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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처스(Watcher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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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주와 6월 첫째 주 내내 노라와 트라비스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트라비스가 어쩌면 위험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걱정했었다. 아트 스트랙만큼은 안 위험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려웠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 편집증의 주문(呪文)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는 자신이 그를 경계하며 걱정한 것을 생각하면 웃음까지 나왔다. 그는 다정하고 친절하고 또 바이오렛 이모 말에 의하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바로 그런 종류의 남자였다.

일단 편집증이 극복되자 그녀는 이제 트라비스가 자신을 계속 만나는 이유는 오로지 그가 자신을 딱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절박한 입장이나 문제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든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노라를 만나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가 절박해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좀 이상하고 부끄러워하고 또 애처롭게 볼지 모르나 절박하게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 밖의 세상을 대처할 수 없는 데서 절박했고 또 미래를 두려워하는 데서 절박했다. 그리고 또 절박할 정도로 외로웠다. 트라비스는 친절할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민감했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절박함을 알았고 또 그에 맞게 대해 주었다. 5월이 지나고 6월에 접어들자 여름의 태양에 하루 하루가 점점 뜨거워졌고 그녀는 점차 그가 자신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남자가 자기 같은 여자에게 뭘 볼 게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줄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맞다. 그녀는 자기 이미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자기가 그렇게 아주 단조롭고 지루하게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다 해도 트라비스는 그녀보다 더 나은 여자와 사귈 수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관심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냥 마음을 놓고 그것을 즐기면 된다.

트라비스는 부인이 죽고 난 후에 부동산 회사를 팔아버리고는 이제 완전히 은퇴했고 또 노라 역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기만 하면 하루 중 어느 때든 자유롭게 서로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들은 함께 화랑을 갔고 또 책방들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긴 산책을 했고 또 그림 같은 산타 이네즈 골짜기나 경치가 수려한 태평양 해안을 따라 긴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그들은 아침 일찍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그곳에서 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노라는 그 도시의 크기에도 놀랐지만 돌아다니며 본 것들에도 놀랐다. 영화 제작 스튜디오의 방문, 동물원으로의 소풍, 그리고 히트 뮤지컬의 낮 공연 등이 모두 다 놀라웠다.

어느날 트라비스는 그녀에게 머리를 카트하고 멋을 좀 내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죽은 아내가 자주 들르던 미용실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노라는 너무 초조해서 원기 왕성한 금발 미인인 메라니라는 미용사에게 말을 할 때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노라의 머리는 항상 바이오렛이 집에서 잘라 주었다. 그리고 바이오렛이 죽고 난 후에는 노라가 직접 자신의 머리를 잘랐었다.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어 주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또 그것은 생전 처음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일만큼이나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메라니는 '페더링'이라는 것을 하면서 노라의 머리를 아주 많이 잘라냈으나 왠지 머리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노라에게 거울을 가리고는 머리를 다 감고 말린 후 잘 빗겨 놓기 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은 그녀를 돌려 거울 속의 자기 모습과 대면하게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당신 아주 멋져 보이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것은 완전한 변신입니다." 메라니가 말했다.

"멋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당신은 너무나 예쁜 얼굴과 그리고 아주 휼륭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요." 메라니가 말했다. "하지만 긴 생머리 때문에 당신 모습이 가늘고 뾰족하다는 인상을 풍겼던 것이죠. 이 스타일이 당신 얼굴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요."

아인스타인마저도 그녀의 변화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 미용실을 나왔을 때 개는 주차 미터기 기둥에 매어 놓았던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는 깜짝 놀라 노라를 다시 보더니 앞발을 껑충 들어 그녀 몸에 얹고는 그녀의 얼굴과 머리에 주둥이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듯 낑낑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싫어했다. 그들이 자신의 몸을 돌려 거울을 보게 했을 때 그녀는 예쁘고 쾌활한 젊은 처녀처럼 보이려는 애처로운 노처녀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멋 낸 머리는 정말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그녀가 근본적으로 평범하고 수수한 여자라는 것을 강조할 뿐이었다. 이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녀는 결코 그렇게 섹시하거나 매력 있거나 현대적이거나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밝은색의 깃털 총채를 칠면조 꽁무니에 묶어 놓고는 그것을 공작새인 체하는 꼴이었다.

그녀는 트라비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좋아하는 척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녀는 머리를 감고는 그 스타일이 모두 다 펴질 때까지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페더링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전처럼 그렇게 똑바르고 부드럽게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다음 날 트라비스가 점심을 함께 하러 가기 위해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다시 그 전 모습으로 되돌아 간 그녀의 머리를 보고는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봐 너무 당황하고 겁이 나서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잠깐씩도 그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그녀가 계속 거절했었지만 트라비스는 그녀의 새옷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함께 가자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Talk of Town이라는 웨스트 구티에르즈에 있는 한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갈때 그녀가 입을 수 있는 밝은 여름용 드레스를 사자는 것이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가끔 이 지역에 사는 몇몇 영화배우들을 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고급스러운 한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러 벌의 옷들을 입어보고 매번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트라비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그의 앞에서 옷매무새를 보였다. 점원은 진심으로 노라의 모습을 칭찬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계속 노라의 모습이 완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라는 그 점원 여자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트라비스가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는 디아네 프레이스 콜렉숀 제품이었다. 노라도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선명한 빨간색과 황금색, 그리고 그것에 전혀 안 맞을 듯한 다른 바탕들이 왠지 오히려 훨씬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하긴 이런 점이 프레이스 디자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너무나도 여성적인 옷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검은 색깔들, 모양 없는 카트, 단순한 무늬, () 장식 등 바로 그런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말하려 했고 그래서 이런 옷은 정말 입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이 이걸 입으니 너무나 예뻐 보여요. 정말이오.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그것을 사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결국 그녀는 그렇게 했다. 이것은 큰 실수이고 잘못이며 그래서 결코 그 옷을 입지 못할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그 옷이 다 포장되었을 때 노라는 자신이 왜 그냥 묵인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비록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옷을 사 주고 또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써 주는 남자가 있다는 것에 우쭐했었음을 깨달았다.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고 꿈도 꾼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압도당했던 것이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현기증까지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현기증이었다.

그리고 그 가게를 떠날 때 그가 그 옷값으로 5백 달러를 지불했다는 것을 알았다. 5백 달러! 사실 그녀는 그 옷을 옷장에만 걸어 놓고 가끔 보며 즐거운 공상의 나래를 펴는 것으로나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라면 50달러짜리 옷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5백 달러짜리라면 그것을 입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옷을 입음으로 해서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거나 또 날품팔이가 공주가 된 척하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저녁 트라비스가 그녀를 Talk of the Town으로 에스코트해 가기 위해 그녀를 데리러 오기 전 두 시간 동안 그녀는 대여섯 번은 그것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그녀는 거듭해서 옷장의 옷들을 뒤지며 입을 만한 다른 것, 좀 더 분별 있는 옷을 미친 듯이 찾아뒤졌다. 그러나 전에는 성장(盛裝)을 해야 하는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입을 만한 정장 옷이 전혀 없었다.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찌푸려 보며 그녀는 말했다. "너는 마치 투시에 나오는 더스틴 호프만 같아 보여."

그러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자신에게 너무 심하게 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좀 더 후하게 다룰 수가 없었다. 그것이 지금 그녀의 마음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여장을 한 남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기분이 사실들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녀의 웃음은 곧 맥이 빠져 버렸다.

그녀는 두 번씩이나 주저앉아 울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데이트를 취소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무리 큰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될지라도 가야 한다. 무엇보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녀는 뮤어라인을 이용해 빨개진 눈을 회복시키고 다시 그 옷을 입었다. 그리고는 다시 벗었다.

그가 일곱 시가 조금 지나 도착했을 때 그의 모습은 검은 정장으로 너무나 멋있었다.

노라는 검푸른 신발에 모양 없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기다리겠소."

그녀가 말했다. "? 무엇을요?"

"알잖아요." 그는 옷을 갈아입으라는 뜻으로 말했다.

그 말들은 아주 간결하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변명은 기운 없는 것이었다. "트라비스, 미안해요. 이를 어쩌죠. 너무 미안해요. 그 옷 전체에다 커피를 쏟았어요."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그는 거실 아치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커피 한잔 전부......"

"서두르는 게 좋아요. 우리의 예약 시간은 730분이오."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다 드러내고 비웃지는 않을지라도 재미있다는 듯 수군댈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굳게 먹고 오로지 중요한 것은 트라비스의 의견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그녀는 디아네 프레이스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며칠 전에 멜라니가 해주었던 머리 스타일을 풀었던 걸 후회했다. 아마 그 머리 스타일대로였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정말 그녀를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트라비스는 그녀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 정말 예뻐보입니다."

그녀는 Talk of Yown의 음식이 그 명성만큼 좋았는지 못했는지 몰랐다. 그녀는 아무 맛도 못 느꼈다. 나중에는 그곳의 장식도 분명하게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배우인 제네 하크만을 비롯해 다른 손님들의 얼굴들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저녁 내내 그 사람들이 놀라움과 경멸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 도중 그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듯 트라비스는 와인 잔을 내려놓고는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당신 정말 너무 예뻐보여요. 노라. 그리고 당신이 전에 이런 곳의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 이 룸 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당신에게 매료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요."

그러나 그녀는 진실을 알았고 그것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정말로 자신을 응시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예쁘기 때문이 아니다. 공작처럼 보아 넘겨주기를 바라며 깃털 총채를 달고 나타난 한 마리 칠면조를 재미로 쳐다보았을 뿐일 게다.

"화장기 하나 없는데도 당신은 이 룸에 있는 어느 여인보다도 더 근사해 보여요." 그가 말했다.

화장을 안 했다. 그게 그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본 또 다른 이유였다. 여자가 비싼 레스토랑에 오기 위해 5백 달러짜리 옷을 입을 때는 립스틱이나 아이라이너, 화장, 스킨 브러쉬 등등으로 가능한 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노라는 화장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초콜릿 무스 디저트는 분명히 맛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도 그녀에게는 풀반죽 같은 맛이었고 또 자꾸 목구멍에 걸렸다.

그녀와 트라비스는 지난 몇 주 동안 함께 지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에게 친밀한 기분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정말 놀랍도록 쉬워졌다. 그녀는 그의 외모가 그토록 멋있고 또 비교적 부유한 편인데도 왜 혼자 사는지 알았고 그도 그녀가 왜 그녀 자신을 그렇게 낮게 생각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더 이상 무스를 삼키지 못하고 트라비스에게 바로 집으로 좀 데려다주길 호소했을 때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만일 심판관이 계시다면 당신 이모는 오늘 밤 지옥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거요."

놀라서 노라는 말했다. ", 아니에요. 그녀가 그렇게까지는 나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그는 침묵을 지키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를 그녀의 집 현관 앞까지 데리고 왔을 때 그는 그녀 이모의 변호사이면서 지금도 노라의 사소한 법적인 문제를 보아 주고 있는 게리슨 딜워스와 좀 만나게 해 줄 것을 그녀에게 요구했다.

"당신이 나에게 얘기한 바로는 딜워스는 누구보다도 더 당신 이모를 잘 알아요. 그러니 당신 이모가 무덤에서조차 당신에게 행사하고 있는 그 족쇄를 깨트려 버릴 수 있는 방법들을 그가 말해줄 수 있을 거라고 난 확신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노라가 말했다. "하지만 바이오렛 이모에게 그렇게 큰 어두운 비밀들은 없어요. 그녀는 보이는 그대로였어요. 그녀는 정말 아주 단순한 여자였지요. 뭐랄까, 슬픈 여자라고나 할까요."

"슬픈 아집쟁이였겠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는 그녀가 게리슨 딜워스와 약속을 하도록 동의할 때까지 집요하게 요구했다.

나중에 위층 침실에서 그녀는 그 디아네스 프레이스제 옷을 벗으려고 할 때 왠지 그것이 벗고 싶지 않아졌다. 저녁 내내 자신은 그 의상을 벗으려고 안달했었다. 그 옷이 그녀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니 그날 저녁에는 따뜻하게 달아오르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행복감을 연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치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처럼 그녀는 5백 달러짜리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게리슨 딜워스의 사무실은 점잖고 안정되고 믿음직한 분위기를 풍기도록 세심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벽은 참나무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두꺼운 감청색 커튼이 청동 막대에 매달려 걸려 있었다. 가죽 장정의 법률 서적들이 가득한 서가들이 있고 거대한 참나무 책상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 변호사는 근엄하기도 하고 또 청렴해 보이기도 한 사람으로 마치 산타크로스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키가 크며 상당히 풍채가 좋고 진한 은발에 7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일주일 내내 일을 하는 게리슨은 조끼까지 입는 정장에 차분한 넥타이를 선호했다. 캘리포니아인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왔지만 그 깊고도 부드럽고 다듬어진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가 동부에서 나서 자라고 교육받은 동부 상류 계층 출신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또한 그의 눈은 유쾌한 반짝임으로 빛났고 또 그의 미소는 따뜻한 산타의 미소였다.

그는 거리를 두고 자기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노라와 트라비스를 우아한 커피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게 한 후 자신도 함께 동석했다. "난 당신들이 무엇을 알아낼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소. 당신 이모에게는 아무 비밀도 없어요. 당신의 인생을 바꿀 만큼 그렇게 큰 어두운 폭로거리가 없......"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노라가 말했다. "저희가 괜히 선생님을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트라비스가 노라에게 말했다. " 딜워스씨가 말씀을 마저 끝까지 하도록 기다려요."

그 변호사는 말했다. "바이오렛 데본은 내 고객이었지요. 그리고 변호사는 고객이 비록 죽은 후일지라도 그들의 비밀을 지켜 줄 의무가 있어요. 적어도 그것이 나의 견해죠. 그처럼 지속적인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변호사들도 몇몇 있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물론 지금 앞에 계시는 분은 바이오렛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상속자이시기 때문에 굳이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비밀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난 당신의 이모에 대한 내 정직한 의견을 표명하는 데에 조금도 도덕적인 제약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법률가나 성직자, 의사들도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가지도록 허용됩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난 그녀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약간은......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그러니까 아주 편협하고 전적으로 자아에 얽매인 여자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을 키워온 방법은 범법적인 것이었어요, 노라! 사법 기관에 제소할 정도의 학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범법적인 것이었소. 그리고 잔인했구요."

굵은 어떤 끈이 그녀 몸 안의 모든 주요 기관들과 혈관들을 꽁꽁 묶고 죄며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고 피의 흐름을 제한하지 않았던 때가 노라의 기억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각들의 기를 죽이며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게리슨의 말이 그 끈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풍요롭고 제한 없는 생명이 단번에 그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바이오렛 데본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그 가혹한 족쇄를 떨쳐버리기엔 충분치 못했다. 그녀에게는 이모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트라비스는 이미 바이오렛을 비난했었다. 그래서 노라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녀를 자유롭게 만들기에 충분치 않았다. 트라비스는 바이오렛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말에는 전혀 권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리슨은 바이오렛을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그의 말이 노라를 속박으로부터 풀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심하게 떨고 있었고 눈물이 그녀의 얼굴 아래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트라비스가 한 손을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위로해 줄 때까지도 자신이 그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 속을 더듬어 손수건을 찾았다.

"미안해요."

"노라, 당신이 평생 갇혀 있던 그 철갑을 깨부수고 나온 것에 대해 사과하지 말아요. 당신이 어떤 강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갈소. 아주 부끄러워하는 모숩 말고는 다른 모습을 당신에게서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오. 보기에 좋군요." 변호사는 노라에게 눈물을 닦도록 시간을 주고는 트라비스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저에게서 더 듣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까?"

"노라도 모르고 있던데요.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을 밝히신다고 해도 그것이 고객의 특권에 대한 당신의 엄격한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어떤 종류의 질문이오?"

트라비스가 말했다. "바이오렛은 전혀 일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풍요롭게 살면서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었지요. 그리고 또 그녀는 노라의 여생 동안에도 노라가 살아갈 만큼 아주 충분한 기금을 남겨 놓았습니다. 노라가 그 집에 머물면서 은둔자처럼 산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 돈이 어디에서 다 나온 겁니까?"

"어디에서 왔느냐구요?" 게리슨은 놀란 목소리였다. "노라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아니, 모르고 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노라는 얼굴을 들고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리슨 딜워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바이오렛의 남편은 꽤 부유했지요. 그는 아주 젊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모든 것을 물려 받았지요."

노라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며 겨우 숨을 돌려 말했다. "남편요?"

"조지 옴스테드라는 사람이었지요." 변호사가 말했다.

"전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어요."

게리슨은 다시 반복해서 눈을 껌벅였다. 마치 모래가 눈에 들어간 것처럼. "그녀가 남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요?"

"전혀요."

"하지만 이웃 사람도 언급한 적이......"

"우린 이웃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노라가 말했다. "바이오렛은 그들을 상대하질 않았어요."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이 바이오렛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양쪽 이웃 모두 다 새로 이사온 집들이었던 것 같네요." 게리슨이 말했다.

노라는 코를 풀고는 손수건을 치웠다. 그녀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갑작스러운 해방감이 강한 감정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호기심이 발동할 여유를 가질 정도로 웬만큼 가라앉았다.

"괜찮아요?" 트라비스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를 열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셨지요. 그렇지요? 그 남편에 관해서 말예요. 그게 당신이 나를 이리로 데리고 온 이유지요."

