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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0-1

10권 천하통일의 대운

 

가을장마와 서촉으로 군사를 낸 사마의

때는 건흥 87, 그때, 위 도독 조진도 병이 다 나아 자리에서 일어나자 위주에게 표문을 올렸다.

촉병이 여러 차례 우리의 경계를 침범하니 중원이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만약 내버려두면 반드시 뒷날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때는 서늘한 가을이라 군마가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없으니 바야흐로 적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만하옵니다. 신이 바라건대 사마의와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나아가 역적을 쳐 없애 변경의 걱정거리를 쓸어 없애고자 하옵니다.’

위주는 그 표문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조진의 말대로 촉은 여러 해 동안 괴로움을 준 나라의 근심거리가 아닌가. 조예는 우선 시중 유엽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자단(조진의 자)이 촉을 치자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하오?"

유엽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대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지금 쳐없애지 않으면 뒷날의 근심거리를 남기게 됩니다."

위주 조예는 그 말을 흡족히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이었다. 유엽이 어전에서 물러나와 집으로 돌아가 있는데 조정의 무인이며 대관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물었다.

"듣기로 천자께서 공을 부르시어 촉을 칠 논의를 하셨다 하는데 시중께서는 뭐라고 상주하셨소이까?"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일은 없었소이다. 촉 땅은 산천이 험해서 쉽사리 칠 수 있는 땅이 아니오. 부질없이 군마만 잃을 뿐 아무런 이익도 없을 것이오."

유엽은 조예에게 했던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고 반대로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다. 유엽이 말도 못 붙이게 딱 잡아떼니 모두들 할 말을 잊은 채 돌아갔다. 그러자 양기라는 한 관원이 집적 위주 조예를 찾아가 물었다.

"어제 듣기로 유 시중은 폐하께 촉을 치도록 상주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 등과 이야기할 때에는 촉을 쳐서는 아니 된다 했습니다. 이는 폐하를 속이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시중을 부르셔서 다시 물어보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조예도 그 말을 듣자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즉시 유엽을 불러들이고 물었다.

"경은 짐에게 촉을 쳐야 한다고 권하고는 이제 다른 말을 하니 무슨 까닭인가?"

유엽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조예는 어이없다는 듯 껄걸 웃었다. 잠시 후에 양기가 물러나자 유엽이 조예에게 가만히 말했다.

"신은 어제 폐하께 촉을 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나라의 큰일인 만큼 어찌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군사를 부리는 일은 속고 속이는 일이므로 일을 벌이기 전에는 깊이 숨겨 두고 내지 말아야 하는 법입니다."

조예는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경의 말이 참으로 옳소!"

조예가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그때부터 유엽을 정중히 대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열흘 만에 사마의가 돌아왔다. 조예는 조진으로부터 이러저러한 표문이 올라왔음을 알려 주고 의견을 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소?'"

"신은 이번에 형주에 가서 동오의 움직임을 살피고 왔습니다. 신이 보는 바로는 동오에서는 아직 군사를 낼 조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촉을 쳐 없앨 좋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마의가 주저 없이 그렇게 말하자 조예는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곧 조진을 대사마 정서대도독으로 삼고, 사마의를 대장군 정서부도독, 유엽을 군사로 삼았다. 세 사람은 위주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40만의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거쳐 검각을 빼앗기 위해 한중으로 밀고 나갔다. 곽희와 손례는 일종의 별동대가 되어 다른 길로 한중으로 갔다. 한중을 지키던 장수에 의해 이 소식이 성도에 전해졌다. 그때 공명은 이미 병이 나아 평소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명은 매일같이 조련장에 나가서 장졸들에게 팔진법을 가르치고 있던 중이었다. 공명은 위의 대군이 한중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장의와 왕평을 불러 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각기 1천 기를 이끌고 진창으로 가서 위병을 막도록 하라. 내가 곧 대군을 이끌고 뒤따라갈 것이다."

두 장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공명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위군은 40만이나 되며 심지어는 80만이라고까지 부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작 1천의 군사로 어떻게 그런 대군을 맞아 길목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위의 대병이 한꺼번에 밀려든다면 무슨 수로 버텨 낼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군사를 많이 주고 싶어도 부질없이 군사들만 고달프게 할 것 같아 그러는 것이다."

점점 모를 소리였다. 두 장수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머뭇거리고 있을 뿐 선뜻 나서려 하지 않자 공명이 좋은 말로 두 사람을 재촉했다.

"설령 일이 잘못되어도 그대들의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어서 떠나도록 하라."

그러나 두 사람은 공명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후방을 위해 대군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게 하여 시간이나 벌어 보려는 것쯤으로 여긴 장의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애원했다.

"승상께서 저희 두 사람을 죽이시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 주십시오. 저희들은 아무래도 못 가겠습니다."

그제야 공명이 껄걸 웃으며 참뜻을 밝혔다.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내가 가라고 할 때에는 그만한 생각이 있어서임을 어찌 모르는가? 어젯밤에 천문을 보았더니 필성(28수의 열두 번째 별 이름)이 태음 사이에 있으므로 이 달에는 틀림없이 큰 비가 쏟아질 것이다. 위의 군사가 40만이라 하지만 그 대병이 어찌 진창의 좁고 험한 산속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적은 군사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군을 한중에 두고 한 달 동안 편안히 쉬게 하여 위군이 물러가기 시작하면 지체없이 대군을 몰아 그들을 뒤쫓으려는 것이다. 편히 쉬다가 적이 지칠 때를 기다려 치는 것이니 우리 10만 군사가 능히 40만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제야 공명의 뜻을 알고 하직 인사를 올린 뒤 떠나갔다. 이어 공명은 대군을 거느리고 한중으로 나아가 각처의 길목을 지키는 장수들에게 마른 나무의 말먹이 풀과 인삼을 인마가 한 달 동안 쓰고 남을만치 준비하여 장마철을 지낼 채비를 하게 했다. 한편, 조진과 사마의는 40만 대병을 거느리고 진창성에 이르렀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안에는 집이 한 채도 없었다. 집은커녕 곡물 한 톨, 닭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고장의 토박이를 찾아 까닭을 물어 본 즉, 공명이 물러날 때 불을 질러 모두 태워 없앴다는 것이었다. 조진은 하는 수 없이 진창길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사마의가 깨우쳐 주었다.

"함부로 나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간밤에 천문을 보았더니 필성이 태성음 사이에 걸쳐 있었으므로 틀림없이 이달 안에 큰 장마가 질 것입니다. 만약 적진 깊이 들어갔다가 이기면 좋겠지만, 혹시 실수가 있게 되면 인마의 수고스러움을 말할 수 없이 클 뿐만 아니라 그때는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한동안 성안에 집을 지어 장마철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진은 사마의의 말을 듣고는 그의 말에 따랐다. 나무를 베어 와서 움막을 짓고 열흘쯤 머물러 있으려니까 과연 오늘도 비, 다음 날도 비, 낮이고 밤이고 비만 쏟아지는 날이 이어졌다. 그 우량은 놀라울 정도였다. 장대 같은 비가 잠시도 쉬지 않고 퍼부었다. 쏟아붓듯 매일 그렇게 비가 내리더니 나중에 무기도 식량도 모두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갈 정도였다. 급히 지어 놓은 움막도 물 속에 잠겨 산 위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길은 격류로 휩싸였다. 절벽은 폭포가 되고 골짜기 아래는 이미 호수로 변해 있었다. 이러나 밤에 잠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장마가 30여 일이나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에 빠져 죽거나 떠내려가는 자도 있었다. 말은 풀이 떨어져 굶어 죽고, 군량도 바닥이 나 군사들의 불평이 그치지 않았다. 후진과의 연락도 끊겨 버렸다. 40만의 군사는 촉병과 싸우기도 전에 물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사실이 낙양에 전해지자 위주 조예는 제단을 쌓아 놓고 비가 그치기를 빌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때 황문시랑 왕숙이 위주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옛글에 이르기를 '천리 밖에서 양식을 실어다 먹이면 군사의 얼굴에 굶주린 빛을 띠고, 금방 벤 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지으면 군사들은 배불리 먹지도 못하며 잠자리도 편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군사가 평탄한 길을 나아갈 때를 이른 말인데 좁고 험한 길을 뚫고 나아갈 때는 그 수고로움이 몇 갑절이나 될 것입니다. 하물며 요즈음 같은 장마철은 산언덕이 미끄럽고 험하며 군사들은 걷기조차 힘든 터에 멀리서 군량마저 싣고 가야 하니 이는 모두가 군사를 움직이는 데 있어 꺼리는 일입니다. 듣기로, 조진이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가야 할 길의 절반밖에 이르지 못한 채 길을 닦는 데에만 모든 군사들의 힘을 쓰게 하고 있다 합니다. 이는 곧 적에게 편안히 있으면서 지친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로움을 주게 되는 것이니 병가에서 크게 꺼리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옛 무왕은 주를 치러 관을 나섰다가 바로 그런 까닭에 되돌아왔고, 가까이는 무왕과 문왕께서도 손권을 치러 대강까지 가셨다가 군사를 되돌리신 적이 있으십니다. 이는 모두가 하늘의 뜻을 따름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의 때를 알아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도 군사들이 장마철에 겪는 어려움을 살피시어 잠시 그들을 쉬게 하셨다가 훗날 적에게 빈틈이 있을 때를 노려 다시 싸우게 하십시오. 그러면 군사들도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장마철에 나가 있는 군사를 거두어들이라는 표문을 보고 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곳에 나가 있는 조진과 사마의의 뜻을 몰라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양부와 화흠이 다시 상소를 올려 군사를 불러들이도록 권했다. 위주도 마침내 왕숙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조진과 사마의에게 조서를 내려 군사를 물리도록 했다. 그 무렵, 조진과 사마의도 이미 군사들이 싸울 맘이 없이 돌아갈 것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조진이 사마의에게 물었다.

"비가 한 달이나 계속해서 쏟아지니 군사들은 싸울 맘이 없이 돌아갈 것만 생각만 하고 있소.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사마의가 조진에게 권했다.

"싸울래야 싸울 수도 없으니 돌아가느니만 못하겠습니다."

"만약 촉병이 뒤쫓으면 어떻게 물리치겠소?"

조진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묻자 사마의가 대답했다.

"군사를 나누어 숨겨 두고 뒤를 막게 하여 물러나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논을 하고 있을 때 위주의 조서가 진창에 이르렀다. 위군은 드디어 전대를 후대로 삼고 후대를 전대로 삼아 서서히 회군하기 시작했다. 한편 공명은 가을장마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 가자 비가 개지 않았는데도 몸소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성고로 나아갔다. 이어 다른 군사들이 모두 적파에 모이도록 명령을 내린 후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내가 생각건대, 위주가 필시 조진과 사마의에게 조서를 내려 회군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뒤쫓지 않겠다. 차라리 그냥 가게 내버려 두고 다음 기회에 이길 계책을 꾸미도록 해야겠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왕평이 보낸 사람이 와서 알렸다.

"위병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위병이 물러나고 있는데도 공명이 뒤쫓지 않자 여러 장수들이 물었다.

"위병이 비에 견디다 못해 물러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등 뒤를 덮쳐야 합니다. 그런데도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뒤좇지 않으십니까?"

공명이 그 까닭을 깨우쳐 주었다.

"사마의는 용병에 능하다. 대병이 몰릴 때는 반드시 군사들을 숨겨 두었을 것이니 그 뒤를 쫓는 것은 곧 그 계책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멀리 달아나는 동안 나는 군사를 나누어 야곡으로 나아가리라. 거기서 기산을 빼앗은 뒤 위병들을 들이치겠다."

"장안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승상께서는 왜 빈번히 기산으로만 나아가려 하십니까?"

장수들은 여전히 까닭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기산은 장안의 문턱이다. 농서 여러 고을에서 장안으로 오려면 반드시 그곳을 거쳐야 한다. 또 그 앞은 위수를 끼고 뒤로는 야곡을 등에 지고 있어서 나가고 들어오기가 자유롭고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편리하니 가히 복병을 쓰기에 좋은 땅이라 하겠다. 때문에 나는 한 걸음 먼저 그곳을 차지하여 지세의 이로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서야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명이 장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위연, 장의, 두견, 진식은 기곡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마대, 왕평, 장익, 마충은 야곡으로 나가되 모두 기산에서 만나도록 하라."

각 군이 모두 영을 받고 떠나자 공명은 광흥과 요화를 선봉으로 삼아 몸소 대군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한편, 조진과 사마의는 회군하는 위병의 후방에게 군마를 감독하게 하며 물러나면서 사람을 시켜 진창의 옛길을 살피게 했다. 그 후 다시 열흘쯤 행군하니까 뒤에 남아 매복하고 있었던 장수들이 모두 돌아와서 하는 말이 촉군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조진이 말했다.

"이번에 내린 비로 잔도(계곡의 벼랑에 만든 나무로 된 길)도 다 끊어졌을 것이다. 또 벼랑길도 산사태로 허물어져 촉병도 뒤쫓을 수가 없을 테니 어찌 우리가 물러나는 걸 알 수 있겠는가?"

그러자 사마의가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촉군은 반드시 우리들이 지나간 갈일 밟고 따라올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시오?"

조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지금 공명이 뒤쫓지 않는 것은 우리가 복병을 숨겨 둔 걸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헤아리건대 그는 날씨가 맑아지면 기산 방면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의견에는 선뜻 찬성하기 어렵소이다."

조진은 여전히 사마의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공명은 우리가 멀리 나가고 나면 아마도 전군을 둘로 나누어서 기곡, 양곡의 양쪽 길로 군사를 낼 것입니다."

조진은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사마의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이라도 기곡과 야곡으로 가는 길목에 급히 군사를 보내어 매복시키면 그들의 선봉을 두들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마의가 그렇게 말했으나 조진은 끝내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공명이 뒤쫓는다면 오랜 비로 지친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는 자기들을 급히 들이치지 않고 먼길에 군사를 보낼 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단은 어찌하여 제 말을 그토록 믿지 않으십니까?"

조진이 끝내 믿으려 하지 않자 사마의가 목소리를 한층 높이더니 또 다른 의견을 내었다.

"자단과 내가 군사를 둘로 나누어 기곡과 야곡으로 나아가 골짜기의 입구를 지키되 열흘 동안 기한을 정하고, 그 사이에 촉군이 오지 않는다면 나는 어떠한 죄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어떻게 죄를 받겠다는 것이오?"

"이 얼굴에 붉은 분을 바르고 치마를 두르고 자단에게 큰절을 올리겠습니다."

"그거 재미있겠군."

"그러나 만일 자단의 생각이 틀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폐하께서 하사하신 옥대와 병마 한 필을 중달에게 주겠소이다."

사마의의 말에 조진도 자신 있게 그렇게 대꾸했다. 그날 해질녘이 되자, 사마의는 기산의 동편에 위치한 기곡으로 향하고 조진도 일군을 거느리고 기산의 서편, 야곡의 골짜기 입구에 가서 매복했다. 사마의는 한 떼의 군사를 매복시키고 나머지 군사들을 쉬게 하는 한편, 자신의 졸개의 옷으로 바꾸어 입은 후 군사들 틈에 섞여 영채를 두루 살피고 있었다. 매복을 하는 임무는 실제로 적군과 맞붙어 싸울 때보다도 훨씬 고달플 경우가 많다. 올지, 오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적군에 대비해 밤이고 낮이고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불을 사용할 수 없으니 겨울에는 추위를 견뎌내야 하고 날음식을 먹어야 했다. 여름에는 모기, 해충, 독사 등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꼼짝 못 하는 임무가 바로 매복이었다.

"그처럼 지독한 장마에 시달렸건만 어찌하여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적군이 오지도 않는데 엉뚱한 내기를 하려고 매복을 시키다니, 그동안 애꿎은 군사들만 고생시키는구나."

한 편장이 부하들 앞에서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진지를 순초 중이던 사마의의 귀에 그 불평이 들렸다. 사마의는 장막에 돌아오자마자 가까운 신하를 시켜 모든 장수들을 불러들이고 그 편장을 불러 오게 했다. 편장이 들어오자 사마의는 안색을 바꾸며 꾸짖었다.

"내기를 위해 군사를 움직였다고 너는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다만, 만일 적군에게 이기면 너희들의 공도 다 폐하께 아뢰어 크게 상을 내릴 생각으로 있었다. 조정에서 천일을 두고 군사를 기른 것은 한때의 쓸모를 위해서이다. 너는 함부로 상장의 명을 원망했을 뿐 아니라 그 말을 군사들 앞에서 지껄여 사기를 떨어뜨렸으니 참으로 괘씸한 일이다."

그러나 편장은 얼른 죄를 빌지 않고 변명했다. 사마의가 함께 있던 군사들을 불러 마주 대하게 하자 그제야 잘못을 빌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받아들이지 않고 좌우를 돌아보며 엄명을 내렸다.

"저자의 목을 쳐라!"

편장의 목이 진문에 효수된 것을 보자, 그 편장과 같은 마음으로 불평하고 있던 다른 장수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입을 다물었다. 사마의가 다시 여러 장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모든 장수들은 힘을 다해 촉병을 막되 포 소리가 나거든 모두 달려나가도록 하라."

한편, 위연, 장의, 진식, 두경 네 장수는 2만 군사를 거느리고 기곡으로 가는 길을 서둘러 행군하고 있었는데, 문득 참모 등지가 이르렀다는 전갈에 즉시 맞아들인 후 온 까닭을 물었다.

"어쩐 일로 이렇게 급히 오시었소?"

"승상께서 영을 내리시되, 기곡으로 나갈 때는 위병의 매복에 대비하여 가벼이 나아가지 말라 하시었소."

등지의 말에 진식이 그 말을 받았다.

"승상께서는 군사를 부림에 왜 그리 의심이 많으시오? 내가 보기로는 위군들은 오랜 장마에 시달려 상한 자도 많고 옷고 갑옷도 모두 쓸모없게 되어 돌아가기에 바쁜 형편이오. 어찌 매복까지 할 여력이 있겠소? 우리가 이렇게 내친 걸음에 밤낮으로 길을 서둘러 적군을 뒤쫓으면 크게 깨뜨릴 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나아가지 말라 하시오?"

그러자 등지가 정색을 하며 진식을 타일렀다.

"승상의 헤아림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장군들도 잘 아시지 않소. 장군들은 어찌 영을 어기려 하시오?"

"승상께 깊은 계책이 있었다면 가정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거요."

진식이 빈정대듯 말했다. 위연도 전에 공명이 자기의 계책을 들어 주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고 껄걸 웃고 나서 말했다.

"전에 만약 승상께서 내 말대로 곧장 자오곡으로 나갔더라면 지금쯤은 장안은 말할 것도 없고 낙양까지 얻었을 것이오. 그런데도 이제 와서 다만 기산으로만 나가려 하니 무슨 이로움이 있단 말이오? 그리고 나아가라 했다가 다시 나아가지 말라고 하니 종잡을 수 없는 군령이 아니겠소?"

그 말에 힘을 얻은 진식이 다시 위연의 말을 받았다.

"나는 따로 5천 군사를 거느리고 이 길로 단숨에 기곡을 빠져나가 기산에 가서 진을 치겠소. 승상께서 부끄러워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한번 두고 보겠소."

그 말을 남기고 진식은 등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천 기를 이끌고 기곡의 골짜기로 향했다. 진식이 기세도 드높게 기곡으로 나아가는데 몇 리를 달리지 않아 홀연 호포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사방에서 복병이 달려 나왔다. 진식이 깜짝 놀라 군사를 물리려 했으나, 위병은 이미 골짜기 어귀까지 들어차 있었다. 진식이 닥치는 대로 위병을 후리며 포위를 뚫으려 했으나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촉병은 위병에게 크게 꺾이니 지식도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떼의 군사가 달려왔다. 바로 위연이 거느린 군사였다. 거기다가 장의와 두경까지 촉병을 이끌고 나오자 그제야 위병을 쫓을 수가 있었다. 진식의 5천 기 중 겨우 4, 5백의 군사만 뒤따를 뿐이었다. 진식과 위연은 그제야 공명의 헤아림이 귀신 같음을 알고 또 한 번 감탄했다. 한편 등지는 미리 돌아가 서둘러 공명에게 그러한 말들을 보고했다. 등지로부터 자세한 말을 들은 공명은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는 듯 홀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예전에 선제께서도 말씀하셨소. 위연은 용맹한 장수이긴 하나 반역의 상이라고 말이오. 나도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의 용맹이 아까워서 쓰고 있소. 뒷날에 반드시 나라에 해를 끼칠 것이오."

그렇게 말한 공명이 씁쓰레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홀연 유성마가 달려와 보고했다.

"지난밤에 진식 장군은 매복한 위병에게 군사 4천을 잃었습니다. 남은 군사는 겨우 4, 5백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위연 장군도 위험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다시 등지로 하여금 기곡으로 가서 진식이 모반할 마음을 품지 않게끔 부드러운 말로 어루만지라 하고, 이어 마대와 왕평을 불러 영을 내렸다.

"만약 야곡도 위병이 지키고 있거든 그대들은 군사를 거느리고 산을 넘어가라. 낮에는 숨고 밤에만 군사를 이끌되, 기산의 왼편으로 나가서 군호로 불길을 올리도록 하라."

다음에 공명은 마충과 장익을 불렀다.

"너희들은 산중의 샛길을 따라 나아가되, 낮에는 숨고 밤에만 나아가 기산의 오른편으로 돌라. 그런 다음 군호로 봉화를 올려 마대 왕평과 합세해서 조진의 본진으로 돌진하여 위병을 쳐라. 나는 골짜기로 나아가겠다. 세 갈래로 치고 들어가면 반드시 위병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영을 받은 네 사람은 각기 수하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공명은 관흥과 요화를 불러 가만히 계책을 주었다. 두 사람은 계책을 받고 급히 어디론가 떠나갔다. 이렇게 군사를 낸 공명은 자신도 정병을 거느리고 길을 서둘렀는데, 가는 길에 오반과 오의를 불러 가만히 밀계를 주어 군사를 거느리고 앞서가게 했다. 한편, 위의 대도독 조진은 야곡의 길목에 나가서 7일간을 매복하여 촉병이 이르기를 기다렸으나 나타나지를 않았다.

', 사마의하고 건 내기는 내가 이겼구나.'

그렇게 생각한 조진은 군사들도 마음껏 쉬게 내버려 둔 채 열흘 동안 아무 일도 없으면 사마의에게 무안을 줄 생각으로 있었다. 그런데 여드레가 되는 날이었다. 골짜기 안에 촉병이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진은 부장 진량에게 군사 5천을 주어 순초를 시키면서 촉병이 나타나도 진영 가까이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진량이 군사를 거느리고 골짜기 어귀에 이르렀을 때 문득 앞쪽에 물러가고 있는 촉병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말을 채쳐 급히 그 뒤를 쫓았다. 진량이 5, 60리쯤을 뒤쫓았을 때였다. 그때까지 달아나던 촉병의 모습이 홀연 시야에서 사라졌다. 괴이쩍게 여긴 그는 군사들을 말에서 내리게 하여 잠시 쉬고 있는데 척후병이 달려와서 알렸다.

"앞쪽에 복병이 있는 듯합니다."

진량이 황망히 말 등에 올라 고개를 길게 빼고 바라보고 있자니까 산속에서 갑자기 뿌옇게 흙먼지가 일어났다.

"빨리 말에 오르라. 앞쪽에 적이 있으니 방심하지 말라!"

그가 목청껏 외치고 있을 때였다. 사방에서 요란스런 함성이 일었다. 그와 함께 앞쪽에서는 오반, 오의가 거느린 촉병이 치고 들어오고, 등 뒤에서는 관흥과 요화의 군사가 짓쳐 들었다. 왼쪽과 오른쪽은 가파른 산이라 달아날 길이 없었다. 그러자 산 위에서 촉병이 큰소리로 외쳤다.

"말에서 내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

이 소리를 들은 위병들은 이미 적의 매복에 걸려든 것을 알고 태반이 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량은 차마 항복할 수 없어 죽기로 싸웠으나 요화가 휘두른 한칼에 맞아 말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공명은 항복한 군사들의 갑옷을 벗겨 촉군 5천 명에게 입혔다. 거짓 위병을 만든 것이었다. 공명은 거짓 위병을 관흥, 요화, 오반, 오의 등에게 이끌게 했다. 한편으로 위병의 갑옷을 입은 촉병을 조진의 본진으로 보내 알리게 했다.

"얼마 되지 않은 촉병이 남아 있었으나 모조리 쫓아 버렸습니다."

거짓 보고를 받은 조진은 촉병을 쫓은 데다 사마의와의 내기에서도 이겼다고 여겨 크게 기뻐했다. 그때, 사마의의 심복 장수가 달려와서 조진에게 급한 소식을 전했다.

"촉병의 선봉 진식이 복병을 써서 우리 군사를 4천 명이나 꺾었습니다. 이제 조 장군께서는 내기 따위는 잊으시고 촉병과의 싸움에만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조진은 공명이 보낸 거짓 위병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터라 도리어 의기양양하게 사마의의 심복 장수에게 큰소리쳤다.

"이쪽에는 촉병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내기는 내가 이겼노라고 중달에게 여쭈어라."

사마의의 심복장수가 돌아가자 진량이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온다는 보고가 조진에게 들어왔다. 조진은 그들이 위병으로 꾸민 촉병이라는 걸 알 리 없었다. 조진은 촉병을 쫓고 돌아오는 진량을 몸소 마중하려고 말에 올랐다. 그런데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영채 뒤의 두 곳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진은 그제야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급히 말을 돌려 영채의 뒤편으로 달려가 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촉병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지 않는가. 조진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채 앞쪽으로는 관흥, 요화, 오반, 오의 네 장수가 촉병을 휘몰아 쳐들어오고, 마대와 왕평은 뒤쪽에서, 마충과 장익은 그 뒤를 이어 성난 물결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싸울 채비도 않은 채 맞은 적이었다. 감당해 낼 수가 없어 위군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조진도 여러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동쪽으로 달아났으나 촉병은 줄기차게 뒤쫓아오고 있었다. 조진이 이제는 죽었구나 싶어 말의 궁둥이에서 피가 나도록 채찍질하며 달아나고 있는데 홀연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한 떼의 군사가 몰려오고 있었다. 조진이 소스라치게 놀라 앞선 장수를 보니 그는 바로 사마의였다. 사마의가 휘하 군사를 이끌며 조진을 뒤쫓는 촉병과 함께 힘껏 싸웠다. 촉병은 사마의의 대군이 가로막으니 잠시 물러났다. 그 틈에 조진은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마의가 말을 몰고 조진 가까이에 이르렀다. 조진은 얼굴 가득히 부끄러운 빛을 띠고는 몸 둘 곳을 몰라 했다. 사마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갈량이 기산을 빼앗아 지세의 이로움을 차지한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위빈으로 가서 영채를 내린 후 다시 좋은 방책을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그제야 조진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마의에게 물었다.

"중달은 내가 크게 패할 것을 어떻게 알았소?"

사마의가 가만히 말했다.

"도독께 보냈던 사자가 돌아와 촉병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대도독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공명이 필시 자단의 영채에 기습을 꾀하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급히 달려와 보니 생각한 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내기를 앞세울 때가 아니니 부디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합시다."

그 말을 들은 조진은 더욱 부끄러워져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어 위병은 위수 가로 영채를 옮겼으나 조진은 공명에게 패한 분함과 부끄러움으로 마침내 나았던 병이 도져 자리에 눕더니 얼른 일어나지를 못했다. 사마의는 군사들이 마음이 어지러워질까 조진에게 얼른 군사를 물리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날짜만 보내고 있었다. 그럴 동안 조진의 병은 깊어만 갔다.

한편 공명은 예정대로 기산에 영채를 세웠다. 각처의 장수에게 잔치를 베풀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런 다음에야 이번 싸움에서 영을 어긴 장수들을 불러들이게 했다. 먼저 진식과 위연이 불려 와 무릎을 꿇자 공명은 그들을 바라보며 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군사를 다 잃고 온 자가 대체 누구인가?"

위연이 슬며시 진식의 핑계를 대었다.

