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길고 어두운 밤의 시작
1
미경은 아파트의 현관문을 단단히 잠그었다. 박태호가 미경의 뒤를 쫓아올 염려는 없었으나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미행자들이 습격할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최종열의 소설이 잡지에 연재되면서부터 미경의 아파트 근처에서 사라졌으나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경은 아파트의 문을 단단히 잠근 뒤에 컴퓨터를 켜고 스캐너를 이용해 최종열의 소설을 모두 복사하여 컴퓨터에 입력시켰다. 일단 컴퓨터에 입력시켜 회사로 전송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미행자들이 습격을 해도 원고가 안전한 것이다. 미경이 스캐너로 최종열의 소설을 모두 복사한 것은 새벽 5시가 되었을 때였다. 원고가 디스켓으로 되어 있었으면 간단하게 카피할 수 있었으나 원고가 타이핑된 것이라 일일이 스캐너로 복사를 해야 했던 것이다. 워드 작업으로 입력시킬 수도 있었으나 미경의 워드 실력으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였다. 미경은 복사가 끝나자 컴퓨터 통신을 이용해 일단 회사로 원고를 전송했다. 그리고는 샤워를 하고 커피를 끓여 마셨다. 잠을 자지 못해 눈이 충혈되었으나 이제는 잠을 자기에 시간이 늦어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 최종열의 원고나 읽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미경은 커피를 마시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최종열의 소설은 마침내 5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강한섭은 데모대의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대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점점 시내로 진출해 가고 있었다. 날씨는 찌푸퉁했다. 아침부터 하늘은 잿빛이었고 바람이 살매 들린 것처럼 가로수의 나무 끝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비가 올 모양이군... )
강한섭은 대학생들의 데모 행진에서 시선을 거두어 검푸르게 살랑대는 마로니에를 쳐다보았다. 문득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유리 지바고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장례식이 진행될 때도 바람이 포플라 잎사귀에서 살랑대고 있었다. 닥터 지바고를 감독한 데이빗드 린 감독은 검푸르게 살랑대는 포플라 잎사귀에서 러시아의 어두운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지금 대학로에서 보이는 마로니에의 검푸른 잎사귀도 한국의 어두운 시대를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강한섭은 느껴졌다.
"파쑈!"
"파쑈!"
학생들이 손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며칠 학생들의 데모는 거의 절정에 이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강한섭은 다시 학생들의 시위로 시선을 옮겼다.
"군부 파쑈 물러가라!"
"군부 파쑈 물러가라!"
5월 14일이었다. 민주공화당은 5.16 군사혁명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있었으나 행사를 간소하게 치르기로 하고 시국을 살피고 있었다. 군부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었다. 5. 16혁명의 주체들은 군부의 등장을 잔뜩 경계했으나 그들을 저지할 힘이 없었다. 그것은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찾아온 봄에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 민주화 투쟁을 해온 야당의 두 거목 김대중 민추협 고문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3월달에 결별하여 야당은 극심한 분열 현상을 빚고 있었다. 국민들도 김대중 민추협 고문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지지로 분열되어 있었다. 보수 세력들은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를 지지하여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4, 5월이 되면서 군부의 존재가 무섭게 떠오르기 시작하자 그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군부를 규탄했다. 그들도 이미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한때 신현확 국무총리가 이원집정제를 구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그것은 유언비어였다. 12.12 사태를 거치면서 시중엔 수많은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었다.
"전두환 파쑈는 물러가라!"
"전두환 파쇼는 물러가라!"
학생들은 종로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강한섭은 학생들의 데모 행렬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학생들의 데모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핏 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데모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데모대가 종로 5가 로타리에서 태평로 쪽으로 방향을 꺽었다. 강한섭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찌푸퉁한 하늘에서 마침내 성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경찰은 데모대의 행렬을 저지하지 않고 있었다. 데모가 시작되기가 바쁘게 원천봉쇄하기 일쑤인 경찰로서는 의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 친구 여기서 뭘해?"
그때 종로경찰서에서 학생 담당을 하고 있는 서만수 형사가 강한섭의 어깨를 툭 쳤다. 사회부에 있으면서 경찰 출입을 할 때 사귀어 놓은 형사였다. 까다롭지 않아서 술자리도 같이 했었고 가끔 중요한 정보도 얻었었다.
"서형이군요."
강한섭은 반색을 했다.
"사람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이 마치 얼이 빠져 있는 것 같습디다."
"글세 말입니다."
"취재 나왔습니까?"
"글쎄요..."
"왜 그렇게 사람이 싱겁습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강한섭은 멋적게 웃었다.
"어떻게... 근무 중입니까?"
"예."
서 형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서 형사도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기색이었다.
"학생들이 종로까지 진출하는데 진압 안 합니까?"
"진압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예?"
강한섭은 어리둥절했다. 경찰이 학생 데모대를 진압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우리야 큰 판은 잘 모르지요."
서 형사가 주위를 경계하며 대답했다 큰 판이라는 것은 군부와 정치판을 뜻하는 말이었다.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있어도 우리는 모르지요. 우리야 조무라기 아닙니까?"
"데모대를 따라갈 겁니까?"
"지켜는 봐야지요."
"위의 지시인가요?"
서 형사가 먼저 데모대의 뒤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강한섭도 천천히 데모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냉담한 것 같습니다."
서 형사가 강한섭을 옆눈질로 살피며 말했다. 시민들이 데모하는 학생들에게 무관심한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긴급조치가 워낙 사나웠었기 때문에 데모대를 지지하는 것에 습관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긴급조치가 해제되었어도 여전히 두려운 것입니다. 게다가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서 형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 기자는 알고 있습니까?"
"막연할 뿐이지요. 그들이 어디까지 밀고 나갈지는 그들만 아는 일이지요."
"학생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야 우리의 정치를 선도하고 있으니까요."
강한섭은 씁쓸하게 웃으며 서 형사와 보폭을 맞추었다.
"강 기자!"
"예."
"이건 우리끼리 얘긴데 앞으로는 몸을 사려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몸을 사려요?"
"체제가 바뀔 땐 대개 강압 정치를 합니다. 5. 16을 잘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이 갈 겁니다."
강한섭은 서 형사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5. 16을 연상하자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구성과 정치인들에 대한 숙정, 폭력배들에 대한 소탕이 요란하게 진행되었던 일이 생각났다. 물론 그것은 정권 교체기에서 반발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새로운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고전화된 수법이었다.
"D데이가 잡혔어요."
"D데이요?"
"3, 4일 이내가 정치인들에게는 위험한 밤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강한섭은 등줄기가 서늘해져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D데이란 말 속에는 군부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강한섭은 서 형사를 따라 계속 태평로 쪽으로 걸었다. 거리에는 벌써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빗발은 아직도 가늘게 뿌리고 있었다. 모처럼 오는 비라 강한섭은 그대로 비를 맞고 걸었다. 서 형사도 비를 맞으며 학생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강한섭은 D데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서 형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서 형사도 그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연락이 온 모양인데..."
서 형사가 잠바 주머니 속에서 경찰 무전기를 꺼냈다. 무전기의 볼륨을 잔뜩 줄여 놓았기 때문인지 무전기에서 겨우 찍찍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서에 들어가 봐야겠어."
서 형사가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강한섭에게 말했다.
"비상입니까?"
"예."
"그럼 학생들 진압이겠군요."
"그럴 겁니다. 또 봅시다."
서 형사가 무전기를 주머니 속에 찔러 놓고 종로경찰서를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떼어놓았다. 강한섭은 서 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학생들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학생 데모대는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교통은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해 차들이 데모대를 피해 우회를 하고 있었다. 강한섭이 데모대를 따라 태평로에 이르자 각 대학에서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앉아서 연좌데모를 하고 있었다. 경찰은 태평로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최루 개스총으로 무장을 하고 도열해 있었다. 명령만 떨어지면 곧바로 학생들을 진압할 태세였다. 강한섭은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빗발이 굵어지는지 옷이 후줄근하게 젖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점점 많이 불어나고 있었다.
(서울 시내의 모든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군... )
강한섭은 무엇인가 가슴을 뻐근하게 하는 것을 느꼈다. 유신 시대엔 학생들이 거리로 진출하기는커녕 학교 안에서 데모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생들이 태평로까지 진출하여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계엄령이 선포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전국 계엄을 조종하고 있는 사람은 12.12 사태를 일으켜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그를 물러가라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떼의 대학생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퇴계로 쪽에서 태평로로 들어오고 있었다.
(동국대학교 학생들이군... )
학생들이 들고 있는 깃발은 동국대학교 교기였다. 동국대학교 학생들도 교기를 앞세우고 경찰 바리케이트 앞에서 연좌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태평로 일대는 데모 학생들과 경찰 바리케이트로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강한섭은 데모대가 더욱 불어나자 신문사로 걸음을 옮겼다. 데모대의 모습을 취재도 하지 않으면서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태평로 일대엔 각 신문사의 기자들과 방송국 기자들이 전쟁터를 헤매고 다니듯 분주히 뛰어다니며 취재를 하고 있었다. 신문사도 도떼기시장처럼 분주했다. 특히 정치부와 사회부는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치부의 각 부처 출입 기자들에게서는 정신없이 부처 동정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국방부와 계엄사 출입 기자들에게서는 군부의 주요 지휘관들 움직임이 수상스럽다는 보고가 계속해 들어오고 있었다. 사회부는 서울 시내 각 대학교 학생회장들이 숙명여대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내오고 있었으나 회의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상도동은 어때?"
데스크가 강한섭에게 물었다.
"조용합니다."
"상도동에서 성명서라도 내야 할 것 같지 않아?"
"성명서요?"
"동교동에서 학생들에게 자제하라는 성명서를 냈어."
"그래요?"
강한섭은 깜짝 놀랐다. 동교동에서 그러한 성명서를 냈다면 동교동에서 신군부가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도동에 가지 않았어?"
"갔었습니다."
"그런데 상도동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는 말이야?"
"신군부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강한섭은 막막한 기분으로 데스크의 질문에 대꾸했다. 상도동에서 학생들의 동정에 왜 아무 동정도 없는 것일까. 그들은 군부의 동정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강한섭은 그런 생각을 하며 데스크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럴 리가 없어. 다시 가봐."
데스크가 잘라 말했다.
"예."
강한섭은 데스크의 지시를 받자 다시 신문사를 나왔다. 그러나 차를 타고 상도동이나 마포 신민당 당사까지 갈 수는 없었다. 교통은 데모 학생들로 인해 완전히 막혀 있었다. 강한섭은 근처 다방으로 들어가 상도동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상도동엔 김영삼 총재가 당사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김영삼 총재도 교통이 막혀 귀가하지 못하고 있거나 당사에서 학생들의 데모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강한섭은 마포 당사까지 걸어가려다가 태평로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서소문에서 태평로로 걸어가자 학생들의 함성이 빌딩 숲을 흔들고 있었다. 데모에 참여한 학생들은 10만 명이 훨씬 넘어 보였다. 신림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한쪽은 영등포와 여의도를 거쳐 진입 중이었고 또 한쪽은 상도동과 노량진을 거쳐 서울역 쪽을 향해 진입하고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홍익대학교는 서소문 쪽으로, 서강대학교는 만리동 쪽으로, 숙명여자대학교는 서부역 쪽으로, 고려대학교는 신설동을 지나 동대문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균관대학교는 원남동을 지나 안국동으로 해서 광화문 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어이 강 기자!"
태평로에 이르자 사회부의 최병준 기자가 강한섭을 손짓해 불렀다.
"최 기자는 여기에 있었나?"
강한섭은 최병준 기자에게 번쩍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다. 최병준은 바바리코트가 흠뻑 젖은 채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이화여대에서 뒤따라 왔어..."
"상황이 어때?"
"모르겠어. 데모 행렬이 엄청나다는 것뿐이야. 이 정도면 4. 19 때와 맞먹겠지?"
"숫자로는 더 많을걸. 6. 3사태 때도 이만하지는 않았을 거야."
최병준 기자가 피우던 담배를 버리며 말했다. 최병준 기자의 얼굴은 흥분 때문인지 상기되어 있었다.
"신문사에 가보니까 학생 대표들이 숙명여대에 모였다더군."
"정치권에서 학생들에게 자제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있어.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학생들에게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고...정치권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군부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야."
"군부의 목표는 뭐야?"
"계엄 확대 아니겠어?"
최병준이 반문했다.
"계엄 확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가 생긴다는 소문이 파다해."
"어디서 들었어?"
"검찰에서. 현직 검사가 보안사에 차출되어 법안을 검토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강한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신군부가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혁명평의회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강한섭은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 왔다.
"보도했나?"
"계엄사에서 검열을 하는데 어떻게 보도해?"
"데스크는 알고 있나?"
"얘기 안 했어."
"왜?"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최루탄 가스가 자욱하게 공중으로 퍼졌다. 강한섭은 깜짝 놀라 학생들이 연좌데모를 하는 거리를 쳐다보았다. 전투 경찰이 다연발 최루탄을 잇달아 쏘아대고 있었고 학생들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흩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최루탄이야!"
"다연발 최루탄을 쏘고 있어!"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벌떼처럼 흩어져 달아나는 학생들을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어? 진압 명령이 내렸나 본데?"
최병준 기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데모대를 향해 뛰어갔다. 골목과 골목에서 갑자기 수많은 사복 경찰이 쏟아져 나오면서 최루탄 가스를 피해 달아나는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며 연행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태평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학생들은 연행하는 경찰들을 피해 근처 상점으로 뛰어들기도 했고 골목으로 달아나기도 했다. 진압 경찰은 필사적이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도망치는 학생들을 뒤쫓아가 발로 차고 주먹질을 한 뒤 목덜미를 잡아끌고 연행하여 경찰 버스에 태우고 있었다.
(경찰이 강경해 졌어... )
강한섭은 경찰의 진압 태도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러나 학생들이 데모를 하던 태평로 일대는 최루탄 몇 발에 삽시간에 진압이 되었다. 강한섭은 근처 다방으로 다시 들어가 신민당 마포 당사의 대변인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마포 당사에서도 학생들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응답했다. 강한섭은 대변인의 성명을 전화로 받아 적고 신문사로 걸음을 되돌렸다. 그러나 석간신문은 이미 배달이 된 뒤였다. 강한섭은 데스크의 지시에 의해 퇴근을 하지 않았다. 데모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방송의 9시 뉴스는 서울 시내 일원에서 수십만의 대학생들이 데모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카메라는 빗속에서 데모를 하는 학생들 모습을 열심히 비추었으나 데모의 내용은 보도하지 않고 있었다. 학생들이 주장하는 전두환 파쇼라거나 전두환 물러가라는 내용은 일절 없었다. 알맹이 없는 보도였다. 데모대는 경찰이 진압을 하자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데모를 계속했다. 빗발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학생들도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2
한경호는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방송의 뉴스 진행자는 흥분된 어조로 데모하는 학생들이 밤이 되었는데도 서울 시내 일원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데모를 자제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고 있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교에 보내면 쓸데없이 데모질이나 하구... )
한경호는 화면에 비치는 대학생들의 데모 행렬을 보면서 속으로 빈정거렸다. 그는 학생들의 데모가 탐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데모는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학생들의 데모가 계속되어 사회가 혼란스러워야 국민들에게 계엄을 확대하는 구실이 되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더욱 바뻐지겠지... )
한경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떻게 돼 가는 거예요?"
아내 정란이 커피를 끓여 내오며 한경호에게 물었다. 한경호는 TV에서 시선을 떼고 정란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란이 의아한 눈길로 TV와 한경호를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뭐가?"
"데모요."
정란이 한경호의 옆에 와 앉았다. 정란의 몸에서 자스민 냄새가 왈칵 풍겼다.
"어두워졌으니까 끝나겠지..."
"아까 길에서 들으니까 전두환 파쇼라고 무슨 소리예요?"
"시내 나갔었어?"
한경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시내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그랬잖아?"
"나 병원에 갔었어요."
정란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
한경호는 정란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정란이 갑자기 병원에 갔다는 말을 꺼내 어리둥절했다. 병원이라는 말에 이천의 정신병원이 생각났던 것이다.
"네."
정란이 살갑게 눈웃음을 쳤다. 정란의 얼굴엔 까닭을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가 있었다.
"어디 아퍼?"
"아뇨."
정란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몸짓에 알 수 없는 교태가 묻어났다.
"그럼?"
"맞춰 보세요."
정란이 애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인가?"
"그럼요."
"무슨 일인지 난 전혀 모르겠어."
"당신이 바라는 일예요."
"내가? 내가 병원에서 무얼 바래?"
"바보!"
정란이 아이들처럼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가르쳐 줘."
"싫어요."
"그럼 힌트라도 줘."
"싫어요."
"그럼 할 수 없지..."
"뭐가요?"
"왜 병원에 갔는지 몰라도 할 수 없다는 거야."
"아이 매력 없어."
한경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란은 신문기자 부인과 자주 어울리고서부터 말투가 서울깍쟁이들을 닮아 가고 있었다.
"정말 모르겠어요?"
정란이 한경호를 향해 바짝 다가앉았다. 그러자 또다시 정란의 몸에서 자스민 냄새가 왈칵 풍겼다. 한경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한경호는 자스민 냄새가 어쩐지 싫었다. 정란이 자스민 향수를 지나치게 많이 뿌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
한경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유 속 터져!"
정란이 한경호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배로 가져갔다.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따뜻해."
"정말 당신은 벽창호야!"
"왜 그래?"
"이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몰라."
한경호는 고개를 흔들려다가 깜짝 놀랐다. 정란은 뱃속에 아기를 가진 것이다.
"아기야?"
한경호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요!"
정란이 뽀루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한경호는 정란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정란은 부정한 여자였다. 이 부정한 여자가 아이를 갖고 있다면 대체 누구의 아이란 말인가. 내 아이인가, 나 몰래 만나는 그 놈팽이의 아이인가... 한경호는 명치 끝이 묵직해 왔다.
"병원에서 3개월 되었대요."
정란이 주춤한 기색으로 말했다.
"미안해. 전혀 몰랐어..."
한경호는 명치 끝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아내의 임신이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있었다.
"정말 실망했어요!"
아내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한경호는 아내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귀띔이라도 해줘야 알지."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언제나 무심하기만 했어... !"
아내의 말에 가시가 돋쳤다. 한경호는 말문이 탁 막혔다. 서울로 이사 온 뒤에 아내에 대한 폭행을 삼가해 온 탓인지 아내는 어느 때보다도 기가 살아 있었다.
"그랬나... ?"
한경호는 공허하게 웃으며 아내를 와락 끌어안는 시늉을 했다. 아내가 임신을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자랑하고 있었으나 한경호는 결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의 임신했다는 말에 병원에 있는 아들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지 기꺼운 표정으로 한경호의 가슴에 안겨 왔다.
"당신 아이란 말예요."
정란이 그의 품속에 새처럼 안겨서 종알거렸다.
"이번엔 소영이처럼 예쁜 딸을 낳을 거예요."
"미안해."
한경호는 얼굴을 딱딱하게 만들며 말했다. 갑자기 죽은 딸 소영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 왔다. 소영이 죽은 것은 여주에서였다. 여주에는 군청 뒤로 남한강 상류가 서울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론 남한강의 여러 줄기에 지나지 않았으나 여주 읍민들에게는 한여름이면 시원한 강바람을 쐬게 해줄 뿐 아니라 물것들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강변에는 언제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한 둘씩 눈에 띄었다. 강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술추렴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경호는 그해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로 갔다. 딸 소영이 언제부터인지 낚시를 하러 가자고 졸랐었고 그도 집안에 들어앉아 있기가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동생의 결혼식에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내의 동생은 포항에서 직업군인으로 있으면서 그곳에서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었는데 결혼식 날짜가 토요일로 잡히는 바람에 한경호는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한경호가 근무하는 부대에서 탈영병이 생기는 바람에 비상이 걸린 탓도 있었으나 한경호는 아내 동생의 결혼식에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에 대한 증오가 그 동생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한여름이었다. 한경호는 버스를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읍내와 가까운 강에는 사람들도 많을 뿐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곳이면 수영도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강가에 이르자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히 젖었다. 여주에서 충주 쪽으로 20리쯤 떨어진 곳이었다. 한경호는 억새풀이 우거진 강가를 걸어 아카시아 그늘 밑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강가에 이르자마자 옷을 벗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한경호는 얼굴과 손을 씻고 낚시 가방을
풀었다. 그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인적도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아카시아 숲 뒤로는 낮은 야산이 있어서 싱그러운 녹향이 바람결에 날리고 있었다. 한경호는 낚시를 강에 드리웠다. 바람이 없어서 찌를 관찰하기가 쉬웠다. 정오가 되었다. 한경호는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아 매운탕을 끓였다. 야산에서 이따금 뻐꾸기가 울어댔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강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강가를 찌렁찌렁 울리고 있었다. 매운탕이 끓자 아이들은 매운탕에 가지고 온 밥을 먹게 하고 한경호는 술을 마셨다. 오후엔 아카시아 그늘 밑에서 잠을 잤다. 아이들은 낚싯대를 만지기도 하고 강가를 뛰며 놀았다. 더우면 강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물 조심하라고 당부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런 말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증오가 다시 속에서 끓어 올랐다. 강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벌레처럼 미워졌다. 내 아이들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지금까지 자신의 아이들인줄 믿고 사랑을 쏟아온 사실에 대한 배신감에 또다시 치가 떨렸다. 그는 실눈을 뜨고 강가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은 강에 들어가 물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영철이 소영에게 물을 끼얹고 있었고 소영은 물세례를 피하기 위해 깔깔대고 웃으며 깊은 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위험해!)
