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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랑을 위해 죽다

속 사랑을 위해 죽다

Reimon Jang

 

1장 기사문

사람을 사랑한 죄

(자유여, 나는 네 이름을 기억해 두겠다.)

여기에 글을 쓴 두 저자는 서로 사제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데, 한사람은 가브리엘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녀가 친구와 주위 사람들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은 중개자로서, 다른 한 사람은 이 드라마에 대한 고통뿐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한 생각을 전하는 증언자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브리엘 뤼씨에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단지 비극적인 한 가지 사실만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가슴을 저미게 하고 치욕스럽다고 하는 것과 같은 돌발적 사건 이면에, 젊은 교사의 이 비극적 사건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내부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일련의 갈등이 구체적이고 돌발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두 세대 간의 균열뿐 아니라, 심성 간의 차이, 도덕 관념의 차이와 생활의 개념 차이 등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이 사건은 여러 조사들과 여론 조사, 소설과 영화 등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과 그들의 연장자들 사이에서 이해보다는 대립과 냉대가 지나치게 자주 행해지고 있는, 한 사회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사실을 잘 그려주고 있다.

 

1. 렉스 프레스

 

어떤 범죄 이야기

모든 문제는 끝났다.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모든 사람들 앞에 서슴없이 보여주었던 젊은 교사, 가브리엘 뤼씨에는 마르세유의 915일부터 개강하는 북부학교의 교사직을 다시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할 어처구니없는 결말이 아닌가! 그런데 검찰총장은 그가 바랐던 것처럼, 이 재판을 더 이상 항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난 7, 미성년자유괴죄로 그녀는 집행유예 징역 3년 형을 언도받았으나 검찰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었다. 그와 같은 재판부의 판결은 도시가스 밸브를 틀어놓고 그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난 월요일 가브리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그 죽음은 한 시대의 독특한 모순을 비난했던 것이었다.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가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교사들의 덕망 있는 이미지와 가부장적 권위에의 도전은 말과 사물 사이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른두 살의 한 여인과 그가 가르치던 한 학생 사이의 사랑은 이제 영원한 스캔들이 되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

사랑은 그 사람의 눈빛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녀의 눈빛만 보고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지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 힘. 그것이 사랑일 게다. 내가 말없이 손을 내밀면, 미안하다는 뜻인지 화해하자는 뜻인지 벌써 알고 같은 색깔의 손을 내밀 줄 아는 여자. 그게 사랑일 게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성급하게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운명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사랑은 내게로 올 것이다.

 

수없이 쏟아졌던 비난의 화살들

사람들은 헛되이 가브리엘 뤼씨에와 크리스티앙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인가 계속해서 찾으려고 했는데, 그러한 사실은 수없이 쏟아졌던 비난을 정당화 했다. 그녀는 문학부문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했었으며 아주 훌륭한 교사였다. 마르세유 경범 재판소에서 그녀에게 논고를 가했던 대리검사 테스튀는 그것을 강조하면서, 재판을 진행할 때조차 그녀에게 최소한의 예의마저 보여주지 않았다. "당신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아주 특이한 교사입니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이미 교사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사람들이란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당신에게 어떤 형태의 존경도 가질 수 없습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었고 독서를 지도하곤 했다. 두 아이의 좋은 엄마였던 이 이혼녀는 결코 비난받을 만한 생활을 한 일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던가를 결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각 학생들의 가족들 눈에는 그러한 행위가 나쁘게 비쳐졌다. 칭찬할 만한 그와 같은 행동에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오를레앙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그것이 얼마나 부모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인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한 행위는 특히 자신들의 존재가 자식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을 때, 부모들의 절대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턱수염이 길고 부끄러움이 많은 크리스티앙은 뤼씨에보다도 훨씬 나이 들어보였는데 종종 이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랑이 싹텄다. 그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생애에서 어린애처럼 누구라도 한 번쯤 학창시절에 그의 선생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스땅달의 '빠르므의 승원(La chartreuse de parme de stendhal)' 에서의 주인공처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은 이미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흔히 있는 일이었다. 어떤 심리학자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은 모성 의존성과 정신적, 육체적 성숙 사이의 논리적 전환의 단계' 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한 사랑에 대한 의존은 엄마와의 관계가 충분하지 못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폭력을 가하지 않고 형법 365조에 의거하여 미성년자 유괴범이라는 죄명으로 여인을 감옥에 보내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어떤 법률 전문가 한 사람은, 이러한 판결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경우이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는 상호 합의로 벌금형으로 족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남용했다고 단언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

나는 가브리엘 선생님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도저히 선생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숙하고도 패기 넘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순간,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무어라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짙은 눈썹 아래 오똑하니 솟은 코와 뚜렷한 입술의 윤곽, 그리고 미소를 지을 때에 살짝 엿보이는 볼우물이 그녀를 한결 청순해 보이게 했다. 저렇듯 젊고 우아한 분이 우리 철학 선생님이라니! 반아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지 시종 밝고 긴장된 모습이었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날들

그럼에도 가브리엘 뤼씨에는 감옥으로 갔다. 19685월의 학생 운동은 그들의 관계를 급진전 시켰다. 학생들이 모든 고등학교를 검거한 혼란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극에 도달해 있었다. 그때 그들의 사이에는 어떤 장애도 존재하지 않았다. 크리스티앙의 부모(그들은 엑스앙 프로방스 대학의 조교들이었다.) 역시 좌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가브리엘과 같은 배를 타고 있었기에, 그들이 서로 자유롭게 만나는데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유월이 되자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크리스티앙은 이제 집에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부모들은 모든 사람들이 좌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다른 부모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크리스티앙에게 가장 보편적인 방법, 그녀로부터 멀리 떠날 것을 호소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은 가브리엘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가버렸다. 그래서 그 부모들은 결국 경찰에 의뢰했다.

그들은 체포되었다. 12월에 뤼씨에는 결국 흉물스러운 보메트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수감시킨 로베르 빠니끄씨는, "그녀는 부모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켰다."고 말했다. 그녀가 천사의 가면을 쓰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었다. 가브리엘의 그와 같은 고집스런 행위는, 어떤 나이 어린 청년 하나가 그녀와의 사랑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던가 하는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행위이고 폭력적 행위였던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7월에 그녀는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 대리판사는 그때 막 취임한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모든 특사(특사는 12개월 미만의 형량을 받은 사람에게만 적용되었다.)로부터 그녀를 제외, 원래의 형량인 13개월을 구형하였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특사 대상자 명단에서 곧 그녀의 이름을 삭제해 버렸다. 법원의 판결은 지나치게 가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사들이 희망했던 것처럼 된 것은 아니었다.

법원의 판결은 12개월 징역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엑스 앙 프로방스의 트리엘 검사는 법원의 선고에 불복하여 항소하며 보다 무거운 형량을 요구했는데, 그에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렉스 프레스'지 기자가 물었을 때, 엑스 앙 프로방스의 검찰 당국은 "그것은 직업적인 비밀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

순간적으로 나는 가브리엘 선생님에 관한 모든 게 알고 싶어졌다. 그의 고향이며 어린 시절, 사춘기 때의 에피소드, 혹은 교사가 됐는지에 이르기까지, 그가 프랑스의 많은 학교들 중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오게 된 이 범상치 않은 우연에 도달하게 된 모든 사연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그녀와 나의 두 눈이 부딪쳤던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날의 만남이 앞으로 몰고올 엄청난 격랑과 파국의 조짐 같은 건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지적인 용모의 철학교사이자 혁명가이며, 사랑을 위해 체제의 권위에 과감히 선전포고를 했던 작지만 강한 여인, 가브리엘과 나와의 비극적인 운명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

참다운 자유의 본질을 자각하고 스스로 그것을 누릴 줄 아는 영혼이란 어떤 것일까. 가브리엘은 우리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자유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자 노력했다. 그칠 줄 모르는 열변, 우리들에겐 생소하게 들리기만 하는 논리의 전개. 그녀는 불을 뿜듯이 자유자재로 우리 모두의 영혼을 사로잡는 마술사와도 같았다. 좌중을 압도하는 강렬한 눈빛과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녀의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교실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긴장감이 가득했다.

 

몇 가지 남는 문제점들

크리스티앙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며 그는 이제 곧 법적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나이인 열여덟 살이 된다. 왜 그는 사랑을 포기해 버렸을까? 그것에 관한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른다. 여름은 지나가 버렸으며, 가브리엘 혼자 체포되어 그와 가졌던 사랑이며 추억, 2차 판결의 고통을 앓고 있다. 그녀는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모든 이야기는 끝나버렸지만, 의문 사항들은 이제 비로소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무슨 이름으로, 어떤 구실로, 그녀를 그렇게 즉각 수감할 수 있었는가? 그녀를 변호했던 변호사 알베르 노 부인은 "이 판결에 대해 우리 한 번 더 생각해봅시다. 도대체 말도 되지 않습니다. 정말 가증스러운 판결이지요."라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 법원 당국은 그 피고인에 대해 집요하고도 지나치게 엄한 판결을 내려야 했던 가? 그것은 5월의 혁명과 사회풍조의 자유주의화 경향과, 어떤 한 교수의 잘못을 동시에 응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가?

또한 가브리엘은 그렇게 엄하게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가? 변호사인 알베르 노 부인은 "마르세유는 여자에 대한 어떤 개념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라틴적 분위기 도시입니다. 만약 열일곱 살의 소녀와 대학 총장 간의 이와 같은 돌발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그 총장을 무척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볼 수도 없는 일이지요."라고 우리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티앙의 부모들 문제가 남는다. 그녀에 대해 호의적일 수도 있는,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구습, 즉 경찰력과 후견인 등에 의거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크리스티앙을 포함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크리스티앙의 아버지는 모든 권위를 포기해 버렸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러한 사건의 와중에서, 그녀와 같은 세대들의 어머니들은 그의 아들과 여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시켜야 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의 경우였다면 과연 그것을 관대히 용서할 수 있었을까?

 

* 크리스티앙의 고백 5

"내가 여러분들을 카페로 데리고 나온 걸 학교당국에서 알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난 여러분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가브리엘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편안한 자세로 말문을 열었다. 각자 자연스러운 자세로 둘러앉은 우리들은 공감의 표시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는 그후에도 종종 우리들을 카페로 데리고 나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가브리엘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교외토론에 참석하는 학생 수도 점점 늘어만 갔다.

 

묘비명

크리스티앙, 그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마르세유 법률 관계자들은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브리엘의 쌍둥이 두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들은 자신의 그 비극에 과감하게 대처하기에는 너무 어린아이들이다. 아마도 언젠가 사회를 향해 '당신들이 지은 죄 뒤에는 커다란 상처를 입는 현실이 반드시 존재한다' 는 말을 던지면서 하소연할 것이다. 그것이 아마 가브리엘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2. 파리 마치

 

프랑스어 교사의 불가능한 열정

침울한 표정의 둥근 얼굴과 짧게 쳐올린 검은 머리, 커다란 손, 탄탄한 허벅지를 가진 문학 교사인 가브리엘은 남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시선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으며, 미칠 듯한 열정이 그 속을 흐르고 있었다. 지성으로 잘 다듬어지고 끊임없이 침착하려 노력했던 그녀는, 책으로 무장한 감성을 어떠한 정열적이고 준엄한 것에 놓아야 할 것인지를 잘 몰랐는데, 때때로 그녀의 그러한 점이 불쑥 튀어나와 그녀 자신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꼼짝 못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마침내는 자신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긴 머리칼을 하고 매우 마른 외모의 열일곱 살 된 크리스티앙은, 그가 슈 게바라에게 그의 수염을 빌려주기 전에는 럭비 경기에서 주 수비수와 같은 전형적인 성년 남자의 외형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사실에서 이 남녀 한 쌍의 불행 중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옳지 못한 역할 분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브리엘 뤼씨에, 그녀는 올해 서른두 살로 엔지니어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홉 살 된 쌍둥이 두 딸을 가진 이혼녀이다. 그녀는 문학부 교사 자격증에 합격한 교사로서 부르조아 출신이었다. 상당히 똑똑했고 엄청난 노력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항상 수석을 차지했다. 그래서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했고 지금까지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에서 재직해 왔으며 두 딸과 함께 한 칸짜리 서민용 아파트에서 살아왔다. 그녀가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을 때에는, 그들을 믿을 만한 이웃에 맡기곤 했다.

그녀는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변호사인 아빠를 가졌고 문학부 교사자격시험 합격자로서 항상 좌파에 속해 있었다. 685월 이후, 그녀는 스스로를 막스 레닌주의자라고 선언할 정도로 그녀의 정치적 성향을 분명히 했으며 최근에는 모택동주의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크리스티앙, 그는 열여섯 살의 고등학생이었다. 키가 컸고 마른 외모를 하고 있었으며 단단해 보였다. 그는 그렇게 공부에 열성을 보이진 않았으나 호기심 많고 모든 것에 관심이 많던 지적 인물이었다. 그 역시 부르조아 가정 출신이었다. 그의 부모는 모두 교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관대한 편이었으나 엄마는 보다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비교적 온건한 공산주의자였다. 크리스티앙은 세 아들 중 맏이였다.

크리스티앙은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의 2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 학교의 교사였으며, 짧은 머리와 강하고 쭉 뻗은 코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제자들은 그녀에게 그녀를 범죄자로 만들고 행실이 나쁜 여자로 만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는 정말 친절했고 훌륭했었으며 전위적인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그들은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고 의논했다.

크리스티앙도 멤버였던 '광신' 그룹은 그녀가 조직했는데, 그녀는 오늘날 진정으로 소위 뛰어난 사람의 정신을 장식하는 근대 연극, 영화, 그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내부에는 어떠한 말도 어떠한 생각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은, 스카우트의 단장 같은 성향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까닭모를 고독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생활 자체에 대해 두려워했다.

19685,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이러한 선정적 기질은 어디에 맞추어야 했을까?" 하고 토츠토프에스키의 한 영웅이 물었다. '아이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하고 가브리엘은 자문했고, 고등학생들이 선생들에게 예사말을 한다면 우리들의 교사라는 명칭은 어디에 그 자리를 두어야 하며, 도덕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의 자유는 그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까? 현기증, 취함, 말들, 희망들, 진정한 생활 등등은.

대학교수인 크리스티앙의 아버지는 격렬하게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으며, 그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인 크리스티앙이 그 고등학교를 점유하고 바리케이드를 치는데 전문가라는 사실에 몹시 기뻤다. 그뿐 아니라 그가 가진 턱수염도 그를 그 전위대로 밀어내게 했다. 그의 동료인 가브리엘 뤼씨에는 그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전부는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에 그의 동료였던 그녀는 그와 잠자리를 함께 했으며, 그들 사이에 말과 생각,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육체의 결합이 일어났다. 5월에는 모든 것이 폐기되어 버렸고 모든 것이 불가능했는데, 불가능한 사랑조차도 그때는 가능했던 것이었다.

방해물이 없어졌고, 그녀는 스스로가 망가지도록 자신을 방치해 버렸다. 그녀는 바리케이드처럼 격렬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불같이 행동할 때 희열을 느꼈고, 소방수들이 다시 교통을 소통시키기 위해 그 불을 끄고 그들을 진압했을 때 슬픔을 금치 못했다.

5월 이후 모든 것은 변했다. 6월달이 되어서 그렇게 모든 문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크리스티앙의 부모는, 열일곱 살 된 그들의 아들과 서른두 살의 동료가 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했고 서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들은 그러한 현실보다 훨씬 앞선 생각에 당혹스러워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크리스티앙을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그와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 그들은 그러한 일을 시도했다. 그 아이는 부모의 말에 귀 기울였고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가브리엘과 그 자신이 비판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공격을 받아들여야 했던, 수정주의적 도덕 관념을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그 부모들은 기다렸고 주시하였으며 그러고 나서 결정을 하였다. 그들은 크리스티앙을 독일의 아는 사람 집에 휴가를 보냈다. 가브리엘은 곧 그와 합류했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우리가 프랑스로 돌아갈 때 어떻게 하지?" 하고 크리스티앙에게 물었다.

"그들에게 가서 모든 것을 말하고 솔직하게 설명을 할 거야. 그러면 그들도 아마 이해를 할 거야."

크리스티앙의 부모는 가브리엘을 만나기 위해 왔었지만, 그들 사이의 대화는 그의 아버지가 소나기 속에서 등을 돌리는 동안에 계속 삐그덕거렸다. 아홉 살 된 두 딸의 엄마이며 서른두 살의 이혼녀인 가브리엘은 '지지 잔 마르' 처럼 텁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학생들과 반말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또한 제자들이 자신을 '가티노'라고 부르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그를 사랑해요. 그리고 그도 나를 사랑하고요. 우린 함께 살기를 원해요."

"설마 둘이 결혼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

"어때서요?"

"당신 미쳤군! 그러면 당신 애들은 어떻게 할 거요?"

""그 애들도 우리와 함께라면 무척 행복할 거예요."

가브리엘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우리와 함께라니?"

", 크리스티앙과 나와 함께요."

 

* 크리스티앙의 고백 6

가브리엘은 나를 쳐다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마치 오래 사귄 친구처럼. 새벽의 요정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밝은 표정은 내 몸의 작은 솜털 하나하나까지도 새롭게 일렁이게 하는 상쾌함이었다. 그날 밤, 한해가 가는 마지막 밤이었고 우리들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산맥 가득히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 모두는 서로를 끌어안고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를 퍼붓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해가 고즈너기 저물어가는 산맥의 밤, 영원히 잊지 못할 여행의 추억들이 아스라히 떠올라 모두를 하나로 묶는 순간이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7

시위대열의 한가운데 선 가브리엘과 나는 서로 팔짱을 끼고 목청껏 구호를 외쳐댔다. 적기와 흑기가 축제의 깃발처럼 펄럭이는 가운데 각양각색의 삐라가 허공을 날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오가는 시민들은 삐라를 주워 읽고 시위대에 합류하기도 했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변혁을 갈망하는 정신의 도도한 물결이 루앙을 하나의 거대한 축제마당으로 만들고 있었다. 학생과 시민, 근로자들이 한목소리가 되어 외치는 함성이 아름다운 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8

모두가 하나된다는 일체감, 그것은 서로가 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쳤을 때에나 맛볼 수 있는 감격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고양된 감정된 친밀한 융화감이 혼합된 혁명적인 분위기가 스크럼에서 스크럼으로 전해졌다. 나는 무심결에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 온통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가브리엘의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강한 신뢰와 연대감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9

나보다도 연상인 그녀가 엉뚱하게도 내게는 한없이 여리게 보였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꿈꾸듯 투명한 그녀의 눈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나오기까지의 힘겨움이란. 창문 밖 멀리 세느 강이 황혼녘의 석양빛을 받아 붉은색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흰색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물새 한 쌍이 붉은 강 위로 원을 그리며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새들은 저렇게 바삐 날아다니면서 사랑을 하는 걸까.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가브리엘은 아마도 내 속에서 진동하는 이 엄청난 느낌을 알지 못하리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는 것은 열일곱 살의 소년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문이 '덜컹' 하고 가브리엘 뒷전에서 다시 닫혔다. 크리스티앙의 부모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갑작스럽게 엔진을 걸었고 날카로운 '디얀느'의 엔진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여전히 참을 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그들은 마르세유의 바로의 친구며 변호사인 그리졸리와 의논했다. 친구들, 교수단, 크리스티앙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장과 그 외 많은 사람들과도 협의했다. 가브리엘은 완전히 사랑에 눈이 멀어 있었다. 하지만 수염을 더욱 길게 기른 크리스티앙은 이러한 모든 착각을 오해했으며,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모든 부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교사직을 획득한 후, 그녀가 크리스티앙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네가 중요하고 상당히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정도의 사랑의 이름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과 힘겹게 투쟁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즐거운 표정으로 크리스티앙은 '자신이 나이를 먹을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그는 열여섯 살이었으며 지금 그는 열일곱 살이 되었다. 몇 달 더 시간이 흘러가면 그는 법적으로 성년이 되는 열여덟 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감시하는 부모들과 함께라면 아주 느린 속도로 시간은 흐를 것이고, 따라서 그의 성년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에게 다가올 것이다. 반면에 다른 것에서는 한 여인, 즉 진정한 한 여인이 그의 손을 잡을 것이며 그에게 가슴을 열고 침대로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길고 긴 시간! 그럼에도 지난 해 10월에 모든 것은 균열이 나 있었고, 이미 황폐화되었으며 가브리엘은 자신이 설 땅을 잃어버렸다. 크리스티앙의 부모가 투기장으로 내려왔고, 그녀와 그 소년 사이에는 대중들의 시선이 끼어들었다. 그들은 아들을 마르세유와 가브리엘의 가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피레네 지방의 한 고등학교로 전학시켰다.

마음의 동요를 크게 일으켰던 크리스티앙은 피곤에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채 눈물로 호소하는 엄마와 '소름끼칠 정도의 상태'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며 온몸을 떨고 있는 아버지에게 복종했다. 그 학교에서 며칠을 보낸 후 크리스티앙은 탈출을 시도했다. 또다시 그들은 낙담하였고, 항상 '아들을 구하려는 바람' '억측을 하지 않는 태도'를 이리저리 교묘하게 이용하는 데 너무나 지쳐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주저하며 둥그렇게 원을 그렸다. 고도를 기다리며 결코 끝나지 않은 15일 이 흘러갔다. 11월의 어느 날 그들은 단호하게 일을 처리했고, 확실하지 않은 목소리로 '미성년자 유괴죄'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판사에게 말했다. "당신은 크리스티앙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요?"하고 검사는 병으로 인해 기한 없는 휴직을 하고 있던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물론 알고는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괘종시계의 시간이 다섯 번 바뀔 때까지, 검사는 그녀를 위협하기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면서 집요하게 추궁했다.

"당신이 나를 체포하면, 그는 아마 자살할 거예요."

그 검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손수건을 접고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 그는 집으로 돌아올 거야."

"좋아요. , 나를 체포하세요!"

그들은 그녀를 체포했다. 서른여섯 시간 후에, 그녀가 뭔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녀는 서른여섯 시간 만에 풀려났다. 크리스티앙은 자살하지 않았다. 긴 수염을 한 그가 슬픈 얼굴로 가족의 품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입을 열고

"그럼에도 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마르세유의 티에르 고등학교. 그는 거기에 거의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항상 사랑이 문제였다. 지치고 여위었으며 그늘진 얼굴을 한 그를 쉬게 하기 위하여 몽빼리에에 있는 할아버지댁으로 보냈다. 새로운 탈주, 새롭게 열정적으로 다시 가브리엘과 만났다.

검찰 당국은 미친 짓과 다름없는 이러한 열정은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녀를 불시에 체포하였다. 1969414, 교사이며 서른세 살의 가장이고 이혼녀인 가브리엘은, 외부에서 보면 엄청난 죄를 상징하는 소름 끼치게 만드는 일곱 개의 이무기가 있는 보메트 감옥의 문턱을 넘어 그곳에 감금되었다.

그녀는 세 사람이 함께 쓰는 감방에 수감되었다. 가브리엘은 말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꼼짝하지도 않은 채 있었다. 그녀는 마치 얼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단지 불쌍한 한 여자에 지나지 않으며, 지하 창고에 지나지 않는 세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매우 당황한 듯 깨달았다.

그저 생존을 위해 살아 있는 계집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초라한 한 여인에 불과한 것 같았다고 그 감옥의 한 간수가 말했다.

가브리엘은 614일 날 그곳에서 출소했다. 그리고 그녀는 711일 날 법정에 다시 섰다. 검찰 당국은 그녀를, 단지 아이들을 탐하는 여자와 열성적인 모택동주의자로서만 취급했다. 그러나 당국은 우리들이 구릉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새들 가운데 한 마리, 그것도 밧줄에 묶인 채 날개를 잃어버린 그런 새의 모습을 발견할 뿐이었다.

비공개로 속개된 심리에서 형이 선고되었으며, 슈 게바라와 로자 룩셈부르크 사이의 사랑의 역사는, 한 교사와 고등학생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사연에 관한 비참한 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집행유예를 포함한 12개월의 징역이 선고되었지만, 그 형량이 특사의 대상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당히 위안을 받은 가브리엘은 그 날개의 상처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판결이 있은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특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형량인 13개월의 징역형을 요구하는 공화국 검사 아뻴아 미니마(관대한 형벌에 대한 상소)는 단 일격에 그녀를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판결은 10월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어떻게 10월까지 질질 끌겠는가?

갑자기 그녀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티앙은 휴가 동안 세탁소에서 일하며 은인자중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두 달 후 열여덟 살이 될 때 결혼할 것이라고 말하던 것을 더이상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 상고가 열리기 전에 해군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아마도 그의 상황은 그러했다.

가브리엘은 열정적으로 그녀의 직업을 좋아했고, 그것은 그녀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내부에는 교사에 알맞는 성향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직책이 박탈될 위험이 있었던 그 교사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 자신의 본질, 즉 꼼꼼하고 부르조아적인 것을 회복하려고 하였던 것 같다.

지난 일요일, 이웃들은 그녀를 보았다. ". 저기 있는 저 여자 어디에 갔다 왔지?" 그녀는 불면증 치료를 하고 막 돌아왔다. 그녀는 스테이크를 사 가지고 돌아온 후 고양이를 이웃에 맡겼다. 월요일 오후 2,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이웃인 리오씨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항상 새어나오던 빛줄기가 보이지 않고 악취가 풍기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0

그녀의 무심한 눈길 하나, 표정 하나가 나로 하여금 기쁨과 환희, 고통과 비탄의 쌍곡선을 오르내리게 하는 마력을 가진 듯했다. 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것을 가브리엘과 함께 했으며,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빛이 내 생활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보고 싶었고, 누구보다도 먼저, 더 많이 그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렇듯 복잡한 감정을 갖고 가브리엘은 만나면서도 나는 이제껏 그 느낌의 실체를 알지 못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느낌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는지, 나는 마술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온갖 색깔로 변하는 내 감각의 색깔을 경험할 수 있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1

가브리엘이 젖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와락 그녀를 껴안고 한 바퀴 거실을 비잉 돌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내쫓지 않은 것이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라도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렇게 다니엘은 안고 빙빙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이 부푸는 혼돈의 와중에서도 거실 뒤편 주방 벽에 붙여진 표어가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 내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시작된 밤이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2

나는 밤새 내 팔에 안겨 곤하게 자고 일어난 가브리엘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뿌듯한 기쁨이 신에 물줄기처럼 쏴아 번졌다. 그녀는 작고 가녀린 팔을 뻗어 나의 목을 감싸안았다. 반쪽의 동그라미가 나머지 한쪽을 만난 듯 우리의 뜨거운 포옹은 끝없이 이어졌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융해되는 순간의 경이로운 자극이 세포의 마지막 감각까지도 남김없이 일깨워주었다.

 

그 시대와 그 사회를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다.

거실벽에, '' 에 관한 우편엽서들과 갖가지 인용 엽서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왼쪽에는 여러가지 장난감들과 장난감 곰으로 가득 찬, 방학 중인 조엘과 발레리의 방이 있었다. 거실의 침대 겸 의자로 쓰이는 것 위에, 가브리엘이 죽은 채로 누워 있었다.

모든 곳을 뒤져보았지만,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 찾아볼 수 없었다. 소방수들이 터놓은 공기 흐름 덕분에 점점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가스 냄새와 침묵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요일, 크리스티앙은 가브리엘의 집에 갔었다. 출입문 위에 봉인되어있는 편지를 보았고 그는 다시 그곳을 떠났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매우 조용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당신의 마음과 이성에 따라, 당신이 선택한 생활에 따라, 당신이 신과 악마에게 부여한 것들에 따라, 당신의 입술 위에서 행해지는 말과 주장들을 얘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월달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올해 서른두 살의 그녀는 분명히 가장 중요한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으리라.

어머니이며 교사였던 그녀는 분명히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서투르게 열광시켰던 문화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도덕을 정의하게 만들었고, 꿈이 어디에서 끝나야 하며 위대함이나 숭고함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이성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끔 했지만, 분명히 그녀는 그러한 사실을 거절하지 않고서는 안 되었다.

여기에서 죽음을 판단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포기, 혹은 단념의 미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힘과 열정의 시대인 오늘날은, 그 열정을 제어할 수 있는 성격상의 미덕보다 자발적으로 열정의 무질서한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 그 속에는 더 존재하지만, 비열함과 아첨이 궁극적으로 당신들의 주위를 맴돌며 당신 생활을 파괴시킬 때, '그 시대''그 사회'를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다. 게다가 가브리엘은 이기주의자였고 나이와 두 아이를 생각해보면, 열일곱 살의 소년을 결국은 불행의 늪과 실패의 회한과 슬픔의 눈물로 끝이 날 곳으로 끌어들일 권리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기주의의 그 단단한 껍질과 도도함에 상처를 입기보다는, 오히려 죽음 속으로 도피해 갔다. 사람들은 매우 성급하게 그녀를 2개월간 감옥에 집어넣었는데, 마치 그에게 마약 같은 사랑을 투여하며 열일곱 살 소년의 생활을 파괴하는데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았던 교사 아주머니는, 노벨상과 말썽꾼 사회학자와 함께하기보다는 자신이 감옥에 들어갈 줄 전혀 몰랐던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는 절도죄와 매춘죄가 적용되었다. 그리고 만약 크리스티앙에 눈이 멀어 있던 가브리엘이 매춘부였다면, 크리스티앙의 부모가 그를 고발하고 검찰 당국이 그를 잡아들인 것에 비난을 가할 것이다. 매우 감정적인 이 부르조아 여자는 그때 과연, 이 사냥감을 쫓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했을까?

여기에 한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다른 의미를 제공하고, 1969년에 교사였고 좌익이었던 보봐리 부인이 사랑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기를 강요했다고 말할 것이 여기에 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랑과 시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러 사실들이 끊임없이 뒤를 잇는다. 어떤 법과 무슨 명목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 고통으로부터 오는 외로움을 판단할 수 있었을까?

 

* 크리스티앙의 고백 13

가브리엘에게서는 잘 고르어진 악기의 은율과도 같은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사랑,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움직임은 자유스러웠고 두 사람의 몸이 자연의 일부처럼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하늘을 나는 새, 혹은 강물을 만난 물고리 떼들도 그날 우리의 사랑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으리라.

 

* 크리스티앙의 고백 14

가브리엘은, 달디 단 꿀이 흐르는 신비한 샘물과도 같았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그토록 완벽한 리듬과 율동의 경지를 연출해내는 것을 일컬어 사랑은 아름답다 했는가.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한 프론티어처럼 서로의 영혼과 육신의 신비한 구석만 찾아다니며 탐닉을 거듭했다. 사랑 아니고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할 미지에의 여행이었으리라.

 

3. 프랑스 수아르

 

그녀의 제자와 사랑에 빠진 교사 가브리엘 우리들은 결코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그녀는 마르세유에서 2개월 동안의 수감 후 풀려났다.'

그녀는 제자와 '육체적 욕망' 살리기 위해,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 문학부 교사인 서른두 살의 가브리엘은 막 2개월 동안의 수감생활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 일시적으로 풀려난 그녀는, '미성년자 유괴죄'명으로 다가오는 710일 경범 재판소 제5호 법정에 출두하게 될 것이다.