"진식이 승상의 영을 거스르며 골짜기 어귀로 들어갔다가 그와 같은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러자 진식이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이 일은 위연이 저를 시켜 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말을 듣고 공명은 발연히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위연이 구해 줘서 목숨을 건졌는데 도리어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느냐? 너는 이미 장령을 어기고도 어찌하여 변명을 하려 드느냐?"

말을 마친 공명은 무사들에게 호령하여 진식을 끌어내어 목을 베게 하고, 그의 목을 높이 내걸어 여러 장수들에게 본보기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공명은 진식과 함께 군령을 어긴 위연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다. 위연이 마음으로 그를 따르고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를 살려 둔 것은 큰 싸움을 앞두고 장수로서의 그의 용맹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위나 동오에 비해 촉나라는 그 영토나 군세에 있어서도 열세였다. 게다가 장수 또한 그 두 나라에 비해 적으니 공명으로서는 언제나 어려움이 많은 싸움이었다. 때문에 위연과 같은 용맹을 지닌 상장이 아쉬운 터였기에 그를 목베지 않고 살려 둔 것이었다. 공명이 진식의 목을 벤 뒤, 다시 여러 장수들을 불러들이고 군사를 움직일 일을 의논하는데 홀연 세작이 달려와 알렸다.

"조진이 병이 나 일어나지 못하고 지금 영채 안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합니다."

공명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상념에 잠기다 기쁜 낯빛으로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조진의 병이 가볍다면 반드시 장안으로 돌아갔을 텐데, 위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병이 깊기 때문에 군중에 머물면서 군심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글 한 통을 써 진량의 군사에게 주어 조진에게 보내리라. 조진이 그 글을 보게 되면 반드시 숨을 거두고 말 것이다."

그렇게 말한 공명이 항복한 위병들을 불러들인 후 타일렀다.

"너희들은 위의 군사들이므로 부모와 처자가 모두 중원에 있을 것이다. 이제 너희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낼까 하는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떤가?"

그 말에 위병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모두 눈물을 흘리며 공명의 너그러움에 절을 올리며 감사했다. 공명이 그들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렀다.

"조자단과 나와는 서로 약조한 바가 있어 내가 글 한 통을 써 두었으니 그대들은 가지고 가서 전하라. 이 글을 전하면 반드시 상을 내릴 것이다."

그 글이 어떤 내용인지 위병이 알 리 없었다. 공명의 말만 믿고 위의 영채로 달려가 조진에게 그 글을 바쳤다. 조진은 그대 병세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문득 공명이 보낸 글을 받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글을 읽어보았다. 그 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한승상 무향후 제갈량이 대사마 조진에게 글을 보내 이르노라. 무릇 장수된 자는 나아감과 물러섬, 굳세고 부드러움, 강하고 약함에 능하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고, 드러내지 않기를 음양의 이치와 같이해야 한다. 또한, 천지와 같이 간 데를 모르며, 태창(나라와 곡식을 쌓아 두는 창고)과 같이 가득해야 하며 아득하기로는 바다와 같이, 그 빛남은 삼광(, , )과 같아야 할 것이다. 미리 천문을 살펴 가뭄과 궂음을 헤아려야 하며, 또한 지리를 살펴 이로움과 해로움을 가릴 줄 알며 적의 진세와 때를 살피고 적의 허실을 헤아려 그 잘못을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어떤가. 슬프게도 배움이 얕은 젊은 그대는 위로는 하늘을 거스른 역적을 도와 낙양에서 함부로 제호를 일컫게 하고, 나아가 군사를 야곡으로 이끌어 진창에서는 큰 비에 시달리게 하였다. 물과 뭍에서 아울러 고초를 당하니 어찌 사람과 말이 함께 미쳐 날뛰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들은 버린 옷과 갑옷으로 뒤덮이고, 땅에 묻어두는 것은 모두 내팽개쳐진 칼과 창이로구나. 그리하여 도둑이란 자가 가슴이 무너지고 담이 찢어진 듯 놀라고 장수들은 쥐처럼 머리를 싸매고 달아나 버렸다. 무슨 낯으로 고향 집의 부로를 대하며, 무슨 낯으로 고향의 대청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사관(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들은 붓을 들어 이 일을 적을 것이며 백성들은 입을 모아 이 일을 퍼뜨리게 될 것이다. '사마의는 싸움터에만 나가면 떨고 조진은 싸우기도 전에 멀리 적진만 보고도 황망히 달아났다고. . . . . .' 이제 우리 촉국의 군사는 날랜 데다 말들은 튼튼하며 장수들은 한결같이 범이나 용처럼 용맹스럽다. 진천을 짓밟아 평지로 바꾸고 너희 위국을 쳐서 황폐한 땅으로 만들리라. ’

조진이 그 글을 보자 분노와 원한이 가슴에 가득 치밀었다. 오랜 병중에 그러지 않아도 약해진 심기에 울화로 가슴을 끓이더니 마침내 그날 밤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공명이 조진의 분기를 돋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글을 보낸 것이었다. 조진이 죽자 사마의는 그의 시신을 수레에 실어 낙양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장사를 지내게 했다. 위주 조예는 조진이 죽게 된 경위를 듣자 몹시 노하여 조서를 내려 사마의에게 촉병을 치도록 했다. 사마의는 위주의 조서를 받들어 곧 공명에게 전서(도전장)을 써서 보냈다.

"조진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

사마의가 보낸 전서를 받아 든 공명은 장수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사자에게 싸우자는 답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날 밤이 되자 공명은 강유를 불러 은밀히 계책을 주어 내보내고 다시 관흥을 불러 가만히 영을 내린 뒤 어디론가 떠나게 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공명은 전군을 이끌고 위수가로 나아갔다. 이 지역은 한쪽이 강이요, 한쪽은 산이었는데 그 가운데가 넓은 벌판이라 싸움터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양군은 서로 마주 보며 진을 벌이기가 무섭게 한바탕 화살을 날리는데 문득 북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러자 위병의 진중에 문기가 열리며 사마의가 말을 타고 나서니 모든 장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맞은편에도 때를 같이하여 깃털 부채를 든 공명이 네 바퀴 수레 위에 앉아 앞으로 나왔다. 사마의가 공명을 보자 입을 열었다.

"우리 주상께서는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위를 물리신 걸 본받으시어 한의 제위를 이어받으셨다. 이미 2대에 걸쳐 중원을 다스리고 있으면서 서촉과 동오를 치지 않은 것은 우리 주상께서 인자하시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하신 때문이었다. 너는 한낱 남양에서 밭이나 갈던 농부로서 하늘이 정한 운수를 알지 못하고 이렇듯 감히 군사를 내어 쳐들어왔으니 쳐 없애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돌려 군사를 물린다면 그 땅에서 우리 위와 더불어 솔밭 같은 형세를 이루어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고 너희들의 목숨도 이어가게 할 것이다."

그러자 공명이 껄걸 웃으며 그 말에 대꾸했다.

"나는 선제로부터 지금의 주상을 돌보라는 무거운 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힘을 다하여 역적을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조씨는 우리 한에게 멸망 당하고 말 것이다. 너의 할아비와 아비는 원래 모두 한의 신하로 대대로 녹을 먹었다. 그런데도 한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은 아니 하고 도리어 역적을 돕고 있으나 그러고도 네 어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냐?"

공명이 그렇게 말하자 사마의의 얼굴에는 부끄러운 빛이 가득했다. 사마의는 더 이상 길게 말싸움을 하는 것이 이롭지 않음을 알고 먼저 싸움을 걸었다.

"오늘 한번 너와 내가 싸워 누가 센지 가리려 한다. 만약 네가 이기면 나는 앞으로 대장 노릇을 아니 할 것이다. 너 또한 내게 지면 아예 말머리를 돌려 고향에나 돌아가라. 그렇게 한다면 너는 해치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너는 장수로 싸우고 싶은가? 아니면 진법을 펼쳐 싸우고 싶은가?"

공명이 사마의에게 물었다. 사마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꾸했다.

"먼저 진법으로 겨뤄 보자."

"그럼 네가 먼저 진을 펼쳐 보도록 하라. 내가 너의 재주를 한번 보고 싶구나."

공명이 껄걸 웃으며 사마의에게 말했다. 그러자 사마의가 중군의 장막으로 달려가더니 손에 누런 깃발을 들고 나와 좌우로 흔들어 군호를 보냈다. 군사들이 그 깃발을 보고 움직여 진세를 펼쳤다. 사마의가 말을 달려 나와 공명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가 친 진법을 알겠느냐?"

공명이 껄걸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런 진쯤은 우리 장수 중에서는 밀장이라도 벌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혼원일기진이라는 것이다."

공명이 한눈에 그 진을 알아보자 사마의는 속으로 감탄했으나 드러내지 않은 채 얼른 대꾸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네가 진을 쳐 봐라. 내가 한번 보리라."

공명이 자기 진충으로 들어가 깃털 부채를 들어 다시 진 앞으로 와서 사마의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가 친 진을 알아보겠는가?"

"그건 팔괘진이 아닌가? 내가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그러자 공명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사마의에게 얼른 되물었다.

"네가 알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내 진을 깨뜨릴 수 있겠는가?"

공명이 묻자 사마의는 화가 치밀었다. 목소리를 높여 대꾸했다.

"내가 이미 그 진을 알아 보았는데 어찌 그 진을 깨지 못하겠는가?"

공명이 빙긋 웃으며 사마의를 부추겼다.

"그렇다면 어디 네 재주껏 한 번 깨뜨려 보아라."

사마의는 은근히 자기를 조롱하는 듯한 공명의 말투에 발끈하여 곧 자기의 진으로 달려가 장호,대릉, 약침 세 장수를 불러 일렀다.

"지금 공명이 벌인 진에는 여덟 문이 있다. 곧 휴, , , , , , , 개의 문을 배치한 것이다. 너의 셋이 동쪽의 생문으로 들어가 서남의 휴문으로 나간 후 다시 북쪽의 개문으로 밀고 들어오면 이 진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이른 대로 잘 살펴 나아가되 실수가 없도록 하라."

사마의는 세 장수에게 군사를 떼어 주며 나가게 했다. 장호는 앞장을 서고 대릉은 가운데에, 약침은 뒤를 맡아 각기 30기를 거느리고 생문으로 밀고 들어갔다. 양군이 함성을 지르며 각기 자기 진을 응원했다. 세 장수가 생문을 짓쳐 들었을 때였다. 사마의가 일러 준 대로 곧 휴문을 찾아 서남쪽으로 말을 달렸으나 진이 마치 성과 같이 이어져 있을 뿐 문이 없어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무작정 서남쪽을 향해 들부수고 나가려는데 촉병이 화살을 비 오듯 쏟아부었다. 세 사람은 이리저리 내달으며 진을 뚫으려 했으나 날아오는 화살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럴 동안 촉진이 겹겹이 두꺼워지는데 이번에는 진마다 문이 있어 동서남북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치 회오리바람 속에 뛰어든 듯 앞은 안개가 앞을 가리는데 위병들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아우성치며 허둥댈 뿐이었다. 그런 지경에 이르니 세 사람은 서로를 돌돌 겨를이 없었다. 앞뒤 없이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는 가운데 촉병의 함성만 크게 일더니 위병은 한 사람씩 차례대로 촉병에 묶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병은 모두 촉병에게 묶여 촉의 군중으로 끌려갔다. 공명은 장막 위에 높이 앉아 묶여 온 장호, 대릉, 약침과 90여 명의 졸개들을 내려다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다 사로잡았으나 그게 무어 대수로울 게 있겠느냐? 내가 너희들을 풀어 줄 터인즉 너희들은 돌아가서 사마의에게 일러라. 병서를 좀 더 읽어 진법을 익힌 뒤에 다시 와서 승부를 가리자고 하라. 다만 너희들은 돌아갈 때 말이나 병장기, 갑옷은 모두 두고 가도록 하라."

그렇게 말한 공명은 좌우에게 명을 내려 위병의 갑옷을 벗기고 창칼과 말을 거두어들인 뒤 얼굴에 먹칠을 한 채 돌려보냈다. 공명이 돌려보낸 위군을 본 사마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공명이 너무나 자신을 가벼이 여기는 것에 화가 난 사마의는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렇게 예기가 꺽이고서야 내 무슨 낯으로 돌아가 중원의 대신들을 마주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외친 사마의는 칼을 빼 들고 날랜 장수 1백여 명과 삼군을 뒤따르게 하고 몸소 앞장서 촉진을 휩쓸기 위해 달려갔다. 이에 촉군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양군이 한바탕 큰 싸움이 일어나려 할 때였다. 돌연 위군의 뒤쪽에서 북소리, 피리소리가 크게 울리며 한 떼의 군사가 내달아왔다. 바로 관흥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사마의가 황급히 후군을 나누어 관흥을 막게 하고 자신은 다시 군사를 몰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홀연 선봉 쪽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촉장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옆쪽에서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앞쪽의 촉병과 뒤쪽의 관흥, 옆쪽의 강유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자 사마의는 크게 놀랐다. 공명의 계교를 살피며 맞서 왔던 자신이 무작정 군사를 이끈 것을 뉘우치며 급히 군사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촉군이 삼면에서 짓쳐 든 터라 위군은 크게 꺾이고 말았다. 에워싸는 촉병을 뚫는 가운데 열에 여섯, 일곱은 상한 채 위수 남쪽으로 물러나서야 겨우 영채를 세웠다. 사마의는 영채 안에 머물면서 싸울 생각을 버리고 굳게 지키기만 했다. 사마의가 나오지 않으니 공명도 군사를 돌려 기산으로 돌아갔다. 공명은 싸움에 이기고 기산의 영채로 돌아온 후 전군에 영을 내려 다시 싸울 일에 대비하여 채비를 해 두라고 엄명을 내렸다, 자칫 이번 싸움에 이긴 것만을 기뻐해 군사들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마침 영안에 있는 이엄이 보낸 도위 구안이 군량을 가지고 왔다. 원래 그는 술을 좋아해서 오는 도중에 적잖은 날을 술타령으로 보낸 터라 기한이 열흘이 지나서야 이르렀다. 공명이 그를 보자 몹시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군중에서 군량을 제 때에 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사흘만 늦어도 그 죄로 목을 베는데 열흘이나 늦었으니 너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 말과 함께 공명이 좌우를 돌아보며 영을 내렸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어내 목을 베도록 하라. "

그러자 장사 양의가 나서며 공명에게 말했다.

"구안은 이엄의 사람입니다. 게다가 군량과 돈은 모두 서천에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안을 죽이면 앞으로 누가 양식을 가지고 오겠다고 하겠습니까?"

공명이 그 말을 듣고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그를 목 베는 대신 곤장 80대를 때려 쫓아 보냈다. 그러나 매를 맞고 쫓겨난 구안은 자기 잘못은 생각지도 않은 채 공명에게 원한만을 품었다. 구안은 서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느린 군사 5, 6기를 이끌고 위군의 영채로 달려갔다. 사마의는 구안이 투항해 오자 그를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항복하게 된 까닭을 물었다. 구안은 공명에게 매 맞고 쫓겨난 일을 그럴듯하게 자기변명을 섞어 가며 들려주고 거두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사마의가 넌지시 구안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명은 원래 꾀가 많은 자라 네가 온 것 또한 공명의 계교인지 모르니 네 말을 어찌 그대로 다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나를 위해 한 가지 공을 세운다면 내가 천자께 아뢰어 너를 대장으로 삼겠다."

"무슨 일이든 힘을 다해 하겠습니다."

투항하러 온 구안이 사마의의 말을 마다할 수 없었다. 구안이 그렇게 대답하자 사마의가 가만히 일렀다.

"그렇다면 너는 성도로 가서, 공명이 후주룰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 머지않아 황제의 위에 오르리라는 거짓말을 퍼뜨리도록 일을 꾸며라. 그리하여 그 말이 네 주인의 귀에 들어가 공명을 불러들이도록 하라. 그렇게만 되면 너는 큰 공을 세운 것이 된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구안은 선뜻 응낙하고 그 길로 성도로 향했다. 성도에 이르른 구인은 환관들에게 공명이 자기가 세운 공을 내세워 천자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환관들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 길로 후주에게 달려가 그 말을 일러바쳤다. 아직 나이 어린 후주도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기부터 했다. 얼굴빛이 달라지며 곧바로 환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겠소?"

"조서를 내려 공명을 성도로 불러들이고 그에게 빼앗아 모반을 일으킬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환관들이 입을 모아 후주에게 권했다. 후주는 앞뒤를 가려 볼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환관들의 말을 따랐다. 곧 기산에 있는 공명에게 급히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까닭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장완이 나서 후주에게 물었다.

"승상께서 싸움에 나가신 이래 여러 차례 공을 세우셨는데 무슨 일로 이렇게 돌아오라 하십니까?"

후주는 환관에게서 들은 말을 들려주지 않고 딴말로 둘러댔다.

"반드시 승상과 더불어 의논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후주는 사신을 재촉해 밤을 새워 달려가게 했다. 이윽고 사신이 기산에 이르자 공명을 그를 맞아들인 후 조서를 받들고 문득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마지않았다.

"주상께서 아직 어리시니 반드시 가까이에 아첨하는 신하가 있구나. 내가 이제 공을 이루려고 하는데 무슨 일로 돌아오라고 하는가? 돌아가지 않으려니 주상께 거스름이요, 명을 받들어 물러나려 하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 어려울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구나."

공명이 그렇게 탄식하는데 곁에 있던 강유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일을 걱정했다.

"만약 우리가 전군을 물리면 사마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뒤쫓아와 칠 것입니다. 그때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후주의 영이라 군사를 돌리기로 작정한 공명이 강유에게 말했다.

"내가 군사를 물리되 다섯 갈래로 군사를 나눌 것이다. 오늘은 먼저 대채의 군사부터 물리되, 영채 안의 군사가 1천이면 아궁이는 2천 개를 쌓게 하고 다시 내일은 3, 모레는 4천 개로 늘릴 것이다. 그리하여 매일 아궁이의 수를 늘려 가며 군사를 물릴 것이다."

그러자 양의가 의아스런 얼굴로 공명에게 물었다.

"예전에 손빈(전국시대의 병가)이 방연을 사로잡을 때는 날마다 군사의 수효를 늘렸으나 반대로 아궁이의 수효는 줄였습니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군사를 물리시면서 손빈의 예와는 달리 어째서 아궁이 수효를 늘리려 하십니까?"

공명이 양의의 물음에 그 까닭을 밝혀 주었다.

"사마의는 용병에 능한 사람이다. 우리가 물러나는 것을 알면 반드시 뒤쫓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함부로 나아감을 삼가니 반드시 우리가 군사를 숨길까 의심할 것이다. 사마의가 우리를 뒤쫓으며 우리가 머물렀던 영채의 아궁이 수를 헤아릴 때 매일 아궁이 수가 늘어나면 군사가 정말로 물러가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니 함부로 뒤쫓지 못할 것이다. 그 틈에 우리가 서서히 물러나면 군사를 꺽이지 않은 채 물러날 수가 있을 것이다."

여러 장수들이 공명의 말을 듣고 감탄해 마지않는 가운데 네 번째로 기산으로 나온 공명은 후주의 영에 따라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물리기 시작했다.

 

오출기산과 공명의 팔문둔갑 축지법

사마의가 구안에게 일렀던 계책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공명이 성도로 불려 간 것을 확인한 군사가 달려와 일렀다.

"촉병의 영채에 있던 인마가 모두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얼른 촉병을 뒤쫓지 않았다. 지략이 많은 공명이 물러나며 반드시 군사를 매복시켰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촉병을 뒤쫓는 대신 몸소 1백여 기를 거느리고 촉의 영채로 가서 군사들로 하여금 아궁이 수를 살펴보게 했다. 사마의는 다음 날도 군사를 보내 촉병이 물러난 다음 영채로 가서 아궁이의 수효를 알아 오게 했다.

"영채 안의 아궁이가 지난번 영채에 비해 갑절이나 늘었습니다."

촉의 영채를 살피고 온 군사가 말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듣더니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공명이 지략이 많다고 여긴 바 그대로이다. 군사를 늘리고 아궁이도 늘리는 계책을 쓰고 있구나. 아궁이를 줄이는 것은 옛적에 손빈이 쓴 계책 첨병감조법이라 그 계책을 거꾸로 써서 우리를 속이려 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뒤쫓았다면 반드시 그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을 것이다. 잠시 군사를 물렸다가 다시 좋은 방책을 세우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게 말한 사마의는 장수들에게 군사를 물리도록 영을 내렸다. 사마의가 군사를 물리니 공명은 군사 하나 죽이지 않고 편안히 성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마의가 공명의 계책에 떨어진 것을 안 것은 얼마 후의 일이었다. 서천 어귀에 사는 늙은이가 사마의를 찾아와 공명이 물러날 때를 본 대로 알려 주었다.

"공명이 물러날 때 군사를 늘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군사를 시켜 아궁이를 파게 하여 그 숫자만을 늘였습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듣고 길게 탄식해 마지않았다.

"공명이 우후를 본떠 나를 속였구나. 그의 모략을 내가 따를 수가 없구나."

우후는 동한시대 오랑캐와 싸울 때 아궁이를 늘리는 수를 써서 적을 뒤쫓지 못하게 했던 무도의 장수였다. 공명이 군사를 물리니 사마의도 하는 수 없이 군사를 이끌어 장안으로 돌아갔다. 성도에 이르기 전에 한중에 돌아간 공명은 삼군에게 상을 내린 후에야 성도로 향했다. 성동에 이른 공명이 후주에게 아뢰었다.

"이 늙은 신하는 기산으로 나가 장안을 빼앗으려던 차에 폐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로 이렇듯 갑자기 신을 부르셨습니까?"

후주는 공명의 물음에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반을 꾀했다면 자신의 부름에 이토록 황급히 군사를 이끌어 돌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후주가 할 말이 없는 가운데 궁색한 변명으로 둘러대었다.

"짐이 오래도록 승상을 보지 못해 몹시 그리운 나머지 조서를 내려 불렀을 뿐이오. 별다른 일은 없었소이다."

공명이 그 말을 듣자 정색을 하고 물었다.

"신을 부르신 것이 폐하의 본마음이 아니라면 이는 필시 간신배의 무리가 있어 신이 딴마음을 품었다고 아뢰었을 것입니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자 후주는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공명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후주에게 깨우쳐 주듯 물었다.

"이 늙은 신하는 선제의 크신 은혜를 입은 몸으로 죽음으로 보답할 것을 다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안에 간신이 있으면 신이 어떻게 역적을 쳐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후주가 문득 뉘우치는 빛을 띠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짐이 환관의 말만을 믿고 승상을 불렀소. 이제 어두웠던 눈앞이 밝아져 뉘우쳐보니 소용이 없구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즉시 궁중 내관들로부터 그 말이 나오게 된 까닭을 알아보았다. 곧 구안이란 자가 제일 먼저 소문을 퍼뜨린 것이 드러났다. 공명이 구안을 잡아들이게 했다. 그러나 이미 구안은 위나라로 달아난 뒤였다. 공명은 구안의 말을 가볍게 믿고 후주에게 일러바친 환관들을 잡아들이게 하여 그 죄가 무거운 자는 목을 베고 나머지는 전부 궁궐 밖으로 내쫓았다. 공명은 이어 장안과 비위를 부러 꾸짖었다.

"내가 떠날 때 모든 일을 그대들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런데 어이하여 환관들의 거짓 참소를 헤아려 폐하를 말리지 않았는가?"

"그 죄 죽어 마땅합니다."

두 사람은 공명 앞에 엎드려 죄를 빌었다. 공명은 두 사람을 엄하게 꾸짖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했다. 공명은 성도의 일이 안정되자 다시 한중으로 나아갔다. 한중에 이른 공명은 이엄에게 사람을 보내 양초를 가져오게 하고 장수들을 모은 후 다시 위를 칠 의논을 했다. 양의가 의견을 내었다.

"우리가 여러 차례 진병안 이래 군사들이 지쳐 있습니다. 게다가 군량도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군사를 둘로 나누어 석 달을 기한으로 서로 교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20만의 군사를 10만씩 나누어 기산으로 보내고 석 달 뒤에는 다시 한중에 머물려 편히 쉰 군사와 교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군사들을 부려도 힘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서서히 밀고 나아가면 중원을 차지하는 것도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공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대의 생각이 바로 나의 뜻과 같소. 중원을 얻는 것은 급히 되는 일은 아니니 마땅한 장구한 계책을 써야 할 것이오."

그렇게 말한 공명이 곧 영을 내려 군사를 반으로 나누게 하고 백일을 기한으로 하여 서로 교대하게 했다. 이 해 촉한 건흥 92월 봄, 공명은 위를 치기 위해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위로 보면 태와 6년이었다. 공명이 군사를 일으키자 위주 조예는 사마의를 불러 물었다.

"공명이 다시 군사를 내었다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조예의 물음에 사마의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단이 이미 죽었으니 신이 혼자서 적과 맞서겠습니다. 힘을 다해 적을 깨뜨려 폐하께 보답하겠습니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자 조예는 몹시 기뻐했다. 잔치를 열어 사마의의 높은 기개를 치하했다. 다음 날이 되자 촉병이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급보가 궁궐로 전해졌다. 조예는 곧 사마의로 하여금 진병하여 적을 막게 하고 몸소 성 밖까지 나가 전송했다. 사마의는 즉시 장안으로 달려가 장수들과 함께 적과 싸울 의논을 했다. 그러자 먼저 장합이 나서며 청했다.

"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 옹,미 두 성을 지키며 촉병을 막겠습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허락하지 않았다.

"전군만으로는 촉병을 당해 내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의 군사를 둘로 나누는 것도 이롭지 못하다. 그보다는 군사를 상규 땅에 머무르게 하고, 나머지는 기산으로 나아가게 하려 하는데 그대가 선봉을 맡아 주어야겠다."

사마의가 자기에게 선봉을 맡기자 장합은 몹시 기뻐했다. 기쁨에 찬 목소리로 사마의의 말을 받았다.

"제가 평소부터 충의의 마음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 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한스러웠습니다. 이제 도독께서 중한 일을 맡기시니 비록 만 번을 죽는다 해도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사마의는 곧 좌장군 사마의를 선봉으로 삼아대군을 거느리게 하고 곽회에게 농서의 여러 고을을 맡아 지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중군을 이끌기로 하고 나머지 장수들에게 명해 각기 길을 나누어 장합을 뒤따르게 하였다. 그때 적진을 살피러 갔던 군사가 달려와 말했다.

"지금 공명이 대군을 이끌어 오는데 선봉대장은 왕평이며 장의는 진창을 거쳐 검각과 산관을 지난 뒤 야곡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사마의가 장합을 보고 말했다.

"이제 공명이 대군을 이끌어 급히 온 까닭은 반드시 농서의 보리를 베어다 군량으로 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기산에다 영채를 세우고 굳게 지키도록 해라. 나와 곽희는 천수의 모든 고을을 순초하며 촉병이 보리 베어 가는 것을 막겠다."

사마의는 영을 받은 장합은 곧 4만의 군사를 거느려 기산으로 가 영채를 세웠다. 장합이 떠나자 사마의는 대군을 거느리고 농서를 향해서 떠났다. 사마의의 헤아림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그때 공명은 군사를 이끌어 기산에 이르렀다. 진을 세운 공명이멀리 살펴보니 위군이 위빈에 영채를 세워 방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명이 그걸 보고 장수들에게 말했다.

"저 영채는 반드시 사마의가 우리를 방비하기 위해 세운 영채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침 잘 되었다. 군량이 부족해 이엄에게 양식을 보내라고 재촉해도 아직 이르지 않고 있다. 사마의가 이곳을 방비하고 있는 틈을 타 우리가 농서의 보리를 거두어야겠다. 은밀히 군사를 이끌어 가 보리를 베어 와야겠다."

그렇게 말한 공명은 왕평, 장의, 오반, 오의 네 장수를 남겨두어 기산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노성에 이르렀다. 공명이 강유와 위연 등의 장수와 함께 노성에 이르러 성을 에워싸자 노성 태수는 이전부터 공명을 잘 알고 있던 터라 감히 싸울 생각도 못 하고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공명은 뜻밖에 싸우지도 않고 성을 얻게 되자 크게 기뻐하며 그곳 사람들을 위로한 후 태수에게 물었다.

"지금 어느 지방의 보리가 잘 익었는가?"

"올해는 농상의 보리가 잘 익었습니다.