"난 혹시 하고 생각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만약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면 그것에 관해 말했었을 거요. 그녀가 돈이 어디서 생겼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한 가지 가능성밖에는 없었던 거죠. 남편이지요. 그녀와 문제가 있던 남편에게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것이지요. 그녀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얼마나 심한 원한을 품고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훨씬 더 쉽게 납득이 되지요."

변호사는 너무 당황하고 흥분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커다란 고대식 지구본을 지나쳐 천천히 걸었다. 그 지구본은 양피지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전구가 켜져 있었다.

"어리둥절하군요. 그래서 왜 그녀가 그토록 인간을 싫어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셨군요. 그러니 왜 그녀가 모든 이들이 속으로 자신이 아주 못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이해를 못 하셨겠지요."

"." 노라가 말했다. "전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냥 그녀가 본래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여전히 천천히 걸으며 게리슨은 말했다. "그래요. 그게 사실입니다. 난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도 어느 정도 편집증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조지가 그녀를 배신하고 여러 다른 여자들과 바람 피운 것을 알았을 때 그 편집증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하면서 온통 그녀 안에서 짤깍거리기 시작했던 거지요. 그리고 그후로 훨씬 더 심하게 되었던 겁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왜 바이오렛은 처녀 때 성()인 데본을 그대로 썼나요? 옴스테드와 결혼했는데도 말입니다."

"더 이상 그의 성을 원치 않았던 거지요. 그 이름에 염증을 느꼈던 겁니다. 그녀는 짐을 꾸려 그를 집 밖으로 내보냈지요. 작대기를 들고 그를 거의 때리다시피 하며 집 밖으로 내쫓은 겁니다. 그녀는 그가 죽기 바로 전에 막 이혼하려고 했었지요." 게리슨이 말했다. "이미 말했듯이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그녀는 격분했어요. 수치심을 느꼈고 분개했지요. 내가 빠트릴 수 없는 말은 전적으로 그 불쌍한 조지만을 탓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가 집안에서 어떤 사랑이나 애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혼식 후 한 달만에 그 결혼이 실수였음을 깨달았지요."

게리슨은 지구본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한 손을 가볍게 지구본 꼭대기에 올려놓으며 먼 과거를 회상했다. 보통 때 그는 자기 나이만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뒤로 거슬러 회상하고 있는 지금은 얼굴의 주름이 깊어지는 것 같았고 또 그의 파란 눈도 흐려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때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는 연민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그런 색다른 시대였어요. 하지만 그런 시대일지라도 바이오렛의 반응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녀는 그의 옷이란 옷은 모두 다 불태우고 집안의 모든 자물쇠들을 바꾸어 버렸어요. 심지어는 남편이 좋아했던 개인 스패니얼까지 죽였어요. 독살시킨 거지요. 그리고 그것을 상자에 넣어 그의 앞으로 우송했었지요."

", 세상에!" 트라비스가 말했다.

게리슨은 말했다. "바이오렛은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처녀 때 성()을 되찾은 거였지요. 평생 조지 옴스테드의 이름을 지고 다닌다는 생각이 역겨웠다고 그녀가 말하더군요. 그가 죽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녀는 용서할 줄 모르는 여자였어요."

"그랬어요." 노라가 맞장구쳤다.

그의 얼굴이 그 기억에 대한 불쾌감 때문인지 찡그려졌다. 그리고는 계속 말했다. "조지가 죽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기쁨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았지요."

"살해되었나요?" 노라는 바이오렛이 조지 옴스테드를 살해하고도 어쩐 일로 아직까지 기소를 피해왔다는 말을 반쯤은 기대하고 있었다.

"교통 사고였어요. 벌써 40년 전 일이네요." 게리슨이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오다 해안 고속 도로에서 차가 말을 안 들었지요. 그래서 그 시절에는 난간이 없었던 그 길가를 넘어버렸던 겁니다. 그 뚝은 20에서 30미터의 높이에다 무척 가파랐지요. 검은색 대형 패카드인 조지의 차는 그 아래 바위에 부딪칠 때까지 일곱 번이나 굴렀어요. 바이오렛은 이혼 수속을 시작했었지만 조지가 미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되었던 거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러니 조지 옴스테드는 바이오렛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냥 죽어버림으로 해서 그녀에게는 화낼 대상이 없어져 버린 셈이군요. 그래서 그 분노를 세상으로 돌렸던 거군요."

"그리고 특히 저에게로요." 노라가 말했다.

바로 그날 오후 노라는 트라비스에게 자신의 그림에 관해 말했다. 그녀는 전엔 자신의 예술적인 취향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이젤, 재료함, 또 화판 등을 구경하기 위해 그녀의 침실로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자기 생활의 일면을 그에게 비밀로 간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언급하곤 했었다. 그것이 함께 화랑과 박물관에 가곤 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었다. 그가 그 그림들을 보자마자 맥빠져 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녀는 진정한 재능이 없다고 느끼면 어떻게 할까?

책들이 제공하는 그 위안을 제외하고는 노라로 하여금 그 험하고 외로운 세월들을 이겨내게 만든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그녀는 자신이 괜찮은 화가라고, 아니 어쩌면 아주 훌륭한 화가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수줍고 또 너무 연약해서 그런 확신을 누구에게도 드러내 말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틀리면 어쩌나? 만일 자신이 재능이 없고 단순히 시간 채우기를 해왔다면 어쩌나? 그녀의 예술은 그녀가 자신을 정의하는 제일의 매체였다. 그녀에게는 그 얇고 부실한 자기 이미지를 지탱해줄 다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믿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트라비스의 의견은 그녀에게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그림에 대한 그의 반응이 부정적이라면 그녀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게리슨 딜워스의 사무실을 떠난 후에 노라는 모험을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오렛에 관해 진실을 들었던 것이 노라에게는 심적인 감옥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였다. 그녀가 그 감옥에서 일어나 긴 홀을 따라 바깥세상으로 나오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여행은 필연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문을 열고 새로운 삶이 제공하는 그 모든 경험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상이 거부하거나 또는 심하게 그녀에게 실망할지도 모를 가능성 등도 감수해야 한다. 모험 없이는 새로운 걸 얻을 희망도 없다.

집에 돌아와 그녀는 트라비스를 2층에 데리고 올라서 자신의 가장 최근의 작품 대여섯 점을 보여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순수한 목적일지라도 남자를 자신의 침실로 데리고 간다는 생각이 너무 불안했다. 게리슨 딜워스가 사실을 밝혀줌으로 해서 그녀는 자유로와졌다. 그래서 이제 그녀의 세계는 급속도로 넓어졌다. 그러나 침실까지 보여줄 정도로 자유롭지는 않았다. 대신 트라비스와 아인스타인이 가구들로 가득 찬 거실의 커다란 소파에 앉아 기다리면 자신이 침실에서 몇 점의 그림을 가지고 와 보여주겠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모든 전등을 다 켜고는 창문 커튼도 다 걷었다. 그리고 말했다. "곧 돌아올게요."

그러나 막상 2층에 올라가자 그녀는 자기 침실에 있는 열 점의 그림들을 놓고 안절부절못하며 그에게 우선 보여 줄 두 점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4점으로 결정했지만 그 많은 것을 한꺼번에 옮기는 것이 좀 어설펐다. 계단 반쯤 내려와서 멈추고는 떨고 있다가 그 그림들을 도로 가져다 놓고 다른 것들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를 네 걸음도 채 되기 전에 자신이 이러다가는 왔다 갔다 하며 하루 온종일을 다 허비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녀는 한번 깊게 숨을 쉬고는 자신이 처음에 선택했던 그 4점을 가지고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트라비스는 그 그림들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격찬했다. "세상에, 노라, 이것은 취미 삼아 하는 그림이 아니야. 이것은 진품이야. 예술이라구."

그녀는 그 그림들을 4개의 의자 위에 세워 놓았다. 그러자 그는 소파에 앉아서 그것들을 살펴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일어나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왔다갔다 했다.

"당신은 뛰어난 포토리얼리스트요." 그가 말했다. "글쎄, 난 예술 평론가는 아니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은 웨스만큼 솜씨가 있어요. 하지만 이쪽 것들은...... 이 두 그림에서는 엄청난 수준이......"

그의 칭찬으로 해서 그녀는 아주 심하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침을 어렵게 삼키고나서야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의 분위기죠."

그녀는 두 개의 풍경화와 두 개의 생물화를 가져왔었다. 그중 하나씩은 실로 엄격하게 포토리얼리스트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강한 초현실주의 요소가 가미된 포토리얼리즘이었다. 예를들면 정물화에서 몇 개의 유리잔과 주전자, 스푼, 그리고 얇게 잘린 오렌지가 테이블 위에 있고 그것은 아주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보면 그 장면이 아주 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시 보면 유리잔 중 하나는 그것이 놓여 있는 표면에 녹아 붙어 있고 또 레몬 조각은 유리잔 측면을 뚫고 있어서 마치 그 유리잔이 그 레몬을 둘러싼 채 만들어졌던 것처럼 보였다.

"이것들은 아주 뛰어나요. 정말 그래요." 그가 말했다. "다른 작품들도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다른 작품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두 번 더 침실로 갔다 와서는 6점의 그림을 더 가져왔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접할 때마다 트라비스의 흥분은 커져갔다. 그의 기쁨과 열의 또한 진실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그녀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그가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동해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옮겨 다니다 다시 돌아보며 그는 말했다. "당신의 칼라 감각이 뛰어납니다."

아인스타인은 트라비스를 쫓아 그 거실을 돌아다니며 자기 주인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조용하게 으르릉 소리를 내며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마치 그의 평가에 동감임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 그림들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으르릉"

"매체에 대한 콘트롤이 놀랍습니다. 수천 번의 붓질로 만들어진 것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대신 마치 이 그림들이 신비하게 그냥 화폭에 나타난 것만 같네요."

"으르릉"

"노라, 이것은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아주 훌륭해요. 어느 화랑이든 단번에 이것들을 가져갈 겁니다."

"으르릉"

"당신은 이것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생각엔 굉장한 명성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아주 심각하게 취급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캔버스를 다시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종종 이전 그림 위에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그 결과 많은 그림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다락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들이 80점이 넘게 쌓여 있다. 이제 트라비스의 고집에 못 이겨 다락에 포장돼 있던 그 그림들을 20여 점 이상 내와 갈색 포장지를 찢고는 다 거실 가구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정말 처음으로 그 검은 방이 밝아졌고 또 온화해 보였다.

"어느 화랑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이것들에 대한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할 겁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러지 말고 정말 내일 저것들 몇 점을 트럭에 싣고는 몇몇 화랑을 돌아보고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봅시다."

", 아니요. 아니요."

"당신에게 약속하지요. 노라!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갑자기 근심에 빠졌다.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생각에 스릴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론 갑작스러운 상황 진척에 놀랐다. 낭떠러지 끝을 걷다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은 아니에요. 일주일이나 한 달 뒤에 그것들을 트럭에 싣고 화랑에 가져가 보지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트라비스, 난 정말 할 수 없어요. 난 아직 그렇게 못 하겠어요."

그가 그녀를 보고 씩 웃었다.

아인스타인이 그녀에게로 다가와서는 몸을 그녀의 다리에 대고 비비며 아주 애정 어린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의 귀 아래를 긁어주며 그녀는 말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일어났어. 난 이 모든 것들을 다 흡수할 수가 없어. 난 계속 현기증과 싸워서 그것들을 떨쳐내야만 해. 왠지 내가 너무나 빨리 돌아서 멈출 수 없게 된 회전 목마에 타고 있는 것만같이 느껴져."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예술 작품을 대중에 공개하기를 미루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앞으로 나가면서 이 찬란한 발전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다 맛보고 싶었다. 만약 그녀가 갑작스레 곧바로 뛰어들면 세상을 피하던 노처녀에서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자로의 변신이 너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면 후에 분명히 자국이 남게 될 것이다. 그녀는 변신의 모든 순간들을 즐기고 싶었다.

마치 출생 이후 내내 생명 유지 장치가 복잡하게 설치된 어두운 방에서만 갇혀 살아온 병자였다가 막 기적적으로 치료된 사람처럼 노라 데본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세계로 나왔던 것이다.

트라비스만이 노라가 은둔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은 아니다. 아인스타인도 그녀가 변화되는 데 그만큼의 역할을 했다.

그 사냥개는 자신의 그 놀라운 지능의 비밀을 노라에게 털어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솔방에서 그 신부생활나 어린애 일 이후로 그 개는 자신의 그 개 같지 않은 마음 상태를 작동시키며 그녀를 거듭해서 쳐다보곤 했다.

트라비스는 아인스타인에 앞서서 노라에게 자신이 어떻게 숲속에서 그 사냥개를 발견했으며 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이상한 것이 이 개를 쫓아왔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그는 그 때 이후로 그 개가 해온 그 놀라운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그는 또한 아인스타인이 가끔 한밤중에 창가에 서서 어둠을 응시하며 마치 그 숲속의 생물이 그를 찾아낼 것을 믿는 양 몇 차례씩 불안에 떤다는 것도 노라에게 말했다.

그들은 어느 날 저녁 노라의 부엌에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또 집에서 만든 파인 애플 케익을 먹으며 그 개의 신비한 지능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인스타인은 케익 조각을 달라고 조르지 않을 때는 그들이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을 마치 이해하는 양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다 때론 자신의 구강 구조로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에 답답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찡찡거리거나 조급하게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왜 다른 개들과 그토록 엄청나게 다른지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고 난 믿어요." 노라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이 바쁘게 자신의 꼬리로 허공을 휘두르고 있었다.

", 나도 그것을 확신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는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자신이 색다르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그 이유도 알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가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러지 찾기만 하면 그것에 관해 우리에게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해요."

사냥개는 한 번 짖고는 부엌 저쪽 끝으로 달려갔다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정말 사람처럼 좌절감을 드러내는 약간의 광적인 춤을 추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머리를 자기 발 위에 올려놓고 마룻바닥에 폭 쓰러져서는 칙칙 소리를 내다가 또 조용히 낑낑거리기도 했다.

노라는 그 개가 트라비스의 서가에 꽂혀 있는 전집을 보고 흥분했었다는 이야기에 가장 큰 흥미를 느꼈다. "그는 책들이 의사 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그는 책들을 이용해서 그와 우리들 사이에 있는 의사 소통의 갭을 넘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떻게?" 트라비스는 파인 애플 케익을 포크로 다시 한 조각 뜨면서 물었다.

노라는 어깨를 움츠렸다. "몰라요. 하지만 문제는 당신의 책들이 그가 바라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소설들이라고 말했지요?"

"그래요. 픽션들이지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들은 그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나 사진들이 있는 책들인지 몰라요. 갖가지 종류의 그림책들이나 잡지들을 모아와서 마룻바닥에 펼쳐 놓고 아인스타인에게 보이면서 노력해보면 어떻게 그와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요."

그 사냥개는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노라에게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쳐다보는 그의 눈을 보고 노라는 자신의 제안이 괜찮았다는 것을 느꼈다. 내일 그녀는 여남은 권의 책들과 잡지들을 모아와서 이 계획을 실행해볼 생각이었다.

"아마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겁니다." 트라비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인내심만큼은 바다만큼이나 많아요."

"당신은 자신이 그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요. 하지만 아인스타인을 다루다 보면 때때로 인내심이란 말이 색다르게 느껴지곤 할겁니다."

개는 트라비스를 향해서 콧구멍으로 콧김을 내뿜었다.

수요일과 목요일 동안에 실시한 그 개와의 첫 번째 실험에서는 좀 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전망은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커다란 진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64, 그들은 그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그들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을 수 없었다.

 

2

"보르디옥스 리지라는 완공되지 않은 주택건설부지에서 절규 소리가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음."

금요일 저녁, 64일 해지기 한 시간 전, 태양은 황금빛으로 오렌지 카운티를 내리비추고 있었다. 34도가 넘는 작열하는 온도가 이틀째 계속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 긴 여름날의 축적된 열이 도로와 건물들에서 방출되고 있었다. 나무들은 지쳐서 축 늘어져 있었고 바람은 한 점도 없었다. 고속 도로나 일반 도로에서의 자동차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마치 두꺼운 공기층이 엔진의 울림과 경적소리를 걸르는 것처럼 말이다.

"반복한다. 동쪽 끝 건설 현장인 보르디옥스 리지다."

요르바 린다에 인접한 미편입 군()지역 안에 있는 곳으로 북쪽으로 뻗은 완만한 산기슭 지역이다. 그곳은 아주 최근에서야 교외 인구들이 뻗치기 시작한 곳으로 자동차들이 적었다. 이따금 울리는 경적소리나 브레이크 밟는 끽소리는 아득하게 들릴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그 후덥지근한 정적 속에서 애처롭고 우울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지방 경찰관들인 틸 포터와 켄 디메스는 통풍 장치가 고장 난 순찰차를 타고 있었다. 틸은 운전을 하고 켄은 무장 정찰을 하면서. 에어콘 장치도 없었고 바람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없었다. 유리창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차는 찜통이었다.

"자네한테서 죽은 돼지 냄새가 나는군." 틸 포터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말했다.

"그래?" 켄 디메스가 말했다. ", 자네는 죽은 돼지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돼지 같아 보이네."

"그래? 그러면 자네는 죽은 돼지들과 데이트를 주로 하는구만."

