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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사키스의 신부(The Alexakis Bride)

알렉사키스의 신부(The Alexakis Bride)

Anne McCollester

 

1

<남자에게 여자가 너무 많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몬 알렉사키스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한 이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가 말을 할 때는 단어의 구절마다 굵은 바리톤 음색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서른 넷의 나이. 본능에 사로잡혀 있는 독신 남자라면 아버지의 이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때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다몬은 이 말에 찬성할 수 없었다.

이유는 그가 여자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는 사실 여자를 좋아한다.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같이 자고, 다음날 아침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도 되는, 그런 종류의 여자를 좋아했다.

문제는 기둥인 여인들, 아리스토틀 알렉사키스가 사랑했던 그 여인들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틀 자신은 미망인이 된 어머니와 여섯 명의 자매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부양을 책임진 적은 없었다. 다섯 살배기 쌍둥이 조카딸들은 빼놓더라도 말이다.

아버지는 집안의 여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매력을 뽐내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다몬이 겨우 여덟 살 때.

다몬은 창 밖을 통해 뉴욕 중심부의 빌딩 숲을 바라보면서 내가 형제 자매도 없는 고아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여자들이 없었다면 그는 더 잘 지냈을 것이다. 그에게 완벽한 신부를 짝지어 주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시키려는 어머니, 수상쩍은 도박꾼과 눈이 맞아 요즘에 아예 집을 나가 버린 판도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추잡한 오프브로드웨이(뉴욕의 극장가인 브로드웨이의 연극에 대항하여, 주로 그 주변에서 공연되는 연극. 실험적인 작품이 많다)공연에서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있는 엘렉트라, 한 마디 말도 없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떠나 버린 클로에,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예쁜 코트의 재료라는 이유로 친칠라(남미산 설치류 동물. 모피로 상의, 재킷 둥을 만든다)를 산 채로 모조리 구입한 다프네, 바로 오늘아침 거만스럽게 이 사무실에 와서는 그의 최고의 경쟁자이자 수입업자인 스트란 브라더스 사와의 업무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아레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일 큰 골칫거리인 큰누나 소피아가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더 순탄했을 것이다. 소피아의 임신 때문에 요즘 그의 인생은 마구 꼬여 가고 있는 중이다.

남자가 왜 자기 누이의 임신 때문에 걱정해야 한다지? 왜 이것이 매형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가.

그건 큰누나의 남편, 스테파노스 자신이 바로 문제의 인간이기 때문이야, 그는 하늘을 대신해 대답했다.

그와 케이트 매키. 케이트 매키!

이 여자는 그 이름자에서부터 벌써 골칫거리 냄새가 풍긴다. 그녀는 거칠고 장난기 있는 적갈색 머리칼의 소유자로, 여자를 밝히는 그의 매형이 침대로 이끌고 싶어 하는 그런 종류의 여자다.

스테이시, 트레이시, 케이시를 비롯해서 지난 두 달 동안 스테파노스가 고용해서 망나니 같은 쌍둥이를 돌보게 했던 그 모든 보모들은 단지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스테파노스가 그와 소피아의 소유로 되어 있는 파크 애비뉴의 아파트에 들여앉혀 놓고 싶어 한 사람은 케이트 매키였다.

다몬은 의사가 보모의 채용을 권유했다고 말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큰 매형은 자기 자신이 아닌 아내를 위해 누군가에게 스스로 돈을 줄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달 전, 다몬의 사무실에 들어오는 스테파노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의사가 소피아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어. 유산할 위험이 있다는군. 쌍둥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다몬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이렇게 약속했다. 동시에 소피아의 이름을 메모지에 갈겨쓰면서.

하지만 스테파노스는 다몬에게 손을 휘저어 보였다.

"이건 네 문제가 아냐. 그냥 알려 주는 거야. 내가 후보들을 면접해서 고르겠어."

케이트 매키.

도대체 그가 이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내쫓아 버리자. 그는 그녀를 발로 차서 시베리아까지 날려 버리고, 그 사이에 추잡한 큰 매형을 남극에서 뱅뱅 돌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소피아가 케이트 양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 아가씨는 아주 유능해. 똑똑한데다 명랑하고. 케이트가 일하는 걸 보면 내 마음이 훨씬 편안해져." 소피아는 바로 오늘 아침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큰누나는 케이트가 지난 두 주일 동안 보여 준 성실한 근무 사례들을 죽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스테파노스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조리 안다. 그 역시 소문을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소피아만 모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소피아가 그 소문을 듣지 못하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할 작정이다.

"의사도 케이트가 온 후 내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어." 소피아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소피아를 바보로 만드는 큰 매형의 짓을 그냥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는 스테파노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이 엉망이 돼도 똑똑한 매키 양이 그를 좋아할까?

하지만 이 방법은 안 된다. 소피아가 눈치 챌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소피아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다몬은 케이트 매키가 기대하고 있는 방향으로 일을 꾸며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수화기를 들어 어깨 받침대에 올려놓았다. "퇴근한 줄 알았더니." 그는 비서 릴리안에게 말했다.

"전 여기서 살아요." 릴리안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리 둘 다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다몬도 수긍했다. "무슨 일이야?"

"2번에 어머님 전화가 와 있어요."

"지금?"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목시계를 흘끗 보았다. "아테네는 지금 새벽 두 시가 다 됐을 텐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연결해 줘."

어머니 헬레나 알렉사키스에게 이번에는 또 무슨 난리가 벌어졌을까? 궁금했다. 그의 어머니는 모든 문제를 남편에게 의지하는 진짜 숙맥덩어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는 자신과 상의 없이 어떤 행동도 한 적이 없다. 나에게 완벽한 신붓감을 찾아 주는 일만은 예외지, 하고 다몬은 씁쓸하게 생각했다.

"다몬이냐? 내 아들, 다몬 맞지? 퇴근하지 않았니? 아직도 일하고 있단 말이냐?"

". 아직 일하고 있어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아니다. "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전화선에 잡음이 요란했지만 어머니의 쾌활한 음성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했단다. "

다몬은 몸을 쭉 펴면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소식이라뇨?"

"내가 곧 뉴욕으로 가마." 극적인 효과를 노린 침묵이 잠시 흘렀다. "마리나와 함께 갈 거다. "

 

"동생 분이 절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 케이트는 사과 깎던 손놀림을 멈추고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자기의 주인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오늘 오후 3시에." 소피아가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케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지난 3주일 동안 이 집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거만한 다몬 알렉사키스에 대한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는 유모 따위에게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사람은 아니다.

"그 분이 왜 저를 보자고 하시는데요?"

"다몬은 우리 가족과 관련된 사람은 모두 알고 싶어 해요. 성격이 원래 그렇거든요." 소피아가 말했다.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죠."

"저에 대한 책임감은 필요 없어요. 저는 제 스스로 책임을 져요."

"물론이지. 나는 아가씨의 독립심을 좋아해요. 나는 절대로 아가씨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예요. 우린 다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괜찮겠죠?"

"물론 전 괜찮아요." 케이트는 소피아에게서 유약한 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중년의 여인에게 짧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분을 뵙게 되다니 정말 기뻐요."

아마 이번이 이 집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비밀을 그에게 알려 주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큰 매형이 얼마나 여자를 집적거리는 멍청이인가 하는 비밀 말이다. 만일 소피아를 모른 척 내버려두고 떠날 생각이었다면 아마 그녀는 이 집에 온 둘째 주, 스테파노스가 주방 구석에서 자신의 입술을 덮쳤던 그 날 밤에 떠나 버렸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그는 그녀가 몸을 돌릴 때마다 끈끈한 시선으로 훔쳐보며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케이트는 두려움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몬이 슈퍼맨이라면 케이트가 나서기 전에 그가 스테파노스의 음란한 행동을 중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트는 다몬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녀는 알렉사키스 엔터프라이즈 사가 입주해 있는 시내의 빌딩 앞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소피아가 옳아. 그는 나를 그냥 한번 훑어봄으로써 케이트 매키라는 여자가 촌스러운 행동거지와 아일랜드 사투리로 자기의 소중한 조카들을 오염시킬, 그런 하녀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려는 것뿐 이야! 그런 문제로 그 사람과 대변하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턱을 치켜 올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아름답게 보이도록 머리칼을 매만진 다음 당당한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20충 버튼을 눌렀다.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케이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똑똑하게 보이는 50대 여비서가 말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케이트 양이 오셨습니다. " 그녀는 문을 열고 케이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옆으로 비켜 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방은 케이트가 상상한 것보다 아늑했다. 가구들은 모두 곡선 처리가 잘된 현대풍 티크 제품이었지만, 선반에는 필요 이상의 책과 서류가 가득 차 있었다. 구석 천장에 매달려 있는 다양한 모양의 물고기 모빌들은 문이 열리고 닫힘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갖가지 색깔로 빛을 내고 있었다.

다몬 알렉사키스는 방에 사람이 들어온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책상에 앉아 구매 명세서를 훑어보고 끝에 사인을 할 때까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드디어 그가 눈길을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케이트는 웃었다. 미소는 그녀가 자기 직원들에게 첫 번째로 당부하는 사항이었다.웃어요. 첫인상이 중요해요그녀는 미소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가 다몬 알렉사키스에게는 효과가 없었다는 것 또한 확실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케이트가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그녀의 손을 잡지도 않고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난 이유를 모르겠소."

그녀가 그의 목소리에서 예상한 것은 약간의 그리스어 악센트였지 싸늘한 불신감은 아니었다. 케이트는 손을 끌어당기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소피아한테서 사장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사실이오? 내가 간통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도 누님이 얘기합디까?"

케이트는 퍼뜩 놀라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뭐라고 하셨죠?"

그는 귀에 거슬리도록 큰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기분 상했소, 매키 양."

"기분 상해야 하나요?"

"반드시 그래야만 하오. 알고 보니 소피아는 아가씨에게 홀딱 넘어갔더구만. 누님은 아가씨를 신이 내려 주신선물이라고 여기고 있소." 그의 입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어리석음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다른 것도 알고 있지."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가요, 알렉사키스 씨."

"모두 다.당신과 스테파노스에 대해서."

"스테파노스와 나요?"

그녀는 더 이상 그의 생각을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 명백했다. 냉정을 잃지 마라, 그녀는 유모 후보들에게 언제나 이 말을 했다. 인내심을 갖고 이성을 잃지 마라.

케이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은 스테파노스와 내가? 당신의 소중한 매형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야겠군요. 스테파노스는 여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바람둥이예요. 그 사람이 하는 짓을 보면 당신이 가정부를 오래두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요. 그 집에 갔던 우리 직원들은 모두 같은 불평을 늘어놓고 있어요."

이번에는 다몬 알렉사키스가 놀란 표정을 지을 차례였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매키 양. 지금 부인하고 있는 거요? 당신과 스테파노스가?"

"말도 안 돼요!"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무례하게 코웃음을 쳤다. "아가씨는 지난주 수요일 플라자호텔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소?"

맙소사. 뺨이 붉게 물들었다는 걸 자신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아이보리씩 피부가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를 뵈러 갔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아버지가 스테파노스와 그렇게 많이 닮았나요?"

"아뇨, 물론 아니에요. 나는 아버지와 점심식사를 같이 했어요. 그 날은 비번이었거든요. 아버지는 회사 동료와 같이 계셨구요. 그런데?" 그녀는 설명하고 싶지도, 자신이 저지른 멍청한 짓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헤어지는 순간 우연히 스테파노스와 맞닥뜨리게 됐어요."

"그 사람도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갔다 이거군. 참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아니오?" 다몬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몰라요."

"그를 만나서 대단히 기뻤겠소."

"사실 그랬어요." 그녀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너무 기뻐서 그 사람과 팔짱을 끼고 입을 맞췄소? 너무 기뻐서 그 사람과 객실로 들어갔다는 거요?"

"나는 그의 방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난 그 사람이 객실에서 묵고 있는 것도 몰랐어요!"

"물론 그러셨겠지." 다몬의 말투에는 그의 전매특허인 불신감이 배어 있었다.

"만일 내가 당신의 매형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바보예요."

"바보는 바로 당신이오, 매키 양." 다몬이 단호하게 못 박았다. "스테파노스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아요. 당신이 그걸 꿈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스테파노스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또한 그를 좋아하지도 않구요. 그 사람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어요!"

"항의치고는 좀 심하지 않소?" 그는 부드러움을 가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케이트는 그렇고 그런 관계를 절대 원하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용감하게 다몬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격하고도 의구심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가 진실이 아니면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선택의 여지는 있을까? 없다. 다몬처럼 힘있는 사람이, 내가 자기 누이의 결혼 생활을 망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 말에 지금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그녀의 사업이 기도할 사이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할 뿐이다.

아버지는 줄곧 그녀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의 사업 활동을 훼방하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녀가 실패할 거라는 아버지의 믿음은 오히려 그녀의 사기를 높여줄 뿐이었다. 그녀는 키드 케어 사를 창립해서 3년 동안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이제야 보모가 필요한 집에 유능하고 예의 바르고 책임감 있는 직원들을 공급한다는 세상의 평가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실패 예언을 무색하게 성공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와 제프리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녀가 제프리와 결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누구와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이스와 결혼한 적이 있는 그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명을 드리겠어요."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요?" 깔보는 듯한 그의 눈썹이 다시 한 번 치켜 올라갔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재미있는 얘기라면 일부러 시간을 내야지." 그가 빈정거렸다. 그는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면서 그녀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혹시 유진 드모네이라는 분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그녀는 그의 눈에서 다소 놀라는 듯한 빛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만난 적이 있소." 그가 순순히 시인했다.

"한 번에 하나씩만 얘기하죠." 케이트가 중얼거렸다.

"그 분이 바로 제 아버지셔요."

그는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몸을 앞으로 구부려 반지를 끼지 않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매키는 가명이오?"

"저는 4년 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었어요."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미안하오."

"이젠 슬프지 않아요. 일에 몰두하면서 슬픔을 이길 수 있었죠." 케이트는 이를 악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몬에게 브라이스와의 파멸적인 결혼 생활을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브라이스가 죽자 내겐 몰두할 일이 필요했어요. 저는 대학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에서는 심리학 학위를 받았고요. 나는 키드 케어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어요. 요즘엔 부모가 둘 다 일을 하는 가정이 많은데다 그런 부모에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어요."

"당신 같은 사람 말이오?" 그가 냉소의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며 말했다.

"정확하게 나 같은 사람요." 케이트가 말했다. "트레이시 에버슨, 스테이시 제롬, 또 세 명의 아가씨가 더 있었죠. 모두 당신 조카들을 돌봐 주도록 내가 보낸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신뢰라는 것은 상대적이기 마련이죠. 당신네 매형이 매번 신뢰를 저버렸어요."

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스테파노스가 그 아가씨들을 전부 귀찮게 했다는 말이오?"

계속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양미간 사이로 주름이 패였다. 마침내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얘기를 계속해요."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곧 얼굴이 붉어졌다. "계속하라뇨? 뭘요? 그 사람이 한 짓을 말하라는 거예요?"

다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원한다면. 아니면 당신이 그 사람 꽁무니를 쫓아다닌 이유를 말해도 좋고."

"난 그 사람 꽁무니를 쫓아다닌 척 없어요." 케이트가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그럼 당신이 호텔에서 뭘 했는지 얘기해 봐요."

케이트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버지와 제프리 하데스티라는 아버지 동료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그리고 조금의 언쟁이 있었어요. 의견 차이랄까그래서 난 나가려고 했죠. 그때 밖을 보니까 스테파노스가 있었어요. 그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난 그에게 다가가서." 잠시 말을 멈추고 용기를 끌어 모은 그녀는 다시 거침없이 말했다. "그를 만난 것에 대해 생각과는 달리 행동은 좀 흥분한 것 같아요."

"팔짱을 끼고, 입을 맞추고, 뭐 그런 것 말이오?"

"내가 그 사람에게 키스한 게 아니라 그가 나에게 한 거예요." 그녀는 우물쭈물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믿어 준다면 당신은 아마 나한테 아크로폴리스를 팔려고 할 테죠?"

", 그만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판단을 내렸을 텐데요. 당신은 틀림없이 소피아에게 나를 해고하라고 시키겠군요. 좋아요. 제가 수고를 덜어들이죠. 내가 관두겠어요." 그녀는 획 돌아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매키 양!" 그의 목소리가 채찍 소리처럼 허공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아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그녀는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옆으로 밀려났고, 다몬이 그녀와 문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나는 앉으라고 말했소." 신중하고 위협적인 말투였다.

케이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 회사 직원이 아닙니다, 알렉사키스 씨. 내가 당신에게 복종할 의무는 없어요."

그가 너무 가까이 서 있었기 때문에 그의 숨소리와 입가의 팽팽한 근육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입술이 더욱 굳게 다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부탁이오, 매키 양. 자리에 앉아요."

이제 그의 말에는 빈정기가 없었다.

"나는 여기 앉아서 당신이 퍼붓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여기 앉아서 당신이 스테파노스를 욕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당신이 먼저 그 사람을 비난했어요."

그녀가 핵심을 찌르자 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그건 그렇소."

"그런데 내 비난이 모조리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시나요?"

그는 검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모르겠소. 그렇진 않겠죠."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보모 중에는 열여섯 살도 안 된 소녀도 있었소!"

"그 아가씨들은 적어도 열여덟 살은 더 먹었어요. 모두 다요. 나는 성인만 파견해요. 당신의 매형을 변호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녀는 재빨리 덧붙였다.

"그 사람이 바람둥이라는 결 알면서 왜 자꾸 보모들을 보내는 거요?"

"보모들은 그 사람 때문에 보내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누님에게는 쌍둥이 계집애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요. ?" 그녀는 약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명문 집안에 보모를 파견하면 우리 에이전시로서는 큰 성공이에요."

"너무 치사한 일 아니오?"

케이트는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나선 거요?"

"그 동안 그 집에 파견한 아가씨들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려서 그 사람이 혹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당신은 좀 늙었다는 말이로군." "난 스물 여덟 살이에요."

"진짜 늙었군." 그가 빈정댔다.

"당신의 매형을 요리할 만큼은 나이를 먹었죠."

"절대 그렇지 않소. 앨리스 말에 따르면 그가 당신에게서 손을 뗄 것 같지가 않아요."

앨리스는 요리사였다. 케이트는 다몬이 자기가 관리하는 조직에 얼마나 많은 스파이를 심어 놓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손뗄 거예요. 내가 확실한 조치를 취하겠어요. 어쨌든 그 집에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나는 이미 이 일에 완벽한 보모를 구했어요. 패트리지 여사인데 지금 거의 예순이 다 됐죠."

다몬은 이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바싹 세웠다. "당신과 아버지의 견해 차이에 대해 더 얘기해 봐요."

그가 이 말을 잊었기를 내심 바라던 케이트는 속으로 신음 소리를 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거짓말."

케이트는 발끈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당신은 진짜 스테파노스와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든지, 아니면 그를 아버지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미끼로 이용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오?"

"아버지는 그때 나와 제프리의 결혼을 제의했어요." 그녀는 순순히 시인했다.

"제프리는 뭐라고 합디까?"

"아무 말도요. 하지만 생각은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평소 아버지의 계략에 당할 때처럼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당신은 생각이 없어요?"

"없어요!"

"제프리를 사랑하지 않소?"

"절대로 아니에요. 게다가 나는 재혼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재미있군." 다몬은 잠시 동안 그녀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의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문에서 비켜나면 다시 도망칠 거요?"

"심문은 이제 끝났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그렇소."

그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앉아요, 케이트 매키양. 의논할 말이 있소."

그는 의자에 앉지 않고 모서리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그녀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당신이 아버지와 나눴던 얘기와 비슷한 일이오. 호텔에서 당신이 우연히 스테파노스와 만났을 때?, 미안해요, 그에게 다가갔을 때 말이오."

"맙소사, 당신은 엉뚱한 추측을 하고 있군요." 그녀는 흥분하여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요, 그냥 추측해 보는 것뿐이오. 당신에게는 스테파노스라는 남자가 이미 있기 때문에 제프리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그런 얘기요?" 그의 목소리에는 그녀가 질릴 정도로 조롱기가 배어 있었다.

"비슷해요." 케이트는 제 입에서 나온 말에 스스로 굴욕감을 느꼈다. 이것은 얼떨결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제의에 무서움을 느껴 절망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언뜻 스테파노스를 본 것이다. 나머지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멍청한 짓이었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녀가 퉁명스럽게 시인했다.

그녀는 그가 이 말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고작 이런 질문만을 했다. "스테파노스의 이름을 아버지께 얘기했소?"

"물론 안 했어요!내가 그렇게 멍청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 말만했어요.저기 그 사람이 있어요그리고 일어나서 그 사람에게 달려갔어요.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을 소개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거짓말한 것을 아버지가 아시면 어떻게 될 것 같소?"

그녀는 불안한 듯 의자에서 몸을 뒤척였다. "닥치면 그때 해결하겠어요."

"어떻게?"

"나도 아직 몰라요." 그녀는 멀리 시선을 두면서 뾰로통하게 말했다.

"혹시 내가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야 되는데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사업가요, 매키 양. 내가 당신을 도우면 그건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돼요. 나는 이런 게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이트는 두 사람이 합심해서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 관한 한 거물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당신과 결혼하고 싶소."

 

2

"무척 재미있군요."

다몬 알렉사키스는 강할 뿐만 아니라, 유머 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왜 웃소?"

그녀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냉정한 눈초리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의 검은 눈에는 웃음의 그림자도 없었다.

"진심이 아니겠죠!"

"나는 사업에 관해서는 농담을 안 합니다, 케이트 양."

"결혼은 사업이 아녜요!"

