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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1919~2004)

가을 병실(病室)

가장 사나운 짐승

겨울 강 산조(散調)

겨울 거리에서

겨울 과수원에서

겨울 밭

구상무상(具常無常)

귀뚜라미

그리스도 폴의 강(江)

그분이 홀로서 가듯

근황(近況)

기도

까마귀

꽃자리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나는 혼자 알아낸다

나의 시(詩)

나자렛 예수

내 안에 영원이

네 마음에다

노경(老境)

노부부(老夫婦)

눈 내리는 강

달밤 2경(景)

독락(獨樂)의 장(章)

동심초(童心抄)

동토(凍土)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도형수(徒型囚) 짱의 독백

마음의 구멍

마음의 눈을 뜨니

마지막 말씀

말씀의 실상(實相)

목숨이여

무궁화

무소부재(無所不在)

민들레

백련(白蓮)

병상우음(病床偶吟)

보리밭

봄맞이 춤

봄 빨래

부끄러움

부활절

새해

수난의 장(受難의 章)

수치(羞恥)

시법(詩法)

시심(詩心)

시어(詩語)

실체와 실상

아가는 지금

어느 가로등

어떤 정회(情懷)

에로스 소묘(素描)

여명도(黎明圖)

연(蓮)이여

엿보기

오늘

오늘서부터 영원을

오늘은 내 안에

우리의 8월

우음(偶吟)

월남기행(越南紀行)

유언(遺言)

은행(銀杏) - 우리 부부의 노래

이 한 해

임종(臨終) 고백(告白)

임종(臨終) 예습(豫習)

입버릇

잡초송(雜草頌)

점경(點景)

정(靜)과 동(動)

조국(祖國)아! 늬는

조화(造化) 속에서

진혼곡(鎭魂曲)

창녀와 시인

초동(初冬)의 서정(抒情)

초생달 꽃밭

초토(焦土)의 시

추풍령

출애급기(出埃及記) 별장(別章)

풀꽃과 더불어

하일서경(夏日敍景)

한 알의 사과 속에는

한가위

한강근경(漢江近景)

해빙(解氷)

허(虛)의 장(章)

혼자 논다

홀로와 더불어

화전민(火田民)의 꿈

휴전선

4월

 

 

가을 병실(病室)

구상

 

가을 하늘에

기러기 떼 날아간다.

내 앓은 가슴 위에다

긴 그림자를 지으며

북으로 날아간다.

한 마리 한 마리 꼬리를 물 듯이

일직선(一直線)을 그으며 날아간다.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내 가슴 空洞(공동)에 내려앉는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붙잡았다.

 

              팔딱

              팔딱

              팔딱

내 가슴이 뛴다.

 

              끼럭

              끼럭

              끼럭

내 가슴이 운다.

 

끼럭

끼럭

끼럭

하늘이 운다.

 

               끼럭

끼럭

나는 놓아 보낸다.

 

혼자 떨어져 날으는 뒷모습이

나 같다.

 

가을 하늘에

기러기 떼 날아간다.

나의 가슴에

평행선(平行線)을 그으며 날아간다.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겨울 강 산조(散調)

구상

 

섣달 매운 날씨 이른 아침

마치 매일 예배를 보듯

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다.

 

강은 숨을 죽이듯 물살 하나 없고

건너 모래톱도 추위에 질린 얼굴을 하고

배들은 모두 기슭에 움츠리고 있는데

흰 물새 몇 마리 강물을 차며

얼어붙은 하늘을 날고 있다.

 

헌데 계절의 무덤 같은 이 삭막 속에서

신이 같은 축주는 그 어인 일인가?

 

시신 같은 저 강에서, 아니 내 가슴에서

대금의 산조가 울려오며

이 산 저 산봉우리 옹달샘에서

한 방울의 이슬이 땅껍질을 뚫는 소리

바위 숲을 헤쳐 나오는 계곡의 물소리,

 

천 길 벼랑을 내려 구르는 폭포 소리,

이 들판 저 들판에서 흘러나온 여울들이

대하를 이루어 출렁이는 강물 소리,

하늘의 천둥소리, 빗소리, 눈보라 소리,

헤아릴 수 없는 낱낱의 물방울들이

낳고 죽고 맺고 엉키고 합치는 소리,

영절한 그 소리, 소리들을 내더니

이제 그 가락은 내 앞을 흐르는 강처럼

저 멀리 아득히 자취를 감추면서

영산회상으로 변하여 울려오고

나의 과거와 오늘도 미래도

그 신운에 녹아 흐른다.

 

 

 

겨울 거리에서

구상

 

붉은 벽돌 빌딩에 낡은 현수막이

실의 같이 드리운 겨울 일모,

앉은뱅이 철책 앞 포도 위에

시멘트 지대 조각을 모래톱 삼아

남생이 새끼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목의 가로수처럼 앙상한 사내가

뽀얗게 먼지를 쓰고 서서

거미손으로 실을 잡아당길 양이면

남생이는 쪼르륵 쪼르륵 달려 나가고

쪼르륵 쪼르륵 달려 나간단

종이 사장에서 떨어지고

 

드르륵 드륵 드르륵

은행의 철문이 내려지면

눈앞에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눈도 돌리지 않는 사람의 파도가 밀려

선창 같은 혼잡 속에서

버스는 다가오고 떠나가고

 

딛고 선 아스팔트 밑에

연탄 빛 여윈 청계천이 지나가듯

사내의 주린 창자 속에서도

쪼르륵 쪼르륵 남생이가 달려 나가고

달려 나가단 떨어지고

 

외론 섬 등대마냥 켜보는 칸델라 불에

종이 조각 보는 어안렌즈 속의 해저,

아니면 갈가마귀 새끼 떼들이

내려앉은 무덤,

 

이 처량한 성경에선

죽은 전우의 송장이라도 다가와

손을 잡으면 반가와 눈물지리.

 

 

 

겨울 과수원에서

구상

 

흰 눈이 소금같이 뿌려진

과수원에

한 그루 매화의 굵고 검은 가지가

승리의 V자를 지었고

그 언저리를 부활의 화관(花冠)인 듯

꽃이 만발하다.

 

"보라! 나의 안에 생명을 둔 자

죽어도 죽지 않으리니

보이지 않는 실재(實在)를

너희는 의심치 말라"

 

까치가 한 마리 이 가지 저 가지를

해롱대며 날은다.

 

폐(肺)의 공동(空洞)처럼 뻥 뚫린 구덩이 옆에

한 그루

아름드리 사과나무가

송장처럼 뻐드러져 있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사내가

지게를 지고 와서

도끼로 마른 가지를 쳐내고

몸뚱이를 패서 지고 간다.

 

"보라! 형벌의 불 아궁 속으로 던져질

망자(亡者)의 몰골을,

그러므로 너희는 현존(現存)의 뿌리를

병들지 않도록 삼가라"

 

얼어붙은 하늘에 까마귀가

까옥까옥 날은다.

 

 

 

겨울 밭

구상

 

은싸라기 뿌린 아침 밭에

이 또한 머리에 흰 서리를 인

사나이가 우두커니 서 있다.

 

기름진 나날과

달디단 꿈을 엮고 나선 게 아니라

괴롭고 긴 밤을

몹시 시달리고 난 모습이다.

 

겹치는 재변에다

일손마저 굼떴던지

추수를 못 한 이 밭은

빈 나락과 마른 풀만이 엉켜 뒹굴고

때아닌 곳에 푸성귀 몇 호기

그의 철모르는 자식들처럼

한구석 푸르게 자라고 있다.

 

금은(金銀)의 햇발을 받아

얼어붙었던 대지는

사내의 가슴처럼

한 서린 입김을 내뿜는데

 

초동(初冬)의 매몰스런 바람 한 오라기

밭머리 고목(古木) 가지의

마지막 잎새를 흔들고 지나가며

사내의 눈에다

찬 이슬을 맺혀 놓았다.

 

 

 

구상무상(具常無常) 

구상

 

이제 세월처럼 흘러가는

남의 세상 속에서

가쁘던 숨결은 식어가고

뉘우침마저 희미해 가는 가슴.

 

나보다도 진해진 그림자를

밟고 서면

꿈결 속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그저 심심해 서 있으면

해어진 호주머니 구멍으로부터

바람과 추억이 새어나가고

꽁초도 사랑도 흘러 나가고

무엇도 무엇도 떨어져 버리면

 

나를 취케 할 아편도 술도 없어

홀로 깨어 있노라.

아무렇지도 않노라.

 

 

 

귀뚜라미

구상

 

입동(立冬)도 지난 어느 날 밤

한잠에서 깨어나니

창밖 뜰 어디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저 소리는 운다[鳴]기보다

목숨을 깎고 저미는 소리랄까?

쇠잔한 목숨의 신음소리랄까!

 

문득 그 소리가

내 가슴속에서도 울려 온다.

내 가슴속 어느 구석에도

귀뚜라미가 숨어 사나 보다.

 

머지않을 나의 죽음이 떠오른다.

이즈막 나의 시가 떠오른다.

 

 

 

 

그리스도 폴의 강(江)

구상

 

1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가듯

태백(太白)의 허공 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아다닌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2

산들이 검은 장삼(長衫)을 걸치고

다가앉는다.

 

기도소(祈禱所)의 침묵이 흐른다.

 

초록의 강물결이

능금빛으로 물들었다가

금은(金銀)으로 수를 놓다가

설원(雪原)이 되었다가

이 또한 검은 망사(網紗)를 쓴다.

 

강 건너 마을은

제단(祭壇)같이

향연(香煙)이 피어오르고

 

나루터에서

호롱을 현 조각배를 타고

외론 영혼이 저어나간다.

 

 

3

강이 숨을 죽이고 있다.

기름을 부어 놓은

유순(柔順)이 흐른다.

 

닦아 놓은 거울 속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마냥 깊다.

 

선정(禪定)에 든 강에서

나도 안으로 환해지며

화평(和平)을 얻는다.

 

 

4

바람도 없는 강이

몹시도 설렌다.

 

고요한 시간에

마음의 밑뿌리부터가 흔들려 온다.

 

무상(無常)도 우리를 울리지만

안온(安穩)도 이렇듯 역겨운 것인가?

 

우리가 사는 게

이미 파문(波紋)이듯이

강은 크고 작은

물살을 짓는다.

 

 

5

강에 바람이 인다.

진갈맷빛 물살이

이랑을 지으며

모새 기슭에

파도를 친다.

 

강도 말 못 할 억울을

안으로 지녔는가?

보채듯 지줄대며

사연이 많다.

 

하늘은 먹구름을 토하고

바람은 포목(布木)으로 휘감긴다.

 

창백히 질려 있는 모래톱에서

갈가마귀 떼들이 날아

비안개 낀 산을 넘는다

 

 

6

강에 은현(銀絃)의

비가 내린다.

 

빗방울은 물에 번지면서

발레리나가 무대인사를 하듯

다시 튀어 올라 광채(光彩)를 짓고

저 큰 흐름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강은 이제 박수 소리를 낸다.

 

 

7

아지랑이가 아물거리는 강에

백금의 빛이 녹아 흐른다.

 

나룻배가 소년이 탄 소를

싣고 온다.

 

건너 모래톱에

말뚝만이

홀로 섰다.

 

낚싯대 끝에

잠자리가 조은다.

 

멀리 철교 위에서

화통차(火筒車)가

목쉰 소리를 낸다.

 

- 북간도(北間島)로 가는가베?

 

풀섶에 갓 오른

청개구리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8

5월의 숲에서 솟아난

그 맑은 샘이

여기 이제 연탄 빛 강으로 흐른다.

 

일월(日月)도 구름도

제 빛을 잃고

신록(新綠)의 숲과 산은

묵화(墨畵)의 절벽이다.

 

암거(暗渠)를 빠져 나온

탐욕의 분뇨(糞尿)들이

거품을 물고 둥둥 뜬 물 위에

기름처럼 번득이는 음란!

 

우리의 강이 푸른 바다로

흘러들 그 날은 언제일까?

 

연민의 꽃 한 송이

수련(睡蓮)으로 떠 있다.

 

 

9

붉은 산굽이를 감돌아 흘러오는

강물을 바라보며

어느 소슬한 산정(山頂) 옹달샘 속에

한 방울의 이슬이 지각(地殼)을 뚫은

그 순간을 생각는다네.

 

푸른 들판을 휘돌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마침내 다다른 망망대해(茫茫大海)

넘실 파도에 흘러들어

억겁(億劫)의 시간을 뒤치고 있을

그 모습을 생각는다네.

 

내 앞을 유연(悠然)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증화(烝化)를 거듭한 윤회(輪廻)의 강이

인업(因業)의 허물을 벗은 나와

현존(現存)으로 이곳에 다시 만날

그 날을 생각는다네.

 

 

10

저 산골짜기 이 산골짜기에다

육신의 허물을 벗어

흙 한 줌으로 남겨놓고

사자(死者)들이 여기 흐른다.

 

그래서 강은 뭇 인간의

갈원(渴願)과 오열(嗚咽)을 안으로 안고

흐른다.

 

나도 머지않아 여기를 흘러가며

지금 내 옆에 앉아

낚시를 드리고 있는 이 막내애의

그 아들이나 아니면 그 손주놈의

무심한 눈빛과 마주치겠지?

 

그리고 어느 날 이 자리에

또다시 내가 찬미(讚美)만의 모습으로

앉아 있겠지.

 

 

11

그저 물이었다.

많은 물이었다.

많은 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으면서

순간마다 새로웠다.

 

새로우면서 과거와

이어져 있었다.

과거와 이어져 있으면서

미래와 이어져 있었다.

 

과거와 미래가 이어져서

오직 현재 하나였다.

오직 하나인 현재가

여러 가지 얼굴을 하였다.

 

여러가지 얼굴을 하고서

여러가지 소리를 내었다.

여러가지 소리를 내면서

모든 것에 무심하였다.

 

무심하면서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면서 무심하고

무심하게 죽어가고

죽어가면서 되살아왔다.

 

 

12

숨을 죽이고 흐르고 있다.

숨이 차서 흐르고 있다.

 

미소를 지으며 흐르고 있다.

우울에 잠겨서 흐르고 있다.

 

침묵의 데모행렬처럼

소리 없이 함성을 지르며

흐르고 있다.

 

향두(香頭)가락이 멎은 상여의 행렬처럼

오열(嗚咽)을 안으로 삼키며

흐르고 있다.

 

 

13

강에는

봄에

봄이 흐른다.

 

강에는

여름에

여름이 흐르고

 

가을에는 가을이

겨울에는 겨울이

흐른다.

 

강에는

행복한 이가 오면

기쁨이 출렁이고

 

고독한 이가 오면

시름이 하염없고

 

사랑끼리가 오면

사랑이 녹아 흐른다.

 

강에서

자연도 우리 마음도

제 모습을 찾는다.

 

 

14

강은 구지레한 마음이 없어

순수한 육신만으로

영원 속의 시간처럼

흐르고 있다.

 

강은 허접스런 육신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시간 속의 영원처럼

흐르고 있다.

 

강은 마음도 육신도 아닌

허무(虛無)의 실유(實有)로

흐르고 있다.

 

 

15

무참하게도 군데군데

내장을 드러내고 있는

한강(漢江)

 

썩어 냄새가 나는

연탄 빛 흐름 위에

매연을 뒤집어쓴 하늘과

그 속에 병든 희부연 태양이

오물(汚物)처럼 번득인다.

 

강 복판 여기저기

준설선(浚渫船)과 포크레인이

무법자들처럼 힘을 과시하여

굉음을 발하고

 

철교와 인도교 위를

차량들이 꼬리를 물어

- 황금의 우상을 쫓는 무리들과

- 새 모세를 찾는 무리들을 싣고

미친 듯이 달린다.

 

엉성한 잡초 사이 웅덩이에서

입술을 축인 물새 한 마리가

애절한 울음을 남기고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는데

 

여위어서 찰싹이지도 못하는

절망의 흐름 위에

그 옛날 출렁이고 넘치던

추억의 강을 그리며

 

멀거니 우러른 나의 눈에

남산(南山)도 우거지상이다.

 

 

16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헤아릴 수 없는 집합이면서

단일(單一)과 평등을 유지한다.

 

강은

스스로를 거울같이 비워서

모든 것의 제 모습을 비춘다.

 

강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한다.

 

강은

그 어떤 폭력이나 굴욕에도

무저항(無抵抗)으로 임하지만

결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강은

뭇 생명에게 무조건 베풀고

아예 갚음을 바라지 않는다.

 

강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서

어떤 구속(拘束)에도 자유롭다.

 

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無常) 속의 영원을 보여준다.

 

강은

날마다 팬터마임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17

향교(鄕校)가 보이는 마을

한복판을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통나무를 쪼개서 가로지른

다리 밑 양쪽 가에는

빨랫돌들이 놓이고

둑 위에 선 늙은 소나무에는

해묵은 까치집이 보였다.

 

버드나무 가지가 물살까지 드리운

웅덩이에는

개구리들이 텀벙거리고

소달구지가 오가는 여울에는

잔고기 떼들이 흐름을 거슬러 올랐다.

 

내가 그 개울에다 띄운

외사촌 누나가 접어준 종이배는

난파(難破)도 모르는 채

오늘은 이 강을 떠가고 있다.

 

 

18

눈에 보이는 강의

그 땅 밑으로

또 하나의 깊고 넓은 강이

흐르고 있다.

 

지층(地層)의 망사(網紗)같은 눈구멍을

세로 가로 뚫으며

실로 캄캄한 어둠 속을

새벽의 날빛처럼 반짝이며

흐르고 있다.

 

그 백금(白金)의 강에는

동물이나 식물의 화석들과

더러는 인간의 시신들이

범선(帆船)들처럼 떠있고

 

그 죽은 오브제들이

살아서는 안으로만 품었던

꿈과

사랑과

눈물과

원한과

기도가

증기(蒸氣)가 되어

자욱이 서려 있다.

 

표백(表白)도 표상(表象)도 못 하는

나의 시심(詩心)도 이미 함께—.

 

 

19

나의 서실(書室) ‘관수재(觀水齋)’에는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는

여초(如初)거사(居士)*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나는 창으로 바라보이는

연탄빛 흐름의 한강(漢江)에다

똥자루 같은 내 마음을

날마다 헹궈보지만

희어지기는커녕

날로 꺼멓게 썩어만 간다.

 

그래서 걸레스님*을 모셔다

법문을 청했더니

그는 흰 종이에다

알몸 없는 여인의

두 유방(乳房)을 그려준다.

 

화두(話頭)의 유방을 쳐다보며

한동안 몰두했었지만

 

나의 똥자루는 나날이

악취만 더해갔다.

하루는 오랜만에

아시시 프란체스코 성인을 찾았더니

—나의 친애하는 똥자루 형제님!

똥자루는 냄새가 나고 썩어가야지,

밀가루, 그것도 나이롱부대가

될래서야

일갈(一喝)이다.

 

아직은 그 한 봉(棒)에 얼얼하여

제정신이 아니지만

조금은 눈곱이 떨어지는 것 같다.

 

 

* 여초거사 : 서예가 김응현(金膺顯) 님

* 걸레스님 : 선화가 고중광(高重光) 님

 

 

20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구정물로 살았다.

 

오물과 폐수로 찬 나의 암거(暗渠) 속에서

그 청렬(淸冽)한 수정(水精)들은

거품을 물고 죽어갔다.

 

진창 반죽이 된 시간의 무덤!

한 가닥 눈물만이 하수구를 빠져나와

이 또한 연탄빛 강에 합류한다.

 

일월(日月)도 제 빛을 잃고

은총의 꽃을 피운 사물들도

이지러진 모습으로 조응(照應)한다.

 

나의 현존과 그 의미가

저 바다에 흘러들어

영원한 푸름을 되찾을

그날은 언제일까?

 

 

21

구렁이 잔등처럼

번득이며 흐르는

강.

 

지상의 요철(凹凸)이

그 모습을 가린 어둠 속에

대지의 정령(精靈)처럼 흐르는

강.

 

별도 없는 이 밤

흰 피를 흘리며

천형(天刑)처럼 지새워 흐르는

강.

 

 

22

내 머리 속에도

또 하나의 큰 강이

흐른다.

 

고요한 시간

그 강을 이루고 있는

물방울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 낱낱의 지저귐 속에서

60년 전 어머니의 자장가를 듣기도 하고

잊었던 옛 사연들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하고

오묘한 목숨의 교향악에 취하기도 한다.