한경호는 눈을 번쩍 떴다. 소영은 물살이 빠른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경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갑자기 한경호의 머릿속으로 소영이 그대로 물에 빠져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던 것이다. 소영이뿐이 아니었다. 영철이도 소영이를 구한답시고 따라 들어가면 둘이 함께 죽을 것이 아닌가... 한경호의 머릿속에는 무서운 생각이 꿈틀대고 있었다. 한경호는 실눈을 떴다. 그러나 소영이는 강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영악한 계집애... )
한경호는 눈을 감았다. 술이 오르고 있는지 졸음이 나른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태양은 중천에서 화산이 폭발을 하듯이 작렬하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어디선가 보릿단을 태우는 것 같은 매캐한 연기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한경호는 아내를 생각했다. 아내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새 외간 남자를 만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아내는 금요일 날 갔으므로 토요일의 결혼식에 참석했으면 밤에라도 돌아와야 했을 터였다.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을 떠나버리면 일가친척도 변변히 없는 아내가 어디서 잠을 자겠는가. 지금쯤 어둠컴컴한 여관 구석방에서 어느 놈팽이를 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터였다. 한경호는 아내의 하얀 몸뚱이를 생각했다. 아내의 하얀 몸뚱이를 더듬고 있는 낯선 사내의 투박한 손을 생각했다. 아내는 그 손이 자신의 몸을 애무할 때마다 입을 벌리고 더운 입김을 토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연놈의 등짝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오늘 밤에 놈의 정액을 사타구니에 묻히고 돌아와 밤꽃 냄새를 풍기며 애교를 떨 것이다. 그러면 그는 못 이기는 체하며 바람을 피운 아내를 껴안고 짐승처럼 교미를 하게 될 것이다. 바람을 피운 화냥년들은 자신이 바람을 피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그런 날은 더욱 남편에게 교태를 부린다고 하지 않는가. 더러운 화냥년들...
한경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태양과 짜증스럽다. 주먹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소영아... 소영아... 영철이 소영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한경호는 문득 눈을 뜨고 강을 본다. 소영이 보이지 않는다. 소영아... 영철은 허리까지 찬 강 속에서 소영을 부르고 있다. 영철이 소영을 부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귓전을 후빈다.
(꿈인가?)
한경호는 몸을 반쯤 일으켜본다. 영철이 문득 이쪽을 돌아본다. 한경호는 그 순간 영철이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다.
"아빠!"
영철이 한경호를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생생하게 울렸다. 다음 순간 한경호는 소영이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착각인가? 아니다. 소영은 분명히 강물 한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영철이 한경호를 부르는 것은 소영이 물에 빠졌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빠졌어!)
한경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소영을 구하러 가는 대신 재빨리 누워버렸다.
"아빠!"
"아빠!"
영철이 다급하게 한경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한경호는 눈을 질끈 감고 대꾸하지 않았다.
"아빠! 소영이가 물에 빠졌어!"
"아빠! 소영이를 살려줘!"
한경호는 영철의 다급한 부름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고 손에서 진땀이 나고 있었으나 못들은 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영철이 소영을 따라 들어가 물에 빠져 죽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빠!"
그러나 영철은 아카시아 그늘 밑으로 달려 나와 한경호의 어깨를 마구 흔들고 있었다. 한경호는 그때서야 눈을 부스스 뜨는 체했다.
"아빠!"
"왜?"
"소영이가 물에 빠졌어요!"
영철이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뭐?"
"소영이가 물에 빠졌는데 왜 모르는 체하는 거예요?"
"뭐?"
한경호는 가슴이 철렁했다. 영철이에게 잠을 자는 체하던 것이 들켰다고 생각되어 자신도 모르게 같은 질문이 터져 나왔다.
"소영이가 물에 빠졌단 말예요!"
영철이 한경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한경호는 영철을 밀어버리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소영은 강물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한경호는 강물을 휘휘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소영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벌써 가라앉았나?)
한경호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쫙 하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엄청난 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한경호는 눈앞이 아득해 왔다. 강을 아무리 휘둘러보아도 어린 소영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경호는 죽은 소영이의 얼굴을 생각하자 가슴 속으로 찬비가 뿌리는 기분이었다. 소영은 그가 원하던 대로 죽었으나 그의 가슴은 죄의식으로 언제나 가슴이 뻐개질 것 같았다. 소영의 시체는 그날 해질 무렵에야 발견되었다. 한경호가 경찰에 신고하고 마을 사람들과 강변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한경호가 낚시를 하던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그곳에서 1킬로미터나 떨어진 강가에 떠올라 천렵꾼들에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영철은 그 이후 한경호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경호가 소영이 죽어주는 것을 바랬던 것을 알고 있기나 하듯이 한경호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한경호도 영철이 두려워졌다. 영철은 그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소영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눈을 뜨고 봤으면서도 잠이 든 체하고 구출해 주지 않은 것을 영철은 알고 있었다. 영철이 그를 멀리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철은 그 사실을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한경호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는 책임은 모면할 수 없었다. 아내는 그에게 살인자라고 말했고 동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다. 영철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소영이 죽은 지 불과 6개월도 못 되어 정신이상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것이다. 소영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충격을 받은 것은 한경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영이 비록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해도 죽음을 방치한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아내는 그러한 그를 짐승을 보듯이 멀리했다. 악몽 같은 날들이었다.
"한번 만져 봐요."
아내가 다시 한경호의 손을 잡아당겨 복부에 올려놓았다. 한경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무슨 운명의 저주란 말인가. 아내가 부정한 짓을 저질러 낳은 아이가 물에 빠져 죽고 그 아이로 인해 또 다른 아이는 정신병자가 되고 자기는 죄의식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더러운 운명이 아닌가, 그런데 아내가 또 임신을 했으니 이 기구한 운명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인가... 한경호는 손바닥에 느껴지는 아내의 따뜻한 아랫배를 만지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내의 아랫배에서는 아직 생명이 움직이는 기분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때요?"
"따뜻해."
"아기가 느껴져요?"
"아직..."
"그래요. 나도 아직 아기를 느낄 수 없어요. 그래도 자꾸 기분이 좋아져요."
아내가 한경호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한경호는 아내의 어깨너머로 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내가 또다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기 아빠가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불안하면서도 기막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아내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당신은 어때요?"
"나도 물론 좋아."
"정말예요?"
"정말이잖구?"
이번엔 한경호가 아내의 등을 끌어안고 입술을 포갰다. 그러자 아내가 불쑥 그의 입술을 열고 혀를 밀어 넣었다. 한경호는 아내를 안아서 무릎 위에 앉혔다. 아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를 소파 등받이로 쓰러트렸다.
"참 좋다."
아내가 입술을 떼고 말했다. 아내의 손이 벌써 바지춤에 가 있었다.
"나 사랑해?"
아내가 들뜬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아이 좋아."
아내가 다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그러면서 아내의 손은 능숙하게 그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한경호는 정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TV에서 심야 뉴스가 끝나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TV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모양이었다.
"왜 그래요?"
아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텔레비전을 꺼야겠어."
한경호는 억지로 내키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끌께."
아내가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 거실의 전등과 TV를 껐다. 그러자 방안이 캄캄해지면서 빗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한경호는 거실 탁자를 더듬어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라이터는 아내가 찾아 불을 붙여 주었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서비스 해줄께..."
아내가 낮게 속삭이고 돌아서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경호가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자 빨간 담뱃불에 옷을 벗는 아내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났다가 스러졌다. 아내의 몸은 더욱 요염해지고 매끈해진 것 같았다.
"아기 때문에 괜찮을까?"
"하고 싶어."
아내가 그에게 다가와 응석을 부리며 말했다.
"조심해야 할 거야."
한경호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응했다. 한경호는 문득 아내가 이천의 병원에 다녀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이천에 다녀올 때마다 행위에 대한 욕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조심할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옷을 벗기며 낮게 소근거렸다. 벌써 아내의 입에서는 뜨거운 입김이 뿜어지고 있었다. 한경호는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제는 아내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물론 한경호가 아내와의 관계를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증오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아내의 육체는 계속해서 탐닉해 왔던 것이다. 한경호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증오하면서도 아내의 육체를 탐하는... 그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행위도 한경호는 싫었다. 아내는 분명히 변해 있었다. 아내가 무엇 때문에 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경호는 아내의 변화가 막연히 두려워지고 있었다. 한경호는 TV 뉴스를 잠깐 생각했다. 정국이 가파른 내리막길로 굴러가고 있었다. 5월 17일 이 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하리라고 생각하자 편안하게 행위에 몰두할 수 없었다.
"나를 봐요!"
아내가 한경호에게 자신의 나신을 덮어 오며 허리를 흔들었다. 한경호는 습관적으로 아내의 등을 끌어안으며 눈을 떴다. 아내의 어둠 속에서 하얗게 웃으며 한경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경호는 그 순간 아내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요기를 띠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가만히 몸을 떨었다. 창밖에는 빗발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다. 유리창이 덜컹대고 흔들리고 빗소리가 귓전을 때려왔다. 그리고 바람소리와 빗소리에 섞여 아내의 신음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3
강한섭이 목포에 도착한 것은 5월 15일 오후 2시였다. 신문사의 예상대로 광주도 학생들 시위로 어수선했다. 신문사에 5. 17 전국 계엄 확대와 김대중 민추협 고문 구속 제보가 들어온 것은 5. 14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제보는 김대중 민추협 고문뿐 아니라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를 비롯해 정치인 수십 명을 구속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구속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김영삼 총재가 구속 대상이 아니라구?"
"아니 무엇 때문에 김영삼 총재는 구속 대상이 아니라는 거야?"
"혹시 군부에서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게 아니야?"
신문사에서는 정치인 대량 구속 예정이라는 제보가 들어오자 비상상태에 돌입했다. 특히 김영삼 총재가 구속 대상이 아니라는 바람에 신군부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신군부는 3김씨를 모두 비토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구속을 안 해?"
"제2의 부마사태를 두려워해서 연금으로 끝낼 것 같다고 합니다."
"연금? 연금이면 한계가 있을 텐데?"
"정치규제법이 만들어지겠지요."
"그렇다면 강제로 정계 은퇴를 시키겠군..."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정치부 데스크는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정치인들이 대거 구속 사태가 잇따를 것이라는 제보를 받자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기에 바뻤다. 그때 광주에서 대학생 데모를 취재하고 있던 사회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광주는 김대중 민추협 고문이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어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광주에서는 김대중 민추협 고문에 대한 지지가 폭발적인 상태에 있었다. 71년 제9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돌풍을 일으키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했으나 호남지역에서의 지지는 김대중을 정치계의 거목으로 끌어 올렸던 그러나 유신헌법이 선포되기 직전 일본으로 떠났다가 10월 유신을 맞이한 김대중은 일본에 그대로 주저앉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가 그를 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소문은 정보부가 김대중을 동경에서 살해하려다가 실패했으며, 바다에 던져 넣으려다가 미국 CIA가 이를 눈치채고 전투기로 추적을 해오는 바람에 한국까지 끌고 와 집 앞 골목에 팽개친 것이라는 내용으로 시중에 파다하게 나돌았었다. 정부에서는 구국청년단이 애국적인 행동으로 일본에서 반국가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는 김대중을 납치한 것이며 구국청년단을 체포하기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정부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외교적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외국 언론들은 다투어 김대중을 납치한 자들이 한국의 중앙정보부이며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납치는 가장 추악한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신헌법까지 맹렬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을 일본에 파견하여 김대중을 납치한 것은 명백한 주권 침해며 원상 복귀시키지 않으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본 언론들도 다투어 한국 정부를 공격했다. 한국 정부는 김대중 납치로 오히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반체제 인사들과 시민들, 그리고 학생들은 김대중 납치의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대학생들은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연일 데모를 벌였다. 호남 지역에서는 데모를 하지는 않았으나 김대중의 납치로 또 하나의 큰 상처를 가슴에 묻어야 했다. 71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좌절, 영남 지역이나 대구 경북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촌 실정이 박정희 대통령과 그 지역 권력자들의 호남 차별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호남지역 주민들은 김대중의 납치가 자신들에 대한 탄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은 그 후 상당히 오랫동안 연금상태에 묶여 있었다. 호남지역 주민들은 김대중의 연금도 자신들이 연금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가슴에는 어느 사이에 칼날 같은 한이 푸른 빛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은 녹슬지 않고 더욱 크게 자라고 있었다. 세월은 더욱 암담해져 갔다. 긴급조치가 선포되고 반체제 인사들이 속속 구속되었다. 호남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어린 소녀들이 서울로 서울로 상경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가난한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우울하고 암담한 시대였다. 남루한 의복, 떨어진 신발, 병든 시골집 부모들, 재봉틀 먼지가 자욱한 봉제공장이 70년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풍경이었듯이 호남지역 주민들은 70년대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호남 사람들을 하와이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전라도 깽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호남 주민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압제자들이 만들어 낸 교묘한 지역 차별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 26이 터지고 김대중은 사면과 복권이 되어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압제자는 부하의 총에 죽고 탄압받던 김대중은 국민의 영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호남지역 주민들은 김대중의 금의환향을 학수고대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관광차를 동원해 서울로 서울로 상경했다. 그들은 김대중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김대중의 귀향을 바랬다. 김대중은 마침내 광주 방문에 동의했다. 그러나 시간을 확정 짓지는 않았다. 김대중의 광주 방문이 지역 이기주의를 조장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신군부가 김대중을 구속하고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호남지역 국민들을 분노케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섭이 광주에 도착했을 때 그 여파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학생들 시위가 서울 못지않게 격렬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전남대학교 학생들이었으나 5월 15일엔 조선대학교와 광주교육대학교의 학생들까지 참여하여 도청 분수대 앞으로 약 1만6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진출하여 시위를 벌였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유신잔당 물러가라!"
"정치일정 단축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전남대 학생회는 시국 성토 선언문을 발표했고 조선대와 광주교대는 민주화투쟁위원회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낭독한 뒤 구호를 외쳤다. 시위는 질서정연했고 경찰은 물리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질서만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학생들의 시위에는 다수의 교수들과 시민들까지 참여하여 학생들을 격려했다. 시위대는 집회를 마친 후 질서정연하게 각 대학으로 돌아갔다.
(공연히 소문만 무성했군... )
강한섭은 광주의 대학생들 시위를 취재하며 학생들이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안심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데모가 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5월 15일 서울역 일대에는 약 10만 명의 대학생들이 집결하여 군부의 음모를 성토했다. 그러나 오후 3시 무렵이 되자 각 대학교의 학생회로 계엄군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제보가 잇따라 들어왔다. 학생회 간부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회 간부들은 군 병력과 장갑차가 서울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역 일대에서 데모하는 학생들에게 통보했다.
"군인들은 모두 우리의 가족입니다! 우리의 형님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우리를 장갑차로 깔아뭉개겠습니까?"
서울역 광장에 스쿨버스로 임시 연단을 설치한 시위 학생들은 학생회의 통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이 연설을 할 때마다 우뢰 같은 박수가 쏟아져 분위기를 돋구었다.
"군인들은 우리의 오라버니들입니다! 군인들이 장갑차를 끌고 오면 달아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군인들과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오면 맨 가슴으로 뜨겁게 맞이합시다! 그리고 총부리를 유신 잔당에게 돌리도록 호소합시다!"
여학생들의 연설에도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그날의 시위도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정치권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신민당은 국회에 비상계엄 해제 촉구결의안을 국회에 냈고 김종필 총재는 신현확 국무총리를 방문하여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신현확 국무총리는 오후 7시 50분 학생들의 시위를 자제할 것을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의 내용은 연말까지 개헌을 하여 내년 상반기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이었을 뿐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것이었다. 그 시간 학생들의 시위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각 대학 학생회 대표들은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제보를 받고 고려대학교로 급히 모였다. 그들은 가두 시위 계속 여부와 향후 투쟁 방향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단체와의 연합 투쟁이었으나 정치권이 학생들의 시위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토론은 장시간 동안 계속되었으나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고 있으므로 일단 학교로 복귀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이것이 저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었다. 강한섭은 광주에서도 서울의 동정에만 귀를 기울였다. 5월 16일엔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5월 16일 오후 전남 도청 앞 분수대가 있는 광장에는 광주 일대의 대학생 3백여 명이 집결했다. 전남대학교 복학생 정동년은 여기서 제2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시국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대규모의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이때도 경찰과 학생들의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밤 8시 학생들은 도청 앞에 다시 집결하여 횃불 시위에 들어갔다.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제1대는 금남로를 따라 행진을 하고 제2대는 전남대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광주체신청-산장입구-산수동5거리-동명파출소-노동청을 거치며 행진을 하여 도청 앞으로 되돌아 왔다. 광주 시내는 수백 개의 횃불로 대낮처럼 환하게 밝았다. 학생들은 5.16 19주기를 맞아 5.16 화형식을 치른 뒤 비로소 해산했다. 강한섭은 시위 현장을 빠짐없이 취재하여 서울로 타전했다. 계엄사의 보도 검열 때문에 기사가 실릴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으나 취재한 내용은 서울로 송고해야 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신문을 받아 보자 광주에서 횃불 시위가 일어났다는 기사가 사회면에 제법 크게 보도되어 있었다. 강한섭은 만족하여 다시 취재에 나섰다. 5월 17일은 광주가 조용했다. 서울에서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은 광주 지역 학생들도 서울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던 것이다. 광주에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어닥친 것은 5월 17일 밤 11시가 되었을 때였다. 이보다 앞서 광주 시내는 아침부터 불길한 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고 있었다.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군용 트럭의 행렬이 시민들에게 자주 목격되기도 했고 전남대학교에서 어학 강의를 하는 미국인들이 일제히 출근하지 않아 학생들을 의아하게 했다. 전남대학교 뒷산에서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학생들을 정찰하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오후 7시가 되었을 때 서울에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모두들 피하세요! 이화여대에서 회의를 하던 학생들이 모두 계엄사로 연행되었어요!"
"군이 투입되었습니까?"
"자세한 것은 모르겠어요. 빨리 피하셔야 해요!"
"계엄령이 확대되었습니까?"
"몰라요!"
여학생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나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학생 대표들은 서울로 전화를 걸어 각 학교에 군이 투입되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이미 일제히 검거 선풍이 불어닥쳐 연락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8시쯤이 되자 학생들은 서울에 검거 선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곧 비상회의에 들어갔다.
"계엄령이 확대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검거 선풍이 불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서울의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군이 투입되어도 시위는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됩니다. 서울과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도피하면 학생들에게 내일 아침 10시 학교로 모여 도청 앞에 집결하라는 지침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피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만 희생됩니다."
"시위 지도부가 없으니까 학생들은 해산할 겁니다. 또 군에 연행된다고 해도 지도부가 아니니까 훈방될 겁니다."
학생들은 회의를 계속했으나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아 일단 9시쯤 대지 호텔로 피했다가 상황이 점점 불길한 방향으로 전개될 움직임을 보이자 곧 바로 호텔을 떠나 은신했다. 강한섭은 대지 호텔에 숙소를 정해 놓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서울로 전화를 걸자 서울도 공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바깥 외출을 자제하라고 아내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강한섭은 상도동으로 전화를 걸었다. 상도동에는 이미 국회의원들이 모두 돌아가고 비서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강한섭이 평소부터 잘 알고 있는 비서에게 김영삼 총재의 동향이 어떠냐고 묻자 총재는 침통한 표정으로 2층에 올라가 있다고 말했다.