조그마하고 약해 보이며 갈색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바짝 쳐올린 그녀는 생기있고 부드러운 두눈을 가지고 있다. 이 젊은 부인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제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만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우리들 사이의 사랑은 서로가 느낄 수 없을 만큼 서서히 이루어졌으며, 그는 내가 가르치는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가끔 같은 반 동료들과 우리 집에 왔었고, 우리들은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였지만 특히 문학에 관한 토론을 많이 벌였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아마도 학생들과 스승 사이에 좋지 못한 사건들이 일어났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관계는 약간의 사랑의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정의 단계를 넘어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브리엘도 거기에 참가했다. 어느 정도 슈 게바라를 닮은 갈색 얼굴을 한 그는 덩치가 무척 컸고 콧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교직자의 아들인 이 아이는 막 열여섯 살이 되었지만 외모는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 열정적인 그는 그 젊은 여교사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으며, 그녀로 하여금 그의 부모를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그를 나와 함께 살도록 해주세요. 내가 그를 책임질 겁니다." 하고 그녀는 그의 부모에게 말했다.

질겁한 그의 부모들은 그를 젊은 교사의 영향권에서 떼어놓기 위하여 피레네의 고등학교로 전학시켰다. 가브리엘은 만성절 축제 동안 그를 보기 위해 그곳으로 왔었다. 그녀가 방문한 다음 날 크리스티앙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며칠 후 그는 가브리엘 집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가브리엘을 사랑해요. 어는 누구도 우리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크리스티앙의 부모는 그를 설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고, 그 결과 마침내 그를 마르세유의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기를 거절했던 가브리엘을 고소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5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가 공유했던 시간을 뒤돌아보는 것도 짜릿한 즐거움이다. 나는 그녀의 고백을 듣고 거의 황홀할 지경이었다. 나 혼자서 가슴 졸이며 애태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창가에 서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입맞춤과 포옹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지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연인들처럼 우리의 사랑은 끝없는 갈구로 이어졌고, 몸도 마음도 지칠 줄을 몰랐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6

가브리엘의 꿈을 꾸었다. 가브리엘의 존재는 어둠속에서도 두드러졌다.

만물이 제 빛을 내지 못하는 밤인데도 유독 그녀만이 빛의 화신처럼 섬 가운데 우뚝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찬란한 자태에 취한듯 몽롱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공중에 있는 나와 섬 가운데 있는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빛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이다.

며칠이 지난 후 그는 학교를 결석하고 가브리엘의 집에 식사를 하러 왔다. 저녁에 가브리엘은 크리스티앙을 기숙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들의 뒤를 쫓던 경찰들은 이 커플이 분명히 서로 사랑에 빠져 있다는, 이러한 미묘한 조서를 담당 예심판사 빨랑끄의 지시에 따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5분간 그들이 서로 포옹하고 난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우리의 조사를 멈추었다.'고 그들은 조서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가브리엘의 친구들은 같은 학교 동료 교사들이, 가브리엘에게 자신이 처해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깨닫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크리스티앙을 향한 나의 감정은 복잡하다. 우리는 서로 마음과 정신 모두 굳건하게 의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이다.'라고 썼다.

이 미친 듯한 사랑은 신경과 의사의 정성으로, 수면요법으로 치료받게 하여 크리스티앙의 성격을 크게 바꾸어놓음으로써 끝났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몽뻬리에에 있는 조부모의 집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갔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후 그는 또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또다시 마르세유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예심판사 빨랑끄씨는 가브리엘을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와 살 것이다. 나는 다가오는 1월에 열여덟 살이 되는데, 그때에는 어느 누구도 내가 그녀와 함께 사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 젊은 부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직무를 정지당한 그녀는 수감될 우려도 있었고 행정적인 제재를 받을 위험도 있었다. 다가오는 10월에 그녀를 조교수로의 임용 여부를 결정할 엑스앙 프로방스 문과 대학은 지금 두 편으로 갈라져 있었다.

"우리들은 감정적인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런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한편은 말했다.

다른 한편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도덕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행위 속에서 순수한 감정 이외에도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그 순수한 마음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하고 말한다.

지금 서로 헤어져 있는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랑을 하나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는 순수하고 매우 강할 뿐 아니라, 나에게 가해질 어떠한 고통들도 우리들의 사이를 하나도 바꾸게 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계속해서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7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들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이 말이오." 가브리엘은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억지로 엄숙하게 얘기하고 있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눈은, 전에 거리에서 삐라를 내 얼굴에 던졌던 사내를 볼 때처럼, 비애감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가브리엘에 대해서도 참담한 분노의 슬픔을 느꼈다. 나는 내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결국 우리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위선적인 기성세대 그 자체였다

 

그녀의 제자를 사랑한 죄로 고소당한 가브리엘이 자살했다.

그녀는 여름 내내 치료를 받은 후 마르세유로 막 돌아왔다.

"왜 사람들은 내가 그를 좋아한 것에 대해 원하는 것이 그렇게 많은 것인가?"

이 말은, 그녀의 제자인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져 지난 711일 집행유예를 포함해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의 젊은 문학부 교사인 가브리엘 뤼씨에의 최근 절규이다.

가브리엘은 죽음을 선택했다. 그녀는 그렇게 크리스티앙과 함께 살기를 원했던 마르세유 북부거주지에 있던 그녀의 11층 아파트에서 월요일 밤 자살했다.

그녀는 이틀 전에 겨우 마르세유에 돌아왔다. 그녀는 여름내내 북부 피레네 지방에서 치료 겸 휴가를 보냈었다. 기력이 다한 그녀는 특별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낮이나 밤이나 그녀를 고통 속에 몰아넣던 것처럼 보이던 불면증 치료를 받았던 것이었다. 그 이후는 매우 낙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지난 826일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끝이 없어 보이던 터널이 이제 사라졌다.'라고 썼다.

그럼에도 가브리엘은 이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을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가구와 책들이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그렇게 좋아했던 크리스티앙에 대한 추억과 강요되었던 이별을 다시 생각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가스 밸브를 틀었던 것이다. 가스 냄새에 놀란 이웃들은 소방서에 연락하여 그들을 오게 하였다. 그들은 창문을 부수고 가브리엘을 발견했으나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채 침대에 길게 누워있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18

그렇다! 부모님들은 겉모습과 속셈이 동전의 양면처럼 판이한 분들이다. 근래 막연하게 느껴왔던 그 낯설음은 바로 그분들의 표리부동함이었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이중인격에 기만당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분들이 속내를 짐작할 수 없어 애태웠던 시간들까지도 부질없이 느껴졌다. 가슴속이 묵직한 체증으로 꽉 막힌 듯 갑갑하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한 거야. 우리의 일을 비밀로 해두었어야 했는데."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자책으로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팠다.

 

끝까지 사람들은 그녀를 괴롭혔다.

정말로 자살해야 할 만큼 그 사랑에 대한 희망은 전무했던가?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크리스티앙은 다가오는 1월이면 열여덟 살이 될 것이었고, 그때부터는 아무런 장애 없이 크리스티앙과 함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에게 가해진 모든 정신적 압력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브리엘은 마르세유 검사국이, 그녀에게 선고된 형량인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있을 특사 대상이 되는 집행유예를 포함한 징역 1년과 500프랑의 판결에 대해, '관대한 형벌에 대한 상소'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끝까지 사람들은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고 그녀의 변호사였던 레이몽 기씨는 말했다. ? 내가 뭘 그렇게 나쁜 일을 했단 말인가? 단지 내가 크리스티앙을 좋아한 이유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란 말인가?

 

* 크리스티앙의 고백 19

우리는, 순수한 서로의 존재로서 사랑을 느꼈다. 모든 연인들이 사랑하는 감정을 놓고 우리처럼 다각도로 분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가브리엘은 감정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감정에 사랑 이외의 불순한 감정이 섞이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성찰의 과정이었으나 또렷한 하나의 결과를 제시해 주었다. 두 사람의 연인이 서로의 사랑에 자부심과 신뢰를 함께 느낀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그녀와 살기를 원해요.

1968년 이후 병과로 인해 휴직하고 있던 가브리엘은 두 번의 보메트 감옥에서의 수감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 자신이 형편없는 여자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도둑년이라든가 창녀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고 감옥을 출소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녀는 회복되지 않았었다. 소설 같은 크리스티앙과의 사랑은 단지 1년간 계속되었다. 그도 열정적이었고 순수했다. 사람들은 두 아이의 엄마이며 이혼한 서른두 살의 한 여인이 열여덟 살의 한 소년에게, "넌 내가 알았던 유일한 남자였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녀가 그 이야기에 관해 고백했던 친구들에 의하면 사실이었다.

크리스티앙은 그녀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몸집이 컸고 금발의 수염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그는 슈에 몹시 열중하고 있었다.

5월의 일련의 사건들 동안 크리스티앙은 혁명과 자유, 또한 그들 둘 사이의 사랑을 꿈꾸면서 늘 그녀 곁에 있었다.

엑스 대학의 조교였던 크리스티앙의 부모들 역시 5월의 그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러한 크리스티앙에 대해 몹시 분노했다.

"우린 또 다른 두 아들이 있는데 이와 같은 것은 그들에게 결코 좋은 일이 못 된다."하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크리스티앙을 아르제레스 고등학교로 전학시켰지만, 가브리엘은 그를 보러 거기에 찾아갔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도망쳤다. 그러자 크리스티앙의 부모들은 그를 몽빼리에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도망쳤다.

"나는 그녀와 살기를 원해요. 나는 곧 열여덟 살이 되고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들 사이를 갈라놓지 못합니다."하고 크리스티앙은 말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0

휴교령이 해제되었다. 5월의 꿈은 총선거와 더불어 아득한 과거의 얘기처럼 사람들 기억에 남게 되었다. 보수집권세력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한 달 동안 자유의 물결로 넘쳐나던 시가지는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5월의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보수 타도를 외쳤던 사람들도 이제는 미래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의 질서가 또다시 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마저도 이 혼돈의 질서에 쉽게 항복하고 순응하였다. 5월은 모든 것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했으나 결과는 참담한 좌절이었다.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진정으로 가브리엘에게 있어서 그는 무엇이었던가? 연인? 큰아들? 아기? 제자? 아마도 모든 것이 되었으리라. 왜냐하면 그들 둘의 그 사랑 속에서도, 가브리엘은 그로 하여금 바까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를 준비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후, 부모들은 고소를 했다. 빨랑끄 검사는 그녀를 처음으로 체포했으며, 크리스티앙이 다시 할아버지 집을 나갔을 때, 그는 그녀를 2개월 동안 보메트에 수감하게 했다. 그녀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파리의 변호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항고심을 대비하여 그때까지 그녀의 변호사였던 레이몽 기와 알베르 노를 합류하도록 했다. 재판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고 그 두 변호사는 말했다. 마르세유의 판사들은 현명하게 판결했으며, 마르세유의 검사국도 그 판결을 따를 희망이 있었다. 그러면 가브리엘 뤼씨에도 아마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하지만, 그녀가 겪어야 했던 시련들은 종극에 이르렀다.

"내 상황은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녀의 친구에게 말했다. "4개월 전부터 나는 더 이상 읽지도 쓰지도 않았으며,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도 4개월만에 처음이란다. 나의 앞날은 매우 어둡다. 내가 병들어 있을 동안 교육직에서 떠나야 한다면 무엇을 하여야 할까? 미안하지만 네가 나를 좀 도와줄 수 없을까? 나를 이 절망의 늪 속에서 죽어가게 내버려두지마."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 편지는 826일날 씌어진 것이다. 가브리엘 뤼씨에는 이 편지에 대한 해답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죽음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음으로써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로 했던 것이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1

혁명의 좌절은 무수한 변절자를 낳았으며, 승리의 반대편에서는 패배자가 속출하였다. 또한 모든 가치가 자유의 문제로 귀결되었던 5월이 끝나고, 곳곳에서는 도덕성이란 이름의 함정이 사람들이 발목을 옥죄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안에서 사랑을 꽃피웠던 연인들은, 5월 혁명의 무산과 함께 스캔들이라는 여론재판의 첫 희생양이 되었다. 나와 다니엘의 사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스티앙의 부모와 판사들은 그녀가 죽기를 바랬었던가?

자신의 교사와 사랑에 빠졌던 고교생인 크리스티앙의 부모는, 아마도 그녀가 죽기를 원하진 않았던 것 같다. 마르세유의 예비심 판사들도 형법 365조에 의거한 '미성년자 유괴죄'의 죄명으로 기소하여, 그녀를 무거운 형벌에 처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검찰에서, 보다 엄한 형벌에 처해졌으면 하는 심정에서 한 아뻴아 미니아의 결정에는 모두들 놀랐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2

가브리엘과 카페에서 헤어진 시간부터 내게는 삶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천 길 낭떠러지 위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막막함. 나는 바다 한가운데서 난파당한 표류자처럼 외롭고 무시무시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저 벽처럼 단단하고 차디찬 가슴을 가진 부모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내가 먼저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열정에 모든 것을 맡겨버림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도덕을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 요구했던 것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도덕, 그것은 과연 승리한 것인가?

분명히 그녀는 명확한 교육적 임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그녀가 혼자였다(그녀는 이혼했었다.)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그녀의 학생 가운데 한 학생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녀가 그러한 열정에 자신을 맡겼던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대상이 스물 살이 되어 보이는 성숙한 학생이었다 해도 그것은 조롱의 대상밖에는 안 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몇몇 기준들

하지만 크리스티앙의 부모들은 그들 자신이 충분히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기준들이라는 명목으로, 그들 자신이 비난했던 법 앞에 그녀를 세우기까지 한 행동은, 그들이 잘못을 범한 것은 아닐까?

이 대학인들은 그들이 이의를 제기했던, 질서라는 말 가운데 하나가 성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를 조롱한 것이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그녀로 하여금 겪게 했던 학대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관습이었다.

그녀는 또한 도둑년이라든가 창녀라는 소리를 들으며 보메트 감옥에서 두 달을 보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그녀를 취급한 경찰의 태도였다.

이렇게 많은 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비웃은 것이 그녀를 죽게 한 요인이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3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부모님들의 동의를 얻고서야 사랑을 하는 것일까? 내가 내 또래의 여자애와 사랑에 빠져 있을 때에도 부모님들은, 공권력처럼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인가? 왜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한 걸까? 내가 아직 열여덟 살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나는 앞으로 몇 개월 후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사후의 복수

하지만 가브리엘은 저승에서 복수할 것이다. 크리스티앙을 너무나 닮게 될 한 소년이, 언젠가 교사와 그의 제자의 모순된 사랑에 관한 소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의 도서관에 꽂혀 있는 다른 책들 속에 나란히 그 자리를 확보할 그 책은, 아마 라디게의 '욕정에 사로잡힘'과 꼴레뜨의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일 것이다.

 

4. 누벨 옵세르 바테르

 

우리들의 시대, 그녀는 크리스티앙에 충실하기 위해 감옥행을 택했다.

열일곱 살의 소년을 좋아했었기에 서른두 살의 가브리엘은 이미 6주 동안 투옥되었고 대학에서도 임용에서 탈락될 위험이 있다.

당혹감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명철한 큰 눈으로 인해 상당히 고상해 보이고, 약간 뾰족한 모습의 얼굴 생김새를 가지고 있으며,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한 이 연약해 보이는 여인인 가브리엘을 괴롭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남편과 이혼하고 난 이후, 아니 영원히 그녀를 못살게 굴며 그녀를 괴롭혀온 고독이었다. 그녀를 더욱더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그녀가 맞아들였고 사랑했으며 보호했던 열일곱 살의 덩치 좋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가르친 학생이었으며, 그의 턱수염과 장대 같은 키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년이었다.

그녀를 괴롭힌 또 다른 것은, 강렬한 태양과 강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적인 높은 지대 이면에 흔히 사람들이 쉽게 발견해낼 수 있는, 거칠고 공격적인 지방인 마르세유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몹시 괴롭힌 한 가지 사실은 제도와 압력, 정치적 사건과 오해의 행렬이었다. 사법부, 가족, 대학, 교육성, 1968 년의 대공포 등이 어머니의 시기심같이 썩은 냄새가 나는 것들과 뒤엉켜 있던 고약한 냄새가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었다.

분명하게, 끝없이 밀려드는 방청하려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가브리엘이 비공개로 심리를 받던 마르세유 7 호 법정의 문지기가 있었다. 정회하고 있는 동안 가브리엘은 방청석에서 나왔다. 오랜 시간 동안 판사 앞에서 "나는 그를 사랑했었다."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데 지친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게 심문에 응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직업이 보통의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는 그들 앞에서 모든 것을 잘 털어놓았다. 밝은 면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던 깡마른 수위 여자는 이빨 사이로 "갈보년, 갈보년!"하고 쉰소리를 내며, 아주 경멸스럽게 적의 감정을 가지고 그녀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그녀는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듯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면 그녀는 사람들에게 증언이라도 하려는 듯 "저것이 담배를 피워!"하고 소리쳤다. 옛 항구의 친절함, 혹은 라 쁠랜느 시장의 활기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마르세유의 말씨로. 그것은 여인들에게 마음의 상처라도 줄 수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 수위 여자 외에도 대학에서 종사하는 아주 명석한 사람 역시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소자인 크리스티앙의 아버지 그는 엑스 대학의 언어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법정에 앉아 있는 것에 약간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으며, 가족으로부터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법원에다 호소한 것에 약간 치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가진 원칙들보다 잠재적인 어떤 것들 때문에 마음속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1968 년 그가 재직하고 있던 대학의 학생들이 운영하는 한 동아리를 이끌고 있던 그가, 그의 아들이 한 여인을 좋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미성년자 유괴범'의 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365조에 의지하고 있었다. 마치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고집불통 아버지들처럼.

게다가 이 365조는 기이한 것이다. 다른 모든 형법 조문들, 즉 무전취식죄, 배임행위, 절도죄 등등, 형법에 관계되는 모든 조문은 부정관계 대명사인 '끼꽁끄(quiconque: ~ 하는 자는 누구나) ~ 을 범하는 자는'으로 시작된다. 따라서 나폴레옹 시대의 법률학자들 잠재의식 속에는, 그 법률이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1806년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복잡미묘한 것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매우 폭넓은 사고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단순히 사람들은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억압하기 위해 판결을 했고, 프랑스의 튼튼한 견직물을 감시하듯 가족을 감시했지만, 열일곱 살의 소년을 좋아한 한 여인에게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대학에 종사하고 있는 어떤 사람의 발의로 법해석이 수정되었는데, 365조의 엄격하고도 너그러운 그 법조문의 독특한 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 을 범하는 자'는 이제 '~ 하는 자는'으로 그 해석이 바뀌어져 버렸다.

대학에 종사하고 있는 이 사람은, 685월에 사람들이 대학의 담벼락에서 '사랑을 하면 할수록 혁명을 더 잘할 수가 있다.''성의 혁명'이라고 읽을 수 있었던 바로 그 대학에 야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의 혁명은 화기애애한 가족의 문턱에서 무너져 버렸다. 어떤 아이든지 촛대 아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 주위로 앉아 있기 위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것이 그전처럼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4

학교에도 가기 싫었다. 개인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거라는 가브리엘의 말이 사형선고처럼 뇌리에 맴돌았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유하는 가브리엘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사람은 단지 교사일 뿐이다. 내가 갈망하는 건 우리 둘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런 눈빛과 그의 관심이었다. 다정한 포옹과 격렬한 애무, 뜨거운 키스도 없이 우리가 꽃밭에 심어진 두 그루의 꽃나무처럼 막막한 그리움을 안은 채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는 건 형벌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5

지난 삼 일간 나는 가브리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녀에 관한 일체의 기억마저도 떨쳐내고자 애를 끓이기도 했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성과 자제력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모진 결심으로 버티었다. 사랑의 감정은 그러나, 이성이나 자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다. 그녀를 잊으려고 하는 온갖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전보다 몇 배 더 격렬하게 솟구치는 그리움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가브리엘에게서 나를 떼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6

사랑이란, 서로의 그리움을 확인하는 곳에서 완성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녀의 가슴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당장에라도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가 내 등을 마구 떠밀고 있었다. 발을 헛디뎌 길바닥에 나동그라지면서도 내 마음은 바쁘기만 했다. 사랑이여, 조금만 기다려다오. 조금만 더 단단히 옷깃을 여미고 너의 추운 몸을 가지고 있어다오. 오직 단 하나의 사랑을 만나기 위해 여기 한 사내가 눈물과 함께, 가슴 저미는 그리움과 함께 달려가노라.

 

죄의 임금

사법부 역시 편안한 입장이 아니었다. 대리 검사인 테스튀씨는 신중함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나는 감히 죠르쥬 퐁피두 대통령이 말한 것을 인용하려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변화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것을요. 나는 당신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훌륭한 교사인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 어린 시절을 통해 성가시게 굴고, 참으로 아무런 가치 없는 교사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고 있기에 당신에게 경의를 표할 수가 없습니다."하고 소리쳤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갑자기 목소리의 톤을 바꾸더니, 가브리엘에게 특사의 혜택이 되는 형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얼마 전부터 대리 검사들은 사법부에다 특사를 모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형량을 좀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습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관용에 관한 호기심 깊은 적용이며 또한 입법권자들에 대한 하나의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입법부에 대한 공격은 죄가 될 수 없었다.

테스튀씨의 요구는 하나의 모델인데 그것은 피고인을 판단하는 것은 의지의 자유주의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행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검찰 총장이 직접 내린 명령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프랑스에서는 공중도덕이 어떤 이성과 마음이 되었다. 그럼에도 공중도덕은 엄격했다. 실제로 검찰 총장은 법무부의 명령에 따랐고, 교육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에게 여러모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실제로 교육부 장관은 가브리엘을 제거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녀를 파멸시키고, 조교수 직책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시켜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가브리엘이 특사를 받게 되면, 어떠한 제재도 그녀에게 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교육성 당국은, 가브리엘이 그녀가 가르친 한 학생과 사랑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책 속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열정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대학 당국이 생활 속에서 번뜩이는 열정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엄중하게 다스리려고 했다.

대학 행정당국은, 학생들이나 교수들에게 마찬가지로 적대적이고 누구든지 그가 맡고 있는 그 직책에서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잘 지키고 있는 게 좋겠지."하고 말하곤 했다. 습관적으로 실수를 하며.

그러므로, 7호 법정이 그녀에 대한 판결을 500프랑의 벌금과 징역 1년의 집행유예로 선고했을 때, 검찰 당국은 아뻴아 미니마를 제기했는데, 죄의 임금이라는 것은 정말로 창피스러운 양도를 의미한다.

대학은 그들의 '평화의 속'에 있었다. 그러한 비극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사회적인 모든 상징들이 이 법정에 살아 있었다. 거기에는 단지 재판관들과 대학 당국자들이 연루시키고 싶지 않았던, 폭력적이며 소심한 열일곱 살의 한 소년만이 법정에 없었다. 가브리엘은 불안 속에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크리스티앙과 가브리엘. 거대한 덩치의 수염을 길게 기른 이 소년, 그녀는 1966년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의 2학년 수업에 들어갔을 때 곧장 그를 주목하였다. 그 학교는 콘크리트와 유리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사관학교처럼 뜰에는 더 이상의 플라터너스가 없었다.

가브리엘은 그와 같은 분위기의 이 학교에 약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책임져야 할 두 아이가 있는 이혼녀인 그녀는 이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열정을 쏟아 가르칠 학생들이 필요했다.

그녀가 그를 보았을 때,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던 매우 스포티하게 생긴 이 덩치 큰 소년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녀는 그의 허튼 소리, 즉 지적이며 감성적인 몇몇 특징이 보이는 서투름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하지만 법정에서 가브리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브리엘은 그녀의 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녀는 그 반 학생들 가운데 가장 똑똑한 아이들만 모아,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박물관과 영화관을 가는 소그룹을 만들었다. 가끔 그녀는 그들을 그녀의 집에 오게 하였다.

그들은 음악을 들었고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았고, 그들의 표현방법과 그들의 영감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녀는 남자가 필요 없었다. 그녀는 엉뚱하지만 신사적인 젊은 동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7

노오란 불빛이 흘러나왔다. 보기만 해도 다사롭게 느껴지는 다니엘의 빛이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의 그림자를 기다렸다. 저 불빛 하나를 보기 위해 나는 몇 시간이나 달려왔던 것일까. 부디 창가에 서성이는 그녀의 실루엣만이라도 볼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원했다. 가슴속에선 용암처럼 뜨거운 그리움이 금방이라도 나를 넘어뜨릴 듯이 끓어올랐다. 가브리엘! 제발 나를 쳐다봐 줘. 나는 완전히 탈진된 상태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젠 더이상 버틸 여력도 없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8

그녀는 나보다 15 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나보다 삼십 살을 더 살았더라도, 가브리엘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둘만의 인식이었으므로 사회환경을 극복해내지는 못한다는 데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한곁같이 우리의 나이 차이가 부자연스럽고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나의 부모님들이 갖고 있는 지독한 편견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들을 시련의 구렁텅이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의 관점 저 밖에'

크리스티앙은 조금씩 이 그룹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의 동료보다 가브리엘을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는 친구들처럼, 이름인 가브리엘로 그녀를 부르지 못했다. 가끔 그는 불만스러워 찌푸린 얼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행복했다. 그 해는 저물었다. 그녀에게 그 해는 무척 좋은 한 해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매우 관심을 유발시키는 학생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착한 학생들보다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학생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가브리엘은 단순히 '가르치는 교사'는 아니었으며, 가장 고결한 표현을 쓰자면 위대한 각성자였으며 남자를 수확하는 여자였다.

다음 학기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크리스티앙과 그의 친구들을 계속해서 지켜보았으며 그들과 산보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관계는 바뀌었고, 가브리엘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니었으며 친구일 뿐이었다. 점차로 크리스티앙은 대담해졌다.

그는 지금 그녀를 가브리엘이라고 부른다. 그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자신감이 있어 했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마음 속으로 이미 선택한 사람은 바로 그였기 때문에 그녀도 역시 즐거웠다.

19685월 마르세유에서, 그 도시의 모든 고등학생이 집결한 티에르 고등학교는 마르세유의 '파리 꼼뮨'이 되었다. 거기에는 붉은 깃발과 검은 깃발들이 널려 있었다. 학생들은 그 학교에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였으며, 크리스티앙은 점령지 위원회와 시위에서 제일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들과 어울려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격려로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막 '극 좌파'가 된 옛 공산당 투사였다. 가족을 위한 집은 텅 비어있었다. 각자는 모두 각자 나름대로 혁명을 수행해야 했으며 밤을 밖에서 보냈다.

크리스티앙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유의 시간이었으며 가브리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저녁, 가브리엘은 크리스티앙의 손을 잡았다. 거기에는 더 이상의 장애물이 없었으며 구속물도 없었다. 더 이상 그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5월달은 역시 크리스티앙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끝났기 때문에 좋지 않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바깥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의 엄마에게 있어서 이 동료, 즉 그 전투의 동무였던 가브리엘은 빠른 속도로 적이 되어버렸다.

서른두 살의 한 여인, 그것은 탐욕스러운 존재였으며 소년들을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이 자주 만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고, 그리고 크리스티앙은 아직 너무 어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학업은 곧장 사람들은 부르조아 가정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아주 고전적인 방법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해외로의 여행이었다. 크리스티앙은 우선 독일의 친구 집으로 보내어졌고, 그리고 이탈리아의 한 가정에도 보내졌다.

가브리엘은 곧장 독일과 이탈리아로 가서 그와 합류했다. 가브리엘은 사랑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휴가였다. 그리고 가브리엘에게 있어서나 크리스티앙에게 있어서 5월은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크리스티앙은 이별을 참지 못했고 소년기에 흔히 가지는 확신대로, 그렇게 되면 그는 죽어버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마르세유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계속해서 만났다. 크리스티앙은 가브리엘에게서 찬탄할 만한 여러 가지 매력을 발견해냈다. 그는 이 조그마한 그룹에 선발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행복했다.

그녀 역시 행복했다. 10월 초 날씨가 좋은 어느 날, 그들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혁명가이며 그 대학의 점령자인 크리스티앙의 아버지에게, 보다 간단하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당신도 이 사실을 들었지요?'라고 말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 ', 그래요!' 하는 말을 듣기를 기대했지만 크리스티앙의 아버지는 뜻하지 않게 화를 내며, 전혀 예기치 않은 목소리로 "그건 내 눈밖의 일이야. 크리스티앙, 넌 이 여인을 다시 보아선 안 돼!" 하고 말했다.

크리스티앙은 더 이상 이러한 아버지를 부모로 생각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했으며, 그 충격적인 말로 인한 오해로 소년기의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방황 속에 빠졌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부모의 보살핌으로부터 집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는 다시는 집에다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결혼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어디론가 떠나서 일할 것이다. 이것이 항간에 떠돌고 있는 추측들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29

저렇듯 연약한 체구의 여인에게서 어떻게 그처럼 번뜩이는 혁명가의 기질이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나는 5월의 광장에서 군중과 함께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참담한 좌절의 기억으로 흔들리는 저 어깨는, 적어도 투사로서 용맹을 떨치던 그날의 용맹스럽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약해진 모습만으로라도 제도라는 폭력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하는 인간의 실상을 보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가브리엘! 그만해요. 자유란 한계가 없는 것처럼 혁명에도 끝은 없어요. 5월의 절망도 하나의 신화로 남아 다시 일어설 날이 있을 것이에요.“

 

* 크리스티앙의 고백 30

휴가기간 내내 광기 들린 사람처럼 격정에 침몰된 상태로 들떠 있던 그녀의 비정상적인 흥분이 그제야 의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혁명의 좌절이 그녀를 혼란 속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가브리엘이 이를 악물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패배가 그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나는 온몸을 던져 내 가슴에 안겨드는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슬픔이 우리 둘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가티노! 이제 시작이에요." 나는 상냥하게 그녀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1

베니스에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의 허리만 붙들어 매둘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허락된 몇 주일의 시간 동안에 인생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삶과 꿈과 사랑-그 모든 것을. 그러나 남의 눈을 피해 지내는 시간은 짧기만 했다. 해변에 깔린 모래알처럼 자잘하면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우리의 행복은 견딜 수 없는 갈증만 더해줄 뿐이었다.

 

지켜진 여러 약속들

가브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크리스티앙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얼마 전 그녀는 그에게 "넌 내 생애에서 내가 알았던 유일한 남자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앙은 지금 더 이상 한 사람의 성인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무런 권리가 없으며, 불행하며, 부모의 모든 보호에 복종해야 하는 열일곱 살의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하게 질서는 다시 회복되었다. 그것은 꿈의 종말이었으며 강제로의 복귀를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자유에 가해질 위협과 그녀가 일하고 있는 직책에 대한 위협, 가해질 형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크리스티앙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늘 자신의 말과 일치했다. 그래서 크리스티앙을 결코 오해하지 않을 것이었다. 5월의 약속들을 지킨 유일한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어려움에 직면하여 감옥에까지 가면서도 그녀는 그 약속들을 지켰던 것이었다

그의 아들이 행방불명되자, 크리스티앙의 아버지는 처음엔 대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했다. 그는 가브리엘의 스승이었던 한 교수를 개입시키려 했었다. 그러한 생각은 좌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크리스티앙이 집으로 되돌아갈 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가브리엘은 아마 배신의 시작일지도 모를, 간단하면서도 현명한 이러한 충고를 크리스티앙에게 하기를 거절했다.