 

내 머리 속의 강 한끝에도

저 산정(山頂)의 그윽한 옹달샘이 있고

또 한끝에는 망망(茫茫)한 바다가 있지만

그 이상의 수원(水源)과 피안(彼岸)은

신비일 뿐이다.

 

 

23

강도 날마다 때에 따라

그 표정이 다르다.

 

어떤 날은

환한 얼굴로

기쁨에 차 있고

 

어떤 날은

우중충한 얼굴로

우울해 있고

 

어떤 때는

낯이 핼쑥해서

질려 있고

 

어떤 때는

낯이 시뻘개서

흥분해 있고

 

어떤 때는

푹푹 한숨을

쉬고 있고

 

어떤 날은

훌쩍훌쩍

울고 있다.

 

강도

내 마음을

닮았는가?

 

 

24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 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25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물도

흐름도

수평선도 안 보이고

강은 태허(太虛)의 섬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강이 흐른다.

내 머리에도 강이 흐른다.

내 마음에도 강이 흐른다.

저 멀리 수평선도 보인다.

 

 

26

초겨울의 일모(一暮)

한강(漢江)이 흐르고 있다.

 

양 기슭과 가로지른 다리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요란이

이 강을 더욱 호젓하게 하고

 

식어 가는 햇발이

강심(江心)의 한 자락에 드리워 있어

더욱 곤핍(困乏)을 드러낸다.

 

마치 긴 여로(旅路)의 나그네처럼

피로하고 초췌한 모습의 이 강

 

그래도 언젠가는 바다에 흘러들어

푸르름을 되찾을 그 날을 그리며

배를 움켜지고 다리를 절면서도

머무르지 않고 흐르고 있다.

 

 

27

강에 눈이 내린다.

내 가슴에 한 가닥 온기(溫氣)만 남기고

가버리는 꿈결 속의 여인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순수한 아름다움은

이렇듯 단명(短命)한 것인가?

 

어떠한 진실을 고(告)하려고

흰눈은 소리도 없이 내려서

순식간에 물로 변신하는가?

 

나의 안에서 피고 스러진

억만(億萬)의 사념(思念)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되었을까?

 

멀리서 기항지(寄港地) 잃은

뱃고동이 들린다.

 

 

28

나는 음악에 취하듯

강을 바라본다.

 

내가 나를 잊고

내가 나이기를 멈춘 이 시간

이 얼마나 황홀한 상태냐!

 

나는 이제 한 방울의 물

거대하게 펼쳐진

흐름의 리듬 속에서

 

욕망도 없이

미혹도 없이

분별도 없이

 

투명한 실유(實有)와 하나가 되어

요람 속의 순한 아기가 된다.

 

 

29

강이 꽝꽝 얼어

시체처럼 뻐드러져 있다.

 

창백하게 굳어진 얼음판 위에는

군데군데 버짐 모양

모래무덤이 보이고

 

지푸라기들이 흠집처럼 얼어붙은

얼음판 속에

화석(化石)동물이 입에 문 풀잎새처럼

배추 잎사귀 하나가 보인다.

 

태공망(太公望)들이 뚫었는가?

폐(肺)의 공동(空洞) 같은 얼음 구멍 속에

물빛은 유난히 영롱한데

 

‘그 다음날’*의 겨울에도

저 얼음 밑의 흐름처럼

인류는 살아남을 것인가?

 

여기 뚜껑을 연 관 속의 해골처럼

앙상한 팔다리를 벌리고 누워서

공허한 눈을 하고 있는

한강을 바라보며

 

나는 희망도 절망도 못 한다.

 

 

* 그다음 날: TV극 <The Day After>에서의 핵(核)겨울

 

 

30

강은 쉼 없는 긴장을

안으로 지니고 새겨서

유유하게 보인다.

 

강은 끊임없는 장애를

안으로 견디고 이겨서

태평하게 보인다.

 

강은 뭇 생명에게 베풀면서

갚음을 바라지 않아서

무심하게 보인다.

 

안으로 땀 흘리고

안으로 괴로워하고

안으로 눈물짓는

 

강••••••

 

오직 밖으로는 염화(拈華)의 미소를

지으며 흐른다.

 

 

31

난다.

포르르

푸르르

떼를 지어 난다.

팔락

팔락

팔락

팔락

비닐을 걸친 겨울바람과

젖빛 허공을 가로 세로 찢으며

삐삐삐

끼끼끼

철새들이 난다.

 

한 떼의 무리들은 곡예를 하듯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을 치는가 하면

다시 솟아 휘어서 원을 그리고

 

또 한 떼의 무리들은 농악(農樂)의 진(陣)처럼

서로가 휘감겼다가는 흐트러지고

흩어졌다가는 다시 휘감기고

 

더러는 혼자서, 더러는 쌍쌍이

때로는 온 새떼들이 함께 떠올라

강심(江心)에서 중천(中天)까지의 하늘무대에서

쉬임 없이 군무(群舞)를 벌인다.

 

여기는 낙동강 7백리 하구(河口),

흘러온 강물과 밀려온 바닷물이

이산가족처럼 얼싸안고 만나는 곳

 

때마침 가덕도(加德島) 산머리 낙조(落照)를 받으며

갈대 우거진 을숙도(乙淑島) 모래톱에는

떨어져 흩어진 꽃무더기 모양

고니 떼들이 모이를 줍고 있고

잔설(殘雪)이 쌓여 있는 ‘대마등’에는

갈숲에서 들락거리는 요정(妖精)인 양

청둥오리들이 옹기종기 노니는데

 

이 천연의 절경을 난도질 하려고

저 나루터쪽 하구(河口) 댐 공사장에서는

무법자의 모습을 한 준설선과 포크레인이

흉물스런 굉음을 울리고 있다.

 

 

32

흰눈이 덮인 밭과 밭 사이

우리 국토 모양을 짓고

얼었던 강이 녹아 흐른다.

 

아직도 얼음은 둘로 갈린 허리 응달에서

포문(砲門), 총구(銃口), 칼날처럼 줄줄이 번득이고

강 한복판 모래무덤들은 태극기를 만들기도 하고

제주도나 울릉도나 남해군도(南海郡島)를 이루기도 하고

양측 기슭으론 진남포, 신의주

원산, 서호진(西湖津), 청진항(靑津港)을 이루고 있다.

 

남향(南向)받이엔 버드나무들이

은회색(銀灰色) 쥐새끼를 가지마다 붙이고

벌써 눈이 트고 있는데

건너편 북향(北向)받이 나무들은

표독한 가시를 돋친 채

아직도 물기가 감감이다.

 

중천(中天)에 친 황금사(黃金絲) 그물에

어린 해들이 걸려 하늘거리고

강 속에는 수초(水草)들이 꼬리를 친다.

 

며칠 전만 해도 꽝꽝 얼어붙었던

이 사각지대(死角地帶)!

지나간 우리의 미움처럼

이제는 우리의 사랑처럼

녹아 흐르고

 

저기 흉물스레 놓여 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흘러 떠가고 있다.

 

 

33

옛날

옛날

그 옛날부터

강이 하나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뜨이지 않고

오직 나의 눈에만 보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 강은

흐르다가는 스러지고

스러졌다가는 다시 흐르곤 합니다.

 

말하자면 그 강은 내 뜻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요,

퇴장도 제멋대로입니다.

 

그러면서 그 강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보이는 세계의 숨은 신비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물상(物象)으로 된 비유이기 때문에

내가 보는 바가 그 말의 실재(實在)인지

그 아닌지를 가늠할 바가 없습니다.

 

오늘도 그 강에는

63층짜리 빌딩 하나가

돛단배처럼 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 중에 있습니다. 만•••••

 

 

34

봄의 황금빛 햇살을 받은 강이

신부같이 환한 얼굴을 하고

가슴에 비단결 무늬를 지으며

그 싱그런 알몸을 굽이굽이

펼치고 있다.

 

염미(艶美)로운 저 강을 바라보며

동토(凍土)같던 나의 마음도

보리밭처럼 푸른 불꽃을 뿜는다.

 

 

35

봄의 어린 햇살이

은어의 퍼덕임처럼 튀는

새벽강에

흰 물새들이 아기 천사들처럼 날아다닌다.

 

선잠을 깨어

얼굴이 부스스한 산이

물가에 다가서면

잇달아 나온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까치가 한 마리 해롱댄다.

 

매화가 함성을 지르듯 핀 마을

노르께한 볏지붕 굴뚝에선

아침의 향연(香煙)이 일제히 오르고

 

보리밭에선 햇닭똥 내음 같은

풋내가 풍겨 오는데

 

나는 이 유년의 강에다

연탄 빛 마음을 헹구며

무지갯빛 꿈들을 건져 올린다.

 

 

36

내가 이 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

이 그리움과 염원은

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

그 어느 때고 이뤄질 것이다.

 

저 망망한 바다 한복판일는지

저 허허한 하늘 속일는지

다시 이 지구로 돌아와 설는지

그 신령한 조화(造化) 속이사 알 바 없으나

 

생명의 영원한 동산 속의

불변하는 한 모습이 되어

 

내가 이 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

이 그리움과 염원은

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

그 어느 때고 이루어질 것이다.

 

 

37

윤중제(輪中堤)*를 산책하는데

둑 기슭 풀밭에

젊은 아베크족 여럿이 눈에 띈다.

 

어떤 쌍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고

어떤 쌍은 연신 시시덕거리고 있고

어떤 쌍은 강의 먼 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 윤중제: 서울 여의도 한강 둑

 

 

38

팔당과 양평 사이

후미진 강기슭 빈 조각 뱃전에

한 켠엔 내가 앉고

한 켠엔 노처(老妻)가 앉아

바람도 없이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다.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제 백만의 신도가 모인 여의도

그 찬란한 가설 제단에 앉으셨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몇 달 전 여성잡지에서 뵈온

가야산(伽倻山) 바위 위에 앉으신 성철(性徹) 종정과의

두 모습,

 

한 분은 인파(人波)의 그 환성 속에 계시고

한 분은 자연의 그 적막 속에 계시나

두 모습 그대로가 진실임을 의심할 바 없거늘

과연 이 대조(對照)는 무엇을 뜻함인가?

 

한 분이 행하시는 인위(人爲)의 극진(極盡) 속에도

한 분이 행하시는 무위(無爲)의 극치(極致) 속에도

신비가 감돌기는 매한가지어늘

과연 이 부동(不同)은 무엇을 말함인가?

 

저 두 분의 모습이 다 함께

진리의 체현(體現)임에 다를 바 없으니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정동일여(靜動一如)의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저녁노을과 함께 숨을 죽이듯

잔잔해진 강물을 바라보며

노부처(老夫妻)는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일어설 줄은 모른다.

 

 

39

강,

너에게 내가 새로 눈떴을 때

나에게는 세상 모두가 새로워졌다.

너의 무아(無我)의 헌신으로 생성하는

저 뭇 생명들의 신비한 모습을

그저 어린애의 신기함과 놀람과

찬미만으로 바라본다.

 

그렇다고 내가 탈혼(脫魂)의 황홀 속에

들어있다고 오해하지 말라.

또한 내가 심미적(審美的) 희열에

들떠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저기 둑 기슭의 나무는

그저 어제 그 나무고

행길의 오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람들이고

강, 너와 나도 저제나 이제나

눈곱만큼도 다를 바 없다.

 

오직 이제 나의 숨결 속에는

네가 함께 흐르고 있고

나의 눈은 너의 형용 없는 동작을 보고

나의 귀는 너의 침묵의 대화를 듣는다.

 

너를 알게 되어

나는 나를 알았고

세례(洗禮)가 왜 거듭나는 증표(證表)인지를

늦게나마 깨닫는다.

 

 

40

마식령(馬息嶺)*에서 비롯한 적전강(赤田江)이 동해 원산만에 흘러드는 갯목, 거기는 그 물밑이 고르지 못하고 물살도 세게 휘돌아서 한 해에도 몇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마(魔)의 장소다. 그러나 거기는 해수욕으로 소금물에 절고 모래에 뒹굴던 알몸들의 샤워장이기도 하였다.

그 어느 날 갯목에서는 굿이 벌어졌다. 무당은 닭 한 마리를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혼백으로 삼고 물속을 들락날락하면서 미친 듯이 푸념도 하고 빠지는 시늉도 영절스럽게 하더니 굿이 끝난 후 닭은 그대로 물가에 버리고 갔다.

우리 소신학생(小神學生)* 일행 중 가장 착하기도 하고 장난꾼이기도 한 시몬이 구경꾼들이 헤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그 닭을 주워와 해변가 인가(人家)에서 냄비를 빌려다 삶아 놓고는 “이 것은 마귀의 고기인데 성인(聖人)이 될 사람이라야 먹지, 그렇지 못한 사람은 먹어선 안 되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일행은 그 말에 조금쯤 섬뜩은 했으나 출출한 속에서 치미는 왕성한 식욕에 모두 다 이 성인 잔치에 참례하여 마귀의 다리나 살코기를 게눈 감추듯 잡수어댔다.

저런 즐거운 나날이 흘러서 개학을 2, 3일 앞둔 어느 날 그 날도 바다에서 진종일 보내고 이제는 돌아설 참이라 민물에 몸을 씻으러 갯목엘 갔는데 한걸음 앞장서 들어간 시몬이 갑자기 “나 빠진다! 나 빠진다!” 싱글벙글 하길래─이것은 정확한 기억이다─나는 그를 쳐다보면서도 또 장난이겠지! 하고 몸을 닦고 있었더니, 그는 헤엄치듯 두어 번 머리를 물속에 곤두박았다 냈다 하고는 그만 사라지고 마는 게 아닌가?

그제사 내가 고함을 쳤으나 바로 옆 뱃전에서 일하던 어부들도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처음에는 멍하니들 있다가 한참만에야 구조에들 나섰으나 허탕이었고 시체는 다섯 시간 후인 자정께야 그물에 건져졌다.

나는 이것이 사람의 죽음을 직접 접한 처음 것이어서 공포도 공포려니와 친구를 멀거니 보면서 죽였다는 죄책감에 얼마동안은 동네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무당의 닭고기 비밀만은 스스로의 불안감도 있고 해서 끝내 발설치 않고 말았었다.

 

* 마식령 : 함경도와 평안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 소신학생 : 신학교의 중•고등 과정에 있는 학생.

 

 

41

나는 이제 한 방울의 물이 되어

강에 합류한다.

 

나는 이제 목숨의 끈으로 삼던

꿈에서 벗어나고

나는 이제 삶의 연모로 삼던

현실에서 벗어나서

 

이제 나는 시간에서 풀려나고

이제 나는 나에게서 풀려난다.

 

나는 이제 나의 모습을 잃어서

나라고 불리울 내가 없고

시작도 끝도 안 보이는 이 강이

바로 나다.

 

이제 나는 불변하는 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흐르며

뭇 생명들의 생성과 소멸을 함께 한다.

 

 

42

공초(空超)* 선생이 이승을 떠나실 무렵 나는 한번 선생께 ‘하느님에게 귀의’를 권해보고 싶었지만 주제넘어서 차마 입을 못 떼고 있던 중 어느 날 밤,

“황톳빛 봇물이 터져 흐르는 개울 한복판에 알몸의 공초께서 허위적대시길래 둑에 앉았던 내가 손을 내밀자 그것을 붙잡고 간신히 헤어나셨는데 내 무릎을 베고 누우셔 숨을 헐떡이는 선생에게 내가,

—이제 그만, 무(無)의 수렁에서 허덕이지 마시고, 유(有)에 기대보시지요.

하였더니 선생은 눈을 흘깃 뜨시면서,

—나는 유무(有無)의 분간부터 질색이란 말일세.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꿈으로 다시는 객쩍은 충고를 단념하고 말았는데 선생께서는 임종 직전 저 몽사(夢事)와는 맥락이 닿지 않지만 나에게 마치 감춰뒀던 비밀이나 털어놓으시듯,

“자유가 나의 평생을 구속했었구나”라는 엄청난 말씀을 남기셨다.

선생이 가신 지 20년, 올 여름 어느 밤 또다시,

“저 팔당댐 상류같이 물이 철철 넘치는 강 위를 신선 모습을 하신 선생께서 마치 나자렛 예수처럼 걸어오시더니,

—상(常)이! 유(有)는 유에서 나오고 유에서 나온 것은 불멸하느니라.”

라고 타이르시고는 홀연히 사라지셨다.

치몽(稚夢)이랄까? 선몽(禪夢)이랄까? 어쨌거나 나는 꿈속에서나마 선생과의 선문답(禪問答)이 지속됨을 흐뭇해한다.

 

* 공초 : 시인 오상순 선생 아호.

 

 

43

가을 강에는

잊혀지지 않는 눈, 눈동자들이

살고 있다.

 

이북(以北) 고향을 탈출하던 그날

행길까지 따라 나오셔

나를 바래주시던 어머니의

그 애절한 눈,

 

이승을 떠나시기 하루 전

악지가 세던 이 막내에게

‘조금 줄여서 사는 것이 곧

조금 초월해서 사는 것이니라’*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짚어 보이시던

아버지의 그 자애에 찬 눈,

 

공산당 감옥에서 순교하였을

나의 오직 하나인 신부(神父) 형의

그 어질디 어진 껌벅 눈,

 

나의 가슴의 첫 그리움이던

도쿄 하숙집 거리 카페 에트랑제의

백계(白系) 러시안의 피가 섞인 유미짱의

흰자위가 많은 보랏빛 눈,

 

혼례를 치른 지 사흘 만에

색(色) 골무타래를 어린 나에게 쥐어주고

북간도로 목쉰 기적(汽笛)과 함께 떠나간

외사촌 누나의 붉어진 실눈,

 

그리고 교리반(敎理班) 서양 수녀(修女)의 눈,

나를 족치던 일본 헌병의 눈,

이중섭의 눈,

공초 선생의 눈,

 

잊혀지지 않는 눈, 눈동자들이

헤아릴 수 없게 많이 살고 있다.

 

* 감생일푼 편 초월일푼(減省一分 便 超越一分)

 

 

44

그렇다! 강, 너와 나는

한 원천(源泉)에서 태어났고

어쩌면 너는 나보다 아득히 먼저였고

어쩌면 너는 나보다 그 근원에 가깝다.

 

강, 너와 나는 그 근원 속에

현재도 함께 살고 있으며

영원히 함께 살아갈 것이고,

 

나는 너로 말미암아 나요

너는 나로 말미암아 너로서

그 근원이 지닌 진선미(眞善美)를

서로 성취해가며 구현(具現)한다.

 

 

45

뭇 생명은 물로써 태어나서

물로써 길리우고

물과 함께 변화하며

물과 함께 불멸한다.

 

우리의 사랑과

눈물의 궤적(軌跡)도.

 

 

46

강에는

하늘 땅을 오르내리며

뭇 생명들을 낳고 기르던

물의 정령(精靈)들이

그 역사(役事) 속에서 겪은

억만(億萬)의 억만 사연을

서로 속삭이고 있다.

 

 

47

도쿄 아세아시인회의 첫날을 마친 후 나는 동년배의 일본 시인 몇 명과 회의장 근처 목로주점에서 어울리게 되었다.

좌흥(座興)이 무르익어가자 옆자리의 술이 거나해진 초로(初老)의 시인 한 분이,

—한강이 그립습니다. 그 푸르게 넘쳐흐르던 한강이 미치게 그립습니다. 나의 소년시절의 요람인 한강. 그 양양(洋洋)한(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흐름이 그립습니다.

음성을 떨면서 말했다. 나는 무망중,

—서울엘 한번 오시죠, 와서 보시죠, 그 한강을!

대답을 하면서도 그가 그리는 그 ‘양양한 흐름’을 어찌 보여주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요, 제가 그 한강을 다시 보러 간다는 것은 한국인 여러분께 죄스러운 일이지요, 몰염치한 짓이지요, 제가 태어나서 자란 서울을 고향이라고 불러선 안 되듯이 말입니다.

그는 사뭇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시인의 예민한 양심’에 대꾸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때 이 좌석을 마련한 건너편의 교포 시인이 말을 받았다.