켄이 그 더위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었다. "자네의 여자들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자네는 죽은 돼지처럼 사랑을 한다며? 그게 정말인가?"

그런 지친 유머로는 그들이 지치고 힘들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전 송신에 응답하였지만 그렇게 큰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건축 부지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이 경찰관들은 둘 다 서른두 살이었고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들로 깡마른 체구들이었다. 그들은 형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6년 동안 파트너로 지내면서 형제가 되었다.

틸은 군() 도로를 벗어나 보르디옥스 리지 현장으로 들어가는 흙길로 들어섰다. 40여 채의 집들이 각기 여러 건축 단계에 있었다. 대부분이 아직 골조 상태였으나 이미 치장 벽토가 끝난 것들도 몇 채 있었다.

"저기 봐, 정말 사람들이 홀딱 반할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저 똥 같은 것들이 있어. 내 말은 제기랄, 도대체 남 캘리포니아에서의 건축 단지에 보르디옥스란 이름이 웬 말이야?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날 여기가 포도원이 될 것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것인가? 그리고 여길 '리지(산마루)'라고 부르고 있어. 하지만 이 구역 전체는 언덕 사이에 있는 평지야. 그들의 광고를 보면 평온함을 약속해주고 있어. 아마 지금은 그러겠지. 하지만 앞으로 5년간 여기에다 또다시 3천 가구를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나?"

틸이 말했다. "그래, 나를 화내게 만드는 부분은 '미니 별장'이란 말이야. 미니 별장이란 말이 뭔 말라비틀어진 말인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이곳을 별장이라고는 생각 안 할 거야. 한 아파트에서 열두 명씩 살면서 평생을 보내는 러시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이 집들은 그냥 평범한 주택들일 뿐이야."

콘크리트 연석(緣石)들과 도랑받이들이 보르디옥스 리지의 길들을 따라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러나 도로포장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틸은 천천히 차를 몰며 먼지가 많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썼으나 그래도 먼지는 났다. 그와 켄은 좌우로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집들의 골조 형태들을 쳐다보며 곤란한 상태에 빠진 아이들이 있나 찾았다.

보르디옥스 리지 인접 지역인 서쪽 요르바 린다주변 지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있는 완공된 집들이 있었다. 그곳 주민들이 요르바 린다 경찰서에 이 미완성 개발부지 어디선가 절규 소리가 들렸다고 전화를 했었다. 이 지역이 아직 그 시와 병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민원이 오렌지 카운티 경찰서의 관할로 떨어졌다.

거리의 끝에서 두 경찰관은 보르디옥스를 소유하고 있는 투레만 브라더스 주식회사 소속의 하얀 픽업트럭을 보았다. 그 트럭은 거의 완성된 전시용 모델하우스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곳에 아직도 현장 주임이 있는 모양인데." 켄이 말했다.

"아니면 좀 일찍 나온 야간 경비인지도 몰라." 틸이 말했다.

그들은 그 트럭 뒤에다 순찰차를 주차하고는 숨 막힐 것처럼 뜨겁고 답답한 차 안에서 나와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 기울이며 잠시 서 있었다. 고요했다.

켄이 소리쳤다. "이봐요. 여기 누구 없어요?"

그의 목소리가 삭막한 구역을 가로지르며 앞 뒤로 메아리쳤다.

켄이 말했다. "둘러보고 싶은가?"

"젠장, 아니." 틸이 말했다. "하지만 해보자구."

켄은 여전히 보르디옥스 리지에 무슨 일이 났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 픽업은 그냥 놔두고 퇴근했을 수 있다. 대개 다른 장비들은 밤사이에도 그대로 놔둔다. 그리고 신고된 절규 소리는 아이들이 놀다가 지른 소리일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을 차에서 꺼내 거머쥐었다. 전력이 이 부지까지 연결되었을지라도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건축물에 램프나 천장 전등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라기보다는 거의 습관적으로 엉덩이에 걸려 있는 총 벧트를 다시 정리하며 골조가 부분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집들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을 통과하며 걸어 나갔다. 그들은 특별히 어떤 것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조사할 뿐이었고 사실 그것이 경찰 업무의 절반이었다.

부드럽고 산발적인 산들바람이 처음으로 불어와 그 집 공터에 톱밥이 날렸다. 태양은 빠르게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벽의 간주(間柱)들이 마루바닥에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황금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해가는 태양은 마지막 남은 빛으로 하늘에 석양을 깔아놓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못들이 날카로운 빛으로 반짝이며 어지럽게 널려 있다가 발아래 밟혀 쨍그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만팔천 달러면 이 집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틸은 손전등으로 어두운 구석들을 비추며 말했다.

톱밥 냄새가 나는 공기를 깊게 들이키며 켄이 말했다. "젠장, 난 공항 라운지만한 집을 얻겠다."

그들은 그 집 뒤쪽으로 걸어가 얕은 뒤뜰로 나와서 손전등들을 썼다. 황량한 땅은 조경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은 목재 조각들,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 구겨진 타르 종잇조각들, 엉켜진 철선, 많은 못들, 쓸모없는 PVC 파이프들, 지붕 잇는 사람들이 버린 삼나무 지붕 널, 스티로폴로 된 음료수 컵과 햄버거 용기, 빈 콜라 깡통들, 그리고 분간할 수 없는 부스러기 등 갖가지 건축 자재 파편들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울타리들은 아직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길을 따라 건축 중인 집들의 뒤뜰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누가 피해를 본 흔적은 없어." 틸이 말했다.

"문제에 처한 계집 아이들도 없고 말이야." 캔이 말했다.

"글쎄. 여기를 따라 좀 걸어보면서 건물들 사이를 살펴보기나 하자구." 틸이 말했다. "우린 주민들 돈을 받고 사니 무엇인가 그들에게 주어야 한단 말이야."

건물들 사이를 큰 보폭으로 30보 정도 걸으며 두 채의 집을 지났을 때 그들은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제기랄!" 틸이 말했다.

그 사람은 등을 땅에 대고 누워 있었고 몸 대부분이 그늘진 어둠 속에 있어서 몸 하단 부분만이 희미한 붉은 빛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틸과 켄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마주친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켄은 그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그 남자의 내장이 찢겨진 채로 열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 사람 눈이......" 틸이 말했다.

켄은 난자당한 몸통에서 시선을 위로 올려 보고는 이 피해자의 눈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생긴 휑한 구멍들을 보았다.

틸은 어지러운 뜰로 나와 권총을 뽑았다.

켄도 난자당한 시체에서 물러나 권총집에서 총을 살짝 뺐다. 그는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갑자기 다른 종류의 땀, 으스스하고 음산한 공포의 땀으로 더 축축하고 미끄러운 느낌을 받았다.

켄은 마약을 생각했다. 마약에 취한 어떤 얼간이만이 이런 짓을 할 정도로 난폭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보르디옥스 리지는 고요했다.

시시각각 길어져만 가는 것 같은 그림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들이 없었다.

"나도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틸이 말했다. "좀 더 보고 싶은가?"

"우리 둘만으론 안되겠어. 무전으로 원조를 청하자구."

그들은 방심하지 않고 사방을 보면서 천천히 몇 걸음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마 못 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충돌하는 소리, 금속판이 달그닥거리는 소리,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켄은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소음은 모델하우스로 쓰기 위해 벌써 다 완성돼 가는 3채의 집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집에서 들려왔다.

눈에 보이는 혐의점이 없고 또 용의자를 어디서부터 찾기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 단서가 없을지라도 그냥 순찰자로 돌아가 원조를 청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모델 하우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들은 이상 그들은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은 훈련과 본능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 집 뒤뜰을 향해 움직여갔다.

건물 간주(間柱)들에는 합판 외피들이 못에 박혀 씌워져 있었다. 그래서 벽들도 아직 끝마무리가 다 되지 않은 상태였고 또 그 장소의 반 정도만이 벽토 처리가 되어 있었다. 사실 벽토는 좀 축축해 보였다. 벽토 일이 바로 오늘 시작된 것 같았다. 창문들은 대부분 다 설치되어 있었다. 단지 몇 곳만 불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었다.

또다시 무엇이 부딪치는 소리가 처음 것보다 더 크게 들렸고 뒤이어 안에서 더 많은 유리창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켄 디메스는 뒤뜰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미닫이 유리문을 밀쳐보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바깥에서 틸은 유리를 통해서 거실을 살펴보았다. 커튼이 없는 문과 창문들을 통해 약간의 빛이 집 안을 비추고 있었지만 안은 대체로 어두웠다. 하지만 그 거실이 황폐하게 되어 있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틸은 한 손엔 손전등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권총을 꼭 쥐고는 반쯤 열린 문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자네는 앞으로 돌아가게." 틸이 속삭였다. "그 악당 놈이 그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이야."

켄은 창문 위로 몸이 보이지 않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집 측면을 따라서 급히 모퉁이를 돌아 집 앞으로 갔다. 왠지 발을 뗄 때마다 누군가가 지붕에서 뛰어내려 덮치거나 아니면 어느 창문을 통해 튀어나와 덤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내는 석고 상태였고 천장은 직물로 되어 있었다. 거실은 부엌과 붙어 있는 식당으로 열려 있어 모두가 칸막이 없이 커다란 하나의 공간이었다. 부엌에는 참나무로 된 식기장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바닥에는 아직 타일이 깔리지 않았다.

집 안은 목재 착색제 냄새에다 벽토의 석회 냄새가 섞여 풍겼다.

틸은 식당에 선 채 뭘 부수는 소리나 움직이는 소리가 더 나는지 귀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집이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주택들과 갈은 것이라면 부엌 너머 왼쪽으로 식당이 있을 것이고 그다음으로 거실, 현관 입구, 그리고 서재 식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간이 식당을 나와 홀로 들어가면 아마도 세탁실이 있을 것이고 아래층 욕실, 외투 장, 그리고 현관이 나올 것이다. 그는 어느 루트를 잡든 특별히 잇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홀로 들어가서 우선 세탁실부터 살펴보았다. 그 어두운 세탁실은 창문이 없었다. 문은 반쯤 열린 채였다. 그래서 손전등으로는 오로지 노란 캐비닛과 또 앞쪽으로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일 장소만이 보였다. 그러나 틸은 문 뒷부분을 보고 싶었다. 아마 싱크대 자리와 일할 공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문을 완전히 밀어 열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전등과 총을 그 방향으로 휙 돌렸다. 그가 기대했던 대로 스테인레스 싱크대와 붙박이 테이블이 있었다. 그러나 살인마는 없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안했다. 그 죽은 사람의 형상이 계속 마음속에서 껌벅이며 되살아나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눈알이 빠진 휑한 구멍을 마음속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불안한 것이 아니다. 그는 생각했다. 사물을 직시하라. 너는 너무 놀라 있다.

현관 밖에서 켄은 좁은 도랑을 뛰어 넘어 여전히 닫혀 있는 두 짝 열 개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는 주변 지역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도망치려는 자가 없었다. 황혼이 내리고 있어서 보르디옥스 리지는 개발 중인 택지라기보다는 폭격당한 동네처럼 보였다. 그림자들과 먼지들이 폐허의 형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세탁실에서 틸 포터는 홀 쪽으로 걸어 나오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오른쪽 노란 캐비닛들이 있는 곳에서 넓이 60센티, 높이 180센티의 청소함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는 그 생물이 마치 상자곽 속의 용수철 인형처럼 그에게로 덤벼왔다. 처음 순간에는 고무로 된 괴물 마스크를 쓴 아이임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 생물 때문에 방향을 잃은 손전등의 역광만으로는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흐린 등불과 같은 그놈의 눈이 유리나 프라스틱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이 실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총부리는 앞을 향해 홀 쪽으로 향해져 있었다. 총알은 아무도 해치지 못하고 거실 밖에 있는 벽에 박혔다. 그래서 총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놈이 뱀처럼 쉬익 소리를 내며 그를 완전히 덮쳤다. 그는 다시 총을 쏘았다. 이번에는 마룻바닥에 박혔다. 총소리가 그 밀폐된 공간에서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는 뒤 싱크대로 몰렸다. 총은 낚아채였다. 또 손전등도 놓쳐 구석으로 굴러가 버렸다. 그는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채 날라가기도 전에 그는 배 부근에서 끔직스러운 고통을 느꼈다. 마치 몇 개의 단검들이 일시에 그를 찌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즉시 깨달았다. 그는 고함을 질렀다. 절규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상자곽의 용수철 괴물의 괴이한 얼굴이 그를 덮쳐왔다. 노란빛을 토해내는 눈을 하고서...... 틸은 다시 절규하며 몰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더 많은 단도들이 그의 부드러운 목 피부를 뚫고 잠겨왔다.

켄 디메스는 현관에서 네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틸이 절규하는 소리를 들었다. 놀람과 공포와 고통의 울부짖음이었다.

"제기랄!"

현관문은 착색된 참나무로 된 두 짝 열개 문이었다. 오른쪽 문짝은 걸쇠로 문지방과 위문 틀에 꽉 잠겨 있었지만 왼쪽 문짝은 실제 쓰이는 문으로 잠겨 있지 않았다. 켄은 잠깐 주의하는 것도 잊은 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두운 현관에서 멈추었다. 이미 절규 소리는 멈추었다.

그는 손전등 스위치를 켰다. 오른쪽으로 빈 거실이 있었고 왼쪽으로 빈 서재가 있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했다. 완벽하게 고요했다. 마치 진공 속에 있듯이.

잠깐 동안 켄은 망설이며 소리내 틸을 부르지 못했다. 자신의 위치를 그 살인마에게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다가 그는 그 손전등만으로도 자신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손전등 없이는 조금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그가 소리를 낸다 해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

그 이름이 빈방들을 통해서 메아리쳤다.

", 어디 있나?"

대답이 없다.

틸은 죽은 것이 틀림없다. 이럴 수가! 그가 살아 있다면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다쳐서 무의식 상태로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 경우라면 순찰차로 돌아가 앰블런스를 부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파트너가 절박한 상태에 있다면 켄은 그를 빨리 발견해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 틸은 앰블런스를 부르러가는 시간이면 죽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체하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다.

게다가 그 살인마는 처리해 버려야 한다.

이제 아주 희미한 붉은 빛만이 창문들을 통해서 비치고 있었고 그래서 서서히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켄은 전적으로 손전등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 빛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들이 껑충껑충 뛰며 덤벼들면서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그같이 잘못 본 그림자들 때문에 정작 진짜 위험은 보지 못할지 모른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그는 그 집의 뒤로 나가는 좁은 홀을 따라 살금살금 걸었다. 그는 벽에 몸을 붙이다시피 했다. 신발 한 짝의 밑창이 걸을 때마다 끽끽거렸다. 그는 총을 앞으로 내밀었다. 총구를 마루나 천장을 향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만은 무기 안전 수칙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른쪽으로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작은 방이었다. 비어 있다. 자신의 땀 냄새가 그 집에서 나는 석회석이나 나무 착색제 냄새보다 더 짙게 나기 시작했다.

그는 왼쪽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재빨리 손전등으로 훑어보았으나 평범한 것들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거울에 비친 공포에 찬 자신의 얼굴 때문에 잠깐 놀라긴 했어도 말이다.

그 집 안쪽으로 있는 거실, 간이 식당, 부엌 등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또 다른 문이 있었고 역시 열려 있었다. 손안에서 갑자기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 손전등의 불빛을 통해서 켄은 세탁실 바닥에 있는 틸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있어서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간장을 씻어 내려가는 두려움의 파고 밑으로 슬픔과 분노, 증오, 그리고 복수에 대한 강렬한 충동 등의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쿵하고 소리를 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그 위험 요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른쪽 홀과 왼쪽 간이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소리는 집 안 앞쪽에서 났다. 그 소리의 메아리가 사그러들고 있었지만 그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다.

또 다른 소리가 정적을 깼다. 첫 번째 소리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더 기가 꺾이는 소리였다. 걸쇠가 잠기는 딸깍 소리였다.

그 살인마가 떠나면서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궜을까? 하지만 그가 어떻게 열쇠를 얻었겠는가? 그가 살해한 그 현장 주임에게서 얻은 것일까? 그러면 왜 이제서야 문을 잠궜을까?

그가 안에서 문을 잠궜을 가능성이 더 많다. 단순히 켄이 도망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사냥은 계속 중이라는 것을 켄에게 알리는 것이다.

켄은 손전등을 끌 생각을 했다. 그것 때문에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리창으로 들어오던 석양의 햇빛도 진한 자줏빛이 되었고 그 빛마저 집 안으로는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손전등 없이는 전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살인마는 이토록 짙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제 길을 찾아다닐 수 있는가? 마약 중독자가 마약에 취해 있을 때는 야간 시력이 증진되는 것일까? 합성 헤로인 부작용의 하나로 중독자의 힘이 열 사람 몫을 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집은 조용했다.

그는 복도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그는 틸의 피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금속성 냄새가 엷게 풍기는 비린내였다.

딸깍, 딸깍, 딸깍.

