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
Antoine de Saint-Exupéry
대지는 우리들 자신의 대해 모든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대패라든가 쟁기가 있어야 한다. 농부는 땅을 가는 동안에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내는데 이렇게 캐낸 진리야말로 보편적이다. 이와 같이 항공로의 도구인 비행기도 사람을 모든 옛 문제들로 끌어넣는다. 아르헨티나로 최초의 야간 비행을 하던 날 밤의 들판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깜빡이던 밤의 인상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큰 바다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보금자리 속에서 사람들은 읽고, 생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딴 집에서는 공간의 계측에 애를 쓰고, 앙드로메드좌의 성운에 관한 계산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기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띠엄띠엄 그 불빛들은 저마다의 양식을 찾아 들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시인의, 교원의, 목수의 불빛 같은 아주 얌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살아 있는 별들 가운데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닫혀진 창들이, 꺼진 별들이, 잠든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서로 맺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 간간이 타오르고 있는 이 불빛들의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1. 항로
1926년의 일이다. 나는 "라떼꼬에르" 회사의 젊은 정기 항공로 조종사로 갓 들어간 때였다. 이 회사는 나중에 "에르 프랑스" 회사가 된 우편 항공회사가 전에 뚤루즈와 다까르 간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내 직업을 익히고 있었다.
나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우편기를 조종하는 영광을 갖기에 앞서 풋나기들이 치뤄야 하는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 비행이며, 뚤루즈와 빼르빼냥 간의 단거리 왕복이며, 썰렁한 격납고 속에서의 쓰라린 기상학 공부 등이었다.
우리는 아직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의 산들에 대한 두려움과 선배들에 대한 존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선배들을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곤 했는데, 무뚝뚝하고 약간 쌀쌀한 그들은 거만스럽게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알리깡뜨나 카사블랑카에서 돌아와서 비에 젖은 가죽옷을 입은 채 뒤늦게 우리들과 합류했을 때, 우리들 중 하나가 조심조심 그의 여행에 대해서 묻기라도 하면 그의 짤막한 대답만으로도 폭풍우가 부는 날이면 덫과 함정과 느닷없이 나타나는 낭떠러지와 삼나무라도 뿌리 채 뽑아버릴 것 같은 돌풍들로 가득 찬 우화적인 세계를 우리 눈앞에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시커먼 용바람이 골짜기 어귀를 가로막고, 번개 뭉치들이 산마루를 뒤덮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 선배들은 교묘하게 우리들의 존경심을 북돋우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 중의 하나가 돌아오지를 않아 영원히 우리의 존경할 본보기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중에 꼬리비에르 산중에서 죽은 뷔리가 돌아오던 어느 날의 일이 생각난다. 그 나이 많은 조종사는 우리들 사이에 들어와 앉자 아직도 어깨가 일 때문에 짓눌려 있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무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항공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늘이 썩어 문드러진 듯 장마 비를 뿌리고, 조종사에게는 옛날의 돛단 군선의 대포들이 밧줄이 끊어져서 갑판 위를 마구 굴러다니듯이 모든 산들이 시커먼 구름 속에서 뒹굴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그런 악천후의 저녁이었다.
나는 뷔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이번 비행이 힘들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머리를 접시 위에 틀어박고 있던 뷔리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덮개 없는 비행기에서 날씨가 궂을 조종사는 좀 더 앞을 잘 보가 위해서 바람막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게 되는 데 그래서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오랫동안 윙윙거리기 마련이다.
마침내 뷔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제야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았고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갑자기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웃음이 나를 감탄하게 했다. 왜냐하면 뷔리는 좀처럼 웃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 짧은 웃음이 그의 피로를 밝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승리에 대해서는 그밖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어둠침침한 식당 안에서 하루의 초라한 피로를 풀고 있는 하급 관리들 가운데에서 이 묵직한 어깨를 가진 동료가 내게는 이상하게도 고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거친 외모 속에서 용을 정복한 천사의 모습을 엿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내게도 차례도 닥쳐 지배인 실로 불려 가는 저녁이 왔다. 그는 이렇게만 말했다.
"내일 출발하시오."
나는 그의 작별인사만 기다리며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규정은 잘 알고 있겠지?"
그 당시의 비행기 엔진은 오늘날만큼의 안전성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엔진은 종종 접시가 깨지는 것 같은 소음 속에 아무 예고도 없이 별안간 우리를 내팽개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조종사는 피신할 데라곤 거의 없는 스페인의 바위산을 향해 손을 들 도리밖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늘 말하곤 했었다.
"여기서 엔진이 고장 나는 날에는 유감이지만 비행기도 이제 끝장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바꿔 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이 바위산을 들이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산악지대에서는 구름바다 위로 비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위반하는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징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고장을 일으킨 조종사가 흰구름층 속으로 빠져들어 가다가는 보이지 않은 산꼭대기를 들이받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지배인의 느릿한 목소리를 끝으로 다시 한 번 복무규정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기야 스페인에서 구름바다 위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하는 것도 재미있지. 아주 운치가 있고 하지만...."
그리고는 더욱 느리게 말했다.
"... 하지만 명심해 두시오. 그 구름바다 밑은 ... 바로 저승이라는 것을."
그러자 갑자기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을 때 보게 되는 그렇게도 고요하고 평평하고 단순한 그 세계가 내게는 미지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 고요가 덫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나는 저 내 발 아래 펼쳐져 있는 끝없는 흰 덫을 상상해 보았다. 그 밑에는 누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북적거림이나, 혼잡이나, 도시의 활기찬 차들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절대적인 침묵과 보다 결정적인 평화가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흰 끈끈이가 나에게는 현실과 비현실, 기지와 미지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벌써 어떤 풍경이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문화와 작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산골 사람들도 구름바다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이 우화적인 장막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지배인의 사무실을 나왔을 때 나는 어린애 같은 자랑을 느꼈다. 나도 이제 내일 새벽부터는 승객에 대한 책임, 아프리카행 우편물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고 느꼈다. 스페인에는 피난처가 적다. 위협적인 고장을 당했을 때 구조 받을 만한 곳을 찾아낼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나는 필요한 가르침도 찾지 못한 채 불모의 지도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서움과 자랑스러움이 뒤얽힌 가슴을 안고 이 싸움의 전날 밤을 동료 기요메 한테 가서 지내기로 했다. 기요메는 이 항공로를 앞서 왕래한 경험자였다. 기요메는 스페인의 열쇠를 얻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나는 기요메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소식을 들었네. 기쁜가?"
그는 포르투갈산 포도주와 컵을 가지러 벽장 있는 데로 가더니 여전히 빙글거리면서 돌아왔다.
"우선 축배를 드세, 염려 말게. 잘될 테니."
훗날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과 남대서양 횡단 우편 비행의 기록을 수립하게 될 이 동료는 램프가 불빛을 발하듯이 주위에 자신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보다 몇 해 앞선 이날 저녁, 그는 셔츠바람으로 램프 밑에서 팔짱을 끼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에 참 미소를 띠며 이렇게 간단히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폭풍우니 안개니 눈 따위가 이따금 자네를 괴롭히겠지만, 그럴 때 자넨 자네보다 먼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그리고 자네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게. "남들이 해낸 일은 나도 꼭 해낼 수 있다"라고."
그러나 나는 가지고 간 지도를 펼치고 그렇더라도 나와 함께 항로를 재검토 해보자고 간청했다. 이렇게 램프 불 아래 엎드려 이 선배의 어깨에 기대고 있으려니 나는 학창시절의 평화가 되돌아옴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얼마나 이상한 지리 수업을 받았던 것일까? 기요메는 내게 스페인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그는 스페인을 내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수로학에 관해서도 주민이나 가축 임대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 구아디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다만 구아디스 근처에 들판을 둘러싸고 서 있는 세 그루의 오렌지 나무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것들을 조심하게. 자네 지도에다 표시해 두게...."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세 그루의 오렌지 나무가 지도 위에서 시에라네바다의 높은 산맥보다도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롤까 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롤까 시 근처에 있는 하찮은 농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살아 있는 농가에 대해서, 그 농부에 대해서, 그 안주인에 대해서. 그러자 우리로부터 1천 5백 킬로 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부부가 엄청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산비탈에 자리 잡은 채 마치 등대지기처럼 그들의 별 아래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지리학자들도 모르고 있는 상세한 것들을 그 망각과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거리 속에서 끌어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리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큰 도시에 물을 대주는 에브르강 뿐이지, 모뜨릴 서쪽 숲 속에 숨어서 서른 포기쯤의 꽃을 가꾸어 주는 아버지인 그런 개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개울을 조심하게. 이것 때문에 불시착에 소용이 없으니까.... 이것도 자네 지도에 적어 두게."
아! 나는 모뜨릴의 그 작은 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 가벼운 물소리로 개구리 몇 마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고작인 이 실개천 눈만 가리고 있는 격이다. 이 불시착의 낙원 속에 풀숲 밑에 길게 누워, 여기서 2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것에서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첫 기회에 그놈은 나를 불꽃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또 조그마한 산허리에 진을 치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태서를 갖추고 있다는 그 서른 마리의 싸움 양에 대해서도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대기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이 초원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보게! 자네 바퀴 밑으로 서른 마리의 양들이 굴러든단 밀일세...."
이런 믿지 못할 위협에 대해 나는 다만 감탄의 미소로써 답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내 지도 속의 스페인은 램프불 아래서 차츰차츰 동화의 나라가 되어 갔다.
나는 피난처와 함정을 십자표로 표시했다. 그 농부와 서른 마리의 양과 그 개울도 표를 했다. 나는 지리학자들이 등한히 했던 그 양치기 처녀를 정확한 제자리에 놓았다. 기요메와 작별하고 나오자, 나는 이 겨울을 얼어붙은 밤을 걷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나는 외투 깃을 세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행인들 틈에 끼어 내 젊은 정열을 산책시켰다. 마음에 비밀을 간직하고 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 야만인들은 지금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새벽이 되어 우편 행낭이 비행기에 실릴 때가 되면 그들은 자기의 격정과 정열을 내게다 맡길 것이다. 그들의 희망도 내 손안에 맡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외투에 몸을 감싸고, 그들 틈에 끼어 보호자 같은 걸음을 옮기고 있는 데도 그들은 나의 심려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내가 이 밤으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메시지들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어디에선가 채비를 차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리고 내 첫 비행을 훼방 놓을지도 모를 그 눈보라가 바로 내 몸에는 중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별들이 하나하나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산책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별들의 비밀은 나 혼자만이 알 수 있었다. 전투에 앞서 적군의 배치를 내게만 알려주는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렇게 막중한 책임을 지워주는 이 암호를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번쩍이는 환한 쇼윈도우 옆에서 받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이 밤에서 땅위의 모든 보화가 진열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단념의 자랑스러운 도취감을 맛보는 것이었다. 나는 협박당한 병사였다. 그러니 밤축제를 위한 이 번쩍거리는 수정 그릇들이며, 저 램프 갓이며, 저 책들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나는 안개 덮인 하늘에 잠겨 있는 것이다. 벌써 나는 정기 항공의 조종사로서 비행하는 밤들의 쓰디쓴 과육을 베어 물고 있는 건이었다.
나를 깨워 준 것은 새벽 3시였다. 나는 덧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거리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며 신중하게 옷을 입었다.
30분 후 나는 빗물로 번들거리는 보도에서 작은 가방 위에 앉아 내 차례로 회사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나보다 앞서 많은 동료들이 오늘 같은 처녀 출동 날에 가슴을 약간 조이며 이와 똑같은 기다림을 맛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거리 모퉁이에서 구식 차가 고철 같은 소리를 내며 나타냈다. 이번에는 나도 다른 동료들처럼 잠이 덜 깬 세관관리와 몇몇 사무원들 틈에 끼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자리를 잡을 권리를 가졌다.
이 버스는 곰팡이 냄새와 먼지 많은 관청 냄새와 자칫 사람의 한 평생이 파묻히기 쉬운 낡은 사무실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차는 5백 미터씩 가다가는 멈춰 서기를 하나 더, 세 관리를 하나 더, 주임을 하나 더 태우기 위해서. 차안에서 벌써 꾸벅거리고 있던 사람들은 새로 탄 사람의 인사말에 분명치 않게 웅얼웅얼 대답했고 새로 탄 사람들도 가까스로 자리를 비집고 앉자마자 꾸벅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뚤루즈 시의 울퉁불퉁한 길 위를 실려 가는 일종의 서글픈 짐들이었다.
이렇게 사무원들과 줄을 지어 섞어 있으면 정기 항공의 조종사도 언뜻 보면 거의 분간되지 않는다. 가로등이 줄을 지어 스쳐가고 비행장이 가까워 온다. 그러면 진동이 심란 이 낡은 버스도 이제는 변모한 사람이 빠져나올 한낱 회색빛 번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동료들 누구나가 이와 같이 한번은 오늘 아침과 비슷한 아침에 저 주임의 화풀이에 아직도 짓눌려 있는 욕받이 하급 관리에 끼어 앉아 있는 자신 속에서 스페인과 아프리카 간 우편기의 조종 책임자가 태어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3시간 후에는 오스삐딸레의 용과 번개 속에서 대결하고 4시간 후에는 그 용을 정복하고 나서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완전히 혼자만의 자유 판단 하에 해상으로 우회할 것인지 아니면 알꼬아 산덩이를 향해 똑바로 돌진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뇌우와, 산악과 대양과 대결할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동료 누구나가 이렇게 한번을 뚤루즈의 음산한 겨울 하늘 아래 이름 모를 무리들 속에 묻혀서 오늘과 흡사한 아침에 5시간 후면 북극의 비와 눈을 뒤로 하고 겨울을 버리면서 엔진의 회전수를 줄이고 한여름인 알리깡뜨의 찬란한 태양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할 왕자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 낡은 버스는 이미 없어졌다. 그러나 그 딱딱하고 불편스러웠던 것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차는 우리들의 직업상 거친 기쁨을 맛보는데 필요한 준비를 잘 상징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무치게 검소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난다. 3년 뒤에 그 차 안에서 열 마디도 안 되는 대화에서 조종사 레끄리벵의 죽음을 알게 됐던 일을. 그도 안개 짙은 날이나 혹은 어느 밤에 갑자기 영원한 은퇴를 한 이 항로의 1백여 명의 동료들 중의 하나였다. 그 때도 역시 새벽 3시였고, 똑같은 침묵이 흐르고 있다. 어둠 속에 있어 모습이 안 보이는 지배인이 감독관에게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레끄리벵이 어젯밤에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다네."
"아! 그래요?"
감독관이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꿈속에서 끌려 나온 그는 잠에서 깨려고 자신의 근무열을 보이려고 애쓰며 덧붙였다.
"아! 그래요? 통과를 못했군요? 그래, 되돌아 왔나요?"
그 말에 대해 버스 안쪽에서는 다만 "아니"하는 대답뿐이었다. 우리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1초 1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아니"라는 말에는 아무런 다른 말도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것, 이 "아니"라는 말에는 호소할 길이 없다는 것, 레끄리벵은 카사블랑카에만 착륙 못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어떤 곳에도 착륙하지 못하리라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이리하여 그날 아침 나의 첫 우편 비행을 하는 새벽에 나는 또한 이 직업에 따른 신성한 의식을 치렀고 유리창 너머로 가로등의 불빛을 반사하여 번들거리는 돌을 깐 길을 내다보며 자신을 잃어감을 느꼈다.
물구덩이 위로 스쳐 가는 바람이 종려 나뭇잎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 처녀비행치고는 ... 정말이지... 운이 나쁜데."
나는 감독관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죠?"
감독관은 피곤한 시선을 창쪽으로 돌리더니 이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뭘, 그렇지도 않은데."
그럼, 악천후는 도대체 어떤 징후로 알아낼 수 있는가 하고 나는 자문해 보았다. 기요메는 엊저녁에 단 한 번의 미소로 선배들이 들려주면서 우리를 겁주곤 했던 불길한 전조들을 지워 주었지만, 그래도 그 불길한 징조가 내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흔히 이런 말을 했었다.
"항공로를 조약돌 하나하나까지 알고 있지 못한 조종사가 만일 눈보라라도 만난다면, 가엾지...아암! 가엾고 말고...."
그들에게는 위신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간 거북스런 동정의 눈초리로 우리들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천진난만함을 동정하기라도 하듯이.
하기야 이 버스가 이미 우리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피난처 노릇을 해 주었던가? 60명? 80명? 비오는 날 아침, 바로 이 과묵한 운전사에게 이끌려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밝은 점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담배가 제각기의 명상에 구두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늙은 월급쟁이들의 하찮은 명상들, 우리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마지막 호상객 노릇을 했을 것인가?
나는 또 그들이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마음속 이야기를 귓결에 들었다. 그것은 병이니, 돈이니, 집안 걱정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갇혀 있는 우중충한 감옥의 벽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별안간 운명의 보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기 있는 늙은 샐러리맨이여, 나의 동료여, 아무도 당신들을 해방시켜 준 일이 없고 그것은 조금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저 흰개미들이 그렇듯이 광명으로 빠져나갈 모든 구멍을 한사코 시멘트로 막음으로써 당신의 평화를 건설해 왔다. 당신은 자신의 소시민적인 안전 속에 자신의 습관 속에 시골 생활의 숨 막히는 관습 속에 공처럼 움츠려 들어가 바람과 조수와 별을 막기 위해 이 보잘 것 없는 성벽을 쌓아 올렸다.
당신은 세상의 큰 문제에 대해서 근심하려 하지 않았고 인간으로서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했다. 당신은 방랑하는 떠돌이별의 주민이 결코 아니며, 대답이 없을 질문은 던지지도 않는다.
당신은 뚤루즈의 한 소시민이다. 때가 늦기 전에 당신의 어깨를 움켜 잡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을 빚어낸 진흙이 마르고 굳어진 지금은 아무도, 어쩌면 애초에 당신 속에 깃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잠든 음악가를 시인을 또는 천문학자를 일깨워 줄 수는 절대로 없다.
나는 이제 폭풍우를 원망하지 않으련다. 직업의 마력이 또 하나의 세계를 내게 열어준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이제 2시간도 안돼서 검은 용과 푸른 전개의 머리털을 왕관처럼 쓴 산봉우리들과 대결을 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면 폭풍우에서 해방되어 별들 속에서 내 길을 찾아 갈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 직업상의 세례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하늘의 여행은 대개의 경우 무사했었다. 우리는 평온하게, 마치 직업적인 잠수부처럼 우리들 영토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 영토는 오늘날에 속속들이 탐사되어 있다. 이제는 조종사도, 기관사도, 무전사도 모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 그들은 갖가지 계기의 바늘의 유희에만 순종하지, 풍경의 변화에는 이제 아랑곳하지 않는다.