그러자 그 대학교수는 나폴레옹의 가족이 되어버렸다. 지금 그 사건을 맡고 있는 곳은 법원 의사회 담당부이다. 크리스티앙은 집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루르드에 소재한 아르제레스 기후학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그는 거기에서 오래 있지 못했다.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크리스티앙은 영웅이었다. 그 학교의 학생들은 모금 운동을 폈고 크리스티앙은 도망쳤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성급하게 사태를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선회하여 엄중하게, 그 엄중함에서 탄압으로 그의 입장을 바꾸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가브리엘을 고발했던 것이다.

가브리엘은 예심판사 앞으로 연행되었다. 그녀는 크리스티앙이 어디에 있는가 알려주는 것을 거절했다. 항상 현실에 타협하기보다는 사랑으로 맺은 협정에 충실했다. 그 판사는 그녀의 연행을 허락했고 그녀는 보메트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크리스티앙이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석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두 번째의 가출을 시도했다. 이번에 가브리엘은 6주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판결이 내려지고 고소되기 이전에 그녀는 순교자처럼 살았다. 그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너무나 크리스티앙에게 많은 것이 되기를 원했었기 때문에 그녀는 친구며, 교사, 동료, 공범자, 아니 아마도 어머니가 되기를 원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앙은 흥분한 한 철없는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여 말하는 가엾은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다른 두 아들 앞에서 나의 권위를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2

"사랑해. 크리스티앙." 나는 세차게 들먹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부서져라 껴안았다. 이제 모든 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승리를 위해 또 한 번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가브리엘! 이제 그만 울어요.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예요!" 사랑의 확신과 맹세로 평온해진 우리 두 사람의 가슴은 베니스 운하의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그것은 기분 좋게 설레이는 잔잔한 파문이었다.

 

고등학교 교사, 가브리엘 뤼씨에

'누벨옵세르 바테르'지의 독자들은 분명하게, 7월에 게재된 프랑스와 까비고리 기자의 마르세유북부 고등학교의 교사에 관한 기사를 기억하고 있다.

뤼씨에 부인은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 가운데 한 학생인 크리스티앙과 결혼하려고 했던 죄로, 미결 구류로 보메트 교도소에 두 번이나 수감되었다. 7월에 예비심 판사들은 그녀를 집행유예를 포함한 1년 징역형에 처했다. 그러한 형은 특사가 가능한 형량이었다.

검찰은 곧 그녀에게 아뻴아 미니마를 항고했으며 그 이후 그녀는 엑스의 항고심을 기다려왔다. 그녀는 91, 독한 가스 밸브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3

여름 동안 두 사람의 쾌활한 웃음과 다정한 속삭임을 실어나르던 빨간 자동차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자동차의 꽁무니를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이제부터는 내 몫의 시련에 부닥칠 일만 남았다. 이윽고 가브리엘의 차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까지 갔을 때, 나는 집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려고 나는 잠시 동안 멈춰섰다. 아버지는 내게 눈도 돌리지 않고 손님과의 대화를 질릴 끌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다.

 

위대한 각성자들

우리들은 크리스티앙의 아버지가 가브리엘 뤼씨에를 경찰과 법원에 고발하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도 가능했으리라. 혹은 그렇지 않았다면 대중들은 교사와 학생 간의 결혼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전 세계에서나 프랑스에서 이번에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열네 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연상의 여인'과의 결혼이라는 것도 종종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그 결혼이 행복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학생과 결혼한 교사들의 수는 손으로 셀 수조차 없이 많을 수도 있다. 많은 남자 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분명하게 그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이런 나이 차이에 대한 비열한 욕설과 경멸이 가장 치욕스런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며 부르조아들의 어쩔 수 없는 고집들 가운데 하나이다.

까비고리는 교수인 크리스티앙의 아버지가 급진 좌파로 옮겨가기 이전에는 공산당 투사였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신좌파들 가운데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당한 값어치가 요구되는 행위의 열기 속에서 감히 교직자의 사회적 인격, 혹은 개성, 즉 학생들의 마음 속에 교직자가 위대한 존재로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들고 재능있는 교직자들과 좌파 교직자들에게 위대한 각성자가 되게 만들 수 있도록 심오할 뿐 아니라 부정과 모정,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것, 억압적이고 너그러운 것, 아량 있는 것, 모험적인 것들이 있는 수많은 노선을 애매하게 만들거나 감소시키려 시도했다.

이와 같이 용기있는 교사가 다수가 아니었던 것은 하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12,000여명의 존재들이 살아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서부터이다. 어쨌든 그러한 교직자 가운데 몇 사람들은 5월 이전에 좌파에 동력원을 제공했던 자신들을 비판하며, 항상 위대한 교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발적인 세미나를 열었던 뤼씨에 부인을 함부로 제거해 버렸다.

크리스티앙 아버지의 급진적 좌파주의는 5월달에 시작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물결의 흐름에 편승된 것이 아닌가? 이 거대한 물결이 지나가고, 뤼씨에 부인이 그의 아들과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러 왔을 때 그는 그녀를 '미성년자 유괴죄'로 고발하여 경찰에 넘겨버렸다.

명확하고 분명한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미성년자 유괴죄'라는 것이 크리스티앙의 아버지 눈에 비쳐진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그것이 한 번 적용되기만 하면 판결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분명히 크리스티앙의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문제이기도 했다.

프랑스와 까비고리는 크리스티앙의 아버지가 쓴 한 문장(나는 결코 아른 두 아들 일에서 나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을 인용함으로써 그의 기사를 끝마쳤다.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완벽한 것이었다.

뒤이어 이번 주 공산당 기관지인 위마니떼에 앙드레 오도앨이 '크리스티앙, 그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쓴 것처럼, 그의 장남에 대해 언급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4

아버지를 설득시켜 보겠다고 들어가서는 겨우 한 시간도 못 돼서 뛰쳐나온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번듯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해주고 물러선 나는 얼마나 무능한 놈인가? 아버지의 서릿발 같은 호령에 겁먹어, 가브리엘이야 명예와 위신이 땅에 처박히든 말든 나 혼자만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도망쳐 나온 건 아니었던가. 나는 스스로의 미련하고 아둔한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식탁에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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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죽인 감옥

판사들이 했던 것들. 예비심 판사는 예방 차원으로 뤼씨에 부인이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두 차례나 설명하고나서 재판을 시작했다. 교도소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좋아한다고 심지어는 권고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몇 주간의 교도소 수감은 결국 그들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검찰 당국은 한편으로는 감옥을 필요로 하고 또한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거절하면서 온갖 수모를 다 겪게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면서까지 규칙을 위반하고 감옥에 보냄으로써, 그들을 그 안에서 자살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들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각자의 집에서 자살하게 만든다.

규칙을 위반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집행유예의 혜택 대상이었던 뤼씨에 부인은 사법부의 눈에조차 감옥에 들어갈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오로르'지에 장 라보르드가 이번 주에 그것을 상기시켰듯이, 법무부 당국은 이미 11년 전에 '구류는 예외적인 것이며 가석방이 원칙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힌 행정 회람에서 이미 법령화한 바 있다.

세 번째 사건, 즉 뤼씨에 부인의 상고는 아무런 주석이 필요 없는 아주 고전적인 검찰 당국의 수법으로, 그들은 늘 보다 무거운 형량을 요구하기 위해 상고한다. 장 라보르드는 "검찰이 그들의 먹이를 손아귀에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풀어주는 것을 거절하는 성향을 보여주는 사법의 어떤 개념으로 다시 되돌아온다."라고 덧붙인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5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설레임 속에 누리는 행복은 며칠간 계속되었다. 나는 가브리엘이 손수 지어주는 아침밥을 그녀의 차를 타고 나란히 학교 문을 들어섰다. 카페 라보엠과 가브리엘의 아파트에 자주 들락거리던 친구들은 이미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던 터라 우리들의 전격적인 동거생활에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죽음은 부당함과 야비함에 비교하면 너무나 부드러운 것이다.

, 여기에 너무나도 명백한 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에게 배운 학생들과 그녀의 옛 스승들에 따르면, 그녀는 훌륭한 선생이 될 소지와 위대한 각성자의 어떤 징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누구도 그녀의 크리스티앙을 향하는 사랑 속에서 숨 쉬는 지혜로움과 공정함, 넓디넓은 도량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교사는 그들 학생 가운데 한 사람만을 좋아하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며, 그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크리스티앙의 아버지가 진정 훌륭한 교수였다면, 그는 아마 그녀의 두 볼 위에 키스를 하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수하에 두었을 것이다. 뤼씨에 부인에게는 어떠한 잘못도, 어떠한 결점도, 어떠한 상스러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들은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고 어떤 존재를 고발한 사실, 규칙을 위반하여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 사실, 무고한 그녀에게 항고라는 칼을 휘두름으로써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사실 등은 야비하면서도 탐욕스럽고 호전적이며 너그럽지 못한, 다시 말해 타인에게 분명히 잘못을 범한 반동적인 부르조아들의 치욕으로 인해 어떤 욕망과 복수심을 보여주는 행위임에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억울한 수모를 겪은 가브리엘은 고맙게도 너무나 잘 처신했다. 비굴함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계속 받느니 영원한 죽음을 택한 것은 너무나 정당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죽음은 부당함과 야비함에 비교하면 너무나 부드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는 언젠가 가브리엘 고등학교라고 불릴 것이다. 그것이 이 죽은 젊은 부인에게 커다란 힘과 위안을 제공할 것이다.

 

 

2장 서간문

 

감옥에서 온 편지

이 이야기는 순간적인 감정만을 노래한 로맨스도 아니며 에로틱한 통속소설도 아니다. 그렇다고 먼 곳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들의 웃음 속에, 우리들의 희망 속에, 그리고 그대들의 가슴속 가까이에서 피어나는 너무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이다.

'나의 소원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으면, 비록 그 문제가 파국의 양상을 드러낸다고 해도, 비록 그 문제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비록 그 문제가 패배의 모습으로 다가올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여, 태양이 존재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진실과 순수함이 이 세상의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나만의 몽상은 아니었다고 말해 주세요.‘

 

1. 프랑스와즈에게(루앙 대학 시절의 친구)

 

1968. 3. 8

프랑스와즈,

아직 1, 2년이 더 있어야겠지만, 마르세유에서 시작했던 일을 이젠 마무리 지어야겠어.

그래, 녹색의 천국은 점점 더.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벌써 난 지쳤어.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어. 내겐 안타깝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이 없는걸. 요즘은 실습 중이야. 학생들에게도 좀 문제가 있어. 그런데 난 본의 아니게 동조되고 있으니.

하지만 결국 우울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교실 한 귀퉁이에 서 있더라도 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져.

어젠 레이 보와 친구들이 보들레르의 지난 시절 몽타주를 보기 위해 마르세유에서 엑스로 아이들을 데려갔어.

우리 아이들은 즐거워하더라. 내일은 스키 타러 가고. 학생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빈곤을, 무지를, 부모들의 용기를 느끼기도 해. 가브리엘

 

1968. 4. 4

나의 친구,

지난번 네 편지를 못 받아서 최근 네 생활이나 계획을 알 수가 없어. 방학 중에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궁금해.

난 그저 루앙에게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할 뿐. 네가 직접 내게 얘기해 주겠니. 전부 기억은 못 하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아직 내 머릿속엔 수 많은 영상들(데모에 동참했던 모습들)이 남아 있어.

또한 시작과 전진을 함께 한 사람들의 모습도.

난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를 알고 나서 시칠리아를 향해 출발했어.

로마에서는 오래 머물렀어. 지금 난 아파트를 구해 이사해야만 해.

아이들은 9일이면 돌아와 다시 여름학교를 떠나고.

형편이 허락하면 네가 이곳으로 와서 나와 함께 실컷 얘기하고, 함께 일하고, 새집으로 이사하는 걸 도와줘. 그러면 너에게 마르세유의 이곳 저곳(휴가를 떠나지 않았거나 이미 돌아온 아이들의 지역들)을 보여줄게.

네가 허락할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아마 넌 기꺼이 받아들일 거야. 그렇지?

마음이 결정되면 내게 빨리 연락해줘.

지금 나는 태양 아래 길게 누워 너에게 글을 쓴다.

비록 글씨는 아주 형편없이 꼬불꼬불하지만.

벌써 휴가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조금은 슬퍼져.

만일 네가 올 수 없다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얘기해줘.

너에게 글로는 다 쓸 수 없을(너무나 길고 복잡해서) 정도로 할 말이 많아.

뒤뤼이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내게 15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게 해준 학생들 때문이야(내 생각에 약간의 장난이 섞여 있는 듯하지만).

그만 써야겠어. 자꾸만 너에게 이곳으로 빨리 오라고 강요하는 얘기만을 하게 된다.

그럼. 가브리엘

 

1969. 2. 18

팡숑,

지난 10월 이후 내게서 일어난 모든 것을 너에게 설명할 수만 있다면 그동안 편지 쓰지 못한 나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

불행히도 편지로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해. 적어도 40 페이지 정도는 필요할 거야.

그것은 생 안토니오나 라신느에게서 있을 법한 일이야.

어쩌면 신문 가십란이나 오르내리며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생 앙뜨완느와 생 쉬리스토프에게 우리를 지켜달라고 기도해줘.

이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야. 너에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탁해야겠어.

아마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날 정신 나간 여자쯤으로 취급할 거야.

그러나 곧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 걱정하지 마.

믿음이 있는 네가 우리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도록 기도해줘.

벌써 몇 번의 위험을 넘겼는데도 또 넘지 못할 난관이 늘 생겨.

궁지에서 빠져나오면 또 숙명처럼 새로운 재앙을 받아들여야 해.

내게 답장을 써줘. 참 내 우편물은 검열받을지도 모르니까 신경 써.

부활절 때 올 수 있겠니. 대충 그때쯤이면 끝이 날 거고, 우린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올 거야.

난 너에게 진짜 마르세유와 진실한 사람들과 진실된 삶 그리고 두 마리의 행복한 고양이(막 태어난 작은 것과 흰 넥타이를 맨 크고 검은 고양이)를 보여줄게.

그럼, 너에게 키스를 보내며. 가브리엘

 

1969. 1. 8

네 카드 받고 난 너무나 즐거웠어. 정말 아름다운 카드야.

지금 디얀느 붉은 자동차 앞 유리에 꽂아둔 카드는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을 나타내고 있어.

구타. 날씨. 고약한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나르본의 기차역도, 엘뤼아르의 디스크도, 짧은 머리의 젊은 여인을 회상하고 있던 또다른 젊은 여자의 모습도, 아무것도 잊지 않았어.

오늘 받은 이 카드는 여러 사람의 자유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스런 이 카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가브리엘.

 

2. 레이몽 장에게(가브리엘의 대학 스승)

 

1969. 3. 15

레이몽 장,

금요일 오후 1시쯤 라 로통드 한쪽 구석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얘기하면 조금은 내 자신의 걱정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어 즐거워요.

시한폭탄은 언제나 작동 중이니까. 지난 주 열세 살 된 소년(친구가 된 어느 여학생의 동생)이 투신자살을 했어요.

그녀는 무척 충격을 받았죠.

또 연락할게요. 너무나 오랫동안 비가 오니까 우울하군요.

언제나 당신에게 충실한 가브리엘

추신: 행동함에 이해함에 살아가도록 나를 돕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디야나 로사.

 

1969. 5. 16

레이몽 장,

당신이 매우 의미있고 멋진 유럽 여행을 하고 유쾌하게 돌아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전 에스타크에서의 점심약속도 기억하고 있지만 이 오래된 꿈을 당장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물론 제 의도는 아니지만).

지난번 우리가 만난 후 전 다시 이사했답니다.

425일 이후 먼저와 같은 이유로 보메트의 호스텔에 묵고 있어요.

이번 역시 제가 도무지 수긍할 수 없는 이유지만.

이곳에서의 체류 기간은 좀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니까(특히 생의 가장 낮은 곳에서는).

지금은 그럭저럭 지낼 만합니다. 결국 또 고독하군요.

제가 늘 말하듯, 바깥 세상과 모든 문을 닫은 채 지나간 추억과 마주 앉아 혼자만의 공간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보들레르 식의 실망이 있은 후에야 진정한 휴식이 있는 거지요.

암흑.

가증스런 여인들의 처참함을 무거운 짐처럼 등에 지고 지옥을 오르내리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3일 전부터 전 제 고독 속에서 상대적인 자유를 다시 찾았답니다.

그 동시에 어느 정도 삶의 활력도 되찾았구요.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단지 비현실적인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려 들어요.

모든 것은 4년 전에 시작되었죠.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화창한 날 미라보 거리에서, 당신은 유행과 문학의 공간이 변했다고 하고, 난 그저 외형만 변했을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얘기했었지요.

게다가 본질은 늘 그 영역 안에 있습니다.

이곳 목사는 내가 디레이에의 잔다크와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난 은혜(보시)를 좋아해요. 아마도 당신이 합창대에서 노래하는 날 본다면 웃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실제로 난 그곳에 가서 다른 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연습하고, 여기서조차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부에서 보면 이상해 모일지도 모르지요.

솔직한 속마음을 나중에 당신께 자세히 말씀드리겠어요.

또한 무슨 정치 운동이나 하듯 내게 조언하러 오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녀들도 있답니다.

그녀들의 말에 외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그녀들은 모두 너무나도 올바르니까요.

만약 내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다면 앞으로 씌여질 당신의 책을 위해 모든 걸 말하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궁지에서 조금은 빠져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번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또다시 암울하고 지독한 고통의 나날이 지금처럼 계속될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꼭토의 책을 다시 읽어봅니다. 문장이 너무나 단순 명확해서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답니다. 희곡속의 인물들은 무척 운이 좋은 사람들이더군요.

소설 속의 인물들도 그의 운명이 다할 때까지, 매순간 너무나 힘이 들고 아프기 짝이 없는 삶을 펼쳐나갑니다.

그것은 시지프스를 얘기하지요.

전 외국 학생들을 위한 학교 세미나를 기억합니다(안락의자에서부터 꽃까지 너무나 생생하게).

그 청년을 발견한 것도 관리직의 어느 아내였습니다. 라벤츄라.

어제 일일 수도 있고, 또 내일의 일이 될 수도 있기에 후회없이 생각합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벽이 불변하는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지요.

당신을 더 이상 믿지 않거나 혹은 거짓으로 믿는 척할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압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이곳에 있고, 수녀들이 옳다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 강언덕의 언어, , 사람들조차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는 별게 아닐지도 모르나 피그말리온에게는 그것은 제게 꽤 가치가 있답니다. 생명을 주십시오.

당신에게 충실한 가브리엘

 

1969. 6. 5

어제 25일에 쓴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젠 어느 것도 제게 웃음을 줄 수가 없어요. 그저 제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경험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애가 파괴한 것들이 도리어 나를 질식시킵니다. 1 년 전부터 살아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이제 더는 못 견디겠습니다.

전 최소한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랍니다.

엑스의 중등교육조합에서 당신을 보고자 한다고 D가 제게 전했습니다.

우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그들을 만나보시지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괜찮다면 끌로드 시몽의 추억도, 클로에를 기념하는 것도 괜찮을 텐데.

내일 아침이 찾아왔을 때 '이방인'처럼 모든 것이 끝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여기선 이것 역시 불가능하답니다. 그저 끝이 없는 부조리가 있을 뿐이지요.

전 마치 거대한 바위(제겐 너무나 무거워 보이는 바위)에 짓눌려 있는 듯합니다.

절 잊어버리세요. 도무지 제 자신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은 존재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쓰십시오. 가브리엘.

 

3. 알베르에게(학창 시절의 남자 친구)

 

1969. 4월 어느 날

알베르, 나의 알베르.

난 너에게 편지를 쓰고, 넌 내게 답장하고, 그러나 이젠 끝났다. 아니면 '거의' 끝이 났든지. 다른 이들의 말 속에도 있고, 물론 네 말 속에도 있는 '거의'란 말이 내가 삶을 지속하도록 돕고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난 신경쇠약으로 오랫동안 쉬고 있어. 특히 교장 선생님이 내가 복직하길 바라지 않고 있는 것이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하지.

학교 없이는 난 엑스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그러나 너와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난 적응해야만 해.

시험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네가 언제까지 그 곳에 있을 것인지 말해줘.

아니면 너만 괜찮다면 우리를 보러 이곳으로 찾아와도 좋은데.

토요일 오후를 제외하고는 만성절에 그 곳에 있을 거야.

만약 네가 일이 생긴다면, 며칠 후에 내가 갈게.

학교가 그립다. 이젠 홀로 책상에 앉아 책 읽는 일에도 진저리가 났어.

너에게 키스를 보내며, 그리고 내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모든 것과.

가브리엘

 

1969. 4. 27

알베르!

내가 참석하지 못한 레이보의 강의에서, 결정하러 온 다른 사람들을 보고 네가 당혹해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미안해. 그들은 내가 강의에 가서 조리스를 볼 거라고 상상하겠지.

물론 좋지 않은 만남도 피해가는 것만이 제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넌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볼 수 있을 거야.

또다시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곤 너에게 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글을 써내려간다.

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좀 거칠지만 좋은 친구도 있단다.

네 편지 받고 너무나 기뻤어.

내게 이곳 주소로 자유롭게 편지 써서 보내줘.

우편엽서나 복사물 등도 보내주고.

그 무엇도 더 이상 날 즐겁게 할 수는 없다. 조금 후면 너에게 물질적인 부탁을 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소포꾸러미 따위의.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소포를 부치기 위해선 중등교육원에 전화해야 해.

난 네가 계속 침착함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길 바란다.

너희 반 아이들이 우리 반 아이들보다도 너에게 걱정을 덜 끼쳐주었으면 한다.

만약 네가 편지 쓸 시간이 나거든, 그리스 말로 얘기해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넌 언제나 우리들의 충실한 에르메스야.

죄수들에게 소포를 보내는 신을 그리스말로 무어라 부르니?

아마도 그리스엔 감옥이 없는 게 아닐까?

그건 너무도 간단하다. 닫힌 공간 안에다 사람을 집어넣고는 아무 말 안 하면 되거든.

메르쿠리우스. 차분하게 날 위해 와줘. (붉은 거북이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네가 내게로 굴러와 줘.)

날 대신하여 나무들을 바라보고, 지는 해에게 인사하고, 라로통드에서 읽었던 편지 속의 내용을 잊지 말아줘.

'난 음악을 들을 것이다. 슬프지 않은 음악을' 걱정하지 마라.

규칙과 엘뤼아르의 시를 생각해봐.

작은 신 베르나르가 너에게 키스를 보내며. 가티노

추신: 수련으로 해서 클로에가 놀라지 않게 해줘. 우편 봉투도 부탁해.

 

1969. 5. 9

알베르,

오늘 저녁에 길게 쓸 수가 없어. 내일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나 너에게 네르발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

내게 있어 네가 보내준 카드는 너무 소중하다.

내가 쓰고 그릴 수 있는 한, 나 또한 편지쓰기를 계속할 거야.

부탁인데 내게 여러 가지 색의 수성 싸인펜과 봉투를 보내줘.

며칠 전부터 몸이 무척 아팠었는데 오늘밤엔 누군가 내게 약을 주어서 편지를 쓸 수도,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어.

나무들은 매우 아름답고, 화병 속에는 감옥에서 피어난 밝은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어.

내가 있어 이곳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고 모두에게 얘기해줘.

너도 모르지. 시와 난, 그 어느 것도 잊혀지지 않을까봐 두렵다.

태양이 존재한다고, 진실과 순수함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것은 나만의 몽상이 아니라고 말해줘.

이 모든 것이 날 해치는 것은 아닐까? 너무 두렵다.

죽음의 집. 이미 오래 전부터 난 조금씩 죽어간다.

나를 짓누르는 불안감으로, 난 날마다 조금씩 죽어간다.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나는 그 무엇으로 인해 가까스로 살아나게 된다.

내일은 좀 더 밝은 내용으로 쓸 수 있을 거야.

"정리의 천사,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에게 흰옷을 입히자. 신이여, 그를 보호하소서!"(프랑스와 모리악)

"녹색의 천국,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순수한 천국

애처로운 목소리로 천국을 부르고

맑은 목소리로 생명을 주는." (보들레르) 가브리엘

 

1969. 5. 15

네가 내 편지들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난 오늘도 너에게 편지를 쓴다.

어제부터 난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내가 훨씬 더 좋아졌다는 걸 넌 아마도 모르고 있을 거야.

날 대신해서 떠난 소녀는 누군가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작은 물건들을 남겨두었어. 누가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색의 상자들, 회양목의 부케, 약간의 분말세제.

내가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진짜 고독을 보았다. 그리곤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선 이것이 전부이다.

내가 낮은 곳에 있은 후부터는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재빨리 스쳐가는 구름보다 마음은 더 자유롭다.

매일 저녁, 방에선 구름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혼자 있다.

모짜르트가 슬프지 않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네가 날 위해 모짜르트를 틀어줘.

그럼 모짜르트도 슬프지 않은 멜로디로 들릴 거야.

너를 안지 처음으로 조금은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난 행복에 겨워 꽃병을 씻고, 그 안에 나를 앉히고 장식한다(클로데트와 미로의 카드, 그리고 소녀가 내게 남겨 준 두 장의 그림으로).

침대 위엔 검은 솔을 걸어놓고 난 내 은신처인 달팽이 껍질을 발견하고는 생명력을 다시 찾았다.

꿈꾸기 전에는 내가 읽었던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막연히 읽었었지.

마치 고양이처럼 난 한쪽으로만 굴러간다.

생각하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러나 깊지 못한 일련의 불안감이 나를 바이스처럼 죄온다.

난 이유 없이 불안에 떨곤 한다.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편지들은 늘 수많은 고통과 함께 하지.

더는 쓸 수가 없다(종이가 없어). 내게 나선형의 커다란 노트와 수성펜 템포를 보내줘.

발송된 소포들은 월요일에만 배부된다. 발송인 이름을 쓰고 우표도 함께 보내줘. 난 지금까지 카드 두 장밖에는 아무에게도 소식을 받지 못했어.

랭보와 보들레르가 함께였는데 그들이 진실하다고는 말못하겠다.

특히 보들레르는.

랭보는 좀 다르다. 진실의 또다른 측면, 평행한 세상의 경험을 이곳에서 찾고,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을 이곳에서 찾았어.

이곳에 오기 전에(너도 알다시피 얼마나 혼돈된 상태였었니?) 그들이 믿었던 삶의 진실은 없다.

그러나 순수는 있다. 이 경악스런 우주 안에서도 유일한 것이지.

순수는 밀란의 깨끗한 선 속이 아니라고 생각해. 빠졸리니 캠페인의 녹색과 교회의 황금색을 바라보고 있다.

피사에서 난 웃고 말았어. 그리곤 여행자들로 인해 화가 났었다.

아마도 너는 프라 안젤리코 수도원의 애도처럼 광신자들의 선교를 부끄럽게 여길지도 모른지.

"프로방스는 묘지이다. 난 자유롭게 된 채 그 곳에 잠들 것이다. 애상의 그림자를 가지고서."

지금은 부드러운 밤의 색들로 변하였다.

고광나무는 조금씩 시들어가고,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

회양목과 콜커스, 노란 수선을 모으러 떠났던 산사나무가 웃음 짓던 그 아름다운 숲. 게름만트의 강은 풀밭 사이에서 계속 흐르고, 라일락의 은은한 향기.

이젠 그만 써야겠다. 검열 때문에 너에게 코드로 써야 할 것 같다.

넌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난 지금 프루스트를 그리워한다.

'작은 쥐야, 프로타두(고양이)가 널 세차게 때릴지도 몰라'

추신: 만일 네가 여행중에 조용한 시골집을 발견하거든 날 위해 예약해줘. 보메트 수용소에서 나가게 되면 그 곳에 가서 쉴 수 있도록.

'전기 장미는 여전히 내 기억의 정원 속에서 활짝 피고 있다.' (아뽈리네르) 가브리엘.

 

1969. 5. 30

너희 모두를 안심시키려 오늘도 편지를 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껴.

너는 나에게 감옥의 어둠 속에서도 진실은 커진다고 말했었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네가 착각했던 거야.

사람들은 이곳에다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진실을 볼 수 없게 날 묶어두었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말이야.

난 자신들의 죄를 알고 있는 저 여자들이 부러워.

결국 그들의 토론이 미치다시피 하게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

알베르, 난 지쳤어. 사람들이 날 너무 괴롭혀.

이곳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내게 주어진 이해할 수 없는 서류들을 여러 번 받고 나서는, 정의가 어디 있는지, 진실이 어디 있는지 지금으로선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이런 희생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인생의 죄는 천천히 그리고 교활하게 끝에 닿아 있고, 난 그것이 어떻게 이토록 비참하고 암담하게 확대되었는지 알 수 없다.

백 번의 구타와 노골적인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돼.

난 지금 후회한다. 내가 엑스에 있을 때 계획했던 일들을 하지 못함에 후회하고 있어.

난 어떻게 불러야 할지조차도 모르는, 고속도로 한복판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장애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젠 더 이상 강인함도 인내력도 구할 수가 없어.

더 이상의 구차스런 삶의 연장은 옳지가 않다.

이젠 웃음도, 단 세 줄의 읽어내림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늘 복잡하게 얽혀 있어.

왜 사람들이 날 이곳에 가두는지, 왜 내게 죄가 있다고 하는지 난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설사 그들이 내게 고통을 줄지라도 난 아무 소용 없는 이 살육을 제발 멈추어 달라고 말하겠어.

미친 것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너무나 싫다.

그들의 초라함이나 잡담보다도 더 나은 은신처를 사랑한다. 그 어디라도.

난 가능한 한 깊은 생각의 늪 속으로 스스로를 가두지만, 결국 오래지 않아 생각은 멈추고 말아.

그녀들은 사리판단을 잃어버렸어. 그것이 바로 그들이 진실로 바라는 것인지도 몰라.

진짜 몇몇 부랑아들 중에는(아니 전부일지도) 이곳 생활에 오히려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가능한 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부탁이니 내게 이 악몽이 빨리 끝날 거라고 말해줘.

이곳 감시원들은 내게 친절하게도 악몽은 곧 끝날 거라고 얘기해주곤 하지.

그러나 난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만약 그들이 내게 약간의 위안을 주기 위하여 하는 이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진짜 가엾다고 내게 말해줘.

그들에게 복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지금은 그럭저럭 별 어려움 없이 그들에게 복종하며 지내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내가 완전히 돌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널 가슴 아프게 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야(여기선 대부분이 그렇지만). 네가 혹시 너무도 변해버린 날 알아보지 못할까 염려해서 하는 말이지.

만약 내가 돌볼 수 없게 되거든 미쉘과 함께 귀여운 나의 아이 조엘과 발레리를 돌봐줘.

난 틀렸어. 더 이상 그들을 돌볼 수가 없어.

알베르, 그것은 아마도 절망적인 아픔, 병일 거야.

세상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날 너무나 아프게 했어.

이젠 됐어. 더 이상의 고통은 싫어.

난 자고 싶어. 모든 걸 잊고 싶어.

그럼 안녕. 널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가브리엘 @ff

 

4. 부모님에게(가브리엘의 친부모)

 

1969. 5. 13

나의 부모님께,

이 우주는 너무나 특별한 곳입니다. 제가 그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전 둥글게 살아가려고 애쓰는데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군요.

저는 고광나무의 꽃과 창밖의 조금은 창백하고 슬픈 하늘만을 바라봅니다.

올해엔 마치 봄이 오지 않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다가올 여름도 분명 예년의 여름과는 다를 테지요. 찬란함을 상실한 채.

전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합니다.

마르세유는 썩어가는 도시예요. 그러나 전 이 프로방스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밤에 온통 불을 환하게 밝히고 반짝이는 마르세유 역시 사랑하구요.

