을 지새고 첫새벽에 형제 쓰는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거의 버릇이 되다시피 하여서 그 형은 덧문을 지쳐만 두고 자는 때가 고리까지 걸고 자는 때보다 많았었다.
덕순이가 갖바치에게 놀러 다니게 된 뒤에 어느날 밤 뜰아랫방에서 내외 앉아 잔사설 이야기를 하다가 갖바치의 이야기가 났었다.
“아버님이 어련히 생각하시고 찾아가 보시라고까지 말씀하셨을라구요만 갖바치를 찾아다니는 것이 창피하지 않아요?”
“나는 고만두고 조참판장 같은 점잖은 어른이 다 찾아다니실라구.”
“조참판 어른 말씀을 들으시고 아버님이 당신더러 가보시라고 말씀하신 게요 그려.”
“아니, 아버지도 한번 가셨더래.”
“그 사람이 무슨 별 재주나 가졌습디까?”
“별 재주는 가졌는지 모르지만 아는 것은 많아. 점을 모르나 사주를 모르나 의술을 모르나 모르는 것이 없습디다.”
“그러면 술객인가 보구려.”
“아니야, 술객이 다 무어야. 점잖은 사람이야.”
“당신이 말을 무어라고 하시오.”
“말이라니?”
“갖바치더러 무어라고 하셔요?”
“선생이라고 하지.”
“그러고 보면 당신이 갖바치의 문인이요 그려.”
“그러니 어째? 신 잘 짓던 옥견이는 종반 이가야. 당신의 일가야. 갖바치의 일가를 안해로 데리고 사는 사람이 갖바치의 문인되는 것이 창피할까?”
“창피하거든 창피하다고나 하시지 왜 남을 끌고 들어가려고 그러시오.”
“갖바치의 일가는 오히려 창피할 것도 없지. 당신네 먼 조상은 고리백정이야. 아이구, 다치는 데가 있군. 쉬, 쉬.”
“쉬쉬할 걸 왜 말을 하시랍디까?”
“고리백정의 자손이요 갖바치의 일가로 양반의 집에 시집와서 호강한다.”
“나는 무식한 여자이니까 우리 조상이 고리백정인지도 몰랐세요. 이 담 친정에 가거든 아버지에게 물어보지요. 당신 말씀만 듣고야 믿을 수 가 없어요."
"오, 남을 역적으로 몰리게 할라구."
"우리더러 고리백정의 자손이라고 말했기로 역적 될 것이야 무어 있어요?"
"나라 임금에게 다치니까 걱정이지."
"그렇기에 보시오. 금지옥엽의 자손을 놓고 마구 말할 것인가."
"금지니 옥엽이니 계집의 이름 같구려."
"쉬쉬 말고 말조심하시지요."
"한 말도 지지 아니하는구려. 당신이 칠거지악이 두가지 있는 것을 당신이 아시오? 말 많은 것이 한가지야."
"또 한 가지는?"
"아들 없는 것."
절은 내외의 잔사설이 한이 없었다.
자리에 누운 뒤에야 말이 그치었었다.
덕순의 안해 이씨의 친정에서 유명한 장님에게 덕순이 내외의 사주를 본 것이 있었는데, 내외가 백년해로하지만 자손궁이 부족하여 아들이 없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덕순이가 이씨에게 있는 사주 적은 것을 본 뒤에
"첩을 두어야겠다."
"아들을 못 낳으면 출처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이씨의 골을 지른 일이 한두 번이 아닌 터이었다.
그날 밤에 이씨가 베개 위에서
"여보세요, 주무세요?"
하고 덕순의 몸을 건드리니 이때껏 가만히 소리없이 누워있던 덕순이가 갑자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이씨가 덕순의 몸을 흔들며
"아이구, 곤하게도 주무시네. 다 새었어요. 고만 일어나 나가시지요."
하고 소리를 죽이어 가며 웃었다.
자는 체하던 덕순이가
"닭도 울기 전에 날이 새어? 가짓말이 일쑤로구려."
하고 머리를 이씨에게로 가까이 옮기어 숨기운이 이씨의 얼굴에 끼치니 이씨가 성낸 목소리로
"가짓말이 다 무어요. 어떻게 그렇게 낮잡아 말하시오. 내가 당신더러 가짓말로 코를 곤다고 말이나 해보아. 당신은 화를 산같이 내실 것 아닌가."
하고 덕순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게서가 성을 내신다면 이곳이 말씀을 잘못했소.”
하는 덕순의 말에
“낮잡아 말하고 게다가 빈정거리기까지 하시는구려.”
하고 다시 덕순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덕순이가 자는 체하듯이 이씨는 성내는 체한 것이라 풀 것도 없고 풀릴 것도 없었다.
“여보세요. 갖바치가 사주를 잘 안다셨지요? 장님 사주에 있는 말이 맞나 아니 맞나 한번 물어보시구려.”
“아들이 없다는 말을 물어보란 말이지? 나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들 말을 묻기가 좀 창피해.”
“갖바치 선생은 창피치 않고 아들 말은 창피하시담 아들이니 딸이니 말씀하실 것 없이 장님의 사주를 가지고 가셔서 이 사주가 잘 본 것이냐고 물으면 자연 말이 있을 것 아니에요?”
“되었소, 그렇게 합시다. 나는 그 생각은 못하고 사주를 한번 보아 달래려고 맘을 먹고 있었지.”
“그것도 좋지요.”
“그렇지만 장님 사주를 보이고 묻느니만 못해. 게서의 것과 내것을 내일 다 나를 주시오.”
“내일은 고만두고 지금 곧 달라셔도 불 켜놓고 찾아 드릴 터이에요.”
이날 밤 내외간 수작한 것과 같이 이튿날 덕순이는 장님의 사주 두 장을 가지고 갖바치를 찾아왔다.
처음에 이 말 저 말 하다가 덕순이는 말을 사주 편으로 가까이 끌려고 점 이야기부터 시작하
였다.
“홍계관이 점은 참말 용하던 모양이지요. 홍계관이 살던 골목을 홍계관골이라고 부르게 된 것만 보더라도 당시에 유명하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지요만, 홍윤성이를 보고 그가 뒤에 귀히 될 것을 미리 알 뿐 아니라 그 아들이 홍윤성이 손에 죄를 당하게 될 것까지 미리 알고서 아들을 살려 달라고 당부하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니오? 지금도 이 홍계관이와 같은 점쟁이가 있을까요?”
“점쟁이는 왜 묻소? 무어 점 쳐주고 싶은 일이 있소?”
“아니 요사이 점쟁이니 사주쟁이니 자칭하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습디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도 홍계관이 같은 사람이 있나 하고 말씀을 물었소.”
“홍계관이는 고사하고 관로, 곽박, 이순풍 같은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지요.”
“점도 점이지만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겠지요.”
“사주를 볼 줄 아신다지요? 이 사주가 잘 본 것인가 못 본 것인가 좀 보아주시오.”
하고 덕순이가 장님의 사주 두장을 내놓으니 갖바치가 그것을 받아서 한 번씩 휙휙 보고 접어서 무릎 앞에 놓으며
“내외가 백년해로하면 아들 없을 리 없지요. 되지도 못한 사주쟁이의 사주가 종작이 있겠소. 얼마 아니 있으면 용한 사주쟁이 하나가 서울을 올 터이니 그 사주쟁이에게 사주를 한번 보시오.”
하고 빙그레 웃고서
“나도 사주 볼 줄을 짐작하지만 이때까지 사주 한 장을 본 적이 없소. 대체 사주란 것이 꼭꼭
다 맞는다면 보는 사람이 볼 재미가 없을 것이오. ‘설마’나 ‘혹시’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덧정이 없어질 것이 아니겠소.”
하고 허허 웃었다. 덕순이가
“그 용한 사주쟁이가 언제 서울 올까요? 오거든 꼭 알으켜 주시오.”
하고 부탁하니 갖바치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내가 알으켜 드리지 아니하여도 자연 보시게 되리다.”
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눈으로 덕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갖바치가 김덕순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중에 행길로 난 방문 밖에서
“주인 있소?”
하고 곧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덕순이가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 치어다보더니 얼른 몸을 일어 그 사람 앞으로 나아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
“어르신네께서 어찌 행차를 하셨습니까?”
하고 물은즉 그 사람이
“자네는 어째 왔나?”
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덕순을 따라 일어섰던 갖바치가
“저리 앉으십시오.”
하고 아랫목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여 그 사람이 앉은 뒤에 갖바치가 그 사람을 향하여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서
“제가 이 집에 사는 갖바치올시다.”
하고 다시 고개를 드니 그 사람이 한동안 아무 말이 없이 갖바치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허허 웃고 나서
“나는 최원정이란 사람이오. 원정이래서는 모를까? 최수성이라면 혹 들었겠지?”
하고
“압니다. 함자를 들어 뫼신 지 오랩니다.”
말하는 갖바치를 여전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최원정이 서 있는 김덕순이를 흘긋 치어다보더니
“자네도 거기 앉게.”
하고 말하는데 덕순이가
“시생은 온 지가 오래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다가
“거기 앉게. 좀 있다 나하고 같이 가세.”
하는 최원정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여 한 옆에 꿇어 앉았다.
최원정이 또다시 갖바치를 바라보며
“효직이가 가끔 온다지?”
하고 덕순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의 어르신네 노천에게서 말을 들었어.”
하고 말하여 갖바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고 곧 말을 이어서
“효직이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았소?”
하고 물으니 갖바치는
“물으시는 뜻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최원정이 이윽히 잠자코 앉았더니
“내가 초면이라도 믿고서 말을 묻는 터이야.”
하고
“내가 효직이의 사람됨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학문의 힘이 좀 부족하지 아니한가 의심하는 까닭에 묻는 말이오.”
하고 갖바치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갖바치가
“무엇으로 학문의 힘을 말하오리까?”
하고 돌이켜 물은즉
“글쎄, 나도 의심뿐이야. 그러나 지금 예판으로 있는 남곤이라든지 작년에 형판을 지낸 심정이라든지 이와 같은 자들과 동조하여 벼슬 다니는 것을 보든지 일을 좋아하는 젊은 간관들의 납뛰는 것을 누르지 못할 뿐이 아니라 도리어 탄핵을 당할 뻔한 것을 보든지 효직이의 학문의 힘이 부족해서 그렇지 아니한가 하는 의심이 생기오그려.”
하고 말을 그치자 갖바치가 적이 얼굴을 붉히며
“조대헌 영감은 산으로 치면 태산이고 별로 치면 북두올시다. 때를 못 만나신 양반이라 일의 성패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인물은 길이 천추에 빛날 줄로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조대헌 영감이 학문의 힘은 조금도 부족하시지 아니하시지만 임금사랑은 너무 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험절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겠지요.”
하고 최원정의 의심이 부당한 것을 말하니 최원정이
“조대헌에게 반했군. 실상은 나도 반한 사람이야.”
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효직이가 아무래도 화패는 면치 못하지.”
하고 최원정이 조대헌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가만히 앉았는 덕순이를 바라보며
“너는 너의 아버지 덕에 썩은 배를 타고 나서게 되었다. 너 힘이 장사라더구나. 위태할 때 배에서 뛰어내리겠니? 어, 위태한 일이야!”
하고 어깨를 웅숭그리는데 갖바치가
“남들이 큰 소매옷을 입고 다니는데 팔이 간신히 들어가는 옷을 입는 것도 썩는 배를 타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니 최원정이 좁은 소매 옷을 들어보이며
“이것이 위태하단 말이지? 그래도 내 소매가 이 세상보다는 넓디고 하고 평안도 하지.”
하고 일어서서 같이 가자고 붙든 덕순이를 바라보고
“나는 먼저 가네.”
하고 방문 밖으로 나가는데 그의 허허 웃는 소리가 멀리 가도록 방안에 들리었다.
2권 피장편 2장 술객
소격서골에 있는 소격서는 삼청성신을 제사하는 곳이니 국초 적부터 말없이 내려오던 것인데, 지난해에 와서 혁파하게 되었었다.
처음에 사헌부와 사간원과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소격서 같은 좌도의 일은 없이 하는 것이 옳다고 임금에게 혁파하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좇지 아니하여 여러 달을 두고 다투다가 나중에 조제학이 임금께 면대하여 말씀으로 아뢰고 이튿날 또 여러 동료들과 같이 합문밖에 엎드려서 청하는데 해가 지고 밤이 들고 닭 울 때가 되기까지 물러가지 아니하여 임금이 하릴없이 대신들에게 수의하여 혁파한다고 허락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임금이 좇고 싶지 아니한 것을 부대끼다 못하여 좇게 된 모양이다.
조제학 이하 여러 문신이 임금의 허락을 받고 물러나간 뒤에 임금이 내전에 들어가니 연세가 열여덟밖에 아니 된 왕비 윤씨가 그때까지 침소에 들지 않고 촛불 아래 단정히 앉아 있다가 일어나 맞아들이었다.
"복합한 분신들이 인제 물러 나갔습니까? 소격서 일은 어찌하셨읍니까?"
하고 중전이 여쭈어 보니 상감은
"귀찮아 견딜 수가 있어야지. 대신에게 수의한다고 말해서 내보냈소. 그렇지만 대신들도 혁파하자는 측이야."
말씀하고 상을 찡그리었다.
중전이 무릎을 도사리고 앉아서
"대체가 모를 일입니다. 소격서가 좌도라고 말합다니다만 열성조에게서 어련히 알으시고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더구나 장헌대왕 같으신 동방 요순시절에도 혁파합시지 아니하고 강정대왕같이 유학을 숭상합시던 때에도 좌도란 말이 없던 것을 지금 와서 좌도라고 혁파하잔다니, 조광조, 김식 등 일대가 유학으로 전무후무한 사람들이겠습니까? 대체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신자된 도리에 닭울 때까지 임금을 참수 못하시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성현을 본받는 사람으로는 그럴 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길게 말하였는데 상감은 중전말씀이 낱낱이 옳은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신에게 수의한 결과로 구경 혁파하지 아니치 못하게 되었었다.
소격서가 혁파된 뒤에 관원은 없어지고 나라에서 지내던 제사가 없어졌으나, 궐내에서 나오는 치성과 여염에서 들어오는 치성은 그치지 아니하여 태일전과 삼청전에 삼색실가와 노구메가 떠나는 날이 드물었다.
태일전은 칠성을 위하여 놓은 곳이고, 삼청전은 옥황상제와 태상로군과 보화천촌을 위하여 놓은 곳이요, 이밖에 있는 여러 제단은 사해용왕과 제천신장과 명부시왕과 수부제신을 위하여 놓은 곳이니 여러 목상 외에 수백 개나 되는 위패가 있어서 소격서에 있는 중도 아니고 속한도 아닌 것들과 밥그릇이 되었다.
이때 소격서 안에 시골서 온 술객이 하나 있었는데 점 잘치고 사주 잘 보기로 유명하였다.
점치고 사주보러오는 사람이 나날이 많아져서 얼마 뒤에는 사람이 줄을 대서 소격서 안으로 드나들게 되니 소격서의 번잡한 것이 혁파전의 제삿날보다 더하였다.
그 술객은 강원도 사람으로 성명이 김륜이라고 하는데 나이 삼십 가량 되었었다.
소격서에 치성 나왔던 내인이 소문을 궐내에 퍼트려서 곤전에서 이것을 알고 일부러 내인하나를 내보내어 사주를 보이었는데 곤전의 사주를 내인의 사주라고 속이게 하였다.
김륜이가 ‘신유 십이월 이일 묘시’라는 연월일시를 보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주풀이를 적었는데, 그 첫 구에는 덕배지존에 만성지모라고 하였고 그 아랫 구 중 안구에는 종사지경은 일왕사주라고 하였으니, 첫 구는 시부닝 왕비인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 아래에 있는 구는 왕 한분과 공주 네 분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곤전의 사주를 보아 드린 뒤에 궁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륜의 사주 한 장을 얻으려고 애를 쓴 까닭에 김륜의 사주가 여러 백 장이 궐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중에 희빈 홍씨의 사주에는 부녀합심이 화급조정이란 구가 있으니 부녀가 합심하면 화가 조정에 미친다는 뜻이요, 경빈 박씨의 사주에는 서혜서혜여 자모수혜라는 구가 있으니, 쥐여쥐여 모자가 해를 받으라는 뜻이라 희빈과 경빈은 사주를 감추고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사주가 지나간 일이나 맞지, 앞일이야 맞나.”
하고 김륜의 사주를 믿지 아니하였다.
이때 조신 중에 승무원 판사 벼슬을 지낸 신경광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왕 사람이나 당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의 생년월일을 지성스럽게 적어 모으는 괴벽이 있어서 묵은 책력 안장에 잔글씨로 적은 것이 두서너 권이 되었었다.
서울 안에 유명한 사주쟁이가 나타나면 신판사는 친히 가서 보거나 또는 집에 데려가 보거나 하여 사주쟁이로 서울에서 유명한 자 치고는 거의 만나보지 아니한 자가 없건마는 자기나 자기 자질의 사주를 보는 일은 이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사주를 너무 과히 믿는 대신에 사주쟁이를 좀처럼 믿지 아니하는 까닭이 있었다.
사주쟁이를 처음으로 만나면 신판사는 책력안장에 적힌 생년월일을 한둘을 뽑아서 주고 사주를 보이고서 사주풀이가 그 생년월일 임자의 일생과 조금만 틀리면 무명필을 주고 오거나 장국 그릇을 먹여 보낼 뿐이고, 자기나 자기자질의 사주는 보일 생각도 아니하였다.
신판사가 김륜의 이름을 듣고 어느날 저녁때 소격서 안을 찾아 와서 인사를 마치고 사주 이야기를 하다가 사주하나를 보아달라고 말하고 점필제 김종직의 연월일시를 적어 주었더니, 김륜이가 이를 받아가지고 이윽고 들여다보다가 웃으면서
“실없으신 일입니다. 벌써 두번 죽음당한 이의 사주를 왜 보라고 하십니까?”
말하여 신판사는 놀라기는 하였으나 이자가 점필제 선생의 사주를 본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의심하여
“용하오. 내가 그대의 재주를 보려고 옛날 양반의 사주를 적어 주었소. 알아내는 것이 용하오.”
하고 칭찬한뒤에 월전에 낳은 자기 집 개새끼의 일시를 적어주며
“어린 것의 사주를 하나 보아주시오.”
하고 말한즉 김륜이가
“재주껏 보리다.”
말하고 받아보앗더니
“이것이 댁 어린 아기의 사주오이까?”
하고 물어서 신판사는 그렇다고 하기도 어렵고 그렇지 안다고 하기도 어려워서 우물쭈물 대답하였다.
김륜이가
“이 사주가 괴상합니다. 사주로만 보면 세살되는 해에 박살을 당하고 사지를 찢길 모양이니 댁 아기로야 이런 일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육축의 새끼를 가지고 저를 속이시는 것 같습니다.”
말하여 신판사는 참으로 놀라고 김륜의 재주에 반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신판사가 틈틈이 김륜을 찾아올 뿐만 아니라 김륜을 가끔 집으로 청하여 큰손님과 같이 융숭히 대접하였다.
어느 날 신판사가 김륜을 가끔 집으로 데려다 앉히고 자기의 사주와 자질의 사주를 보인뒤에 당시 유명한 조신들의 사주를 보이었는데, 김륜의 말로 보면 그때 유명한 사람치고 말로가 좋은 사람이 드물었다.
좌의정 신용개는 수한을 박두하였다 하고, 여의정 정광필만은 일시 액이 없지 아니하나 후분이 좋다고 하였다.
정승들이 이럴뿐 아니라 유명한 중에도 유명한 대사헌 조광조 이외에 형조판서 김정과 대사성 김식과 부제학 김구와 우승지 윤자임과 좌부승지 박세희와 동부승지 박훈과 예문관 응교 기준등 일대명류가 모두 비명에 죽지 아니하면 귀양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고 조신들의 사주를 가지고 미루어 보면 불구에 조정에 큰 변이 생기리라고까지 단언하였다.
신판사는 김륜의 말을 믿고 의심치 아니하였다.
잔치 음식같이 잘 차린 점심으로 김륜을 대접한 뒤에 신판사가 자기의 적어놓은 책력의 안장을 김륜이와 같이 훑어보며 좋은 사주를 평론하는 중에 김륜이가 언사를 보고 놀라며
“이것이 뉘사주오이까?"
하고 물으니 신판사가
”머리에 쓴 것을 보면 뉘 것인지 알지.“
하고 들여다보고서
”정허암의 사주로군“
하고 말하였다.
김륜이가
”정허암이 누구이오까?“
하고 재차 물으니
”정희량 정한림이야.“
하고 대답하였다.
김륜이가 고개를 기울이고
”이것이 우리 선생님의 사주이올시다. 우리 선생님 이천년이라는 이의 사주이올시다.“
하고 한참 있다가 다시
”우리 선생님의 원명성은 저도 이때껏 몰랐읍니다.“
하고 말한 까닭에 신판사는 정한림이 조장에서 빠져 죽지 아니한 것이 적실한 사실인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정허암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었을 때, 그 생사를 의심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순형 오주부만은 당대 이인인 정허암이 그렇게 죽을 리 만무하다고 당초에 의심할 생각까지 먹지 아니하였었다.
그뒤 삼년만에 반정이 되어 세상이 변하매 오주부는 정허암이 다시 나오리라고 생각하고 은근히 기다렸으나, 종내 아무 소식이 없으므로 ‘허암은 살아 있고 나오지 아니할 까닭이 없는데 아니 나오는 것을 보면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하고 오주부도 혹시를 의심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오주부는 십의팔구나 그럴 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오주부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전에 들은 정허암의 말을 믿는 까닭이었다.
정허암이 한림을 다닐 때 하루는 오주부가 찾아간즉 가기 전에 궁한 선비 한사람이 먼저와서 있었고 간 뒤에 옥당 문관 몇사람이 떼를 지어 왔었는데 옥당들이 일어서 나간 뒤에 정한림이 그 궁한 선비를 향하여
“여보게 이지, 지금 왔다 간 사람들이 보기에 부러운가?”
하고 물어서 그 선비가
“부럽다뿐이겠나, 지금 나의 궁한 품이 목미말을 먹는 사람이면 모두 치어다보이는데 옥당귀인이야 더 말할 것이 무엇 있겠나.”
하고 대답한즉 정한림이 빙그레 웃으면서
“부러울 것이 없어. 자네는 궁사십 달사십에 수한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니.”
하고 말하는 것을 오주부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 선비를 보고
“궁사십 달사십이면 궁팔십 달팔십이라는 태공망의 절반이구려. 당세 소강절의 말씀이 틀릴리 없겠지요.”
웃음의 말로 말하고 그 끝에 우연히 정한림에게
“노형 자신은 어떻겠소?” 하고 물었더니 정한림이
“나 말이오? 욕스러운 수만은 남만 못지않을 터이지요.”
하고 말한 일이 있었다.
궁사십 달사십이라던 그 선비는 조광조의 숙부 되는 조원기인데 그뒤에 과연 사십에 등과하여 갖은 청환을 다지내고 벌써 직품이 아경에 이르렀다.
수만은 남만 못지않을 터이라던 정허암이 벌써 죽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주부는 신판사를 심방하였더니 신판사가
“여보, 오주부. 정허엄이 살아서 묘향산에 있었다오. 이천년이라고 변성병하고 있었다오.”
하고 말하여 오주부가 반색하며 소식의 출처를 물은즉 신판사가 사주쟁이 김륜에게 들은것과, 김륜이가 허암의 제자로 사주 잘 본다는 것을 말하였다.
오주부가 원래 ‘혹시’를 의심할 뿐이었지만 죽었다는 소문이 난 뒤 십오륙 년 만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들으니 김륜의 말을 친히 들어보고도 싶고 또 김륜이 말한 이천년이가 진적한 허암인가 더 알아보고도 싶어서 김륜을 한번 만나게 하여 달라고 신판사에게 말하였더니
“어려울 것이 없소. 지금이라도 곧 만나게 해주리다.”
하고 신판사가 하인을 보내어 김륜을 오라고 청하였다.
김륜이가 온 뒤에 오주부가 그 선생의 신장과 용모를 물어보고 거동과 음성까지를 물어보니 대개는 허암에 틀림이 없었다.
오주부가 김륜에게
“선생이 지금 어디있소? 묘향산에 그저 있소?”
하고 물으니 김륜이가
“저 나올 때까지는 향산에 계셨으나 곧 떠나신다고 하였는데 그 동안 육칠년이 지났으니까 지금은 어디 가서 계신지를 모릅니다.”
대답하고 그 뒤에는 선생의 술수 이야기를 시작하여 주문으로 여우 죽이는 것을 본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대의 운명을 점친 들은 이야기까지 하였다.
대 이야기는 김륜의 말이 이러하였다.
“선생님이 전에 전라도 땅에 가신 일이 있었는데 어느날 친구의 집 사랑에 앉아셨자니까 사랑 옆에 있는 대수풀에 긴 대 세 가지가 흔들흔들하더랍니다. 다른 대는 가만히 있는데 세 가지만 흔들거리는 것을 주인이 괴상히 생각하여 선생님께 무슨 까닭이겠냐고 묻더랍니다. 선생님이 오늘 오시에 그 대를 찍어가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오시때쯤 되어서 그 고을 원님이 쓸데가 있으니 대 서너 가지만 달라고 하인을 보냈더라지요. 그래서 주인이 대숲에 가서 맘대로 찍어가라고 하고 내다본즉 그 하인의 골라서 찍는 것이 꼭 그 흔들거리던 대 세 가지더랍니다.”