밖에는 산들이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그것들은 이미 산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력일 뿐, 그 접근만을 계산하면 된다.
무전사는 현명하게 램프 불 아래서 숫자를 기입하고 기관사는 지도에 점을 찍고 조종사는 산들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거나, 왼편으로 피해서 돌아가려던 산마루가 작전 준비 때와도 같은 침묵과 비밀 속에서 정면에 나타나거나 할 때만 진로를 수정한다. 지상의 비행장에서 야근을 하는 무전사들로 말하더라도, 그들은 똑같은 시각에 그들의 노트 위에 동료로부터 받은 통보를 슬기롭게 적어 넣는다.
"0시 40분, 방향 2백 30도, 기내 이상 없음"
오늘날 승무원은 이렇게 비행한다. 그들은 움직이고 있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바다 위의 밤처럼 모든 목표들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엔진이 이 밝은 실내를 그 본질을 바꿔 놓는 진동으로 채우고 있다.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계기반 속에서, 무전 장치 속에서, 이 바늘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연금술이 행해지고 있다. 1초 1초마다 이 비밀스런 몸짓, 이 가만가만한 말들, 이 주의가 기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가 오면 조종사는 어김없이 바람막이 유리판에 이마를 갖다 댈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황금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기항지의 등불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들은 모두 이러한 비행도 겪어 알고 있다. 기항지에 닿기 2시간 앞두고 어떤 특수한 각도에서 비쳐오는 불빛을 보고 갑자기, 설사 인도에 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만큼 우리가 멀리 와 있음을 느끼게 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단념하게 된 그런 비행을.
이를테면 메르모즈가 그랬다. 처음 수상기로 남대서양을 횡단했을 때, 그는 해질 무렵에 뽀또놔르 지방에 접근했다. 그는 전방에 회오리바람의 꼬리들이 마치 벽을 쌓아올리듯이 시시각각으로 포위해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밤의 장막이 이 전투 준비 위에 내려, 그것들을 숨겨 버렸다. 그리고 1시간 후에 구름떼 밑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환상적인 왕국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거기에는 바닷물 기둥들이 겹겹이 솟아올라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것들은 신전의 검은 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꼭대기가 부풀어서 컴컴하고 낮은 폭풍우의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천장의 틈새로는 빛의 자락들이 드리워져 있었고 만월이 기둥 사이로 바다의 싸늘한 포석 위를 비추고 있었다.
메르모즈는 이 사람 없는 폐허를 가로질러 빛의 물길과 물길 사이로 비껴가며 바다가 울부짖으며 솟아 올라가고 있음에 틀림없는 그 거대한 기둥들을 피해 돌며 비행을 계속했다. 달빛의 여울을 따라 4시간을 비행한 끝에 그는 마침내 그 신전의 출구를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이 하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메르모즈는 뽀또놔르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는 또 생각이 난다. 내가 현실 세계의 변경을 넘어섰던 때의 일들의 하나가. 그날 밤은 밤새껏 사하라사막의 착륙지에서 보내주는 위치 측정의 무선 유도에 오차가 심해서 무전사 네리와 나를 완전히 궁지에 빠지게 했다.
안개가 갈라진 틈 밑으로 물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나는 급히 기수를 해안 쪽으로 돌렸다. 도대체 몇 시간 전부터 우리가 외양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2. 동료들
1)
메르모즈도 그 한 사람이지만, 몇 명 동료들이 귀순하지 않은 사하라 사막을 거쳐 카사블랑카에서 다까르 사이의 프랑스 항공로를 창설했다.
당시의 엔진은 별로 저항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고장이 메르모즈를 모르인들에게 붙잡히게 했다. 그들은 메르모즈를 학살하기를 주저하고 15일 동안 포로로 가둬두었다가 그를 되팔았다. 그래서 메르모즈는 다시 같은 영토 위를 나는 우편비행에 복귀했다.
남아메리카 항로가 개설되자, 항상 선두에서는 메르모즈는 부에노스아이레레스와 산띠아고 구간의 항공로 조사를 위임받았다. 즉, 사하라 사막 위에 다리를 놓은 뒤를 이어 안데스 산맥 위에 다시 다리를 놓게 된 셈이다.
그에게는 상승 한도 5천 2백 미터의 비행기가 주어졌다. 그러나 안데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은 7천 미터나 솟아 있었다. 그런데도 메르모즈는 통로를 찾기 위해 이륙했다. 사막을 정복한 후에 메르모즈는 산에 도전한 것이다. 산이라지만 그쪽 고봉들은 바람이 불면 눈보라의 띠를 펼쳐놓고, 폭풍에 앞서 온 천지를 창백하게 하고, 비행기를 아주 심하게 동요시키는 역류, 이런 것들을 바위의 절벽 사이에서 만나게 되면 조종사는 일종의 백병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르모즈는 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러한 굴레로부터 살아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채, 싸움에 뛰어들었다. 메르모즈는 남들을 위해 "해보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느 날 이렇게 "해보다"가 그는 자신이 안데스 산의 포로가 된 것을 알았다.
4천 미터 높이의 절벽에 둘러싸인 곳에 불시착한 그와 기관사는 이틀 동안이나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빠져 나갈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운명을 걸고 비행기를 허공으로 내몰았다. 비행기는 울퉁불퉁한 땅 위를 절벽 끝까지 튀어 올랐고, 그들은 거기서 굴러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비행기는 필요한 속력을 내게 되어 다시 조종사의 말을 듣게 됐다.
메르모즈는 산봉우리를 날아 그곳에 도달했으나 밤사이에 얼어 터진 모든 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 때문에 비행 7분 만에 다시 엔진이 정지됐으나 마치 약속의 땅처럼 그들의 눈 아래 칠레의 평원을 보았다.
이튿날 메르모즈는 또다시 시작했다. 안데스 산맥이 샅샅이 탐험되고, 횡단 기술이 잘 조정되자 메르모즈는 이 구간을 동료인 기요메에게 맡기고 자기는 밤의 탐험에 나섰다. 착륙 비행장에 조명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캄캄한 밤이면 착륙장에는 초라한 가솔린 등이 3개 메르모즈 앞에 켜져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해내어 야간비행의 길을 열어 놓았다. 밤을 완전히 길들이고 나자 메르모즈는 대양을 시험했다. 이리하여 1931년부터 처음으로 뚤루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우편물이 나흘만에 운반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메르모즈는 남대서양 한복판의 풍랑 높은 바다 위에서 가솔린이 떨어졌다. 지나가던 기선이 그와 우편물과 승무원을 구출해 주었다.
이와 같이 메르모즈는 사막과 밤과 바다를 개척했다. 그는 몇 번이나 모래 속에, 산 속에, 밤 속에 바다 속에 빠져들어 갔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12년 동안을 근무한 후, 또다시 남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그는 "후방 우측 엔진을 끈다" 하는 짤막한 통신을 보내왔다.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다.
이 소식은 그다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이 10분 동안 계속된 뒤에는 파리에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는 항공로의 모든 무전 국들은 가슴 조이며 경비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10분간의 지각이란,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우편비행의 경우에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죽은 시간 속에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것이든, 또는 불행한 것이든 그것은 그 이후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운명이 판결을 내렸을 것이고, 이 판결에는 상소할 길이 없다. 어떤 무쇠 같은 손이 승무원들을 무사히 착수시켰던가, 아니면 파멸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다만 그 판결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통고되지 않는다.
우리들 중의 그 누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갈수록 더욱 희미해져가는 그 희망과, 치명적인 병처럼 시시각각으로 악화되어 가는 그 침묵을.
메르모즈는 분명히 자기가 한 일 뒤에 숨어 버린 것이다. 마치 보릿단을 잘 묶고 나서 자기 밭에 드러눕는 타작군처럼.
한 사람의 동료가 이렇게 죽을 때 그의 죽음은 그래도 직무상의 질서에 따른 행동처럼 생각되어 처음에는 다른 죽음보다 덜 상심이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마지막 전근 명령을 받고 멀리 떠나갔다. 그러나 그가 없어진 것은 빵이 없어졌을 때만큼 우리에게 그 아쉬움이 절실하지는 않다.
우리들은 사실 서로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버릇에 젖어 있다. 항공로의 동료들은 파리에서 칠레의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에 흩어져 있어 별로 말을 주고받을 기회가 없는 보초들처럼 약간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이 직무상의 대가족들이 여기저기서 서로 만나려면 여행의 우연이 있어야 한다. 카사블랑카나, 다까르나, 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어느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그들은 여러 해 동안의 침묵 뒤에, 중단되었던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옛 추억을 서로 잇는다.
그리고는 다시 출발한다.
대지는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있어 황량하기도 하고 풍요롭기도 하다. 감춰져 있어서 다다르기는 힘들지만, 어느 날엔가는 우리의 직업이 우리를 그곳에 데려다 줄 은밀한 정원들이 지상에는 수많이 있기 때문에 풍요롭다.
생활이 우리를 떼어놓기 때문에 우리는 동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딘가에 있다. 어딘지는 몰라도, 조용하게 잊혀진 채, 그러나 지극히 믿음직하게!
그래서 우리가 혹시 그들의 길을 마주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들은 아름다운 기쁨의 불꽃을 보이며 우리의 어깨를 흔들어 주곤 한다! 물론 우리는 기다리는 습성에 젖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차츰 우리는 그 사람의 밝은 웃음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정원이 우리에게는 영원히 닫혀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의 진정한 초상, 가슴을 찢는 듯한 슬픔은 아니지만, 약간 마음이 쓰라린 초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죽은 동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랜 벗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아무것도 그 많은 공통된 추억, 함께 겪었던 위험한 시간들, 그 많은 불화와 화해, 마음의 설렘 등의 보물만큼 값진 것은 없다. 이러한 우정은 다시는 되살릴 수 없다. 떡갈나무를 심고, 바로 그 그늘에서 쉬려 한들 헛일이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우리들 자신을 풍부하게 하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어 왔다.
그러나 시간 이 작업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베어 내는 해들이 오게 된 것이다. 동료들이 하나 둘 우리에게서 그들의 그림자를 앗아간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우리들의 슬픔에 늙어감에 대한 남모르는 회환이 섞이는 것이다.
이것이 메르모즈와 그밖의 동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어떤 작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치란 인간관계의 사치뿐이다.
오직 물질적인 재물만을 위해 일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옥을 쌓아 올리고 있다. 삶에 보람을 주는 아무것도 살수 없는 재물과 같은 돈을 안고 우리 자신을 고독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내 추억 속에서 오래 남을 기쁜 맛을 남겨 준 사람들을 찾아보거나 보람 있는 시간들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본다면 내가 되찾는 것은 어김없이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메르모즈 같은 친구의 우정이나, 함께 시련을 겪음으로써 영원히 맺어진 어느 동료의 우정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 야간비행의 밤과, 그 천만 개의 별들, 그 고즈넉함, 그 몇 시간 동안의 절대력, 이런 것들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다.
어려운 비행을 한 후의 세계의 새로운 모습, 저 나무들, 저 꽃들, 저 여인들, 저 미소들, 새벽녘에야 우리에게 돌아온 생명에 의해 싱싱하게 채색된 우리의 노고에 보답하는 이 하찮은 것들의 콘서트, 이런 것들을 돈으로는 살 수 없다. 그리고 그 때의 추억이 지금 생각나는, 돌아올 수 없는 지대에서 겪은 그 하룻밤도 또한 그런 것이다.
우리는 해질 무렵에 리오 데 오로 해안에 불시착한 우편 항공회사 소속의 3조의 승무원들이었다. 동료 리겔이 맨 먼저 크랭크 고장으로 착륙했다. 다른 동료인 부르가가 그 승무원들을 태우려고 착륙했다가 대수롭지 않은 고장으로 그까지도 땅에 붙들리고 말았다. 끝으로 내가 착륙했었는데, 내가 참여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부르가의 비행기를 구해 내기로 작정하고, 완전한 수리를 위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1년 전에, 바로 이곳에 불시착한 우리의 동료, 구르와 에라블이 불귀순민들에게 학살당했었다. 우리는 지금도 소총 3백정을 가진 모르인 도둑들이 보자도르 부근 어딘가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았을 우리들의 3번의 착륙이 그들에게 경비 태세를 취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 밤샘을 시작했다.
우리는 밤을 지샐 준비를 했다. 화물 실에서 대여섯 개의 상품 궤짝을 끌어내어 속을 비우고 둥그렇게 늘어놓고 하나하나의 궤짝 안에는 병사들이 보초막 구덩이에다 그렇듯이 바람에 가물거리는 빈약한 촛불을 켜 놓았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지구의 벌거벗은 껍질 위에 천지창조 때와 같은 고독 속에 인간의 마을을 세운 것이다.
우리들 마을의 이 큰 광장 위의 빈 궤짝들이 떠는 불빛을 흘리고 있는 사막 한 조각 위에 밤새껏 모여 앉아 우리는 기다렸다. 우리를 구원해줄 새벽을, 혹은 모르인의 공격을... 그런데 그 무엇이 그 밤에 크리스마스와도 같은 흥취를 주었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서로 추억을 이야기했고, 농담을 주고받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잘 차려진 축제의 한창 때와도 같은 가벼운 흥분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한히 가난했다. 바람과, 모래와, 별들. 그것은 마치 트라피스트 수도사에게나 알맞은 엄한 생활양식이었다. 그런데도 이 어두컴컴한 모래의 식탁보 위에서 자기들의 추억 말고는 이 세상에서 이미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예닐곱 명의 사내들은 보이지 않는 보화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우리들은 마침내 만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침묵 속에 갇힌 채 오랫동안 나란히 걸어가거나 또는 아무 감동도 옮기지 않는 말들을 교환한다. 그러나 위험에 부닥치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그들은 한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발견함으로써 사람은 자신을 넓혀간다. 사람들은 큰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때 사람은 바다의 드넓음에 경탄하는 해방된 죄수와도 같다.
2)
기요메, 나는 자네에 관해서 몇 마디 해야겠네. 그러나 안심하게. 자네의 용기라든가, 자네의 직업상의 가치에 대하여 미련하게 강조해서 자네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자네의 그 많은 모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를 이야기함으로써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일세.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지 알 수 없는 미덕이 있다. 그것은 "의젓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말도 흡족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미덕은 더없이 맑은 쾌활함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무토막 앞에 대등한 기분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만져 보고, 치수를 재고, 경솔하게 다루지 않고, 자기의 온 정성을 집중시키는 목수의 미덕 바로 그것이다.
기요메, 나는 언젠가 자네의 모험을 찬양한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후 나는 이 부정확한 "아마쥬"를 시정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네. 그 글 속에서 "건달패"같은 재담을 해대면서 마치 용기라는 것이 급박한 위험 속에서나 죽음의 순간에 처해서 중학생들이나 할 농담을 하는 비굴함에 있는 것 같은 자네를 볼 수 있었네. 그것은 자네를 이해하지 못한 말이네. 기요메, 자네는 적과 대결하기 전에 상대를 조롱할 필요를 느낄 남자는 아니네. 몹쓸 폭풍우에 부닥치면 자네는 판단할 걸세.
"이건 몹쓸 폭풍우로군."
자네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재어 볼 걸세. 기요메, 나는 내 추억의 증인으로서 자네를 여기에 끌어 왔네.
겨울에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던 중에 자네는 50시간이나 행방불명이 되었었네. 빠따고니아의 오지로부터 돌아오던 나는 멘도사에서 조종사 들레이와 합류했네. 우리 두 사람은 닷새 동안을 각기 비행기로 그 산더미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네. 우리 두 비행기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네. 백 개의 비행 편대가 백 년 동안을 날아다닌다 해도 7천 미터에 달하는 고봉을 포함하는 이 거대한 산악 덩어리를 모두 탐색할 수는 없으리라고 말이네.
우리는 모든 희망을 잃었네. 그 나라의 밀수업자들, 평소에는 단돈 5프랑을 위해서도 범죄를 청부받는 산적들까지도 구조대에 끼어 그 산악 부벽 위에서 모험하기를 거절했네. "거기선 목숨이 위험하니까."라고 그들은 말했네.
"안데스 산은 겨울에는 사람을 돌려 보내주지 않는 걸요" 들레이와 내가 산티아고에 착륙했을 때 칠레의 장교들도 역시 수색을 중지하라고 충고했네.
"지금은 겨울이오. 당신의 동료가 설령 추락할 때 살아 있었더라도 밤의 추위는 견뎌내지 못했을 거요. 저 위에선 밤이 사람을 스쳐가기만 해도 얼음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니까요."
어쨌거나 내가 다시 안데스의 거대한 절벽과 기둥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사실 나는 자네를 찾는다기보다는 눈의 대성당 안에 말없이 누워 있는 자네 시체를 지키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네. 마침내 이레째 되던 날, 비행을 마치고 다음 비행을 기다리는 사이 멘도사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네. 한 사나이가 문을 밀고 소리쳤네. 그것은 짤막한 말이었네.
"기요메가.... 살아 있어!"
그러자 거기 있던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았다.
10분 후, 나는 르페브르와 아브르의 두 기관사를 태우고 이륙하고 있었네. 40분 후, 나는 어떻게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모르지만, 쌍 라파엘 쪽으로 어디인지 자네를 싣고 가는 자동차를 알아보고는 어느 길가에 착륙했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해후였네. 우리는 모두 울었네. 그리고 자네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네. 살아 있는, 부활한, 자신의 기적을 만든 자네를 말이네.
