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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2

2

 

카이로, 아침 755

 

카이로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었다. 농작물을 가득 싣고 근처 마을에서 온 당나귀 달구지가 동쪽 하늘이 밤의 어둠으로부터 부옇게 채 밝아 오기도 전에 느릿느릿 도시로 들어왔다. 나무 바퀴 구르는 소리, 마구 부품의 팔랑거리는 소리, 시장으로 향하는 양과 염소 떼들의 방울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자 석유 동력의 탈것들이 동물 마차 대열에 합류하였다. 제과점에서 나오는 맛있는 빵 냄새가 공중에 퍼져 있었다. 7시경에는 택시들이 마치 벌레들처럼 나타나서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길거리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온도는 점점 올라갔다.

발코니 문을 조금 열어두었기 때문에 에리카는 엘 타흐러다리와 힐튼호텔 앞의 나일강을 따라 뻗은 넓은 가로수길인 코니쉬 엘닐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연한 푸른색 바탕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시계를 힘끔 보다가 자신이 그다지 오래 자지 않은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제 겨우 8시도 안 되었던 것이다.

에리카는 자세를 바꿔 앉았다. 모조 갑충석은 전화기 옆 탁자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걸 집어 마치 진품인지 시험하기라도 하듯 눌러보았다. 지난밤의 휴식으로 인해 어제 사건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방으로 아침 식사를 주문한 후, 에리카는 그날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이집트박물관을 방문하고 고대 왕들의 전시장을 둘러본 다음 고왕조의 공동묘지인 사카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녀는 여행자들의 정규코스인 기자의 피라미드로 가는 걸 피하고 싶었다.

아침은 간단했다. 주스, 메론, 갓 구워낸 빵과 꿀 그리고 부드러운 아라비안 커피. 아름다운 발코니에서 우아하게 아침 식사를 하였다. 멀리서 햇빛에 반사되고 있는 피라미드와 조용히 흐르고 있는 나일강을 바라보며 에리카는 희열을 느꼈다.

커피를 조금 더 부은 후, 에리카는 나겔의 이집트 안내서를 꺼내 사카라편을 펼쳤다. 거기에는 하룻동안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그녀는 신중하게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문득 그녀는 압둘 함디의 안내 책자를 기억해냈다. 그건 여전히 그녀의 큰 핸드백 속에 깊이 들어 있었다. 조심해서 다 낡아빠진 앞장을 편 후, 면지에 있는 이름과 주소를 읽어보았다. 나시프 말머드, 샤리 엘 타흐러 180번지. 이것은 그녀에게 압둘 함디의 마지막 말에 담긴 끔찍한 아이러니를 생각케 했다.

"나는 여행을 자주 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이 떠날 때쯤엔 카이로에 없을지도 모르겠소." 그녀는 그 노인이 말 그대로 되었다는 걸 깨닫고 머리를 흔들었다. 사카라편을 펼치고 좀 더 신판인 나겔의 여행안내서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검은 송골매가 하늘 높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다니다가 골목을 황급히 달려가던 쥐를 꽉 낚아챘다.

9층 아래에서 칼리파 카릴은 빌린 이집트 피아트에 다가가 라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는 펑 소리가 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등을 기대고 앉아 즐겁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숙히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는 한없는 냉소를 자아내는 듯한 커다란 매부리코에, 무뚝뚝해 보이는 구레나룻을 가진 사나이였다. 그는 살쾡이처럼 아주 절도있게 움직였다. 933호의 발코니를 무심코 바라보다가 그의 목표물을 발견했다. 그는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에리카를 잘 포착해 그녀의 다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즐거운 임무를 맡게 된 걸 매우 행운으로 생각했다. 에리카가 그가 있는 쪽으로 다리를 움직이자 씩 웃었다. 이 웃음은 매우 놀라운 모습을 드러나게 하였다. 그의 윗 앞니 중의 하나가 깨져서 날카롭게 파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통적인 검은 정장과 넥타이는 그를 흡혈귀처럼 보이게 하였다.

칼리파는 혼란스런 중동지역에서 실업문제를 경험해 보지 않은 보기 드문 몇몇 군인 중의 하나였다.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다. 이라크에서 게릴라훈련을 받았지만 팀웍의 부족으로 축출되었다. 그는 또한 양심이 결핍된 인물이다. 그는 단지 돈에 의해 움직이는 반사회적 킬러였다. 칼리파는 아름다운 미국인 여자여행객을 보호하는 일이 터키의 쿠르드족에게 AK 공격용 권총을 실어나르는 일을 할 때와 똑같은 보수가 지급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유쾌하였다.

에리카의 옆 발코니를 살펴보던 칼리파는 아무런 의심점도 찾을 수 없었다. 그 프랑스인으로부터의 주문은 간단했다. 그는 에리카 바론을 살인의 가능성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고, 그 가해자를 붙잡고 싶어 했다. 쌍안경을 힐튼호텔에서 좌우로 돌려보며 나일강을 따라 걷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화력이 좋은 총으로 장거리에서 발사되는 총격은 막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심쩍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그의 손은 왼쪽 팔 아래 케이스에 들어 있는 스테치킨 반자동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걸 모사드를 위해 시리아에서 암살한 KGB중개인으로부터 얻었다.

다시 에리카에게 눈을 돌려 칼리파는 이처럼 젊고 싱싱해 보이는 아가씨를 누군가 죽이려 한다는 걸 믿으려 애를 썼다. 그녀는 막 딸 때가 된 복숭아처럼 보였고, 칼리파는 이본의 동기가 정녕 사업적인 것 때문인지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그 아가씨는 일어서더니 책들을 챙겨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칼리파는 쌍안경을 힐튼호텔 정문 쪽으로 낮추었다. 그곳은 여전히 택시 행렬과 함께 아침의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가멀 아브라힘은 엘 아람 신문의 첫 장을 접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힐튼호텔 정문 맞은편의 차도에 주차된 택시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택시는 오늘 하루동안 빌린 것이었다. 호텔 앞의 도어맨들이 투덜거렸지만 그의 문화재관리국 신분증을 보더니 이내 수그러졌다. 가멀의 의자 옆에는 에리카 바론의 확대된 여권 사진이 있었다. 매번 여자가 호텔에서 나올 때면 그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 보곤 하였다.

가멀은 28살이었다. 키는 5피트 4인치보다 약간 컸고, 좀 살이 찐 편이었다. 결혼해서 한 살, 세 살 된 아이를 두고 있었고 그는 그 봄에 카이로대학에서 공공행정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기 직전에 문화재관리국에 취업되었다. 그는 7월 중순경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일이 그가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문화재관리국에는 직원이 아주 많아서 그에게 주어지는 일이란 겨우 에리카 바론을 뒤쫓으며 그녀의 행선지를 보고하는 따위의 일밖에는 없었다. 가멀은 그 여자가 나와서 택시를 타자 다시 사진을 집어 들었다. 가멀은 한 번도 누군가를 미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이 매우 품위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거부할 만한 자리에 있지 못했다. 특히 그가 국장인 아흐메드 카잔에게 직접 보고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멀도 문화재관리국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고, 이제 그걸 말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사카라의 더위를 감안해서 센스 있게 차려입은 에리카는 짧은 소매의 밝은 베이지색 면 블라우스와 허리를 졸라매는 끈이 달리 약간 어두운 계통의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큰 핸드백 속에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후레쉬라이트 그리고 1929년 판 베데커 여행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두 안내서를 신중히 비교해 본 후 그녀는 압둘 함디가 준 걸 택하였다. 이것이 나겔의 것보다 훨씬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프런트에서 그녀는 여권을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일일 안내인을 소개받았다. 그는 앤워 셀림이었다. 에리카는 안내인을 원치 않았지만 호텔 측에서 권하였다. 전날 치한들 때문에 매우 고생을 한 후라서 에리카는 이내 수긍하였다. 가이드에게는 이집트 파운드로 7파운드를 지불하고 택시와 운전사에게는 10파운드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앤워 셀림은 40대 중반의 비쩍 마른 사람으로, 정부 공인 안내인이라는 걸 증명하는 113이라는 숫자가 박힌 금속핀을 회색양복의 깃에 붙이고 있었다.

"나는 환상적인 여행 일정을 갖고 있습니다."

말하는 도중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셀림이 말했다.

"먼저 우리는 서늘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거대한 피라미드를 방문할 겁니다. 그런 다음 ......"

"고맙습니다만."

그의 말을 가로채며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셀림의 이는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돌격하는 코뿔소처럼 헉헉거리고 있었다.

"난 이미 하루 일정을 다 짜 놓았어요. 먼저 잠깐 이집트박물관을 방문하고 사카라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사카라는 한낮에 가기에는 너무 덥습니다."

셀림이 항의하며 말했다. 그의 입은 냉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강렬한 태양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그의 피부는 단단해 보였다.

"나도 그건 알아요."

에리카는 이 대화를 중단시키고자 애쓰며 말했다.

"하지만 이게 내가 원하는 여행 일정이에요."

표정의 변화도 없이 셀림은 그녀를 위해 하루 빌린 택시의 문을 열었다. 운전수는 3일 정도 자란 듯한 수염이 있는 젊은 사람이었다.

그들이 박물관을 향해 출발하자 칼리파는 쌍안경을 내려놓았다. 그는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과연 어떻게 하면 가이드와 택시 운전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궁리하였다. 차에 기어를 넣다가 힐튼호텔 쪽에서 에리카의 택시를 바로 뒤쫓는 다른 하나의 택시를 발견하였다. 두 차는 첫 번째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였다.

가멀은 그녀가 나타났을 때 사진을 보지 않고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는 에리카의 택시를 쫓으라고 운전사에게 말하기 전에 급히 신문여백에 가이드 번호 '113'을 써넣었다.

그들이 이집트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셀림은 그녀가 문밖으로 나오는 걸 도왔고 택시는 기다리는 동안 무화과 그늘 쪽으로 갔다.

가멀은 운전사에게 에리카의 택시가 잘 보이는 곳에 멈추도록 하였다. 그는 신문을 펼치고 웨스트 은행에 대한 사다트의 제안이 담긴 긴 기사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칼리파는 박물관 밖에 차를 세우고 누구인지 볼까 해서 의도적으로 가멀의 택시 곁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보지 못했다. 칼리파는 가멀의 움직임이 의심스러웠지만 명령에 충실히 따르기 위해 에리카와 그녀의 안내인의 뒤를 쫓아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에리카는 흥분된 마음으로 그 유명한 박물관에 들어갔지만, 그녀의 이러한 지적 열망과 관심조차도 박물관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매우 귀중한 물건들이 헌딩턴 가의 보스턴박물관에서처럼 매우 먼지가 많은 방 안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다.

기이한 조각들과 돌로 된 얼굴상들은 불멸이 아닌 죽음의 형상이었다. 안내인들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흰색 유니폼에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억새비를 들고 있는 청소부들은 쓰레기를 버리지도 않은 채 계속 이방 저방을 쓸고 다녔다. 정말 바쁘게 일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리공이었다. 그는 고대 이집트벽화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한 연장을 가지고 간단한 목공일을 하거나 새끼로 둘러친 좁은 공간에서 회반죽을 하고 있었다.

에리카는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좀 더 유명한 유품들에 집중하려 하였다. 32번 방에서 그녀는 라호테프와 그의 형인 쿠푸 그리고 그의 아내인 노프리티스의 살아있는 듯한 석회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에리카는 그저 그 얼굴들을 보는 데 만족하려 했으나 그녀의 안내인은 자꾸만 자기 지식을 뽐낼 기회를 갖고 싶어 하였다. 그는 에리카에게 그가 처음 그 조각상을 봤을 때 라호테프가 쿠푸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에리카는 그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에리카는 그에게 묻는 말에만 대답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하였다. 게다가 그녀는 대부분의 유물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에리카는 라호테프상을 돌아보다가 뒤쪽으로 가기 바로 직전에 전시장 출입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견치처럼 보이는 이를 가진 남자의 그림자가 맴돌고 있었으나, 그녀가 다시 돌아서자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녀에게 매우 불편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전날의 사건으로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라호테프상 주변을 걸으며 슬쩍 여러 번 문쪽을 보았다. 그 검은 형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매우 순수해 보이는 프랑스 여행객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셀림이 나가자는 손짓을 해와 에리카는 32번 방을 나와 그 건물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긴 전시장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북서쪽 모퉁이의 이중 아치를 열심히 바라보다가 재빨리 사라지는 검은 형체를 보았다. 걸어가면서도 셀림은 흥미 있는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해댔는데, 에리카는 박물관 북쪽에 위치한 전시장과 교차되는 지점을 향해 바삐 걸어 내려갔다. 약간 골이 난 셀림은 박물관을 거의 빛의 속도만큼 빨리 보기를 원하는 급한 얼굴을 한 미국인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녀는 교차지점에서 갑자기 멈추었다. 셀림은 그녀 뒤에 멈칫거리고 서서 그녀의 관심을 앗아간 게 무엇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녀는 하트세수트 여왕의 집사였던 센무트의 상 옆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상을 살펴보고 있다기보다는 북쪽 전시장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만일 당신이 특별히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제발 ......"

셀림이 말했다. 에리카는 화가나서 셀림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다. 갑자기 전시장 중앙으로 뛰어간 에리카는 그 검은 형체를 찾아보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독일인 한 쌍이 팔짱을 끼고 박물관의 평면도에 대해 논쟁하며 걸어갔다.