노성 태수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장익과 마충을 노성에 남겨두고 스스로 나머지 군사를 이끌어 농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앞서가던 선봉 군사라 달려와 알렸다.

"농상에 위의 군마가 가득 차 있으며 중군을 보니 사마의의 기가 보입니다."

공명이 그 말을 듣자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토록 감쪽같이 기산을 빠져나왔는데 사마의는 벌써 내가 보리를 거둬들이려는 것을 짐작했구나."

공명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곧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항상 타고 다니던 수레와 똑같은 수레를 셋이나 끌어오게 했다. 세 대의 수레는 장식 하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모양의 수레라, 어느 것이 공명이 타고 다니던 수레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수레들은 공명이 서촉에 있을 때 미리 만들어 온 것이었다. 수레 한 대는 강유로 하여금 1천 군사를 거느리며 따르게 하고 5백 군사는 북을 울리며 상규 뒤에 매복하게 했다. 또 위연과 마대에게도 수레 한 대씩에 군사 1천을 거느리고 북 치는 군사 5백과 함께 각각 상규의 오른쪽과 왼쪽에 매복하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레를 미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스물네 사람이 한 수레를 미는데 검은 옷에 맨발이었다. 거기다 머리를 풀고 칼을 짚었고 한 손에는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들게 했는데,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모습을 괴이하게 꾸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 지경이었다. 강유, 마대, 위연 세 장수도 각기 수레 한 대씩을 이끌고 나아갔다. 이어 공명도 군사 3만을 거느리되 모두 낫과 칼을 들게 하여 보리를 벨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추었다. 공명이 타고 갈 수레를 미는 군사들의 차림도 앞서 떠난 수레를 미는 군사들과 다름이 없었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푼 데다 맨발에 칼을 든 군사들이었다. 또 관흥에게 천봉 모양으로 머리를 묶게 한 후에 칠성을 수놓은 검은 기를 들게 하여 앞세웠고, 공명 스스로는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위병의 영채를 향해 나아갔다. 촉병을 살피던 위병이 그런 촉병을 보자 깜짝 놀랐다.

저들이 도대체 사람인가, 귀신인가. . . . . . . ?’

위병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겁에 질린 얼굴로 급히 사마의에게 달려가 알렸다. 사마의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급히 영채 밖으,로 나가 촉병을 바라보았다. 촉병을 보니, 공명이 흰 학창의에 윤견을 쓰고 깃털 부채를 흔들면서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좌우에는 스물네 명의 군사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에 칼을 들었는데 앞선 한 장수는 손에 칠성을 수놓은 검은 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얼른 보면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괴이쩍었다.

"공명이 또 요사스런 짓을 꾸미고 있구나."

사마의가 그렇게 중얼거린 후 급히 군사 2천을 뽑아 영을 내렸다.

"너희들은 급히 가서 수레를 밀고 있는 자들을 잡아 오도록 하라."

사마의의 영이 떨어지자 위병들은 두려운 가운데 하는 수 없이 수레를 향해 덤벼들었다. 공명은 위병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곧 수레를 되돌려 영채를 향해 천천히 이끌게 했다. 공명이 수레를 돌리자 위병이 급히 뒤쫓기 시작하는데 문득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습기 찬 안개가 주위를 가득 뒤덮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위병이 뒤쫓은 지 30리나 되었으나 도무지 수레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토록 급히 수레를 뒤쫓아 30리나 달렸건만 조금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어찌해야 저 수레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꺼림칙하던 위병은 더욱 괴이쩍어 뒤쫓기를 멈추고 그렇게 떠들며 서로의 놀란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공명은 위병이 뒤쫓지 않자 다시 수레를 돌려 위병 쪽으로 다가왔다. 공명이 다가오자 위병들은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다가 다시 수레를 향해 달려갔다. 위병이 뒤쫓자 공명은 또다시 수레를 되돌렸다. 위병들이 되돌려 달리는 수레를 20여 리나 뒤쫓았지만, 그 수레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위병들이 다시 말을 세우고 멍하니 공명의 수레를 바라다보고 있는데 사마의가 몸소 한 떼의 군사를 이끌어 오더니 영을 내렸다.

"공명은 팔문둔갑(소의 귀신을 부려서 행한다는 술법)에 밝고 육정육갑지신(귀신들의 이름)을 잘 부린다. 저것은 공명이 <육갑전서>에 있는 축지법을 쓰고 있음이니 군사들은 더 이상 뒤쫓지 마라."

사마의의 영에 따라 군사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때, 왼쪽에서 돌연 싸움을 돋우는 북소리가 크게 일어나더니 한 떼의 군사가 내달아왔다.

"모든 군사들은 물러나지 말고 막도록 하라."

사마의가 급히 영을 내렸다. 그런데 촉병의 대열 속에서 스물네 명의 장정이 검은 옷에다 맨발로 칼을 들고 수레를 밀고 나왔다. 그 수레를 바라보던 위병들은 한결같이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수레 위에도 윤건을 쓰고 학창의를 입은 공명이 단정히 안자 깃털 부채를 부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 뒤쫓다 만 공명이 틀림없었다.

"아니 여기에도 공명이. . . . ? 공명을 뒤쫓아 50리나 달려갔다가 붙잡지 못했다는데 이제 또 공명이 나타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사마의가 크게 놀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요란한 북소리가 일며 한 떼의 인마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한 떼의 인마 속에도 스물네 명의 장정이 맨발에다 검은 옷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칼을 든 채 수레를 밀고 나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수레 위에도 또 한 사람의 공명이 깃털 부채를 부치며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마의가 그걸 보자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저것들은 분명 사람이 아니라 고명이 부리는 신병이다."

사마의가 그렇게 놀라며 소리치니 그렇지 않아도 그 괴이쩍은 군사들을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장졸들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감히 맞서 싸울 생각도 못하고 무기를 내던지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사마의가 뿔뿔이 흩어지는 군사를 수습해 한동안 정신없이 달아나는데 또다시 북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한 떼의 군사가 쏟아져 나왔다. 맨 앞쪽에는 공명이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데 스물네 명의 장정들이 앞서 나타난 모양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 수레를 밀고 나왔다. 위병은 그걸 보자 이제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야 할지 멍해 손과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마의도 이들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으로 정신이 흐려질 뿐이었다. 그렇게 되니 나타난 촉병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도, 그럴 겨를도 없었다. 다만 말을 채찍질해 정신 없이 달릴 뿐이었다. 사마의는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말을 달려 상규성으로 뛰어든 후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할 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명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느리고 왔던 3만의 군사들에게 농상의 보리를 모두 베어 노성으로 실어 가게 했다. 사마의는 문을 걸어 잠근 후 사흘이 되었으나 감히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촉병이 물러난 걸 보고서야 척후병을 보내 적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척후로 나갔던 군사들이 들판에서 촉병 하나를 사로잡아 사마의에게 끌고 왔다.

"너는 거기서 무얼 하다 잡혀 왔느냐?"

사마의는 물음에 촉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곡식을 베러 왔다가 말이 도망치는 바람에 그만 뒤떨어져 가다가 사로잡혀 왔습니다."

"그렇다면 며칠 전 너희들의 군사들 중에 수레를 밀던 그 귀신 같은 무리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마의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것을 물었다.

"나중에 세 길로 공명이 이끌고 나온 복병은 실은 거짓 공명이었습니다. 강유, 마대, 위연이 공명처럼 꾸미고, 각기 1천 명이 수레를 지키며, 5백 명의 군사로 하여금 북을 두드리게 하여 속였던 것입니다. 맨 먼저 수레를 타고 뒤쫓게 했던 사람이 바로 진짜 공명이었습니다."

촉병이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의가 문득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공명은 과연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지녔구나"

사마의가 그렇게 탄식하며 공명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부도독 곽회가 찾아왔다. 사마의가 그를 맞아들이자 곽회가 예를 올린 후 입을 열었다.

"지금 공명은 기산을 비워두고 촉병은 지금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노성에서 한창 보리 타작을 하고 있다니 촉병을 칠 더없이 좋은 기회일 것입니다."

사마의는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망설이고 있다가 겪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곽회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한때 공명이 그런 짓거리로 우리를 속였을 뿐입니다. 이제 그걸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무엇을 주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한 떼의 군사를 이끌어 뒤를 칠 터이니 도독께서는 쳐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노성을 어렵지 않게 빼앗을 수 있으며 공명을 사로잡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곽회의 말에 사마의도 끝까지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시 기운을 내어 곽회의 말을 좇기로 하고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노성으로 향했다. 노성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위병이 길을 재촉해 가면 밤중이면 이를 수 있는 거리였다. 노성으로 가는 도중에 갯벌과 강 이외에는 모두 한창 무르익은 보리밭뿐이었다. 그때 노성에 있는 촉병들은 보리타작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공명이 문득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은 후 영을 내렸다.

"오늘 밤에 반드시 적이 올 것이다. 내가 살펴보니 노성 동서쪽 보리밭이 군사들을 숨겨 둘 만한 곳이다. 누가 가서 매복하겠는가?"

"제가 가겠습니다."

강유와 마대, 위연, 마충이 한꺼번에 나섰다. 네 장수가 앞을 다투며 나서자 공명은 몹시 기뻐했다. 공명은 곧 강유와 위연에게 군사 2천을 주며 동남과 서북쪽에 숨어 있게 하고 마대와 마충에게도 각기 군사 2천을 주며 서남과 동북쪽에 숨어 있게 했다.

"호포 소리가 울리거든 네 방향에서 일제히 내닫도록 하라!"

공명이 네 장수에게 그렇게 이른 뒤 제각기 군사를 거느린 채 화포를 지니고 나아가 보리밭 속에 숨었다. 이윽고 사마의가 해가 저물녘이 되자 노성 아래에 이르렀다. 사마의는 장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날이 밝을 때 공격하면 성안에서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니 밤이 늦기를 기다려 갑자기 치고 들어가야겠다. 이 성은 성벽이 낮은 데다 해자도 그리 깊지 않으니 깨뜨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러 장수들이 사마의의 말에 따라 성 밖에서 숨을 죽이 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때 곽회도 한 떼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 사마의의 군사에 합세했다. 날이 어두워진 초경쯤이 되자 위군은 크게 북소리를 울리며 노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그러자 촉병들이 성벽 위에서 활과 쇠뇌를 위병들의 머리 위에 쏘아붙였다. 위병들은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과 돌 때문에 성벽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홀연 포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포 소리를 군호 삼아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는 듯했으나 어두운 밤이라 어느 쪽 군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니 위병들은 크게 당황하는 가운데 대오고 뭐고 할 것 없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곽회가 의심이 들어 얼른 뒤쪽의 보리밭을 살펴보게 했다. 이에 위병이 모두 보리밭으로 달려가는데 그때 홀연 사방에서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촉병이 달려 나왔다. 사방의 보리밭이 모두 촉병으로 변한 듯 일시에 쏟아져 나와 위병을 향해 덮쳐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때를 맞춰 노성의 네 문이 활짝 열리면서 성안의 촉병들도 성 밖으로 밀려 나왔다. 안과 밖에서 호응해 위군을 향해 짓쳐 드니 이미 어지러워져 있던 위병들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촉병의 창칼에 의해 위군의 시체가 얕은 해자를 메웠다. 곽회의 말을 듣고 단번에 노성을 깨칠 기세로 달려왔던 사마의였으나 일이 그 지경이 도니 별수 없었다. 황망히 패한 군사를 수습해 겹겹이 둘러싼 적을 뚫고 산마루로 달아났다. 곽회 또한 패잔병을 이끌고 산 뒤쪽으로 달아났다. 위병이 수많은 시체만을 남긴 채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공명은 성안으로 들어가 네 장수로 하여금 성의 사방을 굳게 지키게 했다. 한편, 한바탕 크게 패한 싸움 끝에 겨우 숨을 돌린 곽회가 사마의를 찾아와 말했다.

"촉병과 싸운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더 이상 쳐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리칠 계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이번 싸움에서 3천여 군마를 잃었습니다. 무슨 방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일은 더욱 어려워질 뿐입니다."

곽회의 말에 사마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별달리 계책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얼굴로 곽회에게 물었다.

"그러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곽회가 생각해 둔 바가 있는 듯 서슴없이 말했다.

"격문을 옹주와 양주로 보내 그곳의 두 인마를 불러들이도록 하십시오. 저는 검각으로 밀고 들어가 적이 돌아갈 길을 끊겠습니다. 적의 양초를 실어나르는 길을 끊으면 절로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적을 치면 그들도 별수 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사마의가 곽회의 말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곧 격문을 써서 옹, 양 두 주에 보내어 구원을 청했다. 하루를 넘기지 않아 손례가 옹주, 양주의 인마를 이끌어 왔다. 손례가 인마를 이끌어 오자 사마의도 꺾였던 기세가 되살아났다. 즉시 손례로 하여금 곽회와 더불어 검각으로 밀고 들어가게 했다. 그때 공명은 노성에 머물면서 위군이 성을 치러 오지 않자, 강유와 마대를 불러들이고 말했다.

"위병이 험한 상을 등지고 우리와 싸우려 하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 첫째로는 우리가 거두어들인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둘째로는 군사를 검각으로 돌려 우리의 군량 운반하는 길을 끊고자 함이다. 그대들은 각기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그곳의 험한 길목을 지키고 있도록 하라. 위병은 우리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을 보고도 절로 물러날 것이다."

공명의 영을 받은 두 장수는 즉시 군사를 이끌어 검각으로 떠났다. 그때 장사 양의가 들어와 공명에게 말했다.

"지난번 승상께서 이르시기를 백일마다 한 차례씩 군사를 교대하기로 하셨습니다. 이제 그 기한이 되었습니다. 한중에 있는 군사들이 이미 천구에 이르렀다는 공문이 왔습니다. 이곳에 있는 군사 8만 중에 4만은 한중으로 돌려보내셔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공명이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일렀다.

"이미 정한 일이니 곧 실행하라."

이에 만 군사들이 한중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는데 급한 전갈이 전해졌다.

"손례가 옹주와 양주의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와 곽회와 함께 검각을 치러 간다고 합니다. 사마의는 대군을 이끌어 노성으로 쳐들어올 것이라고 합니다."

뜻밖에 위병이 대군을 이끌어 노성의 앞과 뒤로 밀고 들어 온다 하니 양의도 생각이 달라졌다. 급히 공명에게 말했다.

"위병이 급한 기세로 밀고 들어 온다 하니 승상께서는 군사를 교대하시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십시오. 그 군사들로 하여금 우선 적을 물리치게 한 후 한중의 군사들이 이곳에 이르른 다음에 돌려보내도록 하십시오."

양의의 말에 공명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 된다. 내가 장수와 군사를 부림에 있어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 왔다. 이미 내가 영을 내린 터에 어찌 믿음을 저버릴 수가 있겠는가. 돌아가기로 되어있는 군사는 모두 채비를 마쳤을 터이고 그 부모와 처자는 사립문에 기대서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큰 곤경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그들을 이곳에 머물게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말한 공명은 곧 영을 내려 한중으로 돌아갈 군사들을 그날로 떠나게 했다. 공명의 영을 받은 군사들은 모두 감격해 소리쳤다.

"승상께서 이토록 은혜를 베푸시는데 우리들이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저희로 하여금 힘을 다해 위병을 깨뜨려 승상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공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군사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차례이다. 어찌하여 여기 머물러 싸우려 하는가? 모두들 돌아가도록 하라."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싸워 위병을 무찌르고 가겠습니다."

공명의 타이름을 듣고 군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공명이 고집을 부리는 군사들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뜻이 정히 그러하다면 성에서 나가 진을 치고 있다가 위병이 이르거든 틈을 주지 말고 급히 치도록 하라. 그것이 바로 편이 앉아 있다가 먼길을 와 피로한 적을 쳐부수는 병법이다."

군사들은 공명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성 밖으로 달려가 진을 치고 위병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그때, 사마의를 돕기 위해 달려온 옹주, 양주의 군사가 길을 재촉해 성 가까이에 이르렀다. 막 영채를 세우고 쉬려고 할 때였다. 성 밖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촉병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들을 덮쳤다. 촉병들은 날래기 이를 데 없었고 장수들의 용맹 또한 하늘을 찔렀다. 공명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편히 쉬다가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니 옹주와 양주의 지친 군사들이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지며 달아나자 촉병들이 그 뒤를 쫓아서 죽이니 시체가 들에 널려 가득하고 피는 흘러 내를 이루었다. 다시 위병을 크게 깨뜨리자 공명은 군사들을 서로 불러들여 상을 내리고 치하했다. 그런데 공명이 옹주, 양주의 군사를 크게 물리쳐 이긴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영안성의 이엄으로부터 뜻밖에 전갈이 날아왔다. 공명은 이엄이 보낸 급보를 뜯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요사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동오는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 위와 화친을 청했다 합니다. 또 위는 촉을 치자고 선동하고 있으나 다행히 오는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엄이 미리 이 일을 알아냈기로 승상께 알려 드리는 바이며 급히 좋은 계책을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공명은 그 글을 읽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 글대로 위와 동오가 힘을 합해 밀려든다면 성도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급한 지경에 이를 것이었다. 공명이 여러 장수를 급히 불러들이고 말했다.

"만약 동오에서 촉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면 큰일이다. 내가 급히 돌아가야 하리라."

공명은 기산에 있는 전군에게 영을 내려 대채의 인마를 서천으로 물러나게 했다.

"사마의는 내가 이곳에서 군사들과 함께 있는 줄 알 테니 함부로 뒤쫓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왕평, 장의, 오반, 오의는 길을 나누어 서서히 서천으로 물러났다. 공명과 그곳에서 맞서던 장합은 뜻밖에도 촉병이 물러나자 의아해했다. 급히 뒤쫓아 촉병을 칠까 했으나 공명의 속임수에 하도 여러 번 속아왔던 터라 감히 뒤쫓지 못하고 사마의에게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갔다. 장합이 상규에 이르러 사마의를 보자 물었다.

"지금 뜻밖에도 촉병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촉병이 물러나는 것입니까?"

그러나 사마의 역시 조심스럽기는 장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공명이 속임수가 많다는 것은 다 아는 바이니 가볍게 움직여서는 아니 될 것이오. 굳게 지키면서 그들의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대장 위평이 나서더니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촉병이 기산의 영채까지 거두어 가지고 물러난다 하니 지금이야말로 그들을 뒤쫓아 덮쳐야 할 때입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에 도독께서는 군사를 묶어 두고 촉병을 범처럼 무서워만 하시니 천하의 비웃음을 어떻게 감당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러나 사마의는 그 말을 듣고도 함부로 군사를 내려 하지 않았다. 물러나는 공명을 뒤쫓다 크게 낭패를 당했던 지난날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공명은 기산의 군사를 다 물리고 나자 양의와 마충을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가만히 계책을 주며 영을 내렸다.

"그대들은 먼저 1만 궁노수를 거느리고 검각과 목문도 양편에 가서 매복해 있으라. 만약 위병이 뒤쫓거든 호포 소리를 군호로 삼아 통나무와 바위를 굴려 돌아갈 길을 끊어라. 그런 다음 일제히 활과 쇠뇌를 쏟아붓도록 하라."

마충과 양의가 영을 받고 나가자 공명은 위연과 관흥을 불러들였다.

"그대들은 군사를 이끌고 가 적의 뒤편을 후려쳐라."

위연과 관흥이 영을 받들어 물러났다. 공명은 성벽 위의 여기저기에 기를 가듯 꽂고, 성안에 마른 풀과 나무를 쌓아 올려 불을 지르고 연기를 피워올려 군사들이 있는 것처럼 꾸미게 했다. 공명이 노성에서 군사를 물리자 그걸 본 위의 순시병이 사마의에게 나는 듯이 달려가 알렸다.

"촉병의 많은 인마가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성안에 남은 군사가 얼마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벽 위에 많은 정기가 꽃혀 있고 연기가 오르고 있는 걸 본 순시병이 군사가 머무르고 있는 줄로 알고 그렇게 말했다. 사마의는 그 말을 듣자 몸소 높은 곳에 올라가 노성을 살펴보았다. 성 위에는 많은 깃발이 꽂혀 있는데 안에는 불길이 일고 있었다. 한동안 성을 살피던 사마의가 어이없다는 듯 껄걸 웃더니 말했다.

"성은 비어 있다. 들어가 보아라."

군사들이 사마의의 말을 듣고 성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 성안은 텅 비어 있었다. 공명이 물러난 걸 확인하자 사마의는 이번에는 정말 뒤쫓아 쳐부수겠다는 기세로 물었다.

"공명이 달아나고 있다. 누가 그를 뒤쫓아 치겠는가?"

"제가 가겠습니다."

장합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공은 너무 성미가 급하니 이 일을 맡기에는 적당치가 않소."

사마의의 말에 장합이 얼굴을 붉히며 따지듯 물었다.

"도독께서는 이곳으로 나오실 때 저를 선봉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는데, 어찌 저를 써 주시지 않으십니까?"

"촉병이 물러났다 하나 험한 길목에는 반드시 군사를 숨겨 두었을 것이오. 군사를 이끌어 나아감에 자셰히 살피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사마의가 장합에게 그렇게 깨우쳐 주자. 장합이 분기탱천하여 더욱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장합이 워낙 고집을 부리고 나서자 사마의도 더 이상은 말릴 수 없다고 여겼음인지 다시 다짐을 두었다.

"공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구려. 그러나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데 설령 만 번을 죽을지언정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장합이 그렇게 서슴없이 말하자 사마의도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이 기어이 가시겠다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떠나시오. 공에 이어 위평에게 2만을 주어 뒤따르게 하면서 적의 복병을 방비케 하겠소. 나도 곧 3천 군마를 이끌어 뒤를 받치겠소."

사마의가 장합에게 군사를 떼어 주자 장합은 군사를 이끌어 나아갔다. 장합이 급한 기세로 20여 리를 달려갔을 때이다. 홀연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떼의 군사가 내달아왔다. 앞선 장수가 칼을 비켜든 채 말을 세우더니 소리쳤다.

"적장은 군사를 이끌어 어디로 가려 하느냐?"

장합이 그를 보니 바로 촉장 위연이었다. 위연을 보자 장합도 칼을 빼 들고 한칼에 벨 기세로 달려들었다. 위연이 장합을 맞아 한바탕 불을 뿜을 듯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싸운 지 10여합이 어우러지는가 했더니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장합이 달아나는 위연을 무턱대고 뒤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 리를 뒤쫓아간 장합이 갑자기 말을 멈춰 세우고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그제야 매복을 조심하라던 사마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위를 휘둘러 보아도 복병이 있을 만한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장합이 다시 위연을 뒤쫓아 산언덕을 돌아 나갔다. 그때였다. 홀련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달려 나오는 데 보니 앞선 장수는 관흥이었다.

"장합은 도망가지 말라."

관흥이 큰 칼을 비껴든 채 말을 세우며 소리쳤다. 관흥이 나타나자 장합은 말을 채쳐 곧장 그쪽으로 내달았다. 관흥이 달려오는 장합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관흥도 위연처럼 10여 합을 어우르자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장합이 그 뒤를 급하게 쫓았다. 관흥은 산속으로 달아났다. 장합이 관흥을 뒤쫓아 산속으로 뛰어들다가 문득 말을 세웠다. 나무가 빽빽한 숲속이라 능히 군사들이 숨을 만했다. 장합이 의심스러워 말을 세우고 군사들을 풀어 숲속을 살펴보게 했으나 복병은 보이지 않았다. 장합은 의심을 풀고 마음 놓고 관흥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위연이 지름길로 달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장합은 위연이든 관흥이든 가릴 바가 아니었다. 위연을 보자 칼을 휘두르며 한칼에 벨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위연은 장합을 맞아 10여 합을 싸우다가 다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뿐만 아니었다. 촉병은 군기와 투구, 창칼 등을 모두 길에 버리고 달아났다. 뒤쫓던 위병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촉병들이 버린 물건을 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되니 대오고 뭐고 가릴 겨를이 없이 어지러워졌다. 위병들이 어지러워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위연과 관흥이 번갈아 가며 장합에게 덤벼들었다. 장합은 울화가 치밀어 번갈아 싸움을 걸어오는 위연과 관흥을 맞아 싸우며 뒤쫓았다. 그러나 위연과 관흥은 한동안 창칼을 맞대다가는 달아나고 이어 차례로 덤벼들었다간 다시 달아났다. 그렇게 되니 장합의 화만 머리끝까지 치밀 뿐이었다. 그런데 목문도 어귀에까지 쫓겨가던 위연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더니 뒤쫓는 장합을 보고 소리쳤다.

"역적 장합아! 내가 너 따위와는 겨루지 않으려 했거늘 너는 어찌 끝까지 뒤를 따라오느냐? 네가 끝까지 나와 맞서 보려 한다면 좋다. 어디 한 번 덤벼 보아라. 내가 너와 결판을 내리라!"

위연이 그렇게 비아냥거리자 장합은 더욱 화가 났다. 곧바로 말을 몰아 위연에게 덮쳐들었다. 두 사람이 맞붙어 또 한 차례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10여 합을 부딪자 위연은 아무래도 당해 낼 수가 없다는 듯 달아나기 시작했다. 위연이 달아나자 장합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더욱 분기가 치솟아 이를 갈며 위연을 뒤쫓았다. 그럴 동안 날은 점점 어두워 오는 데다 산속이라 마음대로 달릴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어두운 산속에서 포성이 울리더니 산 위에서 하늘이 찌를 듯한 불길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산 위에서 바위와 통나무들이 굴러떨어지더니 장합이 돌아갈 길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아차, 내가 적의 계책에 빠지고 말았구나."

장합이 그제야 크게 놀라며 앞뒤를 살피지 않고 뒤쫓기만 한 것을 알고 뉘우쳤으나 때는 늦었다. 이미 쏟아져 내린 통나무와 바위로 돌아갈 길이 끊긴 것이다. 장합이 사방을 살펴보니 앞쪽에만 약간의 빈터가 있을 뿐 양쪽은 바위가 깎아지른 듯 치솟아있는 절벽이었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어 장합이 크게 당황해하고 있는데 홀연 딱딱이 소리가 한번 크게 울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메뚜기 떼가 날아들 듯 수많은 화살과 쇠뇌가 쏟아져 내려왔다. 이미 독 안에 든 쥐 꼴이었다. 장합은 말 위에서 화살을 온몸에 맞은 채 1백여 명의 부장과 더불어 목문도에서 죽고 말았다. 그때 장합보다 한 발 뒤늦게 쫓아온 위병들은 앞길이 끊긴 것을 보고 장합이 적의 계교에 빠졌음을 알았다. 급히 말을 돌려 사마의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가는데 산꼭대기에서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게 섰거라. 제갈 승상께서 여기 계시다!"

위병들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산 위를 올려다보니 대낮처럼 밝은 횃불 아래 공명이 앉아 있다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오늘 활을 쏜 것은 말(사마의를 가리킴)_을 쏘고자 한 것인데 잘못되어 노루(장합을 가리킴)을 맞히고 말았구나. 너희들은 돌아가서 사마의에게 이르도록 하라. 머지않아 나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위병들은 그 말을 듣고 우선 목숨만을 구할 수 있게 된 걸 다행으로 여기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대채로 도망쳐 간 위병들은 보고 들은 대로 사마의에게 전했다. 위병들로부터 장합이 적의 계교에 빠져 목숨을 잃은 사실을 전해 들은 사마의는 하늘을 우러러 통탄해 마지않았다.

"내가 장준의(장합)을 죽게 했구나!"

사마의는 그제야 공명의 계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군사를 물리며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하고 적을 험한 길목으로 꾀어 들이는 계책이었다. 그렇다면 위수로부터 규성, 규성으로부터 이 검각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느 때에 공명의 계책이 미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사마의는 이미 장합마저 잃고 나 뒤로 더는 싸울 마음이 없었다. 장수들에게 험한 길목을 지키게 한 뒤 자신은 급히 군사를 돌려 낙양으로 돌아갔다. 위주 조예는 장합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눈물을 뿌리며 슬퍼하고 그의 시신을 거두어 후히 장사지내 주었다. 그 무렵 한중으로 돌아간 공명이 성도로 가 후주를 뵈려 하고 있는데 이에 앞서 이엄이 후주에게 글을 올렸다.