이야기를 듣던 오주부가 김륜을 보고 말하였다.
“그것은 허암이 전라도에 갔을 때 일이오. 나도 들은 이야기요. 그대의 선생이 허암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소.”
정허암이 살아서 술객 김륜의 선생노릇을 하였다는 말이 한사람 두 사람의 입을 건너서 홍인문 밖 이판서의 귀에 들어왔다.
이판서는 그때 병조판서로서 판의금부사를 겸하여 공사가 단단한 까닭에 며칠을 두고 별러서 간신히 틈을 만들어 가지고 김륜을 불러다 놓고 그 선생의 일을 이말 저말 물어보았다.
이판서가 말을 물어보는 중에 장순손 장판서가 오고, 또 뒤처 남곤 남판서가 왔다.
다심한 남판서가 윗간에 있는 젊은 손을 보고 누구냐고 물어서 유명한 사주쟁이 김륜인 것을 알고
“잘 만났네. 내 사주하나 보아주게.”
하고 말하니 장판서도 운에 딸려서
“이왕이니 내사주도 보아주소.”
하고 말하였다.
김륜이가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적어들고 잠깐 생각하고서
“두분 대감이 다 일품 대신이십니다.”
하고 말하니 남판서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고 좋아서 웃으며
“그래 와석종신들이나 하겠나?”
하고 묻자 김륜이가 다시 잠깐 사주를 들여다보고
“와석종신 하시다뿐이시겠읍니까?”
하고 말하는 것을 듣더니
“일품대신으로 와석종신하면 고만이지 더 볼 것이 없네.”
하고 장판서를 돌아보고 장판서는 김륜을 바라보며
“주인 대감의 사주는 어떠한고?”
하고 묻는데 김륜이가 대답하기 전에 이판서가
“나는 아직 보지 아니하였소.”
하고 말하니 장판서와 남판서가 함께 어서 보라고 권하여 이판서가 자기의 생월일시를 일러준즉 김륜이가
“주인 대감의 사주는 신판사댁에서 본일이 있습니다. 시가 좀 좋지 못합니다. 대신은 못되십니다.”
하고 다시 말을 이어
“평생을 놓고 통히 말씀하면 초분은 산란하고 중분은 형통하고 후분은 안온합니다.”
하고 말하니 남판서가 자기는 벌써 대신이 된듯이
“대신 귀챦지, 안온한 것이 제일이지.”
하고 웃었다.
이날 남판서와 장판서의 사주 본 이야기를 다른 날 최원정이 어디서 듣고 김대사성에게 와서 옮기는데
“홍문관 대제학, 예문학 대제학, 지성균관사, 예조판서, 원자보양관 남곤이와 도야지 대가리 장순손이가 희강이에게서 유명한 사주쟁이에게 사주를 보니까 둘이다 장래에 정승을 하겠더라네.”
남곤의 말만은 축문 읽듯이 직함을 주워 섬기고 말하더니 다시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이 ‘곤이가’하고 말을 시작하여
“만일 정승을 한다면 썩은 배는 하릴없이 파선이 될 모양이야.”
하고 쩍쩍 소리가 나도록 입맛을 다시다가
“기생서방 장도야지로 말하면 고양이 급제로 솟에 피리 정승까지 한다니 요절할 노릇이지.”
하고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때 김덕순이가 그 부친을 모시고 있다가 최원정의 말을 듣고 그 형님의 사랑으로 내려와서 원정의 시늉을 내가며 형제가 웃다가
“앞일을 꿰어 뚫고 아는 사주쟁이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는 그 형님의 말에 유명한 사주쟁이가 오리라던 갖바치의 말이 홀저에 생각이 나서 ‘그 사주쟁이가 갖바치 말하던 사람인가?’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날 밤에 덕순이가 그 안해 이씨를 보고
“요새 서울 안에 용한 사주쟁이 하나가 났답니다.”
하고 말하였더니 이씨는 장님의 무자 사주 까닭으로 항상 속에 꺼림하여 하는 터라 대번에
“그 사주쟁이가 어디 있데요?”
하고 물었다.
“어디 있는 것은 나도 몰라.”
“이 댁에는 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니까 꼭 두문동에 사는 셈이야요. 그러니까 세상 소식을 알 수가 있어야지요. 연중이를 내일 우리 집에 보내서 좀 알아보아 달래야겠어요.”
“대체 이 댁은 뉘 댁이고 우리 집은 뉘 집이야?”
“이 댁은 이 댁이고 우리 집은 우리 집이지요. 물을 것이 무어있어요?”
“시집오기 전의 말이지. 시집 온 뒤에는 우리 집이 따로 없어. 친정을 우리 집이라면 내가 듣기 섭섭해. 그 ‘우리’란 말 속에 나는 빠지니 내가 섭섭지 않아? 가만히 생각해 보지.”
“잘못했사오니 용서합소서. 이후에는 ‘우리’란 말을 명심하여 쓰겠삽네다.”
“조런.”
“낮잡아 말씀 마시오. 남이 들을까 겁납디다.”
“그래 그래. 그 사주쟁이 있는 데나 얼른 알아가지고 아들이나 얼른 낳을까 물어보자구.”
덕순이 내외간에 수작이 이렇게 실 없은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봄날이 따뜻하니 복숭아꽃이 아리땁도다. 푸른 물이 고요하니 중경이 서로 부르도다. 도장 안에 눈썹을 그리어 주니 보는 이 웃음겨워하도다. 모진 바람 일어나며 밝은 달이 바다에 잠기도다. 촛불이 희미한데 붉은 깃발 무삼일꼬. 서리 찬 긴긴 밤에 외기러기 울고 가도다.”
이것이 덕순 내외의 팔자라 한다.
이씨의 친정에서 이씨의 청으로 유명한 사주쟁이 김륜에게서 받아온 것이다.
이씨가 이 적은 것을 들여다보며 생각하였다.
첫 개구는 그저 그러하나 아래 세구가 좋지 못하니 선길후흉하단 말인가? 모진 바람, 잠기는 달도 시원치 못하거니와 서리 찬 밤, 외기러기가 대단히 맘에 좋지 못하였다.
촛불에 붉은 깃발은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하나 역시 좋은 말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의심을 풀려다가 근심을 사게 되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잊고 지내고 밤에 자기 방에 들어앉았을 때 이씨는 곰곰 생각하였다.
외기러기 울고 간다는 말이 자기가 죽는 것이 아니면 남편이 어떻겠다는 말이 아닐까?
자기가 혼자 이 세상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남편을 두고 자기가 죽는 것도 맘에 애달팠다.
생각이 이에 미치며 이씨는 하염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었다.
이씨의 유모가 자리를 깔아놓으려고 욧이불을 드다루다가 흘긋 이씨를 치어다보고 놀라며
“여보, 아씨. 왜 우시오?”
하고 이씨의 앞으로 가까이 오니 이씨가
“아니야.”
하고 얼른 눈물을 씻었다.
얼마 있다가 이씨가
“어멈.”
하고 유모를 불러서
“어멈이 마음이 무딘 사람인 게야. 아범없이 어떻게 혼자 살아있소?”
하고 어두운 밤에 홍두깨 같은 말을 내니 그 유모는 무어라고 대답하여야 좋을지 몰라하다가
“그렇기에 연중이를 데려왔지요.”
하고 이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씨는 실심한 모양을 하고 앉아서
“양자는 말고 친아들이 있기로 정든 남편을 잊을 수가 있겠소? 나는 그러면 혼자 못 살 것 같아.”
하고 또 눈에 눈물이 어리니 그 유모가
“사위스럽게 왜 그런 말씀을 하오. 허구 많은 말에.”
하고 다시 무슨 말을 하려 하는데 이씨가
“아니야. 그렇단 말이야.”
하고 억지 웃음을 웃었다.
그 유모가
“아범 말은 말씀도 마시오. 그 술부대가 잘 죽었지, 만일 살아있으면 어멈은 지금만큼 편하게 지내지 못하지요.”
하고 말을 그치었다가
“그렇지만요 아씨, 내외란 건 달러요. 가끔 불쌍한 생각이 나겠지요.”
하고 시름없이 웃었다.
방문 밖에서 신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아이구, 서방님이 들어오시는군.”
하고 유모가 일어서 나가자 덕순이가 들어왔다.
덕순이가 이씨의 얼굴을 보더니
“무슨 걱정이 생겼소?”
하고 물으니까 이씨는 천연덕스럽게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거짓말 마오, 얼굴에 수심이 끼었는데.”
하고 덕순의 말에 이씨는 앞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얼굴빛을 고치려고 애를 썼다.
덕순이가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사나이 대장부가 설마 안해의 걱정을 못 풀어줄까. 걱정이 있거든 속이지 말고 말을 해.”
하고 소매를 걷어치고 힘줄이 울끈불끈한 팔뚝을 내보이니까 이씨가
“팔뚝으로 걱정을 풀어주실 터이에요?”
하고 방긋 웃었다.
“팔뚝으로 풀 만한 걱정이면 팔뚝으로 풀어주지.”
“아닌게아니라 사주팔자가 눈이 있어서 그 팔뚝을 보면 무서워 내빼기라도 할 것이에요.”
“오, 사주를 보아온 게로군. 그 사주에도 아들이 없다고 그랬어? 어디, 나 좀 봅시다.”
하고 덕순이는 소매를 내리고 손을 이씨에게로 내미니 이씨는 상을 찡그리는 듯 마는 듯하고 아무 말이 없이 여섯 구 적은 것을 덕순의 손 위에 놓았다.
덕순이가 펴서 들고 입으로 ‘봄날이’하더니 눈을 벌써 ‘외기러기’에까지 갔는지 집어 내던지며
“그게 다 무슨 소리야. 부작 같군.”
하고
“그래서 걱정을 하고 앉았었소? 그런 걱정 하다가 지레 죽으리다. 살다 살다 사는 날까지 살고 마는 것이지 쓸데없이 걱정 마오.”
하고 이씨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씨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을 덕순에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날 한시에 나지는 못했지만 한날 한시에...”
하고 말끝을 흐리는데 덕순이가 뒤를 대서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말이오.”
하고 말을 그치고 잠잠히 앉았다가 사름없이 말하였다.
“내가 몬저 죽으면 게서 다시 시집 안 갈 것은 정한 일이라 말할 것이 없고 게서 몬저 죽더라도 내가 다시 장가들지 아니할 터이야. 그러면 한날 한시에 죽으나 다름이 없지.”
며칠뒤의 일이다.
덕순이가 갖바치에게 놀러왔더니 갖바치가 어디 가고 없었다.
한동안 문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성균관 앞길로 내려오자니 갖바치가 박석고개를 넘어오는데 그 뒤에 낯모르는 젊은 사람이 따라섰다.
덕순이는 길에 서서 기다리다가 갖바치가 가까이 와서 발을 멈춘 뒤에
“어디를 갖다 오우?”
하고 물으니 갖바치가 어디를 갔다 온다고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내게를 가셨다가 내려오시는 길인가요?”
하고 묻더니 덕순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
“내게로 도루 가십시다. 유명한 사람 하나를 보시게 하여 드릴터이니.”
하고 뒤에 따라오던 젊은 사람을 돌아보았다.
갖바치가 두 사람과 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방에 들어앉은 뒤에 먼저 순덕을 보고
“저 사람은 강원도 사는 김서방인데 나하고 형제같이 친한 사람이오.”
하고 다음에 그 사람을 향하여
“이 양반은 지금 대사성 영감의 둘째 자제일세.”
하고 말하여 덕순이는 그 사람과 말을 사귀게 되었다.
“서울 온 지 얼마나 되시오?”
“두어 달 되었어요.”
“무엇을 하시오?”
수작이 시원하게 나가지 아니하는데 갖바치가 웃으면서 덕순을 향하여
“저 사람이 유명한 사주쟁이에요. 사주 하나 보아 달라시지요.”
하고 말하니 그 사람이 갖바치를 보며
“남에게 밀지 말고 형님이 보아 드리구려.”
하고 웃었다.
덕순이가 말끝을 달아
“나는 사주를 새로 보느니보다 이왕 본 사주 하나를 물어볼 것이 있소.”
하고 자기 안해가 보아온 사주풀이를 외니 그 사람이
“그것이 내가 푼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고 덕순이가
“촛불에 붉은 깃발이 무슨 소리요?”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무어라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갖바치가
“부작 같군.”
하고 허허 웃어서 그 사람의 말문이 막히었다.
덕순이가 다시 묻기 전에 갖바치가 그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삼원명경을 선생님이 주셨다고 했지? 지금 어디다 두었나?”
“얼마는 시골집에 두고 얼마는 가지고 왔는데 신판사가 보고 지성으로 빌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빌렸어요.”
“선생님이 주시지 아니하는 것을 훔쳐가지고 오지나 아니하였나?”
“형님도! 백여 권 책을 훔치련들 무슨 수로 훔치오? 공연히 남을 도적놈 만들려고 그런 말을 하는구려.”
“나는 한 권도 아니 주시고 자네만 주시 것이 샘이 나네그려, 허허허.”
“여보 형님, 선생님도 참말 인색하신 양반인 것이 주문 외이는 재주는 조금도 안 가르쳐 주십디다. 형님이 나오신 뒤 오륙 년이나 더 뫼시고 지냈는데 그 동안 여러 번 가르쳐 주십사고 했건만 그건 배워 무엇하느냐고 영영 안 가르쳐 주십디다. 그것 못 배운 것은 참말 분해요.”
“그런 재주는 배워 두는 것이 한편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 없어. 자네가 못 배웠으니까 분하니 무어니 하지 만일 배웠더면 큰 걱정거리가 되었을 것일세. 조금만 미운 사람이 있어도 곧 주문을 외어서 여우 죽이듯 하고 싶을 터이니 그것 될 일인가. 생각해 보게, 재주 가지고 안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점치고 사주 볼 줄 아는 것도 지금 나에게는 걱정거리일세.”
“그렇지만 사람의 맘이 어디 그렇소.”
“자네가 임신년에 집으로 갔었다고 했지?”
“그랬세요. 그때 서울을 지났었는데 형님이 서울 계신 줄만 알았다면 찾아뵈입고 갔었지만 나는 형님이 함흥 가서 계신 줄로만 알았었구려. 그래 집에 가 있는 동안 몇 번 함흥으로 찾아가려고 까지 했었어요.”
“맘만 먹은 것도 정분일세.”
“선생님이 기해년 가을에 강서 구룡산으로 오라고 하셨는데 그때 형님이 같이 가실라오?”
“나도 가려고 맘을 먹고 있네.”
“형님 나올 때도 선생님이 말씀하십디까?”
“아니 그저 알았지.”
“그저 알다니? 선생님 말씀도 못 듣고 어떻게 아셨단 말이오.”
“지금 자네 말만 들어도 알지 못해?”
“맘을 먹고 있었다니 말이지요.”
“점을 안다면 그것쯤이야 모른단 말인가?”
“점으로요? 그것이 점으로 알게 될까요?”
“아따, 그것은 이 다음 이야기하세. 우리만 지껄여서 미안해.”
하고 갖바치가 덕순을 돌아보았다.
덕순이는 옆에서 그 수작하는 말을 듣고 갖바치가 유명한 술객 김륜이와 동문수학한 것을 알게 되었다.
2권 피장편 3장 사화
해가 다 저녁때가 된 뒤에 덕순이가 집으로 돌아온즉 그 어머니가
“너 어디 갔었니? 아까 너의 처가에서 사람이 와서 너의 장인이 갑자기 병환이 나셨다고 기별하는데 온 사람이 호들갑스러워서 곧 시각대변중이라는 것같이 말하여 네 댁이 그 말을 듣고 초설해하기에 너의 아버지께 말씀을 여쭙고 네 댁을 보냈다. 그런데 갔다 온 하인의 말을 들은즉 병환이 대단치도 않은가 보더라. 어제 낮에 도야지고기라나 무슨 고기라나 자신 것이 눌려서 어젯밤부터 좀 편치 못하시다가 오늘 낮에 일시 고통이 심하여서 집안에서 황황히 지냈다는데 네 댁이 갔을 때는 그저 그만하시다고 하더란다.”
하고 며느리 근친 보낸 것을 말하니 덕순이는 자기가 집에 없는 동안 안해의 간 것이 불만하여
“체증이 났다고 데려가고 고뿔 들렸다고 데려가고 딸을 데려가다가 볼일 못 보겠네요. 체증쯤으로 편치 못한데 기별은 무슨 기별이에요.”
하고 상을 찌푸리었다.
이튿날 덕순이는 하루 동안 그린 아내를 보기 겸 장인 문병하려고 처가에를 가게 되었다.
덕순의 장인은 숭선부정이니 종친 중에 현명한 사람이라 같은 종친에도 성심으로 나랏일을 걱정하는 파성군과 자별한 친분이 있었다.
덕순이 간 때에 마침 파성군이 문병 왔다는 까닭에 덕순이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었다.
덕순의 안해 이씨는 속으로 십년 그리던 남편을 만난 것같이 반가왔으나 겉으로 시침을 떼고서 말이 없이 잠깐 웃는 것으로 알은 체하고 덕순이도 역시 끄덕이는 듯 마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덕순이가 한동안 안방에 앉았었는데, 섰다 앉았다 하여도 별로 안방을 떠나지 아니하는 이씨가 그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다락에 올라가는 길에 덕순의 옆을 지나가며 나직이
“저녁때 가겠세요. 할 이야기가 많아요.”
하고 한번 덕순을 돌아보니 덕순이는 넌지시
“무슨 이야기? 병환 구원한 이야기?”
하고 소리없이 웃었다.
파성군이 갔다고 한 뒤에 덕순이가 장인 사랑으로 나가니 누비처네를 덮고 누워 있는 그 장인이 반갑게
“너 왔느냐?”
하고 덕순이가 가까이 앞으로 나가서
“좀 어떠십니까?”
하고 병환을 물은즉 그 장인이
“오늘은 그만하다.”
하고 덕순이더러 일으켜 달라고 하여 처네로 앞을 두르고 뒤에 의지하여 앉은 뒤에
“거기 앉아라. 내가 이야기 할 것이 있다.”
하고 덕순이가 쪼그리고 앉는 것을 보고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너의 아버지 친구 몇 분들이 성심으로 나랏일을 바로잡으려는 것은 누가 모르겠느냐만, 소인들의 원망이 나날이 심해서 여러 가지 간계가 있는 모양이니 뒤가 걱정이다. 지금 화천군 심정이와 남양군 홍경주가 예조판서 남곤 집에서 거의 하루돌이로 모이다시피 한단다. 님곤이가 간특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꾀주머니라는 심정이가 합했으니 무슨 간계가 안 나오겠느냐. 심정이는 경빈 박씨에게 소식을 통하여 홍경주는 그 딸 희빈에게 말을 들여보내서 갖은 참소를 다하게 하는데 제일 조대헌을 몹시 몰아 말하는 모양이란다. 일전에 위에서 내전에 듭셨을 때 곤전도 계시고 희빈과 경빈도 뫼시었었는데 희빈이 조광조가 길거리에 나서면 늙은 것이나 젊은 것이나 모두 우리 상전 우리 상전 하고 절들을 한답니다 말씀하고. 경빈이 뒤를 이어서 지금 조정에는 조광조의 당이 아니면 간신으로 몰려서 쫓겨나지 않을 수 없답지요 말씀하고, 그 뒤에 경빈과 희빈이 번갈아가면서 조광조가 인심 수습을 잘한다는 등 조광조가 당파를 잘 세운다는 등 갖은 말씀을 다하니까 위에서 듣기 싫어하시는 빛을 보이시며 아무리 하기로 조광조가 역적이야 되랴 꾸중하다시피 말씀하셔서 희빈과 경빈은 입을 다물게 되었고, 그때 곤전께서 그렇게만 하실 말씀도 아닙니다. 조광조야 그런 맘이 없겠지요만 조광조에게 붙쫓는 것들이 추대를 한다면 조광조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강헌대왕께옵서도 개국공신들 까닭에 맘에 없으신 왕위를 받으시더란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조대헌이나 너의 아버지나 좌우간 조심들 하여야 할 것이니 너의 아버지께 가서 조용히 말씀을 여쭈어라. 지금 파성군도 한걱정을 하다 갔다."
숭선부정은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보이며 말을 그치었다가 다시 동강동강 하는 말이
“심정이로 말하면 이판으로 논박을 당해서 떨어진 일이 있지. 또 형판으로 탄핵을 당해서 쫓겨난 일이 있지. 심지어 한성판윤까지 다니지 못하게 되었었구나. 그러니 독이 여간 났겠느냐?”
“남곤이는 글자 하는 것을 믿고 이편에 붙으려고 애를 쓰나 남상인으로 고변할 때부터 소인 놈이니까 누가 그걸 붙이겠니? 신의정이 대제학을 물려준 까닭에 신의정은 고맙게 생각하는가 보더라.”
“홍경주는 남곤의 글도 없고 심정의 꾀도 없는 위인이 찬성으로 논박맞은 것을 분하게 생각해서 둘에게 섭쓸리는 모양이야.”
“궁흉극악한 것들이 별짓을 다 생각해 내는 모양이다. 주초위왕이란 비결 비슷한 말까지 지어냈단다.”
“정암의 일도 걱정이지만 일 불행하면 장기 튀김이구나. 너의 집이 걱정이다.”
덕순이가 장인의 하는 말만 듣고 앉았다가
“가친이 조대헌장과 같이 양근으로 낙향하실 생각이 계신 모양이니 가친을 만나시거든 낙향하시라고 권하십시오.”
하고 말한즉 그 장인은
“나더러 권하라느니 네가 말씀을 여쭈려무나.”
말하고 덕순이가
“저는 어린아이로 아시니까 말씀을 여쭈어야 들으실 것 같지 않습니다.”
하고 말한즉 그 장인은
“뛰엄질 같은 어린아이 장난을 너무 하지 말지.”
말하고 웃는데 아이종이 미음상을 들고 나와서 한번 방을 들여다 보고 뒤를 돌아보며 무어라고 말하더니 덕순의 안해가 뒤를 따라 나와서 곧 방으로 들어오며
“아버지 속미음 좀 잡수시지요.”
하고 미음상을 받아서 그 아버지 앞에 갖다놓았다.
덕순의 안해는 더 있다가 저녁때가 다 된 뒤에 돌아왔다.
그날 밤에 덕순이가 안해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며 곧
“아무리 친환이 있다기로 나도 보지 않고 가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
하고 논죄하듯 말하니 그 안해는
“그러지 않아도 오시거든 보입고 가고 싶었지만 어머님이 곧 가라고 하인들 지휘까지 하시는데 유난스럽게 보입고 가겠다고 할 수가 있어요? 할 수 없이 그대로 갔지요.”
하고 진정 반 웃음 반으로 발명하다가 덕순이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서 십분 용서하지.”
하고 거짓 점잔빼는 것을 보고는
“황송무지하외다.”
하고 순전히 장난조로 사과하였다.
그다음에 덕순이가
“아까 낮에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지. 무슨 이야기야?”
하고 물어서 이씨가 친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데 그 이야기는 대개 이러하였다.
“경복궁 안 함원전 뒤에 배나무가 한 주 섰는데 그 배나 무에 글자 쓰인 잎새가 생기었다. 희빈 홍씨가 그 잎새를 따서 상감께 보시게까지 하였는데 이 글자는 조씨가 임금 된다는 뜻이라 한다. 이것이 실상은 희빈이 만들어낸 것인데 희빈이 일찍이 익은 배를 따서 즙을 내고 거기다거 꿀물을 타서 배나무 잎새에 글자를 써놓았더니 벌레가 즙이 묻은 자리를 갉아먹어서 글자 모양이 된 것이라 한다. 어느 어스름 달밤에 희빈이 남몰래 배나무 밑에 가서 높은 발판 위에 올라서서 여러 잎새에 글자를 썼는데 벌레가 먹기는 한 잎새뿐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희빈의 심복 나인이고 하나는 그 나인 아래 있는 무수리다. 그 무수리는 숭선부정의 집에서 자라난 사람이라 일전에 다니러 왔다가 이씨의 어머니를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씨가 이야기를 대강 끝내고
“그 무수리가 글자 쓸 때 발판을 들고 따라가기까지 했더라니 그 말이 믿을 만하겠지요.?”
하고 말하니 덕순이는 그 장인이 말하던 주초위왕이란 말을 생각하고
“희빈이 글자를 쓰다니 진서를 알든가?”
하고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을 보이었다.
덕순이는 그의 부친이 사랑에 혼자 있는 때에 조용히 들어가서 전후에 들은 이야기를 말하여 드리고 그 끝에 속히 양근으로 낙향할 것을 말하니 그의 부친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응, 알았다.”
하고 저으기 고개를 끄덕이는 외에 별로 말이 없었다.
덕순이가 맘이 초조하여
“조대헌장을 청하셔서 조용히 의론해 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다시 말씀드린즉 그의 부친은
“알았다니까 그러는구나.”
하고 섰는 덕순을 치어다보는데 말을 더하면 꾸지람이 내릴 눈치가 보이었다.
덕순이가 한동안 우두커니 섰다가 방 밖으로 나오자 그의 부친의 한숨짓는 소리가 귀에 들리었다.
덕순이는 그 한숨 소리에 맘이 더욱 초조하여 ‘조대헌장을 가보입고 말씀이나 해보겠다’ 생각하고 사헌부에서 나올 만한 때를 헤아려서 조대헌에게 와서 본즉 조대헌 사랑에 여러 손님이 모이어서 무슨 공론이 있는 모양이었다.