"바론 양."

참으려고 애쓰는 걸 명백히 드러내며 셀림이 말했다.

"난 이 박물관을 구석구석 잘 압니다. 만일 보고자 하는 게 있으면 묻기만 하십시오."

에리카는 그에게 연민을 느껴 자신이 유용하다는 걸 느끼도록 하는 어떤 걸 물어보려 애를 썼다.

"박물관에 세티 1세의 유물이 있나요?"

셀림은 집게손가락을 코에 대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서 아무말 없이 허공에 손가락을 세운 다음 에리카에게 따라오라고 하였다. 그는 현관홀을 지나 2층의 47번 방으로 에리카를 안내하였다. 그는 '388. 1'이라고 번호가 붙은 정교히 조각된 거대한 규암 옆에 섰다.

"세티 1세 석관의 눈꺼풀."

그는 자랑스레 말하였다.

에리카는 마음속으로 그녀가 전날 보았던 그 위대한 상과 비교해 가면서 그 석상을 바라보았다. 그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는 또한 세티 1세의 석관이 런던으로 빼돌려져 그곳의 작은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음을 기억하였다. 암거래가 이집트박물관을 얼마나 속이고 있는지가 너무도 명백하였다.

셀림은 에리카가 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녀를 다른 방의 출구 쪽으로 끌고 갔다. 그는 그녀에게 그곳을 들어갈 때 문에 있는 안내인에게 15피에스타를 주도록 하였다. 일단 방에 들어서자 셀림은 길고 낮은 유리상자들을 통과해 벽에 붙은 상자 옆에 멈추었다.

"세티 1세의 미라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보다가 에리카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것은 수많은 공포영화를 위해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종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미라의 귀는 부서지고 머리는 더 이상 그 흉상에 붙어있지 않았다. 영생에 대한 확신 대신에 그 흉상은 죽음의 공포가 영원함을 확신하게 하였다.

방에 있는 다른 왕들의 미라들을 둘러보던 에리카는 그것들이 고대 이집트를 생생히 살아있도록 한다기보다는 이미 시간이 엄청나게 흘러버렸고 고대 이집트는 너무도 요원함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세티 1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그녀가 전날 보았던 아름다운 상과 일치되는 건 없었다.

최소한의 닮은 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상은 곧은 코에 좁은 턱을 하고 있었으나 미라는 매우 넓은 턱에 매부리코였다. 그녀는 온몸이 으스스해짐을 느끼며 되돌아 나오기 전에 와들 와들 떨었다. 셀림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에리카는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 이 먼지구덩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에리카의 택시는 카이로의 혼돈을 뒤로 한 채 이집트 교외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나일강의 서부 제방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셀림은 람세스 2세가 모세에게 말한 걸 에리카에게 말해주면서 대화를 계속하려 했으나 마침내 침묵에 잠겼다. 에리카는 셀림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의 가족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침묵에 잠기게 되었고 에리카는 평화로이 경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나일강의 사파이어 블루와 농경지의 밝은 연두색 사이의 색의 대조를 즐겼다. 지금은 추수기였다.

그들은 잘 익은 붉은 과일이 달리 야자수 가지를 가득 실은 당나귀를 지나갔다. 아스팔트가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왼쪽은 나일강 서쪽에 있는 산업도시 힐완으로 가는 길이었다. 앞에 아무 장애물이 없는데도 여러 번 경적을 울려대며 에리카의 택시는 오른쪽으로 질주해 갔다.

가멀은 대여섯 대의 차 뒤에서 뒤따랐다. 그는 완전히 차 가장자리에 붙어 앉아서 운전사와 몇 마디 나누고 있었다. 그는 더위를 피해 회색빛 양복 웃저고리를 벗었으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1/4 마일 정도 뒤에 처져서 칼리파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았다. 차는 온통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찼다. 그는 이제 에리카가 미행당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이 너무 눈에 띄었다. 그 택시는 에리카를 바싹 뒤쫓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그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그 남자의 잘난 얼굴을 보았지만 학생 테러리스트로 간주했었다. 그는 그들의 깔끔한 외모가 그들의 무모함과 대담성의 방패막이 될 수 있음을 종종 보아왔다.

에리카의 택시는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서 침엽수림처럼 보이는 야자 숲으로 들어섰다. 시원한 그늘이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대신해 주었다. 그들은 작은 벽돌 모양의 마을에 있는 휴식처를 찾아갔다. 한쪽에는 작은 사원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80톤급의 설화석고 스핑크스와 나뒹구는 깨진 조각의 파편들 그리고 람세스 2세의 석회석상이 있는 탁 트인 지역이었다. 개간지 가장자리에 스핑크스 카페라 불리는 작은 간이매점이 있었다.

"멤피스의 전설적인 도시입니다."

셀림이 조용히 말했다.

"메노퍼를 의미하는 거군요."

에리카는 그 빈약한 유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멤피스는 그리스 이름이었다. 메노퍼는 고대 이집트의 이름이었다.

"난 우리 모두를 위해 커피나 차를 사고 싶군요."

에리카는 자신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음을 알고 이렇게 제안하였다.

간이매점으로 걸어가서 에리카는 한때 그 권능을 자랑했던 고대 이집트의 초라한 유물들에 대해 미리 공부해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주 실망했을 것이다. 여러 명의 어린 거지 소년들이 모조골동품을 가지고 접근하였다. 그들은 이내 셀림과 운전사에 의해 호되게 몰리었다. 그들은 둥근 철제테이블이 있는 작은 베란다로 올라가서 음료를 주문하였다. 남자들은 커피를 시켰다. 에리카는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땀이 얼굴로 비 오듯 쏟아지자 가멀은 <엘 아람>지를 손에 들고 차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분명치 않았으나 마침내 그는 마실 게 필요하다고 확신하였다. 에리카 일행과 마주치는 걸 피하며 매점 근처의 테이블로 갔다. 커피를 주문한 후 신문을 펼쳐 그 뒤에 몸을 숨겼다.

칼리파는 가멀의 뚱뚱한 상체에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의 오른쪽 손가락들은 자유롭게 해 두었다. 그는 멤피스 개척지에서 75야드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재빨리 그의 이스라엘제 FN 스나이퍼 총을 꺼냈다. 그는 열린 운전석의 창문에 총구를 올려놓고 차 뒷좌석 깊숙히 낮게 앉아 있었다. 가멀이 차에서 나온 후 칼리파는 그를 자기 시야에 정면으로 들여놓았다. 만일 가멀이 에리카를 향해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칼리파는 즉시 그를 쏠 것이다. 그를 죽이진 않겠지만 그가 스스로에게 말했듯이 상당히 치명적인 상처가 될 것이다.

에리카는 베란다에서 주위를 휘젓고 다니는 날파리들 때문에 음료를 유쾌하게 마실 수가 없었다. 손짓으론 내쫓기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몇 번이나 그녀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일행들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이르고는 일어서서 개간지 주변을 배회하였다. 택시로 되돌아가기 전에 에리카는 설화석고 스핑크스를 감상하기 위해 멈춰섰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신비가 얘기될 수 있을지 궁금하였다. 그것은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그건 고왕조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차로 돌아와서 그들은 빽빽한 야자숲이 듬성듬성해지는 곳에 이르기까지 죽 나아갔다. 농경지가 다시 나타났고 관개로를 따라 조류와 수초가 빽빽하였다. 갑자기 파라오 조제의 무덤인 계단식 피라미드가 야자수 행렬 너머로 그 친숙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에리카는 짜릿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막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석조건축을 방문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집트학자에게는 이집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측면이었다. 가장 유명한 건축가 임호테프가 피라미드의 시대를 열면서 높이 2백 피트에 달하는 여섯 개의 계단을 절묘하게 만들었다.

에리카는 서커스를 보러 가는 어린애마냥 기대감에 벅차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커다란 관개로를 통과하기 전에 작은 진흙 벽돌로 된 마을을 지나가야 함으로 인해 지체되는 것이 싫었다. 다리를 건너자 농경지가 끊기고 건조한 리비아 사막이 시작되었다. 거기엔 변화가 없었다. 일몰이 없었더라면 정오부터 한밤까지 아마 똑같았을 것이다. 길의 다른 쪽에서는 모래와 바위 그리고 가물거리는 열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택시가 대형 관광버스의 그림자가 비치는 휴식처로 들어서자 에리카는 제일 먼저 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셀림은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거의 달려야만 했다. 운전사는 기다리는 동안 환기를 시키기 위해 네 개의 차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칼리파는 가멀의 행동으로 인해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에리카를 무시한 채 그는 피라미드의 담벼락 그늘 속으로 신문을 가지고 걸어갔다. 그는 안에 있는 에리카를 뒤따르는 데 방해조차 되지 않았다. 칼리파는 잠깐동안 그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길인지 생각해보았다. 가멀의 존재가 어떤 교활한 책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에리카 곁에 바싹 붙어 있기로 결정했다. 그는 자켓을 벗고 그의 스테치킨 반자동권총을 오른손에 들고 자켓으로 감쌌다.

그때 에리카는 그곳의 유물들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집트에 대해 꿈꾸어 오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의 지식으로 5천여 년 전부터 있어 온 기이한 업적인 공동묘지의 파편들을 충분히 숙지해 낼 수 있었다. 그녀는 하루 만에 모든 걸 다 볼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점만 건드리고 그녀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코브라 부조와 같은 기대치 못한 것들을 즐기는 데 만족하였다. 셀림은 마침내 그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늘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녀가 정오쯤 떠나자는 손짓을 해오자 매우 기뻐했다.

"여기에 작은 카페가 있답니다."

셀림이 기대에 차서 말했다.

"난 귀족들의 무덤을 굉장히 보고 싶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너무 흥분이 되어서 쉬고 싶지가 않았다.

"그 식당은 티(Ti)와 세라피움의 석실 문묘 바로 옆에 있습니다."

셀림이 말했다. 에리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세라피움은 고대 이집트 유물 중 가장 기이한 것 중 하나였다. 마피스 황소의 미라는 지하묘지 안에 왕의 품위에나 걸맞게 위풍당당히 매장되어 있었다. 세라피움의 단단한 바위까지 손으로 조각한 것은 대단한 노력이었다. 에리카는 인간의 묘지 건축에 투자한 노력은 십분 이해했지만 황소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마피스 황소의 묘에 관련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난 꼭 세라피움에 가겠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뚱뚱한 가멀은 더위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카이로에서조차도 그는 대낮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았다. 정오의 사카라는 거의 한계를 초월하는 곳이었다. 그의 운전사가 에리카의 택시를 뒤쫓아갈 때 살아남을 방법을 연구하였다. 아마도 도중에 그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녀가 카이로에 돌아오려 할 때까지 운전사에게 그녀의 뒤를 쫓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가던 에리카의 택시가 멈추더니 사카라의 식당에 주차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가멀은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곳임을 기억해 냈다. 황소를 위한 어두운 지하동굴을 지날 때 너무도 겁에 질렸었다. 비록 그렇긴 했지만 그 동굴이 아주 시원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긴 세라피움이 아닌가요?"

운전사의 어깨를 툭 치며 가멀이 물었다.

"저기 오른쪽이 맞습니다."

통로의 역할을 하는 도랑의 초입을 가리키며 운전사가 말했다. 가멀은 차 밖으로 나와서 입구 쪽으로 이어진 일련의 스핑크스를 관찰하고 있는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가멀은 그가 어떻게 해야 시원할지를 깨달았다. 게다가 수년이 지난 후 세라피움을 다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칼리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그의 번들거리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렸다. 그는 가멀이 그가 가장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추어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너무도 침착하였다. 만일 그가 그 남자의 궁극적인 의도에 대해 확신한다면, 그를 쏘아서 이본 드 마르그에게 산 채로 데려다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멀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상황은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태로웠다. 그는 자동총의 원통에 소음장치를 부착하고 가멀이 지하입구로 연결되는 트렌치에 들어서는 걸 본 다음 차에서 내렸다.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건 세라피움이었다. 설화석고 스핑크스를 행복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는 에리카를 뒤돌아보며 칼리파는 가멀이 왜 세라피움에 먼저 들어갔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깨달았다. 어둡고 둥근 천장의 전시실 중 한 곳 혹은 좁은 통로 중 한 곳에서 가멀은 독사처럼 기다리다가 예기치 못한 데서 공격을 해 올 예정인 것이다. 세라피움은 암살 장소로서는 완벽한 곳이었다.

수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칼리파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 역시 에리카 바론을 앞서 걸어 들어가 가멀이 숨은 장소를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도 위험하였다. 그는 마침내 에리카와 함께 들어가서 먼저 공격하기로 하였다.

