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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Charles Dickens

 

1장 구빈원에서 태어난 아니

그곳이 어딘지 자세히 알 필요도 없는 어느 작은 도시에 유난히 눈에 띄는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크고 작은 도시들에는 의례 하나쯤 있기 마련인 구빈원(빈민이나 고아들을 수용하여 구호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던 기관-옮긴이) 이었다.

어느 날 그 구빈원에서 아이가 한 명 태어났다.

의사의 손에 이끌려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으로 겨우 나왔지만, 아무리 보아도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힘겹기는 하지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숨쉬기이다. 그런데 갓 태어난 올리버 트위스트는 숨 쉬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다. 올리버는 저승사자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제힘으로 살길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아이는 숨을 크게 내쉬고 재채기를 하더니, 곧이어 울음을 터뜨렸다. 태어난 지 삼 분 만에 목소리를 냈기 때문인지 여느 아이보다 울음소리가 더 우렁찼다. 그제야 구빈원 사람들은 떠맡아야 할 짐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모는 올리버 트위스트가 세상에 태어나고는 바로 죽었다.

올리버는 그 후 거의 열 달 동안을 구빈원에서 지냈다. 도맡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누군가 잊지 않고 우유를 챙겨 줄 때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열 달이 지나자. 구빈원 관리자들은 올리버를 그곳에서 오 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보육원으로 보냈다. 보육원은 서른 명 정도의 고아들이 누구의 간섭이나 보살핌도 받지 않은 채 하루 종일 마루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지내는 곳이었다.

그곳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는 사람은 만 부인이었다. 그녀는 아이 한 명당 매주 칠 펜스 반을 보조금으로 받았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입힐 수 있을 만한 돈이었다. 그러나 만 부인은 보조금의 대부분을 빼돌려 자기 몫으로 챙겼고 아이들은 겨우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썼다.

올리버가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키도 작고 깡마른 데다 얼굴에서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허약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인한 정신을 타고난 덕분인지 기백만은 넘쳐흘렀다.

만 부인은 배고프다는 말을 했다고 흠씬 두들겨 패고 석탄 창고에 가두기도 했다. 이때 문을 두들기고 구빈원의 말단 사무관인 범블이 왔다. 올리버 트위스트란 아이는 부모가 누구이고 어디 출신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 즉 구빈원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이름은 거의 범블이 지어 준 것이었다.

올리버의 나이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가 없소. 다시 구빈원으로 가야 하니 당장 아이를 데려오시오.”

만 부인은 안타깝다는 듯 올리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빵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구빈원에 도착했을 때 너무 허기져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올리버는 그 끔찍한 곳을 떠나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보육원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별안간 슬픔이 밀려왔다.

구빈원에 도착하자마자 범블은 올리버를 데리고 교구 위원회에 참석했다.

너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교구에서 길러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흰 조끼를 입은 신사가 말했다.

, 나리.”

올리버는 서럽게 울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가장 높은 의자에 앉아 있던 신사가 말했다.

너는 여기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쓸모 있는 일을 배우게 될 게다. 내일 아침 여섯 시부터 낡은 밧줄의 실을 푸는 일을 시작하거라.”

올리버는 범블을 따라 앞으로 자신이 머무르게 될 방으로 들어갔다. 가엾은 올리버는 그날 교구 위원들이 자신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교구 위원들은 구빈원에서 놀고먹는 숫자가 자꾸만 늘어나므로 구빈원의 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가장 먼저 구빈원에 머무는 사람들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배급하는 음식의 양을 줄였다. 하루 세끼는 희멀건 죽만 주었고, 일주일에 두 번만 죽에 양파를 조금 섞어 주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빵 반쪽을 주었다.

올리버가 구빈원에 온 후 여섯 달 동안은 이러한 제도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초반에는 되레 돈이 더 많이 들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져 장례 비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양 부족으로 몸이 비쩍 말라 옷이 헐렁해져서, 그 옷을 줄여 주는 데 또 돈이 들어갔다. 그러나 교구 위원들은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들은 빵 반쪽을 먹을 수 있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작은 그릇에 죽을 딱 한 사발만 받아먹었다.

석 달 동안 올리버를 비롯한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배고픔을 견뎌 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기를 참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점점 사납게 변해갔다. 어느 날 아이들은 구빈원 원장에게 죽을 더 달라고 말할 사람을 뽑기로 했다. 제비뽑기를 한 결과 올리버가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식당으로 모였다. 올리버는 죽을 다 먹고는 원장한테 다가갔다. 그는 워낙 배고픔에 시달린 탓에 두려움도 잊은 채 자신의 용기에 스스로 놀라워하며 입을 열었다.

원장님, 죽 한 그릇만 더 주세요. 배가 너무 고파요.”

혈색 좋은 원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식당 안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공포에 떨며 올리버를 주시했다.

, 뭐라고?”

저기······ 제발 조금만 더 주세요!”

원장은 큼직한 국자로 올리버의 머리를 세게 내려치고는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소리 질러 범블을 불렀다. 범블은 상황을 파악하고 교구 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방으로 뛰어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신사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림킨스 씨. 글쎄. 올리버란 놈이 죽을 더 달라고 했답니다.”

더 달라고 했다고? 침착하게 설명해 보게. 그 애가 규정대로 준 저녁을 다 먹고도 더 달라고 했다는 말인가?”

흰 조끼를 입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런, 이런! 그놈은 앞으로 교수형을 당할 거야. 언젠가는 교수형을 받고 죽어도 싼 놈이라고!”

그들은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토론을 벌였다. 다음 날 아침. 구빈원 대문에 공고문이 나붙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데려가는 사람에게 오 파운드를 더 얹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2장 장의사의 도제가 되다

올리버는 감히 더 달라고 한, 죄 아닌 죄를 저지른 뒤로 며칠 동안 컴컴한 독방에 갇히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독방에 갇혀있다고 해서 운동을 못 하거나 친구들을 못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올리버는 매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당으로 끌려 나와, 범블이 지켜보는 앞에서 찬물로 몸을 씻었다. 그것이 올리버의 운동이었다. 그때마다 범블은 올리버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심하게 매질을 해서 화끈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게 배려했다.

올리버는 이틀에 한 번씩 저녁 식사 때마다. 식당으로 끌려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시범적으로 매를 맞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아침 굴뚝 청소부 갬필드는 밀린 집세를 어떻게 낼 것인지 걱정하며 구빈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해도 오 파운드가 더 있어야 했다. 그때 구빈원의 대문에 공고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침 교구 위원 한 사람이 대문가에 나와 있던 참이었다. 그는 굴뚝 청소부가 올리버를 데리고 가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갬필드는 대문 옆에 서 있던 교구 위원에게 자기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교구 위원은 갬필드를 위원실로 데리고 갔다. 교구 위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한 사람이 굴뚝 청소부에게 말했다.

올리버를 자네한테 보낼 수 없네, 아이한테 굴뚝 청소는 너무 더럽고 힘든 일이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상은 돈을 깎아 볼 요량이었다. 마침내 삼 파운드 십 실링에 데려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림킨스는 범블을 시켜 치안 판사에게 허락을 받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날 오후 범블은 올리버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범블이 말했다.

올리버, 넌 이제 굴뚝 청소부의 도제(徒弟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배우기 위해 스승 밑에서 일하는 사람-옮긴이)가 되는 거다.”

도제요?”

올리버가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느새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다.

그래, 도제 말이다. 부모 없는 너를 보살펴 주셨던 저 훌륭한 위원님들이 네놈의 장래를 위해 도제 자리를 마련해 놓으신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아 놈한테 삼 파운드 십 실링이나 써 가면서 말이지.”

올리버의 얼굴에 서러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그만 울어라! 그만! 가서 치안판사가 굴뚝 청소부의 도제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좋다고 말해야 한다. 알겠나?”

범블은 무서운 얼굴로 을러댔다.

치안판사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네가 굴뚝 청소 일을 좋아한다는 거냐?”

범블은 위협적인 눈길로 올리버를 내려다보며 입으로만 상냥하게 대답했다.

, 그럼요. 판사님, 아주 좋아한답니다.”

당신이 이 아이의 주인이 될 사람인가? 아이를 잘 먹이고 잘 대해 주겠지?”

갬필드가 거칠게 대답했다.

아무렴요. 판사님, 제가 하겠다면 하는 겁니다.”

말투가 좀 거칠지만 정직하고 친절한 사람 같군.”

갬필드의 얼굴에는 거친 말투만큼이나 잔인한 면모가 여실히 배어 있었다. 하지만 치안판사는 눈이 워낙 나빠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도 제대로 못 보았다.

치안판사는 서류에 서명을 하기 위해 잉크병을 찾았다. 올리버의 미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만약 잉크병이 치안판사가 생각했던 자리에 있었다면 서류에 서명을 하고, 올리버는 당장 끌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늙은 판사는 코앞에 있는 잉크병을 보지 못한 채 한참이나 책상 위를 헤맸다.

그 와중에 그는 올리버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올리버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주인이 될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안판사가 아무리 눈이 나쁘다고 해도 그 표정을 놓칠 수는 없었다. 판사는 행동을 멈추고 펜을 내려놓은 다음, 책상 위로 몸을 수그리며 말을 걸었다.

얘야.”

올리버는 예상치 못한 다정한 말투에 오히려 겁이 나 부르르 몸을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치안판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얘야! 네 얼굴이 몹시 창백하구나. 무슨 일이냐? 범블 씨. 그 애한테서 좀 떨어져 보시오. 얘야 겁내지 말고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말해봐라.”

올리버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맞잡고 애원했다.

판사님, 저는 따라가기 싫어요, 차라리 저를 다시 깜깜한 독방에 가두어 주세요. 거기서 맞아 죽든지 굶어 죽든지 할게요.”

순간 범블은 손을 추켜들며 눈을 부릅떴다.

이런! 이렇게 은혜를 모르는 놈은 세상에서 처음 보네. 염치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치안판사는 서류를 내던지며 말했다.

닥치시오. 나는 이 서류에 서명을 해 줄 수 없소.”

범블은 당황한 나머지 떠듬떠듬 말했다.

판사님 고아 놈이 아무것도 모르고 멋대로 말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조용히 해요! 아이를 다시 구빈원으로 데려가 애정을 갖고 보살피시오. 이 아이한테는 정이 필요한 것 같으니.”

올리버는 그날 저녁 구빈원으로 돌아와 다시 독방에 갇혔다. 대문에는 올리버를 데려가는 사람에게 오 파운드를 주겠다는 공고문이 다시 붙었다.

며칠 뒤 범블은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다가 구빈원 대문 앞에 장의사인 소어베리를 만났다. 소어베리는 키가 크고 깡마른 사람으로 낡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범블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범블 씨 지난밤에 여자 두 명이 죽어서 관 치수를 재고 나오는 길입니다.”

금방 부자가 되겠구려. 소어베리 씨.”

위원회에서 값을 박하게 쳐줘서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돈이 적은 만큼 관 크기도 작지 않소.”

이 말에 소어베리는 껄껄 웃고 나서 말했다.

맞아요, 맞아, 그건 사실이지요. 새로운 급식 체제를 도입한 다음부터 전보다 관이 조금 작아지긴 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혹시 주변에 사내아이가 필요한 사람 없소? 아주 좋은 조건에 데려갈 수 있는데.”

범블은 지팡이를 들어 올려 공고문을 탁탁 두드렸다.

! 그게 바로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제가 그 아이를 데려가면 어떨까요?”

범블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의사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구 위원들과 밀담을 나눈 뒤 올리버를 시험 삼아일을 시켜본 다음 결정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올리버는 위원들 앞으로 불려가 자신이 장의사의 도제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리버는 미동도 없이 멍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으나, 실은 절망스러워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올리버는 짐 꾸러미 하나만 달랑 챙겨 든 채 범블에 이끌려 또 다른 고통을 당하게 될 곳으로 향했다. 소어베리의 가게가 가까워지자 아이가 새 주인의 눈에 들 만한 상태인지 살펴보았다.

올리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놈아! 네놈은 내가 지금까지 겪어 본 놈 중에 최고로 불쾌하고 배은망덕한 녀석이야. 너야말로······.”

올리버가 범블의 팔에 매달리며 울먹였다.

너무너무 외로워요! 정말 외로워요! 그러니 제발 화내지 마세요.”

올리버는 다시 펑펑 울었다. 범블은 꽤 놀란 표정으로 그 가엾은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잠시 후 그는 올리버에게 눈물을 닦고 얌전히 굴라고 말한 다음. 다시 올리버의 손을 잡고 말없이 걸었다.

소어베리 씨 아이를 데려왔소.”

장의사는 올리버를 자세히 보려고 머리 위로 촛불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보, 잠깐 밖으로 나와 보구려.”

가게 뒤편에 있는 작은 방에서 소어베리 부인이 나왔다. 몹시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마르고 땅딸막한 여자였다.

여보, 내가 아까 얘기했던 바로 그 아이라오.”

세상에 얘는 너무 작아요. 남자들은 뭘 몰라! 이 말라비틀어진 뼈다귀 같은 놈아, 저 아래로 냉큼 내려가!”

샬럿, 개밥 하려고 남겨 놓은 고기 찌꺼기를 이 아이한테 줘라. 그놈의 개는 아침에 나가더니 들어올 생각을 안 하네. 개가 먹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이 아이한테 먼저 줘.”

고기라는 말에 올리버는 눈이 번쩍 빛났다. 고기는 뼈에 붙은 찌꺼기에 불과했지만 올리버는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올리버가 다 먹자, 소어베리 부인은 등불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날 따라와. 잠은 계산대 밑에서 자거라. 싫으면 관 사이에서 자든지, 네가 좋든 싫든 상관없어. 어차피 거기 말고는 잘 데도 없으니까. 빨리 올라와!”

올리버는 그녀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올리버는 가게 안에 혼자 남게 되자. 등불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업대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검은색 관이 있었다. 그쪽으로 눈길이 갈 때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체가 고개를 들고 관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때문인지 올리버의 잠자리인 계산대 밑은 마치 무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환경 때문에 올리버의 마음이 괴로운 것은 아니다. 올리버는 무거운 마음으로 비좁은 잠자리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올리버는 가게 문을 쾅쾅 걷어차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빨리 열란 말이야!”

잠시만요. 다 됐어요.”

너 새로 온 놈이냐? 몇 살이야?”

열 살이에요.”

올리버가 보니 자기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이었다.

, 구빈원 멍청이!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나는 노아 크레이폴 님이시다. 넌 바로 내 밑에서 일하게 되는 거야. 어서 가서 가게 덧문이나 떼.”

노아는 올리버의 정강이를 한 대 걷어차고는 거드름을 피우며 안으로 들어갔다. 올리버는 가게 덧문을 떼어 안뜰로 옮기다가 문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뜨려 유리창을 하나 깨고 말았다. 때마침 소어베리 부부가 나타나는 바람에 올리버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내려가니 노아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샬럿이 말했다.

노아, 여기 불 가까이로 와, 너 주려고 주인 어른 아침상에서 베이컨 한 조각 챙겨 놓았어, 올리버, 넌 저 바구니에서 빵이나 한 조각 먹어. 차도 있으니까 마시고 알아듣겠니?”

올리버는 난롯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차가운 상자 위에 앉아 쉰내 나는 빵을 먹었다.