신이 군량을 마련하여 승상의 군전에 보내려 하고 있는데 승상이 돌연 군사를 돌리셨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군사를 돌리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후주는 이엄의 글을 보자 공명이 돌아온 까닭이 의아스러웠다. 상서 비위를 보내 공명에게 돌아온 까닭을 물어보게 했다. 비위는 한중에 이르러 공명을 찾아보고 후주의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이 깜짝 놀랐다.

"이엄이 나에게 글을 보내기를 동오의 손권이 조예와 손을 잡고 서천으로 밀고 들어온다고 하였소. 그래서 급히 군사를 돌린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비위도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엄이 글을 올려 이르기를 군량이 이미 마련되었는데 승상께서 아무 까닭도 없이 군사를 돌리셨다 하였소. 그 때문에 천자께서는 특별히 저를 보내 까닭을 알아 오라 하셨습니다."

원래 이엄은 군량이 마련되지 않자. 그 죄를 물을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공명에게 거짓으로 글을 보내 성도로 돌아오게 하고 후주에게 역시 엉뚱한 거짓 글을 고해바쳐 자신의 죄를 면해 보려 했던 것이었다. 공명이 사람을 시켜 이 일을 알아보게 하자 모든 일이 밝혀졌다. 공명이 크게 노해 소리쳤다.

"그 하찮은 것이 제 죄를 얼버무리기 위해 나라의 큰일을 그르치려 하였구나! 그놈을 잡아다 목을 베도록 하라."

그러자 비위가 나서서 펄펄 뛰는 공명을 말렸다.

"이엄은 선제께서 폐하의 뒷일을 당부한 신하 중의 한 사람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공명은 그 말을 듣고는 노기를 가라앉혔다. 비위는 후주 유선에게 표문을 올려 이엄의 일을 자세히 밝혔다. 표문을 읽은 후주 역시 크게 노하며 당장 이엄의 목을 베게 했다. 그러자 참군 장완이 나서 후주를 말렸다.

"이엄은 선제께서 뒷일을 당부하신 신하 중의 한 사람입니다. 폐하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시옵소서."

후주도 그 말을 듣자 그를 함부로 목 벨 수가 없었다. 그를 목 베는 대신 벼슬을 빼앗아 서민으로 만들고 재동군으로 쫓아 버렸다. 그리하여 공명이 다섯 번째로 기산으로 나아갔으나 이번에도 성도의 이엄으로 인해 다시 천하 평정의 큰 꿈이 꺾이게 된 셈이었다.

 

공명의 목우유마

공명은 성도로 돌아오자 선제의 당부를 생각해 이엄의 아들 이풍에게 장사의 벼슬을 물려 주었다. 공명은 다섯 차례나 군사를 이끌어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결코 중원 도모의 큰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다시 3년 뒤에 출정할 작정으로 양초를 비축하게 했다. 또한 군사들에게 병기를 다루고 진을 치는 법을 조련시키는 한편 싸움에 소용되는 모든 것을 갖추게 했다. 공명은 장졸들을 따뜻이 대하고 백성들을 잘 보살피니 동서 양천의 백성들과 군사들은 모두 공명의 은덕을 우러렀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 어느덧 3년이 지나 건흥 122월이 되었다. 공명이 어느 날 조회 때 후주에게 아뢰었다.

"신이 군사들을 조련하며 출정을 준비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양초가 넉넉하고 병장기도 다 갖추었으며 군사들도 모두 튼튼하고 용맹스러우니 이제 위를 치러 나설 때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간사한 무리를 쓸어 없애고 중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신은 맹세코 다시는 폐하를 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주 유선은 공명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금 천하가 솔밭과 같은 형세를 취한 채 서로 싸우려 들지 않고 있소. 그런데 상부께서는 어인 까닭으로 군사를 일으켜 이 태평스러움을 깨려 하십니까?"

후주의 물음에 공명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답했다.

"신은 선제의 크나큰 은혜를 입은 몸으로 꿈에도 위의 정벌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힘을 다하고 참마음을 다하여, 폐하께 중원을 되찾아드리고 아울러 한실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신이 바라는 바입니다."

그때였다. 공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나서 소리쳤다.

"아니 됩니다. 승상께서는 군사를 일으켜서는 아니 됩니다."

모두들 그 소리에 놀라 보니 그는 다름 아닌 태사 초주였다. 그는 천문에 매우 밝았는데 모두 궁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신은 사천대를 맡아 보고 있으니 화복의 징조를 아뢸 책임을 진 몸입니다. 요사이 수만 마리의 새가 떼를 지어 날아와 한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는 실로 상서롭지 못한 조짐입니다. 또 신이 천문을 보니 규성이 태백의 궤도에 걸쳐 있으며 성대한 기운이 북방에 서려 있으니 아직은 북쪽의 위를 칠 때가 아닙니다. 거기다가 성도에서는 오래 묵은 잣나무가 밤에 우는 소리를 내는 걸 백성들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는 삼가며 지키고 출병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공명은 초주의 말을 한마디로 물리치고 말았다.

"나는 선제께서 남기신 주한 당부를 받들어 위를 치려는 것이오. 어찌 하찮은 변고 따위로 인해 나라의 큰일을 미룰 수 있겠소?"

그렇게 말한 공명은 유사에게 명하여 소열 황제(유비)의 묘에 태뢰(나라의 제사에 올리는 제물)를 차리게 한 뒤 몸소 엎드려 울며 고했다.

"신 양은 이미 다섯 차례나 기산으로 나아갔으나 아직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으니 실로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이제 신은 다시 군사를 이끌고 기산으로 나가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맹세코 한적을 없애고 중원을 되찾겠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친 후 이 몸이 죽은 뒤에야 그 일을 그만두겠습니다."

공명이 묘 앞에 엎드려 그렇게 고하니 더 이상 출정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제사를 끝낸 공명은 곧 후주에게 작별을 고하고 말을 달려 한중으로 갔다. 공명이 여러 장수를 불러모아 군사 낼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달려와 알렸다.

"관흥이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목을 놓아 울다가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 후 공명이 깨어나자 여러 장수들이 공명을 위로했다. 공명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하늘은 어찌하여 충의로운 사람을 오래 살려 두지 않는단 말인가? 아직 싸우기도 전에 또 장수 한 사람을 잃다니. . . . . . 참으로 애달프구나."

공명은 관흥의 죽음을 슬펴하며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관흥의 죽음만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공명은 34만의 군사를 다섯 갈래로 나누어 기산으로 향하게 했다. 위연과 강유를 선봉으로 삼아 기산으로 나가게 하여 지을 치고 이회에게는 군량과 마초를 날라다 야곡 어귀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 무렵, 위나라는 그 전 해에 청룡이 마파정이라는 우물에서 나왔다고 하여 연호를 청룡 원년으로 고쳤다. 청룡 2, 2월 어느 날 신하 한 사람이 달려와 조예에게 아뢰었다.

"변방의 관원이 알려 오기를 30여 만의 촉군이 다섯 길로 나뉘어 기산으로 다시 밀고 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조예는 그 뜻밖의 전갈에 크게 놀랐다. 급히 사마의를 불러들이게 한 뒤 물었다.

"3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데 이번에 다시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온다고 하오.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조예가 놀란 가슴을 달래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으나 자못 태연했다.

"신이 밤에 천문을 보니 중원에는 왕성한 기운이 넘쳐 흘렀으며 규성이 태백을 범하고 있어 서천은 이롭지 못한 조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공명이 제 재주만을 믿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군사를 내었으니 이는 패망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신은 폐하의 크신 복에 의지해 군사를 이끌어 역적을 쳐부수겠습니다. 바라건대 신을 도와줄 네 사람을 데려가려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경은 누구를 데려가고 싶소?"

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죽은 하후연에게 네 아들이 있는데 그들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맏아들이 패, 자는 중권이고, 둘째가 이름이 위, 자는 계권이며, 셋째가 이름이 혜요, 자는 야권이고, 넷째는 이름이 화이고 자는 의권입니다. 그중 패와 위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혜와 화는 병법에 밝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하후패, 하후위를 좌우 선봉으로 하고 하후혜와 하후화는 행군사마로 삼아 군기를 의논하여 촉병을 쳐부술 작정입니다."

사마의의 말에 조예가 문득 생각난 듯 정색을 하며 물었다.

"지난날 하후무는 군기를 그르쳐 수많은 인마를 잃게 한 적이 있소. 이후 그는 지금까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소. 그 네 사람도 하후무 꼴이 되지 않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하후연의 네 아들은 하후무와 비교할 인물이 아닙니다."

사마의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니 조예도 주저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 조예는 사마의를 대도독으로 삼아 모든 장졸들을 부리도록 하고 각처의 병마도 모두 대도독의 권한 아래 두게 하니 사마의는 위나라의 병권을 한 손에 쥐게 된 셈이었다. 이윽고 사마의가 명을 받들어 성을 나서는데 조예가 사마의를 다시 불러들여 몸소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경은 위수에 이르거든 성의 방비를 든든히 하고 굳게 지키기만 하며 싸움을 서두르지 않도록 하라. 촉병이 뜻을 이루지 못할 때 거짓으로 물러나는 체하며 우리 군사를 꾀어내려 할 것이니 경은 삼가고 가벼이 뒤쫓지 않도록 하라. 그들은 군량이 바닥나면 절로 물러날 터이니 그때를 기다려 빈틈을 노려 덮쳐들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어렵지 않게 적을 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군사들을 상하지 않게 하고 이길 수 있으리라.

사마의는 머리를 조아려 그 조서를 받들고 급히 군사를 재촉해 장안에 이르기가 바쁘게 각처의 인마를 끌어들이니 그 수가 40만이나 되었다.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어 위수에 이르자 영채를 세우고 따로 5만의 군사를 떼어 내 위수에 아홉 개의 부교를 놓게 했다. 또한 선봉 하후패와 하후위에게는 그 부교를 건너 영채를 세우게 했다. 사마의는 적에 대비하여 굳게 지키기 위한 채비를 끝낸 뒤에 장수들을 불러들이고 촉병을 막을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때 곽회와 손례가 찾아왔다. 사마의가 급히 그들을 맞아들였다. 서로 예를 나누자 곽회가 입을 열었다.

"촉병이 지금 기산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 위수를 건너 들판을 지난 다음 북쪽 산으로 가 농서쪽의 길을 끊는다면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마의도 그 말을 듣자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렇소. 그렇다면 공은 농서의 군사를 이끌어 북원에 영채를 세우도록 하시오. 도랑을 깊게 파고 벽을 높게 쌓아 방비를 굳게 한 다음 군사를 함부로 움직이지 않도록 하시오. 그러다 적의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그들이 물러날 때 덮치도록 하시오."

사마의의 말에 곽회에 손례는 곧 군사를 거느리고 나갔다. 그 무렵, 기산에 이르른 공명은 사방으로 다섯 개의 영채를 벌여 세우고, 야곡에서 검각에 이르는 길에도 열네 개의 대채를 세웠다. 각 영채에 군사들을 머무르게 하며 날마다 장수들이 채를 순초하게 했다. 사마의가 전처럼 지키기만 하고 나와 싸우지 않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곽회와 손례가 북쪽 들판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그런 어느 날 군사 하나가 달려와 이렇게 아뢰었다. 그러자 공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위병이 북원에 진을 친 것은 우리가 농서로 가는 길을 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북원을 치는 체하다 슬며시 위수 남쪽을 빼앗을 작정이다. 그대들은 뗏목 1백여 척을 급히 만들어 그 위에 마른 풀을 싣고 헤엄 잘 치는 군사 5천 명을 태우도록 하라. 내가 오늘 밤에 북쪽 진을 공격하는 체하면 사마의는 틀림없이 곽회와 손례를 구하러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들을 쳐부수다가 적이 어지러워지는 틈을 타 후군에게 물을 건너게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전군을 태운 뗏목을 곧장 강줄기를 타고 내려가게 하여 뗏목에 실었던 풀에다 불을 질러 적이 만든 부교를 태워 버리는 것이다. 그때 강을 건너간 후군이 위군의 뒷덜미를 후려치도록 하라. 나는 또 한 떼의 군사를 이끌어 적의 앞쪽에 있는 영채로 밀고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하여 위수 남쪽만 우리 손안에 넣으면 우리 군사가 나아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공명이 그렇게 이르자 모든 장수들이 그 말에 따라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뗏목을 만드는 등 촉병들의 바쁜 움직임은 위의 세작에 의해 곧 사마의의 귀에도 들어갔다. 사마의는 촉병의 그런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 헤아렸다. 장수들을 장막 안으로 불러들이고 말했다.

"공명이 그렇게 군사를 부리고 있는 것은 반드시 계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쪽을 치는 것처럼 꾸미고 뗏목을 흘려 보내 불을 질러 부교를 불태우고 우리 등 뒤를 어지럽게 만들려는 것이다. 공명은 그 틈을 노려 우리의 앞쪽으로 치고 들려는 속셈이다."

그렇게 말한 사마의는 곧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영을 내렸다.

"너희들은 북쪽 진에서 함성이 일어나거든, 곧장 위수 남쪽으로 달려가 산속에 숨어 있으라. 그러다가 촉병이 나오거든 일시에 들이치도록 하라."

이어 장호와 악침을 불러 영을 내렸다.

"너희들은 궁노수 2천을 거느리고 가서 부교 북쪽 언덕에 숨어 있으라. 촉병이 뗏목을 타고 물을 따라 내려오거든 그들이 부교에 이르지 못하도록 일제히 활과 쇠뇌를 쏘도록 하라."

사마의는 또 곽회와 손례에게도 사람을 보내 알리게 했다.

"공명은 북쪽 진을 치는 체하며 군사들에게 위수를 건너게 할 것이오. 그대들은 이제 영채를 세운데다 군사들도 많지 않으니 군사들을 모두 도중에 매복시키도록 하시오. 촉병들은 오후에 위수를 건너면 틀림없이 해가 떨어질 때쯤 밀고 나올 것이오. 촉병이 나오거든 패한 척하고 달아나도록 하시오. 그러면 촉병은 급한 기세로 뒤쫓을 것이오. 그때 촉병들에게 활과 쇠뇌를 쏘아 뒤쫓는 것을 막도록 하시오. 나는 수륙 두 길로 나누어 나아가 구원할 터인즉, 그때 가서 내 말을 따르도록 하시오."

공명의 계책을 훤히 내다본 듯한 사마의의 대비였다. 사마의는 그렇게 장수들에게 영을 내려 군사를 배치한 다음, 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에게는 앞쪽의 영채를 응원케 하여 촉병에 대비하게 했다. 사마의는 스스로 한 떼의 군사를 이끌어 북원으로 나아갔다. 그때 고명도 뗏목이 만들어지자 다시 장수들을 배치했다. 위연과 마대에게는 위수를 건너 북원으로 짓쳐들게 하고 오반과 오의에게는 뗏목에 군사를 태우고 가서 부교를 불태우게 했다. 또한 왕평과 장의에게는 전대를 맡게 하고 강유와 마충에게는 중대를, 그리고 요화와 장악에게 후대를 맡겨 위수의 영채를 치게 했다. 이윽고 정오가 되자 공명의 영을 받든 장수들은 군사를 거느리고 위수를 건너 공명이 이른 대로 각각 진세를 벌이며 나아갔다. 위연과 마대가 북쪽 진 가까이에 이른 것은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였다. 사마의가 이른 대로 해질녘이 되자 촉병이 몰려오는 걸 본 순례는 영채를 버린 채 달아났다. 위연은 적병이 싸울 생각도 않고 당황하는 낌새도 없이 달아나기만 하자 부쩍 의심이 들었다. 적의 매복이 있을 줄로 알고 급히 군사를 되돌리려는데 홀연 사방에서 크게 함성이 울리며 왼쪽에서는 사마의, 오른쪽에서는 곽회가 군사를 휘몰아왔다. 꼼짝없이 양쪽에서 위병을 맞게 된 위연과 마대는 힘을 다해 싸웠으나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오반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와 구원해 주어 가까스로 언덕으로 달아났으나 거느렸던 군사들의 태반이 위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위연과 마대를 구한 오반은 급히 군사를 나누어 뗏목에 올랐다. 공명의 명대로 부교를 불사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강물 위로 뗏목을 밀고 가려 할 때 이미 매복해 있던 장호와 악침이 2천 궁노수에게 명해 활과 쇠뇌를 쏘게 했다. 뗏목 위의 촉병들은 갑작스럽게 비 오듯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날아온 화살에 오반이 맞아 강물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뗏목 위의 촉병들도 대부분 화살에 맞아 죽거나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달아나고 말았다. 그때 북쪽 진으로 간 촉의 군사들이 위병에게 산산조각이 난 걸 모르고 있던 왕평과 장의는 기세 좋게 위군의 진으로 밀려갔다. 밤은 이미 깊었는데 촉병이 달려가자 사방에서 크게 함성이 일어났다. 왕평이 황급히 말을 멈춰 세우며 장의에게 말했다.

"우리 마군들이 북원으로 나아갔는데 형세가 어떠한지 알 수 없고, 게다가 위남의 영채에 위병이 눈에 띄지 않고 있소. 혹시 사마의가 미리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소. 그러니 우리들은 부교가 불타는 것을 지켜보았다가 나아가는 것이 좋겠소."

왕평이 그렇게 말하자 장의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두 장수는 군사를 그곳에 머무르게 한 채 부교에 불길이 타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군사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급한 소식을 전했다.

"승상께서 빨리 군사를 돌리라고 하십니다. 북쪽 진을 치러 갔던 군사와 부교를 태우러 갔던 군사들이 모두 적에게 패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의심이 들던 왕평과 장의는 그 말을 듣자 급히 군사를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도 이미 위병의 준비가 있었다. 포성이 크게 일더니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위병이 등 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왕평과 장의는 기세가 드높은 위병을 맞아 한바탕 혼전을 벌인 끝에 적의 포위를 뚫고 나오기는 했으나 많은 군사가 꺾여 버렸다. 공명은 이번 싸움에 패한 채 기산의 대채로 군사를 물렸다. 대채로 몰려든 장졸들을 수습해 보니 이번 싸움에 꺾인군사가 1만여 명이었다. 여섯 번째로 기산으로 나와 이번에야말로 위병을 깨뜨리고 중원으로 짓쳐 들려던 공명이었다. 자신의 계책도 아무 소용 없이 첫 싸움에 지자 공명은 심기가 몹시 불편하고 우울해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 성도에서 비위가 공명을 찾아왔다. 공명은 비위를 보자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오시었소. 내가 서한 한 통을 써 줄 터이니 수고롭지만 동오의 손권에게 좀 전해 주시겠소?"

"승상께서 명하시는 일인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비위가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자 공명은 비위에게 글 한 통을 써 주며 동오로 가게 했다. 이에 비위는 공명의 글을 가지고 동오의 건업으로 가서 오주 손권을 만났다. 비위가 예를 마치고 손권에게 글을 바치자 손권이 글을 읽어보았다.

한실이 불행한 틈을 타 조정이 기강을 잃으니 역적 조조가 제위를 빼앗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양은 소열 황제(유비)의 남기신 명을 받들었으니 어찌 감히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대병을 기산으로 내몰았으며 미친 역적의 무리들은 오래잖아 위수에서 그 마지막을 맞이하고야 말 것입니다. 이에 엎드려 바라옵건데 폐하께서는 동맹의 의리를 생각하시어 북방 정벌을 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중원을 빼앗아 천하를 나누도록 하옵소서. 글로써는 다 아뢰지 못합니다만 아무쪼록 폐하의 밝은 헤아림이 있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손권은 공명의 글을 읽자 마음이 흡족했다. 기다리던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 비위에게 일렀다.

"짐이 오래전부터 군사를 일으켜 위를 치려 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소.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승상이 보내 왔으나 더 미룰 까닭이 없소. 오늘로 짐이 몸소 군사를 일으켜 거소문으로 나갈 것이오. 그곳으로 가 위의 신성을 빼앗을 것이오. 또한 육손과 제갈근에게는 강하와 면구에 군사를 머무르게 하여 양양을 빼앗게 하겠소. 이렇듯 세 갈래로 30만의 군사를 일시에 낼 것이며 지체하지 않고 당장 군사를 움직이도록 하겠소."

손권이 머뭇거림 없이 후련히 말하자 비위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엎드려 손권에게 절하며 말했다.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니 이제 위가 무너지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손권도 마음이 흡족했던 터라 비위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술잔이 오고 가는 가운데 문득 손권이 비위에게 물었다.

"승상의 군중에는 누구를 선봉으로 삼았소?"

"위연을 선봉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비위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껄걸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용맹은 넘치지만 마음이 바르지 않소. 만약 승상만 없어지면 그는 반드시 하루 아침에 화근이 될 사람이오. 어찌하여 승상이 그걸 모른단 말이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돌아가면 반드시 승상께 전해 드려 화를 면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위가 속으로 감탄해 마지 않았다. 다른 나라 장수를 그토록 훤히 살피고 있는 손권의 날카로운 헤아림이 놀라웠다. 잔치가 끝나자 비위는 손권에게 절하며 물러난 후 한중으로 돌아갔다. 비위는 공명에게 손권이 30만 대군을 일으켜 세 길로 나누어 위를 치러 가기로 한일을 전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더니 다시 비위에게 물었다.

"오주가 그 밖에 다른 말을 한 것은 없소?"

그러자 비위가 생각난 듯 위연에 대한 손권의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과연 총명한 임금이로구나! 내가 위연의 사람됨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의 용맹을 아껴 쓰고 있을 뿐이오."

"그렇다면 승상께서는 일찌감치 조치하도록 하십시오."

비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공명에게 채근했다.

"나도 생각해 둔 바가 있소."

공명이 그렇게 말하자 비위도 더 이상은 입을 열지 않고 공명과 작별하고 성도로 돌아갔다. 비위가 돌아가자 공명은 다시 여러 장수들을 불러 군사 움직일 일을 의논했다. 그때 홀연 군사 하나가 들어와 전했다.

"위나라 장수 한 사람이 투항해 왔습니다."

공명이 그 장수를 불러들이게 하고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찌하여 적군에게 투항하려 하는가?"

"저는 위나라의 편장군 정문입니다. 진랑과 더불어 사마의 밑에 있는데, 사마의가 뜻밖에도 사사로운 정으로 진랑을 전장군으로 삼고 저는 지푸라기 보듯 하니 분을 이기지 못하여 승상께 투항했습니다. 원컨대 승상께서는 이 몸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사 하나가 급히 달려와 알렸다.

"지금 위나라의 진랑이란 자가 군사를 이끌어 와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자 공명이 정문에게 물었다.

"진랑의 무예가 너와 비하여 어떤가?"

"제가 한칼에 그의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

정문이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자 공명이 그에게 일렀다.

"그렇다면 네가 나가 진랑의 목을 베어 오라. 그러면 너를 의심치 않을 것이다."

공명의 말에 저문이 홀연히 영문 밖으로 나가 말 위에 올랐다. 정문이 진랑과 싸우기 위해 말을 몰아 나가자 공명은 몸소 영채 밖으로 나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 진랑이 창을 비켜든 채 정문을 크게 꾸짖고 있었다.

"이 역적놈아, 네 어찌 감히 내 말을 훔쳐 타고 달아나느냐? 어서 내 말을 내놓아라."

진랑이 그렇게 외치더니 곧장 말을 박차 정문에게로 달려갔다. 정문도 피하지 않고 달려오는 진랑을 맞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단 한 번 부딪친 순간, 정문의 칼에 맞은 진랑이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진랑이 말 아래로 떨어지자 졸개들은 기가 꺾인 듯 이리저리 흩어져 달아났다. 정문이 진랑의 목을 꿰어 들고 영문 안으로 기세를 드높이며 돌아왔다. 한칼에 진랑의 목을 베었으니 정문을 거두어들일 뿐 아니라 상이라도 내릴 줄 알았던 촉병들이었다. 그러나 장중에 앉아 정문을 불러들인 공명은 발연히 노하며 소리쳐 꾸짖었다.

"이놈, 네 어찌 가히 나를 속이려 드느냐?"

공명의 호통에 정문이 얼굴색이 달라지며 물었다.

"승상께서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찌하여 속인다고 하십니까?"

그러나 공명은 여전히 무서운 얼굴로 정문을 꾸짖었다.

"나는 진작부터 진랑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네가 베어 죽인 것은 진랑이 아니다. 내가 네놈의 속임수에 넘어갈 줄 알았느냐?"

공명이 그렇게 말하자 정문도 갑자기 몸을 떨며 땅바닥에 엎드리며 빌었다.

"사실대로 아뢰겠습니다. 제가 죽인 건 진랑이 아니라 그의 아우 진명이었습니다."

그러자 공명이 껄걸 웃으며 말했다.

"사마의가 너를 시켜 거짓으로 항복하게 한 것이리라. 그러나 어찌 나를 속일 수가 있겠느냐?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당장에 목을 베겠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니 정문은 거짓 항복이었음을 고하고 한목숨 살려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공명이 그런 정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렀다.

"그렇다면 내가 이르는 대로 글을 써서, 사마의로 하여금 우리 본진을 치러 나오게 하라. 그리하여 사마의를 사로잡게 되면 너의 목숨을 살려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네 공으로 여겨 높이 쓰리라."

거짓 항복해 온 정문을 거꾸로 이용해 사마의를 끌어 내자는 것이었다. 정문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니 하는 수 없이 사마의를 꾀어 내는 글을 써서 공명에게 바쳤다. 공명은 그 글을 받은 뒤 정문을 옥에 가두게 했다. 그러자 변견이 궁금한 얼굴로 공명에게 물었다.

"승상께서는 어떻게 저놈이 거짓으로 항복한 것을 알았습니까?"

공명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사마의는 원래 사람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만약 진랑을 전장군으로 썼다면 그의 무예가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정문과 싸워 단 1합에 목숨을 잃었으니 그건 분명 진랑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걸 보고 정문의 항복이 거짓임을 알았다."

여러 장수들이 그 말을 듣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공명은 군사들 중에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아 가만히 무슨 말인가를 일러 준 뒤 정문이 쓴 글을 주어 사마의에게 가게 했다. 위군의 영채에 이른 군사가 사마의 뵙기를 청했다. 사마의가 그를 불러들이고 정문의 글을 읽어 본 뒤 물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저는 원래 중원 사람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다 촉에 머물게 되었는데 정문과 한 고향에서 자랐습니다. 이번에 정문이 공을 세우니 공명은 그 공으로 정문을 선봉으로 세웠습니다. 그러자 정문이 제게 은밀히 이 글을 도독께 전해 올리라고 당부했습니다. 정문은 내일밤 군호로 불길을 올리겠다고 하여습니다. 그때 도독께서 대병을 이끌어 촉의 영채로 밀고 들어오시면 정문이 안에서 호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공명이 보낸 군사가 막힘 없이 그렇게 꾸며대었다. 사마의는 그 자가 촉에 살았다는 말이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아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수상쩍은 점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 군사의 말이 앞뒤 막힘이 없는 데다 의심을 가질 만한 데가 없었다. 사마의가 다시 글을 펼쳐 보며 자세히 살폈으나 틀림없는 정문의 필체였다. 사마의도 그제야 자기의 계책에 공명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의심을 거두고 그 군사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말했다.

"오늘 밤 이경에, 내가 몸소 군사를 이끌어 적진을 치러 가겠다. 만약 네가 가져온 글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너를 높이 써 주리라."

그 군사는 사마의의 말에 절을 올리며 하직 인사를 고한 후 돌아갔다. 촉의 영채로 돌아온 군사는 공명에게 사마의를 만난 일을 빠뜨리지 않고 전했다. 공명이 사마의가 속았음을 알고 칼을 짚은 채 하늘에 빌고 난 뒤 황평과 장의를 불러 은밀히 무엇인가 영을 내렸다. 이어 마충과 마대를 불러 계책을 일러 주고 떠나게 했다. 위연에게도 계책을 일러 보낸 공명은 스스로 산 위에 올라가 전군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때 사마의는 정문이 보낸 글을 믿고 촉의 영채를 덮치기 위해 군사를 낼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맏아들 사마사가 나서서 말했다.

