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무장투쟁의 대열
통화 시가지 마차 역에서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10명 남짓한 청년들이 서로 뒤엉켜 치고받는 기세가 맹렬했다. 그 청년들은 하나같이 건장한 데다가 주먹질이며 발길질이 힘차고 억셌다. 누가 보아도 그들의 싸움 솜씨는 예사가 아니었다. 구경꾼들이 금방 그들을 에워쌌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마차 역에서 단둘이 멱살잡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패싸움이 벌어졌으니 구경꾼들이 앞을 다툴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저거 조선 사람들 아닌가?"
"그렇구만. 다 조선사람들 같네."
"왜 자기들끼리 싸우지?"
"무신 소리야? 우린 우리들끼리만 안싸우나?"
"아니, 싸움이 아주 심하니까 하는 소리지. 조선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저렇게 싸우는 일이 드물지 않나."
"그렇기는 하네. 그나저나 싸움을 아주 잘하네 그려."
"그렇구만. 조선사람들이야 원래 일본사람들보다 몸집도 크고 몸도 단단하거든."
싸움 구경에 신명난 중국사람 둘이서 나누는 말이었다. 지삼출은 그 옆에서 곰방대를 빨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다른 중국 사람들도 눈들은 반들반들 빛내며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청년들이 조선사람인 것은 옷으로 금방 표가 났다. 그들은 다 한복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 옷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조선사람인 것을 확실히 알리기라고 하는 것처럼 서너 사람은 상투를 틀어 올리고 있었다. 발길질에 나뒹굴어지고 업어치기로 곤두박이고 할 때마다 지삼출은 제물에 불끈불끈 힘을 쓰고 있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얻어맞고 쓰러져 더는 일어나지 못하는 탈락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켜라, 비켜!"
"어떤 놈들이 또 싸우는 거야!"
구경꾼들을 밀어젖히며 나타난 것은 중국 관헌이었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소리치던 서슬과는 달리 싸우는 젊은이들을 한번 살피고는 서로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그들은 싸우는 젊은이들이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두 관헌은 제복이 무색할 정도로 태평스럽게 구경꾼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들의 태도는 저희들끼리 박이 터지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식이었다. 그건 조선사람들끼리의 일을 대하는 중국 관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지삼출은 연기도 나지 않는 곰방대를 빨며 느긋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싸움은 이미 대근이네가 판세를 휘어잡은 것이었다. 상대방 쪽 여섯중에서 셋이 나자빠졌고, 대근이네의 다섯 중에서 하나가 널브러져 있으니 더 싸우나마나 였던 것이다.
"어허, 인자 되었어, 되았어. 그만덜 혀, 더 허다가넌 몸덜 상허고 뙤꾹놈덜 앞이서 우세시런 일잉게. 그 존 기운덜 딴 디 써얄 것 아니라고."
지삼출은 컬컬한 소리로 외치며 젊은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지삼출과 방대근의 눈길이 마주쳤다. 주먹을 날리려던 방대근이 주춤 멈추었다. 다른 청년들도 잇따라 싸울 태세를 풀었다. 구경꾼들 속에서 갖가지 외침이 들려왔다. 그건 구경거리가 없어져 아쉬워하는 소리들이었다.
"다덜 정신 채리시오. 당신네도 젊디나 젊은 사람덜이 무신 헐 일이 없어서 이 만주 땅꺼지 와갖고도 보황이오, 보황이! 중국도 아라사도 진작에 황제럴 다 없애부렀소. 중국 황제도 아라사황제도 나라럴 뺏긴 잘못얼 저질르지 안했는디도 궁에서 내쫓기고 죽고 혔소. 근디 우리나라 황제넌 나라럴 뺏긴 대죄럴 졌는디도 또 떠받들자니,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요? 당신네덜, 당장 생각 고쳐묵어야 할 것이오."
왼쪽 팔은 허리에 받치고 오른쪽 팔을 곧게 뻗어 상대방들을 겨누며 버티고 선 방대근의 자신감 넘치는 말이었다.
"독립운동 할라카믄 생각부텀 바르게 묵어얄 기 아이가. 지금 어떤 시상인데 그 상투가 머꼬. 그 상투 당장 짤라뻐리고 우리헌트로 오소."
김시국이 야유조로 맞장구치고 나섰다. 상대방 청년들은 얻어맞은 데를 매만지고 옷을 털고 하면서 어물거리고 눈치를 볼 뿐이었다.
"낼보톰언 여그 안 나오도록 혀!"
지삼출이 그들에게 못박듯 말했다. 그들은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슬금슬금 돌아섰다. 어지럽게 헝클어진 서너 명의 상투머리가 싸움을 할 때보다 더 어색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니 총만 잘 쏘는지 알았등마 쌈도 아조 이골나게 잘 허는디? 그만헌 솜씨면 니가 부러와허든 서무룡이도 식은 죽 먹기겄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지켜보며 지삼출이가 방대근에게 속삭였다.
"아니 아재, 안직꺼지도 서무룡이럴 안 잊어불고 있으시오?"
방대근은 놀라움과 함께 반색을 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는 군산 포구가 선하게 떠올랐다. 해거름이면 유난했던 갯내음도 물씬 풍겨오고, 밀물을 타고 들어오던 배들의 통통거리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불현듯 떠오른 그리움이 무신 슬픔 같기도 하고 어떤 아픔 같기도 하면서 가슴이 저렸다.
"하먼, 판석이 아재가 거그 남었는디 나가 어찌 군산얼 잊어분다냐."
지삼출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눈길을 멀리 보냈다.
"판석이 아재고 서무룡이고 만세 바람에 어찌덜 되았는지 모르겄소. 죽고 다치고 잽혀 들어간 사람덜이 수만 명이라고 그러는디."
"허 시님이나 오셔야 알 일잉게 맘쓰덜 말고 우리 코앞에 닥친 일이나 잘허자. 저그 마차가 또 온다."
지삼출은 서둘러 말머리를 돌리며 방대근의 등을 밀었다. 서무룡이의 이야기를 길게 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대근이는 서무룡이가 어떻게 변해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공허 스님이 대근이에게 알리지 말고 덮어두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서무룡의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대근이의 억세고 날랜 주먹 솜씨를 보자 그놈을 혼내주게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막 도착한 마차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마차는 압록강 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압록강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젊은이들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여관 모퉁이에는 열댓 명의 젊은이들이 조금씩 불안하고 긴장된 기색으로 모여서 있었다. 그들은 한눈에 타향 길을 나선 표가 났다.
"아까 쌈 귀경덜 안혔소?"
지삼출이 그 젊은이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내며 물었다. 그들은 주저하고 쭈뼛거리며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허, 이리 얌전허니 안 있어도 되는디 그랬소. 공짜배기 귀경 중에 질인 것이 불 귀경이고 쌈 귀경인디 참 아깝게 되았소. 오늘 헌 쌈언 예사쌈이 아니기도 헌디."
지삼출은 정말 아깝다는 듯 혀를 차며 여전히 정답게 웃음 짓고 있었다. 예사 싸움이 아니라는 지삼출의 말은 아까 그 상대들이 대한독립단 단원들이라는 뜻이었다. 대한독립단에서도 압록강을 건너오는 청년들이나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마차 역에 단원들이 배치되었던 것이다. 4월 중순이 넘어서면서부터 많은 청년 학생들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 땅을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만세시위를 주동했다가 피신해 오는 것이거나, 만세운동을 계기로 독립투쟁에 나설 각오로 집을 떠나온 젊은이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농민들도 꽤나 섞여 있었다. 그런 그들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찾게 되는 것이 독립운동 단체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동안 신흥학교를 운영하며 젊은이들을 독립군으로 길러낸 온 부민단에서는 4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남만주의 한인 지도자들을 폭넓게 결속하여 조직을 보다 확대 강화시킨 새로운 독립운동체를 결성하게 되었다. 그것이 유하현 삼원보에 본부를 둔 군정부였다. 그리고 군정부에서는 자치단체로 한족회를 조직함과 아울러 그동안의 신흥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독립투쟁의 뜻을 품은 젊은이들을 맞아들여 더욱 본격적으로 독립군을 양성해 내기 위해서였다.
군정부에서는 한족회의 조직을 동원해서 압록강변의 안동이며 집안 등지에서 도강해 오는 젊은이들을 통화로 보내도록 조처하고 있었다. 그리고 통화 마차 역에서는 매일같이 그들을 맞이하는 단원들이 배치되었다. 그런데 대한독립단에서도 단원들이 나오게 되면서 시비가 잦아지다가 마침내 싸움판이 벌어지고 말았다.
"저어...... 아까 그분네들도 같은 독립운동 단체 분들 같은데, 같은 조선사람에다가 같은 독립운동 단체끼리 그렇게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교복에 모자까지 반듯하게 쓴 학생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그것이야 영축없이 맞는 말인디, 그것이 그렁게 머시냐......"
지삼출은 어떻게 말을 엮어야 할지 몰라 옹색스러운 얼굴이 되다가는,
"아이고, 나넌 무식해서 안 되겄다, 대근아, 니가 속시언허니 답해부러라."
하며 방대근이의 어깨를 쳤다.
"체, 아재도 다 암스로 멀 그러시오."
방대근은 지삼출의 체면을 생각해서 바로 나서지 않았다.
"에이, 속사정얼 아는 것허고 그것얼 유식헌 말로 쫘악 엮어내는 것허고 어디 똑겉으냐. 나야 그 유식헌 말언 죽었따 깨나도 못허겄더라."
지삼출은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껄껄대고 웃었다.
"예, 그 말언 맞구만요. 허나 독립단체라고 혀서 다 똑겉지가 않다는 것얼 명백허니 알아둬야 헐 것이구만요. 시방 독립운동 단체덜언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디,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보황주의허고 공화주의로구만요. 요것이 또 무신 뜻이냐 하면 우리가 뺏긴 나라럴 되찾자고 독립투쟁얼 허기넌 허는디, 누구럴 위허는 어떤 나라럴 세울 것이냐 허는 중대사럴 논허는 것이올시다. 다른 말로 복벽주의라고도 허는 보황주의넌 나라에 주인언 임금이니 독립운동도 임금얼 다시 받들기 위해 해야 헌다는 것이고, 공화주의넌 그 반대로 나라에 주인언 백성이니 독립운동도 온 백성의 뜻얼 받드는 나라럴 세우기 위해 해야 헌다는 것이오. 우리 군정부에서넌 공화주의럴 내세우는 것이고, 아까 그 대한독립단언 복벽주의럴 내세움스로 여러분덜얼 끌어갈라고 헌 것이구만요. 그러니 쌈이 안 일어날 수가 있겄소?"
차분하게 말을 마친 젊은이들을 둘러보았다. 반이 넘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수긍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서넛은 의문스럽거나 미심쩍은 표정이었고, 나머지 몇몇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듯 무덤덤한 얼굴로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양반족보 질로 침서 나라 뺏게뿐 짜잔헌 임글 받들어야 되겄다고 생각허는 사람이 있음사 안 붙들 것잉게 지금이라도 당장 대한독립단 찾아 가도록 혀. 백리 밖 유하현 삼원본게."
지삼출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젊은이들을 휘둘러 보았다. 지삼출의 기에 눌린 것인지 어쩐지 떠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 만주서도 만세를 불렀다던데,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요?"
어느 젊은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먼, 여그서도 한양 소식 듣고 만세가 바로 일어났는디, 아조 굉장혔소. 여그 통화현서 질로 먼첨 일어나서 서간도 현마동 안 일어난 디가 없소. 글고 저짝 북간도서도 골골이 다 일어났는디, 용정서넌 사람이 여섯이나 총 맞어 죽고 멧천 명이 잽혀 들어갔소."
"아니, 중국 땅에서 누가 총을 쏘고 누가 잡아간단 말입니까?"
"이, 안직 잘 몰라서 그러는디, 만주 땅 북간도 용정허고 서간도 봉천허고넌 왜놈덜 발 밑에 든 조선 땅이나 매일반이여. 중국관헌이란 것덜이 왜놈덜 손에 멋대로 놀아나고, 왜놈덜 영사관이란 디에 사복입고 육혈포 찬 형사놈덜이 드글드글헌 판잉게. 그런 만주 사정언 차차 알게 될것이구마."
지삼출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방대근 일행은 또 역으로 뛰어갔다. 어디선가 새 마차가 도착했던 것이다.
통화에서는 3월 6일 날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용정에서는 13일 날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 만세의 물결은 서간도 유하현 집안현 환인현 홍경현 관전현 장백현 무송현 안도현으로 퍼져나갔고, 북간도 연길현 화룡현 왕청현 훈춘현으로 굽이쳐 3월에서 4월 중순까지 백두산의 서남쪽 줄기들과 동북쪽 줄기들은 만세 소리로 메아리가 쉴 새 없이 울렸던 것이다. 그 만세의 메아리와 함께 독립운동 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에서 타오른 만세 투쟁을 계기로 기존했던 단체들이 조직을 개편하고 강화하는 한편 새로 생기는 단체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 단체들이 지향하는 바나 특성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4월 말까지 서간도에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들은 13개에 이르렀다. 그중에서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것 두 개가 군정부와 대한독립단이었다. 그런데 군정부에서는 공화주의를 표방하고 있었고, 대한독립단에서는 복벽주의를 주창하고 있었다. 그 상반된 이념은 간부들의 성분과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대한독립단은 지난날 의병에 나섰던 양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거의가 평안도 출신인 그들은 양반 의병장으로 이름을 드날렸던 유인석의 문하이기도 했다. 유인석은 평민 출신의 부하 장수가 양반 출신의 부하 장수에게 상반의 예를 갖추지 않고 덤볐다 하여 그 목을 쳐서 죽여버릴 정도로 상반의식이 철저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임금에 대한 숭상이 어떠한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유인석이 한 사람들이 을사보호조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형편이 여의치 못하게 되자 압록강을 건너갔던 것이다.
그 시기에 유인석의 의병부대도 압록강을 건너가 통화현과 집안현 일대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근방 현들로 이동하게 된 여러 의병장들은 당연히 스승과 결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어떻게 변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상투를 틀고 지내다가 3.1 만세를 계기로 모두 하나로 뭉쳐 대한독립단을 만들면서 복벽주의를 내세웠던 것이다. 군정부의 간부들도 족보를 따지자면 거의가 양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문을 접했거나 개화사상을 가진 한편으로 대종교 교도들이었다. 그 전형적인 인물이 군정부의 대표자 이상룡이었다. 경상도 사람인 이상룡은 골수로 한학을 공부한 육십 객이면서도 신학문을 이해했고, 비밀결사 신민회가 계획하는 독립전쟁 기지를 건설하려고 서간도로 망명한 다음 독립 성취를 종교적 과업으로 삼는 대종교의 교도까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군정부에도 양반 출신 의병장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송수익처럼 일찍이 상반의식을 버리고 생각을 바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특히 그들 대부분이 대종교인이 된 것은 대종교가 배달의 땅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종교는 독립의 성취와 함께 배달민족이 다 함께 아무 차등 없이 잘 살 수 있는 화평한 나라의 건설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곧 양반. 상민의 계급을 타파하고 새 세상을 이룩하겠다는 뜻이었다. 다른 종교들의 선교 기세가 만만찮음에도 불구하고 대종교가 만주에서 가장 많은 조선사람들을 신도로 확보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간부들 중에 대종교도 들이 많은 군정부에서 공화주의를 채택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편, 양치성은 봉천의 비밀장소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건 명목만 회의였지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정보활동에 대한 작전 지시였다. 회의장을 채우고 있는 20여 명은 모두 조선 남자였다. 그들은 서간도 일대를 더듬고 다니는 정보원들이었다.
"에에 또, 먼제 만세폭동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통계자료를 알려줄 테니 다들 똑똑히 듣도록 하시오."
단상에 선 사복 차림의 일본 남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높이며 좌중을 훑어보았다. 마치 군인들처럼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는 정보원들 사이에서는 긴장된 침묵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에에 그러니까 전국적으로 발생한 만세폭동에 가담한 조센징들의 수는 총 2백여만 명이고, 그중에서 사망자 7천5백여 명, 부상자 1만 6천여 명, 체포 7만 4천여 명이오. 그리고 가담자 2백여만 명 중에서 계층별. 직업별로 구분한 결과는 농민이 제일 많아 56빠센또, 노동자가 제일 적어 3빠센또, 나머지가 학생 20빠센또, 지식인 21빠센또로 되어 있소. 그 폭동으로 조선 총독부가 입은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폭동이 진압되었으니 그 피해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우리가 주시하고 주목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그 남자가 느닷없이 소리치며 구둣발로 단상을 굴렀다. 좌중에서 몇몇이 움찔하며 놀랐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이곳 만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란 말이오. 만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두 가지요. 첫째 젊은 놈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이고, 둘째 폭도단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듯 그 남자는 다시 좌중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여러분들도 대강 눈치는 채고 있겠지만 그건 아주 중대한 사실이 아닐 수 없소. 왜냐하면 조센징들은 만세폭동의 여세를 몰아 여기 만주서 새로운 폭동을 일으킬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오. 그 새로운 폭동이란 무엇인가! 그런 무장세력을 모아 우리 대일본제국에 대항하겠다는 것이오. 그 무장세력이라고 해봤자 우리 대일본제국의 무력에 비하면 호랑이 앞에 토끼요, 고양이 앞에 쥐새끼에 불과한 거요. 허나 한 가지 문제가 있소.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만주가 조선 땅이 아니라 중국 땅이라는 점이오. 조선 땅이면 그까짓 것들 하루아침에 일망타진하고 말겠지만 중국 땅이니 우리 일본군대를 마음대로 출병시킬 수가 없다 그것이 중요하단 말이오. 여러분은 그동안 온갖 위험을 무릅써가며 수고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만주의 사정이 급변하고 있으니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가일층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소. 따라서 다음 지시사항을 다들 똑똑히 명심하시오. 첫째, 해당 지역에서 새로 생기는 폭도단체를 신속히 파악할 것, 둘째, 그 단체의 내부조직을 샅샅이 알아낼 것, 셋째, 무장 실태를 자세히 조사할 것, 넷째, 민간인들과의 관계를 치밀하게 탐지할 것, 이상이오. 그리고 첨부할 말은, 이번 임무를 수행한 다음에 기밀 유지를 위해서 북간도 쪽과 대폭적인 인원교체가 있을 것이오. 그러니까 처치할 필요가 있는 놈들은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없애도록 하시오. 이미 다 알고 있는 대로 앞으로도 활동성과에 따라 여러분들의 고향 가까운 경찰소로 발령을 내줄 것이오. 여러분들의 출세는 바로 여러분들의 손에 달렸소."
그 남자는 말을 마치며 좌중을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양치성은 회의실을 나오며 불안이 부풀고 있었다. 북간도와 대폭적인 인원교체?...... 그 말과 함께 그의 눈앞에는 수국이의 모습이 어릿거리고 있었다. 위험한 만주 땅을 벗어나 고향 가까이 가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수국이를 차지하지 못하면 그런 것은 반쪽일 뿐이었다. 더구나 고향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북간도행이 되고 말면...... 그거야말로 허망하고 또 허망할 일이었다. 그동안 수국이의 환심을 사보려고 공을 들일 만큼 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수국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돌덩어리고 얼음장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인한 것이 김시국이가 자신 못지않게 수국이에게 홀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국이는 김시국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수국이는 시집갈 기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얼굴만 고왔지 남자를 모르는 배냇병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보았다. 그러나 그 볼룩한 젖가슴이며 바라진 엉덩이를 보거나, 부끄러움 타고 곧잘 얼굴 붉어지는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무슨 곡절이 있는지도 모른다 싶어 필녀에게 여러 차례 캐물어 보기도 했다. 열 분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낭구도 있습디여? 두 말을 못 하게 해버리는 필녀의 대꾸였다. 양치성은 어떻게 해서든 북간도로 밀려가지 않게 해야 된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런데 수국이는 아주 곤궁한 처지에 빠져 있었다. 지주 추가의 아들이 눈독을 들이며 어떻게 피할 도리가 없이 몰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가의 아들은 자식까지 여럿 둔 삼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는 수국이를 첩으로 들어 앉히려고 탐내는 것이었다. 추가 집안은 만주 땅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한 지주로 서간도 열 개 현의 땅이 거의 그들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하현 삼원보에서는 제일 오래되고 큰길의 이름이 추지가일정도였다. 추가의 아들은 그런 위세로 수국이를 차지하려고 들었다.
사실 그 엄청난 땅을 가진 추가는 소작인들에게 또 다른 임금이나 마찬가지였고, 소작인들을 상대로 마음먹어서 못할 일이라고는 없었다. 추가의 아들이라고 해서 그 위세가 덜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조선 소작인들로서는 그 위세 앞에서 움쭉달싹하지 못할 처지였다. 그러나 수국이는 그 첩살이를 당차게 마다했다. 그리고 옆 사람들도 하늘을 보고 헛웃음을 쳤다. 그렇지만 그건 이쪽의 기분대로 될 일이 아니었다. 추가 아들은 사흘거리로 사람을 보내 이쪽을 몰아대고 있었다. 그 심부름꾼은 다름아니 추가네의 마름이었다. 마름을 앞세운 것이 바로 목을 조이는 위협이었던 것이다. 추가 아들은 지주로서 가장 편리하고 신효한 무기를 사용하는 셈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소작을 뺏어버리겠다는 그 노골적인 위협 앞에서 수국이도 옆 사람들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도 송수익이가 맡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 참 미안하게 됐소. 그 처자는 진작 정혼해 둔 총각이 있소이다."
송수익은 점잖게 방어해서 마름을 돌려보냈다. 마름이 군소리 못 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옆 사람들은 역시 송수익이 제일이라고 입모아 기뻐했다. 그러나 정혼한 처녀는 넘보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사람들의 예절일 뿐이었다. 아니, 조선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심성 사나운 지주가 소작인을 상대로 그런 예절쯤 얼마든지 짓밟아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 추가 아들 역시 지주다운 공격을 가해 왔다.
"정혼이야 파하면 될 거 아니오. 당자 호강하고 다른 사람들도 편히 살려면 우리 어른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오."
마름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이 말은 동네에 먹구름이 끼게 했다. 송수익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아무런 해결 방안이 없었던 것이다. 사방 수백 리가 추가의 땅이니 어디로 옮겨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근이네만 북간도 어디로 떠나보내기도 딱한 노릇이었다. 사태가 그리되자 수국이에게 마음을 품어왔던 김시국이가 적극적으로 혼인을 들고 나왔다. 혼인을 해서 북간도 쪽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받아들일까 한 것은 감골댁이었다. 중국 사람에게 첩살이를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나았고, 자기네 집안만 떠나면 다른 사람에게는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딸자식 전정을 위해서라면 외로움 같은 것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국이는 싸늘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니, 니가 시방 이 에미 잡아묵을라고 이러냐? 이 총각도 싫다, 저 총각도 싫다, 니가 나이가 멧살인지나 알고 이러냐? 몽달귀신 되야 이 에미 가심에 한 혀 죽게 헐라고 이러지야?"
"엄니, 나넌 남자가 무섭당게로."
수국이는 고개를 떨구며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또 그 이얘기여? 그놈에 일 잊어불 만도 헌디, 잊어부러야허는디......"
감골댁은 딸을 끌어안으며 목이 메었다. 몸을 망친 그 일이 벌써 몇 년인데 아직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딸이 너무 가엾고도 가슴 쓰라렸던 것이다.
송수익은 마름에게 시달리며 벌써 두 달이나 고심해 오고 있었다. 어쨌거나 만세시위를 벌이려고 수국이가 통화 시가지로 나갔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한창 바쁜 농사철이면 개손도 빌리고 싶더라고 그때는 아이들까지도 다 나가서 기세를 올려야 했던 것이다. 추가 아들은 조선사람들의 만세시위를 구경하다가 수국이를 본 것이었다.
"대근아, 우리가 여그서 뜨자. 골백분 생각혀 봤는디 그것이 니 누나 살리는 질이고 이웃덜도 살리는 질이다. 북간도에도 니겉이 학식 들고 총질 잘허는 사람 환대허는 디가 많담스로?"
깊은 밤에 감골댁이 아들을 불러 앉히고 어렵사리 꺼낸 말이었다. 방대근은 한동안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도 그 생각얼 안헌 것이 아닌다, 엄니가 적적히서 어찌 사실 게라?"
"아니여, 아니여, 나 걱정이사 말여. 사람언 다 이웃사촌이 되는 법잉게."
"야아, 엄니만 괜찮허먼 뜨겠구만이라."
방대근은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힘 넘치게 말했다.
"그래, 정의단에서야 자네 같은 군관을 얼마나 반기겠나. 이쪽 군정부와 그쪽 정의단은 긴밀히 상통하고 있고, 정의단에는 신흥학교 출신인 자네 동무들도 꽤나 있지 않나. 가서 잘하고 있게나. 더러 만나게 될 테니까."
송수익이 소개장을 써주며 한 말이었다. 방대근이 다음날 바로 떠나기로 했다. 떠나는 김에 김시국이도 떼쳐내자는 생각이었다.
"아이고 이 까탈시러운 가시내야, 니가 나럴 두고...... 니가 나럴 두고......}
그날 밤 늦게서야 소식을 알게 된 필녀는 수국이를 붙들고 퍽퍽 울었다.
"하, 요것 참......하, 요것 참......"
지삼출은 한숨과 함께 이 소리만 연상 토해내고 있었다.
방대근이네 세 식구는 새벽에 집을 나섰다. 송수익의 말에 따라 지삼출이 혼자서만 배웅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이별을 하면서도 말조차 크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밤이 깊어 방대근이네 초가집에 불이 났다. 이웃 동네에서까지 불을 끄려고 몰려왔다. 그 사람들은 집주인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집 안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뒤늦게서야 집주인이 불은 놓고 도망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집주인이 어디로 갔는지 한동네 사람들도 모르고 있었다.
송수익한테서 수국이네 행방을 알아내려다 실패한 마름은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으름장을 놓고 닦달을 해댔다. 그러나 사람들은 멀뚱한 얼굴로 한결같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바람에 환장을 하게 된 사람이 따로 있었다. 수국이만 바라보고 더 편한 근무지도 거들떠보지 않고 방대근이와 함께 붙어다녔던 김시국이었다.