"바깥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아요. 이미 군인들이 짝 깔렸어요."
"총재께서 연행될 것 같습니까?"
"모르겠어요. 동교동은 연행이 될 모양입니다. 그쪽 비서실에서 난리예요."
강한섭은 가슴이 철렁했다. 군부에서 김대중 민추협 고문을 연행한다면 앞으로의 정국이 혁명 정국으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막상 일이 닥치자 강한섭은 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듯이 냉랭해졌다. 강한섭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김대중 민추협 고문이 연행된다는 말씀입니까?"
"예."
"몇 시에요?"
"11시 전후라고 합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거의 정확한 소식통인 모양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봐요. 강 기자!"
강한섭이 전화를 끊으려고 저쪽에서 다급하게 강한섭을 불렀다.
"예."
"이 상황이 보도될 수 없는 상황이오?"
"예. 아시다시피 보도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 계엄사에서 보도하게 그냥 두겠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그럼 다음에 봅시다. 아무래도 이번 봄은 혹독하게 무서운 봄이 될 것 같소. 수고하시오."
상도동 비서가 맥없이 전화를 끊었다. 강한섭은 수화기를 놓고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 신문사도 이미 비상이 걸려 있었다. 기자들 대부분이 퇴근도 하지 못하고 신문사를 지키거나 계엄군의 이동을 따라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계엄군이 얼마나 보강되었어?"
강한섭은 사회부의 최병준 기자와 통화를 했다.
"말도 마. 지금 여기는 살벌하다구."
"탱크가 투입되었었어?"
"응. 각 언론사에 탱크가 투입되구 군인들이 대대적으로 보강되었어."
"동교동이 연행된다며?"
"동교동뿐이 아니야. 재야의 주요 인사들과 학생들은 벌써부터 연행되고 있어."
"그래?"
강한섭은 가슴이 뜨끔했다.
"유신 때와 똑같아."
"혁명이군..."
"광주는 어때?"
"광주도 검거 선풍이 분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조심하게. 광주에 공수부대가 이동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공수부대가?"
"그들은 충정훈련을 받은 부대래."
"충정훈련이 뭐야?"
"쿠데타 진압 훈련이야."
"알았네."
강한섭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벌써 밤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계엄군이 진입하는 것은 광주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쿠데타 진압군을 광주에 투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자 몸서리가 쳐졌다.
4
서교동 분실의 창으로 보이는 버드나무가 점점 초록빛으로 짙어갔다. 한경호는 사무실의 창으로 우두커니 신록을 응시하고 있었다. 5월 17일 마침내 서울공작의 힘찬 진군이 시작된 것이다. 5월 17일 아침 주영복 국방부 장관은 보안사의 권정달 대령으로부터 한 통의 서찰을 받았다. 그것은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비상기구 설치, 그리고 국회 해산에 관한 내용이었다. 주영복 국방 장관은 이미 그러한 조치가 있으리라는 것은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세우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기로 한 것도 그러한 조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주영복 국방부 장관은 유병현 합참의장에게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니요?"
"장관님. 아무리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있다고 해도 국회 해산은 군에서 논의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헌법에 위반됩니다."
"그렇군요."
주영복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각 군 참모총장들도 유병현 합참의장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주영복 장관은 이 사실을 권정달 대령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권정달 대령도 국회 해산에 대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해 왔다.
5월 17일 상오 10시 국방부 제1 회의실에서 드디어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이미 시나리오에 마련된 대로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위한 포석을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합참 정보국장 최성택 소장이 회의에 북한의 동향과 국내 정세를 보고했고 주영복 국방 장관이 회의를 주재했다.
"우리는 지금 국가적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안으로는 권력의 공백 상태를 틈타 소위 민주화 데모라는 학생들의 데모가 여느 때보다 격렬하고 밖으로는 북한이 적화 남침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태를 방관할 수 없어 우국충정하는 마음으로 계엄의 전국 확대 실시와 비상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이를 국무회의에 건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주영복 국방 장관은 계엄의 전국 확대 실시와 비상기구 설치를 역설했다. 계엄의 전국 확대와 비상기구는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던 일인데도 장군들의 얼굴은 바짝 긴장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각 지휘관들의 합의가 필요하오."
주영복 장관의 발언이 끝났으나 아무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관은 일일이 장군들을 호명하여 찬성 발언을 이끌어 냈다.
"정치풍토를 쇄신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월남처럼 부패하여 패망할 것이오."
장관은 노골적으로 정치풍토쇄신법까지 거론하며 구정치인들을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이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군은 정치에 초연해야 합니다."
그러자 군수기지 사령관 안종훈 중장이 손을 들고 군의 정치개입을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12.12 사태 때도 육본 지휘관들이 대부분 합수부에 저항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을 때도 혼자서 합수부를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용기 있는 군인이었다.
"국회가 개원되면 국가의 명운을 위태롭게 가능성이 많습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대부분인 국회가 현재의 지역 계엄을 해제하고 군을 무력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상계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특전사령관 정호용 소장은 안종훈 장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성을 높여 안종훈 장군의 말을 비판했다.
"비상계엄 확대안은 이미 결정된 것이오. 따라서 이 회의는 단순하게 의견을 듣는 자리일 뿐이오."
계엄사령관 이희성 육군 참모총장도 안종훈 장군의 발언을 일언지하에 잘라버렸다. 안종훈 장군은 더 이상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주요 지휘관 회의는 반대 발언을 할 수 없도록 분위기가 살벌했다.
(이것은 통고지 회의가 아니야... )
안종훈 중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하여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비상기구 설치 결의문에 전원이 서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의문에 아무 내용이 없는 백지 결의문이었다. 백지 결의문의 내용은 물론 신군부가 작성한 것이었다. 이 결의문은 곧바로 신현확 국무총리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신현확 총리는 주영복 국방부 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으로부터 계엄확대와 비상기구 설치를 전군 지휘관들이 요구했다는 결의문을 전달받자 계엄확대는 반대하지 않았으나 비상기구 설치는 반대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같은 시간에 청와대로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는 권총을 찬 채 집무실에 들어가 비상계엄 확대와 대통령 긴급조치로 국회 해산과 국가 보위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눈을 지그시 감고 전두환 사령관의 요구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몹시 침울해 보였다.
"계엄확대는 동의하겠소."
이윽고 최규하 대통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각하. 국회 해산과 국가 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안됩니다. 국회는 해산할 수 없어요."
최규하 대통령은 단호했다.
"각하! 시국을 바로 보셔야 합니다."
"6. 25때도 국회는 해산하지 않았소."
"각하!"
"전 장군이 요구하는 것은 혁명적 조치요!"
"각하! 이것은 제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결의한 것입니다."
전두환 장군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는 최규하 대통령을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내세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은 국회 해산이나 비상조치를 건의할 권한이 없소!"
최규하 대통령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위엄이 있었다.
"전군 지휘관들은 순수한 애국심으로 이러한 결의를 한 것입니다."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하겠소. 그러나 회의의 안건은 비상계엄 확대뿐이오."
"알겠습니다."
전두환 장군은 도리없이 청와대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엄군은 이미 정치적인 활동에 들어가 있었다. 신군부는 강원도에 주둔하고 있던 특전사 11여단과 13여단을 서울로 이동하게 하여 거여동 특전사령부와 김포 여단에 배치했고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각 여단도 점령 목표로 이동했다. 전북에 주둔하고 7공수 여단은 광주로 이동했다. 양평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의 사단 직할 61연대와 62연대도 서울로 이동했고 60연대는 태릉의 육군사관학교로 이동해 있었다.
5월 17일 밤 9시 42분 중앙청에서 제42회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회의 안건은 최규하 대통령의 요구대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뿐이었다. 그러나 전국 계엄은 지역 계엄과 그 권한의 폭에서 판이하게 달랐다. 지역 계엄은 국방부 장관을 통해 내각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었으나 전국 계엄은 대통령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었다. 전국의 치안을 장악하고 있는 계엄사령관은 대통령의 통제만 받을 뿐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계엄사령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조치였다. 그 조치를 의결하기 위해 국무회의가 열린 것이다.
중앙청 일대는 9시가 되기 전부터 무장군인들에 의해 삼엄하게 에워싸여 있었다. 비상소집 연락을 받은 각 부처의 장관들은 중앙청 앞에 도착하자마자 무장군인들에 의해 옆문을 통해 회의실로 모셔졌다. 중앙청 복도에도 군인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지키고 있었다. 중앙청에서 야근을 하던 공무원들은 군인들에 의해 별관으로 쫓겨나 있었다. 전화는 두절되었고 분위기는 살벌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임시 국무회의는 제안 설명이나 찬반토론도 없이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의결했다. 이규현 문화공보부 장관은 11시 40분 서울 시청에서 비상계엄 지역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일원에서 전국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보안사 요원들은 이미 학생 체포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이화여대에서 전국 학생대표자회의가 열리고 있던 오후 6시경의 일이었다. 밤 10시 무렵부터는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들어갔다. 문익환, 예춘호, 김동길, 인명진, 고은, 이영희 등 재야인사들에 대한 검거는 소요 배후 조종 혐의가 적용되었고 김대중은 내란 혐의, 김종필, 이후락, 김치열, 김진만, 이세호 등은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되었다. 김영삼 등 야당 정치인들은 이유도 없이 자택에 연금되었다. 김대중이 체포된 것은 밤 11시 20분경이었다. 동교동은 이날 낮부터 바짝 긴장해 있었다. 오후 5시경 비상 국무회의가 소집되었다는 라디오 뉴스에 이어 이화여대에 계엄군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연행해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동교동의 분위기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침통해 있었다. 밤 10시경이 되자 문익환. 고은 등 재야인사들이 계엄군에 연행되었다는 연락이 전화선을 타고 빗발쳤다. 동교동에는 11시 20분이 되었을 때야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동교동의 비서진과 경호원들은 밖에서 군인들의 구령 소리와 군화 소리가 들리자 우왕좌왕했다. 사람들은 얼굴이 핼쓱하게 질려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경호원들 중의 한 사람이 밖으로 뛰어나가 계엄군을 저지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계엄군들은 M16을 겨눈 채 경호원들을 물리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 김대중을 연행하여 남산 중앙정보부에 수감했다. 계엄 포고령이 발표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는 이제 남산에 가면 한동안 나오지도 못하겠지... )
한경호는 푸르게 살랑거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내다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란 혐의가 그에게 씌워진 것은 단순하게 그를 제거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김대중에 대한 체포와 구속은 정국을 얼어붙게 만드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윤 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한경호가 밖의 버드나무 가지를 내다보며 묵연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한 부장인가?"
"예?"
"나 윤일세."
전화 속의 목소리는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윤 사장이었다.
"아, 사장님..."
한 부장은 한경호의 위장 이름이었다.
"자네 오늘부터 남산을 왔다 갔다 해야겠어."
"남산을요?"
"자네가 남산 쪽 놈들의 취조를 맡아야겠어. 이 일은 시간을 끌면 안 되니까 서둘러야 해..."
"예에."
"어느 쪽 방향으로 취조를 해야 하는지는 자네가 잘 알고 있을 테니 이럴 때 능력을 발휘하게. 서울공작 팀의 아이디어 뱅크는 자네가 아닌가?"
윤 사장은 다짜고짜 한경호에게 남산에 구속되는 있는 시국사범들의 취조 명령을 내렸다. 한경호는 전화가 끝나자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서울 공작팀이라는 것은 5.17 전국 계엄확대와 비상기구 설치를 계획하기 위해 만든 기구였다. 윤 사장이니 한 부장이니 하는 것은 각 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자의 계급을 떼어버리고 부장과 과장 따위의 호칭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공작은 곧 K공작으로 바꾸어 전두환 사령관을 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일 작정이었다. 한경호는 곧 남산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시국사범을 취조한 일은 한 번도 없었으나 어려우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출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한경호는 보안사 대령들의 업무를 돕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남산에 출입하여 낯이 설지도 않았다.
"남산?"
보안사의 서교동 분실장은 한경호의 보고를 받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중대한 일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한경호에게 맡긴 데 대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정보부 말이로군. 자네가 취조를 담당한다니 잘 되었네. 이왕 남산으로 가는 거라면 철저하게 취조를 하도록 하게. 취조를 잘해야 국민들이 우리의 애국충정을 납득하네. 그렇게 알고 곧 바로 출발해..."
"알겠습니다."
한경호는 흔쾌하게 대답했다. 이미 자신은 보안사의 일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 단순히 보안사의 업무를 돕는 문관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계획을 수행하는 전략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제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도 없으려니와 문관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권력이 그의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정치권은 모조리 도태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될 거야... )
그는 앞으로 2, 3년 후의 일을 머릿속에서 짐작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예편하는 것과 동시에 보안사를 나올 생각이었다. 보안사 대령 그룹은 권력을 인수하는 대로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준비에 착수할 것이었다. 지금은 권력을 인수하는 작업에 정신이 없지만 집권하게 되면 권력 기반을 튼튼하게 받쳐줄 정당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구정치인을 몰아낸 탓에 인물난을 겪게 될 것이었다. 물론 다수의 구정치인이 구제되고 신군부와 관료들이 어느 정도 참여하겠지만 보안사 쪽으로서는 충성심이 변함없는 요원들을 다수 정당에 참여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5. 16이 일어났을 때도 겪은 일이었다. 그는 보안사의 문관으로 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문관이라는 것은 남자의 직업으로서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직업군인으로서 평생을 보내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10년 남짓 하사관 생활을 했고, 본의 아니게 불미한 일로 명예제대를 한 뒤에 문관이 되었을 뿐이었다. 한경호는 천천히 사무실에서 나와 짚차에 올라탔다. 거리는 이미 봄이 완연했다.
5
강한섭은 호텔을 나오자 전남대학교 쪽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5월 18일 아침이었다.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되었으나 광주는 조용했다. 지난밤에 광주 지역의 재야 인사들과 학생들이 대부분 검거되거나 도피한 탓인지 아침 10시 학교 앞 집결이라는 행동지침이 무색하게 거리가 한산했다. 신문은 아침부터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정치인들 대량 구속, 계엄 포고령에 의한 각 대학의 휴교령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방송과 신문이 연이어 뉴스 속보를 터뜨린 탓인지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강한섭은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 고려대학교까지 조깅을 했는데도 거리가 비교적 한산한 편이라고 강한섭에게 말했다. 다만 고려대 앞에 육중한 탱크가 서 있고 무장을 한 군인들이 버티고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조용하군... )
강한섭은 아내와 전화를 끊은 뒤 신문사와 통화를 했다. 신문사에 광주는 조용하니 올라가도 좋으냐고 물었으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계속 광주에 남아 있으라고 하였다.
(이거 완전히 광주에서 세월을 보내게 생겼군... )
강한섭은 별다른 일이 없자 전남지사에 들렸다가 무등산 구경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광주는 한적하고 조용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사에 들리자 상황이 돌변해 있었다. 지사에 근무하는 지방 기자들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이광일 지사장과 취재 문제를 협의하고 있었다. 지난밤에 광주에 공수여단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마구 폭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사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사장은 50대의 뚱뚱한 사내였다. 광주 토박이로 양조장을 하면서 지사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조장보다는 신문사 지사 일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공수여단이 투입되었습니다."
"언제요?"
"어젯밤이요. 전남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마구 폭행했답니다."
이광일 지사장의 말에 의하면 광주에는 5월 17일 자정을 전후하여 7공수여단 33대대가 투입되었다고 하였다. 그들은 2군사령부로부터 전남대와 광주교대를 점령하라는 작전 지시를 받을 때 교내에 기숙사에 있는 학생은 귀가 조치하고 시위 주모자는 전원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 명령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들은 교내에 진주하자마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까지 모조리 체포하고 군홧발로 짓밟으며 진압봉을 휘둘러 초주검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으나 공수부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팬티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게 한 후 복도에 밤새도록 꿇어앉아 있게 했다. 비참한 밤이었다. 그러나 광주의 비극은 이제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계엄 포고령에 의해 각 대학교는 휴교령이 내렸으나 도서관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아침 7시부터 하나둘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정문에 도착하자 정문에서 입초를 서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이유도 없이 구타를 당했다. 일부는 가까스로 공수부대의 발길질을 피해 달아나기도 했다. 그것이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전남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학생들이 많이 다쳤나요?"
"초주검이 되도록 맞았다니까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럼 취재를 해야겠군요."
"10시에 학생들이 전남대 앞으로 모이니까 전남대로 가죠."
이광일 지사장의 제안에 의해 강한섭은 지방 기자들을 따라 전남대로 달려갔다. 전남대 앞에는 벌써 학교 앞으로 집결하라는 학생 지도부의 행동지침을 따르는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부대장을 만나고 싶소."
강한섭은 전남대 정문으로 가서 입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완전무장을 한 병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한섭을 훑었다.
"신문사에서 나왔소."
강한섭은 당당하게 말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병사가 머뭇거리다가 정문 경비실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었다.
"나오신답니다."
이내 병사가 정문 경비실에서 나와서 강한섭에게 말했다. 강한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문 앞에는 학생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덧 2백여 명이나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데모 대오를 갖추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공수부대 물러가라!"
33공수 대대장 권승만 중령이 짚차를 타고 나온 것은 그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권 중령은 검은색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특별취재반입니다."
"신문사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계엄하이니 취재에 응할 수 없소."
"어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구속되고 구타를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런 일 없소!"
권 중령이 강한섭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내뱉았다.
"기자 양반, 그만 돌아가시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취재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의의 사고가 생겨도 그것은 당신 책임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오."
권 중령의 말은 단호했다. 강한섭은 온전히 취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물러섰다. 학생들의 구호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33공수 대대장 권 중령은 정문 병력을 증강한 후 진압 대형을 갖추게 했다. 학생들은 공수부대가 진압 대형을 취하자 돌멩이를 집어 던지며 더욱 크게 구호를 외쳤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그러나 공수부대는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돌격하라!"
33공수 대대장 권승만 중령이 공격 명령을 내리자 공수부대 병력은 요란한 함성을 지르며 학생들을 향해 달려갔다. 학생들은 일제히 달아났으나 걸음이 빠르지 못한 학생들은 공수부대 병사들에게 붙잡혀 군홧발로 짓밟히고 진압봉으로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었다.
"아니 저럴 수가... !"
지방 기자들은 공수부대가 의외로 잔인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진압하자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위세에 전남대 앞의 시위는 간단하게 진압이 되었다. 공수부대가 전남대 정문 앞에 나뒹구는 학생들을 잡아끌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전남대 앞에는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은 학생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학생들은 도청 앞으로 집결하여 시위를 계속했다. 다행히 공수부대는 도청까지 진출하지는 않았으나 경찰이 최루탄까지 쏘면서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학생들은 최루탄 가스를 피하여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강한섭은 도청 앞에서 취재를 계속했다. 처음에 전남대 앞에서 취재를 하다가 공수부대원들이 학생들을 진압봉으로 마구 후려치는 것을 보고 군인들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도 살벌하게 진압을 하는 군인들을 피해 도청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전두환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학생들의 구호엔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점심때 신문사에 기사 내용을 타전하고 서울 소식을 물었으나 서울은 오히려 조용하다고 말했다. 오후에도 학생들의 산발적인 시위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경찰이 강력하게 대응함으로써 학생들의 시위는 위축되었다. 학생들의 시위 지도부는 대부분 검거되고 시위 학생들은 도주하기에 바빴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 시위를 한 곳은 광주 한일은행 앞이었다. 12시 30분경 학생들 950여 명이 한일은행 앞에 모여 계엄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을 하자 분산하여 학생회관, 가톨릭센타 앞으로 이동하면서 시위를 계속했다. 그러나 주력이 와해되어 2백 명, 3백 명 단위로 시위를 계속하다가 흩어지게 되었다. 학생들은 12시 45분경 산수동 파출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 20여 장을 깨고 달아난 뒤 2시 15분경 자진 해산했다. 일부는 10, 20명 단위로 시내를 배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시위가 더 이상 일어나지는 않았다. 5월 18일은 토요일이었고 시민들이나 학생들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강한섭은 취재를 이유로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현장에서 직접 취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럴 수가!)
