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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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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아침 뉴욕으로부터 젊은 신문 기자가 개츠비를 찾아왔다. 그는 저택 현관문에 도착해서는 개츠비에게 뭔가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뭘 말하라는 겁니까?"

개츠비가 겸손하게 물었다.

"글쎄요, 발표문 같은 게 있나 해서요."

어정쩡한 5분이 지난 뒤에 그 사나이는 자신의 사무실 주변에서 신분을 밝히기를 꺼리거나 아니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연줄로 해서 개츠비의 이름을 듣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기자는 이날이 마침 비번이기도 해서 직업의식으로 그는 뭔가를 '찾아내려고' 급히 달려왔던 것이다.

그것은 대상을 겨냥하지 않고 마구 총을 쏘는 격이었지만, 그 기자의 직감은 정확했다.

개츠비에게 환대를 받고 그의 과거에 대해 권위자가 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퍼뜨린, 개츠비의 좋지 못한 평판이 여름 내내 확산된 결과 그는 결국 훌륭한 뉴스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에겐 '캐나다로 통하는 지하 정보망'이라느니 하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집에서는 살지 않고 집처럼 생긴 배 안에 살면서 롱아일랜드 해안을 비밀리에 드나든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뜬소문이 노스다코타 주 태생의 제임스 개브를 만족시키는 이유가 되었는지는 경위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제임스 개츠-이것이 그의 실제의, 아니면 적어도 법률상의 이름이었다. 그는 17세 때, 그러니까 인생의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에 댄 코디의 요트가 슈퍼리어 호에서도 가장 위험한 여울에 닻을 내리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그날 오후 그는 다 해진 녹색 운동용 자켓에 즈크 팬츠를 입고 바닷가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트를 빌려 타고 '튜올로미' 호로 나가서 코디에게 30분도 안 되어 바람이 그의 배를 휩쓸어 부수어 버릴 것이라고 일러 줄 때 그는 이미 제이 개츠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을 준비해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부모는 별 볼일 없는 무능한 농부에 불과했다-그는 꿈속에서도 그들을 진정으로 부모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사실은 롱아일랜드의 웨스트에그에 사는 제이 개츠비라는 사나이는 자신의 이상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만약 이런 말에 어떤 뜻이 있다면 바로 그것을 뜻한다-그러니까 그는 하느님의 일, 즉 방탕하고 속되고 음탕한 미를 지닌 생활에 몸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7세의 소년이 만들어 낸 그 제이 개츠비라는 인물의 개념에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했던 것이다.

1년 이상 그는 조개를 캐거나 연어를 잡거나 아니면 그 밖에 돈이 되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하며 슈피리어 호 남쪽 기슭에서 그 나름대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갈색으로 단련되어 가는 그의 육체는 고난의 시절 온갖 일들을 자연스럽게 견디어 냈다. 그는 여자를 일찍 경험했는데, 그들이 그를 타락시켰기 때문에 그는 여자들을 경멸했다. 젊은 아가씨들은 머리에 든 게 없다 해서 경멸했고, 그 밖의 여자들은 벗어날 길 없는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그 자신의 입장을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그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에 경멸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혼란 속에 놓여 있었다. 너무나 기괴하고 환상적인 생각이 잠자리에 누운 그에게 엄습해 왔다. 시계는 세면대 위에서 똑딱거렸고 달은 마룻바닥에 뒤엉켜 있는 그의 옷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그런 것을 느끼는 동안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이 천박한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서 넓디넓게 펼쳐졌다. 매일 밤 그는 자시만의 환상의 틀에 새로운 것을 더하다가 잠을 잠으로써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을 망각으로 덮어 버렸다. 한동안 이러한 몽상들은 그의 상상력의 배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들은 현실이 비현실이라는 흐뭇한 귀띔이었으며, 또한 세계를 지탱하게 하는 바위는 그 기반을 요정의 날개 위에 굳건히 두고 있다는 약속이었다.

이런 일이 있기 몇 달 전에 미래를 바꿔 보겠다는 본능적인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는 남부 미네소타 주의 센트 올라프 대학이라는, 루터파의 작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의 북소리가 아니 운명 그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기대에 어긋나고, 학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비위가 상해 2주간 머물다가 그 생활을 그만두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슈피리어 호로 돌아왔다. 댄스코디의 요트가 호수 기슭의 얕은 여울에 닻을 내리던 그날도 그는 여전히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 당시 50세의 코디는 네바다 주의 은광 지대와 알래스카 유콘 강 일대가 낳은 인물로, 1875년 이후의 금속광의 선풍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큼 성공한 사람이었다. 몬태나 주의 동을 샀다가 곧 팔아서 몇 배의 이익을 얻어 백만장자가 되자 육체적으로는 거칠어졌으나 마음은 너그러워졌다. 그런 그의 반신반의한 수많은 여자들이 그의 돈이 탐나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신문 기자인 앨러 케이는 그의 약점을 이용해 메잉트농 부인 같은 농간을 부려서 그를 요트에 태워 바다로 보냈다. 그 사건은 흔히 있는, 별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사건이었으나,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1902년 당시의 저널리즘은 그 일을 선정적인 공통 소유 기사로 다루었다. 그는 5년간이나 지나치게 환대를 받으며 연안 지대들을 항해하고 있었는데, 그때 소녀만에 제임스 개츠가 나타났다. 이 순간이 개츠비에겐 더없는 행운의 시간이었다.

그의 노에 기대어 쉬면서 난간에 달린 갑판을 올려다보고 있던 젊은 개츠비에게 그 요트는 세상에 더할 수 없는 매력으로 보였다. 아마도 그는 코디를 보고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미소를 띠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코디는 그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는데, 그 질문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최초로 그의 이름을 말하게 되었다. 코디는 금방 개츠비가 임기응변적이며 대단한 야심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2, 3일이 지난 후 코디는 그를 설루드로 데리고 가서 청색 상의와 흰 삼베 바지 여섯 벌과 요트 모자를 사 주었다. 그리고 튜올로미호로 서인도 제도와 바바리 해안을 향해 떠날 때 개츠비도 함께 데리고 떠났다.

배 안에서 그의 신분은 애매했다-코디와 둘이 있을 때는 심부름꾼이 되고 항해사도 되고 선장도 되고 때로는 비서도 되었으며, 심지어는 간수 노릇까지 했다. 왜냐하면 술을 먹지 않았을 때와 먹었을 때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관계는 5년간 계속되었고, 그동안 배는 세계를 세 바퀴나 돌았다. 어느 날 밤 보스턴에서 앨러 케이가 배를 탄 지 일주일 후 댄 코디가 갑작스럽게 죽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이다.

나는 개츠비의 침실에 덩그러니 걸려 있던 댄 코디의 사진을 지금도 기억한다. 굳고 텅빈 것 같은 얼굴을 한 백발의 중년 신사-그는 미국인의 생활의 한 측면에서 야만적인 개척인의 창녀집이나 술집의 야만스런 난폭성을 몸에 익힌 채 동부의 해안으로 돌아온 그러한 개척 시대의 방탕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츠비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것은 간접적으로 코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즐거운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가끔 여자들이 개츠비의 머리에 샴페인을 부어 문지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술을 마시지 않는 습관을 길렀다.

그리고 그는 코디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았다-25천 달러의 유산이었다. 그는 그것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법적 조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밖의 수백만 달러의 유산은 고스란히 앨러 케이에게로 넘어갔다. 개츠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요소요소 적절하게 받은 교육뿐이었다. 그리하여 제이 개츠비는 희미하나마 성실한 남자로 성숙해 갔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훨씬 나중에야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 떠돈 억측에서 나온 그의 과거에 대한 헛소문을 정리하기 위해 그것을 여기에 적는 것이다. 그는 내가 그에 관해 미심쩍어하며 혼란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츠비가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짧은 정지 상태를 이용해서 나는 그에 관해 떠도는, 잘못된 소문에 대해 해명하는 바이다.

그의 일에 관한 나의 관련도 잠시 멈추어졌다. 몇 주 동안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전화 통화조차 하지 않았다-그러나 마침내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개츠비의 집으로 건너갔다. 내가 거기에 간 지 채 2분도 안되었을 때, 누군가가 한잔하기 위해 탐 부캐넌과 함께 그곳에 왔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세 사람은 말을 타고 있었다-탐과 슬론이라는 남자와 갈색 승마복을 입은 예쁜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개츠비는 현관에 서서 말했다.

"이렇게 들러 주시다니 기쁘군요."

그는 마치 그들이 오기를 몹시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담배를 좀 피우시죠."

그는 방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초인종을 눌렀다.

"빨리 뭐 마실 것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탐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동요되어 있었다. 그는 막연하게나마 그들이 찾아온 것은 오직 한잔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무엇이라도 내놓기 전에는 마음이 불안했을 것이다. 사실 슬론은 차가 별로 내키지 않았다.

"레몬수라도 한잔 드시지요."

"아니, 괜찮아요."

"그럼 샴페인을 좀 드릴까요?"

"고맙습니다만 생각이 없네요. ...미안하군요."

"승마는 재미있었습니까?"

"이 근처는 길이 정말 좋더군요."

"아마 자동차들이..."

"그래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개츠비는 처음 만난 사람으로 소개된 바 있는 탐에게로 몸을 돌렸다.

"일전에 어디서 뵈었던 것 같습니다, 부캐넌 씨."

", 그랬군요."

탐이 퉁명스럽지만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대해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뵌 일이 있지요. 전 기억하고 있어요."

"2주일쯤 전이었습니다."

"맞아요. 여기 있는 닉과 함께 있었어요."

"나는 댁의 부인도 알고 있습니다."

개츠비가 거의 공격적인 자세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요?"

탐이 나를 돌아다보며 덧붙였다.

"자네 이 근처에 살지 않나, ?"

"바로 옆이지."

"그래?"

슬론은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여자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그녀는 마침내 하이볼을 두 잔 마시고 나서야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저희들이 다음 파티에 참석해도 될까요? 개츠비 씨."

그녀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물론이지요. 와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그거 좋겠는데요."

슬론은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천천히 가세요."

개츠비는 그들을 붙들었다. 이제야 마음이 가라앉은 그는 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했다.

", 좀더 계시다가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시죠? 만약 뉴욕에서 다른 손님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하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겠습니다."

"저와 함께 저녁 식사하러 가세요."

여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두 분 다 말이에요."

그것은 나를 포함시킨 것이었다. 슬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시지요."

그가 말했다-그러나 그것은 여자에게만 말한 것이었다.

"진심이에요."

그녀가 다짐했다.

"여러분이 가신다면 저는 너무 기쁘겠어요. 방도 많이 있어요."

개츠비는 미심쩍어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기를 원했다. 그는 슬론이 그가 가면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결정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갈 수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선생님만이라도."

여자는 개츠비에게 관심을 보였다.

슬론이 얼굴을 여자의 귀 가까이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지금 출발하면 늦지 않을 거예요."

여자가 큰 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난 말이 없습니다."

개츠비가 말했다.

군에 있었을 땐 늘 타고 다녔지만, 말을 타 본 적은 없습니다. 차를 타고 따라가도록 하지요.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우리는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거기서 슬론과 여자는 한쪽에서 열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기랄, 저 사람은 정말 갈 모양이지."

탐이 말했다.

"저 사람이 가는 걸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야."

"그 여자는 자기 입으로 꼭 초대하고 싶다고 했네."

"굉장한 만찬회를 열겠다지만 저 사람은 거기 오는 손님은 한 사람도 모를 텐데."

탐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계속했다.

"도대체 저 사람이 어디서 데이지를 만났다는 건지 모르겠군. 하긴 내 생각이 낡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여자들이 너무 쏘다닌단 말이야. 질 나쁜 사람과도 함부로 어울리고..."

슬론과 여자는 갑자기 계단을 내려가더니 말에 올라탔다.

"가자고."

슬론이 탐에게 말했다.

"늦었어. 서둘러야겠어요."

그리고 그는 내게 덧붙여 말했다.

"바빠서 먼저 간다고 그에게 전해 주십시오."

탐과 나는 악수를 했다. 슬론과 여자는 냉정하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급히 차도로 달려 내려갔다. 개츠비가 모자와 가벼운 코트를 손에 들고 앞문으로 나왔을 때 그들은 이미 멀리 가 버린 뒤였다.

탐은 데이지가 혼자서 돌아다니는 데 당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다음 토요일 밤에는 그가 데이지를 따라서 개츠비의 파티에 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나타났기 때문인지 그날 저녁에는 특이한 부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그날 저녁의 파티는 그 해 여름에 있었던, 개츠비가 베푼 다른 여러 파티와는 판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느 때와 같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아니 적어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참석했고 평소 때와 같은 샴페인이 돌았으며, 익숙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떠들썩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밤엔 전에 없던 일종의 불쾌감과 험악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느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만 내가 개츠비의 파티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스트에그 자체를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서 기준이 있고 내노라 하는 인사들이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까닭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파티를 데이지의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조절하며 보아 온 사물을 새로운 눈을 통해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캐넌 부부는 황혼이 질 무렵에 도착했다. 우리가 화려한 옷차림의 수많은 손님들 사이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데이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평소 꿈꿔 오던 파티에요."

그녀가 소곤거렸다.

"닉 오빠, 오늘 저녁에 저한테 키스하고 싶어지면 신호만 주세요. 그러면 기꺼이 그렇게 해 드리도록 하겠어요. 제 이름을 부르거나 녹색 카드를 꺼내세요. 제가 드릴까 해요, 녹색..."

"둘러 보세요."

개츠비가 제안했다.

"둘러보고 있는 중이에요. 놀라운 구경을 하고 있어요."

"이름만 듣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셔야만 합니다."

탐은 거만스러운 눈초리로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우리는 그다지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실은 이곳에는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요."

"그래도 저 여자는 아실 겁니다."

개츠비는 백자두나무 아래 품위 있게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장미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가리켰다. 탐과 데이지는 이제까지 보아 온 영화를 통해 희미하게 알고 있던 유명한 인사를 알아보았을 때의 쾌감을 느끼며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름답군요."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에게로 다가가고 있는 남자는 그녀의 감독이지요."

개츠비는 예의 있게 두 사람을 이 그룹에서 저 그룹으로 데리고 다녔다.

"부캐넌 부인, 그리고 부캐넌 씨입니다."

개츠비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폴로 선수이지요."

", 아닙니다."

탐이 재빨리 부인했다.

"난 선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폴로 선수라는 말의 억양이 개츠비의 마음에 들었음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날 밤 내내 탐은 '폴로 선수'로 통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명사들을 만나 보기는 난생처음이에요."

데이지가 소리쳤다.

"전 저 남자 팬이에요. 이름이 뭐였더라? 푸르스름한 코를 가진 남자 말이에요."

개츠비는 그의 이름을 가르쳐 주면서 그는 유명하지 않은 영화 제작자라고 덧붙였다.

"그래요? 아무튼 전 그를 좋아했었어요."

"난 폴로 선수로 소개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탐이 유쾌하게 말했다.

데이지와 개츠비는 춤을 추었다. 나는 개츠비가 폭스 트롯을 품위 있고 신중하게 추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으로 기억된다-그전엔 그가 춤추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내 집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계단에 반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데이지의 부탁을 받고 정원에 머물며 감시하고 있었다.

"불이나 홍수가 날지도 모를 경우에 대비해서요."

그녀가 부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니면 천재지변의 경우에 대비해서요."

그때까지 혼자였던 탐이 우리가 저녁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나타났다.

"저기 있는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해도 괜찮겠소?"

그가 말했다.

"한 작자가 신기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세요."

데이지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혹시 주소라도 적어 두고 싶으면 이 금제 연필을 쓰세요."

데이지는 잠시 후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사방을 보고는,

"저 여자는 평범하지만 아름답군요."하고 내게 말했다. 그 말로 미루어 그녀는 개츠비와 단 둘이서 지낸 그 반시간을 제외하면 유익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일행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내 실수였다-불과 2주일 전 개츠비는 전화를 받으러 갔었고, 나는 이러한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렸었다. 그러나 그때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것이 지금은 허전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베데커 양?"

내가 인사한 그 여자는 내 어깨에 푹 기대려다가 실패했다. 내 물음에 그녀는 재빨리 똑바로 앉고는 눈을 떴다.

"뭐 말이지요?"

그러자 데이지에게 내일 그곳 클럽에서 골프를 치자고 말했던, 몸집이 크고 둔하게 생긴 여자가 베데커 양을 보호하며 말했다.

", 그녀는 이젠 괜찮아요. 칵테일을 대여섯 잔만 마시면 항상 저렇게 고함을 지르지요. 그래서 난 그녀에게 고함치지 말라고 충고해 주곤 하죠."

"고함치지 않았어요."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없이 반발했다.

"당신이 고함을 쳤기 때문에 나는 여기 계신 닥터 시베트께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이에요."

"그녀는 몹시 고마워하더군요. 정말이에요."

다른 한 친구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그녀를 풀장으로 미는 바람에 그녀의 옷은 완전히 젖어 버리고 말았지요."

"난 머리가 물 속에 잠기는 것이 제일 싫어요."

베데커 양이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그들이 뉴저지에서 나를 거의 익사시킬 뻔했다니까요."

"그렇다면 술을 마시지 말아요."

닥터 시베트가 반격했다.

"당신 건강이나 생각하시지 그래요."

베데커 양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당신 손이 떨리고 있잖아요? 난 당신 같은 사람에겐 수술을 하지 않겠어요."

그날은 이런 식이었다. 내 기억에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일이라고는 데이지와 나란히 서서 그 영화 감독과 여배우를 지켜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끝까지 백자두나무 아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거의 닿을 듯이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저 감독은 오늘 저녁 내내 아주 서서히 저 여배우에게로 몸을 굽혀서 저 정도까지 가깝게 접근하게 되었나 보다.'하는 생각이 문득 내 머리에 떠올랐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 그 감독은 마지막 각도로 몸을 굽히더니 그 여배우의 뺨에 키스를 했다.