—자네, 또 한강타령이군, 시나 강이 언제 국적을 묻는다던가? 인종을 따진다던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것의 임자지, 눈물이 있는 사람을 위하여 시는 씌어지고 강은 흐르는 게야, 어서 가서 그 품에 안기게나. 사장(沙場)에 누워서 눈물어린 눈으로 한강의 그 진홍색 저녁노을을 바라보게나!

—고마워, 그러나 내가 가선 안돼! 이 ‘왜놈’이 또다시 그 강을 더럽혀선 안돼! 그것만은 안돼!

이때 그는 마치 한강의 그 흐름을 바라보듯, 그 저녁노을을 바라보듯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집이 여의도인 나는 오늘도 윤중제를 거닐면서 여기저기 둑을 쌓아 물을 댄 논처럼 갈려 있고 여위고 상하여 군데군데 창자를 드러낸 한강을 바라보며 그 일본 시인이 ‘양양한 흐름’의 추억을 보전하기 위하여 영영 서울에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과 새봄엔 나라도 초청해서 그에게 고향을 다시 찾게 해 주어야겠다는 엇갈리는 심정 속에 있다.

 

 

48

한 방울의 물로

강이 되어 흐르는

나는, 이제 내가 없다.

 

그렇듯 나를 꿈꾸게 하고

그렇듯 나를 절망하게 하고

그렇듯 나를 달뜨게 하고

그렇듯 나를 외롭게 하고

그렇듯 나를 불안하게 하고

그렇듯 나를 미치게 하던

 

내가 스러지고 없고

오직 흐름일 뿐이다.

 

그러나 비로소 나는

천연(天然)의 질서와 자유와

그 평화를 누린다.

 

 

49

섣달 매운 날씨 이른 아침

마치 매일 예배를 보듯

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다.

 

강은 숨을 죽이듯 물살 하나 없고

건너 사장(沙場)도 추위에 질린 얼굴을 하고

배들은 모두 기슭에 움츠리고 있는데

흰 물새 몇 마리 강물을 차며

얼어붙은 하늘을 날고 있다.

 

한데 계절의 무덤 같은 이 삭막 속에서

신이(新異) 같은 축주(祝奏)는 그 어인 일인가?

 

시신(屍身) 같은 저 강에서, 아니 내 가슴에서

대금(大笒)의 산조가 울려오며

이 산 저 산봉우리 옹달샘에서

한 방울의 이슬이 땅껍질을 뚫는 소리

바위 숲을 헤쳐 나오는 계곡의 물소리,

천길 벼랑을 내려 구르는 폭포소리,

이 들판 저 들판에서 흘러온 여울들이

대하(大河)를 이루어 출렁이는 강물소리,

하늘의 천둥소리, 빗소리, 눈보라소리,

헤아릴 수 없는 낱낱의 물방울들이

낳고 죽고 맺고 엉키고 합치는 소리,

영절한 그 소리, 소리들을 내더니

 

이제 그 가락은 내 앞을 흐르는 강처럼

저 멀리 아득히 자취를 감추면서

영산회상(靈山會相)으로 변하여 울려오고

나의 과거와 오늘과 미래도

그 신운(神韻)에 녹아 흐른다.

 

 

50

강에

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저렇듯 무심한 물이

어느덧 하늘로 올라가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이슬이 되고 비가 되어서

또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번엔 뭇 생명에게 스며서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고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짐승이 되고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생물이

목숨을 다하면

그 물은 소롯이 빠져나와

 

다시 강이 되어

여기 이렇듯

하염없이 흐른다.

 

 

51

높고 낮은 산굽이를

멀리서 가까이서 감돌며

강이 흐르고 있다.

 

그 옛날 허유(許由)가 귀를 씻고

소부(巢父)가 소를 몰고 돌아선*

그런 맑은 강이 흐르고 있다.

 

갈대가 무성한 이편 둑에는

가슴까지 내려진 흰 수염에다

배꼽을 내놓은 늙은이 하나가

한 어깨에는 낚싯대를 걸머메고

한 손에는 고기바구니를 들고서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표정을 하고

강의 먼 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불환삼공(不換三公)!

 

‘이 자연 속의 유유자적과

장관(長官)의 자리를 바꿀쏘냐’라는

화제의 족자*가 걸린 서재에서

이 또한 흰 턱수염의 시인 하나가

선거로 뒤끓는 세상 북새엔 아랑곳없이

시 <그리스도 폴의 강>을 쓰고 있다.

 

* 허유는 고대 중국 전설상의 인물. 요(堯) 임금이 후계자로 삼고 싶다는 청탁을 받고 이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그 소리로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천(潁川)이라는 내에다 씻고 있는데, 소를 몰고 온 소부가 이 사연을 듣고는 그렇게 더럽혀진 물은 소에게도 마시게 할 수 없다며 되돌아갔다고 전함.

* 족자 : 이 그림 족자는 필자의 효성여대 제자인 수필가 임도순(林道順) 씨가 연전에 보내주어 서재에 걸려 있음.

 

 

52

가령 이 지구에

물과 강이 없다면

 

마치 저 가없는 하늘에

죽은 곰의 형상을 한 바위로

떠있는 달처럼

 

이 지구는 또 하나

생물 하나 가꾸지 못하는

천형(天刑)의 바위더미와 흙무덤의

별.

 

 

53

서울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모래를 파서 군데군데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둑을 만들어 막아 놓고

갈라놓고, 가둬 놓은

한강,

 

강도 아니요

호수도 아니요

연못도 아니요

논도 아닌 한강,

 

그 둑 빗물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고 난 비둘기 한 마리

물끄러미 그 강을 바라보다가

곁에 다가선 나를 쳐다보고는

 

‘사람들의 하는 짓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함께 그 한강을 바라본다.

 

* 서울대교: 마포대교의 전 이름.

 

 

54

강이 흐른다.

땅 위에서 땅 밑에서

하늘 위에서 흐른다.

 

나는 이제 강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나는 이제 모든 것이

강으로 보인다.

 

나의 시계(視界) 속의 강은

비롯함이 없는 곳에서 흘러오고

마침이 없는 곳으로 흘러가서

이 지구가 소멸된 뒤에도

아니 저 우주가 해체되어도

흐르고 또 흐를 것이다.

 

나는 이 강의 한 방울 물이지만

내가 없이는 이 강을 이룰 수 없어

정녕 스러질 수도 없고

정녕 비길 수도 없는

영원의 그 한 모습으로

 

바로 이렇게

흐르고 있다.

 

 

55

어느 아침 신문에 느닷없이

백두산 천지의 천연색 사진과

그 등반 기사를 보고 읽으며

나는 놀란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어어

아아

오오

 

—그리고 중얼거렸다.

 

바로

거기

분명

있군

!

 

깎아지른 용암(熔岩) 30리 둘레에

3백 미터나 되는 진갈맷빛 수심(水深)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그 채로

시조(始祖)들의 꿈과 얼이 담긴 그 채로

바로 거기 분명 있구나!

 

저렇듯 아스라이 높고 넓고 깊은

마음의 수원(水源)을 지닌 이 겨레와 나라가

결코 시들지도 메마르지도 않을 것이다.

마침내 온누리에 찬연히 빛날 것이다.

 

 

56

봄이 무르익은 한낮

강물이 불길을 뿜고 있다.

 

무심하고 냉랭한 강이

저렇듯 그 가슴속에

푸르도록 맑은 불꽃을

품고 있었단 말인가?

 

만물의 근원이 불이(不二)임을

나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 눈에 물속의 불이 보이기는

처음 되는 일이어서

두 눈을 부비고 또 부비며

푸른 불길의 강을

넋 잃고 바라본다.

 

 

57

한밤중 꿈에

강이 보인다.

 

깊고 짙은 어둠 속에서

번득이기 시작한 강은

그 몸집을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소리를 지르고 신음을 하고

울부짖고 태질을 친다.

 

음, 강도 나처럼 안으로

어쩌지 못할 갈등을

지니고 있었구나!

 

이제 강은 하늘을 향해

도전하듯이 벌떡 일어선다

철썩 자빠진다.

 

그 소리에 내가 깨어 눈을 뜨니

어느새 강은 말짱히 역정(逆情)을 가시고

이 밤의 고요도 미치지 못할

고요한 흐름이 되어 있다.

 

 

58

봄밤의 여의도

한강

 

둑을 만들어 막아 놓고

가둬 놓고 갈라놓은

한강

 

그 갈라놓은 강물 위에

보름달이 하나씩 떠 있다.

 

월인천강(月人千江)이라더니

바로 저런 것이구나.

 

이 시각 저 달은

낙동강

섬진강

예성강

금강

소양강

임진강

아니, 저 북녘땅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장진강

성천강에도

두둥실 떠있겠지!

 

그리고 그 달을 보는 이마다

제 나름의 감회에 젖어 있겠지?

 

이 밤 나는 인적이 끊인

윤중제 둑에 홀로 앉아

술잔의 달을 거듭 비운다.

 

 

59

웨스페라의 성합(聖盒)*처럼 휘황스레

태양이 솟은 아침 강 한복판으로부터

홀연 물 위를 더벅더벅 걸어오시는

나의 사부(師父), 그리스도 폴 성인(聖人),

 

놀람과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는 내 앞에

그 분은 신장(神將) 같은 모습으로 다가와서

마치 찰처(拶處)나 하듯 다짜고짜 물었다.

“요한* 형제! 그대는 강을

일터로 삼은 지 이미 여러 해

이 강에서 무엇은 보았는가?”

“신비를 보았습니다.”

무망중, 나의 대답이었다.

“요한 형제! 그대는 강을

일터로 삼은 지 이미 여러 해

이 강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신비를 배웠습니다.”

내친 김의 눈먼 대답이었다.

“요한 형제! 그대는 강을

일터로 삼은 지 이미 여러 해

이 강에서 무엇을 깨우쳤는가?”

“신비를 깨우쳤습니다.”

그 거듭되는 질문이 나의 대답의

인가(印可)*쯤 여겨서 으쓱대며 응답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의 사부는

마치 손에 쥔 여의봉(如意棒)을 휘두르듯

노기를 띠고 일갈(一喝)하기를

“이 도둑놈, 사기꾼아! 그것은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배우고

못 깨우쳤다는 말 아닌가?”

나는 황겁결에 고개를 떨구고

“네.”랄 수밖에 없었다.

“네?! 그 소리만이 구원(救援)이로구나,

다시 시작해라, 강과 더불어 쉼 없이!”

“네.”

내가 얼마만엔가 고개를 쳐드니

그리스도 폴 성인(聖人)은 사라지고

강만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 웨스페라의 성합 : 가톨릭의 성체강복(聖體降福)이라는 의식에 쓰이는 황금색 제기로, 태양의 광채 모양을 함.

* 찰처 : 불교의 참선에서 사승(師僧)이 수행자에게 질문을 발하는 것.

* 요한 : 필자의 세례명.

* 인가 : 불교에서 사승이 제자의 수도의 원숙(圓熟)을 인정하여 증명해 주는 일.

 

 

60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강이 되니

강은 또한 크낙한

한 방울의 물이다.

 

그래서 한 방울의 물이 흐려지면

그만큼 강은 흐려지고

한 방울의 묽이 맑아지면

그만큼 강이 맑아진다.

 

우리의 인간세상

한 사람의 죄도

한 사람의 사랑도

저와 같다.

 

 

61

내가 스물여덟 해나 살아

내 생애에 가장 오래고

또 마지막이 될 여의도살이

 

그 아파트 창가에서

노상 멀거니 쳐다보는

저 하늘

 

내가 날마다 예배 보듯 나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저 한강

 

그리고 내가 어슬렁어슬렁 거니는

들풀들이 소복한

윤중제 둑길

 

저 정경(情景)들은

이제 내가 이승을 떠난 뒤에도

무심한 그 채로겠지?

 

나의 염원과 번뇌의

말벗이며 위로인 저것들도

그 나름의 넋은 지녔으니

조금은 서운해하겠지!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영원의 동산에 든 나도

그 어느 때 이곳을 내려다보고는

그리움의 눈물을 조금은 흘릴 거야.

 

 

62

한낮의 봄볕을 받으며

눈부신 얼굴을 한

한강이 흐르고 있다.

 

지난날 마르고 여위어서

창자까지 드러내던 그 강이

이제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다.

 

내 눈앞을 지나며

흐르는 물살들은

바쁘고 잰걸음이지만

저 멀리 흘러간 강물은

노곤한 졸음에 잠겨 있고

 

강심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은

더없이 한가로운 풍경이지만

이 강 도처에 가로 걸린 다리 위

쏜살같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차량들의 굉음이 고요를 깬다.

 

하지만 강은 아랑곳없이

그 깊고 넓은 침묵을 안고

태고의 모습으로 흐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데 이어져서 흐른다.

 

 

63

여의도 살이 서른한 해째

한강엘 매일이다시피

예배나 보듯 나아갔었는데

 

팔순을 넘기고서부터는

신병에다 보행이 어려워져

아파트 뒤뜰 어린이 놀이터를

하루 한 바퀴 도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오늘은 궁리궁리 끝에

내 집 2층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 12층에 올라가 복도 난간에서

그렇듯 그리던 한강을 바라본다.

 

그런데 멀리서 우러르는 한강에는

마침 유람선 한 척이 떠있었는데

강이라기보다 마치 상여의 행렬 같다.

 

하기사 저 강에는 이 산 저 산

무덤에다 육신의 허울을 벗어놓은

죽은 이들의 수분(水分)이 흐르고 있겠지!

 

요령 소리도 상두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저녁노을을 받은 아득한 상렬(喪列)은

색다른 만장(輓章)이 아른거리고 있다.

 

 

64

7개월인가 8개월 만에 겨우

오늘은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윤중제엘 나가서

늦가을 저녁나절을 거닐며

노을이 비낀 한강을 바라본다.

 

강물은 아물아물 반짝이며

멈칫멈칫 뒤로 물러서며

마치 되돌아가듯 흐른다.

 

이제 여기서 종착지인 서해(西海)도

머지않았는데

저렇듯 머뭇거리는 걸 보면

강도 피안(彼岸)이 두려운 게지?

 

저 강물의 물방울 하나이듯

나 또한 영원의 바다에 흘러가

푸르름을 되찾기 머지않았는데

이렇듯 저어하니 말이다.

 

 

65

강이 흐른다•••••

 

아슴푸레한 옛날이 상여(喪輿)에 담기고

축렬(祝列)에 아득한 미래가 배듯이

길고 먼 사연의 공백(空白)을 안고

 

강이 흐른다•••••

 

동녀(童女)의 옹달 모양 그윽한 샘에

눈물 같은 이슬이 지각(地殼)을 뚫은

탄생의 신비스런 경이(驚異)를 품고

 

강이 흐른다•••••

 

아롱진 동경(憧憬)에 지절대면서

지식의 바위 숲을 헤쳐 나오다

천 길 벼랑을 내려 구울던

전락(轉落)의 상흔(傷痕)을 어루만지며

 

강이 흐른다•••••

 

트여진 대지 위에 백렬(白熱)하던 낭만과

늪 속에 잠겨 이루던 고독과 기도,

오오, 표박(漂泊)과 동결(凍結)의 신산(辛酸)한 기억들을

열망과 수치로 물들이면서

 

강이 흐른다•••••

 

이제 무심한 일월(日月)의 조응(照應) 속에서

품에는 어별권속(魚龞眷屬)들의 자맥질과

등에는 생로(生路)와 환락(歡樂)의 목주(木舟)를 얹고

선악(善惡)과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다리 밑으로

사랑의 밀어와 이별의 노래를 들으며

생사(生死)와 신음(呻吟)과 원귀(寃鬼)의 곡성(哭聲)마저 들으며

일체(一切) 삶의 율조(律調)와 합주(合奏)하면서

 

강이 흐른다•••••

 

샘에서 여울에서 폭포에서 시내에서

억만(億萬)의 현존(現存)이 서로 맺고 엉키고 합해져서

낳고 죽어가며 푸른 바다로 흘러들어

새로운 생성(生成)의 바탕이 되어

곡절(曲折)로 가득 찬 역사의 대단원을 지으려고

 

강이 흐른다•••••

 

과거와 미래의 그림자도 없이

무상(無常) 속에 단일(單一)한 자아(自我)를 안고

철석(鐵石)보다도 굳은 사랑을 안고

영원 속의 순간을 호흡하면서

 

강이 흐른다•••••

 

또 어느 날 있을 증화(蒸化)야 아랑곳없이

무아(無我)의 갈원(渴願)에 체읍(涕泣)하면서

염화(拈華)의 미소를 지으면서

 

강이 흐른다•••••

 

강! 너 허무(虛無)의 실유(實有)여.

 

 

 

그분이 홀로서 가듯

구상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저 2천 년 전 로마의 지배 아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의 수모를 받으며

그분이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악의 무성한 꽃밭 속에서

진리가 귀찮고 슬프더라도*

나 혼자의 무력(無力)에 지치고

번번이 패배(敗北)의 쓴잔을 마시더라도

백성들의 비웃음과 돌팔매를 맞으며

그분이 십자가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정의(正義)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한 것이요,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요,

우리의 바람과 사랑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서

 

아무런 영웅적(英雄的) 기색(氣色)도 없이

아니, 볼꼴 없고 병신스런 모습을 하고*

그분이 부활(復活)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 르낭의 말

* 구약의 말

 

 

 

근황(近況)

구상

 

바닷가의 조개껍질처럼

비린내 나는 육신과는 헤어지고

세상 파도에서는 밀려나

일흔의 나이에 살고 있다.

 

나를 이제껏

살아남게 한 것은

나의 성명(性命)의 강(强)하고 장(長)함에서가 아니라

그 허약(虛弱)에서이다.

 

모과나무가 모과나무가 된

까닭을 모르듯이

나 역시 왜 시인이 되었는지를

스스로도 모른다.

 

한마디로 이제까지의 나의 생애는

천사의 날개를 달고

7죄(七罪)의 연못을 휘저어온

모험과 착오의 연속,

나의 심신(心身)의 발자취는

모과 옹두리처럼 사연투성이다.

 

예서 앞길이 보이지 않기론

지나온 길이나 매양이지만

오직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끌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기도

구상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도 이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눈먼 싸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소서.

 

두 이레 강아지 눈만큼이라도

보이게 하소서.

 

 

 

까마귀

구상

 

1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친구여!

나는 어쩌면 그대들에게 미안하이.

내가 그대들에게 들려줄 노래사

그지없건만

 

오직 내 가락이 이뿐이라서 미안하이.

까옥 까옥 까옥 까옥

 

 

2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여의도 아파트 숲 어느 고목 가지에

늙은 까마귀 한 마리 앉아 울고 있다.

 

입에 담기도 되뇌기도 저어되는

눈 뒤집힌 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며

까마귀는 목이 쉬도록 울고 있다.

 

카옥 카옥 카옥 카옥

 

그대들의 삶이 오늘 이대로 가다가는

김정일의 오판도 하늘이 모른 체하리니

서울이 불바다가 되기를 자초하지 말고

백성들이여! 한시바삐 회개하라!

 

카옥 카옥 카옥 카옥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의 소리만 들어도

섬뜩하여 가던 길도 흠칫 멈추고 서서

오늘의 자기 行身(행신)을 불안스러워하고

자기 삶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더니

 

요즘 세상은 온통 소음과 소란이라

나의 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겠지만

더러 보행하던 사람들이 쳐다보고도

저런 쓸모없고 재수 없는 날짐승이

아직도 살아남았나? 하는 표정들이다.

 

까욱 까욱 까욱 까욱

 

하지만 까마귀는 그 심안(心眼)에 비쳐진

저들의 불의와 부패가 마침내 빚어낼

그 재앙과 참화를 미리 일깨워 주려고

오늘도 목이 잠기도록 우짖고 있다.

 

 

3

봄놀이 버스가 들떠서 달리는 고속도로(高速道路) 한복판에 까마귀 한 마리 날아와 앉아 울고 있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예전에는 내가 저 산등나무 위에서 두세 번 목소리만 내어도 사람들은 걸음을 멈춰 오늘의 자기 행신(行身)을 불안해하고, 자기 삶의 모습을 살피기도 하고 죽음을 떠올려도 보고, 더러는 영원이라는 것도 생각들을 하더니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요즘 세월은 어찌된 셈판인지 내가 이렇듯 아스팔트 한가운데까지 나와 기를 쓰고 우짖어대도 오고 가는 차 하나 멎기는커녕 그저 줄달음치는 굳게 닫긴 차창(車窓) 속에서 저런 쓸모없는 날짐승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었구나 하는 눈짓들이니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거리에서 쫓기며 헤매는 참새떼 소리나 저희 집 새장 안의 앵무새 소리나 창경원(昌慶苑) 철망 속의 꾀꼬리 소리 같은 그 철딱서니 없는 노래들만을 노래로 알고 들으며 사는 저것들이 오늘날 벌리고 있고 또 내일도 벌릴 그 세상살이라는 게 나로선 하두 맹랑해 보여서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오산(烏山) 인터체인지 근처 고속도로(高速道路) 한복판에 까마귀 한 마리 역사(轢死)를 각오한 듯 나와 울고 앉아 있다.