방대근은 마차를 갈아타 가며 나흘 만에 황청현 춘명향 덕원리에 도착했다. 대한정의단 본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종교도들이 일으킨 단체답게 시교당과 나란히 붙어 있었다. 방대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환대를 받았다. 그것이 다 송수익 선생의 소개장 덕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노병갑을 만나보고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노병갑은 다리를 다쳐 기동이 불편했다. 벌써 두 달째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도 기백은 펄펄했다.
"그쪽 서간도에서 먼저 만세가 일어나자 이쪽에서도 13일로 날을 정했지. 다 용정촌으로 모이게 되어 있어서 나도 학생들을 인솔하고 용정으로 간 거야. 아주 굉장했었어. 3만 명이 모여들었으니 용정이 어찌 됐겠나. 영사관 왜놈들이 질겁을 한 거지. 헌데, 그 사람들이 목이라 터져라 하고 만세를 불러대는데, 그런 장관이 어디 또 있겠어. 용정이 전부 뒤집어지고, 왜놈들 영사관이 허물어질 지경이었지. 용정에 있는 왜놈들이고 밀정 놈들은 다 잡아 죽일 기세였고, 그러니 총질이 시작된 거야. 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수천 명이 발이 묶이게 됐는데, 나도 그 속에 들어 있었지. 밤이 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안 되겠더군. 총질을 한 중국 관헌 놈들이 결국 우릴 왜놈들한테 넘길 것 아닌가 말야. 그 꼴 당하기 전에 도망치기로 했지. 수십 명을 여러 패로 짜서 일시에 사방으로 내뛰지 않았겠나. 놈들을 정신없이 만들어 멀리 도망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재수없이 산속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어."
노병갑은 쓰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콧 등을 찡그렸다.
"체, 원생이가 낭국에서 떨어졌구마. 그나저나 그만허기 다행이여."
방대근이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헌데, 김시국이 그놈이 생김대로 음충한 데가 있어. 버릇없이 어찌 동무 누나를 넘보고 그래."
"그야 다 끝막음된 일잉게 더 말 말고 여그 사정이나 이얘기혀."
"아니야, 김시국이 그놈이 질긴 데가 있는데 여기까지 찾아올지도 모르지."
"괜찮여, 김시국이가 추가놈언 아닝게. 얼렁 그 이얘기나 허랑게."
"사람 참 급하기는. 여기 사정을 한마디로 하자면, 실한 독립군 부대를 갖추려고 마음들이 다급해져 있네. 왜 그러냐 하면, 그동안 우리 대종교 중광단에서 여기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으니 새로 대한 정의단을 만든 형편에 독립군도 제일 막강하게 조직하자는 거지. 다시 말해서 대한 국민회에 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 대한국민회는 야소교 사람들이 만든 단첸데, 우리 정의단 다음으로 규모가 클 꺼야."
"야소교? 거그넌 군대가 있능가?"
"아니, 아직 없어. 허나 곧 갖추게 될 거라는 소문이야."
"근디, 여기 북간도넌 독립운동 단체덜이 몇 개나 되제?"
"으음...... 한 열댓 개 될 거야. 만세가 일어난 뒤로 부쩍 생겨난 거지."
"서간도도 그런디, 만세 바람이 무섭기넌 무섭네."
방대근은 자신이 환대받은 이유를 알았다. 서간도와 마찬가지로 북간도에서도 독립운동단체들이 5월까지 17개가 생겨났다. 그중에서 조직의 규모로나 영향력으로나 대표적인 것이 대한정의단과 대한국민회였다. 본국에서 3.1 만세가 일어나고 그 불길이 서간도로 옮겨붙자 북간도의 여러 단체들은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 단체들은 대종교계의 중광단, 기독교계의 간민회, 공자를 모시는 공교도, 성리교 단체들이었다. 그들은 시위가 벌어진 그 날 저녁 연길현 국자가에서 통일조직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4월에 접어들어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바꾸면서 조직을 개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간부직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광단에서는 그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외래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대종교도들로서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독주를 용납할 수 없었고, 또 그동안 많은 학교를 세우고 무오독립선언을 추진하는 등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던 중광단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광단은 5월에 대한국민회를 탈퇴하여 대한 정의단을 결성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한국민회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짜여질 수밖에 없었다. 지리적으로 서간도에 평안도 사람들이 많듯 북간도에는 함경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서간도와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기독교 세가 아주 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캐나다 북장로파 선교사들이 맹렬하게 선교 활동을 벌일 뿐만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국민회 간부들은 의식이 개화된 데다가 신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한국민회는 공화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다.
단군의 부활을 의미하는 중광단은 함경도 출신 의병장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처음부터 서간도의 의병장들과는 달리 임금을 떠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평안도하고는 정반대로 함경도가 조선왕조로부터 배척당하고 괄시를 받아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함경도 출신 의병장들은 거의가 평민이었다. 그런 데다 그들은 신학문을 접하는 동시에 대종교도가 되었던 것이다. 대한 정의단이 공화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감골댁과 수국이는 시교당의 부엌일을 맡게 되었다. 대한정의단의 일들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손님들이 자꾸 많아져 일손을 늘린 것이었다.
"시상에 이리 고마울 디가 있다냐. 그까진 정재일 험스로 입만 얻어묵어도 어디헌디, 집얼 내주덜 않나 살림 살 돈꺼정 주니 요런 후헌 인심이 어디 또 있겄냐. 농새일 면허고 이리 편케 살게 된 것이 꿈만 같으다."
감골댁이 눈물을 끌썽이며 아들에게 한 말이었다.
"엄니넌 대근이가 허는 일언 어찌 안 치고 그러요. 어디 엄니허고 나가 허는 일 보고 집도 주고 돈도 주고 허겄소. 대근이가 해내는 일이 큰 게 그러는 것이제라."
수국이가 어느 때 없이 밝은 얼굴로 대근이를 보며 생긋 웃었다.
"하먼, 하먼, 그것이야 더 일러 멀혀. 우리 대근이가 참말로 복덩어리제 잘 믹이지도 못허고 고상만 고상만 험서 컸는디도......"
감골댁은 목이 메며 눈물을 찍어댔다.
"음마, 복덩이리넌 따로 두고 그러네. 나가 아니였음사 북간도로 올생각이나 혔간디?"
수국이가 냉큼 던진 말이었다.
"아이고 요 망할 년아. 어찌 그리 속도 편냐. 얼렁 시집갈 궁리나 혀!"
감골댁은 손바닥으로 수국이의 등짝을 철퍽 쳤다.
"누나도 독립군으로 나스제."
방대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려? 여그서는 여자도 받아주는겨?"
수국이는 농담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정색을 하고 덤볐다.
"아니, 야가 참말로 미쳤다냐 어쨌다냐. 니 골리는 소린지도 몰라? 좌우간에 째보든 곰배팔이든 금년 안으로넌 시집얼 보내고 말 것잉게 그리 알어!"
감골댁은 바락 소리를 지르며 눈이 찢어져라 하고 딸을 흘겨댔다.
방대근은 일이 그렇게 풀린 것이 너무 흡족하고 기뻤다. 이제 어머니도 소작농사에 시달릴 나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북간도로 떠나오면서 서렸던 불안이 말끔히 가시고 마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방대근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모연대에서 날이 바뀌는 줄도 모르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모연대에서 활동을 잘해야만 독립군을 본격적으로 양성할 사관연성소도 빨리 설치하고 무장부대도 제대로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 정의단에서는 연길현 화룡현 왕청현 훈춘현에 걸쳐서 5개 분단과 70여 개 지단을 설치하고 단원 1천 6백여 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단원 이란 언제든지 명령에 따라 독립군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연대에서는 그 조직을 이용해 일차적인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이차의 모금은 본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모금은 동포들을 전부 대상으로 하되 기독교인들의 집은 제외했다. 왜냐하면 대한국민회 쪽에서도 모금을 하고 있으므로 이중 부담을 지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동포들 사이에서는 불평과 원성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러 단체들이 모금을 나서는 바람에 동포들은 이중삼중으로 시달리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모연대에서는 대종교도들을 중심으로 모금을 추진하면서 동포들의 그런 피해를 막으려고 애썼다.
방대근은 힘 드는 줄 모르고 8월의 만주 더위를 무릅써가며 날마다 동포들의 마을을 돌았다. 모금이 순조로운 데다가 사관연성소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경험이 많은 인물들을 초빙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연해주에서 이동해 온 대한독립군과 대한국민회가 연합했다는 것이었다. 대한독립군이란 바로 홍범도 부대였던 것이다. 방대근은 혼자서 발을 굴렀다. 자기네 대한정의단과 홍범도 부대가 연합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안타깝고 아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로만 들어왔던 홍범도 부대가 가까이 있는데도 그 부대원이 될 기회는 없어지고 만 것이었다. 신흥학교를 졸업하면서 홍범도 부대를 찾아갈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창들 가운데 그런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적지 않았었다.
"대한독립군이야 싸우는 부대니까 누가 뒤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필요하고, 대한국민회에서는 앞을 내세울 독립군 부대가 필요하고, 그러다보니 서로 궁합이 잘 들어맞은 거지."
노병갑은 별다른 느낌이 없는 눈치로 말했다.
"그야 나도 아는 것이고, 나가 알라는 것언 어찌서 우리 정의단서넌 대한독립군허고 손얼 못 잡았냐 그것이여."
방대근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래 참, 너 학생 때부터 홍범도 부대 좋아했었지?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짐 싸들고 가."
노병갑은 비죽비죽 웃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여......"
방대근의 얼굴이 쓰게 일그러졌다.
그런데 방대근이 앞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김시국이었다.
"니 우예 그럴 수가 있노. 친구지간에 그래도 되는 기가!"
땀범벅인 김시국이가 부르짖은 한마디였다. 그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그려, 말 한마디 안허고 뜬 것언 미안시러운디, 소문 안 나게 허자니 어쩌겄냐."
방대근은 미안한 생각보다는 지겨운 생각이 앞섰다. 또 새중간에서 골치 아플 일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무신 소리 씨부리고 있노. 내가 추가 아덜놈헌테 발설헌다 말이가!"
김시국의 열기는 곧 주먹질이라도 할 듯 싶었다.
"그만혀, 나도 답답해 죽겄응게."
방대근은 정색을 하고 김시국을 쏘아보았다. 그 뜻을 감지한 김시국이 한숨을 토해내며 기가 수그러들었다.
"무사허니 왔응게 되았어. 찬물에 낯 씻고 밥보톰 묵어."
그렇게 금방 기가 꺾이는 김시국이가 또 딱해 방대근의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참 내가 미친놈인 기라. 내 맘얼 내가 모리겄시니 우짜먼 좋노."
김시국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볼멘 소리로 중얼거렸다.
"송선생님이 전허시는 말씸 머 없드냐?"
"안 뵙고 그냥 왔삐 다."
"머시여? 글먼 니 맘대로 온 것이여?"
"우짜겄노, 말하믄 안 보내줄낀데."
방대근은 어처구니없는 한숨을 토했다. 자기네가 이쪽으로 온 것을 누가 가르쳐주었는지는 아예 묻지도 않았다.
"아이고메, 요것이 누구당가! 시상에나 요런 기맥힌 정성이 어디 또 있겄어."
감골댁은 김시국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반색을 넘어 감격해 하고 있었다. 그 등 뒤에서 수국이는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워메, 징허기도 징헌 거. 비암이 따로 없네."
김시국을 환대한 감골댁은 짬만 생겼다 하면 수국이를 몰아댔다.
"돌미륵도 3년 지극정성이면 화답헌다고 혔다. 시국이 총각이 그리 일편단심허고 정성 바쳤으면 됐제 머럴 더 바래냐. 학식이 없냐, 인물이 못났냐, 어디가 빙신이기럴 허냐."
"엄니, 엄니도 여잠스로 같은 여자 맘얼 어찌 그리도 몰라주요."
"나넌 여자가 아니라 엄니여, 엄니. 니넌 엄니 맘얼 어찌 그리도 몰르냐."
방대근은 이런 실랑이를 아예 외면해 버렸다. 어머니의 편을 들자니 누나가 가엾었고, 누나의 편을 들자니 어머니가 딱했던 것이다. 그는 정의단 일에만 정신을 쏟았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자고 나면 달라지는 판이라 어머니와 누나의 실랑이에 신경을 쓰기도 어려웠다.
한성. 노령. 상해 세 곳의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한다는 원칙에 따라 한성과 노령의 임시정부가 해산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달 7월이었다. 노령 임시정부는 3.1 만세를 뒤따라 3월 21일에 생겼고, 상해임시정부는 4월 10일에, 한성임시정부는 4월 23일에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8월 들어서 큰일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대한정의단에 김좌진을 비롯해서 군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정의단은 군정부로 개편했다. 뒤이어 조선총독이 바뀌고 헌병 경찰제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더니 홍범도 휘하의 대한독립군이 두만강을 넘어 갑산과 혜산진 등지의 일본군 병영을 습격했다는 소식이 퍼진 것이었다. 홍범도 부대의 그 공격은 만주지역의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꾀하고 있는 무장투쟁의 첫 신호였다. 정의단에서는 사관연성소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방대근은 더 바쁘게 동포들의 마을을 돌며 추수철인 9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김시국은 기회만 있으면 방대근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보래, 나 좀 살래도고. 나 이러다 미치고 환장해 죽어삐리겄다."
"참말로 나도 죽겄다. 니 만주에 독립운동 허로 온 것이 아니라 장개들라고 왔냐?"
"독립운동도 허고 장개도 들고 허는 것 아이가. 그런 사람이 어데 한둘이고. 니 내가 그리 맘에 안드나?"
"무신 소리여? 누나가 그렁게 나도 헐말이 없는 것이제."
"이눔아야. 니가 어무이 맨치로 밀어붙이면 누난들 우얄끼고? 안글나?"
"허 참......"
방대근은 답답한 한숨만 내쉬었다. 누나가 어떤 일을 당해서 그렇게 시집을 안 가려고 하는지 실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 그리 되먼 나도 생각이 있는 기라."
김시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려, 업어갈 재주라도 있으면 업어가기라도 혀.’
방대근은 화가 뻗친 김시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나는 여전히 젊고 예뻤다. 그러나 처녀로는 너무 늙은 처녀였다. 언제까지 머리를 땋아 내리고 살 것인지, 누나를 생각하면 걱정은 걱정이었다.
11월의 만주는 한겨울이었다. 북퐁은 칼날이었고, 하늘도 땅도 다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문이나 소식들은 전혀 얼어붙을 줄 모르고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서간도의 군정부가 명칭을 바꾸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새로 붙인 이름이 서로 군정서라고 했다. 그 까닭인즉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운형을 파견하여 군정부도 상해임시정부에 통합해 줄 것을 요청했고, 군정부의 총재 이상룡은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정부를 가져서야 되겠느냐고 간부들을 설득하여 <군정부>라는 명칭을 양보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곧 상해임시정부를 유일 정부로 인정함과 아울러 그 위상을 높여주는 조처였던 것이다.
그 영향은 북간도의 대한정의단에도 그대로 미쳤다. 대한정의단도 군정부 편제를 바꾸고 북로군정서로 새 명칭을 붙였다. 그리고 기독교계의 대한국민회도 상해임시정부를 지지하며 통합 노력에 호응하고 나섰다. 그 단체들이 그렇게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그 산하조직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그들 모두가 공화주의를 표방한다는 정치이념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둘째는 독립을 하는 데는 무장투쟁과 함께 국제적인 외교도 겸비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상해의 외국조계에 자리 잡은 임시정부를 중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단체들과는 대조적으로 서간도의 대한독립단은 상해임시정부의 지지를 거부했다. 그 이유 또한 분명했다. 상해임시정부가 자기네들처럼 임금을 받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북간도의 공교도들이 조직한 군무도독부도 마찬가지 이유로 상해임시정부에 등을 돌렸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역한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도 상투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복벽주의자들의 고집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마저 끼어 어둠은 짙을 대로 짙어 있었다. 독한 중국 술에 취해 김시국은 주막을 나섰다. 오늘도 수국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참빗을 하나 사다 주었다가 면박만 당하고 울화가 치밀어 혼자 주막을 찾아들었던 것이다. 방대근이는 물론이고 노병갑이도 그의 속타는 푸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시국은 어둠 속을 휘청거리고 걸으며 슬픈 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김시국은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입은 틀어막혀 있었고, 두 팔은 뒤로 묶여 있었다. 김시국은 그때서야 자신이 왜놈들 밀정이나 앞잡이들에게 잡힌 것인지 모른다고 퍼뜩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는 용정이나 국자가가 아니고 안전하다는 춘명향이었던 것이다. 그럼 누가 장난을 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숨이 막히도록 입이 틀어막혀 있으니 무슨 소리 한 가닥 낼 수도 없었다. 김시국은 몸부림을 치며 콧소리를 냈다.
"정신채렸다. 끌고 가."
전라도 말이었다. 김시국은 정말 방대근이가 장난을 하나 생각했다. 두 사람이 양쪽 팔을 끼더니 와락 잡아끌었다. 김시국은 우악스러운 힘에 끌려 발을 떼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콧소리가 나올 뿐이었다. 추운 어둠 속을 한정 없이 걸었다. 30리쯤 걸었을까 싶은데 어느 움막에 다다랐다. 김시국은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등잔에 불을 켜서야 김시국은 그들이 셋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김시국은 꿇어 앉혀졌다.
"저 수건 빼내여."
전라도 말을 하는 사내가 통나무 위에 올라앉으며 턱짓했다. 입에서 수건이 빠져나가자 김시국은 답답하던 숨을 토해냈다.
"니 나가 누군지 알겄어?"
사내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 뉘, 뉘신교? 잘 모르겠는데 예......"
김시국은 눈을 키워 사내를 올려다봤지만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럴지 알었다. 그런 썩은 눈깔얼 갖고도 독립운동을 혀? 참 싸다."
사내가 더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
김시국은 더 신경을 곤두세우며 등잔 불빛을 옆으로 받고 있는 사내에게 눈길을 모았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려, 채림새가 달라지기넌 혔제. 서간도 수국이 동네서 나헌테 분한 관 산 생각 안 나는감?"
"머시라꼬 예!"
김시국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그 젊은 장사꾼, 바로 그 사내였던 것이다.
"흐흐흐...... 인자 알아보겄어?"
"그, 그라믄 장사꾼이 아이고......"
김시국의 더듬거리는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그려, 인자 알았냐? 나넌 느그가 말허는 밀정 양치성이다."
"아이고, 살려주이소. 잘못했십니더......"
"이새끼, 겁언 되게 많네. 니 잘못이 먼지나 알고 잘못혔다고 허능겨? 니 죄넌 독립운동 헐라는 것이 아니고 수국이 좋아험서 나 앞 가로막는 것이여."
"머, 머시라꼬 예? 수, 수국이 안 좋아허겄심더. 사, 살려만 주이소."
"좆겉은 자석, 좆겉은 소리 허네."
양치성은 칼을 획 꺼내 들었다.
33. 가면극
돌잔칫상은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샌달우드 나무 아래 차려졌다. 날씨가 더워 그늘을 크게 드리우는 나무 아래로 찾아든 것만이 아니었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샌달우드 나무를 성스럽게 섬겼다. 조선사람들이 당산나무를 신성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원을 들어주고 액을 물리치며 길운을 내려준다고 하여 원주민들은 궂은일이 생기면 샌달우드 나무에 빌고 경사스러운 날에는 그 아래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다. 하와이의 조선사람들도 샌달우드 나무를 당산나무로 여겨 마음을 의지해 온 지가 오래였다.
한낮이었지만 둥그렇고 큰 나무 그늘은 변함없이 시원했다. 샌달우드 나무의 크고 짙은 그늘은 잔치를 벌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푸짐하게 차린 잔칫상에는 스무 명 남짓한 남자들이 둘러앉아 느긋하게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날마다 농장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일요일 날의 잔치란 더없이 한가하고 즐거웠던 것이다. 부부가 함께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누구나 다음날 노동에 지장을 받지 않게 하려고 어느 집에서나 잔치는 으레껏 일요일 날 벌였다.
"차린 것은 없어도 많이들 드세요."
양쪽 손에 술병을 들고 온 김칠성이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약간 들뜬 것 같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도 벙글벙글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채린 기 없는데 묵을 기 있어야 묵제."
좌장인 구상배가 말을 받으며 껄걸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예에, 아들 하나 더 낳게 되면 그때는 이보다 열 배로 차릴 테니 오늘은 용서하십시오."
김칠성이가 헤벌쭉 웃으며 받아넘긴 말이었다.
"저 사람 저 욕심 좀 봐. 남들은 하나도 없는데 둘씩이나 바라네."
"혹시 또 안사람이 애 밴 것 아닌가."
"아니여, 애넌 안직 안 뱄어."
"아니, 이사람 참 이상하네. 자네가 어찌 남의 집 이불 속 사정까지 다 안다고 그리 큰소리야."
"어허, 척하면 3천리 아니여. 저 집 애 섰다 허면 망고가 저리 누렇게 잘 익어 주렁주렁 달렸겄어. 풋것일 적에 다 없어졌제."
그 말에 사람들이 다같이 와아 웃음을 터뜨렸다. 김칠성이만 멋쩍은 듯 얼굴이 붉어졌다. 마당 저쪽으로 하와이의 명물인 망고 열매들이 황금빛으로 잘 익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 열매들은 투명한 햇살을 받아 더욱 탐스럽게 보였다. 망고 이야기에 사람들이 다 함께 그리 웃는 까닭이 있었다. 김칠성의 아내는 입덧을 하면서 유난스럽게 신 것을 밝혔다. 신 것을 찾다 못한 그 여자는 풋망고를 따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풋망고는 그냥 신맛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신맛과 함께 쓰고 떨떠름했다. 그 이상야릇한 맛 때문에 아이들도 손대지 않는 것이 풋망고였다. 그런데 김칠성의 아내는 헛구역질까지 해가면서 밥보다는 풋망고를 더 많이 먹어댔다. 그 별난 짓은 곧 여자들 사이에 소문으로 퍼졌다. 그러나 그건 지나가는 웃음거리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김칠성의 아내는 온몸이 퉁퉁 붓고 두드러기가 돋아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병원으로 업혀 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병원에 가서야 풋망고를 너무 많이 먹어 일으킨 식중독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병원에서 며칠 고생을 하고 나온 김칠성의 아내는 또 풋망고를 따먹는 것이었다. 김칠성은 말리다가 지쳤고 이웃 여자들은 식초 못 먹어 환장한 삼신 할매가 점지한 애인 모양이라고 입들을 모았던 것이다.
"내사 마 죤 어무이가 풋망고럴 그리 엄청시리 좋아헐 적에 아덜 날지 알아삣능기라."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무신 소리기넌 무신 소리.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제."
"머시락카노, 무식허게. 거 망고가 뭐꼬? 붕알 아이가 붕알!"
"옛끼 이 사람아!"
"저, 저 또 싱거운 소리."
이런 말들이 튕겨나가는 가운데 사람들은 또 흥겨운 웃음들을 터뜨렸다.
"맞다, 풋망고야 지천잉게 많이많이 묵고 기왕지사 죤 동상얼 아덜로 보소."
구상배가 이렇게 덕담을 하며 김칠성을 옆에 끌어앉혀 술잔을 건넸다.
김칠성의 아들 이름은 그제 흔하게 <죤>이었다. 그 영어이름은 김칠성이가 좋아서 붙인 것이 아니었다. 교회에서나 국민회에서 그렇게 하기를 유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어차피 미국 학교를 다녀야 하고, 미국 아이들하고 어울려 자라야 하는데 표기하기 어렵고 발음하기 어려운 조선 이름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관청에서 출생신고를 받으며 미국식 이름이기를 거의 노골적으로 바라기도 했던 것이다.
"아들 많이 낳는 것은 좋은데 장가 못 간 사람은 어디 서러워 살겠소."
누군가가 정말 서러운 듯한 가락으로 말하며 한숨까지 내쉬었다.
"아이고 야, 내가 눈치없이 너무 과했나?"
구상배는 멋쩍은 듯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그러이 내가 머라카드노,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적에 퍼뜩퍼뜩 장개덜 들라 안 카드나. 인자 그놈에......"
그는 말을 얼버무리며 혀를 차댔다. 구상배가 어물거려 버린 말이 무슨 말인지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2년 전인 1917년에 <동양인 절대배척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법에 따라 사진결혼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김칠성이는 그 법이 시행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장가를 든 것이었다. 국민회에서는 그때까지 하와이에 건너온 처녀들을 1,066명으로 집계했다. 그러니까 장가를 든 남자들보다 장가를 못 든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은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노총각들은 하와이 여자나 중국 여자하고는 한사코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일본 여자하고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하와이에서 조선 처녀를 신부감으로 구하는 노총각들도 가끔 있었다. 서너 살, 예닐곱 살에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건너온 처녀들이었다. 그동안의 세월이 아이들을 처녀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처녀들에게 장가를 들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 처녀들도 집안에서도 노총각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고, 장가도 못들고, 돈도 못 모으고, 찾아갈 나라도 없고, 나이만 마흔이 다 되었으니 이런 처량하고 한심한 신세가 있는가. 빌어먹을......"
누군가의 취기 어린 탄식이었다. 술자리에서는 으레껏 나오게 마련인 탄식이고 신세타령이었다.
"그나저나 애국금인지 독립금인지가 또 오를 거라는데 그걸 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누군가 말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무신 소리 하노. 이승만이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이 됐시니께네 지체 말고 퍼뜩퍼뜩 내란 말 듣지도 몬했나."
그냥 이승만이라고 불러대는 그 한마디에 이승만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좆겉은 놈덜, 염병 개지랄덜 말라고 혀. 우리나라럴 미국놈덜 손에 넘개줄라고 헌 물건이 무신 놈으 대통령이여 대통령이. 고런 인종얼 대통령으로 뽑은 상해임시정부 것덜도 다 미친놈덜이여. 나넌 인자 돈 안 낼 참이여."
그때까지 술만 마시고 있던 남용석이가 갑자기 터트린 말이었다.
"맞어, 무슨 일들을 그리하는지 알 수가 없어. 우리가 뼛골 빠지게 일해서 꼬박꼬박 돈을 냈는데 그간에 된 일이 뭐가 있어."
"국민회 차지한 이승만이만 좋은 일 다 시켰지 뭐야."