덕순이가 그 사랑에 바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여 청지기를 시켜 조용히 뵙고 싶다는 뜻을 통하니 청지기가 들어갔다 나와서 말이 잠깐 기다리라신다고 하여 덕순이는 한동안 다섯 살 먹은 조대헌의 아들 정이를 데리고 실없는 말을 물었었다.
“너 지금도 젖 먹니?”
“동생이 있는데.”
“네 동생 이름이 무어냐?”
“아기”
옆에 있던 상노가
“애기가 이름이야? 용이올시다 그러지.”
하고 가르치니 정이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고
“용이올시다.”
하고 따듬따듬 옮기었다.
“아버지가 이쁘냐? 어머니가 이쁘냐?”
“어머니는 때려주어.”
“그러면 아버지가 이쁘냐?”
아이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너 글 배우니?”
“그럼. 하늘 천, 따지, 아비 부, 어미 모, 다 아는데 무어.”
“잘 아는구나.”
하고 덕순이가 칭찬하는 바람에 아이는 까불기 시작하여 상노더러 이놈아, 저놈아 하며 장난을 치는 중에 큰사랑에서
“이리 오너라.”
하는 조대헌의 목소리가 나니 상노가
“아이구 장난한다고 아버지가 걱정하시어.”
하고 공동을 시키어서 아이는 장난을 그치었다.
조대헌이 혼자 앉아서 덕순을 불러들이었다.
덕순이가 절하고 꿇어앉은 뒤에 궐내 이야기를 말씀한즉 조대헌은 웃으면서
“위에서 간계에 속으실 리가 없네. 또 신자 된 도리는 성심을 다할 뿐이니.”
하고 다시 말이 없으므로 덕순이가
“어르신네시나 시생의 가친이나 지금쯤 조정에서 물러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가친과 의론하시고 속히 양근 미원으로 낙향하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고 조대헌의 의향을 물으니
“자네 말이 옳아. 그렇지만 조정에서 물러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세. 자네 어르신네나 내나 작록을 탐해서 사로에 나선 것 같으면 벌써 물러가게 되었을 것일세.”
하고 조대헌이 대답하는데 그 말소리부터 간곡하게 들리었다.
“자네 어르신네 말씀은 무어라시나?”
“별 말씀이 없으셔요.”
“내가 이따가 자네 어르신네를 보이러 갈 터일세. 먼저 가게.”
하고 조대헌이 말하는데 덕순이 더 앉았기가 어려워서 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때가 다 된 뒤에 조대헌이 김사성을 찾아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밥을 같이 자시게 되었는데, 덕순의 형제가 뫼시고 서서 시중을 들자니 조대헌이 덕순을 돌아보며
“내년 봄쯤 두 집에서 같이 낙향하자고 지금 어르신네와 의론했네.”
하고 말하여서 덧순의 초조하던 맘은 너누룩하여졌다.
저녁상이 끝나고 덕순의 형제가 나온 뒤에 조대헌과 김사성 사이에는 아들들의 이야기가 났었다.
“덕순이가 기골만 든든한 줄 알았더니 식견도 제법 있는 모양이야.”
“무어, 공부를 해야지 사람이 되지.”
“자네는 맏자제가 청수하고도 그릇 같아 보이니까 뒷걱정이 없네. 집의 정이는 아직 어린 것이지만 원대한 기상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수를 못할 것 같아.”
“정이는 좀 약해서 걱정이지만 둘째 자제 용이는 튼튼하더군.”
“덕순의 아우 어린아이의 이름을 무어라고 지었어?”
“덕무라고 지었지. 덕무나 용이나 한 이십 되어서 사람 노릇하게 될 때에는 우리가 육칠십 노인이 될 모양이지.”
하고 김사성이 웃으니 조대헌은
“우리가 그때까지 살까?”
하고 저으기 한숨을 지었다.
그날 낮에 조대헌의 사랑에 모이었던 사람들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인데 병인년 반정공신들 중에 아무 공로도 없이 외람히 참예한 사람이 많으니 이것을 골라서 처치하도록 하자고 그들이 공론하였었다.
이튿날부터 사헌부, 사간원 양사에서 무공한 사람들의 공신 칭호를 깎아버리자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대사헌, 대사간 이하 여러 간관들이 복합까지 하였으나 임금이 좇지 아니하였고 그 뒤에 옥당에서 양사의 주장을 따라서 상소를 아뢰고 대신과 각조 판서가 양사의 주장을 좇아서 말씀을 아뢰었으나 임금이 종시 좇지 아니하였다.
이때 좌의정 신용개는 병으로 수유하고 집에 누워 있던 중이라 예조판서 남곤이가 문병하러 왔다가
“근래 조정 의론이 과격하여 걱정입디다.”
하고 말하니 병이 중하여 기신을 잘 못하는 신정승이 벌떡 일어 앉으며
“과격하다니? 소인들이 옳은 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워서 모함하려고나 할 말이지 대감이 할 말이오? 대감이 어째 그런 말을 하오? 나는 병이 좀 나아서 등연하게 되면 힘껏 말씀을 아뢸 작정이오.”
하고 얼굴빛을 붉히며 나무라서 남판서는 무료하게 앉았다가 돌아갔다.
그 뒤 얼마동안 지나지 아니하여 신정승의 병이 더치어서 다시 등연하지 못하고 마침내 돌아가니 대신의 초상이라 임금님이 별전에서 망곡하려고 하교까지 있었는데, 예조판서 남곤 이외 몇 신하가 중난한 일이니 중지하시라고 밀막았다.
조대헌이 입궐하여 임금께 알현하고
“신용개 초상에 망곡하옵시려다가 중지합시는 것은 무슨 일이오니까? 신은 듣사오니 세종대왕께옵서는 대신 상사 백관을 거느리시고 친림까지 하옵시고 곡하실 때 곡성이 밖에까지 들리었다하오니 일전에 망곡하옵신다는 하교를 봉행하지 아니한 것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신자의 할 바이 아니외다.”
하고 말씀을 아뢰니 임금도 무안하였거니와 남곤 이외 몇 사람은 무안이 지나서 양사 간관들이 공신 문제로 일제히 시작하게 되었는데 임금이 조대헌을 인견하고
“이미 봉한 공신을 깎아 없이 하는 것이 국가의 중대한 일이라 이때껏 지난한 것인데 경들이 사직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아니한가?”
하고 말씀하니 조대헌은 외람한 공신은 삭훈함이 마땅하다고 누누이 아뢰고 그 끝에 예조판서 남곤이가 조정의 중대한 의론이 있을때 영릉에 진향 간다고 서울을 떠나서 위론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이것이 조정 중신의 도리가 아니라고 논박하여 그때 같이 입시하였던 남곤이는 등에 찬땀이 흘렀었다.
나중에 임금도 할 수 없이 하고 삼등공신은 추리어 없이 하여 화천군 심정이와 남양군 홍경주도 군 칭호를 빼앗기게 되어서 분심이 더욱이 돋히었다.
공신 문제가 낙착난 뒤 어느 날 밤에 혜화문 안 갖바치가 조대헌을 찾아왔다.
이때까지 조대헌에게 한번도 온 일이 없는 사람이 졸지에 찾아오니 조대헌은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괴상히 생각하여
“오늘은 웬일인가?”
하고 물으니 갖바치는 첫마디에
“조상 왔소이다.”
하고 슬픈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조대헌이
“조상이라니?”
하고 놀라니 갖바치는
“영감께서는 가실 길을 가시는 것이나 옆에서 보입는 사람은 개연한 맘이 없지 않습니다. 이 다음날 동소문 밖에서 하직할 틈은 있을 듯하나 말씀까지는 여쭙게 될지 모르는 까닭에 오늘밤에 일부러 왔습니다.”
하고 화가 박두하였으니 집일을 미리 정돈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말한 뒤에
“이목이 번다하여 오래 있지 못하고 갑니다.”
하고 일어서 나가는데 조대헌은 무슨 셈인지를 몰라서 별로 붙잡지도 아니하였다.
갖바치가 왔다 가던 이튿날 조대헌은 심신이 불쾌하여 종일 집에 누워 있었는데, 이른 저녁때 김사성이 찾아와서 외조부 제사 참사를 가는 길에 잠깐 들리었노라고 말하고 수어하다가 바로 일어서려고 하니 조대헌이 조금 더 앉았다 가라고 붙들어서 나중에 저녁밥까지 같이 먹게 되었다.
저녁상을 치운 뒤에 조대헌이 김사성을 돌아보며
“오늘은 종일 신기가 불편하여 밥 생각이 별로 없더니 자네와 같이 먹는 덕에 저녁을 잘 먹었네.”
하고 치사하듯 말하는데 김사성이
“우리가 이 다음날은 같이 밥 먹기도 어려울 것일세.”
하고 한숨을 쉬니
“갑자기 앞 짧은 소리가 웬일인가? 자네가 몹시 심약해졌네그려.”
하고 조대헌이 도리어 위로하는 어조로 말하다가
“벌써 함정의 고동을 밟았으니 천장만장 빠질 것은 눈앞에 닥친 일이지.”
하는 김사성의 말을 듣고 맘이 따라 약하여졌든지
“글쎄, 그렇다고 하겠지.”
하고 역시 한숨을 쉬었다.
이리하여 주객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한동안 서로 대하고 앉았다가 나중에 김사성이
“제사나 지내러 가겠네.”
하고 일어서려고 하니 조대헌이
“이리 오너라.”
하고 상노를 불러서
“대사성댁 하인에게 등불을 켜라고 일러라.”
하고 분부하고서 곧바로
“아니 달이 밝겠구나. 등불은 그만두고 나오라구나 일러라.”
하고 고쳐 분부한 뒤 일어서는 김사성을 보고
“내일 만나겠지.”
하고 작별인사까지 하더니 김사성이 마당에 내려서서 몇 걸음도 걷기 전에 영창을 열고
“노천 외조 제사에 꼭 참사하여야 하겠나?”
하고 묻지 않을 듯한 말을 물은 까닭에 김사성은 괴상히 생각하여
“그것은 왜 묻나?”
하고 고개를 돌이켜 바라보니 작은 촛불이 찬바람에 후리어서 방안이 밝지 못한 중에 조대헌이 손으로 문틀을 짚고 구부슴하고 서있는데, 그 머리에 짐승의 발톱 같은 손이 내려와서 관 속에 있는 상투를 꿰어들려는 것같이 보이었다.
김사성이 속으로 놀랍게 여기어 다시 뜰 위로 올라와서 가까이 서서 본즉 짐승의 발톱 같은 손이 아니라 문방장을 걷어 다는 갈고리의 끝이 나온 것이었다.
조대헌은 김사성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가까이서 말하려는 것인 줄로 알고 마루로 마주 나와서 달빛이 들기 시작한 뜰 위에 섰는 김사성을 내려다보며
“닭이 밝으네그려. 오늘밤은 공연히 맘이 소란하니 자네와 이야기나 하고 지냈으면 좋겠으나 자네가 제사지내러 간다니 붙들 수가 있어야지.”
하고 은근히 붙들었으면 좋은 눈치로 말하나 김사성은
“간다고 기별까지 하였으니까 아니 갈 수가 없어. 자네는 일찍이 자게. 내일 만나지.”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중문 밖으로 나오는데 공연히 맘에 섭섭한 것 같았다.
김사성이 외가에 와서 보니 주인 되는 외사촌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외사촌이 김사성을 분주히 맞아들이며
“형님댁에서는 일찍 나서셨다는데 어디서 늦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김사성이
“효직이에게서 늦었네.”
하고 대답한 뒤
“집에서 일찍이 나선 것은 어떻게 알았나?”
하고 도리어 물은즉 그 외사촌은
“덕순이가 석후에 와서 다녀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김사성이 외사촌 이외 여러 사람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그의 외척 되는 사람 하나가
“근래에 조정일이 어떠합니까?”
하고 물으니 김사성이 손을 내저으며
“오래간만이니 서로 서회들이나 하지 조정일은 물어 무엇하나.”
하고 말하기를 즐겨 아니하는데 그 사람이 굳이 듣고자 하여 나중에 김사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로 말하면 공명이 분수에 넘치는 까닭으로 어느 때 화를 받을지 모르는 사람이라 다음날은 이렇게 모이기도 어려울 것이니 이런 때 서로 서회나 하세나.”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은 더 말하지 못하고 김사성의 외사촌이
“형님, 화 받으실 줄 알면서 왜 진작 피하지 아니하십니까?”
하고 말하니 김사성은
“지금 와서는 진퇴유곡이야.”
하고 한숨을 지었다.
김사성의 외가는 닭 운 뒤에라야 비로소 행사하는 예문가가 아닌 까닭에 제사를 일찍 지냈다.
그러나 제사를 파하고 음복을 시작할 때 밤이 벌써 삼경이 가까웠다.
음복상이 채 다 끝나기 전에 덕순이가 도적에게 쫓긴 것같이 장달음을 쳐 뛰어들어오며 바로 사랑으로 들어와서 양치하는 김사성을 보고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하고 벅찬 숨을 돌리려고 할 때 벌써 중문 밖이 술렁술렁하며 여러 사람의 발짝 소리가 들리었다.
덕순이가 김사성 앞으로 가까이 가서
“벌써 왔습니다. 사랑 뒤로 피하시지요.”
하고 나직이 말하니 김사성이 눈을 부릅뜨며 큰소리로
“지각없는 것 같으니, 어디를 피한단 말이냐?”
하고 꾸짖었다.
이러할 때 선전관 하나가 금위군사 십여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김사성의 외사촌이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나서서
“웬일이오?”
하고 물으니 그 선전관이
“웬일?”
하고 뇌며 어깨를 으쓱하고
“대사성 김식이 여기 왔지?”
하고 호기 있게 묻는데 김사성의 외사촌이 무어라고 대답하기 전에 김사성이 방 밖으로 나와서
“내가 김식이오.”
하고 나서니 그 선전관이 어명을 받들고 나왔다고 말한 뒤에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김사성을 끌어내리어 전후좌우로 에워싸고 중문 밖으로 나가는데, 덕순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신을 부르르 떨다가 잡혀가는 부친의 뒤를 따라나섰다.
뒷전에서 가는 군사 하나가 돌치어서며
“이놈아, 따라오지 말아!”
하고 호령하는데 덕순이가
“아무더러나 이놈이야. 따라가면 어찌할 테냐?”
하고 맞호령하다시피 하였더니
“이놈 보아라.”
하고 덕순에게 달려들어 손찌검을 하려는 것을 옆에서 가던 다른 군사가
“아서게 이 사람아, 잡혀오는 이의 자질인가 보네. 인정에 따라오고 싶지 않겠나? 이 사람 고만두고 어서 가세.”
하고 말리어서 그 군사는
“양반의 자식은 법도도 모른단 말인가, 봉명한 사람에게 호령질을 하다니. 내일쯤은 연좌로 경치게 될 것이니 어디 보자.”
하고 벼르고 돌아섰다.
덕순이는 그렇지 않아도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두 번에 그 군사를 반쯤 죽여놓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고서 광화문 앞까지 따라왔다.
궐내는 따라들어갈 길이 없는 까닭에 광화문 밖에서 미친 사람같이 왔다갔다 하다가 수문장에게
“누구냐? 저리 가거라”
하는 꾸지람까지 받았다.
얼마 동안 지난 뒤에 금부도사가 앞을 서고 그 뒤에 금위군사 한 떼가 덕순의 부친 이외 여러 사람을 둘러싸고 나오더니 의금부로 향하였다.
군사 속에 싸여서 끌려가는 그 부친의 얼굴을 언뜻 보고서는 이때껏 말똥말똥하던 덕순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금부 앞까지 따라 오기는 왔으나 황토마루 큰길로 돌아왔는지 수진방골 사잇길로 내려왔는지 덕순이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때 달이 대낮같이 밝아서 기어가는 개미도 보일 만하였으나 달이 밝은지 날이 밝았
는지 덕순이는 요량하지 못하였다.
그날 밤에 궐내에 입직하였던 승지며 옥당들도 잠깐 금부에 내려 갇히었다가 바로 놓이었는데, 두서너 사람이 놓여나올 때마다 덕순이는 그 부친도 섞이어 나오나 하고 번번이 쫓아가서 보았다.
금부 안에서는 잡히어 온 사람들이 넓은 뜰에 늘어 앉았는데 금부도사의 인정으로 공석 한 닢씩을 주어 깔고 앉았으나, 언 땅에서 올라오는 찬기운과 기왓골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에 몸이 벌벌 떨리었다.
잡혀온 사람들은 대사헌 조광조와 형조판서 김정과 대사성 김식과 부제학 김구와 우승지 윤자임과 좌부승지 박세희와 동부승지 박훈과 응교 기준 등 여러 사람인데 무슨 죄로 잡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죽음을 면치 못할 줄은 다 각기 짐작하였다.
그러나 조광조 외에는 모두 일없는 사람같이 웃고 이야기하고 윤자임이 금부도사에게 사정하여 술을 사다가 돌려 마신 뒤에는 시까지 읊조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광조 한 사람은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고 술도 마시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통곡하여 그칠 줄을 모르니 여러 사람들이
“효직이 울지 말게.”
하고 말리기도 하고
“효직이 창피하지 아니한가?”
하고 조롱하기도 하는 중에 기준이가
“죽음을 당하여는 끝까지 옹용한 것이 글자 배운 보람인데 통곡할 까닭이 무어 있소?”
하며 책망하니 조광조가 목메인 소리로
“낸들 그걸 모르겠나? 나는 우리 임금을 뵙고 싶어. 우리 임금이야 이렇게 하실 리가 없어.” 하고 다시 울음을 내놓았다.
조대헌이 깔고 앉은 공석은 떨어진 눈물이 얼어붙어서 달빛에 번쩍거리니 나졸 중에 한 사람이 이것을 보고 새 공석을 한 닢 가지고 와서
“이것을 깔으십시오.”
하고 조광조를 붙들어 일으키고 새 공석을 덧깔아 주니 조광조가 그 나졸을 돌아보며
“필묵을 좀 얻어주겠소?”
하고 청하니 그 나졸이
“도사 나리께 말씀을 여쭈어 보리라.”
하고 가더니 필묵과 벼루를 가져왔다.
조대헌이 눈물로 묵수 삼고 웃옷자락으로 종이 삼아 상소 한 장을 써놓았다.
여러 사람이 조광조의 써놓은 상소를 보니 말은 간단하나 뜻은 곡진한데, 끝으로 말한 소원은 임금이 친히 한번 심문하여 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성미 괄괄한 윤자임이 이것을 보고 대번에
“친국 당하기가 소원이란 것은 좀 우습소그려.”
하고 옷자락 상소를 손등으로 밀어치우니 조광조가 그것을 정성스럽게 접어서 품에 품으며
“우리 임금은 잘못된 일을 아시고 고치시지 않을 리가 없으셔.”
하고 또 눈물이 방울방울 옷깃에 떨어지는데 눈물 자국이 완연히 불그스름한 물이 묻는 것 같았다.
김식이가 이것을 보고
“여보게 중경이!”
하고 윤자임의 옆구리를 지끈거리어 윤자임이 자기를 돌아다보게 하고는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 김구를 가리키며
“저 대유의 글을 들었나? 명월장천야 구가 좋지?”
하고 말한즉 윤자임이
“아까 같이 듣고 들었느냐고 묻는단 말인가? 노천도 정신이 빠졌네 그려.”
하고 허허 웃으니 김식이는
“그랬던가?”
하고 저으기 웃었다.
김식이가 말하고 웃고 하는 모양으로 윤자임도 조광조의 맘을 더 상하게 하지 말라는 눈치를 알고 다시는 옷자락 상소에 대하여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잦은 닭이 울 무렵에 덕순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덕순이는 금부문 밖에서 돌아다닐 묘리도 없지마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역시 없었는데 어찌하다가 집에 있는 어머니의 생각이 나며 발이 제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 선전관이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집 안을 뒤지는 틈에 덕순이는 슬그머니 사랑 뒷담을 뛰어넘어서 한달음에 그의 부친이 있는 진외가로 갔었는데 그 어머니와 그 형님까지도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만, 덕순의 안해 이씨는 사람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 시어머니가 수족에 자개바람이 나서 맏동서와 같이 시어머니 옆에 붙어 있느라고 틈을 타지 못하였다.
덕순이 집에를 돌아왔을 때 이씨와 그 동서는 아직도 시어머니 방에 있었는데 중병을 치른 사람같이 얼굴이 해쓱한 덕순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형수가
“아이구!”
하고는 곧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시어머니에게
“서방님 오셨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덕순의 어머니가 기운 없이 눈을 뜨고 한번 둘러 보더니
“너의 아버지 오셨느냐?”
하고 묻는 것이 정신이 깨끗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덕순이는 그 형수가 가까이 있는 것도 헤아리지 않고 어머니 앞으로 달려들어서 그 안해가 주무르느라고 쥐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빼앗는 것같이 당겨 쥐고
“어머니, 아버지가 금부로 가셨어요.”
하고 눈물이 텀벙텀벙 떨어지니 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이 고개만 가로 흔들 뿐이었는데, 그 고개가 남편의 일이 글렀다는 뜻인지 또는 아들더러 울지 말라는 뜻인지 알지 못할 고개이었다.
덕순의 형 덕수가 들어왔다.
덕수는 울어서 눈이 부었다.
그 어머니는 덕수를 보고 또 알지 못할 고개를 흔들었다.
이씨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시어머니의 발치로 가서 섰으니 맏동서가
“여보게 앉게. 어머니 발을 주무르세.”
하고 자기도 발치로 가서 두 동서가 시어머니의 발을 하나씩 갈라 쥐고 주무르기 시작하고 덕수는 계수가 내놓고 일어선 자리에 와서 덕순과 나란히 앉았다.
앉았는 사람의 속을 답답케 할 만큼 조용하였다.
소리는 어린 덕무의 코고는 색색 소리와 등잔불의 심지가 타는 빠지직 소리 뿐이고 움직이는 것은 두 동서의 흰손들뿐이었다.
이때 광경을 갑자기 보게 된 사람이 있다면 아들 며느리가 어머니 임종에 모이어 앉은 것으로 잘못 보기 쉬울 만하였다.
동이 틀 때 그 어머니가 깨끗한 정신이 돌아나서 아들들을 보고
“너희들이 이리하여서는 아니 된다. 큰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잠 잘 자고 밥 잘 먹어야 한다. 나가서 눈들을 좀 붙여라.”
하고 또 발치에 있는 며느리들을 보고
“너희들도 방으로들 가거라.”
하고 말한 뒤에 아니들 나가는 것을 야단치다시피 하니 이씨의 두 동서가 먼저 나와서 상직군과 아이종을 들여보내고 그 뒤에 덕수의 형제들도 일어서 사랑으로 나왔다.
덕수는 기질이 약한 까닭에 앉아 배기지 못하고 목침을 베고 눕고 덕순은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았는데 밖에서
“작은서방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덕순이가 문을 열고 내다본즉 박연중이가 댓돌 위에 올라서 있었다.
“왜 부르니?”
“이리 좀 오시오.”
덕순이가 마루 끝에 나와 앉은 뒤에
“소문은 더러 들으셨소?”
하고 연중이가 물으니 덕순이는 듣지 못하였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연중이가
“소인이 몇 군데 다니며 알아보니까 예조판서 남곤이가 일을 꾸며낸 모양입디다.”
하고
“오밤중에 이디 가서 알아보았단 말이냐?”
하고 덕순이가 의심하는 것같이 말하니까 연중이는
“어젯밤에 문 닫고 잠잔 댁이 이디 있단 말씀이오.”
의심하는 것을 나무라듯이 말하고 우선 알아본 데를 대려고
“소인의 친구가 회동 정정승댁의 청지기를 다니고 소인의 일가가 흥인문 밖 이판서댁의 별배를 다니지요.”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그래 고만두고 알아본 이야기나 해라.”
하고 연중의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정정승댁 청지기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어제 새벽에 남판서가 패랭이를 쓰고 헌 베옷을 입고 걸어서 정정승댁에를 왔더랍니다. 정정승이 중문간에 나가 보는데 그 청지기가 부축하고 나갔더래요. 남판서 말이 남의 이목이 무서워서 이 모양을 하고 왔노라고 하고 지금 위에서 조광조 당을 없이 하려고 하시는데 위에서 대감께 문의하시거든 아무쪼록 위의 뜻을 거스르시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을 하나라도 뒤에 남겨두면 해가 무궁할 것이라 씨를 없애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하게 되실지도 모르니 깊이 생각하십시오 말하고는 잘하면 큰 수가 생길것이요, 잘못하면 큰 탈을 당할 것이라고 별말을 다 하더랍니다. 그런데 정정승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여보 대감이 조정 중신의 몸으로 상것들의 모양을 하고 큰거리를 지나오시다니 해괴한 일이오 또 그러고 사림을 모함하려는 것은 나의 본심이 아니오 하고 말하여 남판서가 골을 내고 인사도 변변히 아니하고 간 일이 있었는데, 어제 밤중에 궐내에 큰일이 났다고 입궐하시라고 해서 들어가시게 되니까 그 댁에서도 큰일이 나는가 보아서 안팎없이 야단들이랍디다. 또 이판서댁 별배의 말을 들으니까 이판서가 댁에 아니 계신 동안에 남판서가 연 사흘 찾아왔더랍니다. 어제 저녁때 남판서에게서 무슨 편지가 왔는데 이판서가 그 편지를 보더니 군복을 차리고 말을 빌어다 타고 문안을 들어왔답니다. 처음에는 남판서 집으로 갔었다가 남판서와같이 경복궁 대궐 뒷문으로 가서 그 문으로 입궐하였다는데 그 별배가 주인대감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나왔다고 합디다. 그러고 신무문으로 입궐하는 것은 전에 본 적이 없는 일이라고 합디다. 그래 이 말 저 말 합해서 생각한즉 이번에 영감마님이 당하신 일은 남곤이가 꾸며낸 것이 분명하지 않아요?”