노아는 고아가 아니라 생활 보호 대상자로. 그의 부모는 그와 한 동네 살고 있었다. 노아는 생계가 어려워 장의사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한 달 뒤 올리버는 장의사의 정식 직원이 되었다. 때마침 전염병이 돌아 관 주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소어베리는 장례식 때마다 올리버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어린 올리버가 검은색 상복을 입고 너무나 슬픈 얼굴로 장례 행렬의 맨 앞에 서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라 예상했다. 소어베리의 의도는 딱 맞아떨어졌다. 생각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노아는 점점 더 올리버를 못살게 굴었다. 고참인 자기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올리버는 상복에 모자를 쓰고 지팡이까지 쥐고 장례식마다 따라다니니. 부아가 치밀고 속이 뒤틀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올리버의 삶의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노아가 올리버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올리버는 참지 못하고 노아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의 목을 틀어쥐고 흔들어 대다가 바닥에 때려눕혔다. 그동안 모진 학대를 말없이 참아 내던 올리버였다. 그런데 죽은 올리버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이 잠자던 올리버의 용기를 깨웠던 것이다. 노아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이놈이 날 죽이려고 해! 주인마님! 올리버가 미쳤어요. 샤알~!”

소어베리 부인과 샬럿, 노아까지 가세해서 올리버를 질질 끌고 광에다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소어베리 부인은 노아를 시켜 범블 씨한테 가서 당장 여기로 데려오라고 했다.

드디어 범블이 와서 올리버를 조용히 시킬 요량으로 문을 한 번 걷어찬 다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불렀다.

올리버!”

올리버가 안에서 대답했다.

내보내 줘요!”

올리버 내 목소리를 알아듣겠지? 어때 두렵지 않으냐? 내 목소리를 들으니까 오금이 저리지?”

올리버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나도 안 무서워요!”

범블은 예상외의 대답에 너무나 놀라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때 소어베리가 돌아왔다. 소어베리 부인이 올리버의 행동을 심하게 과장해서 설명하자 그는 곧장 광으로 들어가 올리버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왔다. 올리버는 광에서 나온 뒤에도 무서운 눈으로 노아를 노려보았다.

소어베리는 올리버의 어깨를 흔들고 수차례 뺨을 갈기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노아가 우리 엄마를 욕했어요.”

올리버가 거칠게 대꾸하자 소어베리 부인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의 울음보가 터지는 순간 소어베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올리버에게 잘해 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소어베리는 올리버를 흠씬 두들겨 패서 아내의 비위를 맞추고 범블이 따로 매를 때릴 필요도 없이 상황을 정리했다. 올리버는 그날 하루 종일 광에 갇혀있다가 밤이 되어 잠자리로 갈 수 있었다.

올리버는 지금까지 그들의 모욕적인 말들을 참아 내고 심하게 매를 맞으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주 볼 사람도,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도 없자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올리버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구슬프게 우는 이가 이 세상천지에 또 누가 있으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살을 에는 듯 추웠다. 올리버는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챙겨 보따리를 꾸렸다. 그런 다음 의자에 앉아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새벽빛이 창문으로 어스름히 흘러들었다. 올리버는 살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문득 짐마차들이 언덕으로 올라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올리버는 그쪽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3장 이상한 놀이

올리버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그 길 끝에 있는 울타리를 지나자 곧바로 큰길로 이어졌다. 어느덧 아침 여덟 시였다.

정오쯤 되자 이정표가 하나 나타났다. 올리버는 그 옆에 앉아 쉬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정표에는 런던까지 백십 킬로미터라고 씌어 있었다.

구빈원에 있을 때 노인들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배짱이 두둑한 젊은이라면 런던에서는 무얼 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올리버는 바싹 마른 빵 한 쪽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삼십 킬로미터나 걸었다. 밤이 되자 들판에 쌓아놓은 건초 더미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몹시 춥고 배가 고픈 데다 진한 외로움 같은 것이 몰려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척 피곤했기에 금방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니 으슬으슬 춥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처음 들어선 마을에서 주머니에 있는 몇 푼의 돈을 모두 털어 자그마한 빵을 하나 샀다. 그날은 채 이십 킬로미터도 가지 못했는데 다시 밤이 찾아왔다. 올리버는 또 들판에서 싸늘한 밤공기를 이불 삼아 잠을 자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너무나 지쳐서 기어갈 힘도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다음 마을로 갔다. 그 마을 입구에는 눈에 띄는 표지판이 하나 있었는데. 구걸하는 사람은 모두 잡아서 감옥에 처넣겠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올리버는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길을 떠난 지 이레째 되던 날 아침, 올리버는 힘겨운 발걸음으로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올리버는 한참 동안 멍하니 마을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기 시작했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조금 전에 건들거리며 올리버의 앞을 지나쳤던 소년이 맞은편에서 그를 유심히 관찰하며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소년이 길을 건너 올리버에게 다가왔다.

어이! 무슨 문제라도 있나?”

소년은 올리버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이상하게 생긴 아이였다. 옷자락이 거의 발뒤꿈치까지 내려오는 어른 외투를 입고 있었다. 키가 백사십 센티미터도 채 안 돼 보였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감에 찬 젊은 신사처럼 으스댔다.

너무 피곤하고 배가 고파, 먼 길을 걸어왔거든, 일주일 내내 걷기만 했어.”

일주일이나 걸었다고? 아이고 대단하네, 내가 뭐 좀 사 줄게. 한 끼 정도 살 돈은 있으니까. , 당장 일어나. 얼른!”

소년은 올리버를 부축해 일으키더니, 근처에 있는 식료품 가게로 데리고 가서 햄과 큼직한 빵 한 덩어리를 사 주었다. 그러고는 마치 어른이라도 된 양 거드름을 피우며 작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 소년은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하는 올리버를 자세히 관찰했다.

런던에 가니?”

, 너는 런던에 살아?”

집에 있을 때는 그래. 그런데 너 오늘 밤 잘 곳이 필요한 거 아니야?”

맞아 일주일 내내 밖에서만 잤어.”

그랬군. 이제 걱정하지 마. 나는 오늘 밤 안으로 런던에 가야 하거든. 거기 가면 아주 점잖은 어른이 한 분 계셔. 그분한테 가면 아주 잘 대해 주고 공짜로 재워 줄 거야. 일자리도 구해 줄 테고. 내가 그분을 잘 알아. 널 소개해 줄게.”

올리버는 공짜로 잘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더구나 일자리도 구해 줄 수 있다고 하니 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소년의 이름은 잭 도킨스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재주 많은 미꾸라지로 통한다고 했다.

두 사람이 런던의 변두리에 도착한 것은 밤 열한 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미꾸라지가 앞장서 걸었고 올리버가 뒤따랐다. 올리버가 지금까지 본 어느 곳보다도 더 추악하고 더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난잡한 술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는 동안 올리버는 이제라도 도망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민했다. 바로 그 순간 어느 집의 문을 열어젖히더니. 올리버를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재빨리 문을 닫아 버렸다. 미꾸라지가 휘파람을 불자 잠시 뒤 촛불을 든 한 남자가 천천히 나타났다.

미꾸라지구나, 그런데 또 한 놈은 누구야?”

새로 온 친구야. 페긴은 위층에 있어?”

그래, 손수건을 추리고 있어. 어서 올라와!”

올리버는 한 손을 친구에게 맡기고 한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 어느 방으로 들어가니 난로 위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서 소시지가 익고 있었는데. 그 앞에서 사악하게 생긴 유대인 영감이 커다란 포크를 들고 왔다 갔다 했다. 기름때가 잔뜩 밴 더러운 가운을 입고 있었다.

방 한쪽에는 빨랫줄에 상당히 많은 비단 손수건들이 걸려 있었다. 탁자 주위에서 미꾸라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내아이 네댓 명이 술집에 모여 앉은 어른들처럼 기다란 사기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미꾸라지가 유대인 영감에게 뭐라고 귓속말로 하고 몸을 돌려 올리버를 쳐다보았다.

페긴. 내 친구 올리버 트위스트예요.”

페긴은 다시 한 번 올리버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냈다. 그는 올리버에게 다가와 만나게 돼서 영광이라고 말하고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담뱃대를 문 아이들도 모두 몰려와 올리버의 두 손이 으스러져라 잡고 악수를 했다.

페긴이 미꾸라지한테 말했다.

올리버가 먹을 소시지를 좀 가져오너라. 난로 옆으로 의자도 하나 더 가져오고.”

다음 날 아침, 올리버는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났다. 눈은 떴지만 정신이 또렷하지 않아 멍하게 누워 있었다. 방 안에는 페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커피를 끓이면서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올리버는 몽롱한 눈으로 페긴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눈은 유대인 영감을 보고 있으나 머릿속은 꿈을 꾸고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올리버 쪽을 돌아보며 이름을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문 쪽으로 살그머니 다가가. 조심스레 문을 잠갔다. 그런 다음 마룻바닥에 있는 비밀 구멍 같은 데서 작은 상자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상자 안에서 보석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게 번쩍이는 금시계를 꺼냈다. 음흉한 미소를 띠며 혼잣말을 했다.

, 똑똑한 녀석들 끝까지 충성을 다하다니. 내 이름을 끝내 불지 않았단 말이지 사실 불 이유도 없잖아. 어차피 교수형을 면치는 못했을 테니까.”

페긴은 금시계를 상자에 넣은 후 대여섯 개의 다른 시계를 더 꺼내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올리버는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페긴은 상자를 꽝 소리가 나도록 세게 닫고는 탁자 위에 있던 칼을 집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지? 잠에서 깼는데 왜 아무런 기척도 하지 않은 거야. ? 네가 본 게 뭐냐? 뭘 봤는지 빨리 말해!”

올리버는 겁에 질려 대답했다.

그냥······ 그냥 잠이 깼어요. 방해가 됐다면 죄송해요,”

페긴은 올리버를 위협적인 눈길로 쏘아보며 말했다.

얼마나 됐냐? 한 시간 전부터 깨어 있었지?”

아니에요. 방금 깼어요.”

정말이냐?”

, 정말이에요.”

페긴은 화난 표정을 약간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그럼 됐다. 됐어, 별일 아니다. 얘야. 괜찮아. 얘야, 나도 알고 있었어. 그냥 한번 너를 놀래주려고 한 거야, 하하! 올리버 넌 용감한 애야.”

올리버는 방을 가로질러 가 물통을 들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상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올리버가 세수를 마쳤을 즈음, 미꾸라지가 아주 활달한 아이 한 명과 함께 돌아왔다. 전날 저녁에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 중 하나로 이름은 찰리 베이츠라고 했다.

페긴은 올리버를 힐끔 보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래, 얘들아, 오늘 아침에도 열심히 일을 했니?”

미꾸라지가 대답했다.

열심히 했죠.”

찰리가 덧붙였다.

정말 힘들었어요.”

미꾸라지는 지갑 두 개를 내밀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두둑하지는 않구나 하지만 아주 맵시 있게 만든 지갑이야. 올리버, 기막힌 솜씨잖니?”

정말 그래요.”

페긴이 이번에는 찰리에게 물었다.

저는 손수건이요.”

찰리는 넉 장의 손수건을 건네자. 페긴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페긴과 두 소년은 아주 독특하고 이상한 놀이를 시작했다. 페긴은 바지 주머니 한쪽에 코담배 갑을, 다른 쪽 주머니에는 지갑을 넣었다. 조끼 주머니에는 시계를 넣고, 셔츠에는 가짜 다이아몬드 핀을 꽂았다. 그러고는 외투의 단추를 단단히 채운 뒤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서, 마치 거리를 산책하는 노인처럼 지팡이를 짚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페긴은 난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거나 문가에 멈춰 서기도 하고, 마치 가게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자기 주머니를 더듬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올리버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그러는 동안 두 소년은 페긴의 뒤를 바짝 따라다니다가, 그가 돌아볼 때마다. 재빨리 안 보이는 데로 숨어 버렸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다 미꾸라지가 실수로 페긴의 발을 밟는 척하자. 찰리가 거의 동시에 뒤쪽에서 몸을 부딪쳤다. 그 순간 그들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코담배 갑, 지갑, 다이아몬드 핀과 손수건을 꺼냈다. 그런데 페긴이 자신의 주머니에 누군가 손을 넣었다고 알아채고 소리를 지르면, 그 놀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 놀이를 여러 번 되풀이하고 있는데. 젊은 여자 두 명이 찾아왔다. 한 명은 베트. 또 한 명은 낸시였다. 건강해 보이고 유쾌하게 행동해서 올리버는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손님들이 술을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할 때 미꾸라지와 찰리는 페긴에게 용돈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올리버, 저게 바로 재미있게 사는 거란다.” 그리고 페긴이 시키는 대로 페긴에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는 연습을 해 봤다. 그러더니 참 잘했다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며 용돈을 주었다.

올리버는 주머니에서 몰래 손수건을 빼내는 일을 하면 어떻게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를 따라 조용히 탁자로 가서 새로운 것을 열심히 배웠다.

 

4장 친절한 브라운로우 씨

올리버는 여러 날 동안 방 안에만 있었다. 그곳에서 손수건에 새겨진 이름을 뜯어내고, 아침마다. 하는 그 이상한 놀이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데 방 안에만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바깥바람이 쐬고 싶어졌다.

올리버는 두 친구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여러 번 페긴을 졸랐다. 페긴은 쉽게 허락하지 않다가. 어느 날 아침, 마침내 밖으로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아이들이 며칠째 손수건을 가져오지 못해. 식탁이 다소 초라해지던 때였다.

세 아이들은 집을 나섰다. 올리버는 빨리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미꾸라지와 찰리는 일을 하러 갈 생각이 없는지 그냥 어슬렁어슬렁 거닐 뿐이었다. 게다가 만만한 어린애들을 볼 때마다 모자를 벗겨 떨어뜨렸고. 찰리는 노점상에서 파는 사과를 몰래 훔치곤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못된 짓만 일삼고 다니자. 올리버는 혼자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미꾸라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올리버와 찰리를 잡아끌었다. 올리버가 물었다.

왜 그래?”

! 서점 앞에 서 있는 저 늙은이 보이지?”

올리버가 대답했다.

길 건너 있는 신사 분 말이야?”

저 사람이면 되겠어.”

찰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절호의 기회야.”

올리버는 너무 놀라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재빠르게 길을 건너 노신사 뒤에 바싹 서 있었다. 올리버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노신사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외투를 입고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서점 가판대에서 책을 한 권 뽑아 들고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기 시작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의 눈에는 가게도 거리도 아이들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미꾸라지가 노신사의 주머니에 손을 슬쩍 집어넣어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훔친 손수건을 곧바로 찰리에게 건넸고. 두 사람은 골목을 돌아 전속력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올리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제야 아침마다 했던 이상한 놀이, 손수건, 시계 보석에 얽힌 비밀이 밝혀졌다.

이 모든 일이 단 일 분 만에 벌어졌다. 올리버가 달아나려는 순간, 노신사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가 손수건이 없어진 것을 알고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마침 아이 하나가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가 도둑이라고 생각했다.

도둑놈 잡아라!”

그리고 올리버를 뒤쫓기 시작했다.

도둑이야! 도둑놈 잡아라!”

가엾은 올리버는 잔뜩 겁을 먹은 채 헐떡이며 달아나다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올리버가 누군가한테 한 대 얻어맞고 길바닥에 쓰러지자 사람들이 그를 에워쌌다.

이 아이가 맞아요?”

그렇소.”

올리버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입에서는 피를 흘리며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노신사가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앞으로 밀려 나왔다.

이런 불쌍해라! 다쳤구나!”

그때 경관 한 명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타났다. 그는 다짜고짜 올리버의 멱살을 틀어쥐며 거칠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

올리버는 두 손을 맞잡고 주위를 돌아보며 애처롭게 말했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다른 아이들이 그랬어요.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이놈 봐라, 허튼소리를 하고 있네, 당장 일어나!”

노신사가 경관에게 간청했다.

아이한테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시오.”

경관은 올리버의 웃옷이 벗겨질 정도로 세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럼요. 살살 다루겠습니다. 이놈아 일어나!”