"전 저 여자가 좋아요."

데이지가 말했다.

"저 여자는 사랑스럽군요."

그러나 그 나머지 다른 것들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그리고 그것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감정이었기에 특별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브로드웨이가 롱아일랜드의 한 어촌에 자리잡게 한, 웨스트에그의 이 거대한 저택이 두려웠던 것이다.-케케묵은 완곡한 표현에 불붙은 생생한 힘에 소름이 끼쳤고 그곳 사람들을 불가능의 지름길을 통해 모여들게 하는 너무나 강제적인 운명이 두려웠다. 그녀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그 단순성 속에서 어떤 무서운

것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과 함께 가운데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약간 어두컴컴했다. 다만 밝은 현관문만이 부드럽고 검은 새벽을 향해 10평방피트 정도의 빛을 던져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 2층의 화장실 블라인드에 비치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다 사라지면 곧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그 그림자들은 어둠 속에서도 거울을 보고 루즈를 바르고 분을 발랐다.

"도대체 이 개츠비라는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지?"

탐이 갑자기 캐물었다.

"거물급 주류 밀매업자가 아닐까?"

"? 어디서 그런 말을 하던가?"

내가 물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단지 내가 상상해 본 거지. 요즘 나타난 거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규모 주류 밀매업자들이라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개츠비 씨는 그렇지 않아."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탐은 잠시 말이 없었다. 차도에 깔린 자갈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 많은 구경꾼들을 모으느라고 꽤 수고했겠는걸."

데이지의 모피 깃의 잿빛 잔털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렸다.

"적어도 여기 모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재미있군요."

데이지가 힘들여 말했다.

"당신은 별로 재미없어하는 것 같은데..."

"글쎄, 전 재미있었어요."

탐이 웃고 나서 나를 돌아다보았다.

"그 여자가 데이지더러 냉수 샤워를 시켜 달라고 졸랐을 때, 자네 데이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나?"

이때 데이지는 반주에 맞추어 허스키하고 애잔한 입속말로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를 담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멜로디가 높아지면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게 바뀌며 콘트랄토 음성만이 낼 수 있는 소리로 그것을 따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따스한 인간적 매력을 조금씩 공기 속으로 던지곤 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초대받지 않았으면서도 왔어요."

데이지가 갑자기 말했다.

"저 여자도 초대받지 않았어요. 그들은 무작정 몰려오고, 개츠비 씨는 잔인하게 거절을 못 한단 말이에요."

"난 그가 어떤 사람이며 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군."

탐이 끈질기게 따지고 들었다.

"그걸 꼭 알아내야겠어."

"지금 당장 알려 주지요."

데이지가 대답했다.

"그분은 몇 개, 아니 여러 개의 약국을 소유하고 있어요. 그것들을 혼자의 힘으로 마련했지요."

한 대의 리무진이 천천히 차도로 기어 올라왔다.

"안녕히 주무세요, 닉 오빠."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내게서 떠나 조명이 밝게 비치는 계단 꼭대기를 더듬고 있었다. 그 해 유행한, 산뜻하며 애조를 띤 왈츠 소곡 '새벽 3'가 열린 현관문을 통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국 개츠비의 파티에는 데이지의 세계에서는 지금껏 느껴 볼 수 없었던 그 어떤 낭만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데이지를 다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던 그 노래에는 대체 무엇이 숨어 있었을까? 이제 이 어둑어둑하고 쓸쓸한 시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어떤 손님이 도착할지도 모른다. 더할 수 없이 귀하고 경이로운 사람이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헌신적 열정을 지워 버릴 정도로 눈부시고 젊음이 넘치는 여인이 도착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개츠비가 자신의 손님 접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 꼭 있게 마련인 수영객들이 몸은 춥지만 마음은 들떠서 검은 해안으로부터 물러가고 머리 위로 바라보이는 객실들의 불이 꺼질 때까지 나는 정원 안으로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개츠비가 계단을 내려왔을 때, 볕에 그을은 그의 얼굴은 보통 때와는 달리 팽팽했고 또 두 눈은 지쳐 보이지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파티를 별로 즐기지 않았지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아니, 그녀는 좋아했는데요."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가 고집을 부렸다.

"재미있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계속해서 침묵했고 나는 그의 말 못 할 침울함을 대충 짐작했다.

"내가 그녀로부터 멀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가 말했다.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요."

"춤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춤이라구요?"

그는 손가락을 퉁기면서 자신이 추었던 춤 같은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친구분, 춤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오."

그는 데이지가 탐에게로 가서 '전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그 말이 4년이라는 세월을 지워 버린 다음에 라야 그들은 보다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데이지가 자유의 몸이 된 다음 함께 루빌로 돌아가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승낙을 얻어 결혼하는 것이었다-마치 5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그런데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전에는 이해했는데 말이에요. 그녀와 난 몇 시간이고 함께 앉아 있곤 했었지요."

그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과일 껍질과 버려진 파티 회원권과 짓밟힌 꽃이 깔려 있는 황량한 마당 길을 왔다 갔다 했다.

"나라면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을 거예요."

나는 내 생각을 말해 보았다.

"과거는 돌이킬 수가 없잖아요."

"과거를 되풀이할 순 없단 말인가요?"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에요. 과거도 되풀이할 수 있어요."

그는 마치 과거가 자신의 손이 미치는 곳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이 성난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모든 것을 예전과 같이 행동할 거예요."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도 두고 보면 알 겁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급기야 그는 어쩌면 데이지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던 자신의 어떤 신념 같은 것을 다시 찾아내려 노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혼란스러워지고 엉망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어떤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모든 것을 천천히 되풀이할 수만 있다면, 분명 그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5년 전의 어느 가을 밤 그들은 낙엽이 지는 거리를 지나 나무 한 그루 없는, 보도가 달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곳에 이르렀다. 거기서 걸음을 멈춘 그들은 몸을 돌려 서로 마주 보았다. 1년에 두 번, 계절이 바뀔 때면 찾아오곤 하는 신비로운 흥분이 감도는 감미로운 밤이었다. 집들로부터 새어 나오는 고요한 불빛이 어둠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고 하늘의 별들 사이에서는 희미한 별빛이 더욱 발하고 있었다. 개츠비가 곁눈질해 보니 보도의 블록 벽돌이 정말로 하나의 사닥다리 모양을 형성해서 가로수 위쪽에 있는 신비로운 곳까지 아득히 쌓여 있었다-만약 그곳에 혼자 간다면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그곳에 올라가면 꿀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가슴은 더욱더 세차게 고동쳤다. 그는 자기가 이 아가씨에게 키스하여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숨결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황했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소리굽쇠가 어떤 별에 부딪혀서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동안 더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이 닿자, 그녀는 꽃처럼 활짝 피어나 그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결합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심지어는 놀랍기까지 했던 그의 감상을 통해서까지 내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이 되살아났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리듬과 잃어버린 말들의 단편이었다. 잠시 내 입속에선 어떤 말이 형태를 갖추려 애썼고, 내 입술은 마치 한 줌의 놀란 공기를 내뿜으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기를 쓰는 벙어리의 입술처럼 벌어졌다. 그러나 내 입술은 끝내 아무 소리를 내지 못했으며, 내가 거의 다 해냈던 그 말은 영원히 입밖에 내지 못했다.

 

 

7

 

개츠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절정에 달한 어느 토요일 밤, 그의 저택엔 끝내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트리말치오 같은 경력은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확실치 않은 상태로 끝나 버렸다. 내가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기대감에 차 그의 저택 주차장으로 꺾어져 들어간 승용차들이 얼마 있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가곤 했다. 나는 혹시 그가 병이라도 난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과 걱정에 싸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험상궂은 얼굴의 낯선 하인이 문간에서 미심쩍은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개츠비 씨가 어디 아픈가요?"

"아닙니다."

그는 일단 말을 끊었다가 부자연스런 소리로 천천히 덧붙였다.

"선생님."

"나는 그분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분께 캐러웨이가 왔다고 전해 주시오."

"누구라고요?"

그가 무례하게 다그쳐 물었다.

"캐러웨이요."

"캐러웨이? 알았습니다. 그분께 말씀드리지요."

그는 문을 거칠게 닫아 버렸다.

내 집의 핀란드인 가정부가 들려준 말에 의하면, 개츠비는 일주일 전에 모든 하인들을 해고해 버리고 5, 6명의 새로운 하인들만을 다시 고용했다고 했다. 새로 고용된 하인들은 웨스트에그 마을로 들어가 장사꾼들과 격탈하는 일 없이 전화로 적당한 값의 물건을 주문한다고 했다. 식료품 배달 소년은 그 저택의 주방이 돼지우리 같더라고 전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하인 같지는 않다고 쑥덕거렸다.

다음 날 개츠비로부터 전화가 왔다.

"외출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아닙니다, 친구분."

"하인들이 모두 바뀌었다고 들었는데요."

"공연히 소문 내지 않을 사람을 택했지요. 데이지가 이곳에 자주 옵니다-오후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데이지가 보인 거부 때문에 그렇게 거대한 저택이 마치 종이로 만든 집처럼 내려앉고 만 것이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들은 울프심이 돌봐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형제 자매들이지요. 그들은 조그만 호텔을 경영했었답니다."

"그랬군요."

그는 데이지의 부탁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내일 그녀의 집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와 주겠냐는 것이었다. 조던 베이커도 올 거라고 했다. 30분 후에 데이지가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승낙하자 그녀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이 기회에 무슨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특히 전에 개츠비가 정원에서 대강 말했던, 다소 가슴 아픈 사건은 말이다.

다음 날은 유난히도 더웠다. 그 해 여름 중에서 가장 무더운 날이었을 것이다. 내가 탄 열차가 터널에서 빠져 나왔을 땐 오직 내셔널 비스킷 회사의 사이렌 소리가 대낮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있었다. 객차 안의 밀짚 좌석은 금방이라도 타 버릴 듯이 후끈거렸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는 잠시 블라우스 윗부분을 잡아당겨 그 안에 땀을 식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내 손에 쥔 신문이 땀에 젖어 버리자 처량한 소리를 지르며 찌는 더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지갑이 객차 바닥으로 철썩 떨어졌다.

"어머나, 이런!"

그녀는 숨을 헐떡거렸다. 나는 지친 동작으로 허리를 굽혀 지갑을 집어서 그 여자에게 돌려주었다. 그때 난 그 지갑을 탐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팔을 쭉 뻗어서 그 한쪽 귀퉁이를 쥐고 들었었다-그랬지만 그 여자를 비롯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의심했다.

"아유, 덥다."

차장이 낯익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독한 날씨로군! , 덥다! ...정말 덥군! ..., 더워! 지독하게 덥지요? 덥지요? ..."

내 정기 승차권은 그의 손에서 거무스름한 때가 묻어 다시 돌아왔다. 이런 더위 속이라면 여자의 붉은 입술에 남자가 키스를 하고, 그 남자의 머리가 가슴에 걸친 잠옷 주머니를 축축하게 적셔 놓은들 그 누가 신경을 쓸까.

...부캐넌 부부의 저택 홀에서는 잔잔하게 바람이 불고 있어서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개츠비와 나에게 전화벨 소리를 사뿐히 보내 주었다.

"주인 어른의 몸요?"

하인이 수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부인,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은 그걸 차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낮은 너무나 더워서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사실상 그가 한 말은 '..., ..., 알아보겠습니다.' 였다.

그는 수화기를 놓고서는 조금 윤기 있는 얼굴로 우리에게로 다가오더니 우리의 뻣뻣한 맥고 모자를 받아 들었다.

"부인께선 객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쓸데없이 그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날처럼 더운 날은 필요 이상의 몸짓은 모욕으로 느끼게 했다.

그 방은 커튼 햇살을 잘 가려 어둡고 시원했다. 데이지와 조던 베이커는 큼직하고 긴 의자에 누운 채 동상처럼 자신들의 흰 드레스가 선풍기 바람에 흩날리지 않도록 내리누르고 있었다.

"우리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들은 동시에 말했다.

햇볕에 그을렸는지 하얗게 분을 바른 조던의 손가락이 잠시 내 손가락에 와서 닿았다.

"그런데 토마스 부캐넌 씨는 어디 있나요?"

내가 물었다. 바로 그때 거칠고 착 가라앉은,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가 홀의 전화기를 통해 들려 왔다.

개츠비는 진홍색 양탄자 한가운데 서서 매혹적인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데이지는 그를 지켜보다가 흥분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가슴에서 약간의 분가루가 공기 속으로 솟아올랐다.

"소문에 의하면 말이지요,"

조던이 속삭였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탐의 애인이라는군요."

우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탐은 그런 소리가 귀찮다는 듯이 짜증을 부렸다. "그럼 좋아요. 당신에게는 절대로 그 차를 팔지 않겠소. ...당신에게 팔아야 할 하 등의 의무가 없으니까. ...그리고 점심 식사시간에 그런 일로 사람을 귀찮게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저러는 거예요."

데이지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을 거야."

나는 그녀에게 장담했다.

"정말로 거래하는 거야. 난 우연히 그걸 알게 되었어."

탐이 문을 와락 열고 그 비대한 몸집으로 문의 공간을 한순간 꽉 채우더니 방안으로 급히 들어왔다.

"개츠비 씨!"

그는 싫은 기색을 교묘히 감추고 넓다란 손을 내밀었다.

"와 주셔서 기쁘군요. ...그리고 닉..."

"시원한 음료를 좀 만들어 주세요."

데이지가 소리쳤다.

그가 다시 방을 나가자 데이지는 일어서서 개츠비에게로 가서는 그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에 키스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아시죠?"

그녀가 속삭였다.

"여기 숙녀가 있다는 걸 잊었군요."

조던이 말했다.

데이지가 모르겠다는 듯이 돌아다보았다.

"너도 닉에게 키스하지 그래."

"무슨 여자가 저렇게 저속할까!"

"난 그런 데에 신경 안 써!"

데이지는 악을 쓰듯 말하더니 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에 기름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더위를 생각하고 쑥스러운 듯이 긴 의자에 가서 앉았다. 바로 그때 단정히 차려 입은 유모가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 귀엽고 예쁜 아기."

데이지가 두 팔을 내뻗으며 노래하듯이 말했다.

"널 사랑하는 엄마에게로 오렴."

유모의 손에서 벗어난 아이는 방을 달음질쳐서 엄마의 품속으로 부끄러운 듯이 들어가 앉았다.

"내 귀엽고 예쁜 아기, 엄마가 너의 머리에 분을 뿌려 주었지? , 일어나서 안녕해 볼까?"

개츠비와 나는 번갈아 몸을 굽혀서 마음에 없이 내민 그 조그만 손을 잡았다. 그런 뒤 개츠비는 놀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어린아이의 존재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난 점심 먹기 전에 새 옷으로 입었어요."

그 아이는 데이지에게도 돌아서서 말했다.

"그건 엄마가 너를 예쁘게 보이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데이지는 아이의 조그맣고 하얀 목 주변의 주름에 얼굴을 비볐다.

"넌 꿈이란다. 아주 귀여운 꿈이야."

"그래요."

아이가 조용하게 말했다.

"조던 아줌마도 하얀 드레스를 입었네요."

"너도 엄마 친구들이 마음에 드니?"

데이지는 아이를 뒤로 돌려 개츠비를 쳐다보게 했다.

"저분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어디 갔죠?"

"이 아이는 제 아빠를 닮지 않았어요."

데이지가 설명했다.

"얘는 날 닮았어요. 머리 색깔, 얼굴 생김새는 물론 모든 걸 말이에요."

데이지는 긴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유모가 한 걸음 내디디며 손을 내밀었다.

"패미, 이리 와요."

"안녕, 내 아기!"

훈련이 잘된 그 아이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이 뒤를 힐끔 돌아보고는 유모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이끌려 나갔다. 바로 그때 탐이 얼음을 가득 채운 넉 잔의 진 리키를 들고 돌아왔다.

개츠비가 자기 잔을 집어들었다.

"정말로 시원해 보이는군요."

그는 어색하게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모두 목이 말랐는지 한 번에 잔을 비웠다.

"어느 책에서인지 읽었는데, 태양이 해마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답니다."

탐이 기분 좋게 말했다.

"그러니까 얼마 안 있어서 지구는 태양 속으로 떨어져 들어갈 겁니다-아니, 가만 있자-정반대군요. 태양은 해마다 식어 가고 있다는 거죠. 밖으로 나갑시다."

그가 개츠비에게 권했다.

"이곳을 한 번 구경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베란다로 나갔다. 더위에 기운이 다 빠진 파란 바다에는 작은 돛배 한 척이, 더 시원한 바다를 향해 기어가듯 떠가고 있었다. 개츠비는 눈으로 잠시 그 배를 쫓다가 손을 들어 만 건너를 가리켰다.

"나는 이 집 건너편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삼복더위 속의 바닷가에 있는 장미꽃밭과 뜨거운 잔디와 잡초가 무성한, 손질 안 된 땅을 보고 있었다. 배의 하얀 돛들은 푸르고 시원한 하늘의 경계선을 등지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앞쪽에는 부채모양의 바다와 풍요로워 보이는 섬들이 가로놓여 있었다.

"재미있는 게임이 있는데..."

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저 사람과 1시간쯤 저기로 가 볼까 해."

우리는 더위를 막기 위해 태양을 가린 그늘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불안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오늘 오후엔 뭘 할 거죠?"

데이지가 소리쳤다.

"그리고 내일은요? 그리고 앞으로 30년 동안은요?"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아요."

조던이 말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시원해지는 가을이면 다시 새출발을 하게 마련이라구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더워."

