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육진 개척
알성과
세종대왕이 친히 시관이 되어 뽑은 장원급제 박팽년과 최항의 삼일유가는 장안에 크나큰 화제가 되고 구경거리가 되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사람 물결을 이루어 젊은 학사들의 신선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묘령의 처녀들은 감히 한길로 나오지는 못하고 발돋움을 해서 담 너머로 젊은 학사들의 훤칠하게 잘생긴 모습을 바라보고 넋을 잃었다.
두 학사는 삼일유가를 끝낸 후에 제각기 고향으로 내려가 사당에 뵙고 선조의 묘소를 찾아 소분을 했다. 온 고을이 떠들썩했다. 한 집안의 경사만이 아니었다. 한 고을의 영광이었다. 두 학사의 집은 일약 박한림댁, 최한림댁으로 불려졌다. 감사가 자비를 놓아 치하하러 감영에서 나오고, 군수가 육방관속들을 거느리고 문안차 찾았다. 글을 잘 배워서 과거를 본 후에 한 번 장원이 되기만 하면 이만큼 호강을 했던 세종 시대였다. 두 학사는 소분까지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온 후에 홍문관에 입직했다. 집현전의 정원은 열 사람뿐이므로 아직 홍문관에 적을 두게 한 것이다. 대왕은 두 학사를 얻은 후에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어서 어서 많은 영재를 구해서 국가의 문명을 드높이고 싶었다.
대제학 변계량을 명소했다.
"지난번 춘당대 친시에 박팽년과 최항 두 젊은이를 얻게 된 것은 국가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오. 또다시 과거령을 내려서 인재를 구해야겠는데, 어느 때쯤 과거를 보였으면 좋겠소?"
대제학이 아뢴다.
"원래 식년제 과거는 3년 만에 한 번씩 보이는 것이올시다. 지난번에 박팽년과 최항 두 학사를 뽑았으니, 이제 3년 후에나 과거령을 내리게 됩니다. 좀 더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년 동안을 어찌 기다린단 말인가. 그동안에 훌륭한 인재를 다 놓쳐버리지 않겠소?"
대왕은 젊은 어진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일각이 삼추인 듯 길고 길었다.
"나라에서 법을 정하기를 그리했습니다. 한 번 과거에 한두 사람의 훌륭한 인재가 나타났으므로 좋은 인재는 바닥이 났을 것으로 생각해서 3년마다 한 명씩 뽑는 식년제를 실시하게 된 것입니다."
대제학의 말을 듣자 세종대왕은 고개를 가로 흔드셨다.
"아무리 학문이 풍부한 실재라 하나 과거에는 운이 있는 거야. 병이 나서 과거에 참예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비록 과장에 들어왔다 하나, 시관의 눈에 띄지 못해서 낙방을 하는 수도 있거든. 3년마다 식년제로만 과거를 뵌다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이라 생각하오. 3년마다 뵈는 식년제는 그대로 두고 또다시 별도로 과거를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오."
대제학 변계량이 아뢴다.
"성의가 정 그러하시다면 3년마다 뵈는 과거는 그대로 두시고, 전하께서 수시로 과거령을 내리시어 선비들을 뽑으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내가 국가의 동량지재를 구하려는 마음은 마치 한여름 삼복중에 목마른 사람이 감로수를 생각하는 그 마음과 방불하오. 어서 어서 훌륭한 젊은이들을 구해서 이 나라를 태평성대로 만들어야 하겠소."
"감축한 말씀이올시다."
변계량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전하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한동안 생각하다가 이내 옥음을 내린다.
"수시로 과거를 본다면 법으로 정한 식년제 이외에 또다시 과거를 보게 한다는 뚜렷한 명분이 서야 하겠소. 이번에 만약 과거를 또 한 번 보게 한다면 춘당대에서 보게 하지 말고 과인이 성균관 대성전에 나가 공자의 위패에 알성한 후에 과거 이름을 '알성과'라 해서 인재를 뽑는 것이 어떠하겠소?"
수시로 전하가 성균관에 나가 대성전에 참배한 후에 유생들에게 과거를 보게 하고, 명분을 세워서 과거 이름을 '알성과'로 하자는 전하의 소명한 말씀을 듣자 대제학의 입은 벙긋벙긋 벌어졌다.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손을 모아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아뢴다.
"과연 명철하신 하교올시다. 이 말씀을 유림들이 듣는다면 얼마나들 감격하겠습니까. 넓고 크신 성덕을 춤추어 구가할 것입니다. 명명하신 알성과는 한 달에 한 번씩 보셔도 유생들은 모두 다 느긋해할 것입니다."
전하는 즉석에서 내시를 불러 예조판서 허조의 입시를 명했다. 예반이 급히 소명을 받고 어전에 입시했다. 세종대왕은 용안에 가득 웃음을 띠고 말씀한다.
"변대제학이나 허판서나 모두 다 이 나라의 크나큰 보필의 양상들이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은 사정없이 흘러서 경들은 벌써 원로의 경지에 이르렀다. 과인의 마음은 무척 아프다. 경들과 같은 후계자를 구해서 이 나라를 더욱 복되게 해야 할 텐데, 조정에 있는 인물은 제한되어 있어 그 수가 극히 적다. 새로운 인재를 많이 구해야 할 터인데 3년에 한 번씩 뵈는 과거로는 백년하청격이다. 어느 하가에 인재를 구할 수 있으랴. 대제학과 의논해서 3년마다 보이는 식년제 과거 이외에 수시로 과거 뵐 것을 생각해보았다. 역시 그리한다면 과거 뵈는 명분이 서야 할 것이다. 과인이 성균관에 참배한 후에 알성과라는 이름을 붙여서 곧 과거를 또 한 번 보이기로 했으니, 예조판서의 의향은 어떠한가?"
예조판서도 입이 함박만큼 열렸다. 모두 다 유가들이었다.
"다시 더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처분이올시다."
"그렇다면 곧 알성과를 시행하도록 하라."
예조판서와 대제학은 청명하고 물러났다. 박팽년, 최항 두 젊은 학사가 춘당대에서 장원급제를 하여 예문관 수찬, 부수찬이 된 지 얼마 아니 되어 나라에서는 또다시 알성과의 과거령을 내렸다. 알성과는 세종전하가 이 나라에 처음 실시한 과거다. 공자의 인의사상과 그의 생활철학을 존숭해서 문묘인 대성전에 세종전하가 친히 참배한 후에 명륜당에 임어하여 유생들의 준총을 시험 보아 뽑기로 한 것이다. 문묘의 별칭은 반궁이라고도 했다. 동북으로 담을 쌓고 서남편에 내가 흐르므로 개울물을 반수라 하고 반수 위에 궁전을 지었다 해서 반궁이라 한 것이다. 중국 옛글에도 나타나 있다. 세종전하가 성균관에서 처음으로 알성과를 보인다 하니 유생들의 기쁨은 절정에 올랐다. 해동에 나타난 성군이란 칭송이 팔도 유림에 자자했다. 궁중에서 과거를 보이지 아니하고 전하가 성균관인 문묘까지 나와서 공자의 사당에 알현한 후에 나라의 영재를 선발하는 시험을 보게 하니 공자의 인과 의를 바탕으로하여 학문을 연수하는 유생들에게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팔도 유림에서는 알성과를 보러 오는 선비들이 다시 구름 뫼듯 성균관으로 모여들었다.
과거 날이 되자 세종대왕은 대제학과 예조판서와 모든 시관들을 거느리고 경복궁에서 문묘로 향했다. 임금이건만 대성전 앞까지 연을 타고 들어가지 못했다. 대성문 앞 주연대서 연에서 내려 대성문 2층 디딤돌을 밟고 대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붉은 옷에 검은 건을 쓴 수복이는 대성전 만전창문을 활짝 열고 전하가 듭시기를 기다렸다. 전하는 면류관 곤룡포를 보석을 밟고 대성전으로 올랐다. 전하는 지성선사 문선왕의 위패를 향하여 향을 사른 후에 네 번 절하여 알현을 했다. 모든 시신들은 전 밖에서 금관조복과 사모품대로 전하의 절하는 대로 배례를 드렸다. 이때 풍악은 자지러지고 향연은 전 안에 가득했다. 전하는 배례를 마친 후에 천천히 옥보를 옮겨 일각 문밖으로 나갔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지가 천 줄기 만 줄기 푸른 잎으로 윤기를 뿜는 명륜당 뜰 앞 금잔디 밭에는 팔도에서 모여든 유생들의 천막이 질서정연하게 벌여 있었다. 유생들은 전하의 임어를 바라뵙자 천호만세를 불러 성주를 맞이했다. 전하는 미소를 지어 환호하는 만세 소리에 답례를 하며 성균관 대사성의 인도롤 명륜당에 올랐다.
이번에도 전하는 즉석에서 과제를 냈다. 과제는 쉽고도 어려웠다. 성균관 사성이 어명을 받들어 과제를 크게 써서 내걸었다.
'명륜이란 무엇인가? 뜻을 밝히라.'
역시 이번에도 과거 보는 시험문제를 누설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하는 명륜당에 오르자 즉흥적으로 이같은 글귀를 내었다.
"너희들은 항상 명륜당을 바라보면서 경학 풀이로 입씨름만 하고 있으나 실지로 인간의 가지가지 윤리를 어떻게 밝혀야 하는가? 그 실천방도를 논술하라."
너희들은 밤낮 명륜당을 바라보면서 경학 풀이로만 입씨름을 하고 있지만 실지로 인간의 가지가지 윤리를 어떻게 밝혀야 하겠는가? 그 실천방도를 논술하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시관들은 시험문제를 까맣게 몰랐다. 과연 쉽고도 어려운 과제다. 대제학과 부제학들도 이 문제를 바라보자 혀를 둘렀다. 수많은 유생들도 모두 다 붓방아를 찧었다.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망건편자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솟았다. 이 중에서 몇 사람만은 글제를 바라보자 신명이 났다. 시지를 펼쳐 놓고 일필휘지로 글을 지었다. 해가 너윗너윗 서산으로 기울어질 무렵 파장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선비들은 분주하게 명륜당 앞 시관석에 시권을 바쳤다. 춘당대 과장에서 하듯 시관들은 주필을 들어 등급을 매기기 시작했다. 가상지상으로만 뽑아서 전하 앞에 올렸다. 전하는 가상지상 중에서 다시 몇 개 글을 뽑았다. 이번 알성과의 성적은 지난번 춘당대 성적보다도 좋았다. 1등 2등을 구별하기 어려운 글들이 많았다. 전하는 그중에서 다섯 장을 뽑았다. 다섯 장이 모두 다 훌륭한 술책이었다. 전하는 대제학 변계량과 부제학에게 말씀을 내렸다.
"이 다섯 장 시지의 논술은 모두 다 훌륭하다. 어느 하나를 버릴 길이 없다. 경들은 한 번 다시 살펴보라."
두 사람은 전하의 하교를 받자 다시 한번 살폈다. 역시 전하의 보신 눈이 틀림이 없었다.
"다섯 시지가 모두 다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알성과는 다섯 사람의 장원을 뽑으라!"
"법에는 장원급제로 두 사람을 뽑기로 했습니다."
"법이란 사람이 만든 것이니 고쳐도 좋지 아니한가? 그리고 알성과는 새로 만들었으니 놓치지 말고 다섯 사람을 다 뽑으라!"
부제학은 세종대왕이 임어한 어전에서 시지 끝에 봉해놓은 장원급제 다섯 명의 이름을 뜯기 시작했다. 모든 시관의 눈이 부제학이 뜯는 시지로 집중되었다. 다섯 개 시지 중에서 한 장을 뜯었다. 부제학이 읽는다.
"이개, 본관은 한산, 부는 계주!"
세종대왕은 눈을 감고 조용히 들었다. 다음 사지 끝을 뜯었다.
"성삼문, 본관은 창녕, 부는 승!"
세종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부제학은 또다시 한 장을 뜯는다.
"신숙주. 본관은 고령, 부는 장!"
세종은 눈을 번쩍 뜨셨다.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라!"
"신숙주올시다. 신장의 아들이올시다."
세종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부제학은 또 다음을 뜯었다.
"하위지. 본관 단계, 부는 담!"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제학은 또 다음 시지 끝을 뜯었다.
"유성원. 본관 문화, 부 사근!"
전하의 용안에는 기쁜 빛이 가득했다.
"급제 다섯 사람의 이름이 다 나타났구나! 그렇다면 이름을 발표하고 급제들을 과인의 앞으로 부르라!"
어명이 떨어지니 사성은 소리를 높여 세 번 방을 불렀다.
"이개!"
"성삼문!"
"신숙주!"
"하위지!"
"유성원!"
다섯 사람의 대답하는 소리가 차례차례 일어났다. 과장에 가득히 모여서 응시했던 유생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는 일제히 대답하고 장막 밖으로 나서는 다섯 사람에게로 모여들었다. 창방이 끝난 후에 전하는 도승지에게 분부를 내린다.
"다섯 사람의 장원급제에게 벼슬을 주라. 모두 다 부교리 직책을 제수하라!"
도승지는 붓을 들어 다섯 벌 홍패에 성명과 직위를 썼다. 내관이 준비했던 모대와 흉배 다섯 벌얼 받들고 앞에 나가고, 도승지는 홍패를 받들어 뒤에 따랐다. 다섯 사람의 장원급제들은 제각기 자기 처소에서 도승지와 내관을 맞이했다. 유생의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풍악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속에 다섯 명의 급제는 도승지와 내관의 인도로 천천히 명륜당으로 올랐다. 과장 안에 가득하게 모여 있는 유생들은 임관이 되어 명륜당으로 오르는 다섯 학사들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전하는 이번 알성과에서 다섯 사람이나 되는 젊은 인재를 얻은 것이 무한 기뻤다. 용안에 흐뭇한 웃음을 띠고 명륜당으로 오르는 새 장원들을 굽어보신다. 모두 다 훤칠하게 잘생긴 깎은 서방님들이었다. 이개의 얼굴은 갸름하고 말쑥하고, 성삼문은 준수하면서 동탕했다. 신숙주는 색깔이 희고 눈에는 총기가 또렷또렷 서렸다. 하위지는 약간 거무튀튀한데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어 보이고, 유성원은 너부죽한 얼굴이 점잖고 의젓해 보였다.
다섯 장원들은 차례차례로 어전에 숙배를 드렸다. 전하는 내시가 올리는 어사화 가지를 이개의 사모에 꽂아주고 말씀을 내린다.
"네가 이개냐?"
"네, 그러합니다."
"너의 아버지가 계주라지?"
"네, 그렇습니다."
"목은 선생의 후예로구나!"
"그렇습니다."
이개는 또렷이 대답했다.
"목은 선생은 태조대왕께서 존경하셨던 옛 친구셨지! 너의 선조의 높으신 고절을 생각해서 나라에 크나큰 동량이 되게 하라."
이개의 초롱초롱한 맑은 눈매에 눈물이 글썽했다. 선조를 추모하는 눈물이었다.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전하는 성삼문을 바라보신다.
"네 아버지가 총관 성승이냐?"
"네, 그러합니다."
"제 아버지는 호반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어찌해서 너는 문과에 장원급제를 했느냐. 장한 일이로다."
성삼문은 주저치 아니하고 또렷하게 대답한다.
"장한 일 될 것은 없습니다. 문도 있고 무도 있어야 그 국가가 잘됩니다. 대대로 무만 숭상해도 아니되고, 문만 숭상해도 아니 됩니다. 태조대왕 전하와 상왕정하는 무로써 건국을 하셨고 전하께서는 문치로 국가를 빛내려 하시니 소신도 전하를 보필하여 성대의 조그마한 일꾼이 되려 하와 글을 배웠습니다."
성삼문의 대답은 유창하면서 뼈가 있었다. 전하는 마음속으로 기뻤다. 장차 큰 그릇이 될 인물이라 생각했다.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이 유연히 일어났다.
"네 이름을 어찌해서 삼문이라 지었느냐?"
"이름은 소인이 진 것이 아닙니다. 아비와 어미가 지었습니다. 어려서는 까닭을 몰랐습니다마는 장성한 후에 어미한테 듣자오니, 소신이 거적 자리에 떨어지려 할 때 공중에서 '어린이가 나왔느냐?'하고 세 번을 묻는 소리가 있은 후에 비로소 소신을 낳았다 합니다. 그리하와 아비는 제 이름을 삼문이라 지었다 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깃거리올시다. 성상께서 하문하실 일이 아니올시다."
전하는 삼문의 말을 듣자 더한층 마음으로 삼문을 사랑했다.
"네 이름은 삼문이라 하려니와 너의 자는 무어라 하느냐?
"근보라 합니다."
전하는 다시 성삼문에게 하문한다.
"어찌해서 근보라 했느냐?"
묘소년인 성삼문은 동탕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아뢴다.
"근보라는 자는 소신이 스스로 저의 처신하는 행동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었습니다."
"어떻게 행동을 경계하느라고?"
전하도 미소를 풍기시며 하문하셨다.
"소신의 이름을 아비와 어미가 삼문이라 지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소신이 생산될 때 공중에서 신인이 아이가 탄생되었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어본 후에 소신이 나왔다 해서 삼문이라 지어주었다 합니다. 황공한 말씀이오나 사람이란 쓸데없는 이러한 하치 아니한 전설을 믿게 된다면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방자하기 십상팔구올시다. 그리하와 어미가 지어준 이름을 고칠 수도 없고, 소신의 마음과 행동을 항상 경계해서 모든 일을 삼가서 행동하자고 자경하는 마음으로 근보라 했습니다."
세종전하는 삼문의 아뢰는 말씀을 듣자, 다시 한번 성삼문의 영민한 모습을 유심해서 바라보셨다. 어수로 어사화 한 가지를 친히 잡아 성삼문의 머리에 꽂아주시며 말씀을 내린다.
"앞으로 집현전에 나가서 많이 공부하도록 하라. 과인의 자문에도 응하려니와 세자의 학문을 연마하는 데 반려가 되기도 해라!"
성삼문은 황공 감격했다. 숙배를 드리고 어전에서 물러나려 한다. 대왕 전하는 다시 손짓해 삼문을 부르셨다.
"네 나이, 내 셋째 아들 '용'과 동갑이로구나! 안평도 글씨를 제법 쓴다. 잘 사귀어두라!"
성삼문은 더한층 황감한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뒷걸음을 치어 어전에서 물러난다. 성삼문이 물러간 후에 전하는 성균관 대사성을 돌아본다.
"다음번 장원이 누구냐?"
"여기 대령해 있사옵니다. 신숙주올시다."
"오, 신숙주. 신장의 아들이로구나. 이리 가까이 오너라!"
셋째 번 장원 신숙주가 호리호리한 키와 해사한 얼굴로 어전에 숙배를 드렸다.맑은 눈에 까만 동자가 반짝반짝 총기를 뿜었다. 전하는 한동안 신숙주의 얼굴과 의표를 바라보신다. 용안에는 반가운 빛이 현연하게 돌았다.
"네가 신장의 아들이냐?"
"네, 그러합니다."
"너의 아버지는 글도 잘하고 글씨도 명필로 이름이 높은 사람인데 네가 또 장원급제를 했으니 가상한 일이다. 옛말에 용생룡 봉생봉이라 하더니, 헛말이 아니로구나!"
신숙주는 황공했다. 감히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었다. 전하는 다시 신숙주를 향하여 한 말씀을 내린다.
"더한층 의로운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너의 아비의 아름다운 이름을 더럽히지 말게 하라!"
신숙주는,
"네!"
하고 대답했다.
전하는 내시가 받들고 섰는 어사화 한 가지를 받아서, 신숙주의 사모 쓴 머리에 꽂아주셨다. 신숙주가 사은숙배를 드리고 물러났다. 전하는 다시 앞에 서 있는 급제들을 바라보며 묻는다.
"다음은 누구냐?"
"하위지올시다."
대제학이 아뢴다. 하위지가 부복해 절을 올렸다. 약간 거무튀튀한 얼굴에 코가 우뚝 서서 고집이 있어 뵈었다.
"네가 하위지냐?"
"네, 그러합니다."
"경상도 진주 태생이로구나."
"네, 그러합니다."
"너의 아버지는 누구냐?"
"과거는 했습니다마는 권문세가가 되지 못한 하향 선비라서 겨우 종부소윤을 지낸 하담이올시다."
하위지는 두려움 없이 꿋꿋하게 대답했다. 옆에 시측해 있던 내시가 당황했다. 하위지를 향하여 '쉬---' 하고 가만히 소리쳤다.
전하는,
"조용해라!"
내시를 꾸짖었다.
하위지는 눈동자를 곧게하여 내시를 똑바로 바라본다. 대제학, 부제학들도 황황망망해서 어찌할지를 모른다. 전하는 하위지를 향하여 말씀을 내린다.
"나는 아직 네 아비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마는 너의 아비는 과연 행복스런 사람이다. 너 같은 아들을 두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하위지는 아직도 격분했다. 손을 들어 내시를 가리키면서 전하께 아뢴다.
"전하께서는 소신에게 이미 부교리의 직분을 내리셨으니 감히 신자의 도리로 아뢰옵니다. 전하께서는 저 같은 간특한 인의 장막의 무리를 측근에서 제거시키시옵소서. 신하가 사실대로 바르게 아뢰는데 요망한 내시가 제 어찌 감히 어전에서 바른말을 아뢰지 말라고 '쉬---' 소리를 칩니까. 방자하기 짝이 없습니다. 죄당만사올시다. 만 번 죽여 마땅합니다. 권문세가가 아닌 하향 선비들은 과거에 뽑히지도 못하고, 설혹 만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뽑혔다 해도 밤낮 당하관으로 돌아다니다가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오늘날 이 나라의 실정이올시다. 전하께서 아비의 직분을 하문하시기에 감히 소신이 바른 대로 대답한 것뿐이온데 제 어찌 감히 어전에서 방자하게 '쉬---' 소리를 칩니까. 소신보고 전하께 바른 말씀을 아뢰지 말라는 군호올시다. 앞으로 저런 무리들이 가로막고 전하께 바른 말씀을 못 하게 한다면 이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소년 학사 하위지는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아뢴다. 하위지에게 지탄을 받은 어전 내시는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고, 시측해 섰는 예조판서, 대제학, 부제학, 대사성들은 등에 진땀이 흘렀다. 겨우 이제 장원급제를 하여 새로 어사화를 받고, 사은숙배를 드리는 이 마당에 도도 수백 마디의 강직한 말씀을 아뢰는 하위지의 언동은 과연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모두 다 떨지 아니할 수 없었다. 세종전하는 하위지의 강직한 말이 끝나자 옥음을 높여 껄껄 웃으며 말씀을
내린다.
"과인이 오늘 복이 많아 너 같은 훌륭한 사람을 장원으로 뽑았구나! 앞으로 뜻을 굽히지 말고 조정 신하들의 잘못 처리하는 일을 기탄없이 충고해서 과인으로 하여금 밝은 인군이 되게 하라!"
전하는 말씀을 마치자 어사화를 하위지의 머리에 꽂아주셨다. 하위지는 공손히 숙배를 드린 후에 조용히 아뢴다.
"어전에서 너무나 무엄하게 바른 말씀을 올려서 성심을 번거롭게 했으니 죄당만사올시다."
세종전하는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과인이 오늘 친시로 알성과를 보아, 너희들 다섯 사람을 뽑은 것은 국가를 위하여 바른말 하는 동량의 재목을 얻기 위하여 문묘에 배알하고 너희들을 뽑은 것이다. 이제 너의 바른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흐뭇하다. 너희들은 다 나를 위하여 직언을 해서 나라를 복되게 하라."
이내 죄우 시신을 둘러보고 말씀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조정의 실정은 가벌과 문벌만을 숭상하는 폐단이 너무나 많다. 공신의 아들과 손자라야 출세할 수 있고, 대신의 아들과 손자라야만 수령방백으로 나가게 된다. 인물 본위로 등용하지 아니하고, 혈족과 낭당만을 쓰게 되니 인재가 나올 리 만무하다. 모든 조관들은 새 학사 하위지의 말을 유념해서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라!"
모든 신하들은 국궁하고 전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전하의 어진 마음은 바다같이 넓었다. 일개 새물 청어 같은 학사 하위지의 곧은 말을 구김살 없이 얼른 받아들이는 전하의 큰 도량에 새 학사 하위지의 눈에는 감읍하는 눈물방울이 단령 옷깃으로 뚝뚝 떨어졌다. 전하는 다시 대제학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내린다.
"또 한 사람의 장원이 있지 아니하냐?"
"예, 대기하고 있습니다. 유성원이올시다."
"이리 가까이 데려오라."
성균관 대사성이 유성원을 어전에 인도했다. 유성원이 어전에 나와 숙배를 드렸다. 다섯 장원 중에 그중 나이가 들어 보였다. 용모가 전아하고 걸음걸이가 장중했다. 나이가 젊은 데 비하여 유가의 풍도가 짙었다. 전하는 한동안 유성원의 절하는 모습과 걸음걸이를 바라보신다. 역시 글도 잘하거니와 예의범절도 법도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전하는 미소를 풍기며 하문한다.
"네가 유성원이냐?"
"네, 그러합니다."
"제법 유가의 풍도가 있구나. 네 아비의 이름을 무어라 하느냐?"
"사자 근자 올시다."
"오오, 장령 유사근의 아들이로구나. 어쩐지 네 행동이 숙성하고 의젓하구나. 역시 집안의 가풍이란 대단한 것이다. 네 아비가 벼슬은 비록 정사품밖에 아니되는 사헌부 장령이지만 목이 곧고 강직한 말을 잘 해서 헌부에서는 '호랑이'란 별명을 듣는 사람이다. 앞으로 더욱 학문과 덕행을 닦아서 네 아비와 함께 과인을 도와 달라!"
전하는 말씀을 마치자 어사화 가지를 집어 유성원의 머리에 꽂아주셨다. 유성원은 숙배를 드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다섯 사람의 새 학사들은 어사화를 꽂고 어전에 시립했다. 전하가 보기에 귀엽기도 하고 근감했다. 전하의 용안엔 미소가 떠날 새가 없었다. 예조판서와 대제학 이하 모든 시신을 둘러보시며 말씀을 내린다.
"과인은 오늘같이 기쁜 날이 없다. 지난번 춘당대 친시 때는 겨우 박팽년, 최항 두 사람을 뽑았는데 이제 문묘에 참배하고 알성과를 뵌 오늘은 다섯 사람이나 되는 천하의 영재들을 얻었으니 내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모두 다 선성이 과인에게 복을 내려 동량의 재목을 구해주신 것이다. 특별히 다섯 새 학사를 거느리고 다시 대성전에 올라 두굿기는 마음으로 고별인사를 드리고 환궁하리라!"
대제학과 대사성이 일시에 아뢴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대사성은 전하의 뜻을 사성에게 전하고, 사성은 급히 수복을 불러 대성전 문을 다시 열게 했다. 전하가 알성과를 보이기 전에 대성전에 올라 문선왕의 위패에 전배하고, 또다시 과거를 마친 후에 새로 뽑은 다섯 학사를 거느리고 문묘에 고별인사를 드리는 일은 전무한 일이었다. 시신 이하 성균관 재생들은 선성을 예우하는 전하의 지극한 성심에 크나큰 감격을 느꼈다. 사기가 으쓱 문묘 안에 가득히 솟구쳤다. 대성전 문은 또다시 수복의 손으로 활짝 열렸다. 전하는 어사화 꽂은 다섯 사람의 새 학사를 거느리고 명륜당에서 천천히 내려 싱싱하게 푸른 윤기를 벽공에 드날리는 은행나무 사이로 옥보를 옮겨 대성전으로 올랐다. 향연이 그윽한 속에 전하는 다섯 학사와 함께 경건하게 사배를 올렸다. 전하의 가슴엔 어서 어서 이 나라를 평화롭고 복된 국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구름 일 듯 일었다.
태종도 빈손 들고 가네
세종대왕이 대마도를 평정하고 내치에 힘을 써서 집현전을 창설하고 젊은 학사들을 뽑아 한창 나라의 문명을 지향하려 할 때 일대의 영걸이요, 권욕의 화신인 상왕 태종을 호색이 빌미가 되어 병들어 위독했다. 과부를 새로 얻어 천달방 신궁을 짓고 수강궁에서 나와 동거하다가 돌연 병이 들어 위독했다. 때는 세종 4년 5월 2일의 일이었다. 세종전하는 당황했다. 친히 약을 달여 시탕하고 명산대찰에 불공을 해서 재를 올리는 한편, 옥문을 크게 열고 일급 이하의 죄수들을 석방했다. 그러나 약도 효험이 없고 불공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5월 10일 눈을 감았다. 춘추가 겨우 56세!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권세와 욕심의 육신이건만, 결국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 정권을 뺏기 위하여 고려의 우왕과 공양을 죽였다. 고려의 충신인 최영 장군과 포은 정몽주 선생을 죽였다. 도은 이숭인을 죽이고, 목은 이색이 여주로 가는 길에 소주에 독약을 타서 전송하는 술을 내려 연자탄 배 속에서 죽게 했다. 뿐인가. 목은의 두 아들은 목은보다 먼저 옥사를 했다. 두문동 칠십이인을 불 질러 죽였고, 고려 왕씨의 일족을 바닷속에 던져버렸다. 여기까지는 역성의 혁명이라 해서 잠깐 붓을 거두어도 좋다. 그러나 집안싸움은 너무도 잔인하고 무도했다. 왕권을 뺏기 위해서 아우인 세자 방석을 죽이고 방번을 죽였다. 또다시 방간과 칼을 겨누어 조카를 죽였다. 아버지 태조와는 원수가 되어 함흥차사의 일이 벌어지면서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 부자가 칼을 겨누는 비극을 이루었다. 여기까지도 또다시 왕권의 쟁탈이라 해서 잠시 붓대를 멈추어 본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조강지처였던 내조의 공이 큰 민비를 질투가 심하다 하여 내치려 했고, 정국공신이었던 그의 처남들을 모조리 죽여서 처가를 멸문해버렸다. 이로 인하여 반항과 자학으로 떨어진 양녕을 폐위시켜버렸다. 뿐만인가. 세종이 즉위한 후에도 부원군이요 영의정인 심돈을 군사권 문제로 심씨 일문을 도륙했다. 기막히도록 잔인한 권욕의 화신이었다. 천하의 짝을 구할 수 없는 독주자요 독재자였다. 이러한 극한성을 지닌 아버지 밑에서 성주 세종이 탄생한 것은 왕조 초기의 흉포한 천 길 파도를 잔잔한 맑은 하수로 가라앉게 한 갸륵한 위업이라 할 것이다.
태종은 권욕의 화신일 뿐 아니라 정력도 절륜했다. 왕후 민씨 이외에 효빈 김씨, 신빈 신씨, 궁녀 안씨, 숙의 최씨, 선빈 안씨, 의빈 권씨, 궁녀 이씨들의 몸에서 12남 17녀, 모두 29남매를 생산했다. 그리고 또 부족한 생각이 들었다. 젊은 청상 과부 조씨와 이씨를 맞이해서 천달방에 새 집을 짓고 수강궁에서 나가 있다가 돌연 발병이 되어 칠, 팔 일 만에 모든 탐욕을 다 털어버리고 공수래 공수거로 허허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태종은 재위한 지 18년이요, 세종께 왕위를 전한 후에 상왕의 위에 있은 지 4년 만에 세상을 버렸다. 태종이 이 나라에 크게 찬양할 만한 업적을 남긴 것은 3년 계미에 주자소를 대궐 안에 설치해서 구리로 활자 10만 자를 만들었다. 이리하여 목판본 이외에 모든 서책을 자유자재로 조판하여, 오늘날 활자 인쇄의 시초가 되게 하였으니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큰일을 한 것이다.
세종은 돌연 상왕의 승하를 당하자 애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발 벗고 머리 풀어 백관을 거느려 거애한 후에 모든 상제를 옛법에 의거해서 거행했다. 소렴에 쓴 수의가 19벌이요, 대렴에 쓴 수의가 90벌이었다. 재궁을 오랫동안 천달방 신궁에 모실 수 없었다. 전하는 재궁을 받들어, 상왕이 평소에 거처하던 수강궁으로 옮겨 빈소를 정했다. 세종은 빈전 옆에 여막을 정하고 조석전과 상식전이며 삭망제를 친히 거행했다. 왕의 장사는 다섯 달 만에 지내는 것이다. 빈전도감, 산릉도감, 국장도감을 정하고 영의정 유정현으로 산릉사, 신임 좌의정 이원으로 총호사를 삼고, 신임 우의정 정탁으로 국장도감 도제조를 제수했다. 이때 좌의정 박은은 태종이 돌아가기 하루 전날 세상을 떠난 때문이다. 태종의 저승길 치도를 하러 먼저 떠난 것 같다. 태종을 장사지낼 산릉은 광주로 정하고 능 이름을 헌능이라 했다. 궁중에는 아직도 고려 때와 신라 때 풍속이 의연히 남아 있었다. 승려들은 빈전 뜰 아래서 범패를 불러 독경과 염불을 하고, 고승들은 궁녀를 상대로 하여 법석을 펴고 설법을 했다. 태종의 후궁이었던 의빈 권씨와 신녕궁주 신씨는 삼단 같은 검은 머리를 잘라 중이 되었다. 효령대군도 빈전 앞에 엎드려 불경을 썼다. 모든 후궁들은 두 사람의 후궁이 머리를 깎아 중이 되는 것을 보고 다투어가며 머리를 깎았다. 상왕과의 옛정을 생각해서 그의 명복을 빌면서 모두 다 중이 되는 것이다. 이 소식은 여막에 거처하는 전하의 귀로 들어갔다. 전하는 애통한 중에도 제조상궁을 불렀다.
"대행 상왕 전하의 후궁들이 머리를 깎아 중이 되고 빈전 아래서 승려들이 범패를 불러 법석들을 차린다 하니 유도를 국시로 하는 아조에서 맞지 않는 일이다. 후궁들과 승려에게 알려서 금지하게 하라!"
상궁은 전하의 뜻을 받들어 후궁들에게 전했다. 후궁들은 아무리 전하의 엄명이라 해도 듣지 아니했다.
"대행 상왕 전하께오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평생에 전하를 모시었던 후궁 우리들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고 아프지 아니하리오. 죽지 못해서 중이 되는 것이니 이 사정을 아뢰오!"
전하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한편 상왕의 부음은 광주에서 이천으로 거처를 옮긴 앙녕대군한테 전해졌다. 양녕은 멀리 서울로 향하여 망곡하고 발상했다. 베두건을 쓰고 베중단을 입었다. 그러나 서울로 들어가 대행 상왕 빈전에 전을 드린다는 분부가 없었다. 전이란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에 아들과 딸들이며 가까운 친구들이 제수를 차려서 술 한잔을 따라 올리고 영결의 정을 표하는 이 나라의 풍속이었다. 양녕은 폐세자가 되어 일단 서울에서 쫓겨나 갖은 풍상을 다 겪었다. 그러나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형님인 양녕을 생각해서 상왕한테 간곡하게 고해서 서울로 불러들이려 했다. 그러나 대신 박은 이하 여러 신하들은 한번 내친 양녕을 성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우겨댔다. 그리하여 태종과 전하는 성문밖 낙천정에서 몇 차례 만난 일이 있었다. 이리해서 태종과 양녕 사이는 겉으로 적이 화기가 도는 듯했다. 그 후부터 양녕은 추방되었던 광주에서 왕명으로 이천에 집을 짓고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양녕이 발상거애를 해서 상복을 입은 후에 서울 대궐 안 빈전으로 들어가 전을 드린다는 말이 없으니, 한평생 고락을 같이하고 앞에서 일을 보살피고 있는 명보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명보 뿐만이 아니었다. 양녕이 폐세자가 되어 광주로 나갈 때부터 양녕의 인품을 숭배해서 항상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호위하고 있던 장사패들도 명보와 매한가지로 궁금하게 생각했다. 명보와 장사패들은 양녕의 침실로 향했다.