에리카는 입구로 다가가 경사로를 따라 내려갔다. 그녀는 동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사실 밀폐된 공간을 싫어하였다. 세라피움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녀는 눅눅한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싹하는 전율로 인해 대퇴부에 소름이 쫙 끼쳐왔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야위고 뾰족한 더러운 얼굴의 아랍인이 돈을 받고 있었다. 세라피움은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일단 음침한 전시장에 들어서자 에리카는 고대 이집트 문화가 시대를 흘러오면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그 신비스러운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통로는 신비로운 사상의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하며 지옥으로 가는 터널처럼 보였다. 셀림의 뒤를 쫓아 그녀는 기묘한 환경으로 더욱더 깊숙히 들어갔다. 그들은 불규칙적이고 조악한 벽돌, 낮은 출력의 전구로 희미하게 밝혀지고 있는 끝없이 긴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전구들 사이에서 어두운 그림자들이 시야를 흐리게 하였다. 다른 여행자들이 그 음침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곤 하였다. 소리들은 텅 빈 공간을 채우며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중앙 복도로 가는 오른쪽 모퉁이에서 전시장이 분리되었고, 그들은 각각 상형문자로 뒤덮인 거대한 검은 석관들을 지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속전시관에는 조명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다. 에리카는 이미 충분히 보았다고 느꼈으나 셀림은 가장 훌륭한 석관은 나무 사다리가 있는 저 끝에 있는 것이라고 고집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안에 있는 조각도 볼 수 있었다. 마지 못해 에리카는 셀림의 뒤를 계속 따라갔다. 마침내 그들은 문제의 전시관에 도착하였고 셀림은 에리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껴섰다. 그녀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의 난간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칼리파는 에리카의 뒤를 바싹 쫓으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는 반자동권총의 안전핀을 끄르고 그것을 다시 자켓 속에 있는 오른손에 쥐었다. 칼리파는 여행객들이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날 때 순간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그가 마지막 전시관의 모퉁이를 돌 때, 바로 15피트 앞에 있는 에리카를 보았다. 칼리파는 가멀을 본 순간 즉각적으로 행동하였다. 에리카는 매우 윤이 나는 거대한 석관의 측면을 따라 만들어진 짧은 나무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가멀은 그녀가 올라갈 때 꼭대기에서 에리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가장자리에서부터 뒤로 한발씩 물러서기 시작했다. 칼리파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에리카는 그와 가멀 사이에서 그의 시야를 방해하고 재빠른 사격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몹시 당황해서 앞으로 뛰쳐나간 칼리파는 셀림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는 에리카를 주저앉히고 깜짝 놀란 가멀을 향해 손을 뻗치면서 짧은 계단을 힘껏 올라갔다.

강한 불꽃이 칼리파의 숨겨진 권총에서 뿜어나와 심장을 관통해 가멀의 가슴에 치명적으로 박혔다. 가멀의 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작은 몸은 고통과 혼란으로 일그러졌고 비틀거리다가 에리카에게 넘어졌다. 칼리파는 혁대에서 칼을 뽑아 들고는 나무계단을 뛰어넘었다. 셀림은 도망가기 전에 비명을 질렀다. 층계참에 있던 여행객들은 아직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칼리파는 본선인 전깃줄을 향해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충격에 대비한 채 이를 악물고 전선을 잘라 세라피움 전체를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카이로, 오후 1230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는 자신과 에반젤로스 파파리스를 위해 각각 스카치를 주문하였다. 두 남자는 목이 파인 니트 셔츠를 입고 메리디언호텔의 라 파리지엔느 라운지의 칸막이가 쳐진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테파노스는 불쾌하고 신경질적인 상태였고, 에반젤로스는 보스의 기질을 알기에 침묵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프랑스 녀석"

스테파노스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바로 내려오겠다고 해 놓구선 20분이나 지났어."

에반젤로스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스테파노스의 화를 부채질하는 것밖에 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을 뻗어 오른쪽 부츠 상단의 다리에 매어놓은 작은 권총을 바로잡았다. 에반젤로스는 상당히 큰 체격에 억세 보이는 남자로, 특히 이마는 그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빼면 네안데르탈인처럼 보이게 했다.

마침내 이본 드 마르그가 소형 서류 가방을 들고 문에 나타났다. 그는 에스컷(스카프 모양의 넥타이)에다 푸른 블레이저를 입고 있었고 라울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이 부자 놈들은 항상 폴로게임을 하러 오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

스테파노스가 빈정대며 말했다. 그는 이본의 주의를 끌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에반젤로스는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을 약간 밀었다. 이본이 그들을 발견하고 걸어왔다. 그는 스테파노스와 악수를 하고 앉기 전에 라울을 소개받았다.

"비행기 여행은 어땠습니까?"

이본이 주문을 하자마자 매우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끔찍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의 편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말 낭비할 필요 없습니다, 스테파노스."

이본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게 좋을 것 같군요. 어쨌든 난 당신이 압둘 함디를 죽였는지 알고 싶소."

"만일 내가 함디를 죽였다면 이 지옥같은 곳에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스테파노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그는 일생동안 일할 필요가 없는 이본 같은 부유한 부류를 경멸하였다.

스테파노스 같은 사람에게는 침묵이 훨씬 유용하리라 믿으며 이본은 새 골로아 한 갑을 꺼내 그중 한 개비를 꺼냈다. 그는 사람들에게 권유했지만 에반젤로스만이 흡연자였다. 그는 담배에 손을 뻗었지만 이본이 에반젤로스의 털 많고 근육질인 팔뚝에 있는 문신을 보느라 손에 그대로 담배를 쥐고 있어서 애를 먹었다. '하와이'라고 쓰인 훌라 댄서였다. 마침내 에반젤로스가 담배를 집어들자 이본이 물었다.

"하와이에 자주 가십니까?"

"난 어릴 적에 화물기에서 일했습니다."

에반젤로스가 말했다. 그는 테이블의 작은 초에서 담배불을 붙인 후 뒤로 물러나 앉았다.

이본은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한 스테파노스에게 눈길을 돌렸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본은 조심스레 금으로 된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였다.

"아니오." 이본이 말했다.

"아니오, 난 당신이 함디를 죽였다면 카이로에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당신이 우려하는 게 있거나 잘못된 것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스테파노스, 난 뭘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여기에 매우 빨리 왔습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게다가 난 함디의 살인자가 카이로 출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스테파노스가 화가 나 고함을 질렀다.

", 이게 맞나 보시오. 당신은 그 살인자들이 카이로 출신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 정보로 당신은 그들이 분명 아테네 출신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당신의 추론인가요?"

스테파노스가 라울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당신은 이런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죠?"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이마를 두드리며 말했다.

라울의 검은 눈은 깜빡이지도 않았다. 그의 손은 무릎에 단정히 내려져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본, 당신을 실망시켜서 미안합니다만, 압둘 함디의 살인자는 다른 데서 찾아보셔야 할 것 같군요. 난 아닙니다."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매우 유감이군요." 이본이 말했다.

"질문할 게 아주 많습니다. 당신은 누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예측이 안 되는군요."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그러나 함디는 스스로 많은 적을 만들며 산 것 같습니다. 함디의 편지를 내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이본이 테이블 위에 서류가방을 올려놓고 손가락을 걸쇠에 얹었다. 그러고는 잠깐 멈추었다.

"한 가지만 더, 혹시 세티 1세 상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유감스럽게도 모릅니다."

서류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난 그 상을 원합니다."

이본이 말했다.

"만약 내가 그 상에 대해 듣는 게 있으면 즉시 당신에게 알려드리죠."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당신은 내게 전혀 휴스턴 상을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소."

이본이 스테파노스를 조심스레 쳐다보며 말했다.

서류가방에서 눈을 뗀 스테파노스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변했다.

"내 휴스턴 상과 관련된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았죠?"

"내가 아는 걸 그저 말한 것뿐이오."

이본이 말했다.

"당신은 그걸 함디의 편지를 통해 알았나요?"

스테파노스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대답 대신 이본은 가방의 걸쇠를 풀어 테이블 위에 함디의 편지를 내 놓았다. 스테파노스가 편지를 뒤적이는 동안 뒤로 기대서 그의 페르노(프랑스 원산의 술)를 한 모금씩 들이켰다. 그는 압둘 함디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를 옆으로 분류시켰다.

"이게 전부인가요?"

그가 물었다.

"그게 우리가 발견한 전부입니다."

이본이 주의를 일행 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당신은 그곳을 구석구석 뒤졌습니까?"

스테파노스가 물었다. 이본은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라울을 돌아보았다.

"아주 샅샅이요."

라울이 말했다.

"다른 게 더 있어야만 합니다."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난 그 노인이 허세를 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현금 5천달러를 원하거나 영국에 보고서를 제출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테파노스가 다시 천천히 편지를 뒤지며 말했다.

"당신이 추측하기에 세티 1세 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까?"

이본이 다시 페르노를 마시며 말했다.

"잘 모르겠소." 로스엔젤레스의 중개인으로부터 함디에게 온 편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그러나 만일 도움이 된다면, 그건 아직 여기 이집트에 있다고 당신에게 자신할 수 있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스테파노스는 급하게 편지를 읽고 있었다. 라울과 에반젤로스는 음료를 마시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본 역시 세티 상이 아직 이집트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앉아 있는 곳에서 저수지가 보였다. 그 너머는 광활한 나일강이었다. 강 한가운데에서는 나일강의 분수가 공중을 향해 물을 수직으로 쏘아올리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작은 무지개가 거대한 수면의 분출과 함께 나타났다. 이본은 에리카 바론을 생각하였고, 칼리파 카일이 라울이 그에게 말한대로 훌륭하길 바랐다. 만일 스테파노스가 함디를 죽였고 에리카에게 어떤 행동을 취한다면, 칼리파는 제 몫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 미국인 여자는 어때요?"

마치 이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그녀를 만나고 싶군요."

"그녀는 힐튼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일들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녀를 제발 부드럽게 다루어 주세요. 그녀는 세티 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입니다."

"그 상은 이제 내 관심 밖입니다."

스테파노스가 편지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난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싶군요. 그리고 그녀를 기술적으로 다룰 것을 약속드립니다. 말해 보시오. 당신은 압둘 함디에 대해 뭘 알고 있습니까?"

"그리 많지 않아요. 그는 원래 룩소르 사람인데 새 골동품점을 내기 위해 카이로에 왔습니다. 그의 아들은 룩소르에서 여전히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만나봤나요?"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아니오."

이본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스테파노스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었다.

"만일 당신이 그 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면, 내게 즉시 연락하는 걸 잊지 마시오. 난 그걸 살 수가 있습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본이 돌아섰다. 라울도 일어서서 뒤를 따랐다.

"당신은 그를 믿습니까."

밖으로 나오자 라울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모르겠군."

이본이 계속 걸으며 말했다.

"내가 그를 믿는 것과 신뢰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야. 그는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 최고의 기회주의자야. 나는 스테파노스가 에리카를 만날 때, 칼리파가 지극히 신중했으면 좋겠어. 만일 스테파노스가 그녀를 다치게 한다면 그를 쏴도 좋아."

 

 

사카라 마을, 오후 148

 

방안에는 파리 한 마리가 두 창문 사이를 계속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특히 창문에 부딪힐 때마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할 방안을 시끄럽게 울렸다. 에리카는 방을 둘러보았다. 벽과 천장은 온통 하얗게 칠이 되어 있었다. 유일한 장식이라곤 앤워 사다트의 웃고 있는 초상화뿐이었다. 하나 있는 나무문은 닫혀 있었다.

에리카는 등받이가 곧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 위로는 낡은 전구가 다 닳은 검은 철사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문 옆에는 작은 금속테이블과 그녀가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한 또 다른 의자가 있었다. 에리카는 지저분해 보였다. 바지는 오른쪽 무릎이 찢겨져 있었고 무릎은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바싹 마른 혈흔이 베이지색 블라우스의 등 부분에 붙어 있었다.

손을 잡고서, 그녀는 몸의 떨림이 좀 줄어들었는지 알아보려 했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눈을 크게 뜨려 했지만 구역질이 났다. 졸음이 밀려오는 걸 느꼈으나 눈을 꼭 감고 이겨낼 수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녀는 여전히 충격상태에 있었지만 좀 더 분명하게 생각해보려 하였다. 이윽고 그녀가 사카라 마을의 경찰서에 끌려왔다는 걸 알아냈다.

세라피움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려 했을 때 손이 축축한 걸 깨닫고 비벼댔다. 가멀이 처음 그녀에게 쓰러졌을 때, 그녀는 자신이 움푹한 곳에 빠졌다고 생각하였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나무계단이 너무 좁아서 불가능했다. 게다가 사방이 어둠 속에 파묻혀서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등 뒤로 따뜻하고 끈끈한 액체가 흐르는 걸 느꼈다. 곧바로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등에서 죽어 있던 남자로부터 나온 피라는 걸 알았다.

에리카는 또 한차례 구토증을 느꼈고, 그때 문이 열렸다. 종전에 부러진 연필을 가지고 조서를 꾸미기 위해 30분가량 머물렀던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지만 우아한 몸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혁대의 가죽 케이스에 든 낡은 권총이 그녀를 다시금 불안하게 하였다. 그녀는 이미 이본이 염려하던 관료들의 혼란을 경험하였다. 분명히 그녀는 결백한 피해자라기보다는 용의자로 몰려 있었다. 그 권위주의자들이 나타난 순간부터 대혼란이 시작되었다. 두 경찰이 증거물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을 해서 그 사실이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에리카는 여권을 압수당하고 오븐 속 같이 뜨거운 트럭에 갇혀 사카라로 이동되어 왔다. 그녀는 미국인 변호사를 부를 수 있는지 여러 번 물었지만 차례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가 관련되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하였다.