에스타크와 항구에 머물러 있으면서 우릴 실어나르던 '엥꽁푸리(인정받지 못한 자)'라 불리우던 배.

아버지가 성 샤를르 역을 떠나던 5월의 그날 이후 저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답니다.

아니, 이미 모든 것은 몇 달 전부터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살아가기 위하여 수많은 사물과 친구들, 몇 권의 책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진실된 우정의 가치를 측정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할 거예요. 지금의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재앙처럼 보여지는 것 속에 끌려들어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답니다.

마음으로 봐야만 잘 볼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우리는 이 어둡고 추한 수렁 속에서 견뎌야만 합니다. 그러면 소박함 속에서 진실은 태양과 함께 우리 곁으로 찾아올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저는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세요.

우린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사리에 놓인 장애물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나 58년 그 이후 열한 살 때부터 우린 언제나 함께 했었습니다.

전 지금 슬픔과 우울이 아닌 바로 당신들과 함께 있어요.

당신들께 저의 침착성을 보여주고 싶군요.

늘 당신들의 따듯한 품에 안길 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제 그 어떤 기쁨도, 슬픔도 우리에게 올 것이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웃으면서 당신들께 사랑을 보냅니다. 가브리엘.

 

1969. 5. 18.

이곳 분위기는 당신이 상상하는 그대로입니다. 절 보호하는 천사인 간수들은 친절하나 동료들은 아직도 힘들어요.

전 줄곧 제 방에 들어와 있고 가능한 한 나가지 않지요.

최고의 순간인 합창과, 미사와, 최고의 침착성과, 이해심을 가지고 우리를 방문하러 오는 도미니크 수녀회 수녀들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전 그 수녀들이 있는 곳 생 자사리를 가보고 싶어요.

생 자사리에서 산보하긴 정말 좋은 날씨였는데.

그때 우리는 프로방스를 알았어요.

그리운 지난 시간이 다시 오게 하기 위해, 접시꽃이 된 그 시간에 성 빅트와르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예전의 금작화를 다시 모으기 위해 강해지려고 노력할 겁니다.

보들레르와 랭보, 그 외의 상민으로, 또다른 것으로 살아온 것 외에 제가 왜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명확하고 이치에 맞는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겠어요.

이전처럼 당신께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다음에, 언제나처럼 당신들께 내 사랑을 보내며. 가브리엘.

 

1969. 5. 27

우편물이나 방문객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 있는 것 보러 오기가 아주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전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을 지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정신적으로 좋은 상태에 있을 때의 커다란 기쁨은, 곧 커다란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전 이곳에서 대부분 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답니다.

당신은 제게, 진실한 가치에 관해서는 돈이 별 중요성이 없다고 가르쳐준 것 같아요.

제가 오늘 밤처럼 침착하고, 매우 강한 의지에 사로잡힐 때면 당신들 또한 저처럼 느끼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강한 부정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아마도 사람들은 저를 안 믿으려 하는 것 같아요.

전 이유 없이 닫혀진 생각들을 가지고 너무나 자주 반발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그 자신 안에 진실을 지니고 있게 마련입니다.

진실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단순한 것이지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소박합니다.

너무나 놀란 얼굴을 한 순박하고 용감한 이 가엾은 프로타두처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이송될 때 동정심 많은 어떤 헌병이 그의 처지에서 절 걱정하기도 했답니다.

전 다시 돌아갈 거예요.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만약 제가 크게 상처 받는다 해도, 부드럽고 상냥하게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되려고 애쓰렵니다.

당신들의 가브리엘.

 

5. 질베르트 테부노에게(그녀의 이웃이며 마르세유 노르고등학교 동료)

 

1969. 부활절 전 화요일

당신이 곧 떠날 것이므로 난 꽃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단순히 소상한 하나의 행동이니까요.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고 싶군요.

내가 짓눌려 있다고 느낀 순간에 산책을 하는 건 지친 마음에 조금은 활력소가 되어준답니다.

나무와 바다, 그리고 믿음을 다시 발견하지요.

내게 이 모든 것을 가져다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행정적인 발전을 위해 용기를 잃지 마세요.

내게 대사 부인의 매력을.

당신에게.

가브리엘.

 

1969. 4월 어느 날

늦은 시간입니다.

엑스에서 저녁 초대를 받았어요.

교장의 편지와 청구서, 총장에게 보내는 사본을 동봉합니다.

나 역시 당신에게 복잡함과 골치 아픈 문제만을 보내는군요.

당신에게 진실한 웃음과 푸념뿐만 아니라 내가 느낀, 그러나 표현할 수 없었던 우정까지도 보여 줄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처럼 비극의 내 존재를 쓸어가도 서류더미와 행정상의 번잡한 절차는 내 존재와는 아랑곳없이 너무나 지연됩니다.

내가 절망으로 쓰러질 때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모든 일이 어쨌든 순조롭게 잘 풀릴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가브리엘.

 

1969. 4월 어느 날

친애하는 부인.

다양한 형태의 행정력과 저의 지독한 편두통이(제 의지대로) 오늘 아침 당신의 편지를 받으러 가는 걸 방해했습니다.

이 고약한 위선자가 사라지길, 그리고 시골에서 보내는 당신의 주말이 당신의 복잡한 생각을 바꾸고 기분전환 시켜주길 바랍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소망해요.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마도 지금쯤 시골로 가고 계시겠죠. 저는 당신이 당신 자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인생이 안락하기를 기원했던 마르세유의 사람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고민하지 마세요. 곧 돌아올 여름을 생각하세요.

삶이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슬픔 뒤엔 언제나 행복의 순간이 있으니까요.

안녕히 계세요.

가브리엘.

 

1969. 4. 28

친애하는 부인!

질베르트, 잊을 수 없는 그 피크닉 이후에 당신께 무례한 부탁을 드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제 걱정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R부인 곁에서 통역자가 되어줄 것을(그녀는 불어를 잘 못 읽고, 난 그녀에게 읽어줄 수가 없으므로) 진심으로 간절히 부탁하면서 편지를 띄웁니다.

특히, 날 아는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요.

조엘에게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난 매우 잘 있다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게 사실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군요.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R부인이 그를 돌볼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만약 내가 여기 있는 기간이 연장된다면 아버지께 알려지겠지만 당분간은 알리지 말아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물론 그녀가 갖고 있는 사람들의 주소로는 알려야 되겠죠.

(알베르를 통해서 하든지, 다른 방법을 취하든지)

만약 중등교육조합이 날 필요로 한다면 이곳 주소를 알려줘야만 합니다.

특히 R부인은 내 소식을 알고자 온 사람들에게는 내가 잘 있다고(비록 이곳에 갇혀 있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매우 인상 좋은 두 소녀들과 함께 있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군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나를 이곳에 있게 만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이곳에 감금되어 있는 시간이 올래 지속될 것 같군요. 그러나 조금도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알려야 합니다. 내게 자유롭게 편지 쓸 수 있고, 나 또한 우편물을 받으면 기쁠 테니까요. R부인은 내 주소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도 괜찮아요.

누군가 내게 우편엽서를 보냈습니다. 난 내 변호사와 가족만을 만나볼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조금 후에, R부인에게 내의를 가져오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녀는 이곳의 문 앞까지는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조엘과 프로타두를 잘 돌보고, 장미나무에도 날마다 물을 주고 있겠지요.

또한 조엘에게 때때로 발레리에게도 편지 쓸 것을 부탁해야겠군요.

'삶의 기쁨' 샤또 드 베르덩, 73 크우에.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지겹게 만들죠. 죄송해요.

다시 한번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유일한 문제는 물질적인 정리들이에요.

난 우편함 열쇠 두 개를 가져왔습니다. 자동차는 정비소에서 수리 중이고, 만약 5월분 집세가 지불되지 않았다면 이자까지 쳐주겠어요.

그것은 별도의 문제이고, 그 외엔 최선을 다해서 최상의 상태에 있습니다.

난 우연히 뜰에서 '사탄'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작은 히피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어요. 그러나 소설 속에서처럼 공포감을 주지 않고 그 어떤 병원이나 정신 요양소보다 견디기가 쉽습니다.

병원에서는 솔직히 사흘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나 여긴 매우 다르답니다.

제가 독방에 있을 때면 완전한 자유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늦게까지 떠들어서 그런지 조금은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내일은 일요일이구요.

미사 후 뜰에 나가기 전까지는 낮잠 시간이에요. 그리고는 뜨개질, 독서, 수다.

난 당신이 당신에게 근심을 끼쳤던 날 용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는 걸 무릅쓰고서라도 R부인 댁으로 갈 것을 강요한 날 용서하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당당한 태도와 작고 빨간 구두가 당신을 모든 비방으로부터 보호할 거란 사실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날 대신하여 우리의 소중한 약사에게 안부 전해줘요.

이곳에서 약사는 세면대를 뚫거나 침대를 다시 봉인하는 일을 합니다.

포개진 침대들은 복근운동과 곡예를 하기에 완벽하다고 말해야겠지요.

세상에는 그들의 관습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공영주택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영주택(H.L.M: 서민들을 위한 값싼 주택)에서 얻게 되는 이점은 우리가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또한 진실된 삶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철학적인 문제를 사색하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입니다. 물론 그런 시도도 하고 있어요.

기술학교란 총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벌을 가하는 것보다 덜 위험하므로 퍽 괜찮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당신도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기분 좋은 일광욕이나 하고,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오늘 오후처럼 될 것입니다.

당신 어머니께는 내가 시골에서 잘 쉬고 있다고, 내 우정을 그녀에게 보낸다고, 그녀의 정신상태가 좋길 바란다고 전해주세요.

이젠 편지를 그만 써야겠군요. 답장은 안 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날 위해 R부인과 중등교육조합에 할 일이 많습니다.

내가 크리스티앙을 유괴하지 않았다고(다른 사람들이 다시 한번 그걸 믿게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3개월 전부터 난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학교에 알려주세요.

그래도 언젠가 당신을 다시 볼 것이란 희망을 갖고서.

샹파뉴 만세.

가브리엘.

* 추신: 그리고 언제나 꽃과 함께, 웃음과 진실함과 함께. 내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걱정해서는 안 돼요.

가티노로부터.

 

1969. 4. 30.

질베르트,

당신 편지는 날 너무도 즐겁게 했어요. 또한 매우 빨리 도착해서, 내가 쓴 편지가 괜한 짓이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해줬어요. 당신이 내게 준 소식들은 날 안심시켰어요. 왜냐하면 난 조엘과 당신을 무척 걱정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이 날 기다리고 있다니 너무나 기쁜 일이군요.

그러나 이 사건들은 내게 필요 이상의 인내력을 요구합니다.

내 친구 남편의 도움으로 병원 수수료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되었어요.

감사드릴 일입니다. 아니 이미 다 해결되어 한 걱정을 덜었습니다.

나머지는 정비를 끝낸 차 문제인데, 당신이 정비소에 가서 찾아가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고, 수고스럽지만 좀 더 보관해줄 것을 부탁해 주세요.

게다가, 내가 10월경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내 방값을 지불해 주겠습니까?

만약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내 아버지께 말씀드려요. 그러나 지금 그에겐 몇 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부를 수가 없어요. 만일 내가 아버지를 오게 하면 어머니가 혼자 계시게 되니.

혹시라도 내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게 된다면 물질적인 세심한 문제들은 내게 발송하든지, 아니면 모자라는 물건들과 함께 소포로 보내주세요. 아니면 모든 걸 견딜 수 있게 도와주든지.

당신께 별도로 리스트를 작성해 보낼께요.

일요일에 발생한 일은 당신 예상대로 많은 효과를 낳았습니다.

어젠 내 생일이었어요. 그러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다른 날처럼 그냥 평범하게 지나갔습니다. 조용하고도 흐린 하늘과, 4월의 비와 함께 보냈지요.

내일은 51. 뜰안에서의 산책은 슬픈 고독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다른 일도.

안티곰은 그에게 가장 부족한 인내를, 그리고 덕을 배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의 불행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견디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게 더 나아, 그러나 좀 값이 비싸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음식도 구내식당보다 더 나쁘진 않아요. 나머지는 영원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나중에 이야깃거리가 되겠지요.

내 친구들에게, 그리고 내가 다시 봐야 할 사람들에게, '나는 그녀의 웃음과 아이러니를, 또 너무나 생기발랄한 면을 무척 좋아한다.'라고 전해주세요.

위게뜨! 처음에 난, 여기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그러나 그 구조를 이해할 때쯤 되어서야 그것이 오히려 내가 인내하는 이유가 되었어요.

어쨌든 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 당장 커다란 것은 바라지 않아요.

당신 어머니께 그녀의 라일락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다시 필 것을 약속드린다고 전해주세요.

만약 그녀가 내가 있는 곳을 안다면, 난 직접 그녀에게 편지 쓸 것입니다.

갤리선은 점점 더 타락해가고, 여전히 타락의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종이가 없어서 그만 써야겠군요.

당신을 사랑하며 웃음을 보내는 가브리엘.

 

1969. 5. 5

사랑하는 질베르트,

우편물이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편지 쓰기로 했어요.

언젠가 당신이 나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당신이 실망할까 두려워서 씁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정신상태를 유지하려 애썼으나, 지금 여기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로 인해 더 이상은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난 지금 이곳에서 가까운 당신 집에서 저녁 먹던 그때의 정신상태에 있습니다. 치료약은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이 이미 그 이전에 있었던 신경쇠약(우울증) 속으로 나를 사정없이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6개월 전부터 그들이 내게 준 온갖 불안감을 떨쳐버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저항은 끝이 없고 때론 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과연 온전하게 내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해 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하지도 마세요. 그저 당신이 너무 기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분명 당신은 내가 이전의 나로 돌아오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강합니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나 있는, 그런 도달하지 못할 가치들에 집착하고 이런 종류의 것들에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 고요함에서 출발하여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그런 가벼운 생각들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러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것 같으니까요.

지금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일단 한 번 이곳에 들어온 이상, 죄가 있든 없든 간에 이 안에 있게 되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난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내 안의 뭔가를 나타내고자 하는 내 마지막 몸부림인 것입니다.

난 너무나 많은 걸 보고 들었어요. 그저 끝이 없는 깊은 잠 속에서 자고 싶을 뿐이에요.

모두 잊어버리고 싶어요. 그러나 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의식 속에서 예전에 했던 생각들을 반복해보곤 합니다.

R부인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녀에게는 잘 지낸다고, 내가 조엘에게 키스를 보낸다고만 전해 주세요.

당신에게 너무나 슬픈 편지를 써서 미안하군요.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 후에 내가 심하게 짓눌려 상처받았을 때 당신이 날 되살리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저 써내려갑니다.

당신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웃음과 함께. (마지막 작은 웃음)

가브리엘.

 

1969. 5. 7

질베르트,

방금 또다시 날 미치게 만드는 느낌으로 탈진되었기 때문에 당신께 글을 써내려갑니다. 일종의 간절한 구조 요청입니다.

그러나 난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체념 속에서도, 막막한 바다에 병을 던지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내 주변의 여자들은 내가 카프카의 삶을 느끼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듯합니다.

난 매일매일 '그건 불가능해' '악몽은 곧 끝이 날 거야' '날 이해해줄 거야'라고 자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내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이곳에서의 어떤 특정한 삶이 아니고, 정신적 안락의 부족도 아니고,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감시원도 아닙니다.

그건 다름 아닌 영원히 남아 있을지도(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 주위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내 명석함을 간직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방금 전에 (극도로 자주 일어나는) 모든게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유 없이 떨리고, 벽에다 머리를 치고 싶어 하는 나를 상상해 보세요.

처음엔 그들이 당연히 이해할 거고 이 속에서의 내 입장도 증명할 수 있어서 결국 날 믿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게 혼돈된 채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게 모두 친절합니다. 간호원 역시. 그들의 약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고 만일 내가 모든 것(타락, 가치하락, 외설 같은 것들)을 잊을 수만 있다면 난 수면요법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지금 난 정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태도를 이해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답니다. 만일 그들에게 매일 나처럼 이렇게 한다면 그들은 모두를 의심해야 하고, 그러면 여기저기서 고통을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내게 2개월만 여기에 더 있으라고 하면 나 역시 그럴 것입니다.

난 너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질베르트, 신음하는 날 용서해 주세요. 난 너무 두려워요. 정신착란을 일으킬까 무서워요. 또 그들이 날 믿지 못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난 이제 존재 자체를 존경한다고, 권리와 명확함을 사랑하고, 이젠 더 이상 어느 것도 모호하지 않다고 말해주세요.

난 이제 지쳤어요.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라 믿어 주세요. 이곳에선 모두 의심받는 사람들뿐이에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온갖 종류의 공포(결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열광하는)를 내게 쏟아놓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여기저기에 뿌려놓는 공포에 매우 익숙합니다.

그들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이곳인 듯합니다.

난 그 누구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내 사랑이 나쁘다는 걸 느낄까 두려워서 못 쓰는 것이지요.

지금 난 편지를 쓰면서 매우 떨고 있어요.

조엘에게, 내가 그 애에게 키스를 보낸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함께.

솔직히 난 미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곳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여기서 본 내 시각으로 바깥 세상을 변형되고 왜곡되게 볼까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변하게 된 것에 너무 부끄럽습니다.

날 용서해줘요. 난 너무 지쳤어요.

당신에게 사랑을 보내며.

가브리엘.

 

1969. 5. 12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받은지라 당신의 편지는 내게 뜻밖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부탁했던(내 집세와 차, 조엘을 부탁하고 내게 속옷을 보내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편지를 못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조엘에게 내 그림들을 전해주고 근심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당신은 이제까지 내가 극복했던 날들이 들어 있는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약을 주었어요. 좀 나아진 듯합니다. 걱정마세요.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닫혀진 공간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이곳을 다른 세계와 다른 특별한 곳으로 만들고, 내가 나갈 때 진짜 어려움이 시작될 거란 것을 알게 해줍니다.

당신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보호에 관한 독특한 감각을 갖고 있어요. 책임감을 상실한 채 밖에서 날 기다리는 무엇인가를 막연하게 생각하면 두려워집니다.

그러나 난 나무를 바라보고 진실을 소망하는 걸 좋아해요.

그 속에서의 불안, 더구나 나가야만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불안이기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듭니다.

물론 시도는 해보겠지만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때론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걱정 하지 말라고 전해줘요.

우편으로 내게 발송인 이름과 함께, 색 싸인펜과 탈취제, 건식삼프, 커다란 갈고리 훅이 든 작은 상자를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집에 있는 속옷도 함께, 그리고 일할 때 입는 나이론 작업복도.

소포는 월요일밖에 전달이 안 되니까 될 수 있는 한 빨리 보내주세요.

당신을 안지 무척 오래되었군요. 질베르트, 당신은 날 두렵게 만들고 난 항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믿음을 갖는 법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과 함께 있어서 너무 다행스럽군요.

당신은 심지가 굳고 날 많이 도와줍니다. 사람들은 단지 내가 사랑할 때에만 날 이해해줍니다. 난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고 언젠가는 내 정신이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중등교육 조합원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그날 저녁을 다시 생각해보았어요.

내가 당신의 편지(그 편지는 내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를 받았기 때문에,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가 이곳에서 본 것(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을 잊게 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의식 속에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혼란스러워져서 실패할 운명입니다. 당신에게 설명을 해야 하겠지요.

당신의 강인함과 유머 감각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습니다. 정리도 함께.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도 합니다.

잊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은 더럽혀졌고 당신은 얀센주의처럼, 내가 못 견딜 거란 걸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아직도 내겐 15 년이 남아 있으니까.

모든 걸(내가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하는 걸 제외하고는) 무관심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내온 몇 달처럼 바깥 세상에서의 삶조차도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불안이 이 안락한 감옥 안에 계속된 스파이 피해망상증을 갖고 찾아옵니다. 모든 게 이어집니다.

만약 모든 게 명확하다고 확신한다면, 난 아주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난 그저 이것만을 믿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내가 그토록 맛보았던 환멸이 가장 두렵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당신 어머니에게 내가 그녀를 무척 사랑하고, 며칠 전에 나에게 극복할 힘을 준 장미 꽃잎을(첫 번째 장미가 없으므로) 그녀에게도 보낸다고 전해줘요.

내가 생각할 만한 사람들에게 말해요. 바보 같은 행동으로 삶이 그들에게서 빠져나간다고 말해요.

난 붉은 거북이가 덜거덕거리면서 전진한다는 것을 왜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쓰러져도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에게 내 사랑을 보내며.

가브리엘.

 

1969. 6. 24

난 당신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얘기해서 당신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걸 방해할 뿐이군요. 언제나.

그리곤 찾아오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걸 말할 수 없는 것이 내겐 가장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줄 친 종이가 더는 없고, 가증스런 저 미노스가 내 말을 해석하려 드니 아무것도 할 수 없군요.

그러나 당신이 날 웃게 만든 첫 번째 인물이라는 걸 얘기해야겠습니다.

입증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당신이 처음입니다.

맹세하지만(프로타두의 언어로) 사실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왜곡됨이 없는 웃음을 갖고 이해해주고 누군가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그 누군가는) 내가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6월말의 내 계획 위에 정의를 심어주었고, 때때로 매우 중요한 것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웃게 하려고 하지 않고 내게 심각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난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단지 그 고마움만을 생각하며 이탈리아어로 "그라찌에!"라고만 말할 뿐이에요.

구차한 논리로, 당신께 걱정과 근심을 안겨준 누군가에게 속옷 의류를 가져다주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충고가 아닌 따뜻한 위안과 격려의 편지를 보내줄 만큼 너무나 너그럽습니다.

죄의 고백? 난 후회할 줄을 모릅니다.

난 그저 5월에 있었던 것을 잊어야만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요.

웃음으로 인해서 난 내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어요.

알게 될 거예요. 잘될 거라고 생각해요. 투브네뜨가 작은 기적을 이루었다는 걸 알게 되면 모두가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어떤 장애물이나 변화도 없는데 난 그저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에게 키스를 보낸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가브리엘.

 

1969. 7. 16

질베르트,

무시무시한 검찰관(차장검사)이 판결에 불복하고 상소했습니다.

다시 모든 게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난 더 이상 어떠한 믿음도 없는데.

변호사 기씨는 너무 만족해서 날 얼싸안았습니다.

끔찍한 휴정 후에 난 연속되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면요법을 받으러 피레네 산맥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우편물은 계속될 것이고. 난 나로 하여금 이번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외부의 편지들을 받습니다.

난 당신에게 이미 많은 감사의 말을 했어요. 앞으로도 또 많이 해야 하는데 정신분석으로 마비된 난 이제 당신께 감사의 말조차도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당신은 내 언니였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군요. 그것 역시 의심받을 행동이므로.

어서 빨리 이런 우울증에서 벗어나 다른 여자들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이탈리아를 보세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파브리스 텔 동고 때문에 정당하게 싸우던 그 시대의 콤므 호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하늘과 나무의 모든 평온을, 세르지에와 잔 라본느와 힘 있는 위게뜨의 평화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당신 셋을 위한 운명이여.

당신 어머니께 난 아직 끄떡없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단지 내 걱정을 할까 두려워 편지를 쓸 수 없었다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다른 것과 함께 피레네의 공기를 보낸다고 전해주세요.

가브리엘

* 추신: 만약 고양이 때문에 청소부에게 열쇠를 맡겨놓지 않았다면 당신의 우편함 속에 비상키를 놓아둘게요. 아무도 모르게 말입니다.

 

1969. 7. 23

질베르트,

위게뜨가 구독했다면 당신이 '옵세르 바테르'지를 읽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지자들의 자세한 의견까지도 모두 그 안에 실려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에게 긴급 준비를 시킨 문교부 장관이었기 때문에 맥이 빠집니다.

난 불안 속에 살면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곧 들이닥칠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파트를 처분해야 할 것이고, 난 이곳저곳에 유숙하면 복지관에 아이들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기다리면서 실의에 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단지 드라마틱한 상황일 뿐입니다.

이곳에서조차도 난 끊임없이 날 감시해야 합니다. 더 이상 쓸 기력도 없고 우표를 살 수도 없어요. 부유한 사람들 속에서 난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게 수면요법을 해주는 이 휴식의 집엔 어떤 즐거움도 있지 않아요.

집주인은 매력적입니다. 그 여자는 사회 복지학과 교수이지요.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또 그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듯하고, 장관과 결혼하려고 무척 애씁니다.

난 언젠가 당신이 날 찾아올 때까지는 살아 있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난 지쳤습니다. 하염없이 많은 일들을 생각합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머리가 복잡해요.

떠나올 때 계단에서 울고 있는 프로타두를 놓고 온 게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R부인한테 말씀드려서, 당신이 세르비에가 고양이를 데리러 올 때까지만 맡아줄 것을 부탁드렸었지요.

당신이 날 원망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고양이에게 행복해 보이는 농가를 찾아주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만일 고양이가 당신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안겨준다면 그를 넓은 들판에 그냥 놓아주세요.

어찌되었든 북부 공관에 있는 것보다는 고양이가 덜 불행할 테니까요.

오랫동안 난 당신에게 어떤 형식으로든간에 은혜를 입고도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이 마음속의 온정 말고는 아무것도.

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지고 또 미치게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이곳에서 난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노력해야 하겠지요. 내가 이 북부 공관을 떠난다 할지라도 당신의 따뜻한 손을 놓을 수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당신은 두 팔 안에 한 부랑아를 안고 있어요.

당신을 위해선 안 된 일이에요. 당신 역시 새끼를 보살피는 어미 고양이가 되었어요.

여기엔 나무들과 농가와 수많은 정신병자들이 있어요.

(물론 그들이 나보다는 덜 미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실질적인 어려움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정신분석적 문제들만을 안고 있답니다.

만약 시간이 난다면 세르비에에게 내가 편지 기다리고 있으니 몇 자 적어 보내라고 전해주세요.

만약 당신이 재게 답장하고 싶다면 우표도 붙여주세요.

난 지금 완전 파산이에요. 곧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해야 할 형편이에요.

말이 났으니 말인데, '옵세르 바테르'속의 구조 요청을 생각해 보세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한 소녀가 전축 위에다 모짜르트 곡을 걸어놓았습니다.

더 이상 모짜르트로부터 단 한 시간도 뺏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체류를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당신 어머니께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전해줘요.

위게뜨나 잔느에게도. 난 지난 밤에 진초록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무척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걸 잊어버렸었지요.

누가 내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하는가.

당신의 가브리엘.

 

1969. 8. 27

질베르트,

당신께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날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그것은 불안으로 마비된 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불과 이틀 전부터 난 겨우 쓸 수 있게 되었고, 오늘은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내가 이곳 라 르쿠브랑스에 온 후 어느 누구에게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면 당신의 원망이 좀 덜하진 않을까요.

그 이유는 우선 내가 펜을 잡으려고 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덮쳐왔고,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마르세유로 곧 떠날 거라고 매일매일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어떤 순간에 날 찾아와줄 것을 사람들에게 요청할 뻔했습니다.

결국 난 스스로의 몸을 사려야 했지요.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일 모레엔 기필코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난 란느메잔의 병원에서 약간의 수면요법을 받았어요. 그 곳 병원 정신과 의사가 날 검진해본 결과 완전히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소송 이후의 정신적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아요.

그러면 아마 일요일엔 마르세유에 있을 것입니다. 내 숙모가 목요일에 마르세유로 나를 보러 올 것입니다. 그다음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어요. 다만 15일 이전에는 어떤 호출도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날 데리러 오는 숙명적인 그날, 당신이 한가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난 당신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부탁했었지만, 당신에게 짐이 되기도 싫고 배은망덕자로 여겨지는 것도 싫어요.

지금 현재 내 안의 모든 것은 정지되었습니다. 타인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깊은 곳에는 당신들을 사랑하는(당신과 당신 어머니) 그러나 더 이상 그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또 다른 가브리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프로타두를 돌봐준 것에 감사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잔이나 위게뜨에게 편지 써서, 내가 그들에게 나의 우정을 보낸다고 알려줬으면 좋겠군요.

당신에게 여전히 해야 할 많은 얘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두서없는 얘기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군요.

당신을 다시 본다는 기쁨, 올해엔 마르세유에 있을 거라는 희망, 예전의 나로 되돌아간다는 희망, 내 명석함과 지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입니다. 난 내 관심을 한 곳에 고정시켜 둘 수가 없어요. 내 맘을 진정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혼란한 마음을 묶어두려고 애쓸 따름입니다.

이 깊고 어두운 터널의 끝에 이르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할 뿐이예요.

그러나 난 당신들이 와서 보면 알겠지만 결코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넝마를 걸친 나약한 인간 가브리엘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난 당신들이 트레몬지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그리고 나폴레옹 법전이 우리에게 안겨준 걱정들을 모두 잊어버리세요.

난 당신을(너무도 굳건한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키스를 보내며, 또한 당신 어머니에게도.

그녀는 우리가 투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결국 전쟁에서도 이길 것이라고 말해줘요.

난 그녀에게 감사를 보내며, 또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고 전해줘요.

당신에게 드립니다.

가브리엘.

 

1969. 5. 16

질베르트,

당신에게서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또다시 당신께 펜을 들었습니다.

생 앙뜨완느가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표는 조금 전 내가 받은 두 번째 소포입니다. (물론 내가 부탁한 것이지만) 난 내게 그것을 보내준 그에게 감사드립니다.

내 생활은 너무나 안정되었지요. 이틀 전부터 내 방에 혼자 있습니다. 고독을 즐기면서 어제부터 난 조금 활력을 되찾았고, 나만의 유일한 은신처를 만들었지요.

지금은 내 소포, 깨끗한 옷, 벽 위엔 뤽의 그림이 있고, 이 공간만은 내 것입니다.

난 오랫동안 머물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사람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세요.

질베르트 당신도(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 걱정 너무 하지 마세요.

내 경험으로 볼 때, 안에 있는 사람보다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더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유머와 결단력이 내가 침체의 길을 방황하게 되는 걸 막아줄 것입니다.

나의 갑작스런 실종이 당신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고, 순수하고 맑은 상태를 닮아가려고(여기선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배려와 세심함을 갖고 내 작은 삶을 살아가려고, 우울함을 없애려고 애쓰고 있다고 전해줘요.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처럼 구류된 여인들이 창문을 통해서 내가 쉽게 잊을 수 없는 말을 던지곤 할 때면 난 오히려 들을 수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난 천천히, 참을성 있게 행동하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그것이 내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 것입니다.

조금은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는 삶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처음의 환각을 잊어버리고 껍데기에서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붉은 색을 띈 작은 내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작년에 우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생 루이로 내려가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해 봅시다.

지금 난 너무 겁에 질려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게 너무 소중합니다. 내가 감옥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감옥에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있기 때문에 감히 당신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필요가 법을 만들 듯이) 그러나 후엔, 내가 올 때 가져온 낡은 가방을 갖고 다시 군중 속이나 물가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난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지내는 법과, 책임의 무게에 눌려 모든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에 더 이상 책임을 갖지 않는 법도 배웠어요.

중용을 지키며 살 수 없으므로.

여기서 나가고자 하는 충동은 너무 위험합니다.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난 아무 목적도, 돈도 없이 그저 정처 없이 걷고만 싶을 뿐입니다.

나를 잃어버리고, 우리를 보호해주는 이 세상으로부터 억지로 혼자 외롭게 떼어놓아질 그날이 올까 두렵기만 합니다.

난 휴식(수도원) 속에 혼자 있습니다.