"아뢰옵니다. 이번 상왕 전하께서 빈천하시니 망극하온 말씀 아뢸 길 없습나다. 연하옵고 서울 빈전에 듭시어 전드리신다는 분부가 아직 아니 계시오니 궁금하와 감히 아뢰옵니다. 만약 전을 드리신다면 준비를 해야겠사옵니다."
양녕은 한숨을 짓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예라는 것은 정에서 우러나서 예를 차리는 것이다. 나는 대행 상왕 전하의 상복을 입었으니 상왕 전하에 대하여 예절은 다한 것이다."
"그래도 전을 드리셔야 합니다. 저희들도 섭섭하게 생각됩니다."
"도대체 나는 가선과 가식은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기 싫어할 뿐 아니라 절대로 아니한다. 똑똑히 상제 노릇도 못 하고 쫓겨올 텐데 전은 드려 무엇하느냐!"
양녕은 정색하고 잘라 말했다. 명보가 다시 고한다.
"상왕께서는 생전에 모든 일을 많이 뉘우치신 듯하셨습니다. 낙천정에서도 여러 차례 대군마마를 부르시어 술회를 하시면서 당신의 허물을 말씀하셨다 하지 않습니까. 이미 승하하신 분에게 원망이 계신다면 불가한 줄로 아뢰오."
명보는 정색을 하고 고했다.
"보아라. 그러기에 나는 지금 아버지의 상복을 입고 있지 않느냐. 만약에 대행 상왕께서 낙천정에서 뉘우치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는 지금 거상옷도 아니 입었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예는 정에서 나오는 법이다. 공연히 더 묻지 말라! 나는 다만 아버지의 거상을 입을 뿐이다. 자식이 된 도리로 상복을 정성껏 입는 것이다!"
양녕은 거침없이 말했다. 경위가 또렷이 밝았다. 명보와 장사패들은 다시 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양녕 앞에서 물러나 서로들 면면이 마주 보며 말없이 혀를 둘렀다.
그럭저럭 다섯 달이 지났다. 서울에서는 성대한 국장이 진행되고 산릉에 안장하는 인산까지 치렀다. 그러나 양녕은 이천에서 거처하면서 상복을 입고 여막에 들어앉았다. 근신하면서 글씨로 세월을 흘렸다. 인산이 끝나고 빈전은 혼전으로 바뀌었다. 아침저녁의 조석상식과 초하루 보름의 삭망제가 진행되었다.
어느 날 세종대왕은 효령과 모든 왕제들과 함께 혼전에서 삭망제를 지내다가 양녕의 생각이 불현듯 났다. 제사를 끝낸 후에 대왕은 연침으로 돌아가 내관을 불렀다.
"요사이 혹시 양녕대군의 소식을 들었느냐?"
내시는 양녕의 소식을 알 까닭이 없었다.
"황공한 말씀이오나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행 상왕마마의 국상을 모시느라고 황황망망하와 소식을 알아볼 틈이 없었습니다."
대왕은 모든 형제가 다 삭망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오직 양녕만이 폐세자라 해서 부모의 삭망제에도 참례치 못하고 있는 것을 민망하게 생각했다. 대왕은 홀연 지나간 어마마마 국상 때 양녕대군이 서울로 들어와 빈전에 전을 드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양녕은 폐세자라 해서 몸은 올 수 없었다. 대신 사람을 보내어 전이나 드리겠다고 국장도감한테 전갈을 했다. 양녕대군의 전갈을 받은 국장도감에서는 물론이 분분했다.
"쫓겨난 폐세자가 어찌 전을 드린단 말이오. 불가하오."
"폐세자라 하더라도 아들이 아닌가? 몸소 대궐 안으로 들어와서 빈전에 뵐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전만은 올리도록 하는 것이 인정상 좋지 않습니까?"
"안될 말이지. 죄를 짓고 쫓겨난 아들이 어찌 전을 드릴 수 있소!"
당시의 좌의정은 강경하게 전도 못 드린다고 반대했다. 도감 제조는 처리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전하께 아뢰었다. 세종대왕은 특명을 내렸다.
"말이 아니 된다. 폐세자라도 아들은 아들이다. 더구나 양녕대군은 왕통을 잇지 아니하셨다 하나 장자시다. 아들이 어찌 어마마마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약주 한 잔을 못 부어 올린단 말이냐. 전을 대행할 것이 아니라 친히 입궐해서 전을 드리고 나가시도록 해라!"
대왕의 말씀은 바다같이 넓었다. 이리해서 양녕은 폐세자이면서 친히 제수를 받들고 빈전으로 들어가 어마마마의 임종은 못 했을망정, 한평생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두둔해주었던 어머니 신체 앞에서 일장통곡을 하고, 다시 이천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상왕의 국상 때는 양녕이 전을 드린다는 기억이 나지 아니했다. 세종은 다시 내관에게 묻는다.
"이번 국상 때 양녕대군께서 빈전이나 혼전에 전을 드리신 일이 있느냐? 몸소 오시지는 못했더라도---."
내시는 황망했다. 창졸간 생각이 나지 아니했다.
"황공하오나 소인이 맡은 직책이 아니오라 기억이 나지 아니합니다. 다만 대군께서 궁중에 맘대로 들어오지 못하시므로 모든 절차에 참례치 못하신 것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혼전도감 제조를 들라 해라."
내시는 혼전도감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혼전도감 제조가 어전에 부복했다.
"경에게 물어볼 일이 있다. 이번 국상 때 양녕대군께서 전을 드리신 일이 있는지 기록을 살펴보라."
제조가 아뢴다.
"양녕대군께서 대행 상왕비 때는 친히 빈전에 드시어 전을 드리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행 상왕 전하 때는 전을 드리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기록을 살펴보고 아뢰겠습니다."
도감 제조는 신중한 태도로 아뢴 후에 도감에 나가서 왕자공손이며 모든 종척들이 전 드린 기록부를 살폈다. 모든 대군을 위시하여 공주와 부마들과 종척들이 전 드린 기록은 있었으나 양녕이 전을 드렸다는 기록은 없었다. 도감 제조는 곧 대왕께 아뢰었다.
"여러 왕자와 공주, 부마의 전 드린 기록은 있습니다마는 양녕대군께서 전을 드리신 일은 없습니다."
"알겠다. 물러가라."
대왕은 머리를 끄덕였다. 혼전도감이 물러간 후에 대왕은 혼자 눈을 감고 깊은 생각 속에 빠졌다. 양녕을 극진히 아끼고 존경하는 때문이었다. 얼마 후에 대왕은 별감을 불렀다.
"너는 별감 옷을 벗은 후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이천으로 내려가서 양녕대군께서 요사이 어찌 지내시나 알아보고 오너라. 그리고 이번 국상 때 전을 드렸다는 말이 없다. 가는 길에 전 드리지 아니한 이유도 수소문해 알아보고 오너라."
별감은 대왕의 분부를 받은 후에 곧 홍의와 초립을 벗고 사복으로 바꾸어 입은 후에 양녕이 거처하고 있는 이천으로 내려갔다. 양녕을 모시고 있는 명보는 전에 서울에 있을 때부터 별감과 잘 알던 사이였다. 별감은 이천으로 내려가는 길로 즉시 명보를 만났다. 사사로운 볼일이 있어서 이천까지 왔다가 과문불입할 수 없어 명보를 찾았노라 말했다. 명보는 반갑게 별감을 대했다.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막걸리를 대접했다. 별감은 대왕의 분부에 따라 양녕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공사로 내려온 것이 아니고 사사로운 일로 내려온 길이지만 기왕 내려온 길이니 대군마마께 문안이나 드리고 갔으면 좋겠네."
"어렵지 아니한 일일세. 그로지 아니 해도 대군마마께서는 항상 서울 일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계신 터이니 자네가 뵙겠다면 반갑게 만나보시리---."
명보는 쾌하게 허락했다. 명보는 곧 별감을 데리고 양녕이 거처하는 사랑채로 들어갔다.
"서울서 대전 별감 노릇을 하고 있는 애가 사사 볼일로 내려왔습니다. 과문불입할 수 없어서 소인을 찾아왔습니다. 온 길에 마마께 문안을 드리고 가겠다 하옵기 데리고 왔습니다."
양녕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서울서 왔느냐. 상감께서는 안녕히 부지하시느냐?"
별감이 뜰 아래서 굽실하고 아뢴다.
"네, 안녕하십니다. 소인은 여기까지 온 길에 잠깐 문안을 드리고 물러가려고 왔습니다."
별감의 눈에 비치는 양녕은 상왕비의 국상 때와 마찬가지로 베두건, 베중단의 상복을 입고 있었다. 별감은 이미 양녕의 상복 입은 것을 살폈다. 더 동정을 살필 것이 없었다.
"소인은 이제 문안을 드렸으니 물러가겠습니다."
굽실하고 뜰 아래서 절을 했다.
"일부러 나를 찾아보러 왔으니 고맙다. 잘 들어가거라."
양녕은 간단히 대답하고 창을 닫았다. 별감은 나오면서 명보한테 물었다.
"그런데 참, 자네한테 물어볼 말이 있네. 대군께서는 상왕비 국상 때는 전을 드리셨느데 이번 국상 때는 들어오시지도 아니하시고 전도 아니 드리셨으니 웬일인가?"
"나도 궁금해서 여쭈어보았더니, 예라는 것은 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자지간인 도리로 상복만 입겠다고 말씀하시데---."
명보도 간단히 대답했다. 별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울로 돌아가 대왕께 복명했다.
"이천에 다녀왔습니다. 양녕대군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대군께서는 대행 상왕마마의 상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베두건을 쓰고 베중단을 입고 계셨습니다."
별감의 복명을 듣는 대왕의 용안에는 미소가 떠돌았다.
"상복을 입고 계셨구나!"
대왕은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별감에게 하문했다.
"전에 대한 일도 수소문을 해보았느냐?"
"대군께야 어찌 감히 여쭈어봅니까. 모시고 있는 명보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습니다. 상왕비 국상에는 친히 서울까지 들어와서 전을 드리셨는데 이번에는 어찌해서 들어오지도 아니하시고 전도 아니 드리셨느냐고 이번에는 어찌해서 들어오지도 아니하시고 전도 아니 드리셨느냐고 물었더니, 예라는 것은 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간단히 말씀하시더라고 했사옵니다."
대왕은 별감이 전해서 아뢰는 말씀을 듣자 솜방망이로 허리를 꽉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왕과 양녕의 지나간 일을 눈 감고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뜻이 맞지 아니했다. 한평생을 두고 대립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양녕의 강렬한 반항의 행동은 마침내 폐세자가 되게 되는 크나큰 사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태종이 비록 말년에 크게 뉘우치고, 당신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대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잠시 서울과 낙천정에서 대면한 일이 있으나 폐세자까지 된 양녕의 반항 정신은 용이하게 사라질 리 만무했다. 대왕은 양녕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본다. 양녕이 상복을 입은 것만 해도 자식의 도리를 잘 지킨 것이라 생각했다. 예출어정이란 양녕의 말이 백번 옳았다. 슬프지도 아니한데 겉으로 울고, 올리고 싶지 아니한 제물을 영전에 드린다는 것은 허식이요, 가선의 행동이다. 양녕의 강직한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알았다. 물러가거라."
대왕은 별감을 내보낸 후에 양녕에 대하여 어떠한 대우를 취해야 할 것을 궁리했다. 이튿날 대왕은 편전에서 승지를 불렀다.
"대신들을 입시케 하라."
승지는 즉각으로 대신들에게 소명을 전했다. 대신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어전으로 모여들었다. 대왕은 대신들을 향하여 말씀을 내린다.
"과인이 왕위에 오른 지 이미 여러 해다. 경들의 보필하는 힘을 입어 국가가 승평하고 국운이 중흥되어 가고 있다. 모두 다 경들의 진충갈력한 공이라 하겠다. 국가가 승평하니 왕실도 화락해야 할 것이다. 과인의 형인 양녕은 아직도 이천에 있다니 내 마음이 아프다. 서울에 새로 양녕이 거처할 집을 지어서 형제가 수시로 만나 담소하는 기회를 가지려 한다. 경들의 의향은 어떠한가?"
대왕의 말씀이 끝나니, 일전에 세상을 떠난 좌의정 박은과 함께 양녕의 입성을 반대하던 신임 좌의정 이원이 아뢴다.
"전에도 박은과 함께 누누이 아뢰었습니다마는, 어느 나라에서나 폐세자를 나라의 수도로 불러들인 일은 없습니다. 신은 아직도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은 옥음을 높여 껄걸 웃었다.
"옛 사기에 폐주나 폐세자를 수도로 불러들이지 아니한 이유는 그 뒤 후환이 있을까 염려한 때문이다. 양녕은 일부러 과인에게 자기 자리를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스스로 폐세자 되기를 원한 분이다. 털끝만큼도 환욕이나 왕권에 대하여 욕심이 없는 것을 그대들도 짐작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세대가 바뀌었다. 양녕은 상왕께 죄를 얻어서 폐세자가 된 분이지, 과인에게 죄를 얻은 분은 아니다. 경들은 이점을 살펴야 한다. 또, 한 가지 경들에게 말해둘 일이 있다. 상왕께서는 국가를 바로잡고, 기업을 정하기 위하여 형제가 칼을 겨눈 불행한 일이 있었다. 극히 불유쾌한 일이다. 그것은 대국적으로 볼 때 무가내하의 일이었다. 오늘같이 국가가 승평한 시대에 형제가 화목치 못해서 서울 출입을 못 하게 하고 형님을 감시한다는 일은 과인으로서는 원하지 않는 바이다. 그대들은 과인의 마음을 살펴서 양녕의 서울 입주하는 일을 반대하지 말라! 더구나 양녕은 대행 상왕비께서 애지중지하시던 분이다. 경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하라. 나라를 다스리는 데 법이 있다. 그 묘득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다. 자기 몸을 닦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임금 노릇을 하며, 집안을 화목하게 못 하는 사람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천하를 평정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조금도 양녕을 의심하지 말라! 과인은 형제지간의 지극한 정을 펴서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나라를 평안케 할 것이다."
세종대왕의 간곡한 말씀은 대신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태종의 재세시부터 적극 반대하던 대신들도 세종의 간곡한 부탁 말씀에 더 반대를 하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재상의 지위에 다시 돌아온 황희가 아뢴다.
"전하의 하교는 극히 명철하신 분부올시다. 먼저 종실지친의 화기가 있은 연후에 국운이 더욱 발전될 것입니다. 전하의 극진하신 우애는 만백성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황희의 찬성하는 말을 듣자 모든 대신들이 아뢴다.
"전하의 성덕에 양녕도 감복할 것입니다. 성의대로 처리하시옵소서."
대왕은 모든 대신들의 찬동을 얻자 용안이 극히 화려했다.
"그러면 양녕의 일에 대히서는 나에게 일임하라."
모든 대신들은 청령하고 물러났다. 대신들이 물러간 후에 대왕은 선공감 제조를 불렀다.
"양녕대군을 이천에서 서울로 모셔올 테다. 서울 왕도 안에 대군궁을 지어서 안돈해서 사시도록 하라."
선공감 제조가 아뢴다.
"장소를 어느 곳으로 정하올지 하교해주심이 좋겠습니다."
대왕은 눈을 들어 남산 편을 바라보며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기 남산 기슭 왼편에 숲이 무성한 곳이 있다. 한적하고 경개가 좋아 보인다. 그 동리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그곳은 도동이라 합니다. 봄에 복사꽃이 아름답게 핍니다. 그래서 이름을 도동이라 합니다."
"복사밭이 많은 모양이로구나. 당양해서 좋고 반도천년이라고 신선이 즐기는 과실이다. 그곳에 집을 짓고 산다면 장수해서 좋을 것이다. 도동에다가 대군의 저택을 지으라."
선공감에서는 대왕의 명을 받들어 일등목수와 비장이며 석수를 불러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다섯 달 만에 집은 준공이 되었다. 선공감에서는 집이 완성된 것을 대왕께 아뢰었다. 대왕은 승지를 데리고 친히 양녕의 거처할 새집을 살폈다. 마음에 극가하다고 생각했다. 환궁한 후에 곧 내시를 양녕한테로 보냈다.
"형제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울적한 회포를 항상 이길 수 없었소이다. 서울 남산 아래 도동이란 곳에 정결한 한 채 궁실을 짓고 형님을 맞이하오니 내외분이 함께 들어와 한 번 구경한 후에 마음에 들거든 서울 살림을 하시도록 하시옵소서."
양녕은 내시의 전갈을 받자 천만뜻밖의 일이었다. 아우님의 왕은에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사양할 도리가 없다.
"분부하시는 대로 곧 입궐하여 사은하오리다."
내시에게 회답 전갈을 보내는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시가 돌아간 후 양녕은 이 일을 부인과 명보한테 알렸다. 온 집안 식구들은 왕은에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소식이 한 번 퍼지니 이천 고을이 번쩍했다. 이천 원이 육방관속을 거느려 치하하는 문안을 드리러 나오고 수많은 고을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우애지정에 감탄하는 소리가 높았다. 며칠 후에 양녕대군은 부인과 함께 교자를 타고 대궐로 들어가 왕은이 우악한 것을 말씀드렸다. 대왕은 미복으로 양녕과 함께 도동 새집으로 나가서 안채와 바깥채며, 산정 사랑을 두루 구경시켰다. 볕이 잘 드는 남산 아래 송백은 푸르러 무성하고 복사꽃은 분홍빛으로 아름다웠다. 새로 지은 기와집은 학이 날개를 벌려 벽공으로 나는 듯했다. 아름답고 오붓한 건축이었다. 양녕의 마음은 흐뭇했다.
"왕은이 지중하옵니다."
"곧 옮기도록 하시오."
"오늘부터 이천으로 가지 아니하고 이곳에 살겠소이다."
대왕은 만족했다. 이리하여 양녕은 서울 남산 밑 도동에 새 터전을 잡았다. 양녕은 도동으로 옮긴 후에 남산 기슭에서 유유하게 거닐면서 한가로운 세월을 보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태종의 상기도 지났다. 상복도 벗었다. 이제는 맨 데 없는 물외한인인 자유스런 몸이 되었다. 양녕은 세자의 자리를 아우한테 넘겨버린 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했다. 만약 폐세자가 아니 되고 그대로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들, 오늘쯤은 임금의 자리에 나가서 모든 나라 정치를 보살펴야 할 것이다. 삼천리강산과 수천만 백성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밤과 낮으로 머리를 썩혀서 그 큰 군왕의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도저히 자기의 성격으로는 이 큰 책임을 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아우님이 되는 상감은 나라를 잘 다스려주고 있다. 조정에는 어질고 슬기로운 신하가 가득했다. 임금 자신은 경연을 열고 밤 깊도록 신하들과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까를 궁리하고 있다. 학문하는 선비들을 모아서 집현전을 창설하고 학문의 심오한 진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버지의 강포했던 시대는 가고 나라는 완전히 기틀이 잡혔다.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도 세상을 버렸다. 새 시대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잘 지도하여 번듯하게 국가를 중흥시키는 아우님의 새 시대다. 대왕에게 저항하고 반항할 까닭이 없었다. 양녕은 기쁜 마음으로 이 나라가 잘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아우님 대왕의 정치를 고요히 지켜보면서 자유스런 여생을 즐겁게 마치리라 생각했다. 하루는 세종대왕이 모든 정사를 살핀 후에 편전에 들렀다가 홀연 도동에 있는 큰형님 양녕의 생각이 났다. 내관을 불렀다.
"도동에 나가서 양녕대군께 잠깐 들어오시라 해라."
내관은 남산 아래 있는 도동으로 나가서 양녕을 뵙고 상감의 전갈을 전했다. 양녕은 곧 대군의 조복으로 바꾸어 입고 대궐로 들어가 어전에 부복했다.
"초야에 묻힌 몸을 부르시니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형제의 지극한 정
대왕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씀한다.
"홀연, 형님의 존안을 대해보고 싶어서 잠시 들어오시라 했소. 과인이 나가 뵈어야 마땅할 것이나 나가자면 구속됨이 많고 시끄러워서 불경이 되는 줄 알건만 형님을 청했소이다."
양녕도 미소를 짓고 대왕의 말씀에 대답한다.
"그러하오이다. 소신의 몸은 맨 데 없는 자유스런 몸이오라 죽장망혜로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마는 전하께서는 어디 그러하실 수 있습니까. 한 번 대내 밖으로 납신다면 의장에 병졸에 온 장안이 들끓어대니 한 번 거둥 행차하시기가 과연 어렵습니다."
양녕의 아뢰는 말을 듣자 대왕은 드높게 웃었다.
"과연 임금의 자리는 구석이 너무 많아서 괴롭소이다. 어느 때는 형님이 부럽기 한량없소이다."
대왕은 말씀을 마치자 협실에 있는 시녀를 불렀다.
"거기 누구 있느냐?"
협실문이 조용히 열리며 시녀가 들어왔다.
"양녕대군께서 들어오셨다. 형제가 오래간만에 담소하면서 술을 한 잔씩 나누려 한다. 주안상을 올려라."
시녀는 명을 받들고 물러가 담박한 주안상을 받들고 들어왔다.
"물러가거라, 너는. 형제가 오붓이 술을 나누리라."
대왕은 시녀를 내보내고 친히 어온을 옥잔에 가득 부어 양녕에게 권했다. 양녕은 황감했다.
"먼저 전하께서 드셔야 할 것을---."
"향당에 막여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인이 비록 왕위에 있다 하나, 이곳은 왕실 지밀이 아니오니까. 형님이 먼저 드시오."
양녕은 황감했다. 술을 마시고, 잔을 대왕께 올렸다. 옥잔에 향기로운 술이 가득했다. 전하는 양녕이 올린 술을 마신 후에 양녕에게 묻는다.
"요사이는 무엇으로 소견하십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들려주시오."
"좋은 일이 별로 있을 리 있겠습니까. 그저, 글씨 쓰고 활 쏘고 남산길로 거니는 것이 신의 일과올시다. 명철하신 전하의 노력하시는 정치 밑에서 그저 성세일민이 되어 자유스럽게 지내니 도대체 이제는 시름과 근심이 다스려졌소이다. 장차 전하의 윤허를 받자와 팔도강산의 명승지를 유람하기 소원이올시다."
대왕은 양녕이 팔도강산의 명승을 두루 살펴보겠다는 말에 용안이 화려하게 웃음을 열었다.
"좋으신 생각이올시다. 쉬 한 번 떠나보시옵소서."
대왕은 다시 술 한 잔을 따라 양녕에게 권한 후에 묻는다.
"우리나라 팔도강산에 명승지는 간 곳마다 많다 합니다. 과인도 정저와마냥 우물 안 개구리로 궁중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마는 한번 보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먼저 어느 곳으로 가보시렵니까?"
양녕이 웃으며 대답한다.
"중국의 송때 시인 소식의 시가 있지 아니합니까. 원생 고려국하여 일견금강산이라고 한 천하에 이름 높은 우리나라의 명승 금강산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강릉 경포대, 양양 낙산사,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간성 청간정,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의 관동팔경도 구경하고 싶습니다. 다시 산으로 오른다면 묘향산, 속리산, 지리산을 보고 싶습니다마는 우선 서경의 절승인 평양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대왕은 양녕이 우선 평양 구경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듣자, 용안에 미연히 웃음이 떠돌았다.
"형님의 풍류가 아직도 왕성하도록 남아 계십니다. 하필이면 평양으로 먼저 가시려 하오?"
"높은 산과 큰 바다의 절경도 좋지마는 그림같이 고운 금수강산 평양성을 한번 둘러보고 싶습니다."
양녕은 변명하여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왕은 양녕에게 석 잔 술을 권한 후에 시녀를 불러 상을 물렸다. 대왕은 석 잔 이상의 술을 마시지 않는 때문이다. 시녀가 상을 물린 후에 대왕은 양녕을 향하여 다시 말씀을 꺼낸다.
"형님이 평양 구경을 원하시니, 원대로 한 번 가보십시오. 그러나 주의하실 일이 있습니다. 자고로 평양은 색향이라 합니다. 풍류를 좋아하시는 형님이 아무 일이 없이 조용히 돌아오실는지 의문이올시다."
양녕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풍류를 좋아했던 일은 다 옛날 일이올시다. 세자의 자리를 내놓기 위해서 한 일이니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전하의 어질고 밝은 정치 아래, 자포자기하는 반항의 정신은 눈 녹듯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지사는 묻지 마십쇼. 하, 하, 하."
양녕은 소리 높여 웃었다. 양녕의 말을 듣자 대왕도 웃으며 대답한다.
"사람의 천성이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연의 천성이요, 하나는 제이의 천성이올시다. 습관으로 이루어진 제이 천성은 스러져 없어진 듯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명철하신 말씀이올시다. 그러나 극복해서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과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양녕은 평양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기어코 대왕의 허락을 얻으려 했다. 대왕은 다시 웃으며 양녕을 향하여 말씀한다.
"형님께서 정 평양을 가보시겠다 하면 두 가지 일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양녕은 시침을 떼고 묻는다.
"두 가지 일이 무엇이오니까?"
양녕의 묻는 말에 대왕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한다.
"한 가지 일은 술을 절주해서 삼가셔야 합니다. 약주를 잡숫되 섯 잔을 넘기지 마셔야 합니다."
양녕은 미연히 웃으며 대답했다.
"술은 오늘도 석 잔밖에 아니 마시었습니다. 대왕께서 상을 물리시니 더 마시려야 더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술 마시는 일은 꼭 전하의 애주하시는 법을 따르려 합니다. 다음 또 어떠한 일이오니까?"
"다음엔 색을 멀리하셔야 합니다. 형님께서는 어느덧 호색하기는 성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하기 시작한 일이 버릇이 되어 제이 천성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리'로 하여금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게 한 일도 형님의 호색한 때문이올시다. 평양은 예로부터 색향이라 합니다. 만약에 평양에 가서 기생한테 빠지시어 헤어나지 못한다면 큰일이올시다. 양녕대군이 평양까지 내려가서 기생과 추태를 부렸다는 소문이 한 번 퍼지게 되면 왕실에 크나큰 불명예올시다. 이러하니 형님을 평양으로 보내놓고 마음을 놓지 못하겠습니다."
양녕은 옷깃을 바로잡아 정색하고 아뢴다.
"술도 삼가려니와 색도 삼가겠습니다. 다만 평양 옛 도읍의 아름다운 풍물울 구경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대왕은 다시 미소를 지어 대답한다.
"그러시다면 다녀오시도록 합시오. 형님을 믿습니다. 모든 일에 자유스런 행동을 취하도록 합시오."
양녕은 기뻤다.
"삼가 전하의 성지를 받들어 몸을 함부로 굴지 않겠습니다."
양녕은 평양 가는 허락을 받은 후에 사은숙배를 드리고 어전에서 물러나 도동 집으로 돌아왔다. 곧 부인과 명보한테 대왕께 평양 가는 허락 얻은 것을 이야기하고 길 떠날 행리를 꾸렸다. 이튿날 양녕은 갈아입을 옷 몇 벌을 부담농짝에 담아 나귀 등에 싣고 죽장망혜 홀가분한 차림으로 부인을 작별한 후에 명보와 함께 서관대로로 향했다. 무악재 고개를 지나 고양, 파주, 장단, 송도, 사리원, 봉산, 황주, 중화를 거쳐 평양에 당도했다. 소문을 놓고 가지 아니했건만 고을마다 지공이 대단했다. 한편 세종대왕은 양녕이 평양으로 떠나기 전에 선전관을 불러 밀지를 내렸다.
"이번에 양녕대군께서 평양으로 유람을 가시게 되었다. 과인이 대군께 술과 색을 조심하라고 권고했더니 대군께서는 과인 앞에 술과 색을 조심하겠다고 굳게 약속하셨다. 이번 행차에 필연코 조심하고 사양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호협한 성격에 평양 같은 산천과 인물이 좋은 곳에 가서 무료하게 지내다가 돌아온다면 한평생 한이 될 것이다. 네가 넌지시 평안감사한테 가서 과인의 뜻을 비밀히 전하고 대군의 객회를 풀어드리라고 일러라. 그리고 증거가 될만한 물건을 과인한테 올려보내라고 일러두라."
선전관은 대왕의 분부를 받들어 시각을 지체치 아니하고 역마를 달려 평양으로 향했다. 천리준총을 달리는 선전관은 양녕이 겨우 파주, 장단에 당도했을 때 벌써 평양 감영에 당도했다.
소복 미인
선전관은 감영 삼문으로 들어가 평안감사에게 비밀한 어명을 전했다. 감사는 상감의 밀지를 받자, 곧 평안도 내 군수들한테 영을 놓아 서울서 내려오는 양녕대군의 행차를 극진히 공궤하라 했다. 각 고을 원들은 감사의 전령을 받고 양녕의 행차를 맞이하여 지극한 대접을했다. 감사의 전령이 있을 뿐 아니라 양녕은 일찍이 세자 노릇을 한 분이요, 임금의 손자요, 임금의 아들이요, 금상전하의 형님이다. 고을마다 존경하고 우대했다. 연회를 차리고 기생을 불러 노래와 춤으로 대군의 여로 피곤을 위로했다. 그러나 양녕은 대왕과 약속한 일이 있었다. 일체 술을 입에 대지 아니했다. 고을마다 원들은 객관으로 아름다운 기녀를 보내서 수청을 들게 했다. 그러나 양녕은 영영 사양하고 기생 수청을 받지 아니했다. 각 고을의 보고는 연달아 감사한테로 들어갔다. 감사는 속으로, '과연 선전관을 통해서 내리신 밀지와 같구나. 양녕은 일체 주색을 피하는구나!' 탄식했다.
며칠 후였다. 양녕의 행차는 평양에 당도했다. 감사는 군관과 아전들을 미리 성 밖으로 내보내서 양녕의 평양 당도하는 시각을 짐작해보았다. 부랴사랴 성문 밖 십 리까지 나가서 양녕을 맞이했다. 감사는 연광정에 크게 연회를 배설하고 평양서 제일가는 명기와 명창 등을 불러서 멀리 온 양녕의 피곤을 풀어주기로 했다. 양녕은 평안감사와 인사를 나눈 후에 연광정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았다. 산세는 점점이 묵화 한 폭을 친 듯 곱고 명미한테 물빛은 초록 물감을 끼얹은 듯 맑고도 아름다웠다. 양녕은 서울과 송도에서 보던 풍경과 비교해본다. 제각기 일취가 있었다. 평양성 중의 경광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능라 비단 치맛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면서 아리따운 미소를 머금고 멀리 온 길손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하다. 양녕은, "명불허전이로군!" 탄식하면서 평양성 중을 굽어본다. 대동강 물은 푸른빛을 날려, 유유하게 흘러가고, 원포귀범의 놀잇배들은 수심가를 흥겹게 부르며 흥청거려 돌아들었다. 강물가에 적벽을 이루어 비취빛 창공을 떠받들고 있는 청류벽도 절경이거니와, 비단 휘장을 둘러친 듯 천사만사 능라도의 수양버들 늘어진 가지들은 그림인 양 아름답다. 양녕은 취한 듯, 어린 듯, 연광정 위로 거닐었다. 붓과 입으로 형용해서 나타낼 수 없는 천하의 절승이다. 정신이 쇄락했다. 홍진만장인 티끌 속에 파묻혔던 몸이 신선들이 사는 등선각에 오른 듯했다. 양녕은 문득 고려 때 시인 정지상의 시가 생각났다.
비 그친 뒤
활짝 갠,
길고 긴 둑엔
푸른 풀
싱싱하게 우거졌건만,
나는 어찌
남포가에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나.
대동강 물
어느 때나 마르리,
이별 눈물 해마다
강물만을 보태네.
양녕은 가만한 소리로 시를 읊으며 멀리 탁 터진 벌판을 바라보았다.입에서는 또다시 유명한 김황원의 시가 새어나온다.
긴 성, 한 굽이엔
흘러가는 강물인데
넓은 벌, 동편엔
점점이 산이로다.
양녕은 시흥이 높았다. 감사가 양녕에게 고한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약주를 드시면서 풍광을 상주십시오."
양녕은 감사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앞에는 산해진미의 주안상이 놓여있고, 옆에는 평양 명기들이 연분홍 저고리, 노랑 저고리, 연둣빛 저고리에 남치맛자락을 휩싸고 교태를 부려 앉았다. 양녕은 눈을 들어 미인들을 바라본다. 남남북녀라고 예로부터 귀가 젖도록 들었다. 과연 곱고 예뻤다. 서울서 봉지련을 위시하여 수많은 기생들을 세자 때부터 보아왔고 이제는 고인이 된 어리도 천하절염으로 알았지만 평양 기생들에 비해보니 확실히 북쪽 기생이 윗길이었다. 양녕은 강산 풍경과 미녀 풍정에 마음이 약간 흔들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감사는 눈치를 챘다.
"대감께 어서 약주 한 잔을 부어 올려라."
분홍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은 기생이 백자 술병을 들어 백자 잔에 평양 명주 감홍로를 따라 올렸다. 술 빛깔이 불그레했다. 감칠맛이 있어 보였다.
"무슨 술 빛이 이같이 고운가? 마치 진달래 꽃송이같이 붉고 곱구나!"
양녕의 입에서 무심코 술 빛을 칭찬하는 말이 떨어졌다. 술 따르던 기생이 생긋 웃으며 아뢴다.
"빛깔이 곱습지요? 향취도 높습니다."
감사가 고한다.
"이 술은 평양에 유명한 감홍로올시다. 한 잔 들어보십쇼. 풍미가 진진합니다."
감사와 기생은 양녕의 술 비위를 돋우었다. 양녕은 홀연 서울서 대왕께 약속했던 일이 번개 치듯 머리에 떠올랐다. 술을 마셔서는 아니 되겠다고 생각했다.
"요사이는 술을 못한다."
양녕은 한마디 하고 기생의 술을 받지 아니했다. 기생은 술잔을 들고 있었다.
"한 잔만 드시죠."
"못 마시는 술을 어찌 마시나. 미안하다."
멋쩍게 대답했다.
"듣자 오니 대군께서는 유주무량으로 무한 약주를 즐기셨다는데, 술이 비록 궁중의 아름다운 술만은 못합니다마는 평양의 제일가는 술이올시다. 집배만이라도 하십쇼."
감사의 권하는 말이 떨어지니, 기생은 술잔을 든 채 다시 권한다.
"팔이 아픕니다. 못생긴 쇤네가 권해서 아니 잡수십니까? 손이 부끄럽습니다. 입매만이라도 하십시오."
기생은 교태를 지어 매달렸다. 양녕의 눈에는 기생의 아양도 보이지 아니했다. 미소를 띠고 지켜보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손이 말을 듣지 아니했다. 차마 잔을 받을 수 없었다.
"몰풍취한 사람이라고 나무라지 말라. 내 몸이 불편해서 술은 마시지 못하겠다. 미안하다."
양녕은 기생한테 미안하다고 용서를 청했다. 기생도 하는 수 없었다. 무료한 얼굴로 술잔을 상에 놓았다. 감사도 하는 수 없었다.
"그럼 약주를 아니 자시는 대신 음식이나 많이 듭시오."
양녕은 수저를 들고 신선로와 구수장국을 먹었다. 그러나 목에서는 술 생각이 간절했다. 호탕한 기상에 미인의 손을 만지며 농담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얼굴이 또 떠올랐다. 혀끝을 깨물었다. 예쁜 기생 아가씨들을 외면하고 앉아 있었다. 평안감사가 대접하는 연광정 잔치는 몰풍취한 놀이가 되어버렸다. 뜰 아래서 멀리 바라보고 서 있는 명보는 벙긋벙긋 웃으며 배꼽을 안았다. 평안감사는 무료한 연광정 놀이를 파하고 양녕을 깨끗한 사처로 인도했다.감사는 아름다운 기녀 한 명을 데리고 양녕의 사처를 찾았다.