"아이라, 그리 욕만 헐 일이 아닝기라. 이 박사가 그리헌 것언 미국에 심얼 빌리 갖고 우리나라 독립얼 시켜보자 헌 것이 아니겄나."
구상배가 좌장답게 이야기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성님요, 그런 소리 마시오. 우리가 미국 놈덜헌티 얼매나 지독시리 당허고 사는교. 이승만이넌 노동일얼 안 해보고 편케만 살아서 미국 놈덜 진짜 속얼 모리는 기라요."
"여러 말 헐 것이 없어. 우리허고 일본 놈덜얼 놓고 미국 놈덜이 누구 편얼 드는지 보면 알 일이 아니여. 우리겉이 무식헌 놈덜도 훤허니 아는 일얼 박사란 사람이 몰르다니. 고것이 사람이여."
그때까지 말이 없던 방영근이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내뱉은 말이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방영근의 어조가 너무 단호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그런 식의 성토를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이승만이 윌슨 대통령에게 한국위임통치 청원서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진 당시에는 거의 날마다 모여앉아 성토하고 분해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박용만 선생언 어째 감감무소식이여. 떠난 지 반년이 넘었는디."
남용석은 혀를 차던 한숨 끝에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어데, 그리 조급허니 맘 묵으면 되나. 큰일 할라카는데 반년이야 우리 한나절 짬이겄제. 그 양반 기개가 있으니께네 진득허니 기다리믄 꼭 존 소식이 올 끼라. 영근이도 기운 잠 채리라."
구상배가 방영근이에게 술잔을 건넸다. 방영근은 술잔을 받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억지웃음이었다. 구상배가 굳이 방영근에게 신경 쓰는 것은 그럴 만도 했다. 방영근은 국민군단이 해산되고 뒤이어 박용만이 만주로 떠나게 되면서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우울하게 변했던 것이다. 국민군단이 해산되면서 물론 방영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든 단원들은 허망해하고 허탈에 빠지게 되었다. 거기다가 박용만까지 만주로 떠나게 되자 더 황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날이 흘러가면서 그런대로 기분을 돌려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방영근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승만이 국민회를 장악하게 되자 박용만만 궁지에 몰린 것이 아니었다. 국민군단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미쳤다. 국민회에서 지원을 중단해 버렸던 것이다. 그건 외교독립론을 주장하는 이승만이 무장투쟁론을 주장하는 박용만에게 가하는 치명타였다. 그러나 박용만은 이승만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본부로 돌아다니고, 재력을 가진 동포들을 찾아다니고 하면서 국민군단을 이끌어나가려고 애썼다.
한편으로 국민군단 단원들도 새롭게 정신무장을 했다. 전원이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훈련은 밤에 받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단원들이 처음 설립할 때보다 세 배가 늘어 3백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이 낮에 일하고 밤에 훈련을 받기로 한 것은 돈벌이를 해서 운영비를 충당하려는 자구책이었다. 단원들은 고달프고 힘겨우면서도 곧잘 견디어냈다. 박용만의 독려와 의지가 그들의 힘과 용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한결같지는 않았다. 고생스러운 날들이 길어지고 해가 바뀌고 하면서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탈락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3년 동안이나 버티어냈다. 그동안 박용만은 힘을 회복하려고 애를 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결국 국민군단은 해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3.1 만세 소식이 바다를 건너왔다. 하와이도 들뜨고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그리고 국민군단이 다시 모아져 만주로 건너갈 거라는 소문이 퍼졌다. 만주에서 진짜 총을 들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왜놈들을 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국민군단 단원들은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러나 국민군단은 다시 결성되지 않았고, 만주로 떠난 사람은 박용만 혼자였다. 먼저 가서 국민군단을 부른다는 것이 박용만이 남긴 말이었다. 독립군으로 당당하게 집을 찾아가리라는 꿈을 품고 있었던 국민군단 단원들은 실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바다를 건너오는 소식은 만세운동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갇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더욱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방영근은 생각하다 못해 교회를 찾아갔다. 그동안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집에 대한 그리움에 걱정이 겹쳐져 밤잠도 잘 수가 없었고 일손도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목사의 손을 빌려 편지를 띄웠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편지는 가는데 한 달, 오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더 걱정이 커져 편지를 다시 띄웠다. 그리고 또 석 달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도 오지 않았다. 방영근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우울해져 갔다.
땅끝이 하늘 끝과 맞닿는 호남평야에 새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야산에 진달래가 피었다 지고 들녘이 푸르른 색조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소들의 긴 울음소리가 들녘의 적요 속에 구성지게 울리고는 했다. 작년 이맘때 또 하나의 해가 밤에도 이글거리는 것 같았던 봉화와 함성의 열기는 이제 들녘의 어디에서도 느낄 수가 없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넓고 넓은 들녘의 깊은 고요 속에서 멀고 작은 점들로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한 해가 흘러가고, 무심한 들녘에서는 그때의 상처는 찾을 길이 없었다.
"자아 최 선생, 우리 이야기 간단하게 합시다. 이 자문위원은 돈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편을 들고나서라는 것도 아니오. 당신네 조선사람들을 위해 좋은 의견을 내고,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해서 총독부의 문화정책을 당신들을 위해 선도하는 게 자문위원들이 할 일이란 말이오.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이오. 그러니 최 선생이 자문위원 한자리를 맡아주시오."
새로 생긴 주재소의 소장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그 말이 막힘이라고는 없이 매끈했다.
"글쎄요...... 저는 배운 것도 많지가 않고 ....... 저어, 식견도 별로 없어서 그런 중임을 맡을 위인이 못 된다니까요. 그러니 저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유강은 서툰 일본말을 더듬거렸다. 일본말이 서툰데다 긴장을 하니까 말은 더 더듬거려지고 있었다. 최유강은 일본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재소가 그야말로 비 온 뒤에 죽순 돋아나듯 면마다 빠짐없이 생겨나는 바람에 경찰간부들이 일본에서 새로 많이 건너오게 되었다. 용지면의 주재소장도 그런 부류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자기의 조선말이 형편없이 서투니까 최유강에게 일본말을 하라고 명령하듯 했던 것이다. 최유강은 별로 내키지 않으면서도 공허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본말을 익혀오고 있었다.
"거짓말 마시오. 학식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서당 선생을 하고, 일본 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요. 당신, 우리 총독부 정책에 반항하는 거요?"
주재소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며 눈을 치떴다.
"아, 아닙니다. 그 서당 선생이란...... 그게 아이들 가르치는 거니까 옛날에 한문 좀 읽은 것으로 해본 것이지 저어......학식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지요. 신식공부는 해본 적이 없으니 학식도 없고......"
"이봐, 당신 정말 이럴 거야!"
주재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당신, 누굴 바보 병신으로 아는 거야 뭐야. 서당 선생이란 자들이 한문만 가르친 게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어. 작년 만세폭동도 그자들이 선동해대고 말야. 내 말이 틀렸나!"
최유강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것을 느끼며 눈길을 돌렸다.
"당신도 사상이 불온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작년에 독립선언문이란 불온서를 불평불만 분자인 농민들에게 읽어주며 폭동을 선동한 죄로 유치장에 갇혔었지. 그때 당신이 아무 죄가 없어서 그냥 풀려난 줄아나? 어디 대답해 봐."
완전히 하대로 바뀌어버린 주재소장의 말투는 꼭 죄인을 다루는 식이었다.
"빨리 대답해 보라니까."
주재소장은 책상다리를 걷어찼다.
"잘 모르겠소."
"잘 몰라? 지금이라도 조사를 다시 시작해 잘 알게 해줄까? 당신이 한짓은 폭동 사주. 선동죄야. 그 죄면 몇 년 감옥살이를 시킬 수 있는 줄 알아? 10년에서 15년이야. 어때, 감옥살이를 한 번 해보겠어?"
"......"
"이봐,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우리도 학식있는 사람들은 관대하게 대접하고 있는 거야. 대접을 해주면 대접받을 줄 알아야 피차에 좋은 것 아닌가. 총독부에서 조선사람들의 뜻을 십분 받아들여 무단정치를 폐지하고 문화정치를 시작했으면 당신같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겠어? 호응을 하고 나서는 게 옳지 않나?"
‘이런 도적놈아, 헌병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해놓고는 그 대신 경찰서고 주재소를 두 배, 세배 지어대는 것이 문화정치냐. 이 사기꾼, 날강도 놈들아!’
최유강은 속 터지게 부르짖고 있었다.
"자아, 여기 이름 적고 도장 눌러."
주재소장이 최유강의 앞에다 종이와 만년필을 밀어놓았다. 최유강은 눈을 감으며 숨을 깊이 들이켰다가 긴 한숨으로 내 쉬었다. 눈앞에 공허 스님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최유강은 진퇴양난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절감하고 있었다. 자문위원이 되는 것은 바로 친일파의 길이었다. 문화정치라는 그럴싸한 이름 아래 이런 식으로 관제 친일파를 만들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 소장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허나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러니 며칠 좀 생각할 여유를 주시오."
최유강은 도저히 강압대로 이름을 적고 도장을 누를 수가 없었다. 굴욕스럽기도 하려니와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공허 스님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생각해 보나마나 감옥살이하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날짜만 보내지 말고 당장 이름 적어."
주재소장은 마지막 속셈까지 다 들어내며 몰아붙였다.
"나한테도 인격이라는 게 있어요. 명색이 자문위원이라는데 이런 식으로 취급당해 가며 자문위원이 되어 무슨 자문을 하지요? 이삼 일 뒤에 다시 만나 서로 점잖게 일을 처리했으면 좋겠단 말입니다."
최유강은 주재소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평소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그의 인상이 더욱 싸늘하게 날이 서 있었다.
"뭐, 서로 점잖게 처리해?"
주재소장은 헛웃음을 쳤다. 그러나 순각적으로 그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스치는 것을 최유강은 느끼고 있었다.
"예, 서로 하루이틀 얼굴 대할 사이가 아니니까요."
최유강은 공격하는 기분으로 말했다.
"좋소. 소원을 들어주겠소."
주재소장은 거창하게 <소원>이라는 말을 쓰며 종이와 만년필을 끌어당겼다. 최유강은 주재소를 나서며 마음이 더없이 착잡했다. 이삼 일 안에 공허 스님을 만나기도 어렵겠지만, 만난다 하더라도 그 그물을 빠져나갈 묘안은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만세운동의 여파로 조선 총독이 바뀌고, 새 총독이 무단통치인 헌병 경찰제를 폐지하고 문화정책을 공표한 것이 작년 9월이었다. 그 정책에 따라 헌병들이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헌병 주재소며 헌병파견소들은 경찰주재소로 간판을 바꿔 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새 경찰서며 주재소들이 사방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야릇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고, 아이들도 새 주재소를 피해 다녔다. 최유강은 문화정치라는 것이 그전의 폭력통치를 호도하기 위한 허울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고민하고 있다가 뜻밖에 자문위원이 되라는 강요를 받게 된 것이었다. 최유강은 자문위원 제도를 만든 총독부의 속셈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각 지역마다 어느 정도 신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제놈들의 꼭두각시와 방패막이로 이용하자는 속셈이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치밀한 교활이었다.
"아아......"
최유강은 신음하듯 소리를 내며 하늘로 고개를 젖혔다. 가슴만 답답할 뿐 치밀한 교활을 물리칠 수 있는 현명한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 이서면의 안재한도 똑같은 강요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재한은 최유강처럼 우선 급한대로 피하지를 못하고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말 할 것 없소. 도장만 찍으면 아들을 곧 선처하도록 하겠소. 자문위원 아들을 어찌 감옥살이를 시킬 수 있겠소? 그건 우리 문화정책에 안 맞는 거란 말이오."
주재소장은 급소를 찌르고 들었던 것이다. 급소를 찔린 안재한은 짧은 시간 동안 피가 타드는 고심을 했다. 아들은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5년 형을 언도받았던 것이다.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들은 만세시위를 주동했다가 미처 피신을 못하고 체포되었던 것이다.
안재한은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었다. 감옥에서 5년을 골병들이느니 일단 끌어내서 만주든 어디로든 보내는 것이 낫다. 안재한이 붙들었던 기둥이었다. 그러나 안재한은 가슴 한구석에 남은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씻어낼 길이 없어 며칠이고 술을 마셨다. 서당을 더 할 체면도 없었고, 공허 스님을 대할 면목도 없었던 것이다.
장덕풍의 널찍한 기와집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봄볕 따스하게 퍼진 넓은 마당에는 구름차일이 날갯짓하듯 쳐졌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흥겨운 왁자함 속에 전을 부치는 기름냄새와 돼지고기를 삶는 고기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잇따라 밀려들고, 마루며 차일 아래로 음식소반을 나르는 여자들의 종종걸음은 더 분주해지고 있었다.
"어르신, 평안허신게라오?"
장덕풍이가 좌정하고 있는 큰방으로 들어서며 한 사내가 이렇게 인사했다.
"이, 자네 무룡이 아니라고? 그려, 그려. 다 안 와도 자네넌 와야제."
장덕풍은 혼쾌한 웃음을 얼굴 가득 피워내며 서무룡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양쪽에 앉아 있는 예닐곱 사람을 바쁘게 휘둘러보며 어험 어험 헛기침을 했다. 그는 서무룡이가 자신을 <어르신>이라 부른 것이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었고, 그걸 옆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확인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어르신, 절 받으시제라."
양복 차림에 파리가 미끄러져 낙상할 만큼 머릿기름을 반지르르하게 바른 서무룡이가 장덕풍의 앞에 두 손을 모아 잡고 섰다.
"어디, 어디, 절얼 무슨 큰절얼......"
장덕풍은 팔을 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더 만족스러운 웃음이 넘쳐나고, 등이며 어깨는 절을 받을 준비로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무룡은 넙죽 큰절을 했다.
"아드님 승진허시고 아덜손지 보신 겹경사럴 축하디리겄구먼요."
절을 하고 일어난 서무룡은 깍듯하게 인사말까지 갖추었다.
"어이, 어이, 고맙네 고마워. 어여 편허니 앉소, 어여 앉어. 어험, 어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장덕풍은 서무룡에게 자리를 권하랴 옆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신을 과시하랴 몸짓이 두서없이 분주했다.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위신을 그렇게 세워주는 서무룡이가 너무 고맙고 기특해 당장 돈 몇백 원을 줘도 아까울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야 땅벌, 그것 갖고 들어와."
서무룡이가 밖에다 대고 명령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내가 커다란 상자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요것 밸 것 아닌디 그냥 지내가기 서운히서 쬐깨 장만혔구만이라우."
서무룡은 지극히 겸손해하며 상자를 장덕풍이 앞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어허, 이리 걸음 헌 것만도 고마운디 멀라고 요런 것까지 갖고 오고 그런가. 참말로 자네 예절에 공자님도 탄복허시고 맹자님도 감복허시겄네그랴."
장덕풍은 터무니없이 큰소리로 떠벌리며 양쪽에 앉은 사람들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가 수그러들고 있었다.
"짜아, 다덜 인사 나누더라고. 소문으로야 진작에 다 알고 있을 것인디, 이 예절 바른 젊은 사람이 누구인고 허니 말이여, 우리 군산바닥서 완력이 질로 씨기로 명난 일심회 서무룡 회장이구만. 일심회넌 우리 보광회허고도 연이 맺어져 있응게 자네덜도 이참에 인사럴 트는 것이 졸 것잉만."
장덕풍은 거드름을 피우며 사람들에게 서무룡이를 소개했다. 그는 주먹패 조직인 일심회 회장이 보광회 회장인 자신에게 이렇게 찾아와 굽실거린다는 것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서무룡은 장덕풍의 휘하에 들어 있는 장사꾼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보광회 회원인 그들은 서무룡이 앞에서 어딘가 기가 꺽이고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서무룡은 작년 10월에 세력을 더 확장해서 일심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일편단심으로 천황폐하께 충성한다는 뜻이었다. 그 조직을 짜게 한 것도 경찰이었고, 이름을 붙여준 것도 경찰이었다. 장덕풍이 대소상인들을 모아 보광회 회장이 된 것도 같은 시기였다.
"손님들한테 그냥 물건만 팔지 말란 말이오. 우리 일본상품들이 얼마나 싸고 좋은지 선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이 조선사람들한테 베푼 은덕이 얼마나 큰지도 선전하란 말이오. 예를 들면 말이오, 일본이 철도를 놓아주어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살기 편해졌느냐, 일본이 신식 농기구를 보급해 조선농민들이 농사짓기가 얼마나 수월해졌느냐, 이렇게 말이오"
"예,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소. 새로 문화정치가 시작됐으니까 앞으로는 아주 딴판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열심히 선전하란 말이오."
사찰과장은 장덕풍에게 의미 깊은 눈빛을 보내며 지시했던 것이다. 그런 식의 단체가 군산에만 열 개가 넘게 생겨났다. 그리고 각 군과 면마다 비슷비슷한 이름의 단체들의 풍년을 이루게 되었다. 서무룡은 장덕풍의 방에서 나와 마당의 구름차일 아래로 내려왔다. 거기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장칠문이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듯 하고 상좌에 앉아 벌겋게 술이 취해 있었다.
"차석님, 아부님 뵙고 왔구만이라."
서무룡은 일부러 <차석님>에다가 힘을 주어 부르며 장칠문이 옆으로 다가섰다.
"어이, 자네...... 아니 일심회 회장님이 납시는 거여? 욜로 와, 욜로."
장칠문은 서무룡의 손을 잡아끌어 굳이 자신의 옆에다 앉혔다.
"차석님으로 승진도 허시고 생남도 허시고, 참말로 요런 겹경사에 쌍경사가 어디 또 있겄소. 지가 술 한잔 권헐랑마요."
서무룡은 유식한 말들을 골라 몇 번이고 연습했던 인사말을 써먹으며 장칠문에게 술을 따랐다.
"촌구석지 차석이 머 볼 것 있간디."
이렇게 잔치까지 벌이고 있으면서도 장칠문은 차석 승진이 별 것 아닌 것처럼 거만을 떨고 있었다.
"아니, 평상얼 촌구석지에만 있간디라? 장 차석님이야 원체로 공얼 잘 세우싱게 금세 군산을 나오실 거구만이라."
서무룡이는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내놓고 귀에 단 말만 하고 있었다.
"그려, 촌구석지서 허송세월 헐 수야 없제. 어디 두고 보드라고."
장칠문은 무슨 묘안이라도 있는 듯 자신 있게 말을 받았다. 장칠문은 경찰서와 주재소들이 많이 생기는 바람을 타고 주재소 차석으로 승진된 것이었다. 거기다가 딸만 내리 셋을 낳다가 마침내 아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집안이 훤허니 열릴라고 복덩어리가 태인 것이다. 복덩어리! 잔치혀, 크게 잔치혀!"
장덕풍이 벌렁벌렁 춤을 추며 소리쳤던 것이다. 차일 아래서는 장칠문에게 아부하는 소리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장 차석님이 조선사람으로 차석이 되기로넌 이찌방(첫 번째) 아니겄소?"
"그려, 그려, 그럴 것잉마. 우리 차석님이야 일진회서보톰 세운 공이 원체로 큰 게로 당연지사제."
"그 먼 소리여. 일본사람 같앴음사 진작에 차석 따고 주재소장언 차고 앉았을 것인디 조선사람이라 이리 늦은 것이제."
"그려, 그 말이 맞구만. 인자 곧 주재소장이 되셔야제."
"어디 주재소장만이여? 인자 출세질이 신작로맨치로 훤허니 열렸응게 경찰서장도 낼 모레여."
"글씨...... 경찰 서장꺼지야 되겄능가?"
술기운과 함께 붕붕 떠오르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던 장칠문은 경찰서장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경찰서장이야 골백번도 더 되고 싶었지만 술기운에도 그 자리는 어려울 것 같았던 것이다.
"무신 말씸이다요. 공만 크게 세움사 그 자리라도 못 앉을 것 머시가 있당가요. 독립운동인지 머신지 헌다는 폭도덜얼 많이만 잡아내먼 경찰서장이야 절로 될 것 아니겄소."
"그려, 그것도 존 방도제."
그때 한 남자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차링 안으로 들어섰다.
"오다봉게 한발 늦었네그랴."
"이, 어여 오소 친화회장."
장칠문이가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장칠문이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은 한쪽 눈에 명씨박인 백남일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친화회장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이다.
"찬치럴 아조 크게 채랬구만......"
백남일은 외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떫은 웃음이 엷게 서려 있었다.
"자네럴 기둘리든 챔이여. 앉기 전에 아부님 뵙고 올랑가?"
"잉, 그러제."
백남일은 마지못해 대답하며 속은 뒤틀려오르고 있었다.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장칠문이가 자신에게 "자네, 자네" 하면서 맞먹고 든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자신이 헌병대 보조원으로 있을 때만 해도 경찰보조원이었던 장칠문 정도는 상대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집안의 지체로는 엄연히 중인과 상놈의 차이였고, 부모의 직업으로는 면장과 잡화상의 차이였으며, 보조원이라고 해도 헌병보조원과 경찰보조원은 비교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장칠문이는 더 말할 것 없었고, 그 애비 장덕풍이까지 자신에게 존대말을 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장칠문이하고는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그 애비에게는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하는 신세로 변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눈을 다쳐 헌병대에서 쫓겨나게 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 얼굴 반닥한 계집 하나 탐낸 것이 그리도 엄청난 화근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하룻밤 재미 본 것으로 평생 눈병신이 되고 출세길까지 막혀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아버지까지 면장 자리에서 내몰리고 만 것인가. 그놈의 땅 욕심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도 눈치 빠르고 앞 뒤 분간을 잘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그리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가 면장 자리에서 쫓겨나 갓끈 떨어진 신세가 되자 그만 세상인심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전에 굽실거리고 눈치 보던 사람들이 인사없이 외면하거나 뒤에서 코웃음 치기가 예사였다. 아버지는 분을 참지 못해 친화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세는 예전 같이 되돌려지지는 않았다. 장칠문이가 콧대를 높이며 어물쩍 말을 놓게 된 것이 그즈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고 말았다. 몸 기댈 데는 완전히 없어지고,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헌병대에만 그대로 있었더라도...... 내가 그년만 건드리지 않았더라도...... 그년 잘못 건드린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나 그건 다 부질없는 일이었고, 이제 자신 쪽에서 장칠문이에게 가까이해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장칠문이가 차석으로 승진까지 하고 말았다. 잔치에 오라는 말을 흘려넘길 도리가 없었다. 아아, 그년만 건드리지 않았더라도...... 백남일은 문지방을 넘어서며 또 쓰디쓴 후회를 씹었다.
"그간 무고허신게라. 남일이구만요."
백남일은 장덕풍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이, 자네도 왔능가. 어여 오소."
보료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장덕풍이 앉음새를 고쳤다. 그 자세는 아까 서무룡이에게 큰절을 받을 때의 모양 그대로였다. 그런데 백남일은 큰절 같은 것을 할 기미는 전혀 없이 어물어물 밖으로 나가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인사럴 허로 들왔으면 쬐깨라도 앉었다 나가야제. 거그 앉소."
야 이 후레아들놈아 그런 법도도 모르느냐 하는 식으로 장덕풍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큰절 받기 틀린 것을 알고 심사가 꼬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종두의 아들이 자신에게 문안 인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장덕풍은 너무 속 시원한 통쾌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 후련하고도 짜릿한 통쾌감은 바로 승리감이었던 것이다. 백남일은 마지못해 자리 잡고 앉았다.
"자네 정미소넌 잘 돌아간가?"
장덕풍의 말은 문안인사를 받은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그저 인사치레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러나 장덕풍은 우리 아들은 주재소 차석님인데 네놈은 정미소나 돌려먹는 놈이다 하는 말을 옆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것이었다.
"야아, 그작저작 돌아가능마요."
백남일은 마땅찮은 얼굴로 대꾸했다.
"가만있거라 보자, 자네 아부지 제삿날도 얼매 안 남었을 것인디?"
"야아......"
"쯧쯧쯧...... 팔십꺼정도 살 양반이 그리 고약시리 숨 끊어졌시니. 그 똑똑헌 양반이 어찌 잘못 생각혀서 폭도덜 앞에 나서갖고. 다 맘이 급해 그리된 것인디, 그것이야 여우가 덫에 치인 실수가 아니고 머시여. 참, 군수에 부윤도 까딱없이 해묵을 아까운 양반인디."
장덕풍은 맘껏 인심을 써가며 맘껏 야유를 해대고 있었다. 백남일은 속이 부글거리는 것을 참아내며 밖으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장칠문은 이틀 후면 금산면 주재소로 부임해 갔다. 그는 차석으로 승진이 된 것은 너무 좋았지만 근무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임이니까 군산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군산 근방인 옥구군 어느 면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뒷손을 썼지만 고작 차지가 온 것이 금산면이었다. 금산은 군산에서 너무나 먼 촌구석이었다.
"이봐, 배부른 소리말어. 무주나 장수 같은 데로 가지 않은 것만도 큰 다행으로 생각하란 말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세끼야가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손을 쓰지 않았다면 무주, 장수행이라는 뜻이었다.
"첫술에 배불르냐? 이 애비만 믿고 가서 잘허고 있어."
장덕풍은 아들을 떠나보내며 그동안 몇번이고 했던 말을 또 했다.
"반년 안 넘게 허씨요 이."
"알어, 알어. 니보담도 이 애비가 더 급엉게 아무 걱정 말어."
이건 결코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장덕풍은 자신의 돈벌이와 위세를 위해서도 아들을 가까이 둬야 했던 것이다. 산을 모르고 살아온 장칠문을 금산면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이 줄기를 이루고 있는 산들이었다. 장칠문은 그 우람한 산들을 보자마자 정나미가 떨어졌다. 얼마나 사람 못살 촌구석이면 산들이 저리 많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넓은 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눈에 앞을 가로막는 산들이 너무 갑갑하기도 했다.
"장 차석이 첫 번째로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소. 잘 듣고 차질없이 완수하도록 하시오."
단둘이 마주 앉은 주재소 소장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칠문은 첫 번째 임무라는 말에 빳빳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저 동쪽으로 솟아 있는 모악산의 혈을 끊는 일이오."
"예에? 산의 혈을 끊어요?"
장칠문은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왜 그러는 거요? 혈이란 것을 몰라서 그러는 거요?"
소장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
"아닙니다, 산에 혈이란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요. 헌데, 그것을 왜 끊는지......"