에리카는 그 허름한 경찰서를 통과해 구식권총을 차고 있는 남자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세라푸윰에서 마을까지 데리고 온 트럭이 엔진을 툴툴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에리카는 그녀의 여권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대답 대신에 그녀를 그 안으로 얼른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더니 잠겼다.

앤워 셀림은 이미 나무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에리카는 세라피윰에서의 대혼란 이후로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만난 게 너무나 반가워 모든 게 정상이었다는 걸 말해 달라고 애원하며 팔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가 안에 밀려들어오자 셀림은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난 당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소."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가 말했다.

"내가, 이상하다구요?"

그녀는 그의 손에 수갑이 채워진 걸 보고 뒤로 움찔하며 물러섰다.

트럭이 갑자기 앞으로 기울자 그들 두 승객은 꼭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에리카는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당신은 처음부터 이상하게 행동했어."

셀림이 말했다.

"특히 박물관에서. 당신은 뭔가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같아 보였고 난 그들에게 그걸 말할 거요."

"......"

에리카는 말을 하려 했지만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 머리를 감쌌다. 그녀는 함디의 살인에 대해 신고를 했어야만 했다. 셀림은 그녀를 보다가 트럭바닥에 침을 탁 뱉았다.

 

 

카이로, 오후 310

 

에리카는 차 밖으로 나와 그녀가 엘 타흐러 광장 구석에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힐튼호텔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는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 있기를 바랐다. 쇠고랑을 찬 셀림을 보자 두려움이 더욱 커졌고 그녀가 구속이 될 건지가 궁금해졌다.

그녀와 셀림은 사람들로 가득 찬 중앙비밀경찰국 안으로 급히 밀려갔다. 그 다음에 둘은 갈라졌다. 에리카는 지문을 채취당하고 사진을 찍힌 뒤 마침내 창문 없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녀의 호위자는 평평한 나무탁자에서 조서를 읽고 있는 아랍인에게 깍듯이 인사하였다. 쳐다보지도 않고 그는 오른 손을 들어 호위자를 내보냈고 이내 조용히 문이 닫혔다. 에리카는 서 있었고 그가 조서를 넘길 때를 제외하고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형광등 불빛이 그의 대머리를 잘 닦인 사과마냥 빛나게 하였다. 그의 입술은 얇았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달싹였다. 그는 깃을 빳빳이 세운 군복을 한치의 틈도 없이 차려 입었다. 검은 가죽끈이 왼쪽 어깨에 있는 견장으로부터 총집 속의 자동권총을 지탱해 주는 가죽혁대에 이르기까지 죽 뻗어 있었다. 그 남자가 조서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에리카는 서류에 부착되어 있는 미국 여권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합리적인 사람과 얘기를 나누게 되기를 희망했다.

"앉으시죠, 바론 양."

여전히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 경찰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칼날처럼 깨끗이 면도한 구레나룻 자국이 있었다. 그의 긴 코는 맨 끝에서 휘었다.

에리카는 재빨리 맞은편 나무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밑으로 그의 번쩍번쩍 윤이 나는 부츠 외에 그녀의 큰 핸드백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게 그걸 보는 마지막이 될까봐 걱정되었다.

경찰관은 서류를 내려놓고 여권을 집어들었다. 그는 여권의 사진이 있는 쪽을 펼쳐 사진과 에리카를 여러 번 눈을 앞뒤로 굴리며 비교하였다. 그런 다음 손을 뻗어 전화기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난 리유테넌 이스칸더라고 합니다."

테이블 위에 양손을 맞잡으며 그 경찰관이 말했다. 그는 에리카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세라피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죠?"

"잘 모르겠습니다."

에리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난 석관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날 넘어뜨렸어요. 그리고는 내 위로 한 사람이 쓰러졌고 전기가 모두 나갔습니다."

"당신을 쓰러뜨린 사람을 봤나요?"

그가 약간 영국식 억양으로 말했다.

"아니오."

에리카가 대답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어요."

"그 피해자는 사살되었습니다. 그 때 총소리를 듣지 못했습니까?"

"못 들었습니다. 그저 누가 융단을 치는 것 같은 소리는 몇번 들렸지만 총소리는 아니었어요."

리유테넌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곤 무슨 일이 일어났죠?"

", 내 위로 쓰러진 사람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에리카는 그 끔찍한 기분을 다시 기억해내며 말했다.

"내 생각으론 어떤 소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아요. 누군가 촛불을 가져온 게 기억납니다. 그들이 나를 도와주었고, 그 사람이 죽었다고 누군가 말했어요."

"그게 전부인가요?"

"경비원이 왔고 이내 경찰이 도착했죠."

"당신은 총에 맞은 사람을 보았습니까?"

"조금요. 하지만 쳐다보기가 힘들었어요."

"전에 그를 본 적이 있나요?"

"아니오."

에리카가 말했다.

이스칸더는 손을 아래로 뻗어 큰 핸드백을 들어 에리카에게 그걸 밀었다.

"없어진 게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에리카는 가방을 확인해 보았다. 카메라, 여행안내서, 지갑 -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녀는 돈을 세어보고 여행자수표를 확인하였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것 같군요."

"그러면 당신은 강도당한 건 아니군요."

".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당신은 이집트학자로서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그가 물었다.

"죽은 그 남자가 문화재관리국 소속이라는 걸 아시면 놀라겠군요?"

이스칸더의 차가운 눈을 피해, 에리카는 자기 손이 몹시 떨고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으며 손을 내려다 보았다. 비록 이스칸더의 질문에 신속히 대답을 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조금 전에 한 질문이 이 조사에서 중요한, 아마 가장 중요한 질문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아흐메드 카잔을 기억해 냈다. 그는 문화재관리국 국장이었다. 어쩌면 그가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남자가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한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어느 누구일 수도 있습니다. 난 분명히 그를 모릅니다."

"당신은 왜 세라피윰에 간 거죠?"

리유테넌 이스칸더가 물었다. 차 안에서 셀림이 힐난조로 한 말을 기억하고는 대답 대신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용한 안내인이 추천했습니다."

에리카가 대답했다.

서류를 펼쳐 리유테넌은 다시 뭔가를 기입하였다.

"하나 물어도 될까요?"

에리카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물론이죠."

"혹시 아흐메드 카잔을 아시나요?"

"그럼요."

그가 말했다.

"당신은 그를 아시나요?"

", 난 그와 많은 얘길 나누고 싶습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전화기를 들었다. 다이얼을 돌리며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웃지 않았다.

 

 

카이로, 오후 405

 

걷는 건 끝이 없어 보였다. 복도는 원근법적으로 죽 뻗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실크정장에서 부터 너덜한 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옷을 입은 이집트인들이 문 앞 혹은 사무실에서 흩어져 줄을 지어 있었다. 몇몇은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서 에리카와 그녀의 호위자는 그들을 딛고 지나가야만 했다. 공기는 담배연기, 마늘냄새 그리고 양들의 느끼한 냄새로 탁하였다.

에리카가 문화재관리국의 외부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전날 밤에 수십여 개의 책상과 구형타자기가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차이점이라면 이제 그것들이 겉으로 바쁜 척하는 시공무원들로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잠시 기다린 후, 에리카는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이 가동되어서 그 시원함이 기분을 좋게 하였다.

아흐메드는 창 쪽으로 향해 있는 책상 뒤에 서 있었다. 힐튼호텔과 새 인터콘티넨털호텔의 윤곽 사이로 나일강이 일부분 보였다. 그는 에리카가 들어오자 돌아섰다.

그녀는 그녀에게 닥친 문제를 강물처럼 그에게 쏟아붓고 도움을 간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 그녀를 붙잡아 맸다. 그의 얼굴엔 슬픔이 어려있었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고, 그의 올이 굵은 검은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그의 손가락이 반복적으로 그의 머리를 쓸어내린 것 같았다.

"괜찮은가요?"

에리카가 정말 걱정이 돼서 물었다.

"."

아흐메드가 느리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듬거리고 있었으나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난 우리 부서에서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리카는 그저 그의 감정을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책상을 돌아 걸어가서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아흐메드가 눈을 떴다.

"미안합니다."

그가 말했다.

"앉으시죠."

에리카는 그에 따랐다.

"난 세라피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간단히 보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직접 듣고 싶군요."

에리카는 처음부터 얘기를 시작하였다. 모든 걸 말하게 되길 원했던 그녀는 심지어 박물관에서 그녀를 긴장하게 했던 그 남자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흐메드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절대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멈추자, 그때서야 말을 하였다.

"총에 맞은 그 남자는 가멀 이브라힘이었고 여기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훌륭했죠."

아흐메드의 눈은 눈물로 반짝거렸다. 이처럼 강해 보이는 남자가 그녀가 알았던 미국인들과는 달리 그렇게 마음 쓰는 걸 보며, 에리카는 자신의 문제조차 망각하였다. 감정을 노출시키는 이런 능력은 상당히 매력적인 성격의 하나였다. 아흐메드는 말을 잇기 전에 고개를 숙여 자신을 진정시켰다.

"아침나절 중 가멀을 본 적이 있나요?"

"못 본 것 같아요."

에리카가 말했지만 확신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멤피스의 간이매점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지만 분명하진 않아요."

아흐메드는 손가락으로 그의 굵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얘기해 보세요."

그가 말했다.

"가멀은 당신이 계단을 오르려고 했을 때 이미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요."

에리카가 말했다.

"난 그게 이상합니다."

아흐메드가 말했다.

"왜죠?"

에리카가 물었다.

아흐메드는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저 생각이에요. 별 의미는 없습니다."

그가 둘러대듯이 말했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돼요, 카잔 씨. 그리고 난 당신이 내가 그 일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믿어주었으면 해요. 정말 아무것도. 그리고 난 미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군요."

"당신은 미대사관에 전화를 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아무 도움이 안 될 겁니다."

"내 생각에, 난 도움이 필요해요."

"바론 양, 유감스럽지만 오늘 하루 불편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이건 우리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호텔로 돌아가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잡혀 있는 게 아닌가요?"

에리카는 방금 들은 말을 거의 믿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물론이죠."

아흐메드가 말했다.

"그건 참 좋은 소식이군요. 그렇지만 난 당신에게 얘기할 것이 하나 더 있어요. 지난 밤에 당신에게 얘기했어야 했지만 두려웠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난 매우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이틀을 보냈습니다. 어느 게 더 나쁜 상황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군요. 믿기 힘들겠지만, 어제 오후에 우연히 다른 살인을 목격했습니다."

에리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난 압둘 함디라는 노인이 3명의 남자에 의해 살해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아흐메드의 의자가 바닥에 쿵 쓰러졌다. 그는 뒤로 기대고 있었다.

"당신은 그 얼굴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의 얼굴엔 놀라움과 걱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둘은 기억해요. 하지만 한 명은 모릅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당신이 본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요. 하지만 자신할 순 없어요. 지난 밤 당신에게 얘기 안한 것을 사과드립니다. 난 정말 두려웠어요."

"이해합니다."

아흐메드가 말했다.

"걱정마세요. 제가 그걸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심문이 더 있을 겁니다."

"또 심문......"

에리카가 절망하여 말했다.

"사실 난 가능하면 빨리 이집트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은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미안해요. 바론 양."

에리카가 지난 밤의 기억으로부터 평정을 되찾자 아흐메드가 말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당신은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당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허락이 안 될 겁니다. 당신이 이런 문제들과 연관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단지 카이로를 떠나려고 한다면 제게 알려 주십시오. 또 당신은 미대사관과 이 문제를 상의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국내문제에는 그다지 발언권이 없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이 나라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군요."

에리카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내가 떠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말하기 곤란하군요. 아마도 일주일쯤. 힘드시겠지만 여기에서의 경험을 우연의 일치로 간주해버리세요. 내 생각에 당신은 이집트를 즐기려고 노력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아흐메드가 말을 잇기 전에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정부대표의 자격으로 당신에게 오늘 저녁을 대접하며 이집트가 얼마나 유쾌한 곳인지를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고맙습니다."

에리카는 진심으로 그의 제안에 감사하였다.

"하지만 난 이미 이본 드 마르그와 약속이 있습니다."

", 알았어요." 아흐메드가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 정부를 대신해 제 용서를 받아주십시오. 당신을 호텔로 모셔다 드리고 보호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는 일어서서 책상을 가로질러 에리카와 악수를 하였다. 그의 악력은 기분좋을 정도로 강하고 단단했다. 에리카는 방에서 걸어나오면서 대화가 갑자기 그렇게 끝나고 자유로운 몸이 된 게 얼떨떨했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아흐메드는 비서실장인 자키 리아드를 방으로 불렀다. 리아드는 이 부서의 15년 선배지만, 아흐메드의 초고속 승진에 밀렸었다. 비록 지적이고 약삭빠르긴 하지만, 그의 외형은 아흐메드와 정반대였다. 오만해 보이는 외모에 뚱뚱한 편이었고, 그의 머리는 양처럼 검고 강하게 곱슬거렸다.

아흐메드는 그가 앉자 돌아서서 거대한 이집트 지도로 걸어갔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소. 자키?"

"전혀요."

자키는 에어컨이 가동됨에도 불구하고 연신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는 아흐메드가 압박받는 걸 즐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멀이 왜 살해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맞은편 손바닥에 주먹을 쾅 부딪치며 아흐메드가 말했다.