켄은 몸이 굳어져 왔고 귀는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재빠른 3번의 소리 뒤에는 더 이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들은 콘크리트 바닥을 가로지르는 재빠른 발걸음 같은 소리였다. 딱딱한 가죽 뒤축이 있는 구두나 부츠를 신은 누군가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가 끊겨서 그는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 소리들을 다시 들었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이번에는 4번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현관에서 이쪽 방향으로 오면서 그가 서 있는 홀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벽에서 몸을 떼고서 적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로 자세를 낮추어 웅크리면서 걸음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손전등과 권총을 확 들이댔다. 그러나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의 움직임 소리를 못 들을지 모르기 때문에 켄은 자신의 가쁜 숨소리를 줄이기 위해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며 복도를 따라 천천히 움직여 현관으로 갔다. 아무것도 없다. 현관문은 아주 잘 닫혀 있었다. 그러나 서재와 응접실, 계단과 2층 난간에도 아무도 없었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그 소리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났다. 그 집의 뒷 쪽 간이 식당 쪽에서다. 그 살인마는 조용히 현관에서 빠져나와 켄을 뒤에 두고 응접실과 식당을 가로질러 그 집안을 한 바퀴 뺑 돌아 부엌과 간이 식당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제 그 악당 놈은 지금 막 켄이 떠나온 홀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놈은 다른 방들을 사뿐히 소리 없이 지나다니면서도 다시 가끔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어서가 아니다. 또 켄의 신발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듯이 그의 신발에서도 딸깍 소리가 나서도 아니다. 그놈은 그 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켄을 조롱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봐, 난 지금 네 뒤에 있어. 그리고 여기서 내가 간다.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여기서 난 간다.'

딸깍, 딸깍, 딸깍.

켄 디메스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어떤 문제로부터 발걸음을 돌린 적이 없는 훌륭한 경찰이었다. 그는 7년밖에 근무하지 않았는데도 그동안에 그 용맹성으로 두 번이나 훈장을 받았었다. 그러나 얼굴 없이 미쳐 날뛰는 이 망할 자식은 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온 집안을 질주하며 조롱하듯 소리를 냈다 내지 않았다 하며 켄을 당황하게 하고 겁을 주었다. 켄은 어느 경찰 못지 않게 용감했지만 또한 바보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로지 바보만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과감하게 뛰쳐들어갈 것이다.

홀로 돌아가서 그 살인마를 대적하는 대신 그는 현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으로 레버 식으로 된 청동 손잡이로 손을 내뻗었다. 그 문은 그냥 단순히 닫혀서 걸쇠로 잠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정된 문짝과 사용 중인 문짝의 손잡이에 한 팔 정도 되는 철사줄이 감겨 두 문짝을 꽉 묶어 주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면 그 철사줄을 풀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30초는 걸릴 것이다.

딸깍, 딸깍, 딸깍.

그는 보지도 않은 채 홀을 향해 한 번 총을 발사하고는 빈 거실을 가로질러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그는 자기 뒤에서 살인마의 소리를 들었다. 딸깍거리는 소리를. 어둠 속에서 빠르게 오는 소리를. 그러나 켄이 식당으로 가 부엌으로 통하는 출입구에 거의 다와 갈 때 바로 앞에서 딸깍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 살인마가 거실로 자신을 쫓아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놈은 빛이 없는 복도로 돌아가 다른 방향에서 그에게 오고 있었다. 이렇게 미친 게임을 하면서...... 그 악당 놈이 내는 소리로 봐서 그놈은 막 간이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켄과의 사이는 단지 부엌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켄은 바로 거기서 멈추고는 그 미친놈이 손전등 빛 안으로 나타나는 순간 그놈을 날려버릴 생각을 했다.

그때 그 살인마가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복도를 따라 딸깍거리며 다가오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적은 원시적인 분노와 증오의 응어리 같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켄이 들어본 중에 가장 이상한 소리로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미친 사람도 그런 소리는 내지 않는다. 그는 대결할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는 적을 혼란시키기 위해 손전등을 부엌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적으로부터 몸을 돌려 다시 도망치기로 하고 거실이나 집 안의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식당을 가로질러 황혼의 마지막 희미한 빛이 흐릿하게 비치는 창문으로 향했다. 그는 머리를 아래로 푹 숙이고 양팔을 가슴 위에 모으고는 옆으로 돌아 유리창으로 뛰어들었다. 유리창이 깨졌다. 그리고 그는 뒤뜰로 떨어져서 건축 자재 파편들 가운데로 굴렀다. 깔쭉깔쭉한 목재 조각과 콘크리트 덩어리가 그의 다리와 가슴을 찔러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는 민첩하게 기어 일어나 그 집 쪽을 향해 몸을 돌려 그 살인마가 그를 추격할 경우를 생각해서 그 부서진 창문에 권총을 발사했다.

밤은 적막하고 그는 그 적의 흔적도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운 타령이나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집 측면을 따라 달려 거리로 나왔다. 그는 순찰차로 가야 했다. 거기에는 무전기가 있었다. 그리고 펌프식 폭동 진압용 단총이 있다.

 

3

61일과 2일인 수요일과 목요일에 트라비스와 노라와 아인스타인은 인간과 개와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히 찾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남자와 개는 절망에 빠져 거의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라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확실히 인내심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64일인 금요일 저녁 해질 무렵 마침내 큰 진전을 보게 되었을 때 트라비스나 아인스타인은 놀랐지만 노라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40권의 잡지들과 50권의 미술집 및 사진집들을 사다가 트라비스의 집 거실로 가져왔다. 그 거실은 그것들 모두를 다 바닥에 펼쳐 놓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들은 또한 바닥에 베개를 가져다 놓고 누워서 그 개의 눈높이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준비해 놓는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라는 비닐 소파에 등을 대고 바닥에 앉아서 두 손으로 그 사냥개의 머리를 잡고는 거의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 말했다. "좋아, 이제 내 말을 들어, 아인스타인. 우리는 너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보통 개들보다 영리한지, 트라비스가 너를 발견하던 날 그 숲속에서 무엇을 보고 두려워했는지, 왜 가끔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그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 하지만 넌 말을 못 하잖니, 그렇지?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 너는 글을 읽지 못해. 또 네가 글을 읽을 수 있다 해도 쓰지는 못해. 그래서 우리는 그림들을 가지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할 것 같아."

노라 곁에 앉아 있던 트라비스는 그 개의 눈을 유심히 보았고 그 눈은 그녀가 말할 때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몸이 굳어 있었다. 그의 꼬리는 아래로 처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실험에 감전된 것만 같았다.

정말 이 똥개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이해를 하는가? 그리고 순전히 내 희망 사항 때문에 내가 착각했던 그의 반응들은 몇 개나 될까? 트라비스는 궁금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자신들의 애완동물들을 인격화하는 경향이 있고 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짐승들에게 인간과 같은 인식력과 의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정말 특별한 지능이 작동하고 있는 아인스타인의 경우에는 의미 없이 씰룩거리는 개 특유의 모든 행동들도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려는 유혹은 보통 경우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 있는 모든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너의 관심을 끄는 것들과 네가 어디서 왔고 또 네가 어떻게 지금의 너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볼 거야. 그러니 우리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네가 발견할 때마다 너는 어떻게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줘야 해. 그것을 보고 짖거나 그것 위에 발을 올려놓거나 아니면 꼬리를 흔들어서 말이야."

"재미있군." 트라비스가 말했다.

"내 말 이해하겠지? 아인스타인." 노라가 물었다.

사냥개는 조용하게 으르릉 소리를 냈다.

"전혀 효과가 없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니요, 효과가 있을 거예요." 노라가 주장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다 뿐이에요.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는 있어요. 그가 여남은 장의 그림들을 지적해낸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가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때가 되면 우리는 그것들을 서로서로 연관 짓게 되고 마침내 그와도 관련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거예요. 그리고 결국은 그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도 알게 될 거예요."

개는 여전히 머리를 노라의 손 안에 올려놓은 채 트라비스를 향해 눈동자를 돌리며 다시 으르렁거렸다.

"준비됐어?" 노라가 아인스타인에게 물었다.

개가 다시 휙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좋아." 그녀는 그의 머리를 놓아주면서 말했다. "시작하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한 번에 여러 시간씩 그들은 아인스타인에게 갖가지 그림들을 보여주며 그 많은 책들을 쭉 훑어나갔다. 사람, 나무, , 개들, 다른 동물들, 기계들, 도시 거리들, 지방 도시, 자동차들, 배들, 비행기들, 음식들, 수많은 상품 광고 등의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그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많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많았다. 그는 그 수천 가지 그림들 중 아마 수백 가지의 그림에 대해서 짖거나 발을 올려놓거나 으르렁거리거나 주둥이를 들이밀거나 꼬리를 흔들면서 관심을 나타냈다. 하도 다양하게 선택을 해서 트라비스는 그것들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들을 연관시키고 또 그런 연관 가운데서 어떤 의미를 축출할 방법이 없었다.

아인스타인은 자동차가 강인한 호랑이에 비유되어서 한 철창 우리에 갇힌 채로 보여지는 한 자동차 광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이 자동차인지 호랑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몇 개의 컴퓨터 광고와 개먹이 광고, 휴대용 녹음기 광고, 책 그림, 나비, 앵무새, 감옥에 있는 고독한 남자, 줄무늬 비치 볼을 가지고 노는 네 명의 남자, 미키 마우스, 바이올린, 운동용 트레이드밀 위에서 뛰는 남자, 그리고 많은 다른 것들에도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누런 사냥개의 사진에는 어쩔 줄 몰라했다. 또 스파니엘 개의 사진에도 곧바로 흥분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른 종류의 개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당황하며 반응한 것은 곧 극장에 내놓을 20세기 폭스사의 영화에 관한 잡지 기사 속의 사진에 대한 것이었다. 그 영화의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것-귀신들, 요정들, 지옥에서 온 악마들-과 관련이 있었고 그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사진은 널빤지 같은 턱과 가공할 송곳니에 눈이 전등처럼 빛나는 무시무시한 유령이었다. 그 생물은 그 영화에 나오는 다른 것들보다 더 흉측할 것도 없었고 오히려 어떤 것들에 비해서는 좀 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오로지 그 악마에게만 영향을 받았다.

사냥개는 그 사진을 보고 짖었다. 그리고는 소파 뒤로 달아나더니 마치 그 사진 속의 생물이 그 잡지에서 일어나 나와 그를 쫓아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몸을 숨기고 머리만 빠끔히 내밀었다. 그는 다시 짖고는 낑낑거리다가 노라와 트라비스의 구슬림을 받고서야 잡지 앞으로 돌아왔다. 아인스타인은 다시 그 악마를 보자 곧바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미친 듯이 발로 잡지를 넘기려고 했다. 마침내 좀 찢어지긴 했었도 그 잡지는 덮어졌다.

"그 사진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니?" 노라가 그 개에게 물었다.

아인스타인은 그냥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조금 떨고 있었다.

노라는 인내심 있게 그 페이지를 다시 폈다.

아인스타인은 그것을 다시 덮었다.

노라가 다시 폈다.

아인스타인은 그것을 세 번째로 덮고는 입으로 그것을 확 낚아채 방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트라비스와 노라는 그 사냥개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그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쓰레기통은 페달을 밟으면 뚜껑이 열리는 것이었다. 아인스타인은 페달에 발을 올리고 뚜껑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 그 잡지를 그 통에 떨어뜨리고서 페달에서 발을 뗐다.

"아니, 저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요?" 노라가 궁금해했다.

"내 생각엔 분명히 그가 보고 싶지 않은 영화인 모양이오."

"네발 달린 털보 영화 비평가로군요."

그 일은 목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금요일 초저녁에는 트라비스와 그 개의 좌절감이 한계점에 가까워졌다. 가끔 아인스타인은 신비스러운 지능을 보이곤 했으나 때론 여느 보통개와 같이 행동했다. 그래서 천재적인 개와 멍청한 잡견 사이를 오락가락해서 그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그들의 기운을 빼놓았다.

트라비스는 그 사냥개를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그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끔 그의 놀라운 기교에 대비하되 항상 그러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인스타인의 특이한 지능의 신비는 전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노라는 여전히 인내심을 가졌다. 그녀는 그들에게 로마는 하루만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값어치 있는 모든 성과들은 결의와 인내심, 끈기, 그리고 시간을 요했음을 자주 상기시켰다.

그녀가 끈기와 인내심에 대해 강의를 시작하자 트라비스는 지쳐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인스타인도 하품을 했다. 노라는 굴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 모든 책들과 잡지들 속의 그림들을 다 검토하고 난 후 그녀는 아인스타인이 반응을 보인 그림들만 모아서 그것들을 온 바닥에 죽 펴놓았다. 그리고는 그로 하여금 각 그림들을 연결하도록 부추겼다.

"이 그림들 모두가 그의 과거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했던 것들의 모습들일 거예요." 노라가 말했다.

"난 그렇게까지 확신하지는 않아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글쎄요, 바로 그걸 우리가 그에게 부탁하는 거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그림들을 그에게 짚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가 이 방법을 이해할까?"

"이해하지요." 그녀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개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노라는 아인스타인의 발을 들어서는 그것을 바이올린의 그림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똥개야. 너는 어딘가에서의 바이올린을 기억하지.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그것이 너에게 중요했어."

"아마 그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했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조용히 해요." 그리고는 노라는 개에게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럼 바이올린이 여기 있는 다른 어떤 그림들과 연관이 있니? 바이올린이 너에게 의미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어떤 그림이 있니?"

아인스타인은 마치 그녀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는 양 잠시 동안 진지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방을 가로질러 그림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통로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코를 끙끙대기도 하고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며 그림을 보다가 마침내 소니제 휴대용 스트레오 카세트 프레이어 광고를 발견했다. 그는 한발을 그 위에 올려놓고는 노라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연관이 있지." 트라비스가 말했다. "바이올린은 음악을 만들어 내지. 그리고 카세트 프레이어는 음악을 복사해내지. 이것은 개로서는 감명 깊은 연상 기교야. 하지만 그것이 정말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나? 그의 과거에 관한 어떤 것을 의미할까?"

", 난 그러리라고 확신해요." 노라는 말했다. 아인스타인에게 노라는 말했다. "너의 과거 속의 어떤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니?"

개는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말했다. "너의 전 주인이 이렇게 생긴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었니?"

개는 눈을 껌벅이며 낑낑거렸다.

"좋아." 그녀는 말했다. "네가 바이올린과 녹음기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다른 그림이 여기에 또 있니?"

아인스타인은 마치 무엇을 생각하는 듯 잠시 소니 광고를 내려다보고는 또 다른 통로를 통해 걸어가더니 녹십자 광고가 있는 잡지 앞에 멈추었다. 그 광고는 아기를 안고 있는 산모의 침대 가에 의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서 있는 장면이었다. 의사와 산모가 모두 웃고 있었고 아기는 아기 예수처럼 평온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

노라는 팔과 무릎으로 기어 개에게 가까이 가 말했다. "이 그림 때문에 너의 주인집 가족들이 생각나니?"

개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가 함께 살았던 그 집에 엄마, 아빠, 애기가 있었니?"

개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트라비스는 여전히 등을 소파에 대고 바닥에 앉아서 말했다. "어이구, 어쩌면 우린 지금 환생의 실제 예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이 아인스타인이 전생에 의사나 엄마, 아니면 애기였다는 걸 기억해낼지도 모르지."

노라는 그런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기라."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기분이 언짢은지 가냘프게 울었다.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마치 개와 같은 자세로 노라는 그 사냥개로부터 칠팔십 센티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좋아, 이것으로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겠어. 그림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방법으로 해야겠다. 우린 이 그림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어떻게든 답을 얻어내도록 해야겠어."

"그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다주지 그래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에요." 노라는 트라비스에게는 개에게 보인 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했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래도 역시 우스꽝스러워요."

그녀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시달리는 개처럼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아인스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정말 얼마나 영리하니? 똥개야. 네가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니? 우리의 지속적인 경의와 존경을 계속 받고 싶니?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이 이거야. 간단하게 예 아니오라고 내 질문에 답하는 법을 배우라는 거야."

개는 무언가를 기대하며 찬찬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예스면 꼬리를 흔들어." 노라는 말했다.

"하지만 오로지 답이 예스일 때만이야. 이 테스트가 진행 중일 동안은 습관에서나 단지 흥분되기 때문에 꼬리를 흔드는 일은 피해야 돼. 꼬리를 흔드는 것은 네가 예스라고 말하고 싶을 때만을 위한 거야. 그리고 네가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을 땐 한번 짖어. 그냥 한 번만."

트라비스가 말했다. "두 번 짖는 것은 '난 차라리 고양이나 쫓고 싶어요.'이고 세 번 짖는 것은 '나에게 버드와이저를 가져다주세요.'라고 해두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요." 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왜 안 되지? 저놈은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어."

개는 트라비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노라가 예스에 대해서는 꼬리를 흔들고 아니오에 대해서는 짖는다는 약속을 다시 설명하는 동안 그는 커다란 갈색 눈을 노라에게서 떼지 않고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 해보자. 아인스타인, 예스 노 사인을 이해하니?"

그 사냥개는 다섯 번 여섯 번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멈추었다.

"우연이야." 트라비스는 말했다. "아무 의미도 없어요."

노라는 잠시 머뭇거리며 다음 질문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말했다. "내 이름을 아니?"

꼬리가 흔들렸다가 그쳤다.

"내 이름이 엘렌이니?"

개는 짖었다. 아니오다.

"내 이름이 메리니?"

한번 짖었다. 아니오다.

"내 이름이 노나니?"

개는 마치 자신을 속이려 하는 그녀를 몹시 비난하듯이 자신의 눈동자를 돌렸다.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한번 짖었다. "내 이름이 노라니?"