장칠문은 자신이 너무 입을 빨리 놀린 것을 후회하며 소장의 눈치를 살폈다.
"아, 그건 묻지 않아도 설명할 참이었소. 자알 들으시오. 이 세상에는 산들이 많고, 그 산에는 산마다 혈이란 것이 있고, 이 세상에 쓸 만한 인물들은 그 맥을 타고 난다고 하지 않소. 특히 조선에는 산들이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건 아주 기분 나쁜 이야기요. 그러니까 이 고장에서 골치 아픈 놈들이 다시는 태어나지 못하게 우리 면에서 제일로 치는 명산인 모악산의 혈을 끊어야 된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소?"
소장의 태도는 너무 심각하고도 진지했다. 그런데 장칠문은 하마터면 헛웃음을 칠 뻔했다.
"글쎄요...... 그건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는 미신인데요......"
장칠문은 소장의 눈치를 살펴 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르는 소리 마시오. 앞으로 조센징들이 다시는 작년 같은 만세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산마다 혈을 다 끊어야 한단 말이오. 이래도 못 알아듣겠소?"
소장의 어조가 달라지며 눈을 치떴다.
"그 많은 산의 혈을 다 끊어요?
장칠문은 너무 어이없고 놀랍기도 해서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되물었다.
"장 차석보고 다 끊으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놀랄 건 없소. 우리 주재소가 맡은 건 모악산뿐이니까 간단하지 않소?"
"그럼 이게 소장님 혼자 생각이 아니라 그러니까......"
장칠문은 다음 말을 삼켜버렸다. 말을 하다 보니 눈치 없이 보일 것 같았던 것이다.
"그렇소. 이건 전국적으로 극비리에 추진되고 있는 일이오. 장 차석이 책임지겠소, 못 지겠소."
"예에, 채, 책임지지요."
장칠문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대답을 하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스치며 가슴이 섬뜩해졌던 것이다. 당산이나 당산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길가의 장승을 더럽히거나 넘어뜨려도 꼭 해를 입는다는 말이 퍼뜩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혈이라는 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끊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하물며 큰 산의 맥을 끊어서야...... 장칠문은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밀리며 그 일에서 발을 뺄 구실을 찾으려고 했다.
"아, 그런 염려는 마시오. 그거야 지관을 앞장세우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요. 명당 찾아내는 것이 업인 지관들은 그런 것을 환히 아는 사람들이니까."
소장은 장칠문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한마디로 그 해결책을 내놓았다. 장칠문은 더 할 말이 없어서 쓴 입맛만 다셨다.
"그 일을 한 다음에 두 번째로 할 일이 또 있소."
궐련을 뽑아 문 소장은 불을 붙이려다 말고 장칠문에게도 담배를 권했다. 완전히 궁지에 몰려버린 장칠문은 속이 답답하던 참이라 얼른 담배를 뽑았다.
"그게 뭔고 하니 말이오, 부락마다 당산나무란 게 있잖소? 그걸 잘라 버리는 것이오."
소장은 담배 연기를 후욱 내뿜었다.
"아니, 당산나무를 잘라요?"
장칠문은 담배를 빨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왜 그리 놀라는 거요?"
소장이 얼굴을 구겼다.
"그러니까 저어...... 당산나무는 부락이 바로 옆이라 비밀리에 자를 수가 없고...... 그것을 밤에......"
"아, 아, 여러 말 할 거 없소. 그건 비밀리에 안 해도 되니까."
주재소장은 손을 내저으며 장칠문의 말허리를 잘랐다.
"예에? 비밀리에 안 해요?"
"아니, 장 차석은 왜 그리 자꾸 놀라기만 하는 거요?"
소장이 불쾌한 얼굴로 장칠문을 꼬나보았다.
"예, 그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산나무를 잘랐다가는......"
장칠문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왜, 그것들이 어쩐단 말이요?"
소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쳐 갔다.
"저어......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못 자르게 하는 시끄러운 일이......"
"그자들이 왜 그러는 거요?"
"그러니까 거 뭔가...... 당산나무에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님이 있다고 믿고 있어서 그렇지요."
"바로 그거요. 조센징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당산나무는 전부 잘라 없애버려야 한다 그 말이오. 조센징들은 그런 잡귀 앞에 모여 제사지내면서 못된 생각들이나 꾸며내서 집단행동을 한단 말이오. 작년 만세폭동도 그 당산나무 잡귀 앞에서 모의했고, 그 잡귀의 괴력을 믿고 집단행동을 벌인 것이오. 당산나무를 전부 잘라 그 잡귀들을 다 몰아내야만 다시는 그따위 짓 하지 못한단 말이오. 알아듣겠소?"
"예...... 그런데 말썽이 아주 많이 일어날 텐데요."
"어허, 무슨 걱정이 그리 많소. 총은 뒀다 어디다 쓸 거요?"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라 그간에 잠잠해진 민심을 건드리게 되면......"
"민심까지 장 차석이 걱정할 건 없소. 이번 기회에 당산나무를 다 쳐 없애서 조센징들의 생각을 개조시켜야 하오. 조센징들이 섬기고 받들어야 할 생신은 천황폐하 한 분뿐이니까."
장칠문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천황폐하라는 말이 나온 이상 더 딴소리를 해서는 안되었다.
"내가 지시하는 대로 내일부터 극비리에 혈을 끊을 준비부터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장칠문은 대답을 하면서도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하면 정말 해를 입는 것인지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은 너무나 멀었다.
장칠문은 다음날 대장간부터 찾아갔다. 무쇠못 열 개를 주문했다. 굵기는 엄지손가락의 두 배 정도에 길이는 두 뼘 정도의 대못이었다. 그건 대못이라고 할 수도 없고 끝이 뾰족한 쇠막대였다.
"요것언 석공덜이 쓰는 연장도 아니오, 어디에 쓰실랑게라?"
대장장이가 사복 차림의 장칠문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모르겄소. 우리 쥔이 맹글어오라고 허능 것잉게."
"쥔이 멀허는디요?"
"고건 알아서 제사에 쓸라요? 말 그만 허고 물건이나 잘 땡그시오."
장칠문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여 버렸다.
34. 독립투쟁의 깃발
만주의 봄은 더디었다. 4월 중순이데도 꽃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고, 개울가나 들녘에 새싹들이 겨우 돋아나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오슬오슬 떨릴 정도로 날씨가 차가웠다. 밤에는 가끔 진눈깨비가 내리기도 했다. 나뭇가지들은 아직 겨울 모습 그대로 움이 트지 않고 있었다. 그리나 개울에서는 얼음 풀린 물소리가 돌돌 거리고, 작은 새들이 해맑은 소리로 지저귀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절기에 앞서 홀로 부지러한 것이 사람이었다. 농부들은 어디에서나 소나 말을 앞세워 쟁기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농부들의 모습에서 봄을 진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흑회색의 광막한 만주벌판에서 그 농부들의 모습은 때 이르게 피어난 봄꽃이었다.
이광민 일행은 연길현에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마차역에서 모두 내렸다. 연길현에서 제일 번화한 국자가까지는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목적지가 국자가가 아니기도 했지만 위험을 피하자는 것이었다. 국자가는 이제 용정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이 일본영사관의 경찰력에 장악되어 있었다. 작년에 용정의 만세시위에 뒤따라 독립운동 단체들이 속출하게 되면서 훈춘과 함께 국자가의 영사분관에서는 경찰력을 대폭 강화시켰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합마당까지는 걸어야 합니다. 다들 너무 힘들지요?"
부드러운 인상의 김명훈이 웃음을 지으며 네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마주 보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해를 떠나서 여기까지 며칠이나 걸렸는지 누구 압니까?"
김명훈이 새로운 눈길로 네 사람을 빠르게 켰었다. 그 눈길은 부드러운 인상과는 달리 아주 날카로왔다.
"열이틀입니다."
누군가의 대답이었다.
"열이틀이 틀림없습니까?"
김명훈의 눈길이 나머지 세 사람에게 멈추었다.
"예. 열이틀이 맞구만요."
이광민이 자신 있게 응답했다.
"예, 역시 다릅니다. 그 정도로 치밀하면 독립군 될 자격들이 충분합니다. 내가 미리 말하진 않았지만 위험하고 불안한 생활을 할수록 그때그때 중요한 것들은 그런 식으로 기억해 두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런 기억을 해두지 않으면 무척 난처하게 되지요. 예를 들면, 우리가 갑자기 무슨 일을 당해 뿔뿔이 흩어져 다시 상해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온 길을 다 기억해 둔 사람이 제일 안전하고 빠르게 상해에 도착할 것 아닙니까. 됐습니다, 그간에 고생들 너무 많이 했습니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걸읍시다."
김명훈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이광민은 김명훈의 그 묘한 말투에서 선생 냄새를 진하게 맡고 있었다. 김명훈은 꼭 학생들을 가르치듯이 명령이나 지시투가 아니라 넌지시 일깨우며 깨닫게 하고 있었다. 한성에서 소학교 선생을 하던 그는 3.1운동에 앞장섰다가 상해로 몸을 피한 사람이었다. 그는 상해임시정부에서 만주의 각 독립군 단체로 파견하고 있는 요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광민은 그 파견원들이 맡고 있는 임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양쪽을 오가며 중요한 비밀업무들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뿐 이었다. 이광민은 자신이 파견원으로 뽑히지 못한 아쉬움음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네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네"
심사를 하고 난 결과였다. 파견원으로 뽑힌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서른 안팎으로 사회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이 스물 안팎의 젊은이들은 상해임시정부를 위해 할만한 일이 마땅하지가 않았다. 4백여 명의 젊은이들은 상해임시정부를 배돌며 자기들에게 무슨 일인가가 맡겨지기를 기다리면서 몇 달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에 돈이 떨어져 부두로 노동을 나가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대체로 바라는 것은 임시정부가 독립군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정에서는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한 해가 거의 다 가고 있었다. 그즈음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말이 만주의 독립군을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파리 강화회의가 끝나고 그 결과가 알려지면서 은이들의 동요는 심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기대는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조선의 독립이었다. 그런데 <조선>이란 이름은 회의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김규식을 비롯한 대표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세계의 열강에게 호소해서 독립을 얻으려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건 곧 외교독립론을 내세웠던 임정의 정책적 참패였다. 그 허탈한 실망감 속에서 모두가 확인한 것은 세계의 열강이란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 무장투쟁론이었다.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무장투쟁론을 지지하고 호응했다. 그건 단순히 젊은 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가 3.1운동에 앞장섰던 투쟁자들이었고, 그때의 거족적인 항쟁에 무장만 제대로 갖추었더라면 일본을 몰아낼 수 있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광민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외교 독립론의 첫 성과로 노렸던 민족자결주의의 실현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린 마다에 임정으로서는 무장투쟁론의 확산을 묵과할 수가 는 입장이었다.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무장투쟁론자들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당면의 대문제는 우리 독립운동을 평화적으로 계속하라는 방계를 고쳐 전쟁하려 함이요, ......군사적 훈련을 아니 받는 자는 국민개병주의에 반대하는 자요, 국민개병주의에 반대하는 자는 독립전쟁에 반대하는 자요, 독립전쟁에 반대하는 자는 독립에 반대하는 자요......"
마침내 도산 안창호는 1920년 정초 시정연설에서 모든 국민의 병사회로 독립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혔던 것이다. 그것은 시대적 상황과 대세에 따라 임정이 외교독립론이나 준비론보다는 무장투쟁론을 앞세워 독립정책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 시정연설을 계기로 젊은이들은 만주로 떠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임정에서 소개하는 여러 독립군 단체들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원보증과 신변안전을 위해 그들을 파견 요원들이 인솔하게 했다.
"자아, 자꾸 길이 험해지는데 저기서 물 좀 마시면서 쉬어갑시다."
앞서 걷던 김명훈이 걸음을 멈추며 왼쪽의 개울을 손가락질했다.
"만주에는 끝도 없이 벌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험한 산들도 있군요."
누군가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예, 이 산줄기들은 중국에서 장백산맥이라 부르는데, 우리 쪽에서 보면 백두산의 북쪽 줄기들이지요. 잘들 보세요, 우리나라 산들과 모양이 똑같지 않아요? 이 산줄기들은 동서로 두만강 압록강을 따라 뻗어 나가고 있고, 독립군들은 이 산줄기들을 타고 다니며 싸우는 겁니다. 활과 창으로 싸우는 게 아니니까 벌판에서는 싸움이 안 되는 거지요."
김명훈은 부드러운 인상만큼 자상하게 설명하며 물가에 자리 잡았다.
"그러먼 지금 가는 디에 홍범도 부대가 있능가요?"
이광민은 개울물에 손을 담그며 물었다.
"아니오,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곳은 대한국민회 본부요. 홍범도 부대는 전투를 하느라고 항상 이동하고 있으니 국민회 본부에서 다시 안내를 받아야 할 거요. 그리고 여러분한테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소. 다름이 아니라 홍범도 부대라는 명칭에 대해섭니다. 우리가 그저 쉽게 홍범도 부대, 홍범도 부대 하는데 그건 이제부터 안 쓰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홍범도 부대는 3·1운동 직후 노령에서 이동해 오면서 대한독립군으로 개칭을 해서 홍범도 부대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홍범도 부대라는 것도 의병투쟁 때부터 편의상 부른 이름이지 홍범도 장군이 그렇게 명칭을 붙인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나이 많은 어른의 존함을 아무런 존칭도 없이 불러대는 것은 예절에도 어긋나는 것이니까요."
이광민은 낯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무식과 불손함이 동시에 꼬집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명훈이 갖추는 예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의 존함>이라고 하면서 그는 홍범도 장군을 깍듯이 받든다는 것이었다. 포수였던 천한 신분은 간 곳이 없고 용맹스러운 독립군 장군의 신분으로만 홍범도란 사람은 존경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광민은 김명훈의 그런 예의바른 태도에서 큰 감명을 받고 있었다. 김명훈같이 학교 선생을 한 사람까지 홍범도 장군을 그렇게 존경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기뻤단 것이다. 자신은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오랜 흠모 때문에 그 많은 독립군 단체들 중에서 대한독립군을 서슴없이 골랐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지가 실언을 했구만요."
이광민은 김명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오, 이 동지. 내 말은 이 동지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전부 대한독립군에 가기를 원하고 있으니 미리 해두는 말이오."
김명훈은 밝게 웃으며 이광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어......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는디요, 이동휘 선생언 야소교 신자라든디 또 고려공산당 당수시니, 그럿이 어찌 된 것이지......"
이광민은 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하, 그것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상해에서 이 선생께 직접 여쭤보지 그러요."
김명훈이 어떤 의미 담긴 눈길로 이광민을 쳐다보았다.
이광민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신채호며 이동휘 같은 분들은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에에...... 그건 생각의 차이인 것 같소. 무슨 말이고 하니, 이 동지는 이동휘 선행이 야소교인으로 공산당 당수를 한다는 생각이고, 내 생각은 그분이 고려공산당을 결성하기 전에 야소교를 청산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광민은 아차 싶었다. 생각을 그렇게 돌리면 간단히 풀릴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그러나......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그 의문은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예수교인이 어떻게 정반대로 돌아설 수 있는가 하는 데서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그 말씀언 알겄는디요, 지가 생각허는 것언 야소교인이 어찌 야소료럴 청산허고 그리될 수 있는지......"
"아, 무슨 알이지 알겠소. 그러니까...... 그게 말이요...... 됐소, 이동휘 선생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신채호 선행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소. 신채호 선생이 대종교인 것을 아시오?"
"잘 모르겠는디요,"
"자아, 들어보시오. 신채호 선행은 성균관 학사가 되실 정도로 철저한 유학사셨소. 헌데 열강의 세력들이 우리나라에 뻗치면서 국운이 쇠퇴해가자 그분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소.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유학으로 안되다는 걸 ㄲ달으신 것이오. 그래 그분은 애국 계몽운동에 가담하면서 신문에 논설을 쓰는 논객으로 변모한 것이오. 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나라를 뺏길 것이 확실해지자 백성들을 일깨우고 힘을 주기 위해 을지문덕이며 이충무공의 전기를 짓기도 했소. 그러다가 왜놈들의 마수를 피해 독립운동을 펼치려고 만주로 망명했소. 만주에서 그분은 대종교도가 되셨소. 대종교는 조국의 독립 실현을 목표로 삼는 단군신앙이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상해임정의 설림을 놓고 보황주의냐 공화주의냐로 국체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을 때 공화주의를 가장 열렬하게 주장한 사람이 누군지 알지요? 바로 신채호 선생이시오. 보황주의자들은 수만 많았지 논쟁에서 신채호 선생을 이릴 수 없으니까 어찌쟤소? 젊은이들을 시켜 감금까지 시켜가면서 국체를 보황주의로 결정하려고 했소. 그러나 신채호 선행은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소. 힌채호 선생 같은 분이 아니었더라면 임정은 국체를 공화주의로 내세우기가 어려웠을 것이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신채호 선행은 나라의 독립을 절대적인 목표로 세워놓고 일거일동을 그 수단으로 총동원하시는 거요. 이동휘 선생도 신채호 선행과 마찬가지라 생각하오."
"그럼 신채호 선생도 필요하면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까?"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글쎄요, 그것까지야 내가 뭐라고 단언할 수 있겠소? 그건 숙제로 남겨놓고 우리 모두가 지켜보도록 합시다."
김명훈이 씨익 웃었다.
"근디, 공화주의허고 공산주의허고넌 안 맞는디 어찌 이동휘 선행이 입정 국무총리럴 허시는지."
"아, 그거 좋은 질문이오."
이광민은 의문 많은 생도 같은 표정이었고 김명훈은 성실한 선생 같았다.
김명훈은 손바가지로 개울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문제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게 없소. 아까 말한 것과 똑같이 이해하면 되는 거요. 상해 임정이야말로 최대 목효가 뭐겠소? 대한민국의 독립 아니겠소? 그 목표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상해임정은 국첵를 공화주의로 내세운 속에 복벽주의자 공화주의자 공산주의자 들이 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오. 그 연합은 아주 중요한 문제고, 소중한 결실인 것이오. 그런데 그렇게 주의 주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정부를 이룬 것은, 내가 알기로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소. 임정 요인들은 독립을 달성시켜야 하는 우리의 특수 상황을 이해해서 서로가 양보하고 인내해 가며 세계에서 유일한 성격의 정부를 탄생시킨 것이오.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자니 오랜 논쟁을 거친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런데 총독부의 왜놈들이 그 건설적인 논쟁을 조선놈들의 고질적인 파당싸움이니, 지방색을 드러낸 파벌싸움이니 했다는 것이오. 그건 임정이 설립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했던 왜놈들이 고의적이고 악질적으로 임정을 모함하고 헐뜯으려고 지껄여대는 소리요. 그리고 왜놈들한테는 군국주의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저 명령과 복종이 있을 뿐이고 논쟁이나 토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인들이오. 다시 말해서 임정의 연합은 독립운동 방책의 시범이고 모범을 보인 것이라는 점들 여러분들은 잘 이해해야 할 것이오. 다들 그렇게 이해가 됩니까?"
김명훈은 선생 노릇을 한 습관대로 하며 젊은이들을 둘러보았다.
"예, 인자 알것구만요."
이광만의 대답에 잇따라 다른 젊은이들도 무엇가 새롭게 깨달은 것 같은 반응을 나타내 보였다.
"자아, 너무 오래 쉬었소.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빨리 걸읍시다."
김명훈은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광민 일행은 합마당의 대한국민회 본부에서 이틀 동안 노독을 풀었다. 대한국민회가 예수교인들의 단체답게 합마당에는 십자가를 높직하게 단 예배당이 있었다. 이광민은 만주에서 처음 보는 예배당이 신기하고, 묘한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전주의 윌리암스 선교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윌리암스가 예배당의 비품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신자를 끌기 위해서였고, 자신들이 윌리암스의 설교를 들었던 것은 예배당의 비품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예배당을 보자 지난 기억들과 함께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야소교에 물든 것인가? 이광민은 자신이 마음을 새삼스럽게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있다는 것은 실감할 수가 없었다. 윌리암스한테서 얻은 것이 있다면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신앙심이 아니라 짧으나마 영어를 듣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이상하게 예수교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이광민은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임정의 파견원 김명훈은 딴 곳으로 떠나고 이광민 일행은 대한국민회의 안내원을 따라 대한독립군을 찾아갔다. 하루종일 산길을 걸었다. 양쪽 산줄기 사이에 골짜기가 넓고 개울물이 흘러내리면 어김없이 마을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들의 집은 거의가 초가집이었다. 그리고 개울을 따라 논들이 이루어져 있었다. 한눈에 조선사람들의 마을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작은 마을은 집이 대여섯 채인 곳도 있었다. 그런 작은 마을일수록 골짜기가 좁고 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광민은 그 작은 마을들을 보며 가슴 찡한 슬픔을 느끼고는 했다.
석양의 산 그림자와 함께 어스름이 내릴 무렵 꽤나 큰 동네에 도착했다. 바로 눈에 띄는 제일 큰 건물은 교회였다. 교회는 보통 집들보다 몇 배는 큰 데다가 지붕이 기와라서 돋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가 예수교인들의 마을인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색다른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색깔이며 모양이 일본 군복과 거의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독립군이었다. 아니, 독립군들 중에서도 가장 용맹을 떨치고 있는 홍범도 장군의 부하들이었다. 이광민은 가슴이 벌떡거리는 흥분과 긴장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홍범도 부대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격스러웠다.
"어서 오시오, 젊은 동지들! 원로에 얼마나 수고들이 많았소."
홍범도는 이광민 일행을 싸안을 듯이 두 팔을 벌려 맞이했다. 이광민은 홍범도를 보는 순간 멈칫했다. 가슴 한구석이 허물어지는 실망감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던 것이다. 너무 늙어 있었다. 그리고 체구도 크지 않았다. 자신이 그려왔던 홍범도 장군은 저렇지가 않았다. 기골이 장대하면서 주름살이 없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저리 늙어서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실망감과 함께 이 생각이 덮쳐왔던 것이다. 이광민의 그런 느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스물두 살의 눈에 쉰두 살의 모습은 늙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15년 가까이 적과 싸우며 거칠게 살아온 홍범도는 나이보다 더 늙게 보였으면 보였지 젊게 보일리는 없었던 것이다. 이광민이 상상해 왔던 홍범도 장군은 삼국지의 관운장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홍범도는 체구도 보통일 뿐이었다.
홍범도는 젊은이 하나하나와 악수를 나누며 아무 말 없이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광민은 세 번째로 악수를 하다가 그만 깜짝 놀랐다. 그 손아귀의 힘이 어찌나 센지 자신의 손이 구겨지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손아귀의 힘만큼 강하고 매서웠던 것이다. 이광민은 뒤늦게 손에 힘을 주었지만 손가락에만 힘이 들어갈 뿐 손아귀를 펼 수는 없었다. 얼굴의 주름살과는 달리 부리부리한 홍범도 장군의 눈에 압도당하면 이광민은 자신이 무엇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다들 며칠 푹 쉬도록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 잘들 해주시오. 난 그저 젊은 동지들만 믿으니까."
홍범도가 묵직한 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 한 말의 전부였다. 그들은 다음날부터 닷새 동안 휴식을 겸한 신원조사를 받았다. 헌병대에서는 출생지에서부터 최근의 동향까지 치밀하게 따지고 캤다. 꼭 범인을 다루듯이 냉정하고 살벌했다.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과 불쾌감이 쌓이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신원조사가 끝나고 나서 조사관이 말했다. 임정의 신원보증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고 했다. 만에 하나 임정에서 했을지도 모를 실수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실수의 틈을 타고 밀정이며 끄나풀이 파고든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첩자가 파고드는 것은 왜병들의 총 수백 자루보다 무섭다고 했다. 한 놈이 빼돌린 정보로 독립군 수백 명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설명을 듣고서야 신원조사의 까다로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광민 일행은 다른 데서 온 세 명과 함께 군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시작되어 해가 져서야 끝나는 교육은 날마다 혹독할 만큼 강행되었다. 군사교육은 크게 나눠 두 가지였다. 달리기와 총쏘기였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한 시간씩 정신교육을 받았다.
"군인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공격과 방어의 가장 중요한 기본 무기다.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기동성이 약한 군대는 언제나 패전한다. 우리는 왜놈들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 그놈들이 하루에 백 리를 가면 우리는 2백 리를 가야 하는 것이다."
교관의 말이었다. 달리기 교육장은 따로 없었다. 겹겹의 산줄기들이 다 교육장이었다. 날마다 산줄기를 넘고 또 넘었다. 여섯 관짜리 흙짐을 지고 총을 들었다. 달리기를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고, 또 부르터 물집이 잡혀 터지고 하면서 굳은살이 박여갔다. 총쏘기 자세 연습으로 팔굽과 무릎에 멍이 들고 피가 맺혔다. 그러나 누구 하나 힘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투에 나서지 않은 독립군들도 자신들과 똑같은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꼬박 한 달 만에 훈련을 마쳤다. 그들은 흙짐을 지지 않고 걷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걸 느끼게 되었고, 그리고 무겁고 거추장스럽단 총을 막대기 다루듯 하게 되었다. 그들은 다 헐어빠진 옷차림으로 홍범도 장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들 장하시오. 오늘부터 여러분은 대한독립군이오. 이 군복을 받으시오."
단총(권총)을 찬 홍범도 장군은 새 군복을 한사람, 한사람에게 손순 나눠주며 굳은 악수를 해나갔다. 이광민은 훈련을 받느라고 해지고 찢어진 헌 옷을 벗고 군복을 갈아입었다. 참 이상하고도 묘한 일이었다. 군복을 갈아입고 허리에 혁대를 차고 다리에 각반을 두르자 전신이 가뜬하고 짱짱해지면서 마구 기운이 뻗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새 옷을 입으면 날아갈 듯 기분이 좋고 누구 앞에서나 으스대고 싶은 설렘은 경험했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자마자 온몸이 그리도 팽팽해지고 용기가 솟기는 처음이었다.
"근디, 어찌서 군복이 왜놈덜 것허고 분간이 잘 안 되는가요?"
이광민은 석연찮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야 위장이 잘될 거 아니오?"