'외부 세계'는 향수 속에서 점점 더 커져가는 고통스런 추억이기 때문에 아픔을 갖지 않기 위해선 마음 속에서 그 추억을 몰아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늘 ''만을 생각하게 되는가 봅니다.

자신을 위해서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당신한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나도 잘 모르지만) 완벽한 부조리입니다.

또한 이 편지를 부쳐야만 된다는 것도 역시 부조리이지만.

이런 내 경험이 성공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도록 솟아나는 회피와 도망을 누르려 애쓸 것입니다.

그러나 이내 욕망은 커져만 갈 뿐입니다.

어쩌면 이곳에 있는 걸 감사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내게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이곳을 말입니다.

모든 이에게 내 우정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학교에서의 커피는 맛이 좋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내가 이곳에 있는 한 진정한 우정은 생각 속의 충실함으로만 채워질 뿐이라고 전해주세요.

당신에게 내 사랑을 전하며.

가브리엘.

 

1969. 5. 19

질베르트,

난 오늘 당신의 다섯 번째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로서는 세 번째이지만 약 일주일 걸려서야 내게 왔습니다.

난 당신에게 자주 편지를 썼지만 내 생각에 모두 다 도착한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러나 실재와는 다르게, 난 우리가 침묵(벙어리들)의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든 게 잠시 미루어질 뿐이지요. 본질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소식은 거의 없지만, 때때로 난 물질적인 문제를 고민합니다. 조엘 문제도.

그리고 당신이 생 앙뜨완느에 있는지, 또 우리 부모님을 안심시켜줄 수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내겐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의 편지는 나에게 '바깥 세상'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맡게 해준답니다.

세상에 나의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날 아침 떠나올 때처럼 때론 저주하기도 하고 때론 사랑했던 나의 학교를, 점점 더 인연을 맺게 되는 선생님들도 아울러 상기시켜주곤 합니다.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내 안부를 전해주세요.

소포를 갖다 준 것이 바로 당신이란 걸 난 잘 알고 있지요.

당신에게 슬픈 산책이었겠지만.

익숙해지지 않으면 이별들은 소름 끼치는 것일 뿐입니다.

당신이 내게 보내준 물건들은 내가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난 벽 위에 그림을 붙이고 아름다운 꿈을 꿉니다.

또한 뜨개질도 합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두 가지(날 아프게 하는 과거, 또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난 무섭게도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강하게 살아가야겠지요.

만약 고통스런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가 없었다면 보다 평온한 삶이 될 텐데.

난 모든 걸 잊으려고 함과 동시에, 내가 써서는 안 되는 것과 써야 되는 것을 구별할 줄도, 외부세계와의 관계도 간직할 줄 압니다.

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형벌을 치르고, 무엇인가를 위하여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이곳에 있고, 나중에 밖으로 나가서 자유를 발견하게 될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어쨌든 그들은 그 무언가를 기다려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으니까.

난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악몽에서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악몽으로 다시 떨어지기 위한 것일 뿐이지요.

이유 없이 이곳에 왔으므로 똑같은 방식으로 이곳을 나갈 수 있겠지요.

난 이 고통을 잊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모든 것이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엔 늘 실망(인내와 동반하는)만이 있습니다.

난 더 이상 생 앙뜨완느나 그외 다른 곳으로 돌아갈 거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날 너무 두렵게 만들지요.

아마도 이 마음의 병은 고쳐야 될 것 같아요. 내가 나갈 때쯤이면 당신도 너무나 지쳐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무척 힘이 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내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군요.

물론 그 책임이 다른 곳에 있을지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난 당신에게 근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는 보다 즐거운 소식을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돌아가서 '박사'소리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나 지금은 다시 올라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깊은 빈 공간 속에 빠져 있습니다.

회복하기 위해선 욕망(동기)을 가져야 하겠지요.

이제 내겐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더럽혀지고 상처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사랑을 보내며.

가브리엘.

 

1969. 5. 30

질베르트,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을 돌봐주고, 학교에 가서 내가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내 남편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난 지금 한계에 부딪혀 있어요.

명확함과 사물의 분별력과 존재들이 내게 아무 소용 없다는 것 때문에 우울해요.

난 반복해서 내가 죄가 있다고, 결국 진짜 죄가 있고 자신의 안락한 집 정원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란 서류들을 받고 있습니다.

난 결코 웃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쓸데없이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사람들은 매우 낡고, 비난할 만한 것이 아닌 일로 날 이곳에 가두었습니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하려는 노력도 이젠 그만두어야겠지요. 내 머릿속엔 가장 암울한 생각들이 맴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올바르게 생각하고 이치를 따질 수조차 없습니다.

아이들이 신경 쓰입니다.

난 아이들이 나만을 생각할까 겁이 나곤 하지요.

아이들은 언제나 늘 그곳에 있는 나를 통해서 슬픔이나 막막함까지 알려고 합니다.

그들을 돌봐줘요. 내가 당신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나름대로의 근심과 일이 있을 텐데.

다시 한번 아이들을 부탁드립니다.

내가 가엾은 그 애들에게 이전처럼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군요.

당신을 존경합니다. 너무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날 도와줘요. 난 지쳤어요.

아이들이 걱정할까 두렵기만 하군요. 난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날 도와줘요. 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어요. 그러나 난 조엘과 발레리가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지금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불행하니까요.

그들에겐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단지 그들에게만.

당신에게 들려주는 변호사의 희망 따위는 믿지 마세요.

그건 그에게 잘못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공격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날 더 붙잡아두기 위해 내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내가 속했었던 지난 삶을 잊어버리고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허구적이고 보잘것없는 세계 속에서 잘 살고 있어요. 그러나 난 그럴 수가 없답니다. 난 내가 할 수 없는 걸 시도하고 싶어요.

질베르트! 이해하고 있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쓰레기 봉지 속에서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는 편이 더 낫다고 말 좀 해줘요.

죽음이 사고보다 덜 대단한 것인지 자문해 보지만 불행하게도 이치를 따질 수 없게 되어버렸군요.

이젠 다 틀렸어요.

당신을 떠나면서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보잘것없이 나약했던 여자와 생 앙뜨완느는 이미 죽었습니다.

 

6. 미쉘 노그에게(이혼한 남편)

 

1969. 5. 16

미쉘!

당신의 휴가 마지막 주를 잘 보냈으면 좋겠군요.

당신이 여행 간 동안이었던 지난달 25일부터, 이곳 시골에서 머무르고 있어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당신에게 그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었지요.

그러나 지금 편지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신이 조엘을 보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언제 당신이 내 편지를 받게 될지 알 수 없군요.

소포들은 어디선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먼지에 쌓여 가겠지요.

실질적으로 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답니다.

그러나 내 걱정은 말아요. 요구한 꾸러미들을 못 받는다 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까요.

그것보다는 이곳에서의 내 입장을 전혀 증명할 수 없다는 게 더 불행한 일이지요.

우리 아버지의 변호사가 당신에게 전화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군요.

만약 당신이 무언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레이몬드씨에게 직접 전화해 보세요.

그리고 형편이 괜찮으면 내게 우편 엽서들을 보내주세요. 이 삭막한 독방을 좀 아름답게 꾸며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이틀 전부터 혼자 있게 되었어요. 내 정신상태는 이전에 비해서 무척 좋은 상태입니다.

내 자신을 정리하려고, 아울러 여러 가지 소일거리를 찾아내서 작업도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참을성없는 인간은 재갈을 물고 있는 법을 배워야 하잖아요.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이렇게 두서없이 편지를 씁니다.

조엘은 부활절 방학 내내 한 곳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난 그 애에게 편지를 띄웠지만 그 애가 받았는지는 알 수 없군요.

만일 시간이 허락하면 그 애한테 내 안부도 전해주고, 안심시켜줘요.

그러면 조엘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이해할 거예요.

난 말레리에게도 편지를 보냈지요. 그러나 내가 그 애에게, 비오는 날과 맑은 날에 대해서 했던 말들을 전부 이해하고 기억해줄런지 알 수 없어요.

우리의 편지(나와 발레리)들이 서로 교류되지 않고 있다는 걸 그 애가 몰랐으면 좋겠어요.

참 친절하게도 여기 있는 분들이 내 편지 위에 '검열'이란 도장을 찍지 않고 발송하나 봐요. 물론 사브와의 여자들이 소포들은 열어보겠지만 말이에요.

그녀에게 편지를 써줘요. 10일 혹은 11일에 그녀가 돌아오는데 만약 내가 나갈 수 없다면(언제 나갈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역에 데리러 가야 할 거예요. 당신이 6월 초에 여름학교로 전화해서 도착 시간을 알아봐 주세요.

아마 R부인이 조엘과 함께 그 애를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또한 당신이 R부인에게 여섯 달치 방세를 지불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그리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고, 떠나올 때 난 그녀에게 단지 100프랑만 남겨주고 왔을 뿐이거든요.

잠시 중단했었어요. 방금 내 첫번째 소포들이 도착했거든요.

의복, 스코치, 약간의 속옷,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 아아, 인생이란 너무도 아름답군요.

몇 달 전부터 내게 무척 필요했던 것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날 지치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더 꺼져만 가는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한 송이 꽃, 작은 웃음, 그리고 이따금씩의 고요 속에서 솟아나는 이런 작은 기쁨들을 결코 빼앗아가지는 못합니다.

예전에 우리는 고통과 기쁨을 함께 맛보았었지요.

여전히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날 원망하지는 말아주세요.

걱정하지도 말아요.

조엘을 돌보고, 발레리에게 엽서를 띄워주세요. 소포는 제외하구요.

언젠가 우리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정말로 이번엔.

난 당신과 함께 그릴롱에서 술 한잔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움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그때가 찾아와 준다면 당신을 위해 난 원피스를 입을 거야. 미라보 거리로 히피를 데리고 나오면 안 됩니다.

비즈(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으로 폭풍우와 싸워 이기는 바람)와 같은 바람이 거리를 휩쓸며 몰려오는 것과 같을 뿐이니까요.

가브리엘.

 

1969. 5. 28

미쉘,

기 변호사가 그러는데 전화했었다구요?

당신이 조엘을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신한테 그 애를 부탁한 게 정말 잘했다고 생각되요. 고마워요.

난 그 애 걱정을 무척 했었지요. 그 내가 날 데리러 온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브와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는 발레리는 만족감에 취해 돌아오겠지요.

최대한으로 이 악물고 기운을 차려야겠습니다. 모든 게 잘될 거예요.

이젠 더 이상 체념의 바닥을 헤매다니지는 않을 거예요. 날 버틸 수 없게 만드는 내 주변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머릿속은 온통 혼란뿐이에요.

물질적으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무척 견디기가 어렵답니다.

그러나 내 주변의 다른 여자들은 즐거운 듯해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곳 생활에 만족하기까지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장 큰 죄를 오히려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합니다.

난 무례한 것과 정열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함께 그릴롱에서 마셨던 한 잔의 술은 내게 점점 더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지는군요.

내 강한 의지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내게 과거만을 생각하게 하므로 더 이상 살아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날 점점 더 깊은 괴로움의 감옥 속으로, 불안의 감옥 안으로 집어넣으려 하기 때문에 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반문해 봅니다.

이해못할 부조리의 벽들에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내버려두기도 하고, 사직한 후부터 더욱 명확하고 분별 있는 예전의 상태로 남아 있기를 거부합니다.

난 더 이상 이곳의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살 수가 없어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차츰 타락되어 갑니다. 유일한 보호자들이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줄 뿐입니다. 이젠 밝은 내일이 있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군요.

더 이상 아무것도 믿고 싶지가 않아요. 만일 내가 더 지치고 힘들게 되어 이전의 웃음을 찾지 못한다면, 제발 조엘과 발레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우리가 서로 편지로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마세요. 누구나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으니까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릿속의 모든 것이 혼돈 상태이므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보살펴주리라 믿습니다.

아마 당신은 내가 그들을 돌볼 수 없다는 걸 얼마나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난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은 예전에 비하면 너무 많이 변했으니까요.

내가 당신에게 장장 두 페이지에 걸쳐 횡설수설한 말을 전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오로지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한번 당신의 친절함에 감사하며.

가브리엘.

 

1969. 6월 어느 날

미쉘,

520일 자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편지 속에 함께 온 발레리의 카드는 나를 너무도 놀라게 했습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매주 편지 썼음에도, 그림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나 역시 당신과 동일한 생각(발레리가 무척 약하다고)이기에 그 애들을 돌보고 있는 내 이웃이자 동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의 글 속에 씌여 있는 모든 것은 너무도 진실한 것 같아요.

조엘과 발레리를 늘 걱정하고 있는 나였기에 당신이 쓴 글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예요.

그저께가 되어서야 난 당신이 띄워보낸 소식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30일 전 것과 15일 전 것의 편지들이 함께 도착하는 등 모든 것이 뒤죽박죽입니다. 더 이상 쓸 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그렇지만 내 존재를 밝히는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당신의 카드가 날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이곳에 온지 처음으로 기쁨으로 인해 눈물을 와락 터뜨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에요.

특히 지금 발레리가 돌아왔거나, 아니면 곧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난 애들 걱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애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만일 내 친구들이 당신에게 무례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당신에 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란 걸 알아줘야 해요. 지금 그들은 당신을 믿고, 더 이상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이해시키기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그들에게 당신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이것은 서로가 믿고 존경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중에 찾아오는, 폭풍 뒤에 오는 균형의 공간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아이들 중 누군가는 벌써 당신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엘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어쩜 그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엘은 나를 후송하러 온 사람들을 보았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강해질 수 있을까. 난 그 애가 쓰러질까 두렵기만 합니다.

난 당신이 발레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답니다. 그러나 당신을 믿습니다.

크루에에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안정된 편지들을 나에게 보냈더군요.

그것은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마치 이 암흑의 해를 까맣게 잊은 것 같습니다.

난 당신 말대로 너무나 행복한 당신을 상상해 봅니다.

매순간, 더 이상 내가 그들을 돌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미쉘, 당신은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강하게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는군요.

난 생 트로페를 생각합니다.

모두 두 번씩 읽어야 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이지만 참고 쓰려고 애씁니다.

또한 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당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은 이곳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려고, 힘들지만 계속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당신에게 이것밖에는 그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으므로.

날 보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이곳에 우연한 사고로 들어와 있다고 믿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더 이상 읽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것은 진짜 사고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차라리 병원이 더 좋습니다.

누군가를 미치게 만드는 부조리, 보상 받을 수 없는 사건들에 너무 세차게 부딪힌 나머지, 내가 사물의 관념들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난 돌이킬 수 없는 생의 존재로 인해 너무나 두려워집니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드리고 싶군요.

가브리엘.

 

1969. 7. 마지막 주 목요일

미쉘!

피레네 산맥으로 휴양하러 떠납니다. 거기서는 수면요법을 좀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830일 오후 630분에 드디어 내 귀여운 딸 조엘이 돌아옵니다.

그 애를 마중 나가서 팔레트로 데려와야 합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9월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이 그 아이를 맞으러 간다면 조엘은 무척 즐거워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는 부모들 중 어느 한쪽만을 소유했다고 믿었으니까요.

난 익명의(날 지지하는 좌파, 혹은 날 비난하는 우파와 같은) 편지들을 여러 통 받았습니다.

그들도 역시 모든 게 끝이라고 믿는 듯했어요. 그들의 분노가 날 해칠 것 같아 두려웠었는데 끝이라니 다행이지요.

난 엑스와, 어떤 일이 있어도 날 무너뜨리려 하는 언론의 한 동조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R씨 가족들도 이젠 이 일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제는 사회의 대표자들이 날 비난하기 시작해요.

유일한 전술은 그 전략이 생길 때까지 이 일을 밀고 나가는 것뿐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전술이란 정말이지 없습니다.

날 도우려 하는 이들이 친 덫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좌익의 이념들, 우익의 이념들, 정신분석학, 철학, 이혼 같은 것들에 말이에요.

특히나 당신이 다시 돌아가면 어느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되요.

우리를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아이들을 잘 돌보고,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좋은 도덕심'을 가졌다고 말하러 올지도 모르지요.

날 존경한다는 것을 보이러 올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아버지가 변호사를 보내겠지요.

내 이야기가 세상을 생각하게 만들까요? 세상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겠지요. 하지만 이야기를 너무 신화적으로 만들지 말고 축소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침착하게 있어요.

비즈.

가브리엘.

* 추신: 편히 쉬세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기운이 필요할 테니까. 발레리에게 전해줘요. 내가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1969. 8. 1

미쉘,

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마치 넓은 바다에 병 하나를 던지는 막막한 맘으로 글을 씁니다.

곧 당신을 볼 수 있을 것인지도, 아니면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채로 씁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날 너무도 불안하게 만들어 도무지 안정을 찾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만일 내가 병원에 가야 한다면, 마르세유로 가는 게 더 좋아질 텐데.

당신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해 보지만 그것은 너무나 복잡해서.

재판에서 법의 판결에 불복하는 사람이 검사이거나, 보다 더 웟쪽(상층)에서 온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를 새로 기용했어요.

그저 하늘에 기도하면서 내버려둘 수밖에는.

그러나 모든 상황이 나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불리합니다.

설사 내가 문교부로부터 빠져나온다 해도(사면받아도 문제지만) 세금과 재판비용, 방값 등으로 인해, 내겐 단지 6개월을 먹고 살 만큼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보메트에서의 내 행적을 들먹여 내게서 사회보장제도의 권리까지 박탈하고, 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난 당신께 이 모든 걸 이해시키려 애쓰지만 너무나 복잡하기만 하군요.

난 그저 당신에게 이것만을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너무나 걱정된다고.

재판이 거짓말처럼 되어버린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마 모든 사람이 그걸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난 일을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내가 들은 것조차도, 내가 읽은 것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난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상처받았어요.

아이들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길 바랄 뿐이에요.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당신은 아이들에게 옷과 R 부인댁에 있는 열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원 열쇠를 그곳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로베르는 내게 아이들의 사진(사진 속의 발레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을 보내왔어요. 난 그에게 편지 쓰려 했지만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절망적입니다. 날씨가 좋은 것도, 태양이 존재한다는 것도 어떻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무시무시한 보메트에 온 이후로 집안엔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요.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졌어요.

당신에게 아이들을 맡깁니다. 이 모든 내용이 당신을 지치게 하지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게도 하지 말았으면 해요. 그러나 그들에겐 지금 당신이 필요하고, 난 더 이상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조엘 편지에다 우편 봉투가 필요하다고, 만약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 보내주세요. 여기선 택시를 타고 타르부까지 가야만 살 수가 있어요. 더군다나 내겐 돈도 기력도 없구요.

그러나 마르세유로 돌아갈 힘은 생길 겁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구조 요청을 할 마지막 힘이.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편지 쓰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를겁니다.

난 당신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나 그럴 수가 없군요.

사방에서 오는 상반된 증거들로 인해 난 지쳐 쓰러졌어요.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어요.

미쉘, 당신에게 절망적인 내 사랑을 보내며.

가브리엘.

 

1969. 8. 29

미쉘!

오랫동안 당신에게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난 무척 아팠으면서도 펜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떨쳐버릴 수가 없었답니다.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있는 동안 난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오늘, 모든 생각들이 혼동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펜을 가까스로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도저히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거의 앙상한 시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상소 때까지 가능한 한 기운을 차리려고 합니다. (우선은 날 위해, 다음은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결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지만.

발레리로 인해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 애가 내게 아주 아름다운 편지를 써보냈거든요. 난 팔레트에서 조엘과 그 애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에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으니, 그날 나를 데리러 당신이 직접 와줬으면 좋겠는데.

4일 목요일에 숙모님이 마르세유에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물론 난 그전에 있을 테지만, 며칠 동안은 고독 속에서 지내게 되겠지요.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 무한히 노력했었어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돌아갈 때 우리가 다투지 말았으면 합니다. 재판이 있을 때까지 불안과 우울증을 견뎌낼 인내심을 갖도록 날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의사들은 1 년 전부터 내게 있었던 모든 것을 참작하고는, 내가 완전히 정상이라고 진단을 내렸죠.

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위해 썼던 편지(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고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 것 같아요.)에 대해 뭐라 감사의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난 다시 한번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악몽이 빨리 끝나기를 기원하고, 예전처럼 우리 네 식구가 크고 작은 일상의 문제들을 안고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또 하나, 만일 내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드려야겠군요. 미안해요.

지금까지 난 매일매일 살아나려고, 인내심을 가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되겠지요. 7월 이후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악화되고 있을 뿐. 물론 다른 상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86일 자 당신의 편지를 다시 읽어봅니다.

당신이 말했던 모든 것은 너무나도 타당하고 고무적인 것들이지요.

문교부에 관여했던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육체적인 손상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정신적인, 지적인 능력을 너무도 많이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동안은 이곳에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난 아이들이 너무 쇼크받지 않도록, 좋은 모습을 갖추려고 특히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흔쾌히 날 안아줄 것 같지 않아서 무척 불안해요. 너무 힘이 듭니다. 불길한 마음으로 산책을 합니다. 다른 여인들의 농담도 날 쾌활하게 만들어 주지 못해요.

그녀들은 나보다 훨씬 건강해 보입니다. 물론 그녀들이 나만큼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내게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너무도 자주 당신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난, 애써 노력하며 자신에게 자제할 것을 요구하곤 해요.

내게 환상적인 편지를 써 보낸 C 부인에게도 글을 써야겠습니다.

곧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모든 게 진정되길 바라고 아울러 날 믿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 사랑을 띄워 보냅니다.

가브리엘.

 

 

3장 가브리엘을 위하여

 

* 크리스티앙의 고백 36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보내는 지지와 격려가 우리를 대하는 학생들 태도에서 역력히 느껴졌다. 숭배자와 연인 사이가 된 나를 보는 학생들의 눈은 지극한 선망과 동경을 담고는 있되 악의라고는 거의 없어 보였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가브리엘의 노력도 그들이 마음속으로 화이팅을 보내게 만드는 구실을 했다. 그녀는 수업 도중에 특별히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나는 어쨌거나 학교에선 그의 제자였던 것이다.

나는 1962년 처음으로 가브리엘 뤼씨에를 보았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구엑스 앙 프로방스 대학의 블롱델(조그마한 계단식 강의실) 강의실의 첫줄 오른쪽에 살며시 앉아 있었다. 지금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녀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때 그녀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때 나는 외국에서 살다가 막 이 대학에 부임해서 폴 엘뤼아르의 작품 세계에 대한 강의를 시도했었다. 강의를 시작하며 나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는데, 그때 내 시선은 무척이나 빨리 이 젊은 여자에게 고정되었다.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얼굴과 날카로운 옆 모습, 짧은 머리, 그리고 고양이 또는 양을 연상시키는, 야릇하면서도 약간은 버릇없이 보이는 그런 인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학생들에게 엘뤼아르 자신이 낭독하는 몇 편의 시를 들어보라고 권했었다. 대학에 하나밖에 없던 전축을 사용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전축을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만약 내가 원한다면 전축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기 위해 그녀가 나를 찾아왔었다. 약속한 날 그녀는 조그마한 휴대용 전축뿐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것들과는 다른 시들도 함께 가지고 왔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7

가브리엘은 돌아서서 교실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그녀 앞으로 걸어나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비겁하게도 그녀의 미래를 담보로 나와의 결별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의 조교 자리와 가브리엘의 사생활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해서 아버지는 자식을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세간에 팔아넘길 생각까지 하는 걸까. 나는 차라리 고아가 되길 바랄 만큼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이 첫 만남이 엘뤼아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특이하게 생각된다.

1969922일의 기자 회견에서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죠르쥬 퐁피두 대통령), 그녀가 자살한 이후 '가브리엘 뤼씨에 사건'이라고 명명된 이 사실의 성급한 판결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며 인용한 텍스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기자 회견의 질문자였던 장 미쉘 롸이에는 어떤 조건 속에서, 대통령에게 자연적이고 동시에 의도적이었던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되었던가를 나에게 자세히 말해주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텍스트이며 아주 멋진 시였다. 이것은 아마 엘뤼아르 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시는 매우 감동적이며, 우리들의 페부를 깊숙이 찌르는 시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단지 그 시의 일부만을 몇 가지 수사와 함께 인용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여기 정확하게 시 전체를 다시 적어본다.

알고 싶은 자는 알라지.

알고 싶은 자는 알라.

나의 사무치는 회한은

길 위에

쓰러져 있었던 가엾은 소녀.

옷은 찢어지고

미아의 눈빛으로

영광의 빛을 잃어 일그러진 모습을 한

죽어서 사랑을 받는

저 사자들을 닮은

어쩔 수 없는 희생자였다.

쾌락의 대상이 되어

악마들의 더러운 침을

온몸에 둘러쓴 소녀.

오월의 첫 번째 날 새벽처럼

참으로 귀여운 짐승의 모습을 한

거리의 여자.

몸이 더럽혀져도 더럽혀진 것을

알지 못하던

그러나 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덫에 걸려버린 짐승.

내 어머니, 그 어떤 여인이라도

애지중지하며 귀여워할 모습

이 땅 위에 자기가 겪은 불행의

그 상징적인 모습을.

엘뤼아르는 시 첫머리에 부제로 '죄인들을 징벌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시를 썼지만, 사람들은 소녀들을 학대하였으며, 심지어는 삭발시키기도 하였다.'라고 썼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몇 줄의 시구절에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후 독일군들에게 호의를 보인 여자들을 징벌하기 위해 프랑스가 소녀들의 머리를 삭발시키고 나체로 거리를 산보하게 만들었던 광경에 대한 혐오스런 감정을 표현해 놓았다.

처음 이 시를 읽게 되면 인용의 적절함을 믿게 만드는 동정과 반발의 뒤섞인 감정을 환기시켜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브리엘은 '불행한 여자''합리적 희생자'도 아니었고,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바람기 많은 소녀'는 더욱더 아니었다.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긴 해도, 거기에는 고려해야 할 충격적인 사실, 즉 어떤 이유로 그러한 비교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사실이 있다.

이것은 내가 언젠가 만났던 장 라쿠튀르의 의견이었다. 그는 이 시에 대한 모호한 인용의 의미에 울분을 터뜨렸다. 분명히 그의 지적은 옳았다. 그럼에도 그 시는 시의 의미와 울림 저편에 그녀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일깨우는 동시에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즉 매우 감동적인 어떤 것을 발견하게 만들어준다. 그러한 사실은 그녀가 실제로 종종 아이들처럼 멍한 시선을 하고 있었으며,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는 매우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사실 뒤라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나의 사랑 히로시마(mom amour hiroshima)'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조그마한 삭발의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이상한 시적 논리이긴 하지만, 더 깊고도 진실된 어떤 것이 거기에는 존재하는데.

 

* 크리스티앙의 고백 38

가브리엘의 아파트, 오렌지 빛 커튼 사이로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거부하지 않는 빛은 따뜻하다. 냉대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오직 그곳만이 따뜻한 성채처럼 느껴졌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려서 계단을 올라갔다. 안색이 창백한 가브리엘도 계단을 오르기가 힘겨운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팔에 의지하며 걸었다. 지금은 비틀거리고 있는 사실마저도 행복하지만 했다. 서로가 서로를 붙들어줌으로써 함께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뒤이어 며칠 후, 나는 가브리엘과 몇 차례의 대화를 가졌었다. 나는 그녀의 학문적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 두 사람에게 서로 공통된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우리 두 사람이 몇 년 전에 모르코에 거주했던 것과 그 당시에 약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소위 '481'이라고 불리웠던 사건에 연루되었던 것이었다.

'481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알제리 독립의 승인을 전제로 하여 프랑스 정부와 알제리 임시정부 사이에 대화를 열 것을 요구하는 선언서에 사인하고, 그것을 공개한 모르코 거주 481명의 프랑스인에 관한 문제를 말한다. 그것은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전쟁이 마그레브(Maghreb: 모르코, 튀니지, 알제리를 포함하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말함) 전 지역을 요동시키고, 알제리 독립에 관한 생각이 여전히 수면 위로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던, '121 사건' 훨씬 이전에 일어났던 것이었다.

따라서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그녀의 입장은 몇몇 곳에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는 했는데, 그것은 특히 프랑스 대사관과 전통적인 식민주의자 가문에서 그러했다. 모든 종류의 역습과 보복이 뒤따랐는데, 그것은 특히 서명자들 가운데 저명한 인사들에 대해 가장 먼저 가해졌다.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물레이 압달라 드 카사블랑카(Moulay Abdallah de Casablanca)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가브리엘은 여러 가지 난처한 일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르치고 있던 그 학교는 모르코 당국의 관할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었다. 반대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결국 내가 일하던 곳을 떠나야 했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가장 나쁜 조건으로 프랑스에 소환되었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가브리엘이 나에게 이 사건을 상기시켰을 때, 나는 그녀의 시선 속에서 어떤 강한 연대감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건은 나의 인생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으며, 나의 삶에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가브리엘이 나의 정신적 동요와 똑같은 '분노'의 위기 속에서 기이하리만큼 친근감과 형제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다.

나는 곧장 그녀를 결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아는 '좌파'의 한 사람으로 설정했었다. 그녀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몇몇 이름들은, 그녀가 그 운동의 가장 선동적인 기자들과 확고한 주도적 인물들을 친구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나는 그녀를 더이상 학생으로서가 아닌 동료로 보게 되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결코 쉴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과정이 어려운' 학교로 정평이 나 있는 이 물레이 압달라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젊었었다. 연약한 몸과 작고 날카로운 얼굴을 가진 그녀가, 상급 학년을 꽉 채우고 있었을 건장한 모르코 생도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엔지니어였던 그녀의 남편이 카사블랑카로 발령이 났고, 그때 그곳에는 교사가 부족했기에 그녀의 대학 공부가 부족하긴 했지만, 교사 자리를 확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예비 과정을 이수했었어야 했다) 내가 그녀와 같은 도시에 일 년 동안 살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를 그 도시의 길에서나 친구의 집, 그 도시 어디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가 그 서명자들이 모였던 회의와 토론중에 아마 서로 만난 일이 있었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어떠한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간단히 말해, 분명 우리가 대화를 나누곤 했던 복도에 있었다. 과거, 즉 우리가 함께, 그러나 각각 기억해낸, 그러한 과거는 우리가 결코 만나지 못했던 통과 지점에 불과했다. 그후 우리는 사실상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그 첫 만남 이후 눈에 띌 만큼의 어떠한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가브리엘은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으며(내가 부과했던 베르렌 'Verlaine'에 대한 과제에 멋진 리포트를 제출했었다) 다른 여학생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었다.

그녀는 시험도 어려움 없이 통과하였으며, 다른 교수들과도 무척이나 바빴고, 그리고, 일시적으로 대학을 떠났고, 어쨌든 나에게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었다.

이쯤에서 나는 가브리엘 뤼씨에가 누구인지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는 결혼한 이름 가브리엘 노그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녀의 미혼 때의 이름은 그녀가 자살한 이래로 마치 다른 사람을 부르기 위해 유보된 것처럼 보였다. 뤼씨에라는 이름은 그녀의 태생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나는 잠시 그녀의 존재에 대한 여러 자료에 눈을 돌려 본다.

그녀는 미국계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사회, 문화적 행위 양식의 차이로 인한 '유전적인 모순'에서 오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양친에게서는 그 어떤 결론도 끌어낼 수 없다. 우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의 우연한 만남(그녀의 엄마는 매우 음악적인 여자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정열적인 상징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그런 사실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귀에 무슨 세찬 폭풍우처럼 들렸던 기자들의 모든 소동들,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며 떠나지 않던 고통스러운 이미지들 때문이었다. 마치 속세를 떠나 있는 것처럼 보이던 아주 조그마한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그녀 자신이 나에게 그런 것들을 모두 말해 주었었다.