"물론 결혼이 사업이 아닌 경우도 있소."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결혼은 호르몬과 임신, 또 사랑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짓이 어우러져 있는 사건이기도 하지. 하지만 몇 천년 동안 결혼은 경제적 이유에 따르는 결실의 산물이었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예요?"

"그렇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마치 거울 속을 걷고, 또 토끼굴 속으로 굴러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대화에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확연했다.

"말도 안 돼요. 도대체 왜 나와 결혼하려는 거예요?"

"나는 당신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소. 단지 필요하기 때문이오."

그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권태로운 과거의 유물이 가득 찬 방안을 서성였다.

"그냥 필요하오. 그게 다요."

케이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렇게 갑자기 당황해 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그건 옳지 않아요, 알렉사키스 씨."

그는 몸을 홱 돌려 그녀를 쏘아보았다. "무순 뜻이오?"

"아까는 내가 지저분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이번에는 당신 얘기를 들어 보죠."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 얘기는 지저분한 얘기가 아니오."

"하지만 사연은 있겠죠?"

"이건 사업이오."

"나도 사업 참여를 제의 받은 이상 이 얘기가 얼마나 지저분하지 않은지 상세하게 알 권리가 있죠."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케이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 때문이오." 그는 잠시 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케이트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 알겠어요. 당신 어머니도 우리 아버지와 똑같은 분이군요."

"우리 어머니는 당신 아버지와 공통점이 없소!" "그럴지도 모르죠. 우리 아버지는 바라쿠다(창꼬치류 어류)예요. 당신 어머니는 뭐와 닮았죠?"

다몬은 뒷덜미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갑자기 그의 입이 약간 일그러졌다. "계속 바닷고기시리즈로 나가 볼까요? 삿갓조개."

"한 번 달라붙으면 놔주지 않는가 보죠?"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는 나에게만 정열을 쏟고 있소. 전구를 깔아 끼우는 것부터 주식을 사고 파는 일까지 모든 걸 나와 상의하오."

"저런, 난 그게 얼마나 고통인지 잘 알죠." 케이트는 맞장구쳤다. "하지만 결혼한다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나요?"

"그건 다른 문제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려고 단단히 작정하고 있소."

"결혼 말이죠." 케이트가 정정했다.

"맞소."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에게는 시집보낼 딸이 다섯이나 남아 있는데 그것 가지고는 충분치 않은 모양이오. 나에게 완벽한 신부를 찾아 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소. 아예알렉사키스의 신부라는 성스러운 말까지 만들었을 정도요. 성배라는 말 알죠? 그런 식이오."

케이트는 그의 말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몬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장난기 섞인 미소로 답례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제의가 웃을 일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쎄요, 나와 결혼한다고 해서 당신의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네요. 결혼은 결혼일 뿐이죠. 당신의 생각이 어떤지는 몰라도?"

"아니오. 당신과의 결혼은 사업상 거래요. 하지만 마리나와 결혼하면?"

"잠깐만요. 마리나가 누구죠? 듣고 보니, 이건 가상의 결혼이 아니네요."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젠 가상의 일이 아니지."

"당신 어머니가 골랐어요? 알렉사키스의 신부로요.."

"틀림없어요."

"그럼 그 행운의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죠?"

그는 그녀의 빈정거림에 불쾌해졌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나 스타브로스요. 어머니와 제일 친한 친구의 딸이지."

"나한테 제프리 같은 사람이군요."

"당신이 좋다면?" 그는 비뚤어진 호의로 말했다.

"당신이 아니에요. 내가 골라요."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마리나를 좋아하냐고? 물론 마리나를 좋아하오. 젊고 귀엽고 예쁜데다 남자가 아내에게 바라는 건 다 가지고 있거든."

"그럼 그냥 결혼하지 그래요?"

"난 아내를 원하지 않는단 말이오! 그리고 아내를 원한다면 난 내 손으로 직접 고를 거요."

"하지만 당신이 나와 결혼하면?"

"당신은 사업상 파트너가 되는 거지.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은 올케 자격으로 계속 소피아를 도울 수 있소." 그는 천금의 무게가 담긴 말을 이었다. "스테파노스가 당신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맹세하리다. 또 이 거래가 끝나면 당신에게 풍부하게 일거리를 주겠다고도 약속하고."

"이 거래는 언젠가는 끝나겠죠?"

"물론이오." 그가 성급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영원히 부부로 있기를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겠죠?"

"그럼요, 물론이죠." 케이트는 급히 말했다. "나도 당신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어요."

"당신 사업을 살리기 위해서도 싫소?"

케이트는 부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녀는 그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마지막 거래가 아직 남았다는 듯이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얻고 이젠 제프리와 결혼하지 않아도 되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과 결혼해야 되잖아요." 케이트는 그를 일깨워 주었다.

"이름뿐이오."

그녀의 눈이 둥그래졌다. "당신은? 그러니까 당신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나요?"

"물론 나도 여자를 좋아하오!"

", 알겠어요. 당신은? 다른 곳에서? 그걸 해결한다는 말이군요."

"그거?" 그가 비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죠?"

"그렇소, 매키 양. 무슨 뜻인지 알지." 그는 한숨을 쉬더니 선 채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런데 아니오. 난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한 다른 곳에서그걸해결하지는 않을 거요. 약속하겠소. 나는 간통 같은 짓을 용납하지 않소." 그의 표정은 솔직했다.

"내가 들은 얘기 중 가장 황당한 얘기네요. 이보다 더 미친 얘기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제프리와 결혼하는 것 말이오?"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나는 제프리와 결혼하지 않아요! 나는 나를 돌봐 줄 남자가 필요하지 않아요. 나는 내 사업이 있어요."

"당분간은 그렇겠지." 그도 순순히 동의했다.

케이트는 눈을 번쩍 뜨고 그를 쏘아보았다. "나쁜 사람."

"얼마든지 욕하시오. 나는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거요. 매키 양! 사업을 살리고 싶은 거요, 아니오?"

"물론 살리고 싶어요."

"소피아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합니까?"

"그래요."

"당신이 약혼자를 즉각 대령하면 당신 아버지가 제프리에 대한 계획을 포기할 것 같습니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제요?"

케이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은 모두 아주 그럴 듯했다. 끔찍하게 비뚤어진 방법이긴 했지만.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다몬은 코웃음을 쳤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소. 아까도 말했지만 결혼 생활은 사랑이 없어도 가능하오. 결혼은?"

"사업이죠." 케이트가 나머지 말을 대신 해 주었다. ", 이제야 알아듣는군. 사랑은 잊어버려요. 사랑은 한 번 했잖소. 당신 마음 속의 그 사람 자리를 침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소. 이런 속담 알죠.당신이 내 등을 긁어 주면 나도 그렇게 하리라우리는 이 말을 행동에 옮기기만 하면 돼요."

"기간은요?" 케이트가 물었다.

"오래 가진 않을 거요. 몇 달 정도?"

"우리가 일단 이혼하면 그 사람들은??"

"내가 이혼하면 마리나의 가족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

"알겠어요."

"제프리는 어떻소?"

"나를 받아들이는 것 말이에요? 내가 숨을 쉬고 있는 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제프리의 관심은 오로지 드모네이 사를 거저 건질 수 있는 영원한 고리를 걸어 두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언제까지로 하는 게 좋겠소?" 다몬은 조급했다

"6개월? 일 년? 모르겠어요." 케이트는 오락가락했다. "내가 아버지가 반대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아버지는 아마 나를 어쩔 수 없는 애라고 생각하고 포기할지도 몰라요."

다몬은 그녀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버지는 당신의 첫 번째 결혼도 반대했소?"

"." 그녀는 도전적으로 그의 눈을 쏘아보았다.

"이유는 또 있소. 소피아는 필요한 사람을 얻고, 스테파노스의 손은 꼼짝 못하게 될 거요. 또 당신과 나는 존경하는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될 거요." 다몬은 자신감 넘치는 사업가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매키 양, 당신이 여기 앉아서 밤새도록 고민해도 더 이상 확실한 답을 얻을 수는 없소. 문제는 누가 당신의 인생을 살 거냐 하는 거요. 당신이오, 당신 아버지요? 매키 양, 1년 간의 결혼을 제의하겠소. 할거요, 말 거요?"

숱한 영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하였다. 소피아의 피곤한 얼굴, 다섯 살배기 쌍둥이인 레다와 크리스티나의 귀여운 미소, 제프리 하데스티의 찰난 체하는 얼굴, 아버지의 눈에 비친 결심의 기운, 우아한 은빛의 고딕체로 새긴키드 케어 사라는 상호.

그녀의 아기와 소피아의 아이들. 이 이미지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소피아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또 케이트는 소피아를 돕는 게 즐거웠다. 아마도 남의 인생을 자기 인생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제 아이를 절대로 낳지 않을 것이다. 키드 케어 사가 그녀의 소중한 아이니까.

그녀의 사업은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그녀는 딸로서도, 아내로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몬의 어머니보다 더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몬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아버지는 독선적이고 순진한 제프리보다 훨씬 강한 분이다.

"얘기가 웃깁니까?" 다몬의 목소리가 그녀의 몽상을 깨뜨렸다.

", 웃겨요."

그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우뚝 서서 그녀를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 거절하는 걸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케이트는 아버지, 제프리, 소피아와 스테파노스, 그리고 아이들, 진짜 아이와 사업에 대해서 생각했다.

"알렉사키스 씨, 청혼을 받아들이겠어요."

그는 자기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 본 여자에게 청혼을 했단 말인가? 한 시간 전만 해도 이 땅에서 제거해 버리려 했던 여자에게?

이런 당치도 않은 일을 저지른 걸 보니, 이것도 그가 정신 착란 상태에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아내란 무엇인가. 어차피 장애물일 뿐인데 건방지지만 부드럽고, 화가 나면 크고 푸른 눈을 깜빡이는 여자를 가지면 좋지 않은가? 게다가 케이트 매키는 적어도 쌍둥이를 돌봐주는 데 그런 대로 쓸모가 있으니?.

그는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멋진 해결책이었다. 이제 어머니의 총은 무력화되었고, 소피아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며, 스테파노스는 격분할 테고, 공교롭게도 단호한 매키 양의 결심에도 도움을 주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녀가 1 년 후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다몬!" 다몬이 거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소피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서려고 몸을 움직였으나 그는 손짓으로 말리고 방을 가로질러 가 그녀의 뺨에 업을 맞추었다. 그는 방안을 둘러보며 케이트와 아이들의 흔적을 찾았으나 소피아 혼자밖에 없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몬은 내키진 않았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못 보던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어떠세요?"

"피곤해. 아기가 밤낮으로 뱃속에서 걷어 차. 쌍둥이가 얘보다 낫지. 케이트가 없었다면 분명히 더 나했을 거야." 소피아의 다정한 눈길은 아이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향했다. 케이트는 아마 그 방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어제 만나보니까 어떻든? 귀여운 아가씨지?"

"귀여운 아가씨예요." 그는 케이트에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매력을 느끼고 폴딱 빠져 있다는 인상을 그녀에게 주어야만 했다. "매력도 굉장하던데요."

소피아의 눈이 커졌다. "케이트가? 매력적이라고?"

그녀는 다몬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녀는 키도 크지 않고, 이렇다 할 정도로 광대뼈가 나오지도 않았지.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따뜻함이 느껴져." 그녀는 남동생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던졌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네가 좋아할 타입은 아니지."

다몬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내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지금까지는 그랬어. 너는 향상 코러스걸 타입을 좋아했잖니. 반반하고 사랑하다 차 버리면 그만인 아가씨들을." 소피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고, 왜 왔니,

다몬? 케이트의 매력에 이끌려 온 건 분명 아닐 테고?"

"동생이 누나 집을 방문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남동생들도 있지. 하지만 넌 아냐."

"조카들을 데리고 센트랄 파크에 가서 마차를 태워 주려고 왔어요. 누님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지난번에 약속했거든요."

"크리스마스 때 그랬지."

"그 동안 좀 바빴어요."

"아냐, 넌 케이트를 만나려고 왔어, 그렇지?" 그녀는 그의 기색을 찬찬히 살폈다.

"케이트도 같이 가면 더욱 좋겠죠."

"내 보모하고 실없이 노닥거리면 못 쓴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거든."

스테파노스에게나 그런 말을 하시지.

다몬은 씁쓸하게 생각했다. "아이들은 저녁 먹을 때까지는 돌아올 거예요."

"케이트는?"

그는 씩 웃었다. "어쩔 수 없을 때만 돌려보내죠."

"오늘 저녁은 비번이 아닌데요." 케이트가 걸어오며 말했다.

"소피아도 괜찮다고 했소."

"내가 싫단 말이에요!"

다몬은 두 조카에게 가벼운 웃옷을 던져 주었다. "아니, 당신은 좋아하고 있소. 말싸움은 그만 합시다. 아이들을 떨구어 버리고 나서 저녁이나 먹자는 데 당신이 거절하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나를 눈곱만큼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겠소?"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케이트도 지지 않았다. 그녀는 터무니없는 그의 제안에 얼떨결에 동의한 이후,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이 변했음을 알려야겠다고 종일 마음 먹고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녀가 숨 돌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런 차에 그가 온 것이다. 그는 케이트의 방에 불쑥 들이닥치더니 마치 주인인 양 케이트에게 호령하고, 쌍둥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더니 제멋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복도를 가로막고 섰다.

"비켜요." 다몬이 말했다. 그는 케이트를 문가에서 살짝 밀었다. ", 너희들, 빨리 해."

"알았어, 삼촌. 지금 가고 있어." 허겁지겁 웃옷을 꿰어 입고 그를 쫓아 나가면서 아이들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케이트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지만 다몬이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은 생각할 필요 없소. , 우리 착한 아가씨, 그냥 소피아에게 미소를 짓고 나중에 보겠다고 만 하면 돼요." 그는 한 손을 그녀의 둥에 대고 손가락으로 진짜 꼬집으면서 그녀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피아는 의아한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퍼져 있었다. "약속을 지키다니, 고맙기도 하구나, 다몬."

"고맙긴요."

"정말 제가 집에서 도와 주지 않아도 되나요, 소피아."

케이트는 약간 애처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아까 다몬에게도 얘기했지만, 오늘은 뱃속의 요놈이 유난히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얌전해졌어요. 스테파노스가 올 때까지 낮잠이나 좀 자야겠어요." 그녀는

케이트에게 손가락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다몬은 일행을 떼밀다시피 방에서 데리고 나간 다음, 문을 닫았다.

"정신나간 짓이에요." 케이트는 아이들이 깡충깡충 앞장서 뛰어나가 승강기 단추를 누를 때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짓이오." 다몬이 정정했다.

마차 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오후였다. 이 달 초부터 이 도시를 휩쓸던 싸늘한 4월의 바람은 꼬리를 감추고 부드럽고 서늘한 산들바람이 불었다. 센트랄 파크의 나무에 새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차에 올라탄 다몬과 같이 아이들 맞은편 좌석에 앉는 순간, 걱정이 되살아났다. 그의 단단한 몸이 자신의 살에 닿는 감촉 때문에 그녀의 고동이 빨라졌다. 그녀는 살짝 어느 틈엔가 조금 떨어졌다.

다몬은 슬며시 그녀를 팔로 감싸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편안하죠?"

케이트는 매섭게 그를 쏘아보았다. "너무너무 편안하네요."

그는 씩 웃었다. "왜 그래요, 매키 양? 남자를 좋아하지 않나요?"

"나중에는 모르죠, 알렉사키스 씨. 나도 모르겠어요." 케이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레다가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길 봐, 케이트! 끈 떨어진 풍선이야!"

끈이 풀어진 열 개 남짓한 헬륨 풍선이 나무 꼭대기를 지나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환한 풍선의 색깔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다몬 삼촌, 동물원에 가 본 적 있어? 우리는 다음 주에 갈 거야. 삼촌도 같이 갈래?"

"삼촌은 바쁘시단다. " 케이트가 선수 쳐서 말했다.

다몬은 생각이 달랐다. "참 좋은 생각이구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 안 돼요." 케이트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꾸짖는 투로 말했다.

"내가 약속을 못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뭐요?"

"당신은 바쁜 사람이니까요."

", 그래요? 하지만 나는 열렬한 구혼자도 되고 싶은걸."

"그 얘기를 좀 해야겠어요." 케이트가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바싹 다가가 살짝 입을 맞추면서 연인 같은 말투로 말했다. "나중에 합시다. "

"다몬!" 화가 난 케이트가 소리쳤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는 지금 상황에서 말싸움을 해봤자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케이트는 두 사람만 있게 되면 즉시 자신의 생각을 다몬에게 알려야겠다고 맹세했다.

그녀는 그의 제안이 얼떨결에 나온 것인지, 고의적인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케이트는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선언하려는 순간, 바로 건너편 좌석에서 아버지와 제프리가 일본 사업가들과 함께 얘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아버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케이트라는 것을 안 순간, 그녀의 아버지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를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곧 모임의 목적을 깨닫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 날 저녁 유진 드모네이는 줄곧 그녀가 있는 쪽으로 가느다란 시선을 보냈고, 그녀는 다몬에게 열심히 미소 지으며 생기 있는 대화를 계속했다. 결국 그녀는 벼르던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그녀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식사시간 내내 그녀에게 말을 건네려는 동작도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케이트는 놀라지 않았다. 유진 드모네이는 언제나 사업이 먼저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3m 남짓 거리에 다가갔을 때 유진 드모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캐서린."

케이트는 순간 다몬의 손이 자기 팔을 꼭 죄는 기분을 느꼈고, 거기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가로막고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랐다! 네가 여기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단다. 미리 말했어야지." 그는 몸을 앞으로 구부렸고, 그녀는 그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갑자기 오게 됐어요." 케이트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쪽 분은?" 유진은 낯선 남자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소, 내 딸 캐서린?" 그는 무슨 말을 기다리는 듯한 시선으로 케이트와 다몬을 번갈아 보았다.

"다몬 알렉사키스고 케이트의 약혼자입니다. " 다몬은 케이트가 말할 사이도 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제프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케이트의 아버지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다시 가늘어지며 턱 근육이 실룩실룩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다몬에게서 케이트에게로 옮겨지더니 매섭게, 비난하듯이 쏘아보았다.

만일 아버지의 눈빛에서 조금의 감탄, 아버지다운 관심만 보였더라도 케이트는 다몬의 말을 부인했을 것이다. 이것은 착각이며, 두 사람 사이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고, 다몬 혼자 날뛰는 거라고 그녀는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 드모네이는 아버지다운 자애로운 표정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케이트는 아버지에게서 손을 빼내 다몬의 손을 잡았다. "아빠는 원래 바쁘시잖아요. 다몬을 인사시킬 기회가 없었어요?"

"내가 그 동안 너를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보낸 게 실수였구나." 그의 시선이 다시 다몬에게 향했다. "알렉사키스, 같이 합석하지 않겠소?"

"고맙습니다. " 케이트가 거부의 몸짓을 했으나 다몬은 그걸 묵살했다. 그는 옆 테이블의 빈 의자 두 개를 끌어다가 케이트와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양복 상의가 그녀의 팔에 스쳤다. 그런데도 그는 떨어지기는커녕 더 바싹 붙어서 자기 팔을 그녀의 어깨에 슬며시 얹었다.

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리씨와 나는 브랜디를 마시려던 참이었소. 하지만 샴페인을 주문해야겠는걸. 두 사람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말야!"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다몬은 부드럽게 맞장구를 치고는 고개를 돌려 케이트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영락없이 사랑에 폭 빠진 연인의 모습이었다.

유진은 어금니를 물었다가 곧 딱딱한 목소리로 웨이터를 불렀다. 두 일본 신시는 자기네들 말로 뭐라고 속삭였다. 제프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다몬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몰랐다. 틀림없이 다몬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큰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와의 거래 문제가 얽혀 있는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즐거웠다.

샴페인이 도착했고 각자 잔을 채웠다. 유진이 잔을 들었다. "기습의 여왕, 내 딸 캐서린을 위해서." 그는 딸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정열의 여왕이기도 하죠." 다몬이 제프리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말했다.

순간, 샴페인을 먹던 케이트는 목이 막혀 울컥 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고 곧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프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케이트의 등을 두드려 주고 물을 건네 주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다몬이었다. 케이트는 다시 숨을 고르게 하고 뭔가 할말이 있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몸을 기울여 그녀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이제 좀 괜찮소?"

느닷없는 입맞춤과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란 케이트는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힘을 내 목청을 가다듬었다.

"조금요." 그녀는 도저히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다몬 같은 연기자가 못 되었다. "이제 가야할 것 같아요."

"나도." 다몬은 일어서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 다음엔 제프리를 향해 사과의 미소를 지었다. "이 아가씨는 저와 단둘이 있고 싶어서 이렇게 안달한답니다. "

제프리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부끄러워진 케이트가 다몬의 발을 밟았다. 그만해, 고약한 사람 같으니.

"아빠, 먼저 갈게요. 즐거웠어요, 제프리." 그녀는 대충 인사하고 재빨리 이 자리를 빠져 나오려고 했으나, 다몬은 그녀의 팔을 꼭 쥐고는 손님들부터 케이트의 아버지까지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드모네이 씨, 이렇게 뵙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

유진은 즐거운 것 같지 않았지만 가까스로 씁쓸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 내일 다시 얘기하자."

 

"그 사람과 사귄 지가 얼마나 됐니?"

"오래 되지 않았어요."

"어디서 만났니?"

"그 사람 누나네 집에서 제가 일을 해요."

"애 보는 일 말이냐?"

", 다섯 살배기 쌍둥이를 돌봐 주고 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난 네가 무슨 에이전시를 하고 있는 줄 알았지. 제발 일이 너무 안 풀려서 네가 직접 애보는 일에 나섰다고 말하지 말아라!"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케이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사람의 누나 소피아가 몸이 불편해요."