눈물이 나오기 직전에 우기듯 데이지가 말했다.

"게다가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야. 모두들 시내로 가는 게 어때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위 속을 애써 뚫고 부딪치며 무의미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마구간을 차고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어요."

탐이 개츠비에게 말했다.

"그러나 차고를 마구간으로 만든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겁니다."

"어떤 분이 시내로 가기를 원하지요?"

데이지가 끈질기게 물었다. 개츠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아이, !"

그녀가 소리쳤다.

"당신은 너무 냉정해 보여요."

그들의 눈동자가 부딪혔고, 그들은 허공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았다. 데이지는 힘없이 식탁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당신은 언제나 너무 재미없어요."

그녀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그에게 말했었다. 탐 부캐넌도 지금 그것을 확인했다. 탐은 굉장히 놀랐다. 그는 입을 조금 벌린 채 개츠비를 보았다. 그러더니 잊었던 옛 친구를 이제 막 알아보기라도 한 듯한 눈으로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 광고에 나온 남자와 닮았어요."

데이지는 천진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광고에 나온 남자 알고 있을 거예요."

"좋아."

탐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 갑자기 시내에 가고 싶어졌어. , 가자고. 우리 모두 시내로 가는 거야."

그가 일어났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개츠비와 자기 아내의 중간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가자니까."

탐은 약간 짜증을 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 시내로 갈 거면 지금 출발합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어 남은 음료를 마셨다.

"데이지의 목소리에 햇볕이 내려쬐는 차도로 나갔다.

"그런데 가서 뭐 하지요?"

데이지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우선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해 줄 수 없어요?"

"모두들 줄곧 피웠잖소?"

"아이, 그러지 말고 즐겁게 지내요."

그녀가 탐에게 부탁했다.

"너무 더워서 이야기 할 힘도 없군."

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맘대로 하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이리 와, 조던."

두 여자가 이층으로 준비하러 간 동안 우리 세 남자는 차도에서 뜨거운 자갈을 발로 이리저리 굴리며 서 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벌써 침침한 초승달이 떠 있었다. 개츠비가 마음을 고쳐먹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 바로 그때 탐이 빙그르르 돌아서서 그의 말을 기다리듯 마주 보았다.

"이곳에 마구간을 갖고 있나요?"

개츠비가 애써서 말했다.

"여기서 4분의 1마일가량 내려가면 있습니다."

"그래요?"

잠시 말이 끊겼다.

"왜 시내로 가려는 거죠?"

탐이 상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자들이란 머릿속으로 그따위 생각이나 한다니까요-."

"마실 걸 좀 갖고 갈까요?"

데이지가 2층 창가에서 소리쳤다.

"아냐, 내가 가지러 갈게."

탐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개츠비는 굳은 모습으로 나를 돌아다보았다.

저 사람의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군요. 친구분."

"그녀의 목소리는 좀 투박하게 느껴져요."

내가 말했다.

"그 목소리엔 가득하게-."

그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난 지금까지 그런 걸 느끼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것은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는 천박한 매력이었다. 그 목소리는 딸랑딸랑 울리기도 하고 심벌의 노래 같기도 했다. 그녀는 하얀 궁전에 높이 앉은 공주이자 모든 남성의 우상이었다.

탐이 1쿼트들이 술병을 타월로 싸면서 나왔다. 그 뒤를 데이지와 조던이 금속천으로 만든, 작고 꼭 끼는 모자를 쓰고 팔에는 가벼운 케이프를 걸치고 따라왔다.

"내 차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개츠비가 제안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의자의 후끈거릴 녹색 가죽을 생각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에다 주차시켜 두었어야 했는데요."

"이 차는 표준형 변속입니까?"

탐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내 쿠페를 타시지요. 내가 당신의 차를 몰고 시내로 가겠습니다."

이 제안은 개츠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휘발유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군요."

"휘발유가 넉넉합니다."

탐은 자랑하듯 말하고는 계량기를 들여다보았다.

"혹시 휘발유가 떨어지더라도 약국에 들리면 됩니다. 요즘엔 약국에서 뭐든지 다 팔리더라구요."

둘 사이에 비꼬는 투로 말이 오가자 서로 얼굴이 붉어졌다. 데이지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말할 수 없이 괴로운 표정이 개츠비의 얼굴을 스쳐 갔는데, 그것은 지금은 분명히 처음 보는 것 같지만 마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어렴풋이 기억할 수는 있는 표정이었다.

"가자구, 데이지."

탐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그녀를 개츠비의 차 쪽으로 밀었다.

"이 곡마단의 승용차로 태워다 주겠어."

탐은 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데이지는 그의 팔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당신은 닉 오빠와 조던을 태우고 가세요. 우리는 쿠페로 뒤따라가겠어요."

그녀는 개츠비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웃옷을 챙겨 주었다. 탐과 조던과 나는 개츠비의 차 앞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탐이 시험삼아 생소한 기어를 밀어 넣어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데이지와 개츠비만을 뒤에 남겨 둔 채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자네 봤나?"

탐이 내게 물었다.

"뭘 말이야?"

그는 조던과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나를 바보 멍텅구리로 생각하겠지? 그렇지 않나?"

그가 넌지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겐 투시력 같은 게 있어서 때로는 그것이 내게 행동지침을 말해 준다네. 자네는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과학이란-."

그는 말을 중단했다. 눈앞에 나타난 우연한 사실이 그를 사로잡아 이성적 함정에서 그를 다시 끌어냈던 것이다.

"그 작자에 관해 어느 정도 조사해 봤지."

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진작에 알았더라면 완전히 파헤쳤을 텐데."

"그럼 점쟁이한테 갔었다는 얘긴가요?"

조던이 익살스럽게 물었다.

"뭐라고요!"

우리가 웃어대자 탐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점쟁이라뇨?"

"개츠비 씨에 대해서 알아보러 말이에요."

"개츠비 씨에 대해서라뇨! 아니오, 그런 일 따위는 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 작자의 과거에 대해 좀 조사해 보았을 뿐이오."

"그래서 그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냈군요."

조던이 아는 척하며 말했다.

"옥스퍼드 출신이라고요!"

탐은 깜짝 놀라며 우리를 쳐다봤다.

"옥스퍼드 출신이라니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요."

"어쨌든 간에 그는 옥스퍼드 출신이에요."

"뉴멕시코의 옥스퍼드겠지요."

탐이 경멸조로 코방귀를 뀌었다.

"아니면 사이비 대학이거나..."

"이봐요, . 만약 당신이 그를 그렇게 무시한다면 왜 그런 사람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지요?"

조던이 짓궂게 따져 물었다.

"내가 아니라 데이지가 그자를 초대한 거요. 데이지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그자를 사귀었어요-그런데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는 이제 약해지는 술기운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때 T. J. 에클버그 박사의 퇴색한 두 눈이 길 아래쪽으로부터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나는 문득 휘발유에 관한 개츠비가 주의를 주던 일이 떠올랐다.

"시내까지 가기엔 넉넉할 만큼 있다고."

탐이 말했다.

"그렇지만 바로 저기에 주유소가 있잖아요."

조던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렇게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되는 게 싫단 말이에요."

탐이 화를 내며 양쪽 브레이크를 밟자,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미끄러지듯 윌슨의 가게 간판 아래 급정거했다.

잠시 후 가게 주인이 나타나더니 노려보는 눈으로 우리 차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름 좀 넣어 주시오."

탐이 거칠게 소리쳤다.

"우리가 왜 차를 세웠는지 아시오? 경치를 감상하려고 선 게 아니에요. 어서 넣어 주세요."

"난 몸이 좀 좋지 않아요."

윌슨은 꼼짝도 하지 않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앓고 있었어요."

"왜 병이 난 거요?"

"그동안 너무 지쳤어요."

"그럼 내가 직접 넣어도 되겠소?"

탐이 다그쳐 물었다.

"전화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잖소?"

윌슨은 간신히 기대고 있던 차양 아래 있는 문기둥을 떠나 숨을 가쁘게 쉬며 휘발유 탱크 마개를 비틀어 열었다. 햇볕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점심 시간을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돈이 몹시 궁해 보였고, 혹시 당신의 그 낡은 차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전화했던 겁니다."

"이 차는 어떻소?"

탐이 물었다.

"지난주에 산 것이오."

"노란색이 아주 어울리는데요."

윌슨은 핸들을 좌우로 돌려보며 말했다.

"이 차를 살 생각이 있소?"

"구미가 당기긴 합니다만.“

윌슨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안 사겠어요. 그러나 당신의 다른 차로 돈을 좀 벌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돈을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난 여기서 너무 오랫동안 살았어요. 이제 여길 떠나고 싶어요. 아내와 서부로 가고 싶어요."

"부인도 그러길 원한단 말이오?"

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내는 10년 전부터 그런 얘기 해 왔는걸요."

윌슨은 잠시 주유소 펌프에 몸을 기대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떠나야겠어요. 그녀를 데리고 말입니다."

쿠페가 먼지를 일으키며 거칠게 사라졌다. 언뜻 안에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얼마요?"

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지난 이틀 동안에 난 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윌슨이 말했다.

"그 때문에 여기를 떠나 버리려는 거예요. 차 문제로 당신을 귀찮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얼마냐니까요."

"1달러 20센트입니다."

나는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으나, 윌슨이 아직은 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슨은 머틀이 자기를 떠나 다른 세계에서 다른 종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병이 난 것이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나서 이어 탐을 보았다. 탐도 자신의 아내에게서 그와 비슷한 발견을 한 지 한 시간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순간 나는 병자와 건강한 사람이 차이만큼 심각한 것도 없지만 지성이나 인종에 있어서는 사람들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슨은 병이 크게 나서 무슨 일을 저지른 듯한, 그것도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보였다-마치 방금 어떤 가엾은 여자에게 임신이라도 시킨 사람 같았다.

"그 차를 양도하겠소."

탐이 말했다.

"내일 오후에 넘기겠소."

그 지역은 언제나 불만스러운 곳이었다. 심지어 오후의 해가 한창일 때도 그랬다. 그때도 나는 등뒤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머리를 뒤로 돌렸다. 잿더미 너머로 T.J. 에클버그 박사의 거대한 두 눈이 여전히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눈이 20피트도 안 되는 가까운 곳에서 특별히 긴장된 빛을 띠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윌슨의 가게 위층의 한 창문에는 커튼이 옆으로 약간 걷혀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머틀 윌슨이 우리 차를 눈여겨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열중한 나머지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천천히 현상되고 있는 사진에 여러 물체들이 나타나듯이 그녀의 얼굴에는 차례차례 틀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표정은 이상하게도 눈에 익은 것이었다-그것은 내가 여자의 얼굴에서 흔히 보아 온 그런 표정이었지만, 머틀 윌슨의 얼굴에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질투와 공포로 휘둥그래진 그녀의 눈은 탐에게가 아니라 조던 베이커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조던 베이커를 탐의 아내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사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은 없다. 그 예로 탐은 차를 타고 가면서 심한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아내와 정부는 자기 손아귀에 꽉 잡고 있어 아무도 넘보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갑자기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 활개치고 있었다. 데이지를 추월하고 윌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그의 본능은 가속기를 마구 밟게 했고, 우리는 시속 50마일로 아스토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마침내 고가도로의 거미줄 같은 돌도 사이에서 느긋하게 달리고 있는 푸른색 쿠페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번가 근처에 있는 대형 영화관은 시원하지요."

조던이 말을 꺼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외곽으로 빠져나간 여름철 오후의 뉴욕에 좋아요. 어딘지 모르게 감각적인 면이 있거든요-마치 온갖 이상한 과일들이 무르익어서 손에 쥐어질 것만 같죠."

'감각적'이라는 말이 탐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가 미처 항의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쿠페가 다가왔고 곧이어 데이지가 우리에게 차를 가까이 대라고 신호를 보냈다.

"어디로 가는 거죠?"

그녀가 소리쳤다.

"영화를 보는게 어떻겠소?"

"이렇게 더운데요."

그녀는 짜증을 냈다.

"당신들이나 가세요. 우리는 드라이브나 할 테니 나중에 만나요."

그녀는 간신히 재치 있는 말로 우리를 따돌렸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나도록 해요. 찾기 쉽게 나는 두 개피의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될게요."

"이곳은 그런 일로 입씨름을 할 데가 아니오."

뒤에서 트럭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대자, 탐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센트럴파크의 남쪽으로 해서 플라자호텔 앞까지 우리 뒤를 따라와요."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그들의 차를 바라보는가 하면 그들의 차가 신호에 걸려 늦게 되면 그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속도를 늦추었다. 그때 그는 그들이 옆길로 총알같이 돌진해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플라자 호텔의 특실 휴게실을 빌렸다.

우리가 그 방으로 떼지어 들어감으로써 끝난 그 끈질기고 떠들썩했던 입씨름을 지금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과정에서 속옷이 온통 땀으로 가득했던 일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이러한 기억은 그때 다섯 개의 욕실을 빌리어서 냉수욕을 하자고 했던 데이지의 제안이 생각났기 때문에 떠오른 것인데, 그 후 '민트줄렙을 마시러 간 곳'에 대한 기억으로 더 생생하게 남은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그것은 '미친 생각'이라고 여겼다-그때 우리 모두는 어리둥절해하는 호텔 종업원에게 한꺼번에 떠들어댐으로써 아주 유쾌한 기분이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유쾌한 척했던 것 같다.

그 방은 큼지막했으나 숨막힐 것 같았고, 오후 4시가 되어 창문들을 열어제쳤으나 공원의 뜨거운 관목숲으로부터 겨우 한 차례 바람이 불어올 뿐이었다. 데이지는 화장대 앞으로 가서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서서는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근사한 방들이군요."

조던이 감탄조로 소곤거리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다른 창문들도 좀 열어요."

데이지는 거울을 계속 쳐다보면서 시켰다.

"더 이상 열 창문이 없어요."

"그럼 도끼를 가져오라고 전화라도 하는 편이 낫겠군요."

"해야 할 일이란 게 기껏 더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라니."

탐이 참을성 없이 한마디했다.

"당신은 자꾸 트집을 잡으니까 더 덥게 느껴지잖아요."

그는 타월로 싸 가지고 온 위스키 병을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시죠?"

개츠비가 의견을 말했다.

"시내로 오자고 했던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못에 걸려 있던 전화번호부가 스르르 빠져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지자 조던이 귓속말로 말했다.

"실례했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내가 집겠습니다."

내가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가 집었어요."

개츠비는 끊어진 줄을 살펴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하고 중얼거리고는 그것을 의자 위로 던져 올렸다.

"당신의 표현력은 대단해요!"

탐이 날카롭게 말했다.

"뭐 말이지요?"

"'친구분' 하는 말 말입니다. 어디서 얻어 낸 말이지요?"

"저 좀 봐요, ."

데이지가 화장대에서 몸을 돌리고 말했다.

"개인적인 것에 대해 말을 할 생각이라면 전 여기서 떠날 거예요. 딴 얘기 그만하고 전화를 걸어 민트줄렙에 넣을 얼음이나 주문해 줘요."

탐이 수화기를 집어들자 압축된 더운 공기가 폭발하여 그 소리에 섞여 들어갔고, 우리는 아래층 무도장에서 들려 오는 멘델스존의 결혼진행곡의 엄숙한 화음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무더위에 결혼을 하다니!"

조던이 침울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난 6월 중순에 결혼했었지."

데이지가 지난 일을 기억하며 말했다.

"6월의 루빌에서! 그때 누군가 기절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였지요, ?"

"빌록시."

탐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맞아. 빌록시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어. '블록스' 빌록시였지. 그런데 그는 상자를 만드는 사람이었어-정말이야-게다가 그는 테네시 주 빌록시 출신이었지."

"사람들이 그를 우리 집으로 실어 왔었지요?"

조던이 말했다.

"우리 교회에서 두 번째 집에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우리 아버지가 나가 달라고 말해도 3주일이나 계속 머물렀었지요. 그가 떠난 다음 날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어요."

잠시 후 그녀가 덧붙였다.

"그와 무슨 연관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난 전에 멤피스 출신의 빌 빌록시라는 사람과 알고 지냈는데..."

내가 한마디 했다.

"그는 그 사람의 사촌이에요.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전 그의 집안 내력을 모두 알았지요. 그 사람은 제게 알미늄으로 만든 골프채를 주었는데, 전 지금까지도 그걸 사용하고 있어요."

결혼식이 시작되면서 음악은 그치고 창문으로 기다란 환호 소리에 뒤이어 '그래요-그래-그래!'하는 짧은 고함 소리가 들려 오더니 마침내 재즈가 터지면서 댄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 늙어 가고 있어요."

데이지가 말했다.

"만약 우리가 젊다면 일어나서 신나게 춤을 출 텐데 말이에요."

"빌록시란 사람 기억나요?"

조던이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를 어디서 알게 되었죠, ?"

"빌록시?"

탐은 기억을 더듬느라 애를 썼다.

"난 그런 사람을 모르겠는데요. 그는 데이지의 친구였으니까 말이오."

"아니었어요."

데이지가 부정했다.

"전 그를 본 적이 없다구요. 그는 자가용으로 왔어요."

"그런데 그는 당신을 안다고 했소. 그는 루빌에서 자랐다고 했지. 에이서 버드가 그를 마지막 무렵에 데리고 와서 그에게 내줄 방이 없느냐고 우리에게 물었었지."

조던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향에 가는 길에 건달짓을 했나 봐요. 그는 제게 예일 대학 시절엔 당신의 과에서 대표를 했었다고 말했어요."

탐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마주 보았다.

"빌록시가 말이오?"

"우선 첫째로 우리 과엔 대표라는 것이 없었지."

개츠비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자 탐은 갑자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학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개츠비 씨, 당신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정확히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충은 그래요."