그녀의 가족은 몰몬교의 고장인 유타 주 출신이고, 조지 스미스라고 불리웠던 가브리엘의 할아버지는 솔트래이크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로강이라는 곳에서 말 사육자로 일하고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사막 상태'의 거대한 고원 지대에서 자신의 가축 가운데 서 있는 이 말 사육자를 생각했다.

나의 상상은 단지 꿈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할머니는 영국의 파르네즈(유타 주 몰몬교) 피가 섞인 파른즈 출신이며, 매우 늙긴 했지만 아직 아이다호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그녀에게 정기적으로 영어로 쓴 편지를 보낸 것 같다. (물론 나는 가브리엘이 영어로 말하는 것을 결코 들어본 일이 없지만, 분명히 그녀는 스페인어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영어를 알고 있었다.) 나는 이쯤에서 미국적인 여담을 끝맺을까 하는데, 이러한 여담들이 그녀에 관한 간접적인 초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믿는다. 어떤 각도나 관점을 가지고 하나의 초상에 접근해보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39

"아무 말 하지 말고 들어봐요." 나는 가브리엘의 이마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레코드에서 낮게 흘러나오는 선율은 어딘가 아주 먼 나라에서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느리고 고운 선율은 가브리엘의 격정을 가라앉히는 데 즉효약이었다.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들어 내 무릎에 눕혔다. 그녀는 조금씩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0

가브리엘을 내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겠노라는 결심은 내게 또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커다랗고 음험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지옥에의 길이었다. 나는 하루라도 더 지옥으로의 출발을 유보하고 싶었다. 한순간만이라도 그녀의 촉촉한 입술과 보드라운 가슴 가까이에서 머무르고 싶었다. 침묵을 가장한 우리의 슬픔은 발작적인 포옹과 애무에 기대어 시간을 잊어가고 있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1

우리는 서로 격렬하게 껴안은 채 굳어버린 화석처럼 그렇게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쇼팽의 피아노곡이 우리의 사랑과 섞여 마룻바닥에서, 침대에서, 또는 거실 소파에서 뒹굴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짙은 슬픔이 깔린 곡조가 건반을 부서버릴 듯이 빠르고 우렁찬 도발로 감정의 결정을 항해 치달렸다. '떠나야 한다.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 이 두 가지 감정이 가브리엘의 발치에 엎드린 나를 미치도록 초조하게 만들었다. 안으면 물방울처럼 아스러질 것만 같은 그녀의 몸은 내 육체의 광적인 순례에 기꺼이 응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누보 로망'이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가브리엘이 생애의 바로 그 순간을 누보 로망의 시기로 명명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1964 년부터 그녀의 마음 속에는 현대 새로운 형태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그녀가 현대 소설의 길이 무엇인가에 관해 질문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때 세 권의 책을 출판했었고, 그녀는 이미 그것들을 읽고 난 후였다.

그 당시 같은 대학에 언어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장 스테파니니는 그녀에게 내 책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양상들, 개념과 문체에 대해 자세한 코멘트를 나에게 들어보는 것이 매우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추천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대학 과정의 학위를 취득하는 데 분명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었으리라.

그녀는 이러한 연구 원칙에 동의했었지만, 그 당시에 현대 소설 연구에 가장 큰 자극제로 대표되던 로브 그리에, 끌로드 시몽, 미쉘 뷔토르와 나탈리 사로트의 분석을 통하여 가장 큰 자양분을 끌어냈어야 했었다.

그녀는 나와의 대화를 통하여 검증한 소설의 방법을 정확하게 밝히기 위하여 그녀가 참고하여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몇몇 종류의 책들을 추가하였다. 나는 그 계획이 약간 걱정되었다. 아니 오히려 주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결국 나를 설득하였고, 나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했다. 요컨대 어떤 한 저자가 자신이 쓴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연구하는 기회를 가져본다는 것은 날마다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어쨌든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새로운 것이었으며,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내가 가브리엘을 다시 본 것은 이러한 조건 하에서였다. 내가 이미 언급하였고, 그리고 만나지 않고 지냈던 이 여학생은 지금(2 년 후) 나와 나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 우리들은 이 대학의 사무실에서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제기했던 모든 종류의 질문에 관한 카드들, 즉 자료와 주석들을 분류 정리하였다.

장 스테파니니는 '소설적 시제와 문법적 시제(Temps Modernes et Temps Gramaticals)'라는 주제에 관해 깊이 있게 숙고할 수 있도록 하는 관점에서의 연구, 즉 현대 소설 속에서 과거 시제가 어떻게 사용되는가 하는 연구에 대해 그녀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왜 내가 이곳에서는 단순 과거를 사용하지 않고 반과거를 사용하였으며, 혹은 그녀가 밝혀낸 그 사용 빈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을 나에게 물어보며 내가 썼던 문장을 참조했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나는 나의 작품 '뉴욕의 페허들(Ruines de New Yorkr)', '강연(La confereence)', '격자창(Grilles)'의 상당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나는 실제로 그녀와 함께 다시 읽었고, 그녀 덕분에 그것들을 다시 읽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자가 분석은 문체 메카니즘 탐구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종종 열정적인 경험을 제공해준다.

나는 가브리엘이 나의 책들도 진정한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느낄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보통 이상의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녀는 많은 부분을 '누보 로망'의 분석에 할애하였는데, 특히 그녀는 '미지인의 초상(Portrait d'un inconnu)', '밀라노의 통과(Passage de Milan)', '수정(la Jalousie)', '바람(le Vent)', '(l^3^Herbe)', '플랑드르 가는 길(la Route des Flandres)' 등의 작품을 분석했다. 나는 그녀의 논문 한 권을 읽으며 거기에 나타나 있는 극도의 엄격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연구 방법은 문체 분석과 증거나 검증이 없이는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할 수 없는 확고한 의지, 훌륭한 언어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통계 분석 작업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표와 그래프로 가득 차 있는 이와 같은 과학적 시도는, 소설의 내적 본질(substance)과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직관적인 접촉 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연구를 개시하게 했던 단어는 언어학적인 지시는 아니었지만, 논문의 서두에 인용한 끌로드 시몽의 문장, '이와 같이 고정되어 있고 회색빛 물체와 같은 것이 바로 과거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특이하고도 관심을 끄는 울림을 가진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2

절망적인 감정의 폭풍에 휘말린 우리의 포옹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칼날을 높이 쳐들고 나선 것이다. 무 토막 자르듯 단칼에 우리의 사랑을 가르려는 아버지의 결심은 먼저 가브리엘에게로 겨누어졌다. 그 날카로운 벨 소리가 아파트에 진동했던 밤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가브리엘은 수업 도중에 교장 선생님 방으로 불려갔다. 그녀는 해고를 당한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3

고통스럽게 예감하고 있었던 이별이 마침내 현실로 닥친 것이다. 나는 가브리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재회를 확신하고 있는 연인들에게 눈물은 필요치 않다. 나는 가브리엘에게 되도록 밝게 웃어 보이며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눈으로만 간직하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얼굴과 몸에서 느껴지는 모든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떠나고 싶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4

그 후 한 달 동안 나는 가브리엘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었다. 사모니라는 낯선 도시 전체가 나를 감시하는 숨막힘 속에 죄수처럼 견뎌야 하는 시간만이 계속되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황량한 생활 속에서 내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빨리 나이를 먹는 일뿐이었다. 식물인간처럼 사는 게 내게 주어진 임무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내게 적응하도록 강요한 삶은 그런 것이었다. 만성절의 휴일 가브리엘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만이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목적이었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수분을 거부하는 식물처럼 조용히 뿌리부터 말라 죽어버렸을 것이다.

끌로드 시몽. 그녀가 연구한 소설가 가운데 그녀를 가장 사로잡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또한 그녀는 연구 전체를 그의 작품으로 가득 채우려고도 했었다. 그녀는 매우 빨리 그를 만나려고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의 연구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직접 얻어내려고 시도했었다.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일 년 전에 학술 대회 참석차 엑스를 방문했던 끌로드 시몽을 만난 적이 있었기에 나는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게 노력했다. 나는 '플랑드르 가는 길(la Route des Flandres)'의 저자인 끌로드 시몽이 살고 있었던 동부 피레네 현의 살세스에 그녀와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19654월의 자동차 여행이 무엇보다도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까지 알지 못하고 있던 루시용 지방을 처음 보았다는 사실인데, 부드러운 4월의 태양이 뢰카트 호수를 비추며, 고원을 평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을 한가운데 있던 포도 재배농의 집인 끌로드 시몽의 집을 보았다. 그 집은 농촌 가옥으로, 특이하게 커다란 방들과, 안뜰과, 바티오(포석을 깐 뜰)로 이루어져 있었다. 끌로드 시몽과 레아 악세로스는 놀라울 정도로 순박하고 친근하게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우리는 포도원과 연못들과 바다 사이에 있는 언덕을 산보하였으며, 살세스의 요새도 방문하였다. 그리고 한 소설가의 생활을 장식하고 있던 친근한 여러 물건들도 만날 수 있었다. 끌로드 시몽이 가브리엘에게 몇 가지 수서본을 보여주고, 그녀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그녀 곁에 앉아 있던 그 큰방에서, 가브리엘은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그림들에 관심을 표명했는데, 특히 화포 위의 균열들이 마치 얼굴 위의 핏줄처럼 그려진 '플랑드르 가는 길' 속의 드 레이쟈크의 초상화와 닮은 어떤 노인의 초상화에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의 완전하게 콜라주와 사진, 잡지 속의 여러 이미지들, 선정적인 몽타주와 우편 엽서 등으로 덮여 있는 이상한 병풍 가까이에 가서 관심 있게 그것을 보았는데, 거기에 붙어있는 모든 것들은 소설가와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끌로드 시몽이 수집한 재미있는 몽타주 가운데서 고른 것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논문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그것을 회상하고 있다.

"루시용에는 저자가 사랑스럽고 참을성 있는 마음으로 연구한 하나의 해석, 즉 끌로드 시몽의 작품 세계에 관한 하나의 해석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모든 이미지들('플랑드르 가는 길'부터 초상화와 풍경뿐만 아니라, 유명한 경마 기수들과 경마들까지도)을 모아 놓은 그림들과 병풍들이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잡지에서 잘라내어 정성스럽게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한 장면이며, 그 그림들은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시간을 무한히 팽창시켜 주기도 했다. 달력상의 시간만이 아닌 시계상의 시간, 심지어는 우리 마음 속의 시간까지도 팽창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신들을 심한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어떠한 감동을 발견하는 데는 며칠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1cm마다 암시하는 어떤 이야기와 미래를 각각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잡지 속의 이미지로서 객관성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현실의 명료함도 유지하고 있는 이 콜라주들은 우리들에게 그 소설가의 작품을 느낄 수 있게끔 해준다. 종종 마치나 그 외의 잡지 속에서 잘라낸, 매우 잘 알려져 있는 평범한 것에서부터 겉보기에 수수께끼같이 보이기도 하며, 전체를 변경시키지 않고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 변경시킬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체계적으로 수집한 이러한 이미지들 위에서 증인은, 그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면 꿈꾸고 상상하며 뭔가를 구축할 수 있다.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창조하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5

그녀는 말없이 다가와 나의 가슴에 안겼다. 나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고 한 바퀴 빙 돌았다. 크게 소리 내어 한바탕 웃어대고 싶었다. 가브리엘은 어린 소녀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안겨서 내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루앙의 아파트에서 케이스 워커를 따라가야 한다고 설득하던 그 이성적인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품 안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사랑스러운 여인일 뿐이다. 오로지 불타오르는 정열에 몸을 맡긴 한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

그 대화는 그날 밤 매우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는데, 레아가 세심한 신경을 써서 만든 저녁 식사를 곁들여 가면서 계속되었다. 나는 가브리엘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그날 그의 책을 읽듯이 마음을 읽으려 했고, 그녀가 오랫동안 조사했던 텍스트의 장본인을 놀라게 하고, 더욱더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질문을 할 때 약간은 부끄러워하며 충동적이기도 했다.

나중에 그녀는 '다른 누보 로망 작가들'에게 가졌던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가깝기도 했지만 이미 멀어져간 그때, 누보 로망 작가들은 대학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다.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로브 그리예, 미쉘 뷔토르, 장 리카르도 등과 계속 만나며 점심 식사를 하기도 했으며, 그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틈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조사를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살세스에서의 끌로드 시몽과의 만남은 기억 속에 깊이 인각되어 잊기 어려운 특별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나의 테이블 위에는 막 읽기를 끝낸, 끌로드 시몽의 작품인 '파르잘의 전투(La Bataille de Phrsale)'가 놓여져 있다. 나는 그의 말의 삼각주를 따라 이 책의 페이지에 내 자신을 맡겨버렸다. 상상력, 추억, , 문체.

 

* 크리스티앙의 고백 46

"당신이 없어서 얼마나 쓸쓸했는지 몰라." 길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지며 가브리엘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삼켰다. "나도 쓸쓸했어."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고백은 사랑의 격정을 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내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 영 믿어지지 않았다.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뜨거운 손길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이제 지나간 시절의 가브리엘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나는 잠시 숨을 돌린다. 이것은 물론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쉽지는 않다. 가장 확실한 것은 언론 매체들이 그녀에 대해 이미 언급하였으며, 이러한 크고 작은 혼란 같은 변성의 더미 속에서 단순한 진리를 되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브리엘의 윤곽을 분명하게 잡아낸다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미 이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그녀의 외형적 형태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생각이 없다. 물론 우리는 어떤 사람의 외모로부터 원하는 전부를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것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향하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설득력 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무모할 정도의 소탈함을 가진 장 코가 결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를 그려낼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녀는 실제로 못생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지만 매우 매혹적이고 개성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며칠 동안 그녀는 완전히 녹초가 된 듯 보였고, 또 다른 며칠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보이기조차 했다. 드물게는, 그녀가 편지 속에서 그녀의 남편에게 말한 것처럼 '양성을 모두 공유한 히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결같이 그녀는 자그마했으며, 짧은 머리칼과 날카로운 외모, 불안해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가티노 신화를 만을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에 공개된 단 몇 장의 사진만이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사진들 가운데, 자동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았는데, 사진 속의 그녀는 약간 턱이 올라간 명확한 옆 모습과 강한 시선이 보였다. 아마 그 사진이 그녀의 모습을 가장 충실하게 그렸으리라.

어떤 것을 도덕적인 관념에 고정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직 여전히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69 913일 르몽드지에서, 나는 그녀가 '지드의 알리사', '안티고네와 앙토니오니의 여걸'을 동시에 닮았다고 쓴 바 있다.

나는 급작스런 원고 작성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종이 위에 던져진, 그와 같은 언급의 의미에 관해 어떠한 잘못된 생각도 범하지 않았다. 그녀를 이해하는 데는 그 여주인공들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알리사를 회상하면서 나는 그녀의 프로테스탄트적인 정신 형성과 이상한 자기 초월의 정신 형성을 가질 수 있게 한 내적 욕구에 대한 암시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안티고네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녀의 도전적 반항 기질과 그녀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선동성을 언급하게 만든다. 안티고네의 여걸을 생각하면서, 나는 아방뛰라(Aventura)의 클로디아처럼 상처 입고 무능하며, 막연한 전체 속에 불행과 행복에 약속된, 고독하고 전율을 일으키는 이러한 여인들을 꿈꾸었다.

나는 가브리엘이 이러한 문학적인 기준을 좋아할는지 잘 모른다. (나는 그들 외에도 비오렌느 혹은 클로에 등도 예로 들 수 있다.) 그녀의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생활의 정황을 기꺼이 '문학'으로 장식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가졌으며, 그녀의 서신들이 이러한 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나로서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그녀를 판단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는, 그녀의 내부에는 '어지러울 정도의 파괴적 성향과 극단적인 것에 대한 끝없는 욕망'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쓴 바 있다. 모호하게 보이고, 또한 그녀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부정했던 생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문장은 그녀 자신과 더불어 다른 것들도 잃어버리게 만들며, 그녀 내부에 죽음의 그림자만 드리우게 만든다.

실제로 가브리엘은 그녀 자신을 보다 어렵게 만들고, 가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하는 파괴적인, 과민성의 이러한 형성을 예증해주는 경우로 나에게 비쳐졌다. 그러한 성향은 드물기는 하지만 그녀가 비난받을 만한 행보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무효화할 수 있는 이러한 긴장이 타협에 대한 그녀의 거절 정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이 내가 그녀의 극단성을 말한 이유다. 그러한 사실을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어떤 것을 제공해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부드러움과 기쁨도 가져다준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조직에 능한' 지성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그러한 점은 그녀의 일상 생활과 집의 치장뿐 아니라 학교의 학업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모든 면에서 재간도 많았고 섬세함과 극도의 근면성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그 사건의 모든 증언자들에게 저항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끝까지 그녀 마음 깊은 곳에 그렇게 약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을 정도로 정신과 육체적으로 강하기도 했다.

이 글은 성인전을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브리엘 역시 다른 사람처럼 결점을 가지고 있었고, 화를 잘내는 성격상의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라디오 룩셈부르크, 라디오 몽테 카를르의 마이크 앞에서 내가 그녀에게 끊임없이 부여했던 '뛰어난 여자' 혹은 '드물게 볼 수 있는 여자'라는 것 때문에 나를 몹시 성가시게 했던 사람들의 몇몇 언급들을 고려한다.

그러한 사실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그러한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녀는 평범하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아 실현에 대한 엄청난 욕구의 소유자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몹시 원했었다. 그녀는 이러한 재능을 능숙하게 즐기기도 했다. 가끔 그녀는 게임을 과도하게 몰고 가기도 했고, 전면에 내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애교나 교묘한 꾀, 그 어느 것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장 해제를 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무장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생활은 늘 긴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많은 측근들이 이러한 점을 증언할 수가 있을까? 그녀의 가족들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할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 회상해 보면 그때 가브리엘은 남편과 헤어질 단계에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이사를 하여 아파트가 바뀌었으며, 아이 둘과 함께 혼자 살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나는 조금씩 그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갈등은 공공연한 불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같은 리듬을 가지고 살 수 없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던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그들은 합의이혼했다.

그녀 생활의 이러한 부분에서 일화를 끌어낸다는 것은 분명히 가브리엘의 심적 갈등 상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단하는 것이기에 신중하지 못한 처사일 것이다. 이렇게 갈라서는 경우가 무미건조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쉘 노그와 가브리엘은 끝까지 친구로 남아 정기적으로 만났다. 그들의 이혼이 가브리엘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결코 아니리라. 그는 마지막 분석에서 단지 그녀의 고독 외에는 다른 어떤 증언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쌍둥이인 두 아이 조엘과 발레리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지금 무척 많이 자랐을 것이다(나는 이 줄을 작성하면서 내 눈 앞에 바로 그들이 있으며, 그들이 가끔 놀곤 하던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만났을 때처럼 놀라는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다). 그녀는 확신과 아무런 잘못없이 세심하게 그들을 키웠지만, 그 아이들은 공동생활 참여와 어른들 세계와의 접촉이 완전한 함정으로 가득 차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종종 멀리서 놀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브리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사실로 그들이 두려웠으며, 그 자신에 대해서도 두려웠다. 그녀가 보기에 조엘은 매우 활달한 성격으로 보였으며, 보다 말이 없고 학교 공부에 잘 적응하지 못해 시달리고 있었던 발레리는 이미 '숙녀' 같은 조숙한 느낌을 주곤 했다.

다시 한번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가능한 한 간단하게 가브리엘이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우리가 아주 드물게 그녀에게서 보았던 노이로제 환자, 성격 장애자, 엉큼한 부인의 모습이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행위 속에 생활의 부정적인 모습을 숨기려는 성향이 있으며(특히 사회 생활면에서) 심지어는 존재의 덫을 증가시키려는 경향마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정신적 평형을 잃은 것은 아니며, 병들거나 냉소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명석했고 전투적이었으며, '비순응적' 행운에 목말라 있었으며, 늘 고독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7

운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돌아앉았다. 더구나 행운이란 건, 이미 아버지 손에 저당잡혀 있지 않은가! 운명의 신은 우리가 철저히 유린당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만성절을 맞아 술이라도 취해 잠시 우리들을 잊어주기라도 바랐던 것인가. 부질없는 희망이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나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가 전까지는 내게는 희망마저도 금지되어 있다. 그가 안락하게 기대고 있는 법률이 나를 풀어줄 때까지는 아버지가 나의 운명인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8

나는 등 뒤에 가브리엘과의 무수한 추억이 서린 세느 강을 남겨두고 계속 걸어갔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나의 마음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어른이라도 그렇듯이-나는 도망중인 자신의 처지가 반드시 불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어떤 스릴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부랑자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맨처음에는 모두 나 같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49

벌써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일이었다, 나는 한 3개월 동안 10년은 더 나이가 먹은 듯이 느껴졌다. 내게는 뭐든 가능성으로만 열려 있던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닫혀 버렸다. 가슴에 따뜻한 모닥불 하나 피워놓고 꿈꾸던 세계는 내게 악몽과 같은 환멸을 알게 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곧 환멸을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이기주의와 타성에 젖은 세상의 기준에 대한 적합한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환멸을 알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얼간이 같은 모범생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크리스티앙과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던 시기, 즉 그녀에게 가장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에 지금 접근해 가면서, 나는 가장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녀의 그 시절을 증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1966년까지 그녀는 나와 자주 만날 수 있었으나, 1966 년부터 1967년까지 그녀는 과감히 도전했던 근대문학 교수자격시험 준비에 온 정열을 쏟았는데, 그와 같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준비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의 대학 이력 때문에 가브리엘이 예고도 없이 나를 방문했던 것에 대해 언급하겠다. 그녀가 모르코에서 돌아와 다시 공부를 재개하려고 결심했을 때, 그녀는 일찍 결혼한 두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젊은 부인의 전형적인 상황 속으로 떨어졌는데(그러한 일은 보편적인 일일 뿐 아니라 내가 믿기에도 틀림없을 것 같은) 독립적인 측면을 스스로 자제시킴으로써, 아내와 한 가족의 어머니로서, '인간의 역할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험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구애받지 않고 시험을 치루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였으며, 하나하나 그녀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여러 단계를 극복해내고 있었다. 고등교육 자격증을 따내자마자 그녀는 교사자격시험을 준비했다. 그녀는 1967년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것도 가장 좋은 조건으로 합격했다(뛰어난 프랑스어라는 증서와 함께) 그녀는 2년 동안 정말 정신없이 공부하였다.

그녀는 정말 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요컨대 과중한 몫이어야만 했던 두 아이를 혼자서 부양하면서 이 시험을 준비했다는 것이, 과대 평가되지 않고 마치 신화적인 것처럼 취급 되지 않는다면(그녀는 중등교육양성소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분명히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했던 그녀의 생활 조건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잦은 교제가 그녀에게 가져다준 만남의 계기 때문에라도, 그녀가 친구들을 가장 필요로 했던 때는 시험 준비를 위해 학교를 떠나 있었을 바로 그때가 아닌가 한다.

친구들 가운데는 그녀에게 이상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녀와 매우 가까웠는데, 알베르 루 같은 이는 끝까지 그녀의 가장 충실한 동료로 남아 있었다. 그 친구들 가운데는 교수들도 있었고, 특히 나이나 정신적으로 그녀와 동시대인이었으며, 그녀를 빠른 시간 내에 동료의 하나로 생각했던 앙뜨완느 레이보, 피에르 볼츠, 그보다 좀 늦은 클레르 블랑슈 같은 프랑스어와 언어학의 조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교수자격시험을 매우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갖게 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앙뜨완느 레이보는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문화를 생활의 불안과는 반드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단호한 성향을 그녀의 마음속에 주입시키고, 또한 확고하게 만들었던 교육의 개념에서 그녀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완전히 결합됐던 그들의 존재를 '불태우려고'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나 대개 그녀와 크리스티앙과의 관계와 깊이 관련 있어 보이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법 관계 원칙과 형태(그것은 완전한 상호 개방과 모든 계서적 구조의 완전한 페지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를 가브리엘이 흡수했던 지난 2년간의 집중적인 학문적 과정과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의 신중하지 못했던 여러 행동들은, 사회의 기본 테두리 내에 대학에서 체험했던 것을 겹쳐놓으려고 했던 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나는 과거보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개인적 기회가 훨씬 적었다. 그럼에도 나는 강의로 인한 친교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녀가 공부하려고 했던 계획의 저자들, 즉 그녀가 읽고 개인적인 직관으로 이해했던, 예를 들어 발레리와 아뽈리네르와 같은 저자들에 관해 오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던 것을 떠올려본다.

나에게도 역시 엑스시의 생 탄느 지구에 있던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적어도 그녀가 현실 속에서 살아가려는 의지와 정신적 평형의 가장 확실한 보증으로 보였던 가구들과 여러 소품들의 배치 속에서 어떤 질서와 취향, 단아함을 재발견 했었다.

부드럽고 붉은 색깔의 안락 의자에서 짧은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 것과 쿠션 의자, 티크 나무로 만든 패널과 이동식 바의 유리잔들과 종이와 카드로 덮여 있는 책상, 전축과 녹음기 등등의 모든 것들은 예를 들어 내가 먼 훗날 우연히 니스로 향하는 길가에 있는 그 아파트 앞을 자동차로 지나갈 때, 내 눈앞에서 명확하게 기억되어지고, 그리고 끈질기게 오래도록 내 기억의 상자를 채우기 위해 그렇게 놓여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가브리엘은 그것이 재능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많은 이웃과 관계를 맺는 기묘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호의적 감정의 교류가 그녀와 이웃들 사이에 따사롭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맞이해야 할 방문객의 수를 생각할 때면 가끔 나 자신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녀가 살던 아파트를 중심으로 놀랄 만한 생활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아래 위층의 모든 사람들과 이웃집 할머니, 또 아이들의 같은 반 친구 부모들도 모두 그녀의 친구였다. 이러한 상황은 그녀가 그후 마르세유로 이사했을 때도 똑같았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가 집에서 고독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웃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의 그러한 생활을 강조하는 게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달 동안 그녀와 매우 가까웠던 질베르트 테부노와 같은 이웃이나 친구, 동료들의 존재는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했을 때, 나는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는 시험 결과를 곧장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때 그녀는 매우 자유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바구니 속에서 '야옹'하고 울곤 했던 조그마한 검은 고양이와 함께 인생의 최절정기에 달했다. 그녀는 다른 생활을 위해 새롭게 출발했던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0

나는 그녀의 괴로움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브리엘은 우리가 음지의 연인들처럼 숨어서 만나야 하는 현실을 못 견뎌하는 것이다. 그녀의 자존심이 그것을 도저히 용납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낙천적으로 그것을 극복한다고 해서 가브리엘마저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건 이기주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손에 흙 한 번 안 묻히고도 우리의 사랑과 생활을 진흙구덩이에 처박은 악랄한 폭력이 그녀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1

나는 가브리엘의 팔을 살며시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으로선 한 가지밖에 분명하지가 않다. 사그러져가는 불을 다시 지피기 위해 장작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나뭇잎 사이로 석양이 곱게 번지고 있었다. 오두막 굴뚝에서는 가물가물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석양에 쉽게 몸을 섞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기 위해 장작을 패는 농부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 수는 없을까. 나는 장작을 잘게 쪼개며 이 순간에 세상이 나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2

나는 선 채로 비틀거렸다. 사랑이여, 당신은 어디로 숨었는가. 고통의 핏물에 습자지처럼 젖어드는 가련한 내 모습을 당신은 보는가! 당신의 외마디 소리라도 내 귀로 분명히 듣고 싶어 하는 이 공포와 떨림을, 당신은 지금 어느 자리에서 느끼고 있는가. 나는 현기증을 참으며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른 생활이란 바로 마르세유의 생떽쥐베리 고등학교(북부 고등학교)의 학생들과 나누어 갖는 삶을 의미했다. 나는 신문 지상에 수없이 보도되었던 것에 관해 다시 언급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 또한 '뤼씨에 사건'이 되어버린 일련의 사건들에 관해 정확한 참고 자료가 될 만한 것에 관해 밝힐 의도는 더더욱 없다.

다른 여러 사항들은 그 사건을 다룬 책들 속에 상세하게 기록되리라 믿는다. 나는 결코 사건 조사처럼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취급할 생각이 없다. 나는 그 사건 경과에 관한 정확한 날짜도 알지 못한다. 가브리엘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했던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에게서 몇 가지 들은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여러 매체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복잡하고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스스로 주관적인 생각을 가져보려고 노력했지만, 하찮은 진실조차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관해 간략한 줄거리를 적어보는 것도 나에게는 비교적 단순한 일처럼 보인다. 남녀 혼성 고등학교의 상급학생 교사로 지명된 가브리엘은 거리낌 없이 학생들과 어울리며 가장 개인적인 관계를 맺었고, 이러한 '대화의 교환 테두리 속'에서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들에게 사랑의 공유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 당시 상황(특히 19685월의 폭발로 귀착된 움직임과 팽팽한 갈등)의 도움을 받아 지금 그녀가 받고 있는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명확하고도 지속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밖에서 바라보며 불명예스러운 일로 귀착될 수밖에 없지만, 안에서 그것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순진무구한 관계인, 다시 말해 당사자들과 집단적 증언자들 전체가 그 견해를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말하자면 거기에서는 그 어떤 예외적인 경우도, 선동적인 경우도 찾아볼 수 없다. 판에 박힌 보잘것없음에 만족치 못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최소한의 의사 소통을 설정하려는 모든 교사들은 매일 실질적으로 유사한 상황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남학생들 앞에 선 젊은 여선생들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시몬느 살가스의, 최근에 간행된 '구할'도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가브리엘은 있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유지 가능한 것을 실현시켜 보려고 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녀가 현실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을 혼돈하지 않게 하는 견고한 '질서', 다시 말해 이와 같은 종류의 '통행'을 보통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을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뿐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의 '시민측' 변호사들은, 그것이 여러 가지 사실들로 미루어보아 구성 가능한 범죄 행위였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미성년자 유괴범'으로 말했다는 것을 나는 완벽하게 알고 있다. 그들의 논지는 정확하나 다른 점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그들의 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2학년이던 크리스티앙은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그는 가브리엘과 생활을 같이 하려고 가족으로부터 등을 돌려 여러 차레 그녀와 합류하였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그러했다. 그래서 그를 그녀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려고 사람들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예를 들면, 아르제레스 기후 전문 고등학교에 그를 등록시키기도 했음), 그는 몇 차레나 도망하여 종적을 감추기도 했는데, 그것은 부모들에게 그를 보호할 권리를 주는 격이었다. 매우 정확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을 썼다.

서로 좋아하지만 여러 장애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모든 신중함과 분별력을 무시하며,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서로 만나는 경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장애들을 극복하려 한다.