강한섭이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을 또 다시 목격한 것은 오후 4시 금남로에서였다. 강한섭이 광남로와 금남로가 교차되는 금남로 5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공수부대 병력이 나타나 도열해 섰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는 경고 방송을 하고 1분도 못 되어 강력한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돌격!"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공수부대원들은 M16에 대검을 꽂고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학생들은 몸이 빨라 공수부대가 돌진하자 재빨리 달아났으나 시민들은 구경을 하다가 공수부대의 무차별 습격을 받았다.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마구 구타하고 짓밟은 뒤 개 끌듯이 끌고 가서 군용 추럭에 실었다.
"공수부대다!"
"피해라!"
강한섭은 공수부대가 돌진하자 학생들을 따라 동아일보 광주지사로 후닥닥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7공수는 동아일보 지사까지 뛰어 들어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끌고 갔다.
"아니 이거 왜 이래요?"
"여기는 신문사요! 신문사에까지 들어와서 이러는 법이 어디 있소? 당신 상관에게 항의하겠소!"
"뭐야?"
"뭐 이따위 새끼가 있어? 신문사면 다야?"
갑자기 뛰어든 공수부대원들에게 몇몇 신문사 직원들이 항의를 했으나 오히려 구타를 당한 뒤 모조리 끌려갔다. 강한섭은 카메라를 숨긴 채 공수부대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공수부대원들의 눈에 조금만 건방지게 보여도 구타를 당하고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아니 저게 우리나라 군인야?"
"우리가 빨갱이야 뭐야?"
"저 새끼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시민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폭행할 수 있어?"
"본사에 연락해! 광주 사태를 1면 톱으로 보도하라고 해!"
동아일보 기자들은 공수부대원들이 물러가자 책상을 치며 울분을 터뜨렸다. 강한섭은 슬그머니 동아일보 지사를 나왔다. 동아일보사가 타 신문사이기도 했지만 광주에서의 일을 취재 수첩에 기록해야 했다. 서울의 본사로 기사를 타전해도 계엄사의 검열 때문에 제대로 된 기사가 보도되지 않고 있었으나 훗날을 위해서라도 일단 기록해 두어야 했다.
"저놈들이 추럭 위에서도 구타를 해요."
강한섭이 신문사를 나오자 한 중년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강한섭이 중년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자 서석병원 앞에 정차해 있는 추럭 위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부상 당한 시민들을 마구 구타하고 있었다.
"여자를 희롱해요!"
강한섭은 입술을 깨물었다 추럭 위에서 젊은 여자가 옷이 찢긴 채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강한섭은 카메라를 꺼내 그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하는 장면을 세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광주는 5월18일부터 처참한 상황으로 돌변해 있었다.
5월 18일 토요일
동아일보 광주지사 계엄군에게 습격 당함
광주일고 옆 금남로에서 무릎을 꿇고 비는 학생을 군홧발로 짓밟고 진압봉으로 구타.
광주일고 담 밑에서 지나가는 젊은 여자를 잡아 머리채를 휘둘러 곤두박질을 치게 하고 군홧발로 짓밟음. 여자는 옷이 찢기는 수모를 당함.
칠성당구장으로 피신하는 대학생들을 추격하여 기물을 부수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구타.
중앙국민학교 후문 땀 쪽에서 여학생 수 명을 7공수가 상의를 벗기고 구타함.
노인이 말리자 노인까지 구타함.
공수부대원들은 이성을 상실한 듯 단순하게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타격을 하고 있었다. 5월 18일 밤까지 강한섭이 계엄군을 피해 가며 취재 수첩에 기록한 내용은 5월 18일부터 공수부대원들이 노골적으로 시민들을 타격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한섭이 목격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32세의 목공 김영철은 저녁 8시 버스가 다니지 않아 도보로 귀가 중 MBC 앞에 이르러 공수부대원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고 통일당 상무위원인 39세의 김태랑은 금남로 5가에서 시위 도중 계엄군에게 무차별 구타당하고 연행되었다가 통일당 당원증이 발견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얼마 후에 사망했다. 강한섭도 숙소인 대지호텔로 돌아오다가 몰매를 맞았다.
"뭐야?"
"왜 도망가?"
대지호텔 모퉁이를 돌 때 갑자가 나타난 공수부대는 다짜고짜 강한섭에게 진압봉부터 휘둘렀다.
"억!"
공수부대의 진압봉에 어깨를 맞은 강한섭은 어깨를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너두 돌멩이 던지고 시위했지?"
"이 새끼 맛좀 보여주어야 돼!"
"통행금지인데 왜 돌아다녀?"
"불순분자야!"
공수부대는 진압봉을 계속 휘둘러댔다. 강한섭은 어구구 하는 비명을 지르며 보도블록 위에 뒹굴었다. 그러자 공수부대가 군홧발로 강한섭을 마구 밟았다.
"옷 벗겨서 끌고 가!"
지휘관이 공수부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벗어!"
"벗어!"
공수부대가 대검이 꽂힌 M16으로 강한섭을 위협했다.
"나, 나는 기자요."
강한섭은 신음처럼 내뱉았다. 이대로 끌려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뭐야?"
"기자랍니다!"
"기자 놈들이 더 악질이야!"
"나는 전우신문 기자란 말이오!"
강한섭은 악을 썼다. 전우신문은 군인 신문이므로 공수부대도 호감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우신문이라고?"
"그렇소!"
"전우신문 기자가 왜 여기 와 있어?"
"당신들 활동을 취재하라는 보안사령관의 지시요!"
"이런 데서 얼씬거리지 마! 전우신문 기자라도 취재를 보장 못 해!"
지휘관이 침을 칵 뱉았다. 그러자 공수부대 병사들이 지휘관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앞으로는 조심해!"
지휘관이 강한섭에게 거칠게 내뱉고 병사들에게 눈짓을 하고 금남로 쪽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그러자 병사들이 ,지휘관을 따라 우르르 몰려갔다. 강한섭은 그때서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공수부대 병사들에게 얻어맞은 온 몸뚱이가 쑤시고 아팠다.
(개새끼들!)
강한섭은 이를 갈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광주 시민과 학생들이 5월 19일에 더욱 격렬한 시위를 하게 된 것은 18일의 과잉 진압과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김대중 민추협 고문이 계엄사에 구속되었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특히 시민들 면전에서 대학생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진압봉으로 구타한 행위는 시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가슴 속에 분노의 불길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광주 시내의 MBC와 KBS, 그리고 신문이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자비한 진압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하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5월 19일 오전 10시 금남로에는 2, 3천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집결했다. 경찰과 공수부대는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다. 학생과 시민들은 광주은행과 관광호텔 앞을 거점으로 삼아 격렬하게 투석전을 전개했다. 이때 11공수 여단이 새로 투입되었다. 이들은 7공수 여단의 35대대까지 배속받아 33대대의 임무를 인계받아 조선대에서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장교 108명, 사병 1038명의 강력한 진압부대였다. 61대대는 시내의 주요 시위 거점을 점령하고 있었고 62, 63대대는 차량에 탑승하여 시내를 질주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금남로와 충장로 부근에서 시위대를 포위 압축해 들어갔다. 그들은 M16을 어깨에 비껴 메고 진압봉을 움켜쥐고 일제히 돌격했다.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강력한 타격을 당할 수가 없어 재빨리 골목으로 달아나거나 주변의 상가로 뛰어 들어가 셔터를 내렸다.
"학생들에게 알린다. 숨은 사람은 모두 자수하기 바란다. 자수하지 않으면 강력한 타격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공수부대 장교가 메가폰으로 자수 방송을 실시했다. 그러나 아무도 자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수부대는 이미 달아나지 못하고 잡힌 시민들과 학생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었다.
"숨은 사람은 자수하라!"
공수부대 장교의 방송이 끝나자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주위 상가로 달려들어 상가의 셔터를 부수고 난입하여 타격전을 전개했다. 그들의 진압봉은 박달나무로 되어 있어서 한 대만 맞아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것이었다. 상가의 쑈윈도우와 진열장들이 박살 나고 학생들과 시위를 하던 시민들이 무수히 폭행을 당했다.
"아구!"
"으악!"
거리는 학생과 시민들의 비명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반항을 하면 더욱 심한 구타를 당했다. 어떤 시민은 대검으로 허벅지를 찔리기도 했다. 연행 도중에 달아나면 가정집까지 추격하여 진압봉을 머리를 후려쳐서 쓰러트린 뒤 연행했다. 그들은 군인 추럭으로 연행되었다. 추럭엔 이미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연행되어 있었고 공수부대원들이 걸핏하면 휘두르는 진압봉에 맞아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광주는 무법지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도장이라는 작은 호텔도 공수부대의 잔혹한 타격의 대상이 되었다. 공수부대는 금남로에서 하차하자 그 일대 다방, 당구장, 여관 등을 수색하게 되었다. 미도장에는 7명의 공수부대가 들어갔다. 그들이 미도장 앞에 이르자 철문이 닫혀 있었다. 공수부대는 철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담을 넘어 들어가 문을 열었다. 호텔 복도에는 4명의 종업원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나비 넥타이를 깜끔하게 매고 있었다.
"왜 문을 안 열어?"
"우리 호텔에는 데모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개새끼들! 문을 두드리면 열어야 할 거 아니야?"
"악!"
공수부대원들은 문을 안 열었다는 이유로 호텔 종업원들을 마구 구타했다. 4명의 종업원들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일어서!"
"아구구!"
"일어서!"
"악!"
공수부대원들은 호텔 종업원들에게 군인들에게 하듯이 기합을 주었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종업원들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면서도 후닥닥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을 되풀이했다. 그때 지역대장인 소령이 들어왔다.
"이 새끼들은 뭐야?"
"여관 종업원입니다!"
"이런 개새끼들! 앉아!"
종업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자 소령이 종업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군홧발로 걷어찼다. 종업원들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다시 무릎 꿇는 자세를 취했다. 공수부대원들은 호텔을 샅샅이 수색했다. 여관에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투숙해 있었다. 공수부대는 그중 2, 30대의 젊은 사람만 밖으로 끌어냈다. 거기엔 신혼부부도 섞여 있었다. 초야를 치른 신부가 울면서 사정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시민들은 일차로 무수히 구타를 당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연행자들을 구타하는 것은 도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기를 죽여 꼼짝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엔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피해자의 허리띠로 묶은 뒤 묶인 손으로 자신의 옷을 들고 있게 하였다. 때로는 대로에서 팬티만 입은 채로 기합을 주기 일쑤였다. 조금이라도 행동이 굼뜨면 군홧발과 진압봉이 머리 위로 쏟아지기 때문에 체포된 시민과 학생들은 얼이 빠진 채 지시대로 해야 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기합이 끝나면 추럭에 강제로 실려졌다. 그러나 차량 위에서도 진압봉은 시민들의 머리와 어깨를 향하여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고개 숙여!"
"고개 숙이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야 이 새끼야 고개 숙여!"
"악!"
공수부대의 가혹한 타격은 추럭 위에서뿐 아니라 조선대학교 운동장으로 옮긴 뒤에도 계속되었다. 진압에 참가하지 않고 운동장에 있던 경계 대비병들과 취사병, 행정병까지 진압봉을 들고 모여들었다. 마치 학생들이나 시민들을 마구 구타하지 않으면 대열에서 도태되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다투어 구타에 참여했다. 19일의 시위는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진압을 맡은 공수부대는 정오가 조금 지나자 점심 식사를 위해 금남로에서 일시적으로 철수했다. 금남로 일대엔 경찰 병력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을 피해 흩어졌던 시민들과 학생들은 일시에 금남로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핏자국이 금남로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증오심이 불타올라 경찰에 돌을 던지고 MBC와 KBS에 방화했다. 시민들은 가톨릭센타 차고에서 전일방송 취재 차량 2대를 끌어내어 불을 지른 뒤 경찰의 바리케이트로 밀어붙였다. 차량은 경찰의 바리케이트에 부딪치자 요란한 폭음을 일으키면서 폭발했다. 이어서 근처의 건축공사장에서 기름통을 갖다가 불을 붙인 후 경찰에게 굴려 보냈다. 기름통도 경찰 바리케이트에 부딪치자 요란하게 폭발했다.
"와!"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민들은 이어서 대형 화분과 공중전화 박스, 교통 철책을 뜯어다가 바리케이트를 쌓고 경찰과 대치했다. 뒤에서는 여자들이 보도블록을 깨서 돌멩이를 만들었다. 지하도 공사를 하던 공사장의 인부들은 각목과 철근, 쇠파이프 등을 가지고 나왔다. 시위는 이제 본격적인 항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점심 식사를 마친 11공수 여단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금남로로 짓쳐 들어왔다. 공수부대의 선두는 전쟁터에나 볼 수 있는 장갑차가 맡고 있었다.
"장갑차다!"
"장갑차가 쳐들어온다!"
"저놈들이 우리를 장갑차로 깔아뭉개려 한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벌떼처럼 흩어져 달아났다. 그러나 우왕좌왕하던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중적인 타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1여단 61대대, 62대대. 63대대는 유동삼 거리에서 도청 쪽으로, 7여단 35대대는 도청에서 금남로 방면으로 포위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오후 3시 40분경에는 7여단 33대 30분의 250명도 시내로 진출했다. 광주 시내는 이제 무적을 자랑하는 공수부대 5개 대대가 투입된 것이다. 이들은 공비를 토벌하듯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궁지에 몰렸으나 진압을 피해 다니면서 눈물겨운 시위를 계속했다. 오후 3시 27분경에는 장동 MBC 앞에 3천 명의 시위 군중이 몰렸고 충장로 앞에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집결했다. 4시 40분에는 대인동 공용 터미널 앞으로 시민 학생 1천여 명이 모여 격렬한 시위를 했다.
"전두환은 물러가라!"
"공수부대 돌아가라!"
시위대의 구호는 절규처럼 처절했다. 61대대는 장갑차를 시위대를 향해 돌진시켰으나 시위대는 가드레일과 공중전화 박스를 뜯어 대항했다. 공수부대는 시위대의 시위가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격렬했기 때문에 저녁 7시 30분 경에야 겨우 이곳의 시위를 진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공용 터미널 지하도로 달아난 시민들은 공수부대로부터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 시위대는 어둠컴컴한 지하도 안에서 공수부대원들의 진압봉에 맞아 죽고 대검에 찔려 죽었다. 터미널 사무실에서도 공수부대원들은 닥치는 대로 진압봉을 휘두르고 안내양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서서히 밤이 왔다. 격렬했던 광주도 시민들의 흐느낌 속에서 어둠이 내렸다. 통행 금지가 9시로 선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리는 인적이 끊어져 갔고 질주하는 군인 추럭 소리와 군화 소리, 장갑차의 엔진소리가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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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섭은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서울로 전화를 했으나 전화는 불통이었고 외곽은 군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외곽으로 빠져나가 서울로 통화를 하고 싶었으나 군인들에게 걸리면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뺏기는 것은 물론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광주의 처절한 상황이 강한섭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 해... )
광주는 이미 공포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통행 금지가 실시된 9시에 나온 방송 뉴스는 서울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 사태에 대한 보도는 일절 없었다. 각 방송은 계엄사의 검열 때문에 광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와 잔인한 진압은 보도하지 못하고 계엄사의 포고령만 계속 방송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계엄사가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군... )
강한섭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강한섭은 밤이 되자 호텔에서 떠나지 않았다. 통행 금지 시간에는 거리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 공수부대는 살벌한 모습으로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시위 학생들을 수색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빗발이 뿌리기 시작했다. 광주 시민들의 피와 눈물 같은 비였다. 강한섭은 9시가 조금 넘자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호텔 식당도 계엄군의 만행에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목격한 일이라며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사람들을 찌른 얘기를 했다.
"통행 금지가 시작되기 바로 전이었어요. 내가 남광주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도망가며 장갑차가 쫓아온다고 도망가라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니 정말 장갑차가 쫓아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골목으로 허겁지겁 달아났는데 거기서 또 공수를 만났어요. 그래서 나는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갔어요. 거기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담장 위로 머리를 내밀자 공수부대 여섯 명이 어떤 아저씨와 젊은 아가씨를 대검으로 마구 찌르고 있었어요."
"여자까지 대검으로 찔러요?"
"그놈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예요."
호텔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숨을 토했다. 어떤 여자는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기도 했다. 강한섭은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서울로 전화를 하고 싶었으나 전화는 계속 불통이었다. 계엄군이 광주를 완전히 고립시킨 모양이었다. 다행히 방송 보도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서울에는 시위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일단 아내 은숙의 신변은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강한섭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하루종일 시위 현장을 쫓아다니며 취재를 했으나 보람도 없는 취재였다. 기자의 취재는 일단 신문에 보도되어야 그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도되지 않는 기사를 취재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강한섭은 신문기자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
날이 밝았다. 5월 20일이었다.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때까지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새벽 6시 전남 양조장 옆의 공터에서 한 노동자의 사체가 시민들에게 발견되었다. 그는 얼굴이 온통 짓이겨지고 전신이 피멍이 들어 죽어 있었다. 그의 죽음은 입에서 입을 통해 광주 시민들에게 알려졌다. 광주 시민들은 그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자 그 소식을 들은 수많은 시민들이 대인시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시민회관 로타리로 진출했다. 그들은 금남로로 진출하려 했으나 장갑차를 앞세운 공수부대의 저지선에 부딪쳐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수부대가 19일처럼 시위대를 필사적으로 추격하면서 진압하지는 않았다. 강한섭은 금남로의 가톨릭센타 앞으로 갔다. 10시 20분 경이었다. 그곳에는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1차로 진압하여 체포당한 시민들이 혹독한 기합을 받고 있었다.
"저놈들이 인간이야?"
"저놈들은 누이도 없어?"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체포한 시위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기합을 주는 것을 보고 치를 떨었다. 체포된 시위대는 남녀 모두 30명 정도 되었는데 팬티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기운 채 묶여 있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동작들 봐라! 동작이 왜 이렇게 굼떠?"
공수부대는 체포된 시위대가 조금이라도 굼뜨게 움직이면 사정없이 군홧발로 차고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엎드려 뻗쳐!"
"뻗쳐!"
그것은 여자들이라고 해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여자들이 팬티 차림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뒹구는 것을 보고 분개하며 돌을 던졌다.
"나한테 M16만 있었으면 저놈들을 모조리 쏘았을 텐데..."