", 그러면 다몬 알렉사키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네 앞에 곤두박질쳤단 말이냐?"

"비슷해요." 비록 어제 저녁 아버지와 헤어진 다음에 그녀는 조금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오늘 막상 아버지의 거친 말을 대하고 보니 죄책감이 싹 가셨다.

"말도 안 돼.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케이트?"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죠?"

"이런, 케이트야, 제발 철 좀 들어라. 그는 네 재산을 노리고 있어." 그는 케이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렇게 부연했다. "드모네이 가의 재산 말이다. "

"아빠, 그 사람은 아버지보다 두 배나 더 큰 기업 왕국을 갖고 있어요. 드모네이 회사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 기뻤다.

"물론 그건 그렇지만?" 유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큰 회사를 갖고 있다고 해서 다른 회사에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얘야, 다몬 알렉사키스 같은 사람은 필요한 것만 취하진 않아. 그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다 가져가지."

케이트는 분노가 핏줄을 타고 치솟는 기분을 느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 내 자신을 원할 가능성을 믿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거죠?"

그녀의 아버지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브라이스처럼 말이냐?"

그 말은 비수처럼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브라이스. 그래, 브라이스. 그녀의 첫사랑. 그녀와 같이 도망갔고,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던 남자.

장인이 딸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을 알자마자 그녀를 버린 남자.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는 늘 그를 미섬쩍어했지만, 사건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바람에 아버지는 진실을 모른다. 그때 브라이스의 분노는 술기운으로 더욱 커졌고, 그 때문에 과속 운전을 했다. 케이트는 버림받은 아내 신세에서 몇 시간도 안 돼 과부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껏 진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자기가 지어낼 수 있는 가장 무심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다몬과 브라이스는 달라요."

"알렉사키스가 훨씬 똑똑하지. 나도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도 드모네이 사에는 손을 댈 수 없을 게다. 캐서린, 내 후계자는 내가 선택한다. 네가 아냐."

"저도 아버지의 사업 후계자를 신랑감으로 고를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어요. 저는 남편을 고르고 싶을 뿐이에요. 그리고 벌써 골랐어요."

"점점 더 바보 같은 소리만 하는구나." 유진은 퉁명스럽게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3

"당신이 너무 다정하게 굴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다음날 오후 케이트가 다몬에게 물었다. "나를 납치하다시피 해서 끌고 다니는 게 벌써 이틀째예요. 소피아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정확히 내가 바라는 대로 생각하겠지. 내가 당신에게 빠졌다고 말이오."

케이트는 코웃음을 쳤다. "소피아가 그렇게 어수룩하지는 않아요."

"소피아는 로맨티스트요. 그 때문에 그녀가 스테파노스에게 걸려든 거요."

고개를 저었다. 연애 문제에 관한 한 그녀는 회의주의자이다. 브라이스 같은 자에게 당하면 누구든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몬 알렉사키스는 그녀보다 훨씬 더 심한 회의주의자다.

"어디로 가는 길이죠?"

"리노."

"새로 생긴 식당인가요?"

"도시 이름이오. 네바다 주에 있지."

케이트는 고개를 획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네바다 주의 리노라고요? 농담이겠죠?"

"아니."

"설마 오늘? 결혼하자는 건 아니겠죠?" 케이트는 그것 외에 리노에 갈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다는 자기 생각이 틀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왜 아니겠소." 다몬은 약간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알다시피 나는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오."

"하지만? 난 몇 주일 후에 결혼하자는 건 줄 알았어요."

"소피아에게는 지금 당신이 필요해요. 나는 스테파노스가 어서 자기 주제를 잘 알도록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소."

"하지만?" 케이트는 말을 멈췄다. 그녀의 머리는 다몬이 갑작스럽게 결혼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헤아리기 위해 핑핑 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죠?"

그는 거북한 듯, 시선을 피했다. "아무 일도 없었소. 이미 다 합의한 일 아니오?"

"어제는 아무 말 안 했잖아요. 혹시 마리나가 오고 있는 중인가요?" 케이트는 알 만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일 주일 후에 온답디다. "

"그러면 내가 약혼반지를 끼면 되잖아요."

다몬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소. 잠깐 약혼하고 말거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어머니는 속임수라는 걸 눈치 채실 거요. 약혼반지 하나 가지고 기죽을 분이 아니오. 결혼반지라면 모르지. 그래서 결혼하려는 거요."

"정신 나간 짓이에요." 케이트가 투덜거렸다.

"이건 사업이오. 그걸 잊지 말아요." 다몬은 잘라 말했다.

 

케이트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몬은 그 날 가짜 뉴잉글랜드 풍 예배당 밖에 한가로이 서성이는 다른 예비 신랑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다른 커플들은 서로 손을 잡고 귀를 깨물고 슬그머니 입을 맞추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다몬은 변호사가 보내 준 사전 결혼동의서를 읽으면서 이따금 휴대폰을 이용하여 세부 조항의 문구를 세밀히 체크하고 있었다.

다몬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서류는 제대로 된 것 같소. 걱정 말아요."

케이트는 한숨을 쉬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알렉사키스 씨? 케이트 양?" 중년 여성이 예배당 문을 열고 나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예비부부들을 둘러보았다.

"하룻밤 거기서 죽쳐도 상관없어. 화물은 유리지 달걀이 아니니까." 다몬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는 눈곱만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알렉사키스?" 그 여자는 명단을 훑어보면서 더 큰 목소리로 불렀다. "매키? 아직 있어요?"

"." 케이트는 기운 없이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몬을 쳐다보았다. 그 여자의 눈길이 케이트의 눈을 쫓아 다몬에게 향했다. 그 여자는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몬은 전화기를 코트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케이트의 팔을 잡았다. ", 어서 끝냅시다. "

케이트는 만일 가장 가망 없는 결혼을 한 여자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자기가 두 번 다 거뜬히 수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에서 다몬은 움직이지도, 눈도 깜박이지 않는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마치 껍데기만 여기 있고 진짜 다른 알렉사키스는 다른 데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마음은 요즘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다면 목사가 그녀를 아내로 맞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그토록 오래 침묵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그는 결혼 동의서에다 알렉사키스의 재산에 대해 그녀의 접근을 제한하는 조항을 넣을걸,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해야 하는 맹세의 의미를 생각하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사람을 맞아 잘 살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랑과 존경을 약속하는 것의 의미를 이 마지막 순간에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목사는 목청을 가다듬어 긴 질문을 반복했다.

"." 다몬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절도의 기운이 넘쳐 있었다. 머뭇거림도 주저하는 기색도 없었다.

목사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캐서린, 그대는 다몬을?"

<아니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아직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지금 당장 이 어리석은 짓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었다.

선택할 권리?

다몬이 자기 손을 꽉 쥐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목사가 말을 멈췄고, 목사와 다몬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케이트는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

 

"당신이 신혼여행 같은 건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오." 다몬이 그녀의 잔에 축하의 샴페인을 부어 주면서 말했다.

케이트는 그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그럼요. 나는 결혼도 바라지 않았어요."

다몬은 잔을 들어 그녀의 잔과 부딪히며 건배했다. 케이트는 말없이 한 모금 마셨다. 어리석은 짓에 대해 축배를 들다니, 이건 차라리 촌극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녀가 다몬에게 물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새벽녘에 뉴욕에 도착할 거요. 나는 당신을 소피아의 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겠소. 그리고 이삿짐센터에 연락해서 오후에 당신 짐을 내 집으로 옮겨 놓고 나는 사무실 일이 끝나는 대로 당신을 데리러 가겠소."

케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만요. 이삿짐센터라뇨? 나는 이사 간다고 한 적 없어요. 나도 내 아파트가 있단 말이에요!"

"당신은 당신 집으로 다시 이사갈 수 있어요. 나중에, 이혼한 다음에 말이오. 케이트, 당신 몸은 그냥 소피아집에 있고, 짐은 자기 아파트에 놔두면 누가 이 결혼을 진짜라고 생각하겠소?"

"무엇보다 마리나와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왜 신경을 쓰죠?"

다몬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우리 어머니 때문이오. 어머니가 이 결혼을 진짜라고 믿어야 되오."

"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우세요?"

"나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소. 나는 어머니를 존경해요. 그래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거요."

"설마 어머니가 골라 준 사람말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상처를 줄지도 몰라요. 나도 모르겠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인생을 맡기는 것과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해야 하오."

"물론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 적이 없고요." 그는 그녀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했다. "당신을 괴롭히자고 당신에게 청혼한 것은 아니오."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정열적이어서 케이트는 놀랐다.

"알아요."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좀?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래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나는 당신처럼 음모에는 익숙지 않아서요."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가 이런 구차한 짓까지 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오. 당신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문제만 없었더라도?"

"스테파노스, 제프리, 또 마리나 문제도 있죠."

다몬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맞아요. , 우리 결혼은 오래 가지 않을 거요. 일 년이면 다 끝날 거요."

"이제 안심이 되는군요." 그녀는 이미 남편이 된 사람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좀 쉬어요."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계약서를 좀 읽어 봐야겠소."

그녀가 깜빡 졸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다몬이 다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서류를 갖고 와서 일을 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손댄 흔적도 없는 서류가 그의 무릎에 놓여 있고,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는 사치를 즐겼다. 부드러운 반달형 속눈썹 때문에 천진 난만한 분위기가 풍겼다. 재킷 단추는 풀어져 있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매어 있었다. 와이셔츠 칼라의 단추도 풀어져 강인한 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때 그가 눈을 깜박이더니 숨을 들이켰다.

케이트는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자기가 결혼한 이 남자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다. 결혼을 원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를 너무 많이 연상케 했다.

"뭐하오?" 다몬의 목소리는 잠을 잔 탓인지 쉬어 있었다.

케이트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천진 난만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잠자는 사이 살짝 훔쳐보았던 그의 또 다른 모습, 보다 어린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그의 머리를 치우지 않으면 안 되게 했다. "우리 가족이 뭐라고 할까 생각했어요. 소피아, 스테파노스, 또 당신 어머니, 누나들, 우리 아버지와 제프리."

다몬의 입이 일그러졌다"틀림없이 재미있어할 거요."

 

"결혼했다고? 다몬하고?" 소피아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깔깔 웃기 시작했다.

"결혼했다구? ? 케이트하고?" 스테파노스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그는 초조한 듯 입술을 핥더니 목의 칼라를 풀었다.

"결혼? 다몬이 결혼을 했어? 누구하고?" 한 누이는 이렇게 말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캐서린, 넌 지금 정상이 아냐. , 여기 침대에 누워." 유진 드모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자기 사무실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다몬 몰래 케이트에게 속삭였다.

"너희들이 이혼한 다음에도 제프리가 여기 있으면, 그때는 그가 너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겠구나."

케이트는 대꾸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

그녀와 다몬은 공항에서 나온 길로 한 사람씩 차례차례 찾아갔다. 아침식사 중이던 소피아와 스테파노스를 첫 번째로 찾아갔고, 다몬의 누이들을 연락이 닿는 대로 방문했다. 바로 드모네이 그룹의 본사를 찾아간 것이다.

케이트는 일이 다 끝난 게 기뻤다. 금요일에 다몬의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일만 빼놓고 중요한 고비는 넘긴 것이다.

그들의 가족들이 보인 반응은 놀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케이트는 다몬이 자기 아파트로 데려다 준 이른 저녁 시간에도 여전히 몸이 떨렸다.

"자지 말아요." 다몬이 말했다. "필요한 것만 챙기고 빨리 갑시다. "

"못 하겠어요." 그녀에게는 이대로 침대에 기어 올라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크리스마스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었다.

"이미 얘기했잖소. 당신은 나와 함께 가야 돼요. 사람들이 전화를 했는데 우리가 없으면."

"전화를 일부러 안 받는 척하면 되잖아요."

"전화는 가정부가 받을 거요."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자요. 이 집이 호화 저택이 아닌 건 알지만 그런 대로 편안해요. 또 가정부가 사람들한테 우리가 다른 데로 갔다고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가정부가 왔다 갔다 하는 집에서 우리가 첫날밤을 보낼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우리 둘만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집이 여기 있잖아요."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좋소, 하룻밤 만이오." 케이트는 빙그레 웃으며 벌떡 일어섰다. "당신이 잘 수 있게 소파를 치우겠어요. 일 분이면 돼요."

다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파?"

"이 아파트에는 침실이 하나밖에 없어요."

"첫날밤을 소파에서 보내리라 곤 생각하지 못했소."

"당신은 첫날밤을 비행기 안에서 이미 보냈어요."

"맞소." 다몬이 중얼거렸다. 그는 찡그린 얼굴로 소파에 털썩 앉아 구두를 벗기 시작했다. 케이트는 침실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구두를 벗어 던지고 다시 일어나, 지난 서른여섯 시간 동안 입고 다닌 구겨진 원피스를 벗기 시작했다.

욕실에 들어간 그녀는 얼굴에 물을 뿌리고 머리를 빗은 다음, 얇은 면 나이트 가운과 연푸른 실내복을 걸쳤다. 그녀는 깨끗한 이불과 베개를 들고 거실로 돌아갔다.

다몬은 넥타이와 와이셔츠 칼라 단추를 풀어놓은 채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다가 그녀의 인기척을 듣고 눈을 떴다.

"일어나요. 잠자리를 봐 줄 테니까." 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일어났지만 눈은 여전히 케이

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섰다. 그리고 그를 마치 대학 시절의 룸메이트나 초등학교 친구인 안도니어 같이 대수롭지 않은 하룻밤 손님처럼 대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그가 자기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배고프세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냉장고를 열어 보세요." 자기가 수다를 떨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소." 그는 잘라 말했다.

케이트는 용기를 내어 옆눈으로 그를 흘낏 보았다. 그는 그녀가 입고 있는 실내복의 파인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소파에다 잠자리를 꾸몄다. 케이트는 욕설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벽장에 새 타월이 있고, 약상자에 칫솔이 있어요."

"이 집에는 잠자러 오는 손님이 많은 모양이오, 그렇소?"

"가끔 친구들이 와요. 이를테면?"

"자세하게 말해 봐요. 그리고 이걸 명심해요. 우리가 결혼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룻밤 묵을 손님이 절대 와선 안 된다는 걸.."

케이트는 깜짝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나를 그런 여자로 오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감히?

"전에 얘기했죠? 내가 당신과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내 인생에서 다른 여자는 입을 거라고, 나는 당신도 같은 예의를 지켜 주길 바라오."

케이트는 착 소리가 나도록 양손을 허리에 갖다 붙였다. "나는 당신 비위를 맞춰 가며 살지 않을 거예요, 다몬 알렉사키스!"

"아니지, 알렉사키스 부인. 당신은 그래야 돼요." 그는 손을 뻗어 양손으로 그녀의 뺨을 붙잡았다. "내 아내로 있는 동안 당신은 나와 침대를 같이 써야 하오. 알아들었소?"

"나는 당신과 한 침대를 쓰지 않겠어요. 그리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지 마세요. 나는 아무하고나 자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엄격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참 쳐다보았다. 뭔가에 굶주리고 소유욕을 풍기는 눈초리였다. "좋아요. 그러면 우리는 잘 지내게 될 거요." 그는 재빨리 그녀 곁을 지나 욕실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케이트가 일어났을 때 다몬은 이미 가 버리고 없었다. 거실에 가자 테이블 끝에 잘 개킨 이불과 메모가 놓여 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오후 일곱 시에 소피아의 집으로 당신을 데리러 가겠소.

짐을 꾸려 놓으시오. 다몬.

 

요점만 적혀 있었다.

케이트는 기뻤다. 그녀는 지난밤 다몬이 자신에게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녀는 달력에서 이틀을 지웠다. 이제 삼백 육십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짐을 챙겨 소피아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거기 소피아, 쌍둥이 소녀들, 심지어 스테파노스가 퍼붓는 질문에 시달렸다. 스테파노스는 자기가 그녀를 집적거린 것에 대해 그녀가 자기 처남에게 어떻게 얘기했을까, 걱정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날 일곱 시 경, 그녀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다몬이 오면 그의 팔에 몸을 던져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몬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문을 열고 방 건너편에 있는 케이트를 발견했다. 그는 누이와 매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성큼 걸어가 그녀를 붙잡고 입을 맞췄다.

케이트는 자신이 뭘 기대했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하여튼 이건 아니었다. 거래야,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건 사업상 거래일뿐이야.

하지만 그녀의 몸은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은 즉각 반응을 일으켜 그의 몸에 밀착하여 온기와 위안, 그리고 욕망의 만족을 쫓았다. 분명 미친 짓이었지만 그녀는 멈출 힘이 없었다.

다몬도 욕망의 만족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은 뜨거웠고 열렬했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맛을 보았다. 성적 충동에 그녀는 머리가 빙빙 돌았고 무릎이 후들거렸다.

뒤에서 남자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감당 못할 일은 시작도 하지 말게. 다섯 살짜리 애들이 보고 있는데." 스테파노스가 투덜거렸다.

케이트는 이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다몬은 잡고 있던 팔을 풀고 뒤로 물러서서 몽롱한 웃음을 지었다. "집에 데려다 주겠소." 그는 윙크를 하며 말했다. "우리 새색시가 나를 보고 싶어 해서." 그는 스테파노스에게 말했다.

케이트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소피아도 스테파노스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몬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을 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케이트는 승강기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왜 키스를 그렇게 했어요?"

"당신은 왜 내 팔에 안겼소?"

"나는 오늘 우리 관계에 대해 캐묻는 질문에 대답하느라 몹시 지쳤어요.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당신은 그런 식으로 구원을 요청하오?" 그는 윙크를 하고 그녀를 승강기 속으로 안내했다.

"닥쳐요, 다몬."

그는 웃었다. "밖에서 식사하고 싶소, 아니면 집에 가고 싶소?"

"내가 원하는 건 내 집에 가는 거예요." 케이트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내 집으로 갑시다. "

그의 가정부인 빈센트 부인은 어머니 같은 사람으로서, 다몬 집에 가득한 티크 가구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몬은 아파트 옥상 한 층을 다 쓰는 호화로운 집에서 살았다. 그녀는 다몬의 결혼에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밤을 새셨나 보죠." 빈센트 부인은 다몬 쪽을 바라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저 분이 결혼을 하시다니 너무 기뻐요." 빈센트 부인이 말했다. "그에게는 아내가 필요해요. 자신이 직접 골랐다니 더 잘됐고요." 케이트는 웃으려 했지만 다시 하품이 나왔다.

빈센트 부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역시 젊은이들이니까요."

"그런 뜻이 아니?" 케이트는 얼굴이 빨개진 채 우물쭈물 말했다

다몬이?전화기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그녀는 화끈한 여자예요, 빈센트 부인. 내가 왜 그렇게 저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는지 아시겠죠? 케이트, 우리 방으로 갑시다. "

케이트는 그의 손에 이끌려 복도를 따라가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방이라니?"

다몬은 그녀를 데리고 복도 끝에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다몬은 그녀의 백을 내려놓고 벽장문을 열어 텅 빈 막대와 옷걸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사용해도 괜찮아요. 이젠 자도 되고."

"난 이 방에서 자지 않겠어요."

"고집 피우지 말아요. 그렇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 우리 사이는 원만해지지 않을 거요."

"어쩜."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다. "난 전화 좀 걸어야겠소."

"다몬, 난 이 방에서 자지?"

"물론 그러시겠지." 그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방을 나갔다.

케이트는 그가 막 닫고 나간 문을 향해 짐 가방을 던졌다. 짐 가방은 꽝 소리와 함께 문에 맞고 튀어나왔다. "난 어린애가 아냐." 그녀는 분을 못 이겨 문에 대고 소리쳤다.

문이 다시 열렸다. 다몬이 히죽 웃으며 머리를 문틈으로 내밀었다. "그럼 어린애처럼 굴지 말아야지." 그는 다시 사라졌다.

그녀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녀의 입술은 아직도 그가 퍼부었던 키스의 맛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와 자기 옆자리로 들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브라이스 이후, 남자라면 지겨웠다. 그녀는 눈곱만큼도 섹스를 원하지 않았다. 자기가 기억하는 한, 섹스에 서투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브라이스는 늘 이 점을 꼬집었다. 다몬과 정사를 나눈다 해도 그가 뭐라고 평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다몬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노크도 할 줄 몰라요?" 케이트가 다그쳤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하고 쟁반을 그녀 앞에 놓았다 그녀는 닭다리, 과일, 샐러드가 놓인 쟁반에 관심 없는 척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녀의 배는 주인의 뜻을 배반하고 꼬르륵 소리를 냈다. "고마워요."

그녀는 부지런히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아직 서 있는 다몬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좀 안 드세요?" "난 비행기에서 먹으면 돼요." "비행기라뇨?"

"오늘 파리에 가야 하오. 금요일에 돌아올 거요."

"파리요? 지금?"

"당신이 좋아할 줄 알았소. 침대는 당신이 써요."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물론 좋죠. 하지만 당신도 별로 못 잤잖아요."

"나는 괜찮소."

"그럼 난 집에 가겠어요." 그녀는 다몬의 침대에서 잔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절대 안 돼! 우리는 부부라는 걸 명심해요!"

"그럼 소피아의 집에 가겠어요. 당신이 없는데 왜 내가 이 집에 있어야 해요?"

"스테파노스는 어떡하고?"

"그 사람이?"

"물론 그 자가 어쩌진 못하겠지. 내 말은 그가 이상한 생각조차 할 기회를 주지 말자는 거요. 이리 와요, 케이트. 마지막 경고요. 나는 금요일 오후에 을 거요. 어머니가 도착하기 전이면 좋겠소. 소피아의 집으로 데리러 가겠소. 그런 다음 우리 물이 어머니 문제를 같이 해결합시다. "

그는 그녀에게 짧지만 강렬한 키스를 하고 이내 사라졌다.