올리버는 경관에게 멱살을 잡힌 채 빠른 속도로 질질 끌려갔다. 노신사는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올리버는 즉결 재판소 감방에 갇혔다. 노신사는 손수건을 훔친 사람이 올리버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으나 경관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저 아이는 나쁜 아이 같지는 않은데, 저 아이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 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노신사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인물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올리버와 연관이 있을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노신사는 법정으로 불려가 그 유명한 팽 판사 앞에 서게 되었다. 팽 판사는 성격이 아주 급한 사람이었다, 노신사는 머리를 수그리며 인사를 하고 치안판사 앞으로 다가가서 책상에 명함을 놓으며 말했다.

제 이름과 주소입니다.”

팽 판사는 신문 사설을 읽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의 사설은 최근에 그가 내린 판결이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잔뜩 성질이 나서 고개를 들고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노신사는 다소 놀라는 표정으로 명함을 가리켰다. 팽 판사는 경멸하는 듯한 태도로 명함을 툭 내던지며 경관에게 물었다.

어이! 이 사람은 뭐야?”

노신사가 점잖게 말했다.

제 이름은 브라운로우입니다. 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시면서 왜 저 같은 선량한 시민을 모욕하시는 겁니까? 오히려 저는 그런 판사님의 성함을 알고 싶군요.”

팽 판사가 신문을 한쪽으로 던지며 또다시 경관에게 말했다.

이봐! 이 친구의 죄목이 뭐야?”

경관이 대답했다.

이분은 용의자가 아니고 피해자입니다. 저 아이를 고소하러 온 겁니다.”

팽 판사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브라운로우 씨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 내리며 말했다.

저 아이를 고소했다고? 선서시켜!”

선서하기 전에 한마디만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도저히······.”

팽 판사가 입을 막았다.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시오.”

노신사가 맞받아쳤다.

그렇게는 못 하겠소.”

당장 입 다물지 않으면 법정 밖으로 쫓아내겠소. 어디 감히 판사한테 대들어!”

그러고는 더욱더 화난 목소리로 서기에게 지시했다.

브라운로우 씨는 몹시 화가 났지만. 화를 내면 아이한테 피해가 갈 것 같아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르고 선서를 했다.

경관은 판사에게 올리버를 체포하게 된 정황을 공손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올리버의 몸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치안판사는 브라운로우 씨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 아이를 고소할 거요. 말 거요? 똑바로 얘기하시오.”

그때 낡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법정 안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전 서점 주인입니다. 제가 모두 봤어요. 저에게 선서를 시켜주세요.”

이봐. 선서시켜! 그래, 할 말이 뭐요?”

서점 주인은 아이 두 명이 노신사에게 접근해서 손수건을 훔쳐서 도망가고, 올리버는 뒤에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서점 주인의 이야기를 끝낸 후 판사는 브라운로우 씨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 주제에 불쌍한 아이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군. 저 아이를 무죄 석방한다. 모두 퇴장!”

올리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불쌍한 것! 이러다 큰일 나겠어. 누가 마차 좀 불러주시오!”

마차는 펜튼빌 근처의 조용하고 품격 있는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브라운로우의 하인들이 서둘러 침대를 마련하고 올리버를 그쪽으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올리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그러나 올리버는 며칠이 지나도록 그들이 잘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열병을 심하게 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는 전보다 훨씬 야위고 파리해진 모습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올리버는 힘없는 목소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을 알아들은 사람이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쳐진 커튼이 열리더니 매우 따뜻한 인상의 노부인 나타났다. 그녀는 브라운로우의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베드윈 부인이었다.

! 얘야, 가만히 있어라. 움직이면 다시 도질지도 몰라, 넌 아주 심하게 앓았거든, 다시 자리에 누워라. 어서.”

올리버는 저렇게 친절한 할머니가 시키는 것이니 따르고 싶었다. 사실 깨어 있을 만큼 좋은 상태도 아니었다.

올리버는 잠이 들었다. 의사가 한 손에 시계를 든 채 올리버의 맥박을 재고 있을 때 눈을 떴다.

많이 좋아졌구나. 얘야. 너도 그렇게 느끼지?”

. 선생님?”

사흘이 지나자 올리버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올리버를 난로에 앞에 앉힌 뒤 수프를 데우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맞은편 벽에 걸린 초상화에 시선이 머물렀다. 미동도 없이 한참이나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 베드윈 부인이 물었다.

그림을 좋아하니?”

잘 모르겠어요. 그림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요. 그런데 저 부인은 정말 아름다워요! 하지만 눈이 너무 슬퍼 보여요, 저한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가슴이 막 뛰어요.”

브라운로우 씨가 올리버를 보러 왔다.

얘야. 기분이 어떠니?”

아주 행복해요.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착한 아이로구나 베드윈 부인 이 아이가 뭘 좀 먹었나요?”

방금 수프를 먹었답니다.”

브라운로우 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올리버를 바라보다가, 올리버가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그의 눈이 우연히 벽에 걸린 초상화로 향했다가 다시 올리버에게로 갔다. 그는 몹시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오 이럴 수가! 베드윈 부인, 이걸 보시오!”

브라운로우가 벽에 걸린 초상화와 올리버를 차례로 가리켰다. 초상화 속의 얼굴과 올리버의 얼굴이 복제품처럼 똑같았다! 두 얼굴은 이목구비만 아니라 심지어 표정까지도 베껴 놓은 듯이 닮아 있었다.

행복한 나날이 지나가는 동안 올리버의 건강도 차츰 회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버는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차렸다.

그러자 브라운로우가 옷 한 벌과 모자, 구두를 새로 마련해 주었다.

어느 날 저녁, 올리버는 브라운로우가 서재에서 기다린다는 전갈을 받았다. 올리버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들을 둘러보았다. 브라운로우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올리버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책이 참 많지?”

. 너무너무 많아요.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봐요.”

브라운로우는 다정하게 말했다.

말을 잘 들으면 다 읽게 해 주마.”

브라운로우는 계속하여 말했다.

넌 이 세상에 혼자뿐인 고아라고 했잖니? 네 이야기를 좀 들어 보자. 이제 몸이 나았으니 네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말해 줄 수 있겠지? 고향은 어디인지, 누가 너를 키웠는지 지난번에 같이 있었던 아이들하고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얘기해 보려무나, 사실대로 말한다면 내가 살아 있는 한 항상 네 곁에 있어 주마.”

올리버는 울먹이며 슬픈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육원에서 배를 곯며 자라다가 범블에게 이끌려 구빈원으로 가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하인이 올라와 그림위그가 왔다고 알렸다.

그림위그는 계단에 오렌지 껍질 때문에 넘어질 뻔했다고 투덜거리며 올라왔다. 올리버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 아이는 누군가?”

내가 전에 말했던 올리버 트위스트라네.”

브라운로우는 친구가 뭔가 불쾌한 말을 할 것 같아, 올리버에게 베드윈 부인한테 가서 차가 다 준비되었는지 물어보라고 시켰다. 올리버는 그림위그의 성마른(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조급한) 눈빛이 불편했던 터라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소매치기 사건이 있던 날, 브라운로우가 서점에서 주문한 책이 배달된 것을 베드윈 부인이들고 들어왔다. 브라운로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베드윈 부인. 배달 온 아이를 붙들어 주시오. 책을 돌려보낼 게 있으니까.”

벌써 가 버렸어요.”

그림위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올리버에게 책을 갖다주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저 애라면 틀림없이 무사히 전하고 오지 않겠나?”

올리버가 말했다.

허락하시면 제기 다녀올게요. 금방 갔다 올 수 있어요.”

그래, 네가 좀 다녀와야겠다. 책상 옆 의자에 책이 있으니 가지고 가거라.”

브라운로우는 그림위그를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가서 그 책들을 돌려주고, 지난번에 치르지 않은 책값 사 파운드 십 실링을 전해 주러 왔다고 해라. 오 파운드짜리 지폐를 줄 테니 거스름돈으로 십 실링을 받아 와야 한다.”

십 분도 안 걸릴 거예요.”

올리버는 외투 주머니에 지폐를 넣고 단추를 채웠다. 그러고는 책을 조심스럽게 겨드랑이에 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방에서 나왔다.

베드윈 부인이 대문까지 따라 나와 서점 이름과 그곳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브라운로우가 시계를 꺼내 놓으며 말했다.

두고 보게나 길어야 이십 분이면 돌아올 거야.”

그림위그가 물었다.

이봐! 자네는 그 애가 진짜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는 건가? 나는 그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새 옷도 얻어 입었겠다. 값비싼 책도 갖고 있겠다. 게다가 주머니에는 오 파운드짜리 지폐도 들어 있겠다. 뭐가 아쉬워서 돌아오겠나? 아마 그 도둑놈 친구들한테 가서 자네를 실컷 비웃고 있을 걸세.”

두 신사는 시계를 사이에 두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시계 바늘을 분간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두 사람은 시계를 사이에 두고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5장 다시 도둑 소굴로

올리버가 도둑으로 몰려 판사 앞에 서게 된 그날, 올리버의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꾸라지와 찰리는 사람들과 함께 올리버를 뒤쫓다가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춰 서서히 뒤로 처진 다음 옆 골목으로 빠졌다.

미꾸라지가 찰리에게 물었다.

페긴이 뭐라고 할까?”

페긴? 글쎄, 뭐라고 할까······?”

미꾸라지는 아무 말 없이 걷기 시작했다. 찰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두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페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올리버는 어디 있어?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냐?”

어린 도둑들은 페긴의 분노에 놀라 걱정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페긴이 미꾸라지의 멱살을 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그 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냐? 빨리 말하지 못해? 안 그러면 목을 졸라 죽여 버리겠어!”

경찰한테 잡혔어요. 말했으니까 이거 놔요.”

미꾸라지는 몸을 비틀어 페긴한테서 빠져나왔다. 미꾸라지는 재빠르게 탁자 위에 있던 포크를 집어 들고 페긴의 배 쪽을 푹 찔렀다. 페긴은 노인답지 않은 민첩성을 발휘해 용케 뒤로 물러났다.

그때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몸집이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몹시 험악한 인상의 사나이가 털복숭이 개를 데리고 들어오며 말했다.

왜 애들을 못살게 구는 거요? 얘들이 당신을 안 죽이는 게 정말 이상하다니까. 나 같으면 옛날에 당신을 해치워 버렸을 거야.”

시끄러워 사이크스 씨.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씨는, 무슨 씨,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시오. 그럴 때마다 꼭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더군 그냥 이름만 부르라고.”

알았어, . 그런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군.”

사이크스는 어린 도둑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들은 올리버가 붙잡히게 된 정황을 설명했다. 페긴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혹시라도 그 녀석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이야기를 하면 어쩌지?”

사이크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럼 이제 당신도 끝장이군,”

페긴이 사이크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붙잡히면 끝장날 사람이 여럿 있다는 거야. 사실 자네가 더 걱정이야. 이번에 잡히면 아주 오랫동안 감옥에 있게 되겠지.”

사이크스가 사나운 얼굴로 페긴을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든 경찰서에 가서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아내야겠군.”

페긴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누구도 경찰서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페긴은 낸시에게 애원했다.

낸시, 네가 갔다 와 줄래?”

낸시도 안 간다고 했지만 결국 사이크스의 협박과 회유, 그리고 뇌물에 넘어가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경찰서에서는 늙은 경찰이 다가와 다른 아이들이 도둑질한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 덕분에 올리버는 무죄 석방되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올리버가 쓰러졌는데 피해자인 노신사가 펜튼빌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낸시는 불안한 마음으로 경찰서를 나섰다.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먼 길로 돌아 집으로 왔다. 사이크스는 낸시의 말을 듣자마자 그곳을 떠났다.

페긴은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너희들은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꼭 알아내야 한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며 덧붙였다.

, 돈을 조금씩 주마. 오늘 밤부터 이 집 근처에는 절대로 얼씬거리지 마, 뭔가 알아내면 당장 날 찾아오너라. 내가 어디에 있을지는 다들 알고 있겠지?”

페긴은 그들을 방에서 쫓아낸 다음, 얼마 전에 올리버에게 들킨 그 상자를 꺼낸 후, 시계와 보석들을 재빨리 옷 속에 집어넣었다.

* * * * *

올리버는 부지런히 서점을 행해 걸어갔다. 그는 요즈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지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어떤 여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바람에 깜짝놀라 고개를 들었다.

. 내 동생이다!”

그녀는 올리버를 꽉 껴안으며 소리 질렀다.

올리버가 몸부림치며 말했다.

이러지 말아요! 놔줘요! 왜 이래요!”

올리버 이 못된 녀석아! 그동안 널 찾아 얼마나 헤맸는 줄 아니? 어서 집으로 가자. 얘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올리버가 집을 나가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며 못된 짓을 일삼고 다닌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올리버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에요! 전 이 사람을 몰라요. 전 고아라고요!”

그때 잔인한 인상의 남자가 개를 데리고 다가와 소리쳤다.

네 이놈! 어서 집으로 가거라, 아니, 그 책은 뭐냐? 또 훔친 거로구나. 에잇, 나쁜 놈!”

그 남자는 책을 빼앗아 올리버의 머리를 내리쳤다. 구경꾼들은 그 남자를 칭찬하며 못된 녀석한테는 매가 약이라고 입을 모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올리버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각, 베드윈 부인은 대문을 열어놓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리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신사는 여전히 시계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어두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올리버는 어두운 골목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낸시와 사이크스가 어찌나 급하게 등을 떠미는지 울음소리조차 낼 겨를이 없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길을 따라 삼십 분쯤 더 걸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집 앞에 서서 사이크스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말했다.

됐어.”

낸시가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눌렀다 작은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내다 보았다. 잠시 후 조용히 문이 열렸다. 사이크스가 겁에 질린 올리버의 목을 거칠게 휘어 감으며 서둘러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페긴은 안에 있나?”

물론 있지요. 당신을 보면 좋아할 거예요.”

올리버에게는 그 목소리나 말투가 낯설지 않았다.

잠시 뒤 불을 켜는 소리가 들렸다. 촛불을 든 미꾸라지가 올리버를 보며 슬쩍 웃었다. 작은 뒷방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찰리였다. 페긴은 놀란 표정의 올리버를 보며 여러 차례 머리를 끄덕였다. 미꾸라지가 올리버의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다. 찰리가 잠시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페긴, 얘 옷 좀 봐요. 정말 근사하지 않아요? 진짜 죽이네! , 꼴에 책까지 들고 있네? 이거 완전히 신사 나리잖아요!”

얘야, 올리버, 건강해 보이니 참 좋구나. 미꾸라지가 다른 옷을 갖다줄 거야. 그렇게 좋은 옷을 버리면 안 되잖니?”

이윽고 올리버의 주머니를 뒤지던 미꾸라지가 오 파운드짜리 지폐를 끄집어냈다. 그 순간 사이크스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이봐, 그건 내 거야.”

페긴이 말했다.

. 이건 내 거야. 자네는 책을 가지게.”

하고 말하며 페긴이 돈을 가로챘다.

이치에 맞든 안 맞든 상관없으니 내놔, 나하고 낸시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당신이 부리는 아이를 번번이 붙잡아 바치는 줄 알아? 이 돼지 같은 욕심쟁이 늙은이야! 그 돈 이리 내놓으라니까!”

사이크스는 페긴이 들고 있던 돈을 잽싸게 빼앗아 챙겼다.

책에 관심이 있으면 당신이나 읽으라고, 싫으면 팔든가.”

그때 올리버가 두 손을 꼭 맞잡고 입을 열었다.