그리고 사랑이란, 위기처럼 하나의 무질서이며 자아 상실이다. 하지만 표피적으로 행해진 일시적인 사랑은 용서될 수 있었던 반면에, 그들간의 이러한 사랑은 결혼 전망이 확실함에도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었던가?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유산을 착복하기 위한 술책, 유혹, 매우 위험한 정신적 지배, 악영향과 같은 말들을 크리스티앙의 부모나 그의 친구들로부터 듣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것과 동일한 것을 말하기 위해 미약(성욕을 일으키게 하는 약)에 관해 이야기했다. 간교함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보다 열다섯 살이 많고, 한 사람이 미성년자였다는 점에는 크게 부각되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3

큼지막한 활자로 뽑아진 기사 제목에 갇힌 가브리엘의 수척한 얼굴. 그녀는 경찰서의 피고인 카드 작성대에 앉아 있었다. 플래쉬를 거칠게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두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치욕으로부터 의연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의지가 그녀의 완강히 다물어진 입술에 확연히 드러났다. 다른 신문에는 경찰서 직원이 그녀의 손을 잡고 끈적끈적한 먹잉크를 손가락에 묻히는 장면이 찍혔다. 가브리엘은 거무칙칙하고 섬뜩한 느낌의 잉크가 닿은 순간 흠칫 놀라 몸을 사리고 있었다.

열일곱 살의 크리스티앙은 성인 남자 같은 풍채를 하고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그러했다.

나는 수염을 길게 기른 덩치 큰 아이의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극좌파 투사(그는 그 당시 혁명적 공산 청년단 일원이었다)였던 그는 현실 참여적이며, 책임감 있는 소년으로서 분명한 자격을 가질 만했는데, 꼬마 소년 같은 젊디 젊은 사람에 대해 쉽게 얘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68년의 학생 운동 이후 오늘날의 소년들은 그들의 아버지들보다 더욱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고를 지녔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 부모의 성격을 참고로 한다면, 사람들에게 그것은 지적인 '주제'가 될 수 있었고, 따라서 가브리엘은 그 사실에 매우 민감했어야 했다. 나는 이 사건이 시작되려던 때, 마르세유의 진보주의적 책방에서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 사태에 관한 토론에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최근에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매우 조용했으며 마치 그녀의 지배자라도 되는 것처럼 냉정하며 진솔하게 보였다.

분명히 그는 여전히 아이에 불과했고, 사실 그녀로부터 자신을 변호하여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재판관의 판단에 따라 그를 재교육소에 넣고 의사의 충고에 따라 정신 병동에 집어넣거나, 또는 수면제 주사나 약을 투여하는 것이 그를 지키는 것이었을까?

나는 이런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거나 사실을 결코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이러한 사실들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나는 1969927일에 있었던 룩셈부르크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선언했던 것을 인용한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실제로 제기된 문제들과 구체적인 경우의 의문들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프랑스와즈 바튀리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의 사회적 조심성과 안전(가족의 병), 그것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다.

신조는 자신을 아끼는 것이며, 그 결과 모든 열정적인 생활을 금기시하는 것이다. 인간 본질의 어떤 과학이 안전의 결여로 인해 고통을 앓기보다는 사랑의 열정에 몸부림치는 것을 선택함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인데, 사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동물에게 적용시킬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에 대해 가족들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놀랄 정도의 만장일치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불쌍한 부모들'이라는 제하로 19691010일 자 르 몽드지의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에 대해 이러한 불관용이 은폐시키고 있는 분명하고도 결정적인 그 진정한 ''에 대해, "진실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만 하면 부모들은 자식을 잃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해 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이 이런 사랑을 보는 것은, 17년 동안 오로지 아이를 위해 존재해왔던 부인네들에게는 하나의 비극이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고통이었기에 결코 웃을 수가 없다.

시샘이 많은 것을 의식한다면 이러한 질투에 감히 빠져들지 못하지만, 만약 그녀들이 자신을 속인다거나, 또는 자신의 위험한 열정을 좋은 감정 속에 묻어두거나 노여움 자체를 그녀들이 의무라고 부른다면 아이들은 결국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학대가 시작된다."라고 덧붙인다.

실제로 윌리엄 레이기히가 '권위적 가족'이라고 불렸던 개념에 근거하여, 여기에 서술된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 레이게히를 인용한다면 그것은 어떤 한 유행의 흐름에 따르자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 관해서 막시스트이자 성 과학자인 그는 완벽한 분석을 이끌어낸다. 권위적 가족이라는 것이 특별히 반동적이라든가 부르조아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보다 내면화된 가족 구성들간의 관계와 반 성적 구조들 위에 근거를 둔 가족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말해 "다른 사회적 계급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무엇이든 간에, 가족들은 이러한 성적 지상주의와 공모하고 공존하는 계급적 도덕심을 해치지 않는 영향력, 다시 말해 성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도덕적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이와 같은 중요한 성향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가족의 지배적인 형태인 중류와 하층 계급의 가족들은 '쁘띠 부르조아(petits bourgeois)' 가족 형태라고 부르는 계급 저쪽으로 넓혀지는데, 그것은 소시민뿐만 아니라 상층 계급과 노동 계급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섹스의 혁명)

그와 같은 가족은 반드시 보수주의적인 성적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며, 그럼으로 해서 매우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적인 분위기의 주요한 부화 장소'가 될 위험성이 커진다. "부모의 사랑과 권위적 형태의 가족 구성 사이의 혼돈은 아이들과 청소년 세계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게 되며 인류가 영원히 추구하여 찾으려 하는 문화와 자연, 노동과 사랑, 도덕과 성의 결합을 방해한다." (오르가즘의 기능: La fonction de l'orgasme)

또 푸리에(Fourier)는 이미 '사랑스러운 새로운 세계(Le Nouveau Monde amoureux)'에서 '사회를 궁핍, 음험과 학대로 이끌어가는 사랑에 대한 압제적 정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모든 경우, '안전''보호'의 사회 심리학적 의미를 분석하고 이해하게 될 것 같았다. 실제로 정치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고 전체적인 플랜에서 보면, 도덕적으로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40년간의 스탈린적 청교주의도 이것들을 정리하지 못했으며, 1969년의 '신 비평'지에 실린 베르나르 뮬트볼프 박사의 놀랄 만한 논문이 오늘날 변화된 관념의 몇몇 신호들을 겨우 보여준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4

나는 신문을 들여다보다가 비명을 지를 뻔했다. 벌어진 입안에서는 이빨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끔찍하게 들렸다. 그녀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물체로 취급당하는 것 같았다. 피의자의 지문을 찍어대는 일에 숙달된 경찰관에게 그녀의 존재는 하나의 물체일 뿐이다. 모든 개개의 인간은 국가 앞에서는 한낱 지문으로 기록될 물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5

나는 정신병자 감별소로 떠나야했다. 내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굳이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부당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 생겨도 이제 더는 거부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반항 뒤에는 가브리엘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녀를 유치장에서 풀려나게 할 수 있는 길은 그 길뿐이었다. 판사는 내가 정신이 돌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에 일주일이 소요된다고 했다.

나는 가브리엘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위해 내가 원고룰 쓴 사실을 후회하게 되리라. 내 의견으로는 판단 불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실제 사건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태도가 문제되리라 본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고, 좋든, 충격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간에 존재한 그 사건은 어떤 보편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사건을 알기 위해서라면 여러 신문에 게재되었던 몇몇 독자들의 서신들을 다시 읽거나 그 사건에 관해 여기저기에서 떠들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치 몇몇 사람들에 있어서는 이해하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전반적인 파장의 정당화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지거나 더욱더 심한 경우는 선전열에 호소하는 것, 즉 다시 말해 가브리엘을 변호사라는 것은 모든 동료들을 그녀처럼 하게끔 부추기는 것이며, 그녀를 하나의 모델로 삼는 것과 같은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대답은 분명한데, 모든 교사들은 자신들의 제자들과 동침을 해야 한단 말인가?

미쉘 크르노가 "교사들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만을 좋아하고, 그를 행복하게 하며 그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의 임무를 끝내야 한다."라고 사전에 대답한 바 있다. 나로서는 그것이 구체적이고 독특한 현실을 가지고 있는 보편화로부터 자신의 주장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그녀 마음 속에 주어져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관이 말한 것처럼 "경우의 특수성 속에서 고려되어야만 하는 직업적 '의무론'이 있는 것이며, 학생은 단지 선생을 신뢰하고 따르기 마련이므로 그 의무론은 더욱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견해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사업주와 타이피스트, 관리자와 비서, 게다가 의사와 환자에게 있을 수 있는 어떤 형태의 관계를 고려하는 사회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반드시 목사와 신자, 아빠와 아들 사이의 관계같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파악해내지 못한다.

어쨌든 한 가지 나에게 불안해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사는 '권위적인' 공무원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기준에 따라 가브리엘에게 구형을 했던 대리 판사의 선언이었다. "나는 권위적 공무원들처럼 교사들도 몇몇 유보 조항들을 지켜야 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1929 929일자 렉스 프레스지(l'expresse)' 그것은 1968년의 모든 학생 운동이 표명했던 권위에 대한 근거인 '교육적 관계'의 개념에 배치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모든 교사들이 항상 시대에 앞서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가브리엘이 학생들과 설정해놓은 대화 형태는 무엇보다도 문화와 지식 습득의 유일한 접근 통로로 간주되는 '직접적' 이고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경험(권위와는 거리가 먼 누구나 공유 가능한 것을 말함)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우수한 교사였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가브리엘이 관여되어 있는 상황의 특이성을 정당화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학급을 '조직화'하고 애정을 품으면서 야기시켰던 위험 전체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꼭토의 유명한 작품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은 폐쇄된 몇몇 청소년 그룹들 속에 마음을 솔깃하게 하여 불사조 같은 것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가브리엘의 학급은 그 그룹들 가운데 가장 폐쇄된 그룹이었다. 즉 그것은 성인 세계에서 가장 멀리 고립된 그룹을 의미했다. 또한 집단적인 경이로움에 가장 민감한 그룹이기도 했다. 생떽쥐베리 고등학교의 2 학년 남녀 학생들은 그들 소유 가운데 하나인 가티노에게서 마음의 피난처를 찾았고, 그녀를 마주하는 그들의 눈에서는 광채가 났다.

그 반의 여학생인 플로랑스는 "그녀는 서른 살이었지만 우리들보다 약간 나이 들어 보였다. 그리고 왜소했고 연약했다. 그녀는 귀여운 고양이를 닮았고, 커다란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이글거림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남학생인 자크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경이로워 보이고 열정적이게 된다. 그녀는 책속의 낡은 것을 털어버리게 하며, 우리의 머리도 명석하게 만들어 준다. 그녀는 현실 순응주의를 끝까지 배격하고, 놀라울 정도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랑스 수아르 (France-Soir), 1969928일 자'

그들은 그녀와 비슷한 교사를 그전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결코 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그들의 기억 속에 간직된 그녀에 대한 인상은 결코 어른들의 '언어 표현법'으로서는 나타내지 못할 정도로 깊게 박혀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생각하는 부모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그들의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떠났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존재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떤 위협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참을성 있게 행동했던 그들은 학급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아이들을 개조시키고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에 충격을 주는 이러한 '난잡'에 대해 어떤 조치의 필요성을 재빨리 절감하였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진정을 했지만 기각되었다.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였던, 매우 적합한 얼굴의 소유자인 경찰 공무원인 어느 부모는 가브리엘을 '공산주의 세포 조직'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고발해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학부모들은 '인간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이 교사가 진정 누구인가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그녀를 올바르게 알아보았다.

가브리엘은 학생들을 계속해서 중요하게 여기며 방과 후에도 그들과 함께 외출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으며, 스키도 타러 가곤 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먼저 그들을 부르기도 했다. 분명히 그녀의 행동은 모든 해석과 논평을 야기시킬 수 있었는데, 언젠가 그녀의 집 가택 수색을 했던 검사와 검사국 요원들은, 마약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수면제까지 냄새를 맡아보았다.

실제로 상당히 깊숙이까지 논의되었던 내적 대결이 문제가 되고 생활과 죽음, 사랑과 섹스에 관해 끝없이 괴롭히는 대화가 이루어졌겠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진실의 게임이며 의사 소통의 혼미,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크리스티앙은 다른 학생들과 다름이 없었지만, 그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어렴풋하게 지향하고 있었던 것을 완성하기 위해 지명되었던 것이다. 그가 성인 남자를 가장 닮은 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단순히 제일 사랑스러운 학생이었을까?

어쨌든 그의 '격상'을 이끌어냈던 분명치 않은 알력 혹은 은밀한 질투 전체를 상상한다 할지라도, 그 반 모든 학생들은 각자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서로를 인정했고, 그와 가브리엘의 관계를 수용했다. 이것은 크리스티앙을 통해 가브리엘과 학급이 결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애정 '위임'은 청소년 세계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이다.

바로 그러한 사실이 가브리엘과 크리스티앙의 호기심 유발에 대한 숭배로 설명된다. 내 귓전에는 여전히 나의 사무실에서 머리를 숙이고, 이러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던 다소곳한 아이네스 프랑스와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죽은 후, 마르세유 북부 거주지의 11층 그녀의 아파트 문 위에다 사람들이 붙여준 익명의 이름들을('Z' "너는 영원히 살리라", '불사조인 가티노') 낙서했다.

내가 여기에서 제기할 접근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브리엘은 그녀의 방법대로 파졸리니(Pasolini)'테오렘므(Theoreme)'의 젊은이 역할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잘 수행해냈다.

그녀의 그러한 '변화'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욕망과 성적 혼란을 제거하게 만들었고 그럼으로 해서 혼란과 무질서한 태도를 퍼뜨렸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풍요롭게 했다. 학생들 가운데 한 학생은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다른 한 학생은 침묵에 잠겼는데, 앞의 학생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뒤의 학생은 심령학에 빠져버렸고, 또 다른 한 학생은 정치에 온 정열을 쏟고. 그 흔적은 남는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5

나는 정신병자 감별소로 떠나야했다. 내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굳이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부당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 생겨도 이제 더는 거부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반항 뒤에는 가브리엘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녀를 유치장에서 풀려나게 할 수 있는 길은 그 길뿐이었다. 판사는 내가 정신이 돌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에 일주일이 소요된다고 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6

내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유일한 증거는 가브리엘이었다. 내 육신에 단단한 촉수가 되어 뿌리 박고 있는 그녀의 기억만이 확실한 이승의 과거로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그려 보일 수 있다. 고집센 입술이 감추고 있는 부드러운 혀, 목덜미의 푸른 힘줄, 손등의 작은 흉터, 왼쪽 어깨 아래에 흑진주처럼 예쁘게 박힌 검은 점까지도 모두. 그들은 정신을 망가뜨리기 위해 나를 치료하고 있다. 내 영혼이 추억의 탈을 벗고 사이보그로 새롭게 탄생하길 원하고 있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7

가브리엘은 내가 생 타가드에 도착한 다음 날 석방되었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나는 루앙에 도착하는 길로 그녀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거기 말고는 아무 데도 생각하는 곳이 없었다. 건드리면 마른 꽃처럼 폭삭 사그러질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가브리엘의 벨을 눌렀다. 거기 그녀가 있었다. 가브리엘은 내 앞에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주요한 요소는 19695월의 사건들이었다. 그 점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 많지만, 가브리엘의 처신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전혀 용서를 구하고자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일련의 사건 속에서, 그녀에게 맞는 사건을 찾는다는 것은 부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가브리엘과 크리스티앙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 5월의 그 사건들 전인지 그동안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후였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에 관여할 의도가 전혀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 그들이 공공연하게 함께 다니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데모에 참석하기 위해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데모에 참석하기 위해 자주 왔던 대학 캠퍼스에서 그들의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어떤 의미들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마치 일련의 사건들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쳐온 것처럼, 실제로 일련의 여러 가지 일들이 그들을 위하여 일어난 것 같았다.

그들이 현재까지 매우 어렵게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만천하에 갑자기 드러났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는 인정되고 공인되었다. 학생들은 누구나 욕망의 해방과 성적 욕구, 금기의 청산에 관해 5월이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소르본의 벽위에서 "우리에게 삶을!", "열정을 해방시키자!", "사람들이 우리의 행복을 사서 그것을 훔쳐가 버렸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듣고 그것에 동의하면 될 정도로 충분했다. 그리고 만약 그때까지 거의 정치적 성향이 분명하지 않았던(그녀는 좌파에 속하긴 했지만 그 태도가 분명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그때 비로소 첨예한 정치 사건들이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있다는 느낌, 즉 프로이드의 말을 빌면 '현실의 원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68년의 5월은 크리스티앙과의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급진전된 계기가 되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그 사건의 전개 과정들(왜냐하면 가장 눈에 띄는 '스캔들에 관한' 우연한 사건들은 5월 이후의 몇 달 동안 일어났었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68 년의 5월 정신 위에 그가 지나치게 빨리 던져졌다고 생각하고, 5월의 조숙한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5월의 대가를 지나칠 정도로 비싸게 치르게 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몇 주 동안 사회 전체가 대학과 고등학교들을 사건의 현장으로 만들었던 숨겨져 있는 위협과 무질서들, 파렴치한 행위 등을 전율스러우리만큼 비난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에는 한 가지 증거를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이 반박 불가능한 한 가지 증거가 있다. 검찰 당국이 칼을 들이대며 그녀를 감시한다는 사실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8

"나를 체포해 주세요." 그녀가 체포된다면 나는 생 타가드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감옥에 갇힌 가브리엘과 내가 예전처럼 만날 수는 없을 테니까. 아버지도 그 점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당신을 체포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제발 저를 체포해 주세요." 판사는 마음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세상에, 감옥에 넣어주지 않는다고 우는 여자가 있다니!

19685월과 그 이후 몇 달 동안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 지에 관해 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 가브리엘은 결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가 사건 초기에 보여주었던 매우 협조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랑을 위해 싸웠고, 사회 전체를 위해 투쟁하였으며, 단순하게는 어쩌면 극단적인 끝을 보려는 심정으로 크리스티앙 부모들에게 도전하고 그들을 설득하려고 결심했었던가? 어쨌든 그녀가 처해 있던 상황은 어느 정도 '역동성'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향해 치달았다.

그때 나는 그녀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가끔 있었다. 대학의 언어학 조교 후보 지명에 관해 그녀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대학 행정당국의 눈에 띄지 않는 술책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그녀의 기분은 달랐다. 그녀는 시련을 겪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에 관해 얘기했던 것만큼이나 수많은 정신적 굴곡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엑스에 살고 있던 어느 날, 크리스티앙이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파트 문에다 뚫었던 구멍을 가려놓은 합판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일련의 사건들이 전제되었던 국면 앞에서, 몇 번이나 그녀가 그의 열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겪어야 했던 시련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의 성격 속에서 집요하리만큼 목격하기를 바랐던 '사랑에 굶주린 여자'는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 어떤 카페에서 가장 속에 있던 크리스티앙의 사진을 꺼내어 놀라울 정도의 행복한 표정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가끔 그녀는 아주 재미있게, 그녀의 자동차를 암시하는 '디야나 로사(Dyana Rossa)'라고 사인한 몇 개의 단어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디얀느(Dyane)'라고 하는 것은 붉은 거북을 의미했다. 그 자동차는 그녀의 생활에서 기이하고도 복잡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특히 경찰의 분쟁과 그녀의 이동에 큰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고소가 경찰에 접수되었고, 경찰이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1968년 가브리엘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르세유의 생 앙뜨완느 지역의 북부에 있는 거대한 주거지에 높이 솟아 있는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결국 그것은 크리스티앙의 고등학교와 더욱 가까워지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그녀와 관계되는 모든 것은 간접적으로 나에게 들려왔고, 종종 풍문이나 확인 불가능한 소식으로, 게다가 탐정 소설 또는 긴박감이 감도는 신문 연재 소설 같은 분위기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하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 몇몇 곳에서 터무니없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그녀를 단지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녀가 나에게 부탁했고, 예심 판사에게 제출하기를 바랐던 서면 증언(그녀의 개성과 일, 공부 등 그녀에 관한 편지)을 전해주기 위해서 한번 만났고, 다른 한 번은 그녀가 감옥에서 출소했을 때였다.

196812월에 처음 크리스티앙이 가출하여 종적을 감추었을 때 그녀는 5일 동안 수감되었다. 69 4월에 다시 보메트로 돌아갔는데, 그때는 8주 동안이나 수감되었다. 그 당시 나는 체코슬로바키아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감옥의 검열로 인해 매우 늦게 도착한 그녀의 편지를 통하여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뒤늦게 이러한 투옥에 대해 알았던 것에 대해 적어본다.

미결로 감옥에 넣으려고 결정을 내린 한 예심 판사는 공식적으로 그녀의 가족이나 그의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지 그녀의 변호사나 편지를 통해 외부에 수감을 알렸다. 나는 그녀를 다시 수감할 수 있다고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으며, 프라하에서 친구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매우 심각한 불안과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걱정거리로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 불시에 전해졌는데, 문학적으로 얘기하자면 나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가브리엘은 보메트의 그 '호텔'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 편지 속에서 비교적 초연하게 말하고 있었으며, 비극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이 두 번째의 수감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사람들의 여러 가지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변호사와도 접촉을 가졌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그것에 대응할 필요를 느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그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으며, 특히 그녀의 옛 지도 교수였던 장 스테파니니가 그녀의 운명에 대해 관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던 언어학부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수감은 8주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614일에야 석방되었다.

그녀로부터의 다른 편지들은 그녀의 정신, 육체적 상태가 점차로 악화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59,264의 번호가 적힌 봉투를 뜯고, 네모난 검열 도장이 찍혀 접혀져 있는 편지지를 펼쳤을 때 느낀 이상한 감정이었다. 독자 여러분이 곧 읽게 될 내가 받은 그녀의 마지막 편지는 필체가 흔들리고 있었으며, 어렵게 글을 써나가고 있었고 문장이 잘 연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통의 깊이를 알 수 있게끔 정확하게 쓰지 못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녀가 새로운 '경험'을 처음 시작할 때 보여주었던 '건강한' 상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를 다시 봤을 때, 그녀는 정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다. 감옥에서 나온 후 그녀는 나와 약속한 날에 엑스 대학에 왔었다. 그때 그녀는 검은 안경을 하고, 방안에 감히 들어오지 못할 뿐더러, 마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문앞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데리고 갔던 퐁드라르크(Pont-de-l^3^Arc)의 조그만 식당에서 그녀가 안경을 벗었을 때,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창백하고 측은해 보이며, 바짝 말라 험상궂어 보이던 그녀는 바로 자신의 투영이라는 표현이 의미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이해시켰다. 그녀는 마치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지 않나 하여 겁을 집어먹은 듯 끊임없이 좌우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식사할 기력도 없는듯 겨우 칼과 포크를 들었고, 숨쉬기도 어려워했으며, 힘들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실제로 나의 모든 관심은 테이블 맞은편의 전혀 알지 못하는 젊은 여인의 시선 속에 있었다. 그녀는 구류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조목조목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얘기를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그 점에 대해 충분히 발견하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날 교도소가 한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59

그래, 좋다. 또 한 번 싸우는 거다. 삶이란 이름으로 나에게 주어진 이 완만한 죽음, 이렇게 숨 가쁘게 살아야 하는 질식할 것 같은 삶보다 낫겠지.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나는 가브리엘을 끌어당겨 꼭 껴안았다. 숨 막힐 듯 낮게 드리워진 하늘 저편으로 밝은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내가 생 말로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녀는 곧 체포될 것이다. 머지않아 나도 그들에게 붙잡히겠지. 그러나 우리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60

그는 그날 밤 가브리엘과의 슬픈 추억이 깃든 오두막으로 갔다. 불꽃 앞에서 뜨겁게 타오르기도 하고, 눈물빛깔 절망의 안개꽃을 피워내기도 하던 가브리엘의 열정과 좌절의 표정들이 뒤섞인 오두막은 과거의 신비를 간직한 채 그대로 있었다. 이제 4개월만 있으면 열여덟 살이 된다. 그동안만 싸우면 되는 걸까. 사람들의 그 우스꽝스러운 시간 놀음에 어느덧 나는 길들여진 걸까. 밤늦도록 가브리엘의 지친 얼굴이 손짓하는 환영에 시달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61

싸늘하게 식은 가브리엘은 그 고집 센 입술 속에 숨겨진 부드러운 혀를 끝내 내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엎드려 입맞추었다. 가브리엘 나도 데려가 줘. 누군가 나를 가브리엘에게서 떼어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이었다. 그녀는 죽음마저도 경찰에게 확인을 맡아야 했다. 가브리엘은 죽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누군가의 허락을 받았던 걸까. 나는 로봇처럼 기계적인 방법으로 그녀의 사인(죽을 사, 원인 인)을 분석하고 있는 그들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붙이며 밖으로 나왔다.

여기에서 나는 또 멈춘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안다. 그것은 그녀가 감옥의 암흑 속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에 관한 것이지,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에게 가해졌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법무부 장관인 플레방씨는 스스로 사람들이 '여 감옥소'가 마치 지옥 같다고 주장하는 것에 분개를 나타내며, 보메트의 명성을 옹호했다. 그는 가브리엘이 '창녀들'이나 '절도범들'과 방을 함께 쓰지 않고, 같은 나이 또래의 '두 경리직 비서', '화가'와 방을 쓰게 된 것은 하나의 행운이며, 그녀가 있는 방은 매우 편안한 곳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가브리엘보다 못한 그 어떤 여인도, 보통 다른 여자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창녀나 절도범과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가브리엘 역시 "나는 '공동 권리'의 관례를 회피하려고 하는 '엘리트 의식'을 가진 젊은 부르조아 여인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한 그녀와 함께 감방을 쓰고 있는 경리직 비서 출신인 두 여인들은 그녀와의 동거가 가끔은 '지옥'과 같을 때도 있는, 그냥 본질적으로 있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브리엘이 실제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마약 중독자 화가가 증언한 내용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은 채 바로 여기에 적어본다.

"가브리엘이 처음 우리들 사이에 왔을 때, 그녀는 엄한 규율로 지배된 오염된 세상에 아무런 과도기적 단계도 거치지 않고 떨어져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감방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악의와 시기, 야비함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브리엘에게 처음이지만 가장 충격적인 비인간적 굴욕감, 그녀의 옷가지와 속옷을 샅샅이 취조할 수 있도록 전라인 상태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서게 만들었다. 가브리엘은 생애에 결코 그와 같은 치욕감을 느낀 일도 없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이 문장 하나 하나를 적어 내려가면서, 갑자기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아뽈리네르의 시 '건강을 위하여'의 도입부 구절이 문득 내 귓전을 울렸기 때문에 잠시 그녀의 증언을 멈춘다.

감방을 들어가기 전에

나는 옷을 벗어야 했다

누군가의 슬픈 목소리가 짖는다

'기욤'에게 무슨 꼴이냐고

"그녀는 내가 있던 여성 전용 감방 13 호실에 배당되었다. 무거운 문이 그녀 위에 드리워졌을 때, 가브리엘 뤼씨에는 그녀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그녀는 단지 수감 번호인 59,264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그녀가 14시에서 16시 사이에 날마다 있는 산보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였을 때, 어느 누구도 그녀가 보메트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그녀는 마치 남자 아이처럼 매우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죄수들 가운데 가장 고약한 이들은 그녀가 동성 연애자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더욱 악랄한 말도 퍼졌었는데, 마치 시신과 같이 창백해 보이던 그녀는 아무런 얘기도 못 하고 그것들을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녀는 마치 어른들의 잔혹함으로 겁에 질려 있는 소녀 같았다. 그녀에게 수모를 가하기 위해 그녀를 공격할 때마다, 가브리엘은 아주 부럽고 현명하게 대답했다. 감방의 간수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그녀가 한 번도 그들을 무례하게 대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감방에서 오고 가는 모든 것들을 잘 이해했다. 온종일 그녀는 간수들이 그녀에게 퍼부어댔던 상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주위 사람들은 가장 저급한 말로 그녀가 모든 것에 대항하여 항상 간직하고 있던, 크리스티앙에게로 향한 사랑을 조롱했다."

전 생애를 책 속에 파묻혀 살았던 가브리엘은 보메트의 도서관에서 오직 하나의 위로를 찾았다. 가브리엘이 어느 날 나에게 몇몇 작가를 알려주기 위해 책 몇 권을 가져왔을 때 한 간수는 그녀에게, "그것이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지? 넌 누더기에 지나지 않아. 네 인생은 끝장난 거야."하고 그녀에게 심한 말을 퍼부어댔다.

'프랑스 디망쉬(France-Dimanche), 99일자.'

 

* 크리스티앙의 고백 62

이 어둡고 황량한 거리에서 등불 하나 간직한 채 외로이 울던 한 여자가 사라졌다. 아무도 그 여자의 슬픔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 오히려 판에 박힌 일상의 좋은 가십거리였던 그 여자가 좀 더 풍부한 뒷얘기를 남기지 않아 유감일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껌처럼 잘근잘근 씹어대며 입으로 갖고 놀 수 있는 상대이다. 이제 그 여자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재미를 제공해줄 수 없게 된 것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63

나는 이 비정한 도시에 멀미를 느끼며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루앙은 사막처럼 황량해서 누구 하나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세느강의 물줄기도 납덩이로 만든 호수처럼 답답하게 가라앉았다. 예전에 가브리엘과 함께 숨 쉬며 지나쳤던 그 사랑스러운 도시 루앙은 어디로 갔는가. 물 위에 비친 여인들의 그림자를 감싸 안을 듯 부드럽게 출렁이던 세느 강의 물결은 어느새 다 메말라버렸는가.

이것은 보메트의 생활 조건이 플레방씨가 가정한 만큼 그렇게 안락한 곳이 못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아마도 가브리엘과 도서관, 그곳을 방문한 종교인들에게 그 일단의 책임이 돌아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자 인체 특징 색인표와 몸수색, 날마다 가해지는 인간 이하의 대우와 빈정거림, 다시 말해 감옥이라는 세계가 순수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 전부를 없애지는 못한다.

그녀가 감옥에 있는 동안 단 한 가지 가브리엘에게 진실로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사실, 그것은 우리가 읽었던 그 증언의 주인공이며, '사탄'이라고 불려졌던 동료 수감자 어린 뮤리엘을 향한 그녀의 애정이었다. 거기에 또 한번 그녀가 제자들에게 행했던 것과 같은 이상스러운 자기학이 존재한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마음이 다른 여자와는 다른 면, 다시 말해 그녀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여자라는 것을 알았고, 뮤리엘의 마음속에서 친구 같은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둘은 감옥 내에서 편지를 서로 교환했는데, 그것을 보면 '사랑스러운 여자''마약 중독자' 사이에 맺어진 연대감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것을 놀라울 정도로 잘 보여주고 있다. 가브리엘은 그녀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다시 발견하도록 하고, 생활에 대한 반역과 성급함의 의미도 책 속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던 보들레르와 랭보의 텍스트로부터 사탄을 다시 정서하여, 생활과 문학이 만나는 길을 다시 한번 그려보았다.

나도 가브리엘의 일에 관련되어있었기 때문에, 가브리엘에게 가해졌던 억압적 장치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하고자 노력했다. 예심 판사는 그녀를 체포한 후 그녀에게 두 차례나 미결 구류룰 살게 했는데 두 번째는 2개월이나 계속되었다.

나는 이 예심 판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어디에선가 그가 무척 '성실'하고 '신중'한 사람으로 유명하고, 남부사람의 특징인 '상냥함'도 가지고 있으며, '요트 애호자'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비교적 균형 감각을 가진 사람이며, 그의 직업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비난에 대해서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으로 분명히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가브리엘이 그의 앞에서 여러 차례 참을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으며, 만약 크리스티앙 소재지를 말하지 않으면 당신을 체포할 것이라고 그가 그녀를 위협했다면, 그녀는 그를 비난했을 것이며 어디 한 번 체포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심 판사의 역할이 과연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인가? 또한 그의 역할이 '진정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미결 구류를 이용하는 것인가? 또는 그렇지 않다면, 가브리엘이 정말 다른 중범죄자들처럼 위험한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며, 만약 그녀가 그렇다면 크리스티앙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그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혹은 그녀가 법을 회피하려고 했다면, 왜 법원으로부터 받은 모든 소집 통고에 응했을까?