정신 놓고 연중의 이야기를 듣던 덕순이가
“남곤이는 원래 간특한 놈이니까 못된 짓을 하겠지만 이장곤이로 말하면 점잖다는 말을 듣는 자가 남곤이와 부동해서 못된 짓을 했단 말인가?”
하고 열을 내어 소리를 질렀다.
덕순이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방에 누웠던 덕수가 놀라서 뛰어나오며
“무얼 그러니?”
하고 물으니 덕순이가 눈을 크게 뜨고
“여보 형님, 이장곤이가 남곤이와 부동해 가지고 아버지를 모함했다는 구려.”
하고 분하여 하니 덕수가 얼마 동안 말이 없이 생각하더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판서가 점잖다는 이고 또 조대헌장이시나 아버지시나 서로 친하신 터인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
하고 이판서를 두둔하여 말하였다.
“아니요, 형님. 연중이가 듣고 온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본즉 그 말이 근리한 것이, 이장곤이가 병판이 아니오? 병판이 아니 들면 금위군사를 풀 수가 없지 않소?”
“글쎄, 그렇다면 인심이 무섭다.”
“인심이다 무어요? 친한 것으로 말하면 남곤이는 친하시자들 아니한지요? 우리가 원수를 갚자면 첫째 이장곤이고 그 다음에 남곤이오.”
덕순이가 주먹을 쥐고 일어서니 덕수가 차차 더 알아보자고 말하였다.
덕순이가 이장곤을 때려죽일 놈같이 벼를 때에 금부 안에서는 벌써 좌기할 기구를 차리느라고 나졸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중이었다.
해가 높이 솟은 뒤에 조광조, 김정 등을 잡아들여 문초를 받게 되었느데 문초받는 관원은 위관에 김전이요, 금부당상에 이장곤이요, 이품에 홍숙이었고, 문초받는 죄목은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 네 사람은 붕당을 지어 성세를 잡고 궤격한 버릇을 길러 조정을 그르친다는 것이요, 윤자임, 기준, 박세희, 박훈 네 사람은 조광조 무리를 따라 궤격하다는 것이었다.
조광조가 계하에 꿇리어 앉아서 당상에 좌기한 이장곤을 치어다보고
“희강이, 희강이.”
하고 자를 부르니 이장곤은 바늘방석에 앉은 사람같이 몸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차마 계하에 꿇린 사람을 바로 내려다보지 못하던 중에, 조광주의 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무안한 듯이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힐 뿐이었는데 김전이가
“죄인이 당상의 자를 부르다니 가만두지 못한 일이다.”
하고 같지 않게 화를 내며 좌우에 벌려선 나종을 내려다보고
“너희들 그 주둥이를 부비어 놓지 못하느냐!”
하고 호령하였다.
나졸들이 긴 대답을 하고 조광조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이장곤이가
“가만히 물러들 섰거라.”
하고 분부하여 나졸들을 물리치고 곧 손 위에 앉은 김전을 돌아보며
“선비는 죽일망정 욕보이지 못합니다. 또 어제까지 친구로 지내던 사람이 자 좀 불렀다고 욕보이는 것은 인정이 아닙니다.”
하고 점잖게 말하여 김전은 입맛을 다시고 말이 없었으나 손 아래에 앉은 홍숙이가 이장곤을 돌아보며
“그것은 대감 말씀이 틀린 말씀이십니다. 충역이 한번 갈린 바에야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고만두고 얼른 죄인들의 문초나 받으십시다.”
하고 계하를 내려다보며
“너희들의 죄목은 다 알았지? 광주부터 바로 아뢰라.”
하고 호령하니 조광조가 홍숙을 치어다보며
“네가 나의 문초를 받다니? 만일 법대로 국문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
말하여 홍숙은 분이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금부에서 여러 사람의 문초를 받아서 궐내에 드리고 형장쓰기가 청하였으나, 이일에 대하여는 조정 의론이 정한 것이 있으니 형장을 쓰지 말고 조율하라고 위의 하교가 있어서 여러 사람이 형장은 당하지 아니하였다.
이때 문 밖에 사는 사람들은 문 안으로 모여들고 문 안에 사는 여염 사람과 시정 사람들은 길거리로 몰려나오고 성균관에 거재하는 유생들과 중부, 동부, 서부, 남부 사부학당에 있는 유생들은 경복궁 대궐 앞으로 몰려들어서 광화문 앞에서 황토마루로 종로 큰길거리까지 사람 천지가 되었는데 해태 앞과 금부 앞에는 사람이 천여 명씩 뭉치었었다.
해태 앞에 뭉치었던 유생 중에 신명인이란 선비가 앞으로 나서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섰기만 하여서 무엇하는가? 우리가 신원상소나 올려보자.”
하고 섰던 자리에 주저앉아 상소를 초하는데 붓이 쉴 새 없이 적어냈다.
여러 유생들이 상소 든 유생을 앞세우고 궐문 앞으로 달려드는데, 수문장이 문 지키는 군사를 좌우에 벌려세우고 앞을 막으니 황계옥이란 유생이 군사 하나를 떠다박질러서 유생과 문군사 사이에 살풍경이 나기 시작하였다.
“쳐라, 때려라.”
소리와
“밟아라, 죽여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유생 중에 갓 부시고 옷 찢긴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머리가 깨어져서 피투성이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먼저 손찌검을 시작한 황계옥이는 슬슬 피하여 옆으로 비켜선 까닭에 옷고름 하나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막아도 물러가지 아니하고 점점 더 달려드는 유생들을 문군사 몇 사람이 막아내지 못하여 나중에는 유생들이 물밀듯이 광화문 안으로 몰려들어와서 악머구리 울듯이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난데없는 곡성이 궐내를 진도하여 위에서 놀라 곡성 출처를 하문하니 정원에서 사실을 아뢰었다.
위에서
“이것은 천고에 없는 변이다. 금위군사를 풀어서 몰아내라. 그러고 수두 몇 놈은 잡아 가두어라.”
하고 하교하여 금위군사들이 유생들을 내쫓는데
“수두가 누구냐?”
물어서 몇 사람을 잡으려고 하니 여러 유생들이
“나도 수두다. 나도 수두다.”
하고 달려들었다.
금위군사가 처음에 잡기는 네다섯 사람에 불과하였지만 나중에 앞을 다투어 잡히는 사람이 수가 없이 많은 까닭에 철쇄가 부족하여 새끼로 목을 얽힌 사람이 여러 백 명이 되었다.
위에서 이것을 알고 조광조가 인심을 얻었다는 것이 사실이구나 생각하고 눈살을 찌푸릴 때에 마침 금부에서 조광조의 옷자락 상소를 올리니 위에서
“상소는 다 무어냐?”
하고 감하지 아니하였다.
옥당 하인 이학년은 속량하지 못하여 하인 노릇을 할망정 근본을 따지면 종친의 서자라 종친 중에 안면이 넓었었다.
그날 식전에 파릉군에게 쫓아가서 의논한 결과로 왕자, 군 이하 종친들의 힘을 모아서 조광조 등을 구원하기로 되어 낮이 지난 뒤에 파릉군 이하 여러 종친들이 예궐하여 임금께 면대하기를 청하다가 정원에 막히어 면대하지 못하고 그대로 퇴궐들 하게 되었다.
파릉군은 빈청에 와서 대신들을 보고 나랏일을 걱정하여 울며불며 하는 중에 마침 빈청으로
들어오던 이장곤을 보고 인사도 채 아니하고
“희강이, 나는 대감을 사람으로 알았더니 불여우 새앙쥐들 틈에서 꼬리를 흔들고 다닌단 말이오? 대감이 사람이오? 대감이 효직이 일파를 해칠 줄은 몰랐소.”
하고 나무라며 눈물을 좌르르 흘리니 이판서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얼빠진 사람같이 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영의정 정광필 앞으로 나아가서 금부의 처치를 말하는데 영의정은 상을 찡그리었다.
금부에서 조광조 이하 여덟 사람의 죄를 간당률에 비추어서 당자들은 참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를 박고 재산을 적몰하기로 정하고 위관 김전이가 위에 품하려고 궐내로 들어왔다.
죄를 정할 때에 이판서는 너무 중하게 매는 것이 불가하다고 다투었으나, 남곤, 심정의 뜻을 받은 홍숙이가 무능한 김전과 부동하여 이판서의 다투는 것을 돌보지 아니하고 이렇게 정하게 된 것이다.
이판서가 만일 모리악을 쓰다시피 다투었다면 병조판서로 금부당상을 겸한 중신의 말이 허무해지도록 될 것이 아니었지만, 거제 귀양살이와 함흥 도망질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에 정다운 봉단과 귀여운 함동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어 맘이 약하여져서 굳세게 말을 세우지 못하였다.
두 사람에 한 사람이라 힘이 자라지 못하여 간당률에 비추어 죄를 정하게 되었다고 이판서가 영의정에게 말하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었다.
이때 위관 김전이가 임금께 봅고 금부에서 조율한 것을 아뢰니 임금은 조광조 무리의 인심 얻은 것을 근심하던 터이라 그 죄가 죽일 것이 없는 것은 통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 네 사람은 죽이고 그 나머지 네 사람은 귀양보내라고 하교하여 다 저녁때 위관 김전과 당상 이장곤과 이푼 홍숙이가 다시 금부에 좌기하고 조광조 등의 지만을 받게 되었는데, 이당상만은 머리가 아프다고 손으로 머리를 짚고 벼로 말을 입에 내지 아니하였다.
조광조는 옷자락 상소를 올린 뒤에 한번 친국이나 당하게 될까 기다리었더니 금부에서 지만을 두게되는 것을 보고 소원이 틀린 것을 알았다.
어젯밤에는 친구들의 말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통곡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조광조가 지만을 둔 뒤로부터는 여러 친구와 웃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 집 사랑에 모여 앉았을 때
나 다름이 없었다.
영의정 정광필은 날이 저물어 불을 켠 뒤까지 빈청에 앉았었는데 혼잣말로 ‘개지가 살았더면 혹 선처할 도리가 있었으련만 나 혼자 남아서 이런 변고를 당한단 말인가?’ 하고 죽은 친구 신용개를 생각하며 긴 한숨을 쉬기까지 하였는데, 조광조 등의 죄를 한번 다시 대신에게 수의하게 되어 입시하라는 전교가 위에서 내리니 정광필은 즉시 입시하여 탐전에 부복하고
“광조 등은 나이 젊고 어리석사온 까닭으로 사리를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옵지 만일 중죄를 범하였사오면 신인들 어찌 죄주시기를 청하지 아니하오리까? 죄가 있사와도 죽이도록 중할 것이 없사오니 감사정배케 하옵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는데 눈물이 관복 깃을 적시니 임금도
“과연 중대한 일이니 다시 생각하여 보지.”
말씀하고 얼마 뒤에 가승지 성운을 불러서
“광조 등 네 사람은 원방에 안치하고 그 나머지 네 사람은 원방에 부처하라.”
하고 하교를 내리었다.
조광조 등 여덟 사람은 다같이 귀양 가게 되었는데 조광조는 능주로 가고 김정은 금산으로 가고 김식은 선신으로 가고 김구는 개령으로 가고 또 박세희는 상주로, 박훈은 성주로, 윤자임은 온양으로, 기준은 아산으로 가게 되었다.
임금이 가승지 성운을 금부에 보내어 귀양 갈 사람들에게 전교를 내리는데 그 전교 말씀이
“너희들은 모두 시종근신으로 상하동심하여 국사를 잘 다스리려고 한 것이 맘이 그른 것은 아니로되 근래에 너희들의 하는 일이 그릇됨이 많아서 임신을 부편케 한 까닭으로 부득이 죄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맘이 어찌 편할 수 있으며 청죄한 대신인들 어찌 사심이 있으랴? 만일 율대로 정하게 되면 귀양에만 그칠 것이 아니나 너희가 국사를 잘 다스리려든 본뜻을 생각하여 죄를 경하게 주는 것이니 너희들은 그리 알고 가거라.”
하고 특별히 조광조에게
“광조 너는 죄가 제일 중하나 특별히 관대하게 처분하는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니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이 엎드려 들을 뿐이었으나 조광조는 고개를 들고
“신이 이렇게 가온들 상심을 어찌 모르오리까? 신들의 한 일이 과연 과격하였사외다.”
아뢰어 달라고 대답하였다.
조광조 등은 전교를 받은 뒤에 금부에서 동소문 밖으로 나가서 사처를 정하고 행장을 수습하게 되고 잡혀 갇혔던 유생들은 모두 그대로 방송하게 되니 복잡하던 금부가 일이 없는 빈집 같았다.
나졸 몇 사람이 모이어 앉아서 조광조 등의 인물을 평하는데 어느 사람은
“김식이가 단아하더군.”
말하고 또 어느 사람은
“윤자임이 나내다워.”
말하는데 그중에 나이 지긋한 한 사람이
“말들을 마라. 내가 금부에 다닌 지 수십 년에 죄 당하는 대관들을 한둘 본 것이 아니지만 조대헌 같은 지성스러운 사람은 처음으로 보았다.”
말하여 여러 사람의 말을 막으니 이 사람이 조광조에게 필묵을 갖다 주던 나졸이었다.
조정암이 동소문 안을 지나갈 때 길가에 섰는 여러 사람들 틈에 한 사람이 눈물을 뿌리며 섰었으니 이 사람은 갖바치다.
이날 저녁때 갖바치가 문 밖으로 나와서 조정암에게 하직할 틈을 타려고 애썼으나 금부도사가 잡인 출입을 엄하게 금하여 사처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얼마 동안 근처로 돌아다니다 덕순을 만나게 되었다.
덕순이가 창황한 중에도 갖바치를 보고 반색하여
“어째 나왔소?”
하고 말을 물으니 갖바치가
“조정암의 얼굴이나 한번 더 보려고 나왔소이다.”
하고
“나를 하인이라고 하고 사처집을 좀 같이 들어가십시다.”
말하여 덕순이가 금군과 말다툼을 조하 하고야 갖바치가 구차히 집 안에 들어왔으나 조정암의 사처방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조정암이 저녁상을 받을 때에 사처방 문이 열리며 조정암이 밖에 있는 갖바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니 갖바치는 허리를 구부리어 하직하는 뜻을 보이었다.
정암이 문 앞으로 가까이 나앉으며 갖바치를 손짓하여 부르려고 한즉 마침 사처방에 들어앉았던 금부도사가 고개를 가로 흔들고 방문을 닫았다.
갖바치가 조정암에게 말 한마디 못하여 보고 돌아서 나가는데 덕순이가 뒤를 따라나오며
“인제 문안으로 들어가려오?”
묻고서
“나도 내일은 아버지를 뫼시고 떠날 터인데 이따가 집으로 들어갈 때 잠깐 들리리다.”
말하니 갖바치는
“그리하시오. 기다리리다.”
하고 대답하였다.
초저녁이 다 된 뒤에 덕순이가 갖바치 집에서 방문을 열어 보니 아랫목에 누워 있던 갖바치가 일어나서 마주 나오며
“오셨소? 우리는 이 다음에도 만날 터이니까 섭섭할 것이 없소. 어서 가셔서 금실 좋으신 내외분이 작별이나 오래오래 하시오.”
하고 웃으니 덕순이는
“창황 분주한 중이지만 잠시 이야기할 틈이야 없겠소.”
하고 방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갖바치가
“고만두고 가시지요.”
하고 막다시피 말하여 덕순이가
“그러면 작별이오.”
하고 돌아서려는데 갖바치가
“여보시오.”
하고 불러서
“내가 말씀 한마디 할것을 잊었소그려. 일은 중이 낭패시킬 터이니 조심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덕수 덕순 형제 중에 덕순만 그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
덕수는 그 아버지가
“너의 아우만 데리고 갈 터이니 너는 아직 집에 있어서 집일을 보살펴라.”
하고 일렀을 뿐이 아니라 그 어머니가 아직도 편치 못한 것을 보고 형제 함께 떠나가기도 어렸웠다.
그 아버지가 죽지 않고 귀양을 가게 되고 삼수 갑산 같은 먼 곳으로 가지 않고 선산을 가게 되니 불행중의 다행이라 덕수는 맘이 적이 놓이었다.
행장을 대강 수습하고 형제 서로 대하여
“하인은 누구를 데리고 가신다더냐?”
“연중이를 데리고 가시자고 여쭈었어요.”
“주동이가 사람이 영리하니까 낫지 않을까?”
“연중이 모자에게 벌써 다 일렀는걸요. 그러고 기운꼴 쓰는 연중이가 나올 겝니다.”
말말끝에 덕수가 안심되는 모양으로 한번 한숨을 쉬고서
“이번 일은 참말 천은이 망극하다.”
말하니 덕순이는 대답이 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왜 고개를 흔드느냐?”
“망극할 것도 없어요.”
“어째 그렇단 말이야? 너는 감축한 생각이 없니?”
“없어요. 부모를 귀양 보내는데 감축한 생각이 날 까닭이 있나요.”
“귀양만으로 그치게 된 것이 감축하지 않아?”
“죄없는 부모의 귀양만도 분한 일이지요.”
“소인들이 모함한 것을 어떻게 하니?”
“임금이 밝으면 소인들이 모함할 수 있나요?”
“이애 그게 다 무슨 말이냐? 아예 그렇게 지망지망히 말을 마라. 큰일날라.”
“큰일은 벌써 난 걸요.”
“큰일이 작게 되었으니까 천만다행이지.”
“뒤의 일이 또 없을는지 지내보아야 알지요.”
“아무리 소인들이기로 설마 가죄야 청할라구.”
“소인들의 심장을 누가 알아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시각에 남곤의 집에서는 이장곤 심정 홍경주 김전 홍숙 성운 뭇소인놈들이 가죄 청할 계획을 꾸미는지도 모르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 사람이 치가 떨리지 않아요?”
“그야 알 수 없지. 그렇지만 소인들의 원이 여러 어른을 조정에서 내쫓으면 고만 풀릴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장곤만은 그 자들 축에 섞이지 않을 것이다.”
형제가 사랑에서 이러한 수작을 하다가 덕순이가
“어머니 보이려나 들어가십시다.”
하고 말하여 형제가 같이 안방으로 들어와서 또다시 한동안 앉았었다.
밤이 든 뒤에 덕순이가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보니 그 안해 이씨가 자리도 펴놓지 않고 넋잃은 사람같이 앉아 있었다.
“왜 자리를 펴지 않았소?”
“여기서 주무시겠어요?”
“그럼 어디 가 자란 말이오?”
“펴지요.”
하고 이씨는 일어서서 자리를 내리는데 팔의 맥이 풀리었느지 요이불을 들어다가 놓는 것이 무거운 농짝을 드다루는 것같이 보이었다.
덕순이가 딱하게 여기어서
“품앗이합시다. 게서 자리는 내가 펴주리다.”
하고 일어서니 이씨가 웃는지 마는지 하게 적이 웃으며
“고만두세요.”
하고 말리는데
“고만두기는 왜?”
가고 덕순이가 요와 이불을 번쩍번쩍 들어다가 펴놓으며
“내일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할 터이니까 일찍 잡시다.”
하고 말하니 이씨는
“일찍 주무시지요.”
하고 대답하는데 그 얼굴이 다시 시름 속에 싸이었다.
“게서는 아니 자려오?”
“이따가 자겠어요.”
“그러면 나도 이따가 자지.”
“그러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덕순이가 입을 이씨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한마디 속살거리니 이씨는 고개를 외로 돌리며
“딱하신 양반.”
하고 입속으로 말하였다.
“아버지가 귀양 가시게 되니까 어머니가 병나셨지. 귀양 가시는 데 내가 따라가게 되니까 게서 따라 병이 날 것 같기에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라고 칭찬했지. 딱하기는 무에 딱해.”
“실없은 말씀 할 겨를이 있어요? 그것이 딱하지 않아요?”
“실없이 말한 것은 근심하는 안해를 위로하려는 것이니까 용혹 무괴지만 멀리 떠날 남편을 책망하는 것은 겨를이 있어 하는 일이오?”
이씨는 대답이 없었다.
“늦었소. 고만 잡시다.”
하고 덕순이가 우기어서 내외가 함께 눕기는 하였으나, 베개 위의 잔사설은 날이 샐 때까지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이튿날 여러 귀양 행차가 떠나는데 서관이나 북관으로 가는 사람이 없느니만큼 과천까지는 모두 동행할 수 있었다.
서울서는 느직이 떠나게 된 까닭에 과천이 첫날 숙소참이 되었다.
숙소는 군데군데 정하였으나 석반 후에는 여러 사람이 모두 조정암의 숙소로 모이었다.
내일이면 조공조 김정 윤자임 기준 네 사람은 수원 진위길로 가고 김식 김구 박세희 바훈 네 사람은 용인 죽산길로 가게 되어 길이 서로 갈릴 터이라 여러 사람이 한숨을 지어가며 생리사별의 괴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중에 낯모르는 유생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 유생은 서울서 뒤쫓아내려온 사람이었다.
조정암과 친한 재상 몇 사람이 일이 생긴 연유를 자세히 알아가지고
“효직이가 죄를 당하고도 연유를 모르고 갈 터이니 사람을 보내서라도 가르쳐 줍시다.”
하고 공론한 뒤에 그중의 한 재상이 자기의 친근한 이 유생을 전위하여 보낸 것이었다.
이 유생이 조정암 이하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마치고 한옆에 꿇어 앉아서 그 재상에게서 듣고 온 이야기를 자세히 전하였다.
“처음에 남곤이가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병조판서가 없으며 금위 군졸을 풀어 쓸 수가 없으니까 이삼 일 전부터 이장곤 이판서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 찾아가서 이판서의 맘에 의심이 생기도록하여 놓고 일 나던 날 다 저녁때 국가의 큰일이 있어서 바삐 들어오라는 어명이 내렸다고 기별하여 이판서가 창황히 들어와서 바로 예궐하려고 궐문 밖에 가서 보니 표신이 내리지 아니하여 궐문을 열지 못한다고 문군사가 들이지 아니하였다. 이판서가 괴이쩍게 여기어
기별한 남곤의 집에 가서 본즉 남곤 홍경주 홍숙 몇 사람이 모여 앉았다가 이 판서을 보고 반겨 맞아들이고 남곤이가 홍경주를 가리키며 이 홍판서에게 밀지가 내리어 신무문 밖으로 대령한랍신다고 하여 이판서가 남곤 일파와 같이 신무문으로 입궐하였다. 닫은 궐문 열쇠는 모두 정원에 있고 오직 북문인 신무문 열쇠만이 내시들의 사약방에 있으므로 다른 궐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정원과 사관이 먼저 알게 되면 귀찮으니까 남곤 심정이가 꾀를 모아서 북문으로 입궐할 계획을 낸 것이었다. 밤이 이경 때쯤 되어 남곤 심정 이외 여러 사람이 합문 밖에 모이었을 때 입직하였던 승지 주서 검열들이 비로소 알고 쫓아와서 정원 모르게 입궐하는 법이 어디 있느야고 여러 사람을 책망하니 이판서가 불안하게 섰다 앉았다 하다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심정이가 표신이 나리어 들어왔노라고 대답하였다. 승지 사관 들도 합문 안에 들이지 않고 소인들만 드나드는데 이판서에게 어필이라고 종이쪽을 주고 강박하다시피하여 금위군졸을 풀어서 입직하였던 승지 사관 들을 먼저 금부로 내려 가둔 뒤에 사람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남곤 심정 등이 세조정난 때와 같이 잡아들이는 대로 박살할 거조를 차리는데 이장곤은 국가 대사를 대신에게 알리지 않는 법이 없으니 대신을 불러 수의한 뒤에 처치하시라고 임금께 아뢰고 홍경주는 급한 일은 급하게 조처하여야 하니 대신까지 알릴 것이 없다고 임금을 권하였다. 이판서가 홍경주를 돌아보고 임금으로서 도적의 일을 행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호령하다시피 말하여 당장에 박살할 계획은 시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임금이 대신을 부르라고 하교하여 삼경이 지난 뒤에 영의정 정광필이 창황히 입궐하여 임금께 면대하고 눈물을 흘리며 간하였고 그 뒤에 우의정 안당이도 오경 때쯤 예궐하져 정광필과 같이 주선하였다. 일이 남곤 심정의 꾀한 대로 되지 못한 것이 처음에는 이판서의 힘이요, 그 다음에는 영의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소인들의 일을 지은 버이 가장 교묘하여 붕당을 지어 국가를 위태케 하는 일파를 그대로 두면 국가의 화가 조석에 있다고 임금을 공동하고 그 자리에서 반대하는 이장곤의 이름은 고사하고 그 자리에 없는 대신들의 이름까지 함께 섞어가지고 온 조정이 청죄하는 것같이 임금을 기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유생의 이야기고 일의 연유를 여러 사람이 알게 된 뒤 유자임은 승지로 입직하였던 사람이라, 자기의 본 일과 맞추어 생각하고 그렇게 된 일일 것이라고 말하고 조정암은
“소인들이 임금을 기망한 까닭이지 우리 임금이야 당초에 그러하실 리가 없지.”