"저녁 문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양녕은 고맙다고 답례를 했다. 뒤미처 밤참상이 나왔다. 감사의 명을 받들어 내아에서 특별히 장만한 밤참이었다. 평안감사는 이번엔 술을 권하지 아니했다. 기생도 옆에 앉아서 음식을 권할 뿐 술은 권하지 아니했다. 양녕과 감사는 평양 풍물을 이야기하면서 밤참을 먹은 후에 상을 물렸다. 얼마 후에 감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녕을 향하여 고단한데 일찍 취침하라고 인사한 후에 기생에게 분부한다.
"너는 대군마마의 시중을 들어라. 고단하실 테니 이불도 펴 드리고 다리도 주물러드려라."
말한 후에 다시 양녕을 향하여 고한다.
"평양에서 첫손을 꼽는 얌전한 아이올시다. 얼굴도 아름답지만 가무도 능란하고 시서금기도 하는 체합니다. 수청을 들이십시오."
감사는 말을 마치고 발길을 돌렸다. 양녕은 당황했다. 발길을 돌리는 감사를 급히 불렀다.
"여보 사또, 기생 수청은 안 들여도 좋소.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이 있으니 아무 염려 마오. 기생은 도로 데리고 가시오."
양녕은 손을 저어 펄쩍 뛰었다. 뜰 아래 서 있던 명보는 빙그레 소리 없이 웃으며 바라본다. 감사는 선전관을 통해서 상감의 밀지를 받은 까닭에 양녕이 술도 아니 자시고 색도 멀리하는 까닭을 짐작해 알았다. 그러나 대왕은 양녕의 객회를 풀어주고 슬며시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올려보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어떠한 수단을 쓰든지 양녕을 오입판으로 떨어뜨려 놓아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술은 아니 자신다 하니 색으로나 유인해보리라 했다. 그리하여 평양 기생 중에 첫손을 꼽는 기녀를 데리고 양녕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양녕이 펄쩍 뛰고 기생 수청을 아니 받겠다 하니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정 그러시다면,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대군께서는 전과 달리 몰풍류하십니다. 하하하."
감사는 기가 찼다. 소리를 높여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더욱 무안해하는 것은 기생이었다. 감사, 병사, 방어사에 각읍 수령 쳐놓고 수십 명을 겪어보았으나 퇴짜를 맞아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얼굴이 뾰로통하게 변색이 되었다.
"별꼴을 다 보네."
양녕한테 인사도 아니 하고 싹 돌아섰다. 감사의 뒤를 따라 뒤도 안 돌아보고 치마꼬리를 휩싸안은 채 바람같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양녕은 기생을 그대로 돌려보낸 후에 마음이 우울했다. 공연히 대왕과 약속을 하고 왔구나 하고 마음이 불쾌했다. 부왕이 계실 때도 자기의 자유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거리낌 없이 맘대로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세자궁으로 기생과 가객을 불러들였고, 유부녀의 집 담까지 뛰어넘어서 남의 첩을 뺏어오기까지 했다. 뿐만인가, 걸인이 되어 막천석지를 해보기도 했다. 자기의 자유행동을 구속할 사람은 하늘 아래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아우가 임금이 된 이때 도리어 자기 자신은 어느덧 자유를 뺏긴 듯이 되고 말았다. 구속을 받는 함정 속으로 슬며시 빠져버리고 말았다. 양녕은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자유를 잃은 듯한 자신의 몸이 가엾기도 했다. 구슬프고 우울했다. 밤에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명보가 한동안 코를 골고 자다가 선잠이 깼다. 눈을 비비고 묻는다.
"왜 여태 아니 주무십니까?"
"잠이 오지 않는구나."
명보는 양녕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한 번 익살을 부려본다.
"왜 잠을 못 주무십니까?"
"그저 잠이 오지 않는구나."
양녕은 점잖게 대답했다. 명보는 눈을 멀뚱멀뚱 떠서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 말하듯 푸념을 한다.
"천하절색인 평양 기생의 수청을 물리치셨으니 잠이 올 리가 있습니까? 내일은 평안감사가 또 기생을 데리고 와서 수청을 들이겠다 하거든 덥석 받아들이시오. 그래야만 잠이 오리다. 공연히 상사병 들면 큰일입니다."
명보는 시치미를 떼고 웅얼거렸다. 명보의 응석 부리는 농담을 듣자 양녕은 빙긋 웃었다.
"이놈!"
거탈로 꾸짖었다. 명보가 또다시 짓궂게 말한다.
"나리께서 서관 제일강산이란 색향에 오셔서 약주 한 잔 맘대로 마시지 못하고 기생 오입 한 번 못하시고 간다면 나리의 호협하셨던 과거지사가 모두 다 허탕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같은 명승지에서 그대로 멋없이 유하셨다가 가신다면 천추의 한이 되실 것입니다. 전에 세자 때처럼 한 번 호탕하게 노시다가 올라가십쇼. 공연히 병환 나시면 후회막급입니다."
"이놈아, 입을 닥쳐라. 쓸데없는 말 지껄이는구나!"
양녕은 또 한 번 꾸짖는다. 명보는 빙긋빙긋 웃으며 응석조로 말한다.
"나리님, 왜 약주도 아니 잡수시고 기생 수청도 들이지 아니하십니까? 무슨 이유가 계십니까?"
바보처럼 물었다.
"이놈아, 이유가 무슨 이유냐. 마시기 싫으니까 아니 마시는 것이지. 대답하기 싫다. 만사가 귀찮다!"
양녕은 버럭 화증을 낸다.
"나리 마님, 소인한테까지 숨기신다면 소인은 참 섭섭합니다. 어려서부터 소인은 한평생을 모셨는데 소인에게까지 숨기시니 과연 야속합니다."
명보는 너스레를 놓아 응석을 계속해 부린다. 양녕은 명보의 야속하다는 말을 듣자 비로소 웃으며 대답했다.
"이놈아, 야속할 것까지야 무엇 있느냐. 네가 정 섭섭해하는 눈치니 내가 터놓고 말해주마. 서울서 평양으로 내려올 때 상감과 약속한 일이 있다. 술과 색을 멀리하기로---."
명보는 양녕의 대답을 듣자 히히덕거려 웃으며 대답한다.
"원, 나리께서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무리 상감마마께 주색을 멀리하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하더라도 천하절경 아래 천하절색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 오셔서 그대로 쓸쓸하게 다녀가신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약주 한 잔쯤 잡수시고 오입 한 번쯤 하신댔자 죽 떠먹은 자리가 아닙니까? 오백 리 밖 구중궁궐에 계신 상감마마께서 어찌 아십니까. 공연히 쓸데없는 걱정 마시고 어서 평안히 주무신 후, 내일부터는 호협하게 노시고 감사가 권하는 대로 수청도 받아들이십시오."
"아니 된다. 임금을 속이는 법이 어디 있느냐."
양녕은 점잖게 대답했다. 옛날 호협했던 양녕의 기상은 찾아볼 도리가 없이 근엄했다. 명보는 또 한 번 킬킬거려 웃어대며 말한다.
"나리, 망령이십니다. 전의 태종대왕 때는 밤낮 속이시고 다니시던 분이 이제는 임금을 속이지 못하시겠다 하시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경우가 다르니라. 그때는 세자 노릇을 아니 하기 위하여 일부러 한 짓이고, 오늘은 신하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양녕은 의젓이 대답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감사는 양녕을 찾아와 문안을 드린 후에 다시 평양의 명소를 구경시켜 주었다. 먼저 모란봉에 올라 평양성을 굽어보고, 부벽루, 을밀대, 기자능을 돌아본 후에 다시 대동강에 용배를 띄워 선유를 했다. 용배 안에는 삼현육각 풍류 소리가 자지러지고, 배반이 벌어진 곳에 평양 명기들이 화사한 의상으로 노래를 불러서 양녕을 환영했다. 그러나 양녕은 선유놀이에서도 술을 안 들고 기생들을 가까이하지 아니했다. 다만 점잖게 담소하면서 청류벽 능라도를 돌아 경치를 살필 뿐이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선유는 파했다. 양녕은 사처로 돌아가고, 감사는 선화당으로 올라 깊은 궁리 속에 빠졌다. 세종께서 특별히 선전관을 보내어 양녕을 오입시켜 드리라고 부탁하시고 다시 오입한 그 증거품을 올려보내라고 하셨는데, 양녕은 술 한 잔 들지 아니할뿐더러 기생을 거들떠보지도 아니하니 딱하기 한량없는 일이다. 만약 양녕을 오입 한 번 못 시키고 그대로 올라가게 한다면 세종의 특별한 분부를 어기는 일이 된다. 소위 감사로 앉아 있으면서 이만한 수단이 없다면 감사의 자격이 없게 된다. 감사는 크나큰 걱정거리를 만난 셈이다. 이리저리 백방으로 궁리를 해보았다.그러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아니했다. 감사는 생각다 못해 이방을 불렀다.
"이번에 양녕대군이 내려오셨는데 오시기 전에 서울서는 상감께서 양녕대군께 주색을 멀리하라고 당부하신 모양이다. 상감께서는 겉으로 형님을 단속하셨으나 색향으로 유명한 이곳까지 내려와서 무료하게 지내다가 올라간다면 일생일대의 한이 될까 생각하시어 슬며시 선전관을 나에게 보내시어 밀지를 내리셨다. 양녕이 아무리 사양하더라도 오입을 시키고, 그 증거물을 올려보내라 하셨다. 나는 상감의 분부를 받고 백방으로 양녕을 유혹했으나 양녕은 일체 응하지 아니하니 딱한 일이로구나! 소위 감사로 앉아 있으면서 이 일을 하나 처결 못 한다면 내 꼴은 무엇이 되며 나중에 서울에 올라가서라도 상감마마를 어찌 뵙겠느냐? 너에게 묘안이 있거든 한번 똥겨주려무나."
이방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감사한테 고한다.
"거, 참 난처한 일이올시다. 소인도 얼른 묘책이 생각나지 아니합니다. 이 일은 슬기 있는 기생 아이에게 문의해 보십쇼. 얼굴만 반주그레한 화초기생 따위로는 묘한 생각이 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감사는 이방의 말을 듣자, 그럴듯하게 생각했다.
"네 말이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평양 감영 기생 중에 가장 지혜가 많고 수단 높은 애가 누구냐?"
감사는 이방 앞으로 무릎을 바싹 밀었다. 이방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아뢴다.
"감영 안 기생 중에 정향이란 기생이 있습니다. 얼굴도 똑똑하고 예쁘려니와 머리가 좋아서 백령백리합니다. 사또께서 한 번 친히 불러서 하문하옵소서."
"그렇다면 곧 불러오너라."
이방은 감사의 명을 받고 곧 기방으로 나가 정향을 데리고 들어왔다. 감사가 바라보니 명모호치에 살결이 눈같이 희고 자색이 겸비했다. 감사는 손짓해서 정향을 앞으로 가까이 불렀다.
"네가 양녕대군을 녹여낼 재주가 있겠느냐?"
정향은 상긋 웃으며 대답한다.
"양녕대군께서 아름다운 평양 기생을 데리고 놀고 싶은 생각은 꿀떡 같으시지만, 상감마마 앞에서 주색을 멀리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오신 까닭에 감히 기생들을 가깝게 하지 못한답니다. 호호호."
정행은 간드러지게 웃었다.
"네가 어찌 그 일을 아느나?"
감사는 깜짝 놀라 묻는다. 정향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한다.
"눈치 빠른 기생들이 어찌 그 일을 모르겠습니까? 그 일로 인해서 선전관이 내려온 일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감사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렇다면 네가 한 번 양녕대군을 파계시켜 볼 재주가 있느냐?"
감사의 말을 듣자 정향은 밝은 눈에 웃음을 담뿍 싣고 생글거려 대답한다.
"해보라 하시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정향의 대답 소리를 듣자 감사는 비로소 입이 딱 벌어졌다.
"그렇다면 양녕대군을 네가 모시고 지냈다는 증거까지 가져와야 한다. 상감마마의 분부시다."
"염려 마십쇼."
정향은 미소를 지으며 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네가 흠뻑 수단을 부려보아라."
"이방님과 의논해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정향은 이방과 함께 감사 앞에서 물러났다. 정향은 선화당에서 나와 이방청으로 나갔다. 이방이 웃으며 정향에게 묻는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 양녕대군을 녹여낼 테냐?"
"그것은 해봐야 동이 될지, 서가 될지 말씀합지요. 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말씀을 드립니까. 좌우간 집 한 채만 얻어줍시오. 바로 양녕대군께서 사처하고 계신 옆집이나 뒷집이라야 쓰겠습니다. 그리고 토인 한 명만 내보내줍시오."
이방은 한동안 생각해 보았다. 양녕대군이 사처하고 있는 옆집은 바로 김토인의 집이었다.
"집은 전체를 쓰려느냐, 방 한 칸만 쓰려느냐?"
"제집으로 쓸 테니 들어 있는 사람들은 나가야 합니다."
"좋다. 바로 김토인의 집이 양녕대군께서 사처하고 계신 곳과 격장이라 내놓으라고 하마."
이방과 정향은 약속하고 헤어졌다. 한편 이방은 김토이의 집으로 옮긴 후에 양녕대군이 사처하고 있는 집의 격장된 담을 사람 하나 드나들 만큼 터놓았다. 한편 양녕대군은 제일강산이라는 평양으로 구경을 왔으나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모한봉, 을밀대, 부벽루의 승경이며 능라도, 청류벽, 연광정의 절승이 아름답지 아니한 바가 아니언만, 술 한 잔 아니 마시고 색을 멀리하고 보니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본시부터 입에 술을 대지 못하고 미인을 어루만져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별로 큰 영향이 없었겠지만 워낙 놀기를 좋아하고 풍류의 멋을 잘 알아서, 제이 천성을 이루다시피 한 호협한 앙녕이었다.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낮에는 감사한테 끌려서 명승을 구경하고, 밤에는 사처로 돌아와 고침단금에 전전반측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감사는 정향과 약속을 한 후에 넌지시 이방한테 일러서 양녕을 모시고 온 명보를 딴 집으로 가서 거처케 했다. 명보도 눈치를 채고 양녕한테는 며칠 동안 친구가 청한다고 외수를 써서 딴 곳으로 사관을 정했다. 양녕은 명보마저 없으니 더한층 쓸쓸하고 적적했다. 때마침 칠월 보름께가 되었다. 선들바람은 쓸쓸하게 불어오고 가을 하늘 드높은 중에 밝은 달빛은 은물결을 이루어 대지에 가득하게 흘렀다. 어느덧 밤은 깊어 자정 때가 되었다. 평양성 중은 달빛 속에 파묻혀서 조용히 잠들었는데 한 조각 밝은 달만이 창공에 높이 떴고, 삽살개 짖는 소리는 적막한 강산을 흔들었다. 양녕은 잠을 이루려 하나 잠이 오지 아니했다. 더구나 밝은 달빛이 휘영청 창경으로 흘러드니 교교한 달빛이 이불자락에까지 비쳐서 마음이 산란했다. 양녕은 배겨낼 수 없었다.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 달빛을 밟으며 뜰 안이나 거닐어보리라 생각했다. 창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달빛은 여전히 뜰에 가득했다. 달을 사랑하던 시인 이태백의 생각이 났다. 달을 두고 글을 지었던 소동파의 생각도 났다. 달을 바라보며 시를 읽어보고 싶었다. 양녕은 신을 신고 댓돌로 내려섰다. 달빛이 은빛이 되어 넓은 마당 안에 가득하게 깔렸다. 양녕은 은빛으로 흐르는 달빛 속으로 들어섰다.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호호한 하늘에도 달빛이 그득했다. 별이 달빛에 에워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풀벌레가 은방울을 흔드는 듯 울어댄다. 양녕은 대우주의 허명한 속에 발길을 옮기며 유유히 거닐었다. 홀연, 새까만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뜰 옆 담 터진 곳에서 깡충 뛰어내렸다. 양녕은 깜짝 놀랐다. 뛰어내리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미처 담 터진 곳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눈빛같이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이 부지깽이를 들고 담 터진 곳에서 나타났다. 급히 고양이를 쫓아오는 모양이었다. 아리따운 교성으로 고양이를 꾸짖으며 뛰어들었다.
"요놈의 고양이, 발칙한 놈의 고양이, 어디로 갔느냐?"
고양이는 삽시간에 살 같이 달아나서 자취를 감추었다. 찾을 길이 묘연했다. 양녕이 달빛 아래 소복 입은 밍니을 바라보니 기가 막힌 절색이다. 풍정 있게 틀어 얹은 머리는 달빛을 받아 칠흑같이 윤이 흐르고, 밝은 눈동자는 별빛보다도 초롱거렸다. 여기다가 면화송이로 짜 입은 수목 소복은 백설공주가 달빛 아래 나타난 듯했다. 양녕은 아닌 밤중에 고양이를 쫓아온 소복 미인의 형색을 아니 물어볼 수 없었다.
"깊은 밤중에 웬 여자가 남의 사처한 집으로 뛰어드오?"
소복 미인은 황망히 손에 들었던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허리를 굽혀 절하려고 한다.
"깊은 밤중에 죄송하기 짝 없습니다. 귀하신 손님이 계신지 모르고, 분정지두에 담 터진 곳으로 뛰어들어 황공만만이올시다. 저지른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월광 속에서 사죄를 하는 여인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뿐만 아니었다. 부끄러워하는 수삽한 그 태깔이 더한층 소박하고 고왔다. 양녕은 고양이를 쫓아 들어온 그 내력을 알고 싶었다.
"무슨 까닭에 깊은 밤중에 자지 아니하고 고양이를 쫓아 들어왔소?"
소복 미인은 고개를 숙여 나직한 말씨로 대답한다.
"소인은 본래 이 고을 아전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남편 되는 사랑이 병을 얻어 삼 년 전에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청상과부의 몸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은 망부의 대상 날이올시다. 마지막 삼년상을 마치는 대기 날이오라 대상제를 지내기 위하여 없는 돈에 적고기를 마련해서 제사를 받들려 했더니 부엌에 둔 고기를 저놈의 고양이가 물고 달아납니다. 분정지두에 귀인이 서 계신 줄 모르고 담 터진 곳으로 고양이를 쫓아 들어왔다가 존안을 대해 뵙게 되오니 황공하고 죄송한 말씀 이루 다 형언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양녕은 소복 미인이 청상과부요, 오늘 밤에 마침 상복을 벗는 대상 날이란 말에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청춘 과부댁으로 대상 날을 당해서 정성 들여 마련했던 적고기를 고양이한테 물려 보냈으니 오죽이나 마음이 찌연하겠소. 돌아간 남편도 영혼이 있으면 짐작할 테니 적고기는 빼놓고 제사나 정성스럽게 지내시오."
소복 미인은 양녕의 말을 듣고 고맙다는 듯 인사를 했다.
"크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돌려보내 주시니, 바다같이 넓으신 도량을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소인은 죄를 짓고 물러갑니다."
소복 미인은 초연히 몸을 돌려 담 터진 곳으로 들어갔다. 돌아서서 가는 그 자태가 양녕의 눈에는 더한층 아름답게 보였다. 양녕은 미인을 보낸 후에 다시 달 밝은 뜰을 거닐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달빛도 신명이 나게 보이지 아니했다. 눈에는 달빛 대신 담이 터진 곳으로 들어간 미인의 얼굴만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양녕은 곧 미인의 뒤를 쫓아 담 터진 곳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발길을 두어 걸음 옮기려 했을 때 홀연 눈앞에 세종대왕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양은 색향입니다. 색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을 내리는 대왕의 옥음이 귀에 쨍했다. 양녕은 한숨을 짓고 발길을 돌렸다. 쓸쓸하고 고적한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쓰고 누워보았다. 잠이 올 까닭이 없었다. 눈은 점점 반반하게 떠졌다. 소복 미인의 고운 자태가 쉴 사이 없이 눈에 밟혔다. 양녕은 마음이 괴로웠다. 배겨낼 도리가 없었다. 이불을 박차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복 미인이 말하기를 남편의 삼년상을 탈상하는 대상제를 지낸다 하니 제사 지내는 구경이나 해보리라 생각했다. 창문을 열고 마루로 나간 후에 신을 신고 담 터진 곳으로 향했다. 휘영청 밝은 달밤이었다. 밤이 깊었으나 어둡지 아니했다. 양녕은 도둑고양이 모양 발소리를 죽이고 담 터진 곳으로 들어섰다. 바로 소복 미인의 집 안마당이다. 마당에서는 환하게 대청마루가 들여다보였다. 과연 대청에는 제상이 배설되어 있고 황춧불이 촛대에 꽂혀서 벌룽거렸다. 향탁에 놓인 향로에서는 자단향 푸른 연기가 일어나고 소복 미인은 잔을 올리며 제를 지내고 있었다. 잔을 올리며 절하는 그 모습은 너무나 가련하고 청초했다. 미인은 네 번 절하고 잔을 올린 후에 제상 앞에 꿇어앉아 느껴 울며 넋두리를 한다.
"이제 삼년상도 다 마쳤습니다. 돌아가신 영혼이나. 삼 년 동안을 살아 계신 듯 모시었더니 이 밤에 궤연마저 폐하게 되니 기가 막힙니다. 당신의 혼령을 의지해서 삼 년을 살았더니 혼령마저 가시니 나는 누구를 의지해 삽니까? 아아, 누구를 의지해 삽니까?"
소복 미인은 마루판을 치며 통곡한다. 마당 한 귀퉁이에 숨어서 엿보고 있던 양녕의 눈시울이 화끈했다. '누구를 의지해 삽니까?' 하는 청상과부의 넋두리는 양녕의 가슴을 강하게 찔렀다. 양녕은 호협한 성격에 참을 수가 없었다. 세종대왕의 근엄한 당부도 다 잊어버렸다. 대청으로 뛰어올랐다. 제상 앞에서 넋두리를 하고 울며 엎드렸던 미인은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다보니 양녕이 우뚝 서 있다. 소복 미인은 소스라쳐 놀라는 시늉을 했다. 얼굴빛을 정색하고 양녕을 꾸짖는다.
"점잖은 양반이 깊은 밤중에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오시니 웬일입니까? 청상과부 불쌍한 여인이 혈혈단신으로 죽은 망부의 대상제를 지내는 중이올시다. 해괴망측한 일입니다. 빨리 나가주시오!"
준절하게 꾸짖는 미인의 음성은 백옥을 부수는 듯 싸늘하고, 제단에 놓인 촛불 아래 비치는 미인의 얼굴은 더 한층 가련하고 어여뻤다. 양녕은 변명할 말이 없었다.
"과수댁의 곡성이 하도 처량하므로 가여운 생각이 나서 들어왔소. 담을 넘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고양이를 쫓아서, 나의 사처로 들어왔던 담 터진 곳으로 들어왔소. 허물치 마시오. 들어올 길을 가르쳐준 사람은 당신이오. 내가 담 터진 곳이 있는 줄 알 까닭이 있소?"
소복 미인은 양녕의 변명을 듣자, 얼굴 표정이 더한층 얼음장같이 쌀쌀하게 굳어졌다.
"담이 비록 터졌기로서니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함부로 남의 집 내정돌입을 하십니까? 빨리 나가시오."
얼음장같이 쌀쌀하게 꾸짖는 소복 미인의 태도는 교태를 부려서 웃는 웃음 가락보다도, 옥을 부수는 듯 아름답게 들렸다. 양녕의 호탕한 마음은 마칠 듯했다. 덥석 미인의 백옥 같은 손을 잡았다.
"아무도 없는 이 밤중에 누가 본다고 나가라 하오. 기왕 들어왔으니 이야기나 좀 해봅시다."
소복 미인은 양녕의 잡은 손을 뿌리쳤다.
"아이고머니나, 해괴망측스러워라. 점잖은 분이 이게 웬일이오. 수절하는 청상과부의 손을 함부로 잡는 법이 어디 있소."
양녕은 껄걸 웃었다. 농을 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청상과부의 손이니까 잡지, 늙은 과부의 주름진 손이라면 누가 잡겠나. 좌우간 소란 떨지 말고 이야기나 해보세."
양녕은 뿌리치는 미인의 손을 다시 휘어잡았다. 미인은 비단 찢는 소리를 쨍하게 냈다.
"이 동리엔 아무도 없소? 제사 지내는 청상과부의 집에 외간남자가 뛰어 들어와 겁탈을 하려 하오!"
양녕은 주춤했다. 약간 겁이 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감사와 짜고 하는 노릇이었다. 동네에서 누구 한 사람 나올 까닭이 없었다. 사면 팔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달빛만이 그림자를 옮길 뿐이었다. 양녕은 다시 마음을 놓았다. 빙긋 웃으며 다시 소복 미인의 손을 잡았다.
"이게 대상도 다 지냈으니 자네는 돌아간 망부한테 할 일을 다 했네. 어린것도 없는 무의무탁한 청춘과부가 장차 한평생을 어찌 허송한단 말인가. 나하고 사는 것이 어떠한가?"
소복 미인은 깜짝 소스라쳐 놀라는 시늉을 한다.
"아니 됩니다!"
쌀쌀하게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 될 것이 무어 있나. 나하고 한평생을 같이하세."
미인은 양미간을 찡그리고 대답한다.
"아니 됩니다. 얼토당토한 말씀입니다. 절대로 아니 됩니다. 어서 빨리 나가주십쇼. 소문이 나면 피차에 다 창피합니다."
양녕은 마음이 달았다. 입술이 탔다.
"그러지 말고 어서 허락하게나. 삼년상도 다 지냈는데---."
양녕은 과부댁이 자기의 신분을 모르는 줄 알았다. 애걸하다시피 졸랐다. 이인은 양녕의 잡은 손을 또 한 번 뿌리치며 대답했다.
"듣자오니, 나리는 귀인이라 하십니다. 이만저만한 귀인이 아니라 상감마마의 맏형님이신 양녕대군이라 합니다. 나라의 지존이신 상감의 형님께서 저 같은 하천의 계집과 백년해로를 하시겠단 말씀은 입에 발린 말씀이올시다. 한 번 소녀를 훼절시켜 놓으신 후엔 헌신짝 버리시듯 할 테니 과부의 꼴만 사납고 몸은 영영 결딴이 날 테니 말이 아니 됩니다. 쓸데없는 말씀 작작하시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양녕은 깜짝 놀랐다.
"자네가 내 행색을 어찌 짐작하나?"
소복 미인은 양녕의 묻는 말을 듣고 생긋 웃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웃음이었다. 웃는 그 자태가 무한 아름다웠다.
"양녕대군 나리께서 내려오신 것은 평양 일판이 다 아는 노릇이올시다. 소녀가 비록 집 안에 들어박혀 있는 수절 과부올시다마는, 어찌 모르겠습니까? 관가에서 나리의 사처를 잡으실 때 격장해 있는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양녕은 기왕 탄로가 났으리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양녕인 것까지 알았으니, 자네는 마음을 놓고 나한테 몸을 허락하게. 내 체통을 본들 청춘과부인 자네를 훼절시켜 놓은 후에 벼랑에 헌 빗 머리듯 내던질 도리가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나."
미인은 또 한 번 생긋 웃고 고개를 가로 흔든다. 양녕을 뇌쇄시키자는 수단이다.
"싫습니다. 망부의 제상 앞에서 어찌 몸을 허락하겠다는 말씀을 합니까. 낯가죽이 솥뚜껑같이 두껍더라도 말이 나오지 못하겠습니다. 망부의 영혼이 있다면 크나큰 벌을 줄 것입니다. 소녀는 한평생 수절을 하고 살겠습니다."
미인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딱 잡아떼면서도 약간 의향이 있는 듯했다. 양녕은 미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내가 자네 망부의 영위 앞에 축을 고해서 자네를 맡겠다고 허락받겠네. 자네 남편이 인정이 있다면 자식도 없는 자네보고 일평생을 공규로 늙으라고 할 리가 있나. 자아, 내가 축을 고해보겠네."
말을 마치자, 양녕은 제상 앞에 일어서서 향을 사르고 축을 고한다.
"혈혈단신 무의무탁한 그대의 아내는 오늘 밤부터 내가 짝을 지어 맡으리다. 영이 있거든 허락하라."
양녕은 고축을 마친 후에 소복 미인의 앞으로 갔다.
"자네 남편도 허락을 내렸네. 향연이 곱게 퍼지고 황촛불이 벌룽거려 소리를 냈네. 신도 허락을 했으니 나와 백년해로할 것을 이 자리 자네 망부 궤연 앞에서 맹세하세."
양녕은 여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인은 못 이기는 체 일어났다. 부끄러운 듯 제상 앞에 고개를 숙이고 고요히 섰다.
"자아 절을 하세."
양녕은 소복 미인과 함께 백년해로할 것을 염하면서 궤연을 향하여 재배를 했다.
정향
양녕은 절을 한 후에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자, 이제는 대상제도 다 지냈으니 철궤연을 하세."
말을 마치자 제상의 제물을 내렸다. 소복 미인도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제물을 받아서 천장에 넣고, 양녕과 함께 제상과 말끔하게 치운 후에,
"자아 이제는 우리가 내외지간이 되었으니 방으로 들어가세."
양녕은 미인의 손을 잡았다. 미인도 이제는 손을 뿌리치지 아니했다. 못 이기는 체 양녕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마당 옆 으슥한 나무 그늘 밑에서는 감사와 이방이며 명보가 양녕과 미인의 행동을 엿보고 있었다. 양녕이 미인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감사와 명보는 빙긋 웃고 발자취를 죽여 담 터진 곳으로 스러졌다.
양녕은 방으로 들어간 후에 소복 미인과 금침을 같이했다. 미인의 아름다운 자태와 고운 목소리며 교양 있는 행동은 양녕이 여태껏 대해본 수많은 여인 중에 그 짝을 구해볼 수 없도록 맵자하고 뛰어났다. 천하절색이라고 생각했던 죽은 어리도 소복 미인에 대면 몇 길 아래라 생각했다. 양녕은 자리 속에서 여인의 이름을 물었다. 여인은 조신하게 대답했다.
"성은 정씨요, 이름은 향이올시다."
"이름 참 좋구나. 향기로운 나무를 정향수라 하지 않느냐. 정향나무는 두 종류가 있다. 백정향꽃도 피고 자정향꽃도 핀다. 백 가지 꽃 중에 제일 강한 향을 발산하는 꽃이 정향꽃이다. 너는 여인 중에 제일가는 향녀로구나!"
사람이 아름답게 뵈니 이름도 곱다고 생각했다. 양녕은 다음날부터 평양의 절승 경개도 마음에 없었다. 자나깨나 정향을 애무하면서 곁에서 떨어지지 아니했다. 평안감사가 연회를 차려놓고 청좌를 보내도 양녕은 몸이 아프다고 핑계하고 나가지 아니했다. 굳게 대문을 닫아걸고 담 터진 곳으로 미인의 집을 왕래하면서 방 속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명보는 양녕과 정향이 거리낌 없는 쾌락을 취하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양녕은 명보까지 잊었다. 찾을 생각도 아니 했다. 양녕과 정향의 애정은 청산처럼 첩첩하고 동해 물결처럼 파도를 쳤다. 하루는 정향이 양녕을 향하여 속삭였다.
"나리께서 서울로 가시는 날 저는 어찌합니까?"
"나는 서울로 가지 아니하련다. 평양에서 한평생 너하고 같이 살 작정이다."
정향은 새침하고, 양녕의 콧등을 간질어 본다.
"눈을 깜박거리시면, 거짓말입니다. 거봐, 눈을 깜박거리시네요. 나리께서 한평생 평양에 사신단 말씀은 거짓말입니다. 만약, 상감께서 내일이라도 부르시면 어찌하실 텝니까?"
정향은 눈웃음을 치며 묻는다. 양녕도 호협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평양도 조선 땅이다. 서울로 가지 않고 평양에서 살겠소 하고 허락을 받으면 그만이다."
"상감께서 나리를 평양에서 일평생 살라고 분부하실 리 만무합니다. 아니 될 말씀입니다. 나리, 서울로 가실 때는 꼭 저를 데리고 가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저는 죽는 몸이올시다."
정향의 눈에서는 홀연 눈물이 글썽거렸다.
"만부득이해서 서울로 가는 경우에는 너를 데리고 가지, 여부가 있느냐. 쌍가마를 태워 데리고 가마."
"짜짱, 정말이십니까?"
"여부가 있느냐."
양녕과 정향은 이같이 사랑을 속삭였다. 하루는 돌연 명보가 나타났다. 마침 담 터진 곳에서 탕건을 삐딱하게 쓰고 괴춤을 엉덩이에 걸치고 나오는 양녕과 마주쳤다. 명보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나으리 마마, 이게 웬일이십니까? 대낮에 젊은 과부 집에는 왜 들어갔다가 나오십니까? 평양 일판에 소문이 쫙 퍼지면 어찌하시렵니까?"
양녕의 얼굴은 무안에 취해서 홍당무같이 붉어졌다.
"담이 터졌기에 잠깐 마당을 기웃하고 나오는 길이다."
"다른 사람은 다 속이셔도 소인은 속이지 못하십니다. 저 집은 평양 감영 이속의 집입니다. 남편이 죽어서 청춘과부가 홀로 수절하고 사는데 일가들이 무척 많습니다. 만약에 일가들이 들고 일어나면 나으리께서는 톡톡히 욕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서울 상감마마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장차 어찌하실 텝니까?"
명보는 괘사를 떨었다. 명보의 말을 듣자 양녕의 머리에는 퍼뜩 세종대왕의 용안이 떠올랐다. 또다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과부댁의 일가붙이가 많다는 말에 겁이 났다. 과부가 서울로 데려가지 아니하면 죽는 몸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이속의 집에 일가들이 많다더냐?"
"여간 많은 게 아니랍니다. 무척 번열하고 행세들을 똑똑히 한다 합니다. 그리고 일가들은 과부가 옳게 수절을 하나 하고 지켜본다 합니다."
명보는 팔을 흠뻑 벌려 많다는 시늉을 하며 풍을 쳤다. 양녕의 얼굴빛은 누렇게 질렸다. 풀이 죽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실은 내가 과부와 뜻이 맞아서 동침을 했다. 어떻게 무마할 도리가 없느냐?"
양녕은 과부와 사귄 전말을 자초지종 자세히 이야기했다. 명보는 눈을 끔벅거리며 한동안 생각하는 체했다.
"만약 일가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어떻게 감사한테 말씀해서 무마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녕은 펄쩍 뛰었다. 손을 홰홰 저었다.
"감사한테 이야기해서는 아니 된다. 서울로 단박 소문이 들어간다. 큰일 난다."
양녕의 얼굴을 세 번째 변했다. 백지장같이 하얗게 질렸다. 명보는 또다시 무엇을 생각하는 체하다가 슬쩍 휘갑을 친다.
"제가 이곳으로 내려온 후에 사귄 이속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떠들어대지 않도록 무마해보겠습니다."
양녕은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그럼, 네가 자 맡아서 처리해라. 무사타첩이 된다면 후한 상급을 주리라."
양녕은 말을 마치자 비로소 길게 한숨을 지었다. 이후부터 양녕은 정향과의 일을 명보한테 숨기지 아니했다. 하루는 명보가 감사와 짜고 양녕한테로 들어왔다.
"서울서 선전관이 내려왔습니다."
"선전관이 왜?"
양녕은 놀랐다.
"상감마마께옵서 특별히 선전관을 평안감사에게 보내서 명령을 내리셨다 합니다. 양녕대군께서 내려가신 지가 벌써 여러 달이 되었는데 올라오지 아니하시니 웬일이냐고 하문하시면서 급히 대군을 서울로 올라오시도록 치장을 차려드리라고 분부를 내리셨다 합니다."
양녕은 명보의 말을 듣자 낙담이 되었다. 서울서 평양구경을 간다고 상감께 고하고 온 지도 벌써 어언간 석달이 넘었다. 상감이 물어보는 것도 용혹무괴한 일이다. 아니 올라갈 수는 없다. 올라가면 정향과 이별을 하게 될 테니 기막히고 딱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정향을 데리고 갈 수도 없다.