 

 

4

나는 비탈산, 거친 들판을 헤매면서

썩은 고기와 죽은 벌레로 배를 채우며

종신서언(終身誓言)의 고행수도(苦行修道)를 하는 새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너희는, 영혼의 갈구(渴求)와 체읍(涕泣)으로

영영 잠겨버린 나의 목소리가

불길(不吉)을 몰아온다고 오해하지 말라.

 

오직 나는 영통(靈通)한 내 심안(心眼)에 비친

너희의 불의(不義)가 빚어내는 재앙(災殃)을

미리 알리고 일깨워 줄 따름이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오늘도 나는 북악(北岳) 허리 고목(古木) 나무 가지에 앉아

너희의 눈 뒤집힌 세상살이를 굽어보며

저 요르단 강변(江邊) 세례자(洗禮者) 요한의

그 예지(豫智)와 진노(震怒)를 빌어서 우짖노니

 

―이 독사(毒蛇)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하느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

속옷 두 벌을 가진 자는 한 벌을 헐벗은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은 굶주린 이와 나누어 먹고

권세가 있는 사람은 약한 백성을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말 것이요,

나라의 세금은 헐하고 공정하게 매겨야 하며

거둬들임에 있어도 부정(不正)이 없어야 하느니라-

 

까옥 까옥 까옥 까옥

 

 

5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소문 들었지?

그래, 남산과 북한산에다 새집을 짓고 모이 그릇과

급수 시설을 한다며?

그뿐인가 겨울에는 조, 들깨, 번데기 등 먹이를

마련해 놓아준다는군.

새의 낙원(樂園) 5개년 계획이라!

말만 들어도 황홀하이!

허지만 특혜나 공껏 너무 좋아 말라고, 시청 옥상

철망 속에 파치 신세 모르나?

설마 남산, 북한산에다 온통 철망을 씌울라고?

저들 소견머리와 욕심이사 무언들 사양하겠나?

하기사 살충제를 뿌려 우리를 떼죽음으로 몰 때는

언제구?

도대체 고양이 쥐 생각이라 여기면 틀림없지 -

먼저 저들의 매연(煤煙) 방지나 하라지 -

덕분에 우리도 숨통부터 좀 맑아지게 -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영원처럼 펼쳐진 하늘에 해바라기 얼굴을 한 달이 나즈막히 떠 있고

통금 시간도 지난 거리 한복판 밧줄같이 가로질린 고압

선 위레 남산과 북한산에서 내려온 이중섭(李仲燮)의 까마귀들이

마주 앉아 세상살이를 지저귀고 있었다.

 

 

6

나는 비탈산, 거친 들판을 헤매면서

썩은 고기와 죽은 벌레로 배를 채우며

종신서원(終身誓願)의 고행수도를 하는 새다.

 

까옥 까옥 까옥

 

너희는 영원의 갈구와 제읍(悌泣)으로

영영 잠겨버린 나의 목소리가

불길을 몰고 온다고 오해하지 말라,

오직 나는 영통한 내 심안에 비친

너희의 불의가 빚어내는 재앙을

미리 알리고 일깨워 줄 따름이다.

 

까옥 까옥 까옥

 

오늘도 나는 北岳(북악) 허리 고목 가지에 앉아

너희의 눈 뒤집힌 세상살이를 굽어보며

저 요르단 강변 세례자 요한의

그 예지와 진노를 빌어서 우짖노니

 

이 독사의 무리들아 회개하라!

하느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

속옷 두 벌을 가진 자는 한 벌을 헐벗은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은 굶주린 이와 나누어 먹고

권세가 있는 사람은 약한 백성을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말 것이오,

나라의 세금은 헐하고 공정하게 매겨야 하며

거둬들임에 있어도 부정이 없어야 하느니라.

 

까옥 까옥 까옥

 

 

7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 이들은 눈이 멀고

  저들은 귀가 먹고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면서

 

까옥 까옥

- 하느님 맙소사!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 진정 승객들을 위한다면

  아니 제 목숨들을 부지하자면

  한시바삐 충돌을 피하여

  딴 노선을 택해야지.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 암 그렇고 말고

  내일의 승리는 그쪽이지.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구상

 

내 안에는 내가 둘이다.

아니 어쩌면 셋이다.

 

내가 밖으로 내보이고 있는 나와

내가 안으로 숨기고 있는 나와

또 스스로도 헤아릴 바가 없는

무의식 속의 내가 따로 있다.

 

오늘도 거리 어느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한 뒤

소녀가 안마를 해주는데

그 손길이 내 사추리에 닿자

"못 써" 하고 이를 피하려는 나와

다시 한번 스쳐주기를 바라는 내가

서로 한참이나 승강이를 했다.

 

저런 마음속 두 나의 싸움이야

노상 있는 일이라 그렇다치고

이즈막 어느 밤 꿈자리에서는

생판 낯선 여인네와 어울리다

망측스럽게도 몽설(夢泄)을 했으니

이건 또 어떤 나의 짓다리런가?

그래서 그 셋 중 어느 내가

참인지 거짓인지, 선한지 악한지

과연 어떤 내가 나의 실체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내가 죽어 심판을 받을 때도

어떤 내가 그 대상이 될런지

그것마저 궁금해지곤 한다.

 

 

2

내 안에 사지(四肢)를 버둥거리는

어린애들처럼

크고 작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뿌리

그보다도

 

미닫이에 밤그림자같이

꼬리를 휘젓는 육근(六根)이나 칠죄(七罪)의

심해어(深海漁)보다도

 

옹기굴 속 무명(無明)을 지나

원죄(原罪)와 업보(業報)의 마당에

널려 있는 우주진(宇宙塵)보다도

 

또다시 거품으로 녹아 흐르고

마른 풀같이 바삭거리는

원초(原初)와 시간의 지층을 빠져나가서

사막에 치솟는 샘물과

빙하(氷河)의 균열(龜裂), 오오 입자(粒子)의 파열(破裂)!

그보다도

 

광막(廣漠)한 우주 안에

좁쌀알보다, 작게 떠 있는

지구보다도

 

억조광년(億兆光年)의 별빛을 넘은

허막(虛漠)의 바다에

충만해 있는 에테르보다도

 

그 충만이 주는 구유(具有)보다도

그 반대의 허무(虛無)보다도

미지(未知)의 죽음보다도

 

보다 더 큰

우주 안의 소리 없는 절규!

영원을 안으로 품은 방대(尨大)!

 

나.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구상

 

이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오뇌와 고통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허망의 잔을

피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이 욕망과 고통과 허망 속에

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

감추어져 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

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나는 또한 믿고 있다.

 

 

 

나는 혼자 알아낸다

구상

 

산정(山頂)에 올라가 붙은

판자집 창에

머리에 부스럼 자국이 난 선머슴처럼

얼굴을 대고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저기, 흐르는 푸른 강에

물고기들이 흐느적 놀듯이

여기, 황토(黃土) 굳은 땅에

개미가 들락날락 일하듯이

 

첫째 우리 인간도

서로 물어뜯지 말고

아우성도 없이 살아야 함을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한낮의 백금(白金) 같은 날빛을

온몸에 받으며

누구나 낙망(落望)의 휘장을

스스로 가리지만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마침내

광명을 누릴 수 있음을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몇 뼘도 안 되는 꽃밭에

코스모스가 서서 피고

채송화가 앉아 피는 것을 보고

만물은 저마다 분수(分數)를 다할 때

더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이제사 겨우 눈꼽이 떨어지는

선명(鮮明)으로

진선미(眞善美)가 저렇듯 실재(實在)한다는 것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서 알아낸다.

 

 

 

나의 시(詩)

구상

 

나는 그대들에게

나의 마음의 사연들을

습관처럼 털어놓곤 한다.

 

하지만 그대들은 내 입술에서

행복한 말이 흘러나올 때

결코 나를 부러워하지 말라.

 

실상 그때 나의 가슴속은

모진 아픔과 쓰라림에 차서

애타는 갈망과 탄식만이 있느니

 

또한 그대들은 내 입술에서

불행한 말이 흘러나올 때

결코 나를 가엾이 여기지 말라.

 

그때 이미 나의 가슴속은

아픔과 쓰라림이 말끔히 가시고

안도의 한숨과 평정 속에 있느니

 

나의 거짓 사연에

그대들은 속지 말라.

 

그리고 정녕 속 깊은 사연은

아직 한 번도 내지 못하였음을

이제사 그대들에게 고백하노라.

 

 

 

나자렛 예수

구상

 

나자렛 예수!

당신은 과연 어떤 분인가?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기구망측한 운명의 소유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상놈들과 창녀들과 부역자들과

원수로 여기는 딴 고장치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기를 즐긴 당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하다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고

누명을 쓰고 사람들에게

<행복된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하느님 나라는 바로 당신들 차지>라고

엄청난 소리를 한 당신,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이를 말짱히 낫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도

 

스스로의 말대로

온 세상의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다가

마침내 반역자란 누명을 쓰고

볼꼴없이 죽어 간 철저한 실패자.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

때로는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까지를 안겨 주고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판 낮설어 보이는 당신,

당신의 참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

당신은 사상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도덕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현세의 경륜가가 아니었다.

아니 당신은 종교의 창시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규범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사회 혁신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당신은 어떤 해탈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한편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공적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죄악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뒤엎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고통받는 인류의 해방을 선포하고

 

다만,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시요,

그지없는 사랑 그 자체이시니

우리는 어린애처럼 그 품에 들어서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서로를 용서하며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다함 없이 사랑할 때

 

우리의 삶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고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그 사랑의 진실을 목숨 바쳐 실천하고

그 사랑의 불멸을 부활로써 증거하였다.

 

 

 

내 안에 영원이

구상

 

1

내 안의 울 속에서

밤낮없이 으렁대는

 

저 사나운 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슨 먹이라도 보았는가?

오늘은 길길이 뛰고 있다.

 

 

2

내 안의 바다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하는

 

저 닻 없는 쪽배의

기항지(奇港地)는 어딜까?

 

파도가 거센가 보다.

오늘은 몹시도 흔들린다.

 

 

3

내 안의 허공 속을

끝없이 나래 펴는

 

저 파랑새의 꿈은

언제 어디서 이뤄질까?

 

불멸의 그 동산을 그려본다.

영원이 오늘은 내 안에 있다.

 

 

 

네 마음에다

구상

 

요즘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

너나없이 놀아날까 두렵다.

 

길은 장님에게 물어라.

해답은 벙어리에게 들으라.

시비는 귀머거리에게서 밝히라.

진실은 바보에게서 구하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길은 네 마음에다 물어라.

해답은 네 마음에서 들으라.

시비는 네 마음에서 밝히라.

진실은 네 마음에다 구하라.

 

 

 

노경(老境)

구상

 

여기는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다.

 

영원의 동산에다 꽃 피울

신령한 새싹을 가꾸는 새 밭이다.

 

젊어서는 보다 육신을 부려왔지만

이제는 보다 정신의 힘을 써야 하고

아울러 잠자던 영혼을 일깨워

형이상(形而上)의 것에 눈을 떠야 한다.

 

무엇보다 고독의 망령(亡靈)에 사로잡히거나

근심과 걱정을 도락(道樂)으로 알지 말자.

 

고독과 불안은 새로운 차원의

탄생을 재촉하는 은혜이어니

육신의 노쇠와 기력의 부족을

도리어 정신의 기폭제(起爆劑)로 삼아

삶의 진정한 쇄신에 나아가자.

 

관능적(官能的) 즐거움이 줄어들수록

인생과 자신의 모습은 또렷해지느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욱 불태워

저 영원의 소리에 귀기울이자.

 

이제 초목(草木)의 잎새나 꽃처럼

계절마다 피고 스러지던

무상(無常)한 꿈에서 깨어나

 

죽음을 넘어 피안(彼岸)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不滅)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白金)같이 빛나는 노년(老年)을 살자.

 

 

 

노부부(老夫婦)

구상

 

아름다운 오해로

출발하여

참담한 이해에

도달했달까!

 

우리는 이제

자신보다도 상대방을

더 잘 안다.

 

그리고 오히려

무언(無言)으로 말하고

말로서 침묵한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야금야금 시시해지고

데데해져서

아주 초라해진 지금

두 사람은 안팎이

몹시 닮았다.

 

오가는 정이야 그저

해묵은 된장 맛...

허지만 이제사

우리의 만남은

영원에 이어졌다.

 

 

 

눈 내리는 강

구상

 

강에 눈이 내린다.

내 가슴에 한 가닥 온기만 남기고

가버리는 꿈결 속의 여인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순수한 아름다움은

이렇듯 단명한 것인가?

 

어떠한 진실을 고하려고

흰 눈은 소리도 없이 내려서

순식간에 물로 변신하는가?

 

나의 안에서 피고 스러진

억만의 사념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되었을까?

 

멀리서 기항지 잃은

뱃고동이 들린다.

 

 

 

달밤 2경(景)

구상

 

1

달이 으슥한 우물 안에서

철렁 철렁 목욕을 하다

두레박을 타고 올라와

질옹배기로 흘러 들어간다.

 

이번엔 햇바가지에 담겨

새댁의 검은 머리채 위서부터

보얀 등허리와 볼록한 앞가슴을

미끄러져 내려

 

빨랫돌 위에 산산이 부서진다.

 

달로 씻은 육신은 달처럼 희다...

 

노란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던 고추들이

얼굴을 더욱 붉힌다.

 

어느새 중천中天에 다시 올라간

달을 쳐다보고

박덩이가 쩔쩔매며

넝쿨 뒤로 숨는다.

 

꽃밭에서 이를 바라보던 봉선화가

너무나 재밌어 꽃잎을 떨구며

눈에 이슬이 단다.

 

 

2

강에 달이 둥실.

강낭밭에 그림자가 바삭 버석.

마당의 모스모스가 너울 너울.

뒤란에 장독대가 빙.

지붕 위에 박넝쿨이 살살.

 

 

 

독락(獨樂)의 장(章)

구상

 

얘들아, 내가 노니는 여기를

매화 옛 등걸에

까치집이라 하자.

 

늬들은 나를 환희(幻戱)에 산다고

기껏 웃어주지만

나에게는 어느 영웅보다도

에누리 없는 사연이 있다.

 

이제 나도 세월도

서로 무심해지고

눈 아래 일렁이는 세파(世波)도

생사(生死)의 소음(騷音)도

설월(雪月) 같은 은은(殷殷) 속에

화해(和解)된 유정(有情)!

 

얘들아!

박명(薄明), 저 가지에 걸치는 서광(曙光)과

모혼(暮昏)의 정적(靜寂)을 생식(生食)하면서

운명(運命)을 정서(情緖)로 응감(應感)시킨

내사 갖는 이 즐거움이야

늬들은 모르지.

 

도도(陶陶)한 이 아픔을

늬들은 모르지.

 

 

 

동심초(童心抄)

구상

 

내가 걸음마를 떼면서

최초로 느낀 것은

내 팔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제 칠순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느끼는 것도

내 팔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손길을 향하여

기우뚱대며 발걸음을 옮기던 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에 매달려

어찌어찌 살아가는 이제나

 

내가 바라고 그리는 것은

<제트>기도 아니요,

우주선도 아니요,

 

마치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바로 내가 거듭 태어나서

온 누리의 星座를 꽃동산 삼아

천사랑 어울려 훨훨 날으는

그 황홀이다.

 

 

 

동토(凍土)

구상

 

내 가슴 동토(凍土) 위에

시베리아 찬바람이 살을 에인다.

 

말라빠져 엉켜 뒹구는 잡초(雜草)의 밭

쓰레기 구덩이엔

입 벌린 깡통, 밑 나간 레이션 박스,

찢어진 성조기(星條旗), 목 떨어진 유리병,

또 한구석엔 총(銃) 맞은 삽살개 시체(屍體),

전차(戰車)의 이빨자국이 난 밭고랑엔

말라 뻐드러진 고양이의 잔해(殘骸),

 

저기 비닐 온상(溫床) 같은 천막(天幕) 앞

피 묻은 바짓가랑이가 걸린

철망(鐵網) 안을 오가며

양키 병정(兵丁)이 휙휙 휘파람을 불면

김치움 같은 땅속에서

노랗고 빨갛고 파란

원색(原色)의 스카프를 걸친 계집애들이

청개구리처럼 고개를 내민다.

 

하늘이 갑자기

입에 시꺼먼 거품을 물고

갈가마귀 떼들이 후다닥 날아

찌푸린 산을 넘는데

 

나의 잔등의 미칠 듯한 이 개선(疥癬) -

나의 가슴을 치밀어 오르는 이 구토(嘔吐) -

어느 누구를 향한 것이냐?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도형수(徒型囚) 짱의 독백

구상

 

빠삐용! 이제 밤바다는 설레는 어둠뿐이지만 코코 야자 자루에 실려 멀어져간 자네 모습이야 내가 죽어 저승에 간들 어찌 잊혀질 건가!

 

빠삐용! 내가 자네와 함께 떠나지 않은 것은 그까짓 간수들에게 발각되어 치도곤이를 당한다거나, 상어나 돌고래들에게 먹혀 바다귀신이 된다거나, 아니면 아홉 번째인 자네의 탈주가 또 실패하여 함께 되옭혀 올 것을 겁내 무서워해서가 결코 아닐세.

 

빠삐용! 내가 자네를 떠나보내기 전에 이 말만은 차마 못했네만 가령 우리가 함께 무사히 대륙에 닿아 자네가 그리 그리던 자유를 주고, 반가이 맞아주는 복지(福地)가 있다손, 나는 우리에게 새 삶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 말일세. 이 세상은 어디를 가나 감옥이고 모든 인간은 너나없이 도형수(徒刑囚)임을 나는 깨달았단 말일세.

 

이 죽음의 섬을 지키는 간수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으며 우리 큰 감방의 형편없이 위험한 건달패들과 어울리면서 나의 소임인 200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사는 것이 딴 세상 생활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터득했단 말일세.

 

빠삐용! 그래서 자네가 찾아서 떠나는 자유도 나에게는 속박으로 보이는걸세. 이 세상에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창살과 쇠사슬이 없는 땅은 없고, 오직 좁으나 넓으나 그 우리 속을 자신의 삶의 영토(領土)로 삼고 어려 모양의 밧줄을 자신의 연모로 변질(變質)시킬 자유만이 있단 말일세.

 

빠삐용! 그것을 알고 난 나는 자네마저 홀로 보내고 이렇듯 외로운걸세.

 

 

 

마음의 구멍

구상

 

내 마음 저 깊이 어디

한 구멍이 뚫려 있어

 

저 허공과

아니 저 무한과

저 영원과 맞닿아서

 

공(空)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는

그곳으로부터

 

신기한 바람이 불어온다.

신비한 울림이 울려온다.

신령한 말씀이 들려온다.

 

나는 어린애가 되어

말 이전의 말로

이에 응답할 제

 

온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서 제 모습을 하고

총총한 별이 되어 빛을 뿜으며

나는 나의 불멸을 실감하면서

삶의 덧없음이 오히려 소중해지며

더없이 행복하구나!

 

 

 

마음의 눈을 뜨니

구상

 

이제사 나는 눈을 뜬다.

마음의 눈을 뜬다.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의 만물이

그 실용적 이름에서 벗어나

저마다 총총한 별처럼 빛나서

새롭고 신기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다.

 

무심히 보아오던 마당의 나무,

넘보듯 스치던 잔디의 풀,

아니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까지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저들은 저마다 나를 마주 반기며

티없는 미소를 보내기도 하고

신령한 밀어를 속삭이기도 하고

손을 흔들어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한편, 한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하고 더없이 미쁜 것은

그 은혜로움을 일일이 쳐들 바 없지만

저들의 일손과 땀과 정성으로

나의 목숨부터가 부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그 시원(始源)의 빛에 눈을 뜬 나,

이제 세상 모든 것이 기적이요,

신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저 영원 속에서 나와 저들의

그 완성될 모습을 떠올리면 황홀해진다.