그때 자네는 말했네. 그것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네의 첫 마디 말이었고, 또 찬탄할 만한 인간의 긍지이기도 했네. "내가 한 일은, 자네에게 맹세하네만, 어떤 짐승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
그 후, 자네는 우리에게 조난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네. 48시간 동안 5 미터 두께의 눈을 안데스 산맥의 칠레 쪽 산허리에 퍼부었던 폭풍이 온 천지를 가로막았고, "팬 에어" 회사의 미국 조종사들은 되돌아갔다. 그런데도 자네는 하늘의 찢긴 틈을 찾아 이륙했다. 자네는 약간 남쪽에서 그 함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6천 5백 미터 내외로 고도를 유지하고, 다만 높은 봉우리들만이 솟아올라 있는 6천 미터 높이의 구름들을 굽어보며 아르헨티나로 기수를 돌렸다. 하강기류는 가끔 조종사들에게 묘한 불쾌감을 주는 수가 있다. 엔진은 이상 없이 도는데 비행기는 하강한다. 고도를 유지하려고 급상승한다. 그러면 비행기는 속력을 잃고 흐느적거린다. 기체는 자꾸만 하강을 계속한다. 이번에는 너무 급상승시켰나 싶어서 손을 늦춘다. 도약대처럼 바람을 받아줄 적당한 봉우리에 숨어보려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비행기를 표류시켜 보았으나 하강은 계속된다.
하늘 전체가 꺼져 내리는 것만 같다. 이런 때 사람들은 우주의 대 이변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피난할 곳도 없다. 공기가 단단하게 차 있어서 기둥처럼 기체를 받쳐 줄 지대로 되돌아가려고 뒤로 반 회전해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기둥은 이미 아무 데도 없다. 모든 것이 분해되고 사람은 우주의 붕괴 속으로 뭉게뭉게 그가 있는 데까지 피어올라와 마침내 그를 삼켜 버리는 구름 쪽으로 미끄러져 간다.
"나는 이미 꼼짝 못하게 되어버렸어. 그러나 난 아직 단념하지 않았네."
자네는 말했었지.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름 위에서도 하강기류를 만나는 때가 있는데, 그건 구름이 같은 높이에서 끊임없이 자꾸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말 고산 위에서는 모든 것이 이상야릇하거든...."
그리고 그 구름들이라니!
"구름에 붙잡히자마자 나는 조종간을 놔 버릴 수밖에 없었네. 기체 밖으로 팽개쳐지지 않으려고 의자를 꼭 움켜잡아야만 했거든. 충격이 어찌나 심했던지 안전벨트가 어깨에 파고들어 당장 끊어져 나갈 것 같았네. 게다가 성에가 심하게 끼어 계기의 수평을 전혀 알아볼 수 없어서 나는 6천, 3천, 5백 미터로 모자처럼 굴러 떨어졌네."
"3천 5백 미터에서 나는 수평으로 펼쳐진 어떤 검은 덩어리를 언뜻 보았네. 그래서 나는 비행기를 다시 수평으로 세울 수가 있었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 호수였네. 나는 그것이 깔때기 모양을 한 산골짜기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깔때기 벽의 한쪽이 마이쀼 화산인데, 6천 9백 미터나 솟아 있거든. 겨우 구름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빽빽한 눈보라의 소용돌이 때문에 앞이 안보였네. 그래서 이 깔때기의 한쪽 옆구리를 들이받지 않고는 호수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호수 둘레를 30미터의 높이로 가솔린이 다 떨어질 때까지 빙빙 돌았네. 2시간 동안을 탑돌이를 한 뒤에 나는 내려앉다가 뒤집혀 버렸네. 기체에서 기어 나오자 태풍이 나를 쓰러뜨려 버렸네. 나는 다시 일어섰지. 그러나 태풍은 또다시 나를 자빠뜨렸네. 하는 수 없이 기체 밑으로 기어 들어가 눈 속에 구멍을 파는 수밖에 없었네. 거기서 나는 우편 행낭을 둘러쓰고 48시간을 기다렸던 거네. 그런 후에 태풍이 가라앉자 나는 걷기 시작했네. 나는 닷새 나흘 밤을 걸었네."
그런데 기요메, 자네의 무엇이 남았단 말인가? 우리는 자네를 다시 찾아내기는 했지만 자네는 새까맣게 타고, 빳빳해지고, 노파처럼 오그라들어 있었는데! 그날 저녁, 나는 바로 자네를 비행기에 싣고 멘도사로 데려갔네. 그곳에서는 하얀 시트가 향유처럼 자네 위에 흘렀네. 그러나 그것들이 자네를 낫게 하지는 못했네. 자네는 그 지쳐버린 몸을 어찌할 바를 몰라 잠 속에 빠지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했네.
자네의 몸은 바위들도 눈들도 잊지를 못했네. 그것들이 자네 몸에 낙인을 찍어 놓았던 것이네. 나는 얻어맞고 물크러진 과일처럼 부어오른 자네의 시커먼 얼굴을 지켜보았네.
자네 일에 쓰이는 그 훌륭한 연장의 사용을 잃어버린 자네는 몹시 추하고 비참했네. 자네 손은 마비된 채로 였고, 숨을 쉬기 위해 침대 가에 앉아 있을 때면 동상 걸린 다리가 두 개의 죽은 시계추처럼 축 늘어져 있었네.
자네는 아직도 자네의 고난의 여행을 끝내지 못하고,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네. 그리고 안식을 찾아 베개 위에 몸을 누이기가 무섭게 억누르지 못한 환영의 행렬이, 무대 위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행렬이 자네 두 개골 밑에서 당장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네. 그 행렬은 행진을 계속했고 자네는 그 잿더미 속에서 되살아나는 적에 대항하여 스무 번이나 싸움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네.
나는 자네를 위해 다시 탕약을 따랐네.
"마시게! 이 친구야."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자네도... 알겠지만...."
이기기는 했지만 심한 타격으로 멍든 권투선수같은 자네는 자네의 기이한 모험을 재현하는 것이었네. 그리고 자네는 조금씩 거기서 벗어나고 있었네.
나는 자네의 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네의 모습을 역력히 보았네. 자네가 알펜스토크(등산 지팡이)도, 로우프도, 식량도 없이 걷고 있는 모습을 4천 5백 미터의 높은 고개를 넘어, 또는 절벽을 따라 영하 40도의 혹한 속을 발과, 무릎과,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 기어 걸어가는 모습을 차츰 온몸의 피를, 힘을,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자네는 개미 같은 끈기로써 전진했네. 장애물을 돌아가기 위해 가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났고, 절벽으로 가로막힌 비탈도 올라갔네.
사실 미끄러졌을 때는 돌덩이로 변해버리지 않기 위해 재빨리 일어나야만 했네. 추위는 시시각각으로 자네를 돌로 만들었고, 굴러 넘어진 다음 단 1분간이라도 더 쉬려다가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죽은 근육을 움직이게 해야만 했네.
자네는 온갖 유혹에도 견뎌냈네. 자네는 이렇게 말했지.
"눈 속에서는 자기 보존의 본능이 모두 없어져 버리네. 이틀, 사흘, 나흘을 걷기만 하니까 자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어진단 말일세. 나도 그랬어. 그러나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네."
"내 아내가 만약 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걷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을 거다. 동료들도 내가 걷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모두들 나를 믿고 있다. 그런데 내가 걸어가지 않는다면 나는 못난 놈이다 라고 말일세."
그래서 자네는 줄곧 걸었네. 그리고 나이프 끝으로 날마다 조금씩 더 구두의 운두를 잘라 내어 동상으로 부은 발이 들어가도록 했네.
자네는 또 이런 이상한 고백을 들려주었지.
"이틀째부터 내 가장 큰 일이 뭐였는지 알겠나? 자신에게 생각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네.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또 내 처지가 너무나 절망적이었네. 걸어갈 용기를 가지려면 이런 상태를 생각하지 말아야 했네. 그런데 곤란하게도 머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았어. 그놈은 마치 터빈처럼 돌아가는 거야. 다만 나는 대상물을 골라 줄 수는 있었네. 나는 내 머리를 전에 본 책이나 영화에 집중시켰네. 그러면 그 영화나 책이 내 머리 속을 줄달음쳐서 지나갔네. 그리고는 이내 그것이 나를 또다시 지금의 처지로 되끌고 오는 걸세, 어김없이, 그러면 나는 또 머리를 다른 추억으로 돌리곤 했네."
그런데 한 번은 미끄러져서 눈 속에 배를 깔고 엎어졌을 때. 자네는 일어나기를 단념해 버렸네. 자네는 마치 결정적인 일격을 받고 모든 정열을 상실한 권투 선수가, 아득한 세계 속에서 1초 1초가 마지막 10초째까지 떨어지는 것을 듣고 있는 것과도 흡사했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희망은 전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고통을 계속하려는 걸까?"
이 세상에서 평화를 얻으려면 자네는 눈만 감으면 되었네. 이 세상에서 바위와, 얼음덩이와, 눈들을 지워 없애려면 말이네. 이 기적과도 같은 눈꺼풀을 감기만 하면 타격도, 전락도, 찢겨진 근육도, 타는 듯한 동상도, 황소처럼 끌고 가야 할 짐수레보다도 무거운 삶의 짐도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이미 자네는 독약으로 바뀐 추위, 이제는 모르핀처럼 자네를 큰 행복으로 채워주는 그 추위를 맛보고 있었네. 자네의 생명은 심장 둘레로 피난하고 있었네. 달콤하고도 귀중한 그 무엇이 자네 자신의 한가운데에 도사리고 있었네. 자네의 의식이 이제까지 고통으로 가득한 짐승 같았던 자네 육체의 먼 부분을 차츰 버려갔고, 벌써 대리석과도 같은 무관심을 물려받고 있었네.
자네의 걱정마저도 가라앉았네. 이제는 우리가 부르는 소리도 자네에겐 이르지 못했고, 더 정확히 말해서 자네에겐 그것이 꿈속에서 부르는 소리로 바뀌고 있었네. 자네는 행복한 기분으로 꿈속을 걸으며 그에 응답했네. 평야를 걸어가는 즐거움을 쉽사리 자네에게 갖다 주는 편하고도 큰 걸음걸이로.
자네는 자네를 위해 그렇게도 다정해진 세계 속으로 얼마나 기분 좋게 미끄러져 갔던가! 기요메, 자네는 인색하게도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거부하기로 결심했었네.
뉘우침이 자네의 양심 밑바닥으로부터 왔네. 꿈속에 갑자기 명확한 현실의 일들이 섞여 들었던 것이네.
"나는 아내를 생각했네. 내 보험증서가 아내를 궁핍에서 구해 주겠지. 그러나 보험이란...."
실종인 경우, 법률상의 사망은 4년 후로 연기된다. 이 생각이 다른 영상들을 지워 없애고, 또렷하게 자네 마음속에 나타났네. 그런데 그때 자네는 급경사진 눈 비탈에 배를 깔고 엎어져 있었네. 자네 몸뚱이는 여름이 되면 이 흙탕물에 섞여 안데스의 수많은 늪 중의 하나로 굴러 들어갈 것이다. 자네는 그것을 알았네. 그러나 자네는 또한 50미터 앞에 바위 하나가 솟아나 있다는 것도 알았네.
"나는 생각했네. 내가 다시 일어만 난다면 저기까지는 갈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내 몸을 저 바위에 기대 두면 여름에 날 찾아 낼 수 있을 거다."
한번 일어서자 자네는 이틀 밤 사흘 낮을 걸었네.
그러자 자네는 멀리 갈 생각은 하지 않았네.
"나는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걸 여러 가지 징조로 알았네. 그 중의 하나는 이런 거였네. 나는 대략 2시간마다 구두 운두를 더 잘라 내거나, 부어 오는 발을 눈으로 문지르거나, 또는 다만 심장을 쉬게 하기 위해 멈춰서야만 했네. 그런데 마지막 며칠이 되자 기억력이 없어지더군. 다시 걷기 시작해서 꽤 시간이 지나서야 머리속에 퍼뜩 생각나는 걸세. 나는 번번이 무엇인가를 잊곤 했네. 첫 번은 장갑 한 짝이었는데, 그 혹한에 그건 중대한 일이었지! 나는 그것을 내 앞에 벗어 놓았다가 집지 않고 그대로 떠났던 거네. 다음은 시계였어. 다음은 나이프, 또 다음은 나침반, 쉴 때마다 나는 가난해져 갔네.
살아날 길은 한 걸음을 내디디는 것뿐이었네. 또한 걸음, 언제나 같은 한 걸음을 다시 내디디는 거였네...."
"내가 한 일은, 맹세하네만, 어떤 짐승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네."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고귀한 이말, 인간을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에 앉히고, 그를 영예롭게 하고, 진정한 계급을 결정해 주는 이 말이 내 기억에 되살아난다.
자네는 마침내 잠들었다. 자네의 의식은 이미 없어 져 버렸지만 이 상처입고, 구겨지고, 타버린 육체로부터 잠이 깸과 더불어 되살아나서 다시금 이 육체를 지배하려 하는 것이다.
이때 육체는 하나의 정교한 도구, 하나의 좋은 하인일 뿐이다. 이 정교한 도구에 대한 자랑을, 기요메, 자네는 이렇게 표현했네.
"먹지도 못한 채 사흘이나 걷고 나니... 심장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리라는 건 자네도 짐작이 가겠지. 그런데 말일세! 깎아지른 듯한 비탈에서 허공에 매달려서 손잡이가 될 구멍을 눈 속에 파내면서 더듬어 가는 그때 심장이 뛰질 않는 걸세. 멈칫멈칫하더니 다시 뛰겠지. 고르지가 않은 거야. 1초만 더 심장이 멈칫거려도 나는 손을 놔버릴 것만 같았어. 나는 꼼짝도 않고 내 가슴 속에 귀를 기울였네. 자네, 알겠나? 나는 일찍이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도 그 몇 분 동안 내 심장에 매달리듯이 그만큼 바싹 엔진에 매달려 본 적이 없었네.
내가 자네를 밤새워 간호하던 멘도사의 그 병실에서 자네는 마침내 숨이 찬 잠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면 기요메는 어깨를 흠칫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겸손을 찬양하는 것도 또한 그를 배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이런 평범한 미덕을 훨씬 넘어서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용기를 찬양 받고 그가 어깨를 흠칫한 것은 그의 총명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다. 사람이란 일단 사건 속에 휘말려 들면 더 이상 겁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오직 미지의 것만이 사람들을 겁나게 한다. 그러나 그것도 누구든 그것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미지의 것이 아니다. 하물며 이렇게도 총명한 신중함으로 그것을 관찰하는 때는 더욱 그렇다 기요메의 용기는 무엇보다도 그의 곧은 성격의 결과인 것이다.
그의 참된 미덕은 여기에 있지 않다. 그의 위대함은 자기의 책임을 느끼는데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우편물에 대한, 또 기다리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 그는 그의 손안에 그들의 슬픔도 기쁨도 쥐고 있다. 저기 살아있는 인간들 속에 새로이 건설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책임, 그것에 참여해야만 한다. 자기 직무의 범위 내에서 인간의 운명의 일부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도 또한 자기의 잎사귀들로 드넓은 지평선을 뒤덮는 역할을 맡은 위인들 중에 끼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빈곤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다. 또 그것은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으로 아는 일이다. 또 자기의 돌을 갖다 놓으면서 세계의 건설에 가담한다고 느끼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사람들을 투우사나 도박꾼들과 혼동하려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긴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비웃는다. 그 죽음이 맡은바 책임감에 뿌리박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은 빈약함의 표시이거나 젊음의 과잉일 뿐이다.
나는 자살한 어떤 젊은이를 알고 있다. 어떤 사랑의 괴로움이 그로 하여금 조심스럽게 자기 심장에 총알을 쏘아 박히게 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문학적인 유혹에 빠져 그 손에 흰 장갑을 끼었는지 모른다. 다만 내게 생각나는 것은 이 애처로운 광경 앞에서 숭고하다기보다는 천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그렇게도 사랑스러운 얼굴 뒤에 그 사람의 두개골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다른 소녀들과 똑같이 어리석은 한 소녀의 모습밖에는.
이 초라한 운명 앞에서 나는 인간의 참다운 죽음의 하나를 기억해냈다. 내게 이렇게 말하던 한 정원사의 죽음을.
"아시겠지만... 땅을 파면 때때로 땀을 흘리죠 신경통으로 다리가 땅기거나 하면, 나도 이 종살이 같은 일을 저주도 했습죠 그런데 지금은요, 땅을 파고, 또 파고 싶기만 하거든요. 땅을 판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땅을 파고 있으면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걸입쇼! 또, 내가 안하면 누가 이 나무들을 손질해 주겠어요?"
그는 갈아야 할 땅을 남기고 갔다. 갈아야 할 지구를 남기고 간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써 모든 땅과 땅 위의 모든 나무들과 맺어져 있는 것이다.
그이야말로 관대한 사람이며, 멋있는 낭비자이며, 위대한 영토의 주인이었다!
그이야말로 자기의 '창조'를 위해서 죽음과 겨루어 싸웠던 때, 기요메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3. 비행기
기요메, 자네가 일하는 낮과 밤이 설사 압력계를 점검하고 자이로스코우프로 기체의 평형을 유지하고, 엔진의 숨결을 청진하고, 15톤의 금속을 어깨로 떠받치는 일로 흘러간다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자네에게 부과된 문제들은 결국 인간의 문제이며, 그래서 자네는 단번에 시골사람의 그 고귀함과 쉽사리 맺어지는 것이다. 시인과도 같이 자네는 새벽의 예고를 즐길 줄도 안다. 고난의 밤의 심연 속에서 자네는 그 몇 번이나 저 창백한 꽃다발, 캄캄한 땅을 동녘에서 솟아오르는 저 광명이 나타나기를 희원했던가. 이 기적의 샘이 때로는 자네 앞에서 천천히 해빙하여 자네가 죽는 물로 체념했을 때 자네를 고쳐주곤 했다.
정교한 기계의 사용이 자네를 무미건조한 기술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급속한 기술의 발달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물질적인 재물만을 바라고 싸우는 사람은 누구나 삶에 보람이 있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다. 쟁기와 같은 하나의 연장이다.
기계가 인간을 해친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당한 것과 그렇게 급속한 변화의 결과를 비판하는데 필요한 시간적인 거리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 역사의 20만 년에 비한다면 기계의 역사의 1백 년 따위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 겨우 이 광산이나 발전소의 풍경 속에 겨우 자리 잡은 셈이다. 우리는 채 다 짓지도 못한 새집에 살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 주위에서 인간관계도, 노동 조건도, 풍속 습관도 모두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했다. 우리들의 심리조차도 가장 밑바탕으로부터 혼란되어 버렸다. 이별이니, 부재니, 거리니, 귀환이니 하는 개념의 말은 똑같아도 이미 같은 현실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오늘날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있어 우리는 어제의 세계를 위해 만들어졌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의 생활이 우리들의 본성에 부합되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들의 언어에 더 부합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진보의 하나하나가 간신히 우리가 체득해 가던 습관 밖으로 우리를 더욱더 멀리 쫓아내버렸고, 그리하여 우리는 고국을 떠나 아직 자기의 조국을 세우지 못한 이민들과도 같다.