"상감과 색을 멀리하겠다고 약속은 단단히 해놓았다. 작첩을 해가지고 올라갈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다."
양녕은 번민 속에 빠지기 시작했다. 얼굴엔 저절로 우울한 표정이 떠돌았다. 명보는 속으로 웃으면서 물러갔다. 이날 승석 때 감사는 양녕의 사처를 찾았다. 감사는 문후를 마친 후에 외수를 전했다.
"황공하오나 한 말씀 여쭙니다."
양녕은 감사가 나온 것을 보고 벌써 눈치를 챘다. 아까 명보가 전한 말을 감사가 친히 하려고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침을 떼고 묻는다.
"무슨 할 말이 있소?"
감사는 얼굴빛을 고치고 정중한 태도로 말한다.
"대감께서 곧 행장을 차리셔야 하겠습니다."
"무슨 행장을?"
"상감 전하께서 선전관을 내려보내시고 대감을 빨리 올라오시게 하라고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쉬 서울로 올라가셔야 하겠습니다."
양녕은 앙탈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좋은 구경을 하고 감사한테 폐를 많이 끼쳤소이다. 상감도 궁금해하신다 하니 쉬 행장을 차리도록 하리다."
양녕은 마음이 씁쓸했으나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좋게 대답하고 감사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온종일 우울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밤이 되었다. 양녕은 전과 같이 담 터진 곳으로 들어가 정향의 방을 찾았다. 그러나 마음은 우울하고 뒤숭숭했다. 심사가 좋지 아니하니 얼굴빛도 명랑하지 못했다. 맥이 풀렸다. 슬며시 목침을 베고 자리에 누워 버렸다. 감사의 지시를 받아 미인계를 쓴 정향이 양녕의 우울해하는 까닭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내색을 아니 하고 묻는다.
"나으리, 어디가 편치 아니하십니까?"
정향의 얼굴에도 근심이 서린 듯했다.
"아니---."
양녕은 시침 떼고 대답했다.
"아니가 무엇입니까. 기운이 없어 보이시고 맥이 빠지신 듯합니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다리를 쳐드리오리까?"
정향은 말을 마치자 양녕의 다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얹고 녹신녹신 두 손을 모아 주물렀다. 그러나 양녕의 얼굴빛은 여전히 침울했다. 정향은 근심스러운 듯 양녕의 얼굴을 향하여 볼이 닻을 듯 말 듯 들여다보며 가만가만 속삭인다.
"편치 않으시면 어디가 편치 않다고 말씀해주십시오. 야속합니다. 저에게 왜 숨기십니까? 수심이 계신 듯합니다. 저한테도 숨기시는 비밀이 있습니까? 너무나 박정합니다그려."
정향은 누워 있는 양녕의 얼굴에 이번엔 뺨을 대고 살살 비비며 졸랐다.
"어서 말씀해 주십쇼. 무슨 근심이 계십니까?"
양녕은 농익도록 다루는 정향의 애정에, 술에 취하듯 얼이 취했다. 홀연 눈시울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너와 나는 이제 이별을 해야만 한다. 아무리 해도 이제 나는 쉬 서울로 올라가야만 하게 되었다."
양녕은 마침내 토설을 했다. 정향은 깜짝 소스라쳐 놀라는 시늉을 했다.
"무어, 올라가셔요? 서울로 올라가시면 저는 어찌합니까? 부인께서 재촉을 하십니까?"
"상감께서 너무 오래 평양에서 유한다고 선전관을 보내서 올라오라고 감사한테 분부를 내리셨단다."
"그럼 저도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
정향의 음정은 떠는 듯 애원성을 지었다. 양녕은 얼른 대답을 못 한다.
"꼭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
정향은 이번엔 양녕의 허리춤을 휘어잡았다. 양녕은 한숨을 지으며 대답한다.
"결국 데려가기는 해야겠지만 이번 행차엔 어려울 것 같다."
정향은 허리춤을 놓지 아니했다.
"왜 어렵습니까? 백년해로를 하자고 수절하는 과부를 감언이설 꾀어내서 몸을 망쳐놓고 이제 와서는 데리고 갈 수가 없다 하시는 웬 말씀입니까? 나으리 같은 존귀한 분도 일구이언을 하십니까? 저를 데리고 가지 아니하시면 혼자는 못 가십니다!"
정향은 말을 마치자 방바닥을 쳐 통곡을 한다. 양녕은 도리가 없었다. 서울서 평양으로 내려올 때 세종대왕께 일체 주색을 멀리하겠다고 맹세했던 일을 일장설파했다. 정향의 울음은 여전히 그쳐지지 아니했다. 양녕은 난감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했다. 양녕은 엎드려 우는 정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사정을 한다.
"올라가서 상감께 사죄를 드리고 기회를 보아 데려가리라."
정향은 계속해 울면서 넋두리를 한다.
"아니 됩니다. 나를 데려가기 전에는 못 가십니다."
정향의 애타는 울음소리는 양녕의 간장을 토막토막 칼로 에어내는 듯했다.
"울지 마라, 정향아. 내가 먼저 서울로 올라가서 상감께 고한 후에 꼭 너를 데려가리라."
양녕도 눈물을 머금고 정향을 끌어안았다. 정향은 양녕의 품에 안겨 한동안 느껴 울다가 천천히 눈물을 씻고 고한다.
"상감께 주색을 멀리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오신 분에게 당장 데려가시라고 졸라댄들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나으리께서 먼저 서울로 올라가셔서 일을 주선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곧 데려갑시오."
정향의 말을 듣자 양녕의 입이 딱 벌어졌다.
"착하다. 네가 제법 소견스럽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준다면 내가 안심하고 서울로 가겠다. 너를 꼭 데려갈 테니, 조만간 기다리고 있거라."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제쯤 올라가시겠습니까?"
"곧 올라가야지. 선전관까지 내려보내셨는데 지체할 수 있느냐. 내일 아니면 모레쯤 올라가야 하겠다."
정향은 양녕의 말을 듣자 대꾸 없이 양녕의 품에서 벗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정향은 연엽주반에 간단한 술안주를 받들고 들어왔다.
"서울은 이곳에서 오백 리 길이 됩니다. 나으리께서 한 번 가신 후엔 그리워하는 상사몽으로 긴긴 밤을 지새야 할까 봅니다. 오늘 이 방에 이별주를 올려서 서운하고 애타는 간장을 달래볼까 합니다."
정향은 말을 마치자 옥잔에 가득 술을 부어 양녕한테 권한다. 이별주란 말에 양녕의 눈시울이 화끈했다.
"하늘이 사람을 만나게 해놓고 왜 잠시라도 이별을 하게 만든단 말이냐. 한을 풀어보려 하니 아니 마실 수 없고, 마시고 난들 무엇하나. 또다시 정이 서리는 것을!"
양녕은 잔을 비운 후에 정향에게 잔을 넘긴다.
"자아, 이별주다. 너도 한 잔 마시어라!"
정향은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젓고 잔을 받지 아니했다.
"저는 이별주를 아니 마시겠습니다. 이별이란 소리만 들어도 가슴에 난도질을 치는 듯합니다. 장차 서울로 데려가신다 하니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대신 청이 있습니다. 들어주십시오."
양녕은 정향의 말을 듣자 역시 가슴이 뭉클했다. 잔을 반 위에 놓고 술을 권하지 아니하고 묻는다.
"무슨 청이냐? 들을 만한 청이라면 들어주마."
이별
정향은 사뿐 고개를 떨어뜨리고 고한다.
"제가 수절하던 청상과부로 절개를 깨뜨려서 나리께 몸을 바쳤으니 망부와의 삼생가연은 이미 다 허튼수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옵고 나리와는 남들이 다 알게 육례를 갖추어 혼인한 것이 아니고 아니 밤중에 남몰래 의 아닌 짓을 범한 몸이 되었습니다. 친정과 시부모들이 알면 저는 죽는 몸이올시다. 나리께서 만약 저를 버리신다면 호소무처입니다. 나리께서 저와 연을 맺었다는 증거로 글 한 수를 지어주십시오."
양녕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어렵지 아니한 일이다. 먹을 갈아라."
정향은 벼루를 내놓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양녕은 시흥이 도도했다. 스스로 잔에 술을 따라 연거푸 서너 잔을 마시었다.
"시를 치마폭에 써주마. 치마를 끌러라."
정향은 멋지다고 생각했다. 입었던 연옥색 순린치마를 끌렀다. 양녕은 문갑 위에 놓인 백자필통에서 양호무심대필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먹을 듬뿍 찍었다.
"치마폭을 잡아라!"
정향은 치마를 활짝 폈다. 두 손으로 양편 끝을 잡았다. 양녕은 연옥색 치맛자락 위로 붓을 달렸다. 연옥색 치맛자락에 먹글씨가 꿈틀꿈틀 시를 뿜었다.
이별 길에
그대 향기
구름 되어 흩어지고
초정에 걸린 조각달
은갈고리 같구나.
가여워라, 잠 못 이루는 그 밤
뉘 다시 남은 시름 위로해주리!
양녕은 쓰기를 다 하자 붓을 던졌다. 정향은 청을 가다듬어 가만히 읊어본다. 호수 같은 눈엔 눈물이 이슬처럼 서렸다. 양녕은 청에 맞추어 연엽주반 변죽을 울린다. 정향은 영시를 끝낸 후에 눈물을 닦고 양녕한테 술을 따라 올리려고 한다.
"한평생 고이 지니고 있겠습니다. 다시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양녕은 정향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묻는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시 한 수를 더 지어주십시오. 이번엔 제 이름을 넣어서 지어주십시오. 그래야만 더 보배가 되겠습니다."
정향은 말을 마치자 의장문을 열고 치마 한 벌을 또 꺼냈다. 이번엔 홍공단 불구슬빛 같은 호화찬란한 비단치마다.
"이 치마는 망부와 혼인했을 때 초례청에서 입었었던 치마올시다. 이제 나리와 다시 연을 맺었으니 이 치맛자락에 제 이름을 넣어서 시를 지어주십시오."
술회를 하는 정향의 가련한 모습은 마치 한 떨기 백합 향을 뿜는 듯했다. 양녕은 사양치 아니하고 다시 붓을 잡았다. 홍공단 치맛자락이 활짝 펼쳐졌다. 양녕은 벼루에 붓을 담갔다. 듬뿍 먹을 찍어 쓰기를 시작한다. 양녕의 시흥은 더한층 높고 글씨는 더욱 신명이 났다. 홍공단 치맛자락에는 용과 뱀이 꿈틀거려 뛰는 듯했다. 정향은 무릎에 손을 얹고, 손가락으로 장단을 치면서 나지막하게 시를 읊어 본다.
한 번 이별한 후
잃어버린 고운 음성
아리따운 그대 맵시
아렴풋 안개 속일세.
초대의
꿀 같던 그 인연
어느 곳에 찾으리.
조그마한 안방 속
화장 마친 그대 얼굴
누가 있어 보아주나,
봄 시름 서린 그 눈썹
거울만이 알아주네.
달 밝은 밤에는
수베개를 엿보지 말라.
무심한 새벽 바람
비단 휘장 흔드누나.
다행타 뜰 앞에
정향나무 한 그루
옛정을 휘어잡아
다시 한번
그 가지 꺾어보리라.
시를 읊는 정향의 맑은 눈엔 눈물이 어려서 글썽거렸다. 양녕도 정향의 시음 소리에 따라 청을 높여 읊어본다. 자기가 지은 이별 시에 도취되어 눈물이 줄줄 뺨으로 흘러내렸다. 정향은 영시를 끝내자 양녕을 향하여 절을 하고 고마운 치사를 한다.
"한평생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다시 이 치마를 펴놓고 화촉을 밝힌 후에 고담 삼아 이야기할 때가 속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정향은 말을 마치자 연옥색 순린치마와 홍공단 붉은 치마를 차곡차곡 개켜서 의장 속에 넣었다. 이별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양녕과 정향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긴긴 밤을 말 없는 애무로 지새면서 차마 떨어지지 못했다. 두 사람은 잠을 이룰 수 없는데, 무심한 새벽 달빛은 창경으로 기어들었다. 두 사람의 이부자리엔 은물결이 소리 없이 부어내렸다. 뜰 앞에서 홀연 고양이가 '아웅' 소리를 치며 쥐를 잡으러 담 터진 곳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양녕과 정향의 인연을 맺어주었던 바로 그 고양이다. 양녕은 정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저 고양이를 잘 길러라. 고기도 좀 많이 주고---. 우리들의 가연을 맺어준 중매로구나---."
정향은 자리에 누워 대답 없이 보시시 웃었다. 창경으로 새어드는 달빛 아래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은 마치 호수 속에 누워서 미소를 짓는 인어처럼 마냥 아름다웠다. 양녕은 다시 정향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정향아, 내가 서울로 올라간 뒤엔 네가 고양이를 쫓아서 내 사처로 들어왔던 터진 저 담도 막아두어라."
정향은 까르르 웃어댔다.
"나으리께서는 의처증이 심하십니다그려. 호호호. 또다시 나리 같은 분이 터진 담으로 기어들까 겁이 나십니까? 호호호. 이제는 제사 지낼 상청도 없어졌습니다. 고양이가 제사에 쓸 적고기를 물어갈 까닭도 없습니다. 나으리 떠나가시기 전에 터진 담을 막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십쇼. 아주 담 막는 것을 보시고 돌아가십쇼. 호호호. 그러기에 어서 소인을 데려가십쇼."
고단한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의 치화와 치정이 무르녹은 안방 동창엔 어느덧 햇빛이 환하게 비쳤다. 한낮이 되었다. 한편 평안감사는 양녕의 서울 갈 행구를 차려가지고 사처로 찾아갔다.
"전하께서 매우 기다리시는 모양이올시다. 속히 올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녕은 서울 갈 것을 결정했으나 막상 당하고보니 정향을 떨어지기 난감했다. 한 번이라도 더 대해보고 싶었다.
"곧 서울로 가기는 가야 할 텐데 미진한 일이 한 가지 있소."
"무슨 일이오니까?"
"평양까지 내려왔다가 안주를 못 보고 간다면 한평생 한이 될 것이오. 청천강 구경을 한 번 하고 서울로 올라가겠소."
평안감사는 양녕의 원하는 마음을 꺾기 어려웠다.
"그럼, 안주 청천강을 한 번 둘러보시고 평양으로 오시어 서울로 가십시오."
감사는 쾌하게 허락했다. 양녕은 안주 구경을 핑계로 하여 다시 평양에서 정향을 만나보고 서울행을 하자는 내심이었다. 양녕은 잠시 서울행을 중지하고 안주로 향했다. 평안감사는 양녕이 안주로 향한 틈을 타서 선화당으로 정향을 불렀다.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얻었느냐?"
정향은 영리했다. 감사가 물어볼 것을 예측했다. 가지고 갔던 비단보를 감사 앞에 풀었다. 홍공단 치마와 연옥색 치마를 펼쳐 놓았다. 치마폭마다 양녕이 친필로 쓴 이별 시가 묵향을 뿜어 화사했다. 감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수고했다!"
감사는 정향을 위로했다. 감사는 양녕이 안주로 간 틈을 타서 정향과 치마폭에 쓴 이별시를 안동해 서울로 보내어 상감께 증거로 바칠 것을 결정했다.
탑전 배알
평안감사는 즉시 감영 군관을 불러 분부를 내렸다.
"너는 곧 정향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거라. 입성하는 즉시 정원으로 들어가 나의 장계를 올려라."
군관은 청령하고 곧 감사의 장계를 받은 후에 행리를 수습하여 정향과 함께 주야로 말을 달려 서울로 향했다. 세종대왕은 정원에서 바치는 평안감사의 장계를 받고 친감했다.
'신 평안감사는 삼가 성상 탑전에 아뢰옵니다. 양녕대군은 평양에 내려온 후에 일체 술과 기생을 가까이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는 수 없사와 근심하고 있던 차에 명기 정향이 자진해서 계교를 내었습니다. 스스로 청상과부로 거짓 꾸며서 양녕대군이 사처한 옆집에 미리 담을 터놓고 제육을 물어간 고양이를 쫓는 체해서, 달밤에 소복을 입고 담 터진 곳으로 들어가 양녕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이리하여 대군은 마침내 정향의 수단에 넘어가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되었삽고, 정향은 치마폭에 이별 시를 받아서, 그 증거를 삼았습니다. 양녕대군이 안주로 유람간 틈을 타서 군관편에 정향과 이별 시 쓴 치마 두 채를 안동해 올립니다. 정원을 통하여 탑전에 아뢰오니 굽어 살피시옵소서.'
대왕은 평안감사의 장계를 읽으시자 용안에 화려한 웃음이 소리 없이 떠돌았다. 곧 승지에게 분부했다.
"평안감사가 올려보낸 정향이란 기생을 불러들이라."
이윽고 승지는 정향을 어전에 인도했다. 정향은 전각 아래서 사배를 올렸다.
"가까이 오르게 하라."
정향은 전상에 올라 홍보에 싼 치마를 어전에 바치고 두 손을 모아 시립했다.
"네가 정향이냐?"
"네, 그러하옵니다."
대왕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과연 절세미인이었다. 대왕은 미소를 지어 자문했다.
"네가 양녕대군을 파계시키고 이별 시 받던 전후 전말을 상세하게 말하라."
정향은 수삽한 태도로 감사의 명을 받아 양녕을 유인하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보를 끌러라."
정향은 어전에 꿇어앉아 보를 끌렀다. 연옥색 순린치마와 홍공단 붉은 치마 두 채가 펼쳐졌다. 기막힌 이별 시가 치마폭마다 묵향을 뿜었다. 확실한 양녕대군의 용사가 비등하는 듯한 필적이었다. 전하는 미소를 띠고 승지에게 분부를 내렸다.
"정향을 관습도감에 출사케 하고 과인이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게 하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승지는 어명을 받들었다. 전하는 다시 정향에게 분부한다.
"양녕대군께서 써주신 치마 두 폭은 네가 좋이 간직했다가 내가 찾을 때 다시 바치도록 하라."
"네."
정향은 대답하고 치마폭을 보에 싸 승지와 함께 어전에서 물러났다. 한편 양녕은 안주로 나귀를 몰아 백상루에 올랐다. 청천강을 둘러보며 고구려 때 을지문덕 장군이 침입해 들어온 수병 백만을 무찔러 대패해 달아나게 했던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매불망하는 정향을 잊을 수 없었다. 급히 행장을 수습하여 평양으로 돌아왔다. 사처로 돌아온 후에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슬며시 담 터진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기척이 없었다. 목소리를 나직하게 하여 정향을 불러보았다. 반갑게 뛰어나와서 맞아주어야 할 정향이 나오지 아니했다. 진둥한둥 대청으로 올라 방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다. 텅 빈 방이다. 세간조차 없어졌다.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어리친 강아지 새끼 한 마리 없는 텅 빈 집이다. 양녕은 당황했다. 어찌 된 곡절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양녕은 입맛이 썼다. 발길을 돌려 사처로 돌아가 새우잠을 자고 말았다. 이튿날 양녕은 황황하게 감사를 작별했다. 정향과의 비밀을 말할 수도 없었다. 부랴부랴 명보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도동 집으로 가서 행리를 푼 후에 다음 날 세종을 뵈러 대궐로 들어갔다. 대왕은 멀리 다녀온 양녕을 위로하기 위하여 잔치를 차리고 양녕을 맞이했다. 술이 두어 순배 돌았을 때 대왕은 양녕에게 물었다.
"이번 평양 행차에 풍류기상이 어떠하시오니까?"
양녕은 정색하고 아뢴다.
"이리 전하께 주색을 멀리하겠다고 아뢰고 내려갔습니다. 술 한 잔 입에 대지 아니하고 기생 한 번 건드리지 아니했습니다. 평안감사가 다 알고 있는 일이올시다."
양녕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대왕은 양녕의 아뢰는 말씀을 듣자 쾌활하게 웃으셨다.
"형님, 무던히 참으셨습니다. 이제는 현인 지경에 가셨습니다. 감축합니다."
양녕은 대답을 해놓고도 대왕의 찬사를 받으니 양심의 가책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하고 붉어졌다. 이때 풍악 소리가 자지러지게 일어나면서 기생들이 노래를 불렀다. 손과 손을 서로 잡고 둥글둥글 원무를 추기 시작했다. 양녕은 춤추는 기생들을 바라보며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괴상한 일이다. 한 기생이 자기가 평양에서 지은 이별 시를 부르지 않는가! 깜짝 놀랐다. 노래하며 춤추는 기생을 바라보았다. 양녕이 전하와 함께 앉아 있는 어전과 기생이 춤을 추고 있는 곳은 상당한 거리에 있었다. 양녕은 눈을 씻고 바라본다. 기생이 춤을 출 때 펄럭거리는 홍공단 치맛자락에 글씨가 꿈틀거렸다. 흡사 자기가 평양에서 정향에게 이별시를 써주었던 그 치맛자락과 비슷했다. 그러나 양녕은 오백 리 밖 평양에 있는 과부 정향이 기생이 되어 어전에서 춤을 출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말을 못 하고 마음속으로 괴상한 일이라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춤은 끝나고 노래가 멎었을 때, 세종은 어수를 들어 행수기생을 부르셨다. 행수기생이 어전에 부복했다.
"저기 저 치마에 시를 써서 입고 춤을 추던 기생을 가까이 불러라."
행수기생은 어명을 받들어 치맛자락에 글을 써서 입고 춤추던 기생을 어전으로 인도하여 배알시켰다. 어전에 큰절을 네 번 올리는 화관 쓴 기생은 요염하도록 아리따웠다. 옆에서 대왕을 모시고 앉은 양녕이 눈을 들어 바라본다. 깜짝 놀랐다. 소복 미인 정향이 아니라, 화관 몽두리에 이별시 치마를 두른 기생 복색의 정향이었다.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뚝 떨어졌다.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도깨비에 홀린 듯했다. 대왕이 기녀에게 말씀을 내린다.
"과인의 형님 양녕대군이시다. 이 어른께도 절을 드려라."
기녀는 미소를 띠고 양녕을 향하여 큰절을 올렸다. 양녕은 숨이 가빴다. 얼굴이 화끈 달았다. 어찌해야 좋을지 몸 둘 곳을 몰랐다. 대왕은 기녀에게 명을 내리셨다.
"치맛자락에 글을 써서 입었구나. 멋진 풍류다. 어디 시를 좀 읽어보자. 치마를 끌러라."
기생은 치마끈을 풀었다. 용사비등하는 필력 있는 필치로 휘둘러 쓴 홍공단 치마폭이 어전에 펼쳐졌다.
"활짝 더 펴라!"
기녀는 홍공단 치마폭을 활짝 펼쳐 놓았다. 전하는 옥음을 높여 시를 읊어보신다. 옆에 있는 양녕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전하는 더한층 옥음을 높여 이별 시의 글귀를 읊는다.
"정전행유정향수 합파춘정갱절지."
"좋은 이별 시로다! 다시 만나자는 말이지."
전하는 용안에 미소를 풍기며 기녀에게 대답했다.
"네 이름이 정향이냐?"
"네, 그러하옵니다."
정향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여 나직하게 대답했다. 대왕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또다시 기녀에게 묻는다.
"누가 이 이별 시를 너에게 지어주었느냐? 보통 풍류랑이 아니로구나!"
정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양녕의 등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전하는 또 한 번 미소를 짓고 양녕을 향하여 물었다.
"형님! 이 글씨가 꼭 형님의 글씨체와 방불합니다. 혹시 치마의 주인인 이 사람을 짐작하십니까?"
양녕은 평양의 모든 비밀이 탄로난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전에 부복했다.
"신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군상을 속인 죄를 면치 못하오리다."
양녕은 말을 마치자 갓을 벗었다. 전하 앞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대왕은 부복해 죄를 청하는 양녕을 친히 일으켰다. 양녕은 일체 감사의 권하는 술과 색을 받지 아니했다가 우연히 달밤에 저지른 일을 일일이 고했다. 대왕은 미소를 지어 대답했다.
"그것은 형님의 죄가 아니올시다. 과인이 형님의 울적하신 회포를 위로해드리라고 평안감사에게 비밀한 지령을 내려서 기생 정향이 과부가 되어 담 터진 곳으로 고양이를 쫓게 한 것이니 과히 근심하지 마시오. 허물은 과인에게 있습니다."
대왕은 말씀을 마치자 껄걸 웃었다. 양녕은 비로소 까닭을 알았다.
"왕은이 지중하옵니다."
한 마디를 아뢰고 비로소 안심하는 숨을 지었다. 모든 시신과 궁녀들은 전하의 우애가 넘치는 지극한 정을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전하는 정향에게 명하여 양녕에게 석 잔 술을 올리게 한 후 다시 양녕에게 말씀한다.
"정향을 소실로 삼으시어 한평생을 안락하게 모시도록 하오리다."
양녕은 감격한 정을 이길 수가 없었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왕은이 산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습니다."
다시 감축한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전하는 정향을 바라보시며 분부를 내린다.
"너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지혜를 써서 나의 형제지정을 더한층 돈독하게 했으니 가상하기 이를 데 없다. 한평생 대군마마를 받들어 모시어서 안락한 생활을 하시도록 하라."
정향은 두 번 절하여 왕명을 받들었다. 전하는 궁녀에게 명하여 정향에게 비단과 피륙을 후하게 내리시어 상을 주시고 연회를 파했다. 전하는 다시 선공감에 영을 내려 양녕의 집을 격장으로하여 조그맣게 별당을 짓고 정향을 거처하게 하라 했다. 정향은 특명으로 기안에 이름을 뺀 후에 양녕대군의 부인께 뵙고 상감이 내리신 별당에 살게 되었다. 담 하나를 격하여 큰집이 있었다. 큰집과 별당 사이에 일각문을 세우고 양녕은 아침저녁으로 드나들었다. 평양 사처에서 담 터진 곳으로 드나들면서 정향과 꿀 같은 사랑을 남몰래 속삭이던 양녕은 아침저녁으로 정향의 별당에 드나들었다. 어리를 잃은 양녕은 전하의 배려로 다시 정향이란 소실을 얻었다. 양녕과 정향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고담같이 세상에 자자하게 퍼졌다. 양녕을 서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대신들도, 전하가 은밀한 분부를 평안감사에게 내려서 그의 호방한 성격에 주름살이 가지 않도록 처리한 전하의 우애지정을 알게 되자 다시는 입을 벌려 양녕이 서울 사는 것을 반대하고 탄핵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리어 성대에 갸륵한 일이라고 칭송하는 소리가 높았다.
확장되는 집현전
이야기는 다시 집현전으로 돌아간다. 세종은 식년제 과거와 알성과를 통하여 유능한 젊은 학사 박팽년, 최항, 이개, 성삼문, 하위지, 신숙주, 유성원 등을 얻은 후에 집현전 학사의 정원을 확장해서 늘릴 것을 결심했다. 먼젓번 처음으로 집현전을 창설했을 때 정원수를 10인으로 정했다. 그러나 대신과 대제학들이 뽑은 이 열 사람의 인재만 가지고는 학문과 예술을 전공시켜서 나라를 빛내게 할 동량의 재목을 양성하려는 집현전 창설의 근본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그 수가 적은 것을 전하는 절실하게 느꼈던 까닭이다. 이리하여 전하는 친히 춘당대에 임어하여 식년제 과장을 열어 박팽년과 최항을 뽑았고, 또다시 더욱더 준재를 얻기 위하여 문묘에 나가 알성을 한 후에 이개, 성삼문, 하위지, 신숙주, 유성원을 뽑아 아직 예문관에 배속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전하는 대제학 변계량을 어전에 명소해서 분부를 내렸다.
"과인이 원래 집현전을 창설한 것은 경도 아는 바와 같이 젊은 문인들을 발탁해서 문학과 예술로 나라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게 할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을 두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국가의 제술과 외교사령은 예문관 학사만으로 족하다. 집현전 학사는 역시 벼슬은 벼슬이지만 정사와 잡무에 관여하지 말고 다만 더욱더 학문을 연마해서 슬기로운 예지로 문명을 창조 발전케 하는 기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정리하고 예악과 문물을 중흥시키고 농사와 경제를 확충하고 과학을 진흥시켜서 천문, 지정, 의약, 복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을 개척해서 크게 국가에 이바지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때다. 나는 이 점을 생각해서 집현전 학사의 수를 늘리려 한다. 경의 뜻은 어떠한가?"
대제학 변계량은 전하의 원대한 경륜과열성 가득한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집현전을 창설했을 때 시안을 정인지 학사와 창안했건만 창립 정원이 열 사람밖에 아니 되는 때문에 정작 시안을 작성한 정인지도 감히 열 사람 속에 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에 전하는 어찌해서 정인지가 끼지 못했느냐 하고 하문한 일까지 있었다. 그 후에 전하는 더욱 연소한 문사를 더 뽑기 위해서 식년제 과거에 친림하시고 또다시 알성과를 뵈어서 훌륭한 청년 준재들을 친선했던 것이다. 대제학 변계량은 전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문형을 잡은 대제학으로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얼굴에 가득 화한 기운을 띠고 부복해 아뢴다.
"전하의 원대하신 성의를 쌍수를 받들어 찬동하옵니다. 곧 집현전 학사의 수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하는 어느 때나 신하를 대하여 말씀을 내릴 때는 항상 용안에 화한 기색을 띠고 웃음을 지어 대화를 나눈다.
"대제학이 집현전 학사 증원하는 일에 찬동하니 내 마음이 상쾌하다. 속히 안을 만들어 실천에 옮기도록 하라."
변계량이 아뢴다.
"지금까지의 정원 열 사람이 적다 하오면 몇 사람쯤 늘리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교해주시옵소서."
전하는 껄걸 웃으며 말씀한다.
"경은 내가 전제하는 군왕으로 아는가. 하하하. 먼젓번 집현전을 창설할 때도 집현전의 정원수와 학사 뽑는 일을 대신과 대제학이며, 이조의 장관이 모여서 결정한 일이 아닌가. 전례에 의해서 경들이 인원의 수와 학사를 선정해서 보고케 하라. 나랏일은 나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다 경들이 합심하고 협력해서, 이 국가를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묘당에 있는 경들이 좋도록 성안해주기 바란다."
너그럽고 부드럽고 포용성 있는 전하의 말씀에 대제학은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성의 정 그러하시다면 다시 학사들의 정원을 정하고 인물들을 선출하겠습니다."
"속히 결정하도록 하라."
대제학 변계랴은 어전에서 물러난 후에 영전사와 부제학과 이조장관을 모아 전하의 분부를 전하고 집현전 학사의 정원과 학사를 재편성하기 시작했다. 여러 날을 두고 회의를 거듭한 결과 결론을 얻었다. 집현전 학사의 정원은 30명으로 하고, 한림학사들을 예문관 속에서 옮겨서 뽑았다. 이중에는 대왕의 의중의 인물인 젊은 준총들도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정인지를 필두로하여 권채, 남수문, 신석조, 박팽년, 이개, 성삼문, 신숙주, 하위지, 유성원, 최항, 권제 등 신임된 학사를 위시하여 정원 10명 때 임명되었던 탁신, 이수, 신장, 김자, 어변갑, 감상직, 설순, 유상지, 유효통, 안지, 김돈, 최만리 등이 유임되고 여기에 영전사와 대제학이 포함되었다. 대제학 변계량은 정원을 늘리고 인선을 마친 후에 곧 어전에 복명했다.
"집현전 학사의 정원을 늘리고 인선을 끝냈습니다. 재가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전하는 흔연히 대답했다.
"정원은 몇 명으로 했는가?"
"전보다 20명을 늘려서 30인으로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전하의 용안의 화려했다.
"하하하. 30명씩이나 했는가. 좋은 인재가 그렇게 많았던가. 국가의 다행이로다!"
대제학은 명단을 올렸다.
"젊은 준재들 20명을 예문관 학사 속에서 옮기고 전임 10인을 합하니 30인이 되었습니다."
명단을 살펴본 대왕은 크게 기뻤다.
"대제학이 영도해서 잘들 해보라!"
전하는 명단 끝에 '쾌하게 윤한다', 어필을 썼다. 다음날 세종대왕은 새로 임명된 집현전 학사 30명을 어전에서 인견하셨다. 백수를 흩날리는 원로대신 영전사와 대제학을 위시하여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이석형 등 약관의 젊은 학사들이 제제다사로 사은숙배를 드리고 어전에 시립했다. 젊은 학사들은 전하가 친히 시관이 되어 급제로 뽑은 후에 처음 대면하는 장면이었다. 전하는 극히 만족한 얼굴로 젊은이들을 바라보신다. 젊은 학사들의 기상은 장원급제를 해서 어사화를 받들 때보다도 더욱 청수하고 윤기가 흘렀다. 눈에는 총명한 기운이 샛별같이 반짝거리고, 몸가짐은 더한층 장중하고 의젓했다.
전하는 용안에 가득 미소를 풍기시며 젊은 학사들에게 말씀을 내린다.
"너희들을 과장에서 창방할 때 대면하고 처음 만나는구나. 옛글에 사별삼일에 괄목상대라 하더니 너희들의 용모가 훨씬 더 좋아지고, 의젓해졌구나. 그동안 학문들을 많이 연마했나보다. 너희들의 얼굴이 좋아진 것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젊은 학사들은 다만 감격할 뿐이었다. 모두 다 고개를 숙여 황공한 뜻을 표했다.
전하는 다시 말씀을 내린다.
"이번에 너희들이 집현전 학사로 뽑힌 것을 나는 무한히 기뻐한다. 집현전은 국가의 문화정책을 맡은 최고기관이요, 과인의 자문기관이다. 너희들이 국가를 융성케 해보려는 과인의 만 가지 정치에 대해서 자문에 응하자면 만 가지 학문을 탐구해서 나의 자문에 응대해야 한다. 너희들이 나의 만 가지 학문을 탐구해서 나의 자문에 응대해야 한다. 너희들이 나의 만 가지 자문에 막힘 없이 대답하자면 만 가지 학문을 연구하고 연마해야 한다. 이 까닭에 나는 이 집현전을 만들었다. 그러하니 집현전은 국가의 사무를 보는 벼슬하는 기관이 아니라 관리의 대우를 받으면서 순전히 공부를 연마하는 연구기관이다. 너희들은 이 뜻을 받아서 경사자집은 말할 것 없고 천문, 지리, 병서, 의약, 복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을 전심으로 섭렵하고 연구해서 그 학문의 힘으로 위대한 국가를 창업하는 실천 행동에 옮기도록 하라! 옛적에 고려와 중국의 당에서도 집현전이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아조에 있는 예문관과 같이 국가의 사령과 외교문서를 제술하는 관청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과인이 의도하는 집현전은 순전히 학문을 연구케 하는 기관이다. 너희들은 과인의 뜻을 받아서 대성하도록 하라."
전하는 집현전을 창설한 근본 뜻을 소상하게 밝혀 말씀했다. 학사 정인지가 모든 학사를 대표해서 아뢴다.
"신 등 미거한 무리, 감히 영예로운 집현전에 뽑혀서 학문을 더욱 연마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심성의로 정성을 다하여 성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때 30명 집현전 학사 중에는 글 잘 하고 글씨 잘 쓰기로 이름 높은 신장과 그의 아들 신숙주가 다 함께 뽑혀 있었다. 전하는 신장 부자를 바라보시며 찬탄하는 말씀을 내린다.
"중국 송나라 때 소노천과 소동파, 소철 삼부자가 당송팔대가에 뽑혔더니, 우리 집현전에 부자 학사가 났으니 가상한 일이로다!"
전하의 말씀이 떨어지자, 반열에 시립해 있던 늙은 학사 신장이 어전에 나와 부복해 아뢴다.