"글 한 통을 믿고 아버님께서 몸소 적진으로 뛰어드신다는 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만약 이 일에 무슨 계교라도 있게 되면 그땐 어쩌시렵니까? 아무래도 아버님은 다른 장수 한 사람을 내세워 먼저 군사를 이끌게 하시고 뒤에서 받쳐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마의가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이에 진랑에게 군사 1만을 거느리게 하여 먼저 촉군의 영채로 나아가게 하고 자신은 그 뒤를 접응해 주기로 했다. 그날 밤은 초저녁에는 바람도 자고 하늘도 맑았다. 그런데 밤이 깊어갈수록 비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검은 구름이 잔뜩 하늘을 뒤덮었다. 사방이 먹물을 뿌린 듯 어두워지더니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사마의는 밤하늘이 그렇게 캄캄해진 걸 보고 쥐도 새도 모르게 촉진을 급습할 수 있게 된 걸 기뻐했다.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도와 주시는구나!"

사마의는 군사들에게 하무를 물리고 말에게는 재갈을 물리게 하여 소리 없이 촉군의 영채로 나아갔다. 촉의 영채 가까이에 이르자 진랑이 먼저 군사 1만을 내몰며 영채를 급습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촉의 영채 안에는 촉병은커녕 군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섬뜩해진 진랑이 그제야 적의 계책에 빠졌음을 알고 소리쳤다.

"물러나라. 적의 계책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진랑의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불길이 크게 일며 함성이 땅과 하늘을 뒤흔드는 가운데 촉병들이 밀려들었다. 왕평, 장의, 마대, 마충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군사를 이끌어 영채 안에 있는 진랑의 군사를 덮쳤다. 독 안에 든 쥐 꼴이던 진랑이 죽기 살기로 싸웠으나 이미 빠져나갈 길을 끊고 있는 촉병을 뚫을 수는 없었다. 다만 뒤따르는 사마의가 구원해 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계책을 편 공명이 사마의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때 뒤따르던 사마의는 촉병의 영채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고 함성이 요란히 일자 급히 군사를 몰아갔다. 그러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위병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형세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불길이 일고 있는 곳으로만 무작정 치닫고 있는데 갑자기 포 소리가 땅을 뒤흔들더니 북소리와 함성이 일며 왼쪽과 오른쪽에서 촉병이 내달아왔다. 위연과 강유가 거느린 촉병이었다. 캄캄한 밤중인데다 숨어 있던 촉병에게 도리어 기습을 당한 위병들은 싸우기도 전에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촉병의 창칼에 찔려 죽거나 상하니 그 수가 열에 여덟, 아홉이나 되었다. 살아남은 자도 제 갈 길을 찾아 이리저리 흩어져 달아날 뿐이었다. 사마의가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진랑은 사마의도 그 지경이 되고 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수없이 날아드는 촉병의 화살에 맞아 졸개들과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가까스로 촉병의 화살을 피해 목숨을 건진 사마의는 뒤따르는 군사만을 이끌고 본채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어둠도 삼경 무렵이 되자 이윽고 하늘이 맑아지며 밝은 달이 나타나 촉병의 영채를 밝혔다. 공명은 산 위에서 징을 쳐 군사를 거두었다. 이경 무렵 갑자기 하늘을 뒤덮었던 구름은 공명이 둔갑술을 써 불러모은 것이었다. 삼경 때쯤 하늘이 맑아진 것은 위병이 물러나자 공명이 육정육갑신을 써 구름을 흩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공명은 위병을 크게 깨뜨리고 본채로 돌아가자 정문을 끌어 내 목을 베게 하고, 장수들을 불러모아 다시 위수 남방을 칠 것을 의논했다. 그런 다음 공명은 매일 군사를 풀어 위병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촉병을 쓸어 버리려다 거꾸로 많은 군사들만 꺾인 사마의가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공명은 수레를 타고 기산을 내려와 위수의 동쪽과 서쪽의 지리를 살펴봤다. 지세를 이용해서라도 싸움의 실마리를 풀어 보려는 것이었다. 공명이 수레를 타고 어느 골짜기의 어귀에 이르렀다. 그런데 땅의 형세가 마치 표주박처럼 생겨 군사 1천 명은 넉넉히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양편 골짜기에도 4, 5백 명의 군사를 숨길 수 있을 듯했다. 게다가 뒤에 있는 산은 고리 모양으로 서로 껴안고 있는데 뻗어 있는 가는 외줄기 길에는 말 탄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공명이 그곳 지세를 살펴보다 무슨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며 길잡이 군사에게 물었다.

"이곳 골짜기를 무어라고 부르는가?"

"이곳은 상방곡인데, 호로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길잡이 군사가 그렇게 대답하자 공명은 머리를 끄덕이며 수레를 돌리게 했다. 장막으로 돌아온 공명은 비장 두예와 호충을 부르더니 가만히 계책을 일러 주었다. 이어 군중에 있는 장작 1천여 명을 부러 호로곡으로 들어가게 하여 목우유마를 만들게 했다. 목우유마란 공명이 발명한 소와 말을 본떠 만든 수레로, 군량과 무기를 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공명은 이어 마대에게 군사 5백을 주어 호로곡을 지키도록 일렀다.

"장작들을 골짜기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 사람들도 절대로 안으로 들이지 않도록 하라. 내가 자주 점검하러 갈 것이다. 사마의를 사로잡을 길은 이 계략밖에 없으니 결코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라."

마대가 공명의 영을 받들고 물러났다. 그때 두예와 호충은 호로곡에 이르러 목우유마를 만들고 있었다. 공명은 매일 호로곡으로 나가 그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 보며 작업을 재촉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사 양의가 공명을 찾아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지금 우리의 양초가 모두 검각에 있어 사람과 마소를 옮겨 오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공명이 웃으며 양의를 안심시켰다.

"내가 그 일에 관해서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에 모아 두었던 목재와 서천에서 구해 들인 목재를 사용하여 지금 목우, 유마를 만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게 만들어지면 양초를 옮기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된다. 거기다가 그 마소는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는 데다 밤낮으로 지치는 일 없이 양초를 실어나를 수 있다."

곁에 있던 장수들은 공명의 말을 들을수록 더욱 의아스럽고 놀라웠다.

"일찍이 목우, 유마란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나무로 만들 말과 소가 어찌 절로 달릴 수가 있겠습니까? 승상께서는 어떤 묘법으로 그런 기이한 물건을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공명이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내가 이미 장작들을 시켜 만들도록 해 두었다. 그러나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먼저 목우, 유마를 만드는 법을 일러 주겠다. 그 크기와 둘레와 길이, 폭 그리고 짜는 법을 여기 그려 줄 터이니 보도록 하라."

공명의 말에 장수들은 모두 기쁨과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공명이 곧 종이에다 도면을 그리며 목우 만드는 방법부터 설명했다.

"배는 모가 지고 정강이는 굽으며 배에 달린 발이 넷, 머리는 목덜미에 달려있되 혀는 배에 달려 있다. 많이 실으면 빨리 가지 못하고 홀로 가면 몇십 리를 갈 수 있으나 함께 떼를 지어 가면 30리 정도를 갈 수있다. 구부러진 것은 소 머리에 해당되고 두 개 나란히 있는 것이 발이며, 가로지른 것이 목, 굴러가는 것이 다리다. 위에 덮은 것은 잔등, 네모난 것은 배, 늘어난 것이 혀이며 울퉁불퉁한 것이 소의 갈비이다. 새겨진 것이 이빨이고, 삐죽 뻗친 것이 뿔이며 가는 것이 쇠굴레요, 가느다란 것이 소의 꼬리이고 그 위게 볼기짝이다. 이 소에다 끌채를 두 개 달고 사람이 끄는데 여섯 자를 나가면 소는 네 걸음을 나간다. 사람은 끄는 데 힘이 들지 않고 소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말한 공명은 다시 유마의 모양을 적어 나갔다.

"갈빗대의 길이는 석 자 닷 치에 너비는 세 치이며, 그 두껍기는 두 치 닷 푼이며 좌우가 모두 같다. 앞 굴대의 구멍은 머리에서 네 치가 떨어져 있으며 지름이 두 치, 앞다리 구멍의 지름은 네 치 닷 푼이다. 앞에 가로 지른 나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무 함이 둘이며, 널반지 두께가 여덟 푼, 길이 두 자 일곱 치, 높이가 한 자 여섯 치 닷 푼이며, 넓이는 한 자 여섯 치이다. 그리고 유마의 함 안에는 두 섬 서 말의 양식을 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네 다리 넓이는 두 치, 두께는 한 치 닷 푼이되 그 만드는 법은 여기 이 그림을 보면 알게 되리라."

모든 장수들은 공명이 글로 적고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해 주자 한결같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승상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십니다."

그로부터 며칠 되였다. 드디어 목우, 유마가 만들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보니살아 있는 소나 말의 모습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산에 오르고 내리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모두들 이 신기한 목우, 유마를 보고 기뻐해 마지않았다. 공명은 우장군 고상에게 군사 1천여 명을 주어 목우와 유마를 이끌어 검각에 있는 군량을 실어 나르게 했다. 목우, 유마가 군량을 나르게 되자 좁고 험한 검각 야곡 땅에서도 촉병은 군량 나르는 일의 걱정을 덜게 되었다.

그 무렵, 촉병과의 싸움에 지고 온 사마의는 근심에 싸여 있었다. 함부로 나가 싸울 수도 없는 데다 촉병을 물리칠 만한 계책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날 촉진을 살피러 갔던 군사가 달려와 고했다.

"촉군이 목우, 유마란 수레를 만들어 양초를 실어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힘들이지 않고도 그 수레를 끌 수 있는 데다 먹이를 주지 않고도 양초를 실어나를 수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사마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기대하고 있던 것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굳게 지키고 있을 뿐 나아가지 않을 것은 적이 양초를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걸 만들어 쓰고 있으니 물러나기는커녕 공명은 싸움을 오래 끌 생각으로 계책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적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제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어두운 얼굴로 그렇게 탄식하던 사마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장호와 악침을 불러 영을 내렸다.

"너희들은 각기 군사 5백을 거느리고 가 야곡 오솔길에 숨어 있다가 촉병이 목우, 유마를 몰고 지나가거든 다 지나가게 놓아두었다가 뒤에서 덮쳐들라. 그런 다음 네댓 대만 끌고 오도록 하라."

사마의는 공명이 만든 목우, 유마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해 그걸 한번 볼 양으로 장호와 악침을 보낸 것이었다. 장호와 악침은 사마의의 영을 받아 군사들을 모두 촉병으로 꾸미게 하여 밤중에 오솔길로 나아가 길 양쪽에 숨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촉장 고상이 목우, 유마를 몰고 왔다. 사마의가 이른 대로 그들을 지나가게 한 뒤 갑자기 양쪽에서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뒤로부터 달려들었다. 갑작스럽게 내닫는 위병을 보자 뒤처져 가던 촉병들은 크게 당황해 이끌어 가던 목우, 유마 몇 필을 내팽개친 채 황망히 달아났다. 장호와 악침은 그 목우, 유마 몇 필을 이끌고 본채로 돌아왔다. 사마의는 장호와 악침이 끌어온 목우, 유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정말 살아 있는 말이나 소와 다름없었다. 사마의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공명이 이런 수법을 쓴다면 나라고 쓰지 못할 게 무엇이겠느냐?"

사마의는 곧 1백여 명의 목공들을 불러모아 목우, 유마를 뜯어보고 그대로 만들게 했다. 목공들은 공명이 만든 목우, 유마를 뜯어보고 나무의 길이와 넓이, 두께 등을 똑같이 깎아 맞추었다. 보름쯤이 되자 공명이 만든 것과 똑같은 목우 유마 2천여 개가 만들어졌다. 이에 사마의는 진원장군 잠위에게 명을 내려 1천 군사를 거느리고 목우, 유마를 이용하여 농서로부터 군량을 실어나르게 했다. 위병 또한 군량 나르는 걱정을 덜게 되자 장졸들은 모두 기뻐해 마지않았다. 한편, 목우, 유마를 위병들에게 빼앗기고 본채로 돌아간 고상은 공명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공명은 목우, 유마를 빼앗긴 고상을 꾸짖기는커녕 껄걸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위병이 그걸 빼앗아 갈 걸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몇 필의 목우와 유마를 잃었으나 곧 머지않아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공명의 말을 들은 여러 장수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가 위병에게 목우, 유마를 빼앗겼는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는다 하십니까?"

공명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마의가 그걸 빼앗아 갔으면 반드시 그와 똑같은 것을 만들 것이다. 그때 내가 좋은 계책을 베풀리라."

공명이 그렇게 말했지만 장수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위의 영채를 살피고 있던 군사가 급히 뛰어들더니 공명에게 알렸다.

"위병들이 우리와 똑같은 목우와 유마를 만들어 농서에서 군량과 마초를 실어나르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이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과연 내가 짐작했던 대로구나!"

공명은 곧 왕평을 불렀다.

"그대는 군사 1천을 이끌고 위병으로 꾸며 밤을 도와 북쪽 진으로 가도록 하라. 위병을 만나거든 군량을 나르는 군사라고 거짓말을 하고 군량을 나르는 군사들 틈에 끼어 있다가 기회를 엿보아 그들을 죽여 버리거나 쫓아 버려라. 그런 다음 목우, 유마를 끌고 돌아오도록 하라. 북쪽진을 거쳐 오게 되면 틀림없이 위병이 뒤쫓을 것이다. 그러면 목우와 유마의 몸 속에 있는 혀를 비틀어 두라. 그러면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그대로 내버리고 달아나도록 하라. 목우와 유마가 움직이지 않으니 위병들은 그것들은 되찾는다 해도 다시 끌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위병들이 목우와 유마를 끌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내가 다시 군사를 내보낼 테니 너희들은 그때 함께 힘을 합해 위병들을 물리치도록 하라. 그런 뒤 목우와 유마의 혀를 제자리로 돌려 끌어오도록 하라. 그러면 적은 틀림없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함부로 뒤쫓지도 못하고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왕평이 명을 받고 나가자 공명은 장의를 불러 명했다.

"그대는 5백의 군사를 육정육갑의 신병처럼 꾸미도록 하라. 귀신같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몸은 짐승의 모양을 하고 다섯 가지 물감을 써서 얼굴을 여러 가지 괴이한 모습으로 칠하도록 하라. 한 손에는 수놓은 기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칼을 잡게 하라. 허리에는 화약을 담은 호리병을 차고 산길 옆에 숨어 있다가 목우와 유마가 오거든 호리병에 불을 붙어 터뜨리며 일제히 내달아 목우와 유마를 빼앗도록 하라. 적은 우리 군사의 귀신 같은 모습에 놀라 감히 뒤쫓지 못할 것이다."

장의가 공명의 명을 받고 떠나자 또 위연과 강유를 불렀다.

"그대들은 군사 1만을 거느리고 북원으로 나가 목우와 유마를 빼앗아 오는 우리 군사들을 지켜라."

공명은 또한 요화와 장익에게도 분부를 내렸다.

"그대들 두 사람은 5천 인마를 거느려 사마의가 뒤쫓아오는 길을 막도록 하라."

공명은 마충과 마대에게도 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2천 명의 인마를 이끌어 위수 남쪽으로 가서 싸움을 돋우도록 하라."

공명은 두 사람을 끝으로 그렇게 명을 내려 모두 떠나가게 했다. 공명이 이런 계책을 베풀고 있는 줄을 알 리 없는 위의 장수 잠위는 군사들을 이끌어 목우와 유마를 군량을 나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앞쪽의 군사가 달려와 전했다.

"우리의 순시병이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잠위가 그들을 살펴보니 틀림없는 위병이었으므로 안심하고 그대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하여 순시병과 합쳐 다시 길을 갈 때였다. 홀연 함성이 크게 터지더니 앞쪽에서 크게 혼란이 일어났다. 위병으로 꾸몄던 촉병들이 갑자기 위병을 덮치는가 했더니 앞쪽에서도 촉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촉병을 거느리고 나타난 장수가 소리쳤다.

"촉의 대장 왕평이 여기 있다. 칼을 버리고 항복하면 목숨만을 살려두겠다."

난데없는 촉병의 기습에 위병은 크게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제대로 싸워 볼 겨를도 없이 촉병의 칼날에 쓰러졌다. 잠위는 왕평과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왕평의 칼을 맞아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잠위의 목이 떨어지고 보니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졸개들은 뿔뿔이 흩어지기에 바빴다. 왕평은 달아나는 위병을 쫓는 대신 목우와 유마를 빼앗아 본채로 향했다. 그때 목숨을 건진 잠위의 졸개들이 곽회에게 달려가 목우와 유마를 빼앗긴 사실을 알렸다. 목우와 유마를 빼앗겼다는 말에 곽회는 깜짝 놀라며 급히 군사를 수습해 빼앗긴 군량을 도로 찾으러 갔다. 곽회가 뒤쫓아오는 걸 알게 된 왕평은 공명이 일러준 대로 얼른 목우와 유마의 혀를 돌려놓고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빼앗긴 목우, 유마를 되찾게 된 곽회는 달아나는 촉병을 뒤쫓지 않은 채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되찾은 목우, 유마를 끌고 오라."

군사들은 곽회의 명에 따라 우르르 달려가 목우,유마를 끌어가려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밀고 당겨도 목우, 유마는 옴짝달짝도 하지 않았다. 그토록 잘 굴러가던 목우,유마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자 위병들은 몹시 놀라며 이상스럽게 여겼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산 뒤쪽에서 북소리와 함성이 크게 일며 촉병이 밀려 나왔다. 위연과 강유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달아나던 왕평도 갑자기 군사를 되돌려 달려들었다. 앞과 뒤로 촉병을 맞은 곽회는 계책에 빠졌음을 깨닫고 급히 산속으로 길을 찾아 달아나버렸다. 곽회가 달아나자 왕평의 군사들은 목우, 유마의 혀를 반대로 비틀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꼼짝도 않던 목우, 유마가 바람같이 달렸다. 왕평은 목우, 유마를 이끌며 군사들을 재촉해 촉진으로 달려갔다. 달아나던 곽회가 그걸 보자, 다시 군사를 되돌려 왕평을 뒤쫓았다. 그러나 뒤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홀연 산 뒤쪽에서 연기가 자욱이 일며 한 떼의 신병이 쏟아져 나왔다. 손에는 각기 깃발과 칼을 들었는데 그 모습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기괴했다. 그들은 나는 듯이 달려와 목우, 유마를 호위해 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저것은 분명 귀신이 촉병을 돕고 있음이 아닌가."

곽회는 놀랍고 두려워 얼굴색이 달라지며 중얼거렸다. 곽회가 그러니 졸개들은 감히 그 뒤를 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콩을 심는 육손과 호로곡의 지뢰밭

육손은 위주 조예를 꾀어내기 위해 계략을 쓴다. 한편 호로곡으로 사마의를 끌어들인 공명은 큰 승리를 기대했으나 사마의는 하늘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난다. 장기전으로 사마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공명은 군무를 돌보느라 몸이 쇠약해진다. 한편 사마의는 북쪽 진에 있던 군사들이 싸움에 져서 쫓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군사를 거느려 구원하러 갔다. 한동안 말을 달리는데 홀연한 소리 포향이 크게 일더니 산골짜기에서 두 갈래의 군사가 달려 나왔다. 사마의가 깜짝 놀라 보니 앞세운 깃발에는 '한장 장익, 요화'라고 씌어 있었다. 사마의가 졸개들을 호령하여 싸우려 했으나 군사들은 뜻밖의 기습에 이미 겁을 먹고 싸우기도 전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되니 촉병들의 말발굽에 밟히거나 창칼에 찔려 죽는 군사가 헤아릴 수 없었다. 사마의는 하는 수 없이 장수 하나 거느리지 못한 채 혼자 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요화가 그런 사마의를 뒤쫓는 가운데 장익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사마의는 요화가 사로잡을 기세로 급하게 뒤쫓아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무 사이를 빠져 달아났으나 마음만 급할 뿐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요화는 어느새 등 뒤로 바싹 다가오고 있었다. 요화가 칼을 쳐들어 사마의를 한칼에 쳐죽일 듯이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사마의를 향해 내리친 칼은 나무를 안고 도는 사마의의 어깨를 벗어나 나무 등걸에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요화가 너무 힘차게 내리쳤기 때문에 그 칼을 뽑을 동안 사마의는 말을 박차 저만치 숲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요화는 손안에 들었던 큰 고기를 놓친 듯한 안타까움에 다시 사마의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사마의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다만 사마의의 황금투구만이 땅 위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요화는 그 투구를 말에 매달고 투구가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요화는 그 투구를 말에 매달고 투구가 떨어져 있던 동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러나 사마의는 그 투구를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었다. 요화가 투구 떨어진 곳으로 뒤쫓을 것을 알고 사마의는 짐짓 투구를 동쪽 방향에 떨어뜨려 놓고 그 반대쪽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요화에게 있어, 아니 촉에 있어서도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친 격이었다. 만약 이때 요화가 그 반대쪽으로 사마의를 뒤쫓았더라면 그 후의 촉이나 또 위의 역사도 달라졌으리라. 요화는 30여 리나 사마의를 찾아 달렸으나 이미 반대쪽으로 달아난 사마의는 찾을 수 없었다. 사마의를 찾아 이리저리 내닫다 산골짜기를 빠져나오는데 강유를 만나게 되자 하는 수 없이 함께 본채로 돌아갔다. 요화가 본체에 이르자 이미 장의는 목우, 유마를 몰아 본채로 돌아와 있었다. 위병의 목우, 유마에 있던 1만 석이 넘는 군량을 거두어들인 셈이 있었다. 공명은 사마의의 황금투구를 빼앗아 온 요화에게 이번 싸움의 으뜸가는 공을 돌렸다. 그런 공명의 처사에 위연이 불평을 했으나 공명은 못 들은 척 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공명의 얼굴에 한 가닥 쓸쓸한 그림자가 스치는 듯했다.

', 지금은 관운장도 가고 익덕도 없구나. 그 수많던 장수도 어느새 다 떠나고 없단 말인가.'

공명은 문득 속으로 탄식해 마지않았다. 그 무렵, 간신히 목숨을 보전한 사마의는 영채로 돌아왔으나 몹시 괴로웠다. 공명의 계책에 빠져 많은 군량과 군사를 잃고 그야말로 가까스로 목숨만 건져 돌아온 셈이 아닌가. 사마의가 무거운 얼굴로 괴로움에 싸여 있는데 문득 위주 조예로 하여금 그들을 막게 하라. 이때에 만약 촉의 계략에 말려들어 싸움을 벌이게 되면 위에 이로움이 없을 터인즉 싸우지는 말고 굳게 지키도록 하라. 위주의 조서는 대개 그런 내용이었다. 사마의로서는 지금 촉과 다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위주의 조서를 받게 된 걸 다행으로 여기며 구덩이를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아 방비만을 굳게 할 뿐 나가 싸우지 않았다. 그때 위주 조예는 손권이 세 갈래로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 맞서 세 갈래로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 맞서 세 갈래로 군사를 내기로 하였다. 유소에게 군사를 거느려 강하로 가게하고, 전예를 양양으로 보내고, 조예는 스스로 대군을 거느려 만총과 더불어 합비로 향했다. 조예와 함께 떠난 만총은 선봉이 되어 소호 어귀에 이르러 장강의 동쪽 기슭을 살펴보았다. 수많은 전선이 늘어서 있고 오색 깃발이 열을 지어 펄럭이고 있는 것이 보기에도 자못 대오가 정연했다. 만총이 조예를 찾아 아뢰었다.

"오병이 멀리서 온 우리를 가볍게 여겨 아직 아무런 대비가 없을 듯합니다. 오늘 밤 그 틈을 노려 그들의 수채를 급히 들이친다면 틀림없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만총이 서슴없이 말하자 조예는 그 기개가 미덥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의 말이 바로 짐의 뜻과 같소."

조예는 만총의 말에 찬동하며 곧 용맹이 뛰어난 장구를 불러 영을 내렸다.

"그대는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나가되 각기 불을 붙일 기구를 갖추어 소호 어귀를 치도록 하라."

이어 만총에게도 5천의 인마를 이끌어 동쪽 언덕을 따라 적을 치도록 했다. 그날 밤이 되자 장구와 만총은 각기 군사를 거느려 소호 어귀로 나아갔다. 소호의 물결은 잔잔하고 달빛은 밝은데 들리는 소리라고는 기러기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오병은 그날 밤, 위병이 기습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듯 방비가 없었다. 위병은 오병의 수채 가까이에 이르자 갑자기 함성을 지르며 영채를 급습했다. 뜻밖의 기습에 아무런 준비가 없던 오병은 순식간에 어지러워져 싸워 볼 생각도 못하고 뭉그려졌다. 우왕좌왕하며 저희 편끼리 부딪다 달아나기에 바빴다. 위병은 지니고 간 불 지르는 기구들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오병의 전선과 군량과 군기가 불에 타고 그 불은 다음 배로 옮겨붙었다. 많은 전선이 불에 타 재로 변해 버렸다. 그때 오병을 거느린 대장을 제갈근이었다.

적벽 싸움 당시 전선에서 화공을 베풀어 크게 위병을 깨뜨린 이래 이제 그 화공에 의해 크게 패한 것이다. 제갈근은 마침내 패군을 거느린 채 면구로 달아나고 위병은 첫 싸움에서 오병을 크게 이기고 돌아갔다. 그다음 날이었다. 제갈근이 위병과의 싸움에 크게 패한 소식은 대도독 육손에게 전해졌다. 육손은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나는 주상께 표를 올려 신성을 에워싸고 있는 우리 군사로 하여금 위병이 돌아갈 길을 끊게 하겠다. 내가 따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그 앞을 치면 적은 일시에 앞뒤로 적을 맞게 되니 크게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우리는 북소리 한 번으로 적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장수들도 모두 육손의 계책에 찬동했다. 육손은 곧 손권에게 올릴 표문을 써서 젊을 장수를 뽑아 은밀히 신성으로 가게 했다. 그러나 그 젊은 장수는 나루터를 건너다가 숨어서 살피고 있던 위병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위병이 그를 군중으로 끌고 가 위주 조예 앞으로 데리고 갔다. 위병이 그의 몸을 뒤져보니 품속에서 표문이 나왔다. 조예가 그 표문을 읽어보더니 문득 감탄해 마지 않았다.

"동오의 육손이 참 놀라운 지략을 가졌구나."

조예는 그 장수를 옥에 가두게 하고 유소에게 명을 내려 손권이 이끌어 오는 군사를 단단히 방비하게 했다.

한편, 첫 싸움에 크게 진 이래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하던 제갈근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마침 여름철이라 군사들과 말이 날아 갈수록 줄어들자 제갈근이 하는 수 없이 육손에게 글 한 통을 보내 군사들을 물릴 뜻을 전했다. 그러자 육손은 그 글을 가져온 사자에게 일렀다.

"내게 따로 좋은 방책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전하라."

제갈근의 사자는 그 길로 돌아가 육손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제갈근은 그 말만 듣고는 육손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사자에게 물어 보았다.

"지금 육 도독은 무엇을 하고 계시던가?"

"군사들에게 영채밖에 콩과 팥을 심게 하고 도독께서는 장수들과 더불어 원문 밖에서 활쏘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사자가 본대로 대답했다. 그 뜻밖의 대답에 제갈근은 몹시 놀랐다. 제갈근은 육손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그 길로 육손에게 달려가 물었다.

"지금 조예가 몸소 나와 그 형세가 큰데다 위병들의 사기가 드높습니다. 도독께서는 어떻게 그들을 막으실 작정이십니까?"

제갈근이 의아스런 얼굴로 그렇게 묻자 육손이 가만히 대답했다.

"내가 얼마전 사람을 보내어 폐하께 표를 바들어 올렸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위병에게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꾸며놓았던 계책이 모두 적에게 알려지고 말았소. 이미 우리의 계책을 적이 알게 되었으니 방비를 단단히 하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싸워 보았자 아무런 득이 없을 것이니 차라리 군사를 물리느니만 못할 것이오. 이미 주상께 표문을 다시 올려 천천히 군사를 물리기로 했소이다."