가톨릭 신부도 창으로 내려다보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사람들은 처참한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오전 11시 무렵이 되자 고등학생들도 시내로 몰려나왔다. 중앙여고, 광주일고, 대동고등학교 학생들은 휴교 조치가 내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형님과 누님이 공수부대원들에게 매를 맞아 죽어 가는데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뿐이 아니라 직장인들과 상인들도 거리로 몰려 나왔다. 직장인들은 출근을 하지 않거나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말고 나왔고 상인들은 물건을 팔다가 말고 쏟아져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났다. 어느덧 시민들의 숫자가 학생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강한섭은 꾸역꾸역 거리로 몰려나오는 광주 시민들을 보고 가슴이 벅차 왔다. 광주 시민들은 대하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보는 기분이었다. 공수부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점점 불어나 이제는 공수부대가 시민들에게 포위된 꼴이 되고 말았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내 자식을 살려내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시민들의 구호와 함성은 노도처럼 거대했다. 그러나 12시 30분이 되면서 새벽에 서울에 급파된 3공수 여단 5개 대대가 금남로에 투입되면서 사태는 바뀌었다. 약 3천여 명의 공수부대는 또다시 19일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타격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완전히 진압할 수가 없었다.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공수부대에게 저항했고 밀려났다가 밀려 들어가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공수부대가 최루탄을 쏘고 장갑차를 앞세우고 돌진하면 시민들이 뿔뿔이 달아났으나 다른 시민들이 공수부대가 점거하고 있던 위치를 확보했다.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금남로 일대에 집결한 시민들은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이제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공수부대가 진압봉을 휘두르고 대검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시민들은 각목, 쇠파이프, 돌, 연탄집게, 소주병, 부엌칼 등으로 원시적인 무장을 했다. 시위대는 방송과 신문이 제 구실을 못 하자 스스로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19일 오후에는 몇 가지 유인물이 만들어져 시내에 뿌려졌고 20일 오후에는 전옥주, 차명숙 등 여자들이 엠프를 차에 싣고 다니며 광주 시민들의 궐기를 호소했다. 그들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택시 운수 노동자들은 오후 3시경에 영업용 택시 50여 대를 끌고 광주역 앞에 집결했다. 그들은 경적을 울려 동료들을 모으기로 했다. 그들은 차량으로 경적을 울려 시위도 하고 동료들도 불러 모았다. 오후 6시가 되자 약속 장소인 무등경기장에는 운수 노동자들이 200여 대가 넘는 각종 차량을 끌고 집결했다. 공수부대는 운수 노동자들이 차량시위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전일방송 앞에 바리케이트를 쳤다. 공수부대가 수세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오후 7시가 되었다. 늦은 봄날의 해가 기울고 어둑하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운수 노동자들의 대형버스와 대한통운 추럭을 앞세운 200여 대의 차량은 일제히 헤트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면서 도청을 향해 전진했다. 공수부대와 치열한 투석전을 벌이면서 시위를 하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리면서 차량 시위대를 에워싸고 행진을 하는가 하면 차량에 올라타고 박수를 쳤다. 공수부대는 당황했다. 시위대가 차량을 앞세우며 전진해 오자 재빨리 옆으로 흩어져 최루탄을 발사했다. 시위대는 최루탄 때문에 주춤했다. 그러자 공수부대의 돌격조가 차량을 향해 일제히 돌진했다. 그들은 차량 안으로 뛰어들자 미친 듯이 진압봉을 휘두르고 대검으로 찔러댔다. 처절한 살육전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도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시민들은 진압봉에 얻어맞고 대검에 찔려 비명을 지르면서도 공수부대에게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에게 시민들이 승리할 수는 없었다.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이 충돌은 20분 남짓이나 계속되었다. 공수부대에 의해 시민들의 희생이 점점 늘어나자 시민들은 일단 물러났다. 그러나 시동이 걸린 채 서 있는 수많은 차량들 사이에는 처절한 육박전 뒤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머니를 찾는 나이 어린 여학생, 머리가 깨진 운전기사 차림의 30대 남자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는 안내양 차림의 여자들, 피투성이가 되어 실신해 있는 부상자들, 앰블런스를 찾는 외침...... 시위와 진압은 적을 향한 필사적인 공격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7시 30분이 되자 잠시 물러났던 시민들은 1만여 명의 대군중이 되어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연행 학생 석방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공수부대는 감히 시위대를 해산하지 못했다. 광주 신역에서도 시위대와 공수부대는 격렬하게 충돌했다. 광주에 새로 지은 신역은 공수부대가 병력과 보급품을 수령하는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공수부대는 필사적으로 시위대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자 수가 더욱 많이 늘어났다. 시위대는 차량을 앞세운 공격을 감행했다. 12대대는 최루탄을 쏘면서 저지선을 지킬 뿐 감히 타격하여 진압하는 작전은 펴지 못했다. 밤 11시 시위대의 파상공세가 강화되기 시작했을 때 M16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흠칫하여 파상공세를 멈췄고 일순 사방이 기묘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 요란한 시위 소리와 함성이 정지되어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던 것이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었다. 강한섭은 등줄기로 찬바람이 흙고 지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공포다!"
"공포니까 물러서지 마라!"
그때 누군가 외쳤다. 시위대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대오를 정비했다.
"갑시다!"
"앞으로 나갑시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일제히 따라 불렀다.
동지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동지들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총칼이 무서우랴
공수부대야 길 비켜라
그때 어둠 속에서 다시 요란한 총성이 울려 왔다. 강한섭은 가슴이 철렁하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시위대의 맨 앞줄이 분수처럼 선혈을 뿜으며 쓰러졌다. 공수부대가 마침내 군중들을 향해 발포를 한 순간이었다. 광주 신역에서의 발포는 3여단의 11, 13 본부대대가 참여함으로써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본부대대는 부여단장까지 탑승한 상태에서 실탄 120발씩을 지급받아 도보로 광주역으로 향하면서 아스팔트와 건물을 향해 마구 사격을 퍼부었다. 추럭 위에서는 M60이 이들을 엄호했다.
"후퇴하지 마라! 후퇴하는 자는 사살한다!"
3여단 작전참모인 소령은 권총을 뽑아 들고 공수부대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병사들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계속 총을 쏘며 광주역으로 접근했다. 광주역에는 이미 공수부대 병사들이 일렬로 도열해서 시위대를 향해 M16을 난사하고 있었다. 분수대 쪽에는 시민들이 탄 버스와 추럭이 돌진해오다 공수부대의 사격으로 분수대에 처박혔고 분수대 주위에는 20명 정도의 시민들이 총에 맞아 나뒹굴고 있었다. 공수부대의 발포는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광주 세무서 앞에서도 공수부대는 발포를 시작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조선대학교 부근에서도 시위대가 몰려오자 공수부대는 수류탄까지 던져서 이들을 저지했다. 그러는 동안 5월 20일 밤이 가고 5월 21일 새벽이 왔다. 한밤중이었으나 광주는 대낮 같았다. 시민들은 밤새도록 시위를 벌이면서 시내의 파출소를 모두 불태웠다. 공수부대는 도청 한 곳만을 남기고 전남대와 조선대 등 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공수부대가 학살한 시체가 있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 6시경 광주 신역 앞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시민들은 태극기를 덮은 시신을 손수레에 싣고 도청으로 향했다.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가라!"
"두환아, 내 자식을 살려내라!"
수만 명의 시민들이 프랭카드를 들고 손수레의 뒤를 따랐다. 아침 8시가 되자 공수부대가 다시 가톨릭센타 앞으로 진출했다. 시위대는 공수부대와 대치하면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공수부대와 대결하기 위해서 아세아 자동차공장에서 완성된 장갑차와 버스가 시위대에게 투입되었다. 청년들은 차량을 이용하여 시위 군중들을 태우고 도심으로 향했다. 미처 차를 타지 못한 시민들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이용해 중심가로 달려갔고 걸어서 중심가로 향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청년들은 광주 사태를 전남 각 지역에 알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광주를 탈출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시민들은 금남로를 가득 메웠다.
"반란자 전두환을 죽여라!"
"광주 시민의 피를 보상하라!"
"우리는 죽음으로 광주를 사수한다!"
오전 10시가 되었을 때는 금남로 일대에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시위 군중에는 노인에서부터 어린이까지 보였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광주는 이미 3개 공수여단 10개 대대와 5월 20일 밤에 급파된 20사단을 합쳐 2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있었다. 시민들은 공수부대를 힘으로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공수부대 병력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도청 앞에 도열해 있었다. 도청 광장에는 헬리콥터가 수없이 이착륙을 하면서 중요한 서류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시위대는 차량을 앞 대열로 배치했다. 그때 시위대의 장갑차 한 대가 갑자기 공수부대를 향해 돌진했다.
"가자!"
"공수부대를 몰아내자!"
시위 군중들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뒤를 따랐다. 공수부대는 당황했다. 시위대가 장갑차를 가지고 돌진해오자 공수부대는 화들짝 놀라 도청 쪽으로 도주했다. 공수부대의 장갑차도 황급히 방향을 돌려 후진했다. 그 바람에 병사 2명이 장갑차의 캐터필러에 깔려 사망했다. 공수부대의 저지선이 무너지자 시위대의 차량과 장갑차, 그리고 시민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성난 파도와 같은 기세였다. 공수부대가 일제히 사격을 시작한 것은 12시 58분 경이었다. 광성여객 소속의 버스가 도청 광장에 접근했을 때 분수대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버스는 공수부대의 사격을 받아 운전기사가 즉사하여 전남 수협 도지부 건물에 처박혔다. 그때 애국가가 울리기 시작했다. 수협 건물에 처박힌 버스를 쳐다보던 시민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공수부대는 애국가를 신호로 시민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실시했다. 공수부대가 마침내 수많은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한 것이다. 금남로는 순식간에 피바다를 이루었다. 공수부대의 일제 사격은 장교가 메가폰으로 사격중지 명령을 내릴 때까지 1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시민들로 가득 찼던 거리는 죽은 시민들의 피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부상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몇몇 시민들이 거리로 달려나갔지만 그들은 저격병의 사격 목표가 되어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비참한 모습이었다. 금남로 일대엔 형언할 수 없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젊은 여자의 애절한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재빨리 골목으로 숨었던 여학생들이 우는 소리였다.
"광주 만세! 광주 시민 만세!"
그때 장갑차 한 대가 적막감이 감돌고 있는 금남로를 질주하며 장갑차 위에서 상의를 벗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른 한 청년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는 태극기를 흔들며 도청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청년을 향해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이 퍼부어졌고 청년은 힘없이 꼬꾸라졌다. 장갑차는 꺾어진 청년의 몸을 싣고 화순 방면으로 사라졌다.
"광주 시민 만세!"
이때 한국은행 광주지점 앞에 5, 6명의 청년들이 나타났다. 그들도 태극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금남로를 달렸다.
"살인마 전두환을 죽여라!"
"공수부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공수부대는 그들을 향해서도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그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가자 또 다른 청년들이 피 묻은 태극기를 주워들고 구호를 외쳤다.
"광주 시민 다 죽여라!"
공수부대의 발포는 전남대 앞에서도 이루어졌다. 전남대 앞에는 오전 10시부터 수만 명의 시민들과 공수부대가 공방전을 치르고 있었다. 오후 2시가 되자 전남대 앞에는 차량 시위대까지 집결했다. 정문 쪽으로 4만여 명, 후문 쪽에 1만여 명 등 시위대는 공수부대를 포위하고 압박했다. 공수부대는 차량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발포했다. 시위대는 공수부대가 발포하자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차량 시위대에게 공수부대는 수류탄을 투척하여 부상자들을 모두 버스에서 끌어냈다. 3공수는 단순하게 발포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흩어져 달아나자 인근 주택가까지 마구 침입하여 주민들을 살상했다. 임신 8개월이 된 스물네살의 가정주부가 공수부대가 정조준하여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죽은 것도 전남대 앞에서였다. 공수부대가 발포를 하자 시민들도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없는 파출소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M1과 칼빈, 실탄 등을 꺼내다가 무장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왔다. 광주는 이제 단순한 시위 현장이 아니었다. 무장한 시민들을 사람들은 스스로 시민군이라고 불렀다. 21일 오후 3시 M1 소총과 칼빈으로 무장한 시민군은 충장로 광주우체국에서 도청 쪽으로 진격했다. 시민군의 뒤를 시민 2천여 명이 따르며 함성을 질렀다. 도청 앞의 공수부대는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위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 발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발포가 계속되어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숨어 있었다. 그러나 시민군이 나타나자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시민군이 나타나자 공수부대는 당황했다. 총이 없을 때도 시민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부딪혀 공포에 질려 있던 공수부대는 시민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자 이 사실을 즉각 상부에 보고했다. 시민군은 공수부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재래식 무기가 시민들에게 계속 반입되어 무장한 시민군의 수효도 점점 늘어났다. 오후 4시가 되자 공수부대는 철수 명령을 받았다. 공수부대는 APC 장갑차로 도로를 왕복하며 캐리버 50을 무차별 난사하여 시민군들을 후퇴시켰다. 4시 30분이 되자 공수부대 11여단 3개 대대와 7여단 35대대 병력은 도로 양편으로 무차별 사격을 하면서 조선대로 철수했다. 이로써 5월18일부터 광주에 투입되어 악명을 떨친 공수부대의 역할은 일단 막을 내리고 광주 시내는 수많은 희생을 치른 시민군들에게 장악되었다.
제14장 울 밑에 선 봉선화야
1
한경호는 서울대 복학생 김근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5월 21일이었다. 저 아래 광주에서는 마침내 김대중을 지지하는 폭도들이 폭력과 파괴를 일삼으며 궐기하여 공수부대까지 투입되었다고 하였다. 보안사로 보고되어 오는 내용을 살피면 군인들이 여럿 죽고 폭도들도 수백 명이 죽은 모양이었다.
(이것들이 군인 알기를 우습게 아는군...)
한경호는 무의식 속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폭도들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엄연히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고 포고령으로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켰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폭력시위를 일으키는 김대중 지지자들에게 좀 더 강력한 진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시국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시위를 일으키면 호시탐탐 남침기회를 노리는 북한만 유리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꽁무니가 빠져라고 먼저 달아날 학생 놈들이 민주주의니 어쩌니 하고 떠들어 보아야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국민들이 언제 민주주의 찾은 적이 있는가... 한경호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군대는 상명하복의 집단이었다. 특히 일본식의,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인정신만을 교육시킨 이 나라에서 군의 명령이 합당한지 아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5월 21일 언론은 처음으로 광주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도했다. 그러나 계엄사의 발표를 그대로 이용하여 발표했기 때문에 내용은 표피적이고 빈약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담화문과 경고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희성 사령관은 담화문에서 광주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상당수의 타지역 불순분자들이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방화와 약탈을 일삼게 했다, 특히 고정간첩이 광주에 잠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바 이에 현혹되어 국가적 파탄을 자초하지 말고 생업에 전념하라, 하고 담화문에서조차 국민들에게 경고했다. 이날 신현확 국무총리가 물러나고 박충훈 전 부총리가 새로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어때? 이제 그만 자백하지?"
한경호가 멀뚱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김유택 수사관이 김근석을 윽박질렀다. 김근석은 겁먹은 표정으로 김 수사관을 쳐다보았다. 지하실은 어둠침침하면서도 습기에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엔 약간 서늘한 느낌까지 들었으나 이젠 면역이 되어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 평쯤 되는 방이었다. 벽에는 여러 가지 고문 기구들이 걸려 있었고 천정엔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 링 하나 매달려 있었다. 김근석은 의자에 묶여 있었고 그를 취조하는 수사관들은 서서 위압적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김근석은 취조실로 불려오자마자 쇠파이프로 얻어맞아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수사관들이 쇠파이프로 얼굴까지 때렸는지 왼쪽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 전 모르는 일입니다."
"죽고 싶어?"
"정말 모릅니다. 고은태씨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습니다."
"다른 놈이 너하고 같이 만났다고 자백했어!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한경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근석이 재빨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정말입니다.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김근석은 울상이 되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누가 고은태를 만났어?"
한경호는 구둣발로 김근석의 턱을 치켜들고 물었다.
"예?"
"니가 안 만났으면 고은태를 만난 놈이 있을 거 아니야?"
"모릅니다. 저는 정말 사실만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김대중이를 직접 만났나?"
"예?"
"김대중이를 직접 만나서 시위 자금을 전달받았느냐는 말이야? 대답해 이 새끼야!"
한경호는 구둣발로 김근석의 턱을 걷어찼다. 김근석이 악,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의자를 싸안고 나뒹굴었다.
"그, 그런 일 없습니다."
김근석이 기계처럼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분들을 만났겠습니까?"
"알았어."
한경호는 빙긋이 웃었다.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야!"
한경호는 문밖의 경비병을 불렀다.
"예!"
경비병이 후닥닥 뛰어 왔다.
1"이 새끼 데리고 나가!"
"예."
경비병이 김근석을 데리고 나갔다. 한경호는 책상으로 돌아와 천천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시계가 벌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야! 지영옥이 끌고 와!"
한경호는 다시 밖의 경비병에게 지시했다. 지영옥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이었다. 이틀째 잠을 재우지 않고 취조를 했기 때문에 거짓으로라도 자백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경호는 오늘 중으로 반드시 결판을 내리라고 생각했다. 윤 사장이 또다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취조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윤 사장의 명령은 학생들을 취조해 김대중이 시위를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를 밝히고 전두환 파쑈라고 주장한 배후 인물을 캐라는 것이었다. 물론 광주 사태로 인해 시일이 촉박했다. 광주 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도 김대중에게 덮어씌워야 했다. 따라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취조는 남산에서 하고 있었다. 학생들도 간부급에 속하면 남산으로 연행되었다. 한경호는 처음엔 정치인들만 담당했으나 이틀 만에 학생들 담당으로 바뀌었다.
"예!"
경비병들이 대답을 하고 복도로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여학생들은 복도 끝에 감금되어 있었다. 모두 5월 17일 계엄 포고령 10호를 발표하기 전에 체포된 학생들이었다. 불법체포였다. 이내 경비병들이 지영옥을 끌고 들어왔다.
"지영옥!"
경비병들이 지영옥을 취조실 중앙에 세웠다.
"네."
지영옥이 고개를 똑바로 치켜들었다. 동그란 얼굴이었다. 얼굴은 희고 창백했고 눈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할 테야?"
김 수사관이 지영옥의 머리채를 잡아 당겨 흔들다가 벽으로 밀어붙였다. 지영옥이 힘없이 벽에 부딪혔다.
"의자에 묶어!"
한경호는 지영옥의 앞으로 갔다. 수사관들이 지영옥을 의자에 앉히고 손을 뒤로 묶었다. 한경호는 담뱃불을 바닥에 버리고 구둣발로 밟았다. 환기 구멍을 통해 남산 숲 어디선가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작해!"
한경호는 수사관들에게 지시했다. 모두 한경호와 연배가 비슷한 수사관들이었으나 한경호는 이곳에서 윤 소령으로 불리고 있었다. 정보부 수사관들을 지휘하기 위해 위장한 계급이었다. 정보부에는 한경호 말고도 정치인들을 취조하는 백 소령이라는 인물이 또 하나 있었다. 그는 고문 기술자였기 때문에 특별히 정치인들의 취조를 맡기고 있었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한경호도 알지 못했다. 김 수사관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고무 곤봉을 집어 들었다.
"지영옥!"
한경호는 지영옥을 노려보았다.
"할 말 없나?"
"없습니다."
지영옥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처음엔 다소 앙칼지기까지 했으나 이제는 많이 순해져 있었다.
"전두환 파쑈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
"모릅니다."
"네가 만든 유인물에 전두환 파쑈가 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
"모릅니다."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 나가지 못해!"
지영옥이 고개를 쳐들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봐!"
"지금까지 계속 생각했습니다만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좋아."
한경호는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장길호 수사관에게 눈짓을 했다. 장길호 수사관이 지영옥에게 다가가 청자켓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영옥이 의자에 묶인 채 발버둥을 치며 저항을 했다.
"잠자코 있어. 이 년아!"
장 수사관이 지영옥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지영옥이 독기 서린 눈빛으로 장 수사관을 쏘아보았다. 이내 처녀의 알몸이 하얗게 드러났다. 장 수사관이 지영옥을 브래지어 차림으로 만들자 김 수사관이 고무 곤봉을 들고 지영옥에게 다가가더니 고무 곤봉을 지영옥의 어깨에 힘껏 내리쳤다.
"윽!"
지영옥이 입술을 깨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김 수사관은 닥치는 대로 지영옥에게 고무 곤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영옥은 몸을 비틀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비명소리가 지하실을 웅웅거리고 울렸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한경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불과 며칠 동안 수많은 학생들을 고문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아직도 익숙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고문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끔찍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으나 그나마 이제는 낯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젠 내가 직접 해야 돼... )
한경호는 아까부터 직접 학생들을 고문하리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들에게 가담해 역사를 뒤집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왕 역사를 뒤집으려면 따라다니며 뒤집을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선도하며 능동적으로 뒤집자고 생각했다. 한경호는 벽에 걸려 있는 채찍을 손에 쥐었다. 지영옥이 그의 얼굴을 말끔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자백해!"
김 수사관이 지영옥을 윽박질렀다.
"몰라요."
"이런 쌍년!"
김 수사관이 욕설을 뱉으며 지영옥에게 고무 곤봉을 휘둘렀다. 지영옥이 다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고춧가루를 써!"
장 수사관이 말했다. 김 수사관이 씩씩거리며 주전자의 물에 고춧가루를 섞어 지영옥의 코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지영옥이 고통스러워하며 마구 도리질을 하자 장 수사관이 지영옥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어깨와 팔을 잡았다.
"기절했어!"
김 수사관이 주전자를 팽개치며 중얼거렸다. 한경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렇게 해서는 오늘 밤에도 취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물 뿌려!"
한경호는 수사관들에게 강력하게 지시했다. 어떻게 하든지 오늘 밤 안으로 취조를 끝내야 했다. 장 수사관이 취조실 안에 있는 욕조에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다가 지영옥에게 뿌렸다. 그러자 지영옥이 얼굴을 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영옥의 나신으로 차가운 물방울들이 흘러내렸다.
"계속해!"
한경호는 차갑게 내뱉았다. 김 수사관이 각목을 들고 지영옥의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지영옥이 다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다른 감방에 있는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영옥이 고문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학생들이 지영옥을 격려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하지 못해?"
그러자 경비병들이 철창을 흔들며 학생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노랫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아버지 날 기르시어
대학이라 보내 놓고 일구월심 기도하네
내 아들아 의사가 되어라
내 딸아 판검사가 되어라
대학이라 와서 보니 민주나무 키우는 곳
피를 뿌려 거름 주어야 꽃이 핀다
가자 가자 앞으로 가자
먼저 간 열사들 뒤를 따라
민주나무 꽃 피우려 깃발 들고 가자구나
민주나무 꽃피우면 새 세상이 온단다
지영옥이 입을 조그맣게 열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경호는 머리끝이 곧추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런 개새끼들!"