"왕은이 융숭하시와 성대에 창설되는 집현전 학사에 부자가 동참하는 광영을 입사오니 황공 감격하온 하정을 이루 다 아뢸 길 없사옵니다. 전하께옵서는 소신의 부자에게 삼부자 문장 삼소에 비하셨사오나 소신의 부자가 어찌 감히 삼소를 따르오리까. 전하께옵서는 일찍이 동궁에 계실 때부터 오늘날 제왕의 자리에 앉으시어 만기를 총람하시는 분망하신 중에도 책을 대하시면 백독, 천독을 하셨다 합니다. 저희들 집현전 학사들은 전하의 독서하시는 성근을 본받아 전심 독서하여, 성의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 합니다."
늙은 선비 신장의 아뢰는 말씀을 듣자 전하는 용안에 화려한 웃음을 띠고 대답하신다.
"과인 같은 노둔한 사람이야 다만 도능독으로 책만 읽었을 뿐이지, 무엇을 확실하게 알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서전' 천독을 하고 '시전' 천독을 한 후에 '춘추좌전'과 굴원의 '초사'를 백번을 읽고 또 백 번을 읽어서 2백 번을 읽었다. 그러나 용속한 재질이라 겨우 사물을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연소배의 학사들은 모두 다 영민하고 총명한 사람들이니 과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집현전을 잘 이용해서 크게 대성하여 나라의 문화를 흠뻑 드높게 하라. 그대들이 원하는 모든 서적은 경사자집을 위시하여 유루 없이 집현전에 비치하리라."
젊은 학사들은 대왕이 '서전' 천독에 '시전' 천독을 하고 '좌전', '초사'를 1백 번씩이나 읽었다는 말씀을 듣자 모두들 마음속으로 놀라고 탄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같이 문학과 사학을 천독, 이천독한 임금인 까닭에 학문의 연구기관으로 집현전을 장설해서 이 나라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하려는 위대한 생각을 가졌구나 했다. 젊은 학사들은 아직도 '서전' 천독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많이 읽었어야 열 번쯤 아니면 스무 번쯤 읽었다. 모두 다 전하는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고개들을 숙여 혀를 홰홰 둘렀다. 전하는 다시 한 말씀을 내린다.
"해서 아니 되는 법은 없다. 하면 되는 것이다. 노력을 하라. 노력 끝에 영광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하여 집현전을 빛나게 하라. 오늘날 창설한 이 집현전이 잘되고 못 되는 것은 너희들 젊은 학사을의 손에 달렸다. 잘들 해보라......."
전하는 말씀을 마치자 내관을 불러 미리 준비했던 사찬과 선온을 내렸다. 집현전 학사들은 더한층 감격했다. 전하의 말씀에 취하고 향기 가득한 천일주에 취했다. 마음속으로 굳게 굳게
공부할 것을 다짐하면서 어전에서 물러났다. 새로 확장된 집현전에는 만 권 서적을 쌓아놓고 젊은 학사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제각기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책을 펴놓고 자유롭게 공부를 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경서를 연구하는 사람, 정치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 시가를 탐독하는 사람, 자유자재다. 그러나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읽고 연구한 그 결과로 자가류의 학설을 창안해야 했다. 독자적인 시풍을 창조해야 했다. 집현전 학사도 관직은 관직이지만 사무와 잡무를 보는 관직이 아니다. 전심으로 독서를 하고 학술을 탐구하는 관직이었다. 새벽에 일찍 출사해서 밤이 늦어서야 비로소 퇴근을 했다. 또다시 일직과 숙직의 제도를 윤번으로 해서 번차례가 된 학사들은 집현전에서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했다.
30명의 집현전 학사 중에 학문과 재예와 시가와 문장으로 뛰어나게 이름을 드날려서 세상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학사들은 유의손, 권채, 남수문, 박팽년, 이개, 성삼문, 신숙주, 이석형 등이었다. 이들은 집현전에서 독실하게 공부를 쌓아서 더 한 번 중시라는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의 영광을 얻었다. 중시는 한 번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공부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하는 뜻으로 당하관에게 또 한 번 보게 하는 과거제도다. 이 영광스런 중시에 합격이 되면 벼슬 계제가 높아지고 명예와 대우가 융숭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세종대왕은 당신이 창설한 집현전 학사 중에서 중시장원이 쏟아져 나오게 되니 집현전 학사를 옳게 뽑은 것이 무한 기뻤다. 항상 집현전 학사들의 동정에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루는 대제학 변계량이 입시했다. 전하는 변계량에게 말씀을 내린다.
"집현전 학사 중에서 중시에 합격된 사람이 많이 나왔으니 내 마음이 기쁘오. 앞으로 국가의 동량지재가 될 사람을 과인이 옳게 뽑았나 보오."
변계량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아뢴다.
"모두 다 전하의 홍복이요, 국가의 다행인가 합니다. 그리하옵고 전하께 아뢸 말씀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집현전 남편 양지바른 뜰 앞에는 옛날부터 큰 버드나무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러한 일이 없었는데 요사이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흰 까치가 와서 보금자리를 치기 시작하더니 요사이 새끼 10여 마리를 낳아 버들잎 푸른 사이로 하얀 까치 새끼가 마치 면화 꽃송이가 바람에 흩날리듯 풀풀 날고 있습니다.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크나큰 길조인가 봅니다."
전하의 용안이 활짝 열렸다.
"흰 까치가 새끼를 쳤다? 과연 희한한 일이로다. 원래 까치는 깃이 검고 뱃바닥이 흰 것인데 순백으로 흰 까치가 새끼를 쳤다 하니 범사한 일이 아니로다!"
전하는 크게 기뻤다. 곧 내시에게 분부를 내린다.
"집현전 뜰 앞 버드나무에 흰 까치가 새끼를 쳤다 한다. 상서로운 조짐이다. 대제학을 동반해서 내가 친히 가보리라. 떠들지 말고 조용히 앞을 서라."
내시가 아뢴다.
"자비를 놓으오리까?"
"소란을 떨지 말라. 보행으로 가리라."
내시는 청명하고 앞을 섰다. 전하는 대제학 변계량과 어깨를 가지런히 하여 승정원 옆을 지나, 집현전 앞뜰에 당도했다. 평민적인 전하의 소탈한 성격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대제학 변계량은 황공 감격했다. 전하의 옥보는 집현전 앞뜰에 당도했다. 과연 길이 넘는 수양버들 큰 나무 다섯 주가 푸른 장막을 이룬 한복판 상상가지에 흰 까치가 집을 지어놓고 주위에는 무수한 새끼 까치들이 풀솜덩이가 날 듯 이 가지 저 가지로 반가운 희작의 소리를 노래하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전하는 용안에 가득 웃음을 짓고 한동안 흰 까치 새끼들의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속담에,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손이 오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기쁜 소식이 들린다는 길조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으면 장원급제가 나온다는 전설도 있다. 보통 까치가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도 귀한 일이 생긴다 하는데 황차 흰 까치가 집현전 뜰 앞에 집을 짓고 많은 새끼를 깠으니, 이것은 보통 길조가 아니다. 더구나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서 있는 곳에 흰까치가 집을 짓고 새끼를 낳은 것은 집현전 학사들이 앞으로 크게 문화를 진작시킬 조짐이다. 과연 크나큰 길상이로다."
대제학 변계량이 옆에서 아뢴다.
"옛적에 도연명은 문전에 버드나무 다섯 주를 심은 까닭에 그의 문학과 청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오류 선생이라 해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미담이올시다. 이제 집현전 뜰 앞에는 오류에다가 다시 흰 까치들이 많은 새끼를 쳤으니 도연명보다도 더 훌륭한 맑은 절개와 품 높은 문학을 창조할 인사들이 많이 배출될 것입니다."
전하는 고개를 끄덕여 점두하고 내관을 돌아보며 분부를 내렸다.
"집현전에도 수복과 비자들을 두어서 모든 학사들의 편의를 보게 하고, 흰 까치를 잘 보호해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라."
"각별히 시행하겠습니다."
내관은 청명했다. 전하는 다시 대제학 변계량을 돌아보시며 말씀한다.
"내가 이곳까지 왔으니 집현전에 올라 학사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리라."
변계량은 당황했다. 혹시 학사들이 산만한 태도로 앉아 있을까 겁이 났다. 그러나 전하의 행동을 만류할 길 없었다. 조심조심 전하를 집현전으로 인도했다. 돌연 통기도 없이 전하가 집현전에 올랐건만 제제다사의 젊은 학사들은 일사불란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학문을 탐구하고 있었다. 전하는 마음속으로 크게 기뻤다. 격려하는 말씀을 내리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이후로부터 전하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젊은 학사들을 마치 친아우와 자질같이 생각했다. 하루는 밤이 깊었다. 전하는 천독했다는 '서전'을 다시 읽었다. 자정이 넘었다. 훌륭한 정치를 하고 싶었다. 천독까지 한 '서전'을 또 한 번 읽어보는 것이다. 대전 침실에 불이 켜있으니 왕후 심씨와 모든 후궁들도 감히 취침하는 자리에 들 수 없었다. 대전과 내전에 불이 켜있으니 시녀와 입직 내관들도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자시를 알리는 종루의 인정 소리가 들렸다. 왕후 심씨는 시녀에게 명했다.
"대전에 아직도 불이 켜있나 알아보고 오너라."
시녀는 봉명하고 나가, 전하의 동정을 살폈다. 이윽고 돌아와 복명했다.
"아직도 취침하시지 아니하시고 글을 읽고 계십니다."
왕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녀에게 다시 분부했다.
"혜빈 양씨를 불러라."
혜빈 양씨가 명을 받들고 왕비전으로 들어왔다.
심왕후는 웃으며 양씨에게 말씀한다.
"너도 아직 자리에 들지 아니했구나."
"대전마마와 중전마마께옵서 아직 침소에 듭시지 아니하셨는데 소인네들이 어찌 감히 한만스럽게 자리에 드옵니까."
두 손을 모아 시립해 대답했다.
"지금 전하께서 아직도 취침을 아니하시고 글을 읽고 계시다. 저녁 수라를 받으신 지 여러 시각이 되었다. 독서하시는데 피로하시면 아니 된다. 너는 곧 밤참을 가볍게 준비해서 올리도록 하라."
혜빈 양씨는 후궁 중에 수라를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때문이다.
"무슨 음식으로 하오리까?"
"가벼운 음식을 올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온면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혜빈 양씨는 곧 수라간에 나가 온면을 준비한 후에 왕후께 복명을 했다.
"밤참 수라가 다 되었습니다."
"네가 친히 수라상을 받들어라. 내가 앞을 인도하리라."
왕후 심씨의 범절은 이같이 법도가 있었다. 전하의 침식에 대해서 주밀한 관심을 가져 후궁들을 일일이 지휘했다. 왕후 심씨가 앞을 서고 후궁 양씨는 밤참 수라를 받들어 대전으로 향했다. 전하는 글을 읽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타나는 왕비와 혜빈 양씨가 받든 수라상을 보았다.
"그것이 무엇이냐?"
"자정이 넘었습니다. 피로하실까보아, 가벼운 음식을 받들었습니다."
"자정이 넘었다? 현처와 혜빈이 정성스럽게 주는 밤참이니 어디 조금 들어봅시다."
전하는 유쾌하게 면 수라를 받았다. 홀연 생각이 났다.
"집현전에 불이 켜있나 알아보라 하오."
왕비를 향하여 말씀했다.
초구(잘배자)
왕비는 곧 어전에서 일어나 시녀에게 명했다.
"공사청에 나가 입직 내관을 불러라."
시녀는 나는 듯이 공사청으로 나가 내관을 데리고 들어왔다.
"집현전에 나가 학사들의 동정을 살피고 오라고 분부를 내리셨다. 곧 알아보고 복명을 드려라."
내관은 곧 집현전으로 나가 학사들의 동정을 살폈다. 때는 벌써 자시가 훨씬 넘었건만 젊은 학사들은 제각기 책상 앞에 유경을 놓고 자세를 바로하여 글을 읽고 있었다. 한 사람도 태만한 기색이 없었다. 정숙하고 조용했다. 다만 가끔가다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유경의 등심 튀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늙은 내관도 학사들의 공부하는 태도에 감동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내관은 곧 대전으로 돌아가 전하께 복명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지금 자시가 훨씬 넘었건만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서 등불을 돋우고 공부들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전하의 용안은 화려하게 웃음을 웃었다.
"허허, 가상한 일이로다. 누구누구들이 공부하더냐?"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이석형, 이개, 최항, 하위지, 유성원, 권채, 남수문, 신석조들이올시다. 그리하옵고 제학 정인지는 딴방에서 불을 돋우고 혼자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내관의 복명하는 말을 듣자, 곧 왕비를 돌아보며 말씀한다.
"이제 젊은 학사들이 자시가 넘도록 자지 않고 이와 같이 공부를 한다 하니 장차 이 나라가 잘될 것 같소. 현처는 내가 밤늦도록 책을 읽는데, 피로하겠다고 밤참을 주었소마는, 내 어찌 또한 젊은이들을 생각하지 아니하겠소. 혜빈에게 분부해서, 집현전 학사들의 밤참을 차려서 곧 내보내도록 하시오."
전하는 또다시 내관에게 분부했다.
"혜빈이 밤참을 차려주거든, 너는 곧 음식을 가지고 집현전에 나가 학사들을 접대하라."
전하는 내관에게 분부한 후에 또다시 혜빈 양씨와 왕비께 당부한다.
"나에게는 밤참으로 가벼운 음식을 택해서 국수를 주었지만, 한창 식욕이 왕성한 젊은 학사들한테는 국수장국으로는 간에 기별도 아니 갈 테니, 곰탕을 끓여서 내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소? 하하하."
전하는 말씀을 마치고 옥음을 높여 웃었다. 심왕후도 웃으며 대답한다.
"전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한창 장년인 젊은 학사들에게는 면만 가지고는 부족할 듯합니다. 마침 숙설간에는 곰국이 있을듯합니다. 혜빈, 그러면 네가 친히 나가서 학사들의 밤참을 지휘하라."
"지체없이 거행하겠습니다."
혜빈도 웃음을 짓고 급히 숙설간으로 향했다. 전하가 이같이 집현전 젊은 학사들을 생각해서 자질과 같이 사랑하는 그 이면에는 화기 가득 찬 왕비와 후궁들의 내조의 공이 컸던 것이다. 이윽고 대내에서는 집현전에 숙직하는 학사들의 밤참이 나갔다. 곰탕뿐이 아니다. 너비아니에 전유어에 차돌박이, 양지머리편육에 수란, 청포무침이 안주로 놓여있고, 반주로 용안 여지 당대추를 조합한 약주가 옥호로병에 가득 담겨 나왔다. 자시가 넘도록 글을 읽고 있던 학사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이거 웬일인가?"
서로들 돌아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늙은 내관이 만면에 웃음을 짓고 고한다.
"전하께옵서 여러분 학사들이 자정이 넘도록 공부에 전념하신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왕후마마와 후궁마마께 분부를 내리시어 밤참을 대접하셨습니다. 소인이 접대하라는 분부를 받들었습니다. 많이들 잡수시오."
집현전 학사들은 비로소 전하께서 사찬하신 것을 알았다. 모두 다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원래 집현전을 창설해서 좋은 인재를 양성하려는 전하의 뜻은 알았지만, 이같이 대접이 융숭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아니했다. 모두들 감격하는 마음으로 내관이 권하는 대로 마시고 먹었다. 생전 처음 마셔보는 용안여지주의 향기로운 술맛은, 한평생 잊지 못해 하는 그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튿날 늙은 내관은 대전에 들어가 간밤에 집현전 학사들을 대접한 일을 고했다.
"지난밤에 집현전에 나가 전하께서 내리신 음식을 학사들에게 권했습니다."
"무슨 음식으로 했느냐? 곰탕반을 권했느냐?"
"중전마마께오서 혜빈마마께 분부하시어 곰탕 이외에도 술과 안주를 내리시어 학사들은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하옵고 융숭하옵신 전하의 배려에 모두 다 감격하와 어찌할 바를 몰라들 했습니다."
"술은 무슨 술을 내보냈더냐?"
전하는 잼처 물었다.
"상감마마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집현전 학사들이라 해서 중전마마께는 용안여지주를 주라고 특별한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그리하와 학사들은 생전 처음 마셔보는 아름다운 술맛을 보고 모두 다 입이 놀란다고 감탄들을 했습니다."
전하는 내관의 아뢰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했다. 용안에 화창한 웃음을 가득 띠고 분부를 다시 내린다.
"중전에 들어가 마마를 모시고 나오너라."
이윽고 왕후 심씨가 대전으로 나왔다. 뒤에는 늙은 내관과 궁녀가 따랐다.
"부르셨습니까?"
전하는 희색이 만면해서 대답했다.
"간밤에 마마가 친히 혜빈을 지휘해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내리신 술과 음식을 학사들은 배불리 먹고 무한 좋아들 했다 합니다. 과인이 말씀한 탕반 이외에 마마께서 더한층 생각을 하셔서 좋은 술과 안주까지 내리셨다 하니 내조하신 힘이 과연 컸소. 학사들이 감격했다 합니다."
"전하께오서 집현전을 창설하시고 학사들을 자질같이 생각하시니, 제 어찌 자질같이 느끼지 아니하오리까. 내조란 성지는 지나친 말씀인가 하옵니다."
심왕후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양처현모의 현숙한 태도다. 전하는 다시 말씀을 꺼낸다.
"학사들이 잘 먹었다는 말을 들으니 과인의 마음이 흐뭇하오. 내일부터는 번을 든 학사들의 아침밥은 안에서 내보내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마마, 괴롭지 않겠소이까?"
"전하, 괴롭다니 무슨 말씀을 그리 내리십니까? 전하의 젓수시고 난 어선만 해도 조석으로 수십 인을 접대할 수 있습니다. 숙설청의 수십 궁녀는 두었다가 어느 때 쓰겠습니까. 아무 염려 마십쇼. 분부대로 입직 학사들의 아침저녁은 대내에서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고맙소."
전하는 왕후를 대할 때 언제나 제왕의 권위를 허장성세로 뽐내는 상감마마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안상하고 부드럽기 짝없는 착한 남편이었다. 전하는 다시 늙은 내관에게 말씀한다.
"여태껏 숙직하는 학사들의 밥은 어찌했다 하더냐?"
"집에서 번상을 받들어 왔습니다."
"청빈한 선비들의 번상보다 궐 안의 음식이 영양이 있을 것이다. 네가 내 뜻을 받아서 잘 접대하라."
내관은 명을 받았다. 이리하여 집현전 입직 학사들의 아침과 저녁을 대내에서 내리게 되었다.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구중궁궐 임금이 거처하는 호화로운 곳이언만, 역시 삭풍이 살을 에도록 불어오는 추위는 막을 길이 없었다. 더구나 낙목한천에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밤은 더한층 춥고 쓸쓸했다. 대왕이 거처하는 침전에도 방장과 문면자를 겹겹이 쳤건만, 방 속엔 찬 기운이 돌았다. 전하는 백동화로에 백탄을 피워놓고 경궤 앞에 단정하게 앉아 책을 연구하고 계셨다. 낮에는 대신들을 불러 정치에 대한 지도를 하는 때문에 책을 볼 틈이 없었다. 어느 때나 저녁 수라를 끝낸 후에는 밤늦도록 독서를 하는 것이 전하의 일과다. 이날 밤에도 전하는 자정이 지나도록 글을 읽고 있었다. 밤이 깊으니 추운 기운은 전하의 몸을 더한층 엄습했다. 등이 으스스하다. 벽에 걸어논 잘배자를 떼어 입었다. 아까 왕후 심씨가 잘베자를 내전에서 손수 들고 나와서 입으라고 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하는, 아직 춥지 아니한데 잘털을 댄 배자를 입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 해서 입지 아니했다. 왕후는 하는 수 없었다. 새벽녘에 추우시면 입으시라고 말씀을 올리고 벽에 걸어놓고 내전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자정이 넘으니 백동화로에 숯불도 사위기 시작했다. 찬바람은 문풍지를 더욱 강하게 흔들었다. 전하는 초저녁 때 왕후가 벽에 걸어놓고 간 잘배자를 떼어 입었다. 전하는 유경에 등심을 돋우고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문득 집현전 학사들의 생각이 났다. 하도 밤이 깊고 차니, 입직한 젊은 학사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려니 하고 생각했다.
"이리 오너라---."
전하는 입직 내관을 불렀다.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젊은 내시가 들어왔다.
"너, 집현전에 나가서 번 든 학사가 누구며, 자고 있는지 글을 읽고 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내시는 명을 받들고 집현전으로 나갔다. 집현전 학사청에는 불이 환하게 켜 있었다. 내시는 발자취를 죽이고 가만히 창문 틈으로 청 안을 들여다보았다. 신숙주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 내시는 곧 발길을 돌려 전하께 들어가 아뢰었다.
"집현전 학사는 아직도 글을 읽고 있습니다."
"입직 학사가 누구더냐?"
"신숙주올시다."
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가 있거라."
내관은 옆방으로 물러갔다. 축시가 지났다. 전하는 다시 내관을 불렀다.
"집현전에 다시 나가보아라. 동정이 어떠한가."
내시는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내시가 돌아와 전하께 고했다.
"아직도 신숙주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서 글을 읽고 있습니다."
"축시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자지 않고 글을 읽고 있더란 말이냐!"
전하는 감탄했다.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네, 그러합니다. 조금도 피곤한 빛이 없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방이 매우 차겠구나?"
"쓸쓸하고 소랭합니다. 곱돌화로에 숯불도 꺼진 듯했습니다."
"허허, 감기가 들면 어찌하나?"
전하는 마치 자식같이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번 나가보아라. 그만 공부하고 이불을 덮고 자면 좋겠는데---."
내시는 물러갔다. 어느덧 인시 초가 되었다. 내시는 또다시 집현전으로 나가 신숙주의 동정을 살폈다. 신숙주는 여전히 책상머리에 꿇어앉아서 글을 연구하고 있었다. 전하의 심부름으로 왔다 갔다 하는 내시건만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어전으로 돌아왔다. 전하도 아직 침소에 들지 아니하셨다.
"아까 분부하신 대로, 인시가 되었삽기 집현전에 또다시 나가보았습니다. 아직도 입직 학사 신숙주는 책상 앞에 단정하게 꿇어앉아서 책장을 넘기면서 무엇이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들으시자 더욱 감탄했다.
"허허, 기특하구나! 반드시 성공을 하고야 말 사람이다."
전하는 이내 말씀을 마치고 입으셨던 잘배자를 벗었다. 내시는 마음속으로, 날이 찬데 배자는 왜 벗으시나 생각하고, 어전 등 뒤로 돌아 배자 벗으시는 시중을 들었다. 전하는 배자를 벗은 후에 내시에게 내주시었다.
"덩그런 집현전 청사에 밤을 새워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춥겠느냐. 내가 입었던 잘배자를 가져다가 덮어주어라. 지금 자지 않고 깨어 있는데 입으라 하면 받지 아니할 것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리에 들어 잠이 들거든 덮어주어라."
천고에 드문 인자한 제왕의 마음씨다. 사람을 기를 줄 알았다. 학자를 대접할 줄 알았다. 심부름을 하는 내시의 눈에서도 감격한 눈물이 핑 돌았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두 손으로 전하의 잘배자를 받들고 집현전으로 나갔다. 그러나 신숙주는 아직도 잘 생각을 아니하고 글을 읽고 있었다. 내시는 추호라도 어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신숙주가 책상을 밀고 자리에 들기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시는 춥지만 참고 있었다. 어느덧 파루를 치기 시작했다. 닭이 홰를 치며 '꼬끼오' 울었다. 그제서야 신숙주는 책상을 밀어놓고 유경의 불을 끈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한동안 후에 신숙주의 코 고는 소리가 창문밖에 들렸다. 내관은 껴안고 있던 잘배자를 들고 소리 없이 창문을 열었다. 발자취 소리를 죽이고 잠이 든 신숙주 몸 위에 전하의 잘배자를 덮어주었다. 이튿날 날이 밝았다. 집현전 뜰 앞 버드나무 가지에 흰 까치들이 반가운 소리로 깍깍거렸다. 해가 동창에 환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신숙주는 까치 소리에 잠이 깼다. 어찌 된 일인지 몸이 훗훗하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아졌다. 새벽 오경 때 자기가 덮었던 이불은 무명이불인데 털붙이가 웬 것인가 했다.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보니 기막히지 아니한가. 얄따란 무명이불 위에 약과무늬 잘배자가 덧덮여 있었다. 윤이 자르르 흐르는 잔털이 반듯반듯 네모진 갈색 털과 황색 털로 아름답게 조각조각 붙여진 잘배자다. 신숙주는 난생 처음 이런 물건을 대해보았다. 양털 배자나 토끼털 투수는 노인들이 입고 끼고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으나, 이같이 차분하면서 부드럽고, 반듯반듯 정방형의 아름다운 질서를 유지하면서 갈색과 황색의 조화미를 풍기는 잘배자는 갖옷이 아니라 곧 예술품이었다. 신숙주는 망연히 넋을 잃은 채 손으로 부드럽고 고운 털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나 이 털배자 이름을 무슨 갖옷이라고 부르는지 몰랐다. 신숙주는 도리어 멍하니 고민 속에 빠졌다. 털배자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은 고사해놓고, 도대체 이 좋은 훌륭한 모의가 어떻게 해서 자기 몸 위에 덮여져 있었던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자기는 간밤에 오경 때가 넘어서 파루 치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책을 덮고 자리에 들었다. 도대체 이 털배자를 덮어준 사람이 누군가? 간밤에 숙직한 학사는 자기 한 사람뿐이다. 덮어줄 사람이 없다. 더구나 이 모의는 고귀한 값진 물건이 분명하다. 이 값진 물건을 집현전에 들어와 자기에게 덮어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괴상한 일이다. 귀신이 있다는 말은 글에서도 읽어보고, 속담으로도 들었다. 귀신이 덮어주었을까? 신숙주는 등판에 오싹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기쁜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버드나무 가지에서는 흰 까치들이 여전히 반가운 소리를 내며 깍깍거렸다. 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마당 쓰는 소리가 났다. 수복이가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모양이다. 신숙주는 인기척을 들으니 반가웠다. 무릎 위에 덮여 있는 잘배자를 차곡차곡 개켜서 옆에 놓았다. 무명 이부자리를 개켜서 벽장 속에 집어넣었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싸늘한 겨울 바람이 '쏴아' 하고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그러나 아침 기온은 무한 신선했다. 신숙주의 머리는 싸늘하게 식었다. 정신이 쇄락했다. 흰 까치들이 또다시 버드나무 가지 위로 오르고 날며 반가운 소리로 깍깍거렸다. 미닫이 여는 소리를 듣고 마당을 쓸던 수복이가 굽실했다.
"학사님, 안녕히 주무셨곕쇼."
신숙주는 수복이가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을 보자 반가웠다.
"창손인가? 밤 사이 잘 지냈나?"
"예, 잘 잤습니다."
수복이가 대답했다. 창손이는 수복이의 이름이다. 신숙주는 수복이를 대해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여보게 창손이, 자네 간밤에 어느 때쯤 잠이 들었나?"
"학사님께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시니 소인이 어찌 일찍 잘 수 있습니까. 자정 때 한 바퀴 경내를 둘러본 후에 문을 걸고 잤습니다. 그건 왜 물어보십죠?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닐세. 별일은 없네마는, 파루를 친 후에 집현전에 혹시 누가 다녀간 사람이 없었나?"
"파루 칠 때는 소인들은 잠이 깊이 들어서 모릅니다. 자정 때까지는 알고 있습죠. 대전내시가 한 번 다녀간 일은 있습니다. 학사님께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시나 아니 하시나 하고 밖에서 살피고 들어간 일은 있습니다. 소인이 순력을 돌다가 내관이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어째 나오셨소?' 했더니, 내관은 빙긋 웃으면서 상감마마께서 학사님들이 공부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분부가 계셔서 알아보고 간다고 대답하고 갔습니다."
"그러면 파루 친 이후의 일은 전혀 모르겠네그려."
"자정이 넘어서 잤으니 깜빡 새벽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왜, 실물을 하신 일이 있습니까?"
수복이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니, 물건을 잃어버린 일은 없네마는, 이상한 일이 있어서 그러네. 내가 파루 치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갖옷이 내 몸에 덮여져 있네그려. 누가 와서 덮어줬는지 까닭을 모를 일일세. 하도 괴상해서, 혹시 자네가, 누가 온 것을 아나 하고 물어본 것일세."
"갖옷을 학사님께 덮어드렸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파루 친 후의 일인데, 누가 첫새벽에 잠을 자지 아니하고 이곳으로 들어왔겠습니까. 거참 괴상한 일이올시다. 더구나 구중궁궐 대궐 안인데---필연코 내관이 또 나왔다가 덮어드린 것이 아닐까요? 어디, 갖옷을 좀 보여줍시오."
신숙주는 수복이를 공부하는 서재로 불러들였다. 차곡차곡 개켜논 털옷을 보여주었다.
수복이는 깜짝 소스라쳐 놀랐다.
"에구머니나, 이것은 약과 무늬 잘배자올시다. 네모 반듯한 방약과를 모아논 것 같다 해서 약과문 잘배자라 합니다. 귀하기 짝없는 모의올시다. 우리나라에서는 귀인이 아니면 구해 입을수 없는 귀한 물건입니다. 혹시 상감마마께서 입으셨던 의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디, 자세히 살펴보십시다."
수복이의 말을 듣자 신숙주도 또 한 번 놀랐다. 수복이와 함께 잘배자를 들고 다시 살폈다. 잔털을 댄 거죽은 자주 공단 바탕에 수복 무늬를 수놓았고, 띠를 죄는 황금 고리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두를 아로새겼다. 수복이는 깜짝 소스라쳐 놀란다.
"어허, 어물이올시다."
수복이가 어물이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신숙주는 황공 감격했다. 눈을 씻고 다시 한번 잘배자 좌우편에 달린 황금 고리를 살폈다. 고리 주위에는 여의주를 휘롱하는 용머리와 다섯 개 발톱이 교묘하게 아로새겨 있다. 확실히 상감의 옷이 분명했다. 신숙주는 도리어 정신이 얼떨떨했다.
"잘 간수하십시오. 학사님께서 감기 아니 드시도록 상감마마께서 파루 친 후에 내관을 보내시어 덮어드린 것이 분명합니다. 소인은 그럼 물러갑니다."
수복이는 굽실하고 물러갔다.
해가 높이 동천에 오르기 시작했다. 출사하는 학사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집현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채, 남수문, 신석조, 이석형, 박팽년, 이개, 성삼문, 하위지, 최항, 최만리 들이 모여들었다. 제학 정인지도 들어오고, 대제학 변계량도 나타났다. 여러 학사들의 눈에 먼저 띄는 것은 황금 고리 달린 자줏빛 잘배자였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호화찬란한 배자에 눈이 현란할 지경이었다. 청빈한 살림 속에서 자라난 젊은 학사들은 모의인 것만은 알았으나, 잘이라는 털은 구경한 사람이 없었다. 이름조차 몰랐다. 모두 다 숙직했던 신숙주에게 물었다.
"저 호화찬란한 자주 배자가 웬 것인가?"
신숙주는 확실하게 모르는 일을 상감이 내린 것이라고 속단해 말할 수는 없었다.
"글쎄, 괴상한 일일세. 내가 파루 칠 때까지 글을 읽다가 불을 끄고 잤는데, 새벽에 깨어보니 이 갖옷이 내 몸 위에 덮여 있었네. 자세히 보니, 배자띠를 죄는 양편 금 고리에 여의주를 휘롱하는 용이 새겨 있네그려. 도대체 까닭을 몰라서, 지금까지 정신이 얼떨떨하이."
신숙주의 말을 듣자, 모든 학사들은 일제히 금 고리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제학 변계량이 백수를 흩날리며 말한다.
"아하, 상감께서 내리신 의대로구나!"
한마디를 했다. 모든 학사들은 더 한 번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때 안에서 늙은 내관이 학사들의 아침 밥상을 영거해 왔다. 만면에 웃음을 웃고 신숙주를 향해 말한다.
"밤새도록 공부하시느라고 얼마나 고단하셨습니까. 파루 친 후에 소인이 어명을 받들고 나와서 잘배자를 덮어드렸는데도 매우 고단하신 듯 코를 골고 주무시더군요."
내관은 지난 밤 어명을 받들고, 여러 차례 나왔다가 들어간 일을 일장설파했다. 모든 학사들은 비로소 잘배자의 출처를 확실하게 알았다. 선비들을 융숭하게 대우하는 전하의 지성스런 뜻에 모든 학사들은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신숙주는 총명 영리한 준재다. 학사들의 조반이 끝난 후에 대제학에게 고했다.
"왕은이 융숭하시와 새벽에 의대를 내리신 일은 한평생 잊지 못할 광영이올시다마는, 잠들어 모르는 중이오나 어의를 몸에 얹힌 죄---태산 같습니다. 대제학께서 집현전을 대표하시어 사은을 드리신 후에 어물을 반정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대제학은 그럴듯하게 생각했다. 곧 어전에 들어가 사은을 올리고 잘배자를 도로 바쳤다. 전하는 껄껄 웃으시며 하교를 내렸다.
"추운 겨울밤에 새벽녘까지 학문을 탐구하는 그 성의에 내가 감동되어 내린 것이다. 감기가 들지 않게 일직 학사들에게 돌려가며 덮게 하라."
대제학은 잘배자를 다시 받들고 나와서 모든 학사들에게 전하의 뜻을 전했다. 학사들의 감격해하는 마음은 비길 길이 없었다.
사가독서
세종전하는, 밤잠을 자지 않고 학문을 탐구하는 집현전 학사에게 잘배자를 내린 후에도, 항상 학사들의 동정을 살폈다. 어떻게 하든 이 뽑아 논 준총들이 하루라도 빨리 학예를 대성해서, 국가를 중흥시킬 크나큰 인물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때문이다. 학사들은 낮에 집현전에 나와서 제각기 맡은 바 학문을 연구한 후, 밤에는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고, 윤번으로 한 사람만이 숙직을 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전하는, 어떻게 하면 이 훌륭한 자질을 가진 젊은이들이 한 치 만한 시각이라도 허송하지 말고 학문에만 전심하게 할 방도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집현전 학사들에게는 다른 관청의 관리들이 하는 모든 사무적인 잡무는 보지 않게 하고, 다만 집현전에 나와서 학문을 연마하고 때로는 경연에 참여하여 전하의 자문에 응대하는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역시 입궐하고 퇴궐하는 번잡한 일이 공연한 시간 낭비가 된다. 전하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돌려가면서 윤번제로 휴가를 주어서 집에 돌아가 공부를 하게 할 것을 창안했다. 대제학 변계량을 명소했다.
"경에게 의논할 일이 있다. 집현전 학사들은 모두 다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인재들이다. 하루빨리 옥이 되도록 연마시켜서 국가 중흥에 이바지하도록 학문을 권장해야 하겠다. 날마다 궁중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일도 크나큰 시간 낭비다. 학사들에게 윤번제로 휴가를 주어서,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집에서 글을 읽도록 하는 것이 어떠한가?"
대제학 변계량은, 젊은 학사들을 생각하시는 전하의 지극한 배려에 감복했다. 그러나 벼슬하는 관리에게 사가독서를 하게 하는 일은 예와 이제를 말할 것 없이 만고에 없는 일이다. 부복해 아뢴다.
"젊은 학사들에게 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시는 우악하신 뜻은 감읍할 일이올시다. 그러하오나 벼슬하는 사람들에게 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는 일은 전고에 없는 일이올시다. 중국의 한 시대에도 금마문과 승명려, 천록각 등이 있고, 당 시대에도 문학관 집현전이 있었으며, 우리나라 고려 때에도 집현전이 있었습니다마는, 학사들에게 사가독서를 하도록 은전을 내린 일은 없었습니다. 너무나 전례가 없는 은혜로우신 처사이기에 감히 말씀을 드리옵니다."
변계량의 아뢰는 말씀을 듣자 전하는 옥음을 높여 크게 웃으며 말씀을 내린다.