", 이런 애 딸린 젊은 사람을...... 그의 죽음이 에리카 바론 양의 미행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키가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기회는 많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의도된 것이었다. 자키는 불이 붙지 않은 파이프를 입에 물었는데 재가 가슴에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흐메드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머리를 비벼댔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그의 손은 얼굴로 내려와 그의 훌륭한 구레나룻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소리요."

그가 고개를 돌려 큰 지도를 다시 보았다.

"난 사카라에서 모종의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소. 아마도 몇몇 새 묘가 도굴되었을 겁니다."

그는 뒤로 걸어가 책상 뒤에 앉았다.

"더욱더 이상한 건 입국처 관리에 따르면 스테파노스 마큘리스가 오늘 카이로에 도착했다는 것이오."

아흐메드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자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말해 주시오, 경찰이 압둘 함디에 대해 뭐라고 보고를 하였소."

"거의 없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는 강도당했습니다. 경찰은 최근 그 노인이 룩소르에서 카이로로 그의 골동품 업을 옮기면서 상당히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매우 가치 있는 골동품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돈을 좀 지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도당한 것 같습니다."

"그 돈이 어디서 생긴건지 알아보았나요?"

아흐메드가 물었다.

"아니요,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에겐 룩소르에서 골동품상을 하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경찰이 아들에게 그 사건을 알렸소?"

"제가 알기론 아닙니다. 그 사건은 경찰에게는 너무 자연스런 사건의 하나입니다. 사실 그들은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난 관심이 있소."

아흐메드가 말했다.

"오늘밤 룩소르로 가는 항공편을 예약해 주시오. 아침에 그의 아들을 방문해야 겠어요. 또한 사카라에 추가경비원을 보내도록 하시오."

"지금이 카이로를 떠날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자키가 파이프 대로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이 얘기했듯, 스테파노스가 카이로에 있다는 건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자키. 하지만 내 생각에 난 여길 떠나 나일강변의 내 집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쉴 필요가 있어요. 불쌍한 가멀에 대한 크나큰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렇게 기분이 우울할 때, 룩소르야 말로 정서적 위안처입니다."

"그리고 미국여자, 에리카 바론은 어때요?"

자키는 스테인레스 스틸 라이터로 그의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녀는 괜찮소. 겁을 먹고 있긴 하지만 떠날 때쯤엔 진정되어 보였소. 만일 내가 24시간 동안 2명의 살인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 피해자 중 하나가 내 위로 쓰러졌다면 더더욱."

자키는 말을 하기 전에 그의 파이프를 여러 번 깊이 빨았다.

"이상하군요, 아흐메드. 난 에리카 바론 양의 상태에 대해 물은게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그녀를 미행하길 원하는지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아니오."

아흐메드는 화가 나서 말했다.

"오늘 밤은 아니오. 그녀는 이본과 함께 있을 거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흐메드는 당황하였다. 그의 기분은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당신답지 않군요, 아흐메드."

자키가 자기 상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흐메드를 수년 동안 알아왔지만, 여자에게 관심을 두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제, 갑자기 아흐메드가 질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흐메드에게 잠재된 유약함을 발견한 자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아흐메드의 완벽한 기록을 증오하고 있었다.

"아마도 당신은 며칠 동안 룩소르에 가 있는 게 좋겠군요. 제가 카이로에서 우리 관할 하에 있는 모든 걸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직접 사카라를 조사해 보겠습니다."

 

 

카이로, 오후 535

 

정부 차가 힐튼호텔로 들어설 때에도 에리카는 여전히 그녀가 풀려난 걸 완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 미처 정차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는 마치 운전사가 그의 석방에 도움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힐튼호텔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다시 로비는 북적거렸다. 오후 국제항공편 때문에 승객들은 끊임없는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그들의 여행가방 위에 않아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거나 무언가 허둥지둥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에리카는 문득 그녀의 옷차림이 얼마나 기이한지 깨달았다. 더위에 시달린 탓에 흠뻑 땀에 젖어 지저분하였다. 커다란 혈흔이 여전히 등뒤에 남아 있었고, 그녀의 면바지는 오른쪽 무릎이 터져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아주 괴상한 차림새였다. 만일 그녀의 방으로 향하는 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녀는 기꺼이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중앙의 크리스탈 샹들리에 밑으로 깔린 빨갛고 파란 융단 위를 걸어 똑바로 지나가야만 했다. 그건 주목받기에 충분하였고, 이내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예약부에 있던 남자는 펜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쳐다보았다. 에리카는 엘레베이터를 타기 위해 걸음을 빨리 옮겼다. 그녀는 만일 누군가 그녀를 막기 위해 오다가 등뒤에 핏자국을 보게되는 게 두려워 얼른 단추를 눌렀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여러번 눌렀지만 층 표시기는 야속하게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 맨에게 8층을 요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용히 끄덕였다.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닫히기도 전에 손 하나가 엘리베이터 맨에게 다시 열기를 간청하며 납으로 된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에리카는 뒤로 물러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안녕하세요. ......"

카우보이 모자에 부츠를 신은 키 큰 남자가 말했다.

"당신이 에리카 바론 양인가요?"

에리카의 입은 벌어져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난 휴스턴에서 온 제프리 죤 라이스입니다. 당신은 에리카 바론 양이시죠?"

그는 문이 닫히는 걸 계속 막으며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맨은 돌조각처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죄지은 아이처럼 주눅이 든 채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바론 양."

제프리 라이스가 손을 내밀었다. 에리카는 자동적으로 손을 올렸다. 제프리 라이스는 손을 과장되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바론 양, 정말 반갑군요. 제 아내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손을 뺄 틈도 주지 않고 제프리 라이스는 에리카를 엘리베이터 밖으로 잡아당겼다. 그녀는 가방끈이 어깨에서 흘러내리자 핸드백을 잡기 위해 몸을 앞으로 굽혔다.

"우린 당신을 몇 시간이나 기다렸습니다."

라이스는 에리카를 로비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네다섯 보쯤 걷다가 그녀는 겨우 손을 뺄 수가 있었다.

"라이스 씨."

그녀가 멈추며 말했다.

"당신 부인을 만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하죠. 난 오늘 너무도 힘든 하루를 보냈어요."

"당신은 좀 후줄근해 보이긴 합니다만, 한잔만 같이 하도록 하죠."

그는 다시 손을 뻗어 에리카의 팔목을 잡았다.

"라이스 씨."

에리카가 날카롭게 말했다.

"제발요, 우린 당신을 만나려고 지구의 반을 달려왔습니다."

에리카는 제프리 라이스의 햇볕에 그을려 검었지만 깨끗하게 면도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라이스 씨, 무슨 말이죠?"

"말한 대로입니다. 내 아내와 난 당신을 보기 위해 휴스턴에서 밤새 날아왔습니다. 다행히 난 내 전용기가 있죠. 당신은 단지 우리와 한잔 하면 되는 겁니다."

갑자기 그 이름이 생각났다. 제프리 라이스는 휴스턴에 있는 세티 1세 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밤 늦게 로리박사와 통화하면서 들었던 그 이름을 기억해 낸 것이다.

"당신은 휴스턴에서 왔습니까?"

"그래요. 날아서 몇 시간 전에 도착했죠. 자 이제 이리 와서 내 아내 프리실라를 만나보세요."

에리카는 프리실라 라이스를 소개받기 위해 로비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목과 어깨가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수많은 샹들리에 빛과 어울려 절묘한 효과를 내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 전형적인 남부 미인이었다. 그녀의 남부 억양은 남편보다 심했다.

제프리 라이스는 그의 아내와 에리카를 호텔 라운지로 안내했다. 그의 예의 바른 태도와 큰 목소리로 인해 서비스는 신속하였다. 특히 그가 이집트화로 1파운드 지폐를 건네주자 더더욱 그랬다. 칵테일라운지의 침침한 조명 아래서 에리카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그들은 구석 자리로 가 앉았는데, 거기서는 에리카의 찢기고 더렵혀진 옷이 보이지 않았다.

제프리 라이스는 자신과 아내를 위해 스트레이트 버번을 주문하였고 에리카에게도 보드카와 토닉을 시켜주었다. 그녀는 마음이 좀 누그러지는 걸 느꼈고, 심지어 관습에 따른 그들의 경험에 대한 텍사스의 이야기에 웃기조차 하였다. 에리카는 보드카와 토닉을 한 잔 더 했다.

", 이제 사업 문제로 넘어가서."

제프리 라이스가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 파티를 분명 망치고 싶진 않지만, 우린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당신이 파라오 세티 1세의 상을 봤다던데요."

에리카는 라이스의 태도가 아주 극적으로 변하는 걸 느꼈다. 그는 놀기 잘하는 텍사스식의 멋진 외양 이면에 약삭빠른 사업가 기질을 감추고 있었다.

"로리 박사 얘기로는 당신이 내가 가진 상에 대한 사진, 특히 바닥의 상형문자에 대한 사진을 보고 싶어 한다던데요. 바로 여기 몇 장 있습니다."

제프리 라이스는 자켓의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공중에 똑바로 들어 올렸다.

", 만일 당신이 로리 박사에게 말했던 상을 어디서 봤는지 말해준다면 이 사진을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난 내 상을 휴스턴의 시에 기증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건 그리 특별한 게 못될 겁니다. 다시 말해 난 당신이 본 그 상을 사고 싶습니다. 편법으로요. 사실, 내가 그걸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에게 만 달러를 줄 생각입니다. 당신을 포함해서!"

술잔을 내려놓고 에리카는 제프리 라이스를 쳐다보았다. 카이로의 처절한 가난을 본 후, 에리카는 여기서 만 달러라면 뉴욕에서 10억의 효과를 낼 거라는 걸 알았다. 카이로의 지하세계에서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압둘 함디의 죽음이 그 상과 관련돼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그저 정보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만 달러는 엄청난 희생을 야기할 것이다. 너무도 끔찍한 발상이었다.

에리카는 재빨리 압둘 함디와 세티 1세 상과 관련된 경험을 풀어헤쳤다. 라이스는 조용히 듣다가 압둘 함디라는 이름을 적었다.

"그 밖에 그 상을 본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내가 아는 한 없습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그럼 그가 그 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누가 아나요?"

"이본 드 마르그 씨, 그는 메리디언 호텔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는 함디가 전 세계의 막강한 구매자들에게 편지를 보냈으므로 아마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거라고 지적했어요."

"이번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지겠는걸."

라이스가 아내의 손목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그는 다시 에리카를 보며 사진을 건네주었다.

"당신은 혹 그 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에리카는 머리를 흔들었다.

"전혀요."

봉투를 가져가며 말했다. 실내가 어두웠지만 사진 보는 걸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걸 꺼내 첫 장부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건 상당한 상입니다. 그렇죠?"

마치 에리카에게 그의 첫 아이 사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라이스가 말했다.

제프리 라이스가 옳았다. 사진을 보고서 에리카는 그 상이 근사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걸 알아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그 상은 그녀가 본 것과 동일했다. 그녀는 멈칫하였다. 라이스의 상을 보다가 그녀는 파라오의 오른손에 보석이 박힌 홀이 쥐어져 있는 걸 보았다. 압둘 함디의 상에서는 왼손에 홀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 상은 같지는 않았지만 거울에 비춘 것처럼 같아 보였다. 에리카는 나머지 사진은 대충 보았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아주 훌륭한 사진들이었다. 마침내 그 상의 바닥을 확대한 사진이 보였다. 에리카는 그 상형문자를 볼 때 맥박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너무 어두워 그 상징들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진을 기울여서 두 파라오의 타원형 장식을 볼 수 있었다. 세티 1세와 투탄카멘의 이름이 있었다. 놀라웠다.

"바론 양, 우리와 저녁을 함께 하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프리실라 라이스는 그녀의 남편이 초대의 말을 꺼내자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맙습니다만,"

사진을 봉투에 넣으며 에리카가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난 이미 선약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집트에 머무르고 계신다면, 다음에 하기로 하죠."

"좋습니다.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오늘 밤 당신 손님과 자리를 함께하면 어떨까요?"

에리카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거절하였다. 제프리 라이스와 이본 드 마르그는 물과 기름 같을 것이다. 에리카는 다른 생각을 한 걸 사과했다.

"라이스 씨. 당신은 세티상을 어떻게 구했죠?"

질문이 너무 무례함을 잘 알기에 그녀는 머뭇거렸다.

"내 돈으로요."

제프리 라이스가 테이블을 쾅쾅 치며 웃었다. 그는 분명 그의 대답이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에리카는 그 이상의 말이 나오길 기다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난 뉴욕의 중개인으로부터 그에 대해 들었죠. 그는 내게 전화해서 이집트의 놀라운 유물 하나가 은밀히 경매된다고 얘기해 줬소."

"은밀히?"

", 공개적이 아니라 극비죠. 항상 그런 식입니다."

"여기 이집트에서인가요?"

"아니오. 취리히에서요."

"스위스요?"

에리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왜 스위스죠?"

"묻지 마십시오. 일종의 에티켓입니다."

"당신은 그게 어떻게 취리히로 갔는지 아십니까?"

"아뇨. 말씀드렸듯이 묻지 마십시오! 그건 취리히의 대형은행 중 하나가 주선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입을 꼭 다물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돈뿐입니다."