우리는 모두가 아직 새 장난감에 감탄하고 있는 젊은 야만인들이다. 우리들의 비행기 경주도 이것 이외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저것은 보다 높이 올라가고, 이것은 보다 빨리 날아갈 뿐이다. 왜 그것을 날게 하는지를 우리는 잊고 있다. 경주 그 자체가 우선은 그 목적보다도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식민지 군에게 있어 삶의 의의는 정복에 있다. 즉, 병사는 농부를 멸시한다. 그러나 이 정복의 목적은 이 농부들을 정착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이 진보의 열광 속에서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을 철도 부설이니, 공장 건설, 유정파기에 종사시켰다. 우리들은 이러한 건설이 사람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자칫 잊어버리기 쉽다. 정복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의 윤리, 도덕은 군인의 윤리.
도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식민을 해야 한다. 아직 모습을 갖추지 못한 이 새 집에 생명을 주어야 할 때다. 전자에 있어서의 진리는 집을 짓는 것이었고, 후자에 있어서는 거기 들어가 사는 데 있다.
우리들의 집은 아마도 조금씩 인간다워질 것이다. 기계조차도 완성되어 갈수록 그 역할이 주가 되고, 기계 자체는 몸을 감추게 된다.
인간의 온갖 생산적 노력, 그 모든 계산이며, 설계도 위에서의 모든 밤샘도 외면적인 현상으로는 모두가 단순화로 귀착되는 것 같다. 하나의 원주라든가, 하나의 용골, 또는 한 대의 비행기의 동체의 곡선을 차츰 풀어내어 여자의 유방이나 어깨의 곡선의 그 단순한 순수성을 갖게 하기까지에는 여러 세대의 경험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기사들이나, 제도사들, 연구실의 계산원들의 일도 외견상으로는 그 날개가 잘 눈에 띄지 않게 될 때까지, 동체에 붙인 날개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될 때까지 닦고 문지르고 연결을 가볍게 하고 날개의 균형을 잡고 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광물을 지니고 있는 암석으로부터 분리되어 완전히 활짝 핀 그 형태가 신비롭게도 결합된, 그러면서도 시와 같은 훌륭한 질을 갖춘 천성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완성이란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아무것도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다. 발달의 극치에 다다르면 기계는 몸을 숨긴다.
발명의 완성은 이와 같이 발명이 없는 것과 종이 한 겹 사이이다. 그리고 기계에 있어서도 눈에 띄는 장식은 점점 사라지고 바닷물에 닦여진 조약돌처럼 자연스러운 물건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가 사용되면서 차츰 제 자신을 잊혀지게 된다는 것도 또한 찬양할 만한 일이다.
전에 우리는 비행기에서 복잡한 공장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엔진이 돌아간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 우리가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심장이 뛰는 것처럼, 엔진도 마침내 돌아간다는 자기의 기능을 다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주의력을 도구에 빼앗길 필요는 없게 됐다. 도구 너머로, 도구를 거쳐서 우리가 찾아내는 것은 자연, 정원사의, 항해자의, 또는 시인의 그 자연이다.
조종사는 날기 시작하자마자 물과 공기와 접촉하게 된다. 엔진이 전개되고, 기체가 벌써 바다를 가르며 단단한 파도소리를 억누르고 징처럼 울릴 때, 그는 자기의 허리의 동요로써 그것을 알 수가 있다. 그는 느낀다. 이 15톤의 물질 속에 비상을 가능케 하는 그 성숙이 준비되고 있음을.
조종사는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러면 차츰 그의 손바닥 안에 이 힘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조종간의 금속성 기관은, 이 선물이 그에게 주어짐에 따라 그의 힘의 전달자가 된다.
이 힘이 무르익으면 꽃을 따기보다도 더 부드러운 동작으로 조종사는 비행기를 물에서 떼어서 대기 속에 얹어놓는 것이다.
4. 비행기와 지구
1)
비행기도 틀림없이 하나의 기계지만 그러나 얼마나 놀라운 분석의 기구인가! 이 기구는 우리에게 땅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
길이란 사실, 여러 세기 동안 우리를 속여 왔다. 우리는 자기의 백성을 찾아보고 그들이 자기의 통치에 만족하고 있는가를 알고자 했다는 저 옛이야기 속의 여왕과 비슷하다.
그의 신하들은 여왕을 속이려고 행차하는 길에 훌륭한 장식을 세우고 사람을 사서 춤을 추게 했다. 여왕은 그 가느다란 길밖에 자기 나라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넓은 들판에서 굶어 죽는 백성들이 자기를 저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오랫동안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걸어왔다. 길은 불모의 땅이나, 바위나 사막을 피해서 인간의 욕망에 따라 샘에서 샘으로 간다. 길은 농부들을 곡간에서 밀밭으로 이끌어가고, 외양간 문턱에서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가축을 받아다가 새벽빛 속의 개자리 밭에 풀어 놓는다. 길은 이 마을을 저 마을과 결합시킨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저기로 결혼하니까. 그리고 길 중의 하나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아시스를 즐기기 위해 수십 번을 우회한다.
이렇게 달콤한 거짓말과도 같은 길의 굴곡 하나하나에 속아서 여행하는 동안 잘 관개된 많은 땅과, 과수원과, 목장들을 보아 온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감옥의 모습을 아름답게 생각해 왔다. 이 지구를 우리는 기름지고 부드러운 것으로만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시력은 예민해졌고, 우리는 무자비할 만큼 발전을 했다. 비행기로 우리는 직선을 배웠다. 이륙하자마자 우리는 물 먹이는 곳이나 외양간으로 기울어지는 길들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구부러져가는 길들을 버린다. 이때부터 정든 굴종에서 벗어나고 샘에 대한 욕망에서 해방되어 우리는 먼 목표를 향해 기수를 돌린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직선탄도의 높이에서 본질적인 바탕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위와 모래와 소금의 집적이며, 그곳에는 가끔 생명이 폐허의 구덩이에 돋아난 한줌의 이끼처럼 여기저기에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골짜기 속을 미화하고, 때로는 기적적으로 기후의 혜택을 받는 꽃밭처럼 피어나 있는 이 문명을 조사하면서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로 바뀐다. 과학자가 실험기구를 통해 보듯이 비행기 창을 통해 인간을 관찰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읽고 있는 것이다.
2)
마젤란 해협을 향하는 조종사는 갈레고스강의 조금 남쪽에서 오래된 용암 분출구 위를 나아가게 된다. 이 잔해는 20미터 두께로 평야를 짓누르고 있다.
이어서 그는 둘째 분출구, 셋째 분출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땅이 솟아오른 곳마다, 2백 미터쯤의 젖꼭지 같은 야산 하나마다 모두 옆구리에 분화구 흔적을 가지고 있다. 거만한 베스비어스 산과는 달리 이것은 들판 위에 늘어선 유탄 포의 포구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요함을 되찾았다. 지금은 변해버린 풍경 속에서, 수천 개의 화산들이 서로 호응하듯 불을 뿜으면서 지하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울려대던 당시의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정적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제 사람들은 검은 빙하로 장식된, 영원히 잠잠해진 땅위를 비행한다.
그러나 더 멀리 더 오래 된 화산들은 벌써 황금빛 잔디를 입고 있다. 가끔 그 우묵하게 파인 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낡은 화분 속의 꽃처럼 자라고 있다. 황혼 빛 속에서 평야가 짧은 풀로 꾸며져 공원처럼 사치스러워지고, 이제는 그 거대한 둘레에서나 겨우 불거질 뿐이다.
산토끼 한 마리가 뛰어 가고,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이 별 위에, 좋은 흙 반죽이 쌓인 새로운 지표를 마침내 생명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뿐따 아레나스 조금 못미친 곳에 마지막 분화구들이 솟아올라 있다. 편편한 잔디밭이 화산들의 기복을 따라 펼쳐져 있다. 이제는 그 화산들도 평온하기만 하다. 갈라진 곳마다 잔디의 부드러운 아마실로 꿰매져 있다. 지면은 편편하고, 경사는 완만하여 사람들은 그 화산으로서의 기원을 잊어버린다. 이 잔디밭이 구릉 옆구리의 어두운 상혼을 지워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앞쪽의 세계 최남단의 도시 뿐따 아레나스 원시의 용암과 남극의 빙하 사이에서 우연히 약간의 진흙에 의지해서 이 도시는 존재한다. 시커먼 분출구에서 그리도 가까운 곳이어서, 사람들은 한층 더 인간의 기적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이상한 만남인가! 어떻게, 또 왜 인간이라는 길손들이 아주 짧은 시간밖에는 살 수 없는 이 가식의 정원을 하나의 지질학적 시대, 하고 많은 날 중에서 축복 받은 이 하루에 찾아오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저녁의 아늑함 속에 착륙했다.
뿐따 아레나스여! 나는 샘물 가에 기대서서 소녀들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두어 걸음 앞에 서서 나는 인간의 신비를 더욱 느낀다.
생명이 생명과 그렇게도 쉽게 결합되고, 바람의 침대 속에서도 꽃들은 꽃들과 섞이며, 한 마리의 백조는 다른 모든 백조와 알게 되는 이 세상에서 홀로 인간들만이 그들의 고독을 쌓고 있다.
얼마나 커다란 공간이 그들 사이의 마음의 통로를 가로막는 것을, 어떻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눈을 내리뜨고 혼자 미소 지으며 이미 귀여운 교태와 거짓을 품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 소녀에 대해서 누가 무엇을 알 수 있으랴?
그녀는 한 애인의 생각과, 목소리와, 침묵으로써 하나의 왕국을 이룩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그녀에게는 그 애인 말고는 모두가 야만인이었다. 나에게는 그녀가 어느 떠돌이별에 있는 것보다도 더 자기의 비밀과, 습관과, 자기 추억의 즐거운 메아리 속에 갇혀 있는 듯이 느껴졌다. 화산에서, 잔디밭에서, 또는 바다의 소금물에서 어제 막 태어난 이 소녀가 벌써 반은 신이 되어 있는 것이다. 뿐따 아레나스여!
나는 어느 샘물 가에 기대 서 있다. 노파들이 물을 길으러 온다. 그녀들의 일생의 비극에 대해서 나는 지금 그 하녀의 몸짓밖에는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 사내아이가 소리도 없이 울고 있다 그 아이에 대해서는 달랠 길 없는 한 예쁜 아이로밖에는 내 기억 속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방인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제국'에는 끝내 들어갈 수 없다.
얼마나 초라한 무대장치 속에서 인간의 원한과 우정과 기쁨의 거창한 연극이 상연되고 있는가? 아직도 식지 않은 용암 뒤에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 벌써 뒤에 덮쳐올 모래와 눈사태에 위협받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이 영원에 대한 동경을 어디서 찾아낸 것일까?
그들의 문명은 취약한 도금에 불과하다. 화산이, 새로운 바다가, 모래바람이 그것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고 보면.
뿐따 아레나스 시는 보오쓰(프랑스의 곡창 지방)의 땅처럼 속속들이 기름지게 느껴지는 진짜 땅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서도 다른 곳처럼 삶이란 사치이며, 인간의 발 밑에는 깊이 있는 땅은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뿐따 아레나스에서 10킬로미터 되는 곳에 이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는 늪이 있다는 것을, 왜소한 나무들과 나지막한 집들에 둘러싸인, 농가 앞마당의 웅덩이처럼 보잘것없는 그 늪은 이상스럽게도 밀물 썰물이 있다.
이 늪은 갈대와 뛰노는 아이들의 이렇듯 평화로운 현실에 감싸여 있으면서도 낮과 밤에 그 완만한 호흡을 계속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법칙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수면 아래, 꼼짝 않는 얼음 밀, 단 한 척의 낡은 조각배 밑에서 달의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의 소용돌이가 이 검은 덩어리 밑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소화 작용이, 풀과 꽃의 가벼운 이불 밑에서 이 호수 주위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백 미터도 못되는 이 물웅덩이는 사람들이 인간의 대지 위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믿고 있는 이 도시 문턱에서, 어찌 알랴, 바다의 맥박을 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하나의 떠돌이 별 위에 살고 있다. 이 별은 이따금 비행기의 덕분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근원을 보여준다. 달과 관계있는 웅덩이가 숨겨진 친척 관계를 드러내 보이듯이...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한 다른 징후도 알았다.
쥐비 끝 부분과 시스레로스 사이를 사하라 사막의 해안선을 따라 비행하고 있노라면 원추대 모양의 사구가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데 그 넓이는 백 보 정도에서부터 30킬로미터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이다.
그 높이는 놀라울 만큼 한결같이 3백 미터이다. 그런데 높이가 같을 뿐만 아니라 그 고원들은 어느 것이나 같은 색깔, 같은 흙의 결, 같은 절벽의 돌의 새김들을 보이고 있다. 모래 위에 홀로 솟아나와 있는 신전의 원주만으로도 붕괴되기 전의 식탁의 화려함을 보여주듯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이 모래 기둥들도 예전에는 하나로 되어 있었던 광대한 사구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카사블랑카와 다까르 간의 정기 항로를 개설하던 당시에는 기재가 취약해서 고장이니, 수색이니, 구출 작업이니 해서 우리는 종종 불귀순 지구에 착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모래란 놈은 속임꾼이다. 단단하리라고 믿었다가는 파묻혀 버린다. 아스팔트처럼 단단해 보이고, 발뒤꿈치 밑에서 굳은 소리를 내는 옛 염전 광만 하더라도, 가끔 바퀴 무게로 내려앉아 버린다. 그러면 흰 소금 껍질이 갈라지고 그 밑은 시커먼 늪지의 악취를 풍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 사구의 편편한 표면을 택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결코 함정을 숨겨두지는 않았으니까.
이런 보장은 알이 굵고 단단한 모래의 덕택이다. 그것은 자세히 보면 작은 조개껍데기들의 어마어마한 퇴적이었다. 그것들은 사구의 표면에서는 아직 제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만 능선을 따라 내려감에 따라 가루가 되어 엉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산기슭의 가장 오래된 퇴적층에서는 그것들은 이미 순수한 석회암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동료인 레느와 세르가 불귀순민들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있을 때, 모르인의 심부름꾼 한 사람을 내려놓기 위해 이 안전지대 하나에 착륙한 일이 있다. 나는 그를 그곳에 남겨 두고 떠나기에 앞서, 그가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있나 하고 그와 함께 찾아보았다. 그런데 우리의 이 높이 쌓은 대는 어느 쪽에서나 나사 모양과 같은 주름을 지으며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곳에서 빠져나오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착륙지를 찾아 이륙하기에 앞서 여기서 꽤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어쩌면 나는, 일찍이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 누구도 더럽힌 적이 없는 이 땅 위에 내 발자국을 남긴다는 어린애 같은 기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용감한 모르인의 불귀순민도 이 성과 요새를 공격할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유럽 사람도 일찍이 이 지역을 탐험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무한의 순결한 모래를 밟고 섰다. 나는 이 조개껍데기 가루를 귀중한 황금인양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흘려보내며 반짝이게 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이 정적을 깨뜨린 최초의 인간이었다. 태고 적부터 단 한 포기의 풀도 나게 한 적이 없는 이 북극의 빙산과도 같은 곳 위에서, 나는 바람에 불려 온 한 알의 씨앗처럼 생명의 최초의 증거였다.
별이 하나, 벌써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별을 골똘히 쳐다봤다. 나는 생각했다.
이 순백의 지면은 수천만 년째 오직 별들에게만 바쳐져 왔었다는 것을.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순결한 식탁보 그리고 이 식탁보 위, 내 앞에서 15내지 20미터쯤 되는 곳에 까만 조약돌 하나를 발견했을 때는 위대한 발견이라도 했을 때처럼 가슴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3백 미터 두께로 쌓인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었다. 이 거대한 지층 전체가 하나의 절대적인 증거인양 돌 하나라도 거기 있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구의 완만한 소화작용에서 생겨난 규석들이 어쩌면 저 땅속 깊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기적이 그들 중의 하나를 이다지도 새로운 지표 위까지 올려 놓게 했을까?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나의 발견물을 주워들었다. 단단하고 까맣고 주먹만 하고 금속처럼 무겁고, 눈물 모양을 한 이 조약돌을.
사과나무 밑에 펼쳐진 식탁보 위에는 사과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별 아래 펼쳐진 식탁보 위에는 별가루 밖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어떠한 운석도, 내가 주워든 이것만큼 명백하게 자기 근원을 보여준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쳐들며 극히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다. 이 하늘의 사과나무에서는 다른 사과들도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것들을 떨어진 그 자리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것들을 떨어진 그 자리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수십 만 년 이래 아무도 그것들을 흩뜨려 놓지 않았을 거니까. 또 그것들은 다른 물질들과 조금도 뒤섞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당장 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탐사에 나섰다. 내 가설은 실증되었다. 나는 대략 1헥타르에 돌 하나 꼴로 내 발견 물을 주워 모았다. 어느 것이나 응결된 용암의 그 형상, 언제나 까만 다이아몬드의 경도였다. 나는 이리하여 이 별의 우량계 위에 서서 수천만 년의 시간의 축도 속에서 이 느린 불의 소나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4)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지구의 둥그런 등 위에, 이 자기를 띤 식탁보와 별들 사이에 한 인간의 의식이 서 있어, 이 별의 비가 거울에 비치듯이 그의 인식에 비쳐 나왔다는 그것이다.
광물의 층 위에 한 꿈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보니 꿈 하나가 생각난다...
또 한 번은, 모래가 두껍게 쌓인 지방에 불시착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금빛 언덕들은 달빛에 그 밝은 쪽 경사면을 향하고 있었고, 어두운 쪽 경사면은 빛의 분계선까지 솟아올라 있었다. 그늘과 달빛의 이 적막한 선대위에는 작업이 끝난 뒤의 평화와 함정의 침묵이 군림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밤하늘의 연못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 별들의 연못을 향하여 어느 모래 산 위에 누워 있었으니까.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 심연과 나 사이에 붙잡을 나무뿌리 하나 없고, 지붕 하나 나뭇가지 하나 없기 때문에 나는 벌써 몸을 의지할 곳을 잃고 잠수부처럼 추락에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떨어지지는 않았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뒤꿈치까지 나는 땅에 붙들려 매어져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내 몸무게를 대지에 내맡기고 있는 데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인력이 나에게는 사랑처럼 지고의 힘으로 느껴졌다.