아인스타인은 열심히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노라는 기뻐서 크게 웃으며 앞으로 기어가 앉아서 그 사냥개를 껴안았다.

"이럴 수가 있나." 트라비스도 기어서 그들과 합류하며 말했다.

노라는 그 사냥개가 여전히 한 발을 올려놓고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 그림 때문에 네가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생각나서 이것에 반응을 보였니?"

한 번 짖었다. 아니오다.

트라비스는 말했다. "네가 어떤 가족과 함께 산 적이 있었니?"

한번 짖었다.

"하지만 넌 야생 개가 아니지 않니." 노라가 말했다. "넌 트라비스가 널 발견하기 전에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살았을 거 아니야."

트라비스는 녹십자 광고를 찬찬히 살피다가 갑자기 좋은 질문을 찾아냈다. '넌 그 아기 때문에 그 그림에 반응했니?'

한번 짖었다. 아니오다.

"그 산모 때문에?"

아니다.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은 사람 때문에?"

꼬리를 아주 많이 흔들었다. 예스, 예스, 예스.

"그렇다면 얘는 의사와 살았군요." 노라가 말했다. "수의사하고 살았을지 모르지요."

"아니 어쩌면 과학자하고 일지도 몰라요." 트라비스는 뇌리를 스치는 섬광 같은 직감에 따라서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과학자라는 말에 "예스"라고 꼬리를 흔들었다.

"연구하는 과학자?" 트라비스가 말했다.

예스.

"실험실에서?" 트라비스가 말했다.

예스, 예스, 예스.

"넌 실험실 개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연구용 동물이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예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영리한 거로구나."

예스.

"그들이 너에게 무슨 일을 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영리한 거니?"

예스.

트라비스의 심장이 질주했다. 그들은 실제로 의사를 소통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 개가 건빵으로 물음표를 만들어 보이던 그날 밤 그와 아인스타인이 의사소통했던 그런 조악한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극도의 특이성을 띤 의사소통이었다. 이건 마치 그가 사람인 양 얘기가 통하고 있다. 그래, 거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갑자기 모든 것들이 이전과 다 달라졌다. 사람들과 동물들이 동등한(색다를지는 몰라도) 지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이 똑같은 조건과 똑같은 권리와 똑같은 희망과 꿈들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게 되는 세상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 좋다. 아마 그래서 그는 그걸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인지 모른다. 모든 동물들이 다 갑자기 인간 수준의 의식과 지능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 한 마리의 개일 뿐이다. 실험용 동물 한 마리로서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일 게다. 하지만 세상에...... 세상에...... 트라비스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 사냥개를 쳐다 보았다. 그러자 찬 소름이 그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두려움의 소름이 아니라 경이로움의 소름이었다.

노라가 개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트라비스를 잠깐 입 다물게 만든 것과 똑같은 두려움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들이 그냥 너를 놓아주지는 않았지, 그렇지?"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다.

"도망쳤니?"

예스.

"내가 너를 그 숲속에서 발견했던 그 목요일 아침에?" 트라비스가 물었다. "바로 그때 도망친 거니?"

아인스타인은 짖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그 전날에?"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는 끙끙거렸다.

"얘도 아마 시간 개념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노라가 말했다. "실제로 모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낮과 밤의 리듬을 따르잖아요, 안 그래요? 그들은 본능적인 시계를, 그러니까 생리학적인 시계를 몸속에 가지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달력의 날짜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몰라요. 얘는 우리가 시간을 날짜와 주, 그리고 달로 쪼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걸요. 그래서 당신 질문에 답할 수가 없는 걸 거예요."

"그러면 그걸 가르쳐야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맹렬히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노라는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도망했다고......"

트라비스는 노라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겠구나, 그렇지 않니?"

개는 끙끙거리며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 반응은 아주 걱정스러워하며 예스라고 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4

해가 진 후 한 시간 뒤 레무엘 존슨과 크리프 소아메스는 8명의 국가 안보국 수사관들을 실은 2대의 차량이 뒤쫓아오는 가운데 그 보르디옥스 리지에 도착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주택 택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비포장도로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었고 대부분이 지방 경찰서 배지 무늬가 있는 희고 검은 차량들이었다. 거기에다 검시관 사무소에 온 자동차들과 밴이 있었다.

렘은 기자들이 벌써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당황했다. 신문 기자들과 소형 카메라들을 가지고 있는 텔레비전 기자팀들이 경찰 라인 뒤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 곳은 살해 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반 블록 정도 떨어져 있었다. 홀리 짐 캐년에서의 웨스레이 달베르그의 죽음과 바노디네에서 일했던 과학자들의 연쇄 살인 사건들의 자세한 사항을 조용하게 감추면서 또 한편으론 적극적인 정보 차단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하며 국가 안보국은 그 모든 사건들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언론이 알아내지 못하도록 애써왔다. 렘은 이 방책(防柵)들을 지키는 경관들이 왈트 가이네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또 그럴듯한 위장용 스토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들이 굳은 침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맞서기를 또한 바랐다.

아무 표시도 돼 있지 않은 국가 안보국 차량들이 경찰 라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도록 방책이 치워졌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여졌다.

렘은 범죄 현장을 지나서 길 끝에 차를 주차했다. 그는 다른 수사관들에게 브리핑을 하도록 크리프 소아메스를 남겨 놓았다. 그리고는 관심이 집중돼 보이는 채 완공되지 않은 집으로 향했다.

순찰차들의 무전기들에서 부산하게 나오는 암호와 경찰 속어들, 그리고 정적을 깨는 무전기 잡음 소리들로 그 무더운 밤 대기가 꽉 채워졌다.

수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휴대용 야간 아크등들이 삼각대 위에 세워져서 그 집 전면에 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렘은 자신이 마치 거대한 무대 세트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방들이 아크등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불빛에 덤벼들고 있었다. 어스름한 땅 위에는 좀 확대된 나방들의 그림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맨 땅으로 된 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갔다. 집 안에는 더 많은 아크등들이 있었다. 하얀 벽에서 반사되는 그 밝은 빛에 눈이 부셨다. 두세 명의 젊은 경관과 검시관실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과학 수사 연구과에서 온 인상 강한 사람들의 땀에 밴 모습들이 그 냉랭한 불빛 속에서 파리해 보였다.

한 사진사의 섬광 전구가 집 안 저 안쪽에서 한번 두번 번쩍하고 터졌다. 복도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래서 렘은 거실과 식당 그리고 부엌으로 우회해서 집 안 안쪽으로 갔다.

왈트 가이네스가 갓 쓰인 아크등 뒤 어스름한 간이 식당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서도 그의 분노와 슬픔은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그가 집에 있을 때 이 경관의 살해 소식을 들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해진 운동화를 신고 또 주름진 황갈색 면바지에 갈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큰 덩치와 굵은 목, 단단한 근육이 보이는 팔, 커다란 손 등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차림과 어깨가 폭 꺼진 자세 때문에 마치 길 잃은 어린 소년 같아 보였다.

간이 식당에서는 시체가 있는 그 세탁실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렘은 말했다. "미안해요, 왈트. 정말 미안해요."

"이름은 틸 포터라고 해. 그의 아버지 레드 포터와 나는 25년간 친구였어. 레드는 지난해 바로 우리 경찰서에서 은퇴를 했지. 내가 어떻게 그에게 말해야지? 젠장, 우리가 그렇게 가까웠으니 내가 직접 말해야 해. 이번은 그 책임을 전가할 수가 없어."

왈트는 근무 중에 자기 부하가 죽게 되면 그 책임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을 렘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직접 그 가족을 방문해서 그 비보를 전하고 처음 충격이 가실 때까지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하마터면 둘을 잃을 뻔했어." 왈트가 말했다. "다른 한 명은 몹시 떨고 있지."

"틸은 어떤 상태...... 예요?"

"달베르그처럼 내장이 나왔어. 목이 베어져 있고."

아웃사이더다. 렘은 생각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방들이 안쪽으로 들어와 렘과 왈트 앞에 서 있는 아크등 렌즈에 세게 몸을 부딪혔다.

분노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왈트가 말했다. "그의 머리를 찾지 못했어. 틸의 머리가 없어졌다고 어떻게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지?"

렘은 대답이 없었다.

왈트가 사납게 그를 쳐다보았다. "자넨 이제 날 계속 이 일에서 밀어낼 수 없네. 내 부하 중 하나가 죽은 마당에서는 안 돼."

"왈트, 우리 쪽 수사관들은 의도적으로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어요. 빌어먹을! 심지어 이 일에 동원된 수사관의 숫자도 정보로 분류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 부서는 완전히 언론이 집중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당신네 사람들이 이 사건을 맡으려면 우선 먼저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대상에 대해 정확하게 들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경관들에게 국가 방위 비밀들을 노출시키게 돼요."

"자네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왈트가 대꾸했다.

"그래요. 하지만 우리 쪽 사람들은 기밀 유지 각서에 서명을 했고 또 아주 엄격하게 보안 점검을 받아요. 그리고 또 계속 그들의 입을 함구할 수 있도록 훈련도 받지요."

"우리 쪽 사람들도 역시 비밀을 지킬 수 있어."

"나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그들이 평범한 사건들에 관해서도 바깥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요. 하지만 이것은 평범한 게 아녜요. 정말 아니에요. 이것은 우리 손 안에 남아 있어야만 해요."

왈트가 말했다. "우리 쪽 사람들도 기밀 유지 각서에 서명할 수 있네."

"우린 당신네 부서 사람들 모두 신원 조회를 해보아야 해요. 단지 경관들만이 아니라 문서 정리원에 이르기까지 말이에요. 그것은 몇 주 몇 달이 걸릴지 몰라요."

부엌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열린 문을 바라보다 왈트는 크리프 소아메스와 또 다른 국가 안보국 수사관이 그 옆방에서 두 명의 경관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네들은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관할권을 넘겨받기 시작했군, 그렇지 않은가? 자네가 그것에 관해 내게 말하기도 전에 말이야."

"그래요. 우린 당신네 사람들이 오늘 밤 여기서 본 것은 어느 것 하나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들의 부인들에게도 안돼요. 우린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연방법을 인용하고 있어요. 우린 그들이 이것을 어겼을 때 받게 될 벌금이나 금고형을 확실하게 이해하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다시 감옥 운운하며 날 위협할 텐가?" 왈트가 물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며칠 전 성 조셉 병원 주차장에서처럼 그런 유머는 없었다.

렘은 그 경관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 인해 그와 왈트 사이가 벌어지는 느낌 때문에도 마음이 우울했다. "난 누구도 감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난 그들이 그 중요성을 확실하게 이해하길 바라는 거예요."

왈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를 따라와 보게."

렘은 그를 따라 집 앞에 있는 순찰차로 갔다.

그들은 앞좌석에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왈트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유리창을 올리게. 그러면 우린 완전히 외부와는 차단되네."

렘은 환기가 되지 않아 이 열기 속에서 질식하게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그 희미한 빛 속에서도 그는 곧 터질 것 같은 왈트의 그 순전한 분노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금 입장이 횃불을 들고 휘발유 속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리창을 올렸다.

"좋아." 왈트가 말했다. "이젠 우리만이야. 국가 안보국 지부장도 경찰서장도 아니야. 그냥 오랜 친구들이지. 막역한 친구 말이야. 그러니 그것에 대해 모두 말해 보게."

"왈트, 젠장, 난 할 수가 없어요."

"지금 내게 말해 주게. 그러면 난 이 사건에서 손 떼겠네. 방해하지 않겠네."

"아무튼 당신은 손을 떼게 돼 있어요. 그래야만 해요."

"천만에." 왈트는 화난 어투로 말했다. "난 바로 이 길을 따라 내려가 저 늑대들에게로 갈 수도 있어." 보르디옥스 리지 밖에 서 있는 그 순찰차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방책들을 향하고 있었고 왈트는 먼지투성이의 앞유리창 너머로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난 저 사람들에게 바노디네 연구소가 어떤 국방 사업을 추진하다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사람인지 뭔지 모르지만 하여튼 뭐가 그 연구소에서 보안망을 뚫고 탈출해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게 해 봐요." 렘이 말했다. "바로 감옥으로 들어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직업을 잃게 돼요.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그 모든 경력을 망치게 돼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네. 법정에서 난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일과 나를 이 군()의 경찰서장으로 선출해 준 주민들의 신망을 배신하는 일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고 주장할 걸세. 이같은 위기 시에는 난 워싱턴의 국방부 관료들의 걱정들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더 생각해야 했다고 주장하겠네. 난 어떤 재판관이라도 내 무죄를 입증해 줄 것에 대해 확신하네. 난 감옥에 가지 않을 걸세.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많은 표로 승리할 걸세."

"젠장," 렘은 왈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네가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해준다면, 자네가 지금 자네 부하들이 내 부하들보다 더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날 확신시켜 준다면 난 자네에게 양보하겠네. 하지만 자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으면 난 이것을 모두 공개해 버릴 걸세."

"난 내 맹세를 깨게 되요. 난 내 목을 올가미에 집어넣는 꼴이 된단 말에요."

"자네가 나에게 말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걸세."

"그래요? 글쎄, 그런데 왈트, 단지 당신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이렇게 어색한 입장에 빠뜨리는 이유가 도대체 뭐예요?"

왈트는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이것은 그렇게 시시한 게 아니야, 젠장! 이것은 그냥 호기심이 아니야."

"그러면 뭐예요?"

"내 부하 중 하나가 죽었어!"

렘은 머리를 의자 뒤로 젖히며 눈을 감고는 한숨을 쉬었다. 왈트는 자기 부하 중 하나가 살해됐는데도 자신이 왜 그에 대한 복수심을 억눌러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적어도 그 정도도 알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은 그의 의무감과 도의심이 허락치 않았다.

"내가 저리로 내려가 기자들에게 말할까?" 왈트가 조용히 물었다.

템은 눈을 뜨고는 손으로 젖은 얼굴을 훔쳤다. 자동차 안은 참기 힘들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사람들이 집 안팎으로 가면서 그들 곁을 지나가곤 했고 그는 정말 누군가가 자신이 지금 왈트에게 말하려는 것을 주워듣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신이 바노디네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옳았어요. 몇 년 동안 그들은 국방과 관련된 연구를 해왔지요."

"생물학적 전투?" 왈트가 물었다. "흉측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해 DNA 합성 기법을 이용해선가?"

"어쩌면 그렇기도 하지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세균 전쟁은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리고 난 여기서 우리 문제와 관련된 연구에 관해서만 얘기하려고 해요."

유리창이 이슬로 흐려졌다. 왈트가 시동을 걸었다. 에어콘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이슬이 계속 퍼졌다. 그러나 통풍구로 들어오는 희미하고 습하고 더운 바람일지라도 고마운 것이었다.

렘이 말했다. "그들은 프랑시스 프로젝트라는 제목 아래 몇 개의 연구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고 있었지요. 아시시의 성() 프랑시스의 이름을 딴 것이었죠."

놀라 눈을 껌벅이며 왈트가 말했다. "그들이 성인의 이름을 따 전쟁 관련 프로젝트의 이름을 지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적절한 것이었어요." 렘이 그를 납득시키기 위해 말했다. "성 프랑시스는 새나 동물들에게 말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바노디네에서 데이비스 위더비 박사는 인간과 동물 간의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목적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었어요."

"돌고래의 언어를 배우는 그런 것들인가?"

"아니요. 유전 공학의 가장 최신 지식을 적용해 아주 고도의 지능을 가진 동물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이디어지요. 그 동물들은 거의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고 또 우리들과 의사소통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왈트는 못 믿겠다는 듯 열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렘이 말했다.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총괄적인 계획 아래 아주 다른 실험들을 추진 중인 몇 개의 과학 팀들이 있었어요. 그들 모두가 적어도 5년 정도는 연구 보조를 받아 왔어요. 그 하나로 데이비스 위더비의 개들이 있었어요."

위더비 박사는 누런 사냥개의 정자와 난자를 가지고 연구를 해왔다. 그는 개들이 백 년이 넘게 상당히 높은 순도(純度)를 지키며 계속 번식해 왔기 때문에 그것을 택했었다. 첫째로 이러한 순도는 유전적인 성질이 있는 모든 질병들이 그 동물의 유전 코드에서 삭제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 점 때문에 위더비는 사냥개를 자기 실험의 가장 유망한 대상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일 실험용 강아지들이 어떤 종류의 기형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류의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그 동물의 유전자 조작에 의한 부작용으로 생긴 기형인지를 구별해내기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실수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년 동안에 걸쳐서 그 동물의 외형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그 새끼들의 지능만을 높이려고 해오면서 데이비스 위더비는 시험관에서 유전적으로 변형된 수백 개의 사냥개 난자들을 수정시켜왔다. 그리고는 그 수정된 난자들을 대리모(代理母) 역할을 하는 암캐들 자궁에 옮겨 놓았다. 그 암캐들은 그 시험관 강아지들을 만삭까지 배고 있다가 낳게 되면 위더비는 이 어린 강아지들을 관찰하며 지능이 증가하는 징후가 보이는지 살폈다.

"엄청나게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요." 렘이 말했다. "폐기해 버려야 할 정도의 기괴한 신체적 돌연변이, 사산된 강아지들, 정상적으로 보이나 지능이 본래보다 못한 강아지들, 그야말로 천태만상이었어요. 위더비는 결국 이종 교배(異種交配) 공학을 실행했어요. 그래서 아주 엄청난 몇 가지 것들의 가능성들이 실현된 거지요."