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조정암 이하 여러 사람이 쫓겨나고 보니 조정은 남곤 심정의 판이라 썩은 고기에 쉬파리 꾀듯이 남고 심정의 집 문에 사람의 얼굴 가진 물건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들었다.
엊그제까지 조광조를 정암 선생이라, 김식을 사서 선생이라 하던 무리들이
“광조는 미친 놈이다.”
“식은 소견없는 놈이다.”
하고 욕설하기를 예사로 하고 남곤 심정을 개오야지같이 여기고 죽일 놈같이 벼르던 사람까지 밑 못 씻겨서 한을 하고 얼굴 보는 것을 큰 영사로 생각하게 되니 권세에 붙좇는 쥐 같은 무리의 행사가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없다.
유생들이 광화문 앞에서 야료하던 날 금부에 갇히는 축에까지 끼였던 황계옥이가 무리에 섞이어서 남곤 심정의 문하에 출입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뒤에 황계옥이가 두어 유생과 연명하여 상소 한 장을 올리었는데, 그 상소는 광조 등의 죄상이 만만 중하여 죽이어 마땅하다고 말한 것이었다.
계옥의 상소 뒤를 받아서 남곤 심정의 동류인 대관과 간관들이 좌의정 안당 이하 삼십여 인을 조광조의 당으로 몰아 죄를 주자고 성명 단자를 올리었다.
조광조등 여러 사람이 귀양길을 떠나던 날 김전이 우의정이 되어 정부에 들어오며 안당이 좌의정으로 승차하였었다.
위에서 영으정 정광필과 우의정 김전을 불러서 계옥의 상소와 대간의 단자를 보이고 어떻게 처치할 것을 하순하니 정광필은 물론 불가하다고 말씀하였거니와 김전까지도 궁극스럽게 다스릴 것이 없다고 아뢰었다.
위에서까지
“광조 등도 죄를 당한 뒤에는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치겠지. 지금 그 동류를 죄로 다스리는 것이 불가할 뿐 아니라 애초에 붕당이란 말이 불가한 말이야.”
하고 말씀하는데 남곤 심정에게 불좇는 중신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대간의 의사인즉 사와 정을 함께 섞어 둘 수 없다는 것인 듯하외다.”
하고 얼굴이 뻔뻔한 말을 아뢰니 임금이 도리어
“사라고야 할 수 없지.”
하고 말씀하였다.
그리하여 조광조 등에게 가죄하지 아니하고 안당 등에게 죄를 주지 아니하기로 작정이 되었더니 불과 수일 후에 뒤에서 엄교가 내리어서 이왕 죄받은 사람에게는 다시 죄를 더하고 아직 죄받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새로 죄를 주게 되었다.
이것은 그 동안에 안팎에서 참소가 들어간 까닭이다.
조광조는 능주서 사약을 받고 나머지 일곱 사람은 제주 남해 의주 온성 등 원방에 안치를 당하고 안당은 대간 단자 첫비두에 오른 사람이라 파직을 당하고 정광필은 안당을 구하다가 또 황계옥의 상소를 만나서 영중추로 좌천되고, 이장곤은 죄인이 자 부른것을 가만두었다는 죄목으로 대간의 탄핵을 만나서 삭직을 당하고 파성군과 숭선부정은 대간 단자에 이름이 올라서 원찬을 당하고 이학년까지도 결곤을 당하였다.
가죄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뒤에 덕수가 처가 하인 우음산이라는 장사와 자기 집 하인 주동을 데리고 밤 도와서 선산을 내려갔다.
덕수가 그 아버지를 보고 서울 소문을 말하니 그 아버지는
“불이 사방에서 일어나니까 무엇이든지 다 태우고 나서야 말 터이겠지.”
하고 한숨을 쉬는데 마침 김식을 보러 왔던 그 제자 이신이가 자리에 나앉으며
“가죄가 소인들의 농간인지 알 수 없으니 잠시 피하셨다가 사실로 임금의 뜻인 줄 아신 뒤에 자수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소인들의 농간에 목숨을 바치시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하고 말하니 옆에서 듣던 덕수와 덕순은 그 말이 일리가 없지 아니한 줄로 생각하였다.
이신이가 김식이 모르게 덕수 형제와 의논하고 도망할 계획을 세웠다.
김식에게 양에 겨운 술을 권하여 정신없이 취케 하고 이웃의 마소까지 잠이 든 오밤중에 도망하게 되었는데,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이 취한 김식을 장사 우음산이 등에 업고 덕순과 연중이가 좌우 양옆에 따라가며 부축하고 덕수와 주동과 이신이는 자갑자박 걸어서 뒤를 따라갔다.
십리길을 넘어 간 뒤 새벽녘 찬바람에 김식의 술이 깨었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 김식이도 할 길이 없어 영산 사는 제자 이중의 집에 가서 은신할 곳을 작정하기로 하고 여러 사람을 데리고 영산길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중은 학식이 유연하고 가세가 풍족하여 영산서 높이 행세하는 사람이라 그 집에 내인거객이 그치지 아니하여 분요한 때가 많았다.
어느 날 해진 뒤에 김식의 일행이 그 집에 들어가니 이때 마침 이중이는 서울 가서 없고 그의 서제 이용이가 집을 맡아보고 있는 중이라 이용이가 김식의 행색을 수상하게 생각하며 일행을 맞아들이었다.
이용이는 김식이가 도망길 나선 것을 안 뒤에
“내일이라도 곧 하인 하나를 서울 보내서 형님을 내려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집의 사
랑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서 비편하니 형님 소실의 집을 치워 드리겠습니다.”
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하여 이중이 없는 것을 은근히 걱정하던 김식 삼부자가 일제히 안심이 되었다.
이중의 첩의 집을 치우고 일행이 옮긴 뒤에 이용이가 틈틈이 와서 보고 밤저녁 일 없는 때는 오래 앉아 이야기하여 도망꾼들의 맘이 적지 아니 위로되었다.
하룻밤은 이용이가 김식 삼부자와 같이 은신할 곳을 이야기하다가
“형님이나 오고 한 뒤에 차차 의론하면 은신하실 곳은 있겠지요마는, 어디로 가시든지 일행이 많은 것이 걱정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자연히 탄로나기 쉬우니 저의 소견 같아서는 자제들과 하인들은 보내시고 홀몸으로 피하여 다니시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말하니 김식이는 옳게 듣고 덕수 형제를 돌아보며
“이 사람의 말이 옳다. 너희들은 다 가는 것이 좋겠다. 나 혼자 여기 있다가 이 사람의 백씨 오거든 의논하여 할 터이니 너희들은 곧 가도록 해라.”
하고 말하였다.
덕수는 그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렇기도 합니다만 혼자야 말씀이 됩니까? 주둥이나 연중이나 하나를 데리고 다니시지요.” 말하고 덕순이는 그 형을 돌아보며
“형님이 하인들과 이신이를 데리고 가시면 내가 아버지를 뫼시고 다니지요.”
말하여 의논을 얼른 정치 못하는데 이용이가
“하인 하나쯤은 관계없을 듯합니다.”
말하고 덕수 형제를 돌아보며
“형제분이 가신대도 따로따로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체 이신이란 자는 하인도 아니고 그거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서 김식이가
“그자는 본래 관노 출신으로 중노릇한 일도 있고 또 퇴속하여 미장이 노릇한 일도 있는 자인데, 내 집에 담을 치러 왔을 때 우연히 사람이 공부할 정이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두고 글자를 가르쳐 준 일이 있어.”
하고 이신의 내력을 말한즉 이용이는
“목자가 보기에 시원치가 않습니다. 그자를 먼저 보내십시지요.”
하고 말하였다.
이튿날 김식이가 이신을 불러서
“우리가 여럿이 함께 다니기도 비편하고 하여 서방님 형제도 장차 보낼 작정인즉 너부터 떠나가거라.”
하고 이르니 이신의 말이
“영감께서 어디 가서든지 안신하시는 걸 보입고 가야지, 인정도리에 중도에서 떠날 수가 있습니까?”
하고 이신은 고만두고 덕수더러 주동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니 덕수가 가더라도 좀더 뫼시고 있다 가겠다고 말하다가
“집일이 어찌 될지 몰라서 심려가 적지 않으니 너는 우선 서울로 도로 가보아라. 더 같이 있다 가면 무엇하느냐? 잔말 말고 떠나거라.”
하고 일러서 덕수는 할 수 없이 내려올 때 같이 왔던 주동을 데리고 서울길을 떠나게 되었다.
김식이가 영산을 온 뒤 십여 일 만에 이중이가 서울서 내려왔다.
그 선생의 은신할 곳을 이중이가 이리 저리 생각하여 보다가 영축산 절벽 위에 있는 법화사에 친한 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김식에게 말한즉 김식의 말이
“일전에 내가 괘를 하나 뽑아본즉 산인훼사란 말이 있고 또 덕순이가 서울서 올 때 어떤 점쟁이가 중이 일을 낭패한다고 말하더라니 절로 갈 묘리가 없지 않은가?”
하여 이중이는
“글쎄요.”
하고 생각하는데 이용이가 옆에서 김식을 보고
“이신이가 중노릇한 일이 있다셨지요?”
하고 일깨우니 김식부터 이신을 믿지 못하는 까닭에
“그러면 보내지.”
말하고 이중이도
“신이도 중노릇한 일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올곧지 못하니 곧 보내십시다.”
말하여 이신 보낼 공론을 하는 중에 이용이가
“큰일을 당하여는 조그만 인정을 돌볼 수 없으니 만일 의심이 나거든 보낼 것이 아니라 죽여 없이 합시다.”
하고 권하였으나 김식이가
“점 같은 것을 믿고 사람을 죽이는 법이 있나? 길양식이나 후히 주어서 보내지.”
하고 곧 이신을 불러 가라고 말하여 떠나보내었다.
이때 철원 현감 하정은 김식의 철친한 사람이라 김식은 칠원 가면 잠시 피신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여 덕순을 앞서 보내어 통기하고 그 뒤에 곧 칠원으로 오는데, 현감을 찾아오는 예사 손님의 행색을 차리느라고 김식은 말을 타고 연중과 우음산은 말 뒤를 따랐엇다.
하현감이 중로까지 하인을 내보내서 관아로 맞아들이어 팔구 일 동안 같이 거처하였다.
관속들의 눈이 있어 관아에서 더 오래 묵이기가 어렵게 되니 하현감은 김식에게 말하고 자기의 본집으로 가게 하였다.
내일이면 떠나기로 되던 그 전날 밤에 김식이가 덕순을 조용히 불러가지고
“부자가 같이 다니자면 탄로나기 쉬운 것은 고사하고 남에게 누가 적지 아니하니 우음산만 남겨두고 너는 연중이를 데리고 서울로 가거라. 서울집도 성하게 있을는지 모르나 만일 위태한 일이 있거든 어디로든지 피신하여 구명도생하려무나. 너는 망명죄인의 아들일 뿐이지 무슨 죄야 있느냐. 그다지 위태한 일도 없겠지.”
덕순이가 우음산 대신 남아 있겠다고 눈물을 흘려가며 말하였으나 그 아버지가
“아비의 맘을 더 괴롭게 하지 마라.”
하고 말하여 덕순이는 더 말하지 못하였다.
이튿날 덕순은 그 아버지의 말대로 연중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고 김식은 우음산을 데리고 현감의 본집으로 와서 이곳에서 달포 넘어 묵었었다.
이신이가 영산서 떠나는 길로 곧 서울 올라가서 김식이가 지금 이중의 집에 있는데 그 아들과 문객을 데리고 남곤과 심정과 홍경주 세 사람을 해치려고 음모하는 중이라고 고발하여 김식의 부자를 잡으려고 금부도사가 영산을 내려갔다.
하현감이 서울 소문을 듣고 곧 기별하여 김식이는 조마조마하게 며칠을 지내는 중에 금부도사가 칠원읍으로 가더라는 소문을 듣고 자기를 잡으러 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날로 현감의 집을 떠나서 무주 사는 제자 오희안의 집을 찾아가는데 그 동네 가까이 와서 길가 농군에게 집을 물으니 농군이
“저기 저 산 밑에 있는 큰 집입니다.”
하고 집을 가리키고
“오서방님은 망명죄인을 집에 붙였다고 엊그제 서울로 잡혀 갔지요. 동네서 다 알다시피 언제 붙이기나 했나요.”
하고 분히 여기는 말이었다.
김식이가 이 소식을 듣고는 오희안의 집으로 들어갈 덧정이 없어서 그대로 돌아섰다.
지향 없는 길을 걸어서 지리산 속을 들어왔다.
우음산이가 인가를 찾아가서 보리밥술을 얻어다가 한두 끼 먹기도 하였지만 김식은 며칠 동안 생솔잎을 씹어 허기를 면하고 바위 밑에서 잠을 잤다.
김식이가 사약받은 조정암을 생각하고 또 원방 안치된 여러 친구들을 생각하여 선산 있다가 가죄를 당하여 절도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을 공연히 망명하여 누명을 입게 되었다고 후회하였다.
면치 못할 죽음을 면하려고 헛애 쓸 것이 없다고 맘을 먹었다.
“내가 배가 정히 고파 견디기 어려우니 고사리라도 캐어오너라.”
하고 우음산을 보낸 뒤어 옆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에 목을 매었다.
덕순이가 서울 집에 온 뒤 얼마 되지 아니하여 금부도사가 금부 나졸을 거느리고 김식의 집을 나오는데 다행히 선통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덕수는 상투를 풀어 머리를 쪽지고 그 안해는 옷을 입고 안여편네들 틈에 숨어 있었다.
그때는 백호를 처지 아니하였던 까닭에 머리를 고치기가 용이하였고 덕수는 수염이 없던 까닭에 사나이 표가 나지 아니하였다.
금부도사가 와서 집안을 뒤지니 사나이는 하나도 없고 젊은 여편네들만 마루 구석에 뭉쳐 섰었다.
금부도사가 김식의 부인을 보고 말을 물었다.
“자제들은 어디 갔소?”
“선산서 아니 왔세요.”
“큰자제는 왔다는데?”
“몰라요. 아직 집에는 오지 아니했세요.”
“알 수 없는 일이군. 저 젊은이들은 다 누구요?”
“며느리하고 먼촌 조카딸이에요.”
그중의 한 여편네가 얼굴은 조금 여편네답게 어여쁘지 못하나 손은 분같이 희고 가냘폈다.
금부도사가
“그러면 당신이나 갑시다.”
하고 김식의 부인을 잡아갔다.
우음산이가 지리산에서 내려와서 자수하여 어명으로 김식의 시체를 검시까지 하게 된 뒤에 김식의 부인이 놓여나왔다.
김식의 시체는 영남서 운구하여 충주 권폄하게 되었는데 일을 주장하여 한 사람은 김식의 부인 이씨요, 부인의 뒤를 받들어 일을 보살핀 사람은 김식의 제자 신명인이었다.
2권 피장편 4장 뒷일
이중은 김식을 감춘 죄로 부령에 안치되고 오희안은 김식과 통모하였다는 죄목으로 벽동에 찬배되고 하정은 김식과 무슨 음모를 같이 하였다고 무지무지한 곤장 사백여 도에 구경 장폐를 당하고 그 외에도 김식의 제자와 문객으로 죄를 당한 삶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신은 고발한 공으로 양민이 되어 충청도에 가서 살다가 강도 와주로 몰리어 그 고을군수 손에 맞아 죽었다.
뒷날 이야기는 고만두고 이신이가 처음 고발할 때 김덕순과 박연중의 장사인 것을 말하여 남고, 심정은 특별히 덕순과 연중을 잡으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다.
영남 대로는 각 고을 군교를 풀어 목목이 지키며 행인을 기찰하게 하고 김식의 서울집은 근처에 포교를 묻어 출입하는 사람을 일일이 살피게 하였다.
숭선부정은 덕순의 장인이요, 연중의 상전이라 속으로 소식을 통할는지 모른다고 옥에 잡아 가두었다가 애매하게 형장을 때리어서 영해로 귀양을 보내었다.
남곤은 덕순을 잡지 못한 것이 큰 근심이되어서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하였다.
자는 처소를 남에게 알리지 아니하려고 하룻밤에 잠자리를 다서여섯 군데로 옮기는데 잠이 들려말려 할 때에 덕순이란 세차 보이는 남자가 칼을 들고 눈앞에 나서서 소스라쳐 잠을 깨
는 일이 많았었다.
덕순이와 연중이는 철원서 떠나서 서울로 오는 길에 문경 새재 근처에 와서 소로로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우연히 어느 적굴에를 들어갔었다.
화적들이 두 사람을 해치려고 하다가 망명 죄인 김식의 아들 김덕순의 노주인 것을 알고 손님으로 맞아들이어 대접을 융숭히 하고 그중에 수두 되는 자가 덕순을 대하여
“서방님, 서울 가실 것 없이 우리하고 같이 지냅시다. 지금 임금도 요전 임금같이 내쫓기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급살을 맞거나 해서 세상이 변하거든 서방님이 나가셔서 보구니 숭륭대부도 하고 마치뚝딱대장도 하시구려. 지금 서울 갔다가 소인놈들 손에 조광조처럼 죽으면 무엇하오. 내 말대로 어디 같이 지내봅시다.”
하고 덕순을 나가지 말라고 만류하니 덕순은 생각하였다.
자기 수하에 무기를 갖추가진 강병이 수천 명만 있으면 거침없이 서울까지 지쳐올라가서 남곤, 심정의무리를 잡아다가 천참만륙 하겠으나 끝에 녹이 슨 창과 날이 무딘 환도 외에는 모두 박달나무 방망이밖에 가지지 못한 화적당으로 육십 명은 소용이 없었다.
“서울집 일이걱정이니까 올라가 보아야겠소. 형님이 있지만, 몸이 약해서 급한 때는 자기 한몸도 주체궂어 할 사람이니까 어머니와 여러 식구들을 어떻게 하겠소. 내가 올라가 보아야지.”
하고 수두의 말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날마다 “내보내 주리다.” 하고 말하면서 좀처럼 내보다 주지 아니하는 수두에게 붙잡히어 덕순의 노주 두 사람은 그 적굴에서 한 달 가까이 묵었었다.
길을 나서 보니 한 달 전이 옛날이었다.
길목마다 수직하는 각 고을 군교들이 행인을 맘대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여 인심이 소란할 지경이었다.
덕순이와 연중이는 낮이면 으슥한 산골이나 궁벽한 촌가에서 숨어 지내고 밤이면 길을 걸었다.
나중에 서울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으나 덕순이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위태하여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점잖은 갖바치를 생각하고 연중이를 데리고 혜화문 안을 찾아왔다.
이때 갖바치는 문 밖에 나섰다가 두 사람이 인사도 하기 전에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하고 앞서 방문을 열어주고 덕순의 노주가 방에 들어앉은 뒤에 갖바치는 안으로 들어가서 밥 두 상을 갖다 주며
“시장들 할 터이니 어서 밥들을 잡수시오.”
하고 말하는데 그 밥상이 미리 올 것을 알고 차려둔 것 같았다.
밥상을 치운 뒤에 덕순의 아버지가 지리산 속에서 자결한 것과 덕순의 어머니가 옥에 갇히었다가 얼마 전에 놓이어 운구하러 내려간 것과 덕수가 어디로 도망한 것과 덕순과 연중을 잡으려고 경향이 소란한 것을 갖바치가 대강대강 이야기하여 들리었다.
덕순이는 천지가 아득하였다.
처음에는 넋잃은 사람같이 앉았다가 한동안 뒤에 갑자기 자리에 엎드러지며 소리없이 우는데 흘러나오는 눈물이 흥건하게 자리에 고이고 흑흑 느낄 때마다 허리 위가 꿈틀꿈틀 하였다.
연중이가 일변 눈물을 뿌리며 흔들어 말리나 좀하여 그치지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또다시 갑자기 머리를 들고 이를 가는데 그 얼굴이 귀신을 밟고 섰는 금강과 같이 무서웠다.
덕순이가
“남곤이란 놈을.”
하고 주먹을 쥐고 일어서려고 하니 갖바치가
“정신없는 소리 마시오. 주먹으로는 원수를 못 갚소.”
하고 붙들어 앉히었다.
덕순이가 다시 얼빠진 사람같이 우두머리 앉았다가 갖바치를 보고
“집에나 좀 가보고 오리다.”
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은 그리 하시오. 그렇지만 포교들의 눈이 무서우니 조심하시오.”
하고 가는 것을 말리지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집 문간에를 와서 보니 밤도 늦지 아니하였는데 대문은 벌써 닫히었다.
들창에 불빛이 보이는 행랑방이 없지 아니하나 문 열라고 소리치기가 어려운 까닭에 사랑 뒷담께로 돌아가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사랑방, 수청방 할 것 없이 불이 켜 있는 방이 하나도 없다.
사방이 캄캄하였다.
덕순이는 사람 없는 사랑마당에 주주물러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고 안중문간에 와서 중문을 밀어보니 역시 빗장이 걸리었다.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젊은 동서끼리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밤 저녁이면 집안이 휘휘해서 일찍 문을 닫히는 게다.’
하고 생각하며 덕순이는 발씨 익은 대로 다시 사랑 뒤로 돌아와서 안으로 통한 일각문 담을 뛰어 넘어왔다.
아무리 뛰엄질 잘하는 덕순이가 사뿐 뛰었다고 하더라도 땅에 떨어질 때 소리가 나지 않을리 없다.
앞마당에서 개가 야단스럽게 짖었다.
그러나 ‘이 개.’ 하고 문 열어 보는 사람이 없는 양이었다.
개가 물 밑 종부담 뚫어진 곳으로 기어나와서 뛰어들어온 사람에게로 와락 덤비려고 하다가 젊은 주인의 냄새를 맡고 펄펄 뛰며 반기는 뜻을 표하였다.
덕순이는 경황없는 중에도 개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여 대가리를 쓰다듬어 주고 개는 답례하듯이 젊은 주인의 손등을 핥아주었다.
덕순이가 안방 뒤를 돌아서 지쳐놓은 부엌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집 안을 둘러보니 안방과 건넌방은 문이 첩첩히 닫히었고 아랫방만 덧문 한쪽이 열리어 있다.
방마다 희미한 불빛이 있는 것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련만 내다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덕순이가 ‘안해도 잠이 들었나?’ 하고 생각하며 아랫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철 아닌 병풍이 앞으로 둘러치었는데 붉은 깃발 같은 것이 그 병풍에 걸치어 있다.
병풍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문 여는 데 놀라서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머리가 헙수룩하고 얼굴이 흉상스러워서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별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누구인 것을 언뜻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덕순이가 눈을 씻고 들여다 보다가
“연중 어멈인가?”
하고 물은즉
“애구 서방님이오?”
하고 곧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덕순이가 방안으로 들어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붉은 깃발이 명정이다.
분으로 쓴 글씨가 있다.
첫머리는 병풍 너머로 넘어갔으니 전주이씨지구 여섯 자가 덕순의 눈에 보이었다.
덕순이는 가장 정신을 잘 차리는 듯이 '전주이씨라니? 전주이씨가 누구일까?‘ 하고 의심하며
"연중 어멈, 아씨 어디 갔나?"
하고 물으니 연중 어멈은 대답이 없이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다가
"연중이는 어디 있어요?"
하고 도리어 물었다.
덕순이는 맑은 정신이 돌았는지
"아씨가 죽었나? 언제 죽었나?"
하고 물어서 연중 어멈이 목메인 말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아씨는 서방님이 떠나신 뒤로 진지 한 끼를 잘 잡숫지 아니했세요. 이 댁 마님이 잡혀가신다 본댁 영감이 잡혀가신다 한 뒤 맑은 물 한 모금도 변변히 잡숫지 아니했세요. 밤낮 서방님 일이 걱정이 되셔서 놀아가실 때까지 서방님 말씀이었세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신 뒤에는 밤저녁에 개만 짖어도 서방님 오시나 내다보라고 하시겠지요. 한번은 어멈이 ‘서방님이 오시기는 어디를 오셔요?' 하고 말씀하니까 '그래 어멈 말이 옳아' 한숨을 쉬시더니 '어멈 나는 죽지 않을 테야. 한번 만나 보입고 죽지 그냥 죽을 수가 있나?' 하고까지 말씀하던 양반이... 서방님! 조금 일찍 오시지요 원이나 풀고 돌아가시게! 운명하시던 날 본댁 마님이 조카 양반을 데리고 오셨는데 아씨가 외사촌을 보시고 '언제 오셧세요? 고생이나 과히 안하셨세요?' 하고 말씀하시기에 처음에는 몰랐더니 나중에 '아버님은 어디로 가시게 하였느냐? 선산 음식이 고약하지 아니하더냐?' 모든 말씀이 그 양반을 서방님으로 알고 하시는 말씀입디다. 본댁 마님은 어머니로 알아 보시든지 어머니! 불러 가지고 '나는 인제 죽어도 한이 없어요. 한번 만나보기가 원이었더니 인제 원을 풀었어요' 하고 불과 얼마 아니 되어서 자는 것같이 운명하셨세요. 서방님 진외가댁에서와 아씨 외가댁에서들 오셔서 초종을 치르시는 중인데 오늘은 지관을 데리고 산에들 가셨세요. 모레쯤 장사를 지내신답디다."