나는 대지가 내 허리를 받쳐 주고, 나를 지탱해 주고, 나를 들어올리고, 나를 밤의 공간 속으로 옮겨 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커브를 돌 때 마차에 착 달라붙게 하는 것과 같은 중력으로 내가 이 지구에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깨로 떠받쳐 주는 듯한 든든함과 안전감을 맛보았으며 내 등밑에 내가 탄 이 배의 휘어진 갑판을 느꼈다.
나는 내 몸이 실려가고 있다는 의식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에 설령 힘을 내려고 안간힘 하는 물질들의 한숨이나, 항구로 돌아오는 낡은 범선들의 신음소리, 역풍에 시달리는 작은 배들의 날카롭고 긴 외침소리 등이 땅 밑에서 들려 왔다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꺼운 대지 속에서는 침묵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량감은 내 어깨에 조화 있게 떠받쳐져 영원히 변함없을 것같이 느껴졌다. 나는 마치 죽은 조역형수의 시체가 추를 달고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듯이 분명히 이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사막 속에 홀로 떨어져 반도들의 습격에 위협받으면서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알몸으로, 내 생활의 중심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침묵에 의해 격리되어 있는 내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 중심에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거나, 모르인들이 내일이라도 나를 학살하지 않는다면, 여러 날과 주일과 달들을 허비해야 하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다만 숨을 쉰다는 흐뭇함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죽어야 할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에 꿈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꿈들은 샘물처럼 소리도 없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처음에 나는 나를 가득 채워주는 이 흐뭇함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거기에는 목소리도 모습도 없었지만 무언가 존재한다는 느낌, 아주 가까이 있어서 벌써 반쯤은 집착되는 우정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나는 눈을 감고 내 기억의 환희에 나를 내맡겼다.
그것은 어디인지 모르는, 검은 전나무와 보리수와 우거진 넓은 정원이었고,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낡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이 여기서 멀든 가깝든, 또 그 집이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든 없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다만 꿈의 역할을 해주고, 그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나의 하룻밤을 가득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미 모래벌판에 추락한 불쌍한 몸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알아차렸다. 나는 이 집 냄새의 추억이 가득 차 있는 그 현관의 서늘함이 가득 차 있는, 그 활기를 띠게 하던 목소리들이 가득 찬 이 집의 어린아이였다.
연못 속의 개구리 울음소리까지도 여기까지 나를 찾아왔다. 나 자신을 재확인하기 위해, 이 사막의 맛이 어떤 부재들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개구리조차 울지 않는 이 천고의 침묵으로 이루어진 침묵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내게는 이런 천 가지 부호가 필요한 것이다.
아니다. 나는 이미 모래와 별들 사이에 머물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이 배경으로부터는 차디찬 메시지밖에는 받지 못했다. 전에 내가 이런 배경으로부터는 얻었다고 믿었던 영원에 대한 동경도, 나는 이제 그 근원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 집의 화려하고 큰 장롱들을 눈앞에 떠올렸다. 그 장롱 문이 빠끔히 열려 있어서 눈 같이 흰 시트가 채곡채곡 개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문이 빠끔히 열리며 눈같이 찬 피륙들이 보였다. 늙은 가정부가 이 장에서 저 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노상 살펴보고 펼쳐 보고, 다시 개켜 놓고, 세탁한 속옷들을 다시 세어보곤 하면서 이 집의 영구성를 위협하는 어떤 불길함의 징조가 보일 때마다, '아이구 하느님, 이걸 어쩌나!' 하고 소리치면서 달려가 램프 불 밑에서 눈이 뻘개 가지고 그들 제단 보의 실올을 고치고, 돛대가 3개인 범선의 돛만큼이나 근 백포를, 자기보다도 큰 사람, 하느님이나 그의 배에라도 쓰려는지 열심히 꿰매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당신을 위해 한 페이지만 더 써야겠다. 내가 첫 번 비행에서 돌아왔을 때, 할멈이여,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났다. 비늘을 한손에 들고, 무릎까지 흰 천 더미 속에 파묻혀, 해마다 주름살이 더하고 백발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손은 우리들의 숙면을 위해서 구김살 없는 시트를, 수정 그릇과 빛의 축제 같은 우리들의 만찬을 위해서 솔기 없는 식탁보를 마련하고 있는 당신을.
나는 바느질 방으로 당신을 찾아가 당신 앞에 앉아서 당신을 감격시켜 주기 위해, 세상을 향해 당신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 당신을 놀려 주기 위해, 죽을 뻔했던 내 모험들을 들려주곤 했었다.
당신은 말했었지. 내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어릴 적부터 내가 곧잘 속옷에 구멍을 냈었다고...
"아이구! 이걸 어쩌나! 걸핏하면 무릎을 깼고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붕대를 감아달라고 했었다우. 마치 오늘밤처럼 말이야."
"아니야, 아니라니까, 할멈. 지금 내가 돌아온 것은 정원 안쪽에서가 아니라 세계의 끝에서야. 그래서 나는 고독의 쓰디쓴 냄새를, 뜨거운 모래의 회오리바람을, 열대지방의 번쩍이는 달을 데리고 온 거야!"
그러자 당신은 말하는 것이었다.
"아암, 사내애들은 뛰고 뼈를 부러뜨리고 하면서 자기가 아주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거라우."
"아니야, 아니라니까, 할멈. 나는 이 정원보다도 훨씬 먼 곳을 보고 왔단 말이야! 그 따윈 사막이나, 화강암이나, 처녀림이나, 큰 늪 가운데 갖다 놓으면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만 하면 대뜸 총부리를 겨눠대는 땅이 있다는 걸 할멈은 알아? 얼어붙은 밤에, 지붕도 없이, 침대도 없이, 이불도 없이 잠을 자는 사막이 있다는 것을 할멈, 알기나 해...."
그러자 당신은 소리쳤었지.
"어휴, 야만인!"
성당의 하녀의 신앙을 움직일 수 없듯이 나는 이 할멈의 신념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눈멀게 하고, 귀머거리로 만든 그의 미천한 운명을 가엾게 여겼다.
그러나 이 밤, 사하라의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벌거숭이로 내팽개쳐지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속에서 일어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처럼 많은 별들이 자기를 띠고 있건만, 이 중력이 나를 땅에 잡아매어 놓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중력이 나를 나 자신에게로 데려온다.
나는 그 많은 것들 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내 중력을 느낀다.
나의 꿈은 이 모래언덕보다도, 저 달보다도, 여기 있는 모든 존재들보다도 더 현실적이다.
아아! 집의 소중함은 그것이 우리들을 감싸 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또 그 벽을 갖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우리들 마음 속에 그리도 많은 포근함을 축적시켜 주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샘물처럼 꿈들이 태어나는 이 안 보이는 덩어리를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사하라, 나의 사하라여! 너는 이제 털실을 잣는 한 할멈 덕분에 아주 황홀해져 있구나!
5. 오아시스
나는 사막에 대해 이미 많이 이야기했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더 하기에 앞서 오아시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지금 그 모습이 내게 떠오르는 오아시스는 사하라 오지에 숨어 있다.
그런데 비행기의 또 하나의 기적은 당신을 신비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데려다 준다는 그것이다. 당신을 비행기 창을 통해 인간의 개미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다. 당신은 들판에 별 모양으로 벌어져서 동백처럼 논밭의 양분으로 갈리는, 길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그 도시들을 냉철한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계 위에서 바늘이 한 번 떨자 저 아래에 있는 저 푸른 수풀이 하나의 우주가 되어버린다. 당신은 잠들고 있는 정원 잔디밭의 포로가 된 것이다.
먼 곳을 재는 것은 거리가 아니다. 우리네 어떤 집 정원의 담이 중국의 만리장성보다도 더 많은 비밀을 둘러싸고 있을 수도 있으며, 한 소녀의 마음이 침묵에 의해서, 사하라의 오아시스가 모래의 두꺼운 켜로 숨겨지는 것보다 더 잘 감춰질 수 있다.
나는 세계 어느 곳에선가의 짧은 착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꽁꼬르디아 근처에서의 일이었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신비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들판에 착륙했었는데, 내가 동화의 나라를 체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나를 태우고 달리는 그 낡은 포오드 차도, 나를 태워준 그 온화한 부부도 아무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늘밤 우리 집에서 묵으시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를 돌아가자, 달빛 아래 숲이 하나, 그리고 숲 뒤에 그 집이 나타났다. 얼마나 이상한 집이었던지! 몽톡하고, 육중한 것이 마치 성과 요새 같았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이 전설의 성은 수도원처럼 평화롭고 안전하고 듬직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그때 두 처녀가 나타났다. 그녀들은 금단의 왕국 입구에 서 있는 두 재판관처럼 엄숙하게 나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나이 어린 쪽이 입을 뾰족 내밀더니 초록색 나무막대기로 땅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소개가 끝나자, 두 처녀는 이상하게 도전적인 태도로 말없이 내게 손을 내밀고는 사라졌다.
나는 재미있으면서도 매력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이 단순하고 조용하며, 마치 무슨 비밀의 첫 마디처럼 은밀했다.
"이거 참!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요!"
아버지가 간단히 말했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언젠가 파라과이의 수도에서, 포장해 논 돌의 틈바귀로 코끝을 내민 짓궂은 풀잎을 보고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 풀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처녀림의 척후병으로서, 인간들이 여전히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지, 이 돌들을 약간 뒤집어엎을 때가 되지 않았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큰 풍요함을 나타내주는 이런 황폐의 형태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이 집에 들어와서는 감탄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모든 것이 오랜 세월에 다소 금이 간 이끼 덮인 고목처럼, 또한 10세대 전부터 연인들이 앉곤 했던 나무 벤치처럼 아주 매력 있게 황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루 바닥은 닳아빠졌고, 문짝은 벌레가 파먹었고, 의자들은 건들거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수리는 않는 대신 청소는 깔끔히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했고 밀초로 닦여져서 윤이 났다.
그래서 살롱은 주름살 많은 노파의 얼굴처럼 이상하게 강직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벽의 균열과 천장의 틈새가 모두 나를 감탄하게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마룻바닥에 감탄했다. 여기는 꺼져 들어갔고, 저기는 배의 타랍처럼 출렁거렸지만, 그래도 잘 닦여지고 광을 내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이상한 집은 조금도 소홀히 했다거나, 게을리 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고, 이상스런 존경만을 자아내게 했다.
해마다 아마도 이 집의 매력에, 그 모습의 복잡성에, 그 친밀한 분위기의 열정에, 또 응접실에서 식당으로 건너가려면 겪어야 하는 여행의 위험에 새로운 그 무엇인가가 보태어져 왔음에 틀림없다.
"조심하십쇼!"
그것은 구멍이었다. 그 집 사람은 내게 주위를 환기시켰다. 보다시피 워낙 큰 구멍이어서 내가 다리 하나 부러뜨리기는 손쉬울 것이라고 이 구멍,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한 일이다. 이 구멍에는 왕자의 품격, 온갖 변명을 아예 경멸하는 위풍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 집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구멍쯤 막을 수야 있죠. 우린 부자니까요.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었지만.
"이 집을 시에서 30년 계약으로 빌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리는 시에서 해야 하는데, 워낙 양쪽이 고집이 세어서...."
그 집 사람들은 설명을 경멸했다. 그 대범함이 내 마음에 들었다. 고작 이런 말을 할 뿐이었다.
"이런! 약간 퇴락해서요."
그것도 아주 가벼운 어조여서, 나는 이 친구들이 그것을 조금도 언짢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생각해 보시오. 미장이, 목수, 가구 수리공, 석고 세공사들의 한 패가 이런 과거 속에 그들의 모욕스런 연장들을 펼쳐 놓고 1주일도 안돼서 당신이 전혀 알지도 못할 집, 남의 집에 방문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집으로 뜯어 고쳤다면 어떻게 될 가를!
그것은 아무런 신비스러움도 없고, 아늑한 구석도 없고, 발밑에는 함정도 없는, 도시 호텔의 응접실 같은 곳이 되지 않겠는가?
이 요술의 집에서 처녀들이 사라진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집의 처마 밑 방들은 어떨까. 응접실이 이미 다락방만치 풍성함을 보이고 있으니!
응접실의 벙싯 열린 아주 조그마한 장에서도 벌서 누렇게 바랜 편지 뭉치며, 증조할아버지 때의 문서며, 온 집안의 자물쇠 수보다도 더 많은 열쇠들, 그러니 어느 자물쇠에도 맞지 않는 열쇠 꾸러미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우리의 이성을 혼란케 하고, 지하 창고며, 거기 숨겨진 궤짝이며, 그 속의 루비 금화를 연상하게 하는 그 기막히게 쓸데없는 열쇠들.
"어떠세요, 식탁으로 가실까요?"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어느 방에서나 향내처럼 감도는 오래된 서고의 냄새, 온 세상의 온갖 향료보다도 향기로운 그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도 램프 불을 옮겨놓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것은 묵직한 진짜 램프였으며, 나의 소년 시절의 가장 아득한 무렵처럼 그 집 사람은 그것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벽에다 이상한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했다.
그 집 사람은 그 램프 속에 빛의 다발과 검은 종려 잎을 떠오르게 했다. 램프가 자리를 잡고 나자 빛의 해변이 펼쳐지고, 마루 바닥만이 삐걱거리는 그 둘레의 널따란 밤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두 처녀가 아까 사라졌을 때와 똑같이 신비롭고 조용하게 다시 나타났다. 그녀들은 정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개와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맑은 밤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고, 저녁바람 속에서 초목의 향기를 맡곤 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들은 냅킨을 펴면서 곁눈으로 조심스럽게 나를 살펴보고 있다. 자기들의 친한 동물들 속에 나를 끼워 줄까 말까 하고 생각하며, 왜냐하면 그녀들은 갈기도마뱀 한 마리와 망구스 한 마리, 여우 한 마리, 원숭이 한 마리에다 꿀벌까지 기르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들은 한곳에 어울려 살면서 서로 화목하며, 새로운 지상낙원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 처녀들은 지상의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손으로 그들을 어루만지고, 먹이를 주고, 물을 먹이고, 또 망구스에서 꿀벌에 이르기까지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렇게 활발한 두 처녀가 그들의 온 비판력과 예민성을 발휘하여, 마주앉은 남성에 대해서 재빠르고 은밀하며 또한 결정적인 판단을 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누이들도 이와 같이 우리 집 식탁에 처음 앉은 손님들에게 점수를 메기곤 했었다. 그래서 어른들의 대화가 중단됐을 때, 침묵을 깨뜨리고 갑자기 이런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11점(프랑스의 학교에서는 대개 20점 만점의 채점법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재미는 누이들과 나밖에는 아무도 몰랐었다.
이런 장난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약간 불안했다. 그리고 내 재판관들이 몹시 영리하다는 느낌 때문에 더욱 거북했다. 그들은 속임수를 쓰는 짐승과 순진한 짐승들을 분별할 줄도 알고, 그들의 여우의 발소리로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도 아는, 속마음의 움직임에 대하여 그렇게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재판관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날카로운 눈과 그렇게 올곧은 작은 마음들을 좋아했으나, 그녀들이 이 장난을 달리 바꾸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굴하게 '11점'에 겁이 나서 그녀들에게 소금 접시를 건네 주고, 포도주를 따라 주기도 했지만, 눈을 쳐들 때마다 그녀들은 이런 것으로는 매수할 수 없을 만큼 얌전하고 의젓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첨은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허영을 몰랐으니까. 그녀들은 허영심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부심에 의해서 내 도움 없이도 자신들에 대해 나의 아첨의 말이 나타냈을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직업의 매력 같은 것을 끌어내어 위신을 세워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지 새 새끼들이 날개가 돋았는가 살펴보거나, 아래를 지나가는 동무들에게 인사나 하기 위해 플라타너스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는 것은 지나친 대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천사들이 말없이 내가 식사하는 것을 살펴보고 있었고, 그녀들의 훔쳐보는 시선과 어찌나 자주 맞닥뜨리는지 나는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무엇인지 마루 위에서 가벼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식탁 밑에서 바스락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이상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자 자기의 시험 결과에 만족하지만, 그러나 마지막 시금석을 써보려는 듯, 그 싱싱하고 야성적인 이빨로 빵을 물어뜯으면서 둘째 소녀가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그것에 놀라는 야만인이라면 놀래 주려는 천진스런 속셈으로.
"살무사들이에요."
그리고 그다지 바보가 아니라면 이 설명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언니가 내 첫 번 반응을 판정하려고 번갯불 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둘이 다 더할 수 없이 상냥하고 순진한 얼굴을 접시 위로 숙이는 것이었다.
"아! 살무사로군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내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며 내 종아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놈의 살무사가...
다행히도 나는 웃음을 지었다. 아주 예사롭게. 그녀들도 그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즐거웠고, 이 집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살무사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기도 해서.
언니가 나를 도와 주었다.
"구멍 속에 집이 있어요, 식탁 밑에."
"밤 열 시쯤이면 돌아와요."
동생이 덧붙였다.
"낮에는 사냥을 나가구요."
이번에는 내가 두 처녀를 곰곰이 바라보았다. 그 평화로운 얼굴 뒤에 깃들인 그 영리함과 조용한 웃음. 나는 그녀들이 행사하는 임금님 같은 위엄에 감탄했다.
지금 나는 꿈처럼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것이 아주 아득한 옛일이다. 그 두 천사들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 아마 결혼을 했겠지. 그렇다면 그녀들은 달라졌을까?
처녀의 위치에서 부인의 위치로 옮겨간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일이다.
새 집에서 그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잡초와 뱀들과의 우정은 어떻게 됐을까? 그녀들은 어떤 우주적인 것들과 얽혀 있었는데.
그러나 처녀 속에서 여인이 눈을 뜨는 날이 온다. 그러면 자꾸 19점을 주고 싶어진다. 19점이 마음 속의 무거운 짐이 된다.
그때에 한 바보가 나타난다. 그러면 그렇게도 날카롭던 눈이 처음으로 잘못 보고 그 바보를 아름다운 빛깔로 비춰 준다.
그 바보가 정말 시라도 한 구절 읊으면 그녀는 그를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구멍 뚫린 마루바닥을 이해하고, 망구스를 좋아하는 줄로 안다. 식탁 밑의 제 다리 사이에서 몸을 구불거리는 살무사의 신뢰감을 그가 좋아하는 줄로 믿는다.