왈트는 이제 완전히 불투명해진 앞유리창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렘을 보았다. "이종 교배? 그게 무슨 말이지?"

"글쎄, 알지 모르겠지만 그는 사냥개보다 더 영리한 종족에서 지능의 유전적 결정 인자를 추출했어요."

"유인원 같은 것에서? 그것들은 개들보다는 영리하지, 그렇지 않은가?"

"맞아요. 유인원들...... 그리고 사람들까지도."

"세상에!" 왈트가 말했다.

렘이 통풍구를 조종해서 미지근한 바람이 자신의 얼굴로 오도록 했다. "위더비는 그 이질적인 유전자 물질을 사냥개의 유전자 코드에 삽입함과 동시에 지능을 개의 수준에 한정시키고 있는 그 개 자신의 유전자를 제거해 버린 거지요."

왈트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아. 자네가 말한 그 유전 물질이란 이 종족에서 저 종족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것은 자연계에선 항상 일어나요." 렘이 말했다. "유전 물질은 다른 종족으로 옮겨져요. 그리고 그 매개체는 보통 바이러스예요. 가령 어떤 바이러스가 붉은 털 원숭이 몸 안에서 번식했다고 해 봐요. 그것은 원숭이 몸 안에 있는 동안 원숭이의 세포에서 유전 물질을 획득해요. 이렇게 획득되어진 원숭이 유전자가 바이러스 자체의 일부가 되지요. 후에 그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를 감염시키자마자 그 인간 숙주 몸 안에 그 원숭이 유전자 물질을 남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그 바이러스는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AIDS 바이러스를 생각해 봐요. AIDS는 일부 원숭이와 인간에 의해서 옮겨지는 질병이지만 어떠한 종족도 그것에 실제로 감염되지는 않는다고 수십 년 동안 믿어져 왔어요. 내 말은 우린 순전히 보균자일 뿐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옮기게 될 뿐 자신은 병들지 않는다는 거였죠.

그러나 그 후로 어떻게 해서 원숭이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그들을 단지 보균자로 남게 하지 않고 AIDS 바이러스의 희생자로 만드는 부정적인 유전자 변화였죠. 원숭이들은 그 병으로 죽기 시작했지요. 그리고는 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해졌을 때 그것은 AIDS 감염을 명령하는 이 새로운 유전 물질도 함께 전한 거였어요. 그래서 인간도 그 질병에 걸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런 일은 자연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단면일 뿐에요. 그것은 실험실에서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요."

측면 유리창까지 이슬로 서서히 흐려지고 있을 때 왈트가 말했다. "그래서 위더비가 정말 인간의 지능을 가진 개를 낳게 하는 데 성공했는가?"

"그것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었지요. 하지만 점차 진전을 보았어요. 그리고는 약 일 년 전에 그 기적적인 강아지가 태어났지요."

"인간처럼 생각하나?"

"인간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마 그 정도는 돼요."

"하지만 모양은 보통 개와 똑같은가?"

"그것이 국방부가 원하는 것이었어요. 제 생각인데 그것이 위더비의 일을 아주 더 힘들게 만들었지요. 분명히 뇌의 크기는 어느 정도는 지능과 관계가 있어요. 그리고 위더비가 좀 더 큰 뇌를 가진 사냥개로 만들어도 되었다면 아마 그는 그런 획기적인 업적을 훨씬 빨리 해냈을 거예요. 하지만 더 큰 뇌는 훨씬 큰 두개골로 머리형을 바꾸어야 되고 그러면 그 개는 정말 아주 이상하게 보이게 되는 거지요."

이젠 모든 유리창이 이슬로 덮였다. 왈트도 렘도 그 뿌연 유리를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후덥지근하고 꽉 막힌 안에 갇혀서 밖을 내다볼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저 밖의 진짜 세계와 단절돼 시간과 공간을 표류하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인지 유전 공학으로 가능해진 그 신기하고도 괴이한 창조 행위들에 대한 얘기가 이상하게도 더욱 실감 나게 들렸다.

왈트가 말했다. "국방부가 모양은 그대로인데 생각은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개를 원했다는 건가? 왜지?"

"첩보 활동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해봐요." 렘이 말했다. "전쟁 시 개들은 적지 깊숙이 들어가 시설과 군사력을 염탐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우리와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지능이 뛰어난 그 개들이 염탐을 하고는 돌아와서 자신들이 보고 또 적들이 하는 말 중에 흘려 들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게 되는 거지요."

"우리에게 말해 주어? 지금 자네, 개들이 말하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가? 젠장, , 농담하지 말게!"

렘은 이 놀라운 가능성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자기 친구의 심정을 이해했다. 현대 과학은 아주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매년 혁신적인 것들이 탐구되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점차 과학의 응용과 마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앞으로 20년 후의 세상이 지금 세상과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모르긴 해도 200년 전과 지금과의 차이 정도는 나지 않을까? 변화는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것들을 보게 될 때 마치 지금 왈트가 그런 것처럼 설레이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고 또 흥분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할 것이다.

렘이 말했다. "사실 개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유전적으로 과감하게 변형시킬 수도 있었지요. 아니 쉬울지도 몰라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개에게 제대로 된 혀나 입술 같은 음성 기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그 외모를 철저하게 변형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국방부의 목적을 위해서는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개들은 말은 하지 못해요. 의사소통은 물론 특별하게 만든 신호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겠죠."

"자네, 웃지를 않는군." 왈트가 말했다. "이런 일은 지독한 농담이어야 하는데 자네는 왜 웃지 않고 말하고 있지?"

"이걸 생각해 봐요." 렘은 인내심 있게 말했다. "평화시에......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인의 선물이라고 하며 일 년생 누런 사냥개를 소련 수상에게 선물한다고 상상해봐요. 수상의 집과 사무실에서 살면서 소련의 최고위 당 간부들이 말하는 최상급 비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리고는 이따금 몇 주만에 아니면 몇 달 만에 그 개가 밤에 몰래 그곳을 빠져나와 모스크바에 있는 미국 첩보원과 만나 정보를 보고하는 겁니다."

"정보를 보고해? 말도 안 돼!" 왈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에는 메마르고 공허하고 초조한 기색이 여실히 보였고 그래서 렘은 그 경찰서장의 의심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니까요. 그런 개가 실재로 시험관에서 유전적으로 변형된 정자가 역시 유전적으로 변형된 난자에 수정돼 대리모의 몸에서 자라 태어났지요. 그리고는 바노디네 연구소에서 일년 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517일인 월요일 이른 아침에 그 개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영리한 행동들을 통해서 그곳 보안 시스템을 교묘히 뚫고 도망쳤어요."

"그래서 그 개가 지금 풀려났다는 건가?"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살상을 하고 다니나?"

"아니요." 렘이 말했다. "그 개는 해도 없고 정도 많고 훌륭한 동물이지요. 난 위더비가 그 사냥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일 때 그의 연구실에 갔었지요. 제한적인 방법이긴 했어도 난 그놈과 의사소통을 했어요. 맹세코 정직하게 말하는 건데, 왈트, 당신이 그 개가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러니까 위더비가 창조한 것을 보면 말이에요, 당신은 아마 인간이라는 이 가엾은 종족에 대해서 엄청난 희망을 가지게 될 거요."

왈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렘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 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설명할 적당한 말을 찾으면서 그는 자신의 가슴이 감정으로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경이로운 일을 세상에 만들어 내놓을 수 있다면, 염세주의자들이 믿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리 안에는 심오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거지요.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잠재적으로 신의 힘과 지혜를 가진 거지요. 우린 단지 무기를 만드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만드는 자들이기도 한 거죠. 우리가 많은 다른 종족들을 우리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어떤 종족을 창조해내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믿음과 철학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겁니다. 그 사냥개를 변형시킨 바로 그 행동에 의해서 우린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는 거지요. 그 개를 새로운 인식의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의 인식 또한 올리게 되는 거지요."

"젠장, , 자넨 꼭 설교자같이 말하는군."

"내가요? 그건 내가 이것에 대해서 당신보다 더 많이 생각해왔기 때문이에요. 때가 되면 당신도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될 거요. 당신도 역시 그렇게 느끼게 될 겁니다. 인류가 신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며 또 우린 충분히 그곳에 도달할 능력이 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느낌 말예요."

왈트 가이네스는 김이 서려 있는 유리창을 응시하며 마치 그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양에서 흥미로운 어떤 것을 찾아내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쩌면 자네가 말한 것이 옳을지 몰라.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입구에 와 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린 옛 것 속에서 살아야 하고 또 그것을 다루어 나가야 해. 그러니 내 경찰관을 죽인 게 그 개가 아니었다면 그러면 그건 뭐지?"

"그 개가 나가던 바로 그날 또 다른 것이 바노디네에서 도망쳤지요." 렘이 말했다. 도취되었던 표정이 갑자기 가시면서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어떤 어두운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그놈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어요."

 

5

노라는 자동차를 호랑이에 비유해서 그 자동차를 철창에 가두어 놓은 모습을 보여주는 잡지 광고를 펴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네가 우리에게 밝혀줄 게 달리 또 있나 보자. 이것은 어떠니? 이 사진에서 네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이니? 자동차니?"

아인스타인은 한 번 짖었다. 아니다다.

"호랑이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한번 짖었다.

"철창이니?" 노라가 물었다.

아인스타인이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다.

"그들이 너를 철창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이 사진을 택한 거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트라비스는 마룻바닥을 기어서 감옥 안에 한 사람이 쓸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을 골랐다. 그리고는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서는 그것을 사냥개에게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울이 이 감옥 같이 생겨서 이 사진을 택했니?"

예스.

"그리고 이 사진 속의 죄수가 네가 울 속에 있을 때 네 기분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니?"

예스.

"바이올린은 말이야," 노라가 말했다. "연구실에 있는 누가 너를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었니?"

예스.

"왜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 궁금하군."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것은 그 개가 단순하게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너 바이올린 좋아하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너 재즈 좋아하니?"

개는 짖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얘는 재즈가 무엇인지 몰라요. 그들이 얘에게 그런 것은 듣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로큰롤은 좋아하니?" 노라가 물었다.

한 번 짖었다. 그리고 동시에 꼬리를 흔들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려는 걸까요?" 노라가 물었다.

"아마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뜻이겠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얜 로큰롤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은 좋아해요."

아인스타인은 꼬리를 흔들어 트라비스의 해석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크래식은?" 노라가 물었다.

예스.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린 고상한 체하는 속물인 개를 데리고 있는 거야, 안 그래?"

예스, 예스. 예스.

노라는 기뻐서 웃었고 트라비스도 그랬다.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코를 그들에게 문지르며 행복한 듯 그들을 핥았다.

트라비스는 다른 사진을 찾아 둘러보다 운동용 트레이드밀 위에 있는 사람의 사진을 집어들었다. "그들은 네가 연구실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 사람들이 네가 건강을 유지하기를 원했겠지. 이것이 그 사람들이 너에게 운동시킨 방법이니? 트레이드밀 위에서 말이야."

예스.

뭔가를 발견하는 기분은 아주 상쾌한 것이다. 트라비스는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했다고 해도 이렇게 흥분되거나 경이롭거나 짜릿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

'난 토끼 굴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왈트는 렘 존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불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주 비행, 가정의 컴퓨터화, 위성 중계 전화 통신, 공장의 로보트화, 그리고 이제는 생물 공학 등의 이 새로운 하이테크 세계는 그가 태어나서 자란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젠장, 그는 제트기도 없었던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그는 꼬리 날개가 붙은 크라이슬러 자동차나 단추가 아닌 다이얼식 전화나 디지탈 표시판이 아닌 바늘이 달린 시계 등 좀 더 단순한 세계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가 태어날 때는 텔레비전도 존재하지 않았었고 또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핵 재앙의 가능성은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통과해서 자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빠르게 돌아가는 또 다른 현실 속으로 들어온 것같이 느껴졌다. 하이 테크날리지의 이 새로운 왕국은 유쾌할 수도 있지만 놀라운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때때론 그 두 가지 면이 다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지능이 높은 개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의 동심에는 어필했다. 그래서 웃고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것, 그 아웃사이더도 그 연구소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젠장,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 개에게는 이름이 없어요." 렘 존슨이 말했다. "그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 아니지요. 실험용 동물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면 필연적으로 그것에게 인격을 부여하게 되요. 그렇게 되면 그 동물과의 관계가 변질되지요. 그리고 실험자는 자신의 연구에서 더 이상 객관적이질 못하게 돼요. 그래서 그 개는 위더비가 그토록 열심히 이루려고 애썼던 그 성공이 확실시될 때까지 단지 번호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심지어 성공이 분명해져서 그 개가 실패작으로 낙인찍혀 폐기되지 않아도 되었을 때에도 이름은 주어지지 않았어요. 모든 이들이 그냥 그것을 '그 개'라고 불렀지요. 그렇게만 해도 위더비의 다른 강아지들과 구별하기에는 충분했어요, 다른 것들은 모두 번호로 불리었으니까요. 아무튼 그와 동시에 야르벡 박사는 다른 것에 매진하고 있었지요. 프랑시스 프로젝트 범주 아래 있긴 했지만 아주 다른 연구였어요. 그리고 그녀도 역시 마침내 성공을 했지요."

야르벡의 목표도 현격하게 지능을 높인 동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동물은 또한 경찰을 따라 도시의 위험스러운 동네들을 순찰하는 경찰견과 같이 전투 시에 전사들과 함께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야르벡은 영리하기도 하면서 또한 무시무시한 짐승을 만들려고 했다. 전장터에서의 공포의 존재로 말이다. 잔혹하고 음흉하고 간교하고 그러면서도 정글이나 도시에서의 모든 전투에서 뛰어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것으로 말이다.

물론 인간만큼은 못되었다. 또 위더비가 개발한 그 개만큼도 영리하진 못했다. 일종의 살인 기계를 그것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인간만큼 영리하게 만드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모든 사람들이 프랑켄스타인을 읽었거나 그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야르벡의 연구에 잠재한 그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원숭이와 유인원들이 본래 좀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고 또 인간과 같은 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대상으로 선택하고는 야르벡은 그 어두운 창조 행위를 위한 기초 종족으로 결국 비비(몸집이 큰 원숭이)를 택했다. 비비(拂拂)는 유인원들 중 가장 영리했고 또 순수한 혈통을 잘 지켜온 동물이었다. 그놈들은 천성적으로 싸움을 잘 할 뿐만 아니라 가공할 발톱과 송곳니를 가지고 있어서 치명적이며 또 자기 지역에 대한 텃세 의식이 강하고 일단 자기 적으로 간주되면 그것에 무섭게 덤벼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비비의 신체 변형 건으로 야르벡이 첫 번째 한 일이 그것의 몸집을 좀 더 크게 해 다 큰 성인 남자도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렘이 말했다. "그녀는 그것의 키가 적어도 150센티 또 몸무게는 45킬로에서 50킬로 정도는 돼야 한다고 결정했지요."

"그리 크지 않구만." 왈트가 말했다.

"충분히 커요."

"난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한주먹에 날릴 수 있어."

"사람이라면 그렇죠. 하지만 이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단단한 근육에 지방질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사람보다 훨씬 빨라요. 이삼십 킬로 되는 불독이 성인 남자를 어떻게 절단낼 수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러면 야르벡이 만든 그 사오십 킬로의 전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왈트에게는 그 순찰차의 뿌연 유리창이 잔혹하게 살해된 남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볼 수 있는 영화관 스크린 같아 보였다. 웨스 달베르그, 틸 포터......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체들이 아른거렸다. "좋아, 그래, 자네 말을 알겠네. 싸우고 죽이고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면 사오십 킬로로도 충분할 거야."

"그래서 야르벡은 좀 더 크게 자라는 비비 새끼들을 만들었지요. 그리고는 한편으로는 그 큰 원숭이들의 정자와 난자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때론 그 비비의 유전 물질을 떼어내 버리고 또 때론 다른 종족의 유전자들을 주입시키기도 했지요."

왈트가 말했다. "그 영리한 개를 만들어 냈던 것과 똑같은 짜깁기식 종족 혼합 기법이로구만."

"난 그것을 짜깁기식이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요.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거예요. 야르벡은 자기 전사의 턱이 좀 더 크고 사악하길 원했지요. 뭐랄까 독일산 세파트 턱이나 심지어는 재칼의 것과 좀 닮아서 이빨이 더 많을 수가 있었죠. 그녀는 그 이빨들이 좀 더 크고 좀 더 날가롭고 또 약간 구부러지게 되길 원했지요. 그러기 위해선 그 비비의 머리통을 더 키워야 했고 그 모든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얼굴 구조를 완전히 변형시켜야 했죠. 보다 큰 뇌를 담기 위해서는 아무튼 두개골이 아주 커져야 했어요. 야르벡 박사는 데이비스 위더비가 개의 외모를 변형시키지 말아야 했던 것과 같은 그런 제한을 받지 않고 일을 했었지요. 사실 야르벡은 자신의 창조물이 무시무시하고 기괴하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전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적에게 몰래 다가가 죽이는 데뿐만 아니라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덥고 후줄근한 차 속인데도 불구하고 왈트 가이네스는 마치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자신의 배 부근에서 차가운 냉기를 느꼈다. "젠장, 야르벡이나 다른 누가 그 부도덕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은 닥터 모로우의 섬이란 책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 주민들이 이것에 대해 알아야 하네. 자네는 이것을 널리 공개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지고 있고 나도 그러네."