육손의 말에 제갈근은 더욱 까닭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도독께서 그렇게 작성하셨다면 빨리 군사를 물리시는 것이 좋을 텐데 이렇게 늑장을 부리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서둘러 군사를 물려서는 아니되오. 지금 서둘러 물러나면 위병이 반드시 기세가 올라 뒤쫓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우리가 싸움에 지는 길을 만드는 격이 되오. 그러니 공께서도 배를 재촉해 적에게 맞설듯 하며 천천히 물러나시오. 나도 양양으로 밀고 나갈 것처럼 꾸미어 적으로 하여금 종잡을 수 없도록 하면서 물러나겠소. 그러면 적은 함부로 우리를 뒤쫓지 못할 것이오."

육손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제갈근도 그제야 그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따랐다. 제갈근은 영채로 돌아오자 곧 전선에 명하여 떠날 채비를 갖추게 했다. 육손도 대오를 정돈하고 위세를 부리며 양양으로 나아갔다. 동오군을 살피던 세작이 그런 육손의 움직임을 곧 조예에게 알렸다.

"동오군이 군사를 내었습니다. 대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미 한 차례 동오군을 크게 깨뜨렸던 장수들이 모두 나가 싸우기를 청했다. 그러나 조예는 육손의 재주를 잘 알고 있는 터라 허락치 않았다.

"육손은 계략이 뛰어난 자이다. 우리를 꾀어내기 위한 수작일지도 모르니 함부로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오병을 살피던 군사가 달려와 알렸다.

"동오의 세 갈래 인마가 모두 물러가고 없습니다."

위주 조예는 얼른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더니 오래지 않아 돌아와 과연 모두 물러났다는 것이었다.

"육손의 군사 부림이 손자,오자에게 뒤지지 않는구나! 그가 있는 한 동오를 쳐서 빼앗기는 쉽지 않겠구나!"

순식간에 그물에서 벗어난 새떼를 바라보듯이 조예는 분함을 참지 못하면서도 육손의 군사 부리는 솜씨에 그저 놀라며 감탄했다. 위주 조예는 그날로 영을 내려 장수들에게 험한 길목을 굳게 지키도록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거느리고 합비에 머물면서 동오군의 형세를 자세히 살폈다.

그 무렵, 공명은 기산에서 위군이 움직이지 않자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러 싸울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군량을 성도에서 실어오지 않고도 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둔전을 일궈 농사를 짓게 했다. 공명은 그곳의 논밭을 거두어 촉병이 그중 하나를 가꾸고 그곳 백성들이 나머지 둘을 가꾸는 식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거두어들인 곡식을 나눌 때는 촉병 하나에 백성 두 사람의 비율로 나누니 백성들도 공명의 너그러움에 감사해하며 안심하고 농사를 지었다. 한편 촉병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위의 세작이 그 소식을 급히 위의 영채로 전했다. 사마사가 그 말을 전해 듣고 대도독 사마의를 찾아가 말했다.

"촉병은 우리에게서 많은 군량을 빼앗아 갔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군사들로 하여금 우리 백성들과 함께 위수 가에서 농사를 짓게 하며 오래 머물러 싸울 계책을 꾸미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나라의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는데 아버님께서는 어찌하여 보고만 계십니까? 영채 안에만 계실 것이 아니라 공명과 한바탕 싸워 승패를 가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마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폐하의 명을 받들고 굳게 지키고 있는 몸이다. 가볍게 나아가서는 아니 된다."

그때 장수 한 사람이 달려와 알렸다.

"촉의 장수 위연이 전에 도독께서 잃어버린 황금투구를 칼에 꿰어 들고 나와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돋우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장수들이 모두 분함을 참지 못하며 뛰어나가 싸우려 했다. 그러자 사마의가 손을 내저으며 그들을 말렸다.

"성인께서 이르시기를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친다' 하였다. 굳게 지키고만 하고 함부로 나가 싸우지 않도록 하라."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니 장수들도 하는 수 없이 분한 마음을 달래며 나가지 않았다. 위연은 아무리 욕설을 퍼부어도 위병이 나오지 않자 하릴없이 돌아가고 말았다. 공명은 사마의가 나오지 않았으나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 것을 작정하고 있던 터였다. 공명은 마대에게 명하여 호로곡에 은밀히 나무 울타리를 세우게 한후, 그안에 구덩이를 파게 했다. 그 구덩이에는 불 잘 붙는 장작과 마른 풀, 유황 등을 뿌려 쌓아 놓은 뒤에 그 둘레의 산 위에는 마른 풀과 나무로 초가집들을 지어 놓게 했다. 그 초가집 안팎에는 모두 지뢰를 묻게 하여 불만 붙으면 주변이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게 했다.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자 공명은 다시 마대에게 가만히 일렀다.

"호로곡 뒤쪽으로 나가는 길을 모두 막고 골짜기 속에 군사를 매복시켜라. 그리고 사마의가 그곳으로 쫓아 들어오거든 즉시 지뢰와 풀더미에 불을 지르도록 하라."

사마의를 불구덩이 속으로 물아넣으려는 공명의 계책이었다. 공명은 골짜기 어귀에 군사들을 세우되 낮에는 칠성기를 지니게 하고, 밤에는 등불 일곱 개를 밝혀 군호로 삼게 했다. 마대가 명을 받고 군사를 거느려 나아가자 공명은 이번에는 위연을 불러 명을 내렸다.

"군사 5백을 이끌어 가서 적의 영채를 치고 들어가라. 그러나 싸우다 지쳐 달아나는 척하기를 거듭하며 사마의를 꾀어내도록 하라. 사마의는 반드시 뒤쫓을 것이니, 그때가 낮이면 칠성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라. 그러나 만약 밤이면 일곱 개의 등불이 반짝거리는 쪽으로 달려가도록 하라. 사마의를 호로곡으로 꾀어내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그를 사로잡겠다."

위연도 공명의 명을 받자 곧 군사를 이끌며 떠났다. 공명은 다시 고상을 불렀다.

"그대는 목우, 유마 2, 30마리나 4, 50마리씩 떼를 지어 이끌되, 거기에 곡식을 싣고 산길을 오락가락하라. 만일 적이 나타나면 목우, 유마를 짐짓 빼앗기는 척하며 넘겨주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가 공을 세우는 것이다."

고상은 까닭은 알 수 없는 명이었으나 두말 않고 공명의 명에 따라 목우, 유마를 이끌어 갔다. 공명은 그렇게 군사들을 일일이 배치시켜 떠나보냈다. 그렇게 되니 남은 군사는 한낱 농사를 짓는 군사들뿐이었다. 공명은 그들에게도 명을 내렸다.

"너희들은 위병들이 오거든 싸우다가 지는 척하고 달아나도록 하라. 그러다가 사마의가 나오거든 그때는 모두 힘을 합해 위수 남쪽을 쳐서 그가 돌아갈 길을 끊도록 하라."

공명은 장졸들에게 명을 내린 후에 몸소 군사 한 떼를 이끌어 호로곡 가까이에 진을 쳤다. 이때 위군에서는 하후혜, 하후화가 영채로 들어가 사마의에게 말했다.

"촉병이 사방에 영채를 세우고 농사를 짓는 걸 보니 오래 머무를 계책을 펴고 있는 듯합니다. 이때 그들을 들이치지 않는다면 적은 뿌리를 깊이 박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뿌리뽑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그 말을 듣고도 담담한 얼굴로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공명의 계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도독께서는 항상 의심만 하고 계시니 언제 적을 쳐 없앨 수 있겠습니까? 저희 형제가 힘을 다해 죽기로 싸워 나라를 위해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십시오."

사마의가 끝내 움직을 기색이 없자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마의도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오니 더는 말릴 수가 없는지 그들에게 나가 싸울 것을 허락했다.

"정히 그렇다면 너희 둘이 길을 나누어 나가 싸우도록 하라."

사마의가 하후형제에게 각기 군사 5천씩을 주자 그들은 그 길로 길을 나누어 나아갔다. 두 사람이 두 갈래로 나누어 한동안 나아가는데, 맞은편에서 목우, 유마를 이끌어 오는 촉병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촉병을 보자 크게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 서슬에 깜짝 놀란 듯 촉병은 목우, 유마도 버리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두 사람은 달아나는 촉병을 뒤쫓는 대신 두고 간 목우, 유마를 거두어들여 영채로 끌고 갔다.

다음 날이 되자 영채를 나선 하후혜와 하후화는 이번에는 1백여 명의 촉병을 사로잡았다. 사마의가 두 사람의 공을 차하한 뒤 잡혀 온 촉병들에게 물었다.

"공명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잡혀 온 촉병들이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했다.

"제갈 승상께서는 도독께서 나와 싸우려 하지 않자 저희들에게 논밭을 갈게 하며 오랫동안 머무를 계책을 세우셨습니다. 저희들은 논밭을 갈고 있다가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듣더니 잡아온 촉병들을 모두 놓아주게 했다. 그러자 하후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하여 그들을 모두 돌려보내려 하십니까?"

"저따위 졸개들을 죽인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살려서 돌려보내면 저들의 입에서 위나라 장수들이 너그럽고 어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촉병은 우리와 싸울 마음이 풀어질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적의 마음을 흐트러 놓은 것이 옛 여몽이 지난날 형주를 뺏을 때 쓴 계교였다."

그렇게 말한 사마의는 장수들에게 앞으로도 촉병을 사로잡더라도 모두 돌려보내라고 명을 내렸다. 그리고 적병을 사로잡아 온 장졸들에게도 두터운 상을 내리겠다고 일렀다. 한편 공명은 사마의를 꾀어내기 위한 계책을 쉬지 않고 베풀고 있었다. 고상에게 명하여 군량을 나르는 척하고 목우, 유마를 이끌어 호로곡을 오르내리게 했다. 하후혜와 하후화는 그런 고상을 쳐서 보름 동안에 몇 차례나 목우, 유마를 빼앗고 촉병을 사로잡았다.

목우, 유마를 여러 차례 빼앗고 촉병을 사로잡아 오자 사마의도 문득 마음이 달라졌다. 어쩌면 공명도 마음이 초조해져 목우,유마를 빼앗겨 가면서까지 싸움을 서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마의가 촉진의 움직임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잡혀 온 촉병에게 물었다.

"공명은 지금 어디 있는가?"

"승상께선 기산에 머무르시지 않고 호로곡에서 서쪽 10리쯤 되는 곳에다 영채를 세우고 계십니다."

촉병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대답했다. 사마의는 촉병의 움직임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본 다음 그들을 놓아주게 했다. 지난날 여몽이 베푼 계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촉병들이 모두 돌아가자 사마의도 마음을 정한 듯 장수들을 불러들인 후 명을 내렸다.

 

공명의 병세는 이때부터 더욱 깊어져 이제는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어지고 말았다. 강유가 그런 공명에게 문안을 드리러 오자 공명이 조용히 일렀다.

"나는 충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모아 중원을 되찾고 한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불행해도 하늘이 그것을 허락지 않으니 이제 내 목숨도 여기서 끊기게 되었다. 내가 오늘까지 배워 얻은 바를 책으로 엮은 것이 그럭저럭 스물네 편으로, 104112자로 되어 있다. 그 안에는 여덟 가지 행해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입곱 가지와 여섯 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과 다섯 가지 겁낼 일들이 적혀 있다. 내가 그 책을 전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여러 장수를 살펴보았으나 그대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 여겨진다. 그대에게 이 책을 물려줄 터이니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도록 하라."

공명이 마치 마지막 말을 남기듯 그렇게 말하자 강유는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받았다. 공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연노'란 걸 고안해 만들기는 하였으나 아직 한 번도 써 보지는 않았다. 그것은 쇠뇌와 원리는 같으나 화살의 길이는 여덟 치에다, 한 번 쏘아 화살 열 개를 한꺼번에 날릴 수가 있다. 그 또한 도본으로 그려 놓았으니 그대가 그걸 보고 한번 만들어 써 보라."

강유가 그 도본을 받아 들자 공명은 함부로 적군이 들 수 없을 만치 험해 크게 걱정되는 곳은 없다. 그러나 다만 음평만은 비록 다른 곳과 같이 험준하다 해도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잃기 쉬운 곳임을 가슴에 새겨 두도록 하라."

강유에게 당부할 말을 마친 공명은 이어 마대를 부르게 하여 일렀다.

"내가 죽은 후에는 위연이 반드시 모반을 일으킬 것이다. 그때가 되거든 이 주머니를 열어 보라. 그러면 위연을 벨 사람을 얻을 수 있으리라."

공명은 자기가 죽은 뒤의 일까지도 모두 대비한 다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공명은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깨어났다. 공명은 자신이 위독함을 밤을 도와 후주에게 알리게 했다. 공명의 글을 받아 본 후주는 정신이 아뜩했다. 급히 상서 이복을 보내 공명의 병세를 살펴보게 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뒷일을 물어 오게 했다. 이복은 그 길로 오장원으로 달려가 공명을 찾아보고 후주의 당부를 전했다. 그러자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불행히도 나라의 큰일을 이루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 실로 천하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소. 내가 죽은 후에도 공들은 마땅히 충성을 다해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여 나라를 보살펴야 할 것이오. 나라에서 예부터 내려오던 제도를 함부로 고쳐서도 아니 될 것이며 내가 쓰던 사람도 가볍게 내쳐서는 아닐 될 것이오. 나의 병법은 모두 강유에게 물려주었으니 그는 내 뜻을 이어 힘써 나라를 지킬 것이오. 내 목숨이 이제 아침에 죽을지 저녁에 죽을지 모르는 터라 마땅히 표문을 올려 천자께 모든 걸 아뢸 것이오."

공명의 당부를 들은 이복은 눈물을 흘리며 그 길로 다시 길을 재촉해 성도로 돌아갔다. 이복이 돌아가자 공명은 병든 몸은 가까스로 일으키더니 좌우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 올랐다. 공명은 대채를 나와 각 영채를 돌아보았다. 목숨이 위중한 가운데도 여전히 군무에 마음을 쓰고 있는 공명을 보며 시의와 장수들은 눈물로 옷소매를 적셨다. 공명이 수레를 타고 영채를 돌아보는데 불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냉기가 뼈에 사무쳐 몸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공명이 몸을 떨며 길게 탄식하듯 말했다.

", 이제 나는 다시는 싸움터에 나가 적을 칠 수 없겠구나! 하늘은 이렇듯 멀고도 끝이 없건만, 사람의 생은 어찌 이다지도 짧다는 말인가!"

공명은 혼잣말로 그렇게 길게 탄식해 마지않더니 수레를 돌려 본채로 돌아왔다. 장막 안으로 돌아온 공명은 곧 침상에 드러누웠는데 말소리까지 줄어들고 그 얼굴에는 점차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공명이 자신의 위중함을 안 듯 양의를 불러오게 한 후 일렀다.

"마대, 왕평, 요화, 장익, 장의는 모두 충성스런 신하들이다. 오래도록 싸움터를 달렸으며 수고로움이 많았으니 가히 쓸 만한 사람들이다. 내가 죽은 뒤라도 모든 일은 예전에 정한 대로 지켜 나가도록 하라. 또 이번에 군사를 물릴 때에도 서둘러 급히 행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 그대는 모략에 능통하니 더 이상은 당부하지 않아도 되리라. 다만 강백약은 지모와 용맹을 두루 갖추었으니 뒤쫓아오는 적을 그에게 맡겨 막게 하라."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공명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건흥 12(234) 가을 823, 그의 나이 쉰넷이었다. 사람의 수명이 쉰이면 그 당시로서는 짧은 생애라고는 볼 수 없을지 모르나 공명의 경우는 실로 요절이었다 할 만큼 그의 죽음은 촉나라 사람들이나 위나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애통함을 느끼게 했고 그만큼 그 충격도 컸다. 이 점은 원서 삼국지에서도 공명의 죽음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공명의 죽음을 갖가지로 시화하거나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원서의 저자도 차마 공명을 죽이기 애석히 여긴 대목이 여기저기 역력히 엿보인다. 그중에 하나가 공명이 마지막으로 북두성을 우러러보며 자기의 장성을 가리킨 후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 다음 이복이 이르렀을 때 공명이 다시 눈을 뜨고 뒤를 이을 사람을 일러 준 대목 등도 저자가 공명의 죽음을 더욱 신비화시키고 미화시킨 것이라 여겨진다. 공명이 죽자 뒷날 시인 두공부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지난밤 진문 앞에 별 하나 길게 떨어지니

이 아침 선생이 돌아가신 소식이 전해졌네.

드높은 호령 소리 진지에서 들을 수 없고

누가 다시 기린대에서 공과 이름 남길 수 있을까.

문하의 3천 객 할 바를 모르고

가슴 속의 10만 대병도 이제는 부질없다.

날도 맑고 녹음도 우거졌건만

다시는 반겨 맞는 노랫소리 들리지 않네.

같은 당나라 시인 백낙천도 공명을 기리는 시를 읊었다.

선생은 자취 감추어 숲속에 누웠더니

어진 주인이 삼고초려로 찾았네.

고기는 남양에 이르러 물을 얻고,

용이 하늘 밖에 날자 장마가 쏟아지네.

주인이 어린 자식 당부하며 예절 다하니

그 신하는 충의를 다해 나라를 위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두 번의 출사표

읽는 이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그 무렵, 촉에 요립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상 자기의 재주가 공명과 버금간다고 여기며 자신의 벼슬이 낮음에 불만을 가지고 공명을 원망했다. 공명이 그것을 알고 요립의 벼슬을 빼았고 문산으로 쫓아 버렸다. 그런데 요립이 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알고 써 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공명이 죽자 또 한 사람, 죄를 짓고 쫓겨났던 이엄도 목을 놓아 울었다. 언젠가는 공명이 다시 거두어 줄 것을 바라고 있던 그는 공명이 죽어 다시 거두어 줄 사람이 없게 되자 끝내 울화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난세를 다스려 위태로운 임금을 돕고

주인의 당부 예를 다해 받들었다.

뛰어난 재주 관중과 악의보다 낫고,

신묘한 계책은 손자와 오자를 앞질렀다.

늠름하구나 출사표,

당당하구나 팔진도

공과 같은 큰 덕 갖춘 이

예와 지금을 통틀어 찾을 수 없네.

당나라 시인 원미지도 이러한 시를 지어 공명을 기렸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그런 공명을 소설 속에서 미화된 인물이며 '부패하고 타락한 한왕조를 되살리려는 반동집단의 야심가' 였을 뿐이라고 비방하는 이도 있다. 또한 소설에 씌어진 공명의 신기에 가까운 전략전술도 적을 농락하는 기략일 뿐 사실과는 달리 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2대째 황제인 유선에게 '출사표'를 바치고 북정군을 내었을 때 한중으로부터 곧바로 적령인 장안으로 가려면 먼저 험중한 전령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이때 촉의 장수 위연은 적이 방심한 틈을 타 그 허를 찔러 정면으로 급습하자고 주장했으며 또한 이길 수도 있는 계책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의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삼분천하론만 해도 이미 공명보다 먼저 노숙이 손권에게 말한 적이 있으며 그 당시의 선비들에게 간혹 오고 갔던 지론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공명의 용병을 평하면서, "해마다 군사를 내어 적을 치러 나갔으나 공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쩌면 임기응변의 계략이 그에겐 없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공명의 용병이 반드시 뛰어난 전략적 재능만이 번뜩인 것이 아닌 경우는 그것 말고도 여러 예에서 찾을 수 있다. 가정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자신의 믿음만으로 경험이 없는 마속 같은 젊은 장수에게맡겨 끝내 크게 패하는 경우 등이 공명의 용병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요소가 된다. 그러나 공명은 언제나 정면 승부를 거는 싸움을 피했다. 위연이 적의 허를 틈타 기습을 하자고 주장했을 ㄸ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명은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나 위험성이 많은 싸움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공명은 몰리 서쪽으로 돌아가 평탄한 길을 책해 군사를 움직였으며 그래야만 더욱 안전하게 싸움에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공명의 용병법은 단번에 싸워 승패를 가리는 것보다 언제나 군사의 일부를 먼저 내보내 싸우게 한 다음 그때의 상황을 보아 가며 신중하고 빈틈없는 용병을 꾀한 것이었다. 공명이 오장원에서 싸우다가 진중에서 병들어 죽게 되자 촉군은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물렸다. 그 이후 적장 사마의가 촉군이 두고 간 진영을 둘러보고 그 포진의 교묘함에 놀라 감탄했다.

"실로 공명은 천하의 기재였다."

공명이 장수로서 단번에 승패를 가리지 않는 소극적인 전법을 썼다고 하나 그가 용병에 뛰어났음을 엿보게 하는 말이다. 공명이 이렇듯 소극적인 용병을 꾀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위와 촉과의 군사력을 비교해 보면 무려 4, 5배 가까운 차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단번에 이기는 싸움에 이기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죽었으나 그렇다고 싸움에 진 장수는 아니었다. 이점이 범용한 장수와 다른 점이었다. 공명은 국력이 몇 배나 강한 위와 싸우면서도 언제나 먼저 공세를 취했으며 이기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지지도 않았다. 공명은 결국 자기의 기략대로 싸운 장수였으며 역시 뛰어난 장수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또 공명에게 죽임을 당했던 진식의 아들이며 정사'삼국지' 의 저자 진수는 공명의 용병에 관해서는 의심과 비판을 했으면서도 정치가로서의 공명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정치를 아는 재사였으며 관중과 소하에 견줄 만하다. 뿐만 아니라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제갈량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했으며 실로 다스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뛰어난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가히 사람을 다스리는 이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의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지도자는 그리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 그러나 공명은 그 두 가지를 한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명이 그같이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사랑을 받았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상벌의 적용에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무사하고 적당히 처리하는 일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라에 충성하고 이로움을 가져다준 자는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는 비록 육친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죄를 지었으되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비는 자는 그 죄가 무겁더라도 용서했으며, 간사한 말로 죄를 면하려 하는 자는 그 죄가 가벼워도 벌을 무겁게 주었다. 비록 하찮은 일이라도 좋은 일을 하였을 때는 반드시 포상했으며 나쁜 짓을 하였을 때는 엄히 꾸짖었다. 명분을 따르되 실리도 놓치지 않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 모두 두려워하면서도 따랐다. 뿐만 아니라 공명을 다스림이 무엇인지 아는 뛰어난 인물이라고 말한 원인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공명이 첫 번째 기산으로 나갔을 때 그가 아끼던 마속을 선봉 장군에 지목했다가 그의 말을 거역하여 싸움에 지자 울며 그의 목을 베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공명이 그토록 엄히 법을 시행하여 마속의 목을 베었지만 그의 가족에 대해서만은 예전처럼 예우하고 돌보았다. 이처럼 법에 엄했으나 깊은 인정미를 지녔던 공명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했다. 공명에게 있어 촉한의 2대째 황제인 유선은 선제 유비와는 달리 암울했던 주인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선제의 무서운 당부를 받들어 국정의 실권을 집행하면서 유선을 받드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사생활도 검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나라의 승상 이라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그는 성도에 겨우 뽕나무 8백 그루와 밭 쉰 마지기가 있었을 뿐이며 출사표를 올린 후 출진에 앞서 그 사실을 표문을 올려 알렸다. 나라를 위해 몸을 굽혀 힘을 다하면서도 결코 사사로운 재산을 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또한 공명은 승상으로서의 나랏일을 돌봄에 세밀히 장부에까지도 일일이 눈을 돌리는 열성을 보였다.

"재상은 사소함과는 거리가 멀다."

[십팔사략]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써 재상은 그저 높은 데 앉아 큰일에만 눈을 돌리면 된다는 것이 그 당시의 군도였다. 그런 시대였으나 공명의 자세는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렇듯 밤낮없는 격무가 그의 몸을 해려 병을 얻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그 증세로 보아 오늘날의 폐병으로 짐작된다. 공명에게는 아주 사소한 데까지 눈을 돌려야만 되는 까닭이 있었다. 위나라나 오나라에 비해 작은 나라였던 촉에 있어서는 모든 책임이 공명에게 있었으며 그런 상황 아래서 작은 일까지 살피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2대 황제인 유선이 암우했으나 정성을 다해 받들며 힘을 다해 나랏일을 돌보았던 공명을 모든 사람들이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재상으로 기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물리치고. . . . .

공명이 홀연 꿈을 펼치지 못하고 죽은 날 밤은 천지가 시름에 잠긴 듯 슬픔에 겨워 달빛마저 흐렸다. 강유와 양의는 남긴 말을 좇아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고 공명의 죽음을 일체 입 밖에 내지를 않았다. 다만 공명이 이른 대로 시신을 염하여 농에 안치한 후 믿을 만한 장졸 3백 명에게 엄중히 지키게 했다. 그런 다음 위연에게 은밀히 영을 내려 적의 추격을 막게 하고 진지를 거두어 차례로 군사를 물렸다. 사마의는 그때 굳게 영채만을 지키고 있었으나 촉병의 동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가만히 천문을 보고 있는데 문득 큰 별 하나가 붉은빛을 뿜으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놀란 사마의가 자세히 살펴보니 서남쪽에 떨어졌던 그 별은 두세 번이나 촉군의 영채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데 은은한 소리까지 들렸다. 사마의는 놀라운 가운데도 기쁨에 차 소리쳤다.

"공명이 마침내 죽었구나!"

사마의가 별이 떨어져 솟는 걸 보고 공명의 죽음을 짐작한 것이었다. 이에 사마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군에게 영을 내려 물러나는 촉군을 뒤쫓게 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말 위에 올라 진문을 나서려다 말고 문득 의심이 들었다.

'원래 공명은 육정육갑신을 잘 부린다. 내가 나가 싸우지 않으니 이런 술법을 부려 죽은 체하며 나를 끌어내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함부로 뒤쫓다간 또 그의 계책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의심이 들자 사마의는 다시 군사를 거두어 진을 지키기만 할 뿐 좀처럼 나설 생각이 없어졌다. 다만 촉진의 동정이 궁금해 하후패에게 수십 기를 주어 오장원을 살펴보도록 했다.

한편 그날 밤 공명이 죽은 걸 모르고 있는 위연은 자기 영채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꿈을 꾸었는데, 문득 자기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아나는 꿈이었다. 날이 밝자 위연은 아무래도 그 꿈이 의아스러워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행군사마 조직이 들어오자 물었다.

"그대가 주역의 이치에 밝으니 물어보겠소. 실은 내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내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아나는 것이었소. 수고롭지만 그 꿈이 길한지 흉한지를 말해 주오."

"매우 좋은 꿈입니다. 기린도 뿔이 있으며 푸른 용도 머리에 불이 있습니다. 그 꿈은 곧 장군이 변화하여 용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를 징조를 뜻합니다."

조직이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 그렇게 말했다. 위연은 그 말을 듣자 어둡던 눈앞이 밝게 트인 듯이 기뻐했다.

"공의 말대로 된다면 그때는 크게 사례하겠소."

조직은 위연이 기뻐하는 걸 보고도 별 내색 없이 앞을 물러났다. 조직이 몇 마장을 걸어가다 마주 오는 상서 비위를 만났다. 비위가 조직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오?"

조직이 비위의 물음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마침 위문장의 영채에 갔다가 꿈풀이를 해주고 오는 길입니다. 위문장은 지난 밤에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는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그 꿈이 본래 좋은 뜻이 아니나 바른대로 말했다가는 뒷일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기린과 푸른 용에 빗대어 좋은 꿈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게 어째서 나쁜 꿈이라는 걸 아시오?"

비위가 궁금하다는 듯 그렇게 묻자 조직이 그 까닭을 말해 주었다.

"뿔이라는 뜻의 각자는 칼 도자 아래 쓸 용이 아닙니까? 머리 위에 칼을 쓰게 되었으니 어찌 그 꿈이 좋은 꿈일 리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비위가 주위를 둘러보며 조직에게 가만히 일렀다.

"공은 결코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도록 하시오."

"제가 어찌 그 말을 함부로 누설할 수 있겠습니까?"

조직이 그렇게 대답했다. 공명이 죽었음을 위연에게 알리러 가던 비위는 위연의 영채에 이르자 좌우 사람들을 물러나게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지난밤 삼경 무렵에 승상께서 세상을 떠나셨소. 돌아가실 때 몇 번이나 이르시기를 장군이 뒤를 끊어 사마의가 뒤쫓는 걸 막게 하라 하셨소. 군사를 천천히 물리되 결코 발상을 하지 말라 하셨소. 내가 병부를 가지고 왔으니 장군은 어서 군사를 움직이도록 하시오."