", 참 내가 듣기로는 옥스퍼드에 갔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 갔었지요."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탐이 믿기 어렵다는 듯이 경멸조로 말했다.

"빌록시가 뉴헤이븐에 가 있을 무렵에 당신도 분명히 거기에 가셨겠군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웨이터가 노크를 하고 으깬 박하와 얼음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또 문을 가볍게 닫고 나가도 침묵을 쉽게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엄청나고도 자세한 이야기는 마침내 밝혀지게 되었다.

"그곳에 갔다고 말했잖소."

개츠비가 말했다.

"그 얘기는 들었소만, 언제였는지 그걸 알고 싶소."

"1919년이었는데, 난 단지 5개월 정도 머물렀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탐은 혹시 우리가 자신의 불신은 반영해 주지 않을까 해서 힐끔 둘러보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개츠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전 후 일부 장교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개츠비가 말을 계속했다.

"우린 영국 아니면 프랑스의 어느 대학이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지요."

나는 일어서서 그의 등을 툭툭 쳐주고 싶었다. 전에도 경험한 바 있는 완전한 믿음의 마음이 다시 일어났던 것이다.

데이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는 테이블로 갔다.

"위스키를 따세요, ."

그녀가 시켰다.

"민트줄렙을 한잔 만들어 드리겠어요. 한잔하고 나면 한결 좋아질 거예요. ...이 박하를 봐요."

"잠깐 기다려요."

탐이 날카롭게 말했다.

"개츠비 씨에게 한 가지 더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소."

"말씀하십시오."

개츠비가 공손하게 말했다.

"도대체 당신은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 겁니까?"

마침내 그들은 대놓고 맞붙게 되었고, 개츠비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아무 죄가 없어요."

데이지가 두 사람을 심각하게 번갈아 보며 말했다.

"당신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제발 당신이 그만두세요."

"그만두라고!"

탐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되받아 말했다.

"요즘 처신은 남편이 뒤로 물러앉아 정체불명의 별 볼 일 없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하게 내버려두는 것일 테지. 그래,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내버려두지요. ...요즘 사람들은 우선 가정생활과 가족 제도를 코웃음 치기 시작했다지. 그들은 조만간 모든 것을 다 팽개쳐 버리고 흑백 인종 간의 결혼도 인정하겠지."

갑작스런 논란으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탐은 자신을 문명의 마지막 방벽에 홀로 서 있는 것으로 보았다.

"우린 모두 백인인데요."

조던이 중얼거렸다.

"내가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난 성대한 파티 같은 건 열지 않소. 사람들을 사귀려면 자기 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어야 하나 봐-요즘 세상은 말이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화가 났지만, 탐이 입을 열 때마다 어쩐지 자꾸 웃음이 났다. 난봉꾼이 감쪽같이 도덕가가 된 그 변신은 빈틈이 없었다.

"나도 할 말이 좀 있소, 친구분."하고 개츠비가 말을 시작했다. 데이지가 곧 그가 하려는 말을 짐작했다.

"제발 참으세요."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스러워했다.

"제발 모두들 돌아가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하고 내가 일어섰다.

"가지, . 한잔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개츠비 씨! 당신이 내게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

"당신의 부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개츠비가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한 적이 절대로 없어요. 부인은 날 사랑하고 있소."

"당신 미쳤군."

탐이 기계적으로 외쳤다.

개츠비는 벌떡 일어섰다. 흥분으로 기운이 솟아나는 모양이었다.

"부인은 당신을 사랑한 적이 결코 없었소. 알겠소?"

그가 소리쳤다.

"내가 가난했고 또 나를 기다리다 지쳐서 할 수 없이 당신과 결혼했던 거요.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나 이외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소!"

그때 조던과 나는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탐과 개츠비가 서로 다투는 듯한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함께 있어 주기를 청했다. 마치 자기들은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가 자기들의 감정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앉아요, 데이지."

탐은 부모와 같은 어조로 말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요? 모두 듣고 싶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개츠비가 말했다.

"5년 동안이나 반복되어 온 일을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탐은 데이지를 홱 돌아다보았다.

"5년 동안이나 이자와 만나 왔단 말이지?"

"만나 왔다는 게 아니오."

개츠비가 말했다.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소. 그렇지만 우리 두 사람은 줄곧 서로를 원하고 있었던 거요, 친구분. 그런데 당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소. 난 가끔 웃어대곤 했지요."

그러나 지금 그의 두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당신이 모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고서 말이오."

", 그랬었군."

탐이 굵직한 손가락을 목사처럼 철썩 마주치더니 의자의 등받이에 털썩 몸을 기댔다.

"당신은 미쳤소."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데이지를 알기 전이니까 상관없소. 당신이 뒷문으로 식료품 배달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녀에게 1마일 내로 접근할 수 있었겠소. 하지만 그 나머지 얘기는 모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오. 데이지는 나와 결혼할 때 나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단 말이오."

"그렇지 않아요."

개츠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녀는 날 사랑하고 있소. 가끔 바보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게 탈이긴 하지만 말이오."

탐은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역시 데이지를 사랑하고 있소. 이따금 술을 진탕 마시고 떠들어대거나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제정신이 들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오."

"그런 불쾌한 말은 하지 말아요."

데이지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낮아지면서 소름 끼치는 경멸조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가 왜 시카고를 떠났는지 아세요? 당신의 그 별것 아닌 술잔치 얘기를 그곳 사람들이 곧이듣지 않는 걸 보고 난 깜짝 놀랐어요."

개츠비가 그녀에게로 걸어가서 그 곁에 섰다.

"데이지, 그건 이미 다 끝난 일이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저 사람에게 사실대로만 말해요. 당신은 저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걸 말이오. 그러면 모든 것을 영원히 깨끗하게 씻어 버릴 거요."

데이지는 무의식적으로 개츠비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제가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당신은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소."

데이지는 망설였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디어 깨달은 것처럼 간절한 표정으로 조던과 내게로 향했다. 그것은 마치 자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저 사람을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데이지는 눈에 띄게 힘주어 말했다.

"카피올라니에서도 말이오?"

탐이 갑자기 다그쳐 물었다.

"그래요."

아래층 무도장으로부터 억눌리고 숨막힐 듯한 화음이 뜨거운 공기의 파장을 따라 떠올라 왔다.

"펀치볼에서 구두가 젖지 않도록 당신을 안아서 차에 앉혀 줬던 그 날도 날 사랑하지 않았단 말이오?"

탐은 강경하게 말했으나 그 말투는 부드러웠다.

"제발 대답해요, 데이지."

"제발 그만둬요."

데이지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증오심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녀는 개츠비를 쳐다보았다.

"보셨지요, 제이."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했을 때 그녀의 손은 눈에 띌 정도로 떨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그 담배와 불붙은 성냥개비를 양탄자 위로 내던졌다.

"야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원해요!"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리 질렀다.

"저는 지금 당신을 사랑해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잖아요."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전 사실 한때는 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신을 사랑했던 거예요."

개츠비는 눈을 감았다.

"나도 사랑했다는 거요?"

그는 데이지의 말을 되받아물었다.

"그것도 거짓말이오."

탐이 사납게 말했다.

"데이지는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소. 사실 데이지하고 나 사이엔 당신으로선 결코 알지 못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소. 우리 두 사람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말이오."

이것은 개츠비의 몸을 마구 할퀴는 것 같은 쓰라린 말이었다.

"데이지와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소."

탐이 우겼다.

"데이지는 지금 너무나 흥분해 있어서-."

"단둘이 있을 때라도 전 탐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데이지가 가련한 목소리로 이렇게 시인했다.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니까요."

"당연히 사실이 아니겠지."

탐이 맞장구를 쳤다.

데이지는 탐 쪽을 돌아다보았다.

"마치 당신한테 문제가 되기나 하는 것처럼 나서는군요."

그녀가 말했다.

"물론 문제가 되지. 이제부터는 당신을 더 잘 돌보아야겠소."

"이해를 못 하는군요."

개츠비는 약간 당황해하며 말했다.

"앞으로 당신은 더 이상 데이지를 돌볼 필요가 없을 거요."

"돌볼 필요가 없을 거라구요?"

탐은 눈을 크게 뜨며 여유 있게 웃었다. 이제 그는 자기의 감정을 억제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왜 그렇지요?"

"데이지는 당신을 떠나려 하고 있소."

""허튼 소리하지 말아요."

"정말이지 전 떠날 거예요."

데이지는 이 말을 하는 데에 아주 힘들어했다.

"데이지는 내게서 떠나지 않아요!"

탐의 이 말이 갑자기 개츠비의 모든 것을 내리누른 것 같았다.

"끼워 줄 반지를 훔쳐야만 할 협잡꾼 따위에겐 절대로 가지 않을걸."

"전 정말 못 참겠어요."

데이지가 소리쳤다.

"아아, 제발 나가요."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요?"

탐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마이어 울프심 같은 족속들과 몰려다니는 패거리지. 난 그 정도는 우연히 알았소. 난 당신에 대해서 약간 뒷조사를 해 봤지. 내일은 더 자세히 조사해 볼 작정이오."

"그 일에 관해서는 맘대로 해 보시오, 친구분."

개츠비가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의 '약국'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냈소."

탐은 우리 쪽을 돌아다보며 재빨리 말했다.

"이 사람과 울프심은 이곳과 시카고에 많은 옆골목 약국을 매입해서는 카운터에서 에틸알코올을 팔았어. 그게 이 사람의 알량한 재주 가운데 하나지. 난 이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주류 밀매업자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정확해."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개츠비가 공손하게 말했다.

"당신의 친구 월터 체이스도 별로 자존심이 없어서 그 사업에 한몫 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당신은 곤경에 빠진 그를 못 본 척 했지요. 그렇지 않소? 뉴저지의 교도소에서 한 달이나 있게 했지요. 어쩌면 그럴 수가! 당신의 참모습을 알려면 월터의 말을 들으면 되겠더군요."

"그 사람은 알거지가 되어서 우리에게로 왔지요. 그리고 돈을 좀 벌더니 기뻐서 날뛰더군요, 친구분."

"'친구분'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탐이 소리쳤다.

개츠비는 상대하지 않았다.

"월터는 당신을 도박법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었지만 울프심이 그를 위협해서 입을 다물게 했던 거요."

늘 보아 온 것은 아니나 낯설지 않은 표정이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떠올랐다.

"그 약국 운영은 그저 푼돈 벌이에 불과한 것이지."

탐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현재 월터가 내게 일러주기를 두려워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소."

내가 데이지를 힐끔 보니 그녀는 겁에 질린 채 개츠비와 자기 남편을 번갈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던을 슬쩍 보니 그녀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마음을 쏟는 어떤 물건을 턱 끝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나는 개츠비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마치 '살인을 한'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정원에서 사람들이 내뱉던 그에 대한 험담을 일체 무시하고서 하는 말이다. 잠시 동안 그의 모습은 이렇게 야릇한 방법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었다.

잠시 뒤 그 표정이 사라지자 그는 데이지에게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변명하고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한 세상의 나쁜 평에 대해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를 점점 더 깊이 움츠러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자기 옹호의 말을 그만두고 말았다. 오후의 해가 기울어 가고 있는 동안 오직 생명을 잃은 꿈만이 이제는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을 만져 보려고 기쁨도 없이 절망을 이겨내며 방 저쪽으로 간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길 애원했다.

"제발 탐! 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겁에 질린 두 눈은 그녀가 가졌던 모든 의지와 용기가 모두 다 사라져 버렸음을 말해 주었다.

"당신들 둘이서 집으로 출발해요, 데이지."

탐이 말했다.

"개츠비 씨의 차로 말이오."

그녀는 이번에는 놀란 눈으로 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탐은 도량이 넓은 듯한 침착한 말투로 권했다.

"가요. 이 사람이 당신을 괴롭히진 않을 거요. 그 주제넘고 별 것 아닌 애정행각은 이제 끝났다는 걸 깨달았을 거요."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마치 유령들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의 시선을 벗어나 외로이 가 버렸다.

잠시 후에 일어난 탐은 마개도 따지 않은 위스키병을 타월로 다시 싸기 시작했다.

"이걸 좀 마시겠소, 조던? ...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그가 재차 물었다.

"뭐라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좀 마시겠소?"

"생각 없어. ...난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걸 이제 막 기억해 냈네."

나는 서른 살이었다. 내 앞에는 새로운 10년이라는 불길하고 위협적인 길이 뻗어 있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쿠페를 타고 롱아일랜드를 향해 출발한 것은 7시쯤이었다. 탐은 으스대며 우습다는 듯이 계속 지껄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조던과 내게는 보도에서 들리는 낯선 사람들의 외침이나 고가도로의 소음만큼이나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인간의 동정심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 우리 두 사람은 그들의 비극적인 말다툼이 뒤에 따르는 뉴욕의 불빛과 함께 사라지게 함으로써 만족을 느꼈다.

서른 살-그것은 독신 남자로서 알아야 할 일의 목록이 얇아져 가며, 또한 열광이 든 가방의 부피가 줄어들고 머리숱이 적어져 갈 앞으로의 고독한 10년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곁에는 조던이 있었다. 그녀는 데이지와는 달리 지나치게 총명해서 쉽게 잊을 수 있는 꿈들을 영원히 잊고 산다. 차가 어두운 다리 위를 달릴 때 그녀는 핏기없는 얼굴을 힘없이 내 어깨에 기댔다. 그녀의 손이 꽉 잡아 주는 새로운 다짐으로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던진 무서운 충격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늘해져 가는 황혼 속을 지나 죽음을 향해 달렸다.

 

잿더미 옆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젊은 그리스 인인 미카엘리스는 검시 때의 중요한 증인이 되었다. 무더위 속에서 5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주요소 차고 쪽으로 슬슬 걸어갔다가 조지 윌슨이 사무실에서 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정말 앓고 있었는데 얼굴이 자기의 머리 색깔처럼 창백했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미카엘리스는 그에게 침대에 가서 누우라고 권했지만, 윌슨은 자기가 그렇게 하면 장사에 많은 손해가 나게 된다며 거절했다. 미카엘리스가 그를 설득하고 있는 동안 위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 왔다.

"아내를 저 속에 가둬 놓았네."

윌슨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녀를 모레까지 저 속에 가둬 놓을 테야. 어차피 여길 떠날 생각이니까."

미카엘리스는 몹시 놀랐다. 그들은 4년간이나 이웃사촌처럼 살아왔다. 게다가 윌슨의 평소 행동으로 보아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윌슨은 낙오자였다. 일을 하지 않을 때면 그는 문 앞의 의자에 앉아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을 걸면 그는 언제나 상냥하고 무표정한 웃음을 짓곤 했다. 그는 엄처시하의 남자로 자기 마음대로 처신하지 못하는 위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미카엘리스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윌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는 호기심을 품은 의심하는 시선을 방문객에게 힐끔힐끔 던지기 시작하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미카엘리스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 바로 그때 몇 명의 노동자들이 문 앞을 지나 그의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나중에 다시 올 생각으로 윌슨 곁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거기에 오지 않았다. 아마 잊어버렸을 것이다. 7시가 조금 지나서 다시 밖으로 나온 그는 윌슨부인이 차고 아래층에서 요란하게 욕설을 퍼붓는 소리를 듣고 아까 윌슨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때려 봐!"

미카엘리스는 윌슨 부인이 악을 쓰는 소리를 들었다.

"날 때려. 이 더럽고 야비한 놈아!"

잠시 후 그녀는 두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어둑어둑한 땅거미 속으로 달려나갔다-그가 문간에서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일은 끝나고 말았다.

신문에서 그렇게 떠들어 댄 그 '죽음의 차'는 멈추지 않았다. 그 차는 짙어 가는 어둠 속에서 나타나 비극적으로 한순간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다음 커브길 근처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브로 미카엘리스는 차의 색깔조차 확실히 보지를 못했다-그는 처음 만난 경찰에게 그 차가 엷은 녹색이었다고 말했다. 뉴욕으로 가고 있던 또 다른 차가 100야드쯤 앞에 정차하고 그 운전사가 황급히 머틀 윌슨이 있는 곳까지 되돌아 달려왔는데, 그때 그녀는 이미 숨이 끊긴 채 그곳 한길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의 걸쭉하고 붉은 피가 먼지와 엉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카엘리스와 그 사나이가 먼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땀에 젖어 있는 그녀의 웃옷 옆구리를 찢고 보았을 때 그녀의 왼쪽 가슴은 헝겊 조각처럼 찢어져서 흔들리고 있었다. 따라서 그 밑의 심장에 귀를 대 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마치 그렇게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거대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을 때 가슴이 좀 답답했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는데 양쪽 입 끝이 약간씩 찢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서너 대의 승용차와 군중을 보았다.

"사고야!"

탐이 말했다.

"그거 잘 됐는데. 윌슨도 마침내 약간의 장사를 할 수 있겠군."

그는 속력을 늦췄지만 정차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자동차 수리소 문 앞에 모인 사람들의 말없고 심각한 얼굴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구경 좀 하지."

그가 미심쩍게 말했다.

"잠깐 들여다보자고."

나는 그제야 자동차 수리소에서 끊임없이 들려 오는 공허한 통곡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는 우리가 쿠페에서 내려 문 앞으로 걸어갈 때는 ', 하느님! 세상에!'라는 말로 들려 왔는데, 숨 가쁜 신음 소리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여기서 안 좋은 사고가 났어."