케이트는 자기 입술에 남아 있는 그의 입술의 감촉을 되새기며 그가 가버린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을 올려 입술을 만져 보았다.

그는 왜 그녀에게 키스했을까? 다른 사람이 보고 있지도 않았는데.

금요일이면 삼백하고 오십 칠일만 남게 된다.

 

4

금요일이 되었다. 소피아의 집 거실 한복판에서 일은 터졌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다몬의 어머니를 뵈러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몬의 어머니는 마리나를 뒤에 달고, 다몬보다 먼저 소피아의 집에 도착했다.

지금 케이트는 거실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른 채, 두 손을 맞잡고 떨고 있었다.

"다몬이 어머니에게 아직 결혼했다는 말을 안 했단 말이야?" 케이트가 할머니를 맞으러 나가지 않고 쌍둥이와 함께 집에서 그냥 있겠다고 우기자, 소피아는 말했다.

"아직요. 제가 알기론 그래요. 다몬은? 아시잖아요. 워낙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니까요."

"결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소피아는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나는 걔를 잘 알아. 걔는 자기 결혼을 기정사실화해서 어머니의 허를 찌르잔 거야. 마리나가."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미안한 표정으로 케이트를 보았다.

"괜찮아요. 다몬이 마리나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머니는 걔가 마리나와 결혼하기를 줄곧 바랐다는 것도?"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나도 알았어야 했는데. 솔직히 나는 다몬이 너를 만난 게 기뻐.알렉사키스의 신부인지 뭔지 하는 걸 찾는 일은 이 집안에서는 대단한 일이었어. 사랑으로 하는 결혼이 훨씬 좋지." 그녀는 재빨리 케이트를 안았다.

케이트는 죄책감을 느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현관문의 벨 소리가 났고 소피아가 문을 열기 위해 걸어갔다.

", 다몬이구나." 소피아의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왔구나. 엄마와 마리나가 기다리고 있어."

"케이트는 어디 있어?"

잠시 후, 그는 케이트의 손을 잡고 거실로 들어왔다. "어머니, 케이트를 소개하죠."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케이트는 자기가 이제껏 만났던 까다로운 여자들을 이리저리 머리에 떠올리며, 다몬의 어머니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를 상상했다. 그러나 다몬의 어머니는 자신의 상상보다 부드러웠다.

다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이 아가씨가 나의 신부가 되는 영광을 베풀어주었어요."

다몬 어머니의 얼굴에서 갑자기 미소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케이트는 그녀가 영어를 모르나, 하는 의심이 생겼다. 다몬이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그리스 어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의 신부?" 헬레나 알렉사키스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아들을 보고 나서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케이트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선 채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 신부라고?" 야릇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번졌다. 그녀는 케이트를 천천히 주의 깊게 뜯어보았다. 케이트는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리나는 다몬의 놀라운 폭로에 받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케이트와 다몬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헬레나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 있는 거냐?"

다몬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제가 왜 여기 있냐뇨?"

"방금 결혼했다며? 신혼여행을 떠났어야지."

"그런 말 마세요, 어머니. 우리는 신혼여행이 필요 없어요."

"신혼여행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다몬.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신혼여행은 중요하지. 특히 너희들처럼 오래 사귀지 않은 사이에선 더욱 그렇지 않겠니?"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며 말했다.

"우린 충분히 사귀었어요." 다몬이 말했다.

"다몬이 저한테 폭 빠졌죠." 케이트는 가볍게 넘기려고 애썼다.

"폭 빠졌다구? 우리 다몬이? 나는 저 애가 너무 타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됐구나." 그녀는 다시 한 번 다몬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신혼여행은 꼭 가야 돼."

"어머니, 저에게는 돌봐야 할 회사가 있어요."

"돌봐야 할 신부도 있단다, 다몬."

"어머니, 저는?"

"너는 지금 신혼이다. 어서 떠나."

"싫어요."

"떠나."

두 사람은 꼼짝 않고 선 채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저는 떠날 수 있지만, 케이트는 여기서 소피아 누님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안 돼요." 마침내 다몬이 입을 열었다.

헬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보모란 말이냐?"

", 뭐가 잘못됐어요?"

"네가 케이트를 사랑하기만 한다면야 아무것도 문제될 것은 없지."

"물론 저는 케이트를 사랑해요. 하지만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날 수가 없어요. 케이트는 애들을 돌봐야 한단 말이에요!"

"내가 대신 하마."

"어머니가요? 제발?"

"다몬, 어미 말에 말대꾸하지 말아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 전에 결혼해 본 척 있니?"

"물론, 없죠." 그는 우물쭈물 말했다.

"그러면 경험자한테 대들지 말아라. 너도 사업 문제는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니?"

"그래요, 하지만?"

"결혼은 내가 전문이다.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잘 알아. 네 아버지와 나는?"

"그럼 햄프턴(버지니아 주 남동부의 항구도시)에 가서 주말을 보내겠어요. 어머니 마음이 편해지신 다면요."

"주말? 말도 안 돼. 결혼을 한 번의 주말 여행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또 햄프턴 같은 데 가면 너는 분명히 종일 전화통이나 붙들고 있을 게다. 옳아, 해적섬!"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네가 거기로 먼저 가서 추수감사절 파티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으면 되겠구나." 소피아가 끼어 들었다.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요. 중요한 일이에요." "결혼보다 중요하냐?"

"우리에겐 둘만의 시간이 필요 없단 말이에요!"

"다몬의 말은요?" 케이트가 서둘러 끼어 들었다. "우리는 어머님을 따돌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헬레나는 그녀의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그렇게 될 거다. 우리는 11월말이면 언제나 해적섬에 간단다. 다몬이 얘기하지 않든?"

케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헬레나는 아들을 향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바하마(서인도 제도 북서쪽 쿠바 섬 북쪽에 있는 제도)군도에 있는 작은 섬이야. 우리는 거기에 작은 땅을 가지고 있지. 네 시아버지는 섬 생활을 아주 좋아했단다. 정신을 알맞게 집중시켜 준다면서." 헬레나의 얼굴에 향수에 젖은 미소가 떠올랐다. "제발 가겠다고 말해다오." 그녀는 케이트에게 애원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케이트는 절망적으로 다몬을 쳐다보았다.

"좋아요."

헬레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걱정 마라. 스테파노스와 아레테가 여기 일을 잘 해낼 테니까."

다몬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졌다. 그가 자기 매형을 너무 냉정한 눈초리로 쏘아보는 바람에 스테파노스는 움찔하여 뒷걸음쳤다. "매형은 그럴 수 있겠지만?" 그는 차갑게 말했다.

그는 케이트를 문 쪽으로 잡아끌었다. ", 갑시다. 신혼여행을 떠나려면 할 일이 많지."

 

"당신이 그런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여자가 당신을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케이트는 분노를 터뜨렸다.

"그럼 그녀를 완전히 무시했어야 옳았소?"

"그때 상황으로서는 그게 나을 뻔했어요. 맙소사, 당신은 그 여자를 모욕했어요. 당신에겐 동정심도 없나요? 그 여자는 당신과 결혼하기 위해 그리스에서 왔어요."

"나는 이미 결혼했잖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사과해야 해요! 당신은 그녀의 기분을 좀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했어요!"

"나는 당신의 기분을 세심하게 배려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나에게도 기분이란 게 있다고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나에게 청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벙긋 웃었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웃지 말아요.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에요. 내가 왜 이런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재앙이라구요. 게다가 신혼여행이라니, 맙소사!" 그녀는 베개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다몬은 베개를 잡았다. "뭐가 불만이오?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 준다고 하잖소?"

"나는 단순히 아이들만 돌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구요. 벌써 잊었어요?"

솔직히 말해 그는 잊고 있었다. 그는 케이트를 직업 여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오?"

"신혼여행은 싫다고 할 수도 있었어요."

"당신도 어머니 얘기를 들었잖소. 신혼여행은 신성한 거라고. 우리가 끝까지 거절했다면 어머니는 우리 결혼이 진짜가 아닌 것을 눈치 채셨을 거요."

"증명서가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 결혼은 지금이라도 무효화될 수 있소. 우리는 아직 신방을 차리지 않았거든." 그의 눈은 침실 쪽을 향했다. "만일, 혹시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케이트는 또 베개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그는 이번에도 잡았다. "그러면 우리는 바하마로 가서 사람들에게 우리 결혼이 진짜라는 걸 믿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케이트는 분명히 숙녀답지 못한 말을 몇 마디 중얼거렸다.

다몬은 이죽거리면서도, 왜 자신이 이런 짓을 즐기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언제 가죠?" 그녀가 조금 후 볼멘소리로 물었다. ", 빠를수록 좋지. 우리는 일요일에 떠나서 다음주 주말에 돌아올 수 있어요."

"당신 어머니가 말한 추수 감사절 휴가는 어떡하구요?"

"그때까지 거기 머물 필요는 없소."

"하지만 당신 어머니가?"

"나는 절대로 가족 화합의 시간 때까지 머물지는 않을 거요."

"가족 화합의 시간이라뇨?" 케이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 아버지가 미국에 오셨을 때 시작했소. 가족을 모두 그 섬으로 끌고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지. 아버지는 늘 바빠서 집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이런 행사를 갖자고 우기셨소. 추수 감사절이 안성맞춤이었지."

"멋질 것 같은데요."

"멋지다고?"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때가 좋을 때라는 뜻이에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몬은 그녀의 얼굴을 더욱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녀가 가족을 원한다면 결혼을 해서 꾸며야 한다. 절대로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원한다면 섬에 계속 있어요."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뇨."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우습잖아요. 내가 왜 당신 가족과 화합의 자리를 가져요? 357일만 있으면 난 가족이 아닌데." 그녀는 뒤돌아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 "잘 자요."

진짜 신혼여행하고는 다를 거야, 케이트는 셔츠를 머리 위로 뒤집어 벗으면서 생각했다.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제각기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과거에 그녀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로맨티스트였다.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그녀를 무관심한 아버지에게서 떼어내 자기 성으로 데려가는 꿈을 꾸던 공상 많은 아이였다.

브라이스는 신혼여행으로 그녀를 애틀랜틱시티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도박으로 7백 달러를 잃었고, 그녀는 알거지가 되었다. 꿈은 이제 그만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케이트는 잠옷을 당겨 얼른 가슴 부분을 가리면서 몸을 홱 돌렸다. "뭘 원하세요?"

다몬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자야 하지 않소?

"여기서요?"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소, 여기서. 날 소파로 쫓을 생각은 말아요. 빈센트 부인도 이 집에서 살고 있소. 무슨 일이 있으면 그녀도 다 알게 돼요. 나는 여기서 잘 거요."

"좋아요. 자세요. 바닥에서 자세요."

"바닥? 절대로 안 돼!"

"이미 다 끝난 얘기예요. 우리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했어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약속한 적 없어요. 같이? 같이?"

"섹스 말이오?" 다몬이 웃으며 물었다.

케이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성행위를 하는 거요." "안 하기로 약속한 척도 없지."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분명 명목상의 부부관계일 뿐이라고 말했잖아요."

"그 말이 꼭 그런 뭇은 아니오." "나에게는 그래요." "왜 그렇소?"

"왜냐하면?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남자들은 모두 이렇게 둔감할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몬은 꿈씩도 하지 않았다. ", 하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섹스를 하지 않아요. 말했다시피 이 방에서 자고 싶으면 바닥에서 자세요."

다몬은 들리지 않게 욕설을 중얼거리더니 벽장으로 가서 담요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당신은 너무 감정적이오." 그는 투덜거렸다.

그럴지도 몰라,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소동에 말려들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인지도 모른다.

고문의 형태는 여러 가지였다. 다몬은 케이트와 결혼한 이후로 날마다 새로운 형태의 고문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바닥에 누워 욕실에서 나는 케이트의 부드러운 콧노래 소리를 듣는 것도 고문이었다.

그녀는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여자는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 같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담요를 꽉 움켜쥐면서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꾸려 가야 할 다국적 기업도 없고, 자기를 미치게 만드는 어머니와 여섯 명의 누이도 없고, 무엇보다도 손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유쾌한 아내도 없다!

 

다음 주에 바하마에서 다몬과 휴가를 보낼 생각을 하니 케이트는 주말 내내 심란했다. 게다가 헬레나 알렉사키스는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어머님이 내일 점심식사에 나를 초대하셨어요." 케이트는 월요일 오후 다몬이 소피아의 집으로 그녀를 데리러왔을 때 말했다. "어머님과 소피아가요."

다몬은 얼굴을 찡그렸다. "바쁜 척해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나의 주된 일파는 쌍둥이를 돌보는 건데, 걔들은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거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요, 내가 과연 초대를 사양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몬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 고문을 견디겠다는 거요?"

"반드시 그런 뭇은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어머님을 피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거예요."

케이트는 사실 지난 주말부터 이런 놀랄 만한 사실을 감지했다. 토요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헬레나는 매우 상냥하게 케이트의 아버지, 학력, 키드 케어 사의 사업계획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리고 일요일 소피아와 어머니, 다몬, 케이트와 늦은 아침을 먹을 때에도 헬레나는 케이트와 다시 한 번 얘기할 기회를 갖기 위해 쌍둥이를 쫓아내기까지 했다.

물론 처음에 케이트는 경계심을 가졌다. 하지만 헬레나는 차분하고 친절했으며, 여느 부모에게서 신물나게 보아온 속단하는 태도가 없었다.

헬레나는 다몬의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아담한 프랑스 레스토랑에 좌석을 예약해 두었다.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헬레나가 말했다. "다몬이 드디어 짝을 찾은 게 얼마나 기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란다. "

막 와인을 먹으려던 케이트는 울컥했고,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헬레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놀랐니?"

"저어, 다몬은 어머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머님한테 말씀도 안 드리고 저를 불쑥 며느리로 들이 밀었으니까요."

"내가 알았다면 너희들 결혼식에 오고 싶어 했을 게다. 외아들의 결혼식이란 게 매일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올바른 짝을 찾았다면?"

"죄송해요."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식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결혼생활이야. 미안해 할 것 없다. 모두 잘됐어. 다몬이 자기 짝을 찾았잖니. 사실 나는 포기 직전이었단다. "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헬레나는 부야베스(프랑스식 생선 모듬요리)에 얼굴을 박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절망적이었단다. 몇 년 동안 그 애에게 신부를 고를 때 뭘 봐야 하는지 얘기했지. 여자는 의지가 강해야 해." 헬레나는 새우를 포크로 찍었다. "그러면 개는 불펑하면서 내 얘기를 다 듣지도 않고 회의에 참석하러 가지.어머니, 전 여자를 잘 알아요. 누나들이 많잖아요하면서.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지.다몬, 누나와 아내는 다르단다하고."

케이트는 포크를 내려놓고 그냥 얘기만 듣고 있었다.

"내가 신부를 골라 주겠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이렇게 말하더구나.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전 사업을 해야 돼요." 헬레나는 고개를 혼들고 케이트에게 미소를 보냈다. "걔는 내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던 거야. 너와 결혼했잖니."

"마리나는 어떻게 하죠?" 케이트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마리나는 예쁜 여자야. 활발하고 매력있지. 알렉사키스의 신부 자격이 충분하지. 하지만 너무 어려. 인생의 시련을 겪지 않았어. 나는 다몬에게 내가 신붓감을 찾아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마리나를 데리고 온 거야." 헬레나는 웃었다. "무엇보다 자극을 좀 주려고."

"그러면 두 사람을 결혼시킬 생각이 없었어요?"

"물론 그 애가 마리나를 좋아한다면야 결혼시킬 생각이었지. 다몬은 강한 애다. 하지만 너와 이렇게 얘기를 해보니 내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나. 너도 강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의사를 어기고, 그분의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없었을 테니까. 케이트, 아이는?"

"아이요?" 케이트는 목이 메였다.

"물론 너도 아이를 바라겠지?" 처음으로 헬레나의 일굴에 근심의 표정이 어렸다.

"물론 저도 아이들을 원하죠.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 레다와 크리스티나와 함께 있는 네 모습을 보면 너는 훌륭한 어머니가 될 거야. 다몬도 그점을 생각했을 거라고 믿는다. " 그녀는 빵을 다 먹고 고개를 들어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얘야, 음식이 뭐 잘못됐니? 하나도 안 먹었잖니?"

 

5

"무슨 뜻이오? 우리는 결혼할 필요가 없었다니?"

케이트는 샐러드 버무림을 끝냈다. 오늘이 빈센트 부인이 쉬는 날이라는 게 기뻤다. "말 그대로예요. 당신은 성급했어요. 마리나는 알렉사키스 신부의 후보가 아니었어요." 그녀는 다몬에게 밝게 웃어 주었다.

"어떻게 아오?"

"어머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다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방의 조리대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마리나는 왜 온거요?"

"마리나는, , 그러니까 일종의 채찍 같은 거였어요. 당신의 생각을 자극하기 위해서죠."

"채찍?"

"그러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의 결혼을 무효화할 수 있어요."

다몬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길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요!"

움찔한 케이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나와 결혼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면요?. 내 말은 나는 제프리나 뭐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벌어먹을 제프리! 이건 제프리와 관계없는 일이오. 당신은 정말 우리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싶소? 그렇게 하면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기나 해요?"

"?" 케이트는 이렇게 말하며 생각해 보았다. "그럼 어떡하자는 거예요?"

다몬은 다시 한 번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찍었다. "바하마로 신혼여행을 가는 거요."

케이트는 죄책감과 바보가 된 기분을 똑같이 느끼면서 침착하게 신혼여행 건을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몬은 무뚝뚝했고, 말이 없었다.

마루에서 잠잔 것이 원인의 일부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케이트는 그에게 접었다 폈다 하는 매트리스를 사다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격렬하게 비난을 할 뿐이었다.

"난 단지 당신을 돕고 싶어서 그래요."

"그런 도움은 필요없소." 그는 으르렁거리고는 휭하니 나가 버렸다.

 

다몬은 해적섬을 아주 좋아하지헬레나는 그 운명의 점심식사 때 케이트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비행기가 자그마한 해적섬의 해변을 덮는 청록색 수면 위를 낮게 비행하는 지금, 그녀는 다몬이 과연 그런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확실히 다몬은 즐거운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오늘 아침 공항에서 그의 어머니와 누나들이 사라질 때까지는 즐거운 신랑의 모습을 잘 연기했다. 그러더니 곧 휴대용 가방에서 한 묶음의 서류를 꺼내 그것만을 들여다볼 뿐 이제까지 줄곧 그녀의 존재를 무시했다.

비행기는 섬을 가로질러 선회 비행을 했다. 그 바람에 좁은 백사장과 뒤편의 정글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저택들이 확연히 드러났다.

"어느 집이죠?" 케이트가 물었다. 다몬은 한 번 흘껏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집."

"멋져요." 케이트가 말했다.

다몬은 다시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비행기는 해적섬에 내리지 않았다. 활주로는 근처의 보다 큰 섬에 있었다. 택시와 보트가 그들을 해적섬의 부두에 내려다 줄 것이다. 만을 건너 배가 세관에 정박할 때까지 다몬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거기서 그들은 우람한 흑인의 환영을 받았다. 다몬은 들고 있던 서류를 치우고 갑자기 크게 웃음을 지었다.

"!"

"이봐, 친구, 정말 반갑네. 금년에는 좀 일찍 왔구먼."

"나는 지금 신혼여행 중이야."

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하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렉사키스 신부란 말이지!" 그는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그래, 자네 어머니는 솜씨가 좋아."

"우리 어머니는 내 신부와 아무 관계없네."

"아가씨는 특별한 분인가 보죠?"

이들은 두 채의 이층 저택 뒤편에 있는 길 끝에서 멈춰섰다. 저택에 달린 좁고 긴 창문과 넓고 흰 현관이 19세기의 해양소설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이렇게 큰 집이라면 그녀와 다몬은 서로 피해다니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테니까.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노란 옷을 입은, 키 크고 튼튼하게 생긴 여자가 길을 따라 총총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다몬 씨! 마님께서 지난주 월요일에 전화하셨어요. 당신이 결혼했다고 하시더군요. 그 행운의 아가씨를 소개해 줘요!"

다몬은 케이트에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는 테레사인데 눈치가 아주 빨라요."

"명심하겠어요."

다몬은 그녀를 테레사의 품에 떼밀었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어디 한번 봅시다. 수줍음을 타요?" 테레사가 다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부끄러워할 필요없어요, 아가씨. 나한테는 안 그래도 돼요. 마님 말씀대로 정말 예쁘군요. 마님이 너무 좋아하세요! 나는 다몬 씨가 직접 미인을 찾을 걸 알고 있었어요."

케이트는 다몬이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당신은 장님이오, 테레사." 그는 짐가방을 집어 당나귀 등에서 끌어내리면서 말했다.

테레사는 웃었다. "식사를 먼저 하시겠어요, 짐부터 푸시겠어요?"

다몬은 케이트를 쳐다보았다. 케이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짐부터 풀겠소." 다몬은 결정을 내리고는 집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주무시지 못할 거예요. 마님께서 별채를 치워놓으라고 하셨거든요."

다몬은 걸음을 멈췄다. "별채? 거기는 소피아와 스테파노스의 몫인데."

테레사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별채는 결혼한 사람 거예요. 다몬 씨도 이제 자격이 있어요. 신혼여행 왔는데, 설마 나하고 여기서 숨바꼭질이나 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도런님? 다몬 씨에게는 밀회 장소가 필요해요. 하여튼 마님은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마님께서 잘못 아셨나요?"