그가 웃으면서 일어서서 에리카를 다시 엘리베이터로 안내하였다. 그는 분명히 더 이상 말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에리카는 머리가 멍해져서 방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리는 동안 제프리 라이스는 그 상이 그가 취리히에서 구한 첫 이집트 유물이 아님을 언급하였다. 그는 아마 모두 세티 1세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으로 된 상과 지느러미 모양의 아름다운 목걸이를 몇 개 더 구입했다고 말했다.

옷장에 사진봉투를 집어넣다가, 에리카는 암거래의 발단이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 모래 속에서 고대의 유물들을 발견해 그걸 원하는 누군가에게 팔았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최종적인 거래는 국제은행의 연석 회의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억지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건 믿기 힘든 일이었다.

에리카는 블라우스를 벗어 핏자국을 살펴본 다음 아무렇게나 휙 던져 버렸다. 그녀의 바지 역시 같은 식으로 쓰레기통에 처넣어졌다. 브래지어를 벗어서 뒷끈에 피가 묻어 있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그건 버릴 수가 없었다. 브래지어는 에리카가 사기엔 너무 까다로워서 단지 몇몇 제품만이 편안했다. 던져 버리기 전에 그녀가 얼마나 가져왔는지 확인하려고 옷장을 열었다. 그러나 곧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란제리는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던 학창 시절에조차 사치스러운 걸 좋아했다. 따라서 그녀는 그것들을 조심해서 다루었고, 흩어져 있으면 깨끗하게 정리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옷장 속이 낯설었다. 누군가 그녀 물건에 손댔음이 틀림없었다. 에리카는 일어서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침대는 정돈되어 있었다. 호텔 미화원이 청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녀 옷에도 손을 댔단 말인가? 가능하다. 재빨리 그녀는 리바이스바지를 꺼내려고 중간서랍을 열었다. 한쪽 주머니에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마지막 선물인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있었고 뒷주머니엔 돌아갈 항공표와 여행자수표가 있었다. 모든 게 다 제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도로 집어넣었다.

맨 윗서랍을 다시 살펴보고, 그녀는 자기가 아침에 물건들을 뒤집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목욕탕으로 걸어가, 그녀의 플라스틱 화장 가방을 집어 내용물을 조사해 보았다. 분명 그녀는 화장품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이스춰라이저는 맨 밑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맨 위에 있었다. 또한 맨 위에는 그녀의 피임약이 있었다. 그녀는 그걸 저녁마다 먹었다. 에리카는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았다. 그녀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 전날 길거리에서 어떤 소년이 그녀의 몸에 손을 댔을 때처럼 강간당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그녀 물건에 손을 댄 게 분명했다. 에리카는 호텔지배인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할지 고민하였다. 하지만, 분실된 게 없는데 이떻게 얘길해야 하나?

로비로 되돌아가면서 에리카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아주 분명히 잠갔다. 그리곤 걸어나와 미닫이 유리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작열하는 이집트의 태양이 서쪽 수평선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카이로, 10

 

이본과의 저녁 식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낭만적인 휴식이 되기에 충분했다. 에리카는 자신의 회복력에 놀랐다. 끔찍한 하루였고, 리처드에게 전화한 이래 느끼고 있는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그 저녁을 즐겼다. 이본은 태양이 꺼져가는 깜부기 불처럼 아물거리고 있는 때에 호텔로 그녀를 데리러 왔다. 그들은 카이로의 먼지 섞인 열기를 피해 마디 마을이 있는 나일강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에리카의 긴장감은 시원한 저녁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식당은 '바닷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정확히 나일강의 동쪽 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저녁기후를 만끽하기 위해 식사하는 방은 사방으로 트여 있었다. 강 건너 야자수 나무 위로 기자의 피라미드가 휘황찬란하게 솟아 있었다.

그들은 홍해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과 큰 참새우를 시켜서 불에 구워 먹었으며, 기아나클리스라는 흰 포도주를 곁들였다. 이본이 그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증류수로 묽게 했으나 에리카는 약간 과일 맛이 나면서 단 걸 좋아하였다.

그녀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검은 실크 셔츠에 감탄의 눈빛을 보내며 그가 마시는 걸 쳐다보았다. 우쭐대거나 특별한 날에 입는 최고급 실크에 대해 그녀가 갖는 생각은 여성스러움이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그 은빛의 광채는 그이 남성미를 강조해주는 것 같았다.

에리카 자신도 치장에 꽤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그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풋풋하게 감은 머리는 옆으로 흘러내렸고, 거북이 껍질 모양의 빗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둥글게 목이 파이고 캡 소매에 볼륨 있는 손목을 한 초콜릿빛 갈색의 자켓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이래 처음으로 아래쪽에 긴 스타킹을 신었다. 자신이 최대한으로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부드러운 나일강의 미풍이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오자 너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의 대화는 가볍게 시작되었으나 이내 살인사건으로 돌아섰다. 이본은 압둘 함디를 죽인 자를 밝히려는 그의 노력에 좌절하였다. 그는 에리카에게 자기가 알아낸 거라곤 카이로 출신이 아니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에리카는 세라피윰에서의 그 끔찍한 소동과 연이어 경찰서에서의 경험을 얘기해주었다.

"난 오늘 당신과 함께 하는 걸 허락해주었으면 합니다."

이본은 그녀가 얘기를 마치자 놀라움에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는 테이블을 가로질러 그녀의 손을 지긋이 눌렀다.

"나 역시 그래요."

에리카가 거의 맞부딪힌 손가락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이본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오로지 세티 1세 상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의 이빨이 촛불에 빛났다.

"당신 놀리고 있는 거죠?"

에리카는 사춘기적 흥분을 감추며 말했다.

"놀리는 게 아닙니다, 에리카. 당신은 내가 이전에 만난 여자들과는 다릅니다."

에리카는 건너편의 어두워지는 나일강을 바라보았다. 근처 둑 위의 희미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낚시배에서 일하는 몇몇 어부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벌거벗고 있었는데 그들의 검은 피부는 어둠 속에서 잘 닦인 질그릇처럼 빛을 발했다. 순간적으로 그 경치에 사로잡힌 에리카는 이본의 말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건 매우 상투적 어투로 들렸고,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천박하였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에리카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본은 그녀가 만난 여느 남자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이집트학자로 교육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매료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난 이걸 칭찬의 의미로 생각합니다만,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동유럽적 감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난 당신이 이집트의 신비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매우 미국적인 걸요."

", 하지만 미국인은 민족적 기원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뚜렷합니다. 그게 매력적이라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난 차갑고 금발인 노르디족의 외모에 신물이 났습니다."

그녀 자신도 이상할 정도로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기대했거나 듣기를 원한 말은 그녀를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본은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채고 식사가 치워지는 동안 화제를 바꾸었다.

"에리카, 오늘 세라피윰에서의 살인자는 보았나요?"

"아니오."

에리카가 말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난 아무도 보질 못했죠."

"저런,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로군요. 난 그 이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낼 수 없습니다. 당신 위로 쓰러지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중동지역에서 정부인사 암살은 매일 반복되는 일이죠. 적어도 당신은 다치지 않았군요. 어려우시겠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군요. 그저 지독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세요. 함디의 죽음 이후라 상황이 더더욱 안 좋군요. 이틀 동안에 두명의 살인이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알아요. 그건 아마 우연의 일치일 겁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게 한 가지 있어요. 오늘 총에 맞은 사람은 그저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따라서 비록 전혀 반대입장이긴 하지만 두사람 다 고대 유물을 다루었어요."

에리카가 희미하게 웃었다.

웨이터가 아라비아커피와 디저트를 가져왔다. 이본은 설탕을 넣은 세몰리나 케익을 주문하였다.

"당신의 모험 중 놀라운 것 하나는 당신이 경찰에 구속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본이 말했다.

"그건 전부 옳지는 않아요. 난 몇 시간 동안 억류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에리카는 디저트를 맛보고 열량이 낮다고 결론지었다.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에요. 감옥에 가지 않은 게 행운입니다. 확신하건데 당신 안내인은 여전히 억류되어 있을 겁니다."

"내가 풀려난 건 아흐메드 카잔 덕입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아흐메드 카잔을 아세요?"

먹는 걸 멈추고 이본이 말했다.

"그와는 관계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지난밤 당신이 날 내려준 후 아흐메드 카잔이 내 방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이본의 포크가 테이블에 부딪혀 딸그락거렸다.

"만일 당신도 놀랐다면 내가 어땠는지 상상해 보세요. 난 함디의 살인을 신고하지 않아서 체포된 줄 알았어요. 그는 나를 그의 사무실로 데리고가 약 1시간 동안 얘기했습니다."

"믿기지 않는군요."

이본이 넵킨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아흐메드 카잔은 함디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나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죠. 그 외엔 날 그의 사무실로 데리고 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는 전혀 그 얘긴 꺼내질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가 두려웠죠."

"그러면 그가 원한 건 뭐였죠?"

"대부분 당신에 대해서였어요."

"나요!"

이본이 우스꽝스럽게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가슴에 집게손가락을 댔다.

"에리카, 당신은 정말 놀라운 이틀을 보냈군요. 난 결코 그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난 여기 이집트에 수년간 왕래하고 있어요. 그가 나에 대해 뭘 묻던가요?"

"당신이 이집트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무슨 말을 했죠?"

"모르겠다고 했어요."

"세티 1세 상에 대해 말하진 않았나요?"

"전혀요."

"에리카, 당신은 훌륭하군요."

갑자기 그는 테이블에 몸을 밀착해 그의 손으로 에리카의 얼굴을 감싸더니 양 볼에 키스하였다. 그의 풍부한 제스처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의식적으로 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흐메드 카잔이 내가 한 말을 전부 믿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왜 그런 말을 하죠?"

이본이 말했다. 그는 다시 디저트를 들고 있었다.

"오늘 오후 호텔에 돌아왔을 때, 내 물건에 뭔가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조사당한 것 같아요. 귀중품들은 그대로 있어요. 도난당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이 무얼 찾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본은 에리카를 똑바로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채 음식을 씹고 있었다.

"당신 방문에 보조자물쇠가 있습니까?"

"."

"그걸 사용하세요."

그는 디저트를 한입 더 입에 물고는 다시 얘기를 하기 전에 생각에 잠겼다.

"에리카, 함디를 방문할 때 그가 당신에게 준 게 없나요? 편지나 서류 같은 것 말이오."

"아니오. 그는 진짜처럼 보이는 모조갑충석을 하나 주었죠. 그리고 꼭 1929년 판 베데커 여행안내서를 이용하라고 했어요."

"그게 어디에 있죠?"

이본이 물었다.

"바로 여기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가방에 손을 넣어 표지가 없는 그 베데커 여행안내서를 찾았다. 표지는 방에 남겨 두었던 것이다. 갑충석은 그녀의 동전지갑 안에 있었다.

이본은 갑충석을 들고 촛불 가까이에 비추었다.

"이게 모조라고 확신하나요?"

"좋아 보이죠, 그렇지 않아요? 제 생각에도 진짜같지만 함디 말로는 자기 아들이 만들었답니다."

이본이 아주 조심해서 갑충석을 내려놓고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이 베데커 판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가 말했다. 각각의 장을 살펴보며 조심스레 넘겼다.

"이건 이집트 각 지역에 대해 쓰인 가장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특히 룩소르 지방에 대해."

이본은 그 표지 없는 책을 에리카에게 돌려주었다.

"내가 이걸 진짜라고 입증해도 될까요?"

그가 갑충석을 엄지와 집게 사이에 잡고서 말했다.

"방사선 탄소실험을 의미하나요?"

"."

이본이 말했다.

"이건 내가 보기에 아주 훌륭해 보입니다. 이건 세티 1세의 타원형장식입니다. 그 뼈 같군요."

"그 소재에 대한 건 옳아요. 함디는 그의 아들이 고대 공동묘지 미라로부터 채취한 뼈들로 만들었다고 했어요. 또한 표면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칠면조에게 먹였다고 했어요."

이본이 웃었다.

"이집트 골동품은 아주 풍부합니다. 거의 똑같아요. 난 이걸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난 괜찮아요. 하지만 나중에 돌려주세요."

에리카는 마지막 커피를 마셨는데 입안에 쓰디쓴 커피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이본, 왜 아흐메드 카잔은 당신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요?"

"내 생각엔 내가 괴롭히고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그가 왜 내가 아닌 당신에게 얘길했는지에 대해선 대답할 수가 없어요. 아마도 그는 날 위험한 골동품수집가로 여기고 있나 봅니다. 그는 내가 암거래 루트를 파헤치려고 하는 동안 몇몇 주요 유물을 획득한 걸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암거래에 대해 뭔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흐메드 카잔은 여기 각료입니다. 그들은 내 도움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아마도 그들의 일을 더 두려워합니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고질적인 증오가 있죠. 그리고 난 프랑스인이자 영국인입니다."

"당신은 영국계인가요?"

에리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난 종종 그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본이 강한 프랑스 억양으로 말했다.

"유럽인의 가계는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답니다. 내 가족의 거주지는 파리와 샤르트르 사이에 있는 랑부이예 근교의 샤토발로아입니다. 내 아버지는 마르그 후작이지만 어머니는 영국의 하코트 가 출신입니다."

"장황하군요."