장 수사관과 김 수사관이 화를 벌컥 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경호는 채찍을 움켜 쥔 손에 바짝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지영옥을 묶은 밧줄을 풀었다. 지영옥이 의아한 눈길로 한경호를 살피다가 학생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경호는 허공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채찍의 파열음이 쉬익 하고 귓전을 때렸다.
엄마 엄마 나 죽으면
앞산에도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 주
눈이 오면 쓸어 주고
비가 오면 덮어 주고
내 친구가 찾아오면
먼길 떠났다고 전해 주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에 가사를 바꾸어 대학생들이 데모를 할 때 부르는 소위 데모가였다. 한경호는 지영옥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있었다. 밖에서는 장 수사관과 김 수사관이 학생들을 잡아 패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퍽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경호는 지영옥을 향해 채찍을 힘껏 휘둘렀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지영옥의 등에 달라붙었다. 지영옥이 재빨리 몸을 구부려 채찍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영옥의 등은 채찍이 달라붙으면서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새겨겼다.
(성공이야!)
한경호는 희열에 차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처음 해보는 채찍 고문이었다. 장 수사관과 김 수사관은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이력이 붙어 있었지만 한경호는 처음이었다. 장 수사관과 김 수사관의 눈빛에서 어딘지 모르게 자신을 멸시하는 듯한 것을 느꼈던 한경호는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다.
"어때?"
한경호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고문은 단순하게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 공포까지 주어야 한다는 것을 한경호는 짧은 시일 안에 터득하고 있었다.
"채찍 맛이 괜찮지?"
한경호는 지영옥을 비웃으며 다시 채찍을 들어 올렸다가 지영옥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지영옥이 다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이번의 채찍은 처음보다 더욱 강하게 지영옥을 후려친 모양이었다. 한경호는 계속 채찍을 휘둘렀다. 지영옥이 취조실 바닥을 때굴때굴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한경호의 귓전에는 이미 지영옥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한경호의 귓전에는 기이하게 때려, 때려 하는 소리와 더 세게, 더 세게 하는 소리만 환청처럼 들리고 있었다. 한경호가 채찍질을 멈춘 것은 장 수사관과 김 수사관이 들어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채찍질을 멈추고 지영옥을 살피자 지영옥은 이미 걸레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옷을 벗긴 탓에 살점이 찢기고 터져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녁 먹고 올 테니까 자백받아!"
한경호는 채찍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장 수사관과 김 수사관에게 보란 듯이 시위를 한 것이었다. 밖은 이미 캄캄했다. 한경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층계참에 걸터앉았다. 남산 숲 어디선가 뻐꾸기가 또 한가롭게 울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두 대나 피우고서야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담배를 많이 피어서 입안이 깔깔했으나 간신히 된장국에 말아서 한 공기를 비웠다. 취조실로 돌아오자 곰처럼 생긴 우락부락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대령님이 다녀갔습니다."
한경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살피자 장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이 대령?"
"예."
"왜?"
"기술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기술자?"
한경호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대공분실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백곰이라고 부르니까 그냥 백곰이라고 부르십시요."
사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한경호는 부지불식간에 그 손을 잡았다.
"죄수들 취조가 전문이지요. 높은 분들이 이런 일을 잘 맡지 않으려고 해서 어느덧 전문가로 불려다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 바닥에선 악명이 높습니다. 내 이름만 듣고도 슬금슬금 자백하는 놈들도 있으니까요."
백곰이라는 사내가 빙긋이 웃었다. 어쩐지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 대령님께서는 여기 일은 이분에게 맡기고 퇴근하라고 하셨습니다."
장 수사관이 다시 말했다. 한경호는 옷이 입혀진 채 의자에 앉혀져 있는 지영옥을 힐끗 살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취조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에게서 도태가 될 것 같아 말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이것 애국하자고 하는 짓이지요."
백곰이라는 사내가 다시 빙긋 웃었다.
"그럼요. 애국하기 위해서 하지요."
한경호는 맞장구를 쳤다. 쓸데없는 소리인 줄 알면서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3
바람이 쏴아 하고 불어올 때마다 아카시아 숲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한경호는 아내 정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5월, 그리고 초여름을 앞둔 늦은 봄이었다. 코끝에 아카시아의 독한 꽃향기가 풍겼다. 천지사방이 아카시아의 숲을 이루고 있어서 향기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이런 시골길이 있을 줄 몰랐어요."
정란이 흡족한 표정으로 종알거렸다. 모처럼 나온 산책길이라 기분이 상쾌한 모양이었다. 한경호는 불룩하게 나온 정란의 배를 살폈다. 정란은 임신 중이었다. 4월달에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배가 평범했으나 이제는 임신복을 입어야 할 정도로 배가 불러 있었다.
"걷기에 힘들지 않아?"
"네."
정란이 정겹게 웃었다. 정란의 말투에는 새색시 같은 응석이 묻어 있었다.
"하긴 태아를 위해서는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그러대."
한경호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그 짓을 하면 아이가 생긴다.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축복이 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불행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한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반드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처럼 서로가 증오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아이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한경호는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아이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내 아이일 수도 있고 아내가 만나고 있는 부정한 사내의 아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내는 어떻게 저렇게 천연스러울 수 있을까... 한경호는 아내의 천연스러움에 화가 치밀었다.
"뭘 생각해요?"
"그냥 이것저것..."
한경호는 말끝을 흐렸다.
"광주는 어떻게 되었어요?"
"나도 자세히는 몰라. 신문에 폭도들이 소요를 일으켰다니까 그런 것이지..."
"소요가 뭐예요?"
"소란이지 뭐."
한경호는 소요라는 말을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계엄사에서 광주 사태에 대한 소식을 처음 발표했을 때 계엄사와 언론은 팽팽한 대립을 벌이고 있었다. 계엄사에서는 광주 사태를 무장폭동이라고 불렀고 언론사들은 무장폭동이 아니라 과격시위라고 부르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광주 사태를 표현하는 한 줄의 문장에 지나지 않았으나 함축된 뜻이 다르기 때문에 계엄사와 언론사들은 용어 사용을 둘러싸고 팽팽한 대립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소요라는 용어가 채택되었는데 이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소요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소란스럽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뭇사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한 지방의 공공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을 소요라고 부르고 있었다. 여기에 죄가 추가되어 소요죄가 되면 내란죄와는 구별되지만 불해산죄가 포함되는 것이다. 계엄사에서 소요죄 사용을 허락한 것은 광주 사태가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공공질서 파괴행위로 간주한 탓이었고 언론사가 소요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오직 소란스러운 행위로만 간주한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장폭동이라는 계엄사의 주장을 거부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성긴 빗발이 뿌리기 시작했다. 한경호는 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한 잔 마셨다.
"광주가 굉장한 모양예요?"
정란이 TV를 켜며 말했다. TV는 뉴스 시간이 아닌데도 광주 시내의 어지러운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총을 들고 시내를 활보하는 시민들, 복면을 쓰고 추럭 위에 서 있는 시민들, 불타는 버스와 건물들... 광주는 전쟁터처럼 스산했다. 그러나 광주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불순분자의 배후조종에 현혹되지 말라는 계엄사의 발표만 계속 보도하고 있었다.
"곧 진정되겠지..."
한경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광주에 20사단까지 투입되었으므로 광주의 진압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광주 사람들이 왜 그렇게 데모를 심하게 했어요?"
"모르지."
"정말 불순분자들이 배후조종을 한 거예요?"
"응.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사람들 씨를 말린다는 소문이 퍼져 광주 사람들이 흥분했대."
한경호도 광주 사태가 일어난 배경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보안사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만 알고 뿐이었다.
"옆집이요."
"누구?"
"신문기자 말예요."
"응."
"광주에 내려가 있대요."
"그래?"
한경호는 정란의 말에 공연히 가슴이 섬칫해 왔다.
"부인이 걱정이 많은 모양예요."
"신문기자니까 무슨 일이 있을려구..."
"광주엔 전화도 안 된대요."
"......"
"부인 말로는 광주가 피바다가 되었대요. 신문사에 전화를 했더니 신문사도 난리인 모양예요."
"신문사가 왜 난리야?"
"광주가 무법천지가 되었으니 오죽하겠어요? 공수부대가 여자들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잘랐대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
한경호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광주 사태에 대한 언론을 통제하면서 유언비어가 무섭게 번지고 있었다.
"아까 방송에도 나오던대요."
"방송에?"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당국에 신고하래요."
계엄사의 발표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한경호는 기분이 좋지 않아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한경호가 잠이 깬 것은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한 부장인가? 잠자는 시간에 미안하네. 차를 보냈으니까 빨리 나와야겠네."
윤 사장이었다. 윤 사장은 한경호를 언제나 한 부장으로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와서 얘기하세. 서둘러야 할 일이 있어."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나오래요?"
정란이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그냥 자고 있어."
한경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벌써 새벽 5시였다. 창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경호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윤 사장이 보낸 차가 도착한 것은 5시 10분이 되었을 때였다. 사무실에는 윤 사장 혼자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이 서류 좀 검토해."
한경호가 인사를 하자 비서실장이 서류뭉치를 한경호에게 던졌다.
"무슨 서류입니까?"
"오늘 계엄사에서 발표할 내용이야."
한경호는 서류뭉치를 천천히 살폈다. 그것은 김대중에 대한 중간수사 내용이었다.
"벌써 중간 수사 발표를 합니까?"
한경호는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무수히 고문했으나 김대중이 광주 사태와 관련이 되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광주가 심각해."
"그럼 광주도 김대중이 선동한 것으로 합니까?"
"우선 불순분자의 선동으로 몰아가야지."
"알겠습니다."
한경호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1. 김대중은 대중을 선동하여 민중봉기를 일어나게 한 다음 정부를 전복하려고 복직 교수와 복학생을 중심으로 사조직을 만들었다.
2. 김대중은 각 대학교의 학생회장 입후부자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하고 학생회 간부들에게 시위 자금을 지급했다.
3. 김대중은 5월 14일과 15일의 서울 시내 학생시위도 배후 조종하였으며 사무실 수색에서 추천서, 입회원서, 비밀숫자로 표시된 회원명부가 압수되었는데 곧 전체적인 윤곽이 밝혀질 것이다.
4. 김대중은 해방 직후 남로당 조직원으로서 목포시 경찰지서 습격, 방화에 연루되었고 1972년 유신선포 이후에는 일본과 미국에서 용공세력과 연합한 좌익분자이다.
한경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체적인 문맥은 김대중을 좌경분자로 몰아 내란 혐의를 씌우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 혐의가 미약해 보였다.
"어때?"
"좀 약하지 않습니까?"
"중간수사발표니까..."
"기자들은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러니까 한 달 내에 자네가 알맹이를 만들어."
"예."
"문맥도 잡구. 아무리 중간 수사 발표라도 너무 거칠어서 되겠어?"
"예."
한경호가 서류의 문맥을 모두 잡아 윤 사장에게 보고한 것은 7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한경호가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잠깐 들렸다가 남산으로 출근하자 계엄사에서 김대중에 대한 중간 수사 발표를 하는 것이 TV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한경호는 착잡한 기분으로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4
강한섭은 멍한 눈빛으로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광주 사태가 발생한 이후 처음 배달된 신문이었다. 그러나 신문의 머릿기사들이 한결 같이 기대에 어긋난 것들뿐이었다. 광주데모사태 닷새째... 행정 완전 공백상태... 데모대가 공포 쏘자 시민들은 귀가 페허 같은 광주 시내 6일째, 자극적인 소문이 기폭제시위 선동 간첩검거, 목포잠입 기도 도청 점거 학생 1명 독침 맞아! 신문의 제목들은 계엄사의 발표를 일방적으로 싣고 있을 뿐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래. 신문이 모두 검열받고 있으니 진실을 보도할 수 없겠지... )
강한섭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광주는 점점 긴박감이 감돌고 있었다. 5월 22일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철수한 이후 시민군은 곧바로 도청을 점거했고 공수부대는 광주 외곽에 주둔해 있었다. 서울에서는 계엄사를 따라 기자들이 대거 내려와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 있었다.
"강 기자. 이거 서울에서 듣던 거와는 딴판이 아니야?"
기자들은 단순하게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내려왔다가 사태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공수부대의 얼굴에는 살기가 번뜩였고 시민군들의 눈은 핏빛으로 붉게 있었다.
"그렇습니다. 광주는 이제 옛날의 광주가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어?"
"사태의 원인은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쟁터 같잖아?"
"전쟁이지요."
"정말 배후가 있는 거 아니야?"
"배후요?"
"배후가 없으면 어떻게 광주 시민 전체가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을 해?"
기자들은 곳곳에서 무장을 하고 있는 시민군들의 모습을 살피며 의아해했다. 시민군들은 때때로 복면을 하고 시내를 질주했으며 불탄 차량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시민군들이 모두 폭도로 보일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기사를 써 보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군..."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그들은 활발하게 취재 활동에 들어갔다. 강한섭은 광주를 떠나기로 했다. 서울에서 특별취재반이 대거 몰려오기도 했지만 더 이상 광주에서 취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광주를 떠날 수가 없었다. 광주 외곽은 군부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어 외곽으로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5월24일이 되자 광주에 시민수습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수습위원회는 계엄사와 수습 방안을 논의했으나 회의는 처음부터 갈팡질팡했다.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오후가 되자 장대 같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다!"
"소나기다!"
시위 군중들은 시위를 멈추고 인근 상점이나 공공건물로 뛰어 들어가 비를 피했다. 시민군과 군중들로 빽빽하던 거리는 삽시간에 텅 비었다. 5월에 내리는 비치고는 장대질을 하듯이 억세게 퍼붓는 비였다. 최규하 대통령은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최광수 비서실장, 윤자중 공군참모총장을 대동하고 전남북 계엄분소인 전교사 사령부를 방문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빗속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북한 공산집단이 악용하고자 할 것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한 일이므로 일시적인 흥분과 격분에 의해 총을 든 시민 여러분들은 자중자애하여 총기를 반환하고 집으로 돌아가 치안을 회복하는데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규하 대통령의 담화문은 즉각 전국에 방송되었다. 라디오와 TV는 9시, 10시, 10시 30분 잇달아 담화문을 보도했다. 그리고 광주가 무장 폭도들에 의해 무법천지가 되었다고 다투어 보도했다. 불순분자의 책동, 고정간첩 체포, 독침... 불순분자들의 선동이라는 단어들이 보도 매체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러나 부상을 당했거나 죽음을 당한 시민들의 비참한 모습은 한 줄도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의 담화문이 시민들을 위로하는 내용은 전혀 없군... )
강한섭은 TV로 담화문을 발표하는 최규하 대통령을 보고는 저으기 실망했다. 알맹이가 없는 담화문이었다. 그것으로는 가족들을 잃고 흥분한 광주 시민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피아간에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최규하 대통령의 방문 때문인지 아니면 억수 같이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인지 공수부대도 시민들도 거리로 뛰어나가지 않았다. 강한섭은 호텔에서 비가 내리는 거리 풍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격렬했던 시위와 진압이 모두 꿈이었던 듯이 거리는 어둠과 빗속에서 칠흑 같은 밤이 점점 깊어 가고 있었다. 5월 26일이 왔다. 밤새도록 내리던 비가 그치기 시작한 5시 30분경 탱크의 요란한 캐터필러 소리가 들렸다. 20사단 병력이 탱크를 앞세우고 각 방면에서 광주 시내로 진군해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도청에는 금세 비상이 걸렸다. 기자들은 군부의 진압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잠자다 말고 뛰쳐나왔다. 강한섭은 카메라를 들고 도청으로 달려갔다. 도청에는 이미 항쟁 지도부와 수습위원회가 비상회의를 하고 있었다. 강한섭은 도청을 살피다가 기자들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군부에서 진압을 시작할 모양이야."
기자들은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강한섭은 수습위원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기자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그곳엔 재야 수습위원들도 함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강제로 진압을 하려 한다면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여기 있어도 죽을 것이고 나가도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방패가 됩시다."
로만 칼라를 한 신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지?"
"로만 칼라를 한 것을 보니 신부인 모양이야."
"아 저 양반 김성용 신부야."
기자들 중에 광주 출신의 지방 기자가 로만 카라의 신부의 이름을 낮게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 모두 방패가 됩시다."
재야 인사들은 김성용 신부의 제안에 모두 찬성하고 비장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1. 1시간 이내에 군은 본래의 위치로 철수하라.
2. 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전 시민의 무장화를 호소한다.
3. 게릴라전으로 항쟁한다.
4. 최후의 순간이 오면 TNT를 폭발시켜 전원 자폭한다.
죽음을 각오한 재야인사 17명은 금남로에 일렬 행대로 섰다. 그들은 비무장을 한 채 금남로에서 농촌 진흥원 앞까지 약 4킬로미터를 천천히 걸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그들 뒤를 따랐다. 어느덧 해가 높이 떠올라 있었다. 양쪽 인도에는 착검한 계엄군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시민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도로에 즐비한 건물의 옥상에도 군인들이 기관총의 총구를 시민들에게 겨눈 채 발포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완장을 찬 외신 기자들은 장갑차 사이를 누비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공수부대 병사들은 외신 기자들에게 아무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취재도 외신 기자들에게는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군... )
강한섭은 외신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그때 검은 승용차가 나타났다. 승용차에서 별이 번쩍이는 계급장을 달고 있는 장군이 내렸다.
"수습위원들입니까?"
"그렇소?"
"그럼 계엄 사령부에 가서 얘기하시죠."
"군이 먼저 어젯밤의 위치로 철수하시오."
"좋습니다."
장군은 전차병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전차들이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사라졌다. 김성용 신부는 학생 대표들과 함께 전교사 사령부로 갔다. 그러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애초부터 협상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5월 26일 밤이 왔다. 공수부대가 진압 D데이로 결정한 날이었다. 어둠이 내리자 시민들은 하나둘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계엄군은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전남 일원의 전화선을 모두 차단시켰고 곧이어 시내 전화도 두절시켰다. 그러나 시민군들은 시민들의 제보로 계엄군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짝 긴장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사랑하는 우리 형제 우리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주를 죽음으로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요.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송원전문 학생 박영순과 목포전문 학생 이경희는 밤새도록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가두 방송을 했다. 이들의 비참한 호소는 죽음 같은 정적이 깔린 광주 시내 전역에 통곡처럼 울려 퍼졌다. 그러나 시민들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지 공수부대는 이 여학생들의 가두 방송을 제지하지 않았다. 새벽 4시가 되면서 시내 여러 곳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미경은 허공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최종열의 소설은 광주 사태를 방관자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 사태의 실상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주 사태는 더 이상 소설 속에 나오지 않고 소설은 다시 강한섭과 한경호의 개인에게 옮겨져 있었다. 미경은 소설 읽기를 일단 중지했다.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제는 잠을 자야 했다. 미경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최종열이 5월 26일의 도청 진압 상황을 소설 속에 묘사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광주는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어... )
미경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 사태를 지금까지 단순한 민중항쟁 정도로 보았던 일이 후회되었다. 미경은 이튿날 회사에 출근하여 광주 사태에 대한 당시 신문기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백 주간이 출장 중이어서 자세한 내막을 보고할 수가 없었다. 백 주간은 사흘째 남도지방의 문화유산답사를 떠나 있었다. 그러나 오후에나 밤늦게까지 예정이었으므로 내일까지는 보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최종열의 소설을 교정하여 연재할 준비를 해놓으면 되는 것이다.
미경은 80년 5월의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한 분노를 느꼈다. 광주 사태는 최종열의 소설에서 밝혔듯이 폭동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아쉬운 것은 광주 사태가 비극으로 막을 내린 뒤에 전국에 불어닥친 검거 선풍이었다. 신군부는 광주 사태를 빌미로 전국에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켜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15장 산 자는 따르라
1
백 주간은 퇴근 시간까지도 귀사하지 않았다. 미경은 백 주간을 늦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여 아파트로 돌아가 봤자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없는 데다 최종열의 소설을 마저 읽고 싶었다. 미경은 퇴근 시간이 지나자 회사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최종열의 나머지 소설을 읽을 요량이었다.