케이트는 그가 집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일른 쫓아갔다.

그는 단층의 작고 흰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본 작은 건물 가운데 하나였다. 본채보다 바다 쪽에 더 가까이에 있었다.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케이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은 거실에 붙어 있었는데 거실처럼 밝고 산뜻했으며, 거실과 똑같이 작았다. 거기에는 더블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케이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별채는 내 아이디어가 아니오."

"결혼은 당신 아이디어죠. 솔직히 말하면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이 멍청한 계획을 제안하기 전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때는 좋은 생각인 것 같았소."

"사업할 때도 언제나 그렇게 즉흥적으로 판단하나요?"

"물론 그렇지 않소."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맙시다. "

케이트의 생각에 그는 정말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그녀에게 용기가 있었다면,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져 주고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를 매만져 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그마한 침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이것이 진짜 신혼여행이었다면 참으로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일부러 거실로 돌아갔다. "당신은 적어도 여기 거실에서 잘 수 있어요."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그녀가 침실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그에게 신사라고 말했다. 그는 침실의 빛이 꺼지는 걸 보았고,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욕을 하고 돌아누웠다. 작고 시커먼 물체가 달빛이 비치는 마루 위를 재빨리 지나갔다. 그는 차마 옮길 수 없는 욕설을 했다. 오늘 밤은 매우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이건 순전히 호르몬의 문제라고 다몬은 자신에게 타일렀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여자를 안아 보지 못했다. 대부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건 단지 가까운 곳에 여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어디를 가든, 그녀가 거기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케이트 꿈을 꾸었다. 그녀의 잠옷을 벗기고 몸매의 곡선을 더듬는 꿈을 꾸었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 가볍고 섬세한 그녀의 손이 그의 벌거벗은 넓적다리를 스치며 간지럽히는 꿈을 꾸었다.

그때, 비몽사몽간에 그는 자기 몸을 더듬는 그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케이트의 손길이 아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고 벌떡 일어섰다. 벌레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져 찬장 밑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다몬은 얼굴이 하얘진 채 떨고 서 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굳게 닫힌 침실 문을 갈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시트가 마루에 닿지 않게 시트 자락을 몸에 둘둘 말았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접시만한 벌레, 독거미와 전갈, 청도마뱀과 뱀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식은땀에 젖어 잠에서 깨었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벌떡 일어섰다.

시트를 의자에 집어던지고 다몬은 문가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바깥의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그는 바로 해변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갔다.

썰물이 빠져 나가 파도는 거의 없었다. 대양은 잠자는 풀장처럼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다몬은 축축한 모래밭을 가로질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시간 이상 허파가 터져 나갈 정도로 수영을 한 다음, 물 밖으로 나와 모래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은 벌레에 대한 기억도, 꿈속에서 보았던 독거미도, 뱀도 아니었다. 그것은 케이트였다.

 

"?. 알겠어요." 테레사는 아침식사 때 사람들의 접시에다 달걀 프라이를 놓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다몬 씨 표정에는 신혼여행 온 사람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눈이 충혈되고 쑥 들어간 게 그 증거죠."

"아줌마는 그런 경험이 많으신 모양이죠?" 다몬이 머그 커피잔에 코를 박고 떨떠름하게 물었다.

케이트는 팔꿈치로 그를 푹 찔렀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아침 7시반에 집에 들어온 이후 계속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때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어머, 새벽 수영을 즐겼어요?"

그는 아무 말없이 그냥 그녀를 지나쳐 욕실로 갔다.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두 분은 오늘 뭘 하실 거죠?" 테레사가 두 사람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케이트의 계획은 모르겠고, 나는 잠을 좀 자야겠소."

"신혼여행이 원래 그런 거예요."

테레사의 놀림은 식사 내내 계속되었고 케이트는 다몬이 점점 자제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녀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테레사에게 말했다. "이이를 집에 데려다 줘야겠어요. 야수들이 나타나기 전에요."

테레사가 웃었다. "그렇게 하세요. 다몬 씨를 잘 돌봐드리세요."

다몬은 입을 쩍 벌렸다. 케이트는 그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그의 팔을 잡고 문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잠깐 눈 좀 붙이세요." 그녀는 속삭였다.

"눈 좀 붙이라고?" 다몬은 화가 난 것 같았다.

"아까 그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했소. 하지만?"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사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요. 우리 두 사람이 침대를 공평하게 쓸 수 있으니까요." 케이트가 말했다.

그는 일부러 기쁜 척하며 말했다. "저런."

"내가 밤에 침대를 쓸 테니 당신은 낮에 쓰세요."

"뭐라고?" 그 말을 하던 그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녀의 품에 안겼다.

케이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완벽한 해결책이죠. 아무튼 테레사는 당신이 밤새도록 밤일에 정력을 쏟으려면 낮 시간에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요."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소." 다몬이 그녀의 둥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뭔데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뜨거웠고 뭔가를 갈망하는 듯했다. 케이트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물을 필요가 없었다. "잊어버리세요." 그녀는 말했다.

그녀도 잊을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녀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부인하기 힘들지만, 종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점점 신경 쓰였다. 그의 매력에 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밀짚모자를 덮어쓰고 그에게 손을 흔들고 문 밖으로 나왔다.

"나는 해변부터 구경하고 마을로 가겠어요. 해변만 죽 따라가면 되나요?"

"해변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가요.1마일만 가면 길이 나오는데, 급수탑이 나을 때까지 그 길을 따라가요. 거기가면 마을이 보일 거요. 예의 바르게 행동하시오."

케이트가 깜짝 놀라 뒤돌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누군지 알아볼 거요. 후회할 말은 하지 말아요."

"나는 결혼식장에서 목사 앞에서라고 대답한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껏 후회스런 말을 숱하게 했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그들은 잠시 상대를 쏘아보면서 무언의 전쟁을 벌였다. 곧 다몬이 아무 말 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그 역시 그녀 이상으로 이 결혼을 혐오스러워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다몬 알렉사키스를 마음속에서 몰아냈고, 이제 탐험길에 오르려는 이 섬에만 정신을 집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몬이 옳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몬 부인." 바구니 가게에서 일하는 통통한 여자가 인사했다.

그녀가 음료수를 살 겸, 주민들의 미소와 눈길을 피하기 위해레베카 파인애플 가게로 들어갔을 때 젊은 아낙네가 물었다. "부인과 다몬 씨는 일마나 여기 머무르실 건가요?"

케이트는 모든 주민들이 자기 이름을 아는 것이 우연이라는 생각을 포기했다. "일 주일요."

"일 주일요? 겨우 일 주일요?" 여자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가서 할 일이 많거든요."

"다몬 씨는 너무 일만 하세요."

회색 턱수염을 기른 두 명의 나이먹은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중 하나가 케이트에게 음흉한 웃음을 짓고는 레베카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름다운 부인이군. 다몬씨는 아마 일 주일이면 그 일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

"실라스!" 레베카는 아연 실색했다.

케이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실라스라는 사람이 낄껄웃으며 설명할 때까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분은 외아들이잖아요?"

케이트는 뺨이 붉어지는 것을 느겠다.

"설라스 말에 신경 쓰지 말아요. 하지만 부인은 정말 아름다워요. 다른 가족들은 올해는 휴가 보내러 안 오시나요?"

"가족? , 다몬의 가족 말이군요. 올 거예요, 하지만."

"그러면 부인도 계셔야죠." 레베카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케이트는 힘없이 웃으며 여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왔다.

"두 분은 낚시하러 가고 싶으세요?" 그녀가 지나갈 때 실라스가 말했다. "다몬 씨에게 제가 모시겠다고 얘기해주세요.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 분이 지금도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이는 지금 자요."

실라스가 낄낄 웃었다. "지치셨나 보군요. 놀랄 일도 아니죠."

케이트는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계단을 내려와 일른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가게에 들르지 않았다.

케이트는 자신이 자제력을 잃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온 세상이, 특히 레베카와 실리스가 그걸 안다는 것이 두려웠다. 다몬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의식, 긴장, 욕망이었다.

하루 종일, 아니 일 주일 내내 그녀는 그 욕망을 무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없어지라고 소망하면서. 브라이스와 헤어진 이후 그녀는 그런 감정에 면역이 된 줄 알았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다몬 알렉사키스에게 정을 느낀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래 봐야 말썽만 생길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케이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모래밭에 주저앉아 무릎을 당겨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는 브라이스를 생각했다. 언제나 그녀는 브라이스를 생각했다.

재앙이었던 브라이스와의 결혼은 여기서는 웬일인지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허상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그와의 결혼에서 상처를 없었다. 거의 파괴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힘을 잃고 있었다.

케이트가 며칠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이 천국의 섬에서 그녀는 그 고통이 아물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일만 열심히 했다. 브라이스가 떠난 이후 그녀는 정말 하루도 쉬지 않았다. 쉴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사업을 발전시키고, 사람을 만나고, 아버지의 접근을 피하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녀가 지금처럼 모래밭에 누워 햇빛을 받으며 마음 편히 쉬는 건 실로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6

"부인은 아주 오래 밖에 계시는군요. 바닷가재말고 만찬을 차리겠어요."

선잠이 들었던 케이트는 말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테레사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저으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곤한 모양이군요, 다몬 부인." 테레사가 말했다.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깜빡 잠이 들었어요. 지금 몇 시죠?"

"저녁 먹을 시간이에요. 다몬 씨도 부인이 어디 갔는지 모르더라구요. 그 분의 누이들도 그렇구?"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내가 한번 찾아보겠다고 나였죠."

"다몬의 누이들이 왜요?"

"하루 종일 전화가 걸려왔어요. 그 불쌍한 다몬 씨를 홀로 놔 두시면 안 돼요. 게다가 신혼여행 중인데. 부인이 산책 나간 걸 탓하는 게 아녜요."

"저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어요. 그냥 눈만 감았을 뿐인걸요." 하지만 적어도 두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그녀는 꿈을 꿨고 많은 부분이 아직 머리에 남아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푼 꿈은 성적인 꿈, 다몬과 사랑을 나누는 꿈이었다.

"깨워 줘서 고마워요, 테레사. 샤워 좀 할 시간이 있을까요?"

"그건?" 테레사가 우물대며 말했다. "엘렉트라가 전화를 끊느냐에 달려 있죠. 그 분이 누이들과 종일 시간을 보내도록 놔둬서는 안 돼요."

"알겠어요." 케이트가 말했다.

"이제 나는 저녁을 준비하겠어요. 부인은 나중에 샤워하면 돼요. 다몬 씨가 나중에 기꺼이 부인을 씻겨 줄 거예요."

케이트는 그것에 대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몬은 베란다에 서 있었다. 그는 괴롭고 고민에 시달리는 표정이었으며, 케이트와 헤어질 때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정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케이트를 아래위로 훑어본 다몬은 구겨지고 땅에 젖은 옷, 볕에 탄 얼굴, 헝클어진 머리칼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 있었소?"

동정심이 싹 달아났다. "해변에서 잠이 들었어요."

"어리석기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녀는 테레사가 주방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덧불였다. "나는 이 마을에서 갓 결혼한 신부 노릇을 하는 데 지쳤어요. 각자 좀 여유를 갖자는 거죠. 당신도 좀 잤잖아요."

"잤다고? 베개 근처에도 가지 못했소."

이때 테레사가 바다가재 스튜가 담긴 접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접시에 음식을 담는 동안, 다몬은 목소리를 낮추느라 무진 애를 썼다.

"누이들한테서 계속 전화가 왔소."

"누이들이 그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나요?"

그는 이미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판도라는 땡전 한 닢 없이 라스베가스에 잡혀 있대요. 엘렉트라의 쇼는 중단됐고, 살람에 가 있는 클로에는 차비를 좀 부치라는 거요. 아레테는 스트란 사를 그만두고 우리 회사에 왔는데, 오자마자 회사를 누가 운영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스테파노스와 싸움을 벌였대요. 둘 다 내게 전화를 걸었소. 두 번이나." 그는 식탁 위에 팔을 고이고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충혈된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다 해고해야겠소."

"저런, 왜요?"

그는 순간적으로 놀란 것 같았으나, 곧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마지막 전화는 다프네가 건 것인데, 걔는 한 트럭분의 친칠라 모피를 나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소."

다몬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이유는 묻지 마시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지독하게 피곤하오."

"안색이 아주 안 좋아요."

"걱정해 줘서 고맙소."

"난 언제나 남 도와 주는 걸 좋아해요." 그녀가 이름뿐이 아닌 진짜 그의 아내였다면 훨씬 더 큰 동정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 접시에 눈을 고정시키고 열심히 먹기만 했다. 바닷가재, 감자, 채소를 섞어 만든 음식은 맛있고 즙이 풍부했다.

"아주 맛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1,2분 정도 지나서야 다몬은 몸을 일으키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접시가 비워지고 테레사가 식탁을 치울 때까지 그들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전혀 신혼여행 온 부부 같지 않아요." 테레사는 슬픈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이 말에 다몬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이오?"

"다몬 씨는 늘 전화통만 붙들고 있고, 다몬 부인은 혼자 마을에 가시고요."

"상대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죠, 테레사."

"내가 마님께 뭐라고 말할 건지 아세요?"

"우리 어머니요?" 다몬이 너무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어서 케이트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줌마는 우리 어머니께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어요!"

테레사는 뒷걸음질쳤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돼요. 귀먹지 않았어요. 얘기하겠어요. 마님이 물어 보실테니까요."

케이트의 눈에 다몬이 자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엄청난 노력 끝에 그는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우리의 신혼여행과 결혼은 우리 두 사람의 문제예요, 테레사. 아줌마가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고맙겠어요."

케이트는 두 사람의 눈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나이 든 쪽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 마디도 안 하겠어요,됐어요?"

"한 마디도 안 돼요."

"다몬 씨가 원하신다면."

이 순간만큼은 케이트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음식 훌륭했어요, 테레사. 고마워요."

케이트는 그녀의 등뒤에 소리치고는 자기라도 테레사에게 공손하게 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맙소사, 저 여자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소." 그가 투덜댔다. "전에는 저렇게 건방지지 않았는데."

"아줌마는 우리 때문에 즐거운 거예요."

다몬이 코웃음을 쳤다.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주 재미있구만."

"아줌마는 우리가 서로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황홀한 거예요."

"그렇다면 더욱 바보지." 다몬은 중얼거리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케이트는 총총걸음으로 그를 뒤쫓았다. "샤워 사용권은 누구한테 있죠?"

그는 흘낏 뒤돌아보았다.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신이나 쓰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정말 예의 바르시군요."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남 도와 주는 걸 좋아해요." 그는 그녀를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가 아까 한말을 번정댔다.

케이트는 다몬처럼 그런 식으로 자기를 약올리는 남자가 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또 그렇게 자기를 매혹시킨 남자도 없었다.

그녀는 일부러 샤워 꼭지를 최대한의 세기로 틀고, 그밑에 서서 벌거벗은 몸 위에 부딪치는 물줄기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시간이 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몸을 말리고 잠옷을 입으면서 다몬이 거실에서 자리를 잡고 잠들기에 충분할 만큼 시간이 지났기를 바랐다. 그녀는 오늘 밤에 또 그와 대결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침대에서 잠들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는 침대 하나를 독차지하고 큰 대 자로 엎드려 있었다. 한 팔은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한 팔은 얼굴 밑에 묻은 자세였다. 입고 있던 카키색 바지와 셔츠는 마루 위에 쌓여 있고 지금은 연푸른 반바지 차림이었다.

케이트는 조용히 선 채 볕에 그을린 맨송맨송한 그의 등, 단단한 엉덩이 근육, 부술부술 털이 난 긴 다리를 구경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쉰 다음, 탄 입술에 침을 묻혔다.

"다몬, 일어나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몬!" 이번에는 더욱 크고, 더욱 짜중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녀는 손을 아래로 뻗어 그의 다리 하나를 잡아당겼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무릎을 끌어당겼다.

"다몬, 일어나요. 잠잘 시간이란 말이에요. 이건 내 침대예요."

"같이 씁시다. " 그는 시트를 덮어 쓰고 중얼거렸다.

"아뇨, 난 같이 쓰지 않겠어요. 나가세요, 당장." 그녀는 다시 한 번 그의 발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그가 팔을 뻗쳐 그녀의 두 팔을 움켜쥐고는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녀는 그의 옆에 누웠다.

"다몬!" 그녀는 놀랄 만큼 강한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놔 줘요! 일어나서 나가요, 빨리!"

"싫소. 나는 너무 피곤해요. 여기?" 그는 약간 옆으로 비켜났다. "이쪽에 누워요."

케이트는 손목을 간신히 비틀어 빼고 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그를 한 대 갈겨주고 발길질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는 몸을 한 바퀴 돌려 등을 대고 누워 찡그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케이트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당신도 동의했잖아요. 나는 신사로서 당신의 말을 믿었어요."

"그건 당신의 실수지. 그렇게 화난 표정을 하고 서 있을 필요 없소. 나는 오늘 밤 당신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전혀 아니오. 나는 지금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오.."

그는 다시 한 번 몸을 굴려 엎드리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케이트는 손을 엉덩이에 올려 놓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그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가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그녀는 본채로 가서 잘 것이다. 그러면 그도 깨닫는게 있을 것이다. 생각은 그랬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몬 뿐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헬레나를 헷갈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나무의자의 등에 걸쳐 있는 모직 담요를 챙겨들고 거실로 걸어가, 불을 끄고 긴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반 시간 정도 이리저리 몸을 꼬아 봤지만 이곳에서는 잠시도 잘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녀는 나무 바닥에 쿠션을 깔고 그 위에 누웠다.

그녀는 옆으로 누워 담요로 몸을 둘둘 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달빛이 연한 은빛으로 방을 뒤덮었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무서울 것도 없었다. 그녀를 향해 마룻바닥을 기어오는 검은 물체를 제외하고는.

"아야!"

그녀는 벌떡 일어나 의자로 기어 올라갔다. 의자 위에 선 그녀는 무릎이 떨렸고 이가 딱딱 맞부딪쳤다. "도대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보았다. 바퀴벌레 같았다.

케이트는 몸을 떨며 입술에 침을 적셨다. 또 한 놈이 찬장 밑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의자에서 힘껏 뛰어, 거의 몸을 날리다시피 하여 침실로 들어가 다몬이 누워 있는 옆자리로 뛰어올랐다. 침대가 혼들리자 그가 투덜거렸다.

"나는 밖에서 안 자겠어요! 벌레가 있단 말이에요! 당신이 밖에서 자세요!"

"싫소." 그는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에 두르더니 힘껏 당겨 자기 옆자리에 눕혔다.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그럴수록 그는 한 팔과 털이 무성한 한 다리로 그녀를 꼼싹 못하게 했다.

"나요, 벌레요." 그는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택해요."

처음에 그녀는 그가 마치 자기를 공격하려던 그 괴물벌레인 양 두려움을 갖고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도 다몬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차츰 마음이 놓였고 몸에서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는 리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봤을 때보다 더 지쳐보였다. 눈가에도 더 깊은 그늘이 져 있었다. 케이트는 더 가까이 붙어 팔로 그를 감싸고 그의 머리를 부드러운 자기 가슴에 올려 놓고 편히 쉬게 하고 싶었다.

, 그래 좋아. 그러고 나서 어쩌겠다는 거지?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그 다음에 뻔히 일어날 사태를 진정 원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자와 함께 잔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브라이스와 섹스를 나누길 간절히 원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물론 그녀는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그러니까 처음에 좀 어색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숙달될 테니까. 하지만 브라이스는 그때를 기다릴 시간도, 인내심도 없었다.

그는 만족을, 그것도 당장 원했다. 첫날밤에도 그는 성급하게 덤벼들어 그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만족을 얻었다. "별로인데." 그는 비웃듯이 말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케이트는 그 어느 때보다 갚은 외로움을 느끼면서 말똥말똥하게 그의 옆에 누워 있었다.

브라이스와의 사이에서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친밀감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진정한 교감은 없었다. 육체를 넘어 마음을 자극하는 달콤한 대화, 부드러운 손짓, 말없는 교감 같은 친밀감은 결코 없었다.

그녀는 남자를 한 번 사랑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쳤다. 그녀의 사랑은 실패했다.

그녀는 다몬과의 사이에서도 더 이상 똑같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늦게 일어났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왔다. 그는 테레사가 뭐라고 말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케이트가 뭐라고 말할지도 상상할 수 있었다. 자기가 침대, 그녀의 침대에 누워 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밤에 자기가 이 침대에 쓰러졌고, 그녀가 샤워기를 트는 소리를 들었고, 곧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무엇이더라?

웬지 모르지만 케이트와 얘기를 나눴고? 이것이 자기 침대니 아니니, 그가 신사니 아니니하고 떠들었지. 그는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또 있는데그녀는 방에서 나갔고, 다시 돌아왔어.

그는 몸을 돌려 반듯하게 누워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눈을 지긋이 누르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꿈인가?"

그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새로 나온 사색법인가요, 아니면 목 졸라 자살하고 있나요?"

침대 발치에 서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케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일른 일어나 앉았다. "내가 당신 침대를 빼앗았지."

", 그랬어요."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브라인드를 올리기 위해 걸어갔다. 그는 그녀의 동작을 지켜 보았다. 여러 기억들이 그를 약올리려는 듯 머릿속을 왔다갔다했다. "그래서 당신은 마루에서 잤소?"

"물론이죠! 설마 내가 당신과 함께 갔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남자라면 그런 희망을 가질 수도 있지."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무슨 기억이 나는 것 같소. 벌레인가 뭔가에 관한?" 케이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럼, 내가 어떡하기를 바랐어요? 접시만한 벌레들이 춤추고 돌아다니는데 거기 있으라고요?"