덕순이는 눈물도 나오지 아니하고 답답한 가슴이 메어질 것 같을 뿐이었다.
생각도 없이 병풍을 제치고 관머리에 가서 앉아서 두 손으로 관을 만지며
"일어나오. 고만 일어나오. 내가 여기 왔소."
하는 말이, 관 속에 든 사람을 잠든 사람으로 아는 것 같았다.
안방에는 귀먹쟁이 늙은 할미와 계집아이들만 자는 까닭으로 개 짖는 소리가 나고 신발 소리가 나는 것을 도무지 몰랐지만, 건넌방에서 자는 덕수의 안해와 상직꾼은 알고도 무서운 생각이 나서 밖을 내다보지 못하였다.
아랫방에 문 여는 소리가 나고 연중 어멈의 이야기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뒤에야 덕수의 안해가 상직꾼을 내보내 보았다.
무서움을 타는 상직꾼이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나가더니 무엇을 보고 놀란 사람같이 방으고 뛰어들어왔다.
덕수의 안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치어다보고 앉으니까 상직꾼이 수상스럽게 바짝 가까이 오며
"서방님이오."
하고 바깥을 가리키니 덕수의 안해는 남편이 왔다는 줄로 듣고
"서방님이 오셨어? 왜 아랫방으로 먼저 가셨을까?“
하고 허둥지둥 이부자리를 치우는데, 상직꾼이 우두커니 보다가 한참 만에야 깨우친 듯이 가만히
"작은서방님이 오셨어요. "
하고 말하니 덕수의 안해는
"그러면 진작 작은서방님이라고 그러지."
하고 조금 알상스럽게 말하고 치우던 이부자리를 그만두고 벗어 놓았던 치마만 다시 입은 뒤에 아랫방으로 내려왔다.
관머리를 잡고 멍멍하게 앉았는 시동생을 보고 인사 대신에 울음을 내놓으니 엉엉 울기밖에 아니하던 연중 어멈은 덩달아서 곡성을 내었다.
상직꾼이 쫓아내려와서
"아씨, 바깥 행랑에 포교가 와 있어요. 수상하게 알리다. 울음을 그치시오. ”
하고 말리어 곡성이 막 그치자, 중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었다.
상직꾼이 겁이 나서 벌벌 떨며
"저것 보아요. 포교 아니라구요."
하고 말하며 덕순의 형수가
"서방님 어서 피하시오."
하고, 연중 어멈이 흉내내듯이
"서방님 어서 피하시오. "
하고 말하며 눈만 두리번거리던 덕순이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벌떡 일어서서 간다 온다 말이 없이 밖으로 나갔다.
상직꾼은
"나는 죽어도 못 나가겠어요."
하고 나가지 아니하고 연중 어멈이 칠팔십 먹은 할미나 다름없이 꼬부랑거리고 나가서 중문 빗장을 따놓았다.
들어온 사람은 포교가 아니요, 덕순의 진외당숙이다.
마침 산에 갔다 돌아와서 안에서 곡성이 나는 것을 듣고 다른 연고가 있는가 하여 들어온 것이었다.
갖바치가 연중이와 같이 앉아 이야기하는 중에 덕순이가 풀기 없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갖바치가 자리를 비켜 주고 나서
“전에 나를 보이시던 사주 생각하시오? 붉은 깃발이니 무어니 하던 것 말씀이오?”
사주에 아들이 없단다고 걱정스러워하던 이씨의 모양이 덕순의 눈앞에 어른거리며 눈물이 좌르르 흘렀다.
갖바치가
“내가 공연한 말을 했나 보오그려. 그렇지만 가슴이 답답한 때 한번 실컷 우는 것이 좋지요."
하고 말하자, 덕순이는 입술을 내밀고 코를 들여마시며 울기 시작하여 흑흑 흐느끼기까지 하였다.
갖바치는 참말로 실컷 울라고 내버려 두는지 말이 없고 연중이가
”서방님 웬일이오?"
“서방님 댁에 또 무슨 연고가 있습디까?"
"고만 진정하고 말씀 좀 하시오."
하고 말하며 말리었으나 덕순은 말을 듣는지 마는지 하고 느껴 가며 울었다.
밥 두서너 솥 지을 동안이나 착실히 지난 뒤에 덕순의 울음이 그만저만 그치게 되니 갓바치는
"이제 다 우셨소? 속이 좀 시원하오?"
하고 묻고 연중은
“댁에 갔다 오며 그렇게 정신없이 우시는 것이 대체 무슨 까닭이오?”
하고 물었다.
덕순이는 가슴이 답답한 줄은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꿈속 같았다.
초상난 집이라고 빈 집 같은 것도 꿈속 같고 연중 어멈의 꼴이 귀신 같은 것도 꿈속 같고 관머리에 앉았을 때 형수가 울던 것도 꿈속 같았다.
그뿐 아니라 꿈속에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내가 못된 꿈을 꾸는 게지."
하고 덕순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갓바치가 덕순을 보고
"지금 서울서 오래 묵으시는 것이 위태한 일이오."
하고 연중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과 같이 다니시는 것도 위태한 일이니까 각각 어느 시골로 가서 피신하는 것이 좋을 터인데 그럴 만한 데가 있겠소, 없겠소?“
하고 물어서 피신들 할 곳을 공론하게 되었는데, 덕순이는 충주 가서 그 아버지 산소에 다니고 그 뒤에 신명인을 찾아가서 피신할 것을 의논하겠다고 말하고 연중이는 평산 사는 생가 외사촌이 사람이 진실하여 의지할 만하다고 말하여 갖바치는 한참 생각하다가 둘 다 좋겠다고 말하였다.
덕순이는 그 안해 장사의 발인하는 것을 먼빛으로라도 보고 떠날 생각이 있고 연중이는 그 어머니를 한 번 만나고 갈 맘이 있어서 두 사람이 모두 이삼 일 동안만 서울서 묵게 하여 달라고 말하니 갖바치는 이것을 다 아는 듯이
“인정과 도리를 막으려고는 하지 아니하오. 두 분이 일동일정을 나 하라는 대로 한다면
이삼일쯤 묵어도 좋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묵으라고 허락하기가 어렵소.”
하고 말하여 덕순이와 연중이는 묵을 욕심에 무엇이든지 하라는대로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갖바치가 잠깐 어디 간 사이에 덕순이와 연중이는 갖바치 몰래 무슨 공론을 하여 두었다.
그날 밤에 연중이가 갖바치를 보고
“어제 서방님이 갔다오듯이 잠깐 가서 어머니를 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갖바치 허락 나기를 기다리는데 갖바치는 말이 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덕순이가 옆에서
“잠깐 갔다오겠다니 가라고 합시다."
하고 허락하기를 권하니 갖바치가 빙그레 웃고
"어제는 꿈속같이 다니어 오셨으니까 오늘 밤에 연중이와 같이 가서 부인의 관 위에 눈물 줄기나 흘리고 오실 맘이 있지요?"
하고 물으며 덕순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덕순이는 무슨 음사나 들킨 것같이 가슴이 섬뜩하였으나 아닌보살하고 천연하게
”맘이 있다뿐이겠소? 그러지 않아도 말씀하고 싶던 차요.“
하고 말하였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리고 싶지만 정히 가고 싶거든 가시오그려.”
하는 갖바치의 허락을 들은 뒤에 밤이 들기를 기다리어 덕순과 연중이는 몸을 가뜬하게 차리고 신끈까지 단단히 매고 갖바치의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의 가는 곳은 덕순의 집이 아니요, 남곤의 집이었다.
두 사람이 남곤의 집 근처에 왔을 때는 밤이 삼경이 지난 뒤라 골목 안이 적적하고 남곤의 집 솟을 대문이 굳게 닫히었었다.
두 사람이 줄행랑을 끼고 돌아 담이 있는 곳에 왔다.
담은 뛰어넘기라도 하겠으나 담 안의 지형을 몰라서 뛰지를 못하고 덕순이는 아래서 망을 보고 연중이가 몸을 솟치어 담에 손을 걸치고 다시 한 번 몸을 솟치어 담 너머를 넘어다보니 그곳이 사랑 앞 화초밭머리이었다.
연중이가 담 위에 올라 걸어 앉으며 아래에 있는 덕순에게 솟짓하여 덕순이도 담 위로 올라왔다.
두 사람이 사뿐사뿐 뛰어내려서 화초밭 뒤에 선 큰 배나무 밑에 몸들을 숨기고 집안 동정을 살펴보니 큰사랑, 아랫사랑, 수청방에 모두 불이 키었고 큰사랑만은 아래윗간 덧문이 다 닫히었는데 사람틀은 잠이 들었던지 여러 방이 모두 괴괴하였다.
두 사람이 화초밭에거 나와서 큰사랑 뒤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사랑마루로 올라왔다.
덕순이가 윗간 덧문을 지그시 잡아당겨 보니 걸린 건이 아니라 스르르 열리었다.
'인제 남곤이는 섬에 든 쥐다.‘
하고 생각하며 연중을 돌아보고 한번 씽긋 웃은 뒤에 연중의 앞을 서서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에는 장지 밖에 한 사람이 누워 자고 장지 안 아랫목에 빈 자리가 깔리었다.
누워 자는 사람은 머리 꽁지가 있는 것이 상노아이 모양이다.
자는 아이를 덕순이가 발끝으로 건드리어 깜짝 놀라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놈, 꼼짝 마라.”
하고 먼저 여기를 지르고
“너의 주인이 어디 갔느냐?”
하고 말을 물었다.
상노아이는 사시나뭇잎 같이 떨고 앉았다가 간신히
“마마님댁.”
한마디를 내고는 말문이 막히어 말을 못한다.
덕순이와 연중이가 잠깐 서로 바라보다가 덕순이가 눈짓하며 연중이가 상노아이에게 대어들어 땋은 머리를 앞으로 돌려 제물 재갈을 물리고 방구석에 걸린 수건을 내려 두 팔을 뒤젖혀 동이었다.
연중이가 아이를 동이는 동안에 덕순이는 골방문까지 열어보았다.
연중이가 동인 아이를 번쩍 안아서 골방 안에 집어다 넣고 문을 닫고 고리를 걸었다.
아랫목 머리맡에 걸려 있는 환도가 덕순의 눈에 뜨이며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덕순이는 곧 벽에 걸린 옷을 내려서 베개에 입혀 놓고 환포를 내려서 날을 빼어 높이 들고 두서너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나서며 번개같이 내리쳤다.
옷 입힌 베개에 칼자죽이 깊이 났다.
보고 섰던 연중이는 씽긋 웃었다.
덕순이가 환도날을 꽂아서 걸렸던 자리에 다시 걸어 놓고 연중이와 같이 돌아서 나오려고 할 때, 수청방에 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었다.
두 사람은 불을 불어 끄고 윗간 문 옆에 붙어섰다.
청지기인지 무엇인지 한 사람이 문 앞에 와서
"왜 덧문을 열어놓고 자노?"
말하며 미닫이를 여는데 연중이가 별안간에 앞으로 나서서 발길을 날리어 등가슴을 내질렀다.
'아이쿠’소리와 함께 쿵 하며 마당에 나가떨어졌다.
수청방 문이 열리고 아랫방 문이 열리었다.
설렁소리가 야단스럽게 났다.
덕순이와 연중이는 화초밭 사이로 뛰어 와서 훌훌 담을 뛰어넘었다.
덕순이가 연중이와 같이 공론한 일은 하룻밤에 남곤과 심정을 죽이자는 것이었는데, 남곤에게서 낭패 보고는 다시 의논을 더 하기로 하여 심정의 집엔 가도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연중이와 함깨 남곤의 집에서 나오던 길로 쏜살같이 자기의 집 사랑 뒷담께로 왔다.
전날에 뛰엄질을 내기하듯이 슬쩍슬쩍 뛰어넘었다.
사랑 앞마당에 불빛이 환한 것이 어젯밤과는 딴판이라 두 사람이 같이 발자취를 감추고 가만가만히 수청방 옆으로 나와서 기웃이 동정을 살펴보니 마당 한 옆에 초초한 상여를 꾸며놓고 상여 앞 멍석 위에 상두꾼 몇 사람이 투전장을 뽑고 있다.
연중이가 덕순의 소매를 지긋거리어 뒷마당 으슥한 곳으로 와서
“여보 서방님, 내일 발인인가 보오. 오늘 밤엔 안팎에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니 부질없이 나서지 말고 그대로 갑시다.”
하고 권하여 두 사람이 다시 담을 뛰어넘어 혜화문 안으로 돌아왔다.
갖바치가 그때껏 자지 않고 있다가 두 사람을 맞아들여 앉은 뒤에
“두 분이 나를 속이고 부질없는 일을 하여 내일부터는 서울 안이 소란할 모양이오.”
하고 말하는데 덕순이가
“무슨 일을 속이고 했단 말씀이오?”
하고 시침을 때려 하였더니 갖바치가 허허 웃고 나직이
“벼개가 무슨 죄요?”
하고 말하여 덕순이와 연중이는 일시에 깜짝 놀랐다.
“남곤이가 시임대신이오. 대신을 모해하려던 사람이 서울 안에 앉아 배기겠소. 내일 아침 전으로 서울을 떠나야만 무사하겠는데 평산길을 태평하나 충주길이 위태하니 연중이는 새벽 일찍이 떠나게 하고 피신할 곳을 다시 의논합시다.”
귀신같이 알고 있는 갖바치의 하는 말을 덕순이나 연중이가 거역할 생각을 못하였다.
두 사람은 작별할 것이 섭섭하여 지난 이야기, 앞이야기 하는 중에 날이 새기 시작하였다.
누웠던 갖바치가 일어나 앉으며 곧 연중에게 떠날 준비를 차리라고 말하고 갖바치가 일어나 앉으며 곧 연중에게 떠날 준비를 차리라고 말하고 벽장문을 열고 미리 준비하였던 양식 전대를 내주었다.
연중이가
“서방님, 그러면 나는 떠나겠소. 죽지 않고 살면 다시 만나 보입지요.”
하고 일어나서 절을 하니 덕순이도 일어서서
“오냐, 아무쪼록 살아서 다시 만나보자.”
하고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연중이가 갖바치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한마디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뒷날 만나보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만나보다뿐이겠나. 염려 말고 잘 가게.”
하는 말을 듣고는
“인제는 안심하고 가겠습니다.”
하고 갖바치에게 절을 하려 하니 갖바치가
“절을 무슨 절.”
하고 붙들었다.
연중이를 떠나보낸 뒤에 갖바치가 덕순을 보고
“피신할 만한 곳이 한 군데 있기는 하나 그곳에를 가 있자면 조금 욕스러운 일을 참아야 하겠으니 참을 수 있겠소?”
하고 물으니 덕순이는 두 번 생각도 아니하고
“참으라면 참지요. 대체 무슨 욕스러운 일인가요?”
하고 말하였다.
“홍인문 밖 이판서가 사람도 무던하고 선영감과 교분도 없는 터이라 그를 보고 말하면 꺼리지 않고 잠시 숨겨줄 것이오. 또 그 집에서 창녕으로 낙향한다니 거기까지 따라가면 몇 해 동안이라도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을 것이오.”
“이판서 어른은 우리의 은인이오. 내가 은인을 원수로 잘못 할고 벼르기까지 한 일이 있었소. 그건 어쨌든지 그런 어른에게 가서 의탁하는 것이 욕스러울 까닭이 무엇이오?”
“그저 의탁이야 욕스러울 것이 없지요만 욕스러운 일을 잡아야 의탁하기가 편할 것이오. 이판서가 삭직당한 뒤에 오는 손은 별로 없지마는 그래도 상하 이목이 번다한 집이니까 그 이목을 피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이판서의 장인 장모가 함흥서 단내외 살다가 가을에 그 장인 먼저 하세하고 두어 달 뒤에 그 장모까지 작고하여 이판서 부인이 지금 겹상중인데, 그 부인이 부모의 후사를 위하여 양자 말을 하던 터이라 욕스럽지만 부인의 아우 양도령 노릇을 하고 가서 있으면 일없이 이목을 속일 수 있을 것이오.”
“그것을 이판서장 내외만은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알아야 하고말고요. 내가 어제 이판서에게 가서 미리 의논해 두었으니까 남들 듣기엔 말이
귀날 리 없지요.”
덕순이는 갖바치의 말을 좇아서 이판서 부인의 아우 노릇을 하기로 하여 갖바치와 같이 공론하고 성명을 양을쇠라고 변명하였다.
덕순이가 상투를 풀어 귓머리를 땋은 뒤에 머리꽁지에 흰 오라기 당기를 들이고 흰 무명 고의적삼만 입고서 웃옷을 입지 아니하고 망건 자죽을 가리려고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짚신을 신고 나서니 훌륭한 총각 상제라, 아무리 눈밝은 포교라도 이 총각이 김사성댁 둘째 자제로는 알아낼 수 없게 되었다.
덕순이가 을쇠로 변하여 가지고 갖바치와 같이 흥인문 밖에를 나왔다.
이판서가 두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곧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갖바치는 장지 밖에 앉고 덕순이는 갖바치 옆에 섰는데, 덕순의 옷깃이 눈물에 젖을 뿐 아니라 이판서의 눈에도 눈물이 돌았다.
갖바치가 말을 하기 시작하여 이판서와 이런 말 저란 말 하는 중에 이판서의 맏아들 함동이가 들어왔다.
함동이가 갖바치를 보고 친숙하게 인사 하였다.
이판서가 덕순을 가리키며
“너, 저 사람에게 절해라.”
하고 일러서 함동이가 절하려고 할 때, 갖바치가
“새로 생긴 외삼촌이야.”
하고 함동이에게 말하며 덕순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절하고 난 함동이가 두 손을 맞잡고 그 아버지를 향하여
“진지 여쭈러 나왔습니다.”
하고 나온 까닭을 말하니 이판서는 먹는다 아니 먹는다 말이 없이
“너의 어머니에게 말하고 안 뒤 별당채를 치우라고 해라.”
하고 일렀다.
함동이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보고
“아침밥을 같이 먹세.”
하고 말하는데 갖바치가
“아닌게 아니라 우리도 아침을 먹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수선을 부리다가 그대로 왔습니다.”
하고 말한즉 이판서는
“그러기에같이 먹자고 말하지 않나.”
하고 적이 웃었다.
별당에 들어와 앉은 뒤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돌아보며
“아침밥 먹기 전에 남매간 만나보게 하지.”
하고 빙그레 웃으니 갖바치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판서가 부인을 별당으로 오라 하여 그 부인이 아이종 하나만 데리고 별당에 들어와서 마루에 올라서는데, 갖바치가 눈짓으로 가리켜서 덕순이는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마루로 나가서 부인을 향하여 공손히 절하였다.
부인은 맞지 않고 받기가 미안하든지 유표하지 않게 슬그머니 몸을 비키었다.
이리하여 덕순이가 유명한 함흥 봉단이를 누님으로 상면하였다.
나이 삼십오륙 세 된 소복 입은 부인이 얼굴에 복기가 많을 뿐 아니라 태도에 점잖은 것이 드러났다.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내다보는 이판서는 ‘여편네는 까닭없는 눈물도 잘 흘린다.’ 생각하고 뜰 아래에 섰는 아이종은 ‘양자로 들어온 동생을 보시고 부모 생각을 하시는 게다.’ 생각하였지만 부인은 참말 저러한 동생이나 하나 있었더면 본집이 없어지다시피 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부인이 이면 수습으로 덕순에게 말을 붙이는데, 차마 또렷하게 ‘해라’를 하지 못하고 말 뒤가 없이 말하였다.
아침 뒤에 갖바치는 덕순을 뒤에 남겨두고 돌아갔다.
덕순이가 양을쇠가 되어 이판서집 별당채에서 거처하게 되었는데, 이판서 말은 대감이라 하고 이판서 부인 말은 누님이라고 하고, 이판서집 하인들에게는 도령 칭호를 받고 이판서의 아들딸에게는 아저씨 소리를 들었다.
이판서는 열네 살 먹은 함동이, 아래로 여덟 살 먹은 딸과 네 살 먹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외삼촌 아저씨.” “외삼촌 아저씨.” 하고 덕순을 따랐다.
덕순이가 태평으로 지내며 성안 소문을 들어보니 며칠 동안 포교들이 벌떼 헤어지듯이 사방에 흩어져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죄없이 잡아갈 것같이 무시무시하고 서울 안을 가가호호 적간하는데 묻는 것은 김덕순이와 박연중이 두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어느 날은 동부도사가 이판서를 와서 보고
“김식의 아들 김덕순이를 보신 일이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판서는 서슴지 않고
“본 일이 있지.”
하고 대답하였다.
“아, 언제 보셨세요.”
“연전까지 보았자. 작년 설에도 아마 내게 세배를 왔었지.”
“네, 작년 겨울 이후에는 보시지 못하셨습니다그려.”
“볼 수가 있나? 말을 들으니까 덕순이가 나를 원수로 알아서 남정승보다 나를 먼저 처치하겠다고 벼르더라는걸.”
“대감을 원수로 알다니 지각없는 자올시다.”
“저의 아버지를 잡아 가두고 귀양 보내고 할 ㄸ째 내가 금부에서 있었으니까 내 맘을 알아주지 못하고 원수로 벼르기도 용혹무괴이지.”
도사는 다시 수어하다가 돌아갔다.
저녁때 사람 없는 틈에 이판서가 덕순을 보고 도사와 수작하던 말을 옮기고 가만히
“네가 내가 와서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하고 빙그레 웃었다.
남곤이가 자객이 왔다 갔다는 기별을 들었을 때 얼마 동안은 얼굴이 사색이 되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었다.
밖에 나서기가 무서워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고 첩의 집에 숨어 엎드려서 밤을 지내는데, 밖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니까 그 첩이 보다 딱하여
“여보시오 대감, 아녀자가 부끄럽지 않으시오? 그렇게 질겁을 하시다간 간이 졸아붙으시겠세요.”
하고 비웃어 말을 하니 남곤이가 그래도 첩에게 취조하게 된것은 비위에 거슬리어
“방자하게 되지 못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
하고 뇌까리고
“어찌하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단 말이.”
하고 자탄하며 해가 높이 뜬 뒤에도 남곤이는 겁이 남았던지 자기 집 하인과 의정부 하인들을 불러다가 전후를 옹위케 하고 큰집에를 돌아왔었다.
늙은 청지기에게 전후 사실을 대강 들은 뒤에 골방에 갇히었던 상노를 불러 친히 자객의 말을 물어보니 상노는 곤히 자다가 놀라 일어나 잠결, 겁결에 본 일이라서 대답이 똑똑치 못하였다.
“첫째, 사람이 몇이더냐?”
“둘인 것 같았습니다.”
“두 놈이 다 칼을 가졌더냐?”
“아마 칼들은 가지 않았었습니다.”
“아마가 무어냐? 똑똑치 못한 놈 같으니, 그래 그 도적놈들이 나이 젊더냐?”
아마라고 말하다가 꾸지람을 받은 상노가 생으로 거짓말을 하였다.
“한 놈은 몸집이 뚱뚱한데 한 사십 넘어 보이고 또 한 놈은 하늘 파충하게 키가 큰 데 한 삼십쯤 되어 보입디다.”
옆에 섰던 청지기가
“이놈, 어젯밤에 내가 물을 때는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하고 책을 잡으니 그 상노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런 듯해요.”
하고 고개를 숙이었다.
남곤이가 어이가 없어
“에이놈, 저리 가거라.”
하고 상노를 물리치고 마당에 떨어졌던 수청 청지기를 부르려고 하다가 그 청지기가 뒷골이 쪼개져서 집에 나가 누웠다고 하므로 그러면 물을 것 없이 그만두라고 하였었다.
자객이 도망하는 것을 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으나 어둔 밤에 본 것이라 그 말이 다 각각이었다.
‘흰옷 입은 것이 화초밭으로 뛰어갔다.’, ‘검은 그림자가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중에 심한 말은 관 쓴 것이 번쩍하더니 없어지더라 하고 그것이 도깨비 짓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였었다.
남곤의 집은 북악 밑으로 후원에 폭포도 있고 바위도 있었다.
자객들이 처음에 북악산 기슭으로 들어와서 바위 뒤 같은 데 숨어 있다가 나중에 다시 산기슭으로 도망한 것이라고 생각들 하였었다.
남곤이가 칼 맞은 베개를 가져오라 하여 베개를 입힌 자리옷이 허리가 잘린 것을 보고 몸에 소름이 끼쳤다.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옆에 있던 일가 사람을 돌아보며 어둔 밤에 홍두깨로
“여보게, 내가 소인인가?”
하고 물어서 그 일가 사람이 당황하여 하다가
“글쎄요.”
하고 대답한즉 남곤은
“소인, 소인.”
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일어섰었다.
그날 낮에 남곤이가 심정이를 찾아왔었다.
어젯밤 자객의 변을 말하고 김식의 아들 김덕순이와 그 하인 박가가 모두 장사라니까 분명 그놈들의 짓으로 생각한다고 말한즉, 심정이도 역시 그러할듯하다고 하고
“들으니까 김식의 장사를 충주서 지냈다고 하니 김식의 무덤 근처를 엄밀히 기찰하게 하면 덕순의 종적을 알게 될 것 같소이다.”
하고 말하여 일변으로 서울 안에서 가가호호 적간을 하게 하고 또 일변으로 충주를 내왕하는 사람을 기찰하게 하기로 작정하였다.
심정이가 주안 한 상을 내오라고 하여 주객이 두서너 잔 술을 마시었을 때, 한 사람이 뜰 앞으로 지나가며 큰소리로
“두 소인이 마주 앉았구나.”