그래서 잘 가꾼 정원밖에는 좋아할 줄 모르는 그에게 자연 그대로의 꽃밭 같은 자기의 마음을 줘 버린다. 그러면 그 바보는 공주를 노예로 데려가고 마는 것이다.
6. 사막에서
1)
사하라 정기 항공로의 조종사로서 모래밭의 포로가 되어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몇 해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 초소에서 저 초소로 날아다니는 동안에는 이와 같은 따사로움은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이 사막은 그와 같은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 않았다. 정원이니, 처녀들이니, 그 무슨 옛날이야기란 말인가!
물론 우리가 근무를 끝내고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활할 수 있는 그 머나먼 곳에는 천도 넘는 처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는 그녀들의 망구스와 책들 틈에서 소녀들은 참을성 있게 달콤한 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정녕 그녀들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독을 알았다. 사막에서의 3년간이 나에게 그 맛을 잘 가르쳐 준 것이다.
거기에서는 광물적인 풍경 속에서 낡아가는 젊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온 세상이 늙어가는 것 같았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었고, 대지는 밀들을 돋아나게 했고, 여인들은 벌써 아름답다.
그럼에도 계절은 흘러가니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계절은 전진하고 사람은 먼 곳에 붙들려 있다.
그래서 땅 위의 재화가 사구의 가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간다.
시간의 흐름은 흔히 사람들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인 평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목적지에 착륙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역풍이 우리를 짓누를 때, 그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 때 우리는 밤중에 요란스럽게 차축의 소음을 울리며 달려가는 급행 열차의 여객과도 같다. 그는 차창 밖으로 휙휙 던져지듯 지나가는 한 줌의 빛으로 그곳의 번쩍이는 들판이며, 자기 마을의 모습이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짐작할 뿐이며,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가벼운 열기를 띤 채 조용한 착륙장에 서 있으면서도 아직 비행기 소리로 귀가 멍멍하여 비행중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바람의 중력을 뚫고 미지의 미래로 끌려가고 있음을 우리의 심장의 고동으로써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막에다 불귀순민들까지 겹쳐지나. 쥐비의 밤은 15분마다 시계 치는 소리에 의하기나 한 것처럼 토막 내어져 있다. 보초들은 차례차례로 규정된 큰 소리로 경보를 전해 준다.
불귀순 지구 속에 고립돼 있는 그곳의 스페인 요새는 이렇게 하여 모습이 안 보이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먼 배의 승객과도 같은 우리는 이 외침 소리가 차례차례로 퍼져 나가서, 우리들 위로 해조의 둥근 궤도를 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막을 사랑했었다.
사막이 언뜻 보기에 공허와 침묵뿐인 것같이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애인에게는 몸을 내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의 그 하찮은 마을조차도 자기 몸을 감춘다.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일 그 마을의 전통이며, 풍습이며, 경쟁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결국 그 마을이 어째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인지 모르고 만다.
게다가 우리 바로 곁에 자기 수도원에 갇혀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법칙에 따라 살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티벳의 고독 속에, 어떤 비행기도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없는 외딴 곳에 솟아나 있는 셈이다. 그의 독방을 찾아가 보았자 무슨 소용이랴! 그곳은 텅 비어 있다.
인간의 왕국은 내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막도 결코 모래나, 뚜아렉족이나, 또는 소총으로 무장한 모르인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갈증을 겪어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사막이라는 우물이 넓은 공간 위에 빛나고 있음을 오늘에야 비로소 발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인도 이렇게 온 집안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우물이란 사랑처럼 멀리 미치는 것이다.
사막은 처음에는 인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랍인 유격대의 습격이 두려워, 그들이 몸에 두른 큰 망토의 주름들을 모래 위에서 판독해야 할 날이 온다. 이리하여 그들 역시 사막을 변모시킨다.
우리는 놀이의 규칙을 받아들였고, 그 놀이는 우리를 제 모습대로 만들어 버린다.
사하라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이다. 사막에 접근한다는 것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샘으로써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일이다.
2)
나는 첫 비행 때부터 사막의 맛을 알았다.
리겔과 기요메와 나는 누아쇼트 초소 부근에 불시착했었다.
이 모리타니아의 작은 초소는 당시 바다 한가운데 작은 외딴섬만큼이나 모든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이 먹은 중사 하나가 15명의 세네갈 병사들과 함께 거기 갇혀서 살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하늘에서 온 사자인양 환영했다.
"야아! 이거, 당신네들과 얘기를 하게 되다니...이 기분을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아아! 정말!"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울고 있었다.
"여섯 달 만에 당신네들이 처음이오. 식량 보급이 여섯 달마다 한 번씩이니까. 중위님이 올 때도 있고, 대위님일 때도 있죠. 지난번은 대위였지요."
우리는 아직도 정신이 멍해 있었다. 점심 준비를 하고 있을 다까르에서 2시간 거리인데, 연간축받이가 터지니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울고 있는 늙은 중사를 위해 유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 드십시오, 포도주를 드리는 것이 기쁩니다. 생각 좀 해보십쇼. 대위님이 왔을 땐 그분에게 드릴 포도주가 없었거든요."
나는 이것을 어느 책(남방 우편기. 역주)에 쓴 일이 있지만, 그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건배조차 못했단 말입니다. 나는 하도 창피해서 전출신청까지 냈었어요."
'건배!' 땀에 범벅이 되어 낙타 등에서 뛰어내린 사람과 잔을 찰깍 부딪치며 하는 '건배!' 이 순간을 위해 여섯 달 동안을 살아온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이미 무기에 광을 내고, 초소를 지하실에서부터 처마 밑까지 닦아 왔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이 축복 받은 날이 가까워 옴을 깨닫고, 전망대 위에서 끊임없이 지평선을 살펴보며, 아따르의 이동 부대가 뒤집어쓰고 나타날 그 먼지를 발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포도주가 없어서 이 축제를 베풀 수가 없다. 건배를 할 수가 없다. 이래서 체면이 깎였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가 다시 오길 몹시 고대하고 있어요. 나는 그를 고대합니다."
"그가 어디 있는데요, 중사?"
그러자 중사는 광막한 모래밭을 가리켰다.
"알 순 없지만, 대위님은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초소의 망대 위에서 별들 이야기를 하며 지샌 그 밤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남방 우편기. 역주) 감시할 것이라고는 별밖에 없었다.
별들은 거기에도 비행기에서 보는 것과 다름없이 가득 차 있었다. 다만 고정되어 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별이 무척 아름다운 밤이면, 비행기에서 거의 조종을 하지 않고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기체는 차츰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오른쪽 날개 아래로 마을이 하나 보여도 아직도 비행기가 수평인 줄로만 안다. 사막 속에 마을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바다의 어선 떼겠지. 그러나 사하라 한복판에 고기잡이 배가 있을 리 없다. 그러면? 그때서야 착오를 깨닫고 웃음이 난다. 천천히 비행기를 바로잡는다.
그러면 마을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는 떨어뜨렸던 성좌를 그림판에 다시 건다.
저것을 마을이라고? 그렇다. 별들의 마을이다.
그러나 초소 위에서 보면 얼어붙은 듯한 사막과 움직임이 없는 모래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잘 걸려 있는 성좌들. 그래서 중사도 우리에게 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 보십쇼! 나는 방향에는 환해요. 저 별이 있는 쪽이 바로 튀니스죠!"
"튀니스에서 왔소?"
"아아뇨. 내 사촌누이가 있죠."
그는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중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다.
"언젠가는 나도 튀니스로 가겠어요."
그럴 테지. 그러나 그것은 저 별 쪽으로 가는 게 아니 딴 길로 해서일 것이다.
원정하는 어떤 날, 우물이 말라서 그를 정신 착란의 시상에나 붙잡히기 전에는. 그렇게 되면 저 별도, 사촌누이도, 튀니스도 모두 뒤범벅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남들에게는 고통스럽게 여겨질 그 영감에 의한 행진이 시작될 것이다.
"한번은 대위님에게 튀니스로 사촌누이 일로 휴가를 신청한 일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 대답이...."
"그래, 그 대답이?"
"그 대답은 이랬어요. '세상에는 사촌누이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더 가깝다면서 다까르로 보내 주더군요."
"그래, 사촌누이는 예쁘던가?"
"튀니스의 누이 말이오? 물론이죠. 금발이었어요."
"아니, 다까르의 누이 말이오."
중사여, 약간은 억울하고 쓸쓸한 듯한 대답을 듣고 우리는 당신을 껴안기라도 하고 싶었다.
"아, 그건 검둥이였어요...."
중사여, 사하라는 당신에게 있어 무엇일까?
그것은 당신 쪽으로 끊임없이 걸어오는 하느님이었다.
그것은 또한 5천 킬로미터의 사막 저편에 있는 금발의 사촌누이의 다사로움이기도 했다.
사막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내부에 생겨나는 그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우는 그것이다.
우리 또한 그날 밤에 한 사촌누이와 한 대위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3)
불귀순 지역과 접경해 있는 뽀르 에띠엔은 도시가 아니다.
그곳에는 초소와, 격납고와, 우리 회사의 승무원들을 위한 바라크가 한 채 있을 뿐이다. 둘러싸고 있는 사막이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빈약한 군사 시설에도 불구하고 뽀르 에띠엔은 난공불락이다.
그것을 공격하려면 굉장한 모래와 폭염의 넓은 띠를 돌파해야 하기 때문에 아랍인 습격대들은 기진맥진하고 물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그 곳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한 옛날부터, 북쪽 그 어디엔가에서 뽀르 에띠엔을 향해 진격해 오는 습격대들이 항상 있었다.
사령관인 대위가 우리한테 차를 마시러 올 때마다 그는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습격대의 진격로를 마치 아름다운 공주의 전설을 이야기하듯 그려 보여 주곤 했었다. 그러나 그 습격대는 강물처럼 모래에 빨려 들어갔는지 결코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유령 습격대라고 불렀다.
정부가 나누어 준 수류탄과 탄약통들도 밤이면 우리 침대 밑의 상자 속에서 잠을 잔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우리의 비참함에 보호받아, 침묵이라는 적 외에는 싸울 상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행장 주임인 뤼까는 낮이고 밤이고 축음기만 틀어놓고 있다.
그 축음기는 생명의 저 먼 곳으로부터 반은 잊어버린 말로 우리에게 말을 하면서 야릇하게도 갈증과 비슷한 목적 없는 우울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초소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사령관 대위는 그의 정원 자랑을 했다.
그는 정말 프랑스에서 보낸 진짜 흙이 들은 궤짝 셋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4천 킬로미터를 건너온 것이다. 거기에는 파란 잎이 3개 돋아나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보석처럼 손끝으로 어루만진다. 대위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 공원이오."
그리고 모든 것을 말려 버리는 모래 바람이 불 때면 이 공원은 지하실로 내려간다.
우리는 초소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달빛을 이고 우리 초소로 돌아온다.
달빛을 받으면 모래는 분홍빛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빈곤만을 느끼는데, 모래는 분홍빛이다.
그러나 보초의 부르짖음이 온 세상에 감동을 되찾게 한다.
우리들의 그림자에 놀란 사하라 전체가 우리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아랍 습격대가 진격 중이니까.
보초의 부르짖음에 사막의 모든 소리가 메아리친다.
사막은 이제 빈집이 아니다. 모르인의 대상이 밤에 자기를 띄운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가! 질병이니, 사고니, 습격대니, 이 얼마나 많은 위협들이 전진해 오고 있는가! 인간은 보이지 않는 사격수들을 위한 땅 위의 과녁이다.
그리고 세네갈 사람인 보초가 예언자처럼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프랑스인 이다!'라고 대답하고 그 검은 천사 앞을 통과한다. 그러면 숨을 들이킨다.
이런 위협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귀함을 되돌려 주었던가...오오! 그 위협은 아직 몹시도 멀리 있고,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그 숱한 모래들에 의해 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이미 전과 같지 않다.
이 사막은 다시 사치스러워진다. 어디에선가 전진 중이면서 결코 여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습격대가 이렇게 해서 자기의 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지금은 밤 11시다. 뤼까가 무전 국에서 돌아와 자정쯤에 다까르발 비행기가 도착한다고 알려 준다. 기상에는 모든 것이 이상 없다. 0시 10분이면 우편물을 내 비행기에 옮겨 싣고 나는 북쪽을 향해 이륙할 것이다.
쪽이 떨어진 거울 앞에서 나는 조심스레 면도를 한다. 이따금 수건을 목에 건 채 나는 문 앞으로 가서 발가숭이 모래밭을 바라본다. 날씨는 좋지만 바람이 잤다. 나는 거울 앞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여러 달을 불던 바람이 자면 온 하늘을 어지렵혀 놓는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복장을 갖춘다. 비상 신호등을 허리띠에 매고, 고도계며, 연필을 챙긴다. 오늘 밤 내 무전사가 될 네리한테로 간다. 그도 면도를 하고 있다. 그에게 말을 건넨다. '어떤가?' 지금으로선 만사 OK이다. 이러한 예비 작업은 비행에 있어 가장 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푸드득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내 램프에 잠자리 한 마리가 부딪친 것이다. 왠지 모르나 그 잠자리가 내 가슴을 죄인다.
다시 한 번 밖에 나가서 바라본다. 모든 것이 맑다. 비행장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절벽이 날이 샐 때처럼 하늘에 또렷이 드러나 보인다. 사막 위에는 정돈된 집과 같은 깊은 침묵이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초록나비 한 마리와, 잠자리 두 마리가 내 램프에 와 부딪친다.
나는 또 다시 야릇한 감상에 싸인다. 그것은 어쩌면 기쁨일지도, 불안감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나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것이며, 아직은 막연하고, 이제 겨우 드러났을 뿐이다.
누가 아주 멀리서 내게 말한다. 이것이 본능이란 것일까?
나는 또 밖으로 나간다. 바람은 완전히 자 버렸다. 여전히 서늘하다.
그런데 나는 어떤 예고를 받았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렸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 착각일까? 하늘도 모래도 아무런 징후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두 마리의 잠자리가 내게 말해 주었고, 또 초록나비도 그랬다.
나는 모래언덕에 올라가 동쪽을 향해 앉는다.
만약 내가 옳다면 그것은 오래지 않아 올 것이다. 오지의 오아시스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에 잠자리가 무엇을 찾아왔단 말인가?
바닷가에 밀려 온 하찮은 표류 물들이 바다를 휩쓰는 사이클론 태풍의 증거가 된다. 마찬가지로 이 곤충들도 열사의 폭풍이, 멀리 야자나무 숲에서 그 초록나비를 쫓아낸 동쪽으로부터의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내게 가르쳐 준다.
그 거품이 벌써 나를 스쳤다. 그리고 하나의 증거이기에 장엄하게, 중대한 위협이기에 장엄하게, 또한 그것이 폭풍을 머금고 있기에 장엄하게 이 동풍은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가느다란 한숨이 이제 막 내게 와 닿았을까 말까이다. 나는 그 물결이 다가와 핥는 마지막 경계석이다.
내 뒤 20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천막 하나 펄럭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뜨거운 기운은 단 한 번 죽음 같은 애무로 나를 휩쌌다.
그러나 나는 다음 순간에는 사하라가 숨을 돌이켜 두 번째 입김을 내뿜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는 3분도 못가서 우리 격납고의 통풍 통이 떨리기 시작할 것이다. 10분도 못가서 모래가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곧 이 불길, 사막이 내뿜는 불길 속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을 흥분하게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야만적인 기쁨으로 나를 채워 주는 그것은, 천지의 비밀의 언어를, 귀띔만으로도 내가 알아차렸다는 것이며, 모든 미래가 가벼운 웅얼거림으로 예고되는 원시인처럼, 어떤 발자국을 내가 냄새 맡아냈다는 것이며, 또 그 천지의 분노를 한 마리 잠자리의 날개가 푸덕임에서 읽어냈다는 사실이다.
4)
그곳에서 우리들은 불귀순 모르인들과 접촉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 우리가 비행할 때 넘어 다니는 지역 안쪽에서 불쑥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빵이나, 설탕이나, 차를 사러 쥐비나 시스네로스 초소에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나타났다가는 다시 그들의 신비 속으로 잠겨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가는 그들 중의 몇을 구슬려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유력한 두목일 경우에는 그들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회사 간부의 동의를 얻어 가끔 비행기에 태워주기도 했다.
그들의 오만을 꺾는 것이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포로로 한 백인들을 학살하는 것은 증오에서보다는 오히려 경멸 때문이었으니까.
초소 근처에서 우리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들은 욕설조차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외면을 하면서 침을 뱉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만은 자기네들의 힘에 대한 착각에서 오는 것이다. 소총 3백 정의 군대를 전투 준비시켜 놓고는 그들중의 얼마나 많은 자가 이런 말을 나에게 되풀이했던가.
"당신들은 운이 좋소. 걸어서 백 날이나 걸릴 프랑스에 있으니 말이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여행시켜 주었고, 그들 중의 세 사람은 그 미지의 프랑스까지 방문했다. 그들은 언젠가 나를 따라 세네갈에 갔을 때 나무들을 처음 보고는 울음을 터뜨린 패들과 같은 종족이었다.
내가 그들을 자기네 천막 속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나체의 여인들이 꽃들 가운데에서 춤추는 뮤직 홀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무도 샘물도 장미꽃도 본 적이 없었고, 그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시냇물이 흐르는 정원이 있다는 것을 '코란'에 의해서만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30년 동안의 비참한 생활 끝에 이교도의 총탄을 맞고 모래 위에서 쓰라린 죽음을 함으로써 그런 천국과, 거기 갇혀 있는 미녀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알라신은 그들을 속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보화가 주어져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그 신은 갈증의 보상도, 죽음의 보상도 요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금 그 늙은 두목들이 생각에 잠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천막 주위에 인적 없이 펼쳐져 있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찮은 기쁨밖에 주지 않는 사하라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신세타령을 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래도... 프랑스 사람들의 신이... 모르인의 신이 모르인에게 해주는 것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더 잘 해주는 것 같아!"
몇 주일 전에 그들을 사보아에 데리고 간 일이 있다. 안내인이 그들을 포효하는 원기둥을 꼬아놓은 것 같은 굉장한 폭포 앞으로 데리고 갔다.
"맛을 보시오"
안내인이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단물이었다.