(이 소설 때문에 최종열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
미경은 아직도 최종렬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최종열의 소설이 현대사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었으나 의문의 죽음을 당할만치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던 것이다. 최종열의 소설 나머지 부분에서 그러한 점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경은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최종열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사방은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채은숙은 정원에서 빨래를 걷다 말고 얼굴을 찌푸렸다. 누군가 2층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남편의 대학교 후배라는 사내가 2층 서재의 창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은숙은 공연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의 후배가 집에 온 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남편이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있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으나 남편이 출근하면 커다란 집에 덩그라니 둘만 남게 되어 여간 거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가지... )
은숙은 짜증이 났다. 친척이라도 이틀 사흘 머무르게 되면 짜증이 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일주일째 버티고 있어서 골치가 아팠다. 그만 가주었으면 싶었으나 그는 도통 그런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종일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떤 때는 몇 시간씩 전화통을 붙잡고 있을 때도 있었다. 게다가 은숙이 뜰에서 무엇을 할 때면 등 뒤로 그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게 되어 더욱 견딜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의 시선이 은숙의 등을 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불쾌한 것은 그가 온 뒤부터 생활의 균형이 깨어졌다는 점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퇴근을 하면 그와 술을 마시거나 밤늦도록 토론을 하고는 했다. 은숙도 처음엔 그들의 토론에 참석하였으나 그들이 어쩐지 은숙을 꺼려하는 듯한 낌새를 보이자 슬그머니 빠지고 말았다. 그들의 토론이라는 것도 해방신학이니, 민중이니 하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남편은 그와 늦도록 술을 마시고 같이 잠을 잤다. 오히려 그녀와 잠을 자는 날이 그와 잠을 자는 날보다 더 적었다. 은숙은 빨래를 다 걷을 때까지 2층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빨래를 걷어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힐끗 2층을 쳐다보자 사내가 그녀를 넋이 나간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숙은 공연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은숙은 빨래를 차곡차곡 갠 다음 농 속에 넣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2층에 있는 사내와 광주에서 돌아온 뒤 변한 남편이 자꾸 신경에 거슬렸다. 남편은 광주에서 돌아온 이후 갑자기 말수가 적어졌고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는 때가 많아졌다.
(광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은숙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남편은 광주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한 것이 분명했다. 잠자다가 말고 가위눌린 듯이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식은땀을 흥건히 흘리며 깨어날 때가 자주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내 하나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누구예요?"
은숙이 의아해하자 남편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후배야."
"잠시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사내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눈빛이 불을 뿜듯이 형형한 사내였다.
"아녜요. 편하게 쉬세요."
은숙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틀을 머물다가 갔다. 남편과 그가 주위를 꺼리는 듯한 표정으로 은밀하게 속삭이는 것으로 보아 어쩐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쫓기는 사람 같았다. 그 후 닷새가 지났을 때 남편은 50이 넘어 보이는 중년 사내를 데리고 왔다. 은숙은 처음에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 쓴 사내가 남편의 친척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구예요?"
은숙은 먼젓번처럼 남편에게 물었다.
"그냥 아는 분이야."
"친척 아녜요?"
"아니야..."
"왜 오신 거예요?"
"그런 건 묻지 말고 술상이나 차려. 참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친척이 오셨다고 그래."
남편의 말은 차가웠다. 은숙은 어쩐지 남편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은숙이 중년 사내가 누군지 알게 된 것은 이틀 후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강 기자님 댁이죠?"
전화의 목소리는 젊은 여자의 것이었다.
"네."
"전 박 마르타 수녀인데요. 송 선생님 좀 바꿔 주시겠어요?"
"송 선생님이요?"
"댁에서 신세를 지고 계시잖아요? 마침 피신처가 마련되어서 알려 드릴려구요."
은숙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전화를 건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도 적의가 없을 뿐 아니라 동지에게 속삭이듯 사근사근하여 마음에 들었다. 송 선생님이라는 것은 2층 서재에서 머물고 있는 중년 사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전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자 박 마르타라는 수녀가 낮고 부드럽게 웃었다. 마치 꽃이 피는 것 같은 부드러운 웃음소리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리는 다 같은 편이예요."
"2층에 계신 분 말씀인가요?"
"네.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셨어요?"
"네."
"이를 어째? 자매님에게도 말씀을 드리지 않다니... 그냥 알고만 계세요. 그분은 전남대에서 재직하고 계신 분예요. 소설도 몇 편 발표하셨는데..."
"그럼 작가 선생님이네요?"
"네."
박 마르타 수녀가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은숙은 박 마르타 수녀가 말을 계속하기 전에 막고 수화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전화 왔어요."
송 선생이라는 사내가 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보다가 엉거주춤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바보스러우면서도 선량해 보이는 미소였다.
"고맙습니다."
송 선생이라는 사내가 1층 거실로 내려가 전화를 받았다. 은숙은 송 선생이라는 사내가 머물던 서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서재는 별달리 수상한 구석이 없었다.
"떠나야겠습니다."
송 선생이라는 사내가 전화를 받고 은숙의 방문을 두드린 것은 은숙이 시장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였다. 사내는 어느덧 낡은 가방까지 챙겨 들고 있었다.
"그러세요?"
"저..."
송 선생이라는 사내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무슨... ?"
"염치없는 부탁인지 알지만 혹시 돈 가진 거 있으시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글쎄요. 한 2, 3만원...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은숙은 그때 수중에 5천 원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에 갈 돈이었다. 그러나 송 선생이라는 사람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앞집에 가서 이정란에게 3만 원을 꾸어서 갖다 주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송 선생이라는 사내는 몇 번이나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녜요."
"좋은 세상이 오면 꼭 복 받으실 겁니다."
송 선생이라는 사내는 어쩐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누구야?"
이정란이 대문까지 나와 있다가 은숙에게 물었다.
"친척..."
은숙은 말끝을 흐렸다.
"점심이나 먹을까?"
"벌써?"
"12시가 지났어... 내가 청요리 시킬께. 같이 먹자구..."
"비싼 청요리를 어떻게?"
"남자들은 요정으로 돌아다니며 먹는데 청요리 시켜 먹는 게 뭐 어때?"
이정란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휘휘 내젓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은숙은 피식 웃으며 이정란의 뒤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에게 부수입이 많은지 이정란은 돈을 물 쓰듯이 쓰고 있었다. 남편은 그 후에도 계속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집이 넓어서 사람들이 자고 가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으나 은숙은 어쩐지 고약한 일에 말려들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불안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광주 사태가 끝난 지 두 달이 되었으나 거리엔 곳곳에서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거동수상자를 불심검문하고 있었다.
세상은 가파라지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5월 27일 국가 보위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설치하더니 상임위원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임명되고 사회정화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곧이어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공무원 숙정사업에 들어가 부정한 공무원과 무능한 공무원을 축출하기 시작했다. 사회정화위원회에서는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폭력배들에 대한 일제 소탕령을 내려 삼청교육대로 보냈다. 곳곳에서 폭력배들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팔에 문신을 하거나 당구장이나 다방에서 얼씬거리는 청년들, 거리에서 건들대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일제히 경찰에 잡혀갔다. 술을 먹고 동네 사람과 싸운 통장, 돈을 꾼 뒤에 갚지 않은 사람,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잠이 든 학교 선생님이 영문도 모르고 경찰에 연행되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했다. 인심은 흉흉해졌다. 경찰이 할당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죄없는 사람을 연행해 간다던가 할당된 숫자를 채우지 못한 파출소 소장이 숙정 대상자가 되어 쫓겨났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았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과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부정부패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언론에서 새로운 영도자, 떠오르는 영도자로 불려졌다. 그리고 곳곳에서 궐기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직장과 학교에서 사람들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새 영도자를 중심으로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판에 박힌 말을 외쳤다. 신문과 방송은 매일 같이 새 영도자의 동정과 궐기대회 소식을 보도했다. 궐기대회는 전국으로 요원의 들불처럼 번졌다. 새 영도자를 받들어야 한다는 궐기대회를 하지 않으면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은숙은 불안했다. 세상은 어쩐지 이상한 광기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광기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편 강한섭은 말수도 적어졌지만 눈빛도 날카로워 있었다.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경계했다.
(변했어... )
은숙은 고개를 흔들었다. 남편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그 원인도 해결책도 알 수 없었다. 은숙은 소파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여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사내는 2층 서재에 앉아 있었다. 은숙이 커피잔을 가지고 들어서자 황급히 일어나 커피잔을 받았다.
"심심하시겠어요?"
은숙은 내키지 않았으나 미소를 띠고 말을 붙였다.
"아닙니다."
사내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동지들을 생각하면 이만한 것은 오히려 호강입니다."
은숙은 동지라는 말이 낯설고 생경했다. 사내의 독립투사 같은 말투에 화제를 바꾸었다.
"비가 올 것 같아요."
은숙은 창으로 가까이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하늘은 아침부터 낮고 찌푸퉁했으나 빗발은 뿌리지 않고 있었다.
"네. 한바탕 뿌릴 것 같습니다."
사내가 은숙의 말을 받았다. 골목은 조용했다. 오후가 되었는데도 골목은 언제나처럼 인적이 끊어져 있었다.
(저 집은 무얼 하고 있을까?)
은숙은 배가 잔뜩 부른 이정란을 생각했다. 이정란은 임신 중이었다. 은숙은 문득 그녀를 본 일이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배가 불러오면서 테니스도 같이 하지 않게 되어 앞 뒷집에 살면서도 만나는 일이 뜸하게 되었던 것이다.
(앞 집에나 가볼까?)
은숙은 2층에서 내려오자 그런 생각을 했다. 오후가 몹시 무료했다.
"비가 오시네!"
은숙이 앞집을 가기 위해 대문을 나오자 성긴 빗발이 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은숙은 하늘을 쳐다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문은 뜻밖에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왠일이지?)
은숙은 의아했다. 대문에서 벨을 누를까 하다가 그만두고 열린 문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조용했다. 현관문으로 가까이 가자 안에서 갑자기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나?)
은숙은 현관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남편이 벌써 돌아왔을 리는 없고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아이!"
그때 현관문 안에서 다시 몸을 꼬는 듯한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렸다. 은숙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은숙은 공연히 왔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때 남자의 탁한 목소리가 은숙의 발목을 잡았다.
"정란이."
남자의 목소리는 어리광을 부리듯 보채고 있었다.
"안되요!"
은숙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정란이... 견딜 수가 없어..."
"정말 안돼요. 난 임신 중이잖아요?"
"그냥 만지기만 하겠어..."
"아이 짖궂어......"
이내 여자가 남자에게 양보를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는 집주인인 이정란이 분명했으나 남자의 목소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은숙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정란이 외간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수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듯이 뛰었다. 은숙은 망설이다가 벽모퉁이를 돌아 창 쪽으로 가까이 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창 쪽으로 바짝 붙어서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 성긴 빗발이 뿌리고 있어서 날은 어둑어둑했다. 은숙은 조심조심 걸어서 창밑으로 가까이 갔다.
"아이!"
이정란의 소리가 다시 들린 것은 은숙이 창 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여름이라 그런지 거실의 창은 반쯤 열려 있었고 분홍색 커텐이 바람에 한가롭게 나부끼고 있었다.
"정란이..."
남자의 목소리는 숨이 가빴다. 은숙은 커텐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실은 날씨 때문에 어둠스레했다. 그러나 거실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는 이정란과 이정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중년 사내의 넓은 등이 뚜렷이 보였다.
(낯선 남자야... )
은숙은 아랫도리가 짜릿해 왔다. 남자는 이정란의 복부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고 이정란은 남자의 단정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정란이!"
남자의 손이 이정란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왜요?"
그러자 이정란이 입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정란은 남자의 손이 가슴을 애무하는 것을 기꺼워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은 부드럽게 이정란의 가슴을 애무하다가 허리로 내려왔고 허리에서 다시 가슴으로 올라갔다가 허벅지를 어루만지듯이 더듬고 있었다. 이정란은 남자의 손이 위치를 바꿀 때마다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몸을 떨었다.
은숙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은숙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한 것을 보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강한 호기심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누구일까?)
남자는 등을 이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 남자가 이정란의 남편 한경호가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남자의 손이 이정란의 치맛자락을 들추었다. 이정란이 그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시늉뿐이었다. 이정란은 갑자기 남자의 머리를 세차게 감싸 안더니 입술을 부비기 시작했다. 은숙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삼각 분기점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다. 은숙은 자신도 모르게 벽에 등을 기대고 하체로 손을 가져갔다. 안에서 이정란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은숙이 다시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자 남자는 어느 사이에 옷을 벗고 있었고 이정란은 서둘러 원피스를 벗고 있는 중이었다. 거실이 어둠스레했으나 이정란의 배는 임신으로 하얗게 불러 있었다.
"조심해요."
이정란이 낮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말아."
남자가 이정란의 하얗게 부른 배를 쓰다듬다가 몸을 실었다.
"아, 아퍼."
이정란이 짧게 외쳤다.
"정말?"
"정말이잖구!"
이정란이 눈을 샐쭉거렸다. 그러나 어쩐지 부러 그러는 기색으로 느껴졌다.
"아직 산달은 멀었는데..."
"산달이 멀었다구 아프지 않을까?"
"그럼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요?"
이정란이 갑자기 까르르 웃어댔다.
"거짓말이었지?"
"그래요!"
"이런! 그냥 두지 않겠어!"
"그냥 두지 않으면 어쩔 거예요?"
"죽여 주겠어!"
"어떻게?"
"이걸로 죽여 주겠어!"
"죽이기만 못해 봐!"
이정란이 또다시 까르르 웃으며 남자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남자가 재빨리 이정란에게 자신의 몸을 실었다. 이정란이 기꺼운 표정으로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두 다리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좋아요?"
"응."
은숙은 다시 몸을 떨었다 이정란과 남자가 관계를 하는 것을 보는데 자신이 더욱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흥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정란과 남자가 관계를 끝낸 것은 얼추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은숙은 그때서야 창에서 눈을 떼고 무겁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자극한 하체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은숙은 그들이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으나 그들의 관계를 훔쳐본 것이 겁이 났다.
2
집으로 돌아오자 은숙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흥분과 떨림이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눈앞이 몽롱하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전율처럼 전신으로 맹렬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품에 안고 몸부림치는 이정란과 남자의 넓은 등이 계속 어른거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은숙은 소파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저 강 기자님 댁이죠?"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젊은 여자의 것이었다.
"네."
"저는 박 마르타 수녀예요."
"네."
은숙은 얼굴을 찡그리며 낮게 대답을 했다. 언젠가도 전화를 걸어온 일이 있는 수녀였다.
"댁에 김철구씨 계시죠?"
"네."
은숙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2층 서재에 머물고 있는 사내가 김철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던 것이다.
"김철구씨에게 전해 드릴 물건이 있는데 잠깐 나와 주시겠어요?"
"저요?"
"네. 부인께서 잠시 나와 주셨으면 하는데요. 김철구씨는 밖으로 나오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서요."
"네. 그럴께요."
은숙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지금 바로 안암교 옆에 있는 제과점으로 나오세요."
"안암교 옆에 있는... ?"
"뉴욕제과라고 있죠?"
,"네."
"댁에서 가까우니까 5분도 걸리지 않을 거예요."
"금방 나갈께요."
은숙은 전화를 끊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빗발이 굵어져 있었다. 은숙은 검은 우산을 쓰고 안암교를 향해 걸었다. 안암교는 대광고등학교 뒷편을 흐르는 안암천 위에 놓여 있는 다리였다. 뉴욕제과는 다리에서 고려대 쪽으로 50보쯤 떨어져 있었다. 은숙이 가끔 가다가 식빵을 샀기 때문에 낯선 곳이 아니었다. 제과점으로 들어서자 회색 제복을 입은 수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맑고 깨끗한 수녀였다.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수녀가 먼저 은숙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셨어요?"
은숙도 엉거주춤 인사를 했다.
"전화만 드리다가 만나 뵙게 되어 기뻐요."
"저도 기쁩니다."
"댁에서 신세를 진 분들이 모두 고마워하고 있어요. 강 기자님도 강 기자님이지만 자매님께서 애를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전 그저 시키는 대로 했어요."
"겸손하시네요."
수녀가 밝게 웃었다. 은숙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숙도 중학교에 다닐 때는 성당에 다녔었다. 그 이후에는 성당을 않았으나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다시 다니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녀가 낯선 사람이기는 하지만 생경한 느낌은 없었다.
"김철구씨는 잘 계시죠?"
"네."
"김철구씨에게 부인도 잘 계시다고 전해 주세요. 어제 경찰에서 풀려났는데 건강하다구요."
"그럼 결혼하신 분인가요?"
"예쁜 딸도 있어요."
"그럼 부인에게 다녀가시라고 하시죠. 김철구씨가 댁에 돌아가기 어려운 형편이면..."
그러자 수녀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숙은 수녀와 그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안 돼요. 참 뭣 좀 드실래요?"
"우유 한 잔 마실께요."
"그러세요."
수녀가 종업원을 불러 우유 두 잔을 시켰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은숙은 수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밖에서 내리고 있는 빗줄기를 쳐다보았다. 수녀도 잠자코 밖을 내다보았다. 제과점 안은 조용했고 영화음악 태양은 가득히가 장엄하게 흐르고 있었다. 은숙은 다시 수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녀는 손가락에 끼고 있는 작은 반지를 계속 굴리고 있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로사리오 기도를 할 때 쓰는 행동이었다.
"세상이 너무 끔찍하죠?"
이내 수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부군에게 들으셨겠지만 광주에서 일어난 일 반드시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거예요."
수녀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은숙은 수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미소로 얼버무렸다.
"이것 김철구씨에게 전해 주세요."
수녀가 탁자 밑에 있는 검은 색의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냈다.
"네."
은숙은 그 서류를 받아 옆자리에 놓았다.
"종교를 갖고 계세요?"
"중학교 때 충주에서 성당에 다녔어요."
"그럼 영세는?"
"본명이 로사예요."
본명은 세례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 그러고보니 우리 자매님이셨군요?"
"지금은 냉담 중예요."
"이번 주일에 명동 성당 미사에 참석해 보세요."
"네."
은숙은 선선하게 대답했다. 성당에 다시 나가겠다는 생각은 전에도 여러 번 했었다. 은숙은 수녀와 한참동안이나 더 셈에 없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녀는 밖에까지 나와 은숙을 배웅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돌아와 있었다. 은숙은 수녀에게서 받은 서류봉투를 남편에게 전해 주었다.
"수녀님을 만났어?"
"네."
"좋은 분이야..."
남편이 서류봉투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은숙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주방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는 밤에도 계속 내렸다. 은숙은 우울한 얼굴로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내다보았다. 남편은 또 김철구라는 사내와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은숙은 남편이 서재에서 내려올 기색이 보이지 않자 혼자서 침대에 누웠다. 빗소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남편이 서재에서 내려온 것은 은숙이 침대가 출렁하는 느낌에 눈을 뜨자 남편이 침대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은숙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지 창문이 덜컹대고 흔들리고 빗소리가 요란했다.
"더 자."
남편이 피로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직까지 서재에 있었어요?"
"응."
"무슨 얘기가 그렇게 길어요?"
"얘기는 무슨..."
"난 너무 심심해요. 정말 요즈음은 생과부가 된 기분예요."
"쓸데없는 소리는..."
"앞집 여자 말이예요."
은숙은 손을 뻗어 남편의 손을 잡았다.
"누구?"
은숙은 남편의 손을 제 가슴 위에 얹어 놓았다.
"군인 부인이요."
"그 여자가 뭐?"
남편이 그때서야 은숙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은숙은 남편의 옆으로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이고 있어요."
은숙은 남편을 향해 낮게 속삭였다.
"무슨 소리야?"
남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람을 피운단 말예요."
"어떻게 알아?"
"내가 봤어요."
"바람피우는걸?"
"아까 심심해서 앞집 여자와 얘기나 할려고 갔더니 대문이 열려 있대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니까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은숙은 잠시 얘기를 멈추었다. 앞집에 들어갔다가 그 여자가 외간 남자를 끌어안고 허우적거리는 것을 몰래 훔쳐보았다는 얘기를 차마 남편에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얼른 밖으로 나왔어요."
"그걸루 어떻게 바람을 피웠다고 단정을 해?"
"나중에 2층에서 보니까 그 집 대문 안에서 둘이 열렬하게 포옹을 하던대요?"