 

 

 

마지막 말씀

구상

 

그날 하루의 끼니를 에우는 것도

몸을 눕힐 자리도 마음에 두지 않고

무애행(無碍行)으로 한평생을 산 공초(空超)가

운명하던 날 시중을 들던 나에게

 

"자유가 나의 일생을 구속하였구나"

라는 말씀을 남겼다.

 

보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일깨운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서

바로 그분의 뜻을 이루고 가면서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는다.

 

저들의 저 비명과 비탄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에서일까?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에서일까?

아니야, 결코 그게 아니야!

 

가령 저들의 저런 표백이 없다면

저들은 그저 자기 환상에 이끌려서

저들은 그저 자가 집착에 매달려서

그런 삶을 산 꼴이 되고 마느니

그래서 저들의 저 말씀은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 살아온

자기 삶의 마지막 재확인이요,

자기 삶의 마지막 완성인 것이다.

 

 

 

말씀의 실상(實相)

구상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어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蒼蒼)한 우주(宇宙), 허막(虛莫)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목숨이여

구상

 

살이 잎새 되고

뼈가 줄기 되어

 

붉은 피로

꽃 한 떨기 피우는 날엔

 

비린내 나는 운명도

향내를 풍기오리니

 

목숨이여

목숨이여

 

마음이 하늘 같은

겨울이 되어

 

아마, 님의 얼굴

비최이도록

 

가슴이 사랑의

도가니 되어

 

차라리 님의

심장 데우오도록

 

목숨이여

목숨이여.

 

 

 

무궁화

구상

 

겨레의 새벽부터

이 땅을 수놓은 꽃

 

겨레와 그 모진 고난을

함께 견뎌 온 꽃

 

이 땅을 지켜 온

곧은 절개들의

넋이 서린 꽃

 

이 땅 겨레에게

오늘의 소중함과 덧없음과

끊임없는 새로운 내일을

일깨워 주는 꽃

 

나라꽃, 무궁화!

 

 

 

무소부재(無所不在)

구상

 

아지랑이 낀 연당(蓮塘)에

꿈나무 살포시 내려앉듯

그 고요로 계십니까.

 

비 나리는 무주공산(無主空山)

어둑이 진 유수(幽邃) 속에

심오하게 계십니까.

 

산사(山寺) 뜰 파초(芭蕉) 그늘에

한 포기 채송화 모양

애린(愛隣)스레 계십니까.

 

휘영청 걸린 달 아래

장독대가 지은 그림자이듯

쓸쓸하게 계십니까.

 

청산(靑山)이 연장하여

병풍처럼 둘렀는데

높이 솟은 설봉(雪峰)인 듯

어느 절정에 계십니까.

 

일월(日月)을 조응(照應)하여

세월없이 흐르는 장강(長江)이듯

유연(悠然)하게 계십니까.

 

상강(霜降) 아침

나목(裸木) 가지에 펼쳐 있는

청렬(淸冽) 안에 계십니까.

 

석양이 비낀

황금 들판에 넘실거리는

풍요 속에 계십니까.

 

삼동(三冬)에 뒤져놓은

번열(煩熱) 식은 대지같이

태초의 침묵을 안고 계십니까.

 

허허창창(虛虛蒼蒼)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무애(無涯)도 넘어

아득히 계십니까.

 

칠색(七色)의 무지개 위에

성좌(星座)를 보석 자리 삼아

동천(東天)의 일출(日出)마냥

휘황스레 계십니까.

 

이화(李花), 도화(桃花) 방창(芳暢)한데

지저귀는 저 새들과

옥류(玉流)에서 노니는 고기떼들의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계십니까.

 

풀잎 뜯어 새김하며

먼 산 한번 구름 한번 바라보는

산양(山羊)의 무심으로 계십니까.

 

저고리 섶을 연 젖무덤에 안겨서

어미를 쳐다보는 아기의 눈빛 같은

무염(無染) 속에 계십니까.

 

저 신선도(神仙圖)

흰 수염 드리운 그윽한 미소로

굽어살피고 계십니까.

 

이렇듯 형상으론 섬기지 못하고

붓 안 닿는 여백같이

시공(時空)을 채워 계심이여!

 

무소부재(無所不在),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천주(天主)님!

 

 

 

민들레

구상

 

철길 굇목 사이 자갈을 뚫고

돋아난 민들레 한 포기

 

열차가 지나칠 적마다

먼지와 매연에 눈이 짓무르고

굉음에 귀가 멍멍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반넋을 잃곤 한다.

 

그래도 계절따라

잎새를 벌리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고

갓털을 갖추었다.

 

이제 그 씨앗들은

바람에 날려서

저 푸른 들판에

싹을 틜 것이다.

 

 

 

백련(白蓮)

구상

 

내 가슴 무너진 터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솟아난 白蓮 한 떨기

 

사막인 듯 메마른 나의 마음에다

어쩌자고 꽃망울은 맺어 놓고야

이제 더 피울래야 피울 길 없는

백련(白蓮) 한 송이

 

온 밤내 꼬박 세워 지켜도

너를 가리울 담장은 없고

선머슴들이 너를 꺾어간다손

나는 냉가슴 앓는 벙어리될 뿐

 

오가는 길손들이 너를 탐내

송두리째 떠간다 한들

막을래야 막을 길 없는

내 마음에 망울진 白蓮 한 송이

 

차라리 솟지나 않았던들

세상없는 꽃에도 무심할 것을

너를 가깝게 멀리 바라볼 때마다

퉁퉁 부어오르는 영혼의 눈시울.

 

 

 

병상우음(病床偶吟)

구상

1

병상에서 내다보이는

잿빛 하늘이 저승처럼

멀고도 가깝다.

 

돌이켜 보아야

80을 눈앞에 둔 한평생

僧(승)도 俗(속)도 못 되고

마치 옛 便器(변기)에 앉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아왔다.

 

이제 허둥대 보았자

부질없는 노릇...

 

어느 호스피스 여의사의

‘걱정 마세요. 사람도 죽으면

마치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영혼의 날개를 펼칠 것이니까요’

라는 말이 저으기 위안이 된다.

 

 

2

병실 창문으로

오직 보이는 저 하늘,

 

무한히 높고 넓고 깊은

그 속이나 아니면 그것도 너머

그 어딘가에 있을 영원의 동산엘

 

털벌레처럼 육신의 허물을 벗어놓고

영혼의 나비가 되어 찾아들 양이면

내가 그렇듯 믿고 바라고 기리던

그 님을 뵈옵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내가 그렇듯 그리고 보고지고 하던

어머니, 아버지, 형, 먼저 간 두 아들과 아내

또한 다정했던 벗과 이웃들을 만나서

반기고 기쁨을 나눌 것을 떠올리니

 

이승을 하직한다는 게

그닥 섭섭하지만은 않구나.

 

 

 

보리밭

구상

 

바삭바삭

발자취 소리

 

제 그림자에

멈칫, 멈칫,

 

으응, 바위아 이쁜이!

 

……저것들이

 

젊은 보리들이

깔렸다 일어나며

울상, 웃을상,

 

구름 뒤에 숨었던 달이

외짝 눈을 살짝,

 

조것이!

 

어느 나라 황후폐하(皇后陛下)

사진을 오려가지고

 

변소에 들던

중학생 시절!

 

그런 모독(冒瀆)의 정열에

밭, 나도 몸을 튼다.

 

 

 

봄맞이 춤

구상

 

옛 등걸 매화가

흰 고깔을 쓰고

鶴춤을 추고 있다.

 

밋밋한 소나무도

양팔에 푸른 파라솔을 들고

월츠를 춘다.

 

수양버들 가지는 자진가락

앙상한 아카시아도

빈 어깨를 절쑥대고

대숲은 팔굽과 다리를 서로 스치며

스텝을 밟는다.

 

길 언저리 소복한 양지마다

잡초 어린것들도 벌써 나와

하늘거리고

 

땅 밑 창구멍으로 내다만보던

씨랑 뿌리랑 벌레랑 개구리도

봄의 단장을 하느라고

舞臺 뒤 扮裝室 같다.

 

바람 속의 봄도

이제는 맨살로 살랑댄다.

 

 

 

봄 빨래

구상

 

보리밭 옆구리

수양 버드나무가

강에다 머리를 감는다.

 

햇발이 물밑에서

금모래로 아른거리며

머뭇거리고 흐른다.

 

땅속에서 갓 나온

청개구리들 모양 엎드려

마을 새댁과 처녀들

봄 빨래가 한창이다.

 

철석 철석,

딱딱, 쭈룩, 쭈룩,

마치 흰 떡을 치고

주무르듯 하며

 

짹, 짹, 종알 종알,

캬들 캬들, 캑 캑,

힝힝, 해해들이다.

 

말띠 딸을 낳고 시아버지에게

눈치가 뵈던 얘기,

극성맞은 시어머니 얘기,

시큰둥스러운 학생 올케의 얘기,

휴가 왔다 간 남편 얘기,

○○黨 망나니 얘기,

 

아롱진 저 정경 속엔

청상과수의 수틀처럼

아직도 서로운 사정들이

얼룩져 있다.

 

 

 

부끄러움

구상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기억이라도 하는가?

 

그대들이 철들 무렵

어머니가 에비라고 하신

꽃병 같은 것을 깨고 나서

처음 느낀 바로 그것,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금하신 열매를 따먹고

무화과 잎새로 알몸을 가린

바로 그런 것 말이다.

 

인간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맨 먼저 느끼는 것은 부끄러움!

그것은 인간 양심의 증표요,

인간은 인간 구원의 싹수다.

 

그런데 오늘날 어른 그대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것은 그대들의 양심이 마비된 증표요,

그것은 그대들이 멸망으로 가는 싹수다.

 

 

 

부활절(復活節)

구상

 

씨랑 뿌리랑 벌레랑 개구리들이

땅 밑에서 새 모습을 하고

일제히 얼굴을 내미는 부활의 계절.

 

나도 우렁찬 천상의 나팔 소리 함께

동면(冬眠) 같은 무덤 속에서 깨어 일어날

그날을 그리며 흥겨움에 잠긴다.

 

원죄(原罪)와 본죄(本罪)의 허울을 벗은 내가

에덴 본디의 모습을 하고

성부께 영락(永樂)을 선포 받을

그날을 그리며 흥겨움에 잠긴다.

 

색색(色色)의 꽃들인 양 대원(大願)을 이룬

가족과 이웃들을 만나서

흘러간 이승의 사연을 주고받을

그날을 그리며 흥그러움에 잠긴다.

 

인공과 자연이 새살로 아문

지구의 완성을 둘러보며

영광과 평화의 훈풍 속에 노닐

그날을 그리며 흥그러움에 잠긴다.

 

섭리와 자유의 경계(境界)가 스러진

온누리의 성좌(星座)를 훨훨 날으며

천사랑 어울려 찬미에 취할

그날을 그리며 흥그러움에 잠긴다.

 

 

 

새해

구상

 

내가 새로와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와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와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

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율조(律調)일 따름이다.

 

흰 눈같이 맑아진 내 의식(意識)은

이성(理性)의 햇발을 받아 번쩍이고

내 심호흡(深呼吸)한 가슴엔 사랑이

뜨거운 새 피로 용솟음친다.

 

꿈은 나의 충직(忠直)과 일치(一致)하여

나의 줄기찬 노동(勞動)은 고독을 쫓고

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

기도(祈禱)는 나의 일과(日課)의 처음과 끝이다.

 

이제 새로운 내가

서슴없이 맞는 새해

나의 생애(生涯), 최고의 성실로서

꽃피울 새해여!

 

 

 

수난(受難)의 장(章)

구상

 

우 몰려온다. 돌팔매가 날은다.

머슴애들은 수수깡에 쇠똥을 꿰매 달고

어른들은 곡괭이를 휘저으며 마구 쫓아오는데

돌아서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

선지피 쏟아지는 이마를 감싸 쥐고서

어머니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데

나는 이제 어디메로 달려야 하는가.

 

쫓기다가 쫓기다가 숨었다.

상여 집으로 숨었다.

애비 욕, 에미 망신 고래고래 터뜨리며

벌떼처럼 에워싸고 빙빙 돌아가는데

나는 얼른 상여 뚜껑을 열어제치고

벌떡 드러누워 숨을 꼭 죽였다.

 

피를 토한 듯 후련해지는 가슴이여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지는 마음이여

사람도 도깨비도 얼씬 못하는 상여 속에서

나는 어느새 달디 단 꿈 한 자리를 엮고 있었다.

 

상여 속에 송장처럼 잠들은

사나이 얼굴은 십상 달같이 흴 게다.

어쩌면 상달같이 깜찍한 여인이 별 같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상처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있을 풍경

나의 달가운 꿈속의 꿈이여.

 

추억의 연못가엔 사랑의 연꽃도 한 송이 피었으리.

다홍신은 벗어놓고 외로움에

장승처럼 못박혀 있는

또 나의 사랑.

 

꽃수레처럼 화려한 상여를 타고

림보*로 향하는 길 위엔

곡성마저 즐겁구나

소복한 나의 여인아

사흘만 참으라.

 

림보 : 예수가 죽어서 부활하기 전 가 있었다는 선령(善靈)이 머물던 곳. 일명 고성소(古聖所).

 

 

 

수치(羞恥)

구상

 

창경원(昌慶苑)

철책(鐵柵)과 철망(鐵網) 속을 기웃거리며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을 찾고 있다.

 

여보, 원정(園丁)!

행여나 원숭이의

그 빨간 엉덩짝에

무슨 조짐이라도 없소?

 

혹시는 곰의 연신 핥는

발바닥에나

물개의 수염에나

아니면 잉꼬 암놈 부리에나

무슨 징후라도 없소?

 

이 도성(都城) 시민에게선

이미 퇴화(退化)된

부끄러움을

동물원에 와서 찾고 있다.

 

 

 

시법(詩法)

구상

 

사과를 그리다 보면

배가 되고

배를 그리다 보면

사과가 된다.

 

짓궂은 생각에서

사과를 그리려고

배를 그렸더니

목과(木瓜)가 되었다.

 

외양(外樣)도 이렇듯

어긋나는데

사과와 배의 속살이나

그 맛은 어림도 없다.

 

그 언제나 사과가

사과로 그려지고

배가 배로 그려지고

그 사과와 배의 속살과 맛을

나타내 보일 수가 있을까?

 

나의 눈과 손에

신령한 힘이 깃들고 내려서

실재(實在)의 안팎을 고대로 그려낼

그날은 언제일까?

 

 

 

시심(詩心)

구상

 

내가 달마다 이 연작에다가

허전스런 이야기를 고르다시피 하여

시라고 써내니까

 

젊은 시인 하나가 하도 이상했던지

"그러면 세상에는 시 아닌 것이

하나도 없겠네요"하였다.

 

그렇다! 세상에는

시 아닌 것이

정녕, 하나도 없다.

 

사람을 비롯해서

모든 것과 모든 일 속의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다가 시다.

 

아니, 사람 누구에게나

또한 모든 것과 모든 일 속에는

진 · 선 · 미가 깃들어 있다.

 

죄 많은 곳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듯이 말이다.*

그것을 찾아내서

마치 어린애처럼

맞보고 누리는 것이

시인이다.

 

 

 

시어(詩語)

구상

 

말은 단순한 부호가 아니다.

'하늘' 하면 저 하늘이 지닌

모든 신비를 그 말이 담고 있고

'땅' 하면 이 땅이 거느리고 있는

그래서 낱말 하나하나가 소우주(小宇宙)다.

 

말은 지시 기능만을 지닌 게 아니라

미묘한 정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어'해 다르고'아'해 다르다지 않는가.

어순(漁順)과 어조(語調)의 강약과 고저장단에 따라

그 말의 감응과 감동은 전혀 달라지느니

그래서 시의 말은 걸음이 아니라 춤¹이요,

춤 맵시처럼 아름다운 말씨만이 되풀이된다.

 

말과 생각과 느낌은 둘이 아니다.

우리는 말로써 사물을 포착한다.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²이요,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넓이가

그 말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한다.

 

시는 말의 치장술이 아니다.

아무리 말이 번드레하고 교묘하더라도

그 말에 담겨진 진실이 없으면

그 말이 가슴에 와서 닿지 않으니

시의 표상(表象)도 실재(實在)가 수반되지 않으면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시인이여, 그대들은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여

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던져질까 두려워하라!

 

 

 

신록을 바라보며

구상

 

한 겨우내 세상 무대 뒤 땅 밑에서

움츠리고 살던 초목들이

아무런 요란도 수선도 떨지 않으며

저마다 새로운 봄 치장을 하고서

화사한 햇발을 온몸에 받으며

서로가 풍미를 발산하고 있다.

우리는 저들의 푸른 새옷이

명동 양장점이나 이태원 외인상가나

또는 남대문시장에서

팔고 산 것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에게

봄의 새 단장을 시키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

조화옹(造化翁)의 그 신령한 힘과 섭리에는

눈멀어 감사할 줄도 섬길 줄도 모르면서

그저 "저절로"라고 무심히 여긴다.

그러면서도 그분에게 제 눈에만 보이고

제 욕심만 채우는 이적을 보여 주기 바라고

흥부의 박 같은 복이 굴러들어 오기만 빈다.

주여! 우리를 측은히 여기소서!

 

 

 

실체와 실상

구상

 

 

세상 살아오는 동안

나의 생각, 남의 생각의

실용(實用)과 유형(類型)의 덮개가 앉아서

사물의 실체(實體)와 실상(實相)은 안보이고

화석(化石)이 된 개념만이 널려져 있다.

 

요즘사 겨우 그런 생각의 덮개를 벗어나

백날이 갓넘은 손주딸을 따라

다시 사물울 하나하나 새로 살피는데

 

아직 산은 산, 물은 물*

그렇게 밝게는 못 보지만

모든 사물의 신기하고 오묘함에

노상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가는 지금

구상

 

아가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다.

무엇을 듣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

 

저 히라 동굴에서 마호메트가

알라의 계시를 전해 받듯

그런 현상을 보고 있다.

 

저 요단강변에서 세례를 받는

나자렛 예수 머리 위에서 울리던

그런 소리를 듣고 있다.

 

저 가야산 숲속 보리수 아래

석가모니가 정각에 든 순간의

그런 생각에 취해 있다.

 

아니 아가는 그도 저도 아닌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있다.

 

인류의 오직 하나만의 존재로서

자기만이 싹을 틔우고 꽃 피워야 할

그 누구도 보고 듣도 생각도 못 한

그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빙그레 웃고 있다.

 

 

 

어느 가로등

구상

 

어둠이 짙게 깃들인

아파트 뜰 안 길목에

가로등 하나가 우뚝 서

켜져 있다.

 

그 짙노란 불빛은

희부연 램프를 통해 비춰서

더없이 은은하고 정겹다.

 

마치 그 등불은 밤길보다

나의 마음속 어둠을 비춰서

내 안의 풍랑도 자게 하고

표류하던 내 삶의 향방도

잡히게 할 것 같다.

 

한밤내 자신을 뉘우치며

홀로 기도하는 수도자처럼

敬虔하게 서 있는 등불

 

그 불빛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그 불빛에는 사랑이 어려 있다.

 

 

 

어떤 정회(情懷)

구상

 

한 차례 공동 묵상을 마친 후

성모상이 서 있는

수도원 숲 그늘에

뿔뿔이 쉬는 참이었다.

 

곱살히 늙어가는 여교우 한 분이

내 옆 통나무 의자에 다가와 앉더니

"송도원(松濤園) 앞 동네가 바로 저의 고향이거든요.

40년 전 마당 앞 행길을 지나가시던 선생님을 뵙고는 그만 넋을 잃고서 평생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착실하고 무던한 남편을 만나 별로 고생을 모르며 살아오고 아들딸 여럿 낳고 손주도 보았는데

선생님의 모습이 끝내 지워지지가 않는군요.

신문 잡지에서 선생님 함자(銜字)나 사진을 뵈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반가웠고요.

선생님 쓰신 글을 찾아가면서 죄 읽었지요.

어쩌면 제가 성당엘 다니게 된 것도

선생님을 따라서일 거예요.