물! 여기서는 가장 가까운 우물에 가려 해도 며칠을 걸어야 하며, 또 그것을 찾아냈다 해도 그 속에 메워진 모래를 파내어, 낙타 오줌이 섞인 흙탕물이 나오기까지 몇 시간이 걸려야 했던가!
물! 쥐비 곶이나, 시스네로스나, 뽀르 에띠인에서는 모르인 아이들이 돈을 달라지 않는다. 빈 깡통을 손에 들고 그들은 물을 구걸한다.
"물 좀 줘요, 물...."
"얌전하게 굴면 준다."
물 한 되가 금 한 되 값이 나가는 물 한 방울만으로도 모래에서 풀의 초록빛 불꽃을 끌어낼 수 있는 물.
어디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사하라는 대 이동으로 활기를 띤다. 많은 부족들이 3백 킬로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돋아나올 풀을 찾아 내려간다.
그런데 그렇게도 인색하고, 뽀르 에띠엔에서는 10년 내내 한 방울도 떨어진 적이 없는 그 물이 거기에서는 바닥 없는 저 수통에서 온 세계의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울부짖어대는 것이었다.
"이제 갑시다."
안내인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있게 해주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엄숙히 벙어리가 되어, 이 장엄한 신비가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의 뱃속에서 솟아나오는 그것은 생명이었고, 사람의 피 바로 그것이었다.
1초 동안에 쏟아지는 물이면, 갈증에 못 이겨 소금과 신기루의 호수의 무한 속으로 영원히 빠져들은 저 많은 대상들을 소생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이 여기에 나타나 있었다. 어찌 그에게 등을 돌리고 갈 수 있으랴. 신은 그의 수문을 열고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의 모르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얼 더 보겠다는 거요? 갑시다."
"기다려야지."
"기다리다니, 무얼?"
"끝을."
그들은 신이 자기의 미치광이 짓에 지쳐버릴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워낙 인색한 신이니까 이내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은 천 년째나 흐르고 있는 걸...."
그래서 오늘밤에 그들은 폭포에 대해서는 고집부리지 않는다. 어떤 기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그보다도 그것을 너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네 신을 의심하게 된다.
"프랑스 사람들의 신은, 아무래도...."
그러나 나는 나의 미개인 친구들을 잘 안다. 그들은 지금 신앙이 흔들리고, 넋이 나가 금방이라도 귀순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있다.
그들은 프랑스군 보급대로부터 보리를 보급 받고, 우리 사하라 부대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귀순만 하면 물질적 이득을 얻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셋은 뜨라르자의 추장 엘 맘문의 혈족이다.(이 이름은 틀릴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우리의 부하였을 적에 알았다. 그 공으로 공적인 명예가 허용되었고 총독에 의해 부자가 되었고, 여러 부족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는 세상의 영화에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어느 날 밤, 그와 사막을 동행하던 장교들을 학살하고, 낙타와 소총을 빼앗아 불귀순 부족들한테로 돌아갔다.
앞으로는 사막에서 추방될 이 한 두목의 영웅적이고도 절망적인 이러한 불의의 반항과 도주, 오래지 않아 아따르의 이동기병대의 탄막 앞에서 봉화처럼 사라져버릴 이 잠시 동안의 영광을 사람들은 배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미치광이 짓에 놀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 맘문의 이야기는 다른 여러 아랍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는 늙어갔다. 늙으면 사람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자기가 이슬람의 신을 배반했다는 것과, 또 자기에겐 치명적인 계약 조인을 기독교도의 손에 함으로써 자기 손을 더럽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보리나 평화가 그에게 무슨 소용이었던가?
낙오된 무장이 양치기가 된 것쯤인 그는 사하라에 살던 때를 회상하는 것이다.
거기는 모래의 주름마다에 감추어진 위협으로 풍요로웠고, 밤에 전방으로 이동한 야영에서 불침번이 파견되었고, 적의 동정을 알리는 정보들이 화톳불 주위에서 기슴을 뛰게 하던 일들을. 그리고 한 번 맛보기만 하면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저 큰 바다의 맛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모든 위엄을 잃어버린 평온한 모래 위를 아무 영광도 없이 헤매고 있다. 오늘이야말로 그에게 사하라는 사막이다.
그가 암살했던 장교들을 어쩌면 그는 존경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라신에 대한 사랑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안녕히 주무시오. 엘 맘문."
"신이 그대를 보호하시기를!"
장교들은 담요를 둘둘 말고, 뗏목 위에서처럼 별을 향해 모래 위에 눕는다.
뭇 별들이 천천히 들고, 온 하늘이 시간을 새겨 간다. 달은 자신의 '예지'에 의해 무에로 이끌려 모래밭 위로 기울어진다.
기독교인 장교들은 이내 잠이 들 것이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별들이 반짝이게 되겠지. 그러면 타락한 부족들에게 지난 날의 영광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만이 모래를 빛나게 하는 그 추격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의 잠 속에 잠겨 들어간 저 기독교들의 조그만 부르짖음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제 몇 초만 더 지나면, 그 돌이킬 수 없는 일에서 하나의 세계가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잠든 훌륭한 중위들은 학살당하는 것이다.
5)
쥐비에서 오늘 케말과 그의 동생 무얀이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들의 천막에서 차를 마신다. 무얀이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그는 입술 위까지 덮는 남색 베일을 벗지 않는다.
그것은 미개인의 경계의 표시다. 케말만이 나에게 말을 하며 경의를 표한다.
"내 천막도, 낙타도, 아내들도, 노예들도 모두 당신 것이오."
무얀은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 형에게 몸을 숙여 몇마다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문다.
"뭐라고 하는 거요?"
"보나푸가 게이바네 낙타를 천 마리나 강탈해 갔다는군요."
아따르의 낙타부대 장교인 이 보나푸 대위를 나는 모른다.
모르인들 사이에서의 그의 전설 같은 이름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이 형제들은 그에 대해서 분개하며 말하자면, 마치 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의 존재가 사막에 가치를 부여한다.
오늘도 그는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남쪽으로 진격중인 아랍인 습격대의 배후에 나타나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재물을 구하기 위해 되돌아가도록 만들고는 수백 마리의 낙타를 약탈해 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사장과도 같은 이 출현으로 이따르를 점령하고는 석회암 고지에 야영하면서, 잡으러 오라는 불모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위력은 대단해서 부족이 그의 군도를 향해 전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얀이 더 거칠게 나를 바라보며 또 뭐라고 지껄인다.
"뭐라고 하는 거요?"
"우리도 내일 보나푸에게 진격한다. '소총 3백 자루로,'라고 하는군요."
나도 무엇인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미 사흘 전부터 뻔질나게 우물가로 끌고 가는 낙타들이며, 그 수군거림과 그 열정. 눈에 보이지 않는 범선을 채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밀고 갈 바닷바람은 벌써 일고 있다.
보나푸 때문이 남쪽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영광에 가득 찬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출발이 증오를 품은 것인지, 사랑을 내포한 것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암살해야 할 그렇게도 훌륭한 적을 가졌다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다.
그가 모습을 나타내면, 그 근처의 부족들은 정면으로 맞닥뜨릴까봐 겁이 나 천막을 걷고 낙타들을 끌어 모아 도망치지만, 극히 먼 데 있는 부족들은 사랑과도 비슷한 현기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들은 천막의 평화에서, 여인들의 포옹에서,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와, 두 달 동안이나 남쪽으로 기운 빠지는 행군을 하고, 타는 듯한 갈증을 참고, 모래바람 밑에서 웅크리고 기다리고 하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아따르의 이동 부대를 만나, 신이 허락한다면 거기서 보나푸 대위를 죽인다는, 그 일만큼 훌륭한 일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보나푸는 힘이 세오."
케말이 고백한다.
이제야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겠다.
그것은 마치 한 여인을 욕망 하는 뭇 남자들이, 여인의 냉담한 산책의 발걸음을 꿈꾸면서, 그들의 꿈속까지 따라와 괴롭히는 그 냉담한 산책에 속 태우거나 몸이 달아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듯이, 먼 곳에서의 보나푸의 발걸음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덤벼드는 습격대를 교묘히 비켜가면서, 이 모르인 차림의 기독교도는 2백 명의 모르인 역적들 선두에 서서 불귀순 지구로 침입해 들어갔다.
그곳은 프랑스의 속박을 벗어난 그의 부하들이 제일 하급자조차도 벌 받지 않고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기의 신을 위해 돌상 위에 제 몸을 제물로 바칠 수 있으며, 또 거기서는 이 신의 위력만이 그들을 제지 할 수 있으며, 그의 약점조차도 그들을 떨게 한다.
그래서 오늘 밤도 모르인의 어설픈 잠 속을 멋대로 오락가락하면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사막 복판에까지 울리는 것이다.
무얀은 천막 안쪽에서 푸른 화강암에 새겨진 그림처럼 여전히 꼼짝도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오직 두 눈과, 이제는 장난감이 아닌 은제 단도만이 번쩍인다.
습격대에 가담한 뒤로 그는 얼마나 변했던가! 그는 그전과는 달리 자신이 고귀하다고 깨닫고, 그의 경멸로써 나를 압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보나푸를 향해 진격할 것이고, 사랑과 아주 흡사한 증오에 부추김을 받아 내일 새벽에는 진격할 것이니까.
그는 다시 한 번 형에게로 몸을 숙이고 나직한 소리로 말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뭐랍니까?"
"요새에서 떨어진 데서 만나면 당신을 쏘겠다군요."
"왜요."
"당신은 비행기와 무전기와 보나푸도 갖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무얀은 조각과 같은 주름이 달린 푸른 베일 속에서 꼼짝도 않고 나를 재판한다.
"당신은 염소처럼 샐러드를 먹는다. 당신은 돼지처럼 돼지를 먹는다. 당신네 여자들은 수치심 없이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많이 봤다'라고 말합니다.'당신은 도무지 기도를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비행기도, 무전기도, 보나푸도 무슨 소용인가? 진리도 없으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나는, 자유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며(사막 안에서는 사람이 항상 자유로우니까), 눈앞의 재화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며(사막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단지 남모를 왕국만을 지키고 있는 이 모르인들을 감탄한다.
모래 물결의 침묵 속에 보나푸는 늙은 해적 모양으로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다니고 있다.
그 덕택으로 쥐비 곳의 이 야영지는 이제 한가로운 목자들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보나푸라는 폭풍이 그 옆구리를 위협하고, 그 때문에 밤이면 사람들은 천막들을 밀집시키고 잔다.
침묵이 남쪽에서는 얼마나 가슴을 조이게 하는가! 그것은 보나푸의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늙은 사냥꾼 무얀은 바람 속을 걸어오는 보나푸의 발자국에 귀를 기울인다.
마침내 보나푸가 프랑스로 돌아간다면, 그의 적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울 것이다.
마치 그의 출발이 그들의 사막에서 한쪽 끝을 빼앗아 갔거나, 그들의 생활에서 위신의 한 부분을 빼앗아 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왜 가버렸소, 당신의 보나푸는?"
"글쎄요...."
그는 자기 생명을 그들의 생명에 걸고 지내 왔다. 그것도 여러 해 동안이나, 그는 그들의 규율을 자기의 규율로 삼아 왔다. 그는 그들의 돌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끊임없는 추격 속에서 그도 또한 그들과 같이 별과 바람으로 된 바이블(코란)의 밤을 알았다.
이제 그는 떠나면서 그가 꼭 필요해서 이 도박을 해온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는 시원스럽게 자리를 뜬다. 그래서 그 노름판에 혼자 남겨둔 모르인들은, 이제는 사람들을 피와 살과 함께 끌고 들어가게 했던 이 생명의 도박에 대한 신념을 잃고 만다. 그들은 아직도 그를 신뢰하고 싶어 한다.
"당신네 보나푸 말이오. 꼭 돌아오겠지요?"
"글쎄요."
그가 돌아올 거라고 모르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유럽의 도박만으로는 그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장교클럽에서의 브리지도, 승진도, 여인들도 잃어버린 고귀함을 잊지 못해 한 걸음 한 걸음이 사랑을 향해 가는 발걸음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이 사막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여기에는 다만 모험으로 살았을 뿐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고향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일하고 진정한 보화는 이곳 사막에서만 가졌었다는 것을 그는 환멸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사막의 매력이며, 이 밤, 이 침묵과, 이 바람과 별들의 나라를.
그리고 어느 날 보나푸가 다시 돌아오면, 그 소식은 첫 밤부터 불귀순 지구에 퍼질 것이다. 사하라의 어딘가에 2백 명의 부하들 한가운데서 그가 자고 있다는 것을 모르인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침묵 속에 낙타들을 우물가로 끌고 갈 것이고, 저장 보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총 놀이쇠를 검사할 것이다. 그 증오 또는 그 애정에 부추김 받아서.
6)
"비행기에 숨겨서 마라께시로 데려다 주시오...."
매일 저녁 쥐비에서 모르인들의 이 노예는 이런 짧은 기도를 내게 올리곤 했다.
그러고는 살기 위해서 가능한 일을 다했다는 듯이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내 차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고쳐 줄 수 있는 유일한 의사에게 내맡겼고, 자기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신에게 청원했다고 생각하고 하루 동안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주전자 위에 고개를 숙이고, 자기 생애의 단순한 모습들과, 마라께시의 검은 땅들과, 장미빛 집들과, 몽땅 빼앗긴 하찮은 재산들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그는 내 침묵도, 그에게 생명을 주기를 지체하는 것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자기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며, 언젠가는 자기 운명 위에 불게 될 순풍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개 조종사일 뿐이고, 쥐비 곶에서 몇 달 동안 비행장 주임 일 뿐이며, 재산이라고는 스페인 요새에 기대 세운 바라크 하나와 그 안의 대야 하나, 짠물이 든 주전자 하나, 짤막한 침대 하나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나로서는 내 능력에 대해서 환상을 가질 수 없었다.
"바르끄 영감, 좀 두고 봅시다...."
노예들은 모두 바르끄라고 불린다. 그래서 그도 바르끄다. 붙잡힌지 4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 체념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임금이었던 때를 회상하고 있다.
"바르끄, 자네는 마라께시에서 무얼 했나?"
그의 아내와 아이 셋이 아직 살고 있을 마라께시에서 그는 훌륭한 직업을 가졌었다.
"나는 가축 몰이꾼이었읍죠. 이름은 모하메드였구요'!"
거기서는 높은 사람들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었다.
"모하메드, 팔 소가 있다. 산에 가서 끌고 와라."
아니면, "들판에 양 천 마리가 있다. 그걸 더 높은 목장으로 몰고 가라."
그러면 바르끄는 올리브 나무 지팡이를 들고 그들의 이주를 지휘하는 것이었다.
많은 양들의 유일한 책임자로서, 새끼 가진 어미 양을 위해서 빠른 놈들의 걸음을 늦추고 게으른 놈들은 재촉하면서, 그는 모든 양들의 신뢰와 복종 속에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어떤 약속의 땅을 향해 그들이 올라가고 있는지를 자기만이 알고, 별들을 보고 길을 찾는 것도 자기만이 알고, 양들에게는 나누어 줄 수 없는 지식들을 무겁게 몸에 지닌 자기의 지혜로써 쉴 시간이며 샘터로 가는 시간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면 그들의 잠 속에 홀로 서서 그 많은 무지와 연약함을 측은히 생각하면서 무릎까지 양털에 묻힌 채, 의사이며, 예언자이며, 왕이기도 한 바르끄는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 드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랍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가축을 찾으러 우리와 함께 남쪽에 가자."
그를 오랫동안 걸리더니 사흘 후에 산 속 깊이 불귀순 지구 경계로 접어들자, 그는 간단히 붙잡혀서 바르끄란 이름으로 팔리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노예들도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차를 마시기 위해 천막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맨발로 푹신한 양탄자 위에 누워 나는 하루가 지나갔음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그 양탄자는 그들 유목민들의 사치품이며, 그들은 그 위에 그들의 잠시 동안의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역력히 느껴진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서는 짐승들도 사람들도 죽음을 향해 가는 것만치나 확실하게 저녁이라는 커다란 물구유를 향해 걸어간다.
이러한 무위함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온종일 바다로 가는 길처럼 아름답다.
나는 그 노예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주인이 보물상자에서 풍로니, 주전자니, 컵들을 꺼내 놓으면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그 상자 속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물건들이 묵직하게 들어 있다. 열쇠 없는 자물통이니, 꽃 없는 꽃병이니, 서푼짜리 거울이니, 낡아빠진 무기들, 이런 것들 이 사막 한가운데 밀려 와 있어 난파선의 조각들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 노예는 묵묵히 풍로에 마른 가지를 얹고 불씨를 붙이고 주전자를 채우고 하며, 어린 계집애면 될 일에 삼나무라도 뽑을 수 있는 근육을 움직인다.
그는 온순하다. 그는 차를 끓어내고, 낙타를 돌보고, 밥을 짓고 하는 일에 열중한다.
찌는 듯한 태양 아래서는 밤을 향해 걸어가고, 얼음같이 찬 벌거숭이 별들 아래에서는 찌는 듯한 태양을 그리워하면서.
4계절의 변화가 여름이면 눈의 전설을, 겨울이면 태양의 전설을 이루어주는 북쪽 나라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한증막 속에서 별다른 변함이 없는 열대지방은 불행하다.
그러나 낮과 밤이 사람들을 이 희망에서 그렇게도 간단하게 오가게 해주는 이 사하라는 역시 행복한 곳이다.
가끔가다 검둥이 노예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 바람을 맛보고 있다. 이 포로의 둔중한 육체 속에는 이제 추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유괴되던 때의, 지금의 어둠 속으로 그를 거꾸러뜨린 사나이의 팔이며, 고함소리며, 주먹질 따위가 겨우 생각날 뿐이다.
그때 이후로 그는 소경처럼 세네갈의 느린 강물도, 남부 모로코의 흰 암석의 도시들도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처럼 그리운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이상한 잠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이 흑인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병들었다. 어느 날 이 유랑민들의 생활 속에 굴러들어, 그들의 이동에 매이고, 그들이 사막에 그리는 궤도에 평생동안 붙들려버린 그가, 그때부터 그의 과거니, 그의 집이나, 그의 처자식이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런 것들과 무슨 공통된 것을 간직할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위대한 사랑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그것을 잃고 나면 자기의 고독하고 높은 신분에 싫증이 나는 수가 있다.