비위의 말에 깜짝 놀라던 위연이 불쑥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승상이 하던 일을 맡았소?"

위연이 비위를 노려보면서 묻자 비위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큰일을 모두 양의에게 맡기셨소. 또한 군사를 부리는 은밀한 법은 모두 강백약에게 넘겨주셨소. 내가 가지고 온 병부도 곧 양의가 내린 영이외다."

그 말을 들은 위연이 벌컥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승상은 비록 죽었으나 내가 아직 살아 있지 않소? 양의로 말하면 한낱 장사에 지나지 않는데 그가 어찌 그런 중한 일을 해낼 수가 있겠소? 양의는 영구를 가지고 서천으로 가서 장례나 치르라 하시오. 나는 이대로 군사를 거느리고 가 사마의와 싸워 공을 이루겠소. 어찌 승상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나라의 큰일을 그만둘 수 있겠소?"

그러자 비위가 얼른 위연을 말렸다.

"그러나 승상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긴 밀이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소. 승상의 뜻을 그르쳐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러나 위연은 더욱 화를 돋울 뿐이었다.

"승상이 일찍이 나의 계책을 받아들였더라면 벌써 장안은 우리 손에 떨어졌을 것이오. 뿐만 아니라 나의 벼슬이 전장군 정서대 장군 남정후이오. 어찌 장사 따위의 명을 받아 뒤나 끊어 주고 있으라는 말이오?"

위연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비위는 하는 수 없이 좋은 말로 그를 달랬다.

"비록 장군의 말이 그릇됨이 없으나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움직여 적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내가 이제 양의를 찾아가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져 양의를 달래 병권을 장군에게 양도하는게 어떠냐고 물어보겠소.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소?"

비위가 그렇게 말하자 위연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위는 위연과 헤어지고 본진을 찾아가 위연의 뜻을 전했다. 양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승상께서 돌아가실 때'위연은 반드시 딴 뜻을 품을 것'이라 하셨소. 이제 내가 병부를 그에게 보낸 것도 실은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소. 과연 승상의 말씀이 어김없이 들어맞았소. 그렇다면 나는 강유에게 뒤를 방비하도록 이르겠소."

양의는 곧 공명의 영구를 받들어 먼저 떠나고 강유로 하여금 후군으로 돌려 위군을 막게 했다. 공명이 죽기 전에 이른 대로 군사를 물리되, 결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물러났다. 그 무렵, 위연은 비위의 말을 듣고 영채에 머물면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기별이 없었다. 이에 문득 의심이 든 위연이 마대에게 수십 기를 이끌고 가서 대채를 살펴보고 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대가 돌아와 위연에게 알렸다.

"후군은 강유가 맡아 거느리고 전군은 이미 태반이나 산골짜기로 물러났습니다."

그제야 위연은 비위에게 속았음을 알고 크게 노해 소리쳤다.

"되지 못한 선비 놈이 어찌 감히 이렇듯이 나를 속일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반드시 그놈을 죽이고 말리라."

그렇게 외친 위연이 마대에게 물었다.

"어떻소? 공도 나와 같이 행동하지 않겠소?"

"저 또한 일찍부터 양의에게 품은 한이 있는 터입니다. 장군과 함께 그를 치겠습니다."

마대가 주저하지 않고 위연의 말에 따랐다. 위연은 마대의 말에 몹시 기뻐하며 군사를 거두어 남쪽으로 향했다. 그 무렵, 사마의가 보낸 하후패도 오장원에 이르렀는데 보니 촉병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하후패는 급히 돌아가 사마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촉병은 이미 물러나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자 사마의가 발을 구르며 분함을 참지 못해 소리쳤다.

"그렇다면 공명이 틀림없이 죽었구나. 어서 빨리 뒤쫓아야겠다."

사마의가 말 위에 올라 군사를 재촉하자 하후패가 권했다.

"도독께서는 가볍게 뒤쫓지 마시고 편장을 시켜 먼저 진병토록 하십시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사마의는 하후패의 말을 물리쳤다.

"아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가야 하리라."

사마의는 그 말과 함께 몸소 군사를 이끌어 두 아들과 함께 일제히 오장원으로 짓쳐 들었다. 그러나 영채는 텅 비어 있을 뿐 촉병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일렀다.

"내가 먼저 군사를 이끌어 촉병을 뒤쫓을 터이니 너희들은 뒤에서 나를 따르도록 하라."

이에 사마사, 사마소 두 형제는 영을 좇아 앞서가는 부친의 뒤를 따랐다. 사마의가 군사를 재촉하여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멀지 않을 곳에 촉병이 물러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빨리 저들을 뒤쫓아라!"

사마의가 채찍을 높이 들어 외치며 군사를 급히 몰았다. 그때였다. 홀연 한방의 포 소리가 들리더니 산 뒤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었다. 그와 함께 물러나던 촉병도 깃발을 돌려세우고 북소리를 드높게 울리며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나무 그늘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촉병의 큰 기에는 한 줄로 크게 글씨가 씌어 있었다.

'한승상 무향후 제갈량'

사마의가 그걸 보자 대번에 얼굴빛이 달라졌다. 사마의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촉병의 중군 속에서 수십 명의 상장이 수레를 밀고 나오는데 그 수레 위에는 검은 띠를 두른 학창의에 윤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든 채 공명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마의는 정신이 아뜩했다.

"공명이 아직도 살아 있는데, 내가 가볍게 위태로운 곳으로 들어와 스스로 화를 불렀구나."

그 말과 함께 사마의는 황망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달아나는 사마의를 향해 강유가 뒤쫓으며 소리쳤다.

"역적의 장수는 달아나지 말라. 너는 우리 승상의 계책에 빠졌음을 모르는가?"

그 소리에 위군은 당황하여 제대로 정신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모두 얼이 빠진 듯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창칼도 내던진 채 목숨을 구해 달아날 뿐이었다. 우왕좌왕하며 제 살길만을 찾아 달아나느라 서로 짓밟고 밝혀 목숨을 잃는 자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얼이 빠진 것은 졸개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마의도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말을 돌려 달아났다. 사마의가 정신없이 50여 리를 달렸을 때 위의 장수 두 사람이 따라와 사마의가 탄 말의 고삐를 잡으며 외쳤다.

"도독께서는 이제 진정하십시오."

사마의는 그제야 두 장수를 알아보고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느냐?"

두 장수가 사마의를 안심시켰다.

"도독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촉병은 이미 멀리 물러갔습니다."

사마의는 그들 두 장수가 바로 하후패와 하후혜임을 알아보고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사마의는 두 장수와 함께 지름길을 따라 본채로 돌아온 후 장수들을 내보내 촉병의 동정부터 살피게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그 고장 토박이 백성 한 사람이 달려와 사마의에게 말했다.

"촉병은 산골짜기로 들어가며 물러날 때 슬피우는 소리가 골짜기를 메웠으며 군중에는 흰 깃발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아도 공명이 정말 죽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제가 듣기로 강유의 1천 군사가 마지막으로 물러나며 뒤를 끊었다 합니다. 그날 수레 위에 앉아 있던 공명은 나무로 깎아 만든 거짓 공명이었다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사마의가 길게 탄식했다.

"나는 공명이 살아 있다는 것만을 헤아렸을 뿐, 죽었다는 것은 미처 헤아리지도 못했구나!"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촉 사람들 사이에는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사마의를 쫓아 버렸다'는 말이 퍼졌다. 뒷날 사람들도 이 일을 시로 지어 남겼다.

밤중에 장성이 떨어지자 사마의가 뒤쫓았건만

홀연 공명이 살아 있나 의심이 들었네.

지금도 사람들이 그 일이 우스워하는 말

아직도 내 머리가 붙어 있느냐

사마의는 공명이 정말 죽었음을 알게 되자 다시 군사를 휘몰아 촉병을 뒤쫓았다. 그리하여 적안파까지 달려갔으나 촉병은 보이지 않았다. 촉병이 이미 멀리 물러난 것을 알게 된 사마의는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명이 죽었으니 이제부터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겠다. 그만 군사를 돌리도록 하자."

사마의는 그렇게 말하고 군사를 거두어 낙양으로 향했다. 사마의는 돌아가는 도중에 공명이 영채를 세웠던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 곳도 빈틈없이 배치가 뚜렷하고 법도가 정연했다. 사마의가 그걸 보자 감탄했다.

"공명은 과연 천하에 둘도 없는 기재였다."

이윽고 장안으로 돌아온 사마의는 장수들에게 각 요해처를 지키게 한 뒤 자신은 낙양으로 위주 조예를 뵈러 갔다.

그 무렵, 양의와 강유는 가지런히 군사를 이끌며 천천히 서천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윽고 서천으로 도는 잔각도에 이르자 비로소 전군에게 알리고 상복으로 갈아입게 한 후 흰 기를 내걸어 공명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하며 통곡했다. 촉병 중에는 심지어 공명의 죽음을 슬퍼해 몸부림을 치며 머리와 몸을 바윗돌에 부딪쳐 목숨을 끊은 자도 있었다. 촉병은 다시 서천으로 향했다. 전대가 잔각도를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흔들며 한 떼의 군마가 앞을 가로막았다. 장수들이 깜짝 놀라며 급히 양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양의도 뜻밖의 전갈에 놀라며 누가 거느린 군사인지를 급히 알아오게 했다.

"위연이 잔도를 불태워 버린 다음 군사를 거느리고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탐 보냈던 군사가 달려와 양의에게 아뢰었다. 양의가 크게 놀라며 장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위연이 언젠가는 반드시 반역할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이제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그가 이제 우리가 돌아갈 잔도를 끊었으니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비위가 나서며 양의에게 권했다.

"그자는 틀림없이 폐하께 우리들이 모반하였다고 거짓으로 아뢴 후에 불을 질러 잔도를 끊고 우리가 돌아갈 길을 막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폐하께 상주하여 위연이 모반했음을 아뢴 후에 그자를 쳐야 할 것입니다."

곁에 있던 강유가 비위의 말에 찬동했다.

"잔도가 끊겼다고 하나 다른 샛길이 있습니다. 차산이란 곳인데, 길이 매우 험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면 잔도 뒤로 빠져나갈 수가 있습니다."

양의는 곧 표문을 써 후주에게 보내는 동시에 군사들을 이끌어 차산의 샛길로 나아갔다. 한편 성도의 후주 유선은 그 무렵 웬일인지 침식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 이상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밤, 깜박 잠이 들었는데 금병산이 무너지는 괴이쩍은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한밤 중이었다. 후주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 문무백관을 불러모으고 꿈 풀이를 시켜 보았다. 그러자 태사 초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후주에게 아뢰었다.

"어젯밤 신이 천문을 보니, 붉은 별 하나가 동북에서 서남으로 꼬리를 끌며 서남방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분명히 승상께 크게 흉한 일이 있을 징조입니다. 또한 폐하께서도 산이 무너지는 꿈을 꾸셨으니 역시 같은 징조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후주 유선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가까이 받드는 신하 하나가 들어와 오장원으로 보냈던 이복이 돌아왔다고 알렸다. 유선은 급히 그를 불러들이게 했다. 이복이 들어와 먼저 울음부터 터뜨리며 엎드려 아뢰었다.

"승상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어 이복은 공명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을 낱낱이 아뢰었다. 후주 유선은 그 말을 듣고 목을 놓아 알더니 슬픔을 이기지 못해 용상 위에 쓰러지며 한탄했다.

"하늘이 짐을 버리시는구나!"

신하들이 쓰러진 후주를 부축하여 후궁으로 모셨다. 공명이 죽은 사실은 곧 오 태후에게도 전해졌다. 오 태후 역시 목을 놓아 울었으며 모든 문무백관들도 슬퍼 통곡해 마지않았다. 백성들도 슬피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천자가 되기 전부터 의지하며 누구보다 믿고 있었던 공명이 죽자 후주는 슬픔에 잠겨 며칠동안 조회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때 홀연 위연이 양의의 모반을 알리는 표문을 보내 왔다. 깜짝 놀란 문무백관들이 후주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표문을 바쳤다. 후주는 가까이 부리는 신하에게 표문을 읽게 했다.

정사대장군 남정후 신 위연이 실로 황공함을 어찌할 줄 몰라 다만 머리 조아려 아룁니다. 승상이 세상을 떠나자 양의는 제 스스로 병권을 움켜쥔 뒤에 군사를 거느리며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승상의 영구를 빼앗은 뒤 적병을 우리의 경계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먼저 잔도를 불살라 끊은 뒤에 그들을 굳게 막고 있습니다. 삼가 표문을 올려 이 사실을 아뢰는 바입니다.

표문을 읽고 나자 후주가 의심스런 얼굴로 신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위연은 이 촉 땅에서도 용맹이 가장 뛰어난 장수이다. 양의쯤은 얼마든지 싸워 이길 수가 있을 텐데 어찌하여 잔도까지 불태워 가며 길을 끊었다는 말인가?"

그러자 곁에 있던 오 태후가 입을 열었다.

"선제께서는 일찍이 위연의 머리 뒤에 반골이 있다고 했소. 승상이 그걸 알면서도 그의 용맹이 아까워 쓰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소. 그런 위연이 이런 표문을 올려 왔으니 경솔히 믿을 수는 없는 일이오. 승상이 양의가 비록 문사인데도 장사의 벼슬을 내린 것은 그가 믿고 쓸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오. 그런데 지금 어느 한쪽의 말만을 듣는다면 양의는 오갈 데가 없어져 위로 투항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깊이 헤아리셔야 하며 결코 가볍게 이 일을 정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다른 관원들도 제각기 의견을 말하며 대책을 의논하고 있는데 때마침 양의로부터 표문이 올라왔다. 신하 하나가 그 표문을 후주에게 읽어 드리니 그 내용을 대강 이러했다.

장사 유군장군 신 양의는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머리를 조아려 삼가 표문을 올려 아룁니다. 승상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큰일을 제게 맡기시며 '옛 제도를 잘 지키고 함부로 바꾸지 말라' 하시었습니다. 또한 위연으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고 강유에게 뒷일을 맡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위연은 승상께서 이르신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본부 군사를 거느려 먼저 한중 땅으로 들어와서 잔도를 불태우고 길을 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상의 영구를 빼앗고 불칙한 짓을 꾀하려 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고라 황급히 표문을 올리나이다.

표문을 읽고 나자 오 태후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오 태후의 물음에 장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양의가 성미가 급하고 너그럽지 못하나, 군량과 마초를 잘 관리하였으며 군사 기밀을 보살피는 일로 오랫동안 승상의 일을 도왔습니다. 때문에 승상께서 그의 재주를 보고 돌아가시기 전에 큰일을 맡기신 듯하니 결코 반역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위연은 평소부터 제 공이 큼을 내세웠으며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받들었으나 다만 양의만은 머리를 숙이지 않아 늘 마땅치 않게 여겨 왔습니다. 그런 데다 이제 양의가 병권을 맡게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잔도를 불태워 그가 돌아갈 길을 끊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폐하께 표문을 올려 거짓으로 양의가 반역을 일으켰다고 모함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신은 전 가솔의 목숨을 걸고 양의가 반역하지 않았음을 보증할 수 있으나 위연이라면 보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동윤이 나서 장원과 같은 의견을 내었다.

"위연은 스스로 공이 큰 것만을 자랑하며 항상 불평을 터뜨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반역하지 않았던 것은 승상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승상께서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반역을 꾀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양의는 재주가 뛰어나 승상께서 높이 쓰셨으니 무엇 때문에 반역을 일으키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후주가 여러 장수들에게 물었다.

"승상은 원래부터 위연을 의심했으니 반드시 양의에게 어떤 계책을 일러 주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양의가 군사를 물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겠습니까? 위연은 필연코 승상께서 일러 주신 계책에 빠지고 말 것이니 폐하께서는 부디 안심하십시오."

장완이 얼른 후주에게 그렇게 아뢰었다. 후주도 장완의 말을 듣고서야 걱정스런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위연이 보낸 두 번째 표문이 이르렀다. 첫 번째 표문과 같이 양의가 모반을 일으켰음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양의에게서도 위연의 모반을 알리는 표문이 전해졌다. 두 사람이 이렇듯 제각기 표문을 올리니 조정에서는 얼른 뜻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홀연 비위가 돌아왔다. 비위는 위연이 반역했음을 소상히 아뢰었다. 후주가 비위의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 이윽고 동윤에게 명을 내렸다.

"경은 짐의 절을 주고 위연에게 마음을 돌리도록 좋은 말로 권해보라."

후주의 명을 받자 동윤은 그 길로 위연에게 달려갔다. 그때 위연은 잔도를 불사른 뒤 군사들로 하여금 남곡 산골짜기에 영채를 세우게 하고 험한 길목들을 지키게 했다. 그렇게 길목을 막고서는 양의가 성도로 갈 길이 없다고 흐뭇해하고 있는데 놀라운 전갈이 전해졌다.

"양의와 강유가 밤을 이용하여 샛길로 남곡 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양의는 그때 위연한테 한중이 떨어질까 근심이 되어 먼저 선봉 하평에게 군사 3천을 주어 앞서게 하고 자신은 강유와 함께 공명의 영구를 모시고 한중으로 들어갔다. 한편 하평은 군사를 이끌어 남곡 뒤쪽에 이르자 일제히 북을 울리며 함성을 울렸다. 위연의 명을 받고 정탐하고 있던 군사가 급히 달려가 이 사실을 위연에게 알렸다.

"양의의 선봉인 하평이 군사를 거느리고 차산 샛길로 돌아와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남곡 뒷길로 빠져나온 양의의 군사가 싸움을 걸어 왔다는 말에 위연은 몹시 화가 났다. 급히 갑옷을 꿰입고 투구를 쓰고 군사를 거느려 칼을 빼 들고 말을 박찼다. 위연이 말을 달려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평이 나서며 호통을 쳤다.

"반적 위연은 어서 나오너라!"

위연도 하평을 향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양의의 역적질을 돕는 주제에 감히 나를 꾸짖는단 말인가?"

"승상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아직 그 몸이 채 식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네가 감히 모반을 하다니, 이 무슨 짓이냐?"

하평은 위연을 그렇게 꾸짖더니 다시 위연의 군사들을 향해 채찍으로 가리키며 더욱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너희들은 모두 서천 사람들이 아니더냐? 서천에는 부모 처자와 형제와 벗들이 있으며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일찍이 한 번도 박하게 대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역적 짓을 돕고 있는가? 그대들은 각기 고향 집으로 돌아가 상이 내리기를 기다리기나 하라"

하평의 말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크게 혼란이 일더니 순식간에 태반이나 흩어져 달아났다. 위연이 그걸 보자 마침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곧장 말을 몰아 하평에게 덮쳐들었다. 하평도 창을 치켜들고 위연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불과 2, 3합을 싸우더니 못 당하겠다는 듯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위연이 말을 채찍질하며 급하게 그 뒤를 쫓자, 하평의 군사들이 화살과 쇠뇌를 비 오듯 쏟아댔다. 위연은 하는 수 없이 더 이상 쫓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영채로 돌아오고 있던 위연이 보니 자기편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다. 위연이 말을 달려 달아나는 군사들의 목을 베어 나갔으나,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흩어지는 군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대가 거느린 3백의 군사들만은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위연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마대에게 말했다.

"공만은 진정으로 나를 도와주는구려. 일이 이루어진 후에 이 공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그렇게 말한 위연은 마대와 함께 다시 하평의 뒤를 쫓았다. 하평은 급히 말을 몰아 달아났다. 멀리 달아나기만 하는 하평을 따라잡지 못하자 위연은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마대에게 물었다.

"이 길로 아예 위나라에 투항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자 마대가 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치않은 말씀이오. 대장부로 태어나 스스로 패업을 이루려 하지 않고 가벼이 남에게 무릎이나 꿇으려 하십니까? 장군은 지략과 용맹을 아울러 갖춘 분인데 서천, 동천의 어느 누가 감히 장군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맹세코 장군과 함께 한중을 빼앗은 다음 양천으로 밀고 들어가겠습니다."

마대의 말을 들으니 위연도 다시 용기가 치솟았다. 곧 마대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남정으로 말을 몰았다. 그때 양의와 강유는 나정성 안에 있었는데 강유가 성 위에서 살펴보니 한 떼의 군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앞선 장수는 바로 위연과 마대였는데 칼과 창을 번쩍이며 드높은 기세로 바람처럼 내달아오는 걸 보고 급히 군사들에게 적교를 끌어올리게 했다. 그럴 동안 성 밖에 이르른 위연과 마대가 소리쳤다.

"너희들은 성문을 열고 어서 항복하라!"

강유가 황급히 양의를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위연이 용맹스러운 데다 마대까지 돕고 있습니다. 비록 군사가 적다 하나 가볍게 맞설 수 없습니다. 무슨 좋은 계책이 없을까요?"

그러자 양의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승상께서 돌아가실 때 비단 주머니를 하나 주시면서 '만약 위연이 반역하여 서로 맞서게 되거든 그때 열어보라'고 하셨소. 지금이 그 주머니를 열어 볼 때인 것 같소이다."

양의가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봉해진 서신이 있었는데 겉봉에는 '위연과 싸울 때 말 위에서 뜯어보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공명이 글로 써 계책을 남긴 걸 본 강유는 몹시 기뻐하며 힘이 솟는 듯 양의에게 말했다.

"승상께서 이렇듯 계책을 남기셨으니 장사는 잘 맡아 두도록 하시오. 내가 먼저 군사를 이끌어 성 밖에 나가 진세를 벌여 세우거든 그때 뒤따르도록 하시오."

강유는 곧 투구에 갑옷을 입고 창을 들자 군사 3천을 거느리고 성문을 열고 북을 울리며 달려나갔다. 강유는 위연을 마주 보며 진을 벌여 세운 후 진문의 기 아래 말을 세우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역적 위연은 듣거라. 승상께서는 일찍이 너를 한 번도 소홀히 대접한 적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감히 배반하느냐?"

위연이 강유의 꾸짖음을 듣더니 칼을 비껴들고 말을 세우며 외쳤다.

"백약은 이 일에 나서지 말고 양의더러 나오라고 일러라."

그때 강유를 뒤따라 나온 양의는 문 기 뒤에서 비단 주머니를 열어 공명이 남긴 글귀를 읽어보고 있었다. 양의는 글을 읽어 보고 빙그레 웃더니 말을 달려나가 진 앞에 서서는 손가락으로 위연을 가리키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적에 네가 반드시 모반할 것이라고 나더러 경계하라고 하셨다. 이에 보니 과연 승상의 말씀이 어긋나지 않았구나. 그럼 네가 말 위에서 '누가 감히 나를 죽일 수 있겠는가?'고 세 번 외쳐보라. 그렇게 한다면 너를 참 대장부로 알고 나는 두말 않고 이곳 한중의 성을 네게 바치겠다."

양의가 뜻밖에도 그렇게 말하자 위연도 가소롭다는 듯 껄걸 웃으며 말했다.

"필부 양의는 듣거라. 공명이 살아 있었을 때는 내가 조금은 너를 두려워했지만 그가 죽은 지금 천하에 감히 누가 나와 맞설 수 있다는 말인가? 세 번이 아니라 3만 번이라 한들 외치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위연은 그 말과 함께 말고삐를 잡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감히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위연이 큰소리로 외쳤을 때였다. 그의 등 뒤에서 불쑥 나서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너를 죽여 주마!"

그 외침과 함께 칼날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위연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위연의 목을 벤 사람은 다름 아닌 마대였다. 원래 공명은 숨을 거두기 전에 은밀히 마대에게 계교를 주어 위연이 그렇게 외칠 때를 기다려 뒤에서 갑자기 목을 베게 했던 것이었다. 양의 또한 비단 주머니를 열어 보고서야 마대가 위연과 한 무리가 된 까닭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명이 글로 이른 대로 위연에게 그런 말을 외치게 했던 것이었다. 뒷날 사람들이 시를 지어 위연을 비웃었다.

제갈량은 이미 위연을 알아보고

뒷날 서천에서 반역할 것을 꿰뚫어 보았네.

비단 주머니 속에 남긴 계책 그 누가 알랴.

이제 보니 공 이룸이 바로 말 앞이었네.

위연이 마대의 한칼에 목이 떨어진 것은 후주가 보내 동윤이 남정에 이르기 전이었다. 위연이 죽자 마대는 강유의 군사와 한데 합쳤다. 양의는 성도로 사람을 보내 후주에게 위연이 죽은 사실을 알렸다. 후주는 양의가 올린 표문을 읽어 본 뒤 관을 내리며 양의에게 영을 전하게 했다.

"위연의 죄가 밝혀졌으나 죽음으로 그 죄를 씻었다. 지난날 그가 세운 많은 공을 생각해서라도 관곽을 갖추어 장사를 지내 주도록 하라."

양의는 후주의 명대로 위연을 장사지내 주고 공명이 영구를 모시고 성도에 이르렀다. 후주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상복을 입은 채 성 밖 20리까지 마중을 나갔다. 후주는 공명의 영구를 보자 목을 놓아 울었다. 후주가 그렇게 슬피 우니 위로는 공경대부로부터 아래로는 농민과 나무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슬피 울어 그 울음소리가 온 나라를 메웠다. 후주는 공명의 영구를 성안 승상부에 모시게 하고, 아들 제갈첨으로 하여금 정성껏 장례를 치르게 했다. 후주가 궁궐로 돌아가자 양의는 스스로 몸을 묶고 후주를 찾아가 허락도 없이 군사를 물린 죄를 청했다. 후주가 신하들에게 명해 양의의 몸을 풀어 주게 하며 말했다.

"만약 경이 승상이 죽기 전에 이른 말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영구는 어느 날에야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또한 위연을 어떻게 죽일 수 있었겠는가. 이번에 큰 일을 아무런 변고 없이 넘기게 한 것이 모두 공의 덕이로다."

후주는 또 마대의 공도 치하했다.

"마대가 위연을 죽여 없앤 공도 가볍지 않다."

그렇게 말한 후주는 죄를 청한 양의에게 벼슬을 높여 중군사로 삼고 마대에게는 위연의 벼슬을 그대로 잇게 했다. 양의가 그제야 공명이 죽기 전에 후주에게 올린 표문을 바쳤다. 후주가 그 표문을 읽고 나자 다시 한번 목 놓아 울더니 좋은 땅을 골라 편안히 장사를 모시도록 영을 내렸다. 그제야 비위가 나서며 죽기 전에 공명이 남긴 말을 아뢰었다.

"승상께서는 돌아가시지 전에 정군산에 묻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울타리도 치지 말고 석물도 세우지 말며 제물도 쓰지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후주는 공명이 남긴 말에 그대로 따랐다. 그 해 시월 길일을 골라 몸소 영구를 모셔 정군산으로 가 묻은 다음 조서를 내려 장례를 치렀다. 또한 공명에게 충무후라는 시호를 내리고 면양 땅에 사당을 세우게 한 뒤 사철 빠뜨리지 않고 제사를 올리게 했다. 뒷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가 공명의 사당을 시로 읊었다.

승상의 사당이 어드메뇨?

금관성(성도)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네.

섬돌에 비친 푸른 풀이 봄기운 머금고,

나뭇잎 사이 꾀꼬리 울음소리만 맑구나.

삼고초려의 은혜에 보답한 천하의 계략

두 대를 섬기는 늙은 신하의 충성

출전 도중 이기기도 전에 쓰러지시니,

뒷날 영웅들은 눈물로 옷깃을 적시는구나.

후주가 공명의 장례를 치르고 성도로 돌아오자 시하가 놀라운 소식을 아뢰었다.

"변방에서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동오에서 전종으로 하여금 군사 수만을 거느리고 파구 경계에 영채를 세웠다 하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합니다."

후주가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얼굴로 신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승상께서 이제 막 세상을 떠나셨는데 동오가 동맹을 저버리고 우리 경계를 침범하려 한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장완이 나서서 아뢰었다.

"신이 왕평과 장의에게 군사 수만을 주어 영안으로 가서 만일의 일에 대비토록 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사람을 뽑아 동오로 보내 승상의 죽음을 알리게 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엿보게 하십시오."

후주도 장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하는 사람을 뽑아 사신으로 보내야겠구려."

"바라건대 신을 보내 주십시오."