선생님은 이런 푸념 같은 얘기 들으시기 매우 거북하실 줄 아오나

제 생전 한 번만은 만나 뵙고 털어놓고 싶었어요."

하고선 맑은 아미(蛾眉)를 숙였다.

나는 응답할 말이 없는지라

"진작 좀 말씀을 하시지 그랬어요?"

기롱(譏弄)으로 받았더니 그녀도

"선생님이 이렇듯 수월하게 받아주실 줄 미처 알았어야죠?"

개운하게 응수를 해 와서

서로 쳐다보고 활짝 웃었다.

 

이때 울려 퍼지는 집합 벨 소리

우리는 함께 늙은 부부처럼

나란히 기도소로 향했다.

 

* 송도원(松濤園): 시인의 고향인 북한 원산에 있는 유명한 해수욕장.

 

 

 

에로스 소묘(素描)

구상

 

1

농익은 수밀도(水密桃) 가슴.

꽃무덤 위에 취해 쓰러진 나비.

메론 향기의 혀.

흰 이를 드러낸 푸른 파도에 자맥질하는 갈매기.

수평선의 아득한 눈 속.

원시림 속의 옹달샘을 마시는 노루.

에로스의 심연(深淵),

원죄(原罪)의 미(美).

 

 

2

호롱 하롱 고양이의 요기(妖氣) 서린 얼굴.

삼단 머리채로 휘감은 비너스의 목.

명주(明紬) 젖가슴에 솔개의 발톱자국.

모래시계의 배꼽.

함지박 엉덩이,

아름드리나무 속살 허벅지.

랑데부 여울목

불지른 봄날의 잔디 두덩.

어둠의 태백(太白) 속

진달래 산 담요 벼랑 아래

출렁이는 백포(白布)의 파도 위

양팔을 포승(捕繩)으로 조이는 나부(裸婦).

……

비둘기 울음.

숨 막히는 찰나(刹那), 오오 비의(秘義)!

 

 

3

허공에 새긴다.

그 얼굴

그 목소리

그 미소

그 허벅지

 

허지만 그 정은

새길 수가 없다.

마음속에 새겨진 것은

형상(形象)이 안 된다.

 

 

4

그 알몸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흰 수염을 쓰다듬는다.

백금(白金)같이 바래진 정념(情念)…

그 사랑은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그 시간과 공간은

영원에 이어졌다.

 

 

 

여명도(黎明圖)

구상

 

동이 트는 하늘에

까마귀 날아

 

밤과 새벽이 갈릴 무렵이면

카스바*마냥 수상한 이 거리는

기인 그림자 배회하는 무서운

골목…

 

이윽고

북이 울자

원한에 이끼 낀 성문이 뻐개지고

구렁이 잔등같이 독이 서린 한길 위를

횃불을 든 시빌*이

깨어라!

외치며 백마(白馬)를 달려.

 

말굽 소리

말굽 소리

창칼 부닥치어

살기(殺氣)를 띠고

백성들의 아우성

또한 처연(凄然)한데

 

떠오는 태양 함께

피 토하고

죽어가는 사나이의 미소가

고웁다.

 

* 카스바: 북아프리카 알제시(市)에 있는 암흑가. 프랑스 영화 `망향'의 무대가 됨.

** 시빌: 희랍어로 선지자(先知者).

 

 

 

연(蓮)이여

 구상

 

이리 곱고 정한 꽃인데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시궁창을 내 집으로 삼아도

아침저녁으로 맑은 숨을 쉬느니,

사람들이 버리고 외면한

그 찌꺼기 배설한 것들 속에서도

오히려 내 양분을 취하느니

그 몸은 물방울 하나도

헛되이 빌붙지 못하게 하거늘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신선함에

먼지 하나 범할 수도 없고

숨소리도 죽여야 하느니,

이 청정한 고운 님의 경지에

해와 달이 함께 빚어낸 꽃이라

선학이 꿈을 꾸고 있는지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고

역겨운 일들만 난무한다 해도

스스로 제 몸을 곧추 가누고

이 지상에 고운 것만 걸러내 세우니

뉘 감이 범할 수가 있으랴만 여기

그 잎의 둥글고 도타운 덕성으로 하여

모든 고뇌 떠안고, 망상을 소멸하니

떠오르는 보름달로 맞이하듯

새 아침을 맞이하는 해의

그 맑고 찬란한 새 얼굴을 보듯

내일은 더 곱고 생기에 찬 꽃으로

그 향기도 함께 피우며

온 누리에 세우리.

 

 

 

엿보기

구상

 

35도를 오르내리는 복더위 한낮

아파트 앞 동 7층 거실 마루에

슈미즈 바람의 젊은 여인네가

두 다리를 뻗고 퍼질러 앉아서

수박을 통째 숟갈로 파먹고 있다.

 

뒤채 11층 베란다 망사창에서

흰 수염을 한 늙은이가

이를 바라보면서 군침을 삼킨다.

 

한참 만에 먹기를 끝낸 여인네가

이번에는 한 손으로 슈미즈 자락을 쳐들고

한 손으로 아랫도리에 부채질을 한다.

 

이를 바라보던 뒤채 늙은이는

눈을 한번 꼭 감았다 뜨고는

들었던 부채를 소리 나게 부치며

돌아서 방으로 들어서니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의 조상(彫傷)이 깔깔댄다.

 

이윽고 베란다에 또다시 나선

늙은이 눈에 비친 앞에 풍경은

옷을 바꿔 입은 여인네가 무릎을 꿇고

어떤 사내와 단정히 마주 앉아 있다.

 

실망한 듯 돌아서는 뒤채 늙은이는

- 여자들은 카멜레온이야.

하고 중얼거리며 도로 방으로 들자

두 스님이 더욱 깔깔 낄낄댄다.

 

 

 

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神秘)의 샘인 하루를

구정물로 살았다.

 

오물과 폐수로 찬 나의 암거(暗渠) 속에서

그 청렬(淸洌)한 수정(水精)들은

거품을 물고 죽어갔다.

 

진창 반죽이 된 시간의 무덤!

한 가닥 눈물만이 하수구를 빠져나와

이 또한 연탄 빛 강에 합류한다.

 

일월(日月)도 제 빛을 잃고

은총의 꽃을 피운 사물들도

이지러진 모습으로 조응(照應)한다.

 

나의 현존(現存)과 그 의미가

저 바다에 흘러 들어

영원한 푸름을 되찾을

그날은 언제일까?

 

 

 

오늘서부터 영원을

구상

 

오늘도 친구의 부음(訃音)을 받았다.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차피 가는구나.

 

나도 머지않지 싶다.

 

그런데 죽음이 이리 불안한 것은

그 죽기까지의 고통이 무서워설까?

하다면 안락사(安樂死)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두려운 것은

죽은 뒤가 문제로다.

저 세상 길흉이 문제로다.

 

이렇듯 내세를 떠올리면

오늘의 나의 삶은

너무나 잘못되어 있다.

 

내세를 진정 걱정한다면

오늘서부터 내세를,

아니 영원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내 안에

구상

 

1

내 안의 울 속에서

밤낮없이 으르렁대는

 

저 사나운 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슨 먹이라도 보았는가?

오늘은 길길이 뛰고 있다.

 

 

2

내 안의 바다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하는

 

저 닻 없는 쪽배의

기항지(寄港地)는 어딜까?

 

파도가 거센가보다.

오늘은 몹시도 흔들린다.

 

 

3

내 안의 허공 속을

끝없이 나래 펴는

 

저 파랑새의 꿈은

언제 어디서 이뤄질까?

 

불멸의 그 동산을 그려본다.

영원이 오늘은 내 안에 있다.

 

 

 

우리의 8월

구상

 

8월

우리의 8월은

어디로 갔는가?

 

녀석들의 팔뚝같이 굵고 붉은 밧줄에 옭혀 갔는가?

허기진 세월, 밀가루에 팔려 갔는가?

어느 섬, 박물관(博物館)에 가져다 처박아 두었는가?

 

8월

우리의 8월은

어디로 갔는가?

 

저 155마일 사각지대(死角地帶)에 갇혀 있는가?

통금(通禁)의 밤을 헤매 떠도는 원령(怨靈)이 되었는가?

남북(南北) 하늘을 무심히 흐르는 젖빛 구름이 되었는가?

 

8월

우리의 8월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 저마다의 가슴속에서도 식어가는 우리의 8월

이제 나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가는 우리의 8월

이제 우리의 꿈속에서도 스러져가는 우리의 8월

 

8월

우리의 8월을

달 여행에 눈을 돌이킬망정

일제히 찾아 나서야 한다.

 

 

 

우음(偶吟)

구상

 

1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2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월남기행(越南紀行)

구상

 

 

나는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르는

메시지 한 장을 풀려고

무진 애만 쓰다 돌아왔다.

 

꾸몽 고개 야자수 그늘에서

봉다워 바닷가에서

아니 사이공의 아오자이 낭자(娘子)와

마주 앉아서도

오직 그것만을 풀려고

애를 태다 돌아왔다.

 

아마 그것은 베트콩이 뿌린

전단(傳單)인지 모른다.

 

아마 그것은 나트랑 고아원(孤兒院)서 만난

월남(越南) 소년의 장난인지 모른다.

 

아마 그것은 어느 특무기관(特務機關)이

나의 사상(思想)을 시험하기 위한

조작(造作)인지 모른다.

 

아마 그것은 로마교황(敎皇)의

평화를 호소하는

포스타인지 모른다.

 

아니 그것은 우리의 어느 용사(勇士)가

남겨놓고 간 유서(遺書)인지도 모른다.

 

마치 그것은

흐르는 눈물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고랑쇠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포탄(砲彈)으로 뻥 뚫린

구멍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사지(四肢)를 잃은

해골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눈감지 못한

원혼(寃魂)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월남(越南) 이야기인 것도 같고

 

그런데 그것은

나 개인의 문제인 것도 같고

 

그런데 그것은

우리 민족에 관련한 것도 같고

 

아니 그것은 보다 더

인류와 세계에 향한

강렬한 암시(暗示) 같기도 하였다.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직 느낀 것이 있다면

나란 인간(人間)이

아니 인류(人類)가

아직도 깜깜하다는 것뿐이다.

 

나는 그 메시지를

풀다 풀다 못하여

이제 고국(故國)에 돌아와서까지

이렇듯 광고(廣告)한다.

 

백지(白紙) 위에

선혈(鮮血)로 그려진

의문부(疑問符)

`?'

그게 무엇이겠느냐?

 

 

 

유언(遺言)

구상

 

살아서는 못 누린

호사스런 장례(葬禮)일랑

아예 마련치 말라.

 

가마귀 떼 우짖어

날으는 어느 아침에

 

내 시체를 메어다

행길 마루에 버리고

 

오가는 길손들이

서낭당처럼

 

조약돌 한 개씩만

풀매케 하라.

 

묘비(墓碑)도

비명(碑銘)도 다 싫고

 

어느 실없은 입설을 빌리어

 

「시시후의 손주 한 마리 이 땅에 귀향 살아 할비의 苦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헛되이 죽었느리라」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간곡히 전하여

 

모름지기 뒷날을

경계케 하라.

 

 

 

은행(銀杏) - 우리 부부의 노래

구상

 

나 여기 서 있노라.

나를 바라고 틀림없이

거기 서 있는

너를 우러러

나 또한 여기 서 있노라.

 

이제사 달가운 꿈자리커녕

입맞춤도 간지러움도 모르는

이렇듯 넉넉한 사랑의 터전 속에다

크낙한 순명(順命)의 뿌리를 박고서

나 너와 마주 서 있노라.

 

일월(日月)은 우리의 연륜(年輪)을 묵혀가고

철따라 잎새마다 꿈을 익혔다

뿌리건만

 

오직 너와 나와의

열매를 맺고서

종신(終身)토록 이렇게

마주 서 있노라.

 

 

 

이 한 해

구상

 

풍랑의 갈릴레아 뱃전 같은 이땅에서

주님만 믿은지라 제정신을 잃지 않고

그렁성 제구실 하며 이 한해를 보낸다.

 

신병으로 누워서 달포 넘게 시달리고

집안과 세상살이 쓰라림도 많았지만

수굿이 견디고 나니 다행보다 값지다.

 

이제는 저승에다 아롱진 꿈 그리면서

모든 것 신령하온 그 뜻에다 맡기오매

새해에 태풍 온대도 두려울 것 없구나.

 

 

 

인류의 맹점(盲點)에서

구상

 

시방 세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다.

그 칠흑 속 지구의 이곳저곳에서는

구급을 호소하는 비상경보가 들려온다.

 

온 세상이 문명의 이기(利器)로 차 있고

자유에 취한 사상들이 서로 다투어

매미와 개구리들처럼 요란을 떨지만

세계는 마치 나침반이 고장난 배처럼

중심도 방향도 잃고 흔들리고 있다.

 

한편 이 속에서도 태평을 누린달까?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무리들이

사기와 도박과 승부와 향락에 취해서

이 전율할 밤을 한껏 탐닉하고 있다.

 

내가 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들에게 새 십계명은 무엇일까?

아니, 새것이 있을 리가 없고

바로 그 십계판을 누가 어떻게

던져야 하는가?

 

여기에 이르면 판단정지!

오직 전능과 무한량한 자비에

맡기고 빌 뿐이다.

 

 

 

임종 고백

구상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나의 한 치 마음 안에

천 길 벼랑처럼 드리운 수렁

 

그 바닥에 꿈틀거리는

흉물 같은 내 마음을

나는 마치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눈을 감거나 돌리고 살아왔다.

 

실상 나의 지각(知覺)만으로도

내가 외면으로 지녀 온

양심, 인정, 명분, 협동이나

보험에나 들듯한 신앙생활도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하느님, 맙소사!

 

* 임종 고백 : 가톨릭에서 죽음에 임한 사람이 한 평생 자신이 저지른 죄를 뿌리째 사제(司祭)에게 고백하고 참회하는 신앙교범.

* 기어(綺語) : 불교의 10악(惡) 중 하나로, 비단같이 번드레하나 진실이 수반되지 않는 말.

 

 

 

임종예습(臨終豫習)

구상

 

흰 홑이불에 덮여

앰불런스에 실려간다.

 

밤하늘이 거꾸로 발밑에 드리우며

죽음의 아슬한 수렁을 짓는다.

 

이채로 굳어 뻗어진 내 송장과

사그라져 앙상한 내 해골이 떠오른다.

 

돌이켜보아야 착오(錯誤)투성이 한평생

영원한 동산에다 꽃 피울 사랑 커녕

땀과 눈물의 새싹도 못 지녔다.

 

이제 허둥댔자 부질없는 노릇이지…

 

―아버지 저의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시늉만 했지 옳게 섬기지는 못한

그분의 최후 말씀을 부지중(不知中) 외우면서

나는 모든 상념(想念)에서 벗어난다.

 

또 숨이 차온다.

 

 

 

입버릇

구상

 

동란 때 내가 가까이 모시던 노비행사(老飛行士) 한 분은 세상 못마땅한 일을 보거나 들으면 언성을 높여 "저런 죽일 놈"하고는 깜짝 놀라는 상대에게 이번엔 아주 상냥한 음성으로 "노래 한마디 부르겠습니다"라고 하여서 크게 웃겨 고약한 우리 심정을 달래곤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분의 입버릇이 부지중(不知中) 내게 옮아서 이즈막 나는

  행길에서도 "저런 죽일 놈"

  버스에서도 "저런 죽일 놈"

  모임에서도 "저런 죽일 놈"

  심지어는 성당에서도 "저런 죽일 놈"

  매일 저녁의 신문을 읽다가는

  "저런 죽일 놈" "저런 죽일 놈들"

남의 귀에 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때도 곳도 가리지 않고 연발한다.

 

말이 씨가 된달까, 저런 증세가 날로 심해지면서 이번엔 내 마음속에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정말 없애고 싶은 사람이 하나둘 불어나고 그 욕망이 구체화되어서 집단살인도 자행(恣行)할 기세라 이 밑도 끝도 없는 살의에 스스로가 놀라게끔 되었다.

 

그러다가 바로 지금 막 머리에 떠올린 것인데 역시 그분이 "저런 죽일 놈"하고선 "노래 한마디 부르겠습니다"고 엉뚱한 후렴(後斂)을 단 것은 해독제(解毒劑)였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부터 나도 "저런 죽일 놈" 소리가 나오면 애송시 한 편이라도 읊어서 비록 마음속에서일망정 살인은 안 해야겠다.

 

 

 

잡초송(雜草頌)

구상

 

희랍신화(希臘神話)의 혀 안 돌아가는

남녀신(男女神)의 이름을

죽죽 따로 외는 이들이

 

백결(百結)선생이나 수로부인(水路夫人),

서산대사(西山大師)나 사임당(師任堂)을 모르듯이

 

클레오파트라, 로미오와 줄리에트,

마릴린 몬로, BB의 사랑이나

브로드웨이, 할리우드의 치정(痴情)엔

횡한 아가씨들이

 

저의 집 식모살이

고달픈 사정도 모르듯이

 

튜울립, 칸나, 글라디올러스,

시크라멘, 히아신스는

낯색을 고쳐 반기면서

 

우리는 넘보아도

삼생(三生)에 무관(無關)한 듯

이름마저도 모른다.

 

그 왜, 시골 그대들의 어버이들이

전해가지고 붙여오던

바우, 돌쇠, 똘만이,

개똥이, 쇠똥이, 억쇠,

칠성이, 곰, 만수,

이쁜이, 곱단이, 떡발이,

삐뚤이, 순이, 달,

서분이, 꽃분이,

이런 정답고 구수한 이름들 함께

우리 이름도 한번 들어보겠는가.

 

민들레, 냉이, 달래, 비듬,

떡쑥, 토끼풀, 할미꽃,

범부채, 초롱꽃, 쐐기풀,

이런 것이야 누구나 알지만

 

홀아비꽃대, 염주괴불주머니, 광대수염,

개부랄풀, 벼룩이자리, 개구리밥,

도깨비 쇠고삐, 퉁퉁마디, 무아재비,

며느리배꼽, 개미탑, 큰달맞이꽃,

처녀이끼, 도둑놈 갈구리, 도깨비바늘,

거지 덩풀, 애기똥풀, 미치광이,

이렇듯 재미있고 천연(天然)스런

이름들을 들어보기나 했는가?

 

땅속 줄기에다

홀아비 사추리의 무성한 것 같은

꽃수술을 달았으니

홀아비꽃대요,

 

퉁겨운 줄기에

꽃주머니가 양쪽으로 달렸으니

염주괴불주머니요,

 

홍자색(紅紫色) 입술 꽃부리로

아래턱이 세 갈라진 데다

두 장의 수염 같은 수술꽃이 달렸기에

광대수염이요,

 

온몸에 짧은 털이 나고

잎은 뭉툭한 톱니를 가진데다

불그레한 두 장의 꽃이

마치 덜렁덜렁 달린 무엇 같기에

개불알이요,

 

잎은 둥근 알 꼴

온몸엔 가는 털이 끼어서

벼룩이가 붙은 꽃 같기에

벼룩이자리요,

 

겨울 연못에도

눈을 맞으며 떠 있기에

개구리밥이요,

 

덩이 줄기에다

길이 1미터나 되는 큰 잎이

광택을 내고 있어 `그로테스크'하기에

도깨비쇠고삐요,

 

바닷가에

큰 마디가 줄기마다 달린

퉁퉁마디,

 

역시 바닷가에 살지만

굵은 무 같은데

거기다 수염이 달려

무아재비,

 

고운 여인 알몸의

꽃 속이 피어서

며느리배꼽,

 

이삭꽃이

불개미 떼가 붙은 것같이

황갈색(黃褐色)으로 피기 때문에

개미탑,

 

큰달맞이꽃은

온몸에 부드러운 융털이 있고

여름밤에 노랑꽃이

크게 피어 어울리며

 

처녀이끼는

제주도(濟州道) 나무와 바위에

실꼴(絲形)로 흐느적거리고

잎과 홀씨주머니가 알을 품은 것 같다.