그건 그 신사분의 책이에요. 제가 다 죽어 갈 때 집으로 데려가 간호해 준 그 친절한 신사분의 것이라고요. 그분한테 그 책과 돈을 돌려보내 주세요. 저를 평생 여기에 가두어도 좋아요. 그분은 제가 그걸 훔쳤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제발, 부탁이에요!”

그건 그래, 이 녀석이 책을 끼고 걸어오는 걸 보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 이제는 저 애를 찾는다고 수소문하지도 않을 거야. 이놈을 찾는다는 건 바로 감옥으로 보내는 꼴이 되잖아? 하하하! 이놈은 우리와 함께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올리버는 벌떡 일어나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페긴과 어린 도둑들이 올리버를 잡으려고 뒤쫓아 나갔다. 그러자 낸시가 얼른 문을 닫으며 소리쳤다.

, 개 좀 잡아요! 개를 붙잡으란 말이에요! 개가 저 애를 물어뜯을 거야!”

사이크스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낸시를 거칠게 뿌리쳤다.

저리 가지 못해! 안 그러면 네 머리통을 벽에다 짓이겨 버릴 거야!”

낸시는 악에 받친 듯 사납게 덤벼들며 말했다.

상관없어! 개가 물어뜯게 놔둘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를 먼저 죽이라고!”

사이크스가 낸시를 한쪽 구석으로 밀쳤을 때 페긴과 두 도둑이 올리버를 질질 끌고 돌아왔다.

페긴은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며 소리쳤다.

여기서 도망쳐 경찰을 부르려고 했단 말이지. ?”

그 말과 동시에 그는 몽둥이로 올리버의 어깨를 힘껏 후려쳤다. 그가 다시 몽둥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낸시가 앞으로 달려 나와 페긴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재빨리 낚아채 난롯불 속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낸시가 소리쳤다.

세상에! 내가 이 아이를 여기에 데리고 오다니! 나는 벼락을 맞고 죽어도 싸. 얘는 오늘부터 도둑놈에, 거짓말쟁이에. 세상에 다시없는 몹쓸 악당이 되겠지.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죄다 하게 될 거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는데 왜 때리기까지 하냐고!”

페긴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 됐어! 우리, 서로 예의를 갖춰 얘기하자고.”

낸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악당아, ? 예의를 갖추라고? 나는 얘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당신을 위해 도둑질을 했으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십이 년 동안 그 짓을 해 왔다고. 말해 봐요. 그걸 몰라? 이 추악한 악당아! 오래전에 길거리로 내몬 거잖아!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길바닥을 헤매게 하겠지!”

낸시의 말은 말이라기보다는 비명에 더 가까웠다. 페긴이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입 닥치지 못해?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어!”

낸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페긴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사이크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낸시는 손목을 빼내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기절해 버렸다. 다른 도둑들은 늘 상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듯했다. 페긴이 찰리에게 말했다.

찰리 올리버를 데려다 재워라.”

찰리는 올리버를 잠자리로 데리고 갔다. 옷을 벗기고 낡은 옷을 꺼냈다. 그것은 올리버가 브라운로우의 집에서 벗어버린 옷이었다. 그 옷을 산 헌 옷 장수가 우연히 그것을 페긴에게 보여 주었고 그 덕분에 페긴이 올리버의 행방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찰리는 올리버의 방에서 나와 문을 잠갔다. 어둠 속에 올리버 혼자만 남게 되었다.

다음 날, 정오쯤이 되자 미꾸라지와 찰리는 일을 하러 나갔다.

그사이에 페긴은 올리버를 구슬리고 있었다. 자신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올리버가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가 어떤 아이를 구해 주었는데 신의를 저버리고 경찰에 밀고 하려다가 결국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올리버는 페긴의 말 속에 담긴 무시무시한 협박을 알아채고 공포에 떨었다. 페긴은 끔찍할 정도로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올리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조용히 일하면 예전처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올리버는 방 안에만 갇혀 지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채 긴긴 시간을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슬픔에 잠겨 보내야 했다. 하지만 오랜 생각을 한 끝이 항상 브라운로우가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오해할 거라는 결말에 도달하기에 더욱더 슬퍼지곤 했다.

* * * * *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어느 추운 밤이었다. 페긴이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집을 나섰다. 그는 어둡고 질퍽한 길을 한참 동안 걸어갔다. 마침내 어느 집 앞에 다다라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페긴과 문을 열어준 사람이 몇 마디를 나눈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

페긴이 방문 손잡이를 잡자마자 개가 무섭게 짖었다. 안에서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 날세, 나라고.”

들어 오슈.”

이런 낸시도 있었구먼!”

페긴이 손을 비비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트시에 있는 집 말이야. 언제 할 건가? 언제가 좋을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왜 이러나, ! 잘 알면서 왜 그래?”

안 할거요. 토비 크래킷이 보름 동안이나 그 집 주변에서 얼쩡거렸지만, 하인 하나도 꼬드길 수 없었다고 그 집 하인들이 거기서 일한 지가 이십 년이 넘는대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우리 일에 낄 사람들이 아니라는군.”

순간 페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이크스가 곁눈질로 페긴을 힐끔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페긴, 내 힘으로 일을 안전하게 끝내면 말이오. 나한테 금화 오십 냥을 더 얹어줄 수 있소?”

물론이지.”

그럼 빠른 시일 내에 하도록 합시다. 그 집은 밤에는 문이란 문은 다 잠그는데 딱 한 군데. 우리가 조용히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있었지.”

그게 어딘데?”

사이크스는 거만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알 필요는 없지. 당신이라는 사람이 누군데 내가 그걸 알려 주겠나? 당신같이 사악한 악당을 상대할 때는 조심하는 게 최고지. 그런데 몸집이 작은 아이가 하나 필요한데······.”

어린애라고? 그럼 작은 창을 이용하겠구먼. 이 사람아 올리버는 어떤가?”

좋소. 그 녀석 몸집이면 적당하지.”

사이크스는 갑자기 쇠몽둥이를 꺼내 휘두르면서 말했다.

겁을 주라고.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혹시라도 그놈이 내 말을 안 들으면 살아서 그놈을 볼 일은 없을 거요. 그러니 그놈을 여기로 보내기 전 잘 생각해 보쇼.”

언제 할 거야?”

토비하고는 모레 밤에 하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어. 별일이 없다면 말이지.”

페긴이 말했다.

좋아, 그날은 그믐이라 달도 없을 거야, 그리고 또······.”

사이크스가 말을 막았다.

,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내일 밤 그놈을 여기로 데려오기나 하쇼. 새벽에 출발할 테니까.”

세 사람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저녁에 낸시가 올리버를 데려오기로 했다. 올리버가 설령 그 일을 하기 싫어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 준 낸시라면 믿고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마친 후 페긴은 나왔다.

낸시, 잘 자라.”

잘 가요. 페긴.”

그가 더럽고 질척거리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올리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6장 도둑이 될 뻔하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올리버는 머리맡에 새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올리버, 넌 오늘 저녁에 빌 사이크스의 집으로 가야 한단다.”

올리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거기서······거기서 살아야 돼요?”

아니. 그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 올리버, 너는 우리한테 다시 오게 될 테니까.”

밤이 되자 페긴은 외출 준비를 했다. 그는 나가기 전에 올리버에게 말했다.

좀 있으면 누가 널 데리러 올 거야. 올리버, 조심해라! 빌은 무서운 사람이야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이지,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찍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알았지?”

페긴은 말을 마친 후 고갯짓을 한번하고 밖으로 나갔다. 올리버는 페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때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올리버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구세요?”

나야.”

낸시였다. 낸시의 얼굴빛이 몹시 창백했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낸시가 울부짖듯 외쳤다.

하느님,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낸시, 무슨 일이에요?”

가끔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더럽고 추운 방 때문인지도 모르지. 올리버 준비는 됐니?”

같이 가야 해요? 뭣 때문에 가는 거예요?”

낸시는 올리버의 눈을 피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하렴.”

올리버는 낸시가 자신을 동정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망치게 도와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열한 시도 안 되었으므로 밖에 나가 살려 달라고 소리를 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낸시는 올리버를 조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올리버가 잠깐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벌써 짐작했다.

! 소용없는 짓이야. 넌 지금 포위된 거나 마찬가지거든, 도망을 치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올리버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낸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낸시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네가 맞아 죽을 뻔했을 때. 내가 목숨을 걸고 막아줬지? 앞으로 그런 일이 있다면 또 그럴 테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거야. 네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해를 끼칠 거야.”

낸시는 자신의 목과 팔에 난 검푸른 상처를 보여 주었다.

꼭 명심해라! 너 때문에 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해줘, 너를 도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지금 나한테는 힘이 없단다.”

낸시는 촛불을 끈 다음 올리버의 손을 잡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올리버를 데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커튼을 쳤다.

마부는 전속력으로 마차를 몰았다. 올리버는 거리를 향해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낸시가 가여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동안 기회는 사라지고. 어느새 마차는 빌 사이크스의 집 앞에 멈췄다.

왔구먼! 어서 올라와 조용히 따라왔겠지?”

낸시가 대답했다.

양처럼 순하게 따라왔어요.”

아무렴, 그래야지, 안 그랬다면 네 몸이 성치 못했을 거다!”

사이크스는 탁자 위에 있던 권총을 집어 들며 물었다.

너 이게 뭔지 아느냐?”

, 알아요.”

사이크스는 권총을 장전한 다음 총구를 올리버의 관자놀이에 바짝 대고 말했다.

밖에 나가면 내가 말을 걸 때를 제외하고는 찍소리도 하지 마. 입을 열었다간 이 권총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너 같은 놈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누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올리버는 소스라치게 놀라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크스는 만족한 듯 말했다.

, 이 녀석도 잘 알아들었을 테니, 저녁이나 먹고 한잠 자 둬야지, 낸시. 뭐 먹을 것 좀 내와 봐.”

사이크스는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면서 낸시에게 새벽 다섯 시에 깨워 달라고 했다. 낸시는 난로 앞에 앉아 불기가 꺼지지 않도록 불을 뒤적였다. 올리버는 낸시가 무슨 말이라도 해 줄까 싶어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불꽃만 바라보고 있었다. 올리버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새벽에 사이크스는 여러 가지 장비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컴컴했고. 빗줄기가 요란하게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사이크스는 올리버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낸시는 난로 앞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무척이나 음산한 아침이었다. 마침 장이 서는 날이라 거리는 장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끌고 온 가축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이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끌고 나갔다.

뒤쪽에서 빈 수레가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그 마차를 타고 여러 개의 이정표를 지난 후, 두 사람은 어느 술집 앞에서 내렸다. 그곳으로 올리버를 데리고 들어가 간단히 요기를 했다.

여행에 지쳐 있던 올리버는 배가 불러오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는 술집에서 만난 남자에게 마차를 부탁해 놓았다.

좁은 오솔길을 지나고 들판을 지나자 사방이 아주 어두워졌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온몸을 싸고 돌았다. 오랜 시간을 달려 마차는 어느 낯선 거리에 멈춰 섰다.

사이크스는 올리버를 잡아끌고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자마자 어디선가 크고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야!”

사이크스가 문에 빗장을 지르며 말했다.

젠장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마. 토비. 불 좀 켜.”

그곳에는 사내 하나가 다 낡아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소파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 토비였다.

어이, 빌 반갑군,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해서 안 오는 줄 알았지. 자네가 오지 않으면 혼자서 일을 할 작정이었네. 이 꼬마는 누구야?”

페긴의 애들 중 하나야. , 먹을 거나 좀 줘, 기운을 차려야 뭘 해도 하지. 올리버 너도 불 가에 앉아서 좀 쉬어라. 오늘 밤에 또 나가야 하니까.”

토비가 식탁 위에 음식과 술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잔을 들게나. , 우리의 성공을 위해 건배!”

사이크스와 토비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키고 정신없이 음식을 집어 먹었다. 배를 채운 후 두 사내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올리버도 낡은 소파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 한 시 반이 되자 토비가 일어나 사이크스와 올리버를 깨웠다. 토비는 벽장에서 권총 두 자루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마스크와 송곳, 그리고 굵은 몽둥이도 챙겼다.

두 사람은 올리버를 양쪽에서 잡고 밖으로 나갔다. 한밤중이라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고 안개가 짙어져 무척이나 적막했다. 곧 처트 시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에 도착하자 사이크스가 속삭였다. 멀리 교회의 종이 새벽 두 시를 알렸다. 골목으로 접어들어 몇백 미터가량 더 걷자, 담으로 둘러싸인 고급스러운 집이 나왔다. 토비가 눈 깜빡할 사이에 담장 위로 올라가 말했다.

애를 들어 올려 내가 잡을 테니까.”

올리버가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사이크스는 올리버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 사이크스가 뒤따라 담을 넘어왔다.

올리버는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 먼 데까지 온 이유가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두려움으로 온몸이 떨려 왔다. 얼굴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더니.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이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화가 난 사이크스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며 낮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일어나! 안 그러면 네놈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어!”

올리버는 울면서 사정했다.

제발 절 보내 주세요! 차라리 들판에서 죽게 놔주세요! 런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저를 불쌍히 여겨서 제발, 제발 도둑질만은 시키지 마세요!”

토비가 사이크스 손에서 권총을 빼앗고는 한 손으로 올리버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여기서 총을 쏘면 안 돼, 이놈이 한 마디만 더하면 내 손으로 직접 머리통을 박살 내버릴 거야. , 쓸데없는 짓 할 생각 말고 어서 창문이나 열어, 얘는 이제 괜찮을 거야. 이만한 나이에 겁먹는 것은 당연하지 뭘 그래.”

사이크스는 창의 덧문에 송곳을 지렛대처럼 끼워 부지런히 움직여서 열고 그 안에 격자창도 손쉽게 열었다. 창문은 땅에서 백칠십 센티미터쯤 되는 높이에 있는데 창이 워낙 작아서 그랬는지 그 집 사람들은 이 창문만은 허술하게 단속해 놓고 있었다. 작기는 해도 올리버만 한 아이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사이크스가 등 하나에 불을 붙이며 속삭였다.

잘 들어, 이 녀석아. 너를 저 창문으로 밀어 넣을 테니 앞에 있는 계단을 곧장 올라가라 그런 다음 작은 거실을 지나서 현관문을 열면 우리가 들어갈 거야.”

토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등으로 발판을 만들고 사이크스는 그의 등에 올라 올리버를 들어 올리고는 다리부터 바닥에 닿게 창문으로 밀어 넣은 뒤 살며시 내려놓았다.

, 이 등을 들고 가라. 저기 앞에 계단이 보이지?”

올리버가 죽어 가는 사람처럼 희미하게 대답했다.

.”

어서 가. 머뭇거리면 네놈을 바로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거다. . 순식간에 끝날 거야. 내가 널 놔 주자마자 얘기 한 대로 하거라, 가만, 잠깐!”

토비가 갑자기 귀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무슨 소리지?”

그들은 순간적으로 잔뜩 긴장했다. 잠시 깊은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사이크스가 올리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 가라.”

갑자기 사이크스가 사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돌아와! 다시 돌아와!”

곧이어 집 안에서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이어졌다. 올리버는 너무나 겁에 질려 들고 있던 등을 떨어뜨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고함 소리가 여러 번 반복되고 집안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어디선가 쾅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연기가 나면서 뭔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올리버는 비틀거리며 창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사이크스가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올리버의 옷깃을 잡았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권총을 쏜 후 올리버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나를 더 꼭 붙잡아.”

그러고는 토비에게 소리쳤다.

애가 총 맞았어, 젠장 피를 흘려!”

시끄러운 종소리, 누군가의 고함 소리, 권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뒤섞였다. 올리버는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빠르게 실려 가는 느낌을 받았다. 혼란스러운 소리가 차츰 멀어지는 동시에 뭔가 모를 차갑고 끔찍한 느낌이 올리버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올리버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7장 페긴과 멍크스의 음모

페긴이 난로 앞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뒤에서는 미꾸라지와 찰 리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카드를 나누던 미꾸라지가 갑자기 손을 멈추며 외쳤다.