에리카가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 말은 흥미롭게 들린다는 거예요."

에리카는 그가 계산할 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식당을 나와서 이본은 에리카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느낌이 좋았다. 밤 공기가 상당히 서늘했다. 만월에 가까운 둥근달이 길가에 늘어선 유칼립투스 나뭇가지 사이에서 휘영청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벌레들의 합창이 울려퍼졌다. 에리카에게 오하이오주에서 보낸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였다. 참 편안한 기억이었다.

"당신은 이집트의 귀중한 골동품 중에서 어떤 걸 갖고 계신가요?"

이본이 피아트 근처에 왔을 때 에리카가 물었다.

"언젠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이죠. 그중 특히 작은 금상들을 좋아합니다. 하나는 네크베트이고 다른 건 이시스죠."

"혹 세티 1세 유물을 구입한 적은 없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이본이 차로 가서 에리카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도 목걸이 한 개쯤, 대부분이 신왕조 시대 것이죠. 목걸이 하나만 세티 1세 시대 것입니다."

에리카는 차에 올랐고 이본이 그녀에게 안전 벨트를 매라고 일렀다.

"예전에 자동차경주를 좀 했었습니다. 그래서 운전할 땐 항상 그렇죠."

"추측이 돼요."

에리카는 전날 그의 차에 탔던 걸 기억하며 말했다.

이본이 웃었다.

"사람들은 내가 좀 빠르게 운전한다고 말하죠. 난 그걸 즐깁니다."

그는 운전 장갑을 꼈다.

"난 당신이 나만큼이나 세티 1세 상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해요. 그의 전설적인 바위로 깎은 무덤이 고대에 도난당했다는 건 아주 정확히 알려져 있습니다. 20번째 왕조의 충성스런 사제가 그의 미라를 구할 수 있었고, 그들의 노력을 기록에 남겼습니다."

"난 오늘 아침에 세티 1세의 미라를 봤어요."

"모순되지 않습니까?"

엔진을 보며 그가 말했다.

"세티 1세의 부서지기 쉬운 몸체가 완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우리에게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건 그 전설적인 땅굴이 19세기 말 영리한 라솔 일가에 의해 불법적으로 발견되었을 때 나온 파라오 미라 중 하나였죠."

이본은 몸을 움직여 차 뒤쪽으로 의자를 제꼈다.

"라솔 일가는 그들이 붙잡힐 때까지 약 10여 년간 천천히 도굴해 냈죠.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는 식당에서 벗어나 카이로 쪽으로 속력을 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세티 1세 유물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룩소르에 가서 그의 거대한 묘를 방문해 보면, 금세기 동안 비밀통로를 발견하기 위해 터널을 뚫도록 허락한 지역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종종 암시장에 세티 1세의 유물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게 진짜라고 해서 그리 놀라운 건 아니죠. 그는 아마 그의 소유물들을 분산해서 묻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덤이 도굴되더라도 종종 장례용품을 다시 재생시켜 놓기도 했죠. 그 내용물들은 아마도 수년 동안 묻히고 도굴되고 재생되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농부들이 룩소르에 있는 골동품들을 계속 파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매일 밤 그들은 사막의 모래를 나릅니다. 그러고나면 그들은 뭔가 특별한 걸 발견합니다."

"세티 1세 상 같은 거요?"

에리카가 이본의 옆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웃었다. 그녀는 그의 검게 그을린 피부 아래로 드러난 하얀 치아를 볼 수 있었다.

"맞아요. 하지만 세티 1세의 도굴당하지 않은 무덤이 어땠을 거라고 상상하십니까? 아마도 그건 실로 엄청났을 겁니다. 투탄카멘의 보물이 우리를 어지럽게 합니다만, 세티 1세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리카는 이본이 옳다는 걸 알았다. 특히 세티 1세의 상을 본 후에는 더더욱. 세티 1세는 제국을 통치한 주요 파라오였다. 투탄카멘은 아마도 실제 권력은 쥐어보지도 못한 하찮은 소년 왕이었다.

"제기랄."

이본이 도처에 널린 깊은 구덩이 중의 하나에 빠지자 소리를 질렀다. 그 충격으로 차가 몹시 흔들렸다. 도시는 막대기로 버팀목을 댄 마분지 조각들로 시작되었다. 그것들은 새로 도착한 이주민들의 집이었다. 그 마분지는 쇠붙이, , 가끔 기름통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판자촌에 이어 보기 흉한 진흙 벽돌집이 나타났고, 결국 도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가난의 기운이 독소처럼 공기 중에 퍼져 있었다.

"제 방에 가서 브랜디 한잔하지 않으시렵니까?"

이본이 물었다.

 

에리카는 기분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그를 훔쳐보았다. 이본의 제안이 말 그대로 순수하지만은 않은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분명 그에게 끌렸고, 끔찍한 하루를 보낸 후 누군가와 가까이 있다는 건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육체적 매력이 항상 행동의 길잡이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본은 너무도 친절해서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를 쳐다보며 그가 그녀에게는 경험 이상의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였다.

"고마워요, 이본.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군요. 힐튼에서 다른 걸 마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에리카가 차분하게 말했다.

"좋아요."

에리카는 이본이 더 고집하지 않아서 약간 실망하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만든 환상의

피해자였다.

호텔에 도착하자, 그들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찬 호텔 라운지보다 걷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손을 잡고 그들은 분주한 코니쉬 엘닐 거리를 지나 나일강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엘 타흐러 다리를 배회하였다. 이본은 로다섬 꼭대기에 있는 메리디언호텔을 가리켰다. 펠리커선 한 대가 달빛에 얼룩지는 물길을 따라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이본은 에리카를 팔로 감싸 안으며 걸었다. 에리카는 그의 팔을 잡았다. 다시 한번 수줍음을 느꼈다. 리처드 외에 다른 남자와 있어본 게 참 오랜만이었다.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라는 그리스인이 오늘 카이로에 도착했습니다."

이본이 난간에 멈추어 서서 말했다. 그들은 강물 표면에 흔들리고 있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가 전화해서 당신을 만나려고 할 겁니다."

에리카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는 아테네에서 골동품 거래를 합니다. 그는 거의 이집트에 오질 않아요. 그가 여길 왜 왔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알아내고 싶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압둘 함디의 죽음 때문에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세티 1세 상 때문에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살인사건 때문에 날 보길 원하나요?"

"."

에리카의 시선을 피하며 이본이 말을 이었다.

"난 그게 어떤 식으로 개입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본, 난 압둘 함디의 일에 더 이상 개입하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놀라운 일 투성이에요. 난 당신께 내가 아는 모든 걸 다 얘기했어요."

"이해해요."

이본이 달래듯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신은 내가 가진 모두입니다."

"무슨 말이죠?"

이본이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당신은 세티 1세 상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입니다.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는 휴스턴에 있는 한 남자에게 첫 번째 세티 1세 상을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이번 것도 관련되었는지 염려됩니다. 당신도 아다시피 이번 기회에 골동품 약탈을 중지시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에리카는 힐튼호텔의 화려한 불빛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 상을 구입한 휴스턴의 남자 역시 오늘 도착했습니다. 그는 오늘 오후 힐튼 로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는 제프리 라이스입니다."

이본의 입은 눈에 띄게 굳게 다물어졌다.

"그가 내게 말했어요. 단지 두 번째 상이 어디 있는지만이라도 얘기해주는 사람에게 만 달러를 주겠다고 말이에요."

", 하나님."

이본이 말했다.

"그건 카이로가 서커스장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아흐메드 카잔과 그 부서에서 이 상에 대해 알아내려 한다는 걸 우려하고 있습니다. , 에리카, 그건 내가 일을 좀 더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당신 기분은 이해합니다만, 제발 날 위해 그를 만나주십시오. 난 그가 무슨 일을 도모하는지 알고 싶고 당신은 날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제프리가 그러한 돈을 제안한다는 건 아직도 그 상이 쓸모있다는 걸 입증하는 겁니다. 만일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 역시 개인비품으로 사라져 버릴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그를 만나 그가 한 얘기를 모두 내게 해 달라는 겁니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에리카는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리카는 그이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전설적인 세티 1세 상이 공개적으로 보존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안전할 거라고 믿으세요?"

"물론이죠."

이본이 말했다.

"그가 전화하면 공공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세요. 그러면 문제 없어요."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저녁 식사 한 끼를 빚진 겁니다."

"그럼요."

이본이 에리카에게 키스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입술이었다. 에리카는 이본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보았다.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맴돌았다. 그녀는 잠시 그가 자길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그런 자신을 꾸짖었다. 게다가 그녀가 그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방으로 돌아온 에리카는 여행 기간 중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하였다. 이본은 그녀가 오랫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녀를 자극하였다. 리처드와 그녀의 육체적 관계가 수개월동안 만족스럽지 못한 반면에 이본은 성적 욕망을 의미 있는 관계에 있어 부가적인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기꺼이 기다리려 하였고, 그것이 그녀를 더 기분좋게 하였다. 문앞에서 그녀는 키를 재빨리 꽂아서 문을 활짝 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제대로인 것 같았다. 그녀가 본 수백 가지의 영화를 기억해내며 만일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약간의 준비를 했다. 불을 켜고 침실로 갔다. 비어 있었다. 자신의 연극 같은 행동에 웃으면서 욕실로 갔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힘껏 닫았다. 문은 미국제 철제로 되어 있었는데 철컥하고 확실히 닫히는 소리가 났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에어컨을 끈 다음 발코니 문을 활짝 열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투광 조명등은 꺼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재킷을 머리 위로 벗어서 걸어 놓았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코니쉬 엘닐 거리를 오가는 차량 행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호텔은 조용했을 것이다. 한쪽 눈화장을 지우고 있는 동안 문 쪽에서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거울 안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녀는 브라와 팬티 차림이었다. 그리고 눈화장도 한쪽만 지운채였다. 멀리서 일상적인 자동나팔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쳤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귀를 쫑긋 세웠다. 다시 한번 그녀는 금속이 긁히는 소리를 들었다. 에리카는 피가 얼굴로 솟구치는 걸 느꼈다. 누군가 그녀 방의 자물쇠에 열쇠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사실은 그녀를 갑자기 긴장하게 만들었다. 빗장에 성큼 다가갈 수가 없었다. 미처 문을 잠그기도 전에 문이 열리게 될까봐 두려웠다. 자물쇠가 다시 덜컹거렸다. 다시 쳐다보자, 문의 손잡이가 천천히 돌려졌다. 에리카는 욕실 문의 자물쇠를 보았다. 그건 손잡이가 달린 단순한 버튼이었다. 문 자체는 두꺼운 판이었다. 자물쇠에 열쇠가 맞지 않아 손잡이만 천천히 돌리고 있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깜짝 놀란 동물처럼 그녀의 눈을 탈출구를 찾아 온 방을 헤맸다. 발코니 옆 테라스로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아니, 그녀는 9층 아래로 떨어질게 틀림없다. 이내 그녀는 전화를 기억해 냈다. 조용히 방을 가로질러 수화기를 집었다. 신호음이 들렸다. 대답해요. 그녀는 마음속으로 소리질렀다. 제발 대답해요.

여느 소리와 다른 마지막 철커덕 소리가 들려왔다. 열쇠가 완전히 들어가 한 바퀴 회전하는 소리였다. 문이 열렸다. 소리없이 문이 열려 복도에서부터 방의 안쪽까지 한줄기 환한 빛이 밀려들어왔다. 에리카는 무릎을 꿇었다. 침대에 전화기를 던진 채 바닥에 납작하게 업드려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침대시트 밑으로 열린 문 밑을 볼 수 있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려나왔다. 에리카는 전화가 그녀가 숨은 곳의 단서가 됨을 알았다. 한 남자가 방에 들어왔다. 끔찍한 공포감에 젖어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침대 쪽으로 걸어와 에리카 앞에 섰다. 에리카는 머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녀 위에서 수화기가 제자리에 놓이는 게 들렸다. 침입자는 조용히 그녀의 시야에서 뒤로 걸어나가 욕실을 살펴보았다. 그가 옷장으로 걸어가는 걸 보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그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침실 중앙으로 되돌아와 그는 에리카 머리에서 5-6피트되는 지점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한발 한발 앞으로 나오더니 침대 앞에 우뚝 섰다. 그녀는 그를 만질 수도 있었다. 그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갑자기 침대 시트가 제껴지고 에리카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리카, 도대체 침대 밑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리처드!"

에리카는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에리카는 여전히 흐느끼느라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리처드는 그녀를 침대 밑에서 꺼내 먼지를 털어주었다.

그가 씨익웃으며 말했다.

"침대 밑에서 뭘 하고 있었지?"

", 리처드!"

에리카는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소리쳤다.

"당신이어서 너무 기뻐요. 내가 얼마나 기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그를 꽉 붙잡고 몸을 밀착시켰다.

"종종 당신을 놀라게 해줘야겠는걸."

그녀의 다 드러난 등에 팔을 얹으며 리처드는 행복하게 말했다. 그리고 에리카가 진정이 되어 눈물이 마를 때까지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정말 당신이에요?"

리처드의 얼굴을 뜯어보며 에리카가 말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꿈이 아냐, 바로 나야. 약간 지쳐 있기는 하지만 여기 이집트에 당신과 함께 있는 거라구."