"무슨 일이든지 좋은 일이라면 전례와 관습을 깨뜨려서라도 곧 실천에 옮기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하오. 과인이 이번에 집현전을 설치한 것은 이름만의 집현전이 아니라 실제로 어진 사람들을 모아놓아서 국가에 유용하게 쓰도록 하자는 것이 아닌가? 어서 빨리 좋은 인재를 양성해서 훌륭한 사업을 전개시켜 보자는 작정이오. 대제학은 내 뜻을 받아서 우선 몇 사람을 뽑아서 사가독서를 하게 하오."
대제학 변계량은 다시 더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말미를 주어 공부를 하게 하는데, 몇 사람을 뽑아서 어디에 얼마 동안 독서를 하게 하옵니까?"
"사람을 뽑는 것은 대제학에게 일임하니 알아서 인선을 하고, 독서하는 곳은 집에 돌아가 거리낌없이 자유스럽게 공부를 하도록 하오. 그리고 말미를 주는 기간은 석 달쯤 하는 것이 좋겠지---."
변계량은 명을 받들고 물러갔다.
이튿날 대제학은 말미를 주어서 집에 돌아가 글을 읽게 할 사람을 뽑아서 아뢰었다.
"사가독서할 학사들을 뽑았습니다."
"누구누구들인가?"
"권채, 남수문, 신석조 세 사람을 뽑았습니다."
전하는 고개를 끄덕여 점두한 후에 이내 말씀을 내린다.
"사가독서하는 일은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 과인이 친히 면유하리라. 세 사람을 명소하라."
대제학은 집현전으로 나가 세 학사를 대동하고 어전에 시립했다. 전하는 봉안을 맑게 떠서 젊은 학사들을 바라보았다. 기억력이 대단했다.
"네가 교리 권채냐?"
"네, 그러하옵니다."
권채가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너는 저작 신석조지?"
"그러하옵니다."
신석조는 두 손을 마주잡고 대답했다.
"너는 정자 남수문이로구나!"
"네, 그러하옵니다."
남수문이 국궁하고 아뢴다.
젊은 학사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전하의 총명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삼정승, 육조판서, 참판, 참의 등 수백 명 관리 속에 이제 겨우 학사로 출세한 미미한 자기들의 이름과 직함을 어떻게 미리 기억하고 계시나 하고 감탄하기를 마지아니했다. 전하는 다시 세 학사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내린다.
"내가 집현전을 창설하고 너희들에게 집현전관을 제수한 것은, 나이 젊어서 장래가 있는 사람들이라 독서를 많이 해서 국가에 유용하도록 실효를 거두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제각기 직무를 맡고 보니 전심독서할 겨를이 없구나! 오늘부터는 본전에 출사하지 말고 집에서 자유스럽게 공부해서 크나큰 성과를 내도록 하라. 독서 하는 규범에 대해서는 대제학 변계량의 지획을 받으라."
옆에 시립해 있는 대제학 변계량 이하 모든 학사들은 명을 받아 몸을 굽혔다.
"자아, 그러면 물러가 열심으로 공부들을 하라."
전하는 또 한 번 격려하는 말씀을 내렸다. 세 학사들은 사은숙배를 드린 후에 집현전으로 돌아갔다. 모든 동료 학사들은 천고에 없는 세종대왕의 사가독서를 내리는 슬기로운 처사에 감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기막히게 선비를 아끼고 문인을 대접하는 처사다. 모두 다 손을 꼽아 자기의 차례 되기를 기다렸다. 뿐만 아니었다. 모든 관리들은 집현전 학사를 천상의 선관같이 부러워했다. 신석조, 권채, 남수문 세 학사들은 영광스런 사가독서의 분부를 받고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 자기들의 전공하는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종전하는 내관을 불러 특명을 내렸다.
"집현전에 번을 들어서 공부하는 학사들에게는 가끔 사찬을 해서 주식을 대접하는 것이 전례가 되었지만, 이제 처음으로 시작한 사가독서를 하는 학사들은 집에 있기 때문, 사찬하는 은전을 입지 못하게 되니 딱한 일이다. 청빈한 선비들의 집에 먹을 것이 넉넉할 까닭이 있느냐. 가끔 주효를 내리고, 밤에 공부하다 먹으라고 방약과와 만두과며 제주 황귤을 보내서 과히 무료하지 않게 하라."
내관은 전하의 명을 받들었다.
어주에서는 전하가 수라를 받았던 퇴선을 갸자세 틀에 나누어 실었다. 산해진미를 백지종이로 깨끗하게 봉과해서 가득하게 실었다. 대궐 안에서 만든 꿀과 밀가루를 흐무러지게 반죽해서 펄펄 끓는 기름에 지져낸 목침만한 방약과와 주먹덩이 같은 만두과며 황금 같은 제주 귤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내관은 액정들에게 갸자를 메게 한 후에 학사의 집을 차례로 돌아서 전하의 특별한 분부를 전했다. 뜻밖에 사찬의 별은전을 받은 학사들은 기가 차도록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벼슬을 하면서 집에서 편안하게 독서를 하라는 분부를 받은 것도 기막힌 영광인데, 더군다나 사찬을 내리고, 사찬 중에도 여염에서는 한평생 구경해보지도 못했던 만두과, 방약과에 황금보다도 더 귀한 제주 귤을 대하고보니 모두 다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학사들의 광영일 뿐이 아니었다. 일문의 영광이었다. 일가들이 치하하러 모여들었다. 동리의 부로들이 사찬하신 음식 구경을 하러 모여들었다.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니 친구들이 찾아와 치하들을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하여 집으로 나온 학사들은 치하하러 온 사람들을 접대하기에 바빴다. 사찬을 받은 후 사흘 동안은 마치 크나큰 잔칫집과 같았다. 신학사, 권학사, 남학사는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사흘이 지난 후에 학사들은 방문을 닫아 걸고 일체 사람을 대하지 아니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들을 하기 시작했다. 꿀과 밀가루를 흐무러지게 반죽을 해서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넣어 지져진 주먹덩이 같은 만두과와 목침만한 방약과는 자시, 축시가 넘도록 공부하는 그들에게는 크나큰 영양과 도움을 주었다. 학사들은 글을 읽으면서 약과를 입에 넣을 때마다 세종전하의 가이 없는 넓은 마음을 생각했다. 뼈가 부서지도록 학문을 닦아서 그 은총을 갚으리라 결심했다. 그들은 전하가 세자 때 손에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읽었다는 일을 생각했다. 석달 기한 안에 '시경' 천독을 하고 '서경' 천독을 했다. '주역'을 읽고, '춘추'와 '강목'을 연구했다. 이같이 독서하는 것만이 세종전하한테 보답하는 길이라 결심한 때문이다.
첫째 번 사가독서의 기한이 지난 후에 권채, 남수문, 신석조 세 학사는 다시 집현전으로 돌아왔다. 대제학 변계량은 세 학사와 함께 탑전에 배알했다. 세종전하는 미소를 지어 세 학사를 접견하시며 물었다.
"그동안 공부들을 많이 했느냐?"
권학사가 대답해 아뢴다.
"전하께오서 오경을 천독하셨다 하옵기 소신들도 독실하게 공부를 하는 체했사오나 아직도 미숙한 점이 많사옵니다."
"학문의 길은 한이 없는 것이다. 애들 많이 썼다."
전하의 말씀은 어느 때나 너그럽고 후했다.
"그래, 집에서 공부를 하니 조금 전심이 되더냐?"
전하는 다시 하문했다. 남학사가 대답해 아뢴다.
"군은이 망극하시와 특별히 주식을 내리시니 황공 감격한 영광을 아뢸 길 없었습니다. 이 전고에 없는 은총이 내리신 소문이 나자 친척과 고구들이 찾아와 치하를 하는 통에 처음엔 공부에 많은 방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가독서를 내리실 때는 이 점도 하촉해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남학사의 아뢰는 말을 듣자, 대제학 변계량이 아뢴다.
"남수문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전하께서 학사를 우대하시어 전고에 없는 사가독서의 특권을 주시고, 또다시 내관을 보내시어 어선을 내리시니, 이 소문을 듣고 일가친척이며 향당고우들이 어찌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은총을 받은 집현전 학사의 영광일 뿐 아니라, 향리의 광영이올시다. 이러하니 공부하는 데 다소 방해가 되었을 듯합니다. 앞으로는 말미를 주시어 글을 읽게 하실 때, 독서하는 장소를 약간 달리 생각하셔야 하겠습니다."
전하는 말씀을 들으시자 껄껄 웃으셨다.
"말을 듣고 보니, 휴가를 주어 집에서 글을 읽게 하는 일도 폐단이 있구려.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달리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소신의 생각에는, 산이 깊고 물이 맑은 절간이 좋을 듯합니다."
대제학 변계량이 의견을 말씀한다.
"불도를 배척하는 고루한 선비들이 쓸데없는 말을 하면 어찌하오. 하하하."
"예로부터 선비들의 삼동 공부와 한여름 공부는 모두 다 절간에 들어가 학문을 탐구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을 택하는 까닭이올시다. 불도 인간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대자대비의 도입니다. 유학하는 사람이 절에서 공부한다 해서 염불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옳은 말요. 너무나 세상을 좁게 보는 탓이지. 그렇다면 앞으로 사가독서하는 처소는 조용한 절간을 택해서 공부를 하게 하오."
"그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제학은 다음에 말미를 주어 독서시킬 사람들을 뽑도록 하오."
변계량은 청명하고 세 학사와 함께 어전에서 물러났다.
대제학 변계량은 두 번째로 말미를 주어 독서할 학사들을 뽑았다. 명단을 들고 탑전에 배알했다.
"제이 차로 사가독서할 사람들을 뽑았는가?"
전하는 정중하게 물었다.
"예, 뽑았습니다. 여기 이름 적은 명단을 바치옵니다."
대제학은 두 손으로 명단을 받들어 올렸다. 전하는 어수를 늘이어 명단을 받아 들고 적혀진 학사들의 이름을 읽어보신다.
"박팽년, 이개, 하위지, 성삼문, 신숙주, 이석형."
모두 다 전하가 평소에 촉망하던 학사들이다. 전하는 만족했다.
"모두 다 총명 영리한 준총들이로군. 이번엔 여섯 사람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다 함께 불러들이라."
대제학은 집현전으로 나가 여섯 학사를 거느리고 다시 들어왔다. 여섯 학사들은 곡배를 드린 후에 조용히 시립했다. 전하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여섯 학사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내린다.
"너희들에게 전심독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대제학에게 인선을 부탁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내 뜻을 받아 앞으로 국가에 유용한 인물이 되도록 더욱 학문을 연마하라."
여섯 학사들은 일제히 허리를 굽혀 명을 받았다. 전하는 대제학을 향하여 다시 말씀한다.
"지난번에 권채 등 세 사람에게 집에 가서 공부를 하도록 말미를 주었더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연구에 방해가 되었다 하오. 인적이 희소한 절간을 택해서 전심독서하도록 처소를 정하라 했는데, 그동안 처소를 정했는가?"
"전하의 분부를 받들어 정하려 합니다. 어느 절이 좋은지 하교해 주시옵소서."
"아무리 해도 절간이 좋을 듯하오. 고양에 있는 진관사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떠한가?"
전하는 충녕대군 시절에 조졸한 아우 성녕의 수륙재를 올릴 때, 한 번 가본 일이 있었다. 이리하여 북한산 밑에 있는 진관사가 조용하고 그윽한 곳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변계량은 진관사에 가본 일이 없었다.
"분부대로 진관사로 보내서 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대왕의 뜻을 받들 뿐이었다. 전하는 미소를 풍기시며 여섯 학사를 향하여 물었다.
"글을 읽는 것은 박학다문하기 위하여 읽는 것이다. 너희들이 비록 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 하나, 너희 나라의 산천과 너희 나라의 예악문물과 너희 나라의 교학은 대강 짐작해야 한다. 이것을 모른다면 서민을 교화할 수 없고, 정치를 바르게 할 수 없다. 아까 내가 말한 진관사는 어느 곳에 있으며 어느 때 세워졌는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해보라."
돌연 전하가 하문하는 진관사에 대하여 모두 다 얼떨떨했다. 사서오경의 유학을 전공하는 선비들이었다. 대제학 변계량도 어느 대 진관사가 창설이 되고 어느 곳에 붙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무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위지와 이개도 덤덤히 다른 학사들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진관사의 내력을 모르겠느냐?"
전하는 웃으며 다시 하문했다. 이때, 성삼문이 고개를 들고 대답한다.
"불가의 일을 전공하지 못하와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옵니다마는, 진관사는 북한산 뒤 고양 땅에 있습니다. 고려 현종 때 창건한 절이라 합니다."
대답 소리는 또렷했다. 전하는 성삼문의 총명영오한 대답에 마음속으로 놀랐다.
"네 어찌 불도가 아닌데 진관사를 창설한 내력을 똑똑히 아느냐?"
"목은 이색의 ' 금경록'에서 읽은 듯합니다."
"그래, 그것이 박학다문하는 공부하는 사람의 학문하는 태도다. 자기 나라의 전고를 선비가 모른다면 어찌 정치를 하겠느냐. 그러한 자세로 공부들을 하라."
전하는 성삼문을 격찬했다. 성삼문의 옆에 있던 소년 학사 신숙주가 싱긋싱긋 웃으며 아뢴다.
"소신은, 전하께오서 아직 등극하시기 이전 충녕대군으로 계실 때 잠깐 진관사에 들르셨던 일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는 또 한 번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무슨 일로 내가 진관사에 갔던 것을 네가 기억하느냐?"
"옛 기억을 불러일으켜 죄송만만하옵니다마는, 성녕대군께서 하세하신 후에 수륙재를 올렸을 때 전하께서 우애의 지정이 높으사 잠시 진관사에 왕림하신 줄로 아옵니다."
"너 어찌 그 일을 아느냐?"
"아비 장에게 들어 알았습니다."
전하는 무릎을 치며 탄식했다.
"네 말대로 내가 한 번 진관사를 가본 일이 있다. 너희들은 과연 총명한 자질을 가졌다. 더욱더욱 슬기를 닦아서 나라에 유익한 일꾼이 되도록 하라!"
전하는 신숙주와 성삼문을 가상하다고 칭찬하신 후에 대제학에게 분부했다.
"그렇다면 진관사에 기별해서 정갈한 처소를 택해서 내일부터 독서를 하게 하오."
변계량은 명을 받들고 젊은 학사들과 함께 숙배를 드리고 어전에서 물러났다. 다음날 여섯 학사들은 나귀 등에 책을 가득히 싣고 고양 땅 북한산 밑 진관사로 향했다. 전하는 내관에게 명해서 사찬과 과종과 좋은 술을 가끔 내렸다. 여섯 학사들의 영광은 말할 나위 없었다. 새벽이면 종소리와 목어 치는 소리에 잠을 깨어 불경 대신 학문을 연구했다. 표고국과 튀각에 입맛을 돋우고, 도라지 생채나물과 두부, 소전골로 배를 불렸다. 석벽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에 발을 담그고, 바위를 타고 휘파람을 불어 호연지기를 길렀다. 그들온 또다시 서실로 돌아가 밤이 깊도록 공부를 했다.
삼월삼질, 구월구일
봄이 되었다. 겨울은 가고 하늘과 땅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청산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연분홍빛과 황금빛을 뿜었다. 새 소리는 더한층 산뜻하고, 잔디밭마다 속잎이 파릇파릇 윤기를 흘렸다. 전하는 훈훈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용포 자락을 날리며 편전 뜰 아래를 거닐었다. 전하의 거니는 뒤에는 내관 두 사람이 따랐다. 멀리 집현전이 보였다.
전하는 내관에게 말씀을 내린다.
"일기가 매우 화창하구나. 오늘이 삼월 초하루냐?"
"네, 그러하옵니다."
"저 집현전에 건너가서, 학사들이 모두 다 모여 있는지 살펴보고 오너라."
내관이 명을 받고 물러간 후에 전하는 또다시 다른 내관에게 분부했다.
"너는 성균관에 나가서, 유생들이 재실에서 무엇들을 하고 있으며, 명륜당에는 누구들이 모여 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또 한 사람의 내관이 어명을 받들고 물러갔다. 전하는 두 사람의 내관을 보낸 후에 흰구름이 떠가는 만리장공을 바라보며 유유하게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다. 이윽고 집현전으로 건너갔던 내관이 복명해 아뢴다.
"말미를 받자와 진관사로 나간 학사를 제하고 한 사람 빠짐없이 열심히 독서하고 있습니다. 소인이 보기에도 근감스럽습니다."
전하는 내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성균관에 나갔던 내관도 돌아와 아뢴다.
"성균관에 나가보니, 진사들은 재실마다 한 방씩을 차지하고 글 읽는 소리가 끊일 사이 없사옵고, 명륜당에서는 대사성과 사성들이 모여서 성리학에 대한 강론이 대단합니다."
전하의 용안에는 만족한 미소가 떠돌았다.
"들어가자---."
전하는 전상으로 올랐다. 내관에게 명했다.
"대제학, 대사성과 도승지를 들라 하라."
내관들은 다시 집현전과 성균관과 정원으로 달렸다. 얼마 후에 도승지를 위시하여 대제학과 대사성이 입시했다. 전하는 말씀을 내린다.
"오늘 내가 알아보니, 집현전 학사들과 성균관 선비들은 일기가 화창한 날이건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독서를 하고 강론을 한다 하니 가상한 일이다. 일년 삼백육십일에 공부만 하는 것도 몸에 좋지 않다. 내일모레가 삼월삼질이 아닌가. 봄과 가을에 하루쯤 쉬게 하는 것이 좋겠다. 민속에도 삼월삼질과 구월구일 중양날은 이름있는 날이니, 금년부터 이 두 날은 아주 휴일로 정해서, 집현전 학사뿐 아니라 모든 관리들도 답청을 하면서 놀도록 하라."
뜻밖에 내리는 큰 은전이었다. 학사를 우대할 줄 아는 임금은 역시 관리들도 생각할 줄 알았다. 도승지와 대제학, 대사성은 입이 벌어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곧 빈청에 나가서 대신들에게 성지를 전갈하고, 삼월삼질과 구월구일을 휴일로 공포하겠습니다."
전하는 다시 대사성을 향하여 말씀한다.
"성균관에서도 유생들이 촌음을 아껴서 공부들을 한다 하니 내 마음이 흡족하다. 특별히 술잔을 내리니 이 잔에 술을 따라, 삼월삼질과 구월구일에 술을 한 잔씩 마시도록 하라."
전하는 말씀을 마치자 문갑 위에 놓인 백자 술잔과 고청으로 그림을 그린 술잔을 어수로 친히 들어 대사성에게 내렸다. 전무후무한 영광이었다. 대사성은 너무나 감격했다. 떨리는 손으로 술잔 두 개를 받들었다.
"유생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왕은의 융숭하심을 두루두루 전달하오리다."
도승지와 대제학, 대사성은 감격하면서 어전에서 물러났다.
이리하여 삼월삼질과 구월구일은 벼슬하는 사람들의 공휴일이 되고, 학사들 덕에 온 조정이 놀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집현전 학사들을 존경하는 풍조가 더한층 높았다. 한편 성균관에서는 세종이 내리신 백자 술잔을 보배로 삼아서 진사들에게 돌려 보이고 수백 년 동안 대대로 진장했다.
삼월삼질이 되었다. 전하는 특명을 내려, 진관사에서 사가독서하는 학사들에게 사찬과 선온을 내려 독서하는 노고를 위로하고, 조정의 관리들에게는 들 밖으로 나가 하루 동안 소풍을 허락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답청놀이라 했다. 세종의 학자와 문사를 우대하는 슬기로운 처사는 앞으로 왕조문화의 결정적인 황금시대를 이룩하게 되었다. 학사들이 진관사에서 사가독서를 한 후에는 장의사에서 독서를 하게 했다. 세종은 다시 집현전 학사의 정원을, 20명은 경연에 배치하여 전하의 자문에 응하게 하고, 10명은 서연에 배치해서 세자를 보필하여 학문을 연구하게 했다. 세자가 차차 장성해서 학문에 열중한 때문이다. 세종이 승하한 후에도 학사를 우대하는 집현전과 사가독서의 제도는 문종, 단종 때도 계속해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국가에는 큰 변이 생겼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의 자리를 뺏었다. 집현전 학사들은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다. 그러나 일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을 새남터 행형장에서 죽였다. 이들이 저 유명한 사육신이다. 세조는 문신을 미워했다. 집현전을 폐지해버렸다. 이같이 되니 독서당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음지는 다시 양지로 돌아왔다. 성종은 홍문관 학사들에게 용산에 독서당을 설치케 했고, 다음에는 연산 때 또 한 번 수난을 당했는데, 중종이 즉위한 후에 다시 독서당의 제도가 부활되어 정업원에 두었다가 두모개로 옮겼다. 이리하여 독서당의 이름을 호당이라고도 했다. 용산 독서당은 한강 남쪽에 있으므로 남호요, 두모개는 한강 동편에 있으니 동호다. 저 유명한 율곡의 '동호문답'이란 글도 두모개 독서당에서 저술된 것이다. 이같이 해서 세종이 창설한 독서당의 제도는 정조가 규장각으로 개편할 때까지 이어지다가 끊어지고 끊어졌다가 이어져서 이 나라에 크나큰 문화를 진흥시켰다. 모두 다 세종의 위대한 영단이었다.
인간존중
세종이 나라의 문명을 위하여 젊은 학사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을 때 홀연 집현전 학사 중에 명예스럽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형조판서 노한이 초헌을 타고 식전 일찍이 형조로 사진해 나가고 있었다. 행차가 샌전병문에서 황토마룻고개를 넘어 들어가려 할 때, 길 앞에 괴상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떠꺼머리 총각 녀석이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이고, 흰 홑이불로 송장 같은 것을 덮어서 업고 가는 것이었다. 형조판서는 종자인 별배한테 물었다.
"저기 저 떠꺼머리 총각 놈이 업고 가는 것이 무엇이냐? 마치 송장을 업고 가는 것 같지 아니하냐?"
"글쎄올시다. 이상스럽습니다."
"빨리 가서 사실해보아라."
별배는 달음질쳐서 앞에 가는 총각에게 호통을 쳤다.
"게 섰거라. 가지 말고 걸음을 멈춰라!"
연거푸 벽력 같은 큰 소리로 가지 말라고 호령을 했다. 떠꺼머리 총각은 깜짝 놀랐다. 벌벌 떨면서 별배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별배는 걸음을 급히하여 총각 앞에 당도했다.
"네 등에 업은 것이 무엇이냐? 사람 죽은 송장이냐?"
총각은 벌벌 떨며 대답한다.
"아니올시다. 산 사람이올시다."
"이놈아, 산 사람을 왜 홑이불로 씌워서 업고 가느냐?"
별배는 의심이 덜컥 났다. 바싹 총각 앞으로 다가섰다. 홑이불을 훌떡 벗겼다. 깜짝 놀랐다. 송장은 아니지만 명재경각인 금방 죽을 듯한 젊은 여자다. 머리를 빡빡 깎았다. 얼굴은 백지장같이 하얗게 질렸고 온몸은 피골상접이 되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금방 죽을 것만 같았다. 이때, 형조판서의 초헌이 당도했다.
"무엇이냐?"
"죽은 송장은 아니옵고 산 사람을 업었사온데 피골이 상접해서 금방 죽을 것 같은 젊은 계집입니다."
"총각 놈을 안동해서 형조로 잡아들여라!"
판서는 영을 내리고 본조로 들어갔다. 별배와 형리들은 총각과 업힌 여인을 안동해서 형조로 데리고 들어갔다. 형리는 판서에게 물었다.
"어찌하오리까?"
"내 앞으로 데리고 오너라."
총각과 젊은 계집은 형조 전당 뜰 앞에 대령되었다. 그러나 젊은 계집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형리들은 뜰에 거적을 펴고 젊은 계집을 눕게 했다. 판서가 내려다보니 젊은 계집은 머리를 깎인 채 살이 쭉 빠져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기진맥진이 되어 말을 물어보아도 대답을 할 것 같지 아니했다. 형리에게 명했다.
"빨리 미음을 끓여 오너라. 서늘한 곳에 누이고 우선 청심환 한 개를 개어 먹여라."
별배와 형이들은 황황히 젊은 계집에게 미음을 고아서 먹이고 청심환을 개어 먹였다. 총각 녀석은 벌벌 떨면서 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 식경이 지난 후에 형조판서는 대청에 좌기를 차리고 먼저 총각을 문초했다.
"이놈, 너는 어디 사는 누구며, 저 여자는 어떠한 사람이냐? 만약 조금이라도 사실을 은닉해서 거짓 대답을 하는 일이 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형조판서는 추상같이 엄포를 내렸다. 총각 녀석은 벌벌 떨며 대답한다.
"소인이 어찌 추호인들 기이오리까. 바른대로 말씀을 아뢰오리다. 소인은 집현전 권학사댁 상노이옵고, 저 여자는 역시 그 댁의 비자올시다."
형조판서 노한은 집현전 권학사 집 상노란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권학사라니, 그분의 이름이 무어냐?"
"집현전 응교로 계신 권채십니다."
형조판서는 또 한 번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권채는 집현전 학사 중에도 가장 고참인 사람이요, 전하께서 극진히 사랑하시어 제일차로 사가독서의 은전을 내린 사람이다. 이러한 점잖은 사람의 집 상노놈이 무슨 고약한 일을 저질렀나 하고 마음이 긴장되었다.
"그래, 네가 권학사댁 상노요, 저 계집이 권학사댁 비자라면 어찌해서 이른 아침에 저 여자를 죽은 사람처럼 홑이불을 씌워가지고 어디로 향해 가는 길이냐?"
"소인은 자세한 까닭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씨께서 저 여자가 도망을 가려 했다고 나리한테 말씀해서, 나리는 격분하신 나머지 광 속에 자물쇠를 채워 가둬두시고 음식을 주지 않은 채 피골이 상접하도록 문초를 하셨습니다. 그리해서 결국은 죽게 되니 소인보고 문밖 여승들이 있는 암자로 갖다두라 해서 지금 탑골 승방으로 데리고 가는 길이올시다."
"권학사의 부인의 성을 네가 아느냐?"
"정씨 부인이올시다."
형조판서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부리는 종년이 도망을 치려 한다고 저렇게 머리까지 빡빡 깎아놓고 뼈만 앙상하도록 학사 자신이 사고문을 했다는 일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지막지한 무뢰배도 아니요,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으로 더구나 상감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명예스런 집현전 응교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내면에 어떤 복잡한 곡절이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자세한 내용을 계집한테 물어보리라 판단했다. 형리에게 분부했다.
"권채의 비자라는 애가 정신을 좀 차렸느냐?"
"미음과 청심환을 먹은 후에 정신기가 훨씬 든 듯합니다."
"계집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묻는 말에 정신을 차려서 대답할 수 있는가? 마구 다루지 말고 부드럽게 물어보아라!"
형리는 판서의 명을 받들어 계집한테 물었다.
"대감께서, 물으시는 말씀에 정신을 차려서 대답할 수 있느냐 하문하신다. 기운을 차려서 대답할 수 있겠나 대답해보라."
계집은 업혀 갈 때보다 통기가 되어 기운이 소생된 것 같았다.
"물으시는 말씀이 계시면 숨김 없이 대답하겠습니다."
가냘픈 목소리로 형리한테 대답했다.
"대답해 아뢰겠다 합니다."
형리는 판서에게 고했다. 형조판서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부드럽게 계집에게 물었다.
"이제 정신기가 좀 났느냐?"
"네---."
계집이 모기 소리만큼 대답했다.
"너를 업고 가던 저 총각이 집현전 학사 권채 집 상노라 하니 사실이냐? 그리고 너는 그 댁의 비자가 틀림없느냐?"
"네, 그러합니다."
"너의 이름은 무어라 하느냐?"
"덕금이라고 부릅니다."
"왜 종의 신분으로 도망을 가려 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권학사한테 사고문을 당해서 그 꼴이 되었느냐?"
덕금이란 비자는 말이 막혔다. 얼른 대답을 못 했다. 형조판서는, 피골이 상접되어 기진맥진한 계집을 차마 매질해서 문초할 수는 없었다. 얼굴빛을 부드럽게 해서 묻는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나한테 말해라. 좋도록 처리해주리라."
계집은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대답이 없다.
"어서 말해라. 네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는 게로구나. 대답을 못 하는 것을 보니, 필시 네가 큰 죄를 저질렀구나. 도망을 치려 했다고, 저다지 참혹하게 고문을 했을 리 만무하다. 어서 말을 해라."
"부끄러워서 말씀을 아뢰기 어렵습니다. 쇤네는 참 억울하게 이 꼴이 되었습니다. 그저 한시바삐 죽기만 소원이올시다."
말을 마치자 해골이 다 된 젊은 계집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형조판서는 피골이 상접된 젊은 계집의 눈에서 더운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보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죽는 사람이 부끄러울 것이 무엇 있느냐. 포원을 하고 죽으면 죽어도 원귀가 된다. 내가 신원을 해주리라. 어서 털어놓고 말을 해보아라."
판서의 인자하게 묻는 말에 계집은 감동이 되었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댁의 서방님이 집현전에서 말미를 받으시어 집에서 석달 동안 공부를 하실 때 쇤네는 찬비가 되어 진짓상을 받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체 공부에 골똘하시어 안방에는 아니 들어오시고 사랑방에서만 거처하셨습니다. 그리해서 쇤네는 항상 진짓상을 받들고 사랑에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밤에는 이부자리도 보살펴드렸습니다."
"자연 그렇게 되겠지."
형조판서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쇤네가 서방님의 자리를 펴 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책상 앞에서 글을 읽으시던 서방님께서 돌연 쇤네의 손목을 잡으셨습니다."
형조판서는 비로소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뿌리치고 뛰어나가려 했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면 아씨가 알게 되고---그래서 마침내 처녀의 몸이 깨뜨려졌습니다."
계집은 말을 마치자 흐느껴 울었다. 비자 덕금의 공초를 받는 형조판서 노한은 더한층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어서, 울음을 그치고 다음을 이야기해라."
"서방님께서 말미를 받아 집에서 공부하시는 석 달 동안에 쇤네는 그런 일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룻밤엔 아씨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눈치를 채고 뒤를 밟아서 등시포착이 된 것입지요. 서방님은 아씨한테 호랑 감투를 써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쇤네는 이내 광 속에 갇혀서 갖은 악형을 아씨한테 당하고 밥을 주지 아니해서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악형은 누가 가했느냐?"
"아씨가 했습니다."
"상노의 말에는 네가 도망을 치려 하니까 권학사가 너를 고문했다고 했는데, 말이 어긋나는구나!"
"그것은 아씨가 쇤네를 나리한테 거짓말로 모함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방질을 해서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 했다고 터무니없는 고자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리도 서방질을 했단 말에 분이 나서 쇤네의 머리를 잘라버리고 친히 고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광 속에 갇혀 있는 년이 어떻게 서방질을 하며 달아날 수가 있습니까. 참으로 억울합니다."
종년은 목을 놓아 통곡했다. 기운이 없었다. 통곡 소리는 느껴 우는 철읍성이었다.
"그래 어떻게 악행을 당했느냐? 울지 말고 말을 해라."
"목구멍에 살을 꽂고 씹으라고 조련질을 했습니다. 날마다 큰 바늘로 항문을 찔렀습니다. 시시때때로, 하루에도 몇 번씩 당한 고통은 말로 형언해 아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깎이고 격일해서 개밥 주듯 밥을 주었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달 하니 자연 피골이 상접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악형을 가하기 시작했느냐?"
"아씨가 시작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서방님을 모셨다는 죕지요. 그리고 아씨께서 서방님이 집현전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바가지를 긁어 달달 볶아대니, 서방님은 아씨와 함께 쇤네를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조판서 노한은 의분을 느꼈다.
"정씨란 여인은 명색이 학사의 부인이라 하면서 너무나 악착하고 잔인하구나. 그리고 권채는 정말 판관이로구나! 트릿한 일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도리어 너를 바늘로 찌르다니 말이 되느냐. 괘씸한 일이다. 곧 위에 아뢰어 처분을 물으리라!"
형조판서는 형리에게 분부했다.
"총각은 아직 형조옥에 가두어두고, 비자 덕금은 민가에 맡겨서 몸을 추스르도록 조리시키라."
형리는 판서의 명을 받들어 총각과 덕금을 정당 앞에서 데리고 나갔다. 형조판서는 시각을 지체치 않고 곧 대내로 들어가 알현을 청했다.
"오늘 아침에 길에서 해괴한 일을 보았습니다. 감히 탑전에 아룁니다. 집현전 학사로 응교 벼슬 한 권채가 비자 덕금을 첩으로 삼았다가 사사로이 집에 구금하고 갖은 고문과 악형을 가해서 기지사경이 되었습니다. 전하께옵서 사랑하시는 집현전 학사의 일이오라 감히 형조에서 독단하지 못하고 처분을 기다립니다."
세종전하는 형조판서 노한의 아뢰는 말씀을 듣자 깜짝 놀랐다.
"권채는 집현전 학사로 그중 고참인 사람이요, 제일차로 사가독서까지 받은 사람이다. 지금 벼슬이 교리에서 한 등 올라서 정사품 응교가 된 사람이 아니냐? 평소에 매우 안상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어찌 그같이 잔인무도한 짓을 했단 말이냐. 반드시 그 아내 정씨가 투기가 심해서 이런 흉포한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아무리 집현전 학사라 하나 사람을 학대한 잔인무도한 자를 그대로 둘 수 없다. 곧 의금부로 넘겨서 엄하게 치죄하도록 하라."
세종전하는 크게 노했다. 당신이 신임하는 집현전 학사 중의 한 사람인 때문이다. 형조판서는 전하의 분부를 받들어 권채 집 상노라는 떠꺼머리 총각과 비자 덕금을 금부로 넘기고, 정원에서는 금부 당상에게 권채와 그의 아내 정씨를 엄하게 문초하라는 전하의 특명을 전했다. 금부 당상은 곧 어명을 받들어 좌기를 차렸다. 금부도사는 당상의 명을 받들어, 집현전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온 권채와 그의 아내 정씨를 금부로 잡아들였다. 권채는 금부도사가 자기 집으로 나졸을 거느리고 잡으러 들어오는 것을 보자 크게 노했다.
"내가 누군데 도사 따위가 감히 나를 잡으러 들어오는가?"
호령이 추상같았다.
"네, 훌륭하신 집현전 학사인 것을 다 알고 왔습니다. 그러나 어명이올시다. 상감의 분부시니 어찌하는 수가 없습니다."
상감의 분부라는 말에 권채의 얼굴빛은 백지장같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글쎄, 그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부인 정씨도 함께 들어가셔야 하겠습니다. 금부에서는 두 분의 명예를 위하여 교자 두 채를 마련해 가지고 왔소이다."
아내까지 금부에서 데려간다는 말에, 권채는 비로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덕금의 일이 탄로난 줄 알았다. 어젯밤에 아내가 이불 속에서, 덕금이란 년이 다 죽게 되었으니 상노에게 분부해서 절에다가 맡겨두겠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상노 놈이 덕금을 업고 가다가 길에서 금부 나졸이나, 사헌부 관원한테 들킨 것이라 생각했다. 권채는 기가 죽었다. 더 앙탈할 수 없었다. 새파랗게 질린 아내와 함께 교자를 타고 금부로 들어갔다. 의금부에서는 전하의 특명이었다. 시각을 지체치 아니하고 총각과 덕금이며 권채 내외를 신문하기 시작했다. 권채 내외는 총각과 덕금을 보자 더한층 몸 둘 곳을 몰랐다.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금부 당상은 권채를 향하여 준엄한 태도로 물었다.
"저 떠꺼머리 총각은 학사댁 상노라 하니 틀림없는가?"
"그러합니다."