"그럴 것이 아니에요." 렘이 말했다. "선하고 악한 지식이 있다는 그 생각 말입니다. 글쎄, 그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견해지요. 행동들은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일 수 있겠지요. 맞아요. 하지만 지식은 그런 식으로 라벧을 붙일 수 없어요. 과학자에게나, 교육받은 남자나 여자 그 어느 누구에게나 모든 지식은 도덕적으로 중립이에요."

"하지만, 젠장, 야르벡의 경우에는 지식의 적용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지."

주말에 서로의 집 뜰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세상의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그들은 이런 종류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뒤뜰의 철학자들이었다. 자신들의 지혜에서 거만한 기쁨을 느끼는 맥주에 취한 현인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때론 주말에 그들이 이야기한 도덕적 딜레마들이 후에 자신들의 경찰 업무에서 나타나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왈트는 이번 것처럼 자신들의 일과 급박한 관계를 가진 토론은 기억할 수 없었다.

"지식을 적용하는 것은 더 많이 배우는 과정의 일부지요." 렘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것은 적용을 해보아야 해요. 그런 적용들이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지 보기 위해서지요. 도덕적인 책임은 그 기술을 실험실 밖으로 내와서 그것을 부도덕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있는 거지요."

"자네는 그런 허튼 소리를 믿나?"

렘은 잠시 생각했다. "그래요. 그런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과학자들이 하는 일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나쁜 일들에 대해서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들린다면 그들은 우선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또 전혀 발전도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되면 아마 우린 지금도 여전히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왈트는 호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을 찍어내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가 진땀을 흘린 것은 차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야르벡의 전사가 오렌지 카운티를 종횡무진하고 있다는 그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태평한 세상 사람들 앞에 나가 새롭고 위험스러운 어떤 존재가 이 땅 위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경고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야르벡의 전사를 이용해서 일반 대중을 자극시켜 모든 DNA 재결합 연구를 종식시키려고 하는 신 러다이트들의 손 안에서 놀아나게 될 것이다. 이미 DNA 재결합 연구들을 통해서 적은 물과 척박한 토양에서도 자랄 수 있는 옥수수와 밀을 만들어냈고 또 몇 년 전에는 노폐물로 값싼 인슐린을 만들어 내는 인공 바이러스를 개발해냈었다. 만일 그가 야르벡의 괴물에 대해 세상에 알린다면 단기적으로 몇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DNA 재결합 연구를 통해 생길 기적적인 혜택을 세상이 맛보지 못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수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젠장," 왈트가 말했다. "이것은 흑백 논리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지 않은가?"

렘이 말했다. "그런 것 때문에 삶이 재미있는 거지요."

왈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엄청나게 재미있는 것이어서 지금 당장은 내가 다루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군. 이것은 계속 뚜껑을 닫아두어야겠구만. 게다가 우리가 이것을 공개하면 그 괴물을 찾아서 밖으로 나올 수천 명의 머저리 같은 모험가들이 나서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생물의 희생자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들 총질을 해대겠지."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우리 측 사람들도 그 뚜껑을 닫아둔 채로 수색에 참여할 수 있네."

렘은 지금도 민간인 복장을 하고 하이 테크 추적 장치와 또 어떤 경우는 경찰견까지 동원해서 산기슭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난 벌써 당신이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배치해 놓았어요. 우린 벌써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충분히 해놓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 일을 하는 겁니다.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것 말입니다."

왈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그러네. 하지만 난 계속 정보를 듣고 싶네."

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질문이 더 있네. 첫째는 왜 그들이 그것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나?"

"글쎄요, 개가 첫 번째 과학의 쾌거였지요. 실험실 실험 대상들 중 특이한 지능을 보여준 첫 번째 것이었죠. 그런데 이 아웃사이더는 그다음 번 거였죠. 단 두 건만이 성공했었죠. 그 개와 다른 하나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하나라는 의미로 The Other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The Outsider가 되었지요. 그게 더 적당한 것 같아서였지요. 그것은 개처럼 그렇게 신의 창조물이 진화된 것이 아니었죠. 그것은 지구상의 창조물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였던 거지요. 외떨어진 것 말입니다. 아무도 실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놈은 혐오스러운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놈도 아웃사이더로서의 제 처지를 알고 있었어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요."

"왜 그냥 비비라고 부르지 않았지?"

"그건...... 그러니까 그놈은 더 이상 비비같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 세상에서는 그것과 닮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악몽 속에서라면 모르지요, 그 비슷한 게 있을지."

왈트는 자기 친구의 얼굴과 눈에 어두운 표정이 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아웃사이더에 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알 필요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대신 그는 말했다. "허드슨, 위더비, 야르벡의 살해 건들은 어떤가? 그 사건들 배후에는 누가 있지?"

"우린 직접 방아쇠를 당긴 자가 누군지는 몰라요. 하지만 소련인들이 뒤에서 조종했다는 것만은 알지요. 그들은 또한 아카풀코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또 다른 바노디네 사람도 살해했어요."

왈트는 자신이 마치 다시 또 그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고 나가 훨씬 더 복잡한 세계로 뛰어든 느낌이 들었다. "소련인들? 지금 소련인들이라고 얘기했나? 그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지?"

"우린 그들이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심지어 우리들의 진척 사항에 대해서 보고해 주는 스파이를 바노디네 안에 두고 있었던 게 분명했어요. 그 개와 연이어 그 아웃사이더가 탈주하자 그 스파이가 소련인에게 그 정보를 알렸고 소련인들은 그 혼란을 틈타 우리에게 훨씬 더 큰 타격을 주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해요. 그들은 그 모든 프로젝트의 팀장들을 모두 죽였어요. 야르벡과 위더비, 거기다 한때 어느 프로젝트의 팀장이었다가 나중에는 바노디네를 떠났던 하이네스 등 모두가 당했지요. 우린 그들이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프랑시스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기 위해서고 둘째는 우리가 그 아웃사이더를 추적해 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려고 했던 거지요."

"그런다고 어떻게 그 일이 더 어렵게 되나?"

사안의 중대함으로 어깨가 무거운 듯 렘의 어깨가 축 처졌다.

"소련인들은 허드슨, 하이네스, 그리고 특히 위더비와 야르벡 등을 제거함으로써 그 아웃사이더와 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없애 버리려고 했던 거지요. 그 동물들이 어디로 가고 또 어떻게 하면 다시 붙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던 거지요."

"실제로 소련인들의 짓이라는 확증이라도 잡아냈는가?"

렘은 한숨을 쉬었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난 우선적으로 그 개와 아웃사이더를 찾아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린 살인 사건들과 방화, 데이타 방출 등의 배후에 있는 소련 첩보원들을 추적하도록 또 다른 전담 특수반을 두고 있지요. 불행하게도 소련인들은 자신들의 조직망 밖에서 무소속 살인 청부업자를 이용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린 그자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어요. 그쪽 수사가 아주 완전히 난관에 봉착돼 있지요."

"그리고 하루 정도 뒤에 일어난 불은 어떤 것인가?" 왈트가 물었다.

"분명히 방화지요. 역시 소련인들의 짓이에요. 그것 때문에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서류들과 컴퓨터 화일들이 다 파괴되어 버렸지요. 물론 다른 장소에 백업된 컴퓨터 디스크들을 놓아두었지요. 하지만...... 거기에 실린 데이타들도 어찌 된 일인지 다 지워져 있었어요."

"역시 소련인들 짓인가?"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화일들이 모두 다 없어졌고 우리는 완전히 암흑 속에 빠졌지요. 그 개와 아웃사이더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고 또 그들을 사로잡으려면 어떤 계략을 꾸며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왈트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러시아 사람들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이런 연구는 중단되는 편이 나을 것 같네."

"그들은 그렇게 순진한 동기에서 한 짓이 아니에요. 내가 들은 바로는 그들도 우크라이나에 있는 연구소들에서 비슷한 연구들을 실행 중에 있다는 겁니다. 난 우리 측도 그들이 우리 것을 파괴했던 식으로 그들의 화일들과 사람들을 파괴하기 위해 부지런히들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아요. 아무튼 소련인들에게는 그 아웃사이더가 평화스러운 교외를 종횡 무진하며 가정주부들을 난자하고 어린아이들의 머리들을 찝어버리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요. 그런 일이 거듭해서 일어난다면 그땐 이런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할 테니까요."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찝어버린다고? 세상에!"

왈트는 오싹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가?"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믿지 않아요. 그 아웃사이더는 지독하게 공격적이죠. 하여튼 그놈은 공격적이도록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그놈은 자신을 만든 자에게 더욱 특별한 증오심을 품고 있어요. 그것은 야르벡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죠. 그래서 그녀는 그 다음 자손 대에서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랬지요. 하지만 그놈은 또 영리하죠. 그래서 자신이 인간을 살해할 때마다 자기 행방의 위치를 우리들에게 알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놈은 그렇게 자주 자신의 증오심을 발산하려고 하지 않아요. 대개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가 주로 밤에만 움직입니다. 이따금 호기심에서 이 카운티""의 동쪽 끝 가장자리를 따라 있는 주거 지역으로 들어올지도 모르지요."

"키산의 집에서처럼 말이군."

"그래요. 하지만 그놈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은 분명 아니었어요. 그냥 단순히 호기심에서죠. 그놈은 자신의 주요 목적을 성취하기 전에 붙잡히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뭔데?"

"그 개를 찾아 죽이는 거죠." 렘이 말했다.

왈트는 놀랐다. "그놈이 왜 그 개에게 신경을 쓰나?"

"우리도 잘 몰라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바노디네에서 그놈은 그 개에게 극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죠. 그놈이 사람들에게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거였죠. 야르벡이 복잡한 이이디어들을 전달할 수 있는 기호 언어를 만들어서 그 아웃사이더에게 가르쳤을 때 그놈은 그 개를 죽여서 절단해 버리고자 하는 욕구를 몇 번 표현했지요.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한 적은 없어요. 그놈은 그 개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래서 자네는 그놈이 지금 그 사냥개를 추적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그래요. 지금까지의 증거들을 살펴보면 그 개가 연구소를 탈출하자 그것으로 인해 그 아웃사이더가 미쳐갔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아웃사이더는 야르벡의 연구실에 있는 커다란 울 안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침구, 많은 교육용 자재, 장난감들 등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산산히 찢겨지고 깨져 있었죠. 그걸 보면 아웃사이더는 자신도 탈출을 하지 않으면 그 개는 영원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임을 깨닫고 고심하다가 어떻게 자신의 탈주 방법을 알아낸 거죠."

"하지만 그 개가 그놈에 앞서 아주 빨리 출발했다면......"

"그 개와 아웃사이더 사이에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연결 끈이 있어요. 정신적인 어떤 연결 끈이죠. 본능적인 인식이랄까요. 우린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놈이 상당히 먼 거리까지도 그 개를 추적해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그 연결 끈이 강하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그것은 야르벡과 위더비의 연구에서 사용된 지능 향상 기술의 어떤 부수 효과로 일종의 육감 같은 것이 아닌가 해요. 하지만 그것도 단지 추측일 뿐이에요. 실은 우리도 확실히는 몰라요. 젠장, 우리가 모르는 것이 그렇게 많아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차 안에 밀폐된 후덥지근한 공기가 이제는 그렇게 아주 불쾌하지 않았다. 저 바깥세상에 모든 위험들이 풀려나와 있다고 생각하면 김이 서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영역이 안전하고 편안한 것 같았다. 일종의 피난처다.

마침내 왈트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고 또 자신이 들을 대답들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했다. "바노디네는 고도의 보안 장치가 돼 있는 건물론이지. 그곳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졌어. 그러니 그곳을 나오기도 역시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을 거야. 하지만 그 개와 아웃사이더는 탈출했단 말이야."

"그래요."

"그리고 누구도 그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지. 그것은 그것들 둘 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영리했다는 것을 말하는 거겠지."

"그래요."

왈트가 말했다. "그 개의 경우는 말일세...... 그러니까 그놈이 생각보다 더 영리하다고 해도,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그 개는 우호적이야."

불투명한 유리창을 응시하고 있던 렘이 마침내 왈트의 눈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그 개는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아웃사이더가 우리 생각보다 더 영리하다면...... 그놈이 거의 인간만큼이나 영리하다면 그땐 그놈을 잡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지고 또 그만큼 더 위험하지요."

"거의 가깝다고...... 아니면 사람만큼이나......"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해요."

"아니면 훨씬 더 영리할 수도 있겠지." 왈트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럴 수 없다고?"

"그래요."

"확실하게 그럴 수 없는 건가?"

렘은 한숨을 쉬며 지쳐서 눈을 부볐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다시 거짓말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7

노라와 트라비스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확인시키면서 아인스타인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한 번 짖거나 열심히 자신의 꼬리를 흔듦으로써 그 개는 질문들에 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컴퓨터 광고를 택했던 이유는 자신이 갇혀 있던 연구실의 컴퓨터들이 생각났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4명의 젊은이들이 줄무늬 비치 볼을 가지고 노는 사진이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아인스타인이 특별히 즐겼던 지능 측정 테스트에서 연구실 과학자 중 하나가 여러 크기의 볼을 사용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앵무새, 나비, 미키 마우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에 관심을 보인 이유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적당한 질문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었다.

백여 개의 질문으로 사진 한 장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라도 그들 셋은 여전히 그 발견의 과정에 흥분했고 기뻐했다. 다른 많은 사진들에서는 성공을 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분위기가 아주 심하게 악화되었던 것은 그들이 개봉을 앞둔 공포 영화에 나오는 악마의 잡지 사진에 대해 아인스타인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는 극도로 동요되었다. 그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는 이빨을 드러내고 목구멍에서부터 깊이 으르렁거렸다. 몇 번 그는 그 사진 곁에서 걸어나가 소파 뒤에 숨거나 다른 방으로 들어가 1, 2분씩 있다가 마지못해 돌아와 다른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악마에 관해 질문을 하면 몸을 떨었다.

그 개가 공포에 떠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한 십 분 정도 노력하다가 마침내 트라비스는 넓적한 턱, 사악한 송곳니,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영화 속의 악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면 넌 이해하지 못할지 몰라, 아인스타인! 이것은 진짜 살아 있는 것의 사진이 아니야. 이것은 영화에 나오는 가상의 악마야. 내가 말하는 가상이라는 말뜻을 이해하니?"

아인스타인은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다.

"그래, 이것은 가상의 괴물이야."

한 번 짖었다. 아니다.

"가상이야. 가짜야. 실제가 아니야. 단지 고무 옷을 입은 사람일 뿐이야." 노라가 말했다.

아니다다.

"정말이야."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니다.

아인스타인은 다시 소파 뒤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트라비스는 그의 목걸이를 붙잡고는 그를 끌어안았다. "네가 지금 그런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거니?"

개는 그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트라비스의 눈읕 올려다보며 몸을 떨면서 낑낑거렸다.

아인스타인의 조용한 끙끙 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깊은 두려움의 흔적, 그 검은 눈동자에 감돈 형용키 어려운 혼란한 기색 등이 한데 어울려 트라비스를 놀라게 했다. 트라비스는 한 손으론 목걸이를 쥐고 또 한 손은 아인스타인의 등에 올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개의 온몸을 통해 몸서리쳐 오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그도 갑자기 전율했다. 그 개의 적나라한 공포가 그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인스타인이 분명히 실제로 이와 같은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트라비스의 태도 변화를 느끼고는 노라가 말했다. "뭐가 잘못되었어요?" 그는 그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아인스타인이 아직 대답하지 않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 "네가 그와 같은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거니?"

예스.

"정확하게 이 악마같이 생긴 것이니?"

한 번 짖고 한 번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이기도 하고 노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것과 좀 닮은 것이니?"

예스.

목걸이를 놓아주면서 트라비스는 그 개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를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계속 몸을 떨었다. "네가 이따금 밤에 창가에서 망을 보는 이유가 이것이니?"

예스.

고통스러워하는 가엾은 그 개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듯 노라도 역시 그를 어루만져 주었다. "연구소 사람들이 너를 찾아낼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로구나."

아인스타인은 한번 짖었다.

"연구소 사람들이 너를 찾아내는 것이 걱정되지 않니?"

예스 그리고 노.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러면 바로 이 괴물이 너를 찾아낼까 봐 더 두려운 것이지?"

예스, 예스, 예스.

"이것이 그 날 숲속에서 우리를 추적해와 내가 총을 쏘았던 바로 그것이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예스, 예스, 예스.

트라비스가 노라를 쳐다보았다. 노라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 속의 괴물일 뿐이에요. 실제 세상에는 이것과 조금도 비슷한 게 없어요."

아인스타인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분류되어있는 사진들에 코를 대고 킁킁대더니 병실에 의사와 산모, 아기가 나와 있는 녹십자 광고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그 잡지를 그들 앞으로 가져와 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다. 그는 자신의 코를 사진 속의 의사에게 대고는 노라와 트라비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코를 의사에게 댔다가 또 뭘 기대하는 듯 올려다보았다.

"전에 네가 우리에게 그 의사는 연구소의 과학자라고 했지."