하고 껄껄 웃으니 남곤이가 발끈 화를 내며
“여보 대감, 저게 누구요?”
하고 물었다.
심정이가
“그것이 소인의 아우올시다. 실성한 사람이에요. 가릴 것이 못 됩니다. 소인의 낯을 보아 용서하십시오.”
하고 빌다시피 말하니 남곤이가
“실성한 사람이 군자, 소인을 어찌 구별하겠소?”
하고 화가 풀리지 아니하였다.
“구별을 못하기에 대감을 소인이라고 하고 또 저의 형을 소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별없이 하는 말 같지는 않은데.”
하고 남곤이는 쓴입맛을 다시었다.
대개 남곤이가 자기로도 소인이거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이 소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을 들을 때는 화가 나는 것을 걷잡지 못하였었다.
구렁이를 보고 구렁이라고 하면 싫어한다는 격이었다.
2권 피장편 5장 형제
심정의 아우 심의는 심지의 정직한 것이 그 형의 간교한 것과 다르고 성미의 소탈한 것이 그 형의 악착한 것과 달라서 그 형과 같이 이끗을 밝히지 아니하므로 벼슬은 비록 당하 육품에 지나지 못하였으나 숭품 중신인 그 형으로는 비하여 말할 수가 없도록 인품이 높았었다.
그 형의 처심과 행사가 올곧지 아니한 것을 볼 때에 눈물을 흘리며 간한 일까지도 없지 않았으나 그 형의 말로는
“오냐, 너의 말이 옳다.”
하고 뉘우치는 빛을 보이면서 그 처심과 행사는 고치지 아니하여 항상 근심으로 지내더니 그 형이 남곤과 부동하여 조광조 이하 여러 명사를 모함한 뒤에는 심병이 나서 실성한 사람같이 되었다.
심정이가 형제간 우애만은 제법 무던하여 아우의 병을 고치려고 갖은 애를 다 쓴 까닭에 그의 병이 조금 가라앉았으나 세상에 낙이 없는 사람같이 입을 벌리고 웃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심의가 길가에서 우연히 최수성을 만나서
“원정 오래간만일세, 언제 서울 오셨나?”
하고 말을 붙이니 최수성이
“나는 누구라고? 사마우 일세그려.”
하고 허허 웃었다.
사마우는 공자의 제자이니 공자를 죽이려던 환퇴의 아우이다.
심의가 잘못 알아듣고
“마우라니? 사람이 아니고 마소란 말인가?”
“아니, 자네 형이 환퇴만큼 갸륵하단 말일세.”
하고 얼굴을 젖혀들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심의는 무료하였다.
“지금 자네 어디를 가나?”
“우리 숙부 되시는 승지영감을 잠깐 보고 그리고 곧 좋은 친구 하나를 심방할라네.”
“좋은 친구라니 누구?”
“좋은 친구가 있지. 자네 같이 가려나?”
“가지, 그렇지만 자네 숙부에게는 가기 싫어.”
“그러면 숙부 문안은 제례하지.”
하고 최수성이 심의를 데리고 심방한 좋은 친구는 혜화문 안 갖바치였다.
심의가 갖바치를 안 뒤로는 거의 매일 찾아다니게 되어서 얼마 아니 지나는 동안에 서로 정분이 생기었다.
별로 나다니지 아니하던 심의가 날마다 출입하는 것을 그 형이 알고
“요새 어디를 그렇게 다니니?”
하고 물으니 심의는 갖바치에게 다니는 것을 그 형에게 말하고 싶지 아니하든지 아니하든지 거짓말로
“성균관 근처로 소풍 다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소풍 좋지,그렇지만 혼자 다니지 아이놈이라도 데리고 다니지.”
“아니놈 성가시어요.”
“좋을 대로 하라. 그러면 술이나 한 병씩 차고 다니지.”
“그건 좋겠지요.”
이리하여 심의는 갖바치와 둘이 마주 앉아 술 한병을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게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못할 말이 없이 된 뒤에 심의가 자신의 처신할 도리를 물으니 갖바치는 종이쪽지에다가 붓장난하듯이 광야우야, 무재무해라는 여덟 글자를 써 보이었다. 마친 것이냐? 어리석은 것이냐? 재가 없고 해가 없다는 뜻이다.
심의는 이윽히 들여다보더니 맘에 깨달음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심의가 웃기를 시작하였다.
그 웃음이 나날이 늘어서 너무 과하도록 많아졌다.
심정이는 그 아우의 웃음 많은 것이 역시 병이라고 생각하여 의약으로 고치려고 하였으나 심의가 약을 먹지 아니하였다.
심의가 그 형을 보고 성균관 근처에 집을 사서 분가하게 하여 달라고 말하여 형제가 각거하게 되었는데 심정이는 그 아우가 소풍하기 편한 것을 취하여 동촌을 소원하거니 생각하고 갖바치와 가까이 살며 상종하려는 것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다.
심의가 동촌으로 이사온 뒤에 며칠 지나지 아니하여 갖바치가 이삼 일 동안 양주땅에 갔다 온다고 하더니 이틀 되던날 저녁때 찾아와서
“양주 와서 사는 동향 사람의 안해가 난산으로 위경이라고 하기에 가보려고 했더니 다른 볼일이 생겨서 가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하니 심의는
“시골 안 갔거든 안 갔다고 기별이나 하지 나는 이틀 동안 심심해서 선비들 글 짓는 데 차작해 주고 소일했소.”
“기별할 틈도 없었어요.”
이 이틀 동안이 덕순이와 연중이가 갖바치에게 와서 묵던 때다.
갖바치가 심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서울 재미가 없어서 어는 시골로 가려고 맘을 먹은 지는 오래나 소위 가속이란 것의 모자가 누가 되어 주춤주춤하니까 시원할 것은 없으나 따라갈까 생각합니다. 동촌으로 이사오시자 시골로 가게 될 모양이니 미리 섭섭합니다.”
하고 말하니 심의는
“가기는 어디를 간단 말이오. 못 하오. 못가오.”
하고 펄쩍 뛰다시피 하였다.
갖바치의 집 세 식구가 이판서의 돌보아 주는 힘으로 호구하는 것은 심의가 이미 아는 사실이라, 갖바치를 이판서 따라가지 못하게 하자면 첫째 시량을 보아주어야 하겠고, 남의 시량까지 보아주자면 우선 형에게 분재를 청하여야 하겠다고 심의는 생각하고 곧 갖바치더러
“나 형님 좀 보고 올라오.”
하고 가장 급한 일이나 있는 듯이 분주히 형의 집에를 왔더니 그때 마침 그 형이 남곤이와 같이 술을 먹는 중이라 그대로 돌아서려다가 짓궂이 한번 뜰 아래로 지나가며 소인들이라고 형을 휩쓸어 욕을 하고 형의 집에서 나오는데 대문간까지 나오도록 미친 웃음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이튿날 첫새벽에 심의가 다시 형을 보러 쫓아온즉 큰사랑은 물론 덧문이 열리지 아니하고 수청방까지 괴괴하였다.
비부쟁이가 마당에서 비질을 하다가 비를 놓고
“나으리 일찍 행차하셨습니다. 대감께서는 아직 기침 않으셨습니다.”
하고 다시 빗자루를 잡으려고 하는데 심의가 공연히 한번 허허 웃고서
“비를 나 좀 다오. 내가 하번 비질을 해보겠다.”
하고 비를 받아들고 또 한번 허허허 웃었다.
마당에서 한두 번 비질을 하다가 댓돌로 올라오고 댓돌에서 한두 번 비질을 하다가 마루로 올라와서 수청방 앞에 서서 한바탕 늘어지게 웃으니 방안에서 자던 청지기들이 놀라 일어났다.
청지기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며
“나으리 오셨습니다그려.”
하고 자던 눈을 비비니 심의는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이놈들, 어젯밤에 노름했구나. 어 죽일 놈들!”
“이놈들, 어젯밤에 계집장에 갔었구나. 어 죽일 놈들.”
“이놈들, 어젯밤에 술을 처먹었구나. 어 죽일 놈들.”
하고 횡설수설한 뒤에 큰사랑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마루에는 고사하고 덧문에까지 비질을 하니 그 비는 싸리비라 소리가 요란하였다.
심정이가 늦잠이 들어서 곤히 자다가 놀라 깨어
“어떤 놈이 이러느냐?”
하고 불호령하는 소리가 밖에 들리었다.
심의가 비를 들고 서서 큰소리로 껄껄 웃고서 비를 마당으로 내던지니 이때껏 작은댁 나으리의 하는 짓을 보고 있던 비부쟁이가 비를 주워들고 가만히 혼잣말로
“아무래도 미쳤어.”
하고 다시 비질을 시작하였다.
심정이가 아우의 웃음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 앉으며 수청 자던 상노를 시켜 덧문을 열어놓으니 심의가 신을 벗으며 말며 진동한동 방으로 들어와서 곧 형의 앞에 옆드려 방성대곡을 하는데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거짓 울음 같지 아니하였다.
심정이는 놀란 위에 더 놀랐다.
앞에 가리었던 누비처네를 헤치고 나앉아서 아우를 붙들고
“이애, 왜 이러느냐? 이애 이애, 말을 하여라. 말을 해. 응, 이애.”
심의는 울음 반 말 반으로
“여보 형님.”
하고 엉엉 울고
“엊그저께 밤 꿈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었어요.”
하고 또 엉엉 우니 심정이가
“이애, 울지 말고 말을 해라. 그래 아버님과 어머님을 뵈었어? 그래?”
하고 어린아이 달래듯이 말하여 심의는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일어 앉아서 이야기하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보시고 너의 형은 땅도 사고 종도 사고 자꾸 사는데 너는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이냐? 양주 고든골 땅 이십 석 자리와 광주 너더리땅 오십 석 자리와 왕십리 미니리논 열 마지기와 방아다리 배채밭 사흘가리와 천쇠어미와 상길이 내외는 너의 형더러 달라고 말을 해라. 영절스럽게 말씀을 하시더니 어젯밤 꿈에 또 두분이 같이 어셔서 형더러 말하라니가 왜 말을 아니하느냐고 꾸중사힙디다.”
하고 울음을 다시 내놓을 것같이 입을 비죽거리니 심정이가
“네가 달래도 줄 터인데 구ㅋ에라도 부모가 말씀하신 것을 주다 뿐이겠느냐. 지금이라도 곧 문서를 써주마.”
하고 심의의 말한 대로 종이며 땅을 허급한다는 문서를 쓰고 수결을 두어서 아우에게 주었다.
심의가 종 문서와 땅 문서를 손에 받아들고 일어서서 너푼 절을 하고
“형님 더 주무시지요.”
하고 방 밖으로 나오며 다시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십여 일 지난뒤에 심정이가 그 아우의 하는 꼴을 보려고 심의를 대하여
“엊그제 방 꿈에 아버님 어머님이 오셔서 너더리 땅과 천쇠어미는 봉제사하는 큰아들 네가 가져야 할 것이요, 너의 아우를 줄 것이 아니니 도루 찾으라고 말씀하시더라.”
하고 울려는 시늉을 하니 심의는 서슴지 않고
“봄철 허튼 꿈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하고 껄껄 웃어버리었다.
이판서 집에서 창녕으로 낙향할 때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보고
“자네는 어찌하려나? 이번에 같이 가세.”
하고 권하는 뜻을 보이었으나 갖바치는
“나는 오나가나 매일반이지만 가속들의 내두 처지가 서울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하고 서울에 떨어져 있을 뜻을 말하였다.
이판서 부인이 같이 이사하자고 우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을쇠로 행세하는 덕순이가
“나 같은 신세에 다른 갈 데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주인대감 내외분이 정답게 말씀하는 것을 거역하지 못하여 창녕을 따라가겠으니 당신도 같이 가십시다. 구차한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은 든든히 지나게 가십시다.”
하고 사정을 말하였으나 갖바치는
“실상 내가 좀 서울 있으면 남의 아들들을 맡아줄 터이니까 남에게 좋은 일이야.”
하고 모호한 말을 하며 서울 있을 뜻을 변개하지 아니하였다.
이판서가 가권을 데리고 떠나는 날 작별 나온 갖바치를 보고
“자네가 이사 오고만 싶거든 언제든지 기별하게. 초가 한 삼간 장만해 놓고 기다림세.”
하고 말한즉 갖바치는
“내가 한번 가오리다. 풍파 많은 환로를 하직하고 백구 좇아 노시는 것을 한번 뵈오러 가오리다.”
대답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며 면면히 작별한 뒤에 다시 이판서에게로 와서
“대감께는 치하로 작별하렵니다. 대감께서 이십오륙 년 간 지나오신 험한 길이 이로써 끝이 나고 앞으로는 태평한 세월을 보내시게 될 터이니 대감께 이보다 더 치하할 일이 없습니다.”
하고 저으기 웃으니 이판서는
“그럴까? 참말 그럴까? 오뉴월 화롯불도 쪼이다 나면 섭섭하다는데... 그렇지만 자네 말이 옳아 치하받네.”
하고 쾌활하게 웃었었다.
이판서가 창녕으로 낙향한 뒤 서너 달 밖에 아니 된 때에 갖바치가 내려와서 달포를 넘어 묵었다.
달포 동안에 갖바치는 덕순이와 동무하여 남천에서 붕어 낚시질도 하고 이판서의 뒤를 따라서 화왕산에서 매 사냥질도 하였다.
화왕산에 갔을 때는 옥천사라는 보잘것없는 절에 흘각 겸 구경을 들어갔다가 신돈의 이야기가 났었다.
“신돈의 어미가 이 절 종년이었다네그려.”
“신돈이도 처음에는 이 절에서 중노릇을 했겠지요.”
“중놈 하나가 오백년 종사를 망하였단 기막힌 일이야.”
“나라가 망하려니까 그런 중놈이 나겠지요.”
“우와 창이가 공민왕의 혈속이 아니고 신돈의 아들과 손자라고 신우이니 신창이니 부르지만 이것은 미덥지 않은 말이야.”
“고려 말년 사적은 정도전이 같은 개국공신이 손삽손실을 하여 고치어 놓은 것이니 그대로 믿을 수가 있나요.”
“그래, 그렇지만 우가 죽을 때 겨드랑 아래 있는 용비늘을 보이어 왕씨 표적을 내었다는 것도 당치 않은 소리야.”
“그렇겠지요. 왕씨가 용녀의 자손이란 것부터 당치 않은 소리니까요.”
“아조로 말하면 신돈이 같은 중놈이 국정을 탁란할리는 없지.”
“글쎄요, 이삼십 년 후에 곤댓짓하는 중놈이 없으란 법도 없지요.”
이판서는 갖바치가 대중없이 허튼말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여
“자네 말이 맞나 두고 보세.”
말하고
“이삼십 년 후면 우리가 칠팔십 노인이 될 모양이니 볼는지도 모르겠네.”
하고 한번 웃고 말았다.
갖바치가 창녕서 떠날 때에 이왕 나선 길이니 경상도 산천이나구경한다고 남으로 떠내려가서 진주를 구경하고 동래, 울산, 경주로 돌아서 서울을 올라오느라고 길에서 두어 달 소수를 보내었다.
갖바치가 삼가 땅에 갔을 때 이황이라는 젊은 선비가 독실히 공부한다는 말을 득고 일부러 찾아가서 학문을 논난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선비가 주역을 읽던 중이라 주역으로 말을 묻게 되었다.
“삼역이라니 무엇 무엇이 삼역이오?”
“연산.귀장.주역이 삼역이지요.”
“연산.귀장도 역인가요?”
“역은 아니지만 주역 가닭에 통틀어 역이라고 하는 갑디다.”
“읽으시는 주역이 주자의 정보인가요?”
“잘 모르나 주자의 정본은 아닙니다.”
“그렇소. 영락황제 때 정자와 주자의 것을 찢어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이요.”
그 선비는 거사 복색한 성명 모를 사람의 학식을 놀래어 ‘이 사람이 혹시 정허
암이가.’ 생각하고 허암의 말을 물었다.
“정허암을 아시오?”
“네, 알지요.”
“허암이 왜 세상에 아니 나오실까요?”
“종상 못한 것이 불효이고 군명을 도망한 것이 불충이라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답디다.”
갖바치는 그 선비가 허암으로 아는 것을 속으로 웃으면서
“나는 가오.”
하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나섰다.
갖바치는 서울 올라오던 이튿날 심의를 찾아간즉 상길이가 나와서 하는 말이
“댁 나으리께서 엊그저께 송도를 가셨소.”
하여
“어느 날쯤 오실까요?”
하고 갖바치가 물으니 상길이는
“모르지요. 삼사 일 후에나 오실까요?”
도리어 묻듯이 말하고
“당신이 시골 가서 하도 오래 아니 오니까 댁 나으리께서는 화를 더럭더럭 내십디다.”
하고 그 상전의 고대하던 양을 말하였다.
사실로 심의는 이웃 친구가 일찍 돌아오기를 믿고 기다리다가 서너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까 홧김에 송도 친구 서경덕을 찾아간 것이다.
심의가 송도에 도착하던 길로 벼우물골에 있는 서처사의 집을 찾아갔다.
처사의 아우 형덕이와 숭덕이가 문밖에 나와 맞아들이는데, 형덕이가 그 형이 화담에 가서 있고 집에 있지 아니한 것을 말하니, 심의는
“찾아온 사람이 화담에 있는 바에 화담으로 가야지.”
하고 들어가지 아니하고 돌쳐섰다.
숭덕이가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큰형님이 아니 계시기로 잠깐 들어앉지 못할 것이 무엇인고. 우리는 눈에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 모양인가.”
하고 아니꼬운 생각에 침을 뱉었다.
심의가 화담에 왔을 때는 해가 거의 석양이 다 되었다.
여울 소리가 해진 뒤에 높아질 것을 미리 준비하는지 의외로 낮게 들리고 작은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올랐다.
심의가 차츰차츰 걸어서 서처사 초당에 가까이 오며 들으니 초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거문고 소리가 초당 밖의 물소리와 서로 맞아서 물소리와 거문고 소리가 구별할 수 없이 섞일 때가 있었다.
심의가 열어놓은 창문 앞에 와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한 여자가 바깥편을 등지고 앉아서 거문고를 타는데 처사는 눈을 감고 거문고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심의가 갑자기
“여보게, 가구!”
하고 부르니 자를 부르는 소리에 처사가 눈을 뜨고 내다보며
“의지, 이거 웬일인가?”
하고 일어 맞았다.
“산중 풍류가 적막치 아니하구려.”
하고 심의가 방으로 들어오니 그 여자는 거문고를 치우고 비켜 앉았다.
심의가 처사와 나란히 앉으며 그 여자를 바라보니 얼굴에는 분을 바르지 아니하고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고 의복은 검소하게 차리었으나 천연하게 아리땁고 요사치 않게 어여쁜 것이 진세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그 여자가 처사를 보고
“선생님, 제가 여기 있어도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데 그 목소리까지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선악 같이 들리었다.
심의가 처사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좋다뿐이야.”
하고 대답하니 처사도 저으기 웃으며
“손님이 좋다시니 주인이 좋지 않달 길이 없지.”
하고
“이 손님이 대관부와 소관부를 지으신 심좌랑이시다.”
하고 일러주었다.
그 여자가 심의를 향하여 잠깐 머리를 숙이고
“저는 송도 진이 올시다. 나으리의 대관부. 소관부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셔서 읽었습니다.”
하고 별같이 밝은 눈 속에 봄기운 같은 웃음을 띠니 심의은
“소철이가 한기를 보고 천하의 대관을 다하였다고 했다더니, 심의는 진랑을 보고 천하의 대관을 다한 셈이다.”
하고 허허 웃었다.
“가구! 자네는 전생에 무슨 복을 닦아서 좋은 산수의 주인이 되고 요대 선녀의 선생이 된단 말인가.”
하고 처사에게 말하면서도 그 눈은 진이의 몸을 떠나지 아니하여 처사가 웃으며
“자네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진랑을 보러 온 것일세그려.”
하고 조롱까지 하였으나 심의는 여전히 진이를 바라보며
“눈이 저절로 가는 것을 내가 금치 못할 뿐이야.”
하고 또다시 허허 웃으니 진이는
“비아야라 모야로다.”
하고 깔깔 웃었다.
나중에는 심의가 진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서 두 손으로 진이의 손을 받들어 들고 정신없이 들여다보니 진이가 방긋이 웃으며
“무엇을 그렇게 들여다보시나요?”
하고 물으니 심의는
“아름답고 어여쁜 것이 땅에서 샘솟듯 살 속에서 솟아나오는군.”
하고 싱글벙글하며 처사를 돌아보는데 처사는 말이 없이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서처사의 초당은 방이 둘뿐이었다.
한 방에는 처사가 손님과 같이 자고 다른 한 방에는 진이가 혼자 자게 되었다.
진이가 화담 초당에 와서 자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에 진이가 영롱한 수단으로 당대 도승이던 지족선사의 도를 깨뜨리고 같은 수단으로 서처사를 놀리려고 어느 가을 밤에 초당에 와서 잠을 자는데 무섭다고 꾀를 피고 처사의 방에서 나가지 아니하고 춥다고 핑계하고 처사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잠을 험히 자는 체하고 처사의 몸에 팔다리를 드놓기까지 하였으나 처사의 마음은 반석 같아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그 뒤에도 진이가 처사와 한 방에서 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나 항상 처사는 처사대로 자고 진이는 진이대로 잘 뿐이었다.
이날 밤에 진이가 혼자 자게 되어 다른 방으로 가더니 다시 처사의 방에를 와서
“나는 혼자 자기 싫어요. 손님이나 선생님이나 두 분 중에 한 분이 혼자 주무시지요.”
하고 방그레 웃으니 처사가 대번에
“손님더러 혼자 자랄 수야 있나. 내가 혼자 자지.”
하고 말하였다.
심의는 진이와 한 방에서 자는 것이 맘이 싫지 아니하나 조금 수줍은 생각이 나서
“이 방에서 셋이 자지 못할까?”
하고 처사를 돌아보니 처사는
“그래도 좋겠지.”
하고 손의 말을 거스르지 아니하나 진이는 도리어
“넓은 방 좁게 쓸 것 없지요.”
하고 자기의 주장을 보이었다.
그리하여 심의가 진이에게 시험을 받느라고 하룻밤을 곡경으로 지내었다.
진이가 다리를 배에 얹어도 심의는 가만히 있었고, 진이가 팔을 목에 감아도 심의는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기 어려운 때에 가만히 있자니 곡경이었다.
진이는 ‘화담의 친구 값이 있구나.’하고 생각하고, 심의는 ‘기녀란 할 수 없구나.’하고 생각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처사가 심의를 보고
“밤에 잘 잤나?”
하고 인사하니 심의는 고개를 가로 흔들어 잘 못 잤다는 뜻을 보이고
“겉으로 보기는 선녀 같으나 속은 종시 기녀이데.”
하고 낙심하는 모양이 선녀가 기녀 된 것을 몹시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이가 저의 맘대로 장난을 치는 것이 눈에 세상이 비어 보이는 까닭이야. 불가의 말로 유희삼매라고나 할지, ‘마등가’같은 음녀가 아니야. 당돌한 여자이지. 자네도 망석중이 되지 않은 것이 무던해.”
하고 처사가 말을 그칠 때에 밖에 나갔던 진이가 들어왔다.
진이의 말은 이로써 끝이 나고 심의가
“나는 그 동안 좋은 친구를 얻었어. 실상은 친구라느니보다도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야.”
하고 갖바치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람이 총명하고도 경선치 아니하고, 고상하고도 거만치 아니하고, 있고도 없는 것같이 하
고, 차고도 빈 것같이 하는 것이 나는 처음 보는 인물이야.”
서사시는 심의의 칭찬이 곧이 들리지 아니하는 모양으로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그 사람의 성명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심의는
“성명은 몰라. 갖바치야.”
하고 대답하였다.
“성명을 모르는 갖바치?”
“그 사람의 성명은 당초에 아는 사람이 없어. 전부터 안다는 최원정도 모르든걸. 그 사람이 정암과도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야.”
“정암과 친하게 지냈다면 사람이 무던할 것일세.”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무던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겠나? 사람이 무던뿐이 아니야.”
“이 다음에 한번 작반하여 놀러오게.”
“올는지 모르지? 자네가 한번 서울 와서 만나면 어떻겠나?”
“내가 가도 좋지만 나는 서울 가기가 싫어.”
옆에서 수작을 듣고 앉았던 진이는 갖바치에 인물이 있는 것을 희한하게 생각하여 곧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선생님은 아니 가신다니 이번에 저와 같이 가십시다.”
하고 나서니 심의는 고개를 외치며
“그 사람이 지금은 경상도 가고 서울 없어. 이 다음에 한번 박연 구경 가자고 데리고 오지.”
하고 말하였다.
심의는 서처사에게서 이삼 일 더 묵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심의가 서울 오던 날 저녁때이었지만, 갖바치가 시골서 왔단 말을 상길에게 듣고 곧 찾아가서 만나려고 불불이 가는데 성균관 어귀 큰길에를 나서자 혜화문 안으로부터 내려오는 갖바치를 길가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디를 가는 길이오?”
“댁에를.”
“어떻게 내가 온지를 알고?”
“혹시 오셨을까 하고요.”
“나도 찾아가려고 나선 길이오. 여기서는 우리 집이 가까우니 가까운 데로 갑시다.”