탐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발돋움을 해 둘러선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자동차 수리소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높이 매달려 흔들거리는 금속 광주리 속의 노란 등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이윽고 목구멍 속에서 거친 소리를 한 번 낸 탐은 억센 두 팔로 사람들을 난폭하게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로 밀려났던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 다시 자동차 수리소 앞으로 모여들었다.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새로 온 사람들이 미는 바람에 조던과 나는 갑자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그 찌는 듯이 더운 밤에 추위를 염려한 듯 담요로 둘러싼 머틀 윌슨의 시체가 벽가의 작업대 위에 뉘어 있었다. 탐은 우리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시체 위로 몸을 구부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는 오토바이 순경 경찰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노트에다 여러 번 고치면서 이름들을 써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텅 빈 자동차 수리소 안에서 요란스럽게 메아리치는 높은 신음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그때 나는 윌슨이 사무실의 한층 높은 문지방에 서서 두 손으로 문설주를 잡고는 몸을 앞뒤로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나이가 나지막한 소리로 그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가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했으나, 윌슨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흔들거리는 등불에서 벽가에 시체가 놓인 작업대로 서서히 떨구어졌다가는 다시 등불을 향해 홱 돌려졌다. 그리고 그는 높고 섬뜩한 고함을 끊임없이 지르고 있었다.

", 하느님, 세상에! , 하느님, 세상에! , 하느님, 세상에! , 하느님, 세상에! , 하느님, 세상에!"

이윽고 탐은 머리를 홱 쳐들더니 흐려진 눈으로 자동차 수리소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는 그 경찰에게 뭐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에이-브이."하고 경찰은 말하고 있었다.

"--,"

"아니오. 아르-."하고 사나이가 바로잡았다.

"-에이-브이-아르--."

"내 말 좀 들어 봐요!"

탐이 거칠게 중얼거렸다.

"아르-."하고 순경이 말했다.

"-."

"-."

"-."

경찰은 탐의 넓적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세게 치자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소? -그게 내가 알고 싶은 거요."

"차가 저 여자를 들이받았습니다. 즉사했어요."

"즉사라."

탐이 경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되뇌었다.

"저 여자는 도로로 뛰어나갔어요. 그놈의 자식, 차를 세우지도 않았소."

"차는 두 대였습니다."

미카엘리스가 말했다.

"한 대는 오고 있었고 다른 한 대는 가고 있었지요. 알겠어요?"

"어디로 가고 있었다는 거요?"

경찰이 날카롭게 물었다.

"한 대씩 각자의 길을 간 거죠. 그런데 갑자기 저 여자가-."

그는 담요 쪽을 향해 손을 반쯤 쳐들다가 그만두고 다시 내렸다.

"저 여자가 저리로 달려나갔고 뉴욕에서 오던 차가 그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지요. 그 차는 시속 30 내지 40마일로 달려갔습니다."

"이곳 이름이 뭐요?"

경찰이 물었다.

"이름 같은 건 없습니다."

얼굴이 창백하고 잘 차려입은 흑인 경찰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노란색 차였어요."

그가 말했다.

"큼직한 노란색 차였어요. 새 차였지요."

"사고 현장을 보았소?"

경찰이 물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그 차는 한길에서 나를 지나쳐서 시속 40마일 이상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50이나 60마일로 달려갔어요."

"이리 와서 당신의 이름을 말해 주시오. , 잘 생각해 봐요. 그의 이름을 알아내고 싶소."

이 대화 가운데 몇 마디를 문설주에 기대 몸을 흔들고 있던 윌슨이 엿들은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화제가 그에게 쥐어짜는 듯한 울음소리 가운데 말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게 어떤 차였는지 나에게는 말해 줄 필요도 없소! 나는 그게 어떤 차였는지 알고 있소."

탐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의 어깨 뒤의 근육이 그의 웃옷 밑에서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탐은 잽싸게 윌슨에게로 걸어가 그의 앞에 서더니 그의 두 팔을 꽉 움켜잡았다.

"당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되겠소."

그는 거친 목소리를 죽이면서 말했다.

윌슨의 시선이 탐에게로 쏠렸다. 윌슨은 깜짝 놀라 발돋움을 하며 펄쩍 뛰었는데, 탐이 부축해 주지 않았더라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내 말을 들으시오."

탐은 그를 가볍게 잡아 흔들며 말했다.

"난 조금 전에 뉴욕에서 여기 도착했소. 우리가 얘기해 오던 그 쿠페를 끌고 왔소. 아까 내가 운전한 그 노란색 차는 내 것이 아니었소-듣고 있소? 난 그 차를 오후 내내 못 봤소."

오직 흑인과 경찰만이 두 사람 가까이 있어 탐의 말을 엿들을 수 있었다. 그 경찰은 탐의 말투에서 무언가를 눈치채고 험상궂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다 무슨 소리요?"

경찰이 다그쳐 물었다.

"나는 이 사람의 친구요."

탐이 계속해서 두 손으로 윌슨의 몸을 꼭 잡은 채 고개만 돌리고 말했다.

"이 친구는 사고를 낸 차를 알고 있다는군요. ...노란색 차였다고 합니다."

어떤 희미한 충동에 움직여 경찰은 탐을 수상쩍은 듯 쳐다보았다.

"그럼 당신 차는 무슨 색이오?"

"푸른색 차요. 쿠페형이고."

"우린 뉴욕에서 방금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뒤를 따라 운전해 온 사람 하나가 이 사실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자 경찰은 딴 곳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럼 그 이름을 다시 한번 정확히 말해 주었으면 하는데요-."

탐은 윌슨을 인형처럼 들어 올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혀 놓고 돌아왔다.

"누군가 저기 가서 저 사람 곁에 앉아 있어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탐은 위엄 있게 급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가까이 있던 두 사나이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두 사람이 들어간 문을 듣고 한 계단으로 된 층계를 내려왔는데, 그의 눈은 작업대 쪽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는 내 곁을 가까이 지나가면서 귓속말로 말했다.

"나가세."

탐의 위엄 있는 두 팔이 길을 내주는 대로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아직도 모여들고 있는 군중들 틈을 뚫고 나왔다.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30분쯤 전에 사람을 보내 부른 의사가 손에 가방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마주 오는 것이 보였다.

탐은 한길의 커브길을 지날 때까지 천천히 운전했다. 그다음부터 발을 힘차게 내리밟자 쿠페는 밤공기를 가르며 달렸다. 잠시 후 나는 나직한, 목쉰 흐느낌 소리를 들었고 탐의 얼굴에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망할 놈의 겁쟁이 자식!"

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자식이 차를 세우지 않다니."

부캐넌 부부의 집이 바스락거리는 검은 나무를 뚫고 우리를 향해 갑작스럽게 떠올라 왔다. 탐은 현관 옆에 차를 세우고 2층을 올려다보았다. 담쟁이덩굴 사이로 불이 켜진 두 개의 창문이 보였다.

"데이지가 집에 있군."

탐이 말했다.

차에서 내릴 때 그는 나를 힐끔 보며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웨스트에그에서 자네를 내려 주었어야 했는데, , 오늘 밤엔 아무것도 대접할 게 없어."

그의 얼굴에는 변화가 생겼고 그래서 그는 말을 엄숙하고도 단호하게 했다.

현관을 향해 달빛 어린 자갈길을 걸어가면서 그는 두세 마디의 활기찬 말로 상황을 처리했다.

"내가 전화로 자네를 집으로 데려다줄 택시를 부르겠네. 그동안 자네와 조던은 부엌에 가서 저녁 식사라도 차려 달라고 해서 먹는 게 좋겠어-먹을 생각이 있으면 말일세."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들어오지."

"아니, 괜찮아. 하지만 택시를 불러 주면 고맙겠네. 난 밖에서 기다리겠네."

조던이 내 팔을 잡았다.

"들어가지 않겠어요, ?"

"아니, 괜찮아요."

나는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아서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조던은 잠시 더 머뭇거리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930분밖에 안 되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난 내가 집안으로 들어가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난 하루 동안 그들 모두와 함께 지겨울 정도로 시달렸다. 조던도 나를 피곤하게 만든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내 표정에서 그걸 알아챘다. 왜냐하면 그녀는 홱 돌아서서 현관계단을 달려 올라가서는 집안으로 들어 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앉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침내 집안에서 하인이 수화기를 들고 택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집 앞에서 택시를 기다릴 생각으로 현관을 등지고 차도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20야드도 못 왔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개츠비가 나무숲 사이로부터 차도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몹시 기분이 상해 있었기 때문에 달빛 아래서 그의 핑크색 양복이 눈부시다는 것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저 여기에 서 있소, 친구분."

어쨌든 그것은 비열한 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는 금방이라도 탐의 집을 털 작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만큼 만일 그의 뒤 어두운 나무숲에서 험상궂은 얼굴들, '울프심 일당'의 얼굴들이 나타났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한길에서 어떤 사고가 난 걸 봤소?"

잠시 후 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머뭇거렸다.

"그 여자는 죽었나요?"

"그렇소."

"나도 그러리라 생각했소. 데이지에게도 그럴 거라고 말했구요. 충격은 한꺼번에 받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요. 데이지는 다행히 아주 잘 견뎌 냈소."

그에게 문제되는 건 오직 데이지의 반응뿐인 것처럼 말했다.

"난 옆길로 돌아서 웨스트에그로 갔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 집 차고에 차를 넣어 두었소. 우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어요."

이때에 이르러서는 나는 그가 너무도 싫어졌기 때문에 그가 잘못했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누구죠?"

그가 물었다.

"머틀이란 여자요. 남편이 자동차 수리소를 하고 있어요. 도대체 어쩌다 그런 끔찍한 사고를 낸 거죠?"

"글세, 난 핸들을 돌리려고 했어요-."

그는 말을 중단했고 나는 갑작스럽게 사고의 진상을 추측했다.

"데이지가 운전하고 있었나요?"

"그렇소."

잠시 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물론 내가 했다고 말하겠소. , 우리가 뉴욕을 떠났을 때 데이지는 신경이 몹시 날카로웠기 때문에 자신이 운전이라도 하면 가라앉으리라 생각했던 거요-그런데 우리가 마주 오는 차를 막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우리 차 앞으로 달려 나온 거요.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우리를 아는 사람으로 여겼는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소. 데이지는 처음엔 그 여자를 피하려고 다른 차 쪽으로 방향을 돌렸으나, 다음 순간 그녀는 침착성을 잃고 먼저 방향으로 차를 돌렸소. 내 손이 핸들에 닿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느꼈소-그 여자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갈갈이 찢겨 있었소."

"그만 해요."

그가 움찔했다.

"하여튼 데이지가 그 여자를 들이받아 버렸소. 난 그녀를 멈추게 하려고 애썼지요. 그러나 그녀를 멈추게 할 수가 없었소. 그래서 난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 당겼지요. 그러자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쓰러졌고 그래서 내가 차를 몰았던 거요. 그녀는 내일이면 회복이 될 겁니다."

그는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난 여기서 혹시 탐이 오늘 오후의 그 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나 지켜보려고 하오. 그녀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소. 그리고 만약 탐이 난폭한 짓을 하려 들면 그녀는 불을 껐다 다시 켜기로 했지요."

"탐은 데이지에게 손을 대지 않을 거요."

내가 말했다.

"그는 데이지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지도 않았소. 난 그자를 믿지 않아요, 친구분."

"얼마나 오래 지켜 볼 작정이오?"

"필요하다면 밤을 새서라도요. 아무튼 그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지켜볼 작정이오."

내 머릿속엔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탐이 데이지가 운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거기에 하나의 연관이 있음을 알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그는 어떤 일이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집을 바라보았다. 아래층에는 두세 개의 창문에만 불이 켜져 있고, 2층의 데이지 방에서는 핑크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말했다.

"혹시 무슨 소동이라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지 살펴보고 오겠소."

나는 돌아서서 잔디밭을 따라 걷기 시작해 조심스런 걸음으로 자갈길을 가로질렀고, 발뒤끔치를 들고 베란다의 계단을 올라갔다. 객실의 커튼은 열려 있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리가 3개월 전인 6월의 어느 날 밤에 식사를 했던 그 문간방을 가로질러 식료품실 창문으로 생각되는, 장방형의 불빛이 비치는 작은 방으로 갔다. 차광막이 내려져 있었지만, 나는 창틀에 갈라진 틈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데이지와 탐은 부엌의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에는 식은 닭튀김 한 접시와 맥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탐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데이지에게 뭐라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진지해진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쥐고 있었다. 데이지는 때때로 그를 올려다보며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들은 즐거운 얼굴이 아니었고, 둘 다 닭튀김이나 맥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불행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전혀 꾸밈없는 친밀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그들 부부가 함께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내가 현관을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되돌아 걸어 나오고 있을 때 그 집을 향해 한 대의 택시가 어두운 차도에서 천천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개츠비는 내가 기다리라고 한 차도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좀 조용해졌나요?"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요. 아주 잠잠해요."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좀 쉬는 게 좋겠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데이지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기에 있고 싶군요. 먼저 가십시오, 친구분."

그는 두 손을 웃옷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이 불침의 신성함을 망쳐 놓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탐의 집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긴장된 자세로 돌아섰다. 그래서 나는 달빛 아래 서 있는 그를 남겨 두고 그곳을 떠났다-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8

 

나는 그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해협에서 처량한 무적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고, 나는 기묘한 현실과 잔인하고 무서운 꿈 사이를 가슴 답답하게 방황하고 있었다. 해가 뜰 무렵 개츠비의 저택 차도로 택시가 달려가는 소리를 듣고, 즉시 침대에서 뛰쳐나와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나는 개츠비에게 일러 줄 일, 경고해 줄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은 아침에 말해 주는 것은 너무 늦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의 저택 잔디밭을 건너갔을 때,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그가 깊은 절망에 빠져서인지 아니면 잠에 빠져서인지는 모르나 홀의 테이블에 힘없이 기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밤새 아무 일 없었소."

그는 멍하니 말했다.

"나는 계속 지켜봤지요. 그랬더니 4시쯤에 데이지가 창가로 와 거기서 잠시 서 있다가 곧 불을 껐소."

우리가 담배를 찾느라고 그 넓은 방들을 뒤지고 돌아다녔던 그 날 밤만큼 그의 저택이 거대하게 여겨진 적은 결코 없었다. 우리는 큰 천막 같은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히고 전기 스위치를 찾으려고 어두운 벽을 더듬었다.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여겨졌다-한번은 내가 유령같이 보이는 피아노 건반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많은 먼지가 쌓여 있었고, 방들은 오랫동안 환기를 시키지 않은 듯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나는 낯선 테이블 위에서 담뱃갑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곰팡내 나고 바싹 마른 담배 두 개피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객실의 프랑스식 창문을 열어제치고 앉아서 어둠 속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 차가 곧 발견될 테니까."

"지금 피해야 할까요?"

"일주일쯤 애틀랜틱 시티나 몬트리올에 가 있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그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데이지의 마음을 알기 전에는 절대 떠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차마 그를 거기서 떼 놓을 수 없었다.

그가 댄 코디와 함께 지낸 자기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준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제이 개츠비'가 탐의 굳은 악의에 부딪쳐서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신비에 싸여 있던 것을 모두 풀고 있었다. 그때의 그로서는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데이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데이지는 그가 사귄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갖가지 능력으로 그런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항상 눈에 띄지 않는 가시 철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데이지에게 매우 호감이 갔다. 그는 처음에는 테일러 병영의 다른 장교들과 함께 데이지의 집에 갔으나 나중에는 혼자서 갔다. 그녀의 집은 대단했다-그때까지 그는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집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그 집에서 숨막힐 것같은 긴장된 분위기를 느낀 것은 데이지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그녀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가 병영의 천막에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한 일이었다. 그 집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2층엔 다른 어떤 침실보다 더 아름답고 시원한 침실이 있었고, 그 복도엔 명랑하고 밝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곰팡이가 나서 이미 시든 라벤더꽃 속에 간직해 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최신형 자동차와 전혀 시들지 않은 꽃들로 둘러싸인 춤의 은근한 암시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미 많은 남자들이 데이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그 사실은 그녀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그는 그런 남자들의 흔적을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자기가 데이지의 집에 오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제이 개츠비로서의 그의 장래가 얼마나 영광스런 것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그는 돈 한 푼 없고 별 볼 일 없는 젊은이였으며, 몸을 가린 마법의 옷과 같은 군용 외투도 언제 벗겨질지 모르는 그야말로 처량한 신세였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체면도 차리지 않고 이를 악물고 손에 넣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 고요한 10월 밤에 그는 데이지를 차지했다.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진정한 권리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녀를 차지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데이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가 수백만 달러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 데이지에게 안도감을 갖게 했다는 뜻으로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즉 그는 데이지로 하여금 자기를 그녀와 동등한 계층 출신의 사람이라고 속였던 것이다-그녀를 편안히 살 수 있게 할 부자로 믿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었다-그에게는 부유한 가족도 없었고, 또한 그는 정부의 기분 여하에 따라 세계의 어느 구석으로 쫓겨나갈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았고, 사태도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나빠지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얻을 수 있는 것을 차지하고 나면 떠나 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오직 하나의 성배를 쫓는 데 전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데이지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름다운'여자가 얼마나 특이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개츠비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은 채 다시 부유하고 풍요로운 생활 속으로 떠나가 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단지 그녀와 결혼했으면 하는 몽상뿐이었다.

이틀 후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애를 태운 것은 개츠비였다. 그녀의 집 현관은 장식용의 호사스러운 별빛 등으로 눈이 부셨으며 그녀가 몸을 돌리자 등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조차도 우아하게 들렸다. 그는 그녀의 호기심에 찬 사랑스런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는 감기에 걸려 그 어느 때보다 쉰 소리를 냈는데, 그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개츠비는 압도된 채 돈이 가두고 보호한 젊음과 신비, 수많은 옷이 지닌 신선함,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열띤 생존 경쟁을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은처럼 반짝이는 데이지를 의식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한때 나는 데이지가 나를 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그녀 역시 날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그녀는 자기가 모르는 일들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 아무튼 나의 야망도 멀리 사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장래에 할 일을 데이지에게 얘기해 주기만 하면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실제로 큰일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그는 해외로 떠나기 전날 오후 데이지를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껴안고 앉아 있었다. 방 안에 난롯불이 피워져 있는 쌀쌀한 가을날이었다. 그녀의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이따금 그녀가 몸을 움직이면 팔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입술로 그녀의 검고 윤기 흐르는 머리에 키스를 했다. 그날 오후는 마치 그다음 날 기약한 긴 이별을 위해 큰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려는 듯이 한동안 그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말없는 가운데 데이지의 입술이 그의 상의 어깨를 스치자, 그는 마치 그녀가 잠들어 있기나 한 것같이 살며시 그녀의 손가락 끝을 어루만졌다. 한 달에 걸쳐 사랑을 속삭인 가운데서 이때만큼 그들이 가까이 있고 서로의 감정이 통한 적은 결코 없었다.