권채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금부 당상은 다시 시선을 돌려 떠꺼머리 총각에게 묻는다.
"너는 어찌해서 이른 아침에 송장이 다 된 저 계집을 업고 어디로 가다가 형조판서 대감께 들켰느냐?"
"아씨의 분부를 받들어 승방으로 업고 가다가 길에서 들켰습니다."
"어찌해서 다 죽어가는 송장 같은 사람을 승방에 갖다두려 했느냐?"
"그것은 소인이 알 수 없는 일이올시다. 그저 상전께서 갖다두라 하시니 명령에 복종한 것뿐이올시다."
옆에 있던 권채와 그 아내 정씨는 비로소 상노놈이 덕금이를 업고 가다가 형조판서 노한의 눈에 띈 것을 알게 되었다. 권채의 마음은 죄어 짜지는 듯했다. 형조판서 노한은 강직하기로 유명한 재상이다. 벼슬하는 사람 중에 털끝만한 부정과 불륜한 일이 있다면 가차없이 엄벌에 처하는 표범같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권채는 마음속으로 되게 걸렸구나 하고 개탄했다. 금부 당상은 다시 눈을 들어 덕금에게 묻는다.
"너는 권학사댁 비자였다 하니 틀림없느냐?"
"네, 그러합니다."
덕금은 아직도 쇠약했다. 기운 없이 대답했다. 금부 당상은 다시 권채를 향해 물었다.
"틀림없는 학사댁 비자죠?"
권채는 또다시 고개를 숙인 채,
"네---."
하고 대답했다.
"어찌해서 네가 그 꼴이 되어 다 죽게 되었느냐?"
덕금은 상전 권채와 부인 정씨가 있는 앞에서 대답하기가 난처했다.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했다.
"왜 대답이 없느냐?"
금부 당상의 목소리는 높았다. 덕금은 마음이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 고개를 땅에 박고 몸을 틀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금부 당상은 사을 치며 꾸짖는다.
"네가 토설을 아니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덕금은 마지못해 대답한다.
"쇤네는 이미 죽게 된 몸이올시다. 그저 죽여줍시오. 상전의 앞에서 어찌 상전의 허물을 말씀하오리까. 기왕 죽게 병든 몸이오니 속히 죽여줍시오."
덕금의 구슬프게 하소하는 소리에 금부 당상도 측은하게 생각했다.
"네가 상전 앞에서 상전의 허물을 말하기가 난처하다면 형조판서께서 너를 신문했던 원안이 금부로 넘어왔으니 내가 묻는 대로 대답하라---."
덕금은 다만 고개를 약간 끄덕일 뿐이었다. 금부 당상은 서리에게 명했다.
"형조에서 넘어온 신문한 원안을 가져왔느냐?"
"네, 준비해놓았습니다."
"이리 가져오너라."
서리는 형조에서 넘어온 원안을 당상 앞에 올렸다. 금부 당상은 형조에서 넘긴 신문한 원심을 살폈다. 금부 당상은 형조에서 보낸 신문한 서류를 한동안 살핀 후에 다시 덕금에게 물었다.
"너는 너의 상전 나리가 사가독서하라는 어명을 받들어 집에서 공부할 때 찬비가 되어 음식 시중과 침실 청소하는 책임을 맡았느냐?"
"그러합니다."
덕금이 모기 소리만큼 대답했다.
"어느 날 밤에 나리께 몸을 바친 일도 사실이냐?"
덕금은 차마 대답을 못 했다. 금부 당상은 엄숙한 얼굴로 이번엔 권채에게 묻는다.
"금부 당상은 상감의 명을 받들어 신문하는 것입니다.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상감을 속이는 일이 됩니다. 권학사는 기군망상하는 죄를 저지르지 말고 대답하오. 덕금이 형조에서 공초한 말에 틀림이 있다면 말씀하시오."
기군망상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금부 당상의 준엄한 말에 권채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 달았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권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부인께 들킨 일이 있었소이다그려."
"네."
권채의 고개는 더한층 수그러졌다. 금부 당상은 정씨한테 비로소 물었다.
"학사와 덕금의 사이를 안 후부터 부인은 덕금을 학대하기 시작했군요?"
정씨의 얼굴은 새빨갛게 홍조를 띠었다.
"바른대로 말하시오."
금부 당상은 소리치며 책상을 쳤다. 정씨는 황겁했다.
"네---."
하고 대답했다.
"질투하는 마음이 불 일 듯 일었구려. 날마다 바늘로 항문을 찌르고, 살대를 목구멍에까지 넣어서 씹으라 한 일이 있었지요?"
정씨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권학사한테 모함을 해서 간부를 얻어가지고 달아나려 했다고 터무니없는 고자질을 했구려!"
정씨는 부끄러운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쳐 울었다. 금부 당상은 권채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당신은 판관 중에도 제일 가는 머드러기 판관이로구려! 덕금을 괴어서 몸까지 버려줄 때는 언제고, 안에서 바가지를 긁는다고 내외가 한자리에 앉아서 항문을 바늘로 찌르다니 말이 되오? 사람에게는 사람 대접을 해야지, 이러한 잔인무도한 짓이 있더란 말요? 글을 잘 해서 집현전 학사가 되고 벼슬이 청환으로 응교의 대접을 받는 것이 아깝소---."
금부 당상은 조롱하는 말씨로 권채를 꾸짖었다. 권채 내외는 입이 있으나 말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을 뿐이다. 금부 당상은 형리에게 명을 내렸다.
"위에 아뢰어 처결할 테니 권학사 내외와 상노며 비자를 하옥시키라. 한 곳에 가두지 말고 별간에 따로따로 가두라!"
금부 형리는 권채 등 네 사람을 하옥했다. 난생처음으로 금부옥에 갇히게 된 권학사 내외는 신세가 처량했다. 인간을 잔인하게 학대한 죄를 뼈아프게 후회했다. 금부 당상은 형조판서와 의논했다.
"글자나 배운 집현전 학사로 비자의 몸을 결딴냈다면 당연히 첩으로 대우해서 집안을 화합하게 처리해야 할 것인데, 질투하는 야내한테 발목을 잡혀서 함께 악형을 가했으니 가통한 일입니다. 어찌 처결하는 것이 좋겠소?"
"나도 동감입니다. 선하심 후하심으로 아무리 비자라 하나 인간을 그같이 말라 죽도록 잔인하게 혹대할 수 있소? 비록 집현전 학사라 하나 그대로 불문에 부칠 수는 없소이다. 위에 아뢰고, 권채는 곤장 구십 도를 때리고, 그의 아내 정씨는 비록 여자라 하나 곤장 팔십 도를 때려서 뒤에 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금부 당상과 형조판서는 곧 예궐을 했다. 정원 숭지와 함께 탑전에 아뢰었다.
"권채의 일 때문에 알현을 청했습니다."
"어찌 되었느냐? 자세히 신문을 했느냐?"
"형조에서 비자 덕금에게 받은 공초와 같이, 권채와 그의 아내 정씨는 비자 덕금을 여러 날 동안 밥도 주지 않고 바늘로 항문을 찌르고 쇠꼬챙이가 박힌 화살을 입속에 넣어서 씹으라 하여 말라 죽게 한 일을 다 시인했습니다."
세종전하는 말씀을 듣자 대로했다.
"사람이 어찌 사람을 그다지 잔인하게 사형할 수 있느냐. 권채란 자도 미친 자로구나! 비자의 몸을 더럽혔으면 당연히 첩을 삼을 것이지, 처음엔 감언이설로 여자의 몸을 결딴냈다가 아내한테 들켜서, 판관이 되어가지고, 함께 바늘찜질을 하고 밥을 아니 주어서 말려 죽게 했다니 말이 되느냐? 그래, 금부에서는 어찌 처결할 작정이냐?"
금부 당상이 아뢴다.
"금부에서는 권채에게 곤장 구십 도를 치고, 권의 아내 정씨는 비록 사대부 집 아내라 하나 인간을 너무 잔학하게 유린했습니다. 곤장 팔십 도를 쳐서 후일을 경계하려 합니다."
세종전하는 봉안을 치올리시며 크게 진노하셨다.
"권채는 내가 지극히 신임했던 학사다. 평소에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같이 제가를 해서 한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니 가증, 가악하다. 삭탈관직을 해서 벼슬을 뺏고 곤장 구십 도를 쳐서 멀리 원악도로 귀양을 보내라. 그리고 그의 아내 정씨는 금부에서 말한 대로 곤장을 친 후에 덕금을 첩으로 대우하여 한평생 말이 없게 하도록 하라. 만약 정녀가 이행치 않는 경우에는 다시 중벌을 면치 못한다고 일러라!"
전하의 분부는 추상같았다. 정원 승지는 명을 받들었다. 대신의 동의를 얻어서 집현전 대제학에게 어명을 전달했다.
'집현전 응교 권채는 제가를 잘못해서 사비를 사랑했다가 질투하는 아내를 어거하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비자를 사형했을뿐 아니라 밥을 주지 아니하여 굶어 죽게 만들었다. 크게 집현전 학사의 명예를 손상시켰으니 가증 가통한 일이다. 삭탈관직을 해서 벼슬을 뺏고 곤장 구십 도를 때리라고 금부에 명했다. 모든 학사들은 다시는 이러한 아름답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라!'
전하의 분부가 전달되니 집현전 학사들은 깜짝 놀랐다. 모두 다 눈을 둥그렇게 떴다.
"웬일인가? 권응교는 참한 사람인데 어찌 된 일인가?"
"비자를 사랑했다가 질투하는 아내를 어거하지 못하고 함께 사형을 했다 하니, 보기엔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 무척 공처증에 걸렸던 모양일세그려."
"도대체 어떻게 사형을 했다는 것인가?"
학사들은 궁금증이 났다.
"집현전 학사의 명예에 소관되는 일이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네. 금부에 대표를 보내서 물어보기로 하세."
집현전 학사들은 곧 대표를 뽑아서 금부로 보냈다. 덕금의 공초와 권채가 대답한 형안을 보고 돌아왔다. 모든 학사들에게 보고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아니하고 짐승 이하로 대했다 해서 전하께서 크게 노하신 모양일세."
"도대체 어떻게 대접했다는 것인가?"
"부리는 종년을 감언이설로 꾀어서 정조를 유린한 후에, 아내한테 들키자 아내와 함께 날마다 바늘로 항문을 찌르고 머리를 빡빡 깎은 후에 광에 가둬서 밥을 주지 아니하니 피골이 상접해서 기지사경이 되었다는 것일세."
모든 학사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의분을 느꼈다.
"아아, 잔인무도한지고. 어찌 글자나 배웠다는 점잖다는 사람이 그러한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나!"
모두 다 탄식했다.
"도대체 집 속에서 일어난 일을 전하께서 어떻게 아셨단 말인가?"
"종년이 다 죽게 되니 절에다 맡겨두라고 상노 놈을 시켜서 홑이불을 씌워 보내는 것을 형조판서가 길에서 발견하고 곧 형조로 데리고 가서 문초한 모양일세."
학사들은 더한층 분개했다.
"전하께서는 삭탈관직을 하고 귀양을 보내라 하셨지만 우리들은 집현전 학사 명단에서 제명을 해버려야 하겠네. 만약 앞으로 귀양이 풀려서 다시 돌아오는 날 또다시 집현전으로 온다면 큰일일세. 집현전 학사의 파면 결의를 하세."
학사들은 일제히 찬성했다. 몇 해 후에 권채는 귀양이 풀리고 다시 서용이 되었다. 그러나 집현전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동부승지 벼슬을 하다가 한평생을 마쳤다. 전하의 특명으로 덕금은 첩의 대우를 받았고, 정씨는 다시는 질투하는 악착한 버릇을 못 하게 되었다. 전하는 이같이 해서 인간의 존엄한 것을 만사람에게 알게 했다.
창설 단군사
세종대왕은 제례에 밝았다. 종묘대제와 사직대제를 지낸 후에 대제학 변계량을 어전에 불렀다.
"대제학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삼한 시조는 단군이다. 단군이 나라를 다스리던 그 시대에는 문자가 없어서 역사를 기록한 문헌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 '위서'에는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단군왕검이란 분이 있는데,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와 같은 시대'라 하였고, 그 후에 고려 원종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는 '초수개국계풍운 석제지손명단군. 병여제요흥무진 경우역하거중신. 어은호정팔을미 입아사달산위신'이란 시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 때 일연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는, '요가 즉위한 지 50년 되는 경인에, 도읍을 평양성에 정하고 비로소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단군은 우리나라를 개국한 첫째 번 임금이다. 이분에 대해서 국가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다음가는 제사를 받들어야 마땅할 줄 안다. 이러한 일은 온 겨레와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의 근본을 알게 하고 국가를 사랑할 줄 아는 정신을 배양하는 길이다. 국가에서 사우를 창건하고 정식으로 제사 지내는 절차를 마련하여, 국민의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이 어떠한가?"
대제학 변계량은 전하의 말씀을 듣자 마음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갸륵하신 성지올시다. 국민이 조선의 연원을 모르고, 나라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을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예악과 문물이 전진되어 나갈수록 고대의 선인들의 소박하고 어질었던 인간의 발자취를 알아서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겨레의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선조를 숭앙하는 마음을 국민의 가슴 속에 품게 하여 겨레와 국가의 양양한 앞길을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러하므로 소신은 일찍이 선대왕 시절에 단군께 제천의식을 드리자고 주장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대하는 썩은 선비들의 반대를 받아 실천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전하께서 제천의식은 아니하신다 하더라도 정식으로 사우를 창설하신다면 소신은 두 손을 들어 찬성하겠습니다."
변계량의 아뢰는 제천의식이란 말에 전하는 귀가 번쩍 떠졌다.
"제천의식은 신라 때도 있었고 고려 때도 있던 것 아닌가?"
"어디, 신라 때뿐이오니까. 단군 시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부여와 고구려며 신라 때도 다 있었던 일입니다. 더욱이 고려 왕건 태조는 팔관회에다가 관등까지 합쳐서 제천의식을 거행했으니, 말하자면 국민 전체가 모여서 단군께 제사를 지내고 나라의 융성을 축복하는 국민대회의 의식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삼한의 시조 단군을 받드는 한편, 불을 예찬하는 것을 겸한 제천의식이라 하겠습니다. 아조에 들어와서 사대와 척불로 인하여 제천의식이 사라졌습니다."
변계량의 아뢰는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세종전하는 제천에 대하여 관심이 컸다.
"요사이 유학만 숭상하는 선비들은, 하늘한테 제사드리는 행사는 천자의 나라에서만 받들 수 있다 하지 않는가?"
"모두 다 썩은 선비들의 좁은 소견이올시다. 첫째로 강대국인 명나라의 간섭이 두렵고, 둘째는 우리 겨레의 고유했던 신라의 화랑정신과 불교를 배척하면서 스스로 소중화라 자처하고 안일하게 소에 만족하는 때문이올시다. 선대왕 재세시에 소신은 고대의 제천의식을 부활하자는 상소를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조정에서는 소신을 선도와 불도에 아첨한다고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조롱하는 말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탄식할 일이었습니다."
전하는 미연히 웃으며 말씀한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경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까지 있었던가? 하하하."
세종전하는 소리를 높여 웃었다. 대제학 변계량은 분개한 어조로 아뢴다.
"네, 바로 선대와 재위 16년 병신 유월의 일이었습니다. 그해에 일기가 몹시 가물었습니다. 석 달 동안이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가물었는데, 곡식은 바싹 말라서 타버리고, 논과 밭은 거북등같이 갈라져서 민심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소신은 미관말직인 경승부윤으로 있었으니 감히 천안을 대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서 상서로 제천하기를 주장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시 조정의 소위 대관들은 펄쩍들 뛰었습니다. 하늘한테 제를 드리는 일은 중국의 천자나 할 일이지 제후의 나라에서 참람하게 하늘에 감히 어찌 제사를 지낼 수 있느냐고 떠들어서 바로 소신이 역적이나 된 듯 꾸짖고 조롱들을 했습니다."
"주책없는 사람들이로군!"
전하 역시 개탄하는 빛을 용안에 띠었다.
"신이 그때 제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요점을 대강 들어 아뢰겠습니다. 단군은 우리 동방의 시조올시다. 하늘이 우리 동방에 탄생케 하신 분이요, 중국 천자가 땅을 떼어 분봉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하니 단군을 우리나라 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헌상으로 보더라도 여요병입이라 했으니, 요임금이 우리나라를 번방으로 정해서 제후가 된 것이 아니라, 단군이 요임금과 같은 시대에 따로 한 천지를 정해서 천자가 된 것이올시다. 이리해서 3천여 년의 역대를 가졌고, 그러하니 당연히 독립된 제천의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고증은 진수 '삽국지', '위서'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다 시월제천의 국민대회를 거행했습니다. 하늘을 받들고 단군을 받들어 제사 지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분봉된 나라가 아닙니다. 독립 국가올시다. 어찌해서 제천을 못합니까."
세종대왕은 변계량의 말씀을 듣자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빛을 보였다. 변계량이 다시 말을 계속해 아뢴다.
"가물 때 하늘에 제천을 해서 비를 빈다고 꼭 비가 내린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올시다. 그러나 집안이나 국가나 큰 걱정과 근심이 있을 때 맘을 바로해서 잘못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성심성의로 하늘과 조상께 비는 것은 인정이올시다. 수천 년 내려오던 제천을 왜 못합니까? 명나라가 무서워서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도 제후나라에서 제천한 예가 있습니다. 노라는 나라에서도 천자가 허락했다 해서 들 밖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늘과 단군께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변계량은 다시 말을 계속한다.
"그러나 신은 또한 현실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제천을 못 한다면 산천에라도 기우제를 지내자고 적극 주장했습니다. 선대왕 전하께서는 신의 상서를 보시고 감동이 되시어 팔도 감사와 수령에게 명하시어, 한량, 고로, 대소 양반들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잘못이 있으면 바른말을 하고 단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라 했습니다. 그리고 전하 또한 산천과 사직에 납시어 비를 비셨습니다. 얼마 후에 과연 비가 줄기차게 내려서 민심이 희희낙락한 일이 있었습니다. 성상께서는 우리나라의 시조 단군을 위하십시오!"
세종대왕은 변계량의 말을 듣자 용안에 화려한 웃음을 띠고 말씀을 내린다.
"우리나라 민속에 시월이 되면 상달이라 해서 집집마다 고사를 하고 사대 이상 되는 조상의 묘사에서는 종중이 모여 시제를 지내지 않는가. 이것은 우리 겨레의 수천 년 내려오는 풍속이다. 모두 다 제천에서 흘러온 유풍이라 할 것이다.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것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조상을 경건하게 숭배하는 정신을 강하게 마음 안에 심어주어야 하겠다. 그리하여 단군의 사우를 국가에서 정식으로 받들 것을 마음속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제 대제학의 의사가 나와 같아서 나의 뜻에 찬동하니 내 마음이 기쁘노라."
전하는 곧 예조판서를 부러 분부를 내렸다.
"국가에서 정식으로 단군께 제사를 봉행한 일이 있는가?"
"평양에 기자묘와 함께 단군묘가 있고, 황해도 구월산에 삼성사가 있다 하오나, 모두 다 토속으로 백성들이 모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뿐, 국가에서는 정식으로 제례를 정한 일이 없사옵니다."
전하는 용안에 약간 불쾌한 빛을 띠었다.
"국가의 예를 맡은 장관으로서 한 지방 서민들의 생각만도 못하다면 말이 되는가. 경들은 도대체 무슨 예를 맡았다고 정경의 자리에 앉아 있는가. 밤낮으로 사례니 육례니 하고 떠들어대면서, 나라의 첫 임금이요 백성의 시조인 단군에 대하여는 생각조차 하지 아니하니 딱한 일이 아닌가. 단군의 제사는 종묘와 사직의 다음 가는 중사로 법을 제정하고, 평양과 구월산에 관원을 보내서 현재 민간에서 받드는 사우나 사당이 있고 없는 것을 빨리 살펴서 복명케 하라."
예조판서는 등에 진땀이 흘렀다.
"곧 관원을 내려보내서 살펴 올리겠습니다."
예조에서는 부랴부랴 평양과 구월산으로 관원이 내려갔다. 먼저 평양에 내려갔던 사온주부 정척이 상소를 올려 보고를 드렸다.
'평양에 당도해보니 단군의 위패는 기자 사당 안에 모시었는데, 기자의 위패는 남향을 해서 정면에 있고, 단군의 위패는 동편에서 서향을 해 모시었습니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반드시 기자묘를 찾는 까닭에, 국가에서는 기자 사당을 공자를 모신 문묘 동편에 세웠고, 그 후에 또 단군을 모시라 해서 이같이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단군이 계신 후에 천여 년을 지나서 기자가 들어왔으니, 단군을 기자묘 안에 모시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리하옵고 위토까지 있어서 초하루와 보름에 삭제와 망제를 지내는데, 단군한테는 위답조차 없어서 수복이가 섭섭하게 생각해서 봄, 가을에 약주 한 잔만을 부어 올린다 합니다. 기자한테는 삭망제를 지내고 단군께는 같은 사당 안에서 춘추에 박주 한 잔만 올린다 하니 미안하기 짝없습니다.'
세종전하는 평양에서 보고를 올린 사온주부 정척의 상소를 보시고 크게 불만하게 생각했다. 곧 승지에게 명을 내려 삼정승과 예조판서며 대제학의 입시를 명했다. 모든 중신들은 무슨 일이 계신가 하고 급히 모여들었다. 전하는 사온주부 정척이 올린 상소문을 중신들 앞에 내놓고 말씀한다.
"국가에는 역대의 연원이 있고, 사가에는 조상이 있는 법이다. 국가의 역사와 연원을 국민이 모르게 되고 사사로운 집에서 아비와 어미와 할아비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이것을 문명한 민족이라 할 수 있는가. 단군은 삼한의 시조다. 그대로 시조일 뿐 아니라, 조선이란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창설한 분이다. 종묘와 사직단에 대제를 모신 후에 과인은 문득 단군의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에, 평양에 기자사당이 있고, 황해도 구월산에 단군의 사당이 있다 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 어떻게 형편이 되었나 하고 예조판서에게 명하여 사실해보라 했다. 평양에 갔던 사온주부 정척이 복명하는 글월을 올렸다. 경들은 정척의 상소문을 돌려서 보라---."
말씀을 마친 대왕의 용안은 엄숙했다. 모든 신하들은 정척의 상소문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먼저 입을 열어 아뢰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이같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사대사상에 후줄근하도록 휩쓸려졌으니, 나라 백성들의 정신이 건전할 수 있으며, 국가의 운명이 강대해질 수 있는가? 도대체 평양의 기자 사당은 어느 때 세워졌다 하는가?"
한 사람 아는 사람이 없다.
"아마 고려 말년에 세워진 듯합니다."
한동안 뒤에 변계량이 겨우 대답했다.
세종전하는 봉안을 치켜떴다. 번쩍하는 광채가 대신들의 흐리멍텅한 눈을 쏘았다.
"단군은 이 나라를 창설한 분이요, 기자는 중국에 변란이 일어나서 국가의 형태가 바뀌니 몸을 피하여 우리나라로 도피해 왔다가 이 땅에 교화를 편 분이다. 이러므로 단군 시대를 고조선이라 하고, 기자 시대를 후조선이라 한 것은 외국 역사에까지 다 실려 있는 바이다. 어찌해서 평양에 단군을 모시는데 기자 사당 안에 모시게 했고, 모시는데도 기자의 위패는 정면을 해서 남향해 앉게 하고 단군의 위패는 모퉁이 동편에 앉혀서 서향을 하게 했으니, 이것은 기자가 주가 되고 단군은 종이 되었다. 이같이 무식하게 주객이 전도될 수 있는가? 그리고 기자의 위채한테는 위토가 있어서 초하루 보름에 삭망제를 지내고, 단군의 위패는 더부살이가 되어 기자사당 안에 모신 것도 미안한데, 옆 자리에 있는 기자는 삭제와 망제를 받아서 흠향하고, 옆에 있는 단군 위패는 촐촐히 굶고 있다가 수복이의 선심으로 봄, 가을에 막걸리 한 잔씩을 대접받게 되었다 하니 기막힐 일이다. 집안 어른은 곁방살이를 해서 굶기고, 손님은 정당에 살게 해서 진수성찬으로 공양하는 것이나 매일반의 일이다. 도대체 이따위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대왕은 자못 격분했다. 음성이 높았다. 계속해 말씀을 내린다.
"이것은 도대체 지나친 사대사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의 얼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중국 사람들이 와서 기자사당을 찾는다고 해서 기자 위패는 정당에 주석으로 모시고, 그보다 더 높은 단군은 곁으로 모시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제사까지 차별했다는 것은 조선 사람인 우리 겨레의 졸렬하고 비굴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과인은 결코 기자 사당을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는 기자대로 정성스럽게 모시게 하고, 단군은 단군대로 경건하게 추모해야 할 것이다. 기자 사당 외에 따로 단군 사당을 창설해야 할 것이다. 경들의 의사는 어떠한가?"
대제학 변계량이 아뢴다.
"소신은 전번에도 아뢴 바와 같이, 단군을 중심으로 하여 제천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옳다고 선대왕 전하께 상서를 올려서 주장했던 사람이올시다. 단군의 사우를 평양에 따로 독립해서 모시고 구월산의 삼성사를 크게 중수하시어, 두 곳에 봉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평양은 단군이 태백산 아래에 강림하시어 홍익인간의 교화를 펴시던 곳이요, 구월산은 선화하신 곳이니 전대로 삼성사를 두시어 만백성에게 억만년이 가도록 국조의 성덕을 추모케 하옵소서."
전하는 대제학의 말씀을 들은 후에 모든 대신들을 둘러본다.
"대제학은 나의 뜻을 찬성하였거니와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모든 신하들은 전하의 뜻이 이미 굳은 것을 알았다. 감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좋습니다. 평양에서는 단군 위패를 기자 사당에서 분리하시어 따로 사우를 건설하시고, 다음에 삼성사는 중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일제히 찬성했다. 전하는 즉석에서 예조판서에게 분부했다.
"예판은 곧 단군 위패를 기자 사당에서 분리해서 따로 사당을 짓고 종묘와 사직 대사에 다음가는 중사로 모시어, 마치 성균 문묘와 동등한 제천의식을 받들도록 하라. 그리고 만백성으로 하여금 단군이 국조이신 것을 확실히 머릿속에 넣게 하라."
예조판서가 봉명하자 대제학 변계량이 다시 아뢴다.
"황공한 말씀을 한 마디 더 아뢰겠습니다. 글자나 한다는 선비들이 도리어 자기 나라의 국조인 단군을 모르옵니다. 오늘날 그래도 단군을 존숭할 줄 알고 삼성사와 기자사당 안에 모신 단군위패에 절을 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람은 모두 다 글을 읽지 아니한 아녀자와 무식한 백성들이올시다. 민간에서 아기를 낳으면 해산방에 반드시 미역국을 끓여서 삼신메를 올립니다. 삼신은 곧 삼성이십니다. 글 한다는 선비와 벼슬이 높은 대관들은 단군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건만, 백성들은 모두 다 경건하게 나라의 조상을 받들고 있습니다. 수천 년 내려오는 민속이올시다."
변계량의 아뢰는 말이 떨어지가 우의정 유관이 아뢴다.
"황해도 문화현은 신의 고향이올시다. 젊었을 때 자주 내려가 부로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단군의 사정을 안 지 오래올시다. 구월산은 고을 주산인데, 단군조선 시대에는 아사달이라 했다 합니다. '아사'는 '아침'의 옛말이요, '달'은 일월의 달이 아니라 양달 음달 하는 '벌'의 뜻이니, 아침 해가 잘 비치는 벌판, 곧 한자로 변해서 조선이 되고, '아'의 음을 가진 아홉 구자, 구월산으로 한자화가 된 것입니다. 신라 때 와서는 궐산이라 했습니다. '궐'의 음을 느리게 내면 또 구월산이 됩니다. 우리말이 한자로 변해서 이같이 번거롭게 되었습니다. 구월산은 웅장하고 커서 산줄기사 안악현까지 뻗어나갑니다. 고개 한마루, 산중턱에 신당이 있는데, 어느 때 세워졌는지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마는 사당 북벽에는 환웅천왕을 모시고 동벽에는 환인천왕을 모시고 서벽에는 단군천왕을 모시어서 그곳 사람들은 이 사당을 삼성당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산 아래 마을 이름도 성당리라고 부릅니다. 사당 안에는 새떼와 짐승들도 감히 들어가지 않는다 합니다. 그리고 큰 가뭄이 있을 때 백성들이 빌게 되면 반드시 단비가 내린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와 신이 되었으니 단군이 만년에 도읍을 정하신 곳이 이 구월산 아래일 것이요, 또 문화현 동편에 장장이란 지명이 있는데 노인들은 그곳이 단군이 도읍했던 곳이라 합니다. 전하께서는 단군의 도읍한 곳을 더 한층 조사하시어 사당을 세우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전하를 모신 중신들의 의논이 분분할 때 정원에서 동부승지 한 사람이 상소를 받들고 들어왔다. 한성판부사 유사눌이 올린 글월이다.
"신이 세년가를 읽어보니 단군은 조선 시조입니다. 여기 의하여 고증한다면, 단군은 처음 평양에 도읍하였다가 뒤에 백악에 도읍했고, 무정 팔년 을미에 아사달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 했습니다. 지금 단군의 사당이 구월산인 아사달에 있으니, 어찌 증거가 없다 하겠습니까. 그리하옵고 구월산에 세운 단군의 삼성사는 고려 때 세워서 그 사우와 위판이 아직도 있습니다. 전하께서 단군사를 세우신다면 다른 곳에 세우지 마시고 이곳에 세우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유사눌은 바로 유관의 조카다. 전하는 상소를 보시고 여러 신하에게 돌려 보이신 후에 하교하신다.
"평양은 옛 지명이 왕검성이요, 왕검은 곧 단군이다. 단군이 처음 백성을 다스려 도읍한 곳은 평양이요, 천여 년을 살았다는 것은 그의 자손들이 계승해서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뒤에 기자가 은이 망한 후에 주의 신하 노릇을 하기 싫어서 우리나라 평양으로 도피해 오니, 단군 측에서는 아사달로 도읍을 옮긴 것이 분명하다. 평양에도 따로 단군의 사우를 모시게 하고, 문화 구월산 삼성사도 크게 중수하여 중사의 예로 모시게 하라!"
예조에서는 명을 받들어 평양에 단군사를 세우고, 문화현의 삼성사를 크게 중수하여 춘추로 제향을 받들었다.
자아의식
세종전하는 단군의 사우를 세우고 기자묘를 수리한 후에 대제학 변계량에게 명하여 기자 묘 앞에 비문을 지어 세웠다. 며칠 후에 다시 예조에 명을 내렸다.
"과인이 일전에 단군의 사적을 고증하여, 평양 왕검성과 문화 아사달 삼성사에 봄가을로 중사 대제를 올리도록 한 것은, 나라 백성들에게 스스로 자기를 알고, 자기 자신들의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해서 앞으로 자기의 조국을 더욱 사랑해서 부강과 문명ㅇ르 누리게 하려는 데 그 근본 뜻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소위 공부했다는, 글자나 배웠다는 선비들은 제 나라 조상들이 어떻게 생겨난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남의 나라의 시조는 계보까지 소상하게 알고, 제 나라의 역사를 물어보면 한마디도 대답을 못 하는 위인들이 남의 나라의 역사와 사적은 막힘 없이 줄줄 외어서 청산유수처럼 대답한다. 탄식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백 번 천 번 글을 읽는대야, 제 나라의 부강을 이룩하고 제 나라의 문명을 향상시킬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 단군의 사우를 창설해 모신 것을 계기로하여, 역대 왕조의 시조묘를 창설하여 국가에서 봉안하고, 각기 사우를 수직하는 참봉을 두어서 춘춘대제를 봉행케 하라. 이것은 곧 어리석은 백성들에게까지 자기의 조상을 알게 하는 한편, 자기의 서 있는 땅을 굳건하게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다!"
예조에서는 하교를 받자 곧 대신과 대제학을 대동하고 탑전에 배알했다.
"하명하신 일은 그대로 봉행하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역대 왕가의 시조묘를 어느 곳에 세울지 일일이 하교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예조판서가 먼저 아뢰었다.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후에 기자의 교화가 있었고, 다음에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이 정립해 있었던 것은 사기가 증명하는 바이다. 고구려 동명성왕은 평양에 도읍하였고, 신라 시조 혁거세는 지금 경주인 서라벌에 도읍을 정했고, 백제 온조왕은 남한산성 아래 처음 도읍을 정했으니, 각기 그 도읍했던 곳에 사당을 세워서, 단군을 봉안한 거와 같이 춘추대제를 중사의 예로 받드는 것이 온당하다."
"그러하오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사당은 평양으로 모시겠습니다. 묘호를 어찌하오리까?"
전하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이내 말씀을 내린다.
"동명성왕의 묘호는 숭령전이라 하면 어떻겠는가?"
변계량이 아뢴다.
"국초에 태조대왕께서 고려 왕건 태조의 사당을 연천에 세우시고 묘호를 숭의전이라 하셨습니다. 동명성왕은 신령스런 분이니 숭령전이라고 명명하시는 것이 과연 좋을 듯합니다."
대제학의 말에 따라 모든 대신들도 '좋습니다'하고 찬동했다. 예조판서는 다시 아뢴다.
"그러하오면 다음엔 신라 시조의 묘호를 내려주시옵소서."
"신라의 건국은 서라벌이니 경주에 모시게 하라. 그리고 박혁거세 '불그내' 어른은 덕이 많은 분이다. 숭덕전이란 묘호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겠다."
모든 신하들이,
"좋습니다."
아뢰었다.
"다음엔 백제 온조왕의 묘호를 내려주십시오."
예조판서가 다시 고했다. 세종전하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이내 말씀을 내린다.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은 묘호를 숭령전이라고 정했고, 신라 시조 혁거세 대왕의 묘호는 덕이 많다고 해서 숭덕전이라 했고, 고려 왕건 태조는 태조대왕께서 이미 숭의전이란 묘호를 내리셨다. 숭령, 숭덕, 숭의 등 좋은 글자를 다 골라놓고 보니 좋은 글자 생각이 얼른 나지 아니한다."
말씀을 마치자 세종전하는 껄걸 웃으셨다. 역대 시조들의 사당 세우는 일에 신하들이 까다롭게 이론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모두 다 찬동하니 마음이 흡족한 까닭이다. 대제학의 뒤에 있던 제학 정인지가 아뢴다.
"백제 시조 온조왕은 부여에서 겨우 시자 열 명인 십제를 거느리고 내려와서 백제를 이룩했으니 고생도 많이 했고 대단한 분입니다. 매울 렬자를 넣어서 숭렬전이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종전하는 무릎을 치며 칭찬했다.
"대단 좋다! 그럼, 백제 시조 온조왕의 묘호는 숭렬전으로 결정하라."
예조판서가 다시 아뢴다.
"고구려의 동명성왕과 신라의 박혁거세 대왕은 도읍한 곳이 확실하니 평양과 경주에 세우겠습니다마는, 백제는 여러 번 천도를 했으니 어느 곳에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의 말이 옳다. 백제는 도읍을 하남위례성에 정했다가 광주 바람들이로 옮겼고, 또다시 공주를 거쳐 부여로 옮겼으니, 어느 곳에 사당을 세울지 충분한 고증을 두어 세우게 하고, 우선 동명성왕과 신라 시조의 사우를 곧 착수해서 건축하도록 하라."
예조판서가 다시 고한다.
"평양의 단군사우와 구월산 삼성사 이하 모든 사우에 국가에서 정식으로 위패를 봉안한다면 전하께서는 제문ㅇ르 올리셔야 하고 직제를 마련하여 관원을 임명하셔야 할 것입니다. 분부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우가 완성이 된 후에는 과인이 승지를 보내서 제문을 읽게 하리라. 그리고 모든 사우에는 6품직인 영 한 사람과 9품직인 참봉 한 사람씩을 두어서 사우를 수호케 하고, 그 고을의 존위와 유생들은 제례 때마다 함빡 참사하여 크게 애조 애향하는 정신을 기르게 하라. 자기의 조상과 자기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곧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요,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먼저 조상을 추모해서 국풍을 진작케 하라."