교관의 대답은 간단했다. 중대별로 예수교인 마을에 분산되어있는 대한독립군은 한곳으로 집결했다. 3백여 명의 숙식을 한마을에서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 분산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한독립군은 연길현에서 이동하게 시작했다. 5월 하순으로 넘어가고 있는 산골마다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나고 나무마다 새잎들이 파릇파릇 돋고 있었다. 대한독립군은 며칠 동안의 행군으로 연기현에서 왕청현 봉오동에 도착했다. 그 행군을 통해서 이광민은 홍범도 장군이 늙었다는 생각을 완전히 고치게 되었다. 홍범도 장군은 지치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줄기차게 앞장서서 걸었던 것이다.
봉오골이라고도 부르는 봉오동에는 다른 독립군 부대가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 부대는 봉오동의 큰 부자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의 독립군이었다. 그리고 대한독립군을 뒤따라 또다른 부대가 도착했다. 그 부대는 대한독립군과 함께 대한국민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안무의 군민군이었다. 그 부대들이 봉오동에 집결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세 부대는 연합통일을 하려는 것이었다. 홍범도는 전력을 증강시키고 전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분산되어있는 독립군 부대들을 통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한국민회에서는 그 의견에 찬동하여 일단 대한독립군과 국민군을 통합했다. 그리고 그 통합노력을 계속되어 최진동의 군무 도독부와도 연합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 세 부대의 연합으로 1920년 5월 28일 대한북로군부가 탄생했다. 그리하여 북로독군부의 독립군은 4개 중대 1천2백여 명의 대부대가 되었다. 그들은 기관총 2문, 군총(소총) 9백여 정, 권총 2백여 정, 폭탄(수류탄) 1백여 개, 망원경 7개, 탄환 군총 1정당 1백50발로 무장되어 있었다.
부대 연합을 마친 대한독립군은 소규모의 작전을 준비했다. 30명으로 편성된 소부대는 이광민을 비록한 신병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한독립군에서는 국내 진입작전을 펼칠 때면 그때그때 생긴 신병들을 꼭 포함시켰다. 실전을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하면서 독립군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하기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국내 진입대는 봉오동을 출발하여 용정이 있는 서남쪽으로 산길 70리를 행군했다. 해질녘에 화룡현 월신감 삼둔자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을 숙영지로 정쟤다. 그러나 이광민은 밤이 깊어져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독립군들은 군복을 벗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구두도 벗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이었다. 돌발사태에 대비하게 위함이었다. 진입대는 새벽에 삼둔자를 출발했다. 새벽어둠 속에서 두만강을 건넜다. 6월 초순인데도 새벽의 두만강물은 살이 떨릴 만큼 차가웠다.
내가 두만강을 건너간다! 내가 독립군으로 두만강을 건너간다!
배꼽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걸으며 이광민은 소리 없이 부르짖고 있었다. 목메는 감격과 함께 송중원을 비롯한 벗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송중원을 데려오지 못한 것이 또 아쉽고도 후회스러웠다. 그들은 두만강 물줄기를 멀리 바라보면서 산기슭을 타고 남쪽으로 전진했다. 강가로는 국경수비대에 장악당해 있는 강변길이 깨어나는 새벽빛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날이 밝자 그들은 산속으로 더 몸을 숨기며 움직임을 은밀하게 했다. 발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게 했다. 언제든지 사격할 수 있도록 총을 들고 그렇게 정숙 보행을 하자니 걸음은 빠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공격목표를 내려다보며 석양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양동 헌병순찰대 초소를 삼면에서 공격하기로 이미 병력배치는 끝나 있었다. 석양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때쯤이면 배도 고프고 하루의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었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게 눕고 있었다. 과연 불그레한 석양빛 속에 총도 안 들고 오락가락하는 일본군들이 멀리 보였다. 소대장이 좌우 분대에 공격 신호를 보냈다. 3개 분대는 제각기 공격 방향을 따라 산기슭을 벗어나며 돌격을 감행했다.
탕, 타당 탕탕......
정면에서 공 하는 1분대가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초소 앞의 일본군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혼비백산 뛰고, 우왕좌왕 법석이었다. 그러나 그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쪽에서도 응사를 해왔다. 그와 함께 우측 2분대에서도 사격이 시작되었다. 산울림을 일으키는 총소리들이 묘한 음향으로 엉키고 되엉키며 퍼져가고 있었다. 진입대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가며 계속 전진 공격을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우측공격에도 맞서고 있었다. 그때 좌측 3분대에서도 사격이 시작되었다. 수비대 초소는 삼면공격에 에워싸였다. 초소에서 총소리가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놈들이 도망간다!"
그때 초소 쪽에서 수류탄이 날아와 여기저기서 터졌다. 추격을 막으려는 투척이었다. 수류탄은 계속 날아와 터졌다. 수류탄의 폭연 저쪽으로 수비대들이 앞다투어 도주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남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진입대는 수비대 초소를 점령했다. 총은 없었고, 총알 몇백 발과 수류탄 열댓 개를 노획했다.
"빨리 퇴각합시다. 날도 어두워지고, 저놈들이 종성으로 도망쳤으니까."
소대장이 서둘렀다. 더 큰 부대가 있는 종성까지는 5리밖에 되지 않아 총소리나 수류탄 폭음이 들릴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이다. 수류탄으로 초소를 폭파해 버린 그들은 강변길을 따라 신속하게 퇴각했다. 대열의 중간에서 강변길을 뛰면서 이광민은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몸을 어떻게 피하고, 총을 어떻게 쏘았는지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고참병들의 그 기민한 동작과 의연한 여유가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들이 두만강을 건너 삼둔자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일본수비대는 그들을 추격해 왔다. 그 추격대는 두만강에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경계병에게 그 보고를 받은 소대장을 곧 정찰을 나갔다. 횃불을 밝혀 들고 도강을 하고 있는 적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2개 소대가 넘는 병력이었다. 소대장과 남양수비대의 주력부대가 추격에 나선 것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소대장은 신속하게 병력을 삼둔자에서 빼냈다. 동네에서 싸울 수 없는 일이었고, 자신들의 자취를 없애 동포들을 보호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삼둔자에서 맞바라보이는 서남쪽 산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뒤늦게 삼둔자에 나타난 추격대는 독립군이 흔적도 없자 민간인 네댓 사람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독립군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서 고개를 저으면 그대로 쏘아죽였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수비대는 다음날 먼동이 트면서 삼둔자에서 물러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쪽은 봉오동 쪽이었고, 그들은 독립군을 계속 추격할 의도는 드러내고 있었다. 밤을 새우며 그들의 동태를 감시해 온 독립군 진입대는 마침내 공격의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다. 5개 분대로 분산한 진입대는 수비대의 뒤에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기습을 당한 수비대는 반격을 할 여유도 찾지 못하고 가던 길로 그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수비대는 독립군이 이미 봉오동 쪽으로 간 것으로 믿었다가 느닷없이 후면에서 기습을 당했으니 그렇게 도주할 만도 했다. 진입대는 한동안 수비대를 뒤쫓으며 공격을 가했다. 수비대가 도저히 반격을 가할 생각을 못하도록 몰아친 다음에 산속으로 몸들을 감추었다.
"저놈들이 강을 건너온 건 첨 보지요?"
누군가가 소대장에게 물었다.
"그렇군, 저놈들이 달라진 거야. 자아, 중대 사건이니까 빨리 귀대합시다."
그들은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봉오동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간부들은 모두 일본군 수비대가 월강했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건 처음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또 강을 건너 공격해 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만일에 대비해서 경계를 넓히고 강화하자는 것이 회의 결과였다.
그런데 다음날 방에 척후병들의 보고가 잇따라 들어왔다. 고려령 너머 서쪽에서 일본군 대부대가 진격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대부대는 연대병력 정도로 파악되었다. 예상의 적중에 따라 사령관 홍범도는 작전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지시한 것이 상동 · 중동 · 하동의 세 마을 사람들을 전부 산으로 대피시키라는 것이었다. 봉오골은 그만그만한 산들이 줄기를 이루며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넓은 분지를 이루어 나간 그 긴 골짜기는 25리였다. 골짜기의 입구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면서 세 개의 조선사람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횃불을 밝혀든 독립군들은 입구에서 가까운 하동마을 사람들부터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의 대피가 끝나자 홍범도는 병력배치에 들어갔다. 먼저 적을 유인할 분대 병력을 고려령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적과의 전투지점을 상촌 위족 골짜기의 끝부분으로 정하고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쟤다. 전투지점으로 정한 곳은 ㅅ(시옷)자로 형성된 분지였다. 그 분지를 에워싸고 있는 다섯 방향의 산 중턱에 각기 중대 병력을 배치했다. 그 다섯 곳의 어디에서나 ㅅ자 분지는 훤히 내려다보였다. 완전한 포위망을 구축한 것이었다.
한편, 고려령에 잠복해 있던 유인분대는 새벽어둠 속에서 일본군을 맞이했다. 그들은 2개조로 분산해서 번갈아 가며 적에게 사격을 가하며 숨고, 사격을 가하고 숨었다. 적들은 응사를 해오며 점점 빠르게 따라오고 있었다. 산세를 환히 알고 있는 유인대원들은 새벽하늘이 희붐하게 열릴때까지 숨바꼭질 공격을 계속했다. 적들은 꼼짝없이 유인작전에 걸려들어 이쪽에서 난사해대는 총에 맞고, 산비탈에서 나뒹굴어지고 절벽에서 굴러떨어지고 한 부상자들을 내면서 봉오동 언저리까지 오게 되었다.
일본군 수비대는 부상병들을 골라내 후송시키는 한편 봉오동 입구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늦게 뜨는 산골 해가 완전히 솟은 그 시간에 그동안 총질을 해대며 쫓기던 불령선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색대는 봉오동 입구로 들어서 하동을 정찰했다. 그러나 역시 독립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 앞에 보인 것은 북쪽으로 뚫린 골짜기였다. 그들은 불령선인들이 그 골짜기를 타고 도주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분군 수비대는 봉오골을 들어서 첫 마을인 하동을 발칵 뒤졌다. 그들은 늙고 몸이 아파 피신하지 않은 네댓 명을 다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골짜기 양쪽 산기슭을 수색해 가며 중동을 거치고, 점심때가 가까워 상동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수비대 첨병은 ㅅ자 분지의 갈림목까지 진출했다. 그 지점이야말로 독립군 포위망의 중앙이었다. 그러나 ㅅ자 분지를 에워싼 산들은 보드랍고도 아련한 유록색으로 물들어 있을 뿐 인적이라고는 느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첨병들의 뒤를 따라 수비대 주력부대도 ㅅ자 분지의 갈림목에 다다랐다.
따아앙앙앙앙......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몇 겹의 산울림을 지었다. 공격 신호였다. 고요에 묻혔던 유록색 산들에서 순식간에 총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포위 공격을 당하게 된 수비대는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천 명이 넘는 독립군들이 쏘아대는 총소리는 산울림으로 더욱 요란하고, 그 속에서 수비대 지휘관들은 아우성을 쳐대고, 놀란 병사들은 허둥지둥 뒤엉키고, 사방에서 빗발치며 날아드는 총탄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서로가 은폐물을 찾으려고 어지럽게 뛰고 있었다. 수비대는 기관총들을 난사해대며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세가 워낙 불리해 기관총들도 맥을 쓰지 못하고 사상자만 속출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대를 분산시켜 각 고지를 향해 돌격작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을 노출시키며 산비탈을 기어올라야 하는 그 작전으로 부상자는 자꾸 늘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이 점심 무렵부터 일기 시작한 냉한 바람을 타고 구름이 두꺼워지면서 자꾸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더니 교전 서너 시간쯤이 되어 번갯불이 번쩍거리면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바람도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그 폭풍과 함께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박은 눈깔사탕이나 조약돌만큼씩 컸다. 그 우박들은 크기만큼 세게 떨어지기 때문에 얼굴에 잘못 부딪히면 살이 찢어지기도 했다. 그런 기상 변화나 우박이 쏟아지는 것은 백두산 줄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우박과 섞여 내리는 비로 옷들은 다 젖고, 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함께 시야마저 어두침침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서쪽 첫 번째 고지를 좌우에서 돌격해 올라오던 수비대 2개 소대가 자기들끼리 사격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립군은 그 협공을 미리 알고는 그들을 유인하면서 뒤로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 자살전을 막느라고 수비대 지휘부에서는 나팔을 불어 대고 법석이었다. 수비대는 세 시간 정도의 응전 끝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왔던 길을 되짚어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립군은 그 후퇴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홍범도는 제2중대에 추격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 수비대는 전사자가 1백57명, 중경상자 3백여 명을 내고 두만강 쪽으로 쫓겨가고 있었다. 봉오동전투가 끝난 6월 7일은 거센 바람과 요란한 천둥 속에서 저물어가고 있었다.
한편, 서간도에서는 <토벌>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합동수색대가 독립군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시교당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어른들의 소리가 거칠게 울리고 아이들의 놀란 비명과 울음소리가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배두성은 내다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문밖에 무신 일 난 것 아니여?"
천수동이 고개를 돌렸다.
"무신 일언 무신 일이겄소. 아새끼덜이 또 말썽 피운 것이겠제. 장귀나 안 지게 얼렁얼렁 뒤드라고요 이."
배두성은 장기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모처럼 한가하게 장기판을 벌인 데다가 장기는 이기고 있었던 것이다.
"손 들엇! 손!"
한 남자가 마당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야아?......"
천수동이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한쪽 발끝이 장기판에 걸려 장기짝들이 흩어졌다.
"어허, 어찌 이려!"
배두성은 고개를 치켜들며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그만 소스라쳤다. 바로 눈앞에 똥그란 총구멍이 빤히 뚫려 있었던 것이다.
"어, 어, 어......"
배두성은 무슨 뜻인지 모를 소리를 더듬거리며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일어섰다. 총을 겨누고 있는 두 군인은 바로 일본군이었던 것이다.
"이봐, 김동수 나오라고 해."
민간복을 입은 남자가 나무그늘로 들어서며 눈을 치떴다. 송수익을 찾고 있는 찾고 있는 그 사나운 서슬에 천수동과 배두성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시, 시방 안 기시는디요."
천수동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뭐야! 이 쥐새끼 같은 놈이 피한 거 아냐, 이거."
그 남자는 침을 탁 내뱉더니 두 군인에게 일본말을 했다. 그러나 군인들이 시교당으로 내달아 문을 걷어찼다. 천수동과 배수동은 벌써 그들이 독립군 토벌대라는 것을 알았고 그 조선놈은 토벌대의 앞장을 서고 있는 보민회 회원이라는 것도 알았다. 보민회는 거류민회와 함께 만주에 퍼져있는 친일단체였다. 두 군인은 시교당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뒤지고 있었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배두성이가 후다닥 튀어 달아났다.
"저놈 잡아라, 도망간다!"
그 남자가 잽싸게 천수동의 덜미를 잡아채며 일본말로 외쳤다. 그때 이미 배두성은 나무 울타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교당을 뒤지고 있던 두 군인이 허둥지둥 마당으로 나왔다.
탕 탕 탕
그런데 총소리가 밖에서 울렸다. 그리고 비명이 잇따랐다.
"병신 같은 새끼, 우리가 제까짓 것들만 못한 줄 아나."
그 남자가 천수동을 떠밀며 침을 뱉었다. 두 군인이 천수동의 팔을 뒤로 꺾어 쇠고랑을 채웠다. 아랫입술을 꽉 물고 있는 천수동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번지고 있었다. 잠복조의 총에 죽었을 배두성이가 너무 안 됐던 것이다. 두 군인이 헛간 옆에 짚단을 옮겨왔다. 그리고 짚단에 성냥을 그어댔다.
"아니, 아니......"
당황한 천수동은 그 앞으로 서너 발짝 옮겼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았던 것이다. 그때 한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천수동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천수동은 비명을 물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두 군인은 불붙은 짚단들을 시교당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처마 밑을 따라 돌며 불을 붙였다. 초가지붕은 곧 불길에 에워싸였다. 천수동은 군인들에게 시교당 밖으로 끌려나갔다. 밖에 잠복해 있었던 두 군인이 합류해 그들은 떠나갔다. 그때서야 노인들과 아이들은 시교당이 불타거나 말거나 배두성이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등에 두 방의 총을 맞은 배두성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엎어져 죽은 그의 두 손아귀에는 만주의 검은 흙이 가득 움켜 잡혀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밭에 나갔던 사람들이 허둥지둥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숨이 닿게 달려온 아이들에게 소식을 듣기도 했고, 동네서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일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빙신이여, 빙신이여. 내빼기넌 멀라고 내빼. 왜놈덜이 그리 백여신지 알었어야제. 미련 곰팅이, 이리 허망허니 죽을라고 만주꺼정 온 기여. 그냥 잽혀갔음사 살아날 구멍이 있었을 것 아니여......"
필녀는 남편의 얼굴에 묻은 흙은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또 닦아내며 서럽게 울었다.
"요상허시, 필녀가 어찌 저리 서럽게 운디야?"
"글씨, 생각보담 서럽게 우능마."
"그려도 정이 있기넌 있었능갑네 이."
"무신 소리덜이여, 시방. 부부지간 정이 어쩐지 몰라서 그런 소리덜혀?"
"허기사 그려.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 것이 그놈에 부부지간 정잉게."
여자들이 수군거리는 말이었다.
"요 일얼 어찌야 쓸랑고, 어찌야 쓸랑고, 선상님도 안 기시고 어찌야 쓸랑고, 아이고메 각다분해 환장허겄네......"
천수동의 아내는 필녀 때문에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한 채 종종걸음을 치며 허둥거렸다. 그러나 남자들은 시무룩하게 기가 죽어 있을 뿐 그 어떤 묘책도 내놓지를 못했다. 이런 때 채를 잡고 나서야 할 송수익이나 지삼출이 마을을 비우고 없었던 것이다. 송수익과 지삼출은 이틀 뒤에 돌아왔다. 잿더미로 변한 시교당 마당에서 송수익은 눈을 내려 감은 채 굳어진 듯 오래도록 서 있었다. 배두성은 삼일장으로 만주 땅에 뻗어내린 백두산 끝자락에 남쪽을 보고 누웠다. 배두성이와 함께 만주로 떠나왔던 김판술이며 양승일 강기주가 산역으로 흙 묻는 손 등을 자꾸 눈으로 가져갔다. 지삼출도 코를 풀고 또 풀었다. 송수익은 남쪽의 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배두성의 죽음은 막을 길이 없는 사태였다. 일본군의 만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만주 땅의 군벌 장작림의 묵인 아래 그 군대가 방임하고 있으니 일본군은 제멋대로 서간도 일대를 분탕질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는 사이에 배두성이가 시교당을 지키다가 죽게 되어 송수익의 쓰라림은 더 깊었다.
유하현 삼원보를 다녀온 것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일본국의 만행 때문이었다. 서로군정서의 본부에서는 그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던 것이다. <중일합동수색대>가 생긴 것이 두 달 전인 지난 5월 상순이었다. 그건 3·1운동 이후 압록강 두만강을 중심으로 만주 일대에 독립군 단체들이 많이 결성되면서 그 활동이 맹렬해지자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몇 차례나 봉천을 왕래하며 장작림을 회유하여 결국 목적을 달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합동수색대란 명목뿐이었다. 장작림의 군대는 뒤로 물러선 상태에서 일본군들이 서간도를 휘젓기 시작했다. 두 개의 부대가 서간도 10개의 현을 반으로 나눠 제멋대로 총칼질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독립군 부대들은 그 일본군들과 정면으로 맞서 총질을 하며 싸울 수가 없었다. 그건 엄연히 중국과 일본의 합동수색대였으며, 독립군들이 그 수색대에 총질을 하는 것은 바로 만주의 군벌 장작림에게 총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건 조선총독부가 내보인 기막힌 교활이었다. 그들은 장작림을 회유해 합동수색대를 만드는 것으로 중국 땅을 침범하는 불법을 합법화하는 동시에 독립군들의 공결을 아예 봉쇄해 버리는 그야말로 돌 하나로 참새 두 마리를 잡는 효과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6월 중순이 되면서 일본군의 만행을 부쩍 심해졌다. 걸핏하면 조선사람들을 살해했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그건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때 이미 북간도의 봉오동전투 소식을 서간도에도 짜아하게 퍼져있었다. 일본군들은 그 참패의 분풀이를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풀이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큰 사건이 대한독립단 총재 백삼규의 죽음이었다. 먼저 총재 박장호가 밀정에게 암살을 당하자 부총재 백삼규는 총재를 맡았던 것이다. 그런데 환인현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대한독립단은 두 번씩이나 총재를 적의 손에 잃은 것이었다. 합동수색대와 맞싸울 수 없는 서로군정서에서는 장작림 쪽에 백방으로 손을 썼다. 일본군이 만주에서 학살과 방화를 자행하는 것은 엄연히 중국영토를 침범한 불법행위이니 하루빨리 퇴치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중국군과의 <합동> 수색을 폐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반응은 엉뚱했다.
만주 땅은 넓으니까 당신네들이 다른 데로 옮겨가라는 것이었다.
장작림 쪽에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서로군정서에서는 간부회의를 소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손발이 묶인 상태로 계속 당하는 것은 자멸의 길일 뿐이다. 어찌할 것인가. 그 대안은 한 가지뿐이었다. 장작림 쪽의 엉뚱한 반응이 곧 답이었다. 7월 중으로 유하현을 떠나 안도현으로 옮긴다는 것이 회의의 결정이었다.
송수익은 나라 잃은 비애를 또다시 뼈저리게 씹으며 돌아와 보니 그런 황망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송수익의 머릿속에는 줄곧 천수동의 일이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고, 잡혀간 천수동의 일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선상님, 선상님, 선상님 오시기만 목이 빠지게 기둘리고 있었구만이라우. 우리 상길이 아부지럴...... 우리 상길이 아부지럴......"
천수동의 아내는 애가 탔다.
"예, 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무사하도록 손을 쓸 테니까 아이들이나 잘 보살피고 기다리세요. 다른 동네에서도 잡혀갔던 사람들이 별 탈 없이 풀려나기도 했다는 소문 들었지요?"
송수익은 천수동의 아내의 거친 손을 감싸 잡아주며 지성스럽게 말했다. 그건 독립군 대장으로서가 아니라 대종교 시교사로서의 위안이었다. 송수익은 지체하지 않고 친교를 맺고 있는 중국 관헌에게 선을 댔다. 그리고 공금에서 돈 50원도 함께 보냈다. 무기를 구입하기 전에 독립군을 구하는 데 그만한 돈은 의당 써야 했던 것이다. 그런 조처를 취했으면서도 송수익은 줄곧 불안을 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어떤 고문을 당하더라도 천수동이가 독립군이라는 것을 실토하지 말아야 할 텐데 큰 걱정이었던 것이다. 그저 평소에 교육해 왔던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송수익은 수심 깊은 마음으로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안도현으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였다. 서로군정서의 이동은 임시방편이었다. 그러나 본부를 중심으로 해서 간부들만 옮겨가는 것이 아니었다. 소속된 독립군들도 함께 가야 했다. 그렇게 되니 독립군들의 가족이 문제였다. 독립군들 중에 상당수는 가족이 딸려 있었다. 가족이 딸린 독립군들은 만주 이주가 오래된 사람들로서 거의가 소작농 생활을 겸하면서 생계를 해결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가족들을 다 데리고 가자니 두 가지 난처한 문제가 야기되었다. 첫째는 저쪽에 가서 당장 생계 해결이 난망했다. 둘째는 이쪽의 소작권을 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건 피땀 흘려 개간했던 농토를 그냥 내주는 것인 동시에 그만큼 독립투쟁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동포들이 농사지어 지원하지 않으면 독립군이란 존재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치의 농토라도 넓혀가야 하는 처지에서 마련된 대책이 <인선작업>이었다. 가족을 거느리며 농사를 짓고 있는 독립군들 중에서 꼭 떠나야 할 대원들을 가려 뽑는 것이었다. 그 대원들은 가족을 두고 혼자서만 떠나되 남아 있는 대원들이 그 가족들의 농사를 함께 돌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대원들의 가족이 다 이동해 생기는 생계의 위협을 막을 수 있고 아울러 농토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송수익이 인선작업을 거의 마무리해 가고 있는데 천수동이가 나흘 만에 풀려나왔다. 천수동은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얼굴에도 여기저기 피멍이 잡혀 있었다. 그 고문의 흔적 앞에서 송수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천수동을 끌어안기만 햇다.
"대장님, 고맙구만이라우......"
천수동은 울먹이는 낮은 소리로 <대장님>이라고 했다. 그 호칭은 작전 시가 아니고서는 쓰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오, 아니오, 천 동지가 장하오."
송수익은 천수동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며 자기도 <동지>라고 화답했다. 사실 천수동이 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고문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아무리 손을 쓴다 해도 살아나올 가망은 없었던 것이다. 유하현 본부로 떠날 준비를 다 마쳤는데 지삼출이 헐레벌떡 급한 소식을 알려왔다.
"저어, 어지께 신흥무관핵교에 마적 떼가 들어닥쳐서......"
"또!"
송수익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게 왜놈들의 사주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 생각은 그러나 순간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적단이 신흥무관학교를 처음 습격한 것은 작년 7월 하순이었다. 군사교육을 받을 뿐 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은 마적 떼의 분탕질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말타기와 총쏘기가 능한 3백여 명의 마적 떼 앞에서 학생들의 훈련용 목총을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적 떼는 그 뒤로도 자주 학교를 습격했다. 그때마다 마적 떼는 학생들을 두세 명씩 납치해 갔다. 그러면 서로군정서와 한족회에서는 금품과 피륙을 내놓고 중국 관헌에게 교섭해 학생들을 데려오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적 떼의 습격이 빈번해지자 송수익은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마적들은 흉포하기도 했지만 아주 영리한 도둑 떼였다. 땅을 개간해서 동네가 새로 생기고 추수를 하게 되면 마적 떼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들은 거칠게 말을 몰아대고 총을 마구 쏘아대며 한바탕 난리판 굿을 꾸미고는 마을 대표를 불러 상납액을 통고했다. 그 액수는 대개 수확의 10분의 1정도였다. 해마다 그 액수를 잘 바치면 마적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자기네 구역을 가지고 있는 마적들은 그런 식으로 고정수입을 확보해 놓고 또 다른 수입을 찾아 말을 몰고 총질을 하는 것이었다. 신흥무관학교의 습격이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를 습격해서 얻는 그들의 수입은 별로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해 오던 송수익은 마침내 그들이 일본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고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마적 떼의 빈번한 습격으로 학생들의 사기가 많이 저조해지고 불안해하는 것이 문젯거리로 등장해 있었다. 또한 본부의 이동으로 학교의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를 했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이래저래 송수익의 심사는 복잡하기만 한데 또 엉뚱한 일이 불거졌다.