 

전쟁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전선에 가기 전에 그는 대위였으나, 아르곤 전투의 공적으로 소령으로 진급해 사단의 기관총 부대를 지휘했다. 휴전 후 그는 미친 듯이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사무 착오가 생겼는지 아니면 오해가 생겼는지는 모르나 그는 옥스퍼드 대학으로 보내졌다. 그는 걱정에 빠졌다-데이지의 편지에는 초조와 절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부의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나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었다.

왜냐하면 당시 데이지는 젊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주변 세계에는 난초꽃의 향기와 유쾌하고 즐거운 속물근성과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그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가락으로 인생의 슬픔과 암시를 요약하고 있었다. 색소폰들이 밤새도록 '빌 가의 블루스'의 절망적인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동안 100켤레나 되는 금빛과 은빛 실내화들은 반짝이는 빛을 내며 먼지를 일으켰다. 침침한 티타임이면 방 안엔 항상 낮고 상쾌한 열기가 끊임없이 고동치고 새로운 얼굴들이 구슬픈 나팔 소리에 마룻바닥 주위에 흩날리는 장미 꽃잎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계절이 바뀌자 데이지는 다시 저녁때마다 열리는 사교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는 하루에 5, 6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계속하게 되었고, 새벽녘에야 목걸이와 모슬린의 야회복을 침대 곁 마루에 놓여 있는 시들어가는 난초꽃들 속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두고 잠들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결심할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빨리 생활이 안정되기를 원했다-그리고 그 결심은 어떤 힘-사랑이나 돈이나 아니면 나무랄 데 없는 실제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 힘은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봄이 한창일 무렵 탐 부캐년이 나타나 도움이 되어 주었다. 탐의 됨됨이와 사회적 지위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는 데이지를 추켜세워 주었다. 그녀는 약간의 심적 갈등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만큼의 구원감도 느꼈다. 편지는 개츠비가 다행히 옥스퍼드 대학에 있을 때 전달되었다.

 

어느덧 롱아일랜드에도 새벽이 찾아왔다.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리저리 다니며 나머지 창문을 열어 잿빛에서 금빛으로 바뀌고 있는 햇빛을 방 안 가득 채웠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갑자기 이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푸른 나뭇잎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대기 속에는 바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느리고 상쾌한 움직임이 일고 있어 서늘하고 화창한 하루의 날씨를 약속해 주고 있었다,

"난 데이지가 탐을 사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츠비가 창가에서 빙그르르 돌아서더니 달려들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친구분, 당신도 기억하시겠지만, 데이지는 어제 오후 몹시 흥분해 있었소. 탐이 데이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려고 그런 식으로 말한 겁니다-그의 얘기는 나를 너무나 형편없는 사기꾼처럼 보이게 했었소. 그 결과 데이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물론 아주 잠깐 동안은 데이지도 그 사람을 사랑했을 거요. 적어도 그들이 결혼한 당시엔 말이오-그러나 그때도 그녀는 나를 더 사랑하고 있었던 거요. 알겠소?"

별안간 그는 이상한 말을 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소."

알 수 없는 이 연애 사건에 관한 그의 생각은 좀 지나치다고밖에 나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다.

탐과 데이지가 아직도 신혼여행 중일 때, 프랑스로부터 돌아온 그는 군대에서 받은 봉급을 다 털어 초라한 루빌 여행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 일주일을 머물면서 그 옛날 11월 밤에 데이지와 둘이서 걸었던 거리들을 다시 걸어다녀도 보고, 데이지의 하얀 차로 달렸던 그 한적한 곳곳을 모두 찾아다녔다. 데이지의 집이 그에게는 그 어떤 집보다 항상 더 신비롭고 즐거워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데이지가 그 도시를 떠나 버리긴 했지만 그 도시 자체에 대한 그의 생각에는 어떤 우울한 아름다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좀더 애를 썼더라면 데이지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는, 그녀를 혼자 남겨 두고 떠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객차-그는 이제 빈털터리 신세였다-안은 더웠다. 그는 열려 있는 승강용 통로로 가서 접의자에 앉았다. 역이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낯선 건물들의 뒷면이 스쳐 지나갔다. 객차는 이윽고 봄기운이 가득한 벌판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노란 전차가 잠시 객차와 경주를 했다. 노란 전차에 데이지가 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은 떨어지지 않았다.

선로가 구부러진 곳을 지나자 전차는 벌판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태양은 한층 낮게 기울어지면서 데이지가 살았던,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 가는 그 도시를 축복하기 위해 자신을 펼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로 해서 아름다웠던 공간의 한 조각이나마 간직하기 위해 한 줌의 공기라도 낚아채려는 듯이 안타깝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제 눈물로 흐려진 그의 눈에 그것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으며, 그는 가장 깨끗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관문으로 나갔을 때는 9시였다. 날씨는 밤새 급격한 변화를 가져와 공기 속에도 가을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개츠비의 그전 하인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인 정원사가 계단 밑으로 걸어왔다.

"오늘 풀장 물을 빼 버리려 하는데요, 주인님. 낙엽이 곧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파이프가 막힐 테니까요."

"오늘은 내버려 두세요."

개츠비가 대답했다. 그는 변명하듯이 나를 돌아다보았다.

"난 이번 여름에 저 풀장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답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 서둘러 일어섰다.

"열차 시간이 12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뉴욕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핑곗거리였다. 사실은-개츠비를 두고 떠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기차를 두 대나 놓치고 나서야 그곳을 떠났다.

"전화하겠소."

나는 마침내 말했다.

"그렇게 해 주시오, 친구분."

"정오쯤 걸겠소."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데이지도 전화를 걸겠지요?"

그는 마치 내가 확신을 주었으면 하는 듯한 근심 어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오."

"그럼 잘 가요."

나는 악수를 나누고 그의 집을 떠났다. 울타리에 이르렀을 때 나는 불현듯 무엇인가 생각이 나서 뒤로 돌아섰다.

"그들은 썩어빠진 녀석들이오."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

"당신은 그 못난 놈들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어요."

나는 그때 그 말을 한 것을 지금까지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은 내가 그에게 보낸 유일한 찬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한 일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다. 처음 그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마치 우리 두 사람이 공모하여 줄곧 그 사실에 도취되어 있기라도 한 것같이 훤히 빛나는 얼굴에 알아들었다는 미소를 띄었다. 그의 멋진 핑크색 양복이 흰 층계를 등지고 한 점의 선명한 색깔로 보이자, 나는 3개월 전에 그의 저택을 처음 방문했던 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의 저택 잔디밭과 차도에는 그의 몰락을 추측하고 있던 사람들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저 층계에 서서 자기의 순수한 꿈을 감추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대접에 감사했다. 아니 우리는 항상 그의 환대에 감사하고 있었다-나도, 또한 다른 사람들도.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외쳤다.

"아침 식사 잘했습니다, 개츠비 씨."

 

뉴욕 시내에 도착한 나는 한동안 수많은 주식의 시세를 적어 보려고 하다가 그만 회전 의자에 앉은 채 잠을 들고 말았다. 정오가 되기 조금 전에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이마에 솟은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일어났다. 그 전화는 조던 베이커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녀는 이맘때 종종 전화를 걸어 왔는데, 그것은 호텔로, 골프 클럽으로, 자기 집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그녀로서는 연락을 취할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푸른 골프장의 잔디 조각이 사무실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는 것같이 싱싱하고 푸르게 들렸다. 그러나 이 날은 평상시와 달리 그 목소리가 거칠고 메마른 것처럼 들렸다.

"방금 데이지의 집에서 나오는 길이에요."

그녀는 말했다.

"지금 헴프스테드에 와 있는데, 오후엔 사우댐프턴으로 갈 거예요."

그녀가 데이지의 집에서 나온 것은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당황하게 했고, 그녀의 다음 말은 더욱 어색하게 만들었다.

"어젯밤엔 저한테 그다지 친절하지 않더군요."

"신경 쓰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만나고 싶어요."

"나도 보고 싶소."

"그럼 사우댐프턴으로 가지 않고 오후에 시내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아니, 오늘 오후에는 일이 있어서..."

"좋아요."

우리는 이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말이 끊어졌다. 그때 우리 둘 중의 누가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설령 내가 이 세상에서 그녀와 다시는 말을 못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날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대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난 얼마 후에 개츠비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 중이었다. 나는 네 번이나 다시 걸었다. 마침내 화가 난 교환수가 짜증을 내며 디트로이트로부터 걸려온 장거리 전화 때문에 계속 통화 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나는 기차 시간표를 꺼내 350분발 기차에 조그만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생각을 좀 해 보려고 했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아침 기차를 타고 잿더미를 통과할 때 나는 객차의 반대편 좌석으로 건너가 앉았다. 그곳에는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종일 모여 떠들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먼지 속에서 검은 점들을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끼어들기 좋아하는 남자는 여기서 발생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지쳐 버릴 것이다.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져 버릴 것이고, 그래서 머튼 윌슨의 비극적 행위도 마침내 잊혀지고 말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나는 약간 과거로 돌아가 그 전날 밤 우리가 윌슨의 자동차 수리소를 떠나 온 뒤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그들은 머틀의 동생인 캐서린의 소재를 알아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그날 밤에는 술을 안 마시기로 했던 법칙을 깨트렸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고 구급차가 이미 플러싱으로 가 버렸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설명하자, 그녀는 마치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기라도 한 듯이 곧 기절해 버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친절에서인지 아니면 호기심에서인지는 모르나 그녀를 자기 차에 태워 언니의 시체를 실은 구급차를 뒤쫓아가 주었다.

자정이 훨씬 지나서까지 군중들이 번갈아 자동차 수리소 정면을 둘러싸고 있는 동안 조지 윌슨은 사무실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사무실 출입문은 한동안 열려 있었다. 그래서 자동차 수리소 안에 들어간 사람은 자연히 그 안을 힐끔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어떤 사람이 이것은 보기 민망한 일이라고 말하고는 그 문을 닫아 버렸다. 미카엘리스와 그 밖의 몇 사람이 윌슨과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4, 5명이 함께 있었으나 나중에는 2, 3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미카엘리스는 마지막으로 남은 그 낯선 사람에게 15분만 더 앉아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는 자기 집으로 가서 커피 한 주전자를 끓여 왔다. 그 후 그는 혼자서 새벽녘까지 윌슨과 함께 있어 주었다.

새벽 3시쯤이 되자 윌슨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바뀌었다-그는 점차 정신을 차리더니 노란색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란색 차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낼 방법을 알고 있다고 큰소리 쳤다. 그러면서 약 두 달 전에 자기 아내가 얼굴에 상처를 입고 코가 부어 가지고 뉴욕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이 말을 들었을 때 몸을 움츠리고 다시 신음소리를 내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하느님!"

미카엘리스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많은 애를 썼다.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됐지요? 조지, 나 좀 봐요. 잠시 가만히 앉아서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좀 해 봐요.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됐소?"

"12년 됐소."

"아이도 있었나요? 나 좀 봐요, 조지. 좀 움직이지 말아요. 한 가지 물어보겠소. 아이를 낳은 적이 있었나요?"

단단한 껍질의 갈색 딱정벌레들이 지겹게 날아와 희미한 전등에 부딪히고 있었다. 바깥의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는데, 미카엘리스에게는 그 소리가 몇 시간 전에 사고를 내고 도망가 버린 그 차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수리소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시체를 뉘었던 작업대가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불편한 듯이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침이 되기도 전에 그는 사무실 안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알게 되었다. 이따금 그는 윌슨의 곁에 가 앉아서 그를 좀 더 진정시키려고 애쓰기도 했다.

"가끔 가는 교회가 있나요, 조지? 설령 오랫동안 나가지 않았더라도 말이오. 있다면 내가 그 교회에 전화를 걸어서 목사님을 오시라고 할 수 있고, 그러면 그는 영혼을 평화롭게 해 줄 수 있을 텐데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소?"

"난 아무 교회에도 나가지 않아요."

"교회에 좀 나가지 그랬어요, 조지. 이런 때를 대비해서 말이오. 그래도 한 번쯤은 교회에 나간 적이 있을 텐데요. 교회에서 결혼한 것이 아니오? 내 말 들어요, 조지. 내 말을. 혹시 교회에서 결혼하지 않았소?"

"그건 아주 옛날 일이오."

대답하는 데 힘이 들어 앞뒤로 흔들던 몸의 리듬이 깨지고 말았다. 잠시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런 다음 그의 흐려진 두 눈엔 흐리멍덩한 표정이 조금 전화 똑같이 다시 나타났다.

"저기 저 서랍을 열어 봐요."

그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 서랍 말이오?"

"저 서랍-그거 말이오."

미카엘리스는 손에서 제일 가까운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가죽과 은을 꼬아서 만든 값비싼 작은 개줄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 개줄은 산 지 얼마 안 된 새것이었다.

"이것 말이오?"

미카엘리스는 그것을 들어올리면서 물었다.

"윌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어제 오후에 그걸 발견했소. 그녀는 그것에 대해 설명하려 애썼지만, 난 그것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소."

"당신 부인이 이것을 샀단 말이죠?"

"그녀는 그걸 화장지에 싸서 화장대 위에 놓아 두었어요."

미카엘리스는 그런 행동에서 이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윌슨에게 왜 그의 아내가 개줄을 사게 되었을까 하는 데 관한 다양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생각건대 윌슨은 전에 머틀로부터 어느 정도 그것과 비슷한 설명을 들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다시, "또 그 이야기야!"하고 중얼거리지 시작했기 때문이다-그를 위로하려던 것이 결국은 허공에 이야기한 셈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자가 마누라를 죽였어."

윌슨은 말했다. 갑자기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누가 죽였다고요?"

"난 알 수 있소."

"당신 제정신이 아니군요, 조지."

그의 친구는 말했다.

"이번 일에 당신은 신경을 너무 많이 썼소. 그래서 당신은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요. 아침까지 가만히 앉아서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소."

"그자가 마누라를 죽였어."

"그건 사고였소, 조지."

윌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거만스럽게 "!" 하는 소리를 낮게 내뱉으며 입을 조금 벌렸다.

"난 알고 있어."

그는 확신에 차 이야기했다.

"나도 의리를 아는 놈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소. 그렇지만 일단 알아야 할 일은 알아내야지. 사고를 낸 자는 그 차에 타고 있던 그자였소. 내 아내는 뭔가를 말하려고 달려나갔소. 그런데 그자는 차를 세우지 않고 달아난 거야."

미카엘리스도 그런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윌슨 부인이 남편에게서 뛰쳐나가긴 했으나, 어느 특정한 차를 세우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지요?"

"그녀는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였소."

윌슨은 마치 그것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듯이 건성으로 말했다.

"-."

그는 다시 몸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고, 미카엘리스는 개줄을 손으로 비비꼬며 서 있었다.

"내가 알려야 할 친구들은 있겠지요, 조지?"

이 말은 가능성 없는 말이었다-그는 윌슨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그는 만족스러움을 주지 못했다. 미카엘리스는 잠시 후 창문에 푸른빛이 돌자 방 안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언뜻 보고 새벽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5시쯤 되자 바깥은 전등을 꺼도 될 만큼 환했다.

윌슨의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밖의 잿더미 쪽으로 옮아갔다. 거기서는 조그마한 잿빛 구름들이 환상적인 형태를 이루며 새벽바람에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내 아내에게 말했었소."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중얼거렸다.

"날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을 거라고 말이오. 난 내 아내를 창가로 데리고 갔소."

그는 힘들게 일어나서는 뒤쪽 창가로 걸어가 얼굴을 창문에 눌러 대며 몸을 굽혔다.

"그리고 난 말했소. '하느님은 당신이 한 일, 당신이 해 온 모든 일을 알고 계시오. 나를 속일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어!'라구요."

윌슨의 뒤에 서 있던 미카엘리스는 윌슨이 T. J. 에클버그 박사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자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에클버그 박사는 서서히 걷히고 있는 어둠 속에서 거무스레한 형체를 막 드러내고 있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지."

윌슨은 되풀이했다.

"저건 광고 간판이오."

미카엘리스는 그에게 다짐해 주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미카엘리스로하여금 창문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방안을 보게 했다. 그러나 윌슨은 얼굴을 창유리에 바짝 갖다 댄 채 한참 동안 그곳에 서서 서서히 밝아 오는 새벽 햇빛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6시쯤 되자 미카엘리스도 지쳐 버렸다. 그래서 바깥에서 인기척이 나자, 그는 반갑게 생각했다. 간밤에 미카엘리스와 함께 윌슨을 지키다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며 돌아간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미카엘리스는 3인분의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와 아침에 온 남자만 그것을 먹었다. 주위가 더욱 조용해졌으므로 미카엘리스는 잠을 자기 위해 자기 집으로 갔다. 그가 4시간 뒤 잠이 깨어 급히 자동차 수리소로 갔을 때 윌슨은 어딘가로 가 버리고 없었다.