잠깐 종소리가 났어요!”

미꾸라지는 촛불을 들고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뒤 미꾸라지가 페긴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페긴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뭐라고? 혼자서? 가서 데리고 와.”

미꾸라지는 페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곧 허름한 사내를 데리고 들어왔다. 토비 크래킷이었다.

페긴, 어떻게 지내시오?”

그러고는 난롯가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말을 이었다.

천천히 얘기할 테니, 일단 뭘 좀 먹어야 입이 열리겠어. 사흘 동안 제대로 먹은 적이 없거든.”

페긴은 미꾸라지에게 음식을 모두 식탁에 갖다 놓으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그 도둑 앞에 앉아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찰리와 미꾸라지를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페긴이 초조해 하며 재촉했다.

그래, 어서 말해 보게.”

빌은 지금 어떤가요?”

페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듯 되물었다.

뭐라고?”

실패했소,”

페긴이 주머니에서 신문지 조각을 꺼내 툭 내던지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애가 총에 맞았어요. 우리는 뒤쪽 벌판으로 냅다 달렸는데 그놈들이 어찌나 바짝 쫓아오던지······, 동네 사람들이 다 깨어나 난리를 치는 데다. 개들까지 몰려왔다고.”

아이는?”

빌이 아이를 업고 도망쳤소. 그러다 애를 양쪽에서 끌어안고 뛰려고 멈췄는데. 이미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차갑게 식어 버렸더라고, 게다가 사람들은 우리를 빠짝 쫓고 있고 우리도 살아야 했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줄행랑을 쳤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나도 몰라요.”

페긴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좁은 골목과 샛길로 재빠르게 걸었다. 얼마 뒤 그는 온갖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담배 연기가 워낙 자욱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찾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술집 주인과 눈길이 마주쳤다. 주인이 그를 계단 앞까지 따라 나오며 물었다.

페긴 씨, 무슨 일이오? 합석해서 같이 놉시다. 다들 반가워할 텐데.”

페긴은 조급하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멍크스 왔나?”

주인이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며 말했다.

안 왔소. 나도 기다리는 중이오. 한 십 분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텐데······.”

아니, 아닐세. 그 사람한테 내가 왔었다고 하고, 오늘 밤 나한테 오라고 전해주게.”

페긴은 술집을 나와 잠시 궁리를 하다가 사이크스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기척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낸시는 술에 취한 듯 흐트러진 자세로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인기척에 낸시가 깨어났다. 그녀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무슨 소식 있어요.”

페긴은 토비가 전해준 이야기를 낸시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낸시는 다시 탁자에 엎드리더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페긴은 사이크스의 흔적이 있는지 방 안을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낸시, 지금 빌이 어디에 있을 것 같니?”

모르겠어요.”

낸시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불쌍한 어린 것을 버리고 혼자 도망치다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구나.”

낸시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 애는 차라리 거기에 있는 게 나아요. 우리랑 같이 있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다고! 그 애를 보면 난 나도 모르게 당신들한테 대들게 된다고요!”

내 말 잘 들어! 내 말 한마디면 빌은 바로 교수형을 당하게 될 거야. 만약 그놈이 혼자 돌아온다면 만약 애가 죽었거나 도망가 버려서 나한테 돌려주지 못한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 명심하라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올리버가 나한테 어떤 놈인지 알아? 그 녀석은 나한테 수백 파운드의 값어치가 나가는 놈이라고,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벌 기회가 왔는데. 그깟 주정뱅이 깡패 놈 때문에 그 돈을 날려 버려야겠어? 게다가 난······.”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숨을 헐떡이며 말을 하던 페긴이 갑자기 움찔 놀라 입을 닫았다. 그는 자기가 무슨 비밀을 발설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낸시를 살폈다. 그러나 낸시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낸시 내 말이 신경에 거슬렸나?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어떻게 생각해?”

나한테 뭘 시키려면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야 할 거예요. 아니면 내일까지 기다리든가. 지금은 다시 어지럽거든요.”

어느덧 밤 열한 시였다. 기분 나쁘게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통에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페긴이 집에 도착해 열쇠를 찾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속삭였다.

페긴!”

페긴이 재빨리 몸을 돌려 상대를 살폈다.

여기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소. 도대체 어딜 다녀오는 거요?”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페긴은 사내를 이 층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낯선 사내의 물음에 페긴이 변명을 하고 있는 듯했다. 사내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애초부터 계획을 잘못 세웠던 거요! 왜 그놈을 여기에 두고 소매치기를 시키지 않은 거요? 다른 애들한테는 늘 그렇게 했으면서 말이야. 조금만 참았더라면 경찰이 그놈을 붙잡아다가 알아서 이 나라 밖으로 영원히 추방시켰을 텐데.”

그렇게 되면 누구 좋으라고?”

물론 나요.”

그래, 멍크스, 자네한테나 좋겠지. 나한테는 좋을 게 없어, 거래를 할 때는 양쪽 다 이익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안 그래?”

그래서 뭐요?”

그 애한테는 이 일을 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는 말이야. 그 애는 다른 놈들하고는 좀 달랐거든.”

달랐겠지! 아니면 벌써 도둑놈이 됐을 것 아니오.”

그 애는 길들일 수가 없었어. 녀석을 겁줄 만한 게 뭐라도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그건 내 잘못이 아니오.”

물론 아니지. 아니야. 나는 자네를 탓하는 게 아니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자네가 그 애를 보고 누군지 알아챌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그 여자를 시켜서 애를 찾아 놓으니까 이제 그 여자가 애를 싸고도는 거야.”

멍크스가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그런 년은 목을 졸라 없애 버리라고!”

페긴이 비열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하지만 멍크스, 나는 그런 여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네. 그 꼬마가 도둑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여자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나무토막만도 못하게 여길 거란 말일세! 자네는 그 애를 도둑놈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닌가? 그 녀석이 살아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만들 수 있네. 하지만 만약에······ 불행하게도 그 애가 죽었다면······.”

멍크스의 얼굴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페긴의 팔을 꽉 움켜잡으며 말했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오. 페긴, 확실히 하라고! 나는 그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 내가 언제 그 애를 죽이라고 말했소? 그냥 나쁘게만 만들어 달라고 했잖아, 만약 그 애가 죽었다 해도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알아듣겠소? , 저건 뭐야?”

페긴이 벌떡 일어났다.

뭐가 말인가? 어디?”

멍크스가 맞은편 벽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외쳤다.

저기요! 저 그림자! 웬 여자의 그림자가 벽을 따라 지나가는 걸 봤단 말이오!”

그들은 방에서 뛰어나갔다. 계단도 복도도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은 잠시 귀를 기울였지만 자신들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깊은 정적만 감돌 뿐이었다. 페긴이 멍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헛것을 봤구먼.”

멍크스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틀림없이 봤다니까!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다가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달아나 버렸다고!”

멍크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페긴은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다가 위층을 둘러보고 싶다면 둘러보라고 말했다. 그들은 방을 모조리 다 살펴보았지만 싸늘한 냉기만 돌 뿐 아무것도 없었다. 복도를 샅샅이 뒤지고 지하실도 내려가 보았지만, 모두 다 텅 빈 채 죽음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8장 행복이 찾아오다

사이크스는 피를 흘리고 있는 올리버를 마른 땅에 내려놓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고함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리고 덩달아 개들도 여기저기서 짖어 댔다. 토비가 저만치서 도망치고 있었다.

사이크스가 소리쳤다.

거기 서, 이 겁쟁이야! 당장 와서 아이를 같이 부축하자고!”

사이크스는 권총을 꺼내 휘두르며 돌아오라고 다시 한 번 외쳤다. 그사이 사람들은 벌써 들판 울타리까지 뒤쫓아 왔고, 개 두 마리는 벌써 사이크스의 바로 뒤꽁무니에 있었다.

, 다 끝났어! 애를 놓고 도망쳐!”

토비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사이크스는 쓰러져 있는 올리버의 몸 위에 외투를 벗어 던져 덮어 놓았다. 그리고 뒤쫓아 오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양으로 올리버가 누워 있는 곳에서 맞은편에 있는 울타리로 곧장 달려갔다. 그는 거기서 권총을 하늘 높이 한 발을 쏜 후 단숨에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망쳤다.

총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개들을 소리쳐 불렀다. 그중 뚱뚱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즉시 집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자일스 씨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찬성이에요.”

하고 브리틀스가 대답을 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시에 뒤돌아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일스와 브리틀스는 강도를 당할 뻔한 그 집의 집사와 하인이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올리버는 사이크스가 버리고 간 그 자리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아침이 다가오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거세졌지만 올리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한참 후에 올리버가 겨우 눈을 떴다. 왼쪽 팔이 아무런 감각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몸을 덮은 외투는 피로 푹 절어 있었다. 올리버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다가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정신이 든 올리버는 그 자리에 그냥 있다가는 죽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걸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큰 저택이 보였다. 집 근처에서 바라보니 전날 밤 두 사내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던 그 집이었다.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대문을 밀었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 계단으로 기어올랐다. 그러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린 후, 현관 기둥에 기대어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는 마침 자일스와 브리틀스, 그리고 떠돌이 땜장이가 부엌에서 차를 마시며 도둑이 들었을 때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중이었다. 그때 요리사와 하녀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이른 아침에 문을 두드리다니 이상한 일이네. 하지만 문을 열긴 열어야겠지, 누가 좀 가봐.”

그러나 서로 미루고 문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브리틀스가 문을 열 때 내가 옆에 있어 주지.”

브리틀스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문을 열기로 했다. 문을 열고 그들이 목격한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다 죽어가는 어린아이였다.

아니, 그놈이네!”

자일스가 브리틀스를 뒤로 밀치며 말했다. 그는 올리버를 끌고 들어와 거실 바닥에 눕히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님, 잡았어요! 도둑놈 하나를 잡았습니다! 마님, 아가씨! 도둑놈이에요! 다쳤어요. 아가씨, 제가 쏜 놈이에요!”

이 소란 중에 계단 위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일스!”

젊은 여자가 말했다.

! 조용히 하세요! 안 그래도 고모님이 간밤의 사건 때문에 많이 놀라셨는데/ 이번에는 여러분들이 놀라게 해 드리고 있잖아요. 그래, 그 도둑은 많이 다쳤나요?”

아가씨, 아주 많이 다쳤어요. 곧 죽을지도 몰라요. 내려와서 한번 보실래요?”

조용히 하세요. 고모님께 말씀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사뿐히 사라지더니 곧 다시 돌아와서는 다친 사람을 자일스의 방으로 데려다 놓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브리틀스에게 지금 경관과 의사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자일스는 자신이 진귀한 새라도 잡은 것처럼 자부심에 들떠 우쭐거리며 말했다.

아가씨 우선 이놈을 한번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자일스, 지금은 아니에요. 불쌍하기도 해라! 자일스, 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자일스는 조심스럽게 올리버를 안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안락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진 방에서 두 여인이 아침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자일스가 검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시중을 들었다.

두 여인 중 노부인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자는 열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가냘프고 우아한 몸매에 상냥하고 순수한 태도가 어우러져 이 세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속세의 거친 사람들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뚱뚱한 신사가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이런 일은 처음 들어 봤네! 메일리 부인,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것도 한밤중에 말입니다!”

그 뚱뚱한 신사의 이름은 로즈번이었는데. 그 지역에서 친절하기로 유명한 의사였다. 그는 이 집에 예고도 없이 한밤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그는 도둑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전에 우편으로 통보한 다음에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로즈 양은 괜찮은······.”

로즈가 그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 그럼요! 괜찮아요. 그보다 선생님께서 봐주셔야 할 사람이 위층에 있어요. 그래서 고모님이 오시라고 한 거예요.”

로즈번은 자일즈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꽤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목숨이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도둑은 보셨나요?”

아니요.”

메일리 부인이 로즈번에게 말했다.

실은 로즈가 그 사람을 봤으면 했는데 내가 말도 못 꺼내게 했어요.”

보셔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보시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 환자는 아주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입니다. 두 분 다 오셔서 한번 보시죠.”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흉악한 얼굴의 범죄자가 아니라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어린아이였다.

로즈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더니 눈물을 흘리며 올리버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그녀가 올리버에게 몸을 기울일 때 눈물 한 방울이 그의 이마로 떨어졌다. 올리버는 자면서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메일리 부인이 소리쳤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도둑과 한패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부인, 범죄라는 것이 어리고 귀여운 아이들도 그런 데 가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로즈가 물었다.

하지만 선생님, 정말로 이 가냘픈 아이가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다고 생각하세요? 학대를 받다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억지로 하게 된 건지도 모르잖아요. 고모님, 저 아이가 감옥에 끌려가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주세요. 저도 고모님의 사랑과 배려 덕분에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저한테 하셨듯이 저 아이한테도 동정을 베풀어 주세요! 너무 늦기 전에요.”

메일리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로즈를 안으며 따뜻하게 말했다.

얘야. 내가 저 아이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치게 할 것 같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 인생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단다. 그런데 로즈번 선생님, 어떻게 하면 저 아이를 구할 수 있을까요?”

아이는 한 시간쯤 지나면 깨어날 것 같아요. 깨어나면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제가 제안을 하나 하지요. 아이가 깨어나면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본 다음 나쁜 물이 제대로 든 아이라면,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런 개입도 하지 말고 그 아이가 자기 운명대로 가도록 놔둡시다.”

로즈가 애원하듯 말했다.

저 애가 정말로 나쁜 범죄자일 리 없어요.”

로즈번이 대꾸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 제안대로 하는 게 맞겠지요.”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그제야 로즈번은 올리버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기운을 차렸다고 알려 주었다.

메일리 부인과 로즈가 올리버에게 다가갔다. 올리버는 피를 많이 흘린 탓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통증 때문에 이따금씩 말을 멈추곤 했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엾은 어린아이가 잔인한 어른들 때문에 겪어야 했던 온갖 고난들을 듣고 있자니. 세 사람의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이야기를 마친 올리버는 친절한 사람들의 다정한 손길 아래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로즈번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자일스를 찾으러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브리틀스와 땜장이, 하녀가 함께 있었다.

자일스가 로즈번에게 물었다.

아이는 어떤가요?”

그런대로 괜찮네, 그런데 말이야 골치 아프겠어?”

그 말에 자일스가 덜덜 떨며 물었다.

저 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것은 아니죠? , 맙소사! 그렇게 되면 저는 끔찍하게 비참한 여생을 보낼 겁니다. 어린애의 목숨을 끊어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로즈번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네들 말이야. 위층에 있는 저 아이가 지난밤에 들어온 그 도둑이라는 걸 장담할 수 있나? 똑바로 말해야 해!”

평소에는 온화하기로 소문난 로즈번이 짐짓 화난 표정으로 무섭게 말하자. 자일스와 브리틀스는 당황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 정리해 보자고! 한밤중에 도둑이 들었다. 집안은 온통 컴컴한데다 화약 연기가 자욱하고 우왕좌왕 난리가 났지. 그 혼란 중에 두 남자가 사내아이를 목격하고 총을 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한 아이가 찾아왔다, 두 남자는 아이가 총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난폭하게 굴었고, 그 때문에 아이의 생명이 위독해졌다. 어디서 총상을 입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두 남자는 그 아이가 도둑이라고 장담하고 있어. , 문제는 두 남자의 주장이 사실이냐는 것이네, 자네들은 그 아이가 정말로 도둑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자일스와 브리틀스는 서로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때 마차 바퀴 소리가 나더니 곧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관들이구나!”