"선상님, 지도 따라갈라능마요."
필녀가 찾아와 한 말이었다.
"아니, 어디를!"
송수익은 안 된다는 말을 이렇게 했다.
"선상님이 가시는 디요."
고지식한 필녀의 대꾸였다.
"임시로 갔다가 곧 돌아올 거야."
송수익은 달래듯이 말했다.
"그려도 따라갈랑마요."
필녀는 고개를 저었다.
"고집부리면 안 돼. 여자들은 아무도 안 가니까 필녀도 여기 있어야 해."
"아닌디요, 지도 총질헐지 아는디요."
필녀가 다부지게 말했다.
"뭐라고?"
송수익은 언뜻 놀라는 기색이다가 그만 픽 웃고 말았다.
"음마, 못 믿으시겄으면 삼출이 아재현티 물어보시랑게라. 내빼는 퇴깽이넌 못 맞힐지 몰라도 서 있는 사람이야 영축없이 맞히게 총질얼 헌당게요."
그러니 여자가 아니라 독립군으로 따라가겠다는 뜻이었다.
"아니, 언제 총 쏘는 걸 배웠다는 건가?"
송수익은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믿을 수가 없으면서도 정색을 했다.
"강 너머서 왜놈덜 예펜네덜이 총질얼 배운다는 소문 듣고 지도 삼출이 아내헌티 졸라대서 배왔구만이라."
송수익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지키는 일본군 국경수비대의 장교 아내들에게 권총 사격을 가르쳐 무장시킨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었다. 그때 총 쏘는 것을 배웠다는데 자신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을 뒤늦게 책할 마음은 없었다. 저쪽 여자들에게 맞서고자 한 것은 옳은 것이었다. 그리고 필녀다운 행동이기도 했다.
"수국이도 배웠나?"
둘이 하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생각이 나서 송수익은 설마 하면서도 물었다.
"야아, 수국이도 열성으로 배왔구만이라."
"딴 여자들은?"
그 일에 지삼출만이 아니라 방대근이까지 가담된 것을 직감하며 송수익은 다른 여자들도 더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필녀는 고개를 저었다.
"총을 쏠 줄 알아도 안 돼. 다 남자들뿐이고, 고생일 많을 거야."
송수익은 그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남모르게 총쏘기를 배운 필녀의 마음을 갸륵하게 생각하면서도 먼 길을 따라나서는 것은 막으려고 했다.
"여자라고 총 못 쏘게 허먼 밥 허고 빨래라도 허겄구만이라. 선상님이 당허시넌 고상이먼 지넌 암시랑토 안헌게요."
필녀는 말을 잘도 받아넘기고 있었다.
"어히, 그리 말을 안 들으면 쓰나."
송수익은 태도를 바꾸며 엄하게 꾸짖었다.
"선상님, 참말로 야속허싱마요이. 지가 만주꺼정 멀라고 왔는디요. 선상님 안 기시는 디서넌 인자 하로도 안 살랑마요. 인자 지 혼자서……"
필녀는 금세 눈물이 크렁해졌다.
"어허, 그런 소리 하면 못써."
송수익은 더 엄하게 나무랐다.
"야아, 알겄구만이라. 만주에 지 말로 왔응게 앞으로도 지 말로 가겄구만이라."
필녀는 손등으로 눈을 씩 문지르고 돌아섰다. 그 몸짓은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송수익은 난처한 심정으로 필녀의 힘 넘치는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박한 만큼 외곬이고 천진한 만큼 꾸밈이 없는 필녀의 성품을 다 이해하면서도 새로운 부담이 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송수익은 대원들 20여 명을 이끌고 밤길을 떠났다. 필녀는 그 대원들 끝머리에 따라붙어 있었다. 서로군정서 회의에서는 신흥무관학교의 폐교를 다음 달로 정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 본부의 이동에 따른 운영의 난점, 둘째 일본군의 가열되어 가는 토벌에 의한 피해 우려, 셋째 마적 떼의 빈번한 습격으로 인한 피해와 사기 저하, 넷째 내부의 분란 등이었다. 내부의 분란이란 교장의 몇 가지 실책으로 학생들이 편가리가 되어 교장 퇴임 운동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학생 하나가 죽게 됨으로써 그 여파가 동포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사건이었다. 학교를 폐교시킨 다음에 학생들은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의 독립군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북로군정서와는 지난 5월에 운영 전반에 걸친 상호 협조를 위해 합의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그건 더욱 효과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그전의 협조를 강화시킨 연합이었다. 그 합의서에 따라 신흥무관학교 출신 교관들이 북로군정서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예정대로 8월 들어 폐교되었다. 만주지역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제일 먼저 세워졌고 가장 오래된 독립군 양성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이었다. 그 10여 년 동안에 배출해 낸 졸업생들이 2천5백여 명에 이르렀다.
한편 북간도에서는 8월 말부터 독립군 단체들의 근거지 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건 중국군들과의 불필요한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한 조처였다. 다시 말하면 이본의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군벌의 입장과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독립군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서간도에서 중국과 합동수색대를 조직하면서 북간도에서도 똑같은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길림성장을 비롯해서 연길도윤이나 군부대장이 수색대 조직을 반대하며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립군 단체들은 그동안 그들과 친교를 두텁게 해왔던 것이고, 그들은 조선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일본의 압력을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었다. 봉오동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은 한 달 후에 열린 봉천의 3차 회담에서 조선 주둔군과 관동군의 고위간부들을 참석시켜 장작림에게 다시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군 대좌가 고문이 되어 감시하는 가운데 중국군이 조선독립군을 토벌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그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중국군 측에서는 그 사실을 독립군 단체에 은밀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양쪽의 대표자가 모여 <타협>을 하게 되었다.
첫째, 중국군은 일본군의 간도 침입을 막기 위하여 이번에는 부득이 독립군을 토벌하는 실제 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독립군은 이와 같은 중국측의 입장을 고려하여 상호 타협하는 대책을 실시한다.
둘째, 독립군은 시가지나 대로상에서 군인 복장이나 부기를 휴대하고 대오를 지어 행동함으로써 중국 측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는다.
셋째, 독립군은 현재의 근거지가 일본군에게 알려져 중·일 간에 분쟁의 요소가 되고 있으므로 새 근거지를 산림지대로 이동시킨다.
넷째, 중국군은 충돌하기 전에 그 사실을 독립군에 통보하여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에 필요한 여유를 갖게 한다.
다섯째, 중국군과 독립군은 서로 교전하지 않으며, 중국군은 독립군의 이동과 산림지대 등지에서의 새 근거지 건설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타협조건에 따라 이광민이 소속된 대한독립군은 8월 하순에 연길현 명월구를 출발했다. 그들은 봉오동전투 이후에 명월구로 옮겨와 있었던 것이다. 대한독립군은 안도현 방면의 백두산록을 향하여 낮에는 은거하고 밤에만 이동하는 조심스러운 행군을 했다. 타협조건의 두 번째 조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사람들 마을에 은거할 때마다 이광민은 두 가지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하나는 독립군을 대하는 조선사람들의 따뜻함과 극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홍범도 장군을 대하는 사람들의 진정 어린 숭앙이었다. 어디에서나 그렇지만 만주에서도 산골로 들어갈수록 조선사람들의 생활은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농토가 적은 데다 밭농사를 하기 때문에 먹는 것도 조밥이 태반이었고 입성도 남루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독립군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있는 정성을 다했다. 독립군들이 어쩔 수 없이 조선사람들 마을에 머무는 것은 큰 폐를 끼치는 일이었다. 만주에 사는 조선사람들치고 많든 적든 군자금을 안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미 군자금을 내 그들은 이중 부담을 당하면서도 전혀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독립군들은 그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나무를 찍어다 장작을 만들거나 기울어진 울타리를 고쳐주거나 했다. 그건 홍범도 장군의 지시이기도 했다.
"총을 함부로 쏘아서는 안 되오. 총알 한 방으로 꼭 왜적 한 놈씩을 쏘아 죽여야 되는 것이오. 총알 하나하나가 다 우리 동포들의 피땀이고, 동포들이 밥을 굶어가면서 낸 돈으로 산 것이오"
홍범도 장군이 항상 병사들에게 일깨우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홍범도 장군이 자기네 마을에 나타난 것을 알면 삽시간에 몰려들고는 했다. 내외해야 하는 처녀들까지도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나 고생들이 많습니까. 순전히 동포 여러분들 덕에 우리가 왜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장하고 장한 독립군의 부모입니다. 조금만 더 고생들을 참고 기다려주십시오."
어떤 말이고 길게 하지 않는 홍범도 장군의 말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언제나 동포들을 따뜻하게 맞이했고 공손하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었고, 안기 거북하게 나이 먹은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한마디씩 덕담을 했다. 이광민은 먼발치에서 그런 홍범도 장군을 바라보면 가슴 뭉클한 것을 느끼고는 했다. 그 다정하고 인자한 모습은 평소에 부하들을 대하는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대한독립군은 훈련을 해가면서 행군을 서두르지 않았다. 9월 초순 장인강 구룡평에서 중국군 병사들과 독립군 병사들 사이에 가벼운 충돌이 일어났지만 군관들이 나서서 서로 양해하고 비켜 지나가기도 했다. 대한독립군는 9월 중순이 기울 즈음 안도현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화룡현 이도구 어랑촌 부근에 다다랐다. 양쪽에 나지막한 산줄기가 벽을 치듯 하고 있는 어랑촌 골짜기는 넓고도 길었다. 산줄기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했고, 폭넓은 평지 가운데로는 맑은 물이 여울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논농사 짓기에 아주 마땅해 조선사람들 마을이 들어서기 안성맞춤이었다. 대한독립군은 어랑촌을 중심으로 부대들을 배치하고 며칠을 휴식했다. 그러자 의란구에 주둔해 있었던 안무의 국민회군도 이도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런데 봉오동에서 함께 싸웠던 최진동의 부대는 처음부터 이도구로 오지 않고 북쪽인 라자구 지방으로 향했다. 새 근거지 확보에 대한 서로의 의견이 달랐던 것이다.
한편 방대근이 소속된 북로군정서는 9월 중순에야 부대 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동이 가장 늦어진 이유는 무기 구입과 사관연성소 필업식 때문이었다. 사관연성소 출신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6월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났던 무기 운반대 2백여 명이 두 달이 걸려 8월 하순에야 도착했던 것이다. 그 운반대의 호위를 맡았던 방대근은 두 달 동안데 피가 타드는 초조감에 쫓겼던 것이다. 갑자기 실시된 소련의 화폐개혁으로 무기를 구하느냐 못 구하느냐 하는 위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무기 운반대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 보니 그동안 화폐개혁이 실시되어 운반대가 가지고 간 돈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렵사리 구해 놓은 무기였고, 2백여 명씩이나 동원된 운반대였다. 현지에 가 있던 총재 서일을 중심으로 해서 간부들은 새 돈을 구하려고 나서게 되었다. 그동안 운반대는 동포들 집집마다 몇 명씩 분산되었다. 방대근이네 호위대 임무가 커지고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운반대의 기거는 며칠로 끝나지 않았다. 보름이 넘고 한 달이 지났다. 동포들 집집마다 양식이 동나기 시작했다. 하루 두 끼에서 한 끼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돈을 구하러 간 간부들은 소식이 없었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죽을 끓이다 못해 하루에 감자 하나로 때울 지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막노동 돈벌이에 나설 수도 없었다. 불법으로 국경선을 넘어온 데다가 블라디보스톡에는 일본 주둔군이 드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박 한 달 보름이 넘어 간부들이 새 돈을 구해 오게 되었다. 운반대들은 굶주린 몸에 돌보다 무거운 무기 짐을 지고 밤길만을 골라 국경선을 넘었던 것이다. 왕청현 본부에 돌아오니 8월이 저물어 있었다.
9월 9일 필업식을 마친 사관연성생 3백여 명은 새로 사들인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부대 편성과 함께 모든 이동준비를 끝낸 것이 9월 중순이었다. 북로군정서도 다른 독립군들과 마찬가지로 큰길을 피하고 밤에만 이동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산길을 따라 멀리 우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북로군정서도 조선사람들 마을에 의지해 가며 왕청현에서 연길현을 지나 화룡현 삼도구까지 한 달에 걸친 행군을 했다. 그런데 북로군정서가 청산리 길목인 삼도구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훈춘사건을 빌미 삼아 두만강을 건넌 일본군들이 북간도 일대에서 한창 분탕질을 치고 있었다. 여러 지점에서 두만강을 건넌 일본군들은 북쪽으로 이동하며 조선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마을을 불 질러대고 있었다.
중국군의 토벌이라는 것이 전혀 실효가 없는 눈가림이라는 것을 일본군은 알아내게 되었다. 그 해결 방법은 자기네들이 직접 토벌에 나서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중국 토에 일본군을 투입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훈춘사건을 조작해 냈다. 일본군은 마적단을 매수하여 훈춘을 습격하게 했다. 훈춘을 습격한 마적단 4백여 명은 상점들을 약탈하는 한편 일본영사관 분관도 분탕질했다. 마적들은 숙직하는 경찰과 가족 들을 죽이고 분관을 불 지른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경찰의 관사 말고 다른 관 사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다른 관원들은 감쪽같이 피신해 버렸던 것이다.
일본군은 바로 그날부터 병력을 만주 땅에 투입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만주에 사는 일본 거류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였다. 그 불법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주 거류민회에서 자기들의 보호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본국에 급송하게 했다. 그리고 잇따라 보호를 독촉하는 거류민 시민대회를 이곳저곳에서 벌이게 했다. 시민대회는 만주에서뿐만 아니라 조선 땅 두만강변의 여러 도회지에서 연달 아 일어났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일본군 병력들은 계속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훈춘사건의 진상을 취재하려고 특파된 <동아일보>의 장덕준 기자가 취재 중에 피살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북로군정서군이 삼도구에 도착한 10월 12일께는 이미 일본군들이 북간도 요소요소에 주둔하면서 정탐원들을 사방에 뿌려놓았기 때문에 독립군들의 움직임은 거의 탐지 되고 있었다. 또한 독립군들도 일본군의 만주 침입을 벌써부터 알고 있어서 그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었다. 어랑촌 골짜기 일대에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안무의 국민회군을 뒤따라 신민단 · 의민단 · 한민회군 등이 집결해 있었다. 그들은 이도구에서 10원 13일 날 대표자 회의를 열고 홍범도를 사령관으로 하여 합동작전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또한 그들은 10월 19일날 북로군정서와도 연합작전을 합의했다.
독립군들이 집결한 화룡현 이도구와 삼도구 일대는 백두산록이 부챗살 퍼지듯 한 밀림지대로 험한 산줄기가 많은 안도현과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 백두산의 수은 줄기들은 만주벌판을 향해 긴 꿈틀거림으로 뻗어내리면서 폭넓은 골짜기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중에서 삼도구와 연결되고 있는 남쪽 것이 청산리 골짜기였고, 그 북쪽으로 사오십 리 떨어져 이도구와 연결되는 것이 어랑촌 골짜기였다. 그 골짜기들은 큰 구렁이의 꿈틀거림처럼 몇 굽이씩 감돌고 휘돌면서 40리가 넘는 긴 자태를 짓고 있었다. 두 골짜기는 넓고 긴 만큼 네댓 개씩의 마을을 품고 있었다.
용정에서 백 리 거리인 그 골짜기들은 안도현이 있는 서남쪽으로는 험준한 장백산맥의 줄기로 둘러싸여 있었고, 북쪽으로는 천보산 줄기에 감싸여 있었다. 다만 트인 데라고는 동쪽인 용정 방향이었다. 용정에서 출발한 일본군은 마침내 10월 20일 북로군정서군을 추격하며 청산리 골짜기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북로군정서군 사령관 김좌진은 벌써 부대를 청산리 골짜기의 끝부분인 베개봉(증산봉) 노령봉 아래로 이동시켜 놓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부대를 2개 제대로 나누어 제2 제대는 사관연성소 출신들로 편성해 연성대장 이범석이 지휘하게 했고, 제1 제대는 일반 병사들로 구성해 김좌진 자신이 지휘하도록 했다. 그리고 훈련이 좀 더 잘된 제2 제대는 일본군의 추격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게 그 폭이 병목처럼 좁아지면서 경사가 급해지는 골짜기의 끝부분에다 배치시켰다. 제1 제대는 제2 제대가 잠복한 건너편의 약간 위쪽 산기슭에 배치했다.
40리 청산리 골짜기는 초입의 송하평 마을에서부터 심지평 마을을 거쳐 청산리까지는 그 폭이 1킬로미터가 넘는 질펀한 평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 평지 가운데로 물 맑은 개울이 흘러내리고 있어 양쪽으로는 논이 일구어져 있었다. 그리고 양쪽의 산줄기도 나지막하고 경사가 완만해 그 기슭을 따라 크고 작은 밭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골짜기의 중간 부분인 청산리를 지나면서부터 지형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산줄기가 높아지면서 경사가 차츰 심해져 가고, 골짜기의 폭이 좁아지면서 평지가 비탈로 변해 가고, 개울도 가늘어지면서 논들은 사라지고 밭들만 남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비탈이 점점 심해지다가 골짜기의 끝마을인 백운평 아래에 이르면 밭들마저 모습을 감추었다. 백운평에서부터는 양쪽 산줄기가 맞닿은 것처럼 골짜기가 좁아졌고, 바로 위쪽으로는 봉우리가 꼭 베개를 닮아 평평한 베개봉과 노령봉이 다른 봉우리들과 겹겹으로 싸이며 험산 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북로군정서군이 배치된 곳이 그 험한 산줄기가 시작되고 있는 골짜기였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밀림지대인 그 골짜기는 폭이 좁을 뿐만 아니라 양쪽의 산비탈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길도 좁아질 대로 좁아져 가느다란 오솔길로 뚫려 있었다. 제2 제대는 그 오솔길을 중심으로 3면에 배치되어 있었다. 오솔길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비탈을 따라 우측에 1개 중대를 배치했고, 같은 높이로 좌측 산비탈에도 1개 중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나머지 1개 중대를 정면 위치인 급경사에 배치해 골짜기를 차단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제1 제대는 건너편 산중턱을 따라 배치되고 있었다. 북로군정서군은 사다리꼴의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포위망 속으로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해서 벌써 각 마을의 노인들에게, 독립군들이 총도 별로 보잘것없이 허둥지둥 골짜기 위쪽으로 도망갔다고 대답하라고 일러두었다. 그 나무들 울창한 밀림에는 저절로 쓰러져 누운 아름드리 통나무들이 많았고, 만주는 겨울이 빨라 잎이란 잎들이 다 떨어져 낙엽이 무릎이 빠지도록 쌓여 있었다. 그 통나무들은 더없이 좋은 엄폐물이었고, 낙엽을 뒤집어쓰고 엎드리면 그보다 더 좋은 위장은 없었다. 방대근은 소대장으로부터 좌측 산비탈에서 부하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방어에 유리한 만큼 공격에는 불편했으므로 하나하나 좋은 사격 위치를 잡아주는 것이었다. 모든 병사들이 제각기 위치를 잡아 배치가 끝났을 때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쓰러진 통나무를 엄폐물로 하여 두껍게 쌓은 낙엽 속에 몸을 파묻어 그들은 완전하게 매복했던 것이다. 그날 밤 병사들은 군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낙엽을 이불 삼아 얼음이 얼어붙는 밤 추위를 견디면 날을 밝혔다.
햇발이 제대로 퍼지지도 않은 아침 8시쯤에 일본군들이 제1 제대가 매복해 있는 산 아래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2백여 명 중대 병력이었다. 제1 제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들을 통과시켰다. 일본군들은 아무런 거침없이 제2 제대가 매복하고 있는 골짜기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제2 제대의 포위망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을 때는 부대의 맨 앞이 포위망에서 10여 보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땅!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 공격 신호였다. 공격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북로군정서군들은 일제히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가 따로 없었다. 일본군들의 대열이 금방 흐트러지며 갈팡질팡했고, 아우성과 비명이 뒤엉키며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무 뒤에 숨고 바위 옆에 엎드리며 응사를 시도했다. 그러나 총알은 사방에서 빗발치며 날아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독립군들이 은폐하고 있는 위치를 모르고 쏘아대는 총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삽시간에 반이 넘게 죽고 나머지 일본군들은 후퇴를 감행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정면으로 사격을 당하게 되었다. 제1 제대에서 본격적으로 사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백운평 위의 비탈 급하고 좁은 골짜기는 요란한 총소리와 처절한 비명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20여 분, 일본군 2백여 명은 전멸하고 말았다.
전투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뒤따라오던 일본군 본대가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공격을 가해 왔다. 그러나 독립군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먼 거리에서 쏘아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은 애꿎은 나무들만 상처 입히고 있었다. 그런 공격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본군은 보병과 기병을 동시에 투입하여 북로군정서군을 양쪽으로 우회하며 포위 공격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유리한 지형을 빼앗겨버려 자기들을 다 노출해야 하는 그 공격은 희생자만 내고 실패하고 말았다.
2차 공격까지 실패한 일본군은 한동안 잠잠했다. 해는 점심때가 기울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군들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진지를 지키고 있었다. 일본군은 박격포를 쏘아대고 기관총을 난사해 보병을 엄호하면서 독립군의 정면과 좌우로 세 번째 반격을 시도해 왔다. 그건 첫 번째와 두 번째 반격을 혼합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독립군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 쏘아대는 중화기 공격은 여전히 화력의 낭비일 뿐이었다. 그리고 몸을 노출시키면서 산비탈을 기어오르는 일본군들은 철저하게 은폐상태에서 조준사격을 가하는 독립군들의 총에 계속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들은 악착스럽게 덤벼들었다. 자연은폐물을 찾지 못한 그들은 자기편의 시체들을 쌓아 올려 은폐물을 만들 어가면 전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상자만 늘어날 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석양이 밀려왔다. 해가 기울면서 골짜기에는 산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스산한 산그늘은 얼마 가지 않아 어둠살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군들은 결국 백 명이 넘는 전사자만 더 보태고 급하게 퍼지는 산골의 어둠살에 밀려 골짜기 아래로 패주해 갔다.
"만약 왜적이 봉밀구에서 돌아오게 되면 한 시간 정도면 도착될 것이다. 그에 대비해 아군은 즉시 이도구 방면으로 철수한다. 제2 제대는 제1 제대의 철수를 엄호한 수 적당한 상황에 따라 철수하여 갑산촌에서 제1 제대와 밤 2시까지는 합류토록 한다."
김좌진 장군의 작전 지시였다. 다른 일본군 부대의 우회 공격을 경계하며 제1 제대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적의 섬멸전에서 엄호전으로 배치를 바꾼 제2 제대는 적의 돌출에 대비하고 있었다. 점점 추위가 심해지는 가운데 어둠만 짙어져 갈 뿐 어느 방향에서도 일본군의 새로운 공격은 감지되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 경계를 하고 있던 제2 제대도 철수 작전을 시작했다. 방대근은 어둠 속에서 부하들을 다시 점검했다.
"배고프제? 쬐까만 더 참어. 갑산촌에 가먼 뜨끈뜨끈한 밥이 있응게."
방대근은 이렇게 말하며 부하들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 누구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병사들은 배고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승리감에 취해 배고픔쯤 거뜬하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백운평 골짜기를 떠난 제2 제대는 마천령을 넘어 갑산촌으로 강행군을 해나갔다. 백여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 새벽 2시까지 갑산촌에 당도하자면 잠시도 쉴 짬이 없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허기에 지쳐 헉헉거리다가 쓰러지고 어둠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는 했다. 그렇다고 행군대열을 멈추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열에서 이탈하기 십상이었다. 방대근은 자기 부대의 앞뒤로 오가며 그런 부하들을 일으켜 세우고 부축해서 대열에 끼워 넣었다.
"여그서 혼자 떨어지면 호랭이 밥에 왜놈덜 밥이여. 기운 내, 기운!"
방대근은 기운 잃은 부하들의 귀에다 대고 숨 가쁘게 속삭이고는 했다. 그건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그저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날이 추워질수록 그 일대는 호랑이들이 자주 나타나 는 지역이었고, 일본군들 또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앞뒤 사람덜 서로서로 챙겨. 졸지 말고 앞사람 놓치지 않도록 혀."
방대근은 다른 부하들도 계속 일깨우고 있었다. 배가 고프고 기운이 빠지게 되면 걸으면서도 졸게 되는 것이었다. 총 운반대를 지휘하면서 얻은 경험이었다. 제2 제대는 기어코 예정된 시각에 맞추어 갑산촌에서 제1 제대와 합류했다. 그들은 평지를 걷는 것보다 더 빠르게 어두운 산길 백여기를 행군한 것이었다.
"두어 시간 늦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오다니! 어서 병사들에게 요기시키고 쉬게 하시오."
김좌진 장군이 놀라움으로 반가움을 나타내며 병사들을 염려했다. 병사들을 휴식시키기 전에 전체 인원 점검이 실시되었다. 전사자와 실종자는 모두 22명이었다.
"실종자들이 부대를 찾아와야 할 터인데...... 야간 행군이 돼나서......"