은숙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나도 그렇게 열렬하게 관계를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쏘아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
남편이 맨숭맨숭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은숙은 또다시 눈앞에 이정란의 벌거벗은 나신에 몸을 싣고 있던 남자의 넓은 등을 떠올렸다. 그러자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 왔다. 은숙은 손을 뻗어 남편의 하체로 가져갔다. 남편은 얇은 삼각형 속옷 한 장을 걸치고 있었다. 은숙은 속옷 위로 남편의 그것을 애무했다. 남편의 그것이 서서히 부풀기 시작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은숙은 남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니..."
남편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당신 꿈자리가 사나운 모양예요."
"왜?"
"잠을 자면서 헛소리를 하고... 식은땀을 흘려요."
"몸이 약해서 그래."
남편의 눈은 먼 허공을 쫓고 있었다.
"가위가 놀려..."
"어떤 가위인데요?"
"..."
남편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은숙은 남편이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골목에서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과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총..."
"총?"
"어느 골목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거야.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 나를 향해 총을 쏘는 거야...현실처럼 생생해서 견딜 수가 없어."
남편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군지 봤어요?"
"못봤어. 너무 무서워서..."
"그냥 꿈이네요."
"대검으로 나를 찌르기도 하고..."
"가위가 원래 그래요."
"어떤 여자의 가슴을 도려내기도 하고..."
남편의 말에 은숙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것은 광주 사태가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 계엄사에서 발표한 담화문에도 들어있었다. 계엄사의 담화문은 불순분자의 유언비라며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여자의 유방을 도려냈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 광주 시민들은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그 발표를 나오자 유언비어가 아니고 사실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고 그런 유언비어가 공연히 나돌았겠느냐며 계엄사의 발표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은숙은 아무리 공수부대가 잔인해도 그런 일을 저지를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
"광주에서 그런 일이 진짜 있었어요?"
"있었다고 그래..."
"당신이 직접 목격했어요?"
"아니."
"그럼 목격한 사람을 봤어요? 그렇게 가슴이 도려내져 희생당한 사람이던가...?"
"아니."
"그럼 왜 그런 것을 생각해요?"
"광주 사람들은 모두 믿고 있어..."
은숙은 입을 다물었다. 남편의 말에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가슴이 답답해 왔다.
"이거 벗어요."
은숙은 자신의 속옷을 벗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그때서야 속옷을 벗고 그녀에게 몸을 실어 왔다.
"아!"
은숙은 두 팔을 남편의 목에 감고 무릎을 열었다. 밖에는 벌써 어슴푸레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3
그날 밤에도 가위처럼 꿈이 계속되었다. 강한섭은 비몽사몽 간에 광주에서 시위대에 참여하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위대에는 아내도 있었고, 앞집 군인의 부인 이정란과 유미자도 있었다. 그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뿐이 아니라 거기엔 노동자들도 섞여 있었고 간호사, 운전기사, 학생들, 농민들, 그리고 경찰과 검은 베레모를 쓰고 진압봉을 들고 있는 공수부대도 웃으며 춤을 덩실덩실 추듯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웃음이 헤펐다.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누군가 해방이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람들이 참세상이라고 화답을 했다. 날씨는 볕이 쨍쨍했다. 웃역에서는 모내기가 얼추 끝났으나 아랫역 남도에서는 모내기가 제철이었다. 그러고 보면 청천 하늘엔 농사천하지대본이라는 울긋불긋한 농기가 펄럭거리고 풍물소리가 드높았다. 꿈도 생각을 따라 가는 것일까. 강한섭은 어느덧 논바닥에서 모를 내고 있었다. 아내가 점심을 나르고 논둑에 둘러앉아 점심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막걸리를 마시고 아내가 수줍은 듯이 웃으며 그에게 눈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논둑에서 덩실덩실 원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때 꿈이 바뀌었다. 타타타타탕...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어둠이 세차게 몸을 떨었다. 강한섭은 벽 쪽에 바짝 달라붙어 눈을 질끈 감았다.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치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검은 그림자들은 소리도 없이 도청으로 접근하면서 일제히 사격을 하고 있었다. 도청 어느 방에선지 처절한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들리고 잠자리에서 깨어난 시민들이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는 기척이 꿈이 아니고 현실인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
강한섭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골목으로 달려오는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이 마구 달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강한섭도 사람들을 따라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달아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강한섭은 정신없이 뛰었다. 타타타타탕...... 다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강한섭은 머리를 바짝 수그렸다. 그러자 탄환 하나가 쉭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한섭은 귓바퀴가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총소리가 더욱 가까워져 왔다. 강한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나도 광주에서 속절없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또 꿈이 바뀌었다. 꿈속에서 강한섭은 군인이었다. 진압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었으나 성난 군중들은 금남로가 빽빽하게 늘어나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군중들에게 밀리면 죽는다!)
강한섭은 꿈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동료 공수부대원들의 얼굴에도 점점 사색이 짙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성난 군중들이 자신들을 죽일 것 같아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우리가 죽지 않으려면 저들을 죽여야 돼... )
강한섭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있던 M16을 내려 움켜잡았다. 그리고 성난 군중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으나 수많은 군중들이 노래를 부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가까이 오고 있었다. 강한섭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타타타타탕...... 그러자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강한섭은 계속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벌떼처럼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으나 강한섭은 그들을 쫓아가며 M16을 난사했다. 이내 금남로가 거짓말처럼 썰렁하게
비었다. 강한섭에게 총을 맞은 부상자들만 여기저기 뒹굴며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뱉거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강한섭은 핏발 선 눈으로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저만치 골목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서 강한섭을 손가락질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돌격!"
강한섭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적을 향해 골목으로 달려갔다. 적들은 어둠 속에서 수상스러운 음모를 꾸미며 웅성대고 있었다. 강한섭은 M16을 난사하며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것들이... !)
강한섭은 골목 끝에 있는 판자 대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M16을 난사했다. 그러자 집안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강한섭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젊은 여자가 아랫배를 움켜쥐고 죽어 있었다. 임신을 했는지 홈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아랫배가 둥그스름했다. 강한섭은 골목으로 다시 나왔다. 그러자 대문 옆에서 하얀 물체가 서 있다가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강한섭은 재빨리 달려가 하얀 물체를 나꿔챘다. 그러자 하얀 물체가 그 충격으로 골목에 나뒹굴었다. 여자였다. 여자는 흰 부라우스와 검은 스커트 차림이었다. 어둠 속이기는 했지만 하얀 부라우스가 감싼 젖무덤이 묵직해 보였고 걷어 올려진 스커트 자락 사이로 흰 종아리가 보였다. 강한섭은 M16에 꽂힌 대검으로 여자의 가슴을 겨누었다. 여자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 무수한 애원과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강한섭의 눈은 여자의 탐스러운 가슴에 꽂혀 있었다. 그의 눈은 짐승처럼 이글거렸고 추호의 망설임도 후회도 없었다. 강한섭은 애원하는 여자의 눈빛을 외면하고 대검을 여자를 향해 힘껏 찔렀다.
"악!"
여자의 젖무덤에서 붉은 선혈이 쏟아지며 여자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강한섭은 멈칫했다. 하얀 부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시위 군중이 아니라 아내였다.
"당신 미쳤어요?"
가슴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아내는 젖무덤이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얗게 눈을 흘기며 강한섭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으으..."
강한섭은 몸부림을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했다. 아직도 한밤중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강한섭은 꿈에서 깨어났는데도 꿈속에서의 일이 너무나 생생했다. 해괴한 꿈이었다. 비슷한 꿈을 매일 같이 되풀이하여 꾸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공수부대가 되어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것도 기이하기만 했다.
(꿈이 너무 선명해... )
강한섭은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어둠 속에서 옆으로 손을 뻗자 아내의 둔부가 만져졌다. 강한섭은 어둠 속을 더듬어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면서 무섬증이 조금 진정되었다. 강한섭은 가쁜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침실이 칠흑처럼 캄캄해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강한섭은 격렬하게 뛰던 호흡이 진정되자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꿈인데도 강한섭은 꿈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거실에서 2층 서재로 올라가자 달빛이 환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침실은 커텐을 두껍게 쳐서 달빛이 스며들지 않고 있었다. 강한섭은 창으로 가까이 갔다. 달은 주택가의 지붕 위 중천에 높이 솟아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오고 있는 하늘은 푸르디 푸른 남빛이었고 희뿌연 광망이 신비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강한섭은 서재의 창가에서 하염없이 달바라기를 했다. 선녀라도 하강을 하는 것일까. 어디선가 처량한 피리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뜰에서 우는 풀벌레 울음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벌써 더위와 장마로 지리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이 이토록 맑은 것만 보아도 가을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은 영혼들의 세상인가?)
강한섭은 달빛이 교교한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광주에서 돌아온 이후 부쩍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강한섭이었다. 광주에서 목격한 숱한 죽음과 피...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동자... 강한섭은 그 눈동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광주에서 돌아온 강한섭에게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광주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느냐는 것과 광주 사태가 누구의 잘못이냐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질문에도 강한섭은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은 것은 5월 26일 새벽의 도청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그곳에서 얼마나 죽었는지 아무도 통계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또 하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공수부대가 젊은 여자의 가슴을 도려냈느냐 하는 것이었다. 강한섭은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계엄사도 그러한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는 담화문을 발표한 일이 있었으나 어디서도 그러한 일을 보았다는 목격자나 가슴을 난자당한 희생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소문은 그러한 것 외에도 무수하게 나돌았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려 한다는 소문 같은 것은 일반적인 것이었고 공수부대가 시민들과 학생들을 진압할 때 잔인하게 진압하게 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술을 먹였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나돌았다. 세상이 어수선하자 소문이 더욱 무성했다. 강한섭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 사태는 이 나라의 앞날에 언제까지나 어두운 그늘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경찰은 계속해서 시국사범들을 쫓고 있었다. 특히 광주에서 시위를 하다가 탈출한 시민과 학생들은 경찰의 수배를 피해 공장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친지를 찾아다니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간헐적으로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어 살포하기도 하고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하다가 경찰에 발각되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아야 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광주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정권의 탄압은 극렬했다. 그들은 유인물을 살포하는 학생들을 가차없이 연행하여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학생들은 도망 다니기에 급급했다. 시위를 하거나 유인물을 뿌리지 않았어도 과거의 학생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학생들은 무조건 연행을 당했다. 지식인과 노동자들, 그리고 문인들도 과거의 경력만으로 수배를 당했다. 그들은 먼 섬으로 도피하거나 친지들의 집으로 숨었다. 강한섭의 집에도 수배자들이 찾아왔다. 강한섭이 수배자들을 집에다 며칠씩 은신시키게 된 것은 어느 날 대학교 후배가 느닷없이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강한섭이 다니던 대학교의 단과대 회장을 맡고 있었으나 비밀 서클을 하다가 수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점 조직으로 전국의 학생조직과 연결되어 있었다. 강한섭은 그의 부탁을 받고 수배자들을 숨겨 주게 되었다. 연락은 명동 성당의 박 마르타 수녀가 맡았다.
"교회는 정의와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강한섭이 수녀가 수배자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의아해하자 박 마르타 수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가톨릭은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어 박정희 대통령을 반대하는 반독재 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신자들도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제는 산 자들이 죽은 자의 뒤를 따를 때입니다."
박 마르타 수녀의 말에 강한섭은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은 종교인의 말이기에 앞서 인간의 양심을 울리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한섭은 아내에게만은 수배자들을 숨기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 수배자를 숨기고 있는 경찰에게 발각된다고 하더라도 아내는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설혹 아내가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어서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강한섭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담배를 피우다가 날이 밝으면 회사로 출근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신문사의 분위기도 점점 가파라지고 있었다. 신문사 경영진이 새로운 체재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대대적으로 해직할 것이라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었다. 새로운 체재가 등장하면서 언론을 통폐합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지자 새로운 체재의 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경영진들이 알아서 길 것이라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만약에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강한섭도 해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신문사 경영층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사 문제로 신문사에 상주하는 기관원들과 몇 번이나 마찰을 일으켰던 것이다. 마찰이랄 것도 없는 사소한 충돌이었으나 일부 기자들이 기관원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달라붙는데 비해 강한섭은 언제나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강한섭은 담배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내뱉았다. 해직이 된다고 해도 두렵지는 않았다. 저축해 놓은 것은 없었으나 아내와 두 식구뿐이었으므로 시장에서 노점상을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강한섭은 스탠드를 켜고 책상에 앉았다. 남미에서 민주화투쟁을 벌이고 있는 신부들이 주장하고 있는 해방신학에 관한 책을 번역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이 책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면 나를 공산당이라고 매도하겠지... )
남미에서는 일부 젊은 신부들이 총을 들고 군사 독재정권과 직접 싸우고 있었다. 이제는 종교가 저 높은 곳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저 낮은 곳을 향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강한섭은 불안했다. 그러나 그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강한섭을 해직시키고 체재를 부정하는 불순세력으로 체포할 것이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는지 달빛이 점점
사위어 가고 있었다.
4
강한섭이 신문사로부터 해직을 당한 것은 그날부터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강한섭은 해직 통고를 받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주의 조카인 임 부장이 회의실로 불러 해직 통고를 했을 때 강한섭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비열한 인간들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강 기자가 알다시피 우리 형편이 영 좋지 않소."
임 부장은 침통한 표정을 꾸미고 있었다.
"아직 물밑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 회사는 라디오를 뺏길 것이 분명하오."
"......"
"여차하면 신문까지 뺏길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최악의 상태가 되는 거요."
"......"
"회장님께서는 신문이라도 지키려고 심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강한섭은 임 부장의 설득에 대꾸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나 성냥을 켜대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임 부장이 강한섭의 떨리는 손을 무심히 응시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임시로 쉬고 있는 거라고 해도 좋소."
"......"
"시국만 풀리면 다시 같이 일할 수 있을 테니까."
강한섭은 임 부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임 부장이 얼굴을 찡그렸다가 고개를 외로 꼬았다.
"퇴직금과 해직 수당은 바로 지급이 될 거요. 그럼..."
임 부장이 서둘러 회의실을 나갔다. 회의실이라고 해야 편집국 한쪽 구석에 칸막이를 치고 책상과 의자 몇 개를 갖다가 놓은 것뿐이었다. 밖에서 임 부장의 쿨럭대는 기침소리가 들렸다. 강한섭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회의실을 나왔다. 편집국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돌아다보는 것 같아 강한섭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강한섭은 사회부 책상에 앉아 있기가 껄끄러워 일단 회사를 나왔다. 어디선가 잠시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강한섭은 회사 뒤의 다방을 찾아가 앉았다. 갑자기 아내 얼굴이 생각났다. 강한섭은 다방의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여전히 윤기가 흐르고 밝았다.
"나야."
강한섭은 혼잣말을 하듯이 낮게 중얼거렸다.
"네?"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아브 높아졌다.
"당신 남편..."
강한섭은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아!"
"당신 남편 목소리도 구분 못 해?"
"애걔... 착 가라앉았으니 어떻게 알아요?"
"뭐해?"
"책 보고 있어요."
"팔자 늘어졌군..."
"네?"
"아냐."
"왜 전화했어요?"
"당신 목소리 듣고 싶어서..."
"거짓말!"
"사랑해."
"무슨 일 있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아냐."
"그럼?"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뿐이야."
"......"
"정말이야."
"당신을 사랑해요."
아내가 노래를 부르듯이 중얼거렸다. 아내의 낮게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에 강한섭은 갑자기 목이 꽉 메었다. 아내는 무엇인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남편이 말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용기를 복돋워주기 위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한섭은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커피를 마시고 다방을 나오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강한섭은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오가는 행인들을 쳐다보았다. 행인들의 걸음과 옷차림에 쓸쓸한 가을이 묻어 있었다. 강한섭은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회사에 돌아가서 소지품을 챙겨 와야 했다. 소지품이라고 해야 책 몇 권과 취재 수첩 정도였으나 가방이 필요했다. 그는 가방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남대문 시장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사무실의 동료들과도 인사를 해야 했으나 쫓겨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굳이 인사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남대문 시장은 시국이 어수선해도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강한섭은 시장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검은색 가방을 하나 샀다. 시장은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강한섭은 시장의 노점에서 국수를 하나 말아먹고 소주를 한 병 비웠다. 시간이 이미 정오가 지나 있었다.
(할 것이 없으면 시장에서 장사나 하지... )
강한섭은 시장 상인들의 분주한 모습에서 삶의 활기를 느꼈다.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활기였다. 강한섭은 살 것도 없으면서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이제부터 시간이 한없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느릿느릿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시간을 보내는 일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조금 우울했으나 무엇인가 대책이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것이나 살까?)
강한섭은 여자들 속옷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결혼을 한 이후 아내에게 옷가지나 화장품 따위를 선물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쑈윈도우에 진열된 내의들이 제법 고급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그것들이 선정적으로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한섭은 내의 가게에 들어가 내의를 한 벌 샀다. 진달래빛 핑크색의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였다. 시장에서 나오자 토쿄 호텔 앞 횡단보도였다. 길을 잘못 든 모양이었다.
(한때 이곳은 사창가로 유명했지... )
강한섭은 횡단보도 앞에서 토쿄 호텔을 우울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땡기풀이를 한다고 친구들과 함께 몰려와 동정을 바친 창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라 왔다. 동정을 바쳤기 때문인지 강한섭은 이따금 그 창녀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르곤 했었다. 강한섭은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자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곳엔 여전히 붉은 벽돌집이 몇 채 남아 있었다. 강한섭은 층계를 내려가 붉은 벽돌집들이 있는 골목으로 걸어갔다. 붉은 벽돌집들은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보다 지대가 낮았기 때문에 길에서 층계를 내려가야 했다. 아직도 창녀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골목엔 인적이 거의 없었다. 강한섭은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바바리 코트의 깃을 바짝 올렸다. 누군가 보고 있을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공연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놀다 가요!"
골목을 몇 걸음 걸어 들어가지 않았을 때 청스커트를 입고 있는 아가씨가 수작을 붙여 왔다. 강한섭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창녀들이 있다는 사실이 강한섭에게 이상한 안도감이 들게 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강한섭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낮거리도 하나?"
그러나 강한섭은 아가씨의 수작을 가볍게 퉁겼다.
"낮거리 하믄 어디가 덧나나요?"
아가씨가 피식 웃었다. 웃을 때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덧니가 살짝 드러나고 있었다.
"마수걸이 했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였다.
"안 했으면 아저씨가 해줄래요?"
"그럴까?"
"서비스 잘 해드릴께요."
"정말이야?"
"네에."
아가씨가 재빨리 강한섭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강한섭은 못 이기는 체하고 아가씨가 이끄는 대로 붉은 벽돌집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집은 한낮이라 그런지 물속처럼 조용했다. 강한섭은 아가씨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아가씨의 방은 복도 끝에 있었고 겨우 두세 사람이 누우면 알맞을 정도로 방이 좁았다. 강한섭은 방으로 들어가자 공연한 짓을 했어, 하는 후회를 했다. 아가씨는 화대부터 받아서 밖으로 나갔다. 강한섭은 아가씨가 돌아올 때까지 우두커니 기다리며 창밖의 남산을 쳐다보았다. 남산도 벌써 추색이 들기 시작해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벌써 가을이 오다니... )
강한섭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에서 해직당하고 찾아온 곳이 사창가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가씨의 방에 배어 있는 무수한 사내들의 들쩍지근한 정액 냄새, 어쩐지 시궁창 썩는 냄새처럼 고약하기까지 한 냄새가 정겹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하다가 캄캄한 다락이나 광 속으로 숨었을 때 느닷없이 코를 찌르던 퀴퀴한 백곰팡이 냄새처럼 편안했다. 아가씨가 돌아왔다. 아가씨는 빠르게 요를 펴고는 옷을 훌훌 벗고 누웠다. 강한섭은 다리를 쩍 벌리고 누운 아가씨의 삼각 분기점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영양이 충분하지 않은 아가씨의 메마른 허벅지가 눈에 시렸다.
"빨리하세요."
아가씨가 강한섭의 시선을 무심하게 털어내며 재촉했다. 강한섭은 그제서야 옷을 벗고 아가씨의 메마른 육신을 향해 엎드렸다. 밖으로 나오자 날씨가 잔뜩 흐려져 있었다. 강한섭은 회사를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미경은 최종열의 소설에서 시선을 떼었다. 소설은 마침내 강한섭이 신문사에서 해직당하는 부분까지 전개되어 있었다. 80년 봄, 서울의 봄이 끝나자 5.18이 일어났고 5. 18이 신군부의 의도대로 진압되자 무서운 검거 선풍이 불기 시작한 것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제는 무수한 피를 흘리고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으므로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 각층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