하고 말하여 심의가 갖바치를 데리고 들어왔다.
갖바치는 영남의 산천 인물을 이야기하는 중에 이황의 공부 독실하던 것까지 말하였고, 심의는 서경덕에게서 진이 만난 것을 이야기한 뒤에 박연폭포가 구경할 만하다는 것까지 말하였다.
이튿날 심의가 그 형을 보러 왔다.
사랑에는 남곤이가 와 앉아서 무슨 일을 의론하는 모양이라 바로 안으로 들어왔더니 안에는 경빈박씨의 심부름으로 무수리가 나와 있었다.
심의는 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아니 있다가 심정이가 분주히 안으로 들어와서 무수리에게 말을 일러 보낸 뒤에 심의를 보고
“잠깐만 안에 있거라. 사랑 손님도 곧 가실 터이다.”
하고 도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심의가 소매를 붙잡고
“잠깐만 계시오. 남정승 대감보다 내가 먼저 갈 터이오.”
하고 안마루 구석에 있는 쥐구멍을 가리키며
“형님, 저 구멍으로 좀 나가 보시오. 이 담날은 나가려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우리다.”
하고 히히 웃으니 심정이는
“이애가.”
하고 뒷말이 없이 슬그머니 소매를 뿌리치고 옆에 있던 계집하인들은 입을 막고 돌아섰다.
심의는 형의 일을 속으로 근심하며 돌아와서 갖바치를 보고 이야기하니 갖바치가
“백씨 대감이 지금 와서는 당신의 가는 길이 끝이 좋지 못할 줄을 짐작하신대로 돌쳐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정승과 구수밀의가 잦으시면 잦으니만큼 해를 많이 세상에 끼칠것이 걱정이지요.”
하고 말하였다.
그 뒤에 심정이가 남곤이와 밀의한 결과로 과연 또 큰 옥사를 만들어서 애매히 여러 사람을 살육한 일이 있었다.
삭탈관직을 당한 안당의 집이 옥사의 중심이 되었다.
안당의 서모가 감정이라는 가봉녀 하나가 있어서 이름이 작은쇠라는 송가에게로 시집을 가서 사련이라는 아들을 낳았었는데, 사련이가 어미의 반연으로 안당의 집에 드나들며 안당의 아들들과 교유하게 되었었다.
안당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출중한 중에 그 큰아들이 성질이 강직하여 동네의 친한 친구들과 모여 앉으면 곤이, 정이가 국사를 그르친다고 통탄할 때가 많았었다.
안망의 부인이 작고하여 삼년상이 막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안당의 큰아들이 동네 친구들을 청하여 술을 대접하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김에 팔을 걷어치며 곤이, 정이 같은 놈을 없이 하여야 국가를 붙들고 사림을 보전할 수 있다고 통론하니 그때 옆에 있던 사련이가
“잘 드는 칼 하나만 저를 주십시오. 제가 곤, 정이의 대가리를 외꼭지 도리듯 해놓으리다.”
하고 실없은 말을 하며 해해 웃기까지 하였었다.
이 사련이가 남곤, 심정에게로 붙어서 안당의 아들이 대신을 살해할 음모를 꾸민다고 고변하였는데, 사람의 성명을 적은 서기란 것은 안당의 부인 초종 때 조객록과 그 발인 때 역군의 명부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가지고 옥사를 만들어 안당의 부자 이하 여러 사람을 죽이었는데, 죽인 사람들 중에는 제주에 안치되었던 김정이도 들었고 온성에 안치되었던 기준이도들었다.
사화에 귀향 갔던 여덟사람의 결말을 보면 조광조는 먼저 사약을 받고, 김식은 망명 중에 자결하고, 김정과 기준은 이 옥사에 같이 사약 받고, 윤자임은 북청 배소에서 분통이 터지어 죽고, 박세희는 강계 백소에서 병이 나서 죽고, 김구과 박훈 두사람은 나중에 놓이기까지 하였으나 놓여 온 뒤 두 사람이 다 얼마 더 살지 못하였다.
다른 이야기는 고만두고 이 안당의 아들 옥사에 홍문관 하인으로 조광조를 구하려던 이학년이도 죽었고, 썩은 배 위태하다고 김식을 깨우치던 최수성이도 죽었다.
죽인 사람들 외에 연좌 입힌 사람이 많았고, 양인, 천인 할 것 없이 휩쓸어 귀양 보낸 사람이 더욱이 많았다.
사련은 여러 사람을 죽이고 귀양 보내게 한 공로로 절충장 직함을 받고 일생 녹을 타서 먹게 되었으나 사람 같은 대접은 받지 못하였다.
남곤, 심정이가 전에 여러 명현을 모함한 것은 판국을 뒤집어 권세를 잡으려고 꾀한 것이요, 후에 여러 사람을 살해한 것은 신변의 위험을 없이 하려고 꾀한 것이었었다.
후에는 권세 잡은 대신과 중신이 고변을 받아가지고 역적모의로 몰아서 조치한 것이나까 꾀가 용이하였지만, 전에는 조정의 판국을 뒤집느니만큼 용이한 꾀로 될 것이 아니었었다.
만일에 궁중 세력이 유리하게 돌지 못하였다면 남곤, 심정의 백 가지 천 가지 꾀가 모두 소용이 없었을 것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잘 알았던 까닭에 심정이가 척분을 연줄 삼아서 경빈을 끌 뿐이 아니라 홍경주같이 어리석은 위인과 손을 맞잡아서 희빈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희빈과 경빈의 힘만으로는 임금까지 끌기가 용이치 못하였을 것인데 젊은 왕비 윤씨가 조광조 등을 미워하여 희빈과 경빈을 곁들어 준 까닦에 남곤, 심정이가 마침내 임금을 끌게 된 것이었다.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릴 때로 말하더라도 어제같이 죽일 죄가 없다고 잘라 말씀한 임금이 곤전에서 한 밤을 지내고 오늘같이 갑자기 사약을 내리게 되었으니 왕비 윤씨의 임금을 움직이는 힘이 절대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윤씨는 파산부원군 지임의 딸이니 중종대왕의 셋째왕비이다.
중종대왕이 정국공신의 억지를 못 당하여 첫째왕비 신씨를 폐출하고 숙의 윤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는데, 이 윤씨는 파원부원군 여필의 딸이니 효혜공주와 인종대왕을 탄생한 장경왕후이다.
왕후가 장래의 인종을 탄생하고 산후더침으로 승하한 까닭에 삼년 후에 파산의 딸이 간택에 뽑히어 셋째왕비가 되었었다.
파산의 딸 윤씨는 신씨와 같이 유순하지도 못하고 장경왕후와 같이 유덕하지도 못하나 한미한 집 딸로서 뒷줄이 없이 간택에 뽑히니 만큼 인물이 잘났었다.
임금에게 고임을 받는다느니보다 임금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던 인물이었다.
자색과 총명이 겸비한데다가 임금보다 십사오 년 아래 되는 연치가 있어서 임금의 맘을 용이하게 수중에 모았었다.
임금이 정사를 마치고 내전에 들어와서 왕비 가까이 앉았다가 궁인들이 보지 않는 틈에 손이라도 만지려고 하면 손을 감추면서
“궁인들에게 견모되십니다.”
하고 나직히 말씀을 아뢰어서 임금의 손이 무료하게 들어가도록 하고 궁인들이 모두 물러가고 왕비 혼자 임금을 뫼시게 되면 분결 같은 손이 임금의 무릎 위에 걸치어 임금의 손이 만지기를 능대하고 있었다.
임금을 성나게 하고 임금을 웃게 하는 것이 왕비의 손에 있었다.
임금은 왕비가 웃기는 대로 웃고 성나게 하는 대로 성내는 것이 일종의 재미가 되어서 내전에서 재미보는 시각을 방해하는 의외의 일이 있을 때는 미간의 주름이 저절로 잡히었었다.
조광조의 축이 조정에 있을 때는 경연이다 복합이다 면대다 구계다 임금이 성이 가시더니, 남곤, 심정의 축이 조정에 들어선 뒤에는 경연은 시늉에 지나지 못하고, 복합은 절종이 되고, 면대나 구계가 있다 하여도 시각을 끌지 아니하여 임금이 내전 재미를 맘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임금이 항상 곤전을 떠나게 되지 아니하므로 경빈, 희빈 같은 빈들은 곤전 옆에 뫼시고 있어 시중이나 들었지 따로 대전을 뫼실 때가 드물었다.
그러나 경빈은 상주 미인으로 이름이 있던 사람이라 나이 들고 자녀를 생산하여 자색이 쇠하였다 하여도 전날 아리땁던 자취가 미목간에 남아 있어 임금의 어여삐 여김을 받을 만하고, 임금의 자녀 중에 연치로 맏아들인 복성군과 연치로 맏딸인 혜순옹주와 옹주 중에 가장 총명한 혜정옹주의 소생모인 까닭으로 임금의 대접이 자연히 다른 빈과 달리 후하였다.
왕비가 겉으로는 경빈 대접을 임금보다도 더 후히 하나 속으로 은근히 미워하였다.
왕비가 한 달에 한동안 임금을 가까이 뫼시지 못하게 될 때에는 희빈을 시켜 뫼시게 하고 희빈 역시 일이 있거나 또는 희빈이 괘씸스러울 때는 사람이 요사스럽지 아니한 창빈안씨 같은
궁인을 불러 뫼시게 하였다.
그 덕택에 경빈에게 미치는 것은 일 년 일차가 드물었다.
사실로 안씨같이 순직한 후궁은 임금 뫼시게 되는 것을 오로지 왕비의 덕택으로만 알았었고, 이 덕택이 임금께는 곧 투기 없는 표가 되어 보이었었다.
왕비가 이와 갈이 임금의 맘을 한손에 쥐다시피 하였지만 세자에 향한 임금의 맘은 어찌하지 못하였다.
세자가 하루도 몇 차례씩 대전께 문안을 드리러 오건만, 동궁에 찬림하여 세자의 기거 범절을 하순하는 때가 적지 아니하고 문안 때가 조금만 늦으면 세자가 병이나 없지 아니한가 하여 내시를 보내 보되 그 내시의 회주가 빠르지 못하면 연거푸 다른 내시를 보내는 때가 없지 아니하고, 세자가 혹시 미령하면 쾌복되기까지 심려를 마지 아니하여 조석 수라가 현저히 평시
에서 감하였다.
왕비는 임금의 귀 너머로 지극한 자애를 흉보듯 변도듯 말하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나 임금의 앞에서는 감히 생심코 발설하지 못하였다.
왕비가 처음 입궁한 때에는 원자가 세 살 먹은 어린 아기라 그 귀여운 양이 자기의 소생이 아니라고 미워할 수가 없었으나, 원자의 범절이 놀랍게 숙성하여 궁중 상하가 칭송 아니할이 없을 때 왕비는 은근히 미워하는 맘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원자가 여섯 살에 왕세자로 책봉되며부터 다음 날 소생 아들은 대군밖에 못 되려니 하는 생각에 왕비가 눈에 가시로 보기 시작하였다.
효혜는 공주일 뿐 아니라 일찍이 김안로의 아들 희에게로 하가하여 그다지 고울 것이 없는 대신 그다지 미울 것도 없었지만, 세자는 하루도 몇 번씩 눈앞에 보이는데 왕비의 미워하는맘이 점점 더 심하였다.
세자의 체질이 약하건만 왕비의 눈에는 튼튼하게 보이어서 도리어 걱정이었다.
왕비가 이런 맘을 내색하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으므로 임금은 까맣게 몰랐지만, 궁녀 중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속으로 짐작하여 왕비 앞에서는 세자를 칭송하지 아니하였다.
세자는 성인의 자품이 천생으로 탁월하여 어린 나이에 하는 일을 어른의 일로 보아도 흠잡아 말할수 없던 것이 별로 없었던 까닭에 왕비는 밑도끝도없이
“아이구 깜찍스러워.”
하고 말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것이 세자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은 눈치 빠른 궁녀 외에는
알 사람이 없었다.
세자가 여덟 살에 관례하고 열 살에 열한 살인 세자빈과 가례를 행하였는데 가례가 순성하던 날 임금이 내전에서 동궁으로 물러가는 세자를 가리키며
“장래에 요순 같은 성군이 될 것이니 동방의 복이다.”
하고 칭찬하며 기꺼하였더니 입술을 물고서 듣고만 있던 왕비가 그 뒤로는 세자의 말을 요순이라고 하고 비꼬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세자가 열세 살 되던 해 봄 탄식날 식전에 어느 궁인 하나가 동궁에서 이곳저곳 수군거리게 되었다.
그것은 불로 태워 죽인 쥐 한마리였다.
태워 죽인 쥐가 방자라고 하여도 그것만이면 궁인들끼리 서로 시기하여 한 짓으로도 볼 수 있지만, 쥐 옆에 올해생건명이라고 쓰인 나뭇조각이 매어달렸은즉 궁중에서 올해생 사나이는 세자 한 분뿐이라 세자를 두고 방자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것이 누가 한 짓일까? 누가 시켜 한 짓일까?
경빈 박씨게 있는 궁인이 전날 밤에 그 근방에 있던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본 사람은 곤전에 있는 궁인이었다. 임금이 이것을 알고 세자의 탄신날 저녁때 내전에 형장 기구를 차리고 지목받은 경빈의 궁인을 잡아내어 중장으로 신문하였으나,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못하였다.
화가 난 임금이 경빈의 부리는 궁인을 모조리 잡아내어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세자가 입시하여
“신이 불초하온 탓으로 이런 일이 났사온즉 신은 말씀을 아뢰기도 황송하오나 의심스러운 죄는 가볍게 다스림이 옛 성인의 뜻이오니 형장을 과히 쓰지 마옵소서.”
하고 부왕께 아뢰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임금의 화를 눅이어서 임금은 곧 형장 기구를 거두게 하였다.
이 일이 명백히 되고 아니 되고간에 궁중에서 조처되고 말 것이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귀에 들어가서 파원이 심정을 찾아보고 궁중 소문을 전한 뒤에
“이런 변이 어디 있소? 이리 하다가 세자의 장래가 위태하실 모양이니 대감 같으신 이가 밖에 있어 세자를 극진히 보호하여 드리면 작히나 좋겠소”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 비슷하게 말하였더니 심정이는 경빈과 연통이 있으니만큼 경빈의 치의 받는 것이 자기에게까지 미치지 아니하라 속히 발뺌을 하는 것이 장사라고 생각하고 그날로 예궐하여 임금을 보입고
“윤여필의 말을 듣사온즉 그간 동궁에 저주의 변이 있다 하오니 이것은 국가의 대변이라 궁중에 덮어두지 마시고 조정에 내어맡기사 죄범의 정절을 명백히 함이 마땅하올 줄로 신은 생각하옵니다”
하고 아뢴 것이 발단이 되어 일이 궁중에서 조정으로 옮기어 저주옥사가 일어났다.
이 옥사에 경빈의 궁인과 혜정옹주궁 하인이 혹독히 국문을 당하였는데 나뭇조각의 글씨가 옹주의 부마인 당천위 홍려의 필적같은 점이 있어서 옹주궁 하인이 국문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옥사는 경빈이 자기의 소생인 복성군으로 대통을 잇게 할 욕심이 있어서 혜순, 혜정 두 옹주와 의론하고 세자를 방자한 것이라고 결정되어 경빈과 복성군은 사약을 받고 두 옹주는 서인이 되고 혜순옹주의 부마 광천위 김인경은 원찬을 당하고 당천위는 장하에 맞아 죽었다.
경빈의 죽은 것을 왕비와 왕비에게 가까운 궁인들 외에는 모두 원통히 여기었으나, 불쌍하다는 말 한마디를 감히 입 밖에 내지를 못하였다.
심정은 경빈이 죽은 뒤에 궁중 소식을 염탐할 연줄이 없어져서 허우룩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경빈의 연루 입지 아니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었다.
저주 옥사가 끝난 뒤에 어느날 심정이가 남곤을 와서 보고 조정 이야기도 하고 궁중 이야기도 하다가 부원군 윤여필이 세자 보호를 부탁하더라고 이야기하고
“우리가 섣불리 동궁을 보호한다고 나서다가는 동궁의 덕을 보기 전에 중전의 미움을 받을 것이 탈이니까 겉으로는 동궁을 떠받들며 윤원로, 윤원형 형제에게 인정을 사두는 것이 상책이오. 지금 윤씨 형제가 중전의 동기로 조정의 박대를 받아 불평불만이 있는 중이니 이런 때에 덕보이기는 지이차이할 것이오.”
하고 자기의 꾀많은 것을 자랑하듯이 웃으면서 남곤의 얼굴을 쳐다보니 전 같으면 눈웃음을
치며 '글쎄, 그래'하고 바싹 앞으로 나앉을 남곤이가 얼굴의 힘줄 하나를 까땍 아니하고 비슷이 앉아서
“아이구 성가신 소리 하지 마오.”
하고 하품을 하였다.
심정이가 괴상히 생각하여
“대감, 오늘 심기가 불편하신가요?”
하고 물은즉 남곤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흔들더니
“얼마 살 세상이라고 이것저것 맘을 썩힌단 말이오. 나는 만사가 귀찮소.”
하고 또다시 하품을 하였다.
심정이가 재미없이 돌아간 뒤에 남곤이는 자기 사랑에 와서 있는 일가 사람을 불러올려서
“자네 내일 적성 좀 갔다 오게”
하고 이르니 그 일가 사람이
“왜 적성은이오?”
하고 묻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듯이
“큰댁 영감께 갔다 오란 말씀입니까?”
하고 다시 고쳐 물었다.
남곤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우리 형님은 나를 아우로 여기지 않을뿐 아니라 당초에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시니까”
하고 입맛을 다시다가
“여보게, 자네 생각에 이 다음 후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나? 아무래도 소인이라겠지?”
하고 풀기없이 말하는데 그 일가 사람이 완곡하게 말한다는 것이
“그렇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오”
하고 대답한즉 남곤이는 또다시 입맛을 다시고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머리맡 손그릇 위에 놓인 자기의 시문 초한 것을 집어들고 장장이 찢기 시작하였다.
그 일가 사람은 어이없이 여기어 보고만 있다가
“웬일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남곤이는
“욕거리를 남겨둘 것 없지”
하고 곧
“이리 오너라”
하고 청지기를 불러서 찢어놓은 휴지를 가져다가 불에 넣으라고 일렀다.
남곤의 일가 사람이 남곤의 편지를 가지고 적성 감파동에 사는 남곤의 형을 찾아갔더니 남곤의 형은 멀쩡한 눈을 가지고 거짓 청맹과니 행세하는 사람이라
“자네가 가지고 온 편지를 좀 읽어주게”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이 편지를 읽어 들리었다.
그 편지 사연은 형제의 천륜이 막히다시피 된 것은 저의 죄라 용서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저의 지은 죄가 머리털을 뽑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을 잘 안다고 중언부언한 것이었다.
남곤의 형이 다 듣고 나더니,
“쉬 죽으려는 게군”
하고 다른 말이 없이 눈물을 좌르를 흘릴 뿐이었다.
그 사람이 서울로 돌아온 뒤 얼마되지 아니하여 남곤이가 병이 났다.
병이 나며부터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였다.
“덕순이가 날 죽이러 왔다”
“아이구, 칼이 무서워. 칼이 무서워.”
하고 소리를 지르고 진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손을 가지고 무엇을 만지는 시늉을 하였다.
그 헛소리가 하루하루 더 심하여졌다.
내의는 고사하고 어의까지 나와서 여러 가지로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심정이가 그때 마침 감기 기운이 있어 출입을 못하다가 남곤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야 비로소 문병을 왔었다.
남곤이는 물끄러미 옆에 앉은 심정을 바라보나 알아보는지 몰라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감, 대감, 심정이 아시겠소? 정지요, 정지”
하고 자기의 이름과 자를 불러가며 알아보느냐고 물어야 남곤이는 대답이 없더니 홀저에
“저놈 보아라. 저놈 보아라.”
하고 고개를 베개 밑으로 넣으려고 애를 쓰며
“저놈이 정지를 죽이고 날 마저 죽이러 왔구나”
하고 전신을 벌벌 떨더니
“아이구 골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입으로 피를 토하였다.
심정은 등골에 찬물을 붓는것 같았는데 감기 기운만이 아니었다.
영의정 남곤이 죽은 뒤에 남곤에게 몰려났던 정광필이 다시 영의정이 되었고, 심정이도 대배하여 우의정이 되었다가 나중에 좌의정에까지 승차되었다.
남곤이가 살아있을때에 연성위 김희의 부친 김안로가 이조판서로 있어 남곤, 심정과 세력을 겨루려다가 세력이 밀리어서 원찬을 당하였었는데, 김안로는 남곤, 심정이만 못지 아니한 간신이라 동궁 보호를 구실삼고 일부 조신과 기맥을 통하여 다시 조정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이것이 남곤이 죽은지 사오년 후 일이다.
김안로가 조정의 채를 잡은 뒤에 저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벼슬을 돋아주고, 저와 사혐이 있는 사람은 어느 모로든지 몰아서 귀양 보내거나 죽이거나 하였다.
김안로와 함께 삼흉이라는 허항, 채무택 같이 안로에게 사자 어금니 노릇하던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안로에게 붙어서 고관대작을 지낸 자가 수가 없이 많았는데 도야지로 조명이 난 장순손이도 안로의 집과 이웃하여 살면서 안로의 비위를 맞춘 까닭으로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까지 되었다.
정광필은 사복 도제조로 있을때 안로가 목장 한 곳을 자기가 쓰게 달라는 것을 국가의 땅을 베어 줄 수 없다고 거절한 일이 있을뿐 아니라 안로의 귀양 풀어주려는 의론을 수차 막은 일이 있어서 안로는 함혐하고 백계로 모함하여 김해로 귀양 보내었다.
정광필과 같이 망중한 노인 대신도 안로에게 소소한 혐의가 있어 원찬을 당하였으니 안로를 조정에서 몰아낸 한 사람인 심정이가 성할 리가 없다.
김안로는 심정이를 경빈의 저주 옥사에 관련이 있었다고 몰아서 강서로 귀양을 보내고도 맘에 흡족치 못하여 가죄할 기틀을 엿보고 있던 중에 조정을 훼방한 방서 한 장이 종로 종각에 붙은 일이 있어서 이것을 심정의 아들 심사순의 소위라고 몰아붙이어 사순과 및 심정의 집 사람은 고사하고 심정의 집과 상종이 없던 사람까지 엄혹한 형장으로 때려죽이게 하고 심정에게는 사약을 내리게 하였다.
심정이가 후명을 받을 때에 남향 재배하고 나서 약그릇을 들고
“김안로의 원수, 원수의 김안로”
하고 말하며 이를 갈았다.
심정이는 백번 천번 죽어도 마땅한 위인이지만 원통한 죄명으로 죽은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대개
“천도가 무심치 않다”
고 말하는 중에
“불쌍하게 죽었다”
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아니하였다.
심의는 심정의 아우인 까닭으로 의금부에 잡혀 갇히었다가 어전에서 곤장까지 맞았는데 국문에 대답이 장관이었다.
“심정이는 벌써 죽었습니다. 내가 죽였는데요.”
“신이 형을 죽인 죄인이올시다. 죽어 마땅하외다”
하고 애고애고 통곡도 하다가
“심정이에게 내 땅을 찾을 것이 있으니 이번에 찾아주십쇼.”
“신의 집에 문권이 있소이다”
하고 허허 웃기도 하였다.
임금이 좌우를 돌아보며
“심의가 실성하였단 말을 들었더니 참말이고나. 내랬다 신이랬다 종이 없고나”
하고 말씀하시니 좌우에 있던 신하가
“실성한지가 오래옵니다. 평소에도 흔히 횡설수설한다 하옵니다.”
“저의 형이 남곤이와 같이 앉았는 것을 보고 두 소인놈이라고 호령한 일도 있었다고 하옵니다.”
말들을 아뢰었다.
임금이 저의 형을 소인이라고 호령하였다는 것이 우스워서 저으기 웃음을 머금고
“실성한 것이 아니면 천치고나. 정의 아우된 것이 죄라면 모르되 다른 죄는 짓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형장을 그만두고 끌어 내보내라”
하고 말씀하여 심의는 곤장을 몇 개 맞지도 아니하고 죄를 면하였다.
심의가 어전에서 곤장 맞고 나오는 길로 형의 집에를 와서 보니 사람이 떠나지 아니하던 사랑방들은 모두 빈방이 되었고 안에를 들어온즉 형수와 질부가 한 방에 모여서 눈물로 서로 보고 앉았었다.
심의는 인사 한마디 아니하고 대청 구석에 있는 쥐구멍으로 와서 펄썩 주물러 앉아
“쥐구멍은 여기 있는데 우리 형은 어디를 갔나”
하고 방성대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갓 쓴 채로 머리를 쥐구멍에다가 비비면서
“애고 형님, 애고 형님”
하고 한동안 형님을 부르다가 기절한 사람같이 아무 소리가 없이 엎드렸었다.
그 형수와 그 질부가 방에서 나와서 옆에 서 있는데 심의는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형수를 치어다보더니
“우리 형님 찾아내오. 안 찾아내면 경치리다”
하고 한참 만에
“안해도 소용없고, 아우도 소용 없소. 형님만 불쌍하오.”
하고 다시 울음을 울려다가 말고
“죽은 사람이 불쌍할 것 있나? 산 사람이 불쌍하지.”
하고 일어서서 말 웃음 웃듯이 입을 하늘로 치어들고 히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