그들은 겸손하게 삶에 접근하여 평범한 사랑으로 자기들의 행복을 만든다. 그들은 체념하고 몸을 굽혀 평온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음 편함을 깨닫는다.
노예는 주인의 불씨로 자기의 자랑을 삼는다.
"자아, 마셔라."
가끔 주인이 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모든 피로와, 모든 심한 더위에서 놓여나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저녁의 시원함 속에 들어가고 있으므로 주인이 노예에게 어질어졌을 때다. 그래서 주인은 차 한 잔을 노예에게 준다.
그러면 노예는 감격에 겨워, 그 차 한 잔 때문에 주인의 무릎에 입을 맞추게까지 된다. 노예가 쇠사슬에 매여 있는 일은 없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도 충실한데! 그는 현명하게도 박탈당한 검둥이 왕을 자기 속에서 배척한다. 그는 이제 행복한 포로일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그는 해방될 것이다.
그가 먹는 식량이나 입는 옷에 알맞은 값어치가 없을 만큼 너무 늙으면 그는 분에 넘치는 자유를 허락 받는다.
사흘 동안 그는 이 천막에서 저 천막으로 다니며 헛되이 사정할 것이다. 하루하루 몸은 더 허약해진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끝날 무렵, 언제나 그렇듯이 얌전하게 모래 위에 드러누울 것이다.
나는 쥐비에서 알몸으로 죽어 가는 노예들을 본 일이 있다. 모르인들은 그들의 죽을 때의 오랜 괴로움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있지만 잔인성은 없다. 모르인의 아이들은 그 검은 표류물 옆에서 놀고 있다.
그리고 날이 새면 그것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지 보기 위해 달려가지만 늙은 종을 조롱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극히 자연적인 질서였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너는 일을 잘했다. 그래서 잠들 권리가 있다. 자아, 이제 자거라."
그는 여전히 누운 채 현기증과도 같은 배고픔은 느끼지만, 괴로움을 주는 바르지 못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조금씩 흙에 동화되어 갔다. 태양에 말리고, 대지에 받아들여져서. 30년 동안의 노동, 그래서 얻은 잠과 대지에 대한 이 권리.
내가 처음 만난 노예는 신음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하기야 신음해 보일 상대도 없었겠지만, 나는 그에게서 힘이 다 빠져 눈 속에 누워, 꿈과 눈에 파묻혀 들어가는 길 잃은 두멧사람과도 같은 일종의 체념을 느꼈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의 고통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고통을 느낀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하나 죽어 가는 것인 만큼, 그의 안에서 꺼져가는 영상들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세네갈의 어떤 농원이, 남부 모로코의 어떤 백악의 도시들이 차츰차츰 망각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일까?
이 검은 덩어리 속에서, 차를 준비한다던가, 가축들을 우물가로 몰고 가는 따위의 하찮은 걱정만이 꺼져가는 것일까...
즉 노예의 한 영혼이 잠들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추억의 소생으로 다시 살아난 이 인간이 그 본래의 위대함 가운데에서 죽어가는 것일까.
그 단단한 두개골이 나에게는 오래 된 보물상자처럼 보였다. 어떠한 빛깔 고운 비단들이, 어떠한 잔치의 추억들이, 이 사막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고 아무 소용이 없는 유물들이 난파를 모면하여 거기에 들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상자는 단단히 채워진 채 무겁게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며칠의 그 커다란 잠을 자는 동안에, 세계의 어떤 부분이 이 사람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것인지, 차츰차츰 밤과 뿌리로 되돌아가는 그 의식과 육체 속에서 분해되어 가는 것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는 가축 몰이꾼이었읍죠. 이름은 모하메드였구요!"
검둥이 노예 바르끄는, 내가 알기로는 그의 운명에 저항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모르인들이 그의 자유를 하루아침에 빼앗고, 그를 이 땅 위에서 갓난아기보다 더한 발가숭이로 만든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의 수확을 삽시간에 짓밟아 버리는 신의 폭풍도 있으니까.
그러나 모르인들은 그의 재물보다도 그의 인격을 깊이 상처 입혔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다른 포로들이 1년 내내 먹을 것을 벌기 위해 일을 했던 불쌍한 가축 몰이꾼을 자기들 속에서 죽어가게 내버려 두었지만 바르끄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바르끄는, 남들이 기다리다 지쳐 보잘 것 없는 행복에 자리잡듯이 그렇게 노예살이에 정착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선심을 노예의 기쁨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없는 모하메드를 위해, 그 모하메드가 살았던 집을 자기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텅 비어 쓸쓸하긴 했지만, 다른 아무도 살게 할 수는 없었다. 바르끄는 오솔길의 풀과 침묵의 권태 속에서 충실하게 죽어간 그 백발의 정원지기와도 같았다.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이오.'라고 그는 말하지 않고 '나는 모하메드였었죠'라고 말했다. 그 소생만으로도 자기의 노예의 모습을 쫓아내어 줄, 그 잊혀진 인물이 되살아날 날을 꿈꾸면서. 이따금 밤의 고요 속에서 그의 모든 추억들이 어렸을 적의 노래처럼 완전하게 되살아나기도 했다.
우리들의 모르인 통역이 이런 말을 했다.
"밤중에, 한밤중에 그가 마라께시 얘기를 하고 울었어요."
고독 속에 있으면 누구나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기가 예고 없이 깨어나 자기 팔다리 속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여자라고는 한 번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이 사막에서 자기 곁에 여인을 찾는 것이다.
또 샘물이라고는 일찍이 흘러본 적이 없는 그곳에서 샘물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끄는 눈을 감고 하얀 집에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여기, 사람들이 거친 천으로 엮은 집에 살면서 바람만을 쫓고 있는, 매일 밤 같은 별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신비스럽게도 생생하게 되살아난 옛 애정을 품고, 마치 그 끝이 가까이에 있기라도 한 듯이 바르끄는 나에게 왔었다.
그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의 애정도 모두 준비돼 있고, 그것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내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눈짓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바르끄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그 비결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내가 그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기나 한 것처럼.
"내일이지요, 우편물이 떠나는 게...아가디르로 가는 비행기에 나를 감추고...."
"불쌍한 바르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불귀순 지구이다. 어떻게 그의 탈주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내일이면 모르인들은 이 도둑질과 모욕을 무서운 학살로써 보복할 것이다.
나는 공항 기관사인 로베르그, 마르샬, 아브그랄의 도움을 받아 바르끄를 사려고도 해보았지만, 모르인들은 노예를 사려는 유럽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므로 배짱만 퉁긴다.
"2만 프랑 내쇼,"
"우리를 놀리는 건가?"
"그놈의 억센 팔을 보슈."
이렇게 해서 여러 달이 지나갔다.
마침내 모르인들의 달라는 값이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편지로 호소한 프랑스의 친구들의 도움도 얻어서 늙은 바르끄를 살 수 있을 만큼 되었다.
그것은 굉장한 흥정이었다. 그것은 여드레나 걸렸다.
열 다섯 명의 모르인과 나는 모래 위에 빙 둘러앉아 흥정을 진행했다.
소유주의 친구이자 내 친구이기도 한, 산적 진 울드 라따리가 은근히 나를 거들었다.
"팔아 버려라. 어차피 그놈은 없어진다. 그놈은 병들었어. 병이 처음엔 보이지 않지만, 속에 들어 있다. 언제고 갑자기 불거져 나온다. 얼른 저 프랑스 사람한테 팔아 버려라."
그는 내가 권한대로 자꾸 주인에게 말했다.
또 하나의 산적인 랏지에게는 흥정을 도와주면 커미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랏지는 주인을 구슬렸다.
"그 돈으로 낙타하고 총하고 탄환을 사라. 그러면 너는 습격대를 만들어 프랑스 사람들과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따르에서 새 노예를 셋이고 넷이고 끌고 올 수 있다. 이런 늙다리는 팔아 치워라."
이리하여 바르끄는 내게 팔렸다.
나는 우리 바라크 속에 그를 쳐 넣고 엿새 동안 자물쇠를 잠가 두었다.
비행기가 지나가기 전에 그가 문밖에서 어정거리다가는 모르인들이 그를 다시 잡아 먼데로 팔아버릴까 봐서였다.
어쨌든 나는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것은 또한 아름다운 의식이었다. 회교의 중이 오고, 그전 주인과, 쥐비의 추장 이브라힘도 왔다.
보루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에서라면, 나를 골려 준다는 재미만으로도 서슴없이 바르끄의 목을 잘랐을 이 세 산적들이 그를 열렬히 껴안았고, 서명했다.
"이제 너는 우리 아들이다."
그래서 바르끄는 그의 여러 아버지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는 출발할 때가 오기까지 우리 바라크에서 유유한 포로 생활을 보냈다.
그는 하루에도 스무 번씩이나 그 쉬운 여행에 대해 설명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가디르에서 비행기를 내리면 그 비행장에서 마라께시로 가는 버스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탐험가 놀이를 하고 놀 듯이 바르끄는 이렇게 자유인 놀이를 하는 것이다. 삶으로 향하는 그 첫걸음, 그 버스며 그 군중, 그가 다시 보게 될 도시들....
로베르그가 마르샬과 아브그랄을 대리해서 나를 찾아왔다.
바르끄가 차에서 내린 후 배를 곯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르끄를 위해서 내게 천 프랑을 주었다. 이리하여 바르끄는 일거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프랑을 주고는 감사를 요구하는 '자선을 하시는'사회 사업체의 노부인들을 생각했다.
비행기 기관사인 로베르그와 마르샬, 아브그랄의 세 사람은 천 프랑을 주면서도 자선을 하지 않고, 더구나 감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또한 행복을 꿈꾸는 그 노부인들처럼 동정심으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한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되돌려주는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바르끄가 귀향의 흥분이 일단 지나면, 그를 제일 먼저 맞이할 충실한 친구는 곤궁이라는 것과, 석 달도 못가서 그가 그 근처 철로 위에서 침목을 뽑느라고 애쓰고 있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막에 있을 때보다 덜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기 가족 사이에서 그 자신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
"자아, 바르끄 영감, 가시오. 그리고 사람이 되시오."
출발 준비가 된 비행기는 떨고 있었다.
바르끄는 마지막으로 쥐비 곳의 끝없는 황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비행기 앞에는 2백 명의 모르인들이 삶의 문턱에 선 한 노예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잘 보기 위해 떼지어 모여 있었다.
비행기가 조금 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그들은 그를 도로 빼앗아 갈 것이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려고 약간 얼떨떨해 있는 이 쉰 살 먹은 갓난애에게 작별의 손짓을 했다.
"잘 가게, 바르끄!"
"아니오."
"아니라니?"
"아닙죠.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인 걸요."
아가디르에서 바르끄를 돌봐주라고 우리가 부탁해 둔 아랍인 아브달라로부터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버스는 저녁 때에야 떠나게 되어 있었다. 바르끄는 온종일 마음대로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맨 먼저 그 조그만 도시를 아무 말도 없이 오랫동안 쏘다녔다.
아브달라가 보기에는 그가 불안해하고 감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냐."
바르끄는 갑작스런 휴가의 한복판에서 아직도 자기의 부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렴풋한 행복을 느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어제의 바르끄와 오늘의 바르끄 사이에 아무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저 태양을 나누어 받을 권리도, 여기 이 아랍인 카페의 정자 밑에 앉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그는 거기 앉았다. 아브달라와 자기를 위해 차를 주문했다. 그것이 양반으로서의 첫 행동이었다.
그 권력으로 하여 그의 얼굴모습조차도 달라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급사는 그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놀라지도 않고 그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급사는 느끼지 못했으리라. 그 차를 따름으로써 한 자유인을 예찬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 다른 데로 가보세."
바르끄가 말했다.
그들은 아가디르를 굽어보는 가스 바로 올라갔다.
베르베르족의 춤추는 소녀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이 길들여진 친절을 잔뜩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르끄는 다시 살아난 것만 같이 여겨졌다.
그녀들은 자기네들도 모르게 그를 인생 속으로 맞아들여 준 것이다. 여자들은 그의 손을 잡고 친절하게,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차를 권했다.
바르끄는 자기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자들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가 만족해하니까 소녀들도 그를 위해서 만족해했다.
그는 그녀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이름이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아주 먼 데서 돌아오기도 하니까...
그는 아브달라를 다시 시내 쪽으로 끌고 갔다.
그는 유태인의 노점 앞에서 서성거렸고,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과 자기는 자유롭다는 것을... 그런데 이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어떤 점에 있어서 그가 이 세계와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자유가 더욱 뚜렷하게 그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때 한 아이가 지나가기에 바르끄는 그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이는 방긋 웃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첨하는 주인의 아들이 아니었다. 바르끄가 쓰다듬어준 아이는 연약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방긋 웃고 있었다.
이래서 이 아이가 바르끄를 깨워 주었고, 자기에게 미소지었던 이 연약한 아이 때문에 바르끄는 자기가 이 지상에서 좀더 중요해진 것 같이 여겨진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어떤 것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 발걸음을 크게 떼어 놓는 것이다.
"뭘 찾지?"
아브달라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바르끄가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떼와 마주치자 그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였던 것이다. 그는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유태인 노점 쪽으로 가더니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아브달라는 화를 냈다.
"바보같으니, 돈을 아껴야지!"
그러나 바르끄는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점잖게 그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작은 손들이 장난감이니 팔찌니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 위로 뻗쳐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보물을 손에 들고 버릇도 없이 달아나 버렸다.
아가디르의 다른 아이들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로 달려왔다.
바르끄는 그들에게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
그러자 아가디르 근방의 다른 아이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일어서서 환성을 지르며 이 검은 신을 향해 달려 올라와서, 그의 낡은 노예옷에 매달리며 저의들 몫을 요구했다.
바르끄는 파산하고 말았다.
아브달라는 그가 '기뻐 미친'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르끄로서는 넘치는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였기 때문에 사랑 받을 권리도, 북쪽이든 남쪽이든 마음대로 걸어갈 권리도, 자기가 일해서 빵을 벌 권리도, 이런 모든 본질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돈이 무슨 소용이랴...그러자 그는 사람들이 심한 허기를 느끼듯이 인간들 속의 하나의 인간, 인간들과 연결된 하나의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것이다.
아가디르의 춤추는 소녀들은 늙은 바르끄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 가볍게 헤어질 수가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그가 필요치 않았으니까.
그 아랍인의 노점 상인도, 길을 오가는 통행인들도 모두 그의 속에 있는 자유인을 존경했고, 그와 함께 태양을 나누어 가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상 자기에게 그가 필요하다고 알려 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땅 위에 자기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에게는 서로의 걸음걸이를 방해하는 인간 상호 관계의 무게가 없었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마다 사람들이 쓰다듬기도 하고 짓찧기도 하는 모든 것, 저 눈물이며, 이별이며, 책망이며, 기쁨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그를 다른 사람들과 결합시켜 주고, 무게를 갖게 해주는 그 숱한 관계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바르끄 위에는 벌써 아이들의 천 가지 희망이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바르끄의 왕국은 아가디르 위에 저무는 태양의 영광 속에서, 또 그렇게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유일한 다정함이었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저녁의 시원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바르끄는 옛날에 양떼들에게 둘러싸였던 것처럼 어린이들의 물결 속에 파묻혀 세상에 첫발자국을 찍으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이면 가난한 자기 가족들에게 되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노쇠한 팔로는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의 생명들의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기에서 자기의 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몸이 가벼운 천사가 속임수로 허리띠에 납덩어리를 꿰매 넣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끄는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를 갖고 싶어 하는 그 숱한 어린이들에 의해 대지 쪽으로 이끌려 가면서 고달픈 걸음을 내디디는 것이다.
7)
사막이란 이런 것이다.
본래는 놀이의 규칙에 지나지 않는 한 권의 코란이 사막을 제국으로 바꿔 놓는다.
텅 비었을 사하라 한복판에서 인간의 결정을 뒤흔드는 은밀한 연극이 연출된다.
사막에서의 참된 삶은 목초를 찾아 옮겨가는 부족들의 이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놀이에 의해서이다.
귀순사막과 불귀순 사막과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내용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현재의 전혀 다르게 변모해 버린 귀순 사막을 앞에 두고 나는 소년시절에 여러 가지 놀이를 하던 일들이며, 우리가 온갖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컴컴하고 금빛 도는 그 공원이며, 우리가 완전히 알아낼 수도 없었고, 전부를 뒤질 수도 없었던 1킬로미터 평방으로 된 그 무한한 왕국 등을 회상한다.
우리는 한 발자국마다 어떤 맛을 갖고 있고, 사물들이 다른 데서는 있을 수 없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갇혀진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다른 법률 아래 살게 되었을 때, 소년시절의 음영으로 가득 찬 그 마법의 공원, 그 얼어붙은 공원, 그 폭염의 공원에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지금 그 공원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일종의 절망감을 느끼며 바깥쪽의 나지막한 회색 돌담을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좁은 울타리 안에 그때는 자기에게 있어 무한한 넓이였던 하나의 세계가 갇혀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기는 그 무한한 세계 속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들어가야 할 곳은 그 공원이 아니라, 그 놀이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불귀순 사막은 없어졌다.
쥐비 곶, 시스네로스, 쀠에르또 깡사도, 사뀌에뗄함라, 도라 스마라, 그 어디에도 이제 신비는 없다.
우리가 그리고 달려가던 수많은 지평선들도, 마치 따뜻한 손의 올가미에 걸리면 빛깔을 잃어버리는 곤충들처럼 차례차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지평선을 쫓아다녔던 사람들도 어떤 환영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달리던 우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팔에 안기자마자 아름다운 여자 포로들이 날개의 황금빛을 잃고 하나하나 새벽 빛 속에 사라져갔다는, 저 너무나 정교한 것을 추구했던 아라비안나이트의 사르탕 왕도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막의 마술을 양식으로 삼았지만 다른 사람들 같으면 거기에 유정을 파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는 것이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들어가지 못할 종려나무 숲이나 사람의 손이 닿은 적이 없는 조개껍데기 가루가 그 가장 귀중한 부분을 이미 우리에게 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 한 때의 열광밖에는 주지 않았으며, 그리고 그것을 살린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사막이라고?
언젠가 나는 바로 그 심장부로 해서 그곳에 뛰어든 적이 있다.
1935년 인도차이나로 가는 장거리 비행 도중, 나는 이집트의 리비아 접경 오지에서 끈끈이에 붙들리듯이 사막에 붙잡혀 버렸는데, 그때 나는 꼭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