런던에서 경관들이 왔어요. 오늘 아침 역마차 편으로 전갈을 보냈거든요.”

로즈번은 잘 되어 가던 일이 틀어지는가 싶어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곧 경관 두 명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로즈번은 그들에게 사건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웬 아이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를 보고 싶소.”

로즈번은 경관들을 올리버가 누워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이 아이가 바로 그 소년이오. 이 근처 어디선가 우연히 총에 맞았다가 오늘 아침에 이 집으로 도움을 청하러 왔소. 그런데 이 집의 집사가 이 사람이 부상당한 아이를 도둑과 한패라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라오,”

자일스는 겁에 질려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경관이 물었다.

그래······이 아이가 도둑인 것은 확실한 거요.”

그게······ , 모르겠습니다. 확실히······확실하다고 맹세할 수는 없어요.”

확실하지 않다?”

아닌 것 같아요. ······ 그래요. 확실히 아니에요!”

경관은 자일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그런 다음 자일스가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으며. 올리버는 도둑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후 돌아갔다.

올리버는 메일리 부인과 로즈, 그리고 친절한 의사 로즈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그 집에 머물게 되었다. 덕분에 마음의 안정은 찾았지만, 몸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올리버는 울먹이면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몸이 건강해지면 은혜를 갚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가엾어! 네 마음이 그렇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우리는 곧 시골로 내려갈 건데. 너도 데려갈 생각이란다. 건강해지면 네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단다.”

올리버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가씨를 위해서 일하게 된다니 너무 기뻐요. 무슨 일이든 다 하겠어요.”

그래, 너는 우리한테 정말로 큰 가쁨을 줄 거야. 은혜를 잊지 않고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잖니? 우리한테는 그것이 훨씬 더 큰 기쁨이란다.”

하지만 전 은혜를 저버리는 짓을 했어요. 어느 신사 분과 다정한 할머니한테 말이예요. 제가 이렇게 행복한 걸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 텐데······.”

걱정하지 마, 로즈번 선생님이 네가 완전히 낫기만 하면 너를 데리고 그분들을 찾아가겠다고 벌써 약속하셨거든.”

얼마 후 올리버가 건강을 되찾자 로즈번은 올리버를 데리고 브라운로우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브라운로우와 그의 괴팍한 친구, 그리고 베드윈 부인은 멀리 떠나고 없었다. 올리버는 자기를 영영 도둑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보름쯤 지나자 새싹이 돋고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메일리 부인과 로즈는 올리버와 함께 몇 달 동안 시골 별장에서 지내기 위해 짐을 꾸렸다.

그곳에서 올리버는 근처에 사는 노인을 찾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메일리 부인과 로즈와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하였다.

올리버는 그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히 받아들였다. 어느새 메일리 부인과 로즈, 그리고 올리버 사이에는 가족 간에 느낄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이 감돌고 있었다.

 

9장 증거가 강물 속으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몹시 추운 밤이었다. 올리버가 태어났던 구빈원의 간호부장인 코니 부인은 벽난로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생각나 울적해지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코니 부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한 남자가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코니 부인.”

어서 들어오세요. 정말 독하게 추운 날이에요.”

코니 부인은 상냥하게 그를 맞았다. 그는 자그마한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범블은 보따리를 풀면서 말했다.

환자용으로 나온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왔어요. 맛이 굉장히 좋아요.”

병을 서랍장에 놓고 돌아가려는 듯 모자를 들었다. 그러자 코니 부인이 수줍게 말했다.

돌아가시는 길이 추운데 차나 한잔 드실래요?”

범블은 기다렸다는 듯이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코니 부인은 평소의 사무적인 태도로 돌변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비쩍 마른 노파가 문을 열고 말했다.

샐리 할멈이 지금 막 가려는 참인데. 마님한테 꼭 할 말이 있다고 하네요. 마님이 오시기 전에는 죽을 수 없대요.”

코니 부인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두꺼운 숄을 걸치고는, 범블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후 방에서 나갔다.

혼자 남은 범블은 다소 이상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찬장을 열어 은수저가 몇 개 있는지 세어보고 은제 우유 단지를 자세히 살펴보며 진짜 은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그는 코니 부인의 재산 상태에 관한 자신의 궁금증을 모두 해소한 후 의자에 앉아 머릿속으로 정확한 재산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코니 부인은 병든 노파가 있는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름한 방이었다. 방 한쪽에 희미한 등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샐리 할멈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코니 부인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침대 한쪽 끝에 앉았다.

샐리 할멈을 돌보던 두 노파가 난로 앞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니 부인이 조용히 하라고 쏘아붙였다.

코니 부인이 나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두 노파가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붙잡았다. 샐리 할멈이 몸을 일으켜 코니 부인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이리 와 봐요, 할 말이 있어요.”

코니 부인은 두 노파가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 할멈들은 내보내, 어서!”

두 노파가 나가자 샐리 할멈은 남은 힘을 쥐어 짜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십 년 전쯤에 이 방에서······바로 이 침대에서 아주 예쁘고 젊은 여자를 간호한 적이 있었지. 얼마나 오래 걸었던지 발이 온통 상처투성이였어. 그 여자는 사내아이를 낳고 죽었지. 그런데······ 내가 뭘 어쨌더라······? 내가······ 옳지! 내가 그 여자 물건을 훔쳤어. 내가 말이야······. 몸이 차갑게 식기도 전에, 내가 그걸······.”

도대체 뭘 훔쳤다는 거예요?”

그건······그 여자가 가진 전부였어. 몸이 그 지경이 되면서도 고이 간직하고 있던 거라고, 자기 가슴에 말이야. 금으로 된 거였지 분명 그랬어!”

코니 부인의 눈이 두 배로 커지는 듯했다. 그녀가 다그쳤다.

금이라고요? 계속 말해 봐요. 그 여자는 누구였죠? 언제 그런 거죠?”

샐리 할멈은 한층 더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여자가 그걸 잘 보관해 달라고 했는데······. 내가 그 여자 옆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난 그 여자 목에 걸려 있던 그걸 처음 본 순간부터 훔치겠다고 마음 먹었지······, 아마 아이는 죽었겠지. 자랄수록 그 여자와 똑같아져서, 아이를 보면 자꾸······ 그날 일이 생각났어. 불쌍하기도 하지! 그렇게 어린아이였는데······ 그렇게 예쁘장했는데······.”

그 애 엄마가 죽기 전에 말했어. 아이가 무사히 자라면 언젠가······ 엄마가 누군지 알게 돼도 부끄럽지 않은 날이 올 거라고······.”

그 애 이름이 뭐였죠.”

올리버······그래, 올리버라고 했어. 내가 훔친 건······.”

코니 부인은 대답을 들으려고 샐리 할멈의 얼굴 쪽으로 몸을 숙이며 외쳤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정신없이 웅얼거렸다. 그러다가 몸을 축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화가 난 코니 부인은 샐리 할멈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때 이불자락을 쥔 할멈의 손에 뭔가가 보였다. 코니 부인은 그것을 집어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샐리 할멈이 죽던 그날, 코니 부인의 재산 상태를 꼼꼼히 점검한 범블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두 사람은 곧 결혼을 했고 얼마 후에 범블은 구빈원장이 되었다.

결혼한 지 겨우 두 달째였지만, 범블은 마치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불행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 범블 부인으로 불리는 그녀가 결혼과 동시에 괴팍하고 비열한 본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는 쫓겨나다시피 구빈원에서 나와 거리를 쏘다녔다. 어느 순간 심한 갈증을 느낀 그는 뒷골목의 한 허름한 술집 안을 잠시 살펴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에는 손님이 한 사람뿐이었다. 범블이 들어서자, 그는 곁눈질로 범블을 바라보았다.

범블은 그 사내의 정체가 궁금해서 신문을 읽는 척하며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그런데 그때마다 눈이 마주쳐 당황했다. 갑자기 낯선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걸며 다가왔다.

아까 안을 쳐다볼 때 나를 찾는 게 아니었소?”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당신을 모르오.”

낯선 사내가 빈정거리듯 차갑게 말했다.

나를 찾는 게 아니었군, 하지만 나는 당신을 알고 있소, 전에 구빈원에서 관리로 일하지 않았소? 그래, 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오?”

구빈원 원장이오.”

낯선 사내가 범블의 눈을 매섭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나는 당신을 찾으려고 이곳에 온 거요. 우연히 당신이 내가 앉아 있는 이 술집에 들어왔지. 알고 싶은 게 좀 있소.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공짜로 달라는 것은 아니니 염려 마시오.”

사내는 금화 두 닢을 탁자 위에 꺼내어 범블 쪽으로 쓰윽 밀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오. 가만있자. 십이 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이오. 늦은 밤에 이곳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소.”

범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런 애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나는 한 놈에 대해서 말하는 거요! 아주 순진하게 생겨 먹은 녀석이 장의사 밑에 들어갔다가 도망친 녀석 말이오. 그놈이 런던으로 도망쳤다고 하던데?”

아하! 그 녀석 올리버 트위스트를 말하는 거로군! 물론 기억하지, 그놈은 고집이 세고 또······.”

사내가 범블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놈이 아니오. 그 애의 어미를 간호했던 할멈이 궁금한 거요. 그 할망구는 지금 어디에 있소?”

어디 있냐고? 난처한 질문이군······ 두 달 전에 죽었소.”

이 말을 들은 사내는 공허하고 멍한 눈으로 한동안 범블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나 범블은 돈을 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즉시 눈치챘다. 그는 아내에게 청혼하던 날, 아내가 샐리 할멈의 임종을 지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내가 할멈과 뭔가 내용은 모르지만 비밀스러운 대화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범블은 사내에게 그 노파의 임종을 지켜본 여자를 알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그 여자를 만날 수 있소?”

나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오.”

언제 만날 수 있겠소?”

내일.”

사내는 주소를 적어주며 말했다.

내일 밤 아홉 시에 봅시다. 오늘 일을 비밀로 해두라는 말을 따로 할 필요는 없겠지, 당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니까.”

사내는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갔다. 범블은 종잇조각을 내려다보다가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를 뒤쫓아가 물었다.

누구를 찾아야 하오?”

멍크스!”

낯선 사내의 모습이 빠르게 사라졌다.

다음 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칙칙하고 무거운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범블 부부는 시내를 벗어나 이 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한때 인근 지역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던 공장이었지만, 공장이 망하자 그냥 방치된 것이었다. 건물은 강변에 닿아 있는 데다 지대가 낮아 습기가 눅눅하게 배어 있었다.

범블 부부는 그 부실한 건물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범블은 손에 들고 있는 종이쪽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집이 틀림없는데.”

그때 누군가 위에서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요. 곧 내려가겠소.”

멍크스는 작은 문을 열고 나타나 조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들어오시오!”

범블 부부가 자리에 앉자, 멍크스가 말했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소? 그래, 이 여자가 그때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거요?”

범블 부인이 자기가 자세히 알고 있다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먼저 얼마를 줄 건지 짚고 넘어가자고 했다.

멍크스는 이십 파운드를 제시했다. 그러자 범블 부인은 이십오 파운드로 하자고 했다.

이십오 파운드라고!”

그것도 사실 소박하게 부른 거예요. 내가 아무 가치도 없는 내용을 말하면 돈을 도로 가져가면 되잖아요.”

멍크스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 이십오 파운드요 이제 당신 얘기를 들어봅시다.”

그 할멈의 이름은 샐리였어요. 샐리 할멈이 죽기 직전에 나랑 단둘이 있었는데, 십여 년 전쯤에 사내아이를 낳고 곧바로 죽은 여자 얘기를 했죠. 그 사내아이가 당신이 말했다는 바로 그 아이예요. 할멈은 자기가 산모의 물건을 훔쳤다고 했어요. 산모는 죽기 전에 어떤 물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대요. 그런데 샐리 할멈이 그 물건을 훔친 거죠.”

멍크스가 꽤나 흥분해서 대들 듯이 물었다.

그걸 팔았다고 하던가?”

할멈은 힘겹게 거기까지 얘기하고는 죽어버렸어요.”

멍크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게 다요? 거짓말이야! 나랑 장난치자는 건가, ? 분명히 얘기가 더 있을 거야.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둘 다 살아나갈 수 없을 거요!”

그 이상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불자락을 쥔 할멈의 손에서 뭔가 보였어요. 억지로 손을 펴 보니, 더러운 종잇조각이 하나 있더군요. 전당포 보관증이었죠. 이틀 뒤가 만기더군요. 뭔가 돈이 될만한 것을 맡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즉시 그 물건을 찾아왔어요.”

지금 어디 있소?”

여기요.”

범블은 탁자 위에 가죽 주머니를 내던졌다. 멍크스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는 두 개의 머리 타래와 금으로 만든 소박한 반지가 있었다. 멍크스는 그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본 후 말했다.

이게 전부요.”

전부예요. 당신이 기대했던 건가요.”

그렇소.”

멍크스는 가죽 주머니에 작은 납 조각을 매달고는 강으로 던졌다.

됐소! 이제 갑시다. 앞으로 우리가 어디서 다시 만나든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알겠소?”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해져 있었다.

 

10장 낸시와 로즈의 만남

멍크스와 범블 부부가 이상한 만남을 가진 다음 날 저녁이었다. 사이크스는 잠을 자다가 깨어나,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로 낸시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일곱 시가 넘었어요. , 오늘은 좀 어때요?”

힘이 하나도 없어. 이봐. 이 빌어먹을 침대에서 벗어나게 나 좀 부축해줘.”

몸이 아파도 그 포악한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굼뜨다는 등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등 연신 욕설을 퍼부으며 낸시의 뺨을 후려쳤다.

난 매일 방 당신을 내 아이라도 되는 양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돌봤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요. 제발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말해줘요,”

낸시는 서러운 듯 울먹거렸다.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그런데 왜 우는 거야?”

그때 페긴이 미꾸라지와 찰리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다 온 거요?”

바람은 무슨 바람. , 그래도 내가 도와주니 몸이 좋아졌군, 그래.”

사이크스가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도와줬다고? 이 배신자 늙은이!”

사이크스가 다시 페긴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밤에 착수금을 줘야겠소.”

페긴이 양손을 쳐들면서 말했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야 어쨌거나 지금 당장 돈을 주지 않으면 그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페긴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았네. 곧 미꾸라지를 통해 보내겠네.”

그건 안 돼. 미꾸라지는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거든. 낸시를 보낼 테니 직접 주쇼. 그동안 나는 잠이나 실컷 자야겠소.”

페긴은 낸시와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 일을 하라며 찰리와 미꾸라지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고는 낸시에게 말했다.

, 낸시, 돈을 가져올게. 잠시만 기다려라. 잠깐, !”

페긴이 갑자기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기 누구야? 낸시 무슨 소리 못 들었냐?”

그 순간 누군가 중얼거리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멍크스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왔다가 낸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낸시는 멍크스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애들 중 하나라네 걱정하지 말게.”

페긴은 멍크스에게 위층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신호를 했다. 그러고는 낸시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멈추자. 낸시는 신발을 벗고 방에서 몰래 나가 위층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십오 분쯤 후에, 낸시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급히 내려왔다. 곧이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멍크스는 나갔고. 페긴은 돈을 가지러 다시 위층으로 갔다. 그가 내려왔을 때 낸시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돈을 받고 밖으로 나온 낸시는 사이크스의 집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낸시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너무나 비참해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그러다 울어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사이크스는 낸시가 가져온 돈으로 먹고 마시느라 종일 분주했다. 때문에 낸시의 이상한 행동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낸시는 위험이 코앞에 닥친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수록 낸시의 흥분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무신경한 사이크스 조차도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런!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하잖아! 대체 무슨 일이야?”