"아하!" 그는 침대 머리판에 등을 기대고 히죽 웃었다. "역시 꿈이 아니었구만."

"당신이? 당신이? 나를 끌어안았단 말이에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요!"

"소리? 아마 당신에게 키스한 모양이지."

그녀는 이를 갈았다. 그녀는 턱을 치켜을리고 먼 천장을 응시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랬소? 역겨웠소?"

그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묻는 소리처럼 들리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지금 다시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옆에 눕히고 그녀의 셔츠를 찢어 버리고 엉덩이에 걸친 반바지를 내리고?.

케이트는 뻣뻣하게 서서 말했다. "실라스가 우리 집에 왔다는 얘기를 하려고 왔어요. 그는 우리가 낚시하러 갈 건지 알고 싶어 해요."

"우리?"

"당신에게 물어 봐 달래요."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묻겠소. 우리는 신혼여행 온 남편과 아내요.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소. 낚시하러 가겠소?"

그녀는 망설였다.

"뭐가 문제요?"

"아무도 나에게 물어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낚시하러 가는 것 말이오?"

"아뇨. 물론 그것도 포함돼요. 하지만 내 말은 아무도 내가 어떤 일을 원하는지 물어 본 사람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버지도 그렇고, ? 브라이스도요. 그들은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일도 아니죠."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다몬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전남편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녀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다니,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가?"낚시하러 가겠소, 케이트?"

그녀는 그가 진심으로 묻는 것인지 알아보려는 듯 유심히 그를 보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또 키스보다 안전하고."

"훨씬 안전하죠." 그녀는 춤을 추듯 가볍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실라스에게 말하겠어요."

낚시라. 그래, 낚시는 안전하지. 실라스의 배 정도 크기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실라스도 타고 있는데,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낚시터를 여기저기 옮겨 다녔고, 그 동안 실라스는 돛과 날씨를 살펴보았다. 날씨는 늦은 오후에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적당한 낚시터가 나타나면 실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몬은 군소리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다몬은 오늘 실라스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에게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는 법을 가르칠 때야 비로소 전문가적 솜씨를 보여 줬을 뿐이었다.

"못하겠어요." 그녀는 실라스가 준 작은 새우 미끼를 놓쳐 땅에 떨어뜨리고 나서 낚싯대를 옆으로 치우면서 말했다.

"이렇게 해 봐요." 그는 그녀에게 다시 미끼 끼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놀라운 인내심이었다.

케이트는 그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며 회의적인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꽤 진지해 보였다. 그가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였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했다. 그녀는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낚싯줄을 던졌다. "이제 어떻게 해요?"

"이제 기다리면 돼요."

갑자기 뭔가가 그녀의 낚싯줄을 팽팽히 당기면서 릴이 감기기 시작했다. "어머!"

다몬은 히죽 웃었다. "당신이 한 놈 낚은 것 같은데."

릴이 미친 듯이 감겼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릴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다. 마침내 그녀는 손잡이를 잡고 회전을 멈추게 하고는 다몬에게 쑥 내밀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 놈은 당신의 고기요. 릴을 감아서 들어 올려요."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송사리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의 팔은 부들부-들 떨렸다.

"잘하고 있어요." 실라스가 격려했다. "저기를 봐요. 올라오고 있어요."

케이트는 실라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은빛 물체가 수변에 부딪치며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고기를 배 안으로 끌어올렸을 때 그녀는 50파운드쯤 되는 바라쿠다가 걸려 있으려니 했다.

"능성어 새끼구만." 실라스는 못생기고 커다란 물고기를 그물로 건져 올리면서 말했다.

"내 것보다는 큰데." 다몬이 말했다. 고개를 돌린 케이트는 다몬도 한 마리를 잡았다는 걸 알았다.

"당신이 잡은 고기가 더 예쁜데요."

"고맙소." 그는 활짝 웃었다. 케이트도 같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미끼 끼우는 데 도움이 필요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 힘으로 해보겠어요."

그녀는 이번에는 좀더 힘들이지 않고 미끼를 바늘에 끼워 낚싯줄을 던졌다. 그녀는 다몬이 어제 자기 누이들이 쏟아놓은 불평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유진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녀가 브라이스와 결혼했을 때처럼"네가 뿌린 씨니까 네가 거두어라." 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브라이스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다몬이, 그 누이들이 얼마나 엉망이든, 그런 식으로 자기 가족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그가 더욱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설라스의 강인한 팔에 신경을 쏟았다. 그때 다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한 놈 잡았어."

케이트는 몸부림치면서 자기를 잡은 사내와 싸우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물고기는 그녀 자신을 연상시켰다.

"나는 두 시쯤 다른 다이버들을 데리고 박사 섬에 가봐야 해요." 두어 시간 낚시를 더 즐기고 났을 때 실라스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무지개 섬에 가서 수영을 즐기고 싶으세요. 나중에 데리러 갈까요?"

"난 수영복을 안 가지고 왔어요." 케이트가 말했다. 실라스는 히죽 웃었다. "괜찮아요."

케이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바지와 셔츠 차림으로 뱃놀이를 해도 될 것이다. 산들바람도 없어 몹시 덥고 몸도 끈끈하던 참이었다. "수영하러 가죠." 케이트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수영을 하면 좀 개운해질 것 같아요."

"부인에게 무지개 섬에 대해 벌써 얘기하셨군요?" 실라스가 다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아니." 그는 딱 잘라 말했다. "햇볕에 탈 텐데,케이트?"

"괜찮아요. 가실까요?"

"의지가 강한 부인이군요." 실라스는 웃었다. 다몬은 거북스러운 표정이었다.

"거기에 뭐가 있는데요, 상어?"

"아니오." 다몬이 말했다. 실라스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본토를 빙 돌아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무지개 섬은 말굽 모양으로 생기고 외진 곳에 있는 산호섬이었으며, 입구는 좁은 해협이었다. 원시 그대로의 분홍빛 해변이 숲으로 이어져 있는 이 섬은 천국 같았다.

"아름다워요. 에덴동산 같아요."

"바로 맞히셨습니다. " 실라스는 엔진을 켰다. "즐겁게 보내세요." 얄은 물 위에 그녀가 내리는 것을 도와 주면서 말했다. 그는 다몬에게 윙크를 하고 타월 몇 장을 건네주었다. "말씀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요, 이제 그 옷들을 젖지 않게 하세요."

그는 시동을 걸고 물거품을 일으키며 사라져 갔다.

"옷을 젖지 않게 하라뇨, 무슨 뜻이죠?" 케이트가 물었다. "수영하면서 어떻게 옷을?"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를 탓하지 마시오. 가자고 한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여기가. 이런 곳이라는 말은 안 했잖아요."

"나체촌. 여기는 전부터 나체 해변이었소."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당신이 가지 말자고 했어야죠."

"여기서 나체촌이니까 가면 안 된다고 말해야 했단 말이오?"

"꼭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모르겠어요? 다른 식으로 말할 수도 있잖아요."

"난 그렇게 했소. 몸이 탈 거라고 했잖소."

"좋아요, 우리가 꼭 벗을 필요는 없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관습이오."

"깨면 되죠."

"실라스는 이 섬의 어떤 여자들보다 입이 가벼워요. 그 사람이 말 안 할 것 같소?"

"당신은 수영하고 싶으면 하세요." 케이트는 말했다. "나는 실라스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요." 그녀는 타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수영을 끝낸 척할 거예요."

"머리도 젖은 것처럼 보이게 해야할 텐데."

케이트는 모래를 한 줌 쥐어 그에게 던졌다. "입 다물고 수영이나 하세요."

"나를 원망하지 말아요." 그는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녀는 봐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유혹이 너무 강했다. 다시 눈을 뜬 그녀는 다몬이 반바지를 엉덩이에서 내리고 발을 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녀가 완전히 벌거벗은 몸을 본 두 번째 남자였다. 물론 첫 번째는 브라이스였다. 금발에 날씬했던 브라이스는 늘 면도를 깔끔하게 했고, 옷을 입으면 세련되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맨몸은 다소 왜소하고 마르게 보였다. 다몬은 그 반대였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그의 모습은 남성미의 화신처럼 보였다. 그런데 벌거벗은 몸은 더욱 그렇게 보였다.

다몬은 날씬했지만 마르진 않았다. 단단한 근육질이었지만 지방의 흔적은 없었다. 그의 가슴은 넓고, 엉덩이는 작았으며, 그의케이트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물건을 점검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지?"

그는 바로 그녀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웃고 있었고 몸을 가리려는 동작은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그냥 수영이나 하세요." 그녀는 발 밑의 모래를 보고 말했다.

"정말 같이 가고 싶지 않소?"

"난 괜찮아요."

"마음대로 하시오. 무척 더울 텐데."

그는 그녀가 숱한 모기에 물어뜯길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연방 손으로 여기저기를 찰싹찰싹 때리며 모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타월로 몸을 감쌌다.

다몬은 30m쯤 떨어져 있었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그냥 물 위에 떠 있으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리에 붙은 모기를 손으로 치고, 팔에 붙은 또 한 놈을 쳤다. 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섬에는 산들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수평선에 두껍고 검은 구름이 걸려 있었으나 너무 천천히 움직였기 때문에 케이트는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한 것처럼 느꼈다. 몸이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흘낏 보았다. 실라스는 적어도 두시간 동안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에이 모르겠다. " 그녀는 나직이 내뱉고, 큰소리로 외쳤다. "눈 감고 있어요!"

"뭐라고?"

"내 말 안 들려요, 알렉사키스. 눈감으란 말이에요!"

그는 히죽 웃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녀는 자기가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를 것이다.

그녀는 타월로 느슨하게 몸을 감싸고 그 속으로 손을 넣어 셔츠를 벗었다. 브래지어가 몸에 달라붙어서 몸을 뒤틀며 그것을 벗는 동안 입으로 타월을 물고 있어야 했다. 그 다음, 그녀는 엉덩이를 흔들어 가며 짧고 흰 반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그녀는 옷가지를 단정하게 쌓고, 여전히 타월을 몸에 두른 채 물가로 걸어갔다.

"타월이 젖은 걸 보면 실라스가 눈치 챌 텐데." 6,7m 밖에 안 떨어진 거리에서 다몬이 말했다.

케이트는 빙글 돌아섰다. "눈을 감기로 했잖아요."

"내가 벌거벗은 여자 몸을 본 적이 없을 것 같소? 나는 여섯 누이와 함께 자랐소."

"당신이 본 여자들은 누이들뿐이겠죠."

"글쎄, 몇 명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웃으면서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거기 있어요."

그는 순순히 멈췄다. "당신 생각처럼 나는 실없이 여자와 노닥거리는 사람이 아니오."

그녀는 그와 말싸움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물이 무릎 깊이까지 올라오는 곳에 왔을 때, 타월을 벗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타월을 해변으로 던지고 유연한 동작으로 물속으로 다이빙했다. 그녀는 물 속에서 코를 바닥에 박고는 허우적거리며 올라왔다.

2, 3m까지 다가온 다몬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사람!" 그녀는 그를 물 먹일 생각으로 그에게 덤벼들었다. 이것이 실수의 시작이었다.

 

7

"어어! 케이트! 기다...."

하지만 기다림도 멈춤도 없었다. 오직 맹렬하고 거칠고 족쇄 풀린 격정만이 있었다. 그것은 곧 일 주일 이상 억눌린 감정과 분노, 갈망, 욕망의 결과였다.

물론 그 순간, 케이트에게 이렇다 할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녀가 원한 건 그의 입을 막아 웃지 못하게 하고, 그 잘난 얼굴에 번진 조롱의 웃음을 없애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덮친 힘은 그를 쓰러뜨리고도 남을 만큼 너무 강했다. 그가 그녀를 꽉 붙잡는 바람에 그들은 물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서로 머리가 부딪치고 다리가 엉키고 몸이 포개졌다. 자극을 받은 몸이 자연스럽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두 발을 딛고 일어났으나, 그들은 허리 깊이의 물속에서 여전히 떨면서 서로의 몸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놔 주려고 하지 않았다.

"...다몬."

"쉬잇." 그는 그녀를 당겨 서로의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그를 밀치고 안 된다고 말하며 그를 저지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너무 원했다.

그녀의 등을 쓰다듬던 그의 손이 슬그머니 미끄러지듯 내려와 엉덩이를 쥐었을 때 그녀의 손은 그의 팔을 더듬어 올라가 목을 감쌌다.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해변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녀처럼 자제력을 잃었고, 필사적이었으며,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물이 차오르는 모래 위에 그녀를 눕히더니 손으로 그녀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입술은그녀 얼굴의 입가를 더듬다가 다시 입술을 덮쳤다.

이것은 무모하고 마친 짓이었다. 이것은 사랑이었다.

비록 사랑이 아닐지 모르지만, 케이트가 아는 한 이것은 사랑과 가장 비슷한 감정,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느낀 것 중 사랑과 가장 가까운 감정이었다.

왜냐하면 다몬은 브라이스와는 전혀 달랐다. 브라이스는 너무 형식적이고 기계적이었으며 가끔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가 그녀를 갈망하는 게 너무 분명하여 케이트는 자연스럽게 그를 맞았다. 그녀는 엉덩이를 들어올려 그를 더욱 깊숙이 받아들였고 등을 구부림으로써 젖가슴을 그의 가슴에 비볐다.

"아아, 케이트. 참을 수 없소." 그의 율동이 점점 빠르고 강해졌다.

그녀도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달콤한 마찰에 점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갑자기 꽤 긴장하며 그의 근육이 팽팽해졌다. 그녀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는 마치 아직도 물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대양의 파도에 의해 위로, 한없이 위로 몸이 치솟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절정에서 미끄러지며, 밀려오는 파도 위로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온몸이 자유로워지는 듯,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믿을 수 없는 기분이 밀려왔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케이트는 눈을 감고 그 기분을 즐겼다. 그녀가 눈을 뜨자 다몬의 갈색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그가 굴러 내려와 브라이스가 항상 그런 것처럼 자기가 얼마나 실망했고, 그녀의 반응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불평하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다몬은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녀 옆에 자리 잡고 누웠다. 그들의 몸은 여전히 밀착되어 있었고, 그의 한 팔은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떨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잠시 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기다린 보람이 있군."

"무슨 뜻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게 욕구 불만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그는 아직도 웃으면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니면 우리 둘 사이의 공감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난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케이트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 일은 또 일어났다!

다몬의 손이 그녀 몸의 굴곡을 따라서, 그리고 움푹 들어간 곳을 더듬었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젖가슴을 탐사하듯 옮겨 다니다가 유두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속에서 미미한 전율이 일었다. 그녀는 신음하며 몸을 구부려 그를 잡아당겼다.

"당신도 좋아하지?" 그가 속삭였다. "나도 그렇소."

그는 그녀의 넓적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며 그녀가 반응하기를 재촉했다.

잠시 후 욕망의 절정에 이르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심장이 망치질하듯이 거칠게 뛰더니 이내 서서히 가라앉았다.

 

케이트는 머뭇거리다가 웃었다. 다몬도 미소로 답했다. 그는 상체를 일으키더니 그녀 몸에서 떨어졌다. "정말 좋았소."

케이트의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몬은 일어서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물로 들어갔다.

여기는 에덴 동산보다 더 근사한 곳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천국이었다. 물은 따뜻하고 맑았으며, 하늘은 푸르렀다.

그녀는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한번도 사랑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는 남자와 섹스를 나눴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할 수 없었다. 노력해 봤지만 후회할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그와 사랑을 즐긴 게 죄인가? 그 동안 아무도, 브라이스도 손댄 적이 없는 자아의 일부를 다몬의 도움으로 발견한 게 죄인가?

아니다. 케이트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기간이 길든 짧든, 그들은 결혼한 사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은 행복을 즐길 권리가 있다.

 

다몬은 실라스 보트의 선미에 말없이 앉아 자기와 3주전에 결혼한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 고상한 직업 여성 매키 케이트에게 그런 정열이 숨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는가?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를 매혹시키지 않았는가? 그녀의 아이보리색 피부를 만지고, 그녀와 입 맞추고, 윤기 나고 매끄러운 그녀의 머리칼을 매만지고 싶지 않았던가?

아마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로 남자를 사랑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녀가 스테파노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욕망에 다시 불을 붙이고 싶었다.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은 모양이구려." 보도를 걸어오는 그들을 보고 테레사가 말했다.

"일곱 시에 다시 오겠어요." 다몬이 케이트를 데리고 오두막 쪽으로 가며 말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는 오두막집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두 사람만 안에 남고 열쇠를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당신이 먼저 샤워해도 돼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몬을 보고 케이트가 말했다.

"같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소?"

"글쎄요. 나는 한 번도?"

다몬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당신은 한 번도 그렇게 은밀한 행위를 한 적이 없군?"

그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적어도 브라이스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자아, 한번 해봅시다. " 그녀를 욕설 쪽으로 끌고 가며 그가 말했다.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그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다몬이 샤워기를 틀고 물의 온도와 각도를 조절하는 동안 문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티셔츠를 훌렁 벗고 그녀에게 돌아섰다.

"내가 벗겨 주기를 기다리고 있소?"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었다. "?" 아뇨. 그녀가 제 손으로 셔츠를 벗으려 했으나 그가 손을 뻗어 저지했다.

"내가 해 주고 싶소."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녀 셔츠의 가장자리 밑에 손을 넣고 위로 들어올리더니 양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명치를 문지르다가 유두를 살짝 건드렸다. 그는 계속 셔츠를 말아올려 머리 위로 훌렁 벗긴 다음 발밑에 떨어뜨렸다.

케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몬은 그녀의 팔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그의 손길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춥소?"

"? 아뇨. 열이 나는걸요."

그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도 나를 만져 봐요."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약간은 경계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얼른 입에 침을 묻히더니 손을 들어 그의 가슴에 얹었다.

그녀의 손길은 그의 몸을 떨리게 했다. 그녀가 몸을 구부려 입술로 그의 가슴을 더듬자, 이윽고 다몬은 입김을 터뜨렸다.

"안 좋아하세요?"

"아니, 좋아해요. 너무 좋아하오."

다몬은 그녀 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케이트는 바지에서 발을 빼냈다. 그녀는 다시 그에게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로 그의 가슴을 더듬으면서 손으로는 그의 바지를 내렸다. 그는 바지를 발로 차고 케이트를 끌어안고 샤워의 물줄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팔로 그녀를 감싸고 목을 끌어안자, 부드럽고 매끄러운 그녀의 살갗이 느껴졌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그녀의 어깨와 등 밑으로 부드럽게 비누를 문질렀다. 그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거품을 만들어 그녀의 부드럽고 완벽한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가슴은 햇볕에 타서 짧은 핑크색을 띠고 있었다. 그가 완만한 원 모양을 그리며 그녀의 가슴을 비누로 문지를 때 그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도 떨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가슴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그녀는 손을 뻗어 엄청난 힘으로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톱이 그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배에 뜨거운 키스의 여운을 남기며 아래쪽으로 미끌어져 갔다. 그의 손은 그녀의 다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그가 비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케이트는 몸을 꿈틀거리면서 다리를 조금 벌리자 다몬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머리를 그녀의 복부에 밀어붙였다. 손가락은 햇볕에 그을린 그녀의 다리를 천천히 기어올라 와 신비롭고 부드러운 그녀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면서 미친 듯이 자기 머리칼을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다몬!"

그는 고개를 들어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으로는 계속 그녀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다리는 떨렸고, 엉덩이는 그의 손길에 맞춰 굽이쳤다.

"다몬! 뭘 하는 거예요!"

"당신을 즐겁게 해주려는 거요."

"알아요,하지만 당신은?"

"걱정 말아요. 나도 즐겁소." 그는 안심시켰다.

그녀는 지금 절정 직전의 순간이었다. 그는 그녀의 표정에서 그걸 알 수 있었고, 그의 손동작에 맞춰 거칠게 굽이치는 그녀의 몸놀림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그의 머리칼을 마구 헤치고 잡아당겼다.

그가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고 따뜻한 그녀의 몸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그녀는 다리로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더 오래 지속시키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를 감싼 그녀 몸의 느낌이 그를 압도했고 그는 그녀에 못지않은 열정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욕정에 굴복하기 전에 그녀에게 만족감을 선사했다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었다.

"하느님! 세상에, 이런 경험은 처음?" 그녀는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당신도 좋았어요?" 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는 팔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별로라고 생각했다면 당장 다시 하자고 했을거요."

케이트는 환히 웃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남씨l게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음탕한 여자처럼 행동했다.

그 날, 그들은 식사 후 다시 사랑을 나눴다. 그녀는 자신의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밤중에 그녀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은 다몬에게 다가가고픈, 결코 채워지지 않는 그녀의 욕망이었다. 잠에서 깬 그녀는 그의 등에 바싹 달라붙어 팔로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욕실로 갔다. 물론 그를 깨워서 또다시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죽도록 원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와의 섹스는 너무나 황홀하고, 흥분이 넘쳤으며 너무나 정열적인 경험이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스무 살 남짓의 세월 동안 그렇게 흐트러짐이 없고, 믿음직스럽고, 현실적인 여자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물론 그녀는 흠뻑 빠지는 사랑을 찾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자기가 사랑한 남자, 브라이스에게서 그것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욕실의 불을 끄고 조용히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은빛 달빛 아래에서 다몬은 큰 대 자로 누워 있었다. 케이트는 그의 옆에 살며시 앉아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더듬던 기억을, 사랑의 순간에 그의 얼굴에 나타난 긴장의 표정을 회상했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칼을 쓸어을렸다.

그가 눈을 떴다. "케이트?"