김좌진의 무거운 중얼거림이었다. 청산리 백운평전투를 완전히 승리로 끝낸 독립군들은 곧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북로군정서의 독립군들이 청산리 독립전쟁의 첫 번째 전투를 승리로 끝내고 철수 작전을 시작한 그즈음에 이도구 어랑촌 골짜기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완루구 골짜기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그 연합부대들이 또다른 일본군들의 공격에 맞서 두 번째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랑촌 골짜기로 이어지는 완루구의 골짜기는 두 개였다. 위쪽 골짜기가 북완루구였고, 아래쪽 골짜기가 남완루구였다. 독립군 부대들은 안도현 쪽의 억센 산들을 방패 삼아 등지고 북완루구의 골짜기 끝부분에 매복해 있었다. 그런데 일본군들은 북완루구와 남완루 구 양쪽에서 포위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사방에 배치되어 있던 독립군 정찰병들은 그런 일본군들의 움직임을 다 탐지해 내고 있었다. 독립군은 그 포위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 제1 연대와 예비대로 부대를 편성했다. 제1연대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었고, 그 외의 연합부대들이 예비대였다. 제1연대는 다시 2개 대대로 나뉘어 북완루구와 남완루구 양쪽에 저항선을 구축했다. 그 위치는 산줄기 양쪽 중턱이었다. 일본군들은 어둠살을 타고 골짜기를 건너 공격해 왔다. 적을 내려다보고 있는 독립군들은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응사하기 시작했다. 그 전투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독립군 예 비대는 어둠이 퍼지고 있는 산림을 헤치며 뒤로 빠지고 있었다. 예비대를 앞장서고 있는 것은 서너 명의 농부였다. 그들은 길 안내를 맡고 나선 현지의 조선 농민이었다. 예비대는 북완루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독립군 제1연대의 대응 앞에서 일본군은 전진을 저지당하고 있었다. 그건 일본군의 위치가 나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독립군이 일본군의 포위 공격에 대비해 양면 수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일본군의 포위는 양분된 상태에 빠져버려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만 끌면서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런데 산자락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본군들이 산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산에는 마를 대로 마른 낙엽들이 두껍게 쌓여 있어서 불길들은 금방 거칠어지며 산비탈을 타고 올랐다. 일본군들은 불길과 연기를 앞세우며 총을 난사해대고 있었다. 연기와 함께 산비탈을 타고 오르는 불길은 독립군에게 무척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꼭 불리한 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길은 일본군의 접근을 자연스럽게 막아주었고, 연기는 독립군들의 은밀한 움직임을 가려주었던 것이다. 홍범도 장군은 소대별로 제1 연대의 퇴각 명령을 내렸다. 제1 연대는 불길과 연기의 보호를 받아가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퇴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까 연합부대가 이동한 쪽으로 신속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제1연대가 양쪽에서 포위 공격해 오는 일본군을 저지하고 있는 동안에 연합부대는 완전히 우회하여 일본군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연합부대가 공격할 일본군 부대는 북완루구 쪽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던 부대였다. 그러니까 그 일본군 부대는 이미 퇴각해 버린 독립군 제1 연대의 위치였던 중앙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독립군 연합부대는 그 중앙에 놓인 일본군을 향해 기습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완루구 쪽에서 공격해 오고 있는 일본군들은 독립군 제1 연대가 퇴각한 줄을 전혀 모른 채 계속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또한 북완루구 쪽의 일본군들도 독립군 제1 연대가 퇴각한 것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양쪽의 일본군들은 서로를 독립군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어둠이 장막을 친 가운데 산을 불붙어 타고, 북완루구 쪽에서 진격하던 일본군은 가운데 갇혀 양쪽으로부터 독립군과 자기네 군대의 협공을 당하고 있었다. 일본군들은 홍범도의 유인작전에 꼼짝없이 걸려든 것이었다.
전투는 자정을 넘겨 새벽녘에 끝이 났다. 산골짜기에는 밀림이 타는 연기와 함께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북완루구 산비탈에는 4백여 구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남완루구 쪽에서 넘어온 일본군들은 그 시체들이 바로 자기들과 같은 부대원들인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독립군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그 연합부대가 완루구 전투를 승리로 끝내고 서쪽 험산 속으로 자취를 감춘 그 시각에 갑산촌에서 잠들었던 북로군정서군들은 새벽잠을 깨어나고 있었다.
"저 아래 샘골물에 말 탄 왜병들이 들어와 자고 있어요."
농군 차림의 두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산 너머를 손가락질했다.
"그래요? 몇이나 되지요?"
김좌진은 동포들의 그 솔선하는 협조에 마음 뜨거운 고마움을 느끼며 두 남자의 손을 잡았다.
"한 마흔 되는 것 같드만요."
"잘 알았소. 이렇게 소식 전해 줘서 고맙소. 곧 몰살시키리다."
"고맙기는요......다 우리 일인데......"
두 남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는 듯 오히려 쑥스러워하고 멋쩍어했다. 김좌진은 그런 그들의 태도가 더욱 믿음직스럽고 가슴 뭉클했다. 백운평 전투에서도 일본군을 포위망 안으로 쉽사리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마을 동포들의 공이었다. 무기도 변변찮은 독립군들이 겁에 질려 골짜기 위로 쫓겨갔다는 허위정보를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기 때문에 일본군들은 마음 놓고 골짜기의 막바지까지 치올랐던 것이다. 독립군들이 몸에 지닌 것은 총알 하나에서부터 양말이며 짚신까지 만주 동포들의 피땀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립군 부대에게 식량을 보급해 주는 곳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독립군들은 그때그때 동포들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거의가 소작인인 동포들은 자기네 살기도 궁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독립군을 환대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정성스러움에 독립군들은 더 힘을 얻고 용기를 냈다. 갑산촌 동포들은 다시 차조밥을 해서 병사들에게 한 덩이씩 먹였다. 잠이 설깬 병사들은 주먹밥을 우물거리며 대열을 지었다.
북로군정서군은 새벽어둠을 헤치며 샘골물인 천수평으로 진격했다. 그들은 30여 리를 한 시간 남짓 행군하여 천수평 외곽에 도착했다. 두 명의 척후병은 일본군 기병 40여 명이 민가에 분산해서 자고 있는 것을 방문까지 열어보고 확인해 가지고 왔다. 그리고 동쪽으로 10리 밖 어랑촌에 일본군 대부대가 숙영하고 있는 것까지 알아왔던 것이다. 천수평 근방은 골짜기의 폭이 별로 넓지 않았고 민가도 11채뿐이었다. 북로군정서군은 사방을 포위하여 적을 일시에 섬멸하기로 했다. 곧 동서남북 방향으로 부대 배치가 시작되었다. 동서남쪽의 배치가 끝나고 건너편 산줄기인 북쪽으로 이동하던 부대에서 총을 오발해서 서너 방의 총성이 울리게 되었다. 그 소리에 놀란 일본군들이 자다 깨서 밖으로 튀어나와 우왕좌왕했고 독립군들은 곧바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말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한 총소리 속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그런데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네 명이 용케도 말을 잡아타고 북쪽 산골로 도주해 갔다. 독립군의 공격은 곧 끝났다. 적진이 조용해졌던 것이다. 일본군 40여 명은 말들과 함께 여기저기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
"어랑촌은 여기서 10리밖에 안 된다. 도주한 놈들은 곧 어랑촌 본부에 도착할 것이다. 부대는 즉시 이동한다."
김좌진 장군의 지시였다. 청산리 독립전쟁의 세 번째 전투를 끝낸 독립군은 전사자 두 명을 산자락에 묻고 북쪽 산줄기를 넘어갔다. 동쪽의 어랑촌에서 몰려올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독립군이 야지 골 골짜기로 내려올 즈음에 먼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북로군정서군은 야지골 골짜기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줄기로 곧바로 올라갔다. 9백여 미터의 고지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어랑촌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 대부대가 공격을 가해 오지 않을 리 없었고, 천수동 골짜기는 적과 싸울 만한 위치가 못되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위해서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했던 것이다. 그 고지는 어랑촌에서 서남쪽으로 5리의 거리였다. 그리고 그 산줄기와 나란히 뻗어내리고 있는 바로 북쪽 산줄기가 어젯밤 대한독립군과 그 연합부대가 전투를 벌였던 완루구지 역이었다. 북로군정서군이 고지의 서남단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을 때 일본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지 위에서는 일본군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환히 내려다보였다. 일본군 연대병력은 보병만이 아니었다. 포병과 기마병들이 보병을 앞장서고 있었다. 독립군들이 일본군에 비해 유리한 것은 지형뿐이었다. 병력도 화력도 일본군보다 훨씬 열세였다. 더구나 병사들은 연이은 격전과 강행군으로 지쳐 있었고, 끼니마저 제대로 때우지 못해 허기져 있었다. 그러나 독립군들의 사기는 여전히 펄펄 살아있었다.
일본군 연대병력은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 박격포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일본군들은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나무와 바위 같은 데에 은폐한 독립군들은 일본군을 내려다보며 반격을 가했다. 일본군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산비탈에서 굴러 내려가고 고꾸라지고 했다. 희생자들이 속출하자 일본군들은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전열을 정비해서 다시 공격을 가해 왔다. 그러기를 몇 차례고 되풀이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배, 세 배로 불어나고 있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청산리와 어랑촌 일대의 골짜기마다 투입되어 있었던 일본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모여들어 합세하는 것이었다.
"저놈들을 다 죽이고 우리도 모두 죽을 각오를 하라!"
김좌진 장군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일본군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공격도 한층 거세어졌다. 그에 맞서 독립군들의 반격도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나 일본군들의 수가 워낙 많아 전세는 처음 같지가 않았다. 독립군에게 점차 위기가 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쪽에서부터 산줄기를 타고 북로군정서군 쪽으로 급히 이동해 오는 대부대가 있었다. 그 병력은 태극 깃발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그 연합부대들이었다. 그 부대들은 새벽녘까지 완루구 전투를 치르고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북로군정서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하러 온 것이었다. 1천4백여 명을 헤아리는 독립군 연합부대는 북로군정서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고지의 바로 옆으로 솟은 또 하나의 봉우리를 차지하고 일본군의 공격에 나섰다. 그 뜻밖의 사태에 일본군은 북로군정서군을 에워쌌던 포위망을 풀어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전투는 한층 치열해졌다. 일본군들은 산비탈을 돌격해 올라오다가 많은 희생자를 내고 물러섰다가는 다시 돌격을 시도하다가 또 물러서고를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자 일본군은 기병대를 동원하여 천수평 쪽의 서북방 고지를 따라 독립군들의 측면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정면으로는 포병과 보병을 투입하는 입체작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형이 워낙 불리해 일본군은 희생자들만 늘릴 뿐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전투는 하루종일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사람들이 독립군을 찾아왔다. 밥함지박 이며 밥소쿠리를 이고 진 인근 마을의 동포들이었다. 그 남녀 동포들은 일본군들을 피해 북쪽 산비탈을 타고 온 것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밥은 병사들의 수에 비해 어림없이 적은 양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밥을 먹지 않고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석양빛은 곧 어스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공격이 약해지면서 그들은 전사자들의 시체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일본군들의 시체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산비탈을 뒤덮고 있었다. 독립군들도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전사자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전투가 치열했던 만큼 독립군 전사자도 1백 명이 넘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전투는 끝났다. 독립군들은 적의 추격을 경계하며 산줄기를 타고 서쪽으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독립군은 야지골을 지나 안도현 쪽의 험산줄기로 접어들었다. 일본군들은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었는지 추격을 해오지 않았다. 독립군들은 산이 험해질수록 안심하게 되었다. 행군 속도가 약간 느려졌다. 독립군들은 몇 구비 골짜기를 돌아 행군을 멈추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삼림 속이었다. 그곳이 하룻밤을 자게 된 숙영지였다. 불을 피워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독립군들은 소대별로 모여 모닥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아가세 독립군아 어서 나아가세
그 노랫소리는 금방 독립군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많은 목소리들이 그 노랫소리에 합해졌다.
기다리던 독립전쟁 돌아왔다네
노랫소리는 모든 독립군들의 마음을 끌어 잡으며 뒤흔들고 있었다. 노래는 마침내 합창이 되었다.
이때를 기다리고 십 년 동안에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 독립 광복함이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 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대 낙엽같이 쓰러지리라
탄환이 빗발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장한 독립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제 살점이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 나라 다시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 꽃이 다시 피리라
독립군들은 어느새 모두 일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붙기 시작한 모닥불이 산속의 어둠을 사르는 가운데 우렁찬 독립군가는 백두산록에 메아리져 퍼져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차고 박진감이 넘치게 울려 퍼지는 그 노래에는 연전연승한 용사들의 기쁨과 감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독립군들은 노래를 마치고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모닥불 빛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산속의 추위는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다. 독립군들은 모닥불 가에 빽빽하게 둘러앉았다. 불길을 너풀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은 그들의 추위를 녹여주는 반면에 배고픔을 더 자극하고 있었다.
"어디 멧돼지라도 한 마리 안 잡히나. 저 이글거리는 불에 구워 먹으면 바랄 게 없겠네."
"저런, 바라기도 크게 바라네. 그저 감자라도 하나씩 구워 먹으면 더 바랄 게 없겠네."
"헛것 바라면 배만 더 고프니까 물이나 많이들 마셔. 배고플 때는 물이 살이 되는 법이래."
독립군들은 하루종일 굶으면서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싸움이 끝나고서도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실개울에서 떠오는 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눈빠른 사람은 무슨 나무 열매를 따서 우물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겨울이 시작된 산속에는 무슨 열 매나마 흔하지 않았다. 불을 쬐고 있던 이광민은 갑자기 눈이 커졌다. 저 앞에 지나가고 있는 사람은 김명훈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저어, 김 선생님!"
이광민은 김명훈에게로 뛰어갔다.
"아니, 이게 누구요? 이 동지 아니오!"
이광민을 알아본 김명훈은 이광민만큼 반가워하며 손을 덥석 잡았다.
"여그넌 어쩐 일이신가요?"
보통 옷에 권총을 차고 있는 김명훈의 모습을 훑어보며 이광민이 물었다.
"내 꼴이 좀 우습지요? 임무 수행을 하느라고 이러고 다니는 거요. 상해에 전과를 보고해얄 것 아니오."
"아, 예에......"
이광민은 그때서야 파견원의 임무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이리 무사하니 더 반가울 게 없소." 김명훈은 새삼스럽게 이광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디, 전과 보고넌 어찌허능가요?"
"그게 그러니까...... 적의 피해. 아군의 피해, 전투 상황 등등, 다시 말해 전투장의 모든 것을 핵심적으로 요약하는 거요."
"그런 걸 어찌 다 아는가요?"
"아, 그건 싸우는 것에 비해 별것이 아니오. 이 동지 같은 사람들이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에 나는 뒤에서 그런 것들을 살피는 것뿐이오."
"예, 그렇구만요. 그러먼 오늘 왜놈덜이 얼매나 죽었는가요?"
"오늘 어랑촌 전투가 규모도 가장 컸고, 전투도 가장 치열했소. 그래 왜놈들이 6백여 명이 나 죽어갔소. 부상자들은 그 3배가 넘고 말이오."
독립군들은 먼동이 틀 무렵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각 부대별로 길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독립군들은 청산리 일대와 반대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35. 대학살
"우리 일본군이 간도 출병을 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이 간도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조선 농사꾼 놈들한테 있소. 간도의 불령선인은 총을 들고 설치는 폭도들만이 아니라 농사꾼 놈들 전부 다라는 사실이오. 우리가 조선 농사꾼 놈들을 무지하고 둔하다고 해서 경시하고 무시했던 것이 큰 불찰이었소. 이건 바로 정보원 여러분들이 저지른 씻을 수 없는 과오인 것이오. 무슨 말인고 하니, 농사꾼 놈들이 그렇게 폭도들과 한통속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을 사전에 미리미리 파악해서 군대가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그놈들의 관계를 끊도록 조처했어야 한다 그 말이오. 농사꾼 놈들은 도처에서 폭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양식을 공급한 것만이 아니오. 그놈들은 이번 토벌전에서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만행을 저질렀소. 그게 뭐냐! 첫째가 폭도들에게 길 안내를 한 것이고, 둘째가 우리 일본군의 동향을 폭도들에게 속속들이 알려준 것이고, 셋째는 우리의 군용 전화선을 도처에서 절단해서 작전 수행에 치명상을 입힌 것이오. 특히 전화선 절단은 며칠에 걸쳐서 수십 군데에서 일어나 이번 토벌전을 망치게 된 결정적 요인이 되었소. 우리는 이번 토벌전을 통해서 간도의 불령선인들은 총을 든 폭도들만이 아니라 더 악질적인 것들이 농사꾼들이라는 것을 확인했소. 농사꾼 놈들은 바로 폭도들의 발판이고 뿌리라 그것이오. 다시 말하면 폭도들의 뿌리를 뽑으려면 농사꾼들부터 소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은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서 각자 담당구역의 어느 부락 누구누구가 불온한 성분을 가진 놈들인지 대략 파악하고 있을 것 아니겠소. 이번에 그런 놈들을 깡그리 소탕해 버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은 토벌대에 앞장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앞서 저지른 과오를 씻을 수 있을 것이오. 다들 명심하시오."
나남 사단의 작전참모장은 군화발로 단상을 굴렀다. 정보원들은 미동도 하지 못하고 빳빳하게 굳어져 있었다. 양치성을 작전참모장의 그 열 받친 기세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쉬쉬하고 있지만 이번 토벌전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일본군들의 수는 너무나 엄청났던 것이다. 내부적으로 오가는 말로는 전사자가 1천3백여 명에 부상자가 2천여 명이라고 했다. 그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랑촌 전투에서 연대장인 가노 대좌까지 죽어버린 형편이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본군은 천하무적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더. 그런데 독립군 토벌을 나섰다가 오히려 참패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군이 천하무적이라고 하는 건 허풍이었던가? 아니, 분명 청국과 싸워 이겼고, 아라사를 무찌른 군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군들이 그렇게 세다는 것 아닌가? 일본군들은 독립군 토벌에 나서면서 <토끼몰이>를 간다고 했었다. 독립군들을 그렇게 얕잡아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토끼는 토끼이되 독 오른 토끼였고, 무기를 가진 토끼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더 문제가 조선 농민들이었다. 정말 그것들이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작전참모장의 말마따나 그거야말로 자신들이 농민들을 얕잡아보았다가 큰코다친 실수였다. 농민들이 독립군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길 안내를 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싶었다. 그런데 전화선을 계속해서 절단해대는 것은 너무나 뜻밖이었던 것이다. 그것들이 어떻게 전화선을 절단할 줄 알았단 말인가! 그 농사꾼들은 무식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멍청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거 분풀이하자는 것 아닌가?"
회의실을 나선 동료가 낮은 소리로 툭 내쏘았다.
"어허, 말조심혀."
양치성은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우리가 맡은 일이 답답해서 그래."
"그런 생각 말어."
"술이나 한잔하세."
"그려, 이따가 보드라고."
양치성은 건성으로 대꾸하고 돌아섰다. 그는 마음이 급해 술을 마실 여유가 없었다. 그는 아까부터 그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농민들의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 그 일을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선수를 써서 수국이를 빼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북로군정서의 본부가 있었던 춘명향 덕원리의 조선사람들은 무사하기가 어려웠고, 더구나 동생이 독립군 지휘관이란 것이 드러나면 수국이는 두말할 것 없이 총살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 빼어난 인물도 그렇고, 그동안 자신이 들인 공을 생각해도 그랬다. 그러나 어떻게 빼돌리느냐가 문제였다. 마음이 급하니까 그 묘안이 더 떠오르지 않았다. 위험이 닥칠 거라는 사실을 귀띔해서 피할 데를 구해주겠다고 회유하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수국이가 쉽게 따라나설 것 같지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여태껏 감추어왔던 신분을 밝히고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선심을 쓰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정떨어져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살을 섞고 살게 된다 하더라도 신분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기 는 것이 직분에 맞는 일이었다.
양치성은 묘안을 찾지 못하고 주둔군 임시본부의 뒷문을 벗어났다. 시가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용정은 번화하면서도 언제나 말썽 없이 평온했다. 길 저쪽으로 연분홍빛 영사관 건물이 육중하게 바라다보였다. 그 건물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양치성의 머리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다!
양치성은 속으로 무릎을 쳤다. 양치성은 영사관을 향해 뛰듯이 빨리 걸었다. 영사관에 맞닿은 것처럼 빤히 뚫린 본정통은 꽤나 길었다. 어느 도회지나 그렇듯 용정의 본정통 양쪽으로도 온갖 상점들이 빈자리 없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그 상점이라는 것들은 거의가 초가집이었다. 그래서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건물인 영사관은 대조적으로 높고도 커 보였다. 그 건물은 영사관의 위세만큼이나 용정 어디에서나 다 보였다. 양치성은 지붕 가운데 부분이 종루처럼 드높게 솟긴 그 우람한 건물을 바라보고 걸으며 나는 언제나 이놈의 신세를 면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서 수국이를 차지하고 고향 땅 근방의 경찰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동안 고생을 할 만큼 하고 공도 세울 만큼 세웠는데도 전근시켜 줄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고향 땅은 아니더라도 우선 여기서나마 경찰서에 자리 잡았으면 싶었다. 정보원 생활이란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범도나 서일의 귀때기가 아니고 김시국 정도의 귀때기를 잘라다 바쳐서는 당장 자리바꿈하기가 어려웠다. 임 형사는 영사관 뒷길 주재소에서 권총을 분해해서 손질하고 있었다.
"응, 자네들 모임 다 끝났나?"
얼굴이 넓적하고 기운깨나 쓰게 생긴 임형사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예, 모임이 있는 것 아셨능가요?"
"이 사람아, 내가 모르는 일 있나. 모임을 어찌 됐어?"
"농사꾼덜 동태럴 사전에 파악 못헌 과오럴 저질렀다고 혼이 났구만요."
"그럴 줄 알았지."
임 형사는 피식 웃고는,
"앉게. 어쩐 일인가?"
그는 말을 하면서도 능숙한 솜씨로 권총을 조립하고 있었다.
"예,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왔는디요."
양치성은 엉거주춤 의자 끝에 엉덩이를 붙이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부탁인데? 말해 봐."
임 형사는 궐련을 빼 물었다.
"저어......"
양치성은 임 형사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소곤거리 기 시작했다. 그런 식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익숙한 듯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양치성의 귓속말은 꽤나 길었다. 임 형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연상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었다.
"어쩌실랑가요?"
양치성이 허리를 펴며 또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일을 도와주면 자네하고 어떤 사이가 되지?"
임 형사의 뚱한 말이었다.
"예에?......"
"아니, 그리 놀랄 건 없고, 내가 자네 중신 애비가 되는 게 아니냔 말야."
"아 예에, 그리 되겄구만요."
"중신 애비한테 어떻게 대접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예에, 아조 톡톡허니 허겄구만요."
"그래, 아무 걱정말게. 곧 토벌이 시작될 테니까 일을 서둘러야겠군."
이틀 뒤에 수국이는 체포되었다.
"아니 요것이 무슨 일이다요, 무슨 일이다요. 우리 수국이가 머럴 잘못혔다고 이런다요."
감골댁은 임 형사에게 매달렸다.
"저리 비켜, 이놈으 늙은이. 죄가 있으니까 잡아갈 것 아닌가!"
임 형사가 감골댁을 사정없이 떠다밀었다. 늙은 감골댁은 여지없이 나뒹굴어졌다.
"엄니이......"
뒤로 쇠고랑을 찬 수국이의 울음 쏟아지는 소리였다.
"가자, 빨리빨리 걸어."
임 형사가 수국이의 등을 밀었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욕심이 동 하고 있었다.
"수국아, 수국아, 이 에미하고 항께 가자, 항께 가가......"
감골댁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허겁지겁 딸을 뒤따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가만있지 못해! 더 따라오면 당장 쏴 죽이고 말 거야."
임 형사는 험악한 얼굴로 소리치며 옷 속에서 권총을 꺼내 겨누었다. 그 사나운 기세가 곧 총을 쏘아버릴 것만 같았다.
"엄니, 엄니, 그냥 집에 있으소, 그냥 집이서 기둘려."
수국이가 입술을 깨물며 울먹거렸다.
"가자, 어서!"
임 형사가 다시 수국이의 등을 밀었다. 고개를 돌리는 수국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가, 수국아……"
감골댁은 신음처럼 딸을 부르며 털퍽 주저앉았다. 현기증 일어나는 눈앞에 아들 대근이의 얼굴이 어릿거리고 있었다. 멀찍하게 떨어진 다른 집 모퉁이에 몸을 숨긴 양치성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빙그레 피어나고 있었다. 수국이는 용정까지 끌려왔다. 큰길을 걸어가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다 수국이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쇠고랑을 차고 잡혀가는 일이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쇠고랑으로 뒷결박이 되는 경우는 거의가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도둑이나 잡범들은 대개 혁대나 허리끈을 뺏어버려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잡고 걷게 했다. 수국이는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아이고, 임 형사님, 안녕허싱가요? 근디 어쩐 시악씨럴 잡아가신게라?"
장사 등짐을 진 사내가 임 형사 앞에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그 사내는 양치성이었다.
"응 그래, 장사 잘되나?"
"예, 덕분에 그작저작 되능마요. 아니 근디, 요것이 누구다요? 수국이 시악씨 아니요, 수국이!"
수국이는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과연 눈앞에는 양치성이가 서 있었다. 수국이는 그 목소리가 귀에 익으면서도 설마 양치성이랴 했던 것이다.
"아니, 무슨 잘못얼 혔소?"
양치성은 놀란 얼굴로 수국이에게 다가들며 물었다.
"저어……"
수국이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겁나고 다급한 마음 같아서는 양치성에 게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양치성의 신세를 졌다가는 그것이 또 꼼짝 못 할 올가미가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어째 말얼 헐라다가 말아부요. 말얼 히야 속얼 알 것 아니겄소."
양치성은 자기가 도와줄 수 있다는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인가?"
임 형사가 퉁명스럽게 내질렀다.
"예, 같은 고향사람이구만요. 근디 무신 큰 잘못헐 혔는가요?"
"죄를 져도 큰 죄를 졌지. 딱 총살감이야, 총살."
임 형사가 거칠게 말하며 침을 내뱉었다.
"저어, 한 가지 청얼 디리겄는디요."
수국이가 약간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예, 말허시요. 나가 들어줄 수 있는 청이먼 머시든지 다 들어줄 것잉게."
그러면 그렇지, 네까짓 게 별수있어. 양치성은 일이 생각대로 풀려가는 것이 더없이 기분 좋아 곧 쇠고랑을 풀어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했다.
"엄니, 우리 엄니헌티 나가 여그 와 있다고 잠 전해 주실라요?"
양치성의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엄니헌티요? 예, 그러제라."
양치성과 임 형사의 눈길이 마주쳤다.
"가자, 빨리빨리 걸어."
임 형사가 수국이의 어깻죽지를 철퍽 쳤다. 양치성은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어허, 어찌 그리 아프게 치고그려.’