 

이름마저 흉측한 도둑놈 갈구리는

부스스한 열매가 한번 옷에 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고

 

도깨비바늘도 역시

바늘 같은 열매가 달라붙으며

 

거지덩굴은

더러운 손자국, 발자국처럼 지저분하고

 

애기똥풀은

노란 진물이 나오고

 

미치광이는

흙탕 같은 온몸에 잎과 꽃이

어둡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며느리미씨개, 참소리쟁이,

갓버섯, 벌레잡기, 오랑캐, 끈끈이주걱,

팔손이나무 등

우리 친구들 이름과 그들의 특징을

주워섬기자면 한이 없다.

 

옛부터 일러오기를

하늘이 녹(祿)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싹 트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부르짖으면서

길섶이나 밭두렁이나 산비탈에

어느 누구의 신세도 안 빌고

자연으로 싹터서 자연의 구실을 하다

자연히 스러지는 우리들의 본명(本命)!

 

그대 시인(詩人)이란 것들마저

함부로 잡초(雜草)라 부르고

소외(疎外)하는가!

 

 

 

점경(點景)

구상

 

산허리 무우밭가

춘곤(春困)에 조는 늙은 바위에

쉬파리 한 마리 놀고 있다.

 

영(嶺)으로 오르는 산길 풀섶에

묵은 남비 뚜껑만 한 쇠똥엘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바위의 응달진 허리에도 붙어보고

햇볕에 단 이마에도 앉아보고

움푹 파인 숫구멍에 괸

빗물에 촉촉히 젖어도 보고

 

손발을 살살 빌어도 보고

눈곱 같은 찌를 깔겨도 보고

서캐 같은 알을 슬어도 보고

 

이번엔 무우밭 한가운데 홍일점(紅一點) 끼여든

봄 국화 꽃술에 날아가 앉아서

영사막(映寫幕)에 홀린 소년처럼

지평선까지 평면으로 전개된

들과 강과 길을 내려다보는데

 

세상은 일시에 모두 정지되어

푸른 송장이 된 것 같이

숨소리도 없는 이 순간,

기아(飢餓)와 멸시(蔑視)와 살육(殺戮)에서 해방된 순간

저주(詛呪)와 모반(謀反)도 없는 이 순간,

 

너, 쉬파리 똥파리

어쩐지 이 고요가

서러운 공포가 되며

산울림 하게 왕왕, 울어보누나.

 

 

 

정(靜)과 동(動)

구상

 

팔당(八堂)과 양평(楊平) 사이

후미진 강기슭 빈 조각뱃전에

한켠엔 내가 앉고

한켠엔 노처(老妻)가 앉아

바람도 없이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다.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제 백만의 신도가 모인 여의도(汝矣島)

그 찬란한 가설 제단에 앉으셨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몇 달 전 여성잡지에서 뵈온

가야산(伽倻山) 바위 위에 앉으신 성철(性撤) 종정과의

두 모습,

 

한 분은 인파(人波)의 그 환성 속에 계시고

한 분은 자연의 그 적막 속에 계시나

두 모습 그대로가 진실임을 의심할 바 없거늘

과연 이 대조(對照)는 무엇을 뜻함인가?

 

한 분이 행하시는 인위(人爲)의 극진(極盡) 속에도

한 분이 행하시는 무위(無爲)의 극치(極致) 속에도

신비가 감돌기는 매한가지어늘

과연 이 부동(不同)은 무엇을 말함인가?

 

저 두 분의 모습이 다 함께

진리의 체현(體現)임에 다를 바 없으니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정동일여(靜動一如)의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저녁노을과 함께 숨을 죽이듯

잔잔해진 강물을 바라보며

노부처(老夫妻)는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일어설 줄을 모른다.

 

 

 

조국(祖國)아! 늬는

구상

 

늬는 아마도

몹쓸 나의 애물이지.

이다지나 쉴새 없이

속을 썩히게.

 

늬는 어쩌면

꿈속에서나 이루울 모습인가.

깨어 보면 이렇듯

낯설고 보면 이렇듯

낯설고 서어 하니.

 

늬는 차라리

내 가슴에 못박힌 한(恨),

언제나 그 자리는 피맺혀

아리고 저리니 말야.

 

그래도 늬는

내 목숨의 불씨야.

꺼지지 않고 언제나

 

타오르는 걸 보면....

 

 

 

조화(造化) 속에서

구상

 

울밑 장독대를 빙 둘러

채송화가 피어 있다.

 

희고 연연한 몸매에

색색의 꽃술을 달고

저마다 간드러진 태를 짓고

서로 어깨를 떠밀기도 하고

얼굴을 비비기도 하며 피어 있다.

 

하늘엔 수박달이 높이 걸리고

이슬이 젖어드는 이슥한 밤인데

막내딸 가슴의 브로우치만큼씩한

죄그만 나비들이 찾아들어

꽃술 위를 하늘하늘 날고 있다.

 

노랑,

빨강,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이 꽃술에서 저 꽃술로

꽃가루를 옮겨 나르는 나비들!

이른봄부터 밤마저 새워가며

그 수도 없이 날던 나비떼들!

 

알록달록 채송화의 꽃물을 들이기에

저 미물(微物)들이 여러 천년을 거듭하는

억만(憶萬)의 역사(役事)를 하였겠구나.

 

헛간 뒤 감나무의 짓무른 홍시도

입추(立秋) 전까지는 입이 부르트게 떫었으며

저 뒷동산의 밤송이도

가시를 곤두세워 얼씬도 못하게 하더니만

알을 익혀 하강(下降)의 기름칠을 하고는

입을 제 스스로 벌렸다.

 

오오, 만물은 저마다

현신(現身)과 내일의 의미를 알고

서로가 서로를 지성(至誠)으로 도와

저렇듯 어울리며 사는데

 

사람인 나 홀로 이 밤

울타리에 썩어가는 말뚝이듯

아무것도 모르며 섰는가?

 

 

 

진혼곡(鎭魂曲)

구상

 

손에 잡힐 듯한 봄 하늘에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이듯이

피 묻은 사연일랑 아랑곳 말고

형제들 넋이여 평안히 가오.

 

광풍(狂風)이 휘몰아치는 쑥대밭 위에

가슴마다 일렁이는 역정(逆情)의 파도

형제들이 틔워놓은 외가닥 길에

오늘도 자유(自由)의 상렬(喪列)이 꼬리를 물었소.

 

형제들이 뿌리고 간 목숨의 꽃씨야

우리가 기어이 가꾸어 피우고야 말리니

운명(運命)보다도 짙은 그 바람마저 버리고

어서 영원한 안식(安息)의 나래를 펴오.

 

 

 

창녀와 시인

구상

 

시인은 어깨나 재듯이 친구 하나를 끌고 호기 있게 들어선다.

창녀는 반갑고도 사뭇 미안스러워 어쩔 바를 모른다.

방에 들어 흘깃하면 송(松) · 학(鶴) 수틀 아래 합장한 아기 예수의 흰 석고상이 매달려 있다.

시인은 올 적마다 쓰디쓴 웃음을 풍기며

- 이건 네 아이 얼굴인가?

퉁겨 묻고는

- 너도 막달레나가 되려나?

혼자 중얼거린다.

진로 한 병과 <마른 오징어> 한 마리가 상 위에 얹혀 들어온다.

겹친 술을 한두 잔 켜고 나서는 이제 남은 흥정을 붙여야 했다.

- 이 친구 색시 하나 똑 딴 것으로 데려와!

- 아주 마음 좋은 사모님으로 말이야!

- 빨랑빨랑, 졸려!

호통에 못이겨 부시시 일어서 나간 창녀는 잠시 후 방문을 빼곰히 열고는 눈짓으로 시인을 불러내 간다.

- 저, 저어, 저 손님 다리 하나 없으시죠?

- 그래, 왜 그래? 상이용사야!

- 아마 딴 애들은 안 받을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 형편이라면 제가 모시죠.

- 으음.

시인은 이 최상급의 선의(善意) 앞에 흠칫 놀라면서

- 그래, 그래야 나도 새 장가 들지!

하고 얼버무려 버린다.

악(惡)의 껍질 같은 칠흑 어둠이 덮인 창굴(娼窟) 마당에다 시인은 오줌을 깔기면서 이 굴속에도 비록 광채는 없으나 별과 시(詩)가 깃들어 있음을 따스하게 여긴다.

 

 

 

초동(初冬)의 서정(抒情)

구상

 

상강(霜降)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진

고목가지에

서리 핀 아침이 드맑게 펼쳐 있다.

 

소년 적 죄그만 가슴의 그리움이던

교리방 수녀의 흰 이마가

아련히 떠오른다.

 

청렬이 결코 설움은 아니련만

내 눈에는 찬 이슬이 맺힌다.

 

입동(立冬)

 

헤식어 가는 햇발이

긴 그림자를 끌고

양지를 찾는다.

 

대지는 번열을 가시고

본래대로 누워 있다.

 

11월의 일모엔

나의 인생도 회귀에 든다.

 

초설(初雪)

 

첫눈을 맞을 양이면

행복한 이에겐 행복이 내려지고

불행한 사람에게 시름이 안겨진다.

 

보얗게 드리운 밤하늘을

헤치고 가노라면

등불의 거리는 고성소처럼 그윽한데

 

멀리 어디선가

기항지(奇港地) 없는 뱃고동 같은 게

쉰 소리로 울려온다.

 

 

 

초생달 꽃밭

구상

 

초생달 꽃밭에는

옛 얼굴들이 산다.

 

봉선화 꽃술에서 내민 얼굴은

혼례(婚禮)를 치른 지 사흘 만에

북간도(北間島)로 떠나던 외사촌 누나,

색(色) 골무 타래를 쥐어주고선

목쉰 기적(汽笛)과 함께 떠나간 누나,

다홍으로 얼룩진 50년 전 그 얼굴이

소롯이 내다보고 있다.

 

코스모스에선 교리반(敎理班) 수녀의 얼굴!

악네스이던가 누시아던가

검은 고깔에 흰 수건으로 감싼 보얀 얼굴에

푸른 눈을 반짝이던

죄그만 내 가슴의 그리움이던

하늘하늘 키가 큰 서양수녀(西洋修女)가

빙그레 내다보고 있다.

 

국화(菊花)에서 내다보는

얼굴은 그 누구일까?

이북(以北), 산소(山所)도 알 길 없는

어머님 시신(屍身)의 얼굴 같기도 하고

거기 두고 온 처제(妻弟)의

상냥한 얼굴 같기도 하고

어쩌면 며느리 될 애의 얼굴 같기도 한데

초생달이 먹구름 뒤로 숨자

이제 꽃밭은 현기(眩氣) 같기도 하고

무서움 같기도 하여

으스스 한기(寒氣)가 든다.

 

원, 몸살이 나려는가?

 

 

 

초토(焦土)의 시

구상

 

1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덤이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 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少女)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2

제 먹탕으로 깜정칠한 문어 한 마리를 무릎에 싸안고서 얼르고 있는 광경이라면 모두 웃음뽀를 터치리라.

그러나 앞자리에 마주 자리 잡은 나의 표정은 굳어만 갔다.

「정식아! 볶지마아, 빠빠에게 가면 까까 많이 사주께」

이건 또 너무나도 창백한 안악네가 정식이라고 이름 붙은 검둥이 애새끼에게 거의 애소에 가까운 달램이었다.

자정도 넘은 밤차, 히미한 등불 아래 손들의 피곤한 시선은 결코 유쾌한 눈찌가 아니었고 칭얼만 대는 검둥 애새끼의 대구리와 울쌍이 된 그 엄마의 하이얀 이마위 땀방울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이 뒤틀어 대는 흑백(黑白)의 모자상(母子像)을 보다 못해 호주머니를 뒤져 아까 전송 나왔던 친구가 취기 반으로 사주던 해태 「캬라멜」을 꺼내 까서 년석에게 넌즛이 권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적중(的中)이었다. 년석은 흑요석(黑耀石)보다도 더 짙은 눈을 껌벅이며 깜정 손으로 냉큼 잡어 채어 입에 넣드니 제법 으젓해지지 않는가.

두 개, 세 개, 네 개, 이제는 아주 나의 무릎으로 슬슬 기어 옮으며 이것만은 차돌같이 흰 이빨을 드러내어 웃어 반기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르면 안 논다는 재조 없다. 눈물이 글성하여 연성 미안스러워 하는 년석을 아조 받아 안고 창경원 가서 원숭이 놀리는 그 꼬락서니가 되어 「캬라멜」과, 애새끼와 있는 재조를 다피워 얼려 댄다.

이러는 사이에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뜻하지 않은 나의 救助(구조)를 넋 없이 바라보던 안악네가 身命의 고달픔이 차고 말었던지 사르를 잠들어 버리고 그렇게 날치던 애새끼 역시도 이제는 어지간히 흡족했던지 내 품에서 쌕쌕 코를 고는 것이 아닌가.

구체 없이 검둥이 애비 꼴이 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심정 속에서 그채로 눈을 감고 만다.

나의 머리에는 이 년석의 출생의 비밀이 되었을 지폐 몇 장이 떠오른다.

이 검둥이의 애비와 그가 차고 갔을 훈장을 생각해 본다.

저 안악네의 아조 지쳐 내던진 얼굴에서 오늘의 우리를 느낀다.

숨결마져 고와진 이 어린 생명을 안고서 그와 인류의 덧없을 운명에 진저리 친다.

차는 그대로 밤을 쏜살같이 뚫어 달리고 손들은 모두 지쳐 곤드라졌는데 이제는 그만 내가 흑백(黑白)의 부자상(父子像)이 되어 이마에 땀방울을 짖는다.

 

 

3

대낮부터 한잔들 얼려 곤드레가 된 「푸로펫서」 H 군(君)의 뒤범벅인 이야기가

-- 인류는 이미 자멸의 공포와 절망 속에 떨고 있다.

이쯤 나오자 일행, S 기자(記者)와 나는 그를 부축해 어깨동무하고 나선다.

뒤이어 한 목노에서 연방 들어 마시던 막버리꾼패도 같은 행길 위에 갈之字(지자)를 놓는다.

 

서산에는 아직도 태양이 빨가장이 타고 있는데

이 눈물 나는 족속들은 땅으로 땅으로 떨어져만가는 고개를 뒤틀어 재껴 보았댔자

 

머리로 가슴 속으로 스미어 드는 짙은 어둠은

마치 먹풀은 한 울타리에 호박뎅이가 걸린양만 보여 웬수로구나

 

인류(人類)는 요모양으로 우주(宇宙)보다 먼저

밤을 작만 하는지야.

 

 

4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이랄까.

난데없이 팔에다 <해방(解放))>이라는 붉은 완장(腕章)을 단 녀석이 먼저 나를 가로 타고 사지(四肢)를 꽁꽁 묶기 시작하자 이번엔 「불(弗)」이라는 노오란 완장(腕章)을 단 녀석이 나타나 숫째 나의 목을 졸라 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숨져 가며 허위대면서도 년석들의 정체(正體)를 알아맞추기에 머리 악을 써 보았으나 노상 익숙히 보아온 얼굴들이건만 요놈들의 실체(實體)가 무엇인지 나를 압살(壓殺)하는 이유(理由)가 무엇 때문인지 끝내 모르는 채 기절(氣絶)하고 말었다.

 

순간(瞬間)! 이것이 아마도 유명(幽明)을 갈르는 순간(瞬間)인가 보다. 천공(天空)엔 성신강림(聖神降臨)의 불혀 같은 불떵이로 꽉 차 있는데 꼼짝없이 된 나는 지구(地球)와 더불어 쳇바퀴 돌듯 마구 돌아가고 있었다.

 

어지러워, 아이구 어지러워, 어머니, 누구, 안해, 홍아(鴻兒), 성아(晟兒), 형님, 어머니, 소리쳐 불러도 울어도 영영 다시 얼굴들은 떠오르지 않어 안타깝고 답답함이 불가마 속인데.

 

오오라, 홀연이 내 時計(시계) 줄에 매달은 통고(痛苦)의 성모패(聖母牌)가 아슴히 기억(記憶)나는 무슨 놀램과 바램에 <주(主)여 나를 건지소서> 한마디 웨친 또 다음 순간(瞬間).

 

어느 유화(油畵)에선가, 또는 영화(映畵)의 어느 장면(場面)에선가 본 그런 호수(湖水)까 맑은 숲 그늘 아래, 아니야 그저 시언한 해방(解放)과 휴식(休息) 속에 내가 아주 편히 누워있는데

 

차츰 깃들어 오는 맑은 정신(精神) 속에서 곰곰이 생각는 것은 인류(人類)도 이렇게 꿈처럼 어저께의 인업(因業)에서 깨어나고 기적(奇蹟)과 같이 부활(復活)하여 다사러운 지상(地上)을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인가, 주(主)여 당신에게 다시 한번 빌어 묻고 나에게도 타일러 보는 폐허(廢墟)의 꿈 아닌 꿈.

 

 

5

제1경(第1景)

행길 위에 머슴애들이 우 몰려가 수상한 채림의 여인 하나를 에워 쌓는다. 돌풀매를 하는 놈, 소똥 말똥을 꿰메 달어 막대질을 하는 놈,

「양갈보」「양가ㄹ-보」「양가 보」

더럽혀진 母性을 향하여 이들은 저희의 律法(율법)으로 다스리려는 것이다.

「내가 네들 어미란 말이냐, 양갈보면 어때! 어때!」

거품까지 물어 발악하는 여인을 지나치던 미군찦이 싣고 바람같이 흘러간다. 아우성소리만 남고.

 

 

제2경(第2景)

짙게 양장한 여인이 지나간다. 꼬마들은 눈을 꿈벅 꿈벅 한다. 한 년석이 살살 뒤를 밟아 여인의 뒤잔등에다

「일금(一金)) × 천원야(千圓也)」라는 꼬리표를 재치 있게 달아 붙친다.

「와하」 「와하하」「와하하하」

자신들의 항거(抗拒)로서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꼬마들의 자학(自虐)을 겸친 모멸의 홍소(哄笑)가 터지는 것이다.

여인은 신뒤축을 보살펴 보기도 하고 거름새를 고쳐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사러지기까지

「와하」「와하하」「와하하하」는 끄치지 않는다.

 

 

제3경(第3景)

이러한 짖구진 작란도 얼마 안 가 뜸하여지고 판자막(板子幕) 어둠컴컴한 골목길에는 군데군데 꼬마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서 있다.

흑백(黑白)의 모주 병정들이 어른거릴량이면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억센 팡들을 잡아끄는 것이다.

「핼로 OK」「마담, 나이스」「나이스 OK」

지폐 맛을 본 꼬마들은 이 참혹한 현실을 그들대로 활용(活用)하게끔 되었다.

 

 

6

시인(詩人)과 창녀(娼女)는 굴(窟)을 나선다.

쏟아지는 장마비를 기화(奇貨)로 시인(詩人)이 산책(散策)을 제안(提案)했던 것이다.

 

아침 다섯 시. 거리엔 개새끼 한 마리 어른거리지 않는데 열흘이나 마구 내려퍼붓는 바람에 행길은 보또랑이 터진 듯 흙탕물 속을 가야만 했다.

-- 아메요 후레 후레, 나야미오 나가스마데,

무심중 중얼거리며 시인(詩人)은 향방(向方)을 잡지 못한다.

 

-- 어디로 갈 것인가,

-- 이 창녀(娼女)는 어쩌자고 따러 나섰을가.

-- 인생(人生)은, 흥.

궁리(窮理)를 짜면 짤수록 몰라진다.

 

흐느끼는 비빨에 「베르레느」.

전쟁(戰爭)만 치러야 하는 조국(祖國).

운명(運命)에 떠나가는 김(金)삿갓.

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지저분만하다.

키륵 키륵 허망(虛妄)에 웃어 본다.

 

어느 길 언덕에 다다른다. 옳아!

여기는 성당(聖堂), 마리아상(像)도 빗망울에 딸아 우는고나.

-- 이제는 그만 돌아가지

-- 네, 또 오세요.

안녕.

안녕.

시인(詩人)의 악(惡)과 창녀(娼女)의 선(善)은 간밤 한자리 꿈의 미련(未練)도 없이 갈린다.

 

평행선(平行線)! 선(善)과 악(惡)의 신비(神秘)한 평행선(平行線)!

 

시인(詩人)은 이 사실(事實)이 원자탄(元子彈)보다도 인류(人類)의 종언(終焉)보다도 소름이 끼친다고 생각하며

다시 흙탕물 속을 저벅 저벅 걸어간다.