"미안해요. 잠이 안 와서요. 귀찮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는 웃었다. 노곤하고 잠이 덜 깬 미소였다. "그랬소?" 그는 그녀를 잡아당겨 다시 눕히고는 손으로 그녀 몸의 굴곡을 따라 쓰다듬었다.

"일주일이면 충분할지 모르겠소." 그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갖다대고 말했다.

"무슨 뜻이에요? 무엇이 충분하다는 말이죠?"

"신혼여행. 우리는 꼭 달라붙어서 우리 어머니가 정말 믿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손놀림은 그녀를 녹이고 있었다. "어떻소?"

"좋아요."

 

8

여행은 어느덧 아름다운 신혼여행으로 변했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섬, 매혹적인 날씨,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오두막 별채, 그리고 때때로 테레사가 던지는 격려의 미소가 있었다.

테레사는 눈치 챈 게 분명했다. 그 이튿날 그녀는 저녁식탁을 치우면서 두 사람에게 함박 웃음을 지었다. "두분 얼굴이 좋아 보여요."

"아줌마는 이제 승인 도장을 적은 거죠?" 다몬이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케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분을 보면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한 사람은 암탉을 잡아먹은 고양이 같은 표정이고, 또 한 사람은 그걸 즐기는 암탉 같군요."

다몬은 웃음을 터뜨렸고 케이트는 몹시 얼굴을 붉혔다.

"다몬 씨의 어머님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다몬은 아침식사를 하러 왔을 때 테레사에게 두 사람은 휴가 때까지 여기 머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테레사는 그 말을 지체 없이 나머지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마님께서는 스테파노스 씨와 소피아가 본채를 쓸 거라고 얘기하십니다. 다몬 씨는 계속 별채를 쓰시고요."

다몬은 테레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케이트에게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은밀하게 보냈다. "물론이죠."

테레사는 케이트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지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이죽거릴 필요는 업잖아요." 테레사가 떠나자 그녀는 중얼거렸다.

다몬은 악의 없는 순수한 눈빛을 띠었다. "뭘 말이오?" 그는 웃음을 터뜨렸고, 곧 그녀에게 발길질당한 복사뼈를 어루만졌다. "당신은 얼굴이 빨개졌을 때가 예뻐요."

케이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매우 고맙군요."

"정말이오, 케이트." 그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우리 결혼은 서로 편의를 봐 주기 위한 결과예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나라는 여자는 정말 편리한 여자죠." 그녀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다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팔을 뻗었다. 그녀는 머뭇거렸다. 그는 팔을 거두지 않은 채 기다렸고,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당겨서 일으켰다.

또 편리한 사랑을 원하는가? 그녀는 의심스러웠지만 감히 물어 볼 수 없었다. 그의 표정에는 뭔지 모를 위험한 기미,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기미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녀는 자문해 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녀는 그것에 반대할 마음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몬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해변으로 내려갔다.

조난선의 표류 화물과 투하물(긴급할 때 안전을 위해버리는 뱃짐)로 만든 조각품에 도달할 때까지 다몬은 말없이 해변을 따라 걸어갔다.

케이트는 이런 길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각품에 가까이 갈 때까지 그 조각품이 무엇으로 구성된 지도 몰랐다. 다몬은 서둘러 움직이려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누가 이걸 만들었어요?"

"이곳을 지나간 사람이면 누구나. 이것은 우리가 처음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소. 폭풍에 쓸려 없어져도 누군가 다시 시작하지."

"아름다워요." 갑자기 그는 목에 두른 타월을 빼고 물었다. "수영하고 싶소?"

"여기서요?"

"저쪽에 근사한 바위섬이 있소."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당신이 내키지 않으면."

"좋아요." 케이트는 얼른 말했다. "몸에서 점점 열이 나고 있어요." 그녀는 자기 뺨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덧붙였다. "그런 종류의 열기 말고요."

그는 타월을 땅에 떨어뜨리고 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물가까지 가서 뒤돌았다. 그는 그녀가 스노클(잠수용 호흡 기구)과 오리발을 착용하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도 그것들을 착용하고 케이트의 손을 이끌고 바위섬을 향해 헤엄쳐 갔다.

"당신이 좋아할 줄 알았소." 그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녀도 웃어 주었다. 갑자기 햇살이 다시 밝아지는 것 같았다.

"한낮의 햇살은 너무 뜨거워요." 그는 그 말을 한 후 그녀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번에는 그녀를 침실로 이끌었다. 다시 한 번 샤워를 하고 난 다음, 그들은 오후의 정사를 나누고 함께 침대에 누워 낮잠을 즐겼다.

 

"이건 기적이야." 소피아가 말했다.

"그래." 엘렉트라가 말을 받았다.

"현대의 팔 대 불가사의 중 하나야." 판도라도 수긍했다.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아마 믿지 않았을 거야."

"무슨 소리들을 하시는 거예요?" 케이트는 시누이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비치파라솔 아래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다몬은 얕은 물가에서 조카딸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몬이 쟤들한테 관심을 쏟는 게 나 때문이란 말씀인가요? 말도 안 돼요.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도 그이는 쟤들을 데리고 나가 같이 놀았어요."

"저 애는 케이트에게 열을 올리고 있는 때에 애들과 놀아 줬어. 그 전까지는 애들의 생일 파티 때에도 FAO 슈바르츠(뉴욕의 유명한 장난감 체인점)가게의 협력 구매자가 골라 준 선물을 들고 왔을 뿐인데. 한 번도 수영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구. 잠자리에서 동화를 읽어 준 적도 없고."

"저어, 그걷 제 잘못 같아요. 어젯밤에 제가 애들한테 동화를 읽어 주는데? 그이가 들렸거든요."

"저 애는 사랑에 빠졌어." 클로에가 말했다.

"그것도 아주 깊이." 판도라였다.

"그리고 아빠가 되고 싶은가 봐." 엘렉트라가 말했다.

"놀라운 일이야." 소피아가 다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녀는 땅에 구멍을 파고 숨고 싶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수영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잰걸음으로 해변을 따라 걸어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몬이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밀려오는 파도 밑으로 들어가 곧장 앞으로 헤쳐 나갈 뿐이었다. 그녀는 숨 돌릴 틈이 필요했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몬은 그녀를 뒤쫓아갔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소? 내 누이들이 당신을 괴롭혀요?"

"상관 업잖아요?" 케이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아 그녀를 세웠다. 케이트는 바닥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발을 디딜 만한 곳을 찾았다.

"다몬!"

그는 그녀를 자기 몸 쪽으로 잡아당겨 그녀의 머리가 물 밑으로 내려가지 않게 붙잡았다. "내가 잡았으니 몸을 풀어요."

"이렇게 하는데 내가 어떻게 몸을 풀 수 있겠어요?" 그녀는 그의 허벅지가 자기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고 그의 가슴이 자기 젖가슴에 강하게 밀착되는 것을 느꼈다.

"어젯밤에는 꽤 잘했소." 그는 그녀의 귀에다 속삭이고 입을 맞추고 나서 귓불을 살며시 깨물었다. 전율이 그녀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다몬! 그만둬요! 사람들이 보고 있어요!"

"그래?" 이번에는 입으로 그녀의 턱선을 따라 스치듯이 더듬더니 더욱 강하게 그녀의 입을 덮쳤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잡고 밀치려고 했다. 케이트는 욕망이 되살아나는 증거를 온몸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 그의 모습, 벌거벗은 그의 몸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저 사람들이 뭐라고 말했소, 케이트?"

"?누구요?"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저들은 당신이 나와 사랑에 빠진 줄 알고 있어요."

"그게 당신 맘에 안 들어요?"

그녀는 그의 질문을 무시했다. "이건 분명히 우리가 바라던 거예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거의 일 년이란 기간이 남아 있으니까,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이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케이트?"

"그 다음요?"

"추수 감사절 휴가가 끝나고 다시 집에 돌아간 다음 말이오. 당신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라오?"

그녀는 최대한 신경 안 쓴다는 표정을 지었다. ", 난 신경 안 써요. 그냥 어떻게 될지 두고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는 그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도대체 그녀에게서 뭘 바라는가? 영원한 사랑의 선언인가? 그래, 맞아, 알렉사키스. 다몬은 마치 지옥의 사냥개가 뒤쫓아 오는 양 해변을 달리면서 자문해 보았다.

추수 감사절 주말을 여기서 보내자고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몰라. 그는 단단하게 굳은 모래사장을 뛰어가면서 생각했다. 물론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단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와 케이트는 무지개섬에서 그날 관계를 가졌다. 그는 자기 생애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황홀한 정사를 케이트와 즐겼다.

그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는 그녀와의 대화가 좋았다. 그녀는 재치가 있고 박식했다.

그런데 왜? 왜 신경이 쓰이는가? 그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는가? 어머니와 가족들은 그가 사랑에 빠쳤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맙소사,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모래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디 갔다 왔어요?"

"밖에."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레이스 달린 흰 잠옷은 그녀의 젖가슴을 가리지 못했다. 그는 신음소리를 냈다.

"뭐가 잘못됐어요?"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허리춤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바지를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바지를 걷어차 벗어 버리고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의 손잡이를 찬물 쪽으로 돌렸다. 잠시 동안 그는 머리를 대리석 타일에 기대고 서서 심호흡을 하며 욕망을 가라앉히려 안간힘을 썼다.

욕실 문이 열렸다.

그가 뒤돌아보았다. "뭘 원해?"

그의 목소리는 그녀를 멈칫거리게 할 만큼 거칠었다. 잠시 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도와 줄까 해서요."

그녀는 벌써 손을 수도꼭지 밑에 갖다 대고는 차가운 물줄기의 냉기에 몸을 떨었다.

"뭘 하는 거요?"

"목욕시켜 주려고요."

"나는 샤워를 하고 싶은데."

하지만 케이트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었다.

"등을 밀어 줄게요."

"좋지."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욕탕 안으로 들어가 물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그게 바로 내가 두려워하는 거요."

"왜요?"

"신경 쓰지 마시오."

"나와 사랑에 빠지는 게 두렵죠?"

그는 코웃음을 쳤다. 놀랍게도 그녀의 눈에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그녀에게 목욕 수건을 건네주었다. "여기 들어왔으니까 쓸모 있는 일을 해야지."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실망의 빛이 사라졌다. 그녀는 수건을 받아 그의 몸을 밀며, 그의 어깨와 둥에 비누를 칠하며, 더없이 행복했다.

"케이트."

"으음?" 그의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는 그녀의 눈은 거슴츠레 변하면서 매혹적인 눈길로 변했다.

그는 물속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그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다몬!" 그녀는 그의 손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타월을 들고 욕탕 쪽으로 돌아왔다.

"몸을 마저 씻기게 해줘요."

그는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짓이 내 몸을 씻기는 거요?"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브라이스에게도 이렇게 해주었소?"

그녀는 주춤하며 시선을 돌렸다. "브라이스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그녀에게서 타월을 빼앗아 제손으로 몸을 닦았다.

"정말이에요." 케이트는 우겼다.

그는 얼굴을 닦으며 타월 위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

"." 그녀는 뒤돌아 허둥대며 욕실을 나갔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욕실에서 비치는 불 때문에 그녀가 그의 반대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욕실의 불을 끄고 방안을 걸어가 그녀 곁에 섰다.

그는 시트를 젖히고 그녀 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녀의 팔을 만졌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는 그녀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손으로 그녀의 맨살을 쓰다듬자 욕망이 금세 되살아났다. 그는 더욱 가까이 붙었다. "케이트, 이리 와요." 그는 그녀의 몸을 돌려 끌어안고 그녀의 뺨과 어깨,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는 당신을 원하오."

케이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 두려움, 현명한 생각을 억눌렀다. 그녀 역시 그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이런 감정이 정확히 언제 싹텄는지, 언제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뀌고, 언제 관심이 호감으로 변하고, 언제 호감이 사랑으로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이런 감정은 그 사람들이 떠나기 전-섬에서의 마지막 밤, 그녀와 다몬, 다몬의 가족 모두가 본채에 모였던 어젯밤에 이미 생겼다. 그들은 그리스 민요에서부터 비틀스 애창곡까지 모든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주방에서 다몬의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차를 들고 나왔을 때 그는 그녀의 팔을 낚아채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는 두 팔로 꽉 껴안았다.

아마 다몬은 연기하느라 그럴 뿐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의 생각을 몰랐다. 그는 뉴욕에 돌아가서도 일 속에 파묻히지 않았다. 그는 가끔 저녁에 일찍 퇴근하여 소피아의 집에 있는 그녀를 데리고 나가 저녁을 사주었다. 그리고 또 소피아와 스테파노스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 쌍둥이 소녀들도 함께 데리고 가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케이트는 다몬이 장차 어떤 아빠가 될지에 대해 보다 큰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대부분 그녀를 곧바로 집에 데려다 주었다. 빈센트 부인에게 저녁에는 쉬라고 이르고는, 케이트를 도와 저녁을 함께 준비하기도 했다. 설거지가 끝나면 그는 그녀의 하루가 어땠는지 묻고, 그녀의 고민거리를 귀담아듣고, 자기 문제를 같이 그녀와 같이 고민했다. 그 다음에는 그녀를 침대로 데리고 가 정열적으로, 온 정신을 다 쏟아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추수감사철 휴가는 점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고, 이제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와 있었다. 시작은 어떠했든, 그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함께 꾸려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가까워지고, 케이트의 얼굴에서는 하루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몬의 사려 갚은 시선을 받으며 활짝 꽃을 피웠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러길 바랐다.

 

9

"내가 이스트 햄프턴에 가서 주말을 보내도 정말 괜찮아요?" 케이트는 창문 옆 소파에 앉아 창을 통해 센트랄 파크를 내다보고 있는 시누이에게 물었다. 그녀는 소피아가 아니라고 말하기를 바랐다.

소피아는 손을 저었다. "그럼. 난 괜찮아. 다몬은 즐겁지 않겠지만."

케이트는 그녀 말이 맞기를 바랐다. 다몬은 그녀의 이스트 햄프턴 여행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대신 소피아를 도와 줄 보모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나는 네가 왜 이 일을 고집하는지 모르겠어. 다몬이 너를 먹여 살릴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일이 필요해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도 자기를 사랑하는지는 몰랐다. 그는 그녀를 좋아했고, 둘이 나누는 정사를 좋아했다. 그 이상을?

케이트는 바랐다.

", 케이트!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 못하겠네." 소피아가 퍼뜩 생각난 듯 말했다.

케이트는 진작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오래 전 아리스토틀 알렉사키스가 핵심 지사를 미국에 설립한 이래 알렉사키스 그룹은 크리스마스날 거래를 하는 모든 사람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 왔다.

처음에는 순수한 사업상 행사로 시작했지만 점점 가족 모임의 성격으로 되었다. 더구나 올해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온 가족이 참석하는 해였다.

요즘 들어 매년 자매 중 한두 명이 빠졌다. 다몬의 어머니도 한 번 불참한 적이 있고, 3년 전에는 다몬 자신이 피할 수 없는 분쟁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과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었다. 내가 파티에 참석하고 안 하는 문제에 그가 관심이 있을까? 그는 진정으로 그녀가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다몬은 네가 파티에 못 가도록 놔두지 않을 걸?" 소피아는 이렇게 장담했다.

그녀가 쌍둥이를 데리고 월맨 링크로 스케이트를 타러 갔을 때 그는 전화를 걸었다.

"다몬은 몬트리올로 갈 거라고 말하던데." 그녀와 여자애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소피아가 전했다. "사실은 스테파노스가 담당한 일 때문인데, 다몬은 스테파노스가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해산달이 다 됐기 때문이야." 그녀는 사과하듯이 덧붙였다.

"이해해요. 그이가 언제 온다고 얘기 안 하던가요?"

소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밤 여기서 자. 다몬도 없는데 굳이 집에 갈 필요 없잖아."

"나는 이스트 햄프턴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그녀는 소피아에게 말했다.

 

그는 이날, 몬트리올에 가서 케이트와 통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집에 없었다. 요즘에는 빈센트 부인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들이 그녀에게 주말 휴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소피아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머니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케이트가 어디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저녁 내내 무슈 벨리아드와의 회의 중에도 틈틈이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들리는 것은 자동 응답기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뿐이었다.

그가 호텔로 돌아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다시 소피아의 집에 전화했다.

스테파노스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케이트 어디 있어요?"

"내가 어떻게 알아?" 스테파노스는 졸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소피아에게 물어 봐요."

"지금 자고 있어."

"깨워요."

"절대 안 돼!요즘 뱃속의 아기 때문에 잠이 부족하단 말이야. 그리고 나도?"

"깨워요!"

스테파노스는 그렇게 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케이트는 이스트 햄프턴에 있대. 소피아가 그러는데, 일 때문에 갔대. 이제 자." 그는 전화를 끊었다.

다몬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가 자기 품에 포근히 안기는 모습, 사랑을 나눌 때 쾌감을 못 이긴 그녀의 신음소리와 헐떡임을 생각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 날은 그가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녀 없이 혼자 자는 첫 번째 밤이었다.

그는 동이 타마자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이스트 햄프먼 어디에 있어요?"

"그건 몰라." 소피아는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달하지 마. 네가 먼저 그녀를 버렸잖아."

"나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어요!" 다몬은 거의 고함을 질렀다.

"어쨌든. 다시 잠 좀 자도 되겠니? 나는 휴식이 필요해, 다몬. 너도 애가 생기면 이해할 거다. "

"오후에 밸리아드 씨와 회의가 있어요. 오래 걸릴 거예요. 회의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케이트에게 그렇게 전해 줘요."

그는 밸리아드와 헤어지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평소 아무 문제없이 구할 수 있었던 1등석은 크리스마스 휴가 때문에 품귀 상태였고, 보통석은 오래 전에 매진되었다.

한 시간 후 빈 좌석이 하나 나왔을 때 다몬은 행운의 여신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라가디아 공항(뉴욕 시의 국제 공항)으로 날아가?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눈발을 헤치며 파티가 이미 거행되고 있는 이스트사이드 호텔로 바로 직행했다.

그는 축제 분위기로 치장된 연회실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쉬지 않고 뛰어갔다. 그리고 케이트의 흔적을 서둘러 찾았다.

아레테가 어디선가 나타나 그의 팔을 잡았다.

"왜 옷을 안 갈아입었어? 됐어. 네가 돌아왔으니까. 제시간에 왔네. 프레데릭스 부인과 인사하러 가." 그녀는 그를 끌고 어떤 부인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녀는 알렉사키스 사의 주요 구매자중 한 사람의 부인이었다.

"케이트는 어디 있어?" 다몬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아레테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봤어?"

"아니." 그녀는 그의 몸을 돌려 마사 프레데릭스가 있는 쪽으로 떼밀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한참 동안 군중 속을 샅샅이 살피며 아내의 모습을 찾았다. 그는 잠깐 소피아 옆에서 그녀를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자가 다몬이 있는 쪽으로 돌아서자, 케이트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녀가 아직 안 돌아왔을까? 그는 소피아에게 갔다. 소피아는 아레테가 준비해 준 우아한 흰색 실크 소파에 앉아 있었다.

"케이트는 어디 있어? 돌아왔어?" 다몬은 누나에게 물었다.

소피아는 그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케이트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녀는 어제 하루 종일 발로 식구들과 보냈고, 최고의 보모는 엘리 파트리지라고 생각했다. 엘리는 60대 여성으로 그녀가 소피아가 해산한 후를 대비해 케이트 자신의 대리 보모로서 염두에 둔 사람이었다.

다행스럽게 엘리는 기꺼이 오고 싶어 했다. 사실 케이트의 재촉을 받고 그녀는 맨해튼 발 야간 열차를 타고 어젯밤에 도착했다. 그녀를 발로 가족에게 소개할 무렵에는 이미 케이트 자신이 뉴욕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네드 발로가 그녀를 정거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녀는 복도를 지나 침실로 살며시 걸어갔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욕실 문 앞에 다다르자 그녀는 걸음을 늦추었다. 그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욕실 문은 살짝 열려 있어 그녀는 거울을 마주 보고 서있는 다몬의 둥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검은색 모직 바지 외에는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다. 케이트는 면도하는 동작에 따라 수축되는 그의 근육을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녀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거울을 통해 그녀를 흘낏 보더니 뒤돌아섰다. 한 손에는 여전히 면도칼을 들고 있었고, 한쪽 얼굴에는 비누거품이 남아 있었다.

"돌아왔군요." 그녀는 그를 향해 걸어가면서 미소를 지였다. "언제 돌아왔어요?"

"어젯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웃지도 않았다. 전혀 연인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 . 그럼? 어쨌든 파티엔 갔겠군요?"

"나는 주최자요." 그는 잘라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몬트리올에 갔잖아요. ? 미안해요. 나도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발로네 집에서?"

"걱정 마시오." 그는 돌아서서 면도를 계속 했다.

그녀는 실망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당신도 할 일이 있잖소." 그는 면도를 마치고 욕실을 나오면서 한마디 던졌다.

케이트는 목이 메었다. 그녀는 침실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식사 좀 준비할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 먹었소. 출근해야 돼요."

"오늘은 일요일이에요."

"할 일이 있소."

l5분 후 그는 떠났다. 그는 주방으로 들어와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케이트는 문을 닫고 천천히 주방으로 들어왔다. 어젯밤의 폭풍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침 식사 후 그녀는 소피아의 집에 갔다. 소피아는 반가워했다. "내가 애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기를 바라세요?"

"그렇게 해 주겠어? 한두 시간만 부탁할게. 어젯밤에는 아기 때문에 한잠도 못 갔거든."

소피아는 침실로 들어갔고 케이트는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장갑을 끼웠다. 케이트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는데 서재 문이 열렸다. 스테파노스가 그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돌아왔군요." 그는 케이트에게 말했다. 그녀를 보고 다몬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빠, 케이트 아줌마와 스케이트 타러 가는 길이에요."