양치성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일본군들의 조선농민들 토벌은 다음 날부터 자행되었다. 그 행위에는 <불령선인 색출>이라는 명목이 붙어 있었다. 불령선인이란 독립운동가나 독립군을 일컫는 것이었다. 양치성은 2개 소대의 앞장에 섰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장사꾼 차림이 아니었다. 군인들과 똑같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 정보원들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위장이었다. 양치성은 연길현 의란구로 부대를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양치성은 그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의란구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안무의 국민회군 등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 은거했던 곳이었다. 양치성은 의란구의 조선사람들 마을이 봉오동과 같은 꼴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봉오동의 세 마을은 사람들과 함께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일본군은 간도 출병을 하면서 제일 먼저 봉오동을 초토화 시켰던 것이다. 그 세 마을에서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독립군이란 것들이 봉오동전투에서 이겼다고 해보았자 결과적으로 보복만 몇 배로 톡톡히 당했던 것이다. 양치성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일본군은 의란구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사람들 마을을 덮쳤다. 서른한 가구의 마을 사람들은 전부 공터로 끌려 나왔다.
"젊은 여자와 처녀들만 골라내라."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서른이 넘지 않았을 아낙네들과 머리를 땋아 내린 처녀들을 골라냈다. 처녀라고 골라낸 여자들 중에는 열두세 살이 될까 말까 한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과 분리되어 와들와들 떨고 있는 그 여자들은 30여 명이었다. 2개 소대 병력은 나머지 마을 사람들을 반원으로 에워싼 채 총을 겨누고 있었다. 여자들을 잡아가는 데 마을 사람들의 동요를 막으려는 것인지, 마을 사람들부터 죽이고 여자들을 잡아가려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겁에 질리고 두려움에 찬 마을 사람들은 파랗게 얼어붙어 있었고, 마을에는 두꺼운 정적만 가득했다. 그때 쇳소리의 일본말 외침이 터졌다.
"발사."
탕 타당 탕탕탕탕탕......
"으악!"
"아이쿠쿠......"
"아앙......"
요란하게 진동하는 총소리에 남녀의 비명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헝클어지고 있었다. 따로 분리되어 있던 여자들은 그 느닷없는 총질에 질겁을 해서 제각기 비명을 질러대며 발을 구르거나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비명소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비명소리가 멎으면서 총소리도 멎었다. 담배 한 대를 피울 짬도 안 되는 시간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버린 것이었다.
"부상자를 확인, 사살하라!"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 병사들이 시체더미 쪽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병사들이 시체들을 밟고 타 넘고 하면서 총을 쏘아댔다.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는 비명이 잇따랐다.
"확인사살 완료!"
하사관이 지휘관 앞에 경례를 붙였다.
"수고했다. 저것들을 분배해서 맛보도록! 일을 끝낸 다음에 전원 처치하라."
지휘관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뒤쪽에 모여선 여자들을 가리켰다.
"옛, 알겠습니다."
여자 하나에 병사 두셋씩 따라붙었다. 병사들은 배당된 여자들을 잡아끌고 아무 집으로 나 들어가기에 바빴다. 여자들은 발버둥 치고 울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집 저 집에서 여자들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애처로운 소리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았다. 양치성은 혼자 나무에 기대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뿜으며 떫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나 독립군이란 자들이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졌던 것이다. 대일본을 상대로 싸움을 걸다 니……
얼마쯤 지나면서부터 얼굴이 벌겋게 들뜬 군인들이 이 집 저 집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군인들은 사립을 나오면서 혁대를 매거나 웃옷 단추를 꿰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는 군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끼리끼리 모여 키들거리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왁자해지고 있었다. 상기된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만족감이 넘치고 있었다. 군인들이 오륙십 명쯤 웅성거리게 되었을 때 따앙 총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여자의 비명소리가 찢어졌다. 잠시 후에 또 총소리가 울리면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그런 총소리와 비명소리는 마치 경쟁이라도 붙은 듯 이 집 저 집에서 잇따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총소리와 비명소리는 잠잠해졌다.
"완료했습니다."
"됐다, 불을 질러라!"
군인들은 짚단이며 수숫단에 불을 붙여 집집마다 불을 질렀다.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일본군들은 군가를 부르며 불붙는 마을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은 연길현 와룡동에 이르렀다. 양치성은 어느 집을 손가락질했다. 그곳은 초가지붕을 인 학교였다. 군인 열댓 명이 학교로 뛰어 들어갔다. 곧 한 남자가 잡혀 나왔다. 그 뒤를 겁 질린 아이들이 우루루 뛰어나오고 있었다.
"가거라, 어서 다 집으로 가!"
그 남자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선생니임……"
아이들이 울먹이며 선생을 불렀다.
"바가야로!"
지휘관이 칼을 뽑아 아이들을 향해 휘둘렀다. 칼이 번쩍 빛나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며 앞을 다투어 동네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양치성은 그 선생이란 자가 선생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그는 독립군 연락책이면서 자치기관인 한민회 간부였다. 그는 그런 정체를 선생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그 선생을 동네로 끌어갔다. 그리고 군인들은 동네 사람들을 전부 공터로 내몰았다.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젊은 선생은 아름드리나무에 묶였다. 처음에 두 팔과 허리가 묶였고, 그다음에 발목이 묶였고, 끝으로 목이 묶였다.
"저놈은 선생이 아니라 농사꾼들을 불령선인으로 세뇌하고 선동하는 악질 중에 악질인 불령선인이다. 저런 악질들 때문에 우리 일본군들이 아깝게 죽어가는 것이다. 저런 놈들은 총 한 방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 죄를 지은 만큼 고통을 주어 죽여야 한다. 지금부터 저놈 낯가죽을 벗긴 다음 죽일 것이다. 모두가 저놈에게 원수를 갚고 담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분들이 차례로 저놈 가죽을 벗기도록 한다. 한 사람 앞에 한 치씩, 아니야, 인원이 많으니까 반 치씩만 벗기도록 하라. 자아 하사관, 먼저 시범을 보여라!"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하사관이 단도를 빼 들었다. 그리고 그는 기운차게 나무에 묶인 선생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선생 앞에 버티고 서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그의 얼굴에 침을 내뱉었다.
"칙쇼!"
하사관이 욕을 내뱉으며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그리고 군화발로 선생의 배를 걷어찼다.
"봐라, 저놈이 저렇게 악질이다!"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하사관이 단도를 잡은 손에 침을 튀겼다. 그리고 선생의 얼굴에 칼을 들이댔다. 칼날이 이마의 정중앙, 머리카락 바로 아래부분으로 파고들었다.
"아아아아......"
선생은 처절한 비명을 길게 토해냈다. 그러나 칼날은 멈추지 않고 이마의 이쪽저쪽으로 파고들었다.
"아아아아......"
하사관이 돌아서며 부하들을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에는 조그맣게 네모진 살 껍질이 피범벅인 채 들려 있었다.
"다들 똑똑히 보고 순서대로 실시하라."
지휘관이 명령했다. 군인들이 각가 단검을 빼 들었다.
"자, 앞줄 너부터 실시!"
하사관이 살 껍질을 든 손으로 부하를 지목했다. 병사 하나가 선생 앞으로 다가갔다. 선생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피는 벌써 얼굴 가운데를 지나 목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병사가 머뭇거렸다.
"뭘하고 있나. 빨리 해, 빨리!"
하사관이 소리쳤다. 병사가 피흐르고 있는 이마에 칼날을 들이댔다.
"아아아아......"
또 길게 울리는 비명이 처절했다. 군인들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로 바뀌면서 선생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갔다. 선생의 비명이 울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은 채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마가 다 벗겨지고, 눈썹이 다 없어지고, 콧등이 뭉그러지면서 선생의 비명을 차츰 탁하게 가라앉아 갔다. 너무 소리소리 질러대 목이 쉬고 갈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양쪽 볼이 입술 가까이까지 벗겨졌을 때 비명소리는 더 울리지 않았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피가 질질 흐르는 시뻘건 생살을 드러낸 선생의 얼굴은 이미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귀 아래턱까지 살가죽을 다 벗겼지만 칼에 피를 묻히지 않은 군인들은 아직 반나마 남아 있었다.
"좋다. 복수를 위해서는 끝까지 다 해야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만 중단하겠다.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다들 똑똑히 봐둬라."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외치며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기절한 선생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챘다. 떨구어졌던 고개가 들리면서 얼굴이 똑바로 되었다. 살 껍질이 다 벗겨져 뭉그러지고 파이고 한 피범벅의 얼굴은 끔찍스럽게 험상궂었다. 지휘관은 그 얼굴에 칼을 들이댔다. 칼끝은 한쪽 눈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칼을 휘돌리는가 싶더니 무엇이 땅으로 뚝 떨어졌다. 한쪽 눈알이 빠진 것이었다. 칼끝은 다른 눈으로 파고들었다. 또 하나의 눈알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는 칼에 묻은 피를 선생의 옷소매에다 문질러 닦고는 돌아섰다.
"다들 똑똑히 봤지. 대일본제국에 복종하지 않으면 너희들도 저런 꼴이 된다. 알겠나!"
지휘관은 서투른 조선말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일본군들은 석양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찬바람 속에서 통곡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수국이는 영사관 지하실에 갇혀 심문을 받고 있었다.
"네 동생 방대근이는 지금 어디 있지?"
임 형사는 매운 눈길로 쏘아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어디 있는지 모르는디요."
수국이는 떨지 않으려고 두 손을 꼭 맞잡을 채 고개까지 저었다. 우락부락한 임 형사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눈을 내리깔거나 눈길을 딴 데로 돌리지도 못하게 했다.
"모르긴 뭘 몰라. 다 내통되고 있잖아."
임 형사의 눈이 더 사나워졌다.
"아니구만이라. 9월에 집 떠난 뒤로 아무 소식이 없당게요."
"잔소리 마라! 저 순순히 안 대면 어찌 되는지 알지? 저도 저렇게 당해야 말을 듣겠어?"
임 형사의 목소리에 더 싸늘하게 날이 섰다.
"차, 참말인디요……"
수국이는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가 갑자기 커지는 걸 느끼며 말을 더듬었다. 지하실 여기저기에서는 숨넘어가는 비명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고문당하는 비명소리들은 듣기만 해도 전신이 오그라들고, 피가 타들고, 가슴이 벌떡거리다 못해 뱃속이 화끈거리며 비비꼬였다. 수국이는 그 비명소리들에 시달리며 잠도 자지를 못했다.
"거짓말 말라니까! 너 발가벗고 한번 당해 봐야 정신 차리겠어?"
임 형사가 잔인하게 웃었다.
"아니구만이라, 아니구만이라. 거짓말헌 것이 없당게라."
수국이는 두 팔로 엇갈리게 가슴을 가리며 하얗게 질렸다.
"너 여기가 어딘지 알어? 여기 잡혀 들어와서는 거짓말이 안 통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살아서 나가지 못하는 곳이야. 발가벗기기 전에 똑바로대란 말야."
임 형사는 곧 옷을 벗기기라도 할 것처럼 묘한 눈빛으로 수국이를 노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야아, 야아, 거짓말 안 허겄구만이라."
수국이는 울음으로 떨리는 입술을 물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아니야, 거짓말해도 괜찮아, 너희들 독립운동인지 지랄인지에 미친 종자들은 어차피 거짓말을 하니까. 너도 발가벗고 맛을 봐야 할 거야."
임 형사는 이제 정말 옷을 벗길 차례라는 듯 몸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아니랑게라, 아니어라. 참말로 참말만 허겄당게요."
앞에 앉은 남자가 금방 몸을 일으킬 것만 같아 수국이는 두 팔로 가슴을 더 꼭 가리며 애가 탔다. 그런 수국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있었다.
"저것을 그냥……"
임 형사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심결에 흘러나간 그 소리에 그만 소스라쳤다.
하! 저것이 사람 환장하게 만드네. 저게 울 듯 말 듯하니까 더 예쁘질 않냔 말야. 저것을 그냥 해치우고 말아?
이런 속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첫눈에 마음이 동해 버린 이후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처녀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눈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샅 가운데서 불뚝 일어난 물건을 옷 위로 붙들면서 짭짭 입맛을 다셨다. 저릿거리고 후끈거리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을 저질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놈 양치성의 얼굴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양치성이 그놈이 무슨 상관이냐고 속살거리고 있었다. 사실 한강에 배 지나가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양치성이에게 넘겨주기 전까지 실컷 재미를 본들 제 놈이 알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또한 저것이 내가 당했음네 하고 양치성이한테 까발리지도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 주저할 것이 없었다. 양치성이 그놈하고 형제간인 것도 아니고, 목숨 걸고 의리를 지켜야 할 사이도 아니었다. 제 놈이 속임수로 저것을 차지하려고 하는 바에야 이쪽에서 먼저 입맛 다신다고 죄 될 것 없는 일이었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는 수고비로도 그 정도는 과할 것이 없다 싶었다.
"그래, 좋아. 동생 놈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치고, 너가 뒤에서 맡고 있는 일은 뭐야?"
임 형사는 덫을 치고 있었다.
"뒤에서 맡은 일이라고라?"
수국이는 어리둥절해졌다.
"이년아, 능청맞게 못 알아듣는 척하지 말어! 정말 맛을 봐야 알겠나."
임 형사는 책상을 내리치며 곧 일어날 것처럼 앉음새를 고쳤다.
"야아, 맡은 일 암것도, 암것도 없는디요. 엄니허고 나넌 그냥……"
"야 이년아, 또 거짓말이야! 이년, 너 맛 좀 봐라."
임 형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수국이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아이고메 엄니!"
수국이는 목을 빼 늘이며 절박하게 어머니를 불렀다.
"이년아, 이리 와!"
임 형사는 억센 기운으로 수국이의 팔을 꺽었다. 건장한 남자의 손아귀에서 수국이는 매의 발톱에 찍힌 한 마리 미약한 새였다.
"말허겄구만요, 말허겄구만요……"
수국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다급한 소리였다.
"이년아, 아가리 놀리지 말어."
수국이의 두 팔을 등 뒤로 비틀어 잡은 임 형사는 숨을 씩씩거리며 한쪽 손으로 저고리의 옷고름을 풀었다.
"말헌당게라, 말허겠어라……"
수국이는 몸부림치며 똑같은 소리를 실성한 듯 되풀이해댔다.
"이년아, 아가리 닫어!"
임 형사는 무술의 기합이라도 넣듯이 소리쳐대며 수국이의 치마말기를 풀었다.
"아이고메, 사람 죽이네에, 사람 죽이네!"
치마가 흘러내린 수국이는 죽을힘을 다해 소리소리 질렀다.
"흐흐흐...... 자알한다. 더 소리질러라. 여기가 바로 사람 죽이는 곳이니까 더 소리 질러. 흐흐흐흐......"
임 형사가 수국이의 젖을 움켜잡으며 끈적거리는 웃음을 흐흐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고문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발가벗기는 것이고, 그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함께 발가벗는 것이었다. 처녀의 경우에 그 방법이 더 신효한 것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아야야야......"
임 형사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수국이의 입이 그의 팔을 물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임 형사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수국이가 "엄니!" 하며 입을 벌리고 말았다. 그는 형사다운 민첩함으로 수국이의 발 등을 사정없이 짓밟았던 것이다.
"하! 가시 돋친 꽃이라. 더 예쁜데그래. 흐흐흐흐......"
그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수국이를 노려보면서도 그 묘한 웃음소리를 지어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거칠게 속곳을 벗겨 내렸다. 수국이는 긴 가시로 불두덩 속을 찌르는 것 같은 찌릿함과 함께 온몸에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국이의 허리를 껴안아 불끈 들어서 옆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치마와 속곳을 발로 멀찍하게 밀어버렸다. 그런 다음에야 수국이의 팔을 풀어주었다. 수국이는 허둥지둥 방구석으로 달아나며 저고리의 옷고름을 매고 있었다. 그는 알몸이 된 수국이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바지를 벗고 있었다.
양치성은 부대를 안내하면서 사흘째 되는 날 왕청현 덕원리로 들어섰다.
"여기가 바로 북로군정서 본부가 있던 뎁니다."
양치성의 유창한 일본말 안내였다.
"여기 사는 조센징들이야 말로 골수 불령선인들 아닌가."
지휘관이 침을 내뱉었다.
"예, 그렇습니다."
"좋아, 쓴맛을 보여주지!"
금방 얼굴에 살기를 드러낸 지휘관은 일본도를 거칠게 뽑아들었다.
"다들 들어라! 이 부락 조센징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끌어내라!"
지휘관은 일본도를 내려치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이미 그 일에 익숙해진 일본군들은 재미나는 놀이라도 시작하듯 마을로 내달렸다. 양치성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수국이를 임 형사에게 넘겨놓은 다음부터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수국이와 한 이불 속에서 잘 꿈을 꾸며 깊이 들이마신 담배 연기를 후우 내뿜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뒤에서 몰아대는 군인들에게 쫓기며 이 고살 저 고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양치성은 모자를 눌러쓰며 나무를 등지고 섰다.
"전원 끌어냈습니다."
"좋아, 모두 뒷산으로 몰고 가라."
총을 겨눈 군인들에게 에워싸인 마을사람 100여 명은 나무들이 많이선 뒷산으로 말없이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바람은 매웠고 하늘에는 음산하게 구름이 끼어 있었다.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모두 나무에다 묶어라!"
지휘관이 명령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하사관이 물었다.
"모두 묶으라니까!"
군인들 1개 소대가 사람들을 에워싸고 총을 겨누었고, 다른 1개 소대의 군인 두 명씩이 마을 사람 하나씩을 끌고 갔다. 남자들부터 나무에 묶이기 시작했다. 열댓 명쯤 묶였을 즈음에 한 남자가 군인을 떠다밀며 내뛰기 시작했다.
"쏴라!"
여러 방의 총성이 한꺼번에 울렸다.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어져 산비탈을 굴러 내려갔다. 여자들이 끌려가면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마니, 어마니......"
아이들이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울어댔다.
"칠복아, 칠복아......"
"곰돌아, 곰돌아......"
어머니들도 아이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일본군들의 개머리판은 여자들이고 아이들이고 사정없이 후려쳤다. 양치성은 나무 뒤에서 감골댁이 끌려가 묶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홀가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수국이를 완전하게 차지하자면 수국이가 의지할 데가 아무데도 없어야 했던 것이다.
"완료했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분대별로 사격 연습을 실시한다. 총알은 각자 1발씩 장전, 표적은 왼쪽 심장, 명중시키지 못한 자들은 각오하라. 분대별로 사겨억 준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일렬로 줄을 서 나갔다. 병사들은 나무에 묶인 사람들과 20보쯤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섰다.
"사겨역 개시!"
총소리들이 다투어 울리기 시작했다. 가랑눈이 희끗거리며 날리고 있었다. 양치성은 부대를 따라 5일 만에 용정으로 돌아왔다. 그 토벌대는 휴식을 겸해 탄약을 공급받기 위해 본대로 귀대했던 것이다. 양치성은 곧바로 임 형사를 찾아갔다.
"어찌 됐능게라?"
"어찌 되기는 뭐가 어찌 왜.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놨지."
"허면 당장 면회럴 해야 되겄구만요."
"그 옷도 안 갈아입고?"
"어디요, 다된 잔치에 코 빠칠 수 있간디라."
양치성을 싱글벙글했다.
"중신 애비 공은 안 잊어버리겠지?"
"무신 말씀이신게라. 술 석 잔언 너무 작고, 멀 선사허먼 좋으시겄소?"
"글쎄에...... 팔뚝시계 해줄 수 있어?"
임 형사는 큼직하게 내질렀다.
"예에, 그리허겄구만요."
저런 날강도 같은 놈이 있나 싶었지만 양치성은 그런 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흔쾌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내놓은 말이었고 그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양치성은 깜짝 놀랐다. 수국이는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아니, 어찌 이리 되았소? 밥얼 굶깁디여?"
"......"
"매럴 맞었소?"
"......"
눈을 내려 뜬 수국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양치성은 밥을 굶겼을 리도 없고, 매를 때렸을 리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놀라 그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겁에 질려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달려 그리 됐을 거라는 생각은 그다음에 떠올랐다.
"그간에 나가 뒷손얼 쓰니라고 늦었는디, 엄니가 걱정이 태산이시오."
그 말에 비로소 수국이는 눈을 올려 떴다. 그 눈에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양치성은 이거 다 싶었다.
"엄니가 어서 풀려나기만 기둘림서 나보고 무신 수럴 써서라도 풀려나게 해도라고 신신 당부혔소."
"엄니넌 ......어쩌시오?"
수국이는 눈물로 목이 막혔다.
"밥도 못 자시고...... 늙으신 몸에 그러다가 큰 탈 나게 생겼든디요."
양치성은 슬픈 가락으로 말했다.
"엄니이......"
수국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가 풀려나게 손언 써놨는디요."
양치성은 마침내 화살을 날렸다. 수국이는 울음을 추스르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양치성을 쳐다보았다. 그 눈에 슬픔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양치성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수국이는 입을 열었다.
"풀려나게 혀주시오."
그리고 고래를 떨구었다.
"글먼 내 말 들어주겄단 말이오?"
양치성은 그 말뜻을 다 알아들으면서도 일부러 승리의 못을 치고 있었다. 수국이는 떨군 고개를 끄덕였다. 양치성은 수국이에게 새 옷부터 사입혔다.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자 수국이는 수척한 대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다. 아니 그 애련한 모습이 어쩌면 더 고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치성은 수국이를 여관에 혼자 재우며 전혀 접근하지 않고 점잖게 굴었다. 다 된 밥이니까 뜸을 들이며 자신의 점수를 올리자는 것이었다. 양치성은 수국이의 다급한 마음대로 다음날 왕청현으로 가는 마차를 탔다. 눈시울이 붉어진 수국이는 내내 말이 없었고, 양치성도 굳이 말을 걸지 않으며 담배만 피워댔다. 마을이 잿더미가 된 것을 본 수국이는 금방 실성하는 것 같았다.
"아이고메 엄니, 엄니, 엄니......"
수국이는 허둥거리고 두리번거리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나가 댕겨간 뒤로 왜놈덜이 헌 짓거리구만. 가만, 가만있어 봐. 저그 저 뒷산에 사람덜이 묶여 있는 것 같은디."
양치성은 수국이를 부축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저그 저 뒷산 말이여."
양치성은 어느덧 말을 놓고 있었다. 수국이는 양치성을 앞질러 뒷산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이고메 엄니이이......"
나무마다 묶어 처져내린 시체들을 보는 순간 수국이는 혼절하고 말았다. 양치성은 비식 웃으며 수국이를 껴안았다. 수국이는 어머니의 시체를 찾아내고는 또 정신을 잃어버렸다. 양치성은 다시 수국이를 껴안고 앉아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죄의식을 느꼈다. 가슴에서 흘러내린 피로 감골댁의 앞자락은 검붉게 피떡이 되어있었고, 고개는 늘어질 대로 늘어져 처져 있는데 윗니빨을 아랫입술을 파고들 정도로 응등 물려 있었고, 두 눈은 번히 뜨여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자 순간적으로 감골댁을 미리 살려낼 걸 잘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런 말랑거리는 생각을 뭉개버렸다. 수국이가 의지할 데 없이 외롭지 않고서는 자신의 차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치성은 수국이의 마음이 흡족하도록 감골댁의 장례비를 아끼지 않았다. 수의며 관을 고급으로 썼고, 봉분도 보통 무덤들보다 갑절은 크게 만들었다.
"돈도 너무 많이 쓰고 애도 너무 많이 썼구만이라."
무덤을 뒤로 하고 돌아서며 수국이가 양치성을 바라보았다.
"무신 말이여. 응당 헐 일이제."
양치성은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면서 소리 없는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침내 목적이 달성된 것이었다. 수국이가 마음을 연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마음이 열려 있었다. 수국이는 양치성이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하실에서 풀려나게 해주었고, 어머니의 장례까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치러주었으니 무어라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여야 할 일은 꿈만 같았다. 이번에 지하실에서 날마다 당한 일로 남자는 더 무서워지고 끔찍스러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걱정이 있었다. 자신이 처녀가 아닌 것을 알게 되면 어쩌랴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지하실에서 그런 꼴을 당하는 줄 알았으면 구해주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시집을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남자가 끔찍스럽기도 해서였지만 처녀 아닌 것이 들통나는 게 두렵기도 했던 것이다. 수국이는 뻣뻣한 나무토막으로 양치성과의 첫 밤을 넘겼다.
"나가 비단옷에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호강시킬 것잉게 엄니가 그리 시상 뜨신 것언 잊어불고 새 맘 묵여야 혀. 혼자서만 당헌 일이 아닝게. 그라고 수국이헌티넌 다시 만내야 헐 동상이 있덜 안혀. 동상 생각히서라도 맘 강단지게 묵어야 헐 것 아니여."
양치성은 열기가 식지 않은 몸을 꼭꼭 붙여대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수국이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한편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녀가 아닌 것을 양치성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남자는 여자가 처녀이고 아닌 것을 여자가 옷을 벗으면 단박에 알 줄 알았던 것이다. 며칠을 쉰 양치성은 다시 부대와 함께 길을 떠났다. 수국이한테는 물론 장사를 며칠 다녀온다고 둘러 붙였다.
독립군들을 뒤쫓다 놓쳐버린 일본군들은 조선 농민들 토벌을 더 확대해나가고 있었다. 북간도 일대를 휩쓸고 있는 토벌은 11월을 넘겨 12월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군의 간도 출병으로 시작된 그 학살은 벌써 넉 달째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날마다 이곳저곳에서 요란한 총소리들이 진동하고, 마을이 불타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흰옷 입은 시체들이 언덕바지며 산비탈이며 개울가에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만주의 하늘은 언제나 음산한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 우중충한 하늘만큼 음산한 울음을 뿌리며 까마귀들이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여기저기로 날아다녔다. 너무 많은 시체들을 치울 사람도 없었고, 까마귀 떼를 막아낼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이번 토벌 작전에서 불령선인들의 은거지와 동조 지역을 집중공략한 결과 학교, 시교당, 예배당 등을 포함하여 도합 3천여 채 이상 소각했고, 그 협조자와 동조자들을 1만여 명 처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는 불령선인들이 다시는 준동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번 작전에 앞장서 수고한 여러분들의 공을 치하하는 바이다."
작전참모장이 만족스럽게 장내를 둘러보았다.
1920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독립군들이 밀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풍문과 함께 사람들은 그 대학살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