윌슨은-그는 시종일관 걸어다녔다-나중에 추적해 보니 처음엔 루스벨트 항구로 갔다가 그 다음 개스힐로 가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샀으나 먹지 않고 단지 커피만 한 잔 사 마셨다. 그는 지쳐 있어서 걸음걸이가 느렸고 정오가 되어서야 개스힐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그가 보낸 시간을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미친 사람 같은 행동을 하는' 남자를 본 소년들이 있었고, 길가에 서서 이상한 눈으로 자기네들을 노려보는 사람을 보았다는 자동차 운전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3시간 동안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가 미카엘리스에게 '알아낼 방법이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경찰은 윌슨이 그 3시간 동안 노란색 차를 찾기 위해 주변 자동차 수리소를 뒤지고 다녔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를 보았다는 자동차 수리소 주인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윌슨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더 쉽고 확실한 방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30분쯤 그는 웨스트에그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어떤 사람에게 개츠비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니까 그때 벌써 그는 개츠비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시에 개츠비는 수영복을 입고는 하인에게 만약 전화가 오면 그 내용을 수영장에 있는 자기에게 전해 달라고 일러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여름 동안 손님들을 흥겹게 해 준 공기 매트리스를 가지러 차고에 들어갔다. 혼자 매트리스에 바람 넣는 것을 운전사가 도와주었다. 이어서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운전사에게 무개차를 끌고 나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그런데 이 지시는 뭔가 이상했다. 왜냐하면 그 차의 앞쪽 우측 펜더는 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공기 매트리스를 어깨에 메고 수영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한 번 멈춰 서서 그것을 조금 고쳐 맸다. 운전사가 그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았으나, 그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잠시 후 노란색으로 변해 있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전화벨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지만, 하인은 졸지도 않고 4시까지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전화가 와도 그것을 전해 들을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랜 뒤에도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개츠비 자신은 전화 같은 것은 오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으며 아마 더 이상 전화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러한 추측이 옳다면 그는 너무나 오래도록 한 가지 꿈만을 지니고 살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지금까지 가졌던 아늑하고 따스한 세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반드시 겁을 주는 나뭇잎들 사이로 낯선 하늘을 쳐다보았을 것이고, 장미꽃이 얼마나 괴상스러운 것이며 갓 돋아난 풀 위에 내리쬐는 햇살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깨닫고 몸서리 쳤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유형인 새 세계, 그곳에서 공기를 마시듯 꿈을 들이마시는 가엾은 허깨비들이 우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일정한 형태가 없는 나무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잿빛 그림자처럼.

그의 운전사-그는 울프심의 부하이다-는 몇 발의 총소리를 들었다-나중에 그는 총성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정거장에서 곧바로 개츠비의 저택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걱정스럽게 달려가듯 저택 앞계단을 올라간 나의 행동은 사람들을 무척 놀라게 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그들은 그때 이미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의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우리 네 사람, 즉 운전사와 하인과 정원사, 그리고 나는 황급히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한쪽 끝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반대쪽에 있는 배수로 밀려갔을 때 거기에는 겨우 느낄 수 있는 희미한 물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결의 그림자라고도 하기 어려운 작은 파문을 일으키면서 개츠비를 실은 공기 매트리스는 불규칙적으로 배수구를 향해 움직여 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킬까 말까 한 한 줄기의 약한 바람일지라도 우연히 태운 짐을 싣고 우연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매트리스의 진로를 방해하기에는 충분했다. 한 무더기의 낙엽이 떨어져 닿자 그것은 마치 전경의의 다리처럼 물속에서 서서히 연분홍색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정원사가 조금 떨어진 풀밭에서 윌슨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우리가 개츠비를 들고 집 쪽으로 출발한 이후였다. 이렇게 해서 최대의 대학살극은 막을 내렸다.

 

 

9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사건이 난 하루 종일 오직 경찰과 사진반원들과 신문 기자들이 개츠비의 저택 현관문을 끊임없이 드나들던 일만 기억하고 있다. 앞쪽 대문을 가로질러 밧줄이 쳐지고 순경 한 사람이 그 옆에 서서 궁금해하는 구경꾼들을 막고 있었으나, 어린 사내아이들은 내 집 마당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곧 알아냈으며, 풀장 근처에는 언제나 입을 벌린 아이들이 2, 3명씩 몰려 있었다.

그날 오후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형사같이 보이는 남자가 윌슨의 시체를 살펴보면서 '미치광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우발적인 권위를 지닌 그의 목소리는 이튿날 아침 신문 보도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러한 보도들은 대체로 악몽과 같은 것들이었다-기괴하고 상대적이고 성급하고 사실이 아닌 것들이었다. 검시 때 미카엘리스의 증언에 의해 윌슨이 자기 아내를 의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나는 잠시 후 모든 사실이 왜곡되어 전해지리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무슨 말이라도 할 법한 캐서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문제에 있어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성격을 보여 주었다-그녀는 그린 눈썹 아래의 단호한 두 눈으로 검시관을 노려보면서 자기 언니는 개츠비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형부하고 더없이 행복했으며, 어떠한 불장난에도 빠진 적이 없다고 맹세했다.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어서 마치 그와 같은 암시 자체만으로도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는 것처럼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댔다. 그래서 윌슨은 그 사건이 그런 종류의 극히 단순한 형태의 것이 되게 하려고 결국 '슬픔에 못 이겨 미쳐 버린' 사나이로 격하되었다. 그리고 사건은 그 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건의 이 부분은 모두 관계가 멀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나 혼자만이 개츠비의 편이었다. 내가 이 비극적인 사건의 대단원을 웨스트에그 마을에 전화로 알려 주자마자 그를 둘러싼 모든 억측과 실질적 질문이 나에게 문의되어 왔다. 나는 처음에는 놀랐고 당황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지도 숨 쉬지도 말하지도 않고 집 안에 누워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이고 계속되자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왜냐하면 나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내가 말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결국에는 어떤 희미한 권리를 갖고 있는 진지한 인간적 관심이다.

우리가 개츠비의 시체를 발견한 지 30분 만에 나는 본능적으로 주저하지 않고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와 탐은 그날 오후 짐을 챙겨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어진 상태였다.

"연락처도 남겨 두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언제 돌아오겠다고 하던가요?"

"말씀이 없었습니다."

"짐작 가는 곳이 없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연락이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나는 개츠비를 위해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었다. 나는 그가 누워 있는 방으로 가서 그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 누군가를 데려오겠소, 개츠비 씨.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럼 나만 믿어요. 그러면 내가 당신을 위해 누군가를 데려오리다-.'

마이어 울프심의 이름은 전화 번호부에 없었다. 하인이 브로드웨이에 있는 그의 사무실 주소를 일어 주었다. 나는 전화 안내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의 전화 번호를 알아냈을 때는 5시가 훨씬 지난 후였다. 그래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신호를 보내 주겠소?"

"세 번이나 불렀는데요."

"중대한 일입니다."

"미안합니다. 그쪽에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습니다."

다시 객실로 들어간 나는 한순간 그 방에 갑자기 가득 모여 있는 공무 관계자들은 모두가 우연한 내방객들이라는 착각을 했다. 그들이 홑이불을 걷고 충격받은 눈으로 개츠비를 들여다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개츠비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를 피해 이층으로 올라가 개츠비의 책상의 잠겨 있지 않은 부분을 황급히 두루 살펴보았다. 그는 나에게 자기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분명히 말한 적은 없었다. 책상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잊혀진 격렬한 생활의 표시인 댄 코디의 사진만이 외로이 벽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울프심에게 전할 편지를 써서 하인 편으로 보냈는데, 그 편지에 나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 달라고 청하고 다음 기차 편으로 와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편지를 쓸 때 나는 그러한 요청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난 정오가 되기 전에 틀림없이 데이지에게서 전보가 올 것을 확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울프심도 신문을 보면 틀림없이 이곳으로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데이지의 전보도 울프심도 오지 않았다. 경찰과 사진반원들과 신문 기자들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인이 울프심의 답장을 갖고 돌아왔을 때, 나는 그들 전부에 대한 개츠비와 나 사이의 반항적인 기분, 경멸하고 싶은 일치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캐러웨이 씨. 이 일은 제 일생에서 가장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 중의 하나이며, 저는 도무지 이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가 저지른 것과 같은 그런 미친 짓은 우리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는 아주 중요한 일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곳에 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이 일에 끼어들기도 싫습니다. 얼마 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에드거를 통해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이와 같은 사건을 들었을 때 저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으로 큰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했습니다.

마이어 울프심 올림

그의 편지엔 황급히 쓴 듯한 추신이 덧붙여져 있었다.

 

장예식과 그 밖의 일에 관해 알려 주십시오. 개츠비 씨의 가족사항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날 오후 전화벨이 울리고 교환수가 시카고에서 장거리 전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건 분명히 데이지에게서 온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결된 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로 아주 가늘고 희미하게 들렸다.

"슬래글입니다..."

"?"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전화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안 그래요? 내 전보는 받으셨나요?"

"전보라곤 한 장도 오지 않았는데."

"파크가 문제를 일으켰어요."

그는 빠른 말씨로 지껄였다.

"카운터 너머로 채권을 건네주다가 붙잡혔어요. 경찰은 그 일이 있기 5분 전에 번호를 알리는 회신을 뉴욕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거기 대해서 뭐 알고 계신 것이 없으십니까? 이런 시골 마을에선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보세요!"

나는 숨을 죽이며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제 말 잘 들으세요. 난 개츠비가 아닙니다. 개츠비 씨는 죽었어요."

그쪽에선 오랜 침묵이 흘렀고 그리고 난 다음에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기면서 시끄럽게 꽥꽥 소리가 났다.

 

미네소타주의 어느 읍으로부터 헨리 C. 개츠라고 서명된 전보가 온 것은 사건이 있은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발신지는 즉시 출발할 테니 장례식은 자기가 도착할 때까지 연기해 달라고 적고 있었다.

그는 개츠비의 아버지였다. 위엄은 있으나 아주 쇠약한 노인으로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더운 9월인데도 추위를 느끼는지 값싼 긴 얼스터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슬픔으로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그의 손에서 가방과 우산을 받아 들자, 그는 숱이 적은 하얀 턱수염을 연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나는 그의 외투를 벗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음악실로 데리고 가서 앉힌 뒤 사람을 시켜 요기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유 잔에서 우유가 그의 떨리는 손으로 흘러내렸다.

"시카고 발행 신문에서 사고 기사를 읽었어요."

그는 말했다.

"시카고 신문에 사건의 모든 것이 실려 있었지요.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출발했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두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그 애는 미쳤어요."

그는 말했다.

"그는 미치광이였음이 분명하오."

"커피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나는 무언가를 계속 권했다.

"난 아무것도 생각 없소. 이젠 괜찮아요.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케러웨이입니다."

", 난 이제 어느 정도 쉬었소. 지미는 어디에 안치했소?"

나는 그를 아들이 안치되어 있는 객실로 데리고 가서 혼자 남겨 두고 나왔다. 사내아이들 몇이 돌층계를 올라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도착한 분이 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자 그들은 마지못해 가 버렸다.

잠시 후 개츠는 문을 열고 나왔는데, 입은 좀 벌어지고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으며, 두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간간이 맺혀 나왔다. 그는 이미 죽음에도 초연해질 그런 나이였던 것이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다가 천장이 높고 화려한 홀과 큼직큼직한 방들이 또 다른 방들과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이 그의 슬픔은 두려움 섞인 자랑과 뒤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부축해서 이층의 한 침실로 인도했다. 그가 양복 상의와 조끼를 벗고 있는 동안 나는 모든 장례 절차를 그가 올 때까지 미루어 왔다고 일러주었다.

"어떻게 하시고자 할지를 몰라서 그랬지요, 개츠비 씨-."

"내 이름은 개츠요."

"-개츠 씨. 유해를 서부로 운구하길 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미는 항상 동부 쪽을 더 좋아했소. 동부에서 이만큼 성공을 했잖소. 당신은 우리 아이의 친구였나요? 그런데 성이 어떻게 되지요?"

"우리는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 아이는 장래성이 있었소. 알겠소? 그 애는 아직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기서 많은 두뇌적 역량을 발휘했소."

그는 다짐하듯이 자기 머리를 매만졌다. 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그 아이가 계속 살아만 있다면 큰 인물이 될 거요. 제임스 J. 힐 같은 사람이 될 거요. 그 애는 국가 건설에도 공헌을 하게 될 거요."

"옳은 말씀입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그는 수가 놓인 침대 커버를 손을 더듬거리며 벗겨 내리려고 하다가 그대로 뻣뻣이 드러눕고 말했다. 그러고는 곧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분명히 크게 놀란 듯한 어떤 사람이 전화를 걸어 와 자기 이름을 대기도 전에 내게 누구냐고 물어 댔다.

"캐러웨이입니다."

나는 말했다.

"아아!"

전화를 건 사람은 그때야 마음이 놓이는 듯이 말했다.

"나는 클립스프링거입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츠비의 장례식에 한 명의 친구가 와 줄 것을 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신문에 광고를 내어서 구경꾼들이 몰려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몇 사람에게만 전화로 알리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장례식은 내일입니다."

나는 말했다.

"이곳 집에서 3시에 거행됩니다. 개츠비 씨와 친했던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연락을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아아, 그렇게 하고말구요."

그는 급하게 말했다.

"아무도 못 만날 것 같지만 만나기만 한다면 알리도록 하지요."

그의 목소리는 나를 반신반의하게 했다.

"물론 당신은 오시겠죠."

"글쎄요, 꼭 참석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화를 드린 용건은-."

"잠깐만요."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오시겠단 말씀이죠?"

"그런데 사실은-솔직이 내 사정이란 난 이곳 그리니치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일도 내가 자기들과 같이 있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은 피크닉이라고 할까, 그런 걸 하기로 했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빠져나가도록 해 보겠습니다만..."

나는 참을 수가 없어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소리를 냈다. 그도 그 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신경질적으로 이렇게 말을 이었던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건 이유는 거기에 두고 온 내 구두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하인을 시켜서 그걸 내게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건 테니스화여서 그게 없으면 난 꼼짝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내 주소는 B.F-."

나는 그 이름의 나머지 부분은 자세히 듣지 못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한 후 나는 개츠비에 대해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내 전화를 받은 한 신사는 개츠비가 받아야 할 것을 자기가 대신 받았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 실수였다. 내가 그 사람은 개츠비가 내준 술로 용감해져서 개츠비를 가장 신랄하게 비난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므로, 전화를 걸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야만 했다.

장례를 치르던 날 아침 나는 뉴욕으로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갔다. 그 방법 외에는 그를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보이가 일러주는 대로 내가 밀고 들어간 문에는 '스와스티커 주식보유회사'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으나 내가 몇 번인가 '여보세요.' 하고 소리치자 칸막이 뒤에서 말다툼이 벌어지고 얼마 후 귀엽게 생긴 유태인 여자가 안쪽 문가에 나타나 적의를 띤 까만 눈으로 나를 경계하며 훑어보았다.

"아무도 안 계신데요."

그녀는 말했다.

"울프심 씨는 시카고에 가셨는데요."

그녀의 첫마디는 분명히 사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안에서 누가 '로저리'를 음정에 맞지 않게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러웨이란 사람이 만나 뵙자고 한다고 제발 좀 전해 주시오."

"제가 그분을 시카고에서 돌아오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바로 그때 틀림없는 울프심의 목소리가 문 저쪽에서 '스텔라!'하고 불렀다.

"그러면 책상에다 명함을 놓아두세요!"

그녀는 황급히 말했다.

"그분이 돌아오시면 전해 드릴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그분이 뒤쪽에 계시다는 걸 난 알고 있소."

그녀는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서는 화가 난 듯이 두 손으로 엉덩이를 아래위로 더듬기 시작했다.

"당신 같은 젊은이들은 언제라도 이곳으로 마음만 먹으면 밀고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녀는 나무랐다.

"우리들은 이제 그런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요. 내가 그분은 시카고에 계시다고 말하면 그분은 시카고에 계신 거예요."

나는 급한 김에 개츠비의 이름을 대 보았다.

"그러세요?"

그러자 그녀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녀는 다시 나를 아래위로 살펴보았다.

"잠깐만요. 이름이 어떻게 되지요?"

그녀는 사라졌다. 잠시 후 마이어 울프심이 위엄을 한껏 부린 채 두 손을 부자연스럽게 내밀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자기 방으로 끌고 가서는 경건한 목소리로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슬픈 시간이라고 말하더니 나에게 담배를 권했다.

"나의 기억은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말했다.

"그때 그는 막 제대한 젊은 소령이었지요. 전쟁 때 받은 훈장들로 가득한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몹시 가난해서 보통 옷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43번가의 와인브레너 당구장에서였습니다. 그는 그곳에 들어와 일자리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이틀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나와 함께 가서 점심이라도 드십시다.' 하고 난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30분 만에 4달러 치 이상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사업을 시작하게 해 주었나요?"

"시작하게 해 주다니! 내가 그를 키웠소."

"아아, 그러셨군요."

"난 그 사람을 무에서, 시궁창에서 끌어올렸지요. 난 첫눈에 그 사람이 잘생기고 신사다운 유망한 청년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옥스퍼드 출신이라기에 나는 그를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미국 재향군인회에 가입시켰지요. 이후 그는 줄곧 승진을 했습니다. 그는 내 고객 한 사람을 위해 올버니에까지 가서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린 무슨 일에나 그렇게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는 둥글게 꼬부린 손가락 두 개를 쳐들었습니다.

"언제나 함께였죠."

그런 동지 관계가 1919년의 월드 시리즈의 거래도 포함하고 있었는지 나는 궁금했다.

"이제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나는 잠시 후에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하고 가장 친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 오후에 있을 장례식에 꼭 참석해 주실 걸로 믿는데요."

"가고는 싶지만..."

"그럼 가면 되지 뭐가 문젠가요?"