평양의 단군 사당과 동명성왕의 숭령전이며 구월산 삼성사와 경주 혁거세 대왕의 숭덕전을 짓기 위하여 세종대왕의 특명을 받들고 일등 편수와 목수들이 장인들을 거느리고 세 곳으로 내려갔다. 지방마다 풍헌, 약정, 유림들을 위시하여 남녀노소의 백성들은 세종전하의 성덕을 기리는 소리가 높았다. 사당집은 일등 편수들의 솜씨로 완성되고, 기둥과 도리와 서까래의 울굿불긋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단청예술이 고을 사람들의 눈을 현란케 했다. 모든 사당이 준공되니 세종전하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명하여, 사당을 창설하여 중사로 받드는 제문을 지었다. 말할 것도 없이 세종대왕이 단군과 동명성왕과 신라 시조 혁거세 대왕께 올리는 글월이다. 정중하고 경건했다. 전하는 승지 세 사람을 불러 엄숙사게 분부를 내렸다.
"너희들은 나를 대신해서 초헌관이 되어 제문을 올리는 것이다. 제각기 맡은 바 묘소에 내려가서 목욕재계하고 엄숙하게 제사를 올리라. 아헌관을 해도의 관찰사로 임명한다. 삼헌관은 유림과 부로 중에서 망중한 이를 택해서 거행토록 하라."
전하는, 제관으로 평양과 구월산이며 경주로 내려가는 세 사람의 승지들에게 일일이 분부를 내렸다. 승지들은 봉명하고 기구를 차려 내려갔다. 승지가 제문을 받들고 전하를 대신해서 내려가니, 평양과 경주와 구월산에는 관찰사와 군수가 마중을 나오고, 풍헌, 약정, 유림, 한량들이 구름 모이듯 모여들었다. 대제가 거행되는 날에는 한 고을 남녀노소들이 줄을 지어 새로 된 전각 앞으로 모여들었다. 전상에 삼현육각의 풍악이 청아한 음향을 흰구름 밖으로 날리고, 세종전하를 대신하여 현관 제복을 입은 승지가 네 번 절하여 초헌을 올리니, 향연은 제단 위에 푸른 기운을 뿜고, 낭랑한 제문 읽는 소리에 단군과 동명왕이며 신라 시조는 감격하여 저를 들어 흠향하는 듯했다. 전각 위에 참사하는 제관들이나 전각밖에 모여서 참배하는 수천 군중들은 한맘 한뜻이 되어 조상을 받드는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국가에서 사당을 새로 짓고, 영과 참봉을 두어 사우를 수직하고, 나라님이 친히 제문을 지어 칙사를 보내어 대제를 지내게 한 일은 왕조가 개국한 후에 처음 되는 일이었다. 소문은 평안도, 경상도, 황해도 일대에 자자하게 퍼졌다. 서민들은 거리거리 주막마다 사랑방마다 만나고 모이기만 하면 대왕의 덕을 칭송했다.
"밝은 임금이 나오셨네. 나라가 잘될 것일세. 조상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어찌 행세를 하고 살 수가 있나. 우리 백성들이 초초하게 모시던 사당집을 나라에서 중사로, 종묘 다음 가게 모시게 됐으니, 조상들도 기뻐서 큰 복을 내리실 것일세."
"아무렴!"
고을마다 동네마다 백성들은 이같이 기뻐했다. 세종전하의 제문을 받들고 평양을 위시하여 문화 구월산 삼성사와 경주 신라 시조 숭덕전에 창설 대제를 마치고 돌아온 승지들은 어전에 나가 제례를 성대하게 마치고 돌아온 일을 일일이 복명했다.
"신라 시조 혁거세 어른의 숭덕전을 새로 모시고 중사 제례를 지내는 날, 경주 일판은 말할 것 없고 경상도 전 지역에서 유림과 부로들을 위시하여 수만 수천의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어 경건하게 제사를 받들었습니다. 그리하옵고 온 백성들은, 다시 신라 때 화랑정신이 솟구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촌락마다, 밝은 신 나라님을 모시었다고 기뻐들 하는 소리가 빗발치듯 했습니다."
경주로 내려갔던 승지의 아뢰는 말씀이 끝나니, 평양에 갔던 승지가 아뢴다.
"가자사당에서 새로 지은 단군사당으로 단군신위를 모시어 남향해 모시고 따로 제사를 받드니, 수천 수만의 백성들이 환호성을 올려 크게 기뻐들 했습니다. 뒤에 들어온 기자님이 주석이 되어 남향해서 앉았는데, 그분보다 천유여 년 전에 조선을 개국하신 단군할배께서 더부살이처럼 모로 앉아 계시니 항상 미안하고 불쾌스럽게 생각했다가, 이제 단군 할배의 사우를 따로 모시고 나라님이 칙사까지 보내서 대제를 올리시니 비로소 일이 바로잡혔다고 기뻐들 하면서 밤새도록 두레패를 모아 춤들을 추고 노래를 불러 즐거워했습니다. 그리하옵고 고구려 동명왕 사당을 신축한 숭령전 앞에서도 단군 할배의 다음 가는 할배의 사당이라 해서 제사를 지낸 후에도 백 리, 이백 리, 삼백 리 밖에서 남녀노소 백성들이 짚신감발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사당 앞에 메를 올리고 절하는 사람 물결이 끊일 사이 없었습니다. 조상을 숭배하는 순진한 백성들의 모습이 눈물겨웠습니다."
평양으로 내려가 기자 사당 안에서 단군 위패를 분리해서 모시고 다시 고구려 동명성왕 사당에 제사를 드리고 돌아온 제관의 복명이 끝나니, 구월산 삼성사에 칙명을 받들고 내려갔던 승지가 아뢴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삼성사를 크게 이룩하여 주란화각이 산마루에 벽공을 어루만지며 솟아 있으니, 마치 천상옥경의 백옥루인 듯 성스럽게 보였습니다. 신위는 전대로 삼성을 모시었습니다. 이곳에 올라 배를 드리고 전하의 제문을 읽으니, 삼신이 미소하시며 흠향하시는 듯했습니다. 과연 성역이요, 신기가 도는 듯한 절경이었습니다. 첩첩한 청산은 구름밖에 둘려 있고, 옥야천리는 눈 아래 트여서 옛날 장당경의 서울이 방불하게 눈앞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서당리 백성들을 위시하여 문화, 안악 먼 곳에서 남녀노소들이 연락부절 모여들어서 정성껏 참배를 하고 단군 할배를 불러 추모하는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리하옵고 산 아래 모여 사는 가난한 백성들이 시월 상달이면 소를 잡고 돼지를 잡아서 제를 지내던 삼성사에 나라님이 크게 사우를 중수하시고 큰 제사를 춘추로 지내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고 고마워들 하는 소리가 대단했습니다."
전하는 모든 승지들의 아뢰는 말씀을 조용히 들었다. 만족해하는 미소가 입가에 은은히 서렸다. 세종전하는 역대 왕조의 시조 묘를 세워 춘추 제향을 받들게 한 후에 다시 호조판서와 예조판서를 불렀다.
"일전에 단군 이하 각 왕조 시조왕의 사우를 지어, 춘추로 절사를 받들게 한 후에 과인의 마음은 심히 흡족하다. 문명과 문화는 하루하침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예절과 행동과 학식이 수천 수백 년 동나 발전되고 쌓여서 비로소 이룩되는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모든 사적과 문물을 끊임없이 잘 보존해서 옛것을 돌이켜보면서 새로운 새 시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들 살아나가는 사람의 임무요 책임이다. 흔히들 왕조가 바뀌고 역성이 되면 전시대의 유적과 문물은 돌보지 않는 것이 역대의 폐풍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태백의 시에도 '오궁화초매유경 진대의관성고구'란 시가 있다. 이래서는 아니 된다. 다 없어진다면 어찌하나? 무엇을 가지고 문화와 전통이 있는 겨레라고 증명할 것인가? 나도 항상 숭배하는 분이지만 여조 때 유신 원천석이란 분도 이러한 시조를 읊었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붙였으니 석양에 지나는 손이 눈물겨워하노라.' 이래서는 아니 된다. 비록 왕조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만월대는 깨끗이 보존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인들이 문명을 쌓아놓았던 유적인 때문, 우리는 이러한 유적들을 꼭 보존해야만 한다. 오늘 내가 호판과 예판을 불러서 묻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평안도 일대에는 고구려의 유적인 고분이 얼마나 있으며, 개성에는 고려 시조 아하 왕릉이 몇이나 님아 있으며, 서라벌 일대에는 왕릉이 몇 기나 보존되어 있는가? 아는 대로 대강 대답해보라."
돌연 전하의 부름을 받아 입궐한 호조판서는 평양과 송도며 경주에 왕릉이 있고 없는 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벼슬이 판서라는 높고 높은 장관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꿈에라도 한 번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판서들은 등에 진땀이 흘렀다. 서로들 얼굴만 물끄럼말끄럼 바라보고 있을 뿐, 입을 벌려 아뢰지 못했다. 전하는 한동안 두 신하의 태도를 바라보다가 음성을 높여 껄껄 웃으셨다.
"도대체 나라의 중책을 맡은 정경들이 제 나라 제 땅에 어떠한 유물과 유적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니 장차 나라를 어찌 다스린단 말인가? 하, 하, 하. 딱한 일이로다!"
호조판서와 예조판서는 더욱 몸 둘 곳을 몰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번엔 망건편자에까지 진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 전하는 다시 미소를 짓고 말씀을 내린다.
"경들만 나무라고 탓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이 글렀다. 내 역사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내 나라 지리를 배우지 아니했으니 알 도리가 있는가. 경들을 꾸짖지 않는다. 그러나 곧 사람을 각처로 보내서 선대의 왕릉들을 조사해 올리라!"
호조판서는 전하의 특명을 받들어 정랑 좌랑들을 평안도와 경상도며 개성부에 급파해서, 관찰사와 부사며 군수들에게 어명을 전했다. 유적과 고분과 능묘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고관대작들은 비로소 정신이 번쩍 났다. 토호질이나 쳐서 백성들의 등을 쳐 먹고, 기생 수청이나 들여서 주지육림 속에서 만날 호강으로 세월을 보내던 감사, 부사들이었다. 글자는 배웠다 해도 제 나라 사기에 관심이 없었고, 제 나라 지리를 알아본 적이 없으니, 동명성왕의 능묘가 어디 있고 주몽이 누구의 이름인지 알지 못하도록 무식했다. 별안간 알아 들이라는 어명이 내리니 당황했다. 감사와 부사들은 급히 이방과 호방을 불렀다.
"조정에서 전하의 특명을 받들고 호조정랑이 내려와서 옛날 고분과 능묘를 사실해 올리라 하니 급히 조사해서 바치도록 하라. 원래 나는 서울서 부임해 왔으니 이곳 유적을 알 까닭이 없구나. 너희들은 이곳에서 누대 생장한 사람들이니 이곳 형편을 샅샅이 잘 알 것이다. 빨리 사실해서 유루가 없도록 하라."
아전인 이방과 호방도 제가 생장한 고향이지만 역시 유적에 대해서는 등한했다.
"소인들 역시 소상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부로한테 물어서 대답해 아뢰겠습니다."
아전들은 황황하게 노인들을 찾아서 지방의 유적과 능묘를 묻고 찾았다. 과연 세종전하께서 말씀한 대로 이태백의 시 그대로다. 옛 능묘들은 모두 다 고구가 되어버렸다. 무식한 농부들이 무너진 궁궐터와 무덤 위에 밭을 갈아버렸다. 모두 다 보리밭이 되고 밀밭이 되고 천수답 다랑이논이 되어버렸다. 남아 있는 몇 곳 아니 되는 능묘도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원천석의 시대로 무성한 추초뿐이다. 어떠한 유적인지 누구의 능묘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방과 호방은 노인들에게 물어서 겨우 아는 곳만을 감사와 부사한테 고해바쳤다. 각도의 지방장관들은 조사된 대로 호조와 예조에 보고를 올렸다. 평안감사한테서 장계가 들어왔다.
'평양에서 동북편으로 30리가량 가면 대성산이란 산이 있습니다. 이 산 남쪽에 고구려 왕궁터라고 전하는 안학궁지가 있고, 여기서 동편과 서편에 천수백 기의 석총과 토분이 무수하게 있습니다. 또 순천과 용강이며 운산, 위원, 그리고 황해도 봉산에도 무덤이 황폐하게 흩어져 있는데, 모두 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들이올시다. 그리하옵고 평안도 강서 삼모리에 있는 옛 무덤 현실에 그린 벽화 청룡 백호도는 그 웅건한 필치가 천하일품이옵고, 진지동에 있는 쌍영총의 인물도는 말과 소와 수레의 그림과 함께 그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가 감탄케 할 뿐 아니라, 당시 고구려 때 풍속을 완연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하옵고 광개토왕의 왕릉이 만주 집안현 통구 동편 토구자 산허리에 있고, 산 아래에는 유명한 광개토왕 비가 있다 하옵는 바, 가보지 못하와 죄송스럽습니다.'
호조와 예조에서는 급히 평안감사의 장계를 전하께 올렸다. 세종전하는 장계를 보자 탄식했다.
"역대 제왕들이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이 모든 수천 수백의 선인들의 유적이 그대로 잘 보관되어 누구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도움이 되었으랴! 그리고 광개토왕의 능묘와 비석은 멀리 있으나 집안현 통구에 잘 보존되어 있다 하니 기쁜 일이다. 요동진관에 글월을 보내서 적극 보호해 달라고 공문을 띄워라. 그리고 강서의 고분과 벽화는 평안도백이 책임을 지고 잘 보관하도록 하라!"
호조판서와 예조판서는 명을 받들었다. 선인의 유적에 대한 보고는 계속해서 들어왔다. 경상감사가 장계를 올렸다.
'신라 시대의 옛 무덤은 옛 도성이었던 경주 부근에 무려 수만 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 양산, 선산 등지에도 많이 있습니다. 신라의 고분은 시대의 변천과 문화가 전진되는 데 따라서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고대로 올라가면 단순한 구분으로 이룩되었고, 통일시대 이후로 내려오면 분묘 후면에 호석을 두고 석난간 석상 등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높은 분의 분묘에는 망주석과 문무석인이며, 석사자와 혼유석, 장명 등을 배치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돌난간을 둘러서, 그 의식이 자못 장려합니다. 여기 또 비석과 비각이 있어서 누구의 능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존되어 있는 능은 성덕, 경덕, 헌덕, 흥덕왕들과 그 위로 올라가서 태종무열왕, 문무대왕의 괘릉이 장엄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전하는 경상감사가 올린 장계를 받아 읽은 후에 용안에 가득히 웃음이 떠돌았다. 장계를 받들고 들어온 승지와 판서들에게 말씀을 내린다.
"신라 옛 도읍 경주에는 그래도 누대 왕릉이 보존되어 있구나! 비석이 보존되어 있고 능침이 남아 있는 것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까닭으로 이같이 유지된 것이다. 감사와 경주부에 교서를 내려서 현재 남아 있는 왕릉을 적극 수호케 하고, 이름 없는 구릉과 같은 큰 무덤도 농민들이 함부로 밭을 일궈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라!"
승지와 판서들이 명을 받들고 있을 때, 정원에서 동부승지 한 사람이 또 한 벌의 장계를 받들고 들어왔다. 개성부에서 올린 장계다.
'고려 왕건 태조와 왕비 유씨를 합장해 모신 현릉이 개성 중서면 곡령리에 있습니다. '고려사' 세가편에도 실려 있습니다마는, 태조의 유명을 받들어 중국 한 위의 능제를 참고하여 화려장엄하게 조성되었다 합니다.'
전하는 개성부의 장계를 여기까지 읽자, 고려 태조의 능침이 한과 위의 능침제도를 참고했다는 말에 감탄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전하는 좌우 시신을 둘러보며 말씀을 내린다.
"왕건 태조는 과연 대단한 분이로다! 자주독립의 의식이 뚜렷한 분야. 외세를 빌리지 아니하고 국가를 통일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천자가 되어 천수원년이란 연호를 쓰고 제천의식을 단행했으며, 단연코 자신을 가리켜 짐이라 일컫고, 교지를 조서라 하고, 자기가 죽은 후에도 능침은 중국 황제의 능침과 똑같이 하라 했으니, 이러한 자주정신이 고려 국민에게 끼친 영향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연호를 마음대로 못 쓰고, 짐 소리를 못 하면서 과인이라 하고, 조서라고 못하고 교지라고 하는 내 신세가 딱하다. 어깨가 좁아지는 듯하구나! 어찌하면 외세에서 벗어나서 황제라고 할 수 있는가!"
전하는 땅이 꺼지도록 길게 탄식하는 한숨을 지었다. 눈에 울분한 기운이 가득했다. 모든 시신들은 감히 고개를 들어 대답을 아뢰지 못한다. 전하는 길게 한숨을 쉰 후에 다시 개성부에서 올ㄹ니 장계를 계속해 읽는다.
'그리하옵고 혜종의 순릉은 개성 지하동에 있고, 다음 정종의 안릉은 청교면에 있고, 광종의 헌릉은 잠남면 되넘이고개에 있고, 경종의 영릉은 진봉면 숫골에 있고, 성종의 강릉은 청교면 강릉골에 있고, 현종의 선릉은 곡령리 능골에 있고, 문종의 경릉은 장단에 있고, 순종의 성릉은 상도면 풍천리에 있고, 숙종의 영릉은 장단 진서면 판문리에 있고, 예종의 유릉은 역시 청교면에 있고, 고종의 홍릉은 강화에 있고, 원종의 소릉은 영남면에 있고, 충목왕의 명릉은 중서면 여릉리에 있고, 공민왕의 현릉과 노국공주의 정릉은 쌍분으로 되어 중서면 여리 정릉골에 있고, 고려 태조한테 항복했던 신라 경순왕의 능은 장단 고랑포에 있습니다. 그리하옵고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쌍릉은 화려장엄하여 왕건 태조의 현릉과 함께 고려 능침의 쌍벽이라 하겠습니다. 장명등, 망주석, 문무석 외에 석호, 석양을 배치하고 석난간으로 토분을 둘러서 아름다운 극치를 이루었고,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가 분명한 장풍향양한 대지올시다.'
전하는 개성부에서 올린 장계를 다 읽은 후에 개성부윤의 주밀한 조사에 흡족했다. 승지와 판서들에게 분부했다.
"신라와 고려에 나타나 있는 왕릉은 호조와 예조에서 관장하고, 감사와 군수로 항상 살펴서 절대로 훼손되는 일이 없게 하라. 모두 다 연면히 계승되는 나라의 문화인 것을 주의하라---."
판서들은 명을 받들었다.
고려사 문제
세종전하는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컸다. 정치의 득실과 제왕의 규범을 알기 의하여 '서경', '시경'으로부터 사마천의 '사기'와 '춘추좌전'이며 '주자강목'과 '자치통감'을 탐독했다. 우리나라에 관한 사승으로도,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대사의 '삼국유사'에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이규보의 '동명왕편', 이제현의 '사략'과 이색의 '금경록'을 읽었다. 그러나 '고려사'가 아직도 완전하게 편성되지 못한 것을 항상 마음으로 개탄했다. 전하는, 개국이래 단군을 위시하여 역대 왕조의 시조묘를 창설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능묘를 일신 보수하여 문화의 연원을 정리한 후에 전조인 고려의 역사를 완전하게 편성할 것을 결심했다. 전하는 어느 날 경연에서 학문의 강독이 끝난 후에 여러 경연관을 향하여 하문했다.
"우리나라에 '삼국사'는 있지만 전조인 고려에 대하여는 익재 이제현의 '사략'과 목은 이색의 '금경록'이 있으나 너무나 간략하다. 내가 임금의 자리에 있는 동안 '고려사'는 완성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경연관들의 의향은 어떠한가?"
나라의 역사와 실록 편찬을 관장하고 있는 지춘추관사 변계량이 아뢴다. 이때, 변계량은 집현전 대제학도 겸하고 있었다.
"'고려사'는 한 번 편찬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태조대왕 4년 때일 이올시다. 당시에 판삼사 정도전과 정당 문학 정총이 '고려사'를 편찬해서 태조대왕께서 크게 찬양하시고, 정도전에게는 백금 일정에 채단 한 필과 명주 한 필에 어구마 한 필을 내리시고, 정총에게는 은 오십 냥에다가 어구마와 명주 한 필까지 내리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태조대왕 4년이면 과인이 세상에 나오기 바로 2년 전의 일이로구먼. 그렇다면 어찌 아직껏 책이 되지 아니했는가?"
변계량이 다시 아뢴다.
"그 후에 선대왕 태종 14년에 선대왕께서는 정도전과 정총이 편수한 '고려사' 초본을 보시고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어찌해서?"
"정도전은 공민왕 이후의 일을 여러 군데 틀리게 기록했습니다. 그리하옵고 자기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열전에다가 굉장한 인물로 기록해놨습니다. 태종께서는, 그때 일은 누구보다도 태종께서 잘 아시는 일인데, 역사를 이같이 잘못 기록해놓는다면 큰일이라 하시고, 당시의 재상이었던 하윤과 지춘추관사 한상교와 소신에게 명하시어 '고려사'를 다시 편찬하라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벌써 여러 해 전 일인데 어찌해서 끝을 내지 못했는가?"
"하윤은 선대왕 전하의 하교를 받들고 이제현의 '사략'과 이색의 '금경록'을 대본으로 하여 소신과 한상교와 세 사람이 원고를 3분하여 수정하던 중에 하정승이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중단이 되었습니다."
세종전하는 변계량의 아뢰는 말을 듣자 용안에 적이 불쾌한 빛이 떠돌았다.
"하정승이 작고했다 해서 역사를 편찬하던 일을 중단했다 하니 말이 되는 소린가.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해도 두 사람은 살아 있지 아니한가? 사관들이 모여 있는 춘추관이 엄연히 있는 이상, 어찌해서 일을 계속하지 아니했단 말인가. 만약에 과인이 묻지 아니했더라면 '고려사'는 영영 편찬이 되지 아니할 것 아닌가? 하정승이 세상을 떠난 지가 벌써 여러 해가 되지 않았는가. 대신 편수할 사람을 어찌해서 임명치 아니했던가? 너무나 태만하구려!" 대왕의 옥음은 높았다. 변계량은 송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황공무지하오이다. 변명 같사오나, 본조의 사실이 아니고 지나간 전조의 일이오라 소신들이 자의로 붓을 대기 어려워 아직 완성이 되지 못했습니다."
전하는 여전히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황공무지하오이다."
변계량은 얼굴이 붉어지며 연해 '황공무지' 소리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경연이 파한 후에 춘추관에 기별하여 정도전이 편찬한 '고려사'와 하윤이 주재했다는 '고려사' 초본을 편전으로 들여보내오!"
세종은 말씀을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전으로 들었다. 모든 경연관과 지춘추관사 변계량은 황황망망 어찌할지 몰랐다. 변계량은 곧 춘추관으로 나가 정도전이 태조 때 편찬했던 '고려사' 초본과 태종 때 하윤, 변계량, 한상교가 편수하다가 중단한 초본을 받들고 춘추관 편수관들과 함께 편전으로 들어가 배알을 청했다. 편수관인 정초, 윤회, 정인지, 이석형의 얼굴도 보였다. 변계량이 사관들을 대표하여 아뢴다.
"정도전의 '고려사'초본과 하윤이 죽음으로써 중단되었던 초본을 올립니다."
전하께 올린 두 종류의 초본은 무려 수십 책이었다. 전하는 모든 사관들에게 명했다.
"모두들 앉으라. '고려사'는 내가 생존해 있는 동안 기어코 완성해야 하겠다. 오늘부터 경들은 나와 함께 사관을 확실하게 세워서 이 크나큰 사업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내가 공부하던 익재 이제현의 '사략'과 목은 이색의 '금경록'을려 대조해서 경들에게 물어볼 터이니 경들은 기탄없이 대답하라."
전하는 말씀을 마치자 문갑 속에서 책 두 권을 꺼내놓았다. 모두들 바라보니 과연 '사략'과 '금경록'이다. 사관들은 대왕의 박람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전하는 차근차근 손수 책을 들어 어전에 쌓아놓았다. 사관들은 황송했다. 전하의 쌓아놓는 책을 바로잡으려 했다. 전하는 손을 저어 막았다.
"책을 보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사관들은 마음속으로 또 한 번 놀랐다. 전하는 먼저 이제현의 '사략'을 폈다. 다음, 정도전이 편수했다는 '고려사' 초본을 펴놓았다. 다음, 하윤과 변계량이 태종의 명을 받들어 편수에 착수했다가 중단되었다는 초본을 펴놓았다. 한동안 말씀 없이 세 가지 종류의 사본을 비교해보았다. 시신들이 둘러앉은 편전 안은 근엄한 침묵 속에 빠졌다. 가끔 가끔 전하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누구 한 사람 기침하는 소리조차 없었다. 한동안 후에 전하는 책에서 눈을 돌려 사관들을 둘러보고 말씀한다.
"고려의 왕건 태조가 천자만이 쓸 수 있는 연호를 써서 천수라 하고, 고려를 개국한 벽두부터 천자라야 하늘에 지내는 제천의식을 거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가?"
변계량이 대답한다.
"네, 그러하옵니다."
"고려 때 이제현과 이색 두 문호가 기록해 논 '사략'과 '금경록'에도 그같이 씌어 있구먼!"
"네, 그러합니다."
이번에는 정초가 대답했다.
"폐하라는 말은 천자에게만 한해서 쓰는 말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제후는 전하라는 말을 쓰고, 큰 나라의 천자, 곧 황제만이 폐하라는 존칭을 받습니다."
이번엔 윤회가 대답했다.
"짐과 과인은 어떻게 다르고, 조서와 칙어며 교서 또는 교지는 어찌 구별되는가?"
전하는 알면서도 일부러 묻는다. 신하들은 '아시는 일을 왜 물으십니까?' 하고 아뢸 수도 없었다.
"황제가 내리는 글월을 조서라 하옵고, 말씀을 칙어라 합니다. 제후가 내리는 글월을 교서 또는 교지, 하교라 하는 것이 전례올시다."
이번엔 이석형이 대답했다. 전하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는다.
"여러 사관들이 마침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내가 묻는다. 나라의 역사를 뒷세상 사람들이 쓸 때 자기의 형편대로 적당하게 뜯어고쳐서 거짓말로 꾸며놔도 좋은가?"
늙고 젊은 사관들은 전하의 물으시는 저의가 어느 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서로들 얼굴을 보면서 얼른 대답을 올리지 못한다.
"왜 대답이 없는가?"
재촉이 내렸다. 그러나 조마조마해서 모두들 입만 달싹거렸다. 말이 나올 듯하다가 대답을 못 한다. 대왕은 용안에 근엄한 빛을 띠고 세 번째 재촉한다.
"사관들이 사기를 쓰는데 사실이 틀리게 써도 관계치 않은가 하고 물었다. 대답하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가? 속히 말해보라."
지춘추관사로 있는 늙은 재상 변계량이 아니 대답할 도리가 없었다.
"사관이 역사를 다루는데 어찌 사실과 틀리게 쓸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변계량의 대답이 떨어지자 정초가 아뢴다.
"역사는 직필을 하는 것이올시다. 그러기에 춘추필법이라 합니다. 이 까닭에 저희들 사관들이 일하고 있는 곳도 춘추관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경들은 어찌 사실을 쓰지 않고 역사를 함부로 뜯어고쳤는가?"
대왕의 용안에 불쾌한 빛이 떠돌았다. 변계량, 정초, 윤회 이하 모든 젊은 사관들의 얼굴빛이 당황하게 변했다. 모두들 '억울한 말씀을 내리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번계량이 아뢴다.
"절대로 그럴 리 없습니다. 전하께 다짐 두고 말씀합니다. 저희들 사관은 곡필해서 사기를 편찬한 일이 없습니다."
전하는 이제현의 '사략'과 정도전의 '고려사' 초본을 사관들 앞에 펴놓았다.
"자아, 보라. 왕건 태조는 어느 나라로부터도 제재를 받지 않는 고려국 천자로 자처하였다. 그리하여 연호도 천수 원년, 곧 하늘이 준 원년이라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짐이라 했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그를 폐하라 하고, 그가 내린 글월을 조서라 하고, 그가 말씀한 말을 칙어라 하고, 그가 보내는 사람을 칙사라 했다. 그러나 정도전의 '고려사' 초본에서는 폐하를 전하로 고치고, 조서를 교서라 했으니, 이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쓰지 아니하고 틀리게 쓴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관들은 비로소 전하의 물으시는 저의를 알았다.
"그것은, 정도전이 명의 간섭이 있을까 두려워서 폐하의 칭호를 전하로 고치고 조서를 교지라 했습니다."
전하는, 태종 때 하윤이 변계량 등과 다시 '고려사'를 편찬하다가 하윤이 죽은 때문에 중단했다는 초본을 변계량 앞에 펴놓고 말씀한다.
"정도전은 명에 아첨하기 위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적지 아니했거니와, 경은 어찌해서 다시 '고려사'를 하윤과 함께 편찬할 때 정도전의 본을 떠서 폐하를 전하라 하고 조서란 말을 교지라고 썼는가?"
변계량은 아니 대답할 도리가 없었다.
"당시 하윤과 함께 선대왕 태종전하께 아뢰고 한 일이올시다. 역시 명나라에서 말이 있을까 하여 그같이 쓴 것이올시다."
세종전하는 길게 한숨을 짓고 탄식했다.
"경들이 폐하를 전하로 고쳐서 쓰고 조서를 교리라 쓴 것을 결국 역사를 뒤엎어서 삐뚤어지게 쓴 것이 아닌가? 당시의 사실을 사실대로 쓰면 족한 것이다. 명나라 사람이 천백 번 트집을 한다 하더라도 그때 그 현실은 거짓이 아니요 사실이었던 것을 그 사람들도 잘 알 것이다. 저편에서 말도 아니했는데 이편에서 미리 지레짐작으로 겁을 집어먹고 그같이 썼으니 과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저 사람들도 그때 형편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사필을 맡은 사람이 사실대로 적는 일은 저 나라에도 있는 일이다. 경들은 이러고도 춘추필법으로 사필을 잡았다 할 것인가?"
전하는 근엄했던 용안이 탁 풀어지면서 옥음을 높여 껄껄 웃었다. 흉악해서 웃는 웃음소리가 아니다. 사관들을 야유하는 웃음소리다. 이내 말씀을 계속한다.
"경들은 아까 무어라고 말했는가. 사관은 춘추필법으로 사실대로 쓰는 때문에 절대로 거짓말이나 곡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아니했는가. 그래서 사관들이 일하고 있는 집도 춘추관이라 했다고 뽐내지 아니했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찌해서 폐하를 전하라고 맘대로 고쳐 쓰고, 저서를 교지라고 바꿔 썼는가. 어찌 이것을 정사라고 할 수 있는가. 경들은 죽은 뒤라도 저승에서 후세 자손들을 무슨 낯으로 대할 터인가?"
사관들은 꼼짝달싹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전하는 말씀을 계속한다.
"경들은 명이 간섭할까 두려워서 역사를 고쳐 썼다고 변명하지만, 지나친 사대병에 걸려 있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고려 때는, 몽고군이 쳐들어오기 이전 원종 때까지는 당당한 천자의 나라였다. 시호도 전부 조와 종이라 했던 것이다. 다만 왕이라 한 것은 충렬왕 이후의 일이다. 명나라 조정에서 혹시 탄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했다면 그만 아닌가.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은 그 사람들도 잘 알 것이다. 왜 지레 겁을 집어먹고 이따위 비겁한 짓을 했느냐 말이다. 그래도 경들은 남을 대해서 춘추필법으로 글을 쓰는 사관이라고 얼굴 판을 들고 뽐낼 터인가?"
사관들은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말씀을 못 한다. 전하는 다시 말씀을 내린다.
"나는 일전에, 경들이 수록하는 '태종실록'을 좀 보고 싶었다. 내 아버님의 정치하셨던 일을 쓴 것이 좀 보고 싶었다. 이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결코 내 아버님의 일을 잘 써달라고 부탁하려고 보려 한 것이 아니다. 또 우리 아버님의 욕을 썼다면 사관들에게 벌을 주려고 실록을 보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춘추관에서는 응하지 아니했다. 두 번, 세 번 청해도 말을 아니 들었다. 나중에는 노재상 맹사성이 나를 간했다. 임금이 실록을 보게 되면 사관들이 바르게 직필할 수 없습니다 했다. 나는 그만 감복했다. 그랬는데 이제 경들은 '고려사'를 이 모양으로 써서 엉망진창을 만들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항상 용안에 화창한 기색을 잃지 아니했던 전하는 싸늘한 바람이 눈썹 사이로 이는 듯했다.
"춘추관에서는 '고려사'를 다시 개수해서, 그때 그 당시 그 사실대로 기록하라. 제학 정인지는 책임을 지고 편수를 지도하라!"
명을 내렸다. 정인지는 두 번 절하고 분부를 받들었다.
"미욱한 신에게 '고려사'를 다시 편수하랍시는 중임을 맡기시니, 한편으로 영예롭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운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모든 사관들과 함께 진심갈력해서 대임을 완수하겠습니다."
전하의 용안은 차차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경은 나하고 자치동갑이다. 연부역강한 터이니 아무 가치 없는 사대병에 걸리지 말고 사실을 사실대로 거짓 없이 기록하라!"
정인지는 부복하고 아뢴다.
"고려 시대에는 세자를 태자라 하고 대비를 태후라 하고 비를 후라 했습니다. 그대로 쓰겠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태조, 혜종' 하는 조와 종도 시호를 올린 대로 그대로 쓰라. 다만 충렬왕 이후부터는 시호가 없으니 그때 실정대로 왕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다만 곡필이 아니 되도록 그때 사실대로만 쓰라."
젊은 편수관 이석형이 아뢴다.
"공민왕 때까지는 '사략'과 '금경록'에 적혀 있습니다마는 그 이후의 사실은 어디다가 고증하여 편수하옵니까?"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전하는 서슴지 아니하고 대답한다.
"공민왕 이후의 일은 대행 태조대왕, 대행 태종대왕께서 두 분이 다 함께 겪으시고 아시는 일이다. 태조와 태종께서 증인이 되시어 정도전과 하윤에게 명하시어 '고려사'를 편수케 하신 일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사료에서 취사선택해서 편수하도록 하라. 내가 주장하는 것은 충렬왕 이전의 모든 문구가 지나친 사대병에 걸려서 스스로 강등해서 기록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따위는 크게 국민의 기세를 저하시키는 일이다!"
편수관 신석조가 아뢴다.
"신우, 신창을 역사의 정통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여기 대해서 전하의 뜻을 명확하게 밝혀주십시오."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세종은 서슴지 아니하고 선뜻 대답했다.
"우왕과 창왕이 실지로 왕의 노릇을 한 것은 사실이다. 어찌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는단 말인가. 만약 우왕과 창왕을, 선하거나 악하거나, '고려사' 정통에 넣지 않는다면 역사는 공백이 되어 절름발이 역사가 되지 않겠는가."
세종은 또렷하게 대답했다. 정인지가 한동안 생각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올린다.
"우왕과 창왕 때 일은 열전 속에 넣어 보충하면 될 듯합니다."
대왕은 마음이 흡족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태조와 태종의 낯을 보아 정통으로 우겨댈 수도 없었다.
"그 점은 대신과 의논해서 처리하라!"
한 마디를 남겼다. 오랜 세월을 거쳐서 세종이 승하한 다음 해에 우왕, 창왕을 열전에 넣어 '고려사' 는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