뭔 별일 아니에요.”

낸시는 억지로 쾌활한 척하며 대답했다.

이상해, 뭔가 수상쩍고 위험해 보인단 말이야. 아니, 아니야, 그저 열병이 나려고 그러는 모양이지. 이리 와! 그리고 인상을 좀 펴는 게 좋을걸.”

낸시는 말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사이크스는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제야 약 기운이 도는구나,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

낸시는 재빨리 모자를 쓰고 외투를 걸친 후 소리 없이 집을 나섰다. 시계가 열 시를 알리는 종을 치자. 낸시의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런던의 서부 지역으로 오자 인적이 뜸해졌다. 마침내 낸시는 하이드 파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 고급 호텔로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낸시를 불러세웠다.

거기 아가씨. 누굴 찾아왔나요?”

로즈 메일리 양을 만나러 왔어요.”

그 여자는 낸시의 옷차림을 보면서 남자 종업원을 불렀다. 남자는 낸시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문 쪽으로 밀치며 말했다.

안돼! 나가! 썩 꺼지지 못해!”

가난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요? 어떤 젊은 여자가 로즈 메일리 양을 찾는다고 말이라도 전해 줘요.”

종업원이 위층에 갔다가 곧 되돌아와서 낸시를 위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로즈가 조용히 말했다.

앉으세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제가 힘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 드리겠어요.”

그날 올리버가 펜튼빌에 있는 집에서 나와 심부름을 가던 날, 페긴의 집으로 그 아이를 끌고 간 사람이 바로 저였어요.”

로즈가 소리쳤다.

당신이!”

. 아가씨, 제가 그랬어요. 저는 도둑들과 한 패거리고 끔찍하게 살아온 인생이에요. 제가 싫다면 대 놓고 내색해도 괜찮아요. 가난한 집 여자들조차도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하니까요.”

로즈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이곳에 온 게 사실은 제가 엿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려고 아무도 모르게 왔어요. 제가 여기 왔다는 걸 그들이 알면 저는 죽어요. 혹시 멍크스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아니요,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은 아가씨를 알고 있더군요. 여기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요. 제가 아가씨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올리버가 강요에 못 이겨 아가씨에 집에 침입하게 된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저는 우연히 멍크스란 남자와 페긴이 어둠 속에서 하는 얘기를 엿듣게 되었어요.

멍크스는 페긴을 만나러 왔다가 올리버를 보게 되었어요. 그는 올리버가 자신이 찾고 있는 애라는 것을 금방 알아봤다고 했어요. 그는 페긴과 계약을 맺었지요. 올리버를 다시 데려오면 두둑한 돈을 주고, 또 그 애를 도둑으로 만들면 얼마를 더 주겠다고요.”

도대체 이유가 뭐죠?”

저도 그 이유는 몰라요. 제가 엿듣고 있을 때. 그가 벽에 비친 제 그림자를 알아보는 바람에 그곳에서 도망쳐야 했거든요. 그런데 어젯밤 그 멍크스라는 남자를 다시 보게 됐어요.”

무슨 일이 있었죠.”

어젯밤에도 저는 그들의 대화를 몰래 숨어서 엿들었죠. 멍크스가 말하더군요. ‘아이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이제 강 바닥에 있소. 게다가 그놈의 어미한테서 그걸 건네받은 할 망구는 죽고 없으니 걱정할 것도 없소.’라고요. 그는 악마처럼 웃으면서 말했어요. 올리버를 감옥이란 감옥은 모두 경험하게 몰아붙이고, 어떻게든 죽을죄를 짓게 해서 교수형 감이 되게 하면 부친의 유언은 모두 무효가 된다고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믿으셔야 해요.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다면 올리버를 없애 버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게 쉽지 않으니 도둑으로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러고는 페긴, 내 동생 올리버를 위해 내가 생각해 둔 함정이 어떤 건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걸.’ 하고 말하더군요.”

로즈가 깜짝 놀라며 크게 소리쳤다.

동생이라고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아가씨의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올리버가 아가씨와 함께 지내는 건 악마의 장난이 분명하다며 웃었어요.”

로즈는 몹시 창백한 낯빛으로 덜덜 떨었다. 낸시가 갑자기 서두르며 말했다.

. 너무 늦었어요. 이제 가야 해요. 더 늦으면 의심을 받을 거예요.”

로즈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죠? 당신이 한 얘기를 제가 알고 있는 분한테 다시 한 번 들려주세요. 그러면 그 분이 당신을 안전한 곳에 거처를 마련해 줄 거예요.”

아니, 너무 늦었어요. 이제는 같이 있는 사람을 떠날 수 없어요.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많은 죄를 저지른 사람이고······, 저는 온갖 고통과 학대를 받고 살면서도 그 남자한테 끌려요. 그에게 맞아 죽는다 해도 전 돌아갈 거예요.”

낸시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로즈가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올리버를 구할 수가 있는 건가요? 당신이 필요한 경우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나요.”

입이 무거운 믿음이 가는 사람과 상의하세요. 저를 만나려면 매주 일요일 밤 열한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런던 교 위를 걷고 있을게요. 제가 살아 있는 한······.”

메일리 가족은 별장에서 올라와 런던에서 머물다가 다시 먼 해변으로 가서 몇 주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런던에서 머무는 첫날 낸시를 만난 것이다. 로즈는 올리버를 둘러싼 의혹이 풀릴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올리버가 흥분해서 숨 가쁘게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분을 봤어요. 브라운로우 씨가 마차에서 내리는 걸 봤어요. 너무 떨려서 다가가지는 못했는데 자일스 씨가 집 주소를 확인했어요. 가고 싶어요, 그분을 만나고 싶어요.”

올리버, 어서 가서 마차를 불러 달라고 하고 갈 준비를 해, 당장 데려다줄게.”

올리버를 마차에 남겨두고 로즈가 먼저 브라운로우 씨를 만나러 올라갔다.

저는 브라운로우 씨가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신 아이와 함께 왔습니다.”

, 그래요? 그 아이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올리버 트위스트라고 합니다.”

그리고 로즈는 지난 몇 달 동안에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메일리 양, 올리버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올리버는 대문 앞에 세워 둔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브라운로우는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브라운로우는 올리버와 함께 들어왔다. 브라운로우가 종을 울렸다.

잊어선 안 될 사람이 또 있어요. 누구보다 베드윈 부인이 반가워할 거야.”

이게 누구야? , 하느님 맙소사! 내 착한 아이로구나!”

할머니!”

로즈는 낸시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전했다. 브라운로우는 너무 놀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는 동안 로즈는 로즈번과 메일리 부인에게도 그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리기로 했다.

얼마 뒤 로즈와 올리버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11장 낸시의 희생

페긴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미꾸라지가 경찰에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미꾸라지의 주머니를 뒤졌을 때. 은으로 만든 코 담뱃갑이 나온 탓이었다. 미꾸라지는 그쪽 방면에서 꽤 유명한 아이였다.

페긴은 새로 합류한 아이에게 경찰서에 가서 미꾸라지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이 아이는 바로 올리버가 런던으로 떠날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노아 크레이폴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소어베리의 가게에서 도망쳐 나왔다. 노아는 도둑이나 소매치기와 한패가 되어 한몫 잡아 볼 요량으로 런던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들른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도 페긴을 만난 것이었다.

경찰서로 간 노아는 미꾸라지가 유죄를 선고받고 작은 독방에 갇히는 걸 본 후 돌아와 페긴에게 보고했다.

일요일 밤이었다.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열한 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때 외출 준비를 마친 낸시가 막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사이크스가 불러세웠다.

낸시!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거야?”

사이크스는 굳이 낸시를 붙잡을 이유는 없었으나, 그냥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몸이 안 좋아요. 바람을 좀 쐬고 싶어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되잖아.”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나가고 싶어요.”

날 보내줘요, 딱 한 시간만 나갔다 올게요.”

이 계집애! 완전히 미쳤구나! 일어나!”

그러자 낸시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보내주기 전에는 죽어도 안 일어날 거야! 죽어도!”

사이크스는 한동안 멍한 눈으로 낸시를 바라보다 작은 방으로 질질 끌고 가서는 의자에 던져 놓고 꼼짝 못하게 힘으로 눌렀다. 사이크스는 욕이란 욕은 모두 동원하여 낸시를 협박을 한 후 페긴의 앞으로 와서 앉았다.

페긴은 사이크스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안심을 시킨 후 그 집에서 나왔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요일 밤이 돌아왔다. 두 사람이 런던 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교회의 시계는 열한 시 사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여자 한 사람은 남자였는데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남자는 몸을 숨기며 여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열두 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잠시 후, 다리에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젊은 여자가 머리가 희끗한 신사와 함께 마차에서 내려 다리 쪽으로 걸어왔다. 먼저 와 있던 여자가 황급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낸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무서워서 안 되겠어요. 사람이 없는 저쪽 계단 아래로 가요.”

그러자 낸시를 뒤쫓던 남자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몸을 움직여 먼저 계단 쪽으로 가서 숨었다.

노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브라운로우였다.

무엇이 두려운가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렇게 낸시를 위로한 젊은 숙녀는 로즈였다.

지난 일요일에는 그 남자, 빌이 못 나가게 해서 나올 수가 없었어요. 지난번에 호텔로 아가씨를 만나러 갔을 때는 술에다 약을 타서 재우고 왔던 거예요.”

브라운로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빛으로 물었다.

우리가 만나는 문제와 관련해서 당신이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겠죠.”

없어요.”

그럼 됐소, 이야기를 빨리 끝내지요. 우리는 그 비밀이 무엇이건 간에 반드시 캐내고 말 거요. 멍크스라는 자를 협박해서라도 말이오. 그는 나한테 맡겨요. 내가 처리할 테니.”

페긴이 악마보다 더 나쁜 사람이지만······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고 싶진 않아요. 어쨌든 지금껏 같은 길을 걸었고. 그들 중 누구도 나를 해치려 들지 않았으니까요.”

멍크스한테서 진실을 캐내면 모든 게 끝날 거요.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소, 약속하지요.”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요?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요?”

멍크스를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아가씨의 허락 없이 페긴이란 자가 법정에 서는 일은 없도록 하겠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만 해 왔고. 거짓말쟁이들하고 같이 살아왔어요······ 하지만 두 분을 믿을게요.”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멍크스가 자주 가는 술집과 그가 그곳을 찾아가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낸시는 잠시 멈춘 후 멍크스의 생김새를 알려주었다.

아 잠깐 그 사람의 목에 커다란 흉터, 불에 덴 것 같은 붉은 흉터가 있소?”

이게 어찌 된 일이죠? 그 사람을 알고 있군요?”

로즈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 것 같소.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요. 비슷한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그는 낸시에게 보답하고 싶어 했으나 낸시는 모두 거절했다.

선생님 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로즈는 낸시가 원한다면 조용한 거처를 마련해 줄 수도 있고 원한다면 영국을 떠나 외국으로도 보내줄 수 있다고 했으나 낸시는 모두 거절했다. 뭔가를 주고 싶다면 그냥 기억될 수 있는 장갑이나 손수건 정도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인사를 했다.

브라운로우와 로즈의 모습은 사라지고 낸시는 계단에 주저앉아 비통한 눈물을 쏟아냈다.

낸시는 한참을 서럽게 울더니 눈물을 닦고 일어나 다리를 휘청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낸시를 미행했던 남자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숨어 있던 곳을 나와 페긴의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해가 뜨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마룻바닥에는 한 녀석이 큰 대자로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그는 런던 교 아래에서 낸시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엿들었던 미행자. 노아였다. 페긴은 낸시가 증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낯선 사람들과 거래를 하다니! 자신을 배반할 수 없다고 했다던 그녀의 진심도 거짓말 같았다. 그는 모든 것이 들통나 교수형을 당하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페긴은 시간도 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때 사이크스가 한쪽 겨드랑이에 자그마한 보따리를 끼고 들어왔다. 그는 생색을 내듯이 말했다.

여기 있소! 간수 잘 하시오! 구하느라 꽤 힘들었다고.”

페긴은 말없이 보따리를 들어 벽장에 넣은 다음 다시 앉았다. 그러고는 사이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 자네에게 유쾌하지 않은 얘기를 해야겠어.”

페긴은 잠자고 있는 노아를 흔들어 깨웠다.

그 얘기를 다시 해 봐라. 이 친구가 들을 수 있게 말이다.”

노아는 밤에 있었던 얘기, 첫날은 술에 약을 타서 먹였다는 것까지 모두 말했다.

사이크스가 페긴의 손을 사납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염병할! 가야겠소!”

. 내 말 들어! 너무 심하게 하지는 않을 거지? 거칠게 말고 안전하게, 신중하게 처리해!”

짧은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사이크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문을 열고 거리로 뛰어나갔다.

얼마 후 집에 도착하자. 그는 살그머니 올라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낸시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이크스가 흔들어 깨우자,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일어나!”

낸시는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사이크스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몇 초 동안 낸시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을 움켜잡고 큼지막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낸시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낸시의 얼굴을 두 번이나 힘껏 내리쳤다. 낸시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이마에서 순식간에 피가 쏟아져 내려 얼굴은 금방 피범벅이 되었다. 낸시는 힘겹게 일어나 흰 손수건 바로 로즈가 준 손수건을 꺼냈다. 그녀는 손수건을 들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광경이었다. 사이크스는 뒷걸음질을 하다가 묵직한 몽둥이를 집어 들어 다시 한 전 세게 내리쳤다.

어느새 태양이 솟아올라 도시 여기저기에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빛은 살해당한 여인의 집에도 어김없이 흘러들었다.

사이크스는 두려움에 떨었다. 낸시가 죽어가며 내지른 비명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고,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듯했다.

사이크스는 성냥을 그어 난롯불을 피우고 그 안에 몽둥이를 던져 넣었다. 그다음 손을 씻고 옷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방안에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개의 다리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후 집을 떠났다.

밤 아홉 시쯤 되었을 때, 지칠 대로 지친 사이크스는 개를 데리고 어느 조용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사이크스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뛰다시피 걸었지만 곧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작은 우체국 앞을 지나던 중. 런던에서 온 역마차가 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이크스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우체국장이 편지를 가득 담은 자루를 들고 나와 마부에게 넘기며 물었다.

런던에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가?”

마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한 신사가 말했다.

아주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있었소

그래 죽은 사람은 남자요. 여자요.?”

사람들 말로는 여자라던데······.”

사이크스는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정신없이 들판을 걷다가 버려진 오두막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밝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 페긴에게 돈을 좀 뜯어내서 프랑스로 줄행랑을 치자. 그래, 그렇게 하자,’ 하고 생각했다.

 

12장 올리버를 둘러싼 비밀들

황혼이 지고 땅거미가 드리우는 시간, 브라운로우의 집 앞에서 마차가 멈췄다. 그리고 건장한 사내가 마차에서 내려 계단 한쪽에 섰고, 마부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반대쪽에 섰다. 브라운로우가 신호를 하자 두 사람은 마차에서 또 한 사람을 끌어내 양쪽에 끼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두 남자는 브라운로우를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브라운로우가 말했다.

이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거리로 끌고 나가게. 그리고 경관을 불러 내 이름으로 고소하게나.”

멍크스가 바드득 이를 갈며 물었다.

어찌 감히 저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당장 놔주세요.”

어찌 감히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건가? 그래, 갈 테면 가보게, 나가는 것은 자유고 뒤쫓는 것은 우리 자유니까. 하지만 거리로 나서는 순간, 바로 자네는 사기 및 강도죄로 체포될 걸세. 이미 다른 사람들 손에 넘어간 다음에 나한테 동정을 구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게나.”