그의 콧구멍 속의 털이 바르르 떨리고, 그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 때 그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그럴 수가 없어요. 더 이상 그 일에 말려들 수가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말려들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사람이 피살됐을 땐 사소한 일로 말려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난 이곳에 있겠습니다. 그러나 나도 젊은 시절엔 지금과 달랐습니다. 내 친구 중 누가 죽었을 땐 어떻게 해서든지 끝까지 상대방을 물고 늘어졌지요. 그걸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진정이었습니다. 결판이 날 때까지 물고 늘어졌지요."

그가 자신의 어떤 이유로 해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그와 대학 동창인가요?"

그가 느닷없이 물었다.

한순간 나는 그가 '거래선' 이야기를 비추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다만 고개만 끄덕거리고는 악수를 청했다.

"사람이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우정을 베푸는 걸 배웁시다."

그는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 다음 나의 관례는 모든 걸 모르는 척하고 내버려두는 것이죠."

그의 사무실을 나왔을 때 어두워진 하늘에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웨스트에그로 돌아온 나는 옷을 갈아입고 개츠비의 저택으로 갔다.

개츠는 흥분한 채 홀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선 아들과 아들의 소유물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끊임없이 커져 가고 있었으며, 지금 그는 나에게 보여 줄 무엇인가를 갖고 있었다.

"지미가 보내 준 사진이에요."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기 지갑을 꺼냈다.

"여길 보세요."

저택을 찍은 그 사진은 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어 해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저택의 내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여길 좀 보시오!"

그러고는 내 눈에서 감탄의 빛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가 얼마나 자주 그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 왔던지 그에게는 그 사진이 실제의 저택보다 더 실감을 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지미가 이걸 나한테 보내왔지요. 아주 근사한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이것으로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최근에 아드님을 보신 적이 있나요?"

"2년 전에 나를 만나러 와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사 주었습니다. 물론 오래 전에 그 아이는 집을 나가 버림으로써 우리 가족들을 실망시켰었지요. 하지만 이제야 난 그 아이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앞에 멋진 장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성공한 다음부터는 효자 노릇을 했지요."

그는 사진을 집어넣기가 못내 아쉬운 듯 한참이나 내 눈앞에 들고 어물쩡거리며 있었다. 이윽고 그는 그것을 집어넣은 지갑을 호주머니에 도로 넣고 나서 대신 '호팔롱 캐시디'라는 제목의 낡아빠진 책을 꺼냈다.

"이걸 좀 보시오. 이건 그 아이가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책이오. 이걸 보면 그 아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거요."

그는 책 뒷표지를 넘기더니 빙그르르 돌려서 내가 볼 수 있게 했다. 맨 뒤 여백에 '계획표'라는 활자체 글씨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1906912일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기상...오전 6

아령 체조와 담 기어오르기...오전 6:15-6:30

전기학 및 기타공부...오전 7:15-8:45

작업...오전 9:30-오후 4:30

야구 및 운동...오후 4:30-5:00

웅변 연습, 몸의 균형잡기와 그 달성 방법...오후 5:00-6:00

발명에 필요한 공부...오후 7:00-9:00

 

일반적 결심

샤프터즈 또는 oo(이름을 알아볼 수 없었다.)에서 시간낭비를 하지 말 것.

이제부터는 금연을 하고 껌을 씹지 말 것.

이틀에 한 번 목욕을 할 것.

매주 도움을 주는 책이나 잡지 한 권씩 읽을 것.

매주 5달러(지워져 있었다.) 3달러씩 저축할 것.

부모님께 더 잘해 드릴 것.

 

"나는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노인은 말했다.

"이거면 그 아이의 성품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지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지미는 출세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아이는 언제나 이런 결심 아니면 다른 결심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애가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걸 눈여겨보셨나요? 그 애는 자아 성취에 대단히 열성적이었지요. 언젠가 한 번은 나더러 돼지처럼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애를 두들겨 줬지요.“

노인은 항목 하나하나를 큰 소리로 읽고는 내가 부러워하는 표정을 내기를 바라보면서 마지못해 책을 덮었다. 그때 노인은 그 항목들을 내가 이용하기 위해 베껴 두기를 바랐던 것같은 생각이 든다.

3시 바로 전에 플러싱으로부터 루터파 목사가 도착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차들도 오나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개츠도 나와 마찬가지로 밖을 내다보았다. 예정 시간이 지나 하인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홀에 서서 기다리고 있자, 노인은 두 눈을 근심스럽게 끔벅거리기 시작하더니 걱정스럽고도 분명하지 않은 말투로 비가 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목사가 여러 번 자기 시계를 들여다보기에 나는 그를 앞으로 데리고 가서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헛수고였다. 30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세 대의 차로 이루어진 우리의 행렬은 5시쯤 공동묘지에 도착해 자욱한 보슬비를 맞으며 입구에 멈춰 섰다-비에 젖은, 끔찍한 검정색의 영구차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개츠와 목사와 내가 탄 리무진이 따랐으며, 5, 6명의 하인들과 웨스트에그의 집배원이 탄 개츠비의 스테이션 왜건이 조금 뒤떨어져 따라왔다. 모두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 일행이 묘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누군가가 물을 튀기며 우리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3개월 전에 개츠비의 서재에서 책을 보며 놀란 바로 그 사나이였다.

나는 그 후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었다. 그가 어떻게 개츠비의 장례식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그리고 처음 개츠비의 이름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두꺼운 안경으로 빗방울이 부딪히자 그는 안경을 벗어 닦아 서둘러 다시 끼고는 개츠비의 무덤에서 보호용 덮개를 걷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잠시 개츠비에 관해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너무나 먼 곳에 가 있었으며, 데이지가 조의를 표하기는커녕 조화 한 송이도 보내지 않은 데 대해 더 이상 분개하지도 않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직이,

"죽은 자 위에 비가 내리니 복을 받을지어다."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올빼미 눈 같은 안경을 낀 사나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축복이 있기를, 아멘."하고 말했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우리는 빗속을 걸어 차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올빼미 눈 같은 안경을 낀 사나이가 입구에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분 댁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가!"

그는 놀라서 움찔했다.

"맙소사! 매일 밤 수백 명이 몰려가곤 했었는데."

그는 다시 안경을 벗어서 안팎을 닦았다.

"가엾은 사람."

그는 말했다.

 

내 머릿속에서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 중의 하나는 예비교에서, 그리고 후에는 대학에서 크리스마스 때 서부로 돌아가던 때의 일이다. 시카고보다 더 멀리 가는 사람들은 12월의 어느 날 저녁 6시에 오래되고 침침한 유니언 역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그들대로의 크리스마스 휴일의 여러 가지 즐거움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몇몇 시카고 친구들과 황급히 작별 인사를 하곤 했다.

누구누구네 집에서 돌아오던 아가씨들의 모피 외투들, 얼어붙은 입김 속의 잡담들, 옛 친지를 발견하고 머리 위로 흔들던 손들, 그리고 '오드웨이 댁에 갈까? 허시 댁에? 슐츠 댁에?' 하면서 초대에 같이 갈 사람을 찾던 사람들, 또한 장갑 낀 우리네 손아귀에 꼭 쥐어있던 길쭉한 녹색 차표들이 내 기억 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카고, 밀워키, 세인트펄 철도의 칙칙한 노란색 객차가 출입구 곁의 철길 위에서 마치 그 자체가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즐거워 보이던 일이 생각난다.

기차가 겨울밤 속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진짜 눈, 우리의 눈이 우리들 옆을 한없이 뻗쳐 나가면서 차창에 부딪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며, 조그마한 위스콘신 주 시골역들의 희미한 불빛들이 지나가면 갑자기 공기 속에 예리하고 거친 꺽쇠가 나타났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싸늘한 차내 통로를 지나 좌석으로 돌아오면서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때 우리는 이 생소한 곳에서 1시간쯤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말로 표현은 못 하나 의식하고 그 공기 속으로 또다시 분간하지 못할 만큼 녹아 들어갔다.

이것이 내가 중서부에서 겪은 일이었다-말이나 초원이나 없어져 버린 스웨덴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내 젊은 시절의 가슴 울렁거리는 귀향 기차와 서리 내리는 밤의 가로등과 썰매의 방울 소리, 불 켜진 창문에서 눈 위로 던져진 접시꽃 다발의 그림자들이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의 일부분이었던 그 기나긴 겨울을 생각하면 좀 엄숙해지고, 수십 년에 걸쳐 여전히 주소가 가문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런 도시의 캐러웨이 가에서 자라난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것은 결국 하나의 서부 이야기였다는 것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탐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 우리 모두가 서부 출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동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어떤 공통된 결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같다.

동부에 가장 마음이 끌려 있을 때, 그리고 어린이들이나 아주 늙은이들을 제외하고는 한없이 이것저것 물어 대는 오하이오 주 너머의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어가듯 뻗어 있고 커질 대로 커진 도시들보다 동부 쪽이 훨씬 낫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때조차-그런 때조차 내겐 동부 지방은 항상 일종의 왜곡된 모습으로 비치곤 했다. 특히 웨스트에그는 여전히 나에게는 환상적인 꿈속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엘 그레코가 그린 저녁 풍경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전통적인 동시에 괴상스러운 형태를 한 수백 채의 집들이 침울한 하늘과 어슴푸레한 달 아래 쭈그리고 있다. 그 전경에는 야회복 차림을 한 엄숙한 표정의 사나이들이 흰 야회복을 입은 술 취한 여인을 들것에 뉘고 보도를 걷고 있다. 들 것 가장자리로 축 늘어뜨려진 여인의 한 손에서 보석들이 싸늘하게 반짝거린다. 사나이들은 조심스럽게 들것을 들고 한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잘못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여인의 이름을 알려 하지 않고 또 그 누구도 그러한 것에 개의치 않는다.

개츠비가 죽은 뒤론 나에게는 동부 지방은 이렇듯 자줏빛이었고 내 눈의 힘으로는 바로잡기 어렵게 뒤틀어져 있었다. 그래서 파란 연기같이 흩어지기 쉬운 나뭇잎들이 허공에 드리워져 있고, 줄에 널린 젖은 빨래가 바람으로 빳빳해질 무렵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떠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는 어색하고 불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을 처리해 두고 싶었다. 그 친절하면서도 무관심해 보이는 바다에게 내 일의 찌꺼기를 씻어 가도록 내맡기기는 싫었던 것이다.

나는 조던 베이커를 만났고 우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 후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조던은 큰 의자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골프 복장을 한 그녀의 턱은 멋지게 살짝 치켜 올려져 있었고, 머리는 가을 나뭇잎 같은 색깔이었으며, 얼굴은 그녀의 무릎에 놓인 벙어리 장갑과 같은 자주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 당시 나에게는 멋진 삽화처럼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조던은 내 말엔 아무런 대꾸도 없는 자기는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고 말했다. 그녀에겐 고개만 끄덕이면 결혼할 수 있는 상대가 많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는 했으나 그녀의 말에는 왠지 모를 불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짐짓 놀란 척했다. 잠시 혹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곧 나는 일의 끝을 재빨리 되새겨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당신은 저를 버리신 게 분명해요."

조던이 불쑥 말했다.

"전화로 저를 버리신 거예요. 지금은 당신에게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지만, 저로선 처음 경험한 일이어서 한동안 가슴 아팠지요."

우리는 악수를 했다.

", ! 그리고 혹시 기억하고 계신가요?"

그녀는 덧붙였다.

"언젠가 둘이서 자동차 운전에 관해 나누었던 말 말이에요."

"글세,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서투른 운전자는 또 한 사람의 서투른 운전자를 만날 때까지만 안전하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저는 또 한 사람의 서투른 운전자를 만난 셈이지요? 제가 이런 억측을 하는 건 제가 생각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저는 당신이 비교적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자랑인 줄 생각했어요."

"나는 서른 살이오."

나는 말했다.

"나 자신을 속이고 그걸 명예라고 부르기엔 나이를 다섯 살이나 더 먹었어요."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으나 조금이라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려 나왔다.

 

10월도 저물어 가는 어느 날 나는 탐 부캐넌을 발견했다. 그는 여전히 민첩하고 정력적인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장애물을 밀어뜨리려는 듯이 손을 앞으로 약간 내뻗치고 두 눈을 두리번거렸다. 거기 맞춰서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홱홱 돌리면서 5번가를 따라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를 앞지르지 않기 위해 막 걸음을 늦추었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눈을 찡그리고 보석 상점의 유리창 속에 지그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별안간 나를 발견한 그는 뒤돌아 걸어오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된 거야, ? 모르는 척 하긴가?"

"그래, 내가 자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자네 미쳤군, ."

그는 빠른 말씨로 지껄였다.

"돌아도 크게 돌았어. 난 자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

나는 따지고 들었다.

"그날 오후 윌슨에게 무슨 말을 했지?"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나는 윌슨의 행방이 묘연했던 그 몇 시간에 대한 내 추측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 뒤로 한걸음 따라와 내 팔을 잡았다.

"난 그에게 사실을 말해 주었네."

그는 말했다.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문간에 나타났어. 난 사람을 시켜 우리 두 사람은 집에 없다고 전하도록 했지. 그랬더니 그는 막무가내로 2층으로 올라오려고 했네. 그때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만약 내가 그 차의 주인을 일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날 죽이고도 남았을 거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그는 줄곧 호주머니 속의 권총을 쥐고 있었다네-."

그는 짜증 섞인 태도로 말을 잠시 중단했다.

"내가 말해 준 게 어쨌다는 거지? 그 작자가 일을 그렇게 만든 거야. 그 작자는 데이지의 눈을 속인 것처럼 자네의 눈도 속인 거라네. 그러나 그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네. 그는 마치 자네가 개 한 마리를 들이받듯이 마틀을 들이받고서도 차를 세우지조차 않았고 도망갔단 말이야."

다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 못 할 사실을 빼고는 그 부분에 대해 나로서는 특별리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 자네, 나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는 줄 생각한다면-이봐, 난 그 아파트를 내놓으려고 갔다가 그 망할 놈의 개먹이 비스켓 상자가 찬장 위에 놓여 있는 걸보고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네. 정말 끔찍스러웠네-.“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그 입장에서 보면 누가 뭐래도 정당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경솔하고 또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탐과 데이지는 경솔한 인간들이었다-물건과 사람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들은 돈 속으로 또는 자기들의 한없는 경솔 속으로 또는 둘이 같이 있게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들이 일으킨 혼란을 다른 사람이 정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탐과 악수를 했다.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갑자기 어린애와 얘기하고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악수를 한 탐은 진주 목걸이-아니면 단지 한 쌍의 커프스 단추를 사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를 사러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의 촌스러운 까탈스러움을 영원히 떨쳐 버렸다.

 

내가 떠나던 날도 개츠비의 저택은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잔디는 이제 누군가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 내 집의 것과 마찬가지로 엉망이었다. 마을의 택시 운전사 한 사람은 그 집 대문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잠깐 정차해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키고는 요금을 받았다. 아마도 바로 그 운전사가 사고가 일어난 날 밤 개츠비와 데이지를 이스트에그로 태워다 준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차에서 내리면 그 사람의 차는 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토요일 밤은 뉴욕에서 보냈다. 그 이유는 개츠비가 베풀었던 그 불빛 찬란하고 화려한 파티들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전히 그 정원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희미한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그의 저택 차도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하루는 실제로 그의 저택에서 차 소리가 명확히 들려 오고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그의 저택 현관앞의 계단을 비추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아마도 지구의 어딘가에 있다가 파티가 끝나 버린 줄도 모르고 찾아온 손님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밤 나는 짐을 챙긴 뒤 차를 식료품 가게에 팔아 넘기고 개츠비의 저택 가까이 다가가서 최후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힘없이 주저앉아 버린 그의 저택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어떤 개구쟁이가 벽돌 조각으로 흰 돌층계에 낙서한 외설스러운 말이 달빛을 받아 뚜렷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강판으로 갈기듯 구둣발로 그것을 문질러 지워 버렸다. 그런 다음 해변으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가 모래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웬만한 해안 시설들은 이미 문이 닫혀 있고 해협을 건너는 나룻배의 흐릿하게 움직이는 빛 이외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윽고 달이 더 높이 떠오르자 여태까지 그 존재의 필요성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집들이 뒤섞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서서히 그 옛날 네덜란드 선원들의 눈에 위대하게 비친 그 오래된 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그 섬은 신세계의 싱그러운 녹색 젖가슴이었던 것이다. 그 사라져 버린 나무들, 개츠비의 집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던 그 나무들은 한때 모든 인간의 꿈 가운데서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큰 꿈을 바라보며 속삭여 줌으로써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지나가 버린 순간의 매혹적인 시간에 사람들은 이 대륙의 존재 자체에 숨을 죽였고 놀라움을 대하는 자신의 능력과 어울렸던 그 어떤 것을 역사상으로 마지막으로 마주 보고 서서 이해할 수도 없고 소망하지도 않은 일종의 심미적인 명상 속에 자신도 모르게 잠겼던 것이다.

해변에 앉아서 과거를 알 수 없는 세계에 관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개츠비가 처음으로 데이지의 집과 이어진 부두 끝에서 비추던 녹색 불빛을 찾아냈을 때의 놀라움에 대해서 되새겨 보았다. 그는 긴 여행 끝에 이 푸른 잔디밭으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은 당연히 실현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실패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그 꿈이 이미 자기를 등지고 공화국의 어두운 들판이 밤의 밑바닥으로 굴러가고 있는 도시 저 너머의 광대하고 흐릿한 어느 곳으로 물러가 버렸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개츠비는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들 앞에서 뒤로 물러가고 있는 그 녹색 불빛을, 그 격정의 미래를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때 그것은 우리들을 피해 갔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려서 팔을 더 길게 내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아침에-.

그래서 우리는 물살에 부딪치며 노를 젓고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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