 

 

7

시인(詩人)은 어께나 재듯이 친구 하나를 끌고 호기 있게 들어선다. 창녀(娼女)는 반갑고도 사뭇 미안스러워 어쩔 바를 모른다.

방에 들어 흘깃하면 송(松)․ 학(鶴) 수틀 아래 합장한 예수 아기의 흰 석고상이 매달려 있다.

시인은 올 적마다 쓰디쓴 웃음을 풍기며

-- 이건 네 아이 얼굴이가?

퉁겨 묻고는

-- 너도 막달레나 이냐

혼자 중얼댄다.

진로(眞露) 한 병과 스루메 한 마리가 상위에 얹혀 들어온다.

엎친 술을 한 두잔 켜고 나서는 이제 남은 흥정을 부쳐야 했다.

-- 이 친구 색씨 하나 똑 딴 것으루 데려와!

-- 아주 마음 좋은 사모님으로 말이야

-- 빨랑, 빨랑, 졸려

호통에 못 이겨 부스스 이러서 나간 娼女는 얼마쯤 후 방문을 빼꼼히 열고 눈짓으로 詩人(시인)을 불러 내간다.

-- 저, 저, 저 손님 다리 하나 없으시죠.

-- 응, 왜 그래, 상이용사야

-- 아마 동무 애들이 안 받을 거에요, 그, 그래서 선생님 형편이라면 제가 모시죠.

-- 으음

 

시인(詩人)은 이 최상급(最上級)의 선의(善意) 앞에 흠찍 놀라면서

-- 그래, 그래 그래야 나도 새 장가 들지

하고 얼버무려 버린다.

악(惡)의 껍질 같은 칠흑 어둠이 덮인 창굴(娼窟) 마당에다 시인(詩人)은 오줌을 깔기면서 이 굴속에도 비록 光彩(광채)는 없으나 별과 시(詩)가 깃들어 있음을 다사하게 녁인다.

 

 

8 - 적군묘지(敵軍墓地) 앞에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묻드러진 살떵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히 파묻어 떼마져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들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루 막히고

 

무인 공산의 적막만이

천만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드러 있돠.

 

손에 닿을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도

 

어데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노아 버린다.

 

 

9

눈떵이가 구을듯이 커저만 가던

허접스런 인업(因業)들이랑

봄 여울에 씻은 듯 녹아나 흘러라.

 

영욕(榮辱)의 해골마져 타버린

폐허 위에다

이 봄에도, 우리 모다

목숨의 씨를 뿌리자.

 

하루 아침에

하늘 땅이야 꺼진다손

제사, 나를 어짤 것이냐…….

 

내일의 열매야 기약지도

않으련만

운명(運命)과는 저울 할 수도 없는

목숨의 큰 바램.

 

우리의 부활(復活)을 증거하여

무덤 위에 필

알알의 목숨의 꽃씨를

즐거히 정성드려 뿌리자.

 

 

10

어둡다구요. 아주 캄캄해 못살겠다구요. 무엇이 어떻게 어둡습니까. 그래 그대는 밝은 빛을 보았읍니까. 아니 생각이라도 하여 보았읍니까. 빛의 밝음을 꿈꿔도 안 보구 어둡다 소리 소리 지르십니까. 설령 그대가 낮과 밤의 명암(明暗)에서 광명과 암흑을 헤아린다 칩시다. 그러량이면 아침의 먼동과 저녁노을엔 어찌 무심하십니까. 보다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사정은 노상 잊으십니까. 됩데 어둠 뒤에 가리운 빛, 빛 뒤에 가리운 어둠의 意味(의미)를 깨치서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제사 정말 암흑이 두려워지고 광명이 바래질 것이지, 건성으로 눈감고 어둡다 어둡다 소동을 이르킬 것이 아니라 또 건성으로 광명을 바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진정 먼저 빛과 어둠의 얼골을 마주 쳐다봅시다. 빛 속에서 어둠이 스러질 때까지.

 

 

11 - 송영보(送迎譜)

나 너를 보내노라.

찢어져 피 묻은 가슴

조각 조각 흔들어

나 너를 보내노라.

 

이제사 나 너 세월에게

청춘의 바램은커녕

아쉬움도 모르는체

눈 뒤집혀만 가는 이 거리에

그저 심심히 서서

너를 세월이라고 보내노라.

 

나 너를 맞노라

찢어져 피 묻은 가슴

조각 조각 흔들어

나 너를 맞노라

 

여기는 나의 원수와

원수를 기르는 벗들이

마주 서는 곳

네가 나를 탓하지 않듯이

나도 너를 탓하지 않고

너를 세월이라고 맞노라.

 

 

12

땅이 꺼지는 이 요란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헛개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가는

 어린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13 <우리 夫婦(부부)를 銀杏(은행)에 比喩(비유)함>

나 여기 서 있노라.

 

나를 바래고 틀림없이

거기 서 있는

너를 우르러

나 또한 여기 서 있노라.

 

이제사 달가운 꿈자리커녕

입맞춤도 간지러움도 모르는

 

이렇듯 넉넉한 사랑의 터전 속에다

크낙한 순명(順命))의 뿌리를 박고서

나 너와 마주 서 있노라.

 

일월(日月)은 우리의 연륜(年輪)을 묵혀가고

철따라 입새마다 꿈을 익혔다

뿌리건만

 

오직 너와 나와의

열매를 위하여

종신(終身)토록 이렇게

마주 서 있노라.

 

 

14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險)하기만 하이.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 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 것도 같네만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내가 간들 자네와 이승에서듯이 만나 즐길겐가 하구 곰곰중일세.

 

깜짝 추위에 요새 며칠 감기(感氣)로 누웠는데 망우리(忘憂里) 무덤 속에 자네 뼈다귀들도 달달거리지나 않나 애가 달지만 이건 나의 괜스런 걱정이겠지. 어쩧든가 봄이 오면 잔디도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어 줌세.

 

밖에 나가면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두운 얼굴들이고 이석(利錫)이만은 당(장)가를 들겠다고 벌쭉이지만 그도 너무나 억차서 그래보는 거겠지. 몸도 몸이려니와 마음이 추워서들 불대신 술로 난로를 삼자니 거진 매일도릴세.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치도 않어 참 좋겠네. 어디 현몽(顯夢)이라도 하여 저승 소식 알려 줄 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었나. 왜.

 

 

15 – 휴전협상(休戰協商) 때>

조국(祖國)아, 심청(沈淸)이마냥 불상하기만헌 너로구나.

 

시인(詩人)이 너의 이름을 부르량이면

목이 멘다.

 

저기 모두 세기(世紀)의 백정(白丁)들, 도마 위에 오른

고기 모양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만 하다더냐.

 

조국(祖國)아, 거리엔 희망도 절망도 못 하는

백성들이 나날이 환장해만 가고

너의 원수와 그 원수를 기르는

벗들은 불장마를 키칠 하는데

너는 생각하며 쓰러져 가는 갈대더냐.

 

원혼(怨魂)의 나라 조국(祖國)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 온 것은 모두

비명(非命)뿐이었지.

 

여기 또다시 너의 마지막 맥박인듯

어리고 헐벗은 형제들만이 북(北)으로

발을 구르는데

 

저들의 넋을 풀어줄 노래 하나

없구나.

 

조국(祖國)아! 심청(沈淸)이 마냥 불상하기만헌

조국(祖國)아.

 

 

 

추풍령

구상

 

추풍령

산비탈에

이름도 모를 산꽃 한 무더기가

눈에 스친다.

 

모시 치마저고리 차림의

옆자리의 아리따운 여인이

정겨운 목소리로

 

"아유 저 꽃 좀 봐!

아름답기도 하여라!"

 

수로 부인의 탄성을 발한다.

 

나는 흰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삼백 년 전 그 노인*을

 

오늘 이 자리에다 떠올리며,

오늘의 나를 천삼백 년 전

동해 산기슭 그 자리에다 떠올리며

달리는 고속버스 속에서

저 혼자 섭섭해하고

저 혼자 히죽거린다.

 

 

 

출애급기(出埃及記) 별장(別章)

구상

 

각설(却說), 이때에 저들도

황금의 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

 

믿음이나 진실, 사랑과 같은

인간살이의 막중한 필수품들은

낡은 지팡이나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서로 다투어 사람의 탈만 쓴

짐승들이 되어갔다.

 

세상은 아론*의 무리들이 판을 치고

이에 노예근성이 꼬리를 쳤다.

 

그 속에도 시나이산에서 내려올

모세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외롭지만 있었다.

 

자유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후유, 멀고 험하기도 하다.

 

 

 

풀꽃과 더불어

구상

 

아파트 베란다

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

잡초가 제풀에 돋아서

흰 거물 같은 꽃을 피웠다.

 

저 미미한 풀 한 포기가

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여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여

한 떨기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기 그지없다.

 

하기사 나란 존재가 역시

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며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

저 풀꽃과 마주한다는 사실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묘하기 그지없다.

 

곰곰 그 일들을 생각하다 나는

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

그 풀꽃과 더불어

 

영원과 무한의 한 표현으로

영원과 무한의 한 부분으로

영원과 무한의 한 사랑으로

 

이제 여기 존재한다.

 

 

 

하일서경(夏日敍景)

구상

 

1. 아침

산과 마을과 들이

푸르른 비늘로 뒤덮여

눈부신데

 

광목처럼 희게 깔린 농로(農路) 위에

도시에선 약 광고에서나 보는

그런 건장한 사내들이

벌써 새벽 논물을 대고

돌아온다.

 

 

2. 낮

`이쁜이'가 점심함지를

이고 나서면

`삽살이'도 뒤따른다.

 

사내들은 막걸리 한 사발과

밥 한 그릇과

단잠 한숨에

거뜬해져서 논밭에 들면

해오리 한 쌍이

끼익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난다.

 

 

3. 저녁

저녁 어스름 속에

소를 몰아

지게 지고 돌아온다.

 

굴뚝 연기와

사립문이 정답다.

 

태고(太古)로부터

산과 마을과 들이

제자리에 있듯이

 

나라의 진저리나는

북새통에도

이 원경(原景)에만은

안정이 있다.

 

 

 

한 알의 사과 속에는

구상

 

한 알의 사과 속에는

구름이 논다.

 

한 알의 사과 속에는

대지(大地)가 숨 쉰다.

 

한 알의 사과 속에는

강이 흐른다.

 

한 알의 사과 속에는

태양이 불탄다.

 

한 알의 사과 속에는

달과 별이 속삭인다.

 

그리고 한 알의 사과 속에는

우리 땀과 사랑이 영생(永生)한다.

 

 

 

한가위

구상

 

어머니

마지막 하직할 때

당신의 연세보다도

이제 불초 제가 나이를 더 먹고

아버지 돌아가실 무렵보다도

머리와 수염이 더 세었답니다.

 

어머니

신부(神父)형이 공산당에게 납치된 뒤는

대녀(代女) 요안나 집에 의탁하고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관(棺)에나 모셨는지, 무덤이나 지었는지

산소도 헤아릴 길 없으매

더더욱 애절탑니다.

 

어머니

오늘은 중추 한가위,

성묘를 간다고 백 만 시민이

서울을 비우고 떠났다는데

일본서 중공서 성묘단이 왔다는데

저는 아침에 연미사(煉彌撒)만을 드리곤

이렇듯 서재 창가에 멍하니 앉아서

북으로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봅니다.

 

어머니

어머니

 

 

 

한강근경(漢江近景)

구상

 

한낮의 봄볕을 받으며

눈부신 얼굴을 한

한강이 흐르고 있다.

 

지난날 마르고 여위어서

창자까지를 드러내던 그 강이

이제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다.

 

내 눈앞을 지나며

흐르는 물살들은

바쁘고 잰 걸음이지만

저 멀리 흘러간 강물은

노곤한 졸음에 잠겨 있고

 

강심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은

더없이 한가로운 풍경이지만

이 강 도처에 가로 걸린 다리 위

쏜살같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차량들의 굉음이 고요를 깬다.

 

하지만 강은 아랑곳없이

그 깊고 넓은 침묵을 안고

태고의 모습으로 흐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데 이어져서 흐른다.

 

 

 

해빙(解氷)

구상

 

흰 눈이 덮인 밭과 밭 사이

우리 국토(國土) 모양을 짓고

얼었던 강이 녹아 흐른다.

 

아직도 얼음은 둘로 갈린 허리 응달에서

포문(砲門), 총구(銃口), 칼날처럼 줄줄이 번득이고

강 한복판 모래 무덤들은 태극기(太極旗)를 만들기도 하고

제주도(濟州道)나 울릉도(鬱陵島)나 남해군도(南海群島)를 이루기도 하고

양측 기슭으론 진남포(鎭南浦), 신의주(新義州)

원산(元山), 서호진(西湖津), 청진항(淸津港)을 이루고 있다.

 

남향(南向)받이엔 버드나무들이

은회색(銀灰色) 쥐새끼를 가지마다 붙이고

벌써 눈이 트고 있는데

건너편 북향(北向)받이 나무들은

표독한 가시를 돋친 채

아직도 물기가 감감하다.

 

중천(中天)에 친 황금사(黃金絲) 그물에

어린 해들이 걸려 하늘거리고

강 속에는 수초(水草)들이 꼬리를 친다.

 

며칠 전만 해도 꽝꽝 얼어붙었던

이 사각지대(死角地帶)!

지나간 우리의 미움처럼

이제는 우리의 사랑처럼

녹아 흐르고

 

저기 흉물스레 놓여 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흘러 떠가고 있다.

 

 

 

허(虛)의 장(章)

구상

 

제군(諸君)!

이 소식을 알자면

먼저, 마음을 욕망의 덮개와

불안의 밑이 없는 항아리로

비워놓게!

 

그럴 양이면 아롱진 바람들과

고름 낀 인업(因業)들이

민들레 마른 꽃술인 양 스러져

흩어질걸세.

애증(愛憎)의 동아줄도 풀어질걸세.

선악의 철창도 열어질걸세.

신화의 망루(望樓)도 무너질걸세.

마침내 그대는 화평(和平)으로

해방된다는 말일세.

 

제군(諸君)!

허(虛)란 실상 실유(實有) 그것일세.

어둠에서 빛으로

불에서 물로

진창에서 꽃밭으로

식료(食料)에서 변통(便痛)으로

바람에서 돌 속으로

사람에게서 짐승에게로

물고기에서 땅벌레에게로

죄수(罪囚)의 눈빛에서 간수(看守)의 눈빛으로

여왕(女王)에게서 걸인(乞人)에게로

시(詩)에서 과학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봄 여울에 눈 녹아 흐르듯 흐르며

또한 동양화의 여백(餘白)같이 본래(本來) 있어

생사(生死)와 명멸(明滅)을 낳고

시간과 공간을 채워서

남음이 없지.

 

그래서 허(虛)는 존재(存在)와 생성(生成)을

혼연(渾然)케 하고

운명과 자유를 병존(竝存)케 하며

모든 실존(實存)의 개가(凱歌)를 울려

저 허허(虛虛)한 창공(蒼空)을 스스로의 안에서

대응(對應)시키는 조화(造化) 속일세.

 

제군(諸君)! 그러나 이 경지는

막다른 심연(深淵)의 축복에서

드맑은 정상(頂上)에 이르른

생(生)의 화해(和解)된 인지(認知)라는 것을

납득(納得)해주게.

 

 

 

혼자 논다

구상

 

이웃집 소녀가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무렵

하루는 나를 보고

- 할아버지는 유명하다면서?

그러길래

- 유명이 무엇인데?

하였더니

- 몰라!

란다. 그래 나는

- 그거 안 좋은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올해 그 애는 여중 2학년이 되어서

교과서에 실린 내 시를 배우게 됐는데

자기가 그 작자를 잘 안다고 그랬단다.

- 그래서 뭐라고 그랬니?

하고 물었더니

- 그저 보통 할아버진데, 어찌보면

그 모습이 혼자 노는 소년 같아!

라고 했단다.

 

나는 그 대답이 너무 흐뭇해서

- 잘 했어! 고마워!

라고 칭찬을 해주고는

그날 종일이 유쾌했다.

 

 

 

홀로와 더불어

구상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화전민(火田民)의 꿈

구상

 

태양의 용광로(鎔鑛爐)가 엎질러 쏟아지는

밀림(密林) 속에다

김칫돌만 한 부시로

두꺼비 손을 깨면서

생불을 지른다.

 

충천(沖天)하는 불길!

삽시에 정글은 불바다다.

로스케나 양키같이

하늘로 치솟은 거목(巨木)들과

기름 가마에 절은 호인(胡人) 녀석의

아름드리 고목(古木)들과

지난 세월 광기(狂氣)의 의미도 모르는 채

남북(南北)의 군사(軍士)가 집총(執銃)을 하듯

빽빽히 늘어선 잡목(雜木)들과

현실의 증오(憎惡)와 적개심(敵愾心)으로

가시 돋친 덤불과

역사의 악순환(惡循環)으로 엉키고 설킨

인업(因業)의 칡덩굴들과

모든 권력(權力)의 숲과

모든 조직(組織)의 뿌리까지

그저 이 세기(世紀)의 사각일대(死角一帶)가

뇌성벽력(雷聲霹靂)을 내며

포탄(砲彈) 소리를 내며

송두리째 뒤집히며 불타오른다.

 

이 무주공산(無主空山)을 지배(支配)하여

제 혼자만의 세상처럼 으르렁대던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猛獸)들도

꽁지에 불을 달고 줄도망을 치며

진창 제 배만을 불리던

곰, 너구리, 멧돼지 족속(族屬)들은

참호(塹壕) 같은 불구덩이에 통째로 빠지고

뱀, 여우, 늑대, 살쾡이같이

간사한 무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해번득이면서

살 구멍을 찾아 요리 뛰고 저리 뛰고

올빼미, 박쥐 같은 날도둑들과

정보망(情報網)을 드린 거미들,

옴두꺼비, 땅두더쥐, 쥐새끼 같은

첩자(諜者)와 정탐(偵探)꾼들,

요쪽 저쪽 붙어먹던 무리들,

세상 제멋대로 지껄여대던

소음(騷音)의 새 떼들 둥주리까지

아니, 더러는 무죄(無罪)한 청개구리마저

탄다.

뻐드러진다.

질식(窒息)의 매연(媒煙) 속을 뛰며

곤두박질하며 뒹군다.

신음(呻吟)하고, 포효(咆哮)하고 비명(悲鳴)을 지른다.

낭자(狼藉)한 피마저 타들어간다.

지글지글 타들어 간다.

 

넘실거리는 불길의 파도(波濤)!

타오르는 불길의 산악(山嶽) 속에서

이 강토(疆土)와 겨레의

모든 주박(呪縛)이 스러지고

모든 속박(束縛)이 풀린다.

오오 타라, 타오르라.

한 달도 석 달도 타오르라.

그리고 모든 것이 연기와 재로 사라진 뒤,

피비린내 나는 음산(陰散)마저 가시고 난 뒤,

화장장(火葬場)의 고요와 산모(産母)의 해방감(解放感) 속에서

출현(出現)하는 신영토(新領土)!

상흔(傷痕)을 아물리는 새살처럼

강단(强斷)된 남북(南北)을 합쳐놓은 원야(原野)!

 

거기 노아와 방주(方舟)에서 갓 나온 듯한

사내와 계집들이

패랭이 고깔을 쓰고

징을 울리고 북을 두드리며

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치며

나아간다.

땅을 판다.

밭을 일군다.

씨를 뿌린다.

원혼(寃魂)과 선령(善靈)들의 귀기(鬼氣)마저

불살라버리고 난

이 크낙한 새 밭에

세기(世紀)의 아침을 맞아

새로 모실 이는

오직 자주(自主)와 근로(勤勞)와 화락(和樂)의 삼위일체(三位一體)다.

 

 

 

휴전선

구상

 

'파스칼'의 갈대만이

흰 머리와 흰 구렛나룻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휴전선!

 

 

 

4월

구상

 

어린 싹과 어린 순,

어린 잎과 어린 꽃들이

산과 들, 뜨락과 행길에서

일제히 푸른 불길을 뿜고 있다.

 

온 천지가 눈부시게 환하다.

따스하고 훈훈하다.

 

누가 이 달을 잔인하다고 탓하지?

너의 마음의 황폐를 계절에다 돌리지 말라!

눈 감고 어둡다고 하지들 말라.

 

4월은 자혜의 어머니,

풋 것과 어린 것들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