모두 그를 보니 그는 남양군 안중 땅 태생으로 이름은 종예, 자는 덕염인데 참군우중랑장일나 벼슬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종예가 자청하며 나서자 후주는 기뻐하며 그 길로 동오로 가 공명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그들의 속셈을 살펴 오게 했다. 종예는 길을 재촉해 금릉으로 달려가 오주 손권을 뵈었다. 손권에게 절을 올리고 좌우를 보니 모두 상복 차림이었다. 손권이 이미 공명의 죽음을 알고 상복으로 공명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예를 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거기다 손권이 오히려 언짢은 얼굴로 종예에게 물었다.

"우리 오와 촉은 이미 한 집안이나 다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경의 주인은 백제성에 군사를 늘리고 있는가?"

종예가 손권의 물음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동오가 파구 땅으로 군사를 늘리니 촉에서도 백제성으로 군사를 더 내어 지키는 것이 마땅한 이치입니다. 조금도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닌 줄로 압니다."

그 말을 들은 손권이 껄걸 웃으며 말했다.

"경은 이전에 사신으로 왔던 등지에 못지않은 사신이오."

손권은 그렇게 종예를 칭하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짐은 제갈 승상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소. 또한 모든 관원들에게도 상복을 입게 하였거니와 제갈 승상이 돌아가신 틈을 타서 위나라에서 촉을 노릴까 염려했소. 그래서 파구에 군사 1만을 더 보내 만일의 경우에 경의 주인을 돕게 하였던 것이오. 결코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외다."

그 말을 듣자 종예는 부질없이 동오를 의심했던 것임을 깨닫고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려 감사를 표했다. 손권이 종예의 의심을 씻어 주기 위해 다시 힘주어 말했다.

"짐이 이미 동맹을 맺은 터에 어찌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소?"

종예가 그런 손권에게 말을 둘러댔다.

"저희 천자께서는 이번에 승상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므로 특별히 신을 보내 알려 드리라 하셨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손권은 촉이 만에 하나라도 의심을 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는지 문득 황금 장식이 달린 화살을 화살통에서 뽑아 꺾으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짐이 만약 지난날 맺은 동맹을 저버린다면 내 자손은 대를 잊지 못하고 끊길 것이다!"

손권은 이어 향과 비단과 여러 가지 애물을 가지고 오게 하고 사신을 뽑아 종예와 함께 서천으로 가게 하여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에 종예는 오주 손권에게 절을 올려 하직을 고하고 동오의 사신과 함께 성도로 돌아와 후주에게 아뢰었다.

"오주는 승상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래 매일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셨다 하옵니다. 또한 모든 관원들에게 상복을 입게 하셨습니다. 파구 땅에 군사를 늘린 것은 혹시 위나라가 이 틈을 노려 촉으로 쳐들어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대비한 것일뿐 딴 뜻은 없었다 합니다. 특히 오주는 몸소 화살을 꺾어 동맹을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였습니다.

후주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뻐했다. 종예의 노고를 치하한 후 동오의 사신을 불러 후히 대접했다. 동오의 사신이 돌아가자 후주는 공명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을 좇아 문무백관들의 작위를 새롭게 내렸다. 장완을 승상으로 삼는 한편 대장군에다 상서라는 벼슬을 겸하도록 했다. 비위는 상서령으로 삼아 승상의 일을 돕게 했다. 또 오의는 거기장군으로 삼고 절을 주어 한중 땅을 지키게 했다. 강유는 보한장군 평양후로 삼아 모든 곳의 군사를 다스리게 하여 오의와 함께 한중에 머물며 위나라의 침범에 대비케 했다. 그 밖의 다른 장수들은 지난날의 벼슬 그대로 두어 각기 맡았던 일을 보게 했다. 양의 또한 지난날 지녔던 벼슬 그대로였다. 그러나 벼슬길에 오른 지는 장완보다 앞섰으나 그 밑에 있게 된데다, 스스로 자신의 공을 높이 여기고 있었으나 상이 없자 불만이 일었다. 양의는 비위를 보자 마음속의 불평을 털어놓았다.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했더라면 오늘날 이토록 박대를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오."

비위는 양의가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하자 은밀히 후주에게 표문을 올려 그 사실을 고했다. 후주는 비위의 표문을 읽자 크게 노해 양의를 옥에 가두고 엄히 문초한 뒤 목을 베려 했다. 그러자 장완이 나서 후주에게 간곡히 아뢰었다.

"양의의 죄가 죽어 마땅하나, 지난날 승상을 받들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그를 죽이는 대신 벼슬을 빼앗고 서인으로 만들어 몰아내시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장완의 청에 후주도 그 말에 따랐다. 이에 양의는 평민이 되어 한중의 가군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가군으로 쫓겨난 양의는 한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더니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향락에 빠진 위주 조예

공명의 죽음으로 사마의도 위로 군사를 물리자 세 나라가 싸움을 그친 것은 촉한 건흥 13, 오나라는 가회 4년이요, 위나라는 청룡 3년이었다. 이 해에는 세 나라 사이에 서로 군사를 내어 싸우지 않으니, 오랜만에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위주 조예는 사마의를 태위로 삼아 모든 군사를 이끌어 변방을 지키게 했다.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자 위주 조예는 허도에 대규모의 궁궐과 전각을 짓도록 했다. 뒤이어 낙양에도 조양전, 태극전, 총장관이란 궁전을 지었는데 그 높이가 모두 열 길이 넘는 화려하고 움장한 궁궐이었다. 뿐만 아니라 승화전, 청소각, 봉황루를 세우는가 하면 구룡지를 팠다. 박사 마균에게 모든 공사를 맡기니 용이 꿈틀거리듯 조각한 대들보에다 꽃무늬를 수놓은 마루와 청기와와 금빛 벽돌을 붙인 기둥이 보는 이의 눈을 현란케 했다. 이 큰 공사를 위해 뽑혀온 천하의 이름난 공장들만 해도 3만여 명이요, 백성 30십만 명이 동원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키니 지친 백성들의 원망 소리가 드높았다. 조예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방림원에 토목 공사를 벌여 공경대부까지 흙을 져 나르게 했다. 이에 사도 동심이 보다 못해 표문을 올렸다. 이미 그 동안의 싸움으로 들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이 많은 터라 늙고 병든 백성들이 많으니 궁궐을 짓더라도 농사철을 피해 적당한 때를 택해야 한다는 표문이었다. 또한 공경대부까지 궁궐 짓는 일에 내몰아 조정의 기강을 무너뜨림은 부당하다고 아뢰었다. 그 표문을 본 조예는 크게 노해 동심의 벼슬을 빼앗고 내쫓게 했다. 동심이 하루아침에 벼슬을 빼앗긴 채 쫓겨났으나 조정에는 충의 있는 신하들이 또 있었다. 태자사인 장무가 다시 표문을 올려 공사를 중지하라고 간했다. 그러나 조예는 또다시 그를 목 베어 죽여 버렸다. 조예의 사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곧 마균을 불러들였다.

"짐은 좀더 높고 화려한 궁전을 짓고 신선과 왕래하며 늙지 않는 처방을 얻고자 하오."

그러자 마균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한나라 스물네 분의 황제 중 무제만이 가장 오래 사셨습니다. 그 까닭은 하늘의 해와 달의 정기를 잡수셨기 때문입니다. 무제께서는 장안의 궁중에 백양대를 세우시고 그 대 위에 구리로 사람을 만들어 세우셨습니다. 이 구리로 만든 사람의 손에 쟁반을 받들게 하였는데 이 쟁반을 승로반이라 하였습니다. 이 승로반으로 밤 삼경 때 북두칠성의 정기가 서린 이슬을 받게 하셨는데 그 이슬을 천장 또는 감로라 하였습니다. 무제께서는 아름다운 옥을 갈아 가루로 만든 후 그 이슬에 섞어 젊어지는 약으로 마셨습니다."

조예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 동인을 옮겨 오게 했다. 마균은 곧 인부 1만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가서 백양대에 오르기 위해 나무를 얽어 발판을 만들었다. 백양대는 그 높이가 이십 길에, 대를 바치고 있는 구리 기둥의 둘레가 열 아름이었다. 마균이 인부들에게 동상을 뽑아내게 하자 많은 인부들이 힘을 합해 동상을 쓰러뜨리려 했다. 그러자 동상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몹시 놀라고 있는데 돌연 회오리바람이 일며 모래와 돌멩이를 말아 올리더니 소나기 퍼붓듯 내리쳤다. 그러고는 하늘이 무너지듯 땅이 꺼지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리 기둥이 인부 1천 명이 그 밑에 깔려 죽었다. 마균이 동인과 승로반만을 낙양으로 옮겨 오자 조예가 물었다.

"구리 기둥은 어디 있는가?"

"무게가 1백만 근이나 나가 도저히 운반해 올 수가 없었습니다."

조예는 그것으로 두 개의 동인을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옹중이라 했다. 조예는 그 옹중을 사마문 밖에 세우고, 또 구리로 용과 봉황을 한 쌍씩 만들어 궁정 앞에 세웠다. 용의 높이는 네길이요, 봉황의 높이는 세 길이었다. 또한 상림원에는 진기한 꽃과 새들을 기르게 했다. 소부 양부가 보다 못해 상소를 올려 간했다. 진시황이 아방궁을 꾸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다가 그 재앙이 아들에게 미쳐 2세에 멸망했음을 깨우쳤다. 그러나 조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예는 영을 내려 방림원에 천하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뽑아 두고 향락에 흠뻑 취해들었다. 조예는 제위에 오르자 모씨를 황후로 삼았으나 후궁인 곽 부인을 보자 황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곽 부인은 예쁘고 영리했다. 조예는 곽 부인에게 빠져 지내다 마침내 모황후에게 사약을 내리고 말았다. 조예가 곽 부인을 황후로 삼았으나 신하들은 감히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조예가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조정에는 간신들만이 들끓는데다 백성들의 원성이 드높아지니 이러한 때는 자연히 변고가 일게 마련이었다. 어느 날 유주자사 관구검으로부터 요동의 공손연이 스스로 연왕이라 일컬으며 난을 일으켰다는 표문이 올라왔다. 공손연은 건안 12, 조조가 원상을 치기 위해 요동으로 향했을 때 미리 원상의 목을 베어 바쳤던 공손강의 둘째 아들이었다. 조조가 그 공을 기특히 여거 양평후로 봉했다. 공손강이 죽자 그의 아들은 아직 어렸으므로 아우인 공손공이 그 뒤를 이었다. 태화 2년이 되자 이제 성인이 된 공손연은 문무에 능한데다 야심에 차있던 중 숙부인 공손공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 조예는 하는 수 없이 공손연을 양렬장군 요동태수로 봉했다. 그 후 오나라의 손권이 사신을 요동으로 보내 공손연에게 금은보석을 주며 그를 연왕에 봉하려 했다. 그러나 공손연은 중원의 조예가 두려워 그 사신들을 목베어 조예에게 바쳤다. 이에 조예는 크게 기뻐하며 공손연에게 대사마 낙랑공의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공손연은 조예가 내린 벼슬에 불만을 품고 스스로 연왕이라 칭하며 군사를 일으킨 것이었다. 부장 가범과 참군 윤직이 말렸으나 공손연은 그들을 목 베고 15만의 군사를 휘몰아 중원으로 달려갔다. 조예가 전갈을 받고 크게 놀라 사마의를 불렀다.

"신에게 보병과 기병 4만이 있습니다. 역적을 토벌하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하오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며 조예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조예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사마의에게 물었다.

"길이 멀고 험한 데다 군사가 너무 적어 많은 적을 쳐서 무찌르기가 어려울까 걱정이오."

사마의가 걱정하는 조예에게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장수는 계책과 지혜로 군사를 부릴 줄 알아야 하며 결코 군사가 많아야만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공손연이 만일 성을 버리고 달아나면 그로서는 상책이요, 그렇지 않고 요동을 지키며 맞선다면 중책입니다. 또한 앉아서 양평 땅을 지키려 든다면 이는 하책이니 그가 이 계책을 쓴다면 반드시 공손연을 사로잡고야 말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싸움을 끝내고 돌아오겠소?"

조예가 사마의에게 물었다.

"여기서 4천 리 길이니, 가는데 백 일이 걸리며 적을 치는 데 백 일, 돌아오는 데 백 일이 걸리며 쉬는데 60일 정도 걸립니다. 아마 늦어도 1년이면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예가 다시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 동안 오나 촉에서 쳐들어오면 어찌하겠소?"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이 그에 대한 방비책을 세워 놓고 떠나겠습니다."

사마의가 그렇게 대답하자 조예는 그제야 크게 기뻐하며 사마의가 출병하도록 명했다.

사마의는 호준을 선봉으로 삼아 머저 요동에 이르러 공손연을 치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손연은 비연과 양조를 시켜 참호를 파는 등, 방비에 힘을 기울였다. 호준은 지체없이 적정을 사마의에게 알렸다. 사마의는 웃고 어떤 생각을 하다가 곧 군사를 재촉하여 소로를 따라 양평으로 군사를 옮겼다.

한편 비연과 양조는 위병이 공격해도 대적하지 않기로 했다. 양초가 거의 떨어질 무렵에 기병으로 칠 심산이었다. 그런데 홀연히 소식이 오기를 위병들이 남쪽으로 진군한다는 것이었다. 비연은 크게 놀라,

"위병들이 우리 양평에 군사가 적음을 알고서 그리로 기습하러 간다, 만일 양평을 잃게 되면 이곳도 무의미하게 된다."

하고 마침내 그 뒤를 따르기로 했다. 사마의는 한바탕 웃고 나서,

"필경 내 꾀에 빠졌도다."

하고 무릎을 쳤다.

그리하여 사마의는 하후패와 하후위를 제수 가에도 복병했다가 요병이 나타나면 양편에서 협공하라고 명했다. 그들은 이윽고 비연과 양조의 군사를 맞았다. 요병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수산ㅇ로 도망쳤다. 그곳에는 공손연이 이미 둔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이어서 위병이 추격해왔다. 먼저 하후패와 비연이 맞붙었다. 싸우기 수합도 못되어 비연은 하후패의 칼에 의해 말 아래로 떨어졌다. 요병이 흩어지자 공손연은 패잔병을 이끌고 양평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위병들은 성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때는 늦은 가을, 장마가 들어 한 달 동안이나 비가 계속 내려 평지에도 빗물이 석자나 고였다. 위병들은 마치 물 속에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자 좌도독 백경과 우도독 구련은 영채를 앞산 위로 옮기자고 간언했다. 사마의는 크게 노한다.

"내 이미 군령을 발했거늘 네놈들은 군령을 어길 참이냐?"

하고 그들의 목을 베라고 호령했다.

군심이 가라앉자 사마의는 남쪽 영채의 인마를 20리 밖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성 안에 갇혔던 요병들은 백성들과 함께 나와서 뗄 나무를 장만하며 소와 말에 풀을 먹였다. 사마 진군이 묻는다.

"지난날 태위께서는 군사를 팔로(八路)로 나누어 8일 안에 맹달을 사로잡은 바 있는데 어찌하여 이번에는 가만 있기만 합니까?"

사마의는 껄껄 웃고 대답한다.

"지금 요병의 수효는 많고 우리는 적다. 적군은 배를 주리고 있고, 우리는 배불리 먹고 있다. 따라서 애써 칠것이 아니라, 이대로 두면 적군이 물러날 것이므로 그때를 놓치지 않고 치면 대승을 거둘 것이다. 그리고 짐짓 한 가닥 길을 열어주어 그들에게 뗄 나무를 얻게 함도 이는 모두 그들이 스스로 달아나게 하는 계교로다."

위군은 사마의 말을 듣고 크게 탄복했다.

이 무렵 사마의는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어 군량을 재촉한 바 있었다. 위주 조예는 사마의의 군전으로 군량을 보냈다. 마침내 지루한 장마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이날 밤 사마의는 크기가 말()과 같고 유고아의 몇 발이나 되는 별 한 개가 수산(首山)의 동북에서부터 양평 동남쪽을 향하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마의는 크게 기뻐하며 곧 중신들을 불러모으고 말한다.

"내 닷새 지난날에 저 별이 떨어진 곳에서 틀림없이 공손연의 목을 베일 것이니 너희들은 내일 힘을 합하여 성을 공격하라"

그리하여 드디어 위병의 공격은 개시되었다. 화살은 빗발처럼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공손연은 당황했다. 양식은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요병들은 공손연의 목을 잘라 항복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공손연은 마침내 상국 왕전과 어사태부 유포를 시켜 항복을 청하도록 했다. 사마의 앞에 이른 왕건은 항복을 애원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노기를 띠우며

"어찌 공손연이 몸소 오지 못하겠더냐!"

하고 좌우에 명하여 목 베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목을 공손연에게 보냈다. 공손연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다시 시중 위연을 위군의 영채로 보냈다. 위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원컨애 태위께서는 노기를 거두시옵소서. 소인이 돌아간 즉시로 세자 공손수를 인질로 보내옵고 뒤따라 군신이 스스로 결박하고 항복하겠습니다."

사마의는 엄숙하게 말한다.

"듣거라. 군사의 대요에 다섯 가지 있다. 능히 싸울 수 있으면 마땅히 싸우는 것이요, 싸우지 못한다면 마땅히 지킬 것이요, 능히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곧 달아날 것이요, 능히 달아날 수 없다면 마땅히 항복할 것이며, 항복하지 못할 경우엔 마땅히 죽을 것이어늘 어찌 하필이면 자식을 보내어 인질로 삼는단 말이냐. 썩 물러가서 공손연에게 알려라."

위연은 머리를 얼싸안고 그곳을 물러나 공손연에게 고했다. 공손연은 아들 수와 상의하고 그날 밤 3경에 남문을 열고 동남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려도 위병은 보이지 않기에 공손연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여리가량 갓을 때 중앙에는 사마의, 왼편에는 사마사, 오른편에는 사마소가 나타나서 호령하는 것이었다. 공손연은 혼비백산하여 말머리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그곳에도 호준의 군사가 나타나서 길을 막는 것이었다. 공손연의 부자는 하늘로 솟을 수밖에 없어 긴 한숨과 함께 말을 내려 항복했다. 사마의는 곧 그들을 목 베게 했다. 그런 다음 양평을 아주 손쉽게 점령하고 공손연의 종족(宗族)들과 동모한 관료인들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사마의는 전날에 가범과 윤직이 고간했다가 죽었음을 알고 그들의 무덤을 봉하고 삼군에 후히 상을 준 다음 군사를 돌이켜 낙양으로 돌아갔다.

한편 위주 조예는 등잔을 돋우고 산란한 심정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북원놀이의 일로 억지로 흠을 잡아 죽인 모황후의 일이 있은 뒤부터 어느 날이고 마음 편한 날이 없던 그였다. 그날 3경이 넘어서였다. 난데없이 일진 음풍이 휙 일어나더니 등불을 훅 꺼버렸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무엇이 어른거렸다. 조예는 눈을 부릅뜨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흰옷을 입은 모황후가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그 뒤에도 역시 흰옷을 걸친 수십 명의 궁인이 어른거리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모황후는 허들허들 조예 앞으로 와서 소리친다.

"내 목숨을 찾아주오."

"아니...!"

조예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 기절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로부터 자리에 눕게 된 조예는 날이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유방과 손자를 시켜 추밀원의 모든 정사를 맡아보게 하고 문제의 아들 연왕 조우를 불러들여 대장군으로 삼아 태자 조방을 돕게 했다. 그러나 조우는 이와 같은 대임을 맡지 못하겠다고 사양했다. 그리하여 조예는 그 대신 조상을 대장으로 삼아 조정을 다스리게 했다.

날이 갈수록 조예의 병은 더 악화되어 드디어 사마의를 불러들였다. 그 자리에는 태자 조방, 대장군 조상, 시중 유방 · 손자 등이 있었다. 조예는 사마의의 손을 잡고

"짐의 아들 방은 나이 겨우 여덟 살이나 다행히 태위를 비롯하여 종형 원훈 구신이 있으므로 그대들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와 짐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지어다."

하고 사마의더러 조방을 데리고 가까이 오게 했다. 사마의가 조방을 안자 조방은 사마의의 목을 얼싸안으며 응석을 부렸다. 조예는 뜨거운 눈으로 이 광경을 보더니

"태위는 부디 어린아이의 오늘의 상연지정을 잊지 마오."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정신을 잃는 등 하다가 마침내 눈을 감으니 곧 제위 한 지 13년만이요, 나이는 36, 때는 위나라 경초 3년 춘삼월 하순이었다.

사마의와 조상은 태자 조방을 받들어 제위에 오르게 했다. 조방의 자는 난경, 곧 조예의 걸양(乞養)한 아들이었으나 워낙 바깥과 떨어진 궁중의 일인지라 아무도 그 유래를 모르고 있었다. 조방은 아버지 조예를 명제라 하고 고평릉에다 장사지내고는 곽황후를 태황후로 삼은 뒤 정시 원년으로 개원했다.

조상의 자는 소백이었다. 그의 문하에는 약 5백령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다섯 사람이 매우 부화(浮華)한 것을 숭상했다. 하안 · 등양 · 이승 · 정밀 · 필범 등이 곧 그들이다. 그리고 지모가 놀라운 사람으로서는 태사농 환범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꾀주머니라고 일컬었다.

어느 날 하안이 은근히 조상에게 말했다. 대권을 왜 남에게 넘겼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은 사마의를 배반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허지만 조상은 여러 사람과 의논한 끝에 궁중으로 들어가 조방에게 진언한다.

"사마의로 말하면 그 세운 바 공이 크므로 이번에는 태부로 삼으소서."

조방은 어린 마음에도 옳게 여기고 그대로 했다. 이로부터 병권은 모두 조상에게로 돌아오고 말았다. 조상은 아우 조희를 중령군으로 삼고 조훈은 무위장군, 조언은 산기상시를 삼아 각기 3천의 어림군을 이끌어 금궁의 출입을 마음대로 했고 다시 하안 · 등양 · 정밀을 상서로 삼고, 필법을 사례교위로 삼은 다음, 이승을 하남윤으로 삼아 대소간 모든 일을 서로 의논했다. 이렇게 되자 사마의는 병을 빙자하여 나오지 않았고, 그의 두 아들은 퇴직하여 전야에 묻힌 몸이 되고 말았다. 조상의 무리들은 밤낮 잔치를 베풀며 술과 계집에 빠져있었다. 더욱이 조상은 영화에만 눈이 어두워 양갓집 자녀 3, 40명을 뽑아 들여 가악으로 삼고 부중을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이때 위주 조방은 정시 10년을 가평 원년으로 했다. 그리고 조상은 조상대로 날로 권세를 강화하며 세도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 가지 궁금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사마의 중달의 허실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알아 볼 수도 없어서 몹시 속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자 때마침 이승이 청주자사로 부임하게 되어 그가 인사차 사마의를 찾는 길에 그 허실을 정탐해오도록 했다. 사마의는 이승이 왔다는 전갈을 듣고 곧 머리를 산발하여 우수수 병든 양으로 꾸미고 자리에 누워있었다. 이승이 침상 앞에 와서 절하고 말한다.

"태부를 뵈온 지 오래였거니와 이렇듯 병환이 위중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생은 이번 청주자사로 가게 되어 인사를 하려고 왔습니다."

사마의는 웃으며 대답한다.

", 그래 병주는 삭방에 가까우니 특히 방비를 굳게 하라."

이승은 사마의의 말이 두서가 맞지 않음을 보자 당황하여,

"청주로 부임하지 병주가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 사마의는 다시 웃으며 말한다.

", 병주에서 온다구."

이승은 속이 타서

"병주가 아니옵고 저 산동의 청주올씨다."

"오라 산동의 청주에서 왔다구."

이승은 더욱 기가 막혔다. 그러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귀띔해 준다.

"태부께서는 귀까지 멀어서 저러시는 겁니다."

그제야 이승은 알아차리고 지필을 빌려 온 뜻을 전했다. 사마의는 그것을 보고

"내가 오래 앓더니 귀까지 멀었는가."

하고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이승은 사마의의 부중을 나오는 길로 조상을 찾아 사실대로 고했다. 물론 조상은 매우 기뻐했다. 이승이 돌아가자, 사마의는 두 아들에게

"이승의 말을 들은 조상은 마음을 놓을 터이므로 그가 사냥하러 성 밖으로 나올 때 일을 도모하기로 하자."

하고 말했다.

과연 때는 너무나 일찍 돌아왔다. 며칠 후 조상은 위주 조방을 호위하여 선제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성 밖으로 나왔다. 그는 세 아우를 비롯하여 심복인 하안의 무리와 어림군을 동반하고 있었다. 물론 성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즉시 지난날의 부하였던 사람들과 가장(家將) 수십 명을 인솔하여 성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고유로 하여금 조상의 영중을 점령하게 하고 왕관을 불러내어 조희의 영중을 점령하게 했다. 다음엔 사마의 스스로는 구관들을 거느리고 후궁으로 들어가 곽태후에게 조상의 죄상을 고하고 그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태후는 두려움이 앞서 다만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한편, 사마의는 표를 쓰게 하여 황문을 시켜 성 밖으로 나아가 위주 조방에게 바치도록 했다. 그리고 사마의는 무고(武庫)를 손에 넣었다. 그런 다음 사마소는 아버지를 호위하여 성을 나가 군사를 낙하에도 둔치고 부교를 지키고 있었다. 조상의 수하에 있는 노지는 성중에 일어난 사변을 보고 놀란 김에 참군 신창과 상의한 끝에 수십 기를 거느리고 문지기를 베고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환범도 가까스로 성 밖으로 나왔따. 특히 환범이 성 밖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깊이 한탄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입맛을 다시고 있다가 이윽고 허윤과 진태 두 사람을 불러들이고

"너희들은 곧바로 조상에게로 가서 내가 딴 뜻은 없고 다만 그들 형제의 병권만 빼앗는 데만 있다고 전해라."

하고 분부했다. 그리고 글을 써서 전중교위로 있는 윤대목으로 하여금 조상에게 전하도록 했다. 한편 조상은 사냥터에서 한창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사마의의 표를 받게 되어 근신더러 읽게 했다. 위주 조방은 끝까지 들은 끝에 조상을 불렀다.

"태부는 병권만은 이양해 달라고 하는데 경의 뜻은 어떻소?"

조상은 대답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두 아우를 돌아보며 묻는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냐?"

아우 희가

"용렬한 이 아우가 지난날 그렇게도 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힘으로 어찌 사마의를 이겨내겠소. 그러나 죽기나 면하도록 애걸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소."

하고 분명히 말했다.

"......"

얼마 후 조상은 참군 신창으로부터 성 안의 소식을 들었다. 성 안은 사마의의 군사가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사농 환범이 달려 와서 허도로 가서 외병을 불러 사마의를 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조상은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땅만 내려다 보며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자 전태 등이 달려와서 사마의 뜻을 전했다. 사마의 뜻은 병권을 꺾고자 하는데 있으므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윤대목이 달려와서

태부가 낙수를 가리키며 맹세하기를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하더이다. 그러하오니 장군은 병권을 넘겨 주기로 하고 속히 상부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줄 압니다."

이때 다시 환범이 간했다. 상부로 가다는 것은 사지로 가는 길과 같다는 것이다. 조상은 그 말도 사실 그럴 듯싶어 머리를 끄덕였다. 조상은 밤이 되어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환범은 은근히 독촉했다. 조상은 "휴우..." 하고 죄 없는 칼만 땅에 떨어뜨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번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벼슬을 버리고 다만 부가옹이 되어 여생을 편히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소." 하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환범은 기가 막혔다. 그는 마침내 통곡하기까지 했다.

허윤과 진태는 조상에게 인수를 사마의에게 바치도록 권했다. 조상은 주부 양종 등의 통곡을 들으며 인수를 두 사람에게 주어 사마의에게 보냈다. 이 일을 모든 군사들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무거운 항복에의 걸음은 부교에 이러러 멈추었다. 사마의는 영을 내려 조상의 3형제는 사택으로 돌아가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감금하여 오직 칙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마의는 어가를 영접하자 영채를 뽑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얼마후 사마의는 먼저 황문 장당을 잡아다 하옥시키고, 다음엔 환범을 하옥시켰다. 그리고 나서 사마의는 조상의 형제 세 사람을 비롯하여 그 일당 천여 명을 목 베어 죽이고 다시 그 삼족을 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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