"좀 피로해 보이는군요. 괜찮아요?"

에리카가 그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 난 괜찮아. 좀 피곤할 뿐이야. 장비에 문제가생겨서 로마에서 4시간 지체했어.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지. 근데 당신 근사한데. 언제부터 한쪽 눈만 화장했지?"

에리카는 웃으면서 그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당신이 내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좀 더 좋아 보일 수 있었을 거예요. 근데 어떻게 시간을 냈죠?"

그의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팔에 기댄 채로 말했다.

"몇 달 전에 어떤 사람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경비를 대준 적이 있었어. 그는 내 호의에 고마워했지. 그가 모든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돌봐줄 거야.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었어."

"나 역시 그랬어요. 내가 왜 전화했겠어요!"

"전화해 줘서 고마웠소."

리처드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1년 전 당신에게 이집트에 갈 수 있겠느냐고 했을 때, 당신은 시간을 낼 수가 없겠다고 했어요."

", 난 그때 확신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건 1년 전이고 지금은 여기 이렇게 이집트에 당신과 있잖소. 내 자신도 믿기 힘들지만. 그런데 에리카, 대체 침대 밑에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내가 당신을 놀라게 했나?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랬다면 미안해. 난 당신이 자고 있는 줄 알았지. 조용히 들어와 집에서 하던 것처럼 당신을 깨우고 싶었어."

"놀랐느냐구요?"

에리카가 물었다. 그녀가 빈정거렸다. 그녀는 옷장으로 가서 구멍이 송송 뚫린 옷을 꺼냈다.

"난 아직도 가슴이 뛰어요. 당신이 나를 공포스럽게 했어요."

"미안해."

리처드가 말했다.

"열쇠를 어떻게 구했죠?"

에리카는 무릎에 손을 얹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리처드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난 그저 932번 열쇠를 달라고 했지."

"그들이 당신에게 주던가요? 아무 질문도 없이?"

"그래, 호텔에선 흔한 일이지. 난 그들이 그러길 바랐고 그래서 당신을 정말 놀라게 하고 싶었어. 난 내가 카이로에 있는 걸 당신이 처음 알았을 때의 표정을 보고 싶었어."

"리처드, 내가 지난 며칠 동안 경험한 일은 당신이 지금까지 당한 일들 중 가장 안 좋은 일보다도 더 심한 일일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정해 보였다.

"사실 매우 어리석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리처드가 그의 손을 거짓 방어 자세로 올리며 말했다.

"내가 당신을 놀래켰다면 미안해. 그럴 셈은 아니었어."

"한밤중에 누가 내 방에 침입하면 놀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리처드, 그건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거예요. 보스턴에서조차도 그건 현명한 게 아닐 거예요. 당신은 전혀 내 기분을 고려하지 않아요."

", 난 당신을 만나게 될 흥분에 젖어 있었소. 19만 마일을 달려왔소."

리처드 얼굴에 웃음이 가시기 시작했다. 그의 꺼칠한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그의 눈두덩은 검은 색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화가 나요. 세상에, 난 심장마비되는 줄 알았다구요. 당신은 나를 죽도록 두렵게 했어요."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잖아."

"미안하다구요?"

에리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모르고 했다는 가정하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에요. 근데 그렇지가 않아요. 난 이틀동안 두 명의 살인을 목격해서 최악의 상태에 있어요. 근데, 그런 어린애같은 장난을 하다니. 너무해요. 너무해!"

"난 당신이 날 봐서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어."

리처드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당신도 나를 봐서 기쁘다고 말했잖소."

"난 당신이 강간범이나 살인범이 아니라는 게 그저 기뻤을 뿐이에요. 리처드,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난 당신을 보러 온 거야. 내가 얼마나 염려하고 있는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지구의 반을 돌아 이 먼지투성이의 더운 나라에 온 거란 말야."

에리카는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녀의 화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난 특별히 당신에게 오지 말라고 요청했어요."

그녀는 장난꾸러기 어린애에게 얘기하듯이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당신 어머니와 상의했어."

리처더는 침대에 앉아 에리카의 손을 잡으려 했다.

"뭐라구요!"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물었다.

"한 번 더 말해보세요."

"무얼 말하라는 거야?"

리처드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그는 그녀가 다시 화가난 걸 느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과 우리 엄마가 공모했군요?"

"난 그런 말은 사용하지 않았어. 우린 내가 여기 와야 하는 지에 대해 상의했어."

"훌륭하시군요."

에리카가 비웃었다.

"그리고 난 에리카가, 아직 소녀 같은 당신이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에리카, 당신 어머니는 진심으로 당신을 염려하고 있어."

"난 그걸 확신하지 않아요."

에리카가 침대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 어머니는 그녀와 내 삶 사이를 분리하시질 못해요. 그녀는 나와 너무 가깝게 있어서 마치 내 삶속에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구요.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요?"

"아니."

리처드가 점점 화난 표정으로 변하며 말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난 유태인다운 것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내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에 내가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내가 진정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는 것을 막지는 않지만요. 그녀는 내게 최선의 것이 어떤건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나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길 원하는 것 같아요. 문제는 나와 내 어머니는 아주 다르다는 겁니다. 우린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랐어요."

"당신이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때가 바로 지금처럼 말할 때야."

"리처드, 당신은 이해 못해요. 당신은 내가 왜 이집트에 왔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내가 아무리 설명하려 했지만 당신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에 동의하지 않아. 난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안다고 생각해. 난 당신의 맹세가 두려웠어. 당신은 당신의 독립을 입증해보고 싶었던 거야."

"리처드, 당신이야말로 약속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1년 전에 당신은 결혼에 대해 상의조차 안 했어요. 이제 갑자기 당신은 아내와 집 그리고 개가 필요해졌어요. 난 그것들의 순서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난 소유물이 아니에요. 당신이나 어머니에게 독립성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여기 이집트에 온 건 아니에요. 만일 내가 원하는 게 그것이었다면 난 메드클럽처럼 이미 짜여진 휴양지 중 한 곳에 갔을 겁니다. 난 고대 이집트를 공부하는 데 8년을 보냈고 그게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집트에 온 겁니다. 의학이 당신의 일부인 것처럼 그건 내 일부예요."

"그래서 당신은 사랑과 가족이라는 것이 당신의 일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하려는 거요?"

에리카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 부차적인 건 아니에요. 그저 결혼에 대한 현재의 내 개념이 지적인 것에 대한 포기라고 생각된다는 거예요. 당신은 내 일을 항상 화려한 취미의 일종으로 간주해 왔어요. 당신은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어요."

리처드가 반박하려 했지만 에리카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난 당신이 내가 외국학박사학위를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저 당신 자신을 위해 만든 어떤 거대한 설계에 맞추려 하고 있을 뿐이예요."

"에리카, 이건 정당하지 않은 것 같군."

"오해 말아요, 리처드. 난 내가 비난받을 만한 부분이 있다는 걸 충분히 알아요. 난 결코 진지하게 내 일에 대한 열정을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만일 그러면 당신이 놀랄까봐 위장해 온 거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내 자신을 이제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요. 그건 내가 당신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아내의 역할을 원치 않는다는 걸 의미해요. 난 여기 이집트에서 내 전문지식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고자 온 거예요."

리처드는 에리카의 논쟁의 무게에 휘청하였다. 그는 너무 피곤해 싸울 기력조차 없었다.

"만일 당신이 유용한 존재가 되고 싶다면, 하필 왜 그처럼 모호한 분야를 택했지? 정말로 내가 의미하는 건 에리카, 왜 하필 이집트학을! 그것도 신왕조 상형문자를!"

리처드는 침대에 드러누웠지만 여전히 바닥에 발이 닿아 있었다.

"이집트유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서랍으로 걸어가서 제프리 존 라이스가 준 사진 봉투를 끄집어냈다.

"난 지난 이틀 동안 너무도 힘들게 그걸 배웠어요. 이걸 좀 보세요."

에리카는 리처드의 가슴에 봉투를 던졌다.

리처드는 힘들게 일어나 앉아서 사진을 꺼냈다. 재빨리 훑어본 다음 도로 집어 넣었다.

"훌륭한 상이로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며 도로 드러누웠다.

"훌륭한 상?"

에리카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건 내가 일찌기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고대 이집트의 상이에요. 내가 목격한 두 살인사건 중 적어도 하나는 그 상과 관련되어 있어요. 근데 그저 훌륭한 상이라구요?"

리처드는 한쪽 눈을 뜨고 서랍에 등을 기댄 채 도전적으로 서 있는 에리카를 보았다. 서랍장 맨 위에 작은 자수 옷이 눈에 띄었다.

그가 지루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훌륭한 상이야. 그런데 두 살인사건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오늘 또 다른 사건을 목격한 거야?"

리처드는 몸을 일으켜 반쯤 앉은 자세를 취했다. 눈은 거의 감겨 있었다.

"난 그걸 봤을 뿐만 아니라, 그 피해자가 내 위에 쓰러졌어요. 그보다 더 가까이에서 연루되기도 힘들 거예요."

리처드는 몇분 동안 에리카를 주시하였다.

"내 생각에 당신은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는데."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권위를 내세우며 말했다.

"난 여기 머무를 거예요."

에리카가 딱 잘라 말했다.

"사실 난 골동품 뒷거래에 대해 뭔가 일을 도모하고 있어요. 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티 1세 상이 이집트에서 유출되는 걸 막고 싶어요."

 

깊이 생각에 잠긴 에리카는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다가 지금이 새벽 240분이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안에서 끄집어낸 작은 원형 테이블에 앉아 발코니에 있었다. 그녀는 또한 취침용 등을 가져왔다. 그건 휴스턴에 있는 세티 1세 상의 사진을 비추며 테이블 위를 밝히고 있었다. 리처드는 여전히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에리카는 그와 다른 방을 쓰려고 했지만 호텔은 초만원이었다. 쉐라톤, 세퍼드, 메리디언 모두

마찬가지였다. 에리카가 게지라섬에 있는 호텔에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가 잠에 취했음을 알았다.

에리카는 리처드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지는 위험을 피하고 싶어서 그와 함께 밤을 지내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가 잠이 들었기 때문에 아침에 그가 방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로 했다.

너무 긴장을 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에리카는 사진의 상형문자를 분석하기로 했다. 그녀는 특히 두 파라오 타원형 장식에 둘러싸인 짧은 비문에 관심이 있었다.

상형문자는 정해진 모음자 방향이 없기 때문에 해독에 항상 애를 먹었다. 그런데 세티 1세 상의 비문은 일반적인 것보다 더 힘들었다. 마치 처음의 설계자만이 그 메시지를 해독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에리카는 비문을 읽는 방향에 대해서도 결정을 못했다. 어느 쪽으로 읽어가든 의미가 나오질 않았다. 왜 소년 왕 투탄카멘의 이름이 절대군주인 세티 1세 파라오의 비문에 새겨 있는 걸까?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해석은 이런 것이었다.

"영원한 휴식(혹은 평화)이 전능한 남북 이집트의 왕이시고, 오시리스가 사랑한 아몬레의 아들이시며, 투탄카멘 이후(혹은 뒤에, 아래에)에 지배해 온(통치, 혹은 권력을 쥔) 파라오 세티 1세에게 주어지도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그건 로리 박사가 전화로 얘기한 것과 상당히 유사하였다. 분명 세티 1세는 투탄카멘 사후 50여 년을 지배했거나 살았다. 하지만 모든 파라오 중에서 왜 투트모세 4세나 다른 위대한 제국 건설자 중의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은 걸까? 또한 마지막 전치사가 그녀를 신경 쓰이게 했다. 세티 1세와 투탄카멘 사이에는 왕조의 연계성이 없기 때문에 '아래의'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어쨌든 가계 관계가 없었다. 실지, 세티 1세 이전에 투탄카멘 가의 이름이 찬탈자 파라오 호렘헤브에 의해 지어졌다는 건 꽤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투탄카멘의 하찮음 때문에 '- 뒤에'라는 말도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후에'만 남았다.

에리카는 그 문구를 큰 소리로 읽어내렸다. 다시 읽더라도 그건 너무 단순하게 들렸다. 3천 년 전에 작용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흥분을 느꼈다.

리처드가 잠자고 있는 방안을 돌아보던 에리카는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거대한 심연 이상의 것이 존재함을 느꼈다. 리처드는 이집트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이러한 지적인 흥분이 그녀 자신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테이블에서 일어서서 등과 사진을 들고 방으로 되돌아갔다. 불빛이 리처드의 얼굴을 비추자, 그의 입술이 살짝 달싹거렸다. 그가 갑자기 소년처럼 어리게 느껴졌다. 에리카는 그들 관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를 기억하였다. 그녀는 그때처럼 보다 순수한 때가 그리웠다. 그녀는 그를 매우 좋아했지만, 현실을 직시하기가 힘들었다. 리처드는 항상 리처드식을 원했다. 그의 의사 경력이 어떤 측면에서든 그를 조망하기 어렵게 했다. 에리카는 그가 변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과 맞부딪혀야 했다.

그는 에리카가 원한 건 도피를 해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결코 세티 1세 상이 이 나라에서 유출되는 걸 막겠다는 그녀의 신념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그 상을 찾는 걸 꼭 보게 될 거야."

그녀는 어둠 속에서 리처드에게 속삭였다. 리처드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돌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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