공식적인 주제는 크리스티앙이 사라질 때마다, 그를 빼돌렸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고 보일 때마다, 수사 진척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크리스티앙이 어디에 있는가를 그녀에게 추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크리스티앙의 가출과 가브리엘의 행동 사이에 한 번 설정된 원인과 결과의 연결 이상으로, 크리스티앙이 사라질 때마다 가브리엘이 볼모로 잡힌다는 것은 훨씬 신중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만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믿는 그 구류가, 결코 굽히기를 원하지 않는 형사 피고인에 대한 압력수단과 강제권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양자 택일의 상태, 즉 크리스티앙을 돌려주거나 만약 그것을 거절하면 감옥으로 가거나(사랑과 보메트 중 한 가지 선택)하는 입장 속에 넣어버렸다. 거기에다가 그녀는 굉장히 반항적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성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필요했었다.

실제로 판사는 그의 직업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되는데, 그것은 무슨 이유로 판사가 필요한가이다. 그리고 재판의 고발자인 크리스티앙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러한 점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보인다.

오랫동안 그들을 알고 지내왔던 나는 그들을 친구로서, 정치적 동료로서 여겨왔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 언급하는 것 망설여진다. 나는 또한 공산주의자로서, 이탈리아 공산당의 입장에 대해 그들이 나에게 보였던 호감들은 종종 긍정적으로 보였다. 그들이 1968년에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좌파적' 입장은 전혀 나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았고, 그들의 태도(근시안적인 기자들은 그것을 강조하려고 애썼다.)에 있어 어떤 모호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완전하게 이해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결코 설명할 수 없으나 매우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그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의 친구였던 한 여자를 고발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동료인 동시에 옛 제자였던 그 여자를 고발하였고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행정적으로'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나는 이미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크리스티앙의 부모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두 사람을 충분하게 판단했었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내 자신이 그들의 입장이 되어봤는지 물을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이 나이의 아들이 있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하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단지 가능한 대답 한 가지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에미으 브레똥이 라 마르세이예즈 1012일자 신문에서 했던 말인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을 잘 모르지만, 내가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이다.

르 몽드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좌익의 사람들은 쳐부수어야 할 목표물이 경찰과 부르조아적인 법원이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썼다. 그러한 문장은 모욕적인 것도 논쟁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보편적인 감정을 나타내게 할 뿐이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대답하려고 하는 것,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들의 자동사를 훔쳤다면, 좌익네 당신들은 부르조아 법정에 그들을 고발하지 않겠군요."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 정확하게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차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그보다는 다른 어떤 것이 문제이다. 게다가 나는, 가브리엘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녀를 비극적으로 몰고 갔던 것처럼, 가혹한 압박 장치에 의해 치명적으로 타격을 받기를 원하지 않고, 그녀가 어떤 질서 속에서 모든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

좌파의 사상과 태도의 특성, 단순한 경찰의 의견들은, 일정한 사회의 자기방어 시스템과 탄압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사법부의 조직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에게는 비쳐진다. 사법부의 사회적 '동화'를 논리적인 것이 아니고 추상적인 것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높은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한 오류이다. 우리들은 흔히 그러한 경우를 본다.

나의 어느 날, "이러한 사건에서 여론을 아연실색케 만드는 것은, 젊은 그 남자의 부모들이 교수이며 대학 속에 있는 참여적 지식인이라는 것인데, 만약 그들이 해운업자, 상인들, 또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여러 가지 상황들이 훨씬 더 조용하게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인데." 하며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한 사실들이 내가 계속하여 주시하려고 하는 이 사건의 한 특성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64

절망의 분출구를 찾지 못해 헐떡이는 심장의 고통이 나를 한없이 매달리게 만들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 희고 둥근 이마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가브리엘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몇 시간 전까지만이라도 나는 루앙의 끝을 지나 지구의 끝까지라도 달리고 싶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았던 플랫폼, 거리, 아파트. 가브리엘은 가장 고독할 때에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따뜻하게 배웅해 줄 한 사람의 친구도 없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65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겨드랑이에 돋아난 한쪽의 날개를 떼어내게 던진다. 내 어깨는 황금빛 날개가 사뿐히 내려앉아 밝게 빛난다. 가브리엘은 빛처럼 빠르고 가볍게 나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나는 살포시 그녀의 여린 몸을 받아 안았다. 그녀에게서 눈물 한 방울 떨어져 나와서 내 가슴을 조용히 열어놓는다. 나는 심장 한쪽의 텅 빈 공간에 그녀를 숨겨주고 가슴을 닫았다. 내 가슴에 묻힌 가브리엘의 지친 목소리가 속삭인다. "이제야 집을 찾았어. 크리스티앙. 언제까지나 나를 마음속에서 내쫓지 말아줘."

나는 1969623일 가브리엘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나는 그녀를 그녀가 권리에 대한 규칙이나 관습에 대해 반격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단지 변호사인 크리스티앙 그리졸리가 나의 오랜 친구였고 그가 가브리엘을 만나게 되면 개인적인 친분 관계로 발전될 수 있고, 가브리엘을 만나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크리스티앙 그리졸리가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하고 그녀의 책임에 대한 보다 균형된 견해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소한 가브리엘이 아마도 그가 상상했을 수도 있는 '아이들의 강탈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만남은 단순하면서도 좋은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기이하면서도 슬픈 기억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오늘 변호사였던 크리스티앙 그리졸리 역시 치 불가능한 지병으로 인해 죽어 가브리엘과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스탠드에 의해 비쳐지는 커다란 변호사 집무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가 아득히 먼 이미지로서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밤이었다. 마르세유에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도중에 내려야 했던 그녀의 제자 가운데 한 학생인 끌로데뜨와 함께 내 차에 올랐다. 그 방문이 끝나고 차에 오를 때, 완전하게 비를 피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온몸은 흥건히 젖어 있었고 머리칼은 관자놀이에 딱 붙어 있었다. 우리들은 자동차 와이퍼 소리를 들으며 여기저기 교통 장애물들 사이 사이를 빠져, 네온 불빛이 가득한 마르세유 거리를 달려갔다. 나는 북부 거주지역에 있던 집에 8시경 그녀를 내려놓았다.

나머지 나의 증언들은 보다 부정확할 것이다. 나는 장기 체류를 위해 75일 캐나다로 떠났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710일 비공개로 열렸던 심리,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판결에 대해서뿐 아니라, 같은 날 검찰에 의해 제기되었던 공소(I’appel a minima: 관대한 형벌에 대해 검사가 제기하는 상소)에 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단지 편지나 신문을 통해서 그 사실을 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신문을 통하여 그 소식을 접했을 때, 그것은 이상야릇한 하나의 경험으로 다가왔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누군가 가브리엘에 관한 기사가 프랑스 수아르(France Soir)지에 실려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모든 언론들이 거기에 연루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웠고 다른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안된 일이긴 했지만, 그러한 일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점차 일간지들과 잡지들이 가브리엘 뤼씨에의 생활과 고통에 관한 기사로 가득채웠다.

터론토의 신문 판매소 또는 서점에 프랑스어 신문을 사러 가서, 개인적으로 안다고 믿는 어떤 여자의 모습을 여섯 단의 기사 속에서 펼쳐보고, 사람들이 '사생활의 소유자'라고 가정해보는 것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그와 같이 그녀 자신과는 관계없이, 가브리엘이 '유명배우'가 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도 가슴 아픈 일인가!

'렉스 프레스'지와 '누벨 옵세르 바테르'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문들은 그 소송에 관해 언급하고 있었다. 꼴레뜨 구비옹은 법원의 심리에 대해 썼으며, 프랑스와 까비고리는 법원의 수위가 그녀를 창녀로서 취급했다고 썼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문학부 교사인 가브리엘과 그의 제자간의 해서는 안 되는 열렬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조그만한 소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는 아주 성숙한 처녀처럼 보이기도 하는, 다시 말해 초등학생 같기도 하고 고등학생 같아 보이기도 하는 사진들을 게재하고 있었다.

캐나다 신문도 거기에 끼어들었다. 나는 점점 커지는 불안한 감정으로 이 기사들을 모조리 다 읽어 내려갔다.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언론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고, 사실은 왜곡되고 변형되었으며, 이미 그 본질적인 차원을 넘어 가버린 그 사건은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의 수중을 벗어나, 그것의 주역들과 증인들과는 별개의 문제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무언가 훔쳐갔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이들 사진 속의 가브리엘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상당히 변질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가장 별나고 가장 대중적인 방법으로 소식을 접한 것 같았다.

나는 8월에 나 자신의 당혹스러움을 알리고 잘 참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녀에게 편지를 띄웠지만, 답장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따르브 지방의 가까운 곳에 있는 요양소에서 요양하고 있었으며, 그 후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란쯔만에 갔다. 그녀는 30일 토요일에 마르세유의 집으로 돌아갔으며 그 이튿날인 91일에 자살했다. 그사이에 나는 캐나다를 떠나, 코르시카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것도 신문을 통해서였다. 그때 우리는 그 섬 남쪽을 달리고 있었으며, 싸르뗀느에 멈추었다. 나는 830분경 호텔에서 나와 길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신문 판매자에게 '프로방쌀'지를 달라고 했다. 그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담뱃불을 붙이며 신문을 펼치자, 1면에서 '마치 소설과 같은 사랑 이야기의 비극적인 종말의 주인공인, 젊은 교사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여행과 휴가, 태양, 모든 것이 단숨에 내 마음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나는 담뱃가게의 쇼윈도우에 진열되어 있던 '프랑스 수아르'지를 샀다. 거기에는 그녀와 전혀 닮아 보이지 않는 멍한 시선을 한 긴 사진 한 장이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와 함께 1 면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니스 마땡'지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신문들이 기사의 제목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녀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상세히 알고 이해하려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는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을 했다. 91, 월요일 날 발견되었다. 그 어떤 것도 우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잘 구성된 각본에 짜여진 듯한 그러한 결과였다. 모든 사람들이 휴가 중이었으며 이웃들도 너무나 늦게 그 가스 냄새를 맡았으며, 너무 늦게 경찰을 불렀다. 아마도 모든 것이 너무 늦었던 것 같다.

그 후에 여러 질문들이 제기될 것이다. 이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을까? 누가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으며, 혹시 아무도 그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던가? 누가 그녀에게 인사를 했으며, 그녀는 어떤 글을 썼을까? 그녀는 무엇을 남겼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단지 침묵만을 이 세상에 남겨놓은 채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리고 특히, 마지막으로 '왜 그녀는 자살했을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래, 정말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 자살했을까?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러한 질문 한 가지는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그 여자의 행동의 동기에 대한 억측과 위험성을 범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라고, 그와는 반대로 그녀의 자살을 유발케 한 '조건들'에 관해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가브리엘이 길고 긴 구류에 뒤이어, 특히 검사의 상소 이후 그녀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첫번째 자살 동기가 아니었나 한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모든 증언들이 일치할 뿐 아니라 엄청나게 풍부하다.

그녀를 710일 보았던 모든 사람들은 재판이 열리는 동안, 그녀가 집행유예를 포함한 일 년 징역에 처한 재판부를 향해 진정으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보였는데, 그 형량은 그녀에게 놀라울 정도의 안정감과 진정한 해방감을 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변호사에게 "고맙습니다,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하고 전보를 쳤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시 문제삼기 시작한 것을 다음 날 알고부터, 그녀는 무너져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깊은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다. 거기까지는, 증언들도 많을 뿐 아니라 그 증언들이 정확하고 일치한다.

피레네 지방에서의 휴양의 필요성이 있었던 것도 그러한 증언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새롭고 더욱 강화된 그 고통은 몇 달 전부터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고 가브리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그 고통보다도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1969 5월부터 친구들과 나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가장 명료한 그녀의 태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종의 일기와 같은 편지이며, 독자 여러분이 이미 읽었을 그것들은 일종의 증거로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증거? 그녀가 자살하게 되었던 어떤 감정? 나는 이러한 감정이 그녀를 자살하게 만들었던가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녀의 마음속의 의심과 공포, 반발심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끄는 데 충분한 불안감을 형성시켰다고 말한다. 그녀의 그러한 '모험'은 이미 그녀를 더 이상 살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법원 개입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말았다. 법원의 심리 앞으로 또다시 돌아가는 것은, 그 재판의 판결이 어떻게 나든 관계없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문턱을 넘어버린 결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내가 보기에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진실에 접근되어 있다고 보여지는 관찰자의 증언을 인용해 보려고 한다. 다음은 장 르네 베른느의 증언이다.

 

* 크리스티앙의 고백 66

가슴에 따뜻한 여인의 영혼을 안고 나는 세느 강의 긴 줄기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이제 다시는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가브리엘과의 서러운 추억만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이 거리의 싸늘한 불빛 속으로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사랑이 내게 알게 해준 따스한 등불들은 모두 거두어 가슴에 묻고 가리라. 가브리엘이 없음으로 해서 누더기처럼 남루해진 루앙은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깜깜한 거리를 내 가슴에 번지는 서러운 불빛 하나로 비추며 터벅터벅 걸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쓰다가 다 못 쓴 그녀의 유서는 이제 내가 살아서 완성하리라.

가브리엘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했던 조건들 속에서 어떤 한 여자가 사법부에 연계된 투쟁을 수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녀가 더 이상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있어야 한다.

법정에서 이미 토론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랑이라는 것은 잃어버린 사랑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이미 그녀의 내부 속에 있던 순수함을 파괴하여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수 야만성으로 인해 법은 그 아무도, 부모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도, 심지어는 그 극한 상황에 있는 사람조차도 도울 수 없었다. 그것은 사법부에다. 인간 마음의 복잡한 도정으로서는 도저히 잘 적응시킬 수 없는 매우 엄한 어떤 형태를 제공해 버렸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시련과 위험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설득시킬 수도, 정화시킬 수도 없는 심오한 법의 그물망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개인이 좋아하고 믿는 것에 대해 거절을 할 수 없는 그곳에서 조금씩 거절의 내적 필요성을 발견하기 때문에, 야만스런 힘이나 불의에 의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르 몽드, 19691015일 자.'

다시 말해 거기는 야만적 강제나 불의는 존재하지 않았던가? 아니, 거기에는 단순히 사법부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화국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공포되는 사면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한, 710일 밤에 냉혹하게 판결한 이와 같은 사법부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모든 사람에게 명확한, 즉 마르세유의 검사와 대리 검사를 중개로 한 상소를 엑스의 검사장이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가브리엘이 충분한 형량에 처해지지 않았으며, 특사로부터 그녀를 배제시키는데 충분한 새로운 형량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 그녀는 정말 '죄인'이 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직위에서 그녀를 멀리 하고, 징계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하여 사법부의 범죄기록 보관함에 원문대로 기재되어야 한다."고 그 대리 검사는 분명하게 말했다.

'렉스 프레스(L’expresse), 1969929일 자.'

따라서 사법관은 거기에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것을 위하여 그들은, 대학 당국자들이나 대학 행정 담당자들과 무슨 협의라도 가졌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그러한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전화나 우연한 어떤 계기조차도 없었다. 순진한 가정들만이 거기에 존재할 뿐이다. 부르조아 사회의 안전 장치들이란 것은 그들의 기능상,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문학적으로 보면, 그들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십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어떤 도시의 유력 인물들은, 지방의 일반 사람들 속에 그냥 속하지만 그들의 힘과 그들의 연대적인 현실은 장소도, 이름도, 그 얼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 하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다.

검찰 총장은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는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우리가 단지 나타난 외양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단지 판결 몇 시간 후 검찰이 지금까지의 모든 관례를 깨면서까지 한 상소(여기에서는 사법부의 관대한 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소를 의미함)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심사숙고한 후 결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반사적 대응에서 나왔다고 생각되어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실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검찰 당국의 의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몇몇 행위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좀 별종에 속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 그들의 이러한 의식은 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의식이라는 것은, 어떤 한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의 개념과 표상들, 좀 더 좁혀 말한다면 이러한 사회의 존경할 만하고 지배적인 계층, 즉 일부의 개념과 표상들을 법제화하는 것처럼 그러한 모든 종류의 표상들과 개념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깊이 내면화된 '표상들' (물론 검찰 당국자들의 의식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은 두 번째의 도덕적인 본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의식은 그때 법률과 일치하게 된다. 생각이라는 것, 의식이 어떤 사실들을 규제한다는 것과는 달리 그 사실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검찰의 의식을 일깨우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의 확신은 집행력을 가지게 되고,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풍습의 변화와 금기사항의 점차적인 쇠퇴가 사람들의 심성을 오늘날과 같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소위 법률 의식이라는 것과 같이 시제의 일반 사람들의 심성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의 정도를 측정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결코 쇄신되지 않는 법률의 고풍주의는 완전히 현실 문제에 눈뜬장님이 되어버린다.

지금 우리가 취급하고 있는 사건에서 정확하게 세 가지의 진부한 문제가 제기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는 그의 학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는, 어떤 한 여인은 그녀보다 열다섯 살이나 나이가 적은 남자아이와는 아무런 관계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고, 마지막 하나는, 그 어느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고는 사법부에 대해서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기 때문에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가브리엘에게 있어서 교사 신분은 가중정상이었다는 것을 선언하는데 그 대리 검사는 불공평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녀는 분명히 그와는 반대로 설명했다.) "만약 미용사가 문제가 되었거나, 혹은 그녀가 젊은 견습 미용사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 아닌가!"

'렉스 프레스지, 1969929일자.'

두 번째 문제에 있어서, 풍속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프랑스 형법이, 미성년자 유괴죄에 대해 남자들보다 여자들에 대해 훨씬 더 가혹하게 다루고 있다고 골백번도 더 반복해 이야기된 바 있다. (왜냐하면 그 미성년자가 남자의 요구에 응하는 여자였다면, 그 불법 행위는 아무런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여기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은 한 미성년자를 유혹했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공포에 가까운 혐오감을 가하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그녀는 그 젊은이와 즐겼고, 뻔뻔스러운 일시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녀의 행동은 고백하기조차 어려운 어쩔 수 없이 창피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태도를 불러일으키기는, 잔인한 반 여성주의는 순수한 사회적 실제에 있어서는 더욱 가증스럽게 나타난다.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문학 속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모든 상황이 바뀐다.

예를 들어 바렌 부인이 젊은 장 자크에게 어떤 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그보다 열네 살이나 많았다.) 줄리앙에 대한 레날 부인, 파브리스에 대한 산세베리나 부인, 이포리뜨에 대한 페드르, 프랑스와에 대한 미르뜨 부인, 쉐리에 대한 레아 부인, 이 모든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그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학적 상황이다.

그런데(새로운 괄호) '뤼씨에 사건'은 문학적인 문화가 어느 정도 그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펼쳐졌고, 그것은 그럼에도 이해의 대상이 되는 차원의 요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필립 베르티에가 '르몽드'지에 보냈던 편지, '사람들은 누구나 젊은이들을 문학의 명작들 앞에서 그들에 대해 찬탄을 보내도록 권고할 것이지만, 사회적 제재와 전원 일치의 부인을 조건으로 하여 그것들을 흉내 내지는 못하게 할 것이다.'를 유익하게 읽을 것이다.

실제로 가브리엘은 문학과 실제 생활을 혼돈하고 있었으며,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문제이다. 그것은 도전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고집이었고 무례함이었다. 거기에 대해 대리 검사 양반은 언급한다. 그는 그녀가 만약 공개적으로 사과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녀는 결코 공개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또한 '내가 오해했다.'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710일의 판결 때에도 그녀가 재판에서 '승리'하기를 원하고 마지막 무슨 말인가를 하기 원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으며, 그것은 검사국의 구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너무나 큰 확신에 자 있었던 그녀는 '어떤 잘못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원했었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스스로를 지킬 것을 간구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그녀는 위에서 언급된 두 가지 '상징들'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이 두 가지 위반에다 그보다 더 무거운 위반 하나를 범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그녀를 죄인으로 만든 게임의 규칙을 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패배한 다른 하나의 이유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은 가장 강력한 사회에 의해 항상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 도전하기 위해 약삭빠른 요령이 있는 친구들은 간접적으로 거기에 도전하나, 가브리엘은 정면으로 맞대결하였다.

성욕으로 가득 차 있고 풍속으로부터 자유로운 파리에서 그녀를 약간 교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정심을 가지고 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그러한 조그마한 이야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은 그녀에게 퍽 쉬운 일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만약 그녀가 행동할 줄 알았다면, 그러한 사실은 가장 멋진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처럼 보이기도 아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녀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안티고네의 역할을 하여야 하며, 침묵을 지키고 잊어버리는 대신에 토론하고 이치를 따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따르뛰프는 오래전부터, "세상의 스캔들은 모욕을 가하는 것이고, 침묵속에서 잘못을 범하는 것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하며 쑥덕거렸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가브리엘에게 너무나 비싼 값을 치르게 했다는(즉 완곡한 방법을 쓰지 않고 직접 대항하며, 법이나 풍속에 대해 합리적이기를 바랐고, 모든 판사 검사와 대항하여 이성적이기를 원했었기 때문에)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날마다 그녀가 처한 상황만큼 외설스러운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훨씬 더 '불명예스러운 것들'도 존재한다. 어떤 한 경우를 인용하기 위해서는 앞서 일어난 몇몇 경우에 따르면, 나이가 지긋한 양반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 고등하교 여학생들과 접촉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경우이다.

그렇다고 해서 판사와 검사들이 그와 같은 것은 뿌리 뽑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미성년자들이 그들의 요구에 흔쾌히 응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단지 그녀들도 자신의 이익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명목으로 그 여자애들은 아무런 충돌이나 잡음 없이 그러한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사회는 배제의 기능과 부수적인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것들은 중상주의라는 이름 하에 완성된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하는데, 그것은 바로 질서이다. 무질서와 스캔들은 다른 방법으로 가는 것만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중상주의도 이익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놀라울 정도의 순진함과 서투름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사랑, 선동, 혹은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처음에는 어떤 오점에 의해서도 더렵혀지지 않았다.

그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훨씬 중대한 것으로 비쳐지는데,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것이다. 만약 어떤 체제가 올바르게 움직이게 된다면, 위협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체제 전제가 된다. 따라서 용감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냥 단순하게 아무런 주석 없이 오직 나 자신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가브리엘과 크리스티앙이 서로 서로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브리엘은 남편과 이혼했었기 때문에 자유로웠고, 크리스티앙은 생활 앞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유스러웠다. (그는 혼자였고 젊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간접적인 동기도 없이 그 자신들 스스로, 그들 사이의 위험한 사랑의 모험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행한 일들에 대한 주인이 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일들이 그들의 마음에 들던, 들지 않았던 간에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는 자신만의 판단자가 될 수 있었고, 그들 스스로가 범했건, 범하지 않았건 그들 앞에 닥친 불행이나 위험에 대한 책임감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머지에 대해선 그 어떤 누구도 감히 얘기할 수 없으리라. 특히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하리라. 그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경찰과 사법부가, 이러한 질서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는 사건을 위해 그들의 모든 장치를 동원한 것은, 올해 문학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브리엘이 죽은 이후 모든 것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모든 신문과 모든 소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모든 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놀라운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론을 통해 어수선한 가운데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그 사건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새롭게 사람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제목의 기사들과 사진들의 게재 등등(예를 들면 파리에서는 매우 흥미있는 얘깃거리로 다시 써먹었는데, 크리스티앙이 아니지만 같은 나이의 크리스티앙처럼 보일 수 있도록, 수염이 길게 자란 고등학생인 어떤 젊은 청년의 사진을 게재함으로써 독자들의 눈을 속인다) 그때 마지막 남아 있던 일말의 양심과 예의바른 태도마저도 없어져 버린다.

여러 조사들에 뒤이어 보도가 여기저기 난무했다. 경솔함이 곳곳에 잠입해 들어갔던 것이었다. 마음의 급박함이 그들에게 신문의 많은 면을 할애하게 했던 것이었다. 거의 모든 신문들은 가브리엘에게 유리하게 그 사건의 전체를 다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코는, 아마도 그의 취향과 정신적 독립심에 의해 그렇게 한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파리 마치(Paris-Match) 매거진에 그녀에 관해 유감스럽게도 외설스러운 기사를 게재했는데, 그것은 그의 자유이긴 하지만 죽음과 고통 앞에서 취해서는 안 될 어떤 색깔의 목소리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적어도 그렇게 판단된다.

열정, 그녀가 불러일으킨 여러 기사를 통해서 보면, 여론 속에서 '뤼씨에 사건'이 불러일으킨 어떤 한 사회학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언론이 가브리엘의 낙담과 사기의 저하에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다는 내 견해를 말하기 위한,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 일어났던 것은 이미 앞서 지나간 일에 지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신문을 읽기 위해서 그녀는 현존해 있었어야 했고, 그 신문 속에서 그녀가 왜곡되고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혹은 그저 나열된 그녀의 이야기를 보고 크게 분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반적으로 보다 더 친숙한 것으로부터의 그와 같은 박탈감이 어떤 식으로 가장 저항적인 존재를 평온하게 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의 사랑 혹은 고통들에 관해 외부에 비쳐진 이미지가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그녀의 고독과 정신적 혼란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사실에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언론들은 이미 자제력을 잃은지 오래이며 더이상 그 어떤 선도 그 속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이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것조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들에 심사숙고하여야 하며, 꼭토의 반사경처럼 더욱더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론도 그들의 역할의 본질을 지켜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정보를 제공했고, 그 사건을 변형시켰으니 각 일간지와 주간지, 모든 라디오 방송국들은 각각의 스타일로 최선을 다하고 객관적으로 보면서 그들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언론이 전부가 아니다. 개개인의 의식들 속에서 가브리엘의 비극의 알 수 없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익명의 사람들이 보내온 모든 편지들에 언젠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여러 신문들 속에서 그러한 편지의 상당수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라디오 몽테 카를로에서도 한 아름의 사연을 이미 들은 바 있다. 매우 간단한 기사를 발표한 후 나도 상당히 놀라울 정도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속에는 무언가 말하기를 원하거나 알고 싶어하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그들 자신의 문제를 상세히 설명하는 사람, 자신들의 고통을 재구성해 보는 사람들, 법원과의 문제를 다시 고려해 보려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불행 속에 자신의 문제를 투영시키면서 갑자기 자신들 속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 등등이 있었다.

그리고 명확하게 그녀의 진실을 바르게 찾아낼 수 있는 한 가족으로 여길 정도로, 매우 민감하고 친밀하며 따뜻한 눈빛을 지닌,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관계 있는' 형용사가 결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른 울림들, 즉 보다 공개적이고 시끄러운 울림들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중심 사건에 접목되어있는 부수적 사건들 주위에서 일어났던 여러 소용돌이들을 회상하지 못했지만, 여기에서 몇 마디 피력할 것이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가브리엘은 엑스 대학의 문학부 언어학 조교에 지명되었어야 했다. 그녀의 지명은 분명치 않은 조건에서 1968년도로 연기되었었다. 그녀의 고통이 더욱 가중되었던 1969년에, 그녀의 임명건이 프랑스어부에서 다시 상정되었다.

그때 그 대학의 임시사정위원회는 근소한 다수로 그녀의 임용에 반대했다. 그녀의 구금에 정통한 몇 사람의 그 위원회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그것은 물론 가장 엄격한 그들의 권리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녀의 능력보다는 사생활에 더 민감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때 그녀는 구금되었을 뿐이지 재판의 판결이 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의 신분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이 투표는 그녀가 자살한 후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억압적인' 대학, 도덕적인 질서, 그 심의회에 대해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다.

장 베르데이으 사건(즉 젊은이들과 히사시를 피웠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님므 대학 교수)은 그것들에 대한 의심을 배가시켰다. 이러한 학생들의 움직임은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은 매우 격렬했었으며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가브리엘이 그 흔적을 남긴 마르세유 북부 고등학교에서 그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마오이스트 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성녀와 마오이스트의 여걸이 되었다. 만약 그녀의 초상을 깃대에 걸어 길거리에 나부끼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한 것은 나에게 어떤 꿈을 남긴 고인의 호기심 어린 기구한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마오이스트의 여걸 같은 가브리엘을 알지 못하며, 또한 혁명가로서의 가브리엘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신념이 '정치적'이었을 때 문제의 학생들이 오해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물론 그들은 이 단어에다 이 단어의 일반적 의미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러한 의미가 종국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나는 그들의 행동이 무절제할 정도로 위험스럽게 보였고 아마도 그랬겠지만, 오늘날 학생들이 나누어 주었던 소책자 가운데 하나를 읽으면서, 그것이 가브리엘에게 표한 가장 아름다운 존경의 표시의 하나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자료로써 여기에 싣는다.

(다른 교사들과 달랐던 교사)

다른 교사들과 달랐던 교사였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권위로 우리를 억압하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와 함께 예사말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토론했었다. 그녀는 우리들을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대해주었으며, 그녀가 제자들 가운데 한 학생과 관계를 맺게 된 것도 이러한 범위 내에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진실로 어느 쪽인가를 보여주었던 것은 19685월이었다. 그녀는 고등학생들의 움직임을 파괴시키려고 하던 행정당국과 반동적 교사들의 술책을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개별적인 파업자들에 대한 지지단에서 정력적으로 확동하며 노동자들 편에 섰던 것이었다.

교사단은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도 손댈 수 없고,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교사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가 조교 지명에서 배제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녀의 제자와의 어떤 한 관계와 수없이 밝혀지는 모든 반응들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무슨 뼈저린 원한이 있었기에 그녀에 대한 압력이 그렇게 집요했던가? 이러한 종류의 관계는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많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그녀의 이야기에는 세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가? 그것은 교사의 권위로 인하여, 고등학교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부르조아 권력이 점점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그녀는, 그녀의 권위 가운데 하나인 봉기에 휩싸인 고등학교 교정 내에서, 교사라는 신분이 적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이 가브리엘로서, 그녀가 1969 년 신학기를 맞으며 하나의 본보기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이다.

하지만 그녀가 우리를 지지했다는 이유 때문에 죽었다면 우리도 그녀의 길을 따르도록 하고, 고등학교에서 학생과 학생 사이의 퇴폐적이고 권위적인 모든 관계들에 대하여 투쟁하도록 하자.

나는 그녀가 이러한 텍스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으며, 그녀의 입장을 어떻게 변호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들은, 그녀의 비극이 야기시킬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나는 가끔 그녀가, 그녀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 해에 일어났던 것과 그녀가 죽은 후 일어났던 일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었던 한 인물, 까뮈의 뫼르소에 대해 언급한 글 속에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놓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방법에 있어서 이방인이었다. 재판관 앞에 출두하여 반발하였고,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분노와 어리석음을 느꼈던 그녀는 종국에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일어났던 것들에 대한 이 불행한 사건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가 속한 사회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녀의 모든 행동을 통해 비난받았던 것, 즉 그녀는 그녀가 행한 행동보다는 그것들을 행사한 어떤 방법들을 더 비난했을 것이다. 그녀를 잃어버리게 했던 것은 배로 그것이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모든 것을 추억하며, 어떤 분명한 까닭도 없이 불현듯 파베즈의 다음 시를 낮은 목소리로 읊는다.

"죽음은 닥쳐올 것이고 그것은 제 두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