레다가 그에게 말했다. "아빠도 같이 가요."

"그렇게 해요, 아빠." 크리스티나도 졸랐다. "얘들아, 아빠는 할 일이 많으시단다. "

케이트가 얼른 말했으나 스테파노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고말고."

케이트는 뭐라고 한마디 해 주려고 입을 벌렸다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 앞이 아닌가.

"걱정 말아요."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나는 교훈을 얻은 사람이니까."

"무슨 교훈, 아빠?" 크리스티나가 다그치듯 물었다.

스테파노스는 웃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 가자."

공원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케이트는 그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는 아이들이 스케이트 끈을 묶는 것을 도와 주고 뒤로 물러서서는 구경했다. 아이들이 그의 손을 놓고 멀리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는 자랑스런 아버지의 표정이 역력했다. "놀라워요. 아기인가 싶더니 어느새 학교갈 나이가 되는군요."

케이트는 말없이 서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정신 차린 것은 당신들 덕분이오. 당신과 다몬."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

"당신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소피아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소피아와 결혼할 당시 나는 그녀를 사랑했어요.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주었지요. 그녀 집안의 사업에 참가하는 것도 포함돼 있어요. 하지만 나는 언제나 다몬 다음이었죠."

케이트는 그의 말에 흥미를 느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 때문에 나는 점점 신경이 곤두섰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가족들은 모두 다몬이라면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미칠 지경이었죠. 그래서?" 그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는 비뚤어지기 시작했어요. 결국 나는 소피아에게 실망스런 존재가 되어 버린 겁니다. "

"소피아는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케이트는 재빨리 말했다. "나는 그녀가 당신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그래요. 하지만 내 눈을 뜨게 만든 건 당신이었죠." 그는 발끝으로 눈 위에 구멍을 파며 말했다. "나는 다몬이 당신에게서 나를 손떼게 하려고 당신과 결혼한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그가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죠."

케이트는 눈을 깜빡였다. "그래요? 언제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었죠. 처음부터요.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도 그렇고. 섬에서도 그는 당신이 자기 시야에서 벗어나는 걸 못 봤잖아요?"

그건 섹스 때문이지, 케이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희망의 기둥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어젯밤 당신이 없을 때 그의 모습을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는 밤늦게 몬트리올에서 돌아오자마자 파티장으로 달려왔어요.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요. 그리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했죠."

"그것이 그이가 날 매우 사랑한다는 증거란 말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그는 아마 엘레니에게 침을 흘렸을 겁니다. "

"옐레니가 누군데요?"

"판도라의 친구죠. 아주 매력적인 여자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인어른의 동료였죠. 엘레니 자신도 섬유 분야에 무슨 사업체를 가지고 있지만, 판도라가 그러는데 적당한 상대만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집어치울 거래요."

"다몬 같은 사람 말인가요?"

스테파노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아니죠. 그는 당신과 결혼했으니까. 어어, 레다가 넘어졌어. 코방아를 쪘네!" 스테파노스는 자기 딸을 돌보기 위해 아이스링크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다몬이 나를 사랑한다.

케이트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정월 초 이튿날이 되었다. 소피아는 작은 통증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깼다. 나중에 그녀가 말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식구들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작은 통증이 5분 간격의 진통으로 발전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그녀는 남편을 깨웠다.

"지금 빨리 와줘요!" 케이트가 침대 옆 전화기를 들자 공포에 질린 스테파노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가겠어요." 소피아는 곧 병원으로 가 분만을 시작했고 케이트는 쌍둥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병원에서 전화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오후 다섯 시에 전화가 왔다.

"아들이에요." 스테파노스의 목소리는 마치 자기가 분만한 것처럼 지쳐 있었다.

"축하해요. 소피아는 어때요?"

"좋아요. 하지만 지쳤어요. 당신이 애들을 데리고 오늘밤에 아기를 보러 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내일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케이트는 아기가 몹시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몬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가지고 곧 갈 거예요." 잠시 후, 다몬이 폴라로이드 사진과 중국 음식을 들고 돌아왔다. 여자애들은 갓 태어난 남동생 사진을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음식은 먹지 않고 반찬과 돼지고기만을 집적거렸다.

"밥을 제대로 먹고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너회들은 내일 아기를 볼 수 없을 거야."

계집애들은 식사를 할 만큼 충분히 마음이 진정되었다. 한 시간 동안 TV를 보고 나서야 아이들은 불을 끄고 잠이 들었고, 집에는 이제 다몬과 케이트만 남았다.

지난 며칠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고 음식에 대해 두서없이 잡담을 주고받는 것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케이트가 거실로 돌아와 보니 다몬은 잡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아기가 예뻐요, 그렇죠?" 그녀는 계집애들의 잠자리를 봐주고 오면서 물었다.

다몬은 흘끗 쳐다보았다. "주름살투성이에다 온몸이 빨갛더군."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들은 다 그래요. 점점 모습이 변하죠."

다몬은 어깨를 으쓱했다. "잘됐군." 그는 다시 잡지를 보기 시작했다.

케이트는 일부러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가 팔로 감싸고 끌어안아 주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가까이 달라붙었다.

그는 약간 긴장하는 듯하더니 일어서서 뒷덜미를 손으로 문질렀다. "난 할 일이 많소. 병원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직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서류 가방을 접어들었다. "나는 스테파노스의 서재를 쓰겠소."

스테파노스가 열 시에 돌아왔을 때에도 그는 거기에 있었다. 케이트는 갓 태어난 자기 아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고, 웃어 주고, 칭찬을 해주고 나서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다몬은 이 방에서 자기로 한 적이 있다.

다몬이 자정이 넘은 시각에 방에 들어와 어둠 속에서 옷을 벗고 그녀의 옆자리로 기어들어올 때에도 그녀는 깨어 있었다.

"다몬?" 그녀는 그의 팔을 만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긴장하더니 그녀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팔로 그녀를 안고 키스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몸이 부서지도록 사랑을 나누고는 잠들었다.

 

그녀는 다음날 오후 네스터 스테파노스를 봤다. 아기는 주름투성이에다 온몸이 빨겠지만 매우 예뻤다. 그녀는 소피아의 침대 옆에 앉아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가 예뻐요!"

케이트는 헬레나, 판도라, 그리고 복도에 서 있는 모르는 여자를 올려다 보았다.다몬은 그 뒤쪽에 서 있었다. 그가 그들을 집안으로 안내하자 헬레나는 미지의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가 말했다. "아기가 참 예뻐요."

"물론 예쁘고말고, 엘레니." 헬레나가 말했다.

언젠가 스테파노스가 말했던 엘레니는 웃으며 걸어와 케이트 옆에 섰다. 그리고 그녀와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좀 안아 봐도 될까요?"

케이트는 머뭇거리며 아기를 건네 주고는 그녀가 아기를 바싹 안고 들여다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아기를 갖고 싶지 않으세요, 다몬?" 엘레니는 친구의 오빠를 옆눈으로 보며 말했다.

이때 케이트는 다몬의 얼굴에서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 즉 애욕과 예전에 케이트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던 갈망의 표정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케이트를 바라보았을 때 뭔가가 달라졌다.

그의 표정에서 애욕감은 사라졌고, 갈망기는 수그러들었다. 그의 감정의 문은 닫힌 것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의 결혼 생활이 애초에 다몬이 제의했던 가짜 결혼 이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서로의 몸에서 취했던 정열, 섹스, 환희는 육체적 욕망의 방출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도 남자가 아닌가? 남자들은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섹스를 즐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의 아이를 원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엘레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원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엘레니가 했든 다른 여자가 됐든 케이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녀는 이스트 햄프턴에 가 있는 파트리지 부인을 소피아의 집에 들어앉히고 쌍둥이와 아기를 돌보게 했다.

그녀는 아기에게 키스하고 계집애들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너는 아주 떠나는 게 아니잖아." 소피아가 말했다. "다몬의 집으로 가는 것 뿐이잖아."

그녀는 다시 웃으면서 뒷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눈물을 참느라 그녀의 눈이 깡빡였다. 그녀는 다몬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에게 메모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짐을 꾸리고 떠났다.

 

10

그녀는 떠났다.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믿고 싶지 않았다.

고통은 끔찍했다. 그가 느끼는 공허감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예상한 일이라고 자신을 타일렀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가 소피아의 병실에서 의자에 앉아 아기를 안고 있던 케이트의 모습을 봤을 때 그는 자기들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너무 아름답고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엘레니가 아기를 그녀의 손에서 걷네 받았을 때 케이트는 빼앗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아기를 갖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들의 아기를. 자기 조카를 안고 있는 엘레니를 바라보고 있을 때도 그는 마음의 눔으로 여전히 케이트를 보았고, 케이트가 자기의 아기를 껴안고 들여다보고 나서 마치 다몬을 자기의 세계를 완성시켜 준 사람처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가버린 것이다. 아무 경고 없이. 의논도 없이. 간단한 메모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우리는 너무 오래 사귄 것 같아요. 나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안부를 전하며, 케이트.

 

그녀가 떠난 지 일 주일이 되었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했다. 그는 침대에서만큼은, 죽은 브라이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여

그녀에게 충실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기를 봤을 때,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그녀가 다몬과 즐겼던 육체적 관계는 시들해 갔다. 그녀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다몬과 가족을 이루는 것은 분명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소파에 벌렁 누워 흐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세 시에 벨리아드 씨와 약속이 있었다. 그 노인은 거래를 마무리 짓기 위해 몬트리올에서 비행기로 왔다. 다몬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몇 시간 전에 사무실에 도착

했어야 했다. 그가 출근해도 그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레테는 골백번도 넘게 그를 다그쳤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듣고 있지 않잖아?"

"벨리아드 서류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스테파노스가 물었다.

"다몬, 어디 아파요?"

"다몬, 케이트하고 뭐가 잘못됐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가 떠났다니?" 소피아는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다"케이트한테 무순 것을 했는데, 다몬."

다몬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응접실에 앉아 손에 든 스카치 잔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는 잔을 비우고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다몬, 우리가 도와줄 일 있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 힘으로 해결하겠어요."

케이트는 다몬을 떠나는 날, 뉴욕을 떠났다. 그녀는 그가 뒤쫓아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일 쫓아오면 그에게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뉴잉글랜드로 갔다.

케이프코드는 l월에 지내기에 적당한 장소 같았다. 그녀의 마음처럼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녀는 거의 일 주일을 그곳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풀고 약간의 일용품을 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는 것이 어떠했나를 회상하며 잠을 못 이루었고, 일에 몰두했다.

일은 브라이스의 배신과 죽음이 안겨 준 고통으로부터 그녀를 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몬에 대한 사랑으로부터는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삼 일 동안 그녀는 면접, 고객 가정들의 점검, 가정과 보모들을 연결시키는 업무에 몰두했다.

"사장님은 정말 쉬셔야 돼요." 목요일 늦은 저녁, 그녀의 비서인 그레타가 말했다. "휴가를 갔다 왔는데도 더 안 좋아 보여요."

"감기에 걸렸어." 케이트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집에 가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주무세요." 하지만 케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일을 해야 돼." 그레타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서 서류를 뽑았다. "그러시다면 제가 일을 돕도록 해 주시든지요. 지금 발로 씨 집을 미혼 여성 칸에 꽂고 있잖아요."

그레타가 옆에 있는 동안에는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섯 시에 그레타가 버스를 타고 갈 때까지 참았다. 그 다음에는 위선을 팽개쳤다. 간간이 나오던 훌쩍임이 흐느낌으로 변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케이트는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와 주십시오."

"케이트? 당신 맞아요? 문 열어요!"

퍼뜩 놀란 그녀는 눈물을 홈치고는 문으로 갔다. "스테파노스예요?"

그녀는 아직도 긴가민가하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맞았다. 그였다.

"이럴 수가!" 그는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무슨 일이에요? 소피이에게 무슨 일 생겼어요? 아기는요? 파트리지 부인이?"

"소피아는 잘 있어요. 아기도 잘 있구요. 파트리지 부인은 천사 같은 분이고."

"그러면 왜?"

그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다몬이 문제예요."

케이트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다몬? 다몬에게 무슨 일이 잘못됐어요?"

"다몬이 먹지도 자지도 않아요. 면도도 안 하고 일도 안 해요. 상상해 봐요. 다몬이 일을 하지 않는단 말이오! 술만 계속 먹고 있어요. 이유가 뭔지 알아요? 당신이 떠났기 때문이에요. 그게 이유란 말이오!"

"나는?" 그녀는 더듬거렸다.

"왜 그를 버렸어요?"

그녀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 이유는 다몬이 잘 알아요." 그녀는 창 밖의 어둠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하더구만. 하지만 이건 말도 안돼요. 당신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잖소!"

케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인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상대방은? 희망 사항일 뿐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보세요, 케이트. 결혼은 복잡해요. 결혼은 완벽한 행복에 이르는 마라톤과도 같아요. 내가 엉망으로 만들 뻔 했던 우리 결혼 생활이 그 증거요. 당신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잖소. 소피아와 나처럼."

"우린 달라요!" 그녀는 대들었다.

스테파노스는 그냥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면 당신은 왜 울었소?" 그는 아직도 그녀의 손에 뭉쳐진 채 들려 있는 티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다몬은 왜 죽도록 술만 퍼먹고 있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봐요, 케이트. 한번 모험을 해 봐요. 집으로 가세요. 나에게는 효과가 있었어요."

그녀는 사무실 문을 잠그고 거리로 나섰다.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바람이 불어와 그녀는 떨었다. 그녀는 서둘러 모통이를 돌아 택시를 잡아타고 따뜻한 집으로 갔다

하지만 자기 아파트에서도 그녀는 몸이 떨렸다. 그녀는 스프 한 접시를 억지로 먹었으나 냉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몬이 일도 안 하고,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는다니. 그이도 감기에 걸렸나, 그녀는 궁금했다.

그녀는 감히 희망을 가져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인생을 더 망치게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으나 그녀는 아버지의 딸이었다. 그녀는 기꺼이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코트를 다시 벗고,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거리의 냉기 속으로 다시 나아갔다. 다몬의 아파트에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없는지도 모른다. 스테파노스가 과장해서 말했는지도 모른다. 공연히 이곳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그녀는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파트는 어두웠다. 빈 집이었다. 다몬은 여기 없다. 스테파노스가 잘못 안 것이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뒤돌아 다시 밖으로 나가려다 멈추어 섰다. 마음의 욕망을 채워 주었던 장소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지고 싶은 욕심이 그녀의 걸음을 막았다.

그녀는 스카프를 느슨하게 하고, 코트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구두를 살며시 벗어 문가에 놓았다. 다른 건물에서 비치는 불빛에만 의존하여 그녀는 거실로 나가 소파를 더듬었다. 그녀와 다몬이 껴안고 앉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큰 침실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그녀는 침대주위를 걸었다. 두 사람이 거기에 누워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목이 메었다. 그녀는 무심코 베개를, 다몬의 베개를 집어들어 꼭 껴안았다.

, 하나님. 이러면 안 되지!

그녀는 눈물을 거칠게 훔치고 다시 응집실로 나왔다.

"거기 누구요?"

순간,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다몬의 목소리였다.

케이트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어 뒤쪽 작은 침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사람의 형체가 어둠을 배경으로 희미하게 드러났다. 한 손이 나와 전기 스위치를 찾아 올렸다.

"제기랄, 스테파노스!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란 말이야. 아니, 당신!"

케이트의 놀라움도 다몬만큼 컸다. 스테파노스의 말이 맞았다. 수척한 그의 몰골을 보니 그는 면도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다몬."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도대체 뭘 원하시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당신 어디 아파요?"

"난 괜찮소. 질문은 내가 했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때 그녀는 바로 눈앞에서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뒤돌아 욕실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에게 가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변기의 물이 내려가는 소리, 물 트는 소리, 잠시 후 물 잠그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욕실 밖에서 기다렸다. 문이 다시 열리자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직도 얼굴이 창백한 다몬은 그녀를 쏘아보았다. "아직 안 갔소?"

"당신은 아파요. 침대에 누워야 해요." 케이트가 말했다.

"난 침대로 갈 거요. 당신은 여기서 나가요." 그는 돌아서서 작은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케이트는 그를 뒤쫓아갔다. "왜 우리 침대에서?" 그녀는 말을 멈췄다.

다몬은 악의에 찬 눈길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냥 거기서 자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됐소?"

"왜 거기서 자고 싶지 않은데요, 다몬?"

그의 검은 눈이 반짝거렸다. "당신은 뭘 원하오? 제기랄, 내가 당신한테 무슨 짓을 했소?" 그는 머리로 문 쪽을 가리켰다. "여기서 나가요. 혼자 있고 싶으니까."

"당신은 혼자 있으면 안 돼요. 당신은 아파요.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요."

"당신은 안 돼."

그 말이 그녀의 뺨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좋아요. 난 안 되고요. 그러면 당신 어머니나 누이들 중 한 명은 어때요?"

다몬은 코웃음을 쳤다. "사양하겠소."

"그러면 엘레니는요?"

"누구?"

"누구라뇨?" 그녀는 그가 반문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판도라의 친구 말이에요. 판도라와 함께 아기를 보러 왔던 거 기억나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게 그녀가 필요한 이유가 뭐요?"

"당신이 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케이트는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에게 완벽한 여자예요. 아름답고 재능있고 매력적이고 여자답지요. 그리스 계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내가 그녀를 원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는 아직도 헷갈리는 표정이었다. "안 되지."

"안 돼?" 케이트도 그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웠다. 그럼 스테파노스의 말이 맞는단 말인가? 다몬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맞았단 말인가?

"여기서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소. 스테파노스가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스테파노스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어요."

지구가 갑자기 멈춘 것 같았다. 다몬은 움직이지도, 숨도 쉬지 않았다.

케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기다렸다. 그녀는 기도했다. 그녀는 희망했다.

마침내 다몬은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베개 위로 벌렁 누웠다. 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피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를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해 당신과 결혼했는데 결국 그가 마지막 웃음을 웃는 사람이 됐으니, 이런 게 인과응보인지 뭔지 하는 거로구만."

"그 사람은 웃지 않았어요." 케이트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어요. 나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다몬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브라이스를 사랑하고 있소."

케이트는 입을 꽉 다물었다. "한때는 그랬죠. 하지만 그 사람과 결혼했을 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우리 가족의 재산을 원했어요. 아빠가 나를 집에서 쫓아내니까 브라이스는 떠났어요."

"떠난 게 아니라 죽은 거지."

"떠나다가 죽었어요."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껴안았다. ", 케이트. 미안하오. 너무 미안하오. 나는? 항상 우리가 사랑할 때마다 당신이?" 그는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브라이스라고 생각했다고 오해했군요." 그녀는 그의 끄덕거림에 놀랐다. "절대로 아니에요. 브라이스와 할 때와는 달랐어요."

"그랬소?"

그녀는 웃었다. "전혀 달랐어요. 나는 사실?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나는 브라이스 말대로 내가 불감증이 있는 줄 알았어요."

다몬은 코웃음을 치고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불감증하고는 거리가 멀지."

그녀는 그를 감탄하는 눈빛으로 을려다 보았다. "모두다 당신 덕분이에요."

"나는 더 많은 사랑을 원했지만 당신은 안 그런 줄 알았지. 당신이 이스트 햄프턴으로 떠난 게 그 증거라고 생각했소.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일인 줄 알았소."

"나는 그게 내가 버릴 것의 전부라고 생각했는걸요." 그는 그녀에게 깊고 갈망하는 듯한 키스를 퍼부었다.

", 케이트. 너무나 당신이 그리웠소. 집에서 당신이 남긴 메모를 봤을 땐 정말 죽고 싶었소. 그런데 더 이상 거짓 인생을 살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오?"

"우리가 섬에서 돌아온 뒤, 한동안은 우리 결혼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허물어지기 시작했죠. 당신은 몬트리올로 떠나고 나는 햄프턴으로 가고, 기회는 사라져 갔어요. 당신은 점점 내게서 떨어졌고요. 그런데 스테파노스가 엘레니 얘기를 한 거죠."

"그녀가 어땠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당신에게 좋은 아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얘기였어요."

"벌어먹을, 스테파노스 같으니." 다몬은 중얼거렸다.

"그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가 옳았어요."

"나에게 당신보다 좋은 아내는 없소." 다몬은 격하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내에게서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추었소."

"그런데 당신은 나와 결혼했을 때는 그것을 몰랐나요?" 케이트는 살며시 약을 올렸다.

그는 웃었다. "우리가 결혼할 때 나는 당신을 몰랐소.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지. 당신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내 삶의 일부가 됐소. 사랑하오, 케이트. 당신이 떠났을 때 나는 죽는 줄 알았다니까."

"나는 거의 죽을 뻔했어요."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파묻었다. "사랑해요, 다몬."

"스테파노스가 고마워요." 그녀는 한참 있다가 나직이 말했다.

다몬은 이마를 그녀의 머리에 갖다대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빚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죠?"

", 당신은 그 사람에게 휴가를 줘야 해요."

다몬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지. 그에게 보답하는 길은 더 많은 일거리를 안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는 지난 한 주일 반 동안 회사를 꾸려나갔고 지금은 밸리아드와의 계약 건을 마무리짓고 있소. 그를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올려 줘야 할 것 같소."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어떡하고요? 섭섭하지 않겠어요?"

"섭섭할 시간이 없을 거요. 회장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얼굴 마담 같은 자리가 아니거든."

그는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윙크를 보냈다. "게다가 다른 계획이 있소."

"그래요? 어떤 계획인데요?"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에 내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여 주고, 또 보여주고, 또 보여 주는 계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