멍크스는 잠시 망설였다. 브라운로우가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나갈지 말지 빨리 결정하게나. 법정에 서서 끔찍한 처벌을 받고 싶으면 지금 당장 나가게. 만약 그렇지 않고 자네가 해를 끼친 사람들한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겠다면, 아무 소리 말고 저기 있는 의자에 앉게 저 의자는 꼬박 이틀이나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멍크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브라운로우를 바라보았다. 브라운로우의 표정이 매우 단호하고 엄했으므로, 할 수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브라운로우가 두 남자에게 말했다.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내가 부르면 오게.”

아버지의 오랜 친구 분이 이렇게 잘해 주시다니요?”

자네 부친과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네, 내가 사랑했고 결혼을 꿈꾸던 유일한 여인이자 자네 부친한테는 단 하나뿐이던 누이가 죽어갈 때 그 옆에서 나와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던 사람이 자네 부친이었기에 그러는 거란 말일세. 에드워드 리포드. 지금도 말이야.”

자네한테는 동생이 하나 있지, 내가 거리에서 자네한테 다가가 귓가에 그 이름을 속삭인 것만으로도 화들짝 놀라 이곳으로 따라오게 만든 그 동생 말이야.”

제겐 동생이 없어요. 제가 외아들이라는 것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하겠네. 자네도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자네 부친은 가문의 체통과 비열한 야망에 희생되어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당했지 자기보다 십 년이나 연상인 여자와 말이야. 예상대로 결혼 생활은 아주 불행했네. 자네는 그 부자연스러운 결합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식이고.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다가 결국 헤어지고 말았지. 헤어지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른 뒤에, 자네 부친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네. 심오 년 전의 이야기이네, 그때 자네는 열한 살이었고. 자네 부친은 겨우 서른한 살이었지. 자네 부친이 사귄 사람 중에 퇴역한 해군 장교가 있었네, 그 사람은 부인과 사별한 후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지, 큰딸은 열아홉 살 먹은 아름다운 아가씨였고, 다른 하나는 고작 두세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네. 자네 부친은 그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 일 년 뒤 그들은 비밀리에 약혼을 했네. 그리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의 결실인 자네 동생이 태어나게 된 거야.”

멍크스는 안절부절 못했다.

어느 날 자네 부친은 친척 한 분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네, 그는 상당한 부자였는데 죽으면서 자네 부친 앞으로 많은 재산을 남겼지, 그 친척이 로마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네 부친은 로마로 가야 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마로 가자마자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만 거네. 당시 파리에 있던 자네 모친은 그 소식을 듣고 당장 로마로 갔지. 그 친구는 자네 모친이 도착한 다음 날, 바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 그래서 모든 재산이 자네 모친과 자네한테로 넘어가게 되었지.”

밍크스가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굴과 손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브라운로우는 멍크스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 아버지는 로마로 가기 전에 런던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나를 만나러 왔었네.”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자네 부친은 나한테 여러 가지 물건을 맡겼어. 그중에는 자신이 직접 그린 사랑하는 여인의 초상화도 있었지. 그는 몹시 초라하고 불안해 보였네. 후에 나에게 편지를 모든 걸 설명하겠다고 했지. 나중에 다시 한번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어.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네. 나는 자네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난 후 그가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갔네. 가엾은 여인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일주일 전에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 한밤중에 몰래 떠나 버린 바람에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지

멍크스는 얼굴엔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브라운로우는 멍크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사실 내가 자네 동생을 만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내가 그 아이를 범죄의 소굴에서 구해 냈을 때······,”

뭐라고요?”

내가 구해 냈다고 말했네. 아무튼 내가 보관하고 있던 초상화 속의 인물과 그 아이가 너무나 닮아 깜짝 놀랐지, 그런데 내가 그 아이에 관해 자세히 알기도 전에 아이는 다른 곳으로 끌려갔어. 자네한테 그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할 필요는 없겠지?”

멍크스가 당황하며 물었다.

왜죠?”

자네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제가요?”

부인해야 소용없네, 난 그 이상의 사실도 알고 있으니.”

증거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저를 만났으니 어쩔 셈인가요? 아저씨는 그 아이가 태어났는지도 몰랐잖아요.”

몰랐지, 하지만 지난 보름 동안 모든 것을 알게 되었네. 자네는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유언장도 있었어. 그런데 자네 어머니가 그걸 없애버리고 그 비밀과 재산을 자네한테 남겼던 거야. 유언장에는 분명히 두 사람의 서글픈 사랑에서 태어날 아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 자네 부친은 전 재산을 그 아이 앞으로 해 놓았지 단, 아이가 자네처럼 비열하고 추악한 범죄자가 되었을 경우, 그 재산은 장자인 자네한테 상속된다는 조건을 달았네, 태어날 아이가 사랑하는 여인의 고결한 성품과 착한 마음씨를 닮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지. 아이는 분명히 태어났고, 자네는 우연히 그 애를 만나게 되었네. 부친과 너무 닮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네는 그 아이의 뿌리를 한눈에 알아보았어. 그래서 그 애가 태어난 곳으로 가서 출생과 관련된 모든 증거를 찾아 없애버렸던 거지. 그런 다음 유대인 공범자에게 이렇게 말했네, ‘아이의 신원을 밝혀 줄 유일한 증거는 이제 강바닥에 있소. 그리고 그 아이의 어미한테서 그것을 건네받은 할멈은 죽고 없으니 걱정할 것 없어요.’라고 말이야. 에드워드 리포드! 아직도 내 말에 이의가 있나?”

, , 아니, 없어요!”

자네가 그 악당 사이에서 오간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알고 있네! 벽에 비친 그림자가 모든 것을 다 듣고 나한테 알려주었지. 그 일을 계기로 살인이 일어났고. 자네는 실제로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도덕적인 차원에서 공범이나 다름없네!”

, 아니에요. ······,저는 그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도. 저는 그냥 싸우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살인은 자네의 비밀을 발설한 것에서 비롯된 거야. , 진술서를 작성하고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증언하겠나?”

그것으로 다 끝나는 건 아니야. 자네는 그 가엾은 아이한테 씻지 못할 죄를 졌어. 그 죗값을 치러야 하네. 자네 부친의 유언을 잊지는 않았겠지? 동생하고 관련된 부분만큼은 모두 유언대로 하게. 그렇게 한다면 어디든 마음대로 가도 좋네.”

그때 로즈번이 매우 흥분한 낯빛으로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브라운로우 씨 이제 시간 문제랍니다! 오늘 밤 안으로 그자를 잡을 거래요.”

살인자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페긴은 어떻게 됐습니까? 소식이 없나요?”

곧 붙잡힐 겁니다.”

브라운로우가 목소리를 낮춰 멍크스에게 물었다.

그래, 결정했나?”

······, ······비밀은 지켜 주실 거죠?”

그러겠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게.”

브라운로우와 로즈번이 방에서 나왔다. 로즈번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됐습니다. 이제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모레 저녁에 모두 모여 이 일을 마무리하도록 하지요. , 살인자를 쫓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요?”

지금 경찰서로 가면 합류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여기 남아 저자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13장 사이크스와 페긴의 최후

템즈 강 부근, 더럽기 짝이 없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강둑에 런던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다. 야곱의 섬이라 불리는 그곳은, 런던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괴상한 장소였다. 야곱의 섬은 밀물이 들어오면 깊이가 이 미터쯤 되는 흙탕물로 둘러싸이는 곳이었다.

그러한 집들 가운데 창문과 현관문이 제법 튼튼한 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의 위층 방에 남자 셋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은 토비 크래킷이었고. 다른 두 사람은 그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그날 오후 경찰에 붙잡힌 페긴 일당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히도 토비는 찰리와 함께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토비의 동료들은 페긴이 경찰한테 끌려가면서 성난 사람들한테 차이고 짓밟혀 피범벅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때 계단을 가볍게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이크스의 개가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개 주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후에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이크스였다. 문을 열어줘야겠어?

토비가 내려가더니 잠시 뒤 사이크스와 같이 들어왔다.

오늘 신문을 보니 페긴이 잡혔다고 하더군 사실이야?”

사실이지.”

사람들 사이로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사이크스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젠장! 나한테 할 말이 그렇게도 없어?”

그때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다. 토비가 나가더니 찰리와 함께 돌아왔다. 찰리는 사이크스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토비, 왜 얘기 하지 않았어요? 난 다른 방에 있을래요.”

찰리! 나를 모르겠냐?”

이 악마야! 가까이 오지 마!”

찰리와 사이크스가 싸우다가 찰리를 다른 방에 집어 던지고 자물쇠를 채웠다.

곧이어 성난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인자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듯한 태도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사람들을 행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마음대로 해 보라고 나는 절대로 네놈들 손에 잡히지 않아!”

성난 군중들이 고함을 질렀다. 어떤 사람들은 불을 질러 버리라고 소리쳤고. 또 다른 사람들은 총을 쏴 죽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중에서 말을 탄 사람이 가장 무섭게 화를 냈다. 브라운로우였다. 그는 군중 사이를 뚫고 들어가 소리쳤다.

사다리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이십 파운드를 주겠소!”

살인자가 토비에게 소리쳤다.

이봐! 밧줄을 가져와! 강물로 뛰어내릴 거야.”

살인자는 지붕으로 올라가 뒤쪽으로 돌아갔다. 순간 절망하고 말았다. 물은 빠지고 그 자리에는 개흙 바닥이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사이크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는 밧줄로 고리를 만들어 허리에 끼우고 창문으로 내려갈 작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살인자는 황급히 굴뚝에 밧줄을 묶고 다른 쪽 올가미를 만든 쪽으로 머리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가 도망치려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 순간 살인자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두 팔을 쳐들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비틀거리다가 올가미가 목에 걸린 채 지붕에서 떨어졌다. 살인자는 허공에 매달려 무시무시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 버렸다. 그때 개도 주인을 따라 뛰어내렸고, 곧 흙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말았다.

사이크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지 이틀이 지났다. 올리버는 마차를 타고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로즈, 메일리 부인, 그리고 로즈번도 함께였다. 브라운로우는 멍크스와 함께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호텔로 들어갔다. 그림위그가 먼저 도착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일행들을 친절하게 맞았다.

밤 아홉 시가 되자 한 방에 모두 모였다. 브라운로우는 멍크스가 작성한 진술서를 멍크스에게 낭독을 하라고 시켰다.

아버지가 로마에서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로마로 갔습니다. 두 분은 헤어진 지 오래였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재산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겁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이미 의식 없으셨고, 그 이튿날 바로 돌아가셨지요.

아버지 책상에는 아저씨한테 보내는 편지가 두 통 있었는데, 하나는 유서였고 다른 하나는 편지였습니다.

편지 내용은 어떤 것이었지.”

그냥······별것 아니었어요. 그 여자한테 보내는 편지였는데 봉투에 아저씨한테 남긴 말이 몇 줄 적혀 있었어요.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과 돌아가게 되면 결혼도 하고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는 허접한 내용들이었어요. 그리고 자기가 남겨준 반지를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대충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올리버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멍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브라운로우가 말을 이었다.

유서에는 자네와 자네 모친에게 각각 팔백 파운드를 남기고, 나머지 재산은 모두 애그니스 플래밍과 그 여인에게서 태어날 아이 앞으로 남겼지. 그 아이가 불명예스럽고 비열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말이야. 그런 행동을 할 경우 재산은 모두 자네한테 가도록 했지.”

멍크스는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어머니는 그 유서를 태워 버렸어요. 그리고 그 여자의 아버지를 찾아가 있는 대로 최대한 과장해서 모든 사실을 알려주었지요. 그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임신 한 딸 때문에 몹시 수치스러워하다가 자식들을 데리고 시골 구석으로 숨어버렸고, 이후 애그니스란 여자는 몰래 집을 나가 버렸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비밀들을 저한테 알려 주셨습니다.

로즈 양, 제 손을 잡으시지요. 이제 당신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멍크스 자네 이 아가씨를 아는가?”

압니다.”

로즈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전 당신을 본 적이 없어요.”

브라운로우가 끼어들었다.

애그니스에게는 당시 두세 살쯤 된 어린 동생이 있었지, 그 어린아이는 어떻게 되었나? 그 여자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며칠 후, 여자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신원을 밝혀줄 만한 편지 한 통, 종잇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요. 홀로 남겨진 어린 딸은 어느 농부가 데려다 키웠지만, 그들은 워낙 가난해서 아이를 키울 수가 없었어요. 아이는 그들에게 학대를 당하며 비참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부유한 미망인이 그 아이를 동정하여 데려다 키웠던 겁니다. 그 아이가 바로 로즈입니다,”

로즈가 메일리 품 안에서 울부짖었다.

올리버와 로즈는 한참 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법정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모두 페긴의 재판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마침내 판사가 조용히 하라고 외치고, 판결을 내렸다.

유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페긴이 월요일에 교수형을 당할 것이라는 소식이 밖으로 전해졌다.

감방은 몹시 어두웠다. 교도관 두 명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촛불을 들고 또 한 사람은 밤을 지새울 침구를 끌어다 놓았다. 죄수를 더 이상 혼자 있게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드디어 월요일 새벽, 동이 막 트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교도관이 페긴의 몸을 흔들었다.

페긴! 누가 자네를 면회하러 왔어. 물어볼 게 있대. 이봐! 정신 차리라고!”

브라운로우가 올리버를 데리고 들어왔다. 교도관이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끝내시죠.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고 있거든요.”

브라운로우가 페긴에게 물었다.

멍크스라는 사람이 안전하게 보관에 달라며 당신한테 맡긴 편지가 있을 거요.”

거짓말! 나한테는 그런 게 없소 아무것도 없다고.”

페긴이 올리버에게 손짓을 하며 속삭였다.

얘야, 올리버! 네가 왔구나. 이리 와! 내가 너한테만 몰래 말해 줄 테다. 이리 와!”

올리버가 다가가자 페긴은 자기 쪽으로 아이를 바짝 끌어당기며 소곤거렸다.

위층 첫 번째 방으로 가라. 굴뚝 위쪽에 구멍이 있잖니? 보따리에 잘 싸서 거기에 숨겨 놓았단다. 얘야. 너하고 얘기를 하고 싶구나. ? 밖에 나가서 말이야. 얘야 가서 내가 잠이 들었다고 말해라. 그리고 날 데리고 가야지. . 어서. 어서!”

올리버가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 하느님 이 불쌍한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

올리버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력을 잃자 브라운로우가 그를 안고 나갔다.

 

 

 

14장 행복한 미래

브라운로우는 올리버를 양자로 삼은 후 메일리 부인과 로즈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물론 베드윈 부인도 함께 갔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픈 올리버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올리버는 멍크스가 가로챈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았다. 올리버는 브라운로우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산의 반을 멍크스에게 나누어 주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멍크스는 그 돈을 가지고 머나먼 신대륙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곳에서 금세 재산을 탕진하고 또다시 범죄의 소굴에 빠져들었다. 오래지 않아 감옥에 갇힌 멍크스는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페긴이 거느린 일당들도 거의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을까, 고민하던 끝에 정직하게 사는 쪽을 택했다. 그는 과거에 등을 돌리고 농장에 정착했다. 지금은 영국 남부에서 가장 즐겁게 일을 하는 젊은이가 되어있다.

로즈번과 그림위그는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아주 강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들은 자주 만나 낚시를 하거나 정원을 가꾸고 목수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범블은 구빈원 원장직에서 쫓겨났다. 범블 부인 역시 탐욕스런 간호 부장 노릇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범블 부부는 점점 더 가난해 지다가 마침내 한때 자기들이 마음대로 주물렀던 구빈원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일스와 브리틀스는 아직도 하인 일을 계속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메일리 부인의 집과 브라운로우의 집을 오가며 일을 하기에.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어느 집의 하인들인지 헷갈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