예스.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너는 너를 연구해 왔던 그 과학자가 그 숲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거라고 말하는 거니?"

예스.

아인스타인은 다시 사진들을 살피러 갔다가 이번에는 울에 있는 자동차를 보여주는 광고를 물고 돌아왔다. 그는 코로 그 울을 댔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면서 다시 자신의 코를 악마의 사진에 댔다.

"숲속에 있던 그것이 울에 사는 맹수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거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그 이상일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내 생각엔 그가 그 괴물이 한때 울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예스.

"네가 울 속에 있었던 바로 그 연구소에서 말이니?"

예스, 예스, 예스.

"연구소의 또 다른 실험용 동물이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트라비스는 그 악마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것의 짙은 눈썹과 깊게 패인 노란 눈들, 그리고 기형적인 주둥이 모양의 코, 이빨들로 꽉찬 입 등을 자세히 살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그건...... 잘못된 실험이었니?"

예스 그리고 노. 아인스타인이 말했다.

이젠 극도로 동요되어서 개는 거실을 가로질러 앞 창으로 가 앞발을 껑충 들고는 창문 턱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산타바바라에 깔린 저녁을 빠끔히 내다보았다.

노라와 트라비스는 바닥에 펼쳐진 잡지와 책들 사이에 앉아서 자신들이 해낸 그 진전에 행복해하다가 그제서야 그 동안 흥분 때문에 못 느꼈던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해하며 찡그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인스타인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들이 하듯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 말예요."

"모르겠소. 개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거짓말은 단지 사람만의 재주일까?" 그는 자기 질문이 터무니없다고 느끼고는 웃었다.

"개가 거짓말을 할 수 있어? 사슴이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을까? 황소가 노래할 수 있을까?"

노라 역시 웃었다. 아주 귀엽게 웃었다. "오리들이 탭 댄스를 출 수 있을까?"

아인스타인과 같은 영리한 개의 온전한 생각을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다루기 힘들다 못해 생긴 터무니없는 생각들 끝에 트라비스가 말했다. "난 한 번 오리 한 마리가 탭 댄스를 추는 걸 보았어요."

", ?"

"그래요. 라스베가스에서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어느 호텔에서 공연을 했나요?"

"케사르 궁전 호텔에서죠. 그는 또 노래도 할 수 있었어요."

"오리가요?"

"그래요. 내게 그의 이름을 물어봐요."

"이름이 뭔데요?"

"사미 데이비스 덕 Jr. 이죠." 트라비스가 오리란 뜻의 ''이란 이름을 가진 스타 이름을 대고는 함께 웃었다. "그는 너무 대형 스타라서 그곳에서 그가 공연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호텔 입구에 그의 이름을 다 쓸 필요도 없었죠."

"사람들은 그냥 '사미'라고들 불렀죠, 그렇죠?"

"아니, 그냥 'Jr.'이라고만 했죠."

아인스타인이 창가에서 돌아와 머리를 곧추세우고 그들을 보고 서서는 그들이 왜 그렇게 특별하게 행동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사냥개의 얼굴에 나타난 그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트라비스와 노라에게는 그동안 본 중에 제일 코믹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서로를 껴안고는 바보들같이 웃어댔다.

사냥개는 비웃듯이 콧김을 내뿜고는 다시 창가로 돌아갔다.

그들이 점차 자제하게 되고 웃음이 가라앉게 되자 트라비스는 자신이 노라를 안고 있고 그녀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 위에 있으며 그들 간의 신체적인 접촉이 전에 자신들이 허용했던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깨끗하고 신선한 냄새가 났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그는 그녀를 절박하게 원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어깨에서 머리를 들면 그녀에게 키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는 자신이 하려던 것을 했다. 그녀에게 키스를 했던 것이다. 1, 2초 동안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잠깐 동안 그 키스는 심각한 것이 아니었고 따듯하고 아주 순수한 것이었으며 또 열정의 키스가 아니라 우정과 큰 애정의 키스였다. 그리고는 그 키스가 변했다. 그녀의 입이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고 그녀의 손은 그의 팔 위에서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더 가까이 당기려고 했다. 낮은 신음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그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그녀는 완전히 그를 남자로 인식하고는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놀라 커졌다. 트라비스는 곧바로 얼굴을 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때가 알맞지 않고 아직 상황이 완벽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들이 사랑을 나누게 될 때는 그것은 주저함이나 산만함이 없는 아주 적당한 시기여야 한다. 남은 여생 동안 그들은 항상 그 첫 번째를 기억할 것이고 그래서 그 기억은 아주 밝고 즐거운 것이어서 그들이 함께 늙어갈 때 수천 번 그 기억을 끄집어내 검토할 가치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맹세로써 확고하게 만들 만한 때는 아니었지만 트라비스는 자신과 노라 데본이 서로 함께 자신들의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적어도 지난 며칠 동안은 잠재 의식적으로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그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어색한 순간이 지난 후 그들은 서로 떨어져서 그들 관계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해야될지 생각하다가 마침내 노라가 말했다. "그가 아직도 창가에 있네요."

아인스타인은 자신의 코를 유리창에 대고 어둠이 내린 밤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이 진실일까요?" 노라가 궁금한 듯 말했다. "그 연구소에서 도망쳤다는 그 다른 것 말예요,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기괴한 것이 말예요."

"만일 그들이 아인스타인과 같이 영리한 개를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더 특이한 것들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날 그 숲속에는 뭔가가 분명히 있었어요."

"하지만 그놈이 아인스타인을 찾아올 위험성은 확실히 없어요. 당신이 이렇게 멀리 북쪽으로 데려왔잖아요."

"위험이 없죠." 트라비스도 수긍했다. "그런데 아인스타인은 자신이 그 숲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숲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그를 추적해올 수 없어요. 하지만 연구소 사람들은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개시했을 것이 틀림없어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에요. 그리고 아인스타인도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대개 멍청한 개인척하다가 단지 나나 이젠 당신에게 아주 비밀스럽게만 자기 지능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 하고 있어요."

노라가 말했다. "만일 그들이 그를 발견한다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다면 그땐 어떻게 되죠?" "난 그를 포기하지 않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절대로 안 해요."

 

8

그날 밤 11시에는 경찰관 포터의 머리 없는 시신과 팔다리가 잘린 공사장 현장 감독의 시신이 검시관실 사람들에 의해서 보르디옥스 리지에서 치워졌다. 위장용 스토리가 만들어져서 경찰 바리케이드 앞에 몰려 있는 기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언론도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질문을 해댔고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댔다. TV 기자들은 내일 아침 뉴스 시간에 한 100초 정도로 편집되어져 버릴 것을 위해 수백 미터의 비디오테이프에 이것 저것들을 담고 있었다. (대량 살상과 테러리즘이 성행하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두 명의 희생자로는 단 2분 정도의 방영 거리밖에는 못 된다. 10초 정도 도입부, 취재한 필름을 위해 100, 그리고 머리를 잘 다듬은 앵커맨들이 정중하게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보이기 위해 10초 해서 2분이다. 그리고 바로 비키니 대회에 대한 이야기와 이상하게 생긴 외계인의 우주선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가 버린다.) 기자들도 이젠 갔고 또 실험실 사람들, 정복 경찰들, 그리고 크리프 소아메스를 제외한 레무엘 존슨 측의 수사관들도 모두 갔다.

구름이 조각난 달에 걸려 있었다. 아크등들도 철거되었다. 그리고 빛이라곤 왈트 가이네스의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다. 왈트는 자신의 세단을 한 바퀴 휙 돌려 헤드라이트를 비포장도로 끝에 주차되어있는 렘의 차에 비추었다. 그래서 렘과 크리프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릴 필요가 없었다.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 깊은 어둠 속에는 반쯤 지어진 집들이 마치 선사 시대 파충류들의 화석처럼 어렴풋이 드러나 보였다.

렘은 자신의 차로 걸어가면서 그런 삭막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왈트가 이의 없이 관할권을 연방 기구에 넘겨주겠다고 동의했던 것이다. 렘이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하게 왈트에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여남은 개의 규칙들과 또 기밀 유지 서약을 어기게 되었지만 그는 왈트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 사건의 뚜껑은 아직도 그대로 덮여져 있다. 전보다는 좀 느슨해졌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크리프 소아메스가 먼저 자동차에 도착해 문을 열고 운전석 옆좌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렘이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 크리프가 소리 질렀다. ", 세상에! , 하나님!" 크리프가 허겁지겁 다시 차 밖으로 나올 때 렘은 맞은 편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무엇에 그런 소동을 벌이는지 보았다. 머리다.

틸 포터의 머리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앞 좌석에 세워져 있어서 렘이 차 문을 열 때 그를 쳐다보고 있도록 놓여 있었다. 입은 소리 없는 절규를 하며 벌어져 있었다. 눈은 없어졌다.

렘은 비틀거리며 차에서 몸을 떼고는 손을 코트 밑으로 넣어 권총을 뽑았다.

왈트 가이네스는 벌써 자신의 차에서 나와서 권총을 손에 쥐고 렘에게 뛰어왔다. "뭐가 잘못 됐나?"

렘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왈트는 국가 안보국 세단으로 가 열려진 문을 통해 그 머리를 발견하고는 가늘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냈다.

크리프가 자신의 총을 꽉 쥐고 총구를 곧바로 위로 세우고는 자동차 맞은편에서 돌아왔다. "그 망할 것이 우리가 이곳에 도착해 집 안에 있는 동안 여기에 있었어요."

"아직도 여기 있을지 몰라." 순찰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 사방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는 어둠을 걱정스레 살펴보며 렘이 말했다.

이번엔 왈트가 어둠에 싸인 주택 건설 현장을 살펴보며 말했다.

"내 부하들을 불러서 수색을 해보지."

"소용없어요." 렘이 말했다. "그놈은 당신네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가버릴 거예요. 아직도 여기를 떠나지 않았다면요."

그들은 보르디옥스 리지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그 너머로는 확 트인 평지, 그리고 산기슭, 그 너머로는 산들이 있어서 아웃사이더가 그곳에서 나왔다가 다시 그곳으로 사라지기 쉬운 곳이었다. 그 언덕들, 산등성이, 그리고 협곡들 등은 조각달의 희미한 빛을 받아 단지 뿌연 형태였고 그것도 눈에 보인다기보다는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불빛이 없는 도로 아래 어디선가에서 달가닥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마치 목재나 널빤지 더미가 무너진 것 같았다.

"그놈이 여기 있어." 왈트가 말했다.

"어쩌면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이 어둠 속에서 그놈을 찾아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우리 셋만으론 안돼요. 그것이 바로 그놈이 원하는 것이니까요."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네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여기에 와서 모든 지역을 다 수색했었네." 왈트가 말했다.

크리프가 말했다. "그놈이 당신들보다 계속 한발 앞서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당신네 사람들을 교묘히 피하는 게임을 하면서요. 그러다가 우리가 도착하는 것을 보았죠. 그리고 렘을 알아본 거예요."

"내가 몇 번 바노디네를 방문했었기 때문에 나를 알아볼 거야." 렘이 수긍했다. "사실...... 어쩌면 아웃사이더가 여기서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놈은 이 모든 일에서 나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놈과 그 개에 대한 수색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그놈은 나에게 그 경관의 머리를 남겨 놓고 싶었던 거지."

"자네를 조롱하기 위해서?" 왈트가 말했다.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죠."

그들은 마무리되지 않은 집들을 감싸고 있는 어둠을 응시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무더운 6월의 공기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한동안 주위에 들리는 소리는 그 보안관의 자동차 엔진이 공회전 되는 소리뿐이었다.

"우리를 보고 있어." 왈트가 말했다.

또다시 건축 자재들이 뒤집어지는 듯한 달가닥 소리가 났다.

그 세 사람은 얼어붙어서 각자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시 침묵이 한 1분 정도 지속되었다.

렘이 막말을 하려고 할 때 아웃사이더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괴성은 이 세상 소리가 아닌 으시시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르디옥스 리지 너머 어둠이 짙게 깔린 저 밖 넓은 평지에서다.

"그놈은 지금 떠나고 있어요." 렘이 말했다. "그놈이 우리가 수색에 착수하도록 유인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냥 우리 셋만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원 병력을 불러들이기 전에 떠나려는 거지요."

그것이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아주 멀리에서...... 그 무시무시한 괴성은 마치 렘의 영혼을 직 할퀴는 손톱들 같았다.

"아침에 해병 첩보대 팀들을 동쪽에 있는 산기슭으로 이동시키겠어요. 우린 그 망할 놈을 붙잡을 겁니다. 반드시 말예요." 렘이 말했다.

왈트는 틸 포터의 절단된 머리를 처리할 불유쾌한 일을 생각하는 듯 렘의 세단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눈은 왜 이러지? 왜 그놈은 항상 눈들을 빼 없애 버리는 거야?"

렘이 말했다. "그놈이 극히 공격적이고 피에 굶주렸기 때문이죠. 그런 요소가 그것의 유전자 안에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놈이 정말로 공포를 만들어내길 즐기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또한......."

"하지만 뭐야?"

"난 이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잊혀지지가 않아요. 지금도 너무나 생생해요."

한번은 바노디네에 방문했을 때 렘은 야르벡 박사와 아웃사이더가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목격했다. 야르벡과 그의 조교들은 1970년대 중반에 고릴라와 같이 고등 유인원들과 의사소통하는 실험을 시도했던 과학자들이 개발했던 것과 비슷한 기호 언어를 그 아웃사이더에게 가르쳤다. 70년대 때는 가장 성공적인 실험 대상 고릴라는 코코라는 이름의 암컷으로 지난 10년 간 수없이 매스컴을 탄 바 있었다. 코코는 약 400개 정도의 단어를 아는 기호 언어 어휘력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아웃사이더는 여전히 원시적이긴 했지만 코코보다는 훨씬 더 많은 어휘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야르벡 연구소에서 렘은 커다란 울 속에 있는 그 괴물이 그 과학자와 복잡한 일련의 수화식 기호들을 주고 받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러는 동안 한 조교가 곁에서 그것을 보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렘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아웃사이더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을 향해서 극심한 적개심을 표현하면서 자주 야르벡과의 대화를 중단했다. 그리고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울 주위를 씩씩거리며 돌다가 철책을 탕탕 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렘에게 그 장면은 놀랍기도 했고 또 혐오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아웃사이더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가슴 아플 정도의 슬픔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짐승은 항상 울 안에 갇혀 있고 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언제나 괴상하게 취급될 것이고 또 외로울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생물들은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것들이고 심지어 위더비의 개도 마찬가지다. 그 때 일이 그에게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와 야르벡 사이에 교환된 그 모든 신호 언어들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그 무시무시한 대화 중 한 부분이 떠올랐다.

한번은 아웃사이더가 신호를 보냈다.

네 눈을 빼내 없애버리겠어.

내 눈을 빼내 버리고 싶은 거니? 야르벡이 신호를 보냈다.

모든 이들의 눈을 빼내버리고 싶어.

?

그러면 나를 볼 수가 없지.

왜 너 자신을 남에게 보이는 게 싫은가?

추악해서.

네 자신이 추악하다고 생각하니?

아주 추악하지.

자신이 추악하다는 것을 어디에서 알게 되었지?

사람들에게서.

어떤 사람들에게서?

나를 처음 보는 모든 사람들.

오늘 우리와 함께 있는 이 사람과 같이? 야르벡이 렘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모두가 나를 추악하게 생각해. 나를 미워하지.

아무도 너를 미워하지 않아.

모두가 미워해.

아무도 너에게 네가 추악하다고 말한 적이 없어.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니?

난 알아.

어떻게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그놈은 그 울 안 주위를 질주하며 철창을 흔들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그리고는 돌아와서 야르벡을 마주 보았다. 내 눈을 빼버려.

그렇게 해서 네 자신을 볼 수 없게 하려는 건가?

그렇게 해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는 거야. 그놈이 그런 신호를 보냈고 그러자 렘은 동정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그런 동정심이 그놈에 대한 공포심을 줄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무더운 6월의 밤 한가운데 서서 왈트 가이네스에게 야르벡 연구실에서 오고 갔던 그런 대화를 들려주었고 왈트는 몸을 떨었다.

"제기랄," 크리프 소아메스가 말했다. "그놈은 자신을 미워해요. 그러니까 별나게 생긴 자신의 모습을 말예요. 그래서 자신을 만든 사람은 훨씬 더 미워하는 거지요."

"자네가 하는 말을 잘 들었네만, 난 자네들 누구 하나 그놈이 왜 그 개를 그토록 맹렬하게 미워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놀랍군. 이 불쌍한 망할 괴물과 그 개는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유일한 두 자식이야. 그 개는 사랑받는 자식에다 호강을 받고 있지. 그리고 그 아웃사이더는 항상 그것을 알고 있었어. 그 개는 부모들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자식이지만 아웃사이더는 지하 감방에 확실하게 가두어 놓고 싶어 하는 자식이지. 그래서 그놈은 그 개에게 분노심을 품고 있는 거야. 매일 매순간 분노로 속을 태우고 있었던 게지."

"물론예요." 렘이 말했다. "맞아요. 물론이지요."

"틸 포터가 살해된 그 집 2층 욕실의 거울 두 장을 깨버린 것에도 그놈은 또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왈트가 말했다. "그놈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멀리서, 이제 아주 멀리서 무엇인가가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의 창조물이 아닌 것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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